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碧血剑 3-3

3학년2반 | 2022.01.16 07:52:18 댓글: 0 조회: 367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692

* 제 3 권 *

- 3 - 암살당한 황제

이번 일은 호계남이 공이 가장 컸다 할 수 있었다. 화약에 물을 뿌린 일, 함정을 파서 대포를 처치하는 일 모두가 그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행들은 그의 공을 칭찬하면서 다시는 좀도둑 출신이라고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길을 가자 가는 곳마다 초토가 되어 있었다. 들개를 잡아 먹고 남은 뼈다귀 등 모두가 청병이 살육하고 지나간 흔적들 뿐이어서 일행들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사천광이 한마디했다.
[그날 달자병이 원수 아파태를 죽이지 않은 것이 이렇게 애석할 수가 없군요. 맹주! 우리 빨리 가서 그 놈을 죽여버리는게 어떻겠습니까?] 청청이 먼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원승지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대답이 없었다. 청청이 입을 열었다.
[가서 달자들의 두목을 죽이는 것이 왜 안좋은가요? 그러면 손중수 숙부의 원한을 풀 수도 있고요.]
원승지가 대답했다.
[달자들의 두목을 죽이는 것은 좋다만, 우리는 만청의 황제 황태극을 찾아 죽이는게 더 급해.]
일행들은 모두들 그 말이 옳다고 환호성을 쳤다.
원승지는 홍승해에게 만청의 수도의 방위는 어떤지, 또 어떻게 황궁을 들어가는지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홍승해가 대답했다.
[만청의 수도는 심양에 있고 지금은 성경(盛京)이라 불리웁니다. 그 성경의 규모는 초라해서 북경에 비하면 천부당 만부당합니다. 소인이 예전에 예친왕(睿親王) 다이곤(多爾崑) 밑에서 연락병 노릇을 하였는데, 허리에 어떤 패를 차면 직접 예친왕부에 들어 갈 수가 있어요. 하지만 황궁에는 들어가본 일이 없습니다.]
원승지가 대답했다.
[그러면 먼저 성경에 도착한 후에 자세한 계획을 세우도록 하자.] 일행은 먼저 북경에 도착하여 철상자를 보관해 놓고는 청죽방의 힘을 쓸 줄 아는 두목 몇 명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즉시 북경을 떠나 북으로 향해 하루가 채 못되어서 성경에 도착했다.
일행은 작은 객점에서 유숙하면서 어떻게 궁에 잠입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홍승해가 말했다.
[상공, 소인의 의견으로는 상공께서 직위를 낮추어 소인과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 분장하고 먼저 다이곤을 만나 봅시다. 그는 달자 황제의 친동생으로, 형제들 중에서 가장 총애를 받는 까닭에 세력도 가장 큽니다. 혹시 그를 핑계삼아 궁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원승지가 되물었다.
[다이곤이 너를 시켜 사례태감(詞禮太監) 조화순(曹化淳)에게 편지를 보낼 때 너는 또 어떻게 회신을 가져갔지?]
홍승해가 대답했다.
[소인은 아직 조화순을 못만났지만, 북경에서 중요한 군사기밀을 들었기에 먼저 돌아와서 보고드리는 거라고 하지요.]
원승지가 또 물었다.
[군사기밀이라니?]
[소인이 헛소리를 하지요. 대명황제가 이미 서양이 나라들에게 군사요청을 해 몇 백대의 대포 그리고 수천 명의 서양병사들을 데려와서 며칠내에 만청을 공격한다고 말입니다.]
원승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참으로 기막힌 계획이다. 다이곤은 듣자마자 곧 달자황제에게 보고를 할테지?]
그리고는 청청에게 서양권총을 달라고 하고는 홍승해에게 말했다.
[너는 나를 서양병의 통역관 전통사라고 말해라. 그리고 속사정을 안다고.......]
청청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승지 오빠, 어떤 사람으로도 가장을 안하더니 결국은 그 못난 통역관 전통사로 가장하는군요. 그럼 제가 오빠의 이 몇 개를 뽑은 다음 말하세요!] 그러면서 오른손을 들어 원승지 입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원승지가 입을 벌려 청청의 손가락을 깨무는 시늉을 하자 청청은 재빨리 손을 오므렸다. 원승지가 키리콸라하면서 몇 마디 서양말을 흉내내자 일행은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그날 오후, 원승지는 홍승해를 따라서 예친왕부에 가서 다이곤을 만나길 청하자 그는 즉시 좋다고 했다.
원승지는 다이곤이 약 32세쯤 되리라고 짐작했다. 그는 키가 키고 말랐으며 정갈한 모습이었다.
원승지가 그에게 만주어로 무어라고 얘기하자 다이곤의 얼굴색이 금새 확 변하더니 즉시 한어(漢語)로 원승지가 누구냐고 물었다.
원승지는 즉각 서양총을 꺼내어 탁자 위에 놓고 아까 홍승해와 상의한 대로 말했다. 다이곤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내가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니 돌아가 보도록 해라. 그리고 내일 다시 와서 분부를 기다리도록 하고.......] 두 사람은 할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왔다.
원승지는 이유도 없이 달자황제 동생에게 몇 번씩 머리를 숙였으나 황태극도 못보고 객점으로 돌아오고 보니 마음이 답답해 졌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 그는 홍승해를 데리고 황궁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오는 중에 궁으로 잠입하여 황제를 죽이리라고 결정하였다.
그는 이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다음날 필히 범인을 잡기 위해 성에 대수색작전이 벌어질 것을 예상, 일행에게 각자 성을 빠져나가 내일 정오에 성의 남쪽 20리쯤 떨어진 폐허가 된 절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한 사람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무공이 원승지에게 너무나 차이나게 뒤지므로 혼자서 일을 처리하면 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청청은 그가 문을 나설 때 말없이 쳐다보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승지 오빠, 달자황제를 죽이는 것도 좋지만, 만일 죽이지 못해도 그것으로 족하니 몸부터 조심하세요. 오빠도 알다시피 제 마음속엔 백 명의 달자황제보다 오빠의 머리카락 한 개가 훨씬 더 중요해요. 만일 오빠를 다시는 못보게 된다면.......]
여기까지 말하고선 그녀는 눈자위까지 빨개져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원승지는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손을 뻗쳐 자기 머리카락 한 개를 잘라 주면서 웃으며 말했다.
[자! 내가 백명의 달자 황제를 청청에게 준다.]
청청은 씨익 웃었으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x x x x
원승지는 초경이 되기를 기다려 금사검과 금사추를 가지고 궁담 가까이로 갔다. 궁 밖의 경비는 매우 삼엄하였다. 그는 살금살금 큰 나무 뒤로 가서 몸을 숨겼다. 그런 다음 경비병이 순찰을 돌 때를 이용해 살며시 궁담을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궁전이 여기저기 보였으나 도대체 어느곳이 황태극의 궁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경비병을 한 놈 잡거나 태감을 잡아서 다그쳐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만가만 이리저리 반 시간 정도나 걸었어도 아무것도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이 일은 참으로 이루기 어렵겠구나. 어찌 그날 저녁의 성공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우선 동태를 살펴보고 오늘 저녁 못하면 내일 밤 다시오자. 설사 한 달쯤의 시간이 걸린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며 더욱 천천히 걸어 복도 하나를 돌 때였다. 돌연히 꽃들 가운데 불빛이 반짝임을 발견하고 급히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 명의 태감이 등을 들고 세 명의 관원을 안내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만일 그가 그들을 죽일라치면 그들이 놀래어 소리를 질러댈 것이고, 그러면 분명 황제를 죽일 수 없을 것이라고 여져겼다. 그래서 그냥 그들 뒤를 다라 밟으니 그 일곱 사람들은 대전을 향하여 걸어 들어갔다.
대전 밖에 걸린 현판에는 <숭정전(崇政殿)> 이라는 석자가 쓰여져 있었고 옆에는 꼬불꼬불한 만주 글자가 잇따라 적혀 있었다.
원승지는 대전을 한바퀴 돌아본 후 몸을 땅에 엎드렸다. 대전 주위를 4, 5명의 경비병이 칼을 차고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속으로 무척 기뻤다.
(이곳의 경비가 이처럼 삼엄한 걸 보니 필히 달자황제가 이 궁안에 있을 것이다.)
그는 돌 하나를 집어서 정원으로 던졌다. 4, 5명의 경비병이 즉시 달려가 살펴보았다.
원승지는 경공을 사용하여 담벼락에 찰싹 달라붙어 <벽호유장공(壁虎遊牆功)>을 사용, 벽을 타고 잠깐 사이에 궁전 꼭대기로 기어 올라갔다.
지붕 위에 엎드려 내려다보니 사방이 조용했다. 자기의 종적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음을 알고는 가만가만 궁전 지붕의 기와를 몇장 뜯어내고 그 사이로 밑을 내려다 보았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궁전내에 가득하고 세 명의 관원들은 무릎을 꿇은 채 삼궤구고(三詭九叩)의 대례를 행하고 있었다.
(과연 이곳이 황제가 있는 곳이로구나!)
맨 앞에 앉은 수염이 하얀 노관원이 말했다.
[신 범문정(氾文程)이옵니다.]
그 다음 몸을 떨면서 한 관원이 말했다.
[신 영완아(寧完我)이옵니다.]
마지막으로 얼굴이 뾰족한 관원이 말했다.
[신 포승선(包承先)이옵니다.]
