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3-8

3학년2반 | 2022.01.17 07:13:16 댓글: 0 조회: 307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821

* 제 3 권 *

- 8 - 검객의 사랑

원승지가 크게 놀라 되물었다.
[청청......, 청청이 어떻게 되었다고?]
호계남이 몇 번의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청아가씨는...... 오독교에게 붙잡혀 갔어요.]
원승지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사천광 등은?]
호계남은 손을 뻗어 지붕 꼭대기를 가리켰다. 원승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다급히 지붕으로 올라갔다.
거기엔 사천광과 벙어리가 기왓장 위에 누워 있었다. 사천광의 얼굴엔 어두운 구름이 가득히 뒤덮였는데 중독이 몹시 심했다.
벙어리 역시 상처가 심했다.
다행이 아직 죽은 사람은 없다 하더라도 일행은 모두 중한이었고, 패한 구렁텅이였다. 청청은 끝내 어디로 갔는지 흔적을 찾을 길 없었다.
원승지는 이를 질끈 깨물었다.
[나는 어쩜 이렇게도 어리석단 말인가? 그 여자에게 당한 것조차 몰랐다니!]
일행의 일부는 싸울 때 이미 모두 도망쳐 갔다가 그제서야 하나씩 돌아왔다.
원승지는 벙어리와 사천광을 안고 지붕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곧 한 장의 글을 써서 심부름꾼에게 명하여 급히 금룡방 숙소로 보내는 한편 초원아에게 청하여 빙섬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사천광과 호계남의 상처를 싸매고 나서 적들이 내습한 정황을 물었다.
철나한은 먼저번에 상처를 입은 터라 침상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못했었기에 다행히도 독수를 맞지는 않았다.
[삼경 무렵인데, 호계남이 적들을 발견하고 벙어리를 데리고 지붕 위로 올라갔소. 십여명의 적들은 곧 그들을 포위했고 나는 창문을 통해 자세히 보았지만 온몽이 이 지경이라 그냥....... 벙어리와 사형과 정방주 모두가 그들에게 몹시 당하는 것을 부끄럽게 지켜보았소. 그러나 상대방의 숫자가 참으로 많았소. 모두들 이러저리 얽혀 싸우고 후퇴하느라 방마다 뒤죽박죽이 됐소. 그러나 최후에는 모두 상처를 입고, 청아가씨조차 붙잡혀 간 것이오. 원상공, 정말이지 면목이 없구료.]
원승지는 부상자부터 구하리라 마음먹고 마구간에 가서 말 한 필을 이끌고 성밖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의 집앞에 내려 말고삐를 나무에 묶어 놓고는 몸을 날려 담을 넘어 들어갔다.
[하교주! 나오시오! 내가 할말이 있소!]
한 줄기의 굉음이 지나가자 곧 황색 벽 위에 철문이 열리는 곳에서 한바탕 웃음소리가 나더니 십여마리의 투견들이 뛰어 나오고 이어 수십명의 거한들이 쫓아나왔다.
(이번엔 내가 너희들에게 객기를 부릴 차례다.)
그는 왼손을 내둘러 십여개의 금사추를 쏘았다. 금빛이 번쩍번쩍하면서 투견들을 명중시켜 쓰러뜨렸다.
그는 투견을 에워싸고 두손으로 금사추 하나하나를 뽑아 주머니 속에 집어 넣었다.
오독교 사람들은 원승지가 개와 싸우는 틈을 이용해 독즙을 발사하려 했으나 개들이 이토록 순식간에 죽어 넘어지자 몹시 당황해 하였다.
남은 사람들은 얼른 실내로 도망가서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업었다. 원승지가 이미 그들을 뛰어넘어 앞을 가로 막았기 때문이었다.
[하교주! 끝내 나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오!]
오독교 교인들이 중간 집으로부터 10명이 두 줄로 나눠서서 나왔다. 앞에 선 사람은 하홍약이었고, 뒤에는 좌우로 호법 반수달, 잠기사, 독개 제운오 등의 고수들이었다.
원승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와 여러분은 처음부터 친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원수진 일도 없었소. 그런데 여러분은 내 친구 모두에게 중상을 입혀 놓고 내 형제까지 포로로 데려갔소. 대체 무슨 연유인지 몰라 하교주에게 물어 보러 왔소이다.]
하홍약이 대답했다.
[당신 집에 있던 방인과 우리들은 원수진 일이 없소. 사실은 우리도 그들의 생명을 상하게 할 필요까진 없었소. 당신이 마침 빙섬을 갖고 있다하니 작은 상처는 쉽게 낳을 것이오. 그러나 하가의 아들 청청에게만은 천천히 고통을 가해 줄 것이오!] 원승지가 대답했다.
[그는 젊은 사람이오. 무슨 일로 당신들에게 고통을 받아야만 하오?]
하홍약이 비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누가 그를 금사랑군의 아들이라고 가르쳐 줬느냐? 흥, 그만둬라!]
원승지는 깜짝 놀랐다.
(저 노파와 청청 부친은 또 무슨 원한 관계인가?)
원승지는 잠시 신음하며 침묵을 지키다 하홍약에게 말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당신들이 만약 금사랑군과 원한진 일이 있다면 왜 그를 찾아 보복하지 않았소?]
