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4-3

3학년2반 | 2022.01.17 07:17:46 댓글: 0 조회: 521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824

* 제 4 권 *

- 3 - 한밤의 자객

원승지는 다만 가벼운 바람소리만을 들었는데, 그 옥비녀가 어느새 자기 얼굴에 이르렀다. 그는 곧 손을 뻗어 옥비녀를 잡아 쥐었다. 그때 문득 공주가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향하고서는 너무나 놀라 어리둥절하였다.
공주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뜻밖에도 정청죽의 어린 사제인 아구(阿九)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원승지는 황궁의 시위들이 따라다니며 그를 보호해 주어 특별한 인물이라고만 여겼었지 공주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아구는 잠시 원승지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얼굴이 붉어졌다.
[원상공, 당신... 당신...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원승지는 그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공주님의 침궁에 침입하였으니 소인의 죄는 만번 죽어 마땅하오.[
아구는 또 한 번 얼굴이 붉어졌다.
[앉으세요. 앉아서 얘기해요.]
그러다가 갑자기 긴 옷이 이미 벗겨진 것을 보고는 놀라 급히 고쳐 입었다.
문 밖의 하녀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전하, 부르셨습니까?]
아구는 급히 외쳤다.
[아니다. 나는 책을 보고 있는 중이다. 너희들은 모두 가서 자거라. 여기에서 시중들 필요가 없다.]
[알겠습니다. 공주님, 편히 쉬십시오.]
아구는 원승지를 향해 손짓을 하고는 묘연히 웃었다. 그가 눈을 돌리지 않고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수줍어했다. 잠시동안 두 사람은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고 있었는데, 눈이 서로 마주치자 아구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잠시 후에 원승지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오독교의 교도를 알 수 있습니까?]
아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나리께서 말하기를, 이츰은 많은 자객을 파견하여 경사를 혼란하게 한다 합니다. 그는 무림 고수들을 청하여 황제를 보호하려 하는데 오독교 역시 그 안에 들어있답니다. 듣기에 그들의 교주인 하철수는 무공이 매우 뛰어나다 하더군요.]
원승지는 말을 이었다.
[공주님의 사부인 정청죽 방주가 그들에 의하여 상처를 입었다는데 알고 계십니까?]
아구의 얼굴색이 갑자기 변하였다.
[무엇이라고요? 그들이 왜 우리 사부님을 해쳤죠? 사부님이 받은 상처는 매우 심합니까?]
원승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 위험한 편은 아닙니다. 아, 지금은 밤이 깊어 여러 말을 할 수 없군요. 우리들은 정조자(正條子)의 골목에 살고 있습니다. 내일 공주께서 왕림하셔서 사부님을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아구는 얼른 대답했다.
[좋아요!]
그녀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얼굴을 또 붉혔다.
[상공이 위험을 무릅쓰고 궁에 들어와 이렇게 만나게 되니 나는 매우 감격.......]
수줍어하며 하는 소리는 말할수록 더욱 낮아졌다.
[당신은 이미 내가 당신의 초상화를 그린 것을 보았는데, 나의 심사는....... 당신이 자연히... 분명히 아시게지만.......] 마지막 말을 할 때는 모기소리 같아서 더 이상 들리지도 않았다.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뿔사! 그녀가 내 초상을 그린 것을 보아하니 나에 대한 연모의 정이 있어서인가 보다. 그리고 내가 궁에 들어온 것을 그녀는 자기를 엿보기 위한 것이라 오해를 하는구나. 이것은 분명히 말을 해야 하는데.......)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날 산동(山東)에서 만났을 때 당신이 저홍유(楮紅柳)를 저지하여 나를 도와준 그날부터 나는 항상 당신의 은덕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보기에 이 초상은 당신을 닮게 그렸다고 보세요?]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주님, 내가 궁에 들어온 것은.......]
아구는 그의 말을 가로막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상공은 나에게 공주라고 부르지 마세요. 나 역시 그대를 원상공이라 부르지 않겠어요. 당신이 처음 나를 알았을 때, 나는 아구였듯이 나는 영원히 아구입니다. 나는 청청언니가 당신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항상 어느날 나 역시 당신을 오빠라고 부르고 싶었어요. 내가 태어나면서 흠천감(欽天監)이 나의 운명을 점쳐 주었는데, 내가 만약 황궁에서 자라게 되면 반드시 요절한다고 하여 황제께서 내가 바깥에 나가는 것을 허락한 것이지요.]
원승지가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정방주를 따라 무공을 배우고 또 그를 따라 강호에 다닌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군요.]
아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바깥에 다니면서 견식이 넓어졌어요. 백성들이 실제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도 알았지요. 내가 비록 궁안의 금은을 꺼내서 나누어 주고 싶어도 어떻게 그 많은 백성들을 구할 수가 있겠어요?]
원승지는 그녀가 백성의 배고픔과 병에 걸려 고통받는 것을 체험했다는 것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당신은 황제께 백성들에게 인정을 많이 베풀도록 권하십시오. 백성들의 몸이 따뜻하고 음식이 풍족하면 천하 역시 자연히 태평해질 것입니다.]
아구는 문득 탄식의 소리를 내었다.