원승지는 속으로 결심했다.
(저 세 사람은 모두 한인(漢人)인데, 달자에게 투항한 간신 아닌가? 내 잠시 기다렸다가 단칼에 요절을 내고 말리라.)
그리고는 또 생각했다.
(그들과 달자황제는 어찌 된 일로 모두 한어를 사용할 까?) 가만가만 몸을 남쪽으로 옮겨 구멍을 통해 북쪽방향으로 내려다 보니, 이번에는 귀가 크고 두 눈이 반짝거리는 약 50세쯤 되는 사람이 용좌에 앉아 있었다. 분명 부친이 살아계실 때의 대적인 황태극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생각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금사추를 쏘아 그를 죽일 수 있다면....... 거리가 좀 먼게 흠이구나.
꼭 죽인다는 보장이 없어. 만일 저 안에 무공이 뛰어난 자만 없으면 당장 뛰어 내려가 단칼에 그의 머리를 잘라낼 수도 있을텐데.......) 듣고 있자니 황태극이 입을 열었다.
[남조의 군 상태는 요즈음 어떠한가? 오늘 아파태의 급보를 받았는데, 산동(山東), 청주(靑州), 태안(泰安)에서 잠복해 있다가 대승리를 거두었다고 들었다. 아직도 명군이 그럴 힘이 있단 말인가? 너희는 청주, 태안 일대의 통병관이 누구인지를 아느냐?]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들은 지금 우리가 승리한 그 사건을 말하려 하는구나. 어디 뭐라고 하는지 들어봐야지.)
영완아가 대답했다.
[황제께 아뢰오! 신이 이미 자세히 조사한 바로는 명군을 이끄는 장수는 성이 수(水)이고 이름은 수감(水鑑)이라고 하는 무예가 출중한 인물입니다.] 황제가 아! 하면서 대답했다.
[너희가 가서 자세히 조사해 보고 그가 우리 만청에 항복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도록 하라. 또한 그가 재물을 탐하는지, 여색을 좋아하는지도 알아보라. 만일 그가 거부하면 조화순을 시켜 명황제에게 그를 비방하는 말을하여 그의 관직을 폐하고 그의 목을 치도록 하게 만들어라. 그러나 먼저 그 사람을 만청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작전을 세우도록 해야한다. 그 사람이 아파태를 칠 수 있는 인재라면 결코 소홀히 놓쳐서는 안된다.]
세 명의 관원이 동시에 대답했다.
[황상의 지혜로운 결단에 그가 응해 주기만 하면 그것은 곧 그의 복일 것입니다.]
황제가 한숨을 쉬며 이어 한마디했다.
[우리가 그때 원숭환(袁崇煥)을 모함하여 죽인 것이 두고두고 안타깝게 여겨지누나.......]
원승지는 그의 부친의 존함이 얘기되어지는 것을 듣고 귀가 번쩍 뜨여서 온몸이 뜨거워졌다.
(저들이 모함했다니! 그렇다. 아버지를 죽인 것은 바로 저놈들이다!) 황태극이 계속 이었다.
[만일 경이 원숭환을 얻었더라면, 지금쯤 남조의 대부분의 땅은 벌써 만청의 것이 되었을 것인데.......]
원승지는 속으로 피나는 소리를 내며 분을 달래었다.
(저 개 같은 달자를 때려 납작하게 해줘야 하는건데....... 우리 아버님이 얼마나 의절이 충직하신데 하필 너 같은 놈에게 항복을 하시겠느냐?) 황태극이 다시 말했다.
[원숭환은 사람이 우직해서 대세를 알지 못하는 고로, 데려왔다해도 항복하지않을 것이야.]
그러면서 다시 한숨을 쉬며 물었다.
[홍승수는 요즘 어떤가?]
홍승수는 본래 명조의 각료 총책임자였는데, 숭정황제가 큰 병력으로 만청과 싸우다 실패하자 그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홍승수가 함정에 빠졌을 때, 숭정은 그가 이미 순국했음을 알고 친히 장중한 장례를 치렀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만청에 항복하여 그쪽 사람이 되었음을 알고는 천하는 숭정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던 것을 원승지는 알고 있었다.
범문정이 말했다.
[황제께 아뢰오. 홍승수는 이미 남조의 실정을 소상히 보고하고 하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숭정은 간신을 신용하고 충신을 죽이므로 천하의 유랑들이 일어났다 합니다. 우리 만청의 대군이 이 기회를 이용해 들어가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재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황태극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숭정의 성질을 말한 것은 하나도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직 내가 들어갈 때가 아니다. 명군으로 하여금 그 유랑들을 치게 한 뒤 양쪽이 모두 지쳐있을 때에 만청은 어부지리격으로 단숨에 천하를 얻어야 한다. 바로 너희 한인들이 말하는 그 <변장자호>의 계획이 아니겠느냐?]
세 사람은 동시에 허리를 굽혔다.
[예, 예, 황제께선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원승지도 속으로 저으기 놀랬다.
(저 달자황제는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로구나. 그와 숭정을 비교하면 실로 천양지차(天壤之差)야. 그러니 내가 저자를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 저자를 제거하지 못하면 우리 명조가 온전할리 없으니, 이는 필시 숭정의 천하를 지배한 것과 같은 그저 두려운 일이로고.......)
원승지는 이어서 숭정과 달제황제를 비교해 보았으나 비슷하긴하되 감히 상대가 안되었다. 그는 심중에 왜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다시 이어서 생각에 잠겼다.
(저 황제의 한어는 유창하기가 비길 데가 없구나. 한서를 얼마나 읽었기에 변장자호의 성어까지 알고 있을까?)
황태극이 입을 열었다.
[홍승수가 또 무엇을 말하더냐?]
범문정이 대답했다.
[홍승수가 신에게 말하기를, 황제의 은총을 바라며 그를 연락병으로 써준다면 황제를 위해 개와 말 따위의 짐승같이 열심히 일해서 천은에 보답하겠다 하였습니다.]
황태극이 <하하> 웃으며 좋아했다.
[연락병으로? 그래 천천히 말해보아라.]
포승선이 대답했다.
[황상, 신은 우매하여 마음속에 이해하지 못할 일이 있는데 황상께서 좀 깨우쳐 주옵소서.]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포승선이 이어 운을 달았다.
[홍승수는, 처음에는 귀순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황상께서 은총을 베푸셔서 친히 몸에 두를 띠를 풀고 그의 몸에 채워주시고 또한 연일 연회를베푸시어 그를 환대하셨습니다. 만청제국의 제국공신이라는, 저도 감히 그런 영광을 받아본 일이 없으므로 저희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황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요 몇 년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 그런데도 연이어 정벌을 행했던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남조의 땅을 뺏기 위해서입니다> 하고 아뢰었습니다. 황상께서 또, <그러나 우리는 남조의 속사정에 어둡기가 맹인에 가깝다. 홍승수가 귀순만 한다면 우리의 눈은 뜨일 것이다. 그러니 좋은 일이 아니더냐?> 하셔서 우리들은 모두 황상의 명석함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근래에 홍승수는 남조 각지의 성을 관장하였던 바 민속풍습에 대해 과연 소항하여서, 황상의 계산대로 였습니다. 그러나 황상은 도무지 그에게 직책을 하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신 등은 이 일도 이해할 수 없을 뿐입니다.]
황태극이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포경은 성질이 솔직담백하여 무엇을 물으면 거짓없이 아뢰느니라. 너희 세 사람은 비록 한인이긴 하되 선황과 경을 위해 충성을 다 바쳤는데 어찌 홍승수가 너희와 비교가 되겠느냐?]
범문정 등 세 사람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감격해 마지 않았다.
원승지는 속으로 치를 떨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들!)
황태극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홍승수 그 사람은 재간은 있지만 성미가 고약하다. 예전에 내가 그에게 너무 잘해주어 고관대직을 하사했었지만 그가 한 번이나 나와서 일을 했더냐? 숭정이 그에게 준 관직보다 적다고 말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때 그에게 무슨 관직을 주었더냐?]
포승선이 대답했다.
[황상께 아뢰오. 그때 그가 남조에서 한 관직은 태자태보 병부상서, 총독군부, 통솔팔명총병관 등으로, 실로 많고 세력도 크다 하겠습니다.] 황태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가 그에게 더 큰 관직을 내리겠으나, 숭정이 그에게 내린 관직보다 크진 않을 것이다. 그로 하여금 전력하여 일하도록 하고, 더 이상은 그에게 관직을 줄 수는 없다 하여라.]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조아렸다.
[황공하옵니다.]
원승지는 생각할수록 이치에 맞는 것 같았다. 그가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에는 뛰어난 수법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까지 듣고나니, 예전 화산 꼭대기에서 처음 본 <금사비급>과도 흡사했다. 그 중에는 상대의 생각을 외면한 것이 없었으나, 비록 정도는 아니라해도 사람을 굴복시키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는 한참을 멍청해 있다가 황태극과 범문정 등이 대명천하를 어떻게 손에 넣어야 할 것인가, 또 지금은 먼저 어떤 준비를 갖추어야 하며 대명의 천하는 이미 자신들 손에 든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 등을 상세히 논의하는 것을 들었다.
원승지는 분노가 치밀어 가만히 두 장의 기와를 뜯어내고는 대전 안으로 내려 뛸 자리를 보고 있었다. 그때 황태극이 입을 열었다.