하홍약이 냉정하게 외쳤다.
[그 늙은이를 죽이려면 자식을 먼저 죽여야지! 당신도 만약 그와 친척 관계라면 마저 죽여야겠다!]
원승지는 청청과의 관계가 분명치 않은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큰 소리로 말했다.
[하교주, 당신은 나올 것이오, 안 나올 것이오? 대체 사람을 놔줄 것이오 말것이오?]
방은 잠시 정적으로 아무 소리가 없었다.
원승지는 자꾸만 청청이 마음에 걸렸다. 몸을 옆으로 해서 황급히 하홍약을 스치고 직접 대청문을 향해 뛰어나갔다.
두 사람의 교도가 덤벼들어 저지했으나, 그는 두 사람을 곧장 내던져 버렸다.
대청으로 들어섰지만 사람의 그림자라곤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곧 몸을 돌려 동쪽 딴 채로 뛰어들어갔다. 방문을 열어보니 두 명의 교도가 침상 위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일전에 그에 의해 관절을 다친 자들이었다. 상대방은 그가 들어서는 것을 보자 깜짝 놀랐다.
원승지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오독교인들은 엉망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고 곳곳마다 미혹스러웠다.
원승지는 방마다 다 찾아보았으나 청청은 끝내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하철수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초조하고 이상해서 항아리 상자를 뒤엎고 열어보니, 그 속에서 기르고 있던 뱀과 독충들이 모두 기어 나왔다. 오독교 패거리들은 크게 놀라서 바삐 그것들을 잡았다.
반수달이 소리쳤다.
[바깥으로 나가서 승부를 겨루자!]
원승지는 그가 교도중에서 지위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를 사로잡아서 청청이 있는 곳을 물어보리라 마음먹고 곧 대답했다.
[좋소, 나는 당신의 무공을 배우고 싶소!]
원승지는 순식간에 무수히 변하는 경신(輕身) 무공을 펼치면서, 두 발을 높이 떠올려 그의 앞에 내려섰다.
반수달은 그가 말하자마자 도착한 것을 보고 놀랐다.
원승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은 당신의 무공을 두려워할지 몰라도 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소.]
반수달이 소리쳤다.
[좋소, 당신이 먼저 시범을 보이시지?]
원승지는 오른손을 들어서 그의 손 위를 내리쳤다.
반수달은 크게 놀래서 말했다.
[감히 나의 손을 치다니, 이것은 당신 스스로가 죽음을 자청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나를 원망하진 마시오!]
그는 곧 양손바닥에 힘을 모으더니, 맹렬하게 앞으로 밀었다.
그러나 원승지의 손과는 마주치지가 않았다.
그때, 느닷없이 원승지의 손이 그의 등줄기를 강타했다. 목줄기에 긴장감이 느껴지면서 그의 몸은 이미 공중으로 떠올려졌다.
오독교 무리들이 소리를 지르며 서로 구해 주려 했으나 원승지는 반수달을 빙글빙글 휘돌렸다. 무리들은 반수달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해 감히 접근을 하지 못했다.
원승지가 외쳤다.
[너희들이 데리고 온 사람은 어디 있는가? 빨리 말해라!] 반수달은 눈을 감은채 죽은 듯이 있었다. 원승지는 혼원공으로 그의 등골 옆에 있는 혈도에 일격을 가했다. 반수달은 튕겨져 나가며 등뒤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마치 한토막의 강철이 몸속으로 들어가 죄는 것 같았다.
원승지는 손을 들어 다시 한 번 그를 내질렀다. 반수달은 너무나 아파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원승지가 다시 소리쳤다.
[좋소! 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내가 여러 교도들의 혈을 눌러 버린다면 천하에 어떠한 사람도 구할 수 없을 것이오. 더군다나 모두 그들에게 혈을 누르면 하철수는 감히 청청에게 해를 끼칠 수 없을 것이오!]
그는 즉시 몸을 휘둘러 무리 가운데 왔다갔다 했다. 교도중 무공이 높고 강한 사람도 삼초양식에 밀쳐졌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그의 신법을 자세히 보지도 못했다.
혈도는 이미 막혔다.
잠깐 사이에 정원 가운데 2, 30명이 나가 떨어졌다. 혈수법은 별도의 공격이기는 하나 옆에 있던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가니 피가 다시 돌고, 혈도는 마침내 천천히 통하기 시작했다.
원승지는 이들의 혈도를 누를 때 혼원공을 사용했다. 전력을 다해 직접 경맥을 짚었기에 혈도는 박혀있다가 나중에는 결국 풀리지만, 쓰리고 아파서 견디기가 어렵다. 열흘 정도는 불편하다.
하홍약은 돌아가는 것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보고 <후!> 하고 외마디 소리를 내더니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일행들도 따라갔다.
머지않아 큰 집이 텅 비어 조용했다. 오로지 땅위에 상처받은 수십명만이 남아서 뒹굴 뿐이었다.
원승지가 다시 외쳤다.
[청청, 청청, 어디 있지?]
