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2-1

3학년2반 | 2022.01.15 07:43:50 댓글: 0 조회: 294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433

* 제 2 권 *

- 1 - 옥비녀 하나

최희민과 안소혜는 동시에 놀랐다.
황진은 자신과 원승지가 빠져나갈 궁리를 해 보았으나 어려운 일이었다. 단지 희민과 소혜를 귀찮지 않게 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오늘은 물러가고 다시 화산파의 무사 다섯 명을 모아서 함께 오행진을 공격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는 그들에게 화산파의 진짜 실력을 보여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마음속에 다섯 명을 꼽아보았다. 자기를 빼고 귀신수 부부, 자신의 수제자 팔방미인 풍난적, 그리고 사부 목인청 등이었다. 온씨 형제가 분별있게 응대만 해준다면, 다섯명으로 하여금 각각 적을 상대케 해서,그들이 힘을 합치지 못하게 하면 오행진도 곧 무너질 것이다. 단독 싸움으로 따지자면 온씨 형제는 그의 적수가 못된다. 황진은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자신의 계책을 숨기고는 지금 당장의 탈출책을 모색했다. 그는 오행진을 무너뜨릴 사람 중에 원승지는 넣지도 않았다. 그건 그의 무술이 아직 미천하다고 믿어서였다.
원승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른들께서는 이미 제게 성심껏 가르쳐 주셨지만 그렇다고 전부 가르쳐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이 모자라더냐?]
[여러분들은 오행진 이외도 팔괘진을 가지고 계신데, 어떻게 하면 저의 안목이 트이게 될까요?]
온방의가 대답했다.
[좋다! 그건 네가 요청한 것이니 죽기를 두려워 마라!] 그리고는 온남양을 향해 외쳤다.
[네가 해 보여라]
온남양이 한 번 손짓하니 열다섯 명이 모였다. 온남양의 목소리와 함께 열여섯 명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좌충우돌하였다. 이들 열여섯 명은 모두 온가의 자손들로, 어떤 이들은 온씨 5형제의 외손자도 있고 석량파 2대 명수들도 있는데, 말하자면 특별히 뽑아서 팔괘진법을 훈련시킨 자들이다.
황진은 이러한 사정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원사제가 정말 어렵게 됐구나! 저들 다섯 형제만도 힘에 부칠텐데, 이제는 열여섯으로 늘었으니....... 더구나 저들의 포진은 새 한 마리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이니, 그의 실력으로 과연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원승지는 오른쪽 엄지와 중지 손가락으로 비녀를 잡고 왼손을 가볍게 뻗으며, 오른발을 오므리고 왼발을 축으로 갑자기 4, 5번 돌았다. 온씨 형제들은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러나 원승지는 뱀처럼 유유히 돌 수는 있었지만 빠져 나오지는 못했다.
그는 금사랑군이 5형제와 대적하다 패배, 포로가 되었다가 위험으로부터 구출된 후, 화산 꼭대기에 숨어서 그날의 악전고투했던 절경을 떠올리며 고심했다. 그는 그때 <취선밀> 앞에서는 굴복을 하지 않았었다. 골격은 여전하고 힘도 건제했지만 결국 오행진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단지 얼마간 버티었을 뿐이었다. 그는 5형제의 몸놀림과 무술을 떠올리며 연구했다. 그러자 문득 이 진법의 비결이 생각났다. 그것은 적이 포위된 후 어떠한 공격도 다섯 사람이 즉각 뒤따라, 적이 죽든지 포로가 될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다섯 사람의 무술은 서로 도와 막아주고 틈을 서로 보충해 주면서 싸우는 것이었다. 금사랑군은 5형제가 그날 사용한 무술을 마음속에 똑똑히 기억해 놓았지만 생각할수록 이 진법은 파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몇날 몇일을 노심초사, 와신상담의 나날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해 보았지만 결국은 효과가 없는 것들이었다.
5형제 중에서 단 한사람만 해쳐도 오행진은 파괴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만하게도 이러한 하책(下策)은 쓰지 않기로 했다. 만약 하책을 쓴다면 그의 근육을 못쓰게 될 것이고 무공도 잃어버려, 오행진을 파괴할 방법을 알아낸다 해도 몸소 실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생각한 것처럼 정정당당히 본령을 공격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이른 아침, 그는 산길을 한가로이 산보하다가 풀숲에서 작은 푸른 뱀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뱀은 사람의 기척을 듣더니 곧 또아리를 틀며 고개를 쳐들고는 미동도 않는 것이었다. 뱀의 이 같은 형상을 보고 그가 금사랑군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은 그의 행동이 민첩하고 때로는 사나왔기 때문이리라.
더욱이 그는 뱀을 좋아해서 기르기도 하고 독을 빼내어 암살용 독화살을 만들기도 했지 않은가? 그 해에 온씨 형제 중에 온방록의 부인이 독화살에 비명횡사했는데, 그것은 바로 화살 끝에 묻은 독 때문이었다.
그는 뱀의 천성을 잘 알고 있었다. 또아리를 틀고 머리를 쳐드는 것은 적이 먼저 공격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후에 적의 허점을 틈타 반격하는 것이다. 만약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지극히 적은 예지만 먼저 공격한다.
