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4-4

3학년2반 | 2022.01.18 07:55:33 댓글: 0 조회: 274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3097

* 제 4 권 *

- 4 - 오독교(五毒敎)의 내란(內亂)

그는 남쪽 길을 택하여 머리 화엄사 뒤쪽에 도달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뒷담을 뛰어 넘었다.
갑자기 <쉬유∼> 하는 호각소리 들려 왔다.
그는 이것이 오독교 교도들의 소집을 알리는 신호임을 알고 재빨리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교도들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후 그는 곧 대웅전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격렬하게 토론을 벌이는 소리가 안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는 문틈에 귀를 바짝 들이대고 엿듣기 시작했다.
하홍약의 날카로운 소리와 제운오의 크고 거친 목소리가 앞을 다투어 하철수의 죄를 성토했다.
그중 한 사람이 그녀가 정욕에 눈이 어두워 교도들의 원수임을 잊고 오히려 본교를 적대시했다고 질책하자, 다른 한 사람은 그녀가 적과 합세하여 새 임금의 등극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고 비난했다.
하철수는 냉소를 지으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말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냐?]
교도들은 잠시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잠시 후 하홍약이 갑자기 소리쳤다.
[교주를 새로 뽑읍시다!]
하철수가 냉랭하게 말했다.
[수백년을 내려온 오독교의 교칙은 노교주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교주를 뽑아왔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주기를 원한단 말이냐?]
하철수는 연이어 세 번이나 물었으나 교도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철수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구든 나를 당해낼 자는 나와서 교주를 죽이고 교주가 되어라.]
원승지는 오른쪽 눈을 문틈에다 대고 안을 살폈다.
하철수 한 사람만이 의자에 앉아 있고 수십명의 교도들은 모두 멀찌감치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에 대한 두려움이 여실히 보였다.
원승지는 생각했다.
(오독교의 어느 누구도 그녀의 무공을 따를자가 없다. 그러나 단지 무력으로써 사람들을 억압한다면 이 교주도 오래 가지는 않겠구나.)
오독교의 내분이 자신과 청청에 대한 음모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일어나 돌아오려는 순간, 갑자기 싸늘한 빛이 번뜩였다.
하홍약이 손에 이상한 병기를 들고 걸어 나왔다.
원승지는 마치 커다란 가위와도 같은 이 병기를 전혀 본 적이 없었으므로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부님께서 이 병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고 그것의 사용법조차 모르고 있던 터라 다시 몸을 굽혀 주시하기 시작했다.
다시 하홍약의 냉랭한 목소리만이 들려 왔다.
[나는 교주가 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요, 더욱이 너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오독교의 삼조칠자(三祖七子)가 사십년이란 세월을 거쳐 비로소 교문을 창설했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나 쯤은 알고 있다. 오독교가 백여년 아니 천년 세월을 거쳐 이룩한 이 기업을 절대로 너같은 천한 계집의 손에 멸망시킬 수는 없다.]
하철수가 말했다.
[교주를 모만(謨慢)하다니, 당신의 죄를 알렸다!]
하홍약이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너를 교주로 여기지 않은지 오래다. 이리 오너라!]
두 손을 앞으로 뻗자 착 소리와 함께 병도가 열렸다. 과연 가위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단지 가위의 날이 안으로 굽은 것이 마치 집게와도 같았다.
하철수는 엷은 냉소를 지으며 의장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홍약이 그의 앞으로 나왔다. 가위는 철컥! 철컥! 두 번이나 소리를 내며 허공을 집었다.
그녀는 가위가 적중하지 않자 하철수의 무술이 두려워 곧 물러섰다.
하철수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하홍약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적당히 피하였을 뿐 전혀 반격을 하지 않았다.
원승지는 이것을 기이하게 여겼으나 수십명의 교도들이 손에 병기를 든 채 다가서고 있는 것을 곁눈질로 보고서야 비로소 하철수가 무리들에게 포위 당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문틈이 너무 비좁아 내실의 일면 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사태로 보아 그녀가 이미 사방팔방으로 포위 당했으리라는 것을 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무리들이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고 하홍약이 소리쳤다.
[쓸모없는 녀석들아! 무엇이 두려우냐? 모두들 덤벼라!] 그녀가 큰 가위를 휘두르자 무리들이 소리치며 앞으로 향했다.
하철수가 몸을 튕기듯 뛰어 올랐다. 단지 격투 소리만 들려 올 뿐 의자는 이미 칼날에 의해 산산조각 나 있었다.
두 명의 교도가 연이어 비명을 질렀다. 하철수의 갈고리가 적중한 것이었다.
대전은 온통 먼지로 가득하였고 하철수 한 사람의 하얀 그림자만이 무리들 시아를 종횡 하였다. 순식간에 격투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원승지는 대웅보전 안의 무리들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홍약을 제외한 무리들은 모두 원승지에게 용도를 격파당한 바 있었던지라 그걸 풀어 준 지금에 와서도 그들은 동맥의 흐름이 순조롭지 못하여 동작이 민첩하지 못했다.
