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 20

3학년2반 | 2022.01.22 08:08:41 댓글: 0 조회: 367 추천: 0
분류인터넷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4267
달빛조각사 20권

차례

1. 감격적인 재회
2. 불청객들의 등장
3. 언데드의 밤
4. 폭발하는 화산에서의 전투
5. 슬로어의 사연
6. 인페르노 던전
7. 불의 거인
8. 지골라스 종족 전쟁
9. 다시 일어난 위드
10. 슬로어의 결혼식


-----------------------


1. 감격적인 재회

위드는 유령선을 지휘하여 지골라스까지 와서 언데드들과 함께 사냥을 하고 있었다.

아르메니아 해적단도 추적해야 하고, 조각사의 한이라고 할 수 있는 헬리움도 조각해야 한다.

그런데 몬스터의 수준이 높아서 갖은 수단을 다 쓰면서 생고생을 하고 있던 차!

위드가 있는 장소에 서윤이 나타났다.

'여기는 어떻게 왔자?'

위드는 갑자기 등장한 서윤을 보면서 경계했다.

수정 해골, 종족상으로도 리치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으니 다짜고짜 공격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하지만 서윤은 가만히 그와 눈을 마주쳤다.

공격 의사는 조금도 없었다.

위드의 외모가 해골로 바뀌었고 언데드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데스 나이트 반 호크 덕분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다시 만났어'

서윤이 언데드들의 사이를 헤치고 다리를 절며 걸어왔다.

'많이 다쳤군.'

위드의 눈가에 약간의 동정심이 어렸다.

척 보기에도 상태가 좋진 않은 듯 했다.

위드를 만나기 위해 지골라스에서 숱한 전투를 치른 그녀는 생명력의 7할 이상이 깎였다.

심한 부상으로, 다른 유저들이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목숨이 아까워 회복 될 때까지 휴식을 취했으리라.

그러나 광전사 서윤은 위드를 찾기 위하여 계속 처절한 싸움을 했던 것이다.

"어디 부상 부위를 보여 줘 봐."

위드는 오랜만에 붕대 감기 실력을 발휘하기로 했다.

약초를 적당히 으깨서 넣은 붕대로 그녀의 상처를 꼼꼼하게 감아 주었다.

위드의 붕대 감기 실력은 살아만 있다면 부상의 악화를 억제하고 생명력을 회복하게 만들 수준이었다.

붕대를 감은 이후에 전투나 등산 등의 격렬한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부작용도 없다.

"더 아픈 부위가 있으면 말해."

위드가 치료를 해 주니, 서윤은 익숙하게 투구와 갑옷도 벗었다.

가죽 갑옷까지 벗고 속에 입는 가벼운 차림으로 장비를 내미는 그녀였다.

"크흠."

위드가 헛기침을 하며 방어구를 받았다.

단순히 방어구의 수리를 맡기는 게 분명하지만, 그녀가 어떤 아이템을 쓰고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위드는 무심한 척 변명하듯이 말했다.

"어디, 수리를 위해서 정보를 확인해 볼까? 수리를 하려면 장비에 어떤 재료가 쓰였는지, 내구도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알아야 하니까."

그가 착용하고 있는 갑옷도 프레야 교단에서 받은 탈로크의 믿음 갑옷이다. 유명한 드워프 대장장이가 미스릴로 만든 물건.

그 갑옷을 구하고 나서 얼마나 기뻐했던가.

"감정!"

미친 전사의 하프 플리이트 : 내구력 58/190. 방어력 167
전쟁의 사형 집행자로 불리던 베인트의 마법 갑옷.
출처를 알 수 없는 갑옷이다. 재질도 밝혀져 있지 않다.
고위 마법사들이 보호 마법을 새겨 넣었다.
가볍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으며, 전투를 위한 최적의 갑옷이다.
착용한 채로 오랫동안 싸울수록 소유주에게 강한 힘과 체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전투가 끝난 후에는 급격한 체력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
오랫동안 착용하고 있으면 저절로 눈물이 흐르게 만든다.
그리하여 슬픈 전사의 하프 플레이트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제한 : 레벨 420, 힘 950.(광전사 전용)
옵션 : 힘 +75, 민첩 +98
마법 방어력 +59
정령술과 마법의 피해를 억제한다.
전투가 오래 지속되면 광전사의 특성을 배가시킨다.
힘 최대 45% 증가, 체력 45% 증가. 늘어난 힘과 체력은 모든 전투가 종료되고 10분 이상 휴식할 때까지 유지된다.

명성 -1500
도덕심 -30
악명 +690
몬스터들을 공포에 질리게 함.
몬스터를 1마리 사냥할 때마다 일정한 양의 마나르 회복시켜 줌.
밤이나, 고독할 때 가끔 눈물을 흘리게 됨.
울 때에는 생명력과 힘이 10% 강화.

위드는 웃음부터 나왔다.

"허허허."

탈로크의 믿음 갑옷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은가!

'쓸데없이 신앙이나 매력, 명성 같은 것이나 올려 주는 탈로크의 믿음 갑옷보다는 힘과 체력을 증가시켜 주는 이 갑옷이 월등하지. 명성이나 도덕심은 줄어도 돼. 악명이 늘면 또 무슨 상관이야.'

갑옷은 탁월한 보호 능력이 핵심이다.

소유주를 안전하게 지켜 주고 힘과 체력까지 늘려 주는 갑옷이다니!

투구나 가죽 갑옷, 부츠, 허리띠까지도 서윤이 쓰고 있는 장비는 모두 유니크 아이템들이었다.

위드와 헤어지고 난 이후 광전사로서 어마어마한 사냥을 쉬지 않고 하면서 레벨을 올렸다.

그 결과 예전에 착용했던 장비를 거의 모두 새롭게 바꾼 것이다.

위드는 감정할 때마다 아쉬움을 느낀 나머지 강렬한 유혹이 생겼다.

'확 들고 도망갈까?'

판매자만 찾을 수 있다면 거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갑옷을 서슴없이 넘겨주다니!

갑옷이 슬그머니 배낭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빤히 쳐다보는 서윤의 눈과 마주쳤다.

'그래도 우리 집까지 알고 있는데 도망칠 수 없을 거야.'

위드는 눈물을 머금고 수리를 해 주었다.

'잘 가거라, 아이템들아.'

안타까운 감정을 듬뿍 담아서 방어구 닦기 스킬까지 활용하여 새것처럼 번쩍번쩍 광까지 내어 돌려주었다.

"이제 멀쩡해졌으니 착용해 봐."

그러자 서윤은 갑옷을 입고 이번에는 무언가를 떠먹는 시늉을 했다.

명백히 배고 고프다는 얼굴이었다.

"지금 뭘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위드는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모여드는 엄청난 언데드 군단!

리치 네크로맨서로서 언데드 군단을 부하로 부리고 있다.

물론 대지의 뎌신의 축복 시간도 지났고, 안식의 동판을 활용하고 난 지금은 언데드들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

구울이나 좀비처럼 하급 언데드들이 훨씬 많아졌지만 질보다는 양이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사람이 양심은 있어야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줬더니 수영장 정기 회원권을 사달라는 것과 뭐가 달라."

위드는 사악한 말투로 중얼거리면서 언데드들이 더욱 모이도록 했다.

무력시위!

위드는 서윤만 보면 주눅이 들고 위축되었다.

힘에서 눌려 기도 펴지 못하고 살았다.

매 맞는 남자가 어디 다른 곳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관계를 새롭게 할 때도 되었다고 여겼다.

그렇게 서윤의 높은 콧대를 꺾어 주려고 한던 차에,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었다.

'슬픈 전사의 하프 플레이트의 레벨 제한이 420이었지.'

위드는 대장장이 스킬로 인해서 장비들의 직업 제한이나 레벨 제한에 자유로운 편이다.

그렇기에 갑옷만 보고 바로 알아차리지를 못했다.

서윤의 레벨이 정직하게 420은 넘을 것이라는 사실을!

위드와의 레벨 차이가 상당했고, 그녀의 무시무시한 전투 능력은 익히 봐 왔다.

위드는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조각사들의 유산을 통해서 더 강해졌어!'

하지만 지금 만난 서윤도 조각사의 유산을 안 봤다는 보장이 없다.

결정적으로 네크로맨서는, 부하들이 엄청나게 강하다.

귀한 시체들과 어둠의 강화술 등을 통해서 강화된 언데드들이 있다.

언데드 군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정작 네크로맨서 본인의 육체적인 무력은 매우 약한 편이었다.

그녀에게 두들겨 맞지 말란 법이 없는 것.

서윤이 뭔가 찝찝함을 느꼈는지 검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무슨 요리를 해 줄까. 뭘 먹고 시펑? 예전에 비빔밥 만들어 주니 잘 먹던데, 거기에 싱싱한 횟감을 얹으면 정말 맛있겠지? 따로 챙겨 놓은 재료가 있을 거야. 배고프지? 지금 바로 만들 테니 잠깐만 기다려 봐."

위드는 태연하게 언데드들에게 물러가라고 손짓을 했다.

리치가 되고 나서 요리를 할 필요가 없어 처박아 두었던 식그들을 서윤을 위해서 꺼내야 했다.

지골라스까지 배를 타고 오면서 낚은 어류들과, 이곳에서 사냥을 통해 획득한 고급 식재료들을 사용해서 요리를 시작했다.

드린펠트가 이끄는 하벤 왕국의 함대는 얼지 않는 강을 통해 북상했다.

옅은 안개와 함께 길을 열어 주는 무지개, 신비로운 경치와 함께 강을 따라 올라갔다.

"이대로 가면 어디에 도착하는 거지?"

함대의 유저들은 여러 가지로 추측하면서도 흥분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전방을 주시했다.

하벤 왕국과는 엄청나게 먼 거리의 항해였기 때문에 저절로 긴장이 되었던 것이다.

좌측과 우측의 빙하 지역에 있는 몬스터들도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때 빙하 지역에서 외치는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우리를 구해 주세요!"

"살려 주세요, 여러분!"

드리펠트가 소란을 듣고 갑판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지?"

"조난자들이 있습니다."

부관의 보고를 들어며 망원경으로 확인해 보니 강가 근처에서 헤인트와 프렉탈, 보드미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놈들은 누구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걸까요?"

"알아봐야 하니 일단은 태워 보도록."

"배를 강가에 정박시켜라!"

하벤 왕국의 함대, 기함인 케인 엘레스호가 강가에 멈추고 헤인트와 프렉탈, 보드미르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벤 왕국 유저들이 검을 뽑아서 들이댔다.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인지를 말해라."

헤인트는 슬며시 눈치를 살피다가 사실대로 말하기로 결정했다.

하벤 왕국의 함대, 바다에서의 군신이나 다름없는 드린펠트가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희는 베키닌의 선량한 항해사들입니다.

저는 헤인트, 여기 이 두 친구는 프렉탈과 보드미르라고 합니다."

부관 중 1명이 드린펠트에게 귓속말을 했다.

-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들입니다. 평이 상당히 안 좋은 놈들입니다.

"저희는 그냥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엄청나게 예쁜 여자가 유혹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 유혹에 넘어가서 항해 계약을 하고 났더니 선장이 리치라서 도망도 못 가고 여기까지 왔죠. 수고는 우리가 다 했는데 매몰차게 버리고 혼자 가 버린 것입니다."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위드는 3마리 미친 상어들과 같이 이곳까지 왔다는 것이다.

부관이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정말 리치의 모습을 하고 있었나?"

"예, 그렇습죠. 언데드 소환 마법도 사용하덴데요. 유령선의 선장이었습니다."

"어떻게 너희를 버리고 혼자 가 버렸는데?"

"잠깐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배를 몰고 가 버렸습니다. 유령선을 몰려면 상당한 항해 스킬이 필요할 텐데 언제 습득한건지 모르겠더군요. 우리를 따돌린 걸 보니 웬만해서는 뒤통수를 안 맞는, 아니 간교한 놈이지요."

"무슨 사라진 해적단의 뒤를 쫓는다며 10대 금역 중의 하나인 지골라스로 갔습니다."

드린펠트는 3마리 미친 상어들을 통해서 정보들을 입수했다.

목적지를 비롯해서 희미하게 가려져 있던 부분들이 명확하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 S급 난이도의 퀘스트가 틀림없다.'

부관이 계속 물었다.

"지골라스까지는 어떻게 가지?"

"어떤 항해도가 있었습니다. 북쪽 바다의 항구들과 지골라스까지 가는 해류 등이 잘 표시되어 있는 항해도였죠."

"여기서 지골라스는 얼마나 먼가?"

"거의 다 왔죠. 하루 정도의 거리밖에는 남아 있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드린펠트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위드는 이미 지골라스에 상륙했을 게 분명하다.

10대 금역중의 하나인 지골라스까지 그를 따라가야만 하는 것인가.

'리치, 그리고 네크로맨서 마법도 쓰는군. 게다가 항해 스킬도 가지고 있고 어떤 특별한 퀘스트도 하고 있다.'

드린펠트는 위드보다도 지골라스 자체가 걱정이었다.

10대 금역에 함대 전체를 끌고 들어가는 것은 결과가 어떻든 간에 엄청난 피해를

낳게 될 것이기에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너무 먼 거리를 왔기에 소득 없이 돌아갈 수도 없다.

헤인트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리치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하벤 왕국의 함대까지 온 거죠? 유령선까지 거느릴 고레벨에 네크로맨서와 관련이 있다면 정말 위드인가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내내 하기는 했습니다만."

지골라스라는 말을 듣기 전에 함대를 귀환시켰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겠지만, 그들이 위드의 뒤를 쫓고 있었다는 사실이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들을 통해 알려지고 말 것이다.

'놈을 끝까지 추적한다.'

드린펠트는 지골라스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제 내려라."

"네? 저희가 아는 한도 내에서 다 말씀해 드렸는데요.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베키닌까지만 다시 데려다 주시면 안될까요?"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내려라!"

드린펠트는 3마리 미친 상어들을 다시 빙하 지역에 버리고 계속 지골라스로 향했다.

로열 로드의 게시판에 흥분되는 글과 동영상이 올라왔다.

제목 : 베키닌의 미친 상어들의 엄청난 모험을 보라!

나름대로 바다에서는 악명을 쌓고 있는 유저의 글이었다.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로열 로드의 인기를 반영하듯이 초기 조회 수가 300은 가뿐히 넘었다. 유저들은 약간의 호기심 정도를 갖고 제목을 클릭했다.

우리는 베키닌의 꽤 능력 있는 항해사들이다. 그런 우리의 실력을 알아봅고 전쟁의 신 위드 님이 함께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헤인트, 보드미르, 프렉탈.

우리 세 친구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서, 그의 배… 놀라지 마시라, 크흐흐흐.

낡은 유령선을 몰고 바다로 나갔다. 유령 선원들이 일하는 배에, 전쟁의 신 위드 님께서는 리치 네크로맨서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피아 섬에서도 잠깐 머무르셨다고 하니 우리처럼 위드 님을 직접 만나 뵈었던 영광을 함께 누린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긴 항해를 거쳐야 하는 북쪽 어딘가였다.

베르사 대륙의 10대 금역! 지골라스에 위드 님의 퀘스트가 있었던 것이다.

본문을 읽다 보면 동영상이 함께 흘러나오게 되어 있었다.

프렉탈이 직접 동영상 편집을 해서, 술집에서부터의 영입 그리고 리치인 위드의 모습, 유령선과 항해를 하는 장면들이 보였다.

빙하들을 피하고, 얼지 않는 강으로 접어드는 항해. 흰 눈밭과 빙하 지역의 몬스터들도 볼 수 있었다.

우린 위드 님의 퀘스트가 반드시 성공할 것을 믿습니다.

더러운 하벤 왕국의 함대 그리고 드린펠트!

지골라스에서 몽땅 몬스터의 밥이나 되어 버려라.

추신. 위드 님, 대륙으로 돌아가실 때 꼭 태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벤 왕국의 함대가 찍힌 동영상까지 수록되어 있으니 완벽했다. 위드의 지골라스에서의 모험 그리고 뒤를 따라가는 하벤 왕국의 함대!

베키닌의 미친 상어들이 올린 게시글의 조회 수가 폭발하고, 유저들은 방송국 KMC미디어의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위드 님의 지골라스 모험 방송 일정은 언제입니까? 이번에도 특별 편성해 주시는 거죠?

-위드 님의 퀘스트가 끝나는 대로 속보로 알려 주세요. 바로 방송하시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괜히 방송 늦추거나 하시면 평생 KMC미디어 안 볼 겁니다.

-지금 바로 방송하시면 안 될까요? 우선 지골라스라도 좀 보고 싶어요!

-위드가 어떻게 지내고 왔나요? 벌써 퀘스트를 해결한 건 아니겠죠?

네크로맨서로 지골라스에서 활약하는 장면을 간절히 보고 싶습니다.

위드는 토리도와도 어색하게 다시 만난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한때 부하와 주군의 관계였지만 고생 끝에 뱀파이어 왕국 토둠까지 여행시켜 주고 자유를 되찾아간 뱀파이어 로드였다.

"오랜만이다, 토리도."

"그렇군, 위드."

"말이 짧아졌구나."

"길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니까."

"옛정이 있는데 심하군."

"미운 정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내가 없는 동안 잘 지냈는지 궁금했다."

"네가 없어서 더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라."

토리도는 특유의 거만함을 보이면서 위드를 차갑게 대했다.

위드의 카리스마와 지배 능력을 완전히 벗어나면서 과거의 주종 관계에 따른 굴욕적인 시정레 대한 반감을 품게 되었다.

애초에 토리도는 드높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상대가 여성이 아닌 한 명령을 잘 따르지 않는 것이다.

위드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일고 여겼다.

썩 기대도 않고 빈말이나마 서윤에게 이야기해 봤다.

"토리도 나한테 넘겨줄래?"

"……."

"닭 1마리 줄게."

닭 1마리로 흥정을 했지만 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역시 승낙할 리가 없는 것.

서윤이 검으로 땅에 글을 썼다.

토끼도 1마리.

위드의 집에 방문했을 때 보았던, 눈도 뜨지 못한 새끼 토끼가 여전히 아른거렸던 것이다.

"토끼를 달라고? 줄게."

서윤이 얼른 목에서 토리도가 봉인되어 있는 '검은 생명의 목걸이'를 풀더니 건네주었다.

-검은 생명의 목걸이를 받으셨습니다.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와 진혈의 뱀파이어족에 대한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토끼 1마리로 복원된 과거의 주종 관계!

위드도 반쯤 장난으로 여기고 말했을 뿐 정말 목걸이를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놀랐다.

하지만 토리도의 충격만큼 클 수는 없으리라.

"아……."

뾰족한 송곳니가 훤히 보이도록 입도 다물지 못하는 토리도였다.

진혈의 뱀파이어족에 먹구름이 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주인 변경에 따른 정신교육이 개시되었다.

최고의 학벌에 유능한 강사진들의 비싼 사교육을 능가하는 효과적인 체벌 학습.

"맞자. 맞다 보면 깨닫는 게 있을 거다. 인생이란 게 별게 아니야. 깨지고 밝히다 보면 대충

적응하며 사는 법을 익히데 되거든."

정신교육은 고스란히 결과로 드러났다.

"토……."

"예!"

"토."

"말씀만 하십시오, 주인님."

"토리도야, 어깨가 심히 결리는구나. 널 너무 많이 때려서 그런 것 같다. 전적으로 네 탓이다."

퍼버버버벅!

헤라임 검술, 15연환 참격!

해골로 변신한 이후라서 힘은 약했짐나 급소만을 요소요소 때려 주는 족집게 같은 손길이었다.

보통 패서는 익히기 어려운 동작들이기도 했다.

"내가 널 진작 많이 팼어야 됬는데. 어릴 때 맞은 기억이 평생 간다더라.

그게 다 조기 체벌의 중요성을 뜻하는 건데 옛말이 틀리지를 않아.

반 호크를 봐라, 얼마나 착실하고 말 잘 듣냐. 조금 레벨 높다고 반 호크보다 덜 때리고 우대해 줬더니 주인도 못 알아보고……."

칭찬을 받은 데스 나이트가 으스대듯이 고개를 치켜들고 서 있었다.

토리도를 초주검에 달할 정도까지 패고 난 이후에는 따뜻한 위로도 해 주었다.

"다음에 잘하면 되지. 이제부터는 말 잘들으면 덜 맞거나 가끔 맞을 거야."

그렇게 정신교육을 마치고, 서윤이 사냥에 가세하게 되었다.

위드는 먼저 단단히 일렀다.

"여기서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언데드들이 방패막이 역할을 해 주게 될 거거든. 위험하니까 놈들이 많이 약해졌을 때 싸워서 최후의 일격만 날려."

"……."

서윤은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일단 테어벳부터 잡아 보자. 너희 둘이 먼저 시작해."

위드는 반 호크와 토리도를 바위 그늘로 보냈다. 그러자 몰려드는 테어벳들!

반 호크와 토리도가 용맹하게 싸우는 사이에 언데드들이 개입한다. 테어벳등리 있는 주변을 에워싸고

마녀들고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마법 공격을 퍼부었다.

나비처럼 불규칙하고 현란하게 날아다니는 테어벳들이었지만 집중된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금방 1마리씩 죽었다. 전투가 쉽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서윤은 검도 뽑지 않았다.

"흠, 역시 토리도가 가세하니 훨씬 쉽군."

토리도는 뱀파이어답게 생명력과 공격력이 굉장히 높았다.

손톱으로 적을 갈라 버리거나, 공격 마법과 현혹 마법도 사용하면서 사냥의 속도를 빠르게 했다.

위드는 가만히 쉬고 있는 서윤을 향해 말했다.

"너무 겁먹지 마. 언데드들은 내 부하니까. 이 지골라스에서 혼자 돌아다니면서 많이 힘들었지? 이제부터는 나만 믿으면 돼."

"……."

서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가 의지한다는 생각에 위드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여자라서 상당히 겁이 많은 편인가. 하기야 흉측한 언데도 많고, 지골라스에서는 무서울 수밖에 없겠지.'

위드는 주문을 외우면서 전투를 지속했다.

저주 마법, 언데드 소환, 시체 폭발까지!

다양한 마법을 활용하면서 테어벳들을 사냥해 경험치와 전리품들을 늘렸다.

서윤은 그때까지도 그냥 위드의 근처에 서 있기만 했다.

"이 정도라면 볼라드 5마리를 잡고도 그리 피해가 크지 않겠군."

위드는 견적을 확실하게 뽑았다. 토리도가 돌아왔으니 사냥을 더욱 과감하게 진행할 수 있으리라.

"데스 나이트, 토리도가 앞장서라!"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볼라드 5마리가 모여 있는 장소로 몰려갔다.

까만 몸에 불을 내뿜는 볼라드와의 싸움이 벌어졌다.

반호크가 1마리, 토리도가 2마리를 맡도록 지시하고 나머지는 언데드들로 집단 구타를 해서 싸울 참이었다.

"1마리씩 집중 공격해서 최대한 빨리, 전투 시간을 짧게 가져가는 게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는 길이야."

볼라드가 뿜어내는 열은 주변의 하급 언데드들을 순식간에 소멸시켜 버렸다.

일반 스켈레톤이나 좀비로는 건드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들을 내보내야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안심하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언데드의 손실이 큰 만큼 단기간에 총력전을 펼쳐야 피해를 줄일 수가 있었다.

"공격해라!"

능선을 넘어 언데드 군단이 꾸역꾸역 몰려갔다.

반 호크와 토리도가 각자 정해진 적들을 맡도록 달려가고,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나머지 2마리에게 공격 마법을 시전했다.

스켈레톤 아처들도 화살을 쏘면서 지원했다.

그런데 서윤이 2마리의 볼라드를 향해서 바람처럼 달렸다.

위드가 급하게 경고했다.

"위험해! 볼라드들은 테어벳보다도 훨씬 강해. 언데드들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그때 서윤의 검에 어두운 핏빛 기운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2마리의 볼라드를 향해서 휘둘렸다.

캐애앵..

캥!

볼라드들은 지금껏 들어 본 적 없는 소리를 내며 땅바닥을 굴러 나가떨어지더니 몸을 가누지 못했다.

위드가 언데드를 데리고 싸웠을 때는 보여 주지 않던 모습이다.

서윤의 검에 맞고 나서 단숨에 혼란 상태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공격력이 얼마이기에 볼라드가 스턴 상태에 빠지지? 스턴 상태가 되려면 급소를 때리더라도 최소한 생명력의 20% 이상이 한꺼번에 줄어들어야 되는데.'

위드가 놀라고 있을 때, 서윤은 공격 스킬을 계속 시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방어까지 염두에 두면서 여러 공격들을 조합해서 싸우는 위드와는 달랐다.

상대의 동작이나, 방어력이 약한 부위를 파악하지 않는다.

광전사답게 큰 힘을 모아서 강렬한 데미지로 연속 공격을 터트렸다.

빠르고 과격하기 짝이 없는 구타였다.

-볼라드가 죽었습니다.

볼라드 1마리의 사망!

다른 1마리도 혼란에서는 풀렸지만 부상이 커서 서윤의 공격에 맥을 못 추었다.

더구나 광전사의 눈빛은 몬스터들을 매우 강렬하게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서윤의 거침없는 공격으로 볼라드는 말 그대로 도륙을 당했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서윤은 멈추지 않았다.

토리도가 감당하고 있던 볼라드 1마리에게도 스킬을 난사했다.

전투에 뛰어든 광전사에게는 '적당히'라는 게 없다. 본인보다 레벨이 훨씬 낮은 몬스터라도 최선을 다해서 압도적으로 때려잡는다.

체력과 마나를 아끼지 않고 싸울수록 더 빨리 회복되는 직업이라서 광전사들의 전투야말로 압도적인 것!

위드가 언데드 군단을 아끼면서 빨리 사냥하기도 바랐고, 또한 볼라드가 살아 있다 보면 만의 하나라도 그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서윤의 공격에는 조금의 인정도 업었다.

서윤의 전투를 본 위드는 희비가 교차했다.

'서윤과 토리도가 합세했으니 혼돈의 전사들을 뚫고 퀘스트도 하고, 조각술의 비기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서윤이 3마리의 볼라드를 사냥하고 무심코 위드가 있는 곳을 보았다.

그것은 아이가 칭찬을 받고 싶어서 엄마를 보는 것과도 같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위드는 턱뼈가 빠지도록 입을 벌리고 억지로 웃었다.

"잘했어, 서윤아. 아까 남겨 놓은 회덮밥 조금 더 먹을래? 참, 너 줄 토끼는 내가 깨끗하게 목욕시켜 놓을게."




2. 불청객들의 등장

서윤과 토리도가 가세하고 나서는 볼라드도 위협적이지는 못했다.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언데드 군단을 상당히 줄여 놓았던 볼라드지만, 둘의 도움이 있으니 쉽게 사냥이 가능했다.

위드의 전력이 2배 이상으로 불어난 수준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센가? 언데드 규모가 커지더라도 전투에 집중시킬 수 있는 전력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위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며 구경만 하는 구울이나 좀비, 스켈레톤 나이트 들은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됐다.

'차라리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스켈레톤 메이지들을 늘리는 편이 낫겠군.'

몬스터들을 제압할 수 있는 서윤과 토리도가 있으니 지원부대를 늘리는 편이 더 낫다.

볼라드들과 싸울 때마다 소모되는 언데드들이 줄어들면서 위드가 이끄는 군단의 질도 높아졌다.

'들어오는 경험치나 전리품도 나쁘지 않아.'

볼라드의 절반 정도는 서윤이 처리했기에 경험치는 줄어들었지만 사냥 속도가 빨라졌다.

위드가 갖는 아이템도 늘어났으니 딱히 불만은 없었다.

"들어라!"

잡템을 들고 따라올 구울 부대까지 별도로 운용할 정도였다.

조각사들의 유산이 있는 장소 부근을 오가면서 엄청나게 빠른 사냥을 했다.

위드가 지골라스에서 올린 레벨만 해도 10개나 됐다.

서윤과 계속 사냥을 한다면 안정적으로, 더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있으리라.

'스킬 숙련도는 그다지 늘어나지 않겠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위드는 계속 이 자리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볼라드와 테어벳을 전부 사냥해서 다른 곳으로 옮길 필요가 있었다.

'얼지 않는 강이 있는 쪽으로 옮길까? 아니면 퀘스트를 위해서 아르메니아 해적단이 전멸한 7번 봉우리 쪽으로 가 봐?'

혼돈의 전사를 사냥하기 위해서 네 번이나 도전했지만 언데드들만 잃어버리고 도망쳤었다.

지금이라면 서윤과 토리도가 가세했으니 전투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상황이 다소 변했다.

둘의 참여로 인하여 언데드 군단의 구성을 변화시켜야 했고, 최적의 효율도 찾아야 했던 것.

언데드들의 틈에 끼어서 전투를 하는 식으로 혼돈의 전사들을 잡는 건 무리였다.

"혼돈의 전사는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될 텐데……. 일단 하루나 이틀 정도는 더 사냥을 해 봐야지. 그리고 서윤과 토리도에게도 혼돈의 전사와 싸울 수 있는 방법들을 가르쳐 놓아야 돼."

서윤이 그를 걱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몰랐지만, 위드도 그녀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혼돈의 전사를 사냥해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위드의 퀘스트 때문이다. 그녀가 도중에 죽거나 해서 죄책감이나 미안함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일단 내가 상륙했던 지점으로 잠깐 돌아가려고 하는데, 거긴 여기보다 몬스터가 조금 더 많아. 그 근처에서 사냥을 하고 와도 괜찮지?"

서윤에게 제의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서 승낙을 해 주었다.

위드가 그녀와 함께 사냥을 하며 얼지 않는 강을 돌아왔을 때에는 멀리 하벤 왕국의 함대들이 보였다.

"여기까지도 배들이 저렇게 많이 오나?"

지골라스는 중앙 대륙과 굉장히 먼 거리에 있다.

그런데 하벤 왕국의 깃발을 달고 있는 함선들이

수십 척이나 장관을 이루고 접근하고 있었다.

위드는 사냥을 하느라 최근의 주변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다수의 언데드들을 지휘하려면 해야 할 일이 어마어마해서 귓속말이나 길드 채팅도 다시 모두 꺼 놓은 상태였다.

위드는 찝찝함을 느꼈다.

"어쨌든 이곳에는 못 있겠군."

하벤 왕국의 함대가 오고 있는데 언데드 군단을 데리고 사냥을 하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언데드 군단은 일반 유저들에게도 몬스터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원래 있던 장소에서 사냥을 하게 다시 돌아가자."

은신처로 삼았던 동굴에서 잡템들과 아이템을 꺼내서 대지의 균열이 심한 조각사들의 유산이 있는 장소를 향해 돌아갔다.

"오오오, 이곳이 지골라스구나. 북쪽의 끝, 대륙의 10대 금역 중의 하나!"

하벤 왕국의 함대에서도 지골라스를 보면서 감탄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베르사 대륙에서는 공개된 정보와 몬스터들의 종류, 지형의 험난함, 거리 등 여러 가지들을 조합해서

10대 금역을 지정했다. 무수한 강자들의 어떠한 도전도 꺾어 놓았던 금역!

바로 거기에 도착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지골라스에서는 나무 한 그루 없는 검은 화산들이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고, 가끔은 시뻘건 용암이 흘러내렸다.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은 극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위험해 보였다.

투지가 낮은 일반 유저들의 경우 먼 거리에서 고레벨 몬스터들을 보기만 했는데도 이미 위축되고, 힘과 민첩성 등의 스탯들이 하락했다.

특히 공포 상태에서는 스킬의 숙련도가 몇 단계씩 떨어졌다.

"언데드 군단입니다!"

"전방에 엄청난 언데드들이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상륙도 하기 전에 정찰병들이 언데드들의 움직임을 보고했다.

"위드가 이끄는 언데드 군단인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빨리 만나는군. 좀비, 구울, 데스 나이트, 마녀, 스켈레톤까지 종류도 다양하잖아."

"과연 위드야. 지골라스에서도 완전히 적응하고 사냥을 하고 있다는 증거로군."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어떻게 저렇게 많은 몬스터들을 끌고 다닐 수 있지? 저런 몬스터 군단을 일일이 지휘할 수 있다는 건가?"

"우리에게는 희망적인 사실이야. 위드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가능하다!"

하벤 왕국의 함대에 있는 유저들은 언데드들의 발견을 반가워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고위층이 위드에 대해 견제하거나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눈치가 없는 인간이 아닌 이상은 알았다.

지골라스까지 위드의 행적을 쫓아오면서도 몰랐다면, 권력 분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중앙 대륙의 유저라고 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상당수의 유저들은 길드의 방침에 따를 뿐이었다.

아직은 위드와 적대한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위드가 지골라스에서 사냥을 할 수 있다면 그들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순수하게 기뻐했다.

"좋군."

드린펠트도 지골라스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덜었다.

"일단은 상륙해서 지역부터 장악하기로 한다."

그도 던전이나 아이템, 레벨에 대한 욕심이 있었고, 휘하 함대의 선원들에게 사냥도 시켜야 했다.

위드에 대한 추격은 그로 인해서 조금 늦춰지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유령선이 여기에 있군."

유령선들은 위드를 기다리는 듯이 얼지 않는 강에 정박해 있었다.

"위드는 이곳을 다시 거치지 않고서는 중앙 대륙으로 돌아갈 수 없겠군."

드린펠트는 함대에서 대형선 세 척을 빼내서 유령선을 점거하도록 지시했다.

부관이 물었다.

"고레벨 유저들이 많이 있는 노스타호를 동원할까요?"

"그러는 편이 좋을 거야. 만약이라는 게 생길지도 모르니까."

"노스타호가 동원된다면 유령선 점거쯤은 식은 죽 먹기일겁니다."

하벤 왕국의 함대에서도 노스타호는 고레벨 유저들이 대거 모여 있는 주축 함선이다.

"하지만 그들도 지골라스에 상륙하고 싶어 할 텐데요. 불만이 제기되지 않을까요?"

"노스타호를 내세워서 먼저 유령선을 점거하고, 그 후에는 NPC 병사나 기사 들로만 장악하고 있으라고 해도 되겠지."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꽈광!

콰아아아앙!

잠시 후 유령선과 하벤 왕국 함선들 간의 포격전이 개시되었다.

유령선의 조준 능력은 형편없었고, 실컷 얻어맞다가 뱃머리를 들고 돌격해 왔다.

노스타호에선느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물러나며 적을 끌어들이더니 유저들과 해군 기사들이 유령선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유령선의 지배권을 빼앗을 수 있었다.

"하벤 왕국의 놈들이 상륙을 하고 있습니다."

드린펠트의 뒤를 몰래 따르던 해적왕 그리피스!

그에게 정찰병들의 보고가 들어왔다.

"지골라스에 상륙이라……. 용감하기도 하군."

그리피스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라가고 있어서 앞에서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언데드들을 발견했다는 사실도 알 수 없었다.

워낙 조용히 이동한 덕분에 베키닌의 미친 상어들도 피해서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위드가 이미 지골라스에 상륙한 모양이지?"

"그런 것 같습니다."

부선장 코룸이 대답했다.

하벤 왕국의 함대에 부관이 잇다면, 그리피스는 해적단의 2인자를 부선장으로 중용했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

"이대로 기다리자니 좀이 쑤실 것 같은데요."

"하기야……."

그리피스에게 주어진 의뢰는 위드의 죽음이다.

원래 해적들은 강이나 바다에서 기다리다가 습격을 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리피스나 다른 해적들이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는 일이다.

"드린펠트가 상륙한다면 우리도 따라서 하자."

"우리는 하벤 왕국의 함대와는 적대적인 관계인데요. 놈들이 공격을 하지 않을까요?"

왕국 해군과 해적들은 바다에서 만날 때마다 싸웠다.

해군으로서는 해적들을 잡는 것만큼 경험치와 공적을 빨리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해적들도 해군을 습격해서 전투함을 빼앗고자 했다.

애초에 해군과 해적은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이였다.

배의 숫자와 유저들의 숫자로는 해적단이 하벤 왕국 제2함대보다 우세했지만 전체적인 질에서는 떨어졌다.

해상전이라면 몰라도 육지전에서는 하벤 왕국의 병사들, 유저들과 싸워서 이기기 어려웠다.

"지금은 괜찮아. 바드레이의 의뢰이기도 하니 그의 이름을 팔면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헤르메스 길드 측에 연락부터 해야겠군."

그리피스의 해적들도 헤르메스 길드로부터 양해를 얻어내기 위해 연락을 취하고 지골라스로의 상륙을 준비했다.

"여기까지 와서 사냥을 하다니 독한 놈들이군."

위드는 하벤 왕국의 함대에 대해서 혀를 내둘렀다.

유령선 한 척을 단출하게 끌고 온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원정이었다.

"2함대의 깃발이었으니 헤르메스 길드인가?"

지골라스까지 무력을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이라니, 헤르메스 길드의 힘에 대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악명이 자자한 헤르메스 길드와 마주친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하필이면 지금 올 게 뭐야. 이제 막 먹고살 만한데. 역시 있는 놈이 더하다니까."

조각사들의 유산이 있는 장소로 돌아가면서도 적지 않게 신경이 쓰였다.

하벤 왕국의 함대가 그를 적대한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지만, 저렇게 많은 유저들과 어울려서좋은 결과를 바라기는 힘들었다.

"이 세상에는 콩 한쪽도 뺏어 먹으려는 놈들이 넘쳐 나니까!"

대지의 균열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니, 서윤이 먼 곳의 화산을 응시하며, 심장이 떨릴 듯한 아름다움을 보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위드가 좋아하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는 장면도 연출됐다.

"어험."

위드도 따라서 옆에 섰다.


언데드들도 그를 따라서 자세를 잡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묵묵히 서 있는 위드의 머리에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해골에게 머리카락이 있을 리가 만무!

세기의 미녀인 서윤을 위협하는 사악한 언데드들로만 보이리라.

수정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는 위드를 퇴치하고 서윤을 구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저절로 물씬 생겨나는 장면이었다.

"크흠, 사냥을 다시 하지."

위드는 언데드 군단을 끌고 볼라드들을 잡았다.

경험치가 짭짤한 몬스터였고, 가죽도 많이 얻을 수 있다.

서윤의 가세 때문에 저주나 시체 폭발 등의 스킬들을 마구 사용해야 했다.

서윤의 사냥 속도가 무척 빨랐고, 광전사라는 특징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그녀에게 먼저 덤비려고 했기 때문이다.

언데드의 총공세, 네크로맨서의 저주와 시체 폭발을 쓰면서 서윤을 지원하는 양상으로 사냥 방식이 바뀌었다.

'네크로맨서는 보통 다른 직업들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편인데, 광전사와는 상성이 괜찮군.'

광전사라는 직업도 매우 희귀했다.

전직도 어렵고, 위험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혼자서 사냥을 해야만 스탯과 스킬을 늘려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직업.

동료로 원한다고 구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었다.

"이대로 계속 사냥만 하는 것도 괜찮겠군."

사냥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대지의 균열이 심한 장소를 평정해 버렸다.

언데드 군단의 최대 장점은 미친 듯한 사냥 속도와 아이템 획득에 있었다.

"다른 장소로 가기 위해서는 혼돈의 전사를 사냥하는 수 밖에 없는데."

화산들의 분화구 주변에는 던전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대지에 큰 균열이 벌어지고 밑에는 용암이 흐르는 절벽 지형의 중간에도 던전이 있다.

