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 24

3학년2반 | 2022.01.23 08:51:13 댓글: 0 조회: 493 추천: 0
분류인터넷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4492
달빛조각사24권


차례


1 반역을 꿈꾸는 둠 나이트
2 헤르메스 길드와의 격돌
3 목숨보다 무서운 견적
4 헬리움 조각품
5 턴 언데드
6 3마리의 본 드래곤
7 폭풍의 부름
8 바르고 성채의 주인
9 크리스마스의 눈 내리는 밤
10 늙은 시녀의 의뢰
11 위드의 부름



1. 반역을 꿈꾸는 둠 나이트


위드가 다시 접속해서 나타난 장소는 불사의 군단의 진영이 있는 바르고 성채 안이었다.

나달리아 평원에서 수도원을 공략하는 퀘스트를 마쳤기 때문에 새로운 지역에서 되살아 난것이다.

레벨이 300에서 400을 넘어서는 고위 언데드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고 있는 극악의 위험한 장소!

본 드래곤 2마리가 성벽과 탑에 서 있었으며, 1마리는 공중에서 날아다녔다.

"엘프들의 저항이 심하다는군."

"바르칸 님이 움직이기만 하면 금방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페어리들의 반격 때문에 함부로 나서시긴 어렵지."

"드워프들의 도끼질이 무서워."

페어리의 여왕 테네이돈이 머무르는 던전에서의 전투가 언데드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바르고 성채의 황량한 정원에는 수천이 넘는 정예 언데드들이 있지만, 대화를 나누는 언데드들은 몇 안 되었다.

위드는 말라비틀어진 나무 근처에 앉았다.

"우선 확인부터 해 봐야겠군."

대왕 아반나와 싸우다가 죽었으니, 얼마나 피해를 봤는지 살펴봐야 할 시간이다.

레벨은 예전에는 398이었는데, 1개가 떨어져서 397이 되어 있었다.

"잃어버린 물건은……."

위드는 잡템까지도, 가지고 있던 물건은 대부분 기억했다.

아이템에 대한 것은 아무리 생소한 이름이라도 정확한 수량을 알고 있었다.

장사를 하더라도 항상 기본이 되는 것이 재고 조사였으니까.

"보리 빵과 쪽파, 투구, 지렁이, 스켈레톤의 어금니를 잃어버렸군."

위드의 레벨에 쓸 만한 장비는 없어도 여러모로 속이 쓰렸다.

죽더라도 사람이 많은 장소가 아니라면 아이템을 회수해오곤 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잃어버린 아이템에 대한 미련도 잠시였고, 스킬 숙련도도 확인해 봤다.

고급 8레벨에 이른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는 0%가 되어 있었고, 다른 스킬들도 4%에서 13%까지 떨어져 있다.

정의롭지 못한 언데드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의대가를 다른 때보다 더 크게 받은 것이다.

"이 정도의 피해라면 내 나이가 70대가 되기 전에 잊을 수 있겠군."

자칫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원한을 일시불로 사게 된 폴론과, 그의 배경인 헤르메스 길드!

바르고 성채는 매우 거대한 요새였고, 유명한 언데드 기사인 벤들러 기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이름이 나온 언데드들이 많이 있군.'

불사의 군단에는 최고의 언데드들이 즐비했다.

위드는 퀘스트를 마쳐서 더 높은 단계의 언데드로 승급이 가능했지만, 아직은 데스 나이트였다.

위드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에게로 시종의 유령이 찾아왔다.

"바르칸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언데드로서의 승급을 위하여 바르칸을 만나는 것이다.

위드는 시종의 유령을 따라서 내성으로 들어갔다.

불사의 군단에서는 삼엄한 경계를 펼치진 않았다.

물론 위드가 언데드인 탓에 그냥 가만히 서 있을 뿐, 살아 있는 생명이 접근하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리라.

'여기를 뚫긴 상당히 어렵겠군'

시종의 유령은 위드를 지하로 인도했다.

바르고 성채의 지하에는 오래전부터 뜯지 않은 술들이 오크 통에 담겨 밀봉되어 보관되어 있었다.

'최상급의 와인과 브랜디.'

위드는 냄새만 맡고도 가격이 얼마나 비싼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잘 만든 술은 금과도 같은 무게로 판매되는 실정이다.

'언제부터 묵혀 놓은 술인지는 몰라도 대단하겠군.'

아무 술이나 대책 없이 오래 보관한다고 해서 고급술이 되진 않는다.

바르고 성채는 예전부터 술로 유명했고, 또한 리치 바르칸이 머무르면서 마나의 기운이 충만해졌다.

술은 환경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마셔 보면 엄청난 술들이 완성되어 있을 것 같은 예감이었다.

언데드들이 술을 마신다면 이미 다 동나 버렸을 테지만, 바다 해적의 유령들도 마시는 시늉만 할 뿐 실제로 술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여기에는 바르칸이 머무르고 있었기에 평범한 언데드들이 와서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돈이 쌓여 있는 셈이구나.'

탐욕스럽게 눈독을 들여 놓은 술 창고를 지나서, 위드는 큰 문을 열고 바르칸이 머무르는 장소로 들어갔다.

서늘한 공기가 밀려오는 장소.

지하에는 물이 흘렀고, 시커먼 암석들이 수로와 제단의 역할을 했다.

바르칸은 그곳에서 왕이 사용할 법한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고급스러운 재질로 만들어졌지만 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로브, 머리에 쓰고 있는 큼지막한 보석 왕관, 독수리의 머리가 달린 스태프는 여전했다.

가슴에는 성검이 박혀서 신성한 힘을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었다.

"데스 나이트여, 가까이 오라."

공동을 은은해게 울리는 바르칸의 음성!

"군주시여……."

위드는 바르칸의 앞으로 걸어가서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모라타를 공격하고 있는 불사의 군단만 생각하면 쌍욕을 퍼부어도 모자랄 판이다.

하지만 받을 게 있다면 받고 나서 처리해도 될 일.

위드는 걸어오는 내내, 그리고 바르칸이 머무르는 이 장소로 들어온 후에도 허실을 찾기 위해서 구석구석 잘 쳐다보고 머릿속에 각인시켜 두고 있었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에 바르고 성채에 대한 서술이 조금 나온다.

그리고 과거 북부에 존재했던 성들에 대한 지도도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멀쩡히 남아 있는 성이 얼마 안 되고, 바르고 성채도 언데드들이 점거하면서 훼손되고, 무너지고, 쓰이지 않는 장소들이 많았다.

하지만 탑들을 연결하는 복도나 방, 계단의 구조들을 파악하는 데 참고할 수는 있다.

조각술로 만들었던 작품 덕에 전체적인 구조에 대한 인식이 어느정도 해박한 편이었다.

"군주께서 시키신 일을 처리했을 뿐인데, 저에게 직접 뵐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투박한 데스 나이트들이 잘하지 못하는 아부를 위드는 주저하지 않고 했다.

"성가신 몬스터들을 많이 처리했다고 들었다."

"제가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전부 군주님의 은덕입니다."

"불사의 군단에는 너처럼 재능 있는 언데드들이 많이 필요하다. 데스 나이트는 너의 능력을 펼치는 데 부족한 것 같으니 새로운 몸을 내리겠다."

바르칸이 마법을 외웠다.

지은 죄가 있었으므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지만, 위드는 그대로 얌전히 있었다.

"너희가 살아서 움직이던 땅으로 돌아오라. 이곳은 어두운 곳, 검고 부패한 땅. 영영 사라지지 않을 암흑의 율법을, 모든 이들에게 새길 수 있도록 하라. 언데드 라이즈!"

위드의 몸에서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잠시 후에는 진한 회색 근육을 가진 육체로 바뀌었다.

다리도 길어지고, 등과 팔이 두꺼워 졌다. 키도 40센티 정도 커져서 바바리안보다도 체격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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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칸 데모프의 언데드 소환 마법에 의하여 둠 나이트로 변했습니다.

최상의 언데드 소환 마법에 의하여 전투와 관련된 스텟들이 지금보다 15% 증가합니다.

방어력이 뛰어난 뼈로 된 갑옷을 착용합니다.

전투 스킬들이 최소 고급 2레벨로 오릅니다.

흑마법에 의해 공격당한 적들에게 영원한 고통과, 그치지 않는 절규가 시전됩니다.

다만 둠 나이트 상태를 벗어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언데드로서의 지위가 바르칸의 직속 부하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언데드 부대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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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 전투에서는 최강의 언데드라고 불리는 둠 나이트.

사실 깊은 절망 속에서 탄생한다는 어비스 나이트도 있었다.

본 드래곤을 가볍게 사냥할 수 있을 정도라는 절대적인 몬스터.

전설에 의하면 리치 바르칸과도 맞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비스 나이트는 네크로맨서에 의해 언데드로 소환이 불가능하고, 특정한 조건이 성립되면 스스로 탄생한다.

물론 아직까지는 베르사 대륙의 전설에만 존재했다.

"이 바르고 성채를 지켜라. 엘프들의 반격에 맞서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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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프들의 척살
우드 엘프들은 페어리의 여왕을 지키기 위해서 불사의 군단을 기습하고 있다.

그들의 정령의 힘이 깃든 화살은 언데드들을 완전히 소멸시킨다.

엘프들의 잠입을 막고, 그들에게 언데드의 무서움을 알려 주어야 한다.

바르칸 데모프의 직속 부하 신분으로 평소보다 2배나 더 많은 언데드를 부대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난이도 : A
퀘스트 제한: 언데드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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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칸이 직접 내려 준 퀘스트!

직속 부하가 되었으니 부릴 수 있는 언데드가 더욱 많아지고 질도 높아졌다.

불사의 군단에 있는 언데드를 영입하여 부대를 꾸려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다.

아부와 친밀도만으로는 오로지 못하고, 스켈레톤 병사와 유령, 데스 나이트를 거치면서 철저히 실적을 쌓은 덕분에 이룩한 경지였다.

'여기까지 해 놓은 게 아깝군.'

위드는 바르칸의 편에 서서 페어리 여왕의 생명을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엘프들과 싸우고 드워프들을 살육해서 바르칸을 도와주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불사의 군단에서 반란을 일으킬 작정이었다.

위드는 바르칸 데모프를 사냥하기로 결정했다.

"지금밖에는 기회가 없어."

바르칸이 힘을 되찾거나 되찾지 못하거나, 모라타를 계속 공격할 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떻게는 바르칸을 없애야 하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순순히 퀘스트를 해 왔던건, 믿음을 받으면서 불사의 군단의 허실을 찾기 위한 작업!

외부에서 불사의 군단을 공격하기 어렵다면 내부에서 무너뜨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언데드를 통해 바르칸을 사냥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위드의 레벨이 바르칸을 넘어서고 또한 어비스 나이트가 된다면 모를까, 그 전에 언데드로 바르칸에게 적대할 수는 없었다.

"모라타의 군대를 데려올 수는 없고……."

영주의 특권으로 군대를 이용할 수는 있어도 바르칸에게 언데드만 늘려 주는 꼴이었다.

바르칸은 그를 잡기 위해 오는 허약한 인간의 군대를 보며 너무나도 기뻐하리라.

조각 생명체를 몰고 오지 않은 이유도 있다.

"음식으로 표현하자면 떡갈비, 회 무침, 보쌈, 갈비찜, 신선로, 삼합, 대게, 전복, 샐러드에 식혜까지 갖춘 한정식이나, 레스토랑 풀코스가 되겠지!"

바르칸의 강화 마법에 의해서 지배받는 불사의 군대와의 정면 승부는 위험부담이 너무나도 컸다.

조각 생명체들까지 언데드가 되어 버린다면 바르칸의 힘은 더욱 강성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르칸을 사냥할 수 있는 방법은……."

위드는 언데드 승급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바르고 성채를 원하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언데드를 만나 보았다.

"겔겔겔. 바르칸 님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둠 나이트님."

"경계를 하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엘프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클클. 인간을 구경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보초병들과 파수꾼을 통해 병력의 배치와 질도 파악할 수 있었다.

언데드들은 하루 24시간 내내 경계를 섰다.

바르고 성채에서 몇 년째 경계를 서고 있는 이도 있었다.

경계병이 인간이 아니라서, 위드에게는 허점이 보였다.

"완벽한 기습을 가할 수만 있다면 조용히 돌파할 수는 있겠군."

북이나 뿔피리를 불기 전에만 처리한다면 경계병을 해치우고 내부로 잠입하기란 어렵지 않다.

바르칸이 엘프와 바바리안, 드워프, 페어리들이 지키고 있을 던전으로 뛰어든다면 전투 도중에 습격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르칸은 하실리스를 비롯하여 불사의 군단 언데드에게 임무를 맡겨 놓고 바르고 성채를 떠나지 않으니, 몰래 사냥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불사의 군단이 진을 치고 있는 바르고 성채에서 언데드의 왕 바르칸을 없애는 것이다.

"레벨 100개 정도는 올라야 승산이 눈곱만큼은 있겠군."

위드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한 계획.

그때 황야의여행자 길드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사비나 : 이제 1층만 더 내려가면 보스 몬스터다.

에드윈 : 미공개 던전이라서 정말 힘들었죠. 어쨋든 끝이 보이네요.

핀 : 빨리 끝내고 쉬고 싶어요.

헤르만 : 좋은 금속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위드가 가입한 황야의여행자 길드에서는 심심치 않게 모여서 고위 몬스터 사냥을 즐겼다.

황야의여행자 길드 자체가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은둔형에 가까웠지만, 그들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

다양한 직업의 조합으로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정석에 가까운 방식을 사용했다.

'보스 몬스터 레이드라…….'

여러 개의 파티나 실력자들로 구성하여 대규모 사냥을 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절대 잡을 수 없는 몬스터를 합심하여 사냥하는 방법.

위드는 먼저 페일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페일 님, 사냥 같이하실래요?

> 물론이죠. 어디 계세요?

대답은 정말 빨리 돌아왔다.

위드가 헤르메스 길드에 쫓기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위드는 나중에 더 크게 복수해 주면 될 뿐이라고 마음을 편하게 먹었는데 동료들이 더 신경을 써 주고 있었다.

> 불사의 군단이 있는 장소입니다.

> 그쪽으로 우리가 가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몬스터를 잡으실 건데요?

> 바르칸…….

> 예? 그런 몬스터는……. 혹시 리치 바르칸요?

페일도 불사의 군단의 수장인 바르칸 데모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모라타를 침공하는 1, 2차 언데드와 맞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전설적인 몬스터!

보통 사냥을 하려고 하는 던전의 보스급 몬스터와는 차원이 달랐다.

> 바르칸이 현재 인간들이 잡을 수 있는 몬스터인가요?

> 지금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 잠시만요. 여기에 검치 님들도 와 계십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검삼치로부터 귓속말이 왔다.

> 위드야, 방금 들었는데, 바르칸 잡을 거냐?

> 예. 잡으려고 왔습니다.

> 그런 재밌는 일이 있으면 진작 우리한테 알려 주지 그랬냐.

먼저 말하지 않았다며 서운해하는 검삼치였다.

> 우리도 가도 되냐?

> 오셔도 되기는 하는데 위험해서요.

> 위험하면 더 좋지. 몬스터들은 많이 있고?

> 강한 몬스터들이 깔려 있습니다. 본 드래곤도 3마리나 있고요.

> 본 드래곤? 꼭 가겠다.

> 다른 사형들은요?

> 잠깐, 물어보고 알려 줄게.

검삼치에서 검오백오치까지 합의를 보는 시간은 1분도 안 걸렸다.

"바르칸 잡으러 갈 건데 빠지고 싶은 사람 빠져."

"……."

"위험하다니까. 웬만하면 좀 빠지지 그러냐. 그곳에서는 뼈도 못 추린대. 죽어서 언데드가 되고 싶냐? 본 드래곤도 3마리나 있다는데."

"……!"

"너희 불사의 군단 알아? 언데드로 이루어진 강력한 놈들인데, 그놈이랑 싸우러 가는거야."

검치들은 빨리 싸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 다 가고 싶어 하는데 안 되겠냐?

>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위치는 페일 님한테 알려 드릴테니까 같이 오세요.

> 알았다.

눈이 좋은 페일은 길 찾기를 잘하는 편이었다.

모험가만큼은 아니더라도 별자리만 보고도 찾아올 수 있었고, 또 경험이 많고 지도를 보는 법도 아니까 불사의 군단진영이 있는 장소까지 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형들이 이곳에 와 준다라.'

검치들이 바르고 성채로 침입한다면 언데드와 싸워 볼 만 할것이다.

불사의 군단이 대단하긴 하지만 평야가 아닌 성 내부에서 벌어지는 전투라면, 협소한 탓에 지형적인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사형들은 위드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달려와서 싸워 줄 사람들!

"성기사와 사제들도 필요한데……."

이리엔 1명으로는 사제가 너무 부족했다.

황야의여행자 길드에서는 아쉽게도 다른 고위 몬스터를 사냥하는 도중이라니, 모라타에서밖에 데려올 사람이 없다.

위드는 마판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바르칸을 사냥하려고 하는데, 믿고 도와줄 만한 성기사나 사제가 없을까요?

모라타의 광장에서 장사를 하며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은 마판이니 그에게 물어본 것이다.

> 제가 거래하는 사제들이 몇 명 있는데요, 몇 명이나 필요하세요?

> 많을수록 좋습니다.

> 그럼 알아보고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

마판은 광장에서 거래를 하며 친숙해진 사제들에게만 위드와 함께 바르칸을 사냥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다.

"물론 있죠."

"언제 어디로 가면 되는데요?"

중앙 대륙에서 건너온 유저들은 위드와 함께 퀘스트와 사냥을 하고 싶어 했다.

'바르칸을 사냥한다고? 뭔가 계획이 있겠지.'

'바르칸을 죽일 수 있겠구나!'

'위드 님이니까 그런 생각도 하는군. 잘 따라만 다니면서 치료만 해 주면 될 거야.'

위드가 바르칸 사냥을 한다니까 어떤 계획인지도 모르는채 너도나도 끼려고 했다.

"그런데 제가 아는 누나도 프레야 교단의 고위 사제인데 같이 가도 돼요?"

"모르는 사람이 끼면 곤란한데……."

"누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말 안 할게요."

"내일 아침 6시까지 동쪽 포도밭 너머 큰 나무 아래로 오면 됩니다."

"꼭 갈게요."

마판에게 연락을 받은 사제들은, 그들과 친한 유저들에게 알렸다.

> 형, 위드 님이 바르칸 사냥한다는데…….

> 무조건 가고 싶어. 내가 전쟁의 신 위드 님 때문에 모라타에 온 거 너도 알잖아. 나도 데려가 줄 수 있지?

> 아침에 동쪽 포도밭에 모여서 가기로 했어. 6시까지는 와야 돼.

> 1시간 먼저 도착해서 기다릴게.

연락을 받은 사제들은 매우 귀한 기회라고 여겨서, 다시 친한 사람들에게 마랳ㅆ다.

> 위드 님이 바르칸 사냥하는 거 알고 있었어?

> 정말?

> 사제들과 성기사만 낄 수 있다더라.

> 나 직업이 성기사잖아. 위험할 텐데, 나도 가도 될까?

> 응. 같이 가자.

성기사도 소식을 퍼트렸다.

> 위드 님이 바르칸 사냥하는데, 언데드 죽이러 가자.

> 준비하고 갈게.

연락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1시간도 되지 않아서 200명이 넘는 이들에게 전해졌다.

소식은 풀죽신교에도 퍼졌다.

모라타를 총괄하는 초거대 단체!

가입된 유저만 현재 80만 명이 넘는다.

대부분이 초보자들이었지만, 북부 전역에서 사냥과 모험을 하는 고레벨 유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위드 님이 사냥을 하시는데, 사제와 성기사들을 모집한답니다."

"도움이 될 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을 추려 볼까요?"

다음 날, 모라타의 동쪽 포도밭 앞에 있는 큰 나무에 도착한 페일 일행과 검치들은 사제만 330명, 성기사도 223명이나 되는 큰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위드가 그냥 불렀더라면 더욱 많은 사람이 왔겠지만, 바르칸을 사냥한다고 해서 나름 실력자들만 온 것이었다.

"마판 님, 이렇게 많은 인원은 뭐죠?"

"글쎄요. 저는 딱 14명만 불렀는데……."

모라타에 있는 고위사제와 성기사들은 바르칸을 사냥하는 일에 모두 참여하려고 했다.

위드의 사냥이었기 때문에 참석하고 싶어서 난리였다.

페일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여기서 오래 있으면 사람들의 눈에 너무 띄니 출발하죠. 헤르메스 길드에서 알게 되면 안 좋을 테니까요."

"갑시다!"

검치들과 모라타의 사제들, 성기사들이 황소를 타고 달렸다.

목적지는 불사의 군단이 있는 바르고 성채였다.

#

위드는 바르고 성채의 그늘진 곳과 하수로도 정탐하며 돌아다녔다.

"보수가 되지않아서 개구멍이 많군!"

워낙 엄청난 몬스터들이 들끓는 장소인지라, 바르고 성채의 성벽은 높고 두꺼웠다.

그런데 돌이 빠져 있거나 해서 사람 1명 정도씩은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언데드들에게 성벽을 보수하는 일은 무리였던 것이다.

"엘프들의 습격도 자주 일어나고……."

낮에는 언데드들의 행동이 굼떠지고 약해진다.

그럴 때 엘프들이 바람처럼 나타나서 화살을 쏘며 공격을 했다.

불사의 군단의 언데드들이 출동하긴 했지만, 엘프들의 기동력을 따라잡기는 만만치가 않았다.

엘프들을 따라서 계속 쫓아가다 보면 드워프와 바바리안의 매복까지 당해서 오히려 언데드들이 전멸하기 일쑤!

바르칸의 마법, 다크 룰에 의하여 나중에 되살아나서 영락없는 패잔병의 몰골로 돌아왔다.

"엘프들과 싸우고 싶진 않군."

위드는 엘프야말로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생각했다.

레벨이 높은 엘프는 말을타고 쫓아가지 않고서는 따라잡기가 어렵다.

활을 귀신처럼 다루며, 나뭇가지를 타고 도약하고 다니니 사냥이 힘들었다.

언데드들과 같이 싸우더라도 그다지 재미를 보기는 어려웠다.

페어리나 엘프를 사냥하면 자연과의 친화력도 많이 떨어질텐데, 그러면 대재앙을 일으키기고 힘들어진다.

"굳이 엘프가 아니더라도 싸울 대상은 많이 있지."

경험치나 전리품으로 볼 때 몬스터보다 훨씬 나은 대상이 이곳과 가까운 장소에 있었다.

"마법사, 레인저, 기사 폴론이라고 했던가? 복수를 해 줄 시간이야."

#

헤르메스 길드에 가입하지 않기로 한 쟌과 오템, 헤리안, 그루즈드, 바레나를 비롯한 30인은 고충을 겪고 있었다.

"협곡에서 물러나라. 사냥을 금지한다!"

레인저와 마법사들의 견제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구경만 해야 했다.

폴론은 처음의 말과는 달리 그들을 공격해서 죽이지는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에 가입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지 몸으로 겪게 만든다.

