시크밤

소설가 김범영 실화소설 귀여운처제 3.4

제주소설가 | 2020.01.31 20:41:41 댓글: 0 조회: 3636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053095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철썩.

철썩.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높은 벼랑 위.

떨어지는 소나기를 고스란히 맞고 서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여인이었다.

온통 얼굴엔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빗물이 흘러서 눈물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그녀는 지금 울고 있었다.

자살을 하려는 것일까.

그런데.

그녀의 옷이.

고교생 복장이 아닌가.

빗물이 흐르는 얼굴을 자세히 보니.

! 그녀는.

진미경.

바로 그녀였다.

오장진에게 첫 순결을 바쳤다고 하던 그녀.

j대학교 가정학과에 다닌다 하던 그녀.

그녀는 고등학생이었단 말인가.

그녀의 슬픈 얼굴에 잠시 지난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3일전부터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산부인과를 가자고 했다.

오장진과 하룻밤 섹스가 그녀에게 임신이란 것을 안겨준 것이다.

임신.

고등학교 이제 3학년.

그녀의 어머니에겐 청천병력과 같은 충격이었다.

이년아!

대학도 가고 그래야 하는데.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놈의 애새끼를 낳으면 어떻게.

당장 떼버리자.

오늘 나하고 산부인과 가서 수술하고 오자.

당장.

어머니의 성화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녀는 집에도 학교에도 갈 수가 없었다.

이미 학교에서도 알건 다 알아 버렸다.

그래도 믿는다고 단짝 친구인 아랫마을 끝순이에게 살짝 말했더니.

이 계집애가 다 떠벌리고 다녔던 것이다.

빌어먹을 계집애.

진미경은 있는 욕을 다 퍼부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다.

저기 발아래 30미터는 되는 낭떠러지.

한발만 앞으로 내딛으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그래도 자신이 사랑해서 함께한 그 사람의 씨앗이 뱃속에 있는데.

그 아이마저 태어나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지게 할 수는 없었다.

어디 멀리 도망이라도 가서 혼자 애기 낳고 살아야 하는가.

홀로된 어머니는 그냥 놔두고.

후두둑...

휘잉.

철썩. 철썩.

비바람과 파도 소리는 여전한데.

진미경은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죽으나 사나 집으로 가려는 것이다.

흑흑.

멀리서 진미경의 행동 하나 하나를 다 지켜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진미경의 어머니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딸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염병할 놈.

여행 와서 민박집에 들렸으면 잠이나 자고 놀다 갈 것이지.

남의 귀한 딸래미는 왜 건드리고 가.

후래 자식 놈.

집으로 돌아가는 진미경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딸을 그렇게 만든 이름도 모르는 남자

에게 욕이란 욕은 모조리 꺼냈다.

[왜우런?]

딸래미가 자살을 하려는 것으로 알았는데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가자.

신세를 한탄하며 울던 어머니 등 뒤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왜 우느냐고 묻는 말이다.

[! 고종 할망.]

진미경 어머니는 등뒤에 서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고씨 종가 집 할머니라서 그렇게 부른다.

진미경 어머니가 반가워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잘 맞추는 신통력이 있는 할머니로 이미 동네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기 때

문이다.

[미경이가 임신을 했다고?]

할머니는 진미경 어머니의 말을 듣고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

진미경 어머니는 얼른 대답하며 미경이 앞날 좀 봐달라고 졸랐다.

[걱정마라! 기다리면 올꺼다. 애기나 잘 기르고 있으면 반드시 올 테니 기다려라!]

할머니는 그렇게 확신하듯 말하며 진미경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놈은 대체 누굽니까?]

진미경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그렇게 물었고.

할머니는 진미경이 천생배필이라고 했다.

[배필. 내 딸년의 배필이라고.]

진미경의 어머니는 그 고씨 할머니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왜냐하면 신통력이 있는 할머니이므로.

[할망 말대로 그래 낳고 기르며 기다리자! 그놈이 온다 했으니 기다려!]

진미경 어머니는 미경에게 그렇게 말을 하며 얼마 남지 않은 고등학교를 중퇴시키고

헤어디자이너 학원에 다니도록 했다.

진미경은 고교를 3개월 남기고 중퇴를 하고 우선 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하면서 제주

시내에 있는 미용학원에 나가기로 하였다.

배가 부르기 전에 우선 운전면허부터 따려는 생각에 열심히 학원에 다니며 실습위주

로 공부를 했다.

외무고시를 패스한 지 이미 2년째.

석사학위와 박사 코스를 겨냥한 대학원인데.

문제가 생겼다.

아버지의 특명이 떨어진 것이다.

한중 교류가 한창인 때.

중국에 외교관으로 나가 있으라는 것인데.

아버지의 뜻은 다른 곳에 있었다.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들 알맹이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돈을 빌려줘도 되는지 알아보라는 것인데.

대학원 졸업을 두 달 남겨둔 상태에서부터

중국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희.

그녀도 아마 그때부터라고 했다.

나를 따라가려고 중국행을 준비한 시기가.

중국행을 한 달 정도 남겨둔

늦은 가을.

11.

큰 후박나무 잎들이 바람에 날려 하나 둘.

다 떨어지고 몇 잎 남아 있을 무렵이다.

핸드폰이 울리고.

전화를 건 다희는.

h전통 찻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약속 시간은 좀 늦은 밤 9시 정각.

지금까지 늘 만나왔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먼저 만나자고 하는 것은 첨이다.

한강변에서 땀이 나도록 운동을 하던 나는.

다희의 전화를 받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얼른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겨우 30분 남았다.

샤워를 마친 나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뛰다시피 주차장으로 나갔다.

급 할 땐 정신도 따라서 급하기만 한 것.

옷을 갈아입느라 자동차 키를 갖고 나오지 않았다.

그냥 택시를 타고 갔다.

기다렸다는 듯.

집 앞에 지나가는 택시가 마침 있었던 것이다.

h전통 찻집은 여의도 한강변에 있었다.

방배동에서 차가 밀리지 않는 시간이라.

20분 만에 도착했다.

찻집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다희를 찻집 앞에서 만났다.

[오빠!]

다희가 나를 부르며 쪼르르 달려와 두 팔로 허리를 감싸않았다.

[다희 알바 끝나고 오는 모양이구나?]

난 다희의 몸에서 나는 햄버거 냄새를 맡았다.

[! 짠돌이 사장님이 저녁도 안주고 일만 시켰어. 배고파. 뭐 좀 사줘!]

다희가 내 오른팔에 두 손을 잡고 매달리며 아양을 떨었다.

[그래! 나도 아직 저녁 전이거든...! 저 앞 선착장에서 피자 파는데 맛이 그럭저럭 먹을 만하더라.]

난 고교시절 최민희와 간혹 왔던 피자집의 피자 맛이 생각나서 말했다.

[뭐야! 하루 종일 햄버거와 피자냄새에 쪄든 날보고 피자 먹자고?]

다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 이런! 그렇지! 미안!]

난 정말 대책 없는 남자다.

데이트하는 여자 생각은 전혀 안하는 모양이다.

알바 하느라고 햄버거 피자 냄새만 맡고 있는 다희에게 피자를 먹자고 하니 말이다.

[저쪽 방송국 있는 앞에 가면 아구찜 맛있는 집이 있어. 그거 사줘!]

다희는 얼큰한 것이 먹고 싶은 모양이다.

나는 다희와 함께 20여분을 걸어 아구찜을 먹으러 갔다.

20분 정도 걸어가면서.

