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4-1

3학년2반 | 2022.01.17 07:14:43 댓글: 0 조회: 356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822


* 제 4 권 *

- 1 - 모반과 원수

원승지는 속으로 언젠가 이암(李岩) 의형이 곤경에 처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에 대해 말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기밀을 몰래 빼내려면 반드시 먼저 약간의 기밀을 그에게 줘야만 한다.>
[나리께선 우리 편이시라 어르신네와 상의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기밀이라 왕어른과 소인까지 포함시켜 단시 두세 사람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조화순의 눈이 번뜩했다.
원승지는 가까이 다가가서 또 한마디 했다.
[왕어른께서는 비록 소인을 신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변방의 국가들에 대해 조나리께서 은혜를 더욱 베푸시고 또 소인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여 종묘사직을 빛내도록 해주신다면.......] 조화순은 원승지의 심중을 알아차렸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관직을 요구하려고 하는 것이구나 생각하고 하하 웃었다.
[그대가 공명부귀를 원한다면 그 열쇠는 내 손에 달려 있다.]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속이려면 끝까지 속여야 한다.)
그는 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조화순은 나직하게 웃었다.
[일이 성사된 후에 너에게 부장직을 맡기면 어떻겠느냐? 너를 재물이 풍성한 곳으로 보내 줄 것을 약속하마.]
원승지는 얼굴 가득히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며 급히 또 감사하다고 했다.
[나리의 큰 은덕에 감사합니다. 소인은 어떤 일도 모두 나리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어른의 뜻은.......]
좌우를 한 번 둘러보고 난 그는 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나리께서는 절대로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인의 목숨을 보존하기가 어렵습니다.
조화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마라. 내가 어찌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수가 있겠느냐?]
원승지는 다시 소리를 낮추었다.
[만주병들이 동관에 들어가면 츰군 무리를 반드시 평정시킬 수 있을 겁니다. 왕어른의 의도는 조정이 북직례와 산동일대의 비장을 나누려 하므로 서로 양보해 황하를 경계로 하여 영원히 형제의 나라가 되도록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원승지는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였는데 조화순은 오히려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첫째로는 다이곤과 친해져서 약정한 바의 암호가 있으며, 둘째로는 이와 같이 예의를 중시하고, 셋째로는 만주인이 어떤 속셈으로 있는지 모르고 있는 터에 그 또한 무엇을 헤아릴 것인가. 그는 깊이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전의 천하가 너무 어지럽다. 오늘 아침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동관은 이미 츰군의 공격에 의하여 무너졌고, 병부상서(兵部尙書) 손전정(孫傳廷)은 순직하였다. 명나라에 어떤 쓸 만한 장군이 남았겠는가? 청나라가 다시 출병하지 않는다면 눈앞의 츰군대는 하룻사이에 곧 성 아래에 다다를 것이다. 북경이 무너지면 모두 다 끝장이다.]
원승지는 츰왕이 이미 동관을 무너뜨렸다는 것과 현재 유일하게 병사를 거느리고 있던 도독인 손전정이 순직했다는 마을 듣고는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마음 속의 기쁜 표정이 나타날까 두려워 급히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았다. 조화순이 말을 이었다.
[내 오늘 저녁 황제에게 다시 진언하겠지만 만약에 그가 여전히 고집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종묘사직을 중요하게 여기므로 할 수 없이......]
여기까지 말하고서 그는 깊이 생각에 잠길 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눈썹만 찡그렸다. 마치 심중에 매우 큰 어려움이 있는 듯 하였다. 원승지는 가슴이 쿵쿵 뛰며 그 말을 뒤쫓았다.
[지금의 황제는 총명하고 강직하므로 나리께서는 모든 일을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조화순이 쓴 웃음을 지었다.
[흥, 강하기는 하지만 과단성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총명이란 두 글자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명나라가 그의 손에서 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나. 우리들도 그와 더불어 같이 죽어야만 하는지 그게 문제다.]
그의 이 말은 대역죄다. 비밀이 누설되어 나가면 멸족의 죄명이 된다. 그런데도 조금도 거리낌없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원승지를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화순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음, 황하를 경계로 삼는다고 여긴다면 국토가 적의 손에서 멸망당하는 것보다야 나은 일이다. 황제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설마.......]
여기까지 말하고는 하하 웃었다.
[홍승해가 3일 안으로 반드시 좋은 소식을 왕어른께 전해 줄 것이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그가 문득 손뼉을 치니 지위가 낮은 몇몇 환관들이 들어와 원승지가 바친 보물을 들고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네 명의 지위가 낮은 환관들이 원승지와 나입여, 초원아를 데리고 왼쪽에 있는 집으로 가서 쉬도록 하였다.