뱀이 또아리를 트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는 것이고 머리를 쳐드는 것은 힘을 축적해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독이빨로 공격할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만일 경솔하게 달려들어 적을 물려고 하면 뱀의 몸체가 길어지고 약점이 노출되어 적이 기세를 잡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뱀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천성인 것이다. 금사랑군은 이전에 이러한 행동을 보고는 깨닫지 못했는데, 지금 오행진을 파괴한 궁리를 하던 중에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돌연히 머릿속이 환해지며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행진을 파괴할 방법은 바로 이것, 즉 적을 기다렸다가 제압하는 것(후발제인;後發制人)이다.
무림에서는 본래 적을 공격하여 먼저 기선을 잡으라고 강조하지만, 이 후발제인은 그와 정반대이다. 근본 방침이 정해졌으므로, 그 나머지는 검을 가지고 해결하는 것이다. 금사랑군은 1개월이 못되어 오행진을 파괴할 비법이 모두 생각나 그는 <금사비급>에 아주 자세히 적어 놨다.
그는 이 비급이 사람들에 발견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설사 발견된다 하더라도 아마 수 백년 후가 될 것이며 그때엔 온씨 형제들도 죽어서 백골진토가 됐을 것이다. 단지 그의 마음속에 걱정되는 일이 있다면, 오행진이 유전되어 장차 그것을 무찌를 사람이 없게 되면 석량파가 천하를 제패하게 될 그때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x x x x
5형제는 그가 손을 쓰기를 기다려 그 틈에 달려들려고 하였으나, 그의 몸은 돌면 돌수록 여유 있으면서 전혀 공격할 의사가 없는 듯 했다. 마침내는 땅에 주저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는 엷은 미소마저 띄우는 것이 아닌가. 5형제는 아연해 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그자 앞에는 큰 적이 있는데 이런 짖ㄱ은 장난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은 모두 가졌다. 그러나 이것은 원승지의 작전임을 어떻게 알 것인가! 첫째는 적으로 하여금 공격하도록 유인하는 것이고, 둘째는 5형제를 혼란케하여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온방의는 그가 앉는 것을 보더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의 배후를 공격하려 했다.
온방오가 급히 말렸다.
[둘째형, 진용을 흐트리지 말아요!]
온방의는 겨우 참았다. 5형제는 발을 더욱 빨리해서 계속 진용을 바꾸었다.
그러면서 원승지가 먼저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다. 여럿이 공격하건 두 사람이 싸우건, 공격해 들어가는 사람이 전력을 다해 상대방을 공격하게 되므로 이미 자기는 방어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공격만 더욱 격렬해질 뿐이다. 오행진은 한 사람이 공격해 들어가면 저절로 약점이 노출되어, 나머지도 상대방에게 약점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이 소위 상생상극(相生相剋)인 것이다. 지금 원승지는 움직이지 않고 그의 주위는 완벽하게 포진했다. 5형제는 달리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다시 얼마 후, 원승지는 갑자기 하품을 하더니 땅 바닥에 그대로 누웠다.
그리고는 양손을 깍지 끼더니 그것으로 베개를 삼고 더욱 유유자적하는 것이었다. 바깥에서 팔괘진으로 포진하고 있는 열여섯 명은 꽤 오랫동안 그렇게 돌고만 있었다. 그들은 점점 지치고 땀을 흘리며 숨이 차서 헉헉거렸따. 그러나 5형제는 여전히 잘 참고 있었다.
원승지는 생각했다.
(너희 오랜 원수에게 어디 한 번 웃음거리가 되어 보아라.) 이번에는 몸을 뒤척이더니 등을 위로하고 얼굴을 두 손에 묻고는 코를 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자고 이래 무림의 싸움중에 이런 일은 없었다.
배를 깔고 드러누워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칼을 댈 것인가? 최희민, 소혜, 청청, 온의 등은 우습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황진은 그가 앉고 또 한참 후에 드러눕는 것을 보고 그것이 적과 대적하는 방법임을 알아차리고는 속으로 탄복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5형제가 등뒤로 달려들면 어떻게 피할 것인가?
온방달은 형세를 보더니 크게 기뻐하며 손을 들어 신호를 했다. 그러자 온방시 등이 네 자루의 칼을 번뜩이며 원승지의 등을 향해 날쌔게 내리 꽂았다.
이 동작이 얼마나 빠르고 날카로운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네 자루의 칼은 비호처럼 일제히 원승지에게로 달려들었다.
온의, 청청, 소혜 등은 차마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석량파는 환호를 올렸고, 팔괘진의 열여섯 제자들도 일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한편 원승지는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그의 등뒤로 향했던 칼들은 낙엽처럼 맥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는 화살처럼 몸을 움직여 손바닥을 한 번 치고는 곧장 온남양의 뒤로 달려들었다. 순간, 온남양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 나왔다.
원승지는 그를 잡아 오행진 속으로 던져 버렸다.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오행진에서 빠져 나왔는가 조차 똑똑히 볼 수 없었다. 다만 포진 밖의 열여섯 명은 재빠르게 오행진으로 달려 들었다.
