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2-6

3학년2반 | 2022.01.16 07:48:16 댓글: 0 조회: 334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688

* 제 2 권 *

- 6 - 영웅호걸들

원승지는 상자를 옆으로 기울여 소리가 나지 않도록 큰 수레에 실었다.
청청이 웃으며 곁으로 다가왔다.
[당신 말대로, 이 무리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돈을 갉아먹었는지, 큰 사형의 주판으로 한 번 계산이나 해보세요.]
그때였다. 멀리서 호각 소리와 웅성거리는 사람 소리가 들리더니 과연 대부대가 몰려왔다. 원승지가 동작을 서두르며 말했다.
[관병들이 오는 것 같군. 도적들은 다시 오지 못할 테니. 자, 갑시다.] 마차의 인부들은 다행히 무사했다.
그들이 막 떠나려고 하는데 수백 명의 관병이 2개 부대로 나뉘어 양쪽에서 몰려들었다. 앞에선 대장이 긴 칼을 휘두르며 외쳤다.
[너희들, 뭐하는 거냐?]
홍승해가 나서서 대답했다.
[길을 가는 백성들이오.]
그러자 대장이 또 소릴 질렀다.
[그런데 왜 여기에 핏자국이 이렇게 있느냐? 너희들, 무기를 가지고 있구나!]
홍승해가 다시 대답했다.
[강도가 길을 막고 우리를 해치려고 했습니다. 다행히도 당신들이 이렇게 달려오는 것을 보자 강도들이 놀라서 달아났습니다.]
대장은 수레 위에 실려 있는 큰 철상자를 보더니 냉랭하게 물었다.
[저것은 뭐냐?]
홍승해가 다시 대답했다.
[짐입니다.]
대장이 눈알을 차갑게 구리며 명했다.
[열어 봐라. 좀 봐야 되겠다.]
[단지 옷가지들 뿐입니다. 뭐 특별한 물건은 없습니다.] 그러자 대장이 목소리를 높여 무섭게 외쳤다.
[나는 이미 열라고 말했다. 어서 빨리 열어라!]
보다 못한 청청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법에 위배되는 물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장은 이미 화가 나 있었다.
[어린 녀석이 간도 크구나!]
그러면서 긴 칼을 휘둘러 그를 내리치려고 했다. 청청은 얼른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 대장은 철상자를 튼튼하게 여러 번 맨 것을 보고, 귀중한 물건이 들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더욱 빼앗고 싶은 욕심이 치솟았던 것이다.
[감히 거절하다니! 얘들아, 저 물건을 압수해라!]
[관병이 백성의 물건을 빼앗다니, 말이나 되는가?]
[빼앗아라!]
이 말을 듣자 10여 명의 무리들이 와락 달려들어 상자를 들어올렸다. 그들은 비록 행위가 흉악하다곤 하나, 정말로 관가에 고발하는 것만은 두려워해서 더욱 소리 높여 외쳤다.
[이것들은 모두 도둑에게서 빼앗은 것이니, 감히 관가에 고발하는 자는 모두 단칼에 죽여 버리겠다.]
그러면서 칼을 휘둘러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원승지는 화가 났다. 몸을 살짝 피하면서 잽싸게 그의 등을 내리쳤다. 그는 말 위에서 기우뚱하는 것 같더니 그대로 곧 죽여 버렸다.
관병들은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청청, 아구, 홍승해가 앞에 있는 관병들을 일제히 공격하자 그들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곧 기마병들이 뒤에서 공격을 해 왔다. 원승지는 대장이 쓰던 큰 칼을 휘두르며 그들을 저지하였다.
그 사이 아구 등 세 사람은 마차를 끌고 숲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숲속에서는 관병들과 산동의 도적과 청죽방이 불꽃을 튀기며 싸우고 있었다. 도적들은 비록 무술은 뛰어 났지만, 관병의 수가 워낙 많아 뒤로 밀리고 있었다. 사천광과 정청죽이 이미 큰 부상을 당하여, 지휘하는 우두머리가 없게 되자 도적들은 관병의 공격에 밀려 끝내는 항복하고야 말았다.
원승지와 청청 등은 마차를 숲속의 은밀한 곳에 숨겨 놓았다. 청청이 근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원승지가 태연히 대답했다.
[도적들을 도와주고, 관병들을 모두 없애 버립시다.] 청청이 자기도 바라던 바라는 듯 크게 소릴 질렀다.
[좋습니다.]
그러자 원승지가 비장하게 외쳤다.
[너는 여기를 지켜라.]
청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구와 홍승해는 힘을 도와 수레를 막아서서 관병들을 무찌르기 시작했다. 관병들은 세 사람의 무술이 뛰어난 것을 보고는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를 못했다.
원승지는 나무 위로 뛰어 올라가 우선 사방의 형세를 살폈다. 아구와 몇 명의 청죽방이 관군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받고 있었는데 그 형세가 매우 위험했다. 원승지는 나무에서 뛰어내리면서 아구에게 말했다.
[서수산 언덕으로 피하시오!]
그러면서 원승지는 아구를 막고 있던 관군을 맡아 칼로 내리쳤다. 관군은 붉은 피를 뿜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아구는 휘파람을 불어 청죽방의 무리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피하였다. 원승지는 산동군에게도 서쪽으로 피하라고 명령하고 관병에게 둘러싸여 있는 도적들을 차례로 구해 냈다. 그리고 곧 모두를 모아서 산언덕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했다.
원승지는 무예가 뛰어난 10여 명의 도적들을 골라 청청과 함께 수레를 끌고 오라고 했다. 남은 관병들은 여전히 산아래서 함성을 지르며 주위를 지켰다. 원승지는 도적들에게 화살을 쏘아 산을 지키라고 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낙담을 하여 서로 자기의 목숨만 지키라고 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낙담을 하여 서로 자기의 목숨만 지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2백여 명의 관군들이 산으로 돌진해 오는 것을 보자, 용기 백배하여 화살을 쏘아댔다. 당장에 수십명이 죽었다. 관군도 용감하게 돌진했으나, 선두에 선 자들이 무참하게 공격을 당하게 되자 아무도 더 이상 목숨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원승지는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담이채주, 저홍유, 홍승해, 아구 등 네 사람에게 일개 부대씩 주어 그들을 방어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부상자를 치료하도록 하였다. 그는 또 청죽방을 안마하며 사천광의 피를 멈추게 하고 쉬도록 하였다. 산동군과 청죽방의 무리들은 원승지의 일행들이 자기들의 대장을 도와주는 것을 보고는 모두 그에게 감사해 하였다.
원승지가 청청에게 한마디했다.
[관병이 비록 숫자는 많으나, 우리의 적수는 되지 못한다. 지혜를 모아 보자!]
청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좋은 계책이라도 있습니까?]
원승지는 이 지역의 지형을 잘 아는 사람에게 형세를 물어 보고 나서, 마차 위로 올라가 다시 관병의 부대를 살폈다. 관병의 뒤에 큰 짐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청청에게 물었다.
[관병들이 지금 무엇을 약탈해서 운반하고 있느냐?]
이때 마침 저홍유가 이 말을 듣고 대신해서 말했다.
[은을 북경으로 운반하고 있는 중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원승지가 다시 물었다.
[은을 운반하는데 왜 저렇게 많은 부대가 호송하느냐?] 저홍유가 똑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지금은 천하가 어지럽습니다. 여기저기서 자칭 영웅들이 날뛰지 않습니까? 저 조공품들은 숭정황제의 생명과도 같은 것들이죠. 만약 착오가 생긴다면, 그의 자리가 흔들립니다. 그러니 자연히 많은 군대를 파견해서 호송케 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모두 수로로 운반했으나, 황제가 급하게 필요하다 하여 육로로 운반하는 중일 것입니다.]
원승지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관병들이 이렇게 중대한 임무를 띠고 가다가 이런 불상사를 당했으니 난감하겠구나!]
저홍유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우리들을 모조리 잡아다 끔찍한 죄명을 씌워 옥에 가두고 싶을 것입니다.]
원승지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관군은 백성을 핍박하고 백성들은 거기에 반항한다더니, 오늘 내가 그 꼴을 보는구나. 이 곳은 모두 골짜기고 둘러 싸여 있는데 대체 어디를 뚫고 나가면 좋단 말인가?]
저홍유가 이 말을 듣더니 크게 감복하여 땅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원상공께서 분부만 내리십시오. 모두 따르겠습니다.] 원승지는 땅에 그림을 그리면서 묘책을 생각한 뒤 명령을 내렸다.
도적의 무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원승지와 아구가 앞장서서 사람들을 이끌고 산을 내려갔다.
관병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방어를 하고 있는 사람은 몇 명되지 않았다.
모두 땅에 주저앉아 쉬고들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위에서 도적들이 물밀 듯이 몰려 내려오는 것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골짜기로 도망을 치자, 관병들은 함성을 지르며 추격해 갔다. 최후에 남은 수십 명의 도적들이 길목에 잠복해 있다가 관병들이 추격해 오자 그들을 방해하였다. 그러나 관병의 대부대가 공격해 오므로 그들도 그만 골짜기로 쫓겨갔다.