아직까지 네크로맨서들을 포섭할 생각이 있었으므로 기회를 준 것이라고 봐도 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보통 분통이 터지는 게 아니었다.

보흐람과 다른 34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헤르메스 길드에 가입했다.

그들만이 협곡에서 사냥을 하면서 경험치와 스킬숙련도를 올렸다.

"젠장.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오템이 불만을 토해 냈다.

다른 네크로맨서들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이럴 바에야 그냥 확 돌아가 버릴까?"

불사의 군단에서의 의뢰나 사냥을 포기하고 원래 혼자 사냥하던 장소에서 착실하게 스킬을 올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마레이가 그들을 말렸다.

위드가 몰래 넘겨준 아이템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헤르메스 길드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돌아와 있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헤르메스 길드는 공식적인 척살령을 내리고 계속 괴롭힐 겁니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길드에 가입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죽이진 않는다.

일정한 영역을 정해 놓고, 협곡의 근처로 오거나 사냥을 하지 못하게 막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를 떠나서 중앙 대륙으로 넘어간다면 그때부터는 헤르메스 길드에서 적으로 간주한다.

네크로맨서들은 누구 도와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그 점이 두려웠다.

답답했던지 헤리안도 말했다.

"차라리 시원하게 싸우다가 죽는 게 낫겠어요."

죽이지도 않으면서 격리만 시켜 놓는 게 더 화가 나는 일이었다.

바레나가 주변의 유저들을 돌아보았다.

"이대로 참고만 있을 겁니까? 싸워 보는 건 어떻습니까?"

"싸움요?"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거라도 보여 줘야죠."

네크로맨서들의 전력만 놓고 보면 쟌과 오템, 헤리안 등이 있는 이쪽이 월등했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대까지 감안한다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

언데드와 싸울 준비까지 하고 있는 그들이었고, 또한 이쪽의 움직임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

네크로맨서의 큰 단점이, 바로 충분한 양의 언데드를 소환하는 데 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체들을 보아야 되고, 사냥을 하면서 언데드 부대를 늘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고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공격을 할 테니, 무의미한 죽음이 되어 버릴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차라리 의미 있게 헤르메스 길드에 피해라도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마레이가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기다리면 다 잘될 겁니다."

마레이가 유명한 바드라는 사실을 알기에, 쟌이 혹시나 하며 희망을 갖고 물었다.

"무슨 작전이라도 있습니까?"

"그냥 지켜보면 됩니다. 좋은 소식이 올 테니까요."

마레이는 대외 관계도 좋고, 여러 유저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인간상을 겪어 보았다.

그들 중에서 그 누구도 위드만큼 속이 좁진 않았다.

편협하기 짝이 없는 마음!

화해, 용서, 포용력은 유치원에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분명하다.

당한 것은 잊지 않으며 몇 배 크게 보복해 줄 사람이 위드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었다.



2. 헤르메스 길드와의 격돌


위드는 불사의 군단에서 병력을 모집했다.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해골도 들어 본 적이 있을 정도의 명성!

영광의 언데드 지휘관이나 불멸의 전사라는 호칭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을 모으는 건 쉬웠다.

위드는 바르고 성채를 걸어 다니며 쓸 만한 언데드에게 말을 걸었다.

"나와 함께 가자."

"알겠습니다."

+ 데스 나이트가 부하가 되었습니다.

"같이 싸우자."

"바르칸 님의 신임을 받고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투에서 훌륭한 활약을 하고 싶습니다."

+ 둠 나이트가 부대에 합류합니다.

"너희, 놀지 말고 전투하러 가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벨리컨 기사단의 언데드들이 부대에 합류합니다.

바르칸의 직속 부하라는 신분은, 벤들러 기사단만 제외하면 꽤나 높은 편이다.

둠 나이트, 데스 나이트들을 묶어서 얼마든 부하로 쓸 수 있다.

대단히 큰 권력이 주어진 것이다.

"권력이란 마구 쓰라고 있는 거지. 안 그러면 뭐하러 출세하려고 하겠어."

위드는 휘하의 언데드 부대를 마구 확충했다.

둠 나이트는 아직 일반 네크로맨서들은 소환도 하지 못하는 언데드다.

언데드 부대를 거느리고 헤르메스 길드를 괴롭힐 생각이었다.

불사의 군단에는 우선 바르칸의 명령에 따라서 엘프와 바바리안, 드워프 연합군을 공격하라는 방침이 세워져있다.

방침에 어긋나게 행동하면 불사의 군단에서 평판이 하락하고, 쌓아 올린 경력과 신뢰도가 감소한다.

"어차피 바르칸도 사냥해야 할 바에야……."

반역까지 꿈꾸는 마당에 못 할 짓을 없다.

위드는 정예 언데드 기사들만 골라 700명으로 부대를 편성했다.

인간들이었다면 굉장히 뛰어난 전력이었다.

주력을 아니더라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 싼 맛에 유령 계열의 스펙터들도 대치했다.

"화살이 무제한은 아닐 거야."

마법사들의 마나와 레인저들의 화살을 낭비하게 만드는 데에는 유령이 최고다.

마법 공격을 당하더라도 완전한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가져온 은화살은 수량이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위드처럼 대장장이 스킬이 중급 이상이라면 재료만 있어도 현장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지만, 그런 유저는 베르사 대륙을 전부 뒤져도 찾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었다.

"나처럼 대장장이 스킬을 익혀 놓으면 어디서든 빛을 보기 마련이지."

무기점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것을 굳이 대장장이 스킬을 익혀 만들려고 하는 유저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

"왔다!"

위드가 언데드 부대를 끌고 갔을 때, 폴론은 기사와 레인저, 마법사들과 함께 대비하고 있었다.

마레이도 위드가 복수를 하기 위해서 다시 돌아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듯이, 폴론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번의 싸움이 전초전이라면, 이번에는 본격적인 전투다.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에서도 절대로 지지 말라고 따로 당부를 할 정도였기 때문에, 폴론과 그의 부하들은 방어에 유리한 구릉에서 싸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놈이 정면에서 옵니다. 혼자가 아니라 언데드들과 같이 오고 있습니다."

"둠 나이트, 데스 나이트, 보통 언데드들이 아닙니다. 우리 기사들보다야 약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전력입니다."

"숫자가, 기사들만 치면 우리보다 더 많습니다. 어디서 기사 병력을 저렇게 많이 모을 수 있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기대했던 상황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위드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다시 덤벼 오기라도 한다면 가볍게 죽여 주려고 했는데…….

그럼에도 정면 승부라면, 폴론과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언데드가 많다고 해도 마법에 화살을 퍼붓고 나서 싸우면 크레마 기사단으로 짓밟을 수 있습니다."

"놈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쏘자!"

언데드들이 가까워지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폴론과 유저들은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하늘을 뒤덮는 화살과 마법 공격으로 본때를 보여주리라.

마법 공격은 규모가 큰 전투에서는 승패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갖는다.

하지만 위드가 둠 나이트가 되어 있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언데드들을 많이 끌고 왔기 때문에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쏴라!"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레인저들이 시위를 당겼다.

때를 맞춰 마법사들은 마법을 퍼부었다.

은화살들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고, 불덩어리들이 언데드의 머리위로 떨어진다.

위드의 명령이 떨어지면 부하들은 무수히 많은 공격들을 뚫고 돌진할 것이다.

"후퇴한다."

위드는 언데드들과 함께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대부분이 기사 계열이거나 유령이라서, 기동력이 강했다.

마법이 대지에 작렬하고 은화살들이 하늘을 온통 뒤덮었디만, 언데드들은 십분의 일도 죽지 않고 사정거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생각 외로 강한 공격이었던 듯이, 위드는 언데드들을 멈추고 잠기 대기했다.

그리고 언데드를 부채꼴로 넓게 펼쳐서 다시금 진군을 시도했다.

"다시 온다. 공격준비. 쏴라!"

레인저와 마법사들의 공격이 넓은 곳으로 분산되어야 했다.

"레인저들이 중앙을 맡고, 마법병단은 왼쪽과 오른쪽을 타격한다."

폴론이 많이 훈련시킨 병력이었기에 어느 한쪽만 집중 공격을 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골고루 타격할 수 있었다.

무서운 화력에, 위드는 이번에도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언데드들과 함께 다시 뒤로 물러났다.

부대가 넓게 펼쳐져서 전진했기 때문에 비교적 피해가 적었을 뿐, 언데드들이 90마리 이상 회생 불가능한 부상을 입었다.

"우와아아!"

"언데드들이 가까이 오지도 못한다!"

마법사와 레인저들의 사기가 올랐다.

더 가까이 다가왔을때 공격을 했더라면 더욱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으리라.

하지만 기사들 위주로 편성된 언데드들의 기동력이 빠를 것이기 때문에, 더욱 여러 번의 공격을 위하여 최대 사정거리 안에만 들어오면 바로 타격을 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네 번이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위드와 언데드들은 공격을 할 듯 말 듯 하면서 레인저의 은화살만 소모시켰다.

불사의 군단 본진에 있던 언데드들이라서, 몸에 웬만큼 은화살이 꽂혀 있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르칸의 언데드 강화 스킬인 데스 오라 덕분에 마법 공격의 저항력도 상당히 높았을 뿐만 아니라, 생명력의 회복이 빨랐다.

"많이 얻었군. 일단 수거부터 하자."

위드는 스펙터들만 동원해서 땅에 빼곡히 쌓여 있는 은화살들을 챙겼다.

수도원에서 잃어버린 아이템을 은화살로 보충할 셈이었다.

"룰루루."

콧노래를 부르면서 은화살에 이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싸운다면 몇만 골드도 금방 모을 수 있겠어."

언데드야 죽거나 말거나 알 바가 아니었다.

#

다음 날에도 위드는 언데드를 다시 보충해서 끌고 왔다.

전날 전투에서 진 것과 다름없이 언데드를 무의미하게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기가 다소 많이 떨어져 있었다.

언데드들은 사기가 떨어지면 불행한 일이 자주 생긴다.

전투 중에 검이 부러지거나, 적의 행운에 의하여 약한 공격에도 큰 데미지를 입곤 한다.

위드도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언데드를 모으는 동안 시간이 남아서, 바르고 성채에서 벤들러 기사에게도 말을 걸어 보았는데 반응은 좋지 않았다.

"햇병아리 둠 나이트로군. 언데드로서 큰 업적을 더 쌓지 못한다면 우리와 함께할 수 없다."

본 드래곤에게는 차마 말도 걸어 보지 못했다.

목숨은 여러 개라도 소중하기 때문이었다.

하루가 지났지만 폴론과 헤르메스 길드는 그대로 같은 구릉지대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이곳이 방어가 쉬울 뿐만 아니라 이동도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첫 번째 목적은 위드의 척살.

그게 불가능할 경우에는 위드가 다시는 퀘스트를 성공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오늘도 언데드를 다시 몰고 왔습니다."

첫날에 은화살의 소모가 막대했기 때문에 폴론과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대응도 바뀌었다.

"화살을 아끼자. 마법으로 타격하고, 기사단으로 쓸어버리자!"

오늘은 언데드들에게 실제 물자가 소모되지 않는 마나 화살과 마법을 퍼붓고 나서, 크레마 기사단을 돌진시키기로 작전을 바꿨다.

둠 나이트 등이 부답스럽더라도 그들은 축복받은 성소의 다이아몬드는 가지고 있다.

언데드들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아이템으로서, 네 가지 신성 마법이 기사단에 자동으로 걸렸다.

축복, 보호, 집중, 약간 빠른 회복.

네 가지의 단체 신성 마법으로 크레마 기사단은 언데드를 사냥할 때 최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전력상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단숨에 쓸어버리고 위드를 잡으려는 계획이었다.

"쳐라!"

"모두 짓밟아라!"

하벤 왕국의 전쟁에서 증명되었던 크레마 기사단의 용맹!

기사단이 가속이 붙으면 그보다 10배가 넘는 적이라도 충분히 물리친다.

더구나 마법병단의 지원을 받는다면 기사의 전력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올라간다.

크레마 기사단에서도 최고라고 불리는 10인의 기사들.

그들의 레벨은 380이 넘고, 완벽하게 갖춰진 무장 상태로 전투마를 타고 있었다.

기사단이 함께 움직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위력은 훨씬 배가되웠다.

속도와 뭉쳐 있는 파괴력이야말로 기사단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기껏해야 위드는 1명이고 나머지느 언데드들이다. 돌격으로 모두 쓸어버리자!"

"우와아아!"

위드에게도 크레마 기사단의 돌격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지난번에 사용했던, 말을 타고 추격전을 벌이는 방식도 두번 사용할 것은 못 됐다.

"지면서 이기는 싸움을 해야겠군."

위드는 돌격하는 기사단을 보며 둠 나이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바르고 성채에서 데려온 이들이라, 그가 거느리고 있는 불사의 군단의 전력도 상당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중앙 대륙에서 명성을 떨친 크레마 기사단의 돌격에 마법과 화살 공격까지 받으며 싸워서 이길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데스 나이트가 되었을 때 데리고 다니던 9,800구의 언데드보다 오히려 강했다.

그렇다면 싸움을 하며 피해를 주기에는 충분한 전력이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일곱이 기사 1명에게만 공격을 집중해서 죽여라. 그리고 말에서 떨어진 기사는 최우선 목표다. 목표가 아닌 다른 적들에게는 상관하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위드는 뒤로 빠졌다.

언데드들은 시킨 일은 그럭저럭 해도, 생각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마법에 의하여 계속 타격을 받는 상태에서 위드의 승패에 연연하지 않은 무리한 명령을 수행하느라, 언데드들의 전열이 급속도로 빨리 무너졌다.

하지만 전투 와중에 크레마 기사단도 27명이나 사망했다.

마법과 화살이 타격한 지역을 관통하고 있는 동안 둠 나이트들이 위드의 명령을 철저히 수행한 덕분이었다.

기사단의 특성상, 돌격하는 동안에는 주변에 쓰러지는 동료 기사들을 돕기가 어렵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싸움을 해야 했지만 작렬하는 마법들로 정신도 없었고 의외로 언데드들이 빨리 무너지기에 조금 신을 냈는데, 기사들이 삽시간에 많이 사망하고 만 것이다.

"나름 소득이 괜찮아."

둠 나이트가 되었지만 무기와 ㄱ바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던 위드는 바랍처럼 달려 불사의 군단 진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은 어린아이를 능가하는 고자질!

"인간들이 우리를 물리치려고 진군 해 왔다. 불사의 군단, 나아가서는 존경해 마지않는 바르칸 데모프 님을 업신여기지 않는다면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인간들을 그대로 두고 볼 것인가. 나와 함께 싸우자. 전투를 하러 가자!"

바르고 성채에서 사자후를 터트리며 고자질을 하자, 언데드가 금방 모였다.

"이, 인간들을 없애야 한다."

"나는 바르칸 님을 위하여 싸운다."

둠 나이트와 데스 나이트의 조합으로 부대를 구성하고 다시 출격했다.

그리고 폴론의 부대를 다시 실컷 괴롭히다가 전멸했다.

위드도 손해가 없지는 않았다.

연속 패배로 인하여 불사의 군단에서의 평판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대의 부대에 속해서 무사히 귀환한 언데드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매번 도망만 치는 무능한 둠 나이트라는 말이 있던데. 그래도 아직은 믿을 수 있고 인간들이 더 싫으니 그대의 부하가 되겠다. 뜬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다오."

위드는 지휘력을 바탕으로 언데드를 더 섬세히 다룰 수 있었다.

시간이 걸려도 모은 언데드를 바탕으로 하여 유기적인 전략과 전술을 펼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냥 원래대로 엘프와 드워프들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면 벤들러 기사단의 단장이 되거나, 정말 만의 하나의 행운이 따른다면 바르칸의 최측근이 되어서 본 드래곤을 부리하로 부리거나 타고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만 들어도 흥분되는 본 드래곤 나이트.

베르사 대륙에 아직 탄생하지 못한, 다시없는 영광이었다.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본 드래곤에 탄 채로 인간들의 마을이라도 침략한다면 그 짜릿함과 전율이란!

"모라타만 가까이 없었어도 좋았을 텐데……."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에서 가까운 큰 도시는 모라타.

바르칸을 배신하게 되면 딱히 쓸모도 없어지는 평판이다.

언데드를 모으느 용도로 제대로 활용되고 있었다.

상대가 마법을 은화살을 쏴 주건 기사단을 출격시키든, 개의치 않는다.

"고맙게도 은화살이다. 스켈레톤들은 어서 달려가서 맞고 돌아와! 마나를 낭비시키는 것도 좋다. 기사단이 오면 이기려고 하지 말고 한두 놈씩만 차근차근 죽여라."

불사의 군단 퀘스트를 한 번도 실패하지 않으면서 쌓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비겁함과 야비함을 무기 삼아 백배로 되돌려주는 위드!

은화살은 1개, 2개 모아서 은괴를 만들었다.

쌓여 가는 은괴를 보면서 위드는 간사하게 웃었다.

"클클클. 역시 최고의 사냥터는 만들어 가는 것이었어."

폴론과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위드를 죽일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실수로라도 잡힐 만한데… 저렇게 잘 도망 다니는 놈은 처음 보는데요."

"레인저와 마법사들의 공격이 가능한 범위를 절묘하게 이용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움직이면 진형이 흐트러지게 되고요."

위드는 언데드들에게만 전투를 시키고 뒷전에서 구경만 하다가 싸움이 끝날 때쯤 불사의 군단 진영으로 돌아가 버렸다.

위드만을 목표로 기사단도 출격시켜 봤다.

폴론이 선봉에 서기도 했지만, 언데드를 방패막이 삼아서 놔두고 빠져나간다.

그리고 기사단이 남은 전장을 저리할 때쯤에는, 위드는 더 많은 언데드를 끌고 왔다.

맛있는 반찬을 싸 온 날, 친구들을 놀리는 유치원생을 능가하는 야비함!

"클클클클."

위드는 스켈레톤들로 하여금 은괴가 잔뜩 실린 수레를 끌고 오게 해서 도발했다.

은화살을 쏴 달라고 약 올리기라도 하듯이, 언데드들이 일부러 느리게 슬금슬금 접근한다.

간혹 춤을 추거나 뒤로 돌아서서 거꾸로 걸어오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악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드는 심술궂었다.

그런데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은 위드만을 응원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전투가 거듭되면서 폴론의 부대에도 야금야금 피해가 누적되었다.

크레마 기사들이 유저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레벨과 스킬 숙력도의 피해만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저들보다 NPC가 더 많았기 때문에 규모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폴론에게 있어서 크레마 기사단은 어디까지나 아끼는 부하들이었다.

"놈이 퀘스트를 하거나 사냥을 할 때 우리가 기습을 하는편이 훨씬 더 낫겠다."

폴론 : 여기에 머무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대로는 위드를 죽이지 못할 테니 이동이나 퇴각을 허가해 주십시오.

폴론은 헤르메스 길드의 통신 채널을 통해 수뇌부에 요청했다.

그의 직속부대만 있는 게 아니라 길드로부터 마법병단을 지원받았다.

또한 이곳에 온 것도 길드의 명령으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허가가 있어야 이동할 수 있었다.


라페이 : 지역의 장악은 중요합니다. 네크로맨서들을 포섭해야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통해 전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아직 우리의 손으로 위드를 죽이지 못했지 않습니까? 성공하기 전에 부대를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폴론 : 여기는 시야가 탁 트인 곳입니다. 암습을 할 수도 없으며, 마법과 화살의 사정거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경계를 넘어오지 않습니다. 넘어오더라도 그건 유인책입니다. 미꾸라지도 이런 미꾸라지가 없습니다.

라페이 : 그래도 계속 머무르십시오. 위드의 퀘스트를 방해하는것도 수확입니다.


위드가 더 이상 퀘스트를 성공시키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것도 헤르메스 길드의 목표였다.

길드 수뇌부 입장에서는 폴론과 그의 부대 자체가 소모품이었기 때문에 위드의 발목을 잡아 두는 정도로도 충분했다.

#

"계속 싸우면서 피하지 않는다니 이상하군."

위드는 언데드 부대를 데리고 계속해서 폴론과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을 괴롭혔다.

그사이 바르칸을 잡기 위해서 모라타에서 출발했던 페일 일행과 검치들이 도착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황소를 달려서 도착한 것이다.

"커험, 저놈들이냐."

검삼치가 황소에서 내리며 언덕 위에 있는 폴론의 기사단과 마법병단, 레인저 쪽을 쳐다보았다.

"아직 다 끝난 거 아니지?"

"사형들 몫은 남겨 놨습니다."

폴론도 바보는 아니라서 몇 번 피해를 입고 난 이후부터는 수비에만 주력했다.

언데드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마법과 화살 공격을 하다가, 언데드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 싶으면 위치를 지키면서 싸웠다.

그래도 처음 왔을 때 크레마 기사단은 정원을 가득 채운 200명이었는데 지금은 127명으로 규모가 줄었다.

대신 1천의 레인저와 마법병단의 마법사 130인은 아직 그대로 건재했다.

위드도 불사의 군단에서의 평판이 형편없을 정도로 나빠졌지만, 크레마 기사단이 73명이나 줄어들었다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폴론과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벤 왕국에서 보병과 함께 진군하면 어지간한 성은 그대로 점령할 수 있었던 크레마 기사단이었지 않은가.

검치들은 타고 온 황소에서 음식 재료들을 내려놓았다.

"위드야, 배고프다. 불고기나 해 먹자꾸나."

맛있고, 빨리 익혀서 먹을 수 있는 불고기.

얼른 먹고 더 먹고 많이 먹기 위해 검치들은 모라타에서부터 음식 재료들을 가져왔다.

헤르메스 길드가 가까운 장소에 있거나 말거나 밥 먹고 싸우면 될 뿐!

위드는 양념 불고기를 만들어서 굽고, 검치들의 검과 갑옷을 넘겨받았다.

"많이 낡았군요."

"바다에 다녀와서 그래. 고칠 수 있겠냐?"

검치들이 쓰던 검은 듬성듬성 이도 빠지고, 내구력이 20도 남지 않았다.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죠."

위드는 수리를 해서 최대 내구력을 복구하고, 숫돌을 꺼내서 검날을 시퍼렇게 갈았다.

"안녕하세요. 둠 나이트가 잘 어울려요."

"벨로트님도 오랜만입니다."

페일은 신중한 성격답게 폴론의 진영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으흠, 저들이 헤르메스 길드라……. 레인저들을 보니 만만치 않겠군요. 참, 오늘은 메이런도 같이 왔습니다."

"시간이 됐나 보죠?"

"이번에는 확 사표 써 버릴 수 있다고 했거든요."

매번 일하느라 중요한 전투에는 끼지 못했던 메이런도, 이번에는 큰 결심을 하고 휴가까지 내서 바르칸 사냥을 위해 왔다.

이렇게 위드가 동료들과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며 모라타에서 온 성기사와 사제들은 새삼 감탄했다.

'저런 배포는……! 큰 전투를 앞두고도 긴장을 하지 않는군.'

'헤르메스 길드가 무섭지 않은 걸까?'