사다리를 만들어서 타고 내려가야만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이었다.

"던전은 안 돼."

최초 발견자가 된다면 일주일간 2배의 경험치와 아이템의 혜택 등을 볼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던전의 몬스터는 그 지역에서 돌아다니는 필드 몬스터보다도 보통 한 단계에서 두 단계 이상 수준이 높다.

지골라스의 몬스터들만 하더라도 벅차기 짝이 없는데 무작정 던전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

"좁은 동굴이나 미로로는 언데드 군단도 끌고 가지 못할테니 던전은 애초에 접어야 해."

위드에게는 이래저래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잠깐 휴식을 하지. 동생 밥도 줘야 하고… 조금 있다가 다시 모이자."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서 서윤과 함께 1시간 동안 쉬기로 하고 로그아웃을 했다.

저녁은 강된장비빔밥에 미지근한 콩나물국이었다.

양푼 냄비에 밥을 비벼 동생과 나뭐 먹고 나선 이현은 컴퓨터를 켰다.

"새로운 아이템 목록이 많아져서 가격을 정하기가 쉽지 않겠군."

지골라스에서 사냥하면서 얻은 물건들은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

가죽은 직접 재봉을 해서 옷을 만들면 제작된 물건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높은 채도와 선명함을 가지고 있는 보석들도 시세가 있지만, 아직은 쓸모가 밝혀지지 않은 아이템이나 복잡한 잡템 종류도 다수였다.

"물건이 거래되고 있어야 팔기가 편한데."

팔린 적이 없는 잡템이나 아이템 들은 구매자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상점에 내다 팔려고 해도, 취급해 본 적이 없는 물건은 제값을 안 쳐준다.

"잡템은 일단 마판 님을 통해서 처분하더라도 아이템은 확실히 알아야 해."

재봉사나 대장장이용 외에도 여러 직업들에 이득이 되는 아이템이 있을 수 있다.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파는 게 가격을 잘 받을 수 있으니, 로열 로드의 전반적인 직업이나 왕국, 마을 들의 상황까지 꿰고 있어야 했다.

본래는 상인들이 많이 하는 일이지만 이현은 확실하게 챙겨 두는 편이었다.

지골라스에서 얻은 아이템들을 가계부 작성하듯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정보들을 모았다.

아이템의 가격이라는 게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보니 주의해야 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사냥할 때 경험치만큼이나 얻는 전리품의 종류와 숫자에도 신경을 써 줘야 하는 것이다.

아이템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다가, 잠깐 시간이 남아서 로열 로드의 게시판에도 접속했다.



제목 : 지골라스에서 위드는 어떤 모험을 하고 있을까요?

이현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일단 클릭부터 했다.

"내가 지골라스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항상 엄청난 퀘스트를 하는 위드가 무슨 모험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하네요.

리치로 변해 있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게시물에 뒤따르는 댓글들도 많았다.

-KMC미디어에서 방송 일정이 빨리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믿을 건 방송뿐인 것 같죠.

-여러분, 지골라스도 북부처럼 나중에 사냥이 가능해질까요?

-위의 분, 그냥 포기하세요. 북부는 원래 역사적으로 그렇게 추웠던 게 아니라 임시로 이벤트가 발생했던 거잖아요. 지골라스는 가면 죽음입니다, 죽음.

-헤르메스 길드를 통해서도 지골라스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을까요? 드린펠트의 함대도 그곳에 도착했으니까요.

-그리피스의 해적들도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그쪽에 친구가 있어서 들었어요. 항해 중에는 목적지에 대해 절대 비밀을 엄수했다는데, 지골라스에 상륙하고 나서부터는 그쪽 유저들이 말을 하고 있다는군요.

-엄청난데요. 위드와 더불어서 10대 금역에 대규모로 유저들이 상륙했군요.

로열 로드의 게시판에는 지골라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많은 유저들이 모험에 대한 환상을 가진다.

발길이 닿지 않은 새로운 땅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좋은 사냥터, 그에 따른 전리품과 경험치 그리고 위험과 역경을 이겨 내고 화끈하게 받아 내는 퀘스트 보상!

베르사 대륙의 전설이나 신비가 밝혀질 때마다 유저들은 열광했고, 게시판의 게시 글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늘어난다.

현재로써는 10대 금역 중의 한 곳이 지골라스, 그리고 위드와 하벤 왕국의 함대, 그리피스의 해적단이 그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제목 : 신비에 대해 도전을 하는 것이 진정한 모험가의 자세죠.

모험가들이여. 무덤가에서 돈이 되는 유물이나 던전만 찾지 말고 더 넓은 땅을 헤매면서 전설을 탐험해 봅시다.

-말이 쉽지, 글 쓴 분이 모험가 한번 해 보세요. 생전 가 본 적 없는 지역에서 개죽음당할걸요?

-길이나 안 잃어버리면 다행.

-고향은 아무나 떠나나?

제목 : 이번에 다른 10대 금역에 대해서도 찾아보았습니다.

자료를 훑어보니 가공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회사 측에서 공개한 것들만 봐도, 어떻게 이런 곳에 들어가서 며칠이라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짐나 위드는 두려움이나 포기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모든 10대 금역에 발자취를 남길거라고 저는 예언합니다.

-10대 금역으로 위드가 다 가는 그날까지!

-올해 내로 세 곳은 더 가겠죠?

제목 : 위드의 퀘스트 내용 추측입니다.

갑자기 배를 타고 지골라스에 간 것은 퀘스트를 하기 위해서이겠죠? 리치가 된 것도 그중의 일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지골라스에서 모험을 할 정도라면 퀘스트의 난이도가 굉장할 겁니다. 지골라스에서 아마도 무언가를 할 것 같네요. 과연 위드는 뭘 얻을 수 있을까요?

-이런 추측은 나도 하겠음.

-우리 집 강아지도 함.

-제 사촌 동생도 하네요. 생후 8개월. 돌잔치 전임.

-성공이냐 실패냐, 그게 문제인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또 밤을 새우고 방송을 봐야 할 테고!

많은 글들이 위드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하벤 왕국의 함대와 해적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제목 : 유저들을 약탈하던 해적들이 왜 지골라스에 갔죠?

제목 : 하벤 왕국의 함대가 위드와 비슷한 시기에 지골라스에 도착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제목 : 밝혀진 사실. 하벤 왕국의 함대, 이피아 섬에서부터 위드를 추적해 왔다!

제목 : 하벤 왕국의 함대와 해적단의 결탁? 적대적인 그들이 왜 싸우지 않는가.

유저들의 분석 글, 추측 글이 게시판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바드레이와 드린펠트,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일이 이쯤까지 커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바다에서 유령선을 격침시키고 위드를 죽였다면 그다지 큰 소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골라스라는 새로운 모험이 크게 이슈가 된 마당에 하벤 왕국의 함대와 해적단이 위드를 쫓아갔다고 하니 다른 유저들의 의심을 샀다.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하벤 왕국의 함대와 해적단의 진실이 점차 드러나는 글들이 올라왔다.

-제 친구가 하벤 왕국의 함대에 속해 있습니다. 저만 알고 있으라고 했는데, 위드의 퀘스트를 방해하고 그를 죽이기 위해서 쫓아간 거라네요.

-에이, 거짓말이죠?

-해적단에 있는 제 사촌 형도 비슷한 의뢰를 받았답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위드에 대한 공개 척살령이 떨어진 건가요?

-하벤 왕국의 함대와 해적들이 그를 노리는 건 틀림없습니다.

-우와, 나도 끼고 싶다. 위드의 장비나 아이템을 빼앗으면 대박일텐데.

-저는 퀘스트부터 가로채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한정된 재료를 모아 오라거나, 어느 곳을 발견하라는 등의 특수 퀘스트는 명성이나 몇 가지 조건들을 맞출 수만 있다면 남의 것도 가로챌 수 있다던데요.

-더러운 헤르메스 길드! 위의 분들 정신 차리세요. 평생 그들의 노예가 되고 싶습니까?

-지골라스에서 헤르메스 긷르와 해적들이 위드를 사냥하려는 건가요?

-맞을 겁니다. 그러려는 의도로 갔을 테니까요.

-완전 나쁜 놈들이네.

-그놈들이 나쁜 짓 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입니까?

게시판을 읽는 이현의 눈동자가 분노로 흔들렸다.

"왜 하필 나를……."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서 근근이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 그를 도대체 왜 노린단 말인가.

헤르메스 길드나 중앙 대륙의 명문 길드의 악행에 대해서는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이현이 처음에 캐릭터를 로자임 왕국에서 만들었던 것도, 중앙 대륙에서는 텃세로 인해 사냥터를 얻기도 힘들기 때문이었다.

등이 휠 정도의 세금과, 명문 길드들의 횡포!

이현도 솔직히 신경이 많이 쓰였다.

헤르메스 길드는 베르사 대륙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고, 하벤 왕국에 대한 영향력도 엄청나다.

사냥터에서 눈에 거슬리는 자들은 그대로 죽여 버리고, 헤르메스 길드 소속이라는 간판을 내세워 제멋대로 행동했다.

세력과 힘을 등에 업고, 고레벨 유저들을 길드원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길드.

지골라스에서 하벤 왕국의 함대를 만났을 때에도 그런 점 때문에 껄끄러워서 사냥터를 양보하고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나를 죽이려고 쫓아온 건가?"

퀘스트를 빼앗을 수 있는 경우는 정말 한정된 조달 의뢰정도에 국한된다.

퀘스트를 뺏기 위해서 먼 지골라스까지 항해하며 따라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유.

칼은 휘두르지 않으면 금방 녹이 슬어 버린다.

권력과 공포를 잘 활용해야 길드의 체계가 유지되고 경쟁 길드들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것.

위드를 그 제물로 하려는 헤르메스 길드의 속셈이 쉽게 예측됐다.

"싸우지 않으면 좋을 텐데."

이현이 이마를 찌푸렸지만 그에게 이미 선택권은 없었다.

싸움을 하기 위해 지골라스까지 쫓아온 상대가 인사만 하고 돌아갈 리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싸워야 되나."

이현은 게시판과 다크 게이머 연합의 정보들을 뒤적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도망이라도 치지."

헤르메스 길드의 횡포에 의해 죽어 간 다크 게이머들이 많았다.

이현은 그들이 올려놓은 자료들을 읽으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보금 물자들을 내려라."

"어서 쉬지 말고 움직여. 오늘 내로 목책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하벤 왕국의 함대에서는 유저들과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골라스에 대한 정보는 깜깜한 상태.

몬스터나 지형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일반 모험가 파티나 개인이 돌아다니는 정도로는 몬스터들이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간들의 대규모 상륙이 벌어지면 민감한 몬스터들은 떼를 지어 습격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언덕 부근에 상륙 기지를 건설하고 지골라스를 탐험하도록 한다."

드린펠트나 함대의 고위부에서는 최대한의 대비를 하기 위해서 휴식과 정비가 가능한 개척 요새를 만들려고 했다.

편안한 잠자리를 확보해야 사기와 체력이 빨리 회복된다.

언덕에 목책을 둘러놓으면 몬스터들의 습격 으로부터도 훨씬 안전해지니 천막을 치고, 가지고 있는 자재들을 이용해서 목책을 세웠다.

하벤 왕국 함대의 주력은 유저들보다는 NPC 선원들, 병사등리다.

함대에 속한 유저들이 1달도 넘는 지루한 항해를 참아 내기란 쉽지 않았다.

바다 사나이들은 자신이 소유한 배를 몰려고 하는 게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장시간 배를 타다 보면 사기 감소로 인해 온갖 일들이 다 벌어지기 마련이다.

반란, 소요, 향수병 등 골치 아픈 일이 적지 않았다.

병사들과 해군 기사들을 지휘하는 드린펠트는 사기나 피로도 등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나무가 모자랍니다, 선장님!"

"함장님, 나무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지골라스는 나무도 자라지 않는 척박하기 짝이 없는 환경이었다.

드린펠트는 멀찌감치 보이는 몬스터들을 관찰하다가 대꾸했다.

"목책을 만들기 위해 배를 해체할 수는 없으니 돌이라도 구해서 쌓도록 해."

"알겠습니다."

유저들과 선원들은 바위들을 나르고 쪼갰다.

원거리의 항해로 인하여 피로가 굉장히 누적되 어있는 상태였지만 캠프를 만들기 위해서는 쉴 시간이 없었다.

무거운 돌덩어리들을 운반하고 벽을 세우느라 체력이 줄어들었다.

"정찰조들은 주변을 관측하라."

드린펠트는 철저한 대비를 위하여 정찰조도 가동했다.

5개의 정찰조들이 날렵하게 근처를 돌면서 몬스터들의 수량이나 돌아다니는 범위 정도를 파악해서 돌아왔다.

"특별한 위험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이 지능이 뛰어난 보스급 몬스터의 통제를 받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드린펠트에게는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몬스터들의 대량 습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마음을 놓아도 되었으니까.

"지형은 어떻지?"

"지형이 매우 안 좋습니다. 험한 암석 지대가 대부분이라서 이동 중에 습격을 당하면 곤란할 것 같고요."

울퉁불퉁한 암석 지대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체계적으로 싸우기 어렵다.

더군다나 하벤 왕국의 선원들은 육지보다는 바다가 활동하기 편했다.

"몬스터들을 우회해서 이동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정찰을 하면서도 내내 궁금했던 부분인데… 과연 이곳이 안전할까요?"

정찰조들도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주변 일대의 화산들이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고, 땅이 미미하게 흔들린다. 갈라진 대지의 틈으로는 용암까지 흘러내렸다.

"우리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위드가 무사하니까 별일이야 없을 거야."

"그렇겠군요."

선원들은 밤까지 성벽을 만드는 데 투입되었다.

하벤 왕국의 제2함대 선원이 되려면 최소한 레벨이 250은 되어야 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200대 후반이거나 300대의 유저들이 대다수였다.

유저들만 46명, 병사들 590명.

그들은 천막과 목책으로 든든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고 휴식을 취했다.

물론 번갈아서 불침번을 세우는 것도 당연히 잊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그리피스의 해적단도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와 계속 상륙을 위한 연락을 취했다.

-절대 허용할 수 없음. 위드에 대한 사냥은 하벤 왕국의 함대만으로도 충분하다.

깐깐하기 짝이 없는 헤르메스 길드였다.

지골라스에 함대가 상륙하면서 사냥터 개척이나 유물 발굴이 가능해질지도 모르는 마당에 해적들이 발을 담그는 것이 썩 유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피스는 양보안을 내놓았다.

-헤르메스 길드의 함선에 대한 해적들의 모든 적대 행위를 금지시키겠다.

-허용할 수 없음.

-던전에서 보물을 발굴하면 3할의 몫을 양보할 의사도 있다.

-지골라스는 명백하게 우리 헤르메스 길드의 독자적인 영역임.

불과 몇 시간 먼저 상륙했다고 기득권을 주장하는 뻔뻔한 헤르메스 길드!

중앙 대륙의 명문 길드들이 다 그렇지만, 헤르메스 길드는 파렴치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아쉬운 것은 그리피스 쪽이었지만, 계속 질질 끌려다니다가는 협상을 원하는 대로 맺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피스는 최후의 통첩을 보냈다.

-보물의 3할 정도라면 헤르메스 길드의 체면을 최대한 봐준 것이다. 우리는 바다의 해적들. 하벤 왕국의 제2함대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의 양보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고 성의 있는 답변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에서는, 아쉽지만 허가를 해 주어야 했다.

하벤 왕국의 제2함대는 이미 지골라스에 상륙한 상태다. 상륙 후에 방어가 취약해진 함선들을 해적들이

공격하는 극단적인 일이 벌어진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해적들은 상륙 허가를 받고 밤늦게 지골라스에 발을 디뎠다.

"해적왕님, 우리도 집을 만들까요?"

"그럴 시간이 없다. 오늘으 그냥 저쪽의 신세를 지기로 하자."

그리피스와 해적들은 하벤 왕국의 함대에서 지은 성채 주변에 얇은 모포를 두르고 몸을 누였다.



3. 언데드의 밤



하벤 왕국의 함대와 해적들은 아예 진을 치고 지골라스 점령에 나설 기세였다.

위드가 하급 언데드를 소환하지 않는 이상 머릿수가 현저하게 부족했다.

하지만 좀비 같은 언데드들을 불러온다고 해도 의미는 크게 없을 것이다.

드린펠트나 유저들, 하다못해 선원들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데스 나이트급 정도는 소환을 해 줘야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동료들을 구해야 되는데……."

지골라승세는 여러 몬스터들이 있다.

몬스터라고 해도 무시할 게 아니다.

친밀도와 우호도를 많이 올려놓는다면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지성이 낮고, 식탐이 심한 몬스터에게는 맛있는 요리를 해주면서 호감을 이끌어 낸다.

필요한 물건들을 선물하기도 하다 보면 친분 관계가 맺어져서 위기를 보고 함께 싸워 주기도 한다.

"음, 저기……."

위드는 볼라드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캬르르르!

하짐나 곧바로 털을 곤두세우면서 덤벼드는 몬스터!

1,000마리 넘게 사냥하면서 가죽과 이빨, 꼬리 등을 챙겼고 고기는 육포로 만들었다.

이처럼 볼라드와는 씻을 수 없는 원수 관계가 되었으므로 말을 들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테어벳들은 박쥐형의 몬스터로,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집단을 이뤄 저희들끼리만 활동을 한다.

"테어벳들이라도 끌어들이면 도움이 될 텐데."

조각 변신술로 테어벳이 되더라도 그들의 언어를 모르니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동료로 만들 수는 있겠군."

위드는 자신만만했다.

지골라스에서 오랫동안 사냥을 하며 적대도가 심하다는 것은 무조건 덤벼든다는 뜻!

반 호크나 토리도의 지골라스의 몬스터들에 대한 적대도 굉장히 심했다.

발견하는 대로 고정된 영역을 벗어나서라도 싸우려고 할 것이다.

"최소한 30마리 정도씩 데려오는 건 문제가 없을 것 같고."

뒷감당이야 나중에 생각해 볼 일!

"한참 배가 고플 때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생삼겁인지 얼린 삼겹살인지 따지지는 않지."

그러나 몬스터들의 본의 아닌 도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벤 왕국의 함대나 해적들과 싸우기는 역부족일 것 같았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내 뒤를 쫓아올 테고……."

사냥이나 퀘스트를 하다가 어느새 포위당해 있으면 꼼짝없이 죽어야 한다.

선제공격만이 그나마 불리함을 덜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적어도 상대들이 설마 위드가 먼저 습격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습격하는 날짜를 잘 잡아야겠군. 지골라스에 먼저 온 덕에 알아낸 모든 것들을 활용해야 돼. 화돌이소환!"

폭력적이고 조급한 성품. 하지만 주인의 명령이라면 철저히 따르는 화돌이!

모라타에서 많은 정령술사들이 화돌이와 계약을 맺고 함께 사냥을 했다.

그 덕에 화돌이가 지상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도 조금 늘어나 있었다.

화돌이의 등장에 따라서 대기 온도가 더욱 올라간 것이 뚜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주인,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이구나."

"크히힛, 여기는 매우 마음에 드는군요."

화돌이는 지골라스에 소환되고 나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이 지역이야말로 화돌이를 위해서는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위드가 사냥을 하면서 화돌이를 일찍부터 소환하지 않았던 것은 몬스터들의 저항력과 마나의 효율 때문이었다.

지골라스에서는 화돌이가 강해진 이상으로 몬스터들의 화염 저항력도 높다.

때때로 화염 속성의 데미지가 오히려 몬스터들의 생명력을 채워 주는 역할을 해 버리기도 했다.

"흙꾼 소환."

인상 좋고 착한 어른의 형상을 하고 있는 흙꾼도 소환했다.

흙꾼 역시 말을 잘 듣고, 몸을 던져서라도 정령술사를 헌신적으로 보호했다.

그 덕에 많은 계약이 이루어지고 발휘할 수 있는 힘 역시 늘었다.

모라타 주변에서는 흙꾼과 화돌이가 최고의 인기 정령들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정령들까지 부른 위드!

입가에는 야비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나를 먼저 건드린 게 너희니까. 정말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거야. 모두 너희 탓이야."

화끈한 책임 전가.

그리고 저지르기로 했으니 모든 비열한 방법들을 다 동원할 참이었다.

양심의 가책이나 혼란 따위는 원래 있지도 않았다.

"크흐흐흐."

위드가 무언가를 상상하며 웃는 것을 보고 누렁이와 반 호크, 토리도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사람은 겪어 보면 안다고 했다.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인간성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건드려서는 곤란한 나쁜 놈.'

'못되도 어떻게 이렇게 못된 인간이…….'

'원래 천성일거야. 인간들이 오지 않았으면 우리를 괴롭혔겠지.'

'정말 주인을 잘못 만났구나.'

드린펠트는 제2함대의 제독답게 야망을 크게 품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입지를 점점 넓혀 가다 보면… 이 넓은 바다의 지배자는 내가 될 것이다."

로열 로드에서 레벨로는 1,200등 안에 드는 수준이었음에도 얌전히 길드의 명령을 따라온 것은 그런 이유였다.

위드를 사냥하라는 명령도 충실히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욕심이 생겼다.

"지골라스에 도착하게 된 것은 기회야."

바드레이가 지배하는 헤르메스 길드에 거역할 의도는 없었다.

헤르메스의 실질적인 힘을 조금 아는 그로서는, 바다라고 해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위드를 사냥하라는 명령을 이행하면서 사사로운 이득을 약간 챙기는 정도는 괜찮으리라.

"사람들이 지금 나와 내 함대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헤르메스는 길드의 전체적인 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봅니다."

길드 내부의 인맥을 통해 고위층을 설득했다.

지골라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엄청나다.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모험을 보여 준다면 시청률이 높을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에서는 필요한 토론을 거쳤다.

바드레이나 친위대는 길드의 큰 방향을 잡거나 목표를 지시할 뿐, 전반적인 길드의 운영은 대외적인

길드장 라페이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허락한다. 헤르메스 길드의 힘을 보여 줘라.

방송국들과의 협상도 쉽게 이루어졌다.

여러 방송국들이 지골라스의 탐험과 사냥에 대한 방송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싶다고 했다.

KMC미디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위드의 모험을 독점 중계하는 처지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

"드린펠트의 이름이 위드처럼 육지에도 퍼지게 될 거야."

하벤 왕국의 함대는 다음 날 일찍 일어나서 탐험 준비를 갖췄다.

"임시 성채에는 200명을 남긴다. 유저들 10명 그리고 병사 190명이 성채를 지키고, 방어력도 보완해라."

드린펠트는 유저들과 선원들과 함께 탐험에 나섰다.

정예 선원들은 바다에서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에 반해 육지에서의 전투 능력이야 다소 떨어지긴하지만, 심혈을 기울여서 성장시킨 선원 부대였다.

그리피스의 해적단은 먼저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쪽은 막아!"

"화살! 화살을 쏴라! 뜨거워서 원거리 공격이 최선이야."

"마법사는?"

"해적들에게 마법사가 어디 있어!"

볼라드에 의해서 해적들이 무참하게 죽어 나갔다.

해적들은 항해 스킬은 뛰어났지만, 하벤 왕국의 선원들에 비해서 레벨은 많이 낮았다. 레벨 400대의 볼라드를 잡으려고 하니 당연히 피해가 속출했다.

캬호오오오!

볼라드의 포효에 무기를 떨어뜨린 채 주저앉는 해적들도 부지기수!

그리피스나 해적단의 주축인 강습 해적, 국가 지명수배 해적들이 막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일반 해적들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해적들은 술집, 부둣가, 도박장, 골목길 등에서 쉽게 영입이 가능하기도 하고 성장도 더 빠르다.

선원들에 비해서 충성도가 낮고 정착하려는 마음이 약해서 조금만 소홀히 대해도 배를 빼앗아서 도망가버리거나 돈을 훔쳐서 함대를 이탈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해적왕 그리피스는 해적들을 성장시키기보다는 심복으로 몇몇 해적 장수들을 뽑아서 그들만 관리했다.

수적 우세, 그리고 거친 해적들을 바탕으로 몬스터들과 싸웠다.

부하 해적들의 희생이 있어야 해적 장수들의 통솔력과 지휘 능력이 더 빨리 컸다.

새끼 사자들을 절벽에 떨어뜨려서 살아남는 놈들만 키우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었다.

"몬스터의 수준이 높군."

구경하던 드린펠트나, 함대에 속한 유저들의 얼굴빛이 조금 굳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저항은 예상했던 바이기도 하지."

해군 기사 출신의 유저가 여유롭게 말을 받았다.

"물론입니다. 우리를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해적들과 비교할 수는 없죠."

하벤 왕국의 함대에는 드린펠트 말고도 다른 고레벨 유저들이 여럿 있으니 해적들과는 다를 것이다.

그들도 볼라드를 사냥하기로 했다.

"공격 개시!"

함대에 셋밖에 안 되는 마법사와 열두 궁수들의 장거리 공격!

공격을 받고 덤벼드는 볼라드를 드린펠트나 해군 기사들이 요격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전투 와중에 선원 2명이 죽었지만, 해적들에 비해서는 약소한 피해였다.

드린펠트는 그 피해도 아까웠다.

선원 1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익숙해질 것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해라. 전진하라!"

드린펠트는 부하들과 함께 사냥을 계속했다.

지골라스까지 와서 약간의 피해가 있다고 해서 구경만 할 수는 없다.

볼라드 사냥에서는 전리품이나 경험치의 획득이 쏠쏠했다.

유저들이나 해군 기사들을 중간마다 배치해서 선원들이 볼라드로부터 습격을 받지 않도록 했다.

"적응이 되니 볼라드 정도는 할 만하군요."

합네 왕국의 함대에는 고레벨 유저들이 여럿 포진되어 있어서 볼라드를 놓치짐나 않으면 무난하게 사냥할 수 있었다.

선원들은 지친 볼라드를 때리느 것으로 쉽게 레벨과 훈련도를 높였다.

드린펠트와 다른 유저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10대 금역이라더니 다소 과장된 면이 컸어. 하기야 누가 엳기까지 와 보기나 했을까. 지골라스에서도 사냥을 할 만하군.'

'이 전투들이 방송되면 내 인기가 더욱 높아지겠지.'

은근히 더 큰 어려움을 바랄 정도였다.

볼라드를 뚫고 그늘진 곳에 들어가니 갑작스럽게 테어벳들이 습격을 했다.

기습을 당한 선원들에게는 다소 버거운 전장이었다.

레벨이 300대 중반이나 후반이 아니라면 갑자기 자신에게 테어벳들이 덤볐을 때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다.

5~6마리의 테어벳에 둘러싸여도 죽지 않고 사냥이 가능한 유저는 드린펠트를 포함하여 28명 정도!

해적단에서는 15명밖에 안 됐다.

테어벳은 매우 빠르고 현란하게 주위를 날아다니기 때문에 사냥이 굉장히 어려웠다.

바다에서는 잘 훈련되어 막강하기 이를 데 없는 선원들이지만 허무하게 잡아먹혔다.

"선원들은 뒤로 물러나라. 그리고 유저들도 자기 목숨부터 챙겨라!"

참다못한 드린펠트가 명령을 내리고, 그리피스도 비슷하게 명령을 했다.

부하들의 안전도 지키면서 천천히 모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골라스의 상륙자들!

각 방송국들의 실시간 중계에서는 상당히 높은 시청률이 나오고 있다는 보고였다.

방송국의 시청자 게시판, 로열 로드의 인터넷 게시판들에 글도 많이 올라왔다.

-역시 10대 금역. 몬스터들의 레벨이 놀랍습니다. 하벤 왕국의 제2함대, 드린펠트를 비롯하여 주축 유저들이 모두 헤르메스 길드 소속입니다. 사실상 헤르메스 길드의 함대라고 해야지요. 그들이 느리지만 차근차근 전진해서 지골라스의 모든 것을 파헤쳐 주기를 기대합니다.

-볼라드와 용감하게 싸우는 해군 기사님의 이름이 포헨 님입니다. 정말 뛰어난 용기와 힘을 가지고 있는 헤르메스 길드원이시죠.

-10대 금역을 탐험하는 헤르메스 길드의 힘이 압도적입니다. 그들이 용기와 자신감을 본받고 싶어지는군요.

-이것 보세요, 알바들 적당히 활동하세요.

-헤르메스 알바들 진짜 지긋지긋하네. 시청자 게시판도 장악했나?

-지골라스에 자기들이 처음 간 것도 아니고, 위드를 따라간 것이면서.

-볼라드나 테어벳 정말 무섭네. 확 다 죽어 버려라!

-위드는 혼자서도 그 위험하다는 지골라스에서 활약을 하는데 단체로 몰려가서 무슨 자화자찬이 이렇게 심해!

10대 금역의 탐험이 스릴이 넘쳐서 시청률은 높았지만, 인터넷 여론은 드린펠트나 헤르메스 길드의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수의 시청자들이 헤르메스 길드의 탐험에 부러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

드린펠트는 세부적인 계획도 세워 놓았다.

첫날에는 주변 지역을 사냥하고 전리품을 자랑하는 정도로 가볍게 끝낸다.

원거리 항해로 인해 체력과 피로도가 상당해서 선원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한다.

지골라스까지 쉽게 도착했다고 시기하는 무리가 있을 테니 약간 손해를 보는 모습도 보여 주어야 하리라.

둘째 날에는 본격적으로 던전 탐험을 한다.

던전은 더 높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어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피해가 발생하겠지만, 무사히 던전탐험을 끝냈을 때의 보상이나 방송 효과는 굉장할 것이다.

드린펠트는 지골라스의 위험한 던전을 정복해서 명예를 높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던전을 정복한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지골라스에서 영역을 넓힌다. 더 넓은 지역까지 탐험을 하고, 위드도 본격적으로 추격한다.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하면서 위드를 죽인다!

해군 기사 두셋을 보내서 실력을 측정해 보고, 상대할 수 있을 정도라면 일대일의 승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물론 그 전에 많이 지치게 해 줘야겠지만.'

위드까지 죽이고 난다면 드린펠트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되리라.

정작 위드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하지 않은 채로 그는 그렇게 지골라스에서의 계획을 완벽하게 세워 두었다.


둘째 날.

언덕에 있는 성채는 선원들의 노동으로 오우거가 두들기더라고 금방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졌다.

근처에는 해적들의 소굴도 지어져 있었다.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양측 모두 30명에서 70명까지의 피해를 입었다. 유저들은 죽지 않았지만, 선원들이나 해적들의 죽음은 상당히 아까웠다.

"베르사 대륙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복구할 수 있다. 선원들의 피해는 염두에 두지 마라."

"해적들은 몇 명이라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해군이나 해적도 명성이 중요했다.

명성이 높으면 실력 있는 선원이나 해적 들이 많이 지원한다.

그들을 헐값에 고용할 수도 있어, 지골라스에서는 다소의 피해를 감수하고 모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던전 탐험!

"선원들을 아껴야 되겠지만, 지금은 뭔가를 보여 주는 것도 필요하겠지."

드린펠트는 입구가 큰 던전을 골랐다.

"적당한 던전이면 좋을 텐데. 모험가나 발굴가를 데려오지 않은 게 조금 후회가 되는군."

지골라스에서도 너무 약한 곳을 고른다면 방송의 흥행을 위해서 좋지 않다.

하지만 던전에 대해서 조사도 하지 않고 선원들이나 몇 안되는 마법사만으로 진입을 하려니 껄끄러운 부분도 있었다.


던전 화산 심장의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혜택 : 명성 1,300 증가. 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랍율 2배.
첫 번째 사냥에서 해당 몬스터에게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물건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오, 역시!"

"우리가 최초의 발견자가 되었어."

드린펠트와 유저들은 상당히 기뻤다.

최초라는 것은 어쨌든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것.

"2배의 경험치에 2배의 아이템!"

"제독님, 며칠 더 여기서 사냥을 하고 싶어질 것 같은데요."

벌써부터 웃음꽃들이 활짝 피었다.

드린펠트도 방송이 나가는 것만 아니라면 던전 발견의 행운을 반가워하며 크게 웃었으리라.

"던전은 이곳 말고도 많이 있다. 전투에 집중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보는 눈들이 많을 테니 제독답게 근엄하게 명령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벌어진 전투.

우르르릉!

와지끈!

콰과광!

던전 내부의 함정과 몬스터들!

레벨 400대 후반에서 500대의 몬스터들까지도 튀어나왔다.

몬스터의 수준도 높았고, 자연적인 함정들이 많은 던전이었다.

천장이 무너져서 덮치고, 땅이 푹 꺼지기도 했다.

방송 때문에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는 던전을 바라기는 했지만 선원들의 피해가 많았다.

드린펠트가 해군 기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할 수 있다. 공격해라. 뚫어라. 우리는 최강의 헤르메스 길드다!"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목숨을 잃는 선원들이 일고여덟씩 나왔지만 정말 흥분되는 긴장감과 스릴도

맛보았다.

그렇게 전진하던 와중에 용암 호수의 옆으로 빙 돌아가는 장소가 나왔다.

중심부에는 다섯 명의 불의 거인들이 잠들어 있었다.

-깨지 않은 것 같다.

-마법사들을 준비시킬까요?

-대형 몬스터에 지형이 나빠서 전투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불행하게도 마법사나 궁수처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직업들이 몇 명 안 됐다.

선원들도 활을 쏠 수는 있지만, 그 약한 데미지로 불의 거인에게 치명타를 입히기는 무리였다.

드린펠트나 해군 기사들이라고 해도 용암을 걸어서 거인에게 돌격할 수는 없다.

-일단 조용히 통과한다.

반신욕을 하듯이 몸의 절반을 용암에 담그고 수면을 취하는 불의 거인들.

드린펠트와 해군 기사, 유저들과 선원들은 암벽 아래에 나있는 좁은 길을 살금살금 걸었다.

호수를 빙 돌아서 맞은편에, 다른 곳으로 향하는 입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투두둑.

미묘한 소리와 함께 선원들이 걸어가던 길의 끝 부분이 조금 무너졌다.

돌 조각들이 떨어져서 용암에 빠져들었다.

드린펠트와 해군 기사들은 반사적으로 불의 거인들을 살폈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휴우, 다행이군.'

'괜찮군. 무사히 건너갈 수 있겠어.'

하지만 그때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따.

열기로 인해서 땀을 흘리며 휘청거리면서 걷던 선원이 다리가 풀려서 미끄러졌다.

"으아아아아악!"

선원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면서 용암에 빠지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냥 자겠지.'

'제발 자야 될 텐데.'

불의 거인들은 이미 눈을 떴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인간들을 발견했다.

"나약한 인간들이 이곳에 들어왔구나. 허락받지 못한 자는 나와 싸워서 이곳을 통과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거인이 용암 속에 잠겨 있던 팔을 들어 올렸다.

손에는 두께가 2미터, 길이는 30미터나 되는 검이 들려 있었다.

어떤 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용암에도 녹지 않는 것을 보니 굉장한 강도와 열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

무기의 공격력은 대체로 무게와 강도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예리함이 없으면 상당히 큰 페널티가 생기기

도 하지만, 불의 거인이 쓰는 대검이라면 그런 차원을 넘어선 무기였다.

"침입자에게 죽음을."

다섯이나 되는 불의 거인들이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대검이 부딪친 암벽이 무너지고 바윗덩어리들이 추락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용암 호수에 누워 있던 불의 거인들이 들썩이면서 큰 움직임을 보였다.

서슬에 용암이 튀어 오르면서 드린펠트 일행은 날벼락을 뒤집어쓰고, 선원들이 지나가던 좁은 길은 불의 거인의 공격에 의해 파괴되어갔다.

"끄아아악!"

"살려 줘!"

불의 거인의 일격에 선원들 15명이 저항도 못 하고 녹아 버렸다.

가공할 공격력!

볼라드 등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초거대 보스급 몬스터의 위용이었다.

"공격해라!"

마법사들이 미리 준비했던 마법들을 발출(방출이 아닐까요)했다.

한 불의 거인에게 여러 종류의 마법을 집중시켰지만 거의 손상도 없었다.

오히려 분노를 돋우기만 한 듯, 검을 더욱 세차게 휘둘렀다.

드린펠트와 유저들은 불의 거인이 멀쩡한 것을 보고 외쳤다.

"도망쳐!"

"달려! 여기서 어서 빠져나가!"

불의 거인들에게 잘린 유저들은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입구로 줄행랑을 쳤다.

드린펠트는 이기더라도 애지중지 키운 함대의 상당분을 잃어버리는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대한으로 달려서 여길 벗어난다."

좁은 길에서 엉키고 뒤섞여서 용암으로 추락하고, 그 와중에도 불의 거인들의 공격은 계속 퍼부어져 피해가 속출했다.

난장판이 되어서 간신히 던전을 빠져나오고 나니 무려 76명이나 죽어 있었다.

부하들도 챙기지 못하고 저마다 살기 위해 도망 나온 최고의 굴욕!

유저들도 7명이나 죽었다.

시체조차 찾기 힘든 장소에서 죽었으니 잃어버린 아이템을 되찾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크윽."

드린펠트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짜증이 날 뿐 던전으로 다시 들어가서 싸울 엄두는 낼 수 없었다.

해상전이라면 배가 부서지지 않는 한 선원들이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는다.

그런데 던전에서 선원들을 무참히 잃어가며 싸우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방송을 생각하셔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부관이나 다른 유저들의 귓속말이 전해졌다.

드린펠트는 방송을 의식해서 간신히 표정을 추스르고 말했다.

"지골라스의 던전은 무지막지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군. 아직은 누구도 깰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오늘 힘든 탐험을 했으니 철수해서 휴식을 취한다."

다른 만만한 던전을 찾아 탐험하기에도 의욕이 떨어져서 성채로 돌아왔다. 해적단도 던전을 탐험하다가 큰 피해를 입고 온 모습이었다.

서로의 실패를 보고 위안을 삼을 수는 있었다.

위드는 이틀간 앉아서 조각품을 만들며 때를 기다렸다.

그 사이에도 서윤은 심심하지 않았다.

위드가 만든 조각품들, 지골라스의 몬스터나 유령선 같은 것들을 구경했다.

귀엽고 예쁜 설인이나 동물들을 조각하면 손바닥을 내밀었다.

"……."

달라는 뜻!

위드는 떨리는 손으로 조각품들을 건네야 했다.

아깝고 싫었지만, 바싹 옆에 붙어 앉아서 조각품이 완성될 시기를 기다려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여성에게는 항상 최고의 선물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조각사!

바꿔서 말하면 만드는 작품마다 빼앗길 수도 있는 설움의 직업.

'이놈의 직업은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사소한 곳에서 아쉬움을 남기는군.'

위드는 짐짓 큰 한숨을 쉬었다.

"조각사가사 진심을 다해서 만든 예술 작품이거든. 작품 하나하나에 내 마음이 깃들어 있으니 소중하게 간직했으면 좋겠어."

물론 공짜로 줄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상당히 친한 사이잖아?"

위드가 뻔뻔하게 평소라면 감히 할 수 없던 말을 했다.

서윤이 빤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수업도 같이 듣고, 밥도 같이 먹고… 개도 주고, 닭도 주고, 이제 토끼도 줄 거고 말이야."

많이 주면 친한 사이라는 논리!

서윤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지만 그녀도 친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친구, 그리고 같이 있으면서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이 위드였으니까.

