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 05

3학년2반 | 2022.01.19 08:03:40 댓글: 0 조회: 521 추천: 0
분류인터넷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3360
[달빛조각사5권]


차례
-1.위대한 왕의 무덤

-2.피라미드와 왕의 위엄

-3.술의 위력

-4.성적표

-5.유배자의 마을

-6.조각 변신술

-7.단순 무식 오크 카리취!

-8.오크들의 전쟁

-9.명예의 전당

-10.선택의 길
***************









[위대한 왕의 무덤]




위드는 기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복도를 걸었다.
이때에는 이미 어떤 무덤을 제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한참이었다.
'역사에 남을 만한 무덤. 전설적인 무덤. 거대하고 장엄한 무덤. 국왕의 위신을 세워 줄 만한 무덤을 만들어 줘야 한다.'
국왕의 요구 사항을 맞추려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위드는 포기할 줄을 모르는 인간이었다.
'내가 가진 재능은 노가다. 어디 노가다를 예술로 승화시켜보자. 그러면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노가다로 안되는 일이 있었던가?'
한번도 없었다.
노가다는 어떤 경우에서라도 해답이 되어 주었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재능이 있다고 해도 안주하지 말고, 이를 갈고닦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위드는 곧이곧대로 해석했다.
'노가다로 안 될 일은 없다!'
극도의 노가다.
무덤의 크기는 좌중을 압도해야만 했다.
예술성이 부족한 것은 크기로 때운다!
빙룡 상의 경우에서도 그랫듯이 아무래도 크기가 클수록 결과도 좋지 않던가.
노가다와 예술성. 장엄한 무덤!
'왕릉을 만들어야 한다. 기필코 성공할 테다.'
의뢰를 완수하면 경험치는 물론이고, 최소한 레어 급의 무기를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막막 하였다.
-위드 님, 이야기는 잘 끝나셨습니까?
그때 페일에게서 귓속말이 전해졌다.
기사들과 병사들에 의해 끌려가다시피 떠나서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위드도 대답으로 귓속말을 보내주었다.
-예,지금 나가는 중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괜찮으세요?
-국왕으로부터 의뢰를 하나 받았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러면 이제 또 당분간 못 뵙게 되겠네요.
페일은 너무나도 아쉬워했다.
수르카와 이리엔, 로뮤나 들의 마음도 비슷하리라.
라비아스에서의 사냥 이후로 간신히 다시 만났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떠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아닙니다. 이번 의뢰에는 페일 님들도 동참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헛!궁왕의 의뢰인데도 공유가 가능한가요?
-예,가능합니다.
-참, 그런데 위드 님. 인파가 왕성 앞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처음 있는 일 같네요. 이들에게 잡히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사람이 많습니까?
-어마어마합니다. 위드 님이 나오지 않으면 왕성을 침략이라도 할 기세인데요.
페일은 생생하게 밖의 상황을 전해 주었다.
구름처럼 몰린 인파.
그리고 국왕의 퀘스트!
노가다와 예술성!장엄한 무덤까지!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하나로 합쳐지고 위드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결정햇다. 무덤 하면 역시 그것이지!'



페일과 이리엔, 로뮤나, 수르카 들은 조용히 기쁨을 나누었다.
"국왕의 퀘스트라니 믿기지 않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재미잇는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위드가 국왕의 퀘스트를 받은 것은 거의 초대형 사고였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들을 수 없도록 소곤소곤 이야기 했다.
"그런데 우리들로 할 수 있을까요?"
"예. 위드 님은 우리들이 꼭 필요하다고 했으니까요. 괜찮을 겁니다."
"그보다도 위드 님이 무사히 나오실 수 있을지. . . . . ."
이리엔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햇다.
왕성의 주변에는 군중이 가득 몰려들어 있었다. 이들은 위드가 나오기만 한다면 온갖 질물 공세를 퍼붓고 귀찮게 할 기세였다.
돈 욕심, 그리고 은근히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는 위드에게는 아주 곤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부디 무사히 사람들을 피해서 나오셔야 할 텐데. . . . . ."




위드가 완전히 왕성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군중이 대규모로 모여 있었다.
최초로 국왕을 알현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사냥마저 팽개치고 모여든 것이었다.
위드가 몰래 숨어서 나올 줄로 알고 왕성의 뒷문 등에도 많은 이들이 진을 치고 기다렸다.
하지만 당당하게 정문을 통해서 나오자 금방 정문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무슨 일로 국왕을 만나 본 것입니까?"
"어떻게 국왕을 만날 수 있었는지 한마디만 해 주세요!"
"저희들한테도 좀 알려 주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질문을 던졌다.
위드는 스윽 그들의 옷차림부터 살펴보았다.
'저건 3골드 정도면 살 수 있는 여행복.'
견적이 바로바로 나왔다.
'저건 6골드짜리 방패. 신품이 그렇다는 얘기고 허름한 걸 보니 중고로 샀군. 잘만 후려 친다면 2골드에도 살 수 있는 물건이다.'
군중 가운데에는 때마침 방문한 고수들도 많았지만, 초보들의 숫자가 압도적이었다.
레벨이 낮아서 멀리 떠나지도 못하고 세라보그 성과 그 주변에서 사냥을 하는 초보들!
국왕을 알현한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름처럼 몰려든 것이었다.
"흠흠."
위드는 길게 헛기침을 했다.
무덤을 만드는 일은 보통 큰 작업이 아니다.
국왕의 입맛과 기호에 맞춰 주기 위해서는 정말로 장엄하고 거대한,
한눈에 보아도 탄성을 자아낼 수이밖에 없는 왕릉을 만들어 주어야 했다.
혼자서는 1년이 걸려도 못 할 작업.
작업을 제대로 마치려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필요했다.
위드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일꾼들이.
'이들이 나의 인부가 되어 줄 것이다.'
위드는 인파들을 향해 외쳤다. 아무리 목소리를 키워도 골고루 들리지 않을 수 있으니 고급 3레벨까지 올려놓은 사자후를 시전했다.
"여러분들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로자임 왕국의 궁와으로부터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스킬 : 사자후를 사용하셨습니다.

엄청난 고함 소리가 좌중을 휩쓸었다.
바로 옆에서 소리를 치는 것처럼 귀에 똑똑하게 들리는 음성이었다.
대다수가 초보들 그들은 이토록 박력 있는 음성을 처음들어 봤다.
호기심을 가지고 모여든 군중은 말의 내용에도 금세 동요했다.
"뭐야? 퀘스트?"
"국왕을 만나 본 것만 해도 대단한데......"
"국왕에게 퀘스트를 받았다고?"
"베르사 대륙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최초야. 대륙 최초로 국왕의 퀘스트가 발동되었다."
군중은 흥분 상태에 빠져 들었다.
"무슨 퀘스트인지 말해 주십시오!"
"우리들도 국왕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막 그들이 집단적으로 난리를 피울 무렵. 위드는 이들을 더욱 부추겼다.
"저는 특별한 무언가를 제작하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이것은 여러분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의뢰입니다."
"오오오!"
"저희들도 끼워 주세요!"
군증은 당연한 반응을 보엿다.
로자임 왕국의 국왕이 직접 내린 퀘스트!
그런 의뢰에 동참할 수 있다 하니 너도나도 끼워 달라고 아우성들이었다.
"저는 당연히 여기에 있는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베르사 대륙에서 함께 숨을 쉬며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연이 있는 것이고,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저도 이 의뢰를 받기까지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으니 참가비로 딱 1골드 씩만 받겠습니다."
군중의 기대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돈독에 완전히 눈이 먼 위드를, 군중은 성인군자 보듯이 했다.
"맞습니다. 절대적으로 동감합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 . . . ."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들이 보는 위드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다.
난이도 B급의 의뢰.
난이도가 D급 이하더라도 희귀한 의뢰나 보상이 좋은 경우에는 비싼 가격에 공유를 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의뢰를 단돈 1골드만 받고 공유해 주겠다는 것이다.
순간 착한 군중의 위드의 진지한 표정을 보았다.
실제로는 벌어들일 돈을 열심히 계산하느라 분주하엿지만, 군중의 눈에는 자신들을 배려해 주려는 진지한 모습으로 비쳤다.
'그냥 의뢰를 나누어 준다면 우리들이 너무 미안해할 테니까......'
'그래서 별로 의미 없는 돈이라도 받으려고 하시는구나!'
단단히 콩깍지에 씐 군중이었다.
그만큼 위드가 하는 말은 듣기가 좋았고, 다른 이들을 존중해 주는 것이었다.
하나 입에 맞는 음식이 몸에는 안 좋은 경우가 많은 법!
사람 하나 잘못 믿어서 뒤통수 맞는 인간이 어디 한둘이던가.
위드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대체 위드 님이 뭘 하시는 걸까요?
-갑자기 무진장 불안해지네요.
-왠지 일부러 사람들의 앞에 나서시는 것 같은 . . . . . .
-혹시 국왕의 퀘스트,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위드의 인간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페일과 이리엔 들은 몰래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뭔가가 이상했다!
왕성 앞에 모인 이들이 단체로 1명의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위드의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과 연설은 너무나도 어울리게 느껴졌지만,
평상시의 모습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완전히 불신을 사고 있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퀘스트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위드는 열성을 다해서 목청을 드높였다. 목덜미에 핏줄이 돋아날 정도였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의뢰의 난이도를 감안하여 조금 힘든 일이 있더라도 제 말을 잘 따라 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이 약속까지 마친 분들에게만 제가 의뢰를 공유해 드리죠."
그렇게 군중은 위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차분히 머리를 식혔다면 걸려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바보가 아닌 이상, 국왕의 의뢰를 마구 나누어 주는 것에 대한 읭아심이 들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군중심림! 여기저기서 난리를 쳐 대니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로자임 왕국 국왕의 퀘스트이지 않던가!
그런 퀘스트를 공유해 준다니 서둘러서 의뢰를 받기 위해서 난리였다.
"비켜. 내가 먼져야!"
"무슨 소리야. 내가 훨씬 더 빨리 왔어!"
퀘스트를 공유받기 위한 이들이 삽시간에 긴 줄을 섰다.
왕성에서부터 출발한 줄은 점점 빠르게 늘어나서 대로에도 길게 이어졌다.
뒤늦게 사건을 알고 모여드는 이들과, 남들이 줄을 서자 멋모르고 따라서 선 이들로 인해서 도무지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의뢰가 끝날 때까지 저의 지휘에 따라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의뢰에 포함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위드는 1명씩 다짐을 받고 의뢰를 부여해 줬다.
띠링!


위대한 조각사 위드를 도와 무덤을 만들라
로자임 왕국의 국왕 시오데른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앗다. 그는 자신이 죽기전에 특별한 무덤을 만들고 싶어 한다.
난이도 : B
보상 : 성공할 경우 왕실 공적치 최소 50이상
작업량에 따라 추가적인 보상금과 명성 획득.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무척이나 고마워하면서 의뢰를 받아 갔다.
국왕의 의뢰는 본래 위드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위드가 함께 작업을 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므로, 보상의 내용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군중은 국왕의 퀘스트, 그것도 난이도 B급의 의뢰를 받아서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페일과 수르카 들의 차례가 되었다.
"난이도 B급이라니......."
"이걸 우리들에게 공유해 준다고 하신 거예요?"
페일은 가슴이 턱하고 막혀 오는 기분이었다.
왜 위드를 믿었던가!
위드가 순진한 표정을 지을 때 의심해 봤어야 했다.
사람들에게 퀘스트를 공유해 준다고 할 때에는 급한 변명이라도 대고 도망쳤어야 했다.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난이도 B급의 퀘스트.
위드가 모라타 지방에서 어떤 방식으로 의뢰를 해결했는지 잘 알고 있는 페일 등에게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차아온 것이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아무 일이든 시켜만 주세요. 잘할 자신이 있어요."
몰려든 군증은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할 일을 원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에서 난이도 B급의 의뢰를 해 본 사람은 1명도 없었다.
난이도 B급의 어마어마한 의뢰에 동참한 만큼 흥분으로 달아오른 군중.
위드는 이미 머릿속으로 이들을 데리고 해야 할 일에 대해 착착 정리를 마쳐 놓은 상태였다.
"우선 무덤을 만들어야 하는데, 좋은 장소가 필요합니다.
아주 넓은 곳이어야 하고, 전망이 수려해야 합니다.
강을 내려다보거나 배후에 산이 있으면 좋겠죠. 그런 곳을 알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위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방에서 손을 들었다.
"제가 그런 곳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세라보그 성에서 그리 멀지도 않습니다. 동쪽 평야에는 앞에 강이 있고, 뒤에 산도 있습니다."
"성의 북쪽에 있는 언덕이 어떻습니까? 풍경도 아주 좋고 햇볕도 잘 드는 지역입니다."
조각술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중요 요소 중에는, 조각품이 주변의 자연 환경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풍수지리!
의뢰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명당자리를 고르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위드는 무덤을 만들 예정 지역을 직접 돌아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위드가 움직이자 수천 명의 인파들까지 함께 이동을 한다.
그 인파가 다른 이들을 끌어들여서 눈덩이처럼 사람들이 불어나고 있었다.
위드는 세라보그 성의 동쪽 지역을 들러보았다.
우선은 면적이 넓었고, 큰 암석들이 여기저기에 무질서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거대한 암석들이 많은 걸로 보아서 지반은 단단할 테고. . . 풍경도 이만하면 괜찮은 편. 이곳이 딱 적당하군.'
보통의 무덤이라면 골짜기나 산에 짓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렇지만 위드가 만들려고 하는 무덤은 최대한 넓고 평평한 지역에 지어야 했다.
"장소는 일단 정해졌고 . . . 그러면 무덤을 짓기 위해서는 자재들이 많이 필요하겠군요.
근처에 돌산이 있는 곳을 아시는 분? 큰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단단한 돌들이 필요합니다."
"제가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를 하면 척척 답이 나왔다.
돌산은 평상시에 잘 눈여겨보지 않는 장소였다. 그렇지만 사람의 숫자가 워낙에 많다 보니 모르는 게 없었다.
위드는 돌산에도 방문해 보았다.
엄청나게 거대한 돌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조금만 가공을 거친다면 무덤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석재롤 써먹을 수 있는 재료들이었다.
위드는 돌산 앞에서도 또 한 번 사람들을 선동했다.
"자, 그러면 시작해 보죠. 난이도 B급의 퀘스트를 위하여!"
"우와아!"
"아시다시피 작업량에 따라서 성과가 달라집니다.
그러니 작업은 최대한 빨리, 지금부터 바로 개시하겠습니다. 공을 세우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내일부터 하셔 됩니다."
"시작합시다!"
"꾸물댈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명성과 포상금을 더 많이 획들할 수 있다.
그래서 어서 빨리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광할한 대지 위에 수많은 왕국과 모험가들이 존재하는 베르사 대륙!
그렇지만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거의 빛의 속도에 육박하였다.
누군가가 로열 로드의 홈페이지에 글을 써 놓은 것이었다.


제목 : 난이도 B급의 의뢰
로자임 왕국에서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초로 국왕을 만난 유저가 나타난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유저는 난이도 B급의 퀘스틑 받아서 사람들에게 공유를 해 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정도 난이도의 퀘스트라면 보통 사람들에게 공유해 준다는 것은 말도 되자 않는 일일 것입니다.
난이도 B급의 의뢰는 현재 로열 로드 최고 수준의 유저들이 팀을 이루어서 도전해도 성공확률이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로자임 왕국의 유저층은 특히나 아직 저레벨들이 많기에 퀘스트공유는 무모한 것이죠.
저 역시 그 장소에 있었지만 그런 이유로 인해서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유저의 직업은 조각사였습니다.
난이도 B급의 의뢰란 다름이 아니라 왕의 무덤을 만들라는 것이었던 겁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의뢰이기 때문에 더더욱 가치가 있는것 같습니다.


난이도 B급의 의뢰라는 다소 자극적인 게시물은 단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글의 파급력이란 가공한 것이었다.
대체로 로열 로드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중앙 대륙 출신들의 비중이 높았다.
먼저 시작하고 자리를 잡은 고수들이 중앙 대륙의 왕국들에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변방의 소국에서 시작한 이들을 무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중아 대륙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잡고, 무기나 방어구, 퀘스트에 대한 정보들을 나누었다.
하지만 로자임 왕국 출신들,
별로 발달하지 못한 변방 국가에서 시작한 이들을 비하하던 자들이 처음으로 부러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난이도 B급의 의뢰라니 정말인가요?
-사실이라면 대박입니다.
-퀘스트 공유라...로자임 왕국 사람들은 좋겠군요.
-전 도르 왕국 출신이지만 바로 로자임 왕국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조각사라...그런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국왕을 만나 보고 난이도가 이렇게 높은 의뢰도 하다니 놀랍군요.
그러면서 조각사란 직업에 대한 환상이 사람들에게 심어졌다.
왕과 독대를 하며, 높은 퀘스트를 독점하는 유일무이한 작업으로!
조각 상점들이 유저들로 인해 붐비게 되고, 갑자기 조각칼을 들고 다니는 초보 조각사들의 숫자가 급증하였다고 한다.


돌로 가득한 산에 유저들이 개미 떼처럼 달라붙었다.
"바람이여, 칼날처럼 불어 적을 가르랏! 윈드 커터!"
마법사들이 마나를 모아 마법을 발현했다.
그들의 목표는 바위들!
"나의 도끼에는 적수가 없다. 뭐든 깨부수어 주마. 더블 엑스!"
도끼를 든 바바리안들도 열심히 바위를 때렸다.
바위들이 여기저기 쪼개져서 네모나게 변하면 몇몇 마법사들이 석재에 경량화 마법을 걸어 유저들이 들고 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자! 다들 하나, 둘, 셋 하면 드는 거다. 영차!"
유저들은 수십 명이 달라붙어서 석재들을 산 밑까지 운반 했다.
집채만 한 석재들을 가지고 가파른 돌산을 내려가려니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산 밑까지 내려오면 수레에 실어서 운반하거나 아니면 바닥에 자잘한 통나무들을 깔고 쭉 미끄러뜨렸다.
"빨리빨리 움직여."
"이건 그냥 우리들이 들고 가자."
석재들은 유저들의 땀과 노력에 의해 가공된 뒤 세라보그 성의 동쪽 지역까지 와서 차곡차곡 쌓였다.
석재들을 등에 짊어지고 진땀을 흘리며 움직이는 유저들!
'죽을 만큼 힘들다.'
'괴로워서 미치겠어.'
'지겹다.'
석재를 운반할 때마다 수백 번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차고 올라왔다.
한 번 왕복할 때마다 다시는 안 하고 말 것이라는 결심을 내렸지만, 곧 석재를 운반하고는 마는 것이었다.
지독한 중독성!
난이도 B급의 의뢰는 이들의 이성을 잠시 멀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악한 위드의 두뇌 회전은 대중을 다스리기에 충분햇다.
석재를 운반하고 다시 돌산으로 돌아오면, 위드가 고용한 인부들이 운반한 횟수를 불러 주었다.
"12회, 지금 최고가 열네 번 왕복한 사람인데......."
미묘한 경쟁 심리.
게다가 세라보그 성 유저들의 대다수가 이 퀘스트에 달라 붙어 있다.
레벨이나 직업의 차이를 막론하고 국왕의 퀘스트에 눈이 멀어서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힘들고 지겨워서 포기하고 싶지만 왠지 안 하면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라서 그만두지도 못했다.
석재를 내려놓을 때 다시는 안 하겠다는 다짐이, 다시 돌산으로 향할 때엔 완전히 바뀌었다.
'꼭 해내고야 만다.'
'반드시 성공하겠어!'
난이도 B급의 의뢰가 주는 유혹이었다.



페일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내려다보는 언덕 밑에는 수천명의 인간들이 석재들을 나르고 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석재를 운반한다.
그 늘어진 줄들이 끝도 없었다.
"이런 극악한 노가다의 현장이라니....."
가공할 만한 광경에 페일은 감탄밖에 안 나올 지경이었다.
모든 것을 노가다로 해결하는 위드, 그리고 그에게 어느새 전염되어 버린 사람들.
"아이참! 빨리 좀 가요, 페일 님!"
페일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이리엔과 수르카, 로뮤나가 석재를 등에 지고 다가와 있었다.
"페일 님이 늦게 가니까 다들 늦어지잖아요!"
".......... "
페일은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이미 위드의 마수의 빠져 버린 것을!
페일마저도 석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난이도 B급의 의뢰를 한 번은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어쩔 수 없이 들었다. 그리고 명성과 보상이 주는 유혹을 거절할 수 없었다.




KMC미디어에서는 주기적으로 로열 로드의 각 팬 사이트와 홈페이지들을 들락거리면서 정보를 모았다.
취재를 위한 발 빠른 움직임에는 광범위한 정보 수집이 한 몫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위 인터넷의 정보들 가운데에는 쓰레기들이 많다. 그러나 쓰레기장에서도 건질 것은 있는 법!
다양한 정보들을 별도의 게임 전문가들이 검증한 뒤, 추적 팀을 가종해서 진위 여부를 확인한다.
로자임 왕국의 난이도 B급 퀘스트 역시 그들의 정보 수첩망에 걸려들었다.
담담 PD와 작가들은 즉시 회의에 들어갔다.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정보일까?"
"PD는, 출처는 불확실하지만 일단 사실인 것 같아요.
로자임 왕국에서 시작한 이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거든요.
심오 놓은 정보원들도 이 사실들을 계속 보내오고 있고요."
"그러면 일단 특파원부터 바로 보내 봐야지?"
"로자임 왕국이라면 마침 신혜민 씨가 있는 곳 같은데요. 얼마 전에 무슨 퀘스트를 한다면서 그곳까지 갔어요."
신혜민은 KMC미디어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로열 로드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다.
"잘됐군. 그러면 신혜민 씨더러 그 정보를 취재해 달라고 하지."
"잠깐만요. 그런데 신혜민 씨가 급한 일이 있으니 당분간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오전에 전화를 했어요."
"혜민 씨가? 평소에 그러던 사람이 아닌데."
담당 PD는 고개를 갸웃했다.
신혜민은 촬영 시간에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한 진행자였다.
"로자임 왕국에서 무슨 중요한 일이 있다고요. 뭘 만들어야 하는 의뢰에 참여하게 되었다는데......"
"그거 혹시......"





"휴우, 힘들다."
메이런은 끙끙대면서 석재를 운반했다. 그녀의 갸냘픈 두 팔과 어깨 위에는 묵직한 석재들이 올라 있었다.
'유명해지고 말 거야.'
명성이 낮아서 당했던 설움의 시간들.
게임의 익숙하지 않아서 죽어라 사냥만 했다.
사냥 파티에 속해서 몬스터와 싸우면서 동료들과 친분을 나누는 게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열심히 레벨만 올렸다.
남들보다 훨씬 더 빨리 올라가는 레베 때문에 혹시 자신은 천재가 아닌지 의심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로열 로드와 관련되 방송 프로그램을 골고루 올려 줘야만 했다. 인맥이나 친밀도도 반드시 필요했다.
'나도 멋진 모험을 하고 말 거야.'
메이런은 가슴 가득 희망찬 미래를 꿈꾸었다.
위기에 처한 이를 돕는 의로운 여자 레인저!
지금까지는 방송을 하면서 남들이 했던 모험들의 사연들만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그 부럽던 시절도 모두 지나가고, 이제부터는 자신이 직접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석재들, 너무 무거워."
메이런은 울상을 지었다.
큰 눈망울 가득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다.
레인저는 딱히 힘만 있다고 되는 직업이 아니었다. 민첩성이 높아야 산이나 험한 지형에서 수월하게 활약할 수 있다.
그녀는 유난히 힘이 낮은 편이었고, 그 덕분의 석재들의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으앙!"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억지로 버텨 왔지만 체력이 다해서 이제는 석재에 그대로 깔리려는 순간.
"괜찮아요?"
메이런이 지고 있는 석재를 들어 주는 손이 있었다.
얼굴을 들어 살펴보니 궁수 1명이 손을 뻗어서 도와주고 있었다.
그런데 가관인 것이, 그 궁수의 표정도 심히 좋지 못하였다.
레인저다 궁수나 활을 주로 쓰고 민첩성을 주력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는 상황.
궁수의 이마에서도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메이런이 힘겨워하자 석재를 들어 주었다.
"저,저는 괜찮은데......... 힘드시잖아요."
"목적지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제가 계속 도와 드릴게요."
"안 괜찮아 보이는....."
"버틸 수 있습니다."
궁수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평상시라면 이 정도의 호의에 절대 감동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정말 힘들 때, 본인도 무척이나 고된 상태임에도 남을 도와주는 친절한 사람에게 그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기, 이름이......? 제 이름은 메이런이거든요. 그러니까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친구라도 되면 멀리 떨어져서도 귓속말도 할 수 있고, 그러니까......"
"페일, 저는 페일입니다."
메이런과 페일은 온몸에서 땀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피라미드와 왕의 위엄]


무덤의 건축 예정 장소에서 위드는 풀죽을 끓여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었다.
"힘드실 텐데 드시고 천천히 하세요."
"고맙습니다."
석재를 나르느라 힘들었던 이들은 그릇째로 풀죽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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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 요리 스킬 4에 중급 손재주 9레벨!
위드가 만들어 주는 풀죽은 시원하면서도 맛있었다.
요즘 들어서 요리 스킬에는 소홀해졌지만 사기에 가까운 스킬들은 음식의 풍미를 더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위드를 존경하고 좋아했다.
퀘스트를 공유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음식까지 공짜로 만들어 주다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풀죽의 재로는 말 그대로 풀 그 자체였다.
풀을 죽처럼 끓인 것에 불과했다.
그런 풀죽을 끓여 주고서 사람들의 진심 어린 감사를 받는 위드.
퀘스트에 참여한 유저들 가운데에는 정말 레벨이 낮고 돈이 없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밥이라도 주지 않으면 굶어서 퀘스트에서 참여를 할 수가 없다.
그런 이들을 부려 먹기 위하여 풀죽을 쑤어서 나눠 주는 것이었다.
석재를 운반하는 노가다를 맡기려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더라도 한번 분위기가 망가지면 끝장이었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나태히지기 마련.
레벨이 낮은 이들일수록 퀘스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으니 제일 열심히 일한다.
이런 이들이 바람잡이가 되어서 열심히 해 줄수록, 무덤을 만드는 일은 훨씬 쉬워질 수밖에 없다.
"고맙습니다. 위드님!"
풀죽을 마신 어린 소녀가 꾸벅 인사를 한다. 현실 세계라면 고등학교를 다닐 만한 10대 중후반의 귀여운 소녀였다.
"뭘요, 맛있게 드셔 주시니 저도 좋지요."
위드도 미소로 화답을 해 줬다.
오늘 하루만도 벌써 수만 번 지은 미소였다.
아무리 자주 웃는 사람이라고 해도 수만 번씩 웃을 수는 없다.
하물며 위드의 미소는 가식의 극치를 달리고 있지 않던가!
눈은 웃고 있지만 입술은 미묘하게 뒤틀렸다.
이른바 썩은 미소!
그럼에도 음성은 다정다감했다.
"레몬 님, 석재를 벌써 8개나 옮기셨군요."
"기억해 주셨네요?"
"그럼요, 제 풀죽을 맛있게 마셔 주시는 분인데...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한두 번만 더 옮기면 되겠군요.
그러면 오늘은 상당히 많이 일한 축에 속하시겠는데요."
"아, 이제 그만 하려고 했는데...알겠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레몬이라는 어린 소녀는 후다닥 돌산이 있는 곳으로 달려 갔다.
어느새 무덤을 만들기 위해 참여한 이들은 석재를 운반할 때마다 위드가 만든 풀죽을 먹는 것이 정해진 일처럼 되어 버렸다.
풀죽이라고 해도 음식 재료가 아예 안 들어갈 수는 없는 상황!
한 가지만 먹으면 제아무리 위드가 만든 음식이라고 해도 질릴 수가 있다.
그래서 고기라도 가끔씩 섞어 주었으니 매일 100골드가 넘는 막대한 지출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것도 다 투자라고 생각했다.
요리 스킬의 향상!
아주 뛰어난 음식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풀죽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을 만들다 보니 숙련도가 꾸준히 올라갔다.
평상시에 매일 100골드씩 호주머니에서 나간다면 위드는 아마 잠을 못 자고 미쳐 날뛸지도 몰랐다.
단돈 1쿠퍼도 아까운 마당에 100골드씩 풀죽을 쑤어서 남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다니,
위드를 아는 이들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인부들을 쓰고 있다. 그런 만큼 최소한의 지출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어쨌든 내 일을 도와주고 있으니까 사람으로서 도의를 생각해서라도 맛있는 걸 먹이고 싶다.'
헌신적인 자선 사업가의 마을.
얼굴 표정과 사람을 대하는 말투에서는 완전 성인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위드의 본심 깊은 곳에서는 능구렁이가 여러 마리 똬리를 틀고 있었다.
'최대한 부려 먹어서 빨리 작업을 진행시키자.
이번 퀘스트를 하기 위해 받은 작업 비용은 10만 골드니 지금가지 쓴 돈 700골드를 제하면 건축비는 9만9300골드가 남아 있군.
게다가 참가비로만 1만 골드 이상 벌었으니 결국 대흑자가 되겠어.'
과도한 노동!
착취!
썩은 미소와 풀죽으로 철저하게 부려 먹는 악덕 기업주 위드!



로열 로드의 홈페이지는 로자임 왕국에 이슈로 한껏 달아 오른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 불을 지르기 위해 다시금 글을 올렸다.


제목 : 왕의 무덤을 만드는 이들
안녕하세요. 저번에 난이도 B급의 의뢰라는 글을 작성했던 사람입니다. 이번에는 동영상을 첨부하였으니 직접 보세요.


본인이 본 것을 동영상으로 녹화해서 그대로 인터넷에 올린 것이었다.
생생한 화면!
그리고 음향까지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 것에 사람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막 플레이를 누르는 순간,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광경이 보였다.


어린아이와 소녀들이 어깨 가득 무거운 석재를 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언니, 무거워."
"조금만 참자. 퀘스트를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잖아."
의젓한 대화를 나누는 자매들!
한편에서는 노인들도 식재를 짊어지고 운반하고 있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천 명이 사람들이 비틀 거리면서 석재를 운반한다.
때때로 석재에 깔려서 땅에 넘어지기도 했다. 석재들이 우르르 무너지면서 그를 덮친다.
동영상을 보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건 뭔가!
'무슨 강제 수용소의 형장인가?'
석재들을 나르는 이들 너머로 보이는 것은 세라보그 성이었다.
-이게 조각술의 현실.
-역시 조각사를 선택하지 않은 건 현명한 일이었습니다.
-변방의 왕국에서 시작한 이들을 돕기 위한 불우 이웃 성금이라도 모금을 해야겠군요.
난이도 B금의 퀘스트를 공유받은 데 대한 부러움과 시샘은 끝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덤을 만들 장소에 석재들이 거대하게 쌓였다.
인간의 힘으로 돌산을 가공하여 통째로 옮겨 온 것이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주변에 있는 바위란 바위는 전부 긁어 모은다!
왕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석재들이 필요했다.
내부와 외부르 전부 건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색과 형태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들 수천 명이 달라붙으니 불가능한 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 해냈구나."
"흐흑. 너무 감동했어."
기뻐서 우는 이들 또한 셀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직 무덤을 세우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작업이다.
깡!깡!깡!
위드는 어느 정도 석재들이 모였을 때부터 작업을 개시했다.
마법으로 갈라지고 도끼질로 부서진 바위들의 면은 고르지 않다. 정과 끌을 이용해서 석재 면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쌓을 위치에 따라서 별도의 조각술도 펼쳐서 형태와 모양을 만들어야 했다.
그나마 위드가 세우려는 무덤의 형태가 단순하였기에 망정이지, 정상적으로 된 거대한 구조물이라면 엄두도 나지 않을 일이었다.
"과연 무슨 무덤을 만들까?"
석재를 나르고,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무척이나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위드가 가공한 석재들을 사람들에 의해 정해진 위치에 차곡차곡 쌓였다.
이 일은 의외로 순탄하게 진행이 되었는데, 로자임 왕국 길드들이 나선 덕분이었다.
중앙 대륙 길드들, 발전된 국가 길드들은 성을 차지하고 있지 않더라도 할 일이 아주 많았다.
공식적으로 길드들은 집단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되어있다. 돈을 모아서 상점의 소유권을 사거나,
아니면 길드 소유의 시장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돈을 벌면서 길드의 재산을 늘려 나가는 것이었다.
성을 가진 길드의 경우에는 더욱 다양한 사업들을 창출하는 게 가능했다.
일주일간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상업과 기술력에 투자할 수 있다.
상업이 일정 수치 이상 늘어나면 새로운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수량이 다양해지고, 가격도 조금 저렴해진다.
기술력이 높아지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무기나 방어구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므로 각 길드들은 경쟁적으로 상업과 기술 발전에 투자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된 곳이 발전하기를 바랐고,
발전도에 따라서 유저들의 숫자가 늘어나기도 했던 것이다.
어떤 길드들은 현명한 치세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고,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서 성벽을 쌓고 큰 성으로 발전시키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상금을 걸고 광산을 개척하는 일도 길드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만약 금광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대번에 상업 수치가 향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매주 정기적인 수입원이 생기는 것이었다.
대체로 초반에는 광산을 수호하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을 물리쳐야만 광산을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광산을 찾아낸다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서, 그 곳에도 꾸준한 투자를 해야만 했다.
인부들을 투입하고, 광산에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퇴치한다.
그 이후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처리는 길드 퀘스트로 다른이들에게 부여할 수도 있어 꽤나 인기가 높은 편이었다.
중앙 대륙의 각 길드들의 번영과 경쟁으로 충돌할 때에 로자임 왕국의 길드들은 아직 갓난아기와도 같았다.
막 걸음마를 뗀 상태!
왕국에서 시작한 유저들이 그리 많지 않다 보니 길드의 규모도 작았다.
광산을 발견해도 그곳을 차지하는 퀘스트를 받기에는 아직 국가 공적치가 높지 않았다.
돈도 별로 없고 가난한 로자임 왕국의 길드들에게 왕의 무덤을 만들라는 위드의 의뢰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위드는 각 길드에 일을 부여하기 전에 검치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저기, 이카 길드에서도 왔는데, 노동을 시켜도 괜찮겠습니까?
-.........
이카 길드는 검치들을 죽인 적이 있었다.
검치에게서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돌아온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일을 시켜줘라.
-돌려보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속 좁은 인간처럼 굴 수야 없지. 사내가 넓은 가슴으로 포용하며 살아야지. 그렇게 옹졸하게 굴면 되겠느냐?
-그렇다면........
-일을 원한다면 시켜 줘라. 그럼 난 바빠서 이만.
다른 이들이었다면 검치의 아량에 탄복을 금치 못했으리라.
자신들을 죽인 적들.
그들에게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보여 준다.
이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위드는 검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복수심이 사무쳤으면......'
다른 이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복수는 오직 자신이 직접 해야만 성이 풀리는 것이었다.
위드는 각 길드에 골고루 일을 부여했다.
로자임 왕국 길드들의 조직적인 힘을 빌려서 무덤 건축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넓은 사각형의 형상으로 쌓여 올라가는 무덤.
그런데 한 층 한 층 석재들이 쌓일 때마다 조금씩 면적이 줄어들었다.
상부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것이었다.
"아!이것은........"
그때쯤에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석재를 나르는 사람들이나 무엇이 만들어지는지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피라미드다!"
"왕의 피라미드를 만드는 거야."
한때는 과학 기술로 설명할 수조차 없었던 건축물.
그 피라미드가 이곳에 세워지고 있었다.
다만 고대의 신비와 전설로 불리던 그 피라미드는 아니었다.
내부적인 구조는 훨씬 단순하다.
위드가 참고할 만한 건축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조각술이야 외관만 보고 펼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대충 따라 할 수 있지만 피라미드의 내부에 대해선 거의 지식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위드는 머리를 쥐어짜 내도 피라미드의 내부를 따라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복잡한 미로 형식의 통로나 초자연적인 신비들은 없었다.
물론 피라미드 내부의 지도를 구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인터넷상에서 고고학 자료 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검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미로처럼 만들면 한정 없이 일이 커지고 만다.
그래서 위드는 필살기를 발휘했다.
그가 본 가장 살기 좋았던 장소.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잠시 살았던 아파트를 떠올린 것이다.
30평형 아파트!
외관은 피라미드인데 내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30평짜리 아파트였다.
그것도 아주 단조롭게 방 3개와 욕실 2개짜리 대한민국 기본형 아파트.
물론 베란다 확장 등은 전혀 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기겁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피라미드의 건축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내부가 워낙 단순하기에, 안쪽의 공간과 통로를 놔두고 주변을 석재로 쌓는 작업이었다.
그러면서 방들과 욕실들은 미술품으로 장식을 해 두었다.
물론 만들 때 페일 들이 물어보긴 했다.
"그런데 피라미드 안에 욕실이 왜 필요한 거죠?"
"......."
"물도 안 나오는데......."
"........"
"시체가 목욕도 하나요?"
"크흠! 위대한 예술가는 발상부터 다른 법입니다.
다빈치의 생각을 일반인들이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유를 따지기 전에 먼저 그 흐름과 본질을 보아야만 하는 법입니다."
"그러면 아예 욕조도 만들죠."
"........"