[부왕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서 좋았지요. 그러나 그는 곧 간신들에 의하여 둘러싸이고 모든 것을 스스로만 옳다고 여깁니다. 그는 언제나 문무백관이 힘을 쓰지 않아 적들을 너무 적게 죽였다고 말하지요. 부왕은 그에게 지금의 도적은 바로 백성으로 단지 먹을 것만 갖게 되고 세월이 흐르면 그들은 곧 선량한 백성으로 변하게 된다고 말했지요. 그렇지 않으면 선량한 백성도 도적으로 변하고 말 것이라고요. 제가 <아버님! 아버님께서 천하의 백성을 다 죽일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씀드리자 즉시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나를 반대하는데 내가 친히 낳은 딸까지도 나를 반대하는구나.> 하셨지요. 그래서 나는 다시는 감히 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아.......] 원승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공주님의 견식이 오히려 황제에 비해서.......]
그러다가 깊이 생각하였다.
(조화순의 엄청난 계략을 그녀에게 말해 버릴까?)
아구가 갑자기 물었다.
[사부께서 나에 대해 물은 적이 없어요?]
원승지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그는 <일찍이 깊이 맹세한 적이 없어서 당신의 신상에 대해서 비밀이 새어 나가게 할 수가 없다> 고 말했지요. 나는 그때에 강호에서의 은혜와 원한, 비밀같은 것만을 생각했었어요.
설마 당신이 공주라고는.......]
아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뒤를 이었다.
[사부님은 본래 부왕의 시위였지요. 난 어릴때부터 그를 따라 무공을 배웠어요. 그가 어떤 죄를 범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부왕은 그를 죽이려고 포박하였습니다. 나는 한밤중에 살짝 그를 풀어 주었지요. 후에 내가 궁을 나가 사냥을 하는데 다시 그와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 그는 이미 청죽방의 방주가 되어 있더군요.]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날 정방주가 예전에 그가 황제를 암살하려다가 잡혔는데 다른 사람이 구해주었다고 하더니 그녀가 구해준 것이로구나!) 아구가 다시 물었다.
[그가 어떻게 오독교의 교도들과 원한을 맺었는지 모르시는가요?]
원승지가 대답했다.
[오독교인들은 황제를 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분명 정방주와 당신의 관계를 탐지하고 대사를 그르칠까 두려워 그를 제거하려 한 것입니다.]
그때 머리를 들어보니 붉은 초는 이미 많이 짧아져 있었다. 그는 매우 긴급한 이 시기에 그녀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고 생각하고는 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다른 이야기는 내일 합시다.]
아구는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수그려 천천히 끄덕였다.
바로 이때 갑자기 사람들이 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전하! 어서 문을 좀 여십시오.]
아구는 놀라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공주님, 아무 일도 없으십니까?]
[이 한밤중에 무슨 일이 있겠느냐?]
그녀가 이렇게 재차 대답하자, 그 궁녀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웬 자객이 전하의 침궁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는 자가 있습니다.]
아구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냐? 자객이라니?]
다른 궁녀 한 명이 아구의 노한 음성을 듣고 조아렸다.
[공주님, 저희들로 하여금 들어가서 살펴보도록 해 주시옵소서.]
원승지가 아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철수입니다.]
아구는 소리를 높여서 호령하였다.
[만약에 자객이 들었다면 내가 이토록 무사할 수 있겠느냐? 더 이상 소란피우지 말고 썩 물러가거라!]
문 밖의 궁녀들은 공주의 성난 목소리가 울려나오자 그 누구도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원승지는 조심스럽게 창가로 걸어가더니 커튼의 한 끝을 젖혔다. 손의 움직임과 함께 한 줄기의 빛이 눈부시게 스며들었다.
창밖에는 손에 횃불을 든 십여 명의 태감들과 시녀들이 공주방을 살피고 있었다.
원승지는 속으로 공주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뛰쳐 나간들 누가 감히 나를 막으리오만.... 그렇게 되면 이번 일로 하여금 공주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니 절대로 그렇게는 못하겠소.)
그리고는 제자리로 돌아와 공주를 바라보았다.
아구는 미간을 한 번 찌푸리더니 목소리를 낮춰가며 얘기했다..
[저는 두렵지 않아요. 당신은 이곳에 잠시 더 머무시는 게 좋겠어요.]
원승지가 하는 수 없이 다시 눌러 앉았다. 잠시 후, 누군가가 다시 문을 두드려왔다.
아구는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이번에는 조화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상께서는 자객이 진궁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몹시 걱정하고 계십니다. 황상의 명령을 받들어 소인 공주님께 문안 여쭙니다.]
[내 어찌 감히 조공공을 번거롭게 하겠소? 이곳은 아무 일도 없으니 돌아가시지요.]
조화순은 대답했다.
[전하는 만금보다도 더 귀하신 몸이니 소인으로 하여금 들어가 살피도록 허락하심이 마땅한 줄 아뢰오.]
궁궐나인들이 걱정으로 보아 원승지가 들어올 때 누군가가 엿보았음이 확실하고 그 연고로 그들이 이토록 강경히 방안을 조사하려 함을 직감했다. 더구나 사사건건 간섭하는 조화순이 몹시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공주는 오늘밤 거사를 일으켜 황제를 살해하려는 조화순의 음모를 알 리가 없었다.
조화순은 공주가 무공이 있다는 것과 또한 강호인물과 교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공주의 침궁으로 잠입했다는 보고를 듣고는 혹시 공주가 불러들인 협조자이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때문에 진상을 명백히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조화순은 궁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 공주로서도 그를 대항할 힘이 없었다. 공주는 곧 원승지에게 손짓하여 침대 속에 숨을 것을 제의했다.
원승지는 하는 수 없이 신발을 벗어 가슴에 찔러넣고는 침대에 누워 이불로 그의 전신을 덮어버렸다.
