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碧血剑 3-1

3학년2반 | 2022.01.16 07:49:46 댓글: 0 조회: 299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690

* 제 3 권 *

- 1 - 여자의 지모(智謀)

맹백비의 몸은 거대하였다.
백발이 되어 은빛인 머리에 육십의 나이지만 목소리는 큰 종소리와 같은데다 걸음을 떼 놓을 때의 부드럽고 비범한 것을 보고 원승지는 그의 무공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았다. 두 아들도 모두 장년이었기에 영기가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맹백비는 태산대회(泰山大會)에 대하여 무엇인지 부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정청죽이 태산의 모임에 대하여 얘기했을 때, 그는 고의로 못들은 척하며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다른 축하객이 왔으므로 그는, [실례하겠소.]
이 한마디를 남기고 손님을 맞으러 나갔다.
청청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좋기로 유명하다는 맹씨인데, 어찌하여 좋은 친구들에게 이토록 소홀히 대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별명은 헛되이 떠돌았던 것일까? 일찍이 그가 성질이 저렇게 비뚤어졌음을 알았다면 뭣하러 와서 그에게 축하 선물을 준단 말인가. 늙은이들이야 어디서고 얼마든지 많이 볼 수 있지 않은가.) 심부름꾼이 식사를 가져 온 뒤 맹주는 원승지 등 일행을 동반하고 후당에 회갑잔치를 보러 갔다. 이때 맹백비는 마침 많은 손님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탁자마다 칭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원승지 일행이 들어서는 것을 보며 맹백비는 황급히 한마디했다.
[원형과 호형께서 이렇게 두터운 예물을 보내 주셨는데 제가 어찌 감당해야 할는지요?]
[선배님의 축하연에 조그만 성의입니다. 미미해서 보잘 것 없을 따름입니다.]
원승지의 대답이었다.
사람들이 탁자에 다가서자 탁자 위에는 광채도 눈부시게 수많은 선물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원승지가 보낸 백옥팔준마(白玉八駿馬)와 청청이 보낸 비취옥서과(翡翠玉西瓜)가 가장 돋보였다. 호계남이 가져와 보낸 산호수(珊瑚樹)도 눈에 잘 띄었다.
맹백비는 원승지가 7성의 맹주로 추천된 그 일을 하여금 은근히 불쾌해 했었는데, 그의 말이 겸손하고 구구절절이 선배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보내 준 것도 이토록 진귀하고 특별한 것임을 종합해서, 자기에 대하여 원승지가 충분히 존경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비록 나이가 젊지만 행동이 과연 범인과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호감이 생겼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자연 겸손이 생겼던 것이다.
여러 곳에서 온 하객들이 축하 인사를 드린 뒤에, 밤에는 환갑을 맞은 맹백비가 큰 잔치를 열어 손님을 대접하게 되었다. 맹백비는 보정부의 부호이고 평소에 친구 사귀기를 좋아한 사람이었다. 각지에서 회갑연에 온 축하객이 3천명을 넘었다. 맹백비는 수염을 휘날리며 크게 기뻐했다.
대청에는 78석의 좌석이 있었다. 이름이 높지 않거나 낮은 무리들은 후청에 자리를 잡았다. 원승지, 정청죽, 사천광 세 사람은 모두 중앙의 제일 석상에 앉았고 맹백비는 주인의 자리에서 손님 대접을 하였다.
제일 석상에 자리를 잡은 자들로서는, 노영웅인 원앙담(鴛鴦膽) 장약곡(張若谷), 통병주방보정부(統兵駐防保定府)의 풍동지(馮同知), 영승표국(永勝[金+票]局)의 총표두목인 동개산(董開山)등 외에는 모두가 무림 중 영수급(領首級) 인물들이었다.
호걸들은 맹옹(孟翁)을 향하여 술잔을 올린 뒤 술내기를 하느라고 매우 시끌벅적하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심부름꾼 한 명이 선물 하나를 들고 급히 들어 와서 맹정의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소곤소곤 몇 마디 말을 하였다. 맹정은 손님과 술을 마시고 있다가 심부름꾼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급히 일어나더니 맹백비 근처로 가서 한마디 하였다.
[아버님! 정말로 경하할 일입니다. 신권무적(神拳無敵) 귀신수 부부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아버님께 축하 인사를 드리러 왔답니다.] 맹백비는 깜짝 놀라 일어섰다.
[나는 귀이야와 평소에 알고 지낸 적이 없는데?]
즉각 상자를 열자, 큰 홍색 종이에 <아우인 귀신수(歸辛樹)는 문하인들을 이끌고 축하하러 왔습니다> 하는 큰 글자가 몇 자 있었고, 또 작은 글씨로 <황금 열 냥을 축의금으로 준비했습니다.> 라고 쓰여져 있었다. 축하 글씨 옆에는 황금 열 냥에 해당되는 금원보(金元寶) 한 개가 놓여져 있었다. 맹백비는 속으로 매우 기뻐서 잔치석을 향하여 <실례를 하겠소> 하고는 두 아들과 함께 손님을 맞으러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귀신수 부부와 매검화(梅劍和), 유배생(劉培生), 손중군(孫仲君) 등 5인과 함께 돌아왔다. 귀이랑(歸二浪)의 손안에는 아직 어린 아들인 귀종(歸鐘)을 안고 있었다.
원승지는 일찍이 한쪽에 비켜 서 있다가 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사형! 형수님! 두 분 안녕하셨습니까?]
귀신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음, 너도 여기에 있었구나.]
귀이랑도 <흥> 하는 한마디만 했을 뿐 상관하지 않았다.
원승지가 다시 말했다.
[사형과 형수께서는 윗자리에 앉으시지요. 저는 사질들과 함께 앉겠습니다.]
맹백비는 원승지의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좋아! 이렇게 위대하신 사형 앞에서야 7성의 맹주가 아니라 14성의 성주라도 그리 해야지!]
그 말의 뜻은 원승지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7성의 맹주가 된 것은 모두 사형의 힘을 얻어 그리 되었다는 의미 같았다.
원승지는 조용히 웃을 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귀신수는 요사이 어린아이에게 약을 먹이느라 바빴기 때문에 태산의 모임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놀라서 되물었다.
[아니, 맹주라니?]
맹백비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가 함부로 농담을 했으니 귀형은 개의치 마십시오.] 맹백비는 귀씨 부부를 원앙담 장노영웅 아래에 자리하게 하였다. 손님들은 모두 호걸지사인지라 남녀를 섞어 앉게 하고 서로 나누지 않았다.
원승지는 매검화 등 사질들과 함께 자리하였다.
귀신수와 맹백비 등은 서로 술잔을 주고받았다. 술을 서너 순배 돌린 후 영승표국 총두목인 동개산이 일어서며 말하였다.
[제가 주량이 적어서 안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더 즐기십시오. 저는 뒤편에 가서 잠시 쉬겠습니다.]
귀신수가 차갑게 말했다.
[우리들이 곳곳에 찾아다니며 동두목을 만나려 했지만 못 만났는데 여기 이 자리에 오겠지 생각한 것이 과연 틀림없었군!]
동개산의 얼굴빛이 난처하게 변하였다.
[저는 귀이야와 무슨 원한도 없는데 그토록 힘들여 찾았다니요?] 사람들은 두 사람의 말을 듣고는 술을 마시지 못하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맹백비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두 분께서는 무슨 일이 있으셨다 하더라도 저의 얼굴을 보아서 제가 처리할 수 있게 해주시오!]
어려운 일을 풀어 준다는 것은 그에게는 평생의 즐거움 거리였다.
동개산이 다시 말하였다.
[저는 귀이야의 대명을 들은지 오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존경해 왔습니다.
다만 서로 알고 지내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찾아다니셨다니 무슨 일인지 궁금하군요.]
맹백비는 이 말을 듣고는 속으로 반가워하였다.
[좋아요. 두 분께서는 모두 이 늙은이에게 성심으로 인사를 하러 오시지 않았습니까? 원래 한 분은 피난을 하였고, 한 분은 사람을 쫓았다지만 이 두 분이 이미 우리 집에 온 이상 타인에게 화를 당하게 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귀신수를 향하여 한마디했다.
[귀이야께서는 무슨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오늘 지나서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모두가 좋은 친구들인데 기분 좋게 이야기나 나눕시다.] 귀신수는 대답하지 않았고 귀이랑이 손에 안고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는 우리 남편의 3대 독자입니다. 지금 병이 들어 곧 죽게 되었는데 동표두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몇 알의 환약을 내려 주신다면 이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부부는 영원히 그 큰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땅한 일이지요.]
맹백비는 이렇게 말하면서 동개산을 향하여 말했다.
