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4-7

3학년2반 | 2022.01.18 07:59:14 댓글: 0 조회: 312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3100

* 제 4 권 *

- 7 - 도인의 출현

그 남자는 30살쯤 되어 보였고 분노와 원망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죽일년!> 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맹렬히 달려 들었다. 그러나 그의 무공은 손중군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한 번 공격하고는 뒤로 물러섰고 또다시 공격하다가 일보 후퇴하는 전법을 쓰고 있었다. 결국 그 남자는 쫓겨 내려가는 꼴이 되었으나 싸우기 좋을 만한 공터가 나오자 죽을 힘을 다해 다시 공격하였다.
풍불최가 말했다.
[우리가 저 놈의 앞길을 막아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게 합시다.]
석준이 이 말에 대답했다.
[손사매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좋아하지 않아. 게다가 저놈은 그녀를 당해낼 수가 없을 것이야.]
그 남자가 미친 듯이 외쳐댔다.
[너는 내 아내와 자식을 모두 죽였지! 그래, 그건 그렇다치고 어째서 일흔이 넘은 노모까지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야 했단 말이냐?]
손중군은 그의 말을 듣고 서릿발 같은 준엄함을 보이며 꾸짖었다.
[이 파렴치한 미친 놈아. 노모가 문제냐! 네 가족이 더 있었다면 하나도 안 남기고 다 죽여버렸을 것이다!]
두 사람은 더욱 흥분하여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풍불파가 갑자기 외쳤다.
[손사고는 어째서 검을 쓰지 않는 거지? 저 갈고리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을 듯 싶은데.......]
석준도 그녀의 무기가 별로 적합하지 않은 것을 보고 자기의 장검을 손중군에게 던져 주며 외쳤다.
[손사매, 이 칼을 쓰시오!]
이때, 어떤 사람이 갑자기 숲속에서 뛰어 나오더니 잽싸게 검을 가로채었다. 세 사람은 그의 무공이 날렵하고 아름답기까지 하여 순간 매료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귀씨 문하의 그림자 없다는 매검화였다.
석준이 외쳤다.
[매사형!]
매검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돌려 주었다.
[손사매는 다른 무기를 단련했으니 칼을 쓸 필요가 없어.] 석준은 매검화의 말이 이해가 안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손중군이 무고한 사람을 너무 많이 해친 까닭에 사부에게서 검을 사용할 수 없다는 명령을 받은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두 사람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 남자는 온 힘을 다해 싸웠지만 결국 무공이 약해 점점 검법이 흐트러지려 했다.
싸움이 무르익을 즈음 손중군이 비호같이 몸을 날려 왼발로 그 남자의 오른팔을 내리치자 손에 쥐고 있던 칼이 땅에 떨어졌다.
손중군이 갈고리로 그의 가슴을 막 찌르려고 할 때 매검화가 급히 외쳤다.
[그만 둬라!]
손중군이 놀라서 멈칫하자 그 남자는 재빨리 산 아래로 도망쳐 버렸다. 매검화가 웃으며 있었다.
[살려주자. 사부님께서도 이번에는 칭찬하실 거다.]
손중군이 씁쓸히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도망치다 말고 다시 뒤돌아 보며 <더러운 년!> 하고 독살스럽게 욕을 해대었다. 그 욕설에 매검화와 석준 등도 모두 화가 났다.
풍불최가 소리쳤다.
[어떤 못된 녀석이 화산에 와서 함부로 구는 거냐!]
그리고 철편(鐵鞭)을 들고 뒤따라 달려갔다.
[저 짐승만도 못한 놈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무슨 벌을 내리신다 하더라도 반드시 저 놈의 목을 베어 버릴테다!]
손중군이 불같이 화를 내며 고함을 치며 갈고리를 메고 추격해 갔다.
매검화는 그녀가 다시 살인을 하여 벌을 받을 것이 걱정되기는 했으나 저 녀석을 붙잡아 혼줄을 내어 일행의 화를 가라앉혀야겠다 생각하고 옆길로 빠져 그들을 따라갔다.
그 남자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황하여 사잇길로 도망쳐 갔다. 석준과 풍씨 형제도 제각기 무기를 꺼내 들었다.
풍불파가 도망가는 그 남자의 등에 비황석(飛璜石)을 던졌다.
그의 몸놀림도 민첩하여 비황석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더니 재빨리 오른쪽으로 피하였다. 그러나 그 사이에 석준이 또 화살을 쏘아 그의 허벅지에 적중시켰다. 그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나둥그러지고 말았다.
매검화가 앞으로 달려가 그를 붙잡으려고 하자 갑자기 바람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몸이 공중에 붕 뜬 채 날아가 버렸다.