하철수가 탈출을 기도한다면 그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반역의 무리들을 무력으로 압제하려는 듯 그녀는 계속 그들과 대항했다.
얼마후 무리들 중에 행동이 수상한자를 발견했다.
그는 무리들 틈에 끼어 공격을 하고 있었으나 걸음걸이가 매우 느렸다. 손에는 어떤 물건을 받쳐들고 하철수가 향하여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사람은 바로 금의독개 제운오였다.
곧 안으로부터 하철수의 우렁찬 소리가 들려 왔고 한 줄기 황금빛이 그녀를 향해 던져졌다.
하철수가 급하게 몸을 피하였으나 그 괴물은 공중에서 회전하며 하철수를 뒤쫓았다.
이때 수없는 칼날들이 동시에 하철수를 공격해 왔고 이어서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원승지는 이 어둠 속의 괴물이 바로 금사임을 알았다.
하철수는 황급히 자기의 어깨를 물고 있는 금사를 집어들어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연이어 갈고리를 휘둘러 교도 두 명을 살해했다.
하홍약이 크게 소리쳤다.
[이 계집은 이미 금사에 물려 중독되었다. 모두들 그를 잡아 묶어라!]
하철수는 비틀거리며 대웅전 박으로 뛰쳐 나왔다. 그녀는 중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세를 잃지 않았다.
무리들은 이것을 보고 아무도 그녀를 저지하려 들지 못했다.
이때 하홍약이 앞을 향해 뛰어 나가며 그녀의 뒷골에 가위질을 했다.
하철수가 얼른 머리를 숙이며 갈고리로 대응했다. 그때였다.
반수달과 잠기사가 이미 그녀의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앞에 둔 독사처럼.
하철수가 오른쪽 발꿈치로 옆구리를 가볍게 누르자 함사사영의 독침이 발사되었다. 눈을 부라리고 있던 반수달도 어쩔 수 없었다.
반수달은 미처 그것을 피하지 못하여 그만 목숨을 잃었다.
하철수의 어깨는 독이 번지지 시작했고, 따라서 그녀의 정신이 혼미해져 아무리 갈고리를 휘둘러댔지만 많은 무리를 대항해 낼 수는 없었다.
원승지는 머지않아 악독한 교도들의 손에 의해 죽어갈 하철수를 보고는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대전에서 청청을 빙자하여 그녀의 도움을 청했던 일을.
그때는 도움을 청해야 할 상황이었다. 사실상 사태가 위급하여 순간적으로 그녀를 기만했다고는 하나 엄연히 따지면 대장부로서 취해야 할 태도는 분명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 수하의 교도들이 반역을 일으켜 사태가 지금에 이른 것도 모두가 어제 저녁 그 일 때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잠시라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뛰어들었다.
[모두 멈추어라!]
무리들은 그의 갑작스런 출현에 경악을 금치 못하여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이때 하철수는 더욱 혼미해져서 원승지를 향하여 갈고리를 휘둘렀다. 그가 원승지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당신을 구하러 왔소!]
원승지는 그렇게 소리쳤으나 그녀는 듣지 못한 채 정신없이 쌍갈고리를 휘둘러 댔다.
원승지가 몇 개의 천을 풀어 그녀의 발목을 휘감자 하철수는 마침내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갑자기 눈을 뜨더니 놀라움에 소리쳤다.
[원상공, 나는 죽게 되나요?]
[어서 나갑시다.]
원승지는 그녀를 일으켜 잡아 끌었다.
두 사람의 격투를 지켜보고 있던 무리들은 원승지가 그녀를 부축하고 급히 나가는 것을 보고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원승지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쳤다.
[누가 감히 나를 따라오느냐?]
무리들은 고양이 앞에서의 쥐처럼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원승지는 하철수를 메고 대웅전을 향해 날아 들더니 꽝 하고 문을 잠궈 버렸다. 원승지는 그들이 자기를 무서워하며 떠는 모습을 보고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가 하철수를 살펴보았을 때 그녀의 어깨는 이미 퉁퉁 부어 있었고 백옥과도 같았던 그녀의 양볼은 까맣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흙빛 얼굴을 보고 독이 이미 심하게 번져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는 생각했다.
(조석으로 독물을 다루어왔던 그녀이니 만큼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으리라......)
그는 생각처럼 그녀가 좀 더 버텨 주기를 바랬다.
원승지가 그녀를 안고 처소에 다다르자 일행들은 깜짝 놀랐다.
청청이 화난 투로 말했다.
[그녀를 데려다 어찌하려구요?]
원승지는 그녀의 물음엔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어서 빙섬을 가져다가 그녀를 구하시오.]
초원아가 그녀를 부축해 내실로 데려갔다. 영문을 모르는 수운등은 몹시 화가 난 모습이었다.
원승지가 자초지정을 말한 후 이어서 말했다.