피라미드의 내부에는 관이 있는방, 미술품들을 놓을 수 있는 거실과 방 2개를 만들어 놓았다.
미술품들은 물론 마판이 급히 달려와서 대신 저렴하게 구입해 줬다.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데에 지금까지 든 돈은 풀죽 값으로 든 단돈 1.600골드,
유노동 무임금 원칙을 철저하게 적용한 악덕 기업주 위드가 아니라면 아무도 뽑을 수 없는 견적서였다.
그런데 미술품들을 구입해서 꾸미는 비용만 4만9,700골드가 들었다.
이것마저 아끼려고 들면 얼마든지 절약할 수 있겠지만,
성공적으로 왕의 무덤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아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잘못하면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
어떤 몬스터를 잡으라는 의뢰라면 다시 시도하면 된다.
그러나 이번 퀘스트가 실패했을 경우에는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었으니 위드도 진지하게 최선을 다했다.
최고급 양탄자를 구입해서 최선을 다했다.
최고급 양탄자를 우입해서 무덤 안에 깔고 벽에는 그림들을 걸었다.
물론 위드가 직접 조각한 조각품들도 몇 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피라미드만 덩그렇게 있어서는 모양이 안 난다!
석재들이 쌓여 가면서 점점 형태를 갖추어 가는 피라미드지만 꼭 무언가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크기는 거대해도 웅장한 면이 부족하였다.
세라보그 성 근처에 뜬금없이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니까 훌륭한 왕의 무덤이라는 느낌이 안 나는 것이었다.
왕의 무덤 하면 위세가 남달라야 하는데, 단순한 무덤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곳이 왕의 무덤임을 알릴 수 있는 상징적인 물건. 그러면서도 무덤을 한결 돋보이게 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하! 그게 없었군."
위드는 피라미드 주변의 거대한 자연 암석에 달라붙었다.
규모가 큰 암석이 통째로 놓여 있었다.
아찔한 높이에서 줄에 몸을 의지하여 조각술을 펼쳐 본 경험은 있지만, 이번에는 바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얼음보다 훨신 단단하기에 아주 까다로운 작업이 필요했다.
바위를 가르고, 때리고, 부수고!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려서 정과 마나를 주입한 조각칼을 쓰기를 며칠째.
바위를 초대형 조각상을 만드는 것이지만 그 자체는 복잡하지 않고 굉장히 단순했다.
유려한 선이나 세밀한 조각술 따위는 없다!
평평한 면과 크기로 압도하는 조각상!
머리는 현왕 시오데른을 형상화하고 몸통은 사자의 그것으로 이루어진, 단순하지만 큰 조각상이었다.
단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괴물 조각상.



현왕 시오데른은 몬스터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는 변방 국가인 로자임 왕국을 일으켰다.
숙적 브렌트 왕국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또 이기면서 군대를 양성하고, 번영의 토대는 닦았다.



국왕이 제 입으로 자랑했던 내용들.
위드는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조각술을 펼칠 때에는 그저 그 형상만을 조각해서는 안 된다. 외관도 중요하지만,
조각사가 그 조각물에 갖는 느낌이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감정은 때로는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훌륭한 음악가가 만든 노래에는 그 음악은 사람을 울리게도 웃기게도 할 수 있다.
작가의 글이나 미술가의 그림이나, 어떤 것도 감정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왕 시오데른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말했다. 위드는 그 내용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 퀘스트를 주는 줄 알고 유심히 들은 내용이 지금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대상을 이해하는 것!
이 재능이야말로 조각사의 일차적인 필수 요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자의 몸에서는 날렵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이 난다.
만수의 제왕. 조금은 게으르지만 좌중을 압도할 수 있는 기운.
가만히 서 있을 때는 모르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네발에는 어느 것도 감당할 수 없는 숨은 힘이 깃들어 있다.
그 사자가 아이들을 지키듯이, 그렇게 로자임 왕국의 수호신이 되려고 할 것이다.'
현왕 시오데른과 사자.
사자처럼 살아온 왕을 위한 조각상은 마지막 자신의 휴식처가 될 피라미드를 내려다보는 모습으로 조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위압적인 눈의 조각을 마치는 순간.
띠링!



명작! 사자 괴물 상을 완성하셨습니다.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조각사!
그의 명성은 대륙 널리 퍼져 있을 정도이다.
그의 땀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결정체.
사자 괴물 상!
견고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사자는 강하고 용맹한 기질을 갖추고 있다.
현왕 시오데른을 닮은 괴물 상은 로자임 왕국의 번영을 위해 포효할 것이다.
예술적 가치 : 4,700.
특수 옵션 : 사자 상을 본 이들은 생명력이나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30%증가한다.
이동 속도 15% 상승.
마법 저항력 20% 상승.
생명력 최대치 15% 상승.
체력 20% 증가.
전 스탯 16 상승.
사자의 포효 발동.
사자 상이 보이는 영역에서 지상 몬스터들의 능력치 저하.
짐승들의 사기 저하.
필드에 있는 사자들의 능력이 오름.
사자 상 인근에는 몬스터들이 접근할 수 없음.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된 명작의 숫자 : 3



-중급 조각술 스킬의 레벨이 9로 상승했습니다. 조각술이 한층 더 섬세해지고 세밀해집니다.


-중급 손재주 스킬의 레벨이 10이 되어 고급 손재주 스킬로 변화됩니다! 도구나 손을 이용한 공격력이 증가하며,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혁신적인 재주를 부릴 수 있습니다.
손과 관련된 특화 기술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손바닥이나 주먹을 이용한 공격 스킬들을 작업의 여부와 관련 없이 익히실 수 있습니다.



-스킬 : 마인든 핸드 획득!



-명성이 630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16 상승하셨습니다.


-인내가 12 상승하셨습니다.


-지구력이 6 상승하셨습니다.


-동부의 불가사의에 사자 괴물 상이 포함됩니다.


-사자 괴물 상의 소유권은 위드 님에게 있습니다.
향후 사자 괴물 상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는 위드님에게 충성을 바치게 될 것입니다.


-명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1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 호칭!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장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손재주를 궁극의 길까지 끌어올리는 자!
마술과도 같은 손재주를 가진 이에게 붙는 명예로운 호칭.
최고의 1인에게만 수여된다.



위드는 사자 상의 얼굴 부위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큰 웃음을 터트렸다.
"우흐흐흐!"
어느새 버릇처럼 바뀌어 버린 썩은 미소.
본래 예술가들이나 명인들을 볼 때에 일반인들이 제일 감탄하게 되는 것이 뭔가!
그것은 그 사람의 손재주였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복잡하면서도 기기묘묘한 손놀림!
'드디어 고급이 되었구나!'
그리고 마인드 핸드.
고급 손재주가 되면서 얻은 스킬인 만큼 남달리 좋을 것을 믿었다.
위드는 획득한 기술을 바로 확인해 보았다.
"스킬 확인. 마인드 핸드!"


마인드 핸드 : 전설에 나오는 장인의 손.
마음의 힘으로 세 번째 손을 사용할 수 있다.
세 번째 손으로 물건을 들거나 적을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중복 스킬 시전과 마음의 손으로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함.
초당 마나 소모 2.


약간의 마나 소모를 감수한다면, 두 팔이 아니라 세 팔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각칼이나 정과 같은 조각 도구를 사용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줄에 매달려서 작업할 때도 있는 위드에게는 상당히 좋은 기술이다.
더군다난 전투를 하면서도 쓸 수 있다지 않은가.
'활용하기에 따라서 가치가 크겠군.'
조각사란 직업은 정말 적성에 맞거나 아니면 끊임없는 도전과 발굴 정신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훌륭한 조각품을 만들었을 때에 보너스로 받는 스탯은 위드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 주었다.
조각사로서 순수하게 강해지기 위해서는 이런 스탯을 조금씩 쌓아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다만, 대단한 걸작들을 마구잡이로 만든다고 해서 비약적으로 강해지진 않는다.
조각품을 완성해서 얻는 스탯들은 대체로 지구력이나 인내, 예술 같은 것이었다.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힘, 민첩, 지혜, 지식 등의 스탯이 아니다.
힘이나 민첩 등은 명작을 만들 때에 한해서 1씩만 올라 간다.
그렇기에 아무리 놀라운 조각품들을 만들더라도 보조적인 도움을 줄 뿐이었다.




위드가 사자 상의 머리 부분에 매달려 있을 때에, 피라미드를 쌓던 이들과 주변에 모여 있는 군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연 암석 위에서 열심히 조각술을 펼치는 위드!
며칠간 내려오지도 않고 식사도 암석 위에서 해결하면서 조각술을 펼친다.
워낙에 거대한 바위인 탓에 하루 사이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조금씩 얼굴 비슷한 형체가 생겨나고, 상체와 어깨등이 만들어지더니, 이제는 멋진 사자상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완성된 사자상은 은은한 광채를 내뿜었다.
위엄과 힘!
로자임 왕국의 상징!
그러면서 사자 상을 본 이들에게 다양한 효과를 부여해 주었다.
"체력이 늘었어!"
"나는 생명력이........"
"스탯들을 확인해 봐!"
사람들은 저마다 정보창을 띄워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타인의 능력치를 올려 주는 것은 성직자나 사면, 혹은 바드처럼 몇몇 직종에 국한되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조각사도 능력치를 올려 주는 것이 가능했다.
그들 중에는 조각사의 역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사자 상이 주는 놀라운 효과 앞에서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모든 스탯이 늘어나다니......."
"마법 저항력까지 올려주잖아!"
"하루! 하루 동안 스탯을 올려 준다니 이건 엄청난 효과다. 앞으로 모든 사냥 팀들은 이 사자 상을 먼저 방문해야 할 것 같아."
"조각사라니,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사자 상을 보며 조각사에 대해서 다시금 인식을 바꾸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조각사를 필히 1명쯤 알아 두어야겠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조각사로 전직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발 보고 또 겪어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노가다 직업인 조각사로만큼은 절대로 전직할 생각이 없고, 조각사와 친해질 생각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별로 알려져 있진 않던 정보들도 흘러 나왔다.
"사자의 포효! 이건 투지를 크게 상승시켜 주는군."
"투지가 무슨 쓸모가 있다고........"
"몰랐어? 사실 본인의 레벨보다 더 강한 몬스터를 잡을 때에는 위축이 되어서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야.
그런데 투지가 높으면 더 강한 몬스터와 싸우더라도 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있어."
레벨이 낮은 이들이 팀을 이루어서 강한 몬스터를 잡는다.
이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 이유는 투지 스탯 덕분이었다. 투지 스탯이 없거나 낮으면 강한 몬스터에게 제대로 맥을 못 춘다.
약한 이들이 아무리 많이 모이더라도 사냥이 어려운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런데 투지 스탯을 꾸준히 올려놓으면 아주 강한 몬스터를 만나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더 강한 몬스터를 이길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군중은 조각술이 보여주는 효과에 잔뜩 매려되었고, 그때부터 길드의 메시지 창에는 대화들로 가득했다.
-길드 마스터님, 굉장한 직업을 발견했습니다.
-조각사라는 게 별 의미 없는 쓰레기 직종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각 길드에서는 위드를 포섭하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하지만 위드는 그대로 사자 상에 매달린 채 감격에 겨워 할 뿐이었다.
중급 조각술 스킬 9레벨!
그리고 고급 손재주 스킬!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장인이라는 호칭은 그냥 주어지는게 아니다.
본래 호칭이라는 것은 '어떤 퀘스트를 수행한 자', 혹은 '어떤 몬스터를 잡은 이'라고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생산 스킬과 관련되 호칭은 조금 다르다.
제일 뛰어난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호칭은 그 분야에 있어서 1인자라는 뜻이었다.
고급 손재주를 최초로 터득한 자!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장인.
그것은 곧 현재 손재주에서 최정점에 이른 사람이 위드라는 이야기였다.




페일의 소개로 메이런은 일행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메이런이라고 해요. 직업은 레인져고, 지금은 페일 님의 여자 친구가 되었답니다."
"반가워요."
수르카와 이리엔, 로뮤나는 활짝 웃으며 새로운 동료를 반겨 주었다.
한때 페일은 로뮤나를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였던 그녀를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메이런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다.
사랑을 알게 된 남자는 어딘가 믿음직스럽고 여유로워 보이는 법.
로뮤나 들은 그 사실을 먼저 눈치 채고, 그 사람을 소개해 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건 짧은 시간이지만 아주 좋아하고 있습니다."
"정말 페일 님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페일과 메이런은 따뜻한 눈빛을 나누었다.
연인들만의 교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르카가 메이런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 보더니 놀라는 것이었다.
"앗! 그런데 혹시 어디선가 본 적이 있지 않으세요?"
"그러고 보니 나도 본 사람 같은데......."
"응. 나도야. 무척 자주 본 얼굴 같은데. . .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이리엔이나 로뮤나도 갑자기 메이런을 보면서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분명히 처음 만나는 것인데도 자주 본 것처럼 익숙했다.
페일도 고개를 갸웃했다.
"실은 나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낯익은 듯하기는 했는데......."
메이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심을 내리고서 말했다.
"혹시 로열 로드와 관련된 프로그램 좋아하세요?"
"네? 아! 그러고 보니......."
"맞아요. 제가 신혜민입니다."
메이런이 현실에서의 정체를 밝히자, 일행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안해요. 일부러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선입견을 갖고 보실 것 같아서......."
메이런이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일행은 그녀의 말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로열 로드의 진행자를 만나게 되네. 무지 신기하다."
"프로그램 진행자도 진짜 로열 로드를 하는구나."
"그런데 화면에서 보던 것과 얼굴이 좀 다르네."
"그러게. 처음에 딱 보고서는 못 알아봤잖아."
"바보. 텔레비전에서는 화장발이랑 조명발이 있잖아."
"아! 그렇구나. 그래도 무지 예뻐요, 언니!"
"고, 고맙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와 연예인은 조금 다르다. 방송국 소속의 아나운서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극비 정보들도 입수하고 그러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진행자라서, 대체로 방송에 나오는 것들에 대해서만 조금 더 자세히 아는 편이에요."
"아이템이나 장비 같은 것도 선물로 받고 그래요?"
"가끔 보내오는 분들이 있긴 한데,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에요."
"와! 그래도 부럽다. 그런데 우리 페일이 어딘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냥 딱 만나는 순간에 내 남자다라는 느낌이 왔거든요."
그러다가 로뮤나가 갑자기 물었다.
"근데 프로그램 진행자가 이렇게 놀고만 있어도 돼요?"
"아! 실은 취재를 하기는 해야 하지만......."
"취재라면.....역시 피라미드요? 제가 위드 님한테 말해서 독점 인터뷰라도 시켜 드릴까요?"
"아니에요. 역시 인터뷰는 포기할래요."
메이런은 환하게 웃었다.
"페일 님과 친해진 건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게 아니잖아요."
"메이런 님.........."
메이런이 웃으며 한 말에 페일은 크게 감동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당연한 일인데요.
업무적으로 만나 인터뷰를 하면 그 보상으로 소정의 정보료를 지급하는데,
그러면 위드 님한테도 기분 나쁜 일이 될 수 있잖아요."
"......."
그 순간 페일과 수르카 들은 메이런이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꼭 그렇지도 않을 텐데......'
'위드 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구나.'



그날 이후로 많은 길드들이 위드에게 사람을 보내왔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세력을 자랑한 뒤 힘을 합치자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리는 로자임 왕국의 최대 길드입니다.
규모나 제정 면에서 우리 길드를 따라올 수 있는 곳이 없죠. 우리들과 함께 하시면, 절대 손해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
"만드시는 조각품마다 합당한 가격으로 구입해 드릴 뿐만 아니라,
매일 일정 액수의 일급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냥을 원한다면 사냥 파티에 소속시켜 드리고, 아이템도 지급해 드리죠."
"좁은 변방의 왕국을 떠나 중앙 대륙으로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까지 많은 제의를 받으셨겠지만, 그들보다 좋은 대우를 보장하겠습니다."
조각사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레벨 200까지는 책임지고 키워 준다는 것이었다.
보통 생산 직업의 레벨이 낮은 걸 감안하여 한 제안이겠지만, 현지 위드의 레벨은 그보다 높았다.
그 외의 조건들도 여럿 달려 있었다. 만든 조각품은 자신들의 길드에만 판매하도록 하며,
임대해 준 아이템은 반드시 다시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템을 팔아서 먹소나는 위드에게는 그다지 가치 있는 제안은 아니었다.
레어 급, 혹은 유티크 급의 아이템을 빌려 준다고 해도 사냥 외에는 쓸모가 없는 것.
위드가 다니는 사냥터는 극히 위험한 곳들이다. 언제 잃어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런 부담 가는 물건을 받을 수는 없었다.
"여러분들이 바라는 일을 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위드는 각 길드의 모든 제안들을 거절했다.
조건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바라는 것도 많다는 뜻.
사냥 파티에 끼기 위해서 좋은 조각품들을 만들어서 바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이번에 크게 명성을 날린 이후, 만들어 낸 조각품을 적당한 가치의 아이템과 교환하는 편이 나으리라.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위드를 포섭하고 싶어 했지만, 길드들은 곧 위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자 상을 만든 초기에는 각 길드들이 서로 위드를 모셔 가려고 아우성이었다.
위드의 조각품을 보고 놀라운 효과를 체험하고는 경쟁적으로 달려든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길드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어차피 조각상이다. 중복해서 능력치 증가가 적용되지도 않잖아.'
'제일 좋은 것 1개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조각품은 너무 커서 우리들이 독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른 조각품들도 들고 다닐 만큼 크기가 작진 않을 것 같아.
휴대성에서 뒤떨어지겠군.'
'하루 밖에 적용이 안 된다면, 매일 마을로 돌아와서 조각상을 볼 수도 없는 노릇.'
위드의 의견대로 따르기만 한 것은 조각사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조각사는 자유롭게 움지이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길드에 속해서,
장인처럼 조각품들을 만들어서 배분하는 데에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었다.
초대형 사자 조각상이 완성되고 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피라미드도 그 웅장한 거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규모가 너무나도 커서 한동안은 작업을 더 해야 했다.
피라미드의 완성은 상층부로 갈수록 더욱 힘들어졌다.
높은 곳까지 석재를 들어 올리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석재를 운반할 임시 비탈길을 만들었다.
피라미드의 높은 지역까지 흙과 모래로 비탈길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석재를 운반하는 방식이었다.



[술의 위력]



검치 들은 이름을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벌써 한 달도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 길치로 이름을 바꾸는 게 어떨까요?"
게임이라고는 접해 본 적이 없는 무식한 초보들!
어느 정도 로열 로드에 익숙해졌다고 여겼지만,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동네에서야 어느 정도 먹혔지만, 로자임 왕국의 남부 미개척 지대를 돌아다니다 보니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그러던 차에 위드가 로자임 왕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검치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드디어 나의 제자를 만나게 되는구나."
"사제를 어서 보고 싶습니다, 스승님."
검치 들은 일치단결했다.
"어서 사제를 만나러 가자!"
그들은 세라보그 성으로 돌아오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났다.
"이쪽인 것 같습니다. 스승님!"
"여기로 가면 금방 도착할 것 같은데요."
"어라? 여긴 아까 왔던 장소......."
위드가 로자임 왕국에 막 도착했을 무렵에 출발한 검치 들은 로자임 왕국을 헤매고 헤맨 끝에
마침내 세라보그 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노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검사십구치는 그들을 보며 웃었다.
"힘은 저렇게 쓰는게 아니지!"
검이백십육치도 웃었다.
"곡괭이질을 저렇게 해서야....저게 다 기술이야, 기술!"
"못도 하나 못 박을 것처럼 비실비실해 가지고."
"우리들이 나서자."
"우와아아!"
퀘스트이 보상에 완전히 눈이 먼 검치 들!
검치 들은 웃통을 벗어부친 뒤 바로 석재들을 나르고 삽질을 개시했다.
지금까지 피라미드 건축에 동원되 이들 가운데에는 검치들보다 레벨이 높고,
힘과 민첩 등의 스탯이 월등한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검치 들의 삽질에는 당해 내지를 못했다.
"삽질은 힘이 아리나 요령이라니까."
"암! 초짜들은 괜히 일만 키우는 거지."
"여긴 우리한테 맡겨."




위드와 페일, 수르카, 이리엘, 로뮤나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메이런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라비아스 이후로 오랜만에 재회를 하는 것인데, 당시엔 위드가 병사들에 의해 끌려가다시피 하여 회포를 채 풀지도 못하였다.
피라미드 제작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이제야 가벼운 환담을 나눌 수 있었다.
위드가 직접 만든 김치전에 레모네이드.
언뜻 생각하면 잘 어울리지 않는 식단이지만 페일과 수르카 들은 게 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다.
접시를 내놓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손들이 뻗어 나와 김치전을 찢어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김치전이 담긴 접시가 텅비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위드는 푸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더 드릴까요?"
"네."
"10인분 더!"
메이런은 손가락까지 쪽쪽 빨며 외쳤다.
페일이 놀라고 수르카 들이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잖아요.
그러니까 맘껏 먹을래요. 체중 관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에요.
그나저나 위드 님은 참 대단하네요. 스킬만이 아니라 요리까지 이렇게 잘하시니 여자들한테 사랑받겠어요."
"원래 위드 님의 요리는 알아주었죠. 우리들한테도 맛있는 걸 많이 해줬워요, 메이런님."
"아이참, 페일 님도......"
페일과 메이런은 은근히 주위의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페일의 착 까는 음성과 느끼한 말들.
거기에 호응하듯이 콧소리를 내는 메이런까지, 완벽한 바퀴벌레 커플의 탄생이었다.
"에휴, 지긋지긋해."
"매일 저렇다니깐."
김치전을 배불리 먹은 일행은 자리에서 탁탁 털고 일어났다.
잘 먹고 잘 쉬었다.
오래만에 만난 그들이 결국 할 일은 사냥밖에 없었던 것이다.
은근히 폐인인 그들은 위드가 피라미드를 만들고 사자 상을 조각할 때를 이용해 열심히 레벨을 올렸다.
그동안 뒤처진 것을 따라잡기 위해서 매일 피를 볼 정도였다.
그런 노력으로 일행은 5개 정도의 레벨을 올려서 이제 레베이 제일 낮은 이리엔도 225가 되었다.
페일이나 수르카 들은 조금 더 높은 23 정도 였다.
위드 와는 겨우 20 레벨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페일이 자조적으로 중얼거린다.
"그동안 코피를 다섯 번이나 흘렸습니다."
"전 일곱 번요."
수르카가 말했고, 이리엔이 받아쳤다.
"전 아침마다 현기증이......"
그러나 역시 결정타는 성직자인 이리엔이었다.
"전 아예 코를 막고 다녀요! 그리고 전철 안에서도 사람들이 막 고블린으로 보이더라니까요.
현실이랑 구분이 잘 안가는 거 있죠."
"......."
위드와 일행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이리엔을 봤다.
'뭐, 그래도 상관없겠지. 성직자니까.'
권사인 수르카라면 바로 주먹을 날릴지도 모르지만, 이리엔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리엔이나 페일 들은 단기간에 너무 사냥에 집중한 나머지 잠시 혼란이 왔을 뿐이다.
본인들의 과장도 상당히 심했고 말이다.
아무렴 위드만큼 거의 1년간 4시간 미만으로 자면서 로열 로드에만 빠져 있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그럼에도 위드는 로열 로드에 대해서는 부작용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환기도 안 되는 먼지투성이의 골방에서 1년 내내 옷감 염색하고 인형 눈 붙이는 작업을 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했다.
먼지가 너무 많아 숨을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염색약 들은 왜 그렇게 독한지 없던 피부병이 생길 정도였다.
결국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비로 더 많은 돈이 나가고 말았었다.
'무슨 일을 하든 몸을 축내서는 안돼.'
로열 로드에 전념하는 시간만틈 운동도 했다.
잠을 잘 때에는 언제나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잘 잘 수 있다.
나는 푹 잘 것이다.
나는 딱 4시간만 자고 일어난다.
나는 행복한 꿈을 꿀 것이다.


의미 없는 중얼거림 같지만 자기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 었다.
이러한 주문은 의외로 효과가 컸다.
편안한 수면을 취할 수 있기에 심리적인 안정이 된다.
아직은 적금도 제때 내고 있고, 위험한 빚 독촉을 받지 않아도 된다.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위드였다.
친한 이들, 안심하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사냥을 나서려는 위드!
그때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다섯 사람이 있었다.
검치 들이었다.
"우리도 끼워 다오."




검치를 비롯하여 검둘치, 검삼치 등은 피라미드 제작에 끼어들지 못했다.
체면이 있지 수련생들과 삽질이나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들은 자연히 위드를 찾아왔다.
마침 위드는 사냥을 가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들도 데려가 다오."
"다들 한몫씩은 할 수 있을 거다."
무예인으로 전직한 검치 들!
다른 수련생들은 레벨이 아직 180 정도에서 머물고 있지만, 검치와 4명의 사범들은 레벨이 200을 넘었다.
모든 걸 제쳐 두고 사냥에만 집중하고 있는 탓에 레벨 업 속도가 매우 빨랐던 것이다.
최근에는 퀘스트도 하게 되었다지만 복잡한 퀘스트는 사절이었다.
누굴 잡아오라거나 아니면 누구와 싸우라는 단순한 퀘스트만 할 뿐이었다.
모든 종류의 무기를 다룰 수 있으며 최강의 공격력을 가진 무예인들.
"좋습니다. 같이 가시죠."
위드로서도 그들의 동참은 대환영이었다.
로열 로드에서는 아무나 동료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우스 클릭만 하면 되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모을 움직이느냐. 어떤 방식으로 전투를 하느냐.
실제로 잘 싸우는 사람이 로열 로드에서도 전투를 잘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머리 좋은 사람이 게임 속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감각이나 운동 신경, 전투 경험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를 못하는 이들은 심한 경우에 짐짝 취급을 받기도 했다.
대다수는 시작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기에 차차 여기저기서 전투 경험을 쌓으면서 적응을 하지만,
그렇더라도 어떤 동료를 받아들이냐는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검치들 5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최고였던 것이다.
검치, 검둘치, 검삼치, 검사치, 검오치!
검의 달인들인 만큼 전투 능력은 믿을 수 있다.
아울러 무예인들이 어떻게 싸우는지도 볼 수 있고 말이다.


위드와 페일 등의 일행. 거기에 검치 들까지 섞인 대인원.
그들은 말을 빌려 타고 이동을 했다. 걸어서 움직이기에는 사냥터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다.
위드는 로자임 왕국에 대해 해박한 페일을 믿고 길 안내를 맡기고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죠?"
"조금 거리는 있습니다. 말을 타고 2시간 정도?"
걸어서가 아니라 말을 타고도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면 사실 만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우리가 갈 곳은 헌트리스의 계곡인데요. 레벨 280 정도의 헌트리스들이 두셋씩 무리르를 지어서 나옵니다.
좀 위험한 곳이죠. 저희들도 위치만 알아 놓았을 뿐 직접 가 보는 건 처음입니다."
페일의 말에 위드는 헌트리스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헌트리스들은 여전사였다. 검이나 창, 혹은 채찍을 휘두르는 강인한 여전사들!
"그렇군요. 그곳의 지형은요?"
"계곡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사냥이 이루어집니다.
사실 헌트리스들은 묘한 습성이 있어서,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한 사람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선 침입자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계곡의 깊은 곳으로 완전히 들어왔을 때에야 한 무리씩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헌트리스들을 전부 물리치기 전에는 살아서 나갈 수 없는 것이죠."
"다 죽거나 다 죽이거나 둘 중 하나로군요."
"예 상당히 위험한 장소입니다."
위드는 페일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동을 했다. 그리고 곧 그들은 헌트리스의 계곡에 도착했다.
"으....살벌해요."
수르카가 겁에 질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흐른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가줄 옷을 입은 헌트리스들이 나무와 숲사이에 숨어 있었다.
교묘히 위장을 하고 수풀 사이에 모습을 감추었지만, 위드나 일행은 긴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헌트리스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정말로 공격을 하지 않는군요."
"예.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터 공격할 겁니다. 완전한 포위망을 구축한 다음에요."
"만약에 외곽의 헌트리스들로부터 사냥한다면?"
"그래도 소용없습니다. 헌트리스들을 보았다면 이미 포위망이 구성되고 있는 것이니까요."
"전투를 준비해야겠군요."
위드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각종 도구들을 꺼냈다.
숫돌과 넙적한 바위, 고급 천까지.
"위드 님, 뭐 하세요?"
이리엔의 질문에 위드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무기나 방어구들을 벗어 주십시오."
"네?"
"전투 전에 준비해야 할 게 있습니다."
"아, 맞다!"
일행은 위드가 대장장이나 재봉사 스킬을 중급까지 올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둘러 자신의 장비들을 벗어 주었다.
슥삭슥삭, 땅!땅!땅!
검을 갈고 방어구들을 닦고 옷을 다리는 위드!
메이런으로서는 신기하기만 한 일이었다. 그녀는 페일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 위드 님이 뭘 하시는 거예요?"
그녀는 조각사와 함께 사냥을 한다고 했을 때에 당연히 친분 때문에 위드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봤다.
아무래도 생산 직업은 약하다는 것이 공인된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페일을 비롯해서 로뮤나나 이리엔 모두가 사냥을 하는 데 위드를 앞세우고 있었다.
위드의 의중을 가장 많이 살피고 위드의 결정을 따른다.
메이런은 방송 일을 하는 탓에 남달리 눈치가 빠를 수밖에 없는데,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에 헛갈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전투에 앞서서 해괴한 행동을 한다.
다림질과 검 갈기, 방어구 닦기!
페일은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실은 위드 님이 중급 대장장이 스킬을 가지고 있거든요."
"에엑?"
메이런은 깜짝 놀랐다.
중급 대장장이가 된 사람은 대륙 전체를 뒤져도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조각사가 중급 대장장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정도로 놀라면 곤란하죠. 위드 님은 대장장이 스킬 외에도......"
그때 이미 위드는 다른 일행의 무기와 방어구 손질을 전부 마쳤다.
이제는 메이런 차례였다.
메이런은 머뭇거리다가 활을 건네주었다.
"호오! 좋은 활이군요."
위드는 메이런의 활을 살펴보고는 잠시 놀랐다.
유니크 아이템!
'이걸 팔면 못해도 천만 원은 받겠다.'
위드의 눈가에 어린 탐욕! 욕망!
이렇게 귀한 아이템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메이런은 심각하게 불안해졌지만, 위드는 묵묵히 시위를 조절하고 활 전체의 탄력을 손봤다.
그러고 나서 돌아온 활에 메이런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이엘프 베니스의 양손 활 : 내구력 40/40. 공격력 75. 사정거리 16.
불길한 까마귀를 쏘아 잡은 활
시위는 엘프들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져서 행운을 가져오는 힘이 있으며, 적의 정신력을 깎는다.
제한 : 레벨 230. 민첩700. 레인저 전용.
옵션 : 힘 +10
민첩 +20
정확도 60.
속사 스킬의 효과 +25%
공격당한 적의 마나를 3소모시킴.
속도가 느린 적에게 무조건 명중.
위대한 예술혼을 가진 장인이 직접 손을 보았다.
그 효과가 지속되는 한, 내구력 10. 공격력 9. 힘 +20. 민첩 +15. 정확도 +16. 속사 스킬의 효과 +10%.
사정거리가 5가 추가로 늘어난다.



"와아!"
메이런은 몇 번이나 자신의 활이 맞는지를 살폈다.
위드가 약간 손을 봐 준 것뿐인데 거의 20% 정도씩 성능이 향상되었다.
"이게 중급 대장장이의 스킬......"
그녀의 활은 지인에게 선물 받은 것으로, 나쁘지 않은 물건이었다.
내구력이 조금 낮은 것이 흠이지만, 활로 몬스터를 때릴 일이 없으니 단점은 아니었다.
본래 검이나 기타 무거운 병기들은 내구력이 더 높은 편이고, 활은 내구력이 낮은 편인 것이다.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죠. 어서 옷도 드리세요."
"이건 천으로 된 방어구인데요?"
메이런은 의아해서 물었다.
대장장이는 철이나 광석으로 만들어진 물품들을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천으로 만든 방어구들은 재봉사만이 제대로 다룰 수 있었다.
천 방어구를 손질할 수 있는 재봉사는 대장장이보다 훨씬 희귀했다.
"괜찮아요."
페일의 말을 믿고 메이런은 그녀가 입고 있던 무지개 옷을 벗어 주었다.
장인의 무지개 천으로 만들어진 레어 옷.
7개의 화려한 색깔이 어딘가 익숙한 옷이었다.
바로 위드가 경매로 팔아 치웠던 옷이 이리저리 흘러서 메이런에게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다시 위드의 손을 거쳐서 돌아온 장비들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방어력 상승, 생명력 회복 속도 증가, 결빙 상태 빠르게 풀림 등! 온갖 효과가 다 붙어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메이런의 눈에 어린 불신의 빛!