(인의 장막을 이루려고......?)
원승지가 여기서 한 번 휘두르고 저기서 한 번 휘둘렀다. 매번 휘두를 때마다 열여섯 제자들은 그에게 대적조차 못하고 오히려 진용을 흐트러뜨렸다. 온정 등은 비교적 신중히 대항했지만, 그 역시 원승지를 당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오행진, 팔괘진은 즉시 대혼란에 빠지게 됐다. 진중에는 적은 보이지 않고 원승지 혼자만 왔다갔다할 뿐이었다.
온씨 5형제는 괴성을 지르며 손과 발을 바삐 움직여, 제자들을 진용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원승지는 거기서 그들에게 손을 뻗어, 이중으로 포진하는 것을 허용하더니, 왼손 장지로 온방시의 급소를 매섭게 찔렀다.
온방시가 그걸 피하는 바람에 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대경실색하였다. 그는 네 자루의 칼을 원승지의 가슴으로 겨냥했다. 원승지는 피하지도 않은채 손사락을 온방시의 목밑의 선기혈(璇璣穴)을 향해 내뻗었다. 칼은 원승지의 가슴 앞에서 떨어졌다. 장지는 이미 온방시의 급소를 찌르고 있었다. 선기란 북두칠성의 첫째 별에서 넷째 별까지의 네 별이다.
여기서는 북두칠성의 네 별 모양의 점을 이루는 것. 오낭산은 그의 강철 지팡이 발풍반타(潑風盤打)에 온 힘을 다해 원승지의 오른쪽 허벅지를 향해 던졌다.
원승지는 웃으면서 한마디했다.
[지팡이는 지붕 위에 있으니 찾아오시지요]
5형제는 입으로 지껄이면서도 손놀림은 조금도 늦추지 않고 제자 한 사람에게 지팡이를 가져오게 하였다.
온방산은 크게 놀랐다.
(이 지팡이가 원승지에게 적중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그때의 정황으로 보아 전혀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비밀무기를 사용한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그가 사용한 것은 가느다란 옥비녀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 지팡이로 원승지 저놈을 결단내지 못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무술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는 경황 중에도 한 걸음 내딛고는 왼손으로 지팡이를 힘껏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사형, 조심해요!]
지팡이의 여세는 대단해서 원승지를 향해 맹렬히 지나갔다. 온방달은 그것을 간신히 잡아서 세우느라고 <쨍!> 하는 소리를 냈다.
원승지는 이때를 틈타 온방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왼손으로 상대방을 막고 오른손으로는 옥비녀를 든 채 그의 두 눈을 찔렀다. 온방오는 급히 물러나면서 그의 가죽채찍을 휘두르며 눈을 막았다. 그러나 원승지는 그에게서 불과 3자(尺) 정도 앞에 섰다. 그리고는 여전히 옥비녀로 너댓차례 공격을 받았다.
그의 채찍은 <너무 길어서 닿지 않는 곳이 없다(편장광급;鞭長廣及)> 라고 불리울 만큼 위력적인 것이었는데, 온방오는 옥비녀가 번득이며 자기 눈에서 떠나지 않는데다가 연속적으로 두 차례나 눈거풀을 찔리자 그만 혼비백산하였다. 그는 비로소 옥비녀의 지독함을 알았다. 두 번째 공격에도 또 뒤로 물러났다. 그는 그만 채찍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두 손으로 눈을 더듬는 사이 몇 대나 더 얻어 맞았다. 뒤로 피하는 순간 그의 폐부에 통증을 느껴ㅕ다. 이전에 온방오는 예의 그 채찍을 가지고 온추에서 열 두 거인을 맞아 물리친 일이 있었고 또 수십년간 그의 명성이 쇠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한 어린 소년의 옥비녀에게 패하였으니, 정말이지 창피스러웠다.
보는 사람들도 매우 놀랐다.
황진은 어린 사제의 이 같은 활약을 보고 매우 기뻐하면서도 그의 손씨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것이기에 자뭇 의아해했다.
[그의 무예는 정말 색다르군. 보아하니 화산파의 것은 아니야. 그의 무예는 드넓고 광활해!]
최희민은 미칠 듯이 좋아했고, 소혜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온의와 청청도 내심으로는 매우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원승지는 경고한 포진을 무너뜨리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이제 기선을 제압했으니 착착 밀고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오른손으로는 화산파의 복호장법을 쓰고, 왼손은 옥비녀를 들고 금사비급의 금사추법(金蛇錐法)을 썼다. 이것은 신검선원 목인청이 직접 가르쳐 준 것이다. 비록 절반만 익힌 것이지만 금사랑군의 비법을 쓰니, 온씨 5형제가 어떻게 당해낼 수 있겠는가. 그는 온방오를 공격한 다음 몸을 돌려 온방의를 공격했다.
온방달은 사태가 위급해지자 휘파람으로 신호하여 제자 한 명을 밀어냈다.
