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1-2

3학년2반 | 2022.01.14 08:04:50 댓글: 0 조회: 418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208

* 제 1 권 *

- 2 - 생(生)과 사(死)의 우정

여러 사람들이 막 웅성대는 중인데 유방량(劉芳亮)의 검은 얼굴이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별안간 툭 튀어나오더니 입구로 가서 버티어 섰다. 사람들은 이 뜻밖의 일에 놀라 의아해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 검은 소년이 사람들 중에서 두 명의 중년 사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당신들은 조대감의 부하들 같은데 여기까지 와서 무얼 하는가?] 이 말에 모두들 크게 놀라 어리둥절해 했다.
숭정황제(崇禎皇帝)가 죽여 없앤 위중현과 객씨 이후에 궁중 조정에 반역당이 모두 일소된 걸로 알고 있었으나, 황제는 천성으로 의심이 많은데다가 태조로부터 막대한 권력을 이어받은 터라, 성조 이래로 뿌리 박혀 있는 악습은, 대신에 대하여 시기가 많은 점이다. 임용하는 사람마다 모두 그가 신용하는 대감으로, 그중 가장 총애를 얻은 것은 바로 조화순이었다. 이 사람은 황제의 어용 정탐꾼과 위사들을 통솔했는데 그들을 일컬어 <창위(廠衛)>라 하였다.
그들은 조정 대신과 각지 장수의 사사로운 일까지 정찰했다. 문무 대신들은 왕왕 부지불식간에 황제의 명이라는 이름으로 주살 되었고 혹은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갔으며, 소위 <고시문을 내려 감옥에 넣는다>는 엄포가 자행되고 있었는데, 그 모두가 조화순(曹化淳)의 밀보에 의한 것이었다. 어디서고 조대감의 이름이 거론되기만 하면 사람들은 너나없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 두 사람 중, 만면에 누런 수염이 있는 40전후의 사나이가 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얼굴이 희고 수염이 없는 키 작은 뚱보였다. 이 키 작은 뚱보가 뭣 때문인지 안색이 잠깐 달라지더니 곧 가라앉히며 웃음까지 띠었다.
[너는 나를 말한 것이냐? 이거 무슨 웃기는 소리지?] 검은 얼굴의 소년이 말했다.
[흥! 웃긴다구? 너희들 둘은 고작 주점 안에서 소곤거리다가 산종(山宗)으로 들어와서는 이미 조대감에게 보고했다고 말했고, 병졸을 파견하여 일망타진하겠다고 했지? 내가 그 말을 이미 모두 들었어 !]
누런 수염의 사나이가 못 참겠다는 듯 칼을 쑥 뽑아 들더니 목숨을 걸고 덤비려 하였다. 그러자 흰 얼굴의 뚱보는 오히려 껄껄 웃고는 말했다.
[이츰(李闖)이 산종(山宗)의 친구들을 합병하길 원한다면 위험에 처해야 하는데 누가 그걸 모른단 말이냐? 이는 생트집을 잡아 우릴 이간질시키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건 안 될걸?]
그의 말소리는 가늘고 날카로웠지만 이 몇 마디가 오히려 원당(袁黨) 중의 많은 사람들이 이자성(李自成)의 사자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방량이 비록 농가 출신이지만 오랜 전장의 경력으로 단련된 까닭에, 원장 제인(諸人)의 기색을 훑어보고, 이 사람의 말이 이미 많은 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여러분은 누굽니까? 산종(山宗)의 친구입니까?]
이 질문이 그 사람의 말문을 막은 셈이었다. 손중수(孫仲壽)가 소리쳐 말했다.
[친구들은 원독수의 부하들입니까? 그런데 어째서 한번도 본 일이 없습니까? 당신은 어느 총병 수하입니까?]
그 흰 얼굴의 사나이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누런 수염의 사내를 향해 눈길을 보내었다. 그리고 순간, 두 사람은 돌연 서로가 감정이 격해져서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누런 수염의 사내는 곧 칼을 휘둘러 검은 얼굴 소년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흰 얼굴의 사내도 신속한 행동으로 팔을 바꿔 판관쌍필(判官雙筆)을 빼내어 검은 얼굴의 소년의 가슴을 향해 던졌다. 검은 얼굴의 소년이 먼저 와서 예도를 해냈기 때문에 산에 올라올 때 몸에 무기를 지니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양손이 비었음을 보고, 재빨리 뛰어들어 칠팔 명이 함께 그를 구원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무공을 체득했으리라곤 생각도 않은 그 소년의 왼손이 마치 바람처럼 짐승을 붙잡기라도 하듯 누런 수염의 팔꿈치를 잡아채었고, 동시에 오른손 중지와 식지를 뻗쳐 얼굴이 흰 사나이의 양눈을 내질렀다. 이 양초는 쾌속하여 즉각 두 명의 적을 두어 발자국 물러서게 만들었다. 원당 사람들은 그의 순간적인 행동이 수세에서 공세로 바뀌었음을 보고 은연중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 두 사람은 문을 나갈 수 없음을 깨닫자 위험을 느꼈다. 정세가 어렵게 되었음을 알고 주춤주춤 두 발자국 물러서는 중에 또 공격을 받았다. 검은 얼굴의 소년은 양손 바닥을 펴서 단도쌍필(單刀雙筆) 사이로 비집고 공격을 했다. 두 사람은 몇 차례나 문가 쪽으로 밀려 섰다 흰 얼굴의 사내는 내심 초조했는지, 편법을 바꿔 쌍필로 위에서 아래로 쳐내려 상대방의 요혈을 찌르려고 하였다. 누런 수염의 사내는 산서무승문도법(山西武勝門刀法)을 펼쳐, 작은 몸으로 재빠르게 검은 얼굴 소년의 하반부를 공격해 왔다.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을 보고 모든 손을 뻗쳐 도와주려 했지만, 유방량의 기색이 안정되어 있음을 보고 숨을 죽였다. 세 사람은 대전 가운데로 옮겨가 매우 격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누런 수염의 사내가 돌연 일성을 지르는 동시에 사람들 속으로 단도를 날렸다. 순간 주안국(侏安國)이 뛰어올라 맨손으로 그 단도를 받았다. 바로 이 때, 검은 얼굴의 소년이 한 발 앞으로 나가면서 왼쪽 다리를 일으켜 놓으며 한 다리로 누런 수염의 사내를 걸어 차서 넘어뜨렸다. 그리고 왼쪽 다리를 일으켜 놓으면서 이번에는 다른 다리로 옆에 있는 사내를 차서 거꾸러뜨렸다. 그의 왼쪽 다리는 아직도 거두어들이지 않은 채였는데도 오른쪽 다리는 계속 그 기세를 이어 그를 차올렸다. 흰 얼굴의 사내는 크게 당황한 나머지 적을 위협, 어떻게든 산을 도망쳐 내려가려고 힘을 다해 쌍필로써 적의 가슴을 노렸다.
검은 얼굴의 소년은 돌연히 오른손을 뻗어 좌필의 필단을 잡아서 비틀었다.
그러자 이미 일지 판관쌍필은 힘없이 빼앗겼다. 그 순간, 상대방의 우필과 부딪치는 바람에, 별달리 힘들이지 않고 필의 끝을 치게 되었다. 쌍필이 서로 교합하여 땅하는 소리가 나며 불꽃이 서로 튕겨졌다. 흰 얼굴의 사내는 엄지와 식지 사이가 찢어지며 우필을 손에서 놓쳐 버렸다. 검은 얼굴의 소년은 일성 대갈하여 오른손으로 그의 명치끝을 잡고 왼손으로는 그의 바지띠를 당겼다.
그리고는 양손을 일분, <찌이익!> 하는 소리가 드리더니 흰 얼굴의 사내는 바지가 찢겨져 내렸다. 하반신이 드러난 것이었다. 사람들이 수근거리자 검은 얼굴의 소년이 웃으며 소리쳤다.
[너는 대감인가, 아닌가? 여러분들 좀 보시오 !]
사람들의 눈빛이 모두 그 흰 얼굴의 사내 하체로 집중되었다. 이어 비웃음 소리고 들렸다. 사람들은 승자의 둘레에 모여들며 검은 얼굴의 소년이 재빠른데다 무공이 높음을 보고 마음으로 몹시 경애하게 되었다. 이때 일찌기 누런 수염과 흰 얼굴을 마주하여 버티어 선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손중수였다.
[조대감 파는 왜 너희들을 파견했느냐? 아직 얼마나 같은 패거리가 있느냐?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느냐?]
두 사람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손중수는 안색이 일변하였다. 곧 단도를 꺼내 들고 두 사람의 수급을 베어 신상 앞에 바치는 제물로 놓았다. 손중수가 유방량에게 두 손을 모아 읍하며 말했다.
[만약 삼위께서 간적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까마득히 몰랐을 것입니다.]
유방량은 대꾸했다.
[그것은 뜻밖에 운이 좋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길에서 우연히 이 두 놈을 보았는데, 그들의 신색이 이상하고 무예가 민첩하길래 밤에 객점에 가서 조사했더니 다행히 그들의 저의를 자세히 알게 된 것입니다.] 손중수가 유방량의 두 사람 하인을 향해 말했다.
[부디 두 분의 존함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이름을 말했다. 피부색이 흰 사람은 전견수, 검은 사내는 최추산(催秋山)이라고 했다. 주안국은 얼른 다가가 최추산의 손을 잡으며 탄복했다는 것과 경애의 말을 했다.