그러나 되울려오는 소리외엔 아무 소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어 그는 또 한 번 방마다 조사해 봤지만 허탕이었다. 몇 명을 끌어올려 추궁했지만 모두 눈을 감은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원승지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허탈하게 정조자호동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초원아가 이미 빙섬을 가지고 온 것을 보고 직접 금룡방의 큰 제자를 몇 명 오게 했다. 사천광은 몸에 독기를 깨끗이 빼내는 것을 기다려 상처를 잘 싸매었다.
원승지는 각자의 생명에 별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청청이 어느 곳에 있는지 몰라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초원아는 부드러운 말로 그를 위로하며 동지들을 내보내 사방으로 소식을 알아보도록 했다.
반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지붕 꼭대기에서 보따리 하나가 뚝 떨어졌다.
원승지는 초조하게 서둘러 보따리를 풀었다. 아직 다 풀기 전인데 이미 피냄새가 났다. 가슴은 마구 뛰었고 두 손엔 땀이 솟았다. 놀랍게도 8토막이 난 시체의 목이 나왔다. 얼굴색은 이미 검게 죽어 있었지만 백발의 하얀 수염은 완연히 구별할 수 있었다.
원승지가 정신을 차려 자세히 보니 그 시체는 바로 독안신룡 단철생이었다. 급히 지붕 꼭대기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니 서남쪽으로 검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시체를 갖고 왔던 자가 틀림없었다. 즉시 힘을 내어 그를 뒤따라가니 그가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원승지는 빠른 속도로 쫓아가서 그의 혈도를 눌렀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나가서 소식을 알아보러간 사람들도 모두 아무 소득없이 돌아왔다.
밤 이경 무렵, 원승지는 오평과 나입여에게 분부하여 단철생의 목을 순천부이오문으로 보냈다. 공문중의 사람들은 그의 모양을 보고 오독교의 독수임을 알았다.
초원아는 몇 명의 무사들과 함께 남아서 다친 부상자들을 간호하는 한편 적의 침입을 방비했다.
원승지는 초조하게 긴장이 도고 마음에 걸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침상에 일어나 앉아 내일은 어떻게 해서 청청을 찾을까를 궁리하고 있었다. 사방은 아무소리도 없고 먼 곳의 어느 빈 골목에서 짖어대는 개소리만 가끔 들려 왔다. 경을 때리는 죽탁은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윙윙 거리며 울렸다.
그는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이번 계획이 실패한 것을 한스러워했다. 하산 이래의 첫 번째 대패였다.
조용한 가운데 갑자기 주위의 벽 위로 가벼운 소리가 들려 왔다.
(오평과 나입여 두 사람이 돌아오는 것일까? 아니야. 반드시 적이 왔을 것이다!)
그는 침상에서 똑바로 앉은 채 조용히 상황이 변하기를 기다렸다. 창 밖에서 마치 낙엽 하나가 떨어지는 듯 미미한 소리가 들렸다. 연달아 깔깔대는 교태로운 소리도 들려 왔다. 그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원상공, 손님이 왔소....... 들어오시오.]
원승지가 대답했다.
[하교주의 내방이 있다니....... 들어오시오.]
그는 초에 불을 밝혀 놓고 손님을 맞았다.
하철수는 표연히 들어와 원승지의 방이 간략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침대 하나, 탁자 하나를 제외하고 네 벽이 훤했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원상공의 무공이 아주 높으시군요!]
원승지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하철수는 계속했다.
[제가 이번에 온 것은 원상공께서 한가지는 알아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원승지가 조용히 대답했다.
[하교주의 말을 들어 보겠소.]
[당신은 저를 구해 주었고, 저 또한 당신을 구해 줬어요. 그러니 우리들에겐 여전히 승부가 없을 것 같군요.]
원승지도 한마디했다.
[나는 그렇게 계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 하교주는 지혜와 용기가 있다고 우리들은 모두 생각하고 또한 존경하고 있소.] 하철수는 빙그레 웃었다.
[이것은 제일차 회합이오. 상공이 우리 오독교를 한꺼번에 멸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겐 두통거리가 될 것이오.]
원승지는 속으로 부르르 떨었다. 그들의 싸움은 끊임없이 계속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이것은 저항이다.
[하교주가 혹시 나와 그녀의 부친에게 원한이 있다면 어떻게든 당사자를 찾는 것이 당연할 것이오. 그런데 하필이면 왜 그녀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오? 억울한 점이 있다면 마땅히 오해를 풀어야.......]
하철수가 교묘하게 한 번 웃더니 대답하였다.
[그 일은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지요. 손님이 왔는데 상공은 술조차 대접하지 않는군요.]
원승지는 속으로 이 사람이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단정하게 술상을 차려 오라 했다.
초원아는 안심이 되지 않아 하인의 옷차림으로 바꿔입고 친히 술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하철수가 웃으며 말하였다.
[정말 강한 사람의 수하에는 약한 군병이 없군요. 원상공의 하인은 생긴 것이 준수하구료.]
원승지는 두 잔에 술을 따랐다. 하철수는 술잔을 들고 쭉 마시더니 연거푸 계속 두 잔을 더 마셨다.
[원상공은 술을 마시려하지 않는군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대담했지요.]
초원아가 끼어 들어 한마디했다.
[우리집 술은 독이 없습니다.]
하철수는 피식 웃었다.
[좋아요. 좋습니다. 정말 날카로운 분이시군요. 자, 건배합시다.]