여인의 달콤한 체취가 그의 코끝에서 맴돌았다.
문 밖의 조화순은 여전히 공주를 재촉하고 있었다.
[정 그렇다면 좋소. 들어와 조사해 보시도록 하오.]
아구는 외투를 벗고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벗긴 다음 곧 침대로 돌아와 이불을 끌어 덮었다.
원승지는 아구가 그의 곁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느꼈다. 옷깃과 옷깃의 스침, 발끝으로부터 전해지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닿을 때마다 가슴이 뛰어옴을 느꼈다.
그러나 조화순과 하철수 등이 이미 방안으로 들어선 것을 알고는 숨소리 한점 낼 수가 없었다. 다만 가늘게 떨고 있는 아구의 체온을 느낄 뿐이었다. 아구는 잠이 덜 깬 듯 눈을 반쯤 뜨고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조공공, 신경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화순은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자객의 그림자는 발견할 수 없었다.
하철수는 실수를 가장하여 손수건을 바닥에 떨어뜨려 보았다.
허리를 굽혀 그것을 줍는 척하면서 동시에 침대 밑을 살펴보았다.
아구는 살짝 웃었다.
[침대 밑도 조사하셨으니, 내가 자객을 숨긴 것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지요?]
하철수도 웃으며 대답했다.
[공주님은 총명하시군요. 조공공은 단지 공주님께서 놀라시지나 않았나 염려하는 뜻으로.......]
공주의 눈길이 원승지의 초상화에 머물자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 짐짓 태연한 척했으나 갑자기 가슴이 꽉 막혀왔다.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조소의 빛이 어린 눈길로 하철수가 아구의 아름다운 얼굴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x x x x

아구는 곧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공주님, 이곳은 별일 없는 것 같사오니 황상께서는 안심하실 것이옵니다. 그러면 저희는 물러 가 다른 곳을 조사토록 하겠습니다.]
조화순이 말하곤 방을 나서며 네 명의 궁녀에게 일렀다.
[너희는 잠시도 이곳을 떠나지 말고 공주님을 보살피도록 하여라. 전하의 명이 있을지라도 이 자리를 떠나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네 명의 궁녀가 허리를 굽혀 조아렸다.
[분부대로 따르겠나이다.]
조화순과 하철수 그리고 나머지 궁녀들이 예를 행하고 침궁을 물러갔다.
아구는 궁녀들에게 분부했다.
[휘장을 내리어라. 잠을 좀 자야겠다.]
두 명의 궁녀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휘장을 내리고 화로 가운데 단향을 더한 뒤, 촛불을 밝히고나서 방 한 구석에 모여 앉았다.
아구는 한편 기쁘기도 하였고 또 한편 수줍기도 했다.
(이렇게 그리워하던 사람과 한 이부자리를 하고 있다니!) 그녀는 설레이는 마음을 가다듬느라 방안을 둘러보았다. 몇줄기 단향의 푸른 연기가 휘장 밖에서 유유히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매혹적이었다.
그녀의 마음 역시 향의 연기처럼 공중으로 피어오를 뿐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꾸 맘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이, 이것이 사실일까? 아니면 내가 또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한참 후에야 원승지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찌하오? 난 반드시 탈출할 방도를 생각해 내야 하오.] [예.]
아구는 무의식중에 짧게 대답했다.
순간 그녀는 원승지에게서 풍기는 체취에 젖어 급박한 상황을 잊고 있었다. 그와 한 자리에 누워있다는 사실이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는 감미로움이 스며들자 가볍게 피어오르는 연정을 억제하면서 조심스럽게 그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그때 돌연히 차가운 물건이 왼팔과 왼다리에서 느껴졌다. 깜짝 놀라 손을 뻗어 더듬어 보니 한 자루의 보검이 칼집이 벗겨진 채로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었다.
[이것이 뭐죠?]
원승지가 대답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탓하지 마시오.]
[내가 왜 당신을 탓하겠어요?]
원승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무의식중에 당신의 침궁에 뛰어들게 되고 또 이렇게 자리를 같이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소. 나는 그렇게 경박하고 무례한 자는 아닙니다.]
아구가 나지막히 말했다.
[누가 당신을 나무란답니까? 칼이나 치우셔요.]
원승지가 다시 말했다.
[내가 비로 예로서 자신을 지키는 자이긴 하지만 당신 같은 미인과 함께 누워 있자니 혹시라도 자신을 억제치 못할 것만 같아서.......]
아구는 작은 소리로 웃었다.
[그래서 당신은 우리 사이에 칼을....... 당신은 바보로군요.] 두 사람은 휘장 밖의 궁녀에게 소리가 새어 나가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머리를 모두 이불 속에 파묻은 채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승지는 아구의 숨결이 마치 난(蘭)과 같다고 느꼈다.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그의 얼굴을 덮어오자 그의 가슴은 다시 술렁거렸다. 그럴수록 원승지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그녀가 내게 이토록 진실한데 어찌 다른 사념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빨리 정당한 대화를 찾아야만 한다.)
그는 급히 물었다.
[성왕은 어떤 사람이오?]
아구가 대답했다.
[나의 숙부입니다.]
원승지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오. 그들은 성왕을 왕위에 앉히려 하오. 알고있소, 이런 사실들을?]
아구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가늘게 뜨고 있는 눈을 말똥이며 물었다.
[뭐요? 누구라고요?]
원승지는 좀더 자세하게 일러 주었다.
[조화순과 만주의 예친왕이 서로 내통하고 있소. 그들은 청병을 이용하여 츰군을 멸하려 하오.]