다희는 누가 볼 새라 번개같이 내 입술에 살짝 입맞춤을 했다.

다희와 처음으로 입맞춤을 한 것인데.

너무 순간적이라서 어떤 느낌마저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아구 아구.

다희는 입이 터져라 아구찜을 입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무척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다희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느라고 난 몇 숟가락 뜨다보니 이미 큰 냄비가 다 비워졌다.

[오빠! 이제 한 달 남았지?]

다희가 나에게 중국행을 묻는 것이다.

[! 그래!]

난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했다.

[...!]

다희가 살짝 웃음을 지었다.

[이제 배가 부르니까. 소화도 시킬 겸 영화나 보러가자!]

다희는 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길가에서 택시를 탔다.

[신촌으로 가요!]

다희가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신촌.

이미 시간은 밤 10시가 다돼가고 있었다.

[영화를 보다보면 시간이 너무 늦을 텐데? 부모님이 걱정하신다며?]

난 영화관 입구에서 다희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늘 나와 데이트를 할 때면

부모님을 들먹이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던 다희다.

저녁 10시가 넘도록 같이 다닌 적이 없었다.

[!]

다희는 내 입에다 손가락을 대며 말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난 다희가 다른 때와 틀린 행동을 보이므로 뭔가 집안에 일이 있나보다 했다.

더 이상 묻지도 않고 함께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다희는 나에게 살며시 안겨오며 그동안 철저히 피했던.

성적 접촉을.

진한 키스로 개방해주고 있었다.

비록 어둡고.

영화를 관람하느라고 다른 사람들 볼 여유가 없다고들 하지만.

눈치가 보여서 긴 키스는 하지 못했다.

영화가 끝날 즈음.

두 번째 키스를 하고 아쉬운 듯.

영화관을 나섰다.

이미 12시가 넘어서고 있는 시각.

다희는 내 팔을 두 손으로 잡아끌며 술집으로 갔다.

[간단하게 한잔만 하고.]

뒷말을 흐리며.

다희는 빠에 앉아 위스키 두 잔을 시켰다.

여전히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한잔씩 더 할까?]

난 한잔 가지고는 입가심도 안됐다.

다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위스키 두 잔째 시켰고.

나오자마자 급하게 비워버렸다.

난 소주나 맥주 같은 술은 많이 못 마셔도 양주엔 강했다.

아니 독한 술엔 강했다.

밤새도록 마셔도 취해서 쓰러지지는 않는다.

신기한 술꾼이라고 친구들이 놀려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다희 생각도 해야 하기 때문에

위스키 3잔을 마시고는 술집을 나섰다.

다희는 두 잔을 마셨다.

[오빠! 중국에 가서 오래 있을 거 에요?]

길거리를 걸으며 다희가 물었다.

[! 아마도.]

난 아버지를 너무도 잘 안다.

한번 결정한 일은 끝장을 봐야 멈춘다.

아마도 몇 년은 걸릴 것이다.

[결혼은 언제 하려고요?]

다희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물었다.

그 답을 꼭 듣고 싶다는 표정으로 날 처다 봤다.

[인연이 있으면 중국에서도 할 수 있지. 안 그래?]

난 다희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중국에서. 어떻게 결혼을.]

다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결혼을 꼭 하객들 모시고 해야 하나? 둘이서라도 마음만 맞으면 되지.]

난 늘 그렇게 생각했다.

예식장에서 많은 사람들 모시고 축하 받으며 결혼을 하는 것도 좋지만.

겉은 번지르르 하지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그렇지 않다.

축하는 얼어 죽을.

축의금 내면서 욕이나 안하면 다행이다.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축의금을 내고 싶어 내는 사람은 드물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늘 축의금 내러 다녀봤지만.

대부분 만난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축의금을 내고 있었다.

그런 돈 받으려는 생각에 하객들을 모아놓고 결혼하는 사람이 또한 많다.

결국 결혼도 장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결혼은 나에겐 달갑지 않았다.

조촐하게 친척들 모아놓고 축의금 안 받고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오빠! . 오빠 좋아해!]

다희가 어렵게 나에게 고백을 하는데.

젠장.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나를 툭 치면서 지나가는 바람에.

다희의 고백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 뭐라고?]

난 그렇게 다희에게 되묻고 나서야.

다희가 방금 한 말이 제대로 기억이 났다.

이런.

실수를.

난 아차 싶었는데.

[저기.]

다희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얼굴을 붉혔다.

[...!]

난 다희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는데...

. 저건.

다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이.

간판이었는데.

그 간판 이름이.

p모텔.

러브호텔이다.

무슨 생각인지.

다희의 손가락은 가늘게 떨고 있었고.

얼굴은 붉게 물들며 살며시 숙이고 있었다.

부끄러운 모양이다.

드디어.

오랫동안 사귀던 다희.

오늘이 그날인가.

난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반짝이는 러브호텔 간판을 한동안 바라보던 나는.

다희를 살며시 안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반짝. 반짝.

러브호텔 간판 옆에.

또 하나의 간판이 있었다.

만화방.

제기랄.

혹시 저 만화방 가서 책 빌리자는 것 아닐까.

불길한 생각에.

가슴이 오그라들고.

콩콩 거리던 심장도 조심조심 뛰기 시작했다.

비틀.

술에 취했는가.

다희가 잠시 비틀 거리며 내 품에 안겨왔다.

난 더욱 바싹 조이다시피 다희를 안고.

만화가계로 가자고 하기 전에.

서둘러 러브호텔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나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다희가 뾰족한 하이힐 뒷 굽으로 내 발등을 찍은 것이다.

[까르르. 남자들이란 다 엉큼하다니깐! 오빠도 마찬가지 야!]

저만치 도망가면서 다희가 통쾌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제기랄.

저 말괄량이한테 또 당했다.

아픈 발을 절룩거리며 멀리 달아나는 다희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투덜거렸다.

그날 그렇게 도망친 다희는 한 동안 소식이 없었다.

나 역시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

중국 북경.

h호텔.

아버지가 그 비싼 호텔방을 무려 6개월이나 빌려서 나에게 준 것은.

흔 한일이 아니다.

돈도 돈이지만.

아버지나 나의 존재 자체를 남에게 알리기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아버지의 그런 행동은 파격적인 것이다.

중국 북경에 도착한 나는

대사관에 출근을 며칠 앞두고 미리 출국했으므로 중국 관광에 나섰다.

[오빠!]

어떻게 알았는지.

아침부터 다희가 호텔 문 앞에서 진을 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넌 어쩐 일이야?]

다희 보고 출근은 안하냐고 묻는 것이다.

[나도 오빠랑 같은 날 출근이 지롱. !]

다희는 혀를 쏘옥 내밀며 내 팔짱을 끼었다.

[!]

나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피이...다 알아놓고는! 오빠랑 이제부터 중국 여행을 같이 가려고 왔지 롱.]

다희는 한쪽 눈을 살짝 감으며 날보고 윙크했다.

[그래! 5일 동안 신나게 놀자!]

난 다희를 데리고 비서가 몰고 온 승용차를 탔다.

아버지가 보내준 운전기사다.

[엉큼한 생각은 안하기?]

다희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해도 괜찮기.]

내가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치 이.]

다희는 내 팔뚝을 살짝 꼬집으며 눈을 홀겼다.

첫날은 그냥 베이징 시내를 돌아다니며 쇼핑만 하였다.

다희가 혼자 자취를 해야 하므로 필요한 것이 많았다.

과감하게도 그 모든 돈은 내가 다 지불했다.