[남조의 유랑들이 일어나는 원인을 살펴보면,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즉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남조의 땅을 갖게되면 제일 우선 되어야 할 일은 천하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일이니라.] 원승지는 이 말에 속으로 감탄하였다.
(이렇게 옳은 말을 할 수가!)
범문정 등이 몇 마디를 덧붙인 뒤 황태극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백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려면 어떤 방법이 있겠느냐? 법공이 먼저 말해보라.]
황태극은 범문정에게는 특별히 대우를 해서 그를 <공>이라 불렀고, 포승선에게는 <포경>이라고만 불렀다.
범문정이 아뢰었다.
[황상께서는 아직 땅을 차지하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먼저 백성을 생각하시는 바, 이는 필시 하늘이 돌보고 계심이옵니다. 신의 우견으로서는, 천하의 백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길은 첫째, 세금을 가벼이 해야 하며 절대로 숭정처럼 끊임없이 뺏아가는 일을 해서는 안될 줄로 아옵니다.] 황태극이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며 기뻐했다.
[우리가 조정에 들어선 후에는 새 법률을 정해, 대대손손에게 세금을 더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국고에 여분이 생기면 곧 백성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범문정이 대답했다.
[황상의 그같은 보살핌은 만민의 복입니다. 소신은 분골쇄신, 황상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저 기쁠 따름이옵니다.]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매국노는 뭔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저것이 연극일까? 진심일까?)
황태극이 계속했다.
[좋소, 좋소! 그대의 한인들은 그대들을 보고 매국노라고 부르지만, 훗날 그대들이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 그것이 곧 천하백성을 위하는 일일 것이야.
처음에는 별 욕을 다 먹겠지만, 천하백성으로 하여금 직접 보게 할 것이다.
그대들이 한인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숭정 밑에서 그저 관직과 재산 모으는 일만을 알고 백성들에게 피를 빨아먹는 진정한 매국노가 좋은 일을 하는지를!]
영완아가 고개를 조아렸다.
[황상께 아뢰오! 우리 만청의 만주족은 적고 한인의 수효가 많습니다. 황상께서 천하를 얻으신 후에, 소인의 좁은 소견으로는 필시 만주족과 한족을 모두 황상의 백성으로 균등히 살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원조 몽고족처럼 백성을 4등분하는 그런 일은 하지 마시옵소서. 우리 만청이 백성을 모두 인(仁)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한인 중에 굴복하지 않는 자가 필히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큰 일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황태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에 맞는 말이다. 원조의 궁마는 천하무적이었지만 중국의 땅에서는 인정되지 못했다. 그것이 모두 한인들을 학대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전차......
무엇이라고 하지?]
포승선이 대답했다.
[전차패철이라고 합니다.]
황태극이 껄껄 웃었다.
[맞다! 나는 한인의 책을 읽지만 도대체 희망이 보이질 않는구나.] [황상의 높으신 재치는 실로 놀랍습니다. 그런 한인의 책 속에 나오는 성어를 마음에 너무 깊이 두지 마십시오.]
황태극이 탄식하며 말했다.
[한인의 학문에는 좋은 것이 적지 않다. 그러나 왕이 되는 자는 책을 읽고 책 속의 지식을 배우는 것이 좋지. 한인의 진사와 같이 시를 읊고 운을 맞추고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원승지는 황태극의 말을 듣고 구구절절이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도리어 그 사람을 죽이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은근히 더 듣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네 사람은 어떻게 청병이 성에 잠입할 것이라는 것을 장담과 함께 그 후에는 절대로 백성을 죽이지 않기로 계획했다.
그때 두 명의 내시가 앞으로 나와 어전에 있는 촛불을 갈아 끼우려 했다.
불빛이 잠시 어두워진 사이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언제 또 기회가 올 것인가?)
그는 왼손바닥을 들어 잽싸게 꾸르르 소리를 내면서 기와의 먼지를 타고 내려가 어전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는 오른발로는 탁자를 밟고 금사검으로 황태극의 가슴을 찔렀다.
황태극의 양 옆에는 네 명의 호위병이 있었다. 그들은 칼이 미쳐 닿기도 전에 황태극의 몸을 가로막았다. 그래서 두 명의 호위병이 대신 금사검을 맞고 죽었다.
황태극의 동작은 아주 민첩했다. 옥좌에서 재빨리 일어나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이때 또 대여섯명의 호위병이 나타나고 영완아와 포승선도 원승지 뒤쪽에서 손을 뻗쳐 그를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원승지는 왼발로 동시에 두 사람을 차 버렸다. 이 틈을 타서 황태극은 다시 두 발자국을 물러섰다.
원승지는 몹시 급해졌다.
(오늘 달자황제를 이곳에서 빠져 나가게 한다면 다시는 죽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금사추마저 모두 호위병을 막는데 써 버렸으니 이거 어려운 일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금사검을 계속 휘두르며 호위병들은 상관치 않고 황태극을 향해 돌진했다.
그와의 거리가 불과 한 치도 안되었을 때, 휘장 뒤에서 느닷없이 8명의 무사가 튀어 나왔다. 모두 공수를 하는 사람들인데 한꺼번에 와락 달려 들었다.
원승지는 오른발로 한 명을 걷어차고 왼발로는 원앙고리를 만들며 같이 날았다. 한 명의 무사가 왼쪽에서 달려들었다. 원승지는 왼발로 그의 가슴을 찼으나 그가 두 손으로 원승지의 다리를 꼭 붙들고 늘어졌다. 그 무사는 선혈이 낭자하게 죽으가면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들 8명의 무사는 만주어로 <포고(布庫)>라고 한다. 씨름을 잘하며, 평상시에는 궁중 혹은 왕의 연회에서 격투를 벌여 즐겁게 하곤 하는 자들이다.
황태극은 항상 신하를 접견한 후, 잠자리에 들기 전 늘상 한바탕의 격투를 구경하곤 했었다. 그래서 8명의 포고무사들은 오늘도 어전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인데 자객이 있단 소릴 듣고 총총이 달려나와 황제를 비호하는 것이었다.
원승지가 왼발을 힘껏 털었다. 그러나 무사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는 금사검을 휘둘러 그의 골 반쪽을 베어 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무사의 양쪽손은 원승지의 다리를 꽉 잡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몸 뒤쪽에서 외쳤다.
[간덩이가 부었지. 감히 황제를 암살하려고?]
한어(漢語)였다.
원승지는 상관치 않고 왼발에 그 무사를 단 채로 황태극을 쫓았다. 겨우 한발짝 내밀었을 때였다. 머리 위에서 바람소리가 나더니, 칼 한자루가 날아왔다. 무엇이든 요절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왔다. 원승지는 적의 무공이 무시무시함을 알고서 놀라 급한 김에 땅바닥을 뒹굴었다. 한바퀴 구르고 나니 무검(無劍)은 머리위에 있고 왼쪽발에서 그 무사가 떨어져 나가 비로서 바닥에 설 수가 있었다.
촛불빛 아래서 보니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얼굴색이 옥처럼 하얀 중년 도인이 거기 서 있었는데 그의 오른손엔 총채가 들려 있었다.
그가 비웃으며 외쳤다.
[간이 큰 놈이로고! 아직도 무기를 버리지 않다니!]
원승지는 그를 향해 쏘아보다가 눈을 돌려 황태극을 쳐다보았다. 황태극은 이미 십여명의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원승지는 순간 몸을 날려 황태극에게 달려 들었다.
그러자 그 도사가 몸을 날리며 총채로 원승지의 얼굴을 향해 흔들었다.
원승지는 금사검으로 계속 찔러댔으나 도사의 동작은 워낙 발랐다. 그는 금사검을 피하면서 계속 총채로 금사검을 막았다. 천백개가 넘는 총채의 숱이 급히 흔들렸다.
원승지는 왼손을 뻗어 총채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목을 찔렀다.
쓱, 하는 소리와 함께 녹미(鹿尾)가 그의 손을 쳤다. 손등이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원래 그 총채의 숱은 금사(金絲)와 은사(銀絲)로 만들어져서 비록 부드럽지 만 힘이 있어서 생명을 빼앗아가는 무서운 무기였다.
그때 금사검의 끝 뱀 혓바닥 모양의 갈고리가 그 도인의 어깨에 꽂혔다.
두 사람은 공중에서 세 번씩이나 맞붙고 서로 가벼운 상처를 입혔다. 땅에 내려설 때는 이미 자리가 바뀌어져 있었다.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와 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군가? 무공을 따를 수가 없구나! 정말 내 평생에 보기 어려운 솜씨로고.......)
원승지가 몸을 돌려 황제 황태극을 찌르며 공격할 때 그 도인은 그의 머리 뒤편으로 뽀얀 먼지를 일으켰다. 먼지덩이는 가닥마다 내공을 받아 꼿꼿하게 뻗쳤다. 그것은 마치 구름 몽둥이와도 흡사하였다. 원승지는 할 수 없이 칼을 거두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맞붙어 싸우기를 이미 20여초, 원승지는 온힘을 다하였으나 결국 그 장풍을 조금도 막아내지 못하였다. 싸우면 싸울수록 마음이 산란해 질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소리가 사라지면서 그의 오른쪽 어깨엔 먼지덩이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오른쪽 빰은 이미 수십개의 핏자국으로 얼룩진 것 같았다. 깜짝 놀라는 순간 청청의 목소리가 퍼뜩 떠 올랐다.