[동야!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칠급의 부도(浮屠)를 짓는 일보다 좋은 일입니다. 하물며 귀이야 같은 대영웅께서 당신께 부탁하니 무슨 환약인지 어서 내놓으시구려. 이 아이는 확실히 병이 위급해 보입니다.] 동개산이 대답했다.
[이 복령수오환(茯 首烏丸)이 만약 제 것이라면 귀이야의 한마디 말씀에 저는 이미 두 손으로 바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환약은 봉양 총독인 마대인(馬大人)의 진공품입니다. 영승표국으로는 서둘러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지요.
만약에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저는 이 강호에서 살아 남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식구는 모두 생명을 보전키 어렵습니다. 이런 사정을 이해해 주시기만을 부탁드릴 뿐입니다.]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일이 참 어렵게 되었다고 느꼈다. 풍동지는 공물이라는 말을 듣더니 급히 한마디했다.
[공물(貢物)이라면 황제의 물건인데 어찌 함부로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귀이랑이 이 말에 파르르하였다.
[흥! 옥황상제의 것일지라도 이번 경우에는 좀 써야지요!] 풍동지가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아니, 이 여자가 조반(造反)을 생각하는 거야!]
이에 귀이랑은 성이 나서 젓가락을 뽑아 사발에서 생선 한 점을 집어 아직 다물지 않은 풍동지의 입 속에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던져 넣었다.
풍동지가 놀라는 사이 두 마리의 생선이 계속해서 그의 입속에 날아들어 꽉 메우는 것이 아닌가! 삼키려 해도 그럴 수 없고, 뱉아 내려해도 그럴 수 없으니 정말 낭패스러운 노릇이었다.
노영웅 장약곡이 이를 보고 속으로 대노하였다. 오늘은 맹씨의 회갑 날인데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생각하며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둥근 젓가락 통을 들어서 힘껏 밀어붙이니 그것은 그대로 탁자 속에 들어가 버렸다.
귀신수의 팔뚝은 탁자 근처에 있었는데 내공을 써서 아래쪽으로 들이밀자 그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탁자 속에 박혀 들어갔던 젓가락 통이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장약곡의 얼굴을 후리쳤다. 장약곡은 급히 피했다. 비록 얼굴에 맞은 것은 아니었으나 허둥지둥할 수 밖에 없게 되어 그의 얼굴은 온통 붉어지고 말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장풍을 날려 탁자를 한바탕 때린 뒤에 몸을 돌려 맹백비에게 말했다.
[맹노야! 자네 형님이 이곳에서 체면이 아니군!]
하고는 큰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접대를 맡고 있던 맹씨의 제가 두 명이 달려왔다.
[장노야, 부디 뒷방에 가셔서 차나 드시지요!]
그때 장약곡은 얼굴이 시퍼렇게 된 채 어깨를 움직였다. 두 명의 제자는 벌떡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맹백비는 기분이 나빴다. 그는 속으로 <이 좋은 잔칫날에 귀신수와 같은 자가 시끄럽게 해서 옛 친구들이 기분 나쁘게 떠나다니!> 하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더하려 했다. 그러나 풍동지는 열 손가락으로 입안에 들었던 생선을 뽑아 내고 한 마리는 삼켜버린 뒤 꽥꽥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이런! 이러고도 무슨 법이 있는가!? 누구 없느냐?] 두 명의 졸병은 주인이 이토록 화를 내고 있으니 급히 달려왔다.
[나의 대관도(大關刀)를 가져 오너라!]
원래 이 풍동지라는 자는 조상의 덕분에 관직에 올랐으므로 무예는 형편없으면서 항상 이렇게 허풍을 좋아했다. 그는 대장장이를 시켜 칼날이 길고 칼등은 두꺼우며 도금을 한 공심대관도(空心大關刀)를 만들게 한 뒤 말을 타고 갈 때는 언제나 졸병 두 명에게 그 칼을 들고 따라다니게 했던 것이다. 졸병들은 반드시 입으로 <아이구! 아이구!> 하며 대단히 무거워서 힘든 고함을 내어야만 했다. 그는 그때 손을 한 번 척! 들면 매우 가볍고 편하다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풍동지의 무력이 엄청난 것으로 탄복하였다. 그런 그가 지금 <내 대관도를 가져오너라> 하는 이 말은 습관이 된데다가 지금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른 것이었다.
두 명의 졸병들은 놀랐으나 이번 연회에 참석하러 올 때는 그 힘든 물건은 들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한 명이 할 수 없이 허리에 차고 있던 패검을 끌어서 그에게 바쳤다.
맹백비는 이미 그가 무예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화도 나고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서 소리쳤다.
[안돼!]
풍동지는 사람을 우습게 다루는 것이 습관이 들어 있는데다가 귀신수라는 자가 얼마나 큰 우두머리인 줄 잘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그의 모양이 시골 농부 같으니 어찌 마음에 두었겠는가? 그는 패검을 받고는 칼을 휘둘러 귀이랑을 찌르러 하였다. 귀이랑은 오른손으로 아이를 안고 왼손으로 펼쳐 식지와 중지를 구부려 칼등을 잡으며 물었다.
[노인네야! 어쩔 셈이냐?]
풍동지는 놀라서 힘껏 잡아당겨 보았으나 칼은 철고리로 묶어 놓은 듯이 아무리 당겨도 실오라기만큼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칼자루를 쥐고는 죽어라고 잡아 끌어 보았으나 삽시간에 얼굴이 온통 붉어졌을 뿐이었다. 그의 손에는 대관도가 없었으나 얼굴은 대추빛이 되어 흡사 관운장과 같았다. 관운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관우의 단봉안(丹鳳眼)은 풍공의 싸움닭의 눈과 같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때 귀이랑이 갑자기 손을 놓아 버렸다.
풍동지는 하늘을 향해 신나게 굴렀다. 칼등이 자기 이마에 부딪치면서 순식간에 둥그런 목이 부어 올랐다. 그가 먹었던 생선이 이마 위에 솟아오른 꼴이었다. 두 명의 졸개가 황급히 달려와 그를 일으켜 세우자 풍동지는 감히 더 이상의 말을 못하고 손으로 이마를 눌러 대며 비틀비틀 날 살려라는 듯이 달아났다. 그러더니 문밖을 나서자마자 큰소리로 그의 하인들을 욕하는 것이었다.
[이 병신 같은 녀석들! 게을러 빠져서 칼이 무겁다고 이 어른이 애용하던 대관도를 가져오지 않았다니? 가져왔다면 저 더러운 년을 단칼에 두 조각 낼 수 있었을 게 아니냐 말이다!]
동개산은 이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을 때 귀신수가 말했다.
[동표구! 환약을 주시오. 나는 절대 당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하지 않겠소이다!]
동개산은 이렇게 되자 대청의 가운데에 선 채 외쳤다.
[제가 당신의 신권무적(神拳無敵)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목숨은 여기에 있으니 당신이 원하신다면 가져가십시오!] 귀이랑이 말했다.
[누가 당신의 목숨을 원한답니까? 환약을 달라는 거지요!] 맹백비의 큰 아들인 맹정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외쳤다.
[귀이야! 우리 맹가의 집이 당신에게 죄를 지은 일도 없는데 당신들께서 이 소동이시니, 부디 밖에 나가서 해결하시오!]
그러자 귀신수가 대답했다.
[좋다! 동표두! 우리 밖으로 나가자!]
그러나 동표두는 나가지 않으려 했다.
귀신수는 견딜 수 없어서 손을 뻗쳐 그의 어깨를 잡았다. 동개산이 뒤편으로 물러나자 귀신수의 손은 따라서 그의 몸 앞에 놓여졌다. 동개산은 이미 표국([金+票]局)의 총표두였으니 그의 무공도 상당한 것이었다. 눈앞의 귀신수의 주먹이 와 있는 것을 보고 어깨를 움츠리고 손을 빼어 상대를 하였으나 어찌 상대방의 손을 잡을 수 있겠는가?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의 옷이 한바탕 찢겨지고 말았다.
맹정이 앞으로 나서서 동개산의 몸을 가리며 말하였다.
[동표두는 우리 집의 잔치에 축하를 하러 온 손님이십니다. 당신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귀이랑이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단 말이냐? 우리는 그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말하지 않았느냐!]
맹정이 대답하였다.
[당신들께서 동표두를 찾으실 일이 있거든 영승표국에 가서 찾을 수 있을 것 아니겠소? 왜 여기에 와서 이러는 거요?]
말이 계속될수록 거칠어졌다.
귀이랑이 소리 높여 말하였다.
[설령 이곳에서 싸움을 한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요?] 근래에 그녀의 마음이 매우 심란하였다. 그들의 자식이 병이 들어 있으니 어떻게 나을 수만 있다면 그 자신의 목숨도 버릴 각오였다. 맹백비가 무림 중의 명망과 지위가 그만큼 있었으니 그렇지, 그렇지 않다면 아마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맹백비가 얼굴색이 변하도록 화가 나 일어서면서 말했다.