매검화는 놀라서 급히 피하며 보니 그는 수십개의 밧줄에 묶여 끌려 올라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를 밧줄에 묶어 끌고 간 사람은 미모의 여자였다. 그녀는 눈부시게 흰 옷을 입고 있었고 긴 검은 머리칼은 어깨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맨발인 발에는 팔에서와 같은 황금팔찌가 빛나고 있었다. 외모상으로는 한인인지 오랑캐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처럼 흰손에 실도 아니고 가죽도 아닌 수십개의 밧줄을 쥐고 조용히 웃고 서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또 온몸에 백호피(白虎皮)를 걸치고 머리에도 백호피 모자를 쓴 묘령의 소녀가 서 있었다. 그 소녀는 마치 그림처럼 청아하고 고운 자태였으나 얼굴은 피곤하고 초췌해 보였다.
이 두 사람은 바로 하척수와 아구였다.
원승지 일행이 북경을 떠난 다음날, 호계남은 즉시 원평여숙으로 가서 온씨 4형제와 하홍약, 청청 등에 관한 일을 조사하여 모두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하척수는 오독교가 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하기 위한 신호로 당장위에 독물을 놓아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청청이 그 술수에 걸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청죽 일행과 함께 가도록 했으나 그녀는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구와 상의하여 청청을 구하러 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조용히 북경을 떠나왔던 것이다.
하척수는 마차를 한 대 빌려 아구를 태우고 가려고 했으나 시국이 어수선한 때라 선뜻 마차를 몰고 가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북경을 떠나려는 마차 하나를 발견하고는 행선지가 어떻든 사람들을 모두 내리게 했다. 애원 반 위협 반으로 마부에게 서둘러 서쪽으로 달릴 것을 재촉하였다 하척수는 강호에서 잘 알려져 있어 가는 곳마다 무사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하척수는 의학상식에 대해서도 꽤 견문이 넓었고, 또 정성껏 간호한 덕분에 아구의 상처는 점차 호전되어갔다. 두 여인은 드디어 화산 아래에 도착하였다.
하척수는 아구를 등에 업고 경공으로 재빨리 산 위에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홍승해가 암기에 맞아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연홍주색(軟紅蛛色)으로 그를 구해 주었다.
손중군 등에게서 도망치던 자가 홍승해였던 것이었다.
매검화와 손중군 등은 홍승해가 원승지의 수하인 것도 모르고 있었고, 게다가 하척수가 어떤 인물인지는 더욱 몰랐다. 그들은 하척수가 이상한 모양을 하고 갑자기 화산에 나타나 방자하게 묘기를 부리는 것이 대단히 가소롭고 건방지게 생각되었다.
손중군이 화를 내며 물었다.
[너희들은 어느 파냐? 발해파냐?]
하척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오? 저 사람이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대신 두 분께 사과를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손중군은 그녀의 말이 교태스럽고 단정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자 꾸짖고 있었다.
[너는 무슨 사교(邪敎)의 요물이냐? 여기가 감히 어딘줄 알고 그러느냐?]
하척수는 가만히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홍승해가 하척수에게 말했다.
[하낭자, 저 죽일년이 가장 악독하오. 모두들 비천마녀(飛天魔女)라고 부르지요. 내 아내와 세 자식들뿐 아니라 일흔살이 노모까지도 잔혹하게 죽여버린 살인마요.]
그는 손중군을 쏘아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고, 눈에서는 불꽃이 번뜩이는 듯하였다.
매검화는 옛날에 원승지에게 한바탕 혼이 난 후로는 오만한 성격이 이미 사그라졌고, 또한 오늘 사부님이 오실 것인데 일이 복잡해서는 안되겠다 생각하고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말했다.
[당신들은 어서 산을 내려가시오. 여기서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말고.......]
풍불최도 옆에서 끼어 들었다.
[우리 사숙님의 말씀이 안들리느냐? 빨리 내려가라!] 그리고는 아구의 몸을 떠밀며 빨리 내려가라고 재촉하였다. 그러자 아구가 발칵 화를 내며 손에 쥐고 있던 청죽장을 휘둘렀다.
그녀는 원래 황족 출신이어서 어려서부터 기분 나쁜 일을 보면 참지 못하였다.
풍불최가 아구를 떠밀자 그녀는 벌레라도 닿은 듯 징그럽다는 경멸의 빛을 나타내며 화를 냈다. 아구의 행동에 놀란 풍불최는 흠칫하다가 다시 불같이 화를 내며 호령하였다.
[너희들이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러면서 아구에게 달려들어 내리치려고 하였다.
아구는 정청죽에게서 배운 무공이 이미 수준급이어서 재빨리 피하며 청죽장을 휘둘렀다.
풍불최는 방어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이 연약해 보이는 아가씨의 재빠른 무공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의 무공이 아구보다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너무 뜻밖의 공격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이런 굴욕스런 모욕을 당하고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철편을 들고 다시 달려들었다.
하척수가 웃으벼 말했다.
[여러분들은 화산파이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들과 같군요.] 풍불파가 비꼬듯이 말했다.
