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키가 작고 깡마른 아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쥔채 서 있다. 팔과 다리는 작은 몸집에 비해 무척 길었다. 단단한 몸이다. 만화[내일의 조]에 나오는 조와 흡사한 체격이다. 하지만 부지런히 운동을 해서 만들어진 몸과는 달랐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제3세계 아이들의 몸 같았다. 종일 쓰레기장을 뒤지거나 관광객을 따라다니며 달러를 구걸하는 아이들 처럼 생존을 위한 움직임으로 다져진 몸, 까무잡잡한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짙은 눈썹 아래로 바둑알처럼 새까맣게 반질거리는 눈동자가 모두를 쏘아보고 있었다. 사람들을 침묵하게 한 건 그 눈빛이었다. 해칠 생각이 없는 사람 앞에서 먼저 이를 드러내고 제 새끼를 죽여 버리는 맹수 같았다.
그 애가 바닥에다 침을 퉤, 뱉었다. 침을 뱉는 게 그 애의 공식적인 인사법인 것 같았다. 얼마 전 그 애를 처음 봤던 날도 그 애는 똑같이 행동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장례식장에서의 대면은 곤이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며칠 전 전학생이 왔다. 교실 문을 연 담임 뒤로 체구가 작은 아이가 하나 들어왔다. 그 애가 곤이다. 팔짱을 낀 채 짝다리로 섰다는 건 낯선 아이들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는 뜻일 거다. 담임은 자기가 전학 온 양 쭈뼛거리더니 곤이더러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그러자 곤이는 슬쩍 반대편 다리로 무게를 옮기더니
- 그냥 선생님이 해 주시죠.
라고 말했다. 곳곳에서 폭소가 터졌다. 환호 섞인 박수 소리가 들려 오기도 했다.
담임은 붉어진 얼굴에 손바라을 일으켰다.
- 윤이수다. 이제 반 애들한테 인사해야지.
그 말에 곤이는 아, 뭐 ... ... 하며 우두둑 목을 꺾더니 혀로 볼 안쪽을 번갈아 불룩하게 찔렀다. 그러곤 씩 웃음을 짓고 나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 퉤, 하고 침을 뱉었다.
- 됐죠?
곳곳에서 함성이 길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거친 말들도 간간이 섞인 게 조금 전과는 달랐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담임이 주의를 주거나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말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웬일인제 담임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꾹 눌러 삼킨 말이 얼굴로 올라와 붉은 기운을 더했을 뿐이다. 곤이는 소개를 마치고 한 시간 후에 조퇴를 했다.
곧 신상 털기가 시작됐다. 삼십 분도 안 돼서 곤이가 어디서 뭘 하다 온 앤지 반 전체가 알게 됐다. 한 이이가 사촌에게 들은 정보를 몇가지 흘렸다.
그 사촌은 곤이가 소년원을 나와서 여기로 전학 오기 전에 갔던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애가 사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스피커폰으로 생중계됐다. 아이들은 오래만에 단합하여 동그랗게 둘러 앉았다. 잘 들으려고 책상 위로 올라간 아이도 있었다. 나는 멀리 있었지만 이 말만큼은 또렷이 들려왔다.
- 그새끼 완전 깡패야. 살인 빼곤 다 해 봤을걸.
누군가가 내게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다.
- 야 병신. 어쩌냐. 이제 네 시대는 갔다.
다음 날 곤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아이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곤이는 말없이 자리로 향했다. 아이들은 슬슬 눈길을 거두거나 괜히 책에 고개를 묻는 척했다. 얌전히 앉는가 싶던 곤이가 냅다 책가방을 던졌다.
- 누구냐?
어제의 소란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 내 신상 턴 새끼 누구냐고. 알어서 일어나는 게 좋을 거다.
공기가 조용히 진동했다. 최초의 정보 제공자가 몸을 떨며 일어났다.
- 아, 아니 ... ... 내 사촌이 널 안다고 해서 ... ...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곤이는 또 혀로 볼 안쪽을 몇 차레 찌르더니 입을 열었다.
- 고맙다. 네 덕분에 소개할 필요 없어졌네. 나 그런 애다. 곤이가 자리에 풀썩 앉았다.
아줌마의 부고를 전해 들은 날 , 곤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가족이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곤이가 그 애라는 걸. 나를 아들로 착각하고 죽어 버린 아줌마의 진짜 아들이라는 걸.