[좋소. 귀이야가 정 그러하시다면 이 늙은이에게 가르침을 주시오!] 맹정이 가로막았다.
[안됩니다. 아버님! 오늘은 아버님의 좋은 날입니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그러면서 일꾼들에게 대청의 탁자들을 옮겨 놓게 하여 빈 장소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외쳤다.
[자! 당신들이 싸움을 하겠다면 크게 한바탕 하시구료! 귀이야, 당신의 신권무적을 한 번 보이십시오!]
귀이랑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우리들과 한바탕 해보겠다니 다시 20년을 수련한 뒤라도 이길 성 싶으냐?]
맹정의 무공은 이미 맹백비의 쾌활삼십장(快活三十掌)의 진수를 배웠고 나이는 장년이었다. 아직 적수를 만난 적이 별로 없었으나, 비록 신권무적의 대명을 오랫동안 들었으나 수천 명의 손님 앞에서 어떻게 말을 거두어 들일 수 있으랴? 그는 다시 소리쳤다.
[귀노인! 당신은 다만 쾌도를 들고 여기에 와서 함부로 굴다니! 비록 주먹은 당신에게 질지 몰라도, 당신이 동표도에게 한 행동은 우리 맹씨 가문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오. 당신이 이긴다면 어쩔 셈이오?] 귀신수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의 3초(招)를 받을 수 있다면, 내가 네게 무릎을 꿇으마!] 주위의 사람들은 이 말이 너무 작아 듣지 못하고 서로 수근수근 물었다. 맹정이 화가 끝까지 올라 웃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이자가 미쳤지 않았소? 내가 그의 3초를 받아 낸다면 그는 나에게 무릎을 꿇겠다니 말이오. 하하하! 그렇지 않았는가, 귀이야?] [그렇다! 받아라!]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귀신수의 오른 주먹이 <태산압정(泰山壓頂>을 써서 맹격하였다.
이때 청청은 이미 원승지 곁에 서 있었다.
[사형이 당신의 법을 배웠군요!]
원승지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
청청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그의 제자들과 시합을 할 때 초수(招數)를 정해 놓고 받게 하지 않았던가요?]
원승지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저 맹가라는 자는 무식한 놈이니 어찌 내 사형의 절기인 신권의 무서움을 알 수 있겠는가!]
맹정은 상대방의 주먹이 오는 것을 억지로 받아서 오른쪽 어깨로 힘껏 막고 왼손을 뽑았다. 두 사람의 어깨가 교차됐을 때 귀신수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녀석이 함부로 날뛰더니 과연 무공이 조금은 있군!) 하면서 그가 왼 주먹을 칠 때 왼 손바닥으로 받아쳤다. 그리고 그의 왼쪽 팔꿈치를 때리면서 힘껏 바깥쪽으로 밀어 보냈다. 맹정의 공력은 튼튼한 것만을 단련해 왔으니, 이번의 귀신수의 손에 몸이 비틀거리며 넘어질 정도였다.
원승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뿔사! 이번에 그가 넘어지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중상을 입을 거야!] 귀신수가 다시 장력으로 한초를 뽑아 내니 맹정의 양어깨는 힘이 빠진 채 강한 바람을 맞자마자 정신이 희미해지면서 벌떡 넘어져서 그대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소리질렀고 맹백비가 맹정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맹정은 점차 정신이 들면서 입안에서 선혈을 계속 뿜었다. 숨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귀신수가 방금 첫 번째로 그를 넘어뜨리지 못하자 그의 무공이 높다고 생각해서 제 3장의 전력을 내뿜었던 것이다. 그러나 맹정으로서는 온힘을 다해서 2초를 받았지만 기력이 이미 쇠진하였던 것이다. 사실 제 3초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댔어도 넘어질 지경이었는데 산을 뒤집고 바다를 넘치게 할 만한 힘으로 장력이 왔으니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귀신수는 그가 이미 힘이 모두 빠져 있는데다 상처가 난 것을 보니 반드시 죽을 것 같다고 후회를 하였다.
정갑신(丁甲神) 정유(丁遊)와 맹주 두 사람은 눈에서 불이 나도록 화가나서 함께 귀신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맹백비는 아들을 집안으로 보내 피를 멈추게 했다. 그러나 그의 숨이 실오라기 같은 것을 보고는 눈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참지 못하였다. 그는 몸을 돌려 귀신수를 향해 덤벼들기 시작하였다.
귀신수는 동개산이 이 기회를 틈타 달아나려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려 정유와 맹주의 주먹을 뚫고 손가락을 펼쳐 그를 눌러 놓았다.
동개산은 멍청히 앞으로 한발, 뒤로 한 걸음 걷다가 갑작스런 신기(神氣)를 받고는 발걸음도 옴기지 못하고 그만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귀노인! 당신과 함께 죽겠소!]
이때 맹백비는 귀이랑과 손을 겨루었다. 두 사람의 무공은 상당한 수준이었으나 귀이랑은 아이를 안고 있어서 불리하였다. 그래서 미친 호랑이 같은 급공(急功)에 위험한 지경에 빠졌다. 매검화, 유배생, 손중군 등 세 사람도 맹씨 문중의 제자들과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정청죽이 원승지에게 말했다.
[원상공! 우리가 말려서 더 이상 큰 일을 만들지 말아야지요!] 원승지가 대답했다.
[나의 사형과 형수는 나와 거리가 있을 수 없는데 내가 나서서 말린다면 사정은 더욱 우습게 될 것이오. 좀 더 두고 봅시다.]
이때 귀신수는 앞으로 나가며 싸웠는데 몇 수의 초를 써 이미 맹백비의 혈도를 맞추었다. 대청에서 동으로 한바탕, 서로 한순간. 이렇게 순식간에 맹가 수십명의 친족과 제자들은 모두 혈도가 막혀 버렸다. 이들 중에는 주먹을 펴거나 발길질을 하거나 허리를 굽히거나 고개를 비틀거나하여 그 자세는 각기 달랐지만, 혈도가 막힌 채 움직이지 못하고 눈알만 데굴데굴 굴릴 뿐이었다.
축하객 중에는 비록 무림의 고수들이 적지않게 있었지만, 신권무적의 이러한 무서움을 보고 그 누가 감히 나서겠는가?
귀이랑이 매검화에게 말했다.
[동가를 수색하여라.]
매검화는 동개사의 등에 멘 짐을 풀고 그의 몸을 안팎으로 수색하였으나 복령수오환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귀신수가 그의 혈도를 풀어주며 물었다.
[환약을 어디에 두었느냐?]
동개산이 대답하였다.
[흥! 환약을 구하려 한다면 이곳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당신은 강호에 익숙하다면서 설마 이러한 금선탈각(金先脫殼)의 꾀도 알지 못했단 말인가?]
귀이랑이 화를 내었다.
[뭐라고?]
[환약은 이미 북경에 갔단 말이오!]
동개산의 대답이었다.
귀이랑은 노하기도하고 놀라기도하여 외쳤다.
[정말인가?]
[나는 맹노야를 좋은 친구로서 앙모해 왔었다. 진정으로 그를 축하하러 왔다면 너희들이 내 약을 뺏을 것을 잘 아는 내가 그 물건을 가지고 왔겠는가? 노인네 집안까지 누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뜻이다!] 성수신투인 호계남이 원승지 가까이로 다가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원상공! 저 표두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의 환약은 여기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는 <수(壽)>자가 쓰여진 큰 비단 폭 아래 놓여진 접시 위의 복숭아를 가리켰다. 원승지는 매우 이상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대가 어떻게 아는가?]
호계남이 웃으며 대답했다.
[강호에서 숨기려는 자들의 꾀는 절대 내 눈을 벗어날 수가 없는 일이죠.] 청청이 곁에서 듣고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신투노조궁 앞에서 장난질을 치다니? 노반문(魯班門) 앞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격이군!]
호계남이 웃으면서 응수했다.
[이 호가란 사람은 다른 일은 별 하는게 없으나 훔치는 일이라면 어떤 경우라도 다른 자에게 지는 법이 없습니다. 저 공가란 자가 꾀가 많으므로 귀이야가 반드시 추격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환약을 복숭아에 숨겨두었다가 상대편이 가버린 뒤에 살그머니 꺼내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원승지는 머리를 끄덕이며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와 맹백비의 신변에 다가가서 손을 뻗쳐 그의 선기(璇璣)와 신정(神庭) 두 혈도를 몇 번 누르자 내공이 이르러서 맹백비의 목은 비로소 활동 할 수 있었다.
귀이랑이 큰 소리로 외쳤다.
[뭐야! 그대도 참가하겠다는 거냐?]