저녁이 되자 잔치상을 벌였는데 매우 성찬이었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하늘은 이미 어두워지고 지위가 낮은 환관들은 인사를 올리고 옆방으로 물러갔다.
원승지가 낮은 소리로 소근거렸다.
[조환관은 큰 음모를 꾸미고 있는데 일이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나가서 살펴 봐야겠다.]
초원아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나도 같이 가겠어요.]
[안돼. 아가씨는 나입여와 여기에 머물러 있어요. 조환관이 혹시 의심을 하고 사람을 보내어 살필지도 모르니.......] 나입여가 입을 열었다.
[나 혼자 남아 있는 게 좋겠소. 상공을 돕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원승지는 초원아의 표정을 보고서 그녀의 뜻을 막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옆방으로 가서 쌍수를 펼쳐 두 환관의 아혈(啞穴)을 눌렀다. 다른 두 명의 환관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크게 뜨고 까닭을 몰라했다.
초원아는 아미강검(蛾眉鋼劍)을 뽑아 두 사람의 가슴에 대고 낮은 소리로 협박했다.

## 책에는 아미강극(蛾眉鋼剌;아미강랄)이라 표기되어 있음.
## 아미강검이 괜찮기에 바꿨습니다.
## 근데 아미강랄도 검 종류인가?

[한마디라도 소리를 지르면 너희들로 하여금 위중현을 만나보러 가게 하겠다.]
칼끝은 두 환관의 옷을 찢고 가슴의 살결에 닿았다. 원승지는 잠시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스갯 소리를 하는구나.)
위중현은 희종(熹宗)때의 간악한 환관으로 천하를 혼란스럽게 하여 대역죄로 이미 주살되고 지금은 없는 자이다.

## 신용문객잔을 보면 위중현에 관한 것을 볼 수 있음
원승지는 곧 두 환관의 옷을 빼앗아서 자기와 바꿔 입었다. 초원아도 촛불을 끄고 더금거려 환관의 복장으로 갈아 입었다. 원승지는 그들 역시 아혈을 누르고 왼손으로 다른 하나의 맥문을 집고서는 문을 열고 나와서 다그쳤다.
[우리를 조환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
그 환관은 반신이 마비되어 감히 여러 말을 하지 못하고 곧 길을 안내하였다. 꼬불꼬불 1리 남짓 가서 큰 건물 앞에 이르렀다.
[조환관 나리께서는 이곳에서 기거하고 계십니다.]
원승지는 그가 다음 말을 하기도 전에 팔꿈치로 그를 가볍게 때렸다. 그는 가슴의 혈도가 막혀 쓰러져 화단의 깊은 곳에다 버려 두었다.
두 사람은 몸을 숙여 건물 옆으로 질주해 갔다. 원승지가 초원아의 몸을 끌어 막 뛰어오르려 할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저만큼 서서 물었다.
[조환관 나리께서는 안에 계시느냐?]
원승지가 대답하였다.
[나도 방금 왔는데 여기에 계실 것이오.]
고개를 돌리니 사람들은 모두 다섯이었다. 맨 앞의 한 사람은 붉은색의 등불을 들고 있었다. 불빛이 가려진 아래를 보니 그들은 환관들이었다. 그 등불을 들고 있는 환관이 웃으며 꾸짖었다.
[이 원숭이 같은 새끼야, 말을 하면 다 말이냐?]
그러면서 느리게 다가왔다. 원승지와 초원아는 고개를 숙여 그들로 하여금 얼굴을 확실히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다. 다섯 명의 환관들이 문을 들어왔을 때 등불의 빛이 문 위의 휘황한 붉은 옻칠에 반사되어 거울처럼 다섯 사람의 모습을 비춰 주었다.
원승지는 깜짝 놀라서 초원아의 옷 소매를 가볍게 잡아 당기며 다섯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낮게 속삭였다.
[그들은 태백삼영(太白三英)이다!]
초원아는 크게 놀랬으나 그 역시 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를 죽인 그 간적(奸賊)들, 그들이 환관이 되었다고요?]
원승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처럼 변장을 한 것이다. 자 올라가자.]
두 사람은 앞에 간 사람들과 동행이라고 말하자 더 캐어 묻지 않았다. 이층에 도착하자 앞의 두 환관이 태백삼영을 데리고 한 방으로 들어갔다.
원승지는 초원아와 다시 따라가기가 불편하여 문 밖에서 기다렸다. 흐릿한 등불을 든 환관이 그들에게 허리를 굽신거렸다.