[영사 황옥도인의 일은 그녀가 깨어난 뒤 자세히 물어보도록 합시다.]
원승지의 이야기를 듣고 선도 제자들은 일제히 허리를 굽혀 절하였다.
하철수를 간호하러 들어간 초원아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식사때가 지나서 초원아가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독기가 빠지긴 했으나 아직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줄 모릅니다.]
원승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해독약을 먹여 잠들게 하시오.]
초원아가 대답하고 내실로 들려 할 때 나입여가 밖에서 황급히 뛰어들며 외쳤다.
[원상공, 기쁜 소식이 있소!]
청청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경사로구려.]
나입여가 말했다.
[츰왕의 대군이 영무관을 쳐부셨다고 합니다!]
무리들은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원승지가 반색하며 물었다.
[그 소식이 사실이오?]
나입여가 똑똑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였다.
[우리와 한 패인 장형은 원래 방을 받들어 민대감을 쫓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관을 공격하고 츰왕을 만나게 되었다오. 공격과 수비, 쌍방이 매우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던 터라 그곳을 지나갈 수 없었다 하오. 나중에야 명군이 크게 패하는 것을 목격했고 성을 수비하던 초병 주우길도 살해당했다고 하오.] 원승지가 말했다.
[좋소! 의군이 머지않아 경사에 도착만 한다면 우리도 그들과 합세합시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원승지는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경안의 각 통로를 맡고 있는 호걸들을 집합시켜 부서를 분배시켜 놓고는 의군병이 입성하기만을 기다렸다가 거사에 합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날도 상의를 마치고 밖에서 돌아오니 초원아가 말했다.
[원상공, 하교주가 아직도 혼수상태이옵니다.]
원승지가 의아해 물었다.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어찌하여 깨어나지 않는단 말이오?] 그는 황급히 초원아를 따라 내실로 들었다.
핏기가 싹 가신 하철수의 얼굴은 몹시 초췌해 보였고, 끊어질 듯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원승지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아하!]
초원아가 물었다.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원승지가 빠르게 말했다.
[보통 사람의 경우, 중독된 후 독기가 다 빠지면 자연히 건강을 되찾게 되어 있소. 그러나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독물을 다루어왔고 평소에도 희귀한 약초를 많이 복용해 오던 터라 독물로서 그녀를 상하게 한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오. 그러나 일단 중독이 된다면 그 누구보다도 더 위험이 따르오. 내가 츰군의 일에 몰두하다보니 이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군요.]
초원아가 물었다.
[그럼 어떡하죠?]
원승지가 주저하며 말했다.
[빙섬을 그녀에게 먹인다면 목숨을 구할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것 하나만을 의지해 해독하고 있는 터에 또 다시 오독교의 침해를 당한다면 그저 속수무책으로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니.......]
초원아 역시 죽어가는 한 생명을 가만히 버려두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원승지가 넓적다리를 치며 말했다.
[비록 이 사람이 우리와는 전혀 무고무친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소.
우선 그녀에게 약을 먹이도록 합시다.]
초원아도 이러한 처방이 매우 위험스럽게 여겨져 몹시 불안했지만 원승지의 분부이고 보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빙섬을 가져다 잘게 부순 다음 술에 타서 그녀에게 떠 넣어 주었다.
시퍼렇던 하철수의 얼굴색은 반나절도 안되서 흰색을 되찾았고, 끊어질 듯한 호흡 역시 점점 고르게 이어졌다.
원승지는 그녀가 소생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야 그곳을 나왔다. 때마침 원승지를 찾고 있던 홍승해가 그를 보자마자 급히 아뢰었다.
[원상공, 오독교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원승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몇 명이나 되오?]
홍승해가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한 사람은 이미 문 밖에 도착해 있으나 그 뒤에 몇 명이나 뒤따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원승지가 생각에 잠겼다.
(오독교도들 중에 하교주 무공을 능가할 자가 없다. 그러나 표독스러움에 있어서는 교도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날, 나를 보고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던 그들이 오늘에 와서 나를 찾아온 것은 분명 누구의 조종을 받고 오는 게 틀림없다. 빙섬마져도 하철수에게 먹여 버렸으니 만일 누군가가 중독을 당하기만 하면 그를 구해 낼 방도가 없을 텐데.......)
원승지는 홍승해에게 명령했다.
[당신은 가서 모두들 대청으로 집합시키시오. 그러고 나의 명령이 없는 한 그 누구도 싸움을 시작해서는 안되오.)
홍승해가 응답하고 곧 물러갔다.
원승지는 총총히 걸어나와 서둘러 대문을 열었다.
닳아진 바지에 웃통을 벗어제친 자가 양손을 땅에 짚고 문 앞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다. 알몸에다 입으나 마나한 바지를 거치고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은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로 우스운 몰골이었다. 그러나 오독교인들의 희귀한 꼴들은 번번히 보아왔던 터라 이상히 여기진 않았다.
그 자는 바로 금의독개 제운오였다.