아구가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런 일도 있나요? 만청인이 무엇이 좋다고? 그들은 우리 대명강산을 원하는게 아니던가요?]
원승지가 말했다.
[그렇소. 황상께서 허락치 않으시자 조화순과 그 일당들은 성왕의 등극(登極)을 꾀하고 있소.]
아구가 사건의 전말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요. 어리석은 성왕은 반드시 군병을 빌려주어 도적들을 멸하도록 허락하실 거에요.]
원승지가 다시 말했다.
[그들이 오늘 밤에 일을 거행할까봐 두려울 뿐이오.] 아구는 놀라움에 떨며 말했다.
[오늘밤에요? 그렇다면 매우 위급한 일이군요. 빨리 부왕께 아뢰도록 합시다.]
말없이 눈을 감고 있는 원승지의 깊은 곳에 만족감이 밀려왔다. 숭정은 바로 그의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다. 10여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하루도 원수를 자기 손으로 갚겠다는 생각을 떨쳐 본 적이 없는 그였다.
이럴 때 황궁에 갑자기 내변이 일어나면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는 목전에서 원수가 제거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야말로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원한을 갚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일 조화순 등의 모략이 성공하여 청병을 빌어 입관하게 된다면 츰왕의 계획은 반드시 좌절되고 말 것이다.
만일 청병이 당당이 밀려들면 츰왕은 대항해 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경사가 함락되지 않을 수 있으며 황제일가 모두는 달자들의 손아귀에 장악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구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밀며 말했다.
[무엇을 생각하세요? 우리는 앞을 다투어 간신배들의 역모를 막아야만 해요.]
그러나 원승지는 여전히 망설이는 태도였다. 그러자 아구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께서 나를 잊지만 않으신다면 저는......, 저는 오로지...... 당신의 사람이에요. 우린 앞으로도...... 이런 날이 올 거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그녀의 왼뺨을 원승지의 오른뺨에 살며시 갖다 대었다.
원승지는 몸을 움찔하며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이성의 연정에 못이겨 머뭇거리는 줄로 착각하고 있구나. 좋다, 먼저 정세를 살핀 후에.......)
원승지가 작은 목소리를 말했다.
[당신은 궁녀들의 용도를 내리쳐서 그녀들이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하시오.]
아구가 물었다.
[어디를 치라는 거에요?]
원승지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오른손을 끌어다 자기 가슴의 열한번째 늑골 끝으로 가져갔다.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땐 부드럽고 매끄러운 감촉 때문에 전혀 뼈마디를 느낄 수 없었다.
원승지가 손가락을 짚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장문용, 손가락으로 이곳을 누르면 그들은 움직일 수 없게 되오. 이때 주의할 것은 생명의 손상이 없도록 너무 큰 힘을 가하지 않도록 해야 하오.]
아구는 부왕의 신변이 위태롭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황급히 휘장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명의 궁녀가 일어서며 말했다.
[공주님,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아구는 비단 장막 뒤로 걸어가 궁녀를 하나하나 불러 들인 후 원승지가 지시한대로 각 사람의 용도를 격파하였다.
마지막으로 내리친 궁녀 한 명의 격파 부위가 정확치 않은 바람에 날라 소리쳤으나, 아구는 한손으로 궁녀의 입을 틀어 막고 다시 한 번 시도를 하여 겨우 기절케 했다.
그녀가 휘장 뒤에서 나왔을 때, 원승지는 이미 침대에서 일어나 신을 신은 뒤였다.
두 사람은 휘장을 젖혀 창 밖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함께 뛰쳐 나왔다.
[나와 함께 갑시다.]
원승지는 아구의 손을 잡았다. 아구는 원승지와 함께 건청궁을 향하여 뛰었다.
궁문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약 수백명에 달하는 무리들이 운집해 있음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구가 놀라서 말했다.
[역적들이 이미 부왕의 침궁을 포위했어요. 빨리 가요!]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했다.
십여장쯤 뛰어가니 태감 한 사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장평공주님을 확인하고는 놀라는 듯 했으나 그녀가 단지 한 명의 동반자만을 대동한 것을 보고는 개의치 않은 듯 허리를 굽혀 공손히 말했다.
[공주님, 아직 주무시지 않으셨나이까?]
원승지와 아구는 건청궁 앞뒤로 빽빽히 들어선 태감시위들의 손에는 병기가 들려 있음을 보고는 이미 위급해졌음을 알았다.
아구가 호령을 했다.
[길을 비켜라!]
오른손을 휘둘러 그 태감을 밀쳐내고는 곧 앞을 향하여 돌진했다.
궁문 밖을 수비하고 있던 몇 명의 시위가 앞을 가로막았으나 모두 원승지에 의해 밀쳐졌다.
시위들은 감히 무력을 쓰지 못하고 황급히 조화순에게 이러한 사실을 일렀다.
성왕을 등위시키려는 책략을 꾸민 조화순 자신은 감히 신분을 드러내지 못하고 단지 몰래 밖에서 지휘할 뿐이었다.
장평공주가 건청궁으로 들어섰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한낱 소녀의 몸인 그녀가 대사에 장애를 가져오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더 엄밀히 수비할 것을 시위들에게 명령했다.
아구는 원승지를 이끌고 숭정황제의 서재로 달려갔다. 숭정이 평소 그곳에서 책을 읽고 있어서였다.
문 밖에 다다르자 십여 명의 태감시위가 방문 앞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 보였고 황제의 시위로 충성을 다하다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7, 8구의 시체가 선혈이 낭자한 채 쓰러져 있었다.