위드는 이처럼 일행의 장비들을 전부 손봐 주었다.
공격력과 방어력, 내구력의 상승, 이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전력 상승이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거기에 위드는 요리 도구들을 꺼냈다.
수르카가 가장 고대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스테이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와아!"
좀 전에 먹어 치우고 나서도 다시 배가 고픈지 수르카는 환호성을 지른다.
음식은 맛도 좋지만 구경하는 데에도 재미가 있었다.
위드는 마법처럼 요리를 했다.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는데 푸른 불길이 그 위를 덮었다.
빠르게 변화하며 자글자글 익어가는 고기!
입맛을 돋우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페일 등이 간절히 위드와 사냥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언제 봐도 화려해.'
'정말 예쁘다.'
이리엔과 로뮤나의 눈이 몽롱해졌다.
저렇게 맛있게 익어가는 요리를 먹을 때의 기분이란 과연 어떨까,
얼마나 행복 할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검치 들도 있었다.
"오오. 이런 좋은 냄새가......!"
"보리빵보다 백배는 맛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에게도 먹을 기회가 올까요?"
검치 들은 침만 꿀꺽 삼켰다.
"먼저 드세요."
"저희들은 위드 님이 해 준 요리를 자주 먹었거든요."
착한 이리엔과 로뮤나는 음식을 양보했다.
위드가 계속 만들어 줄 테니 우선권을 넘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검치 들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었다.
"정말 말있다."
"아! 고급 요리라는 게 이런 맛이었군."
검치 들은 지겹게 보리빵만 먹고 살아온 것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이 고기를 먹어 치웠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만들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워낙 빨리 먹어 치워서 그냥 고기를 통째로 구워야만 했다.
"더 빨리!"
"좀 덜 익었어도 괜찮으니 어서 다오."
검삼치는 익지 않은 고기까지도 탐을 낸다.
완전히 거지 떼가 따로 없었다.
결국 위드가 준비해 온 고기들은 전부 검치 들의 입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난 게 아니었다.
아직도 무언가 허전한지, 검치는 계속해서 입맛을 쩍쩍 다시고 있었던 것이다.
"위드야."
"예."
"네 요리 솜씨가 아주 좋구나."
"별로 내세울 건 아닙니다만, 배고프시면 언제든지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검치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흠흠! 요리는 이만하면 됐다. 다만....맛있는 요리를 너무 많이 먹었더니 목이 칼칼해서 말이다."
"세라보그 성을 떠나기 전에 물을 담아 왔습니다. 드릴까요?"
위드는 수통을 꺼내 세라보그 성의 분수대에서 담아 온 물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검치는 손을 저어 이를 만류하는 것 이었다.
"그 뜻이 아니라......"
"그러면 무엇을....혹시 술 말씀이십니까?"
눈치 빠른 위드가 묻자 검치는 은근슬쩍 딴청을 피웠다.
"뭐 꼭 그런건 아니지만....있느냐?"
"이런, 진작 말씀을 하시지요."
위드에게는 배낭 깊숙이 숨겨 둔 술들이 있었다.
여려 약초들을 배합하면서 시험 삼아 만든 약초주!
뿌리 깊은 포도나무에 열린 신선한 포도로 만든 포도주!
그 외에 양조주나 증류주도 다양하게 가지고 있었다.
요리 스킬이 중급이 되면서 얻은 술 제조 스킬. 그 기술을 썩히지 않고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초를 주을 때마다, 그리고 포도나 과일들을 구입해서 술을 만들었다.
음식이란 식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적절한 반주 한 잔을 걸칠 때에 그 위력이 극대화되는 법!
술은 음식의 효과를 배가시켜 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도 체력이나 힘이 많이 늘게 해 주었다.
음식들은 재료만 있으면 곧바로 할 수 있지만 술은 미리 담가 놓아야 하니,
전투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용도로 종류 별로 10병씩이나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여기 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안주로......."
위드는 곧바로 배낭에 손을 넣어서 술 한 병을 꺼냈다. 안주로는 미리 준비한 육포를 주었다.
"고맙다, 제자야."
기대하지 않은 안주까지 받아 든 검치는 만족한 얼굴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둘치가 다가왔다.
"흠흠. 실은 나도 목이 좀 마르구나."
"예. 그러지 않아도 드리려는 참이었습니다."
위드는 재빨리 배낭에서 술을 꺼내서 검둘치에게 건네주었다.
검삼치와 검사치, 검오치 들에게는 말을 하기도 전에 직접 갖다 주었다.
기왕에 줄 것이라면 호감 가는 얼굴로, 웃으면서 주는 것이 점수를 따는 길이었다.
원래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술을 먹일 작정이기도 했다.
무예인의 화려한 전투 능력을 십분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이들이 잘 싸워 주는 만큼 사냥이 쉬워진다. 경험치를 모으기 위해서라도 이분들의 활약이 중요해.'
위드는 페일 등에게도 술을 한 잔씩 따라 주었다.
"정말 마셔도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마시면 체력과 생명력, 힘이 조금 늘어날 겁니다."
일행은 가볍게 한 잔씩을 마셨다. 그러자 위드의 말대로 각 능력치들이 늘어났다.
메이런은 혼란에 빠졌다.
'이게 무슨.....이런 사냥 파티는 본 적이 없어.'
그녀는 직업의 특성상 여러 사람들과 사냥을 해 봤다.
아주 유명한 레벨 높은 기사들도 많았다. 대규모 길드에 속해서 온갖 능력치 향상 마법을 몸에 주렁주렁 걸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 파티는 대체 뭔가!
생산직 캐릭터가 쓸 수 있는 파티 능력 향상 방법들을 모두 걸고 사냥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것들은 바드나 성직자, 사면 등이 걸 수 있는 버핑과 중복되어 사용이 가능하고,
그 자체의 능력치 향상도 굉장한 수준이었다.
정말 특이한 파티 구성이었다.
메이런은 열심히 술을 따라 주는 위드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위드야."
"네."
"어떤 술들이 있는지, 다른 것도 맛 좀 보자꾸나."
"그건......"
위드는 거절을 하려고 했다.
애써 담근 술들은 그의 보물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
그런데 검치가 처량한 얼굴을 하는 것이었다.
"그저 맛만 보자는 건데...... "
꼭 술을 달라고 했으면 차라리 거절하기가 쉬웠을 텐데.
이처럼 서글픈 표정을 보니 차마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그때 검둘치와 검삼치 둘이 검치를 말렸다.
"스승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위드도 열심히 담근 술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맛만 보자는 건데....."
"우리들은 레벨도 낮습니다. 그러니 사냥에 끼워 준 것만해도 고맙게 여겨야지요."
검둘치와 검삼치는 분명 말리고 있었지만,
그들이 던지는 자조적인 말들은 위드로 하여금 술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면 맛만 보십시오."
위드는 배낭에서 여러 가지 술들을 꺼냈다.
투명하게 맑은 술에서부터 시작해서 진한 포돗빛, 호박색, 검은색, 연한 푸른색 등 다양한 술들이 나왔다.
어떤 큰 술병에는 뱀이 똬리를 따서 마셨다.
"오! 이것은 뱀술!"
검치 들은 대번에 뱀술을 따서 마셨다.
"스태미너가 대폭 증가한다!"
"목구멍을 통해서 화끈한 기운이 내려간다.!"
"이건 정말 최고의 술이구나!"
뱀술이 줄어들 때마다 위드는 안타까움에 가슴을 쳤다.
그러는 사이에도 검치 들은 무서운 속도로 술을 퍼마셨다.
평소의 위드라면 술을 만든 재료비 때문에 울상을 짓고 전전긍긍했으리라.
그러나 위드는 검치 들이 숲을 마시는 걸 보면서도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이런 술의 재료값이라고 해 봐야 몇 푼이나 된다고......'
대다수는 직접 구한 재료들.
포도 열매 등도 사실 재료값은 얼마 되지 않았다. 뱀은 직접 잡은 것이고 약초도 직접 캔 것이었다.
잡화점에서 개당 1실버에 병을 산 정도가 재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 병들은 다시 회수해서 새로운 술을 담글 수 있으니 소모된 재료값은 얼마 안 된다.
곳간에서 인정 난다는 말이 있듯이 큰돈을 벌어들인 위드가 눈곱만큼 아량을 베푸는 것이었다.
위드가 현재 가진 돈은 7만 골드 정도의 거금. 걸을 때마다 묵직한 돈주머니가 찰랑거린다.
이 돈의 대부분은 피라미드를 건설하면서 벌어들인 돈이었다.
자고로 공사판이란게 다 그렇다.
공사비 과다 책정과 무한 하도급! 그리고 각종 비용 착취 및 싸구려 자재 사용!
미성년자일 당시에 불법 노가다 판을 전전하면서 아저씨들에게 배운 지식을 최대한 활용했다.
총 공사 비용 10만 골드!
그중에 무려 6만 골드 정도를 챙긴 것이다.
'써먹지 않은 지식은 죽은 지식이지.'
위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사이에 처음의 약속은 어디로 간 것인지, 검치 들은 뱀술을 깨끗이 비운 이후 다른 술들로 손을 뻗쳤다.
"어허, 좋구나!"
"스승님, 이 술도 정말 맛있습니다."
"입에 아주 제대로 달라붙는구나."
아무도 검치 들을 저지하지 못했다.
현실에서도 온몸이 흉기인 그들은 로열 로드에서도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외모와 눈빛에서 뿌려지는 살벌함에, 페일 들은 감히 저지하지 못했다.
실상 검치 들이 얼마나 엉뚱한 짓을 저지르지는 알고 있었지만, 차마 나서서 말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딸꾹, 기분 참 조오타아."
"스승님, 오늘따라 멋져 보이십니다. 그런데 언제 두 분으로 늘어나셨습니까아?"
"녀석, 너는 넷으로 늘어나지 않았느냐!"
"하하하하하!"
검치 들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페일에게도 술을 권했다.
"남자가 한 잔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한 잔은 이미 했는데요."
"그럼 두 잔! 내가 있고 술이 있으니 이 세상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페일은 사양하려고 했지만, 계속 술을 권하는 검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잔을 받았다.
그러나 내심은 그도 술을 원하고 있었다.
위드가 빚어낸 술은 너무 달콤하고 맛있었던 것이다.
검치들은 이리엔, 로뮤니, 메이런 들에게도 술을 권했다.
"자, 다들 한 잔씩 하자고."
"고맙습니다. 이제 좀 친해지는 것 같아요."
"암, 암! 함께 술을 마시는 것만틈 친분을 두텁게 만드는 것도 없는 법이지."
다 함께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시는 일행.
"로뮤나 양이라고 했던가? 참 활달하니 예쁘네."
"메이런 양, 자네는 얼굴이 왜 그렇게 뽀얗지?"
"어머! 고마워요. 검치 어르신들, 제 잔도 받으세요."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잔이 석 잔 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여인들의 볼에 홍조가 오르고, 검치들의 얼굴은 이미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위드는 불안했다.
특히 모라타 지방에서 혹독한 경험을 겪은 위드의 경우에는 일행의 저러한 행동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설마....아닐거야. 그것만은!'
그러나 운명은 언제나 위드를 가혹하게 사지로 내몰았다.
일행이 술을 마시면서 뜬 메시지 창!



- 파티원들이 지나친 음주로 고주망태가 되었습니다.
생명력이 70% 하락합니다.
힘과 민첩성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지혜와 지식, 마나를 아예 사용할 수 없습니다.
취기가 다 가실 때까지 어지러움이 느껴지고 환각 효과가 발생합니다.



만취한 파티원의 목록
검치, 검둘치, 검삼치, 검사치, 검오치, 페일, 수르카, 이리엔, 로뮤나, 메이런



헌트리스의 계곡까지 일부러 찾아왔는데, 함께 사냥을 해야 할 동료들이 시원하게 술을 퍼마시고 해롱거리는 것이 아닌가.
"아, 별이 보인다."
"무척 신기하네요."
"으하하! 이렇게 좋은 계곡에 와서 술을 마시니 이게 바로 사는 기쁨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검치와 페일 들은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위드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예인인 그들, 전투에 특화된 그들과 함께 사냥을 하며 레벨을 마구 올리겠다는 꿈은 그저 꿈으로 끝난 듯싶었다.
그리고 때마침 나타난 헌트리스 들.
"침입자들인가? 여긴 우리들의 구역!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위드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행이 전부 술에 취한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위드가 좌절한 것은 아니었다.
"콜 데스 나이트!"
데스 나이트 소환!
언제나 전투에서 믿을 수 있는 데스나이트.
"주인, 불렀는가?"
"헌트리스를 공격해. 즐거운 사냥 시간이다."
"알겠다. 주인! 그보다도 한 가지 알려줄 것이 있다."
"뭐지?"
"우리는 오랜 시간 함께했다.
그대의 친화력 덕분에 지독한 마성에 빠져 있던 나느 반 호크로서의 전생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충성스러운 기사 반 호크는 칼라모르 제국의 기사였다.
하지만 더 이상 제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나는 주인을 인정한다.
앞으로는 목걸이가 없어도 주인의 부름에 응답하겠다."
바르칸이 만든 붉은 생명의 목걸이!
이 목걸이가 없더라도 데스 나이트를 부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붉은 생명의 목걸이는 어느새 완전한 흰빛으로 변해 있었다.
"잠깐만, 그러면 이제 붉은 생명의 목걸이를 굳이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그러면 내 경험치는?"
데스 나이트를 소환할 수 있다는 점 외에는 옵션도 능력치도 별다를 게 없는 목걸이를 벗을 수 있었다.
사실 목걸이야 벗으나, 안 벗으나 그리 큰 차이는 없다.
반지처럼 목걸이 액세서리 또한 매우 귀한 것이기에 아주 좋은 옵션의 아이템을 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던 것이다.
제대로 된 목걸이는 수천만 원에도 팔리 정도로 값이 나갔으니, 직접 구하지 않는 한
웬만한 옵션의 목걸이를 착용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일.
그러나 위드에게 더 중요한 것은 빈대처럼 달라붙어 있는 데스 나이트에게 분배되는 경험치였다.
어떤 상태에서든 20%씩 빼앗아 가는 경험치!
데스 나이트 호쾌하게 대답했다.
"목걸이가 없더라도 나를 부를 수 있다. 나는 주인을 아무런 대가 없이 인정하기로 했다."
경험치의 분배가 끝났다.
위드는 이제부터 그야말로 자유로워진 것이다!
데스 나이트는 시커먼 연기가 뿜어 나오는 동공으로 헌트리스들을 보았다.
"저 헌트리스들을 죽이면 되는가?"
"그래, 공격해."
위드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데스 나이트느 헌트리스에게 스킬을 날렸다.
"데스 블레이드!"
시커먼 검의 기운이 작렬하면서 큰 폭발이 일었다.
하지만 헌트리스들은 꽤나 레벨이 높은 몬스터였기에 데스 나이트의 스킬 한 번에 죽거나 하진 않았다.
위드는 외쳤다.
"성스러운 가호!"
아가사의 검에서 흰빛이 뿜어 나와 위드를 뒤덮었다.
하루에 다섯 번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방어력만큼은 확실히 상승시켜주는 스킬!
"조각 검술!"
위드는 조각 검술을 이용하며 약간의 부상을 입은 헌트리스들에게 다가갔다.
"어리석은 사내!"
"우리 여전사들의 힘을 보여 주겠어!"
헌트리스들이 들고 있던 채찍을 날카롭게 휘두르자, 그 끝이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며 다가온다.
위드는 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파라라락!
채띡이 검에 마구 감겨들었다.
헌트리스와의 힘 싸움.
그런데 위드의 손목이 부드럽게 움직이자, 검이 그 안에 서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팽그르르 돌았다.
거의 마술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순식간에 채찍을 전부 풀어낸 위드는 헌트리스의 정면으로 다가가서 검을 내려찍었다.
위드의 검은 그대로 헌트리스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졌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위드는 헌트리스의 곁에 붙어서 떨어지는 않았다.
채찍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을 때에 제일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바로 지척이라고 할 수 있는 거리에서 검을 휘드르는 헌트리스가 당해 내질 못하는 모습이었다.
가까이 붙어 있는 적을 향해 휘둘리는 어설픈 채찍은, 성스러운 가호와 남다른 방어력을 가진 위드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위드는 한 손에는 아가사의 검을, 다른 손에는 자하브의 소검을 꺼내서 열심히 헌트리스를 베었다.
이윽고 헌트리스의 출혈량이 많아지더니 바닥에 눕고 말았다.


-경험치를 습득하셨습니다.


일부러 빈틈을 노출시키고 그것을 해소하면서 적을 공략하는 방법!
전투에 아주 익숙하지 않다면 불가능한 동작이었다.
그사이에 데스 나이트도 1명의 헌트리스를 해치웠다.
"휴! 제법 무난하게 잡았군. 수고했다. 데스 나이트."
"아니다. 주인. 나는 전투를 좋아한다."
데스 나이트는 순종적으로 대답했다.
하기야 바스라 마굴에서 조금 거만을 떨다가 죽도록 얻어 맞았으니 위드의 거지 같은 성질을 감안해서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데스 나이트의 도움을 받아 헌트리스 들을 힘겹게 처디한 위드가 막 아이템을 주우려고 할 때였다.
곧바로 그다음 헌트리스들이 출연했다.
이곳은 헌트리스의 계곡이었다.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끝없이 적이 나타나는 장소 였던 것이다.
겨우 살아남는가 싶으면 곧바로 새로운 적들이 나타난다.
그에 비해서 일행은 모두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었다.
믿을 건 데스 나이트와 위드 자신뿐!
'그래도 30분 내로는 일어나겠지.'
조금만 버티면 될 것 같았다.
그러자면 데스 나이트의 생명력이 떨어져서 역소환되는 일이 벌어져선 곤란했다.
"데스 아니트, 앞으로는 무조건 1마리씩만 맡아라! 나머지는 내가 책임진다."
"알았다, 주인."
위드는 그때부터 데스 나이트와 합격술을 펼쳤다.
데스 타이트는 그저 적과 싸울 뿐이지만, 위드는 그의 동작과 위치를 파악하면서 전투에 이용했다.
때로는 싸울 공간을 열어 주기도 하고,
일부러 약간의 부상 정도는 감수하면서 데스 나이트 앞에 있는 헌트리스가 공격 기회를 갖게 만들었다.
가히 전투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죽을 고생을 다해서 싸우는 위드!
헌트리스들은 창으로 찌르고 대검으로 내려친다.
그럴 때마다 위드는 최소한의 피해로, 그리고 마나 소모없이 헌트리스들과 싸웠다.
땅바닥도 구르며 자존심도 챙기지 않았다.
때로는 생명력이 10 이하로 떨어지는 바람에 헌트리스들을 데스 나이트에게 맡기고 근처로 도망치기도 했다.
"헉헉!"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감는 붕대였다. 붕대가 감길 때마다 생명력 하락 속도가 느리가 바뀌고,
약초들까지 먹자 생명력이 소폭 올랐다.
그때에는 데스 나이트가 역소환되기 직전이었다.
위디는 다시 헌트리스와 전투를 벌여야 했다.
조각품을 만들 때마다 확실하게 올라가는 지구력!
이것은 전투에 즉각전인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싸워도 지치지 않게 만들어 준다.
스킬 사용은 최소로!
그럼에도 마침내 위드의 체력이 다 떨어져서 검을 들기도 힘들어졌다.
그야말로 최대의 한계까지 몰아붙여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으로도 모자랐다.
헌트리스들이 죽자마자 또 다른 적들이 나타난다.
마침내 위드의 마나는 물론이고 데스 나이트의 마나까지도 전부 떨어지고 말았다.
갈수록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자 위드는 결국 비장의 수단을 꺼냈다.
"정말 나도 이것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위드의 품에서 양념 통 같은 것들이 여러 개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요리사가 가진 회심의 비기!
"상처 난 데에는 소금! 덧난 데에는 간장! 고춧가루와 마늘 즙도 듬뿍 넣어주마!"
잔인한 위드는 헌트리스의 상처 부위에 사정없이 소금을 뿌리는 것이었다.
찢어지고 피난 데에는 소금!
길게 파인 상처에는 간장!
눈과 입에는 각종 젓갈들!
"끄아아악!"
"제, 제발 소금만은......"
"눈에, 눈에 고춧가루가 들어갔어!"
헌트리스들은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그러면서 생명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상처 부위에 소금을 뿌리면 쓰라리고 아프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찾아온다.
이것은 가히 위드가 아니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잔인한 기술이었다.
음식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잘 쓰지 않았지만,
극악한 고통으로 적의 정신을 붕괴시킬 수 있고, 많은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기술이었다.
단 이것은 그냥 뿌려서는 효과가 없고 먼저 상처를 입혀 놔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제약고 존재했다.
"소금, 소금, 후추! 풋고추 간 것, 마늘장아찌!"
위드는 스킬 대신에 음식 재료들을 뿌리며 선전했다.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죽어서 하루 동안 접속이 안 되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지만, 숙련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이었다.
여러 중급 생산 스킬들의 숙련도가 5% 이상 떨어진다면 그것은 레벨이 1 ~ 2개 하락한 것보다 훨씬 큰 손실이지 않던가.
위드는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애써야 했다.
근처를 빙빙 돌다가 적을 유인하기도 하고, 최대한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싸운다.
성스러운 가호도 효력이 떨어질 때마다 썼기 때문에 하루 최대치인 다섯 번을 모두 쓸 수 밖에 없었다.
적들의 눈치도 살피고. 조미료를 뿌리며 이리저리 구리기도 수차례!





위드가 죽을 고생을 하고 있을 때에 검치 들과 페일, 수르카들은 실눈을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 위드 님은 정말 잘 싸우시네요.
- 역시 위드 님입니다. 어디에 내던져 놔도 쉽게 죽을 분이 아니에요.
- 바퀴벌레보다 더한 생존력이죠.
- 모든 사람이 저러면 성직자란 직업, 필요하지도 않을 것 같아요.
수르카나, 페일 이리엔 들은 위드를 보며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어쩌면 저렇게 환상적으로 전투를 할 수 있을까.
그들도 사냥을 좋아하기에 지금 위드가 하는 전투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었다.
스킬에만 의존, 마나를 펑펑 낭비하면서 싸우는 건 쉽다.
하지만 기초적인 검술과 몸동작을 이용해서 전투를 치르는 건 굉장히 어려웠다.
게다가 그저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스태미너가 하락 하니, 헌트리스들과 연거푸 전투를 치르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인 것이다.
메이런도 실눈을 뜨고 보고 있었다.
'세상에, 조각사가......!'
무슨 조각사가 저렇게 잘 싸운단 말인가.
데스 나이트를 소환했을 때부터 놀란 그녀였다.
소환사가 아닌 직어브올 데스 나이트를 소환한다는 것은 매우 대단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 외에 헌트리스들과 온갖 묘수, 꼼수들을 동원해서 싸우는 위드를 보며 더더욱 경악하고 있는 메이런이었다.





- 제법인데.
- 역시 스승님이 눈독을 들이신 아이답군요.
검치와 검둘치는 냉정하게 위드의 움직임을 살폈다. 위드가 전투를 치르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 실제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래도 전투에 대한 임기응변은 최고 수준입니다.
- 검도가 임기응변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 그렇더라도 어떤 형식에든 적응할 수 있고, 또 맞춰 간다는 건 쉽니가 않아.
- 검에 대해 상당히 이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다면 저렇게 맞춰 가진 못해요.
- 아직 쓸데없는 동작도 제법 있지만, 대체로 괜찮아 보이는군. 잘만 가르친다면 역시 강해지겠어.
사실 검치 들이 정신을 차린 것은 훨씬 오래전 일이었다.
술을 마시고 취해 쓰러진 것.
이 모든 게 검치가 세운 계획의 일환이었다.
위드가 로열 로드에서 어떻게 싸우는지를 알고 싶었다.
진짜 적을 상대로 내뻗는 검이 어떤 모습인지를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싸우기도 전에 포기해 버리거나, 아니면 궁리도 하지 않고 좌절한다면 적잖이 실망했을 터였다.
검을 든다는 것은 그 검을 이용해서 적과 겨룬다는 뜻이다.
아무리 로열 로드가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투쟁심도 없이 스킬에만 의존해서 싸운다면 검을 아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검을 익히는 데 저해되는 요소일 뿐이었다.
위드가 싸우는 것을 보고 있는 몇몇 사람들의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검삼치!검사치!검오치!
스승의 전투를 보면 너무나도 높은 경지에 있기에 배울 점만 보였다.
그런데 여러 면으로 부족한 위닥 처절하게 싸우자 오히려 흥이 났다.
"혼자만 싸우게 놔둘 수는 없지!"
그들은 벌떡 일어나서 헌트리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옆에서 다른 동료들도 일어났다.
"파이어 볼트!"
"데들리 샷!"
"데들리 샷!"
로뮤나가 화염 마법을 시전하고, 페일과 메이런이 동시에 동일한 스킬로 헌트리스에게 화살을 날렸다.
커플은 이러한 때에도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성령의 힘이여. 여기 고통받는 이를 구원해 주세요. 치료의 손길!
지친 육신의 활력이 생겨나라. 리커버리! 사악한 악에 맞서 싸우는 그의 힘이 최고조로 이로도록 해주세요. 블레스!"
이리엔이 회복과 축복 마법을 써 줬다.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사냥의 개시였다.
오랜만에 만나 일행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헌트리스들은 등장과 동시에 우선 페일과 메이런의 화살 공격부터 받아야 했다.
더 가까이 다가오면 로뮤나의 화염 마법이!
수르카도 다부진 주먹으로 헌트리스들을 때렸다.
무예인들인 검치 들은 말할 필요도 없는 노릇!
"오, 불타오르는구나!"
"경험치가 올라간다!"
검치 들의 막강한 공격력!
그리고 이리엔과 로뮤나, 수르카, 페일, 메이런의 조화!
위드의 뒷받침. 데스 나이트의 원조.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최고의 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성적표]




학교에서 공부를 마친 이혜연은 집에 가기 위해 빨리 걸었다.
버스를 탄다면야 시간이 더욱 단축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면 버스비가 든다.
오빠인 이현을 닮아서 자린고비 정신이 투철한 그녀는, 버스는 정말 급할 때 이용해 주는 정도였다.
물론 그때마저도 중학생으로 행세했다.
중학생은 고등학생보다 요금이 200원이 더 저렴했던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기사 아저씨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학생"
"왜요?"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대인 고등학교의 교복 아닌가?"
"오늘 언니 옷을 입고 나왔어요."
"언니 옷은 왜.......?"
"고등학생 오빠들이랑 미팅 있거든요. 아저씨, 정말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 빨리 좀 가 주세요. 예?"
그러면서 이혜연은 무릎을 살짝 굽혀서 키를 작게 만들고, 보조개를 만들며 귀여운 척을 했다.
눈을 깜빡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타고난 동안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흐음, 알았으니 앉게나."
"고맙습니다. 기사 아저씨."
기사 아저씨들은 은근슬쩍 넘어가주기 일쑤였다.
이혜연은 그럴 때마다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여자라서 좋은 점이 많다니까.'
그런데 여자로 살려면 남자보다 훨씬 많은 물품들이 필요했다.
속옷들이나 화장품들.
이혜연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타고난 수완가였다.
남자들이 주는 선물로 모든 것을 해결했던 것이다.
남자들의 고민 상담이나, 혹은 자신의 친구들 중에서 괜찮은 애들끼리 다리를 놓아 주기만 해도 선물들이 들어온다.
그런 처세술 덕분에 이혜연의 용돈은 꾸준히 은행 통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괜히 이현의 동생이 아니었다.
"오늘이 도착할 날짜인데......."
서둘러 집에 온 이혜연은 우편함부터 열어 봤다.
드디어 며칠째 기다려 온 검정고시의 성적표가 왔다.
이현이 치른 시험의 결과물.
"드디어 왔구나."
아마 인터넷으로 결과를 확인했지만 이혜연은 다시금 성적표를 살폈다.


국어 : 75점
사회 : 90점
수학 : 65점
과학 : 55점
영어 : 65점
도덕 : 40점
───────
총점 : 390점
평균 : 65점



총점 360점 이상, 그리고 40점 이하 과락을 면했으니 검정고시는 합격이었다.
"이제 오빠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셈이네."
이혜연은 눈물을 훔치며 웃을 수 있었다.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아침마다 학교에 가면서 이현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이현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를 위해서 돈을 벌고 밥까지 차려 주는데, 그 밥을 먹으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녀는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몸이 조금 좋아졌지만 아직은 방심할 수 없는 단계라 여전히 입원해 있었고,
그래서 집에는 이현과 그녀 단둘이었다.
하지만 이현은 아직 캡슐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개 그녀의 하교 시간에 맞춰서 나오지만, 그녀가 오늘 평소보다 훨씬 일찍 집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자, 어서 청소나 하자!"
이혜연은 열심히 집을 쓸고 닦았다. 청소기를 돌리고 밀린 설거지를 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아침에 먹었던 그릇들이 여전히 있네. 하기야 요즘 오빠는 다시 도장에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더 피곤할 거야."
로열 로드를 준비하던 시기!
정확히 1년간 이현은 거의 폐인처럼 지냈다.
가상현실에 대한 복잡한 논문들을 찾아서 배우고,
로열 로드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그러면서 육체를 단련하고 전투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야말로 하루 24간도 부족할 정도로 뛰어다녔다.
수면 시간은 3시간에서 4시간 정도였는데, 그러면서도 가족의 식사는 직접 챙겨 주었다.
처음 이현이 검술 도장에 다닐 때, 그녀는 얼마나 기분이 상했는지 모른다.
손은 물집투성이고 몸에는 자잘한 상처 자국들이 가득했다.
그리고는 탈진해 집에 와서는 죽은 듯이 잠만 잤던 것이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혜연은 우울해졌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혜연도 할 일이 있었다.
'어서 이걸 치우고 공부를 해야지.'
한국 대학교 입학.
언제부터인가 이혜연의 목표가 되고 말았다.
사실 처음부터 한국 대학교에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좋은 학교가 아니라도 관심 있는 분야에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실내 디자인이 그녀가 원하는 분야였다.
그런데 이현은 그녀를 한국 대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희생해 준 오빠를 위해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목표는 4년 전액 장학금!
단순히 입학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부터는 장학금을 받고 과외를 해서 자신이 쓸 돈은 직접 벌 작정이었다.
이혜연은 스스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 오빠의 성적표가 도착했어요."
그날 이혜연은 결국 기쁨을 참지 못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할머니에게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서였다.
"정말로 현이가 검정고시에 합격했구나."
할머니는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진심으로 기뻐했다.
"네, 그럼요! 여기 성적표를 보세요. 도덕만 빼고는 다 점수가 높은 편이에요."
"그렇구나. 우리 현이가 머리는 참 좋아."
듣기에 따라서는, '머리는 좋지만 인간성은 매우 나쁘다!' 그런 쪽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이현의 가족들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기에 인간성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성적표를 살피로 또 살폈다.
"정말로 합격이구나. 내가 죽기 전에......."
"예?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한참 저희 들과 행복하게 사셔야지요."
이혜연은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았다.





이현은 오전 시간마다 도장에 나가고 있었다.
육체를 단련하고 안현도에게서 검술을 사사하는 것이 그의 아침 일과였다.
"어서 오너라."
"검정고시 합격을 축하한다!"
이현이 도장에 갔을 때에는 안현도를 비롯하여 사범들과 스련생들이 전부 모여있었다.
이현의 검정고시 합격을 기념해서 따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이제 국가 공인 고등학교 졸업생인가?"
"고졸이로군."
"나도 한때 중학교는 열심히 다녔는데......."
사범들의 부러움에 안현도는 의아해졌다.
"뭐냐, 너희들? 너희들은 고등학교도 안 나왔는냐?"
"예, 저희들은 검을 배우기 위해서 일찍 학교를 그만두었지 않습니까."
검의 외길 인생을 살아온 사범들!
안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단순하고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싸지."
"그런............"
사범들은 존경하는 스승의 말에 큰 상처를 받았다.
'우리는 그래도 중학교라도 나왔지.'
'자기는 초등학교도 안 나왔으면서.....'
안현도는 대외적으로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세계 유수의 명문 대학들이 그의 검도 실력을 인정하여 명예박사 학위를 준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다닌 건 유치원뿐!
유치원 시절 다른 애들을 하도 두들겨 패서 잘리 전무휴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에는 동네 깡패들을 목검으로 두들겨 팼다고 하지, 아마......?'
'상대는 전치 16주가 나왔다던가? 무슨 7살짜리가 유치장에 들어가냐'
'그래서 초등학교도 못 들어갔으면서.'
하지만 입 밖으로 소리 낸 사범은 아무도 없었다.
안현도는 이미 젊어서 검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싸울 만한 상대가 없다며 명상을 하거나 바둑이나 두면서 지내왔다.
정신 수양과 심신 단련을 위한 검, 천지와 조화되는 검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로열 로드를 하면서 다시 검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강한 자를 꺾는 검!
힘이나 민첩 등이 현저하게 높은 몬스터들.
몬스터들을 잡으면서 안현도는 더 강한 이와의 싸움을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잊어 왔던 흥분을 다시 찾게 되었다.
꿈에도 나올만큼 짜릿하 일이었다.
"그런데......"
이현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제가 요즘 도장을 다니는 것을 알고 오늘 동생이 와서 구경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괜찮겠습니까?"
"그래? 그야 뭐, 안 될 것은 없다만......"
안현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승낙했다.
수련생 이상은 전문적으로 검술을 배우는 제자들이었다.
여러모로 재능이 있는 이들을 각지에서 데려와서 양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장에서는 일반인이나 어린 학생들도 검도를 배우고 있었다.
"자, 그러면 연습하자. 연습!"
짧은 축하를 뒤로하고, 정일훈을 비롯한 사범들은 수련생들을 세웠다.
"오늘은 먼저 기본 훈련을 1시간 정도 하고, 그다음은 대련이다."
"옛!"
오전의 기본 훈련.
수련생들은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럼 전 동생을 데려오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이현은 잠시 뒤 여동생이 올 시간이 되자 도장 밖으로 나갔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미리 약속 시간을 정한 것이었다.
"오빠!"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학교에 가지 않았기에, 이혜연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
무릎을 살짝 덮는 치마와 짧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거린다.
주변에는 여동생을 따라온 친구들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축제 때에는 구경 잘했어요."
이혜연의 친구들!
이현은 머쓱하게 대답했다.
"어어, 그래."
"그럼 어서 들어가자, 오빠."
이현은 여동생과 여동생의 친구들으 데리고 도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수련생들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엇, 여자다!"
"고등학생이야."
"세상에, 여고생이 이곳을 찾아오다니......"
"예쁘다."
금녀의 구역이나 다름없는 도장에 찾아왔다.
퍼버벅!
대련을 하던 이들의 검에 실린 힘이 갑자기 강해졌다.
수련생들 간에 혈투극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이현은 지치도록 검술 수련을 받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물론 버스비가 아까워서 웬만하면 걷거나 가볍게 뛰었다.
달리기야말로 몸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운동이다.
'고등학교 졸업이라......'
이현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맺혔다.
사실 졸업을 한 건 아니지만 이제 어디에서든 고등학교는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가 많이 기뻐하시겠군. 그래도 혜연이도.....'
부모가 없는 이현으로서는 아무래도 이혜연이 많이 걱정 되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소심하고 겁이 많던 아이였다.
그런데 척박한 가정환경 때문에 조금 억세게 자랄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내가 부모 노릇을 대신 할 수는 없어. 그날이 마지막이 되겠지."
이현의 꿈은 여동생이 번듯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
신부가 입장할 때에는 아버지 대신 이현이 인도를 해 주어야 할것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여동생을 돌봐 왔기에 부모의 역할을 하는 것은 익숙했다.
신라아에게 여동생을 맡기는 그때야말로 이현은 자유로워질수 있으리라.
그 후의 삶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해 보지 못하였다.
매달 살기가 팍팍하였고, 그럴 고민을 할 시간이 있다면 돈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여동생이 대학을 나와서 결혼을 한다면 이현은 비로서 자신을 삶을 찾게 되는 것이었다.
'다만.....'
이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여동생은 정말 괜찮은 남편을 만날 것이었다.
현재의 성적이라면 혜연은 한국 대학교를 무난히 입학할수 있을 테고,
졸업해서 좋은 직장에 취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건이나 외모, 어떤 면에서도 꿀릴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검정고시에 합격한 이현이 그 결혼식장에서 여동생을 인도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내가 오빠라는 사실이 미안해지는군.'
이현 자신이 가족이라는 사실이 여동생의 단점이 될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새마을 갱생 정신병원!
이현이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병원이었다.
으리으리한 외관 외에도 안에는 첨단 기자재들로 가득하다.
'예전에 저곳에서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지. 저런 곳의 의사라면 참 자랑스러울 텐데.'




정신분석학 박사 차은희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정서윤을 원래의 밝은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 보았다.
로열 로드에 접속시킨 게 최후의 수단이었다.
가상현실은 상당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가상현실 속에서 이루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다.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면서, 현실에서 당했던 너무 큰 아픔도 조금쯤은 희미해질 수 있다.
차은희는 서윤이 정신적인 강박관념에서 탈출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매일 서윤의 플레이 영상을 살폈다.
그녀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험보다도,
그녀가 직접 판단하고 움직이는 영상을 볼 수 있는 로열 로드의 기록을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서윤이 로열 로드를 플레이한 영상은 모두 캡슐에 저장이 되었다.
개인 정보에 속하는 것이지만 차은희 에게는 담당의사로서 접근 권하니 있었다.
서윤은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금방 고칠 수 있겠어!"
처음에 차은희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보았다.
서윤의 병은 마음을 닫아걸어 놓은 것이었다.
웃지도 않고, 다른 이에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는다.
아예 말을 잊어버린 것처럼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사냥을 한다면 욕심이 생길 것이다.
좀 더 강해지고 싶고, 좀 더 좋은 아이템을 장만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리라.
인간으로서 좀 더 가지려느 마음은 치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차은희의 기대는 얼마 되자 않아 산산조각 났다.
서윤은 사냥을 했다.
단지 사냥을 할 뿐이었다.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가서 전투를 한다.
광전사인 캐릭터답게 미치도록 싸운다.
어떤 이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건 로열 로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나?'
세라보그 성에서 생긴 교관과의 친분.
수련소에서 뜬금없이 친해진 교관이지만 반가운 인연이었다.
함께 음식을 먹고, 교관의 말을 들어주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다른 이와 어울렸다는 자체만으로 의미 있었다.
'비록 아주 단순한 반응밖에 이끌어 내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 외에 몬스터와의 전투도 가끔 괜찮은 부분이 있었다.
혼자서 너무 오래 갇혀서 지내다 보면 스스로를 의심하고 폐쇄 현상을 일으킨다.
어린아이처럼 유치해지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아직까지 서윤은 그러한 단계가 아니었다.
큰 아픔에서 온 단절이기에 그저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 슬픔을 이겨 내는 데에 전투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다.
"휴우,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어."
차은희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세라보그 성에서 나온 후 서윤은 남부로 가서 정말로 끝도 없는 사냥을 반복하고 있었다.
'언제 까지 그렇게 갇혀 지낼 거니.'
서윤은 그녀가 맡은 환자였지만, 그보다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동생이었다.
부모님들끼리의 친분으로 인해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고, 언니라고 부르면서 잘 따르던 소녀였다.
하지만 이제는 웃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는다.
차은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정상으로 고쳐 놓고 싶었다.
"그런데 바란 마을에 서윤이의 동상이 왜 세워져 있을까?"
서윤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지만,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는 바란 마을의 수호신!
프레야 여신상은 바로 서윤의 얼굴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미소 짓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차은희를 아찔하게 만들 정도였다.




