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2-4

3학년2반 | 2022.01.15 07:48:46 댓글: 0 조회: 266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437

* 제 2 권 *

- 4 - 다시 만난 목상도인(木桑道人)

매검화가 속으로 굳게 결심하고 다시 공격할 자세를 취하자 원승지는 재빠르게 허공을 날아 칼끝을 그의 목에 대고 물었다.
[항복하지 않겠소?]
매검화가 무림에 들어온 이후, 이렇게 치욕을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탄식하며 돌아서려다가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손중군이 그의 눈을 보고 죽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몸을 떨며 외쳤다.
[나도 함께 죽여 주시오!]
원승지는 매검화가 죽었다 해도 크게 놀라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실수로 그를 죽였다 하나, 이제 사부와 둘째 사형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는 그를 살피며 가슴을 어루만지는데, 심장이 약하게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겨우 안심을 하고, 급히 그녀의 옆구리와 목의 혈맥을 몇 번 눌렀다. 그때 손중군이 원승지의 등뒤에서 내리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원승지는 그것도 모르고 숨을 쉬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청청과 유배생이 함께 뛰어가 손중군을 밀었다. 손중군은 땅에 쓰러진 뒤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검화가 천천히 깨어나자 청청이 손중군을 향해 말했다.
[그가 죽지도 않았는데, 왜 우셨습니까? 그에 대한 정이 대단히 깊었나 보죠?]
손중군은 창피하기도 하고 화도 나서 청청을 향해 달려들었다. 청청은 비록 상대가 화산파의 고수이며 권법이 빠르고 매서웠지만 피하지 않았다. 청청은 왼쪽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청청이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손중군은 갑자기, <아이구, 아이구!> 소리를 지르며 허리를 움켜 쥐었다. 청청이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사람을 때려 놓고, 자기가 도리어 아프다고 소리를 치다니!] 원승지가 그녀에게 그만두라고 눈짓을 하자, 청청은 화가 났지만 꾹 눌러 참았다. 손중군은 두 손이 붉게 부어 올라 있었다. 그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을 흘렸다.
손중군이 원승지의 등 뒤에서 공격을 할 때, 원승지는 벌써 이상한 기운을 눈치 채고 그녀가 내려치려고 손을 뻗칠 때 도리어 그녀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다. 처음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으나 청청의 어깨를 내려칠 때 힘을 주었기 때문에 이제야 고통이 극에 달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청청이 금사랑군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무예가 원승지보다 뛰어나다고 믿었다. 그래서 손중군도 그녀에게 당했다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십력대사, 정기운, 만리풍 등은 손중군을 안마해 주고, 혈도를 풀어 주어 부기와 통증을 가라앉게 했다.
매검화는 어려서부터 귀신수 밑에 있었다. 그래서 엄하고 강하면서도 쥐처럼 약삭빠른 것만 보아 왔다. 그 후, 그는 또 츰왕의 휘하에 있었기에 더욱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검화는 자기를 살려주고 또 손중군이 아파하는 것을 보자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어 정신을 차리고 원승지에게로 와서 세 번의 절을 하고 말했다.
[원형, 제가 너무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부탁하오니 손중군을 구해 주십시오.]
원승지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당신이 잘못한 것을 아는가요?]
매검화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는 초두목의 편지를 찢어 버렸고, 또 둘째 민형이 나서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원승지가 한 마디 차분하게 충고를 했다.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나서 행동 하시오.] 매검화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원형의 교훈에 따르겠습니다.]
[우리 화산파의 12규율 중에서 3, 5, 6, 11조는 무엇 인가요?] 매검화가 대답했다.
[적당한 계율이 네 가지가 있는데 제 3조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거나 배반을 해서는 안된다>입니다. 그런데 손중군은 확실히 과오를 범했습니다. 나입여 형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그의 손해를 배상하겠습니다.......] 초공례의 제자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누가 너의 더러운 돈을 가진다더냐? 팔을 잘라 놓고도 돈으로 보상을 한다고?]
매검화는 그렇게 얘기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으므로 묵묵히 말이 없었다.
원승지가 고개를 돌려 말한 사람을 보고 소리쳤다.
[나의 사질은 분명히 소홀하고 거칠기는 했지만, 그도 매우 후회하고 있으니 나형의 상처가 회복된 후에 그가 다시 겨뤄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매검화가 계속했다.
[제 6조는 <선배를 존경해야 한다.> 이것도 제가 잘못한 것을 압니다. 제 10조 <시비를 가리지 마라.> 이 죄도 압니다. 제 5조는 <간사한 무리들과 결탁하지 마라.> 그러나 민형은 정직하고 좋은 친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산파의 12계율을 모르고 있었다. 매검화의 말을 듣고 민자화가 제일 먼저 일어나 말했다.