무리들이 공주를 보고는 얼떨떨해 있는 틈을 이용해 아구는 이미 원승지의 손을 이끌고 서재로 뛰어 들었다.
[멈추어라!]
한 명의 시위가 호령하며 칼을 들어 원승지의 오른팔을 향하여 내리쳤다.
원승지는 급히 몸을 돌려 위기를 모면한 후 손으로 그의 가슴을 내리치자 그 시위는 곧 땅위로 굴러 떨어졌다.
원승지는 이미 방안으로 굴러 떨어졌다.
환히 밝혀진 서재에는 단지 십여 명의 신하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구는 황포를 입고 머리에는 흑단연모를 쓴 사람을 향하여 달려갔다.
[아바마마!]
원승지는 용모가 준수하고 놀라움과 노여움이 엇갈리는 얼굴을 한 사나이를 보며 생각했다.
(이 자가 바로 나의 부친을 살해한 원수 숭정황제로구나.) 아구는 황제의 곁으로 달려가기도 전에 이미 비단 옷을 입은 두 명의 금의위가 휘두르는 칼에 의하여 저지당했다.
숭정은 딸 아구가 달려 온 것을 보고 말했다.
[무엇하러 이곳에 왔느냐? 썩 물러가거라!]
삼십 세 가량으로 보이는 구렛나루가 시커먼 뚱뚱한 체구의 사나이가 말했다.
[도적의 무리들이 이미 동관을 짓밟았소. 머지않아 곧 경사에 도달할 것이오. 이 지경에 이르고서도 병력을 빌어 도적의 무리들을 멸하는 것을 허락치 않음은 도대체 무슨 연고요? 당신은 이대로 대명천하를 도적의 무리들에게 바치기로 작정이라도 했단 말이오?]
아구는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숙부, 황상께 어찌 이리도 무례하오?]
원승지는 그제서야 이 자가 왕위를 강탈할 음모를 하고 있는 상왕임을 알았다.
그 사나이의 웃음소리가 서재 안을 울렸다.
[무례? 그는 태조황제로부터 전해 내려온 이 강산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어. 주씨 성을 가진 우리 모두는 그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단 말이야.]
그는 소리를 내며 옆에 차고 있던 칼을 반쯤 뽑았다. 그의 눈빛은 노기로 가득차 있었다.
[대체 어쩔 셈이오? 한 마디로 결정을 내리시오.]
숭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짐이 부덕하고 무능하여 천하가 이토록 어지럽구나. 도적의 무리가 이미 이 지경에 도달하였다면 필히 사직을 멸할 것이오.
병력을 오랑캐들에게 빌려준다면 나라가 위기에 처할 것은 분명한 일이로고....... 짐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백성들에게 사죄할 수 있다면야 조금도 아깝지 않다. 다만 조정을 위해서라면 내 손으로 내어주리라.]
성왕이 칼을 뽑아든 채로 한걸음 다가서며 호령했다.
[그렇다면 즉시 문무백관에 명령하여 현자에게 선위(禪位)토록 하시오.]
숭정은 몸을 떨며 소리쳤다.
[너는 임금을 살해하여 왕위를 계승하려느냐?]
성왕이 눈길을 보내자 금의를 입은 위사 한 명이 큰 칼을 뽑아 들고 호령했다.
[임금이 어리석고 무도하니 살해함이 마땅하도다.]
원승지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불빛 아래 명백히 모습을 나타낸 것은 바로 안대낭의 남편 안검청이었던 것이었다.
아구는 분노에 찬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급히 들어 부친 숭정의 몸을 가로막았다. 이같은 순간의 동작으로 안검청이 내리치는 세차례의 칼을 모면할 수 있었다.
성왕이 거느린 시위들이 연이어 뛰어들었다.
원승지는 아구가 당해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무리들 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가 왼손을 쳐들자 두 명의 시위가 서재 밖으로 나가 떨어졌고, 오른손으로는 금사검을 아구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숭정 곁에서 그를 보호했다.
십여명의 금의위들이 앞을 다투어 황제를 살해하려 달려들었으나 모두가 하나같이 원승지가 휘두르는 손과 발에 맞아 나가 자빠졌다.
보검을 손에 든 아구는 정신을 한 번 모으더니 수초만에 안검청의 장검을 두동강내 버렸다.
대사가 이미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던 성왕은 장평공주가 갑자기 나타날 줄 어찌 알았으랴.... 게다가 이토록 무예가 뛰어난 자와 함께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 밖에 누구 있느냐? 어서 들라!]
하철수, 하홍약, 여칠선생과 온씨 네 형제가 대답하며 들어섰다. 그들은 곧 원승지를 발견해내고는 모두가 대경실색하였다.
온방달은 눈에 불을 뿜는 듯 하며 소리쳤다.
[먼저 이 녀석부터 처치하자!]
네 명의 형제가 그를 에워쌌다.
아구는 부왕 곁으로 다가가 보검을 들고 적들과 대항했다. 그들의 칼이 보검에 닿는 즉시 두동강이 나자 성왕 수하의 무리들은 감히 접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적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원승지는 5, 6명의 고수들과 대항하느라 도무지 아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없었다.
사태가 몹시 위급해지자 마음마저 당황함을 느꼈다. 이때 얼굴이 추악하고, 차림새가 남루한 한 노파가 눈에 살기를 띠고 나타났다. 하홍약이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내며 두 손을 들어 소리쳤다.
[금사검을 돌려다오!]
