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손원평 작 (11)

호수 | 2021.09.17 15:18:00 댓글: 2 조회: 784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04680
34.
곤이가 이수다. 그건 그애의 엄마가 지어 준 이름이다. 하지만 곤이는 이수라고 불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수라는 이름은 나약해 보여서 싫다고 했다. 자신이 가젼던 여러 이름 중에 그 애는 곤이라는 이름을 가장 좋아했다.
곤이의 첫 기억은 낯선 곳에서 여러 사람이 이상한 언어로 떠드는 거다. 어린 곤이는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알수 없다. 북적북적 소란스럽기만 하다. 그 애는 대림동 쪽방촌에서 중국인 노부부와 함께 살았는데. 그들은 곤이를 쩌양이라고 불렀다. 몇 년간 그 애는 집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 초반에 곤이의 행방을 찾을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거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검문을 나오면서 노부부는 자취를 감췄고 곤이는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다. 아동 보호 시설로 갔다. 다등 그애를 노부부의 친손자로 생각한 데다 그들이 중국으로 돌아갔다는 공식적인 기록도 없기 때문에 여기서도 조사가 이뤄지거나 춘부모를 찾는 데 실패했다.
한동안 보호 시설에서 지내던 곤이는 아이가 없는 어떤 집으로 입양이 됐다. 거기서는 곤이를 동구라고 불렀다. 환경이 좋은 편이 아니였고, 밑으로 아기가 태어나면서 그들은 이 년 만에 곤이를 파양했다. 그 뒤로 곤이는 다시 시설에서 살았다. 이런저런 사고를 쳐서 소년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곤이라는 이름은 희망원이라는 시설에서 스스로 지은 이름이었다.
- 한자도 있어?
- 아니 난 그런 복잡한 거 몰라. 그냥 떠올랐어.
그러면서 씩 웃는다. 곤이는 그런 애였다. 나도 곤이라는 이름이 쩌양이니 동구니 이수 같은 이름보다 훨신 '곤이답다' 고 생각했다.

소각장에서 있었던 일로 곤이는 일주일간 정학을 받았다. 그날 누군가의 제보로 제때 선생님이 오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윤 교수가 학교로 불려 왔고 내 공식 보호자인 심 박사와 마주했다. 심 박시는 낮은 목소리로 강하게 화를 냈고 초반에 윤 교수가 내게 직접 찾아가 보게끔 한 것을 몹시 후회했다. 윤 교수는 정학이 끝난 뒤에도 곤이의 태도에 변하가 없다면 전학을 시킬 수밖에 없다는 학교의 경고애 고개를 푹 숙였다.

며칠 뒤, 나와 곤이는 피자집에 마주 앉아 있었다. 곤이의 눈빛은 더 이상 이글거리지 않았다. 옆에 윤 교수가 앉아 있 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곤이의 말썽을 전해 들은 윤 교수는 곤이에게 처음으로 매질을 했다고 한다. 윤 교수는 신사였기 때문에 고작해야 움켜쥔 컵을 벽에 내던지고 회초리를 들어 종아리를 몇 차례 때린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건 평소 그가 지켜오던 '지식인' 이라는 자기 이미지에 오점으로 남았고, 원체도 어색했던 부자 관계는 더 멀어졌다.
십몇 년 만에 만난 진짜 아빠에게 매를 맞는 건 어떤 기분일까. 서로를 더 잘 알거나 친해지기도 전에 말이다.
심 박사의 말에 따르면 윤 교수는 투박한 사람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신조를 평생 지켜 온 윤 교수는 갑작스레 돌아온 자신의 피붙이가 그런 신조에 철저히 위배되는 짓을 일삼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 곤이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도,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이 ' 이런모양' 으로 나타난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그래서 윤 교수는 곤이에겐 매질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겐 사과하고 사과하고 또 사과하는 방법을 택했다. 선생님들에게 사과했고 학생들 앞에서 사과했고, 그리고 내게 사과했다.
곤이와 나를 피자 가게에 마주 앉혀 놓고 가장 비싼 메뉴를 시켜 준 것도 사과의 한 방식이었다. 윤 교수는 두 손을 양 무릎에 얹고는 곤이가 들으라는 돗이 큰 목소리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했다. 목소리는 떨렸고 눈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런 일을 당해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다 내 탓이다. ... ...
나는 빨대로 콜라를 조금씩 빨아올렸다. 그의 말이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말이 계속 될수록 곤이의 표정은 굳어져 갔다. 배가 꼬르륵거리고 눈앞의 피자가 딱딱해지고 있었다.
- 이제 그만 하셔도 돼요. 전 아저씨한테 사고 들으려고 이 자리에 나온 게 아니니까요. 사고는 얘가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러려면 저희 둘이 있는게 좋을 것 같아요.
윤 교수가 놀란 듯 눈을 잠깐 크게 떴다. 곤이도 눈을 치켜떴다.
- 괜찮겠니?
- 네, 혹시 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연락드릴게요.
곤이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윤 교수는 몇 차례 헛기침을 하며 굼뜨게 몸을 일으켰다.
- 윤재야, 이수도 많이 미안해하고 있을 거다.
- 얘도 입이 있어요. 아저씨.
- 그래 맛있게 먹어라.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 그럴게요.
그는 떠나기 전 곤이의 어깨에 무겁게 손을 올려 놓았다. 곤이는 반항하지 않았지만 윤 교수가 걸음을 떼자마자 어깨죽지를 손으로 탁탁 털어 냈다.