유방량과 손중수 및 원당인의 몇몇 수뇌 인물들은 후당으로 가서 밀담을 나누었다. 유방량이 말하기를, 이장군은 모두가 손을 잡고 조반을 꾀하는데, 공동결맹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원당인들은 모두 주저하였다. 모든 사람이 비록 숭정황제를 미워한다고 하나, 암중에 해칠 결의를 했고 또 간적을 죽인 일도 이미 적지 않지만, 사람들은 본래 모두가 명관으로서, 그들을 위한 조반을 오히려 원치않는데다, 오로지 숭정황제를 죽인 후 다른 종실에서 명군이 세워지길 바랠 뿐이었다. 하물며 이자성이 <떠돌아다니는 외적>인 바에야, 비록 의중이 높다 해도 제물을 겁탈하고 숨어들어 훔치는 것은 강도 짓이라, 모두가 심중으로만 생각할 뿐 눈에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원당인들이 비록 군을 이탈한 후 생계를 위해 때로 본전의 장사도 안되는 걸 했지만, 끝내 강도 짓만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쌍방의 의견이 서로 달라, 의논은 오랫동안 결정되지 않았다. 최후로 손중수가 말했다.
[우리의 일은 이미 조대감에게 알려졌고, 이장군과의 맹약을 불화함으로 뒤얽혀 있습니다. 거사를 하여 숭정황제를 죽이는 일이나 원독수에게 보복하는 일은 성공하긴 어렵습니다. 단지 두려운 것은, 조대감이 도처에 사람을 파견하여 살인을 할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력은 얼마되지 않는데다가 기세마저 약해서 복수를 면키 어렵습니다. 유형! 우리가 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우리 산종은 이장군을 도와 관병을 무찌르고 이장군의 일이 성공한 뒤에 반드시 힘써 만주병을 치려고 합니다. 우리들의 뜻은 이미 설정됐지만, 나중에 이장군이 황제가 되는 것을 우리 산중 친구들은 찬성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태조황제의 자손으로 성이 주씨 성인 사람이라야 합니다.] 유방량이 대꾸했다.
[이장군은 단지 조정을 위협하는 것에 불과할 뿐, 이는 조반입니다. 그 스스로는 결코 황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이미 형제가 가슴을 치고 보증합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유구, 즉 떠돌아다니는 외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는 단지 밭가는 농사꾼으로서 배고픔 면하기를구할 뿐입니다. 우리들 머리속에는 우리를 지키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동분서주하지만 그것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만주놈들을 쳐부수는 데에는 이장군의 심기가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평시로 말할 것 같으면, 이장군이 놈들에 대해 실로 미움이 골수에 꽉 차있습니다.]
손중수가 한마디했다.
[그것은 더할 수 없이 좋은 일이지요.]
원당인들은 더이상 할말이 없어, 결맹을 하는 쪽으로 기울어 갔다. 안에서는 결맹의 대계를 상의하고 있는데, 대전에서는 주안국과 아호가 최추산의 손을 잡고 한쪽의 조용한 구석진 데로 갔다. 주안국이 속삭였다.
[최형, 우리가 비록 초면이긴 하지만, 이렇게 뵙고 보니 마치 오래된 것 같습니다. 형은 우리를 남 보듯 하지 마십시오.]
최추산이 대꾸했다.
[두 분 대형이 종전에 놈들을 치고 강산을 보전한 것에 대하여, 소제는 줄곧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금일 산중에서 이렇게 많은 영웅제형들을 뵐 수 있게 된 것은, 소제로서는 매우 기쁘기만 합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묻겠는데, 대형의 스승은 어느 선배 영웅이십니까?] [소제의 은사는 산서대동부(山西大同府)의 일성뇌백야 백로선생입니다. 그 노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주안국과 아호는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의아해 했다. 아호가 입을 열었다.
[일성뇌백 선배의 대명을 우리는 오래 흠모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한마디라도 최형께선 고깝게 여기지 마십시오. 백로 선배의 무공은 비록 높지만 최대형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최추산은 묵묵히 말이 없는데, 주안국이 말했다.
[무릇 청출어람이라 해서, 제자가 사부를 능가하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그렇나 방금 제가 보기에 최대형께선 두 명의 간적을 쓰러뜨린 신법이나 수법이 분명히 어떤 전수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최추산은 주저하며 대답했다.
[두 분은 좋은 친구이신 것 같은데, 감히 속일 생각은 없습니다. 나의 사부님이 세상을 떠난 후로, 기연으로 한 분의 도인을 만났습니다. 그 도인은 나에게 약간의 무예를 전수시켜 주었으며, 나로 하여금 그 분의 이름을 발설치 않도록 맹세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러니, 두 분 형님께 널리 양해를 청하겠습니다.]
아호와 주안국은 그의 간절한 말을 듣고 서둘러 말했다.
[최대형, 부디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같은 일을 서로 도와야만 합니다. 따라서 대담하게 서로 물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추산이 응수했다.
[두 분께 어떤 일이 있으시면 즉시 말씀해 주십시오. 모두가 형제인데, 꺼리고 할 것이 없습니다.]
주안국이 말했다.
[최대형, 좀 기다려 주시오. 우리가 가서, 두 분 친구를 찾아 몇 마디 상의할 게 있습니다.]
주와 아, 두 사람이 응성과 나성을 가진 사람을 이끌어 저쪽으로 갔다. 주안국이 말했다.
[이 최형제가 무예가 출중하여 우리 중 여기서 한 사람도 그를 따라 잡을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을 듣자니, 성격은 매우 호탕합니다.] 아호가 말했다.
[그 스승의 이야기에 이르러선 좀 우물거렸습니다.]
그래서 최추산이 경위를 다시 한번 설명했다. 응씨 성을 가진 사람의 이름은 응송(應松)이라 했는데, 원숭환장군 아래에 있던 모사였다. 당해 영원축성을 하고 있어 이미 적지 않은 역량을 지닌 인물이다. 라성을 가진 이는 이름이 대천(大千)으로, 저명한 포수였다. 영원 일전에서 대포를 쏘아 첨병을 무수히 무찌른 공로로 참장에 오른 사람이다.
응송이 말했다.
[우리는 직언을 해도 무방하지만, 그를 엿보는 것은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주안국이 대꾸했다.
[이 일은 마땅히 먼저 손상공(孫相公)에게 물어야 한다.] 응송이 응수했다.
[좋습니다.]
대전의 뒤뜰로 돌아가 보니, 손중수와 유방향이 지금 막 의기가 투합하여 얘기하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손중수를 불러내어 상의를 했다. 이 용감한 무장들이 장기(長技)로 삼고 있는 것은 행운 전투라 하는데, 그것은 돌격하여 적군의 선전대를 함락시키는 방법이다. 장창과 큰 활에 대하여 얘기가 미치자 그들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것은 용기로만 가지고는 못 당하는 것이어서 무예 중의 권각기예(拳脚技藝)를 공부해야만 알 것이었다. 알아도 최추산에게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손중수가 말했다.
[이사형, 이 일은 어린 군주의 종신에 관한 것입니다. 스승님이 먼저 저 최가의 입을 통해 알아보십시오.]
응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안국과 아호 나대천, 3인은 최추산을 만나러 갔다.
응송이 입을 떼었다.
[우리는 한가지 일이 있는데, 최형이 여기서 우리를 도와주셨으니, 그래서....]
최추산은 그들이 하던 말을 그치고 짓는 얼굴 표정이 난처한 걸 보고서 말했다.
[형제는 예절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분부가 계시어.... 형제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복종하겠습니다.]
응송이 말했다.
[최형은 참으로 시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원독수는 피해를 입은 후, 한 분의 공자를 남겼는데, 그때는 아직 일곱 살이었습니다. 우리 군주의 지시에 따라 원독수 가족을 체포하려는 근위대와 부딪혀 세 번이나 싸웠는데 7명이나 죽고 겨우 원독수의 일점 혈육만 보존했습니다.] 최추산은 <응>하는 목구멍 소리를 냈다.
응송이 말했다.
[이 어린 군주의 이름은 원승지로, 우리 네 사암으로부터 글자를 배우고 무예를 익혔습니다. 그는 매우 총명하여 한 번 가르치면 무엇이든지 이해하고 익혔기 때문에 1, 2년 만에 우리의 본령을 이미 거의 다 전수했습니다. 비록 그는 나이가 어리고 연조가 짧아 훌륭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 따라다녔다간 큰 인물이 못될게 확실합니다.]
최추산은 이미 그들의 의사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여러분은 그가 나를 따라 무예를 배우기를 바랍니까?] 주안국이 대답했다.
[방금 최대형이 출수하여 적을 죽이는 걸 보고 무공이 우리의 십배는 넘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만약 최형이 이 제자를 거두어 주신다면 필경 한 제목이 될 것이고 원독수의 영혼도 반드시 감격할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네 사람은 모두 읍을 했다. 최추산은 황망히 예를 지켜 답하며 침울하게 대답했다.
[여러분이 기대하는 걸 소제가 사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소제는 현재 이장군의 군대 중에 있어, 거처가 없는데다가 때로는 관군과 접전을 벌여야 하므로 어느 날까지 살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원공자가 나의 대오 중에 있기를 원한다면, 내가 가르칠 시간이 없을까 염려되고, 실제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응송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모두가 이것이 확실한 실정임을 깨닫자, 심중으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최추산이 갑자기 기어들었다.
[실력이 나의 몇 배나 되는지 알 수 없는 분이 있는데, 만약 그분이 원공자를 거두어 주신다면 그건 참으로 원공자에겐 안성맞춤일텐데....] 그러더니 갑자기 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을 이었다.
[불가능해, 불가능한 일이야]
응송과 주안국이 황망히 물었다.
[그게 대체 누굽니까?]
[바로 내가 앞서 말한 그 기인입니다, 이 분은 실력이 실로 측정이 불가할 정도입니다. 그 분이 나를 2개월쯤 가르쳤지만, 소제는 단지 쥐꼬리만큼 배웠을 뿐입니다.]
주안국이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그 기인은 대체 누구신지요?]
최추산이 대답했다.
[그 노인은 성질이 괴팍해서, 비록 나에게 무예를 가르쳤지만 내가 사부의 이름을 밝히도록 허락치 않았고, 또 나에게 그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노인이 원공자를 거두어 제자를 삼았으면 좋겠지만 나로선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아호가 물었다.
[기인은 어디에 계십니까?]
최추산이 대답했다.