로자임 왕국의 남부에서 전투를 반복하던 서윤은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남부에도 유저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들과 만나지 않기 위해 조금씩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블러드 레이번, 다크 헌터, 구울 로드 등과 전투를 치렀다.
그러나 그 남부 지역에도 조금씩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었다.
아직은 서윤이 사냥을 하는 던전이나 필드의 근처에는 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부담이었다.
'여기도 더 이상은 있을 수 없겠어.'
서윤은 남부를 떠나기로 했다.
중앙 대륙에서 시작한 그녀는 로자임 왕국, 그곳에서도 남부로 왔지만 더 먼 곳으로 갈 필요성을 느꼈다.
'동쪽으로.....사람이 없는 곳으로.'
서윤은 장벽을 넘어 절망의 평원으로 향했다.




피라미드 제작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주요 뉴스였다.
직접 제작에 참여한 이들로부터 입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로열 로드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게되었다.
피라미드는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위드에게는 여러 취재 팀들이 찾아왔다.
피라미드의 건축에서부터 시작된 모든 과정을 담아서 방송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저 로자임 왕국에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식의 짧은 소식만을 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유저들의 노력에 의해서 직접 만들어지는 피라미드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싶어 했다.
최초의 시작은 막막함에서부터, 그리고 유저들이 모이고 의뢰를 받아들이면서 벌어지는 대역사!
참여한 유저들의 노력과 땀으로 완성된 피라미드였다.
뜨거운 감동을 화면에 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연예인들, 혹은 개그맨들을 섭외해서 동일한 피라미드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꾸며도 인기가 좋을 것이다.
유명한 개그맨들이 생고생을 하면서 불가능한 도전을 마침내 이루어 내는 데에는 감동과 기쁨이 있으니까.
"100만 원 드리겠습니다."
"저희들만 방송할 수 있게 해 준다면 200만 원 드리겠습니다."
위드에겐 매일 여러 제의들이 들어왔다.
그러던 차에 큰손이 나타났다.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피라미드와 관련된 아이디어로 학습 광고를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계약금은 무려 700만 원!
"좋습니다."
위드는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헌트리스의 계곡에서 벌어지는 사냥은 매일 박진감이 넘쳤다.
사실 워리어나 팔라딘 등이 없으므로 완벽한 파티 구성은 아니지만,
뛰어난 공격력으로 헌트리스들을 제압하면서 경험치를 모아갔다.
그 덕분에 위드도 레벨 7개를 올려서 266을 만들었다.
검치 들과 함께인 만큼 매우 빠른 레벨 업 속도였다.
위드는 사냥을 더 오래 하고 싶었지만 이때에는 드디어 피라미드의 상층부 제작이 끝났다.
그 순간만큼은 위드도 피라미드가 완성되는 장소에 서 있었다.
띠링!



현왕 시오데른의 무덤 완료
죽음을 직감한 왕은 자신의 무덤을 만들기를 원했다.
여러 방면에서 모험가로 명성이 자자한 조각사는 왕의 무덤을 훌륭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 덕분에 국왕은 마음 편히 안식에 들 수 있으리라.
퀘스트 보상: 시오데른 왕에게 가서 받으시오.
단, 왕이 죽기 전에 가야 함.




"완성했다!"
"만세!"
피라미드 주변에 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공성전이 활발하지 않은 로자임 왕국으로서는 이토록 짧은 인파가 한군데에 모인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최소한 석재 한두 번씩은 운반해 본 사람들이니, 피라미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갔다.
위드는 왕실로 향했다.
무덤이 만들어졌으니 의뢰를 맡긴 국왕을 만나 보고 상을 받기 위함이었다.
현왕 시오데른.
그는 왕실의 대전에서 위드를 맞이하였다.
왕은 어느새 더 많이 늙어 있었고, 병세가 더욱 악화된 모습이었다.
위드는 기사들처럼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취했다.
"국와 폐하를 뵙습니다."
"일어나시오. 자격을 갖춘 예술가에게는 그만한 존중을 주어야 하는 법. 과도한 예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오."
"아닙니다, 폐하."
위드는 일어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현왕 시오데른은 기사들을 시켜서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위드를 대하는 국왕의 태도는 말투에서부터 지난번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고맙소. 이제 나의 안식처가 만들어졌으니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구려. 그대, 뛰어난 조각사여.
무슨 생각을 하면서 나의 쉴 곳을 만들어 주었소?"
"역경 속을 정면으로 뚫고 살아오신 왕의 인생을 떠올리면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적들을 죽였지. 나는 이제 죽는다면 가장 낮은 곳에 떨어져서 고탕받고 말 것이오."
"폐하의 인생은 불꽃과도 같습니다. 감히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잡으려는 자는 화상을 입기 마려인지요.
불은 그저 자신을 태워서 주위를 밝혔을 뿐입니다. 화려한 불꽃은 로자임 왕국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고,
이제 안락한 휴식의 장소에서 쉬면서 왕국이 번영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왕 시오데른은 만족해야며 말했다.
"그대여, 명성이 자자한 조각사에게 의뢰를 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소.
짐의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안식처를 만들어 주었구려. 그대에게는 어떠한 보상이라도 아깝지 않을 것이오."



-퀘스트의 보상으로 명성이 690 올랐습니다.


-왕실 공적치를 2,930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5개의 레벨과 2,930의 왕실 공적치!
그러면서 국왕이 말했다.
"다른 이들도 자신이 한 만큼의 공적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오.
그대가 이 왕실을 위해 해 준 일이 참으로 대견하구려.
왕실에 세운 그대의 공을 치하하기 위하여 무언가를 해주고 싶소. 그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오?"
짜릿한 순간이었다.
위드가 꿈꾸던 장면.
왕실 공헌치로는 좋은 아이템을 받을 수 있다.
'2,930이라면 꽤 쓸 만한 레어 급, 혹은 그 이상의 무기도 구할 수 있겠군.'
아가사의 검은 여러모로 괜찮은 편이었다.
신앙 스탯을 올려주고 부상 상태에서 체력 회복 속도가 증가하는 등, 특수 옵션들이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프레야 교단의 물건이기 때문인지 공격력은 조금 부족했다.
위드가 원하는 것은 검!
그것도 매우 뛰어난 검이었다.
하지만 위드는 퀘스트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절망의 평원에서의 의뢰는 검이 좋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드는 결심을 굳히고 말했다.
"폐하, 저는 프레야 교단의 의뢰를 받아서 악신을 신봉하는 네크로맨서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들이 절망의 평원에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으며, 이를 저지하는 것이 저의 사명.
그렇지만 불행히도 저에게는 힘이 모자랍니다. 로자임 왕국의 용기 있는 병사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국왕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망의 평원에 대해서는 나도 들어 본 적이 있지.
혼돈의 시기에 추방당한 유민들과 다크 엘프들이 살고 있다고 하오.
몬스터들의 천국으로, 우리 왕국에서도 몇 번 토벌대를 보냈으나 모두 돌아오지 않았소.
그래서 높고 튼튼한 장벽을 쌓아서 적들의 칩입을 방비하는 것이 고작이었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쯤 되면 모라타 지방보다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위험한 장소가 아닌가!
그렇지만 위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퀘스트란 모험이었다.
모험을 해 보기도 전에 결과를 미리 짐작하고 안주한다면 영영 짜릿함을 맛볼 수 없으리라.
"그 무법 지대에 정녕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 그대를 도울 만한 병사들을 파견해 주겠소.
그대와 함께 싸울 우리의 병사들을 소중히 여겨주면 좋겠구려."
왕실의 공적치를 군대의 파병 요청으로 상쇄시킨다.
그야말로 눈물 어린 결정이었다.
'어쨋든 혼자의 몸으로 사제들만 데리고 가서는 너무 어려운 퀘스트다.'
그러면서도 위드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공적치를 전부 군대로 만들어 버리면 왠지 아쉽다는 생각에서다.
"그렇지만 저 역시도 로자임 왕국과의 추억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공을 세운 것이 있다면, 국왕 폐하의 은덕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검을 내려주십시오."
끝내 아쉬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검을 원하는 것이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금까지 위드는 여런 NPC들과 함께해 왔다.
처음에 리트바르 마굴에서의 사냥에서부터 모라타 지방의 의뢰까지.
그러나 어디 하나 평범한 사냥이 있었던가?
병사들이나 기사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허리가 휘고 손발이 부르틀 지경이었다.
사서 하는 고생!
그것도 왕실 공적치와 바꾸어 가면서 전부 군대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만큼 위드의 고생도 심해질 것이다.
위드는 시종의 인도에 따라서 연무장으로 향했다.
"폐하 명에 따라서 위드 님을 도울 수 있는 충성스러운 기사들과 병사들을 데려가실 수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직접 고르시기 바랍니다."
로자임 왕국의 기사들이 입고 있는 은빛 갑옷에서는 은은한 광택이 흘렀다.
타고 있는 말은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잡티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잘되어 보인다.


-왕실 공적치로 병사들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위드에게 다시금 떠오른 메시지 창.
기사들의 가슴에는 일정 숫자가 쓰여 있었다.
'공적치에 따라서 고르면 되는 모양이군.'
왕실 공적치에 따라 임대할 수 있는 군대의 규마나 질이 달라진다.
기사나 병사들을 선택하면 공적치가 줄어드는 방식이었다.
위드는 우선 기사들로부터 차례대로 살펴보았다.
몇 개의 기사단이 있었다.
로자임 왕국의 유명한 기사단.
무력이 뛰어난 이들로만 이루어진 적색 기사단에서부터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는 바이스 기사단,
심지어는 국왕 직속의 왕실 기사단까지 존재했다.
왕실 기사들은 개개인의 레벨이 280이 넘었다.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왕실 기사들을 선택하고 싶었다.
'이들을 선택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막 왕실 기사들을 가리키려던 위드의 손이 멈칫했다.
기사들의 가슴에는 1인당 최소 30정도의 숫자가 쓰여 있었다.
1명을 선택할 때마다 30의 왕실 공적치가 소모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등 중 몇 명에게는 50, 혹은 60 이상의 숫자가 적혀 있기도 했다.
퀘스트와 왕실 공적치.
이것 때문에 로열 로드에서는 길드의 횡포가 많이 줄어들었다.
모험가로서 많은 발견을 하고 의뢰를 해결하게 되면, 비록 제한은 있지만 왕실이나 귀족으로부터 군대를 빌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드의 근처에는 어느새 무기들과 방어구들이 가득했다.
검과 창, 도끼, 활, 몽둥이, 메이스
검의 종류만 해도 장검, 대검, 쌍검, 숏소드 등 수백 가지 였고, 그 외에도 각종 아이템들을 고를 수 있었다.
물론 각각의 아이템에도 소모되는 공적치가 정해져 있다.
아주 낡아 보이는 검은 3이나 5짜리도 있지만, 웬만큼 좋아 보이는 검은 1,500이나 2,000이 적혀 있는 것이었다.
병사를 많이 고르면 무기가 울고, 그렇다고 무기를 고르자니 병사들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어떻게 모은 공적치인데....쉽게 써 버릴 수 없다.'
한 번 죽어 버리면 끝인 병사들이었다. 그게 아니라도 의뢰를 마치면 왕실에 다시 돌려줘야 하는 병사들이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무기는 계속 남는 것이다. 현금으로 판매할 수도 있다.
위드는 고심 끝에서 우선 10명의 왕실 기사들을 선택했다.
위드는 그들을 고르는 즉시 나름대로 이름을 붙였다.
51, 53, 55, 56, 58, 59, 60, 98, 99, 100!
피 같은 왕실 공적치를 소모하면서 고른 기사들인 만큼 얼굴과 공적치의 소모양을 절대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름대로 자격이 있는 분 같으니 당신의 말을 들어 드리지요."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국왕 폐하의 명령이니 일단 따르기는 하겠습니다."
가시들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왕실 기사들을 고른 다음에는 병사들과 다른 기사들을 정해야 하지만 무기부터 고르기로 했다.
'남은 공적치는 병사들로 맞출 수 있지. 하지만 마음에 드는 무기가 있는데 공적치가 모자라면 안 되니까.'
위드는 여러 장식이 화려한 무기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딱히 끌리는 것이 없었다.
'거추장스럽기만 해. 이건 전투용이 아니라 예술품이로군.'
무기나 방어구들은 감정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눈으로만 보고 골라야 했다.
그러나 위드는 소므렌 자유도시에서 수리 스킬을 써 주면서 많은 검들을 보았다.
모양이나 형태만으로도 대략적인 검의 특성을 꿰뚫을 수 있는 수준에 오른것이다.
더군다나 대장장지의 경험으로 검의 재질도 살필 수 있게되었다.
위드가 고른 것은 미스릴이 많이 섞인 검이었다.
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재료를 보고 고르는 수밖에 없다.
"감정!"



차가운 로트의 검 : 내구력 150/150. 공격력 68 ~ 75.
니플하임 제국.
대륙 북부 출신 로트 용병단의 단장이 이용하던 검.
차가운 얼음의 기운을 머금고 있다.
제한 : 힘 600. 레벨 250.
옵션 : 힘 +50. 민첩 +10. 통솔력 +20%
빙한 계열의 추가 데미지 30.
적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든다.
용병이 되었을 때에는 바로 실버 등급을 획득할 수 있다.


"쓸 만하군."
위드는 만족했다.
공적치 1,700을 투자해서 정한 검이었는데, 괜찮은 물건이 나왔다.
옵션은 아가사의 검보다 나쁘지만 원하던 대로 공격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본래 공겨력이 약한 아가사의 검은 검 갈기 스킬을 시전해도 큰 효과가 없지만,
로트의 검은 더욱 뛰어난 검이 될 것이다.
남은 공적치 541을 분배하기 위해서 병사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 아죽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다.
"대장님!"
베커, 호스람, 데일, 부란.
리트바르 마굴에서 함께 사냥을 하며 친밀도를 높였던 병사들. 그들이 있었다.
"너희들이 이곳에......?"
"예, 수도 인근에 몬스터들의 침입이 잦아서 요즘 토벌 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베커나 호스람 등은 백인장으로 승진을 마쳤다. 그래서 휘하 부대를 100명씩 거느리고 있었다.
"대장님께서 다시 돌아올 줄 믿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대장님."
부란과 테일도 기쁨을 표시했다.
높은 친밀도 덕분에 위드를 보며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위드는 마침 잘되었다고 여겼다.
믿을 만한 병사들이 필요한 시점에서, 직접 기른 이들을 다시 데리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긍정적이니까!
"너희들을 택하겠다. 나와 함께 잘해 보자."
서슴지 않고 부란 등을 죽음의 길에 함께 가는 동반자로 선택한 위드!
베커 들과 400명의 병사들을 택하자 공적치는 겨우 3정도가 남았다.
시종이 말했다.
"병사들과 기사들은 가능한 무사히 돌려보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드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좀 야박한 말이지만, 병사들과 기사들은 전투에 동원하기 위해서 데려가는 것이었다.
마구 부려 먹고, 괴롭히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사악한 위드는 이미 부하들을 마음껏 활용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들이 죽고 사는 것까지 관리하지만 너무 힘든 일이 되리라.
그런데 시종의 이어진 말.
"그대가 우리 왕국의 병사들을 아껴 준다면 왕실에서는 그 공헌을 다시 인정할 것입니다."
병사들을 살려서 데려온다면 공적치를 상당히 회복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돌아온 병사들이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면, 국왕 폐하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기뻐하실 겁니다."
병사들을 키워서 데려오면 공적치를 더 올려 줄 수도 있다. 이 말로, 위드는 상전으로 모셔야 할 이들이 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병사들이나 기사들의 목숨까지 돌봐 줘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은 병사들을 고르는 건데.......'
기사들의 연무장에는 과거에 수련관의 교관이던 도르크와 리트바르 마굴에서 사냥을 함께한 기사 미발도 있었지만,
그들을 고용하기에는 공적치가 부족했다.
그들은 왕실 기사들보다도 오히려 많은 공적치를 필요로 했다.
'아쉽군.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위드는 이것으로 왕실에서의 일을 마무리 했다.




프레야 교단.
그곳에서는 고위 신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떠나실 준비는 되었습니까?"
"예."
위드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의 뒤에는 부란과 베커, 호스람, 데일 등이 100명씩의 병사들을 데리고 기다리는 상태였다.
백인장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물, 왕실 기사들도 은근히 긴장 어린 얼굴로 서 있다.
왕실 기사들이라고 해도 대체로 이런 퀘스트를 경험해 본 적은 드물기 때문이다.
고위 신관이 말했다.
"사제들 50명은 텔레포트 게이트 앞에서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내해 주시지요."
위드는 텔레포트 게이트 앞에서 사제들과 조우했다.
프레야의 사제들.
신성한 법복을 입은 남자 사제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미녀 사제들이었다.
"허억!"
"용기가 납니다, 대장님!"
베커와 부란 들은 사기가 하늘 끝까지 오를 정도가 되었다.
위드는 부대를 이끌고 텔레포트 게이트 위에 올라섰다.
대규모 부대가 움직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전투 상황에서 직접 지휘를 할 수 있는 병력은 사제 50명뿐!
왕실 기사들이나 부란, 베커 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 할 것이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프레야 여신님의 은총을......."
고위 신관들과 사제들이 마나를 모으자 텔레포트 게이트에 빛이 번쩍하고 일었다.
잠시 후 빛이 사라졌을 때, 위드 등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로자임 왕국의 명물인 피라미드는 하루에도 4만 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대단한 장소가 되었다.
사실 순수한 관광 목적만이라면 이 정도의 인원이 올 수 없겠지만,
사자 상의 효과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와! 대단하다."
"정말이야. 피라미드를 이곳에 만들다니......."
"난 동영상으로 봤는데 너무 신기해서 일부러 찾아왔다니까."
그렇게 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이들에게 사자 상의 정면에 있는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루와 캥거루, 사슴, 토끼들의 조각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많은 유저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초식동물.
초보 시절에는 이 깜직한 동물들을 몽둥이로 때려잡고, 칼로 찔러야만 했던 것이다.
그 조각상들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가슴에는 이런 문구도 새겨져 있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관람료를 넣어 주세요. 기부사니 금액은 전액! 불우 이웃 돕기 성금으로 쓰입니다.


관람을 왔던 이들은 차마 그냥 돌아가지 못하고 1실버, 혹은 1쿠퍼라도 넣어주었다.




[유배자의 마을]



이현은 오늘도 일찍 일어나서 하루의 일을 시작했다.
우선은 다크 게이머 연합의 홈페이지에 들러서 정보를 검색하는 일부터였다.
최중훈의 말대로 다크 게이머 연합의 홈페이지는 온갖 정보들이 많았다.
퀘스트 정보, 사냥터에 대한 정보.
다크 게이머들이 다수 모인 곳인 만큼 아이템 거래에 대한 정보들도 많이 있었다.
이현의 등급은 C에 해당하였지만 어지간한 정보들의 열람은 가능했다.
"오늘도 별것은 없군."
이현이 찾으려고 하는 것은 특급 정보들!
그가 볼 수 잇는 게시판의 등급은 중간 수준이었지만 가끔 눈에 띄는 정보들이 있기도 했다.
대단한 모험을 한 이들이나, 혹은 비밀이나 퀘스트에 대한 단서를 얻은 이들이 등급을 올리기 위해 공개하는 글들이었다.
그런 글들은 게시판 이후에 큰 인기를 끌고, 곧 보안 등급이 좀 더 높은 게시판으로 옮겨진다.
이현이 보려는 것은 그 순간이었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는 하루에도 서너 가지의 특별 정보들이 올라오곤 하니,
눈만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다면 괜찮은 수확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이런 일도 있는거지. 어차피 포인트도 얼마 없고.......'
이현이 쓰는 계정에서는 매일 포인트가 줄어들고 있었다.
특정한 글들을 볼 때마다 줄어드는 포인트.
더 많은 정보들을 보기 위해서는 이현도 글을 동록해야만 했다.
그렇게 새벽의 정보들을 검색하다 보면 금세 시장에 갈 시간이 되었다.
이현은 장바구니를 들고 가벼운 점퍼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총각, 오늘도 일찍 오는구만. 오늘은 갈치가 좋아. 싸게 줄 테니 가져가."
"고맙습니다."
매일 빠짐없이 시장을 방문하니, 아줌마나 아저씨들에게 이현은 아주 익숙했다.
'독한 놈!'
'자린고비 같은 놈!'
생선 하나를 구매할 때에도 철저하다.
포획 장소와 시간 등을 따져서 신선도를 반드시 확인했다.
그런 다음에는 먼저 생선의 눈을 확인하고, 아가미를 들춰 본다.
비늘이 잘 떨어지는지, 살에 탄력이 있는지도 살폈다.
유통 경로도 전문가 수준으로 꿰고 있었고, 시세 동향에 대해서도 정확했다.
시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요 근래 생선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손님들을 많이 겪어 보았다.
그런데 이현은 시세까지 확실하게 알고 따져 보며 구입을 한다.
이 정도로 잘 알고 있으니 애초에 비싸게 팔긴 틀린 상태!
하지만 이현은 무턱대고 싼 물건만 찾지도 않았다.
여동생이 먹을 것이니, 기왕이면 좋은 물건들만 해 먹이려고 찾았다.
그런 이현의 취향을 알게 된 아주머니들로 인해서 이제는 흥정도 필요 없이 적당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었다.
"오빠, 잘 먹었어. 학교 다녀올게."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시장을 봐 온 음식 재료들로 만든 맛있는 갈치조림.
여동생이 학교에 간 다음에는 비로소 본격적인 이현의 시간이 펼쳐진다.





이혜연은 입시 공부를 하면서 대학을 가는 데에 여러 전형이 있다는 걸 배웠다.
한국 대학교.
그녀가 목표로 하는 이 대학에도 다양한 입학 방법이 있었다. 특히나 프로게이머 전형은 이혜연의 시선을 끌었다.


게임은 이미 하나의문화 사업이 되어 있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 가고 있습니다.
가상현실 로열 로드가 공전의 히트를 친 이후로 우리 한국 대학교에서는 게임 관련 학과를 만들었습니다.
게임과 관련된 각종 지식과 현재 주류가 된 가상현실에 대해서 전문 적인 지식을 배우게 됩니다.
수시 입학 자격 : 가종 게임 관련 입상 기록,
내신 성적(내신을 확인 할수 없는 검정고시나 외국계 학교일 경우 관련 성적으로 대체).
1차 서류 통과 시에는 가상현실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교수진과의 면접에 따라 결정함.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어 주는 가상현실.
이곳에는 장애인도 없고, 마음껏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로열 로드가 히트를 친 이후로 항공운항, 호텔관광학과 등이 축소됭고, 게임 관련 학과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현대에서 게임만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고 또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매체가 드문 탓이었다.
이혜연은 자신의 가족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오빠가 게임 캐릭터를 팔아 번 돈이 바로 그것이었다.
"입상 경력은 없지만 이것도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공인된 단체에서 부여한 경력이 아니더라도 대학교 측에서 어느 정도 참고는 가능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현의 가상현실에 대한 이해력은 최고 수준이었다.
로열 로드를 플레이하기 1년 전부터 가상현실과 관련되 각종 논문들을 보고 익혔다.
가상현실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대학원생보다도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이혜연은 지금가지 모아 놓은 용돈으로 대학교의 원서를 구입했다. 그리고 원서를 작성했다.
이현의 대학교 입학 원서!





절망의 평원.
지도상 로자임 왕국과 브렌트 왕국의 접경에서부터 동쪽으로 펼쳐진 광대한 평원이다.
이곳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많지 않다.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나오며 아직 개척되지 않은 지역이라는 것뿐!
잡화점의 지도에서는 절망의 평원에 대해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절망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들어가라.



평원의 이름은 매우 적절하게 붙어졌다.
그만큼 위험천만한 지역이라는 뜻이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타고 사라진 위드가 나타난 곳은 어느 언덕 속의 동굴이었다.
입구는 바위로 교묘하게 가려저서 일부러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한 바깥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아우우우!
위드가 나타나자마자 소름끼치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섬뜩하군.'
아무래도 모르는 지역에 도착했으니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부란과 베커는 용감하였다.
"대장님이 있으니 걱정 없어!"
"우리는 대장님만 믿으면 돼!"
"대장님이라면 놈들을 한칼에 해치워 버리실 거야."
"........."
위드는 우선 부대에 명령을 내렸다.
"이곳에서 대기해라. 당분간은 알아서 먹고 자고 하면서 나를 기다리도록."
"옛! 알겠습니다."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는 장소는 일단 안전지대다.
식량은 넉넉하게 구입해 왔기에 한 달이 지나도 굶주릴 일은 없다.
위드는 부대를 그대로 그곳에 남겨 둔 채로 혼자 정찰을 하고자 동굴에서 나왔다.
휘유웅!
칼날 같은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그 때문에 넓은 초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절망의 평원이라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녹색 물결들이 아름답게 흔들린다.
"멋지군."
초원의 풀들이 일제히 군무를 추듯이 움직이는 것은 장관이었다.
위드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가 있는 언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산이 있었다.
높이는 높지 않아도, 완만히 경사진 산의 규모만큼은 대단하였다. 산맥이 시작되는 시발점이었다.
'지도를 볼 때에는 유로키나 산맥인가?'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베르사 대륙의 지도.
그곳에 따르면 절망의 평원에 있는 산맥은 단 하나다.
유로키나 산맥.
대형 몬스터들이 유달리 많다는 장소!
그리고 산맥의 정상에는 성벽과 요새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요새의 중앙부에는 이상한 흑색의 신전이 있었다.
'저곳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벨제뷔트의 조각상이 있는 것도 같았다.
바르칸 데모프의 네크로맨서들이 만든 악신의 신전!
"취이이익!"
1마리 오크가 눈에 띄었다.
튼튼한 철판으로 만든 투구와 강철 갑옷을 입고 있는 오크.
녀석이 글레이브를 들고 움직이는 모습이 위드의 눈에 비친 것이다.
위드는 흥이 동했다.
"후후, 이제 조금 알 것 같군. 하긴 레벨이 오를 만큼 올랐으니까.
저 오크를 잡고 악신의 신전으로 올라가서 네크로맨서들을 처치하면 이번 퀘스트는 쉽게 끝낼 수 있겠어."
희망으로 부푼 가슴.
위드에게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나는 전투라면 물러서지 않지. 어떤 적도 두렵지 않아. 오크라면 대환영이다."
레벨 200을 달성할 때에도 혼을 잃어버린 오크를 잡고 이루었다.
오크는 욕심이 많아서 보물을 좋아한다. 비교적 인간과 가까운 형태의 몬스터라서 무기나 방어구들도 가끔 쓸 만한게 나왔다.
"잘 만났다. 오크야!"
막 위드가 검을 빼 들고 오크에게 달려들 참이었다.
순식간에 놈을 때려잡고 그 기세를 몰아서 악신의 신전으로 돌격하려던 찰나!
우수수수.
유로키나 산맥의수풀과 나무들이 한꺼번에 흔들린다.
위드는 돌격을 하기 위해 달리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유로키나의 산맥이 움직이고 있었니.
나무와 수풀 사이로 이동하고 있는 오크 대군!
적어도 3천이 넘는 그 오크 대군의 움직임이 위드의 눈에 보인 것이다.
또한 그것이 전부일지 아닐지는 누구도 알지 못할것이다.
"........"
위드는 조용히 검을 거두고 숨을 죽였다.
'진혈의 뱀파이어 일족은 그나마 숫자라도 적었지. 이번에는 완전히 숫자로 압도하는군.'
이 무식하게 많은 오크들이 단지 길목을 막고 있는 몬스터에 불과하다는 점이 더더욱 무서운 일이었다.
결국 위드는 오크들이 전부 지나갈 때까지 땅바닥에 몸을 붙인 채로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한참 후, 오크들이 다 떠나고 난 뒤에야 위드는 고개를 들었다.
그런 다음에는 유로키나 산맥 쪽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언덕 위에서 충분히 주변을 정찰한 위드는 곧 서쪽에 작은 성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성!
위드는 주변에 아무 몬스터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걸어서 그 성안으로 들어갔다.





유배자들이 사는 마을의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혜택 : 명성 300 증가.
미탐험 지역의 마을을 발견함으로 인해서 해당 마을에서 받는 퀘스트 보상이 일주일간 2배로 증가합니다.




위드가 성체 안으로 들어가서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 창이 떴다. 바르크 산맥에서 드워프의 던전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최초의 발견자가 되었군.'
절망의 평원에서도 한참이나 동쪽인 이곳까지 모험가들이 찾아오지는 못한 것 같았다.
목숨을 걸고 여행을 왔던 이들은 많았지만, 너무나도 넓은 평원이기에 이곳을 발견하지는 못한 것이다.
혼돈의 시기에 각 왕구에서 쫓겨난 유배자들이 사는 마을.
위드가 둘러보니 다들 체격이 우람하고 흉터들이 가득했다.
인간이 아니라 바바리안의 마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집들은 나무로 대충 지어져 있고, 그 호수도 3백여 호가 제대로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방인이 왔다."
"처음 보는 인간이야."
마을의 주민들은 위드를 보며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반응을 보였다. 위드는 1명씩 말을 걸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우리들의 마을에 대해서 알고 있나? 이곳은 큰 상처를 입은 곳이지. 함부로 말을 건네지 말게.
외부의 인간은 우리와 어울릴 수 없어."
"반갑습니다."
"이방인은 믿지 않아."
위드가 말을 걸어도 그들은 대답하지 않거나 다른 곳으로 피하듯이 가 버렸다.
몇몇은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였다.
"우리 평원의 사람들은 우리를 추방한 자들을 잊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무슨 이유로 온 것이지?"
위드는 마을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외부와는 단절된 마을이라는 건가.'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한다면 위드가 아니다!
위드는 우선 그의 장기인 음식과 조각술로 주민들을 살살 구슬려 보았다.
마을의 광장에서 불을 피워 멧돼지를 구운 것이다.
"둘이 먹다 죽어도 모를 맛있는 돼지입니다. 공짜니까 마음껏 드세요!
조각품도 드립니다. 원하시는 형상대로 조각품을 만들어 드립니다."
음식. 거기다가 무료!
하지만 주민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용맹한 전사들을 모욕하는 건가?"
"우리도 음식은 할 수 있다."
"전사란 열흘을 굶어도 긍지를 잃지 않는 것. 이방인은 모르는 것 같군."
"조각품 따위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유배자들의 마을 주민들은 모두가 뛰어난 전사들이다.
그들은 위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가오려고 하지 않았다.
둥글게 주위를 둘러싸고 비웃음만 날리 뿐이었다.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멧돼지를 열심히 굽고 있는 위드.
아직까지 요리와 조각술은 그를 실망시켰던 적이 없었다.
요리의 경우야 미각이 있는 자라면 모두가 좋아했고, 조각술의 경우에는 다양한 방면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하려던 볼크라는 유저를 위해 나무를 조각해서 생기 있는 꽃다밤을 만들기도 했다.
늘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여 준 조각품이었던 것이다.
'예술을 몰라보다니....이 미개한 놈들.'
그러나 이 정도의 역경에 굴복할 수는 없었다.
'무시를 당하는 일은 익숙하지.'
어렸을 때에는 공장에서 실밥을 뜯을 때의 기억.
아마 14살 때쯤이었으리라.
일이 너무나도 고되고 힘들어서 잠시 휴식 시간에 밖에 나와서 맑은 공기를 마셨다.
재잘거리면서 군것질거리를 먹으며 돌아다니는 중학생들의 밝은 모습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그런 환경에서도 악착같이 살아 왔는데, 겨우 이방이 취급을 받는다고 해서 포기할 위드가 아닌 것이다.
위드는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다시금 말을 붙여 보았다.
적어도 1명쯤은 그를 상대해 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과연 1명은 위드를 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바닥에 주저않아 방패를 손질하고 있던 사내가 위드를 보며 말한 것이다.
"이방인이로군.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제법 실력이 있는 모양이야."
위드는 물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찾아왔냐?"
"대충 지도로는 알고 있지만, 이 마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위드는 사실대로 말했다.
"하기야 이 마을에서 자네를 본 건 처음이니, 이 마을은 대륙 녀석들이 말하는 혼돈의 시기에 생겨났지.
혼돈의 시기에 대해서는 들어 봤겠지?"
"그렇습니다."
"모두가 미쳐 날뛰던 시대였다더군.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이 절망의 평원으로 들어와서 살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사실 처음에는 싸우고 싶어도 싸울 무기조차 없었다고 해.
이곳까지 밀려난 우리들에게는 한 자루 검도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위드의 눈앞에 알 수 없는 영상들이 흘러갔다.
수천의 병사들.
창과 칼을 든 병사들이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먼 땅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몬스터들이 있는 땅으로 사람들을 몰아낸다.
그 사람들의 숫자는 수십만에 이르렀다.
피에 젖은 땅, 통곡과 슬픔으로 젖어 버린 땅.
"처음에 평원에 들어왔던 사람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생존에 성공한 이들만이 남았다.
크흠! 더 설명해 주고 싶지만 그러고 보니 내가 조금 바빠서."
"무슨 일로 바쁘십니까?"
"이 방패는 아무래도 더 이상 못 쓸 것같아.
그래서 새 방패가 필요하군. 자네가 내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겠나?"
"힘이 닿는 한 뭐든 하겠습니다."
"그러면 잘되었군. 이 방패를 두실 녀석에게 가져다주게.
그리고 새 방패를 받아다 주면 좋겠어. 그는 마을 안에서 꽤 큰 대장간을 경영하고 있지."
띠링!




코쿤의 방패
사냥꾼 코쿤은 손질을 끝낸 방패가 아무래도 밎음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전투 중에 방패가 깨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 친구인 대장장이 루실에게 돌려주고, 새 방패를 쓰고 싶어 한다.
난이도 : E
퀘스트 제한 : 방패를 가지고 마을을 벗어날 경우 코쿤의 추격을 받을 수 있음.



"새 방패를 가져오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위드는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간단히 퀘스트를 하기로 하고, 방패를 받아 들었다.
아주 묵직하고 단단해 보이는 방패였다.
"어디 한번 볼까? 감정!"
위드는 대장간을 찾아가면서 방패의 정보를 살펴봤다.
여기저기 금이 가고 흙이 묻었지만 그래도 본래의 상태를 파악 할 수는 없었다.



루실이 만든 방패 : 내구력 15/50. 방어력 16.
순도가 낮은 잡철을 이용해서 만든 방패.
강철을 곁에 씌웠지만 내부는 아주 부실하다.
둔기류의 공격에 취약하니, 쓸 만한 방패가 없는 것이 아니라면 사용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제한 : 없음.
옵션 : 화살을 1/2 확률로 피해 없이 막을 수 있다.



마을의 규모가 워낙 작아서 대장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냥꾼 코쿤의 말과는 달리 아주 작은 대장간이었다.
벽에는 검과 몇 종류의 무기가 걸려 있었고, 화로도 작았다.
대장장이 루실은 잘 짜인 근육이 터질 듯한 남자였다.
"처음 보는 이방인이로군."
"코쿤 님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위드는 혹시라도 루실이 상대해 주지 않을까 싶어 선수를 치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어서 오게. 그대에게서는 익숙한 철의 냄새가 나는군.
나는 불을 좋아해서 대장장이가 되었어. 자네는 무슨 이유로 대장장이의 기술을 가지게 되었는가?"
루실의 물음에 위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이런한 사소한 질문이 의외로 친밀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았다.
"차가운 금속을 녹여 원하는 것으로 만드는 대장장이의 열정을 좋아합니다."
"나와 비슷하군. 무슨 일로 왔는가?"
위드는 그에게 방패를 내밀었다.
"새 방패로 바꿔 달라고 합니다."
"저런! 코쿤 녀석이 또 자기 방패를 깨 먹은 모양이군.
늘 주의하라고 일러 주었는데도......흠! 더 이상은 공짜로 내 줄 수 없네.
새 방패를 쓰려면 5골드를 내야 해. 무능한 코쿤은 그 돈이 없을 테니 자네가 대신 내주게나."
"그런......."
위드는 억울했지만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마을에서 얻은 최초의 퀘스트를 포기하기는 힘들었으니까.
'현자 로드리아스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속아 보느군.'
위드가 5골드를 내밀자, 그 돈을 받으며 루실은 활짝 웃었다.
"수고했네. 미침 그 녀석에게 줄 새 방패를 만들었지."
위드는 방패를 받았다. 이것으로 간단히 임무 완수였다. 그러나 루실은 그가 돌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자네는 이곳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마을의 최초 발견자!
그로 인해서 받게 된 관심 때문에라도 루실은 한마디라도 더 들려주려고 했다.
"코쿤 님에게 이곳 절망의 평원에 대해서는 조금 들었습니다.
평원으로 쫓겨난 유배자들 중의 소수의 생존자들만이 남았다고 하더군요."
"오, 그렇군. 그러면 나는 그 나머지 이야기를 해 주지.
생존자들은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땅을 찾아서 정착을 시작했다네.
처음에는 물웅덩이나 햇빛이 들지 않는 동굴 속 같은 곳에서 지냈다네.
그러다가 점점 밖으로 나와서 마을을 이루었지."
"절망의 평원에서 마을을 만들다니 대단하군요."
위드는 그들의 용기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아무리 위험한 환경이라도 개척 정신으로 이겨 내는 인간들!
"그리 썩 대단하지도 않다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생존자들이 더 많았거든.
그들은 서로 말다툼을 벌였지.
그냥 이 대로라도 좀 더 적응이 될 때까지 버텨 보려는 자들과 환한 세상으로 나가려는 자들로.
그런데 지겨움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서 마을을 만든 이들은 백이면 구십구 죽었어."
"........."
본래 공포 영화에서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말리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들은 꼭 먼저 죽기 마련이다.
"아무튼 그런 일까지 겪은 다음부터 이곳의 사람들은 절망의 평원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지.
어디에 어떤 몬스터들이 나오며, 어떤 장소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마을이 안정 단계에 이른 것은 이때쯤이라네.
마을은 안전하지만 멀리 나가지는 말게. 크흠, 내가 너무 말이 많았군.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이건 나의 선물이네."