35.
부글부글 콜라가 끓어올랐다. 곤이는 연신 빨대로 콜라에 숨을 불어넣었다. 시선은 창가로 돌려져 있었다. 창밖엔 간간이 지나다니는 차들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풍경이랄 것도 없었다. 창틀 바로 앞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후추 통이 놓여 있었다. 완만한 곡선으로 빚어진 후추 통은 광각 렌즈처럼 주변을 비추었다. 그 한가운데 내 얼굴이 보였다. 피딱지가 군데군데 앉고 멍이 든 게 꼭 결기에서 진 복서 같았다. 곤이는 후추 통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우리의 눈이 후추 통에서 만났다.
- 꼴 좋구나.
- 덕분에.
- 내가 너한테 사과라도 할 것 같냐.
- 그러건 말건 상관없다.
- 네 아빠가 너무 말을 많이 하셔서. 좀 조용히 있고 싶었다.
내 말에 곤이가 가벼운 콧소리를 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기침으로 덮으려는 듯한 소리였다.
- 아빠한테 맞았다면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생각나는 대로 운을 뗐다. 적절한 시작은 아니었는지 곤이의 동공이 확 커졌다.
- 누가 그래?
- 네 아빠가 직접 얘기해 주시더라.
- 입 닥쳐, 새끼야 난 아빠 같은 거 가진 적 없어.
- 그런다고 아빠가 아빠 아닌게 되진 않을 텐데.
- 뒈지고 싶냐. 입 닫으라고 새꺄.
곤이가 후추 통을 낚아챘다. 손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 손톱이 하얘졌다.
- 왜? 여기서 또 난장판이라도 벌이려고?
- 그럼 안 될 이유라도 있냐?
- 아니 궁금해서 물어봤어. 미리 알면 나도 준비할 수 있으니까.
곤이가 포기한 듯 제 앞에 놓인 콜라를 끌어당겼다. 콜라가 다시 끓어 올랐다. 나도 곤이를 따라 콜라에 숨을 불어넣었다. 곤이가 피자를 한 조각 베어 물고는 네번 우물우물 씹고 삼켰다. 그러곤 작게 캭, 소리를 냈다. 나도 그애가 하는 그대로 따라했다. 네번 우적우적 씹어 삼킨다. 그러곤, 캭. 곤이가 나를 쏘아봤다. 이제야 내가 자기를 따라 하는 걸 눈치챘다.
- 미친 새끼.
곤이가 중얼거렸고,
- 미친 새끼.
내가 똑같이 따라 했다. 그러자 곤이는 입술을 이쪽저쪽 으로 씰룩였고, 내가 자신을 따라 입을 씰룩이는 것을 보았다. 그 애는 괴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피자, 똥, 변기, 제발 죽어라 따위의 말을 웅얼대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앵무새나 광대가 된 것처럼 똑같이 따라했다. 곤이가 쉬는 들숨가 날숨의 횟수까지도 똑같이.
묘한 거울 놀이가 계속되자 곤이는 차츰 피로해진 모양잉었다. 웃음소리는 멈췄고 곤이는 더 곤란한 표정이나 동작을 생각하는 듯 시간을 끌었다. 그러건 말건 나는 그 애가 입술 사이로 작게 프프프, 소리를 내거나 눈썹을 미세하게 찡그리는 것조차 따라 했다. 나의 끈질긴 행동은 곤이의' 창의적인' 생각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 그만하자.
하지만 난 그만두지 않았다.
- 그만하자.
라고 똑같이 말했을 뿐이다.
- 그만하자고 새꺄.
- 그만하자고 새꺄.
- 우습냐, 병신아?
- 우습냐, 병신아?
곤이는 말을 멈추더니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치기 시작했다. 내가 따라 하자 얼른 동작을 멈춘다. 침묵. 말없이 나를 노려본다. 십 초, 이십 초, 일 분쯤. 그러더니 잠깐 자세를 고쳤고, 나도 그렇게 했다.
- 내가 말이야.
- 내가 말이야.
- 여기서 테이블을 엎고 접시를 다 깨도 똑같이 따라 할수 있을까?
- 여기서 테이블을 엎고 접시를 다 깨도 똑같이 따라 할수 있을까?
- 그 깨진 접시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찔러 죽여도 네가 똑같이 할 수 있겠냐고, 개자식아,
- 그 깨진 접시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찔러 죽여도 네가 똑같이 할 수 있겠냐고, 개자식아,
- 좋아.
- 좋아.
- 똑똑히 알아 둬. 이건 네가 시작한 거야.
- 똑똑히 알아 둬. 이건 네가 시작한 거야.
- 여기서 관두면, 넌 좆도 아닌거야, 알았어?
- 여기서 관두면, 너 좆도 ... ...
내 말이 끝나기도 전 곤이가 테이블 위의 음식을 팔로 다 쓸어 버렸다. 그러더니 테이블을 쾅쾅 내리치며 사람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 뭘 봐, 미친 것들아, 맛있냐? 맛있냐고! 병신들아, 실컷처먹어라!
곤이는 앞에 놓인 피자며 소스 병들을 사방으로 집어 던졌다. 건너편에 앉은 여자의 발치에 피자가 떨어졌고 아무렇게나 뿌려 댄 소스가 어린아이의 머리 위로 튀었다.
- 왜 안 따라해, 병신아, 왜 안 따라 해?
곤이가 나를 보며 씩씩댔다.
-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근데 왜 안 따라 하냐고!
종업원이 달려와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따위의 말을 했지만 곤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곤이는 당정이라도 작원을 때릴 것처럼 팔을 들어 올렸다. 손님 몇이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고 다른 직원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 따라 해 보라고, 새끼야.
곤이가 다시 외쳤지만, 이미 나는 가게 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약속한 대로 윤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들리기도 전에 윤 교수가 나타 났다. 행여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어 근처 골목을 서성이고 있었나 보다. 그가 피자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창문을 통해 난장판이 된 가게 안을 바라봤다. 윤 교수의 뒷모습이 떨리는 것을, 그의 커다란 손이 곤이의 얼굴을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리는 것을. 그리고 곤이의 머리가 그의 두 손에 잡혀 앞뒤로 흔들리는 광경을. 거기까지 보고 바길을 돌렸다. 별로 재미없는 장면이었다.