[승지 오빠, 달자황제를 죽이는 것도 좋지만, 만일 죽이지 못해도 그것으로 족하니 몸부터 조심하세요!]
그는 적이 이토록 억세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우선 몸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계속해서 싸우면서도 그는 한편으로는 다리를 움직여 조금씩 입구쪽으로 이동해 갔다. 도인이 차갑게 웃으며 외쳤다.
[이 옥진자의 손 안에서 도망칠 생각을 해? 그건 웃기는 수작이다!] 그는 계속하여 3초의 먼지덩이를 일으키면서, 뜻하지도 않은 곳으로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원승지는 어떻게 대항해야 할 것인지 몰라 잠시 당황했다. 그래서 목상도인에게서 전수받은 <신행백변>의 보법(步法)을 써서 우선 이리저리 피해 나갔다.
그러나 이 옥진자는 그의 <신행백변>의 보법을 훤히 알고 있다는 듯이 따라 다녔다. 원승지가 동쪽으로 가면 그림자처럼 따라서 동쪽으로, 서족으로 도망치면 다시 서쪽으로 추격해 오는 것이었다. 원승지는 조금 전의 3초를 겨우 받아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계속되는 공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되자 두 사람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문득 옥진자가 소리쳤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혹시 목상도인의 제자 아니냐?] 원승지가 냉정하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옥진자가 다시 물었다.
[네가 그럼 어떻게 철검문(鐵劍門)의 보법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원승지가 자세를 흐뜨리지 않고 반문하였다.
[너는 한인인데 어찌하여 달자들을 돕고 있는가?]
옥진자가 버럭 성을 내었다.
[건방진 놈! 죽어나갈 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그러면서 그는 다시 두 초를 펼쳤다.
원승지는 상대방의 실력 앞에서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목숨을 건지기 힘들겠다고 생각, 온 정신을 모아 그의 본문인 화산파의 검법으로써 맞섰다. 옥진자는 수초를 막아내더니 고함을 쳤다.
[아! 너는 화산파의 늙은 원숭이 목가 문하의 새끼 원숭이구나!] 원승지가 자기 스승을 욕하는 것에 더욱 분노를 느꼈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셈이냐?]
원승지는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창송영객(倉松迎客)> 1초로 장검을 비껴들고 내공을 칼에 모아 신속하게 공격해 나갔다.
[검법이 놀랍군! 새끼 원숭이도 제법인데?]
그건 칭찬인지 야유인지 모를 소리였다.
[네놈도 젊지만 않지만 어찌 노인을 욕할 수 있단 말이냐!] 원승지가 일갈하자 옥진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늙은 원숭이도 나의 적수가 아닌데 네까짓 새끼 원숭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
원승지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고 온 정신을 모아 칼을 휘두르며 공격해 나갔다.
옥진자는 잠시 방심하고 있다가 왼쪽 어깨가 금사검에 의해 작은 구멍이 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도 더 이상 큰소리를 치지 안고, 춤을 추듯 무섭게 공격해 왔다.
두 사람은 엎치락뒤치락 다시 200여초를 싸웠지만 그 우열은 가려지지 않았다. 원승지는 금사검법과 목상도인에게서 전수받은 공격법을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전자는 아직 완전히 숙달된 것이 아니었고, 후자는 상대방이 잘 알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매 공격마다 화산파 본문검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금사검은 매우 날카로왔지만 옥진자의 먼지덩이는 부드러운 까닭에 전혀 힘을 받지 않으니 결코 그것을 자를 수가 없었다. 금사검과 먼지덩이가 변화무쌍하여 어우려져 싸우니 숭정전의 거대한 촛불은 놀라서인지 쉴새없이 깜빡거렸다.
다시 수십 초를 맞추어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황태극이 만주어로 몇 마디 외쳤다. 그러자 6명의 무사들이 삼면에서 번개같이 달려 나왔다.
원승지는 오늘은 이미 달자 무리를 죽일 수 없다고 판단하고 급히 장검을 위둘러 두 초를 더 공격한 뒤 몸을 돌려 숭정전의 문을 향하여 도망쳐 나왔다. 옥진자는 먼지덩이를 휘두르며 금사검을 잡아 채었다. 결국 두 사람이 동시에 잡아 끌어 당기는 형국이었다. 이때 두 명의 무사가 동시에 원승지의 양 어깨를 잡았다.
원승지는 크게 고함을 지르며 칼을 쥔 손을 놓고 두 손바닥으로 두 무사의 등을 한 번씩 갈기는 원공과 내공이 뒤섞인 그의 힘에 의하여 두 무사의 몸은 앞으로 떨어져 나갔다. 옥진자는 할 수 없어서 먼지덩이의 자루를 놓고서 두 무사를 손바닥으로 되받아서 밀어내었다. 쨍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금사검과 먼지덩이는 동시에 땅에 떨어졌다. 이때 두 무사는 다시 원승지의 두 다리를 감싸 안았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옮김: 김선국(金善國;sm1109)

* 제 3 권 *

- 3 - 암살당한 황제

옥진자는 오른편 손바닥으로 원승지의 가슴을 공격하였다. 원승지는 두 발이 그들의 팔에 묶인 채로 손바닥을 벌려 옥진자의 공격에 대응하였다. 두 무사는 죽어라고 원승지의 다리를 붙잡고 그를 넘어뜨리려고 했으나 원승지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인가? 옥진자의 장풍은 바람처럼 순식간에 1, 20장을 공격해 왔다. 원승지가 그것을 차례대로 맞서 받아내고 있는데 갑자기 목덜미에 무사 한명이 뛰어 올라 그의 목줄기를 거세게 눌러댔다. 그는 왼쪽 팔꿈치를 뒤로 빼내어 그자의 가슴을 쳤다. 무사는 그의 뒷통수에 붉은 선혈을 토하며 떨어져 나갔다. 뜨거운 피가 그의 옷속으로 흘러 들었다. 원승지가 내공을 쓰는 틈에 한 명의 무사가 다시 또 덤벼들어 그의 오른쪽 어깨를 비틀어 쥐었다. 옥진자는 이 틈을 이용하여 또 한 번 공격해왔다. 원승지는 왼손으로 그것을 막았다. 그는 비록 왼쪽 어깨만을 쓸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옥진자의 칠지연점(七指連點)을 막을 수는 있었다.
옥진자의 오른손의 손가락을 다시 펼치며 왼손바닥으로는 원승지의 얼굴을 공격했다. 원승지는 급히 고개를 돌려 피했으나 이번에는 왼쪽어깨에도 또 무사 한 명의 무사가 올라와 안아 쥐었다. 그러자 옥진자가 그의 가슴의 세곳 대혈(大穴)을 향하여 <팍! 팍!> 하고 공격하였다.
[놓아 주어라! 그 놈은 이제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네 명의 무사들은 원승지의 양손과 양발을 쥔 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황태극의 시위대장이 쇠사슬을 가지고 와서 원승지의 몸과 팔다리를 칭칭 감고서야 그 무사들은 모두 손을 풀었다. 원승지의 목을 껴안았던 무사는 이미 혀를 빼물고 두 눈이 뛰어 나온 채 죽어 있었다.
황제 황태극이 말했다.
[옥진자 총교두와 무사, 시위들은 나의 호위에 공이 있었으니 중히 상을 내리겠다. 노포와 노령! 너희들은 상처를 입었구나!]
포승선과 영완아는 이미 시위들에게 부축받으며 <아이고.......>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태극은 돌아가서 용좌에 앉으며 웃음을 머금었다.
[젊은 녀석의 무공이 대단하군! 너는 대체 이름이 무엇이냐?] 원승지는 의연히 대답하였다.
[내가 널 죽이지 못하였으니 너는 어서 날 죽여라! 뭘 자꾸 묻는거냐?] 황태극이 말했다.
[대체 누가 날 죽이려고 시켰느냐?]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서 내가 원독사(袁督師)의 아들임을 알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옛날 독사(督師)이신 원공의 아들로서 이름은 승지라고 한다. 너희 달자들은 수없이 우리 명나라 강토를 침범, 한인으로서 너희들의 살과 피를 갈아마시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내가 오늘 와서 널 죽이려 한 것은 아버님의 원수를 갚고 네 손에 죽은 수천, 수만의 한인을 위하여 복수하고자 한 것이다.]
황태극이 흠칫놀라서 되물었다.
[네가 원숭환(袁崇煥)의 아들이라고?]
원승지가 차갑게 대답하였다.
[그렇다! 내가 원승지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언을 받들어 너희 달자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시위들은 소리높여 <꿇어 엎드리지 못할까!> 하고 계속 외쳤으나 원승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황태극은 손을 저어 시위들을 말리면서 짐짓 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
[원승환에게 자식이 있었다니 참 다행한 일이군. 그럼 너에게 또 다른 형제가 더 있느냐?]
원승지는 잠시 놀라서 <왜 그런 것을 묻는 걸까?> 하고 생각하며 <없소!> 하고 짧게 대답하였다.
황태극이 다시 물었다.
[너는 지금 상처를 입지 않았느냐?]
원승지가 사납게 외쳤다.
