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4-6

3학년2반 | 2022.01.18 07:58:09 댓글: 0 조회: 316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3099


* 제 4 권 *

- 6 - 애정(愛情)과 증오(憎惡)

모두들 좋은 말을 타고 있었으므로 여정은 무척 빨랐다.
그들은 얼마 안되어 원평에 도착했다.
일행이 객점에 들어 밥을 먹고 막 출발하려 할 즈음에 홍승해가 담 귀퉁이에 전갈 한 마리와 지네 한 마리가 못에 박힌 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조금 이상히 여기고 원승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분명 오독교와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하척수와 같이 오지 않았으므로 그 두 마리의 벌레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홍승해가 객점의 아이와 몇 마디 나누면서 슬며시 물어 보았다.
[저 모퉁이의 두가지 독물이 조금 이상하구나.]
그 아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만일 내가 은을 받지 않았다면 정말 저것들을 벌써 던져버렸을 거에요. 참 성가신 노릇이지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두 독물을 가리키고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이틀도 안되었는데 이렇게 묻는 사람이 손님까지 합쳐 열 사람은 될거에요.]
홍승해가 급히 물었다.
[누가 박은 것이더냐?]
그 아이가 대답했다.
[어떤 노파 거지이지요.]
홍승해가 원승지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물었다.
[그 사람들이 붙여 놓았단 말이지?]
그리고는 은닢 두 냥을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애는 돈을 받고 웃었다.
[거지라고 부르지도 않던데요.]
원승지가 끼어 들며 물었다.
[그 노파 거지가 독물을 박을 때 그 옆에 누가 있었느냐?] 그 아이가 대답했다.
[그날 일은 정말 이상해요. 먼저 어떤 잘생긴 어린 상공이 혼자 와서 술을 마셨고.......]
원승지가 급히 물었다.
[나이는 어느정도 되었더냐? 그리고 어떻게 생겼더냐?] 그 애가 대답했다.
[모양을 보니 당신보다 몇 살은 더 아래인 듯하고 잘생겼길래 전 어느 극단의 단원인 줄 알았죠. 나중에 보니 허리에 장검을 찼습니다. 그리고 마치 집안 식구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술을 마시는데 금방 얼굴이 붉어져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측은한 생각이 들게 했지요.]
일행은 그가 분명 청청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최희민이 다그치듯 말했다.
[더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아이가 깜짝 놀라 펄쩍 뛰며 책상을 만지락거리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그의 뒤를 따를 건가요?]
원승지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아이가 최희민을 한 번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 청년 상공이 잠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계단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어떤 노파가 올라왔어요. 머리는 은처럼 희고 손에는 용머리를 한 지팡이를 짚고 있었어요. 지팡이로 퉁 하고 한 번 땅바닥을 내려치지 탁자위의 그릇들이 모두 나동그라졌어요.]
원승지는 마음이 몹시 다급해져서 <온방산 그 노인과 만났으니 청청이 어찌 그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아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노인이 앉아 술을 청하고 막 앉자마자 또 한 노인이 올라왔는데, 참으로 이상하게 앞뒤로 모두 네 사람이 올라왔어요. 모두 백발에 흰수염 그리고 빨간 얼굴들이 한 뱃속에서 나온 것처럼 똑같았지요. 네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은 가죽을 들고 어떤 사람은 짧은 창을 든 채로 누구를 쳐다보지도 않고 각자 자기 자리를 하나씩 정해 앉더군요. 나중에 보니 그 청년 상공을 가운데 두고 사방을 둘러쌌더군요. 보면 볼수록 이상했죠. 조금 있더니 그 노파 거지가 와서 계산대로 곧바로 가더니 땡그랑 소리를 냈어요. 무슨 소리인지 알아요?]
최희민이 급히 물었다.
[뭔데?]
아이가 대답했다.
[그 노파 거지가 땡그랑 소리를 내면서 큰 은전 한 냥을 계산대 앞에 던지더니 네 노인과 청년 상공을 가리키며 외쳤어요.
<저 몇 사람 것도 모두 내가 계산하겠소.>라고 말이에요.] 원승지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 초조해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 네 노인만 해도 대적하기 어려운데 또 하홍약까지 만났으니.......)
아이는 더욱 흥미진진한 듯 침을 튀기며 말했다.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혼자씩 술만 마시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그 노파 거지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손을 뻗어 지팡이를 가진 노인에게 백검을 던졌어요.]
최희민이 말했다.
[너, 거짓말 하는게 아니냐? 아무렴, 그 노파가 정말로 칼을 던졌을라구.]
[내가 거짓말해서 무엇하게요? 비록 날으는 검은 아니었지만 무척 날카로왔어요. 순간 그 노인이 젓가락을 들어 딩딩당당 소리를 내니 검은 젓가락 사이에 반짝거리며 끼워져 버렸어요. 내가 가까이 가서 보니..... 무엇인줄 알겠어요?]
최희민이 말했다.
[무엇인데?]
아이가 대답했다.
[알고보니 손톱에 끼우는 것을 모두 그 노인의 젓가락에 끼워져 있었지요. 내가 막 음식을 주문하고 나니 <패∼>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세요?]
최희민이 물었다.
[무엇이길래?]
아이는 그를 끌고 가 탁자 옆에 서서 <보세요!> 하고 말했다.
탁자에는 작은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아이가 젓가락 한짝을 가져와 구멍에 넣으니 꼭 맞았다.
아이는 말했다.
[그 노인이 젓가락을 들어 탁자 위에 꽂았는데 대단한 무공이 아닌가요? 난 엄두도 못내요. 당신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최희민이 <나도 못해!> 라고 대답했다.
아이가 말했다.
[못하셔도 괜찮아요. 그 노파 거지도 그를 당하지 못한 채 끽 소리도 못 내고 눈을 괴상하게 한 번 굴리더니 도망쳐 버렸어요.
그 뒤에 그 청년 상공과 네 노인들이 함께 나갔는데 원래는 일행으로 그 노파를 처치하려고 작전을 세운 모양이에요.]
원승지가 물었다.
[그들이 어느 쪽으로 갔느냐?]
아이가 대답했다.
[서남쪽을 향해 남향으로 갔어요. 다섯 사람이 떠난 지 얼마 안되 그 노파가 다시 돌아와 벽에 저 물건을 박아 놓더니 내게 은 한닢을 주면서 날더러 다른 사람이 만지지 못하게 잘 감시하라고 했어요. 요즘 세상이 혼란하니 우리 주인은 돈을 받는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해서 이제서야 문을 열었는데 이렇게 군수입이 많을 줄이야.......]
그는 아직도 뭐라고 지껄여댔지만 원승지는 그때 이미 문을 열고 나가 말 등에 뛰어 올라 소리쳤다.
[빨리 가자!]

x x x x

청청은 원승지가 아구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 것이 생각할수록 속이 상했다.