[그의 행적은 정해져 있지를 않습니다. 어느 지방에 가시는 지를 끝내 나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응송 등 네 사람의 눈에는 얼핏 실망한 빛이 보였지만 하는 수 없었다. 응송은 원승지를 오라고 하여 최추산과 상면하게 하였다. 최추산은 그의 변화무쌍한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얼굴엔 귀공자의 기상 같은 특성이 있음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의 배운 무예를 묻자, 원승지가 상세히 대답해 주었다.
[최숙부님께서는 방금 두 간적을 잡았는데, 어떤 법을 쓰셨습니까?] 최추산이 대답했다.
[그건 복호장법(伏虎掌法)이라 하는 거란다.]
원승지가 다시 물었다.
[얼마나 빠른지, 저는 자세히 보지도 못했어요.]
최추산이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걸 배우고 싶으니?]
원승지는 이 말을 듣고 황망히 대답했다.
[최숙부, 청컨대 가르쳐 주세요.]
최추산은 응송을 향해 또 한번 웃었다.
[내가 유방량 장군께 말하겠습니다. 여기서 며칠 묵으면서 이 장법을 그에게 전수시키겠다고요.]
원승지와 응송, 주안국, 등은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손중수와 장조당, 양붕거 등 3인이 고별의 인사를 나눴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은 모두가 인연이 있음입니다. 여기의 일은 일언반구도 발설치 말고, 또 후에 무슨 일이 있던지 말하지 마시지 바랍니다.] 장, 양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중수는 그들에게 50량의 은전을 여비로 주어 두 형제를 하산토록 했다.
장조당과 양붕거는 광주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도중에는 아무일도 없었다. 양붕거는 이번 일에 크게 좌절하여 심기마저 산만해 있었다. 강호에는 산 위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 있음을 알았다. 자기는 그 미미한 공력을 가지고도 오늘까지 연명해 왔구나 하고 지극히 다행히 여겨졌다. 이번에 만약 원승지의 그 조그만 아이가 그를 구해 주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눈이 없는 폐인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상상만 해도 무서워 몸을 부르르 떤 그는 즉시 운송업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에 힘쓰고자 했다.
장조당은 구출해 준 은혜를 생각해서, 심정이 우울해 있는 양붕거를 보고, 발니국으로 유람하는 데에 동행하자고 청했다. 양붕거는, 자기에게는 딸린 가족이 없기 때문에 즉시 승낙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광주에서 배를 빌려 발니를 왔다갔다 했다. 양붕거는 한 달여를 머물며, 그곳이 정말 도원과 같다 하며 돌아갈 뜻을 비추질 않았다. 장조당의 부친 장신은 독부중에 말단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매일 술과 도박을 즐겼다.
이때 유방량과 손중수 등은 결맹의 일은 타협하고, 일행들은 원숭환의 신상 앞에서 굳은 맹세를 하며 서로가 결코 저버림이 없다 했다.
유방량도 방금 원당의 제의를 받아 들었고, 원승지에게 최추산이 무예를 가르친다는 말고 들었다. 드디어 전견수(田見秀)가 하산을 했다.
원당은 각도마다 호한(好漢)이 있어, 어떤 자는 이자성에게 투항했고, 또 어떤 이는 귀향을 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모반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다. 단 기밀을 누설치 않겠다는 전제 아래, 중형제들과도 적대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뜻이 있는 법이므로 옆사람이라 하여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손중수(孫仲壽), 주안국(朱安國), 아호(兒浩), 응송(應松) 등이 산에 남아 원승지의 뒷일을 구체적으로 상의했다.
원승지는 최추산이 그에게 복호장법(伏虎掌法)을 가르쳐 주겠다는 대답을 들은 뒤, 기쁜 나머지 밤새 잠도 설치고 있었다. 다음 날 모두는 서둘러 결맹을 하였다. 오후가 되자 사람들은 하산을 하기 위해 어린 성주에게 작별을 하느라고 한나절이나 보냈다. 저녁이 되자, 손중수는 응송에게 붉은 초를 켜게 했다. 그리고 의자를 놓고 최추산이 상좌에 앉을 것을 권하였다. 또 원승지는 스승의 예를 행하도록 했다.
최추산이 입을 열었다.
[원씨의 자제를 보고 매우 기뻤습니다. 그는 나의 이 복호장법을 매우 좋아합니다. 내가 며칠 여유를 갖고 대력 전수해 줄까 합니다. 그러나 이 며칠 내에 그가 이해할지 어떨지, 그리고 배운 뒤에 쓸 수 있을지, 그의 지혜와 능력을 기대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는 단지 친구지간의 연습에 불과할 뿐, 사제지간의 명분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응송이 대꾸했다.
[잠깐을 가르치더라도 종신의 스승입니다. 최대형께서는 무얼 그리 겸손해 하십니까?]
최추산이 극구 반대하여 모두 더 고집하지 않았다. 모두는 무림에서의 규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예를 전수할 때 다른 사람들은 옆에서 지켜 볼 수 없는 알고 있어서 예를 차려 인사한 후에 밖으로 나갔다. 최추산은 사람들이 나가길 기다렸다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승지, 이 복호장법은 어느 고명하신 선배께서 내게 전수해 주신 것이야. 사실 나는 그 정묘함을 확실히 이해하지도 못했고, 공략도 거리가 멀긴 하지만, 강호에서는 대적하여 싸울 땐 그런대로 충분하네. 그 도인은 이 장법을 전수해 줄 때 내게 선서를 하도록 했지. 배운 후에 결코 양민을 위협하는데에 쓰거나 사람을 살상하는데 쓰지 않겠노라고 말야.]
원승지는 그 말을 듣자,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즉시 무릎을 꿇었다.
[제자 원승지는 복호장법을 배운 뒤 결코 양민을 속이거나 위협하지 않을 것이고, 무모한 사람을 살상하거나 그러면, 그러면......] 그는 선서의 규약을 잘 모르므로 더듬거렸다.
[그러면 최숙부에게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최추산이 천천히 웃었다.
[그래 , 좋아.]
그리고 돌연 몸을 흔드는가 했더니, 사람이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원승지가 급히 몸을 돌려보니, 최추산이 어느새 그의 몸 뒤에 가서 그의 어깨를 치며 웃고 있었다.
[네가 나를 잡아 봐라.]
원승지가 주안국, 아호, 나대천, 세 분의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조금의 기초가 있던 터라서, 그는 즉시 작은 몸을 일으켜 왼손을 허공에 휘둘렀다. 오른손은 원을 그렸으나 그의 몸에는 닿지 않았다. 이번에는 바람소릴 듣고 대충 짐작하여 최추산의 다리를 잡았다. 최추산이 기뻐하며 말했다.
[훌륭하다 !]
말소리가 끝나자마자 손바닥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더니 또 문득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원승지는 정신을 집중시켜 작은 손을 뻗어 자신의 각처 요혈을 보호하였다. 최추산의 신법이 기괴함을 이미 보아 온 터여서 그를 잡을 수는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보 일보 벽으로 후퇴하다 돌연 몸을 돌려 등을 벽에 기대고는 웃으며 말했다.
[최숙부, 내가 당신을 봤어요 !]
최추산이 그의 뒤에 숨을 수 없게 되자 다리를 멈추어 서서 웃으며 말했다.
[좋아, 좋아. 매우 총명하구나. 그만하면 복호장법을 익힐 수 있겠다.] 드디어 그는 무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장법은 모두 일백단팔식(一白單八式)으로, 매식마다 세 번의 변화가 있어, 기이하기 이를데 없는데다가 모두 324번의 변화가 있었다. 원승지는 묵묵히 기억하고 몇 번을 배우는 동안 이미 초식을 기억하여 그릇됨이 없었다. 최추산의 말을 쉽게 이해하곤 했다. 한 사람은 전심전력으로 가르쳤고 한 사람은 진심으로 배워 밤이 깊은 줄도 몰랐다.
그 다음날 아침, 최추산은 일찌기 일어나 산기슭을 산보하며 원승지가 권법을 연습하는 모양을 그윽히 보고 있었다. 복호장법으로 시전하여 백팔초의 변화가 구(勾), 별( ;닦을별), 날(捺), 벽(劈), 시(시), 타(打), 붕(崩), 토(吐)의 팔대요지를 거의 이해하고 있었다. 최추산은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며, 그가 막 입신의 연습에 들어가려 할 때 느닷없이 앞으로 뛰어올라 한발로 그의 등을 쳐 나갔다. 순간, 원승지는 배후에 바람소리를 듣고 몸을 비스듬히 비껴 적의 오른쪽 다리를 잡으려다가 최추산임을 알아보고 급히 손을 거두었다.
[최숙부 !]
최추산이 웃으며 멈춰 섰다.
[손을 멈추지 말고 쳐 나가거라.]
원승지는 그가 초식을 펼치는 걸 알고 다리를 버티어 작은 주먹으로 최추산의 허리를 날렵하게 공격했다. 바로 복호장법의 제 89초 <심입호혈(深入虎穴)>이었다.
[훌륭하구나.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입으로 갈치며 손은 쉬지 않고 그와 대적하여, 몇 번이고 거듭 연습을 했다. 원승지는 이 장법의 변화가 무쌍함을 보고, 최추산이 운영하기를 더욱 신기하게 하니 기쁘기 한량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무예법을 전심으로 기억해 나갔다. 몇 시간 동안 수정을 받아 가며 밥 먹는 시간외에는 쉬지도 않고 장법을 연습했다. 이같이 이렛동안 연습하고 나서 여드레째 되는 날 저녁, 최추산이 입을 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전부 나에게 가르쳤다. 앞으로 무공을 이룰 수 있는 없는지는 전부 나의 연습에 달렸다. 적을 만났을 때의 국면이 천변만화하니 충분한 너의 노력이 있고 기회가 좋으면 누구도 일망타진할 것이다.]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르침을 받았다. 최추산이 또 한마디했다.
[나는 내일 이 장군에게 가야 한다. 금후로 너의 계속적인 노력을 기대한다.