[누가 너 같은 요물과 같은 파란 말이냐?]
매검화는 강호생활을 오래한 탓으로 상황판단도 빨랐다. 방금 하척수가 연홍주색으로 홍승해를 구해 준 것을 보고 범상인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풍씨 형제에게 그만두라는 눈짓을 했다. 그리고는 하척수에게 물었다.
[사부가 누굽니까?]
하척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부님의 성은 원씨이고 이름은 승지입니다. 화산파의 문하같은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잘 모르겠습니다.]
매검화와 손중군은 서로 마주보며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석준이 조소의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하하하, 원사숙 자신도 아직 어려서 화산파의 무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판국인데 어떻게 제자를 두었단 말인가?]
하척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사부님께서 거짓말을 하셨을리도 없고....... 하하하, 좋소! 내가 보기에도 두분의 무공이 우리 사부님보다 훨씬 훌륭한 것 같소.]
손중군은 원승지에게 한바탕 호되게 당했고, 게다가 죄를 지었다는 명목으로 사부에게 손가락까지 잘리어졌었다. 그녀가 원승지를 죽도록 싫어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그의 무공과 인품이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다는 점이고, 둘째는 원승지가 사부 아들의 목숨을 구해 주어 그에 대한 신뢰감이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점으로 하여 손중군 자신은 화산파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기회가 한 번도 없는 셈이었다.
그런데 지금 하척수가 원승지의 제자라고 자칭하니 자신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가 만약 화산파의 제자라면 어째서 저런 파렴치한 미치광이와 함께 있단 말이냐?]
하척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사부의 수행자요. 그런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파렴치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승해! 당신이 정말 저 여자에게 무례하게 굴었소? 당신이 이처럼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을 줄은 정말 미처 생각지 못했소.]
손중군은 너무 화가 나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언성을 높이고 있을 때, 풍난적과 유배생 등이 계속 도착하였다.
풍난적을 보자 풍불파가 말했다.
[아버지, 저 여자가 원씨인 작은... 작은 사숙의 제자라는군요.] 풍난적이 고함을 치며 물었다.
[왜 다투고 있느냐?]
풍불최가 끼어 들며 방금 일어났던 일을 설명했다. 화산파의 3대 제자 중에 풍난적이 최고령자였다. 뿐만 아니라 입문이 가장 빠른데다가 강호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어 은연중 모든 제자들의 영수격이었다. 그는 아들의 말을 듣고 나서 손중군에게 물었다.
[손사매, 이 사람이 너에게 무슨 죄를 지었느냐?]
손중군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매검화가 옆에서 나섰다.
[이 미친 녀석에게 형이 하나 있는 모양인데 저 못난 것은 생각지 않고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글세, 얼굴 가죽도 두껍게 손사매에게 청혼을 해왔다는군요. 그래서 손사매가 혼줄을 내어 돌려 보내.......]
홍승해가 말을 막았다.
[대답을 하고 안하고는 저 여자의 소관이겠지만, 왜 내 의형제의 귀를 모두 잘라 내 버렸냔 말이다?]
풍난적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누가 너에게 물었느냐?]
매검화가 다시 홍승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미치광이 녀석이 자기 동료들과 약속을 하고 손사매가 혼자 있는 틈을 타서 강제로 끌고가려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사낭께서 밤새껏 달려와 때마침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풍난적은 눈을 흘기며 꾸짖었다.
[아주 간이 부은 놈이로군. 그래도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 거냐?]
홍승해는 겁도 내지 않고 의연하게 말했다.
[저 여자가 내 의형을 죽였는데, 그래도 괜찮다는 것이오?] 하척수가 말했다.
[본인의 의사도 묻지 않고 강제로 결혼을 강요한 것은 당연히 잘못인 것 같소. 그리고 손씨 언니께서 그의 의형을 죽게 한 것도 잘못한 일임에 분명하오. 그러나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피해 본 일도 없었는데 어찌 그럴 수 있어요? 남자들이 손씨 언니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선녀처럼 예뻤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언니가 덕을 원수로 갚는 격으로 그의 집을 찾아가서 다섯 식구를 모조리 죽여 버린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이 아니었겠어요? 살인이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공을 한 사람도 아니었어요. 더구나 일흔살이 넘은 노모는 아무 힘도 없고, 죄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단지 죄가 있다면 자식들 둔 죄 밖에는.......
노인까지 죽여 버렸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 아닙니까? 게다가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또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렇듯 무공을 함부로 남용하는 것이 화산파의 규율인가요?]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손중군이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 화산파의 대계율을 어긴 것이었으므로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풍난적이 홍승해에게 물었다.
[어찌됐건 모든 것은 너의 잘못이다. 지금 그 사람들은 모두 죽어 버렸는데 이제와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그러자 하척수가 대답했다.