자신은 아구의 미모와 견줄 수도 없음은 물론 어디서, 누구에서 태어난 지도 모르는 고아인데 비해 아구는 공주의 신분이었다.
(원승지의 애정이 그녀에게로 옮겨질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원승지가 그녀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았다면 어찌 그리 다정스런 모습으로 함께 돌아올 수 있었겠는가. 혼절한 아구를 마치 피붙이나 되는 양 그렇게 꼬옥 끌어안고....... 또한 아구의 생사 문제에 그렇게 연연해 할 수 있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아구를 놓고 권장군 유종민과 황궁에서 그렇게 시비가 있었다하니 아구에 대한 원승지의 마음은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숭정을 직접 죽이지 못한 것도 아구의 만류 때문이었다고 말했지 않았던가. 아버지의 원수보다도 아구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가 언제 내 말을 그처럼 잘 들어준 적이 있었던가? 항상 내게는 꾸중만 해댔을 뿐이었는데.)
청청은 이런 생각을 한 끝에 결국 북경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마음은 굳혔지만 그 고통을 혼자 감당하지 못한 청청은 우선 어머니의 유해를 화산에 안장되어 있는 아버지의 유해 곁에 합장을 한 후 부모의 시신 앞에서 자결을 하려 결심하였다.
그러던 중 그날 원평에서 뜻하지 않게 온씨 네 노인과 하홍약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온방산이 무공을 써서 하홍약을 쫓아 버린 것이었다.
청청인 이미 죽을 결심을 하고 나서 아무것도 겁날 것이 없었지만 단 한가지, 어머님의 유해를 모시기 전에 그 노인들에게 죽음을 당할까봐 두려웠다.
그녀는 궁리 끝에 그들을 따돌릴 계략을 세웠다. 청청은 온방달 앞에 가서 절을 하면서 <노인장!> 이라고 부른 뒤, 나머지 세 노인에게도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온씨 네 노인들은 그녀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 저으기 놀라는 눈치였다.
청청이 물었다.
[노인장은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온방달은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너는 어디로 가느냐?]
[난 원씨라는 사람과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아직 오지 않았군요.]
네 노인들은 원승지가 온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서 어떻게 감히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온방의가 말했다.
[우리와 같이 가자.]
청청은 <저는 사람을 기다려요> 하면서 짐짓 꾸며댔으나 온방의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객점을 나서서 함께 말을 타자고 했다.
네 노인들은 황폐하고 인적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한참을 가다 성으로부터 멀어지자 그제서야 말에서 내렸다.
온방의가 청청의 손을 끌어서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면서 외쳤다.
[창피를 모르는 년. 오늘 너를 잡아 우리 손안에 넣어 두겠다.]
청청은 울면서 말했다.
[노인장들!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당신들은 날 에워싼 후에 난 줄곧 당신들 말을 잘 들었어요.]
온방의는 <아직도 살고 싶으냐?> 하면서 척 소리와 함께 갈고리 하나를 빼어 들었다.
청청이 울면서 외쳤다.
[저를 죽이시려구요?]
이번에는 온방오가 대답했다.
[너는 죽어야만 해.]
청청은 다시 애원하였다.
[저의 어머니는 당신의 친딸이 아니었던가요? 한가지만 부탁하겠어요.]
그러자 온방산이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런 생각일랑 버려!]
청청이 흐느끼며 말했다.
[제가 죽은 후에 이 편지를 제 친구 원씨에게 전해주고 날 기다리지 말고 좋은 사람이나 찾으라고 해주세요.]
네 사람은 <좋은 사람을 찾으라>는 말에 놀라서 일제히 물었다.
[무엇이라고?]
[난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그건 말할 수 없어요. 그냥 이 편지를 좀 전해 주세요. 제발.......]
그리고는 옷을 찢어서 조각을 내더니 품에서 바늘 쌈지를 꺼냈다. 바늘로 손톱 밑을 찔러 나오는 선혈로 천 위에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초연한 모습이었다.
네 노인은 계속 무슨 보배를 찾느냐고 물었으나 그녀는 상관하지 않고 다 쓴 후에 온방산에게 전해 주었다.
[할아버지, 당신이 직접 전해줄 필요는 없어요. 사람을 시켜 원평 아까 그 객점에 가져다 주면 될 거에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원승지를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네 노인은 청청이 마음이 끊어질 듯이 아파하는 것을 보고 분명 속임수는 아니라고 판단한 뒤 천 위에 쓰여진 글을 보았다.
<이젠 다시는 볼 수가 없군요. 우리 아버지의 보배를 모두 당신께 드리니 파내 가지세요. 그리고 절 기다리지 마세요. 청청 올림.>
온방의가 말했다.
[무슨 보배냐? 네가 정말 보배를 가지고 있단 말이냐?] 청청이 울면서 말했다.
[난 아무것도 말할 수 없어요. 말해도 죽고 말 안해도 죽을 거이니 말 못해요.]
온방오가 말했다.
[흥! 보배가 있긴 뭐가 있어? 너의 죽은 애비가 과거에 우리를 속이더니 이젠 네가 속을 차례냐?]
청청은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품속에서 한 쌍의 옥나비를 꺼내었다. 이것은 철상자 속의 보물 중의 하나였는데 팔아 쓰려고 했을 때 갑자기 한쌍의 옥나비로 변하여 몸에 달라붙었으므로 청청과 원승지가 보배를 얻은 것을 기념한 것이었다.
청청이 조용히 일어섰다.
[이 편지를 전해 주든 안 전해 주든 당신들 마음대로 하시고 이제 저를 죽이세요.]
그때 한 쌍의 옥나비가 때구르르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청청이 허리를 굽혀 주으려 하자 온방오가 먼저 집어들었다.
네 노인들은 수십년 동안이나 도둑질을 해왔는데 어찌 보화를 못 알아보겠는가? 이렇게 진귀한 옥나비를 보게되니 모두 빨개져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어디서 가져온 것이지?]
청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방산이 말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너를 살려 줄 수도 있어.]
청청이 대답했다.
[옛날에 나와 원상공과 둘이서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지도를 보고 보물 열 상자를 찾아냈었어요. 모두가 진기한 보배였지요.
하도 물건이 많아서 다 가지고 올 수 없어 우선 이 옥나비 한쌍만 가져왔어요. 당신들이 잘만하면 같이 가서 전부 파올려고 했는데, 당신들을 보니.......]
그러면서 청청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한쪽으로 몰려가서 작은 소리로 상의를 했다.
온방달이 말했다.
[보아하니 보물이 있다는게 거짓은 아닌 듯하군.]
온방의가 이어서 말했다.
[저 애를 닥달하여 끌고 가 가져오도록 합시다.]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그의 말에 응했다.
온방산이 말했다.
[우선 저 애를 살려 주었다가 보물을 찾은 후에 처치하도록 하지요.]
온방오도 말했다.