원승지는 그녀와 대작을 하며 불빛 아래서 그녀를 자세히 보았다. 그녀의 눈은 영롱하게 반짝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알고 있는 여자 가운데 외모의 아름다움을 논하자면 아구가 제일일 것이다. 소혜는 성실하고 진지하며 원아는 호탕하고 세심하다. 청청은 나로 하여금 사랑하게 하지만 오로지 일편의 진심만 있다. 하철수같이 아름답기는 도화 같으나 독이 있기로는 뱀 같으며, 진실로 천하에서 큰 인물이지만 기이하고 이상한데다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해.......)
하철수는 그가 침묵에 잠긴 것을 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오로지 담담하게 웃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자 그는 다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원상공의 무공은 존경스럽습니다. 마치 스승 금사랑군조차도 당신의 무공을 따를 수 없을 것이오.]
원승지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소. 나는 화산파의 제자요.]
하철수가 말했다.
[상공의 무공은 너무도 뛰어납니다. 오늘 밤 배움을 청하려 왔소.]
원승지는 기이하게 여기며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 못하겠는데.......]
하철수가 다시 말했다.
[원상공, 만약 저의 자질이 둔한 것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문하에 맡아 주십시오.]
[하교주는 일교의 우두머리요. 무공도 뛰어난데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시는 거요?]
[당신이 만약 내게 혈수법을 전수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 교의 수십명이 난감합니다. 눈을 뜬 채로 그들을 죽게 할 수는 없지 않겠소?]
원승지가 아픈 신음을 토했다.
[당신이 내 동생 청청을 데리고 온다면 이후는 영원히 그런 사태가 없을 것이오. 대답하시오? 데리고 온다는 것을....... 그러면 나는 당연히 그들을 치료해 줄 것이오.]
하철수가 대답했다.
[제가 상공의 동생을 돌려보내드릴테니 내 부하들을 좀 치료해 주세요. 이후의 일은 가면서.......]
원승지는 그녀가 <이후의 일은 가면서......> 하는 말에 은근히 화가 났다.
(오독교는 운남을 횡행하나 우리 영웅호걸들은 너희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철수가 웃으면서 일어났다.
[아이구, 원맹주께서 화가 나셨군요?]
그리고는 절을 하였다.
원승지도 마주 절을 했다.
[내일 저는 상공의 친구를 돌려보낼 것이오. 그러니 상공께서도 좀 오셔서 제 부하들을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좋소. 꼭 지키겠소.]
하철수는 약하게 몸을 굽힌 다음, 몸을 돌려 나갔다. 그녀는 지붕 위로 나가지 않고 대문으로 당당하게 나갔다.
원승지는 하인에게 초를 켜게 하고 배웅을 위해 문을 열라했다. 초원아가 원승지를 따라가며 생각했다.
(저 여자의 행동은 위험하고 사려깊다. 대문 밖에 복병을 두었을지도 모른다. 원상공을 유혹해서 공격이라도 하면....... 내가 먼저 나가서 봐야지.)
그녀는 천천히 떨어져 몸안에 숨겨 놓은 아미강자를 확인하고 담을 넘어갔다. 담 모퉁이에 숨어 바깥을 바라보니, 큰 문 앞에 한 대의 가마가 서 있었다. 4명의 가마꾼만 가마 앞에 서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초원아는 조심스럽게 가마 뒤로 가서 두 손으로 가마를 가볍게 들어 보았다. 가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제사 안심이 되었다. 막 돌아가려 했는데 대문이 열리면서 하인의 손에 등을 돌린 원승지가 하철수를 바래다 주고 있었다.
초원아는 문득 기지를 발휘했다.
(그녀가 손을 떼지 않는다면 이후에 번거로운 일이 많아질 것이다. 나는 그녀가 도착하는 곳이 어딘지 찾아내야 한다. 그녀는 분명 다시 돌아와서 복잡한 일을 벌일 것이다. 원상공으로 하여금 공격을 하게 해서 그녀의 뜻을 펼치지 못하도록 해야지.) 그녀에겐 보은의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든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도 헤아리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숙여 가마밑으로 들어갔다. 손과 발이 가마 밑 목각에 부딪쳤다. 가마꾼 4명은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고 또 밤은 어두워서 그녀를 발각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곧 하철수의 가벼운 웃음소리가 가마속으로 들어갔다. 4명의 가마꾼은 가마를 들더니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4명의 가마꾼은 나는 듯이 빨리 걸었다. 원래 가마를 드는 사람들은 모두 무공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녀는 사실 겁이 나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마침 깊은 겨울이라 한풍이 뼈를 깎는 것 같았고 가마 밑에는 얼음이 얼고 있었다. 그녀의 입의 열기로 인해 얼음은 똑똑하는 낙수 소리를 냈다. 초원아는 얼굴위에 얼음물이 떨어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감히 만질수도 없고 몸을 움직이면 곧 하철수에게 발각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x x x x
약 반시간도 못 가서 질책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가마가 멈춰 섰다.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 비천한 계집애야, 빨리 나와서 죽음을 받아라.]
초원아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목소리는 아주 귀에 익은 목소리다. 누구란 말인가?) 또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오독교가 일세를 풍미한다고 하나 예상치도 않게 오늘 여기서 만나는구나.]
초원아는 깜짝 놀랐다.