원승지는 1척 가량의 예리한 칼이 제운오의 어깨와 등, 양팔 등 모두 아홉군데에 꽂혀 있는 것에 눈길을 주었다. 칼들이 살 속 깊이 꽂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다.
원승지는 그가 어떤 요법을 사용할 것인지 알 수가 없는 터라 방위(方位)에 한결 신경을 쓰고 소리쳤다.
[뭣하러 왔느냐?]
제운오는 대답대신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구도천동(九刀穿洞), 위노진충(爲奴盡忠).]
원승지가 다시 말했다.
[나와 오독교는 이제 서로의 갈길을 갈 뿐이다. 너희는 다시 귀찮게 굴지 말 것이며 나도 너희를 괴롭히지 않을 터이니 썩 물러가거라.]
제운오는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 쉬임없이 중얼거렸다.
[구도천동, 위노진충.]
원승지가 자세히 보니 칼자루에는 독충들이 각각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떤 칼에는 전갈이, 어떤 칼에는 지네가 각각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때 홍승해는 무리를 모아 대청에 소집시킨 뒤 혼자 나와서 사태를 살폈다.
원승지가 눈길을 보내자 홍승해는 곧 알아채고 제운오의 말을 암기해서 내실로 들어왔다.
그는 초원아와 함께 하철수를 찾아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하교주, <구도천동, 위노진충>이 무슨 뜻이오?]
하철수는 빙섬을 먹은 후부터 조금씩 건강을 회복해 가던 차에 홍승해의 말을 듣고는 급히 일어나 앉아 물었다.
[누가 왔소?]
홍승해가 대답했다.
[웃통을 벗어제친 거지라고 하는 자가 왔소이다.]
하철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좋소. 아가씨, 나를 좀 부축해 주구려.]
초원아는 그녀의 병세가 아직 완쾌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말리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미 손짓으로 홍승해에게 방을 나갈 것을 말하고는 입었던 잠옷을 천천히 갈아 입고 있었다.
초원아가 만류했다.
[당신은 나갈 수 없어요. 아직 완쾌되려면 수일이 지나야 될 텐데.......]
하철수가 강경히 말했다.
[나를 좀 부축해 주시오.]
초원아는 팔장을 낀 채로 서 있었는데, 하철수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날쌔게 낚아챘다.
초원아는 엉겁결에 하철수의 철손에 이끌리어 그녀를 따라 문 앞에 도달했다.
하철수는 대문을 넘어 서서 호령했다.
[보아라, 내가 이렇게 살아 있지 않느냐?]
제운오는 희색이 만면한 채 두 손을 떼어 공중에서 재주를 한 번 넘은 뒤 다시 물구나무서기를 하였다.
하철수가 말했다.
[무엇 때문에 왔느냐? 장애에 부딪치지 아니하고는 절대로 후회할 네가 아닌데.]
제운오가 말했다.
[교주는 과연 영특하시옵니다. 소인의 죄 만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교주의 귀하신 지체에 독을 퍼뜨렸으니.... 삼조칠자의 보우하심을 힘입어 부디 만수무강하옵소서.]
하철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받았다.
[네가 금사를 이용하여 나를 상케 했으니 나는 필히 죽은 목숨이오, 오독교의 규칙에 따르자면 네가 교주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
제운오가 말했다.
[소인, 만 마리의 독사에 물려 죽음이 마땅하오나 교주의 넓은 은혜로 관대히 용서하여 주시기 만을 바라나이다.]
하철수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쾌히 받아 들였다.
[좋다, 돌아가거라.]
제운오가 두 팔을 굽혔다 폈다 하며 머리를 몇 번 땅에 박아 예를 행하였다.
하철수가 의심하듯 다시 한 번 물었다.
[너는 무슨 연고로 와서 사죄를 하느냐?]
제운오가 말했다.
[소인 어찌 감히 교지를 기만할 수 있겠소이까? 오독교의 규칙에 의하면 응당 소인이 교지를 계승하여야 하오나, 그 거지 노파와 소인이 서로 격투하던 끝에 소인은 그를 당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철수가 말했다.
[네가 불안호심(不安好心)한 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와서 충성을 다하여 내게 굴복하니 네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하철수는 말을 마치자 그의 어깨에 꽂혀 있는 칼 하나를 뽑아 들었다.
제운오가 크게 기뻐하며 예를 행하고는 일어나 큰 걸음으로 물러갔다.
하철수가 초원아의 부축을 받으며 대청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의 무리들은 조금 전의 괴이한 일을 보고 영문을 몰라했다.
하철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오독교에서 쫓겨난 몸이라 갈 곳이 없어 나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청청이 물었다.
[이 칼을 무엇에 쓰려는 거요?]
하철수는 칼에 묶여 있는 전갈을 풀어 손수건으로 몇 번 싼 뒤 가슴에 찔러 넣고나서 말했다.