"근데 중요한 게 말이지, 가족이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거래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

"조각품이란 거 말이야, 팔면 네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엄청 큰돈을 벌 수 있는데 자꾸 달라고 하니까 줘야 되잖아."

위드는 그녀가 미안해하거나 조각품을 돌려주려 할 시간을 주지 않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하나에 100골드도 넘는 귀중한 조각품들이지만 너한테 주는 게 아깝지는 않아. 그래도 주기만 하는 것도 모양이 이상해. 우리는 둘 다 어른이잖아. 돈이 오가는 부분에서는 깔끔해야 뒤탈이 없는 거, 너도 잘 알거야. 다른 사람에게 파는 것보다는 친한 사람에게 주는 편이 나도 훨씬 바라는 바이니까. 대신 나중에 잡템으로 챙겨 갈게."

친한 사이니까 공짜로는 줄 수 없고 대신 잡템을 내놓으라는, 뭔가 애매한 설득력을 가진 논리!

지골라스에서 엄청나게 사냥을 해서 아이템들이 쌓여 있었는데도 잡템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위드였다.

서윤이 잡템을 주기로 하자, 위드는 더 부지런히 조각품을 만들었다.

'조각품으로도 쏠쏠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군. 과연 예술가의 길이란!'

서윤은 누렁이와 금인이, 황금새와도 많이 친해졌다.

누렁이는 위드보다는 서윤의 옆에 배를 깔고 누워서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금인이도 마찬가지였고,

황금새는 아예 노골적으로 서윤의 어깨를 떠나지 않았다.

네크로맨서가 되어 있는 위드에게는 심한 반감을 드러내며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는 주제에, 서윤이 머리와 턱을 만져 주면 고개를 들고 좋아하는 것.

위드도 황금새와의 친밀도를 조금은 높일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의 직업을 포기할 수가 없어."

지골라스에서 버티려면 언데드가 필수라고 생각되었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들이 여러 마리씩 나오는데 조각사로 감당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대량 학살에 대량의 아이템 수거가 가능한 훌륭한 직업인지라, 바꾸기가 곤란했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거야.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그러는 게 아니야."

정말 변명 같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네크로맨서를 고수하는 위드!

황금새와는 영영 가까워지지 못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각품을 깎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소환해놓았던 정령 화돌이가 갑자기 붉은빛을 냈다.

"지골라스의 불의 기운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자연의 영향을 받는 정령들의 힘도 덩달아서 강해진 것.

"드디어 터질 때가 되었나."

흙꾼도 뭔가 불안한 듯이 서성거렸다.

"주인님, 땅의 힘들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화산 폭발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지진까지!

위드는 조각품 깎던 것을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시작할 시간이로군."

정의나 명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쁜 짓도 자주 해야 더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따.

위드야말로 마법의 대륙 시절부터 엄청나게 나쁜 짓을 많이 했다.

먹고살기 바빠서 얌전히 지냈다고는 해도 본성을 버릴 수 없는 법!

"언데드들이여, 움직여라. 오늘은 너희의 밤이 될 것이다."

드린펠트의 선원들이 지너 놓는 언덕의 성채가 우르르 떨렸다.

"이, 이게 뭐야? 땅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지진인가?"

"넘어지지 않게 상체를 낮추고 균형을 잡아."

첫 지진은 심하지 않았기에 선원들은 땅에 엎드려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드린펠트나 유저들은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넘어진다고 해도 생명력의 손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콰르르르르르.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지진은 오면서 진동은 점점 거세졌다.

멀리 있는 산에서 바위들이 우르르 굴러 내려오고, 제 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 됐다.

목책이 쓰러지고 아우성도 일어났다.

"지진이 점점 커진다!"

"뭐라도 잡아!"

"천막들이 무너진다. 안에 있지 마!"

거센 소동이 일어났다.

성채 주변에 지어 놓은 해적들의 소굴에서도 지진의 여파로 인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해적들은 위드가 발견한 동굴과 몇 개의 동굴들을 엮어서 소굴로 삼았다.

볼품은 없어도 방어에 용이하기 때문에 동굴을 근거지로 썼던 것이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나니 무너질까 걱정이 되어서 앞다투어 뛰쳐나왔다.

그때 대지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지골라스가 통째로 흔들리는 지진.

그리고 화산들이 일제히 용암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방송국의 시청자 게시판과 인터넷 게시판은 지골라스의 던전에 대한 화제로 떠들고 있었다.

-지골라스의 몬스터 레벨이 정말 높군요. 언제쯤 그곳에 가서 사냥을 할 수 있을지.

-파티 사냥이 가능하려면 한참 시간이 지나야 되지 않을까요? 나중에도 너무 멀어서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불의 거인, 진짜 대단하지 않나요? 잠깐이었지만 그 끔찍한 위력이라니!

-드린펠트의 함대가 박살이 나서 도망쳤죠. 크크.

-헤르메스 길드였기에 그 정도라도 한 겁니다.

-지골라스는 10대 금역인데, 찾아가기도 힘든 북쪽 끝에 있는 금역치고는 그래도 좀 실망스럽네요.

몬스터들의 레벨이 높은 거 외에는 다른 곳들과 비슷한데요.

-위의 분은 무슨 금역이라고 해서 다 죽기만 하는 그런 걸 상상하셨어요?

-내일은 헤르메스 길드에서 무슨 모험을 할까요?

시청률도 높고, 생방송이 계속 이러어지고 있었기에 게시판에서 수다를 떠는 유저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게시판에 글들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폭발했다, 지골라스의 화산!

-대지진으로 지각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땅에서 용암이 솟구쳐요.

-끼야, 구경 가야지!

-놓칠 수 없는 장면이 될 듯.



4. 폭발하는 화산에서의 전투



대지에서 지독한 열기를 가진 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지각의 일부는 지하로 가라앉았다.

지진으로 인하여 지골라스의 몬스터들이 생존을 위해 뛰어다니고, 지골라스에 있는 많은 화산들이 거의 동시에 용암을 공중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비처럼 쏟아지고, 갈라진 땅으로 스며들고 넘쳐서 흘렀다.

지골라스의 장관인 화산 폭발!

본능을 위협하는 공포로 가득 찬 지골라스였다.

위드는 멀리서 이 광경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정말 멋진 경치로군!"

자신이 화산 폭발을 겪을 때는 최악이었다.

사냥도 중단하고 멀리 도망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언데드들을 잃어야 했으니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재앙!

하지만 다른 이들이 화산과 지진의 피해를 입으니 이보다 더 좋고 멋진 광경이 없다.

사촌이 산 땅의 가격이 떨어지면 소화가 잘되는 법!

"평생 동안 잊지 못하겠어!"

하늘에서 화산 폭발의 파편들이 운석처럼 사방으로 떨어진다.

마른하늘에 용암이 묻은 바윗덩어리들이 연기를 내뿜으며 지상을 강타했다.

슈우우우우- 콰과과광!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땅에 작렬하며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다.

파편들은 하벤 왕국의 함대에서 만든 성채로도 떨어졌다.

공들여서 만든 목책과 성벽이 종잇조각처럼 박살 나고 유저들과 선원들이 사망!

"여기는 위험해."

"피해라! 강가로 도망쳐!"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는다고 쌓아 놓은 성채가 도망칠 때에는 장애물이 되었다.

지진으로 땅에 쓰러지면 하늘에서 추가로 용암 덩어리들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고함을 지르면서 장렬하게 선원들이 사망!

지골라스의 수십 개의 화산들이 동시에 분출을 개시하면서 파편들이 비처럼 떨어진다.

수천여 개의 소규모 운석들이 떨어지는 것처럼 위험하고 아름다운 광경이다.

위드는 지금까지는 화산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안전한 장소에 있었지만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가 있는 곳으로부터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도 바위의 파편들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은 이곳만큼 안전한 장소도 없지."

여러 차례 화산 폭발을 겪으면서 확인한 생존의 안전지대.

위드는 산봉우리 뒤쪽에 달라붙어 있었다.

화산이 폭발해서 파편들이 날아오더라고 봉우리에 적중되어 피해가 거의 없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배로 물러나자."

"화산이 잠잠해질 때까지 벗어나자."

얼지 않는 강에 정박해 있는 배로 피신하기 위해 유저들과 선원들이 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봐야 했던 것은 대규모 언데드 군단이었다.

데스 나이트와 마녀들, 구울, 좀비, 스켈레톤 워리어, 스켈레톤 메이지, 유령 등으로 이루어진 언데드 군단이 흐르는 용암과 갈라진 땅을 배경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언데드다!"

"언데드 군단이 밀려온다. 싸올 준비를 하자!"

좀비들이 팔을 휘적휘적 저으면서 달려왔다. 오는 도중에 불덩어리들에 맞아서 박살이 나 버렸지만,

더 많은 언데드들이 그 뒤를 따랐다.

"크흐흐흣."

"히끅! 히끅!"

언데드들이 바윗덩어리에 맞아 부서진 벽을 넘어서 공격해 들어왔다.

용암 파편이 떨어질 때마다 밝은 빛이 나고 화염이 솟구쳤다.

그럴 때마다 언데드들과 치열하게 싸우고있는 유저들과 선원들을 볼 수 있었다.

데스 나이트들이 입을 열고 미리 정해 놓은 말들을 했다.

"도망치지 않는담녀 용암에 파묻혀서 모두 죽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살아 있는 너희의 발목을 잡는 것. 도망치지 말고 우리와 싸워 다오!"

데스 나이트들은 위드가 알려 준 말들을 하면서 적들의 사기를 꺾어 놓고 있었다.

"화산이 더욱 크게 폭발하리라. 용암이 범람해서 이곳을 다 쓸어버릴 것이다."

하벤 왕국의 함대가 있는 언덕 위는 일반적인 몬스터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용이한 지형이었다.

그와는 정반대로, 화산이 폭발했을 때에는 매우 많은 파편들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물론 용암이 아무리 흘러나오더라도 그곳까지 잠길 리는 없었지만, 화산 폭발을 처음 겪어 보는 이들에게는 불안과 공포심을 극대화시켰다.

언데드들을 물리칠 수 있는 충분한 전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고, 용암 파편을 피하고 도망칠 생각에만 몰두했다.

데스 나이트들이, 그리고 다른 언데드들이 성과를 냈다.

스켈레톤 메이지들의 마법이 적중하면서 선원들을 조금씩 죽음의 세계로 이끌었다.

"클클클!"

위드가 신 나게 웃었다.

재난에 빠진 이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러야 제맛이라고 할 수 있다.

"배고픈 사람 옆에서 양념 치킨을 시켜 먹는 기분이로군."

금인이와 누렁새, 황금새, 서윤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언데드들을 지휘하면서도 끊임없이 흡족하게 웃는다.

타인의 불행을 행운으로 여기고 기뻐하는 것이 놀랍지는 않았다.

원래 그랬으니까!

위드가 갑자기 남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초보자들에게는 돈과 아이템들 나누어 준다면 오히려 더욱 놀라고 걱정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위드가 그렇게 변할 리가 만무했으니, 어떤 더 나쁜 짓을 꾸미더라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이였다.

화산 폭발이 더 거세지면서 선원들과 해적들은 엄폐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언데드와 선원들, 해적들이 뒤엉켜서 전투를 벌이는 걸 구경할 수 밖에 없다.

용암 파편들에 의해서 그들도 죽고 언데드들도 쓰러지고 있었다.

"슬슬 새로운 공격을 해 줄 시점이로군."

언데드들이 줄어들면서 마나가 회복되었다.

위드는 타락한 성자의 지팡이를 들고 성채들을 향해서 저주 마법을 외웠다.

"너희의 육체를 통해 언데드를 만들 것이다. 너희는 영원히 내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네크로맨서의 선언!"

위드는 4개의 저주 마법들을 연속으로 시전했다.

신체 이상, 가려움증, 공포심 자극!

지골라스의 화산이 폭발했을 때부터 선원들과 해적들의 사기는 충격적으로 낮아져 있었다.

드린펠트나 해군 기사들은 화산 폭발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다.

언데드 군단을 상대하면서도 낮아진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는 마법을 외웠다.

"그리고 우선 죽여야 될 상대는……."

위드는 성채에 숨어 있는 자들 중에서 성직자와 마법사 둘을 목표로 삼았다.

유저들이나 해적들 중에서 신성력이나 마법을 쓸 수 있는 이들은 일곱밖에 되지 않았다.

배의 등급이나 선회 능력, 대포 탑재량이 중요한 해상전에서는 성직자들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

마법사도, 있으며 좋지만 배에서는 딱히 전투가 자주 벌어지는 편이 아니라서 잘 오려고 하지 않아 흔치 않다.

"시체 폭발!"

위드는 흰 마나가 모인 손을 흔들며 주문을 외웠다.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성직자들과 마법사들의 주변에 마법을 집중시켰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위드의 마나가 닿은 시체들이 마구 폭발했다.

네크로맨서에게도 뼈 투척이나 기본적인 공격 마법들이 있지만, 중견 마법사의 공격력보다도 훨씬 강력한 시체 폭발!

"크아아악!"

"마법 공격이다!"

"언데드 군단을 지휘하는 네크로맨서가 어디 있었나?"

"위드야! 위드가 숨어서 언데드 군단을 부리고 있을 거야."

화산 폭발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이제야 위드에 대해서 알아차렸다.

시체 폭발은 살아 있을 때의 생명력을 기준으로 최대 10배나 되는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연쇄적인 시체 폭발로 인하여 방어력이 약한 성직자와 마법사 들이 떼죽음!

최소 60명 이상의 선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대량의 시체들을 한꺼번에 폭발시켜서 관련 마법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는 해군 기사 오르반을 죽였습니다. 악명 13 증가!

-노튼 왕국에서 지명수배된 해적 발라카를 사망시켰습니다. 명성 5증가! 악명 8감소! 노튼 왕국으로 가면 현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 죽였습니다.

-무고한 사람들 죽였습니다.

-무고한 사람들 죽였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악명이 1,980 늘어납니다.

-타락한 성자의 지팡이의 효과로 인해서 흑마법이나 네크로맨서 스킬의 효과가 70%까지 강화됩니다.

-살아 있는 인간들을 제물로 바쳐서 모든 스탯들이 일주일간 85개 늘어납니다. 마나의 최대치가 270% 증가합니다.

-타락한 성자의 지팡이로 인해 악명이 추가적으로 2,010 늘어납니다.

-네크로맨서로서 기록을 세웠습니다. 가장 빠른 시간이 가장 많은 인간들 죽였습니다.

위드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맺혔다.

"역시 나쁜 짓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나쁜 짓에도 등급이 있는 법이다.

위드가 저지르는 나쁜 짓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선원들이나 해적들을 죽일 때마다 명성과 악명을 골고루 얻었다.

그리피스의 해적들은 말할 필요도없고, 드린펠트의 선원들도 악명이 높거나 살인자의 상태인 자들이 절반 정도는 됐다.

그들을 죽이면서 보통 때보다 더 많은 경험치와 명성, 악명 감소의 혜택까지 볼 수 있었다.

"위드가 저기에 있다!"

드디어 위드가 발견되었다.

바다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은 시력이 매우 좋은 게 특징이었다.

폭발하는 화산에만 관심을 두다가 주변을 살펴보니 위드가 마법을 외우고 있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 떨어진 로브를 입고 타락한 성자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수정 해골!

이마에는 선명한 붉은색으로 이름이 드러나 있었다.


위드



"다음 공격이 올지도 모르니 몸을 피해라!"

"아니, 놈은 혼자에 불과하니 그냥 공격해서 죽이자."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와중에 드린펠트가 결정을 내렸다.

화산 파편을 피해서 숨어 있다가 위드가 공격을 한다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돌격대를 편성해서 위드를 잡아라!"

그는 일찍 숨은 편이라서 언데드 군단이 이토록 큰 피해를 주었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았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큰 피해를 입어서 화도 났지만, 위드를 잡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다.

하지만 그때 북쪽 방향에서 데스 나이트 반 호크가 그들이 있는 성채로 돌진!

서쪽에서는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도 달려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 뒤에는 50~60마리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함께 달려오고 있다는 점!

테어벳과 볼라드 정도는 귀엽게 느낄 수 있는 애교 수준이었다.

위드가 언데드 군단을 끌고 싸워서도 패퇴를 거듭했던 혼돈의 전사들이 짧은 거리를 연속으로 순간이동하며 쫓아왔다.

"이번엔 지골라스의 몬스터 군단이다!"

일제히 비명을 지르는 성채의 유저들!

용암 파편을 피하기에도 정신이 없는데 언데드들에 이어서 몬스터들까지 습격을 가하다니, 위드에게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가장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환장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전원 전투준비를 하라!"

성채의 엄폐물에서 나와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골라스의 몬스터들이 그들을 덮쳤다.

하벤 왕국 제2함대의 정예 유저들, 그리고 해적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무기를 휘둘렀다.

동료들과 성벽을 의지해서 몬스터들에게 저항했다.

성직자와 마법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인하게 버티는 용기!


지골라스의 모험을 생중계하는 방송국들의 시청률이 일제히 급등했다.

화산 폭발과 지진에 모험대가 곤경을 겪을 때부터 늘어나던 시청률이, 위드가 공격을 개시하면서부터 동시간대 시청률 1위, 2위, 3위를 모두 차지했다.

하벤 왕국의 함대원, 해적들을 공격하는 몬스터와 네크로맨서!

-위드가 그냥 당하진 않을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래도 기다리지 않고 먼저 공격을 해 버릴 줄이야.

-공평하지 못해요. 재난을 겪은 이들을 기습하다니. 너무 비겁한 거 아닌가요?

-대비하지 못한 이들이 바보죠.

-지골라스까지 갔으면 알아서 조심했어야죠. 부모님이 기저귀 갈아 줄 나이도 아닐 텐데요.

-여럿이서 몰려가는 건 정당한 거고요?

-위드에 대해서 잘못 기대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영웅담에 나오는 기사나 전사를 생각하셨나요? 제대로 알려 드리자면, 마법의 대륙 시절의 위드는 사냥터의 몬스터들을 싹 쓸어버리는 것으로 유명했죠. 도전하는 길드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짓밟아 버렸습니다.

-이게 바로 위드.

-위드의 악명이 괜한 게 아니죠. 마법의 대륙에서 위드라면 치를 떠는 유저들이 꽤 많아요. 날아오는 드래곤보다 지나가는 위드가 더 무섭다는 농담이 괜히 나왔겠어요?

-몬스터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건 위드의 고전적인 수법이죠. 진짜 최고로 비열한 수법들까지도 서슴지않고 사용하고, 적들을 질리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강할 수 있었던 겁니다.

-잔인해서 좋아요!

일반 유저들만이 아니라 여러 길드와 귀족, 성주 들까지 방송을 지켜보았다.



"클클클."

위드는 선원들과 해적들이 싸우는 것을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용암 파편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리를 지키며 언데드와 몬스터 들과 싸우고 있었다.

숭고한 그들의 동료애나 전투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여기서 악역은 위드였으니까.

일반 선원들이나 해적들이 눈에 띄게 제대로 못 싸우는 것이 보였다.

저주의 여파도 있겠지만 사기가 심하게 떨어져서 전투 능력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주었다는 증거다.

드린펠트의 선원들, 그리피스의 해적들도 정상 때보다 전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집탄 전투에서는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사기들이 더 중요하게 적용되었다.

1,000명, 2,000명을 넘어가면 사기만으로도 몇백 명 정도의 힘을 더 낼수도 있고 덜 낼수도 있는 것이다.

"나쁜 짓은 이제부터란 말이지."

데스 나이트 반 호크는는 어둠의 기사답게 활약을 했다.

적들 중에 따로 떨어져 있는 해군 기사들에게 덤벼서 승부를 벌였다.

강력한 공격 스킬로 빠르게 목숨을 끊고 도주!

위드는 반 호크의 생명력과 마나가 떨어질 때마다 마법을 사용해서 적절히 회복시켜 주었다.

네크로맨서였기에 휘하의 언데드에게 본인의 생명력과 마나를 전해 줄 수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는 은신술을 펼치면서 기습을 했다.

선원들의 목덜미를 잡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꽂았다.

한창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토리도에 의해서 사망!

생명력과 마나를 최대치까지 채우고 습격하는 뱀파이어 로드!

수하인 진혈의 뱀파이어족들도 등장했다.

성직자에 의해서 완전히 소멸될 염려가 없기 때문에 뱀파이어들은 박쥐로 변해서 활개를 쳤다.

하지만공중에서 용암 파편들에 맞아 먼지처럼 흩어져 버리기도 했다.

"진혈의 뱀파이어족의 희생이 크군."

아직 대부분이 어린 뱀파이어들이다.

전투를 통해 성장을 하려니 부득이한 희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용암 파편을 뚫고 하늘에서 날아다니고, 공중에서 지상으로 습격을 한다.

선원들과 해적들이 방어벽까지 돌파해서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는 것은 뱀파이어들에게는 굉장한 힘을 늘릴 기회였다.

위드가 있는 장소는 상대적으로 평온하기 그지없었지만, 드린펠트나 그리피스의 주변은 혼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위드를 향해서도 가끔 공격이 들어오긴 했다.

"쏴라! 죽여라!"

명성에 눈이 멀거나 동료를 잃어 분노한 유저들이 화살 등으로 공격을 해 왔다.

물론 그런 눈먼 화살에 맞아 줄 위드가 아니라서 미련 없이 몸을 숨기고 마나를 모았다.

"누렁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참 잘생겼다. 우리 누렁이, 간식 줄까? 이리 가까이 와 봐."

누렁이는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위드가 간식을 준다고 하니 반신반의하면서도 걸어오는 것이다.

위드는 누렁이의 목덜미를 콱 움켜쥐었다.

"마나 드레인!"

음머어어어!

누렁이의 마나 흡수.

친밀도를 생각한다면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지만, 금인이와 누렁이에게 번갈아 흡수하면서 빠르게 마나를 회복했다.

"시체 폭발!"

대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성채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터트려 버렸다.

밀집해서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는 와중에 시체들이 폭발한다.

선원들이 열심히 만들었던 성채는 바윗덩어리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지고 도처에 불이 붙어서 그 흔적을 제대로 찾기 어려웠다.

비열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공격 방법이지만 효과는 만점!

"이제 슬슬 다른 마법도 구사해 볼까?"

위드는 데스 나이트를 소환하는 마법도 외웠다. 적진의 한복판에 언데드들까지 소환했다.

드린펠트는 선원들의 진형이 무너지지 않게 지휘하면서도 떨어지는 용암 파편들을 검으로 쳐서 부쉈다.

그는 함대를 이끄는 제독으로서 해상전에 능숙했다.

함선들을 이용해 진형을 짜고 적들을 포격으로 무너뜨리는 게 특기. 지상에서 이렇게 몬스터와 마법, 지형을 활용하면서 공격을 당해 본 적은 없었다.

설마하니 위드가 먼저 습격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원인도 있었지만.

드린펠트는 여러모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냉정을 되찾고 반격을 준비했다.

"너희는 이곳을 빠져나가서 위드만 죽여라!"

"알겠습니다."

믿을 만한 유저 2명과 함대에서 최고로 꼽는 해군 기사 8명으로 별동대를 구성했다.

성채를 빠져나가는 와중에 하늘에서 떨어진 파편에 맞아서 별동대 해군 기사들 2명 희생!

용암이 흐르는 대지를 건너고, 땅이 갈라진 곳을 뛰었다.

불바다를 헤치고 나가면서 3명이 더 목숨을 잃어야 했다.

발견되지 않도록 먼 거리를 돌아가다 보니 피해가 더욱 컸다.

"이제 거의 다 왔다."

해군 기사들은 검을 뽑아 들고 차분하게 산을 올랐다.

마법사나 네크로맨서는 근접전에 취약하다.

위드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목숨을 취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오는 길목을 한 사람이 막고 있었다.

서윤, 그녀가 갑옷에 투구까지 쓴 채로 완전무장하고 기다렸던 것.

스르릉!

서윤이 망설이지 않고 검을 뽑았다.

화산 폭발, 지진, 몬스터들의 습격, 시체 폭발 등으로 드린펠트의 함대 전력은 반 이상이 줄었다.

살아남은 수는 유저들 15명, 선원들 219명!

부상이 심한 선원들 30여 명이 더 죽으면서, 처참하게 몰살을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죽은 유저들은 시간이 지나면 접속할 수 있지만 애써서 키운 선원들은 영영 잃어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에 위드가 소환한 독 안개가 골칫덩어리였다.

성직자나 샤먼이 없었기에 마법으로 해독을 하지 못하고 해독약으로는 중급 네크로맨서 마법을 감당하지 못해서, 부상이 심하던 이들이 전투 불능에 빠져 몬스터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었다.

해적들의 피해도 엄청났다.

살아남은 해적 유저들은 30명이 겨우 넘었고, 해적 병사들도 152명밖에 안됐다.

지골라스에 상륙했을 때의 숫자가 드린펠트의 함대보다도 훨씬 많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떼죽음이라고 해야 마땅했다.

"위드!"

드린펠트와 그리피스는 위드라면 이를 갈게 되었다.

부하들의 처참한 손실도 화가 났지만 엄청난 시청률의 방송을 통해서 그들의 몰살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고 말았던 것.

"반드시 죽인다."

"해적의 명예를 걸고 죽여 버리겠다."

성직자들과 마법사들이 살아날 때까지 나흘간 얼지 않는 강으로 철수를 단행!

위드는 그동안 느긋하게 강가 주변으로 돌아와서 얄밉게 사냥을 하면서 레벨을 올리고 언데드 군단을 불렸다.

호흡곤란을 일으킬 정도로 화가 나 있는 사람에게 고춧가루를 푼 뜨거운 물을 마시라고 주는 격이었다.

"이제 위드 척살을 목표로 한다."

드린펠트의 함대 그리고 그리피스의 해적들은 확실한 목표를 정했다.

길드 채팅이나 게시판에도 그들을 조롱하는 이야기들이 많았기에 명예 회복을 노리려고 했다.

위드는 이런 복수전도 익숙했다.

"진짜 나쁜 놈들에게는 복수도 당해 주지 않아야 되는 법!"

어설프게 나쁜 놈들이 여유를 부리다가 된통 당하고, 상대에게 자비를 베풀었다가 뒤통수를 크게 맞는다

"빠르게 철수할 시기야."

위드는 죽은 이들이 다시 접속할 시간이 되자 약삭빠르게 대지의 균열이 심한 조각사들의 유산이 있는 장소로 사냥터를 옮겼다.

하벤 왕국의 함대와 해적들은 함부로 따라오지 못했다.

어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지골라스의 화산들이 다시 큰 울음을 터트리며 진동하고 있었다

"계략에 주의해라!"

"철저히 조사하고, 화산 폭발에도 대비하자."

방심했던 지난번과는 달리 경계성이 많아진 모습이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나고 난 이후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 가면서 추격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다르게 암살조를 파견해서 위드의 목숨을 노리라고 지시했다.

"자존심 강한 놈들이니 그냥은 물러나지 않을 거야."

위드는 어떤 방식이든 보복이 올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마법의 대륙에서 명문 길드들과 싸울 때에도 한 번의 패배로 끝나는 경우가 없었다.

위드는 그런 전투를 수없이 많이 겪어 본 경험자였다.

"주인, 인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뱀파이어 로드, 피의 군주인 토리도가 인간의 기척을 파악해 냈다.

"몇 명이나 되는데?"

"열이다. 뒤에서 쫓아오고 있다."

"강해?"

"저번에 피를 빨아 먹었던 놈 수준이다."

습격은 상대가 대비하고 있지 않아야 위력이 발휘되는 법.

언데드 군단 그리고 토리도, 반 호크, 서윤이 있는 이상 10명 정도의 해군 기사들로 구성된 암살조를

물리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암살조들을 역으로 함정으로 유인해서 섬멸하고 전리품을 주운 위드!

"기사들의 장비는 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비싸게 팔리지."

왕국 기사의 장갑, 단검을 꽂을 수 있는 허리띠 획득!

그 외에도 2개의 물품, 맹독의 단검이나 강철 갑옷도 나왔다.

강철 갑옷은 레벨 제한이 290에 걸려있어서 중고 레벨 기사들이 착용하기에 좋은 것이었다.

"자, 이건 네 몫이야."

위드는 단검과 강철 갑옷은 서윤에게 주었다.

갑옷은 가장 비싼 축에 드는 장비다.

하지만 이번에 주운 것은 중요한 옵션들이 없어서 팔더라고 아주 높은 가격을 받기는 어려운 물건이었다.

'일단 공범을 만들어 놔야지.'

협력의 중요성도 잊지 않는 위드였다. 나쁜 짓도 둘이 하면 더 잘할 수 있다.


2차, 3차, 4차, 5차, 6차 습격전!

화산이 폭발할 때가 아니라 위드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언데드와 몬스터 들을 모아서 드린펠트와 그리피스 등을 괴롭혔다.

언데드와 몬스터 들을 한 아름 모아서 풀어놓고 도망쳐 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그들이 몬스터들과 사냥을 하거나 뿔뿔이 흩어져 있을 때에만 습격을 했다.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다.

더럽고 치사했지만, 드린펠트와 그리피스는 그 언데드와 몬스터 들을 처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볼라드와 혼돈의 전사 들을 몰고 가면 아무리 튼튼하게 수비를 하더라도 10명 이상이 죽었다.

선원들이나 해적들은 한번 줄어들면 지골라스에서 보충하기가 어려웠으므로 위드는 그 점을 집중해서 공략했다.

언데드들에게는 선원을 노리게 하고, 혼돈의 전사들과 싸우는 드린펠트와 다른 유저들의 전투를 구경했다.

드린펠트나 유저들, 해군 기사들은 혼돈의 전사들의 순간이동으로 괴로움을 겪어지만 격전 끝에 물리치고 사냥을 계속하곤 했다.

유저들도 1~2명씩 차곡차곡 죽어 나갔다.

"전투 능력이 대단하군."

위드는 그러한 장면들도 주의 깊게 관찰했다.

드린펠트와 그리피스도, 방어만 하지는 않고 반격을 가해 왔다.

"위드를 죽여라!"

"놈을 잡아라. 푸짐한 상금을 준다."

"놈이 가지고 있는 장비와 퀘스트를 빼앗자!"

그리피스는 결사대를 조직해서 직접 이끌고 우회해서 공격해 왔다.

몬스터나 언데드 들에는 개의치 않고 위드만을 척살하기 위한 조직.

"피해는 감수하기로 한다. 무조건 위드의 목숨을 끊어라!"

언데드들이 막으면 일부가 남아서 상대하고 나머지는 전진한다.

몬스터들의 공격은 몸으러 때우거나 두세 갈래 방향으로 흩어져서 따돌리고 위드를 쫓아왔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싸움!

위드는 뼈마디를 달그락대며 부지런히 달렸다.

"내가 너희에게 잡힐 수는 없지!"

언데드라서 좋은 점이,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힘이 약해서 물리적인 타격 능력은 떨어져도 몸이 가벼워서 뛰기는 좋다.

"네발 뛰기!"

네발로 바위산을 뛰어다니면서 도주하는 해골 리치!

"잡아라!"

"무슨 네크로맨서가 저렇게 빨라!"

"저놈은 지치지도 않나?'

추격대가 전력을 다해서 달려왔다.

지금까지는 거의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네발 뛰기 스킬이었지만, 만일의 사태를 생각해서 이동 시에도 사용하며 스킬의 숙련도를 올려놓았다.

스킬의 레벨이 중급에 오르자 산악 지형에서의 이동이 매우 효과적으로 변했다.

사자나 호랑이처럼 민첩하게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스킬의 레벨이 고급에 오르니 효과음도 생겼다.

따각따각따각.

말이 뛸 때 내는 말발굽 소리를 내면서 질주를 했다.

위드는 지골라스의 지리를 잘 알았고, 몬스터들의 위치도 꿰고 있었다.

추적대의 규모가 클수록 몬스터들의 시선을 끌게 되고 자연히 습격도 이루어진다.

"반 호크, 토리도! 싸워라!"

부하들까지 동원해서 추격대를 괴롭혔다.

"거친 파도의 습격!"

그리피스가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볼라드와 테어벳 들이 우후죽순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위드는 상당한 거리를 벌 수 있었다.

그 틈을 이용해 그리피스와 결사대에게 체력을 빨리 고갈시키는 저주 마법까지 시전했다.

그러면 그리피스도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고 얼지 않는 강 주변으로 돌아갔다.

위드도 큰 위험을 무릅쓰고 습격을 가하고 있었다.

"여러 번 쓰기 어려운 방법이군."

결사대에 길이 한 번만 가로막히더라도 죽어야 했다.

추격이 반복되면서 도망치는 경로나 몬스터들을 피하는 수법도 나날이 발전해 간다.

위드가 몬스터로 유인을 하려고 해도, 오히려 더 멀리 돌아서 오고 일부는 일직선으로 앞질러 간다.

쫓기는 쪽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도주로에 한계가 있는데 쫓아오는 쪽의 기술이 날로 늘었다.

선원들과 해적들의 피해가 커질수록, 그들은 정말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쫓아왔다.

"적당한 병력만 따라오면 유인해서 처리하려고 했는데 아쉽군."

서윤이나 누렁이, 금인이도 매복을 시켜 놓기는 했다.

소수만 끝까지 따라오면 확실하게 죽이고 아이템들을 가로채려고 했는데 호락호락하게 당해 주지는 않았다.

언데드와 몬스터 들을 데리고 습격을 하려고 해도 드린펠트가 정찰조들을 운영하면서 사전에 대비를했다.

철벽처럼 방비가 탄탄해지고, 위드를 함정에 몰아넣어 잡으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6차 습격전에는 오히려 언데드들에게 당하는 척 끌어드이려는 음모까지도 사용했으니!

위드는 입맛을 다셨다.

"쉽고 단순한 작전으로는 이게 한계인가?"

그렇다고 실망까지는 아니었다.

마법의 대륙에서 명문 길드들을 처리했던 수많은 방법들 중에서 지골라스에서 가장 빨리 효과를 볼 수있는 전술을 사용했을 뿐!

"한 일곱 가지 정도 더 남아 있는데 그걸 다 쓰자니 준비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내게 손해도 생길 수 있으니……."

열 번을 죽이더라도, 한 번을 죽으면 손해다.

위드는 서윤과 부하들을 데리고 조각사들의 유산이 있는 장소로 완전히 물러났다.

드린펠트는 연이은 실패에 이를 갈았다.

정면 승부를 한다면 몬스터와 언데드 군단을 물리치고 충분히 위드도 죽일 수 있으리라.

"너구리가 따로 없군."

하지만 놈은 영악하게도 도망칠 경로를 최소한 대여섯 가지는 준비해 놓고 공격을 한다.

몬스터들의 함정이나 지형 등의 요인으로 인해서 다수의 병력을 운용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무리해서 쫓지는 마라. 이곳을 바탕으로 영역을 넓혀서 놈을 잡는다."

드린펠트도 확실한 꿍꿍이는 있었다.

'지골라스에 막 도착했을 때에 놈은 이곳에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익숙하다고 해도, 놈이 돌아다닐 수 있는 영역도 그리 넓지는 않다는 증거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베르사 대륙으로 돌아가려 이곳을 거치지 않으면 안될 터.'

유령선과 얼지 않는 강은 드린펠트의 함대가 완전히 장악했다.

"이 지골라스에서 사냥을 하며 영역을 넓혀 나가면 분명 놈을 만나게 된다."

무모한 추격은 드린펠트의 부하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야기하게 되리라.

지골라스의 즐비한 초고레벨 몬스터들 때문에라도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지만 위드를 용서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끝까지 죽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베르사 대륙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리라."

하벤 왕국 제2함대 제독의 무너진 자존심을 설욕하기 위해서라도 위드를 죽여야 했다.

드린펠트는 헤르메스 길드에 지원군도 요청했다.

지금은 대부분 해군 기사나 선원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언데드들을 내던지도 도망가는 위드를 쫓기에 효율적이지 못했다.

-위드를 척살하는 데 지원 병려을 빌려 달라는 제안이라…….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잠시 토론을 거친 후에 긍정적인 대답을 보내왔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패권 동맹의 서막이 곧 오른다.

하지만 드린펠트의 실패는 곧 헤르메스 길드의 실패이기도 했다.

-위드가 리치로 활동하기 있다니 상급 성직자 10명과 상급 마법사 15명 글고 그들을 호위할 수 있는 기사들을 10명 보내겠습니다.

드린펠트가 바라는 범위를 넘어서는 수준의 지원 병력이었다.

-고맙습니다. 반드시 위드를 잡겠습니다.

-원활한 추적을 위해서 어쌔신 8명, 도둑 4명, 발굴가 1명도 같이 보냅니다. 위드를 반드시 죽여야 될 뿐만 아니라, 지골라스에서 던전들도 파헤치도록 하십시오.

지골라스 전체를 장악하고 방송에서 힘을 과시하기 위한 헤르메스 길드의 과감한 파병이었다.


"이놈들이 어디서 내 욕을 하진 않겠지?"

위드는 귀를 벅벅 긁었다.

로열 로드에서야 많이 줄어들었지만 욕을 어디 1~2달 먹어 보았던가!

"베르사 대륙에서는 착하게 살려고 했는데… 먼저 건드린건 너희 쪽이야."

위드는 많이 참으면서 살아왔다.

조각품이나 여러 생산품들을 바가지를 씌워 팔고, 남들이 파는 물건의 가격은 사정없이 후려치고, 초보자들을 풀죽으로 부려 먹는 행위 정도야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저질렀던 일!

"어쨌든 놈들과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 것이로군."

처음부터 용서해 달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허리를 숙이고 굽히고 들어가더라도 봐줄 리가 없었다.

"일단은 놈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가 보는 수밖에. 토리도, 반 호크, 누렁이, 금인아!"

"예, 주인님!"

"전투준비를 갖춰라."

언데드 군단을 최대로 늘려 놓았고, 토리도와 반 호크, 조각 생명체들도 싸울 준비가 완료되어 있다.

"드디어 혼돈의 전사들을 사냥할 시간인가."

퀘스트 해결을 위한 지골라스 탐험을 개시할 순간.

서윤에게도 혼돈의 전사와 싸울 방법을 일러두었다.

"놈들이 만약 방어 자세를 전혀 취하지 않으면 짧은 거리를 순간 이동하려는 거야. 특히 여러 마리일때에는 가장 생명력이 낮아진 놈의 주변에 다른 놈들이 모여들거든. 그러니까 조심해야 돼."

혼돈의 전사의 전투 성향에 대해서는 언데드들과 싸울 때, 그리고 그리피스에게 싸움을 붙였을 때 충분히 관찰해 두었다.

"위험한 몬스터지만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잡을 수 있어. 언데드들을 모두 희생시켜서라도 놈들을 사냥한다."

튼실한 근육을 뽐내는 누렁이에게 반 호크가 탑승해서 기사의 전력도 최대로 발휘할 준비가 됐다.

금인이와 누렁이는 지난번에 혼돈의 전사와 싸울 때는 투입시키지 않았지만, 이제는 전부를 걸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아르메니아 해적들이 전멸한 장소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혼돈의 전사는 8마리!

위드는 통솔력 증가를 위한 사자후를 터트렸다.

"언데드들이여, 그리고 나와 함께하는 피의 군주, 죽음의 기사, 내가 생명을 준 누렁이, 금인이!

모두 공격하라!"

"크아아아앙!"

위드가 고함을 지르자 언데드들이 팔을 휘저으면서 적들을 향해 돌진!