[이쪽으로....... 조환관 나리께서 곧.......]
그런 말만 들릴 뿐 그 나머지 말은 확실치 않았다. 두 명의 환관은 곧바로 불러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원승지는 초원아의 손을 이끌고 곧 방으로 들어갔다. 사방 벽에는 그림과 책만 있는 방이었다. 원래는 진열해 놓은 방인 듯 싶었다. 태백삼영은 한쪽의 의자에 앉아서 두 명의 환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괘념치 않았다.
초원아는 그 앞으로 지나가며 냉소하는 소리로 외쳤다.
[사숙부, 여숙부, 우리 아버지게서 함께 진지를 드시잡니다.] 태백삼영은 이때 초원아를 알아보고서는 몹시 놀라와 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너...... 너의 아버지는 죽었지 않았더냐?]
초원아가 대답했다.
[그래, 우리 아버지가 너희 셋을 청하여 식사를 같이 하려 하신다.]
사병문이 눈썹을 찌푸리며 칼집에서 쓱하고 긴 칼을 뽑아 들었다. 원승지가 뛰어들어 두 손을 급히 펼쳐 한 손에 한 명씩 사씨 형제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킴과 동시에 왼발을 날려 여강(黎剛)의 후심갑골(後心甲骨) 아래 삼촌(三寸)뻘인 봉미혈을 눌렀다.
사병광(史秉光)이 손을 뒤집어 주먹을 쥐었으나 원승지는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오직 그가 마음대로 자기의 가슴을 치게 하면서 두 손을 가볍게 모아 형제의 두 머리를 서로 부딪치니 둘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초원아가 미처 어찌된 상황인지 알기도 전에 그들 태백삼영은 이미 기절해 버렸다. 그녀는 아미강검을 뽑아 들고 맹렬히 사병광의 가슴을 향해 찔러가는데, 원승지가 손을 뻗쳐 그녀의 팔뚝을 잡았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있다.......]
그때 계단 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원승지는 사씨 형제를 들어 서가의 뒷면에 놓고, 다시 몸을 돌려 여강을 들춰메고 초원아와 함께 서가의 뒷면에 숨었다. 곧 몇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여러분,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시면 조나리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그러자 한 명의 아름다운 여인이 그들에게 치하를 했다.
[수고했어요.]
원승지와 초원아는 그것이 오독교주인 하철수의 목소리임을 금새 알고서 서로 두 손을 쥐었다. 잠시 후에 또 몇 사람이 들어와 하철수와 함께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원승지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석량파(石樑派)의 온씨 형제들이구나. 그러니까 초원아가 보았다는 네 명의 늙은이가 곧 그들이었구나. 선도파가 막아내지 못한 것도 당연하군. 그런데 저들이 와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의 인사 소개가 아직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조화순과 몇 명의 무림 고수들이 이미 방안으로 들어왔다. 조화순이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는 것만이 들렸을 뿐이다. 그런데 방암의 여칠(呂七)선생도 그 안에 있었다.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온방시(溫方施)는 청청의 어머니를 해쳤을 때 그의 혈도를 눌러 버렸었다. 그 혈도를 풀어 줄 사람이 없어 거의 폐인이 되어 버렸을테니 온씨의 오행진은 이미 쓸모가 없다. 그러나 오독교의 교주와 기타 사람들이 가세한다면 나 한사람으로는 절대로 대항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때 조화순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백삼영은 어디갔느냐?]
한 명의 환관이 대답했다.
[사어른 일행은 먼저 왔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조화순은 나가서 찾아보도록 하였다. 몇 명의 환관이 한참 찾더니 모두들 돌아와 세 사람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고 고(告)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수군수군했다. 지겹다는 표정들이었다.
조화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더 이상 기다리지 맙시다. 그들 자신이 공을 세울수 있는 좋은 기회를 버렸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겠지.] 많은 사람들이 의자를 이동시키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생각하기에 모두들 가까이 앉아 그의 말을 듣는 것 같았다.
[츰군의 동관을 점령했고 병부상서 손전정은 죽었소이다.] 모두들 <아아>하고 소리를 연발하였는데 매우 격동적이었다.
[우리들이 계책을 빨리 생각해 내지 않는다면 적의 군사가 곧 수도에 입성할 것이오. 만약에 황제께서 이번에도 군대를 투입해 적을 멸하지 않는다면 명나라 수백년의 대업이 모두 그들의 손에 의해서 망하게 될 것이오. 우리들은 국가를 중히 여겨야 하오.
다른 명군(名君)을 세워서라도 사직을 수호하여야 하오.] 하철수가 입을 열었다.