골짜기의 양쪽은 모두 높은 봉우리여서 지형이 아주 험악했다. 관병들이 골짜기 입구에 다다르자, 앞에 선 대장이 잠시 멈춰서 모두를 엎드려 있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앞의 큰 수레에서 철상자가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는 뚜껑이 덜컹 열렸다. 보석과 보물들이 땅 위에 흩어져 빛을 발했다. 그 부대의 대장은 크게 기뻐하며 그 보물 상자를 모두 빼앗으라고 명령하였다.
추격을 당하던 도적의 무리들은 갑옷과 병기를 버리고 우왕좌왕 했다. 길에는 금과 은으로 가득 찼다. 관병들은 서로 많이 가지려고 저희들끼리 싸워 일대 혼란이 이루었다. 대장은 도적의 무리가 흩어지는 것을 보자, 병기조차 땅에 버려 놓고 다시 방어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물상자를 빼앗아 앞과 뒤, 중간에서 보호하며 빨리 떠나도록 명령하였다.
이때였다. 원승지가 몸을 날려 절벽으로 뛰어 올랐다. 그는 돌벽 위의 등나무 가지들을 손으로 붙잡으며 관병들의 뒤를 따라갔다. 한참을 가노라니 관병의 수레가 줄을 이어 꿈틀거리며 가고 있었다. 그 수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수레는 모두 누런 천으로 덮어 씌운 채, 깃발을 꽂고 있었다. <대명강남조운> 이라는 붉은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내려가 보니 수레의 행렬이 마치 한 마리의 긴 황룡과도 같았다.
원승지는 이런 사실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한편 기쁘기도 하였다. 놀라운 것은 관병이 너무 많아서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고, 기쁜 것은 조공품들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원수 숭정황제를 제대로 한 대 치는 격이니 실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산에는 나무가 빽빽하게 차 있어서 더욱 가서야 수레의 행렬을 볼 수가 있었다. 얼마 안가서 가까이 있던 관병이 대오가 나무에 의해 가려졌다. 바짝 다가가니 그들이 하는 말도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수레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다가 점점 바퀴소리가 약해졌다. 그 수레는 은을 실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무가 드문 곳에 이르러 보니, 그것은 1백여 대의 죄수를 실은 수레였다. 죄들은 손을 결박당한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수레에는 <도적모모>, <강양도적>, <도적두목>, <반역자>, <회남도적> 등등이라 쓰여진 백기가 무수히 꽂혀 있었다. 모두 조정에 반항하던 사람이거나 도적의 무리들이었다.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을 모두 구해 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갑자기 수레 한 대가 지나가는데 그 깃발에는 <반역자 손중수>라고 쓰여 있었다. 원승지는 더욱 놀라서 몇 걸음 쫓아가서 또한번 자세히 보았다. 수레에 앉아 있는 사람은 과연 손중수였다. 그는 양 볼이 홀쭉한 것이 숱한 풍상을 겪은 기색이 완연했다. 옛날 성장봉에서 제사를 주도하던 때보다는 많이 늙었으나 기개가 넘치는 풍모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원승지는 놀랍고 의아스러워, 뒤에 오는 수레들을 차례차례 살폈다.
모두 아버지의 옛 친구로서 자기를 가르치고 돌봐 주던 아호, 주안국, 나대천 등 세 사람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응송은 보이지를 않았다. 원승지는 마음이 매우 씁쓸하였다.
죄인을 수레가 한참을 가도 끝나지 않자, 원승지는 다시 뒤로 달려갔다. 관병이 그를 발견하고는 북을 울리며, 한편에서는 화살을 쏘아 대었다. 그러나 원승지의 몸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의 눈에 관병 대열 맨 끝에 말을 탄 병사가 큰 칼을 들고 부대를 호송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원승지는 잠깐 속으로 생각했다.
(저 관군을 붙잡아 먼저 소란을 피운 다음에 그 틈에 이용해서 손숙부와 주숙부 등을 구해 내야겠다.)
결단을 내린 그는 몸을 날려 뛰어오를 자세를 취했다.
그때였다.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몇 마리의 말이 이쪽으로 질주해 오는 것이 보였다. 맨 앞에 말을 타고 달려오는 사람은 여자인데 분명 손중군이었고, 뒤에 네 사람은 둘째 사형 귀신수 부부와 매검화, 유배생이었다.
원승지는 기뻐서 크게 외쳤다.
[둘째 형님!]
그는 즉각 몸을 날려 귀신수 부부 앞에 가 섰다.
귀씨 부부도 놀라서 말을 멈추고 그를 내려다 보았다.
[응? 당신은? 그래 여기서 말하는 겁니까?]
[소인에게 급한 일이 있습니다. 형님과 형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일이 급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는 말채찍을 휘둘러 앞으로 달려갔다. 매검화도 그에게 인사만 하고 두 사람을 따라서 가 버렸다.
유배생이 잠시 말에서 내려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지금 아주 급한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처리한 후에 제가 원정군을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원승지가 잘라서 말했다.
[필요 없어! 지금 당장 유형의 도움이 필요해!]
유배생이 결연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돕겠습니다!]
원승지가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둘은 앞에 가는 관병을 추격해야 한다!]
두 사람은 곧 앞으로 질주해 갔다.
유배생이 중간에 물었다.
[사숙님은 왜 관병을 추격합니까?]
원승지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구해야 한다!]
유배생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들도 마침 관병을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원승지는 이 말을 듣고 기운이 솟구쳐 더욱 급히 말을 달렸다. 얼마 안가서 호송부대의 뒤쪽이 보였다. 그러나 귀신수 부부는 어쩐지 보이지를 않았다.
원승지는 빨리 앞으로 달려갔다.
호송부대의 대장이 그들을 발견하고 칼을 빼어 들면서 원승지에게 저항해 왔으나, 원승지는 한손으로 그의 칼을 빼앗고 말에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그의 급소를 누르며 물었다.
[죽고 싶으냐? 살고 싶으냐?]
그는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쳤으나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제발!]
원승지는 더욱 힘껏 눌렀다.
[그러면 죄인을 실은 수레를 모두 멈추라고 명령을 내려라. 빨리!] 그 대장은 시키는 대로 곧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귀신수 부부가 숲속에서 뛰어 나왔다. 그리고는 관병들을 무차별하게 죽이기 시작했다. 부대의 대열은 곧 흩어졌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것이었다.
원승지는 두 개의 작은 도끼를 들고 손중수가 탄 수레 옆으로 가서 크게 외쳤다.
[손숙부! 원승지입니다!]
손중수는 꿈을 꾸고 있는 듯 정신이 없어 보였다. 원승지는 좌충우돌하며 주아국, 아호, 나대천 등을 모조리 구출해 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백전노장이다. 지금은 비록 늙었지만, 기개는 아직도 여전했다. 그들은 곧 무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죄인들도 모두 구해 냈다.
이때, 앞서 가던 부대는 큰 돌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더 이상 갈 수 없어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원승지는 조공 수레 위로 뛰어 올라 앞으로 향해 달렸다. 얼마쯤 가니까 부대의 총대장이 갑옷을 입고, 긴 칼을 든 채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원승지는 질풍같이 달려가서 그 대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가 공중제비를 넘어 말에서 살짝 내려서는 바람에 붙잡을 수가 없었다.
원승지는 <관군중에 이렇게 무예가 뛰어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세 개의 동전을 날렸다. 그것은 목상의 바둑에서 배운 수법이었다. 대장은 그것을 칼로 하나씩 받아 조각을 내어버렸다. 원승지는 이 대장이 어디서 이런 <만천화우>의 수법을 익혔는지 궁금하였다. 원승지가 연달아 동전이 흩어져 내렸다. 그러자 마침내 대장도 원승지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원승지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원승지가 내공의 힘을 모아 대장의 혈을 잡자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온몸에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원승지가 엄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살고 싶으면 전 관병에게 무기를 버리라고 명령해라!] 그러자 대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조공들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도적들에게 빼앗기면 마땅히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야!)
그래서 그는 고개를 들며 똑똑하게 말했다.
[죽일테면 당장 죽여라!]
원승지는 씩 한 번 웃고는 그의 몸을 공중으로 던졌다. 떨어지면 다시 받아 던지기를 서너번 되풀이하자, 대장은 이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원승지가 다시 강조했다.
[네가 만약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너도 죽고, 부하들도 모두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항복하지 않겠느냐?]
대장은 잠시 더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원승지가 자세를 바로 잡으며 물었다.
[그대의 성이 무엇이오?]
[수가 입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손짓을 하여 부장, 참장, 해격, 도사 등을 불러모아 도적들에게 항복을 하자고 했다. 그러자 도사를 화를 내며 그를 꾸짖었다.
[당신은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으로 어찌 그럴 수가 있소?] 그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원승지가 어느새 그를 붙잡아 내동댕이 쳤다. 그는 곧 졸도해 버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겁을 먹은 나머지 일제히 입을 모았다.
[대장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수대장이 결연히 외쳤다.
[모두들 싸움을 멈추어라!]
원승지도 산동 도적들에게 더 이상 살생을 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수대장에게 무기를 버리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수대장은 그말에도 저항하지 않고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였다. 양쪽 모두가 곧 싸우믈 중지하였다.