어려운 일전을 앞두고 용기를 불어넣기 위한 네크로맨서의 함성이었다.

'상당히 멋있었지. 노래를 할 때와 더불어서 이 순간이 가장 멋이 있다니까.'

위드는 슬쩍 서윤을 보았다.

많은 전투를 함께해서인지 미리 양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서윤에게는 그저 커다란 소음에 불과했던 것!

사자후의 소리가 끝나자 그녀는 검을 뽑고 전진했다.

혼돈의 전사와의 5차전이었다.



5. 슬로어의 사연



"수백 번 패서 안 죽는 몬스터는 없다. 공격하라!"

위드는 언데드들을 혼돈의 전사들에게로 전신시키는 한편 저주 마법을 준비했다.

혼돈의 전사가 휘두르는 도끼질에 언데드들은 대여섯씩 죽어 나갈 게 뻔했기 때문에, 빠르게 저주 마법을 성공시켜야 했다.

"어둡고 눅눅한 공기, 시체들의 악취를 담고 있는 바람이 불어라."

좀비를 많이 만들었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저주 마법!

공기를 탁하게 만들어서 체력과 생명력, 마나를 감소시키고 각종 면역력 저하와 함께 피부병도 일으킨다.

위드는 혼돈의 전사들을 향해 두 손을 뿌렸다.

"썩은 시체들의 호흡!"

더러운 악취가 몰려오는 마법이었다.

혼돈의 전사들에게 직접 적용시키는 저주 마법이 아니라 범위 전체를 오염시키는 네크로맨서의 마법.

서윤에게는 미리 면역 마법을 걸어 놓아서 괜찮았다.

언데드들이 진군했지만, 예상대로 혼돈의 전사에 의해서 도륙을 당했다.

어차피 생명력과 체력을 저하시키는 용도로 강화한 좀비와 구울 들을 수량으로 밀어붙였다.

무작정 팔을 휘저으면서 돌진하는 언데드들은 생명체에게 약간의 공포심을 선사함과 더불어 전투 의지를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어둠이 깊게 내린 자리에서는 자신조차도 느끼지 못하리라. 편협한 시야!"

위드가 직접 혼돈의 전사들을 지정해서 사용한 저주 마법들은 실패했다.

저주 마법이 사용되자마자 순간 이동을 이용하여 피해 버리는 혼돈의 전사들.

"어둠이 깊게 내린 자리에서는 자신조차도 느끼지 못하리라. 편협한 시야!"

그래도 위드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마법을 사용했고, 혼돈의 전사들은 그때마다 눈치채고 순간 이동으로 피해 냈다.

편협한 시야는 저주 마법치고는 약한 주문이었다.

말 그대로 시야를 협소하게 만들어서, 네크로맨서를 잘 보지 못하게 한다.

다른 적들의 움직임이나 동료들의 위치, 마법 공격 등도 늦게 알아차리도록 복합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주문이지만,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빠르게 주문을 외울 수 있고, 마나의 소모도 적은 마법을 사용하면서 순간 이동을 유도, 혼돈의 전사들의 마나 소모를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놈들이 분산되었다!"

혼돈의 전사들이 언데드들 사이에 불을 질렀다.

도끼에 맞으면 화염에 휩싸여서 소멸되는 언데드들!

전사들이 땅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면 타오르는 불의 방벽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공격을 겸한 방어로 인하여 지난 네 번의 전투에서는 승리하지 못했다.

언데드들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위드의 마나와 저주 마법이든 공격 마법이든 펑펑 쓸 만한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싸울 방법 정도는 알아냈지. 스켈레톤 메이지, 아처 들 공격!"

불의 방벽을 만들고 싸우는 혼돈의 전사들을 향해 마법과 화살 공격을 집중시켰다.

서윤, 토리도, 누렁이와 반 호크가 적들으 하나씩 맡아서 싸우고, 남은 혼돈의 전사는 5명.

순간 이동을 펼치면서 위치를 바꾸려는 적들에게 저주 마법을 시전했다.

이미 있었던 위치가 아니라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장소로!

"편협한 시야."

스켈레톤 아처와 메이지 들을 4마리씩 희생양으로 언데드 군단 사이에 포진시켜 놓았다.

순간 이동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장소를 미리 만들어 주고 저주 마법을 작렬!

혼돈의 전사들은 나타나자마자 눈간에 푸른 안개가 덮이는 저주 마법에 걸렸다.

"둘!"

2마리를 성공.

"집중 공격."

저주 마법에 걸린 혼돈의 전사들에게 스켈레톤 메이지와 아처 들의 공격을 집중시켰다.

입으로 싸우는 게 네크로맨서라는 비난도 많지만, 빠른 상황 판단과 지휘력이 필요했다.

혼돈의 전사 둘은 협소해진 시야로 인하여 마법과 화살 공격을 다 피하거나 막지 못했다.

스켈레톤 메이지와 아처 들이 마구 퍼붓는 공격들이 효과를 발휘했다.

지난번에 8마리의 혼돈의 전사들과 싸울 때에는 이보다 훨씬 어려웠다.

언데드들의 수량이 무서울 정도로 급격하게 감소했던 것이다.

서윤과 토리도, 반 호크 등이 1마리씩을 감당하면서 언데드들이 훨씬 적게 죽어 나갔고, 여유가 생겼다.

금인이는 스켈레톤 아처 부대를 지휘하면서 한 지점으로의 일제 공격에 도움을 주었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되었군."

뭇매를 맞은 혼돈의 전사 둘의 생명력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지금쯤이다."

생명력이 삼분의 일 정도가 남았을 무렵이 되자 위드는 모아진 마나로 저주 마법을 시전했다.

"어둠이 깊게 내린 자리에서는 자신조차도 느끼지 못하리라. 편협한 시야!"

생명력이 줄어든 혼돈의 전사들이 있는 장소로 마법을 사용!

얼핏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지만, 저주 마법이 발현되는 순간 절묘하게 근처에서 언데드들을 때려잡던 혼돈의 전사들이 순간 이동을 통해 모여들었다.

혼돈의 전사들에게 한꺼번에 저주 마법을 씌우는 데 성공!

언데드들은 사분의 일 정도가 줄어 있었다.

"좀비나 구울! 동료들의 희생을 아깝게 만들지 마라. 공격!"

한 지점으로 일제 공격을 했다.

혼돈의 전사들은 동료들을 지키기 위한 전우애가 굉장히 강한 편이었다.

"다친 놈들 중에서는 1마리만 공격하고, 하나는 남겨 둬라."

"알았다, 골골골!"

혼돈의 전사들의 습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공격 방법!

그때에도 서윤은 혼돈의 전사 1명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녀와 싸움을 하던 혼돈의 전사는 동료가 위기에 처하자 순간 이동을 쓰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광전사의 직업 스킬, 상대방을 속박하는 기능으로 인하여 도망도 치지 못한다.

서윤은 평범한 공격 스킬들을 사용하면서 싸웠지만, 전투가 지속되면서 검에 붉은 기가 덧씌워졌다.

생명력과 마나를 불태워서 적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 광전사!

검을 휘두르는 일격 일격이 상급 스킬들을 사용하는 것처럼 흉험하기 짝이 없었다.

큰 도끼를 휘두르는 혼돈의 전사가 수비에 급급하면서 밀렸다.

주변이 불바다가 되고 있었짐나 서윤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모습.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난 다음에도 광전사는 적이 남아 있는 한 싸울 수 있다.

죽는 순간까지 광전사 본인도 몬스터도 도망치지 못하고 싸우는 무서운 직업이었다.

-혼돈의 전사가 사망했습니다.

-파티원 서윤의 사냥 성공으로 인해서 명성이 2 오릅니다.

-경험치가 증가했습니다.

혼돈의 전사 1마리 사냥 성공!

사냥을 시작하기 전, 위드가 생명력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나면 다른 혼돈의 전사들이 순간 이동으로 모여든다고 말을 해 주었다.

"절대 조심해야 돼. 혼돈의 전사들은 곧 죽을 것 같을 때 더 위험하거든. 짧은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불러오지. 언데드들은 희생시켜도 다시 일으키면 되지만, 조각 생명체나 넌 죽으면 큰 손해니까 무리하지 마. 적다히 싸우면서 도망칠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놔."

같은 말을 열일곱 번이나 하면서 잔소리를 했다.

그랬는데 서윤은 혼돈의 전사가 가진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남았을 때 엄청난 공격을 한꺼번에 퍼부었다.

광전사 특유의, 마나를 2배나 빠르게 소모하면서 사용하는 공격 스킬들의 연타!

소위 광전사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에는 스킬의 지연 속도도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그것을 이용하여 다른 혼돈의 전사들이 모여들 틈도 없이 빠르게 사냥해 버린 것이었다.

위드가 따로 일러두지 않더라도 그녀는 매우 많은 몬스터들과 던전, 사냥터 들을 전전해 왔다.

그래서 임기응변에도 능한 편이었지만, 서윤은 위드의 잔소리에 고마워했다.

그녀를 걱정하지 않았다면 애써 잔소리를 해 주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열일곱 번이나 같은 말을 들으면서도 내심 뿌듯해했던 그녀였다.

혼돈의 전사 1마리가 줄어들고, 나머지 2마리는 죽음이 임박한 상태!

위드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언데드들의 피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줄일 수 있겠다.'

줄어든 언데드가 30%가 조금 넘었지만, 상급 언데드인 데스 나이트들을 비롯하여 정예부대가 건재하다.

위드는 새로 얻어 낸 혼돈의 전사 시체를 유용하게 활용하기로 했다.

4단계 언데드 소환 마법.

언데드들이 감소한 만큼 마나에 여력이 생겼다.

"지옥의 밑바닥에서 싸우고 있는 전사의 영혼, 네가 활용할 육신이 있으니 이곳으로 오라. 애니메이트 데드!"

혼돈의 전사의 시체가 땅에서 몸을 일으켰다.

외모는 살아있을 때와 비슷했지만, 눈에서 시퍼런 광채를 드러낸다.


-전투 영혼, 나이더만이 소환되었습니다.

나이더만은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자유용병의 유령!

좋은 실력을 가진 나이더만은 무수한 전투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았지만, 결국 던전 탐험에서 목숨을잃었다.

던전 탐험을 주도했던 귀족들은 나이더만의 남은 가족들에게 보상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시체조차 방치당한 나이더만은 귀족들에 대한 증오심을 강하게 품고있다.

특성 : 용병 전사, 던전에 대한 공포, 귀족에 대한 거부감, 여러 종류의 무기를 활용할 수 있음.

육체적인 능력은 혼돈의 전사 그대로!

혼돈의 전사들은 부상당한 둘을 지키기 위해 2명이 남아 있었다.

나머지 셋은 순간 이동으로 언데드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불바다를 일으키면서 전투를 했다.

서윤이 1명을 맡았고, 토리도, 반 호크와 누렁이가 각자 1명씩 쫓아다니면서 싸우는 중이었다.

언데드들을 지휘하기 위해서는 이름을 붙여 주는 것도 필요했다.

"앞으로 너는 카오스 워리어라고 부르겠다.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가 쫓아다니는 놈을 처리하라."

"알.았.다."

나이더만은 순간 이동을 펼치면서 언데드들을 공격하는 혼돈의 전사들을 상대했다.

도끼와 도끼가 부딪칠 때마다 불똥이 튀고 폭발이 일어나면서 호각으로 싸움이 벌어졌다.

혼돈의 전사를 제압하기는 힘들겠지만, 언데드인 이상 무한한 체력을 가진 나이더만이 버티는 데에는 무리가 없으리라.

순간 이동으로 도망을 치더라도 나이더만도 따라가면서 싸웠다.

삽시간에 대여섯 번의 순간 이동을 하며 격돌하는 둘!

"토리도, 넌 반 호크와 함께 싸워!"

"싸우던 놈을 마저 해치우고 싶다."

"전투 중에 명령 불복종이라니, 맞을까? 내가 때릴까, 네가 맞을까? 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래?"

"명령을 따르겠다, 주인!"

위드는 나이더만이 싸움을 하는 동안에 부하들은 하나의 적만 담당하게 했다.

토리도도 혼돈의 전사와 박빙으로 싸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토리도와 반 호크, 누렁이가 힘을 합쳐서 빨리 혼돈의 전사 하나를 해치우는 편이 낫다.

소환한 언데드는 성장을 하지 않지만, 부하들은 경험이 쌓이고 성장을 한다.

"지금은 혼돈의 전사들이 조금 힘들더라고 나중에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도록 키워 주마."

부하들의 성장이 위드의 기쁨!

안전도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1명에 셋을 붙였다.

금인이와 스켈레톤 메이지, 아처, 언데드 군단이 1명을 사냥하고, 반 호크도 곧 공을 세웠다.

누렁이를 타고 질주하더니 현란한 검술로 혼돈의 전사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잘했다!"

둘이 더 죽고, 서윤도 하나를 처치.

적은 넷밖에 남지 않았고, 그나마 모두 상처를 입고 있었다.

1명은 심한 부상으로 죽음이 임박했다.

굳이 소중한 시체를 폭발시킬 필요도 없는 상황!

"멈추지 않는 피!"

간단한 저주 마법.

부상 부위로부터 피를 계속 흘리게 해서 생명력과 체력을 감소시킨다.

"마나가 조금 더 회복되면 나머지도 다 애니메이트 데드로 일으켜야겠군."

위드의 다섯 번에 걸친 전투가 드디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려는 시점이었다.

흥이 절로 일어나고 기분이 좋아졌다.

위드가 크게 턱을 벌릴 때, 서윤은 귀를 막았다.

사자후!

"적들의 시체를 나에게 바쳐라! 나는 언데드들의 군주! 영광스러운 언데드들의 힘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리라!"

혼돈의 전사들은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결국은 하나씩 죽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혼돈의 전사 무리를 사냥했습니다.

-명성이 24 증가했습니다.

-지골라스의 개척도가 0.3% 증가합니다. 개척도가 100%가 되면 적응력이 증가하여, 지역의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 방어력과 저항력이 올라갑니다. 개척도는 던전 탐험을 통해서도 늘릴 수 있습니다.

-전투 경험으로 인해 불에 대한 저항력이 100일간 1.7% 늘어납니다. 저항력은 사냥이 계속될수록 누적됩니다.
최대 저항력 상태에서는 생명력의 저하를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혼돈의 전사들과 적대감이 높아집니다. 불의 거인들과의 친밀도가 조금 오릅니다.



개척도는, 적용되는 지역에서 사냥을 하다 보면 다른 곳으로 옮기기가 싫어질 정도로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심심할 때 쯤이면 화산이 폭발하는 지골라스에서 꾸준하게 사냥을 하기는 어려웠으니, 큰 의미까지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불의 저항력과, 불의 거인들과의 친밀도라."

위드도 상륙대의 모험 동영상을 보았다. 던전 탐험을 하는 도중에 깨어난 불의 거인에 의해서 처참하게 깨지던 모습.

화산 분화구나 용암 개천이 흐르는 장소를 지나다니는 불의 거인들의 위력은 독을 뿜어내는 킹 히드라급 이상이었다.

"이것도 나중에 쓸모가 있으려나. 도움이 됬으면 좋겠지."

위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혼돈의 전사들이 죽었던 장소에는 아이템들이 떨어져 있으리라.

"이 순간이 제일 떨려."

아이템을 확인할 때는 항상 경건한 마음으로 잡념이 일절 없어야만 되는 것.

"제발 대박이 나와라."

첫 번째로 죽은 혼돈의 전사가 있던 자리에는 금화와 광물들, 뿔이 달린 투구가 나왔다.

힘과 방어력을 추가시켜 주는 옵션에 방어력도 좋지만 드워프처럼 작은 인종은 착용 불가 제한이 걸려 있었고, 쓸 수있는 레벨도 440 이상이었다.

"두 번째로는……."

원하는 장비가 아닌 물건들만 나왔다.

혼돈의 전사들이 착용하는 무기나 방어구가 아니라, 횃불이나 요리 도구, 화염탄의 획득.

"감정!"


화염탄 : 내구력 3/3 폭발력 205.

매우 조심해서 취급해야 하는 물건이다. 불의 정화가 봉인되어 있어서 던지면 크게 폭발한다.

불의 저항력이 낮은 몬스터들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고, 건물이나 지형을 파괴하는 용도로도 사용 가능하다.

화염탄 6개는 서윤과 반반씩 나누기가 너무 아까웠다.

쓰기에 따라서는 활용도가 굉장히 높을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흠흠, 이런 물건일수록 공정하게 분배해야지. 화염탄이 6개가 나왔는데 마침 우리도 여섯이니 1개씩 가지면 되겠군."

위드, 누렁이, 금인이, 토리도, 반 호크, 서윤을 각자 세는 것.

위드가 원하는 대로 나누었더라도 서윤은 딱히 불만은 없었을 것이다.

불공편한 건 알고 있지만 아이템에는 큰 집착이 없는 그녀였다.

직접 전투로 몬스터들을 사냥할 뿐, 마법이나 아이템을 쓰지는 않는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드도 염치가 있었던지, 서윤에게 2개를 주었다.

"열심히 싸웠으니 내 몫도 너에게 줄게."

토리도, 반 호크, 누렁이, 금인이는 당연히 화염탄을 잠깐 구경만 하고 회수.

세 번째와 일곱 번째로 죽은 혼돈의 전사들이 있던 자리에는 청색 도끼가 떨어져 있는 게 멀리서부터 보였다.

위드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드디어… 못 먹어도 도끼구나."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방심해서는 안 된다.

감정 스킬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길바닥에 널린 잡템 여기듯 하라는 명언도 있지 않던가.

"감정!"


혼돈의 도끼 : 내구력 130/130 공격력 175~191

지골라스의 전사들이 사용하는 도끼. 광석과 금속이 섞여서 만들어진 무기로, 불과 혼돈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제한 : 전투 계열 직업 한정. 고급 도끼술 필요. 힘 1,300 이상. 레벨 420 이상.

옵션 : 방어력이 약한 적을 상대하거나 치명적인 일격 시에는 적을 불태움. 연속으로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을 때는 3%의 마나 흡수.

도끼에 깃들어 있는 혼돈의 기운을 활용하여 짧은 거리를 순간 이동할 수 있다.


"떴구나!"

대박 아이템의 등장!

도끼는 중병기에 속해서 무겁고 강렬한 파괴력을 가진 무기다.

검이나 도를 쓰다가 어딘가 아쉬운 공격력에 도끼를 들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고 한다.

물론 짧고 다루기가 어려워서 빈틈이 많이 드러난다는 단점도 가졌지만, 사냥 속도를 위해 도끼를 사용하는 유저들도 부지기수.

워리어들 중에는 특히 도끼 유저가 많은 편이었다.

"훌륭하군."

다른 혼돈의 전사들은 화염탄 외에 썩 좋은 물건들을 주지 않았지만, 도끼 두 자루를 획득했다.

그리고 애니메이트 데드로 시체들을 일으켰다.

8마리의 언데드를 유지하기 위해 마나의 30% 가까이를 소모했다.

위드가 여러 마나 회복 속도를 늘려 주는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는 걸 감안한다면 엄청난 소모율이었다.

지골라스의 화산으로 올라가면서 다시 혼돈의 전사 마리와의 전투!

고급 언데드 카오스 워리어와, 지난번에 싸운 경험치 쌓여서 훨씬 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화염탄 14개 그리고 다시 도끼 획득!

위드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혼돈의 전사 도끼가 훌륭한 무기이기는 하지만 물건이 이렇게 대량으로 풀리면 희소가치가 떨어지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큰일이군."

고레벨 유저들은 한정되어 있다.

쉽게 나오는 만큼 너도나도 이 도끼를 들게 되면 가치가 하락할 수도 있지 않은가.

"방법은 하나뿐이야. 어서 사냥해서 도끼를 잔뜩 주운 다음에 먼저 다 팔아 버려야지."

남들보다 먼저 구해서 파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다.

혼돈의 전사들을 격퇴하면서 언데드 군단의 규모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애니메이트 데드를 사용해서 고급 언데드들로 대체해서 일으켰다.

4단계 언데드 소환을 시전하기에 네크로맨서 스킬이 낮은 편이었다. 그 탓에 언데드 유지에 따른

마나 소모율이 더 컸지만, 이제 양보다는 질을 추구했다.

순간 이동을 하는 혼돈의 전사들을 잡기 위 해서는 마찬가지로 특수 기술을 사용하는 언데드들을 늘리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언데드 카오스 워리어 스물을 만들어서 끌고 다니는 위드!

까마귀로 조각 변신술을 펼쳐서 관찰했던 아르메니아 해적단의 전멸 위치에 가까이 근접했다.

원래 황금새가 니플하임 제국을 멸망시킨 이들에 대한 추적을 맡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협조를 하지않았기에 직접 찾아야 했다.

"이 근처일 텐데."

위드가 헤매고 있는 사이에, 누렁이가 냄새를 맡더니 바닥을 긁었다.

지진이 일어나면서 땅이 겹쳐졌는데, 그 안에 아르메니아 해적의 시체들이 있었다.

백골밖에 남지 않은 시체들 중에서 고급 로브를 입고 있는 시체가 보였다.

"이 녀석이군."

위드는 감개가 무량했다.

퀘스트를 하기 위해서 지골라스까지 먼 거리를 따라오게 만든 원흉!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의뢰였어."

멀기도 멀었지만 테어벳, 볼라드, 혼돈의 전사까지 사냥하면서 겨우겨우 도착했다.

"조각사 퀘스트치고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난이도인데."

조각사의 비기를 적극 활용하거나 매우 뛰어난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도착할 수 있으리라.

순간 위드의 머릿속에 스쳐 간 생각!

"설마 진짜 조각술의 비기를 활용하는 퀘스트였을까?"

1단계 퀘스트에서 엠비뉴 교단의 추적을 받을 때에도 어쩌면 조각 변신술로 따돌릴 수 있지 않았을까!

어찌어찌 지골라스에 조각사 혼자 도착하더라도 빈약한 전투 능력으로 뭘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조각사들의 유산을 발겨했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

"이번 퀘스트에서도 게이하르 황제의 유물이 나왔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비기를 획득하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

목조품을 통해서 습득하는 게 정석이었지만, 조각품의 추억을 가지고 게이하르 황제로부터 배우지말란 법도 없다.

조각사들의 유산에 생명을 부여했더라면!

한때 베르사 대륙의 조각계를 떠받들었던 대가들이 생의 끄트머리에서 만든 작품들이었다.

가정에 불과했지만 대작 조각품들이 살아난다면 어떨까.

위드가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으니 누렁이가 다가와서 머리를 비볐다.

이 누렁이나 금인이처럼 쓸모가 많은 녀석들이 10마리, 20마리씩 살아난다면!

대작 조각품.

조각사들이 만들어 놓은 유산이라 어쩌면, 그냥 작품을 남겨 놓은 것이 아니라 게이하르 황제의 후인이 도착하리라는 기대감이 아니었을까.

빈 몸뚱이로 지골라스에 와서 고생을 하던 조각사가 생명을 부여해서 부하들을 만들고, 끝내는 퀘스트까지 완수하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네크로맨서로 변하고 나서 왠지 친밀도가 급격하게 떨어진 황금새도 설명이 될 것 같았다.

"아니야, 아니야, 역시 그럴 리가 없어."

위드는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말도 안 되는 추측에 불과해. 머릿속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현실에 다 이루어지라는 법이 없잖아?"

세상에는 생각처럼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위드는 보통 사람들이 하기 힘든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겼다. 해적 더럴로 변신해서 유령선에 타거나, 수정 해골로 변신한 후에 리치 샤이어의 마법

서를 활용해서 사냥을 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었을 거야. 상식적으로 어떻게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겠어. 조각품에 생명을부여한다는 게 말이 되기나 해?"

음머어어어어어!

누렁이가 바닥을 발로 긁으면서 울고, 금인이는 활을 들고 보초를 섰다. 생명 부여의 산 증거들!

위드가 조각품에 생명 부여를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던 것은 레벨과 예술 스탯 하락의 페널티도 있지만 생명 부여 스킬이 퀘스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 컸다.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하여 조각사들의 유산을 훼손하고 생명을 부여하느라 레벨도 다수 떨어지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본전에 대한 끝없는 애착!

하지만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 받을 보상이라면 그런 어려움과 손해까지 감수할 만하지 않았을까?

"커허허험! 어떤 길로 가든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만이지."

멍청하면 손발이 고생이라는 옛말이 틀린 게 없다.

그 말의 의미를 본인의 행동을 통해서 절실하게 깨달았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

위드는 고민을 날려 버리기 위해서라도 빠르게 손을 뻗었다.



-미늘 로브를 습득하셨습니다.

-불의 거인 눈을 습득하셨습니다.



로브는 고가의 아이템이지만, 습득한 이상 사라지지 않을테니 퀘스트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로브의 아래에 작은 조각품이 있었다.

윤곽은 황금새와 매우 흡사하게 생겼지만, 흙먼지와 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

위드는 수통의 물을 부어서 조각품을 씻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아름다운 은빛 색감. 보통 은이 아니라 미스릴과 백금으로 만들어진 조각품이었다.

끼루루루!

황금새가 헤어진 연인을 만나 것처럼 머리를 비볐다. 그리고 애틋한 눈빛으로 위드를 향해 무언가를

부탁했다.

위드는 일단 조각품을 확인부터 해 보기로 했다.

"퀘스트가 끝나야 되는데… 감정!"

아르펜 제국의 상징물, 신비의 새 : 내구도 130/130

베르사 대륙을 지배한 아르펜 제국 황실의 권위와 우아함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황금새 세노리아 루세로니와 한 쌍으로 만들어졌다. 조각술의 정점에 선 자가 만들었다.

예술적 가치 : 51,300

옵션 : 명성 +4,500. 기품 +150. 명예 +90. 카리스마 +45. 매력 +100. 통솔력과 카리스마가 미치는 범위

를 증가시킴. 여성 주민들의 호감도 급상승. 장식용으로 쓸 경우 귀족들의 충성도 최대치를 15% 향상시

킴. 외교적인 부분에서 5%의 우위를 가져옴. 공성전에서 수비 측의 행운을 30% 증가시킴. 대규모 전투

에서 신기한 안개를 불러옴. 절대 손상되지 않음.

-역사적인 보물, 아르펜 제국의 상징물을 자세히 살핌으로 인해서 예술 스탯이 51개 올랐습니다.

그리고 아르펜 제국의 상징물에 간직된 충거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대마법사 슬로어.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불타는 니플하임 제국의 황궁에 그가 들어왔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는 황궁!

기다리고 있던 제국 기사들이 명예를 버리고 암습을 가했지만, 슬로어는 방대한 마나를 뿜어내며 그들을 날려 버렸다.

그리고 신비의 새를 입수!

슬로어의 위치에서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찬란한 니플하임 제국의 수도 모드레드가 몬스터들에 의해서 짓밟히고 무너져 갔다.

엠비뉴의 사제들과 야만족 용병들도 몬스터들을 지휘하며 싸웠다.

슬로어는 황궁을 돌아다니다가 별궁의 아래 땅속에서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한 쌍의 검을 찾아냈다.

구름과 뇌전이 그려져 있는 검, 그리고 검집도 없는 붉은 검!

슬로어는 바다로 나가서 해적단의 단장이 되었다.

구름과 뇌전이 그려져 있는 검은 바다에 버렸고, 만반의 준비를 한 채로 해적들과 함께 지골라스에 왔다.

하지만 언제 당한 것인지 모를 독이 발작하면서 해적들과 함께 전멸!

조각품의 영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긴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어린 혼돈의 전사가 와서 그 검을 주웠다.

그리고 바로 근처에 있는 던전 입구로 들어갔다.


띠링!


니플하임 제국의 대리인(2) 완료

대마법사 슬로어는 엠비뉴 교단과 결탁하여 니플하임 제국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제자와 가족의 복수를 위한 무차별 응징이었지만, 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으리라.

슬로어가 가지고 간 검은 레드 스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레드 드래곤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검으로, 어떠한 이유로 인해 세상에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퀘스트의 보상으로 명성이 3,600 늘어납니다.

-모험의 대가로 모든 스탯이 5씩 늘어납니다.

-스탯 보너스가 20 늘어납니다. 원하는 스탯에 분배할 수 있습니다.

호칭! 극지의 탐험가를 획득하셨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그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

대륙의 금역에서 어려운 퀘스트를 완수한 이에게 부여되는 호칭!

험난한 지형을 걸을 때 체력의 소모가 60%까지 줄어듭니다.

금역에서의 저항력이 10%씩 증가합니다. 모험 스킬의 효과가 7% 증가합니다.

스탯과 신비의 새라는 조각품을 보상으로 얻었다. 그리고 S급 퀘스트의 마지막 단계도 드러났다.

띠링!


레드 스타의 회수(3)

어린 혼돈의 전사가 가져간 무기는 매우 위험한 검이다.

드래곤의 장난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방대한 마나가 봉인되어 있다.

지골라스에서 살았던 고대의 마법사 임벌이 만든 마법진에 가져가면 몬스터들은 강력한 힘을 얻게 되리라.

임벌의 마법진은 지골라스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하루빨리 레드 스타를 회수하고 마법진을 보수하라.

성공하면 북부 여러 종족들의 감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난이도 : S

퀘스트 제한 : 총 3단계 퀘스트의 마지막. 고급 조각술을 습득한 조각사 한정.

-퀘스트를 수락하시면 슬로어의 이야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위드는 기왕에 여기까지 온 것이기 때문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 스타를 획득해서 반드시 내 것으로… 아니,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니플하임 제국의 젊은 마법사 슬로어는 마법계의 떠오르는 천재였다.

그가 손을 대는 연구마다 성공을 거두었다.

몬스터들이 침입해 오면 가장 먼저 나서서 싸웠고, 인간 외의 다른 종족들과의 친분도 두터웠다.

그에게는 레티아 이벨린이라는 매력적인 약혼녀까지 있었다.

"내게는 당신뿐이오. 모든 것을 다 얻는다 해도 당신이 없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소."

슬로어와 레티아는 니플하임 제국의 명문 귀족들로서 결혼까지 약속했다.

전형적인 영웅의 상이었다.

얼굴 잘생기고 키 크고, 집안좋고, 약혼녀 예쁘고, 마법까지 잘한다.

능력 있는 친구들까지 있었으니 남부러울 것이 없는 슬로어!

"황제의 명령이다. 슬로어는 몬스터 퇴치를 위해서 1달간 제테 지역으로 군대와 함께 이동하라."

"알겠습니다."

슬로어는 군대와 함께 제테 지역으로 이동해서 마법으로 몬스터 무리를 처치했다.

위드는 엄청난 마법으로 몬스터들을 떼죽음시키는 무서운 위용을 영상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슬로어가 큰 공을 세우고 수도로 돌아와 보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레티아의 가문은 반역죄로 모두 참수되었다."

약혼녀의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너무나도 명확한 증거들이 있었기에 슬로어라고 하더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약혼녀의 무덤에서 오열하는 슬로어였다.

그 후 그 슬픔으로 외부와 담을 쌓은 그는 연구실에서 마법에 매진했다.

니플하임 제국에 대한 복수심보다는 마법에만 몰입하며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그리고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모습들이 나왔다.

몰래 들려오는 음침한 목소리들.

-약혼녀의 죽음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군.

-슬로어를 타락시키기 위해서는 더 큰 절망을 주어야 해.

-슬로어를 왜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되지?

-니플하임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그와 그의 친구들부터 없애야 하니까.

-가족들을 죽이자.

-그러면 우리 편이 되겠군.

슬로어가 연구실에 있는 사이에, 그의 가족들도 목숨을 잃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거나 암살자들의 습격을 받았다.

니플하임 제국에서도 조사를 했지만 배후를 밝혀내지 못했다.

슬로어가 더 큰 슬픔에 빠져든 사이에, 제자들도 괴질과 암습으로 죽었다.

슬로어에게도 암살자들이 쳐들어왔지만, 그는 마법으로 그들을 잡아서 캐물었다.

"누구지? 누가 이런 짓을 하라고 지시했느냐!"

"니플하임 제국 만세!"

암살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의 품에서 나온 것은 철사자의 목걸이.

슬로어는 큰 의문을 가지고 직접 배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철사자의 목걸이는 니플하임 제국의 황가를 지키는 비밀 조직의 증표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를 견제하는 것인가?"

니플하임 제국을 위협할 정도의 대마법사로 성장한 자신을 파멸로 이끌려는 음모라고 생각했다.

슬로어는 그날 이후 모습을 감추었지만, 세상에는 니플하임 제국에 몰래 반역을 기도하다가 약혼녀와 가문까지 잃어버리고 도망친 것으로 소문이 돌았다.

"정말, 정말이었나."

슬로어는 좌절한 채로 인간들이 거의 없는 장소에 정착해서 고독하게 살았다.

마법 연구를 계속하면서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으로 제정신을 잃고 폭주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에게 엠비뉴의 사제들이 왔다.

"니플하임 제국에 복수할 기회를 우리가 드리겠습니다."

슬로어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은 채로 외롭게 살면서 냉철한 이지를 많이 잃어버렸다.

"복수할 기회……."

"아무 죄도 없는 슬로어 님이 이렇게 된 것이 억울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조사에 의하면 이벨린 가문의 몰락도 황궁의 뜻이었습니다."

사제들은 증거로 녹슨 철사자의 목걸이를 보여 주었다.

"이벨린 가문의 폐허에서 찾아낸 것이죠."

"……."

"사랑하는 여자와 가족들, 제자들까지 잃어버리고 나서도 패배자처럼 이곳에서 은둔한 채로 지낼 것인지 복수할 것인지를 선택하십시오."

철사자의 목걸이에서는 엠비뉴 교단의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슬로어를 현혹시키는 목걸이에서는, 니플하임 제국의 기사단이 그의 가문과 약혼녀의 가문을 불태우는 영상이 계속 떠올랐다.

"복수… 복수를 해야지."

"잘 선택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한다면 니플하임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희는 누구지?"

"엠비뉴 교단입니다."

"마법서에서 분명 그 이름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서 봤지? 아! 악신을 숭배하는 무리가 아니었던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그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슬로어의 이성이 약해져 있는 틈을 타서 세뇌 마법을 성공적으로 걸어 놓았기에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나도 같이 참여하고 싶다."

슬로어는 엠비뉴 교단에 속해서 그들의 마법 무구들을 손봐 주고, 그동안 연구했던 자료들도 넘겨주었다. 그리고 니플하임 제국과의 전쟁!

엠비뉴 교단은 몬스터들을 이용해서 군대와 기사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채로 엠비뉴 교단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슬로어는 그것을 보면서도 저지하지 않았다.

예전의 친구들이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 나섰지만, 슬로어와 엠비뉴 교단의 사제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다.

"드디어 이곳으로 돌아왔군."

불타는 황궁에 슬로어가 들어왔다.

욕심에 눈이 먼 그는 기사들을 물리치고 닥치는 대로 보물을 쓸어 담았다.

몬스터의 침입으로 인해서 엉망이 되어 버린 황궁은 이미 모든 보호 마법들이 깨진 상태였다.

별궁의 땅속에서도 두개의 검을 찾아냈다.

그것은 니플하임 제국에서 봉인한 물건이었다.

레드 스타.

그리고 예전에 베르사 대륙에 내려와서 큰 재앙을 일으킨 마족이 사용했다는 검, 드로어!

드로어 : 내구력 96/180. 공격력 218~249

베르사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질로 만들어져 있다. 마족들이 사용하는 검으로, 그들의 투기가

깃들어 있음. 천둥 벼락과 폭풍을 부른다.

제한 : 레벨 제한 없음. 모든 직업 사용 가능. 전투에 사용할 때마다 돌이키기 어려운 저주에

걸리게 된다. 악신을 숭배하는 자의 손에 들어가면 무기의 속성이 변함.

옵션 : 제물을 바쳐서 마계의 몬스터 소환 가능. 육체와 영혼을 팔아서 스탯 증가.

흑마법의 위력을 200% 강화. 저주 마법에 대한 특화! 모든 저주 마법들을 펼칠 수 있게 되며,

상대의 저주 마법에 대해 면역. 하급 몬스터들을 지배한다.



검들을 손에 쥐는 순간, 슬로어의 얼굴이 괴로움으로 가득해졌다.

엠비뉴 교단에서 걸었던 세뇌 마법이 해제되고 이성을 찾은 것이다.

"이럴 수가."

슬로어는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후회했다.

악신을 숭배하는 엠비뉴 교단에 들어간 이후, 전 대륙을 지배하려는 음모에 가담해서 니플하임 제국을 무너뜨렸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이었다.

돌이켜 보면 아무도 모르게 은거했는데 엠비뉴 교단이 그를 찾아온 것부터가 이상했다.

"설마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엠비뉴 교단이 있었던 것이란 말인가!"

슬로어는 니플하임 제국을 재건하고 엠비뉴 교단과 싸우는 것에 자신의 남은 삶을 바치기로 했다.

"엠비뉴 교단과 싸울 힘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마족의 검 드로어는 바다에 버리고, 레드 스타를 가지고 지골라스로 향했다.

마법의 역사에서 임벌은 화염 마법의 마스터로서, 그의 마법은 성을 통째로 녹여 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12인의 마법사.

임벌이 만든 마법진의 마나를 흡수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으면서 엠비뉴 교단에서 잠복시켜 놓은 독이 발작하고 말았다.

"이대로 죽을 수는……."


슬로어의 최후는 지골라스의 몬스터들에 의한 것이었다.

"드디어 마지막이구나."

대륙의 큰 재난에는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엠비뉴 교단!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배후에 숨어 있던 사연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난이도 S급의 연계 퀘스트는 결국 대규모 몬스터의 침입으로만 알려져 있던 니플하임 제국의 멸망 원인에 대해서 조사하고 뒷수습을 하는 것이었다.

"모든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한 후에야 니플하임 제국의 건국 퀘스트를 할 수 있는 것이로군."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게이하르 아르펜 황제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게 되었고, 조각 생명체들에 대한 비밀, 황금새와 신비의 새, 조각사들의 유산도 찾아냈다.

조각사만이 할 수 있는 의뢰였고, 훌륭한 유무형의 자산들을 얻었다.

지골라스에서 보석과 광물도 많이 챙겼으니 퀘스트 중에 획득한 보상이 짭짤했다.

"그 어린 혼돈의 전사가 가지고 간 드래곤의 무기를 회수하면 되는 거군. 하여튼 어린애들이 문제야."

어쨌든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은 감사한 일!

"퀘스트만 성공하면 드래곤의 검을 얻을 수 있다는 건가."

상상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입가에서 침이 질질 흐른다.

드래곤 소드보다 좋은 검이 베르사 대륙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감정!"

그리고 챙겼던 대마법사 슬로어의 미늘 로브도 확인.

마법 지배력 확장과, 주문 시전 시에 마나 소모를 30% 줄여 주는 효과, 한 단계 상위 등급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이 달려 있었다.

"좋구나!"

위드는 활짝 웃으면서 서윤의 눈치를 보았다. 획득한 아이템을 독차지하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퀘스트를 통해 얻은 것이라서 공정하게 나누어 주기에는 아까웠다.

서윤은 위드가 가져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였다.

통곡의 강에서 사냥으로 얻은 위드의 마법사의 찢어진 로브는 옆구리가 훤히 트여 있었다.

재봉 스킬로 수선을 하려고 해도 옷감이 없고, 또한 마나를 늘려 주는 마법 로브라서 고치고 나면 손상이 일어나게된다.