-평원의 지도를 습득하셨습니다.



절망의 평원에 대한 지도
마을들의 위차와 몬스터들이 주로 출몰하는 지역. 그리고 저주받고 오염된 땅들이 표시되어 있다.



루실은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절망의 평원과 관련되 지도!
어디에 어떤 몬스터들이 주로 출몰하는지와 대략적인 지형이 그려져 있었다.
다만 어린아이가 발로 그린 것처럼 조악하여, 알아보려면 아주 애를 써야 했다.
"감사합니다."
"마을 사람들을 가능하면 많이 만나 보게.
사냥을 가지 않은 이들은 이방인에게 관대할 것이네.
우리 마을에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안전해질 수 있다면 좋을텐데."
위드는 방패를 가지고 코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사냥꾼 코쿤은 숫돌에 검을 갈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왔나? 조금 늦었군. 방패를 주게."
위드는 그에게 새로 얻은 방패를 주었다.
"고맙군. 심부름을 해 준 자네에게 딱히 줄 것은 없고, 이거나 받게."




-강철 화살 20개를 습득하셨습니다.


띠링!



코쿤의 방패 완료
사냥꾼 코쿤은 험한 전투에서 몇 번이나 방패를 잃어버렸다.
늘 상처를 입고,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냥감을 가져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무능한 사냥꾼으로 여기고 있다.
그가 어디에서 그런 전투를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퀘스트 보상 : 롱보우용 강철 화살 20개.



-경험치를 조금 습득했습니다.



위드는 바로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지만, 0.001%도 되지 않는 경험치만이 올랐을 뿐이었다.
같은 난이도라고 해도 물품 조달과 몬스터 사냥, 비밀을 해결하거나 어떤 특수한 임무가 주어진다면 보상이 달라진다.
이번에는 난이도 E급의 단순한 의뢰인만큼 2배라고 해도 현재의 위드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코쿤은 만족스러운 듯이 방패를 살펴보고 나서 말했다.
"참, 내가 이 마을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었지? 건망증이 심해서 말이야. 그런데 어디까지 이야기했나?"
"소수의 생존자들이 마을을 만들었다는 것까지 루실 님에게 만들었습니다."
"그랬군. 그 친구는 말이 많은 편이지.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 했다.
그래서 모두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는데, 특히 우리들의 궁술은 말로만 듣던 엘프들이라고 해도 쉽게 따라오지 못할 거야.
이 마을은 절망의 평원에서도 상당히 동쪽으로 들어온 마을이야.
오크들이 대규모로 사는 유로키나 산맥이 보일 정도지."
"위험한 곳에 만들어진 마을이로군요."
"응. 대부분의 마을들이 그렇지. 그래도 이 마을은 축복받은 마을이야.
주변에 작은 철광산이 있어서 무기도 만들 수 있고, 식량도 넉넉한 편이니까.
그렇지만 오크들의 습격은 고질병이 아닐 수 없어."
"오크들의 습격요?"
"매년 추수철이 되면 습격해 와서 우리들의 식량 창고를 털어 가 버리거든.
사실 우리들이 풍족하게 먹고살지 못하는 이유도 다 오크들 탓이야.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오크들 덕분에 아주 위험한 몬스터들은 주변에 없으니 그나마 안전할 수 있지."
절벽에 핀 꼿은 위태롭지만, 덕분에 다른 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유배자들의 마을이 오크들의 연이은 침입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이유였다.
"몇 년 전 부터인가 오크들은 식량을 뺏어 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일꾼들까지 원하고 있지.
오크들은 아무래도 손재주가 부족하잖나."
"그렇죠. 오크들이 뭔가를 만들 수 잇는 지능적인 종족은 아니죠."
"그래서 놈들의 무기를 만들어 줄 사람이나 궃은 잡일을 해 줄 사람을 우리 마을에서 잡아간다네.
아마 그렇게 잡혀간 마을 사람들만 100명이 넘을걸? 오크들 때문에 우리 마을의 불행은 끊이지 않고 있어."
"불행을 끝내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까?"
코쿤은 코웃음을 쳤다.
"흥! 저 수많은 오크들을 상대로 말인가? 터무니없는 소리지.
전투를 좋아하는 오크 놈들은 우리 인간들 외에다 다크 엘프와 싸우고, 다른 대형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살아간다네."
"그렇군요."
"이렇게까지 말을 해 줬는데도 자네는 이곳의 위험함을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군.
우리 전사들도 함부로 잡지 못하는 몬스터가 바로 거대 개미지. 1마리라도 잡는다면 큰 잔치가 벌어질 정도야.
그토록 위험한 거대 개미를 5마리 이상 잡을 수 있는가? 만약에 성공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자네를 다르게 볼 거네."
띠링!




코쿤의 불신
사냥꾼 코쿤은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자들을 많이 보아 왔다.
오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강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만용을 부려서는 안 된다.
거대 개미를 5마리 이상 잡아서 용기를 증명하라
난이도 : C
보상 : 마을 주인의 인정.
퀘스트 제한 : 실패할 경우에는 코쿤이 더 이상 대호를 해 주지 않음.



퀘스트 발생!
코쿤은 미심쩍은 듯이 말을 이었다.
"뭐, 자신이 없을 수도 있겠지. 거절한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는 않겠네.
이건 이방인에게 주는 일종의 시험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위드는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 개미를 잡아오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기대하겠네. 거대 개미는 우리 마을의 서쪽 황무지에서 자주 출현하니 찾기는 어렵지 않을 걸게.
그렇지만 자네의 실력으로는 도망이나 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위드는 마을을 나와서 지원군이 숨어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왕실 기사 10명과 부란, 베커, 호스람, 데일.
400명의 병사와 프레야의 교단에서 파견된 사제 50명까지!
이 정도 구성이라면 소규모 군대라고 봐도 되었다.
"흠! 모두들 그대로 기다려라."
"대장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위드는 일단 그들의 앞에서 큰 바위를 조각했다.
조각사로서의 기본. 조각품으로 각종 회복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샤샤샤샥!
빠르게 완성되는 바위 조각품.
자하의 조각칼과 정과 끌이 눈부신 속도로 움직였다.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아예 가끔 꿈자리에서마저 나올 사람!
역시 얼굴은 서윤을 기초로 하는 것이었다.
'걸작 하나 정도 나와 주면 좋겠는데.......'
위드는 부푼 기대를 가졌다.
서윤을 조각해서 실패했던 적은 없었으니까.
그간 다른 여자의 얼굴도 한 번쯤 시도해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다른 여자를 기반으로 조각상을 만들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의 얼굴은 오밀조밀하니 복잡하기 짝이 없다.
참 예쁜 얼굴이지만 어딘가 아쉽다. 코만 조금 더 세운다면 훨씬 더 예쁠 텐데.
혹은 눈이 조금만 더 크더라도 완벽한 얼굴일 텐데.
여자의 얼굴에는 이런 아쉬움들이 특히 많다.
그런데 실제로 얼굴을 그렇게 바꾸다 보면 더 예뻐지는 경우라 그리 없었다.
전체적인 균형이나 인상이 달라져서 오히려 원래보다 못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실패작이 생길 경우에 조각사의 명성이 하락할 수도 있으니 위드로서는 매우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서윤의 얼굴은 어떤 식으로든 조각을 할 수 있었다.
조금만 표정이 달라져도 분위기가 확 바뀌기 때문이다.
위드는 강한 전사 서윤을 조각했다. 복장과 장비는 북부 용병의 것들로 했다.
북부 용병들 중에 여인들이 유독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검을 들고 몬스터를 무찌르는 서윤.
천하는 오시하며 걷는 당당한 용병의 모습이었다.





걸작! 용병 여인상을 완성하셨습니다!
북부의 여인 부족은 곡물이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땅을 가지고 있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용병이 되어 전투에 뛰어들었다.
절대로 물서지 않으며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한다.
무기를 들고 의뢰를 수행하여 몬스터를 토벌하는 이들!
기사들이 오만에 빠져 있을 때 대륙의 평화를 지킨 것은 용병들이었다.
예술적 가치 : 600
특수 옵션 : 용병 여인상을 바라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15% 증가한다.
이동 속도 15% 상승.
매력 100 상승.
힘 10 증가.
민첩 10 증가.
전 스탯 5 상승.
조각상을 본 자는 일주일간 용병 길드에서 부여되는 의뢰의 조건이 상향됨.
퀘스트에서 얻는 경험치가 5%늘어남.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걸작의 숫자 : 5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명성이 85 올랐습니다.



-지구력이 1 상승하셨습니다.



-스탯 매력이 생성되었습니다.




매력 : 이성, 혹은 타인을 매료시키는 능력. 예쁜 용모를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동료를 만들고 친밀도를 높이는 데에도 필요하다.
바드나 댄서, 부대의 지휘관들에게 중요한 스탯으로 특수한 생산직 직업의 경우 작품에 미세한 영향을 미침.




-직업의 영향으로 매력 스탯이 20늘어났습니다.



-인내력이 5 상승하셨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서윤의 조각상은 실패하지 않았다.
'전투와 관련된 스탯은 별로 올려 주지 않지만 퀘스트에서 얻는 경험치가 늘어난다니 나쁘지 않군.'
매력 스탯도 미세하게나마 조각품을 좋게 만들어 주니 반가운 일이었다.
"흠흠."
위드는 길게 헛기침을 하며 칼날에 자신의 얼굴어 비추어 모았다.
매력 스탯으로 인해서 얼마나 더 잘생기게 변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얼짱 각도를 유지한 채로 병사들에게 말했다.
"그러면 모두들 따라와라."
위드는 병사들과 함께 거대 개미가 있다는 황무지로 향했다.
"사제들은 축복을 걸고, 전원 전투준비를 하도록 해."
"예. 사악한 악에 맞서 싸우는 우리들의 힘이 최고조에 이르도록 해 주세요, 블레스!"
사제들이 거는 단체 축복 마법!
교단의 직속 사제들이었기에 400명의 병사들에게 한꺼번에 축복을 거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위드에게는 이들로 전투를 개시할 마음이 없었다.
병사들은 내세운다면 피해가 너무 클 것이다.
"전투에는 왕실 기사들이 앞장서라."
왕실 기사들은 토를 달면서도, 순순히 위드의 지휘에 따랐다.
"일단은 명령이니 따르도록 하지요."
"임무가 끝날 때까지는 그대의 명령을 받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서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마을에서 무시! 여기서도 무시!
위드는 고고한 기사들을 선두로 거대 개미들에게 향했다.
유배자들의 마을에서 코쿤의 의뢰 내용을 들었을 때에는 설마 했다.
거대 개미라고 해 봐야 대체 얼마나 크겠냐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정말 크군."
일반 개미들이 1센티미터도 안 되는 녀석들이 많다면,
황무지에서 쿵쾅거리며 돌아다니는 개미들은 몸길이가 무려 수십 미터가 넘었다.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개미들!
노루나 캥거루들이 살려 달라고 개미들의 발길 아래에서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개미가 아무리 커 봐야 개미지 공격해라."
위드는 왕실 기사들을 거대 개미의 상대로 붙였다.
그렇지만 개미는 그들이 잡기에 너무나도 빨랐다.
한 걸음에 몇 미터씩 쑥쑥 움직일 뿐만 아니라, 방향 전환도 아주 빨랐다.
기사들은 개미의 정면공격을 피해 달아나야 할 정도였다.
그 광경을 보는 위드는 실망이 컸다.
"공적치를 써서 고용한 기사들인데......."
개미 1마리 제대로 못 잡는다니!
개미의 정면 공격을 피해 10명의 왕실 기사들이 달아나다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우선 개미의 속도부터 줄여야겠군. 사제들은 속도를 줄이는 마법을 써라."
"알겠습니다. 신앙심 높은 이여."
그나마 다행이라면 위드의 신앙심은 사제들을 부리기에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사제들은 즉시 위드의 명령을 행동에 옮겼다.
50명의 사제들이 동시에 스펠을 외웠다.
"프레야 여신의 미모는 모든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이것은 진리! 우리의 믿음의 힘이다. 슬로우!"
주문은 해괴하기 짝이 없었지만, 사제들의 마법은 그대로 먹혀들었다.
거대 개미의 질주하는 속력이 조금이나마 늦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50인의 마법이라고 해도 그대로 중복되어서 먹혀들지는 않았지만, 1명이 거는 마법보다는 훨씬강하다.
그런 만큼 거대 개미의 날쌘 움직임은 점점 느려지더니 마침내 둔중하게 변했다.
"왕실 기사들은 그대로 공격하고, 병사들은 활을 쏘아라. 활이 없는 병사들은 사제들을 보호한다."
"옛."
병사들 100명이 화살 공격을 가했다.
거대 개미의 움직임은 충분히 늦춰졌고, 몸집이 워낙에 커서 화살이 빗나갈 확률은 거의 없었다.
나머지 300여 병사들이 사제들을 보호할 때에 위디는 뛰쳐나와 거대 개미를 공격하기 위해 달렸다.
사제들은 슬로우 마법을 지속하기 위해 계속 마나를 소모하고 있었다.
'오래 끌 수 없다.'
화살로 야금야금 공격해서는 거대 개미의 생명력을 크게 깍아 놓을 수 없었다.
'몸집이 큰 만큼 생명력도 많은 것 같군.'
위드를 시작으로 기사들은 검을 들고 용감하게 거대 개미를 난도질 했다.
거대 개미를 타고 올라가서 등을 찌르고, 다리를 칼로 베는 것이었다.
개미의 머리가 있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은 아찔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위드는 열심히 칼을 휘둘렀다.
거대 개미는 한참을 버텼다.
발버둥을 칠 때마다 개미의 등에 붙어 있던 기사들은 땅바닥으로 추락을 하고, 짓밟히지 않기 위해 도주했다.
기사들이 떨어질 때마다 위드의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래도 왕실 기사들인 만큼 쉽게 죽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일부 사제들은 기사들을 치료해 주었다.
거대 개미는 그 후로도 한참을 버텼지만, 위드와 사제들, 기사들의 협공을 이기지 못해 끝내 목숨을 잃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개미 껍데기 일부를 획득하셨습니다.



-개미의 더듬이를 획득하셨습니다. 더듬이를 통해서 숨겨진 여왕개미굴의 위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대단하군."
위드는 거대 개미를 잡고 나서야. 이 몬스터의 레벨이 350이 넘는다는 것을 알았다.
"굉장한 난이도다."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몬스터였다.
하기야 지금까지는 명성이 너무 높아서 난이도 높은 의뢰를 쉽게 받았지만,
사실 난이도 C의 의뢰가고 해도 일반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수준이었다.



위드는 왕실 기사들과 병사들의 협력 속에서 무사히 거대 개미 사냥을 마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마을로 다시 돌아가서 코쿤에게 거대 개미의 껍데기를 보여 주었다.
"나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네. 이곳의 사정을 모르는 이방인이 그저 거만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뿐이라고 여겼지.
그런데 정말로 거대 개미를 잡았군."
위드가 거대 개미를 잡고 얻은 껍데기를 살펴보며 코쿤은 크게 감탄했다.
"놀랍군.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자네가 뛰어난 전사라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네."
띠링!




코쿤의 불신 완료
마을에서 거대 개미를 5마리 이상 사냥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위대한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렸고, 마을을 수호했다.
코쿤을 통해서 마을 주민들은 이제 당신의 실력을 알게 될 것이다.
퀘스트 보상 : 코쿤의 소검.



-경험치를 습득하셨습니다.



-명성이 6 올랐습니다.


확인해 보니 이번에는 경험치가 15%가량 올라 있었다.
명성도 획득하였지만, 그보다 더 큰 수확이 있다면 이제 마을 사람들이 위드를 상대해 준다는 것이리라.
"이건 내가 쓰던 소검인데, 특별히 자네에게 주도록 하지. 자네와 같은 전사라면 나와 친해질 자격이 있어."
코쿤은 품에서 작은 소검을 꺼내 위드에게 건네주었다.
"......."
이물질이 상당히 묻어 있고 칼날이 무디어 보이는 검이었다.
"어디에 쓰는 검입니까?"
"나무껍질을 벗겨 낼 때에 좋지. 쓸 만한 소검이라네."
위드에게는 자하브의 소검이 있었지만, 일단은 챙기기로 했다.
코쿤은 말을 이었다.
"자네와 같은 전사에게는 이 마을의 사정을 좀 더 확실히 이야기해 줘야겠군.
여긴 정말 위험한 곳이야. 그러므로 함부로 행봉하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하지.
또한 절대로 오크들을 얕보지 말게나.
어릴 때부터 강한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자란 오크들은 아주 강해.
그러니 이 평원의 주인은 오크들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야."
"오크들을 주의해야겠군요."
"오래 살고 싶다면 그래야지.
그런데 최근에는 유로키나 산맥의 정상에 있는 다크 엘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야.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마법을 쓰는 이들이 나타나서 다크 엘프들과 협력하고 있는 것 같아."
위드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습니까?"
"일개 사냥꾼인 나로서는 유로키나 산맥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
그런데 다크 엘프들과 오크들이 몇 번 싸우는 것을 보았다네.
지금까지는 번식력 좋은 오크들이 다크 엘프들을 압도했지.
정령술과 마법이 뛰어난 다크 엘프들이라고 해도 오크들의 숫자에는 밀릴 수밖에 없었거든.
그런데 흑마법을 쓰는 이상한 자들이 협력하면서 오크들이 패배하는 경우가 많아지더군.
죽은 오크들이 다시 살아나서 동족을 공격하고, 강성한 오크들이 힘이 빠진 것처럼 전투에서 비실대었다네.
그리고 전투에 패배한 오크들의 시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
너무나도 놀라운 이 전투를 구경하다가 나도 몇 번이나 죽을 뻔했어."
위드는 다크 엘프들과 협력하는 이들이 바로 바르칸의 네크로맨서들임을 알 수 있었다.
"오크들을 압도한 다크 엘프들.
그들이 사는 곳에 처음에는 요새와 성 그리고 탑들이 지어졌어.
다크 엘프들이 성을 짓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지 않나?"
"그렇죠."
엘프들은 일반적으로 평화와 자연을 사랑하는 종족이었다.
다크 엘프들은 그와는 정반대로 전투를 즐기는 성향가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냥 숲에서 살지 인간들처럼 성을 짓는 경우는 없었다.
"다크 엘프들은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것처럼 성벽을 높게 쌓더군.
오크와의 충돌이라도 지속적으로 벌이려는 것일까? 아니면 반드시 숨겨야 하는 어떤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지. 오크와 다크 엘프들은 본래 앙숙이었으니까.
다만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은,
다크 엘프들이 강해지면서부터 매일 밤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야."
"밤이 길어지다니요?"
"일정한 시간이 되면 다크 엘프들이 성에서부터 검은 구름이 만들어져서 하늘을 덮고 잇어.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 자네도 저녁이 되면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네."
이것으로 위드는 절망의 평원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 대충 알 수 있었다.
"이제 나도 사냥을 하러 가 봐야겠군.
참, 우리 마을에 모스와 에이미 오누이가 있어.
그들에게는 모습이 바뀌는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게나."
그러고는 방패와 칼을 들고 마을을 나갔다.




[조각 변신술]





위드는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제 마을 주민들은 위드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우리들은 강한 전사를 좋아한다. 친구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힘은 꼭 필요한 것이지."
"거대 개미를 다섯이나 해치웠다면서? 대단하군. 내게 꼭 필요한 일이 있는데 잠깐 시간이 되면 도와주겠는가?"
위드는 그들에게서 간단한 퀘스트를 받아 진행하면서 마을의 사정에 대해서 알아 갔다.
유배자들의 마을에서는 잡화점이나 변변한 상점도 없고, 그저 민가에서 간단한 음식 재료들을 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상업적으로 발전하기는 힘들겠군.'
위드는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울고 있는 소년을 보았다.
위드는 그 순간 코쿤이 말한 모스라는 소년임을 직감했다.
이 작은 마을에 소년이라고는 몇 명 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
위드가 다가가서 묻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여행객이시군요. 여행객이 알 만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
완전히 심한 문전 박대였다.
그렇지만 위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본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이 마을의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많더구나. 혹시 모습이 바뀌는 몬스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는 거니?"
몬스터라는 말에 소년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소년의 눈빛은 적개심으로 가득했다.
"모습이 바뀌는 몬스터를 사냥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럼. 나는 많은 종류의 몬스터를 사냥해 봤지."
"그러면 우리들을 도와주세요. 몬스터 때문에......그 증오스러운 모습이 바뀌는 몬스터가 제 여동생을 탐내고 있어요."
왠지 퀘스트의 느낌이 강하게 오는 위드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말해 봐라."
"실은......"
소년은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마을을 습격한 몬스터들은 모스의 여동생인 에이미를 보았다.
몬스터 무리를 이끌던 도플갱어는 한눈에 에이미에게 반하고 말았다.
"맘에 든다, 인간! 배불리 먹어 줄 테니 따라와라!"
도플갱어는 에이미를 잡아가려고 하였지만, 어린 에이미는 완강하게 버텼다.
오빠인 모스를 두고 떠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플갱어는 모스의 몸으로 변신을 했다.
얼굴과 몸의 형태 등 모든 것이 모스와 동일했다.
"이제 됐지? 나와 같이 살자."
"본래 모습도 찾을 수 없이 매번 바뀌는 몬스터에게 잡혀가서 당신의 애를 낳는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겠어요!"
에이미가 목숨을 끊겠다고 협박을 하자, 도플갱어는 마지 못해서 제안을 했다.
도플갱어는 타인의 능력을 고스란히 복제하는 게 장기였지만,
그외에도 매우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보통의 탐욕스러운 몬스터라면 강제로 끌고 갔겠지만 그만큼 에이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좋다, 인가. 나는 인정이 많은 편이지. 그러면 앞으로 3년간 기다려 주겠다.
그 후에 널 데려갈 테니 준비해! 만약 그때도 거부한다면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일 것이다."
도플갱어가 약속했던 시간은 이제 불과 3개월이 남았을 뿐이었다.
모스는 눈물로 애원했다.
"부디 제 여동생이 도플갱어에게 잡혀가지 않도록 해 주세요.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지만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도플갱어는 마을의 북쪽 숲에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띠링!


도플갱어가 탐내는 마을의 미녀
몬스터들은 인간을 수집품으로 여긴다.
드플갱어는 자신의 눈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에이미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
도플갱어를 죽여 에이미가 끌려가는 것을 막아라!
난이도 : C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 제한 : 모스와 에이미가 반드시 생존해야 함.



'모습이 바뀌는 몬스터가 도플갱어를 뜻하는 것이었군.'
보통 때라면 이런 의뢰는 그냥 거부해 버렸을 것이다.
퀘스트의 보상이 분명치 않았고, 도플갱어라면 굉장히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마법도 잘 쓰고, 능력을 복제할 수 있기에 일반적으로 사냥하기 힘든 몬스터의 하나였던 것이다.
냉철하고 차가운 면이 있는 위드였지만, 소년의 눈을 보는 순간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아주 어릴 때에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여동생만이 남았다.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것만 같았다.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간절히 기대고 싶고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그런데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만약에 한 줄기 간절한 희망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로부터 거절을 당한다면,
그 좌절감은 형용할 수 없었으리라.
위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에이미는 반드시 내가 지켜 주겠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여행객님!"
모스가 감사를 표했다.




위드는 다시금 왕실 기사들과 사제들, 병사들을 동원했다.
베커와 부란 들은 그사이 철저히 군기가 다져진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적으로 편안한 로자임 왕국에서 군생활을 하다가 절망의 평원까지 얼떨결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첫 사냥의 대상은 거대 개미!
밟혀 죽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 병사들이었다.
그러나 무사히 살아남음으로써 각기 레벨이 2, 3씩 올랐다.
위드에 대한 일반 병사들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대장님,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모스라는 소년과 에이미라는 아름다운 소녀.
선량한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는 도플갱어를 처치하기 위함이다.
도플갱어가 에이미라는 소녀를 노리고 있다."
"반드시 처단해야겠군요."
호스람이 다부진 어조로 말했다.
왕실 기사들의 태도도 한결 누그러졌다.
"약한 이들을 지키는 건 기사의 본분, 이번 일만큼은 따르도록 하지요."
"어린 소녀가 마물로부터 고통받고 있다고 하니 기사로서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도플갱어를 처단하는 일에 우리를 꼭 데려가 주십시오."
위드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데리고 도플갱어들이 있다는 북쪽 숲으로 향했다.
근처에는 각종 대형 몬스터들이 들끓었고, 북쪽 숲에는 귀곡성마저 울려 퍼진다.
햇빛이 사라지고 음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땅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여긴 저주받은 숲입니다."
사제들의 잇따른 경고에도 위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콜 데스 나이트!"
데스 나이트 반 호크를 앞세운 채로 부대를 전지시켰다.
"후우, 이곳은 나에게 친숙한 곳이군."
데스 나이트는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도플갱어를 발견했다.
놈이 도플갱어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외모가 모스라는 소년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위드는 병사들과 함께 열심히 도플갱어를 공격했다.
도플갱어는 모습을 몇 차레나 바꾸면서 싸웠다.
병사들이나 왕실 기사, 데스 나이트의 기술을 번갈아 쓰면서 버텼다.
놈이 사용하는 다양한 기술은 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지만,
위드와 데스 나이트의 합공과 사제들의 치유술 덕분에 병사들은 승리할 수 있었다.




위드는 병사들을 데리고 열심히 의뢰를 맡았다.
유배자들의 마을 주변에는 온갖 몬스터들이 나온다.
거대 개미나 도플갱어 등 평소에 발견하기 힘든 몬스터들을 시작으로 해서,
기괴한 식물, 동물, 혹은 어떤 동굴안에서는 화염 괴수를 처치해 달라는 임무도 맡았다.
"대장님을 밑습니다."
"대장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병사들을 끌고 다니는 위드!
실상 병사들의 전투력은 초반에 그리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약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강한 몬스터를 하나하나 사냥하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왕실 기사들의 숙련도도 올라가고, 사제들과의 협공 플레이도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위드의 지휘력이 빛을 발한 덕분이었다.
주변의 대형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퀘스트를 휩쓸고 다니는 위드!
위험천만한 순간들도 수없이 많았지만, 위드는 무사히 의뢰들을 해결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경험치가 매우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
그냥 몬스터를 1마리 사냥하면 일정량의 경험치와 함께 아이템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퀘스트를 받아서 사냥을 하면 몬스터를 잡을 때 외에도 퀘스트의 경험치 보상이 아주 짭짤했다.
굳이 3배가 아니더라도 로자임 왕국 등에서 받는 경험치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위험지역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군.'
다만 단점은 퀘스트로 받는 물건들의 질이 형편없다는 것.
기술력이 발전되지 않은 동네이기 때문에 무기라고 지급하는 것도 조악한 수준인 것이다.
위드는 병장기를 구할 때마다 왕실 기사들과 병사들을 무장시켰다.
"고맙습니다, 대장님."
"잘 쓰겠습니다."
아이템을 넘겨줄 때마다 위드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한번 준 아이템은 도로 빼앗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처음 부터 안 준다면 모를까 줬다가 뺏으면 친밀도가 상당히 하락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위드는 병사들과의 사냥을 통해서 레벨을 279까지 올렸다.
그때에도 병사들도 상당히 레벨이 올랐고, 왕실 기사들이나 사제들도 제법 강해졌다.
그러나 다크 엘프나 오크들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었다.





오크!
오크라면 워드에게 당장 떠오르는 이미지가 몇 개 있었다.
욕심많고 끈질긴 종족.
집착이 강해서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바퀴벌레처럼 빠르게 번식하며 전투를 잘한다.
그런 오크들이 최소한 수천, 어쩌면 수만이나 되었다.
"으으으!"
동굴로 돌아온 위드는 답답함에 끙끙 앓았다.
마을 주변의 사냥은 어느 정도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대체 무슨 수로 오크들과 다크 엘프들, 거기에 네크로맨서들까지 이긴단 말인가!
부하라고는 기껏해야 백부장 넷과 병사 400, 왕실 기사 10명이 전부였다.
물론 사제들 50명이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싸워 줄 병력이 뒷받침되었을 때에나 도움이 되는 전력이었다.
왕실 기사들의 실려온 프레야의 성기사들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쳐도 숫자에서 달린다.
이 전력으로 유로키나 산맥에 오른다면 백전백패! 필시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네크로맨서들은 만나 보지도 못하고 오크들에게 죽게 될 것이다.
사방이 적이었다.
네크로맨서나 오크들은 확실한 적!
네크로맨서와 협력하고 있는 다크 엘프들도 적이라고 봐야 한다.
위드의 냉철한 머리가 회전을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아부와 눈치 보기,
결국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어 볼까 하는 쪽으로 돌아가는 머리지만,
지금은 상황에 따른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고생하고 있었다.
지러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법이다.
'적들이 강하다. 그런데 적들은 서로 친하지 않아.'
마침내 위드의 머릿속에 언제인지 모를 시절, 소설책에서 봤던 문장이 떠올랐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문장을 떠올리는 순간에 위드는 머릿속의 안개가 조금은 걷힌 기분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새벽의 빛줄기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위드는 복잡한 소설은 별로 본 적이 없었다. 복잡한 만큼 머리만 아프고 재미는 없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단순하고 명쾌한, 기분이 좋아지는 소설들을 주로 읽었다.
판타지난 무협지! 혹은 만화책들이 그 대상이었다.
'책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
만화책에서 몇 번 어설프게 봤던 문장이지만, 조각술과 결합이 되자 머릿소에서 한 가지의 계획이 떠올랐다.
'모험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동굴을 나온 위드는 우선 큰 바위를 찾았다.
바위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만들고자 하는 크기의 바위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단 몸집이 커야 한다.'
위드는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높이만 3미터는 됨직한 크기의 바위를 마침내 발견했다.
그런 다음에는 조각술을 펼쳐야 했다.
슥슥!
자하브의 조각칼이 바위를 가르며 빠르게 움직였다.
시간이 지나자 일반적인 조각상과는 많이 다른 괴상한 형태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위드가 장기로 하는 서윤을 닮은 미인상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어떤 고정된 사물을 조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
호전적이고 욕심 많은 종족.
오크!
그러나 위드는 조각술을 펼치면서 고민에 빠져 들었다.
'오크들은 욕심이 많다고 하지.
그런데 대체 그 욕심을 이해할 수가 없군. 무슨 욕심을 그렇게 갖는 것이지?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에 욕심 많고 이기적으로 활동하는 생명체라니,
그리고 과도한 집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어.'
조각술을 완벽하게 펼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했다.
위드는 도무지 오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인 이상 오크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녕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었다.
조각상은 무난한 오크의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대충 모범적인 오크의 형상으로 말이다.
각종 몬스터들을 조각하면서 오크 또한 조각해 본 적이 있는 만큼 당시의 기억을 충실하게 되살렸다.
무난하고 평범한 조각상.
어딘가 순하면서도 어눌한 면이 있는 오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코쿤의 방패를 구해 주면서 무려 5골드나 날려 버렸던 대사건! 그때는 그래도 설마 했다.
당시에는 퀘스트에 대한 보상을 받기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퀘스트를 완료하고 나니 얻은 것은 코쿤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몇 마디와 소검 한 자루가 전부였다.
들어간 돈 5골드는 단돈 1쿠퍼도 돌려받지 못했다.
원통해서 쓰러질 것만 같다.
돈!돈!돈!돈!돈!
잃어버린 5골드에 대한 과도한 집착! 욕심! 집념! 갈망! 원한까지!
"으아아아아!"
위드의 조각칼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조각상은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오크의 주름진 눈매에 이기심이 어리고, 게걸스럽게 벌리고 있는 입과 돼지 코는 욕망으로 가득했다.
'기왕이면 조금 더 강인해 보이도록 근육을 크게 하고, 흉터 자국도 확살하게 새기자!'
완전한 전투형 오크 조각상.
특별한 이미지 설정을 위하여 이빨도 크고 두껍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입도 크도 코도 흉측하며, 눈가에는 이기심으로 가득한 오크 조각상이 탄생되었다.
얼굴은 차마 마귀도 저리 가라 할 정도라서 눈 뜨고 보기가 힘들며,
몸은 근육으로 뒤덮여 있는데 일반적인 오크보다 최소한 2할 정도 컸다.
띠링!




걸작! 괴물 오크 상을 완성하셨습니다.
정상적인 감각을 가진 예술가는 절대로 만들지 못할 조각상!
뛰어난 손재주로 완성이 되었지만, 차마 빛을 보지 않고 사장되는 쪽이 나을 것 같다.
예술적 가치 : 1.
특수 옵션 : 오크 조각상을 바라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5% 증가한다.
이동 속도 15% 상승.
지력 10하락.
매력 200하락.
힘 20증가.
민첩 10증가.
카리스마 60증가.
통솔력 50증가.
우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만들 수 있다.
담력이 낮은 이들은 이 오크 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하게 위축된다.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걸작의 숫자 : 6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명성이 46올랐습니다.




-투지가 1 상승하셨습니다.




-지구력이 3 상승하셨습니다.




-카리스마가 3 상승하셨습니다.



-인내력이 5 상승하셨습니다.



일단 오크 상은 완성되었다.
예술적 가치가 낮은 것이 조금 신경 쓰이지만, 위드는 그나마 실패작이 나오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사실 그가 만들기 했지만 차마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오크였다.
조각상을 정면에서 보고 있자니 그냥 이유 불문하고 한 대 치고 싶다!
당장이라도 조각 파괴술로 산산조각을 내 버리고 싶다.
'어쨋든 내 새끼처럼 공들여서 만든 것이니.......'
위드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아무리 애정을 가지려고 해도 이놈의 조각상만큼은 적응이 안된다.
위드는 조각 파괴술을 사용하는 대신에 다른 스킬을 시전했다.
최초로 사용하는 다론의 조각술! 그 비술!
"조각 변신술!"



-조각 변신술을 사용합니다.



조각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그 조각품과 조각사가 서로 닮게 만든다!
위드의 형상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키가 점점 커지고 울퉁불퉁한 근육이 생겨난다. 털이 자라서 몸을 덮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는 완전한 오크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손등과 발등까지도 완벽한 오크였다.
키가 부쩍 자라서 눈높이가 달라졌다. 팔다리의 굵기도 다르고 뱃살도 두둑하게 나왔다.
"성공한 건가? 취이익!"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상적인 발음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크들의 전유물이라고 하는 취이익,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거, 취익! 이상하군. 취치치치이익!"
위드는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이빨이 너무 커서 다물어 지지가 않았다.



-몸의 형태가 바뀌면서 현재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을 상당수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신 철갑옷이나 중갑옷을 입으실 수 있습니다.
종족이나 형태에 따라 필요한 장비를 새로 구하십시오.




-조각 변신술의 영향으로 힘과 민첩이 약간 증가합니다.
지력과 지혜가 최저 수준으로 하락합니다.
예술 스탯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카리스마가 대폭 상승합니다.
조각 변신술이 풀릴 때까지 유효합니다.



캐릭터 정보창을 확인해 보니 힘과 민첩, 생명력들이 늘어난 반면에 다른 스탯들은 조금씩 줄어 있었다.
특히 예술이나 지혜쪽의 타격이 컸다.
그 외에도 망토와 검을 제외한 갑옷 및 장갑은 전부 착용 할수 없게 되었다.
"변신 상태에서는, 최익! 쓸 수 없게 된 것인가? 취이이!"
종족 자체가 달라진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터벅터벅.
위드는 익숙하지 않은 걸음으로 오크들로 가득한 유로키나 산맥을 올랐다.
뒤뚱뒤뚱 오리처럼 걷는 걸음이었지만, 워낙에 키가 커서 금세 산을 오를 수 있었다.