그런데 그때 다섯 사람이 수레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상자를 열어 은과 식량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들의 기세가 하도 등등하여 관병들도 감히 저지하지를 못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귀신수 부부 일행이었다. 원승지가 의아해서 물었다.
[둘째 형님,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내가 그들에게 가져오라고 하죠.] 귀신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대장과 그의 부하들이 원승지의 주변에 모여 있는 것을 보자 곧장 대장 옆으로 가서 그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마사영이 바친 복령수오환은 어디에 감추었느냐?]
수대장이 기가 죽은 채 대답했다.
[그분은 우리 수레가 너무 늦는다고, 다른 사람을 보내어 북경으로 운반했습니다.]
귀신수가 다그쳤다.
[그 말이 사실이냐?]
수대장이 고개를 떨구었다.
[내 목숨이 당신들 손에 달렸는데,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귀신수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아 멱살을 놓아주었다.
[조사해 봐서 만약 네가 속였다면, 당장 내 칼에 죽을 줄 알아라!] 그리고는 모두를 데리고 바람처럼 가 버렸다.
원승지는 둘째 형님 부부가 자기에게 원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섯 사람이 가고 난 후에 수대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들은 무슨 약을 찾는 겁니까?]
수대장은 항복을 하고 나서 마음이 산란하여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원승지가 재차 묻자, 대답을 안 할 수도 없어서 자초지정을 얘기하였다. 그제서야 원승지는 대강을 알 수 있었다.
황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천년이 넘은 큰 복령을 찾아냈는데, 마침 공교롭게도 절동에서 어떤 사람이 사람 모양을 한 수오를 발견하였다. 이 두가지는 천번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진귀한 영물이었다. 봉양의 총독 마사영이 이 소식을 듣고 그것을 빼앗다시피 수매하였다. 그리고는 훌륭한 약사에게 오래묵은 인삼주와 진주가루 등을 섞어 80알의 복령수오환을 만들게 하였다. 이 일이 강남의 의사와 약사들에게는 널리 알려졌다. 이 약은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리는 효험이 있고 또 체질이 허약한 사람이 먹으면 금방 튼튼해진다고 하였다.
마사영은 40이 넘어 중년이 된 뒤 매년 한 알씩 먹으려고 40알을 남겨 놓고, 나머지 40알은 숭정황제에게 바쳐 자기의 벼슬을 높이려고 하였다.
원승지는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형님의 아들이 병이 났다더니 다른 방법으로는 고칠 수가 없으므로 그걸 급하게 차는 거로구나!)
수대장이 얘기를 계속했다.
[마총독이 본래는 나에게 보약을 호송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수레의 행렬이 너무 늦고, 또 죄인을 함께 압송하는 것이 불길하다하여 김등영의 승표국 무인들에게 호송하도록 했습니다.]
마총족은 자기에게 40알을 남겨 놓은 것을 비밀로 하였다. 그가 가장 총애하는 애첩에게도 말하지 않았기에, 수대장도 더 이상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원승지는 속으로 둘째 형님이 어서 약을 구해서 어린아이를 살릴 수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황급히 물었다.
[그 사람들이 출발한 지는 며칠이나 됐습니까?]
[출발은 같은 날 했는데, 그 쪽은 10명뿐이고 속도도 빨라서 아마 5, 6일 즘 앞서 같을 것입니다.]
이때 손중수, 주안국, 아호, 나대천 등이 서로 만났다. 그들은 위험에서 벗어나고 또 원승지가 이렇게 뛰어난 성인으로 자란 것을 보고 모두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원승지가 포로로 잡히게 된 연유를 묻자 손중수가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날 성봉장에서 <산종>을 개최하고 있는데, 갑자기 명나라 군사가 습격해 왔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했으나 응송은 살해되고 손중수 등은 모두 간신히 위험에서 벗어났다. 후에 다시 모이기로 정하고서, 그 후 회복 노남 일대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는데, 그 일이 사전에 누설되었던 것이다.
지난 달이었다. 봉양 총독 마사영이 마침 군대를 파견하여 중견 인물들을 잡아 북경으로 호송되어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하늘이 도와 이곳에서 원승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손중수가 원승지에게 권했다.
[원공! 여기에는 도적들도 있고, 투항한 관병들도 모두 당신을 존경하니 지금이 바로 다시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북경으로 가는 것을 연기합시다.] 원승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손숙부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 일대는 영웅호걸들도 많고 우리들도 이렇게 모였으니 어디 모일 만한 장소를 한 번 찾아봅시다.]
곁에 섰던 손중수가 무릎을 치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태산이 어떻겠습니까?]
원승지가 쾌히 승낙했다.
[태산은 여기서도 멀지 않으니 그럼 그곳으로 합시다.] 그는 곧 흩어진 보물중에서 은화 20만냥을 꺼내 청죽방과 산동의 도적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저홍유에게도 5천냥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20만냥을 투항한 관병들에게 나누어주자 온 산이 떠나갈 듯이 함성으로 울려 퍼졌다.
원승지는 부상당한 정청죽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서 말했다.
[정사형이 빨리 기운을 차리시니 정말 기쁩니다.]
정청죽이 치하를 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오히려 당신의 도움을 받게 되어서 기쁩니다.] 원승지가 물었다.
[정사형도 나의 선친을 알고 계십니까?]
정청죽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보따리에서 손으로 베낀 책을 가져와 원승지에게 주라고 명령하였다.
[원공이 이것을 보시면 자연 알게 될 것입니다.]
원승지가 받아서 보니 겉면에 큰 글씨로 <유성기>리고 쓰여 있고, 또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정본직선>이라고 쓰여 있었다.
원승지가 궁금하여 물었다.
[정본직 선생이 바로 당신의......?]
정청죽이 대답했다.
[바로 나의 돌아가신 형님입니다.]
원승지가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러면 이 책은 선친의 일에 대해서 쓴 것입니까?]
정청죽이 탄식을 했다.
[그렇습니다. 형님이 일생 동안 가장 존경하던 분이셨습니다.] 원승지는 책을 펼쳐 중간 중간 읽어 내려갔다.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면서 대충 읽고 책을 덮으며 말했다.
[당신의 형님은 선친의 일을 이렇게 잘 묘사하고 칭송하고 있군요. 정말 감동적입니다.]
그러자 정청죽이 다시 탄식하였다.
[형님과 춘부장이 원래부터 잘 알았던 사이는 아닙니다. 형님은 평범한 백성으로 여러 번 뵙기를 청했으나, 춘부장이 너무 바빠서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난 형님은 포기하지 않고 독사의 부하로 드어가 마침내 독사의 눈에 띄어 문하생으로 뽑혔습니다. 그 후에 춘부장은 감옥에 갇히고 결국은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형님은 조정에 상소문을 올려 춘부장을 살려주십사고 탄원하다가 결국 한 패로 몰려 같이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원승지는 안타까운 듯이 신음 소리를 내었다.
[어리석은 임금 같으니!]
정청죽이 다시 말했다.
[형님이 유언을 남기시길, 원공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후에 원공의 묘에 <한 명의 미친 사람 때문에 두 명의 용감한 남자 가다> 라고 쓴 비석을 세워 달라고 하시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원승지가 또 물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모릅니까?]
정청죽이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리석은 임금과 간신들은 모두 춘부장이 적과 내통하고, 청과 결탁하였다고 누명을 씌웠습니다. 그러자 백성들도 시비를 가려 보지도 않고 그 말을 믿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춘부장을 끌어내어 몸을 갈래갈래 찢어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매국노의 피를 먹어야겠다고......!]
원승지는 여기까지 듣고 나서 울분을 참을 수 없는 듯 그만 흐느꼈다.
[손숙부..., 그...... 그게 사실입니까?]
손중수도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그때는 당신이 너무 어려서 상심할가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원승지는 이를 갈며 외쳤다.
[임금과 간신들! 그리고 북경의 백성들도 내가 그냥 두지 않겠다!] 손중수가 그를 진정시켰다.
[사실 백성들은 아무 죄도 없습니다. 황제가 명령을 내리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청나라 관병이 북경에서 약탈과 폭력으로 얼마나 많은 백성들을 죽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적과 결탁한 매국노에게는 원한이 뼈에 사무쳤던 것입니다.]
정청죽도 한마디했다.
[여기에서 이렇게 죽음을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황궁으로 들어가 임금을 암살하여 형님과 원독사의 원수를 갚도록 합시다.]
원승지가 결연하게 응수했다.
[모두 고귀한 의견들이십니다.]
그때 청청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응? 그 어린 아가씨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정청죽이 말했다.
[걱정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녀는 이미 떠났습니다.] 청청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침 저는 그녀를 찾자고 말씀을 드릴 참이었는데, 왜 가 버렸습니까?] 사람들은 거기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 원승지는 청죽방과 산동 도적 및 <산종>의 사람들을 시켜 단오절에 태산의 정상에서 일제히 모인다고 전하도록 각 지역으로 파견했다. 그리고 손중수, 주안국 등에게는 수대장과 투항한 군인들을 이끌고 험난한 곳에 산채를 세우도록 청했다.