나에게 장법을 전수한 그 고명한 분은 일찌기 무학의 고저의 관건이 머릿속에 있는 것이지 손과 발에 있지 않다고 하셨다. 이는 많이 생각하는 것이 많은 연습보다 더욱 요긴하다는 뜻이다. 애석히도 나의 머리는 그다지 영민하지 못해, 어떤 진보가 어려우니 네가 계속 연습하여 나를 능가하기를 바란다.] 원승지와 최추산은 서로 비록 8일 동안 같이 있었다고 하나, 그는 복호장법을 감탄할 만큼 가르치고 배웠기 때문에 서로 깊은 정이 들었다. 이제 내일이면 헤어져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시울이 뜨거워져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최추산은 그가 자기에 대해 연연해함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어 가볍게 그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이렇게 총명한 자질을 가진 사람은 무림 중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물다. 그러나 애석히도 우리는 인연이 길지 못 해 이렇게 헤어지게 되었구나.] 원승지가 대꾸했다.
[최숙부, 저도 숙부를 따라 이장군에게로 가겠습니다.] 최추산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네가 아직 어리니 어떻게 한단 말이냐? 우리는 이 장군 부대를 따라 시시각각 목숨을 걸어야 하고, 한 끼를 먹으면 한 끼를 굶어야 하기도 하는데다, 내일의 일을 기약할 수 가 없단다.]
그 때 갑자기 집밖에서 야수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원승지가 물었다.
[저건 무엇이죠? 호랑이는 아니고요, 또 늑대도 아닌 것 같은데요?] [표범이구나.]
그는 한참 무엇인가 생각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가서 저 표범을 잡아오자꾸나. 쓸데가 있을 거다.] 원승지는 크게 흥분하여 서둘러 물었다.
[무슨 일에 쓰게요?]
최추산은 대답 대신 피식 웃으면서 총총히 밖으로 나갔다. 원승지도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그리고 최추산이 칼을 지니지 않았음을 보고 물었다.
[최숙부께선 어떤 무기로 표범을 잡으시렵니까?]
최추산은 여전히 대답을 않고 옆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더니 방에다 대고 큰소리쳤다.
[주대형, 아대형! 모두 계십니까?]
주안국 등이 방안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그의 부르는 소릴 듣고 문을 열었다.
최추산이 웃으며 말했다.
[모두들 도와주셔야 겠습니다. 밖에 저 표범을 집안으로 몰고 들어와야 겠어요. 쓸데가 있어서......]
아호는 호랑이를 죽이는데 능수라서 지체없이 대답했다.
[좋아, 좋아!]
그는 엽호차(獵虎叉)를 꺼냈다. 그리고 선수를 쳐 밖으로 뛰어 나갔다. 최추산이 소리쳤다.
[아대형, 그 짐승을 죽이진 마시오!]
아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마, 라고 대답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최추산과 주안국, 나대천, 세 사람이 그의 뒤를 따라서 문을 나섰다. 원승지는 길이가 짧은 단철창(短鐵槍)을 가지고 따라가려고 하였다.
손중수가 말했다.
[승지야, 넌 가지 말아라. 우리는 여기서 구경이나 하자.] 원승지는 할 수 없이 손중수와 함께 머물러 섰다. 세 사람이 든 횃불이 동.
서.북으로 나뉘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아호는 엽호차를 써서 산기슭에서 거대한 표범과 구르며 싸웠다. 그는 차(叉)의 자루로 전신을 보호하며 표범으로 하여금 덤벼들지 못하게 했다. 표범은 횃불을 보고 놀라 도망치려고 했지만 주(朱), 최(崔), 나(羅), 세 사람의 방해로 길이 막혀 버렸다. 표범은 최추산의 수중에 무기가 없는 걸 보았는지, 크게 으르렁거리며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나 최추산은 날쌔게 몸을 비껴 표범의 날카로운 발톱을 피했다. 오른쪽 손바닥으로 표범의 이마에 일격을 가하자 표범이 즉각 나동그라지더니 곧 다시 남쪽으로 몸을 돌렸다. 남쪽 집의 대문이 열려 있으나 표범은 집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고 동서로 어지러이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여러사람이 가로막고 위협하여 도망갈 길이 없게 되자 주춤거렸다. 최추산은 때를 놓치지 않고 뛰어올라 표범의 엉덩이를 맹렬히 공격했다. 표범은 펄쩍뛰고 소리를 지르더니 할 수 없었던지 집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때 응송이 각처의 문을 단단히 잠그고 서쪽편 편전의 문을 열어 놓았다. 거대한 표범은 이미 대전 안에 갇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매우 흥이나서 최추산을 바라보았다. 그가 어떤 용도로 표범을 쓸것인지 궁금해져 가는데 최추산이 웃으며 한마디했다.
[승지야, 네가 들어가 표범을 공격해라!]
이 말에 주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송중수가 말했다.
[가능하겠는가?]
최추산이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이 짐승은 승지를 다치게 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좋아요.]
그는 서둘러 짧은 창을 꺼내 들고 문을 열었다.
최추산이 외쳤다.
[창을 놔라! 맨손으로 들어가!]
원승지는 그 말이 방금 배운 복호장법으로 표범과 대결하란 뜻임을 알아차렸으나, 내심 겁이 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최추산이 다시 외쳤다.
[너는 지금 겁을 먹고 있구나!]
원승지는 용기백배하여 더 망설이지 않고 대전문을 밀어 섰다. 으르렁거리는 포효소리가 울리면서 검은 그림자가 덮쳐 왔다. 그는 오른쪽 다리를 꺽어 공격을 하는 동시에 손을 뒤집어 표범의 귀를 때렸다. 바로 복호장법의 나한전경(羅漢傳經)을 펼친 것이었다. 이 장법은 비록 적중하였으나, 그의 나이가 어린지라 아직 힘이 부족했다. 표범은 고개를 돌려 다시 물려고 했다. 원승지는 표범의 뒤로 몸을 틀며 그의 꼬리를 잡아 나꿨다. 최추산은 한쪽 옆에서 그를 보호하며, 표범이 흉악하여 원승지가 제재하지 못할까를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한편, 복호장법을 그가 익숙하게 펼치는 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손중수 등은 비록 최추산이 옆에서 지켜본다고 하지만 원승지가 염려되어 사람마다 횃불을 들고 대전의 모서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주안국과 아호는 손에 구암기([手+口]暗機)를 들고 긴급할 때에 표범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불빛 속에서 원승지는 이리저리 몸을 바꾸는데 그 신법이 민첩했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피하고 도망쳐 감히 표범이 접근하지 못했으나, 배운 장법을 교묘히 전개하며 피하고 경각하는 모양이 매우 흥미로웠다. 공격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긴 나머지 돌연 장법을 변화시켜 일장씩 칠 때마다 손으로 표범의 털을 잡아뜯었다. 표범은 아파서 펄쩍펄쩍 뛰며 그의 손이 뻗쳐 올 때마다 끊임없이 울부짖어 피하면서 사납게 저항했다. 원승지의 수법이 더욱 빨라졌다. 표범은 이제 피할 수가 없었다. 어느덧 대전 가운데는 표범의 피가 곳곳에 튀어 번졌다. 금빛 털의 표범이 겁에 질려 이리저리 뛰어다니자 사람들은 모두 웃기 시작했다. 표범의 털이 비록 많이 뽑혔다 해도 맨손으로 그를 이거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갑자기 그는 보살저미(菩薩低眉)를 펼쳐, 작은 몸이지만 정면으로 표범에 부딪쳐 갔다. 표범은 또 한번 놀라서 한걸음 물러섰으나 곧 자세를 고쳐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 찰나, 원승지는 이미 표범의 배 아래에 있었다. 아호가 대경실색하여 쌍표를 날렸다. 표범은 오른쪽 다리에 쌍표를 맞았으나 원승지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살펴보니, 그는 표범의 배밑에 누운채 한 다리로는 표범을 꼼짝못하게 하고, 머리오는 표범의 턱을 치받쳐 아무것도 물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자 표범은 맹렬히 도망치려고 뒹굴었다. 그러나 원승지는 시종 붙잡고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기력이 다했는지 그의 손과 다리의 힘이 늦추어지며서 표범의 이빨에 물리기 직전에 이르렀다.
[최숙부, 빨리 오세요!]
그는 외치는 소리에 최추산이 대답하며 외쳤다.
[그놈의 눈을 공격해라!]
그 말을 듣고 난 원승지는 곧 오른팔을 들어 손가락 두 개로 표범의 오른쪽 눈을 후벼팠다. 표범은 더욱 광란하게 부르짖으며 도망치려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최추산이 나아가 그 표범에게 일격을 가했다. 표범은 혼절하여 땅에 나뒹굴었다. 최추산이 원승지를 안아 일으키며 웃었다.
[괜찮다. 정말이지 애썼다.]
손중수 등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최추산의 위인됨이야 말로 과연 훌륭하다. 그러나 이츰의 부하라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망령스럽기도 하다. 그는 원공자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모르는 모양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원공자는 8일 동안 가르침을 받더니 무예가 과연 크게 진보했고....) 최추산은 대전의 문을 열고, 표범의 엉덩이를 차대며 웃었다.
[이제 너를 놓아주겠으니 어서 가거라!]
표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쳤다. 돌연, 밖에서 몇 사람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표범이 아마도 밖에서 사람을 헤치는 줄 알고 얼른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무슨 놀라운 일인가. 만산에 점점 횃불에 비친 칼과 창 또한 무수히 번쩍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대군의 관병들이 포위하며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소리로 짐작하여 대군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 탈주하는 것이 실로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산 아래를 지키는 일당들은 모두 피해를 입어 아무런 경보가 없어 적병들이 돌연 침입한 것이리라. 손중수와 그들은 이미 백전의 경험이 있는 터라서, 급히 마음을 수습했다.
[애석하게도 산산의 형제들이 모두 이미 흩어졌으니.... 그렇지 않았다면 영원(寧遠)대전투에서 기십만의 대군처럼 우리에게 패주하였을 텐데.......] 그때 요동의 정병은 천하의 으뜸이었다. 원승환의 오랜 부하들은 남방의 관병을 눈에 두지도 않았었다.