[그럼, 성왕어른을 세워야겠군요.]
조화순이 대답했다.
[그렇소. 오늘 여러분들의 힘을 빌리고자 함도 그것이오. 새로운 임금을 옹립키 위해 우리는 합심해야 하오. 모두 큰일은 여러분이 책임을 져야하고, 또 큰 공을 세우면 그건 우리 모두의 것이오.]
참석자들이 이의가 없는 것을 보고는 직급을 분배하였다.
[다시 1시진(時辰)이 지나거든 온씨 네 분의 노선생은 득력(得力)형제를 이끌고 황제의 침궁(寢宮)밖 사방에 매복하여 다른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시오. 하교주의 수하들은 서방(書房) 밖에 매복해 있다가 성왕(誠王) 어르신네로 하여금 안으로 들어가 간언하게끔 하시오.]
그때 여칠 선생이 나섰다.
[주대장군은 경영병마(京營兵馬)를 통솔하고 있는데, 그는 지금 황제에 충성하는 사람이지요? 그렇다면 그를 먼저 제거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화순이 웃으며 대답했다.
[주대장군과 박상서 그 두 놈은 일찍이 내가 제거해 버렸소.
하교주가 자세히 들려 주오.]
하철수가 웃으며 설명했다.
[조환관 나리께서 성왕을 황제의 자리에 오르도록 하려 하실 때 일찍이 주대장군과 박상서 두 놈이 큰 걱정거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저로 하여금 매일 사람을 파견하여 창고의 은을 훔치게 하였지요. 황제는 하나하나 따지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이러한 작은 일들이 들통나서 참지 못하시고 오늘 오후에 이미 두 놈을 파면과 동시에 문초를 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추어 한바탕 웃으며 모두 조화순의 신묘한 계책을 칭찬하였다.
이때서야 비로소 예전에 홍의동자들이 창고의 은을 훔친 것이 돈을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적과 내통하여 나라에 화를 입히는 대음모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황제는 스스로 총명하다고 여기면서도 함정에 빠져드는 것 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매우 한스러웠다.
조화순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이제 가서 좀 쉬시오. 조금 후에 다시 모시겠습니다.]
여칠 선생은 온씨 4형제와 함께 작별하고는 빠져 나갔다. 하철수는 끝까지 남아 있다가 문득 한마디했다.
[태백삼영은 왜 안 오시지? 가서 황제에게 밀고하는 것은 아니겠지?]
조화순이 눈을 크게 떴다.
[하교주의 생각은 정말 깊군. 이 일은 오히려 그들을 속인 것이다. 그런데 큰 공을 세웠다더군. 만약 구왕을 배반한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결코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철수가 의아해 했다.
[무슨 큰 공을 세웠습니까?]
[그들은 선도파의 민이라는 사람의 비수를 훔쳐서 금룡방의 초공례 방주를 살해하였다. 이렇게 되니 무림 인물들은 서로 죽이는 형세에 처하게 되었지만 우리들은 장차 금릉(金陵)으로 피해간다면 모든 것이 수월해 질 것으로 믿는다.]
초원아는 일찍이 태백삼영이 아버지를 죽였으리라고 추측했었지만 이젠 더욱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원승지는 초원아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게 된다면 하철수의 민감한 감각에 걸려들 것을 염려하여 급히 손을 뻗어 가볍게 그녀의 입을 막았다.
하철수가 여전히 웃었다.
[나리께서 궁전 안에만 계시면서도 세상일에 대해서 이렇게 밝으시니 정말로 훌륭하십니다.]
조화순은 두어 번 헛웃음을 쳤다.
[조정 안의 일들은 내가 매우 많이 보아왔다. 어떤 놈도 모두 공명과 부귀를 탐하지 않는 자가 없으며, 인의나 도덕을 얘기할 놈도 없다. 그래도 강호의 여러분들은 믿을만하지. 여러분들이 이번에 대사를 모의하면서 조정의 대신들과 감히 상의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다. 오히려 여러분들을 모셔 칼을 뽑아 서로 조력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치.......]
두 사람은 이제 두런거리면서 서방을 걸어 나갔다.
원승지는 일이 매우 긴박하게 되어가는 것을 알았으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미 묘안을 생각해 내지 못하였다. 일시에 국가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 집안들끼리 서로 복수심에 불타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게 될 것 같아 온갖 상념들이 난잡하게 교차되었다.
초원아가 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이 세 명의 간적(奸賊)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당장에 죽여 버리고 싶은데요.]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러나 피를 흘리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만 돼.]
그리고는 사병관의 머리 양쪽의 태양혈(太陽穴)을 가리키며 물었다.