위드는 숫돌에 슥삭슥삭 검을 갈면서 성기사와 사제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위드 님!"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성기사화 사제들!

위드가 둠 나이트였기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위드는 성기사와 사제들을 찬찬히 훑어 보다가 말했다.

"혹시 필요한 물건 있으세요?"

"네?"

"알뜰 구매 한번 해 보실래요?"

그러면서 배낭에서 꺼내는 것은 온갖 잡템들과 녹슨 무기류, 사제들이 사용하는 불량 메이스류였다.

사제들이 쓰려면 신앙심은 올려 주는 스탯이나 신성력이 가장 중요한데, 언데드의 손에 닿아서 그런 것들은 말끔히 사라지고 난 고물이었다.

위드가 끌고 오는 언데드들과 주기적으로 싸우던 폴론과 헤르메스 길드 측에서도 난리가 나 있었다.

"저들은 누구야?"

"위드의 동료들인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모르겠군. 설마 위드를 도와서 우리를 공격하러 온 건 아니겠지?"

위드에 대해서 조사를 했을 때에는, 주로 혼자 다니거나 소수의 동료들과만 함께한다고 했다.

그런데 사제와 성기사들을 비롯하여 검치들도 구성된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도착한 것이다.

위드는 개인적인 싸움이 있을 때에는 도와달라고 먼저 요청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바르칸 데모프를 사냥하기 위해서 모라타에서 출발한 인원이 도착한 거라고는, 폴론 측에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큰일 났다."

폴론과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에게는 완전히 날벼락이었다.

#

로열 로드와 관계된 게시판마다 위드와 헤르메스 길드의 싸움이 화제였다.

- 위드, 빛나는 별의 몰락

- 헤르메스 길드야말로 베르사 대륙 최강의 세력인가?

게임 방송사에서 중계를 해 주면서, 위드가 다시 폴론의 부대를 몰아붙이는 모습이 나왔다.

그러자 여론도 급반전되었다.

- 위드의 진면목

- 헤르메스 길드, 드디어 숙적을 만나다

- 폴론과 그의 긍지 높은 기사단, 마법병단, 레인저들이 언데드들에게 맥을 못 추고 있음

- 위드의 지휘 능력, 과연 한계가 어디인가?

여러모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는 위드를 응원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각 방송사에서도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위드를 편들어 주는 말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방송만 해도 시청률이 평소보다 2~3배씩 늘어나는 즐거운 상황!

방송 관계자들은 입가에 웃음을 매달고 살았다.

"요즘처럼만 계속 싸워 주면 더 바랄게 없겠네."

"광고도 금방 붙고……. 방송을 안 보던 사람들도 많이 봐 주는 거 같아."

아예 계속 언데드를 끌고 폴론의 부대와 싸움을 했으면 바랄 정도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죽어 나갈 때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기 짝이 없다.

그런데 위드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대규모 성기사와 사제들은 그 힘이 막강할 뿐만 아니라 치료와 축복 능력 때문에 장기전으로 갔을 때에는 결정적인 역활을 한다.

방송국의 진행자들은 생방송으로 여러 추축들을 이야기했다.

"성기사와 사제들이 착용한 장비를 보면 레벨은 헤르메스 길드 쪽이 더 높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직업적인 조합을 무시할 수가 없겠죠."

"저기 검사들로 보이는 이들의 장비는 많이 낡았습니다. 전투에 쓸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지경인데요?"

"언데드와 신성력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요, 위드도 언데드를 쓰기에 곤란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전히 헤르메스 길드 측이 유리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결과는 싸워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굳이 한쪽을 택하라면 헤르메스 길드가 이길 것으로 예상하겠습니다."

"이제 언데드가 아닌 유저들로 구성된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면, 위드도 싸움을 붙이고 도망치는 방식을 더는 쓰지 못할 겁니다."

방송국마다 견해가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대부분 폴론의 부대 쪽이 레벨은 더 높을 테니 그들이 우세할 거라고 전망했다.

#

모라타에서 온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그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했다.

"우리도 싸워야 되는 걸까요?"

"바르칸과 싸우는 줄로만 알고 왔는데……."

전설적인 몬스터보다 헤르메스 길드의 위세가 더 무서웠다.

당장 보복을 당할 수도 있으며, 차후 헤르메스 길드가 더욱 커지게 되면 정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왕국 규모로 커진 길드를 거스르기란 곤란할 수 있는 일.

"그래도 저는 위드 님의 모험을 좋아했습니다. 바르칸을 잡으러 왔지만 여기까지 와서 빠질 수도 없으니, 같이 싸울래요."

"어디 싸워서 이겨 보죠, 뭐. 원래 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성기사들은 중앙 대륙에서 시작했던 유저들이기 때문에 헤르메스 길드의 힘을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도 싸우기로 결정한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

물론 이미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대와 호각으로 싸우는 위드가 아니었다면 감히 전투에 끼어들 생각도 하지 못했으리라.

헤르메스 길드의 무자비함도 한몫을 했다.

"이곳에 끼었다는 것만으로도 헤르메스 길드는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위드와 전투에 참여하기로 한 분들이니 남은 사람들도 안전하지 못할 겁니다. 차라리 다 같이 싸우기로 하죠."

각자 결정을 내린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위드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말했다.

"저희도 같이 싸우겠습니다."

결의에 차서, 위드에게 동료가 되겠다고 말하는 유저들이었다.

영화처럼 감동적인 분위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곤란합니다."

"괜찮습니다. 저희도 앞가림은 할 줄 압니다. 앞으로 헤르메스 길드로부터 어떤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이건 제 몫입니다."

"네?"

"사형들에게는 양보할 수밖에 없지만, 늦게 온 여러분은 자격이 없습니다."

위드는 폴론의 부대를, 뜬금없이 몰려와서 나눠 달라고 하는 성기사와 사제들에게 절대 내줄 수 없었다.

이게 콩 한쪽까지 나눠 먹자고 요구하는 파렴치한들과 뭐가 다를 것인가.

연락 끊긴 지 5년이 넘는 친구가 결혼한다면서 청첩장을 보내는 것보다 약간 나은 수준!

성기사와 사제들은 검치들에게 간단한 축복 마법을 쓰는 정도로 역활을 다하고 싸움에는 끼지 못했다.

폴론도 위드를 돕기 위해 온 지원군들이 만만치 않게 느껴져서 헤르메스 길드와 긴급 협의에 들어갔다.


타르킨 : 저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 일부는 하급품입니다. 레벨이 200만 넘어도 입지 않는 것들입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동영상을 보고 장비들의 내력을 분석했다.

KMC미디어를 비롯한 여러 방송국에서 생중계도 진행하고 있었지만,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무기 상인과 대장장이들이 즉시 정보를 알아냈다.


폴론 : 그러면 무시해도 되겠군. 레벨이 200 정도라면 마법 저항력도 약할 것이고, 그럼 마법병단을 불러서 쓸어버리면 될 일이니까.

타르킨 : 그 뜻이 아닙니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인데……. 착용하고 있는 방어구들은 확실히 초보들이 입는 것이 꽤 됩니다. 그것도 관리 상태가 상당히 안 좋습니다.


잘 제련된 최상의 판금 갑옷을 입고 있는 크레마 기사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검치들의 방어구는 허술하다.

음새가 뜯어져 있거나 보호대의 일부가 깨져 있기도 했다.

어떻게 저런 방어구를 입고 돌아다니는지가 의문스러울 수준이었다.


타르킨 : 하지만 들고 있는 검은 최소한 레벨이 320을 넘어야만 쓸 수 있습니다.
폴론 : 320이나?

타르킨 : 힘과 민첩의 제한이 높아서, 사실상 320의 레벨로는 들 수 없는 검입니다. 350은 넘을것으로 보입니다.


위드가 조각품을 만들면서 착실히 스탯을 올렸다면 검치들은 육체 단련과 검술 수련, 용맹한 사냥으로 스탯을 올렸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검치들이 많이 착용하고 있는 울림의 검이나 장대한 투쟁의 검, 마법검은 레벨이 350은 되어야 쓸 수 있었다.


폴론 : 최소 350이라면 매우 껄끄러운 적들이군.


검치들은 외모만 봐도 왠지 한가락씩 하게 생겼다.

레벨이 높다고 하니 오히려 쉽게 납득이 가는 상황!

지원군까지 도착했으니 위드에게 날개가 달렸다고 봐야한다.

여전히 레인저와 마법병단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접근전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전력의 균형은 넘어간 것 같았다.


폴론 : 이곳에서 장기간 계속 주둔하는 것은 어렵겠습니다. 길드에서 새로운 지휘명령을 내려 주시죠.


폴론이 위드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도 버텼던 건 퀘스트를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그들의 안전조차 위험하게 될지 모른다.


라페이 : 알겠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싸워서 이기고 움직이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폴론 : 저도 그런 부분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기사단의 기동력이 뛰어나지만 레인저와 마법병단이 따라오려면 저들과 싸워서 한번은 물리쳐야 됩니다.

라페이 : 이길 수 있겠습니까? 더 많은 지원 병력을 미리 보내지 않은 것은 미안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이름으로 나간 전투에서 패배하는 건 곤란합니다.

폴론 : 싸워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유리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성기사와 사제들도 위드와 함께 싸운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폴론은 쉬운 전투가 아닐 거라고 여겼다.


폴론 : 상황이 어려우니 헤르메스 길드에 가입한 네크로맨서들에게도 협조를 구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도와준다면 상당한 전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사제들의 마나를 낭비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겠죠.

라페이: 마법병단과 레인저에, 언데드의 조합이라……. 나쁘지 않겠군요. 허락합니다.


헤르메스 길드가 위드를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이상, 폴론의 부대가 패배한다면 자부린을 포함한 네크로맨서들도 된 서리를 맞을 수 있다.

그럴 바에야 아예 같이 싸워야 한다는 폴론의 의도를 라페이는 받아들였다.

각 방송국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나달리아 평원에서의 전투!

연락을 받은 네크로맨서들이 팬텀 스티드를 소환해서 허겁지겁 날아왔다.

하지만 전투는 뜻하지 않게 조금 늦춰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검치들이 불고기로 양이 차지 않아서 갈비까지 굽고 있기 때문이었다.

많은 시청자들과 유저들이 전투가 벌어지기만을 기다렸다.



3. 목숨보다 무서운 견적


"이제 몸 좀 풀어 볼 시간이군."

검치들은 불고기와 갈비에 얼큰한 찌개까지 먹고 나서야 싸우기 위해서 일어났다.

먹고 자고 싸우는 일만 매일 일어나면 행복한 그들이었다.

시간을 지체한 틈에 폴론의 부대는 헤르메스 길드에 가입하기로 한 네크로맨서의 증원군을 받아들였다.

언데드 군단까지 보유하게 된 폴론에 비하여, 위드와 검치들은 사제와 성기사들의 도움을 계속 거절했다.

"사형들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검치들만 있다면 베르사 대륙에서 어떤 싸움이라도 할 수 있다.

드래곤을 상대로도 호기롭게 뛰어들 수 있는 사람들이 검치들이었다.

단지 결과는 숯불구이 신세를 면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정말 이길 수는 있는 거야? 헤르메스 길드를 상대로 만용을 부리는 건 아닌지……."

"언데드에게 싸움을 시키고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잖아. 저쪽에도 이제 언데드가 있고 네크로맨서들의 도움까지 받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기려고 하는 거지?"

성기사들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걱정스러워했다.

바르칸을 사냥하기 위해서 이곳까지 왔다.

위드를 믿고 있었지만, 검치들과 동행해서 이곳까지 오면서 본 모습들이 먹고 자는 것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고레벨 유저라면 다 하는 레벨이나 스킬, 장비 자랑 따위는 일절 없었으니까.

전투가 벌어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진가를 보여 주는 게 검치들이었다.

위드에게는 나름 계획도 서 있었다.

"언데드들이라… 여러모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지금까지는 싸움만 붙이고 도망갔다면, 이제 전투를 지휘해야 할 시간이다.

위드는 싸움에 대한 각오를 다시 다졌다.

"성소의 다이아몬드, 레벨, 숙련도, 잡템……."

헤르메스 길드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

마레이로부터 돌려받은 트레세크의 뿔피리와 옥새는 품안에 있었다.

"전투를 개시하자."

따각. 따각. 따각.

위드의 명령이 떨어지자 말발굽까지 맞춰서 이동하는 데스 나이트와 둠 나이트들이었다.

아이템으로 권위와 지휘능력을 되찾고 언데드 부대를 통제했다.

검오치가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싸우면 되는 것이냐?"

위드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대답했다.

"사형들은 싸우고 싶은 곳에서 싸우시면 됩니다. 화살과 마법이 무서우니 조심하시고요."

"그거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새로 배운 스킬이 있는데, 화살을 피하기에는 그냥저냥 쓸 만한 편이거든."

위드의 언데드들이 말을 타고 접근하면서, 폴론의 진영에서도 전운이 감돌았다.

폴론과 크레마 기사단, 제7마법병단, 레인저 부대에 속해있는 유저들은 위드와 검치들만이 언데드를 따라오는 것을 보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성기사와 사제들은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군."

"저들만 가세하지 않는다면야 쉬운 싸움이 될 수 있겠는데요."

가장 까다로운 전력인 사제들만 없다면 얼마든 이길 수 있다.

헤르메스 길드 측에는 전투에서 매우 큰 역량을 발휘하는 네크로맨서들까지 추가되었다.

위드도, 언데드만 싸움을 붙이고 빠지는 전술은 검치들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쓰지 못하리라.

이번 한 번만 진짜 싸움을 하면 되는 것.

폴론의 진영에서 창을 든 기사 1명이 혼자서 말을 타고 앞으로 달려 나왔다.

"나는 크레마 기사단 소속 반 페르트다. 그쪽에도 사람이 있다면, 누가 나서서 나와 싸우겠는가!"

+ 크레마 기사단에서 기사의 결투를 신청하였습니다. 결투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 결투에서 이긴 쪽은 많은 명성을 얻으며, 부대의 사기가 오릅니다.
+ 결투를 거절하거나 지게 되면 부대 전체의 사기가 감소할 것입니다.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서 기사전을 신청한 것이다.

크레마 기사단 측에서는 위드만 나서지 않는다면 그들이 이긴다고 보았다.

또 위드에게 죽는다 해도 잃을 게 없었다.

위드와 검을 맞대고 싸우는 것도 기사를 택한 유저로서는 큰 영광이었던 것이다.

"내가 나간다!"

검삼백오십일치가 황소를 타고 앞으로 나갔다.

+ 양측의 결투가 성립되었습니다.
+ 결투 중에도 부대를 움직이거나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 결투에 난입하여 상대방을 죽여도 됩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비겁자라는 호칭이 붙으며, 병사들의 충성도가 크게 감소할 것입니다.

위드와 검치들은 그냥 편하게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로열 로드에서 적용되는 레벨이나 스킬에 따라서 검삼백오십일치가 질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지면 앞으로 1달간은 화장실 청소지."

"매일 오천 번씩 내려치기를 연습시켜야죠."

그저 잔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

반 페르트와 검삼백오십일치는 말과 황소를 타고 두 바퀴를 크게 빙글빙글 돌았다.

상대의 허실을 간파하기 위한 탐색전!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적을 관찰했다.

그러다가 거의 동시에 상대방을 향해 말과 황소를 달렸다.

"이랴!"

푸히히힝!

"가자."

음머어어어!

기사는 말에서 창을 높이 들었고, 검삼백오십일치는 소에 탄 채로 가볍게 검집에 손을 올렸다.

기사들의 마상 결투는 굉장히 위험하다.

말과 함께 최대의 속도를 내서 한 지점을 공격하기 때문에 막대한 무게가 실리고, 방어력의 한계를 넘는 공격력을 발휘한다.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게 아니라 서로를 향하여 돌진한다면 단 일 합, 눈 깜짝할 사이에 승부가 결정지어지는 게 마상결투였다.

그리고 둘이 스쳐 지나간 직후 땅에 떨어진 것은 기사 쪽이었다.

+ 명예로운 결투에서 아군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 명성과 사기, 충성심이 증가합니다.

"……."

폴론의 진영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위드 쪽에서도 승리의 함성은 없었다.

"화장실 청소는 못 시키겠군."

"설거지도 담당시키려고 했는데……."

이긴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는 태도였다.

검삼백오십일치는 로열 로드에서 오히려 그의 재능이 꽃을 피웠다.

레벨과 검술 스킬을 올리고 몬스터를 잡는 것이 좋아서, 지금까지 훈련을 하지 않을 때는 내내 사냥을 위주로 했다.

검치들 중에서 가장 높은 레벨인 380대였으니 크레마 기사와 싸워서 이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상대의 눈빛과 어깨의 움직임, 호흡만 보고도 공격할 위치를 간파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나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자가 있으면 나오라!"

검삼백오십일치가 폴론의 진영을 향해서 외쳤다.

방송에도 중계되고 있을테니 배에 힘을 주고 어깨를 쫙 폈다.

'동생들이 날 보겠지.'

동생들도 로열 로드의 열혈 팬이었다.

가족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더욱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발머라고 한다. 그 콧대를 꺾어 주겠다!"

"네케르다. 어디 이름도 없는 놈이 운이 좋았구나. 이제 죽여주마!"

크레마 기사 4명이 연달아서 도전을 했고, 검삼백오십일치에게 모두 패배했다.

전력 질주를 해서 맞부딪치고 말에서 떨어지면 최소 전투불능이거나 사망이다.

3명이 죽고 2명이 죽기 직전의 상태에 다다르자, 크레마 기사단에서는 도전자가 더 나오지 못했다.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폴론이 결투에 나선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고, 다른 기사들이 나가서는 이길 수가 없다.

크레마 기사들이 줄어들면 전력 손실도 막대했기 때문에 누구도 더 이상은 섣불리 결투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 상대방이 결투를 포기했습니다.
+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전체 아군의 사기가 최대치가 됩니다.

검삼백오십일치는 카리스마와 투지, 힘, 민첩 등의 여러 스탯과 검술 스킬의 숙련도 그리고 많은 명성도 얻었다.

폴론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이제 싸울 시간이다! 언데드들은 진군하라!"

시작은 너무나 안 좋았더라도, 아직 진짜 전투가 벌어진것도 아니다.

네크로맨서들이 부리는 언데드를 앞세워서 전투를 개시하고 레인저와 마법사들이 활약을 하면 이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그를 위하여 레인저와 마법사들이 언데드의 뒤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위드가 사자후를 터트렸다.

"언데드들이여, 들어라!"

폴론과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위드도 불사의 군단 소속 언데드를 먼저 앞세워서 전투를 하려는 것이라 짐작했다.

그리고 코웃음을 쳤다.

"우리 쪽에는 네크로맨서가 있지. 쓰러진 언데드도 다시 일으킬 수 있으니 전투가 일어나면 우리가 무조건 이득이다."

검치들의 레벨이 높고 수도 많았지만, 전부 직접 전투형직업들이다.

시체들이 만들어진다면 네크로맨서들에 의해 헤르메스 길드에 지극히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다.

"모든 언데드들의 아버지, 지극히 존귀하신 바르칸 데모프의 이름을 걸고 말한다."

위드의 사자후가 광량하게 전체 진영을 휩쓸었다.

이쯤 되자 헤르메스 길드 측에서도 약간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설마했다.

그것만큼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가장 나쁜 경우이기 때문이다.

"바르칸 데모프를 따르는 나를 공격하는 것은 언데드로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암흑 군단의 율법을 따르라! 나의 적은 너희에게도 적! 바르칸 님을 위하여 싸우라! 죽여라!"

+ 스킬 사자후를 사용하셨습니다.
+ 사자후 스킬의 영향 범위에 있는 모든 아군의 사기가 200% 상습합니다.
+ 존재하는 모든 혼란 상태가 해제됩니다.
+ 5분간 통솔력이 285% 추가 적용됩니다.

위드의 언데드로서의 지위는 바르칸의 직속 부하!

그에 비한다면 네크로맨서들은 소환자의 신분이었다.

데스 오라의 범위에 있었기 때문에 언데드들은 바르칸의 존대를 직접적으로 느낄 뿐만 아니라 그의 힘에 영향을 받는다.

위드가 권력을 남용하니 통솔력과 지배력, 충성도의 싸움이 된 것이다.

데스 나이트들이 먼저 돌아섰다.

"바르칸 님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우리의 거스를 수 없는 군주이며 영원한 생명의 권한을 가진 바르칸 데모프님의 지위를 존중합니다."

네크로맨서들이 소환한 언데드부대가, 위드의 말에 따라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인저와 마법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이 미친 언데드들 좀 누가 어떻게 해 봐!"

"네크로맨서들은 어서 이놈들을 역소환해 줘!"

레인저들의 경우, 가까운 거리에서의 전투에서는 활을 사용한 공격을 하기가 어려웠고 방어력도 약했다.

비싼 활대로 언데드의 공격을 막으면서 유저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래도 그나마 이들은 상황이 훨씬 나은 편이었다.

마법사들은 매우 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대신에 마법시전에 긴 시간이 필요했으며, 낮은 생명력과 방어력을 가졌다.

지혜를 높이면서 체력과 힘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는것이다.

그런 그들이 언데드들의 습격을 받자, 순식간에 사망자가 속출했다.

미리 발현시켜 놓았던 공격 마법이 마법사의 죽음으로 폭발하면서 폴론의 진영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갔다.

"언데드가 역소환이 되지 않습니다."

"무슨 미친 소리야! 자기가 소환한 몬스터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게 말이 돼?"

"여기는 바르칸의 영역으로, 언데드들을 유지시켜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데드들을 막기 위하여 크레마 기사들이 급하게 투입되었다.

마법사들은 매우 귀중한 전력으로, 1명도 잃어버리기 아까웠기 때문이다.

"언데드여, 진격하라!"

위드는 둠 나이트와 데스 나이트 기사대를 출전시켰다.

시간과의 싸움. 적들을 혼란에 빠뜨렸으니 수습하기 전에 공격해야 성과를 올릴 수 있다.

"라면도 익자마자 먹어야지. 내버려 두면 면이 퉁퉁 불어터지고 말아."

때를 놓쳐서는 곤란하다는 깨달음을 주는 사례.

냉장고에 처박힌 채 유통기한을 넘겨 버린 음식만큼 아까운 것이 없다.

언데드 기사대가 최대 속도로 적들을 향하여 돌진했다.

폴론의 진영 측에서는, 처음에는 미숙한 점들이 다소 있었더라도 위드와 여려번 싸움을 치러서 대응 능력이 많이 올라 있었다.

위드는 전투의 기본서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적으로 싸우다 보며 배운 점으로는, 포기할 부분은 빨리 택하고 진형 변호는 수시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충 싸우는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병력 효율의 극대화를 끊임없이 이루면서 유혹하고 교란하여 함정에 빠뜨렸다.

폴론은 부대에 명령을 내렸다.

"기사들은 언데드에 맞서 마법사들을 지켜라. 레인저들은 지금 출발한 언데드 부대에 화살을 쏘도록. 전투를 구경하지말고 내가 내린 명령만 따르라."

위드는 객관적인 수치상 더 강한 적들과 싸워 본 경험이 많았기에 전력을 쥐어짜 낼 줄 알았다.