[나도 한때는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았던 때가 있었지요. 사람 죽이기를 즐기기까지 했던 사람이오. 그런데 원승지, 그분을 사부님으로 모신 후부터는 무고한 사람들을 절대 죽이지 말라는 화산파의 규율에 따랐지요. 그리고 화산파의 계율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요. 그런데 지금에 와선 손언니가 함부로 살인을 해도 무방하다하니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로군요. 나중에 사부님을 만나면 다시한번 여쭤봐야 되겠습니다.] 유배생이 말했다.
[원사숙께서는 지금 바빠서 아마 그럴 여유가 없으실 것이오.] 매검화가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사부님께서요?]
유배생이 다시 설명했다.
[사부와 사낭, 사백, 사숙 네 분과 목상도장은 지금 그 아가씨를 치료하고 계시는 중이오.]
풍난적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을 잡아두었다가 나중에 사부와 사숙에게 물어보자.]
풍불파와 풍불최가 좋다고 대답하고 당장 홍승해를 붙잡으려 하였다.
하척수는 이 사람들이 자기는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을 보고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묶겠다고? 여기 밧줄이 있어요!]
하면서 연홍주색을 내밀었다.
풍불최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누가 네 것을 쓴다더냐?]
그들이 쏜살같이 홍승해에게 달려가서 묶으려고 할 때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면서 무엇인가로 그들의 발을 단단히 조여 매더니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떠올라 구름처럼 날아가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혼이 나간 듯이 놀랐다. 공중에서 버둥거리고 잇는 것을 보고 하척수가 교태스럽게 웃으며 외쳤다.
[아이, 저런! 미안합니다. 빨리 <이어번신(鯉魚[番+羽]身)>을 쓰세요.]
풍불파는 그녀의 말대로 이어번신을 써서 엉거주춤하게 땅에 내려섰다. 풍불최는 나이도 어리고 고집도 세어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비폭유천(飛瀑流泉)>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비스듬히 내려서려고 하였으나 자세도 좋지 않았고 동작도 민첩하지 못해 <쿵!> 소리를 내며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부끄럽기도하고 아프기도 해서 모까지 붉어지고 말았다.
풍난적은 자기의 아들이 창피를 당하자 기분이 나빠 화를 내며 말했다.
[이런 요물 같으니라구! 우리 문파의 제자라 해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는데 괘씸하기 이를 데 없구나! 이런 비천한 수법이 어찌 우리 파의 것이란 말이냐? 가만 두지 않겠다.]
그는 단추를 끄르지도 않고 그냥 옷섶을 잡아당겨 겉옷을 벗어 제꼈다. 그러자 마치 철탑과도 같은 그의 건강한 체격이 드러났다.
하척수가 웃으며 말했다.
[사형께서 이 여동생과 겨뤄 보시겠단 말씀인가요? 그거 좋지요. 동문이 사형과 동생이 한 번 겨뤄 보는 것도 해볼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부가 제게 가르쳐 준 재주를 확인하고 싶은 게지요? 그렇다면 무엇으로 겨뤄 볼까요?]
풍난적은 방금 그녀의 몸놀림이 민첩한 것을 보긴 했으나 자신은 사문의 진기한 무공을 전수받았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진서량(鎭西凉)의 위엄을 떨치고 있는 자신이 저런 여자 하나쯤이야 하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그녀가 교태를 부리며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고 화가 조금 가라앉아 밝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좋게 타이를 때 듣거라! 조금 후에 귀이낭이 돌아오신다. 그 분의 성격은 악을 원수처럼 생각하시니 너 같은 요물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서 썩 꺼져라!]
하척수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나의 사부도 아니면서 왜 가라 마라 명령하는 겁니까?]
풍불최는 방금 망신을 당하고 나서 부글부글 분노가 끌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형과 서로 눈짓을 교환하고는 험상ㄱ게 소리쳤다.
[이번에는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
두 형제는 각자 철편을 움켜쥐고 달려 들었다. 하척수는 그래도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내가 여기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공격도 안할테니, 한 번 해 보시지요.]
그러면서 연홍주색을 허리에 걸었다. 두 손은 소매 속으로 집어 넣고 팔장을 낀 채였다.
풍씨 형제는 동시에 철편을 내리쳤다. 그런데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미동도 하지 않는 그녀를 보고 그들은 그녀의 이마에 닿으려는 철편을 거두고 말았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철저히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나이는 어렸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한 적이 없었다.
풍불최가 말했다.
[빨리 무기를 꺼내지 못할까!]
하척수가 대답했다.
[나는 당신들의 사고(師姑)인데 어찌 무기를 쓸 수 있겠소? 당신들이 나를 이기려거든 마음대로 해 보시오. 내가 한발자국이라도 움직이거나 손을 소매에서 빼면 내가 진 것으로 하겠소. 어떻소?]
이번에는 풍불파가 말했다.