원승지는 이때 사태가 어떻든간에 먼저 황제를 구해놓고 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야만 청병을 끌어들이려는 음모를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나서 츰왕이 진군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숭정을 만나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리라. 이것이야말로 선국후가(先國後家)요, 성공후사(先公後私)의 큰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온씨 네 형제의 무공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여칠선갱과 하철수까지 가세하니 그야말로 경황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원승지는 아구가 산발이 되어 보검을 휘두르며 하홍약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을 파악했다.
순간 영기가 동하고 번쩍번쩍하더니 여칠선생의 머리를 향해 내리친 안대와 온방산이 휘두르는 강장을 피하여 하철수 앞으로 뛰어들었다.
[다수가 소수를 공격하니 당할 재간이 없는가 보군!] 하철수가 웃으며 갈고리를 휘둘렀다.
원승지는 날렵하게 피하며 소리쳤다.
[너의 기십명의 교도들은 죽어도 좋단 말이냐?]
하철수는 깜짝 놀라며 뛰어 올랐다.
원승지 역시 그를 따랐다. 온방달의 쌍창이 빠르게 날아왔다.
원승지가 하철수에게 말했다.
[저들을 막아주시오.]
하철수가 말했다.
[뭐라고?]
원승지는 온씨 네 형제와 여칠선생이 휘두르는 병기를 피하며 소리쳤다.
[당신, 하씨 성을 가진 그를 다시 만나보고 싶지 않소?] 하철수는 준수한 모양의 그를 본 이후 이미 마음을 빼앗겨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던 차에 이 말을 듣고서는 다시 마음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태가 시급한지라 세심히 고려해 볼 틈도 없이 공격의 방향을 바꾸어 온방오를 향하여 왼손의 철갈고리를 휘둘렀다.
온방오는 그녀의 갑작스런 돌변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곧 채찍으로 그녀의 철갈고리에 대항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공격인지라 한 번의 휘둘림에 적중하여 어느새 온방오의 왼쪽팔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갈고리에 묻혀둔 독약이 순식간에 온 몸에 퍼져 온방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왼쪽팔에 마비가 오는지 비틀거리더니 소리쳤다.
[눈이 안 보여. 독에 중독되었어!]
온씨 형제들이 황급히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원승지는 그제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하철수 갈고리의 독이 이처럼 독한 것을 보고도 전혀 놀라움이 없는 듯하였다.
아구는 여전히 하홍약과 안검청의 공격에 안간힘을 다하여 대항했다.
원승지는 곧 비법으로 그들 앞으로 날아가 하홍약의 등을 나꿔채 그녀를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안검청이 이 꼴을 보고 아연해 있는 틈을 타 아구는 한 칼에 그의 왼쪽다리를 찔렀다. 안검청도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한편 하철수는 이미 여칠선생과 손을 잡은 뒤였다.
온방오가 중독이 된 참상을 보고는 여칠선생도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담뱃대를 꺼내어 세 차례 휘두르고는 소리쳤다.
[물러 가겠소.]
하철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여칠선생, 잘 가시오!]
이때 온방오는 독기운으로 말미암아 혼수상태에 있었다.
온씨 삼형제는 다급해졌다. 서로 암호를 주고 받은 뒤 온방의가 동생을 들쳐 업었다. 온방달과 온방산은 한 사람이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한 사람은 뒤를 살피며 서재를 빠져 나왔다.
하철수가 곧 그 뒤를 추적했다.
그녀는 가슴에서 무엇인가 꺼내들고 소리쳤다.
[여기 해독제가 있소. 가져 가시오.]
온방산은 곧 그녀에게 다가와 약을 건네 받았다.
하철수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렇게 하여 사태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원승지와 아구가 힘을 합해 금의위와 격투를 벌이자 모두들 혼비백산하여 도망가 버렸다.
궁전문이 열리며 조화순이 돌연히 한 무리의 천병을 이끌고 들이 닥쳤다.
원승지는 적병의 세력이 많은 것을 보고는 소리쳤다.
[아구, 하교주, 우리 함께 황제를 보호합시다!]
[알았어요!]
아구와 하철수가 대답했다.
세 사람은 숭정을 중심으로 둘러섰다.
이때 조화순이 갑자기 소리쳤다.
[이 간신배들, 감히 조정을 어지럽히다니 어서 이들을 처치하여라!]
천병무리와 금의위들이 곧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숭정이 놀라 소리쳤다.
[조공공...... 당신, 당신 나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화순은 단칼에 자신의 앞가슴을 내리쳤다. 그러나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금의위 무리들이 대경실색했을 뿐만 아니라 원승지, 하철수, 아구 세 사람도 이상히 여겼다.
단지 숭정만이 마음속 깊이 조화순의 충성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사실인즉 밖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조화순은 자신의 음모가 실패로 돌아가자 곧 계획을 바꾸어 천병들을 이끌고 건청궁으로 구원하러 왔던 것이다.
금의위들은 조화순의 변계를 보고는 모두 무기를 버렸다.
천병들은 금의위를 밖으로 끌어 내었다.
그들이 궁정문을 나서자 조화순이 명령하였다.
[모두 없애버려라.]
삽시간에 역모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살해되었다. 이것은 살살로써 자신의 음모를 입막음하겠다는 그의 독계였던 것이다.
하철수는 정세가 이미 안정된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원상공, 내일 선무문 밖 큰 나무 밑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소.] 하고는 하홍약의 손을 이끌고 그곳을 빠져 나갔다.
숭정이 소리쳤다.
[당신은...... 당신은.]
