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소봉전기(11)-古龙

핸디맨남자 | 2021.11.13 13:31:36 댓글: 0 조회: 534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23563

9. 비연거래(飛燕去來)

마차가 크지는 않았지만 네 사람이 앉기에는 적당했다.

마차를 끄는 말은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마차가 황톳길을 가고 있는 데도 아주 평안하게 가고 있었다.

마수진과 석수설이 나란히 앉아 있고, 손수청과 엽수주가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마차는 오랫동안 달리고 있었다. 석수설은 갑자기 모두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모르는 체하려고 했지만 입을 열고 싶은 것을 참을 수가 없어 물었다.

"다들 왜 계속 나를 쳐다보는 거예요? 내 얼굴에 꽃이라도 피었어요?"

손수청이 웃으며 말했다.

"네 얼굴에 핀 꽃은 조금 전 어떤 사람이 꺾어 갔잖아."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커졌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 소녀가 말하는 것이 용서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석수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어서 말했다.

"이상한 일은, 이 계집아이는 야채나 어떤 꽃도 좋아하지 않는데, 지금은 왜 입만 열면 꽃, 꽃 그러는 걸까?"

석수설은 얼굴도 붉어지지 않고 여유 있게 대답했다.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야. 그의 성이 화()이기 때문에 내가 입만 열면 꽃, 꽃 그러는 거야."

손수청이 낄낄거리며 웃으며 말했다.

"그라고? 그가 누구야?"

석수설이 말했다.

"그의 성은 화이고, 화만루라고 불리지."

손수청이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 사람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거야?"

석수설이 대답했다.

"그가 방금 나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지."

손수청이 물었다.

"나는 왜 듣지 못했을까?"

석수설이 대답했다.

"우리들끼리 얘기했는데 어떻게 네가 들을 수 있어? 게다가 너는 마음속으로 육소봉을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손수청이 말했다.

"내가 말한 거야. 그 사람이 목욕통에 앉아 있을 때, 네 눈동자는 계속 그의 몸에 머물고 있는 것을 나는 일찍부터 알아차렸어. 부인할 수 없는 일이야."

손수청이 화를 내며 웃기도 하며 말했다.

"저 계집애 정말 미친 거 아니에요? 말하는 것이 모두 엉터리야."

마수진이 조용히 말했다.

"저 계집아이가 조금 미치기는 했지만, 네 눈동자가 계속 육소봉의 몸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잖아."

석수설이 박수를 치고 웃으며 말했다.

"큰언니가 맞는 말을 했네."

손수청은 눈을 굴리며 갑자기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신맛인 것 같은데."

마행공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신맛이라고? 무슨 신맛?"

손수청이 말했다.

"질투 같은 신맛이지요."

마수진도 소리를 치며 말했다.

"너는 지금 내가 질투를 한다고 말하는 거야?"

손수청이 대답했다.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말했잖아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육소봉이 풍류도 있고, 대범하다고 말하는데 내가 오늘 그가 목욕통에 앉아 있는 것을 보니 꼭 바보, 얼간이 같던걸, 서문취설이 훨씬 낫던데."

석수설이 놀라서 물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손수청이 말했다.

"내가 말한 것은, 만약에 내가 한 남자를 고른다면 서문취설을 고른다고. 그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사나이의 기개가 있는 사람이지. 육소봉보다 열배는 낫다구."

석수설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내가 보기에 넌 정말로 미친 것 같구나, 세상 모든 남자가 다 죽는다 해도 나는 절대로 자기를 살아 있는 강시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손수청이 말했다.

"네 마음에 안 들어도, 내 마음에 들어. 짚신도 다 짝이 있는 거잖아."

마수진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는 말했다.

"너희들 하는 걸 보니 벌써 짚신을 서로 나누어 가진 것 같은데."

손수청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우리들이 언니에게 가장 큰 짚신인 육소봉을 나누어 드리지요."

석수설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그럼 엽() 셋째만 혼자 남는 거야?"

엽수주의 얼굴이 붉어지며 말했다.

"모두들 한 번 보고는 상사병에라도 걸린 것 같은데, 모두들 한평생 남자를 본 적이 없는 거야?"

손수청이 말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그런 남자들을 본 적이 없지."