[우리 형제가 실수로 너를 다치게 해도 원망하지 않겠느냐?] 하척수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빨리 시작이나 하세요. 나이가 어려서인지 정말 잔소리가 심하군.]
풍불파가 얼굴을 붉히며 <경덕사갑(敬德邪甲)>으로 힘차게 공격을 했다. 하척수가 몸을 조금 기울이는가 싶더니 철편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풍불최는 아까 자기를 망신시킨 것이 분해서 온힘을 다해 그녀의 어깨를 내리쳤다. 그런데 철편이 어깨에 닿을락 말락할 때 하척수는 또 살짝 피해 버렸다. 하척수는 두 발을 땅에 굳게 디딘 채 몸만 이리저리 살짝살짝 피하니 철편의 그림자만 꽃가지처럼 어지럽게 날아 다녔다. 풍씨 형제의 철편은 갈수록 빨라졌으나 하척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음만 지을 뿐 옷깃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화산파의 사람들은 저 여자가 화산파의 제자라고 자칭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무공이 전혀 화산파의 수법이 아님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녀의 무공이 저렇게 강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형제는 갑자기 크게 고함을 치며 하척수의 다리를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려고 무섭게 철편을 휘둘러 댔다. 그래도 하척수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조심하시오! 다칠까 무섭소.]
하고는 몸을 굽히면서 왼쪽 팔꿈치로는 풍불파를 밀어내고, 오른 팔꿈치로는 풍불최의 등을 내리쳤다. 두 형제는 전신이 마비되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들은 철편을 떨어뜨리며 땅에 뒹굴고 말았다.
풍난적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매사제, 저 여자는 정말 이상하군. 내가 한 번 해봐야겠소.] 매검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풍난적이 뛰어 나오며 소리쳤다.
[내가 상대해 주마!]
하척수는 그의 발걸음에 무게가 담겨 있는 것을 보고 무공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제가 상대가 못되어도 비웃지 마십시오.]
풍난적이 대답했다.
[좋다. 어서 공격이나 해라!]
하고는 몸을 약간 구부리며 왼손과 오른손바닥을 마주대고 절을 하는데 그 동작이 매우 예리하고 신중했다. 그것은 바로 <파옥권(破玉拳)> 손동작의 첫 번째였다. 하척수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절을 하며 가볍게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풍난적은 속으로 <대단하군!> 하고 생각하며 계속 공격을 하려할 때였다.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리며 어떤 사람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하척수가 같은 패를 대동한다고 여기고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하척수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일행을 데리고 왔다고 의심하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함께 가서 자세히 알아보고 난 다음에 다시 시작합시다.] 풍난적은 고함소리가 더욱 가까워지고 그 속에 화가 나 마구 욕을 퍼붓는 여자의 음성이 섞여 있는 것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다!]
사람들이 절벽 가까이로 몰려가 보니 아래서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산 위로 급히 달려오고, 그 뒤로 네 명의 무기를 든 장정들이 추격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힘이 솟는 듯 더욱 빠르게 달렸다. 멀리에서 풍난적을 보더니 조급히 소리쳤다.
[팔면위풍(八面威風)! 도와줘요!]
풍난적이 놀라며 말했다.
[아니, 홍낭자 아니야?]
그러면서 급히 달려 내려갔다.
홍낭자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녀는 몸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네 명의 장정들이 뒤쫓아 올라오더니 사람들을 개의치도 않고 흉악스럽게 홍낭자를 묶으려 하였다. 풍난적이 한 명을 힘껏 밀어 붙이며 꾸짖어 말했다.
[이봐! 도대체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그 남자가 손바닥을 펴 풍난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남자의 무공도 만만치가 않아 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 놀라며 쏘아 보았다. 그 남자가 외쳤다.
[대순황제(大順皇帝) 막하 권장군(權將軍)의 명령을 받들고 반역자 이암(李岩)의 처를 체포하려는데 왜 방해하는 것이오?] 하척수는 이암이 사부의 의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이암의 아내가 분명하다면 마땅히 구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척수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암장군이 영웅호걸이신 것은 천하가 다 아는데 그의 부인을 체포하다니! 당신들은 더 이상 이 부인을 괴롭히지 마시오.] 그 남자는 권세있는 유종민의 수하에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오던 터라 교만한 빛을 띠면서, 하척수의 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세 명의 부하에게 어서 묶으라는 시늉을 했다.
하척수의 목소리가 날카로와졌다.
[옳지, 네놈들이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하면서 허리에서 <함사사영(含沙射影)>의 독침을 꺼내 그들을 쏘았다. 그들의 무공도 상당했으나 귀신도 모르게 암기를 쏘니 한 사람이 독침에 맞자마자 소리없이 죽어 버렸다. 나머지 세 사람도 안색이 참담하게 변하면서 급히 입을 모아 물었다.
[너는 누구냐?]
