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 13

3학년2반 | 2022.01.21 07:54:12 댓글: 0 조회: 419 추천: 0
분류인터넷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3989
달빛조각사 13권

차례

1. 스켈레톤 나이트
2. 공주의 기사
3. 역사적인 전투
4. 위드의 귀환
5. 번영의 상징 모라타
6. 딸의 조각품
7. 악독한 모라타 영주
8. 드워프 왕국
9. 드워프 아트핸드
10. 악룡 케이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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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켈레톤 나이트

따다다닥.
위드는 턱뼈를 부딪치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살점 하나 붙어있지 않은 완벽한 뼈다귀의 모습!
죽음을 거부할수 있는 힘 때문에 언데드로 부활했다.
뼈밖에 없는 기묘한 모습이었지만, 지난번 보다는 뼈마디가 훨씬 두꺼웠고 몸에도 힘이 넘쳤다.
띠링!
- 심연의 어둠 속에서 되살아 났습니다. 죽음을 거부할수 있는 힘의 스킬레벨이 1단계 올랐습니다. 초급 2 레벨이 되었습니다.
생명력이 추가로 3% 늘어나며, 어둠의 힘을 1% 이끌어 낼수 있습니다.
사악한 땅에서 싸울수록 효력을 더할 것입니다.
부활 가능한 언데드의 종류가 늘어납니다.
부활 후 사용 가능한 종족 고유 스킬의 개수와 스킬레벨이 향상됩니다.
죽음을 거부할수 있는 힘은 다른 방식으로 숙련도나 경험치를 얻기가 불가능했다.
오로지 죽음으로써만 얻을수 있을 뿐.
"캐릭터 정보!"

캐릭터 이름 : 위드 성향 : 언데드
레벨 : 354 직업 : 스켈레톤 나이트
생명력 : 146,800 마나 : 6,400
힘 : 1,265 민첩 : 1,130
체력 : 무한
지혜 : 70 지력 : 56
투지 : 922 지구력 : 무한
인내력 : 665 맷집 : 470
통솔력 : 459 죄의식 : 96

* 스켈레톤 나이트의 고유 특성으로 인해 지치지 않습니다.
* 검술 스킬 +2
* 어둠의 힘이 몸 전체를 뒤덮고 있어 공격력과 방어력에 추가적인 효과를 더합니다.
* 신성 마법에 극도의 취약성을 보입니다.
* 햇빛과 불에 약화됩니다.

원래 위드의 레벨은 355였다. 하지만 죽음으로 인해 레벨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스킬의 숙련도도 상당히 떨어졌으리라.
죽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숙련도야 노가다로 채우면 되니까.
"스켈레톤 나이트. 정말 오랜만에 후련하게 몸을 움직일수 있겠어."
위드는 검을 뽑아 들어 자신을 죽였던 원혼의 기사들을 베었다.
"크아!"
"적이다."
뭉쳐서 길을 막고 있던 원혼의 기사들이 돌변했다.
아직까지는 위드를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쪽은 언데드였고, 저쪽도 해골의 육체에 붙어있는 저주받은 망령이었으므로.
그런데 선제공격을 당하고 나더니 위드를 향해 녹슨 칼과 썩은 방패, 부러진 창을 추어올렸다.
"괴롭다, 괴로워."
"고통스러워. 이 고통을 살아 있는 인간, 아니 저 해골에게도 전해 주자."
"우리를 배반했다. 배반자는 우리의 친구. 으응? 아니, 일단 죽이고 보자."
원혼의 기사들이 대거 일어났다.
전투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던 놈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땅에서 새로운 원혼의 기사와 병사들이 살아난다.
놈들은 망령!
친구를 배신하고, 조국에 반역하고, 왕을 조롱한 죄로 저주를 받은 이들이다.
불과 몇 초만에 서른이나 되는 적들이 전투준비를 갖추로 달려든다.
육체가 부서지더라도 저주의 힘에 의해서 또 부활하게 되니 빠르게 뚫고 지나가는 것만이 해답이다.
"스톤 스킨!"
위드의 새하얀 뼈다귀가 돌처럼 단단해졌다.
마나의 양이 너무 적어 더 이상의 공격 스킬은 사용할수 없다.
"배반자. 친구여. 너도 우리처럼 고통을!"
원혼의 병사가 먼저 달려왔다.
위드는 재빨리 상체를 숙여 창을 피하고, 상대의 목덜미를 향해 검을 뻗었다.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푸스스!
희뿌연 연기가 되어서 사라지는 적.
살아있을 때에는 조각사라는 직업탓에 스탯들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예술이나 신앙, 매력 따위의 스탯들로 인하여 힘이 약했다.
하지만 스켈레톤 나이트로 재탄생한 이후에는 공격력이 엄청나게 강해 졌다. 민첩도 늘어서, 몸이 움직이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기본 방아력도 훨씬 증가해 있었다.
파바바바박!
위드는 모든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치면서 전진했다.
멀리있는 적들을 볼 필요가 없었다.
'한순간에만 집중한다.'
동시에 여러개의 공격이 들어올 때에는 상대의 무기를 쳐내서 그들끼리 엉켜버리게 만드는 수법을 사용했다.
적들은 동료들이 있다고 해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푸확!
원혼의 병사들의 몸을 뚫고 창이 튀어나왔다.
위드는 미리 예상하기라도 한 듯이 몸을 뒤로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신들린 듯한 싸움.
싸움에도 일정한 흐름이 있다.
일대일의 격투가 아니라, 상대해야 할 숫자가 훨씬 많을 수록 거대한 흐름이 흐른다.
호흡과 적의 공격법, 움직임.
여기에 나 자신을 동화시킨다.
위드는 절정에 이른 검술과 몸놀림으로 활약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가능한 데에는 스켈레톤 나이트의 특성 덕도 적지 않게 보였다.
인간이라면 체력의 한계가 있기에 매번 격렬한 움직임을 보일수가 없다. 빨리 움직일수록 체력이 더 많이 소모되고, 금방 지친다.
전투 초기에 100의 공격력을 낼 수 있다면, 체력이 감소할 때마다 최도 공격력이 저하된다.
방어력의 경우는 체력이 줄더라도 그리 심하게 떨어지진 않지만 맷집이나 인내력, 지혜를 포함한 많은 수치들이 체력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스켈레톤 나이트는 언데드 특유의 속성상 지치지 않는다. 1시간을 싸우더라도 변함없이 체력이 남아 완전한 상태의 공격을 가할수 있다.
더군다나 배도 고프지 않다.
위드는 전투에 몰입하면서도 비참함을 느낄 정도였다.
"해골 기사 따위도 조각사보다 좋다니!"
설움과 억울함!
위드는 온 몸의 뼈마디가 어긋나기라도 할 것처럼 격렬하게 싸웠다.
수없이 많은 전투 경험, 현실에서 배운 검술.
로열로드에서는 스킬이 있다고 해도 직접 싸워야 한다.
위드는 이에 대비해서 몸을 완벅하게 자신의 통제하에 두었다.
검치 정도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바를 그대로 할수 있을 정도는 된다.
영웅의 탑 4층은 검술과 단호한 의지를 시험하는관문이었다.
적의 공격에 움츠러들면, 그리하여 한 걸음이라도 물러나게 되면 갈수록 더욱 모여드는 원혼의 기사들을 뚫지 못한다.
마음이 흔들리고 약해지면 이겨 낼수 없는 관문.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
위드의 무거운 한 걸음이 떼어질 때마다, 엄청난 숫자의 원혼의 기사와 병사들이 쓰려져 갔다.
"으하아아아!"
위드의 입에서 흥겨움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불가능에 도전할 때가 즐겁다. 성공할지, 실패할지에 대한 걱정을 할 팰요가 없으므로!
촤라라라!
위드의 팔꿈치와 손목뼈가, 부러질 것처럼 격한 각도로 돌아갔다.
눈부신 검의 휘두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동작들 조차도 여기서는 가능하다.
스킬들을 응용한다면 더 기상천외한 공격들을 할수 있지만, 마나를 쓸수 없으니 휘두르고 베는 것을 위주로 싸웠다.
'검이 멈춰서는 안된다. 힘을 그대로 간직한 상태로 휘두르고 벤다.'
헤라임검술을 습득하고 나서 써먹었던 경험들이 금세 녹아들었다.
검을 정면에서 맞받아치면 그 반발력 때문에 머뭇거리게 된다.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공격이 끊어져서는 안된다.
위드의 검술 스킬은 중급 4 레벨!
물론 고급 무기술의 단계에 오른 검치들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조각사의 특성상 검술 스킬의 성장이 2배나 느린 탓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스켈레톤 나이트의 특성으로 검술 스킬이 2단계 올라 있어서 위력이 막강했다.
"끼릭끼릭!"
"스켈레톤 나이트. 적이지만 굉장한 기사다."
전투가 이어지면서 원혼의 기사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우리의 임무는 이곳을 막는 것."
"아프다, 아파. 생전에 저지를 배신의 대가로 영원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기사. 그대의 강함과 용기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곳을 통과하게 놔둘 수는 없다."
위드가 4층의 8할에 가까운 거리를 억지로 뚫었을 때에, 원혼의 기사들은 더욱 극렬하게 달려들었다.
위드는 충실하게 검술만을 이용했다.
다른 선택도 없었지만, 무한한 체력을 이용하여 수만 번의 검을 휘두르고 있다.
세라보그 성에서 허수아비를 치던 시절!
그때를 제외하면 이토록 짧은 순간에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른 적은 처음이리라.
그렇게 혼신을 다해서 싸웠다.
마침내 위드의 앞을 막아서는 원혼의 병사나 기사가 더는 없었다.
흰 계단이 보였다.
4층의 관문 돌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어느덧 끝까지 왔다. 이대로 계단을 오르면 영웅의 탑 5층으로 나아갈수 있다.
"크크크크."
"굉장한 기사다."
"싸운 것을 영광으로."
원혼의 기사들도 예를 취한 채 더 이상 덤벼들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원혼들, 망령들이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던 시절의 기사다운 성격이 조금쯤은 남아 있는 모양이군.'
위드는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남아 있는 생명력 63%.
죽음을 거부하는 힘으로 인해 기초 생명력 자체가 막대했다.
탈로크의 갑옷이나 신성계열의 반지 등은 모두 벗어 버린 상태다 대신 본 드래곤의 뼈로 만든 방어구와, 마나회복 속도를 늘려주는 패로트의 링을 착용하고 있었다.
평상시 방어구들은 수리를 통해 최상의 상태를 유지시켰다. 그 덕에 격전을 치른 뒤에도 무려 80%가 넘은 내구력이 남았다. 본 드래곤의 뼈는 그만큼 단단했기 때문이다.
검의 내구력도 75% 이상이었다.
'충분하다.'
위드는 계단 앞에서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원혼의 기사들에게 다가가며 검을 휘둘렀다.
"아프다!"
"우리를, 우리를 왜 괴롭히는가!"
원혼의 기사들, 병사들이 아우성을 쳐 댔다.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면 관문을 통과할수 있음에도, 위드가 다시금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위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퀘스트, 몬스터, 도전도 거부한 적이 없다.'
마법의 대륙에서 위드는 참는 법을 몰랐다.
가로막는게 있다면 그것이 사람이든 몬스터든 퀘스트든, 박살을 내고 뚫어 버렸다.
그저 부숴버리고, 깨뜨려 버릴 뿐이다.
모두 죽고 혼자 남으니 그 시절이 떠올랐다.
영웅의 탑 4층 관문에서, 전신 위드의 기질이 되살아난 것이다.

정일훈은 전화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슬슬 전화가 올 떄가 되었는데."
로열로드에서의 검둘치!
정일훈은 오크 세에취를 극진하게 돌봐 주었다. 그러면서 점점 친해지고 정도 깊어졌다.
여자에게는 완전히 숙맥이던 정일훈 이지만, 왠지 세에취는 편하게 대할수 있었다.
결국 둘은 로열로드에서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녀가 정일훈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얼마 만의 여자 전화냐."
정일훈은 감개무량했다.
고액 사채를 쓰라는 전화, 카드 가입하라는 여성의 전화도 쉽게 끊지 못하는 노총각 신세.
그런데 여자친구가 생겨서 전화를하게 될 줄이야!
따르!
정일훈은 전화벨이 채 한번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를 들었다
"예! 정일훈 입니다!"
막 입대한 신병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목소리.
'날달걀을 7개나 까먹었으니 목소리는 괜찮겠지?'
정일훈의 일생에 이런 고민을 한 적은 없다. 그래도 좋아하는 여자의 전화이니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게 사실이었다/
- 안녕하세요, 일훈 씨.
수화기 너머에서는 꾀꼬리처럼 맑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정일훈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야.'
그녀는 강한 콧소리를 내곤 했다. 남자처럼 걸걸하고, 목이 쉰 음성.
이렇게 목소리가 예쁘지 않았다.
정일훈은 딱딱한 어조로 빠르게 말했다.
"카드 가입 안함. 대출 전화 안씀. 휴대폰 안 만듦. 초고속통신 가입 안함. 급한 전화가 있으니 끊어 주십시오."
노총각 인생에 전화가 오는 일들은 대부분 저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죽하면 이제 전화가 오면 대출인지 휴대폰인지 맞힐 정도가 되었을까!
하지만 이것은 정일훈의 오산이었다.
- 일훈 씨, 바쁜일이 있나 봐요? 저는 이 시간에 전화를 하라고 하셔서.... 그럼 끊을게요. 다음에 전화할 테니 일 보세요.
"아! 잠깐만요! 혹시 세에취 양입니까?"
- 네, 맞아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옅은 웃음소리와 함께 대답이 들려왔다.
오크 세에취라고 부르니 조금 어색했던 것.
로열로드에서 그녀의 종족은 오크였다. 당연히 목소리도 일반적이지 않다. 오크처럼 췩췩거리고, 탁하고 걸걸해진다.
그 덕분에 정일훈은 원래 그녀의 목소리가 그런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진실을 깨닫지는 못했다.
'전화 목소리가 예쁜 모양이야. 어쩌면 그녀도 날달갈을 깨 먹었을 지도 모르겠어.'
어쨌든 정일훈은 그녀와의 첫 통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5분의 통화!
강철로 만든 묵직한 진검조차도 한 손으로 가볍게 놀리던 그가, 수화기를 두손으로 들었다.
정일훈의 일생에서 가장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언제나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 심지어 사제들과 통화할 때는 일곱 음절을 넘기지 않았다.
와라.
빨리 와라!
수고해라.
잡아 와.
도장 문 닫아.
밥 먹자.
짧고 명료한 통화를 주로 하던 그가 최고로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었다. 로열로드의 소소한 이야기, 아침에 뭘 먹었는지 정도의 신변잡기였지만 즐거웠다.
'300분 무료통화. 이런 서비스가 왜 있는지 알것 같군.'
이제 통화를 끊어야 했다.
달콤한 그녀의 목소리가 좋았지만, 심장이 두근거려서 통화를 계속하기가 어렵다.
말재주가 워낙 떨어지는 것도 문제였다.
'날씨 얘기 했고, 정치인 욕했고, 군대 이야기 했고, 축구 얘기까지 했으니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
여자 친구를 위해 준비했던 이야기들을 다 했으니 깔끔하게 다음을 기약하며 끊어야 한다. 대화는 언제라도 나눌 수 있으니 조급해 하지 않을 셈이었다.
"이렇게 대화 나눌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세에취 양!"
- 아니예요, 저도 일훈 씨 목소리를 들을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전화가 아니라 직접 만날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정일훈은 깊은 고민 없이, 무의식중에 생각한 말을 그냥 내뱉었다.
그녀는 흔쾌히 허락했다.
- 그럼 그럴까요?
"넷?"
정일훈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믿을수 없는 대답을 듣고 만 것이다.
- 내일 점심때쯤 갈게요. 첫 만남인데..... 그래도 뭔가 해 보고 싶거든요. 김밥을 싸서 갈테니까 점심 들지 말고 계세요. 도장으로 찾아가면 되죠?
"기, 김밥요?"
- 왜요, 김밥 싫어하세요?
"아, 아, 아, 아니, 아닙니다! 저 김밥 엄청 좋아합니다. 꼭 기다리겠습니다! 혹시라도 늦거나, 내일 무슨 사정이 생겨서 안 오시더라도 반드시 기다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들고 절규하는 정일훈!
그렇게 통화가 끊어졌다.
"......"
정일훈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참 만에 마음이 진정되고 난 후에야 사범실을 나가서 사제들을 보았다.
최종범, 마상범, 이인도!
흉악하기 짝이 없고, 체구는 건장해서 인간 종의 몬스터라고 할 만하다.
익숙한 사제들을 보고 나니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꿈이 아닌 현실이다.
"사형!"
"세에취 님과 통화는 잘 하셨습니까?"
사제들의 질문에 정일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했지. 근데 내일 김밥싸서 온단다."
"헉."
"기, 김밥을....."
사제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인도가 가장 반가워했다.
"김밥헤븐에서 사 먹을수 있다던 그 김밥을 형수님이 손으로 싸서 가지고 온단 말입니까?"
"맞다. 참치도 넣는다고 하더라."
"참치까지!"
정일훈은 사제들의 부러움을 온 몸으로 받았다.

마지막 5층!
띠링!

- 영웅의 탑 마지막 관문에 도달하셨습니다.
- 카리스마가 10 증가합니다.
- 힘이 15 늘어납니다.
- 투지가 60 증가합니다.
- 한계를 초월하며 소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영구적인 스탯들과, 2개의 레벨 향상.
위드의 레벨은 다시 356이 되었다.
레벨이 오르면서 획득한 스탯들은 모두 민첩에 부여했다.
4층을 통과하면서 검술 스킬도 한단계 올려, 증급 5레벨이 됐다. 무한정 되살아 나는 망령들을 상대로 싸워서 스킬 숙련도를 향상시킨 것이다.
검의 내구력이 23% 남았을 때에야 전투가 완벽하게 끝이 났다. 원혼의 기사, 원혼의 병사들이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위대한 전사에게 우리는 굴복한다."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다오."
되살아 나느 족족 때려잡다 보니 더 이상 싸우려고 하지 않고 위드를 피해 다녔다.
근본이 망령이라서, 끝없는 고통을 받아 마음이 약했다. 긍지나 자존심, 투지가 약해서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위드는 4층에서 무기와 방어구의 수리까지 마치고 완전한 상태로 5층으로 올라왔다.
'더 굉장한 것이 기다리고 있겠지.'
무섭거나 두려운 기분은 들지 않앜ㅆ다.
영웅의 탑의 마지막 관문이었으니 어려운 무언가가 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
마음의 준비는 이미 끝내놓은 상태였다.
5층에 올라갔을 때에는, 몬스터들이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둥그런 원탁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책이 한 권씩 있었다.
《기사》.
《검사》.
《전사》.
《투사》.
《워리어》.
《성기사》.
《권사》.
《궁수》.
《레인저》.
《사냥꾼》.
《도둑》.
총 열한권의 책들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애매하군."
위드는 선택해야 함을 깨달았다.
모험가라면 이럴 때 '조사 혹은 관찰' 스킬을 이용할수 있다. 어떤 함정이 숨어 있는지도 알아보고, 혹을 저 책들에 대한 정보들도 조사 할수 있다.
일종의 모험가만의 특권이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조각사에게 그런 스킬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켈레톤 나이트에게도 그런 스킬은 없다.
"뭐든 상관 없겠지."
위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기사의 책을 펼쳤다.
도둑이나 사냥꾼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저 현재 해골기사이기도 했으니 기사의 책을 보기로 한 것.
멀리서 보면 해부실에나 있을 법한 해골이 독서를 하고 있었다.
"전쟁의 시대. 왕들이 경쟁하듯이 침략 전쟁을 벌였다. 인간들의 영토는 넓어졌으나 고블린, 악마족, 엘프와 드워프들의 저항 또한 거셌다. 그리고 국경 너머에서부터 침략해온 몬스터들로 인하여 대륙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무능한 통치자와 부패한 귀족들, 잔인무도한 몬스터들이 날뜀으로 인하여 도처에 썩은 시체들이 널려 있다. 브롬바 왕국력 102년, 인간들과 이종족 그리고 몬스터들의 운명은 작센 평야의 전투에서 결정지어지게 되었다."
책을 거기까지 읽었을 때였다.
위드의 주변이 빛으로 휩싸였다.

"죽여라!"
"이 더러운 놈들! 브롬바 왕국의 쓰레기들을 처단하라!"
"마폰 왕국의 정예병들이여!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자."
"여왕 폐하께 영광을!"
위드가 꺠어난 곳은 소음으로 가득했다. 그 뿐만 아니라 혼란 그 자체였다.
하늘에서는 드레이크들이 날아다니며 불을 뿜어내고, 멀리서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공격을 퍼붓는다.
대전장!
위드는 격전이 벌어지는 전장의 한 복판에 떨어진 것이다.
"크레레렐!"
"후음차!"
멀리서부터 고함소리와 함께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이 붕 떠서 날아오고 있었다.
위드는 어디서 발석차라도 동원된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눈이 하나 밖에 없는 거대 괴물 사이클롭스들이 땅에 박혀있는 바위를 뽑아 내서 힘껏 던지는 것이었다.
수우우우우웅- 콰과과광!
바위는 바람을 가르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날아와서 지표면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떨어진 바위에 병사들과 기사들이 깔려서 아우성을 쳐댄다.
"살려 줘!"
하지만 지휘관들은 냉정했다.
"브룸바 왕국의 병사들이여, 명예롭게 죽어라!"
"저놈들을 도륙하라!"
병사들은 그들끼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간과 인간이 싸우고, 마법사들이 공격한다. 여기에, 멀리서 몬스터 군단도 포위망을 갖추고 대대적인 진군을 하고 있다.
푸히힝!
그리고 위드의 옆에는 털이 새하얀 백마가 있었다.
페가수스처럼 하늘을 날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근육질의 말은 굉장히 건장했다.
그 말이 위드의 해골에 대고 혀를 할짝거렸다.
챱챱챱!
개가 뼈다귀를 핧는 것처럼 해골에 침을 바른다. 백마로서는 지극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위드는 현재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눈치챘다.
'영웅의 탑 5층에서 기사의 책을 읽었는다..... 아무튼 이곳은 작센 평야 그리고 팔랑카 전투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기로 손꼽히는 전투 중 하나가 바로 팔랑카 전투!
7개 왕국이 대륙의 주도권을 놓고 작센 평야라는 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특히 브롬바 왕국과 마폰 왕국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싸웠다.
그렇게 인간들끼리의 전투가 절정에 이를 무렵, 몬스터군단들까지 이 전투에 끼어들었다. 멀리서부터 피 냄새를 맡고 진군을 하여 참전하게 된 것이다.
이종족들도 개입했다.
엘프와 바바리안 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작센 평야로 왔다.
그리하여 나온 결과가 지금 이 모양이었다.
각 종족, 각 왕국의 깃발을 들고 있는 군대들은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공격하고 있다.
건장한 바바리안 전사들이 대검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엘프들이 쏘아내는 화살들이 병사들을 꿰뚫는다.
그들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이종족들의 뒤에는 몬스터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런 전장의 한복판, 중심에 위드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말 위에는 자그마한 여자 1명까지도 타고 있었다.
모라타에서 꽃을 키우는 소녀 프리나보다도 훨씬 예쁜 미녀!
그녀가 그윽하게 위드를 보더니 붉은 입술을 열어 말했다.
"기사님, 제가 믿을 사람은 당신 뿐이에요. 저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주세요."
띠링!

- 레미 공주의 요청
인구 8만 명의 변방 소국 이스란의 첫째 공주.
바다를 좋아하는 그녀는 고국에서 살고 싶어했다. 그러나 예정된 정락결혼에 의해 브롬바 왕세자의 5번째 첩실로 끌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터진 브롬바 전쟁으로 인하여 결혼식도 치르지 못한채 왕세자가 있는 전쟁터로 나왔다.
그녀는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난이도 : 영웅의 역사 퀘스트
보상 : 역사적인 전투의 경험, 역사의 주인공이 될수 있음.
퀘스트 제한 : 공주의 부탁이므로 기사는 거절할수 없음.

위드는 잠시 갈등했다.
'이걸 어떻게 한다.'
불가능한 퀘스트를 많이 받아들여 봤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가능성이 보여야 할 게 아닌가.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니 레미 공주가 붉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저에게는 기사님밖에 없어요. 비록 지금은 저주에 걸리셔서 이상한 모습을 하고 계시지만 저 레미는 알수 있답니다. 기사님이 저를 도와주실것이라는 사실을요."

-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완벽한 외통수!
저절로 퀘스트를 받아들이고 만 것이다.
기사들에게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연약한 여성이나 귀족 여인들, 주군으로 모시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핬다.
그서이 기사의 특징!
'미치겠군.'
위드의 갈비뼈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몬스터에 인간 병사들, 또 엘프와 바바리안들이 넘쳐나도록 많았다.
역사상 가장 격렬한 전투중의 하나인 팔랑카 전투!
여기에서 공주를 데리고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다.
미녀 그리고 백마.
주변에는 엄청난 적들!
완벽하게 기사의 로망이다.
불을 내뿜는 드레이크만 하더라도 고레벨 몬스터다.
현재 싸우고 있는 인간 기사들도 최소한 레벨이 300대는 넘어 보인다.
일반 병사들도 만만치 않았다. 달리 전쟁의 시대라고 불렸던게 아닌지, 병사들의 수준도 높았다.
바바리안과 엘프는 말할 필요도 없으며, 몬스터들은 규모도 그렇고 온갖 고위 몬스터들, 자이언트 몬스터가 가득하다.
보스 몬스터들도 다양했다.
리치 샤이어 수준은 아니더라도, 뱀파이어 로드쯤 되는 수준의 몬스터들은 여럿 보인다.
광범위 마법들이 주변에 작렬하고, 거대한 바위들이 엄청난 거리를 날아와서 땅에 부딪쳐 계란 터지듯이 터지고 있다.
혼자 살아남기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마당에, 한가롭게 백마를 탄 공주를 호위하며 전장을 돌파해야 하는 것이다.

2. 공주의 기사

위드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어떻게든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의뢰를 받았으니 물러설수는 없다.
싸움이 벌어지면 조금의 틈도 없을 테니, 위드는 일단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레이다, 아니 공주님."
"네, 기사님."
레미 공주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위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드의 눈에 그녀의 작고 고운 발과 종아리가 보였다.
남자들 중에는 여자의 발을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위드에게 그런 취미는 없었다.
"지금부터는 저만 믿고 의지하셔야 합니다. 무슨일이 벌어지더라도 놀라지 마시고, 저만 믿어주셔야 합니다."
"네, 알겠어요. 저의 생명을 그대에게 맡기겠습니다."
위드는 더 이상은 말하지 않고 말에 올라탔다.
인간의 군대도 점점 주변으로 접근해 오고 있고, 돌덩어리와 마법들이 지척에 떨어진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직전이었다.
백마는 얌전하게 위드를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공주가 뒤에서 그를 끌어 안았다.
히히힝!
가볍게 투레질을 하는 말.
위드는 한손으로는 고삐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검을 잡았다.
띠링!

- 칼라모르왕국의 기사 콜드림의 애검을 들어 명성이 2,500 증가합니다.
공격속도가 빨라집니다.
힘이 늘어납니다.
민첩이 늘어납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약한 몬스터들을 위압시킵니다.
아이스 데몬의 힘이 검신에 남아 있습니다.

위드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적진의 중심을 향해 달렸다.
"달려라, 이럇!"
백마는 한 걸음씩 뗴어놓을 때마다 무섭게 가속도가 붙었다.
로자임 왕국에서 병사들과 함께 리트바르 마굴을 소탕할때의 망아지와는 차원이 다른 명마.
기사들의 돌격은 말의 전투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좋은 말은 체력과 민첩성이 보통이 아니라서, 일부러 좋은 종자를 구해서 망아지 때부터 기른다.
그렇게 성장시켜서 얻을수 있는 최상의 혈통 말은 부르는 게 값!
모르긴 해도 현재 타고 있는 백마는 엄청나게 비싼 놈이리라.
바람을 가르면서 뛰어가는 속도가 가공할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다.
쏘아진 화살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위드는 눈을 크게 뜨고 검을 잡았다.
이제부터 믿을 것은 정말로 검 한자루 밖에 없다. 그리고 등에서는 여리고 갸날픈 공주의 온기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검술 도장.
정일훈은 도복을 입은 채로 차은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종범아."
"예, 사형."
"여자란 말이다, 외모가 다가 아니다. 마음이 통하면 되는 것이지 않겠느냐?"
최종범은 서둘러 맞장구를 쳐 주었다.
"사형의 말이 맞습니다."
마상범도 거들었다.
"세에취 양은 마음씨가 곱습니다. 그리고 사형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도장에도 와 보겠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직접 만든 김밥을 싸들고서 말이다.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장이 잠시도 가만있질 않는군."
정일훈에게는 수줍은 첫사랑이었다. 그녀를 실제로 만나려니 검술 대회에 나갔을 때보다 더 떨렸다.
최종범도, 마상범도, 이인도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사형에세 여자친구가 생기다니.
비록 그 대상이 오크이고, 추악하고, 못생겼고, 뚱뚱하다고 해도 축하해 줄수 있었다.
그들도 로열로드에서 모험을 하면서 지켜보았는데 오크 세에취는 현명하고, 정일훈과 마음이 잘 통하는 상대였던 것이다.
"이제 올 텐데....."
정일훈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한 아줌마가 도시락을 들고 도장으로 걸어왔다.
"......."
최종범과 마상범, 이인도는 숨을 죽였다.
'저 여자인가!'
'세이취와 조금 닮긴 했군.'
'그래도 나이가 너무 들었는데... 30대 후반, 혹은 40대 아닌가?'
풍만한 체형의 아줌마는 도장을 향해 계속 걸어오고 있었다.
정일훈이 그래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면서 마중을 나갔다.
"잘 왔어요. 이렇게 일부러 와 줘서 고맙습니다. 오는데 힘들었죠?"
정일훈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작은 행동이었지만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이다.
그녀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외모가 아닌 마음이 중요하기에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려고 했다.
그런데!
"누구세요?"
아줌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도장 안에서 초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어린 꼬마 애가 나왔다.
"엄마! 내 도시락 가져왔어?"
"여기. 다음부터는 잊지말고 꼭 가져가야 돼."
"응, 알았어. 앗, 사범님! 안녕하세요!"
꼬마는 정일훈과 다른 사범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도장으로 들어갔다.
꼬마의 어머니도 다시 돌아갔다.
"크흠-!"
정일훈은 무안함에 길게 헛기침을 하고 다시 차은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대로에서 오가는 여자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몸이 굳어간다.
'저 사람인가?'
김밥을 싸 들고 온다고 했다. 빈손으로 다니는 여자는 아니라고 봐야한다.
그때 고운 피부에, 눈에 번쩍 뜨일만한 미녀가 보였다.
십만 명에 1명. 시내 중심가에서 하루 종일 서 있어도 마주칠까 말까한 미녀였다.
그녀는 큰 쇼핑백을 2개 들고 도장을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다.
정일훈은 생각했다.
'저 여자는 아니겠지.'
사제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저 여자는 아닐거야.'
'근데 이쪽으로 오네.'
'무슨 일일까. 카드 가입하라는 걸까? 물건을 팔려는 걸까. 카드 가입하라고 하면 꼭 해야지. 몇마디 말이라도 붙여볼수 있었으면....'
이인도가 가장 간절히 원했다.
모두 정신이 없었기에 무거워 보이는 쇼핑백을 들고 낑낑대며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달려가서 도와주지도 못했다.
저무 젊고 예쁜 숙녀라서,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말을 붙이기도 힘들었다.
'홰 계속 여기로 오지.'
'이쪽으로 오는 이유가 뭘까.'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렸나?'
네 남자의 머릿속에는 무수한 상념들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녀가 다가와서 정확하게 정일훈 앞에 섰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일훈 씨!"
정일훈의 눈에 의혹이 스쳤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알고 오셨죠? 혹시 다른 도장의 스카우트 제의라면....."
아무리 미인계를 쓰더라도, 도장을 떠날 마음은 없었다.
지금 받는 대우도 나쁘지 않았을 뿐더러 스승과 사제들과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 검을 더 깊이 익히고 배울 때라고 여겼으니 돈과 명예에 한눈팔 새도 없었다.
한데 그녀는 보조개가 파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네? 스카우트라니, 저 말고 누구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이제 정일훈이 놀랄 차례였다.
"뭐, 뭐, 뭐, 뭐요?"
도장의 대사형!
진검을 들고 비무를 할 때에도 잔잔함을 유지하던 그가 진심으로 경악했다.
"서, 서, 서, 서, 설마... 뭐, 뭐, 뭐, 뭔가... 자, 자, 자, 잘못... 모, 모,모, 못! 혹시 제가 무슨 약속을 하고 잊어버린 건...."
"검둘치. 정일훈씨 아니세요?"
"마, 마, 마, 맞는, 데, 데, 데,데."
"제가 세에취에요, 일훈 씨!"
정일훈은 대답도 못하고 넋이 나간 인간처럼 차은희를 보고있을 뿐이었다.
다른 사제들도 정신을 놓고 가만히 있었다.
'말도 안돼.'
'불가능해.'
'세상에 왜 이런 일이.'
'그녀는 오크 세에취였는데.....'
'잠깐. 로열로드에서는 외모를 바꿀수 있잖아. 우리는 그냥 똑같이 했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외모를 바꾸었던 거야. 왜 진작 이걸 생각지 못했지?'
로열로드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이제야 비로소 자각한 것이다.

"....."
"....."
"....."
도장 안에는 기나긴 침묵이 흘렀다.
정일훈은 포함한 사범들 넷과 관장 안현도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수련생들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차은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일훈이 저놈에게 저런 재주가 있었다니.'
안현도는 정일훈에게 검의 재능이 있음을 알고 발굴해 냈을 때 보다도 더 놀랐다.
'저토록 예쁜 여자가 대사형의 여자 친구라니.'
'아니야. 이건 현실이 아닐거야. 꿈이라면 빨리 깨어나자.'
안현도와 사범들, 수련생들은 차은희가 싸온 김밥도 먹지 않았다. 아니, 먹고 싶은 기분 자체가 들지 았았다.
얼굴이 예쁜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처음에 억지로 김밥 하나들 입에 넣었더니, 맛까지 있었다.
'크윽! 귀엽고 앙증맞게 말아 놓은 이 김밥좀 봐.'
'요리까지 잘하다니.'
'나는 평생 라면만 끓여줘도 되는데.'
안현도와 사범, 수련생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돌맹이를 씹는 것처럼 김밥을 먹기 어려웠다. 음식을 두고 망설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리라.
한참 만에야, 그나마 나이가 많은 안현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래, 네가 세에취라고?"
차은희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어르신."
그녀는 화사한 베이지색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귀여운 치마를 입었다. 몸 전체의 볼륨이나 라인이 일품이었다. 한창때의 숙녀로서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화령, 정효린과 견줄 정도의 미모는 아니었지만 일반인 중에는 굉장히 예쁜 편이다.
안현도가 고개를 끄뎍였다.
"그래. 우리 일훈이를 잘 부탁한다."
그 말만을 남겨놓고 조용히 일어나서 관장실로 향했다.
깔끔한 태도.
하지만 실제로는 배가 아파서 빨리 자리를 뜬 것이었다.
남은 차은희는 다른 사범들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최종범이 말문을 텄다.
"형수님, 궁금한게 있는데 여쭤바도 될까요?"
순간 정일훈은 팔불출 처럼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후흐흐."
형수님이라는 말! 이토록 즐겁게 들릴줄 몰랐다.
차은희는 박속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며 부드럽게 웃었다.
"네. 물어보세요."
최종범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학교는 어디까지 나오셨는지요."
"그게요....."
차은희가 대답을 하려는데 정일훈이 얼굴을 굳이호 꾸짖었다.
"종범아, 이놈! 학교가 뭐가 중요하냐."
정일훈은 고등학교 중퇴였다.
다른 사범들이나 수련생들도 중학교 중퇴나, 고등학교 중퇴가 대다수다. 가방끈이 긴 바닥은 아닌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소위 말하는 엘리트로 분류될 정도였다.
최종범은 그래서 무심고 질문을 던져 본 것이었는데, 정일훈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녀도 고등학교때 사고를 쳐서 졸업을 못했다면 창피해 할거야.'
사나이다운 깊은 배려.
정일훈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였다.
차은희는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괜찮아요. 대답 못할 이유도 없는걸요. 저 하버드 나왔어요."
"예?"
최종범은 당황했다.
"하버드라면 번화가에있는 재수 학원 이름인가요?"
"미국 보스턴에 있는 대학인데요."
"커헉!"
단말마의 비명 소리, 그 후에 이어진 깊은 침묵.
사범을과 수련생들이 아무리 무식하다고 해도, 하버드 대학이 어떤 곳인지는 알았다.
이번엔 마상범이 물었다.
"실례지만 지금 하시는 일이....?"
"병원에 있어요."
"아, 간호사시군요."
"아뇨. 의사예요."
"의, 의사요?"
"네. 정신과 박사인데요."
마상범은 눈앞이 아찔했다.
정일훈에게 여자친구가 생긴것은, 30대 중반이 얼마 남지 않은 사범들에게는 숨이 턱턱막히는 일이었다.
수련생들고 절박했다.
"안 돼. 우리도 하릴없이 나이만 먹고 있는데...."
"20대 후반, 30대가 코앞인데. 저토록 어여쁘고 똑똑하신 형수님이라니."
미래가 한층 어두컴컴해졌다.
먹구름이 깊게 내리깔리고, 천둥 벼락이 떨어진다.
'이대로는 안 돼.'
'낭비할 시간이 없다.'
사범들과 수련생들이 벌떡 일어났다.
"로열로드에 접속해야해!"
"어서 접속해야지."
"오크 마을! 오크 마을 부터 가야겠다."
그들에게 크나큰 목표가 생긴 셈이었다.
그 시각, 이미 안현도는 관장실에서 캡슐로 들어가서 접속해 있었다. 모라타에서 되살아 나자 마자 맹렬히 오크 마을을 향해 뛰는 중이었다.