[내 생각엔 우리가 보물을 꺼낸 후에 그 구덩이에 저 애를 묻어 놓으면 나중에 원씨 놈이 와서 저애의 시체를 볼 것이 아니겠소? 어떻소?]
네 사람은 상의가 끝난 후 청청을 위협하였다.
청청은 처음에는 반항하는 척하다가 나중에는 할 수 없이 응 하는 척 꾸며대면서 보물이 감추어진 곳은 화산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그들을 화산으로 데리고 가 아버지의 유해가 묻힐 곳을 찾은 다음, 그들이 산속에서 이곳저곳을 파헤칠 동안 어머니의 유해를 아버지의 유해와 합장하고 자결할 계획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거짓으로 꾸며댔지만 네 사람은 오직 보물에 대한 욕심으로 전혀 의심할 줄을 몰랐다.
예전 온씨의 다섯째가 금사랑군을 잡아 화산으로 데리고 간 후 보배를 찾지도 못하고 그만 실종되어 버렸으므로 그들의 머릿속에는 보물이 틀림없이 화산의 어느 구석엔가 박혀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네 사람은 청청을 데리고 쉬지도 않고 말을 몰아 길을 재촉하였다. 그것은 원승지가 그들의 뒤를 따라올까 겁이 난 때문이었다. 그렇게되면 보물은 고사하고 그들의 목숨까지 위태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다섯 사람은 하루종일 산길을 달려왔으므로 몹시 피곤하였던 까닭에 한 객점에서 우선 목을 축였다.
일행 중 온방의가 가장 몸집이 커서 먹는 양도 많았다. 그는 계속 주문했다.
[볶은 야채와 술과 면을 좀 가져다 주시오.]
심부름하는 사람이 음식을 가죠오자 그는 보통때와 마찬가지로 후루룩 소리를 내어가며 먹였다.
셋째 노인과 청청이 막 먹으려고 젓가락을 드니 온방의가 국물속에 무엇을 끄집어 내더니 놀라 움직이질 못했다.
네 사람이 그가 들어올린 것을 보니 놀랍게도 아주 큰 검은 거미였다.
온방달이 그의 손을 만졌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맥박이 희미해지고 얼굴색이 까맣게 죽었으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온방오는 노하여 심부름꾼을 잡아 다리를 부러뜨려 죽인 다음 주인장에게 달려가 가슴을 잡고 소리쳤다.
[이런 간덩이가 부은 녀석, 감히 사람을 죽여?]
젓가락으로 거미를 드니 주인은 사색이 되어 말을 더듬거렸다.
[우리...... 우리집은 칠십여년이나 되었지만 주방이 아주 깨끗한데 어찌 이런... 이런 물건이.......]
온방산은 왼손으로 그의 얼굴을 찰싹 때리며 땅바닥에 꿇어 앉힌 다음 오른손으로 거미를 집어 그의 입속에 처 넣으니 순식간에 주인도 죽어버렸다.
방산과 방오 두 사람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 동안 온방달은 청청의 손목을 꼭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주인과 손님 등 7, 8명을 죽이고 객점에 불까지 질러버렸다.
세 노인은 온방의가 시신을 한적한 곳으로 가져가 장례를 치르며 비통하고 분해하였다. 어찌 거미 한 마리가 이런 커다란 죽음을 만들 줄 알았겠는가?
청청은 오독교의 소행을 일찍이 체험한 터라 속으로만 <그 노파 거지가 우리를 따라 와서 죽이려 드는구나.> 라고만 생각하였다.
다음날, 네 사람은 다시 객점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먼저 심부름꾼들에게 먹어 보게 한 다음 아무일이 없자 그제서야 먹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은 죽음을 당한 뒤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저녁, 객점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말을 훔쳐 갔다.
온방오가 몸을 일으켜 나가 보았다. 그가 마굿간에 이르렀을 때 어둠속에서 씩 하면서 화살이 날아 들었다.
그는 급히 몸을 피했으나 이미 늦었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는 눈을 뜰수가 없어서 허리띠를 풀어 어둠 속에서 마구 휘둘러대니 그 자객의 등은 절단이 나버렸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참으로 흉악한 노인네군.> 이라면서 달려드니 온방오는 허리띠를 거꾸로 돌려 혼신을 다해 내리쳤다. 그 사람은 벽에 머리를 부딪친 채 골이 박살나 버렸다.
온방달과 온방산은 온방오의 신음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나갔다. 온방오의 얼굴은 할퀴어지고 패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온방달은 그를 안았고, 온방산은 적을 쫓았으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오니 온방달이 온방오의 시체를 안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중독이 되어 버렸던 것이었다.
온방달이 울면서 말했다.
[20년전 그 금사가 우리 손아귀에서 빠져 나갔을 때 이미 어깨가 절단되어 폐인이 되어 돌아가셨다. 당시 그 오독교가 그를 구하지만 안했더라도.......]
온방산이 이어 말했다.
[그렇다. 오독교와 우리는 항상 암암리에 싸워 왔다. 이번에 사람들이 조화순의 힘을 믿고 큰일을 도모하였는데 오독교의 하철수가 돌연히 반기를 들어 일을 그르쳤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온방달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갑자기 일어서며 말했다.
[금사가 사용하는 독약이 이렇게 끔찍한 걸 보니 분명 오독교의 것이지요?]
온방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분명하다.]
두 사람은 당시 금사랑군이 보복할 때 비참했던 상황이 떠오르자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온방오의 시신을 묻고 나서 한참 동안을 의논하였다. 먼저 화산에 올라가 보물을 찾은 후 오독교를 찾아내 보복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다시 당할지 모를 일이므로 음식에 각별히 조심할 것은 물론 밤에 잠자리에서도 방비태세를 갖추기로 했다.
두 형제는 청청과 함께 절의 넓은 마루에서 묵었다. 온방달은 나이가 많기는 해도 기력이 좋아서 2개의 큰 돌을 옮겨와 앞문과 뒷문을 막고는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한밤중이 되자 불상 뒤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 왔다.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떴다. 살펴보니 쥐새끼였다.
온방산이 막 다시 잠이 들려할 때 어디선가 콧속으로 이상한 향기가 흘러와 몸이 아주 상쾌해지고 날아 다니는 것처럼 온몸이 가벼워졌다.
그는 즉시 정신을 가다듬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온방달이 늙기는 하였으나 수십년 동안 강호를 누벼왔기 때문에 청청의 손을 재빠르게 끌어다 탁자에 앉혔다.
별빛이 흘러 들어와 온방산의 손동작을 비쳐 주었다. 바람소리가 휙하고 일어나고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불상이 두 조각 나면서 불상 뒤쪽에서 두 명의 황색옷을 입은 동자가 튀어나왔다. 한 사람은 칼을 들고 온방산을 공격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그마한 통을 들고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연기는 악취를 내면서 두 개의 침을 쏘아 그 동자들을 죽였다. 그러나 온방산은 여전히 마구 칼을 휘둘러댔다.
온방달이 말했다.
[아우, 이제 되었네.]