어떻게 하든 중국에서 다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속셈이 포함된 행동이었다.

저녁은 다희가 샀다.

내가 머무는 호텔 중국식 식당에서.

처음 보는 음식은 먹지를 못하고.

작은 통돼지 구이를 먹었다.

[오빠가 타주는 커피가 먹고 싶어!]

다희가 저녁을 먹고 난 후 나에게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다.

.

요것이 첫날부터 내 호텔방에서 놀려고.

난 엉큼한 생각을 하며 다희를 데리고 내 호텔방으로 갔다.

간단하게 커피를 타서 먹을 수 있는 도구는 준비를 한 상태이기에.

난 커피 물을 올려놓고.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쏴아.

욕실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희다.

커피를 타지도 못하고 그녀가 샤워를 끝내기를 기다렸다.

[나 어때?]

다희가 하얀 긴 수건을 몸에 두르고 나와서 나에게 물었다.

[? ...! 예뻐.]

난 가슴이 콩콩 뛰는 바람에 말까지 더듬으며 겨우 대답했다.

오빠.

다희는 나를 그렇게 부르듯 처다 보더니.

두 팔로 내 목을 감싸며 키스를 퍼부었다.

살랑.

다희의 긴 수건을 벗기고.

황홀감에 취해 다희의 알몸을 바라보고 있는데.

[오빠!]

다희가 나를 불렀다.

[!]

난 비명을 질렀다.

내 허벅지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벌떡 일어섰다.

젠장.

꿈이었네.

무슨 꿈을 이렇게 지저분하게 꾸고 있었지.

어제 마신 술 때문인가.

다희가 내 옆에 서서 무섭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벌건 대낮에 낮잠이나 자고? 게을러서. 쯧쯧.]

다희는 나를 보며 혀끝을 찼다.

[아버님께서 오신대. 얼른 세수하고 옷 갈아입어!]

다희는 마치 명령하는 투로 말했다.

으으.

난 지저분한 꿈을 털어버리듯 샤워를 했다.

30여분 지나서 집에 도착한 아버지 손에는 여권과 비행기 표가 들려 있었다.

[중국에 나가서 좀 있다가 와라!]

아버지는 나에게 명령하듯 말했지만.

난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직 중국에도 안 나간 상태란 말인데.

모든 것이 꿈이었단 말이다.

너무도 지저분한 꿈을 꾼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이란 것을 난 안다.

오래전부터 중국에 아버지께서 벌려놓은 사업이 요즘 많은 타격을 받고 있었다.

신흥 중국 사채업자들이 견제를 심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름 전엔 아버지 부하직원이 폭행까지 당한 일이 있었다.

[알겠어요! 다녀올게요.]

난 이미 집작하고 있었기에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1-2년 걸리는 일이 아니란 것도 잘 안다.

중국에 나가면 몇 년이 걸 릴 지 모르는 일이다.

난 대답을 하면서 다희를 바라보았다.

말괄량이지만 그래도 앞에 안보이면 섭섭한 다희.

그녀의 표정이 어떤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히힛.]

다희는 나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설마.

꿈속에서처럼.

중국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나의 그런 생각은 바로 깨져버렸다.

[다희도 같이 갈 거다!]

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내 귓가에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그렇게 싫지는 않지만.

같이 간다는 것은 왠지 내 앞날이 어두운 먹구름으로 가득 찬 느낌이다.

그러나

꿈은 그냥 꿈이다.

[.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셔서.]

다희가 아쉬운 표정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다희와 나의 사랑은 끝났다.

그 후 다희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결혼을 하고 만다.

난 그날 저녁 급하게 중국으로 떠났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2년이 지났다.

몇 달 만에 한 번씩 서울로 돌아오는데.

그렇게 서울도 돌아와서 볼일을 보고 다시 중국으로 가고.

그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게 전화가 한통 날아 온 것은.

[여보세요?]

난 발신자표시가 없는 전화라서 누가 장난을 하겠지 하는 생각에 별로 반갑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으앙!]

수화기에선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누구니?]

난 갑자기 생각이 나는 것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물었다.

[. 아빠!]

미정이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난 무척 반가웠다.

[미정아! 잘 있었니?]

난 아직도 울음 섞인 목소리의 미정이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아빠! 보고 싶어! 왜 전화가 안 돼? 계속 했는데?]

미정이가 아마도 내가 외국에 나간 사이 공중전화로 계속 전화를 한 모양이다.

[미 미안! 아빠가 외국에 나가있어서 전화가 안 된 거야. 미안해!]

난 미정이가 전화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정말 미안했다.

[아빠!]

미정이가 내 말뜻을 알아들은 것일까.

밝은 목소리로 날 불렀다.

[?]

내가 다정하게 물었다.

[아빠 나. 유치원 다녀!]

미정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모양이다.

[응 그래? 지금 유치원이니?]

내가 물었다.

[아니! 유치원 끝나고 집에 가려고.]

미정이가 유치원이 끝나고 근처 공중전화로 내게 전화를 건 모양이다.

[이런! 동전이 많이 들겠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어린 미정이가 동전이 많이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유치원 같으면 그 전화로 내가 다시 걸려는 것인데.

[선생님이 아빠한테 전화 하라고 동전 넣어 주시는걸.]

미정이가 말했다.

아마도 옆에서 유치원 선생이 동전을 넣어주는 모양이다.

미정이가 아마도 지금 6살일 것이다.

[그래! 선생님한테 아빠가 고맙다고 말했다고 전해줘.]

내가 말했다.

미정이가 바로 그 말을 전하고 있었다.

[아빠 또 외국에 가시면 어떻게?]

미정이는 다시 나와 연락이 안 될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럼 이렇게 하자! 아빠가 서울 집 전화를 가르쳐 줄 테니.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안 되면 미정이가 받을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아빠 집에 전화를 해서 받는

사람한테 알려줘. 그럼 바로 아빠가 전화할게.]

난 그렇게 말했고.

미정이가 이해를 잘 못하겠는지 옆 유치원 선생을 바꿔줬다.

난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아가씨한테 자세히 알려줬다.

[미정이 아직도 아빠랑 찍은 사진 갖고 있지?]

내가 미정이한테 물었다.

[!]

미정이는 아마도 지금 그 사진을 보며 전화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진 뒤에 전화번호가 있으니 말이다.

[그 사진에다 꼭 아빠 집 전화번호를 적어놔! 알았지?]

내가 말했다.

[응 아빠!]

미정이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2년 정도가 흐른 어느 날.

[아빠!]

미정이 전화가 왔다.

[왜 그래? 미정아!]

내가 물었다.

[아빠 오늘 울 학교에 못 오겠지?]

미정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모양이다.

[오늘?]

내가 물었다.

[! 오늘 선생님이 아빠를 모셔 오라고 했는데...아빠는 외국에 나가셔서 못 오신다고 했어!]

미정이가 말했다.

왼지 슬픈 목소리였다.

[미정이가 친구랑 싸웠니?]

내가 물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부모님을 부를 땐 무슨 사고를 냈기 때문일 경우가 많았다.

[! 동규 녀석 까불어서 때려줬는데....으앙...이빨이 부러졌대. 엄마가 알면 혼나.]

미정이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삐삐삐.

동전이 다된 모양이다.

[아빠가 갈게!]

난 다급하게 말했다.

[아빠!]

미정이의 밝음 음성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정말 언제부터인가.

미정이를 딸처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로 공항으로 달려가서 항공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오후에 중국에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도 없었다.

제주도에서 머무를 시간은 겨우 2시간 정도.