KMC미디어의 영상실에는 긴박함이 흘렀다.
"두 번째 방어선 돌파!"
"세번째 방어선과 충돌합니다."
"창병 일곱 도륙,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브롬바 왕국 기사 사망! 레벨 360정도로 추정."
강 부장은 방송 스케줄을 확인하느라 잠깐 화면을 못 보고 있었다.
"몇 분만에 죽였지?"
영상실의 직원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거의 순식간에.... 1분도 지나지 않앗습니다."
"말을 탄 상태로 말이야? 레벨 360대의 기사가 얼마나 강한지 알텐데. 뭔가 착오가 생긴것 아닌가?"
"말을 멈추지도 않었습니다. 한 방향으로 그대로 달려가면서 마상 격투를 벌여... 짧은 순간에 열번이 넘는 칼질을 했습니다."
"그게 가능해? 말을 탄 채 검을 휘두르면 균형이 흐트러지잖아."
"저도 잘.... 저라면 당연히 못했겠지요. 그런데 그는 했습니다."
"괴물이로군."
찬탄밖에 나오지 않는 전투의 연속!
처음 위드는 공주를 뒤에 태우고 백마를 탄 채 적진으로 향했다.
궁수 부대가 쏘아낸 화살 공격을 놀라운 속도로 과감하게 돌파했다. 화살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속력을 내어 탄착지점을 넘어버린 것이다.
마법사들의 일제 마법 공격도 말의 절묘한 방향전환으로 피했다.
폭발하는 화염과 얼음조각, 벼락의 폭풍!
스켈레톤 나이트의 믿음직한 승마스킬을 발휘하여, 백마와 함께 돌파했다.
그리고 창병을과 궁병들이 있는 진영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위드가 두 발로만 말을 조절하며, 어느해 빼앗은 창과 검을 휘두를 때마다 어김없이 창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저항할수 없는 돌격!
기사는 말을 타고 돌격하면 기본 공격력이 훨씬 커진다.
최소 2배에서 3배.
심지어는 말의 속력에 따라서 최대 공격력에서 7배 이상 차이가 난다.
방패로 막으면 방패가 부서질 정도고, 철판 갑옷이라고 해도 우그러지고 박살이 나 버린다.
일반 보병으로는 질주하는 기사를 막을수 없었다.
지상에서도 안정적인 공격력과 매우 뛰어난 방어력 그리고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만, 말을 탄 기사야말로 직업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드는 무섭게 속력이 붙은 질주 상태의 돌격으로 방어선을 그냥 꿰뚫었다.
말은 엄청난 속도를 내고 있지만, 그 위에 있는 위드의 움직임은 현란하기 이를데 없었다. 손 아래에서 검이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가공할 힘과 속도.
혼자서 적진의 한 복판으로 뛰어들어서 검을 휘둘러 보병들을 베어버리고 통과한다.
그리고 상대 또한 어엿한 기사인데도 대번에 싸워서 이겨버린 것이다.
죽음을 거부할수 있는 힘에 의해 부활한 상태라고 해도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강 부장이 의혹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기사의 직업을 경험해 봤나?"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인은 조각사라던데."
"부업일지도 모르죠."
단순한 추측이지만, 방송사에서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웬만한 것들은 영상으로 볼수 있기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정보는 세세하게 캐묻지 않는다. 알려 주지도 않는 것이 원칙.
위드가 어떻게 살아났는지도 알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아이템이나 스킬, 캐릭터의 정보는 자신만의 중요한 비결이라고 봐도 되기 때문에 방송 계약을 했다고 해서 알려달라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다.
"주변이 온통 전쟁터야."
"나도 저렇게 구해주는 기사가 있다면...."
"낭만이야, 낭만. 기사님과 함께 백마를 타고 짜릿함을 즐길수 있다니."
여자 작가들도 전투에 푹 빠졌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순진무구한 공주! 의뢰를 맡긴 기사와 함께 백마를 타고 있다.
로맨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꿈에 그리던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던가.
물론 그 기사는 잘생긴 미남 청년이 아니라 살점 하나 붙어 있지 않은 해골 기사였지만 말이다.
"저 가슴에 푹 안겨 보고 싶잖아."
"로열로드에서 기사들은 정말 든든하고 멋있는 거 같아."
강 부장은 위드의 전투를 보는 한편, 영상실 내부를 진두지휘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연출부 직원들은 영상 절대 놓치지 마!"
"넷!"
"분석실 직원들! 오늘 일감에 따라서 올해 인센티브가 정해질 수도 있어. 졸지 마. 졸려도 자면 안돼."
"이 전투가 끝날 때 까지는 절대 안 자겠습니다, 부장님."
"다른 직원들도 특이 사항이나 못 보던 것을 발견하면 꼭 말하도록 해."
영상실에서는 스크린 모니터가 여러 각도에서 수십개나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팔랑카 전투.
베르사 대륙의 역사속에 있는 전투의 재현이다.
오래된 과거의 전투들은 역사서에 기록된 문장 외에는 알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을 다시 볼수 있었다.
"희퀴 로브 발견!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마법 방어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자이언트류의 소수 종족도 있습니다. 이백 개체가 넘는데요."
"특기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고... 무기나 마법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좋아. 일단 참고해 두고...... 아직까지 미 발견 종족으로 기록해 두지. 스킬쪽은 정리 됐어?"
"지금 하고 있습니다. 마법사들 쪽에서 최소한 57개 이상의 새로운, 아니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마법들이 나왔습니다."
수백년 전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이나, 기사나 전사들의 스킬들을 팔랑카 전투에서 눈으로 볼수 있었다.
현재에는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는 직업과 마법들도 상당 수였다.
그 마법들의 효과와 위력을 밝혀 낼수 있었다.
실전된 마법의 복구, 혹은 새로운 마법을 개발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마법사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을 것이다.
마법사들은 2차 승급을 마친 이후부터는 본인의 특성에 맞는 수련을 통해 자신만의 마법을 창조하거나 정보들을 모아 고대의 마법을 복원할수 있다.
이런 마법적인 자료나 아이템, 직업, 종족 등은 모두가 귀한 자료였다.
모험가들에게는 더 특별하다.
정보를 입수해서 희귀한 퀘스트를 찾아다니는 이들이라면 팔랑카 전투로 인해 특별한 의뢰를 받을 가능성도 높다.
소수 종족, 당시에 전쟁에 참여했던 왕국 중 아직 명맥을 잇고 있는 곳도 있으니까.
그들에게 팔랑카 전투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
"대박이다."
"정보의 양도 어마어마하고, 이 전투의 규모를 봐."
"시청률은 따 놓은 거나 다름이 없겠구나."
"적어도 1달은 이 팔랑카 전투가 논란이 될걸."
분석실 직원들이 기쁨에 차서 소리쳤다.
위드가 토둠에 가고 난 이후로 잔잔한 것들만 보여줘서 얼마나 실망을 했던가!
하지만 역시 위드는 사건을 몰고 다님이 분명했다.
남들은 억지로 하려고 해도 힘든 퀘스트들과 생고생을 도맡아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수베인 왕국. 내가 있는 헤로타이 성에서 금방인 곳인데... 무슨 의뢰를 받을수 있지 않을까?'
강부장 조차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참기가 어려웠다.
몇 분이 지났다.
"위드. 위드는 뭘 하고 있지?"
분석실 직원들이 급하게 작성한 자료를 읽고 있던 강 부장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물었다.
"......"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영상실에 있는 수백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도 강 부장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른 부서의 직원이 대답하기 어렵다고 해도, 강 부장이 지휘하고 있는 직원들만 50명이 넘는다.
영상실은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다들 왜 대답이 없어?"
강 부장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이번에는 또 얼마나 엄청난 광경을 보여 줄 것인가.
강 부장이 전면의 스크린으로 시선을 올렸다.
위드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드레이크 위였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직원들 대신에 오동만이 대답했다.
"그게 드레이크들의 심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공중에서 불을 쏘고 발톱으로 할퀴어서, 이를 피하기 위해 상당히 고전했습니다."
화살이나 마법을 기마술로 피하는 것만 해도 굉장했다. 그런데 드레이크가 불을 쏘며 추격해 온다면 여간 짜증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멀쩡한 평야라고 해도 따돌리기 어려운 마당에, 지상에는 몬스터와 적 병사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러다 어느 순간 뛰어올라서 드레이크 위에 올라탄 것이죠."
인간에게 길들여진 드레이크가 아니었으니 그 후에 매섭게 저항했다. 불을 뿜어내고,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면서 위드를 떼어내려고 드레이크는 최선을 다했다.
동료 드레이크들도 그 광경을 보았다.
그들은 동족을 돕기 위해 주둥이에서 불을 뿜었다.
위드는 그럴 때마다 타고 있는 드레이크의 반대편으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면서 근처에 있는 다른 놈들을 공격했다.
공중전!
드레이크 무리와 함께 하늘에서 숨이 넘어갈 듯한 전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와와와와와와!"
위드가 터트리는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드레이크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공중으로 긴박하게 솟구친다.
드레이크 무리와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커어억!"
"너무 멋있다!"
"이거야 말로 시청률 20%는, 아니 30%는 충분할 거야."
"대박이다, 대박! 올해에는 상여금도 제대로 받을수 있겠구나."
대지 위에는 역사적인 팔랑카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수십만의 인간들과 타 종족들이 세상의 패권을 놓고 다툰다.
그곳의 하늘에서 드레이크들과 공중전을 벌이는 것이다.
태양이 따갑게 비추고, 구름들도 옆에서 흘러가고 있다.
드레이크들의 엄청난 속도와 불규칙적인 움직임, 그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 해골 기사 위드!
침을 삼키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흥분이 되었다.
"이거 진짜 그림이다. 공주를 지키기 위해서 저렇게 영웅적으로 싸우는 기사라니...."
이야기가 좋았다.
너무나도 낭만적이라서 웬만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모두 빠져들 수밖에 없으리라.
그때 직원 한 사람이 갑자기 박수를 쳤다.
"앗!"
"왜, 무슨일인데? 뭐라도 발견했어?"
"그게...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공주가 죽었는데요."
"뭐, 뭐?"
"그러니까... 아래쪽의 화면을 보세요. 방치되어서 죽었습니다. 백마랑 같이요."
"....."
완전하게 전투에 몰입해 버린 위드는 공주와 백마의 안위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
혼자서 드레이크에 올라타고 나서 기사답게 호쾌하게 싸우다 보니 정작 공주는 몬스터들에 의해 죽어버린 후였다.
여성 작가들은 좌절했다.
"레미 공주우!"
"아악! 우리 공주가 죽다니!"
공주에게 완벽하게 감정 이입을 하고 있던 그녀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충격 그 자체!
영상실에 모여있던 직원들도 낙담하긴 마찬가지였다.
위드에 대한 기대심리가 워낙에 높다 보니 공주를 살리지 못한게 안타까웠다.
"내 상여금."
"내 휴가...."
"진급도...."
직원들은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희망을 가졌다.
이 팔랑카 전투가, 위드의 전투가 방송되었을 때에 시청자들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는 알수 없다.
지금은 전신 위드의 활약을 바로 앞에서 볼수 있다는 점에서 KMC미디어에 근무하는 보람을 느꼈다.


3. 역사적인 전투

그날 밤, 이현은 여느 때처럼 저녁을 차렸다.
매콤한 사천 탕수육.
평소에는 요리 시간이 제법 걸려서 준비하기가 어렵다.
"기름도 많이 들어서 못했던 요리지."
튀김은 설거지도 귀찮지만 기름을 많이 쓴다. 소모되는 기름이 아까워서 집에서는 하기 힘든 음식이다.
자린고비인 이현이라고 해도 이미 썼던 기름은 웬만하면 재활용하지 않았다.
"동생 몸이라도 축나면 안되니까."
자신이 먹기 위한 음식이었으면 간단히 짜파게티를 끓이는 정도로 충분했지만 동생을 위해서 최고의 탕수육을 만들었다.
이현은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크 게이머 연합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 승냥이 검 삽니다.
- 금으로 만든 촛불 삽니다. 퀘스트에 필요하니 바로 '시골늑대'에게 메일 보내주세요.
- 사냥에 끼워 주실분. 아직은 풋내기 다크게이며입니다. 레벨 312. 직업은 무투계열.
오늘도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이현은 아이템의 시세부터 살폈다.
"시간이 넉넉하니 제대로 알아 놔야겠어."
어차피 24시간 동안 접속하지 못하니 여유는 있었다.
이현도 버티지 못하고 끝내는 두 번째 목숨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팔랑카 전투는 말 그대로 죽음의 관문이었다.
끝도 없는 적들의 대열.
드레이크와 싸우면서 상상도 할수 없을 많큼 높은 곳에 올라갔지만, 아래로 보이는 시야 전체에 적들이 있었다.
과거 오크들을 부려서 전쟁을 할 적도 있지만, 그 오크들을 능가하는 숫자가 서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늘도 사정은 마찬가지라서, 잠자리르 닮은 초대형 몬스터들이 날아다녔다.
드레이크를 타고 지역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것도 불가능. 공중 몬스터들끼리도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끼리는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 영역 다툼을 하거나, 천적 관계의 몬스터들이 싸움을 벌인다.
위드가 타고 있던 드레이크도 그런 싸움에 휘말렸다. 그리고 불행히도 위드와 전투를 하며 생긴 상처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느낌, 해골 기사의 뼈다귀가 박살이 나서 흩어질 정도의 큰 충격이었다.
생명력과 전투에 크나큰 손실을 입은 상태.
목표로 했던 드레이크를 사냥하기는 했지만, 복수심에 차오른 다른 드레이크들이 계속 불을 뿜으로 괴롭혔다.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둘러 봐도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드레이크들은 한번 당했기 때문에 경계심을 갖고 지상 가까이로는 내려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위드는 작전을 바꾸어 큰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이익!
훈련된 명마라면 어디서든 휘파람 소리를 듣고 돌아올 것이다.
"......"
달리는 백마에 올라타 그림처럼 몬스터들 사이를 뚫으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었다.
공주가 죽고, 백마도 이미 죽어 버린 후였던 것이다.
반경 10킬로미터 정도가 완벽하게 온통 적이었으니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레미 공주를 호위하던 해골 기사다."
"음험한 말로 레미공주를 유혹하여 도주시키려던 추악한 원흉! 브롬바 왕국 기사단의 명예를 걸고 베어 버려라!"
"돌격하라. 돌격!"
기사단의 위력은 무지막지한 정도였다.
몬스터든 마법이든, 기사단은 베어버리고 돌격했다.
위드로서는 말을 잃어버린 후라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싸워 이길 자신도 없엇다.
뼈마디는 공중에서 추락할 때 심하게 금이 가고 부서져 버렸다. 가만히 있더라도 생명력이 질질 새어 나갈 정도였지만, 위드는 태연하게 제자리에 서서 브롬바 왕국 기사단의 견적부터 뽑았다.
위드의 해골 안광이 번뜩였다.
'검. 기사들이 착용하는 검이겠지. 적어도 레벨 270 이상. 화살을 비롯한 투척무기를 방어하며,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신성력이 있었던 것 같아.'
감정을 해야만 알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사들이 다른 몬스터와 싸우는 광경을 관찰하면서, 무기의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했다.
전장 전체를 관조하는 폭넓은 시야.
거대한 팔랑카 전투에서 명검이나 방어구들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했다.
'그래도 지금으로써는 정면에서 싸우기는 무리야.'
몸이 멀쩡하더라도 자신을 갖기 힘든데, 신성력이 있는 무기는 언데드로서는 더욱 꺼림칙했다.
죽음을 거부할수 있는 힘으로 되살아나면 언데드의 장점도 얻지만 약점도 생긴다.
위드는 인근에서 돌을 던지고 있는 사이클롭스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캬오오!"
"쿠와아아앙!"
사이클롭스들은 귀찮은 벌레라도 본 듯이 괴성을 지르며 바윗덩어리들ㅇ르 주워 맨 바닥으로 힘껏 내던졌다.
과아아아앙!
위드의 지척에 바윗덩어리들이 작렬할 때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린다.
"죽여!"
"브롬바 왕국 기사들은 패배를 모른다!"
기사단장이 선두에 서서 위드를 잡기 위해 사이클롭스들을 향해 돌진한다.
"이, 이, 인간들."
"맛도 없는 인간들이!"
"건방진 놈들."
사이클롭스들은 방향을 바꾸어 기사단을 향해 바위들 던졌다.
바위들이 기사단을 덮치면서 엄청난 피해가 생기는 것이 위드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기사들의 돌격은 일반 보병, 같은 기사라고 하더라도 제자리에 서서 막을수는 없다. 그러나 활처럼 원거리 투척 무기에는 비교적 약했다.
투구의 틈으로 화살이 들어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 말이 죽는 것이다.
사이클롭스들이 내던진 바위는 말 뿐만 아니라 기사조차도 박살을 내 놓을 정도였으니, 짧은 순간 엄청난 피해가 일어났다.
하지만 기사단은 브롬바 왕국의 깃발을 더욱 높이 추어올렸다.
"전부 쓸어버려라!"
"왕국의 명예를 위하여!"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명예와 긍지를 지키기 위해 10배나 되는 거인들을 향해 용감하게 덤벼들었다.
기사들의 전력을 다한 돌진, 말이 쓰러지도록 달려서, 들고있던 창을 힘껏 내질렀다.
"크어어어!"
사이클롭스들이 발에 상처를 입고 넘어졌다.
기사들은 창을 내리꽂고 검을 휘두르면서 사이클롭스를 베었다.
남은 사이클롭스들은 바위를 몽둥이처럼 휘두르면서 저항했다. 말들이 뒤엉키고 쓰러지고.... 난전도 이런 난전이 없었다.
'지금이 기회다.'
위드는 사이클롭스들의 뒤에서 뛰어나와서, 질주를 멈춘 기사들을 상대했다.
사이클롭스들의 바위를 피하는 것은 의외로 쉬운편.
눈이 하나라서 그런지 정확도가 많이 떨어지고, 사각지대도 존재했다.
투척을 위해서는 집채만한 바위를 일단 머리위로 들어올려야 한다. 미리 경계하고 방향만 잡을수 있다면 피하는 게 불가능 하지는 않다.
단지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다니는 바위에 맞으면 그대로 사망이라는 위험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오금이 저려 엄두도 내지 못할 뿐!
"나는 브롬바 왕국의 실버 나이트인...."
"난 스켈레톤 나이트 위드다."
위드는 짧게 인사를 나누고 기사와 승부를 벌였다.
사이클롭스들이 바위를 던지고 있어서 아주 짧은 틈밖에 싸울 시간이 없다.
그런 찰나의 시간을 이용하여 기사를 제압하고, 다른 기사들이 도와주기 위해서 오면 쏟아지는 바위의 틈으로 몸을 날려 도망쳤다.
멀쩡한 사이클롭스들이 있는 곳으로 더욱 깊숙하게 브롬바 왕국 기사들을 유인했다.
재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큰 혼란을 유도하고, 그 안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클롭스가 있는 장소로 마폰 왕국의 기사들까지 뛰어 들었다.
"브롬바 왕국의 졸개들을 쳐라!"
"외눈박이 괴물의 목을 자르자!"
"우와아!"
대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앙숙인 브롬바 왕국과 마폰 왕국의 싸움터에 인간들의 다른 왕국도 끼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몬스터들의 주의도 이쪽을 향하고, 사이클롭스들은 발을 구륻다가 열이 받치는지 머리위로 바위들을 던졌다.
하늘로 솟구치던 바위들이 떨어지면 인간의 몸이 그냥 박살이 나고, 사이클롭스들도 자신들이 던진 바위에 맞아 쓰러졌다.
위드는 대혼전이 벌어진 틈을 타서 정면 충돌을 피하고 기사들과 일대일 승부를 벌였다.
그렇게 17명이나 되는 기사들을 죽이고 나서야 무릎을 꿇었다.
생명력이 겨우 30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우워어."
"피해라!"
쉽게 위드의 목숨을 취할수 있는데도, 브롬바 왕국의 병사들이나 마폰 왕국의 병사들은 물러서기에 바빴다.
그들은 연방 하늘을 보면서 물러나고 있었다.
위드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작은 점이 급속도로 커지는 것이 보였다.
적어도 직경이 10미터는 넘을 듯한 바위가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떨어지는 중이었다.
'승냥이 떼에게 먹히느니 마지막은 화려한게 좋지.'
위드는 검을 땅에 꽂은 채로 가만히 기다렸다.
콰아아앙!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의 하나인 팔랑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이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 팔랑카 전투 원본.

탐욕과 시기심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
인간들은 밀과 철을 확보하기 위한 확장 전쟁을 그치지 않았다.
이종족들 역시 처음에는 인간들에게 자항하기 위해서 뭉쳤으나, 그 의도는 변질되었다.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영향을 받아서, 자기 종족의 이득을 위한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다.
인간들이 영역다툼을 하며 스스로의 힘을 갉아먹는 사이, 번식력이 뛰어난 몬스터들은 대륙 전체로 독버섯처럼 퍼졌다.

(새롭게 복원된 내용. 팔랑카 전투의 비사.
오래된 언어로서, 언어학과 고고학을 상급까지 익힌 모험가만이 해독할수 있음.)

당시만 하더라도 몬스터들의 지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라서 조악하나마 언어를 사용할수 있었으며, 대규모의 집단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작센 평야에서, 대륙의 주도권을 놓고 결전을 벌였다.
최후의 승자는 인간이 아닌 몬스터들이 되었다.
하지만 그 위험한 전장에서 살아 나온 소수의 패잔병들이 퍼트린 해골 기사의 활약 이야기가 잔잔하게 회자되었다.
그는 이스란 왕국의 레미 공주의 부탁을 받아 그녀를 구출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는 대단히 용맹하였고, 놀라운 마상전투 능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다른 공중을 나는 몬스터들에게 한눈이 팔린사이에 애마와 공주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분노에 찬 기사는 공주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다하기 위하여 싸우다가 그 자리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작센 평야는 브롬바 왕국에 위치해 있었다.
기름진 광대한 평야. 베르사 대륙의 가장 넓은 곡착지대다.
하지만 브롬바 왕국이 몰락하면서 영토가 갈가리 찢겨 나가고, 브레만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당시 백만이 넘는 인간과 이종족, 몬스터들의 시신들은 따로 모아서 거대한 지하 무덤에 매장하였다고 한다.
그후 수십 세대를 거치면서도 밀을 얻기 위한 싸움은 끊이지 않았고, 소유 왕국은 계속 바뀌었다. 작센이라는 평야도 사라지고, 인간들이 건설한 성벽과 요새들로 인하여 지형조차 바뀌었다.
현재는 몬스터들이 연합하여 스스로를 불렀던 이름을 딴 팔랑카 전투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팔랑카 전투의 기록에서

이현은 끊임없이 불평했다.
"그놈의 스켈레톤 나이트로 되살아 나지만 않았어도....."
여전히 스켈레톤 나이트로 되살아난 것은 심히 유감이었다.
언데드라고 해서 다 엇비슷한 수준은 아니다.
근원의 스켈레톤은 보스급이었다. 물리적인 능력도 괜찮은 편이지만, 무엇보다 마법능력이 탁월하다.
강력한 흑마법!
네크로맨서 스킬들을 활용하면서 시원하게 싸울수 있다.
시체들을 이용해 듀라한과 데스나이트, 스켈레톤의 망자들을 일으켜 싸웠을 때의 짜릿함!
그에 비해 스켈레톤 나이트는 마법에는 무지한 해골 기사였다. 햇빛에도 약하고, 신성마법에도 크게 취약점을 드러낸다.
대낮에는 사냥당하기 쉬운 언데드였다.
팔랑카 전투도 대낮에 벌어져서 조금 약화되었다.
마법의 대륙시절이라면 기사도 환영이었다. 강대한 힘으로 모든 적들을 부숴버리던 시절이었으니 기사라고 해도 나쁠게 없다.
하지만 역시 전장에서의 대륙 살상을 위해서는 네크로맨서만한 직업이 없다.
"네크로맨서 마법만 쓸수 있었어도....."
이현은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네크로맨서 마법을 사용할수 있는 언데드로 태어났다면 정말 화려하게 팔랑카 전투를 뒤집어 놓았으리라. 대규모 전장이야말로 네크로맨서들에게는 자신의 앞마당처럼 반가운 곳이니까.
사이클롭스를 부활시키고, 좀비와 구울들을 일으킨다. 해골 병사나 기사들도 일으키는게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마침 성자의 지팡이나 네크로맨서의 마법서까지 있었으니 금상첨화였다.
"하기야. 언데드의 종류도 한둘이 아니라서 네크로맨서 스킬을 사용할수 없는 다른 것으로 부활할수도 있지. 유령체나 짐승류로 부활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위험성이 너무 큰 기술이야."
본인의 선택에 따라 되살아 나는게 아니라서 운에 맡겨야 한다는 점이 불안한 스킬.
이현은 이제 마음을 비우고 아이템의 시세를 검색했다.
베르사 대륙에서 부활을 하고 나면 이번에 획득해서 사용하지 않을 무기류와 방어구들은 팔아버릴 셈이었다.
"경매로 올려놓는 편이 좋겠지."
이현은 시세를 확인한 다음, 아이템 거래 사이트로 가서 경매 물품들을 등록했다.

브롬바 왕국 기사의 검.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마폰 왕국 기사의 검.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영애로운 기사의 갑옷.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축복의 장갑.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전쟁의 갑옷.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사이클롭스의 투구.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팔랑카 전투에서 획득한 아이템을 등록해 버린 것이다.
토둠에서 얻은 아이템들은 거의 재료나 잡템들이 많다.
페가수스나 유니콘. 신수들과 싸웠으므로 부득이하게 벌어진 일이었다.
모라타에서 직접 아이템을 제조해서 팔아야 제값을 받을수 있고, 바가지도 씌울수 있다. 하지만 완성품인 갑옷이나 검 등은 경매 사이트를 통하는 편이 더 쉽게 구매자를 찾을수 있었으므로 등록을 한 것이다.
뱀파이어의 창고에서 획득한 콜드림의 애검은 레벨 제한만 440이다. 만약 팔기로 한다면 기대만큼의 높은 가격은 받을수 없을지도 몰랐다.
사람들끼리 실컷 경쟁이 붙어야 가격이 오르므로, 직접 사용하면서 적당한 가격이 매겨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나으리라.
"물론 당장 팔 생각은 없지만... 그러고 보니 파스크란의 창도 있었지."
뱀파이어의 보물 창고에서 발견했지만 고르지 않은 창!
분명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 누군가 구한다고 요청하는 글을 봤다.
이현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글을 찾아 글쓴이에게 쪽지를 보냈다.

예전에 파스크란의 창을 구한다고 하신 분이죠? 얼마에 사실 예정이었습니까?

이현이 할 일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하루를 편안하게 쉴수 있어서 실감이 안날 정도였다.
"거의 백일 정도 만의 휴식이로군."
다크게이머에게 주 오일 근무제 따위란 당연히 없다. 남들이 놀고 쉴때 더 열심이 사냥을 하고, 스킬들을 키워 놔야 했다.
이현은 컴퓨터를 끄기 전에 다크 게이머 연합의 홈페이지에 정보 글을 하나 올렸다.
북부 몬스터에 대한 정보들.
서윤과 함께 죽음의 계곡을 찾기 위해 북부를 횡단하면서 썼던 기행기.
획득할수 있는 음식 재료나 이동경로, 몬스터들의 서식지에대한 정보들.
더 많은 수익을 얻고 더 많은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주로 혼자 다니는 다크 게이머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정보이리라.
받은 만큼은 베푼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 얻은 정보의 대가로, 이현도 스스로 알고 있는 것들을 약간씩을 풀었다.
현재 정보 등급은 'C'.
이현은 스스로 작성한 글의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부엌으로 향했다.
"쉬는 날에 김치나 담가 둬야겠군."
김치를 담그고 일찍 잘 생각에 움직임이 빨라졌다.
"소금은 역시 일반 천일염을 써야지. 비싸다고 좋은 게 아니라니까."

로열로드의 홈페이지에는 오늘도 수백만 명의 유저들이 접속했다. 그들은 실시간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라오는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 빛의 탑 길드가 잔혹한 우롤바가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 조금만 있으면 우롤바가 나올거야.
빛의 탑은 인원수가 3만명이 넘는 거대 길드.
최고 수준의 고레벨 유저는 없지만, 인원수에 걸맞게 큰 세력을 가졌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안에 우롤바의 레어가 있었다.
잔혹한 우롤바.
대표적인 보스급 몬스터로, 베르사 대륙의 시간으로 1개월에 한번씩 되살아나는 마수 조련사다.
본 드래곤의 브레스에 비할 정도는 아니어도, 그가 휘두르는 전기 채찍에 스치면 몸이 마비되고 체력이 고갈된다. 함께 등장하는 마수들도 매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에, 여간해서는 사냥하기 어렵다.
이 우롤바를 빛의 탑 길드가 대규모의 인원을 동원해서 습격하기로 한 것이다.
"베르사 대륙의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우리는 이 자리에 왔다. 비겁한 몬스터 우롤바여, 숨어있지 말고 떳떳하게 나타나라. 나 헤르트는 너를 처단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길드 마스터 헤르트가 거대한 동굴 안에서 당당하게 외쳤다. 그러자 우롤바가 등장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벌어진 전투!
빛의 탑 길드에서는 이번 전투를 위하여 아이템을 새로 맞추고, 전투의 신 티르에게 막대한 재물을 바치고 축복을 받았다.
'길드의 영광을 드높일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지금까지 우롤바를 사냥한 길드는 여섯도 되지 않는다. 헤르메스 길드를 비롯한 명문 길드들만이 사냥에 성공했다.
빛의 탑 길드도 그 반열에 오르기 위하여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우롤바가 가진 보물. 채찍을 갖고 말테다."
전사들은 스탯에 대한 욕심도 많다.
조각사의 직업을 가진 위드는 걸작이나 명작, 대작을 만들면 스탯이 오른다. 하지만 조각사만이 특별 스탯을 획득할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사들의 경우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보스급 몬스터 사냥에 성공하면 명성과 함께 가끔씩 스탯을 얻었다.
그렇다고 매번 성공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되는 끔찍한 놈들이 대상이었다.
잔혹한 우롤바는 충분히 그 대상이 될수 있다.
전사가 아닌 모험가나 도굴꾼의 경우에는 위치가 파악되지 않은, 즉 한번도 털린적이 없는 유명인의 무덤이나 던전을 파헤쳤을 때에 스탯들이 오른다는 소문이었다.
성직자들은 빈사 상태에 빠져있는 이들을 치료함으로써 신앙심이 높아지고, 수도숭은 마물들을 구원해 주면서 신앙스탯을 얻는다.
비슷한 예술 계열의 직업인 화가도 그림을 그려 스탯을 받을수 있다. 건축가도 놀라운 건축물을 세우면 스탯으 받는다고 한다. 대장장이들은 당연히 명품 무기나 방어구를 제작하면 스탯을 얻었다.
조각사나 다른 생산계열의 장점은, 추가 스탯을 얻을 때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건축이나 조각을 하다가 그리고 그림을 그리다가 생명이 위험해 지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전사들은 위험한 보스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에 얻는 스탯이 더 많고, 전리품과 명성까지 얻을수 있으니 강한 몬스터와 싸울수록 투지가 샘솟았다.
"이야합!"
"우롤바를 쳐라."
"채찍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접근전을 펼쳐!"
"접근전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전사들이 우롤바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는 사이에 동굴 내의 마수들이 등장했다.
바위속에 사는 록 웜들이 성직자와 마법사들을 덮쳤다.
"살려 줘."
"우리부터 도와줘!"
난리가 났지만, 우롤바와 싸우고 있는 전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빛의 탑 길드는 규모는 컸지만 실질적으로 이끌어주는 유저가 부족한 탓에 2,000명이나 되는 길드원들의 손발이 맞지 않았다.
명예의 전당을 통해 유저들이 보고 있었는데도 그렇게 우롤바와 마수들 앞에서 패퇴했다.
마지막에 서로 살겠다고 던전을 빠져 나갈때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 시간만 낭비했네.
- 괜히 눈만 버린것 같아요.
- 아무리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처음이라지만 빛의 탑 길드는 너무 쉽게 무너진 것 같네요.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어떤 유저가 아이템 경매 사이트를 다녀오고 나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 위드! 위드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의 경매 사이트 계정으로 가 보세요!
위드가 브롬바 왕국과 마폰 왕국 기사의 무기들, 사이클롭스의 투구를 팔고 있다는 사실이 확 퍼졌다.
- 도대체 무슨 일이!
- 위드가 또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위드에 대해서라면 미친듯이 환호하는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본 드래곤을 이기고 나서 한동안은 위드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신비롭게 모습을 감추고 활동을 하니 그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그러던 차에 다시금 자신의 경매계정에 물품들을 등록한 것이다.
- 무기들의 성능이 상당히 뛰어난 편입니다.
- 경매 가격이 벌써 5십만원 돌파.
- 역시 위드네요. 세상에, 사이클롭스를 사냥하다니....! 혼자서 한 걸까요? 동료가 있었을것도 같은데요.
- 위드는 거의 혼자서 다니는 걸로 압니다. 사이클롭스가 강한 몬스터라고 해도, 본 드래곤 마저도 사냥한 위드에게는 당연히 적수기 안되는게 정상입니다.
- 크으! 그 사냥동영상을 봐야 하는 건데. 일점 공격술에, 폭풍처럼 휩쓸어 버리던 위드의 전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 그런데 브롬바 왕국이 어디죠?
- 저는 마폰 왕국도 전혀 모르겠어요.
- 북부에 있는 신생 왕국일까요?
사람들은 브롬바와 마폰이 중앙대륙의 어디에 존재하는 왕국인지 의문에 빠져들었다. 심지어는 북부에 있는 소국일거라 추측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북부에는 아직 왕국 자체가 생기지 않았으니, 반박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가 답을 찾아냈다.
- 브롬바 왕국, 마폰 왕국. 수백년 전에 존재했던 고대 왕국들입니다.
- 정말인가요? 믿을수 없어요.
-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유저가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를 통째로 인용해서 올려놨다. 그래서 사람들은 브롬바 왕국과 마폰 왕국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위드처럼 역사서를 통째로 외우고 다니지는 않았던 것이다.
- 어떻게 고대 왕국의 무기를....
- 과연 이번에는 무슨 모험을 했을까요? 고대 왕국의 유물 발굴? 고대의 던전 탐험?
- 크으! 보고 싶다. 보고 싶어.
사람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했다.
몸이 달아서 정말 아무도 말릴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KMC미디어의 홈페이지로 달려갔다.
- 위드가 모험을 한게 사실인가요?
- 고대 왕국에 간 건가요?
- 위드의 모험을 방송하실 계획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내일 꼭 해주세요.
- KMC미디어의 능력을 믿습니다. 채널 고정하고 기다릴테니 특별편성이라도 해서 보내주세요.
생떼를 쓰면서 시청자 의견 게시판에 도배를 하는 무리!
KMC미디어 직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야근이다, 야근!"
"저녁 도시락 주문해. 이것들 다 편집하기 전에는 집에도 못 갈거야."
직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업무에 빠져야 했다.
위드의 모험의 특성상, 분량이 짧게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팔랑카 전투만 따로 추스른다고 해도 최소 몇시간 분량은 나올 것이다.
레미 공주와의 만남, 백마를 타고 난 후의 돌격, 공중전, 사이클롭스와 기사단의 전투까지!
빠뜨릴수 없는 명장면들이 많다.
게다가 역사적인 팔랑카전투다.
위드의 모험만을 방송하는 게 아니라, 전투중에 나온 스킬이나 아이템,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도 즉석에서 제공을 해야만 한다.
때문에 방송국의 모든 팀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최종 편집본이 나오기 전에 진행팀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작가들은 영상을 보며 방송에 쓸 대본을 실시간으로 작성하고, 진행자들은 전투에 대한 정보들을 암기하느라 밤을 꼬박 세웠다.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에 방송예정일을 단축하려다 보니 벌어진 일.
신혜민은 방송중에 자신이 읽어야 할 대본을 확인하고 있었다.
"고결하고, 모험심 가득한 전신 위드의 전투! 숨쉴수 없는 격정과 가슴 벅차오르는 환희 그리고 공주와의 로맨스가 있는 팔랑카 전투를 시청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꼬꼬댁, 꼬꼬!
양념반프라이드반!
이현을 배반하고 서윤에게 간 닭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병원의 간호사들이 쌀이나 좁쌀, 깨, 닭 사료까지 구해다 주었지만 헛수고였다.
"너 왜 안 먹니?"
"이러다가 굶어죽어."
서윤의 병실에서는 간호사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닭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서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리고 착한 서윤이, 기르던 닭이 죽기라도 한다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게 될 테니.
양념반프라이드반은 힘없이 드러누워있을 뿐이었다.
"....."
서윤은 애처롭게 닭을 쓰다듬었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되지 않음에 안타까워하면서.
'주인에게 돌아가고 싶니?'
서윤의 눈빛이 서글퍼졌다.
양념반프라이드반을 데려온 것이 실수인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
그녀는 닭에게 조차도 믿음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현. 그사람에게 데려다 줘야 해.'
서윤이 결심을 하고, 양념반프라이드반을 들어 올리려고 할 때였다.
무엇을 느낀 것인지 닭이 홰를 치면서 강하게 저항했다.
절대로 가고 싶지 않다는 몸짓!
간호사들은 그것을 보면서 적지 않게 감동했다.
"닭도 영물인가 보다. 느끼고 생각하는 게 사람들 못지 않네."
"집을 그리워하지만, 그래도 새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다니 정말 착한 닭이잖아. 먹이만 조금 먹어준다면 좋을 텐데......"
서윤과 간호사들의 애절한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념반 프라이드반은 가만히 잠만 자고 있으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에 다른 간호사가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서윤이 먹을 밥을 식판에 담아온 것.
반찬은 비타민이 풍부한 채소류와 삼겹살이었다.
꼬꼬댁!
그 순간, 양념반프라이드반이 깃털을 휘날리며 식판으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삼겹살을 쪼아먹기 시작했다.
또도도도도독.
식판을 뜷어 버릴 것만 같은 맹렬한 기세.
".....!"
엄청난 양을 먹고 나서, 닭은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닭이 삼겹살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했지만....'
'닭도 별거 없구나. 돼지랑 똑같구나.'
간호사들은 깨달음을 얻었다.
서윤도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난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지, 내가 먼저 다가서려는 노력을 한적은 없었던 것 같아.'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낄수 있는 상대가 이현이었다.
로열로드에서는 그가 해준 음식을 먹기만 했다. MT에서도 그가 해준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해준 건 아무것도 없구나.'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바꾸어 가고 싶었다.
'다음에... 요리를 해 줘야지.'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어디서 밥을 먹는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직접... 도시락을 싸 가야지.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어.'
서윤은 요리 메뉴를 정하느라 상념에 빠졌다.