[뭐라고? 내가 간사한 무리라니!]
원승지가 저지했다.
[민대감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민자화가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러면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원승지가 대답을 하려고 할 때였다. 초공례의 제자 두 명이 나입여를 데리고 들어와서 절을 했다. 나입여는 혈색이 안 좋아 보였으나 기분은 명랑해 보였다. 그가 말했다.
[원사형님, 저의 사부님을 구해 주시고 또 나와 대련해 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원승지가 겸손하게 말했다.
[친구간의 무예를 겨루는 일은 보통 있는 일입니다. 나형은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나입여가 가고 나서 손중군을 보니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원승지가 가까이 가서 혈을 짚어 구해 주려고 하자 그녀가 화를 내며 말했다.
[건드리지 말아요! 아파서 죽더라도 당신의 도움은 받지 않겠어요!] 그때 갑자기 와장창 소리를 내며 대문이 무너지고, 대문 밖에서 두 사람이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50세 가량 되어 보였는데 농부의 복장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40세 가량된 여자로,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다.
손중군이 소리치면서 달려갔다.
[사부님! 사모님!]
사람들은 그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신권무적 귀신수 부부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귀부인은 어린아이를 남편에게 주고 무서운 얼굴로 손중군의 혈을 짚어 주었다. 매검화와 유배생도 황급히 앞으로 가서 절을 하고, 이번 일의 내력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원승지는 귀신수의 행색은 초라하나 사람을 누르는 기운이 있음을 보고 매검화와 유배생의 뒤로 가서 절을 하였다. 귀신수는 손으로 그를 잡으며 당치도 않다고 사양하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귀부인은 손중군을 안마하면서, 차가운 눈초리로 원승지를 뜯어보았다.
손중군은 고통이 좀 덜해지자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사모님, 저 사람이 나의 무술이 엉망이라고 했어요. 대신 좀 혼내 주세요.] 귀부인이 말했다.
[흥! 우리 문파가 좋지 않다고? 내가 직접 혼내 줄 테니 말리지 마시오!] 원승지가 황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경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귀부인은 여전히 노한 얼굴로 말했다.
[감히 우리 문파를 우롱하다니, 사부님은 안중에도 없군 그래. 너를 가장 총애하더니, 그렇게 무례하게 굴 수가 있느냐?]
사람들은 그녀의 말이 더욱 거칠어지는 것을 듣고, 원승지가 맞서서 기를 꺾어 주기를 바랬으나 원승지는 오히려 목소리마저 낮추고 있었다.
초공례와 민자화, 만리풍 등은 옆에서 불만스럽게 서 있었다.
손중군이 말했다.
[사부님, 사모님, 그는 금사랑군인가 뭔가가 그를 배후에서 도와주고 있다고 하면서 매형과 유형을 때리고,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 놨었습니다.] 원래 귀신수 부부는 아들 귀종신이 중병에 걸려 사방으로 명의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몇 명의 고명한 의사들이 와서 보았으나 모두 귀부인이 아들을 잉태했을 때 잘못하여 태내에서부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고칠 수가 없었다.
단지 영약인 복령(茯[草+令])만이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영약을 쓰지 않으면 1년 안에 바싹 말라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귀신수는 늦게 얻은 아들이라 꼭 목숨만은 살리려고 무림의 동지들에게도 약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으나, 천년된 복령은 이미 얻기 어려운 물건이 되어 있었다. 벌써 몇 년째 찾아다니고 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하루하루 바싹바싹 말라 가고, 귀부부는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금릉이 강남에서 제일 큰 도시이며 진귀한 물건이 많다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이곳까지 약을 찾으러 왔던 것이다. 무림에 수소문해서 매검화 등 세 사람을 남경에 보냈으나 손중군이 부상당해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낙담해 있었던 것이다.
귀부인은 본래 성질이 급하여 아들의 병이 중해지는 것을 보고 초조해하며 원승지에게 한바탕 퍼붓고는 그래도 분한지 남편에게 물었다.
[그 금사 괴물은 아직도 살아 있어요?]
귀신수가 말했다.
[죽었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것은 모르겠어.]
청청은 그녀가 무례하게 원승지에게 욕하는 것을 듣고 벌써부터 기분이 나빠있었는데다 또 자기의 아버지를 괴물이라고 하자 화가 나서 소리쳤다.
[당신은 정말 무지막지한 사람이군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귀부인이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그러자 손중군이 대신 대답했다.
[금사 괴물의 딸이랍니다.]
그러자 귀부인은 부르르 떨며 청청의 어깨를 내리쳤다. 청청은 통증을 느끼면서 화가 치밀어 주먹을 굳게 쥐고 달려 들려고 하였다.