(민자화구나! 음, 먼저 말한 사람은 그의 사제 동현도인이고.......)
사방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에워쌌다. 가마꾼은 가마를 내려놓으며 병도를 꺼냈다. 초원아는 가마 한 모퉁이에서 바깥을 내다 보았다. 바라보니 동쪽에 4, 5명이 서 있었다. 모두 도포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장검을 들고 있는 도사도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서북남 세 군데에도 반드시 무사들이 있을게다. 선도파의 대거 보복이 시작되는구나.)
가마가 미미하게 움직이더니 하철수가 이미 가마 밖으로 나와 교태로운 소리로 말했다.
[수운도인이 죽었어요. 당신들은 담이 아주 크군요. 무엇을 생각해요?]
장발의 한 도인이 말했다.
[우리들의 사부 황옥도장은 도대체 어디있소? 빨리 말하시오.
당신이 고통 받는 것을 면하려면!]
하철수는 깔깔대고 웃었다.
[당신 사부님은 세 살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길을 잃으셨나요? 되레 내게 물어보다니! 당신들의 사부를 내게 맡겨 놓으셨어요? 그래요? 좋아요. 무림은 모두 한 형제니 내가 당신들을 도와 찾아 드리지요. 당신이 불쌍하게 보이는 것을 면하게 해드릴께요.
밖에서 돌아다니며 아무도 그를 보살펴 주지 않을 거에요. 누구에게 끌려갔는지도 모르고 팔려 갔는지도 모르잖아요?] 초원아는 생각했다.
(원래 이 여인은 늘 이렇게 교태롭게 구는게군. 그녀는 원상공에게도 일부러 교태롭게 했었지.......)
장발을 한 도인이 화를 내었다.
[오독교는 너무 까불어 대는군. 내 오늘 네게 악에는 악의 보복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하철수가 까르르 웃었다.
[하기야 선도파는 강호에서 이름이 조금은 있지요? 그렇다면 평시에 떳떳이 나를 찾아와! 지금 내 집에는 얼마나 많은 교도들이 상처를 입었는지 아세요? 흉칙하게 여기저기 누워있다. 하하, 하하, 히히, 헤헤!]
그녀는 짧은 시간 동안 몇 가지의 웃음소리를 바꿔가며 끝내지 않았다. 서북쪽에 한사람이 <아!>하고 참담하게 외쳤다. 그건 그녀의 독수가 명중한 것이었다. 일시에 서로 질책하고 욕을 하며 병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옮김: 김선국(金善國;sm1109)

* 제 3 권 *

- 8 - 검객의 사랑

초원아는 가마 밑에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라보니 선도파의 검법은 빠르고 날카로왔다. 과연 독특한 비법이 있었다.
마음으로는 원상공이 나타나서 양의검법으로 격파해 주었으면 했다. 그것은 그들이 아주 강한 고수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 여검객은 선도파의 상대가 아니었다.
초원아는 당돌하게 뛰어나가고 싶었으나 선도파에게 오독교 무리라고 오해 받는게 싫었다. 그래서 숨도 쉬지 않고 있었다. 이때 20여 개의 장검이 하철수를 포위했다. 푸른 빛이 빛나면서 초원아는 침묵하고 계속 지켜 볼 뿐이었다.
하철수는 수십명의 포위와 공격을 조용히 대응하고 있었다. 한 소년이 앞장서 들어와 맹렬히 공격했다.
그녀의 철갈고리가 가로 획을 그으며 소녀의 어깨를 건드렸다.
그는 이내 땅위에 눕고 말았다. 즉시 일행들이 그를 구했다. 다시 수십차례, 하철수의 힘은 점점 부지하기 어려웠다.
민자화의 장검이 다가오면서 질풍같이 공격해 대니 그녀의 옆머리가 살짝 스쳤다. 옆으로는 또 한 쌍검이 공격해 왔다.
<쨍!>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무언가 작은 물건이 가마 밑으로 떨어졌다. 초원아가 살짝 주워보니 그건 여인들이 달고 다니는 귀걸이였다.
그녀는 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론 조급했다. 기쁜 것은 하철수의 경각에 달린 생명이고, 급한 것은 그녀가 만약 생명을 잃으면 청청이 어디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 때문이다.
또 싸우기를 수십 차례, 하철수의 머리는 흩어지고 이미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질 않았다.
장발 도인은 계속 호령을 했다. 수십개의 장검이 갑자기 한데로 모여 검망처럼 형성되더니 그녀의 주위를 도는 것이었다.
장발 도인이 말했다.
[나의 사부, 그 노인은 어디 있느냐? 그는 죽었나, 살았나? 빨리 말해라!]
하철수는 철갈고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천천히 손으로 흩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갑자기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리면서 철갈고리가 번개처럼 날아가 한 도인을 휘갈겼다.
무리는 크게 노했다. 장검이 일제히 움직였다. 이번에는 또 하철수의 형세가 위급해졌다. 그때 갑자기 먼 곳에서 쉬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 왔다. 하철수는 황망중에 웃으며 말했다.
[내 동지가 오는구나. 당신들은 지금 빨리 가도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오.]
초원아는 생각했다.
(만약 그들이 죽자고 싸우는 것만 아니라면, 그녀의 이 온유하고 상냥한 목소리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여길거야!)