그녀는 눈을 흘기며 엽수주를 보고는 말했다.

"양심적으로 말해서 오늘 우리들이 본 세 남자는 모두가 괜찮았어. 너는 입으로는 비록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세 사람 모두를 좋아할지도 모르지."

엽수주의 얼굴이 빨개지며 말했다.

"너는, 너는..... 정말로 미쳤구나."

마수진이 말했다.

"둘째 사매(孫妹) , 얌전한 사람 괴롭히길 좋아하는 건 나쁜 거야."

손수청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녀가 얌전하다고? 그녀는 겉으로는 얌전하지만, 사실은 우리 네 사람 중에서 가장 빨리 시집갈 사람이 그녀일 걸?"

엽수주가 말했다.

"너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석수설이 가로채서는 말했다.

"그녀는 스스로 시집가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네 조각의 눈썹을 가진 남자는 말할 것도 없이 네 개의 쓸개를 가진 사람이라도 절대로 그녀를 데려가지 않을 거야!"

마수진이 말했다.

"모두가 맞는 말이야. 누가 저렇게 말 많은 여자를 데려가서, 시끄러워 죽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지!"

석수설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 귀머거리라면 가능할 걸....."

손수청은 뛰어가며 큰소리로 말했다.

"좋아, 셋이서 같이 나를 괴롭히는군. 그 세 남자를 모두 주면 되는 거야?"

석수설이 말했다.

"네가 우리에게 준다고? 그 세 남자가 네 것이란 말이야?"

마수진이 말했다.

"저 계집아이는 수줍어하는 것만 모르고 뭐든지 아는군."

손수청이 그녀들을 흘겨보고는 크게 외쳤다.

"배고파 죽겠어."

마수진이 놀라 정말로 미친 사람을 보는 것처럼 그녀를 보았다.

손수청 자신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나는 화를 내면 배가 고파져. 지금 화를 냈으니, 밤참을 먹을 만한 곳을 찾아야겠어."

네 명의 소녀들이 모여서 남자 얘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네 명의 남자가 모여서 여자 얘기를 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화만루와 육소봉은 지금 여자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들이 얘기하는 것은 서문취설에 관해서였다.

육소봉이 말했다.

"나는 그가 지금까지 아직 독고일학을 찾지 못했기를 바랄 뿐이네."

화만루가 물었다.

"자네는 그가 절대로 독고일학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여기는 건가?"

육소봉이 대답했다.

"그의 검법은 날카롭고 인정이 없어. 그와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틈을 주지 않아."

화만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곧 자기에게도 틈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지."

육소봉이 말했다.

"그의 칼이 칼집에서 한 번 나오면, 상처를 당할 바에는 스스로 죽을 것이야!"

화만루가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죽지 않았지."

육소봉이 말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독고일학 같은 상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독고일학의 검법은 침착하고 힘차며, 내공이 깊어 공세가 맹렬하고 방어 또한 빈틈이 없지. 싸워본 경험도 많아서 서문취설은 그를 이길 수가 없을 것이야. 그가 삼십초의 공격을 당해낼 수 없으면 독고의 칼에 죽고 말 거야."

화만루가 물었다.

"자네는 그가 삼십초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육소봉이 대답했다.

"누구도 독고의 삼십초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죽을 운명이었다. 서문취설도 마찬가지로 당해내지 못할 거야!"

화만루가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가 그를 상대하는 게 좋은데....."

육소봉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단지 그가 아직 독고일학을 찾지 못했기를 바랄 뿐이지."

그들은 조용한 큰길을 빠져나가 주광보기각 바깥의 작은 강 앞에 도착했다. 은은한 상현달 아래 강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결은 은빛 비늘 같이 반짝이며 눈을 부시게 했다.

한 사람이 작은 강가에 조용히 서 있었다. 눈처럼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육소봉이 그를 보았을 때 그도 육소봉을 알아보고는 말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소."

육소봉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죽은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군."

서문취설이 말했다.

"죽은 사람은 바로 독고일학이지."

육소봉은 웃지 않았다.

서문취설이 말했다.

"그럴 줄 몰랐지?"

육소봉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인정했다.

서문취설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 스스로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지."

육소봉이 물었다.