"얘들아, 밥먹자."
이혜연은 마당으로 나왔다.
이현이 키우고 있는 닭들의 밥을 주는 건 얼마 전부터 그녀의 몫이 되었다. 닭이 예쁘다고 직접 밥을 주고 싶다고 하니, 이현도 오빠로서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이혜연은 기쁘게 밥을 주는 일을 했다.
"오늘 밥은 갈비란다."
꼬꼬댁!
첫째인 삶은달걀이, 살점이 조금 달라붙어있는 갈비를 쪼아 먹는다.
둘째부터 계란프라이, 어미닭, 백숙, 프라이드, 양념 그리고 새로 교체된 양념반프라이드반도 남은 갈비를 쪼았다.
알에서 깨어난지 얼마 안된 병아리들!
병아리들은 어미닭이 주는 벌레를 먹고 성장했지만, 벌써 머리가 커졌다고 갋리 근처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참 화목한 광경이네."
이혜연은 행복을 느꼈다.
닭들과 병아리들이 사이좋게 갈비 근처에 모여 있다. 이 얼마나 앙증맞은 광경인가.
닭들이 먹은 후에도 뼈는 상당향이 남았다.
음식을 버릴수 없었기에, 이혜연은 멀리 앉아 기다리고 있던 동물을 하나 더 불렀다.
"보신아, 이리 온."
왈왈!
닭들이 먹고 남은 갈비뼈는 개의 몫이었다.
개의 이름은 몸보신!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새끼 개를 먹으려고 데려왔는데, 정이 많이 들어 잡아먹지 못했다.
"많이 배고팠지."
이혜연은 몸보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먹을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법이 있지만, 몸보신은 괜찮았다.
멍멍!
오히려 더 만져 달라는 듯이, 뜯어먹던 갈비뼈도 내려놓고 발라당 누워 애교를 부렸다.
보통 영특한 개가 아니라서 새들을 잡기도 하고, 배설물도 알아서 처리했다.
그럴 때마다 이혜연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보신이 착하기도 하지."
소녀와 개.
평화롭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몸보신은 잊지 않았다.
그가 새끼였을 무렵, 친히 이름을 지어주며 번들거리든 이혜연의 눈빛을!


4. 위드의 귀환

모라타의 붉은 방패 용병 길드의 벽에 벽보들이 빼곡하게 나붙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어디 괜찮으 의뢰라도 들어왔나?"
이제 막 사냥을 마 치고 돌아온 모험가들이 벽보 근처로 몰려 들었다.

현상수배자 : 검치
목에 걸린 현상금 : 550골드
죄목 : 타락, 살인, 도주.
용모 : 제법 나이가 많음.
바바리안과 비슷한 체격.
냄새가 심한 흑색 갑옷을 착용한 것으로 알려짐.
무력 : 헬로드 나이트와 호각으로 싸울수 있을 정도. 힘과 기술이 뛰어남.
특기 사항 : 뱀파이어들을 위해 인간들을 살육했음.
마지막으로 발견된 장소 : 모라타 남쪽 입구.

현상수배자 : 검둘치
목에 걸린 현상금 : 548골드.
죄목 : 타락, 살인, 도주.
용모 : 매우 불쾌한 웃음을 멈추지 않음.
대단한 근육질의 몸.
냄새가 심한 흑색 갑옷을 착용한 것으로 알려짐.
무력 : 바이킹 다섯과 싸워서 승리를 거머쥘수 있음.
특기 사항 : 뱀파이어들을 위해 인간들을 살육했음.
마지막으로 발견된 장소 : 모라타 남쪽 입구.

검치에서부터 검둘치, 검삼치... 그런식으로 검오백오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용모의 묘사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살인자의 경우에는 이름이 붉은색으로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뱀파이어의 의뢰를 수행하며 악인이 되어버린 대가였다.
"어제부터 나타나서 우르르 사라졌어요."
"남쪽으로 매우 급하게 떠나가던데."
그들의 행적을 목격한 무리도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이름이 붉은 그들을 잡아 보려는 시도도 벌어졌다.
현상금도 두둑하고 명성과 공적치, 용병 등급을 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운이 좋다면 장비를 빼앗을수도 있으니, 대뜸 덤벼들었다.
"아, 뭐야."
"우리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앗! 여자다!"
"크윽! 여자들까지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그러나 검치들은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을 보이면서 재빨리 도망쳤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남쪽을 향해 미친들이 달려가는 모습에 감히 쫓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검치보다 레벨이 높은 사람은 모라타에도 많았다. 1~2명 이라면 포위해서 잡을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다수가 나타나는 바람에 주춤거리는 사이에 빠져나가고 만 것이다.
그때였다.
모라타의 서문으로 이름이 붉게 표시된 살인자 1명이 들어섰다.
"살인자 주제에 마을로 들어오려고 하다니 겁도 없군."
"미친거 야냐?"
모라타에는 군대가 없다. 대신에 프레야 교단의 성기사들이 주둔하면서 지켜주고 있었다.
"젠장, 내가 죽여야 되는데. 명성을 올릴수 있는 기회인데 말이야."
프레야의 성기사들이 용서를 해 줄리가 없다.
모라타를 오가는 상인과 모함가들은 그 대책없이 다가오는 이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잠시후면 성기사들에 의하여 비참하게 때려잡히고 말리라.
프레야의 성기사들이 근처에 준동하는 몬스터들을 어떻게 때려잡았는지를 봐 왔기 때문에 누구나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살인자가 다가오자 성기사들은 칼을 뽑아 들기는 했으되 높이 추어올려 귀족 혹은 대신관에게나 하는 예를 취했다.
"모든 조화가 여신님의 뜻대로."
방문자도 가볍게 예를 취했다.
"모든 조화가 여신님의 뜻대로."
그러고는 성기사들의 제지를 조금도 받지 않고 마을 입구를 통과해 버리는 것이었다.

모라타에 들어온 이는 위드였다.
뱀파이어 왕국 토둠의 여행을 마치고, 중급 수련관을 통과 하고 다시 베르사 대륙으로 돌아왔다.
위드가 길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길을 비켰다.
"뭔데."
"무슨 일이야?"
"살인자야. 살인자가 마을에 들어왔어."
"어떻게? 아무리 치안이 허술한 모라타라고는 하지만... 프레야의 성기사들이 있잖아?"
"글쎄.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저 봐. 마을을 돌아다니는 데도 성기사들이 전혀 저지하지 않잖아."
군중심리란 무서운 것이라서, 마을 입구에서부터 비켜나기 시작한 사람들은 중앙광장까지 길을 터 주었다.
그리고 다들 금세 위드의 뒤를 따라왔다. 살인자의 표시를 하고 마을로 들어와 당당하게 걷고 있는 위드에게 흥미와 호기심을 느낀 것이다.
위드는 중앙광장을 서서히 둘러보았다.
'토둠으로 떠난 사이에 제법 많은 발전이 있었군.'
26만 골드의 대규모 투자!
넓어진 길에는 번듯한 청석들이 깔렸다. 가격이 비싸지는 않아도 마차가 이동하기편리해서, 마을 규모에서는 흔치 않은 길이다.
거리에는 술집, 대장간, 교역소, 여관, 방직소도 완공되었고, 프레야 교단의 신앙소도 멀리 보였다. 용병 길드와 자경대도 만들어져서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북부에 있는 다른 마을이나 성에서는 볼수 없는 광경이리라.
'사람들이 정말 많이 늘어났어.'
위드가 토둠으로 떠나기 전에도 꽤 많은 여행자들이 모라타에 방문했다. 하지만 빛의 탑의 입소문이 퍼지고, 북부탐험의 거점이 되고 난 후에는 사람들이 항상 넘처나고 있었다.
위드가 시작했던 로자임 왕국의 수도처럼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활기가 충만했다.
도전 정신과 모험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있고, 새로운 땅을 개척한다는 기분때문에라도 활력으로 가득한 것이다.
졸졸졸.
강물을 끌어와서 만든 수로도 개설되어 있었다. 수로의 중간에는 아치형의 예술적인 다리가 만들어지고, 조각품, 미술품도 굉장히 많다.
모라타는 영주인 위드가 조각사라는 이유 그리고 장로가 예술에 적극적인 투자를 해서 문화 활동이 끊이지 않았다.
위드는 예술품을 보면서 흡족했다.
'역시 싼 값에 장식을 하기에는 예술품 만한게 없지.'
헐값취급을 받는 예술품들!
예술인들이야말로 저렴한 인부들이 아니던가.
각종 조각상, 그림, 건축물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서 관광을 즐기는 여행자들을 보며 만족스러웠다.
저들이 뿌리고 간 돈 이 모라타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결국은 위드의 뒷주머니로 들어올 것을 알기에.
모라타의 주민 1명, 여행객 1명이 다 돈으로 보이니 기분이 나쁠수가 없다.
마치 신생아 탄생을 보며 기뻐하는 국세청 직원의 마음이랄까!
사채업자들이 처음 돈 빌리러 온 손님에게 친전할 것과 마찬가지이리라.
위드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광장의 빈자리에 주저앉았다.
"제작 물품 팝니다. 재봉, 대장일, 조각품, 그리고 미약하지만 미술품도 의뢰가 있으면 만들어 드려요. 자! 골라, 골라! 제가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사용해 뭐든 주문제작해 드립니다."
살인자의 표식을 하고 아이템을 제작하는 위드!
유저들의 뒤통수를 치는 격이었다.
"뭐야, 저건."
"한가랄 할줄 알았더니 겨우 재봉사, 아니 대장장이, 혹은 조각사였어?"
"상상도 안되는, 조합도 엉터리인 잡캐잖아!"
유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위드가 살인자면서도 모라타의 대로를 누빌 때에는 상당히 의식이 되었다.
'말로만 듣던 랭커다!'
베르사 대륙이 넓다 보니 레벨 순위 1만위 권의 유저라고 해도 만나기가 어렵다.
중앙대륙이라고 해도 대도시, 큰 성에만 사람이 있는게 아니라 오히려 던전과 사냥터에 가까운 촌락이나 광산마을에도 많기 때문이다.
'굉장히 강할 거야.'
'갑자기 날 공격하진 않겠지?'
상당히 두려움에 떨면서도 뒤를 따라왔는데, 실제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
이것의 단초는 모두 성기사들이 제공했다. 그들이 정중하게 길을 열어 줌으로써, 감히 덤벼들 엄두도 낼수 없게 만든 것이다.
만약에 일반 유저들이 공격을 했다면 위드로서도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질 뻔했다.
사실 모라타에 있는 유저들중에 초보는 없다.
위드보다 더 레벨이 높은 사람이 반드시 없으리란 법도 없고, 또한 그들은 절대적인 다수였다.
누구라도 먼저 칼만 뽑아 든다면 엄청난 사태로 비화될수 있었다.
하지만 먼저 기선을 제압하고 엉뚱한 행동을 벌여서 공격할 분위기나 틉을 안 줬다.
실상 위드는 이런 쪽의 경험이 매우 많았다.
마법의 대륙 시절, 눈에만 조금 거슬려도 다 죽여 버렸다.
그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던 상인도 죽였다. 사냥터를 독점하려던 악덕 영주도 예외는 없다.
심지어는 던전 구석에 숨어 닭살스러운 대화를 나누던 커플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전자들은 다시 일어설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철저히 짓밟았다.
악명도 웬만큼 날려본 것이 아니었으니 나름대로 경험이 있는 것이다.
'특히 내가 전신 위드라는 사실이 걸려서는 절대로 안돼.'
마법의 대륙에서부터 쌓아온 위드의 명성은 거대했다.
베르사 대륙에서도 방송국들을 통해 퍼진 이름값이 엄청난 수준이라서 모험가들, 일반 유저들의 추앙을 받는다.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
전신 위드를 죽인 자.
얼마나 큰 영광이겠는가.
마법의 대륙 시절에서부터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베르사 대륙의 고레벨 유저들이 칼을 갈고 있다고 봐야한다.
위드가 가지고 있는 명예를 가로채고 싶은 이들은 널려 있을 테니 발각되어선 안된다.
설상가상으로 정보 길드, 암살자 길드, 다크 게이머 길드 등에 위치나 정체를 밝혀 달라는 의뢰도 굉장히 많이 들어왔다.
내일이라도 정체가 발각되기만 한다면, 랭커들만 수백명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거대 명문 길드들도 그를 짓밟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나서리라.
철저한 힘의 논리로, 위드를 죽여서 자신의 길드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생각에서다. 모험에 신화나 전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길드의 힘을 극대화 시키기에, 위드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불패의 승부사, 전쟁의 신이라는 수식어 뒤에는 살얼음판을 걷는 위험이 존재했다.
남들에게는 로열로드게 즐기는 대상이지만, 그에게는 생계의 문제였다.
'이래서 등 따뜻하고 배부른 놈들은 안 돼. 다 먹고살 만하니까 나처럼 약한 놈들을 괴롭히는 거지. 이렇게 착하고 순박하고 얌전하게 사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그때 여자아이 하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기요."
"네?"
"저는 옷을 새로 한벌 맞추고 싶은데..... 최신 유행하는, 몸에 딱 맞는 로브로요. 마법 방어력도 높으면 좋겠어요."
여자아이의 반신반의 하면서도 주문을 하고있었다.
위드는 주섬주섬 배낭을 열어 소유하고 있는 재료 아이템들을 보았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재료 아이템들의 종류와 수량 정도는 외우고 있지만, 만의 하나를 생각해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페가수스, 유니콘의 가죽이 있군요. 그리고 뱀파이어의 특제 가죽도 있습니다. 참고로 직접 재료를 가져오시면 수선료가 조금 더 붙습니다."
"특제 가죽요?"
"예. 뱀파이어의 망토로 썼던 가죽인데요. 다시 해체해서 이것을 옷으로 만들어 드릴수 있습니다. 치마는 방어력에 손실을 입히지 않을 정도로 짧게, 허리는 몸에 맞춰서 딱 붙게 만들어 드리면 되겠죠?"
재봉 스킬이 중급 2레벨 쯤 되었을 때 얻은 스킬, 원재료 추출!
완성품을 가지고 다시금 재봉을 하여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낼수 있다.
예전의 아이템보다 아주 좋은 물품을 만들어 내기는 어려워도, 좀 더 다양하고 필요한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적지 않은 장점이었다.
위드는 미리 못을 박았다.
"가격은 재료 아이템의 시세에 따릅니다. 그리고 공임비는 시간당 10골드 입니다."
위드가 제시한 가격은 사람들의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군중의 뒤쪽에서 어떤 사내 1명이 퉁명스럽게 불만을 표시했다.
"10골드라면 너무 비싼데. 그보다 더 적은 금액을 받는 재봉사들이 널려 있는데, 완전 도둑놈이군."
비아냥 거리는 말투였지만 다른 유저들의 호응을 샀다.
"맞아. 저러니까 살인자가 되었지."
"그러게. 염치도 없게 저런 바가지 요금을 받다니."
솜씨있는 재봉사라면 1시간에 10골드를 받는 건 결고 많은 가격이 아니다. 전투형 직업일 경우, 같은 시간에 사냥을 해서 더 많은 돈을 벌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직 직업들의 과다경쟁 그리고 납품단가 하락으로 인하여 제 가격을 받는 사람이 드물었다.
위드의 주변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흥미를 잃고 하나씩 흩어지려고 했다.
그때 위드가 말했다.
"재봉 스킬 중급, 대장장이 스킬 중급 그리고 손재주 스킬 고급에 올라 있습니다. 어떤 물품이든, 최고의 내구력을 가진 물건을 만들어 드립니다. 믿고 맡겨 보세요."
그러자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대장장이 중급, 재봉 중급, 손재주 고급? 그런 유저가 베르사 대륙에 있었던가?"
"불가능한 일이야. 말도 안되는 조합이잖아."
"동굴에서 생산 스킬만 키운 사람인가?"
"입고 있는 장비를 보면 그래도 레벨은 조금 되어보이는데. 장인 계열의 직업 중에 손재주 스킬 레벨 고급에 오른 유저가 아직 있ㅇ르리가...."
"그런 수준의 장인이 알려지지 않았을리 없지. 사기꾼일 거야, 사기꾼."
"근데 이름이 위드잖아. 설마 그 조각사 위드?"
위드의 이름은 붉은색으로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살인자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조각사 위드라면 이 모라타의 영주이고, 백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그 유명한 유저?"
"조각 스킬이 한참 전에 중급을 넘어섰다던 그 유저잖아. 뱀파이어 왕국 토둠으로 여행을 떠났다던......"
"이제 돌아왔나봐."
"모라타의 영주가 돌아왔다!"
조각사 위드는 베르사 대륙 전역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졌다. 적어도 모라타에서는 특이하게도 영주가 조각사였으니 누구나 알고 있었다.
"어쩐지... 프레야의 기사들이 죽이지 않는다고 했어."
"그러니까 주민들도 살인자를 보고도 우호적이구나."
위드와 모라타의 주민들은 매우 돈독한 사이였다.
베르사 대륙에서 명성은 곧 힘!
모든 의문이 풀린 유저들이 열화와 같이 달려들었다.
"저 로브 만들어 주세요!"
조금 전의 그 여자 유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민을 이어갔다.
"저도요. 저는 부츠를 만들어 주세요. 옵션 부여도 가능한가요? 최대한 가벼운 부츠로요."
"저는 상의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는데..... 워리어 업니다. 갑옷 안에 입을수 있는, 착용감 좋은 상의를 제작해 주세요."
재봉스킬이 중급에 오른 유저는 여전히 희귀했고, 모라타까지 원정을 온 재봉사도 없었다. 그 때문에 유저들은 대부분의 아이템은 사냥을 통해 얻거나 필요한 것들을 물물교환 한다.
대장장이, 재봉 스킬 중급에 오른 유저가 나타나니 서로 자신이 가진 고급 재료들을 갖고 몰려들었다.
더군다나 손재주 스킬이 고급이라니 상상도 가지 않았다.
"저는 검요."
"생명을 지켜주는 방패도 필요한데 만드실수 있어요?"
유저들이 주문하는 물품들은 매우 다양했고, 위드는 토둠에서 구했던 재료아이템들을 이용하여 신 나게 물품들을 팔아먹었다.
"저기, 그런데... 조각사라고 알고 있는데요."
한 남성 유저가 다가왔다.
"맞습니다만."
위드는 망치를 두들기면서 대답했다. 때마침 저녁이라서 손님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던 것.
그래도 아침이나 낮에 주문받은 물품들을 만드느라 쉴 틈은 없었다.
"기념으로 여자친구에게 줄 꽃 한송이를 조각해 주실수 있겠습니까?"
"......"
한창 돈을 벌 때라, 위드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지금 주문이 밀려서, 내일 저녁에나 끝낼수 있을지....."
불편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남성 유저가 재료 아이템을 하나 내밀었다.
"순철입니다. 수고비로 이걸 드리려고 하는데요."
순철!
일반적인 철보다도 훨씬 고강도의 철 한덩어리.
위드는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바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조각사야말로 팁으로 먹고사는 직업이 아니던가.
일반적인 수고비가 워낙 싸다보니 이렇게 팁을 주는 주문은 거절할수 없다.
'좀 서두르면 되겠지. 조각술이야 워낙 익숙하니까.'
평상시처럼 나무를 구해서 꽃을 조각하려고 했다.
꽃은 예전에도 조각한 적이 많아서 눈을 감고고 만들어 낼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조각술을 펼치자 마자 알수 없늦 존재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 저를 조각해 주세요.
- 우리를 조각해!
- 인간 조각사, 넌 할수 있을 거야.
- 어서 우리를 조각하란 말이다!
조각술 스킬이 고급 5레벨에 올랐을 때부터 들리던 미지의 목소리들이 어김없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이제 말소리만 전하지 않았다.
- 우리를 구원해 줄수 없다면.....
- 우리에게 삶을 가르쳐 줄수 없다면......
- 미련한 조각사에게는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위드의 몸이 갑자기 불타올랐다.
몸 전체에 불이 붙어서 활활 타오르는 것이었다.
한밤중의 모라타, 광장 한 복판에서 벌어진 일어었다.

- 불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지속적인 화염 데미지를 입습니다.
착용하고 있는 모든 물품의 내구력이 빠르게 저하합니다.

위드의 몸이 불타면서 생명력이 1초에 300이 넘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만들고 있던 나무 조각품도, 금세 불이 붙어서 타 버렸다.
"스톤 스킨!"
위드가 반사적으로 보호 스킬을 사용하니 생명력의 감소 속도가 65%나 줄어들었다.
"우와! 저 사람좀 봐."
"멋있다."
"어떻게 한거야?"
모라타 광장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위드라는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덕분!
"밝다."
"불이 참 예쁘네."
위드를 보면서 불구경하는 유저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씨 좋은 성직자들도 당연히 있었다.
성직자들은 무언가 안좋은 일이 벌어진 것을 눈치채고는 일제히 치료와 저주 해제를 위한 신성마법을 펼쳤다.
"큐어!"
"리커버리!"
"라운드 힐!"
여러 신성마법들이 수십차례나 사용되면서 위드를 치료했다.
"아이언 프로텍트."
"홀리 쉴드."
보호 마법들도 겹쳐 사용되면서, 위드의 불길이 사라졌다.
위드는 낙담했다.
"이제 정말 별짓을 다 겪는구나."
조각사가 되어서 겪은 파란만장한 행보!
조각술의 길이 이토록 다채로울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다시금 나무를 조각할 때에는 얼음의 저주가 걸렸다.
몸이 얼어붙어서 느려지는 가운데에도 꽃을 무사히 깎아 냈다.
"고, 고맙습니다."
주문을 했던 이는 황급히 사라졌다.
위드의 머리 위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넓은 지역을 다 놔두고 이곳에만 먹구름이 끼고 천둥이 내리쳤다.
쿠르릉, 콰광!
광장에 있던 다른 유저들이 멀리 벗어났다.
"저 사람 주변에서만 이상한 일이 벌어지잖아."
"저주 캐릭터인가 봐."
"쉿. 가까이 다가가지마. 저주 옮을라."
그래도 위드는 성직자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저주에서 풀려났다.
시험삼아 조각술을 펼칠 때마다 불에 타거나 독에 걸리거나 빗물이 떨어지거나 땅이 흔들리는 일이 벌어졌다.

- 재봉 스킬의 숙련도가 0.1% 상승하셨습니다.

위드는 조각품의 의뢰는 당분간 포기하고, 대장일과 재봉 관련 물품들만 주문을 받았다.
스킬의 숙련도와 돈, 물품을 제작하며 쌓는 명성까지!
꼼꼼하게 작업된 것은 일반 물품보다 더 훌륭한 성능을 가지고 있어서 추가금도 어렵지 않게 받아 낼수 있었다.
마판조차 인정한 위드의 말발이 아니던가!
잡캐의 진수를 한 단계 높여주는 건 뛰어난 입담이 있어서였다.
"이건 한벌의 옷에 불과합니다만, 떨이로 파는 그런 흔한 옷이 아니죠. 세도나 님이라고 하셨나요? 세도나 님을 위하여 특별히 제작한 맞춤옷입니다. 가슴과 허리, 엉덩이에 걸쳐서 우아하게 피트되는 라인은 기본이고, 방어려과 내구력은 기본으로 갖췄죠. 고급스러운 유니콘 가죽은, 웬만해서는 떨어질 일이 없다고 봐도 됩니다. 세도나 님의 생명을 최소한 열번은 구해줄 물건입니다."
"가격은요?"
"가격은... 사실 이런 건 부르는게 값이지만, 저를 믿고 기다려 주셨으니까 성의껏 주시면 됩니다."
사람을 봐 가면서 가격을 불렀다.
기분이 들떠있고 좋은 사람은, 약간의 돈 정도야 기꺼이 지불할 마음이 생기는 법이다. 구체적인 가격을 제시하기 보다는 서비스를 통해서 더 많은 수익을 얻는다.
돈에 민감한 이들에게는 지정해 둔 가격을 못박고 확실히 그만큼을 받았다.
위드는 유저들이 가진 고급 재료를 사용하고, 토둠에서 가져온 재료 아이템들을 팔며 정신없이 돈을 벌여들였다.
비교적 물품이 풍족한 중앙 대륙과 달리 아직 모라타에서는 가죽이나 철광석 들의 가격이 더 비쌌다. 가지고 있는 재료의 가격을 여기에 맞춰서 판매하니 위드의 호주머니에 돈이 쑥쑥들어온다.
조각품과는 다르게 즉석에서 사람들의 호응을 받으며 돈과 함께 스킬 숙련도까지 얻는다.
무한 감동!
'역시 난 예술인이 아니라 단순 일용직 노가다나 기술자가 어울리는게 아닐까.'
적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면서도 위드의 손놀림은 쉬지 않았고, 돈 계산도 틀리지 않았다.
갑옷을 만들면서도 다음 차례의 물품 주문, 필요한 재료의 양 계산, 재료 가격 산정, 고객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것 까지 일련의 활동이 척척 진행되는데, 경이로울 정도였다.
위드가 만들어 낸 갑옷이나 옷 들은 그 성능으로 인해 입소문을 퍼트리며 더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것 봐, 내구도가 장난이 아니야."
"얼마나 꼼꼼하게 작업을 했기에 로브의 내구력이 갑옷 수준이지?"
싸구려 원단으로도 대충 입을 만한 옷을 만들어 내는 능력.
모라타의 영주 위드가 만들어 주는 제작 물품이니, 웃돈을 얹어 주면서라도 사람들이 모인다.
위드는 그런식으로 재료 아이템들을 처분하고 재봉스킬을 한 단계, 대장장이 스킬을 한 단계 올릴 수 있었다.
단순히 재료 아이템을 파는 것으로 얻을수 있는 수익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받으면서 자그마치 34만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뒀다.
개인으로서 물건을 처분해서 얻을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검치들에게 본 드래곤의 뼈로 만든 장비를 지급하고 그들의 물품들까지 대신 받았기 때문에 벌어들인, 정말로 엄청난 금액!
니플하임 제국의 보물을 팔았을 때보다도 더 큰돈을 벌수 있었다.
더구나 위드의 인기는 최정상을 달렸다.
"저기요, 저 로자임 왕국에서 풀죽 먹으러 왔어요!"
"혹시 피라미드 같은거 또 제작하지 않으시나요? 피라미드 제작하면서 국가 공헌도랑 명성 정말 많이 올릴수 있었는데......"
"난이도 B급이 아니라 C급이라도 괜찮아요. 풀죽 한 그릇만 쑤어 주시면 뼈가 부서져라 일할게요."
로자임 왕국에서부터 위드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유저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들을 볼때마다 위드는 매우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위드가 장사를 마쳤을 때, 프레야의 성기사단이 알베론과 함께 다가왔다.
알베론은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위드 님, 그간 많은 죄업을 쌓으셨군요."
위드는 솔직히 말했다.
"예. 뱀파이어들을 구원해 주기 위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퀘스트를 함께할 때는 반말도 서슴지 않으며 부려먹던 알베론이었지만, 아쉬운게 있으니 자연스럽게 존대말로 높여 주었다.
알베론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쩌다 그렇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게 다 위드님께서 인정이 넘치시는 탓이 아닙니까?"
"......"
"틀림없이 간악한 뱀파이어들이 위드님의 착한 심성을 파악하고 애걸복걸하였겠지요. 섭리로부터 벗어난 그들을 위해서도 노력을 하셨다니, 위드님의 자비로움이란 정녕 끝이 없으시군요."
"......"
위드는 프레야 교단과 알베론에 대한 친밀도만큼은 최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교단에 대한 공적치도 대단히 높다.
모라타 마을에는 신앙소도 세워졌는데, 이 또한 교단으 공헌도에 매우 기여를 하고 있으리라.
이 정도로 가까운 사이에서는 웬만하면 편을 들어주기 때문에 위드를 믿어주는 것이다.
때로는 옳고 그름 보다는 친밀도나 영향력이 더 크게 좌우하는 경우가 있었다.
"제가 위드 님을 위해서 기도를 해 드리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프레야 여신님께서 위드 님을 용서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위드는 껄끄러웠다.
'기도라니!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기부를 해야만 하는 것인가?'
살인자 상태를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교단에 기부를 하는 것.
악명이 줄어들어야만 퀘스트도 받을수 있다. 살인자 상태에서는 주민들 조차도 피해서, 대화나 상거래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른 유저들로부터 공격을 받을수도 있으니 빨리 살인자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
위드가 열흘 정도는 굶은 것처럼 궁색한 표정을 지었다.
"알베론 님, 마음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당장 제가 오늘 저녁 식삿거리를 걱정해야 할 처지라서...."
"프레야 여신께서는 굶주린 이들을 배불리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라타 지방은 정말로 많은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위드 님께서 정말 훌륭하게 선정을 펼치시다 보니 가진 것이 많지 않으시겠지요."
"........"
기부금의 할인이나 절충을 바라고 던진 말이었는데, 알베론은 순진하게 그대로 믿어버려 주었다.
'모라타의 발전이라..... 훌륭한 선정?'
위드는 토둠에 가 있는 동안에도 단편적인 정보 정도는 얻고 있었다. 베르사 대륙 이야기나, 다크 게이머 연합의 정보망을 통해 모라타가 상당히 좋아졋다는 정도의 글들은 몇 번 읽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좋아졌는지, 마을 장로를 만나 봐야 겠군.'
위드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때, 알베론은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위드를 위하여 기도를 하는 것이리라.
그의 주변이 신성력으로 가득해졌다.
"여기 여신님을 대신하여 뱀파이어들을 위해 싸운 이가 있나이다. 비록 그의 행동이 인간의 기준으로는 악행에 가까웠다고는 하나, 그들 역시 여신의 번영과 풍요로움을 사랑하는 이들이니...."
차기 교황 후보라는 말이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신앙심과 신성력!
띠링!

- 프레야 여신의 자비로움으로 인해 악랄한 죄악의 45%가 구원받았습니다.
악명이 500 감소하였습니다.
악명의 저하로 통솔력이 10 줄어듭니다.

악명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NPC주민들을 협박해서 잘 주지 않는 퀘스트를 얻어 낼 수 도 있고, 상점에서 강제로 가격을 깎는 것도 가능했다. 으슥한 곳에서 만난 상인 NPC들을 털 때, 악명만 높으면 싸움 없이도 고스란히 상품들을 헌납받을수도 있다.
부하들을 다루는 통솔력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그 악명이 프레야 교단의 기도로 인해 구원받음으로써 저하된 것이다. 구원의 기도의 부작용이었다.
기도를 마친 알베론은 선뜻 손을 내밀었다.
"위드 님, 그럼 식사를 하러 가시죠. 식당에 만찬을 차려 놓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위드는 대답했다.
"고맙다, 알베론."
받을 것은 받았으니 가볍게 바뀌는 말투.
프레야 교단에서는 고구마나 감자 따위로 가볍게 식사를 때우지 않는다. 적어도 세가지 이상의 메인 요리와 후식, 샐러드에 와인 등을 곁들여 먹었다.
위드가 그렇게 알베론의 손에 이끌려서 사라지자, 뒤늦게 유저들은 탄성을 질렀다.
"아! 그러고 보니 물어볼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는데..... 빛의 탑에서부터, 어떻게 모라타의 영주가 되었는지 말이야."
"프레야 교단과의 관계도 장난이 아닌것 같고."
"역시 돈 때문이 아닐까? 백작이고, 모라타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잖아."
"굉장한 갑부라서 돈을 펑펑 쓰는 덕에 교단과 절친한 관계가 되었을 거야."
"로자임 왕국에서부터 돈독이라면 엄청났다고 하던데."

위드는 프레야 교단에서 느긋하게 만찬을 즐겼다. 음식들은 신선하고 풍족했다.
모라타가 춥고 황량했던 시절에 직접 만든 요리고 주민들과 축제를 벌인 적이 있다. 그 때에는 찐 감자 하나가 없을 정도로 배를 곯았지만, 현재는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식량이 풍족해 졌다.
마을 장로가 식량 확충을 위한 개간 사업에 가장 공을 들인 덕분이었다.
'모라타가 정말 발전하긴 했구나.'
중앙대륙이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을 부분이지만, 모라타에서는 감동이었다.
주민들과 유저들이 어우러져 행복하게 사는 마을!
상업이 발전할수록 다 세금이 늘어나는 것이니 기쁘지 않을수 없다.
포만감의 한계치까지 꾸역꾸역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알베론이 얘기했다.
"위드 님, 프레야 교단에서 오래 전부터 어디 계신지 찾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로?"
"실은 몬스터 소탕 때문인데...."
북부의 얼음이 녹고 나서, 추위로 인해 위축되어 있던 몬스터들이 점점 풀려났다.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활개를 치는 몬스터들로 인하여 북부의 탐험은 정체상태에 있었다.
기껏 개발해 놓은 마을이 약탈당해서 풀뿌리 하나 남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고, 상인들은 대규모로 뭉치지 않고서는 이동하지 안 ㅎ으려고 들었다는 알베론의 이야기였다.
위드는 불안해서 물었다.
"모라타는 괜찮겠지?"
모라타의 영주일 뿐만 아니라, 피같은 돈도 투자했으니 초조하기 짝이 없었다.
"프레야의 믿음직스러운 성기사들이 지키고 있으니 괜찮으리라 봅니다."
알베론의 말은 다행히도 그를 안심시켜 주었다.
모라타에는 성기사들만이 아니라 모험가들, 용병들도 굉장히 많았다.
개척의 요충지라고 할수 있는 모라타가 가지고 있는 유저들의 무력도 상당한 편이다. 만의 하나 이곳이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한다면, 사실상 북부는 몬스터들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위드님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소므렌 자유도시에서의 프레야 교단 성기사단과 사제들의 증원을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위드에게는 나쁠것이 조금도 없는 제안이었다.
"몬스터로 인해 이곳 북부가 불안하다면, 치안을 지키기 위해 성기사들이 더 많이 와서 수고해 주겠다는데 나에게는 고마운 일이지."
"그리고....."
알베론이 슬쩍 말끝을 흐렸다.
"추가로 어려운 의뢰를 하나 드려야겠습니다. 대신관님께서 꼭 위드님께 청해 달라고 하신 일이라서요."
"뭔데?"
위드는 돈 얘기만 아니라면 웬만한 제안은 들어주고 싶었다.
프레야 교단에서 받은 퀘스트들은, 모두 어렵지만 질 좋은 것들이었다. 진혈의 뱀파이어, 불사의 군단과의 전쟁은 모두 2차 연계 퀘스트들로 이어졌다.
짭짤한 소득을 올렸으니 피할리 만무한 것이다.
프레야 교단의 의뢰는 쌓아놓은 공헌도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한 반드시 받아들여야 했다.
"이곳 모라타는 문화와 예술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프레야 여신님을 상징하는 조각물만은 없는것 같습니다. 여신님을 모시는 사제로서 섭섭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신관 님께서는 위드님이 프레야 여신님을 위한 초거대 조각상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십니다."
띠링!