이 싸움에서 마사영의 부하 6천명이 전멸했다. 조공품과 2만여냥의 은화를 모두 잃어버렸다. 천하가 진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사영은 다시 군대를 파견하여 그들을 토벌하도록 하였으나 도적들의 모습은 이미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석류꽃이 만발하는 단오절이 되었다. 태산으로 천여명의 여러 영웅호걸들이 모여들었다.
5월 5일 이른 아침, 영웅들은 석경골짜기에 모였다. 계곡의 중간은 평원으로,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대 승려들이 불경을 공부하던 곳이라 했다. 큰 돌에는 <금강경>이 새겨져 있는데 필치가 웅장하였다.
이 날 모임에는 원승지.청청.아구.홍승해 등을 제외하고도 손중수.주안국.아호.나대천 등도 동석해 있었다. 또 남경 금룡방의 초공례.초원아.오평.나입여 등도 있고, 강남의 청죽방의 정청죽과 산동군의 사천광.저홍유.담문리도 참여했고 절강 용유방의 영채도 함께 있었다. 하남.남양 청량사의 주지 십력대사, 해외 27개 섬의 맹주 정기운도 와 있고, 회남 비호곡의 두섭 광투천, 항외목의 대장 수감도 거기 있었다. 이 외에도 뛰어난 영웅호걸들이 모두 모였으니 정말로 하늘도 들먹일 일이었다.
이때, 갑자기 계곡 사이의 흰 구름속에서 붉은 노을빛이 사방에 번졌다. 해는 붉고 큰 태양으로 빛났다. 사람들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땅에 꿇어 앉았다. 그때 사천광이 이렁서서 말했다.
[저는 이 일이 우리의 모임을 축복해 주는 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방에다 대고 정중하게 절을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도 모두 따라서 겸손하게 절을 하였다.
사천광이 또 말했다.
[저는 우둔해서 사리를 잘 모르니, 정청죽이 여러분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두 사람은 전에는 서로 알지 못했는데 그 날 목숨을 걸고 한바탕 싸운 바람에 서로 상대방의 무예에 감탄하여 좋은 친구가 된 사이였다.
정청죽이 일어나서 말했다.
[우리들은 태산에 모이기 이전에는 그 숫자가 이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우리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단지 땅을 분할하고, 은을 감추었을 뿐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정청죽이 말을 계속 했다.
[이번에 이렇게 많은 영웅호걸들이 모였으니, 이제 더 이상 그럴 수는 없습니다. 조정은 탐관오리들로 가득차 사람 목숨이 개미보다도 못하게 취급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함께 힘을 모아 큰 일을 도모해 봅시다.] 정청죽이 계속 외쳤다.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좋은 동지들입니다. 그러니 서로 피로서 맹세하고 이후로는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사천광이 나서서 말했다.
[동맹에는 대장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 중 가장 훌륭한 사람을 뽑아 모두 그의 명령에 따르도록 합시다.]
그러자 이번에는 십력대사가 일어나 말했다.
[우두머리가 없으면 큰 일을 이룩할 수가 없습니다. 대장을 뽑자는 의견에는 저도 적극 찬성합니다. 그러나 대장은 반드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해야 하고, 인의가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정기운이 이어서 말했다.
[그 말씀은 당연합니다. 제가 보기엔 당신이 적합할 것 같은데요?] 십력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중대한 자리를 맡겠습니까? 사람 좀 웃기지 마십시오.] 무리들은 머리를 맞대고 누구를 뽑아야 좋을지를 의논했다. 한참 지나자 정청죽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높여 외쳤다.
[여러분들도 다른 의견이 없는 것 같으니, 지금 당장 뽑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키가 7척이나 되는 건장한 사내가 이러나 크게 한마디했다.
[개맹상 대감은 무림에서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비록 그 분이 여기에 안 계시지만, 대장은 마땅히 그 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사람들이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빛을 보였다.
원승지가 홍승해에게 물었다.
[개맹상은 대체 어떤 인물입니까?]
홍승해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원공은 그 사람을 아직 모릅니까?]
원승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겠는데요.]
홍승해가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무예와 덕망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무림의 사람들은 모두들 그를 존경합니다. 그는 맹가신권과 쾌활삼십장을 독창적으로 개발하였습니다. 그의 문하에 있는 제자들의 수는 셀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지금 그 분을 추천한 사람도 그의 제자로서 정유라고 합니다.]
원승지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개대감이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좋겠군요.] 그때 27개 섬의 우두머리 정기운이 말했다.
[그 분의 명성은 해외에 나가 있는 나까지도 알고 있을 정도로 높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마땅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유가 거들었다.
[정기운의 말도 맞습니다.]
정기운이 다시 말했다.
[개대감께서는 요 몇 년 동안 보정부에만 계셔서 지위와 재산이 우리들과 같지를 않습니다. 우리들이 하는 일은 산속에서 무사들을 규합하고, 탐관오리들을 섬멸하고, 정의를 위해 반란을 꾀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분을 우리의 우두머리로 모신다면 반드시 그에게 해가 될 것이니, 그것이 걱정됩니다.] 사람들도 이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두들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러자 금룡방의 대장 초공례가 일어나서 한마디했다.
[저는 무예도 뛰어나며 신의도 두터운 영웅 한 분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분은 비록 나이가 어리고,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위풍당당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도 공정하여 벼슬아치들도 감히 우리를 깔보지 못할 것입니다.]
사천광이 이어서 말했다.
[저도 젊은 영웅 한 분을 생각하고 있는데, 초두목이 말하는 그 분과 같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초공례가 다시 말했다.
[그 분은 나이가 많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또 식견이 다른 유수한 영웅호걸들 보다 넓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그 분은 우리의 대장으로 모셔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정청죽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천광의 성격은 제가 잘 압니다. 그는 절대로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청죽방도 사천광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그러자 십력대사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도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소승은 암만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사두목! 당신의 친구가 대체 누구입니까? 어서 밝히시고 모든 동지들의 공평한 판결을 내리도록 합시다.]
그러자 사천광이 원승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원상공입니다.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무예와 덕망은 훌륭합니다. 여러분과 원상공이 서로 알게 된 것은 얼마 안되지만, 정말 존경할 만한 분입니다.]
말이 끝나자 산동의 무리들과 청죽방의 사람들이 일제히 산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원승지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 황급히 일어나 손을 저으며 한마디했다.
[아닙니다, 저는 아닙니다.]
초공례가 조용한 가운데 갑자기 크게 웃었다.
[하하하......!]
사천광이 이에 화를 내며 물었다.
[초두목, 비웃는 것입니까?]
정청죽도 기분 나쁜 듯이 말했다.
[나도 평소에 당신을 존경해 왔는데, 이렇게 무례하게 구시니 다시 봐야겠습니다.]
그러자 초공례가 절을 하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감히 비웃을 수 있겠습니까? 두 분도 똑같이 누구를 추천했는지 아십니까?]
그리고는 세 사람이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같은 사람을 놓고 서로 추천하려고 말씨름을 한 것을 알고 한바탕 같이 웃었다.
원승지가 초조해하며 말했다.
[저는 나이도 어리고, 아는 것도 적습니다. 그래서 오늘 태산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 것만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그런 중책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다른 훌륭한 사람을 뽑아 주십시오.] 이번에는 손중수가 일어섰다.
[원공은 원독사의 외아들로서 우리의 <산종>과는 옛날부터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당신이 대장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기운이 중간에서 물었다.
[원독사가 누구입니까?]
손중수가 대답했다.
[요동에서 청나라 병사들을 무찌르고, 불행하게도 어리석은 임금에 의해 살해된 원숭환 독사 말입니다.]
그러나 원승지는 굳이 사양하였다. 하지만 어찌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투항한 군대의 수대장과 원승지가 죄인의 수레에서 구해 준 섭천풍, 양은용 등도 적극 추천하여 끝내 대장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정유가 원승지 옆으로 와서 그를 자세하게 뜯어보더니 별로 내키지 않는 듯이 말했다.
[원상공, 축하합니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원승지가 <제가 사실......>하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정유가 그의 손을 갑자기 꽉 조였다. 정유는 <패왕강정>의 무술이 뛰어났다. 그래서 원승지가 과연 대장이 될 만한 사람인가 시험해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치욕을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승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천근타>로 그와 맞섰다.
그러자 정유는 두세 번 계속 있는 힘을 다해 원승지를 쓰러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원승지는 계속 말했다.
[제가 사실, 이런 큰 임무를 맡았지만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유가 다시 공격을 시도하여도 원승지가 조금도 동요하지 않자 그는 감탄하는 기색을 보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은 마땅히 우리의 대장이 될 만한 분이십니다.] 그는 정중히 절을 하고는 가 버렸다. 원승지는 그렇다고 정유가 그렇게 밉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청죽이 도중에 한마디했다.
[우리가 이렇게 동맹까지 맺었으니, 규율을 정하여 선포하고 모두 그것을 지키도록 합시다.]
원승지가 그래도 사양의 빛을 보이자 손중수가 그의 구에 대고 나지막히 속삭였다.