"뭐라구?"

서문취설이 대답했다.

"소소영이 이십일 초의 공격을 했을 때 나는 세 곳의 결점을 찾아내었지."

육소봉이 물었다.

"그래서 자네는 적어도 독고일학을 죽일 세 차례의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했겠군?"

서문취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까지 나는 한 차례의 기회면 충분했는데, 조금 전 그와 싸울 때는 한 차례의 기회도 잡을 수가 없었지."

육소봉이 물었다.

"왜 그랬나?"

서문취설이 대답했다.

"그의 검법에 결점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칼을 휘두른 후 그는 갑자기 결점을 보충하는 있었다네. 나는 지금까지 자기 검법의 부족한 부분을 아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는 알고 있었지."

육소봉이 말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검법에는 결점이 있기 마련이지. 그러나 자기 검법의 결점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

서문취설이 말했다.

"나는 세 차례 공격을 했고, 세 차례 막혔지. 나는 그를 죽이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았네. 사람을 죽일 검법이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면, 자기가 죽어야 하지 않겠나!"

육소봉이 말했다.

"자네는 자신감에 차 있기는 하지만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일 거야!" ‘

서문취설이 말했다.

"내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은 삼십 초의 공격 후 그의 검법이 갑자기 흐트러졌기 때문이야."

육소봉이 말했다.

"그 같은 고수가 검법이 갑자기 흐트러진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거요."

서문취설은 듣고 있었다.

육소봉이 말했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검법은 반드시 흐트러지기 마련이지."

서문취설이 말했다.

"그의 마음이 흐트러진 건 아니었네."

육소봉이 물었다.

"그의 내공이 형편없는 것이었나?"

힘이 달리면 검법도 흐트러지는 법이었다.

육소봉이 또 물었다.

"그의 대단한 실력이 어떻게 삼십 초의 공격 후에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까?"

서문취설이 말했다.

"내가 말했지만, 나도 알 수가 없었다네."

육소봉이 심각하게 물었다.

"그가 자네와 싸우기 전에 내공을 다른 사람에게 많이 소모한 것은 아닐까? 혹 어떤 사람이 먼저 그와 싸웠다든지."

서문취설이 차갑게 말했다.

"자네는 공격을 할 때, 다른 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언제 주나?"

서문취설의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지만, 어두운 눈빛을 띠고 한참을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가 죽기 전에 이상한 말을 한마디 했는데."

"그가 뭐라고 말했는가?"

"그가 말하길 그는....."

칼을 뽑았을 때, 칼끝에는 아직 피가 맺혀 있었다.

독고일학은 다른 사람의 칼끝에 자기의 피가 맺혀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고통이나 두려움의 기색은 없었고 도리어 크게 소리쳤다.

"나는 잘 알았어, 나는 잘 알았어....."

서문취설이 말했다.

"그는 잘 알았다고 말했어!"

육소봉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는 무엇을 잘 알았다는 것이지?"

서문취설의 눈에 서린 어두움이 깊어졌고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마 그는 인생이 아침 이슬같이 촉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 그가 이름과 지위를 바꾸면서까지 얻은 것이 공허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겠지....."

육소봉이 생각을 하다 차분히 말했다.

"인생이 짧기 때문에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것이지. 그는 도대체 정말 무엇을 알았다는 것일까? 모른다는 것인가? 그가 말하려는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서문취설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그는 뜻밖의 말을 하는 있었다.

"배가 고프군."

육소봉은 놀라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배가 고프다고?"

서문취설이 쌀쌀하게 대답했다.

"나는 사람을 죽이고 나면 항상 배가 고프지."

이 집은 무성한 뽕나무 숲 바깥에 있는 작은 주막으로 이미 문이 열려 있었다. 뽕나무 숲에는 몇 집이 있었고, 뽕나무 숲 밖에도 몇 집이 있었는데, 대부분 누에를 치는 사람들이었다.

이 집은 큰길과 가까이 있고, 사방에 창이 나 있는 작은 오두막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술과 안주를 팔고 있었다. 아미사수가 여기 도착했을 때 주인은 벌써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네 명의 소녀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주막에는 세 개의 탁자만이 있었고, 아주 잘 정돈되어 있었다. 안주도 깔끔했고 부드러운 술이 소녀들의 입맛에 잘 맞아서 그녀들은 아주 즐겁게 먹고 있었다.