흉한 갈비뼈를 보이면서도 성능 때문에 입고 있었으니 어서 가려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고마워."

위드는 왠지 서윤이 이때처럼 착하게 느껴진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템을 혼자 차지하니 매우 흡족했던 것이다.

"감정!"


불의 거인 눈 : 내구도 30/30

매우 뛰어난 마법 재료. 화염 마법의 범위를 확장시켜 주는 지팡이를 제작할 수 있으며, 광범위 화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시약의 원료이다.

소유하고 있을 경우 화염 저항력을 올려 주며, 불의 거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는다.

옵션 : 화염 저항력 5%. 불의 거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음.


드린펠트가 공격당해 엄청난 피해를 입고 후퇴해야 했던 불의 거인들!

그들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위드가 미늘 로브로 갈아입고 나서 말했다.

"이걸로 마지막 퀘스트를 위한 준비는 된 것인가?"

그런데 호아금새가 애절한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꾸꾸꾸꾸꾸꾸.

위드는 황금새와, 미스릴과 백금으로 조각된 신비의 새를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곧 빠른 눈치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

"너, 이 녀석 좋아하는구나."

고고하고 꼿꼿하던 황금새짐나 지금은 얇은 다리와 날개를 비비 꼬면서 부끄러워했다.

게이하르 황제에 의해서 황금새와 신비의 새는 비슷한 시기에 조각되었다.

황금새는 생명을 부여받고 게이하르 황제의 유물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수많은 시간을 거치며 신비의 새에 대해 정을 품게 된 바!

기품이나 우아한 품격, 매력까지 높았으니 자신에게 어울리는 대상은 신비의 새뿐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게이하르 황제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고, 대륙의 조각술 수준은 퇴보를 거듭했다.

기껏 만난 조각사 위드는 가지고 있는 실력이 아깝게 네크로맨서로 변신하였으니 실망을 금치 못하던 황금새였다.

그런 와중에 신비의 새를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생명을 부여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꾸루꾸루.

위드는 벌써 견적을 뽑아 놓은 상황이었다.

최저가 할인이나 약간의 에누리도 허용하지 않았으니, 황금새로서는 어려운 상대를 만난 셈이다.

위드가 말했다.

"조각술이란 참으로 심오하고 어려운 세계야. 즐겁고 아름답지만 진지한 탐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모르지. 하나의 작품을 위해서 예술가는 몇 날 며칠 밤잠을 이루고 못하고 고생을 해서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

누렁이와 금인이가 의아하단 표정을 했다.

스킬 숙련도를 위해서 잡동사니까지 끊임없이 이것저것 만들어 대던 위드에게서 나올 법한 말은 아닌 것 서윤과 잡템을 바꾸기로 한 후에 온갖 귀여운 동물 조각품만 만들어 내던 위드가 아니었던가.

"정말 피나던 고통으로 얻은 조각술. 이 조각술을 써 주길 바라는 것이냐? 내가 싸울 때 도와주지 않고 방관하고 무시하던 너를 내가 왜 도와줘야 되지?"

꾸…꾸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말해봐. 하나라도 빠뜨리면 안 도와준다."

뒤끝과 야비함과 협박까지 두세 마디의 말에 몰아서 하는 고차원적인 기술!

황금새는 꾹꾹대면서 무언가를 한참이나 떠들었다.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아들을 수는 없으니 이 정도로만 하지."

꾸꾸꾸꾸!

누렁이와 금인이도 새로운 동료가 생긴다는 기쁨에, 위드가 짐작했던 것보다는 많이 이해심이 넓고

착하다는 생각마저 했다.

'알고 보면 속정까지 없는 그런 인간은 아니야.'

'은근히 마음이 여린 면이 있을지도.'

주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고 있는데, 위드가 말했다.

"뒤로 취침."

"……?"

황금새는 영문을 모르면서도 얼른 뒤로 벌러덩 누웠다.

"동작이 느리다. 빨리빨리 못 하나! 옆으로 다섯 번 구르고 앞으로 취침!"

황금새에게 기합을 주는 위드!

황금새는 사랑을 위해 눕고 구르고 앞으로 기면서 기합을 받았다.

'먼저 높은 콧대를 꺾어 놓을 필요가 있어.'

친밀도를 높여서 부하처럼 부리더라도, 지금처럼 고고하다면 활용해야 할 시점에 써먹지 못한다.

"엎드려뻗쳐."

황금새는 날개를 이용해서 땅에 엎드렸다.

서윤도 말려 주고 싶은 마음이 약간은 들었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고 앙증맞은 나머지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위드가 심한 짓은 하지 않을거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하나 하면 내려가면서 꾸우, 둘 하면 올라오면서 짹짹."

꾸꾸꾸꾸.

"하나."

꾸우.

"둘."

짹짹.

"자동!"

꾸우ㅡ 짹짹, 꾸우ㅡ 짹짹.

황금새는 레벨이 500이 넘었기에 지치지 않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새소리를 요란하게 듣던 위드가 박수를 쳤다.

"자, 그만 기상."

황금새는 벌떡 일어나서 사파이어로 만든 푸른 눈동자에 격렬한 환희와 기쁨을 드러냈다.

신비의 새.

게이하르 황제가 죽은 이후로 오랜 세월이 지나서 이제야 겨우 사랑하는 상대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희망이 이루어지려고 했다.

"앞으로 너 하는 거 봐서 생명 부여해 줄게."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부려 먹으려는 위드였다.

"닭을 키워 봐서 내가 좀 아는데, 밥 먹기 전하고 먹고 난 다음이 많이 다르더라고."

이것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투에 가담할 부하 1마리 획득!

'레벨이 519나 되는 부하라니… 대박이군.'

이 퀘스트를 하면서 생명을 부여할 수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게이하르의 황제의 유산!

새라는 종족 특성으로 볼 때 전투력이 그렇게 뛰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레벨이 깡패라는 말이 있으니 누렁이나 금인이보다 잘 싸우리라.

'신비의 새도 생명을 부여해서 조만간 부려 먹어야겠군.'

무려 게이하르 황제의 조각품으로 아르펜 제국의 상징물이었다.

생명을 부여한다면 엄청난 부하가 탄생하게 되리라.

황금새의 부탁이 없더라도, 퀘스트를 위해서 생명을 주었을지도 모를 위드였다.

"지금 기분으로는 정말 하기 싫은데. 황금새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생명을 부여해 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앞으로 잘해."

꾸꾸!



6. 인페르노 던전



어린 혼돈의 전사를 추적하러 가기 전에 위드는 사냥을 했다.

"던전을 준비 없이 들어갈 수는 없어."

불의 저항력을 올려놓기 위해서 지골라스의 몬스터 중에서 혼돈의 전사들만 주로 사냥했다.

네크로맨서의 유용한 자산은 시체라는 말처럼 카오스 워리어들이 있었고, 황금새가 본격적으로 전투에 가담했다.

전투가 벌어지자 황금새는 놀랍게도 빛에 둘러싸이더니 없던 팔이 생겨나고 다리가 길어졌다.

목도 길어지면서 날개와 몸통은 크게 성장!

키가 3미터 20센티나 되는 조인족으로 변신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금빛이 흐르는 털에 보석들이 예쁘게 수놓인 것처럼 박혀 있다.

그리고 머리에는 다이아몬드 왕관까지 착용.

몸을 바꿀 수 있는 폴리모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황금새였다.

음머어어어어!

"골골골골!"

황금새의 바뀐 모습을 본 조각 생명체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들은 왜 저렇게 만들어 주지 않았냐는 항변이었다.

조각사로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부끄러울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위드는 당당했다.

"너희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야. 와이번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잊지 마."

"……."

와이번 이야기에 누렁이와 금인이는 얌전해졌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못생긴 와이번들에 비하면 천만다행이었다.

위드는 언데드를 지휘했다.

"카오스 워리어들, 돌격!"

짧은 거리를 순간 이동하며 싸우는 혼돈의 전사들을 상대로, 황금새는 갑자기 텅 빈 곳에 발톱을 휘둘렀다.

"케엑!"

순간 이동을 하는 혼돈의 전사들의 위치를 예측해 손톱과 발톱으로 제압한 후 부리로 급소들을 쪼았다.

따다다다다닥!

딱따구리처럼 치명적인 공격들을 연달아 터트리는 황금새!

혼돈의 전사들은 버티지 못하고 금세 죽어 버렸다.

황금새는 공중으로 날아올라서 몬스터들을 찢어 버리기도 했다.

무서운 전투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변신한 황금새는 대화도 할 수 있었다.

"위드 님, 이겼습니다."

"음, 그래."

지골라스에서는 불에 관한 마법이나 몬스터들의 특성이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불에 대한 저항력은 필수였다.

혼돈의 전사들을 사냥하면서 불에 대한 저항력을 22%까지 올렸다.

"금역에서의 저항력 10% 증가까지 포함한다면 32% 정도로군."

원래 가지고 있던 저항력과 맷집, 인내력까지 감안한다면 이 정도면 훌륭한 수준이다.

위드는 서윤, 조각 생명체, 언데드 들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혼돈의 전사들을 사냥하면서 저항력만 올린 것이 아니라 도끼도 열여덟 자루나 획득해서 배낭이 묵직해졌다.

위드는 해골 상태라서 힘이 없었지만 배낭을 직접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큰돈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다른 곳에 놔둘 수가 없었기 때문!

잡템들은 비밀 동굴 등에 숨겨 놓기도 했지만, 상륙대가 있는 이상 그러지도 못했다.

어깨와 쇄골을 커다란 배낭이 강하게 억눌렀지만 위드는 묵묵히 던전을 향해 걸었다.

이제는 퀘스트를 위해 위험한 던전에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토리도. 반 호크."

"예! 주인님."

"말하라, 주인."

"던전에서는 너희가 내 앞에 서라."

철저히 부하들을 부려 먹는 위드!

십중팔구는 엄청나게 위험할 던전에서는 카오스 나이트와 부하들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드린펠트와 그리피스는 지골라스에서 조금씩 탐험의 영역을 넓혀 갔다.

헤르메스 길드의 지원군이 하벤 왕국에서 바로 출발했다고 해도 지골라스에 도착하려면 긴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몬스터들과 싸우고 화산 폭발이나 지반의 갈라짐 등 지형에 대한 적응력도 높여야 했다.

"최정예들로만 구성해서 정벌대도 만들어라."

해군 기사와 해적의 연합으로 고레벨 유저들도 뭉쳤다.

사냥을 위해서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위드가 다시금 공격을 가한다면 본격적으로 반격할 수 있는 부대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위드의 목만 가져와라. 그러면 헤르메스 길드에서 크게 포상할 것이다."

더 이상은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드린펠트의 부대가 볼라드 무리의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황홀하도록 멋진 화산 폭발이 잠시 후에 벌어집니다.

CTS미디어와 LK 게임 방송을 통해서 지골라스에서 겪은 모험을 생중계!

큰 굴욕을 겪었고, 게시판에서의 조롱도 심했지만 다시 이를 만회하고 있었다.

드린펠트가 지휘하는 탐험대는 조각사들의 유산이나 대지의 균열이 발생하는 장소까지도 진출했다.

CTS미디어의 중게진이 방송되는 영상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전혀 의외의 장소에 조각사의 유산이 있네요. 혹시라도 위드는 이곳을 찾아서 온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드린펠트와 탐험대는 조각사의 유산이 주는 효과로 인해서 훨씬 수월하게 사냥을 진행했다.

"드린펠트와 해군 기사들이 주로 큰 칼을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요?"

"바다 괴물이나 해적 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파괴력이 크고 내구력이 높은 무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골라스는 참으로 멋있지만 함부로 가기는 힘든 장소인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항해를 해야 도착할 수 있고 몬스터들의 수준도 굉장합니다."

"화산 폭발의 위험성도 빼놓을 수 없겠죠? 보는 우리야 화려한 장관이라지만 직접 겪는다면 정말 무섭겠어요."

"드린펠트와 하벤 왕국의 제2함대이기 때문에 저렇게 위험한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것이죠."

"위드는 어떤가요? 그는 먼저 와서도 잘 적응한 것으로 보이던데요"

"혼자, 혹은 소수의 모험대와 저런 대규모 상륙대는 탐험을 하는 규모가 다릅니다. 모든 위험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죠."

중계진은 대화를 나누면서 드린펠트와 그리피스의 해적들의 모험을 방송했다.

하루에 두 차례 진행되는 생중계의 시청률은 당연히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KMC미디어에서는 위드와 계약이 되어 있었지만 방송을 하지 못했다.

퀘스트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방송하다 보면 드린펠트와 그리피스가 방해를 할 수 있다.

위드를 숨겨 주기 위해서 방송을 참고 있을 뿐이었다.

KMC미디어의 본사에는 밤에도 창문바다 불이 훤히 켜진채로 전 직원이 야근을 했다.

퀘스트가 언제 어떤 식으로 끝날 지 모르니 위드의 영상을 편집할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과 신관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게이하르 황제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베르사 대륙을 최초로 일통한 아르펜 제국이 있었다더군.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야."

"대마법사 슬로어는 야망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 마탐의 마법사들이 말하는데, 재능이 무척이나 뛰어났던 분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더군. 그가 니플하임 제국을 붕괴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네."

"슬로어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신탁이 내렸습니다. 용기로 가득한 이들만이 갈 수 있는 땅! 그곳에서 어떤 몬스터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무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큰 재앙이 내릴 수 있는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1명의 조각사뿐이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드워프, 엘프, 요정 들이 전사들을 소집했다. 지골라스로 향하게 될지도 모를 원정대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가 실패한다면 우리의 안전을 크게 위협할 몬스터가 나오게 될 것이다. 드워프들은 전투를 위해 무기를 들라."

"엘프 궁수들은 불의 정령들이 힘을 발휘하는 장소로 이동할 준비가 되었는가."

드워프 장로, 엘프들의 움직임이 로열 로드의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 등록되었다.

베르사 대륙에서도 눈을 감고 떠올리기만 하면 볼 수 있었다.

바야흐로 다시 위드가 모험으로 온 대륙을 뜨겁게 달구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던전 인페르노의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혜택 : 명성 2,100 증가. 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랍률 2배. 첫 번째 사냥에서 해당 몬스터에게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물건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아이고!"

위드는 곡소리부터 나왔다.

이미 명성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도대체 던전이 얼마나 어려우면 명성을 이렇게까지 올려 주나."

부하들이나 언데드들이 있다고 해도 만만치 않은 생고생을 하게 될 것이란 짐작이 됐다.

"그래도 젊어서 고생은 돈 벌기 위해서 하는 게 낫지. 늘그막에 남는 건 돈뿐이라고 하니까."

위드는 체념하면서 부하들을 전진시켰다.

던전의 내부 통로는 마차들이 여러 대 함께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넓었다.

지하에서는 불꽃이 솟구치고 있었는데, 동굴 벽에 반사되어서 더없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냈다.

"조심해서 걸어, 그리고 이쪽으로 와."

위드는 불길이 일어나는 오른쪽으로 걸으면서, 서윤을 반대편으로 가게 했다.

작은 배려였지만 서윤에게는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여성을 배려하는 남자의 매너는 물론 아니었다.

'왼쪽에 뚫려 있는 통로가 심상치 않군. 몬스터가 튀어나올지도 모르겠어.'

위험할수록 몸을 사리려는 심리!

화염 저항력이 높았기에 불꽃이 약간 닿는 정도는 괜찮았다.

동굴 벽에는 수정이나 마노, 석류석 들이 많았다.

보석류로 분류되긴 하지만 값이 싸고 흔한 편이라서 주로 세공을 한다.

"조각품을 만들기에는 좋은 장소로군."

위드가 벽에 잠깐 한눈을 팔았을 때였다.

"야들야들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이곳에 왔구나!"

"썩은 악취가 나는 언데드들이 올 만한 장소가 아니다!"

통로의 저편에서 고함 소리와 함께 몸집이 커다란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여섯이나 달려왔다.

바바리안보다도 훨씬 커서 오우거와 맞먹을 정도의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검을 휘두르면서 돌진해 오고 있었다.

발을 쿵쾅거릴 때마다 던전의 내부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위드는 신속하게 명령을 내렸다.

"카오스 워리어, 공격!"

고급 언데드 20마리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머뭇거리다가 자칫 거리가 가까워지면 위험하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퇴각 준비 상태에서 지켜봐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잘 익은 홍시도 씹기 전에 확인해 보는 조심성.

인페르노 나이트들과 상대가 안 될 것 같으면 언데드들을 희생양 삼아서 빠르게 퇴각할 속셈이었다.

토리도와 반 호크를 남겨 둔 것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몬스터들이 쫓아오면 그때 시간을 끄는 용도로 써야지.'

애니메이트 데드로 일으킨 카오스 워리어들이 순간 이동을 해서 인페르노 나이트의 주변에 등장했다.

그들은 도끼질을 하면서 타격을 입혔다.

물론 혼돈의 전사들이 착용하고 있던 진짜 도끼 무기들은 위드의 배낭에 꼭꼭 들어가 있다.

언데드 강화술을 바탕으로 위드가 마법으로 만들어 준 무기들!

"캬오오, 가증스러운 혼돈의 전사들!"

"썩어 들어가는 언데드가 되어서까지 거치적거리는구나."

인페르노 나이트들은 성난 기세로 위드의 언데드들과 격투를 벌였다.

4단계 언데드 소환이었기 때문에 지능도 제법 뛰어난 언데드들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합격술을 펼쳤다.

위드는 막대한 통솔력을 바탕으로 언데드들에게 강한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의 전투법을 가르쳤다.

1마리만 패기.

장기전으로 지치게 만들기.

언데드들에게 일일이 직접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고, 능동적인 지휘도 가능했다.

하지만 언데드들은 비슷한 전투가 반복되면서 학습을 하게 된다.

위드가 가르친 정예 언데드들이 인페르노 나이트를 괴롭혔지만 밀리고 있었다.

카오스 워리어들의 숫자가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은 훨씬 고위 몬스터였다.

"혼돈의 전사들과 사이가 썩 좋지 않은 것 같군. 던전 안에 혼돈의 전사들도 있을 것 같아."

몇 마디의 말로 상황을 유추.

눈칫밥을 먹고 산 위드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토리도, 반 호크, 뭐하고 있어? 놀지 말고 어서 같이 싸워!"

"알았다, 주인."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빨리 싸우지 않는다고 야단치는 주인.

반 호크와 토리도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라서 곧장 싸움에 뛰어들었다.

둘이 인페르노 나이트 1마리에게 협공을 가하는 사이에, 금인이에게도 명령했다.

"넌 여기서 화살만 쏴라."

"골골골!"

황금새도 참전했는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급소들을 공격하며 혼자서도 인페르노 나이트 하나를 가볍게 다룰 수 있었다.

서윤도 검을 뽑고 인페르노 나이트와 싸웠다.

위드도 적들에게 저주를 걸어 줬지만 그 뒤로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카오스 워리어들이 크게 부상을 당하면 마나를 부여해서 복구해 주기만 할 뿐이었다.

"이게 바로 삶의 여유라고 할 수 있지."

남들이 바쁘게 전투를 할 때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다. 마법사나 성직자 들에게 부여된 특권이었다.

"어쨌든 크게 무리는 없겠어."

그러던 어느 순간 인페르노 나이트의 갑옷에 새겨진 문신들이 빛나면서 훨씬 대단한 방어력을 발휘했다.

구인 데다 탁월한 방어력까지 가져서, 모두 더욱 조심하면서 빨리 사냥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위드의 여러 저주 마법이 걸려서 훨씬 약화되었다.

"상당히 오래 걸리는군."

전투 시작 후 약 8분 경과!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지치기 시작했지만, 위드의 마나도 고갈되었다.

손상되는 언데드들을 복구하는 데에도 소비가 크고, 카오스 워리어들이 순간 이동과 같은 특수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마나를 가져갔던 것이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은 원형으로 벽을 쌓고 언데드와 서윤 등을 상대했다.

황금새가 1마리를 사냥했으니 어쨌거나 승리는 어렵지 않은 일.

"전투를 빨리 끝내야겠다. 카오스 워리어 7, 가장 용감한 네가 인페르노 나이트들의 틈으로 끼어들어라."

언데드들의 군주이며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진 위드의 명령이다.

타락한 성자의 지팡이에 바르킨의 마법서까지 가졌으니 지목받은 카오스 워리어는 영광으로 생각하며 주군을 위하여 인페르노 나이트들의 사이로 순간 이동했다.

"시체 폭발!"

콰과광!

위드의 주문에 의하여 용맹하던 카오스 워리어가 충성의 보답도 받지 못하고 폭발했다.

보통의 시체도 아닌 고위 몬스터를 이용한 시체 폭발 마법이라 파괴력이 굉장했다.

땅에서부터 천장까지 새빨간 불기둥이 형성되더니 순식간에 팽창!

드디어 적들의 진형이 붕괴되자 위드는 짧고 정확하게 명령을 내렸다.

"밟아!"

일제 공격을 해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 후, 인페르노 나이트 1마리를 더 처리했다.

-동료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공포 상태에 빠졌습니다.

저주 마법의 효과가 35% 강화됩니다.

각종 저항력이 최대 60%까지 감소합니다.

공격적인 성향이 줄어들고 방어에 치중하게 됩니다.

넷밖에 남지 않은 적들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위드의 저주 마법들이 훨씬 강력하게 걸린 상태에서 공격을 집중해서 1마리씩 차곡차곡 처리했다.

위드는 1마리씩 잡을 때마다 떨어지는 아이템들을 보며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명성이 6 올랐습니다.

-효울적으로 언데드들을 지휘하여 네크로맨서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혼돈의 전사들처럼 개척도 등은 올려 주지 않았다. 지골라스의 실질적인 지배 종족이 혼돈의 전사들 무리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이템들이구나."

습득한 방어구들 중에서는 어깨 보호대 하나만이 쓸 만했다.

바바리안들 중에서도 워리어처럼 특수하게 큰 체격을 가진 이들의 전용 아이템!

렙레 제한도 460이나 되어서 팔 곳이 마땅치 않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물건이야 없어서 못 팔지. 정 팔기가 어려우면 나중에 녹여서 다시 만들어도 되고."

인페르노 나이트들은 여러 광물들, 소량의 미스릴과 보석들까지 떨어뜨렸다.

위드는 봇겅르 둘로 나눠 서윤에게 정확하게 절반을 분배해 주었다.

지금 시점에서 언데드들의 활약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만약에 그녀가 토리도와 함께 오지 않았더라면 던전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혼돈의 전사들도 사냥하지 못했을테고.

위드는 딱 1개 나온 미스릴 덩어리를 탐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 미스릴은 참 귀하고 쉽게 얻기도 힘든 건데… 일단 내가 갖고, 나중에 모아서 방어구로 만들어줄게, 그래도 괜찮지?"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최고의 방어구를 만들어 줄게."

위드로서는 나름 최선을 다해 선량한 미소를 지어냈지만, 실상은 해골이 보여 줄 수 있는 진정한썩은 미소였다.

나중 일이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보석을 절반이나 흔쾌히 내놓기를 잘했어.'

서윤의 몫까지 챙기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방어구를 정말 만들어 주기는 할 작정이었다.

그러면서 대장장이 스킬을 늘릴 수 있다.

그리고 소모된 미스릴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는 위드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 거기서도 적당히 수고료를 뗄 수가 있는 것.

던전 사냥에서 미스릴이 많이 모이기만 한다면 사상 초유의, 미스릴을 이용한 조각품을 만들지 말란 법도 없다.

물론 조각사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겠지만.

"그럼 일단 시체부터 일으키고… 애니메이트 데드!"

소모된 카오스 워리어 1기는 물론이고 다른 언데드들까지도 인페르노 나이트로 대체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순간 이동을 하는 카오스 워리어 12기에, 인페르노 나이트 8기 정도로 조합할 계획이었다.

-인페르노 나이트의 육체가 사악한 힘이 깃드는 것에 저항합니다.

최소한 고급 네크로맨서 스킬 2레벨이 되어야 일으킬 수 있는 시체입니다.

언데드 소환이 실패하셨습니다.

위드의 마나만 소모되고 언데드는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로써는 쓰지 못하겠군."

아쉬움을 뒤로하고 휴식을 취했다.

마나를 회복하고, 서윤과 조각 생명체들의 체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전력을 다한 싸움을 하고 난 이후라서 충분히 쉬고 난 이후에 전진!

"이곳에 감히 인간과 언데드 들이 들어오다니, 겁도 없고 질도 안 좋은 놈들이구나. 어리석고 무모한 너희가 숨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인간들에게도 버림 받은 너희가 올 곳이 아니다. 깨끗한 죽음을 내려 주마."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다시 나타났다.

위드와 서윤이 악명으로 인해서 이름이 붉었기 때문에 하는 말들이리라.

위드의 악명은 무려 6,000을 넘는 정도였다.

이렇게 살인자 상태에서 악명이 높다 보면 몬스터들을 도망치게 해서는 안 되었다.

만약에라도 놓친다면, 놈들은 더 많은 무리를 이끌고 돌아온다.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던전을 나가더라도 추격해 오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벌어진 전투에서 카오스 워리어 2기의 희생을 바탕으로 8마리의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7.불의 거인



던전 내부로 더 깊숙하게 진입하자 용암이 흐르는 강이 나왔다.

폭이 400미터도 넘을 것 같은, 지하에 흐르는 용암의 강!

거세고 도도한 흐름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위드와 서윤에게까지 화끈한 열기가 밀려왔다.

화염 저항력을 상당히 높여 놓은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열기로 인한 데미지를 입었으리라.

언데드인 위드는 상관없었지만, 누렁이와 서윤은 땀을 많이 흘렸다.

체력 소모가 빨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위드가 주변에 다른 길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말했다.

"여기를 건너야 될 것 같군."

용암의 강에는 중간마다 작은 바위나 금속이 튀어나와 있었다.

작은 것은 발 하나를 간신히 디딜 만하지만, 큰 것은 아파트 13평 정도 되는 넓이다.

암석이나 여러 금속들로 되어 있는 평평한 공간이었다.

용암의 강에 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륙대를 엄청난 위기로 몰아넣고 던전에서 도망치게 만들었던 불의 거인도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인페르노 나이트나 혼돈의 전사 들이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밧줄이 양측을 연결해 주고 있었다.

위드가 살펴보니 볼라드의 가죽을 꼬아서 만든 밧줄이었다.

"언데드들이 가능할지 모르겠군. 카오스 워리어 1, 넘어가 봐."

"알. 았. 다."

카오스 워리어는 경직된 움직임이었지만 밧줄을 밟으면서 똑바로 전진했다.

언데드였기 때문에 죽음에대한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서 오히려 쉬웠다.

밧줄을 사분의 삼 정도 넘은 후에는 순간 이동을 통해서 건너편에 나타났다.

"됐군. 가자."

카오스 워리어들이 차례로 넘어가고, 토리도와 빛의 날개를 펼친 금인이가 누렁이를 안고 날아서 뛰어넘었다.

유난히 뜨거운 것에 겁이 상당한 누렁이는 용암을 보고 발버둥을 쳤지만 성공적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 위드와 서윤이 넘어갈 차례였다.

위드가 호의를 베풀었다.

"무서우면 도와줄 수도 있는데."

서윤은 고개를 흔들더니 밧줄에 가볍게 발을 올린 후에 사뿐사뿐 걸었다.

위드도 뒤를 따라서 걸었다. 밧줄을 봐야 하니 바닥을 내려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지독하게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기포가 튀어 오르는 붉은 용암에서는 엄청난 열기가 전해졌다.

한 발자국만 잘못 놀려 밧줄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바로 사망!

위드가 중얼거렸다.

"그대로 사람은 항상 최악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해. 제대로 걷기만 하면 넘어져서 죽을 염려는 없잖아? 이렇게 밧줄을 타고 걸을 때 몬스털도 나타난다면 엄청나게 위험하고 고생도 할 텐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야. 어떻게 보면 난 참 행운아란 말이야."

위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너편에서 혼돈의 전사가 10명이나 등장했다.

무리로 등장한 그들 중에는 혼돈의 정찰병도 있었다.

"이곳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언데드들!"

"안식처로 침입한 언데드들을 정화해라. 동족을 언데드로 만든 놈을 죽여라!"

혼돈의 전사들이 적색 도끼를 휘두르며 언데드와 토리도, 금인이, 누렁이 들을 향해서 밀려들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여유가 있었다.

"방어 진형으로! 카오스 워리어 1, 2, 3은 순간 이동을 하면서 한 놈만 공격해라."

위드는 밧줄 위에 서서 전투를 지휘하며 저주 마법을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용암에서 불쑥 길쭉한 머리들이 튀어 나왔다.

몸보신에 좋은 장어를 늘려 놓은 것처럼 생긴 놈들이 불덩어리를 토해 냈다.

위드의 로브와 서윤의 갑옷에 불덩이들이 부딪쳤다.


-바오반트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영원한 불꽃!

피하거나 끄지 않으면 화염 데미지가 계속 누적됩니다.

둘이 서 있는 밧줄 아래에 수십 마리의 바오반트들이 나타나서 화염을 토해 낸다.

미리 화염 저항력을 올려놓았고, 갑옷과 액새서리들의 효과로 인해 당장 버틸 수는 있지만 위험했다.

더구나 바오반트의 공격을 맞을 때마다 그 충격으로 밧줄이 좌우로 2~3미터씩 흔들거렸다.

균형을 서 있기만도 벅찬데 능동적으로 피하기란 절대 무리!

"주인이 위험하다!"

반 호크가 고함을 쳤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딱히 해답이 없을 것 같았다.

여러 종류의 몬스터들을 상대했던 위드였고 이럴 때일수록 머리 회전이 빨라졌지만, 바오반트에게만큼은 공격 방법이 마땅치가 않다.

'용암에 직접 공격을 하기는 무리야.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흑마법은 불 속성의 몬스터들에게는 약해.'

물 계열, 얼음 계열의 마법이 있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위드도 마법 책에 있는 아주 기초적인 마법은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식 마법사가 아니다 보니 기초 공격 마법들의 파괴력을 극대화시킬 수는 없었고, 그것으로 바오반트를 잡기는 무리였다.

'암석에 내려가는 것도 좋지 않은데.'

용암의 강에 있는 돌출물들은 각이 심하게 져 있고 미끄러웠다.

돌출물들을 밟음녀 바오반트의 코앞까지 가까워지게 되는데 그것도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

네크로맨서인 지금도 직접 공격력이 약한 상태인 데다 데몬 소드를 뽑아 들고 싸우기도 정말 곤란했던것이다.

'매우 좋지 않다.'

위드가 굉장히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서윤이 먼저 행동했다.

'그가 죽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

바오반트의 융단폭격 같은 화염 공격에 그녀의 생명력이 어느새 삼분의 일이나 낮아졌다.

위드도 좋은 상태는 아닐 거라고 짐작한 그녀였다.

광검!

미친 검술이라는 광전사의 스킬.

목숨이 사라지기 직전까지 싸우다가 움직일 힘조차 없게 되는 경험을 열다섯 번이나 하고서야 얻은 스킬이었다.

서윤의 검에 붉은 기가 강하게 덧씌워졌다. 그리고 바오반트들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콰과과광!

마나를 소모해서 폭발력을 가진 검기들을 뿌렸다.

광검은 단순한 스킬이었다.

몬스터들을 상대로 생명력과 마나가 다할 때까지 수비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공격만 한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더라도 도망칠 수도 없다.

오로지 공격 일변도의 검술.

하지만 몇 배나 되는 많은 적들을 상대로 공격 속도와 파괴력, 마나 소모에서 대단히 효율적인 광전사의 비기!

케에에.

꽤액!

검기에 적중당한 바오반트들이 나가떨어졌다.

광검은 상대가 성공적으로 수비한다 하더라도 생명력을 크게 앗아 갈 뿐만 아니라 엄청난 힘으로 자세를 무너뜨린다.

마나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이기 때문에 바오반트의 몸에 직접 무기를 대야 할 필요도 없었다.

광전사의 특성에 의해, 맞서 싸우는 몬스터들은 엄청난 압박감을 갖게 된다.

바오반트도 원거리 공격에 크게 당한 모습이었다.

위드는 그사이에 날뛰는 밧줄에 매달려 있느라 고생이었다.

"이런 젠장."

서윤이 공격을 할 때마다 밧줄이 그네를 타는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던 것이다.

바오반트의 화염 공격도 순식간에 잦아들고 있었다. 하짐나 서윤은 계속 공격을 했다.

스킬 광검은 발동된 이상 몬스터들을 남겨 두고 도망치면 저주로 인해 광기에 휩싸인다.

육체의 제어 능력을 잃어버리고 무조건 주변을 공격하다가 지쳐서 쓰러지게 된다.

적들을 다 죽이기 전에는 피할 수도 없는 스킬.

그녀는 위드가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남을 작정이었다.

마나가 다 소모될 때까지 원거리 공격을 난사하기 전에, 밧줄에서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으리라.

'어서 가요.'

서윤이 눈빛을 보냈지만, 위드는 다르게 해석했다.

'뭐라도 해서 어떻게든 전부를 승리로 이끌어야 해.'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서윤을 혼자 두고 건너편으로 간다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일단 함께하는 동안에는 동료다.

동료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는 힘들어도, 동료를 버리고 달아나지는 않는다.

최소한 서윤이 끝까지 싸우려고 하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혼자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밧줄이 흔들거려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집중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

그럼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정령술!

"흙꾼아, 나를 받쳐 다오."

흙꾼이를 소환하여 기둥을 만들어서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지금도 혼돈의 전사와 싸우고 있는 언데드들이 마나를 소모하고 있었기에 여유는 그다지 없다.

"물의 정령!"

위드는 하이 엘프 예리카의 활을 꺼내서 바오반트들을 향해 쏘았다.

물의 정령의 힘이 깃든 화살들이 바오반트들의 몸체에 적중!

해골 리치였기에 위력 있는 화살들은 아니었지만 서윤을 보조해 줄 수는 있었다.

서윤을 향해 화염을 쏘려고 하는 바오반트들을 공격하면서 버텼다.

용암의 강 위에서 그렇게 큰 소란을 벌이고 있을 때, 불의 거인이 깨어났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구나."

불의 거인이 잠에서 깨서 움직이는 것은 가장 큰 위기였다.

수십 미터나 되는 팔을 휘둘러서 바오반트를 붙잡더니 그대로 터트려 버렸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용암의 강의 물살이 달라지고 땅이 흔들렸다.

강물 속에서 검을 꺼내더니 위드와 서윤을 향해서도 휘두르려고 하는 찰나였다.

상륙대가 수십 명씩 죽어 나가던 것으로 보아서 그 위력은 짐작이 가능했다.

위드는 재빨리 품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불의 거인 눈을 꺼내서 높이 들었다. 그러자 검을 휘두르려다가 멈칫했다.

"너희는……."

위드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적이 아니구나."

그러더니 바오반트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위드는 서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도 공격받지 않게 했다.

바오반트들이 죽을 때마다 재료를 알 수 없는 금빛 가루들이 용암의 강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아까운 아이템이었지만 목숨을 건진 것만도 다행스러워할 때!

바오반트들이 전부 처리되고 나니 서윤도 스킬을 마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서윤은 빠르게 밧줄을 뛰어 건너가서 언데드들과 함께 혼돈의 전사들과 싸웠다.

언데드들은 이미 아홉이나 쓰러져 있었다.

누렁이와 금인이도 토리도와 반 호크의 도움을 받아서 버티던 중이었다.

위험요소가 제거된 이상 위드는 굳이 건너갈 필요가 없었으므로 손상이 덜한 언데드들을 다시 일으키고 저주 마법을 시전했다.

지상에서는 순간 이동으로 인하여 저주 마법을 작렬시키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던전 내부는 공간이 넓지 않았기에 혼돈의 전사들에게 저주 마법들을 걸기가 수월했다.

그리고 불의 거인이 깨어났을 때부터 공황 상태에 빠져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의 축은 완전히 넘어왔다.

위드는 불의 거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그가 다시 잠들면서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조용한 게 좋다. 시끄러운 혼돈의 전사들과 바오반트 등이 싫다."

유유자적 뜨거운 용암에 목욕을 하며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불의 거인!

혼돈의 전사들을 힘들게 정리하고 난 후에는 언데드들이 12마리나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새로운 시체들을 얻었으니 다시 일으키면 될 문제이기는 하지만 위드는 밧줄을 타고 건너가지 않았다.

"……?"

서윤이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눈길을 보내고, 누렁이나 금인이도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귀한 광석들을 그냥 놔두고 갈 수는 없지"

용암의 강의 돌출부위에 다이아몬드, 흑옥, 미스릴, 아다만티움 같은 최고급 보석과 광물들의 큰 덩어리들이 있었던 것.

자주 볼 수 있는 광물들이 아니라서 몰랐지만 직접 내려오고 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위드는 불의 거인의 눈을 해골의 안구 부분에 밀어 넣었다.

덜그럭 소리를 내고 들어가자, 모루와 정을 꺼내서 돌출몰들을 깎았다.

깡, 깡, 깡, 깡!

조심스럽게 한다고 했지만, 작업이 개시되면서 발생하는 소음은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에 불의 거인이 눈을 뜨고 일어났다.

"조용한 것이 좋다."

한마디를 하고 취침!

위드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광석들을 채취했다.

불의 거인은 그때마다 일어나서 한마디씩 했다.

"혼돈의 전사들은 너무 많다. 죽여도 죽여도 금방 많아진다.

불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는 종족이기 때문일까?"

"용암의 강은 지골라스 전체를 타고 흐른다. 이 강을 따라간다면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건 같은 불의 거인들뿐이다."

"땅이 크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면 이 주변에는 있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혼돈의 전사들은 시끄러워서 정말 싫다. 놈들의 숫자를 줄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불의 거인이 잠에서 깰 때마다, 졸린 듯이 하품을 하고 꾸벅꾸벅 조는 척을 하는 위드!

원석 상태라서 세공하면 가치가 급등할 것 같은 보석 15개와 미스릴 검 두자루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을 획득했다.

지골라스에 와서 얻은 큼지막한 수확이었다.

유린은 맑은 호수에 물감을 뿌렸다.

자연보호를 주장하는 이들이 본다면 경악할 만한 대사건!

호수 근처에 사는 크고 작은 초식동물과 몬스터들까지 모여들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하고,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유린을 주시했다.

물빛의 화가가 그리는 그림을 보기 위하여 모여든 관중이었다.

"무슨 그림을 그려 볼까?"

유린은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그리고 싶은 대상을 떠올렸다.

페일 일행은 퀘스트를 위하여 과거 니플하임 제국의 수도인 모드레드로 갔다.

그러나 그녀는 자유롭게 여러 장소를 여행하고 싶어서 잠시 떨어져 나왔다.

"동물들과 몬스터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유린은 호수에 주렁주렁 열매들이 열린 나무들을 그렸다.

몬스터들도 요기할 수 있도록 고구마와 감자 밭도 그렸다.

신기하게도 유린이 물에 그린 그림은 흩어지거나 번지지 않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에 고깔모자를 쓴 어여쁜 유린이 붓을 그을 때마다 그림들이 완성되었다.

『-물에 비친 풍요를 그렸습니다!

-물빛의 화가가 호수에 그린 그림!

호수 주변의 풍경을 그린 듯하지만, 넘쳐 나는 풍요로움은 화가의 세상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보여 주는 것 같다.