[이것은 우리들만의 사법이니 모두들 웃지 마시오. 아홉 자라의 칼에는 모두 독충들의 독물이 묻어 있고, 각기 다른 독성을 가지고 있소. 이독공독(異毒共毒)이라고 본래 그 독충의 독물에다 다른 약재를 더한 것으로 써야 치료가 가능하오. 매일 한 자루씩 뽑아 그 독충들을 내 수중에 모아 놓으면 매년 단오날 제운오의 몸에 독이 발할 때마다 나는 해독제를 만들어 그에게 먹일 것이오.]
청청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렇게 되면 그는 당신의 영원한 노예가 되고 다시는 당신을 반역할 수 없게 되겠구려.]
하철수가 웃으며 말했다.
[상공의 생각이 옳아요.]
청청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가 스스로 칼을 뽑을 수는 없나요?]
하철수가 대답했다.
[그 칼들은 자신 스스로가 찔러 넣은 것으로서, 그가 내게 뽑아 줄 것을 간청해 온 것은 바로 내게 굴복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가 금사로써 해친 적이 있는 이상 이 구도대법이 아니고서는 내가 절대로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청청이 물었다.
[그럼 왜 한차례에 그것을 다 뽑아주지 않소? 아직도 여덟 자리의 칼이 남아 있으니 앞으로 8일은 더 고통을 받아야 하지 않소?]
하철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 악독한 놈에게 그 따위 고통쯤은 마땅해요.]
잠시 후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하상공이 그 자를 용서해 주기를 원한다면 내일이라도 모두 뽑아 버리겠어요.]
청청이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 뜻대로 하세요. 나 역시 그 자를 가엾게 여기지는 않고 있으니!]
수운은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일어나 예를 행한 뒤 말했다.
[하교주, 청컨대 우리 사부님의 일을 원상공 앞에서 명백히 밝혀 줄 수 없겠소?]
이 말에 선도 제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철수는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원상공이 나의 은인이긴 하지만 당신네 선도파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오. 당신들은 내가 아직 건강을 회복하지 않았다 해서 나의 위기를 이용하려 하지만 나 하철수는 전혀 개의치 않겠소이다.]
그녀가 이처럼 오만불손하게 나올 줄은 모두 예상하지 못했다.
원승지가 수운등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하교주는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았으니 우리 천천히 이야기나 나누도록 합시다.]
하철수는 <흥!> 하고는 초원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선도 제자들은 배반감을 느끼며 입과 입을 모아 상의를 시작했다.
원승지가 말했다.
[이 일은 당신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황옥도장의 행방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지고 알아내겠소.]
선도 제자들은 그제서야 조용해졌다.

x x x x

다음날 제운오는 다시 나타났고, 하철수는 두 번째 칼을 뽑아 주었다.
이렇게 칼 뽑는 일을 여러차례 거듭했다.
츰군은 북경성을 향해 물밀 듯 밀려 오고 있었다.
명군의 총병 강양이 항복하자 츰군은 대도을 정복했고, 총병 왕승윤과 감군태감 두지질이 투항하자 츰군은 마침내 거용을 정복할 수 있었다.
대봉, 선부, 거용은 모두 경사 외곽의 요지로서 지금까지 철저하게 방어를 해오던 곳이었다.
총병들은 각 평균 수만의 정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숭정은 무장을 신임치 못하여 각 군대마다 믿을 만한 감군태감을 파견하여 총병을 감시하게 했다. 그러나 츰군이 도착하자마자 감군태감과 총병관이 일제히 투항하는 바람에 그들은 군졸 하나도 다치지 않고 주요 기지를 정복할 수 있었다.
며칠 사이에 명군은 풍지박산이 되었고 북경성 안에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을 무렵 츰군은 이미 창평을 장악했고, 북경성 밖 경영삼대영이 일제히 붕괴되었다.
츰군이 손을 뻗치기만 하면 북경도 정복된 것처럼 위태로왔고 명군의 묘새는 애금애금 침몰되어 갔다.
다시 며칠 후, 정오쯤 되어 제운오가 나타났다. 그의 몸에는 마지막 칼 하나가 아직 꽂혀 있었다.
홍승해는 들어가 제운오가 왔노라고 보고했다.
이즈음 하철수는 모든 독을 제거하여 거의 완쾌된 상태였다.
무리들은 제운오의 마지막 칼을 뽑은 후 하철수가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궁금하여 모두 그녀를 뒤쫓아 나왔다.
하철수가 고개를 돌려 청청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상공, 제운오 그 자가 본성은 악하나 무술이 뛰어나오니 당신의 노예로 삼으심이 어떨는지요? 해독제가 상공의 손안에 있는 한 그는 종신토록 당신을 거역치 못할 것이오.]
청청이 부드럽게 말했다.
[여자의 몸으로 추악한 남정네를 데려다 무엇에 쓰게요?] 하철수는 깜짝 놀랐다.