모든 부대들에 명확하게 임무를 부여하고, 그들을 조합하여 결과를 만들어 낸다.

폴론도 그와 자주 싸우면서 보고 배운 바에 따라 부대 운용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했지만 때늦은 감이 있었다.

"이게 다 얼마야."

위드는 폴론의 대응이나 뒤섞여 있는 레인저와 마법사, 언데드들을 보며 벌써 견적을 뽑았다.

이거야말로 로열 로드에서는 사형선고라고 부를 수 있는 일!

크레마 기사들은 전쟁에도 동원되었고, 무고한 상인들의 습격같은 나쁜 짓도 많이 저질렀다.

그 탓에 악명도 굉장히 높고, 살인자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하벤 왕국의 정식 소속이라서 살인자 상태이더라도 부작용은 적었지만, 죽게 되면 내놓아야 하는 아이템은 매우 크다.

값비싼 풀 플레이트 메일을 통째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유린이 옷 한 벌 사 주고, 할머니도 겨울 외투 한 벌 사드리고… 요즘에 은행에 특판예금이 하나 떴던데."

저축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위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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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C미디어를 비롯하여 게임 방송국들이 합계 시청률이 사상 최대에 육박했다.

+ 게임 방송사 통합80%가 넘는 시청률!

+ 게임 방송사의 절반 이상이 이 전투를 방송했다

+ 로열 로드 유저들 중에서 모르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전투!

그다음 날 뉴스의 제목들이었다.

위드와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가 이미 예상되어 있었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기다렸다가 보았다.

광고주들도 예약을 받아서 중간 광고를 했기 때문에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전투는, 위드의 명령에 따라서 언데드들이 돌아서서 피해를 입히고 진형을 무너뜨렸다.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더라면 피해를 적게 받고 수습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폴론이나 그의 진영에 있는 레인저와 크레마 기사들은 당황한 와중에도 잘 싸우는 듯했다.

그러나 이어서 돌격한 검치들이 압도적인 힘으로 짓밟아 버리는건 버텨 내지 못했다.

최고의 명장면중의 하나였다.

"빨리 다 죽이고 해장국이나 한 그릇 하자."

"어디 새로 익힌 스킬이나 시험해 볼까? 분검술!"

"밥 먹어야 되지만 너희도 어쨌든 검에 목숨을 건 인생을 살고 있지 않냐. 그러니 최선을 다해 봐라."

용맹 높던 크레마 기사들이지만, 검치들과 붙으니 가차없이 짓뭉개져 나갔다.

검치들의 공격력이란 기사들을 정면에서 압도할 지경이었다.

혼란 상황이었고, 크레마 기사들은 그 점에 큰 충격을 받아 지금까지 보였던 실력을 반도 내보이지 못했다.

"이놈들 왜 이리 약해."

"전에 잡았던 대왕 오징어보다 진짜 약하네."

"바닷속에서 싸우던 갑갑함에 비하면 정말 여기는 편하구나."

검술 마스터 애쉬의 비기도 사용되면서, 크레마 기사들과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분검술이 시전되면 검치들의 분신이 2개에서 4개 정도씩 나타났다.

스킬 숙력도의 탓도 있었디만 지혜와 지식이 너무나도 낮아서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럼에도 수습조차 되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무너지는 기사들의 진형!

스킬의 숙련도가 낮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기사들이 지푸라기처럼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검치들은 크레마 기사들보다 평균 레벨도 뒤처지지 않았고, 검술 스킬, 승부욕, 경험은 훨씬 많았다.

지옥 밑바닥에 던져 놓더라도 강한 몬스터를 찾아 돌아다닐 천생 싸움꾼들!

위드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갑옷이 마음에 드는군!"

기사들 중에서도 레벨이 높은 자들만 잘도 골라 거침없이 베면서 다닌다.

"헤라임 검술!"

혼자 외롭게 싸우지 않아도 되었다.

검치들이 있으니 방어에 신경을 덜 써도 되었고, 고립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먹을 것이 널렸구나!"

그저 전투를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크레마 기사들을 베었다.

위드가 탄 말은 바르칸의 마법에 의하여 대단히 빠르고 흉포했다.

얼굴 생김새까지도 말이 아니라 몬스터에 가까울 정도다.

그런 말이 독한 주인 만나서 제대로 길들여진 후에 전장을 헤집으며 뛰어다녔다.

바람처럼 누비는 자유로운 둠 나이트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향후 기사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지게 될 것을 예고하는 부분이었다.

위드가 불사의 군단에서 데려온 언데드를 견제하느라 레인저들은 공격할 타이밍을 높쳐 버렸고, 이어서 검치들이 크레마 기사들에게 달라붙는 순간 전투는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레인저와 마법사, 거리에 강점을 두고 있는 병력 편성에 기사단까지 있었지만, 순식간에 무너져서 어느 하나의 장점도 살리지 못했다.

일방적인 학살이었고, 위드의 표현대로라면 조금 편한 수금이었을 뿐!

폴론은 성소의 다이아몬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언데드에 대해서는 유리한 점이 있었지만, 검치들은 인간이라서 해당 될 일도 없었다.

상대를 찾지 못한 검치들의 일부가 레인저와 마법사들에게 덤벼들었고, 네크로맨서들에게도 향했다.

폴론도 끝까지 싸우면서 검치들 셋을 베었지만, 다른 검치들에 의해서 사망했다.

보통은 싸우면서 몇 명을 죽이면, 자신은 죽지 않으려고 겁을 먹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검치들은 잘 싸우는 상대를 다른 이들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서로 경쟁해가며 몰려들었다.

폴론의 레벨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결투가 아닌 전투에서 검치들의 합공을 받으며 멀쩡할 정도는 아니었다.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 담당이 정해졌군."

"빨랫감도 많이 쌓였습니다, 사형."

위드는 그렇게 수금을 마치고, 검치들은 싸워서 이긴 자리에서 말고기를 구워 먹었다.

시청자들은 게임 방송사와 로열 로드의 각 게시판에 시청소감을 올렸다.

+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합니다.

+ 일주일간 화장실을 가지 못하던 제가 시원하게 일을 치를 수 있었어요.

+ 실수를 해서 팀장님한테 깨지고 난 후에 퇴직을 고려할 정도의 우울증에 걸려 있었거든요. 지금 완전 신나요!
+ 몸살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방송을 보고 자고 일어났더니 개운하네요.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현상들을 본인이 겪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여러 방송국을 돌아가면서 시청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재방송이니 중요 부분 편집 방송이니 해서 방송국마다 열심히 다시 보내는 바람에 하루에도 몇 번씩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헤르메스 길드를 비롯한 명문 길드들이 저질렀던 악행들이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더욱 위드의 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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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수 회장은 서윤의 건강 상태에 대해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았다.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고,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적응이 빠르다니 좋은 소식이군."

서윤이 사회생활도 가능할 정도로 회복이 된 건 그를 기쁘게 만드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현이라는 청년과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 같은데……."

정득수 회장은 경호원들을 통해서 둘이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도 들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펄쩍 뛰고도 남을 일이었지만, 서윤의 마음에 상처가 생길지도 몰라 말리지도 못했다.

재계에서는 냉혈한이라고 해도 딸에게는 보통의 아버지일뿐이다.

"그래도 평범한 남자보다는 보다 훌륭한 조건을 갖춘 남자와 만났으면 좋겠는데 무슨 방법이 없겠소?"

서윤에 대해서 보고하던 차은희 박사는 책상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아시다시피 서윤의 심리 상태가 안정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강제로 둘을 갈라놓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우리 애의 마음이 다치지 않는게 최우선이 되어야겠지."

정득수 회장은 이현에게 손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는 처지였다.

"염려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회장님이 보시기에 괜찮은 남자를 소개시켜 주는 건 어떨까요?"

"그래도 되겠소?"

"회장님이 일부러 자리를 만들어서 소개해 주는 게 아니라, 서윤이의 근처에 머물면서 일상생활에서 많이 만나게 해주는 거죠."

"자주 보며 정을 쌓게 만든다라. 좋군!"

서윤에게 강제로 만나게 하는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맡겨두는 일이었다.

'H그룹의 장남이 말도 잘하고 외모도 뛰어났지.'

정득수 회장과 H그룹은 업무상 가까운 관계일 뿐만 아니라, 직접 만나 본 그는 사내다우면서도 여자를 잘 배려하는 세심한 성격까지 갖춘 남자였다.

'서윤과는 잘 맞겠군.'


차은희는 화장실을 나오면서 생글생글 웃었다.

"서윤이의 마음이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을지……."

이현에게 어떤 비결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서윤은 그를 볼 때마다 밝게 웃곤 했다.

얼마나 웃지 않던 서윤이었던가.

가끔 보여 주는 모습들만으로도 서윤이 이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잇는지를 알았다.

"하지만 남녀관계가 너무 지지부진해도 곤란해."

둘이 만난 시간으로만 따지면 벌써 제법 흘렀다.

요즘 시대가 어떤 때인데 제대로 손도 못 잡고, 팔짱도 안 끼고, 스킨십이 이렇게 적단 말인가.

"둘 다 연애에 익숙하지 않으니 진도를 빨리 나가게 해 주려면 조그만 자극 정도는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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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폴론의 부대에 속해 있는 기사들과 레인저들이 25명 정도만 겨우 살아 도망칠 정도로 완벽하게 격파했다.

네크로맨서들과 마법병단의 마법사들은 1명도 살지 못하고 전멸하고 말았다.

검치들과 페일 일행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압도적인 승리였다.

"드디어 바르칸을 사냥할 시간이군."

이제 남은 일은 언데드의 군주 바르칸 데모프를 사냥하는 일!

성검이 가슴에 꽂혀 있어 약화되어 있다고는 해도 전설적인 몬스터다.

모라타에서 사제들과 성기사들도 몰려왔고 일단은 복수도 끝냈으니 드디어 대규모 사냥을 벌일 시간이었다.

위드가 사제들과 성기사들을 격려하며 나서려고 할 때,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정말 멋진 전투였어."

"말달리는 거 봤어? 완전히,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의 방향을 지그재그로 바꾸어 가면서 싸울 수 있는 건지."

"박력 그 자체잖아."

둠 나이트로서 전장에서 눈부실 정도로 활약하며 누비고다닌 덕분에 유저들이 존경스러워하고 칭찬을 했다.

위드는 검을 어루만지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칭찬이 계속 이어지도록 기다려 주는 미덕!

머리카락이 있었다면 쓸어 넘기기라도 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해골밖에 없는 대머리였다.

'크흠. 헤라임 검술도 연속으로 적중시켰고, 마법을 가르면서 돌진할 때도 꽤 멋있었지. 그리고 또 칭찬받을 만한 순간이 몇 번이더라.'

차후 같이 싸워야 하는 입장에서는, 설득을 하거나 세세하게 설명을 붙이는 방식도 있겠지만 힘을 보여주는 것처럼 확실한 게 없다.

"근데 저쪽에 잘생긴 오빠 봤어?"

"진짜 멋있게 싸우더라. 소에 탄 채로 무슨 줄을 던져서 1명씩 붙잡고 달리는데……."

여성 사제들은 위드보다도 제피에게 더욱 큰 관심을 쏟았다.

제피가 늘어져라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펴기만 해도 꺅꺅거리면서 좋아했다.

"턱 선도 갸름하고, 완전 멋있지 않니?"

"응. 진짜… 반할 거 같아!"

"친구 등록하자고 하면 해 줄까?"

여자들의 칭찬은 오래 들으면 민망할 것 같았기 때문에 위드는 괜찮았다.

'역시 남자는… 남자들끼리 통하는 거지.'

주로 남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성기사들 쪽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들었다.

"검치님들이라고 하는데… 무지 거칠게 싸우잖아. 나도 저렇게 싸우고 싶었는데."

"저쪽에 엄청 몸매 좋은 댄서가 있던데, 봤어?"

"전투 중에 춤을 추는데,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눈을 떼지 못하겠더라. 기사들도 춤을 구경하다가 픽픽 쓰러지더라니까."

"얼굴이 예쁜 바드도 있잖아. 목소리가 정말 맑더라."

검치들과 화령, 벨로트가 성기사들의 많은 관심을 끌고 있었다.

위드에 대한 이야기도 중간마다 자주 나왔지만, 동료들을 보며 놀라는 반응이 대단했다.

위드는 푸근하게 웃으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번 전투로 그는 기사들의 풀 플레이트 메일 4개에, 마법 병단에 속한 마법사들이 입던 로브, 팔찌, 부츠, 목걸이, 반지를 여러 개씩 획득했고, 레인저용 갑옷과 활도 골고루 많이 주웠다.

금화, 은화, 동전류와 여러 잡템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검치들도 푸짐하게 장비들을 챙기면서 더 고급 검이나 방어구들을 장만할 수 있는 돈을 벌었다.

"올겨울에 난방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잠시 동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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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바르칸을 사냥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사형들, 전리품으로 얻은 검과 방어구들을 일단 저에게 주세요. 성기사분들도, 언데드와 싸우려면 저한테 잠깐 장비를 맡겨 보시죠."

검치들이 얻은 장비는 녹여서 언데드에게 강력한 무기로 만들었다.

기사들의 두꺼운 검과 갑옷은 그들이 바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과 미스릴을 소량 섞은 복합 검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언데드와 싸우고 나서는 다시 녹여서 강도를 약화시키는 은을 뺀 검을 만들어 주면 된다.

위드의 대장장이 스킬은 일반적인 검 종류를 만드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 더 좋은 검으로 만들어 주시는 겁니까?"

"적어도 나빠지진 않을 겁니다."

성기사들은 반신반의하면서 쉽게 무기를 맡기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위드의 명성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성기사들에게 검은 귀중한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어, 진짜 예전보다 더 좋아졌는데! 공격력도 조금 올랐고, 옵션으로는 언데드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힌다고 되어 있고 내구력도 조금 올랐어."

하지만 검치들의 무기를 만들어 주고, 간간이 성기사들의 것도 챙겨 주니 신뢰를 얻는 것은 금방이었다.

위드의 대장장이 스킬은 사람들의 존경심을 받기에 충분한 경지에 올라있었던 것이다.

'이걸 확 챙기면…….'

좋은 검을 받았을 때에는 이렇게 군침을 다신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절대로 무기를 맡기지 않았겠지만, 모르니 다행이었다.

위드는 장비를 개조하는 한편으로는 마판이 오기를 기다렸다.

"슬슬 올 때가 되어 갈 텐데……."

모라타에서 후발대로 오는 성기사와 사제들과 같이 출발한 마판은 보급 물자를 잔뜩 가져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함께 헬리움을 녹일 수 있는 대형 화로의 부품을 옮겨 오고 있었다.

위드는 전투 중에도 틈틈이 조각을 해서 헬리움을 녹여서 넣을 형틀을 완성해 놨다.

신의 눈물.

대형 화로를 가져와서 마나와 신성력의 원천인 헬리움을 녹여 조각품으로 완성하면 바르칸과 싸울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4. 헬리움 조각품


KMC미디어, CTS미디어, 온 방송국, 디지털미디어, LK게임.

로열 로드에서 손꼽히는 방송국들에 제보가 입수되었다.

+ 위드가 언데드의 왕, 바르칸 데모프를 사냥한다.
+ 모라타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헤르메스 길드와 싸우기 위하여 그곳까지 간 게 아니었다.
+ 헤르메스 길드는 안중에도 없었다.
+ 위드가 불사의 군단에서 퀘스트를 하면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계급을 올렸던 이유도, 바르칸을 사냥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위드의 꿍꿍이가 모라타의 유저들을 통해서 퍼져 나간 것이다.

성기사와 사제들을 모았을 때부터 알음알음 알려졌던 사실이지만, 폴론의 부대가 소멸한 지금은 굳이 비밀을 지킬 필요가 없었으므로 마음껏 떠들고 다녔다.

각 방송국들은 주력으로 하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 사실을 공개했다.

"여러분, 놀랄 만한 사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전쟁의 신 위드가 현재 바르칸 데모프를 사냥하려고 합니다."

"며칠 전에 위드가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대를 전멸시키는 영상을 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앞으로 리치 바르칸을 사냥하려고 한다는 특종을 시청자 여러분에게 알려 드립니다."

"바르칸! 불사의 군단을 이끄는 수장이고, 위드가 퀘스트를 하면서 많이 유명해진 리치이죠. 위드와는 많은 인연이 있는 몬스터라고 볼 수 있는데……. 드디어 사냥에 도전한다고 합니다."

여러 방송국들이 속보를 냈다.

단체로 몰려가서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이번에는 가히 전설적인 등급의 몬스터.

위드를 비롯하여, 폴론의 부대와 싸우면서 실력을 보여 준 전사들이 전투를 한다.

싸움이 아직 벌어진 것도 아니지만, 명장면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나올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리치 바르칸과 위드과 싸운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기에는 너무나 충분했다.

족발과 통닭, 피자를 기다릴 때보다도 더 흥분되는 떨림!

+ 아, 미치겠네. 진짜 위드는 왜 이런 싸움만 하는 거죠?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만만한 몬스터나 사냥하고 레벨이나 올리면서 살아도 될 텐데……. 완전 기뻐요.
+ 왜 사람들이 위드, 위드, 그에 소문을 들으면서 좋아하는지 이제 알 것 같네요.
+ 너무 늦게 아셨네요. 저는 명예의 전당에 오크의 동영상이 올라왔을 때부터 완전히 팬이었어요.
+ 여러분, 과연 저만 할까요? 저는 행운아입니다. 로자임 왕국에서 시작해서 위드가 초보 시절에 팔던 여우 조각품도 사서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여자 친구랑 같이 있을 때 5실버에 사서 엄청 바가지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최고의 보물입니다. 여자 친구랑 저랑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하지요.
+ 앗, 그 귀하다는 아이템을……. 지금 그 여우 조각품 저한테 10골드에 파세요.
+ 위의 분, 완전히 거저먹으려고 하시네요. 지금 시세가 100골드가 넘어요!

게시판에서는 위드의 용맹에 대한 찬사들이 즐비했다.

로열 로드에서 모험으로 유명해진 유저는 정말 많지만, 위드만큼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누리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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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민과 오주완이 진행하는 '베르사 대륙 이야기' 에서는 이현과의 전화 인터뷰도 성사시켰다.

출연료까지 준다고 하니 이현은 마다하지 않고 나왔다.

"오늘 베르사 대륙 이야기에서는 들려 드려야 될 소식들이 정말 많은데요, 전쟁의 신 위드 님을 전화로 모셨습니다. 위드 님?"

> 예

짧고 귀찮은 득한 음성!

"그동안 모험을 많이 하셨잖아요. 가장 힘들었던 모험이 무엇이었나요?"

> 모험은 다 힘들었죠.

"겸손한 말씀이신데요. 그래도 많은 장소를 다니신 만큼 제일 기억에 남을 만큼 고생하신 때가 언제인지 시청자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 조각사로 전직했을 때…….

"……."

신혜민은 너무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로열 로드에서 사냥과 요리, 생산할 때를 제외하고 나무토막을 손에서 떼어 놓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눈을 감고도 조각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예술 계열 스킬들이 지독할 정도로 올리기가 어려움에도 지금 고급 조각술 8레벨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재봉이나 대장일, 요리, 낚시, 수리, 붕대 감기, 항해, 약초학 등도 익혔으니 진정한 노가다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현은 돈만 많이 준다면 평생 이쑤시개나 나무젓가락만 만들며 살지도 몰랐다.

오주완은 농담인 줄 알고 넘어가며 다음 질문을 했다.

"위드 님도 시청자 게시판을 보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시청자들이 많이 감탄하는 것 중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높은 자리에 오르면 안정을 추구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루어 놓은 것도 있고, 또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게 되고요. 지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비결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제 팔자가 그랬습니다.

함축된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가만히, 평탄하게 살려고 해도 온갖 모험들에 휘말려 버리는 박복한 인생.

천공의 도시에 방문한 이후부터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눈물로 밥을 지어 먹을 정도라서 말을 더 잇지 못하는 것이다.

"남들이 얻지 못하는 특별한 퀘스트를 받으시는 비결은 정말 알려 주시기 어려운 부분일 텐데요. 그래도 이 순간 모험을 위하여 베르사 대륙을 떠도는 사람들을 위하여 조언이라도 해 줄실 수 있을까요?"

> 아부를 철저히. 그리고 퀘스트 함부로 받으면 생고생.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한마디였다.

이현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나왔던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베르사 대륙 이야기' 같은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사람들은 물건을 팔러 나오기라도 한 듯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쏟아 낸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자기 자랑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이현은 짤막하게만 말하는 것이다.

'인터뷰가 길어진다고 해서 추가 요금을 받는 건 아니니까.'

남들에게 많이 알려 줘 봐야 입만 아픈일.

"마지막으로, 리치 바르칸 데모프를 사냥하실 계획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이것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될 것 같은데, 이기실 수 있겠죠?"

이현은 과거에 바르칸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에 필요한 전력은 갖추었지만, 가실 승산을 점치기란 어려웠다.

각 방송국에서는 바르칸 사냥이 성공할 것이냐 실패할 것이냐로 토론회가 벌어질 정도였다.

바르칸은 레벨이 높고 잠재된 힘이 거대할 뿐만 아니라, 최고의 네크로맨서다.

전투 중에 죽은 시체들이 끝없이 그의 원군이 될 테니, 강하기만 한 다른 전설적인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부분이었다.

대군이 몰려가더라도 몽땅 언데드가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불사의 군단 소속의 언데드가 되어 버리면 그만큼 바르칸의 전력을 높여 주게 되는 것이고, 또한 잃어버린 아이템을 되찾지도 못하리라.

위험부담이 너무나도 큰 사냥이었다.

이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 안 될 것 같으면 곧바로 도망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죽으면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 하락 등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는다.

끝까지 이기겠다면서 싸움만 하려는 것은 용기가 아닌 만용!

이현은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고 전투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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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론은 헤르메스 길드의 레인저들과 기사들, 마법사 유저들과 함께 로열 로드에 접속했다.

그들이 나타난 장소는 위드를 습격하기 전에 만들어 놓았던 은신처였다.

"살아남은 기사와 레인저들은?"

"중앙 대륙 방향으로 도주했습니다. 무사히 북부를 빠져나간 사람이 20명도 안 됩니다."

"너무 많이 죽어 버렸군."

폴론은 크레마 기사들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접속할 수 있지만, 일반 기사들은 완전한 사망이었다.

다시 양성해야 하는데, 고급 기사들을 키우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헤르메스 길드 내부의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에 잃어버린 병력을 복구할 때까지는 고생을 해야 하리라.

"여기서 더 있으면 위험하니 중앙 대륙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겠습니다."

폴론은 세력이 확 꺾여 버렸기 때문에 위드와 검치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도망쳐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착용한 장비를 보면 잃어버린 아이템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패전을 해서 잃은 게 많지만, 싸워서 항상 이길 수만은 없다.

"그래도 축복받은 성소의 다이아몬드는 건졌군."

"위드와 싸워 본 것도 재미있지 않았습니까?"

"맞다. 그와 싸워서 우리 크레마 기사단은 더 유명해졌다고 할 수 있지."