그러나 온방산은 이미 중독이 되어 알아듣지를 못하고 계속 칼을 휘둘러 댔다.
온방달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그의 손에서 칼을 뺏아 버렸다. 그랬더니 온방산은 갑자기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지팡이를 주워 자기의 가슴을 치더니 피를 쏟아내며 죽어버렸다.
청청은 세 명의 노인들이 며칠 새에 오독교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 처참함은 두려웠지만 온방산은 청청의 친외할아버지로, 지금까지 다른 온씨들에 비해 그녀에게 잘 대해 주었으므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온방달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온방산의 시체를 안고 나가 묻어 주었다. 온방달은 길을 가는데 더욱 조심하였다.
협서성에 들어선 후, 어떤 홍색옷의 동자가 그에게 접근해 왔다. 온방달은 손을 들며 천지가 떠나갈 듯한 소리를 질렀다. 소리만 질렀으므로 그에게는 한 마디의 말도 할 수 없었다.
화산이 가까워지자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들이 몹시 목이 말라 목을 축이고 말도 좀 쉬게 하려고 정자에 앉았는데 어떤 농부가 그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댁이 온씨이십니까?]
온방달이 되물었다.
[왜 물으시는 거요?]
그 농부가 대답했다.
[금방 어떤 사람이 내게 동전 두 닢을 주면서 이 편지를 당신에게 전해 주라고 시켰어요.]
온방달이 말했다.
[그 사람은 어디 있소?]
농부가 대답했다.
[벌서 말을 타고 가 버렸는데요.]
온방달은 무슨 계략이 숨어 있을까 두려워서 청청을 시켜 뜯어 보게 하였다.
열어보니 별 이상한 건 느낄 수 없었다. 편지는 모두 3장이었다. 첫장에는 <너희 형제가 모두 죽었는데 원인을 알고 싶으면 다음 장을 봐라>라고 쓰여 있었다.
온방달은 욕을 해대며 말했다.
[제기랄!]
손가락에 침을 묻힌 다음 급히 다음 장을 보니 <너도 곧 죽게 될 것이다. 만일 믿지 않느다면 또 다음 장을 보아라.> 라고 쓰여 있었다.
온방달은 몹시 조급해지고 화가나서 손가락으로 침을 묻혀 다음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한 마리의 커다란 지네가 그려져 있었고 또 한 개의 해골이 그려져 있을 뿐 한 글자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는 화가 치밀어 그 종이를 땅바닥에 구겨 버렸으나 오른손 식지와 혓바닥이 점점 마비가 되며 식은땀이 흘렀다.
원래 그 세 장의 종이에는 독즙이 발라져 있었는데 종이에다 사람을 분노하게 하는 말을 써 놓음으로써 그 사람이 흥분하여 손에 침을 발라 종이를 빨리 넘기게 한 것이었다. 손가락에 묻은 독은 자연히 입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손가락에 묻은 독이 자연히 입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것은 오독교 36대법 중의 하나이다.
하홍약이 교도들에게 독물 사용법을 전수해 주고 있을 때 장춘구도 이렇게 죽었던 것이다.
온방달이 놀라 고개를 드니 그 농부는 벌서 수십보나 멀리 가버린 뒤였다.
온방달은 분노에 차서 정자를 뛰쳐 나왔다. 그는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하였으나 기를 모아 그 농부를 향해 날아갔다.
그 농부는 사실 오독교인으로서 일의 성공을 기뻐하는 찰나 온방달의 빠른 공격을 가슴에 받고 땅에 쓰러졌다.
온방달도 처참한 웃음을 지으며 넘어졌다.
청청이 <큰할아버지! 어떻게 된 일이지요?> 라고 외치며 몸을 부축했다. 온방달은 왼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할퀴며 공격을 해왔다.
청청은 그가 죽어가면서까지 독수를 뻗칠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던 터라 눈앞에 번쩍 은광이 빛나는 것을 보고 피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가슴을 찔리고 죽었구나 싶어 눈을 감은 채 꼼짝 않고 쓰러져 있는데 갑자기 땡 하고 소리가 들리더니 발 위로 무엇이 떨어졌다.
눈을 떠 보니 어떤 사람이 떨어뜨렸는지 단도가 밑으로 떨어지다가 발 등을 스친 것이었다.
그녀가 몸을 돌려 자기를 구해준 사람을 보려했으나 그 사람에게 붙잡힌 채 꼼짝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가죽끈을 꺼내어 그녀의 두 손을 뒤로 묶은 다음에야 그녀 앞에 나타났다. 다름 아닌 오독교의 거지 노파인 하홍약이었다.
청청은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외쳤다.
(이런 악한의 손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처참하게 죽을까. 아까 큰할아버지에게 당했으면 차라리 좋았을 걸.)
하홍약이 음흉하게 웃었다.
[내가 너를 단칼에 죽이길 원하느냐? 아니면 독이 없는 뱀이 49일 동안 천천히 물어 뜯어 죽이기를 원하느냐?]
청청이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홍약이 다시 말했다.
[그러나 만일 네가 나를 너의 부친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면 너를 놓아 주겠다.]
청청이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나도 아버지의 묘지를 찾아가니 저 사람을 데리고 가면 되겠다.)
그래서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마침 아버지를 찾아가는 중이었어요. 원하신다면 같이 갑시다.]
하홍약은 그녀의 대답이 이렇게 쉽게 나오니 의심이 갔지만 금사랑군은 이미 폐인이 되었을 것이고 무공도 없어졌을 것이니 겁이 나지 않아 <좋아! 앞장 서라!> 하고 말했다.
청청은 외할아버지를 매장한 후 떠나는 떠나는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날 풀어줘요. 할아버지를 매장하게요.]
[흥! 풀어달라고?]
하홍약은 청청의 애원은 들은 체도 않고 온방달의 단도를 들어 길 옆에 큰 구덩이를 팠다. 온방달과 그 오독교인을 같이 던져 넣은 후 진흙으로 큰 구덩이를 팠다. 온방달과 그 오독교인을 같이 던져 넣은 후 진흙으로 그 위를 덮으며 혼자 욕을 해댔다.
[너의 아버지는 비록 악한이지만,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이 그를 모욕하는 것은 못참아. 이 네 사람은 죽어도 상관이 없어. 난 어려서부터 그들의 모욕을 감수해 왔다. 오늘에야 마음의 한을 풀었는데, 네가 그들을 할아버지라고 불러?]
청청은 아무 말도 않고 생각했다.
(내가 말하면 저 사람은 또 우리 어머니를 욕하겠지?) 이날, 두 사람은 4, 50리를 걸어 반산에서 묵었다.
하홍약은 저녁에는 청청의 두 발을 밧줄로 꽁꽁 묶어 도망치지 못하게 하였다.
다음날 아침, 막 동이 트려고 할 때 하홍약은 청청의 다리를 풀어 주었다. 산길이 갈수록 험했기 때문이었다.