원승지가 청청을 막아서며 낮게 말했다.
[청청, 내 말을 들어요. 제발 싸우지 말고.......]
청청이 놀라서 되물었다.
[왜요?]
원승지가 그를 달래었다.
[우리가 참아야지.]
청청도 그제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승지는 그녀의 성격이 강하고 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말 없이 온순하게 자기의 말에 따라 주어서 속으로 매우 기뻤다. 그래서 청청을 보고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귀부인이 계속 비웃는 투로 비아냥거렸다.
[금사, 은사가 다 뭐냐? 세상을 속인 도적에 지나지 않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데서는 우리 문하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내일 밤 3경에 지금산 우화대에서 만나 분명히 밝히자! 도대체 너는 우리파냐? 아니면?] 초공례가 곤란해 하며 말했다.
[신권에 있어서 대가이신 장본인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귀부인은 못 들은 척 하며 아들을 받았다. 초공례가 계속했다.
[원상공께서는 어려운 일을 아주 공평하게 해결하십니다. 매형과 유형, 손낭자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내일 밤에 만나는 것은.......] 귀부인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원승지를 쏘아 붙였다.
[뭐라고? 오지 않겠다고?]
원승지가 대답했다.
[사부님과 사모님은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제가 내일 아침 일찍 두 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두 분께서 어떤 벌을 내리시든 달게 받겠습니다.] 귀부인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누가 너를 믿겠느냐? 내일 밤에 너의 무예를 시험해 보고 나서 말하자.
자, 그럼 갑시다!]
그녀는 손중군의 손을 잡고 휭하니 돌아섰다.
원승지가 몸을 날려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살펴 가십시오.]
귀부인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버릇없는 것! 방해하지 마라!]
그리고는 장력으로 그의 머리를 쳤다.
원승지도 몸을 구부리며 피하다가 어깨에 맞았다. 얼마쯤 시큰하였다. 원승지는 두 발을 모아 비호처럼 날아 탁자를 뛰어 넘었다. 그러자 귀부인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무섭게 노려보고는 귀신수, 손중군, 매검화, 유배생을 데리고 문을 나섰다.
원승지도 문 밖으로 나서려고 하니 사방이 칠흑같이 깜깜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패거리중 한 명을 붙잡아 자백을 받아 내려는 생각을 하고는 다시 대청으로 돌아왔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야릇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여보게, 친구! 오래간만일세.]
원승지는 매우 친숙한 그 음성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대청 밖에서 두 사람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먼저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반백의 머리인데 등에는 검푸른 보따리를 메고 있었다. 그는 바로 경공 암기 비법을 전수해 준 목상도인이었다. 그는 한 손에는 사병운을, 다른 한 손에는 사병광을 데리고 있었다. 원승지가 기뻐하며 달려나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절을 하였다.
[도장님, 정말로 반갑습니다!]
목상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일어나시오. 그리고 이 사람이 누군지 좀 보시오.]
원승지가 몸을 일으키며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머리는 더부룩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였으나 어릴 때에 자기의 생명을 구해 준 바로 그 최추산이 분명하였다. 목상도인은 별로 변한 것이 없었으나 최추산은 츰왕에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로 너무 늙어 버려 잘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원승지는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 그를 덥석 끌어안으며 말했다.
[최숙부, 당신이었군요!]
원승지가 눈물을 흘렀다. 최추산도 옛날의 정이 되살아나서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민자화의 소리가 들렸다.
[당신들이 태백삼영을 괴롭히신다면서요? 어째서 놔주지 않는 것입니까?] 목상도인이 호탕하게 한바탕 웃고나서 말했다.
[붙잡고 노는거죠. 안됩니까?]
원승지가 목상도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분은 목상도장이십니다. 철검문의 대선배님이시죠.] 또 최추산을 가리키면서 소개했다.
[이 분은 최추산이란 어른으로 복호장법의 대가십니다. 저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신 분입니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천변만겁>하다는 목상도인의 명성은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행적이 너무도 신출귀몰하여 십에 열덟, 아홉은 그동안 그를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십력대사와 곤륜파의 장심일만이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도 까마득한 후배였기 때문에 황급히 달려가 절을 했다.
사람들은 십력대사와 장심일 같은 신분에 있는 사람도 이렇게 공경하는 것을 보고 모두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목상도인이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지난달에 어떤 사람이 외국과 내통하려고 남경에서 매국의 일을 꾀하고 있다기에 모르는 체 방관만 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 서둘러 왔소이다.] 민자화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가 도대체 누굽니까? 설마 태백삼영은 아니겠지요?] 목상도인이 한마디했다.