- 프레야 교단의 여신상
베르사 대륙 북부에 프레야 교단의 상징물이 될 여신상을 만들어라.
프레야 교단에서는 다른 교단과의 미묘한 상징물 경쟁에서 절대 지고 싶지 않아 할 것이다.
교단의 여신상을 제작 성공한다면 대륙 전체에 조각사로서 위대한 이름을 떨칠수 있으리라.
여신상을 제작하기 위해 인부들을 구성할수 있다.
작업 비용으로 다이아몬드가 주어짐.
난이도 : 종교 퀘스트
보상 : 완성된 여신상은 신도들의 믿음의 대상이 될것이기에 평소보다 3배의 효과를 같게됨.
참여한 이들의 스킬 숙련도 및 명성 획득, 성공 물품에 대한 보상도 3배가 됨.
실패한다면 프레야 교단의 신뢰도 하락.
퀘스트 제한 : 몬스터들은 프레야 교단의 상징물을 매우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완공되기 전에 부수려고 할 것이다.
절대 파괴되어서는 안됨.


5. 번영의 상징 모라타.

위드는 물론 퀘스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몸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지만, 프레야 교단의 의뢰를 거부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일단 거부하더라도 억지로 떠맡길테니 어쨌든 받고 본 것이다.
보상에 눈이 먼 것도 사실이었다.
최고의 조각품을 만들고 얻는 명성과 보상들은 A급 퀘스트 못지 않다.
고급 5레벨에 오른 조각술과 손재주 스킬들을 활용할 기회!
특히 종교적인 대형 상징물이 있으면 계절이 바뀔때마다 신에게 기도를 통해 청원을 올릴수 있다. 곡물의 생산량을 조금 더 늘리거나, 몬스터들의 습격을 감소시키도록 기원을 하는 것이다.
뒤처져있는 모라타가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신성 조각품이 필요하다.
그래도 생색을 낼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다.
"어려운 일인것 같지만, 알베론 너의 부탁을 차마 거절 할 수 없구나."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프레야 교단의 의뢰를 수행하게 되어 살인자 상태가 해제됩니다.
의뢰가 성공하게 되명 악명이 30 줄어듭니다.

"죄송합니다, 위드 님. 어려운 부탁을 드리면서 저희 교단에서 내 놓을 물건이란 게 이런 것밖에 없군요."
알베론이 미안해 하며 다이아몬드를 내놓았다.
다이아몬드의 크기는 동전보다도 컸다.
순간 위드는 돈 많은 프레야 교단의 의뢰를 받은 것을 감사히 여겼다.
'보석 상인에게 넘겨도 13만 골드는 받겠군. 보석 중에 가장 고가로 팔아먹을수 있는 다이아몬드다. 여신상 따위는 가볍게 끝내 줘야겠군.'
대형 조각상을 만들 때에는 적어도 일주일에서 길게는 3달도 걸린다. 하지만 주변에 도움을 줄 사람이 많다면 그 기간은 훨씬 단축될수 있다.
"사형들은 모두 오크 마을로 간다고 했고...."
검치들은 오크마을로 뛰어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귓속말을 보내도 응답이 없다.
"페일 님에게 도와달라고 해야겠군."
위드는 페일에게 귓속말을 보내기로 했다.
- 페일님.
- 네, 위드 님!
- 지금 어디 계세요?
- 여전히 토둠입니다.
페일과 몇몇은 자잘한 퀘스트를 몇개 하기 위해 남아 있었다.
어차피 영웅의 탑에 오를 자격이 없는 그들이라서, 죽음을 경험할 때까지 뱀파이어들의 의뢰를 수행하는 모양이었다.
- 모라타로는 언제 돌아오세요?
- 글쎄요. 위드님이 불러만 주신다면 언제라도 가야죠. 근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 그게.....
위드는 슬쩍 말끝을 흐렸다.
대뜸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을 해 버리면 빨리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피라미드를 만들면서도 여간 고생을 시킨것이 아니었으니까.
- 괜찮은 퀘스트가 있어서요. 아시죠? 예전에 제가 프레야 교단에서 진혈의 뱀파이어나 불사의 군단 퀘스트 한거요.
- 꿀꺽! 그런데요?
- 이번에 프레야 교단에서 또 퀘스트를 받았는데... 같이했으면 하고요.
- 꼭 기다려 주세요.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위드는 미소를 지었다.
"일단 몇명은 섭외되었군."
하지만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왕성한 일꾼들의 활력이야말로 조각품을 단기간에 완성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할수 있지."
몬스터들의 습격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나, 일단은 심각할 것이라고 가정하면 여유를 부릴수는 없다.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하고, 이 부분에서 위드는 의욕이 넘쳤다.
그가 누구이던가!
무려 한국인이다.
택시를 타도 총알이고, 버스는 말할것도 없다.
승객이 타기도 전에 문을 닫고, 내리기도 전에 이미 출발하고 있는 버스.
기어 변속을 밥먹듯이 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급하게 치닫는 훌륭한 교통문화.
건설업 쪽에서는, 규제만 풀리면 몇만채의 아파트 따위는 금세 만들어 버린다.
멀쩡하던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지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발전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경제 동물이라는 유태인과 일본인을 유일하게 무시할수 있는 민족!
한국적인 정서에서 느긋하게, 쉬엄쉬엄하는 일 따위는 있을수 없는 것이다.
"위치는 모라타의 남쪽 입구로 해야겠군. 중앙 대륙에서 온 방문객들이 가장 먼저 볼수 있도록!"

위드는 다시 인부들을 구하기 위해 광장으로 돌아왔다.
"골라, 골라. 빈대떡이 싸요!"
"방어구 팝니다. 명장 올슨의 작품! 올슨이 누구냐고요? 바로 접니다. 강철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대장장이죠."
"루베린이 어디있는지 아시는 분! 안내해 주시거나 같이가서 푸른 딱정벌레 잡으실 분 없나요? 사례금이라도 드려요."
광장은 좌판을 펼치고 물건을 사고 팔거나 동료를 구하는 이들, 혹은 지형이나 퀘스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질문을 하는 이들로 소란스러웠다.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과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하다. 중앙 대륙에 비해 물품은 다소 부족해도, 모험과 삶의 활력이 있었다.
생산직 직업들도 살판이 났다.
모라타의 주변에서는 몬스터들이 씨가 마를 일이 없다.
머리가 푸른 비늘로 덮여 있는 물고기 몬스터.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악어 몬스터.
날이 따뜻해지면서 비가 내리면 신종 몬스터들이 기어 나온다.
"구이. 구이!"
"퐈퐈퐈."
장인들이 신종 몬스터들의 재료로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면 불티나게 팔렸다.
"만드는대로 다 돈이고 숙련도구나."
"여기야말로 천국이다."
장인들은 아끼지 않고 솜씨를 발휘했다.
미샤는 그들로부터 봉을 구입한 봉술가였다.
"아, 기분 좋아."
가슴이 콩닥거리고 뛰었다. 설레는 기분을 감출수 없었다.
최신 봉을 구입하고, 첫 사냥을 나갈때의 기분!
동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몬스터들을 힘껏 때려잡을수 있으리라.
봉은 검보다 길고, 방어에도 유용한 편이다. 창을쓸 때에도 80%의 숙련도가 공유되었기에 무기를 폭넓게 사용할수 있다.
그렇게 중앙 광장을 떠나려고 할 때, 미샤는 위드를 발견했다.
"앗!"
여고생이 변태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소리를 지르는 그녀!
"모라타 영주다!"
미샤의 말은 자신들의 일에 몰두해 있던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오기에 충분했다.
"조각사 위드."
"모라타의 영주가 돌아왔다."
"뭐야, 지금은 살인자가 아니잖아. 살인자 표시가 사라져 있어. 이름도 보이지 않고."
위드가 잠시나마 군중으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붉은색 표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야, 야! 말 가려서 새. 상대는 모라타 백작이야."
"모라타 백작! 맞아, 내가 그걸 잊고 있었지."
"귀족이나 길드 마스터에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죽은 이들이 하나 둘이 아니야."
"목소리 낮춰. 조심해야지."
피라미드와 빛의 탑을 만든, 모라타의 백작 위드!
모라타에서 장사와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위드의 눈치를 보지 않을수가 없다. 영주의 눈에 거슬리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징벌할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라타의 경우에는 기껏해야 주민들밖에 없지만.
위드는 광장을 돌아보며 뿌듯했다.
모라타가 이렇게 발전하고,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다는 것은 그만큼 살지 좋은 마을이라는 뜻이니까.
위드만큼 주민이나 유저들을 사랑하는 영주도 없을 것이었다.
'사랑하는 내 세금 줄들.'
유저들이나 주민들이 모두 돈으로 보였으니까.
지금은 한낮이라서 유저들로 엄청나게 북적거린다. 상거래를 하는 이들로 인해 시장처럼 소란스러웠다.
"난세가 깊어질수록 통치자의 훌륭함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저 모라타의 백작 위드의 선정 아래에 모인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광장에 모여있던 유자들의 반응은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쳇, 선정은 무슨 선정. 늙은 장로 할아버지가 혼자서 다 하더만. 어디서 놀다 이제야 나타나서 말이야."
"아까 물건 팔아먹을 때 바가지는 잘도 씌우더니."
"정가에 파는 줄 알았는데 고무줄 가격이었어. 가격 비교해 보니깐 눈탱이 맞은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더라니까. 그러면서 뭐랬더라, 이건 특가니까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유저들의 수군거림과 동요가 커지고 있었다.
짧은 기간 이토록 불신의 대상이 된 영주가 또 있었을까!
위드는 정치인들의 고난을 십분 이해할수 있었다.
'역시 좀더 야비하고 교활해야 했는데. 너무 쉽게 속여먹으려고 했어. 역시 정직하게 사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거지.'
그러면서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사자후를 터트렸다.
"커, 허, 허, 험! 에... 모라타에서 종교 퀘스트, 프레야 교단의 초거대 여신상을 함께 만들 조력자를 구합니다. 인원수 무제한, 숙식 제공! 평생 가치있을 일에 참여하세요."
인부들이 많이 모일수록 위드의 입장에서는 좋다.
그러나 유저들은 콧방귀만 뀌고 있을 뿐이었다.
장사를 하기에 바쁘고, 생산, 사냥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과연 한가하게 여신상이나 제작하고 있을 것인가!
게다가 조각술 퀘스트에 참여해 본적이 없으니 그 보상이 얼마나 되는 지도 몰랐다.
"저요. 제가 할게요!"
그때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초보자 무리!
관광객인줄 알았는데 로자임 왕국에서 피라미드를 만든 적이 있는 유저들이었다.
혹은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던 유저들이 함께 달려왔다.
"풀죽 한 그릇이면 돼요!"
"이번엔 뭘 만드실 건가요?"
"저 기억하세요? 레몬이에요!"
아직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귀여운 소녀.
위드는 그녀를 항해 기억에 남을 썩은 미소를 보여줬다.
"아아, 당연히 기억하지요. 피라미드를 만들때 석재를 서른 아홉번이나 옮긴 레몬 님. 그래서 제가 풀죽도 곱빼기로 쑤어 드렸죠."
"넷, 맞아요!"
위드는 인부들과 반가운 해후를 나누었다.

모라타의 대형공사!
첫 삽을 뜨는 일부터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로자임 왕국에서 피라미드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20명이 있었다.
필요한 절대적인 숫자에서 보면 있으나 마나한 인원이었지만, 이들이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하게 해냈다.
"빨리 하고 풀죽 먹어야지."
"아자! 이번에도 뭔가를 만들겠구나."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 하는 그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해보겠다고 조각품 제작에 참여하기로 한 300명을 당황시켰다.
"이런게 뭐가 좋다고 난리지?"
"여긴 로자임 왕국도 아니잖아."
로자임 왕국은 여전히 신생 왕국으로 분류된다.
초보들의 비율도 매우 높은 편이라서, 퀘스트 공유에 열광적인 것도 당연한 일.
북부는 발전도가 뒤떨어져서 아직 신규 유저들이 시작하지는 못했다. 관광을 위해 명망 높은 모험가의 대규모 인솔을 따라오는 경우는 있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300명이 모라타 백작 위드의 퀘스트, 프레야 교단의 퀘스트를 함께할수 있는 기회에 혹해 참여했다.
그렇게 초기 공사로 모라타 남쪽 입구 근처의 땅을 조성하고 있을 때부터 엄청난 인부들이 모여들었다.

"에라, 성문 나가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어? 난 여기서 일이나 할래."
"모라타에 와서 장비들을 너무 맞췄더니 돈이 간당간당하고, 그렇다고 따로 의뢰를 받기에는 지금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나도 뭐든 한번 만들어 볼까?"
"율하야, 같이 할래? 좋은 기념이 될것도 같아."
"응. 해보자."
이런식의 대화를 나눈 이들이 인부들로 참여 의사를 밝혀 왔다.
로자임 왕국 출신들의 자랑도 한 몫을 했다.
"로자임 왕국에 있는 피라미드! 그거 직접 보신 분들 없죠? 거기에 가로 56번, 세로 19번 돌은 제가 옮긴 겁니다."
베르사 대륙의 불가사의에 등록될 거라는 소문도 어디선가 파다하게 퍼졌다.
선술집에서 술을 먹고 있는 남자와 여자!
"화령 님, 들으셨어요?"
"네? 뭘요?"
"전에 조각사 위드가 만들었던 조각품들이 글쎄 보통이 아니었다지 뭡니까."
"불가사의 조각품들요? 이번에도 불가사의가 된다면 참 좋겠어요."
"조각사 위드의 작품이니 틀림없이 그렇게 되겠죠."
"그런데 제피 님."
"네?"
"실은 이건 비밀인데요."
"뭔데요? 우리 사이에...."
"알려지면 절대로 안 되거든요."
이때 여성의 목소리는 매우 작게 들렸다.
"괜찮습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 저한테만 알려 주세요."
혼잡하던 선술집 안이었지만 다들 조금 전까지 큰소리고 떠들던 남자와 여자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만취한 술꾼들이 아닌 이상 그 내용에 관심이 쏠려서 귀를 기울이는 중이었다.
선술집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 졌다.
"이번에 만드는 물품이, 프레야 교단의 의뢰를 받은 것이잖아요."
"그렇다고 하죠."
"일반적으로 교단의 제작 의뢰는 아무에게나 주지 않아요. 교단에서 신용하는 사람에게만 부여하는 건데요. 이번 여신상 제작에 동참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꿀꺽! 설마 화령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맞아요. 우선 프레야 교단의 공헌도가 크게 높아지지 않겠어요? 평소보다 3배라는데. 그리고 교단의 상징물인 여신상의 제작에 참여한 대가로 평생동안 대륙 어디의 프레야 교단을 가더라도 무료 축복이나 치료, 성직자 알선 등을 해 줄지도 모른다더군요."
"프레야 교단의 친구가 되는 것이군요. 친구."
"그런 거죠. 공헌도가 생기면 다음에 프레야 교단의 퀘스트를 받을 때도 유리할 거구요."
"그래도 이 정도면 보상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드는데...."
"교단이잖아요. 성직자들에게 신앙심보다 중요한게 뭐가 있겠어요? 몬스터 몇마리 더 잡는것? 아니에요. 자신들의 여신상을 제작해 준 사람이라면 어떤 부탁도 들어줄지 모르고, 의뢰들도 많이 내주겠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흔치 않은 기회잖아요. 사냥이야 언제든지 할수 있어요. 던전? 내일 들어가도 무너지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여신상을 만드는 데 참여할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한가요?"
끄덕끄덕.
선술집 안에 있는 유저들이 저절로 수긍할수 밖에 없을 정도로 논리 정연한 말이었다,
'그렇긴 해. 조금 힘들과 귀찮은 일이지만, 공헌도를 위해서라면 해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어떤 보상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3배라니까, 조각술 퀘스트라고 해도 그런대로 괜찮은 보상을 받을수 있겠지.'
'기념도 될거야. 자랑거리도 확실히 될 거고. 몬스터야 레벨이 높아지면 뭐든 잡을수 있겠지만, 조각품을 같이 만들 기회는 진짜 드물긴 할거야. 지금까지 누가 하는 걸 본 적도 없으니까.'
'화령이라고 했나? 정말 예쁘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들은 조각품을 좋아하는구나. 역시 조각품을 만들어 보는 경험도 중요하겠어!'
선술집에 있던 이들이 친구와 가족, 길드원들에게 귓속말을 보내는 사이에, 남자와 여자는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무기 상점으로 가서 똑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페일과 메이런 조, 로뮤나와 수르카 조, 마판과 이리엔 조도 비슷한 활동을 했다.
정보 조작!
여론이 형성되고, 군중 사이에 꼭 해야할 일이라는 공감대가 퍼지면 그때부터는 빠지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이다.
모라타의 이목은 금세 남쪽 입구에 만드는 조각품을 향해 쏠렸다.
로열로드의 게시판, 명예의 전당의 동영상, 방송국에서 취재까지 나오면서는 인부들이 자청해서 몰려들었다.
위드는 일인당 10골드 씩을 받아 챙겼지만 그럼에도 새로 등록하는 인부들은 늘어만 갔다.
고레벨 유저들의 동참으로 작업 능률은 최고의 수준이었다.
마법사의 손짓 한번에 땅이 파헤쳐지고, 전사들은 다섯 포대가 넘는 흙더미들을 등에지고 한꺼번에 옮겼다.
위드는 그거 풀죽을 쑤어서 팔면 되었다.
"풀죽좀 드시고 하세요."
"캬아! 좋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한 그릇만 더 부탁드려요."
"얼마든지요."
인부들은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갈증 나고 힘들때 빨리 마시고 체력도 회복할수 있는 풀죽이야말로 꿀맛!
위드는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작업을 벌이고 있엇다.
우선 광대한 지역의 흙을 통째로 파냈다.
"흙은 건축에 필수 불가결한 재료지. 건축가 길드 쪽에 팔아먹으면 큰 돈이 되겠어."
사리사욕을 위한 작업 계획!
뒷돈을 위해서 엄청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는 것이다.
광대한 호수를 만들고, 중앙에는 마차 다섯대가 일렬로 늘어서서 움직일수 있는 길도 냈다.
"조각품은 자연과의 조화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물이 많아야 이 조각품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죠."
베르사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조각사가 그렇다는데 토를 달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평소 조각술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대다수 였으니 시키는 일만 묵묵히 했다.
"뭐, 그의 말에 일리가 있긴 해."
"조각술 스킬이 적어도 고급은 된 사람의 말인데..... 맞겠지, 뭐."
의심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조각사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열정 정도로 알아서 스스로 넘어갔다.
실제로 조각품의 수준이 높을수록 그들이 받을수 있는 보상도 클 테니까.
베르사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조각사가 만드는 작품이라기에 믿고 모여든 유저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반응에 위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똑똑한 놈들을 속이기가 더 쉽다니까."
머리는 좋아도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이들!
그들을 부려 가면서 아낌없이 땅을 파고 길을 냈다. 그러면서 부차적으로 해자와 운하를 설치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수 있게 되었다.
이제 모라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좁아진 길을 통과하거나, 호수를 수영으로 건너야 했다.
방어선을 좁힐수 있을 뿐더러, 헤엄을 치는 동안에는 화살과 마법 공격에 무방비!
평소에는 운하로 쓰면서 놀잇배들을 띄워 관광자원으로 개발도 가능하다.
벌써부터 제피가 부업을 위해 계획까지 짰다.
"물고기들을 잡아와서 여기에 풀어야지. 그리고 낚시터를 만들면 잘 될거야."
모라타 마을 바로 옆의 낚시터라면 잘 될수 밖에 없다.
낚시에 관심이 없던 학생, 일반인 들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이끌어 낼수 있으리라.
위드는 무려 10킬로가 넘는 지역의 땅을 파내려고 했지만, 사분의 일을 파헤치고 나서 그만두었다.
노가다에는 한계가 없다. 인부들도 충분했지만, 손해가 너무 크다는 판단이었다.
"이 작업에 사람들이 심하게 몰리고 있어. 모라타의 경제 활동을 위해서도 그만둬야겠군."
사람들이 사냥을 안하다 보니 원활한 세금 징수에 차질이 있을 것 같아, 호수의 크기는 이쯤에서 그쳤다.
이제는 중앙부에 본격적인 호수 공원, 제대로 된 조각상을 만들 차례!
벽돌들도 충분하게 쌓아 놔서 재료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위드는 자신있게 조각칼을 쥐고 나섰지만, 정작 힘겨운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 나를 조각해 줘.
- 제발.
- 어서 나를 표현해 봐라. 네가 조각사라면 그 하찮은 재주를 발휘해. 크하하하하핫!
- 우리를 외면하는 이유가 뭐지? 너까지 외면하면 우리는 영원히 세상에 나설수가 없게 될거야.
- 왜 프레야는 조각하면서 우리는....
영문도 알수 없는 내용의 속삭임들이 귀를 간질였다.
"대체 뭘 조각해 달란 건지 얘기를 하라니까!"
참다 못한 위드가 버럭 고함을 치니, 근처에 있던 유저들이 돌아봤다.
"왜 저러는 거야?"
"성질 참 안 좋네."
"냅 둬. 예술가들이 다 저런 식이지."
"뭔가를 창조하기 위한 조각사의 고뇌일거야."
다행히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넘어가 줬다.
당사자인 위드는 정말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 나를 조각해라, 나를!
- 조각해 주지 않을 거야? 너에게는 굉장한 영광이 될 텐데.....
- 무지한 조각사여, 우리를 구원해 줘.
무엇을 조각해야 하는지도 말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조각해 달라고 떼만 쓰고 있다.
수백번이나 저주가 걸리는데, 보호 스킬을 쓰면 목숨이 위험한 건 아니었다. 나중에 성직자들에게 저주 해제를 받으면 되었지만, 정상적으로 조각술을 펼칠수 없는 고통은 컸다.
남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것이, 오로지 위드에게만 들리는 소리인 것이다.
'분명 조각술의 비기 아니면 무슨 퀘스트 인 것 같기는 한데.'
남다른 눈치를 갖고 있는 위드였지만 도무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토둠에서부터 들려오던 목소리, 조각술 스킬이 고급 5단계가 되었을 때부터였으니 무언가 상관관계가 있으리라 짐작은 된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수 없다.
여신상을 만드는 도중에 차분히 시간을 들여서 남자와 여자의 조각상을 만들어 보았다.
- 아니야, 이건 아니야.
- 어떻게 우리를 이따위 초라한 몰골로.....
- 대단히 재능없는 조각사였군.
정체를 알수 없는 목소리들은 분노를 드러내거나 실망을 할 뿐이었다.
위드는 빨리 이 수수께끼를 해결해야 한다고 느꼈다.
'조각술을 펼칠 때마다 저주에 걸린다면 오랫동안 집중하기가 어렵다.'
사냥을 할 때에도, 쉬는 시간동안 조각술로 사소한 조각물이라도 만들어 왔다.
윈치 않은 직업으로 조각사가 되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많은 시간을 들여서 조각품을 만든다고 할수 있다.
걸작, 명작, 대작 조각품도 만들었지만, 수많은 평범한 조각상들이 쌓아온 숙련도가 밑바탕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 크커커커커. 미련한 놈.
- 영광을 알지 못하는 조각사가 우리를 조각하기란 너무 무리겠지.
저주에 걸린 위드의 고뇌는 나날이 깊어만 갔다.
그러는 사이에도 만들고자 하는 프레야 여신상은, 힘겹게 진행은 되고 있었다.
위드는 스톤 스킨으로 피부를 돌처럼 딱딱하게 만들어 이겨나면서 조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따닥!
결국 저주로 인해 체력이 감소하며 정이 엇나가, 만들고 있던 여신상에 흠집을 내 버리고 말았다.
'큰일이다.'
위드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여신상이 실패한다면, 퀘스트를 망치게 된다.
조각사로서의 명성 하락은 물론이고 프레야 교단과의 친밀도, 아울러 작업에 동참한 많은 유저들의 원성까지 사게 될 것이다.
이만저만 곤란한 일이 아니었지만, 위드의 실수는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통증!
체력이 저하되고, 저주로 인해 몸이 얼어붙을 때마다 연거푸 자잘한 실수들이 일어났다.
'대작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실패만 하지 마라.'
위드는 그럴수록 조각품에 더 집중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모라타 근방에 검은 먹구름이 끼었다.
해가 뜨지 않는 밤이나 어두운 곳에서는 몬스터들의 힘이 강화되니, 불길한 조짐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거지?"
"몰라. 뭔가 일어나려고 하는 것 같아."
눈치 빠른 유저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졌다.
"이 땅은 우리의 영역."
"인간들이 믿는 존재가 침범할 곳이 아니다."
가슴에 털이 수북하게 난 야수몬스터들, 마법 사용도 가능한 고블린, 달이 뜨면 변신하는 늑대 인간들, 동굴 등에 숨어사는 도둑 집단들이나 약탈자들이 구름처럼 모라타로 몰려왔다.
북부의 몬스터들이 많이 늘었다는데,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적어도 수십만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모라타를 침공한 것이다.
"몬스터 군단이다."
"우리 마을을 목표로 하고 있어."
성벽에 올라 있는 사람들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공성전을 구경해 본적은 몇번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방송채널에서 틀어주는 것을 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그 당사자가 되어서, 성벽 너머로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몰려오는 것을 보니 기가 질렸다.
"모라타의 치안 병력이 이 마을을 지킬수 있을까?"
"틀렸어. 군대도 없는 마을이 무슨."
프레야의 성기사단과 사제단이 있다고는 하나, 감당하기에는 저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보였다.
"저런 몬스터들이 갑자기 왜 이곳으로 쳐들어 온 거지? 관계가 나쁜 종족들도 같이 온 것을 보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텐데...."
"여신상! 여신상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별 걱정 없이 여신상 제작에 참여한 유저들은 비로소 의뢰의 위험도를 알아차렸다.
"이게 진짜 위험한 퀘스트였구나."
겁이 덜컥 났지만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다. 중간에 포기하기에는 그동안의 노력이 아깝고, 피하려고 해도 피할 곳이 없다.
페일을 포함한 궁수들이 성벽에 달라붙었다.
"꼭 살아남아요."
페일은 연인인 메이런의 손을 잡아 주었다.
"네. 페일 님도요."
로뮤나는 마법 공격을 위해 궁수들의 근처에 머물렀다. 이리엔은 전투에 참가는 유저들에게 축복을 걸어주느라 바빴다.
수르카는 성문 근처에서 요격부대에 포함됐다.
프레야 교단의 싸움 그리고 모라타 마을을 지키기 위한 유저들의 궐기!
"몬스터 들 따위에게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싸웁시다! 싸워서 승리를 쟁취합시다!"
"북부의 개척 마을! 이곳마저 몬스터들에 의해 함락된다면 우리는 북부를 잃고 다시금 중앙대륙까지 밀려나야 될 것입니다."
기사들이 말을 탄 채로 고함을 치며 독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몬스터 대군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들이 노리는 곳은 취약한 모라타의 성벽이 아닌 여신상이었다.
풍덩. 풍덩.
몬스터들이 여신상을 부수기 위하여 호수로 뛰어들었다.
조경용으로, 흙을 팔아먹기 위하여 넓게 파 놓은 호수.
그 안에 뛰어들어서 헤엄을 쳐서 건너려고 했다.
"어푸, 어푸!"
"꼬르르륵."
인간보다 몸이 무거운 몬스터들은 호수를 건너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몬스터들이 삼분의 일 정도를 지났을 무렵이었다. 궁수들이 전진 배치되어 마음껏 화살을 쏘았다ㅏ.
"목표물들은 느리다. 그리고 물속에 있다."
"쏴라!"
자욱하게 뒤덮은 화살 공격.
마법 부대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마법사들의 공격력은 직접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사들의 5~6배. 광역 마법을 사용할 경우에는 30배 이상도 차이가 난다. 물론 높은 스킬의 마법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지옥의 밑바닥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고통의 불길. 헬 플레임!"
물 위로 빠져나온 몬스터들의 머리 위를 불길이 뒤덮었다.
호수의 물에 있는 몬스터들은 반대편 마을에 있는 인간들을 공격할 길이 없지만, 이쪽은 마음껏 마법을 펼칠수 있는 것이다.
마법사들은 명상과 공격 마법을 반복하면서 그 위력을 과시했다.
근접형 전투 캐릭터들만 할 일이 없었다.
"젠장."
"우리도 물 속에 뛰어들까?"
호수 속에서의 수중전!
몬스터들 중에는 수중에서도 제법 싸울 줄 아는 눈도마뱀 들이 있었다.
갑옷이 무거운 기사나 전사들로서는 무리.
결국 그들은 익숙하지 않은 활을 들었다.
"다 쏴 버리자. 어떤 놈이든 맞겠지."
호수를 목표로 화살들을 날렸다.
몬스터들은 다가오는 족족 몰살당했고, 화살 더미와 마법들이 호수에 작렬하면서 엄청나게 화려한 효과를 더했다.
"이거 신 나네."
"재밌다."
이렇게 신 나는 경험을 해 보는 일도 많지 않았던 것.
몬스터들의 일부가 여신상 주변에 상륙했지만, 기사들이 철통처럼 호위를 하고 있어서 삽시간에 격퇴되었다.
몬스터 대군은 많은 희생을 남기고 물러갔다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재차 침략하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에 위드가 어렵게 만드는 조각품도 점점 높이를 더해 가서 엉덩이와 허리가 만들어지고, 이제 가슴과 어께부위도 다 만들어 가는 중이었다.
형태를 대충 만든 후부터는 세밀한 조각의 영역이었다.
"달빛 조각술!"
은은한 빛을 담아 조각을 한다.
조각술이 고급 5레벨에 이른 후부터는 눈을 뜨고도 조각을 할수 있을 정도로 빛이 약해졌다.
점점 형태가 갖추어지고 있는 여신상의 곡선은 부드러워지고 유려함은 더해졌다.
몬스터들의 침공으로 인하여 시간을 끌 수 없으니, 위드는 한밤중에도 조각을 멈추지 않았다.
밧줄에 매달려서 조각을 할 때면, 완성되어 가는 여신상의 주변에 빛무리가 가득했다. 지상의 달빛과 별빛을 모아서 조각품에 부여하는 것처럼 몽환적인 광경이었다.
"조각술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정말 낭만적이야."
남자와 여자, 커플 유저들은 구경하기 좋은 자리에 앉아서 위드가 펼치는 조각술을 구경했다.
여신상은 왼손에 돈 봉투를 들고 있었으며, 오른손은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횃불을 들고 있는 여신상!
자유의 프레야 여신상이었다.
"우와! 대단하다."
여신상의 형태가 점점 구체화 될수록 참여한 이들도, 구경하던 이들도 입을 쩌억 벌렸다.
높이가 160미터에 이르는 여신상이 탄생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여신상은 머리에 큼지막한 보석의 형태가 새겨진 왕관을 썼고, 몸에는 모피의 형상이 있었다. 치장으로 고급 시계나 보석 반지, 목걸이, 귀걸이를 조각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그야말로 부유함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데, 위드는 물건들마다 브랜드까지 넣었다.
'오르골 광장 상인 연합회.'
'수요 상인회.'
'상인 마판.'
모라타 뿐만이 아니라, 베르사 대륙 전체에서 활약하는 상인 협회들에서 광고료를 받고 이름을 넣어준 것이다.
여기서 받은 광고 수익만 하더라도 프레야 교단의 의뢰 비용인 다이아몬드 값을 훌쩍 넘을 정도였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저주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고 해도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
조각술에서 다시 하나의 돈벌이 방법을 찾은 위드!
여신상에 양말과 구두까지도 신겨서 악착같이 돈을 챙겼다.
그렇게 마지막에 완성된 여신상의 얼굴은 현실에서의 화령의 실제 얼굴로 했다.
서구적인 얼굴에, 고급스러운 느낌이 잘 맞아 미리 허락을 받고 만든 것이다.
위드가 그녀의 얼굴을 조각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화령의 얼굴은 잘 익은 사과빛이 되었다.
"위드 님도 참...."
위드가 참으로 둔감한 사내라고 여겼다. 먹고사느라 바빠서 연애 감정 따위는 사치라고 여겼고, 고민거리나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도 않다 보니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웠다. 이벤트나 로맨스 따위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한 남자였다.
'전부 착각이었구나.'
화령은 그날 한숨도 못잤다.
모라타에 있는 거대 여신상. 엄청난 사람들을 동원해서 조각사을 만드는 이유가 바로 그녀의 얼굴을 조각하기 위함이었다니!
'지상 최고의 이벤트잖아요.'
일의 선후 관계는 생략된 것이었지만 화령에게는 매우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프레야 교단의 여신상이 만들어 졌다.
띠링!

- 프레야 여신상 완료
미의 여신 프레야 여신 프레야 교단의 의뢰로 모라타에 세워진 조각상은 두터운 신앙의 표본이 될 것이며, 이 지방을 더욱 비옥하게 만들 것임에 틀림이 없다.
프레야 교단에서는 여신상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순례자들을 보내올 것이다.
여신상의 효과 : 주변 일대의 농작물 수확량 45% 증가.
상업 발달 속도 3% 가속.
산업 발달 속도 2% 가속.
가뭄과 홍수, 돌풍의 피해 경감.
주민들의 신앙심 증가 속도가 2배가 됨.
주민들의 행복도 증가.
주민들이 자진 납부하는 세금이 12% 늘어남.
모라타 지방에서 프레야 교단의 성기사들과 사제들의 신성력이 30% 향상.


6. 딸의 조각품

이현은 다크 게이머 연합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다행히 여신상의 조각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명예의 전당에도 관련 동영상들이 올라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모양 이지만, 동영상을 보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매일 바뀌는 아이템의 시세조차도 확인하지 않고 정보 게시판부터 들어갔다.
"이대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미지의 존재들의 생떼!
귀가 간지러울 뿐 아니라, 집중력도 저하시킨다. 조각술을 펼칠 때 저주 뿐만 아니라 체력의 회복 속도마저 느려지는 것을 발견하고는 더 기다릴수 없었다.
"조각술에 그 비밀이 숨어 있을 거야."
문제는 알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었다. 그리하여 정보들을 찾기 위해 다크 게이머 연합에 온 것이다.
이현의 정보 공개 등급은 어느새 'B'로 조정되어, 더 많은 자료들을 볼수 있었다.
- 귀금속 시세 변동 예정 자료.
- 우토 왕국 가말 마을의 철광석 시세 폭락 예정임.
상인들의 정보들부터 떴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는 정말 많은 직업들이 있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냥꾼이나 전사를 해서는 큰 돈을 벌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본인이 전투가 적성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리고 매번 홀로 고독하게 던전에서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비전투 계열 직업을 택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상인은 다크게이머들의 상당수가 택하는 직업이었다.
공예, 세공, 천 짜기 등의 직업 스킬을 보조로 키운다면 상당히 짭짤한 직업이 될 수도 있다. 재료들을 모아서 스킬을 활용해 상점에 고스란히 팔수 있기 때문이다.
유저들로부터 구매한 잡템을 팔아도 되지만, 그런 식으로 자본을 모아 가면서 대규모로 시세 차익을 이용한 거래를 한다.
상인이야말로 자본금에 따라서 일확천금을 벌수도 있고, 상회를 조직하여 용병들을 고용하면 나름대로 무력도 갖출수 있다. 그때에는 용병 길드나 청부 길드 등의 결성까지도 가능하였으니 다크 게이머들중에는 상인도 꽤 많았다.
상인이야말로 가장 정보 교류가 빈번하고, 다크 게이머들 가운데 인맥도 넓은 직업이다.
- 조르빈 백작이 용병 모집. 보수 후한 편. 위험도 높음.
- 케말 산맥 몬스터 준동. 던전 발견 가능성 매우 높음. 모험가 우튼. 지원바람.
- 메다 왕국의 수도에서 NPC 시곤이 급하게 레벨 300대 레어 급 이상 방패 찾음. 퀘스트 용도로 보임.
"이런 것들은 아니야."
이현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정보들의 더 아래 내용들을 살폈다.
- 창술의 비전 기술. 토르 왕국의 창술가 트리안이 전수해 줌. 레벨 250에, 스킬 레벨 중급 이상의 창술가들만이 가 볼것.
- 회계 스킬을 키워주는 방법. 열두 가지 이상의 보석들을 분류하여 보석 감정 스킬의 숙련도를 5% 올림. 그 후에 보석들을 자작 이상의 귀족 NPC에게 시세의 15% 이상으로 팔면 스킬 숙련도를 매우 많이 얻을수 있음. 보석 거래자로서 명성도 얻음.
- 검사의 특징 있는 무기, 샤벨. 매우 폭이 짧은 무기로......
여러 직업들의 정보가 올라와 있는 게 보였고, 조각사에 대한정보도 약간은 등록되어 있었다.
- 조각술과 손재주의 관계에 대한 고찰.
- 손재주의 상승 작용에 대한 고찰.
- 베르사 대륙에 분포한 조각품들의 특성과 효과.
역시 기초적인 정보들 뿐이었다. 이현이 찾는 조각술과 관련된 미지의 존재들에 대한 정보는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다크 게이머 연합에 조각술 스킬에 대한 정보가 있었더라면 오히려 실망을 금치 못했으리라.
"그건 나보다 뛰어난 조각사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
안도감을 느끼는 한변, 이현은 더 많은 정보들을 검색했다.
비록 직접 관련된 정보는 없다고 하더라도 단서를 찾는데 도움되는 정보들.
- 각 왕국별 대장장이 기술 격차.
- 해결되지 않은 장인 퀘스트들.
- 유랑 NPC들의 특성.
- 전설의 대장장이 왕국.
- 예술의 발원지.
이현은 정보들을 세심하게 머릿속에 저장했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 대략적인 정보들을 입수하고 나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그 다음에는 도서관이든 조각사 길드든, 어디든 쫓아다니면서 미지의 존재들이 조각해 달라고 하는 이유를 알아내야만 했다.
어쩌면 이현만이 해결할수 있을지도 모를 존재.
조각술의 끊어진 흔적을 이어야만 한다.
"다시 로열로드에 접속해야 겠군."
하지만 그 전에 쪽지함을 확인했다. 지난번에 파스크란의 창을 찾던 사람에게 쪽지를 보낸적이 있으니까.