[원상공, 이제 더 이상 사양하지 마십시오. 만약 대장의 자리가 불행하게도 교활한 사람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 해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영웅호걸들을 이끄는 대장이 되면 분명 독사 원수도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원승지는 손중수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늠름하게 절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러분의 뜻이 그렇다면, 저도 감사히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제가 비록 아는 것은 없지만 선배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태산에 모인 사람들은 산이 떠나갈 듯 또 한 번 환호성을 지르며 원승지를 격려했다. 그리고 그들은 촛불을 밝혀놓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
원승지가 손중수에게 부탁했다.
[손숙부께서 동맹의 규칙을 좀 만들어 주십시오.]
손중수는 사양하지 않고 즉시 사당 안으로 들어가 초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신의를 제일로 하여 몇 가지 규칙들을 써내려 갔다. 원승지는 그것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 서서 선언을 했다. 영웅호걸들은 물론 피로써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무사들의 태산집회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원승지는 무예를 배우기 시작한 지 반년도 못되어 그의 실력이 정상에 이르렀고, 게다가 기회를 잘 만나 부친의 명성에 버금가는 남북 직례(直隷).노(魯).
예(豫).절(浙).민( ).공(火+貢)의 7개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날 밤, 여러 영웅들은 연회를 베풀어 술과 음식을 배불리 나눠 먹으니, 노래소리와 웃음소리가 계곡 가득히 울려 퍼졌다.
이렇게 왁자지껄하게 놀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유성이 하나 떨어졌다. 그것은 이 산을 가리키는 신호였다. 사람들은 동시에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원승지와 손중수 등은 그해 성봉장의 집회에 관병이 습격한 일이 번개처럼 생각났다. 그러나 아직 나라에서는 조공품을 빼앗은 것을 알지 못할텐데 어떻게 공격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정찰병이 뛰어 올라와 숨가쁘게 원승지에게 보고했다.
[맹주님, 청나라 군대가 이미 청주를 공략하여 태안으로 진군하고 있다 합니다. 여기서 불과 2백여리 밖에 되지 않으니 저희에게 싸우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원승지가 놀라서 물었다.
[청나라 군대가 이렇게 빨리 오다니!]
손중수도 한마디했다.
[청나라 군대는 작년에 창자령을 넘어 곧장 청주로 와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고 있습니다. 듣자 하니 대장은 봉명 대장군 아파태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누루하치의 일곱째 아들인데, 몽고 황제의 형입니다. 그는 병사들을 잘 다루고 옛날에 다미애와 산동을 공격한 적이 있어, 산동의 지형에 대해서도 아주 익숙합니다.]
원승지가 다시 물었다.
[다미애가 산동을 공격했었습니까?]
손중수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벌써 4년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대장이 화산파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큰 돌 위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지금 청나라 군대가 청주를 공략하고, 태안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고 연회를 계속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산을 내려가 몽고병을 죽여 버립시다!]
그러자 또 어떤 사람이 외쳤다.
[몽고병들은 우리를 지독히도 괴롭혔습니다. 이번에 죽든 살든 한 번 붙어 봅시다!]
온 산이 떠나갈 듯 격분했다.
손중수가 원승지 앞으로 와서 말했다.
[대장! 모두들 몽고병과 싸우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원승지가 침착하게 말했다.
[나의 아버지는 일생을 바쳐 나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마침 영웅호걸들이 이렇게 모이셨으니, 산으로 내려가 싸웁시다!]
손중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청나라 군대의 소식을 알아 오라고 10여 명을 먼저 파견했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숭정 9년 6월, 청나라 황제는 아제격.아파태 등을 파견하여 장성을 공격하고, 북직례를 점령했습니다. 11년에는 구왕 다미애가 아파태를 이끌고 와서 또 북직례를 점령하고 충신 노산승과 송승종을 죽였습니다. 다미애는 그 해에 제남을 공격하여 사십만 명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아파태가 왔군요.]
원승지가 그 말에 되물었다.
[청나라 군대는 왜 북경은 공격하지 않고, 하북과 산동 일대만 공략하는 것입니까?]
손중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황제는 전술이 아주 뛰어 납니다. 먼저 하북, 산동을 점령하여 재물을 약탈하고 살인과 방화를 일삼아 중국의 전통 정신을 말살 한 후에 심기일전하여 북경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그해에 북경을 공격했을 때, 원독사에게 패하고는 감히 다시 북경을 공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몽고병은 세 차례나 하북과 산동을 공격하였는데,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 명나라 군사들을 전멸시키겠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속담에 교만한 병사는 반드시 패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들은 지금 이 기회에 그들의 기세를 꺾어 놓아야 합니다. 청주에서 태안으로 갔으니, 다음은 반드시 금양관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금양관에 가서 기다렸다가 그들을 쳐부숩시다.]
원승지는 그 말을 듣자 몹시 기뻐하였다.
[동지 여러분! 몽고병들을 쳐부수러 갑시다! 오늘 밤은 푹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산을 내려갑시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큰 소리로 외쳤다.
[몽고병을 때려잡자!]
다음날 아침, 원승지와 손중수가 상의한 후에 동지들을 출발시켰다. 사방 곳곳에 잠복하고 있다가 대장군의 황색기가 높이 올라가면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기로 정하였다. 수진에게 2천명의 병사를 주어 선두에서 적을 맞아 싸우라고 명령하여, 혹시 수진이 산을 내려간 후에 변심할지 모르니 금룡방의 초공례에게 감시하도록 했다.
금양관은 양쪽으로 큰 봉우리가 있어 중간에 작은 길이 나 있었다. 4일째 되던 날 밤에 큰 함성 소리가 들려, 보니 명나라 군사가 갑옷과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고 있었다. 수진은 말을 타고 달려와 큰 칼로서 자결해 버린 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변장을 한 병사들이 봉우리를 올라오고 있었다. 원승지는 왼쪽 봉우리의 바위 뒤에서 처음으로 청나라 군대를 보았다. 그는 아버지가 청군과 싸웠던 것을 생각하자 전신에 피가 용솟음쳐 당장에 금사검을 뽑아 들었다.
[손사숙, 공격합시다!]
손중수가 잠시 고개를 저었다.
[청군이 다 오기를 기다립시다. 그때 황색기를 올리고 사방에서 공격하면, 필경 빠져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갑자기 호각소리가 들리고 수십 명의 청나라 기마병이 명군을 무찌르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 시체가 길을 덮었다. 원승지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빨리 공격합시다!]
손중수가 이번에도 그를 말렸다.
[잠시만 기다립시다.]
청청도 안타까운지 조급해 하였다.
[지금 내려가지 않으면, 우리들은 모두 죽게 됩니다.] 손중수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청청은 더욱 조급해져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갑자기 오른쪽 봉우리에서 함성 소리가 들리며, 사천광이 이끄는 산동군이 몰려와 청군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손중수가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아니! 저러면 좋지 않은데.......]
원승지가 의아해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은 청군의 선두만 도착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대장은 잡을 수가 없습니다. 깃발 신호를 보지도 않고 어째서 먼저 저러는지 모르겠군요.] 산동군은 이미 진중으로 들어가 용맹스럽게 청군을 죽이고 있었고, 청죽방과 금룡방도 매복해 있던 곳에서 들고일어났다.
손중수가 탄식하며 말했다.
[그해에 원독사의 부하들이 이렇게 명령에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했다면, 책임자들은 모두 원독사에게 보검으로 죽여 달라고 청했을 것입니다.] 원승지가 이 말에 미안해했다.
[모두 제가 엄하게 다스리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자 손중수가 그를 위로하였다.
[우리의 동지들은 모두 영웅호걸이라 무예도 아주 뛰어납니다. 그러나 저렇게 명령에 따르지 않고 오합지졸들이니,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청청이 옆에서 거들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탄식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승지형님, 우리도 공격을 시작합시다!]
원승지도 이미 결심을 한 듯 결연히 외쳤다.
[좋다! 모두 공격하자!]
그는 금사검을 움켜쥐고 봉우리를 내려갔다. 손중수가 깜짝 놀라 뒤에서 외쳤다.
[맹주님! 맹주님! 당신은 진영에 앉아서 지휘해야 합니다. 직접 적과 싸우시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벌써 그는 청군의 진영으로 가서 금사검을 휘두르며 용감히 싸우고 있었다.
천여 명의 청군은 중간에 끼어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태산의 동지들이 사방팔방에서 일제히 공격하니 어느덧 청군은 거의 몰살되었다. 그러나 청군의 통솔자 아파태는 금양관에 복병이 숨어 있다는 급보를 전해 듣자, 급히 청주로 돌아갔다.
이 싸움에서 비록 아파태는 죽이지 못했으나 천여 명의 청군을 몰살시켰으니, 실로 10여년만의 큰 승리였다.
원승지는 금사검에 묻어 있는 혈흔을 보고 생각했다.
[오늘 이 검으로 청군을 무찔렀다. 앞으로도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이 검을 사용하리라.]
그 날 밤에 원승지, 손중수, 주안국, 아호, 나대천 등이 낮에 있었던 싸움에 대해서 토론하였다. 또 원독사의 영혼을 위로하며 모두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손중수는 아파태를 죽이지 못한 것을 매우 원통하게 생각했다. 원승지가 침착하게 한마디했다.