그러면서 아이를 손중군의 품에 보내고는 손을 뻗쳐 원승지의 어깨를 붙잡으려 하였다. 원승지는 왼편으로 돌려 그녀를 피하였다.
[형수님!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맹백비는 근육이 활동할 수 있게 되자 왼손으로 <조붕불선(爪棚拂扇)>을, 오른손으로 <고도양편(古道揚鞭)>을 연속으로 귀이랑을 향해 날렸다. 그의 이 쾌활삼십장은 무림의 유명한 것이다. 그것은 그의 독자적인 비밀 무예였는데, 귀신수와 싸울 때는 한치 차이로 쓰지 못하고 손발이 묶였던 것이다. 귀이랑과는 그 실력을 논할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의 손바닥이 오고가며 신속히 십여 초를 나누었다.
귀신수가 외쳤다.
[당신은 비켜 서시오!]
귀이랑이 왼편으로 비켜났다.
맹백비의 오른 손바닥이 날랐다. 귀신수는 측면의 주먹을 내고 몇 수 만에 그의 혈도를 다시 묶었다. 원승지가 다시 가서 그의 혈도를 풀어 준다면 사형과 싸울 것은 뻔하게 되었으니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귀이랑의 성질은 원래 포악했다. 이때 그녀는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이 간절하기에 더욱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
[동가야, 약을 내놓지 않으면 네 두 다리를 분질러 놓겠다.] 그녀는 왼손으로 동개산의 팔꿈치를 쥐고 그의 어깨를 비틀면서 오른 주먹을 공중에 들어 아래로 내리쳤다. 팔꿈치에 관절을 맞은 동개산의 어깨는 금새 절단나고 말았다. 그는 이를 악다물고 낮게 말하였다.
[약은...... 여기에... 없다. 나를 죽여도 소용없는 짓이야!] 손님중의 어떤 사람은 차마 볼 수 없는 듯 몸을 빼내어 고함을 치며 싸움에 뛰어 들었다.
원승지는 눈앞의 국면이 너무 혼란스러운 것을 보고는 그들을 말렸다.
[여러분! 그만하시오!]
몇 번이나 그렇게 외쳐 댔지만 아무도 듣는 이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조금만 더 지난다면 사람들의 목숨이 살상되고, 그러면 다시 거둬들일 수 없게 된다. 빨리 헝클어진 국면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고!) 그는 갑자기 날아가서 손중군의 곁에 떨어지면서 왼손으로 <쌍용창주(雙龍槍珠)>를 써서 식지와 중지로 그녀의 두 눈을 파려고 하였다. 손중군은 깜짝 놀라 우측 어깨를 펴서 그를 막아보려 하였다. 그러나 이 초는 동편으로, 서편으로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그녀가 눈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급한 순간에 원승지는 오른쪽 손바닥으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밀자 손중군은 세 걸음을 물러났다. 아이는 이미 원승지가 빼앗아 버렸다. 손중군은 더욱 놀라서 크게 고함 질렀다.
[사부님! 사모님! 빨리요! 빨리요! 저 사람이......!!] 귀신수 부부가 고개를 돌렸을 때 원승지는 이미 어린아이를 안고 탁자 위에 뛰어 올라 외쳤다.
[청청, 칼을......!]
그러자 청청이 칼을 던져 주었다. 원승지는 왼손으로 칼을 받아 쥐고 외쳤다.
[모든 사람은 움직이지 마시오! 내 말을 들으시오!]
귀이랑은 두 눈이 붉어지며 찢어지는 소리로 대항했다.
[이 나쁜 놈아! 네가 감히 내 아이를 다치게 하려고? 내가, 내가 네 놈을 죽여 버리겠다!]
그는 황급히 뛰어 올라 결판을 내려고 하였다.
귀신수는 그녀를 붙잡아서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했다.
[아이가 그의 손에 있소. 서두르지 마시오!]
원승지가 말했다.
[사형님, 맹노야의 혈도를 풀어 주십시오!]
귀신수는 <흥!> 하면서 맹백비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원승지가 고함쳐 말했다.
[여러 선배님들! 친구들! 저의 사형님은 아이가 병이 들어 탐관 마사영의 환약을 빌어 목숨을 구하려 하였소. 그러나 이 동표두는 관직을 얻는데만 단맛을 들여서 내놓지 않았소. 그래서 사형께서 그와 싸우게 된 것입니다. 맹노야는 좋은 분이오. 더구나 오늘은 그분의 경사스러운 날이오. 우린 결코 이런 소란을 피우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지 않소?]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더니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분명히 그들 사형과 사제가 서로 싸우려 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것인지, 그는 사형을 돕는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귀씨 부부조차도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다. 귀이랑이 다시 <내 아이를 돌려다오!> 하고 소리쳤다.
원승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맹노야! 저 쟁반 위의 복숭아를 갈라 보시오! 중간에 이상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동개산은 이 말을 듣고는 얼굴색이 변하였다. 맹백비는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랐기에 그 말대로 한 개의 복숭아를 갈랐다. 그러자 안에서 대추를 이겨 만든 껍질속에 백색의 환약이 보였다. 그는 멍청해져서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슨 물건이지?)
원승지가 다시 큰 소리로 그에게 말하였다.
[이 동표두가 정말로 관직을 사는 일에만 정신이 없다면 그것으로 그만일 것이오! 그러나 그는 아주 나쁜 놈이어서, 떠나면서 우리 무림 동지들의 의기를 깨려고 한 것이오. 맹노야! 이 접시 위의 복숭아는 저 동표두가 보낸 것이지요?]
맹백비가 머리를 끄덕이자 원승지는 계속하여 말했다.
[그는 환약을 복숭아 속에 숨겨 놓았소. 그는 이 복숭아를 여기에서 먹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소. 그래서 잔치가 끝나고 내 사형과 맹노야가 화기(和氣)를 상해 버린뒤에 슬그머니 도둑질하여 북경으로 보내려 했소. 이 어찌 기막힌 공로가 아니겠소?]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청청이 다가와서 도와주었다. 두 사람은 복숭아를 모두 갈라서 안에 숨겨놓은 40개의 환약을 모두 꺼내었다. 원승지가 하나의 환약을 비벼서 깨뜨리자 향기가 코를 찌르며 용안(龍眼)만큼이나 큰 주홍색 환약이 나왔다. 그는 청청에게 물을 좀 떠오라고 해서 환약을 조제한 뒤에 아이의 입 속에 넣었다. 그 아이는 이미 숨이 실낱만큼 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더 이상 울지도 못하고 있다가 환약을 한입에 모두 삼켰다. 귀이랑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감격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오늘 원사제가 이 중요한 비밀을 알지 못했다면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저 많은 영웅호걸에게 죄를 짓고 남편의 이름을 영원히 더럽히게 될 뻔했구나.)
원승지는 아이가 약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두 손으로 안아서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귀이랑은 아이를 받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제, 우리 부부는 정말 감격했어요!]
귀신수도 고개를 떨구었다.
[사제, 자네는 정말 훌륭해! 너무 좋은 사람이야!]
청청은 남은 환약을 모두 귀이랑에게 건네주고 웃으며 말했다.
[어린아이가 다시 중병을 앓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먹일 수 있겠군요.] 귀이랑은 마음속으로 너무 기뻐서 그의 말 속에 가시가 있다는 것도 헤아릴 사이도 없이 그것을 감사히 받았다.
귀신수는 사람들의 막힌 혈도를 바삐 하나씩 풀어 주었다. 풀면서도 연신 <미안하오!> 하고 말했다.
맹백비는 아무 말없이 혼자서 중얼거렸다.
[너의 아이는 살았지만, 나의 자식은 너에게 맞아서 죽게 되었다. 적당한 무사를 찾아서 이 복수를 하고 말 것이다!]
원승지는 맹씨 가문의 제자들이 다 죽게 된 맹정을 들쳐업고 내당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며 말했다.
[잠깐 기다리게!]
맹주가 대노하며 외쳤다.
[내 형이 이미 죽게 되었는데 또 어찌하려는 거요?]
그러자 원승지가 입을 떼었다.
[나의 사형께서는 평소 맹노야의 위명(威名)을 숭모해 왔소. 어쩔 수 없이 싸웠지만, 어찌 맹형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겠소? 그 장풍이 강한 힘이었긴 했으나 맹형의 목숨에는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토록 중상을 입었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사람을 속이려는 거지?) 이에 원승지가 다시 말했다.