온방산 또한 손발을 모아 진중의 제자를 밀어냈다. 이제 그곳엔 몇 명만이 남았다. 오행진 또한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승지는 온방의를 꼼짝 못하게 하고 있었다. 5형제로 하여금 공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온방의는 어깨를 겨냥했고, 온방산은 지팡이로 원승지의 배후를 공격했다. 동시에 온방달은 왼쪽으로 공격해 왔다. 온방의는 비록 왼쪽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여전히 진법에 따라 공격을 펼쳤다. 그러나 팔괘진은 이미 무너졌다. 오행진 또한 와해됐다. 그런데도 5형제는 여전히 진법에 따라 사력을 다해 대항했다.
온의가 원승지를 보니, 그는 5형제의 포위 안에서 분주히 몸을 놀리고 있었다. 몸가짐은 여전히 맑고 깨끗하여, 바로 금사랑군이 오행진에 포위되었을 때와 같아 보였다. 다시 보니, 자기가 밤낮으로 연모하고 있는 정부처럼 보였다. 흰옷을 휘날리며 싸우는 것을 보니, 마음속은 더 없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하랑, 하랑, 당신......! 당신이 마침내 왔군요!]
그녀는 소리치며 앞으로 나가려 했다.
청청이 황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안돼요, 나가면 안돼요!]
온의의 눈은 확실히 젊은 원승지를 응시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청청의 가슴으로 푹 쓰러졌다.
이때 원승지는 갑자기 뛰어올라 오른손으로는 옥비녀를 머리에 꽂고, 왼손으로는 대청의 대들보를 잡은 채 몸을 돌려 그 위로 올라갔다.
5형제는 바삐 몸을 놀리다가 적 원승지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들이 놀라고 있을 때였다. 머리 위에서 수십 개의 비밀무기가 날아왔다. 피하려 했지만 이미 온방산과 온방시는 전표에 급소를 맞아 땅에 쓰러지는 중이었다.
온방달은 얼른 몸을 구부려 피했다. 원승지는 이번엔 또 동전을 날렸다. 온방달은 그의 쌍창 밀운욕우(密雲欲雨;구름이 빽빽하면 비를 내린다)를 휘두르며 동전 몇 개를 막아냈다. 그런데 갑자기 쌍창에 무엇이 달라붙더니 움직이지가 않았다. 그는 깜짝 놀라 떼어 내려 했지만, 그것이 떼어지기는 커녕 쌍창이 오히려 그의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뒤로 물러났다. 원승지는 곁에 서서 손에는 쌍창을 들고 있었다. 온방시의 가죽 채찍은 여전히 창머리에 매달려 있었다.
원승지가 소리쳤다.
[자, 봐라!]
이 한마디와 함께 쌍창을 옆으로 비껴 날리니, 마루에 있는 두 개의 기둥에 정면으로 꽂혔다. 두 개의 기둥은 <와지끈!> 소리를 내며 갈라졌고 지붕도 푹석 내려앉았다. 입구에 서 있던 사람들은 급히 마루 밖으로 몸을 피했다.
당시 목인청이 원승지에게 검술을 가르쳐 줄 때, 검을 던질때는 나무에다 던지게 하곤 했다. 목상도인은 세상에 둘도 없는 검술이라고 칭찬했는데 이제 보인 것은 그 검법의 변형이었다. 황진은 그가 화산파의 검법으로 기둥을 두동강 내는 것을 보고 크게 소리쳤다.
[원사제, 비천신룡(飛天神龍)으로 해봐!]
원승지는 미소를 띄면서 대답했다.
[감시 사부님의 가르침을 잊겠습니까? 대사형께서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온방달은 다시 한 번 놀랐다. 네 형제가 모두 쓰러진 것이었다. 원승지는 발을 돌려 황진 곁으로 와서는 머리에 꽂고 있던 옥비녀를 빼어 소혜에게 돌여 주었다.
온방달은 자기파의 천하무적 오행진과 팔괘법이 이 애송이에게 순식간에 추풍낙엽처럼 휩쓸리자, 엉망진창이된 상황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갈라진 기둥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는 이미 늙었으니, 이 원수를 갚기는 힘들 것이다. 이대로 홀가분하게 그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두 손을 들어 황진을 가리켰다.
[황금을 모두 가져 가시오.]
최희민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땅바닥의 황금을 모두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석량파 사람들이 수십 명이나 있었으나 누구 하나 막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방금 원승지의 활약을 보고는 모두들 간담이 서늘해져 전의를 잃고 말았던 것이다.
온방달은 온방의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눈은 이미 풀어져 있었고 몸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원승지의 전표에 급소를 맞아 계속 피를 흘리는 중이었다. 그냥 놔 두었기에 온 몸이 이미 마비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세 명을 살펴보니, 그들 역시 급소를 맞았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배운바에 의하면, 내력(內力)을 천천히 가다듬으면 된다는데, 지금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원승지의 급소 공격은 매우 특출하였던 것이다. 온방달은 몸을 돌려 청청을 바라보니 아음 속의 분노가 더욱 끓어 올랐다.
청청은 자신이 원승지를 응원했음을 온방달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큰 할아버님, 부르셨습니까?]
온방달은 마음속으로 그를 꾸짖었다.