[지금부터라도 더 열심히 무예를 단련하여, 다음에 다시 몽고병을 만난다면 오늘과 같은 무질서한 싸움은 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모두들 그의 뜻과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승지와 청청이 나란히 걸어가면서 보니, 여기저기서 모두들 흥분하여 대승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원승지가 나직하게 말했다.
[통쾌하게 원수를 갚는 날은 백 번의 싸움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청청이 대답했다.
[그 싯귀는 아주 듣기가 좋은데요?]
원승지가 웃으며 덧붙였다.
[내가 어떻게 시를 지을 줄 알겠소? 이것은 아버지의 뜻이오.] 원승지는 문득 탄식하는 신음을 토했다.
[나는 모든 것에 있어서 아버지와는 상대도 안됩니다. 그 분은 시도 지으실 줄 알고 무예도 능하셨지만, 나는 그 모두를 할 줄 모릅니다.] 청청이 위로를 겸하여 한마디했다
[당신의 무예는 반드시 당신의 아버지 보다 강할 것입니다.] 원승지가 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본시 진사 출신으로서, 무예를 배운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보다는 큰 일하는데 쓰셨습니다.]
원승지는 문득 금사검을 꺼내 들고 결연하게 말했다.
[청청! 나는 반드시 이 손으로 몽고의 숭정황제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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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승지와 청청, 홍승해 등 세 사람은 철상자를 가지고 서울로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또한 정청죽(程靑竹)과 사천광(沙天廣)도 호기가 발동하여 맹주를 따라 서울로 가서 한바탕 즐기고자 마음먹었다.
원승지는 이 두 명의 힘센 방주가 함께 수행하겠다고 하자 무척 흐뭇해했다. 그리고 홍승해는 충성심이 분명하고, 다시는 반역의 뜻을 품을 것 같지 않았으므로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더욱더 몸둘바를 몰랐다.
다섯 사람의 일행은 채찍을 휘두르며 끝없이 펼쳐진 산동(山東) 평원을 지나 북으로 말을 몰았다. 이 부근 일대는 모두가 사천광의 지역이었고 북쪽으로 조금만 더 나가면 청죽방의 지역이었으므로 가는 길목마다 각지의 두목들이 나와 정중하게 그를 맞이했다.
청청은 일행이 이처럼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자 시끌벅적하고 화를 잘 내던 평소의 성질을 조금씩 누그러뜨렸다.
며칠 후, 그들은 청죽방의 지역인 하간부(河間府)에 도착했다. 그러자 이곳을 담당하는 두목이 큰 잔치를 베풀어 맹주를 축하해 주었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하간부 지역에서 무림으로 이름을 날리는 자들이었다. 술이 서너 잔씩 돌아가자 사람들은 슬슬 강호와 무림 일대에 나도는 소문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때 그 중의 한 사람이 문득 화제를 돌렸다.
[정방주님, 나흘 후면 바로 맹백비(孟伯飛) 어르신네 환갑날이 온데 안 가 보시겠습니까?]
정청죽이 대답하였다.
[나는 맹주를 모시고 서울로 가는 중이라 회갑연에는 참석할 수가 없게 되었네. 하지만 사람은 갈 수 없다 해도 예의는 갖출 수 있는 법이니, 예물을 준비하여 보정부(保定府)까지 사람을 보낼까 하네.]
사천광도 거들었다.
[동생의 예물은 이미 보냈지. 맹노야께서도 우리들이 가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으리라 짐작하실 뿐 그 이상 이상하게는 생각지 않을 걸세.] 원승지는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었다.
(이 맹씨는 북부 5성에서 대대적으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그러한 그의 회갑이 닥쳐 온다하니, 이 기회를 틈타서 그와 사귀어 보는 것도 해롭지 않겠지.) 이렇게 생각한 원승지가 한마디했다.
[맹노야는 내가 오랫동안 앙모해 온 분이다. 며칠 뒤에 바로 그 어르신네의 회갑연이라니 나도 가서 축하를 해 드리고 싶은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이 말에 모든 이들이 박수를 치며 좋다 하였다.
[맹주께서 이토록 큰 마음을 보여주시니 맹노야도 틀림없어 아주 기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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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일행은 길을 바꾸어 떠났다. 천천히 걸어도 고양(高陽)에 도착하였으니, 보정부까지는 불과 하루의 일정밖에 남지 않은 셈이었다. 각기 큰 길가에 있는 객사에 투숙하기로 하고, 철상자와 짐을 정리한 뒤에 대당(大堂)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들이 앉아있는 동편 탁자에는 뚱뚱한 행각승이 앉아 있었다.
그는 머리에 구리띠를 두르고 긴 머리를 묶었는데, 생김새가 용맹스러웠다.
그는 이미 여러병의 술을 마셨는지 탁자에는 빈 술병이 가득하였다. 주점의 심부름하는 아이가 또 술을 날라왔다. 그는 서둘러 술병 마개를 따 버리고는 큰 대접에 술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는 한숨에 쫘악 들이킨 뒤 양손을 휘둘러 접시 위의 쇠고기 안주를 순식간에 깨끗이 먹어 치웠다.
[술과 안주를 더 가져와! 빨리!]
그때 심부름하는 아이는 원승지 일행을 접대하는데 바빠서 그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 행각승은 대노하여 손으로 탁자를 한바탕 휘둘렀다. 술병과 술잔, 안주 등이 나뒹굴었다. 근처의 탁자에 있던 사람들의 술병과 술잔도 뒤집어지고 술은 엎질러져 탁자 가득히 넘치게 되었다.
근처에 있던 손님 하나가 <아이쿠!> 하고 튀어 올랐다. 그는 몸이 왜소하였다. 입술 위에는 쥐꼬리만한 수염을 두 갈래로 냈는데 작은 눈동자가 한 번 반짝이니 눈빛이 무서웠다.
[스님, 스님도 술을 마시겠지만 다른 사람도 술을 마셔야 하지 않겠소?] 그 행각승은 이 말에 더욱 화를 내며 탁자를 거세게 쳤다.
[나는 저 심부름꾼 꼬마를 불렀는데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작은 사나이가 중얼거렸다.
[이제껏 이렇게 지독한 중은 처음 보겠군!]
[오늘 너에게 맛을 좀 보여주마!]
행각승이 시비를 걸어왔다.
청청이 이 꼴을 보다 못해 원승지에게 말했다.
[제가 가서 처리해야겠어요.]
원승지가 말렸다.
[좀더 더 두고 보자. 저 사나이가 비록 몸은 왜소하지만 함부로 굴 것은 아닐 것이다.]
청청도 두 사람이 금방 싸움을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뜻밖에도 그 사나이는 행각승의 위세에 눌린 듯 어물어물 대답했다.
[좋아, 내가 잘못하였소. 이젠 됐소?]
행각승도 그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다가 때마침 술이 오는 바람에 개의치 않고 그냥 술을 계속 마셨다. 그 사나이는 섰던 자리에서 닷 되돌아왔다.
원승지 일행은 더 이상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체념하고 조용히 술과 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한바탕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더니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찔러서 청청은 손수건을 꺼내 코를 막았다. 원승지가 고개를 돌려보니, 행각승의 탁자 위에 단정하게 요강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행각승은 미처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원승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청청을 향해 눈짓을 하며 행각승 쪽을 입으로 가리켰다. 청청이 한 번 보더니 이내 허리가 굽어지도록 웃어댔다. 마당 안에서 밥을 먹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사태를 모르고 있었다. 다만 <지독한 냄새로군! 지독해!> 하고들 웅성거렸다.
그 마른 사나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이구, 향긋하다!]
청청이 중얼거렸다.
[이것은 분명히 저 사나이가 날라온 것이야. 손발이 매우 빠르기도 하지! 언제 갖다 놓았을까?]
그때였다. 행각승도 드디어 악취가 코를 찌르자 손을 뻗쳐 술병을 들려다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야 말았다. 그의 손에 들려진 것은 술병이 아니라 요강이었기 때문이었다. 더욱 민망한 것은 요강에 오줌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손을 거두고는 곁에 있던 심부름꾼 아이를 죽어라고 팼다.
왜소한 사나이가 잔을 비우며 여전히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좋은 술이야. 좋은 술이야! 이렇게 향기로울 수가 있나!] 행각승은 비로소 그의 소행인 줄 알고 요강을 번쩍 들어 그에게 던져 버렸다. 그러나 사나이는 이미 방어를 하고 있었는지, 빠른 신법으로 미끄러지듯이 달려가서 조그만 그의 몸은 탁자 밑을 꿰뚫고 지나가 어느새 행각승 뒤에 서 있었다. 요강은 작은 사나이가 있던 탁자 위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오줌이 사방으로 흘러내린 것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이리저리 몸을 피했다.
행각승은 화가 더욱 치솟아 그 큰 두 팔을 들어 몸을 돌려 사나이를 잡으려 하였다. 행각승이 탁자를 발로 차 버리자 그것이 뒤집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사람들은 이미 양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사나이는 이리저리 피했고 행각승은 주먹과 다리를 휘둘렀지만 끝내 그의 몸을 잡을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당 안의 탁자와 의자는 두 사람에 의해 온통 뒤집어지고 접시와 젓가락, 술병 등이 바닥에 가득하게 되었다.