[나의 사형은 결코 그를 다치게 하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맹형에게 약을 좀 먹이고 요양을 조금만 시키시면 아무일이 없을 것이오.] 이렇게 말하면서 품안에서 금상자를 꺼내 열었다. 그리고는 한 마리의 붉은 눈알의 빙섬을 집어서 손으로 잘게 부순 뒤 그릇에 술과 섞어 약을 만든 다음, 맹정에게 마시도록 하였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옮김: 김선국(金善國;sm1109)

* 제 3 권 *

- 1 - 여자의 지모(智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맹정은 과연 얼굴에 핏기가 돌고 아품을 느끼는지 신음하기 시작하였다. 맹백비는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원상공! 원맹주! 당신은 정말 내 자식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오!] 원승지는 겸손하게 사양하였다. 맹주는 곧 환자를 방에 들이고 휴식을 취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대청에서 다시 자리를 정돈한 뒤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귀이랑이 맹백비를 향하여 말하였다.
[맹노야! 우리들이 정말 무례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남편을 이끌고 세 명의 제자와 함께 절을 하였다. 맹백비가 껄껄 웃었다.
[아이가 죽으려는 마당인데 누군들 마음이 조급하지 않을 것이오. 이 늙은이도 매일반이니.......]
귀씨 부부는 방금 싸웠던 상대들을 찾아 차례차례 사과를 하였다. 영웅들은 통쾌히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맹백비는 속으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던 터라 아들의 상처가 어찌 되었는지 보러 갔다. 아들은 아주 깊은 잠에 빠져 호흡이 일정하였다. 이미 완전히 살아났다고 믿어졌다. 맹백비는 마음에 더 이상 근심이 없어지자 다시 나와서 술잔을 올리는 축하객과 건배를 하며 거의 취하도록 마셨다. 그는 다시 큰 사발을 가져오라 한 뒤, 사발을 채워서 원승지에게 권하면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맹주! 태산대회에서 영웅들이 그대를 맹주로 추천한 일에 대해서 솔직히 말하겠소. 나는 본래 그리 복종하지 않았던 편이었소. 그러나 오늘 그대가 하는 것을 보니 나는 감격할 뿐만 아니라 온 몸이 땅에 닿도록 존경하는 바이오! 자, 당신에게 한 사발을 권하겠소!]
맹백비는 자기가 먼저 단숨에 한 사발을 꿀꺽꿀꺽 마셨다. 원승지의 주량은 본래 많이 않았지만, 그의 성의를 생각해서 건네준 사발의 술을 다 마셨다.
영웅들은 큰 음성으로 <좋아요!> 하고 소리쳤다. 맹백비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하였다.

[원맹주께서 이후에 무슨 연락만 해주시면 저의 힘이 비록 적지만 무엇이든 하겠소. 돈이라면 10만, 8만의 은을 보내 줄 수 있겠소, 사람을 원한다면 우리 부자(父子)의 사제들이 어느 곳으로든 달려 갈 것이오. 그리고 영웅호한이라 하더라도 기꺼이 따르리다.]
원승지는 그가 호탕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또 한바탕의 대풍파가 마침내 순조롭게 화해하여 사형제간의 거리가 구름처럼 사라진 것을 보고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이날 밤, 사람들은 모두 취해서 흩어졌다.
동표두는 이미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숭정황제는 이미 영약을 구할 수 없어서 목숨을 연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동표두 자신도 어떻게 목숨을 연장할 수 있는지는 그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할 큰 문제였다.
원승지 일행은 맹씨 집에서 수일간을 머물렀다. 몇 번이나 떠나려 했지만 맹백비는 한사코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맹정은 외상을 당했기 때문이 이 며칠 사이에 신속하게 회복되었다. 귀신수의 어린아이도 그 혼약을 먹은 뒤 하루가 다르게 나아갔다. 귀신수 부부의 마음속 기쁨이야 다시 말해서 무엇하리.
7일이 되는 날, 맹백비는 비록 손님맞이를 좋아하기를 했지만, 더 이상 머무르게 할 수 없는 탓에 큰 잔치를 베풀어서 귀신수 부부와 원승지 일행을 떠나 보내기로 하였다.
잔치석에서 정청죽이 말했다.
[맹형님! 영승표국의 동개산은 좋은 녀석이 아니오. 그는 진공품(進貢品)을 바칠 수 없었으니 귀이야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아마 형님의 몸에 화를 미치게 할 것이니 잘 방비하십시오.]
맹백비는 이 말을 결연하게 받았다.
[그 녀석이 정말 찾아와서 그런다면 이번에는 정말 뭔가를 보여주겠소!] 귀이랑도 한마디했다.
[맹노야! 이는 우리 모두가 일으킨 일입니다. 만약에 무슨 일이 있거든 꼭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 주세요.]
맹백비는 이 말에 감격하였다.
[결국 관부(官府)와 그 놈이 연결되는 것을 막아야지요.] 맹백비는 <하하> 하고 웃었다.
[시끄럽게 되면 당신에게서 다시 배울 생각이오!]
모든 영웅들은 아쉬운 가운데 각자 말을 타고 헤어졌다.
귀신수 부부는 아이를 안고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기쁜 듯이 남쪽으로 돌아갔다.
원승지, 청청, 정청죽, 사천광, 벙어리, 철나한, 호계남, 홍승해 등 8인은 철상자를 가지고 다시 북쪽으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x x x x
고비점(高碑店)에 도착하자 하루해가 기울었다. 그들은 짐이 무거운데다 길을 서두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마을의 서편에 있는 연조거(燕趙居)라는 여숙에서 쉬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하루종일 걸어왔기 때문에 이미 모두 피곤해져서 잠자리에 들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 문득 문밖에서 마차 소리가 덜컹덜컹 들려오고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벙어리는 귀가 막혀 들을 수 없었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매우 이상히 여겼다. 그 소리는 매우 시끄럽게 다가오더니 머지않아 여숙 안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말하는 소리는 도무지 한마디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방문을 나서서 바라보니, 대청에 서서 혹은 앉아 있는 수십명의 외국 병사들이 손에는 이상한 모양의 병기를 들고 계속 뭐라고 씨부렁대고 있었다. 원승지 일행은 이제까지 이러한 파란눈을 가지고 코가 뾰족한 외국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못 신기해서 주목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한 중국 사람이 주인에게 큰 소리를 지르며 즉시 십여 칸의 방을 내 놓으라고 하였다.
[대인! 정말 죄송합니다. 이 여숙의 방은 모두 손님이 들었습니다.] 주인이 그렇게 대답하자 그 사람은 더 이상 사정도 묻지 않고 주인의 뺨을 한 대 올렸다. 그 주인은 왼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어리둥절해 하였다.
[당신은.......]
[방을 내놓지 않으면 불을 놓아 이 여숙을 당장에 불태워 버리겠다!] 주인은 할 수 없었든지 홍승해를 향해 넙죽 절하며 두 개의 방을 비워 달라고 애걸하였다.
[좋다! 먼저 오고 나중에 온 순서가 있는 법인데, 대체 저 녀석은 뭐하는 놈이냐!]
주인은 황망히 고개를 조아렸다.
[어르신! 저런 양놈의 밥을 먹는 놈과는 상관하지 마십시오.] [그가 양놈의 밥을 먹는다고? 양놈의 밥을 먹으면 위풍이 어떻단 말인가?] 주인은 작은 소리로 다시 말하였다.
[이 외국 병사들은 홍이대포(紅夷大[火+包])를 북경으로 운반하는 자들입니다. 저 사람은 양놈 말을 할 줄 아는 외국인 대장의 통역입니다.] 원승지 일행은 그제서야 분명히 알아들었다. 저자는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피우듯이 외국병사의 힘을 믿고 위세를 부리는 것이었다.
사천광이 철부채를 펼쳐 들었다.
[내가 가서 저 녀석을 좀 손봐 주겠소!]
원승지가 그를 붙잡았다.
[잠깐!]
그는 사람들을 방으로 들어가게 한 뒤 말하였다.
[나의 아버님께서 국경을 지키실 때 영원(寧遠)의 양 대첩에서 서양의 홍이대포를 보고 매우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소. 만청의 우두머리인 누르하치도 바로 홍이대포에 맞아 주었던 것이오. 지금 만청의 병사들 세력이 창궐하는데, 저런 외국 병사들이 대포를 운반해서 전쟁을 돕는 것이라면 우리가 양보합시다.]
사천광이 말하였다.
[설마, 저 녀석이 위세를 부려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원승지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저런 천한 사내와는 우리가 알고 지낼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소?] 일행은 그의 이러한 말을 듣고 두 개의 방을 그들에게 비워 주기로 하였다.
그 통역하는 자는 이름이 전통사(錢通四)라고 했다. 방 두칸이 비워지자 여전히 뭐라고 투덜거리고 주절댔지만, 더 이상 주인에게 방을 내놓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나갔다 오더니 두 명의 외국 군관을 이끌고 여숙으로 들어왔다.