하척수의 왼손 갈고리는 소매 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풍씨 형제와 싸울 때 살짝 빠져나와 있었다. 소매가 바람에 가볍게 휘날리자 쇠갈고리가 완전히 드러나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였다. 우두머리인 듯한 그 남자는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는...... 오... 오..., 하... 하.......] 하척수는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띄었고 오른손의 쇠갈고리가 다시 빛을 발했다.
세 사람은 혼이 빠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너무 겁이 났던지 절벽에서 발을 헛딛어 그만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풍난적 등은 모두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세 명의 남자들이 왜 그녀를 무서워하는지, 또 그녀가 방금 사람을 죽일 때 사용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풍난적이 홍낭자를 안아 일으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들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키가 크고 마른 도인이 절벽 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소리쳤다.
[화산파의 사람들은 모두 여기 있느냐?]
그 소리는 마치 거대한 종소리처럼 계곡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 도인은 무늬가 요란스럽게 수놓아져 있는 찬란한 도포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 쓴 관에는 백옥이 박혀 옷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등에는 긴 칼을 메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 숫사슴처럼 표연(瓢然)해 보였다. 나이는 4, 50쯤 되어 보였고 온 몸에 맑은 기운이 돌아 얼핏 보아도 도를 닦은 도인으로 느껴졌다.
풍난적이 앞으로 나가 절을 하며 말했다.
[도장의 법호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저희 사부님의 친구이신가요?]
그 도인은 인사도 받지 않고 사람들을 쭉 훑어보며 물었다.
[화산파냐?]
풍난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무슨 분부가 있으신지요?]
도인이 말했다.
[아, 목인청(穆人淸)도 왔느냐?]
풍난적은 그의 조사(祖師) 이름을 쉽게 불러대는 것을 듣고 매우 절친한 친구라 생각하고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조사님께서는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도인은 미소를 지으며 손중군, 하척수, 아구 등 세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목씨 녀석이 미모의 여제자를 끌어 모은 것을 보니 여복은 있는 모양이군. 이봐라, 너희 세 명은 이리 오너라. 얼굴 좀 보자.] 사람들은 그의 저속한 말을 듣고 모두 놀라 입을 열수도 없었다. 손중군이 화를 내며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그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좋다. 네가 이 늙은이와 함께 간다면 천천히 알게 해 주겠다.]
손중군은 그의 경박함에 더욱 화를 내며 한걸음 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어떤 놈인데 감히 여기서 수작을 떠는 거냐?]
도인이 허허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음, 아주 향기롭구나.]
그의 손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손중군은 피할 틈이 없었다. 그녀는 화가 끝가지 나서 갈고리를 들고 달려 들었다. 그 도인은 오른손으로 가볍게 막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녀의 팔을 비틀어 쥐었다.
손중군은 맥문이 막혀 온몽이 마비되어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 도인은 그녀를 끌어안더니 얼굴에 갖다대고 웃으며 말했다.
[요것이 아주 괜찮군.]
풍난적, 매검화, 유배생 등은 화가 나서 동시에 돌진해 갔다.
그러자 그 도인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여전히 손중군을 놓아주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순중군은 그에게 붙잡힌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무기를 뽑아들고 모두 달려 들었다.
그 도인은 미소를 지으며 등뒤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장검이 푸른 빛을 내며 번쩍거렸다.
매검화는 손중군이 안타깝게 여겨져 앞장서서 칼을 들고 도인을 공격했다. 그 도인의 장검이 날카로운 것을 보고 감히 정면으로 공격하지 못하고 빈틈을 노려 여기저기 찔러 보았다. 작년에 남경에서 원승지와 승부를 겨룰 때 몇 개의 검을 부러뜨려 버린 후로는 본문의 무공의 심오함과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았었다. 그는 오만함을 버리고 사부에게 다시 검법을 배웠던 것이다. 반년 동안 한 번도 세상에 나오지 않고 뼈를 깎는 단련을 하였었다.
그리고 노력한 만큼 많은 진보가 있었다. 여기저기 찔러보는 매검화의 검법은 아주 민첩했으며 예리한 화산파의 정수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도인이 <훌륭하군!> 하는 칭찬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매검화의 장검이 두 동강 나버리고 말았다.
매검화는 무학의 관례대로 조각난 칼을 적에게 던져 맹공을 피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 공격을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자칫 자신의 실수로 손중군을 다치게 할까봐 검을 던지지 못하고 후퇴를 하였다. 그 순간 <쉬익>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를 묶고 있던 끈이 잘려 나갔다.
매검화는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하고 풍난적, 유배생, 석준, 풍불파, 풍불최 및 황진의 네 제자와 여섯제자들이 한꺼번에 도인을 공격해 들어갔다. 그들은 모두 칼과 창이 들었으나 유배생만이 공수권(空手拳)을 사용하였다.
그 도인이 장검을 휘두르자 <탕탕탕!> 소리를 내며 어떤 칼은 두동강이 나버리고, 또 어떤 사람은 칼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풍난적과 유배생 등 수준높은 무공만이 겨우 버틸 수 있었다.