피자를 거의 먹지 못했기 때문에 허기가 졌다.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분식집에서 우동을 한 그릇 사 먹고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조용해 잠들어 있었다. 소변줄이 통에서 비어져 나와 침대 밑어서 대롱 거렸다. 노란 오줌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간호사를 불러 조치를 취해 달라고 얘기했다. 엄마의 올글에 기름이 꼈다. 거울을 봤다면 깜짝 놀랐을 거다. 스킨을 솜에 묻혀 얼굴을 닦고 로션을 톡톡 발라 주었다.
병원 문을 나서 집까지 걸어왔다. 아주 조용한 저녁이었다. 책을 한 권 빼 들었다. 학교를 나온 소년이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평범한 내용이다. 그 애는 호밀밭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그 애가 파란색 코트를 입고 회전 목마를 타는 동생 피비를 지켜보는 것으로 끝난다. 그 난데없는 결론에 왠지 맘에 들어 벌써 몇 번이나 읽은 책이었다.
이따금 곤이의 얼굴이 책 위로 겹쳤다. 아빠에게 머리채를 잡힌 그 애의 어룰이. 하지만 그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짐작이되지 않았다.
잠들기 직전 윤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자꾸만 말을 멈췄고 침묵과 한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윤 교수가 전달한 건, 치료부를 모두 대겠다는 것과 더는 곤이가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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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국밥 (♡.15.♡.73) - 2021/09/29 16:48:12

잘 보고 갑니다

호수 (♡.179.♡.193) - 2021/09/29 17:18:3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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