청청을 처음 만난 이후 그녀는 시종일관 남장을 한 모습만을 보아왔던 터라 그가 남자인 줄로만 알았고 또 하철수의 마음 속엔 이미 그에 대한 사모의 정이 피어 올라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하철수가 오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지독스러움이 두려워 아무도 청청의 성별을 밝혀주는 사람이 없었다.
원승지는 츰군을 맞을 준비로 연일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어 이러한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철수는 이제껏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청청의 이 한마디를 듣고 어안이 벙벙해져 물었다.
[뭐, 뭐라고요?]
청청이 말했다.
[나는 그 자를 원치 않소!]
하철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여자라고 하셨나요?]
초원아가 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하교주, 이분은 하소저에요. 어렸을 적부터 남장을 즐겨해 당신이 몰라 보았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우리들도 모두 처음 뵈었을 때 상공으로만 알았었지요.]
하철수는 눈 앞이 흐려지더니 현기증을 느꼈다.
정신을 가다듬어 청청을 바라보니 희고 부드러운 얼굴과 고운 눈썹이 확실히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분함을 금치 못하며 생각했다.
(내가 어찌 이렇듯 어리석단 말인가? 결국은 이 여인을 위하여 오독교를 배신하였고 그 결과로 나의 모든 명예를 손상시키다니....... 아! 살고 싶지도 않구나.)
그녀는 성격이 강경하므로 마음속으로는 분함을 금치 못하면서도 얼굴에는 미소를 잔뜩 머금었다. 왼쪽 볼에는 예쁜 보조개가 패이도록 힘주어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려.]
제운오의 마지막 독검을 제거하기 위하여 돌계단을 내려서던 그녀는 두 다리가 떨려 오면서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초원아가 그녀를 부축하려 할 때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급히 뛰어와서는 제운오 뒤로 가 허리를 한 번 굽힌 다음 몸을 돌렸다. 이때 제운오의 비명소리가 들려 왔고 그는 곧 땅바닥에 쓰러졌다. 등에는 1척 길이의 독검이 손잡이만을 드러낸 채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靑天霹靂)과 같은 날벼락이었다.
원승지, 정청죽, 사천광, 벙어리 등 내노라는 무사들이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구해 줄 틈이 없었던 것이었다.
무리들은 일제히 놀라 소리쳤다. 제운오에게 갑자기 독수를 퍼부은 사람은 바로 거지 노파 하홍약이었다.
그때 제운오의 손에서 뭔가 번쩍하더니 도망치는 하홍약의 왼손에 가 꽂혔다. 그녀는 괴성을 질러대고 왼손을 휘두르며 펄쩍펄쩍 뛰었으나 그녀의 손 등을 물고 있는 작은 금사 한 마리는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좋아, 잘했어!]
제운오는 몸을 한 번 움찔하더니 고개를 떨구고 숨을 거두었다.
무리들은 하홍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엔 공포의 빛이 가득했고 상처투성이의 얼굴은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눈길을 집중시켰다.
그녀는 몇 번이나 오른손을 뻗어 금사를 뜯어 내려 했으나 정작 손 끝에 만져질 듯하면 마치 금사의 몸에 닿기라도 할까봐 손을 움츠렸다.
하철수는 <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홍약은 눈을 한 번 번뜩이더니 갑자기 가슴에서 한 자루의 비수를 뽑아 들었다. 번쩍이는 칼날은 <차앙∼> 소리를 내며 그녀 자신의 왼손을 잘라 버렸다. 그녀는 황급히 옷섶을 찢어내어 상처를 싸맨 뒤 미친 듯이 사라져 버렸다.
무리들은 이 지독한 광경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여 할말을 잊었다.
하철수는 허리를 굽혀 제운오의 몸에서 철장 하나를 더듬어 냈다. 그리고는 왼손 갈고리로 하홍약의 떨어져 나간 손에서 살점을 뜯어다가 금사에게 먹이고는 함께 철장에 가두고 뚜껑을 닫아 버렸다.
원승지가 물었다.
[이 금사는 어디서 난 거요?]
하철수가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제운오란 놈이 입으로는 내게 자기를 거두어 줄 것을 간청했으나 마음 한구석으로는 혹시라도 내가 자기를 해칠까봐 불안해하고 있었죠. 그래서 아홉 번째 칼 근처에 금사를 숨겨 놓았던 거요. 내가 마지막 칼을 뽑아주면 별일 없었겠지만 만일 조금이라도 가해의 뜻이 보일 경우, 금사로 반격할 계획이었죠. 하하, 노파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줄 알았던거지요. 노파도 모진 마음을 먹고 자신의 손을 잘라 내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늦어더라도 이 세상을 하직할 뻔 했죠.]
청청이 물었다.
[그럼, 당신 왼손도 이렇게 해서 잘라낸 거요?]
하철수는 눈을 한 번 흘리고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손으로 입을 막으며 뛰어들어갔다.
청청은 그녀의 이러한 태도에 화가 나서 말했다.
[정말 이상한 여자로군!]
초원아가 근심어린 얼굴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별일 없는지 그녀에게 가 보겠어요.]