폴론에게 후회는 없었다.

위드와의 전투는 흔히 경험하기 어려운 기회였다.

"우리의 복수는 헤르메스 길드에 맡기자. 헤르메스 길드의 진짜 힘은 이런정도가 아니니까."

폴론은 그가 몸담고 있는 헤르메스 길드의 전력에 대해 대충 알고 있는 편이다.

그는 헤르메스 길드에 가입하고 나서 차차 높은 자리를 차지한 경우로, 나중에 길드의 실체를 알고 나서 얼마나 전율했는지 모른다.

그 넘치는 힘이 곧 칼라모르 왕국을 향해 분출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중앙 대륙을 점령하기 위한 사전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지독하게 실리를 추구하는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위드와의 전투 정도는 여흥으로 여기는 분위기마저 가졌다.

물론 그 고고한 자존심이 깨졌기 때문에 더욱 분노하게 되리라.

"위드.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순탄하게 베르사 대륙을 여행하면서 지냈지만, 앞으로는 어디서도 발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폴론과 그의 병력은 그대로 철수하기로 했다.

"마법사들은 텔레포드 게이트를 만들도록 해라. 지금 바로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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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땅뚱땅!

위드는 대장장이 스킬로 검치들과 성기사들의 장비를 손 보는 일을 끝냈다.

상당한 노가다였지만 워낙에 익숙한 일이기도 했고, 재료들을 녹여서 다시 만드는 것으로 대장장이 스킬 경험치도 얻을 수 있었다.

위드의 대장장이 스킬은 중급 5레벨, 전문적으로 익히지 않은 사람 중에서는 최고라고 봐도 됐다.

"사람은 한 우물만 파서는 안 돼. 가뭄을 대비해서도 열 우물은 파 놓고, 저수지도 만들어 놔야지."

이것이 위드의 삶의 방식!

"위드 님, 오랜만입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마판이 대형 화로의 부품을 갖고 도착하면서 헬리움도 녹일 수 있게 됐다.

"운송비는 그동안 모아 놓은 잡템으로 드리려고 하는데……."

"위드 님의 잡템은 언제나 최고죠."

"다른 잡템도 많이 있는데, 저번이랑 같은 가격으로 처리해 주실 거죠? 일부러 여기까지 오셨는데 이렇게 신세만 지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요."

"위드 님과 거래하는 일인데, 얼마든지 뛰어와야죠."

위드와 마판이 잡템을 처분하는 장소에는, 네크로맨서들도 많이 구경을 와 있었다.

네크로맨서들도 레벨이 300대 후반에서 400을 넘기도 한다.

언데드를 끌고 다니면서 어마어마한 사냥과 의뢰를 했기 때문에 잡템들이 다들 많이 쌓여 있었다.

마판은 위드가 직접 잡템을 상점에 판매할 때에 비교하여 15%의 추가 금액을 줬다.

자신의 이익을 5%로 계산한 것이다.

마을과 성에서 잡템을 거래할 때에는 상인들이 훨씬 적은 마진을 받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원정을 나온 경우에는 10%정도는 기본으로 챙겨 간다.

"완전히 착한 상인인데?"

"그러게. 예전에 나도 몇 번 거래하던 상인이 있었지만, 이렇게 멀리 와서 고작 5%밖에 마진을 안 받는 경우는 처음 봐. 친하니까 그런 거겠지?"

네크로맨서들은 슬쩍 자신들도 거래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잡템을 많이 가지고 다니면 챙기기 부담스럽기도 하고, 신경도 많이 쓰이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짐작하기라도 한 듯이 위드가 쟌과 헤리안에게 마판을 소개시켜 주었다.

"여기 인사 나누세요. 예전부터 저랑 친한 동료 상인 마판님. 혹시 처분할 잡템들이 있으면 맡겨 보세요. 제가 특별히 저랑 같은 가격으로 처리해 달라고 부탁을 해 놓았습니다."

"정말 그래도 될까요? 위드 님과 같은 금액 수준이라면 상인님이 너무 남기시는 게 없는데요."

"5%면 여기까지 오신 수고에 비해서 정말 가져가시는 게 없는 것 같은데……."

네크로맨서들이 처음 만나는 마판에게 미안해할 정도였다.

운송료나 이동 시의 위험을 감안한다면 너무 높은 판매 가격이었다.

"괜찮습니다. 마판 님도 큰 상인이라서요. 예전에는 잡템거래를 많이 했지만 요즘에는 거의 하지 않고, 무역과 상점 운영을 중점적으로 하시거든요."

마판도 맞장구를 쳤다.

"저는 모험을 좋아해서 위드 님을 보러 여기까지 온 겁니다. 덤으로 잡템도 처분해 드리고 조금이라도 남기면 좋고요. 파실 물건 있으면 부담 없이 내놓아 보세요."

네크로맨서들은 가지고 있는 잡템들을 내놓았다.

모라타로 가져가면 2%나 3%까지도 더 받고 팔 수 있지만 번거롭기도 하고,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가격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게 다 얼마야'

마판은 잡템들을 대량으로 거래하며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들이 내놓은 잡템!

녹슬고 부서진 무기와 방어구, 액세서리들이 많았다.

위드는 마판과 거래하면서 일부러 잡템으로 분류를 했지만, 수선을 해서 판다면 더 이윤을 남기게 된다.

위드가 대장장이 스킬로 녹여서 재가공을 한다면 어엿한 쓸 만한 장비가 된다.

마판의 실질적인 이윤은 5%보다는 조금 더 높았을 뿐만 아니라, 우량 고객들을 다수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잡템 거래를 마치고 나서, 위드와 마판은 조용히 마차 뒤로 돌아갔다.

손이 몇 차례 오고 가는 현장!

그들은 은밀하게 귓속말로만 대화를 나누었다.

> 소개비는 여기…….

> 수고하셨습니다. 녹슨 물건들은 재료가 좋으면 분류해서 저한테 넘겨주세요. 녹여서 장비로 만들어 드릴 테니.

> 뭘요.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으면 불러만 주세요.

> 그런데 네크로맨서들에게 판매할 물건들은 많이 챙겨 오셨죠?

> 흑마법사. 네크로맨서용으로 모라타에 있는 물건들을 쓸어 왔습니다.

네크로맨서들에게 잡템만 사 가는 게 아니라 물건도 팔아 먹을 계획을 갖고 있었다.

#

대형 화로가 임시로 설치되고, 불이 크게 지펴졌다.

"잘되어야 하는데… 실패는 절대 있어서는 안 돼."

헬리움이 너무도 귀한 금속이었기 때문에 위드도 긴장했다.

"대장장이 스킬이 더 높았으면 좋았을 텐데."

대장장이 스킬의 마스터라면 최고의 아이템도 만들 수 있는 헬리움!

성물이나, 왕국을 대표하는 무구를 만들 수도 있는 재료다.

하지만 위드는 헬리움을 가지고 조각품을 만든다는 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조각품은 레벨 제한이 없으니까. 일단 쓰다가 나중에 녹여서 검을 만들어야지."

조각사로서 예술을 우선하지 않는 실용적인 태도를 가진 위드.

"형틀은 일단 준비가 되었고……."

헬리움을 넣어서 굳힐 형틀을 데스 나이트, 둠 나이트로 사냥을 하면서 고은 흙으로 수없이 많이 시도한 끝에 미리 만들어 놨다.

위드가 대형 화로에서 작업을 하니, 주변으로 사냥을 나간 페일 일행과 검치들을 제외하고 성기사와 사제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대형 화로까지 꺼내 놓고 대체 무엇을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지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위드는 불의 온도를 뜨겁게 만들었다.

대형 화로 안에 장작을 가득 쌓아 두고 활활 타오르게 한다.

그리고 계속 화력이 강한 나무들을 넣으면서 불을 키웠다.

"아직 모자라. 장작은 많이 있으니까."

위드가 쓰는 장작도 마판을 통해 돈을 주고 주문해서 마차로 운송해 온 것들이었다.

헬리움을 작업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무값을 아낄 겨를이 없었다.

화력이 강하고 유지가 잘되는 최고급 나무들을 사용했다.

불을 키우기 위하여 소모되는 나무의 가격이 10분에 300골드가 넘었다.

"아직도 모자라."

위드는 불을 다스리는 일에만 집중했다.

"미스릴로만 이루어진 검을 만들려는 걸까?"

"바르칸을 사냥하려고 좋은 무기를 만들려는 걸 거야."

성기사와 사제들은, 위드가 바르칸을 사냥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대형 화로를 다루는 모습으로 보아 곧 이유가 밝혀지리라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들은 네크로맨서들과는 다르게 파티 사냥을 많이 하다보니 대부분 길드가 있었다.

노엘 : 위드 님이 화로에 불을 피우면서 뭘 만들려고 하네요. 마을에나 있는 대형 화로를 가져온 걸로 봐서 대단한 걸 제작하실 것 같아요.

실시간으로 길드와 풀죽신교 등에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동영상이 인터넷에 나가고 있기도 했다.

위드가 다른 유저들과 자주 다니지 않는 이유에는, 전리품을 나누기도 싫었지만 너무 대단한 유명세 때문에 사생활이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전투에서의 비결이나, 조각품을 만들고 다른 생산 스킬들을 활용하는 모습들, 위치까지 다 공개되어 버리니 유저들이 많이 있는 장소에서 정체를 들러내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이제 불의 온도가 적당해졌군."

1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토끼 고기 정도는 곧바도 익어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위드는 엄청난 열기를 참으면서 헬리움을 꺼냈다.

신의 눈물이라는 하늘색의 금속. 고귀한 가치를 가진 헬리움이 화로에 들어갔다.

대형 화로에서는 많은 금속들을 한꺼번에 녹일 수 있었지만, 집중하기 위하여 헬리움 외에 다른 금속들은 넣지 않았다.

그리고 불을 다스리는 기다림!

위드가 중얼거렸다.

"많이 바라지도 않아. 사람이 욕심을 버려야 좋은 결과를 얻지. 그냥 헤레인의 잔이나 파고의 왕관 정도만 나와 주면……."

프레야 교단의 3대 성물 중에서 위드가 구해 온 두 가지.

사실 그런 성물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착용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위드가 지금 헬리움으로 만드는 건 아쉽게도 장비가 아닌 조각품이었으니 그저 마음으로만 바랄 뿐이었다.

"파고의 왕관을 머리에 쓰고 사냥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헤레인의 잔만 있으면 성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할 수 있는데."

끝없이 솟아오르는 욕심으로 헬리움이 녹기만을 기다렸다.

위드는 보통 때보다 5배는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헬리움을 꺼냈다.

돌그릇에 하늘색의 물이 담겨 있었다.

무사히 헬리움이 녹았다.

"지금부터가 진짜야."

대형 화로를 사용하고 녹이는 것은, 일정한 스킬만 있다면 실패할 가능성은 적었다.

조각품으로 바뀌는 것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위드는 그 하늘색의 물을 맞추어 놓은 형틀에 부은 다음에 적당히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실수가 없어야 되는데……."

초조한 기다림이었다.

대장장이 스킬을 익힐 때 많이 해 봤고, 금인이도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떤 작품이 완성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헬리움의 금속의 재질을 가지고 있다 보니 실패하더라도 무한정 다시 녹여서 더 나은 작품을 만들면 될 것 같지만, 재료에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마법이 붙은 금속의 경우에는 자주 녹이다 보면 원래의 성질을 조금씩 잃어버린다.

신성력과 마나의 원천인 헬리움도 제련을 반복하다 보면 불에 의하여 조금씩 약화되는 것이다.

"지금이다."

위드는 평소보다 빨리 흙으로 만든 형틀을 벗겨 내었다.

그러자 헬리움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움을 비추는 횃불!

맑은 하늘빛의 헬리움이 횃불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역시… 부족했어."

대장장이 스킬이 헬리움을 다스리기에는 너무 낮았기 때문에 횃불의 세밀한 부분들이 완벽하게 살아나지 못했다.

실패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위드가 평소에 정성껏 만들었던 조각품에 비해서는 세밀함이 많이 떨어졌다.

위드는 자하브의 조각칼을 꺼냈다.

헬리움과 자하브의 조각칼처럼 귀한 아이템은 모라타에 있는 영주성에 놔두었다가 출입 허가가 있는 유린이가 가져다준 것이다.

탈로크의 갑옷, 바하란의 팔찌, 콜드림의 데몬 소드, 그 외에 위드가 직접 만든 장비도, 아직 쓰지 않았지만 유린이 몇 번에 걸쳐 모두 옮겨 왔다.

"조각은 이제부터야."

슥슥.

위드는 헬리움의 둔탁한 표면을 조각칼로 긁어냈다.

잘못 튀어나온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 내기도 했다.

+ 신성력에 접속하셨습니다.
+ 힘이 35 감소합니다.
+ 생명력이 950 저하됩니다.
+ 죽은 자의 힘이 4 떨어집니다.

둠 나이트였기 때문에 헬리움을 건드릴 때마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오래 끌지 않고 바로 해치워야 된다.'

죽기 전에 조각을 끝내야 했다.

헬리움은 내구도가 엄청나기 때문에 완전히 식지 않고 열기가 남아 있는 지금밖에 조각이 안 된다.

+ 뜨거운 금속에 데었습니다.
+ 생명력이 318 줄어릅니다.

불과 신성력!

두 가지 종류의 피해를 입으면서 위드는 조각칼을 놀렸다.

다른 여러 예술 계열 직접과도 차별화되는 조각사라는 직업은, 육체의 고난까지도 자주 짊어져야 됐다.

"고통 속에 탄생한 작품이 더……."

위드는 무언가 뒤로 말을 더 하려다가 말았다.

따지고 보면 편하게 조각했던 시절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으니까.

"그냥 내 팔자가 이렇지."

위드는 형틀로 전체적인 구도를 잡고, 조각칼을 이용하여 다듬으며 세세한 표현을 했다.

횃불 전체를 살피면서 만들어 가는 과정에는 지금까지 조각품을 만들었던 많은 경험들이 녹아 있었다.

헬리움은 식어 가면서 점점 단단해졌고, 그러다 보니 점점 마나와 신성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어라, 마나의 최대치가 늘어나네?"

"나도 신성 마법의 스킬의 효과가 커진다는데.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마나의 회복 속도도 50% 이상 빨라졌어."

조각품이 완성되어 가면서, 사제와 성기사들은 몸에 변화를 느꼈다.

위드가 만들고 있는 헬리움의 횃불.

그곳에서 나오는 신성력에 의하여 사제들과 성기사들의 능력이 강화되었다.

+ 신성력에 의하여 육체가 취약해집니다.
+ 방어 능력이 사라집니다.
+ 저항력이 감소합니다.

반대로 신성력이 몸을 휘감으면서 위드는 점점 약화되었다.

빠르게 늙어 가는 사람처럼 힘이 빠지고 뼈가 굳어 갔다.

"조금 더 다듬어야 하는데……."

헬리움의 가치를 생각하면 차분하고 꼼꼼하게 마지막까지 손을 봐야 하지만 생명력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으로 완성이다."

횃불 아래에 들기 편하게 막대를 끼우는 것으로 작업을 완료!

막대기도 미스릴과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불사의 군단에서 사냥을 하며 얻은 오래된 무기류 중에서 조금씩 모은 것이었다.

+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위드는 이번에는 이름을 빨리 말했다.

생명력이 20% 정도밖에는 남이 않았기 때문이다.

"조각사들이 남긴 횃불."

+ 조각사들이 남긴 횃불이 맞습니까?

"맞다."

많은 조각사들이 지골라스에 가서 목숨을 잃으면서 헬이움을 찾았다.

위드가 만든 작품은 조각사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매우 훌륭한 작품이 나와 주면 좋겠지만, 대장장이 스킬이나 손재주, 조각술 등이 마스터가 되지 못하였다는 점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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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작! 조각사들이 남긴 횃불을 완성하셨습니다.
+ 헬리움으로 만들어진 조각품!
+ 대륙의 조각술의 역사에 기록되기에 충분한 작품.
+ 조각술을 대표해서 이끌어 간다고 과언이 아닐정도로 위대한 명성을 쌓고 있는 위드에 의하여 탄생했다.
+ 신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더없이 고귀하며, 찬란한 영광을 가져올 것이다.

예술적 가치 : 18,619.

특수 옵션:8
+조각사들이 남긴 횃불상을 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52% 증가한다.
+ 추가로 조각품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마나 회복 속도를 30% 빠르게 함.
+ 모든 스탯 29 상승.
+ 스킬 사용에 따른 마나의 소모량을 75%로 낮춤.
+ 신성 마법을 2레벨 더 높은 효과로 사용할 수 있음.
+ 마법의 위력이 33% 증가.
+ 마나를 사용하는 전투 스킬의 위력을 14% 늘려 줌.
+ 적의 행운을 빼앗아 옴.
+ 특정한 범위 내에서 원거리 공격을 막는 마나 배리어 (고급 4레벨)가 형성됨.
+ 어두움을 물리친다.
+ 상태 이상을 해제.
+ 부대 전체의 사기 증가.
+ 흑마법과 저주 마법에 대한 강한 내성.
+ 조각품을 감상하면 신앙심과 지혜, 지식이 영구적으로 10씩 증가.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대작의 숫자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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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대장장이 스킬의 레벨이 중급 6으로 상승했습니다. 제련에서 금속의 고유한 성질을 보다 잘 이끌어 냅니다.

+ 대장장이 스킬의 레벨이 중급 7로 상승했습니다. 가벼운 종류의 갑옷을 만들 때 방어력과 내구도가 올라갑니다.

+ 명성이 4,921 올랐습니다.
+ 예술 스탯이 51 상승하셨습니다.

+ 지혜가 7 상승하셨습니다.

+ 인내가 3 상승하셨습니다.

+ 지구력이 4 상승하셨습니다.

+ 카리스마가 13 상승하셨습니다.

+ 매력이 25 상승하셨습니다.

+ 대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3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 신성한 조각품을 만들어 내어 죽은 자의 힘이 대량으로 감소했습니다.

위드가 만들어 낸 여덟 번째 대작 조각품!

들고 다닌다면 전투에 굉장한 도움이 될 것 같은 조각품이었다.

"역시 내가 만든 조각품이라서…… 이정도는 기본이지."

검이나 갑옷도 아닌데 스탯을 올려주고 마나 소모율을 낮춰 주는 효과는, 조각품으로서는 대단했다.

옵션으로 봤을때에는 마법사나 성직자에게 가장 좋을 것이다.

헬리움을 가공한 덕분에 대장장이 스킬이 단숨에 두 단계나 올랐다.

6레벨이 되기까지 숙련도가 얼마 안 남은 것도 이유이지만,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최고 등급의 금속이었기 때문이다.

"조각품 하나가 만들어지고 나니 이렇게 든든하다니……."

위드의 턱뼈가 귀에 걸렸다.

+ 조각사들의 꿈의 재료인 헬리움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 조각사 길드로 간다면 추가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단히 기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졌지만, 둠나이트에게는 모든 옵션들이 부정적으로만 적용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몸의 힘은 갈수록 떨어졌다.

조각품을 만들어서 오래 들고 있다가 죽는다면 그것처럼 허무한 죽음도 없다.

위드는 조각품을 흰 천으로 감싸서 배낭에 넣었다.

+ 조각사들이 남긴 횃불의 영향을 벗어났습니다.
+ 몸에 신성력의 기운이 남아 있습니다.
+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원래의 전투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위드가 헬리움으로 조각품을 만든 장면도 방송과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차피 도저히 숨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이 떠들었기 때문이다.

A급, S급 퀘스트를 성공해 낸 이상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프레야 교단의 성물 같은 물건을 헬리움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으니까.

"굉장한 조각품이 세상에 만들어졌다지. 예술적으로 훌륭한지는 나는 모르겠지만,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는 조각품이라네."

"베르사 대륙의 보물이 한 가지가 더 늘었다는군. 인간의 손으로, 노력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더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 조각사를 만나 보기 위하여 국왕 폐하께서 안달이 나셨다는군. 그 조각사가 왕궁의 출입문을 지키는 경비에게 간다면 두말하지 않고 통과시켜 줄 텐데……."



5. 턴 언데드


위드의 전투준비는 요리를 해서 모두를 배부르게 먹이는 일까지 하고 끝났다.

"우리는 반드시……."

성기사와 사제들은 바르칸과의 싸움에 앞서 위드의 연설을 기다렸다.

"엄청 길게 하겠지. 나라도 그렇게 할 거야."

"그러게. 방송으로도 중계가 되잖아. 위드 님은 최고의 유명인이니까."

KMC미디어를 비롯한 방송국들의 생방송도 진행되었다.

바르칸을 사냥하기로 한 오늘은, 베르사 대륙뿐만이 아니라 여러 방송국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것이다.

긴장과 흥분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성기사들은 위드의 지휘를 받으면서 불사의 군단, 바르칸과 싸운다는 데 전율을 느꼈다.

전투에 나서기 전에 지휘관의 명연설을 들으면서 그들이하는 일의 정당성이나 가치를 되새기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위드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반드시 바르칸을 사냥해서 그가 가진 보물들을 싹쓸이할 겁니다."

"……."

"……."

명확한 목표 의식!

그리고 청중의 주의력을 산만하게 만들지 않는 간결함.

"그럼 모두 수고합시다."

"……."

위드는 연설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는 아까웠다.

'그냥 다 죽이면 되지.'

계획은 세워져 있으니 시원하게 싸우면 될 뿐이다.

성기사와 사제, 검치들까지 해서 대규모의 공격 부대는 그렇게 바로 출정했다.

페일 일행은 물론이고, 마레이를 비롯한 네크로맨서들도 동행했다.

마레이는 바드로서 위드의 전투와 이번 바르칸의 싸움을 지켜보고 멋진 노래를 지어서 부르기 위해서 따라왔다.

네크로맨서들은 위드와 같이 싸우기로 결정했다.

바르칸의 휘하에 있으면서 얻은 마법이나 아이템이 적지는 않지만, 악명과 죽은 자의 힘이 계속 증가한다.

바르칸은 네크로맨서들의 복이며, 동시에 장애물이었다.

불사의 군단 소속으로는 어떤 마을이나 성에도 들어가기 어려웠으니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싸움을 결정했다.

#

성기사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그들의 공격 능력과 방어 능력은 언데드를 상대로 할 때 최고조에 오른다.

'위드 님과 같이 싸운다면 심장이 저릿저릿한 전투를 할 수 있겠지.'

'죽더라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방송으로도 중계가 되었으니 각자 전투에 대한 의지로 불타올랐다.

불사의 군단 본진이 주둔하고 있는 바르고 성채!

하늘은 어둡고 장대비가 내리는데 진군을 한다니 너무나 떨리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기 이 하수구로 들어가면 됩니다."

하지만 위드가 인도한 장소는 좁고 더러운 하수구!

첨벙첨벙!

성기사와 사제, 검치들은 위드가 먼저 일러 준 방향대로 하수구를 걸었다.

페일 일행과 상인인 마판도 함께였다.