공항에서 미정이가 다니는 신엄초등학교까지 가는 시간과 공항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을 빼면 겨우 30여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공항에서 시간에 맞춰 왕복표를 구입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난 정말 미정이 아빠처럼 동규라는 아이 부모님한테 용서를 빌며 치료비를 듬뿍 줬다.

치료비가 많아서인지 입이 벌어진 동규 부모는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다.

[우리 아빠다!]

미정이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자기 친구들한테 자랑을 했다.

불과 30여분 .

나는 그렇게 미정이 아빠 노릇을 했다.

[아빠는 다시 외국에 가야 하는데 미정이 보고 싶어 어떻게 하지?]

내가 미정이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아빠!]

미정이는 내 볼에다가 뽀뽀를 했다.

그리고 자기 친구들 틈으로 뛰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녀석 무척 기특하구나.

헤어짐에 눈물도 안 흘리고.

난 미정이를 바라보며 손을 힘껏 흔들고 학교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급히 공항으로 떠났다.

한 번 더 미정이와 만남이 이루어졌다.

미정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봄이다.

역시 또 싸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또다시 피해 학생 부모를 만나 치료비를 지불해줬고.

미정이에게 당분간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해줬다.

그 후 미정이는 친구 집이라며. 학원 이라며.나의 서울 집으로 전화를 해서 나에게 전화를 하라고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난 바로 전화를 해서 통화를 했다.

미정이의 전화 통화는 처음엔 한 달에 한번 정도였던 것이

나중엔 2.3일이 멀다하고 통화를 요구했다.

내 전화번호는 어린 나이에도 누구한테도 안 가르쳐주고 혼자만 간직했던 미정이.

그 어린 미정이에게도 언제나 난 아빠였다.

미정이와 만나지 못한지 언 5년이 흘렀다.

30대 중반의 나이.

내 모습은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은 김포공항.

아직은 차디찬 바람이 불고 있는 이른 봄.

나는 중국에서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방배동 집.

역시 나를 반겨주는 것은 워리 뿐이다.

누런 진돗개 한 마리.

그 개 이름이 워리 다.

촌스럽게 아버지께서 지은 이름이다.

10년의 세월.

아버지는 몸이 쇠약해졌다.

중국에서 돌아온 것도 그 때문이다.

아버지는 현제 병원에 입원중이다.

나는 방배동 집에 짐을 풀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신 후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s병원.

강남에선 제법 큰 병원이다.

1127호실.

특실이다.

난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갔다.

[아버지 이.]

난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울컥 눈물이 흘렀다.

너무도 쇠약해진 모습.

[녀석... 왔구나! 고생 많았다!]

아버지는 내 두 손을 앙상한 두 손으로 꼭 쥐며 말했다.

평소 눈물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

그렇게 강인하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애비가 널 10년씩이나 중국에 보내놨으니 탓할 수도 없고. 언제 손자 녀석 안겨 줄 거냐?]

아버지께서 늘 입버릇처럼 전화로 하시던 말씀이다.

잊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도 그 말씀을 했다.

그래요.

아직 연애한번 해보지 못한 자식이 언제 마누라 얻어서 자식을 낳겠어요.

그때 그 말괄량이 다희와 확 결혼이라도 하고 중국에 갈걸 그랬죠?

36살 먹도록 여자란 다희 밖에!

아니지.

단 한 번의 섹스라 해도.

내가 처음 관계를 갖은 여인이 있긴 있었지요.

모든 게 거짓말 같아서 잊으려고 했는데.

미정이가 6살이 되던 해

아빠.

유치원에 다니는 미정이에겐 2장의 사진 속 남자가 아빠였다.

친구들이 물으면 아빠라고 자랑하며 들고 다녔다.

언제나 2장의 사진중 하나는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한 장은 방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저게 자기 아빠로 착각하나.]

민박집 주인아주머니도 미경이도 미정이 행동에 그렇게 생각을 했다.

다시 몇 년이 흘러.

미정이가 12살이 되던 해.

너의 아빠는 언제오니?

친구들이 물었다.

사진만 들고 다니지 아빠란 남자는 전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인데.

미정이 눈엔 눈물이 고였다.

아빠!

왜 안 오는 거야.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미정이는 추억속의 남자가 아빠가 아니라 언니의 남편이 될 형부란 것을 처음 알았다.

아빠로 알고.

오지 않는 아빠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다 못한 미경이가 말해줬기 때문이다.

형부라고.

내 꿈속의 아빠가.

아빠가 아니라 형부라고?

아빠라도 좋고 형부라도 좋아.

오기만 하면 좋겠다.

왜 안 올까.

미경이 어머님 보다.

미경이보다.

나를 더 기다린 것은 바로 귀여운 처제 미정이었다

아버지를 보살펴주는 아주머니에게 슬쩍 어디 좀 다녀온다고 말을 하고.

난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마음속 한 편에 병상에 게신 아버지께 얼른 며느리라도 데려다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제주도를 향해서.

그 첫 경험 그녀를 못 잊어서.

그렇게 난 10년 만에 제주도로 향하고 있었다.

휘잉.

제주 공항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건 역시 거센 바람이었다.

파릇파릇 봄 쑥들이 도로변에 뜯어먹기 좋을 만큼 자라있는 제주도.

육지에선 느끼지 못한 봄 향기지만.

얼굴을 때리는 바람은 무척 차가웠다.

어쩌다가 하나 둘 유채꽃도 보였지만.

철모르고 일찍 핀 유채에 지나지 않았다.

고내.

지나치면서도 왠지 성큼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첫 경험의 그녀가 살던 그 외딴 민박집을 렌트카를 몰고 빠르게 지나치며 힐끗 보기만 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물론.

민박집 주인도.

민박을 든 손님도.

고내를 지나 애월읍에 도착한 나는 우체국 앞 큰 선인장을 바라보며 근처 식당에서 백반을 시켜 먹었다.

늦은 아침이다.

젠장.

그녀가 대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도 그렇고.

그냥 하룻밤 즐기자는 건데.

내가 칠칠치 못하게 그녀 곁을 기웃 거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에 난 다시 애월을 떠나 한림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너무 소심한 탓일까.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관광지를 빼고.

숨겨진 구경거리를 찾아 중산간 도로를 따라 저지 리 마을에 도착했다.

저지 오름 아래 차를 세워두고 담배를 한 개비 물고 천천히 저지 오름을 올랐다.

동네 사람들 같은 몇몇 분들이 운동을 하다가 나를 힐끗힐끗 보는 것이 아직은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등산로 같았다.

.

저지 오름을 오르다가 난 깜짝 놀랐다.

숲을 이루고 있는 구지뽕나무도 그렇지만.

육지에서 멸종 되다시피 한 헛개나무까지.

그 사이로 넝쿨을 이루고 올라간 묶은 줄기.

바로 하수오 넝쿨이다.

비록 다 말라버린 묶은 넝쿨이지만 난 알 수 있다.

중국생활 10년 동안 매일 등산을 하면서 배운 약초.

[역시! 제주도는 아직은 자연이 보존된 곳이구나.]

난 그렇게 느꼈다.

그러나

그 느낌도 잠시.

이런.

누군가 비양심적으로 냉장고 껍질을 다 벗기고 속에 석면뭉치를 숲속에 버린 것이다.

껍질은 철이니 고물로 쓰려고 벗긴 모양이지만 속은 석면이니 처리가 곤란했던 모양이다.

여기도. 저기도.

숲속에 쓰레기가 보였다.

사람이 비양심적일 때.