[단순 무식 오크 카리취]





산에는 엄청나게 많은 오크들이 잇었다.
오크 정찰병들.
오크 투사들.
오크 워리어들.
과거에 여러 종류의 오크들을 잡아 본 위드였지만 내심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체가 발각되면 끝장이다.'
산을 오르는 위드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리 전투에 대한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도 오크들에 둘러싸이게 되면 답이 없다.
보통의 평범한 오크들.
로자임 왕국에 많이 있는 레벨 80에서 130 정도의 약한 오크들이라면 어떻게 도주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절마의 평원에 있는 오크들은 강했다.
약체로 분류되는 몬스터들인 고블린이나 코볼트라고 해도 환경에 따라서 조금씩 전투력에 차이가 있다.
이곳의 오크들은 태어나자마자 생존경쟁을 시작하고, 강한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인다. 그때문에 평범한 오크들보다 훨씬 강하다.
무엇보다도 그 어마어만한 개체 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설혹 도망친다고 해도 수만의 오크들이 추격해 올 것이다.
평원에서 오크 떼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경험만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산을 올라가는 위드.
"취익!"
나름대로 조심한다고 했지만, 오크 투사 1마리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레벨 210의 오크투사!
웬만한 기사들도 눈 아래로 보면서, 다수의 오크를 부리는 일종의 대장 몬스터.
"췩!"
위드를 발견한 오크 투사는 그렇지 않아도 우락부락한 눈을 부릅떳다.
'큰일이다.'
오크 투사의 반응이 심상치 않은 걸 본 위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들키면 안 되는데. . . . . . .'
위드는 우선 웃기로 했다.
미소야말로 원만한 대인(?) 관계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
씨익!
위드는 특제 썩은 미소를 날려 주었다.
그런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얼굴 때문에 양 미간이 움츠러들고 입가가 파르르 떨린다.
흉측하게 튀어나온 이빨들이 더욱 돌출되어 보였다.
그 순간!
오크 투사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췩!췩!췩!췩!췩!"
공포에 질려 버린 오크 투사!
외모만으로도 오크 투사를 압도해 버린 위드였다.
"앞으로 조심해라. 취이익!"
"알겠다. 췩. 췩. 췩!"
그런 일은 산을 올라가며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위드의 가공할 만한 덩치와 외모에 오크들은 모두 움츠러 들었다.
그러면 차에 오크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다, 다, 죽여. 취췻"
"췩! 여긴 우리의 땅."
십수 마리의 오크들이 말을 타고 있는 파이어 자이언트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지네를 닮은 초대형 몬스터!
입으로는 연방 불을 내뿜으며 오크들을 핍박한다.
오크들도 열심히 글레이브를 휘둘러 보지만 파이어 자이언트의 단단하 외피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파이어 자이언트는 레벨 280이 넘는 강한 몬스터였다. 이런 몬스터들이 절망의 평원에는 널려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직역 중에서도 극도로 위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위드는 잠시 오크들의 전투를 구경했다.
불구경과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오크들이 다 죽으면 전리품을 획득할 수 있겠군.'
마침 기존의 방어구나 무기를 쓰지 못해서 거의 빈 몸통이나 다름없는 상태이기에 싸움이 끝나기만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파이어 자이언트의 끈질긴 공격, 몸 전체를 휘두르며 불을 내뿜자 오크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나 둘 오크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오크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도 위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다.
'나는 지금 인간이 아니지. 오크라면 절대 동족들이 죽어 가는 것을 그냥 지켜보지 않아.'
위드는 곧 전투에 뛰어들었다.
우선 땅바닥에 떨어진 녹슨 글레이브를 주워 들었다.
"이야합!"
위드는 파이어 자이언트를 향해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막 오크 1마리를 통째로 입 안에 넣으려던 놈은 그 공격을 맞고 옆으로 나가 떨어졌다.
쿠당탕!
집채만 한 놈이 먼지를 일으키며 나가떨어지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오크로 변하면서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파이어 자이언트는 위드를 명백한 적으로 인식했다.
쿠워어어어!
버둥거리며 일어난 파이어 자이언트는 대번에 위드를 향해 돌격했다. 땅을 박차고 단숨에 뛰어오르는 공격이 아니라,
지네처럼 많은 발을 빨빨 움직이면서 뛰어왔다.
시뻘건 화염을 내뿜으면서 다가오는 적!
위드는 본능적으로 높이 뛰었다. 그리고 착지한 곳은 파이어 자이언트의 머리 위였다.
"조각, 취이익! 검술, 취이익!"
위드는 놈의 머리에서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조각 검술은 오크 상태에서도 펼칠 수는 있었지만, 금세 마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지혜나 지식이 턱없이 줄어들면서
마나의 최대치가 감소한 까닭이었다.
대신에 힘이 대폭 상승했다.
위드는 넘쳐 나는 힘으로 글레이브를 내리쳤다.
날이 무딘 글레이브지만, 내려칠 때마다 파이어 자이언트의 몸에 상처를 냈다.
"그워어어어!"
파이어 자이언트는 위드를 떨어뜨리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심지어는 펄쩍 뛰어오르기도 했다.
떨어지면 물론 곤란했다. 놈의 몸뚱이 위에서 양발로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아래를 공격했다.
위태롭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글레이브를 휘두를 때마다 금방이라도 튕겨 나갈 듯이 보였다.
격력한 움직임 속에서 위드는 한쪽 손으로 놈의 더듬이를 움켜쥐었다.
"죽어, 취이익!"
흔들거리는 만원 버스에서 아무것도 붙잡니 않은 상태로 버티는 것보다 백배는 힘든 일이었지만, 위드는 떨어지지 않았다.
검도를 익힌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몸 전체를 다스리는 법!
어떤 상황에서라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굳건한 중심이 있을 때에만 올바르게 힘을 쓸 수 있다.
위드는 파이어 자이언트의 몸에 빈대처럼 붙어서 공격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 다른 오크들도 놀고만 있진 않았다.
"우리 편이, 취잇! 도우러 왔다."
"취이익! 어서 싸우자!"
오크들이 글레이브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파이어 자이언트는 화염을 내쏘며 저항했지만, 위드와 오크들의 합공을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육중한 거체를 땅에 누이고 말았다.
그 순간 위드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유로키나 산맥의 자이언트를 사냥함으로써 명성이 1올랐습니다.



경험치 획득!
위드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오랜만에 한 사냥에 내지르는 기쁨의 함성.
완전히 전투에 전념하였을 때마다 터트리고 마는 버릇 중의 하나였다.
"취이이이이이아악!"
"취취취!"
오크들도 따라서 함성을 질렀다.
파이어 자이언트의 거체 위에 발을 올리고 있는 위드와 다른 오크들!
겉보기에는 특별히 흉악하고 몸집 큰 오크 1마리와 고만고만한 오크들 여러 마리가 힘을 합쳐 사냥을 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광경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사냥을 마쳤을 때에는 잊지 않는 절차가 있었다.
위드는 전리품을 주웠다.



-파이어 자이언트의 등껍데기를 획득하셨습니다.




등껍데기는 가공을 할 경우 다양한 용도의 방어구를 제작 할 수 있는 재료 아이템이었다.
일정한 확률로 속성이 부여되기도 하고, 가볍고 단단해서 제련을 마친 일반 강철보다 훨씬 좋지만
상당히 구하기 힘든 재료에 속했다.
"고맙다, 취익!"
"취치치치칫, 우리들을 구해 줬다."
위드를 향해 오크들이 감사의 인사를 하러 몰려들었다.
위기에서 구해 준 오크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정작위드를 보는 순간 오크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되는 얼굴!
위드의 얼굴은 은인이라고 해도 도저히 그냥 봐줄 수 없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오크들이 떠난 것을 보며 위드는 자신감이 생겼다.
"취이익, 너희들끼리 이런 놈을 사냥하고 있었나? 취잇, 그러면 날 불러야지. 나는 전투를 좋아한다. 취취취익!
보석과 아이템은 더 좋아하지."
"취이이. 인정한다. 너는 전사. 자랑스러운 오크 전사."
자고로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라고 했다.
싸움을 즐기고 욕심이 많은 오크들은 위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다. 어디서 왔나. 취이익!"
"나도 모른다. 취!"
위드는 슬픈 눈빛으로 저 멀리 평원을 바라보았다.
딴에는 실감 나는 눈빛 연기지만, 겉보기에는 흉악범이 방화나 살인을 추억하는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1살에 어미와 함께 이 산맥을 떠났다. 췻! 그리고 평원에서 지내다가 이제 돌아왔다. 취이익!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더 이상 묻지 마라."
"알겠다, 취익!"
"사냥이나 더 하자. 취이익!"
"나도 좋다. 취!"
위드는 순식간에 오크 무리에 동화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느 곳, 어느 세력에 속하더라도 금세 빈대 붙을 수 있다!
눈치 보기와 줄 서기의 달인.
밥 한 끼 얻어먹기, 혹은 지하철 무임승차.
친구들과 지낼 때에는 한 푼도 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여러모로 고생을 하며 살아온 경험들이 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 주었다.
"우오오오오!"
"취익, 취익!"




유로키나 산맥 곳곳에는 오크들의 마을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오크들은 위드를 자신들의 마을로 초대했다.
"취이잇! 같이 가자."
"그래도 되는가? 췩! 취익!"
"괜찮다. 우리 가족 많다. 취치칫. 위대한 전사. 취이이익! 좋아한다."
"췩. 고맙다, 친구."
위드는 오크들과 함께 산맥의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인간들의 도시처럼 넓고 거대했다.
성벽이나 성체는 없어도, 크게 지어진 집들에 오크들이 산다. 한 집마다 최소한 10마리씩의 오크들이 사는데,
이러한 집들이 1,000채가 넘는다.
그야말로 오크들의 번식력은 가공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위드가 막 마을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오크 가드들이 저지했다.
"아, 아무나 못들어간다. 취익!"
위드는 조용히 그를 노려봐 주었다. 그러면서 목소리를 낮게 깔고 물었다.
"무슨 문제 있나? 취이익."
오크를 닮은 마귀!
지상에서 가장 두려운 얼굴.
완전히 얼굴로 먹고 들어가는 위드였다.
동료 오크들이 금세 위드를 변호해 주었다.
"우리들의 친구다. 취익! 함께 싸웠다. 췩!"
"그, 그래도 안 된다. 췩!"
"취이익. 이름을 밝혀야만. 췩! 들어갈 수 있다."
오크 가드들은 공포에 질려서도 할 말은 다 했다. 저지하는 손에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위드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오크로 행세하기 위해서는 이름이 필요한데 정해 놓은 이름이 없었다.
"나는 카리. . . . . 취!"
카리라는 이름을 급조해 낸 위드. 그런데 오크들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카리취! 카리취! 취익. 어서 들어가라."
카리취로 인해한 것이 아닌가.
오크들의 이름에는 취가 붙은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것이었군.'
카리나 카리취나 상관할 게 없는 위드로선 전혀 개의치 않고 오크들의 마을로 들어갔다.




"취이익! 싸게 판다."
"췩! 난 더 싸게 판다."
"취잇! 나도 싸게 판다."
오크들의 마을에서는 인간들의 성에서처럼 상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온갖 아이템들을 판매했다.
다양한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잡화점도 존재한다.
대다수는 손재주가 부족한 오크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조약한 수준이었다.
대신에 가격은 끔찍할 정도로 비쌌다.
"췩. 이 금 가고 녹슨 글레이브가, 취이익! 갖고 싶나? 아주 탐나는 물건이지. 6만 골드만 내라. 취익!"
공격력 20에 내구력 10이 남은 글레이브를 6만 골드에 사라니!
이건 완전히 사기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단순 무식한 오크들은 가격만 비싸게 부르면 부자가 되는 줄로 알고, 무조건 비싼 가격만 받으려고 했다.
흔해 빠진 약초가 2만 골드였고, 방어구는 5만 골드.
글레이브 중에 쓸만한 것은 15만 골드가 넘는 경우가 많았다.
위드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취익. 저런 게 진짜 팔리기도 하나?"
"취취취. 아직 한 번도 못 봤다. 취이이. 무식한 놈들."
"취익. 역시 넌 뭔가 다른 오크 같다."
위드의 칭찬을 받은 오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하다. 취익! 잘 안 팔리니까 최소한 2백만 골드는 받아야지."
". . . . . . ."
위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더 끔찍한 상황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에 있는 암컷 오크들!
인간 기준으로 최악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위드가 이상형이라며 달려든 것이었다.
"억센 팔뚤. 취치취."
"건장한 가슴. 취치치익."
"토끼보다 굵고 단단한 이빨."
"비 오면 목이, 취익! 취익!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코."
"두꺼운 어깨와 근육 덩어리 몸."
"이상형이다. 췩!"
암컷 오크들이 마구 달라붙어서 위드에게 애정 표시를 했다. 얼굴을 부비는 암컷들도 있었고,
팔과 가슴을 어루만지는 암컷들도 있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떨리 않을 수 없기 마련!
암컷 오크들의 지나친 애정 공세에 위드는 이 자리를 벗어 나고 싶었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암컷이라지만 오크들이 떼거지로 덤벼들다니.
"이, 이들이 왜 이러나. 취익!"
"여자들은 강한 수컷을 좋아한다. 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취익!"
수컷 오크들은 암컷들의 사랑을 받는 위드를 부러워했다.




위드는 오크들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두 가지 고생을 했다.
첫 번째는 암컷 오크들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구애를 하는 오크들.
미성년자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위드의 경우에는 현실에서 20살이 넘어서 공식적인 성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성인에게는 성인만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것은 바로 밤일이었다.
성인들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그것!
그렇지만 오크와 동침을 하고 싶은 남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위드는 특히 그랬다.
'동정을 이렇게 잃을 수는 없어!'
암컷 오크들을 피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
두 번째 고생은 음식이었다.
오크들은 제대로 익히지도 않은 음식을 마구 퍼먹었다.
다양한 요리 스킬을 익히면서 어느새 미식가가 된 위드로선 오크들이 먹는 요리에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맛없는 보리빵이라도 원 없이 먹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한 고생을 끝내고 사냥을 나갈 때에는 위드가 가정 먼저 앞장을 섰다.
글레이브를 높이 들고 행군을 한다.
"취익! 여기서 적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조우하게 된 미노타우로스 로드!
미노타우로스 로드가 오크들을 향해 흉험한 핏핓 도끼를 휘두른다.
그렇지만 위드는 그 기세에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크워워워워!"
글레이브를 휘드르며 돌진하는 위드.
단순 무식하고, 과격하고, 무자비했다.
"다, 다, 다, 다 덤벼. 취이이이이이잇!"





윤정희는 매일 밤마다 로열 로드에 접속하고 있었다.
소환사인 그녀의 게임 속 이름은 세이링.
하프 요정으로, 드워프만큼이나 키가 작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대와의 약속에 따라 이곳에 나타나서 저를 도와주세요. 소환, 바실리스크!"
소환 주문을 외우자, 마나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바실리스크가 3마리나 나타났다.
도마뱀을 닮은 몬스터.
독을 품고 있고 방어력이 좋은 편이라서 사냥할 때 주로 소환하는 몬스터였다.
바실리스크가 나타나자 흑기사 둘과 싸우고 있던 파티는 훨씬 유리하게 전부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마지막은 여자 도둑이 흑기사의 뒤에서 칼질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휴! 겨우 이겼다."
여자 도둑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세이링에게 다가왔다.
"언니, 수고했어."
"너도 수고했어, 라미야."
세이링과 라미.
그녀들은 3살 터울의 자매였다.
"휴우, 이제 한동안은 쉬겠네."
"아마도, 마나부터 가득 채워야 하니까."
그녀들이 사냥을 하는 장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던전. 그들이 최초 발견자였다.
두 자매 모두 상당히 레벨이 높았고, 파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나를 채우는 휴식 시간.
두 자매는 수다를 떨었다.
"참! 그때 우리 학교 축제에 나타났던 사람 말이야. 이름은 이현. 내 친구 혜연이의 오빠래. 그 사람 언니와 같은 동기였지?"
세이링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맞아."
"혹시 알고 있었어?"
"응. 알고 있었지. 여동생을 만나 보기도 했는걸."
"그랬구나. 어라? 언니 평소에는 남자에 대해서 별로 반응이 없었잖아. 유명한 남자 연예인에도 시큰둥하고,
연예도 안 해 보고 말이야."
"관심이 없으니까."
"그 남자한테는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사실이야."
세이링은 순순히 시인했다. 그러자 더욱 집요해진 라미였다.
"혹시. . . . . . 언니가 좋안한다는 사람이 그 사람?"
"그래."
"어라. 언니의 이상형이 그런 쪽이라니 의외네. 운동 잘 하는 사람이 그렇게 좋았어?"
라미는 공주 세트에서 3개의 관문을 돌파하던 이현을 잊지 못했다.
누구라도 직접 그런 광경을 본다면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관문을 돌파하던 모습, 발 차기로 풍선들을 나리는 마술과도 같은 장면들.
"운동을 잘하거난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어. 난 현이가 그렇게 운동을 잘하는지 몰랐어."
"그러면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류가 뭐야?"
라미는 정말로 궁금해서 물었다.
운동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을까? 얼굴이나 키도 평범하고
약간의 사정이 있어서 고등학교도 중퇴했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아주 가정적이거든. 가족을 최수선으로 생각하고 아껴줘. 그런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니?"





"직업이 뭐에요?"
여자의 물음에 남자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백수입니다."
"에게. 대학도 안 가셨어요?"
"대학이야 입학했지만 별로 재미도 없고. . . . . 때려치울 작정입니다."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 . . 그런 우울한 얘기는 숨기지 그랬어요. 그러면 됐을 텐데."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다른 방에 가서 다른 남자와 부킹을 이어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어진 남자의 말이 그녀를 붙들었다.
"대학은 나와서 뭐 하겠습니까. 어차피 아버지 회사에 취직할 텐데요."
"아, 아버지 회사요?"
여자는 갑자기 남자에 대한 호감도가 증가함을 느꼈다.
그녀는 오늘 나이트에 온 여성들 가운데에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예. 뭐, 그냥 조그만 회사입니다."
"회사가 얼마나 작은데요."
"직원수는 뭐 조그만 소도시 정도밖에 안 되고요."
" . . . . . . ."
"매출액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것도 뭐 작은 도시 정도?"
". . . . . . !"
여자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자의 복장을 살펴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걸치고 있는 건 죄다 명품이잖아. 국내에 수입도 잘 안 되는 저 구두는 손님을 가려서 예약제로 판매한다는 제품.'
그때 남자가 핸드폰을 내민다.
"연락처 좀 찍어 주세요."
"저 그런 여자 아니거든요?"
"알아요. 그러니까 더 자주 연락하고 보고 싶고 그래요."
남자는 어렵지 않게 연락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나가고 난 뒤에, 룸 안에 있던 남자들은 조그만 탄성을 질렀다.
"역시 지훈이야."
"이번에도 5분을 넘기지 않았네."
이번에 룸에 들어왔던 여자는 미모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근래에 보기 드문 미인이라는 웨이터의 소개가 없더라도, 룸 안에 있던 남자들을 전부 늑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최지훈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여자인걸.'
주변에서는 대단하게 여기고 있지만, 실상 그 주인공 최지훈은 무료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돈이 많다는 것은, 그 돈을 관리할 능력을 필요로 하는 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계획대로 움직이는 삶을 살아왔다.
후계자 수업으로 마음대로 친구도 사귀지 못했으며, 취미나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로봇처럼 움직이고 배울 뿐.
학교에 다니면서 한참 친구들과 친해질 시기에 외국으로 유학을 가야 했다.
삶이 없다. 그저 계획대로 맞춰 나가는 인간이 있을 뿐이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니 삶은
지루하고 따분할 수 밖에 없었다. 해서 안 되는 일만 너무도 많은 인생이었다.
그러던 차에 조금 시간이 생겨서 로열 로드를 시작했다.
이 현실이 아닌 곳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저 먼 곳으로 흐르는 강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게 좋아서 낚시꾼이 되었다.
물고기를 잡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휴식을 취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었다.
남들은 죽어라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장만할 때 그는 낚시만 연마했다.
어느새 그의 낚시 스킬은 고급 3레벨이 되었다.
로열 로드 최고의 낚시꾼.
그렇지만 최지훈은 그저 낚시가 좋아서 낚시를 할 뿐이었다.
주변과의 교류도 없었으니 다들 그를 그저 과묵하고 우수에 젖은 낚시꾼으로만 여길 뿐이었다.
낚시는 그래서 좋았다.
흐르는 강물에 모든 것을 떠내려 버릴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한 사람이 나타났다.
낚시 스킬을 익히기 위해서 그의 명당자리를 탐내는 이였다.
모든 것을 돈과 관련시키는 사람.
삶 자체가 치열한 투쟁의 연속인 사람.
그의 이름은 위드였다.
최지훈은 그가 낚시를 하던 도중에 환하게 웃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다.
드문 확률로, 물고기의 배속에서 1쿠퍼짜리 동전이 나올 때였다.
푼돈에도 집착하는 위드.
위드와의 낚시 대결은 재미있었다.
어느새 최지훈도 몰입해서 대결을 하고 있었다.
물고기 1마리를 건져 올리 때마다 긴장과 흥분으로 손끝이 저릿저릿할 정도였다.
이 정도의 쾌감을 맛보았던 것이 언제이던가.
최지훈은 이드가 좋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 은근히 위드의 주변을 맴돌았다.
오데인 요새에서는 함께 공성전을 치렀고, 바스라 마굴에서는 같이 사냥을 했다.
위드가 마굴로 향한 것을 알자 먼저 사냥을 하던 파티에 뇌물을 바치고 급하게 합류했던 것이다.
"나 먼저 간다. 그리고 당분간은 찾지 마."
최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이트를 나왔다.
밤공기는 시원했다.
하지만 그는 더 즐거운 장소를 알고 있었다.
로열 로드.
모험이 살아 숨 쉬는 곳.
그의 닉네임은 제피였다.






이 세상에 언어는 없어요.
단지 우리는 의미 없는 웅얼 거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죠.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저는 듣지 못하고 있으니.


흐느끼는 듯한 음성.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감미롭게.
그녀는 피아노를 치며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어떤 몸짓도 허용되 않아요.
대화는 존재하지도 않아요.
오로지 할 수 잇는 것은 눈빛뿐.
당신의 눈빛을 내게 보여주세요.
간절함. 안타까움. 애절함. 분노. 실망 염원. 친근함. 사랑.
이 모든 감정을 눈빛으로 표현해 주세요.



밥을 먹을 때에는 무엇을 고를지.
맛있게 먹었는지. 그다음에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두 눈빛으로 말해주세요.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마음을 읽어 나가죠.
어떤 오해와 왜곡도 없는 세상.
그대의 눈빛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을 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해요.



그래도 우린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죠.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디어다로 저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
저 또한 그럴지도 모르니까요.
눈빛을 본다는 건 정확하지 않은 모호함.


감동 없는 말이 아니라. 행복을 비춰주세요.
그대의 눈동자에 내가 보이도록.
잠시라도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말아요.
눈빛 한 번에, 마음 한 번.
그렇게 마음을 비춰주세요.
당신의 빛나는 눈동자가 가깝다면 더욱 좋겠네요.




딱딱한 말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못한다면,
그때 저는 눈빛으로 말하고 싶어요.
눈빛이야말로, 고막을 통해 들리는 음성보다도
훨씬 당신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어 갈 테니까요.
말로는 전하지 못하는 무엇을 전할 수 있을 거예요.



눈빛으로 말하기.
저는 당신의 눈빛을 보고 싶네요.




정효린은 타임 스퀘어 광장에서 그녀의 데뷔곡인 <눈빛 대화>를 부르고 있었다.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노래를 들었다.
다정하면서 촉촉한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노래에 한없이 빠져 들게 만들었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마치 천국에 온 것만 같다.
첫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순수한 마음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정효린의 노래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처음 데뷔했을 때에는 노래를 아주 잘하는 가수로 알려졌지만, 그다음부터는 팔색조처럼 자신의 다양한 매력을 발산했다.
춤과 노래, 그리고 화려한 무대 매너.
좌중을 휘어 감으며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의 폭발적인 에너지.
무대를 압도하는 환희!
전율을 일으키는 그녀의 손짓이냐 표정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매혹적인 그녀의 춤동작은 브라운관을 통해서 수천수만명의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음악을 위해 태어난 요정.
매스컴이 그녀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절대적인 무대의 요정인 그녀는 세계 공연을 마치고 다시 로열 로드에 접속을 했다.
'이제부터는 광렙이다. 무조건 새로운 댄스를 익히고 말거야.'
로열 로드에서 그녀의 직업은 댄서였다.
타고난 노래 실력으로 바드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춤을 추길 원했다.
'모험을 하고 싶어. 앉아서 노래만 부를 수는 없어. 몬스터를 때리는 손맛을 무시할 순 없잖아!'
사람들은 그녀를 우아하고 순수한 요정으로 본다.
그렇지만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왈가닥 기질도 상당했다.
바드라고 물론 공격을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직접몸을 움직이는 댄서에 비해서는 조금 약한 것이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춤은 다양하게 출 수 있기에 사람들에게 티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노래는 그럴 수 없다.
언제나 혼신을 다한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바드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로열 로드!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 스스로가 절대로 내색을 하지 않은 덕분이기도 했지만, 일부러 외모와 몸매도 조금씩 나쁘게 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모험을 해 보죠!"
"맞아요. 그동안 사냥만 하느라 너무 지겨웠어요."
"피라미드 만드는 것도 그랬고요."
피라미드 건축을 위해 혹사당한 이들.
제피와 화령, 마판, 페일, 수르카, 이리엔, 로뮤나 그리고 메이런까지.
그들은 피라미드가 완공된 이후로 함께 몰려다니면서 사냥을 해 왔다.
사실 그들의 직업은 다양했지만, 생산직과 같은 잘 선택받지 않은 직업들이 많아 전투에 적합하진 않았다.
당장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 줄 만한 직업인 워리어나 팔라딘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직업들은 곧 임기응변식으로 그때그때 대응했다.
생명력이 남달리 높은 제피와 몽크인 수르카가 몬스터와의 직접 전투를 전담했다.
때론 위험한 경우가 없지도 않지만, 너무 많은 몬스터들이 몰려오면 화령이 이들을 잠재웠다.
아군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춤을 춰 준 것도 물론이었다.
궁수와 레인저인 페일과 메이런이 활을 쏘고, 로뮤나는 마법 공격을 했다.
성직자인 이리엔은 신성 마법을 펼쳐서 체력이 줄어든 이들을 보조해 주고, 축복해 주었다.
상인인 마판조차도 할 일이 있었다.
그가 2차 전직을 하면서 습득한 행운의 손길이라는 스킬은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돈과 아이템의 비율을 일정 부분 늘려 준다.
또한 사냥 즉시 바로바로 잡템을 처분해 주었으니 쓸모가 없는 인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이번엔 어디로 갈까요?"
페일이 운을 띄우자, 평소에 그리 말이 없던 이리엔이 바로 나섰다.
"저번에 찾아낸 정령의 호수로 가 봐요!"
"거긴 아직 조금 무리가 아닐까요?"
정령의 호수는 우연치 않은 기회에 발견하게 된 장소였다.
그것도 페일의 아버지가 직접 발견한 장소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호수에 도착한 페일의 아버지.
"어허, 경치 참 좋다! 물도 맑네."
아버지는 갑자기 목욕을 하고 싶어졌다.
자고로 한국인이라면 어느 계곡에 가든지 발 담그고 목욕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수영을 하며 놀던 도중에 호수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 걸 찾아냈다.
그것을 페일이나 이리엔 등에게 얘기해 준 건데, 당시 그들은 레벨 130도 못 된 수준.
시체만 남기고 처절하게 퇴각을 해야 했다.
정령의 호수에 어떤 퀘스트, 어떤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대체로 숨겨진 던전에는 사연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았다.
"괜찮을 거에요. 우리들도 많이 강해졌잖아요."
"음. 그렇긴 한데. . . . . ."
"한번 가 보죠!"
모험을 원하는 일행은 정령의 호수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움직였다.
위드를 보고 배워서 철저한 준비, 식량에서부터 약초까지 모든 걸 장만한 이후였다.





이혜연은 믿을 수 없었다.
한국 대학교에서 1찰 서류 합격 통지서를 보내온 것이었다.
비록 1차 서류 합격이니 아직 면접의 관문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합격할 가능성이 절반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잘됐다, 정말!"
이혜연은 합격 통지서를 보며 기뻐했다.
그녀가 대학에 갈 돈은 과외나 장학금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 이현만 대학에 보내면 된다.
그런데 정작 이현에게 면접을 보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이현은 대번에 돈이 아깝다고 면접도 보지 않겠다고 할 것이 분명했다.






-8.오크들의 전쟁-






"취이익!"
위드는 오크들과 합류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과연 어떻게 오크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인간인 위드였기에 오크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찾기란 매우 힘들어 보였다.
오크들의 무리에 적응은 하겠지만, 친밀도를 높이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오크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그들을 기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했다. 오크들을 인간처럼, 혹은 동료처럼 여겨야만 했다.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위드는 생각하고 있었다.
글나 실제로 오크들을 겪어 본바, 무적이나 익숙했다.
'아, 이건. . . . . 너무나도 익숙하다.'
위드는 순식간에 그들에게 동화되어 갔다.
오크들! 그들은 검치와 별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무식! 과격!
수틀리면 무기부터 꺼내 들고 보는 화끈함!
강자에게도 무조건 개돌격이라는 무모함까지!
말보다는 주먹이 서너 배쯤 빨랐다.
"이것 너 먹어라. 취익!"
위드는 음식을 해서 오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쩌면 식탐까지도 똑같은지, 오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좋아했다.
그렇지만 위드가 오크들의 부류에 완전히 융화되기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우선 오크들의 집단에도 규율이 있고, 강자들이 존재했다.
일반 오크들, 오크 투사와 오크 정찰병!
이들은 유로키나 산맥의 오크 중에서도 하위 계층에 속했다. 숫자상으로는 가장 많지만 지배를 당하는 계급이었다.
그 위로는 오크 전사와 오크 대장, 오크 장로, 오크 로드들이 있다.
오크 전사들은 100명 안팎의 작은 패거리를 이끌고 다녔다.
그리고 오크 대장들은 한 마을을 통솔하고, 오크 로드는 부족 전체를 다스린다.
이런 기존 세력들은 위드를 좋게 보지 않았다.
"카리취, 놈은 우리 마을에서 태어난 오크가 아니다. 취익!"
태생을 따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놈은 우리보다 더 적게 먹는다. 췩!"
식욕을 비교하며.
"카리취는 너무 부담 가게 잘생겼다. 취이잇!"
용모를 질투하기도 한다!
"취취치. 암컷 오크들을, 취익. 지켜야 한다."
결국 이 모든 문제는 암컷 오크들 때문인 것이다.
시기심과 질투!
"아아, 취! 나는 오크가 되어서도, 취이이익! 세상이 날 내버려 두질 않는구나."
위드는 탄식했다.
왜 신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가!
이처럼 잘난 나에게 왜 매번 시련을 주는가!
절망감이 찾아오 정도였다.
'역시 잘난 놈은 어딜 가나 시기를 받는 구나.'
이 모든 것이 위드 자신의 뛰어남 탓이라고 판단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 혐오감 넘치는 얼굴로, 역사상 최악의 용모로 번뇌에 잠겼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았다.
위드는 암컷 오크들에게는 관심 없었던 것.
"췩! 나는 암컷들이 싫다. 너희들이 다 가져라. 취익!"
그러자 수컷들은 더더욱 분개했다.
"췩. 완전 잘난 척이다."
"재수 없다. 취치치치잇!"
"마을에서 추방하자! 치췻!"
오크들의 분노는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마을에 있는 오크 전사난 오크 대장들의 미움을 받는 위드지만, 나름대로 따르는 오크들도 많았다.
"성품이 너무 이기적이다! 취이이잇! 존경할 만한 오크다. 취익!"
"취취취이잇! 잘 싸운다."
"얍삽하고, 취익. 웬만해선 안 죽을 것 같다."
위드는 일반 오크들과 함께 사냥을 다녔다.
마을에서는 많은 전투를 치른다.
유로키나 산맥의 대형 몬스터들, 마을의 평온과 발전을 위하여 이런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마을 앞에서 토벌대가 구성되었고, 위드는 반드시 거기에 속했다.
"취이익!"
토벌대에는 주로 오크 투사나 일반 오크들이 배속되었다.
위드는 일반 오크들 사이에 끼어서 사냥을 했다.
주로 잡는 것은 미노타우로스!
레벨 300대의 몬스터로, 위드보다 레벨이 제법 높았다.
위드는 글레이브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이 사랑스러운 경험치들.'
미노타우로스는 제법 까다로운 몬스터에 속하는 편이다.
핏빛 도끼를 휘두르는 그들은 비슷한 레벨의 다른 몬스터에 비해서 공격력이 훨씬 강하고, 생명력도 많다.
거기에 민첩하기까지 하니 굳이 잡으려고 들지 않는 몬스터 중의 하나였다.
미노타우로스가 자주 출몰하는 사냥터는 인적이 거의 끊길 정도로 기피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드는 몬스터라면 뭐든 좋았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손님을 싫어하는 법이 없듯이, 모든 몬스터를 반갑게 맞이했다.
경험치는 매출액!
아이템은 순익!
매출액이 많아야 이득도 커지는 번이고, 아이템을 벌어야 현금을 벌 수 있다.
나름대로 위드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더러운 오크들!"
미노타우로스는 오크들을 보면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반 오크들은 레벨이 120도 되지 않았고, 오크 투사라고해도 210 정도에 불과했다.
고위 몬스터의 투지로 오크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오크들아, 죽여 주마!"
두두두두!
질주하는 미노타우로스!
하반신이 황소인 미노타우로스는 이리저리 날뛰며 도끼를 휘둘었다.
오크 투사나 일반 오크들은 미노타우로스의 적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취이이이익!"
위드는 곧바로 글레이브를 들고 땅을 박자고 뛰어올랐다.
거대한 몸집이 10미터도 넘게 높이 날아올라서 미노타우로스를 덮쳤다.
"취잇. 네 상대는 나다!"
오크로 변신을 한 이후로 지혜나 지식 스탯이 낮아진 대신 힘과 민첩은 올라갔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그리 변한 것이 없더라도 육체적인 능력이 좋아졌다.
물론 지혜나 지식 스탯이 낮아진 만큼 마나의 양도 줄어들어 조각 검술을 쓰기도 허덕일 정도였다.
철저하게 오크답게, 단순 무식하게 싸워야 했다.
"취! 이! 익!"
미노타우로스가 도끼를 휘두르자 위드는 글레이브를 도끼를 받아치며 힘으로 밀어붙였다.
쿠우웅!
위드와 미노타우로스가 서로 부딪치자 굉음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돌진하던 미노타우로스가 그 자리에 멈춤 것이었다.
검과 글레이브는 비슷하지만 차이가 크다.
글레이브는 폭이 넓고 무거운 만큼, 휘두르는 방식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주어야먄 했다.
찌르기 공격은 효율적이지 못했다. 파괴력이 강한 만큼 빈틈도 많다.
챙! 쨍강!
글레이브가 미노타우로스의 도끼와 부딪칠 때마다 금속성이 일고 불꽃이 튄다.
"크어!"
글레이브와 부딪칠 때마다 한 걸음씩 뒤로 밀려나자 미노타우로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평상시라면 녹슨 글레이브가 부서져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미리 써 놓은 검 갈기 스킬 덕분에 글레이브는 여전히 날카롭게 빛났다.
위드가 미노타우로스와 호각으로 싸우자 오크들은 힘을 냈다.
"취이이익!"
미노타우로스의 마지막은 처참했다.
무섭게 달려드는 오크들!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글레이브를 들고 달려와서 미노타우로스를 사납게 난도질했다.
몇 마리의 오크를 더 죽이기는 했지만, 미노타우로스는 곧 목숨을 잃었다.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 없다는 말처럼 오크들은 숫자로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사냥의 시작이었다.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몰려다니면서 대형 몬스터들을 글레이브로 때려잡는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오크들이 죽었지만 살아남은 오크들은 더욱 강해졌다.
그런 식으로 강해진 오크들 덕분에 오크들의 전체적인 전력은 상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크들이 가공할 몬스터들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은 그 번식력 덕분이었다.
죽어가는 동족들 속에서 더 강해지는 오크들!
어른 오크 1,000마리가 죽더라도 어린 오크들이 금방 그 자리를 매운다.
그 속에서 위드는 과거 동료들을 대하듯 1명도 잃지 않으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무기를 수리해 주고, 음식을 챙겨 주고, 설거지를 하고, 상처가 나면 붕대까지 감아 주던 인생이 끝난 것이다.
함께하는 오크들이 죽거나 말거나 그저 싸우기만 하면 된다.
대난전!
오크 패거리와 전투를 함께하는 것이었다.