31.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곤이가 제 엄마의 영정 앞에 절을 했다.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윤 교수의 인도에 따라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까지 순식간에 끝냈다. 모든 동작이 너무 빨랐고 절은 한 번만 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윤 교수는 한 번 더 하는 거라고 곤이의 등을 밀었다. 하지만 그 애는 몸으로 그 손길을 밀치고는어디론가 사라졌다. 밥을 먹고 가라는 윤 교수의 권유로 나는 상 앞에 앉았다. 명절 때 엄마가 하던 음식과 종류가 비슷했다. 뜨거운 국과전. 꿀이 든 떡이며 과일들. 나도 몰랐는데 배가 고팠는지 밥이 빨리 넘어갔다.
사람들은 남 얘기를 할 때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자주 잊어버린다. 말하는 사람은 작게 말한다고 생각해도, 그말들은 대부분 여과 없이 다른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밥으 먹는 내내 곤이에 대한 얘기가 공중에 떠다녔다. 장례 이틀째가 돼서야 나타난 이유는 그 애가 오기를 거부해서였다는 둥,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사고를 쳤다는 둥, 전학을 시키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다는 둥, 아들 역할을 한 아이가 따로 있다는 둥, 여러 말들이 어지럽게 오갔다. 나는 구석에서 사람들을 등지고 앉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잘은 몰랐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밤이 되고 조문객이 어느정도 빠질 때쯤 곤이가 다시 나타났다. 곤이의 눈이 지목하듯 내게 꽂혔고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 애는 내 앞으로 와 앉았다. 아무 말 없이 육개장을 두 그릇이나 후루룩 비운 곤이는, 마침내 얼굴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 너였냐. 나 대신 아들 노릇 한 새끼가.
답할 필요가 없었다. 이어진 말도 곤이의 차지였기 때문이다.
- 이제 골치 아플 줄 알아라. 뭐, 재미있을지도 모르고.
곤이가 씩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 부터 진정한 시작이, 시작됐다.
32.
곤이 곁에 두 아이가 따라 다녔다. 말라깽이 같은 한 명은 곤이의 말을 다른 아이들에게 전하는 비서 노릇을 맡았고, 덩치가 좋은 다른 한 명은 한눈에도 새를 과시하는 역할이었다. 셋은 그렇게 친해 보이진 않았다. 친구라기보다는 모종의 계약이나 목적으로 뭉친것 같았다.
어쨌든 곤이는 나를 괴롭히는 걸 새로운 취미로 삼은 듯 했다. 상자를 열면 튀어나오는 인형처럼 불쑥불쑥 내 앞에 나타나곤 했다. 매점 앞에 잠복해 있다가 나를 한 대 치기도 했고 복도 끝에 서 있다가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그런 자잘한 계획이 성공할 때마다 곤이는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커다랗게 웃었고, 양옆에 서 있던 아이들도 곤이의 눈치를 보며 장단을 맞추듯 따라 웃었다.
나는 시종일관 대응하지 않았다. 곤이를 두려워하고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아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선생님에게 말하진 않았다. 후환을 감당하기 힘들 거라는 계산이 한몫했겠지만, 내 반응도 딱히 도움을 요청하는 느낌이 아니어서였을 거다. 둘 다 이상한 놈들이니 구경이나 하자는 게 주된 여론이었다.
곤이가 내게서 어떤 반응을 원하는지는 뻔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괴롭힘 당하는 아이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아이들. 그 애들은 대부분 힘을 써서 자기들이 원하는 걸 얻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곤이가 원하는 게 내게서 어떤 자그마한 표정의 변화라도 보이는 것이라면 그 애는 영원히 나를 이길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럴수록 힘이 부치는 사람은 곤이 자신이 라는것도.
얼마 가지 않아 곤이는 타깃이 심상찮은 상대라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나를 건드리는 행동은 계속됐지만 전처럼 당당한 기색이 아니었다. ' 쫀 거 아니야? 완전 초조해 보여' 아이들이 곤이 몰래 속삭였다.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교실 안의 골기는 팽팽해져 갔다.
얼마 뒤, 제풀에 지쳤는지 곤이는 나를 넘어뜨리거나 뒤에서 머리를 치고 가는 대신, 공식적인 결판을 '선언' 했다. 담임이 종례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말라깽이가 칠판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뭐라고 쓰기 시작했다. 칠판에 삐뚤삐뚤 한 글자가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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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