손중수가 급히 명령을 내렸다.
[나장군! 당신은 취사, 소제, 사당을 지키는 형제들을 이끌고 동편으로 가서 불을 지피시오. 그리고 함께 소리를 질러서 병졸들을 혼미케 만드시오!] 나대천이 대답하고 나갔다.
손중수가 또 말했다.
[주장군과 아장군 두 분은 산 앞으로 가서 일행에게 활을 열 개씩 장전하여 관병이 가까이 오는 걸 위협하도록 하시오!]
주, 아 두 장군은 명령을 받고 나갔다.
손중수가 다시 말했다.
[최대형께는 중요한 임무를 부탁할 게 있습니다.]
최추산이 되물었다.
[내가 승지를 보호해야 합니까?]
송중수가 끄덕였다.
[바로 그것입니다.]
응송과 손중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추산은 황급한 예로써 명령을 들었다.
[두 분의 어떤 분부라고 따르지 않으리이까. 그렇게 하소서.] 들리는 것은 고함과 북을 두드리는 소리뿐이었다. 온 산이 시끌벅적했다. 나대천은 이미 사당에서 큰 북과 큰 송을 꺼내어 미친 듯이 두들겨 적병을 혼란케 했다. 송중수가 입을 열었다.
[원독수의 하나 남은 혈육이니, 최대형께서는 부디 그를 위험에서 잘 보호해 주시길 바랍니다!]
최추산이 대답했다.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이때 주안국과 아호가 이미 활을 다 쏘고 돌아왔다.
손중수가 다시 명령했다.
[나와 주장군이 같이 나장군을 만난 후에 동편에서 공격한다. 응선생과 아장군은 같이 서편으로 공격해 주시오. 우리가 먼저 공격하여 적병의 관심을 끌겠소. 최대형과 승지는 산을 뚫고 내려가 나중에 이츰 장군 부대에게 만납시다.]
사람들은 일제히 <예!> 하고 대답했다. 원승지는 응송과 수인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터라, 이때의 이별이 슬퍼 무릎을 꿇고 몇 번이나 절을 했다.
[손숙부, 응숙부, 주숙부, 저는.... 저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하지 못하자, 송중수가 나섰다.
[너는 최숙부를 따라가라. 그의 말에 복종하길 바란다.]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숙연히 일어섰다. 여전히 들리는 것은 산허리에서 관병들의 고함소리뿐이었다.
산 위로 가며 응송이 말했다.
[우리는 갑시다. 최대형도 빨리 가시오!]
사람들이 병기를 들고 아래로 갔다. 아호는 최추산이 아무 병기도 지니지 않았음을 보고 호차(虎叉)를 그에게 넘겨주었다.
[최대형, 이것을 받으시오.]
그러나 최추산이 사양을 했다.
[그렇지만, 아형이 쓰시오!]
호차를 도로 돌려주려 했으나 아호가 이미 저만큼 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는 오른손으로 차를 의지하고 왼손으로 원승지를 잡고 산 뒤로 걸어갔다.
뒷산 산등성이에도 역시 온통 횃불들뿐, 밀집해 있는 관병들이 얼마 만큼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산 아래에서는 화살이 날고 있었다. 최추산은 요당을 통해 부엌으로 뛰어내려가 두 개의 솥뚜껑을 들고 나왔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것으로, 자기가 큰 걸 잡고 작은 것을 원승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것은 방패야. 가자!]
두 사람은 곧 몸을 날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오래지 않아 관병이 두 사람의 종적을 발견하고 고함치며 뒤쫓아왔다. 수십 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왔다. 최추산은 원승지를 뒤에서 솥뚜껑을 휘둘러 화살을 막았다. 많은 화살이 솥두껑에 맞았다. 두 사람이 산을 내려가려 하자 관병들이 앞길을 끊으며 가로막아, 최추산은 엽호차를 펼쳐들었다. 그리고 관병들을 하나하나 때려눕혔다. 십여명의 관병들이 순식간에 나가 떨어졌다. 원승지는 단철창도 비록 살상하긴 어려웠지만 능히 몸을 보호할 수가 있었다. 관병은 어린아이를 보았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 이미 두 사람은 산허리까지 뛰어내려갔다.
그들이 막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사방에서 함성이 들리며 관병들이 덤불을 헤치며 공격해 왔다. 그 혼자서 많은 관병을 대적하ㄱ여 복호장법을 펼쳐 싸우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원승지가 보이지 않았다. 충심으로 크게 놀라 왼편을 보니 한 무리의 관병들이 둘러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가 후다닥 달려가보니, 과연 승지가 홀로 원 가운데에서, 수중에 단철창을 가지긴 했으나 이미 열세로 몰리고 있었다. 그는 복호장법을 전개하여 세 명의 관병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으나, 나이가 어린데다 힘도 약해 정세가 매우 위급했다.
최추산은 빠른속도로 두 명의 관병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또 한걸음 나아가 한 명의 관병을 들어 올려 바위에 메어 꽂았다. 관병은 비명을 지르며 즉사했다. 다른 관병들은 그의 이처럼 용감함을 보고 놀라, 더 이상 쫓지를 못했다.
최추산이 원승지를 옆에 끼고 경공제종술을 전개하며 어둠속으로 달렸다. 오래지않아 관병들과 멀리 떨어졌다.
최추산은 원승지를 내려놓고 물었다.
[다친데는 없니?]
원승지는 손을 들어 얼굴의 땀을 닦다가 끈끈함을 느꼈는지 달빛에 비쳐 보았다. 손에는 온통 피가 묻어 있었다. 최추산도 보니 얼굴과 손, 옷에 온통 피얼룩이 번져 있었다.
[최숙부, 피가..., 피가....]
[괜찮다. 놈들의 피야. 다친데는 없니?]
[없어요!]
[그래, 그럼 가자!]
두 사람은 몸을 낮춰 숲을 뚫고 나아갔다. 한참을 가자니 어느새 숲이 다했다. 최추산이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산 아래에는 횃불이 밝은데 수백 명의 관병들이 지키는 것으로 보였다.
[더이상 내려갈 수 없겠다. 후퇴하자!]
두 사람은 다시 돌아가서 다른 쪽으로 갔다. 다행히도 거기에는 하나의 굴이 있었다. 동굴 앞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 있어, 그것을 뚫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원승지는 나이가 어린 탓에 비록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피로한 나머지 바닥에 눕더니 곧 잠이 들고 말았다. 최추산이 그를 가볍게 안아 자기의 품에 기대게 하고 귀를 기울여 밖의 동정을 살폈다. 여전히 고함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산꼭대기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붉은 빛이 충천한 것을 보니 아마 원숭환의 사당을 관병들이 불태우는 것 같았다. 또 반시간쯤 지나가 산에서 호각 소리가 들려 왔다. 최추산을 따라오던 관병들이 하산하는 소리였다. 대대적인 안마소리가 굴밖으로 지나가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이 동굴은 관병이 하산하는 길 옆에 있는가 보다.)
다시 얼마를 더 있자니까 돌연 밖의 숲속에 어떤 사람이 와서 앉았다. 최추산은 오른손을 들어 강차(鋼叉)를 쥐었다. 왼손은 원승지의 자는 입을 막아 꿈속에서라도 소리를 못 지르도록 했다.
한 사람이 소리쳤다.
[원가 성을 가진 역적이 아들을 하나 남겨 놓았는데 그게 대체 어디로 갔느냐 날이야?]
이 말의 목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그만 원승지의 잠을 깨우고 말았다. 최추산이 왼손으로 가볍게 그의 입을 막았다. 그 사람은 또 소리를 쳤다.
[더 말을 안할 텐가? 말하지 않으면 네 다리를 그만 끊어 놓고 말겠다!] 한 놈의 목소리가 욕을 해 댔다.
[자를 테면 잘라라! 내 어찌 두려워하겠느냐?]
그 음성은 분명한 응송의 목소리였다. 원승지가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응숙부]
그 사내가 또 욕을 퍼부어 댔다.
[너, 정말 말 안할 테냐?]
응송이 침을 뱉는 듯하더니 침이 상대방 얼굴에 맞았는지 곧이어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그의 다리가 이미 잘린 것 같았다. 원승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발버둥을 쳤다. 최추산이 얼른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큰 소리를 질렀다.
[응숙부!]
어느새 그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불빛 속에서 한 사내가 쓰러진 응송을 치려고 하는 찰나였다. 원승지의 복호장법중의 좌격우금(左擊右擒) 수법의 주먹이 잽싸게도 그 사내의 오른쪽 눈을 강타했다. 그 사내는 안중이 화끈한 나머지 엉거주춤하다가 손목의 아픔과 함께 칼자루를 빼앗겼다. 원승지는 빼앗은 칼로 그의 어깨를 내리쳤다. 비록 힘이 약했지만 칼을 맞은 그는 아픔이 심한 듯 괴성을 질러댔다. 관병들이 불의의 기습에 겁을 먹은 나머지 도망칠 자세를 취하다가 상대방이 어린 소년인지라, 즉시 몸을 돌려 일제히 그를 공격했다. 그때였다. 돌연 불빛속에서 강차가 날아와 관병들을 쓰러뜨렸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병기를 버린 채 분분히 흩어졌다. 최추산이 원승지를 찾아 뛰어나온 것이었다. 관병들은 계속 화살을 쏘았으나 두 사람은 이미 산을 뛰어내려가고 있었다. 최추산의 귀에도 어둠을 가르는 화살소리가 계속 스쳐갔다. 서둘러 승지를 가슴 앞으로 잡고 이리저리 뛰어 피했으나 수중에 사람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뛰기가 매우 불편했다.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암기를 피하려다 왼쪽다리가 뜨끔한 걸 느꼈다. 암기가 적중한 것이었다.