환경이 깨끗할 수는 없다.

남몰래 나 하나쯤이야 하고 버리는 습관.

제주도 관광도 그들이 망칠 것이다.

관광지는 깨끗해야한다.

그래야 다시 오고 싶은 것이다.

저건.

숲속 깊숙하게 잘 숨겨둔 쓰레기.

여인의 속옷들이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사람의 마음이 비록 양심과 함께 버린 쓰레기지만 숲속에 감춘 것이다.

남에게 보이기 싫다.

그 생각을 하면서.

혹시 나의 첫 경험 그녀도 뭔가 나에게 보이기 싫은 것이 있어서 자신을 숨긴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휘잉.

난 바람을 등지고 다시 고내로 향했다.

용기를 내서 그녀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여전하군! 크기만 더욱 컸을 뿐이지...]

고내에 도착한 나는 민박집 입구에 우뚝 서있는 구지뽕나무를 바라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10년의 세월동안 나무는 팔뚝 굵기에서 허벅지만큼 굵어졌다.

키도 몇 배는 더 컸다.

컹컹.

민박집에 하얀 발바리가 한 마리 뛰어나오며 짓기 시작했다.

민박을 하는지 안하는지.

어째 썰렁해 보였다.

[계십니까?]

용기를 내서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잠시 기다리세요.]

저 멀리 바닷가에서 바구니에 뭔가 담아들고 오는 여인이 나를 발견하고 바쁘게 걸어왔다.

그녀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귀여운 소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쪼르르 끌리다시피 따라오고 있었다.

[...!]

그녀도 가까이 와서 나를 발견하고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미경이!]

내가 먼저 그녀를 불렀다.

[...! 오셨군요!]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 눈물부터 흘렸다.

[오랜만이요.]

난 그녀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엄마! 저 아저씨 누구야?]

그녀 손에 매달린 소녀가 나를 보고 그녀에게 묻는 말이다.

그런데

엄마라니!

순간 나는 그녀에게 다가서던 발걸음을 멈췄다.

시집을 갔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큰 실례를 하는 것 아닌가.

난 어린 소녀와 그녀를 번갈아보며 어찌할 줄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혜지야! 잘 들어.]

그녀가 소녀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말했다.

그 소녀 이름이 혜지.

이뿐 이름이다.

[저 아저씨가 너의 아빠란다.]

그녀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

순간 난 벼락이라도 맞은듯 머리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빠라니.

[. 아빠라니?]

난 아이가 보는 앞에서 차마 그렇게 묻지를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당신 아이에요! 그날 임신이 돼서 낳은 아이.]

그녀는 초롱초롱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럼! 외국에 나가있던 아빠가 돌아오신 거야?]

그 아이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마도 아빠를 찾으면 외국에 나갔다고 둘러댄 모양인데.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 것이 됐다.

난 사실 외국에 있었으니깐.

[그래! 내가 아빠란다. 우리 혜지 그동안 많이 컸구나!]

나는 얼른 그 아이 혜지를 덥석 들어 품에 꼭 안으며 말했다

사태를 짐작하고 아이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나름 데로 판단을 한 것인데.

그녀가 나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난 그녀에게 할 말이 그것뿐이었다.

덕신 할망.

교내 동네에서 알아주는 무당이다.

단 하나 다른 무당과 다른 것은 절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료봉사.

덕신 할망이란 별호도 그래서 붙여줬다.

덕이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덕신 할망은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덕신 할망이 예언을 하면 반드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데.

그 할망은 단하나 옹고집이 있었다.

절대 교내 사람이 아니면 손님을 받지 않는다.

내동네 사람들이야 늘 보고 그러니깐 알 수 있지 타지 사람들은 내가 어찌 알겠나.

덕신 할망은 늘 그렇게 타지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물리쳤다.

그런 그 덕신 할망이 진미경이 임신을 하였을 때.

이렇게 말을 했단다.

아기를 낳고 기다리면 널 찾아 올 것이다.

낳고 기다리면 네 사람이 되고.

아기를 버리면 너도 버려질 것이다,

진미경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10년을 기다렸단다.

[죄송합니다! 늦게 찾아와서.]

난 진미경 어머니께 무릎 꿇고 사죄했다.

[괜찮네! 이렇게 돌아와 줘서 고맙네!]

진미경 어머니는 내 두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겠습니다!]

난 진미경과 그의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며 진심을 말했다.

[그래! 고맙네!]

진미경 어머니...아니 장모님은 내 두 손을 꼭 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형부 오셨다고?]

오후가 되자 두 소녀가 방으로 들어오며 떠들었다.

귀엽다.

특히 하나는 너무도 귀엽다.

[제 동생들이에요!]

진미경이 처제들을 소개했다.

진미주.

진미경의 막내 동생이다.

이제 12살 초등학교 6학년.

진미정.

진미주의 바로 위.

중학교 1학년.

진미정 그 처제가 그렇게 귀여웠다.

어릴 때보다 더 귀여웠다.

미정이가 날 처다 보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난 눈을 찡끗 거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가워.]

난 두 처제에게 말했다.

[저도요!]

두 처제가 동시에 말했다.

[형부!]

진미정 그 귀여운 처제가 밖으로 나온 나를 따라 오며 날 불렀다.

[어디 가서 이야기나 할 가?]

난 얼른 미정이를 데리고 바닷가로 나갔다.

[아빠! 보고 싶었어!]

미정이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말했다.

[나도 미정이가 보고 싶었다.]

난 미정이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

미정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난 이미 알기에 그냥 미정이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아빠가 형부가 된 거야? 난 아빠가 좋은데...]

미정이가 두 눈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미정아! 미안하다! 나도 사실은 미정이 아빠가 더 좋다!]

난 미정이를 달래려고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그 것이 내 진심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우리 둘만 있을 땐 아빠 해줄 거지?]

미정이가 말했다.

꼭 그렇게 해달라는 간절한 표정을 담아서.

[그럼! 우리 둘만 있을 땐 난 아빠고 미정인 항상 내 딸이야 알았지?]

난 얼른 대답했다.

.

미정이는 곧바로 표정이 밝아졌다.

[언니랑 결혼하면 서울 가서 살 거지?]

미정이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처다 보며 물었다.

[그래!]

난 간단히 대답했다.

[그럼 나도 데려가.]

미정이 말을 의외였다.

[으응?]

난 미정이 처제의 뜻밖에 말에 잠시 당황했다.

[나도 서울 가서 살고 싶어.]

미정이 처제는 정말 진심으로 서울로 따라가고 싶은 눈치다.

[. 그건! 장모님께서 허락 하시면.]

난 그렇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 귀여운 처제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그 말 한마디가 엄청난 결과를 갖고 오리란 것을 저녁이 돼서야 알았다.

[저도 따라 갈래요!]

[저도요!]

저녁때 학교에서 돌아 온 고등학생 처제 진미희까지 막내처제까지 모두 나를 따라 서울로 간단다.

[자네가 데려갈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게!]

장모님은 이미 허락을 한 상태다.

[형부!]

진미정 그 귀여운 처제가 등 뒤에서 나를 두 팔로 안으며 어리광을 부렸다.

이제 대답을 해야 하는데...

거절을 할 수 없었다.

특히 그 귀여운 처제 때문이다.

모두 나만 처다 봤다.

진미경까지.

[좋아! 그렇게 하죠!]

난 장모님한테 처제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아버지 허락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와아.

진미정과 진미주 두 어린 처제들이 내 양쪽 팔에 팔짱을 끼고 앉아서 좋아했다.