단순 무식한 오크들.
오크들의 전술에는 다른 것이 없었ㄷ. 일단 무조건 숫자로 밀어붙였다.
10마리로 안 되면 100마리가 가고, 그것도 안 되면 부족 전체가 움직인다.
그런 위험한 전투에서 오크들은 위드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취칫, 무식한 카리취가 우리를 다스리는게 좋다."
"카리취는 복잡하지 않으니 편하다, 취익!"
높은 투지와 낮은 지혜와 지식!
남다른 통솔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위드는 오크들을 다스릴 능력이 있었다.
다른 이들과 똑같은 성장이 아니다.
전투 능력을 기반으로 한 성장이 아니라 카리스마와 통솔력을 열심히 올려놓은 덕분에 오크들을 지휘하기가 편했다.
위드는 오크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사냥을 했다.
사실 오크들의 무리 속에서 묻혀서 사냥을 하는 데엔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었다.
오크들과는 하나의 파티가 아닌 만큼, 마지막에 몬스터를 잡은 놈이 절반 이상의 경험치를 가져갔다.
그 전에 때려 놓은 것은 일정량의 경험치로 축소되어서 들어올 뿐이었다.
그러나 위드는 딱히 경험치에 욕심을 내진 않았다.
'괜히 욕심 많은 오크들을 거스를 필요는 없지.'
무리해서 경험치를 획득하기 위해 몬스터의 마무리만 하다가는 오크들과의 친밀도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
또한 꼭 직접 잡기 위해 눈치를 보느라 사냥 속도도 상당히 느려질 것이었다.
대신에 위드는 최대한 많은 전투를 했다.
가장 먼저 몬스터를 공격하고, 몬스터의 생명력을 최대한 깎아 놨다.
마지막 공격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힘들더라도 욕심을 버리고 다른 오크에게 양보했다.
오크들과 함께 사냥을 하면서 마지막 마무리만 열심히 한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오크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위드 자신에게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스킬의 성장이 느려지는 만큼 결과적으로 약해지는 것이다.
기본적인 검술 스킬도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숙련도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레벨만 높고 스킬은 낮다면 갈수록 사냥하기가 힘들어질 것이었다.
대신에 레벨은 상대적으로 낮은데 스킬이 아주 높다면 사냥하기는 정말 쉽다.
같은 레벨에서 검술을 마스터한 사람과 막 검술을 익한 사람의 차이는 정말로 큰 것이었다.
스틸과 스탯을 쌓아 나가면서 같은 레벨에서 가장 강해지는 길!
이것이야말로 훗날의 초고속 레벨 업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 위드는 보고 있었다.
'지금 좀 더 고생하면 나중이 편해진다.'
위드는 레벨보다는 스킬과 스텟의 성장에 더욱 신경을 썼다. 강해지는 데에는 레벨 외에도 스킬이 더 필요하기도 하니까!
언제나 파티 사냥만 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부분에 집착하진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검술 스킬이 중급도 되지 않았는데 레벨 250을 넘기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대로 스킬을 놔두거나, 설령 좀 더 투자하더라도 스킬 레벨이 1~2개쯤 더 높은 정도였다.
그런데 위드는 무조건 스킬들의 성장을 최우선시했다.
오크들은 많은 사냥감을 잡아 더더욱 기뻐하고, 위드를 좋아했다.
어느덧 오크들과 함께하는 위드의 레벨도 295가 되었다.
몬스터로 넘쳐 나는 곳에서 조각술이나 기타 생산 스킬을 전혀 육성하지 않고 오로지 전투에만 전념한 결과였다.







정령의 호수 지하에서 페일 들은 파티 사냥에 열중했다.
과거에는 전멸을 면치 못한 장소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준비하고 왔다.
우선 일행의 레벨이 다들 올랐고,
새로운 멤버인 제피나 화령의 합류로 전체적인 전력이 향상되 덕에 정령의 호수에서의 사냥이 무난하게 가능했다.
물의 정령과 괴상하게 생긴 물고기 몬스터들!
주로 사냥하는 대상이었다.
다른 파티원들이 접속을 종료했을 때에도 페일과 메이런은 단둘이 데이트를 했다.
페일은 의이로 수다쟁이 기질이 있었다.
"그러니까. . . . 실은. . . .그래서. . . . ."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서 하는 말들.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떠드는 것도 있지만, 로열 로드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아무래도 페일인나 메이런이나 로열 로드를 즐기고 있고, 이곳에서 처음 만난 만큼 주요 화제도 같았다.
그러면서 페일은 천공의 도시 라비아스에 올랐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와아! 대단해요."
메이런은 눈을 빛냈다.
초보 여행자들의 만남, 그리고 토벌대. 퀘스트로 발견하 천공의 도시.
"그런데 위드 님은 어떻게 조각사의 직업을 선택하게 되셨어요?"
"그건 제가 알기로 말입니다. . . . . ."
페일은 위드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해 주었다.
그러면서 모라타 지방의 뱀파이어들을 퇴치한 것도 위드라는 사실을 말하게 되었다.







오크들의 식량 완료
마을의 주변에 겁 없는 몬스터들이 들끓고 있다.
오크들과 함께 이들을 소탕하고, 그들의 고기를 가져와서 어린 오크들을 배불리 먹여라.
난이도 : C
보상 : 성과에 따라 장비와 보석, 광석 지급.
퀘스트 제한 : 종족 오크에 한정.
특수한 마법이나 기술로, 오크로 몸을 바꾼 상태여야 함.






오크 마을에도 퀘스트는 있었다.
오크 로드나 오크 장로가 부여하는 임무였다.
오크 로드는 부족의 중심이 되는 다른 마을에 있기에 만나 볼 수 없지만, 오크 장로로부터는 여러 퀘스트를 받을 수 없었다.
위드는 열심히 퀘스트를 깨면서 전투를 치렀다.
보상으로 썩 좋은 아이템이 나오지 않아도, 깊은 산에서 나는 다양한 재료나 보석들을 얻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몬스터들을 잡아 보는 것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레벨 300이 넘는 몬스터들은 사냥하기에 굉장히 까다롭다.
자신들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처음 사냥할 때엔 낭패를 겪기 일쑤였다.
위드는 오크들과 함께 전투를 치르면서 여러 몬스터들을 상대해 볼 수 있었다.
몸집이 작고 정령술과 공격 마법을 사용하는 다크 엘프들과도 싸워 보았다.
오크와 다크 엘프들을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앙숙 관계.
위드는 다크 엘프들을 보이는 족족 잡아 가며 오크들로부터 신용을 얻었다.
그러면서 유로키나 산맥을 속속들이 다녀 보았다.
다크 엘프들의 성채는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그 성만큼이나 튼튼하고 각종 마법적인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위험했다.
"이번에도 살아 돌아왔군. 취치익!"
오크 장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위드를 맞이했다.
위드는 조달해 온 고기들을 내놓고 퀘스트를 완료했다.
이번에 받은 것은 산에서 나는 양질의 철광석들이었다. 비록 원석 상태지만 조금만 가공을 하면 꽤나 괜찮은 철을 추출할 수 있다.
오크 장로는 두 눈을 끔벅였다.
"취익. 카리취를 볼 때면 내 젊은 시절이 기억난다."
"고맙다, 장로. 취익!"
위드는 나름대로 공손하게 오크 장로를 대했다.
반말은 오크라는 종족적인 특징이었다.
마을에 적응하기 힘들 때 환영해 준 오크가 바로 장로였다.
그는 위드가 살 집을 마련해 주기도 하고, 여러 임무를 부여하기도 했다.
오크 장로는 마을에서 다소 특수한 위치로, 과거 매우 뛰어난 전서였던 오크들이 늙으면 장로가 된다.
전투력은 감소 하였지만 영향력만큼은 젊은 오크 대장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취치익. 이제 우리가 사는 신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지."
오크 장로는 위드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로키나 산맥의 역학 관계. 몬스터들의 기원이나 종류, 주요 서식지!
하품이 나올 만도 했지만 위드는 그 이야기들을 아주 잘 새겨들었다.
오크 장로들은 가끔씩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러 몬스터들의 약점도 이야기해 주고, 몬스터들을 상대로 싸울 때의 조언 같은 것도 해 주었던 것이다.
위드는 사냥을 하는 한편 유로키나 산맥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습득했다.
"다크 엘프들은 우리 오크의 적. 요즘 들어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취이잇!"
"무슨 이상한 일인가. 취칙!"
오크 장로는 매우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취이이익! 카리취, 너도 알겠지만 놈들이 인간들처럼 성을 쌓는다."
"취칫. 그런데?"
"성벽이 너무 높고 크다. 췩! 다크 엘프의 마을을 공격하지 못하게 되니 다른 몬스터들이 우리 오크들을 노리고 있다. 추위익!"
오크들의 마을로 침범하는 몬스터 무리들의 숫자가 갈수록 많아지고 수준도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위드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수준 높은 몬스터들이 많이 사냥하는 즐거움이 있으니까!
"취치칙! 그리고 우리 오크 마을 위에 큰 성이 지어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은 다크 엘프들을 응징하기러 결정했다.
서로 다른 부족을 이끌고 있는 스물다섯 오크 로드들이 결전의 날을, 취익. 준비하고 있다.
하늘이 열 번 밝아지고 어두워진 다음에 우리는 다크 엘프의 성을 침공한다. 카리취, 너도 함께하자!"
띠링!




오크 종족의 번영


오크들은 유로키나 산맥의 오랜 지배자들이었다. 그러나 다크 엘프들은 오크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크들은 이제 오만한 다크 엘프들을 응징하여 자신들이 유로키나 산맥의 지배자임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다크 엘프들은 호라호락하지 않다.
산맥의 곳곳에 자신들의 근거지를 마련하고 있는 다크 엘프들은 마법과 엘프 특유의 궁술로
숲과 산에서 오크들을 상대로 언제나 승리를 거두어 왔다.
다크 엘프들은 적극적으로 전쟁을 통해 오크들을 이 산맥에서 쫓아내려고 할 것이다.
난이도 : 종족 퀘스트
보상 : 공헌도에 따라 보석과 광석이 지급됨.
퀘스트 제한 : 종족 오크에 한정.
특수한 마법이나 기술로 오크로 몸을 바꾼 상태여야 함.





오크와 다크 엘프들 간의 전쟁!
유로키나 산맥에 사는 두 종족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어느 한 종족은 몰락에 가까운 변화를 맞이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오크들에게 속해서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는 위드로서는 상당히 안타까웠다.
'신나게 레벨과 재료 아이템들을 모으고 있었는데. . . . . .'
오크들에게 속해서 스킬을 올리고 경험치를 잘 쌓고 있었으니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유로키나 산맥 전역이 오크와 다크 엘프들의 격전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위드가 가만히 있자 오크 장로가 재촉해 왔다.
"카리취! 네가 용맹항 오크라면, 취치칙! 이 전쟁에 빠져서는 안 된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거부하면 오크 마을에서 추방당할 수 있습니다.





"아니다. 취익! 새까만 놈들과의 싸움을 해 보겠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종족 전쟁을 앞둔 위드는 조각 변신술을 해제하고 산맥을 내려갔다.
그곳에는 부란과 베커 등이 왕실 기사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님, 오셨습니까?"
호스람, 데일, 왕실 기사들의 장비는 모두 새것으로, 번쩍번쩍 빛났다.
"그래. 배고프지?"
"예. 조금 허기가 지는데요."
부란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위드는 유배자의 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식량을 조달해서 병사들을 먹이고 있었다.
'식충이 같은 녀석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 밥 한 공기라도 꾹꾹 눌러서 먹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덜 먹여 식비를 아끼고 싶은 위드는 이 순간 병사들이 돼지들로 보였다.
먹고 자고, 제대로 일도 하지 않는 돼지들!
그러나 위드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 먹여야지. 멧돼지 고기를 구해 왔으니 맛있게먹자."
위드는 배낭에 고기를 꺼냈다.
열심히 산맥을 뛰어다니며 찾아오 야생 멧돼지 고기!
"우와! 고맙습니다. 대장님."
고기가 나오자 부란 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위드는 각종 조미료와 음식 재료들을 이요해 푸짐한 만찬을 차렸다. 검치들에게 털린 이후로 다시 담근 술도 개봉했다.
"많이 먹어라."
"고맙습니다. 우걱우걱!"
영문도 모르는 채로 맛있게 먹는 병사들.
그러나 돼지도 잡기 전에는 배불리 먹인다는 사실을 안다면 결코 마음 편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소 입맛이 까다로운 왕실 기사들은 어김없이 투덜거렸다.
"굉장히 오랜만에 먹는 고기군."
"궁정에서 매일 먹고 살았는데."
"그래도 이 음식만큼은 정말로 마음에 들어."
"그런데 마늘과 양파가 왜 이리 많은 거야."
황실 기사들은 의문을 가졌다. 요리에 마늘과 양파가 심할 정도로 많이 들어서, 음식의 풍미를 떨어뜨릴 정도였다.
병사들과 기사들, 사제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위드는 무기와 방어구들을 손질했다.
"다림질, 검 갈기! 방어구 닦기!"
위드는 일체의 장비들을 꼼꼼하게 손질했다. 내구력이 떨어져 있는 검들은 정성스럽게도 수리도 했다.
그러고 나자 사제들과 왕실 기사들도 식사를 마쳤다.
위드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전투준비를 해라."
"예."
"뭐, 그렇게 하지."
사제들은 기사와 병사들의 능력치가 최고조에 이르도록 축복을 걸고, 각정 가호를 부여해서 방어력을 높였다.
위드는 외쳤다.
"콜 데스 나이트!"
"불렀는가, 주인."
데스 나이트 소환!
위드의 붉은 생명의 목걸이를 벗었다. 그리고 검은 생명의 목걸이를 착용했다.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가 봉인되어 있는 목걸이.
레벨 400이 넘는 극강의 뱀파이어가 목걸이 안에 있었다.
"후우."
위드는 길게 심호흡을 했다.
병사들과 기사들, 사제들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이번의 일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했다.
"콜 뱀파이어 로드!"
위드가 그렇게 외치는 순간, 목걸이의 중심에 있는 검은 보석에 붉은 점이 떠올랐다.
마치 한 방울의 피가 떨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칠흑처럼 어두운 로브를 입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있는 미공자가 나타났다.
훤칠한 키에 망토를 두른 기품 있는 남자!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였다.
토리도는 미소를 지었다.
"오오, 아름다운 세상을 오랜만에 보는군. 이것은 햇빛인가?"
토리도의 송곳니가 날카롭게 빛난다.
2개의 눈동자는 피처럼 붉었고, 음유한 마기가 퍼져 나온다.
그 가공할 위압감!
병사들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까마귀 떼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햇빛을 차단하고, 주변에는 짙은 안개가 끼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안개!
위드는 데스 나이트를 조종해서 토리도의 전면으로 내세웠다. 큰 피해를 봤던 지난번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했다.
석상화와 안개. 흡혈박쥐를 부리는 기술. 놀라운 속도와 체력, 힘.
거기에 흑마법도 자유자재로 쓰는 토리도였지만, 제일 무서운 것은 흡혈이었다.
흡혈을 통해 무한한 생명력과 마나를 유지할 수 있는 토리도이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속전속결로 승부를 봐야 했다.
'데스 나이트도, 나도 강해졌다. 예전과는 다르지.
우리들이 주력으로 싸워서 생명력을 떨어뜨려 놓고 사제들의 집중 공격이 가해지면
제아무리 뱀파이어 로드라고 해도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레벨 400이 넘는 극강의 몬스터라고 해도 이쪽은 왕실 기사나 사제들이 단단히 뭉쳐 있는 조직이었다.
검 갈기나 방어구 닦기. 낚시 스킬 등을 통해 위드도 한층 강해졌고 레벨도 많이 올랐다.
더군다나 지금은 대낮이고. 던전도 아니지 않은가!
보스 몬스터들이 잡기 까다로운 것은 대체로 던전 내에서 50%의 능력 강화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성기사 300과 사제 100.
최고의 정예들을 마음껏 학살하던 토리도이지만, 밤이 아닌 이상 제 실력을 발휘하진 못하리라.
안개로 햇빛을 막았다곤 해도 밤에만 부여되는 권능, 육체 강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충분한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봤지만 그래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다 보니 주의를 바짝 기울여야 한다.
최악의 순간에는 조각 파괴술까지 쓸 작정으로 서윤의 조각상이 있는 토리도를 소환했다.
'이것까지 쓸 일은 없으면 좋겠지만. . . . . .'
헌데 토리도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오오!"
토리도가 보는 곳에는 서윤의 조각상이 있었다.
용병 차림을 하고 있는 서윤.
"아. . . . .름답다! 이것이 정말로 조각상이란 말인가?
지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를 석상으로 만들어도 이런 미모는 따라가지 못할 것만 같구나."
" . . . . . "
한눈에 서윤에게 반해 버린 토리도.
"예술! 예술! 예술! 권태로 가득한 짜증 나는 삶을 열정적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예술의 힘이다.
밤의 귀족들은 에술을 사랑하지. 내가 주로 고성에 머무른 이유도, 오래된 것에는 그만한 정취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술품은 모두 나의 것이다. 나의 욕망을 위해 싸우겠다. 위대한 혈종의 계승자인 나 토리도는 너희 인간들을 벌하리라."
마침내 벌어진 뱀파이어 로드와의 전투!
위드는 데스 타이트와 함께 토리도에게 뛰어들었다.
"축복. 조각 검술!"
오크로 변신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스킬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대신관의 반지에 있는 기능을 통해 축복을 사용하고, 스킬도 곧바로 시전했다.
기존의 검술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적의 허점을 공략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조금의 변화도 생겼다.
가진 모든 힘을 쥐어짜 내서 한 점을 향해 휘두르는 것으로!
단 하나에 집중한다.
최대한의 공격력을 이끌어 내는 이런 공격법은 성공해도 위기에 빠질 우려가 많았다.
균형이 무너지고 자세가 망가져 허점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그럴 때에는 검과 몸을 동시에 썻다.
과도하게 힘이 실린 검에 몸을 함께 움직였다.
어깨 밀치기나 몸통 박치기는 물론이고, 온몸을 던지다시피 하여 싸운다.
오크로서의 경험이 위드의 전투술을 더욱 강화시켜 준 것이었다.
"소드 카이저!"
위드는 내친 김에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궁극 스킬까지 시전했다.
일 검을 위해 모든 마나를 폭발시켜 버린 것이었다.
차가운 로트의 검은 토리도의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쩌저저적!
검이 박힌 가슴부터 얼어붙기 시작하는 토리도.
로트의 검의 효과였다.
아가사의 검처럼 성스러운 가호 등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 대신 공격력과 전투에 있어서의 효과만큼은 확실하다.
몸이 결빙되면 약한 몬스터는 아예 죽어 버리고, 설혹 죽지 않더라도 잠깐 동안 움직임이 느려지고 만다.
첫 번째 공격부터 토리도의 생명력을 크게 앗아 갔다.
제아무리 레벨 400이 넘는 뱀파이어 로드라고 해도 위드가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은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토리도의 생명력이 대번에 30% 가까이 떨어졌다. 이어서 터진 데스 나이트의 스킬.
"데스 블레이드!"
일시적으로 몸이 얼어붙은 토리도가 정신을 차리려고 할때, 데스 나이트는 흑색의 검으로 토리도의 옆구리를 베었다.
위드는 그 틈을 타서 로토의 검을 빼내 안전하게 물러날 수 있었다.
"크아아아! 이 미개한 것들이!"
큰 부상을 입은 토리도는 분노로 날뛰었다.
송곳니가 더욱 길어지고, 눈은 혈광으로 번뜩인다.
"블레이드 토네이도!"
토네이도의 몸에서 피가 쭉 뿜어 나왔다.
칼날처럼 변한 피가 폭풍이 되어 좌중을 휩쓴다.
그러나 위드는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다.
병사들과 기사들은 멀찍이 물러서 있어서 피해를 받지 않았고, 위드는 데스 나이트와 함께 오히려 토리도에게 더욱 다가갔다.
폭풍의 중심부는 고요한 법!
피의 칼날들을 뚫고 토리도를 직접 타격한 것이었다.
위드와 데스 나이트는 죽이 척척 맞았다.
과도한 공격으로 생긴 서로의 빈틈을 적당히 매워 주는 한편, 토리도의 생명력을 열심히 깎았다.
그러는 동안에 사제들도 쉬지 않았다.
프레야 교단의 사제들은 토리도가 나타는 순간부터 필생의 대적을 상대하듯이 긴장을 하고 있다가, 스킬들을 펼쳐 냈다.
"치료의 손길!"
토리도의 전신에서 흰빛듯이 터져 나온다.
일반인들에게는 말 그대로 치료의 손길.
생명력을 회복시켜주는 것 이었지만, 토리도에게는 역으로 생명력을 하락시키는 죽음의 손이었다.
토리도는 결국 정상적인 싸움을 포기하고 흡혈 스킬을 시전하려고 했다.
데스 나이트의 피를 마실 수는 없으므로 위드가 그 대상이었다.
그런데 위드는 토리도가 잡으려고 할 때마다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자도 빠져나갔다.
움직임과 동선을 보면서 사전에 피할 준비를 마쳐 둔 위드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제들의 스킬은 끊임없이 시전되고 있었고, 토리도는 정말로 즉음의 직전에 이르렀다.
"희, 희생양이 필요해. . . . . 내게 피와 생명력을 줄 희생양이 필요하다."
몇 분 되지도 않아서 미라처럼 비쩍 말라 버린 토리도!
준수했던 용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토리도는 사제들을 보호하고 있는 왕실 기사들과 병사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흡혈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
"으아악!"
병사들이 긴급하게 피신을 했지만, 어쩔 수 업시 1명은 토리도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뱀파이어 로드에게 붙잡힌 병사의 눈가에 절망이 떠올랐다.
"피, 피를 내놔라!"
토리도는 붙잡은 병사의 피를 빨아 마셨다. 그러나 일반 병사들로는 기갈이 해소되지 않았다.
약한 병사들이 토리도의 생명력을 보충시켜 주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병사의 피를 마시는 순간에도 사제들의 치료의 손길에 생명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토리도는 이윽고 피를 마시는 자세 그대로 생명력이 고갈되어 역소환되었다.
그리고 피를 빨리던 병사는 사제들의 도움으로 아슬아슬하게 되살아날 수 있었다.
아무도 죽지 않고 토리도를 물리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위드는 그날부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생각되면 어김없이 토리도를 소환했다.
소환한 뱀파이어 로드와의 전투!
경험치를 올려 주진 않지만, 너무나도 강한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기에 공격 스킬의 숙련도가 더욱 빠르게 올랐다.
데스 나이트는침울한 얼굴을 했다.
과거에 자신도 당해 본 일이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위드는 7일간 토리도와 전투를 치렀다.
기고만장하던 토리도도 역소환을 거듭할수록 의기소침해졌다. 그러고는 마침내 고개를 숙였다.
"그대에게는 위대한 혈족을 지배하는 나에게 명령할 권한이 있다. 높은 예술성과 지도력을 믿고 몸을 의탁하겠다."
그러면서 토리도는 자신의 피 한 방울을 위드에게 주었다.
뱀파이어의 피!
흡혈을 할 때에 피가 섞이게 되면 뱀파이어의 노예가 된다.
그러나 토리도가 준 것은 순수한 뱀파이어의 정혈이었다.
피의 맹세.
앞으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맹세였다.






-특수 아이템 : 뱀파이어의 정혈을 습득하셨습니다. 복욜할 경우 마나의 최대치를 300늘려 주게 됩니다.
영구적인 스탯의 추가나 감소가 생깁니다.
매력 +20.
카리스마 +10.
흑마법의 친화도 2%
신앙 -50.




전설의 달빛 조각사라는 직업을 얻을 때도 한 번 얻었던, 마나의 최대치를 올려 주는 아이템.
위드는 이것으로 언제나 토리도를 소환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종족 전쟁에 대한 준비도 마쳤다.






-9.명예의 전당-






이현은 아침부터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놀랍게도 주식회사 유니콘! 로열 로드를 창조한 회사로부터 메일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나를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라..."
메일을 보낸 사람은 홍보부의 장윤수 팀장으로 되어 있었다.
오크와 다크 엘프의 전쟁 퀘스트가 현실 시간으로는 딱 하루 남아 있었다.
"다녀오면 시간이 조금 빠듯한데. . . . . . . 그래도 다녀와야겠지."
이현은 웬만한 일에는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유니콘에서 직접 연락이 온 만큼 미적거리지 않았다.
50년 전부터 유니콘 사는 전 세계적으로 높은 점유율을 보인 게임들을 다수 만들어 냈다.
매일 사용료로만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어들이고,
캐릭터 산업이나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디즈니랜드와 같은 테마파크까지 진출하여 엄청난 이익을 창출해 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돈을 쓸어 가던 유니콘 사.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유니콘 사에서 최초로 겪은 좌절이 바로 마법의 대륙이었다.
다른 회사에서 개발한 마법의 대륙이 서비스되면서 유니콘 사에서 제작하고 운영하던 각종 게임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이용객들이 급감하면서 여러 관련 기업들의 매출액도 동반 하락했다.
만약 이때에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회사로 남아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유니콘 사에서는 자금과 기술을 총동원해서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로열 로드.
가상현실을 창조해 낸 것이었다.
그 결과 작금에 이르러서 유니콘 사는 과거의 사세를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왜 오라고 하는 것인지. . . . 나쁜 얘기는 아닐 것 같은데. 우선은 가 보면 알겠지."
이현은 세수를 하고 근처의 세탁소로 갔다. 깨끗한 옷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과거에 세탁소에서 일한 적도 있던 이현은 어렵지 않게 옷을 빌려 입고 유니콘 사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유니콘 본사가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전철과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번거로운 과정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리에 비례해서 올라가는 요금 때문에 더욱 불만이 많았다.
"최소한 3천 원은 나오겠군."
이현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인생이 잘 풀린 적인 있었던가!
캐릭터를 팔아서 대박을 친 줄 알았더니, 그 돈은 인출해 보기도 전에 곧바로 빼앗겼다.
게다가 전설의 달빛 조각사로 전직해서 하게 된 생고생.
로열 로드에서 최상의 유니크 아이템들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운이 없기 때문인지 아직 구경해 보지도 못했다.
"설마 기념품으로 인형 따위나 나눠 주면서 집에 가라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절대로 그럴 일이 없어."
유저들을 상대로 한 행사!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이현은 버스에서 내렸다. 유니콘 사가 있는 거리에는 온통 고층 빌딩들이 즐비했다.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건물들.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복장은 고급스럽고,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차들 역시 국산보다는 외제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유니콘의 본사는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했다.
다른 건물들의 4~5배나 되는 규모나 높이.
빌딩 앞의 공터에서는 각종 행사들이 열리고 있고,
나무 그늘 아래의 벤치에서는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이 모여 않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나온 기자들도 많았다.
유니콘 사에서 하는 소소한 움직임은 그대로 뉴스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오로지 이현만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이현은 조금 주눅이 들어서 유니콘 사의 건물로 다가갔다.
그러나 입구에 서자 경비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제지했다.
"실례지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곳은 보안 때문에 허가 받지 않은 사람은 출입이 불가능합니다만. . . . . ."
"홍보부 장윤수 팀장님의 초대를 받고 왔습니다. 제 이름은 이현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저희들이 확인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비원들은 건장한 사내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깍듯하게 이현을 대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것이겠지.'
이현이 잠시 서서 기다리는 사이에,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하니 이런 유니콘 사에 이현이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다는 투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경비원들은 금방 돌아왔다.
"장윤수 팀장님께서 확인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빨리 오실줄은 몰라서 미처 저희들에게 말하지 못했다고, 죄송하다고 하시더군요."
"괜찮습니다."
"홍보부가 있는 곳은 43층입니다. 그러면 좋은 방문이 되시기를."
이현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3층으로 올라가는 도중에도 내내 사은품을 나누어 주고 돌아가라는 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사실 그것은 기우였다.
본사의 팀장 정도 되는 인재를 그런 하찮은 일에 놀릴리 일이 없는 것이다.
유니콘 사의 홍보부에서는 여러 사업들을 열고, 방송 광고 전략들을 개발한다.
장윤수 팀장은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중장기 홍보 전략을 수립하는 프로젝트 팀에 속해 있었다.
-43. 홍보부가 있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43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반갑습니다. 제가 장윤수 팀장입니다."
장윤수 팀장이 몇 명의 부하 직원들과 함께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현은 장윤수 팀장과 함께 조용한 상담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여직원들이 커피를 드실 거냐고 물었을 때에, 이현은 어김없이 대답했다.
"꿀물 부탁드립니다."
"저기, 그건 없는데. . . . . ."
"없으면 인삼차라도 괜찮습니다."
원기 회복과 자양 강장을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먹여야 한다.
이현은 격력한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먹는 게 부실하다 보니 가끔씩 힘이 부족했다.
다행히 인삼차는 있었는지, 이현은 곧 들여오 인삼차를 마시면서 장윤수 팀장과 대화를 나누었다.
장윤수 팀장은 활달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그는 유니콘 회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 자신의 팀이 말은 업무 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복잡한 전문 용어나 외국어들이 다수 섞여 있었기에 이현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알 필요도 없을 것 같군.'
이현은 마음을 느긋하게 가졌다.
본래 이런 종류의 대화는 아는 쪽이 먼저 지치기 마련이다.
모르는 쪽이 더 마음 편하다.
그저 상대방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그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인형이나 사은품을 받아 가라고 오라고 한 것 같진 않아. 대체 나를 왜 불렀을까.'
이현이 지루해한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장윤수 팀장은 곧 본론을 이야기했다.
"아시다시피 저희 유니콘 사에서는 최고의 유저들의 풀레이 영상을 홈페이지에서 서비스합니다."
이현도 그건 알고 있었고, 몇 번 보기도 했다.
명예의 전당.
소위 말하는 최고 수준의 유저들의 활약상을 담은 별도의 공간이 로열 로드의 홈페이지에 있었다.
그들이 벌이는 전투나 퀘스트, 모험을 하는 동영상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명예의 전당에 올라오려고 하지만, 저희들은 일정한 인원을 유지합니다.
대상이 많을수록 관심이 분산되기 마련이거든요. 일단 저희들의 기준은 명성이 6천을 넘는 유저에 한해서
개인을 홍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드립니다."
"그래서 제가 그 대상에 선정이 된 것입니까?"
"맞습니다. 어떠십니까, 명예의 전당에 자신의 플레이 영상을 공개하실 의향이 있습니까?
매주 1개씩 자신이 깬 퀘스트나 치열했던 전투의 동영상을 올려 주시면 됩니다."
소의 최고 지존들의 퀘스트와 모험.
공인된 최고 레벨인 바드레이를 비롯해서, 500명의 유저들이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의 플레이 동영상을 그곳에 공개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현에게는 그다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저는 유명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로열 로드에서 누가 저를 알아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그렇습니까?"
장윤수 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척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
로열 로드에서 최고의 목표도 황제였다.
전 대륙을 일통한 군주!
그 꿈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새로운 공간.
그런데 명성을 높일 기회를 초개와 같이 발로 걷어차 버리는 이현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한 분이로군요."
장윤수 팀장은 감탄했다.
"사실 지금까지 봐 온 분들은 대체로 거의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자신의 능력이라면 이 정도의 보상은 당연하다는 부류."
대체로 고레벨의 유저나 길드의 마스터들은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도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비굴한 사람들이죠. 명예의 전당에서는 아무래도 500명이 경쟁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일반 유저들이야 명예의 전당에 오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우러러보지만,
그들 가운데에서는 또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조금 이라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해 달라고 애걸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현 님께서는 욕심과 거리가 먼 초연한 태도를 보여 주시는군요."
장윤수가 깊이 감복해서 말했다.
이현은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역시 여기까지 온 건 차비가 아까운 일이었어.'
후회가 막심하던 찰나.
장윤수가 말을 이었다.
"사실 명예의 전당에 오르면, 명성 외에도 얻을 수 있는게 한둘이 아닌데 말이니다.
우선 우리 회사 측에서도 약소 하나마 홍보비를 지급해 드리게 되겠죠.
인기도에 따라서 차등 지급이 될 테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매달 몇 백만 원씩은 받아 가더군요."
"며, 몇 백만 원요?"
"예. 조회수 순위가 좀 낮은 분들도 그 정도는 받아 갑니다.
아무래도 로열 로드의 유저들 숫자가 워낙 많고, 명예의 전당이 인기가 높은 코너라서요.
운영과 홍보에 도움이 되는 만큼 본사에서도 약간의 보상을 해 드립니다.
그런데 이 금액은 대중 매체와 관련된 비용에 비하면 푼돈이라고밖에 말 할 수 없는 돈입니다."
" . . . . . ."
장윤수는 힘주어 말했다.
"기회를 얻는 것이죠. 스스로를 홍보하고 유명 인사가 되는 기회!
명예의 전당에서 유명인이 되면 각종 게임 관련 방송사에서 영입 경쟁을 벌이게 될 겁니다.
그러면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겠죠."
방송사에서는 초반에 상위 랭커들 위주의 방송들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는 식상하기 짝이 없었다.
단순히 레벨만 높을 뿐이지 어떤 사냥터가 효율적인지, 혹은 어쩐 직업으로 전직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초반에는 효과적이었지만, 방송자체의 질이나 재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동영상이라고 해 봐야 강한 몬스터를 때려잡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더군다난 당시 높은 수준에 이르렀떤 랭커들은 지금은 평범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길드의 원조나, 아니면 명성이나 스킬의 효과를 무시한채로 레벨만 급히 올리는 성장을 하여서
후반으로 갈수록 다른 이들보다 뒤쳐지는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그로 인해 방송에 노출된 게이머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게 되자 방송사들은
이제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이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려고 했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유저들은 1순위 영입 대상이었다.
"우린 유니콘 사에서도 홍보를 위해 그러한 일을 적극적으로 장려합니다.
명예의 전당 자체가 영울들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모든 기회를 떨치고 순수하게 로열 로드를 즐기시는 분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떻게 제가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현 님, 참 대단하시군요."
" . . . . . ."
이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무실에 있는 홍보 팀 직원들 다수가 존경 어린 눈으로 이현을 보고 있었다.
"돈과 명예를 초개처럼 버리는 태도라니"
"마땅히 배워야 할 덕목이야."
"역시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야 하는데."
이현은 덥석 장윤수의 손을 잡았다. 직원들이 떠드는 이야기에는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저도 명예의 전당 윗자리로 올려 주시면 안 될까요?"






이현이 떠나도 나자 홍보부에서는 다시금 업무를 개시했다.
장윤수 팀장은 인삼차가 깨끗하게 비워진 찻잔을 보며 생각에 잠겼 있었다.
"이현이라 . . . . . "
"왜 그러세요, 팀장님?"
홍보우의 직원 서정희가 다가와서 물었다.
"아니, 그냥 꽤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인물이어서 말이야."
장윤수 팀장을 오랫동나 봐 왔던 서정희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윤수 팀장이 어떤 사람이던가.
로열 로드를 개발하고 서비스할 때에 실질적인 홍보 전략을 만든 중추적인 인물이었다.
황제가 될 수 있는 게임!
이것 역시 장윤수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그런 장윤수가 한 사람을 만나 보고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겨우 유저 1명한테 마음을 쓰시다니 팀장님답지 않아요."
"내가? 과연 그럴까."
장윤수는 고개를 저으며 1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이걸 본다면 서정희 씨도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는 없을걸."
서정희는 서류를 조심스럽게 받아서 읽어 보았다.
장윤삭 내민 것은 이현의 신상 파일이었다.
로열 로드는 완벽한 내부 정보 보안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유니콘 사의 직원이라고 해도 레벨, 직업, 능력치, 아이템 등 세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이현의 신상 파일에 나와 있는 것은, 그가 게임을 시작한 날짜였다.
이현은 현재의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9개월 전에 로열 로드에 가입했다.
"말도 안 돼요! 그러면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고요?"
서정희가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그러자 홍보부의 모든 시선이 장윤수와 서정희에게 쏠렸다.
"나도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었지.
단 9개월 만에, 적어도 명성으로는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 . . . ."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아마도 9개월간 굉장히 열심히 로열 로드를 했겠지."
서정희는 장윤수의 말을 들으면서 더욱 화가 났다.
그녀는 로열 로드가 막 탄생한 시기부터 플레이를 해 왔다.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도 퇴근하면 곧바로 캡슐로 들어가서 접속을 하고 했던 것이다.
홍보부에서 받는 월급이 적지 않은 편이라서 좋은 아이템으로 무장했다.
그런데도 그녀의 명성은 2,500을 넘지 못했다.
전투 전문 마법사로 전직을 한 뒤 늘 퀘스트를 하고 사냥을 다니는데도 말이다.
"명성치는,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아시잖아요."
"맞아."
"누구는 피부 미용도 포기하고 만날 밤을 새우고 잇는데. . . . "
"그래서 재미있다는 거야."
"네?"
"기대되는군. 그의 직업이나 어떤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을지가 말이야. 아마 일주일 후에 공개할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겠지."
명예의 전당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의 동영상을 등록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장윤수는 두 팔을 쭉 펴며 웃었다.
"역시 이 일을 선택한 보람이 있군. 정말 오랜만에 관심을 가져 볼 만한 이가 나타났어."