(이 교활한 계집! 이 일이 수습되면 내 너희 두 계집을 엄히 다스리리라!)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놈에게 가서 네 할아버지의 구조법을 알아 오너라.] 청청은 곧장 원승지에게로 가서 축수(祝手)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큰 할아버님께서 당신께 네 할아버님의 구조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 큰 할아버님의 요구이지, 저의 요구는 아닙니다.]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열려고 하자 황진이 가로 막았다.
[원사제! 그대는 정말 흥정의 도를 모르는군. 이런 진기한 상품을 가지고 어째서 값을 높이지 않는가? 그대가 값을 어떻게 부르든, 사람들은 들어 줄 것일세.]
원승지는 속으로, 대사형이 석량파에 대해 유감이 많으며 또 이번 기회에 보복을 하려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사부가 항상 말하던 것을 떠올렸다.
[사람의 용서를 받으려면 사람을 용서하라!]
청청이 와서 구조법을 물었고 금은 이미 돌아왔는데 구태여 온씨 형제들을 사경으로 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사형의 뜻이 이러하니 어쩔수가 없었다.
[대사형의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황진이 말했다.
[온가는 이 지방의 사람들을 몹시 괴롭혔다. 그들은 세력을 믿고 날뛰어서 구주 네 지방의 원성이 자자하다. 내가 사제에게 말하려는 것은, 그들을 치료해 주면 은전을 잃게 되니 그들에게 치료비를 받아 내자는 것일세. 그렇다고 그것을 우리가 쓰자는 것은 결코 아니야. 온가에게서 피해를 받은 농민들을 구제하자는 것일세. 내 생각이 어떤가?]
원승지는 석량에 처음 왔을 때 많은 사람이 온가를 원망했던 것을 생각해 냈다.
[좋습니다. 이곳 농민들이 온가에게 피해를 많이 본 건 저도 압니다. 대사형 어떻게 할까요?]
황진은 중얼거리며 주판알을 튕겼다. 최희민과 소혜는 황진의 이러한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원승지는 대사형에게 매우 공손했고 황진의 행동은 너무나 진지했으므로 감히 웃을 수도 없었다.
석량파 사람들은 분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만 청청이 소리를 죽이며 웃었다.
황진이 입을 열었다.
[원사제, 한 사람 구조하는데 백미 4백석을 받도록 하게.] [백미 4백석?]
[아무렴, 백미 상등품 4백석으로, 모래나 썩은 쌀이 섞이어도 안되고 속임수를 써서도 안되네.]
[네 사람이니까 천육백석이나 되잖습니까?]
황진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대답했다.
[사제, 그대는 계산에 신경 쓸 것 없네. 한 사람에 백미 4백석이니 진정 천육백석이지!]
최희민은 정말 어마어마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황진이 온방달을 향해 한마디했다.
[내일 아침, 백미 천육백석을 준비해서 이 지방의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시오. 천육백석이 준비되면 나의 자제는 당신들의 목숨을 구해 줄 것이오.]
온방달은 끓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말했다.
[한시가 급한데 대체 어디 가서 그 많은 쌀을 구한단 말이오? 우리집 창고에는 불과 칠, 팔십석의 쌀이 있을 뿐이오.]
[치료비는 깎아 줄 수 없소. 사백석을 가져오면 한 사람을 치료해 주고, 다시 사백석이 준비되면 또 한 사람을 치료해 주겠소. 또한 1년후에라도 준비된다면 원사제는 요동 운남에서라도 달려와서 치료해 줄 것이니 그렇게 아시오.]
온방달은 생각했다.
[4형제가 급소를 맞았으니 적어도 하루만 지나면 자동적으로 치유가 될 것이니 구태여 그렇게 엄청난 손해를 볼 것이 있겠는가?) 황진은 그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 말했다.
[사실 당신이나 나나 모두 전문가이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러나 우리 화산파의 점혈법(點穴法;점혈은 뜸질할 급소에 먹으로 점을 찍는데서 유래되었음)이 아니고서는 본래대로 수족이 민첩하게 되지도 않으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은 물론 눈이 침침해질 것이오.
따라서 모두 5, 6년후에나 회복될 것이오!]
온방달은 이것이 빈말이 아님을 알고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
[좋소! 내일 아침 쌀을 준비해 놓겠소!]
그러자 황진이 이를 받았다.
[큰 사형의 수단은 정말 좋으시군요. 흥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오. 다음에 다시 거래를 하게 되면 많은 가르침 부탁합니다.] 온방달은 그에게 이렇게 희롱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소매를 털며 일어났다.
원승지는 온의와 청청에게 절을 한 후 말했다.
[그럼 우리도 내일 봅시다.]
원승지는 그들 모녀에게 어려움을 안겨 주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네 명은 황금을 챙겨 들고 기뻐하면서 그들이 머무는 농가로 발길을 돌렸다.
소혜가 국수를 말아 왔다. 네 사람은 맛있게 먹으며 대승을 자축했다.
황진이 국수를 들면서 말했다.
[원사제, 나는 전에 사부님이 한 젊은 제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리고 둘째 형 귀신수 부부가 말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지. 그런데 이제 나이 30이 다 되어 장본인을 이렇게 만나니 감개무량하군. 사제의 무예가 이렇게 출중하니, 둘째 형과는 승부를 가리기가 어려울 것 같군. 우리 화산파의 장래는 자네의 두 어깨에 달려 있네. 자, 술이 없으니 국물로라도 축배를 드세.]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대접을 들어 국물을 후루룩 다 들이마셨다. 원승지는 황급히 일어나 국물을 마시고는 말했다.