그러자 장발 도인이 소리쳤다.
[이 비천한 것아, 빨리 말하라니까!]
각자 서로 공격하는 것이 아주 긴장되어 보였다.
눈을 돌리는 사이, 하철수의 두 다리엔 연속으로 두 군데나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만면에 미소를 띄었다. 한 젊은 도인의 심사가 산란했다. 이렇게도 교태롭게 웃는 것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웃으며 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솜씨는 시체를 가르는 것 같았다.
[웃지 마시오. 그리고 말하겠소, 안하겠소?]
하철수는 그래도 웃었다.
[저 분이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그 도인은 순간 멍해졌다. 막 대답을 하려고 할 때 눈 앞에 홀연히 금광이 번쩍했다. 민자화가 급하게 소리쳤다.
[조심하시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철갈고리는 이미 그 도인의 등에 박혀 있었다.
격렬하게 싸우고 잇는 도중 먼 곳에서의 날카로운 소리는 더욱 급하게 들려 왔다.
선도파는 8명으로 나눠 막았다. 오로지 쇠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엇갈리면서 그들 8명이 패하기 시작했다. 선도파는 또 사람을 나눠 증원을 부탁하러 보냈다.
하철수가 잠시 자세를 가다듬고 서 있자 선도파 나머지 사람들은 일제히 공격을 시작하였다. 초원아는 뛰어가서 도와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쌍방의 힘이 모두 같았기 때문에 외치는 소리, 칼부딪치는 소리로 시끌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민자화가 크게 소리쳤다.
[좋소, 좋소! 태백삼영!]
한 사람이 낮고 두터운 소리로 말했다.
[어떻습니까? 당신은 할아버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아시는구료.]
초원아는 내심 놀랐다.
(태백삼영이라면 우리 아버지를 해치려고 하던 그자들 아닌가.
원상공에게 그들을 사로잡으라고 분명하게 했었는데....... 아버지는 훗일 세 사람을 남경 어문에 보냈었는데 어떻게 또 나올 수 있었는가. 탈옥했는가? 아니면 탐관오리들이 매수돼 풀어 주었는가?)
이때 하철수의 문하에서 오는 자들이 점점 많아져 선도파는 열세가 되었다. 저항할 수 없다고 여긴 장발 도인이 호령을 내렸다.
그들은 검을 모으고 후퇴했다. 선도파는 군전에 출전한 경험이 있어서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이고 하는 질서가 정연했다.
하철수는 몸에 상처를 입은데다 적들이 질서정연하게 퇴각하므로 도리어 뒤쫓지를 못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또 와서 이런다면 나는 다시는 배웅을 하지 않을 거에요.] 선도파 무리들은 오는 것도 갑작스러웠으나 가는 것도 빨랐다.
삽시간에 검소리가 멈추고 삭풍소리만 불어왔다.
초원아가 가마밑에서 조심스럽게 바라다보니 다친 사람은 동서쪽에 수십명이었다. 한 거지 노파가 말했다.
[그들의 소식 또한 참으로 신통하오. 상처를 입은 자가 많다는 것을 알고 엄습해 온 것이요. 교주, 상처는 괜찮소?]
하철수가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다행히도 고모님께서 원병을 데리고 온 것이 빨랐으니 다행이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을 쫓을 수가 없었을 거에요.]
노파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서로 죽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좋지요.]
초원아가 가마 밑에서 듣고있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차도살인적이간지계(借刀殺人的離間之計;칼을 빌려 살인하는 것이 이간의 계획)이라.......)
이 몇 글자, 그 구절이 귓속에서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에 식은 땀이 흘렀다.
(이것이다. 이것이구나! 나의 아버지를 죽인 것도 원래는 이 세간적들이었구나!)
그녀는 계속 듣고 있었다.
[함께 궁으로 들어갑시다.]
무리는 함께 자리를 떴다.
초원아는 그들이 수십보 멀어져 가기를 기다렸다가 가마 밑에서 빠져 나왔다. 놀랍게도 그곳은 황궁(皇宮) 앞이었다. 몇 사람이 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초원아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서둘러 정조자호동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을 원승지에게 얘기하자 원승지는 크게 웃었다.
[초아가씨, 담이 아주 큽니다. 좋은 경험이었소.]
초원아의 얼굴은 갑자기 붉어졌다. 원승지는 몸을 옆으로 한 채 개탄하여 중얼거렸다.
(또 하나의 큰일이 내 신상에 떨어졌구나. 초아가씨는 내게 큰 절을 했으나 그건 나를 깔보는 행위 같다.)
그리고 신음 섞어 한마디했다.
[일은 쉽지 않게 되었소. 내가 궁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찾아 봐야겠소.]
초원아가 대답했다.
[이 간적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놀랍게도 황궁으로 들어가다니? 반드시 어떤 흉계가 있는 것 같아요. 궁안은 굉장히 삼엄할 텐데, 원상공이 들어가신다니 두려워요.]
원승지는 태연하게 말했다.
[괜찮소. 내게 좋은 물건이 하니 있소. 일찍부터 쓰려고 했었는데.......]