그는 자신을 보호해준 공을 보답하고 싶었으나 하철수는 전혀 개의치 않고 궁을 빠져 나가 버렸다.
숭정이 고개를 돌렸을 때 아구는 핏빛으로 물든 옷을 입은 채 원승지를 향하여 안도의 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숭정은 현기증을 느끼며 의자에 돌아와 앉아 아구에서 물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냐? 공로가 크도다! 짐이...... 짐이 반드시 큰 상을 내리리라.]
그는 원승지가 반드시 꿇어 엎드려 머리를 조아릴 것을 예상했으나 원승지는 꼿꼿이 서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구가 그의 옷섶을 잡아 당기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어서 은혜에 감사드려요!]
원승지는 숭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부친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워 큰 공을 세웠을 때, 바로 이 황제의 모함으로 살해되고 말았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속에서 비분과 원통함이 끓어 올랐다.
원승지는 부친을 살해한 원수를 자세히 뜯어 보았다.
그의 양 볼은 움푹 패어 있었고 양쪽의 구렛나루는 이미 백발이 성성했다.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고 안색은 몹시 초췌해 보였다. 왕위 친달의 음모가 이미 평정도니 지금에 와서도 숭정의 얼굴에는 불안의 빛이 역력했고 기쁨의 빛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은 단지 형벌을 받고 있는 것에 불과하구나. 저토록 마음 속에 한점의 기쁨도 없으니!) 원승지의 마음속에 이토록 많은 생각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모르는 숭정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관직은 무엇이지?]
그는 원승지가 태감복장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가 일개의 졸개인줄로만 짐작하고 있었다.
원승지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은 원가이고 이미 고인이 된 병부상서 계료독사 원숭환의 아들입니다.]
숭정은 원승지의 신불을 알고 잠시 어안이 벙벙해 있더니 듣지 못하기라도 한 듯 다시 한 번 물었다.
[무어라고?]
원승지가 다시 대답했다.
[선친께서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우셨음에도 황상에 의해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숭정은 잠시 숙연해 지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지금 몹시 후회하고 있느니라.]
잠시 후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떠한 보상을 원하는가?]
아구는 크게 기뻐하며 원승지의 옷깃을 가볍게 잡아 당겼다.
그녀는 이 기회에 원승지가 부왕께 부마로 간청해 줄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원승지는 격분한 어조로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국가를 위하여 황제를 구해준 것 뿐인데 무슨 보상이 필요하겠습니까? 음! 그렇소, 황상 후회를 하고 계신다면 선친의 억울함을 씻을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성격이 강직한 숭정에게 있어 지금에 와서 그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이 자리에서....... 그는 원승지의 이같은 청을 듣고도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괴로워 하고 있었다.
이때 조화순이 들어와 문안을 여쭙고 역적의 무리들은 모두 처벌한것과 이미 사람을 보내어 역적과 우두머리인 성왕의 가솔들을 잡아오도록 한 것을 아뢰었다.
숭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그대야 말로 충신이구료.]
조화순은 원승지를 보자 마음속으로 골똘히 생각했다.
(이 자는 만청 구왕의 사자임이 분명한데 어찌 이곳에 나타나 나의 대사를 그르쳐 놓는단 말인가?)
원승지는 조화순의 역모가 밝혀져야 한다고 여겼으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츰군이 경사에 도착하는 날이면 궁중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런 간신배들도 의군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했다.
원승지는 묵묵부답인 황제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구에게 말했다.
[그 검을 내게 돌려 주시오. 돌아가야겠소.]
아구는 황상과 조화순이 자신과 원승지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황급히 물었다.
[언제 다시 나를 만나러 오실 건가요?]
원승지는 대답을 피하며 <공주님, 몸조심하십시오!> 하고는 검을 향해 손을 뻗쳤다.
그러자 아구는 검을 끌어 안으며 말했다.
[이 검은 잠시 이곳에 두고 가세요.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면 당신께 돌려드리겠어요.]
원승지의 얼굴을 안타깝게 응시하는 아구의 눈빛에는 이러한 말이 쓰여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와 주세요. 난 당신이 오시는 날 만을 기다리겠어요.)
숭정과 조화순의 얼굴에 기이한 빛이 역력하자 원승지는 더 이상 대화를 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하고 고개만 끄덕인 뒤 그 자리를 떠났다.
아구는 문 밖에까지 뒤따라 나오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다른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난 영원히 당신을 떠나지 않을 테니.......]
원승지는 지금은 사건의 전말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를 나눌때가 아님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머지않아 천하에 큰 변이 일어날 것이오니 침궁에 거하는 것은 차라리 저 말리 있는 강호보다도 못할 것이오. 내 말을 잘 기억해 두시오.]
그는 머지않아 츰왕이 진경하여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황궁이 그 어느 곳보다 가장 위험한 곳임을 알고 있는 터이라 그녀에게 출궁하여 화를 명면할 것을 알리고 싶었다.
아구는 그의 뜻을 알 리가 없었다. 다만 시비가 많은 궁궐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에서 다소곳이 고개를 떨구며 부드럽게 말했다.
[좋아요. 차라리 당신을 따라다니며 강호를 집으로 삼음이 궁안에서 편히 지내는 것보다는 나을 거에요. 다음에 당신이 오시면, 우리 앞으로의 일을 자세히 의논하도록 해요.]
원승지는 가볍게 한숨만 쉴 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곧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한 뒤 담을 넘어 궁을 빠져나왔다.
곳곳에서 횃불이 타오르고 있고 호령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역적들의 부하들을 붙잡아 가고 있는 중이었다.