하나는 마흔살 남짓했고 다른 하나는 삼십쯤 되어 보였다. 두 사람은 <키리콸라......> 하며 잠시 뭐라고 하더니, 연장의 군관이 나가서 서양 여자 한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여자는 나이가 매우 젊었다. 청청 등도 몇 살이나 되었는지를 셈해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스무살 안팎으로 짐작되었다.
머리는 검고 흰 피부를 드러낸 채 눈알은 파랗기만 했다. 온몸에는 보석을 달아 등불 아래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원승지는 여태껏 외국 여자를 본 적이 없었으므로 몇 번이나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청청은 기분이 나빠져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여자가 예뻐요?]
원승지가 대답하였다.
[외국 여자는 원래 저렇게 화장하기를 좋아하는가 보지?] 청청은 <흥!> 하더니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새벽, 여러 사람들이 대청에서 아침을 먹게 되었다. 두 외국 군관과 여인도 한 탁자에 앉게 되었다. 통역하는 통역자는 끊임없이 아첨을 해대며 무릎을 굽히고 얼굴 가득 웃음을 띄웠다. 그리고는 연신 고개를 돌려 여숙 주인에게 호통을 치면서 이것 가져와라, 저것 가져와라 하다가 뜻이 안 맞으면 따귀를 때리는 것이었다.
정청죽이 보다못해 사천광에게 말하였다.
[사형, 아주 작은 재주를 보여드릴테니 한 번 보시오!] 그는 몸을 돌리지 않은 채 손을 뒤로 한 번 흔들었다. 순간 손안에 있던 한쌍의 대나무 젓가락이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정통으로 통역자의 입안에 들어가 박혀 그의 위아래 이빨이 하마터면 빠져 나올 뻔했다. 정청죽이 사용하는 무기는 가느다란 대나무였다. 이 청죽표절기(靑竹[金+票]絶技)는 20보 안에서 사람의 혈도를 백발백중으로 맞히는 것이다. 그 힘은 철강표(鐵鋼[金+票])에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원승지의 말을 듣고서 사정을 봐 주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젓가락이 조금만 높게 날아갔다면 통역자의 두 눈은 벌써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통역자는 아파서 <아이구!> 하고 고함을 질렀지만, 아직 대나무 젓가락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조차 알지를 못했다. 두 외국 군관은 그에게 알아보라고 했지만 통역자가 뭐라고 말하자 그 여자는 활짝 웃기만 했다. 귀걸이가 휘황하게 흔들렸다.
전면의 군관이 원승지 일행의 탁자를 몇 번 쳐다보았다. 이들이 한 짓이라 생각하고 탁자 위의 두 개의 술잔을 갑자기 공중에 던져 놓고 두 손으로 권총 하나씩을 뽑아 들고 <탕탕!> 하고 쏘았다. 두 개의 술잔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원승지 일행은 큰 총소리를 듣자 모두 깜짝 놀라며 <과연, 저 무기가 무섭구나!> 하고 <총 쏘는 솜씨도 대단하군!> 하고 감격하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 뵈는 군관은 만족한 얼굴로 탄약통에서 총알을 꺼내 다시 권총에 장진하고 젊은 군관에게 외쳤다.
[피터! 자네도 한 번 해볼텐가?]
피터라는 자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의 총솜씨가 어떻게 포르투칼 제일의 권총선수를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서양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했다.
[레이먼이 제일가는 권총잡이에요?]
피터가 대답했다.
[세계 제일이 아니라면 유럽 제일은 될거요.]
레이먼은 웃음을 지었다.
[유럽 제일이면 세계 제일이 아닌가?]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방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또 그들은 많은 분야에 있어서 유럽 사람들보다 무서우니, 함부로 이야기할 수도 없어요. 제크린! 그렇지 않아?] 그러자 제크린은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이지 당신 말이 맞아요.[
원승지 일행은 세 사람이 <키리콸라>하고 말하는 한 구절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레이먼은 제크린이 피터에게 따뜻이 대해주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났다.
[동방사람이 이상하다고?]
그는 다시 두 개의 권총을 쏘아댔다. 첫 번째는 청청의 두건에 명중하여 불이 번쩍하였다. 그녀의 두건이 탁자 위에 떨어지더니 긴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원승지 일행은 크게 놀랐다.
레이먼과 다른 탁자에 앉아 있던 수많은 외국 병사들이 모두 크게 웃기 시작했다.
청청이 대노하여 일어서서 <싹!>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칼이 움직였다가는 상대방의 무기가 무서운 것이니, 두 사람 모두 사상자가 될 것이다. 이 외국 병사들은 관병(官兵)들에게 대포 쏘는 법을 가르쳐서 만청의 달자([革+達]子)들과 싸울 것인데 그들을 죽이면 나라에 손해가 되니 역시 참는 게 좋겠다)
원승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청청에게 말했다.
[청청, 그만 두게!]
청청은 세 외국인을 화가 난 눈으로 쏘아보다가 그대로 주저 앉았다.
제크린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아가씨였군! 역시 아름답더라니!]
레이먼이 웃으며 거들었다.
[아니, 벌써 외국 여인의 아름다움을 새겨 두었었단 말인가?] 피터가 말했다.
[그녀는 칼을 쓸 줄 아는 모양인데? 우리와 한바탕 하려고 하는 모양이잖아!]
레이먼이 말했다.
[그녀가 오면 누가 나가 싸우지? 피터! 우리 둘 중에 누가 칼을 더 잘 쓰지?]
피터가 말했다.
[난 영원히 아무도 모르기를 바랍니다.]
레이먼의 얼굴에는 화가 치솟았다.
[아니, 왜?]
[여보세요, 싸우지들 말라구요! 동방 사람들은 참 신비러워요. 아마 두 사람 중에서 누구도 저 아름다운 아가씨를 이길 수는 없을걸요?] 레이먼이 소리쳤다.
[통역자, 이리 좀 와봐!]
통역자가 황급히 건너왔다.
[상관(上官)께서 무슨 분부가 있습니까?]
레이먼이 다시 말했다.
[당신, 저리가서 저 아가씨보고 나와 칼싸움을 하지 않으려는가 물어봐. 빨리 가서 물어보란 말이야!]
통역자가 <네! 네!> 하고 대답하자 레이먼은 가방에서 몇 십개의 양금(洋金)을 탁자 위에 놓더니 웃으며 말했다.
[저 아가씨더러 싸우고 싶다면 건너오라고 해. 나를 이기면 이 금은 모두 그녀의 것이고 내가 지면 내가 입을 맞추는 거야! 네가 빨리가서 그렇게 말을 해줘. 빨리!]
통역자는 위엄 있게 건너가서 청청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마지막의 <입을 맞춘다>는 말에 이르자 청청은 손바닥을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의 손이 어느새 그의 오른쪽 목에 정통으로 맞았다. 장풍의 힘이 너무 커서 통역자는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입안 가득히 괸 선혈을 내뱉고 4개의 이빨이 얼굴 반쪽과 함께 부어 올랐다. 그의 입속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되어 정말 그의 이름인 통사(通四)에 걸맞게 되었다.
레이먼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저 아가씨는 정말 힘이 세군!]
그는 칼을 빼들고 공중에서 휙휙휙 몇 번을 휘두르더니 대청의 중간에 와 서는 것이었다.
[자, 와봐! 오라구!]
그는 계속 고함을 쳤다.
청청은 그가 뭐라 말하는지를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그의 행동으로 보아 자기와 칼싸움을 하자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칼을 뽑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승지가 끼어들었다.
[청청, 이리 좀 와봐!]
그러자 청청은 그가 싸움을 말리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몸을 돌리며 외쳤다.
[안 갈래요!]
원승지는 싱긋 웃었다.
[내가 그를 어떻게 이길 것인지 그걸 가르쳐 주려는거야.] 청청은 사실 그 외국인의 무기가 정말 무서웠다. 더욱이 그의 검법도 그처럼 위력이 있으니, 혹시 그의 칼에서 무슨 벽력같이 소리나는 괴물이라도 튀어나오지 않을까 겁이 났던 참이라 원승지의 말에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로 바삐 건너갔다.
원승지가 말했다.
[그가 방금 몇 번 칼을 휘두른 것을 보아하니 손놀림이 민첩한데다 힘이 세군. 그의 검은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우니 그가 곧바로 찌르려 하면 피하거나 무서워 말고 공격을 가해.]
청청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방법을 강구해서 그를 놀라게 한 뒤 칼을 뺏아 버려야겠군요!]
원승지는 기뻐하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렇지만 그를 상처내지 말아!] 레이먼은 두 사람이 계속 이야기를 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자, 빨리 시작하자!]
청청은 몸을 돌려 검을 들어 갑자기 그의 어깨를 향해 내리쳤다.