[이번에 미경이와 같이 서울 올라가서 처제들과 살 집부터 마련할게요!]

난 장모님한테 그렇게 말했다.

[고맙네!]

장모님은 정말 고마워하는 것이 보였다.

혜지는 장모님 방에서 자고.

난 오랜만에 미경이 그녀와 단둘이 한방에서 자기로 했다.

3개의 방이 있는데 아직 관광 철이 아니라 민박 손님도 없어서 모두 사용을 할 수 있었다.

민박을 놓으면 단칸방에서 처제들이랑 장모님이 생활을 한다.

첫 경험의 그녀.

그 풋풋한 향기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난 그녀와 긴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한 겹 두 겹.

그녀의 옷을 벗겨갔다

그런데

[형부!]

진미정 그 귀여운 처제가 방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왔다.

두 팔엔 베개를 안고.

[?]

나와 진미경이 깜짝 놀라서 들어온 처제를 바라봤다.

진미경은 서둘러 옷을 여미고..

[형부랑 같이 잘래!]

그 귀여운 처제는 나와 미경이 대답도 듣지 않고 들고 온 베개를 나와 미경이 사이에 놓고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으으으.

그렇게 달콤해야 했던 그날 밤은 그 귀염둥이 때문에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아침.

내가 늦잠을 잤나.

일어나보니 이불속엔 나 혼자 뿐이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던 나는 깜짝 놀랐다.

[.]

방긋이 웃고 있는 그 귀염둥이 처제.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들고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성이다!]

고등학생 처제 진미희가 한마디 던지며 미정이 처제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쟤 왜 그러니?]

미경이가 나와 미희처제를 번갈아 바라보며 미희 처제한테 물었다

[형부가 좋다나 뭐 그래!]

미희 처제가 빙긋 웃었다.

[얼른 세수 하시와요.]

미경이가 눈을 찡끗하며 나에게 말했다.

난 미정이 처제가 들고 온 세숫물을 받아 세수를 했다.

졸졸졸.

마침 일요일이다.

미경이와 나의 딸 혜지를 데리고 외출을 하려는 나에게.

3명의 처제가 졸졸 따라 나섰다.

그런 것이 미안했는지

장모님은 모시고 가겠다고 해도 한사코 마다하셨다.

혜지를 안고 또는 팔을 붙들고 걸으면 마치 질투라도 하듯.

진미정 그 귀여운 처제가 자기도 안아 달라. 팔을 잡고 가자는 등 투정을 부렸다.

[언제까지 올라가야 되나?]

장모님이 아침에 내게 그렇게 물었다.

[뭐 급한 건 없어요. 왜 그러시죠?]

내가 장모님한테 물었다.

[결혼식은 서울서 올릴 예정이지?]

장모님이 내게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장모님이 원하시면 여기서 올려도 되고요.]

난 그렇게 말했다.

[아닐세! 자네 친척들이 여기 오기가 어렵지 않겠어. 서울서 올리기로 하지. 대신 이틀만 시간을 주게.]

장모님이 말했다.

[네에?]

난 무슨 뜻인지 몰라서 물었다.

[내일부터 이틀 후 이곳에서 잔치를 하고 올라가게. 아예 미경이 데리고.]

장모님이 말했다.

[무슨?]

난 장모님 뜻을 이해 못했다.

[여기서 동네 사람들한테 인사는 하고 가야 하지 않겠나. 여기서 서울 결혼식 보러 올라갈 동네 사람도 없을 텐데.]

장모님이 말했다.

결국 이틀 후 이곳에서 예비 결혼식 잔치를 한다는 것인데.

거절 할 수가 없었다.

허허.

죄송해요 아버지.

불효자가 허락도 없이 결혼식부터 올리게 됐습니다.

난 속으로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다.

[도새기 두개는 잡아야지.]

장모님이 아침에 이웃집 아저씨한테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

그게 무슨 뜻일까.

의문이 생겼지만

처제들 등살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혜지는 아빠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못 보던 사람이라 그런 것인지.

왠지 낯설어 하는 모습이고.

반면 처제 진미정은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장인께선?]

이미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 난 미경이게 확인하듯 물었다.

[미주 낳고 바로 돌아가셨어요. 미주가 딸이란 것을 알고 홧김에 술 드시고.]

미경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랬단 말인가.

장인께서 아들을 원했는데.

딸만 낳으니 홧김에 술을 먹고 발을 헛딛어 벼랑에서 추락했다 한다.

그래.

그런 거였어.

진미주와 진미정은 아빠 얼굴을 모르고 자란 것이었어.

물론 고등학생 진미희 역시 아빠 얼굴을 기억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

나를 아빠처럼 생각하는 것이야.

난 처제들이 왜 나를 그렇게 졸졸 따라 다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느끼지 못하고 자란 부정,

그 부정을 나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그래 아빠처럼 잘 보살펴주마.

내가 사랑하는 미경이 동생들이고.

혜지 이모들이며.

특히 너무도 귀여우니깐.

제주도를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너무도 많이 돌아 다녀서 안 가본 곳이 없었다.

특히 처제들도 아내 진미경도 제주도 사람이니 구경보다는 맛있는 것을 먹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찾아간 식당에서 아침에 장모님께서 하신 말씀 뜻을 알게 되었다.

도새기.

흑도새기 전문.

그래 도새기는 돼지었어.

그렇다면 돼지 두 마리를 잡는다는 것이었어.

식당에 들어가 돼지 갈비를 시키고 식탁에 앉아마자.

진미정은 내 무릎에 기대다시피 누워 있더니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렸다.

.

난 기가 막혀 미경이를 바라봤다.

[얘가 밤새 잠을 못잔 모양이에요.]

미경이가 내 표정을 읽고 말했다.

[?]

난 그 이유를 물었다.

[몰랐어요? 불 켜 놓고 오빠 얼굴만 처다 보고 있었는데.]

미경이가 말을 하다가 얼굴을 붉혔다.

[...!?]

난 영문을 몰라 의아한 표정으로 처제들과 미경이를 번갈아 봤다.

[형부하고 뽀뽀만 했대요.]

막내 처제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

난 몰랐었다.

정말이냐는 듯 미경이를 바라봤다.

미경이 살짝 고개를 끄떡거렸다.

녀석 참!

그렇게 아빠를 그리워했단 말인가.

난 부정을 그리워하는 귀여운 처제가 잠든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심정이었다.

혜주는 이모들하고만 놀았다.

아빠는 별로 관심 밖이었다.

10년 그 긴 세월이 아빠를 잊게 만든 것일까.

팔자에도 없는.

귀여운 처제를 업고 다녀야했다.

처제는 좀처럼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들에 업힌 처제 손가락은 꼼지락 거리는데...

잠자는 척 하는 것이다.

이미 잠에서 깬지 오래전이지만.

내 등에서 내려오기 싫은 모양이다.

아무리 젊고 힘센 남자지만 중학생 처제를 업고 다니려니 이마에 땀이났다.

끄응.

잠꼬대를 하는 것인가.

처제 입술이 내 목덜미에 닿았다.

잠이 깬 것이 아닌가.

난 처제가 아직 꿈속이란 것을 알았다.

그런데 왜 손가락은 꼼지락 거린 것일까.

그 이유는 미경이가 처제를 받아 안고 길가 벤치에 앉았을 때 알았다.

처제 손가락.

깊은 상처가 있었다.

보기 흉할 정도로 흉터가 남아 있었다.

[무슨 상처지?]

난 미경이한테 물었다.