[소제는 오늘 요행으로 인해 승리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대사형의 칭찬은 과찬이십니다.]
[자네의 겸손과 걱정하는 마음은 무림의 세계에서는 드문 일이네. 자, 어서 드세.]
그는 몇 번 젓가락을 놀리다가 희민에게 말했다.
[네가 원사숙만큼 무예를 닦으려면 아마 일평생이 걸릴 것이야.] 최희민은 원승지가 온가에 대항하여 순식간에 저들의 오행진을 무너뜨리는 것을 탄복하고 있던지라, 사부의 말이 떨어지자 돌연 무릎을 꿇고 원승지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작은 숙부님, 제게 무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원승지는 급히 몸을 굽혀 대답했다.
[원 별말씀을! 우리 대사형의 무술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신데.......] 항진이 웃으며 거들었다.
[나의 무술이 원사제보다 못한 것은 사실이야. 그나마 내가 저 희민이를 가르친다고는 했지만 워낙 내 성미가 급해 놔서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었다네.
그러니 자네가 맡아 준다면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네.] 원래 황진은 최추산의 체면을 봐서 최희민을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자질이 부족하여 열을 들으면 하나도 깨우치지 못하였다. 또한 황진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성격과는 처음부터 맞을 리가 없었다. 황진이 무예를 가르칠때 우스갯소리를 해도 그는 알아듣지 못했다. 황진은 제자가 얼빠진 짓을 하면 할수록 그를 놀려 주었다. 최희민은 사부가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조차 분별하지 못했다. 황진이 풍자적으로 놀려대도 그는 자기를 칭찬하는 줄만 알았다. 무술을 가르치는 것이 이러하니, 자연히 무예를 성취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후에 원승지는 그의 숙부 최추산의 목숨을 버려 구해준 은덕을 생각하고 또한 그가 소혜의 연인인 것을 알고 소상히 지도해 주었다.
최희민은 비록 자질이 부족하여 많은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과거에 비하면 매우 큰 진보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황진과 원승지는 일어나자마자 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한 거한이 온방달의 서신을 들고 와서는 <빨리 오셔서 봐 달라>고 했다.
황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너희들 소식 한 번 참 빠르구나! 우리가 머무르는 곳까지 알아내다니.......] 네 사람이 온가에 가보니 마을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것이 보였다. 성안에서 백미를 지고 들어와 첩첩이 쌓아 놓은 것이었다. 온방달은 밤새도록 사람을 시켜 구주성에서 쌀을 사들였던 것이다. 구주는 절동(折東)의 큰 도시로 매우 부유했지만 그래도 갑자기 천육백석의 쌀을 사들이자니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쌀값 또한 뛰어올라, 수백냥은 은으로 지불해야만 했다. 온방달은 황진에게 보여준 후 한 가마니씩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온가의 성격이 이처럼 변했을까 하고 수군거렸다.
황진은 온방달이 정말로 쌀을 모은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어 다시는 그를 놀려대지 않았다.
[온영감, 당신이 쌀을 모아 빈민을 구제하다니 앞으로 자손대대로 복이 내려 질 거요. 여기 마침 새로 지은 노래가 있으니 한 번 들어보시오.] 그의 목소리는 아름답진 않았지만 가사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원승지가 듣고 나서 한마디했다.
[사형, 방금 부르신 노래 아주 훌륭합니다.]
[아니, 내게 그런 재주가 있겠나? 이 노래는 츰왕 휘하에 있는 이암 공자가 지은 노래라네.]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더 했다.
[이 또한 이 공자님의 대작이군요. 그는 늘 고통받는 백성을 잊지 않으니 진정 대호걸이요, 영웅입니다!]
원승지는 천육백석을 다 헤아리기도 전에 온가 네 사람에게 가서 모조리 치료를 해 주었다. 그들은 밤새 혼절해 있어 기력은 이미 쇠약하였고 안색 또한 나빴다.
[정말 사죄 드립니다.]
황진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이 백미 천육백석을 준비했으니 그대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오. 그러나 석량파의 명성은 크게 올라간 것 아니오? 이 거래는 사실 그대들에게 큰 이득이 될 것이오.]
그들은 한마디의 반박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황진이 남은 쌀을 다 헤아리고 나서 다시 빈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자, 이제 우리도 갑시다!]
원승지는 청청과의 이별을 생각했다. 그들 모녀는 이미 온가와 사이가 나빠졌으니, 여기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황진과 상의해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청청이 그의 어머니를 껴안고 울기 시작한 것이었다.
[승지오라버니!]
원승지는 깜짝 놀라 물었다.
[왜 그러지?]
그때였다. 쏴아하고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청청의 뒤로 네 자루의 칼이 뻗쳐왔다. 사방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온방시가 문뒤로 피하자 펑소리가 나더니 대문이 쾅하고 닫혔다.
청청이 울부짖었다.