초원아는 내실로 들어간 지 얼마 안되어 곧 황급히 뛰어나오며 말했다.
[원상공, 하교주가 방문을 걸어 잠근 채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원승지가 말했다.
[혼자 휴식을 취하게 그냥 내버려 두시오.]
[그렇지만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하교주의 얼굴빛이 미심쩍었어요.]
[좋소, 함께 가 봅시다.]
원승지, 청청, 초원아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하철수의 방 앞에 당도했다.
초원아가 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는 전혀 응답이 없었다. 그녀는 다시 창가로 돌아가 방안을 살펴보고 갑자기 소리쳤다.
[원상공, 빨리 와 보세요!]
초원아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두 손으로 나무 창문을 밀어내고 날렵하게 뛰어 들어갔다.
원승지와 청청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하철수는 옷고름을 풀은 채 작은 목각 상 앞에 꿇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금사를 들어 자신의 목에 들이대려는 찰나였다.
원승지의 오른손이 급히 움직이더니 쉬익 소리와 함께 동전 한 닢이 공중을 가르고 날아가 금사의 주둥이를 명중시켰다. 실로 기막힌 명중이었다. 하철수가 깜짝 놀라서 금사를 내려놓고 탁자에 엎드려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청청이 철장을 빼앗아 금사를 잡아넣고는 부드럽게 말을 건네었다.
[무엇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거요? 당신 교도 중에 몇몇 변변치 못한 녀석들이 당신을 따라 주지 않는다면 우리와 함께 생활하면 되지 않겠소.]
하철수는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원승지가 그녀에게 달랬다.
[하교주, 오독교는 원래 사람을 해치는 사악의 종교였소. 이제 당신은 사악의 길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왔소. 이제 오독교와는 모든 인연을 끊었으니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소? 그런데 어찌 이렇게 상심하는 거요? 더구나 하교주를 회복시키려 얼마나들 마음 졸여 왔었는지 당신도 알지 않소?]
이때 정청죽 등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그녀를 달랬다.
하철수는 목숨을 끊는 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로부터 구원을 받고나자 이제는 죽고 싶은 생각도 좀 시들해졌다. 그녀는 정기어린 눈빛으로 웃음을 띠고 말했다.
[원상공, 만일 당신이 나의 요구에 응답만 해준다면 죽지 않겠습니다.]
청청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끊겠다고 난리를 부리더니 갑자기 웃고 있네. 이 여자가 큰형에게 무엇을 원하는 걸까? 아니야, 혹시 그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아닐까?)
청청이 황급히 물었다.
[당신 원상공에게 무엇을 허락하라는 거요?]
하철수가 말했다.
[원상공, 당신이 먼저 말하세요. 허락할 건지, 아닌지?] 원승지가 말했다.
[난 아직 하교주가 나더러 무엇을 하라는 건지 모르고 있소.] 그는 의혹이 생겨서 곧 허락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확실하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 성격 탓도 있었다.
하철수는 청청과 초원아를 향하여 웃어 보이더니 갑자기 원승지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연실 절을 하였다.
원승지는 깜짝 놀라서 황망히 읍을 행하여 예를 하고 나서 말했다.
[이러지 마시오.]
하철수가 완강히 말했다.
[당신이 나를 제자로 삼아 줄 때까지 난 일어나지 않겠소.] 청청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숨을 쉰 후 말했다.
[하교주처럼 훌륭한 무술의 소유자를 감히 누가 제자로 삼겠어요?]
하철수가 말했다.
[사부님, 저를 제자로 거두어 주시지 않는다면 난 평생토록 이 자리에 꿇어 엎드려 있겠습니다.]
원승지가 말했다.
[내가 사문을 떠난 지 1년도 채 안되었는데 어찌 제자를 받아들일 수 있겠소? 게다가 하교주의 무공이 결코 내게 뒤지지 않으니 우리 서로 도우며 무술을 갈고 닦읍시다. 그러니 스승으로 삼는다는 말은 다시 거론하지 말도록 합시다.]
하철수는 꼿꼿이 꿇어 앉아 좀처럼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원승지가 그녀를 일으키려 하자 하철수는 팔꿈치를 오그리면서 웃으며 말했다.
[제 손엔 독이 있어요.]
빛이 번쩍하더니 철갈고리가 그의 손바닥을 그었다.
원승지는 두손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뻗었다. 순식간에 하철수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의 무공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공중에서 모을 모으더니 갑자기 뒤로 두 척 가량 물러나 땅에 내려 앉았지만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무리들은 두 사람 다 수준 높은 무공을 연출해 내자 일제히 탄성을 보냈다.
원승지가 말했다.
[하교주, 휴식을 좀 취하시오. 난 나가서 손님을 만나뵈야겠소.]
말을 마치고 문을 나서려 하자 하철수가 태도를 바꾸며 황급히 소리쳤다.
[당신, 정말 나를 제자로 삼는 것을 허락치 않을 거요?] 원승지는 못들은 척했다.