보낸 이 : 하우프만
제목 : 파스크란의 창을 가지고 계신가요?

답장이 와 있었다.
"제법 빨리 보냈군."
이현은 제목을 클릭해 보았다.

가지고 계시면 제발 저에게 팔아 주세요.
돈은 달라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지금 가진 돈이 대략 1,500만 원 정도 됩니다.
파실 의향만 있다면 그 이상도 충분히 협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매우 급하기 때문에 빠른 답장 부탁드립니다.

"커헉! 1,500만 원!"
이현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뛰었다.
30억 9천만 원이나 되는 거금에 계정을 판 경험이 있다. 그때는 오히려 너무 비싼 가격에 팔려서 현실성이 없었다. 금세 다시 빼앗기기도 했지만.
하지만 1,500만 원은 현실이다.
빳빳한 백만원짜리 지폐 무더기가 무려 열 다섯 뭉치나 된다.
"이 돈을 저축해 놓으면, 금리 7%짜리 상품에 넣는다면 매년 백만원이 넘는 이자가..... 이런 대박을 놓치다니!"
이현은 너무나도 슬펐다.
어른들은 흔히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이현도 그 말에는 적극 공감했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대략 98%쯤 되지. 나머지 2%는 인정이나 배려, 친구, 약속, 이런 걸거야.'
200원 더 비싼 소금을 샀던 아픈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매일 반성하는 이현이었다. 그런데 1,500만 원이다 되는 돈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니!
이현은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고 내 돈! 아, 안 돼! 1,500만 원!"

프레야 여신상은 금세 빛의 탑과 함께 모라타의 2대 명물로 불렸다.
"이게 프레야 여신상이구나."
"대륙 전체를 뒤져봐도 이런 조각상은 흔치 않을걸. 각 교단에서 세운 조각물들은 있지만, 유저가 만든 것으로는 최초일 거야."
"성직자들이 받는 혜택이 상당하다더군."
"빛의 탑으로 인해서 전투 계열 직업들도 모라타 근처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고 들었어."
"다른 곳에 더 좋은 사냥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빛의 탑의 효과가 있으니 굳이 더 멀리 가려고 하지 않지. 가는 시간 동안 시간의 소모도 있고 말이야."
"그럼. 효율로만 따진다면 모라타 근처에서 사냥을 하는 편이 제일 낫지. 같이 파티할 동료들도 금방 구할수 있잖아."
유저들은 프레야 여신상을 올려다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모라타로 오면서 완전히 낙후된 지역을 생각했다. 그런데 선술집이나 대장간을 비롯해서, 꼭 필요한 건물들은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상인과 장인들도 최소한의 공급 역할을 해준다.
여신상의 아름다움 또한 발군이었다.
여신상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는 건축가 파보가 만든 여신의 계단이 있다.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여신상을 더 가까운 곳에서 관찰할수 있었다.
물론 관람료를 내야 했지만, 관광객들은 줄을 이었다.
높은 계단 위에서 경치를 보고, 이를 따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갈무리해서 기념으로 가지기 위함이었다.
"빛의 탑도 그렇고 위드라는 조각사,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것 같네."
"조각술 만이 아니라 다른 스킬들도 상당한 수준까지 올렸다고 하니, 그쪽 분야에서는 가장 부각되는 존재라고 할수 있지. 명문 길드에서도 가입 제의가 끊이지 않을걸."
"그래도 이제 힘들지 않을까? 다른 유저들도 조각술을 익히게 될 테니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다른 유저들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알고 봤더니 굉장한 노가다 직업이래. 누가 위드만큼 노가다를 할수 있겠어."
"그건 그래."
"조각사라고 해도 한계는 있으니까. 어떤 직업이든 마찬가지지만 말이야."
워리어들은 거칠고 끈질기지만, 최전방에서 싸우는 탓에 자주 죽는다.
기사들은 명예를 잃어버리면 약해진다.
궁수들은 근접한 적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을 보인다.
마법사들은 뛰어난 공격력을 가졌지만, 방어력이 형편없다. 스쳐도 죽는다.
상인들은 권력과 돈은 있어도 스스로를 지킬 힘이 모자라다.
용병들은 어떤 조건에서도 생존 능력이 높지만, 갈수록 위험한 청부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장비를 맞추다 보면 금세 가난해 진다.
모험가들은 모험을 즐겨야만 한다. 미궁에서 열흘쯤 헤메고 나서도 길을 찾으려고 드는 탐구 정신이 필요하다. 성공하면 명예와 돈을 얻지만, 아무것도 없는 던전에서 고생만 하고 끝나는 허탈한 경우도 많다.
그 외에 다른 직업들도 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조각사의 경우에는 엄청난 조각물들을 만들수 있다.
한 지역을 발전시킬수도 있는 불가사의, 명작, 대작 조각품들!
분명 엄청난 효과를 가지고는 있지만 한계도 있다.
보통의 노력으로는 조각품들을 찍어내듯이 대작들을 만들지 못한다. 프레야 여신상도 다른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만들기 위해 족히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으리라.
작품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들을 버리고 매진해야 한다. 도중에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직업이었다.

위드가 여신상으로 다가갔다.
다시 접속했을 때에는 한밤중이라서, 마을 너머 보이는 빛의 탑이 각 경계면들을 통해 중앙의 탑으로 달빛을 모아주었다. 수많은 빛의 광선들이 하늘로 퍼지면서 빛이 춤을 추고 있었다.
빛의 군무.
모라타의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보이는 시간이다.
밤마다 퍼지는 빛들과, 점차 발전해 가는 모라타 마을의 변화들!
여신상도 달빛조각술로 완성되어서, 밤에도 빛을 뿜어내고 있다. 달빛을 받으면 더 환한 빛을 내면서 주위를 비추는 것이다.
빛의 탑과 여신상으로 인하여 모라타의 경치는 쓸쓸하지 않았다.
위드가 보기에도 둘은 딱 어울렸다.
"나이트 클럽 같군."
조명 아래에서 횃불을 들고 춤추는 여자!
위드의 감수성이 아니라면 보통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지금은 해야할 일이 있었다.
위드는 구경하는 무리를 헤치고 여신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뭐야."
"여기 줄 서서 구경하는 거 안보여?"
험악하게 항의 하는 관광객도 있었지만, 위드인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여신상을 직접 만든 조각가이기도 했고, 모라타의 영주였으므로.
그렇게 여신상의 발치 아래에 있는 제단까지 걸어갔다.
"뭘 하는 거지?"
"몰라. 자기 작품을 감상하려는 걸까?"
여신상 주변에 있던 많은 구경꾼들이 위드의 행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위드는 제단에 잘 익은 사과 1개를 올렸다.
프레야 여신에게 바치는 제물!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프레야 여신에게 모라타의 영주가 기원을 올립니다."
계절이 한 번씩 바뀔때마다 할수 있는 기원!
여신상이 수백가지 상서로운 빛무리에 횝싸였다.
위드가 조각술을 펼칠 때 보여주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빛무리.

- 여신의 치료.
몸의 모든 나쁜 기운들이 정화됩니다.
생명력이 최대치로 회복됩니다.
마나가 최대치로 회복됩니다.
모든 신체적인 능력이 일주일간 상승합니다.
행운이 일주일간 기록적인 수준으로 오릅니다.
생산과 지배에 관여하는 능력이 일시적으로 향상됩니다.
신앙심이 10 오릅니다.

모든 나쁜 상태를 원상태로 돌리는 여신의 치료!
기원을 바라면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가적으로 나타난 효과였다.
위드도 미리 알았더라면 친한 사람들을 이곳에 데려왔겠지만, 기원을 해 봤던 사람이 아직 1명도 없다.
기원은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고, 상징물이 있는 지역의 지배자만 계절에 따라 단 한번 할수 있다. 다른 종교적인 상징물들이 있는 장소는 수도나 자유도시라서, 명문 길드의 수장이라고 해도 할수 없었다. 기원이 있다는 사실만 성직자나 사제들을 통해서 들었을 뿐.
위드가 최초였다.
"무슨일이 벌어지는 거야?"
"더 가까이 가보자."
유저들이 여신상으로 접근을 하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밀어내서 위드가 있는 제단으로 다가갈수 없었다.
- 모라타의 주인이여, 나에게 바라는 것을 말하라.
여신상의 뒤로, 빛으로 이루어진 환영이 생겨났다.
프레야 여신의 재림!
위드는 고개를 올려서 그 환영을 보았다.
'엄청난 미모를 가지고 있겠지.'
풍요와 아름다움을 주관하는 프레야 여신이다. 남자들의 눈을 멀게 만들 정도의 미모를 가지고 있으리라.
그러나 위드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얼굴형을 볼수는 없었다. 다만 예상과 다르게 조금 통통한 인상이었다.
위드는 자신이 바라는 소망을 얘기했다.
"조각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위드가 바라는 것은 풍년에 대한 기원이나 광산의 혜택, 상업의 더 빠른 발전이 아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이루고 싶었지만, 당장 다급한 것은 조각술 이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들을 조각하는 법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인근은 온통 유저들로 인해 소란스러웠고, 뒤늦게 프레야 여신이 나타난 것을 알게 됨으로써 모라타 마을에서도 유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저기요!"
"잠깐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욧!"
브레야 여신이 대답하는 목소리는 위드에게만 들렸다.
- 그들은... 태초부터 있어 왔지만 형태를 갖추지 못한 존재들. 조각술을 사랑하는 자여, 그대가 가야 할 길은 작은 이들의 왕국, 고집세고 섬세한 그들이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는 장소에 길이 있을 것이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 졌다.
여신상으로부터 일어났던 신성한 빛들이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 빛이 사라졌을 때, 프레야 여신은 더나고 없었다.
위드도 어느새 사람들의 틈에 섞여서 그 자리를 피했다.

'키 작은 이들의 왕국이라, 자부심을 느끼는 장소.'
위드가 가야할 목적지가 생겼다.
하지만 그 전에 마을 장로부터 만나보고 떠나려고 했다.
모라타의 흑색 거성!
영주성이 되어 어느정도 보수가 이루어 진 곳으로 다가갔다.
어느덧 새벽이 지나 날이 환하게 밝아 왔다.
유저들로 인해서 늘 붐비는 장소였지만, 지금은 여신상에서의 이변 때문인지 사람들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위드를 본 주민 자경대원들이 알은체를 했다.
"영주님, 성에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그렇다."
"성에 영주님의 귀환을 알리겠습니다."
자경 대원들은 밧줄을 잡아당겨 위에 매달려 있는 종을 치려고 했다.
"되었다. 괜히 바쁘게 일하고 있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하오나 영주님께서 돌아오셨는데....."
"허허허, 괜찮대도."
위드는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쥐꼬리만한 권력에서 느끼는 행복함!
이래서 권력은 일단 잡으면 놓기 싫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을 잔치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응?"
"소나 돼지라도 1마리 잡고, 푸짐하게 먹어야 되는게 아닌지."
"....."
위드는 할 말을 잃었다.
모라타의 교육수준은 실로 한심한 상태!
정식 병사도 아닌 자경대원에게 규율이나 충성심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위드에 대한 친밀도는 최상이지만, 그래서 이런 정도의 반응을 보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 수준이 낮으면 기술과 상업의 발달도 조금은 느려지고, 주민들 중에서 기사나 마법다 등이 탄생하기 어렵다. 종교에 대한 믿음만큼은 빠르게 전파되지만, 대신에 치안의 악화도 순식간이다.
다른 어떤 마을 중에는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종이 도적떼나 산적이라고도 하니 말 다한 셈이다.
마을이나 성, 대도시 등을 발전시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크흠! 내 나중에 신경쓰도록 하겠다. 돼지... 는 좀 무리고, 토끼라도 잡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영주님."
위드는 헛기침과 함께 영주성에 들어가서 둘러보았다.
과거 토리도가 이끄는 진혈의 뱀파이어들이 차지하고 있을 때 들어와 봤던 장소다.
부서진 기구들이나 주민들의 석상, 거미줄 등이 쳐 있던 장소가 깔끔하게 치워졌다.
"의뢰 받으러 왔습니다."
"여기 상단 등록하러 왔어요."
여신상의 소문을 듣지 못한 것인지, 영주성 안은 상인과 용병들로 북적였다.
모험가들은 자신들의 발견물을 보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초적인 보수가 마쳐진 다음에 주민들과 모험가들을 위한 장소들이 생겨났다. 마을 관리, 몬스터 토벌, 이주, 상단 등록, 의뢰, 세율 책정, 발견물 보고 등의 업무가 가능했다.
영주성의 유지비는 더 많아졌지만, 통치를 위해서는 필요했다.
모험가의 발견물만 하더라도, 보고가 될 때마다 주변 지역에 대한 정보력이 향상된다. 그리고 지역 장악도가 올라서, 인근 지역들에 대한 정치력 행사가 가능했다.
위드는 영주성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많은 유저들이 있었지만 2층은 아직 치워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1층에도 빈방들이 많았지만, 2층은 아예 폐쇠되어 있다. 영주의 집무실 정도만 대충 마련되어 있었다.
'성의 보수가 덜 된 모양이군.'
위드는 1층의 의뢰 접수창구로 발길을 돌렸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순서가 돌아왔다.
"영주님이 아니십니까?"
위드는 크게 헛기침을 했다.
"커험!"
"현재 남아 있는 의뢰들은 몬스터 토벌과 지금 막 떠나는 상단들의 호위 그리고 광산 개발을 위한 의뢰가 있습니다. 농작물 보호도 있긴 한데, 백작님께서 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접수창구에 있는 직원은 알아서 설설 기었다.
영주의 특권으로 모라타 성에서 진행하는 의뢰는 뭐든지 할수 있다.
상단의 의뢰는 먼 거리를 이동할 때 편하고 좋다. 마차를 타고 움직이면 훨씬 편하고, 번거로운 일도 줄어든다.
광산 개발은 광부들과 파티를 결성해야 했다.
그들을 보호하면서 갱도를 파 내려간다. 보석, 미스릴, 금, 은, 철, 구리 등의 광물을 발견하면 대박!
광산이 개발되면 적지만 이윤을 분배받을수도 있어서 대박을 꿈꾸는 이들이 참여하곤 했다.
농작물 보호는 멧돼지나 참새, 고라니 등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초보들이나 받는 퀘스트.
위드는 의뢰를 받는 대신에 접수창구의 직원에게 물었다.
"장로는 어디에 있지?"
"장로님은 프레야의 기사님들과 함께 성벽 밖 마을들을 순찰하고 있습니다."
"순찰?"
"예. 이주민들이 대규모로 발생해서요. 성벽 밖에 소규모 마을 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언제쯤 돌아오는데?"
"마침 오늘이 돌아온다고 한 날짜입니다. 여기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제가 음식을 좀 내오겠습니다."
위드는 하릴없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마음은 없었다.
모라타 성에서 내 놓는 음식도 결국은 그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셈이었으니, 다시 거리로 나왔다.

위드는 은밀하게 모라타의 새로 지어진 건물들을 방문했다.
술집!
"캬아! 좋다."
"북부에 오고나서 이렇게 끝내주는 술맛을 보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모라타에서는 술을 마음껏 마실수 있어서 좋군."
술꾼들, 관광객들이 많았다.
용병과 모험가들도 술집에서 간단한 요기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순박한 모라타의 시골 처녀들이 술과 안주들을 테이블까지 나르는게 보였다.
'훌륭해.'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집은 모라타가 발전하기에 필수적인 건물이었다.
시장이나 교역소, 여행 안내소만이 필요한 건물이 아니다. 술에 붙는 세금이 60% 정도라서, 술집에서 얻는 이윤과 세금의 수입이 엄청났다.
위드는 영주만의 명령어를 사용했다.
"술집 건물 관리창!"

- 모험가의 휴식처(술집)
모라타 광장에 인접해 있는 유일한 술집.
건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다.
넓은 내부 공간, 500개가 넘는 좌석에, 술과 안주들을 적당한 가격으로 이용할수 있음.
판매 상품 : 기본 안주류 일체.
과일을 발효시킨 술.
발효된 주류액을 끓여서 만든 술.
맥주.
고용인 : 주방장 제나, 미아 외 주민 10명.
유지, 관리 비용 : 600골드
매일 방문하는 손님 : 평균 7,200명.
최근 일주일간 순이익 : 2,642골드 43실버 56쿠퍼.

모라타에 있는 유일한 술집.
북부 전체를 뒤져 유일한 술집이라고 봐도 된다.
중앙 대륙의 항구 도시에서 주로 마시는 아콰비트, 럼주 등의 주류는 판매하지 않고 대중적인 발효주와 증류주, 맥주 정도 만을 판매했다. 그럼에도 독점 영업으로 인해 대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술집 내부에 좌석이 부족해 손님들이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할 정도였다.
이어 위드는 여관으로 향했다.
이곳도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다.
모라타의 마을 규모에는 가당치 않을 정도로 큰 여관, 객실의 숫자가 무려 300개나 되는 데도 방을 구하기 어려웠다.
덕분에 웃돈을 주고 방을 판매할 정도였다.
여관에서 잠을 자게 되면 피로가 완전히 회복되고, 신체적인 능력이 활성화 된다. 여관에서의 하룻밤 후에는 며칠간 피로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음식의 맛이 좋아지니 서로 여관을 이용하려고 했다.
여관에도 일주일의 순이익이 4,000골드가 넘게 나왔다.
음식도 판매하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
여관에서의 음식은 술집과는 달리 소화가 편하고, 포만감을 올려주는 것들이 많았다.
"나중에는 레스토랑도 차려야 겠군. 그러면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을 거야."
건물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영주의 즐거움을 알수 있을 것 같았다.
주민과 유저들이 이용하면서 영지를 발전시키고, 강대한 세력을 일구어 낸다.
모험과 퀘스트도 베르사 대륙의 흥미로운 요소라고 할수 있지만, 영주들은 더 특별한 만족감을 느꼈다.
베르사 대륙의 일부를 통치한다는 자부심!
마을과 성을 직접 경영하며 자신의 것 같은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위드는 그 다음으로 농가와 곡물 창고로 향했다.
모라타의 인근 지역에는 땅이 길게 개간되어 밀이 자라나는 중이었다. 곡물 창고에도 밀 포대들이 가득 쌓여있고, 농가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한다.
식량을 수확하면서 마을 내 식료품의 물가가 안정적으로 조절되고, 남는 식량은 상인들의 마차에 실려 북부의 다른 개척지 마을로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
프레야 교단 신앙소의 효과로 올해는 대풍년이었다.

- 곡물 창고
수확한 곡물을 저장할수 있는 창고.
밀과 보리가 비축되어 있다.
비축량 : 밀 32,000톤.
보리 19,000톤.

모라타의 농경지는 총 197,000 평!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농경지 확대 정책을 편 덕분이다.
얼음이 두껍게 덮여 있던 땅들이 녹으면서, 비옥한 토양이 만들어 졌다. 모라타의 주민들과 새로 유입된 방랑민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농경지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
"보리빵은 백만 개라도 금세 만들겠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모라타로 이주한 주민들이 지나치게 늘었다.
성벽으로 보호받는 모라타 마을의 영역과 주택 숫자는 5,400호!
현재 모라타의 총주민은 6만이 넘는다.
이 중, 마라타에 주민으로 등록한 유저는 100명이 안 되었다.
순수한 주민들로만 보면 많은 숫자였다. 그러나 원래부터 모라타에 살던 주민들을 제외한 53,000여 명은 모두 농부다.
밀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 밖에 지푸라기로 허름한 집을 지어서 살고 있다.
모라타 성벽 너머 광대한 개간 지역에 빈민촌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었다.
"주택 관리창."

- 모라타 마을 주택 분포도
모라타 성 : 1
목조 주택 : 960
부실한 초가집 : 12,953
초가집의 위생이 악화되면서 전염병이 창궐할 우려가 큼.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 오면 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얼어 죽게 될 것임.
모라타의 치안에 않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몬스터의 습격에 극도로 취약함.

몬스터들이 출현하면 프레야의 기사들이 부지런히 나가서 요격을 해 준 덕분에 초가집에 사는 주민들은 무사했다. 그러나 북부는 아직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기에. 그런 몬스터 무리가 대대적으로 진격이라도 한다면 취약하기 이를데 없다.
"지역 정보창!"
띠링!

- 모라타 지역
니플하임 제국에 소속되어 있던 지방.
과거에는 황후를 배출하였을 정도로 영화를 누리던 지역. 니플하임 제국이 몰락한 이후로 뱀파이어들의 지배를 받았다.
현재는 용병과 모험가들이 모여들고, 프레야 교단의 보호 아래에 주민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군사력 : 22 경제력 : 260
문화 : 570 기술력 : 190
종교 영향력 : 83
지역 정치 : 6 인근 지역에 대한 영향력 : 13%
구舊니플하임 제국의 영향력 : 2%(영향력은 군사, 경제, 문화, 기술, 종교, 인구, 의뢰 등의 분야와 관련이 깊음)
도시 발전도 : 97
위생 : 36 치안 : 72%
주민들은 최근 자주 발생하는 몬스터의 습격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그나마 프레야 여신상의 완성으로 위안을 얻고 있다.
상수도 시설과 주민들이 거주할 주택이 부족.
오래전에 벌어졌던 축제를 추억하는 주민들이 많다.
다수의 조각품들이 주민의 삶을 행복하게 해 주고 있다.
예술가들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지원은 마을의 품격을 높여주었다. 주민들은 다른 마을들보다 많은 예술품들에 대해 긍지를 가지게 되었으며 더욱 다양한 문화시설들을 바란다.
재봉 산업의 기술들이 과거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철을 다루는 기술은 초보적이며, 무기나 방어구를 제작하는 대장장이들이 매우 미숙함.
지역 신앙으로는 프레야를 믿고 있다. 주민들의 신앙은 굳건하여, 쉽게 변심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야 교단의 영향을 받아 적당한 향략과 풍요로움을 좋아하며, 근면한 특징을 보인다.
특산품 : 가죽과 천.
영토 전체 인구 :61,689.
매달 세금 수입 : 27,860골드.
마을 운영비 지출 내역 : 군사력 2%, 경제 발전 34%, 문화 투자 비용 12%, 의뢰 및 몬스터 토벌 15%, 마을 보수 22%, 프레야 교단에 헌금 15%.

다소의 문제는 있어도, 모라타는 과거와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문화 투자 비용? 이게 무슨 일이지? 난 이런곳에 투자를 한 적이 없는데.'
위드가 남쪽 마을 입구 주변에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잠길 무렵이었다. 큰 체격에, 수염이 더부룩하게 난 산적같은 남자가 다가왔다.
"혹시 직업이 조각사가 맞습니까?"
위드는 반사적으로 그의 전신을 훓어봤다.
미스릴 부츠!
반면에 가죽옷과 망토는 여행복으로 허름했고,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다.
'번잡함이 싫어서 다른 사람이 알아볼수 없도록 마을로 들어오면서 옷을 갈아입은 고레벨 유저다.'
부츠까지는 여간해서는 잘 안 살피기 때문에 안 갈아 신는 경우도 많다. 미스릴 부츠에 이동속도 옵션이 붙어 있다면 적어도 현금 기준으로 3백만 원이 넘는 고가의 아이템!
위드는 짧은 순간 눈치부터 살핀 후 신중하게 대답했다.
"맞습니다만."
마음속에 걸리는 게 몇 있으니 불안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선뜻 대답을 한 것은, 상대가 조각사냐고 물어왔기 때문이다. 직업이 조각사가 맞느냐고 물었다면, 조각과 관련된 용무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위드가 하루 이틀 눈칫밥을 먹고 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언제 바가지를 씌운 일이 있던가? 불량품을 조각해 준적이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일로 나를 찾아 왔지?'
꺼림칙해 하는 위드의 속내도 모른채 산적 같은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찾은 것 같군요. 모라타 마을 전체를 뒤졌습니다. 여신상을 조각하는 동영상을 명예의 전당에서 보고 알아본 것입니다.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조각사 위드 님이 맞으시다면, 조각품을 깎아 주셨으면 합니다."
위드가 미안한 듯 고개를 저었다.
"저를 찾아 주셔서 고맙지만 지금은 조각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상대의 수준이라면 몇 골드 정도는 뜯어낼수 있겠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조각술을 펼치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거절했다.
그러자 산적같은 사내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덥석 위드의 팔목을 붙잡으며 애원했다.
"꼭 부탁드립니다. 제 딸을 조각해 주십시오."
"따님요?"
위드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많은 사물을 대상으로 조각품을 펼쳤지만, 가족을 조각해 달라는 경우가 가장 어려웠다.
'너무 예쁘게 해도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실물보다 못생겼으면 난리가 나지.'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뻐한다지 않는가.
아이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 주거나, 예쁜 옷을 만들어 바가지를 씌우는 편이 편했다.
"예, 그렇습니다. 딸... 을 조각해 주십시오."
산적같은 남자에게서는 간절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위드는 조각을 해 주기로 했다. 이유는 몰라도 절박해 보이고, 또한 마을 장로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그러자 구경하던 유저들은 혀를 끌끌 찼다.
"저 아저씨 안됐군."
"저 조각사가 보통 돈을 밝히는게 아닌데."
"잘못하면 완전히 홀라당 벗겨 먹히겠어."
모라타에 있는 유저들 중에는 고수들도 많다. 그들도 위드처럼 부츠만 보고도 남자가 상당한 고레벨 유저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주야 알베론에게 해재시켜 달라고 하면 되겠지.'
위드가 마음을 굳히고 나서 말했다.
"그럼 따님을 이곳으로 데려오시지요."
그러자 남자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 합니다."
"그럼 그림이라도...."
"없습니다."
"그러시다면, 우선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위드는 넉넉하게 굵은 나무토막을 하나 꺼냈다. 설명을 들으면서 즉석에서 떠오르는 구체적인 형상대로 조각품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마을에서 수백번도 넘게 사람들의 조각품을 주문받고 깎아준 경험이 없다면 불가능한 시도!
너무 세밀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조각품의 특성상 대충 넘어갈수 있다.
'눈, 코, 입 만 잘 붙어 있어도 둔한 사람은 못 알아봐.'
소형목조 조각술의 비애라고도 할수 있다.
어차피 남자도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알려주지 못할테니 서로 조금씩은 양보를 하면 될 일.
'어려운 시도라고 바가지나 듬뿍 씌워 줘야겠군.'
그런데 산적은 생김새를 이야기 하는 대신에 설명을 했다.
"그 애의 엄마는 참 아름답습니다. 눈빛이 정말 맑고, 착한... 저에게는 너무도 과분한 아내이지요."
"....."
"그녀와 제가 결혼한지 5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좀 늦었지만 기다리던 임신도 했고, 출산 일자도 받아 놓았지요. 그런데......."
"그런데요?"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해 본 결과 그녀가 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수술을 해서 병은 고쳤지만 아이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때의 충격으로 그녀는 다시는 애를 가질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습니다."
"....."
"조각해 주십시오. 그때 그녀가 가졌을 아이를. 우리의 딸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행복했어야 할 제 딸의 모습을.... 조각해 달란 말압니다. 으허허허헝!"
남자는 목 놓아서 울었다.
거리의 한복판이라 근처에서 듣고 있던 유저을의 눈시울도 시큰해졌다.
"제, 제, 젠장!"
"난 사냥이나 가야겠다."
"망할 몬스터들. 다 죽여버릴거야."
사냥터로 가서 만만한 몬스터들에게 화풀이를 하려는 속셈이었다.
위드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있었다.
"제 조각품을.... 혼자 간직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내 되시는 분께도 보여드리려고 합니까?"
"보여 줄 겁니다."
"그분도 로열로드를...."
남자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조각사님의 명성을 듣고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희를... 너무 이상하게 보진 마십시오. 저희는 미친게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딸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을 한번이라도 보고, 작별의 인사라도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마음 편히 잊을수 있을 것 같기에.... 딸의 얼굴이라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겁니다. 이게 미련하고 멍청한 짓이라는 건 압니다. 알지만, 그래도...."
산적같은 남자가 다시 말했다.
"딸을 조각해 주시는 대가로 얼마를 드리면 됩니까? 원하시는 액수를 드릴테니, 제발 제 딸을 조각해 주십시오."
다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남자.
위드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지금은 조각품을 깎지 못할것 같습니다."
"돈, 돈이 부족해서 입니까? 다른사람들의 10배, 아니 20배라도 내갰습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도 준비가 덜 되어 있고, 나무토막은 따님을 조각하기에 적당한 재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위드는 얼음조각상을 만든 적이 있다. 얼음은, 날카롭고 예쁘지만 너무 차가웠다.
가슴까지 시리던 그 느낌.
그때 조각품의 재료가 조각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명을 잃은 나무토막은 따뜻함도 느낄수 없고 딱딱하게 굳어 있을 것입니다. 딱 한번만 보겠다고 하시지만, 가족입니다. 그런 가족을... 나무토막에 조각할수는 없습니다."
위드는 단호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차갑지 않고, 생명의 온기를 느낄수 있는... 굳어 있지 않은 재료. 두 분이 정말로 사랑하는 따님을 조각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저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언제 완성된다고 약속도 드리지 못합니다."
남자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상황이지만, 위드가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쯤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진심으로 남자와 그 아내가 낳았을 딸을 조각해 주기 위한 것이다.
"고맙습니다. 저는 리튼 왕국의 셀지움에서 아내와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름은 만돌입니다."
"제 이름은 위드입니다. 따님의 조각품이 완성되면 셀지움으로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오지 않으시더라도.... 원망하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조각품의 가격이 얼마지요?"
만돌은 살짝 긴장한 채로 물었다.
그러자 위드가 나직이 웃으며 답했다.
"1쿠퍼 입니다."


7. 악독한 모라타 영주.

북부의 알려지지 않은 던전 텐바인.
낫을 들고 설치는 유령 몬스터들을 돌파하며 전진하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함정 해체 완료!"
"30미터 전방의 몬스터 무리. 25개체 가량."
"성직자는 축복을. 진격 방어구 세트를 갖춘 전사들이 앞장선다."
피의 전사 데이몬드가 이끄는 대지의약탈자 길드.
한창 잘 나갈때에는 중앙 대륙에서 50위 권 내에 드는 세력을 가지기도 했다.
3개의 성을 점령하고, 고율의 세금을 책정했다.
유저들의 원성이 자자했지만, 압도적인 무력으로 짓눌렀다.
반항하는 자들은 처단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길드나 왕국 소속의 유저들이 대지의약탈자 길드의 땅으로 오면 닥치는 대로 살육을 벌였다.
"죽여 버려. 다시는 우리의 땅에 발붙일수 없도록!"
장비와 돈을 빼앗으면서 성장을 한, 이른바 무법자 길드였다.
무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했지만, 결국은 주변 길드의 연합 공격에 패망!
지금은 중앙 대륙을 떠나서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북부 대륙까지 흘러들어 온 것이다.
"뚫자. 이번에야말로 보스 몬스터 데스 로드를 잡아야 해."
데이몬드는 의욕이 솟구쳤다.
소유하고 있는 성이나 마을이 없다보니 편한 부분도 있었다. 다른 길드들과의 동맹관계유지, 길드원들의 성장에 개의치 않고 고직 자신들을 위한 사냥과 퀘스트에만 집중하는 게 그들의 방식!
대지의약탈자 길드가 한창 성장세에 있을 때의 권력, 노른자위 성과 마을 들을 차지하고 있던 시기의 영향력과는 비할수 없어도 나름대로 여전히 로열로드를 즐기고 있었다.
"수반, 시선을 집중시켜. 마번, 공격해!"
바바리안 워리어 수반이 양손 도끼를 매섭게 휘둘렀다.
몬스터들이 그에게 몰려들 때였다.
도둑 마반이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몬스터의 등에 독을 바른 단검을 휘둘렀다.
대지의약탈자는, 숫자는 다른 길드보다 많지 않지만 협력 관계가 굉장히 뛰어났다.
데이몬드가 이끄는 대지의약탈자 길드 전투원들은 던전 텐바인의 끝에 이르러서, 데스 로드까지 사냥했다.
그러고 나서 보상으로 얻은 하나의 문구.

모든 이들이 나를 두려워 하게 만들리라. 죽음의 길을 걷고 싶다면 인간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신전을 찾아라.

데이몬드는 머리를 싸매고 조사에 들어갔다.
"두려움을 만든다. 사라진 신전. 이게 대체 뭐지?"
약탈과 살인을 즐겼지만, 데이몬드의 눈치는 둔한 편이 아니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무척 중요한 듯한 이 문구를 허투루 넘길 리가 없다.
"이건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를 보더라도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군. 인간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라...."
수반도 흥미로운 기색이었다.
"독특하네. 어딜 가 보라거나 뭐를 처리해 달라는 구체적인 설명이 아니잖아."
"역시 그 사라진 신전을 찾아보는 편이 좋겠지. 아니면 더 많은 단서들을 모아야 돼."
데이몬드는 자신을 따르는 동료들과 함께 은밀하게 던전의 숨겨진 방들을 뒤져서 정보들을 찾았다. 다른 이들은 무심코 넘겨 버렸을지도 모르는 글귀들을 더 모으게 될 지도 모른다.

오오! 이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였다. 제국은 파멸하고, 베르사 대륙의 영광도 올해로써 끝날지도 모른다.

죽음의 손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겄도 없도다.

죽음의 교도와 추종자들이 갈수록 늘어 가리라.

인근의 마을 주민들로부터는 이상한 전설들을 들었다.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보다도 훨씬 할아버지 때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인데, 니플하임 제국의 초창기 시절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이 함부로 과거에 대해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해."
"니플하임 제국의 유적지에는 유난히 파괴된 성들의 흔적이 많아. 왜 그러한 흔적들이 많이 생겼을까? 몬스터의 침공 정도로는 요새나 성이 무너질 일은 없었을 텐데."
그렇게 점점 실마리를 찾아갔다.
어떤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에서 내려오던 책자를 보여 줬다.

죽음의 길을 이끄는자.
강대한 힘을 갖기 위한 인간들의 욕심과 탐욕은 어디까지 인가.
이루어져서는 안 될 주술, 펼쳐서는 안 될 마법, 전염병과 죽음, 몬스터들을 지배하는 금단의 사제들!
죽음의 길을 걷는 자의 행보에 따라 대륙 전체에 암흑이 드리워지리라.

제국력 xx년 xx일.
그들이 다가오고 있다.
성과 마을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가족을 데리고 도망쳤던 영주는 썩은 시체가 되어 돌아오고, 병사들은 알 수 없는 전염병에 의해 살점이 문드러지고 있다.

제국력 xx년 xx일.
식량이 떨어졌다.
200년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던 우물이 메말랐다.
쥐들이 들끓고 있다.

제국력 xx년 xx일.
드디어 그들이 모습으 드러냈다.
병사들은, 기사들은 성벽에서 싸우려고 했다.
전의는 없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최후의 발버둥이라도 치려고 했다.
그렇다. 내가 보기에는 발버둥이었다.
그들의 군대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성벽이 무너졌다.
그들의 신성마법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돌무더기에 깔린 병사와 기사들의 비명소리가 우리의 힘을 빼앗고 있다.

띠링!

- 죽음의 사제
피와 사신, 죽음으로 힘을 얻는 사제의 전설.
인간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신전을 찾아서 죽음의 사제의 비밀을 파헤쳐라.
탐욕스러운 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가장 큰 힘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지혜롭고 용기있는 자는 영광과 명예를 얻을수 있으리라.
탐욕에 사로잡혀 죽음의 사제들의 힘을잇는 길을 택한다면 인간과 모든 종족들로부터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리라.
사라진 신전의 지도는 죽음의 사제가 데리고 있던 몬스터들이 각기 나누어 가졌다.
난이도 : S
보상 : 죽음의 교단의 추종자들.
퀘스트 제한 : 명성이나 레벨에 대한 제한 없음.
다른 이들이 신전을 찾기 전에 먼저 발견해야 된다.