원승지는 청청이 염려스러워 황급히 정조자호동으로 돌아왔다.
청청, 초원아, 나입여 등 세 사람이 이미 무사히 돌아와 있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는 방으로 돌아오자 그 순간 긴장과 피로가 밀려와 곧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사패시(巳牌時)쯤이었다.

## 사패시: 사시(巳時)가 09∼10시 사이니까, ## 사패시는 10시가 다된 때를 가르킬 겁니다. 아마두...

대청으로 나오자 수운과 민자화가 16명의 선도제자들을 이끌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들은 원승지가 오독교 무리들과 충돌이 있었음을 알고 도와주려 왔던 것이다.
원승지가 황옥도인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리자 선도의 무리들은 크게 기뻐했다.

x x x x

원승지는 그들에게 집에 남아서 부상자들을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하고 선무분으로 향했다.
얼마쯤 걸어가자 저 멀리 하철수가 나무 밑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가와했다.
[원상공, 내가 엊저녁 당신의 일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 그만하면 친구로서 충분하지 않습니까?]
원승지가 말했다.
[어제 저녁은 정말 사태가 위급했소. 다행히 하교주의 도움이 있었기에 비로소 큰 사태를 막을 수 있었소. 이거 정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하철수가 웃으며 말했다.
[원상공은 정말 여복도 많으셔요. 꽃처럼 아름다운 미모의 공주와 서로 사랑을 나누시니 머지않아 부마자리에 오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저같은 강호 친구쯤이야 기억이나 하시겠어요?] 원승지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하교주, 농담하지 마시오.]
하철수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나, 오히려 나를 나무라시네! 그녀가 그토록 정담어린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던데 어느 누가 눈치를 못 챈단 말이에요? 만일 당신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금사검을 그녀에게 건네주었소, 게다가 목숨을 걸고 그녀의 부왕을 구하려 했어요?]
원승지가 대답했다.
[그건 오로지 나라의 대의를 위해서였소.]
하철수가 입을 다문 채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녀와 한 이불속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도 나라의 대의를 위해서죠. 호호!]
원승지는 순간 얼굴이 빨개지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뭐...... 뭐라고? 하교주가 어떻게?]
하철수는 연신 웃음 띤 얼굴로 이야기했다.
[눈이 멀지 않은 이상 세상을 돌아 다니는 우리들이 공주의 이불속에 숨어 있는 자를 찾아내는 것쯤음 누워서 떡먹기죠. 막 이불을 들치려는 순간, 다행히도 원상공의 초상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침대에 당신이 누워 있다는 것을 눈치챘죠. 더군다나 우리의 우정을 간단히 산산조각 낼 수야 있었겠어요?]
원승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알고보니 그 초상화를 감추지 않은 바람에 그녀에게 들켜 버리고 말았구나.)
돌이켜 생각하니 점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만일 그 초상화가 아니었더라면 하철수는 이불을 들추고 말았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더욱 난처한 일이 아니었을가?) 하철수는 그의 얼굴이 귀뿌리까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하상공은 무사히 돌아가셨겠지요?]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자, 이제는 당신 교도들의 용도를 풀어주러 갑시다.] 하철수가 앞에서 길을 인도하였다. 그들은 계속 서쪽으로 향해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그녀는 아구의 아름다움에 대해 계속 칭찬을 퍼부었다. 그녀는 또 금지옥엽 같은 공주에게 무술을 가르친 것이 바로 원승지인 줄은 전혀 몰랐다는 것과 고명한 스승 밑에서 뛰어난 제자가 배출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등, 그 고명한 스승이 수제자에게 다른 마음이 있었다는 등 그녀의 이야기는 그칠줄 몰랐다.
원승지는 묵묵부답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5리 남짓 걸어갔을 때 그들은 비로소 고찰(古刹) 화엄사에 도착했다.
절 밖에는 오독교 교도들이 경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원승지를 보자 모두 성난 눈길을 보냈다. 원승지는 글들의 눈길을 무시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대웅보전에는 그에게 격파를 당한 교도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원승지는 곧 각 사람들의 용도를 풀어준 다음 개운하다는 듯이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은 여러분께 원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찮은 오해로 말미암아 과오를 범했소이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사죄하는 바이오.]
말을 마치고 그는 두 손을 모아 모두에게 읍(揖)을 행했으나 무리들은 그를 외면해 버린 채 아무도 예(禮)에 답하는 자가 없었다.
원승지는 할 도리를 다 했으니 이들이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일어서려했다.
이때 한 줄기 독시어린 눈빛이 하철수를 응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자는 대웅전 안쪽 어두운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어 한눈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그의 두 눈에는 분명 푸른 광체가 번뜩이고 있었다.
원승지는 깜짝 놀라 생각했다.
(원한과 격분으로 가득찬 눈빛을 한 자가 과연 누구일까?) 다시 그쪽을 주시하자 그 자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제서야 그의 몸짓을 보고 그것이 거지 노파 하홍약임을 알았다.
하철수는 원승지를 절 밖에 까지 배웅했다. 원승지는 그녀의 얼굴색이 조금 전 웃고 떠들던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매우 이상히 생각했다.
두 사람은 예를 행한 뒤 작별을 했다.
오던 길로 되돌아오는 원승지의 마음엔 의혹이 점점 더욱 커져갔다. 그들이 다른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용도를 풀어준 후에도 원한을 품은 채 다시 와서 난동을 피운다면, 먼저 그들의 계략을 탐색해 내어 방비책을 마련해겠다고 생각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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