매검화는 땅에서 칼 한 자루를 집어 들고 다시 공격하였다.
그 도인은 오른손에는 손중군을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장검을 휘둘러 두 사람을 상대하였다. 그는 장난처럼 <하하하!> 웃으며 틈이 있을 때마다 손중군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녀는 분을 참지 못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렇게 하기를 몇 번, 도인이 갑자기 장검을 공중에 던져 버렸다. 유배생은 이 무슨 기이한 수작인가 하고 놀라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매검화가 급히 소리쳤다.
[조심하시오!]
그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유배생은 가슴을 얻어 맞고 비틀비틀 하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권법을 쓰는데 내가 어찌 검을 사용할 수 있겠느냐?] 하면서 공중에서 떨어지는 검을 다시 받아 쥐고 매검화의 검을 두동강 내어 버렸다. 그리고 몸을 구부려 오른쪽 팔꿈치로 풍난적의 옆구리를 밀어 제꼈다. 풍난적은 뼛속까지 아파왔다. 그리고 눈앞에는 별이 반짝거려 몇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그 도인이 화산파의 제자들을 이렇게 말끔히 해치우니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사방을 휘둘러 보며 말했다.
[목씨 녀석의 검과 권법이 천하제일이라고 자랑하더니, 가르쳐 낸 제자들이 겨우 이 모양이란 말인가? 너희 조사가 묻거든 옥진자(玉眞子)가 다녀 갔다고 일러라. 그리고 이 세 명의 여자를 데리고 가서 훌륭하게 가르쳐 주마. 3년 뒤에 싫증이 나면 다시 돌려주겠다고 하여라.]
그는 눈도 한 번 움직이지 않고 정확하게 장검을 칼집에 꽂았다. 천하가 놀랄 만한 무술이었다. 그는 여전히 손중군을 끌어안고 하척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너도 함께 가자!]
하척수는 자기가 적의 상대가 못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홍승해에게 황급히 말했다.
[빨리가서 사부님을 모셔 오시오.]
그 사이에 도인은 이미 하척수 앞에 와 서 있었다.
하척수가 웃으며 물었다.
[당신의 무공은 정말 훌륭합니다. 법호가 무엇인지요?] 도인은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용모가 아름답고 두 발은 눈처럼 희며, 말하는 것 또한 또렷하여 혼을 빼놓는 것 같았다.
당차게 물어오는 그녀에게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더 다가서며 대답했다.
[나는 옥진자라 하는데,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내 무공이 훌륭하다니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가자. 내가 천천히 가르쳐 주마.] 하척수는 묻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속이시는 건 아니겠지요? 나중에 다른 말씀하시면 곤란해요.] 옥진자가 말했다.
[누가 널 속이겠느냐? 자, 어서 가자!]
그리고는 그녀의 손을 잡아 끌려 했다.
그러나 하척수는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우리 사부님이 오신다면 한 번 물어보구요.]
옥진자가 말했다.
[흥, 네 사부한테 배워 보았자 기껏 저 꼴들이 될 뿐인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런 밥통 같은 사부는 신경쓰지 마라. 하하하!] 하척수가 정색하며 대답했다.
[우리 사부님은 무서우신 분이에요. 만약 내가 당신과 함께 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냥 있지 않을걸요?]
풍난적은 지금 손중군이 도인의 손에 잡혀 꼼짝도 못하고 있는 판국에 저렇듯 한가롭게 말을 하는 하척수가 못마땅하였다.
저 요녀는 도인과 눈웃음을 치며 아양을 떨 여우가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며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어깨를 부르르 떨고 있었다.
매검화 소리쳤다.
[이 나쁜놈아! 죽든 살든 다시 붙어 보자!]
그리고는 검을 들고 다시 공격해 들어갔다.
옥진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하척수에게 얘기를 했다.
[내가 실력을 보여주마. 너는 너의 사부가 더 훌륭한지 아니면 내가 더 무서운지 잘 보고 있다가 판단하거라.]
그는 매검화의 검을 피하며 하척수를 향해 계속 말을 이었다.
[저 녀석 정도의 검법이 너희 화산파에서는 고수라고 나에게 덤비는 것이냐? 흥, 네가 하나부터 열까지 세어 나가거라. 내가 빈손으로 저 녀석의 칼을 빼앗을 테니!]
매검화는 그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이 화가 나서 더욱 민첩하고 날카롭게 칼을 휘둘러 댔다.
하척수가 웃으며 말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라구요? 좋아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척수는 숨도 쉬지 않고 재빠르게 수를 세었다. 그러자 옥진자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요 귀여운 것! 자, 잘 보아라.]