"난이도 S급!"
데이몬드는 탄성을 내질렀다.
실질적으로 난이도 B급 까지가 일반적인 퀘스트다.
난이도 A급 부터는 막대한 보상이나 힘이 주어지고, 베르사 대륙의 균형에 영향을 주는 의뢰였다.
따라서 얻기도 어려울 뿐더러, 길드의 사활을 걸고 해결해야 하는 것.
전신 위드가 최초로 불사의 군단 퀘스트를 해결하고 나서 여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길드 내의 정령술사 임페리얼도 감정적으로 고무되었다.
"난이도 S급의 퀘스트라니, 무조건 받아들입시다."
마녀 나르도는 신중했다.
"현재 우리의 전력으로 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요. 여긴 중앙 대륙이 아니잖아요."
중앙 대륙에서도 대지의약탈자 길드는 고립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전투가 벌어질 때면 협력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전리품을 좋아하는 싸움꾼들! 용병이나 군대의 도움도 받을수 있었다.
대지의약탈자 길드 단독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판단.
"그러니까 퀘스트를 더 받아들여야지. 데스로드같은 몬스터가 부하였다면, 그만큼 굉장한 퀘스트라는 뜻이잖아. 우리끼리만 해결한다면 엄청나게 큰 보상을 받을 거야."
"몇 마리의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될지 모르는 판에..... 본 드래곤 같은 몬스터라도 하나 있다면 우리는 전멸이에요."
"전멸? 전멸이 무서워?"
"그런건 아니지만...."
"모험을 즐기기로 했으니까, 더 이상 피하지 말자고."
동료들의 의견은 퀘스트를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성과 마을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도전과 싸움을 즐기는 순수 무투 계열 길드 답게 호전성을 버릴수 없었다.
데이몬드의 야망이 꿈틀거렸다.
'모든 것을 다 버리려고 했다.'
중앙 대륙에 있던 성을 빼앗기고, 수치심에 대지의약탈자 깃발도 공식적으로 걸수 없게 되었다. 베르사 대륙에 영향력을 가졌던 화렿나 시절은 영영 지난날의 추억으로만 남겨 두려고 했다.
'지금 나에게 기회가 온 것 같아.'
모든 것을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
죽음의 사제 퀘스트를 통하여 다시금 정점에 설수 있으리라.
데이몬드가 강하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는 죽음의 사제, 그의 힘을 잇고 싶다. 내 뜻을 거스르는 놈들은 쓸어버리고, 베르사 대륙을 내 손에 넣고 싶어!"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난 뒤에야 위드는 영주성에서 마을 장로를 만날수 있었다.
"늙은 저에게 이 많은 일을 맏기고 대체 어디로 놀러 가셨다가 이제야 오셨단 말입니까."
그런데 마을 장로는 위드를 보자 마자 푸념부터 하는 것이 었다.
"모라타에 사람들이 갑자기 밀려들어서.... 주민들은 늘어가고 있고 해야할 일은 산더미이고......"
그렇게 잔소리를 들어주었다.
위드만의 독보적인 처세술!
이럴 때는 괜히 변명을 늘어 놓을 필요가 없다.
'무슨 말이든 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
그렇게 한참 잔소리를 하고 난 뒤에야 마을 장로가 급히 말했다.
"모라타의 내정과 치안을 다스려야 합니다. 성도 어느정도 보수가 되었으니, 이제 영주님께서 직접 우리 모라타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주시지요. 현지 우리 모라타 지방의 자금은 39,845골드가 남아 있습니다."
띠링!

- 영주의 내정 모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영주성의 보수로 가능하게 된 내정 모드!
위드는 수락했다.
"하겠다."

- 화면이 영주의 내정 모드로 전환됩니다.

위드는 영주성의 비어있는 방에서 마을 장로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모라타 지방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하늘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처럼, 모라타가 보이는 것이다.

"음, 무엇부터 해야 될까."
위드는 묵묵히 모라타를 내려다 보았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 건물이나 성벽의 풍경까지도 또렷했다.
원하면 시점이 바뀌어서 가까이 내려갈수 도 있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가능했다.
영주에게만 가능한 내정모드!

- 군사력 : 22 경제력 : 260
문화 : 570 기술력 : 190
도시 발전도 : 97
위생 : 36 치안 : 72%
소유 자금 : 39,845골드.

메시지 창이 떠서 현재 모라타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건축, 상업, 군사, 세율변경 등이 현재 위드가 할수 있ㅇ는 명령어였다.
"우선 모라타에 부족한 건물들부터 지어야겠지."
위드는 일단 건축 가능한 건물들부터 검색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앞에 삼백가지도 넘는 건물의 이름과 형상이 떠올랐다.
영주성의 보수와, 주민들의 숫자에 따라 직접 지을수 있는 건물들의 종류가 늘어난 것.
위드는 우선 가장 위에 있는 화려한 궁전을 보고 설명을 읽었다.

- 영주의 궁
사치와 환락의 절정!
오직 영주를 위해서만 만들어진 궁전으로, 넓을수록 영주의 권위와 명예가 오른다.
병사와 주민들의 충성심이 감소하며, 소속된 왕국과의 마찰이 생길수 있음.
건축 비용 : 7만 골드.

모라타는 어떤 왕국에도 속해있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구舊니플하임 제국의 영역에 있지만, 제국이 몰락한 이후로는 각 마을들이 독자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므로 왕국과의 마찰은 신경 안써도 된다.
하지만 위드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것은 필요 없지.'
초기 발전 상태에 있는 마을에, 거창한 영주의 궁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양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돈이 아까워서 거리에 가로수 한 그루 못 심을 판국에 무슨 얼어 죽을 영주의 궁이란 말인가.
영주로서 검소한 생활을 하며 모범을 보이려는 의도 따위는 정말 추호도 없었다.

- 영주 전용 골프장
시녀들을 이끌고 쾌적 하게 골프를 즐길수 있다.
다른 영주들이나 귀족들에게 자랑할수 있음.
골프장을 위해서는 넓은 면적이 필요하며, 주민들의 반감이 증가한다.
건축 비용 : 최소 4만 골드.

"뭐 이런 것들만 있어."
위드는 영주 직속 편의 시설들은 대충 다 넘겼다. 꼭 필요한 건물들만을 우선해서 지을 참이었다.

모험가의 휴식처.
모라타의 유일한 술집인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페일과 메이런도 마판 등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음식과 술을 먹기 위해서 왔다. 하지만 빈자리가 나지 않아 1시간째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에휴, 오늘 내로 자리에 앉아 마실수 있을까요?"
"낮인데도 사람이 가득하네요."
불평을 하면서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모험가의 휴식처를 나가면, 모라타에서는 술을 마실수 없기 때문!
북부에서 사냥을 하던 파티들도 모라타로 귀환하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이 술집이었다.
야자수, 과일주, 맥주 등을 마시면서 피로를 싹 치워 버리고 동료들과 회포를 풀고 있는 파티들이 많았다.
"언제쯤 자리가 날까."
제피가 한숨 섞인 어조로 푸념을 했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실력을 발휘해서, 여성들만 앉아있는 자리에 가서 합석을 하는 건 어떨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들어갈 즈음!
갑자기 술집의 지붕이 뜯겨 나갔다.
사방의 벽은 아예 통째로 사라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음식을 먹고 술에 취해 있던 유저들은 벼락을 맞은 듯이 화들짝 놀랐다.
갑작스러운 일에 당연한 반응.
술집은 완전히 해체된 이후에 벽면과 기둥, 천장이 확장된 형태로 다시만들어졌다.
좌석만 무려 2,000개!
초대형 술집으로 개조된 것이다.
그때야 유저들은 이해했다.
"영주다."
"모라타의 영주가 내정을 하고 있다!"

위드는 비어있는 땅을 이용하여 술집과 여관을 확장하고 대형 식당을 지었다.
구획별로 정리되어 있는 땅들에는 아직도 수백개가 넘는 건축물들을 세울수 있었다.
술집의 개조에는 12,000골드, 여관은 9,300골드, 대형 식당의 건축에는 16,000골드가 들어갔다.
모라타의 상황을 알리는 창도 변동이 있었다.

- 술집의 확장으로 경제력이 +2, 치안이 -1%가 되었습니다.

- 여관의 확장으로 경제력이 +1, 위생이 +3이 되었습니다.

- 여유가 있는 대형 식당의 건설로 문화가 +3, 경제력이 +2가 되었습니다. 향후 3개월간 마을의 생산력이 1% 증대됩니다.

- 군사력 : 22 경제력 : 265
문화 : 573 기술력 : 190
도시 발전도 : 98
위생 : 39 치안 : 71%
소유 자금 : 2,545골드.

각 상황별 변동을 즉각 즉각 보면서 수정할수 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 등의 포인트는 현재 모라타의 실정을 드러내 주는 자료였고, 위생 등이 심하게 낮으면 주민들의 유입이 더디어진다.
치안이 낮을 때는 범죄 발생률이 증가하고, 상업의 발전에 문제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위드의 시선이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100골드 짜리 노점상을 5개나 개설했다.
간단한 군것질 거리를 판매하는 노점상들!
상업에는 미미한 영향밖에 없지만, 수입을 향상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때 중앙 광장은 마치 폭동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영주님, 검사 길드를 만들어 주세요!"
"모험용품점을....."
"개인 창고와 주택을 건설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행자 조합이 모라타에 꼭 있어야 돼요!"
평소에 필요로 하던 것을 저마다 말하는 것.
두 손을 추어 올리고 먹이를 달라고 꽥꽥대는 어린 새처럼 고함을 질러 댄다.
그만큼 평소에 원하던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영주가 건설을 하지 않는다 해도, 주민들이나 건축가들이 스스로 필요한 건물을 지을수 있다. 하지만 베르사 대륙에는 건축가의 숫자도 드물뿐더러, 상점이나 주택을 지었을 경우 분양까지 해야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영주가 나서서 원하는 건물들을 짓고, 그에 따라서 마을과 성, 도시가 발전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마법사가 영주로 있는 성에는 유독 마법 길드계열이나 마법 용품점이 많았다. 정령술사가 지배하는 성은 나무와 물이 풍성하게, 자연 친화적으로 꾸며졌다.
영주의 선택에 따른 발전!
위드도 유저들의 애타는 바람을 들으면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런데 마을에 남아 있는 자금은 2,045골드.
위드는 소유하고 있던 개인 자금을 100골드만 남기고 통째로 마을에 투자했다.
지금까지 꿍쳐 놨던 막대한 돈을 모라타의 소유 자금으로 넣고, 건축에 들어간 것이다.

판자촌!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한 모라타 마을에는 새로운 집들이 필요했다.
언덕과 산의 나무가 깎여 나가고 일제히 판잣집으로 변했다.
판잣집은 주택 1호당 30 실버밖에 하지 않았다.
"꿈을 키우는데에는 역시 판자촌이지!"
위드는 3,000골드를 투자하여 1만 가구나 되는 판자촌을 만들었다.
모라타의 유저들을 경악하게 만든 변화였다.
"켁!"
"이 미친 영주!"
"판잣집만 엄청나게 짓고 있어!"
중앙 광장에서도 판자촌이 보였다.
인근 산의 정상 부근까지 판잣집이 빼곡하게 지어질 정도였다.
위드가 그 다음에 택한 건물은 상품 거래소였다.
교역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한번에 대규모 상거래가 가능하다.
모라타의 물건들을 다른 곳으로 수출하고, 마을의 부족한 물자들을 효과적으로 보충할수 있는 건물!
상인들을 위한 물품 창고와, 넓은 마차 대기소까지 있었다.
이 건물은 상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모라타 영주가 뭘 조금 아는군."
"상인들을 무시하면 절대 큰 도시로 성장할수 없지."
상인들을 위하여 조합도 만들어 주었다.
대형 일감이나, 조달해야 할 물건들이 있을 때에 여러 상인들이 의뢰를 나누어서 할수 있도록 하는 조합!
상인 길드의 초석이 되는 건물이다.
모라타 중앙 광장 부근의 공터에 건물들이 생겨났다.
무기 상점, 방어구 상점, 여행자 상점, 모험가 상점, 지도 제작소, 과일 상점, 식료품 상점까지 만들어졌다.
휑하니 비어있던 모라타의 거리에 연속적으로 건물이 지어지니 유저들은 환호했다.
"만세!"
"이제야 조금 편해지겠군."
북부의 다른 경쟁 마을이 변변치 못한 시점이었다.
몇몇 유명 길드에서 장악한 마을들이 있긴 하지만, 인지도 면에서나 유저들의 숫자에서나 비교할 바가 아니다. 모라타에서 조금 더 편하게 물품들을 구입할수 있게 되어서 모두 기뻐했다.
그런데 위드의 건축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쿠우웅!
땅을 울리는 큰 소리와 함께 대장간 옆 공터에 자재들이 쌓였다.
"뭐, 뭐지?"
"뭘 만들려고 하는 거야?"
무기와 방어구를 제조하는 장소인 만큼, 대장간도 꽤나 넓은 면적을 자랑했다. 그런 대장간의 5배가 넘는 규모의 공터에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큰 굴뚝이 있는 대형 건물.
건물이 완성되자 마자, 대장장이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한바퀴 훓어보더니 밖으로 뛰쳐나와 외쳤다.
"대형 화로다!"
"철광석에서 고순도의 철을 뽑아낼수 있는 화로!"
대형 화로가 없으면 숙련된 대장장이들만 철을 추출할수 있고, 그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 때문에 다른 무기와 방어구를 녹여서 원하는 걸 만드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사냥 등을 통해 철광석을 구해 오면 금세 대형 화로에서 순도 높은 철을 얻을수가 있게 되었다.
철의 공급이 원활해지면 대장장이들이 만드는 무기의 질이 향상되고, 공급할수 있는 수량도 많아진다.
대장장이들이 간절히 바라던 일!
5만골드가 넘는 건물이지만, 위드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더 많은 대장장이들과 귀금속 세공사들이 밀려들어 올 테니 무기 및 방어구 생산 증가, 세금 수입의 확대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
유저들은 알지 못했지만, 모라타 마을 밖에서도 건축사업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과거 니플하임 제국 시절의 철 광산, 구리 광산, 은 광산 들!
폐광으로 방치되어 있던 그 광산들이 위드로 인해 변모하는 중이었다.
갱도가 다시 정비되고, 마을 주민의 일부가 곡괭이를 들고 이동했다. 폐광 내에 서식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사냥하기 위해 주민들 사이에는 프레야 교단의 성기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모라타를 방치해 두더니, 영주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군."
"이제야 좀 발전이 되는 것 같네."
유저들은 싱글벙을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변화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쿠우웅!
이번엔 또 다른 공터에 자재들이 쌓였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깨끗하게 밀어지고 길드가 세워졌다.
재봉사 길드!
모라타의 고급 직물과 가죽을 이용하기 위해 멀리서 원정온 재봉사들이 많다. 기술을 숙련시키고, 또 여러가지 도움을 줄수 있는 길드가 세워졌다.
농부 길드와 프레야 교단의 제단도 건설되었다.
제단이 있으면 제물을 바침으로써 상태 이상이나 저주 등을 해소할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행운을 올리는 효과 또한 있다.
프레야 교단의 성직자들도 좋아하지만, 유저 성직자나 사제들, 모험가들이 열렬히 바라는 건물이었다.
"제단까지! 정말 괜찮네."
"모라타에서 사냥하기를 잘했어."
검사 길드도 만들어 졌다.
"영주가 돈좀 쓰는데."
도둑 길드도 세워졌다.
"이 미친 영주, 대체 꿍쳐 놓은 돈이 얼마였던 거야!"
마을 안에 있는 유저들은 크게 환호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모험을 위해 주로 머무르는 곳이 발달할수록 그들에게는 편했으니까.
워리어 길드가 세워졌을 때에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음유시인 길드, 궁수 길드, 암살자 길드, 권사 길드, 무투가 길드.
마법사 계열의 길드들은 개당 4만 골드나 되기에 지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기본적인 전투 계열의 길드들은 거의 다 지어진 셈.
위드가 숨겨 두었다가 마을에 투자한 금액은 엄청났다.
토둠에서 벌어 온 재료 아이템을 가지고 재봉과 대장장이 스킬을 활용해서 번 돈 34만 골드.
여신상을 만드는 대가로 받은 다이어몬드의 감정 가격이 145,000골드나 되었다.
둘을 합치면 485,000골드나 되엉ㅆ다.
여신상을 만들 때도 참여비나 풀죽 값, 각 상회들의 이름을 넣어주면서 받아먹은 돈이 15만 골드가 훨씬 넘었다. 그런데 여신상 제작비로 16만 골드나 되는 돈을 소모해 버렸으니 출혈이 막대했다.
그럼에도 사냥을 하며 번 돈이나, 예전에 가지고 있던 것을 합쳐 5십만 골드가 넘는 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띠링!

- 모라타 지방의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구舊니플하임 제국의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모라타!
슬슬 꽃을 피우려는 문화와 굳건한 신앙의 온상지.
경제적으로는 낙후되어 있는 장소에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었다.
모라타의 주민들은 프레야 여신의 가르침대로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2개월간 생산력 45% 증가.
모라타 마을의 확대와 개발로, 도시화가 진행됨.
마을의 발달로 이주민 유입이 늘어남. 주민들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지만, 직업을 갖게 될 때까지는 치안의 하락과 이주민 지원자금이 지출됩니다.
주민들의 증가에 따라 식량이 더 많이 필요해 지겠지만, 마을의 영역이 늘어날 것입니다.
영주성이 개량되면 모라타 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도 외교를 통해 정치적인 지도력을 행사할수 있게 됩니다.

- 군사력 : 22 경제력 : 297
문화 : 579 기술력 : 196
도시 발전도 : 108
위생 : 42 치안 : 68%
소유 자금 : 79,014골드.

위드는 아직 내정 모드를 풀지 않았다.
꼭 지어야 할 건물들이 아직도 정말 많이 남았다.
"지을수 있는 광산이 12개나 되는데......"
광산 1개를 개발하는 데에는 5만 골드나 소모되었다.
모라타에 있는 12개의 광산을 개발할 돈도 없지만, 몽땅 개발되면 광석 값이 폭락해 버릴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이 그만큼 광산 분야에 근무할수록 위생이 하락하고, 다른 분야의 일을 못하게 되므로 생산량도 줄어든다.
주민은 물자 생산과 경제력, 군사력의 원천이 되는 중요한 자원이다.
미스릴이나 마나석 등의 광산이 있다면야 무조건 캐내야 겠지만, 그런 고급 자원은 아쉽게도 모라타에 없거나 혹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상아가 있어서 다행이야.
위드는 모라타 지방을 관찰하면서 서북부의 초원 지대에서 대규모의 코끼리 떼를 찾아냈다. 이 코끼리들을 사냥하도록 허가하면 양질의 상아를 구하는게 가능했다.
살아있는 보석이라고 할수 있는 상아.
"아껴서 잡아야 겠군."
이제 병사들을 키워야 할 시점이다.
프레야 교단의 보호가 7개월이 남았지만, 병사들이 성장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병사들을 100명 그리고 기사를 10명 정도 모집해야 겠어."
모병소와 훈련장을 지어 병사들을 모집하고 기초적인 훈련을 받을수 있도록 했다.
제대로 된 시설이 없어 기사 양성은 불가능 하므로, 방랑 기사들을 고용하도록 지시했다.
위드의 군대가 만들어진거.
단순 길드의 수장은 유저들로 이루어진 집단의 수장이다. 하지만 마을이나 성의 영주들은 다르다. 마을의 운정 자금을 이용하여 군대를 가질수 있었다.

모라타 마을의 유저들이 개발에 환호성을 터트리고 있을 때였다. 중앙 광장에 빛과 함께 유저들이 등장했다.
"아!"
"몸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이게 로열로드구나!"
완전한 초보자들.
신규 유저들이 모라타에서부터 시작할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가 북부?"
"와! 북부의 마을들은 이렇게 생겼구나."
신규유저들이 빛과 함께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었다.
북부에 오로지 하나의 새로운 시작점.
모라타 마을을 보고 고르는 이들이 기하 급수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우와아아!"
"초보들이다."
북적거리는 와중에도, 외로움과 적적함을 느끼던 일반 유저들도 더욱 기뻐했다.
초보 유저들이라고는 해도 그들의 가치는 매우 컸다.
초보들은 여우, 사슴, 토끼 등을 사냥하면서 고기와 가죽을 구해 마을에서 거래를 한다.
고레벨 유저들은 고기나 가죽을 얻기 위해서 사냥을 하진 않지만, 초보들에게는 돈과 무기를 얻기 위한 유용한 재료들이었다.
이들이 조달하는 물량은 막대한 식량과 무기 및 방어구의 재료가 된다.
떨어진 나뭇조각이나 굴러다니는 광석들, 싸구려 약초들을 팔면서 마을을 발전시키는 원동력 역할을 한다.
상인이나 생산직들 또한 기초적인 재료들을 제때 구하기 쉽고, 물품을 만들었을 때 팔기 편하니 좋았다.
전투 계열 직업도 당장 초보들에게 도움받을 것은 없지만, 평소 헐값으로 상점에 팔아버리던 잡다한 무기나 방어구도 초보들에게는 유용하게 쓰이니 팔기가 편했다.
성직이나 사제, 기사 계열은 약한 이들을 도우며 명예와 신앙, 헌신을 높일수 있으니 초보 유저들을 크게 반겼다.

강진철은 로열로드의 게시판을 보면서 크게 고뇌했다.
"이것이 과연 옳은 길일까? 이대로 놔두어도 괜찮은 것일까?"
그는 베르사 대륙에서는 마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상업적으로는 다소의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그런 그가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모라타에 초보 유저들까지 오고 있다니...."
그가 보고 있는 게시판에는 많은 글들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 북부의 개척 마을 탄생 안내.
- 초보자 분들, 모라타에서 시작하세요.
- 모라타 마을의 기본적인 지도 및 건축물 자요, 기초 퀘스트 정보입니다.
- 풍성한 사냥터.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모험을 즐길 기회가 있는 모라타의 사냥터 정보를 알려 드립니다.
모라타에 대한 정보들이 게시판에 쌓여 간다.
반응도 뜨거웠다.
- 이번에 막 로열로드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모라타가 정말 그렇게 좋나요?
- 모라타에서 캐릭터를 만들어야 겠어요. 전 전사로 키울 생각입니다. 같이 하실분.
- 저요!
- 프레야의 여신관의 특성은 어떤가요?
- 모라타에 가면 풀죽을 무료로 준다던데....
질문과 답변들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와중이었다. 그만큼 모라타가 사람들의 관심의 핵심에 선 것이다.
북부전체를 아우르는 교역, 사냥, 의뢰의 중심지!
아직은 발전이 미미한 마을이라고는 하나, 이런 모라타에서 시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진철은 한탄했다.
"불쌍한 사람들이 계속 밀려오고 있어."
위드가 세운 대장간이나 술집, 교역소 등의 물가는 저렴했다.
대장간에는 주민 대장장이들이 고용되어 일정한 물건들을 만들어 낸다. 고급품들을 많이 만들어 내면 스스로 기술력이 올라서 점점 좋은 물건들을 만들수 있다.
이런 식으로 영주가 직접 세운 건물의 수익은 고스란히 위드의 몫이 된다.
술집도 그럭저럭 바가지 요금이라고는 할수 없었고, 여관도 나름 쓸 만했다.
빈곤한 초보 유저들이 안심하고 환영하면서 모라타에서 시작하는 중요한 동기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 폭풍처럼 몰아치게 될 착취의 미래!
"이대로 둘 수는 없어!"
강진철은 크게 결심을 했다.
모라타가 발전하면 그도 나쁜일이 아니다. 상인으로서 여기저기 투자를 해 두었으니 소득이 더욱 늘어날 것이ㅏㄷ.
본인의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를 하고 글을 올렸다.

제목 : 초보 여러분, 절대로 모라타에서 시작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크게 잘못 알고 계십니다.
모라타는 실로 악의 소굴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마을의 경계를 조금만 벗어나도 몬스터들이 넘쳐 나서, 초보자분들에게는 너무 위험합니다.
빛의 탑이나 여신상?
이런 것도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매일 똑같은 조각상들을 보면 금세 질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물가가 보통이거나 조금 저렴한 편이라고 할수 있지만, 나중에 영주가 대폭 세금을 올리게 될 테니 절대 모라타에 오지 마세요.

"이제 되었겠지."
애타는 마음을 담아서 작성한 글이었지만 금세 악성 댓글들이 달렸다.

- 이런 식으로 남들은 하지 말라고 하고, 본인만 모라타에서 쾌적하게 사냥하려고?
- 이 글 쓴 인간, 틀림없이 엄청난 세금을 물리는 중앙대륙의 영주일 겁니다.
- 영주는 무슨! 작은 마을의 촌장이나 되겠죠!
- 완전 초보자 물 먹이려고 작정한 듯. 로열로드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모라타가 초보자들에게 얼마나 유리한 시작 지점인지 알 텐데 말입니다.
- 제가 말해 드릴까요? 널린 조각품들, 사냥터, 고레벨 유저들, 누구도 받지 못한 퀘스트. 모라타야 말로 희망이고 천국인 것입니다.
- 꺼져!

"크흑!"
강진철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실시간으로 도배되는 악성 댓글들을 보면서 상처를 받을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매우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강진철 말고 다른 이들도, 모라타에서 시작하거나 혹은 모라타로 오는 것을 만류하는 글을 가끔씩 올리는 것이었다. 위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지 않다면 올리지 못할 글들!
하지만 그런 글들은 나오기가 무섭게 악성 댓글에 밀려 버렸다.
비난에 질려 스스로 삭제해 버리거나, 글쓴이만 나쁜 사람으로 매도되는 것이다.
"아아."
강진철은 눈치챘다.
그뿐만이 아니라 페일과 메이런 등, 양심이 있는 사람들.
그들도 나섰지만 대세를 거스를수 없었다.
도저히 흐름을 뒤바꾸진 못했다.
모라타로 달려드는 유저들의 행렬!
거대한 악이 정의를 이기고 있었다.
세상은 악념이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악독함의 정점에 서있는 위드!


8. 드워프 왕국

"...수업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교수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강의실에는 맥이 풀린 학생들만 남았다.
"휴우."
"겨우 끝냈네."
가상현실 기술에 대한 쪽지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시험공부에 시달린 학생들이 책상 위에 엎어졌다.
이현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멀쩡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남들이 알면 경악할 만한 생각을 했다.
'기초적인 내용들이라 참 편하군.'
예전에 독학으로 깨쳤던 내용들을 다시 배우려고 하니 학비가 아까워질 지경이다.
죽기 살기로 가상현실의 원리와 발전 가능성, 현실에서의 운동신경 반영에 대해 공부했다. 그 밑천이 남아있어서 벼락치기를 하지 않고서도 답안을 쉽게 적어 낸 것이다.
이미 베르사 대륙의 수많은 역사와 영웅, 마을의 위치, 아이템, 마법과 기술 등을 외웠는데, 이에 비하면 쪽지 시험은 눈 감고도 쓸수 있을 수준.
"시험도 끝났는데 우리 로열로드나 하러 갈래?"
민소라가 놀고 싶었는지 먼저 제안을 했다.
최상준도 기껍게 받아들였다.
"캡술방에 가자는 생각이면 난 찬성이야. 단골 캡슐방이 있는데, 그곳으로 갈까?"
로열로드를 할수 있는 캡슐방이 대중적으로 퍼져 있다. 대학가에도 많이 있으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자는 이야기.
이유정이 말했다.
"그보다 우리 모험과가상현실 수업 과제도 해야 되잖아."
"윽! 시험이 끝났다고 좋아했더니 과제가 남아 있었구나."
모험과가상현실에서는 로열로드 내에서 실제 던전을 탐험하라는 과제를 내 주었다.
7명 씩 팀을 이루어서 하는 탐험의 기한은 2개월!
중간시험을 대체하는 것으로, 베르사 대륙의 각 지역에 흩어져 있을 테니 모이는 시간까지 넉넉하게 감안을 해 준 것이다.
이현은 C조 였다.
"어쨌든 일단 캡슐방부터 가자. 나머지는 나중에 정하도록 하고."
최상준의 의견에 학교 친구들이 가방을 챙겨서 일어날 준비를 했다.
"난 바쁜 일이 있어서...."
이현은 그 자리를 빠지려고 했지만, 민소라가 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오빠도 우리랑 같은 조잖아요. 그리고 한번도 같이 캡슐방에 간 적이 없는데.... 오늘은 꼭 같이 가요."
"맞아요. 같은 조라면 손발도 맞아야 편한데. 오늘은 같이 캡슐방이라도 가요."
이현은 캡슐방이 지옥처럼 가기 싫었다.
비싼 로열로드를 하면서 돈까지 내야하는 장소!
집에서 얼마든 접속할수 있는데 캡슐방에서 로열로드를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되었다.

대학교 앞이라 쉬는 시간을 틈타서 놀러 온 학생들로 캡슐방은 북적이고 있었다.
"자리 주세요 7명 이에요."
"오늘도 오셨네요. 로열로드 하실거죠?"
카운터의 아르바이트 생이 묻자, 최상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늘 쓰던 캡슐 자리 있죠?"
"지금 비어 있습니다. 그쪽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예."
수업이 빌 때마다, 때로는 수업마저 땡땡이치고 로열로드에 빠져 있다는 증거였다.
민소라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출석도 나쁘고, 이러니 만날 시험 점수가 엉망이지.'
친구들은 한심하다는 듯이 최상준을 보았지만, 이현의 생각은 달랐다.
'부럽다.'
단골 캡슐방!
캡슐방의 요금은 1시간에 5,000원이나 된다.
캡슐 자체의 가격이 너무나도 비쌌으므로 이 정도는 받아야 수지타산이 맞았다.
그런 캡슐방의 단골이 될수 있다니, 용돈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한단 말인가.
'역시 가진놈들은 달라.'
두둑한 배짱과 포부에 감탄했다.
캡슐방에는 특별한 용도의 캡슐들이 있다. 캡슐방 내에 있는 메인 스크린으로 자신의 플레이 영상을 띄울수 있는 것이다.
흑사자 길드의 최상준은 곧잘 자신의 영상들을 공개했고, 그 덕에 캡슐방에서 모르는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우오오오!"
"새로운 갑옷이다."
최상준이 접속하고, 그 영상이 화면에 나오자 감탄사들이 줄을 이었다.
"물의 정령 갑옷. 레벨 제한 280에 시세만 140만 원이 넘는 물건이라니...."
일반적으로 상위 유저들이 많이 착용하는 갑옷이라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유정과 민소라도 잠시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상준이가 있으니 던전 탐험 과제는 쉽게 해결할수 있겠지.'
'다행이다. 우리는 느긋하게 준비해도 될 것 같아.'
이유정은 레벨 200대의 검사였지만, 민소라는 전투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인챈터인 탓에 불안했다. 그러나 든든한 최상준을 보면서 안도하는 것이다.
이현에게도 아르바이트 생이 다가왔다.
"로열로드 하실 거죠?"
이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캡슐로 안내해 주세요."
돈이 나가는 것은 아깝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는 것도 미련한 짓.
돈이야 쓰는 이상으로 벌면 되니 로열로드를 하기로 한 것이다.
이유정과 민소라도 바로 옆의 캡슐이었다.
"그럼 오빠, 나중에 봐요."
"즐거운 로열로드 하세요."
캡슐방에 온 이상 시간이 돈!
이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준 후에 캡슐로 들어갔다.

위드가 접속했을 때에 모라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초보자들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무리가 사냥 파티를 구하고 퀘스트를 하기 위해 뭉치는 중이었다.
"레벨 1. 무직들 모입시다."
누군가 손을 들면, 그곳으로 십수명이 우르를 쏠린다.
"토끼 잡으실 분!"
이번엔 초보자들이 100도 넘게 모였다.
남녀노소 가릴것이 없었다.
향후 상인을 꿈꾸는 듯, 전사의 복장을 하고 있지 않은 이들도 뭉쳐서 당당히 성문을 넘었다.
"야영을 하기 위해서는 모닥불을 피워야 될 텐데... 부싯돌 있는 분?"
"우리의 전력이라면 늑대도 잡을수 있을 것입니다."
초보자들이라고 해도 모이니 무시무시하다.
100명이 넘는 초보자 패거리!
하나도 아니고 10개가 넘는 파티를 구성한 초보자들이 신바람을 내며 마을 앞에서 사냥을 한다.
위드가 영주로서 내정을 시작한 지도 현실의 시간으로 어느덧 일주일이 넘게 지났다.
바로 드워프 왕국을 향해 떠날 작정이었지만, 그동안 병사들을 훈련시키느라 조금 늦었던 것이다.
"벤, 스탐, 유프레."
"넷, 영주님!"
병사들이 절도 있게 위드를 향해 경례를 올린다.
"너희가 다른 병사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영주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병사들의 눈빛은 굳건했고, 신뢰감을 줄수 있을 정도였다.
위드는 베르사 대륙의 시간으로 4주일간, 이 병사들과 함께 사냥을 다녔다.
사냥이라고 해도 변변한 것은 아니었다. 마을 앞에서 여우나 토끼들을 잡다가 늑대를 잡고, 나중에는 쉬운 던전들을 함께 다닌 정도에 불과했다.
코볼트, 로그, 사자, 스켈레톤, 구울 들이 있는 기본적인 던전.
그곳에서 위드는 절대적인 지휘 능력을 발휘했다.
"선량한 주민들을 위하여 검을 뽑고 난 후에는 망설이지 마라."
"넷!"
"달려라. 육체를 쉬게 만들지 마! 몬스터들으 많이 사냥해야 마을이 안전해 질수 있음을 명심해야 된다."
위드는 쉬지 않는 사냥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다녔다.
과거처럼 붕대를 감아 주고 요리를 해다 바치면서 병사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을 쓸 필요는 없다.
"코볼트는 이렇게 베어버리는 것이다."
위드가 조각 검술을 사용해 날카롭게 허리를 베어 버렸을 때, 코볼트는 그대로 회색빛으로 변했다.
레벨 300이 넘으면서 하는 힘자랑!
"우와!"
"과연 영주님이시다!"
"저만하면 기사중의 기사라고 할 만하지."
현실적으로 막 징집된 기사들의 레벨은 10 밖에 안 되었다.
병사들의 성향 자체가 영주에게 충성하고 강한 무력을 존경하였으니, 신뢰를 얻는 데에는 충분하다고 할수 있다.
"무기가 상한 것 같군. 검 관리를 그렇게 밖에 못하나?"
위드가 한마디씩 던지자, 병사들은 죄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리 줘 봐라."
그렇게 가끔 검을 한 번씩 수리해 주고, 죽기 직전의 병사들에게만 붕대를 넉넉하게 감아 주었다.
그러자 병사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초롱초롱!
'우리의 영주님은 못하는 게 없으시다.'
'마을의 치안을 지키기 위해 병사가 된 것은 훌륭한 판단 이었어.'
충성심이 금세 100까지 오른 것이다.
벤, 스탐, 유프레는 성장이 빠른 편으로, 첫 주에 레벨이 30대가 되어 십부장의 자리에 올랐다.
위드의 쾌속 사냥 방법.
이동하는 경로도 단축시키고, 휴식시간도 줄였다.
창병, 검병, 방패병, 궁수 들의 조합을 이용해 사냥 속도까지 단축시킴으로써 이룬 결과였다.
두 번째 주.
위드는 병사들을 이끌고 던전의 더욱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밤에 야영을 할 때에도 몰려드는 몬스터들.
그래 봐야 위드에게는 식후의 간식거리도 되지 않았지만, 병사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막앗!"
"스켈레톤이 너무 세다."
"지금까지 우리가 싸워 본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놈들이야!"
병사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위드는 유유자적 재봉을 했다. 마판이 가져다 준 천을 이어 옷을 만드는 부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신경은 병사들로 부터 완전히 거두지 않아, 위험한 순간에는 즉각 개입했다.
필요할 때는 검을 들고 뛰어들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휘만 했다.
"검병, 창병, 후방으로. 휴식을 취하라. 방패병, 진형을 형성하고 적을 밀어낸다. 궁병, 은을 도금한 화살을 쏘아라!"
위드는 병사들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써서 죽지 않게 애썼다. 싸우기 전에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승부였지만 간신히 이겨내도록 만들었다.
빛의 탑의 효과와 프레야 교단의 사제들의 축복까지 받아 평상시보다 훨씬 강해진 후의 사냥이라 성장이 더빠르다.
"돌진! 쉴 틈이 없다. 싸워라. 적들을 다 죽인 이후에 1분간 쉰다."
위드는 사자후까지 써 가면서 병사들을 다그쳤다.
병사들이 강해질수록 훈련의 강도도 덩달아서 더욱 높아진다.
그런 식으로 4주가 지났을 때에는,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을 어엿한 병사들이 되었다.
벤과 스탐, 유프레는 레벨 60이 넘어, 전투에 대해서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수 있게 되었다.
백부장으로 승격하게 된 것이다.
"모라타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병사들이 필요하다. 앞으로 너희가 병사들의 모범이 되어주길 바란다."
"넷!"
4주간의 훈련이 끝나고 나서 위드는 일장 연설을 했다.
군기가 바짝 든 병사들. 혹독한 지옥 훈련을 거치고 나니 전투를 조금쯤은 할 줄 알게 된 병사들이다.
덤으로 얻은 효과도 있었다.

- 숙련된 교관의 권위.
모라타 영주 위드로부터 직접 훈련받은 병사들은 그의 위엄과 지도력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게 됩니다.
통솔의 효과가 영구적으로 3% 오르게 됩니다.

"동료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겨라. 동료들이 있기에 너희가 그리고 마을이 안전한 것이다."
"넷! 영주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위드는 그 후로 1,000명의 병사들을 추가로 뽑도록 지새했다. 모라타의 면적이 워낙 넓으니 더 많은 병사들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상업에만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빠르게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이제 군사력에도 투자할 때가 되었다.
모라타의 영토가 로자임 왕국의 절반 정도는 되었으니 병사들이 많아야 했다.
치안을 유지시키는 것도 영주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기술을 개발시키고 주택을 늘리고, 농작물과 산업 생산량을 증대시키기 위한 과감한 투자들이 조금 줄어들게 된다.
그래도 세금은 날로 늘어날 테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 세율을 조정해서 한꺼번에 착취를 하는 악덕 영주의 꿈이 가까워져 가는 것이다.