[할아버님이 우리 엄마를 독살하려고 그래요......!!] 원승지가 급히 몸을 돌려보니, 온의의 등뒤로 이미 칼이 꽂혀 있었다. 원승지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화가 나서 손을 뻗쳐 칼을 빼내려고 했다. 황진이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뺄 수 없어. 빼는 즉시 죽을거야!]
온의의 상처가 깊어 이미 구하기 어렵게 됐음을 보고 즉시 그녀의 두 급소를 눌러 고통이나 가시게 해주었다.
온의는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
[청아, 피해라. 나는......, 나는 네 아버지 계신 곳으로 간다. 네 아버지 옆에선 아마 나를 기만하는 무리도 없을 것이다.]
청청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온의가 원승지에게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속일 수는 없어.......]
원승지가 말했다.
[백모님은 저희들 모르는 무엇을 숨기시는 것 같은데.......] [그에게 유서가 없었느냐? 내게 남긴 말이 없었느냐고?] [무술 도보(圖譜)를 남기셨습니다. 어제 저녁 오행진을 파괴한 것은 그가 남긴 무술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대신해서 금사랑군의 원한을 갚은 셈입니다.] [그가 내게 남긴 말은?]
원승지는 묵묵부답이었다.
온의는 크게 실망하였다.
[그는 연자탕을 마시고 기력을 잃었는데, 그 국은 내가 그에게 만들어 준거야. 그러나 정말로...... 정말로 난 모르겠어.]
원승지는 그녀를 위로했다.
[하숙부도 천상에서 모든 것을 아셨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의 죽음이 나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졌지만, 이제는 너무나 늦었어.]
청청이 울부짖었다.
[엄마! 아버진 벌서 아셨을거에요. 엄마도 역시 연자탕을 먹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버지만 죽었잖아요? 아버지도 그때 아셨을거에요.] [그는...... 그는 정말 알았을까? 어째서 내게 오지 않았을까? 유서조차 남기지 않고.......]
원승지는 그녀가 죽음에 임박해서 이 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뭐라고 위로를 해야 좋을지 몰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이 이미 흐트러지고 두 손이 축 처지는 것을 보자,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금사비급> 속의 <증보지도>에 온의라는 이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황급히 그 지도를 꺼내면서 말했다.
[백모님, 이것 좀 보세요.]
온의는 두 눈을 모아 크게 뜨고 지도 위의 글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소리쳤다.
[이것은... 그의 글씨야!]
그녀는 낮은 소리로 다시 그 아래 글을 읽었다.
[보물을 얻는 사람은 절강성의 구주에 있는 석량 온의를 찾아라....... 온의를 찾아라....... 그것은 바로 나야. 황금 천만냥으로 보답하라.] 또 그 아래 두 줄로 쓰여 있는 글씨도 읽었다.
[이제 천하를, 재물을 얻었는데 이것이 또한 어찌 쉬웠으랴. 재물을 중히 여기고 이별을 가벼이 하면 우환을 만나 크게 후회하리라.] 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원승지의 소매를 붙잡고는 말했다.
[그는 나를 원망하지 않았어. 그는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었어. 나를 생각하고 있었어. 이제 나는 그에게로 가는 거야. 그가 있는 곳으로.] 원승지는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러자 온의가 홀연히 눈을 뜨더니 또 한마디를 했다.
[원상공, 내 그대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네. 자네는 반드시 응해 주어야만 하네.......]
[백모님, 말씀하세요. 무엇이든지 들어 드릴께요.]
[첫째, 나를 그이 곁에 묻어 달라는 것이야. 둘째는...... 둘째는.......] [둘째는 뭐죠? 말씀하세요!]
[나는...... 이 세상에서 피붙이라곤 딸자식 하나 밖에 없어. 너희들, 너희들.......]

손으로 청청을 가리키더니 홀연히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두 눈이 감기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청청은 그녀의 어머니 위에 엎드려 통곡을 했다. 원승지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려 주었다. 황진과 안소혜, 최희민은 원승지가 그녀에 대해 매우 친절하고, 또한 그녀의 어머니의 죽음이 너무도 참혹했기에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이때 청청이 어머니의 시신에서 손을 떼더니, 칼을 빼들고 닫혀진 대문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너희들! 우리 아버지를 죽이고 또 어머니를 죽였으니 내가...... 내가 너희 온가를 모두 죽여 버리겠다!]
원승지는 청청에게로 다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청아! 그들은 정말 악독해. 그러나 그들은 너의 외조부잖니?] 청청은 소리지르며 몸을 뒤틀더니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원승지가 급히 그녀의 허리를 잡았으나 이미 그녀는 기절해 버린 후였다.
[청아! 청아!]
황진이 옆으로 오면서 말했다.
[서둘지 말게. 마음이 너무 상심했을 뿐이야.]
그리고 품에서 약쑥을 꺼내어 불에 태우더니 그녀의 코 가까이에다 대었다.
그녀는 몸을 비틀며 천천히 깨어났다. 그리고는 자기 어머니의 시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으나 말이 없었다.
[청! 어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승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와 함께 가자. 여기서는 네가 머물 수 없어.]
청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승지가 온의의 시신을 둘러매자, 다섯 사람은 온가의 대문에서 일어났다.