[개한테 물린 상처에요. 치료를 잘 못해서. 지금도 많이 아파해요.]

미경이가 말했다.

이런.

난 귀여운 처제가 너무도 불쌍했다.

어린 처제가 그런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급히 대학병원 성형 전문의로 있는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개한테 물린 상처라는데... 초기에 치료를 잘못한 모양이야! 지금도 아픈 모양인데...]

내가 친구한테 전화로 설명하자 친구는 한번 데리고 오라고 했다.

치료가 가능한지 봐야겠다는 것이다.

난 이번에 서울로 올라갈 때 처제를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황금연휴

귀여운 처제에겐 정말 뜻밖의 황금연휴가 기다리고 있었다.

단 하루만 학교에 결석하면 무려 5일간의 황금연휴.

3일 후

312일 중학교 개교기념일이란다.

313일은 중학교에서 마을 축제가 열린다.

해서 2일간은 임시 휴교로 지정됐다한다.

314일은 금요일.

이 금요일 하루만 학교 허락을 받으면 5일간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난 미경이한테 내일은 미정이 학교에가서 손가락 치료차 서울 가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금요일 하루만 수업을 빼라고 말했다.

미경이 내 뜻을 알고 고개를 끄떡거렸다.

저녁에 집에 돌아 온 나는 동네 어른들이 몰려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서 온 사윗감 구경을 하려는 것인데.

하나같이 돈이 많으냐? 하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난 미경이 체면도 있고 해서 그냥 많다고만 했다.

너도 나도 한잔씩 따라주는 막걸리를 연거푸 마셨더니 어떻게 방으로 들어 왔는지.

그렇게 취해서 잠들어 버렸다.

. 뭐지!

새벽에 잠결에서 뭔가 내 입술에 자꾸 닿는 물체를 발견하고 눈을 살며시 뜬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귀여운 처제 미정이

마치 내 입술이 장난감처럼 보였는지.

만지고 뽀뽀를 하며 놀고 있었다.

아직 내가 눈을 뜬 것은 모르는 체.

한참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장난을 하고 있었다.

어쩌나.

잠이 깬 것을 알면 쑥스러워 할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누워있는데.

손가락으로 내 눈을 만지더니 눈을 벌리는 것이 아닌가.

천진난만하게.

잠자는 내 눈을 두 손가락으로 벌리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입술을 내 입술에 포갰다.

.

이건 부정이라기 보단 무슨 병이 아닌가...

서울 데려가면 이것도 상담을 받아 봐야겠다.

난 그렇게 생각을 굳히고

잠결인 것처럼.

귀여운 처제를 두 손으로 안고 옆으로 누어 놓았다.

파르르.

처제가 잔 떨림을 보였다.

이것 참.

나는 얼른 뒤로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부시럭 부시럭.

처제가 다시 일어나 내 앞쪽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내 팔을 베개 삼아 누웠다.

잠이 들었나보다 움직임이 멈췄다.

벌떡.

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잠자긴 틀려서 바람이나 쐬려는 것이다.

쌔근쌔근.

처제는 잠들어 있었다.

[왜 잠이 안와요?]

언제 따라 왔는가.

미경이 뒤에서 말을 걸었다.

[! 그냥!]

난 미경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미정이 때문이죠?]

미경이가 내 마음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 아니야!]

난 급히 변명을 했다.

[귀찮죠?]

미경이가 다시 물었다.

[아니야! 귀여운데 뭘!]

난 다시 변명을 했다.

[걔가 원래 그래요. 엄마한테서 잠자도 그렇고. 나하고 자도 그래요. 눈을 벌리고 입술을 만지고 어떤 땐 콧구멍도 막 벌려보고.]

미경이 말을 듣고 난 더욱 놀랐다.

이상한 버릇이네.

왜 그런 버릇이.

[엄마 가슴을 만지고 있어야만 잠이 들어요. 어떤 때는 나도.]

미경이 말을 하다가 얼굴을 붉히며 뒷 끝을 흐렸다.

언니 가슴도 만져야 잠이 드는 버릇이 있다는 말을 하려던 것이다.

왁자지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장모님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고 넓은 철사망을 올려놓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굽어 먹으며.

동네 어른들은 취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가장 바뿐 날이었다.

마치 동네 강아지 부르듯.

!

하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야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야! 라고 부르는 것은 제주도 사람들이 상대를 부를 때 흔히 쓰는 말이었다.

윗사람을 부를 땐 양! 하고 부른다.

312일 오전 9시 비행기를 예매하고.

제주도 미경이네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동네 어른들은 다 돌아가고.

결혼잔치도 끝났다.

난 이미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이 아이는 내가 데리고 있으면 안 되겠나?]

장모님이 우리 딸 혜지를 안고 나에게 물었다.

[네에?]

난 무슨 말이냐는 듯 물었다.

[처제들은 자네가 다 데려가도 되지만 혜지만은 내가 데리고 있겠네. 내가 적적해서 말이야!]

장모님은 간절했다.

혼자 살아가시기가 외로울 것이기에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인데.

문제는 혜지였다.

장모님과 같이 산단다.

[난 할머니와 같이 살 거야!]

헤지 입에서 나온 말이다.

[! 그렇게 하십시오.]

취기에 난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10년을 얼굴도 모르고 있던 딸.

그렇게 취기에 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다시 10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그 날 밤.

아내와 난 단둘이서 잠을 잤다.

다행히.

그 귀여운 처제는 일찍 다른 방에서 잠들어 버렸던 것이다.

비몽사몽간.

취기 속에.

달콤한 키스와 두 번째 관계를 갖게 되었는데.

새벽에 잠에서 깬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내는 어디로 갔나.

분명 아내와 함께 잤는데.

내 팔을 베개 삼아 잠든 것은 그 귀여운 처제였다.

새벽에 또 우리 방으로 들어와 잠이든 것이다.

서울 행 비행기 안.

좌석 3개에 나란히 앉았는데

난 가운데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처제가 양쪽 팔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던 것이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귀여운 처제는 마냥 들떠 있었다.

연신 신나서 환호를 질렀고.

모두 처다 봐서 난 어쩔 줄 몰라 했다

남은 두 처제가 무척 부러워하는 눈으로 미정 처제가 나를 따라 서울로 가는 것을 지켜봤다.

제주도 섬에서 자란 처제들은 서울로 가보는 것이 꿈이었던 것인데.

그 꿈을 미정이가 제일 먼저 이루게 된 것이다.

[학생 좀 조용히 하세요!]

스튜어디스 아가씨가 웃으며 처제에게 말했다.

[!]

수줍게 대답을 한 처제는 잠깐이나마 조용히 있었다.

.

비행기가 가다가 뚝 떨어지는 느낌이 오자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며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따님이 비행기를 첨 타나 봐요?]

신혼부부 같은 옆자리 손님 중 남자가 말을 걸었다.

[따님...!?]

난 어떻게 대답을 해야 옳을까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 우리 아빠에요.]

귀여운 처제가 낼 름 그렇게 대답을 하고 있었다.

[아빠라고.]

난 할 말을 잊었다.

[기분은 알겠는데. 조금 조용히 있어야 된단다.]

이번엔 여자가 말했다.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

귀여운 처제가 시무룩해졌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 녀석이 뭘 하나 고개를 숙여 처제 얼굴을 들여다보던 난 무척 놀랐다.

울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 아.

처제 입에서 들릴 듯 말듯 아빠를 부르고 있었다.

난 얼른 살며시 미정이 어깨를 손으로 감싸줬다.

[. 아빠!]