상처가 아프기 만한 것이 아니라 즉시 열이 나는 것으로 보아 독이 묻은 화살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걸음을 멈출 수도 없었다. 서둘러 산을 내려왔지만 독은 계속 번지고 있었다. 몇 걸음 더 뛰었으나 어느덧 왼쪽 다리가 마비되어 그는 그만 땅에 꼬꾸라졌다. 원승지가 대경실색하여 급히 그를 불렀다.
[최숙부!]
4명의 서융이 쓰러진 걸 보고 소리를 지르며 뒤쫓아왔다.
최추산이 다급하게 말했다.
[승지, 어서 몸을 피해라. 빨리! 내가 그들을 막을 테니까!] 승지는 그러나 어느새 최추산의 뒤로 몸을 빼내어 다가오는 적을 맞을 태세를 취했다.
(네가 그들을 공격하여 오히려 나를 보호할 생각이구나!) 최추산은 이렇게 생각이 들자 크게 감동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적들은 이미 쫓아와 있었고, 원승지를 향하여 일격을 날렸다. 원승지는 재빨리 그것을 피했다. 최추산은 다치지 않은 오른다리를 일으켜, 땅바닥에 반은 꿇어앉은 채로 철편필을 뽑아 쌍도를 들고 있는 사내에게 던졌다. 그 사내는 재빨리 피했지만 날아간 철편은 그의 이마에 꽂혔다. 그 사내는 칼을 휘두르며 최추산을 베려고 다가왔다. 비록 그가 부상 중이라 힘이 없다고는 해도 철편을 맞은 자는 순식간에 기절하더니 이내 죽어 버렸다. 나머지 두 사람은 본래 부상당한 자들로, 상대방이 이만큼 출중한 것에 눌려 혼비백산, 서둘러 도망을 했다. 최추산은 어깨에서 피가 흘렸으나 다행히도 중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왼쪽 다리는 이미 감각이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칼을 집어 땅에 꽂고는 왼손으로 그것을 잡고 일어났다. 적들은 이미 도망쳤다 하나 오래지않아 구원군을 데리고 올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지체한다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왼쪽 다리를 끌면서 산아래를 향해 걸어갔다. 원승지는 그의 왼편에서 그로하여금 오른손을 어깨에 얹게 한 뒤 한걸음씩 앞으로 갔다. 얼마되지 않는 사이, 어느새 독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왼손도 이젠 점점 무력하여지고 있었다.
원승지는 어깨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걸 느꼈으나, 사력을 다해 최추산을 부축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두 사랑ㅁ은 이내 기력이 다하였다. 그때 원승지의 눈에, 산기슭에 있는 한채의 농가가 보였다.
[최숙부, 앞에 인가가 있어요. 우리 저기 좀 들어가서 숨어요! 자, 조금만 더 힘내세요!]
최추산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힘을 다해 몸을 반쯤 일으켜 다시 앞으로 갔다. 드디어 그 집 문가에 다다랐을 때였다. 최추산은 전신의 힘이 쑥 빠지는지 그대로 땅에 뒹굴었다. 원승지는 크게 놀라, 그의 몸에 엎드려 연달아 그를 불렀다. 그러자 농가의 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중년부인이 밖으로 나왔다.
원승지가 급히 말했다.
[부인! 우리는 우연히 관병을 만나, 숙부께서 이렇게 다치셨습니다. 제발 우리를 하룻밤만 묵어 가게 해주십시오!]
그 중년부인이 16,7세의 소년을 불러내더니 최추산을 부축하게 했다. 그리고는 그를 침대에 눕게 했다. 최추산의 중독이 매우 심하였으나 다행히 무공이 높아 정신이 혼미에 빠지진 않았다. 그는 원승지를 불러 등을 가져오도록 하고는 상처 난 다리를 살폈다. 두 사람은 모두 펄쩍 뛰듯 놀랐다. 왼쪽 다리가 이미 검은색을 띤 자색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추산은 소년에게 그의 어깨 상처며 왼쪽 다리의 상처를 보게 했다. 그리고 붕대를 묶어 독기가 심장에 가지 않도록 막았다. 그런 다음 화살을 잡고 힘주어 뽑았다. 화살 맞은 자리에서 검은 피가 마구 흘러나왔다. 최추산이 몸을 굽혀 독혈을 빨아냈으나, 상처가 워낙 심해서 입으론 충분치 않았다. 원승지도 몸을 굽혀 그 상처를 계속 빨아내었다. 3, 40번 그렇게 계속하자, 차츰 혈색이 돌고 점점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최추산이 한숨을 쉰 다음 말했다.
[이 독약은 그리 독한 것은 아닌 듯 하다. 빨리 가서 입을 닦도록 해라!] 중년부인은 옆에서 지켜보며 끊임없이 염불을 외웠다.
다음날 오후, 그 집 소년이 나갔다 오더니 관병이 이미 후퇴했다고 알려주었다. 최추산의 다리는 점차 좋아졌으나 아직도 전신에서는 열이 나며 헛소리까지 했다. 원승지는 눈길을 돌리지 않으며 울기만 했다.
중년부인이 말했다.
[이보세요, 도령. 내가 보기엔 독기가 완전히 가신게 아니니 아무래도 읍에 나가 의원에게 보이는 게 좋겠어]
[그래요. 그래요! 그러나 어떻게 가죠?]
그 부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한 대의 우마차를 빌려 자기집 소년에게 맡겼다. 그들을 데리고 읍에 가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그들을 객점에 들여보낸 후 얼른 되돌아갔다. 최추산과 원승지에겐 돈이 없었다. 미처 생각을 못한 것이었다.
원승지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침대에서 혼미하게 깨지 않는 최추산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때 점원이 와서 무엇을 먹겠느냐고 물었다. 원승지는 그저 배고프지 않다고 했다.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최추산이 눈을 부시시 떴다. 원승지는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최추산이 말했다.
[몸에 지닌 것 중에 값나가는 물건이 없느냐?]
원승지가 대답했다.
[이 목이면 됩니까?]
그는 옷 속에서 목걸이를 꺼내었다. 최추산이 살펴보니 목걸이는 금이었다.
또 목걸이네 <부귀항창(富貴恒昌>이란 큰 글자가 쓰여져있고 또 두 줄로 작은 글자까지 새겨져 있었다. 한줄에는 <원공자 승지의 ㄷ을 경축함>이었고, 다른 한줄은 <소장 조솔교(趙率敎) 드림>이라 쓰여져 있었다.
원승지가 돌 때에 그의 부친의 보하대장인 조솔교가 증정한 것이 분명했다.
조솔교, 조대수(組大壽), 하가강(何可綱), 만계(滿桂) 4인은 원숭환 부하 중 4대 명장이었다. 당시 영금대첩에서 조솔교가 청나라 병사를 크게 무찔렀기 때문에 벼슬이 좌도독(左都督) 명료장군에 봉해졌던 것이다. 숭정(崇楨) 2년 10월, 청병이 산해관을 포위하고 경사를 침입했을 때, 원숭환이 4대 장군을 이끌고는 황제의 곁을 떠나 버렸다. 후에 원숭환은 옥중에서 편지를 써 조와 하 두 장군을 조정에 불러들이도록 했다. 조솔교는 원숭환의 부하이며 명장으로서 천하에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다.
아무튼 최추산은 목걸이가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기었다.
[점원을 데리고 전당포로 가서 목걸이를 맡기자.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다시 찾도록 하자]
[좋아요. 내가 가겠어요]
승지는 곧 점원과 같이 읍의 전당포로 갔다. 전당포의 조봉(朝奉)은 목걸이를 받아 살피다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꼬마 친구, 이 목걸이를 넌 어디서 가져왔느냐?]
원승지가 대답했다.
[내 것입니다.]
조봉은 그 말에 안색이 달라졌다. 그는 원승지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잠깐만 기다려라.]
그는 목걸이를 안으로 들고 들어가더니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원승지와 점원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얼마가 지난 뒤에야 그 조봉은 나왔다.
[20냥이야.]
원승지는 내약을 몰랐으나 점원이 그를 대신해서 두 냥의 은을 받았다. 원승지는 은자와 당표를 가지고 점원을 대동하여 의원(醫員)을 청하고 객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어쩐 일일까. 몰래 두 명의 관리가 따라오는 것을 원승지는 객점으로 돌아왔을 때야 알았다. 그런데 최추산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마에는 여전히 열이 있었다. 의원은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그는 마음이 조급하여 객점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7,8명의 관병이 철착을 들고 객점 안으로 들어섰다.
한 사람이 말했다.
[바로 이 아이야!]
대장 되는 관리가 소리쳤다.
[이봐, 꼬마야. 너의 성이 원가냐?]
원승지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나는 아니에요.]
그 관리는 껄껄 웃더니 품속에서 그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그럼 이 목걸이를 넌 어디서 훔쳐 온 것이냐?]
[훔친 것이 아니에요! 내거에요!]
[그럼, 원숭환은 너의 무엇이 되는 사람이지?]
원승지는 대답 대신 바삐 객점안으로 들어가 급히 최추산을 흔들었다. 밖에서 관병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성봉장(聖峯樟)의 당인들이 여기에 숨어 있으니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최추산은 땅속으로 들어만 가고 싶었지만 어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관병들은 이미 사납게 문을 밀고 들어와 원승지와 최추산의 사이에 섰다. 원승지는 문을 가로막고 서서 생각에 잠겼다.
(결코 그들이 최숙부를 잡아가도록 해선 안된다!)
문밖에는 큰 뜰이 있었는데, 객점 안에 점원과 객손들이 범인을 잡는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뜰로 나와 모여 서서 웅성거렸다. 7,8명의 관병들이 소년의 좌우를 둘러싸니 모두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한 관병이 철착을 휘두르며 원승지에게로 다가갔다.
원승지는 한 걸음 물러났으나 여전히 문밖에서 관병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원승지는 많은 관병들의 흉흉한 기세 앞에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상대방이 손을 뻗쳐 잡으려 하자, 그는 복호장법중 횡타단편(橫他單鞭)을 펼쳤다. 그 관리는 엉겁결에 쓰러졌다. 그리고는 불같이 화가 나서 다리를 날려 왔다.