원승지는 몇 걸음 가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마당 앞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 가마니씩을 나눠주고도 백미가 가득 쌓여 처음 들어올 때와 똑같았다. 그걸 수십 마리의 참새가 쪼아먹고 있었다. 해는 높이 떠 있었고 대문은 굳게 닫혀 마치 그 안은 폐가와도 같았다.
황진은 최희민에게 한마디 했다.
[이 은 50냥을 우리들이 묵고 있던 농가에 갔다 주고 그들에게 오늘 밤 안으로 이사하라고 일러두어라.]
최희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째서 오늘 밤 안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요?]
[석량파 사람들은 우리들에게는 어쩌지 못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줄 것이 분명해. 네 생각에 농가의 사람들이 저들의 오행진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최희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과연 그렇겠군요!> 하고 수긍했다.
네 사람은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길을 떠났다. 10여리를 가다가 문득 길옆에 부서진 사당을 보았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가지. 우리를 소나 끌어가고 닭이나 훔쳐 가는 도둑놈으로 보지는 않겠지.]
[물론이지요.]
그들은 사당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이 부인의 시신을 어떻게 한다? 땅속에 묻어야 하나? 아니면 메고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만일 성안으로 들어가면, 칼에 찔려 죽은 시신이기 때문에 관청의 조사를 받게 될 텐데....... 우리야 두려울 것 없지만 번거롭긴 하겠지?]
그의 말속엔 땅속에 묻자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청청이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안돼요, 어머님은 꼭 아버지 곁에 묻어 달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아버님의 묘는 어디에 있지?]
청청은 말을 못하고 원승지를 바라보았다.
[화산에 있어요.]
네 사람은 놀란 얼굴을 했다. 원승지가 토를 달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금사랑군 하설의 선배에요.]
황진과 하설의와는 서로 나이가 비슷했다. 그가 무림에 나왔을 때는 이미 금사랑군의 위세가 대단했을 때였기에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 말했다.
[내게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말게.]
[황백부,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황진이 청청에게 한마디했다.
[그는 나의 사제인데, 네가 나를 백부라 부르는 것은 당치 않아, 그저 대형이라 부르게.]
최희민은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나는 그녀를 고모라 불러야 하나?)
청청은 다시 말했다.
[황대사형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최희민은 청청을 힐끔 쳐다보며 생각했다.
(제기랄, 이 계집애는 뻔뻔스럽게도 황대사형이라고 부르는군. 제기랄!) 황진이 청청에게 다시 말했다.
[어머님의 유언이 아버지와 합장이고 하시니 우리도 역시 그분의 뜻에 따르는 것이 좋겠지. 그러나 화산은 여기서 천리 길이고 시신의 운반도 어려워.
그리니 시신이 화산에 도착한 셈치면 옮기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 [뭐라고요?]
[화산은 험준하고 또한 올라갈 수도 없어. 시신을 운반하기란 더더욱 어렵고....... 물론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아버님의 유골을 옮겨와 합장하는 방법도 있지. 그러나 아버님의 시신은 이미 길혈(吉穴)에 안장돼 있으니 다시 움직인다는 것은 온당치가 못해. 안 그렇겠니?]
청청은 그의 말도 일리가 있음을 알고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내 생각으로는 어머님의 시신을 여기서 화장해서 그 재를 화산으로 가져가 안장하면.......]
청청은 사실 내키지는 않았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눈물을 흘리며 그 말에 동의했다.
사람들은 잡초를 모아 온의의 시신에 불을 질렀다. 청청은 어릴 때부터 온가에서 백안시 당했었다. 비록 사촌들이 그녀의 미모에 반해 비위를 맞추어 주긴 했으나 그녀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어머니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시신이 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원승지는 사당에서 기와 통을 찾아내어 온의의 시신이 탄 재를 담아놓고 두 번 절을 하였다.
[백모님, 천상에서라도 마음을 놓으세요. 제가 화산으로 모셔다가 편안히 합장해 드릴께요.]
황진은 그 일을 마치고 원승지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강서 구강으로 황금을 가져가야 하네. 츰왕이 사람을 보냈을 터이니 말일세. 원사제가 그 황금을 빼앗은 공로는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었어.] 청청이 끼어 들었다.
[저는 이 황금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만일 두 분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정녕 일을 망쳤을 것입니다.]
[이제야 알겠는가?]
[만약 황대사형께서 친히 호송하지 않으시면 대부분 도중에서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뭐, 뭐라고?]
최희민이 약간 어리둥절해 하자 황진은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원사제와 하낭자, 별일 없다면 함께 구강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 그러나 원승지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남경으로 가서 사부님을 뵈려고 합니다. 또한 최숙부도 만나야 하구요. 대사형께서는 어쩌시렵니까?]
[사부님의 신변을 생각하는 원사제의 마음에 탄복했네. 더구나 이번에 석량파를 크게 대파시키고 이름을 떨쳤으니, 그 정의로운 마음으로 백성의 어려움을 구제하는 정신을 이어 간다면 앞날에 큰 행운이 뒤따를 것이야. 부디 몸조심하게.]
원승지는 숙연해지면서 대답했다.
[사형의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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