그러면서 편지 한 통을 꺼냈다. 그것은 만청 예친왕 다이곤이 궁안의 사례환감 조화순에게 보내는 밀함이었다. 원래는 홍승해가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원승지도 이 편지가 반드시 필요하리라는 것을 알았었다. 그래서 계속 품 속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
초원아는 기뻐하며 말했다.
[아주 좋군요. 나도 원상공을 따라서 가겠어요. 당신의 하인으로 분장해서요.]
원승지는 그녀가 원수를 갚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효심이므로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개를 끄덕여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초원아가 가마 밑에 숨어서 몇 시간을 지낸 처지였다. 온몸이 흙투성이여서 바삐 들어가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 입어야 했다.
단장이 다 끝나자 개구장이 같은 하인이 되었다.
원승지는 그녀를 보고 웃었다.
[다시는 당신을 초아가씨라고 부를 수 없게 됐구려.] 초원아도 싱긋 웃었다.
[상공은 저를 원아라고 부르세요. 그러면 다른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모를 거에요.]
그들이 문을 나서려는데 오평과 나입여가 총총이 들어왔다. 그들은 궁 밖에 감시가 아주 엄하다고 말했다.
(두 시간을 기다렸다가 보초를 교대할 때에 단철생의 목을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원승지는 생각했다.
(황궁으로 깊이 들어가면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아직 많은 고수는 안에 잇다. 초아가씨를 보호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 때문에 장애가 된다면?)
그가 입을 열려고 할 때 갑자기 오평이 손을 내밀어 몰래 나입여의 옷끝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안색이 변하며 말하였다.
[나사제, 당신은 어깨에 상처를 입은 후 아직 다 낫지 않았소.
원상공과 사매만 가시게 합시다.]
원승지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는 마치 나와 초아가씨가 몰래 밀애하는 것처럼 보는구나.
청춘남녀가 심야에 출입을 했으니 남의 의심을 사는 건 당연하지. 이건 대장부의 명예가 떨어지는 일. 그래서 의심을 안 사도록 하는게 좋을 것 같구나.)
그래서 나입여에게 말했다.
[나형, 함께 갑시다. 내게 응원자가 한 명 더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오. 승복(僧服)으로 갈아 입으시고요.......]
나입여는 아주 기뻐했다. 곧 들어가서 옷을 바꿔 입었다. 오평도 따라 들어가면서 웃으며 말했다.
[나사제, 당신은 이번엔 바보같은 일을 하는 거요.]
나입여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무엇이라고?]
오평이 설명했다.
[원상공은 우리들 금룡방에 대해 은덕이 산과 같은 분이오. 더구나 사매가 그에 대한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는데.......] 나입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사매로 하여금 원상공과 혼약을 독촉토록 하려고 하오?]
오평이 말했다.
[인연은 하늘에 있소. 정해지면 십분 기쁠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따라가서 대체 뭘 하겠나는 것이오?]
나입여는 고개를 끄덕였다.
[큰 형 말이 맞소. 나는 안 가겠소.]
오평이 싱긋 웃었다.
[지금 따라가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을 돕는 것일 게요. 아마도 혼인을 재촉시키는 일일는지....... 그렇다면 더없이 좋은 일 아니겠소?]
나입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그는 사매에 대해 암암리에 연정을 품어온지 이미 몇 년이 아닌가. 그녀의 품위와 외모는 아름다왔다. 그는 초공례 처자를 도와 주는 가운데 느낀 일이지만 그녀는 조금도 구석진데가 없는 여자였다.
어깨를 다친 후엔 왠지 부끄러워 그녀와 말조차 나누지를 못했다. 그러나 오평의 말을 들으니 허무해짐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생각을 바꿔 보았다.
(원상공은 영웅이다. 사매와도 꼭 어울린다. 그에게 종신을 부탁해도 나는 그녀를 지금처럼 좋아할 것이다.)

x x x x
원승지는 쇠로 만든 상자에서 많은 진귀한 보물을 끌어내어 큰 보따리에 싸서 나입여로 하여금 손으로 받쳐 들도록 하였다.
세 사람이 궁문 앞에 닿자 원승지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밝혔다. 문을 지키던 금군(禁軍)은 일찍이 조환관이 분부를 받았던 터라 사람을 나누어 그들을 인도하여 들어갔다.
하나의 큰 궁전 앞에 다다르자 금군은 물러가고 직급이 낮은 환관이 안으로 인도하여 들어가는데 연달아 3명의 환관이 바뀌었다.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길을 기억해 두며 생각했다.
(조환관은 심계(心計)에 매우 뛰어나구나. 기밀이 탄로날까 두려워 길을 인도하는 사람조차도 끊임없이 바꾸는구나.) 맨 나중에는 어화원(御花園) 우측의 작은 길을 따라 꼬불꼬불 돌아갔다. 잠시 후에 한 작은 집앞에 다다랐다. 직급이 낮은 환관은 세 사람을 안으로 모시고 차와 다과를 내놓았다.
한 시간 남짓을 기다렸으나 조환관은 오지 않았다. 세 사람 역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정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30세정도나 된 환관이 들어와 원승지를 향하여 몇 마디 속삭였다. 원승지는 홍승해가 일찍이 말한 바대로 대답하자 그 환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갔다.
