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손원평 작 (7)

호수 | 2021.09.15 16:32:01 댓글: 0 조회: 630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03889


2부

19.
벙원에는 매일 갔다. 엄마는 가만히 누워서 숨만 쉬고 있었다. 중환자실에 있던 엄마는 얼마 뒤에 6인실로 옮겨졌다. 나는 매일 같이 가서 엄마 옆에 앉아 햇살을 쬐다 왔다.
의사는 냉정히, 깨어날 가망이 없다고 했다. 앞으로도 연명 외엔 별 의미가 없는 거라고, 간호사는 표정 변화 없이 엄마의 대소변을 갈아 냈다. 나와 힘을 합쳐 엄마의 몸을 들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때마다 뒤집었다. 커다란 짐을 취급하는 것과 비슷했다.의사는 어떻게 할지 결정한 뒤 알려달라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물라 되물었다. 이대로 병원비를 계속 내며 살 것인지. 조금이라도 저렴한 교와의 요양 병원으로 옮길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할멈의 사망 보험금이 어느 정도 나와 당장 먹고사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언제든 나 혼자 남겨질 것을 대비해서 엄마가 그런 걸 마련해 놨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할멈의 사망 신고를 하러 갔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조용히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얼마 후 주민센터에서 파견한 사회 복지사가 찾아왔다. 집의 상태를 살피더니 청소년이므로 시설로 인계될 수도 있는데 내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쉼터나 보호소 같은 곳. 나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건 사실 그 시간에 정말로 생각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저 시간을 달라는 뜻이다.

20.
집은 적막했다. 종일 내 숨소리만 들렸다. 두 사람이 남긴 글자들이 벽에 붙어 있었지만 가르쳐 줄 사람 없이는 의미없는 장식에 불과했다. 시설에 가면 내 삶이 어떻게 될지는 사실 좀 뻔하다. 나는 상관없지만 엄마가 어떻게 될지는 잘 그려지지 않았다.
엄마가 내게 무슨 조언을 할지 떠올려 봤다. 하지만 엄마는 대답할수가 없다. 나는 엄마가 남긴 말들을 복기하며 힌트를 얻고자 했다.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정상적' 으로 살 것.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할일없이 뒤졌다. '폰과 대화하기' 라는 앱이 눈에 띄였다. 그걸 열자 작은 대화창이 떴고 작은 이모티콘이 나타났다.

안녕
전송을 누르기 무섭게
안녕
이라는 단어가 따라 나왔다.
잘지내?
라고 썼다.
응, 넌?
나도.
굿.
정상적인게 어떤 거니?
남들과 비슷한 것.

한동안 정적, 이번엔 좀 길게 써 봤다.

남들과 비슷하다는 건 뭘까.
사람은 다 다른데 누굴 기준으로 잡지?
엄마라면 내게 무슨 말을 했을가.

밥 다 됐다, 나와라.

전송 버튼에 손이 닿았는지도 몰랐는데 말꼬리를 자르듯 답이 떴다. 조금 더 해 봤지만 계속 의미 없는 말들만 나왔다. 얘한테서 힌트를 얻긴 글렀다. 작별 인사 없이 앱을 껐다.
학교에 가기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다. 그 전까지 혼자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져야 했다.