하홍약은 이미 왼손이 절단되었으므로 청청을 잡고 갈 수가 없어서 그녀의 손에 묶인 밧줄을 풀어준 뒤 그녀를 앞장 세우고 자기는 뒤에서 감시하며 따라갔다.
청청은 처음으로 화산에 가는 것이므로 아버지가 묻힌 곳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은 큰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청청은 험한 산속에서 적에게 붙잡힌 채 하늘의 달을 지금까지의 일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원승지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며 무섭기도 하고 자신의 처지가 딱하기도 하여 좀처럼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출발한 지 3일째 되는 날 저녁에 화산 꼭대기에 도착하였다. 청청은 원승지가 상세히 일러준 것과 흡사한 장소를 찾았다.
절벽을 깎아 세운 듯한 돌산 위에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폭포가 나는 듯이 흐르는 곳이었다. 그녀는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하홍약이 말했다.
[그가 저기에 있느냐?]
청청이 말했다.
[저 바위에 굴이 하나 있는데 아버지는 거기 계세요.] 하홍약은 고개를 돌려 당시 금사랑군이 몸을 숨긴 곳임을 확인한 뒤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자, 올라가자!]
청청은 그 노파의 얼굴을 보니 정말 무서웠다. 비록 죽기로 결심한 몸이지만 그 노파의 살기등등한 눈을 보는 순간 식은땀이 절로 났다.
두 사람이 정상에 올라 수십 보를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하홍약은 청청의 손을 끌어 숲속에 몸을 숨긴 다음 철손톱을 낀 오른손으로 목을 죄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소리를 내면 죽어!]
숲속에서 가만히 동정을 살펴보니 한 노인과 중년 남자가 얘기하고 있었다.
청청은 그 사람들이 목상도인과 원승지의 사형 동필철산반 황진임을 직감하였다.
물론 그 사람들의 무공은 하홍약과 비교가 안되게 뛰어나지만, 지금 자신이 움직이기만 하면 철손톱이 즉시 목젖을 뚫어 버릴 것이므로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황진이 웃으며 말했다.
[사부는 며칠내에 곧 올라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우들도 곧 당도하고요. 그러면 바둑의 적수가 없다고 걱정하실 필요도 없으시겠네요.]
목상이 웃으며 말했다.
[바둑만 아니라면 우리 화산파의 모임에 이 늙은이가 무엇하러 서둘러 왔겠느냐?]
두 사람은 웃으면서 점점 사라져 갔다.
하홍약은 화산파의 무공을 익히 알고 있는 터에 그들이 화산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것을 듣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굽혔던 몸을 일으켜 뒷 자루에서 끈 하나를 꺼내어 청청과 자기의 손을 묶은 다음 천천히 암벽을 기어 올랐다.
청청이 벽을 오르다 굴을 보고 소리쳤다.
[여기에요!]
하홍약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수십년 동안을 하루라도 빠짐없이 못잊던 그 정경이 떠올랐다.
그를 갈갈이 찢어 죽일까, 아니면 심장을 빼서 휘두를까. 드디어 마음속 깊이 원했었던 그 꿈이 이루어지려는 순간이 온 것이었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리며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동굴 주위의 돌과 풀을 마구 제치고는 청청더러 먼저 들어가라고 한 다음, 자신은 손바닥에 극약손톱을 끼고 금사랑군이 기습해 올 것에 대비하였다.
청청은 들어가면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몇 발짝을 들어가니 동굴은 칠흙같이 어둠속이었다. 하홍약은 화섭자(火燮自)를 이용해 불기둥을 만들어 청청에게 들게 하였다.
청청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다 타버리면 어떻게 살아서 돌아가지? 나야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여기에서 죽을 것이지만 저 노파는 돌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하홍약은 안으로 들어가봐도 사람의 기척이 전혀 없자 갑자기 청청에게 달려들어 목을 휘어 잡았다.
[네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순순히 못 죽을 줄 알아라.] 동굴 안은 찬 기운이 감돌아 몸은 얼어붙는 것 같았고, 불기둥의 불은 바람에 흔들거렸다.
한참을 더 걸어가니 석실 같은 것이 하나 보였다. 하홍약이 깜짝 놀라서 그곳을 살펴 보았다.
네 벽에는 무공의 도형이 무수히 그려져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었다.
<비법을 소중히 하고, 우리 파에 들어 온 이상 화를 입어도 원망치 마라.>
금사랑군과 그녀는 같이 있는 날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가 그녀에게 그려주었던 초상과 글자 때문에 하홍약은 그 글씨를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벽에 쓰여진 글씨는 분명히 금사랑군의 필적이었다.
문자는 벽에 남아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으므로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아파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설의, 나오시오! 난 당신을 해치지 않기로 결심했소.] 그러나 사방에서 돌가루만 푸수수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그녀는 다시 청청에게 고함쳤다.
[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청청은 울면서 땅바닥을 가리켰다.
[여기....... 여기 있어요.]
하홍약의 눈이 반짝 하였다. 그리고는 청청의 손목을 잡으며 기절할 듯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이라고?]
[아버지는...... 여기... 묻히셨어요.]
[아, 그... 가... 그... 가...... 죽어 버렸다니!]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쿵 하는 소리를 내며 금사랑군이 옛날에 앉곤 했던 그 돌 위에 주저 앉으며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마음속에선 수십년간 쌓여왔던 원한이 일시에 사라지고 예전에 다정했던 정이 되살아나 그녀는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결국 청청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가거라, 너를 놓아 주겠다.]
청청은 그녀가 비통해 하는 것을 보고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 아버지가 그녀에게 잘못 대해준 것이 마치 원승지가 자기에게 지금 하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져 와락 하홍약을 껴안으며 대성통곡하였다.
하홍약이 말했다.
[빨리 나가거라. 불기둥이 타버리면 영원히 나갈 수가 없다.] 청청이 물었다.
[당신은요?]
[난 여기서 너의 아버지와 함께 있겠다.]
[나도 가지 않겠어요.]
하홍약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청청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고 갑자기 땅바닥을 미친 듯이 파기 시작했다.
청청이 놀라 물었다.
[무얼 하시는 거에요?]
하홍약이 구슬프게 대답했다.
[난 20년 동안이나 그를 애타게 그리워했다. 이제 그의 산 모습을 못 보게 됐으니 뼈라도 볼까 한다.]
청청은 두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하홍약의 오른손이 쇠삽과 같이 계속 진흙을 파들어가니 결국 구덩이에서 한 무더기의 뼈가 나타났다. 바로 원승지가 묻은 금사랑군의 유해였다.
청청은 부친의 유해를 어루만지면서 통곡을 하였다.
하홍약은 다시 더 깊이 파들어가 해골을 집어 올려서 품에 안고는 울고, 만져보고, 볼에 부비고, 디시 울고.......
그러기를 계속했다. 실로 제 정신이 아닌 모습이었다.
조금 지난 후, 하홍약이 중얼거렸다.