섬세한 붓질과 정확한 채색을 아직 어린 화가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려 준다.

단, 아직 완전히 자연과 어우러지지 못해서 비가 오면 모두 흐트러지게 될 것이다.

예술적 가치 : 98

특수 옵션 : 물에 비친 풍요의 주변 농작물이 자라는 속도를 일시적으로 촉진시킨다.

호수 근처로 동물들이 많이 모여들게 함.

성직자나 마법사 등의 마나 회복 속도를 4%빠르게 만든다.

-초급 그림 그리기 스킬의 레벨이 7로 상승했습니다. 그림의 선이 정확해지고,

활용하는 도구들의 특징을 보다 잘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물감 칠하기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유린은 잠시 그녀가 만든 작품을 감상했다.

동물들이 기뻐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호수의 물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어, 갑자기 왜 이러지?"

유린은 당황스러워 하면서 호수에서 나오려고 했다.

잔잔하던 호수의 물에 파문이 일면서 물방울들이 솟구쳤던 것이다.

밤에 달빛과 별빛에 의존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그녀였다.

물에 비치는 밤하늘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면 그녀의 마음도 포근해졌다.

그런데 물방울들이 하나씩 치솟아서 그녀의 주변을 감싸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며 하늘로 솟구쳤다.

물에 비친 달과 별들, 빛을 담고 있는 물방울들!

신기한 일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유린의 물감 통에 있는 물감들이 저절로 풀려나가더니 호수에 그림이 그려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산과 들 그리고 상상 속에나 존재했을 것 같은 성이 나타났다.

유린의 주변에는 물방울들이 둥둥 떠 있고,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은 그녀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유린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호수의 물이 출렁거릴 때마다 그림은 일렁이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일까?"

굉장히 예쁜 곳이었다.

그녀를 초대하기라고 하는 것처럼 성문이 활짝 열려 있다.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에, 유린은 스킬을 사용했다.

"그림 이동술!"

그리고 그 성의 앞에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잠시 후, 유린의 모습은 호수에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호수에 떠올랐던 물방울들도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지고,

처음에 그렸던 그림 외에는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와아!"

유린은 감탄사부터 터트렸다.

베르사 대륙에서도 가장 아름다울 것 같은 성!

넓은 들판에 산을 배경으로 하고 바람이 부는 언덕에 지어진 성이었다.

유린은 황금빛 들판을 걸어서 성으로 향했다.

지어진 지 수백 년은 되었을 것처럼 보이는 성은 마법으로 보호된 것처럼 깔끔했고 파손도 적었다.

웅장한 건축물임에도 그림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조르디보오스 성을 감상하셨습니다.

-명성이 350 증가했습니다.

-알 수 없는 건축물의 감상으로 인하여 지혜가 10, 예술 스탯이 25개 오릅니다.

초보인 유린에게 지혜와 예술 스탯들은 굉장한 소득이었다.

위드라면 한참 동안 회심의 썩은 미소를 지었을 테지만, 유린은 성에 매료되어 가까이 다가갔다.

"저기요."

열려진 성문에는 경비병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잠시 들어갈게요!"

씩씩하게 큰 소리로 외치고 성문을 통과했다.

정원에는 꽃과 나무 들이 보기 좋게 자라고 있고, 맑은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을 친다.

은은하게 풍겨 오는 꽃향기.

나중에 자세히 보기로 하고 일단 성안으로 진입!

도서관과 서재, 하녀들의 방, 경비병들의 방, 기사들의 방을 지나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큰 방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페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방은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맞은편의 방에는 유린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왠지 우연은 아닌 것 같아."

유린이 조심스레 문을 살짝 건드리자, 주인을 알아보기라도 한 것인지 소리도 없이 활짝 열렸다.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넓은 거실과 장인이 오랫동안 공을 들여 만든 것이 틀림없을 상들리에!

열려 있는 창문으로는 성의 정원과 수려한 산들이 보였다.

침대는 5명이 누워서 자더라도 끄떡없을 만큼 넓었고 하늘하늘한 레이스까지 달려 있었다.

욕실에는 넓은 욕조도 있었는데, 따뜻한 물과 함께 장미 꽃잎까지 뿌려져 있는 게 아닌가!

호텔의 스위트룸이라고 해도 이토록 멋지진 못할 것이다.

벽에는 빈 화폭들이 걸려 있엇다.

동화 속의 풍경 같은 성에 그녀만을 위한 방.

유린이 천천히 둘러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씩씩거리면서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겨우 조르디보오스 성을 복원해 놓았더니, 진짜 짜증나네.

자기 성도 아니면서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오는 뻔뻔한 인간이 다 있나?

마법 길드에서 알람 장치를 사서 설치해 놓지 않았으면 클일 날 뻔했잖아."

불만스럽게 외치면서 걸어오는 목소리.

유린이 방문을 닫지 않아서 문은 그대로 열려 있었다.

옷에 여러 색깔의 물감이 묻어 있는 더벅머리의 사내가 문가에 섰다.

"야, 너도 물빛의 화가인 모양인데 누구 마음대로……."

남자는 유린을 보더니 심장이라도 멎은 것처럼 얼굴이 굳어 버리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물빛의 화가 페트!

그는 로열 로드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렸다.

세상에 내보이지도 않아 그의 그림을 아는 건 오직 정령들과 요정들뿐이었다.

엄청난 명성을 쌓았지만 정령계와 요정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퀘스트 등을 진행하면서 묵묵히 그림 솜씨를 늘리는 데에만 힘을 썼다.

조르디보오스 성을 찾아낸 것도 그였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어."

자존심과 열정으로만 살아 왔던 페트.

불청객에게 단단히 따지러 왔던 그가 어색하게 표정을 바꾸었다.

"안녕하세요. 저,저는 이웃인 페트라고 합니다."

미안한 마음이 든 유린은 바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주인이 있는지 모르고 들어왔어요. 지금 당장 나갈게요."

"아니, 아닙니다. 사실 이 성에는 따로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페트는 유린이 혹시 가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서둘러 설명을 했다.

조르디보오스 성은 실제로 베르사 대륙에 지어진 성이 아니다.

화가 빈디스가 그린 화폭에 있는 성이다.

요정들이 그 그림에 감탄하여 공간을 부여해 주었고, 드래곤이 마법을 걸어 주었다고 한다.

"퀘스트를 통해서 제가 복원헸고, 약 1년 정도 혼자서 사용해 왔습니다."

"저는 호수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성의 그림이 나타났어요."

"물빛의 화가가 일정한 실력이 되면 이 성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른 화가들도 특정한 퀘스트를 거치면 올 수 있지만요."

"저기, 그러면 이 방은……."

"유린님의 방입니다. 편안하게 쓰시면 됩니다.

베르사 대륙의 어디에서도 이 방으로 올 수 있고,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 놓아도 됩니다.

다만 이동을 할때마다 소지품 외에 마차나 다른 물건들까지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페트는 중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화가들이 이 성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퀘스트를 알지만,

공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유린을 보면서 더욱 굳어졌다.

평소에 조금 거만하고 독선적인 성격으로 인해서 사람들을 무시하고 다니던 페트였다.

하지만 유린을 만나는 순간, 그는 한눈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스스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성의 매력이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유린의 곱고 착한 느낌의 얼굴선이나 깊고 맑은 눈빛이 얼마나 예쁜지를!

지금도 예쁘지만 나중에는 더더욱 예뻐질 인상이었다.

평생을 통해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은 대상을 만나 버린 것이다.

페트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유린이 묻지 않은 것도 얼른 말해 주었다.

"그림을 그려서 이 방에 놓아두면 그 효과가 어디에서든 부여됩니다."

"효과가 부여된다니요?"

"제가 느닷없이 말해서 못 알아들으셨군요. 죄송합니다. 그림이 주는 축복의 효과가 저절로 부여된다는 뜻이죠. 다만 다른사람의 그림은 안되고, 본인이 그린 그림만 해당됩니다. 만약 제 그림도 쓸 수 있다면 드릴 텐데요."

페트가 진심으로 애석하다는 얼굴을 했다.

잘 보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갑고 조급해지기만 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드러나는 유린의 성격이나 말투, 표정 변화들까지 예뻤다.

페트를 빠져들게 만드는 콩깍지가 제대로 씌워지고 만 것이다.

인페르노 던전의 깊은곳으로 들어가면서 용암의 강도 두번이나 건넜다.

혼돈의 전사들과 인페르노 나이트 부대들과도 계속 전투를 했고, 화산 폭발도 경험했다.

지골라스의 화산 폭발을 지하에서 겪는 것은 또 새로운 묘미였다.

안전한 지역에 숨어 있으면 통로 전체가 놀이 기구라도 타는 것처럼 뒤흔들렸다.

"크에에엑!"

언데드와 누렁이, 금인이 들이 이곳저곳으로 나가떨어진다.

위드와 서윤도 벽에 달라붙어서 간신히 버텼다.

"흙꾼 소환. 언데드들과 부하들 그리고 내 몸을 감싸라."

흙꾼이 잡아 준 덕분에 계속 부딪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통로의 벽에 부딪친다고 해도 죽을 만큼 생멱력이 깎여 나가지는 않았지만,

다른 장소로 내동댕이 치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페르노 던전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모았다.

오랜 세월의 지각 변동으로 인해 내부에 공동들이 만들어지고 동료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지골라스의 많은 던전들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나서 몬스터들이 서식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만들어졋다.

인페르노 던전에도 주요 통로들이 있었지만, 상당수가 화산이 폭발할 때의 압력에 의해서 변형되어 길이 좁아지거나 새로 열리고 또 아예 막혀 버리기도 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흐르는 길이 된다는 점!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나온 용암이 무서운 기세로 통로들을 내달린다.

위드가 있는 안전지대에도 작은 틈이 있었는데, 그곳이 붉게 변했다.

공기도 달아오르면서 찜통처럼 변했다.

초반엔 무섭기 그지없지만 계속 겪다 보니 여유도 부렸다.

"오늘 폭발했으니 한 사나흘은 조용하겠군."

잠깐만 참으면 마음 편히 탐험을 할 수 있다.

화산이 폭발할 조짐이 보여서 애매하게 기다리는 것보다는 긍정적이었다.

금방 적응하고 편하게 조각품이나 깎을 수 있는 위드의 무신경함!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난 절대 세금을 내지 말아야지."

뜨거운 용암이 지나고 나면 탐험의 속도가 굉장히 증가했다.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언데드들과 함께 전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중간에 만나는 혼돈의 전사들과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사냥하면서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혼돈의 전사들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했다.

"쿠비챠가 나의 복수를 헤 줄 것이다."

"똑똑한 쿠비챠가 힘을 얻기만 하면 너희는 죽은 목숨이다."

위드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말할 것 같으냐?" 절대 이야기하지 않겠다."

혼돈의 전사들은 사로잡힌 후에도 자존심을 지키며 정보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토리도, 피 빨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죽여라!"

고문을 해도 꿋꿋하게 비밀을 지키는 혼돈의 전사들이었다.

위드가 잠시 눈치를 보다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너희가 이렇게 입을 다무니까 쿠비챠가 드래곤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혼돈의 전사라는 사실을 절대로 알 수가 없겠군."

"허억, 그걸 어떻게……."

"진짜였군."

눈치껏 찔러본 것인데 대충 맞았다.

사실 던전으로 들어와서도 며칠을 사냥하면서 헤매고 있었다.

통로들이 계속 복잡하게 바뀌거나, 막다른 길에 도달해서 왔던 길을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한참을 왔으니 어느 정도는 목표에 가까이 왔을 거란 추측을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드래곤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왜 마법진에 가지 못했지?"

"……."

혼돈의 전사들은 또 입을 다물었다.

"쿠비챠가 성장해서 다 큰 혼돈의 전사가 되었겠군. 드래곤의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상대할 수 있는 다른 전사들이 없었을 테고."

"……!"

혼돈의 전사들의 얼굴에 감추지 못할 경악이 떠올랐다.

서윤이나 조각 생명체들도 갑자기 엄청나게 명석한 두뇌를 보여 주는 위드에 대해서 굉장히 놀라워했다.

"그때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는데… 쿠비챠는 너희 부족의 장로가 됬나?"

그러자 혼돈의 전사들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위드가 말을 바꾸었다.

"아니, 대전사가 되었을 거야. 혼돈의 전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대전사!"

"……!"

"그리고 너희는 이 던전에서 인페르노 나이트들과 생존을 다투고 있다. 지금까지

마법진에 가지 못했던 이유는 인페르노 나이트들의 거처가 그곳이기 때문이고."

"……!"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는 이유도 상대의 영역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닌가? 인페르노

나이트들은 번식력이 뛰어난 너희를 견제할 테고, 너희는 마법진으로 가기 위해서

놈들을 죽여야 했겠지!"

혼돈의 전사들은 입이 무거워서 떠벌렸을 리가 없는데, 어느 배신자가 다 말해 주었지?"

위드가 간단히 설명해 줄 뿐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드라마만 열심히 봐도 이 정도는 다 맞힐 수 있어."

"……."

대한민국 시청자의 위대함!

할머니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죽일 놈. 살릴 놈을 몇번씩 하다 보면 보통의 스토리라인에 대해서는 꿰어 맞추는 재주가 생긴다.

드라마의 1편만 보고도 전체적인 분위기와 죽일 놈, 살릴 놈을 찾아내던 추리력이 동원된 것이다.

"어쨋든 그 쿠비챠가 힘을 얻기 전에 도착해야겠군."

"이미 늦었을 것이다."

"어째서?"

"화산이 폭발하고 나서 그들에게 곧바로 가는 길이 열렸다. 쿠비챠가 이끄는 강인한

혼돈의 전사들은 마법진에 도착 할 수 있을 것이다."

띠링!

-퀘스트와 관련된 정보를 입수하셨습니다.

위드의 앞에 영상이 흘러나왔다.

넓은 공동이었다.

한구석에는 용암 호수가 부글부글 끓고 있고,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대규모로 몰려서

살고 있는 거주지!

중심부에는 마법진이 그려진 제단이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붉은 마나가 모여서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쿠비챠가 쳐들어왔다."

"혼돈의 전사들을 물리치고 우리의 성지를 지켜라."

인페르노 나이트들과 혼돈의 전사들의 전투!

양측 모두 최소 500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여 전투가 치러지고 있었다.

도끼가 아니라 붉은 검을 들고 있는 혼돈의 전사가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지푸라기처럼 쓰러졌다.

혼돈의 전사들이 숫자도 1.5배는 더 많았으니 전투의 승리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엄청난 박력이 흐르는 두 종족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레드 스타의 회수 퀘스트에 중대한 분위기가 발생했습니다.

목표 : 혼돈의 전사들을 막아라.

쿠비챠가 임벌이 만든 마법진에 모인 힘까지 흡수하게 된다면 지골라스에서

혼돈의 전사들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없게 될 것이다.

인페르노 나이트들과 함께 쿠비챠에게 맞서 싸우라.

눈을 감고 4초가 지나면 인페르노 대공동의 상황을 볼 수 있다.

쿠비챠가 마법진의 마나를 흡수해서 변이에 성공하면 퀘스트 실패.』

위드의 악명을 여전히 7,500이 넘었고, 살인자의 상태였다. 이마에 붉은색으로

새겨진 이름 옆에 크고 작은 동그라미들이 겹쳐 있는 문양이 떠올랐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의 문양!

서윤과 조각 생명체, 언데드들에게도 같은 문양이 떠올랐다.

퀘스트를 주도적으로 하는 것은 위드였지만, 파티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인페르노의 문양이 새겨졌습니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의 공격을 받지 않습니다.

위드는 눈을 감은 채 전투 상황을 지켜보았다.

쿠비챠의 놀라운 활약.

레드 스타를 휘두르면 불덩어리들이 적을 향해 날아갔다.

상급 화염 마법도 자유로이 시전했다.

소멸 주문, 넓은 범위 폭발, 불화살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는 레드 스타!

쿠비챠의 지휘 아래 혼돈의 전사들이 기세등등하게 몰아 붙이고 있었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버티고는 있었지만, 3~4시간도 끌기 무리일 것 같았다.

일대일에서는 훨씬 강하지 못했다면 벌써 밀려 버리고 말았으리라.

"으흠, 남은 시간이 별로 없군. 화돌이,흙꾼 소환."

"아직도 시킬 일이 있습니까, 주인님?"

"요즘 들어 자주 부려 먹으시는 것 같군요."

불만들을 끝까지 들어 줄 새도 없이 명령했다.

"화돌이는 불의 기운들이 크게 싸우고 있는 장소를 찾아라. 흙꾼이는 그곳까지 가는 지름길을 찾아내."

"우리에게 그 정도야 쉬운 일이지요."

화돌이와 흙꾼은 금방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큰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곳까지는 달려서 30분정도면 됩니다. 제가 앞에서 인도하겠습니다."

시간이 금!

30분이라면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더 밀려서 돌이킬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양측 모두 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싸움을 하더라도 중간 중간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법진까지 뚫리는 것을 3~4시간 정도로 보았지만, 정확하지는 않을뿐더러 상황이 악화되면 도착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빨리 가자!"

위드와 서윤 그리고 부하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포로로 잡았던 혼돈이 전사들의 목숨을 끊고 잡템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다다다닥!

위드는 서윤과 부하들과 함께 요란하게 달렸다.

혼돈의 전사들이나 인페르노 나이트들이나 모조리 싸움에 동원된 듯, 중간에 마주치지 않았다.

위드는 달리는 와중에도 잠깐씩 눈을 감으면서 전황을 확인했다.

"힘들겠군."

쿠비챠와 혼돈의 전사들이 너무 강력했다.

"종족은 완전히 다르지만 리치 샤이어보다 강한 것은 물론이고 바르칸 정도의 수준으로 봐야 할 것 같아."

쿠비챠는 굉장한 전사였다.

전장의 선두에 서서 무한에 가까운 체력과 무지막지한 힘으로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대전사라는 이름이 걸맞을 정도의 강자!

레드 스타의 힘으로 화염 마법까지 쓰는데, 저항력이 높은 인페르노 나이트들도 쉽게 대적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착하기 전에 미리 해야 할 게 있겠어."

위드는 잠깐 멈춰서 신비의 새를 꺼냈다.

그러자 곧 벌어질 일을 짐작한 듯 황금새가 날개를 파닥이면서 기뻐했다.

"게이하르 아르펜 황제가 만든 조각품이여, 숭고한 예술혼으로 만들어진 너에게 내 생명을 나누어 주노니, 이제 그 오랜 잠에서 깨어나 나와 함께하라. 조각품에 생명 부여!"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조각품의 능력은 현재 설정된 예술 스탯 1,889에 따라 레벨에 맞춰 447로 변환됩니다.

역사적인 보물, 아르펜 제국의 상징물, 조각술 마스터 게이하르 황제의 작품의 효과로

인해서 35%의 레벨이 추가되어 603으로 늘어납니다.

하늘을 날 수 있기 때문에 레벨의 10%가 패널티로 줄어듭니다.

조인족으로의 변신이 가능하여 레벨의 10%가 패널티로 줄어듭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조각품의 내구도가 감소하여 레벨의 7%가 패널티로 줄어듭니다.

생명체에 세 가지의 속성이 부여됩니다.

조각품의 모양과 수준에 따라 부여되는 속성의 수준과 능력치가 다릅니다.

보석의 속성(100%), 바람의 속성(100%), 예술의 속성(100%)

보석의 속성은 특별한 카리스마와 정치적인 영향력 증대를 가져올 것입닌다.

바람의 속성은 하늘을 날 때에 매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예술의 속성으로 인하여 조각품과 미술품을 좋아하고 작품들의

효과를 150%로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 전체에게 해당됩니다.

역사적인 보물이기 때문에 남다른 위엄과 기품을 가집니다.

조각술 마스터 게이하르 황제의 작품이기 때문에 특별한 생명력과 마나의 추가가

이루어집니다. 조각술 마스터의 추가적인 효과는 생명을 부여한 이의

재주가 부족하여 적용되지 않습니다.

아르펜 제국의 상징물이었던 조각품이기에 특수한 능력이 부여됩니다.

공성전에서 수비 측에 유리한 신비한 안개를 소환합니다.

병사들에 대한 지휘 능력을 강화하고, 정찰력을 향상시킵니다.

마나가 5,000 사용되었습니다.

스킬의 효율이 증가해서 생명을 부여할 때 소모되는 레벨과 스탯의 양이 20% 감소합니다.

예술 스텟이 6,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은 조각품이나

다른 예술과 관련된 활동을 통해 보충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1 하락합니다. 레벨 하락에 따라서 보유하고 있는 스탯이 5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은 레벨을 올리게 되면 다시 부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부여된 조각품을 소중히 다루어 주십시오. 목숨을 잃으면 다시 생명을 부여해야 합니다.

완전히 파괴되었을 경우는 되살릴 수 없습니다.』



수백 년을 황궁의 장식품으로 황제의 위엄을 널리 퍼트렸던 신비의 새.

미스릴과 백금으로 된 조각품에 생명이 부여되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루루루루.

신비의 새가 눈을 깜박이더니 금인이와 누렁이 들과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위드와 서윤을 번갈아 보았다.

갓 태어난 새끼 새가 어미를 찾는 듯한 그런 느낌으로!

위드가 이야기했다.

"내가 너에게 생명을 준 아빠다."

예쁜 보석 눈동자 가득 위드를 담은 신비의 새는 아장아장 걸어와서 말했다.

황금새와는 달리, 새의 상태에서도 부리를 달싹여서 말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 저의 이름을 정해 주세요."

"이름이라, 이름."

위드는 신비의 새의 몸을 훑어보다가 떠오르는 이름을 이야기했다.

"은새라고 하자."

어감은 좋았지만 만들어진 과정에서는 누렁이나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이름.

"은새라니 예쁘고 좋은 이름이군요. 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러면서 서윤의 어깨로 냉큼 가 버리는 은새였다.

위드가 생명을 부여해 주기는 했지만 서윤 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는 듯!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영락없는 여자아이였다.

"어쨌든 이제 가자!"

위드는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서 다시 출발했다.

"이쪽입니다."

흙꾼이 앞에서 안내를 맡아서, 갈림길이 나왔을 때에도 망설이지 않고 뛰었다.

그리하여 25분 후에 목적지에 도착!

넓은 공동에서 혼돈의 전사들과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대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굉음과 폭발음 그리고 화염이 치솟고 있는 전장.

위드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서윤이나 조각 생명체들은 이곳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도 몰랐다.

쿠비챠는 레드 스타를 들고 엄청난 활동력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의 지휘 아래 혼돈의 전사들이 조직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위드가 아까 3~4시간 정도는 버틸 거라고 계산했지만,

인페르노 나이트가 확연하게 밀리고 있었다.

세력전에서는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잠깐 사이에 몰락해 버리고 만다.

"크흠."

위드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이었다.

용암 호수에서 불의 거인들이 걸어 나왔다.

"내 잠을 깨우는 놈들은 죽어야 하리라."

"지골라스의 평온을 깨뜨리는 시끄러운 종족들은 우리의 분노를 받아야 한다."

다섯이나 되는 불의 거인들이 대검을 휘두르면서 난입!

인페르노 나이트와 혼돈의 전사를 가리지 않고 베어 버렸다.

게다가 바오반트들도 대거 등장했다.

불덩어리를 쏘면서 전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인페르노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이 전부 한곳에 모인 것 같은 난장판이다.

위드는 숫자를 헤아려 봤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은 300명이 조금 넘는 것 같군. 방금 2명이 죽었고……. 혼돈의 전사들은 계속 추가되어서 인페르노 나이트보다 족히 2배는 되는 것 같아. 여기에 범접할 수 없는 대상인 불의 거인들과 바오반트들이라!"

직접 보고 나니 기기 질릴 정도의 전투 상황이었다.

누렁이는 공포에 질려서 숨으려도 들었다. 금인이는 그래도 싸울 의지를 가졌다.

"골골골, 오늘 장렬히 싸우다가 죽겠구나."

죽음을 떠올리고 있는 부하들!

서윤은 담담하게 위드를 보고 있었다. 퀘스트를 위해서 이곳에 온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 결정을 따르겠다는 얼굴이다.

S급 난이도의 퀘스트를 하면서 이곳까지 오느라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위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8. 지골라스 종족 전쟁



"싸운다."

마침내 위드는 결정했다.

황금새와 은새는 둘이 비슷하게 위드를 무시하고 있었다.

인간이고, 레벨도 자신들보다 낮았기 때문에 제대로 주인대접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위드가 싸우겠다고 하니 짤막하게 기분을 표현했다.

"자살이군."

"죽는 방법을 결정하셨군요."

조금도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위드!

"너희는 나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지. 하지만 내 부하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토리도와 반 호크에게 시선을 돌렸더니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주인을 잘못 만나서.'

'내가 어쩌다가 저 인간을 또 만나게 되었을까.'

끝없는 후회에 빠져 있는 부하들.

누렁이와 금인이는 공포에 질려 있었고, 서윤만이 변함 없는 표정이었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빛을 발하는 서윤의 외모.

위드는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려 전장을 보았다.

"싸우기로 했지만 일단은 여기서 기다린다."

인페르노 나이트들과만 싸우던 쿠비챠와 혼돈의 전사들의 전력이 분산되었다.

불의 거인에게도 떼로 덤벼들어 싸워야 했고, 바오반트들도 퇴치해야 했다.

겨우 한숨을 돌리는 것 같은 인페르노 나이트들이었지만, 불의 거인이나 바오반트의 공격은 그들에게도 향했다.

던전 내부의 지배권을 두고 각 종족들이 죽을힘을 다해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불의 거인이 힘을 쓸 때마다 던전 전체가 흔들렸고, 바오반트들이 쏘아 낸 화염들이 중첩되어 바위마저 녹을 지경이다.

위드나 언데드, 부하들이 가세한다고 하더라도 전황에 마땅히 영향을 미치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언데드들도 강화되었고 황금새, 은새도 있다지만 혼돈의 전사들이 열다섯만

되더라도 상당히 버거울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런데 적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내 지휘를 과연 따를까? 설혹 따른다고 해도 혼돈의 전사들과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는데."

고급 네크로맨서 스킬이라면 어떤 가능성이 열릴지도 모르겠지만 위드가 제작하는 언데드들은 혼돈의 전사들에 의해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소멸되리라.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종족 전쟁에서 최종 승리자로 이끌기란 정말 버거운 일이 될 것이다.

이래저래 눈치만 보는 사이 빠르게 30여분이 흘렀다.

혼돈의 전사들은 100명 정도 줄어들었지만, 원군이 50여명이나 새로 도착했다.

그런데 그사이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70명 정도나 죽었다.

멀리서 봐도 규모가 많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고!"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위드의 지골라스에서의 모험이 시작된 이후로 KMC미디어에서는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음향과 영상, 편집을 위한 작업 팀이 남아 있었지만, 전혀 무관한 총무부, 인사부, 시사교양부의 직원들도 방송국에 남았다.

그들을 남게 만든 것은 위드의 모험을 당장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였다.

따뜻한 커피와 무릎 담요만 있으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직원들.

만의 하나 위드의 퀘스트가 실패한다면 베르사 대륙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모른다.

따라서 그만큼 모든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로열로드의 인기는 이제 남녀노소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죽여! 죽여 버려!"

"부숴!"

"아이템! 방금 무슨 아이템이 떨어진 것 같아요."

"대박이다!"

편성국의 마스코트로 불리던 예쁜 여직원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 정도는 영상실에서는 예사가 되었다.

본능에 따라서 고함을 치면서 응원을 할 수 있는 공간.

화면을 보고 있을 뿐이지만 로열 로드는 직접 모험을 하는 것만큼 생생했다.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4배나 되는 시간차이로 인해서 이동이나 식사, 휴식같은 부분을

건너뛰고 보면 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이 몰입하기 좋았다.

생중계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야깃거리가 많은 편.

더구나 위드의 모험은 빼야 될 부분이 별로 없다.

지골라스에서는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다거나 땅이 갈라지는 재난이 많아서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아, 도대체 위드는 왜 싸우지를 않는 거야?"

강 부장이나 직원들도 속이 타는 건 마찬가지였다.

S급 난이도의 마지막 임무. 이것만 수행한다면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의뢰가 완수된다.

시청자들이 실망할 것 같아서 방속 자체도 고민하게 만들었던 의뢰.

KMC미디어에서도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역경을 뚫고 드디어 마지막 관문에 이르렀다.

위드가 아니라면 그 누가 있어 이 모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

"으으, 빨리 싸워야 되는데."

강 부장이 답답함에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여직원이 말했다.

"포기한 것 같아요."

"포기라니?"

강 부장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위드가 여기까지 와서 포기를 해? 이 전투만 승리하면 엄청난 대가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지금 포기할 리가 있을까."

"하지만 이길 수가 없잖아요. 못 이길 전투는 포기하는 게 상책이죠."

"그야 그렇긴 하지만……."

강 부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응원하고 있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절망적인 상황!

혼돈의 전사들이나 불의 거인이나 인페르노 나이트들이나, 영락없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아니겠는가.

"살기 위해서는 퀘스트를 포기하고 돌아 나오는 게 나을거예요."

유치원생에게 물어보더라도 이쪽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강 부장이나 KMC미디어의 직원들도 위드가 아니라면 이토록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영상을 보지도 않았으리라.

'퀘스트가 너무 어렵네. 그냥 포기하고 다른 퀘스트를 받겠지.'

도전해 보고, 아닌 것 같으면 포기하는 건 흔하고 일반적인 일이었다.

다만 지금은 모험을 하는 당사자가 위드이기 때문에 끝까지 보게 되는 것이리라.

위드는 언제나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 냈으니까!

위드는 전장의 움직임들을 눈에 담으면서 끊임없이 계산했다. 견적을 뽑아내는 일을 쉬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야.'

쿠비챠가 통솔하는 혼돈의 전사들은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하나씩 죽여 나갔다.

불의 거인들은 여전히 왕성하게 날뛰고 있었지만 들고 있는 대검은 금이 가서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용암 호수에 있던 바오반트들은 불의 거인들에게 밟히고 천장이 무너져서 떼죽음을 당했다.

대혼란의 와중, 아수라장에서도 위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쿠비챠는 가지고 있는 전투 스킬이 상당히 다양한 편이었다.

전투중에 도끼를 하나 줍더니, 양손에 다른 무기를 휘둘렀다.

일곱 번의 연속 도끼질.

도끼의 궤적이 허공에 그려지더니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차례로 강타했다.

"불의 진노!"

드래곤의 검 레드 스타의 힘으로 화염 계열 마법도 사용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서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막더라도 방패가 푹푹 팰 정도였다.

쿠비챠는 불의 거인마저도 쓰러뜨렸다. 도끼와 검을 수십 번이나 번갈아 가면서 빠르게 공격해 버린 것이다.

"크오어어어어!"

불의 거인이 쓰러지는 순간, 혼돈의 전사들은 함성을 지르더니 일제히 몰려들이서 공격했다.

불의 거인은 이리저리 구르면서 괴로워하다가 사망!

드디어 불의 거인도 1명이 죽었고, 임벌의 마법진을 지키는 인페르노 나이트들도 처음의 절반도 남지 않았다.

다른 불의 거인들이 더욱 맹렬히 날뛰고, 인페르노 나이트들도 결사 항전을 위해 검과 방패를 들고 고함을 쳤다.

임벌의 마법진에 있는 힘까지 갖게 되면 쿠비챠는 대적하기 힘든 몬스터로 재탄생하게 되리라.

위드는 그럼에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꾹 참았다.

'아직…때가 아니야.'

기다리면서 은행털이를 준비하는 도둑처럼, 집중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불바다에, 1,000마리 이상의 화염 계열 몬스터들이 전투를 펼치는 아수라장에서 빈틈을 노린다.

그리고 한참 후, 쿠비챠가 두 번째 불의 거인을 혼자서 죽인 직후였다.

시간이 더 지나면 혼돈의 전사들이 더 많이 남게 되어서 감당할 수 없게 되리라.

"지금이다."

드디어 위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렁이, 금인이 너희는 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이곳에서 쉬고 있어라.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면 도망쳐."

"알았다, 골골골!"

"모든 언데드들은 나의 뜻을 따르라. 언데드 통솔!"

네크로맨서 스킬!

인형놀이를 하는 것처럼 언데드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장악하고 통솔할 수 있었다.

1시간 넘게 묵묵히 기다렸지만 전투의 개입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블링크!"

도끼를 든 카오스 워리어들이 내달렸다.

공중을 뛰어가는 것처럼 거듭 순간 이동을 하면서 쿠비챠와 몇 안 되는 그의 호위대를 향해 접근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위드는 불의 거인의 목숨이 끊어지는 때에 마법을 외웠다.

"시체 폭발!"

방금 죽은 불의 거인의 시체가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폭발했다.

"크아악!"

쿠비챠가 타격을 입고, 근처에 있던 혼돈의 전사 호위대들도 나뒹굴었다.

『-시체 폭발 마법의 숙련도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불의 거인의 적대도가 55%증가합니다.』

메시지 창을 읽을 사이도 없었다.

위드느 쿠비챠가 있는 지역으로 저주 마법들을 연거푸 시전했다. 삼분의 이 정도는 저항력으로 이겨 냈지만, 편협한 시야를 비롯하여 3개 정도는 걸렸다.

화염과 연기가 걷히기도 전에 쿠비챠에게 도달한 카오스 워리어들이 도끼질을 가했다.

"쿠오오!"

언데드들의 일제 공격!

다른 혼돈의 전사들이 개입하기 전에 언데드들이 호위대를 물리치고 총공격을 가했다.

땅을 구르며 반격하는 쿠비챠의 검에 베여서 완전히 타버리는 언데드도 있었지만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공격에 투입했다.

위드가 언데드들을 지휘하며 급히 말했다.

"황금새, 넌 나를 데리고 날아라. 은새, 너도 같이 쿠비챠에게 가자. 토리도, 반 호크, 너희는 뒤를 따라와."

"알았다.""

황금새는 위드의 어깨를 양발로 거머쥔 뒤에 전투 지역으로 날아갔다.

불의 거인들의 다리 사이, 공중으로 순간 이동해서 잡으려는 혼돈의 전사들을 피해서 날아가는 절묘한 비행!

토리도도 검은 망토를 펼치고 반 호크와 함께 뒤를 쫓아서 날았다.

"날 내려놔라!"

이런 말은 뜸들이지 않고 듣는 황금새는 쿠비챠의 10여미터 위에서 발톱을 풀었다.

위드는 연기와 화염을 뚫고 추락해서 쿠비챠의 등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언데드들의 이목 끌기와 난전, 저주 마법 등으로 만든 틈을 타 등에 달라붙은 것이다.

하지만 쿠비챠는 위드가 등에 매달린 것을 느끼고 남달리 긴 팔을 이용해 뒤쪽으로 도끼를 휘둘러 왔다.

"젠장! 본 쉴드 소환, 눈 질끈 감기!"

믿을 것은 맷집밖에 없었다.

뼈로 된 방패들을 차례로 뚫고 날아온 도끼가 위드를 강타했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엄청난 충격!

『막중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명력이 38,900 감소합니다.

완전한 회복이나 치유가 이루어질 때까지 최대 생명력 2,590 줄어듭니다.

7초 동안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며 균형 감각을 상실합니다.

위드는 해롱거리는 와중에도 쿠비챠를 붙잡고 버텼다.

거인형의 쿠비챠의 머리를 잡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했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말 그대로 개죽음이다.

쿠비챠에게 죽음을 당할 수도 있지만 불의 거인에게 밟혀 죽을 수도 있고,

바오반트들이 불러 놓은 화염 속을 구르다가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죽음들이 형태를 달리하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위드도 필사적이었다.

7초가 이렇게 길게 느껴졌던 적도 없다.

쿠비챠가 엄청나게 빠르고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언데드들을 해치우면서 도끼를 찍고 검을 위두르고 방향을 전환할 때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무작정 붙잡고 늘어졌다.

물귀신보다 더한 의지가 도움이 되었던지, 간신히 7초를 버티는 데 성공!

위드의 시야와 균형 감각 등이 원래대로 돌아 왔다.

그가 지금까지 잡고 있었던 것은 쿠비챠의 투구 부분이었다.

위드는 투구를 놓아 버리고 등에 매달렸다.

"라이프 드레인, 마나 드레인!"

리치로서 근접 거리에서 할 수 있는 대단히 유용한 스킬이었지만

미친 짓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초고레벨 몬스터, 드래곤의 검을 들고 있는 혼돈의 대전사의 등에 매달려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할 생각을 하다니!

"비겁하고 짜증 나는 해골, 죽지 않았구나!"

쿠비챠는 언데드들과 싸우느라 바빠서 신경을 쓰지 못할 뿐이었다.

언데드들을 정리하자마자 어디 도망칠 곳도 없이 위드는 금세 목숨이 경각에 처하게 될 것이다.

쿠비챠의 널찍한 등을 붙잡는 것은 썩은 동아줄을 붙잡는 것보다도 위험한 짓!

위드도 등에 업히기는 했지만 다크 스피어를 소환해서 공격할 여유는 없었다.

"키야오!"

쿠비챠가 성난 고함을 지르면서 공격할 때마다 줄어드는 언데드들!

어깨에 올라타지 않고 등에 업히더라도 편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쿠비챠가 활동할 때마다 억지로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 잠깐의 틈만 생겨도

도끼를 머리 뒤로 돌려서 쳤는데, 이리저리 움직여서 피해야 했다.

성난 코뿔소에 달라붙은 매미 꼴!

대혼전에서 쿠비챠의 등에 업힌 것은 피부의 솜털을 다 곤두서게 할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행동이었다.

실제로 불을 끌어안은 것처럼 매우 뜨겁기도 했다.

"블링크!"

코비챠가 순간 이동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위드가 등에 업힌 채로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귀찮은 해골! 너부터 죽여야겠다. 감히 나 쿠비챠의 등에 올라타다니!"

쿠비챠가 작정하고 죽이려고 한다면 몇 번 피하기는 하겠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처지였다.

그때 연기 사이로 황금새와 은새가 보였다.

조인족의 형태로 변신을 하고, 검과 창을 들고 있었다.

공중에서 선회하면서 최대한의 가속력을 얻은 뒤에 쿠비챠를 향해 무기를 투척!

빛살쳐럼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공격.

위드가 노리던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상황이 안 좋았다.

쿠비챠도 그것을 보고 정면에 있는 언데드들 사이로 뛰어들어 회피하려 들었다.

몇 대 얻어 맞더라고 그편이 훨씬 피하가 적을 것 같다는 계산에서 이리라.

위드가 큰 소리로 명령했다.

"언데드들은 돌진해라!"

카오스 워리어들이 몸으로 부딪쳐서 저지했지만, 쿠비챠는 괴물 같은 힘으로

움직여 정면에서 맞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어깨와 옆구리에 꽂힌 창과 검.

"상태 확인!"

위드는 네크로맨서 스킬로 쿠비챠의 상태를 확인했다.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

지골라스의 보스급 몬스터 중 하나.

어린 시절 우연히 드래곤의 검을 획득했다. 그 후로 지골라스에서 무수히 많은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고 혼돈의 대전사가 되었다. 더 큰 힘과, 지배권을 가지려는 야욕을 불태우고 있다.

*드래곤의 검 레드 스타에 봉인된 마법들의 일부를 사용한다.

불의 기운이 강한 곳에서 생명력을 회복하는 속도가 최대 3배까지 오른다.