보름 만에 책방 문을 열었다. 책장 사이를 걷자 먼지가 피어올랐다. 간간이 손님들이 들렀다.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해 물건을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 엄마가 마지막으로 사려고 했던 중고 동화 전집을 좋은 가격에 사들여 가장 잘 보이는 곳에다 진열해 두었다.
종일 몇 마디 내뱉지 않는 것이 오히려 편했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상황에 맞는 대화를 짜내려고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었다. 손님에겐 예, 아니요, 잠깐만요 정도면 충분했다. 그 외에는 카드를 긁거나 거스름돈을 헤아려 주거나 기계처럼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어느 날 근처에서 어린이 독서 교실을 운영하는 아주머니가 들렀다. 이따금 할멈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던 아주머니였다.
- 방학이라 아르바이트하는구나. 할머니는 어디 가셨니?
- 죽었어요.
아주머니의 입 이 벌어졌다. 그녀는 눈썹을 강하게 찌푸렸다.
- 네 나이 때 그런 농담도 한다는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말 하는거 아니다. 할머니가 어떻게 생각하시겠니.
- 진짠데요 .
아주머니는 팔짱을 끼더니 언성을 높였다.
- 그럼 말해 보렴.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다는 거니.
- 칼에 찔렸어요. 크리스마스이브 날에요.
- 세상에 ......
그녀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 뉴스에 나온 그 일이구나. 하늘도 무정하시지 ... ...
아주머니가 성호를 긋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내게서 무언가가 전염되기 전에 얼른 피해야 한다는 듯이.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 잠깐만요. 계산 안 하셨어요.
아주머니의 낯빛이 붉어졌다. 그녀가 나간 후 나는 잠깐, 엄마라면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말하기를 바랐을지 생각해 봤다. 아주머니의 반응을 봤을 때 내가 실수를 했다는 건 맹백하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 실수한 건지. 그 실수를 실수가 아닌 것으로 만들려면 어떤 부분이 수정 됐어야 하는지는 도통 알수가 없었다. 해외여행을 갔다고 할걸 그랬나. 아니다. 그랬더라면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주머니는 계속 질문을 던졌을 거다. 아니면 책값을 받지 말았어야 할까. 그것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침묵은 금. 그 속담을 참고하기로 했다. 웬만한 질물엔 답하지 말것. 그런데 그 웬만함의 기준도 헸갈린다.

갑자기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글자라곤 지나가는 건물의 간판을 보는 게 전부였던 할멈이, 우연히 읽고 재미 있다고 했던 책, 나는 1986년에 2,500원이라는 가격으로 팔리던 손 바닥만 한 문고판 책을 가신히 찾아냈다. [현진건 단편선] 그중 [B 사감과 러브레터].
B 사감은 밤중에 학생들의 러브레터를 훔쳐 읽으면서, 남녀 목소리를 번갈아 내며 1인극을 펼친다. 그 장면을 몰래 지켜본 세 명의 여학생은 저마다 반응이 다르다. 하나는 B 사감이 우습다며 비웃고 다른 하나는 B 사감이 무섭다며 몸을 떨고, 세 번째 여학생은 B 사감이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늘 한가지 정답을 제시하던 엄마의 가를침에는 좀 위배 됐지만 나는 그런 결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 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엄마는 당황스러워했다. 한참 동안 고민을 거듭한 끝에 엄마는 답을 짜냈다. 이야기가 우는 여고생으로 끝맺어져 있기 때문에, B 사감의 행동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세 번째 학생의 '운다' 가 맞단다.
- 하지만 두괄식이라는 게 있잖아요. 첫 번째 학생이 보인 반응이 맞는 것일 수도 있죠.
엄마가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지지 않고 물었다.
- 그럼 엄마도, B 사감의 1인극을 봤다면 울었을것 같아요?
옆에서 할멈이 끼여들었다.
- 네 엄만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몰라서 오밤중에 깨지도 않았을 거다. 방에서 자는 엑스트라 여학생 중 하나 였겠지.
껄껄 웃는 할멈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갑자기 책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졌다. 중년의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다음 순간 그는 사라져 버렸다. 카운터 위엔 그가 남긴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2층으로 올라오라는 메시지였다.