[하랑, 하랑, 저에요. 으으흑....... 제가 당신을 보러 왔어요.]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파이소곡을 불렀는데, 청청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홍약은 한참 동안이나 미친 듯이 자신의 볼에 해골을 부벼대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무엇인가가 얼굴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해골을 불빛에 비쳐보니 유해의 이빨이 작은 금비녀 하나를 꼭 물고 있었다. 그 비녀는 너무 가늘어서 처음엔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홍약이 유해의 입에 손을 넣어 그 비녀를 빼려고 하는 찰나 유해의 이빨이 와르르 빠지면서 금비녀도 땅에 떨어졌다.
그녀는 그것을 주워 진흙으로 닦아내고 살펴보았다. 그녀의 얼굴색이 확 변하면서 다급히 물었다.
[너의 엄마가 온의냐?]
청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홍약은 슬프고 분한 마음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좋아, 좋아. 당신은 끝내 그 천한 계집을 못잊고 그 계집의 비녀를 입에 물고 죽었구려.]
그녀는 말을 마치고 금비녀에 새겨진 <온의>라는 두 글자를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비녀를 입속에 넣고 마구 씹어댔다.
그녀의 입이 곧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
청청은 그녀의 정신이 이미 비정상적인 것임을 보자 두 사람의 지난 일들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녀는 짐을 풀어서 소가죽을 펼친 다음 어머니의 유해를 조심스럽게 구덩이에 부었다.
하홍약이 가만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너 지금 뭐하는 거냐?]
청청은 아무 대답도 않고 유해를 다 부은 다음, 진흙으로 그 위를 덮으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버지! 어머니! 하늘나라에 계시다면 이 딸을 보고 계시겠지요? 이제 합장하였으니 두 분 편히 눈 감으소서.)
하홍약은 멍청이 바라보고만 있다가 무엇에 놀란 듯 물었다.
[이것이 너의 어머니 유해더냐?]
청청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홍약은 손을 들어 청청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더니 힘껏 밀어서 넘어 뜨렸다.
그리고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합장할 수 없어! 합장시킬 수 없어!]
그러면서 손으로 땅을 파헤쳤으나 두 사람의 유해는 이미 진흙과 범벅이 되어 버려서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질투는 불같이 타올라서 구덩이에서 뼈를 들어올리더니 고함을 쳤다.
[내가 너를 불살라 버릴 거야. 불살라 버릴 거야. 그리고 화산 아래에 뿌려 너를 사방에 날려 버릴 거야. 사방에! 영원히, 영원히 그 천한 계집과 같이 있지 못하게 할 거야!]
청청은 급히 창을 빼려고 했으나 그녀에게 밀려 땅바닥에 고꾸러졌다.
하홍약은 웃도리를 벗어 바닥에 펼치더니 유해를 옷 위에 쌓아 놓고 그 위에 불을 지폈다.
그녀는 왼쪽에 청청을 묶어 꼼짝 못하게 만들고 오른손으로 불을 붙이니 유해는 순식간에 붕 타올라 동굴 속은 연기로 가득찼다. 그녀는 <하하!> 웃다가 갑자기 콧속으로 이상한 냄새가 들어옴을 느끼자 경악을 하면서 외쳤다.
[너는 참 지독하구나!]
청청도 이상한 냄새를 맡고는 돌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하홍약은 불타오르는 유해 위에 엎드리고 심하게 기침을 해대면서 소리쳤다.
[좋아, 좋다. 나도 너와 함께 죽고 싶었다. 얼마나 좋으냐.]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똑바로 청청을 응시하였다.
청청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밖으로 뛰쳐 나왔으나 다리에 힘이 빠지고 정신도 혼미해져 그만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x x x x

원승지는 객점에서 하홍약이 벽에 박아놓은 기호를 보고 그것이 바로 그녀가 교도들을 부르는 신호라는 것과 또한 청청이 온씨 네 노인의 손에 들어간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청청이 누구의 손에 들어있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고서 급히 말을 몰아 찾아 나섰다.
얼마 안가서 온씨의 네 노인이 중독사 했음을 발견하고는 더욱 염려가 되었다.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한 채 사방으로 수소문했다. 그 결과 그들이 화산으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화산에 당도했을 때 홍승해가 정자 옆 진흙더미가 이상함을 발견하고 칼로 땅을 파보았다. 놀랍게도 온씨 노인중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가 나왔다.
원승지가 말했다.
[청청은 이제 오독교의 손에 들어간 것이 틀림없으니 빨리 산을 오릅시다.]
안대낭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화산파의 모임에 목인청 도장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나 황사형과 귀사형이 이미 도착해 있으니 꼭 구해낼 수 있을 것이오.] 원승지가 말했다.
[오독교가 감시 화산에 오른 것은 이미 사전에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이니 여러분들은 독수의 손가락을 조심하시오.] 최희민이 대답했다.
[사부께서도 오셨는데 그들을 두려워할 게 뭐지요?]
[자, 빨리 떠납시다.]
일행은 말을 인가에 맡기고 서둘러 산을 올랐다.
산꼭대기에 이르니 갑자기 디디디 하는 소리가 들리며 여러개의 무기들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원승지가 기뻐 소리쳤다.
[목상도장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그리고는 공중으로 동전을 힘껏 던졌다. 3개의 동전은 구름속으로 멀리 사라지더니 한참 후에야 떨어졌다.
최희민이 외쳤다.
[사숙! 사숙은 무공이 너무나 훌륭하시군요!]
원승지가 막 뛰어나가 동전을 받으려는 순간, 갑자기 산허리에서 검은 주판 하나가 날아와서 세 개의 동전에 부딪치면서 그것을 떨어뜨렸다. 한 사람이 나무 뒤에서 빠져 나와 주판을 줍고는 번지르르 빛나는 주판알을 닦으며 크게 웃었다.
바로 동필철산반인 황진이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동생, 아주 씀씀이가 크군. 이런 동전을 함부로 던져 버리다니. 이건 분명히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일인데? 우리처럼 장사하는 사람들이 이걸 보니 가슴이 아프군. 장사하는 사람은 돈이 일단 손에 들어오면 다시는 돌려주지 않는 법일세.] 최희민이 크게 소리쳤다.
[사부님께서 먼저 오셨군요!]
하면서 <퉁퉁퉁!> 하고 세 번이나 머리를 찢는 소리를 냈다.
어떤 곳이 되었든 그는 기뻐서 머리를 힘껏 조아렸다. 그래서 일어날때는 이미가 돌에 부딪쳐 큰 혹이 날 정도였다.
안소혜는 불쌍하기도 하고 성이 나기도 해서 계속 낮은 소리로 투덜댔다.
최희민은 그저 바보처럼 웃었다.
원승지 일행도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일행이 각자 제 사정들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원승지는 청청이 걱정되어 우선 사형에게 그녀를 본 적이 있는가를 물어 보기로 하였다. 그때 갑자기 숲속에서 두 마리의 승냥이가 튀어 나오더니 원승지의 품에 꽉 안겼다.