[종고제명(鐘鼓薺鳴)의 초식을 할 줄 알겠지?]
초원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원승지가 설명했다.
[엄지손가락의 마디를 바깥으로 향하고 이렇게 주먹을 쥐어봐.
옳지! 초식을 펼쳐!]
초원아가 그 소리에 맞춰 주먹을 뻗으니 푹 소리가 나며 두 주먹은 동시에 사병광의 태양혈을 때렸다. 그는 아무소리도 없이 그대로 숨이 끊어져 버렸다.
그녀는 마치 법을 행하는 것과 같이 또한 사병문과 여강 두 사람을 내리쳤다.
이렇게 원수를 갚고보니 부친이 생각나 원승지의 어깨에 엎드려 소리를 머금었다.
원승지는 낮은 소리로 재촉했다.
[자, 빨라 나가서 하철수가 어디로 가는지 살펴보자.] 초원아는 곧 눈물을 거두고 원승지를 따라서 서재를 걸어나왔다.
조화순과 하철수는 앞의 갈림길에서 이미 길을 달리하였고, 두명의 환관이 손에 등을 들고 하철수의 일행을 인도하며 서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원승지와 초원아는 환관의 옷을 입어서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별 탈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멀리 떨어져서 하철수를 따라 정원을 몇 번 지나 그녀가 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두 사람도 살며시 뒤따라 문으로 들어서자 동쪽 방에서 어떤 여인의 음성이 크게 들려왔다.
[하철수, 이놈아! 아직도 나를 풀어주지 않느냐?]
목소리는 맑고 깨끗했는데, 그는 분명 청청이었다.
원승지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놀라움과 기쁨이 엇갈려 다른 것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곧바로 그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청청이 침대 위에 누워 있고 두 명의 환관이 옆에서 약을 다리며 향을 넣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원승지는 급히 손을 뻗어 두 환관의 혈도를 찔렀다. 청청도 비로소 알아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반가이 불렀다.
[승지 오빠!]
원승지는 침대 옆에서 걸어갔다.
[청청, 상처는 어떻하지?]
[그런대로 괜찮아요.]
청청은 초원아가 원승지 뒤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너도 왔구나.]
초원아는 싱긋 웃었다.
[음, 하아가씨가 이곳에 있다니 정말 잘되었소. 원상공이 그렇게 몸달아 했었는데.......]
청청은 <흥!> 하더니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하철수가 곧 올거에요. 혼 좀 내 주세요.]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달리 엄청난 계책이 있는데, 나는 역시 본색을 나타내지 않는게 좋겠지.)
[청청이, 눈 앞의 상황이 급해서 지금은 그녀와 대결할 수가 없어. 청청이 그녀를 좀 유도해. 그녀가 청청을 궁안으로 데리고 와서 무엇을 하려는지 확실하게 좀 물어봐.]
[어떤 궁을 말하는 거에요?]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너는 아직까지 이곳이 황궁인지를 모르는군.)
그때 방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져서 자세한 말을 할 겨를도 없이 두 명의 환관을 들어 궤짝에 집어 넣었다. 숨을 만한 곳도 없는데, 문 밖의 사람들이 또 들어오려고 하니 우선 초원아를 잡아 당겨 침대 밑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청청이 어리둥절할 때 하철수가 하홍약과 더불어 방안으로 들어왔다.
하철수가 웃으며 물었다.
[하공자, 좀 좋아졌느냐? 그런데 너를 시중들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이 녀석들이 게으름 필 줄도 아네.]
청청이 툭 쏘면서 말했다.
[내가 나가 버리라고 했다. 시중 따위를 내가 원하기나 한담?] 하철수는 혀를 찼다.
[정말 애들 성질 같구나!]
그는 약탕관 있는 대로 가까이 걸어갔다.
[약이 다 끓었구나.]
그러면서 한 움큼 견사를 들어 은으로 된 그릇을 덮은 후에 약을 그릇에 쏟았다. 그리고 약찌꺼기를 모두 견사를 걸러냈다.
[이 약은 상처를 치료하는데 가장 효험이 있다. 염려 말거라.
만약 약 속에 독이 있으면 은그릇은 검게 변할 것이다.] 청청은 처음 원승지를 보았을 때는 마음 가득히 기쁨이 넘쳤다가 초원아를 보자 매우 불쾌했었다. 그런데 이제 두 사람이 손을 잡아 끌고 침대 밑으로 숨어 들어가자 그들의 태도를 보아 매우 친밀한 것 같아서 일시에 화가 잔뜩 났다.
[너희들이 은밀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하철수가 웃으며 돌아 보았다.