[나를 빨리 죽여라! 거짓으로 걱정해주는 척 할 필요가 무엇인가?] 황태극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너의 아버지 원공은 내가 공경하는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숭정 황제가 시비를 가리지 못하여 그런 충신을 죽였던 것이다. 그때, 너의 아버지와 내가 강화를 맺어 명과 청 두 나라가 휴전을 취했으면 오래도록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강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숭정황제는 너의 아버지를 대역죄로 몰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정말이지 몹시 마음이 아팠다. 숭정이 네 아버지를 죽였을 때 두 가지의 죄명을 내렸는데 너는 그걸 아는가?] 원승지는 잠자코 있었다. 그는 숭정이 그의 아버지를 죽였을 때의 두 가지 죄명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하나는 청군과 강화하여 외적과 내통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피도총병(皮島總兵)인 모문룡(毛文龍)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손중수와 응송이 분명히 말해 주었었다. 그날 원독사가 황태극과 강화를 하게 된 것은 청병의 세력이 너무도 커서 명나라의 병력이 당해 낼 수 없었기에 일시적으로 취한 편법이었다. 사실은 나중에 병력을 정비하여 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른 뒤에 공격하고자 한 것이었던 것이다. 또한 모문룡은 탐관오리로서 백성들을 계속 괴롭혔기에 그를 죽여서 군기를 바로 잡고자 했던 것이었다.
황태극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아버지는 숭정이 살해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는 네 아버지의 친구이다. 너는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도 못하는가? 숭정을 죽이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나를 해하려 한단 말이냐?]
황태극은 황황히 머리를 내저였다.
[너는 아직 어려서 매사에 대한 분별이 흐리구나!]
하더니 범문정을 향하여 말했다.
[범공, 저 청년에세 사실을 좀 설명해 주시구료!]
원승지가 목청을 돋구었다.
[나더러 홍승수의 수법을 배우라는 말인가? 아니면 원독사의 아들이 만청(滿淸)에게 투항하란 말이냐?]
이때 숭정전 밖에는 많은 문무관원들이 모여 들었다. 자객이 황제의 수레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밤을 새워 달려온 자들이었다. 황태극이 다시 물었다.
[조대수(祖大壽), 게 있는가?]
계단 아래서 무장(武將) 한 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소리치며 전위로 올라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를 본 원승지는 속으로 놀랐다. 조대수는 아버지가 거느린 제일의 대장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숭정의 명령에 의해 체포되었을 때 그는 불복, 병사를 거느리고 북경을 떠났었다. 나중에 아버지가 옥중에서 편지를 띄워 권한 뒤에서야 그는 숭정의 명령에 따랐다. 그는 정병과 수십차례나 혈전을 벌였으나 다시 원병이 오지 않는 바람에 붙잡혀서 항복하게 되었다.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와 나의 아버지와는 사이가 괜찮았지만 이미 달자에게 투항한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리하여 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조대수! 수치도 모르는 이 간신!]
조대수는 몸을 일으키더니 머리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만주족과 똑같이 앞머리를 땋고 있었다. 머리결은 이미 백발이 되었는데 안색이 초췌하여 병사를 지휘하던 대장의 그 용기는 조금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조대수! 무슨 낯작으로 나를 보느냐? 또 네가 죽은 다음에 무슨 얼굴로 나의 아버님을 뵙겠느냐?]
조대수는 계단 아래서 이미 황태극과 원승지의 대화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을 마구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하였다.
[원공자, 그대가......, 그대가 이렇게 컸구료. 그대가 세 살이 되던 해에 내가 안아본 적이 있었는데.......]
원승지는 화가 나서 말했다.
[흥! 네놈한테 안긴 적이 있었다는 것은 나로서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온 몸을 떤 조대수는 두 팔을 벌려서 두어 걸음 나아간 뒤 다시 그를 안아보려는 듯한 몸짓을 하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면서 그는 비통한 신음소리를 냈다.
그때 황태극이 다시 말했다.
[조대수! 이 원가를 데리가 가서 잘 권해 귀순하도록 해보게. 끝내 투항하지 않으면 우리는 저 녀석을 천조각 만조각 찢어 죽일터이다. 흥! 조그만 녀석이 담도 크지, 감히 짐을 찌르려 하다니! 흐흐흐.......] 조대수는 그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황상의 은혜가 하늘 같으시니 제가 힘을 다하여 권해 보겠습니다.] 황태극이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어서 그놈을 데리고 나가거라!]
조대수가 원승지의 곁으로 와서 팔로 그를 부축하려 할 때 그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팔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이 덩그렁 덩그렁 소리를 냈다.
[나에게 오지 말아!]
조대수는 손을 움츠린 채 몸을 굽혀 대궐을 빠져 나갔다. 두 명의 시위가 원승지를 데리고 그의 뒤를 따랐다. 원승지가 잠깐 머리를 돌려 황태극을 쳐다보니 그의 눈빛도 역시 원승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화애로운 기운이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원승지는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 생각하였다.
(도대체 저 달자황제의 뱃속에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 것일까?) 궁전을 벗어나자 조대수는 부하에게 명령하여 원승지를 부축하도록하여 자신의 말에 타게 한 뒤 자기는 다른 말을 타고서 그의 막사로 갔다. 조대수는 다시 병사에게 명령, 원승지는 부축하여 자신의 서재로 들도록 하였다.
[너희들은 물러나 있거라!]
네 명의 부하들은 몸을 굽혀 인사한 뒤 방을 나갔다.
조대수는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더니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원승지 몸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풀어 주었다. 원승지는 궁전에 있을 때부터 이미 기운이 서서히 회복되고 가슴의 혈도도 거의 풀어졌는데 쇠사슬을 풀어주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네 놈이 내가 혈도에 맞아 움직일 수 없도록 생각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다.)
조대수는 계속 쇠사슬을 풀어주면서도 시종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승지는 점점 기운이 회복되었으나 숨은 아직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는 또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 도인의 손이 정말 무섭구나! 내가 목상도인이 준 금사조끼를 입기도 하였거니와 거기에다 그의 3초만을 받았을 뿐인데 이 지경이 되다니....... 만약 조끼라도 등에 입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는 다시 또 생각하였다.
(조대수가 나더러 달자에게 투항하라고 권하면 우선 그의 말을 듣는 것처럼 한 뒤 시간을 벌어야겠다. 그리고 가슴이 나온 뒤에 이 자를 죽이고 도망치는 게 좋겠지.......)
그러자 조대수가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원공자! 자, 어서 빠져 나가시오.]
원승지는 깜짝 놀라서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당신......, 당신 지금 뭐라고 하셨소?]
조대수가 거급하여 말했다.
[청나라 황제를 죽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오. 그러니 어서 돌아가시오.] [.......]
원승지가 또 물었다.
[그대가 그럼 나를 놓아주겠다는 말씀이오?]
[그렇소. 그리고 혹시 상처를 입지는 않았소?]
[상처는 없소.]
[그럼 당신은 내 말을 타고 날이 밝는대로 곧 성을 떠나시오.] [당신은 왜 나를 놓아주려는 것이오?]
원승지의 이 물음에 조대수는 무겁게 대답하였다.
[그대는 원독사의 친아들이오. 나는 원독사의 큰 은혜를 입었었소. 그간 어떻게라도 그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소.] 원승지가 이어서 말하였다.
[당신이 만일 날 놓아준다면, 내일 달자 황제가 그대를 조사하여 문책할 텐데요. 그렇게 되면 당신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 아니겠소?] 조대수가 결연히 대답했다.
[당신을 살려주고 싶어서요. 황제가 말한 대로라면 결코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오.]
[사사로이 자객을 놓아 주는 것은 죄명이 매우 큰 것 아니오? 황제는 날 놓아준 범인이 당신이라고 의심할 것이오. 나는 내가 살겠다고 당신의 생명에 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소이다!]
조대수는 이 말에 쓰게 웃었다.
[나의 목숨은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이오. 대능하에서 참패를 당하던 날, 나는 일찍 죽어야 했소. 금주성에서 다시 참패를 당하던 그날도 역시 마땅히 죽었어야 했소. 원공자! 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으니 어서 가기나 하시오!] [그렇다면 당신도 나와 함께 도망을 칩시다.]
조대수는 머리를 저었다.
[나에겐 노모와 아내, 형제, 자식, 조카....... 모두 80이 넘는 식솔들이 여기에 있소. 나는 그래서 도망갈 수가 없소.]
원승지는 갑자기 심신이 뜨거워지면서 숨이 막혀 올라와 계속 기침을 해댔다. 그는 속으로 잠시 생각하였다.
(달자에게 투항을 한 역적이길래 내가 죽여없애고서 도망치려 했는데. 거꾸로 생각지도 못한 나를 놓아주다니....... 내가 도망치면 달자의 왕은 분명히 이자를 죽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그를 죽인 것이 된다. 그러나 내가 어찌 두눈을 뜬 채 남을 나 대신 죽게 한단 말인가? 내가 도망치지 않으면 나는 달자들에게 죽게 되는데 내겐 아직도 해야할 많은 일들이 있다. 그러니 어찌 개죽음을 당할 수 있으랴? 나는 죽을 수 없어....... 또한 저들 역적에게 죽자니 더욱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
이렇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럴수록 기침이 심해져서 얼굴은 귀밑까지 빨개지고 숨은 점점 쉴 수가 없었다.
조대수는 가볍게 그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말했다.
[원공자! 당신은 방금 싸우느라고 힘이 빠져 버렸으니 잠시 누워서 좀 쉬시오.]
원승지는 머리를 끄덕이며 쭈그리고 앉았다. 마음속에서는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정신을 모아 기공을 다스렸다.