[그들이 틀림없습니다. 그 잘난 체 하는 영웅호걸들이죠. 짐슴만도 못한 것들 같으니라구!]
민자화가 끼어들었다.
[그 세 사람은 좋은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수치스러운 일을 하겠습니까? 좋은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는 마십시오.] 목상이 대답했다.
[나는 그 세 녀석들을 만나 본 적도 없고, 원한도 없는데 어찌 그들에게 누명을 씌우겠소? 그들이 만주 몽고인과 몰래 내통하여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을 이북 땅에서도 직접 들었는데 그래도 거짓이란 말이오?] 민자화가 물었다.
[증거라도 있습니까?]
목상이 화를 내며 말했다.
[증거? 무슨 증거 말이오? 설마 내 말에 계략이라도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니겠지요?]
[대체 그것을 누가 믿는단 말이오?]
목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는 대체 누구냐?]
원승지가 대신 대답했다.
[이분은 선도파의 민자화 대감입니다.]
[그렇다면 너의 사부 황옥도인도 나의 말이라면 꼼짝 못하는데, 너는 무슨 배짱으로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것이냐?]
사람들은 비록 무림의 선배로서 민자화를 존경하나, 이렇게 독단적이고 횡포를 부리는 데는 같이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논쟁에 끼어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승지는 품안에서 편지를 꺼내어 민자화에게 주며 말했다.
[민대감이 모두에게 큰 소리로 읽어 주십시오.]
민자화는 편지를 받아 몇 자 읽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원승지는 그가 매검화처럼 편지를 찢어 버리려고 한다면 즉시 혈을 눌러 그것을 빼앗으려고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민자화는 큰 소리로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그 편지는 만주 예친왕 다미곤이 태백삼영에게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기회를 봐서 강남 도방(道方)의 기반을 빼앗고 무림의 인사를 인질로 삼아 죽이고 동시에 세력을 넓히면서 청병이 들어가면 즉시 내란을 일으키라는 명령이었다. 편지 끝에는 예친왕의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민자화가 다 읽기도 전에 사람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화를 냈다. 정기운이 태백삼영을 붙잡아 혈을 누르며 물었다.
[또 어떤 계략이 있느냐? 빨리 말해라!]
태백삼영은 눈을 부릅 뜰 뿐 아무말이 없었다. 정기운이 두어번 그의 뺨을 때리자 금세 얼굴이 부어 올랐다.
원승지가 이 사건의 경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태백삼영이 자신의 죄를 부인하지 않고 말했다.
[청병이 언제 들어올지는 모르지만, 곧 청국의 천하가 될 것이오. 당신들도 지금 투항하면 개국공신이 될 것입니다.]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정기운이 그의 가슴을 쳐서 실신시켰다. 정기운이 입을 열었다.
[도장님, 이런 간사한 무리들을 그래 그냥 두시렵니까? 당장에 죽여 버립시다!]
초공례가 끼어들었다.
[이들에게는 반드시 또 다른 무리가 있을 것이니 좀더 자세하게 조사해 봅시다. 그리고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 날 함께 모여 의논해 봅시다.] 민자화는 교활한 인간에게 이용당한 것을 알고는 매우 분해하며 초공례에게 사죄를 하였다. 그리고 원승지에게도 한마디 했다.
[만약 원공께서 해명해 주시지 않았다면, 교활한 사람들의 음모를 알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소인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십력대사, 정기운, 장심일 등도 모두 원승지에게 감사했다.
목상이 등에 메고 있던 바둑판을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바둑알을 꺼내며 원승지에게 말했다.
[요 몇 년 동안 내가 승지에게 신세만 졌는데, 다른 것으로는 도움을 줄 것이 없으니 바둑이나 한 수 가르쳐 주지.]
원승지는 그가 흥겨워 하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앉아서 바둑돌을 잡았다. 목상이 눈가에 웃음을 가득 담은 채 나머지 사람들에게 한마디했다.
[당신들은 이제 가서 주무십시오. 우리의 바둑 기술이 하도 기묘하여 보아도 이해 못할 것입니다.]
초공례가 최추산을 이끌고 잠을 자러 갔다. 그러나 청청은 옆에서 눌러 앉아서 도무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초원아가 잠시 후에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왔다. 청청은 보고 앉았다가 진력도 나고 팔에 입은 상처도 고통이 심해 탁자에 엎드렸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목상이 원아에게 말했다.
[초낭자, 그녀를 좀 안고 들어가 재우시오.]
원아는 얼굴을 붉히며 못들은 척했다. 목상도인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는 여자입니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시오?]
원아가 원승지에게 물었다.