소녀들이 즐거워하고 있을 때 말하는 것은 다른 것이 많다. 그녀들이 시끌벅적하게 말하며 웃는 것이 마치 아주 즐거워하는 한 무리의 닭 같아 보였다.

손수청이 갑자기 말했다.

"네가 말하는 그 성이 화()인 사람, 약간은 강남 사투리를 쓰던데 그 화씨 집안의 사람 아니야?"

석수설이 물었다.

"그 화씨라니?"

손수청이 대답했다.

"강남의 화씨, 듣기엔 하루 종일 말을 타고 달려도 여전히 그들 집안의 토지 안이라고 하던데."

마수진이 말했다.

"나도 그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화만루가 그 집안사람 같지는 않던데."

손수청이 물었다.

"왜 그래요?"

마수진이 대답했다.

"듣기에 그 집안 생활이 아주 호화로워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대단히신 경을 많이 쓴다고 하던걸. 그들 집의 마부조차도 바깥에 나갈 때에는 부잣집 도련님 같다는데, 화만루는 아주 검소해 보이잖아. 게다가 나는 그들 아들 중에 장님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거든."

석수설이 즉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장님이 뭐가 어때요? 그는 장님이기는 하지만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같이 눈이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아요."

마수진도 자기 말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의 무공은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손을 내밀어 네 칼을 잡을 수 있는 정도였지."

손수청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 아마 저 계집아이가 그에게 빠진 이유일 거야."

석수설은 그녀를 노려보고는 말했다.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번에 네가 한 번 시험해 보면 되잖아. 나는 그를 대신해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야. 세상에서 그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어."

손수청이 물었다.

"서문취설? 그의 검법은 어떻고?"

석수설은 말없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문취설의 그 검법은 정말 대단한 있었다.

마수진이 말했다.

"듣기로는 서문취설은 검법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집안도 아주 좋다고 하던걸. 만매산장의 부귀 영화가 절대로 강남의 화씨에 뒤떨어지지는 않을 거야."

손수청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좋아. 집안 때문이 아니야. 그가 빈털터리라 하더라도 나는 똑같이 그를 좋아할 거야."

석수설이 조그맣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아무리 훑어봐도 사랑스러운 곳은 한 군데도 없던데."

손수청이 말했다.

"그의 사랑스러운 점을 왜 언니가 봐야 하지?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겼고, 얼굴이 귀밑까지 붉어졌다. 이때 밖에서 한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처럼 하얀 옷을 입은, 바로 서문취설이었다. 석수설도 말을 하지 못했다. 시끄럽던 소녀들이 갑자기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그녀들은 서문취설만 본 것이 아니라 화만루와 육소봉도 보았다.

서문취설의 칼끝같이 날카로운 두 눈은 그녀들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홀연히 걸어오더니 차갑게 말했다.

"나는 소소영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 독고일학도 죽였소."

소녀들의 얼굴은 모두 변했다. 특히 손수청의 얼굴은 거의 혈색이 하나도 없이 창백해졌다.

어린 소녀의 마음속에는 복수가 사랑하는 마음을 몰아내기가 쉬운 것이었다. 게다가 소소영은 아주 멋져서 이 네 명의 사매(師妹)가 모두들 그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 있었다. 그러나 스승의 원수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손수청이 실성한 듯 물었다.

"당신은, 당신은 뭐라고 했어요?"

서문취설이 말했다.

"나는 독고일학을 죽였소."

석수설이 갑자기 펄쩍 뛰며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둘째 언니가 그렇게 당신을 좋아하는데, 당신은,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어요?"

누가 그녀가 이런 말을 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서문취설도 멍해지는 것 같았다.

손수청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갑자기 이를 악물더니, 한 쌍의 칼을 칼집에서 꺼내었다. 검광(劍光)을 번쩍이며 서문취설의 가슴을 향해 한스럽게 칼을 겨누었다.

서문취설은 맞서 싸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볍게 소매를 뿌리쳐 뒤로 7, 8척은 미끄러져 물러났다.