*편협한 시야, 무가치한 죽음, 피곤한 착각 등의 저주 마법에 걸려 있음.

*심한 부상으로 인해 전투 능력이 다소 떨어져 있다.

생명력 : 21% 마나 : 9%』

혼돈의 전사들을 이끌고 족히 1시간은 싸우고, 불의 거인을 둘이나 쓰러뜨렸다.

시체 폭발에, 언데드, 토리도, 반 호크, 황금새, 은새의 협공까지 받았는데도 무려 21%나 되는 생명력이 남았다.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단숨에 죽여야 하지만

까다롭기 그지없는 혼돈의 전사들을 이끄는 보스급 몬스터!

쿠비챠가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렀다.

"쿠오오오오오! 나를 공격하는 적들이 잇다. 전사들이여, 이곳으로 오라!"

그러자 혼돈의 전사들이 반응했다.

"대전사님이 위험하다."

"새로 등장한 적을 죽여라!"

인페르노 나이트와 불의 거인 들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순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는 몬스터들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쿠비챠를 잡으려면 한참은 더 때려야 되고, 그것도 장담하지 못할 처지에 혼돈의 전사들이 개입한다면 일이 완전히 틀어지게 되리라.

위드는 이런 상황도 미리 염두에 두었다.

"최악에서 두 번째로 나쁜 상황이로군. 시체 폭발!"

처음에 사망했던 불의 거인이 시체를 폭발시켰다.

던전 안이 뒤흔들릴 정도로 큰 충격파에 연기와 화염이 일대를 휩쓸었다.

-시체 폭발 마법의 스킬 레벨이 1 단계 올랐습니다.

불의 거인의 적대도가 최대치가 됩니다.

적대도를 낮추는 아이템의 효과가 약화됩니다.

불의 거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위드가 있는 장소에까지 불의 거인의 파편들이 날아왔다.

그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었기에 혼돈의 전사들도 여섯이나 죽었다.

그리고 많은 적들이 땅에 나뒹굴고 쓰러졌다.

약간의 시간을 번 것에 불과했으니 그들을 처리할 여유는 없었다.

토리도와 반 호크는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고 여기고 공격을 몰아쳤다.

위드도 언데드들을 조종하여 상처 입은 쿠비챠를 괴롭히고, 공중에서는 황금새와 은새가 협공을 했다.

"내려찍기!"

황금새와 은새는 매우 빠른 속도로 내려와서 할퀴고 올라가면서 피해를 주었다.

"다른 전사들이 없으면 내가 너희에게 죽어 줄 것 같으냐?

인페르노 나이트의 개들! 죽어서 갈 곳도 없는 언데드들에게 당할 내가 아니다."

쿠비챠는 언데드들이 치고 빠질 때마다 도끼로 반격을 했다.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언데드들.

카오스 워리어들이 불과 일곱밖에 남지 않았다.

"바람의 결박!"

쿠비챠를 중심으로 심한 바람이 불었다. 언데드들이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고 반 호크의 퇴로를 막았다.

"크흐흐흐, 죽여 주마!"

반 호크를 바람으로 가두어 놓더니 일대일의 승부를 벌였다.

쿠비챠가 엄청난 속도로 내려치는 도끼질. 반 호크는 수비에 전념했지만 힘에서 밀렸다.

결국 쿠비챠는 반 호크의 자세를 무너뜨리더니 검으로 베어 버렸다.

"크…으윽."

숱한 전투를 함께했던 반 호크의 죽음.

육체와 영혼이 흑마법에 의해서 목걸이에 봉인되어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소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죽어 버리다니, 전력의 큰 부분이 비어 버리고 말았다.

이때까지 쿠비챠의 줄어든 생명력은 겨우 3%에 불과했다.

'역시 안 되나.'

위드는 승산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최선을 다해 보더라도 쿠비챠의 남은 생명력도 많고, 레벨이나 방어력이 높아서 금방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다.

'늦기 전에 황금새와 은새라도 살려야겠다.'

위드 자신은 도망도 칠 수없는 신세였으니 죽음을 각오하고, 황금새와 은새라도 이 틈을 타서 피하라고 지시하려던 무렵.

불의 거인의 폭발로 생긴 자욱한 연기를 뚫고 서윤이 뛰쳐나왔다.

검에는 선명하게 붉은 기운이 덧씌워져 있었다.

생명력과 마나를 태우면서 쿠비챠에게 유성우 같은 공격을 퍼부었다.

일체의 방어도 없는 공격 일변도였다.

KMC미디어의 영상실에서는 바쁘게 작업을 했다.

"이건 잘라 버려. 저 화면은 몬스터들이 많이 비치는 방향이 좋겠어.

그리고 용암으로 인해서 시야가 너무 밝잖아."

"밝기를 좀 낮출까요?"

"용암 부위만 조금 어둡게 가자고. 시청자들의 눈이 아플 정도가 되면 안 되니까."

위드의 전투로부터 전송되는 영상의 분량이 어마어마했다.

KMC미디어에서도 약간의 시간적인 여유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린펠트가 이끄는 하벤 왕국의 제2함대와 그리피스의 해적들이 지골라스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지골라스의 화산들이 폭발하고 나더니 혼돈의 전사들이 어딘가로 향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나왔다.

"대전사 쿠비챠 님이 종족 전쟁을 벌이셨다."

"지골라스의 지배 종족을 결정하는 자리. 이번에야말로 불의 거인족과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물리칠 것이다."

그런 후에 지골라스의 지하에서 커다란 폭발이 두 차례 일어났다.

지골라스의 하늘로 구름들이 모여들었다.

"해골이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

"더 많은 동족들을 모아라!"

"누구도 쿠비챠 님을 막지 못할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위드가 퀘스트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CTS미디어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KMC미디어의 게시판에 몰려들면서 방송 요청을 했다.

인터넷상에서는 위드의 퀘스트가 진행 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강 부장이 판단하기에도 이제 드린펠트나 그리피스가 알더라고 방해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문제는 퀘스트를 성공하느냐 못 하는냐인데……."

성공이든 실패든 퀘스트를 방송할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방송을 안 한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두고두고 시청자들의 비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벌써 위드의 특집 프로그램과 퀘스트에 대해 비밀 엄수를 조건으로 광고주들에게는 넌지시 알려 주었다.

평소에는 광고를 별로 하지 않던 기업들도 호의적으로 나왔다.

"우리 그룹의 계열사가 여러 개인데… 한 5개 정도 할 수 있지요?"

"몇 시간 정도로 편성할 예정입니까? 그리고 방송 날짜는 언제로? 새로 찍고 있는 광고가 있는데, 첫 번째로 내보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광고료가 높은 거야 이해합니다. 경쟁사는 절대 실어 주지 마시오."

광고 계약까지 마쳐 놓았으니 방송 시기만 저울질하던 와중이었다.

차근차근 인페르노 던전 탐험을 하다가 화산 폭발이 일어나더니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종족 전쟁으로 이어지고, 위드의 전투 참가!

그동안 고생해 온 여러 팀들이 전부 달라붙어서 막바지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1부부터 방송 시작해. 광고들은 중간 중간 넣을 테니까 오프닝에는 10개만 깔고."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미리 준비해 놓은 1부부터 생방송을 시작했다.

퀘스트의 나머지 부분은 동시 편집을 통해서 바로바로 만들어야 했다.

"맞았다!"

"아아아, 치명타는 아니네요."

"이런 아쉬울 데가!"

작업 팀이 고생을 하거나 말거나, 관계없는 방송국 직원들은 영상을 보기에 바빴다.

정득수 회장은 새마을 갱생병원의 차은희 박사가 보낸 보고서를 읽었다.

"많이 나아졌군. 기적 같은 일이야."

말을 영영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딸이 남들처럼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 어색해하고, 또 말을 하는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글을 써서 의사를 표현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정말 믿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차츰 말을 할 것으로…….

조금 더 기다려야겠지만 그쯤이야 못 기다릴 바도 아니다.

정득수 회장은 웃으면서 박 실장을 보았다.

"서윤과 친하게 지낸다는 그 남자애는 잘하고 있겠지?"

경호원들을 통해서 서윤에 관련된 정보들은 항상 듣고 있었다.

이현의 집에 방문을 했을 때부터 그와 관련된 것들은 빠짐없이 챙겼다.

"네, 물론입니다."

"싸우거나 상처 주는 일은 없고?"

"서윤 양과는 친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뒷조사도 지시해서, 직접 만나 보진 않았지만 이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고, 어릴 때부터 사채업자에 시달린 충격 때문인지 지독한 구두쇠에 돈을 밝힌다.

데이트 비용이 아까워서 여자관계도 깨끗하고, 성격적으로는 서윤과 비슷하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

상처가 많을수록 남을 두려워하기에, 정말 친해지지 않으면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으려고 한다.

검술을 배우는 것까지 알고 있었고, 집에 동물을 많이 키우지만 애완동물이라기보다는 식용을 위해서란 점까지 알았다.

서윤이 키우는 강아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던 수의사가 목줄에 적힌 글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몸보신

취미 활동은 없고, 집과 학교, 시장, 도장을 오가는 일정한 생활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서 알아낼 건 적었다.

특기 사항으로는 가상현실 세계 로열 로드에서 굉장한 인기인이라는 점이었다. 전신 위드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와 관련된 자료들은 방대하기 짝이 없고, 과장되거나 허황된 것들도 많았지만 상당수 믿기 힘든 놀라운 기록들이었다.

정득수 회장은 가볍게 휴가 차원에서 몇 번 로열 로드를 해 본 정도라서 위드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없었다.

"우리 서윤이를 위해서는 최상의 상대야."

"정말… 서윤 양과 계속 만나도록 허락할 생각이십니까?"

"말을 할 때까지는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우리 애가 말을 하게 되더라도 헤어지라고 강요해서 서윤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아."

정득수 회장은 서윤이 다시는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가 말까지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에도 둘이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외모, 재산, 집안. 모든 면에서 심하게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다.

"조사해 본 바로는 돈에 약하다고 하던데, 나에게는 은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 후하게 사례를 해 주면 되겠지. 평생 먹고살 정도의 돈을 주고 좋은 친구 정도로 남아 달라고 하면 알아들을 걸세."

9. 다시 일어난 위드

서윤의 유성우 같은 공격이 쿠비챠를 연달아 강타했다.

퍼버버버벅!

방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공격 스킬을 사용하기에 더없이 빠르고 강했다.

"크에에엑!"

쿠비챠는 정신없이 난타당하면서 계속 뒤로 물러났다.

쿠비챠를 마구 구타하면서 몰아치는 그녀!

물러나는 쿠비챠를 따라붙으면서 수십 차례의 스킬들을 연달아 터트렸다.

생명력과 체력이 다할 때까지 공격을 하는 광전사.

육체적인 피로도가 급격하게 증가할 테고 마나의 소모도 심각할 게 분명하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부드럽고 강한, 혼신의 힘을 다한 검술들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정면으로 발을 내디디면서 스킬들을 터트리는 서윤의 몸놀림은 이미 예사롭지 않은 수준이었다.

-스킬의 파괴 범위에 포함되었습니다.

생명력이 1,396 감소합니다.

쿠비챠의 등에 업혀 있던 위드도 마나가 담긴 공격에 의해서 연속 피해를 입었다.

쿠비챠가 연속 타격을 입으면서도 반격을 가하는 게 먼저일지 아니면 격하게 움직이는 서윤이 실수를 하거나 체력이 떨어지는 게 먼저일지로 판가름 나는 승부였다.

"라이프 드레인!"

위드는 생명력 흡수를 계속 시전하면서 쿠비챠의 등을 더욱 꼭 붙들고 매달렸다.

연속적으로 스킬을 난사하면서 쫓아오는 서윤이 심하게 무서웠던 것이다.

살인자의 상태로 인해 서윤의 이마에는 붉게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쿠비챠의 몸이 충격으로 흔들릴 때마다 위드까지 한꺼번에 베일 것처럼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서윤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쿠비챠도 균형을 잃고 연속 공격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다시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이여!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구나."

위드에게는 귀찮고 짜증 나고 비겁한 해골이라고 하더니, 대우가 달랐다.

혼돈의 대전사인 쿠비챠는 힘을 숭상하기 때문에 마법사들이나 언데드들은 혐오하는 편이었다.

위드의 경우에는 리치였고 악명도 매우 높았으니 몬스터에게도 욕을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

어쨌거나 쿠비챠가 공격을 당하면서도 말을 한다는 자체가 견딜 만하다는 뜻이다.

쿠비챠의 성격이라면 도끼로 상대를 공격하다가 드래곤의 검을 이용해 단숨에 죽여 버리려고 할 것이다.

'위험하다.'

위드가 경고를 해 주려고 할 때, 서윤의 검이 호선을 그으면서 휘둘렸다. 멈출 수 없는 연속 공격.

검이 지나간 자리에 핏빛 마나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뭔가를 준비하고 있군.'

폭풍처럼 공격을 몰아붙이면서도 더 큰 스킬을 준비하는 서윤이었다.

서윤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허공에 새겨져던 마나의 선들이 특수한 표식을 완성했다.

쿠비챠가 반격을 하려고 할 때에 서윤은 크게 검을 휘둘러 밀어 치더니 반발력을 이용해 훌쩍 뒤로 물러섰다.

"여전사여, 너의 용기는 칭찬하고 싶지만, 나에게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쿠비챠가 땅을 박차고 덤벼들려고 할 때였다.

허공에 새겨진 핏빛 마나들이 강기로 변하더니 한꺼번에 쿠비챠와 위드를 향해 쇄도했다.

핏빛 마나의 일제 습격이었다.

쉽게 보기 힘든 대스킬!

혼돈의 대전사인 쿠비챠조차도 두려움이 들었던지 잽싸게 검과 도끼를 앞으로 교차해서 막았다.

"키야아아아앗!"

쿠비챠가 함성을 질렀고, 위드도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찔리는 게 많았는데 이번 기회에 서윤이 자신까지 한꺼번에 정리를 하려는 줄로 알았던 것.

'이럴 줄 알았으면 유통기한 지난 재료들로 요리를 해 주지 않는 거였는데! 아니, 그래도 잡템 조금 더 챙긴 거랑, 몰래 훔쳐본 거, 조각품 만들었던 거 그리고 사냥할 때 빈사 상태의 몬스터들 가로챈 것밖에 없는데 너무 억울해!'

서윤의 최대의 공격력이 응축되어 있는 스킬이었다.

핏빛 마나의 형태로 수십 개의 스킬들이 한꺼번에 짓쳐 들어왔다.

"꽤애액!"

수비하던 쿠비챠의 몸이 스킬에 강타되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서윤이 만든 마나는 위치가 변한 쿠비챠의 뒤를 쫓아와서 부딪쳤다.

꽈과과과광!

쿠비챠가 이리저리 타격을 당하고 내팽개쳐질 때마다 위드도 함께였다.

좌우, 위아래로 쿠비챠와 함께 팽이처럼 도는 몸!

위드는 서윤의 전투 능력에 대해서 다시 평가했다.

'정말 강하다.'

최근에 토리도가 잠깐 함께했다고는 하지만, 숱한 싸움터들을 혼자 다닐 정도였으니 보통 강한 게 아니었다.

'요리도 못하고 조각품도 못 만들고, 그러니 싸움을 잘 하지.'

광전사의 특성상 전투에 있어서 머뭇거림이 없다고는 해도, 이런 위력의 연속 공격이라면

스킬의 레벨도 굉장히 높으리라.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서윤에게 두들겨 맞았겠는가!

쿠비챠의 몸이 나가떨어졌을 때에 위드의 생명력도 2만정도가 줄어들어 있었다.

쿠비챠의 남은 생명력은 11%였다.

"대전사님을 구해라!"

그러나 불의 거인의 시체를 폭발시켜서 얻은 시간도 여기까지!

혼돈의 전사들이 순간 이동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난입을 개시했다.

10명, 20명 늘어나는 적들이 셋밖에 안 남은 언데드와 서윤을 공격했다.

황금새와 은새를 잡기 위해서 공중으로 순간 이동을 해서 도끼질도 했다.

둘은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더욱 높이 날았다.

카오스 워리어들은 더 많은 혼돈의 전사들에 의해 금방 전멸했다.

위드는 이대로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윤아, 그냥 도망쳐!"

혼돈의 전사들 여럿과 싸우면서 상처를 입은 서윤은 잠시 눈길을 주었지만 다시 싸움에만 집중했다.

"그래, 어디 해보자. 애니메이트 데드!"

시체들은 넘쳐 나는 전장이엇다.

파괴된 언데드들을 대신해서 15마리의 카오스 워리어들을 새로 일으켰다.

위드의 마나는 그러고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넘쳐 났다.

'마나 흡수 때문이야.'

쿠비챠는 연속 공격을 맞고 나서 땅에 쓰러진 채로 잠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혼란 상태에 빠졌다.

그 틈을 타서 위드는 다시 주문을 발휘했다.

"애니메이트 데드!"

17마리의 카오스 워리어들을 더 일으켰다.

띠링!

-중급 언데드 소환 스킬의 레벨이 10이 되어 고급 언데드 소환 스킬로 변화됩니다.

엘프나 정령 전사 등의 특수한 시체들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언데드들의 동작이 유연해지고 속도가 빨라집니다.

일반 언데드들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합니다.

충분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면 베르사 대륙의 무수히 많은 언데드들을 지휘할 수 있습니다.

-직업 스킬 언데드 소환이 고급이 되었습니다.

종족 리치의 영향으로 언데드 스스로의 육체적인 능력을 강화합니다.

리치 전용의 스킬인 생명력 흡수, 마나 흡수의 효율이 15% 늘어납니다.

-마족들이 남긴 언데드에 대한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단, 다시는 조각 변신술을 해제하지 못한 채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조각 변신술의 상태이기 때문에 스탯 포인트의 추가나 명성의 증가 등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높은 예술 스탯의 영향으로 소한한 언데드들이 본능에 따라 춤을 추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달밤의 언데드 댄스는 굉장히 괴기스러울 것입니다.

"운도 더럽게 없구나. 하필이면 이때!"

언데드 소환 스킬은 고급이 되었다.

하지만 일으킨 시체들은 중급이었다.

시간이 촉박해서 언데드들을 다시 되돌리고 소환할 수도 없었다.

"싸워라! 나를 위해 이곳에 있는 모든 적들을 죽여라!"

카오스 워리어들 20명이 서윤을 구하기 위해서 순간 이동을 하고, 나머지는 추가로 모여드는 혼돈의 전사들을 저지했다.

위드는 쿠비챠로부터 마나를 흡수할 때마다 언데드들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약간의 마나만 남겨 놓고 계속 마법을 썼다.

"시체 폭발, 시체 폭발, 시체 폭발, 시체 폭발!"

주문 시간이 짧고 위력이 강한 시체 폭발을 연속으로 외웠다.

"어디 갈 데까지 가 보자!"

혼돈의 전사들 진영에, 눈에 보이는 대로 시체들을 터트려버렸다.

아깝기 짝이 없는 시체들이었고 혼돈의 전사 무리를 더욱 자극하는 격이었지만,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서윤은 언데드들의 도움으로 적들의 틈에서 빠져나와서 쿠비챠에게 덤벼들었다.

하짐나 아쉽게도 쿠비챠도 혼란 상태를 회복하고 함성을 질렀다.

"대지의 열기를 지배하는 전사들의 혼이여! 나에게 싸울 힘을 달라!"

전사의 광분!

쿠비챠의 건장한 근육에 핏줄이 선명하게 섰다.

분노로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들어서 체력을 약간 회복하고 힘과 민첩성을 증가시키는 수법!

"캬오오!"

쿠비챠와 서윤이 순식간에 십여 합을 겨루었다.

서윤이 빠른 속도로 맞섰지만 힘에서 밀렸고, 혼돈의 전사들에게도 부상을 많이 당한 상태라 불리했다.

필살의 연격을 펼친 이후로 체력의 소모가 심해서 훨씬 약해져 있었다.

"인간 여전사여, 이제 그만 죽어라!"

쿠비챠의 도끼가 수차례 서윤을 두들겼다. 그리고 레드 스타가 휘둘렸다.

서윤은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눈빛으로 위드를 보았다. 그리고 사망!

위드가 크게 고함을 쳤다.

"모든 언데드들은 쿠비챠를 노려라!"

지금의 상태를 지속하더라도 더는 의미가 없다.

쿠비챠는 서윤이 죽기 전에 한 공격들로 인해 부상이 심했다.

카오스 워리어들이 쿠비챠를 공격하기 위해 전부 순간 이동!

"왼쪽을 노려라! 다섯은 오른쪽 위에서 순간 이동을 해서 공격해!"

쿠비챠의 등에 업혀 있다 보니 시야가 거의 같아졌다.

그 덕에 쿠비챠의 공격 방향을 읽고 언데드들을 지휘해서 약간이나마 더 잘 싸우게 할 수 있었다.

언데드들은 쿠비챠의 몸을 도끼질로 난자하다가 역습을 받아 불덩어리가 되어서 소멸했다.

"블레이드 토네이도!"

토리도 역시 쿠비챠를 향해 최강의 스킬을 사용한 이후에 사망!

황금새와 은새도 지상으로 내려와서 쿠비챠를 공격했지만, 만신창이가 되어 혼돈의 전사들에 의해서 쫓겨 올라가야 했다.

"궁색한 해골, 이제 너의 차례다."

방해꾼들을 모두 제거한 쿠비챠가 살벌하게 말했다.

당당하게 말했지만 그의 몸도 초주검 상태였다.

쿠비챠의 놀라운 생명력 회복도, 모기처럼 달라붙어서 빨아 먹는 위드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목숨 줄이 경각에 처한 것이다.

"죽어라, 해골!"

쿠비챠가 뒤로 휘두르는 도끼를 본 위드는 순간 등에서 옆구리 쪽으로 몸을 날렸다.

"마인드 핸드!"

조각술로 만들어 내는 세 번째의 손.

그 손으로 쿠비챠를 끌어안고 날렵하게 피했다.

완전히 공격 범위를 벗어나지는 못해 큰 타격을 받았지만, 흡수한 생명력으로 약간이나마 회복했다.

쿠비챠가 도끼질을 할 때마다 묘기를 부리는 원숭이처럼 등과 옆구리 사이를 오가면서 버텼다.

"마지막까지 귀찮게 구는구나!"

쿠비챠의 공격을 당할 때마다 위드의 뼈다귀들이 깨지고 부러졌다. 맞는 족족 생명력이 떨어졌다.

'이대로 죽겠구나.'

쿠비챠의 몸에서 떨어져 나올 수도 없고 마법 스킬을 쓸 수도 없으니 영락없이 죽게 될 상황.

"골골골!"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위드에게 익숙한 금인이의 소리가 들렸다.

음머어어어어!

누렁이의 울음소리도 있었다.

위드가 전투에는 끼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다가 상황이 불리하면 퇴각하라고 지시를 했었다.

"나 금인이가 간다. 우리 주인을 죽이지 마라, 골골골!"

누렁이의 등에 타고 금인이가 용감한 기사처럼 돌격했다.

"적이 아직 남았다."

"저지해라."

혼돈의 전사들이 저지하기 위해서 날파리 떼처럼 달려들었다.

"덤벼라, 골골!"

금인이는 검을 휘두르면서 적 진영을 돌파했다.

혼돈의 전사들을 지나칠 때마다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하던 몸에 상처가 새겨졌다.

갈라지고, 부서지고, 불에 타서 녹아내리면서도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누렁이도 공격을 당해 불덩이가 되어서도 혼돈의 전사들을 돌파!

금인이가 영롱한 푸른빛을 내는 사파이어를 5개나 꺼냈다.

세공해서 중앙 대륙의 상점에 판다면 만 골드는 족히 받을 수 있는 보석.

"보석 파괴. 사파이어 오브!"

금인이를 중심으로 눈과 얼음 조각들이 휘몰아치면서 혼돈의 전사들을 강타!

돌풍의 중심과 함께 얼음 조각들이 쿠비챠를 향해서 몰려왔다.

"케에엑! 어디서 이런 공격을… 블링크!"

쿠비챠는 피하려 했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위드로 인해 순간 이동 실패!

사파이어 오브가 쿠비챠를 둘러싸고 회전하면서 무시무시한 상처를 냈다.

위드도 그 안에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쿠비챠의 등에 바싹 몸을 붙였다.

-극도의 추위로 인해 몸이 결빙되었습니다.

-생명력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신체 능력이 87%까지 저하됩니다.

-극도의 상태 이상! 언데드라서 감기에는 걸리지 않습니다.

-턱과 손가락이 얼어 마법 주문을 외울 수 없습니다.

-육체의 일부에 대한 감각을 상실합니다. 피부와 신경이 괴사 상태에 빠져야 하지만, 뼈밖에 없어서 해당되지 않습니다.

-몸을 완전히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시전하고 있던 모든 마법 스킬들이 취소됩니다. 보호 마법들이 취소되며, 생명력과 마나 흡수도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메시지 창이 쭉쭉 위로 올라갔다.

쿠비챠에게 도끼질을 당한 이후로 근근이 버티고 있었는데 사파이어 오브의 영향권에 들어서 생명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갔다.

위드의 텅 빈 해골의 동공에도 얼음 조각들이 붙었다.

절반밖에 열려 있지 않은 눈으로 금인이를 보니, 혼돈의 전사들에게 심한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금인이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주인, 세상을 보여 줘서 고마웠다. 골골골!"

그러고는 위드가 금지시켰던 마법을 다시 사용했다.

"보석 파괴!"

위드는 죽을 만큼 위험하면 쓰라고 5개의 사파이어를 비상용으로 주었었다.

더 이상은 쓸 보석이 없을 텐데 어떻게 스킬을 사용하는지 의아할 무렵이었다.

금인이의 몸이 폭발하면서 황금빛 광채가 혼돈의 전사와 쿠비챠를 휩쓸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몸을 터트려서라도 적들을 물리치고 위드를 구하려고 한 것이다.

위드의 머릿속에, 금인이와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금인이를 만들고 나서 했던 말들.

"넌 왜 이렇게 무능하냐. 밥값도 못하고."

형제처럼 장비를 나누어 쓰기도 했다.

위드가 입을 일이 없었던 초보 복장이나 클레이 소드 등의 고물들을 받아서 쓰던 신세.

"누가 너 같은 애를 만들어서… 누군지 몰라도 한심하다, 한심해."

"골골골."

그렇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금인이는 불만도 없이 와이번들과 사냥을 하면서 성장했다.

잘생긴 얼굴로 가끔 잘난 척을 하기도 했지만 위드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애교도 부릴 줄 알았다.

"크어어어어!"

금인이가 그렇게 사망했지만 쿠비챠는 질기게도 살아남았다.

"모두, 모두 죽여 버리리라!"

극도의 상처를 입고 맹수처럼 포효하는 쿠비챠였다.

누렁이도 울부짖으면서 이리저리 날뛰었지만 혼돈의 전사들에게 몰려서 부상이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상황!

위드는 재빨리 자하브의 조각칼을 꺼내서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을 스스로 단축시키면서, 죽기 직전 안식의 동판을 꺼냈다.

"아아아."

"어떻게 이런 일이……."

KMC미디어의 직원들은 망연자실했다.

최종 단계에서 퀘스트를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위드의 조각 생명체들까지 몰살하게 될 상황이었다.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눈물을 보이지 직원도 있었다.

강 부장이 씁쓸하게 말했다.

"위드의 신화도 끝나 버리고 마는군."

위드라고 성공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퀘스트의 난이도가 이렇게 높았다면 누구도 비난하진 못하리라.

쿠비챠는 언데드들의 집중 공격에, 불의 거인들과도 싸우고, 시체 파괴 등도 버텼다.

혼돈의 전사들을 지휘하는 쿠비챠에게 도전한 것만으로도 큰 용기였다.

"휴우, 그래도 정말 허전하군."

강 부장은 멍하니 아직도 전송되는 영상을 보고 있었다.

쿠비챠는 너무 큰 부상으로 인해 한쪽 무릎을 꿇고 쉬었고, 혼돈의 전사들이 모여들어서 삼엄하게 경계를 했다.

여전히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수의 혼돈의 전사들이 있었고, 불의 거인들도 약화되어 전쟁 상황이 바뀔 여지는 거의 없어 보였다.

위드가 전쟁에 끼어들었던 것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순간이었다.

그대로 지켜보기만 했더라면 혼돈의 전사들이 갈수록 더 많이 남아서 나중엔 덤비지도 못했을 것이다.

불의 거인들과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적절히 버텨 주고 있을 때, 혼돈의 전사들도 많이 지쳐 있을 때 절묘하게 끼어들어 전투에 임했다.

놀라운 관찰력과 승부 근성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정신없이 볼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만."

극적인 순간들이 연속되면서 강 부장만이 아니라 작업 팀들도 영상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강 부장이 주의를 환기시키는 의미에서 박수를 쳤다.

"다들 정신 차려. 이제 마무리 작업해야지. 퀘스트를 실패했으니까 자막과 음악은 아주 신중하게 넣어야 될 거야. 편성국, 지금 순간 시청률은 얼마나 나오고 있어?"

"네, 잠시만요."

편성국에서 나온 직원은 모니터를 살펴보고 나서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지금 현재 17개 게임 방송사 중에 점유율이 92.5%인데요. 공중파와 뉴스 채널을 포함한 전체 시청률로

도 8.9%가 나오고 있습니다."

쇼핑이나 코미디, 드라마 방송 채널까지 다 포함시켜서 집계한 시청률이 8.9%였다.

게임 방송만을 놓고 계산한 시청률로는 92.5%

KMC미디어는 물론이고 어떤 방송국엣도 이런 시청률을 기록한 적은 없다.

로열 로드와 관련된 방송들 중에서는 100명 중에서 7~8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KMC미디어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황당한 시청률이……."

기계 고장인가 해서 확인해 보았지만, KMC미디어의 다른 부서에서도 현재 난리가 나고 있었다.

각 기업들로부터 광고영업부로 전화가 쇄도했고, 해외사업부에서는 다른 국가의 방송사들로부터 연락들이 오고 있었다.

시청자 게시판은 폭주한 끝에 도저히 읽을 수가 없는 정도가 됐다.

-KMC미디어에서 한 방 크게 터트렸군요.

-위드의 모험이 방송됩니다. 지금 텔레비전을 켜서 KMC미디어를 틀어 보세요.

-텔레비전이 없는 분들은 방송국의 홈페이지에 가면 인터넷으로도 중계됩니다.

-인터넷으로 보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접속자 숫자가 너무 많아서 화면이 나오지를 않아요.

CTS미디어나 다른 방송국들은 KMC미디어를 질투하고 울상을 짓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일시적으로 시청률이 잠깐 오른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한번 이런 식으로 큰 이슈를 만들면 고정 시청자 숫자가 늘어나게 된다.

KMC미디어의 다른 방송 프로그램들도 시청률이 일정 부분 증가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지금은 로열 로드가 일반인들에게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어모으고 있다.

초기에는, 목돈이 들어가는 캡슐 가격으로 인해 가상현실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중화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금방 지나가고, 더 좋은 자동차, 한두 평 더 넓은 집에 살 바에야 로열 로드를 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이 함께 로열 로드에서 사냥을 하는 광경이 그리 낯설지 않게 변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로열 로드가 바꾸어 놓고 있었다.

일반인들이 게임 방송을 보게 되면서 게임 방송사의 영향력은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 시청자들이 위드와 KMC미디어를 특별하게 기억하게 될 수 있었다.

이런 방송사들의 순위는 시간이 지나면 갈수록 뒤집기가 어려워지고 만다.

여기에는 CTS미디어나 다른 방송국들의 자충수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지골라스에서 모험을 하는 탐험대의 이야기를 생방송으로 하면서 한창 재미를 봤다.

광고들도 짭짤하게 팔아먹고, 시청자들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위드의 모험이 방송되자마자 그 시청자들이 KMC미디어의 채널로 옮겨 가 버리고 만 것이다.

-드디어 위드의 모험이 합니다.

-KMC미디어로 갑니다. 안녕히.

-저도 갑니다. 크크크.

시청자들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면서, 인터넷에서도 모두 지골라스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처럼 너도나도 위드와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에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강 부장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퀘스트를 실패하게 되어서 굉장히 유감이군."

위드가 죽은 이후로 아직 몇 분이 지나지 않았지만 엄청난 전투를 보고 나니 큰일을 치른 것처럼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아니, 방송국 관계자의 입장에서는 지골라스에서 하는 위드의 특집 프로그램이 생방송 중이니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됐다.

그들의 싸움은 지금부터인 셈,

그런데 많은 KMC미디어의 직원들이 여전히 영상을 보고 있엇다.

잠깐 일을 하려고 돌아섰던 직원들도, 다시 영상에 시선을 빼앗겼다.

지골라스의 패권을 놓고 벌어지는 종족 전쟁은 여전히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강 부장은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위드가 죽었는데 왜 영상이 계속 나오는 것이지?"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게요. 분명히 위드가 죽었는데……."

"원래 죽으면 영상도 따라서 끊기잖아요."

그런데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위드 열혈 팬 직원들은 아무 말 없이 영상만 보았다.

두근. 두근.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

조금 후에 벌어지게 될 광경을 그들만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부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을 때에도 영상을 보면서 가슴 졸이던 직원들이 많았다.

'와라.'

'이제 일어날 때가… 크크크크크크.'

자욱하게 일어나는 연기!

그 안에서 거대한 녹색 광망이 번뜩였다.

시선을 내리니 쿠비챠가 훨씬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위드는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으로 되살아난 것은 알았지만, 근원의 스켈레톤 등으로 재탄생했던 때와는 몸이 다른 것을 느꼈다.

건축물의 철골보다도 굵은 뼈마디.

날개와 꼬리가 있고, 머리와 주둥이의 크기는 엄청났다.

위드는 본 드래곤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심연의 어둠 속에서 되살아났습니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의 스킬 레벨이 1단계 올랐습니다.

초급 3레벨이 되었습니다. 생명력이 추가로 2% 늘어나며, 어둠의 힘을 2%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사악한 땅에서 싸울수록 효력을 더할 것입니다.

부활 가능한 언데드의 종류가 늘어납니다.

부활 후 사용 가능한 종족 고유 스킬의 개수와 스킬 레벨이 향상됩니다.

-초대형 몬스터로 부활하셨습니다.

종족 스킬에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종족 능력치의 기본 조건을 갖추기 못했기에, 육체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습니다.

취약한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육체의 무게를 유지하느라 힘의 많은 부분이 빼앗깁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은 신체를 파손시킬 수도 있습니다.

달라진 몸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일단 누렁이부터 찾았다.

'아직 죽지 않았군.'

누렁이는 죽음이 임박한 상태로 날뛰면서 힘겹게 버티는 중이었다.

사력을 다한 저항으로 인해서 혼돈의 전사들도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구해 주마.'

한 걸음을 내딛자 무려 10미터 이상 움직였다.

꽈아아아앙!

그리고 엄청난 발소리.

발을 내딛는 울림으로 던전이 뒤흔들렸다.

엄청난 위세를 보여 주는 것과는 달리 뼈마디들이 쑤셨다.

크게 걸음을 걷는 것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이 떨어졌다.

초대형 몬스터의 수난.

위드는 주둥이를 크게 벌려서 누렁이를 뒤덮었다.

누렁이를 한 입에 물고 공중으로 내뱉었다.

-황금새, 은새, 너희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누렁이를 잡아라.

째재재잭!

연기 속에서 황금새와 은새의 맑은 울음솔가 들렸다.

누렁이를 구하기 위해 공중을 맴돌면서 틈을 노리던 둘이 잽싸게 날아왔다.

위드가 내뱉은 누렁이를 어깨에 부축하고 혼돈의 전사들이 덤비지 못하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에 성공!

'이제 쿠비챠의 차례군.'

위드가 돌아섰다.

혼돈의 전사들과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위를 올려다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드는 잠깐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쿠비챠가 회복할 시간을 주면 안 될뿐더러, 현재의 육체로 싸울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도 없다.

본 드래곤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천장이 막혀 있는 장소에서는 날지도 못한다.

-쿠오오오오오오오!

드래곤 피어!

혼돈의 전사들이 본능적으로 약간 멈칫거리는 틈을 타 위드는 재빨리 움직였다.

먼저 뒷발로 쿠비챠를 덮고 질근질근 비볐다.

온 체중을 실어서 하는 공격이었다.

쿠비챠는 부상이 심해서 순간 이동이나 도망칠 생각도 못하고 속절없이 짓밟혔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조금 회복이 되었는지, 밟혀도 죽지 않았다.

위드는 공을 가지고 놀듯이 공중에 띄워 올린 후에 입에 넣고 깨물었다.

"대전사님을 구해야 한다!"

"본 드래곤을 쳐라!"

드래곤 피어의 영향력은 5초도 유지되지 못했다.

혼돈의 전사들이 도끼를 들고 순간 이동을 해서 위드의 온몸을 두들겼다.

목덜미와 척추, 옆구리, 다리를 가리지 않고 혼돈의 전사들의 도끼질이 가해졌다.

전신이 불타오르는 본 드래곤!

초대형 몬스터가 강한 것은 그만한 힘과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육체도 감당하지 못할 크기로 다시 태어난 것은 오히려 불운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적들을 공격하기에는 너무 느리고, 또 적들을 단숨에 죽일 힘도 없다.

반면에 공격당할 구석은 셀 수도 없이 많았으니!

더구나 현재의 몸에 익숙해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국민 체조라도 몇번 하면 좋을 텐데…….'

생소한 느낌을 전해 주는 꼬리와 날개가 있었지만 써먹지도 못했다.

위드는 앞발과 날개로 몸을 감싸로 웅크린 채로 머리는 바짝 숙였다.

이른바 본 드래곤으로 할 수 있는 최상의 수비 자세!

때릴 만큼 때리거나 말거나, 위드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앞 이빨보다는 어금니가 그래도 좀 더 강하지.'

돌멩이를 씹는 것처럼 딱딱하짐나 어금니가 깨지거나 말거나 깨물었다.

이빨 빠진 본 드래곤이 되거나 말거나, 어떻게 해서든 쿠비챠를 처리해야 한다는 필사적인 혈투!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받는 위드의 생명력이 급속도로 하락했다.

하지만 쿠비챠도 입안에서 순간이동으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계속 잡혀 있었다.

그렇게 생으로 쿠비챠를 씹어 대던 와중에 갑자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띠링!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지골라스의 지배권을 노리던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위대한 전투 업적으로 인하여 명성이 1,875 올랐습니다.

-쿠비챠와 싸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지골라스뿐만 아니라 넓은 베르사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찬사받아 마땅한 모험일 것입니다.

-베르사 대륙 전체의 음유시인들이 당신을 위한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노래가 울려 퍼질때마다 명성이 오르고 악명이 조금씩 감소합니다.

-기품이 35 증가합니다.

-귀족 사회 그리고 각국의 왕들에게 호의를 받게 됩니다.

-카리스마가 11 상승하셨습니다.

-투지가 7 상승하셨습니다.

-지골라스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될 영광적인 전투의 승리로, 전투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의 전 스탯이 6씩 오릅니다.

-혼돈의 전사들과 돌이킬 수 없는 철천지원수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적대도가 최대치가 됩니다.


호칭! 불멸의 전사를 획득하셨습니다.

죽음 속에서 되살아나서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며 싸움에서 승리한 자에게 부여되는 호칭입니다.