또 얼마나 지나자 그 환관은 뚱뚱하고 살결이 흰 중년의 환관을 인도하며 들어왔다. 원승지는 그가 몸에 비단옷을 입고 기세가 등등한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사람이 분명히 궁중에서 황제 이외에 제일 권세가 있는 사례환관(司禮宦官) 조화순 일 것이다.)
과연, 먼저 들어온 환관이 입을 열었다.
[이분이 바로 조환관 나리이십니다.]
원승지, 나입여, 초원아 세 사람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그에게 인사하였다. 조화순은 껄껄 웃었다.
[너무 그렇게 예의를 갖추지 말고 일어나 앉아라. 왕어른께서는 평안하신가?]
원승지가 몸을 굽혀 대답했다.
[왕어른께서는 복채 평안하십니다. 왕어른께서는 소인에게 나리의 안부를 여쭙도록 명하셨습니다.]
조화순은 또 한 번 하하 웃었다.
[나의 이 노쇠한 몸을 오히려 왕어른께서 많은 걱정을 해 주시는 구나. 홍승해는 먼길을 왔는데 왕어른께서 어떤 분부가 계셨는지 모르겠구나.]
원승지가 대답했다.
[왕어른께서는 나라의 대사가 어떻게 계획되고 준비되어 가는지 여쭈어 보라 하셨습니다.]
조화순이 문득 탄식하였다.
[우리 황제의 성격은 대단히 고집스럽다. 내가 여러차례 나아가 진언(進言)했지만 황제께서는 항시 군대를 빌어 적을 소멸하는 것이 후환이 많을 것이라 말씀하시며, 단지 두 나라가 군대를 거두기만을 바라고 명나라가 적을 소멸하기만을 기다리신다. 거듭 왕어른께 감사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원승지는 다이곤(多爾崑)이 조화순과 어떤 비밀스러운 계책이 있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홍승해는 다이곤의 수하에서 지위가 낮은 기밀스러운 일을 알수가 없었고, 단지 소식을 전달해 주는 사자(使者)에 불과 할 따름이었다. 홍승해가 알지 못하니 원승지 역시 자연히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조화순의 말을 듣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쿵쿵 뛰었다.
<차병멸관(借兵滅冠;군대를 빌어 적을 소멸한다)> 이라는 네글자가 또렷이 우리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황제는 군대를 빌리려 하지 않는데 만주인들은 오히려 마음이 조급하여 군사를 빌리려 하니, 확실히 건전한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구나.)
그는 애써 마음을 가라 앉혔다. 그러나 그같은 중대한 소식을 갑자기 듣게 되자 얼굴에 놀라움이 나타나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조화순은 의도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또한 이로 인하여 일이 성사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마음속에 불안이 생기자 서둘러 말을 돌렸다.
[서두르지 마라. 하나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또 하나의 계획이 있다.]
원승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시겠죠. 조환관 나리께서는 총명하시고 지략이 많으시다고 우리 왕어른께서도 끊임없이 칭찬하십니다. 항상 궁중의 일들을 나리께서 지휘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어찌 큰일이 이루어 지 않음을 걱정하시겠습니까?]
조화순은 웃음을 머금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원승지가 운을 떼었다.
[왕어른께서는 몇 가지 물건을 주시면서 소인에게 갖다 드려라 명하셨습니다. 나리께서는 너그러이 받아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나입여를 가리켰다.
초원아는 가지고 있던 보따리를 받아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것을 풀어 제꼈다.
보따리가 풀어지자 구슬과 보옥의 광기(光氣)가 온 방안에 환한 빛을 발했다. 조화순은 오래도록 궁궐 안에 있어서 진기한 보물을 하도 많이 보았기에 어지간한 보물은 그의 안중에는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보물은 기이한 기운이 돌았다. 가까이 가서 보고난 그는 부지불식간에 놀라 어리둥절해졌다. 원래 보따리 속에는 진귀한 보물이 무수히 있었으니 그 중 일백개의 큰 구슬로 꿰어 만든 조주(朝珠)는 알알이 정묘하고 둥글었다. 이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것이었다. 그 밖에 한쌍의 비취사자(翡翠獅子)도 있었다. 앞발은 붉고 둥근 보석 위에 걸쳐 놓고 있는데 이 투명하고 반짝이는 커다란 비취는 영롱하기 그지 없었다. 더욱이 붉은 보석의 곱고 찬란함은 더욱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조화순은 한 물건 한 물건을 보면서 감탄하더니 몸을 돌려 원승지에게 물었다.
[왕어른께서 왜 나에게 이렇게 많은 것들을 주었느냐?] 원승지는 그의 계략을 은연중 알아낼 생각을 했다.
[왕어른께서도 역시 황제께서 사리를 잘 판단, 군대를 빌어 적을 소멸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시므로 결국은 나라의 큰 힘을 빌고자 하십니다.]
조화순은 그가 이렇게 두둔해 주자 득의만만해 하였다. 그는 손을 들어 나입여와 초원아에게 한마디 했다.
[그대들은 밖에 나가서 좀 쉬거라.]
원승지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곧 직급이 낮은 환관이 와서 그들을 데리고 나갔다.
조화순은 몸소 문을 닫고 원승지의 손을 잡더니 낮은 소리로 소근거렸다.
[너는 왕어른께서 출병하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어떤 조건이 있는가?]

- 3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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