옥진자가 혈도를 막는 내공은 매우 무서웠다. 처음에는 막혔던 혈도가 뚫린 것처럼 생각됐으나 숨을 쉬는 동안 가슴이 점점 답답해지는 것이었다. 앉은채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야 괜찮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싸워야 할 경우나 뛰어서 달아날 경우에는 틀림없이 숨이 막혀 기절할 것이다. 그래서 사부에게서 전수받은 내공의 호흡을 정리하는 범문으로 진기를 몸의 각 곳에 천천히 보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비로소 기공이 막힘없이 운행하고 서서히 숨도 자연스럽게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햇빛이 창을 통하여 쏟아져 들어오는게 보였다. 이미 날이 밝은 것이다. 놀라서 돌아보니 조대수는 곁에 앉아서 양 손으로 무릎을 쥐고 멍청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있었다.
[당신이 밤새 나를 지켜 주었구료?]
이 말에 조대수의 얼굴은 조금 밝아지면서 대답했다.
[공자! 좀 나았습니까?]
원승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나았소. 그 옥진자라는 도인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오? 무공이 그토록 무섭다니?]
조대수가 대답하였다.
[그는 최근에 서장(西藏)에서 온 자로서, 지난 달 궁안에서 23명의 최고 포고무사(布庫武士)를 이겼었지요. 나중에 4, 5명의 무사들이 합심하여 그와 무예를 겨루었지만 모두 그에게 패배를 당했답니다. 황제는 매우 기뻐서 그에게 <호국진인>이라는 직함을 봉해서 포고의 총두목을 시켰지요. 공자! 어서 이 탕과 음식을 드시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로 가서는 두 손으로 탕과 음식을 가져왔다.
원승지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전심으로 내공을 행하느라 먹을 것을 가져오는 것도 몰랐구나. 그는 마음만 먹으면 나를 죽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니 설마 음식에다 독을 넣지는 않았겠지.......)
그리고는 탕을 받아서 몇 모금 마셨더니 쓰고 떫은 맛이 있었다.
조대수가 말하였다.
[이것은 요동의 노산에서 난 인삼을 끓인 것이니 몸을 보호하는 데는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원승지는 음식을 집어 먹었다.
[당신은 나를 달자의 황제 황태극에게 데려다 주시오. 나는 투항하겠소.] 조대수는 깜짝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뜨고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곧 원승지가 자신의 생명을 뺏지 않기 위하여 우선 거짓으로 투항한 뒤 나중에 도망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잠시 생각한 뒤 <좋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곧 말을 타고 집을 나섰다.
골목을 몇굽이 지나자 조대수가 말을 달려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성문 뒤에는 <덕성문(德盛門)>이라 쓰여 있고 곁에는 구불구불한 만주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곳은 성경(盛京)의 남문, 그러니까 어제 바로 이 성문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마음속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우리는 왜 성을 나섭니까?]
조대수가 대답하였다.
[황제는 성남의 하얼산에서 사냥을 하고 계시오.]
원승지는 이 말에 더 이상 묻지를 않았다.
그들이 남을 나서서 약 십리쯤 갔을 때, 비로소 조대수는 말을 멈춰 세웠다.
[공자! 우리는 여기서 헤어집시다.]
원승지가 놀라서 물었다.
[뭐라고? 우리는 달자의 황제를 만나러 가려고 했지 않았었소?] 조대수는 머리를 저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원독사의 충의는 하늘에 닿았었소. 그런데 그의 아들인 공자께서 무슨 염치로 달자에게 투항을 한단 말이오?]
이 말을 한 뒤, 그는 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패검과 칼집을 그에게 건네 주었다. 원승지는 할 수 없이 그것을 받았다. 조대수는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더니 두어번 채찍질을 하며 방금 왔던 길로 나는 듯이 달려나갔다.
원승지는 <숙부! 숙부!>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를 돌아오라고 해야 할지, 그와 함께 성으로 돌아가야 할지....... 이런 생각에 망설이고 있을 때 조대수는 이미 말을 몰아 멀리 가고 있었다. 그리고 똑똑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대가 두 번이나 나를 숙부라 불렀소. 정말 고마우이! 정말로!] 원승지는 말 위에 앉은 채 망연자실해 있다가 얼마가 지난 뒤에서야 남쪽으로 말을 돌렸다.
다시 십리쯤 갔을 때 멀리 청청, 홍승해, 사천광 등 일행이 약속했던 낡은 사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청청은 큰소리로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 나와 그의 품안에 깊이 안겼다.
[돌아오셨군요! 돌아오셨군요!]
원승지는 청청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있음을 보고 그녀가 초조하게 기다리며 온밤을 지새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청은 그가 별 흥분하는 기색이 없자 황제를 죽이려던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알고 물었다.
[황제를 찾지 못했나요?]
원승지는 머리를 저었다.
[그를 찾았지만 죽이지를 못했소.]
그는 대강 사건의 경과를 이야기해 주었다. 일행은 이야기를 듣고 입을 벌린 채 다물지를 못했다.
청청은 가슴을 두드리며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늘과 땅이 도왔으니 정말 감사해야겠군요.]
원승지는 조대수가 자기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줄곧 불안해서 말했다.
[오늘 저녁, 나는 다시 성에 들어가야 하겠소. 조 숙부가 황제에게 붙잡혀 있으면 그를 구해야겠소.]
청청이 말했다.
[우리 모두 함께 가요! 저는..., 다시는 오빠 혼자 가게 하지 않겠어요!] 그날 오후 신시(申時;15∼17시)가 될 무렵, 일행은 다시 성경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이미 저녁 행적이 노출된 것을 염려하여 다른 여숙에 투숙하였다.
홍승해가 조대수의 막사에 가서 살펴보고 돌아와서는, 조대수가 황제에게 잡혔다는 소식은 없으나 막사 밖은 전혀 동정이 없다고 보고하였다.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달자의 황제는 조대수가 나를 풀어준 것을 아직 모르고 지금도 그가 나를 투항하도록 권유하는 줄로 아는 모양이구나.)
그는 홍승해에게 다시 가서 소식을 알아보도록 분부하였다.
철나한이 말하였다.
[나도 같이 가 보겠소.]
청청이 그를 말렸다.
[가지 마세요. 혹시 다른 사람과 싸워서 큰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염려가 돼요.]
철나한은 입을 내밀었다.
[내가 꼭 싸움을 하자는 것은 아니잖소?]
호계남이 끼어들었다.
[나도 나한형과 함께 가겠소. 혹시 그가 싸움을 해서 시끄러워지면 내가 말리겠소.]
원승지는 그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모두 조심들 하시오.]
저녁 무렵, 세 사람은 다시 여숙으로 돌아왔다. 철나한이 화가 잔뜩 나서 말했다.
[청청 아가씨가 먼저 말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 그 몇 놈의 대갈통을 비틀어 놓았을 거요.]
일행이 원인을 묻자 홍승해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어디서도 조대수의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또 어젯밤에 궁안에 자객이 들었다는 소식도 어느 골목에 가서도 들을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객점에 가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8명의 포고무사들이 먹고 마심 만주말로 떠드는 것을 보게 되었다. 홍승해가 조그만 소리로 두 사람에게 말을 해 주었다.
철나한과 호계남도 그들이 지금 총교두가 얼마나 용감무쌍한지를 허풍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로는 어제 이상한 칼을 얻었는데 칼끝에는 고리가 있고 칼은 휘어져서 아주 날카로운데 머리카락을 자르고 쇠붙이를 진흙처럼 베어낸다는 것이었다.
이는 분명히 원승지의 금사검 이야기인 것이다. 철나한이 일어나서 그들을 혼내주려고 하자 호계남이 급히 말렸다. 8명의 무사들이 다 마시고 내려간 뒤 세 사람은 살며시 그들을 뒤따라 가서 그들의 숙소를 알아냈다.
원승지가 실수로 붙잡히면서 그의 칼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것은 그의 일생에 없던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 옥진자의 무공은 절대 그보다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 칼을 다시 빼앗아야겠지만 어떻게 그 고수에게서 칼을 뺏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잠시 생각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계남이 웃으며 말했다.
[맹주님! 제가 오늘 밤 묘수를 써서 검을 가져 오겠습니다. 그 옥진자도 잠은 잘 것이오. 그가 아무리 무공이 높다해도 잠이 든 뒤에야 나를 어찌 당할 수 있겠습니까?]
일행은 모두 웃었으나 원승지는 웃지 않았다.
[좋아, 이번 일은 호형에게 맡기겠소. 그러나 정말 조심하시오. 호형께서는 검을 훔쳐 올 뿐 그를 죽일 것까지는 없소. 그가 잠을 자고 있는 틈에 죽인다는 것은 영웅호걸이 할 짓이 아니니까.]
호계남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나중에 맹주께서 그와 1대 1로 싸웠을 때 그 자가 항복을 하게 놔두지요.]
원승지는 미소를 띄며 말했다.
[혼자서 싸운다 하더라도 꼭 이긴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오.] 그가 호계남에게 옥진자를 죽이지 않게 한 것은 그 일이 매우 위험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옥진자가 잠 속에서 칼을 맞는다면 분명히 놀라서 깨어 반격을 할 것인데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그가 죽기 전에 공격을 하면 호계남의 목숨을 끊기에는 충분할 것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호계남은 검은 옷으로 갈아 입은 뒤 기분좋게 나갔다. 원승지는 시종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덧붙였다.
[호형! 내가 당신의 바람잡이가 되겠소.]