최희민이 크게 놀라서 <이런! 큰일났군!> 하고 소리치며 주먹으로 때리려 하였다.
두 승냥이는 갑자기 <컹컹> 하고 마구 울부짖으며 원승지의 품을 떠나 절벽쪽으로 맹렬히 뛰어갔다.
최희민이 말했다.
[사숙께서 기르시는 것입니까? 큰일 났군요. 저 승냥이들이 화가 난 모양입니다.]
승냥이들은 아주 멀리 가버려서 몸뚱이가 작게 보였다.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위와 소괴가 분명히 무슨 물건을 숨겨 놓고는 내가 돌아오니 그것을 꺼내 주려고 하는 모양이다.)
자세히 보니 절벽에서 무럭무럭 연기가 나고 있었다. 바로 금사랑군이 매장된 동굴이었다. 깜짝 놀라서 보니 두 승냥이는 그 높은 곳에서 몸짓과 발짓으로 자기를 부르고 있었다.
안소혜도 이것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승지 오빠! 저 두 승냥이가 오빠를 부르고 있잖아요?] 원승지는 <그래, 맞다.> 하고 대답하며 벙어리를 향해 몇 번 손짓을 하니 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석실로 달려가 횃불과 긴 밧줄을 가지고 왔다. 일행은 함께 절벽으로 올라갔다.
원승지가 말했다.
[동굴 속 길은 나만이 아니 혼자서 들어가 보겠소.]
그리고는 옷을 찢어 두 조각 헝겊을 만들어 콧구멍을 틀어막고는 횃불을 밝혀 들고 밧줄을 따라 들어갔다.

## 1권에서는 대위와 소괴가 승냥이로 나오고, ## 5권에서는 원숭이로 나오는군요. 그래서 아래의 문구는 ## 삭제했습니다. 제 생각으론 승냥이보다 원숭이가 났겠죠? ## 두 마리의 원숭이가 주위에서 소리치고 뛰어다니며 귀가 ## 시끄럽도록 소란을 피우는게 몹시 조급한 모양이었다.

원승지가 막 동굴입구에 도착했을 때, 자욱한 연기가 피어 올라 호흡이 곤란했다. 참고 더 들어가니 작은 길이 나오는데 거기에 한 사람이 땅에 누워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바로 청청이었다. 그가 놀라움과 기쁨에 급히 입과 코를 더듬어 보니 호흡은 이미 악해져 있었다. 동굴 안에는 어슴푸레한 불빛이 있었다. 거기엔 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게 보였다. 바로 하홍약이었다.
구하려고 해보니 갑자기 윽하고 속이 미슥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연기 속에 독약이 들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급히 구부려 청청만을 들춰 업고 동굴을 빠져 나오기 위해 밧줄을 잡았다.
벙어리와 홍승해는 힘껏 두 사람을 끌어 올렸다. 원승지는 주위에 이미 독약연기가 없는 것을 보고서야 깊이 두어번 심호흡을 했다. 그러나 갑자기 뱃속이 거북하고 메스꺼워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공중에 토해 버리고 말았다.
일행은 절벽 위에서 매우 걱정을 하였다. 혹시 독기나 독연기에 중독되어 두 사람이 깊은 계속 속으로 떨어져 버리지는 않나해서 염려했다. 벙어리와 홍승해가 힘들게 끌어 올리자 최추산과 최희민도 곁에서 도와주었다.
두 사람을 거의 끌어 올리자 동굴 속에서 갑자기 거대한 소리가 나면서 산의 돌맹이가 날았다. 일행은 모두 놀랐다. 홍승해가 놀라서 밧줄을 잡고 있던 두 손을 놓아 버렸다.
다행히 힘이 센 벙어리는 그 폭음을 듣지 못하였기에 두 손을 번갈아가며 두 사람을 잡아 끌어 올렸다.
원승지는 꼭대기에 이르자마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곧 쓰러져 버렸다. 목상은 급히 두 사람의 맥을 짚어 기를 보냈다. 이때 절벽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 왔다 동굴 속에 아주 많은 화약을 묻었는지, 누가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해 할 뿐이었다.
한참 뒤, 원승지는 천천히 깨어나서 심호흡을 했지만 너무 피곤했다. 그는 거듭 <정말 큰일 날뻔했구나!> 하고 되풀이 했다.
얼마동안 시간이 지나서야 청청도 깨어났다. 그녀는 원승지를 보자 <아!> 하고 탄성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일행은 두 사람이 깨어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안심을 하였다.
시간이 흘러서야 폭발소리가 완전히 멎었다.
최희민이 나서서 내려가 조사해 보겠다고 말했다. 최희민은 밧줄을 그의 몸에 칭칭 두르고 천천히 내려갔다. 그가 동굴 입구에서 보니 폭발할 때 부서진 바위들로 동굴은 완전히 막혀 있었다.
이제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는 할 수 없이 되돌아오고 말았다.
청청은 천천히 동굴에서 있었던 상황들을 얘기하고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목상이 탄식하며 말했다.
[그때 내가 금사랑군의 철갑에 암기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 그의 속마음을 대충 알긴 했었지만 설마 그뿐이 아니었음을....... 폭발이 저토록 맹렬한 것을 보니 철상자 속의 화살같은 것도 정말 신기한 것이었구나.]
황진이 질린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가 자기 시체 속에 독약을 넣었다니....... 정말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최희민은 둥그런 눈알을 더욱 크게 굴리며 물었다.
[사부님! 그가 시체 속에 독약을 넣다니요? 그는 이미 죽어서 해골이 되어 버렸는데 어떻게 자기 시체 속에 독약을 넣었지요?]
황진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늙어서 하늘에 간 뒤 그 멍청한 머리 속에 한 번 독약을 넣어보면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일행은 그의 말에 모두 웃고 말았다.
[모르니까 물었던 것 아닙니까?]
원승지가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금사랑군 사부께서는 계산에는 매우 정확한 분이었어. 그는 평생에 원한을 산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죽어서도 틀림없이 누군가 그의 시체를 해치리라 믿었던 것이야. 그는 평소에 독을 많이 다루던 사람이었으니 죽을 때 분명히 뼛속 깊이 스며드는 독약을 먹었을 거야.]
최희민이 이 말을 듣고야 무릎을 치면서 깨달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알겠어요. 누군가 그의 시체를 태워 버리면 태울 때 나는 연기에서 독이 퍼져 나와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이었군요.] 잠시 뒤에 그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동굴은 어째서 폭발했을까요? 설마 폭약을 먹어서 동굴에 들어온 사람을 죽이려던 것은 아니었겠죠?]
안소혜는 사람들이 비웃을까봐 급히 답변했다.
[폭탄은 틀림없이 미리 동굴 속에 묻었을거야!]
원승지도 그렇다는 듯 탄식하며 말했다.