[원상공님,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원승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남장을 한 여자입니다. 밖에서 활동하기에는 아주 편하죠.] 원아는 청청보다 한 살 적었으나 그녀의 아버지에게 단련되어 매우 총명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의 생사와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청청이 남장한 여자라는 것도 알아차리질 못했었다. 원아가 청청을 안아 일으키며 보니 가는 눈썹과 앵두 같은 입술, 그리고 백옥 같은 살결이 과연 아름다운 여자였다.
원아가 웃으며 말했다.
[자, 우리 안에 들어가서 잡시다.]
청청이 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졸리지 않아요. 바둑 두는 것을 봐야 하는데. 도장님, 앞으로 몇 국이나 더 두실 계획이에요?]
목상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
[잠시 쉬고 나서 다시 보지요.]
초원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청청을 안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원승지는 요 몇 년 동안 바둑을 두어 보지 않아 생소했고 또 내일 밤, 귀씨 부부와의 약속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자꾸 실수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
[도장님, 청청이 여자란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목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와 너의 최숙부와는 5일전에 만났지. 내가 너의 무예와 인품이 크게 진보한 것 같더구나. 아직 너의 사부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너의 적수가 못돼!]
원승지가 황급히 일어나서 공손하게 절을 하며 말했다.
[전부 사부님과 도장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만약 도장님께서 시간이 있으시다면 저에게 다시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목상이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서 바둑이나 배워 두면 나중에라도 헛되게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야. 너의 무술은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렀는데, 내가 무엇을 가르치겠느냐?]
그는 더욱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예를 뛰어나게 하는 것도 쉽지 않으나, 인품을 바르고 곧게 가지는 것 또한 어려운 문제인 게야. 너는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그 여자와 동행하면서 그렇게 예절바른 것을 보고서 나와 너의 최숙부는 정말 감탄했느니라.] 원승지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어째서 자기와 청청과의 친숙한 관계를 모르는 척하시는 걸까? 하고 원승지는 생각했다.
계속 바둑을 두는데 목상이 갑자기 원승지의 영역이던 서쪽 구석에 검은 돌 하나를 놓았다. 그가 말했다.
[승지야,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명목이 있기 때문이야. 며칠 후에 나는 서장으로 갈 것이네. 이 흰 돌이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는 듯 승패는 실로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지.]
원승지가 놀라서 물었다.
[도장님, 만리나 떨어진 서장에는 무슨 일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목상이 탄식하며 말했다.
[물건을 하나 찾으러 가는데, 그것은 선사의 유물이야. 그 물건을 찾지 못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나 만약 그것이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게 되면 큰일이야. 상대방은 이미 몇 년 전에 찾으러 갔으나 나는 이제 겨우 알게 되었어. 그러니 지금 당장 뒤쫓아간다 해도 많이 늦은 것이야.] 원승지는 그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이 일이 매우 중대한 것임을 깨달았다.
[소인도 도장과 함께 가겠습니다. 그럼 언제 떠나실 겁니까?] 목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이 일은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야.] 그때 대청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알고 보니 지붕 위에서 세 사람이 뛰어내렸다. 원승지는 목상과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계속 바둑을 두었다.
목상이 입을 열었다.
[너의 사형수(師兄嫂)가 방금 한 행동을 모두 지켜 보았다. 걱정마라. 내일 내가 혼내 줄 테니.]
원승지가 다시 말했다.
[소인은 사형과 사형수와 싸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 도장님께서 그들이 이해하시도록 설득 좀 해 주십시오. 소인의 죄를 인정합니다.] 목상이 차갑게 말했다.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정신을 차리게 해주지!]
그때 지붕 위에서 또 4명이 뛰어 내리며 4개의 표창을 동시에 던졌다. 목상이 손으로 받아 탁자 위에 놓았다. 대청 밖에 있던 7명이 한꺼번에 안으로 들어오는데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다.
[네가 한꺼번에 저 7명을 해치울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원승지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7명중에서 2명은 태백삼영을 구하러 가고, 나머지 5명은 칼을 들고 공격해 왔다.
원승지가 바둑알을 한 움큼 집어 뿌리자 7명의 적은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땅에 떨어뜨렸다. 원승지가 그들의 급소에 명중 시킨 것이었다.
목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단한 진보야! 하하하!]
원아는 청청을 재우다가 이 소리를 듣고 황급히 뛰어 나와 보니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앉아서 바둑만 두고 있었다. 그런데 땅바닥에는 7명의 남자들이 뒹굴고 있었다. 그녀는 이유도 묻지 않고 하인을 불러다가 7명을 모두 태백삼영과 함께 묶어 두라고 일렀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쌍방이 서로 결말이 나지 않았다.
목상이 웃으며 말했다.
[너의 무예는 많이 훌륭해졌지만 바둑두는 솜씨는 조금도 늘지 않았구나.] 원승지가 찬사를 보냈다.