[좋아요. 내가 당신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지요. 어떤 사람이 한밤중에 초상화를 가져다 놓았어요.]
하철수는 청청이 여자인 것을 안 이후 그녀가 원승지에게 깊은 관심이 있는 것을 알아 차렸다. 게다가 원승지 역시 청청에 대한 태도가 범상치 않은 듯하여 곧 창가에 노여진 초상화 건이 이용의 큰 가치가 있으리라 믿었다.
청청은 영문을 몰라 눈만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원승지는 어느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생각했다.
(세상천지 두려울게 없는 하철수가 어떤 일이든 모두 해낼 수 있으리라.)
실상 자신과 아구의 일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도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청춘남녀가 한밤중에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것이 그녀에 의해 전해지면 청청이 오해할 것은 물론이요, 자신과 아구의 명예가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마음이 조급해져 애꿎은 손만 매만지며 초조해 하고 있었다.
하철수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허락해 주심이 좋을 듯 싶습니다.]
원승지는 마지못해 긍정의 뜻을 보였다.
[음, 음.]
하철수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허락하셨어요? 아이 좋아라!]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원승지를 행해 큰 절을 올렸다.
원승지는 반 강제적으로 벌어진 이 상황에 황당해 하며 반절로 답하였다.
일행들이 앞을 다투어 축하해 주었다.
청청은 의혹이 가득 차서 하철수에게 물었다.
[당신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려 했소?]
하철수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교 중에 일문사법이 있어요. 한 사람의 초상을 그려 침대 밑에 두고 그 초상을 향해 절을 하고 법을 행하면 그 초상화의 장본인은 곧 머리와 가슴이 아프기 시작하여 3개월 동안이나 낫질 않는다고 하오. 예전에 사부님이 나를 제잘 거두시지 않기에 난 사부님에게 이 법을 행하겠노라고 협박했었지요.] 청청은 이 말이 미심쩍었지만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원승지는 하철수가 거짓말로 둘러대는 것을 보고 한편 안심은 되었으나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 천하에 스승을 모시는데 이것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심성을 고치지 않는다면 절대 그에게 무술을 전수하지 않겠다.)
그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사실 나는 제자를 키울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오. 그러나 당신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니 우리 잠시 명색만 붙여 놓읍시다.
사부님을 기다렸다가 그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나는 비로소 당신께 화산파 본문 무공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오.]
하철수는 활짝 웃으며 눈으로만 대답했다.
청청이 말했다.
[하교주!]
하철수가 말했다.
[다시는 나를 교주라고 칭하지 마시오. 사부님, 원컨대 내게 다른 이름을 하나 지어 주십시오.]
원승지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읽은 책이 별로 없어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구려. <척수)라는 이름이 어떻겠소? <척>은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삼가라는 뜻이고, <수>는 규칙을 엄수하여 정정당당하라는 뜻이오.] 하철수가 기뻐하며 청청에게 말했다.
[좋아요. 하상공, 아니 하사숙, 이제 나를 <척수>라고 불러 주세요.]
청청이 말했다.
[당신이 나보다 나이도 많고 재능도 나보다 뛰어난데 어찌 나를 사숙이라 부르오?]
하척수가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지금이야 당신을 사숙이라고 부르지만 얼마 안 있어 당신을 사모라고 불러야 할걸요?]
청청의 양볼이 붉게 물들었으나 내심으로는 기뻤다
이때 수운과 민자화가 도착하자 일행들은 밖으로 나갔다.
원승지가 말했다.
[황옥도장의 행방을 이 두 사람에게 들려 주시구려.] 하척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운남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하늘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문과 창이 진동을 했다.
모두는 바닥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성은 계속되었지만 분명 초래벽력은 아니었다.
정청죽이 말했다.
[이건 포성이오.]
일행들은 대청으로 올라왔다.
이때, 홍승해가 대문 밖에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츰왕 대군이 도착했습니다!]
포성은 끊이질 않았고 멀리 성밖에는 불빛이 하늘을 밝혔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것으로 보아 츰왕의 군이 이미 성밖까지 공격해 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원승지가 수운에게 말했다.
[도장, 그녀가 나를 이미 스승으로 삼았소. 사부님의 일은 우리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하척수가 말했다.
[황옥도장은 노파에 의하여 운남대리영사산 독룡동 안에 갇혀 이소. 이것을 가지고 가 그를 구해 내시오.]
말을 마치고 뱀 모양을 한 검은 색 철호각을 건네 주었다.
수운과 민자화는 사부님이 무사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들은 하척수에게 몇 번이나 감사의 뜻을 표하고 호각을 받아 들었다.
하척수가 말했다.
[이것은 나의 영부요. 당신들이 곧 그곳으로 간다면 운남교도들은 아직 내가 반교했다는 사실을 모르므로 이 영부를 보면 곧 병사를 풀어 줄 것이오.]
수운과 민자화가 사부를 구하러 서둘러 길을 나섰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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