손수청의 눈이 붉어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사부님을 죽였으니, 나는 당신과 싸우겠어요."

그녀는 두 개의 칼을 가지고 이를 악물고는 서문취설을 향해 다가갔다. 검의 초식은 가볍고 민첩하며 변화가 많았다. 칼 빛이 번쩍하더니 꽃잎이 비에 떨어지는 것처럼 잠깐 사이에 칠초의 공격을 하였다.

언니가 한 쌍의 칼을 칼집에서 꺼내는 것을 보고 석수설이 크게 소리쳤다.

"이것은 우리와 서문취설의 일이니 다른 사람들은 상관하지 마세요."

그녀가 이렇게 말한 것은 화만루가 들으라고 한 있었다. 사실상 화만루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이 네 명의 소녀가 서문취설의 칼에 죽게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이때, ,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서문취설이 소매로 손수청의 팔꿈치를 밀어올 려, 그녀의 왼손에 있던 칼로 그녀의 오른손에 있던 칼에 부딪히게 했다.

칼이 서로 부딪치며 그녀는 손이 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개의 칼은 어느 순간엔가 서문취설의 손에 가 있었다.

서문취설이 차갑게 말했다.

"물러나라. 내가 칼을 꺼내지 않게!"

그의 목소리는 차갑기는 했지만 눈빛은 차갑지 않았다. 그래서 손수청이 아직 살아 있는 있었다.

그도 사람이고, 남자인데, 어떻게 자기를 좋아하는 아름다운 소녀에게 칼을 들이밀 수 있겠는가? 손수청의 얼굴이 더 하얗게 되면서 눈에는 눈물이 반짝이고 이를 악물고는 말했다.

"우리들은 오늘 당신과 싸우려고 온 것이라고 말했어요. 당신을 죽이지 못하면, ..... 당신 앞에서 죽어야 합니다."

서문취설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죽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 너희들이 복수를 하려거든 빨리 청의루 108명을 모두 불러오는 것이 좋을 거야."

손수청은 많이 놀란 듯이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서문취설이 말했다.

"독고일학이 청의루의 두목이니, 청의루....."

손수청이 그의 말을 끊고는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 사부님의 청의루라고 말하는 건가요? 당신 미쳤어요? 그분이 이번에 관중(關中)에 온 것은 한 가지 소식을 듣고 온 것이에요. 청의제일루가 있는 곳을 알고....."

갑자기 뒤쪽 창가에서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가느다란 검은 빛이 창을 깨고 들어와서는 손수청의 등을 가격했다.

손수청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서문취설을 향해 넘어졌다. 석수설은 창 가까이 있었고 소리를 치며 몸을 돌려 엎드렸지만, 이때 창가에서 또 검은 빛이 들어왔다. 얼마나 빠르게 오던지 그녀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큰소리를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고는 넘어졌다. 이때 손수청은 서문취설에게 넘어져 있었고, 서문취설은 한 손을 내밀어 그녀의 허리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칼을 빼내었다. 칼 빛이 번쩍이며 그와 칼이 하나가 되는듯하더니 갑자기 창밖으로 나갔다.

육소봉은 벌써 다른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마수진과 엽수주도 다급한 소리를 듣고는 따라서 나갔다.

밤은 더욱 깊어 창 뒤의 채소밭에 저녁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무성한 뽕나무 숲을 지나는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문취설의 칼 빛은 숲으로 들어갔다.

마수진과 엽수주도 망설이지 않고 그를 따라 들어갔다. 뽕나무 숲 안에 있는 몇 집은 모두 잠들어 있어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서문취설의 칼 빛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한 마리의 누런 개가 숲 뒤쪽으로 작은 길을 향해 미친 듯이 짖으며 달려가는 있었다.

마수진이 말했다.

"쫓아가자. 무슨 일이든 우리는 둘째를 쫓아가야지."

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쫓아가고 있었다.

육소봉은 쫓아가지 않고 나무 아래에 멈추어서는 허리를 굽혀 물건 하나를 살펴 보았다.

주막의 주인은 겁에 질려 구석에 숨어 있었다.

화만루는 가볍게 석수설을 안고 있었다. 석수설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는데 아주 약하게 뛰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죽음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는 화만루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아직 가지 않았군요."