오크 장로가 말한대로 열 번의 해와, 열 번의 달이 떠오른 다음 날 이른 아침!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취익!"
"취이익!"
"취취췩!"
위드는 오크들과 함께 다크 엘프의 성을 보고 있었다.
"산맥의 아침. 붉은 해가 떠오르고 거센 바람이 분다. 취췻.
구름도 다가온 전투를 예감하는지 무거워 보이고, 나는 다크 엘프들과의 전투의 최전선에 서 있다. 취!"
위드는 한쪽 발을 바위 위에 올리고, 가슴을 쭉 펴고 고개는 치켜들었다.
나름대로 목솔를 착 깔아서 하는 독백!
"싱그러운 아침에 나는 희망을 품는다. 취취췻.
우리의 용기와 승리를 향한 열망. 버리기에는 고귀한 정신. 영혼.
나는 노래하고 싶다. 추이익! 저 다크엘프들이 강하다면 더욱 노래를 부르라.
우리의 승리를 기원하는 노래를. 모두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수 있으리라."
위드는 한참이나 분위기를 잡고 독백을 했다.
명예의 전당에 영상을 보내게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시청자가 된다.
그러므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윽하고 깊이 있는 눈을 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무리였다.
조각 변신술!
부리부리한 눈동자를 번뜩이며 인상을 쓰는 오크 카리취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독백을 하면서 멋진 시라도 낭송하고 싶었지만, 아는 시구절도 없다.
"취취익! 내 팔자다."
위드는 겉멋을 부리는 것을 포기한 채로 다크엘프의 성을 주시했다.
2밤새 내린 비로 인해 산맥에는 자욱한 안개가 끼었다.
신비로운 분위기.
나무와 새들이 안개속에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들은 생동감이 넘치고,
일찍 깨어난 새들이 먹이를 찾기에 분주하다. 아침이 되어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지만, 아직은 날씨가 추웠다.
높은 지대인 만큼 기온이 많이 낮았다. 이렇게 추운날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기기운!
"에취! 취이익!"
벌써부터 추위를 느끼는 오크들!
감기를 방지하기 위해 위드는 재봉스킬을 이용해 만든 큰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오크들은 평상시처럼 간단한 방어구들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성은 가파른 산의 정상에 세워져있었다. 주변의 삼면은 절벽이고,
그나마 나머지 한 곳도 다크엘프의 마음을 지나야만 통과할 수 있다.
산의 비탈면을 따라서 똬리를 틀 듯이 지어진 집들은 유사시 공격자들에게는 큰 장애물로 작용하리라.
그런데 마을이 아니라 당장 외성을 뚫는 것도 만만치는 않은 일이었다.
7미터가 넘는 성벽에 가시덩굴이 빽빽하게 쳐져 있다.
다크 엘프들이 생명 마법을 이용해서 성벽 전체에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성벽의 앞에는 짙푸른 녹연이 피어오른다. 극독이 흐르는 강.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중독이 되어서 생명력이 하락하고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
이러한 장애물만 해도 뚫기가 만만치 않은데, 성벽위에는 피부가 새까만 다크엘프들이 활과 정령술,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크들이 진군해 오는 순간 그들의 광역 마법이 여지없이 작렬할 것이었다.
외성과 마을을 뚫어야 비로소 네크로맨서들이 만든 신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절로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저런 곳을 대체 어떻게 뚫으란 말인가?
위드의 주변에는 그의 부족 오크 2만 마리 정도가 있을뿐이었다.
그런데 성벽에서 전투를 준비하는 다크 엘프들고 최소한 1만은 되어보인다.
다크 엘프들이나 오크들이나 본래의 전투력은 호각이라고 해도,
이런 대규모 공성전에서는 마법과 궁술에 능한 엘프들이 유리하다는 것이 정석이었다.
게다가 든든한 성에서 지키고 있으므로 오크들의 공격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카리취, 너만 믿는다. 취익!"
오크 장로는 위드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카리스마와 흉험한 얼굴.
건장한 오크 카리취라면 저런 난공불락의 요새도 뚫을 수 있다는 믿음이 오크들 사이에 퍼져있다.
"장로, 나만 믿어라. 취췻!"
"믿는다. 취칫. 오늘내로 승리, 거두자."
"꼭 오늘이어야 하나? 췻!"
"우리 밥 없다. 취취취."
"......"
대책 없는 오크들!
애초에 2만 마리씩이나 동원되었지만, 그들이 전투식량을 준비했을 리가 만무했다.
며칠만 지나면 굻어서 제풍네 나가떨어질 지경인 것이다.
'식량도 없고, 거기에 감기까지 걸린 오크들이라!'
위드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수도 없었다.
오크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또다시 죽게 되는군.'
퀘스트로 인해 죽음의 고비에 몰리기도 수차례! 이번의 위기야말로 헤어 나올 길이 막막하였다.
'적어도 그냥은 죽지 않겠다!'
위드가 각오를 다질 때였다.
바람도 없는데 나무들이 일제히 요동을 친다. 그리고 돼지 머리를 한 오크들이 배후에서 나타났다.
"취익! 취바르 부족이 왔다"
오크 로드 취바르가 이끄는 지원군 1만!
1만의 오크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저 멀리서 숲이 움직였다.
"가르체 부족이 2만을 데려왔다."
"홀취 부족도 1만 5천이 왔다."
다크 엘프의 성이 있는 곳은 유로키나 산맥에서도 고산지대에 속해 있었다.
위드는 바위 위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 천지 사방에 오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 순간 유로키나 산맥에는 나무보다 오크들이 많다. 그것도 훨씬 더 많다.
"취익! 취익!"
위드에게서 주체할수 없는 콧바람이 튀어나온다.
해일처럼 모여드는 오크들의 군대.
갓 성년이 되어 최초로 전쟁에 참여한 오크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년 오크. 전투 오크들이었다.
오크 투사와 전사들이 이끄는 대규모 오크 원정대였다.
"바랑취의 8천오크가 왔다. 취치치칫!"
"게르바게의 9천 오크도, 취췩! 가, 같이 왔다."
"살취는 오크 투사들만 1천을 데려왔다."
각 오크 연락병들은 소식을 전하기에 바빳다.
일부 오크들은 이미 다크엘프 요격대와 한차례 전투를 벌이고 상처투성이로 도착했다.
다크 엘프들은 성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세도 취했던 것이다.
스물다섯 오크 로드의 부대가 도착해야 했지만, 다섯 부족이 오지 못했다.
그런데도 다크 엘프의 성 주변은 오크들로 온통 미어터지고 있었다.
해가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떠오를 때 최종적으로 집결한 오크들의 숫자는, 무려 40만이 넘었다.
글레이브를 들고 녹슨 헬멧과 장갑을 입은 오크들이 지르는 함성과 콧바람에 퀴가 먹먹할 정도였다.
성 위에 있는 다크 엘프들이 일제히 마법과 정령술을 준비했다.
바람, 불, 물, 땅의 정령들을 불러내고 오크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다크 엘프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대군 앞에서 긴장하지 않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위드가 속해 있는 마을은 오크 로드 불취의 소속이었다.
불취는 터벅터벅 위드에게 다가왔다.
"카리취, 너의 용맹, 익히 들었다. 취익!"
"고맙다, 췩!"
불취는 매우 강한 오크였다.
위드도 불취에 대해서는 몇차례 들은 적이 있었다.
오크 로드 중에서도 상위 급에 속하며, 와이번을 잡은 적도 있다고 했다.
불취가 입가에 있는 칼자국을 실룩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우리 오크들에게 공격하라는, 취치치치익! 명령을 내려라."
"내가 그래도 되는가? 취칙!"
"자격 있다. 취익! 오크들의 전통이다. 제일 얼굴 흉악한 오크가 공격을 개시하면서 적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것이다."
이 곳에 모여든 오크는 40만을 넘었다.
그런데도 위드보다 인상이 더럽고 못생긴 오크는 1마리도 없다는 것이었다.
위드에게 새롭게 매력 스텟이 생성되고, 또 달빛 조각사라는 직업이 부여하는 매력 스탯이 추가로 있었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조각품들을 통해서 모든 스탯이 조금씩 상승한 것도 있다.
그런데도 이 매력이 별로 소용이 없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위드의 용모는 도저히 매력 스텟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불취는 친근하게 웃었다.
"대단한 영예다. 취익! 네가 부럽다. 어서 해라."
"......"
위드는 불취의 치켜세움에 어깨를 으쓱했다.
사방에 있는 오크 대군이 오로지 그의 진군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드는 글레이브를 높이 치켜들고 소리쳤다.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위드가 먼저 외치자, 40만 오크 대군이 따라서 '오크!'를 외쳤다.
산맥의 전역이 오크들의 고함 소리로 가득 찼다.
땅이 흔들리고, 그 울림은 멀리까지 퍼져서 계속 메아리쳤다.
오크들의 포효 소리.
돼지 머리를 하고 있지만, 건장한 체구의 전사들이 있는 힘껏 고함을 지른다.
북을 치고 뿔피리를 분다고 해도 이보다 박력 있진 않을 것이다.
산맥이 오크들로 뒤덮여 있었다.
오크들이 말하는 소리, 오크들이 취익대는 소리가 산맥을 가득 채웠다.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위드는 있는 힘껏 소리를 드높였다.
오크들이 외치는 소리 또한 갈수록 커진다.
오크들의 사기가 회정점에 이르렀을 때, 위드는 힘차게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다 부숴 버려라! 취이이이이익!"
"쿠어! 쿠어! 쿠어!"
오크들이 물밀듯이 다크 엘프의 성을 향해 몰려 들어갔다.



-10.선택의 길-



"취이익! 콜록!"
감기 걸린 오크 40만의 대진군!
나무들, 바위들이 장애물이 되어서 오크들의 움직임이 원활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몇만의 오크들이 한꺼번에 다크 엘프의 성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다크 엘프들의 대응도 무척이나 기민했다.
"파이어 필드!"
"아이스 스톰!"
"체인 라이트닝!"
불이 대지를 뒤덮고, 얼음의 폭풍이 불었다.
뇌전이 지그재그로 달리며 오크들의 육신을 폭발시킨다.
수천 마리의 오크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오크들은 계속 진군할 뿐이었다.
다크 엘프들은 마법을 퍼붓다가 오크들이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자 활을 쏘았다.
다크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정령술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쏘는 화살에는 각종 마법의 속성이 걸려 있었다.
화살에 맞은 오크들은 결빙되거나, 아니면 눈이 멀었다.
함정이 설치되어 있어서 땅이 꺼지고 독화살이 발사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오크들은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모든 함정과 마법, 화살 공격을 오로지 숫자로 감당해 내며 달려드는 것이었다.
"취이이익!"
"오크! 오크! 오크!"
오크들의 집념!
오크들의 눈동자에는 오로지 투지만이 가득했다.
땅의 정령이 일어나서 막고, 불길이 이글거린다.
화려한 폭발이 끈이지 않았다.
다크 엘프들은 오크들의 접근에 사력을 다한 마법으로 대했다.
협소한 지형으로 인해 한방향만 막으면 되지만, 그 길로 끝도 없는 오크들이 몰려들고 있으니 공포에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글레이브를 허공에서 돌리고, 괴성을 지르며 전진하는 오크들!
오크들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성벽 아래까지 진출했다.
"취이익! 우리도 쏘자."
"화살을 쏘자. 취치칙!"
이제 오크들도 화살을 쏘았다. 화살이 없는 이들은 돌팔매질이라도 했다.
조악한 오크의 활은 명중율과 사정거리가 현저하게 떨어지기에 성벽 아래에서 위로 올려 쏴야 했다.
오크들은 가지를 잘라 낸 통나무도 들고 왔다.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가져온 통나무를 성벽에 대고 기어 올라간다.
통나무에서 떨어지는 오크들, 악착같이 기여올라 성벽에 도착한 오크들!
다크 엘프의 성은 난전으로 접어들었다.



위드는 여전히 카리취의 모습으로 다크 엘프의 성이 잘 보이는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독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법과 정령술이 난무하는 현장.
다크 엘프의 독술과 정령술은 오크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정령들이 이자리에 모인것 같았다.
불의 정령 카사, 물의 정령 운디네, 바람의 정령 실프, 땅의 정령 노움!
다크 엘프들이 불러낸 정령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땅을 뒤집었다.
온 사방이 격전지였고, 다크 엘프들의 일부는 성문을 열고 나와 유격대로 활약하면서 오크들을 주살했다.
"취익!"
"카리취! 몸이 근질근질하다."
"우리도 공격하자. 취취!"
위드가 공성전이 시작된 이후로 그 자리에 멈추어서 그대로 있자, 조바심이 난 오크들이 재촉해온다.
위드는 불취 부족 오크들 500마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취칙. 아직 기다려라."
전투가 한참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위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추악한 오크의 모습으로 그대로 앉아 있기만 했다.
'이건 말도 안 되게 무모한 전투로군.'
위드는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다크 엘프의 성은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 해도 섣불리 공격을 결정하기 힘들 정도였다.
성벽과 지형은 어디서나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다.
하물며 산의 정상에서 마법과 정령술을 펼치는 다크 엘프들을 상대로, 정면 공격을 감행하다니!
게다가 하늘도 오크들의 편이 아니다.
밤이슬을 맞으면서 모여든 오크들은 감기에 걸려서 체력이 떨어져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유로키나 산맥의 오크들이 강하다고 해도 이 정도의 악조건이라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위드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지 꼼수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대로 전쟁이 지속된다면 이기더라도 오크들의 피해가 너무 크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덕분에 전투는 더욱 격렬하고 재미가 있었다.
무식하게 개돌격하는 오크들!
사력을 다해서 막으려는 다크 엘프들.
수만, 수십만의 전투가 유로키나 산맥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그 자체로 하나의 장관이었다.
오데인 요새의 공방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박력있는 전투였다.
종족부터 다른 오크들과 다크 엘프들의 전투이다 보니 더욱 긴장감이 어렸다.
'초기의 전투는 아무래도 다크 엘프들이 유리하군.'
위드는 냉정함을 잃지 않고 전투를 분석했다.
얼핏 보기에는 오크들이 신 나게 전공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다크 엘프의 성을 향해 기세를 올리며 진격해 들어가는 오크들의 앞에는 그 어떤 것도 멀쩡하지 못할 것만 같다.
수만의 오크들이 줄을 이어서 성으로 쳐들어가고, 그 뒤로는 그 보다 훨씬 많은 오크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크들은 다크 엘프의 성을 짓밟을 기세로 경사 높은 산을 달려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크 엘프들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크들의 숫자가 수십만에 이르러도 길이 협소하여 그 병력을 효율적으로 쓸 수는 없었다.
전투에 실제 동원되는 병력은 많아야 2만.
그 불리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아래에서 위로 쏴야 하는 화살 공격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산을 뛰어올라야 하기에 체력이 좋은 오크라고 할지라도 쉽게 지치고 만다.
다크 엘프들은 지형과 마법, 정령술에 의존하면서 거의 피해 없이 오크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오크들, 무식하다."
"돼지 같은 오크들! 이곳이 너희들의 무덤이다."
다크 엘프들은 오크들을 조롱하면서 전투를 이끌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이런 전투에서 듣는 욕설 정도는 어지간하면 참아 넘긴다.
그런데 이들은 오크였다.
단순 무식하고 성질 나쁜 오크.
"취이익!"
"너, 너, 너 기다려라! 취취췻. 까만 놈."
격장지계도 아니었는데, 오크들은 완전히 흥분하여 덤벼들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오크들은 성문을 두들기고, 성벽을 기어오르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다크 엘프들에 의해 격퇴됐다.
초기에 발생하는 피해의 대다수는 오크들이 입고 있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에 오크들이 거의 4만 가까이 죽어 나간 것에 비해 다크 엘프들은 눈먼 화살에 맞은 수십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다크 엘프들의 승리를 예상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전쟁은 초기였고 남아 있는 오크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전술과 전략, 지형. 이 모든 변수를 무시할 정도로 많은 오크들!
질보다 양!
1마리를 죽인다고 해도 2마리, 3마리가 이어서 달려드는데에는 장사가 없었다.
다크 엘프들이 집단적으로 마법을 영창했다.
다크 엘프들 중에서도 로브를 입고 있는 이들 100명이 함께 마법을 외운 것이었다.
"플레어!"
다크 엘프들로부터 거센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멀리 있는 위드의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화끈한 화력!
불길은 성의 근처에 다가온 오크들을 한 번에 모조리 통구이로 만들어 버렸다.
"취익!"
"취익! 취익!"
호전적인 오크들. 그러나 이런 엄청난 마법 공격 앞에서 오크들은 투지를 상실했다.
아직 다크 엘프의 외성도 부수기 전인데 오크들이 겁에 질려버리고 만 것이었다.
여전히 오크들은 다크 엘프의 성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그 기세는 조금 전만 못했다.
사기가 극도로 낮아졌기 때문.
그때 위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던 때가 왔군.'
위드는 그가 다스리는 오크들을 둘러보았다.
"취칫. 이제 우리가 가자!"
"카, 카리취!"
"무모하다, 취익!"
방금 전까진 왜 전투를 하지 않느냐고 안달을 내던 오크들이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괜찮다, 취익! 나만 믿어라."
그러나 위드는 오크들을 데리고 억지로 앞장을 섰다.
다른 오크 로드가 이끄는 오크들은 위드와 오크들에게 쉽게 길을 터 줬다.
성벽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 위드와 오크들!
이 무렵에는 다크 엘프들의 마법과 정령술도 많이 약화되어 있었다.
마나가 거의 소진된 탓이었다.
위드는 바로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격! 공격해라. 취이이익!"
위드의 육중한 몸체가 성벽에 걸쳐진 통나무를 밟고 뛰어 올랐다.
빠지직!
통나무가 대번에 부러졌지만, 위드는 무사히 성벽 위에 내려섰다. 그러고는 마구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다크 엘프들은 독수리를 능가하는 시력, 그리고 궁술과 날쌘 움직임을 자랑한다.
마법도 잘 쓰는 만큼 공성전에 있어서는 거의 최고의 종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나가 거의 떨어졌다. 궁술은 바로 근처까지 다가가면 별로 소용이 없다.
날랜 움직임도 동료들이 장애가 되어서 별다른 장점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드의 목표는 널려 있었다.
성벽에 있는 다크 엘프들이 모조리 적이었다.
활과 마법을 쓰는 다크 엘프들.
위드는 신나게 다크 엘프들을 공격했다. 부하로 데리고 온 오크들과 다크 엘프들을 열심히 공격했다.
일단 근접전이 벌어지게 되면 소검이나 레이피어를 주로 쓰는 다크 엘프들에게 오크들이 밀릴 까닭이 없다.
위드와 오크들은 잠깐 동안에 많은 다크 엘프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창 공격을 세운 다음에 위드는 재빨리 성벽을 뛰어내려서 전장을 이탈했다.
시간이 흐르며 다크 엘프들의 마나가 조금이나마 회복되고 있었던 것.
위드는 전투를 하는 가운데에도 끊임없이 눈치를 봤다.
눈치 보기와 상황 판단.
어떤 궁지에 몰려도 살아날 구멍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위드의 장기였다.
"파이어 필드!"
위드가 물러나자마자,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는 불바다가 되었다.
"끄아아악!"
"몸이 타오른다!"
다크 엘프들은 자신의 동료가 있는 곳에도 서슴없이 마법을 시전했다.
인간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다크 엘프들이나 오크들이나 생명의 소중함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적을 제압하려는 호전성이 우선이었다.
위드는 오크들을 적극 활용했다.
다크 엘프들의 마나와 체력은 한정되어 있었다.
오크들이 끊임없이 공격을 하니, 일부 다크 엘프들은 틀림없이 체력이나 마나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위드는 그럴 때마다 직속부대를 이끌고 그 곳을 공격했다.
그리고 다크 엘프들이 마나를 회복할 때쯤에는 곧바로 퇴각했다.
물론 위드와 직속 부대만이 명령을 받아서 퇴각한 것이고,
다른 오크들은 더욱 무섭게 몰아치다가 다크 엘프의 마법에 당해 전사를 해야 했다.
위드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40만 오크 대군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
적이 약한 부위를 찌르고, 반격할 때에는 서슴없이 다른 오크들을 몰아넣는 치사함!
다크 엘프들이 오크들에게 신경을 쓰는 사이에 위드는 조용히 공적을 챙겼다.
그런 식으로 몇 번 더 성공을 거두자, 다크 엘프들을 100마리 이상 잡을 수 있었다.
위드뿐만이 아니라 직속부대가 사냥한 다크 엘프들의 숫자를 합치면 더욱 많으리라.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퀘스트 공적치가 꽤나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비하다고 해도 좋다! 사실이니까!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만 했다.
오크들이 7만 정도 죽었을 때에는 다크 엘프들의 숫자도 3천 넘게 줄어 있었다.
'곧 끝나겠군.'
살아 있는 다크 엘프들이 7천을 넘는다고 해도 거의 다 상처 입고 지친 상태.
성벽에 의존하여 버틸 뿐이었다.
그런데도 다크 엘프들은 워낙에 뛰어난 궁술을 가졌다.
그들의 저격술에 오크들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오크 투사들이 연이어 암살을 당했다.
공성 병기가 없으니 성벽을 오르기에도 만만치 않고, 오크들은 여전히 지지부진 전투를 끌어가고 있었다.
"힘내라. 취이익!"
"다크 엘프들을, 취치칫. 공격하자!"
길이 협소하여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오크들이 괴성을 질러댔다.
위드는 전투를 마무리 짓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놈이 온다."
"제일 못생긴 놈이다!"
오크와 다크 엘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위드에게 향했다.
그런데 위드는 이번에는 성벽을 오르지 않았다.
성문!
크고 거대한 성문으로 걸어갔다.
위드는 글레이브를 잠시 벗어 두고, 품에서 작은 조각을 꺼냈다.
토끼 조각상.
걸작으로 만든 다섯 생명 조각상 중의 하나였다.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들이 힘이 되어라."
위드는 조각상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부쉈다.
그 순간!
위드의 몸에 빛이 어렸다.


조각 파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걸작 조각상이 파괴된 고통! 슬픔!
예술 스텟이 5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명성이 100 줄어듭니다.
예술 스텟이 1:4의 비율로 하루 동안 힘으로 전환됩니다.

-조각술의 숙련도가 0.1% 상승합니다.

위드가 가진 1천이 넘는 예술 스텟이 모조리 힘으로 전환되었다.
그것도 4배로 증폭이 되어서 말이다.
걸작 조각상을 부순 대가로 명성이 줄어들고 예술 스텟이 소모되었다.
그 대가로 위드의 몸에는 무엇이든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괴력이 흘렀다.
"크아아아!"
위드는 괴성을 지르며 글레이브를 움켜쥐었다.
근육으로 울퉁불퉁한 팔뚝에 핏줄이 섰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넘쳐흐른다.
이 순간, 위드는 예술을 이해하는 조각사가 아니었다.
오크로 변신해서 지식이나 지혜도 바닥이다.
모든 것이 힘!
힘으로 전환이 되어 있었다.
위드는 성문을 향해 있는 힘껏 글레이브를 내리쳤다.
콰아아앙!
글레이브가 산산조각 났다.
숫제 가루가 되어서 주변으로 튀었다.
"취이익?"
"취취취!"
완전히 흥분해 버린 오크들.
위드는 주변에 떨어져 있는 글레이브를 닥치는 대로 주워서 성문을 마구 내리쳤다.
위드가 힘을 쓸 때마다 성문에 조금씩 금이 가더니 열 번쯤 지나자 마침내 쩍하고 갈라졌다.
"우와아아!"
"성문이 뚫렸다, 취익!"
오크들이 무섭게 환호했다.
그러자 다크 엘프들 셋이 매우 빨리 부서진 성문에 모여 들었다.
"오크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진형을 갖춰라!"
"식물을 자라게 해서 벽을 쌓아!"
"인라지 마법으로 새로운 성문을 만들자!"
다크 엘프들이 창을 들고 위드를 향해 돌격해 왔다.
위드를 처리하고 씨앗을 심기 위해서였다.
인라지 마법!
식물을 순식간에 자라게 하는 엘프 특유의 마법.
그것을 이용해서 부서진 성문을 나무로 완전히 틀어막아 버리려고 했다.
엘프이므로 가능한 전술이었다.
"죽어라, 이 오크야!"
다크 엘프들은 적대감 가득한 눈으로 창을 찔러 왔다. 그들 셋의 합공!
"다 덤벼라. 취이이익!"
위드의 손에서 글레이브가 신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돌고, 손아귀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적을 향해 휘둘러진다.
파바박!
창대를 연속으로 후려치는 글레이브!
방어구 닦기나 다림질 스킬을 썻다고는 해도, 저 많은 창들에 맞으면 목숨이 위태롭다.
지금 입고 있는 방어구들은 한마디로 싸구려!
새로 장비를 구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그렇다고 재료 아이템들을 상요해서 좋은 장비를 만들기에는 돈이 아까웠다.
오크로 변한 이후에 중갑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재료도 그만큼이나 많이 들었던 것이다.
자고로 몸의 면적이 넓으면 옷감이나 철도 많이 드는 법.
위드는 사냥으로 줍거나 아니면 불순물이 많은 철을 이용해서 방어구를 만들어 입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크 엘프들의 창술에 제대로 맞으면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다.
"취이이이익!"
조각 파괴술을 이용하여 가지고 있던 예술 스텟을 전부 힘으로 전환한 만큼, 지금 위드에겐 미칠듯한 힘이 흐른다.
힘과 민첩으로 절반씩 나누었다면 더 강해졌겠지만, 조각 파괴술의 특성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오로지 힘!
창대를 쳐 낸 위드는 가운데 다크 엘프를 노리고 공격했다.
목표가 된 다크 엘프는 창을 돌려 막으려고 했지만, 위드의 글레이브는 그보다 훨씬 강했다.
퍼서석!
다크 엘프의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세 다크 엘프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위드는 창을 완전히 피할 생각 따위는 버렸다.
날카로운 정면을 피해서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최소한의 희생은 감수한 것이었다. 찔러 오는 창 사이로 뛰어들며 거대한 몸집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글레이브.
힘과 기술이 절묘하게 조화되었다.
세 다크 엘프는 결국 위드를 이겨내지 못하고 죽었고, 성문은 위드가 장악했다.
위드는 사자후를 터뜨렸다.
"오크들이여, 취치이익. 모조리 부숴라. 빼앗아라. 약탈하라!"



스킬: 사자후를 사용하셨습니다.
사자후 스클의 영향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아군의 사기가 200% 상승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혼란 상태가 해제됩니다.
5분간 통솔력이 195% 추가 적용됩니다.


그간 다크 엘프들에 의해 피해만 입고 의기소침해 있던 오크들이 대번에 원기를 회복했다.
"취익!"
"싸우자, 취르르르!"
성난 오크들이 일제히 열린 성문을 통해 성안으로 진입했다.





다크 엘프들은 외성을 포기하고 마을에서 맞섰다.
위험한 함정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장애물도 만들어져 있었다.
정령술과 마법, 궁술을 이용해 소수의 습격대를 운용하며 오크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오크들은 무식하게 숫자로 밀어붙였다.
함정이나 장애물, 마법을 모두 밀어 버리는 오크들!
그들의 박력 앞에 다크 엘프들은 조금씩 세력을 잃어 갔다.
안전한 성벽 위에서 마나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오크들에게 노출된 것이다.
아직도 주력은 온전히 버티고 있으나, 오크들에게 조금씩 밀려서 마을의 외곽에다 방어진을 펼쳐야 했다.
"꾸엑, 이건 내 거다!"
"내가 먼저 집었다, 취칫!"
집으로 들어가서 약탈하는 오크들.
위드는 눈물을 삼키면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금이나 은과 같은 보물이라고 할 것은 없어도, 다크 엘프들은 매우 귀한 돌이나 과일 열매, 동물 가죽들을 모아 놓고 있었던 것이다.
팔면 당연히 돈이 되는 물건이고, 로자임 왕국에서는 몇 배나 되는 이득도 볼 수 있다.
본래 약탈한 물건은 원가가 들지 않은 만큼 명성도 얻기 쉬운 일이었다.
위드는 배가 심하게 아파 왔다.
당연히 약탈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프레야 교단의 퀘스트를 처리하기 위해, 네크로맨서의 신전! 그곳에 가야했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세워진 철옹성!
다크 엘프와 오크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그곳으로 부란과 베커, 호스람, 데일 들은 병사들을 데리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오크들이 침공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에 미리 매복하고 있다가 위드의 명령에 의해서 절벽을 타는 것이었다.
"끄으응!"
"힘내자."
병사들은 서로를 격려하면서 열심히 절벽을 기어올랐다.
까딱 손이라도 놓치면 그대로 떨어져서 죽으니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프레야 교단의 사제들도 거친 바람에 로브를 펄럭이며 절벽을 탔다.
체력이 약한 사제들이 아무 장비없이 절벽을 오르는 건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위드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이들을 부릴 리는 만무했다.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대형 박쥐로 변신한 그가 주위를 선회하며 병사들이 추락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데스 나이트도 병사들을 따라 오르면서 힘이 빠진 이들을 도와주었다.
만약에 절벽 위에 다크 엘프가 적어도 몇 명이라도 지키고 있었다면 병사들은 몰살을 면치 못했겠지만,
다크 엘프들은 모두 오크들과의 전투에 동원되었다.
그 덕에 병사들은 아무 희생없이 절벽을 기어오를 수 있었다.
"이제야 왔구나."
위드는 병사들과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예, 대장님. 저희들이 왔습니다. 이제 아무런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란이 가슴을 탕탕치면서 대답했지만, 위드에게는 지극히 신뢰가 안 가는 일이었다.
'차라리 오크들이 믿음직스럽지.'
오크들의 규모, 전투 능력!
거기에 비한다면 병사들이나 왕실 기사들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로자임 왕국으로 무사히 귀환시켜 명성치를 되찾아야 하니 죽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었다.
한마디로 전투에 별로 도움 안되는 상전들!
그러나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서 병사들을 성장시켜야 위드에게도 공적치라는 떡고물이 떨어지는 것이니
억지로 이곳까지 끌고 와야 했다.
"네크로맨서의 신전으로 최대한 빨리 가자."
위드는 왕실 기사와, 토리도, 데스 나이트를 앞세워서 길을 뚫었다.
"취췻! 그들은 누구냐!"
오크들을 만나면 위드는 한마디만 외쳐 주면 될 뿐이었다.
"이들은 내 포로다. 건들지 마라. 취잇!"
"인간을 잡다니 부럽다. 췩췩!"
위드가 여전히 오크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오크들을 만나면 간단히 해결이 되었다.
네크로맨서의 신전 앞에는 다크 엘프들이 쓰러져 있었다.
위드는 병사들과 함께 신전 내부로 들어갔다.



슈샤아악!
음침한 기운이 감도는 신전 내부!
"취치칫!"
어딘가에서 오크들의 콧바람 소리가 들렸다.
이곳에도 오크들이 난입해서 다크 엘프들과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시간이 없다. 네크로맨서들만 잡는다."
위드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옛, 대장님!"
오크들과 다크 엘프들! 모조리 죽이면 그 전리품이 만만치 않을 테지만 시간을 아껴야 했다.
'프레야 교단의 퀘스트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야.'
괜한 욕심을 부려 시간을 지체하다가 오크들이 네크로맨서들을 다 죽이기라도 하면 큰일이 난다.
위드는 곧바로 네크로맨서들이 있을 신전의 내부로 향했다.
"취익!"
"이 미개한 오크들!"
다크 엘프와 오크들은 서로 싸움을 벌이고 있었기에 위드는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곳은 지나갈 수 없다!"
다크 엘프들이 길을 막으면 사제들이 마법을 외웠다.
"여신의 아름다움은 만인의 눈을 멀게 만든다. 블라인드!"
눈을 멀게 만들고, 토리도와 데스 나이트가 임시로 상대해 주면서 모든 관문을 돌파!
위드는 곧 네크로맨서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큰 지도가 걸려 있었다.
유로키나 산맥의 지도!
다크 엘프의 성이 있는 장소는 검은 점이, 그보다 동쪽에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토리도가 어떻게 이곳까지! 설마 인간에게 굴복한 것인가.
그리고 신...성력이 느껴지는 이들은 프레야의 사제들!"
검은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네크로맨서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네크로맨서들은 총 12명이었다.
그들은 뼈로 된 지팡이와 마력이 느껴지는 구슬을 쥐고 있었다.
위드는 조각 변신술을 해제하고 앞으로 나섰다.
"사악한 네크로맨서들아, 이곳이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위드가 눈짓하자, 토리도와 데스 나이트는 양 옆으로 펼쳐지듯 자리를 잡았다.
사제들은 신성 마법을 쓸 준비를 하고, 병사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언제라도 튀어 나갈 준비를 했다.
왕실 기사들은 네크로맨서들을 1명씩 맡았다.
네크로맨서들의 제일 까다로운 마법은 저주와 어둠의 군대를 불러내는 것! 바로 죽은 자들을 언데드로 만드는 것이었다.
스켈레톤과 구울, 좀비, 혹은 그 이상의 강한 언데드 몬스터들!
시체를 이용한 다양한 흑마법은 마법사 계열에서 네크로맨서들을 최강의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프레야의 종... 네가 우리의 일을 망쳤구나."
주위를 둘러본 네크로맨서들은 음울한 어조로 말했다.
시체가 없었으므로 네크로맨서들이라고 해도 전투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미 그들의 사기는 최저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네크로맨서의 수장인 듯한 이는 싸울 의사마저 보이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구나.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가. 한번 잘못 끼운 단추는 영영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인가."
"바라볼 님!"
네크로맨서들이 안타까운 듯이 외쳤다.
바라볼은 고개를 저었다.
"평생 신의 섭리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순리라면 나는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나를 죽여라."
바라볼은 천천히 걸어 나와 위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라볼님, 저희들도 함께 하겠습니다."
다른 네크로맨서들고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었다. 왕실 기사들이 언제라도 그들의 목을 칠 수 있게 말이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사악함에 물들지 마라."
위드는 검을 뽑아 들었다.
네크로맨서들의 목을 자르기 직전!
네크로맨서들을 죽이면 프레야 교단의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다. 그런데......
'잠깐... 이건 무언가가 이상하다.'
위드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
얼렁뚱땅 달빛 조각사로 전직한 아픔!
그 덕분에 일이 순조롭게 처리되면 위드는 의심부터 하게 됐다.
'퀘스트의 난이도는 대충 맞는 것 같은데....'
본래 이 퀘스트는 난이도가 B급이었다.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와 진혈의 뱀파이어 일족을 처리하는 임무 또한 난이도 B급의 퀘스트였다.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다하면서 완수한 퀘스트다.
이번에 네크로맨서들을 퇴치하라는 임무도 나름대로 상당히 어려웠다.
이들과 한편인 다크 엘프들을 피해서 이곳까지 들어와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마지막에 네크로맨서들이 너무 순순히 죽어준다는 말이지!'
위드는 갈등에 갈등을 거듭했다.
퀘스트를 바로 끝낼 수는 있다. 헤레인의 잔과 파고의 왕관을 되찾는 것에 이은 연계 퀘스트!
당연히 프레야 교단으로 돌아간다면 많은 보상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꼴깍!
바라볼과 네크로맨서들이 들고 있는 뼈 지팡이와 마력구슬.
'저건 최소한 레어 급 아이템인데... 저것들을 내다 팔면 못해도 백만 원은 되겠다.
특별한 옵션이라도 달려 있으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뛸 테지. 그런데 저런 아이템 1~2개도 아니고....'
강렬한 유혹에 위드는 군침을 삼켰다. 들고 있는 검에 저절로 힘이 실렸다.
바라볼의 목을 베기 위해 조금씩 다가가는 검.
그런데 그렇게 되면 영영 이 찝찝함은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쿵쾅쿵쾅!
위층에서 들려오는 오크들의 발걸음 소리.
시간이 많지 않았다.
위드는 검을 거두었다.
"말하라, 네크로맨서들이여. 너희들이 생각하는 신의 섭리가 무엇이며, 잘못 끼운 단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재빨리 네크로맨서들을 죽이고 퀘스트를 완수했겠지만, 위드는 시간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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