[무엇이 은밀해?]
청청이 다시 소리쳤다.
[너희들이 나를 속여? 나 같이 부모님이 없는 고통스런 사람을 속이려 해! 이 양심도 없는 놈들아!]
원승지는 따로 생각했다.
(그녀가 지금 누구를 욕하는거지?)
초원아는 여자라 마음이 세심하여 이미 벌써 청청이 자기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기미를 알아채고 일부러 들으라고 빗대어 하는 말임을 알고는 자신도 모르게 매우 화가 나서 몸이 떨리는 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원승지는 곧바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서 해명을 할 수 없음이 괴로왔다. 다만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위안을 표시할 수 밖에 없었다.
하철수가 어찌 청청의 곡절을 알겠는가?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성질 부리지 말아라. 잠시만 기다려. 내가 곧 너를 집에 돌아가도록 해주겠다.]
청청은 여전히 화를 내었다.
[누가 당신이 전송해 주길 원하나? 설마 내가 길을 모른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
하철수는 단지 요념하게 웃기만 하였다.
이때 늙은 거지 노파인 하홍약이 갑자기 청청을 향해 음산하게 한마디했다.
[이놈아, 네가 이미 우리 손아귀에 들어왔는데 어찌 다시 편히 돌아가도록 할 수 있겠느냐? 너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느냐? 너를 낳은 그 천안 어미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청청은 원래 크게 화가 나 있는데다가 노파가 자기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말을 듣고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손을 뻗어 작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약그릇을 집어 들어 그녀의 얼굴 정면에 던졌다. 하홍약이 몸을 기울여 피하자 딱 소리와 함께 약그릇은 벽에 부딪쳤다. 얼굴에는 또한 뜨거운 약즙이 튀어 흠뻑 젖었다.
그녀 역시 화가 났다.
[이 멍청한 놈! 너는 이제 죽었다.]
원승지는 침대 밑에서 정신을 집중하여 자세히 보니 하홍약의 앞다리가 올라갔다. 그 모습이 뛰어 올라 청청을 덮치려하는 것임을 알고 침대 밑에서 자세를 모으고 싸움이 전개되기를 기다렸다. 그는 하홍약이 가까이 뛰어 올라 독수 펼치기를 기다렸다가 즉시 그녀의 하반신을 공격하려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하얀 그림자가 번쩍이며 하철수의 두 다리가 이미 하홍약과 침대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고모님, 내가 그 성이 원(袁)가인 사람이게 이미 이 녀석을 돌려 보내겠다고 응답을 했습니다. 그에게 신임을 잃어서는 아니됩니다.]
하철수의 급한 소리였다. 하홍약이 냉소하며 되물었다.
[왜?]
하철수가 대답했다.
[많은 우리 교인들이 혈도를 짚혔는데 그 원가가 구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좋다! 저 녀석을 죽지 않게만 하면 되겠군. 그러나 먼저 약간의 고통을 맛보도록 하자꾸나. 야! 하가 녀석아, 네가 보기에 내가 예쁘냐 예쁘지 않냐?]
청청은 갑자기 <아!> 하는 소리를 내질렀는데, 그 목소리 속에는 놀라움과 공포가 가득차 있었다. 하홍약의 추악한 얼굴 위에 무서운 표정이 겹쳐져 곧바로 그녀의 면전까지 뻗쳐 오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철수가 말렸다.
[고모님, 왜 또 그를 놀라게 하십니까?]
말소리 속에는 불쾌하다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하홍약과 흥 하고 소리쳤다.
[그렇구나! 이 녀석이 이처럼 잘 생겼으니 너는 이 녀석이나 잘 보살펴라.]
하철수가 화를 내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젊은 처녀의 마음을 내가 모르겠느냐? 나 자신도 젊었던 시절이 있었다. 자 보아라. 이것이 이전의 나야.]
한차례 가느다란 소리만이 소리만이 들렸는데, 마치 주머니로부터 어떤 물건을 꺼내는 것 같았다. 하철수와 청청은 모두 가볍게 놀라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홍약은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너희들이 생각하기에 매우 이상하지, 그렇지? 하하하. 이전엔 나도 아주 예뻤었단다.]
힘을 주어 던지니 하나의 물건이 땅에 떨어졌다. 그것은 한폭의 거친 생시비단 위에 그린 초상(肖像)이었다.
원승지가 침대 밑에서 보니, 그 초상은 20세 남짓한 소녀의 것이었다. 두 뺨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빨갰고 달자의 꽃무늬가 가득한 녹색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는 흰 천으로 동여맸는데 그 모습은 아주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것이 곧 하홍약, 저 못생긴 그 노파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믿기 어려웠다. 하홍약이 중얼거렸다.