하수구를 복잡하게 이동해서 지상으로 올라오고 나니, 둠 나이트인 위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위드는 불사의 군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언데드들이 열어주는 성문으로 걸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적당히 빗물에 젖은 망토와 갑옷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바르고 성채의 외성에 있는 주방입니다. 언데드들은 밥을 차려 먹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장소죠."

바르고 성채로 들어오자 사제들은 긴장으로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기분이었다.

페일이 물었다.

"바르칸이 있는 장소는 여기서 가까이 있는 건가요?"

"내성의 지하로 가야 됩니다."

외성은 쉽게 들어왔지만 남은 길이 만만치는 않았다.

언데드들이 많이 있는데 발각되지 않고 바르칸에게까지 간다는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시간을 두고 따라오세요."

위드는 앞장서면서 언데드들의 동향을 살폈다.

주변에 언데드들이 없으면 더없이 좋았고, 정찰을 해서 정보를 알려 주기도 했다.

"7마리. 아주 가까운 곳에 다른 언데데들은 없습니다. 신속하게 해치우고 움직여야 됩니다."

"홀리 마이트!"

"리커버리!"

사냥을 해야 할 때는 사제들의 신성 마법으로 처리했다.

사제들의 치료 마법, 축복 마법 그리고 턴 언데드 마법은 언데드에게 매우 치명적이었다.

"쉬면서 마나를 보충할 시간은 없습니다. 언데드들이 바르고 성채에서 자유스럽게 돌아다니니 계쏙 바르칸이 있는 곳으로 움직여야 됩니다."

위드는 지체하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바르칸에게 향하는 길을 정확하게 파악해 놨기 때문에 언데드를 처리하는 시간을 포함하더라도 이동이 빨랐다.

언데드들에게 발각되는 순간 엄청난 병력이 몰려올 것이란 두려움을 안고 움직여야 했다.

다만 위드가 원 없이 싸울 기회를 준다고 했고, 기왕이면 바르칸과 싸워 보고 싶었기 때문에 조용히 뒤를 따라왔다.

이곳 외성에도 많은 몬스터들이 돌아다녔지만, 위드가 불사의 군단에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그나마 경계망을 약화시킨 것이었다.

이동 경로에서 놀고 있는 언데드들을 부하로 거두어서 성문 밖에다가 많이 버려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언데드도 레벨이 300을 넘는 경우가 허다했고, 공중에는 본 드래곤이 3마리나 날아 다닌다.

벤들러 기사단 등도 유령마를 타고 외성과 내성을 오가면서 돌아다녔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위드라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크엑, 인간이다!"

성기사와 사제들은 신성 마법을 발출할 준비를 하고 즉시 사용했지만, 가끔 언데드들은 비명을 지르고 죽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언데드들이 몰려오고, 재빨리 제압과 도주를 반복했다.

"인간! 인간들의 침입입니다."

"종을 쳐서 알려라."

"어딘가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피 냄새가 난다. 살아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도전했다."

뎅! 뎅! 뎅!

바르고 성채의 탑 중의 어딘가에서 커다란 종소리가 울렸다.

"이젠 발각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정찰을 하지 않고 무조건 내성으로 뛰어야 합니다."

위드를 따라서 성기사와 검치들이 달렸다.

체력이 약한 사제들조차도 스태프와 성서를 손에 들고 뛰었다.

"길을 막는 언데드들은 다 해치우고 돌파합니다."

이제는 속도와의 전쟁이었다.

바르고 성채 전역에서 몰려드는 언데드들에게 포위당하면 비참한 죽음을 맞을 뿐이다.

"사형들이 나서 주셔야 됩니다. 무조건 최단시간에 뚫어야 합니다. 위험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부탁드립니다."

"그쯤이야 쉽지. 걱정 마라."

검치들은 언데드 방어 병력이 나타나는 족족 깨부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적극적인 공격과 돌파!

사제들의 정화 마법이 아니라면, 검과 체력을 이용한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언데드가 다시 시체로 돌아간다.

바르칸의 다크 룰 마법에 의해서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언데드로 일어나게 되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위드는 복도에서 앞장서서 달렸다.

그는 둠 나이트 였기 때문에 언데드들로부터 공격받지 않았다.

"습격자들이다!"

위드는 고함을 질러서 언데드들의 이목을 끌었다.

"오른쪽 복도에서 인간들이 오고 있다."

언데드들이 위드가 말한 방향으로 우르르 달렸다.

위드는 정탐과 길 안내 그리고 언데드를 혼란시키는 역활까지 했다.

그렇게 뚫고 달려서 뒤처진 사제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내성으로 향하는 관문에 도착했다.

"이곳을 지나야 됩니다. 통과할 수 있는 다른 길에는 언데드들이 너무 많습니다."

위드가 정한 위치는 내성과 물 위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래에는 언데드 악어들이 인간들을 보고 입맛을 쩍쩍 다셨다.

"갑시다."

성기사와 사제들이 내성을 향해 다리 위를 달렸다.

그들이 지나온 뒤쪽에서는 외성의 언데드 병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쳐라! 모루 죽여라!"

"바르칸 님의 뜻을 거역하려는 자들이다. 죽음으로 동료로 만들자."

언데드들이 다리를 달려서 추격해 왔다.

너무나도 다양한 언데드들이 있었고, 가고일들은 공중에서 습격을 해 왔다.

"디바인 쉴드!"

사제들이 보호 마법을 펼치며 막았다.

"어서 내성으로 달려요."

"빨리빨리 갑시다."

바르고 성채에 들어오고 난 이후로, 잠깐도 정신 차릴 수 없도록 싸움이 벌어졌다.

언데드를 빨리 해치워야 할 뿐만 아니라, 신속하게 움직여야 된다.

유저들은 어떤 식으로 위드가 전투 지휘를 해 보일지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이제 해결되었다.

도태되거나 무리에서 떨어지거나 혹은 말을 따르지 않으면 죽음이다.

전투의 난이도가 상상보다 더 대단했기 때문에 위드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며 따라오려고 애썼다.

위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3마리의 본 드래곤들이 현재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날을 잘 잡았군."

며칠 전부터 엘프와 바바리안들이 바르고 성채를 공격하지 않았다.

바르고 성채 근처에 있는 숲에서 희귀한 하이 엘프들도 몇명 모습을 드러냈는데, 철수한 것이 아니라 큰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 조짐이었다.

"엘프들과의 큰 싸움을 해야지."

"공을 많이 세우면 바르칸 님이 기뻐하실 거야."

"바바리안을 많이 해치우면 벤들러 기사단에 뽑힐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 밤에도 잠잠한 것을 보니 내일은 공격을 할 것 같아. 우리 불사의 군단에서는 바르고 성채에서 수비를 한 후에 반격에 나설 계획이지. 이번에는 숲으로 따라 들어가서 엘프들을 뒤쫓을 거라고 하니, 공적을 올릴 좋은 기회지."

언데드가 하는 말들을 통해서 대략적인 공격 날짜를 추측했다.

지금 바르고 성채를 멀리서 본다면 한쪽에서는 위드가 데려온 인간들이 내성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성벽 부근에서는 엘프, 바바리안, 드워프 연합군과 언데드들의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

페일과 메이런은 화살을 시위에 걸자마자 쏘았다.

은화살로 가고일의 이마를 맞히면서 내성에 들어섰다.

그래도 입구 근처에 서서 계속 화살을 쏘아 사제들을 보호해 줬다.

검치들과 성기사들은 그럭저럭 방어력이 높아서 괜찮았지만 사제들은 금세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제들은 보통 편안하고 안전한 후방에서 전투를 지원해준다.

파티 사냥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축복과 치료를 전담했기에 잘 움직이지 않는 편이었다.

"허억. 허억!"

모라타에서 손꼽히는 사제 브리만은 내성으로 들어오자마자 가쁜 숨과 함께 주저앉았다.

어디를 가서도 우대를 받으며 지내던 브리만이었지만, 위드의 레이드에 참가하고 나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달려야 했다.

출렁이는 뱃살로 느리게 걸었다가는 뒤쫓아 오는 언데드에게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브리만은 위드를 따라서 무사히 내성까지 들어오고 나서야 안심했다.

"위드 님, 여기는 안전한가요?"

위드는 그저 말없이 앞쪽 복도를 가리킬 뿐이었다.

외성보다도 훨씬 강력한 몬스터들이 있는 내성!

벤들러 기사 3인이 유령마를 달리며 인간들을 향해 돌진했다.

"조심하세요!"

"습격입니다."

사제들이 잇따라 경호성을 터트렸다.

검치들은 벌써 대비를 하고 있었다.

무예인으로서의 감각.

모험가나 도둑처럼 다양한 종류의 위험을 감지하지는 못해도 강자들이 나타나면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흐르며 경고를 해 준다.

"오랜만에 싸워 볼 만한 상대로군."

"조심해라. 방심하면 그대로 죽을 것 같다."

벤들러 기사단의 추정 레벨은 430 이상이었다.

기사 개인이 각자 이름을 부여받은 고위 언데드였으며, 바르칸의 데스 오라에 의하여 강화되어 있다.

"분검술!"

검치들은 검술의 비기를 사용했다.

벤들거 기사단이 강해 보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 하려고 했다.

검십구치, 검오십육치 그리고 검백일치, 검백사십칠치의 몸이 각자 10개 이상씩으로 늘어났다.

"바르칸 님은 살아 있는 생명을 원한다."

"너희는 제물로밖에 쓸 수 없으리라."

벤들러 기사 3인이 순식간에 쇄도하면서 검치들의 분신을 베었다.

검에 베일 때마다 희미해지면서 분신들이 사라졌다.

검치들은 분신을 이용하여 적의 생명력을 야금야금 깎아 놓는 방법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적의 빈틈을 만들어 놓으며 공격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쓴 것일 뿐이었다.

"타합!"

공격을 하느라 노출된 벤들러 기사들의 취약점을 검치들이 공격했다.

"크오어아!"

벤들러 기사들은 데스 오라의 보호 능력과 갑옷 덕에 검치들의 공격에도 크게 부상을 입지 않았다.

등이나 무릎같은 관절 부위를 때렸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타격만 입었을 뿐이다.

"치료의 손길."

"전사의 치유."

"태양신의 가호!"

사제들과 성기사들의 신성 마법이 조금 늦게 벤들러 기사들에게 작렬했다.

언데드들에게는 끔찍한 피해를 주는 치료와 축복 마법들이었다.

"끝없는 광휘."

"활력 재생."

벤들러 기사들이 약해지는 틈을 타서 검치들은 무차별 난타를 했다.

화령은 새로 습격해 온 벤들러 기사 둘 앞에서 춤을 추었다.

그녀만의 부비부비 댄스!

벤들러 기사들은 인간이라면 일단 증오하며 공격한다.

하지만 춤의 범위는 가까울수록 위력이 커지기 때문에,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추어야 했다.

화령으로서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다행히 성공시킬 수 있었다.

"이거 제법 괜찮네."

"팰 만한데요."

직접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기사들의 방어력이 높다 보니 손맛이 보통 뛰어난 게 아니었다.

공격과 관련된 스킬 숙련도와 스탯을 올리기에도 좋은 기회!

벤들러 기사들이 죽을 무렵, 위드는 잠깐 구석으로 들어갔다.

"이제 더 이상 언데드로는 안 되겠군."

바르고 성채의 내성은 둠 나이트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 장소다.

외성에서처럼 언데드들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르칸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

바르칸이 공격하라고 하면 육체의 통제권을 잃어버리고 검치들과 싸우게 될 수도 있다.

"다시 몸을 바꾸어야 할 때야."

위드는 배낭에서 조각품을 꺼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지."

미리 조각해 놓은 머리와 다리, 팔, 몸통 등을 결합하니 위드의 원래 얼굴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랐다.

조각품은 콧대도 오뚝하게 서 있고, 적당치 각진 턱 선에 눈썹이 진하고 좌우 비례도 좋았다.

전반적으로 잘생겨졌을 뿐만 아니라 키도 12센티 정도 크다.

엄밀히 본다면 분류만 같은 인간일 뿐 이것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보고 잘 고쳤다고 감탄하고, 동창회에 가면 아무도 몰라볼 그런 외모.

"오랜만에 거울을 본 것처럼 편안해. 조각 변실술!"

위드는 언데드의 육체에서 인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러모로 육체가 조금 바뀌었지만, 둠 나이트였을 때와 키는 비슷했기 때문에 적응에 어려움은 없다.

콜드림의 데몬 소드와, 인간이었을 때 착용하던 장비들을 장착하고, 마지막으로는 조각사의 횃불을 들었다.

"이제 좀 편해졌군."

둠 나이트였을 때처럼 육체가 전투적으로 강화되진 않았어도 훨씬 좋은 장비를 착용할 수 있다.

사제들의 치료나 축복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나쁠 것은 전혀 없었다.

위드가 다시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사제와 성기사, 페일 일행과 네크로맨서들은 전부 내성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어?"

"지금 조각품의 효과가……."

위드가 들고 있는 횃불에 의하여 유저들이 능력이 훨씬 높아졌을 뿐 아니라 신앙심, 지식, 지혜가 영구적으로 10씩 증가했다.

"그때 만들었던 조각품이다."

"위드 님이 만든 조각품이 이 정도구나. 조각사도 정말 굉장한 직업인데?"

유저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위드는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계속 바르칸이 있는 장소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내성의 몬스터들이 계속 모여들 텐데… 여기서는 신성 마법을 아끼지 말고 써서 잡아야 됩니다."

검치들만 싸워서는 벤들러 기사들에게 피해가 클 수 있다.

언데드가 넘치는 바르고 성채에서는 전력을 다하여 뚫고 나가야 되었다.

"언데드들이 앞뒤로 계속 모여들 텐데 어떻게 하지요?"

성기사들 중의 누군가가 물었다.

지금 이들은 고위 사제 8명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전부 소모해서 완성한 신성 결계 안에 있었다.

내성으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있는 것이지만, 이 결계도 불과 3~4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외성에 있는 몬스터들의 진입도 문제였지만, 내성의 강한 몬스터들이 덤비는 것도 곤란했다.

"계속 가다가 보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그 밑에 바르칸이 있죠. 계단을 장악한 후에 언데드와 싸우는 방어선을 칩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유일한 통로인 계단에서 전선을 좁힌채로 언데드와 싸운다. 성기사와 사제들도 휴식을 취하고, 그 곳에 병력의 일부를 남겨 놓은 채로 목숨을 걸고 바르칸과 싸우기 위하여 진입하는 게 계획이었다.

상당히 기초적이고 단순하지만, 그곳까지 얼마나 피해 없이 도착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크게 좌우될 수 있었다.

위드는 바르고 성채의 내부 구조를 잘 알았으니 헤매지도 않았고, 길잡이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해낼 수 있었다.

"후우……."

유저들은 긴장으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전설적인 몬스터 바르칸과의 싸움을 남겨 놓고 있다.

승리하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러지 못하고 물러나거나 도망친다면 내성도 벗어나지 못하고 꼼짝없이 전멸이었다.

사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여기까지 온 이상 끝을 봐야죠."

체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잠깐 쉰 뒤에 계속 움직였다.

언데드들이 끊이지 않고 몰려들었지만, 성기사와 사제들의 신성 마법이 작렬했다.

벽과 천장, 땅에서 악령들이 몰려들었으며, 벤들러 기사들이 시시때때로 등장했다.

위드가 횃불을 들고 앞에서 전진하고, 그 뒤를 검치들과 페일 일행, 사제, 성기사, 네크로맨서가 바싹 따랐다.

"이거 언데드들이 계속 몰려드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래도 위드 님이 이끄는 거니까 당연히 성공할거예요."

"그래도 첫 실패가 우리는 아닌지……."

불안과 초조함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그림에서도 몬스터가 튀어나오면서, 바르고 성채는 위험한 던전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벽이다!"

"벽에서 유령들이 뛰쳐나오고 있습니다. 어서 피하세요."

"천장에 붙은 몬스터를 주의하세요!"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많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데드의 기습에 의해 희생자가 속출했다.

생명력이 약간이라도 남아 있으면 치료 마법을 마구 사용하여 살릴 수 있었지만, 레벨이 너무 높은 언데드들은 잠깐 사이에 검치들과 성기사들을 대여섯씩 죽였다.

사제들은 모든 위협에 가장 우선해서 지킴을 받았지만 그들도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

앞뒤로 협공을 당하기도 하면서 위험한 때도 많았지만, 마침내 목표로 했던 와인 저장소가 있는 계단까지 이동을 완료!

드디어 문만 열면 바르칸이 있었다.

#

"아! 이제 바르칸과의 싸움을 앞두고 있네요. 정말 많이 기다렸던 순간입니다."

"위드로서는 대단히 많은 것이 걸려 있는 싸움이 되겠네요."

위드가 유저들을 데리고 바르고 성채에 진입하는 장면은 각 방송국들이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미리 일정이 예고되었기 때문에 정규 프로그램을 취소하고 특집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다.

기다리던 시청자들이 로열 로드와 관련된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거대한 축제라고 해도 됐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미치도록 즐거운 일' .

시청자들의 반응은 각 방송국의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을 정도였다.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위드의 모험이라는 점도 이유가 됐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따라 있었다.

+ 완전 무모해.
+ 간이 부었잖아. 순대 1인분을 시키면서 간만 달라고 할 사람인가?
+ 위의 분, 재미없는 농담이시네요. 위드는 간만 5인분씩 먹는다고 합니다.
+ 바르고 성채! 어떻게 저런 장소로 사냥을 하러 들어갈 수가 있는 거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위드였다.

다른 유저들은 알고로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위드는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이럴 때 느껴지는 통쾌함과 스트레스 해소!

여러 방송국들이 동시에 중계를 했지만, 방송국 진행자들의 성향에 따라서 하는 말들은 달랐다.

"호경 씨, 분석에 따르면 사냥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전력을 모두 분석해 봤는데, 제 판단으로는 이길 가능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언데드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기사와 사제들이 많이 있는데도요?"

"바르칸의 마법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네크로맨서가 가장 무서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시체로 아군을 계속 만들어 낸다는 점이죠. 그런데 저렇게 많은 인원이 몰려가니, 자칫하면 이점보다는 불리함이 더 많을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모두가 언데드가 되어 버릴 수도 있겠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바르칸을 이길 수 있을까요?"

"레벨이 아주 높은 소수가 가야 합니다. 현재로써는 아직 바르칸을 사냥할 만한 레벨의 유저가 없으니 잡지 못하는 몬스터라고 봐야겠죠.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어떤 식의 전투가 벌어질지 매우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정적으로 진행하는 방송국은 시청자들이 싸늘하게 외면했다.

시청자 게시판도 졸음이 나올 정도로 한가한 수준이었다.

"위드의 전투를 감안한다면 많은 대비를 해 왔을 테고, 그렇기 때문에 잘 싸울 수 있을 겁니다. 지켜보면서 그가 꺼내놓는 전술을 하나씩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되겠네요. 먹혀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불사의 군단이 모라타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위드는 바르칸을 사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입니다. 사냥에 실패한다면 모라타의 존립이 위태롭겠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방송을 하는 경우도 시청률이 낮았다.

"바르고 성채의 내성으로 들어오더니 벌써 바르칸이 있는 장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진격부터 엄청 빠르지 않습니까?"

"보통 이런 전설적인 몬스터에 대해서는 수식어가 여럿 붙습니다. 움직이는 공성 병기나 언데드의 제왕 등.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안 좋습니다. 위드는 전쟁의 신이거든요."

"마법의 대륙에서부터 위드에게 전쟁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가 지금 설명되고 있는 거죠?"

"여러 말 할 필요 없이, 화면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생면부지의 유저들을 데리고 성채로 진입하여 이렇게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위드 외에 또 누가 저렇게 싸울 수 있겠습니까?"

위드에 대해서 칭찬과 응원을 적극적으로 하는 방송국에서는 시청률 폭등!

여러 방송국에서 중계되고 있었기 때문에 시청률은 더 민감한 부분이었다.

방송 관계자들은 찬양의 말을 하면서도 다른 면을 새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로열 로드와 관련된 방송을 하며 이렇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유저는 단 1명도 본 적이 없다.

대개 세력과 힘, 남보다 높은 레벨을 가지고 있어 많이 알려졌던 것이지, 인기라는 측면에서는 위드와 비교가 안 되었다.

냉정하게 볼 때에 바드레이가 아니라 어지간한 길드의 수장이라도 그 세력과 실질적으로 발휘하는 영향력이 위드보다는 훨씬 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위드를 응원하는 이뉴는, 조각품도 만들고 여러 가지 기술들을 보이면서 짜릿짜릿한 모험을 하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한 세력 형성이 아니라 누구나 꿈꾸던 모험을 하면서 돌아다닌다.

자신들은 하지 못하는 모험.

넓은 베르사 대륙을 무대로 활약하는 조각사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한다면……."

"다음에 위드를 배경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겠죠?"

"위드가 만든 조각품이나 사냥터를 위주로 정보를 전달해주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미 여러 번 방송에 나왔지만 항상 시청률이 높았지요."

방송 관계자들은 위드의 인기를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보았다.

하지만 최근 자주 방송을 보면서, 그들 사이에서도 위드의 팬이 갈수록 늘어 가고 있었다.

모두 베르사 대륙을 여행하는 유저들이었다.

#

"문을 열겠습니다. 전투준비를 하고 바로 돌격합니다."

위드가 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는 바르칸 데모프가 보였다.

+ 공포 상타에 빠집니다.
+ 육체가 일시적으로 경직됩니다.
+ 생명력과 마나의 최대치가 20% 감소합니다.
+ 힘이 45% 줄어듭니다.
+ 민첩이 23% 저하됩니다.
+ 지혜가 40% 줄어듭니다.
+ 체력이 28% 저하됩니다.
+ 불행해집니다.


+ 정신이 붕괴되어 환각 상태에 빠집니다.
+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 스킬과 마법의 실패 확률을 증가시킵니다.
+ 환영을 보게 됩니다.
+ 체력의 저하가 빨라집니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도 하고 마음의 각오도 다졌다.

하지만 바르칸을 쳐다보기만 했는데도 이 정도의 효과!

위드는 투지와 정신력, 신앙심이 골고루 높았는데도 피해가 막심했다.

둠 나이트로 왔을 때는 같은 편이라서 괜찮았지만, 적대적으로 돌아선 이상 바르칸의 강대한 위세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꺄아아악!"

"이러지 마. 다가오지 마세요!"

사제들은 아예 물리적인 데미지를 크게 입고, 환영의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괜히 전설적인 몬스터가 아니라는 듯 단박에 인간들을 혼란에 빠뜨린 것이다.

검치들은 의외로 크게 나쁘지 않았다.

여러 무모한 도전들로 정신력과 투지가 만만찮게 높았을 뿐만 아니라, 무예인이란 직업은 매우 강한 적을 마주하면 힘을 바닥까지 긁어내서 싸우기 때문이었다.

따라라란!

마레이는 악기를 꺼내어 연주했다.

음악은 공포를 이기는 데 유용한 수단이었다.

'대륙 최고의 바드가 나라는 사실을 알려 주마.'

바르칸 사냥은 여러 방송국으로 생중계가 되고 있으니 기다렸던 기회다.