언데드들에게 특별한 존중을 받을 수 있으며, 네크로맨서와 암흑 기사, 죽음의 기사로부터 호감을 이끌어 냅니다.

자신보다 강한 적과 싸울 때 생명력과 힘, 민첩성이 5% 늘어납니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으로 되살아났을 때의 효과가 10% 증가합니다.

-혼돈의 대전사 부츠를 획득하셨습니다.

-혼돈의 대전사 판금 갑옷 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지골라스의 지하 지도를 획득하셨습니다.

-드래곤이 만듬 검 레드 스타를 획득하셨습니다.

-슬로어의 결혼반지 한 쌍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이템의 습득까지!

위드의 생명력도 어느새 12%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주인, 지금 구하러 간다."

"내가 갈 때까지 버텨 보세요."

황금새와 은새가 누렁이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고 돌아오고 있었다.

위드는 그들을 향해 귓속말을 전했다.

-날 걱정해 줄 필요는 없다. 누렁이에게 돌아가라. 이건 무조건 들어야 하는 명령이다.

황금새와 은새가 온다 해도 위드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혼돈의 전사들이 모두 그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인페르노 나이트들과 싸우던 혼돈의 전사, 불의 거인들을 향해 집단으로 덤비던 이들도 목표를 바꾸어서 위드를 죽이기 위해서 온다.

피할 수 없는 두 번째의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더 이상 여한이 없다.

위드는 벌써 본전은 뽑았다고여겼다.

-지긋지긋한 놈들. 어디 이것도 맞아 봐라.

위드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마실 수 있는 한 최대한 크게.

본 드래곤의 흉곽이 무시무시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마나와 함께 발출했다.

애시드 브레스.

본 드래곤의 산성 브레스를 혼돈의 전사들을 향해 쏟아부었다.


10.슬로어의 결혼식


KMC미디어에서는 옆 사람이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침묵이 흘렀다.

위드가 부활했을 때부터 영상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상을 편집하고 작업하는 부서들만이 아니었다.

국장실에서부터 사장실에 이르기까지 내부적으로 채널을 고정시켜 놓고 보고 있었는데, 위드가 본드래곤으로 부활한 그 순간부터 다들 아무 생각도 없이 영상만 봤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으로, 아무리 안식의 동판이 있었다고 해도 본 드래곤으로 부활하다니!

"말도 안 돼."

"무슨, 어떻게 이런 일이……."

내부적으로 엄청난 페널티로 인해서 공전절후의 능력을 발휘하던 그 본 드래곤은 아니었다.

안식의 동판의 효과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드의 레벨이나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의 스킬 수준으로 본 드래곤으로 부활해서 잘 싸우긴 힘들었다.

비행이 가능한 대형 몬스터에게는 굉장히 불리한 지하 던전이라는 점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그 무수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보이는 위압감이 있다.

위드가 본 드래곤으로 부활했다는 점에서 전율이 흘렀다.

방송국의 직원들조차도 정신이 멍할 정도로 부러운 기분이었는데 나중에 편집 과정을 거쳐서 더욱 보강된 화면을 감상하게 될 시청자들은 어떨까!

로열 로드를 하는 시청자들은 이 순간 감동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 부럽다."

"역시 위드잖아. 이런 모험을 할 사람은 그밖에 없어."

방송국 직원들도 의식이 영상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재미와 흡입력을 느꼈다.

강 부장이나 연출부의 직원들은 평소에 화면을 보면서 추가해야 할 잠가이나 영상의 구성을 궁리한다.

"자막은… 안 넣어도 되겠어. 있는 그대로가 좋아."

어떤 자막을 넣어도 이 감동을 돋보이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저 경박해 보일 뿐.

그렇게 다들 넋을 빼고 지켜보는 가운데 드디어 본 드래곤, 실질적으로는 위드가 두 번째의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쿠비챠가 죽었으니 S급 난이도 퀘스트는 성공이었다.

얼마 후면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할 테고, 신전에 신탁이 내려와서 위드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릴 수도 있다.

강 부장을 비롯해서 KMC미디어의 직원들조차도 끝내 의심했던 S급 난이도의 퀘스트 성공!

위드가 죽고 나서 영상실에 영상이 뚝 끊어졌다.

화면도 나오지 않았고,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벼락을 맞은 듯, 어느 순간부터 각자의 업무를 위해 고함을 치며 움직였다.

"특집 프로그램 제목을 바꿔. 위드의 성전! 아니, 아니야! 소제목부터 바꾸자. 명품 언데드, 괜찮잖아?"

"편성 시간을 늘려야 되니 후속 프로그램 진행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홈페이지 방송 시간표 수정할게요."

"기업들로부터 연락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일단 덮어 놓고 광고 단가를 후려치겠습니다."

본 드래곤이 출현한 부분은 2분 56초!

불과 3분이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각 게임 방송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캡슐에서 나온 이현은 극심하게 밀려오는 상실감에 멍하니 자리에 앉았다.

"이제 24시간 접속을 할 수 없겠군."

산성 브레스를 쏘아 혼돈의 전사들을 몇 명 정도 잡긴 했다. 하지만 그의 레벨로는 브레스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더구나 본 드래곤으로 재탄생했다고는 하지만 스킬 운용은 초급!

비행 스킬이나 드래곤 피어, 브레스가 모두 초급 4레벨, 6레벨, 3레벨 정도였다.

오랜 전투로 생명력이 많이 떨어져 있던 혼돈의 전사들이었기에 눈먼 브레스에도 죽었으리라.

"어쨌든 힘들었군."

이현은 청소를 하기 위해 일어섰다.

텔레비전을 틀면 그의 퀘스트에 대한 내용이 한창 나오고 있겠지만, 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베르사 대륙 이야기'처럼 뉴스 정도에 국한되었다.

전기값이 아깝다는 생각!

"대청소를 한 지 한참 되었으니 쓸고 닦아 봐야겠어."

이불 빨래, 냉장고 청소, 닭장 정비까지, 해야 할 일들을 척척 진행했다.

낙엽이 쌓이는 것을 보니 가을이 금세 지나가고 있었다.

"가을은 정말 빨리 스쳐 지나가지."

건조하고 황량한 바람에 이현의 감수성도 예민해지는 듯 했다.

"얼마 후면 김장이나 담가야겠어."

김장은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할 필수적인 작 업!

막 새로운 보신이의 집을 정비하고 있을 때였다.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대문에서 누군가가 미친 듯이 벨을 눌렀다.

잡상인 출입 금지. 종교 믿지 않음. 벨이 고장이 날 듯 말 듯함.

눌러서 고장 낸 사람에게는 수리비를 물리겠음.

이런 경고장을 보고도 벨을 눌렀다면 분명히 용건이 있는 사람이리라.

이현이 나가서 대문을 열어 보니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서윤이 있었다.

얼마나 다급하게 왔는지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토리도와 교환한 닭과 토끼를 가져간 이후의 첫 방문이엇다.

"반가어, 이게 얼마 만이야? 어서 안으로 들어와."

이현은 절친한 친구처럼 반갑게 그녀를 집 안으로 맞이했다.

그러고는 냉녹차를 밥그릇에 따라 주었다.

"요즘 날씨가 쌀쌀해져서 따뜻한 녹차를 타 줘야 하는데 좀 더운 것 같아서 시원하게 탔어."

"……."

"꿀도 타 줄까?"

서윤은 녹차는 거들떠지 보지 않은 채로 측은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오죽 상처가 컸으면… 나를 이렇게 반갑게 맞이해 줄까?'

서윤은 죽음을 맞이하자마자 캡슐을 나왔다.

예전에 KMC미디어에서의 퀘스트의 핵심 동료인 그녀에게도 출연에 대한 부분을 문의했었다.

물론 그녀가 직접 나서지는 않고 담당 변호사를 통해서 협의를 진행했다.

평소라면 출연을 허락할 이유가 없었지만, 이현의 퀘스트를 방송하기 위해서라니 좋은 방향으로 허락했다.

서윤이 나와야 하는 분량에서는 얼굴에 가면을 쓰도록 하고, 갑옷 위에도 나풀거리는 얇은 천을 씌우는 정도에서 타협을 봤다.

KCM미디어를 통해서 지골라스에서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았다.

금인이의 죽음, 그리고 위드에 두 번에 걸친 사망.

서윤은 레벨과 스킬 숙련도의 하락, 그 이상으로 상심하고 있을 이현을 달래 주기 위해, 위로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이현은 너무도 반갑게 그녀를 대했다.

"녹차만 마시려니 심심하지? 이런, 내 정신 좀 봐. 과일이라도 좀 내올게."

보통 때의 이현과는 완전히 다른 행동이었다.

로열 로드에서 서윤은 쿠비챠와 싸우다가 목숨을 잃어버렸다.

그게 큰 도움이 되어서 쿠비챠를 사냥하고 퀘스트를 성공했다.

당연히 고마웠고, 그에 따른 분배를 해 줘야 하기에 머리가 초고속으로 회전했다.

'일단 잡아떼 보자.'

사과를 깎으면서 이현은 입술에 침을 듬뿍 발랐다.

거짓말을 하기 전에는 입술에 침을 발라 주는 최소한의 양심!

"아, 완전 거지였어, 거지. 어떻게 죽으면서 아이템 하나를 안 떨어뜨리냐."

능청스럽게 말하면서 사과 껍질을 한 줄로 깎았다.

방송에 나오게 되더라도 그가 어떤 아이템을 획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쿠비챠가 죽었을 때의 상황은 위드의 입속만이 알고 있을 뿐.

'1개도 안 나왔다는 건 너무 심했나? 그래도 보스급이었는데……. 퀘스트와도 관련이 있는 몬스터였으니 나중에 의심을 할 거야.'

이현이 다시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었지. 장비는 쓸 만한 게 안 나왔지만 루비5개, 아니 3개였던가? 아, 4개였지. 아무튼 그거라고 떨어뜨리고 죽었으니."

5개를 불렀다가 왠지 많다는 생각에 2개를 줄였다.

하지만 3개를 나누다 보면 1개만 줄 수는 없다.

결국 2개를 줄 바에야 의심을 덜 받을 4개로 확정했다.

"쿠비챠가 참 좋은 장비를 착용했던 거 같은데. 뭐, 솔직히 그런 장비를 떨어뜨렸다고 해도 누가 착용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혼자서 말을 잇고 있었지만 이현 본인도 답답했다.

어떤 아이템을 획득했는지는 접속해서 확인해 봐야만 알 수 있다.

'적당히 나누어 주려면 명확하게 가치 판정부터 해야 되는데.'

베르사 대륙의 시간으로 몇 달을 고난을 함께했다.

서윤의 공헌도가 모험에서 전체적으로 높은 부분을 차지했으니 공로를 깎아내리고 속이는 건 비겁한 짓이다.

결국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공평하게 아이템을 나누어서 보상은 해 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온 장비가 1개밖에 없다고 했다가 2개, 3개라고 한다면 훨씬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많이 아파하지는 않는구나. 다행이다.'

서윤은 녹차 밥그릇으로 입가를 가리고 살짝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이현의 썩은 미소와는 차원이 다른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프레야 여신상을 만들 때, 이현은 과연 서윤이 웃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서 다정한 눈빛을 보내면서 웃는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매력은 항거할 수 없는 것!

이현도 그녀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쿠비챠의 아이템에 대해서 아무렇게나 떠들었던 거짓말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표정이, 그리고 눈빛이 깊은 정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로군.'

이현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대청소를 하던 중인데… 같이할래?"

취미 생활도 아닌, 집 청소를 함께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런데도 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어났다.

"마당부터 같이 쓸자. 낙엽이 많이 쌓였어."

마당에 가서 빗질을 하면서, 서윤은 보통 때의 그녀와는 다르게 장난도 쳤다.

낙엽을 모아서 이현의 영역으로 슬며시 밀어 넣은 것!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수업을 듣고 로열 로드에서 모험을 하며 쌓인 정 때문에 그녀가 장난도 칠 수 있었다.

목줄을 풀어 놓은 새로운 보신이가 냄새를 맡으며 마당을 돌아다니고, 닭장 청소를 위해 내놓은 닭들도 돌아다녔다.

벼슬을 꼿꼿하게 세운 채로 걸어 다니는 수탉 글고 뒤를 따르는 암탉과 병아리들.

청소를 하다 보니 물이 많이 튀었다는 걸 깨닫고, 이현은 퍼뜩 서윤이 입고 있는 옷이 신경 쓰였다.

'20만 원도 넘겠군.'

상당히 비싸 보이는 외투를 입고 있는 그녀였다.

"여긴 내가 치울 테니까 넌 설거지를 할래? 안 치운 설거짓거리가 있는 건 아니고, 집에 놔둔 그릇이랑 냄비들 좀 꺼내서 깨끗하게 씻어 줘."

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이 열려 있어서 그녀가 싱크대에 물을 트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남자는 닭장을 치우고 여자는 그릇을 닦으니 두 사람 모두 결혼을 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청소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녁에 맛있는 거라도 해 줘야겠군.'

이현이 탕수육을 만들어 주려고 큰 결심을 하는 순간.

쨍그랑.

물이 흐르는 소리도 없이 한참이나 고요가 떠다녔다.

그리고 다시 설거지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채 1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다시…….

와장창!

닭장 청소를 하는 이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내, 내가 설거지할까?"

대답 없이 그릇 씻는 소리만 계속 들렸다.

서윤은 진지하게 노력해서 설거지를 했다. 그릇들을 옮기다가 실수를 하고 손이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더는 깨뜨리는 그릇이 없었다.

그날 저녁에는 이현이 솜씨를 발휘한 탕수육을 먹으며 텔레비전 시청!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보고 나서 서윤이 가야 할 시간이었다.

이현은 급하게 신문지로 포장한 책을 선물로 주었다.

"살아감에 있어서 큰 감동을 주는 책이야."

이현의 평생에 여동생을 제외하고 여자에게 하는 선물로는 처음이었다.

"꼭 지골라스에서 얻은 아이템 때문은 아니고, 그냥 평소에 읽어 두면 좋을 것 같아서."

책의 제목은 ≪무소유≫ 였다.

베르사 대륙의 유저들은 신전과 드워프들, 엘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불굴의 용사가 대륙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었던 큰 위협을 잠재웠다는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젠장, 인간 주제에 대단하군."

"숲의 전사들은 다시 돌아가도 좋습니다."

원정대를 구성하기 위해 모였던 전사들이 해산했다.

KMC미디어의 시청률은 많은 사람들이 잠든 새벽에 신기록을 달성했고, 위드의 모험에 경의를 표시하며 음유시인들이 노래를 작곡했다.



오오, 우리의 영웅

기억에 잊힌 땅에서 남들이 모르는 모험을 하지

그의 발걸으은 모험가들의 이정표가 되고

조각품들은 대륙의 곳곳에 남아

길을 잃어버린 이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네



위드에 대한 칭송이 극에 달했을 때, 지골라스에 있는 드린펠트에게 지원부대가 도착했다.

성직자와 마법사, 기사, 어쌔신, 도둑 등으로 이루어진 헤르메스 길드의 정예들이었다.

수행원으로 따라온 기사가 말했다.

"이분들이라면 위드를 죽이기에 모자람이 없을 거라는 라페이 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드린펠트도 자신 있게 답했다.

"마법사 르포이 님도 오셨으니 여기에 위드의 무덤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할 겁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니 완벽하게 처리를 해 주시지요."

상대가 네크로맨서라서 골치가 아프기는 하지만, 천적인 성직자들을 모았으니 언데드들을 정화할 수 있을 것이다.

KMC미디어의 방송을 통해 본 드래곤으로 변신하는 것까지 봤으니 경계심도 훨씬 심해졌다.

"헤르메스 길드의 명예를 걸고 놈을 죽여야 됩니다."

"마법사도 있고 성직자도 그리고 기사들도……. 반드시 놈을 척살할 것입니다."

위드가 다시 접속하니 인페르노 던전의 종족 전쟁이 벌어졌던 그 공동이었다.

격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에는 암석들이 녹아서 기묘한 모양이 되었고,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으흠."

위드는 두 번의 죽음으로 인해 수정 해골 리치가 아닌 인간의 모습이었다.
"잃어버린 레벨이나 스킬 숙련도부터 확인을 할까, 아니면 쿠비챠의 아이템부터 봐야 될까."

획득한 아이템이 도망을 갈 리도 없으니 먼저 레벨과 스킬부터 확인했다.

"스탯 창, 스킬 정보 창!"

레벨은 2개나 떨어져서 383이었고, 조각술의 숙련도는 25%나 감소했다. 손재주나 재봉, 대장일, 조각 검술 등의 스킬도 10%에서 17%까지 떨어져 있었다.

엄청난 노가다 끝에 올렸던 스킬들의 감소로 인해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려고 할때, 아이템들을 꺼냈다.

묵직한 혼돈의 대전사 부츠, 판금 갑옷 세트, 지도, 붉은빛이 도는 검신의 레드스타!

위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감정!"

먼저 가볍게 방어구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쿠비챠의 부츠 : 내구력 37/105. 방어력 68.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의 부츠이다.

특수한 권능이 깃들어 있으며 전사들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제한 : 레벨 500, 힘 800.

혼돈의 전사, 바바리안 전용.

옵션 : 블링크 마법 사용 가능.

생명력 +8,000.
지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열기 차단.
전사들에게 절대 복종 강요.
부하들의 레벨과 규모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통솔력 증가.




판금 갑옷 세트는 280이 넘는 방어력을 가졌지만 레벨 제한이 550이나 됐다.

"이런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안 죽었지."

지골라스의 지하 지도에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뚫려 있는 길들이 그려져 있었다.

지하의 길들을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던전에도 들어갈 수 있다.

지골라스의 던전들은 특수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입구가 아니라 지하의 중간에도 통하는 길들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지도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겠군."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드래곤의 검을 확인할 순간이다.

위드도 심장도 이때만큼은 오래된 경운기처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뛰었다.

"가... 감정!"



레드 스타 : 내구력 192/210. 공격력 190~215.
드래곤 젠페스트가 만든 검.

자신의 뼈의 일부를 떼어 내어 검으로 만들었다.

레드 드래곤의 힘이 일부 깃들어 있으며,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탁원하다.

도난당한 검으로, 드래곤이 찾고 있을 것이다.

제한 : 레벨 570이상.

불에 대한 저항력 100%.

불을 다스리는 능력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함.

옵션 : 매우 가벼움.

스킬 사용 시의 체력 소모를 감소시킴.

민첨 +10%

내구도가 거의 줄어들지 않음.

방어구를 관통하여 공격.

상대의 전투 능력을 감소시키는 부상을 입힐 확률 250% 증가.

마법 보호를 뚫을 수 있음.

불의 힘을 100% 증폭시킬 수 있다.

불의 힘을 흡수해서 불 속성의 종족들은 힘을 늘릴 수 있다.

마법 저항력 +30%

중급 이하의 몬스터들을 강하게 위축시킴.

검을 이용한 공격 스킬들의 위력 향상.

모든 상태 이상 해제.

특수 스킬 '레드 스타' 사용 가능.

검을 꺼내서 전투를 할 때마다 0.01의 확률로 드래곤이 찾아올 수 있다.



스킬 레드 스타 : 확인되지 않음.

감정 어려움.

화염 계열 마법과 관련이 깊을 것으로 추청.







슬로어의 결혼반지(남성용) : 내구도 40/40.

희망과 영원한 젊음, 애정을 상징하는 에메랄드 반지다. 드워프 장인 세공사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

슬로어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구한 반지로, 큰 염원이 담겨 잇다.

여성용과 한 세트.

제한 :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남자.

이성이 끼워 줘야 함.

옵션 : 마나의 집중도 증가로 공격 스킬과 마법의 위력을 27% 강화.

마법 주문을 외우는 속도를 단축시킴.

마나 회복 속도 35% 증가.

명성 +1,200.

기품, 교양, 지식, 지혜 +40.

매력 +150.

보호 마법 '쉴드'가 내장되어 있음.



위드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슬로어의 결혼반지 세트. 그리고 과연 드래곤의 검이군."

레드 스타의 공격력이나 여러 옵션들은 좋았다. 레벨 제한 이야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바로 팔아 치울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는데, 까다롭게 불에 대한 저항력이 착용 제한으로 걸렸다.

게다가 제값을 가장 받기 어렵다는 장물, 도난품!

"이걸 누구에게 팔아야 할지."

위드가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바닥에 아이템들이 흩어져 있었다.

두 번의 죽음으로 떨어뜨린 아이템들, 재봉 도구와 탈로크의 갑옷, 조각품 몇 개.

위드의 악명이 많이 쌓였던 데다 살인자의 상태라서 평소보다 아이템을 많이 떻어뜨린 것이다.

언데드들이 싸워서 얻은 아이템들도 수거하고 있을 때에 서윤이 접속을 하고, 황금새와 은새, 누렁이도 다가왔다.

"무사히 피했었구나."

위드는 누렁이의 등을 자상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진심으로 감동해서 머리를 비비고 혀로 얼굴을 핥는 등 여간 해서는 하지 않았던 애교도 부리는 누렁이였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저를 이렇게 아껴 주시는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곳에서 죽으면 안되지. 네 몸값이 얼마인데...... .'

위드의 속마음은 꿈에도 모르는 채, 겉으로 보기에는 감동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는 둘.

은새가 파닥거리고 날갯짓을 하더니 위드의 어깨에 내려 않았다.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몸짓이었다.

은새는 조각 생명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새침하고 잘 토라지는 여자아이 같은 성격을 가졌다.

이번 전추로 위드가 마음에 든 것이다.

"그럼 쿠비챠의 아이템을 분배해 줘야 되는데, 부츠와 판금 갑옷 세트는 우리가 입을 수 없는 거니까 나중에 팔아서 나누기로 하자. 괜찮겠어?"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들 수 잇는 아이템은 이미 훨씬 전에 초과했기에 마을이나 성에 돌아가서 나눠받기로 했다.


"그리고 이건 일단 받아."

위드는 슬로어의 반지 중에서 남성용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여성용은 자신이 들고 잇는 채였다.

"같이 서로에게 끼워 주는 거야."

"......?"

위드는 착용 제한 때문에 그런 제안을 한 거지만, 반지라하니 얼굴이 사과처럼 붉게 달아오르는 서윤이었다.

여자에게 반지의 의미란 결코 작지 않다. 그것도 결혼용 반지라니!

띠링!

-슬로어의 결혼반지 세트를 착용하기 위해서는 그의 염원을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만약 염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착용한다면 반지의 효과가 역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슬로어의 염원, 둘만의 결혼식을 진행하시겠습니까?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슬로어와 그의 약혼녀였던 레티아 이벨린이 되어서 그들의 한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위드에게는 당연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니크급 아이템. 사냥에는 필수적인 마나 회복 속도만 놓고 본다면 최고의 반지였다.

그들이 잠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골라스의 인페르노 던전에 있던 둘 그리고

조각 생명체들을 둘러싼 환경이 밝고 웅장한 성으로 변화되었다.




-니플하임 제구그이 이벨린 성에 도착하셨습니다.

이곳은 슬로어가 만든 꿈, '마법의 환영' 속의 세계입니다.

단, 획득한 아이템들은 그대로 소유하실 수 있습니다.





위드와 서윤에게 집사와 하녀들이 다가왓다

"어머, 이렇게 늦게 일어나시면 어떻게 해요. 오늘이 결혼식인데 빨리 준비하셔야죠.

재단사가 보내온 옷이 도착했으니 어서 오세요, 슬로어 님."

위드의 외모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대로였지만, 하녀들은 그를 슬로어라고 불렀다.

위드는 하녀들에게 끌려가듯이 움직였다.

서윤도 하녀들에게 이끌려서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어쩌면 이렇게 피부가 고우실까."

"레티아 님처럼 아름다운 분은 처음 봐요. 슬로어 님은 정말 최고의 행운아인 것 같아요."

복도를 걸으면서 하녀들이 서윤에게 하는 말들이 들렸다.

위드에게도 하녀들이 말했다.

"피부 관리는 하시는거예요?"

"앗, 눈곱이 그대로 끼어 잇어요. 어서 세수부터 하러 가요."

멍하니 복도에 남아 있던 누렁이와 황금새, 은새. 하지만 곧 목장 관리자와 정원

관리인 등이 나타나서 그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바비 걸음을 옮겼다.



위드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목욕을 하고 머리도 감았다.

로열 로드에서는 오랜만에 씻는 것이라서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피로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씻은 후에 식사를 하시면 체력의 최대치보다 20% 높은 수준까지 회복할 수 있습니다.



편안하게 쉰 것은 목욕을 하는 30분간만이었다.

재단사들이 와서 움직이기 불편한 정장을 입혔다.

감정 스킬을 활용해서 확인해 보니 니플하임 제국 시대의 귀족 결혼 복장으로, 기품과 매력, 이성에 대한 호감을 상당히 올려 주는 아이템이었다.


-고위 귀족들의 결혼복에 대한 제작 방법을 입수하셨습니다.


재봉 스킬을 가지고 있는 위드에게는 새로운 복장에 대한 제작법을 배울 수 있게 해 준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쓸모는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방어력이 거의 전무했고, 내구도가 낮아서 조금만 닳아도 매력 등의 특수 효과가 줄어들어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구겨지기만 해도 기품이나 매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효과까지 있었으니!

'만들면 옷감겂도 건지기 어렵겠군.'

옷을 입은 이후에는 하녀들이 머리를 다듬어 주었다.

광택이 흐르는 이상한 약품을 머리카락에 바르고, 전혀 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빗질을 하며 헤어스타일을 바꾼다.

'머리는 샴푸로 감고 그저 수건으로 탈탈 털어서 말리면 되는데.'

자연주의를 실천하면서 살았던 위드에게는 매우 생소하 경험이었다.

이마가 훤히 보이게 머리를 넘기더니, 삼 대 칠의 비율로 가르마를 탔다.

위드는 거울을 보다가 어색하고 민망해서 말했다.

"그냥 머리를 평범하게 내리면 안 될까요?"

"어머, 슬로어 님이 평소 좋아하시던 스타일로 했는데요?"

"...... ."

하녀들의 대답에 뭐라고 대꾸할 수도 없었다.

'결혼식만 끝나면 다시 머리카락을 내리면 되니까. 이 정도야 참으면 되지.'

살아생전 해 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던 화장도 했다.

하녀가 거울에 비친 위드의 모습을 보다가 말했다.

"많이 멋있어지신 것 같아요."

눈살을 찌푸리며 겨우겨우 말하는 모양새가, 억지로 하는 말임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앗다.

그리고 성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결혼식이 시작되나 봐요, 슬로어 님."

"그럼 어서 가야겠군."

위드는 빨리 끝마치고 싶을 뿐이었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감정. 외모를 가꾸는 것만으로도 여자를 따라서 백화점을 다섯 바퀴 정도는 돈 것 같은 피로를 느꼈다.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셔야죠. 그리고 주례를 해 주실 분도 먼저 찾아뵈어야 되고요."

"그냥 빨리 결혼식을 하면 안 되나?"

"레티아 님은 준비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세요. 결혼식장에서 보실 신부가 예뻐야 되잖앙요."

화장을 하거나 꾸미지 않더라도 예쁠 서윤이었지만 일정이 그렇다니 할 수 없다.

위드는 결혼식이 거행될 푸른 샘의 홀 앞에서 하객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서 있었다.

'어차피 내 결혼식도 아니고... 인사는 무슨 인사야.'

"슬로어, 자네가 이번에 개발한 마법 주문 시간 단축에 대한 이론은 아주 좋았어. 올해 마탑에서 내리는 학자의 상을 수상하기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더군."



-마법 재료, 푸른 도마뱀의 꼬리를 습득하셨습니다.



위드는 급히 옷매무새를 추스르고 악수를 청했다.

"제 결혼식에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베이런 백작 가문의 후계자가 벌써 커서 성혼을 하게 되다니, 세월 참 빠르군."

-니플하임 제국의 금화 80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마법사들과 귀족들이 하객으로 왔다.

그들로부터 축의금과 선물들이 쏟아졌기에 위드는 정중하고 반갑게 맞이했다.

주례는 축복과 영광의 교단, 스피렌의 주교가 맡았다.

"오늘 젊고 유망한 마법사이며 귀족인 슬로어 베이런과, 니플하임 제국의 명품 이벨린가 레티아 양의 결혼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학단의 장중한 연주와 함께 결혼식이 개시되었다.

첫 곡이 끝나고 나자, 사회자인 귀족 남자가 하객을들 소개했다.

그 후에는 인생을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는 듯한 교향곡이 연주되었다.

위드는 결혼을 하는 데 이토록 많은 과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냉수 한그릇 후딱 떠 놓고 마치고 싶었지만, 시종들은 만찬을 가져와서 하객들의 자리에 배치했다.

'삼다수에 녹차 티백 하나 우려내 주면 정말 부족함이 없는 결혼식일 텐네... 준비 과정이 길기만 하구나.'

하객으로는 누렁이와 황금새, 은새도 앉아 있었다.

누렁이에게는 신선한 야채가, 황금새와 은새에게는 조미료 없이 간단히 요리한 장어 그리고 뱀 요리가 나왔다.

"신랑 슬로어 베이런 백작이 입장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 위드가 씩씩하게 걸어서 식장으로 들어갔다.

'많이 벌었어.'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반지까지 착용하게 되면 완벽한 대박이다.

위드가 가지고 있는 여성용 반지를 서윤에게 끼워 주고 남성용 반지를 받기만 하면 되니 식은 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기였다.

위드는 주례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만히 섰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악단이 맑은 멜로디의 음악을 연주햇다. 그리고 천천히 들어오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서윤.

축제 때에도 입은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자태.

세상의 아름다움이 모이고 모여서 빚어낸 것 같은 서윤이 걸어오고 있었다.

위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도 내가 면사포를 벗겨 주었지.'

인연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큰 인연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린 많은 곳에서 함께했어.'

초보 시절에 로자임 왕국의 교관 통나무집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오크 카리취로 변신했을 때 절망의 평원에서도 함께했다.

북부에서 엘프의 씨앗을 심고 본 드래곤을 잡는 모험을 할 때에도 서윤이 같이 있었다.

지골라스에서도, 그녀는 목숨까지 버려 가면서 함께 싸웠다.

위드가 어려운 일을 할 때에는 언제나 그녀가 근처에 있었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수많은 조각품들의 매력도 그녀를 조각하면서 일깨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최초의 대작 조각품도 그녀의 조각품이 아니었던가.

심지어 달빛조각술을 터득할 때도 그녀가 같이 있었다.

드레스를 입고 걸어오는 서윤을 보며 위드는 억지로 다른 생각을 떠올렷다.

서윤과 여러 인연으로 엮여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인정하기가 두려웠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는 다른 곳에 있을 것 같았다.

위드 자신이 아니라 말이다.

'할머니가 말씀하셨어. 여자는 외모가 전부는 아니라고 말이야.'

서윤이 다가오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말에 따라 냉정하게 서윤을 평가해 보기로 했다.



- 여자가 예쁘면 3년이 행복하고, 요리를 잘하면 30년이 행복하며, 똑똑하면 3대가 행복하다.



'서윤처럼 예쁜 여자는 없으니 조금 가산점을 주기는 해야 될 거야. 6년 정도는 행복할까?'

남자 친구나 남편이 되더라도 서윤의 외모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침에 일어나서 옆에 누워 있는 서윤을 보면서 이곳이 천국인가 하는 착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런 빛나는 외모도 6년이면 사그라질 것이다. 자신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6년이 지나도 여전히 20대일 텐데 왠지 갈수록 예뻐질 것 같은 느낌이......

어쨌든 여자가 요리를 잘해야 30년이 행복해.'

서윤의 도시락을 먹어 본 바로는 재료들의 맛을 잘 살리고 조미료도 적게 쓰는 편이었다.

위드보다는 요리를 못했지만 상당히 뛰어난 솜씨다.

'요리로도 30년은 행복하겠군.

위드도 아내를 위하여 요리를 해 줄 것이었으니, 새로운 요리법들도 개발하며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서윤의 성적은 한국 대학교에 무리 없이 입학할 수준이엇고, 강의를 함께 들으면서 보니 노트 필기도 잘했다.

쪽지 시험을 치를 때에도 모르는 게 없었으며, 살짝 훔쳐본 가방 안에는 외국의 논문들이나 전문적인 서적들도 가지고 다녔다.

쉬는 시간에는 책도 많이 읽었다.

'머리도 좋은 편이군.'

할머니의 평가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서윤을 낮출 수가 없었다.

'분명히 단점이 있을 거야. 잘 숨겨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단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잠을 자면서 이빨을 간다거나... 이건 이니군. 엠티에서도 얌전하게 자는 편이던데.'

순간 위드의 머리속에 번뜩이는 기억이 있었다.

'자면서 가끔 옆으로 뒤척였지. 심각하게 나쁜 잠버릇이야. 밥을 먹을 때 물도 많이 마시고,

젓가락질을 할 때 반찬을 2개씩 집어 먹은 적도 있지.'

위드는 어떻게든 서윤에게 트집을 잡으려고 궁리했다.

그녀의 단점을 지적해야 하는 건 거의 습관이 되었다.

서윤과 사냥을 함께했던 오래전부터 그녀가 나쁘다고, 못된 사람이라고 오해를 해야만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서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손을 잡고 팔짱을 끼었다.

박수 소리와 함께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명예로운 결혼식을 주관하게 되어서...... .

신랑 슬로어는 헤롯 성에서 태어나서 마나에 대해 일찍 깨달았으며, 스승 몬타의 제자로 들어간 이후...... .

신부 레티아는 명문 이벨린백작가에서 태어나 취미로는 꽃과 나무를 잘 가꾸고...... .

이 결혼식이 니플하임 제국에 미치는 의미로는...... .

선남선녀의 결혼식으로...... ."

위드는 졸려서 하품이 나오는 것을 참으면서 대충 흘려들었다.

따로 시험이 볼 것도 아닌데 주례사의 내용을 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짧을수록 좋다는 주례사였지만, 성 앞에 무슨 꽃이 피었고 나비들이 날아든다는 자연에 대한 찬미까지 하면서 상당히 길어졌다.

'축복과 영광이라더니, 온갖 이야기를 다 하는군.'

위드는 가까스로 참고 견뎠다.

그리고 주례사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다.

둘만의 서약,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의식이었다.

"신랑은 신부를 자신의 반려자로 맞이해서 평생 존중하고 행복하게, 그 어떤 고난과 어려움.

힘겨운 시험이 있더라돋 함께 이겨 낼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합니까?"

결혼식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예라고 대답하고 반지를 끼워 주어야 했다.

"예."

위드는 서윤의 손을 잡고 들어 올렷다.

광전사로서 수많은 전투를 치른 그녀의 손이지만, 섬섬옥수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예뻤다.

손톱마저 예쁜 서윤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스피렌의 주교가 이번에는 서윤을 향해 물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함께할 수 있을 만큼 그를 사랑합니까?"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고, 웨딩 드레스를 입으면서 서윤도 많은 생각을 했다.

위드와의 첫 만남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들을 함께 보냈다. 누렁이와 금인이를 비롯한 조각 생명체들이나, 그가 기르던 동물들과도 친해졌다.

타인을 경계하고 무서워했지만, 위드에게만은 그러지 않게 되었다.

그녀를 걱정해 주는 차은희도 말했었다.

"산다는 게 어떤 건 줄 아니?"

"...... ."

서윤은 말을 하는 게 한없이 무섭고 두려울 때라서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자신의 감정들을 나눌 수가 없었다.

"인생에 대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10대에는 공부를 하고 학원을 다니느라. 매일 정신없이 바쁘지. 성적이라도 몇 점 떨어지면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니 걱정이야."

입시 지옥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가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잠깐이지. 2학년만 되어도 취직 준비를 해야 돼. 직장에 들어가려면 경쟁이 치열하니까."

취업 전쟁도 매년 갈수록 거세어진다.

일찍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좋은 직장을 잡기가 어려웠다.

"사회에 나가서 일하고 적응하다 보면 금방 20대 후반이야. 선이니 남자니 하면서 명절마다 집에서는 왜 빨리 결혼하지 않느냐고 성화지."

하루하루 젊음이 사라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나이 먹는 것에 대해 민감해질 시기다.

"그렇게 우리 인생이란 건 정말 빠르게 지나가 버려, 서윤아. 하지만 말이야."

차은희는 예쁘게 활짝 웃었다.

"평범함에 행복이 있단다. 남들처럼 그렇게 살면서 공부하며 친구들을 사귀고, 이 친구들이 평생 함께 걷는 동반자가 되어 주는 거야. 대학에서는 부족한 시간에도 동아리 활동도 하고, 취미 생활을 만들 수도 있어."

"...... ."

"회사를 다니면서 억울하고, 짜증 나고, 화나고, 당장 사표 쓰고 싶은 날도 있겠지만, 성취감과 자기 개발도 할 수 잇겠지? 더 나이를 먹더 보면 결혼도 하고, 그 후에는 아이도 낳고 기르는 30대, 40대의 삶도 나쁘지 않을 거야."

"...... ."

"어른이 된다는 건 그 나이들을 지나오면서 많은 행복들을 누린다는 거니까.

그런데 내가 걱정하는 건, 네가 그 기회들을 놓치고 있다는 거야."

표정에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지만, 서윤은 차윤희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넌 평범하게 살지는 않고 있잖아. 그렇게 친구들도 사귀지 않고 너의 세계에서만 산다면...... . 그 많은 행복들을 만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단다. 그건 너무 아쉬운 거야. 나중에 때가 오면 꼭 용기를 내야해. 그러지 않으면 네가 정말 좋아하고 또 널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떠나 버릴 수도 있어."

서윤은 차은희가 했던 말들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위드와 같이 있으면서 그때의 말들이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에는 궁핍한 마을이던 모리타의 축제에서, 위드와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 것을 느꼈다.

연료를 태우는 난로가 아니라, 가볍게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처럼 따뜻했다.

위드가 해 준 음식을 먹고 모험을 하고 조각품을 보면서 서윤은 멀리 떨어 관찰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동반자이고 싶었다.

마음이 얼어 있던 그녀지만, 그 따뜻함이 참 좋다고 말하고 싶었다.

준비되지 않은 갑자기라서 더 어려운 일이고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필요한 때에 용기를 냈다.

서윤은 한없는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좋아합니다."






-End- TO BE CONTINUED


추천 (0) 선물 (0명)
IP: ♡.227.♡.19
23,397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단차
2023-12-14
0
148
단차
2023-12-13
0
142
단차
2023-12-13
0
169
단차
2023-12-13
2
239
단차
2023-12-12
1
178
단차
2023-12-12
1
156
단차
2023-12-12
1
131
단차
2023-12-12
1
200
단차
2023-12-12
1
121
단차
2023-12-11
1
194
단차
2023-12-11
1
195
단차
2023-12-11
1
132
단차
2023-12-11
1
143
단차
2023-12-11
1
181
단차
2023-12-10
1
153
단차
2023-12-10
2
143
단차
2023-12-10
1
121
단차
2023-12-10
1
138
단차
2023-12-10
2
200
뉘썬2뉘썬2
2023-12-10
1
257
뉘썬2뉘썬2
2023-12-10
1
256
단차
2023-12-09
1
246
단차
2023-12-09
1
210
단차
2023-12-09
1
136
단차
2023-12-09
1
198
단차
2023-12-09
1
145
단차
2023-12-08
1
130
단차
2023-12-08
1
104
단차
2023-12-08
2
145
단차
2023-12-08
1
112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