[이 조그만 개 뼈다귀 같은 놈, 이 어른이 오늘 널 손보아 줄 테다!] 원승지가 다시 쪼그려서 쌍수로서 다리를 받쳐 힘을 쓰자 그 관병의 뚱뚱한 몸이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펑하는 소리가 울렸다. 원승지에게 이처럼 큰 힘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관리가 차 올린 힘을 이용해서 살짝 옆으로 비켜서며 그를 자빠지게 한 것이었다. 역시 복호장법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커다란 사내가 어린아이를 학대하려는 것을 미워했다. 거기다 관부의 관병이 제멋대로 행함으로 모든 백성들이 고소해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관병이 오히려 패한 것을 보고 부지중에 큰소리로 좋아한 것이다. 그 나머지 관병들도 머뭇거리며 이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 쏘아보았다. 원승지가 비록 제대로 무예를 배웠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데다가 또 적들도 많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채 다만 전력으로 그들을 막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어깨에 철착을 호되게 얻어 맞았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그때였다.
위급한 찰나에 갑자기 왼쪽편 방에서 거한(巨漢)이 뛰어나와 몸을 날리더니 원승지 앞에 내려섰다. 그리고 손을 뻗쳐 어떤 수법을 썼는지, 순식간에 이미 관병의 병기들을 모조리 빼앗아 버렸다. 몇 명의 관병들은 주춤 물러났다가 어름어름하는 사이, 그에게 눈과 입을 한 대씩 얻어 맞았다. 이 거대한 사나이는 <아아!>하고 큰소릴 쳤는데 소리마저 아주 기괴했다. 한명의 관병이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범인을 잡으려 하는데 넌 도대체 누구냐? 빨리 비켜라!] 그 거한은 대답 대신 몸을 휘날려 이미 그의 면전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그의 가슴을 잡아 밖으로 던졌다. 그 관병은 실이 끊어진 연처럼 창밖으로 날아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반쯤 죽은 듯이 뒹굴었다. 나머지 관병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더니 이내 도망쳐 갔다. 그 거한은 원승지에게로 와서 양손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하고 입으로는 <아아!>소리를 내었다.
벙어리인 것 같은데, 그에게 내력을 묻는 것 같았다. 원승지는 어떻게 가르쳐 줘야 할지 몰라서 몹시 초조했다. 그 거한은 돌연 왼손 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오른손으로 땅쪽으로 해서 복호장법을 처음부터 연습하기 시작하더니 제 십초인 피부격허(避扶擊虛)를 하곤 손을 거두었다. 원승지가 그제서야 이해를 하곤 제 십일 초부터 시작해서 연이어 4초를 펼쳤다. 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그를 안았는데 몹시 친숙한 태도였다. 원승지는 방을 가르켜 안에 사람이 있음을 표시했다. 벙어리는 그를 안고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최추산은 오히려 그를 아는지 손짓으로 자기의 다리를 가리켰다.
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왼손으로는 원승지를, 오른손으로는 최추산을 안고는 큰 걸음으로 객점을 나갔다. 최추산도 일백십근의 대한이었으나 벙어리는 마치 어린애를 안 듯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뛰었다. 두 명의 관병이 한쪽에 숨어 있다가 벙어리가 서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멀리서 뒤따라왔다.
그가 머무는 곳을 알았다가 대거 체포할 생각인 듯 했다. 최추한은 이미 기절해서 인사불성이었다. 벙어리는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원승지가 그의 손을 잡고 입을 뒤쪽으로 가리켰다. 벙어리가 고개를 돌려 관병을 보자 마치 못본척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2,3리쯤 갔을 때였다. 사방이 황무벽지로 사람도 없는데 벙어리는 돌연 최추산을 땅에 놓고 몸을 날려 관병의 면전에 가 섰다. 그 둘은 도망치려고 황급히 몸을 돌렸지만 한 놈, 한 놈이 그의 손에 잡혀 산의 계곡 아래로 내팽개쳤다. 비명 소리와 함께 그들의 머리가 깨져 죽어 버렸다. 벙어리는 다시 최추산을 안고 나는 것 같이 질주했다.
원승지는 따라갈 수 없어 숨을 헉헉거렸다. 벙어리가 돌아보고 웃더니 그를 손에 안아, 양손으로 두 사람을 나누어 안고 아까보다 더 빨리 뛰어갔다. 한참을 달려 왼쪽으로 꺾어들더니 조산(朝山)위로 올랐다. 두 개의 산을 넘으니 산허리에 삼칸초옥이 보였다. 벙어리는 초옥을 향해 뛰어갔다. 집앞에 이르자 한 사람이 그를 맞았다. 가까이 가니 20여세의 젊은 부인이었다. 그녀는 벙어리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최추산을 보고 놀란 듯, 벙어리와 몇 번 손짓을 하고 그들을 집안에 들어가게 했다. 젊은 부인이 불렀다.
[소혜야, 찻주전자와 찻잔을 가져오너라!]
한 여자아이가 옆방에서 <예!> 하더니 투박한 찻주전자와 몇 개의 찻잔을 갖고 와서 최추산과 원승지를 바라보았다. 둥근 눈이 매우 영롱했다. 원승지는 젊은부인의 거친 베옷 치마를 보았다. 그러나 피부는 옥같이 윤이 났고 얼굴은 아름다웠다. 그 여자아이는 더욱 영특해 보였다. 부인이 원승지에게 말했다.
[네 이름이 무어지? 어떻게 그를 만났지?]
원승지는 벙어리와 그녀가 친구인 것 같아 조금도 숨김없이 간략하게 말했다. 부인은 최추산이 중독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약상자를 꺼내 와 백색과 홍색의 가루약을 병에 넣어 섞더니, 최추산에게 마시게 하고 또 작은 칼을 갖고와서는 그의 부패한 다리 살을 도려내고 황색 약을 발랐다. 조금 있다가 다시 청수로 닦고 약을 바르기를 세차례나 하였다. 그러자 최추산이 <응!>하고 소리를 냈다. 부인은 승지를 향해 씩 웃고는 말했다.
[방해하지 마라.]
그리고는 손짓으로 벙어리를 시켜 최추산을 안아다 내당에 옮겨 쉬게 했다.
부인은 약상자를 거두어들이고 원승지에게 말했다.
[나의 성은 안(安)이야. 너는 나를 안숙모라 부르렴. 이 애는 내 딸이야. 이름은 소혜. 너는 여기 눕거라.]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부인은 서둘러 부엌으로 가서 밥을 지었다. 원승지는 다 먹고 난 뒤에 어찌나 피곤했던지 하루 밤낮을 자고 일어났다. 그러고도 지탱할 수 없어서 다시 탁자에 엎드려서 한잠을 더 잤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자신의 침상에서 자고 있었다. 소혜가 그를 데리고 가서 얼굴을 씻어 주었다.
원승지가 말했다.
[가서 최숙부를 뵙겠어요. 그의 병세는 좋아지셨나요?] 소혜가 대답했다.
[벙어리 백부님이 이미 그를 데리고 가셨어!]
원승지가 놀라서 외쳤다.
[정말이에요?]
소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원승지는 급히 내실로 들어가 보았다.
과연 최추산과 벙어리의 종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망연히 서 있다가 그만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소혜가 달려와서 그를 달래었다.
[울지마, 울지마!]
원승지는 그러나 계속 울기만 했다. 그러자 소혜가 소리를 쳤다.
[어머니, 어머니! 빨리 와 보세요!]
안부인이 부르는 소릴 듣고 이내 달려왔다.
[최숙부가 가 버렸다고 저렇게 우는 거에요!]
안부인은 알겠다는 듯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착한 소년이지. 넌 최숙부께서 심하게 다친 걸 알고 있겠지?]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안부인은 계속 부드럽게 달래었다.
[나도 그를 좀 간호했지만, 그의 상처에 있는 독기는 빼내지 못했단다. 그대로 놔둔다면 아마 그의 다리는 잘라야만 될거야. 그래서 벙어리 백부가 그를 치료해 주려고 데려간 거야. 그가 치료된 뒤에는 곧바로 널 보러 오겠지.] 원승지는 말뜻을 알아듣고 천천히 울음을 그쳤다. 안부인이 한마디 덧붙였다.
[숙부는 곧 좋아질 거야. 빨리 세수하고, 우리 밥이나 먹자꾸나.] 아침을 먹은 후 안부인은 그에게 과거의 일에 대해 자세히 묻고는 그의 이야기를 듣더니 탄식을 그치지 못했다. 이리하여 원승지는 안부인의 집에서 묵기 시작했다.
안부인은 그가 배운 무공을 자기집에서 계속 연마하도록 했다.
[정말 쉽지 않겠구나!]
안부인은 매일매일 그가 연습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보살펴 주었다. 그리고 그가 연습하는 동안은 늘 옆에 지켜보고 있었다. 소혜는 원승지와 늘 같이 있었지만 무예를 연습할 때에는 자기 어머니에게 불려서 나갔다.
원승지는 어려서 무모를 잃었다. 응송과 주안국 등이 그를 두루 보살펴 주었으나 풍운의 대장들이 어떻게 어린아이를 친부모처럼 대해 주겠는가. 그러나 지금 안부인은 그에게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돌보아 주고 친절히 해주고 있다. 또 소혜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의 평생에 이토록 훈훈한 날도 드물 것이었다. 그렇게 십여 일을 보냈는데, 하루는 안부인이 읍(邑)으로 나가 기름과 소금 등을 사 가지고 오는 길에 몇 폭의 옷감을 끊어 들고 왔다. 그것으로 원승지의 옷을 지워 주려는 것이었다.
성봉장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의복이 이미 바위와 나뭇가지에 찢겨 있었기 때문이다. 안부인이 이럭저럭 두 아이에게 잘 꿰매 주긴 했지만 늘상 보기가 안 좋았다. 안부인은 두 아이에게 집에서만 놀도록 하고 밖으로는 나가지 말라고 일렀다. 늑대를 만날까 두렵다는 것이었다. 안부인이 시장에 나간 뒤에도 두 아이는 그의 말대로 집안에서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술래잡기도 했다. 또 작은 공기와 젓가락을 가져다가 밥짓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소혜, 소혜!]