두 사람은 함께 여숙을 나왔다. 청청은 이번 길이 달자의 황제를 죽이는 것보다는 모험은 아니지만, 그리고 호계남이 평소에 빈 손으로 훔치는 실력이 천하에 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호계남이 길을 안내하며 3, 4리쯤 가자 포고무사의 막사가 보였다. 숙소중에서도 매우 커다란 소가죽 천막이 있었고 주위는 모두 작은 집들이었다. 호계남이 낮게 말했다.
[그 8명의 무사는 모두 북쪽의 작은 방에 있는데 그 놈도 여기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원승지가 나직하게 말했다.
[우리 한 놈을 잡아서 물어보세. 그렇지만 우리는 만주말을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로군.]
호계남이 씩 웃었다.
[내가 손짓으로 그 놈에게 길을 안내하라고 그러지요.]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명의 무사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원승지는 두 사람이 기꺼이 오는 것을 숨어 기다렸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손가락으로 두 사람의 등에 있는 혈도를 찍어 눌렀다. 경혈이 막히자 두 무사는 꼼짝도 못하였다. 한 명은 기절을 해 버렸고 한 명은 아직 정신은 남아 있었다. 그가 기절한 무사를 풀 속에 던져 버리자 호계남은 칼로 나머지 무사의 목을 누르며 오른손으로 도인의 수염 난 모습을 그려보이면서 어디에 사는 지를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나도 모르겠다!]
무사는 한어로 대답하였다. 성경은 본래 이름이 심양(審陽)으로 명나라 땅이었지만 청군에게 빼앗긴 뒤 천계(天啓) 5년에 수도가 되어 아직 20년이 채 못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중의 백성들은 열에 아홉은 한족이었다. 이러한 포고무사들은 무술연습을 제외하고는 매일 객점에 가서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느라고 거의가 한어를 배웠던 것이다.
호계남은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너희 총교두인 그 도사가 어디에 기거하고 있느냐?] 그 무사는 날카로운 칼이 목구멍에 있으니 놀라와 했다.
(네가 우리 총교두를 찾아 가봐도 죽을 것이 뻔하니 잘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손으로 동쪽 편에 있는 집을 가리켰다.
[우리 총교두이신 호국빈인 옥진자는 바로 저 집에 계신다.] 그 집은 그 곳에서 4, 50장쯤 떨어져 있었는데 건물이 매우 크고 높은 것을 보니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원승지는 그의 어깨 밑에 다시 손가락을 넣어 기절을 시켜 서너 시간 뒤에나 깨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호계남이 그를 번쩍 들어 수풀 속에다 역시 던져 버렸다.
두 사람은 살그머니 그 큰 건물에 접근했다. 집은 깜깜할 뿐 불빛 한 점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호계남이 낮게 말했다.
[그 놈이 잠이 들었는가 봅니다.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군요.] 두 사람은 후문까지 돌아갔다. 호계남은 담벼락에 몸을 붙이더니 아무 소리도 없이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담을 넘어서 기어 내려갔다. 원승지는 그가 담을 기어 오르는 자세가 괴상망측하긴 했지만 사지를 쭉 편 채 머리를 움츠리고 아주 느리게, 흡사 거북이처럼 타고 오르는 것이나 소리라고는 전혀 없는 것이 자기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절묘한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성수신투는 역시 다르군!)
그는 그가 집으로 들어가자면 소리가 나서 옥진자에게 발각될 것이라 생각하고 담 옆에서 정신을 모아 귀를 기울였다.
잠시 뒤에 집 안에서 밤 올빼미가 몇 번 울더니 정적이 계속되었다. 갑자기 여자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조그맣게 들려 왔다. 뒤를 이어 남자의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와 몇 마디 말도 들려왔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무슨 내용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그가 옥진자인 것 같았다.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가 아직 잠들지 않았다면 훔칠 수가 없겠는데.......) 호계남이 위험할 것이 걱정되어 그는 담을 뛰어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남녀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 왔다. 소리없이 그쪽으로 다가가자 갑자기 옥진자가 웃으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몸에서 어느 곳이 제일 매끄러우냐?]
그 여자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전 몰라요!]
옥진자는 웃으며 말했다.
[자, 내가 만져 보자꾸나!]
원승지는 얼굴이 붉어지고 귀가 화끈거려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하였다.
(저 도적이 그 짓을 하려는 모양이군. 다행히 청청과 함께 오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여자의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듣자 그의 가슴도 뜨거워졌으나 다시 조용히 담을 넘어 수풀 속에 앉아 있었다.
다시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한바탕 바람이 불어서 한기가 느껴졌다. 이때는 8월 초순이어서 북방은 이미 강남의 겨울만큼이나 추웠다. 갑자기 옥진자의 큰 소리가 들려 왔다.
[누구냐?]
원승지는 깜짝 놀라 일어서며 속으로 외쳤다.
(이런! 저 놈에게 발각이 되었구나!)
담을 뛰어 넘으려는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날 듯이 달려왔다. 바로 호계남이었다.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니 그의 손에는 무슨 물건을 가득 안고 있었다.
(아니, 훔치는 버릇은 여전하군! 무엇을 이토록 잔뜩 훔쳤지?) 그는 자세히 생각할 틈도 없이 호계남을 잡고 몸을 날려 담을 뛰어 올라 다시 내려왔다.
그때 옥진자가 소리치는 것이 들려 왔다.
[쥐새끼 같은 녀석! 살기가 싫은 모양이군!]
그의 몸은 이미 담벼락까지 와 있었다.
호계남이 외쳤다.
[됐습니다. 빨리 도망칩시다.]
원승지는 기뻐서 뒤돌아보니 놀랍게도 별빛이 희미한 곳에 옥진자가 온몸을 발가벗은 채 아랫도리에는 작은 담요를 감고 두 손으로 붙잡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원승지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는데 호계남도 웃으며 말했다.
[저 놈이 여자와 그 짓을 하고 있는 틈에 내가 그 놈의 옷을 몽땅 훔쳐왔지요.]
말을 하면서 두 손을 들어서 그가 훔쳐 온 옷을 보여 주었다.
[맹주님! 여기 보검이 있습니다.]
어느새 그는 금사검을 원승지의 허리에 꽂아 주었다.
원승지는 칼을 받아 허리에 찬 뒤 몇 걸음 달려 나갔다. 옥진자는 이불을 둘러 쓴 채 외쳤다.
[이 도적놈!]
하며 오른손바닥으로 호계남을 찍으려 하였다. 이때, 원승지가 손바닥을 펴서 그의 어깨를 공격하며 외쳤다.
[자, 어디 한바탕 해볼까?]
옥진자는 장풍의 힘이 지극히 위력적인 것을 느끼고 급히 막았다. 두 사람은 장풍의 힘에 세 발짝 쯤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옥진자가 자세히 상대편을 보고 크게 놀라서 소리 질렀다.
[아니! 이 녀석이 도망쳐 나왔구나!]
그는 처음에 도둑이 보검을 훔쳐가는 줄로만 생각하여 발가벗은 채 추격해 왔는데 생각지도 않게 원승지 같은 고수놈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원승지는 물러섰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공격했다. 옥진자는 왼손으로는 담요를 붙잡고 미끄러져 내릴까 걱정하며 오른손바닥으로 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담요는 2초를 오가는 사이 발밑에 걸쳐 있었다.
원승지는 이때를 이용하여 권법으로 그의 어깨를 무섭게 공격하였다. 옥진자는 급하기도 하고 불같이 성이 나기도 했다. 그는 방금 기분이 좋게 여자와 일을 벌이다가 호계남이 보검과 의복을 훔쳐갔으므로 몹시 놀래어 있었다. 거기다가 지금 강한 적을 만나게 되고 원승지의 파옥권(破玉拳)까지 맞고 보니 오른쪽 어깨는 모두 마비가 되었다. 그는 8살 이후로는 다른 사람 앞에서 벌거벗은 몸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무척 낭패했다. 담요를 포기해 버린다고 해도 그렇다. 발가벗은 상태로 원승지와 싸운다하여 무슨 이상할게 있겠는가? 이미 밤이고 아무도 곁에 없으니 더욱 그러했다. 설령 사람들이 본다 하더라도 그는 원래 호색의 풍류 남자이니 뭐 큰일이겠는가? 그러나 옷을 입는 버릇이 그의 마음 속에 강하게 남아 있어서 한 손은 공격을 막는데 바빴지만 한 손은 시종 담요를 놓지 않고 꽉 쥐어잡고 있었다. 원승지가 다시 2초를 공격하자 그는 등에 장풍을 맞고 말았다.
이번의 장풍은 원공과 내공을 힘껏 모은 것이어서 옥진자는 더 이상 곁디지 못하고 <윽!> 하는 소리와 함께 선혈을 한 입 가득 토해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옮김: 김선국(金善國;sm1109)

* 제 3 권 *

- 3 - 암살당한 황제

원승지는 손을 멈추고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 너를 죽여도 내 분이 안 풀리겠지만, 다음에 네가 옷을 입고 있을 때 상대하기로 하겠다!]
호계남이 급히 말했다.
[맹주님! 놓아 주어서는 안됩니다. 조대수의 목숨이 위태롭지 않습니까?] 원승지는 놀라서 생각했다.