[그것은 도장님의 솜씨가 하도 신출귀몰하셔서 제가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상은 흥이 나는지 나직하게 콧노래를 부르며 손으로 박자를 맞추다가 원아에게 한마디했다.
[사람들에게 그들을 좀 수색해 보라고 해라.]
원아가 하인을 시켜 수색해 보니, 무기와 은화 이외에 몇 통의 편지가 나왔다. 그 중의 하나는 예친왕 다미곤이 북경의 환관 조화순에게 보낸 것이었다.
목상이 화를 내며 외쳤다.
[간사한 도적놈들이 더욱 대담해지는구나! 흥, 환관들까지도 한 통속이 되었군 그래.]
그러면서 한 명을 끌어내 발로 배를 차서 내장을 파열시켰다. 그가 다시 한 번 차려고 하자 원승지가 그를 막아서며 말했다.
[참으세요, 도장님! 제가 자세하게 심문하겠습니다.] 목상은 화를 참지 못하고 편지를 구겨 쥐려다가 원승지에게 넘겨 주었다.
[너의 말대로 할 테니, 내일 다시 바둑이나 겨루자.] 원승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도장님만 원하신다면 열판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목상은 기쁜 얼굴로 하인을 따라 안으로 자러 갔다.
원승지는 이것을 빌미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명의 혈을 풀어 우두머리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30세쯤 되어 보이는 얼굴이 흰 사람을 가리켰다.
원승지는 그 사람의 혈을 풀며 심문했으나 그는 결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인을 시켜 서재로 데리고 들어가서 말했다.
[너의 이름은 어떻게 되느냐?]
[흥! 나의 이름은 홍승해다! 죽이려면 지금 당장 죽여라!] [네가 만약 사실대로 말한다면 내가 살려 줄 것이고, 조금이라도 숨기는 것이 있다면 당장 죽여 버릴 것이다.]
홍승해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간교한 괴로 나를 속이려고 하지 마라. 죽는 한이 있어도 말하지 않을 테니!]
원승지가 쏘아붙였다.
[흥! 너는 스스로 무예가 강하다고 여기는데 그게 정말이냐? 그러면 어디 나와 한번 겨뤄 보자. 네가 만약 이긴다면 놓아줄 것이고, 네가 진다면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홍승해는 원승지를 얕잡아 보고 쾌히 응낙했다.
[좋다! 네가 나를 이긴다면 네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답하겠다!] 원승지는 그의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을 잡아 당겨 순식간에 조각조각 끊어 버렸다. 홍승해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며 말했다.
[어떤 걸로 겨룰까? 밖으로 나가자! 무기로 하겠느냐? 아니면 권법으로 하겠느냐?]
원승지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바둑알로 너의 급소를 명중시켜 쓰러뜨렸는데, 정말 가소롭구나. 네가 대청 안으로 들어올 때 몸놀림을 보니 소림파의 무예더구나.] 홍승해는 원승지가 바둑을 두면서도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또 한 번 놀랐다.
원승지가 한마디 덧붙였다.
[나갈 필요 없다. 여기서 대결하자.]
홍승해가 갑자기 정준한 어투로 말했다.
[성함을 좀 알고 싶습니다.]
원승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나를 이기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원승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먹을 갈아 백지를 펼쳐 놓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에 쓰려는 글자가 무엇인지 알겠느냐?]
홍승해는 그가 무예를 겨루려고 하지 않고 글자를 쓰려고 하니, 이상하게 여기며 몸을 움직이려 하였다.
원승지가 갑자기 외쳤다.
[움직이지 마시오! 내가 여기에 어떤 글자를 쓸 때 나를 밀어 쓰러뜨린다면 당신이 이긴 것이니 즉시 도망가도 좋소. 그러나 내가 다 쓸 동안에 나를 움직이게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거요?]
홍승해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나도 더 이상 버티지 않겠소.]
그리고는 <이 청년이 나를 시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불공평하지 않겠소?]
원승지가 웃으며 말했다.
[상관없소. 내가 여기서 쓸 테니, 자 시작하시오!]
오른손으로 붓을 잡고 <회복지계>라고 썼다.
홍승해는 내공의 힘을 모아 원승지의 어깨를 밀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원승지는 어깨를 움츠려 마치 물고기가 헤엄을 치듯 홍승해의 움켜 쥔 손을 슬쩍 빠져 나갔다. 홍승해는 놀랍기도 하고, 화도 나서 자기파의 묘수로 소용돌이치는 파도처럼 공격해 들어갔다.
