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손원평 작 (3)

호수 | 2021.09.13 14:56:59 댓글: 0 조회: 843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03064


6.
의사들이 내게 내린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는 알레시티미아였다. 증상이 너무 깊은 데다 나이가 너무 어려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불 수 없었고, 다른 발달 사항들에 문제가 없어 자페소견도 없었다. 표현 불능이라고 하지만 표현을 못한다기보단 잘 느끼질 못한다. 언어 중추인 브로카 영역이나 베르니케 영역을 다친 사람들처럼 말을 만들어 내거나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는건 아니다.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의 이름들을 헷갈린다. 의사들은 선천적으로 내 머릿속의 아몬드, 그러니까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데다 뇌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입을 모았다.
편도체가 작으면 나타나는 증상 중 한나가 공포심을 잘 모르는 거다. 용감해서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모르는 소리다. 두려움이란 생병 유지의 본능적인 방어 기제다. 두려움을 모른다는 건 용감한게 아니라 차가 돌진해도 그대로 서있는 멍청이라는 뜻이다. 나는 운이 더 나빳다. 공포심 둔화외에 나처럼 전반적인 감정 불능까지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불행 중 다행은 이 정도로 작은 편도체를 가지고도 딱히 지능 저하의 소견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의사들은 사람마다 뇌가 다르니 내 경우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중 몇은 꽤 솔깃한 제안을 했는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뇌의 신비를 벗겨 내는 데 내가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대학 병원 연구진들은 내가 자라날 때까지 여러 임상 실험을 하고 학회에 보고를 하는 등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의뢰를 해 왔다. 임상 침가비 제공은 물론이고 연구 결과에 띠라 브로카 영역이나 베르니케 영역처럼 내 이름도 뇌의 한 부분에 붙여질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선윤재 영역' 하지만 이미 의사들어게 넌덜머리가 난 엄마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일단 브로카와 베르니케가 실험 대상자가 아니라 과학자 이름이었단걸 엄마가 알고 있었던게 문제다. 엄마는 집 근처 구립 도서관을 꾸준히 다니며 뇌에 관한 여러 책을 섭렵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흥미로운 고깃덩이로 바라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는 의사들이 나를 치료할수 있드리라는 기대를 일찌감치 접었다. 고작해야 이상한 실험을 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약을 먹인 뒤 내 반응을 관찰하여 학회에 가서 뽑내는게 다겠지. 이게 엄마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많은 엄마들이 흥분할 때면 던지곤 하는 흔해 빠진데다 설득력 없는 말을 내 뱉었다.
-내 애는 내가 가장 잘 알아요.
병원에 발길을 끊던 날 엄마는 병원 건물 앞 화단에 침을 뱉은 뒤 이렇게 말했다.
-지들 대가리 속도 모르는 것들이.
엄마는 가끔 그렇게 난데없는 호기를 부릴 때가 있었다.

7.
엄마는 임신 중에 겪은 스트레스나 몰래 피웠던 한두 개비의 담배 막달에 못 참고 몇 모금쯤 홀짝인 맥주 따위를 호회했지만 사실 내 머리통이 왜 그 모양인지는 너무 뻔하다. 그저 운이 없었던 거다. 생각보다 운이라는 놈이 세상에 일으키는 무지막지한 조화들이 많으니까.
이왕이렇게 된거 어쩌면 엄마는 이런 걸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감정이 남들처럼 유연하지 않은 대신 영화에서 처럼 기억력이 컴퓨터 수준이라든가 미적 감각이 탁월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적인 그림을 그려 낸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그랬더라면 쇼 프로에 나갈수도 있었을 거고 아무렇게나 페인트를 뿌려 댄 그림도 수천만 원에 팔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천재적인 능력은 없었다.
어쨌거나 미키마우스 머리끈을 맨 여자아이 사건이 벌어진 후 엄마는 내게 본능적인 '교육' 을 시작했다. 내가 감정을 잘 느끼지 못 한다는 건 그저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임을 넘어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무서운 표정으로 훈계를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예컨대 소리친다. 고함을 지른다. 눈썹이 위로 솟는다...... 이런 걸 특정한 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내겐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하나의 현상에 그 이면의 뜻이 숨이 있다는 걸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세상을 곧이 곧대로만 받아들였다.
엄마는 색종이에 여러 개의 문장을 쓴 다음 커다란 전지에 그것들을 일일이 붙였다. 벽을 장식한 전지 위엔 이런 말들이 쓰여 있었다.

차가 가까이 온다 ---> 몸을 피하거나 가까워지면 뛴다.
사람이 다가온다 ---> 부딪히지 않도록 한쪽으로 비켜선다.
상대방이 웃는다 ---> 똑같이 미소를 짓는다.

맨 밑에는

*참고 사항; 표정의 경우, 무조건 상대와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편함

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제 막 여덟살이 된 내가 이해하기엔 다소 긴 문장이었다.

전지에 적힌 예들은 무궁무진 했다. 또래 아이들이 구구단을 외우는 동안 나는 왕조의 연표를 외듯 그것들을 외워서 알맞은 항목끼리 짝을 지었다. 엄마는 정기적으로 나에게 시험을 치르게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습득할 '본능적인' 규범들을 나는 그렇게 하나하나 암기했다. 할멈은 주입식 교육이 과연 소용이 있겠느냐고 혀를 차면서도 전지에 붙일 화살표를 오렸다. 화살표가 할멈의 담당이었다.

8.
몇해가 지나고 내 머리통은 굵어져 갔지만 머리 안에 든 아몬드의 크기만은 요지부동이었다. 사람 관계가 복잡해지고 엄마가 알려 준 공식만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더 요주의 인물이 되어갔다. 학년이 바뀐 지 하루 만에 이상한 아이로 찍히거나 운동장 뒤로 불려 나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늘 이상한 질문을 던졌고 그러면 나는 거짓말을 할 줄 몰라 곧이곧대로 답하고 했다.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배를 잡고 웃는지 못한 채. 그렇게 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매일같이 엄마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튀지 말아야 돼. 그것만 해도 본전이야.
그말은 들키지 말라는 뜻이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걸. 그걸 들키면 튀는 거고 튀는 순간 표적이 된다. 단순히 차가 다가오면 몸을 피하라는 수준의 지침으로는 부족했다. 스스로를 감추려면 고도의 연기가 필요한 타이밍이 온 거다.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상상력을 발휘해 극작가 수준으로 대화 내용을 덧 붙 여갔다.이제는 상대가 던지는 말 속에 담긴 '참 의미' 와 내가 하느 말에 담겨야 할 '바람직한 의도' 까지도 함께 짝지어 외워야 했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 새로운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보여주며 설명할 때 그 애들이 진짜로 하고 있는건 설명이 아닌 '자랑'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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