화만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가지 않아요. 당신과 같이 있을 거요."

석수설의 눈에는 이상한 표정이 나타났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했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아직 나를 알아볼 줄 몰랐어요."

화만루가 말했다.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을 알 수 있어요."

석수설이 아주 처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벙어리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빨리 죽게 되었어요.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잖아요? 그렇죠?"

화만루가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죽지 않아요. 절대로 죽지 않아요."

석수설이 말했다.

"나를 위로하려 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제가 맞은 것이 독침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화만루가 놀라 물었다.

"독침이라고?"

석수설이 말했다.

"나의 온몸이 마비된 것은 독이 퍼져서 그럴 거예요. 당신이, 당신이 나의 상처를 만져보면 데일 거예요."

그녀는 갑자기 화만루의 손을 잡더니 그녀의 상처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상처는 명치였는데,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포근했다. 그녀는 화만루의 찬 손을 잡고는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에 놓았다.

그녀의 심장은 빨리 뛰기 시작했다.

화만루의 심장 또한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육소봉의 목소리를 창밖에서 들었다.

"그녀가 맞은 것이 어떤 암기(暗器)인가?"

화만루가 대답했다.

"독침이네."

육소봉이 잠깐 말이 없더니 갑자기 말했다.

"자네는 여기에 그녀를 남겨 두고 나와 함께 사람을 찾으러 가자구."

마지막 한마디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멀리 있었다.

석수설이 숨이 차서는 말했다.

"당신은 가지 말고, 여기에서 나와 함께 있어 주세요!"

화만루가 말했다.

"당신은 눈을 감아 봐요. 내가..... 대신 독침을 뽑아줄 테니."

석수설의 창백한 얼굴이 붉어지는 듯하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그렇게 해주실 건가요?"

화만루가 대답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석수설이 말했다.

"나는 어떤 것도 괜찮아요. 그러나 나는 눈을 감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을 보고 싶으니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져 가고 얼굴의 미소도 갑자기 굳어졌다. 눈동자의 초점이 사라져 버렸다.

죽음, 잠깐 사이에 소리도 없이 그녀를 화만루의 품에서 뺏어갔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화만루를 보고 있는 듯했다. 영원히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 화만루의 눈앞에는 어둠뿐이었다.

그는 자기가 앞을 못 보는 것이 갑자기 원망스러웠다. 그녀의 마지막 눈동자를 볼 수 없는 때문이다.

그녀의 이렇게 젊고, 청춘의 활력이 가득 찬 몸이 갑자기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져 있었다.

화만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소매로 가볍게 닦아내었다.

그는 움직이지도 않았고, 가지도 않았다. 그는 살아오면서 이런 무자비한 슬픔은 처음 느껴보았다.

바람은 창 밖에서, 문 밖에서 세차게 불어왔다. 사월의 바람이 꼭 한겨울의 바람처럼 매서웠다.

그는 바람 속에서 향기가 실려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갑자기 뒤쪽 창에서 딱,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뛸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이때 뒤쪽 창에서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와서는 가볍게 그에게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나예요!"

목소리는 그가 잘 아는 사람의 있었다. 바로 그가 계속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는 놀라서 물었다.

"비연?"

"맞아요, 저예요. 당신이 아직까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 줄은 몰랐어요."

한 사람이 가볍게 뒤쪽 창에서 뛰어 들어왔다. 목소리에는 질투 때문에 비꼬는 듯했지만 조용히 말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잊은 줄 알았어요!"

화만루는 그곳에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당신은..... 당신이 어떻게 갑자기 여기에 온 것이지요?"

상관비연이 말했다.

"당신은 내가 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건가요?"

화만루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나는 단지 생각지 못했을 뿐이에요. 나는 당신이 이미....."

"당신은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나요?"

화만루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상관비연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나도 그녀처럼 당신의 품안에서 죽고 싶어요."

그녀는 천천히 걸어서 화만루 앞으로 와서는 말했다.

"나는 조금 전에 당신들을 보았어요. 그 모습은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내가 그녀를 죽였을지도 몰라요."

화만루는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언젠가 나는 당신의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상관비연이 어둡게 말했다.

"만매산장 밖의 그 부서진 산신 사당이 아니었나요?"