위드는 지난 4주간 모라타에서 있었던 추억을 뒤로 한채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으로 이동했다.
"와일아, 와둘아, 와삼아!"
그가 조각해서 생명을 불어넣은 와이번들을 부르는 것이었다.
저 멀리 모라타의 산들너머로 6개의 점들이 생겨났다. 그 점들은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와일이의 등에는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금인이도 타고 있었다.
위드는 그들의 위풍당당한 자태를 보며 감격했다.
"모두 무사했구나!"
금고에 넣어 둔 돈이 멀쩡한 것을 보며 안도하는 모습!
와이번들은 지상에 내려서자 마자 뒤뚱거리며 다가와친근하게 몸을 비볐다.
"주인, 반갑다."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토둠에 있는 동안 위드의 통솔력과 카리스마는 큰 성장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와이번들에게는 부모와도 같은 존재!
생명을 부여한 부모와 다름이 없다 보니 친근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 살이 좀 찐것 같다."
"꺄룩?"
외이번들이 두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영문을 알수 없다는 태도.
실제로 한떄는 날기도 힘들정도로 살이 찌고 게을러졌었다. 지상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먹잇감을 사냥했다.
그러다 북부의 추위가 물러가면서 몬스터들이 대규모로 활동하게 되자, 와이번들도 위기의식을 느꼈다.
'먹잇감들이 만만치 않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해.'
와이번들은 본래의 성향태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본연의 특기인 공중전을 펼치고, 금인이는 화살을 쏘았다.
북부의 몬스터들이 강해지면서부터, 그들도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위하여 싸웠다.
모라타 일대의 영역!
매일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최초로 생명을 부여받을 때는 323정도의 레벨을 갖고 태어났다.
불사의 군단과의 전투, 북부 원정, 본 드래곤과의 전투!
위드가 경험한 대부분의 전투를 함께하면서 레벨도 360대가 되도록 성장했다.
날개에는 윤기가 흐르고, 등은 넙적하게 벌어졌다. 몸은 상처투성이 였지만 늠름하기 짝이 없었다.
"뭐 그래도 심하게 살이 찐 편은 아니로군. 내가 없는 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위드는 와이번들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에 오래된 중고 붕대를 정성스럽게 감아 주었다.
"꺅꺅꺅!"
와이번들이 경망스럽게 고맙다고 몸을 비벼댔다.
북부의 추위를 참아내기 위해 늑대 가죽으로 만들어 주었던 옷들은 누더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다른 비행 몬스터들이 아무런 방어구를 걸치지 않은 것에 비해서, 늑대 가죽 옷이라도 걸친 효과는 상당했다. 규모가 다른 공중 몬스터들과의 영역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쥘수 있도록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위드는 늑대 가죽들을 수거하면서 유통기한이 상당히 지난 말고기도 던져 줬다.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많이 먹어라."
위드의 귀환을 반가워하던 와이번들로서는 환희의 극치!
돌아오자마자 구박하고 때릴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잘해 주는 것이다.
'주인도 이제는 인간 됐구나.'
'알고보니 그렇게 막돼먹은 주인은 아니었어.'
와이번들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했음이 느껴졌다.
와삼이는 뒤돌아 서서 등을 내밀었다.
"주인, 혹시 타고 싶다면 내 등에 타라. 어기 가 보고 싶은 곳은 없나?"
"갈 곳 이 있었는데 마침 잘됐군."
위드가 냉큼 와삼이의 등에 올라탔다.
"목표는 남쪽. 이제 즐거운 여행 시간이다!"
와이번들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위드는 하늘로 높이 올라 갔다.
해가 저물고 난 뒤의 하늘, 별들이 빛을 뿌리는 밤하늘을 난다.
쿠르릉- 콰과광! 쾅쾅!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지역에서는 뇌성벽력과 함께 비가 떨어지기도 했다.
차가운 빗방울들이 위드와 와이번들의 몸을 흠뻑 적셨다.
그 빗방울들은 하염없이 아래로 향해서, 불을 밝히고 있는 이름모를 마을과 성으로 떨어진다.
무성한 잡초들이 바람에 몸을누이고, 빗물이 강물 위로 떨어져 파문을 일으킨다.
불어난 강물이 이리저리 범람하는 장소에는 낚시꾼들이 있었다.
전사나 사냥꾼 파티, 모험가들이 넓은 평원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도 보였다.
한 땀. 한 땀.
위드는 와이번의 등에 앉아 바느질을 했다.
찢어진 늑대 가죽을 재활용 하여 와이번들의 누더기 옷을 새로 만들어 주기 위함이었다.
대자연의 장관 속에서, 멋진 풍경에서 노가다를 할 때의 낭만!
위드만이 이해할수 있는 감정이었다.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노가타를 하며 개수를 채워 나갈때의 기쁨! 10대에 인형 눈알을 붙이면서 깨달은 즐거움이지. 이렇게 높은 하늘에서는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느껴지는군. 이럴 때의 노가다란, 정말 시간가는줄을 모르겠다니까.'
천부적으로 타고난 기질이 후천적으로 완성되어, 이제는 노가다를 만끽하고 즐기는 단계!
"저곳이 무바인 성이로군."
위드가 와이번의 등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상에, 뾰족한 첨탑 아래에 엄청난 성벽을 가진 성이 나타난 것이다.
영주 크레센드가 이끄는 블랙 서펜트 길드가 차지하고 있는 성!
한 왕국의 수도는 아니지만 엄청나게 많은 유저들이 모여 있는 대도시였다. 유저들의 숫자로는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그 성과도 비할 정도가 아니며, 소므렌 자유도시만이 무바인 성과 비견되리라.
"주인, 저곳이 목적지인가?"
와삼이가 힘들게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물었다.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우리의 목적지는 조금더 가야돼."
"알았다, 주인."
와삼이는 날갯짓을 계속했다.
무바인 성도 지나치고, 그 다음에도 마을과 성들이 여러개가 나타났다. 하지만 위드는 목적지이니 내려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조각술의 비밀이야. 프레야 여신의 신탁을 따라서 가 보려면, 인간들의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지 말고 바로 그곳으로 가는 편이 맞겠지.'
공연히 헛수고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처음부터 제대로 된 곳을 가 볼 작정이었다.
그렇게 3시간 정도를 더 날았다.
무바인 성을 지나치고 5시간 쯤 흐른 뒤였다.
"히, 힘들다, 주인. 대체 언제 도착하는가."
"조금만 참아."
"어, 얼마나 남았는지라도....."
"거의 다 왔어."
와삼이는 죽을 힘을 다해 날갯짓을 했다.
날개 끝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탈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최초로 날개에 힘이 빠져 추락사한 와이번이 될 수도 있으리라.
2시간이 더 흐르고 나자 결국 와삼이가 애원했다.
"주인, 쉬었다 가자!"
"앞으로 금방이야."
1시간 정도가 더 지났다.
"내, 내가 정말 지쳐서... 다른 형제에게 갈아타면 안 될까, 주인?"
다른 와이번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날고 있었다. 와삼이가 지쳐 갈 무렵부터, 이런 상황을 미리 염두에 두고 거리를 둔 것이다.
와이번들의 지능도 이런 쪽에서는 상당히 뛰어났다.
말이나 와이번이나, 순간 가속력이 대단히 빠른 편에 속하지만 지구력은 그리 좋지 못하다. 그런데 전력에 가까이 날면서 위드를 계속 태우고 있으니 매우 힘겨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드가 와이번의 사정을 알아 줄리 만무했다.
"귀찮아.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하는데 왜 번거롭게 그런 짓을 해?"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나가는 말투!
위드가 부모와 같은 존재만 아니었더라면 진작 배신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긋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그럼에도 와삼이는 조금 더 참기로 하고 얌전하게 다시 한번 물었다.
"주인, 얼마나 남았나?"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
위드의 무관심한 말은 잔인했다.
조금 만 더 가면 된다는 것은 무바인 성의 상공에 있을 무렵부터 했던 말이 아닌가.
그로부터 4시간을 더 날았다.
지상에는 산과 산맥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울창한 숲과 나무들도 많고, 산 중턱에는 갱도들이 뚫려 있고 드워프들이 오가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보였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푸른 산의 경치도 절경이라고 할수 있었지만, 와삼이의 눈알은 노랗게 변한 뒤였다.
"음, 이제 2시간만 더 가면 되곘군."
"......."

다른 왕국이 큰 강이나 평야를 끼고 있는 것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토르 왕국은 3개의 산맥에 걸쳐 있다.
노른 산맥, 울타 산맥, 사이고른 산맥.
600년간 드워프들에 의해 성장한 왕국이었다.
그들이 지배하는 왕국의 특산품은 대단했다.
금, 은, 백금, 호박, 사파이어, 비취, 다이아몬드, 공작석, 장미수정, 자수정, 루비, 오팔 등 셀수 없이 많은 보석들. 철, 구리, 청동을 비롯하여 미스릴 등의 광물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드워프들이 제련하고 세공하여 만드는 물품들이 토르의 특산품이다.
드워프들의 손재주는 타고난 바가 있고, 풍부한 금속류들로 인하여 무기와 방어구를 만드는 대장장이들이 많다.
그렇게 드워프들이 만들어 낸 물품들은 어디에서도 비싼 가격에 팔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추가적인 교역 경험까지 준다.
그런 이유로 상인들은 토르 왕국에 끊이지 않고 방문 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르 왕국의 드워프들은 조금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 탓이다.


9. 드워프 아트핸드

토르 왕국의 야산에 와이번을 타고 내려서는 사내가 있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위드!
위드는 와이번들을 하늘로 올려 보내고 난 후에 조각칼을 들었다.
"좀 작은 바위를 찾아야 겠군."
오크 카리취를 조각할 때에는 크기가 커야 했지만,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근처에서는 마땅한 바위를 구하기 어려웠다.
무성하게 자란 수풀과 울창한 나무들로 인하여 바위들이 깊이 파묻여 드러나지 않은 산인 것이다.
"그냥 나무로 해야겠어."
위드는 나무의 윗부분과 가지들을 쳐 내어 통나무로 만들었다.
조각술을 펼치기 위한 재료를 준비한 것이다.
그런 후부터는 세밀하게 조각칼을 움직였다.
먼저 전체적인 구도를 만들기 위하여 머리와 몸통, 다리의 비율부터 정했다.
"지금보다 30% 정도 씩 작게 만들면 되겠지."
위드는 허리를 굽히고 쪼그려 앉은 채로 작업을 해야 했다.
굵고 통통한 무다리를 조각하고, 허리가 없이 엉덩이에서 가슴까지 일자로 올라오는 몸매로 만들었다.
"통나무가 얇은 감이 있는데....."
근처에서 가장 굵은 나무를 재료로 했음에도 약간은 모자란 감이 있다.
위드는 어쩔수 없이 두 손을 들고 벌을 받고 잉ㅆ는 형상으로 조각을 해야 했다. 팔도 짧고 굵게 만들고, 나머지 부위는 머리를 조각하기로 했다.
"드워프. 드워프의 특성을 살려야지."
고집스럽고, 굴복할줄 모르는 드워프들.
몬스터와의 싸움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호쾌함을 가지고 있어서, 직업으로는 주로 전사아 워리어를 택한다.
종족의 특성상 힘이 센 편이라, 체구는 작아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동시에 타고난 손재주를 가진 장인들이며, 투박한 손에서 빚어내는 작품들은 아름답기 짝이 없다.
드워프들은 대인관계가 그렇게 원만한 편은 아니다.
평생을 하나의 목표에 매진하는 경우도 많기에 자신들의 작업실에서 잘 나오지 않는 편.
그래서 굉장한 작품들을 만들수 있지만, 다른 종족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양질의 광석이나 보석, 미스릴 등을 유별나게 밝히고, 장비나 재료 들에 대한 욕심이 유별난 종족이다.
불과 쇳물을 사랑하고 꾸밈이 없는 순수한 종족.
위드는 땅딸막한 드워프의 형상을 조각했다.
고집스러운 입매와 축 처진 눈은 여지없이 상대방을 깔보고 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수염은 풍성하고 길었다.
한 가닥, 한 가닥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염.
조각술이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면 할수 없을 세밀한 묘사 였다.
여기에 짧고 굵은 팔과 다리.
위드는 스스로 만든 조각품을 보며 만족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드워프가 아닐까?"
오크 카리취를 만들었을 때처럼 적어도 한밤에 쳐다보기 무서울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지. 조각 변신술!"

- 조각 변신술을 사용합니다.
조각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그 조각품과 조각사를 서로 닮게 만든다!

조각술의 비기를 사용함에 따라 위드의 몸이 변했다.
키가 작아지고, 다리가 두꺼워졌다. 몸통토 가늘어지고 팔도 두꺼워졌다. 반면에 머리는 커지고 수염이 길게 자랐다. 그리고 눈가의 거친 주름들은 나이를 알수 없게 만들었다.

- 몸의 형태가 작아지면서 현재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의 상당수가 쓸수 없게 되었습니다.
판금 갑옷이나 중갑옷을 입으 실수 있습니다.
종족이나 형태에 따라 필요한 장비를 새로 구하십시오.

- 조각 변신술의 영향으로 인내력과 힘, 행운이 소폭 증가합니다.
손재주 스킬의 효과가 5% 늘어납니다.
예술이 대폭 상승합니다.
조각 변신술이 풀릴 때까지 유효합니다.

"커허허험!"
위드는 드워프답게 길게 헛기침을 해 보았다. 그리고 목표로한 드워프 마을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걸었다.
다리가 짧은 드워프인 탓에 무게중심을 잡기는 매우 쉬웠지만, 걸을 때마다 이동하는 거리는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위드는 그럼에도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번 드워프 이름은 뭐로 하지?"
머릿속에서 여러 이름들이 스쳐 지나갔다.
오크 카리취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름이 필요했다.
"아트핸드. 섬세한 예술의 세계를 표현할수 있는 이름일거야."

이현이 캡슐에서 나왔을 때, 학교 친구들은 휴게실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방송을 보고 있었다.
베르사 대륙의 영웅들.
CTS미디어에서 하는 정보 프로그램 이었다.
새로운 소식들을 신속하게 알려 주고 성이나 마을들의 초보들을 위한 정보 소개, 심도 있는 분석을 위주로 했다.
진행자가 개그맨 출신으로 재치와 유머까지 있어서, 상당한 시청률을 가지고 있었다.
"오빠, 끝났어요?"
민소라가 친근하게 묻자,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냥은 많이 하셨어요?"
"아니. 어딜좀 가느라 사냥은 전혀 못했어."
"어디로 갔는데요?"
최상준이 갑자기 호기심이 동한 듯이 물었다.
"토르 왕국."
"토르 왕국이라면, 그 드워프 왕국요?"
최상준이 놀란 듯이 반문했다.
다른 학교 친구들 또한 무척 궁금한 듯 저마다 떠들어 댔다.
"드워프 왕국이라면 저도 꼭 가보고 싶었던 장소인데."
"토르 왕국은 어떤 모습이에요?"
하지만 이현은 딱히 대답해 줄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도 이제 토르 왕국의 근처에 도착했을 뿐이라서..... 마을에는 아직 들어가 보지 못했어."
"아, 그러시구나."
이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사 대륙이 너무 넓다 보니, 왕국 간의 이동을 위해서는 하루나 이틀로는 턱도 없을 정도였다. 말이나 마차를 타더라도 산을 넘어야 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보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아직 토르 왕국의 안에 들어가진 못한 것으로 알고 넘어간 것이다.
박순조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토르 왕국에는 저도 가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형, 직업이 상인이었던가요?"
"왜?"
"전투 계열 직업들은 토르 왕국에 잘 안가요. 마법이나 정령 계열도 그렇고요. 드워프들의 텃세가 심한 편이거든요. 그래도 상인이라면 토르 왕국의 물건들을 가져다가 팔면 이득이 크게 남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이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난 조각사인데."
"......"
"......"
직업만 알려 주면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덧붙여 측은하고 불쌍하다는 눈빛까지!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나 이야기 할 때 조각사라는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민소라가 애써 용기를 주려는 듯이 말했다.
"기운 내세요. 그래도 요즘에 조각사 중에 유명한 사람도 있잖아요. 아마 오빠도 들어보셨을 거예요. 위드라고요."
"......."
"어, 못 들어 보셨어요? 진짜 굉장한 조각품들을 많이 남기고, 뱀파이어의 세계도 여행한 유저라고 해요."
그러자 이유정이 웃으며 말했다.
"소라야, 그 위드는 조각을 위해 타고난 사람이라잖아. 생의 혼을 불태워서 예술을 퍼트리려는 사람이라던데. 그래서 로열로드에서도 굳이 조각사를 택한 것 아니겠어? 그 사람은 한 지방의 영주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사람과 비교하는 게 오빠한테는 더 실례일 거야."
"크흠."
이현은 헛기침을 했다.
저들이 저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니 당사자라고 밝히기가 민망하다.
위드로 뱀파이어 땅을 점령하는 것이 방송에도 나왔지만, 얼굴이나 장비들을 약간씩 다르게 해서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크 게이머의 정체 그리고 혹시라도 전신 위드와의 연관성을 찾아내 버린다면 수많은 도전자들로 인해 그 후의 모험은 거의 불가능해 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최상준이 간단히 말했다.
"조각사라면 토르 왕국에 가서 할게 많겠네요. 광물도 많을 거고 그럭저럭 의뢰들도 있을테니, 열심히 해 보세요."
던전 탐험에는 그리 도움이 안될것 같지만, 은연중에 경계하고 있던 이현이 조각사라니 마음을 놓은 최상준이었다.
'던전 탐험은 내가 이끌면 되겠군.'
최상준이 그렇게 흐뭇하게 웃고 있을 때, 광고가 끝나고 베르사 대륙의 영웅들 방송이 재개되었다.
이현은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과 관련있는 내용이 나오니 저절로 방송을 보게 되었다.

"대진 씨, 북부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면 모라타를 빼놓을수 없잖아요."
"네. 유담비 씨가 정확하게 짚어 주셨습니다. 눈이 녹은 이후로 많은 모험가들이 북부로 향했습니다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땅에 정착하기란 매우어려운 까닭입니다."
"몬스터의 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북부는 더욱 위험한 지역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모라타에 사람들이 모이고 급속도로 발전을 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정착할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습니다. 필드의 몬스터들도 언젠가는 토벌될 것이고, 점점 사람들이 늘어나면 북부에도 전면적인 개발의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네. 그러면 1부에서는 북부와 모라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럼 2부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루게 되나요?"
방송의 1부에서는 북부에 대한 정보들을 알려 주었다.
모라타를 중점으로 이야기해 주고, 유저들의 동향이나 사냥터들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현은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좋은 말들을 많이 했어야 할 텐데. 방송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북부로 오면 내 수입도 더 늘어나겠지.'
시청자들이 모라타로 와서 돈을 쓰면 그만큼 이현의 수입이 늘어나는 셈.
"그럼 2부에서는 갓 들어온 따끈따끈한 뉴스들을 시청차 여러분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대진 씨!"
"네, 담비 씨."
"전신 위드의 새로운 모험이 공개되어서 게시판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는데요."
"최근 역사적인 팔랑카 전투에서의 대기록이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간추린 명장면들을 직접 보시죠."
방송의 화면은 다시 바뀌어서 위드가 해골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온통 적들로 아우성을 치는 전장에서 공주의 의로를 받아들이는 모습과, 백마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들이 편집되어서 올랐다.
"어쩜....."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민소라와 이유적은 두 손을 꼭 움켜쥐더니 방송 화면에서 눈을 돌릴 줄을 몰랐다.
이현이 보기에도 제법 멋들어진 장면들이었다.
KMC미디어에서 최초로 방송된 팔랑카 전투는, 금주의 시청률 1위에 올랐다. 닷새 후 명예의 전당에 팔랑카 전투의 원본 동영상을 올렸을 때에도 조회수 1위, 추천수 1위, 댓글 숫자 1위를 했다.
명실공히 최고의 인기였다. 그리고 이는 무성한 추측들을 양산했다.

"전신 위드가 올린 영상을 보면 알수 없는 점들이 참많은데요. 그로 인해서 논쟁이 벌어졌다고 들었어요."
"배경이 되는 장소가 팔랑카 전투라는 것은 국가들의 상징물이나 병사들의 외침으로 미루어 보아 확실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전투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는지는 매우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러 어떤 의구심일까요?"
"퀘스트에 대한 것들이겠죠. 연계 퀘스트가 확실한 것으로 보이는 이 전투가 과연 끝일지 아니면 그 후로 다시 이어질지에 대한 의문들이 굉장히 많이 남습니다."
KMC미디어에서는 팔랑카 전투 내에서 각 왕국 간의 역학 관계, 몬스터 무리의 우호도 조사, 그 외에 마법과 스킬 등에 대한 정보들을 방송에 내보냈다.
사전에 충분히 방송을 한 후에 이현에게 원본을 명예의 전당에 공개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러나 원본도 팔랑카 전투의 도입 부분에서부터였다.
중급 수련관을 통과해서 기사의 책을 꺼내드는 부분까지는 삭제되어 있었다.
이 부분까지 공개된다면 로열로드에 일대 파장이 일어날 것은 모두가 짐장할수 있는 사실.
알려진 다른 탑의 소유권을 두고 일대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모두가 수련관을 통과하기 위해 몰두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모험은 스스로 빠져드는 자들의 것.
지나친 정보 공개로 인해 수련관마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는 상황은 로열로드의 즐거움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도 옳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현의 모험을 위해서도 비밀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으니, 방송사에서도 비밀을 엄수하고 있는 것이다.

"전신 위드의 들쭉 날쭉한 전투 능력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고 들었어요."
"불사의 군단 전쟁. 그때에는 탁월한 지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크와 다크 엘프들을 원활하게 다루었죠. 큰 고함을 지르는 지휘 스킬과, 굉장히 높은 것으로 짐작되는 통솔력, 카리스마. 당시에는 아마도 성기사의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통솔력이나 지휘 스킬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사들의 직업이 가장 좋으니까요."
"진혈의 뱀파이어들을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프레야의 성기사로 소문이 나 있었으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허나 한참 뒤 본 드래곤과 싸울 때에는 네크로 맨서 마법들을 사용했고, 놀라운 전투 능력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네크로 맨서 마법은 사용하지 않은 걸로 알아요."
"그 때문에 이 논란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 네크로 맨서 마법을 사용할수 없었거나, 혹은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는데요."
"힘을...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유담비가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얼마나 호쾨하고 자신감이 넘치기에, 마법을 쓰지 않고 육박전 만으로 싸운단 말인가.
이현이 네크로맨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여서 어찌나 아쉬워했는지를 알지 못하기에 지을수 있는 표정이었다.
최대진은 그런 유담비의 표정이 너무 예뻐서 잠시 한눈을 팔다가 서둘러 말했다.
"흠흠.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치열한 전장이었고...."
"그래도 전신 위드라면 일부러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유담비도 어쩔수 없는 위드의 팬이었다.
로열로드를 하면서, 그토록 흥분되고 가슴이 뜨거워지게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길드의 마스터들이나 랭커들. 그들은 방송에 나오면 스스로를 자랑하기 바쁘다.
성주나 영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길드 원만이 아니라 NPC 병사들을 실질적으로 거느릴수 있는 그들의 힘은 보통 유저들을 훨씬 넘어선다. 간계와 매수, 비열한 협박, 중상모략 등을 일삼는 경우도 많고, 초보나 약한 유저들은 사람 취급도 안하는 게 다반사였다.
좋은 영주들도 있지만, 베르사 대륙이 넓다 보니 그렇게 스스로를 내세우는 영주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 사람들만 주로 대하다가 모험가들을 보면 존경심과 부러움이 들었다.
보물이나 약속의 증표를 찾기 위하여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들!
위드는 마법의 대륙 시절에서부터 전쟁의 신으로 유명했지만,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던 퀘스트들도 참 많이 해결했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할 의뢰와 사냥을 하는 모험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현재로서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육체적인 전투 능력은 지난번 보다 조금 더 탁월해 진 것 같고, 경악을 금치 못할 반사 신경이나 순간 판단력, 과감성, 전투의 정확도 등은 여전 합니다. 하늘에서도 균형감 있게 싸우는 모습들을 보면 현실에서도 무술인이 아닐지 의심스럽기도 하지요. 그런데 몇몇 유저들을 꽤나 신빙성 높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견일까요?"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 졌을 때에 전신 위드가 몬스터, 그것도 언데드로 등장할수 있다는 것인데요. 본 드래곤을 사냥할 때와 이번 팔랑카 전투의 모습이 외관상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퍼지고 있습니다.
"저도 해골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유저를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상식적으로 그럴수가 없겠죠. 해골의 형태로 마을에 들어오거나 하면 금세 소문이 나거나 알려졌을 것입니다."
죽음을 거부할수 있는 힘은 네크로맨서의 상위 전직, 블러드 네크로맨서의 직업스킬이다.
네크로맨서가 된 사람들은 아직 별로 없고, 네크로맨서 자체가 마법사의 2차 전직이다. 즉, 3차 전직을 해야 블러드 네크로맨서가 될수 있으니 아직까지는 각종 추측들만 무성했다.
이때쯤 이현은 슬슬 자리를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은 방송도 그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베르사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칼라모르와 하벤 왕국 사이의 전쟁에 대한 소식이 되겠습니다. 파괴의 기사 콜드림. 그리고 그가 이끄는 무자비한 군대가 또다시 일을 저질렀다고 하죠?"
"네. 칼라모르 왕국의 대진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하벤 왕국은 이번에 시스타인 요새를 잃어버림으로써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시스타인 요새 공방전. 어떻게 된 일인지 보고 싶은데요. 동영상이 준비과 되어 있을까요?"
"방금 입수한 따끈따끈한 동영상이 당연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콜드림이 이끄는 칼라모르 군대의 위력과 기사들의 활약이 나와있는 동영상입니다. 시청자 분들도 같이 보시죠."

방송의 화면은 시스타인 공방전으로 바뀌었다.
푸히히힝!
말들이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 내달렸다.
"쳐라! 부숴라! 하벤 왕국의 주춧돌 하나도 남지지 않고 모조리 쓸어 버려라!"
"칼라모르 왕국의 영광을 위해!"
"명예와 승리 그리고 폐하를 위해 검을 들자!"
하늘은 금방이라도 굵은 빗줄기를 쏟아 낼 것처럼 회색빛 이었다.
사다리와 밧줄이 걸리고, 칼라모르 왕국의 병사들이 시스타인 요새의 성벽을 장악했다.
발석기와 충차들이 동원되어 성문을 두들기고, 후방에서는 궁수 부대와 마법사 부대까지 공격 마법을 퍼부었다.
시스타인 요새가 애처로워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화력이 집중되고 있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벽돌 하나 남겨 놓지 않을 작정으로 공격을 퍼 붓는 것이다.
"용기를 다해 싸우자!"
"왕국의 미래를 위해 여기서 죽자!"
하벤 왕국의 병사들이 분전을 펼치고는 있었지만, 누가 봐도 이미 승산이 없는 싸움.
잘 훈련된 칼라모르 왕국군은 점점 세력을 키워서 군세가 이미 15만에 이르렀다. 하벤 왕국의 주민들과 항복한 병사들을 노예군으로 삼아 선두에 내보냈던 것.
노예군의 징집이나 무작위 약탈.
기사들을 투입한 적진 교란, 유격전, 섬멸전, 포위 공격.
그리고 전투가 개시되면 단 1명의 투항자도 받아들이지 않는 잔혹함까지.
파괴의 기사.
전쟁을 위하여 태어난 인물.
총사련관 콜드림의 평가도 전투를 이김으로써 갈수록 높아지는 중이었다.

"아! 완전 대단해."
최상준이 감탄한 듯 말했다.
칼라모르 군대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앞에 시스타인 요새가 무력화 되는 것이 보였다.
"대체 통솔력이 몇이기에 저렇게 많은 병사들을 완벽하게 다룰수 있지?"
칼라모르 왕국 병사들 개개인의 위력도 강했지만, 콜드림의 지휘 능력도 발군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금방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콜드림은 먼저 주변 성채들을 쳐서 원군이 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시스타인 요새의 주둔군만 2만이었으니, 원군이 온다면 성채의 특성상 그보다 3~4배 쯤 많은 군사를 막아 내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다.
적어도 상당히 많은 시일을 지연시킬수 있으리라.
그래서 콜드림은 먼저 주변의 성채들부터 쳐서, 하벤 왕국의 수도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때문에 하벤 왕국의 군대는 사분오열되어 자신들의 거점부터 지켜야 했다.
하벤 왕국의 병력 또한 그리 적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것을 쓰지 못하도록 만든 것.
전쟁이 벌어지면 보통 공격하는 쪽이 훨씬 불리하지만, 오히려 적들을 집 안에 숨어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처음 칼라모르 왕국이 선전 포고를 했을 때, 하벤 왕국의 유저들은 즐거워했다.
'선전포고? 공헌도를 올릴 좋은 기회잖아.'
'국가 간 전쟁. 재밌겠다. 나도 참여해야지.'
승리를 의심치 않고 참여한 유저들은 하벤 왕국군과 함께 방어전에 나섰다.
그러나 칼라모르 왕국은 기사의 나라였다.
하벤 왕국의 유저들은 평원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기사대의 돌격 앞에 소름이 돋았다.
9,000여 마리의 말에 타고 있는 기사와 기병들이 창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전력 돌진한다.
그냥 서 있는데도 땅이 흔들리고, 그에 더해 고막을 찢을듯한 함성소리!
"뭐, 뭐야 이건."
"일단 피하고 보자. 앞에 있으면 무조건 죽을 것 같아."
"하지만 병사들이....."
"바보야! 네가 죽고 난 후에 병사들이 무슨 의미가 있어?"
뭐든 부숴버릴것 같은 그 기세에 선두에 있던 유저들은 당황해서 전장을 이탈했고, 그것은 하벤 왕국군의 사기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백부장, 천부장, 심지어는 하벤 왕국의 기사로 있던 이들까지 칼라모르 군대의 돌격 앞에 몸을 뒤로 뺐다.
지휘하던 부대가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궤멸항한 것은 당연했다.
칼라모르 왕국의 기사들 사이에도 유저가 섞여 있었지만, 그들은 그러한 광경을 보며 더욱 힘을 얻었다. 그들은 공격을 하는 입장이었다. 무너진 적진을 유린하면 될 뿐이었다.
이윽고 기사들이 적진을 정신없이 휘저었다.
본대가 철저히 유린되고 있는 사이에 콜드림이 지휘하는 궁수 부대들은 전장을 멀찍이 우회해서 화살을 쏘았다.
포위한 채로 쏘아 대는 화살들은 제대로 된 지휘를 받지 못하고 있던 하벤 왕국군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평원에서 칼라모르의 기사들을 막아 낼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굉장한 착각이었다.
칼라모르 왕국군은 그야말로 대승을 거두었고, 하벤 왕국의 군대는 참패를 당했다.
기사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도주하기도 쉽지 않아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마지막에 마법사들이 모든 마나를 태워서 항전하고, 최후까지 싸운 이들이 있었지만 전쟁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적었다.
전격적으로 움직이는 이동 속도, 한 부분에 공격을 집중해서 진영을 무너뜨리는 지휘 능력.
휘하 기사들과 함께 무자비하게 돌격하는 콜드림은 하벤 왕국 유저들의 넋이 나가게 할 정도였다.
그 후로 하벤 왕국은 변변한 공격을 하지 못하고 방어에만 급급한 형국이었다.
약탈을 통해 몇달은 버틸수 있는 물자까지 확보한 이후로, 콜드림은 전장의 사신이라고 불렸다.
지금 벌어지는 시스타인 전투도, 먼저 발석기의 공격이 며칠에 걸쳐서 이어졌던 것이다.
최상준이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채 말했다.
"칼라모르 왕국의 기사들이 굉장히 강하고... 괜히 기사의 왕국이 아니야. 칼라모르 왕국군에 지원하는 유저들도 굉장히 많다고 하니....."
이유정과 민소라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가만히 고개르 끄덕였다.
심정적으로는 이미 칼라모르 왕국을 응원해 주고 있었다.
하벤 왕국에는 유별나게 명문 길드들이 많았다. 길드들의 사냥터 독점과 과도한 세금으로 인하여 피해를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 지경이었다.
그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콜드림의 통쾌한 공격이 대리만족까지 주었다.
하벤 왕국의 일반 유저들조차도 별로 잃을것이 없다면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실 모병을 하더라도 지원하는 유저들이 거의 없는 형국이었다.
칼라모르 왕국군이 하벤 왕국군을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동영상이 이미 천지 사방으로 퍼졌다.
그런 방송들의 영향도 현재로써는 무시 못 할 정도였다.
전쟁의 흐름이 칼라모르 왕국으로 넘어간 데에는 그러한 근본적인 이유도 존재했다.
이현은 흐뭇했다.
'역시 저놈을 살려주기를 잘했군.'
뱀파이어에게 붙잡혀 있는 녀석을 살려 주었더니 파괴의 기사라면서 추앙을 받고 있다.
칼라모르 왕국군의 공헌도나 콜드림과의 친밀도를 떠올릴수록 뿌듯할 뿐이었다.

시스타인 요새의 외성 벾이 결국 칼라모르 왕국군의 진격을 막지 못하고 점령되었다.
내성 벽에서는 협소한 공간 탓에 공성 병기를 활용하기 어려웠고, 마법사 부대 또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병사들이여, 진군하라!"
콜드림은 지체하지 않고 인해전술로 길을 뚫는 방법을 택했다.
불리한 전장에서 칼라모르 왕국의 병사들이 일제히 돌격을 했다.
"살려 줘!"
"안으로 들어가야 돼."
하벤 왕국군은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다. 서로 내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엉키고 엉킨 난장판.
그 뒤를 칼라모르 왕국의 병사들이 바짝 추격하면서 승리를 굳혔다.
그러고 나서 기사들의 대대적인 진입!
전투로 피로한 기사들이었지만, 다 이긴 전쟁을 굳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스타인 요새에서 하벤 왕국의 깃발이 내려지고 칼라모르 왕국의 깃발이 올라갈 때에는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전투로 시스타인 요새가 무너지면서 하벤 왕국으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전쟁의 양상은 어떻게 될까요?"
"말씀하신 그대로 입니다. 물러설 곳이 없어졌으므로 하벤 왕국의 유력 길드들이 참전하게 되리라 봅니다. 개입을 꺼리던 성주들도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되어, 진정한 전쟁은 지금부터라고 할수 있습니다.


"어떤 던전을 탐험할지 그리고 무슨 모험을 할지 정해야 돼요."
방송을 다 보고나서 이유정이 또박또박 정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장학금을 노리는 그녀로서는 중간시험을 대체하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싶었다.
"그럼 모두 각자의 직업과 레벨부터 맒해보는 게 어떨까요? 먼저 저부터 말할게요. 검사이고 데일왕국에 있어요. 레벨은 237이에요."
다음 소개는 민소라였다.
"전 유정이랑 같이 있고, 인챈터. 레벨은 144인데.... 지난번 보다 많이 안 늘었어요."
민소라는 낮은 레벨이 부끄러운 듯 혀를 살짝 내밀었다.
신입생 설명회 당시에 서로 인사를 나눌 때에도 140이었는데 그동안 레벨이 그다지 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검사 297. 흑사자 길드에 소속되어 있고, 현재 위치는 흑사자 길드의 영토인 네할레스 성."
최상준이 자신 있게 스스로를 소개했다.
어디에서도 인정을 받을수 있는 레벨과 영향력이었다.
박순조도 어색하게 자신을 밝혔다.
"도둑이고 레벨은 355. 지금 있는 장소는 수나 왕의 무덤인데....."
수나 왕의 무덤!
함정이 많고, 고대 미라들이 출몰하여 고레벨 유저가 아니고는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장소였다. 무덤의 넓은 면적탓에, 대회랑을 지나면 왕이나 왕비의 방들을 포함하여 아직 발굴하지 못한 장소들이 많았다.
"수나 왕의 무덤이라니....."
"레벨도 저번보다 훨씬 더 높아졌잖아."
"거길 혼자 탐험해?"
"주력 스킬로 함정 해체와 기습을 전문적으로 키워서 그럭저럭 버틸만 하거든."
박순조가 관심을 끌고 있을 때에 이현은 슬그머니 자신을 소개했다.
"조각사. 레벨은... 뭐 그냥 그렇고. 현재 있는 장소는 토르왕국."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다크 게이머로서 밑천이라고 할수 있는 레벨이나 특성, 스킬 들을 그대로 공개할수 없어서 였다.
"아, 그렇구나."
이유정은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그래도 원래 조각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따로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무시하지 않은 것은 인챈터로서 레벨이 낮은 민소라의 영향도 있었다.
"이현 오빠."
"응?"
"과제 매번 안하시는 거 알지만, 이번에는 꼭 다같이 해 주셔야 돼요. 어쨌든 2명을 더 모아서 7명이 다 함께 참여하지 않으면 제대로 성적을 얻기 어럽거든요."
"그래."
이현은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의 과제들이야 안 하더라도 학점을 이수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이현의 목표는 그저 기본적인 학점만 받아서 졸업하는 것이었으니까.
대학생들 상당수가 그렇듯이 놀고 먹기 위한게 아니라,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을 뿐이엉ㅆ다.
'하지만 로열로드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로열로드는 직업이다.
생계를 꾸려 나가는 터전 같은 곳이니 던전을 탐험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현이 수락을 했음에도 고민거리는 남아 있었다.
민소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우리의 직업이 너무... 던전 탐험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닐까."
인챈터와 조각사.
검사 둘에 도둑 1명도 있지만 레벨 차이가 심하게 났다.
조합도 맞지 않을 뿐더러, 손발을 맞춰 본 경험도 전무했던 것.
"나머지 2명은 어떻게든 성직자나, 최소한 샤먼 정도는 영입을 해야겠어."
"응. 그러지 않으면 던전 탐험은 정말 힘들거야."
"다른 조들은 미공개 던전들을 탐험하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우리도 그나마 유명한 던전을 탐험해야 학점을 받을수 있을 테니까."
"던전의 난이도는 꼭 높지 않더라도, 조합 이나 협력에 따라서 그 이상의 힘도 낼수 있잖아."
"하지만 남은 사람들 중에 성직자나 샤먼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이번 과제가 끝나고 나면 축제인다...."
"우리 과는 무슨 준비를 하는데?"
"구체적인 건 모르겠지만 학회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준비를 하는 것도 같더라."
한국 대학교의 축제는 규모나 다양성 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타 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일반인들도 많이 오고, 가수와 연주가 들도 와서 소규모 콘서트를 벌인다.
학생들이 개최하는 주점과 발표회 등은 축제의 백미였다.
이현은 생각했다.
'이놈의 대학교는 귀찮은 일들이 끊이지가 않는군!'
MT를 다녀왔더니 과제들이 첩첩이 쌓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도 까마득한데 그 다음에는 축제가 열린다.
'따지고 보면 인생도 로열로드의 연계퀘스트나 다를바가 없어.'
이현은 극히 우울해 졌다.
금쪽같은 시간을 축제나 학교 과제에 써야 하다니!
축제에 오는 예쁜 여성들이나 댄스파티, 콘서트 등으로 다른 학교 학생들은 한국 대학교를 부러워했다.
실컷 내뿜는 젊음의 활력.
하지만 이현에게는 귀찮은 일에 불과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군.'
축제는 자그마치 닷새에 걸쳐서 진행되고, 그 사이에 할 것들을 준비하자면 한참 전부터 바쁘다. 이현이 빠져나갈 구석을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었다.