레이먼은 그녀가 이토록 민첩하게 행동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포루투칼에서 검술의 명수였고, 프랑스와 이태리의 유명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자였다. 급히 땅위에 구르며 칼을 막자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섬광이 반짝였다.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는 이미 온몸은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제크린은 한쪽 편에서 좋아라 박수를 쳐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검술을 펼치며 공격하고 방어하며 다시 싸우기 시작하였다.
원승지가 레이먼의 검법을 자세히 보니, 그는 돌아서며 막고 나아가며 공격하는데 매우 빠른 속도였다.
한참을 싸우다 청청의 검법이 갑자기 변화하였다. 모두가 허초(虛招)였고 칼끝이 나아갔다가 곧 돌아오니 이는 석량파(石樑派)의 뇌진검법(雷震劍法)이었다. 육육은 36초인데 1초도 실초(實招)가 없으니, 그것이 바로 뇌성을 울리지 전의 번개와 같아서 적으로 하여금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아물거리게 한 뒤 뒤따라 치는 것이다. 바로 벼락같은 맹공인 것이다.
레이먼의 검법은 비록 수준이 높았지만 그는 이러한 검법을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상대방의 검은 날카롭고 어지럽게 번쩍거릴뿐 검이 자기를 향해 찌르려고하여 막으면 상대방의 검은 더 이상 공격해오지 않는 것이었다. 서방의 검술에도 원래 이렇게 위장공격법이 잇긴 하지만 많아도 두세번이지 결코 수십번 모두 거짓 공격만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기술은 보기는 좋을지 몰라도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그가 비웃으려고 하는 순간, 청청은 갑자기 검을 휘두르며 맹공을 퍼부었다. 레이먼이 칼을 들어 막았지만 호랑이처럼 크게 움직이는 바람에 막을 수가 없어 주춤하는 사이 장검은 이미 손에서 날아 가 버렸다.
청청은 승세를 몰아 칼끝으로 그의 가슴을 향했다. 레이먼은 할 수 없이 양손을 들어 항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청이 히히 웃으며 검을 거두고 자리로 돌아왔다. 레이먼은 얼굴 가득히 창피한 빛뿐이었다. 자기가 유럽대륙을 종횡하도록 적이 없었는데 중국에 와서 일개 여자의 손에 패배를 당한 것이었다.
제크린은 웃으며 탁자 위에 있는 양금을 들고 가서 청청에게 건네주었다.
청청은 손을 저으며 싫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얼른 웃음을 가득 띠며 꾸루꾸루 포루투칼 말을 큰 소리로 해대며 자꾸만 그녀에게 내미는 것이었다.
정청죽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아 몇 개의 양금을 한 줄로 하더니 두 손으로 양끝을 눌렀다. 그리고 제크린에게 건네주었다.
제크린은 받아서 다시 청청에게 주려다가 손을 들어보고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양금은 서로 붙어버려 한 줄기 원주(圓柱)처럼 묶여져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크린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중얼중얼 말했다.
[동방 사람들은 정말 신기해! 정말 신기해!]
그리고는 돌아가서 금주(金柱)를 두 군관에게 보여 주었다.
레이먼이 말했다.
[저 사람들은 마술을 하는거야!]
피터가 말했다.
[저 사람들은 건드리지 말고 빨리 갑시다!]
두 사람이 명령을 내리자 그 일행들은 서둘러 일어섰다. 잠시 후, 문 박에선 수레를 미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먼과 피터도 일어서더니 여숙을 나섰다.
제크린은 청청의 곁을 지나면서 그녀를 향해 귀여운 웃음을 보냈다. 그리고는 무르익은 향기와 딩동거리는 패옥 소리를 남기고 문 밖으로 사라져 갔다.
철나한이 말했다.
[홍이대포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으니.......] 그러자 호계남이 한마디했다.
[우리 한 번 보러 갑시다!]
사천광이 웃었다.
[호형! 당신이 빈손으로 가서 대포 하나를 훔쳐 온다면 내가 진실로 감탄하겠소!]
호계남도 웃으며 대답했다.
[대포는 정말 훔쳐 본 적이 없는데 우리 서로 내기를 할까요?] 사천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포를 가지고 가서 만청의 달자를 쳐부술 것인데 도둑질할 수는 없지 않겠소? 그렇지만 않다면 당신과 진짜 내기를 해볼 것인데.......] 이 말에 일행은 소리내어 웃으며 여숙을 나섰다. 조금 지나 대포를 운반하는 군대를 뒤쫓았다. 모두 10문의 대포였다. 과연 거대하였다. 그 형태만 보더라도 위풍이 늠름하였다. 그런데 대포는 여덟 마리의 말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부역꾼들이 밀고 있었다. 대포가 지나가면 길위에는 두 줄기 구덩이가 깊게 파여 있었다.
일행이 20여리쯤 나아갔을 때 갑자기 앞에서 방울 소리가 들리면서 10여 마리의 말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왔을 때 말 위에는 활과 화살을 맨 사람이 보였다. 말 위에는 토끼같은 짐승이 매달려 있었는데 사냥을 나온 사람들이 분명했다. 그들의 의복은 매우 화려했다. 모두 비단 구두를 신었는데 위세가 등등하였다. 그들은 묘령의 소녀 한 명을 옹호하고 있었다.
그 소녀는 원승지 일행을 보더니 말을 몰아 달려오면서 부르짖었다.
[사부님! 사부님!]
정청죽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래, 네가 왔구나!]
원래 그 낭자는 그의 제자인 아구(阿九)였다. 일행은 철상자를 구할 때 그녀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푸른 옷을 입어서 흡사 시골 처녀 같았는데, 오늘은 아주 화려하게 꾸몄고 귀에는 엄지 손가락만한 진주를 달고 옷에는 커다란 홍보석을 걸고 있었다. 아구는 원승지를 보고는 예쁘게 한 번 웃더니 말하였다.
[당신도 저의 사부님과 같이 계시는군요!]
원승지는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아구는 사천광을 향해 말했다.
[사대장님! 우리는 알고 지내지 않을 수가 없군요.]
청죽이 그녀에게 호계남과 철나한에게도 인사하도록 시켰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
[그냥 나와서 사냥을 하는 중이에요. 무척 멀리 나왔지요?] 정청죽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북경으로 가는 길인데 함께 가려느냐?]
아구는 매우 기뻐하였다.
[좋아요!]
그는 사냥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사부 곁으로 말을 타고 따라 나섰다.
원승지와 청청은 그녀가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기세가 있음을 알았다. 또 그녀의 거동이 기품이 있는 걸 보았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이상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산동에서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가 정청죽의 손녀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의 제자였다. 분명히 권세가 있거나 명문의 귀여운 딸인 것만 같았다. 사냥을 나오는데도 저렇게 많은 하인들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언제 정청죽을 사부로 모셨는지, 어떻게 청죽방에 끼어 들었는지....... 이 모든 것이 이상하기만 하였다.
그날 밤, 음마집(飮馬集)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원승지와 청청은 아구의 종이 말할 때에 약간 관청의 어투를 쓰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아구에 대해서는 극진히 공경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는 상관하지 않고 매우 교만할 정도였다. 이렇게 보면 그들의 환관인지 종복인지 마음속에는 더욱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청청이 아구에게 물었다.
[동생, 우리가 관병을 쳐부술 때 정말 멋있게 싸웠지.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제가 안보이더군. 난 항상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때 도대체 어디에 갔었지?]
아구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응> 하는 소리와 함께 대답하였다.
[언니! 언니가 화장을 하면 더욱 아름다울 텐데!]
딴전을 피우는 것이었다. 청청이 계속 물어보려 하자 정청죽이 맞은 편에서 눈짓을 보냈다.
[길을 걷다 보면 머리든 얼굴이든 온통 흙먼지 뿐인데 화장을 해서 누구에게 보여주겠어?]
두 사람은 잡담을 조금 한 뒤 헤어져서 각기 잠자리에 들었다.
원승지가 막 침대에 누우려고 할 때 정청죽이 방에 들어왔다.
[원상공, 상의 드릴 일이 있습니다.]
원승지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 앉으시오.]
정청죽이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원상공, 밖의 공터에 나가서 얘기하는 것이 더 좋겠군요.] 원승지는 비밀 이야기인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겉옷을 걸치고 여숙을 나와 마을 밖의 조그만 언덕까지 갔다.
정청죽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원상공, 제 제자인 아구와의 내력은 매우 특이합니다. 그녀는 나의 큰 은인입니다. 다만 그를 제자로 맞을 때 나는 그녀의 신분을 절대 밝히지 않기로 약속한 점이 있습니다.]
원승지가 물었다.
[내가 보아도 그녀는 보통 사람이 아니더군요. 그대가 이미 그에게 응답을 했었다면 내게 말할 필요가 없소.]
정청죽이 말했다.