매검화가 칼로 찌르려고 하자 도인이 몸을 약간 기울이며 어깨를 쭉 폈다. 그러자 자기의 두 눈과 몇 치도 안 떨어진 곳에서 손가락 두 개가 쑥 들어왔다. 매검화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막았다. 옥진자는 다시 팔꿈치로 매검화의 팔을 쳤다. 매검화는 손이 마비되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 사이에 칼은 이미 옥진자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이때 하척수는 겨우 아홉을 세고 있었다.
옥진자는 <하하하!> 웃으며 왼손으로 칼을 잡고, 오른손 식지와 중지로 칼끝을 잡더니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엿처럼 휘어버렸다. 그러자 칼은 실처럼 흐물흐물거리더니 결국 조각조각 떨어져 폐철이 되고 말았다.
옥진자는 몇 치 남은 칼자루를 땅에 던져버리고 휘파람을 불며 가시 하척수의 팔을 잡아 끌었다.
하척수는 사부가 도와주러 올 때까지 시간을 끌기 위해 노력했으나 원승지는 오지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을 끌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왼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옥진자는 향기롭고 부드러운 섬섬옥수(纖纖玉手)를 잡으려니 생각하고 있다가 뜻밖에도 차가운 금속을 만지고는 놀라서 손을 놓아 버렸다. 그의 눈 앞에서는 쇠갈고리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하척수는 재빨리 쇠갈고리를 휘둘렀다. 그러나 옥진자는 역시 무공이 뛰어나 아슬아슬하게 살짝살짝 잘도 피하였다. 바람소리를 내며 갈고리가 그의 코 끝을 스치며 지나가자 비릿한 냄새가 묻어났다. 갈고리 끝에 독약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저렇게 교태스럽고 아름다운 아가씨의 손이 왜 갈고리인지, 또 화산파의 무기에 어째서 독이 묻어 있는지를 생각하자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화산파는 그 동안 무기에 독을 묻히지 않았었기 때문에 더욱 더 당황해 하였다. 그 순간 갈고리가 또 공격을 해왔다.
옥진자의 손에는 아무 무기도 없었고 게다가 왼손에는 손중군을 잡고 있으니 하척수의 매서운 공격에 한동안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손중곤을 앞으로 밀치며 뒤로 물러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잘못 보았군. 제법인데? 좋다. 다시 해보자!]
하척수는 상대방의 무방비한 상태를 이용해 공격하려 한 것인데, 그것이 실패하자 이제는 할 수 없이 싸워야만 했다.
그녀는 다시 교태스러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저와 정말 싸우시려는 거에요? 그냥 장남 좀 쳐본 것인데, 뭘 그러세요?]
옥진자는 그녀의 외모가 아름답고 말씨는 부드러웠으나 손놀림은 인정사정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의 무공이 천하무적임을 자부하니 염려할 일이 아니었다.
[네가 지면 나와 함께 가야 한다.]
하척수도 여유있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지면요? 나는 당신과 함께 가기 싫은데.......] 하고 그녀가 갈고리를 휘두르며 먼저 공격하였다. 옥진자는 별로 개의치 않고 공격해오는 대로 막아냈다. 드디어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 틈을 타서 매검화는 손중군을 부축하였다. 사람들은 하척수가 풍씨 형제를 물리쳤을 때는 두 소년의 무공이 아직 미숙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저 도인과 싸울 때도 몸동작이 날렵하고 비상한 수법을 쓰며, 특히 두 갈고리가 번쩍번쩍 빛을 내며 옥진자의 장검을 막아내는 것을 보고는 모두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였다. 옆에서 도와주려고 해도 두 사람이 너무 치열하여 무공이 낮은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격전이었다.
두 사람이 숨 쉴 틈도 없이 주고받고 싸우다가 갑자기 쟁 소리를 내며 하척수의 갈고리가 동강이 나고 말았다. 하척수는 당황하지 않고 소매에서 암기를 꺼내 옥진자의 얼굴에 뿌렸다. 암기는 공기 속으로 흩어지면서 안개가 되어 영롱하게 빛났다.
옥진자는 옆으로 뛰어나오며 무섭게 큰소리로 외쳤다.
[너는 오독사교(五毒邪敎)가 아니냐? 어째서 여기에 있단 말인냐?]
바람이 불어 석준과 풍불최가 서 있는 곳까지 분홍색 안개가 밀려 갔다. 두 사람은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하척수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사악한 수법을 고쳐 옳은 길로 가려고 화산파에 들어왔다. 당신도 잘못된 길을 버리고 나를 스승으로 삼는 것이 어떠냐? 어서 무릎을 꿇지 못하겠느냐?]
옥진자가 손바닥으로 장풍을 일으켜 눈앞에 안개처럼 끼고 있던 암기를 모두 날려 버렸다. 하척수는 그의 검법이 정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장풍까지 이렇게 무서운 줄은 몰랐다. 그녀는 재빨리 팔을 움직여 갈미편(碣尾鞭)을 뽑아 들고 장력을 피하며 채찍을 휘둘렀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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