사나이는 피하는 중에도 술병 같은 것을 들어서 계속 행각승을 향해 던졌다.
행각승도 소리를 지르며 그것을 받아서 다시 던졌다. 두 사람의 몸놀림은 아주 민첩했다. 모두 무공이 뛰어난 자들임에 틀림없었다.
싸움이 계속됨에 따라 대당 안에는 공터가 생겼다. 사나이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주먹을 쥐고 발을 들어서 민첩하게 행각승과 마주 겨루기 시작하였다. 행각승은 몸이 건장한데다 그가 쓰는 권법은 <창주대홍권(滄州大洪拳)>이었기 때문에 주먹이 무섭게 바람을 일으켰다. 그 사나이의 권법도 일가(一家)를 이룬 자세였다. 때로는 손을 활짝 편 채 작은 몸을 살짝살짝 다루는 모습이 이상스러웠으나 신법은 민첩하기 그지없었다.
청청이 웃으며 말했다.
[저 모습은 정말 보기가 딱하군요! 저게 무슨 무공이란 말인가?] 원승지도 그와 같은 무공을 본 적이 없었으니, 그의 손발이 민첩하여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모양은 우스웠으나 분명 장법이 있어서 적을 제압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었다.
정청죽이 보고 들은게 많은지라 한마디 하였다.
[저게 압형권(鴨形拳)이라는 겁니다. 강호엔 저 권법을 터득한 사람이 많지 않죠.]
청청이 그 명칭을 듣자 속으로만 웃었다. 과연 그 사나이의 신형( 身形)과 보법(步法)은 오리와도 같았다.
행각승은 오래 싸우게 되자 조급해져서 갑자기 노지심(魯智深)의 취타산문권(醉打山門拳)을 사용해서 이리저리 구르고 엎어졌다. 과연 술취한 사람의 꼴이었다. 이제는 양다리를 모아서 쭈그리고 있다가 적이 공격해 오면 땅을 박차고 맹공격을 했다. 달리다가 엎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술이니 밥이니, 반찬 찌꺼기와 함께 요강에서 쏟아진 오름까지 흥건히 뒤집어 쓰게 되었다.
싸우다가 갈라서는 사이, 행각승은 홀연히 한 발짝 나아가서 왼손을 휘젓고 오른손은 배산도해(排山倒海)를 써서 상대방의 가슴을 향했다. 그 마른 사나이는 이 권법의 무서움을 깨달았는지, 내공을 합하여 양손바닥으로 행각승의 주먹을 막았다. <엽!> 하는 소리와 함께 어느덧 세 개의 손은 매우 작은지라, 그의 두 손은 스님의 손 하나를 겨우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맹진하였다. 행각승의 왼손은 비록 비어 있지만, 온몸의 힘은 오른손에 쏠려 있었다. 왼쪽 어깨는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양편의 힘은 비슷했다. 더욱이 서로 밀고 있어서 나갈 수도 없고 물러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누군가 먼저 힘을 거두어 버린다면 상대방의 손아래에 거꾸러질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죽어라고 싸워 나간다면 그들의 내공은 모두 쇠진하여 다 같이 상처 입을 것이 문명했다. 두 사람은 모두 후회를 하고 있었다. 사실 서로 원수진 것도 없이 한 순간의 분노 때문에 이처럼 목숨을 걸다니, 정말로 한심한 노릇이었다. 또다시 한 순간이 지나자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콩알 같은 땀이 흐리기 시작하였다.
사천광이 나서서 말했다.
[정형! 그대는 화봉아(化棒兒)를 써서 불어 버리시오. 조금만 더 두면 두 사람 모두 큰일이 나겠소.]
정청죽이 대답했다.
[내가 하느니 형께서 직접 하시지요!]
사천광은 싱긋 웃었다.
[좋소! 허나, 저 두 싸움쟁이의 생명은 보존할 수 있겠지만 중상은 피할 수 없겠구려.]
그가 나아가 풀어 주려 할 때였다. 원승지가 웃으며 가로막았다.
[내가 해보지.]
그는 천천히 접근하여 양손으로 두 사람의 어깨를 갈라놓았다. 행각승과 사나이는 손을 갈라지면서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동시에 원승지의 가슴을 때렸다. 정청죽과 사천광, 청청은 <저런!>하며 동시에 나서서 그를 구하려 하였으나 원승지의 신색(神色)은 여전한 채 아무런 손상도 없었다. 원래 원승지는 만약 힘을 사용하여 갈라서게 하거나 밀어붙인다면 두 사람이 전력으로 밀고 있기 때문에 한쪽 편이 자기 자신을 향해 때릴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래서 가슴에 기공을 모아 그들의 주먹을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신묘한 내공 덕분에 그들의 장력은 가볍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행각승과 사나이는 이때 이미 기력이 거의 쇠진하여 솜덩이처럼 바닥에서 헐떡거렸다. 정청죽과 사천광이 두 사람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고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주위를 치우도록 하였다. 원승지가 품에서 열 냥의 은전(銀錢)을 꺼내어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부서진 물건들은 모두 내가 변상하겠소. 많은 손님들이 아직 식사를 마치지 못했으니 잘 정리하고 다시 음식을 준비해 주시오. 그것도 모두 내가 변상하겠소.]
이 말에 주인은 수없이 감사하다고 한 뒤 계산을 마치고 부서진 물건들을 수습한 뒤 이어서 술자리를 열었다.
행각승과 사나이는 기력이 점차 회복되자 함께 원승지를 향하여 목숨을 구해 준 은혜에 대해 감사해 했다.
원승지는 웃으며 말했다.
[별 말씀을! 두 분의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요? 두 분께서 쓰시는 무공을 보니 분명 강호의 영웅호걸들이시군요.]
하고 칭찬해 주었다. 행각승이 고개를 떨구었다.
[저의 법명은 의생(義生)이지만, 주위 사람들은 철나한(鐵羅漢)이라고들 부릅니다.]
그러자 사나이도 자기 소개를 했다.
[제 이름은 호계남(胡桂南)이라고 합니다. 어르신네의 존함은 뉘신지요? 그리고 저 두 분은 누구신지요?]
원승지가 대답하기도 전에 사천광이 입을 떼었다.
[아니, 성수신투(聖手神偸) 호형이었구료!]
호계남은 자기를 알아보는 것에 매우 기뻐하였다.
[노형의 존함은?]
정청죽이 사천광의 손에서 부채를 빼내어 쫙 펼치자 호계남은 부채 위의 무서운 해골 그림을 살폈다.
[원래 음양선(陰陽扇) 사대장이셨군요. 오랫동안 대장의 존함을 들어왔는데 정말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탁자 옆에 청죽(靑竹) 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청죽방의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청죽은 마디수로 그 신분의 고하를 논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청죽은 열세 개의 마디가 있었다. 그것으로서 상대방이 청죽방에서 가장 높은 수령임을 이내 알 수 있었다.
그는 청죽을 향해 읍하며 말했다.
[이 분이 정방주이십니까?]
정청죽은 껄껄 웃었다.
[성수신투의 눈이 놀랍다더니, 정말 맞는 말이었군요. 두 분을 알게 되었으니 자, 함께 건배나 합시다!]
일행은 함께 자리를 모았다. 호계남과 철나한은 서로 잔을 들고 <건배!> 하고 외쳤다. 철나한이 쑥스럽게 웃었다.
[어디서 오줌통을 훔쳐 왔는지....... 참 괴물이야!]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였다.
호계남은 정청죽과 사천광 두 사람이 북직례(北直隷)와 산동의 강호에서 유명한 호걸 수령인데, 이 두 사람이 원승지에 대해 공경하는 것을 보았던 터였다. 그가 방금 싸움을 말릴 때 내공이 깊다는 것도 알았다. 함부로 그를 대할 수 없는 것을 알았으나 감히 이름을 더 이상 물어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성격이 명랑하여 장난을 치거나 웃기를 좋아하였으나 이때에는 함부로 경거망동하지도 않았다.
정청죽이 물었다.
[두 분께서는 여기서 웬일이십니까? 호형께서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서 이곳에 오신 것은 아닙니까?]
그러자 호계남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정선배님의 지역에 어찌 감히 나타나겠습니까? 저는 맹노야의 회갑연에 참석하러 가는 길입니다.]
철나한이 탁자를 치며 기세를 돋구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소? 나도 회갑연에 가는 길인데....... 일찍 알았었다면 피차 싸우지 않았을 것 아니오? 하여튼 맹노야 회갑연의 술좌석에서는 다시 요강 같은 것은 들고 나오지 말구려!]
모든 사람들이 다시 한바탕 웃었다.
이어서 정청죽이 히히대며 말했다.
[정말 잘 되었소! 우리들도 맹노야의 회갑연에 가는 길이니 내일 함께 동행해서 갑시다. 두 분께서는 맹노야와 절친한 친구사이신가요?] 철나한이 고개를 저었다.
[친구사이라니요! 감히 그렇게는 할 수 없지만 이십년 쯤 지내왔지요. 요사이 제가 호광(湖廣)일대에 많이 있다 보니 북방에 드물게 오게 되어 8, 9년은 못 뵈었지요.]