[그녀가 데리고 다니는 자들은 모두 관부(官府)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의 모사는 그들 앞에서는 절대 이야기해서는 안니 될 것입니다.] 원승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 관부 사람들이었군.]
정청죽이 다시 말했다.
[제 제자는 절대 나를 배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나이가 어리니 세상일을 예측하기 어려워서 하는 말씀입니다.]
원승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리가 그녀 앞에서는 특별히 조심하면 되지 않겠소?] 두 사람은 간단히 말을 마치고 여숙으로 돌아왔다.
여숙 입구에 돌아 왔을 때 어떤 남자가 동쪽 큰 길가에서 지나치는 것이 보였다. 그는 등불 하나를 들고 몸을 숨기며 여숙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 원승지는 그 사나이가 약간 낯익었으나 그를 어디에서 보았는지 얼른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돌아와 침대 위에서 잠을 자기 전에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맹가의 연회? 태산대회? 남경에서? 구주의 어디에서? 츰왕군에서....... 아무데서도 그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예전에 본 얼굴이 분명했다. 그는 누구란 말인가?
이렇게 회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덧문이 살그머니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곧 옷을 걸치고 침대에서 내려서며 물었다.
[누구냐?]
문 밖에서는 청청이 웃으며 대답했다.
[무엇을 좀 드시지 않겠어요?]
원승지가 등불을 켜고 안문을 열자 그녀는 쟁반에 두 그릇의 사발에 계란을 담아 들고 있었다. 방금 삶은 것이었다.
[정말 고맙네. 이렇게 늦었는데 왜 아직 잠들지 않았지?] 청청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생각에는 저 아구란 얘는 참으로 이상해요. 당신도 그녀를 사모하느라 잠을 못 이룰 것이라고 믿어져서.......]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살그머니 웃었다.
원승지도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녀를 무엇 때문에 사모한단 말인가?]
청청이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녀가 아주 예쁘다고 생각했겠지요. 사실 그녀가 예쁘지 않아요?] 원승지는 청청의 마음이 좁은 것을 알기 때문에, 만약 아구가 예쁘다고 말하면 그녀는 분명히 기분 나빠할 것이고, 만약 예쁘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 또한 분명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니 그녀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냥 수저를 들어서 계란을 저으며 한 입을 먹는 순간 갑자기 수저를 던지며 소리쳤다.
[그래! 바로 그 자야!]
청청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 자라니요?]
[잠시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빨리 나와 나가지!]
청청은 그가 계란을 먹지 않고 무슨 복잡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어디로 가는 거죠?> 하고 물었지만 원승지는 대답 대신 홍승해 곁에 놓여 있던 검을 들어서 그녀에게 주었다.
[이것을 들어.]
청청은 그것을 받아 들고 적을 만나러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승지는 계란을 먹다가 갑자기 그해 안대낭의 집에서 금의위 호로삼(胡老三)이 소혜(小慧)를 빼앗을 때 죽어라고 저항하는 그에게 안대낭이 때마침 돌아와서 계란으로 호로삼을 때려 쫓아 보낸 사건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방금 그가 본 사람이 바로 그 호로삼이었던 것이다. 귀신처럼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몸을 굽혀서 여러 방을 거치면서 귀 기울여 들었다. 한 큰 방에서 과연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들렸다.
한 사람이 말하는게 들려 왔다.
[안대인,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눈앞에 큰 공을 세울 일을 놓고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너무 애석한 노릇이 아닙니까?]
모든 사람들이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목소리가 쉰듯한 자가 말했다.
[이렇게 하자. 우리들 반은 여기에 남아 있고, 다른 반은 안대인의 일을 하자. 공을 세우면 그것도 우리의 복이니까.]
첫 번째 사람이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우리는 복도 화도 함께 나누는 거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우리 함께 나서는 거다.]
또 다른 자가 입을 떼었다.
[자, 모두들 이리와. 누가 가고 누가 남을 것인지 제비를 뽑자. 자기가 뽑는 것이니 뒤에 딴 말 않는 거다.......]
모두들 옳다고 소리쳤다.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에겐 분명 여기에 무슨 일이 있다. 그래서 떠날 수가 없는 거다. 그런데 안대인이니, 큰 공을 세우느니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정말 알 수가 없는 노릇이군.)
조금 뒤에 칼이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제비를 다 뽑고 밖으로 나오려는 모양이었다.
원승지가 청청의 구에 대고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가서 사천광 등에게 모두 방비하라고 시켜라. 나는 여기서 더 지켜 볼테니.......]
청청은 머리를 끄덕이며 낮게 대답했다.
[조심하세요.]
잠시 후, 방문이 끼익 하며 열리더니 방안의 촛불이 문으로부터 비쳐 나왔다. 원승지와 청청은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가 첫 번째 나오는 자가 호로삼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 뒤에는 8명의 칼을 든 사람들이 불빛 아래서 분명히 보였는데 모두 아구의 종들이었다. 아홉 명은 담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청청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 바로 그들이에요. 난 그 여자애가 나쁜년인 것을 알고 있었어요.] 원승지도 이상하게 느꼈지만 천천히 결론을 내리기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뒤따라 가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 여겨 그 역시 담장을 넘어서 살금살금 그 아홉 명의 뒤를 따라갔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옮김: 김선국(金善國;sm1109)

* 제 3 권 *

- 1 - 여자의 지모(智謀)

원승지는 후문을 맴돌다가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침실을 향해서 갔다. 그리고는 지붕으로 올라가 가볍게 기와를 열고 아래로 내려갔다. 방안에는 50이 가까운 사나이가 있었다. 모두들 몸집이 매우 컸다. 호로삼과 아구의 여덟 명의 하인들은 죽 늘어서서 방에 있는 그 사람을 향해 인사를 하였다. 호로삼이 말했다.
[제가 시내에서 왕부 지휘관과 마주쳤습니다. 그들이 공교롭게도 이곳에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불러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 자가 말했다.
[좋아! 좋아! 왕부 지휘관은 어떻게 말하던가?]
한 사람이 대답했다.
[왕부 지휘관께서는 안대인께서 일이 있으시다니 힘껏 도우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 안대인이 말했다.
[이번에 성공을 한다면 여러분의 공은 매우 큰 것이오. 하하하.......] 한 사람이 말했다.
[대인님의 처리하심에 달렸읍죠.]
안대인이 말했다.
[우리가 누구는 내정시위(內廷侍衛)로, 누구는 금의위(錦依衛)로 갈라져 있지만 모두가 황제를 위하여 일하는 걸세.]
그 말에 모두들 대답하였다.
[안대인님 말씀이 옳습니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안대인이 일어섰다.
[좋아! 가자!]
원승지는 더욱 이상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
(호로삼과 안대인은 모두 금의위가 아닌가. 그렇다면 아구의 저 하인들은 내정시위였군. 아구라는 그 아가씨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가? 이토록 많은 내정시위를 데리고 곳곳에 다니다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안대인은 무리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원승지가 지붕에서 세어 보니 모두 열여섯 명이었다. 안대인이 6명을 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일행이 멀리 간 뒤에 다시 살금살금 뒤를 따라 나섰다. 이들은 갈수록 좁고 험한 곳으로 7, 8마장을 갔다. 한 사람이 가볍게 몇 마디를 하자 일행은 갑자기 흩어져서 한적한 집 한채를 둘러싸더니 각기 몸을 굽히고 쥐죽은듯이 다가갔다.
원승지도 그들의 모양을 본떠 몸을 굽히고 쥐죽은듯이 다가갔다. 어떤자가 어둠속에서 원승지의 모습을 보았으나 같은 일행이라 생각했는지 더 이상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안대인은 포위가 이미 다 된 것을 보고는 손을 흔들어서 일행을 엎드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집안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안대인은 잠시 서 있더니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여인은 놀라서 대답했다.
[아! 바로... 바로... 당신이...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온 거죠?] 안대인이 다시 소리쳤다.
[정말 원수가 아니면 다시 만나지 않는다더니 그 꼴이군. 여기에 있었다니! 빨리 문이나 열어!]
그의 목소리에 놀라움과 기쁨이 숨겨져 있었다.
그 여인이 말했다.
[나는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대체 무엇하러 왔죠?] 안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은 나를 안 보려고 하겠지만, 나는 내 마누라로 생각하고 있었단 말야.]
그러자 그 여인은 화가 나서 말했다.
[누가 당신의 마누라요? 우리는 이미 끝장이 난 것 아닌가요? 나를 놓아주지 않을 셈이라면 이 집을 불태우세요. 나는 죽으면 죽었지 당신 같은 미치고 양심없는 인간을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테니까!]
원승지가 들어보니, 들으면 들을수록 그 음성은 매우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그는 마침내 놀라서 깨달았다.
(그래, 안대낭이야. 저 안대인은 원래 그녀의 남편이었고 소혜의 아버지였구나!)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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