전투의 시작에 앞서서 위드가 노래를 부르던 장면은, 바드에게 있어서는 질투가 날 정도로 멋졌던 것이다.

바르칸 사냥이라는 무대는 왕궁의 홀도 부럽지 않으리라.

@ 전쟁의 신의 발길이 닿은 곳
@ 얼어붙은 땅과 불사의……

작곡했던 회심의 노래를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처음은 잔잔한 멜로디로 부드럽게 시작했다.

그러다가 중간쯤부터 폭발적인 가창력을 발휘하는 게 마레이의 노래 성향이었다.

그런데!

@ 너무강해. 단단히 보이는 언데드!

위드가 노래를 위하여 사자후를 터트렸다.

마레이는 밀릴수 없었기에 자신이 부르려던 곡에 맞춰 연주는 계속했다.

@ 발검음은 역사를 만들고……

@ 떨리도록 강해 보이는 구나
@ 하지만 오늘은 죽을 거야
@ 얼마짜리들을 입고 있는 거니
@ 자자자자잡, 템템템템템

@ 붙어오는 바람을 따라

@ 로브는 비싸다
@ 머리에 쓰고 있는 왕관은 얼마지?
@ 들고 있는 해골 지팡이도 내게로
@ 자자자자잡, 템템템템템

이건 노래방에서 가장 잘 부르는 노래를 준비했는데 마이크를 뺏어 간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행동!

마레이의 서사적인 장중한 노래는 위드의 음정과 박자도 안 맞는 고함에 묻힐 수 밖에 없었다.

단순하지만 따라 부르기도 쉬운 후크송!

+ 음악을 들음으로 인해 공포와 환각 상태의 효과가 58% 감소합니다.

마레이는 절망하면서도, 바드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연주라도 계속했다.

위드가 마구 부르는 노래를 절묘하게 따라가면서 부각시켜 주었다.

'언데쯤 끝낼 거지? 어떤 식으로 마무리를 지을 거지?'

사전 협의가 전혀 없었기에 마레이는 초조하게 노래에 따라서 연주를 했다.

하지만 위드의 노래는 제대로 끝맺음도 없이 갑자기 끝났다.

"돌격!"

위드의 명령이 떨어지자 성기사들은 계획했던 대로 바르칸을 목표로 달려들었다.

지상에서는 벤들러 기사를 비롯하여 불사의 군단의 언데드가 계속 지하 계단으로 내려오려는 시도를 했다.

바르칸을 사냥하지 못하든, 시간을 끌어 불사의 군단이 내려오든, 전멸할 수밖에 없었다.

바르칸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버러지들. 헛된 생명을 일찍 끊기 위해서 찾아왔다니 잘했다. 너희의 쓸모없는 머리는 없어도 되니 육체만 언데드로 만들어서 영원히 복종시키리라."

+ 네크로맨서의 선언이 시전되었습니다.

성기사들은 돌격하였지만 각각 다른 방향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달려가고 있다고 여겼지만 실상은 바르칸의 환영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프로스트 웨이브!"

바르칸이 손가락은 튀기자 냉기의 파도도 밀려들었다.

환한 신성력에 휩싸여 있는 성기사들이었지만, 결빙의 효과로 인하여 속도가 느려지며 몸이 굳어 갔다.

"인갈들을 없애라."

땅속에서 둠 나이트가 50기나 한꺼번에 일어났다.

바르칸을 지키는 직속 호위병이었다.

"언데드들이 이곳에도 있어."

"어서 해치워야 해. 바르칸이 다른 마법을 계속 쓸 시간을 주면 안 돼!"

성기사들은 더 다가가기 위해 먼저 둠 나이트들과 전투를 치러야 했다.

이렇게 전투가 벌어지다 보면 시체가 나오는 즉시 전투의 균형은 바르칸 쪽으로 유리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성기사들은 놀라지 않았다.

'위드가 이런 식의 전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

성기사들이 돌격한다면, 바르칸은 일단 그들에게 공격을 집중시킬 거라고 했다.

리치의 육체적인 능력도 나쁘지는 않지만, 성기사들이 근접 거리까지 달라붙는다면 마법사로서는 굉장히 곤혹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네크로맨서들이 선호하는 방식대로 여러 치명적인 저주를 사용하며, 성기사들을 제물로 언데드를 일으키려고 할 것이다.

성기사들은 미끼 역활이었다.

남다른 방어 능력과 신체 보호력으로 인하여, 바르칸의 마법 공격에도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하다.

수비적으로만 싸운다면 둠 나이트의 공격도 아주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다.

진짜 공격은 사제들이 준비했다.

"턴 언데드!"

사제들이 일제히 언데드 정화 마법을 펼쳐다.

바르칸의 여러 환영들이 사라지고, 흑색 오라가 출렁거릴 정도로 거대한 충격이 발생했다.

"크에에엑!"

전설적인 몬스터 바르칸이라고 해도 상극이나 다름없는 공격에 피해를 입지 않을 수는 없었다.

바르칸의 육체와 주변이 신성력으로 환하게 빛났다.

로뮤나는 급히 마법을 사용했다.

"움트고 있는 생명력, 그 전부를 보여 다오. 뷰 라이프 포스!"

띠링 !

------------------------------------------------------+
* 리치 바르칸 데모프

+ 어둠의 주술사이며,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흑마법사.
+ 언데드를 일으켜 대륙을 장악하려고 한다.
+ 리치의 육신을 가지고 있으며, 가슴에 박힌 성검으로 인하여 육체적인 활동과 마법력에 제약을 받고 있다.
+ 전설적인 몬스터로, 모든 왕국과 교단의 공적

생명력 : 87%
마 나 : 99&
+------------------------------------------------------



6. 3마리의 본 드래곤


사제들의 공격이 성공했음에도 바르칸의 생명력은 죽음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다.

시체와 살아 있는 생명만 있다면 군대를 만들고 무한에 가깝게 생존하는 것이 리치다.

"깨어나라, 나의 부하여……!"

바르칸이 외치자, 땅에서 높이가 5미터 정도 되는 스톤 골렘이 일어났다.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의 키에 무식해 보이는 두께의 팔 다리!

고위 네크로맨서들은 골렘 종류의 가디언을 하나씩 데리고 다니는데, 바르칸의 경우에는 스톤 골렘이었다.

쿠르르르릉!

스톤 골렘이 팔을 휘두르자 성기사들이 나가떨어졌다.

골렘이 뛰어다닐 때마다 땅이 울리고, 천장에서 돌가루들이 떨어졌다.

철벽과도 같은 방어력과 체력, 공격력을 가졌다.

마법으로 만든 가디언이기 때문에 신성 마법에는 피해를 입지 않는다.

"조심해라. 이놈도 확실하진 않지만 레벨이 400대 중후반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바르칸에게 가려면 골렘의 방어부터 뚫어야 될 것 같은데."

"골렘부터 해치우자."

바르칸 1명만 상대로 하니 단순할 줄 알았던 전투가 금방 난장판이 됐다.

보통 마법사들을 작은 공격을 한두 번만 당하더라도 마법이 취소되어 버리고 마나에 요동이 생긴다.

그런데 바르칸은 사제들의 빛의 구와 턴 언데드 마법을 계속 맞으면서도 건재했다.

리치의 높은 마법력 덕분에 외우고 있는 마법이 취소되지도 않았다.

"쫓아가는 화살!"

페일과 메이런은 화살에 마나를 가득 모아 바르칸을 향해 쐈다.

바르칸도 어쩔 수 없는 마법사라서 주문을 외울 때에는 격렬한 회피 움직임을 하진 않기 때문에 백발백중이었다.

그런데 자잘한 공격은 맞아 주더라도 상관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리치의 특성상 위험하면 살아 있는 생명을 취해서 생명력과 마나를 늘릴 수 있기에 절박한 시기도 아니었다.

"대기의 침묵."

바르칸의 저주 범위에 들어 있는 200명이 넘는 성기사들에게 검푸른 기운들이 둘러 씌워졌다.

숨 쉬는 것을 방해하는 강력한 저주 마법!

"뼈 파괴."

두두두둑!

이번에는 30명 가량의 성기사들의 몸에 있는 뼈들이 부서졌다.

갑옷을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저항력이 낮으면 저주 마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파이어 히드라 소환."

바르칸은 파이어 히드라도 소환했다.

땅에서 머리부터 솟아난 파이어 히드라가 저마다 입에서 불을 내뿜었다.

연속으로 세 가지의 마법을 시전한 바르칸.

아주 잠깐의 휴식 뒤에 바르칸은 성기사들에게 공격 마법도 사용했다.

"프로스트 링!"

냉기의 고리가 만들어져서 성기사들을 덮쳤다.

사제들의 회복 마법은 바르칸과 성기사들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연속적인 마법에도 대량 학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래 성기사들의 마법 방어력, 저항력은 워리어를 능가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위드는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바르칸의 저주 마법, 네크로맨서 마법은 최고 수준으로 봐도 무방하겠군. 불러오는 언데드들이 살 떨리게 강한 걸 보니 시체만 있으면 본 드래곤도 마구 만들어 낼 수준이야. 소환 마법도 제법 사용할 줄 알고. 그래도 공격 마법은 다소 약해.'

어디까지나 바르칸의 다른 마법의 수준에 비하여 약하다는 것이었다.

레벨이 400대를 넘는 대마법사보다 공격 마법을 더 빨리 사용한다.

전투에서는 마법의 위력만이 아니라 주문을 외울때의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성기사들은 바르칸을 본 것만으로도 심하게 위축되었다.

소환된 둠 나이트, 스톤 골렘은 오히려 더욱 날뛰고 있었다.

바르칸은 전격계와 빙계 마법을 번갈아서 썼고, 성기사들중에서도 희생되는 이들이 생겨났다.

로뮤나가 확인해 본 바로는 사제들의 턴 언데드 공격이 계속 이어지면서 바르칸의 생명력도 73%로 떨어졌다고는 하나, 희망적인 소식은 아니었다.

시체들이 벌써 19구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바르칸의 언데드 소환 마법에 의하여 만들어질 고위 언데드를 감안한다면 이번 사냥은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현재 제대로 집계되고 있지는 않지만 방송국으로 중계되는 화면을 통해서 1억 명 이상이 시청하고 있다고 추정되었다.

위드와 함께하는 동료들, 유저들만이 아니라 시청자들도 다양한 바람을 갖고 지켜보았다.

'실패해라.'

'망해라.'

'콱 죽어 버려라.'

'위드도 이제 끝물이구나.'

명문 길드에 속한 유저들, 레벨이 높은 랭커들은 합심해서 실패를 바랐다.


인간들에게는 아직 움직이지 병력, 검치들이 있었다.

전투가 벌써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르칸의 대응을 보아야 했기에 성기사들이 먼저 덤벼들도록 내버려 둔 채 몸이 근질근질한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우와악!"

"웃차!"

검치들은 몸에 잔뜩 힘을 주어서 기합을 질렀다.

맷집과 정신력, 용기를 바탕으로 하여, 바르칸을 보았을 때의 공포 효과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이제 검치들은 평소처럼 제약 없이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바르칸을 상대로 할 때에는 그것만으로 큰 장점이었다.

"가자!"

"이놈들을 쓸어버리자."

검치들이 튀어나가서 골렘과 둠 나이트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바르칸이 직접 만든 언데드는 수준이 달랐다.

데스 오라에 의하여 강화되어 있는 둠 나이트들은 거의 준보스급 위력을 보였지만, 검치들이 실력을 발휘하면서 얼추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사제들의 축복까지 받고 있었기에 검치들은 평소보다도 훨씬 거칠고 무식하게 싸웠다.

"철저하게 부숴 버려!"

"전투 불능으로 만든 다음에는 사제들이 신성력으로 완전히 정화시킬 때까지 방심하지 마라."

바르칸은 성기사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 틈을 이용하여 검치들은 둠 나이트를 파괴하고 정화했다.

모두가 이처럼 열심히 싸우고 있을 때에 문득,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소리!

벨로트는 전장에서 악기를 연주했다.

사제들의 신앙심을 북돋아 주고, 성기사들에게 힘을 주는 성가를 불렀다.

로뮤나는 간간이 마법을 날리고, 수르카는 검치들과 함께 둠 나이트와 싸웠다.

제피와 화령은 다른 유저들과 함께 언데드들이 내려오는 지하 계단을 담당했다.

제피의 넓은 범위 공격과 화령의 몬스터를 재울 수 있는 스킬 때문에 바르칸 사냥에는 끼지 않았다.

"미개한 인간들이여, 어리석은 저항이구나. 이 땅은 내 암흑의 율법이 지배한다. 영원한 불사의 힘이 장악하리라. 다크 룰!"

바르칸의 3대 마법, 주변의 시체를 모두 언데드로 소환하는 마법이 시전되었다.

바르칸 데모프는 고위 네크로맨서이며 마법사로서 특별하게 세 가지의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

다크 룰, 데스 오라, 절대 마법 방어!

절대 마법 방어는 그에게 위협이 되는 모든 마법 공격을 원천부터 차단해 버리는 것이었다.

대마법사의 수준이 아니라면 바르칸의 뼈끝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당연히 로뮤나의 실력은 그보다 훨씬 떨어졌지만, 일단 언데드에게 마법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됐다.

다크 룰에 의해 지하 공간, 그리고 바르고 성채 전체가 검붉게 물들었다.

성기사와 검치들의 시체를 바탕으로 언데드를 만들면 바르칸의 전력을 더욱 늘어나게 된다.

데스 오라에 의하여 언데드가 싸우면서 얻는 생명력과 마나를 저절로 흡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다렸던 네크로맨서들이 더 빨리 움직였다.

어차피 언데드를 데려와 봤자 바르칸에게 복종할 것이 뻔하니 맨손으로 그냥 오긴 했지만, 놀고먹으려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일어나라. 눈 감지 못한, 잠들지 않은 원혼들이여. 여기 살아 있는, 그리고 너희를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라! 데드 라이즈."

성기사들의 시체가 최하급 스켈레톤이 되어서 일어났다.

"키리릭?"

"인간들… 바르칸 님을 공격하고 있다."

해골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곧바로 바르칸을 위하여 싸움을 시작했다.

"뭐야, 이 거치적거리는 건."

하지만 검사백팔십칠치가 밀치고 지나가니 그대로 허무하게 부숴지는 몸!

바르칸의 다크 룰이 아니라 네크로맨서들이 일으켜 허약하지 그지없는 최하급 언데드는 사제들의 정화 마법을 통하여 금세 소멸되었다.

바르칸의 최대 장기인 언데드 소환을 막는 데 네크로맨서들의 혁혁한 공로를 세운 것이다.

마판도 이곳까지 억지로 끌고 온 마차에서 흰 천을 벗겨냈다.

강림하는 일곱 천사상.

데이크람이 만든 대작 조각품을 예술 회관에서 가져왔다.

조각품 주인, 집주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권력 남용!

신성력의 효과 증가, 마나 회복 속도를 늘려 주는 조각품을 배달해 와서 전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물론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미스릴로 만든 강림하는 일곱 천사상은 바르칸의 것이니 위드로서도 엄청난 패를 던진 셈이었다.

#

"이쪽으로 가야 됩니다."

위드는 상위 서열의 검치들 150명, 사제들 30명과 함께 지하를 다시 뚫고 나와 바르고 성채의 내성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그들을 추격해 오던 언데드들도, 지하의 바르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급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따라오지 않았다.

'리치의 생명력이 봉인되어 있는 라이프 베슬을 없애야 한다.'

바르칸은 신성력으로도 없애기 어려운 전설적인 몬스터다.

가슴에 성검이 꽂혀 있기 때문에 마력이 심하게 제약되고 있지만, 실제 그의 레벨은 추측하기조차 어렵다.

성검이 박혀서도 죽지 않는 바르칸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라이프 베슬부터 파괴해야 확실하다.

생명력이 줄어든 바르칸이 자신의 라이프 베슬 부근으로 역소환이 된다면, 불사의 군단을 다시 지휘하여 바르고 성채로 들어온 유저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다.

'아마 그곳에 있을 거야.'

위드는 둠 나이트로 내성을 구경할 때 라이프 베슬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며 지나쳤던 지역이 있다.

"시간이 없으니 달립니다."

"알았다. 빨리 가자!"

위드와 검치들은 복도를 빠르게 뛰었다.

바르칸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갈 것이기 때문에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사제들은 이렇게 육체적으로 고생을 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지혜나 신앙심에만 몰아서 스텟을 올려 왔기 때문에 오래 걷기만 해도 쉽게 피곤해지는데, 위드와 검치들의 속도에 맞추려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업히세요."

검치들이 바닥에 앉아 건장한 등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래도 실례가 되어서……."

"남자 등이 넓은 이유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죠. 여태껏 살면서 쓸 일이 없었는데, 괜찮습니다!"

씩씩하게 말하는 검치들에게 사제들은 조심스럽게 업혔다.

검치들을 위하여 일부러 여자 사제들만 데려온 위드!

"언데드다!"

복도 중간마다 지키는 몬스터들이 등장했디만, 위드와 검치들의 활약으로 무난히 돌파했다.

"자, 이쪽을 봐라. 헤라임 검술!"

조각사의 횃불을 들이밀면 언데드들은 신성력에 노출되어 해골을 감싸 쥐면서 괴로워했다.

그 틈에 과감한 검술로 베고 올라갔다.

내성의 상층부로 향하면서도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위드가 확인해 본 결과, 외성 밖에서도 온통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화염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스켈레톤들이 성벽 위를 뛰어다니고, 유령이 공중에서 날아다녔다.

"바르칸 님의 영광을 위하여!"

"엘프들을 물리쳐라. 우리의 동료가 되기 위하여 찾아온 엘프를 맞이해라."

"지하로 내려가서 바르칸 님을 돕자."

통로에서는 언데드들이 무리 지어서 뛰어서 이동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위드는 빈방이나 복도 뒤에 숨어서 검치들, 사제들과 함께 언데드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였다.

"사형들, 다시 가죠."

위드가 목적지로 한 장소는 내성의 3층.

벤들러 기사 스물이 지키고 있던 철문으로, 아마도 그 뒤에 바르칸의 라이프 베슬이 있을 것으로 추측됐다.

'그곳이 아마 맞을 거야.'

리치들은 라이프 베슬을 철저히 숨겨 놓는다.

위드도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엄중한 경비를 감안하면 가능성이 높았다.

"침입자다."

"바르칸 님에게 거역하는 인간들이다."

철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벤들러 기사들과 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사제들이 축복과 회복 마법을 걸어 주고 검치들이 다른 이들을 상대하는 사이에, 위드는 벤들러 기사 1명과 맞섰다.

"기사 엘리엇이다."

"위드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본능적으로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아부를 하는 위드.

상위 등급의 언데드에게 아첨을 하며 지냈던 습관이 몸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온 이상 죽어야 한다. 파헤드 검술."

벤들러 기사가 앞으로 나왔다.

그동안 언데드로 활동하면서 벤들러 기사와 싸워 보고 싶긴 했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가 범상치 않았고, 현재 위드의 레벨이라면 벤들러 기사 정도는 잡아 주어야 경험치가 팍팍 오르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스킬을 익힌 위드는, 인간형의 몬스터는 대충 눈으로 보기만 해도 장비의 성능이나 가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벤들러 기사는 중갑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방어력에서는 월등하지만 유연함에서는 다소 불리했다.

"바르칸 님의 땅에서 물러나라!"

벤들러 기사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흑색의 기운이 넘실거리면서 반경 5미터씩을 휩쓸었다.

스치기만 했는데도 그 여파로 위드의 생명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달빛 조각 검술!"

위드도 오묘한 색채의 빛의 검을 휘두르며 벤들러 기사를 공격했다.

근접전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직접 타격을 하기가 어려워서 달빛 조각 검술을 쓴 것이다.

"와, 대단하다!"

"진짜 예뻐!"

급박한 와중에도 사제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위드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봤던 어떤 스킬보다도 아름다운 달빛 조각 검술!

검사들이 특성에 따라서 내뿜는 희고 검거나 붉은 단순한 빛깔의 검기에 비하여 오묘하고 화려했다.

데미지 자체는 효과에 비해서는 약한 편이었다.

적의 방어력을 무시한다는 강점이 있지만, 큰힘으로 밀어치거나 범위가 아주 넓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조각 검술보다 마나 소모가 3배나 심했다.

헤라임 검술을 익힌 이후로는 아주 가끔씩,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만 사용했지만 지금은 마구 써도 된다.

마나를 지원해주는, 헬리움으로 조각한 횃불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첫 월급을 받은 직장인이 친구들과 초등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을 간 것처럼 든든한 기분!

"자, 골고루 실컷 맞자."

위드는 벤들러 기사를 확실하게 두들겨 팼다.

불사의 군단에서 둠 나이트보다 훨씬 고위의 언데드인 벤들러 기사!

양쪽 모두 방어를 도외시하고 오직 서로를 두들겨 패기만하는 난타전이 벌어졌다.

위드도 피해를 입었지만, 사제들이 치료를 해 주었을뿐더러 인내력과 맷집 그리고 장비들로 인해 방어력이 훨씬 높았다.

사제들이 있으니 여러모로 신경 쓸 필요 없이 빨리 사냥하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 엘리엇의 부츠를 획득하셨습니다.
+ 엘리엇의 망토를 획득하셨습니다.
+ 81골드 34실버 58쿠퍼를 주웠습니다.

유니크 아이템도 획득!

위드가 벤들러 기사를 처리했을 때에는, 검치들도 전투를 마쳤다.

더 많은 수로 합공을 했던 검치들은 온갖 부상으로 망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커헉… 정말 힘든 전투였군."

"그래도 다들 잘 싸웠어."

여사제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우며 치료의 손길을 한 번이라도 더 느껴 보기 위하여 일부러 부상까지 당했던 것이다.

"이제 이 문을 열면……."

검치들과 사제들이 완전히 회복하기 전이었지만, 위드는 철문으로 곧장 다가갔다.

바르고 성채에는 언데드들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휴식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검십오치가 벤들러 기사를 처리하고 얻은 전리품 중에 있던 열쇠를 자물통에 넣고 돌렸다.

덜컹!

잠금장치가 풀렸다.

'드디어 바르칸을 완전히 죽일 수 있다. 전설의 몬스터, 리치 바르칸 데모프의 최후가 왔다.'

위드는 양손으로 철문을 힘껏 열었다.

그리고 감동하고 말았다.

"오오, 이렇게 훌륭한 장소가!"

바르칸의 라이프 베슬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거라면 짐작과는 달리, 방 안 가득 오래된 검과 갑옷 그리고 금은보화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위드가 검치들과 들어온 장소는 바르고 성채의 보물 창고였던 것이다.

#


"이게 다 얼마야."

위드의 입가가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항아리와 궤짝에 담겨 있는 금화만도 수십만 골드는 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치로 친다면 검과 갑옷들이 훨씬 더 엄청나리라.

"바르칸의 마법 물품도 있군."

바르칸이 직접 제작한 마법 물품들도, 그 성능과 희소성 때문에 팔면 엄청난 자금이 될 것이다.

특정한 속성의 마법을 증폭해 주는 지팡이.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해 주는 부츠도 있었다.