미정이 입에서 결국 그 말이 나오고 말았다.

난 말없이 그냥 미정이를 안아줬다.

역시 아빠가 그리워 생긴 애정결핍증 같았다.

특히 동생과 18개월 차이로 태어나서 엄마의 정까지 동생에게 뺏기고 자란 탓이 더욱 컸으리라.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내 나름 데로 그렇게 진단을 내리고 있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s대학병원으로 향했다.

하루라도 빨리 진찰을 받고 손가락 수술부터 받도록 하려는 생각이었다.

내 차는 공항 주차장에 있었다.

백색 지프였다.

[! 형부 차 멋지다!]

역시 어린아이처럼 들뜬 처제가 신나서 즐거워했다 비행기에서 아빠를 찾으며 울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미경이도 차창 밖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 온 신비한 세상 서울.

미경이도 처제도 온 정신을 차창밖에 두고 구경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때 아닌 조용함이 찾아왔다.

[어서와!]

s병원 성형외과에 들린 나를 친구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 이쪽은 내 아내고 이쪽은 처제다. 인사해 내 친구야.]

난 친구에게 먼저 아내와 처제를 소개하고 아내에게 친구를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이 친구가 결혼을 했다는 말을 아직 들어보질 못해서...당황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친구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처제가 인사를 했다.

[! 정말 예뿐 소녀로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친구는 처제 인사를 그런 식으로 받았다.

[곧 결혼식을 올릴 테니 부조금 많이 해라!]

난 농담을 던졌다.

[그래! 네가 장가를 간다는데 집인들 못 들고 가겠냐?]

친구도 농담을 했다.

[! 우선 처제 손가락 상태부터 검사해봐!]

내가 말했다.

[서두르긴. 급할 것 없어! 검사해서 수술이 필요하면 바로 수술 들어갈 테니깐.]

친구가 말했다.

[그럴 수 있어?]

난 친구의 말을 듣고 급히 물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나.

대학병원이란 것이 예약을 해야만 되고 그 기다림도 며칠씩 걸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짜슥! 네가 부탁해도 어림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예뿐 공주님을 치료하는데 내가 특별히 시간을 내야지.]

친구가 말했다.

내가부탁을 해서 시간을 비워뒀다는 뜻인데.

처제는 예뻐서 시간을 내준다는 뜻으로 들었나.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녀석.

의사가 되더니 이젠 말솜씨까지 의사가 되어 가는군.

환자를 즐겁게 하는 의사야 말로 최고 의사지.

난 처제를 데리고 들어가는 친구를 보며 흐뭇해했다.

미경이와 난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고마워요!]

미경이가 의자에 앉자마자 내 팔을 두 손으로 붙들고 작은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고맙긴. 처제도 내 동생인데. 아니 내가 꼭 아빠 같아. .]

처제가 비행기에서 아빠라 칭한 일을 기억하며 내가 한 말이었다.

[아빠가 안 계셔서. 특히 저 녀석이 제일 아빠를 찾아요.]

미경이가 말했다.

[그래. 걱정 마! 내가 아빠처럼. 잘 보살펴줄게]

정말 난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미경이 에게는 그 동안 미정이와 아빠와 딸로 지낸 이야기는 비밀로 했다.

덜컹.

문이 열리고.

친구 녀석이 처제를 데리고 나타났다.

[어때?]

내가 급히 물었다.

[손가락 뼈 사이에 이물질이 들어가 있어. 보기엔 모래 같은데... 지금 바로 수술 들어 갈가?]

친구 녀석은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그래! 그렇게만 해주면 고맙지.]

난 친구 녀석이 정말 고마웠다.

[얼마나 드는데요?]

아내 미경이 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하하. 친구끼리 무슨 돈을...염려마세요 그냥 해 드릴 테니.]

친구 녀석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그렇게 말했다.

문론 공짜는 없다.

미경이를 안심시키려는 친구의 재치 있는 대답이다.

아마 몇 백 만원은 나올 것이다.

나한테 별도로 청구하겠지만.

[그럼 바로 수술 들어간다?]

친구는 나한테 마지막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 기왕이면 손에 흉터도 제거해줘!]

내가 말했다.

[물론이지. 둘은 더 추가된다는 걸 잊지 마!]

친구의 그 말은 이백만원은 더 추가된다는 뜻이다.

미경이 눈치를 챘나보다 나와 친구를 번갈아 처다 봤다.

[하하. 혼자서는 수술이 어렵지 암! 의사 두 명은 더 추가해야지.]

친구 녀석이 눈치를 채고 재빠르게 말을 바꾸어 버렸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난 처제와 친구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수술이야 30분 정도면 충분하지만. 마취에서 깨려면 오늘밤은 입원을 해야.]

친구가 말했다.

[알았어! 그러지.]

내가 얼른 대답했다.

[특실로 모실께 요]

친구 녀석이 미경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꾸뻑 거리며 말했다.

[고마워요!]

미경이가 얼른 대답했다.

[나가서 차라도 한잔 하다가 1시간 후에 와!]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 그래!]

내가 대답했다.

[처제. 수술 잘 받고. 좀 있다가보자!]

처제를 데리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친구 등 뒤에다 대고 난 그렇게 말을 던지고 미경이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 내일 집에 갈게요! 며느리 될 사람 데리고요.]

난 밖으로 나오면서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며느리? ...]

아버지가 기가 막힌 모양이다.

[! 내일 오전에 들릴게요!]

내가 말했다

[녀석! 무슨 꿍꿍이야! 오냐! 알았다.]

아버지는 믿는 둥 마는 둥 대답을 했고. 전화는 간단히 끝났다.

[! 우리 어디 가서 시원한 것이라도 좀 먹자!]

난 미경이를 데리고 병원 앞 빵집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지만.

이곳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

언젠가 친구 녀석과 같이 먹어본 기억이 있어서 미경이를 데리고 들어간 것이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처제 수술이 끝났다.

친절하게도 친구 녀석은 12층 특실에 입원실가지 마련해줬다.

처제가 회복실에서 회복하는 사이 친구 녀석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미경이 처제 옆을 지키고.

[전부 얼마냐?]

내가 근처 식당에서 두부찌개를 시켜서 같이 먹으며 넌지시 물었다.

[아마 11장정도 될 거야.]

친구가 말했다.

[뭘 그렇게 많아?]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짜 슥! 예뿐 처제를 고치는데 그까짓 11장 갖고.]

친구가 농담 삼아 말했다.

난 친구에게 처제가 보이는 애정결핍증에 대해 설명하고 정신과에 문의해야하나 어쩔까 물어봤다.

친구 녀석은 나보고 사랑과 정을 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 병을 고치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친구 녀석도 내 판단대로 애정결핍증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제주도로 내려가지 전날 한번 들려. 처제 상태를 확인하게.]

친구가 말했다.

[그래! 그러지!]

내가 말했다.

점심을 먹고 12층 입원실로 올라갔다.

회복실에서 입원실로 오면 불편함이 없나 확인 하려던 것인데.

친구 녀석은 사람을 시켜

이미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해놓았다.

침대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 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든 모양이다.

살포시 포개지는 입술을 느끼고 잠에서 깬 나는 상대가 미경이라는 것에 안심을 했다.

[처제는?]

난 처제가 안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급히 물었다.

[화장실 갔어.]

미경이가 말했다.

입원실로 들어와 화장실에 들어간 모양이다.

[형부!]

화장실에서 나온 처제는 와락 달려들어 내 품에 안겼다.

[녀석...!]

난 말없이 처제 등을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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