원승지는 의자에 앉아 오른손으로는 멈추지 않고 글씨를 쓰고 왼손으로는 상대방의 공격에 대응하였다. 원승지는 그가 볼 틈도 주지 않고 쉴새없이 공격해 오면 물러나고, 그가 물러나면 도리어 공격하였다. 드디어 홍승해가 <참교원>으로 맞섰다.
그러자 원승지가 말했다.
[당신은 <참교권>을 쓰려고 하는군. 나도 이제 다 썼으니 당신이 시작하면 나도 마지막 한 자를 쓰겠소.]
홍승해는 놀라서, <이 사람이 나의 권법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는데, 설마 우리 문파는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홍승해는 갑자기 머리를 수그리고 두 팔을 구부려 맹렬히 그에게 덤벼들면서, <네가 아무리 무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반드시 내가 쓰러뜨리고 말겠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 홍승해가 부딪치는 순간 몸이 공중에서 세 번이나 돌더니 땅바닥으로 나둥그러졌다.
그때 초원아가 자스민 차를 가지고 서가로 들어서며 말했다.
[원상공님, 사봉용정에서 새로 말린 것입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그러면서 찻잔에 가득히 따라 주었다.
원승지는 비취색이 도는 차를 받아 들고 향기를 맡으며 말했다.
[향기가 아주 좋군요!]
그러면서 책상 위에서 그 종이를 집어 들고 말했다.
[초낭자, 이것을 보고 틀린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오.] 초원아는 조용히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읽었다. 이 글은 서법이 평범하고 결구의 문장은 좀 서툴렀으나 한 획, 한 획을 정성 들여 썼으며 틀린 곳이 없었다. 원아는 감탄하는 눈빛을 띠며 말했다.
[정확합니다. 그런데 어떤 문장입니까?]
원승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것은 원독사께서 요동을 지킬 때 황제에게 올렸던 상주문입니다.] 원아가 말했다.
[원상공게서는 문무를 겸비하신 분이라, 이런 상주문까지도 자세하게 외우고 계시는군요.]
원승지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외우고 있는 것은 불과 몇 편뿐입니다. 그것도 아주 어렸을 때 외워 둔 것이죠.]
원숭환이 요동 변방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숭정황제는 의심이 많고 소인배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 이를 염려하여 직접 상주문을 올렸다. 후에 숭정황제는 간신의 말만 믿고 원숭환을 죽여 버렸다. 원승지는 어렸을 때 응송에게 글자를 배우면서 원승환의 그 상주문을 외웠던 것이다.
초원아가 입을 열었다.
[상공님, 이 글을 제게 주실 수 없을까요?]
원승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의 글씨는 정말 졸필입니다. 방금 저 친구와 도박을 하려고 쓴 것 뿐이죠. 초낭자가 원한다면 가져가도 좋지만, 정말 학문하는 사람이 보면 비웃을 것입니다.]
그래도 초원아는 그것을 신중하게 품고 서가를 나갔다.
원승지는 홍승해에게 물었다.
[만주 구왕이 주화순을 만나서 대체 무슨 일을 상의하라고 했느냐?] 홍승해는 묵묵히 말이 없었다.
원승지가 다시 물었다.
[우리가 방금 대결해서 누가 이겼지?]
홍승해가 대답했다.
[상공의 무예는 정말 굉장하십니다.]
원승지가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당신, 왼쪽 가슴 부근에 감각이 있어요?]
홍승해가 얼핏 만져 보더니 깜짝 놀라서 말했다.
[완전히 마비되었네요.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원승지는 또 물었다.
[오른쪽 허리는 어떻고?]
홍승해가 만지다가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여기도 감각이 없어요. 통증도 전혀 느낄 수 없구요.] 원승지가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것이야.]
그리고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책을 꺼내 보며,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홍승해는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 원승지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왜 아직 안 가시오?]
홍승해가 기뻐하며 물었다.
[그러면 나를 놓아주는 겁니까?]
원승지는 덧붙였다.
[당신이 가겠다면 붙잡지는 않겠소.]
홍승해는 기뻐하며 밖을 쳐다보고 절을 하며 말했다.
[소인, 상공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책을 읽는데에만 몰두했다.
홍승해는 서가 앞에서 주위를 살펴보고 거기에 아무도 없자 지붕 위로 뛰어 올라 황급히 달아났다.
초원아는 원승지가 자기 아버지를 위험으로부터 구해 준 것에 감사하여 꼭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기 집에 머무르는 동안만이라도 정성을 다해 모시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녀는 서가 앞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다가 아직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하인에게 간식을 준비하라고 시키고는 손수 서가로 들고 들어갔다.
원승지는 <충의 수호전>을 보고 있었다.
초원아가 말했다.
[원상공님, 왜 아직 안 주무십니까? 간신을 좀 드시고 쉬시지요.] 원승지가 고개를 말했다.