21.
책방은 아트막한 2층짜리 건물의 1층에 있었다. 2층은 빵집이었다. 빵집이 2층에 있는게 흔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허름한 간판에는 제대로 된 가게 이름도 없이 '빵' 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할멈도 처음 간판을 봤을 땐 "맛없게 생겼다." 라고 말했다. 간판만 보고 어떻게 맛을 짐작할 수 있는지 나로선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거기서 취급하는 빵은 곰보빵과 우유식빵, 그림빵이 전부였고 그나마 무슨 배짱인지 오후 4시면 칼같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가게가 꽤 잘돼서 사람들이 1층까지 줄을 선 걸 여러번 봤다. 덕분에 줄의 끝에 선 손님들이 잠깐씩 우리 가게에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엄마도 가끔 빵을 사왔다. 빵 봉지엔' 심재영 제과점' 이라고 적혀 있었다. 심재영은 빵집 사장인데, 엄마는 그를 심박사라고 불렀다. 맛을 본 할멈에게선 더는 맛없게 생겼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뭐, 그저 그랬다. 여타 음식들이 다 그렇듯, 아무튼 가게 안까지 들어가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심 박사가 내게 크림빵을 하나 권했다. 한입 베어 물자 병아리색의 찐득한 크림이 비어져 나왔다. 심 박사는 50대 초반이었지만 머리가 눈처럼 하얘서 60대로까지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맛 있니?
- 느껴지긴 해요. 맛이.
- 다행이네, 맛이 없진 않아서.
심 박사가 가볍게 웃었다.
- 여기서 혼자 일하세요?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구조랄 것도 없었다. 뻥 뚫린 공간에 계산대와 진렬대, 식탁 하나가 전부였다. 가운데 놓인 칸막이 뒤쪽이 반죽을 만들고 굽는 곳 같았다.
- 응. 내가 사장이자 유일한 종업원이란다. 그게 편해. 그럴 만하니까 그러는 거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긴 대답이었다.
- 그런데 절 보자고 한신 이유는요?
박사는 내게 우유를 따라 주었다.
- 네게 생긴 일은 참으로 유감이다. 꽤 고민을 하다가 작게나마 돕고 싶어서 불렀다.
- 어떻게요?
- 글쎄 , 초면에 말이 잘 안 나오겠지만, 네 쪽에서 필요한 거라든가 부탁할건 없을까?
아까부터 심 박사는 테이블 위에 손가락을 딱딱 두드리고 있었다. 버릇인 것 같은데 계속 듣고 있자니 거북했다.
- 그 소리를 안 내 주셨으면 좋겠네요.
박사가 안경 너머로 날 보더니 이내 빙그레 웃었다.
- 디오게네스라고 들어 봤니? 그 얘기가 떠오르는구나. 일렉산드로스 대왕이 뭐든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대왕의 그림자가 태양을 가리니 비켜 달라고 했지.
- 전 선생님을 보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떠오르진 않는데요.
이번엔 그에게서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 엄마가 네 얘길 자주 하셨단다. 특별한 아이라고.
특별, 엄마가 그 단어를 어떤 의미로 썼을지 짐작이 갔다. 박사가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쥐었다.
-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건 지금은 멈출 수 있지만 습관이라 쉽진 않을 거다. 그리고 내가 기대한 부탁은 좀더 지속적인 거였는데.
- 지속적인 거요?
- 혼자서 생활하기 곤란하다면 경제적인 도움도 좋고,
- 보험도 있고 뭐, 일단은 괜찮아요.
- 엄마가 혹시나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잘 부탁한다고 자주 말했었다. 우린 꽤 친한 편이었거든. 네 엄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었지.
그가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 보러 가셨나요, 병원에?
심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꼬리가 아래로 조금 처졌다. 엄마 일을 슬퍼하는 거라면 엄만 조금은 기뻐할지도 모른다. 그게 엄마가 알려 준 팁이었다. 내 슬픔을 남이 같이 슬퍼한다면 기쁜 일이라고. 마이너스 마이너스 이퀼 플러스의 원리라고 했다.
- 그런데 왜 박사라고 불리세요?
- 의사였거든, 지금은 아니지만.
- 흥미로운 직업 전환이네요.
박사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차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내가 유머로 의도하지 않은 말들에도 늘 웃어 주었다.
- 책을 좋아하니?
- 네, 전에도 엄마를 도와서 가게에서 일했었어요.
- 그럼 이렇게 하자. 가게를 계속하렴. 이 건물의 주인은 나란다. 아르바이트로 계속 일하면 내가 월급을 주마. 생명보험금은 네가 대학에 가거나 중요한 일이 생길 때 쓰고, 생활비는 일단 아르바이트비로 충당하렴. 네가 동의만 해 준다면 복잡한 일들은 대충 처리해 놓으마.
나는 집으로 찾아온 사회 복지사한테 했던 것처럼,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에사롭지 않은 제안을 하면 일단 시간부터 끌라고 배웠으니까.
-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렴. 너랑 얘기 나누는게 생각보다 즐거워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이왕 하는거, 책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팔도록.
나가기전 그에게 물었다.
- 혹시 엄마와 사귀셨나요?
심 박사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가늘어졌다.
- 그런 생각이 들었니? 우린 친구였단다. 꽤 좋은 친구.
그의 얼굴을 감쌌던 웃음기가 천천히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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