이 말에 호계남이 웃으며 받았다.
[그렇다면 나형께서는 저를 인도하셔서 그 분을 뵙게 해주시오.] 철나한이 이상하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뭐라고요? 그렇다면 아직 맹노야를 모른단 말이오? 그럼 그 분의 회갑연에는 대체 무엇 때문에 가는 것이오?]
[저는 맹노야께 항상 앙모의 정이 있었으니 아직까지 뵈올 기회가 없었지요. 마침 한 가지 보물을 얻게 되었기에 이번 기회에 선물로 드리려고 그럽니다. 또 마침 여기서 여러 강호의 유명한 호걸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거야.......]
[그럼 됐소. 선물이 있든 없는 맹노야께서 매한가지로 대접해 주실 것이니 상관할 것 없소. 하하하.......]
정청죽이 그 말을 마음에 담고 물었다.
[호형! 무슨 보물을 얻었는지요? 우리들에게 좀 보여줄 수는 없겠소?] 사천광도 부추겼다.
[보통 물건이라면 어찌 성수신투의 눈에 차겠소? 분명 매우 가치있는 것일게요.]
호계남은 득의만만하여 품안에서 구슬과 옥으로 조각된 황금상자를 꺼내어 놓았다.
[이곳은 이목이 많으니 여러분께서는 제 방으로 가셔서 보시지요.] 사람들은 상자가 이미 비싼 것이니 그 안에 있는 물건도 필히 진귀한 것이리라 생각하였다.
호계남은 모두가 방에 들어온 뒤 방문을 잠그고 나서 상자를 열어 보였다.
두 마리의 흰 두꺼비가 죽은 채로 드러났다. 이 두꺼비는 온 몸이 눈처럼 하얗고 눈알은 핏빛처럼 붉었다. 그 모양은 매우 귀여웠으나 무슨 진귀하거나 색다른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호계남이 철나한을 향해 웃으며 말하였다.
[방금 저와 형님이 손바닥을 마주했을 때, 만약 둘이 한꺼번에 죽어 버렸다면 그것은 너무 큰일이어서 회생할 방법이 있을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몸에 어떤 중상을 입었다면 나는 치료할 방법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흰 두꺼비를 가리켰다.
[이것은 서역(西域)의 설산(雪山)에서 생산되는 붉은 눈알의 빙섬(氷鎌)입니다. 어떠한 내상이나 도상(刀傷)이라도 현장에서 죽지만 않았다면, 이 빙섬을 한 번 복용하기만 하면 상처를 낫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영험하고 신묘한 약입니다. 참 신기한 물건이죠. 독약에 중독 되었다 하더라도 이 빙섬은 그 독을 제거할 수 있는 처방력도 가지고 있구요.]
정청죽이 의아해서 물었다.
[이러한 보물을 호형께서는 도대체 어떻게 구했습니까?] 호계남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지난 달, 제가 하남(河南)의 여숙에서 약초를 캐고 사는 노인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병이 들어 곧 죽게 되었는데 하도 불쌍해서 몇십 냥의 은전을 주어 의사를 찾아 약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요. 그러나 그는 나이가 너무 들어서 그랬는지 약의 효험마저도 보지 못한채 결국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는 죽기에 앞서 이 빙섬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를 돌보아 준 보답의 정표라 하면서요.]
철나한은 수긍하며 상자를 어루만졌다.
[이 상자도 보기가 매우 좋군.]
호계남이 대답했다.
[본래는 이 물건은 철상자에 넣어 두었었지요. 그러나 선물로 하자니 좀 더 보기 좋은 것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사천광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래서 자네가 빈 손으로 부잣집에 들어가서 이 금상자를 실례했단 말이지?]
호계남도 겸연쩍게 웃었다.
[두목께서는 귀신처럼 알아 맞히시는군요. 정말 탄복합니다! 이 상자는 본래 개봉부(開封府)의 대부호인 유씨(劉氏)라는 사람의 딸이 장식용으로 쓰던 것이죠.]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웃고 말았다.
호계남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우리 두 사람이 하마터면 손을 맞잡고 염라대왕 앞에 갈 뻔했는데, 죽어라 싸우면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나와 철나한 형님이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난다면 내가 이 두꺼비 한 마리를 먹고 한 마리는 그에게 주어 생명을 구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두 사람은 본래 무슨 큰 원수진 것도 없는데 그 더러운 오줌통 하나 때문에 인명대사를 던져 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철나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다니!]
일동은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호계남이 말하였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두 마리의 흰 두꺼비는 이미 제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손으로 상자를 들어서 원승지 앞에 옮겨 놓았다.
[감히 보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다만 작은 것으로나마 정리를 표하고자 하오니 상공께서는 얼굴을 보아서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원승지가 깜짝 놀라서 가로막았다.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본래 호형이 맹노야께 축하의 선물로 보내고자 했던 것이 아니오?]
그러자 호계남이 대답하였다.
[만일 상공께서 의기를 가지고 둘을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은 죽지 않았다면 기필코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빙섬이라는 두꺼비도 자연히 맹노야의 손에 도착할 수 없었을게 아닙니까? 선물로 말할 것 같으면 제가 과장하는게 아니라 제 손으로 펼쳤다 하면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으니 신경쓰실 것 없습니다.]
원승지는 계속하여 극구 사양하였다. 그러나 호계남은 기분이 상한 듯이 외쳤다.
[상공께서는 이름들 들려주시지도 않으시더니 이제는 빙섬마저도 받지 않으시니 혹시 제가 도둑질해 온 것이라 의심하여 더럽게 여기시고 그러시는 것은 아닙니까?]
원승지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호형은 무슨 말씀을 그리 하는 것이오? 경황중이라서 미처 제 이름을 말씀드리지 못한 건 용서 바랍니다. 저는 원승지라고 합니다.] 철나한과 호계남은 동시에 <아!> 하고 놀라는 소리를 질렀다. 호계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7성(省)의 맹주이신 원대야이셨군요. 이토록 좋은 무공을 이끄셨으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원대야께서는 영웅들을 이끄시고 금양관(錦陽關)에서 달자병사(오랑캐)들을 대파하셨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로써 모두가 숭앙하는 바입니다.]
철나한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도 얼마전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모르는 사이에 그만 내귀를 때린 적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감임을 표시했다.
청청이 물었다.
[아니, 왜 스스로 귀를 때렸단 말이오?]
철나한이 대답했다.
[운수가 좋지 않아 나로서는 그 전투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래서 한 명의 달자병사도 죽이지를 못했으니 그랬지요!]
일동은 다시 그 말에 웃음을 짓고 말았다.
원승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호형께서 이렇게 선물까지 주시겠다니, 비록 예의는 아니지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선물을 받아서 가슴속에 넣자 호계남은 더 없이 기쁜 빛이 얼굴에 나타났다. 원승지는 자기 방으로 갔다가 잠시 후에 주홍색의 산호수 한 그루를 들고 돌아왔다. 그 산호수는 두 자나 되게 높은데, 무척 영롱할 뿐만 아니라 한 곳도 파괴된 것이 없고 모래는 하나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가 산호수를 탁자 위에 놓자 온 방안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하였다. 호계남이 놀라서 말했다.
[제가 부호의 집을 잡을 수 없이 다녀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산호수는 여태껏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원상공의 집안에 전해오는 가보인가요? 정말 놀라운 물건이시군요.]
원승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것은 저 역시 그냥 얻은 것입니다. 이것을 호형께 드리고자 하니 내일 보정부에 가실 때 축하의 예물로 쓰시는 것이 어떻겠소?] 호계남은 놀라서 물러 앉았다.
[이 물건은 너무나 귀중한 것인데요!]
원승지는 다시 권했다.
[이것은 보고 즐기는 물건입니다. 비록 귀중하기는 하지만, 일상중에는 별 소용도 없어요. 더구나 빙섬처럼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도 없습니다. 자, 어서 받아 두세요.]
호계남은 감사를 표시하며 그것을 받았다. 그와 철나한은 원승지의 호걸스러움을 보고 마음속으로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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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저녁 무렵에서야 일행은 보정부에 도착하였다.
우선 숙소를 잡고 휴식을 취한 다음, 다음날 일찍 맹부(孟府)에 가서 축하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맹백비는 원승지, 정청죽, 사천광 세 사람의 명함을 보고 그들을 친히 영접하러 나왔다. 그는 일찍이 원승지가 젊다는 것은 알았지만 비범한 곳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서로 만나보니 그는 머리가 아직 검은 젊은이였고 생김새도 평범하여 무슨 특별한 점이라고 없다고 여겼다. 그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얼굴로 이렇게 생각했다.
(7성의 영웅호걸이 어찌 이리 뒤죽박죽이 되었는가? 이런 애송이를 맹주로 추거(推擧)하였단 말인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일행으로 그 먼길을 와서 인사를 드리는 것은 그에게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큰 아들 맹정(孟淨)과 작은 아들 맹주(孟鑄)로 하여금 거듭 감사의 표시를 하게 하고는 안으로 안내하였다.

- 2권 끝.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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