[청청의 어머니는 그의 남편과 합장을 부탁했었는데 비록 그들의 시선이 한 줌의 재로 폭파되어 버리긴 했으나 유언은 이루어진 셈이군.]
최희민은 혀를 내두르며 계속 놀라 말했다.
[그분은 정말 무섭군요. 죽어서 몇 십년 뒤에도 그의 적을 상대하다니! 살았을 때는 어땠을까요? 오독교의 노파도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노릇이군요.]
[너무 치밀했군.]
원승지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홍약도 사랑의 원한이 너무 깊은 탓으로 이런 불행한 일생을 보낸 거야.......]
안소혜는 두 승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대위와 소괴, 두 승냥이가 일찍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청청언니를 영원히 구해낼 수 없었을 것 뿐만 아니라 원승지 오빠도 폭탄 세례를 맞았겠어요.]
일행은 모두 정말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동물의 지각이 확실히 날카롭다는 것을 재인식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산꼭대기를 향해 올라갔다.
놀라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폭파된 동굴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안대낭은 안소혜와 함께 청청을 부축하여 석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청청의 얼굴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다음 침상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청청은 중독이 심한지 좀처럼 깨어날 기색이 없었다. 목상이 독을 제거하는 약을 먹였지만 금사랑군이 사용한 극약은 오독교의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에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하룻밤을 지내더니 얼굴이 검어지면서 중독이 더욱 악화되었다. 그녀는 정신이 흐려지면서 울다가 고함을 쳤다. 그런 속에서도 원승지의 변심을 탓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원승지가 난처하게 된 것을 걱정하여 모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었다.
병세가 악화된 청청과 그녀를 걱정하는 원승지,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원승지는 부드러운 손길로 위로하면서 절대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을 약속해 주었다. 청청의 얼굴은 검고 붉어지면서 끊임없이 시커먼 물만 토해냈다. 사태가 이 지경이 이르자 원승지도 속수무책인 채로 침상 곁에서 눈물만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일행은 바깥에서 청청을 걱정하며 중얼거렸다. 어떤 사람은 <금사랑군이 마음을 나쁘게 먹었기 때문에 업보를 받아 자기의 딸을 해치게 되었다>느니, 혹은 <청청 아가씨는 마음이 좋으니 낫지 않으면 정말 괴로운 일이다>는 등 저들 나름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한숨을 쉬며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x x x x

황혼이 질 무렵이 되자 승냥이 소리가 먼저 <컹컹> 거리더니 사람소리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귀신수 부부가 매검화 유배생, 손중군 등 여섯 명의 제자와 함께 도착했다. 귀이낭은 아들인 귀종을 안고 있었다. 아이는 그 동안 많이 자라 있었다.
그녀는 청청이 중독되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아이에게 아직 먹이지 않았던 복령수오환(茯[草+令]首烏丸)을 꺼내어 청청에게 먹였다.
청청은 한참후에 숨소리가 고르게 되면서 천천히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진 후에 황진의 제자가 8명의 사제와 두 명의 애들을 데리고 산 위로 올라왔다.
그는 원승지의 나이가 그들의 아들보다 어리다고 여기면서도 그를 향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머리를 조아리고는 사숙이라고 불렀다. 원승지는 이 사질(師姪)이 40세가 넘었으리라고 추측했다. 그들은 근육이 철처럼 단단하고 키도 자기보다 더 큰 것을 보고 속으로 감탄해 하면서 <이런 위풍 당당한 영웅이 나의 제자가 되어 줄까?>라고 생각하였다.
최희민의 무공은 좀 떨어지고 이 사질과도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무릎을 꿇고 있는 황진의 8제자들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모두 너무 예를 차릴 필요가 없어요.]
최희민이 옆에서 소개하며 말했다.
[이 사형의 이름은 풍난적인데 강호인들은 모두 팔면위풍이라고 합니다.]
원승지가 말을 받았다.
[사형의 이름은 익히 들었소이다.]
황진은 풍난적이 어린 사숙에서 무릎 꿇는 것을 보고 싫어하는 눈치를 보였지만 그가 이미 강호에선 이름이 나 있으므로 그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이제껏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러한 예법은 굳이 갖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온 터였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가 어린 사숙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것은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 일이오.]
풍난적은 사부가 말하는 것을 듣고 곧 원승지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원승지가 급히 그를 말렸다.
풍난적은 큰아들 풍불파와 둘째 아들 풍불최에게 목상도인과 귀신수, 원승지, 매검화 사숙 등에게 차례로 절을 올리라고 일렀다.
풍불파는 금년에 23세요, 풍불최는 21세로 두 사람 모두 감량일대에서 부친의 이름을 업고 무림을 각각 삼등분해 놓고 있었다. 그 두사람의 수하도 무공이 뛰어났는데 원승지가 겨우 20세 가량 밖에 안되어 보이니 속으로는 가소롭게 여겼다. 거기다가 그의 눈을 보니 눈물이 아직 마르지도 않은데다 벌겋게 부어 있어서 속으로 <저 사람이 무슨 일을 당했기에 오늘같은 날 이다지 부어 있는가? 영웅호걸이란 작자가 어찌하여 입술이 터지고 이에서 피가나며, 게다가 울기까지 해?> 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그 두 사람은 귀신수의 문하들과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손중군의 무예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두 사람은 몰래 상의해 손중군 사고(師姑)에게 찾아가 조그만 사숙과 한번 겨루게 하고 싶었다.
(만일 사부에게 손중군과 원승지가 겨룸이 알려져도 우리는 모르는 체하면 그뿐이다. 둘이 싸운 것이니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일을 단행키로 결심하였다.
이튿날, 두 형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손중군을 찾아가 여덟째 사숙 석준을 만났다.
그도 나이가 어려 일을 벌이기를 좋아했다. 그의 무공은 풍씨 형제의 중간쯤 위치했다.
[어이, 너희 둘은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 게야?]
석준이 물었다.
풍불최가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손사고를 찾고 있어. 그분이 산동네에서 발해파(勃海派) 사람들을 여럿 물리쳤다고 하던데 그 이야기를 좀 들어 보려고.]
[그래. 그럼 같이 가자.]
이렇게 하여 세 사람은 흥이 나서 산 뒤쪽으로 올라갔다. 풍씨 형제는 마음속에 어떤 계산이 있었다. 즉 무슨 말로 손중군을 흥분시켜 그 조그만 원사숙과 싸움을 하도록 할 것인가 하고.
풍불최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만일 손사고가 아직 단련 중에 있으면 우리가 직접 그 원씨에게 말하자. 이러나 저러나 좋은 일은 아닌데 뭐.......] 풍불파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막 산허리를 돌아서자 욕지거리가 들려 왔다. 바로 손중군이었다. 그녀는 봅시 큰소리로 욕을 해대고 있었다.
세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였다. 가까이 가보니 손중군이 갈고리를 들고 어떤 사람을 쫓고 있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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