[내가 왜 이렇게 추하고 못생겼겠느냐? 왜? 왜? 모든 것이 그 양심을 잃어버린 너의 아버지 때문이다.]
청청이 물었다.
[내 아버지가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어요? 그 분은 좋은 사람이라 결코 다른 사람에게 해 끼치는 일을 한 적이 없는데.] 하홍약이 이 말에 크게 노하였다.
[너는 그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찌 알 수 있겠느냐? 만약에 그가 양심이 있었다면, 또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내가 왜 이 모습을 하고 있겠느냐? 어떻게 네가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겠느냐?]
청청이 외쳤다.
[갈수록 당신은 정말 이상한 말만 하시는군요. 당신들 오독교는 운남에 있었고, 우리 부모는 절강에서 결혼을 했어요. 거리가 서로 십만 팔 천리나 차이가 나는데, 당신과 어떻게 관계가 있을 수 있었겠어요?]
그 말에 하홍약은 매우 분노하여 손바닥을 휘둘러 그녀의 뺨을 때렸다. 하철수가 말렸다.
[고모님, 화내지 마십시오. 할 말이 있으면 천천히 하세요.] 하홍약이 그를 꾸짖었다.
[너의 아버님은 바로 저 금사랑군 때문에 홧병을 얻어 돌아가셨는데, 지금은 네가 오히려 이 녀석을 보호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하철수가 여전히 짜증을 냈다.
[누가 저 녀석을 보호한다는 겁니까? 고모님이 만약에 저 녀석을 해치면 곧 우리 교안의 사십여명의 목숨을 해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고모님이 웃어른이시기에 세 번씩이나 양보해 드렸잖아요. 그러나 만약 고모님께서 교의 교칙을 범하신다면 저는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하홍약은 그녀가 교주의 신분을 들춰내는 것을 보고는 화가 불 같이 치솟았으나 참고 넘어가듯 의자에 앉았다. 두 손으로 머리를 받쳐 들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낮은 소리로 청청에게 물었다.
[너의 어머니는, 너의 어머니는 틀림없이 아주 요염한 미인이고 교활한 여자겠지? 그래서 너의 아버지가 빠지게 되었지. 그렇지 않았느냐?]
그녀는 스스로 탄식을 했다.
[나는 많은 꿈을 꾸었다. 특히 너의 어머니를 꿈꾸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항상 흐릿흐릿해서 자세히 볼 수가 없었어.
진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구나.......]
청청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우리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소.]
하홍약은 깜짝 놀랐다.
[죽었다고?]
청청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돌아가셨소. 어떻소? 당신들 모두 기쁘지요. 그렇지요? 하홍약의 목소리도 매우 싸늘하였다.
[내가 그를 채근하여 네 어머니가 어느 곳에 살고 있는지를 물어 보았지. 어떻게 되든지간에 그는 결국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죽었었구나. 하나님도 무심하시구나. 나는 그럼 이제 원수를 갚을 길이 없게 되어 버렸다. 이번엔 너를 돌아가도록 놓아 주지만 너 이 녀석, 언젠가 다시 내 손아귀에 떨어질걸....... 아무튼 네 어머니는 너와 매우 닮았겠구나. 그렇지?]
청청은 그녀가 말을 무례하게 하는 것이 화가 나서 몸을 돌려 얼굴을 침대 안쪽으로 향하고는 다시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홍약이 말하였다.
[교주, 그 원가로 하여금 우리들의 교도를 먼저 치료하게 한 뒤 저 녀석을 놓아 주자.]
하철수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건 말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홍약은 갑자기 몸을 굽혔다. 원승지와 초원아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녀는 침대 밑을 향해 살펴본게 아니고 손가락을 뻗어서 침대 앞의 땅바닥 위에 몇 글자를 쓰기 위해서였다. 원승지가 슬쩍 보니 <하일년독주고(下一年毒酒苦>라는 여섯글자가 보였다. 하철수는 곧바로 다리를 뻗어 땅바닥 먼지 속의 글자 흔적을 지워 없앴다.

## 독주고에 '고' 는 일반적으로 쓰는 고로 썼습니다.
## 책에는 한자 표기가 안되어서

[좋아, 그렇게 합시다.]