(그렇다. 저 녀석이 황제에게 알리면 조 숙부의 죄명이 가중될 터이니 그를 죽여서 입을 막아야겠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두 주먹을 그의 태양혈을 향해 공격했다. 옥진자는 두 주먹이 무섭게 공격해 오는 것을 보고는 자연히 두 손을 들어 막았다. 상대의 두 주먹은 막았지만 담요는 무릎밑으로 흘러내렸다. 그는 <아!> 하는 소리와 원승지의 힘찬 발에 가슴을 맞았다. 옥진자는 크게 놀라서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도 생각할 겨를 없이 그대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원승지와 호계남의 그 뒤를 추격해 나갔다.
이 도인의 무공은 대단했다. 몸에 이미 3초를 맞아서 상처가 매우 중했지만 나는 것처럼 달리는 것이었다. 그의 뛰어난 경공은 정말 세상에서 드문 것이었다. 원승지는 급히 추격했다. 그가 소가죽으로 만든 천막 속으로 들어가자 원승지도 추격하여 들어갔다.
막 장막의 입구까지 달려갔을 때 보니 장내의 화촉이 대낮처럼 환히 빛나고 있었고 안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걸음을 멈추자 한 쪽에서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때에 호계남도 이미 도착하여 원승지의 어깨를 잡고 장막 뒤편에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은 몸을 구부린 채 장막을 젖히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안에는 옥진자가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땅에 넘어진 채 누워 있었는데 온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였다. 온몸의 피부가 눈처럼 희고 부드러워서 남자의 몸같지 않았다. 가슴에는 선혈이 가득하였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우습기가 그지없을 지경이었다.
천막 안에서는 놀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 뒤에 곧 조용해졌다. 위엄있는 목소리 하나가 만주어로 말하는 것이 들려 왔다. 원승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청나라의 황제인 황태극이었던 것이다.
장내에 꽉 들어 차 있는 것은 모두 포고 무사들이었는데 1,200명이나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 그렇다. 저 달자 황제가 무술 시합 구경하기를 좋아한다더니 오늘 저녁 시합을 보러 왔구나! 황제는 복도 많은 편이군1 무사들의 총교두 옥진자의 저런 괴상한 꼴도 보게 되었으니.......)
그는 어젯밤 이 무사들의 실력을 상대해 보아서 그들 실력이 별로인줄은 알지만 그들이 죽어라고 덤비면 저 많은 숫자속에서 황제를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우선 조용히 상태를 관망해 보기로 하였다.
한 무사가 수령 모습을 한 자의 앞에 나가 보고를 했다. 황태극이 다시 몇 마디 한 뒤 곧 몸을 일으키더니 흥이 이미 가신 듯 무술 시합은 더 이상 보지 않았다. 그는 장막 입구까지 가서 수십명 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말 위에 올라탔다.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것은 하늘이 주신 좋은 기회다. 내가 길에서 갑자기 공격하는 것이 궁전 안에서 공격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테니.......)
그는 낮은 소리로 호계남에게 말했다.
[저게 바로 달자의 황제라네. 자네는 먼저 돌아가게. 나는 기회를 보아 노상에서 공격을 하겠네!]
호계남은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맹주님, 조심하십시오!]

x x x x
원승지는 황태극 일행을 뒤따르고 있었다. 시위들은 횃불을 높이 들고 서쪽으로 향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멀리 간 뒤에 해치워야지.)
그런데 호위 속에 한 큰 집으로 들어 가는게 보였다. 원승지는 이상히 여겼다.
(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집에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 뒤로 돌아가서 몰래 담을 넘어 들어갔다.
그 집 안은 아주 큰 꽃밭이 있었고 남쪽에 있는 한 방의 창틈으로 훤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방 안은 금수비단이 찬란하였고, 붉은 비단으로 된 장막에는 봉황이 수놓아져 있었다. 붉은 장막이 걷히면서 황태극이 막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원승지는 크게 기뻐서 속으로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하고 소리쳤다.
만주 여자 하나가 일어나더니 그를 맞아 들였다. 이 여자의 옷과 장식은 몹시 화려했다. 모자의 뒷면까지 진주와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황태극이 발에 들어온 뒤에 그 여자는 몸을 돌렸다. 원승지가 보니 28, 9세쯤 되어 보였는데 용모가 매우 수려하고 온 몸은 보석으로 빛나고 있었다. 황후가 아니면 귀비같았다. 황태극이 무사들의 시합을 보러 갔을 때 이 여자는 시합을 보기 좋아하지 않으므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아무튼 이것이 황제의 사랑의 행차인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황태극은 손을 펴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는 몇 마디 말을 건네자 그 여자는 웃으며 나직한 말로 대답하였다. 황태극은 침대에 앉아서 막 휴식을 취하려 하다가 갑자기 일어서는데 만면에 의심의 빛이 가득하였다. 그는 방 안에서 동으로 서로 둘러보더니 갑자기 침대가에 놓여진 구불구불한 남자의 신발을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그녀를 문책하기 시작하였다. 그 여자는 표정이 창백해지더니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하였다. 황태극이 그녀의 가슴을 쥐어잡고 막 때리려 하자 그녀는 양 무릎을 굽히며 땅에 엎드렸다. 황태극은 그녀를 놓아둔 채 침대 밑을 살펴보았다.
원승지는 매우 이상하게 속으로 생각하였다.
(저 모양을 보건대, 황후가 황제의 시합구경 간 틈을 타서 애인과 여기에서 약속을 하고 만난 모양이군. 옥진자의 우스운 꼴을 연출하게 되어 황제가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게 되니 이러한 파탄을 만난게지? 황후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얘기가 안 될 것은 없잖아! 그녀의 애인이 아직 방 안에 있다면 이제 도망치지는 못하겠군!)
바로 이때, 황태극의 몸 뒤에 있던 문이 갑자기 열리며 한 사람이 튀어 나왔다. 칼빛이 번쩍이더니 단도 한 자루가 황태극의 등에 꽂혔다. 그 여자는 <아!> 하고 놀라는 소리와 함께 촛불이 몇 번 흔들리더니 곧 꺼져 버렸다. 한참이 지난 뒤에 촛불이 다시 켜졌다. 황태극은 몸이 땅에 엎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는데 선혈이 황포에 가득하였다.
원승지는 이것을 보고 적지않게 놀랐다. 그 죽인 사람을 보니 그는 바로 어제 보았던 예친왕 다이곤이었다. 그 여자는 그의 품안에 뛰어 들었고 다인곤은 그녀를 껴안은 채 낮은 소리로 위안을 해주고 있었다.
원승지는 눈 앞에 이처럼 심장이 뛰는 정경을 보고 생각하였다.
(저 다이곤의 담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 감히 형을 죽이다니! 사건은 더욱 커질터이니 빨리 몸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
그는 담장을 뛰어 넘어 여숙으로 돌아왔다.
청청은 그의 얼굴빛이 놀라서 불안한 것을 보고는 위로를 하며 말했다.
[황태극놈의 명이 길어서 쉽게 죽일 수 없었으니 괜찮아요.] 원승지는 머리를 저으며 말해 주었다.
[만청의 황제는 죽었다. 그러나 내가 죽인 것은 아니야.] 일행은 만청의 황제가 죽었으니 서울에 분명히 대혼란이 일어나리라 예상하고 그 다음날 일찍 성경을 떠나 남으로 내려갔다.
하루가 못되어 산해관을 지나 북경에 도착하였다. 그 곳에서 만청황제 황태극이 8월 경오날 밤에 <병도 없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과 청나라는 황태극의 어린 아들인 복림(福臨)을 황제로 등극시켰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어린 황제는 겨우 여섯 살 이어서 예칭왕 다이곤이 섭정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승지가 말했다.
[이 다이곤도 무서운 놈이야. 그는 친히 황제를 암살하고도 아무런 일이 없다니....... 그는 어떻게 모두를 속였지?]
홍승해가 말했다.
[예친왕은 줄곧 황제의 총애를 받았고 병권도 장악해왔으니 만청의 왕족과 귀족들 모두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그가 <황태극은 병없이 죽었다> 하니 감히 그 앞에서 말을 못꺼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왜 자기 스스로 황제가 되지 않았을까?] 홍승해가 다시 대답했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아마 다른 사람들이 불복할까 두려웠거나, 황제를 살해했던 일이 폭로될까봐 그랬겠지요. 그 어린아이 복림은 장비(莊妃)의 소생이니, 그날 밤 상공께서 보신 귀비가 분명히 장비일 것입니다.] 원승지는 이번 기회에 요동에서 만청의 우두머리 황태극을 죽이고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 했었다. 그런데 뜻밖의 장소에서 황태극의 죽음을 직접보게 되었다. 물론 자기가 직접 죽인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튼 그 자는 죽었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속에는 기쁨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왜 나를 조씨 숙부에게 넘겨주었을까? 그의 현명함으로 생각해 본다면 조 숙부가 나를 자연히 석방해 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조 숙부의 마음을 복종시켜 더욱 그에게 충성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원승지는 쓴 입맛을 다셨다.
(조 숙부는 달자들에 투항했으니 분명히 나라의 역적이다. 그러나 그는 나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냥 그를 숙부라고 부르는 것은 작은 은혜만을 생각하고 큰 대의를 잃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까?)
황태극이 죽던 광경을 생각하게 되자 그는 그때 곧 방에 뛰어 들어가 그의 목숨을 구해 주려던 충동이 일었던 것 같았다. 다이곤의 동작이 조금만 늦었어도 그가 구출했을 것인지는 지금 생각해 봐도 의문이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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