"그래요."

상관비연도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당신이 찾아왔을 때, 나는 벌써 가버렸지요."

화만루가 물었다.

"당신은 왜 가버렸나요?"

상관비연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져서는 대답했다.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가고 싶지가 않았어요."

화만루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강요했나요?"

상관비연이 말했다.

"그 노래도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부르라고 시킨 것이었어요. 원래는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들은 당신을 그 사당으로 유인하려던 것이었어요."

화만루가 물었다.

"그들이라니? 그들이 누구지요?"

상관비연은 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매우 두려운 듯이 떨기 시작했다.

화만루가 물었다.

"당신은 이미 어떤 사람들 손에 붙잡힌 것인가요?"

상관비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알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화만루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거죠?"

상관비연은 또 한참이나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그날 그들이 당신을 유인해서 경고를 했지요. 이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그들은 나에게 당신이 다시는 이 일에 상관하지 않게 설득하라고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나에게 당신을 죽이라고 했어요!"

화만루가 놀라 물었다.

"그들이 당신에게 나를 죽이라고 했다구요?"

상관비연이 말했다.

"맞아요, 그들은 당신이 절대로 내가 당신을 해치리라는 것을 생각지 못할 거라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절대로 나를 막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그들이 생각지 못한 것이 있어요. 내가 어떻게 냉혹하게 당신을 죽일 수가 있겠어요?"

그녀는 갑자기 다가와서는 화만루를 꼭 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신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았을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그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아직 모를 거예요."

지금 염철산과 독고일학이 모두 죽었는데, 이 일을 막을 사람은 곽휴 밖에 없는 것이다.

화만루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상관이 없어요. 당신은 두려워하지 말아요."

상관비연이 말했다.

"그러나 나는 두려워요.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이에요. 나만 아니었으면 당신들은 이 일에 연루되지 않았을 텐데.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어요!"

그녀는 그를 꼭 안았는데, 온몸이 떨고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향기롭고 감미로웠다.

화만루는 양팔을 벌려 그녀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석수설의 시체가 아직 그의 옆에 있었다. 이렇게 사랑스런 소녀가 방금 전에 그의 두 손에 안겨서 죽었는데, 지금 그는 어떻게 같은 손으로 다른 사람을 안을 수가 있겠는가? 그의 마음에는 슬픔과 모순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기의 감정을 억제하려 했지만 오히려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가 다시 그녀를 안으려 했을 때 그녀가 갑자기그를 밀어내고는 말했다.

"내 생각을 당신이 이미 알았으리라 생각해요."

화만루가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상관비연이 말했다.

"당신이 알든 모르든, 나는..... 나는 가야만 해요."

화만루가 놀라서 물었다.

"당신은 가야 한다구요? 왜 가야 하죠?"

상관비연이 말했다.

"나도 가고 싶지 않지만, 가지 않을 수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고통과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이어서 말을 했다.

"당신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감정이 있다면, 나에게 왜냐고 묻지 마세요. 나를 잡지도 말고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나도 해치는 거예요!"

화만루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상관비연이 말했다.

"나를 가게 해주세요. 당신이 잘 살고 있는 것을 알았으니, 나는 마음이 놓여요. 그렇지 않으면 난 당신에게 미안했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멀리서 들리면서 사라져버렸다.

어둠, 화만루는 갑자기 자기가 끝없는 어둠과 적막 속으로 빠져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녀가 곤란해서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바보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와줄 수 없고, 그녀의 고통을 위로해 줄 수 없는 것이 그가 조금 전에 석수설의 죽음을 보았던 것처럼 슬펐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그의 귓가에는 누군가 비웃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너는 장님을 뿐이야. 아무 쓸모도 없는 장님!"

장님이 살아가는 중에는 어둠이 있을 뿐이다. 절망적인 어둠이.

그는 두 손을 꽉 쥐고는 사월의 바람 속에 서 있었다. 갑자기 인생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는 어쩔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수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몰랐다.

사월은 제비가 돌아오는 때이다. 그러나 그의 제비는 날아가 버렸다. 사람의 청춘처럼 한 번 가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천천히 걸어서 문 밖의 풀밭으로 갔다. 풀밭은 이슬로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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