원승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저것은 무슨 뜻인가......? 음, 그래 맞아. 그들은 청청을 풀어 주기 전에 먼저 그녀에게 독주고를 먹이려고 하는구나. 그 독성은 일년 후에야 비로소 발작을 일으키는데, 그때에는 해독할 만한 약이 없으니 그들은 복수를 한 거라 여기겠지. 흥, 잔인무도한 것들! 하늘이 나로 하여금 암암리에 살펴보게 하였으니 정말 다행이구나. 만약에 내가 침대 밑에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생각하게 되니 식은 땀이 계속 흘러 내리는 것을 금치 못하였다.
하홍약은 몸을 일으켜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원승지는 그녀가 막 문턱을 넘어가려는 것을 보았는데, 갑자기 의심이 났는지 몸을 돌려 다짐했다.
[너 정말로 내 말 따르겠지?]
하철수가 대답했다.
[당연하죠. 그런데......, 그런데 우리들은 그 사람에게 신임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하홍약이 분노하여 외쳤다.
[나는 일찍이 네가 그에게 반한 것과 처음부터 네 아버지의 복수를 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화가 잔뜩 나 돌아서서 의자에 앉았는데, 방안은 그때 소리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해서 원승지와 초원아는 감히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였다.
청청은 갑자기 침대 위를 맹렬히 두들기며 소리쳤다.
[당신들, 아직도 안 나오고 뭣하고 있는 거야?]
초원아는 크게 놀라서 곧 나가려고 하였는데 원승지가 급히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겼다.
하철수가 부드러운 어조로 위안하듯 말하였다.
[너는 안심하고 잠이나 푹 자거라. 날이 밝으면 곧바로 너를 돌아가도록 해주겠다.]
청청은 흥 하고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쥐어 침대 판자 위를 펑펑 어지러이 두드려 댔다. 먼지가 어지러이 떨어졌다. 원승지는 하마트면 재채기를 할 뻔했으나 호흡을 알맞게 조절하여 비로소 참을 수가 있었다.
청청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 하철수와 늙은 노파는 또한 너를 쓰러뜨릴 만한 실력이 없는데 왜 숨어 있지? 너희 두 사람은 침대 밑에서 도대체 뭘하고 있는 거지?]
원승지는 황제를 죽이고 다른 사람을 세우려는 간사한 계략을 알아야만 하고, 이 일이 국가의 존망과 관계가 있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어서 굳게 참으며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가 어찌 알겠는가?
하홍약이 하철수에게 말했다.
[너는 교주이고 교 안의 대사는 모두 너로부터 집행된다. 교조(敎祖)의 금구(金鉤)를 너에게 전해 준 바에는 너는 곧 죽이고 살리는 대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겪었던 비참한 일들에 대해 너는 놀라지도 않는다는 것이냐?]
하철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고모님이 우연히도 양심을 버리고 은정(恩情)을 끊어버린 사나이를 만났기 때문에 곧 천하의 남자들이 모두 하나같이 그런 사람들로만 여겨지는 것이지요.]
하홍약이 외쳤다.
[흥, 남자들 중에 무슨 좋은 사람이 있어? 하물며 이 자는 금사랑군의 자식이야! 너, 저 놈의 생긴 모양을 보아라. 그놈과 정말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데, 누가 또 그이와 다를 수 있다고 하겠느냐?]
하철수가 대답했다.
[그의 아버지도 그와 같이 잘 생겼습니까? 고모님께서 이렇게 반한 것도 정말 무리가 아니겠군요.]
원승지가 하철수의 말투를 들으니 청청에 대해 자뭇 반한 것이 틀림없다.
그녀는 무공이 아주 고수인데다 또 한 교의 교주인데, 도대체 남녀를 구분하지 못하니 정말 우스웠다.
하홍약이 길게 탄식을 하였다.
[너는 미혹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구나. 내가 나의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하여 너에게 들려줄 테니 도움이 될지 화가 될지는 너 스스로 판단하거라.]
하철수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나는 고모님이 얘기해 주시는 것 듣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사람이 들어도 무방합니까?]
하홍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자기 아버지의 나쁜 짓을 알게 한다면 죽어도 역시 눈을 편히 감겠구나.]
청청이 소리치며 손을 저었다.
[당신 마음대로 유언비어를 만들어 내지 마라! 나의 아버지는 큰 영웅이신데 어떻게 나쁜 짓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듣지 않겠소. 듣지 않겠어!]
하철수가 웃으며 늙은이를 바라보았다.
[고모님, 그는 듣기 싫은가 본데 어떡하시렵니까?]
하홍약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나는 너에게 들려주려 할 뿐이다. 그가 듣든 듣고 싶지 않든 그건 알아서 처리하게 내버려 둬라!]
청청은 이불로 머리를 뒤집어 썼으나 결국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불의 한 모서리를 잡아 열었다. 그리고 하홍약이 하는 금사랑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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