[낭자도 빨리 주무십시오. 공연히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나는 여기서 사람을 기다리고.......]
그때 창 밖에서 그림자가 비치며 한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초원아가 깜짝 놀라서 자세히 보니 그는 홍승해였다. 그는 원승지 앞에 다소곳이 꿇어 앉으며 입을 열었다.
[원상공, 제가 잘못했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원상공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려 해도 그는 그대로 꿇어 앉은 채 말했다.
[앞으로는 마음을 고쳐 먹겠습니다.]
초원아는 옆에서 눈을 크게 뜨고 지켜 보았으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승지가 홍승해의 혈을 풀어 주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소?]
홍승해는 원승지의 본 뜻을 알고 정중하게 말했다.
[원상공이 묻는 것이면 무엇이든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초원아는 그들이 중대한 기밀을 이야기하는 것인 줄 알고 그만 밖으로 나와 주었다.
원승지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당신의 죄가 결코 가볍다 할 수는 없지만 이후에라도 공을 세워 죄를 면하고 싶소?]
홍승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도 이 일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조상들께도 누를 끼친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상공께서 제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으니, 실로 부모니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감언이설에 속아 이 일에 끼어들었고 그래서 빠져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원승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일어나시오. 앉아서 천천히 얘기합시다. 도대체 누가 당신이 가려는 길을 막았소?]
홍승해가 분해하며 말했다.
[화산파의 귀부인과 손중군 무리들이오.]
이 말을 듣자 원승지는 의외라는 듯 황급히 되물었다.
[뭐요? 그들이?]
홍승해도 별안간 얼굴색이 변하며 물었다.
[상공께서도 그들을 압니까?]
원승지가 말했다.
[방금 그들과 한바탕 했습니다.]
홍승해는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고 나서 말했다.
[그 두 여자의 재주가 비록 뛰어나다 해도 원상공의 적수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몹시 흉악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조심해야 합니다.] 원승지가 다시 물었다.
[그들이 당신에게 접근했다니, 대체 무슨 일 때문이오?] 홍승해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이제와서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저는 본래 산동에서 본전에도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업자 중에 의형님이 계셨는데, 손중군을 보고는 반해서 그녀에게 구혼을 했습니다.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갑자기 형님의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 저는 분해서 그녀를 납치해서 형님과 맺어 드리려고 다른 사람과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귀부인과 손중군이 그날 밤에 몰래 찾아와 갑자기 형님을 죽이고, 다른 친구들까지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저는 빨리 도망쳐서 다행히 목숨만은 구했던 거죠.]
원승지가 다시 물었다.
[사람을 납치해다가 결혼을 시키다니 그것은 당신이 나쁜 것 아니오?] 홍승해가 대답했다.
[그런데 또 그들은 저의 고향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찾아와서 70노모와 아내와 3명의 자녀까지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원승지도 여기까지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승지가 이어서 물었다.
[그들이 당신의 모친과 처자를 죽인 죄도 크다 하지만 당신도 나빴습니다.
게다가 사사로운 원수 때문에 어째서 청에 투항하여 한족을 배반했죠?] 홍승해가 말했다.
[원상공께서 나의 원수를 갚아 주시오. 당신이 나를 뭐라고 욕해도 괜찮습니다.]
[원수를 갚는다고? 귀부인의 무술은 뛰어나고, 그 남편의 신권은 상대할 사람이 없소. 도대체 구왕은 당신을 보내 조환관과 무슨 일을 하라고 했소?] 홍승해가 대답했다.
[구왕이 저에게 분부하시길, 조환관이 궁중에서 하는 말을 모두 들었다가 다시 자기에게 보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원승지가 다시 물었다.
[조화순은 환관 중에서도 우두머리인데 그가 청에 투항하려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다미곤이 그에게 좋은 자리를 준다고 했습니까? 준다고 해도 설마 우리 명나라의 황제보다 더 좋은 자리를 줄 수야 있겠습니까?] 홍승해가 대답했다.
[청의 구왕은 후에 북경을 공격하면 그를 죽이지 말고, 그에게 가산을 보유하게 하고, 그가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그때는 능지처참하라고 했습니다.] 원승지는 그제서야 모든 것을 알아 차리고 말했다.
[조환관이 한족을 배반하고, 죽기가 두려우니, 살아 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이로군.]
홍승해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원승지는 밤이 깊었음을 깨닫고 그제서야 겨우 잠을 자러 들어갔다. 그는 홍승해와 같은 침실을 쓰자고 했다. 홍승해는 원승지가 자리를 믿고 경계하는 빛이 없음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사실 원승지는 홍원공으로 그에게 상처를 준 후에 그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돌아오리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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