10. 악룡 케이베른

드워프 마을 아이언핸드.
토르 왕국에서도 명장 드워프들이 많이 살기로 유명한 마을로, 인근 광산에서는 순도 높은 철들이 대량생산된다.
작고 앙증맞은 드워프 주택들, 주택가에도 듬성듬성 있는 대장간은 이곳이 장인들의 마을임을 쉽게 알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드워프들을 위한 상가 지역도 있어서 키 작은 드워프들이 다수 이용하고 있다.
보통 다른 마을은 중앙 광장이나 시장 근처에서 상거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지만, 아이언핸드에서는 마을 입구 근처에서부터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진귀한 광경을 볼수 있었다.
인간, 엘프, 묘인족 할것 없이 마차를 끌고 온 상인들이 드워프를 붙잡고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이다.
"로엔 상단의 상인 미트라입니다. 혹시 만들고 계신 무기나 방어구가 있다면 저에게 팔아 주실수 있을까요?"
"세공 물품 대량으로 가져왔습니다. 조금만 손봐 주시면 사례비를....."
"뭐 필요하신 물건 있으면 대량으로 공급해 드립니다. 토르 왕국의 철이나 구리는 비싸지만, 좀더 저렴한 노이드 왕국의 3등급 철은 어떠세요?"
"가격 비싸게 쳐 드립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상인들의 집요한 호객 행위!
지나다니는 드뭐프들을 붙잡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기세였다.
아이언핸드는 무기와 방어구 생산의 중심지로서, 이곳에서 구한 물품은 베르사 대륙 어디에서도 비싸게 팔아 먹을수 있다.
일부러 이곳 까지 찾아온 상인들로서는 혈안이 되어 드워프들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것.
"좀 놓아주세요."
"저는 드워프 전사인데...."
수염을 곱게 기른 순진한 드워프들이 고생을 겪고 있었다.
사실 이런 면 때문에라도 드워프들은 아이언핸드에 잘 오려고 하지 않는다. 순박하게 대장장이 스킬들을 성장시키면서 살아온 장인들에게는, 상인들의 가격 후려치기 및 사기에 가까운 상행위가 고깝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 아이언핸드에 위드도 걸어왔다.
멀리서부터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며 위드는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머리를 끄덕였다.
'제대로 찾아왔군 상인들이 저렇게 많다니, 과연 드워프 마을이야.'
모라타에 오는 상인들이 좀더 큰 돈을 노리고 먼 거리를 오는 행상이라면, 이들은 대량으로 구매해서 대량으로 파는 거상들이다.
물품 중개업으로만 돈을 모으고 왕국이나 마을의 발전에는 그다지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해서 상인 업계에서는 그들을 천시하고 있었다. 호객 행위를 비롯해 가격도 손님을 봐가면서 제멋대로 책정하는 등, 그리 질이 좋다고 할수는 없는 부류다.
그들 상인이 멀리서 다가오는 드워프, 위드를 보았다.
'먹잇감이다.'
'저 드워프는 내 거야.'
굶주린 상인들이 우르르 집단으로 위드를 향해 달려왔다.
"물건 사거나 팝니다."
"뭐든 거래해 드릴게요."
"가지고 있는 물품 저렴하게 팔고 가세요. 멀리서부터 왔습니다. 제발요!"
"다른 사람들보다 무조건 더 높은 가격 제시합니다. 팔거 있으면 파세요."
상인들이 집단으로 뭉쳐서 떼를 쓰기 시작하면 웬만한 드워프는 빠져나오지 못한다.
대체로 아이언핸드에 오는 드워프는 장인들이라서 전투 레벨도 낮거니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탓이었다.
위드는 바람처럼 내달렸다.
낮은 키를 최대한 이용하여 상인들의 다리 사이를 빠져나가고, 절묘한 방향 전환 등으로 상인들의 손을 피했다.
"앗!"
"빠져나갔다."
허탕을 친 상인들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이렇게 쉽게 자신들의 포위망을 벗어나다니. 악질 상인들의 경력에 오점을 남길 만한 일이었다.
진정한 거상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채로 마을 입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위드가 마을 입구를 통과할 때에 넌지시 한마디씩을 건넸다.
"나보다 비싸게 사 주는 사람 이 세상에 없을걸."
"가진 건 돈 밖에....."
나름대로 영업 전략에 따라 다른 상인들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위드는 그들마저도 지나서 아이언핸드 마을로 들어갔다.

드워프 대장장이는 타고난 손재주 덕에 무기나 방어구를 잘 만드는 재주가 있다.
전사라고 할 지라도 간단한 물품, 횃불이나 화살 등은 어렵지 않게 만들어쓴다.
전투에서 죽을때까지 싸우는 고집불통 드워프 전사들의 수도 적지 않지만, 아무래도 드워프들은 거의 모두가 장인의 길을 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손재주와 예술성, 생산 스킬 등의 축복을 받고 태어나는 드워프의 특성 때문이다.
트워프 종족을 택할 때부터 이런 장점들을 고려했기에 장인의 숫자가 굉장히 많았다.
불과 철을 다루는 데 가장 능숙한 종족.
초반부터 내구력 높은 물품들을 만들어 내고, 생산 스킬들을 섭렵하며 존중받는 장인이 된다.
인간 대장장이는 거의 모든 무기를 만들수 있다. 하지만 전문성은 그만큼 떨어진다.
활은 엘프 대장장이가 만든 것을 최고로 쳤다.
하지만 엘프들은 정령술과 마법, 궁술에 능통한 종족이다.
엘프 대장장이들은 많지 않고, 그들이 만드는 활은 특수한 재질의 나무를 쓰기에 거래가 빈번하게 이루어질 정도는 아니다.
드워프들이야말로 대장장이를 위한 꿈의 종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은 그리 부유하지 못했다.
"휴우, 이번달에 밀린 철광석 값을 겨우 갚았어."
"자네도 그런가? 난 요즘 철광석 값이 올라서 죽겠네."
"대장장이 스킬은 마음대로 늘어나지 않고, 중간 상인들은 가격 후려치기에 바쁘고... 이것 참 힘들군."
주점에는 푸념하는 드워프들이 많았다.
위드는 낮은 탁자와 의자에 앉아 우유를 시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세상의 누구나 다 자기가 힘들다고 생각하지.'
예술가보다 평안한 삶을 사는 드워프들도 신세 한탄을 한다. 하지만 드워프들이 경제적으로 쪼들릴 수밖에 없는 사연도 있었다.
"이번에 악룡 케이베른이 세금을 더 올린다는군."
"석 달 전에 올렸는데 또?"
"레어를 금으로 장식하고 싶다는 이유야."
"어휴! 그놈의 요구는 끝도 없군. 그래, 이번에는 어떤 몬스터들이 요구를 하러 왔나?"
"무슨 상관이야. 그놈 휘하의 몬스터 군단이 어디 한둘 인가?"
"그래도 어떤 놈이든 오긴 왔을 것 아닌가."
"듣기로는 미노타우로수 가드들이 왔다더군."
악룡 케이베른.
토르 왕국을 비롯해 인근 산맥들으 자신의 영역으로 가지고 있는 드래곤이다.
보석에 대한 탐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드워프들은 생존을 위하여 끊임없이 공물들을 바쳐야 한다.
인간 마을들은 몬스터의 침입을 받거나 다른 왕국의 공격에 의해 피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모라타만 하더라도 몬스터들의 침입으로부터 그리 안전한 편은 아니다.
반면 드워프 마을들은 드래곤에 의해 지배되는 몬스터들로 인해 이러한 침입으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었지만, 생산물들 특시 보석이나 금을 바쳐야 되었다.
다만 무조건 나쁘다고만 몰수 없는 것이, 가끔은 드래곤이 휘하 몬스터들을 부려서 새로운 광산들을 개발할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도 한다. 물론 이런 광산에서 나온 미스릴이나 철광석 등은 절반 이상을 상납해야만 했다.
또한 드워프 전사들은 산맥에 있는 몬스터들을 사냥할수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도 드래곤은 드워프들에게 징벌을 내리지 않았다.
드래곤이 보기에 드워프들은 귀찮은 일을 도맡아하며 어떤 일이든 시킬수 있는 일꾼일 뿐이고, 몬스터들은 자기 영역에서 사는 벌레일 뿐이다. 구태여 간섭할 까닭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토르 왕국에는 5마리의 드래곤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케이베른이 가장 보물을 밝히는 놈이었다.
드래곤이라는 상전들만 아니었더라도 토르 왕국은 진작 발전을 거듭해서 최고의 국가가 되었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토르 왕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용병들을 모아 드래곤 퇴치에 열을 올리나 전혀 소득도 없고, 현재로써는 글너 용병일에 참여하는 이도 드물었다.

위드는 우유와 빵으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주점을 나섰다.
'그래도아직 드워프들은 살 만하군.'
드워프들의 앓는 소리는 엄살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고기와 맥주를 시켜놓고 시간을 보내는 주제에 무슨 빈곤 타령인가!
드워프 마을들의 세금이 높은 편이기는 해도, 그런대로 버틸 만은 했다.
대륙 최고의 양질의 철광석들을 바탕으로 무기등을 만들고 스킬들을 점점 성장시키니, 유명한 드워프 장인들에게는 주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토르 왕국을 떠나서 다른 왕국에 간 드워프들은 떼돈을 벌고 있고, 심지어는 무기와 방어구 판 돈으로 영주도 하고 있었다.
물품을 공급해서 고레벨 유저들과 인맥을 쌓고, 길드들을 만듦으로 인해 세력을 확대한다.
베르사 대륙에는 야망을 가진 대장장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위드는 조각사 길드로 들어갔다.
토르 왕국의 조각사 길드는 일반 드워프들도 많이 이용하는 편이었다.
조각술이 손재주를 가장 빠르게 성장시켜 주었으니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수준까지는 익히는 편이었다.
주각사 길드 안에도 드워프들이 많았지만, 아무도 위드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조각 변신술로 완벽하게 드워프로 모습을 바꿔서 위장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쯧쯧, 자네는 아직 멀었군. 더 배우고 오게."
드워프 교관은 까칠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드워프들을 다루고 있었다.
"자네는 무기를 만들 시간에 조금이라도 예술에 대해 고민을 해 보는게 어떤가? 강한 무기라고 하더라도 예술이 없으면 명품이 되지 못하는 법이야."
"혼을 불어넣는 무기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조각사 길드에 왔다고? 대장장이 길드에서 제대로 가르쳐 준 모양이군. 하지만 너무 일러. 적어도 제대로 무기부터 만들고 나서 오도록 해. 결점 투성이의 물건에 어떻게 혼을 불어넣을수 있단 말인가."
"무능한 드워프들 같으니."
교관의 말에 드워프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대체 얼마나 더 노가다를 하란 말이야.'
'지겹다, 지겨워. 이놈의 생산의 길.'
한탄을 하면서도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더 좋은 물품을 만들고, 대장장이 스킬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주변에서 인정을 받는다.
드워프는 불만이 있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무기를 만들든 대장장이 스킬의 빠른 향상을 위해서는 손재주가 꼭 필요하다. 그런 손재주를 위해서는 조각술을 익히는 게 가장 좋고, 또 조각술이 조금쯤은 다른 물품을 만드는데 도움도 되니 참을수 밖에 없었다.
위드는 차례를 기다려서 드워프 교관에게 말했다.
"손으로 빚어내고 표현하는 예술의 길. 그 예술의 길에 새로운 기르침을 청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뭐라고?"
드워프 교관은 믿을수 없는 말을 듣은 듯한 표정이었다. 주름 투성이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고, 수염을 만지작 거리는 것도 잊은 태도였다.
"자네 방금 뭐라고 했나."
"새로운 가르침의 길을 청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웅성웅성.
"방금 저 드워프가 뭐라고 말한거야?"
"새로운 가르침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조각술의 레벨이 얼마인데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드워프들조차도 믿을수 없어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유저를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각술 스킬이 발전함에 따라서 당연히 익힐수 있는 상위 스킬들!
지금까지는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서 굳이 배우지 않았지만, 드워프 마을의 조각사 길드에 온 이상 배우기로 작정했다. 드워프들의 길드에서는 스킬을 익히는 비용이 다른 곳들에 비해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혜택 때문이었다.
드워프 교관은 전시되어 있던 조각용 엘프목이 있는 쪽으로 위드를 안내했다.
"자질이 충분한 조각사임을 증명할 기회를 주지. 그럼... 솜씨나 발휘해 보게."
"주제가 무엇입니까?"
"뭐든 괜찭지만,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 조각품이면 좋겠군."
위드에게 이미 엘프목은 익숙했다.
'조각 상점에서 파는 고가의 조각 재료. 나무 중에서는 최상급이지.'
나무로는 정말 지겹도록 조각품을 만들었다.
보존성에 있어서는 좋지 않지만 빠르게 만들수 있고, 표현에 있어서도 나쁘지 않다.
나뭇결이나 나이테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통으로 된 나무들. 조각품을 만들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무늬들이 대단히 아름답다.
이런 명품 나무들은 조각 재료로서도 굉장히 고가라서 수십골드를 넘기도 한다.
드워프 교관이 제시한 시험에 나온 엘프목은 그러한 최상급 나무인 것이다.
"저 엘프목 잘 깎이지도 않잖아. 저런 나무로 즉석에서 조각품을 만들라니, 정말 어려운 시험인데...."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조각사 길드의 드워프들은 자신들의 일도 중단하고 위드의 행동만을 주시했다.
위드는 묵묵히 엘프목을 보다가 의자를 밑에 깔았다. 드워프가 되고 나서 키가 작아진 탓에 원활한 조각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키높이 의자가 필수 였다.
위드는 자하브의 조각칼을 꺼내어 과감하게 엘프목에 꽂았다.
푸욱!
조각술 시험을 보고있음을 감안하면, 드워프들에게는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과감한 행동!
조각칼이 엘프목에 깊게 박혔다.
그런 상태에서 위드는 대각선으로 쭈욱 그어 버렸다. 자하브의 조각칼은 마치 두부자르듯이 엘프목을 갈랐다.
위드가 조각칼을 움직일 때마다 여지없이 엘프목이 통째로 그어지고 베어진다.
"이게 조각술?"
"조각칼을 검처럼 다루다니 어떻게 이런일이...."
"보통 조각칼이 아닐거야."
도구에도 놀랐지만 과단성있는 솜씨에 더 크게 놀랐다.
무슨 조각칼을 찌르고, 베고, 휘두르면서 나무를 사정 없이 토막 내어 버리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가 점점 어떠한 형태를 갖추어 나가는 게 놀라웠다.
마구잡이로 베어내는것 같지만 실수가 없다. 여러번 손을 거쳐서 만들어질 것들이, 한번에 뚝딱 이루어진다.
조각칼의 사용에 있어서 달인이 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 경지.
본인의 힘과 검술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난이도의 조각술.
구경하는 드워프들이 많음에도 당황이나 긴장 따위가 전혀 없다는 점 또한 놀라웠다.
이 순간 시험에 임하는 위드의 마음은 간단했다.
'어차피 돈도 안 되는 거, 대충 하자!'
시험도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것 같은 사람에게나 초초한 법이었다.
'저주를 받기 전에 빨리 끝내 버려야지.'
미지의 존재들이 자신부터 만들어 달라고 귓가에 떠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놔두면 어떤 저주에 걸리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속도가 생명이었다.
'성공 못하면 돈 날린다. 이거 하나 만들어 봐야 몇 쿠퍼 일텐데, 밥값이라도 하려면....'
절박하게 조각하던 초보 시절.
상황이 나아진 지금도, 여신상 정도의 거창한 것들을 만들면서 담력을 길렀다.
드워프 마을에서 조각술 시험을 보는 정도 따위는 위드에게 어떤 감흥도 줄수 없었다.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 조각품.'
위드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다.
몇 초 고민하지도 않았다.
이곳은 드워프 마을이다.
드워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조각품은 시작부터 정해져 있다.
"드래곤이다."
"저 넓적한 날개와 풍만한 엉덩이 그리고 굵은 다리는.... 악룡 케이베른 이잖아!"
나무의 크기 한계로 인해 실물보다야 훨씩 작게 조각되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정해진 다음에는 위드의 조각칵이 빠르게 세밀하게 움직이면서 나무들을 깎아 냈다.
탐욕스럽게 벌린 주둥이.
인간의 성대 구조라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그처럼 동그랗게 말고 말할수 있는 단어는 하나였다.
돈!
짧은 팔에는 보석들을 가득 쥐고 있고, 눈썹과 수염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뻗었다.
막 땅을 박차고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고 하는 악룡 케이베른.
"저 드래곤을 여기서 또 보다니."
"저놈의 드래곤만 없었더라도 제법 먹고 살만 했을텐데 말이야."
드워프들은 악룡 케이베른을 보면서 화도 나고 짜증도 일어났다.
조각품이란 입체적인 표현의 예술.
이름만 들어도 분노가 솟구치는 대상을 눈으로 보고 있으니 그 기분이 훨씬 배가되었다.
드워프 교관이 말했다.
"시험은 합격했다. 이렇게 빠른 시간에 조각품을 완성할 줄은 정말 몰랐군. 본인의 조각술 실력을 너무 과신하는게 아니라면 좋겠다."
까칠한 드워프 교관이 이 정도의 말을 하는 것은 최고의 극찬에 가깝다고 할수 있다.
그래도 자만심이 있는 조각사로 보는 것은 않 좋은 현상.
위드는 슬그머니 변명을 늘어놓았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성의 있게 조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해한다. 나보다도 뛰어난 조각술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세공의 정밀함에 있어서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우리 드워프 사회에서는 금기시 되어있는 악룡 케이베른을 이런 식으로 조각할 줄은 몰랐다.
"저는 도마뱀 1마리를 조각핼쓸 뿐입니다."
드워프 교관이 흡족한 듯이 웃었다.
"내 마음에 아주 쏙 드는 녀석이군."
그러자 구경하고 있던 드워프들의 안면 근육이 경직되었다.
만날 욕설이나 퍼붓고, 무능하다고 조롱하던 교관과 몇마디의 말로 친해질수 있다니!
"조각술 교관과 친해진 유저가 등장했다!"
"저런 아첨 신공은 어디서 배운 것이지?"
위드의 함께 욕하며 친해지기 기술을 처음 본 드워프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질 만한 일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너무 어렵게 살았구나.'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더니, 저 간교한 혓바닥으로 인생을 거저먹지 않는가.'
아무튼 교관은 친밀도의 영향으로 인해 20%나 더 할인된 가격으로 조각술을 전수해 주었다.
"조각품은 마음을 움직일수 있다네. 마음을 닫아걸고 있는 이나 대화를 원하지 않는 이들도, 조각품을 보고 진심을 알수 있을 거야."
띠링!

- 조각 언어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조각품들은 불멸이 아니라네. 세월이 흐를수록 손상되기 마련이지. 손상되 작품들을 복원하면 후인들에게 더 많은 행복이 될거야. 조각 복원술을 배우고 나면 의뢰 등을 받으면서 조각품의 심오한 세계에 대해 배울 기회가 많을 걸세. 아쉽게도 이미 그 수준은 넘어버린것 같지만."

- 조각 복원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위드는 새로 얻은 스킬들의 정보를 바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스킬 정보창. 조각 언어술, 조각 복원술!

- 조각 언어술 1(0%) : 대화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들이나 인간, 이종족들에게 조각품으로 말을 걸수 있다.
훌륭한 작품이라면 그들의 적의를 누그러뜨리고 호의를 이끌어 낼수 있을 것이다.
스킬의 레벨이 오를수록 명성이나 종족의 제한을 벗어나 대화를 걸수 있음.
조각 언어술이 중급에 이르면 모험가의 특수 감정스킬을 습득하게 됨.
조각 복원술1(0%) : 스킬 레벨에 따라 파손된 조각품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할수 있다.

이미 커다란 명성과 아부 신공을 가니 위드에게 그리 필요한 스킬은 아니었지만, 우선은 배워 두었다.
여기까지가 위드가 원래 배우려고 하던 부분이었다.
미지의 존재들이 스스로를 조각해 달라고 아우성을 쳐 대서, 프레야 여신의 신탁까지 받아 드워프 왕국 까지 왔다.
그들을 조각하는 방법, 조각술의 비기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의 냄새가 풍긴다.
이것은 그리 쉽게 찾을수 있으리라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교관은 뜻밖의 말을 했다.
"자네는 조각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꿈을 가지고 조각사가 되었는가?"
위드는 이순간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갈등했다.
'돈, 명예, 권력, 힘. 뭘 말해야 되지?'
순간적으로 갈등이 스쳐 지나가는데, 대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지 교관이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조각사의 꿈은 역시 조각품에 대한 열망이겠지. 더 좋은 조각품을 만들어서 세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 그것이야 말로 조각사들의 낭만이 아니겠는가?"
"...."
"아무튼 자네 정도라면... 조각사로서 스스로의 길을 선택 해야 할 때가 되었네."
"스스로의 길?"
"조각술이란 다른 분야에 비해서 고상하고 난해한 예술의 분야야."
위드도 인정하는 바였다.
돈이라고는 지지리도 나올 구석이 없는 예술. 조각술.
"조각술에 평생을 바치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네. 자네가 이룩한 경지가 대단하기는 하나 조각술의 정점을 바라보기에는 아직도 한없이 미약한 수준."
조각술이 고급에 이른 이후로 스킬 숙련도가 매우 더디게 늘기는 했다. 갈수록 스킬숙련도는 줄어들 뿐더러, 연관 스킬인 조각 검술, 조각품에 생명부여, 조각 변신술은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조각술에 모든 것을 바치기란 어려운 일이지. 이제 그만 그 뜻을 꺽는다면 지금까지 고생한 보람을 얻을수 있을 것이야."
"보람요?'
"그렇네. 조각술을 익힌 공로로 예술 분야의 명사가 되어 귀족으로 성장할수도 있는 것이지. 원한다면 인간 왕국의 귀족이 될수도 있을게야."
위드는 이미 백작이고 영주였으므로 그리 가치있는 제안은 아니었다.
"아니면 지금까지 얻은 조각술을 다른 분야로 활용하는 수도 있어. 혹은 좀더 쉬운 방법을 택할수도 있지. 일종의 편법이 되겠고, 정작 조각술의 끝을 볼수는 없게 될 테지만 그동안의 고생을 쉽게 할수 있을 것이야."
"...."
"조각술이란 어렵지 않은, 누구나 즐길수 있는 예술이지. 편히 즐긴다고 해서 누가 자네를 욕하겠는가?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덜어줄 수도 있을 거라네."
띠링!

- 조각사의 선택
드워프 교관은 당신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 속성 조각술 : 열흘 이상 매일 5개 이상의 조각품을 만들면 그후로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더 빨리 늘어난다. 단, 조각술 외의 다른 스킬들의 성장은 크게 줄어든다.
* 미안의 조각술 : 예술 스탯과 매력의 성장이 빨라진다.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드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 다재다능한 예술가 : 손재주를 기반으로 다른 스킬들을 익힐 때 도움이 된다. 조각술은 더 이상 익힐수 없지만 생산스킬을 비롯하여 손을 이용한 스킬들의 성장 25% 빨라진다. 단, 다른 어떠한 생산, 예술 스킬도 마스터 할 수는 없다.
* 영원한 조각사 : 조각의 세계에 영혼을 바친 조각사. 걸작, 명작, 대작의 구분 외에도 다른 특징적인 조각품들을 만들어 낼수 있다.
조각품들의 특색이 강화된다.
역사적인 작품, 불가해의 작품, 대륙의 보물 등을 만들어 낼수 있다.
조각술과 연관 스킬들의 효과가 20% 증가하며, 웅대한 예술성과 기량으로 높은 등급의 조각품까지 만들수 있음으로 인해 특별한 효과와 많은 보상을 얻을수 있으나, 실패작을 만들었을 때의 감소폭도 커진다.

위드는 오랫동안 갈등하지 않았다.
'매번 이런 식이군.'
조각사를 택하고 나서 직업을 바꿀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하나 그럴 때 마다 위드의 선택은 그대로 조각사의 길을 가는 것.
근본적으로 조각술이 점점 좋아졌다는 사실을 부인할수 없었다.
세공 솜씨가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항상 훌륭한 조각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세세한 곳까지 표현된 조각품이라고 해도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실력은 모자라도 좋다.
어린아이가 동심으로 만든 조각품. 서툴고 조악한 솜씨라도 정성껏 만든 것들은 느낌이 다르다.
신기하게도 기쁜 마음을 가지고 만든 조각품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미소를 짓게하고 기쁨을 전해 준다.
유쾌함, 보람으로 만든 조각품들. 애정이 담긴 조각품을 깎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충실하게 되었다.
'여동생의 웃는 얼굴, 할머니의 자애로운 눈빛을 조각하면서... 그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위드 본인이 즐김으로써 그리고 정성을 기울이면서 얻게 되는 순수한 희열!
서윤이 웃는 모습을 조각했다.
살인자로서 그녀가 무섭게 느껴졌을 때, 그녀가 웃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만든 것이 진정한 조각품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빙설의 폭풍으로 추위에 얼어 죽을 것만 같을 때,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고자 빙룡 조각상을 완성했다.
조각술은 위드의 모험을 함께해 온 동반자였다.
고통 속에서 꿈을 꾸었다.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 조각술을 통해 현실이 되어 버린다.
조각 검술을 펼치고, 생명을 부여하고, 다른 이로 변신을 한다.
조각술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조각사의 감정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비춰질리가 없건만, 그럼에도 조각품에 묻어나는 모양이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주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대 조각사 위주로 하고 있었지만, 조각술이 좋다는 것만은 부인할수 없었다.
마음을 다해서 만드는 조각품들.
위드가 어려웠던 시적을 추억으로 되새기면서, 미래를 위해 펼치는 꿈의 조각술이다.
'뭐, 치사하고 더러워서, 지금까지 저질러 놓은 것도 아깝고.... 뭘 하더라도 더 잘할수 있겠지만 귀찮으니까 그냥 선택해 준다.'
위드가 말했다.
"영원한 조각사의 길을 가겠습니다."

- 오빠, 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 그게.....
제피는 혼자 토둠에 남은 유린이 귓속말로 던지는 질문에 대답을 해 주고 있었다.
그녀가 모르는 것들을 대답해 주다보니, 어느새 접속하면 인사도 나누고 귓속말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검치 형님들이 아는 날에는 나는 최소한 사망이다.'
그래서 유린이 오빠라고 말할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
하지만 거절할수도 없어서, 친절하게 대답은 해 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유린이 불쑥 물었다.
- 오빠는 집이 어디예요?
- 강북이야. 평창동.
- 평창동이 어딘데요?
- 북한산 아래인데.... 설명하자니 좀 어려워.
- 아, 오빠도 어렵게 사는구나. 수도꼭지에서 물은 잘 나와요? 거긴 마을버스도 안 다니죠?
- ......
- 나중에 제가 김밥에 떡볶이라도 사 드릴 테니 기운 내세요.
웬만한 졸부들은 명함도 못 내미는 동네 평창동이 산동네 취급을 받았다.
- 오빠는 학교 졸업하면 무슨일을 하고 싶어요?
- 무슨 일이라니?
- 하고 싶은 일이 있을거 아니에요.
- 하고 싶은 일이라... 별로 생각 안 해봤어. 그냥 부모님 가업을 이어가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쪽으로 공부도 많이 해 왔고.
- 그렇구나. 가업이 뭔데요?
- 오성인데......
제피는 사실대로 말해야 될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로열로드를 하면서 누구에게도 그의 집안에 대해 말한 적이 없는 탓이다.
- 혹시 오성 전자예요?
- 응? 으응.
오성 전자는 연간 매출액이나 순이익에서 세계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는 전자 회사로, 오성 그룹의 중심 계열사였다.
'오성 전자도 우리 계열사 중의 하나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 오성 전자에서는 컴퓨터, 휴대폰, 생활 주방 가전 등등 취급하죠?
- 그, 그럴걸.
- 훗! 잘됐네요.
수많은 여성들을 섭렵한 제피의 눈치는 비상한 편이었다.
'반응이 좀 이상하긴 한데.'
놀람과 감탄이 아니라, 제대로 잘 걸렸다는 태도.
유린의 귓속말이 들려왔다.
- 오늘 밤에 우리 집에 좀 올래요? 우리 오빠한테는 말하지 말고.... 오빠는 오늘 도장에서 좀 늦어요.
유린이 갑자기 밝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최지훈은 무수한 심마를 겪고, 초췌해진 얼굴로 이혜연이 사는 동네까지 차를 운전해서 왔다.
"이게 무슨 일일까."
여자가 집으로 초대했으니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상대가 이혜연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대화를 하며 친해지는 것도 목숨을 걸고 하는 판국에, 밤에 집에 초대받은 것을 걸리기라도 한다면......
"죽음이지, 죽음. 변명의 여지도 없을 거야."
최지훈은 무수한 망상에 사로잡히며 억지로 발걸음을 떼었다.
이혜연이 상세하게 위치를 알려준 덕에 어렵지 않게 찾아 갈수 있었다.
도로나 상가와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에 위치한 조그만 단독 주택.
마당에는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 있고, 구석에는 장독들이 보였다.
"과연."
최지훈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단아한 가풍의 집에서 성장한 여자라면 살림은 정말 잘할 거야."
하지만 그는 조금도 몰랐다.
이현은 이혜연이 부엌에 들어오려고 할 때마다 결사적으로 말렸다.
"부엌일은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 해도 돼. 그때에도 김치나 밑반찬은 계속 가져다 줄 테니, 넌 손에 물도 묻히지 마."
그렇다고 설거지나 빨래도 완전히 안 하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살림은 이현의 몫이었다.
집도 이현이 구했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단련된 다년간의 지리 감각. 터가 좋고 햇빛이 오래도록 드는, 양지바르고 조용한 동네를 택해서 매입한 것이다.
딩동.
최지훈이 벨을 누르자, 이윽고 정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
여자 집을 처음 방문해 보는 것도 아닌데 슬며시 가슴이 떨렸다. 두 팔에는 과일 상자와 꽃을들고 있었는데, 선물이라고 뭐든 사 온 것이었다.
멍멍!
마당에 들어가자마자 개가 짖으며 달려왔다.
"헉!"
최지훈은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무슨 개가 송아지만 하잖아."
얼마나 잘 먹었는지 토실토실 살이 오른 큰 개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서 간절하게 몸을 비벼 대었다.
과도한 친근감의 표시.
손님이라는걸 깨닫고 하는 행동이었다.
"어서 와요."
이혜연은 흰 티에 추리닝 바지의 수수한 차림으로 현관에 나왔다. 그때 까지도 몸보신은 최지훈에게 친근한 척을 하고 있었다.
"보신아, 가서 쉬어."
하지만 이혜연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꼬리를 한차례 흔들더니 구석의 개집으로 재빨리 물러가는 것이 아닌가!
최지훈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꽃과 과일 바구니를 내밀었다.
"빈손으로 오기가 뭐해서 사왔어."
"네, 고마워요."
이혜연은 과일 바구니를 받더니 최지훈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
"꽃은?"
"대충 우산꽂이에....."
"....."

이혜연은 갈치조림에 밑반찬들로 식사를 대접했다.
"많이 드세요."
급하게 오느라 저녁도 걸렸는데 한 상 차려지니, 최지훈은 숟가락 부터 들었다.
"염치 불구하고 잘먹을게."
집에서 먹던것과는 달랐다. 소채들을 비롯해서, 위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담백하게 버무려진 밑반찬들.
정갈한 요리는 최지훈의 입맛에 꼭 맞았다.
"맛있다. 정말 맛있어."
빈말이 아니라 최지훈은 밥 한공기를 다 비웠다. 레스토랑에서먹는 풀코스 요리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최지훈은 밥을 먹자마자 빈 공기를 들고 일어났다.
"얻어 먹었으니 내가 치울게."
"아니에요. 손님이시잖아요. 그릇은 제가 치울테니 제 방에 가 계세요. 금방 갈게요."
"바, 방에?"
"네. 쉬고 계세요."
"......"
최지훈은 끌리듯이 이혜연이 가리키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갓 스무살이 된 풋풋한 아가씨의 방.
핑크색의 벽지에, 연예인 사진들로 도배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에는 과학 관련 원서들과 의학 책들이 많은 와중에, 추리 소설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세계를 멸명시킬 10대 기술적 진보》.
《인체 해부학》.
《연쇄 살인마의 초대》.
"좋은 책들을 읽는구나."
제목 조차도 원어로 쓰인 탓에, 최지훈은 읽지 못하고 무심코 넘길수 있었다.
"곧 그녀가 올텐데... 오며 뭘하고 놀지?"
이혜연과 한 방에, 그것도 그녀의 방에 있다 보니 야릇한 분위기로 흘러가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하지만.... 이애라면 내가 정착할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다른 여자들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혜연의 방에서는 상쾌한 향기가 났다.
바로 조금 전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던 듯, 책상에는 책과 노트가 펴져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드라이버와 망치 등이 들어있는 공구함을 들고 왔다.
"많이 기다렸죠? 텔레비전이 잘 안나와요. 고쳐 주세요."
"응?"
"텔레비전좀 수리해 주세요. 집이 오성 전자라면서요."
"집이 오성... 전자라고해서 꼭 텔레비전을 수리할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럼 한국 자동차면 자동차를 만들줄 알게?"
최지훈은 난감 했지만, 일단은 공구들을 이용해 텔레비전을 분해해 보았다. 그리고 다행히 회로의 이상 부위를 찾아내 납땜하는 것으로 고칠수 있었다.
"아! 이제 화면이 나온다."
최지훈은 긴장으로 이마에 흥건한 식은 땀을 닦았다.
오래된 구형 텔레비전이었지만 어릴 때 취미 삼아 분해해 본 적이 있었다.
'그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최지훈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오붓하게 대화를 나눌수 있겠구나.'
스스로가 미덥게 느껴지고 있을 찰나, 이혜연이 천진하기 이를데 없는 밝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 고쳐졌네. 신기해요."
최지훈은 조금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이런 것쯤이야 금방이지. 앞으로도 이런 일 있으면 언제든 나만 불러."
"정말 그래도 돼요?"
"그럼."
"실은 고장 난게 더 있는데."
"...."
"가져와도 돼요? 아니면 피곤하센데 다음에....."
"아냐. 가져와."
이혜연은 정말로 가져왔다.
가스레인지, 오븐, 공기청정기, 가습기, 진공청소기, 휴대폰, 노트북, 프린터, 컴퓨터, 모니터, 카세트, 전화기, 선풍기, 밥솥, 비데까지!
"이, 이게 전부야?"
"아니요. 더 있는데요. 주방에 냉장고가 잘 안돼요."
"......"
"못 고치시겠어요? 다시 창고로 가져다 놓을 까요?"
최지훈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해 볼게."
먼저 쉬운 전화기부터 손을 대었다.
오래된 부품들이 낡아서 사용할수 없게 된 경우도 있지만, 간단한 고장들도 많앗다. 수리기간이 끝나면 작은 고장이라도 알아보지 못하고 새로 장만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 물건들은 다 어디서 났어?"
"원래 집에서 쓰던 물건들도 있고요, 오빠가 가져온 물건도 많아요. 신문 배달을 하면서 주워 온거예요."
"그렇구나."
수리하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최지훈은 옆에 있는 이혜연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수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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