안부인의 말대로 정말 늑대로 만난 것이 아닐까. 그는 서둘러 불을 지피는 쇠꼬챙이를 갖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가 막 대문을 나서려는데 소혜가 관병 차림을 한 어느 거한의 옆구리에 끼인 채, 산 아래로 끌려가고 있었다. 원승지가 큰소리를 지르며 꼬챙이를 들어 그 자의 뒤에서 냅다 갈겼다. 거한은 이 갑작스러운 공격을 미처 막지 못하고 그만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원승지는 키가 작은 소년, 그래서 등을 찌른다는 것이 팔꿈치 근처를 찌른 셈이 되었다.
그러나 꼬챙이의 끝이 뭉툭하여 그의 살을 뚫지는 못했다. 거한은 크게 노해 소혜를 팽개치듯 놓고 품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한칼에 제거하려 했다. 원승지는 일찍이 아호에게서 배운 창법으로 꼬챙이를 세워 악가신창(岳家神槍)법을 전개하여 그 거한에 대항하며 싸웠다. 거한은 거센 힘으로 공격해 왔다. 원승지는 민첩한 신법에 의지해 십여초를 대항했다. 거한은 작은 아이 하나를 이길 수 없자, 내심 초조하여 도법을 변화시켰다. 거한은 칼을 휘둘러 허공만을 그어댔는데, 그것은 원승지의 몸이 작은 까닭이었다. 그는 지당도법(地堂刀法)을 전개해 원승지를 위기에 몰아 넣었다. 위기의 순간, 돌연 안소혜가 장검을 가져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검으로 거한을 향해 찔러갔다.
거한이 욕설을 퍼부었다.
[제기랄, 너 꼬마야. 살아 남을 생각이 없다 이거지?] 단도로써 세로로 그어 나가는 검법이었다. 상대방의 수중에서 장검을 떨쳐 보려는 것이었다. 소혜는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장검으로 원을 그리며 삼보연대(三寶蓮台) 일초로 거한을 찔러 나갔고, 동시에 원승지의 쇠꼬챙이도 독룡출동(毒龍出洞)으로 찔러 나갔다. 거한은 일시에 두 아이에게 공격을 받아 손과 발이 어지러워졌다. 원승지는 처음에는 소혜가 도와주는 걸 보고 그녀가 다칠까 염려스러웠으나,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그녀의 몸이 민첩함을 보고 그도 쇠꼬챙이를 더욱 꽉 잡았다. 거한은 두 아이의 창법과 검법이 훌륭하나 힘이 세지 않은 것을 보고 킥킥 웃기까지 했다. 시간이 갈수록 두 아이는 과연 지치기 시작했다. 거한은 단도를 들어 소혜의 장검을 맹렬히 갈겼다. 장검과 단도가 부딪치는가 싶더니 소혜의 장검이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승지가 놀라 거한의 앞으로 몸을 날렸다. 거한은 칼을 휘둘러서 소혜를 넘어뜨렸다.
원승지는 목숨을 돌보지 않고 공격했으나, 심중이 어지러워 이미 장법이 되지 않았다. 거한은 <하하!> 크게 웃고는 한 걸음 나서며 다시 칼을 휘둘러 그를 베려고 했다. 원승지는 여전히 쇠꼬챙이로 대적했다. 그러나 이내 거한의 왼손에 꼬챙이 끝을 잡혀 비틀리고 있었다. 원승지는 심한 고통을 느꼈다. 그래서 끝내는 손에 쥐었던 무기를 떨어 뜨렸다. 거한은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급히 소혜 옆으로 갔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덥썩 안고 저쪽으로 뛰어 갔다. 원승지는 손이 아팠으나 소혜가 잡혀가는 걸 보고는 꼬챙이를 다시 집어들고 그의 뒤를 쫓아갔다. 거한이 욕설을 퍼부었다.
[이 조그만 놈이, 정말로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나!] 왼손으로 소혜를 안은 채 오른손으로 칼을 치켜들었다. 5, 6초를 상대하다 보니 원승지의 왼쪽 어깨에 단도가 스쳤고 그 피부는 이미 손상을 입어 피가 흘렀다. 거한은 히죽거리며 소리쳤다.
[이놈! 그래도 덤비겠느냐?]
그러나 원승지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소리를 쳤다.
[소혜를 내려놓아라! 그러면 쫓아가지 않겠다!]
그는 꼬챙이를 든 채 여전히 쫓아갔다. 거한은 화가 치밀어 독한 마음을 사리고 있었다.
[오늘 이 꼬마 놈을 결단내지 않으면.... 보아하니 저 꼬마가 그만 두려하지 않겠군!]
그는 대갈일성을 쳤다. 그리고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어 원승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리곤 용서 없이 찔러 나갔다. 소혜가 깜짝 놀라 양손으로 거한의 손목을 잡아채어 그의 손을 냅다 물어뜯었다. 거한이 고통에 찬 소리를 지르는 동안, 원승지는 얼른 몸을 굴려서 빠져나갔다. 거한은 소혜의 뺨을 후려치고는 다시 원승지를 공격했다. 원승지가 몸을 비켜 급히 피했으나 날카로운 칼이 그의 이마를 스쳐 왼쪽 눈가에 칼자국이 그어지고, 거기서 선혈이 흘렀다. 거한은 그가 쫓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다시 소혜를 낚아채려고 했다.
그때 원승지가 미친 듯이 달려들어 거한의 다리를 껴안았다. 그런 경망 중에 복호장법을 써서 그의 왼쪽 다리를 비틀었다.
원숭환은 광동(廣東) 동안(東案)사람이어서 원승지의 핏속에도 광동인의 그 죽을지언정 꺾임이 없는 강한 성격을 이어받은 소년. 정세가 비록 어렵고 위급했으나 소혜를 잡혀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그를 책망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머리에 뭔가가 날아들었다. 축축한 것이, 부지불식간에 흐른 피였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안부인이 수장밖에 서 있었다. 거한은 그녀가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원승지를 버리고 소혜만을 안고 가려고 했다. 안부인이 오른손을 연달아 움직여 세 개의 계란을 그의 얼굴에 던졌다. 거한이 살짝하는 바람에 두 개는 피했으나 세 개째는 코에 맞아 온 얼굴이 계란 범벅이 되었다. 안부인이 또 하나를 던져 왼쪽눈에 적중시켰다.
거한이 소리쳤다.
[부인, 익힌 계란을 노인에게 먹게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으로 노인을 치다니!]
그는 소혜를 버리고 왼손으로 쓱쓱 닦더니 안부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안부인은 무기가 없어 연이어 피하기만 했다. 원승지는 그의 위급함을 보고 꼬챙이를 집어들어 뒤에서 찔러 나갔다. 안부인은 잠깐 생각하고는 원승지에게 옷을 만들어 주려고 사온 천을 꺼내 들고는, 그것을 이용하여 세 개의 돌을 던졌다.
거한은 돌은 피하고 원승지의 공격을 피하느라 몇 발짝을 후퇴했다. 안부인이 소리쳤다.
[호로삼(胡老三), 넌 내가 없는 틈을 타서 아이들을 속였으니 누가 일 문의 사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호로삼은 그녀의 수법에 말려 단도를 놓쳤다.
[나는 당신의 남편의 부탁을 받고 딸을 데리러 온 것이다. 다시 찾아오겠다.
우리 금의위(錦依衛) 사람들에게 죄를 짓고도 왕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거지?]
호로삼은 몸을 돌려 또 무어라고 욕을 지껄이며 산 아래로 질주해 갔다. 안부인은 더 이상 쫓지 않고 고개를 돌려 소혜와 원승지를 보았다. 소혜에겐 상처가 없었으나 놀라서 그런지, 한동안 바보같이 있다가 모친의 품에 안기게 되자 울음을 터뜨렸다. 원승지는 온통 얼굴과 몸에 선혈을 흘렸다. 안부인이 서둘러 깨끗이 닦고는 약을 가져와 치료를 해 주었다. 다행히 두 군데의 상처가 모드 그리 깊지는 않았다. 안부인은 그를 안아서 침상에 재웠다. 소혜는 비로서 그가 목숨을 버리고 구하려 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안부인이 원승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그러한 의협심이 날 것 같은데.... 우리는 더 이상 여기서 머물 수 없겠어.)
그리고는 소혜를 보며 한마디했다.
[너도 가서 자거라. 오늘 밤에 떠나야 하니까]
소혜는 모친과 이사하는게 이미 습관이 되어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안부인이 물건을 챙겨 두 보따리하고, 세 사람이 저녁을 먹은 후 촛불을 밝혀 놓고 앉았다. 원승지는 그녀의 표정에 가득한 수심을 보고 곧 눈자위가 붉어져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호로삼의 말에, 안숙모의 남편이 소혜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녀의 남편이 안숙모를 속이다니 내가 자라거든 무예를 익혀 그를 때려 주겠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스쳐 갔다.
(호로삼은 그가 금의위라고 했는데, 엄마도 그들에게 살해되셨어. 내가 금의위인들을 죽여 어머니의 복수를 해야지!)
원숭환은 숭정에게 죽고 금의위인들이 원가의 가족을 잡으려 했으나, 원숭환의 부하들이 먼저 와서 원승지를 구출하였다. 그러나 부인을 구출하지는 못했다. 그 원한이 이미 원승지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경(二更)쯤에 문 밖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나더니 문득 벙어리가 들어왔다.
원승지는 그를 보게 되자 크게 기쁜 나머지 그가 벙어리인 줄도 잊고 최숙부의 안부를 물었다. 원승지를 보자 그도 기뻐하였다. 내외간에 한참 동안 수화로 얘기를 하더니 안부인이 원승지에게 설명했다.
[최숙부는 괜찮아. 안심해라]
그리고는 또 한참이나 수화를 나누었다. 벙어리는 계속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승지는 그가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박수를 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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