"대박이구나!"

실컷 기뻐하던 위드에게 든 불행한 생각 첫 번째!

'나만 왔어야 되는데…….'

검치들과 사제들, 노래를 만들기 위해 따라온 마레이 때문에 몫을 나누어야 했다.

퀘스트를 주도했던 게 위드라서 발견된 보물의 3할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가지지만, 나머지는 사람 숫자에 따라서 나누는 게 관례였다.

콩 한쪽도 나눠 먹으면 아까운 이 세상에 어떻게 금은보화와 아이템들을 나눠 가지란 말인가!

두 번째로 든 생각은, 보물의 분배는 심각한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퉤서 승리를 해야 금은보화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위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르칸의 라이프 베슬이 여기에 없다.'

내성의 중심인 데다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이곳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위드는 급하게 마판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바르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조금도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대답이 돌아왔다.

> 바르칸이 계속 언데드를 소환하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 생명력은요?

> 사제들의 마나가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성기사들과 검치님들의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해서 여전히 건재합니다.

라이프 베슬을 파괴하지 않는 한 바르칸도 못 없애고, 전투도 패배하고 만다.

바르고 성채에 들어온 인간들 모두가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라이프 베슬을 찾아야 돼. 바르고 성채에는 분명히 있다. 다른 장소는 아닐 거야. 언데드의 경계가 가장 철저하고 안전한 장소는 여기였는데."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빠르게 회전하는 위드의 두뇌!

바르칸이 있던 방에는 딱히 숨길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력을 지하의 와인병에 담아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르칸이 벤들러 기사들을 호위병으로 세워 놓았던 이곳보다도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라이프 베슬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외성과 내성보다도, 몇 배는 더 안전한 장소가 있었다.

3마리의 본 드래곤이 날아다니는, 바르고 성채의 중앙 탑 꼮대기!

바르고 성채의 내성까지 들어와서 언데드를 뚫고 다니느라 모두 지쳐 있다.

하지만 이제 본 드래곤과도 전투를 벌여야 할 판이었다.

#

엘프, 바바리안, 드워프 연합군은 바르고 성채의 외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계속 싸웠다.

종족의 전사들이 모두 왔더라면 외성은 점령할 수 있었겠지만, 주력은 페어리의 여왕을 지키기 위해 출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종족 연합군 쪽에 있어서 언데드들의 전력이 분산되고 있다는 점은 약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차피 내성에서는, 좁은 복도로 인하여 싸울 수 있는 숫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 죽여라."

"영광을!"

인근 야산의 흙더미에서 일어난 언데드들이 물밀듯이 외성으로 향했다.

"언데드들을 몰아내고 이 땅에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 용기를 내요!"

엘프와 드워프, 바바리안도 용맹하게 싸웠다.

외성에서 벌어지는 여러 소란 속에서 위드는 심한 오한을 느꼈다.

'3마리의 본 드래곤이라니…….'

일반 본 드래곤도 무섭지만, 바르칸이 직접 만든 명품 본 드래곤이었다.

"어쩔 수가 없군."

궁지에 몰리고, 밟힐 때마다 타오르는 불굴의 의지!

"사형들, 바르칸을 죽이기 위해서는 중앙 탑에 있는 본 드래곤과 싸워야 되는데 어떻게 할까요."

검치들에게도 좋은 생각이 있을지 모르니 의견은 물어보았다.

"때려잡아야지."

"좋은 칼 놔두고 뭐하러 말해?"

순식간에 의견 일치!

사실 정작 본 드래곤을 잡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왠지 허전하게 느껴지기는 위드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입니다."

중앙 탑으로 이동하는데, 복도에서 언데드들이 계속 충원되었다.

모여드는 언데드를 계속 처리하면서 중앙 탑으로 가려다가는 시간도 너무 많이 지체될뿐더러, 그 전에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지름길을 택하는 수밖에.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조금 뒤에 따라 나오세요."

위드는 창문을 깨고 내성의 바깥벽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바깥에는 가고일이 날아다녔다.

"인간이다."

"죽여!"

성벽이나 망루에서 경계를 서던 스켈레톤 궁수들이 위드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위드는 돌출된 부위들을 잡고 벽을 타고 이동했다.

"네발 뛰기!"

샤샤샤샤샥.

빗발치는 화살들 사이로 거미처럼 움직이다가 뛰어올라서 성벽의 부서진 부분이나 돌출물을 잡고 매달렸다.

"인간부터 쏴라."

"저놈이 가장 나쁜 놈 같다. 바르칸 님을 위해 저놈부터 없애야 한다."

스켈레톤 궁수들의 공격이 위드에게로 집중되었다.

케애애애액!

가고일들도 와서 위드를 부리로 쪼았다.

"달빛 조각 검술!"

성의 벽면에 매달려 있는 불리한 상황에서 불편한 왼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치들과 마레이, 사제들이 안전하게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도록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

"저기 버티는 인간을 완전히 죽여라."

"우리 언데드의 위대함을 보여 주자."

지상에서 스켈레톤 메이지들도 손에 마법을 모아 쏘았다.

위드에게 공격에 적중되었다는 메시지 창이 계속 떠올랐다.

+ 현재 남아 있는 생명력 36,789.

'이러다가는 죽겠다.'

위드는 우선 바르고 성채의 지붕으로 벽을 타고 올라갔다.

내성의 지붕은 비스듬히 경사가 져 있었다.

커다란 여러개의 탑들이 지붕보다도 더 높이 우뚝 솟은 게 보였다.

위드를 따라 가고일과 박쥐 떼도 올라오며 공격을 했고, 화살과 마법 공격도 잇따랐다.

생명력이 15%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검치들과 사제들이 다른 방향에서 올라올 때까지 확실히 시간을 끌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된 바에야 어쩔 수 없지."

위드는 조각품을 꺼냈다.

걸작 조각품, 청동으로 만든 '잡템을 안고 있는 상인상' .

"다시 쓰고 싶진 않았지만… 본 드래곤과 싸워야 되는 처지에 이것저것 가릴 수야 없지.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들이 민첩이 되어라."

조각상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부쉈다.

그 순간.

위드의 몸에 빛이 어렸다.

------------------------------------------------------+
* 조각 파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 걸작 조각상이 파괴된 고통! 슬픔!
+ 예술 스탯이 5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명성이 100 줄어듭니다.
+ 예술 스탯이 1대 4의 비율로 하루 동안 민첩으로 전환됩니다.
+ 예술 스탯이 너무 높고 원래 가지고 있던 민첩 스탯이 낮기 때문에, 한꺼번에 전환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 민첩 850이 고급 스킬 8레벨의 '바람의 질주' 로 바뀝니다. 마나를 사용하여 바람을 타고 달릴 수 있습니다.
+ 민첩 650이 고급 스킬 8레벨의 '회피술' 로 바뀝니다. 적의 공격을 정확하게 맞지 않게 해 줍니다. 가죽 갑옷의 성능을 더 이끌어 냅니다.
+ 민첩 410이 고급 스킬 4레벨의 '행운의 도움' 으로 바뀝니다. 우연한 행운이 자주 벌어져서 최대 3배의 속성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 민첩 520이 고급 스킬 6레벨의 '정확한 공격' 으로 바뀝니다. 치명적인 일격의 확률을 높여 주며 공격력을 증가시킵니다.
+------------------------------------------------------

+ 조각술의 숙련도가 증가했습니다.

위드는 몸이 정말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100미터 달리기를 해도 좋을 정도군."

로열 로드에서는 스탯이 늘어남에 따라서 신체적 변화도 생긴다.

초보 때에는 100미터를 질주하더라도 30초 가까이 걸린다.

갑옷이라도 입고 있으면 1분이 지날 수도 있다.

그러다가 힘과 민첩을 키우면서 점차 빨라져서 나중에는 현실에서는 육상 선수들이나 낼 수 있는 10초대가 가능하고, 레벨이 높아지면 그보다 빠르게 뛸 수도 있다.

지구력에 대한 부분도 달라져서, 체력만 받쳐 주면 마라톤을 해도 거뜬했다.

+ 화살이 스쳐 지나갑니다.
+ 생명력이 130 감소합니다.

날아온 스켈레톤의 화살이 위드를 제대로 맞히지 못하고 다시 추락했다.

별도로 움직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회피하게 되는, 민첩의 효과였다.

"그럼 어디 반격을 해 볼까?"

위드는 품에서 하이 엘프 예리카의 활을 꺼냈다.

화살값이 아깝지만, 지금은 써야 할 때!

나무와 강철이 있으면 대장장이 스킬로 화살을 만들 수 있어서, 삼백 발 이상 미리 만들어 놓은 것들이었다.

위드는 탑과 지붕 위를 달렸다.

박쥐 떼와 가고일 떼가 쫓아오지도 못하게 빨랐다.

그러면서 화살을 시위에 끼워 스켈레톤들을 향해 쏘았다.

엉뚱한 곳으로 쏜 것처럼 빗나갈 듯 보이다가 방향을 바꾸어서 정확하게 적중하는 화살들!

+ 물의 정령들이 추가적인 데미지를 입힙니다.

물의 소용돌이가 일어나서 스켈레톤들을 휩쓸었다.

"맞혀라!"

"저 인간부터 죽여."

위드는 지붕을 뛰어다니며 가까이 접근하는 가고일들을 베고, 시위에 화살을 끼워서 스켈레톤 궁수들을 향해 쐈다.

스켈레톤 궁수들의 화살이 그에게로 집중되고, 성벽과 탑에 앉아 있던 가고일들이 전투를 위해서 일제히 날아올랐다.

거침없는 속도로 빚어 나오는 짜릿한 쾌감!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바르고 성채를 마음껏 뛰어다니는 위드였다.

위드가 손을 휙 내밀자 스켈레톤 궁수들이 쏘아 낸 화살이 거짓말처럼 붙잡혔다.

+ 강철 화살을 획득하셨습니다.

바로 화살을 쏘아서 돌려주었다.

#

페일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바르칸을 보았다.

"진짜 몬스터가, 해도 너무하는구나!"

네크로맨서들이 있었지만 생겨나는 시체를 모두 바르칸보다 먼저 언데드로 소환하지는 못했다.

바르칸에 의하여 소환된 언데드는 최소 둠 나이트급이었다.

엘리트 둠 나이트.

친위대장 둠 나이트.

학살꾼 둠 나이트.

역병을 몰고 다니는 둠 나이트.

전부 이름을 가진 네임드 몬스터급이었다.

벤들러 기사까지 5명이나 소환되면서, 갖가지 저주에 시달리는 성기사와 검치들은 바르칸을 직접 공격하기는커녕 그의 친위 부대와 계속 싸움을 벌여야 했다.

바르칸은 사제들의 턴 언데드 마법도 버텨 내고 있었다.

데스 오라에 의하여, 언데드를 통해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하며 생존했다.

성기사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데드가 계속 많아지는 것 같아."

"바르칸은 죽으려면 아직 멀었어?"

"도대체 죽일 수나 있을까? 오히려 우리가 전멸하게 생겼는데!"

로뮤나가 감동에 빠질 정도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네크로맨서로 전직을 할까? 고생하더라도 리치까지만 되면……."

성검에 의해 힘이 제약받고 있는 상태에서도 작게는 성, 크게는 왕국도 도모할 수 있다는 리치의 위력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

이 시간 방송국들은 행복한 고민에 휩싸였다.

바르칸이 있는 지하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언데드와 성기사, 사제들이 겨루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검치들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지만 바르칸의 네크로맨서 마법은 너무나도 두려울 정도라서, 희생자가 발생하면 언데드의 세력이 야금야금 늘어나고 있다.

지하로 들어오는 불사의 군단도 막아야 했기에 전력이 분산된 것도 문제였다.

다른 한쪽으로는 위드가 바르고 성채의 지붕을 뛰어다니면서 싸우고 있다.

지붕에서 쭉 미끄러지면서 화살을 쏘고, 겁 없이 도약하여 날아드는 가고일들을 화려한 달빛 조각 검술로 베었다.

바르고 성채를 배경으로 보여 주는, 가슴 뛰는 전투 영상.

명예의 전당에 오르더라도 단숨에 1위를 맡아 놓을 정도였다.

최고의 장면들을 보여 주고 있기에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들었다.

"이거 어느 쪽을 방송에 내보내야 되는 거야!"

전체적인 국면을 보면 바르칸의 전투가 아무래도 중요하다고 여겨져서 그쪽을 위주로 틀었지만, 위드에 대한 부분이 궁금하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에 장면을 바꿔야 됐다.

+ 바라칸과의 싸움은 어떻게 됐어요?

+ 위드가 지붕에서 움직이는 것 좀 보여 주세요.

+ 저렇게 몬스터로 가득한 장소에서, 어쩜 저렇게 자유롭게 확트인 곳인 것처럼 싸우죠? 위드라서 그런 걸까요? 만날 던전이 지겨운데, 저도 고레벨이 되면 위드처럼 싸울 수 있을까요? 그래도 바르고 성채 같은 곳에서 몽땅 몰려드는 몬스터와 싸우는 건 자살행위인데.

+ 바르칸을 잡아야 전투가 결국 승리를 하는 건데… 바르칸을 보여 주셔야죠.

+ 뭐 하세요, 한창 집중해서 보고 있었는데! 위드 다시 틀어 주세요!

시청자들의 열화같은 요청에 방송국은 이러든 저러든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7. 폭풍의 부름


위드는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5미터, 10미터씩 미끄러지며 화살을 쐈다.

"이래서 궁수들이 인기가 높겠군."

위드는 화살을 쏘면서 중얼거렸다.

백발백중!

쏘는 족족 거짓말처럼 적중할 뿐만 아니라, 하이 엘프의 활이기 때문에 정령의 추가 데미지까지 들어간다.

푸슈슈슈슈슈슉!

잇따라 발사되는 화살이 스켈레톤들이 서 있는 성벽 위에 차례대로 박혔다.

불의 정령에 의해 화염 폭발이 일어나고, 물의 정령으로 헤일이 나타난다.

땅의 정령으로 흙더미가 주변을 파묻었으며, 바람의 정령에 의해서 스켈레톤들이 멀리 날아가서 지상으로 추락했다.

일렬로 초토화!

궁수와 레인저를 선택해서 하는 유저들이 어떤 재미를 느끼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정작 텔레비전 등을 통해서 보는 궁수와 레인저 유저들은 입을 쩌억 벌리고 황당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그래도 궁수는 나한테 맞지 않는 직업이야."

멀찍이에서 화살을 쏘아 몬스터를 맞히는 쾌감은 컸다.

어떤 언데드들은 자신이 왜 소멸되는지도 알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스켈레톤들을 쏘다 보니 화살만 소모되어 나가고 전리품은 줍지도 못했다.

손을 뻗어도 가질수 없는 아이템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안정적인 장소에서 파티나 독립 사냥을 할 때라면 몰라도, 이런 전장에서 할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검을 써야지."

가까운 몬스터들을 죽여야 아이템을 확실히 얻는다.

수금의 중요성을 위드는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사이에 검치들도 지붕으로 모두 올라오고, 사제들과 마레이까지 올라섰다.

바르고 성채의 탑과 성벽 위에 있는 스켈레톤들은 그들을 향해 화살을 쐈다.

고립된 섬처럼 느껴질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이 모두 몬스터!

"자, 시작해 보자."

검삼치가 검을 휘둘러서 가까이 있는 가고일을 베었다.

어느덧 새카맣게 주변을 덮고 있는 가고일 떼에게, 드디어 반격이 시작되었다.

"몽땅 다 죽여라."

"이놈들부터 처리하고 본 드래곤에게 가자!"

검치들은 무모한 사고들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일으켰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목표는 강해지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들이 숭상하는 강함은 스스로의 한계를 깨뜨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일단 패면 다 죽어!"

"다 없애 버려!"

검치들은 뛰어다니면서 가고일을 검으로 베었다.

바르고 성채의 지붕에서 엄청난 소란이 벌어지다 보니 공중에 있던 본 드래곤들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인간들이 있다."

탑보다도 훨씬 거대한 크기의 본 드래곤 1마리가 뼈밖에 없는 날개를 펄럭이며 접근했다.

드래곤의 머리 부분에서 새까만 괭차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하지만 극복해 냅니다.
+ 민첩이 4% 저하됩니다.
+ 지혜가 25% 줄어듭니다.

본 드래곤도 공포를 전염시키는 효과를 가지긴 했지만, 바르칸에 비하면 그 위력이 절반도 되지 않아 버틸 만했다.

곧 본 드래곤이 주둥이를 크게 벌리면서 숨을 들이마셨다.

영락없이 브레스를 사용하기 위한 자세!

거리가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피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위드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나에게부터 덤벼라!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바르칸을 죽이는 것이다. 나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

검치들조차도 깜짝 놀란 만한 사내의 호기!

위드가 죽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에 의해서 언데드로 되살아나 버리면 바르칸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게 된다.

본 드래곤의 편에 서서 강제적으로 검치들과 싸워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난감한 일이 없는데도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안 그래도 네가 제일 나쁜 인간일 줄은 알고 있었다."

위드는 검치들과 떨어져서 지붕에서 힘껏 앞으로 달렸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무섭게 뒤로 지나가는 풍경들!

"도망쳐 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본 드래곤은 확실히 위드를 목표로 정하고 주둥이를 크게 벌렸다.

그리고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산성 브레스를 내뿜었다.

푸화아아악!

하늘에서 밀려오는 산성 브레스.

위드가 지붕을 대단히 빠른 속도로 발리긴 했지만, 브레스를 피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바람의 질주."

+ 스킬 바람의 질주를 사용하셨습니다.
+ 체력과 마나의 소모가 3배 빨라집니다.

위드의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가듯이 더 가속됐다.

최고 속력을 내는 말이라도 단숨에 지나칠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텔레포트 마법이라도 시전한 것처럼 싹 사라졌다.

본 드래곤이 나타날 때부터 봐 두었던 지붕의 구멍을 이용해 아래층으로 뚝 떨어진 것이다.

산성 브레스는 위드가 지나간 자리를 휩쓸어 버리면서 바르고 성채 외벽까지도 함께 녹였다.

건물의 일부가 녹아내리고 무너지면서 오래된 양탄자와 가구, 벽화들이 보일 정도로 형태가 바뀌었다.

"킬킬. 여기 시원한 바람이 부네."

머리를 들이밀고 기뻐하는 어린 스켈레톤!

위드가 다시 지붕으로 올라왔을 때에는 본 드래곤이 낮게 날아와서 검치들이 몰려 있는 장소를 짓밟고 있었다.

"너희에게 바르칸 님의 땅을 침범한 죄를 묻겠다."

성채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성벽이 허물어 졌다.

검치들은 모여 있었기 때문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몇 명이 발에 밟혔다.

본 드래곤이 하늘에 떠 있으면 잡기가 굉장히 어렵다.

높은 하늘에서 브레스나 쏘고 마법만 사용한다면, 검치들에게는 가히 절망적인 일이다.

그리폰이나 와이번이라도 길들였다면 하늘로 올라가서 싸울 수 있겠지만, 그것도 준비되지 않은 마당이다.

탑이나 건물 구조상 엄폐물이 조금 있는 바르고 성채의 지형 때문에 넓은 범위에 작렬하는 마법의 효과가 조금 떨어지기는 할 테지만.

하지만 본 드래곤은 일부러 지붕에 내려앉아서 검치들이 더 전진하지 못하도록 싸우고 있었다.

다른 2마리는 중앙 탑 근처를 떠나지 않는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오직 하나!

"확실히 바르칸의 라이프 베슬은 중앙 탑에 있는 거로군."

본 드래곤이 움직일 때마다 성채에 금이 가고 마구 부서졌다.

하지만 흉포하기 짝이 없는 본 드래곤은 그런 것쯤은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흩어져라."

"박살을 내 버려!"

은폐물 뒤에 숨어 있던 검치들이 갑자기 나와서 본 드래곤을 에워싸고 공격했다."

"날개부터 공격해라."

"발목을 부러뜨려!"

검치들은 본 드래곤에게 달라붙어서 찌르고 베면서 타격을 입혔다.

"이놈 뼈마디가 엄청 단단하다. 제대로 공격이 안 들어가!"

"생명력이 거의 안 깎이는 것 같아."

본 드래곤의 앞발에 적중되면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피해를 입었고, 밟히면 그대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운 좋게 살아남는 경우도 있었지만, 건물이 먼저 무너져서 빠져나왔던 행운의 결과물일 뿐이었다.

위드도 바람의 질주를 사용하며 신속하게 본 드래곤의 뒤쪽으로 달려갔다.

본 드래곤의 꼬리뼈에서부터 계단은 밟듯이 올라가서 목 위에 섰다.

"헤라임 검술!"

깨알처럼 작은 부위만을 타격하는 일점 공격술을 활용했다.

검치들도 본 드래곤과 싸우면서 일점 공격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본 드래곤이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같이 때리자."

"여기서 공격을 해야 편하겠군."

검치들은 위드처럼 본 드래곤의 몸 위로 올라왔다.

"인간들아, 바르칸 님의 위대함 앞에 무릎을 꿇어라!"

쿠구구궁!

본 드래곤이 인간들을 떨어뜨리기 위해 몸부림을 치면서 바르고 성채가 심하게 부서졌다.

일부는 연쇄적으로 3층이나 2층까지 무너지기도 했다.

본 드래곤의 몸통과 앞발, 주둥이와 꼬리를 이용한 정면 공격도 문제였지만, 건물의 붕괴로 인해서 검치들은 더 많이 피해를 입었다.

본 드래곤이 검치 1명을 먹어 치우고 나서 거칠게 포효했다.

"크와아아아아학!"

드래곤 피어!

위드를 따라서 본 드래곤의 등과 날개, 목 위로 개미 떼처럼 달라붙은 검치들은 쉴 새 없이 검을 내리쳤다.

본 드래곤의 단단하기 짝이 없는 몸뚱이를 때리면서, 검의 내구도가 급속하게 나빠졌다.

+ 본 드래곤의 뼈에 부딪쳐서 검의 내구력이 저하되었습니다.
+ 공격력이 3 줄어듭니다.

힘을 잔뜩 모아서 강하게 때릴수록 검의 내구도가 나빠진다.

도끼가 철퇴 등의 중병기를 쓰는 쪽이 본 드래곤의 생명력을 감소시키기에는 더 유리한 편이기는 했다.

내구도가 떨어지면 최대 공격력도 덩달아서 감소하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본 드래곤의 생명력도 어느새 5할 이하로 떨어졌다.

지붕에 있는 검치들도 밟히거나 먹힐 위기에서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본 드래곤의 좌우 측면을 공격했다.

"사형들, 방심하면 안 됩니다. 본 드래곤은 생명력 회복 속도가 워낙에 빠르니까요!"

"이놈이 완전히 부서질 때까지 때릴 거다."

위드는 목뼈 하나만을 놓고 계속 타격했다.

"달빛 조각 검술. 헤라임 검술!"

+ 검술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하였습니다.

본 드래곤은 검술 스킬을 늘려주는 최적의 목표물이었다.

스켈레톤 궁수, 스켈레톤 메이지들도 성채의 지붕으로 기어 올라왔다.

불화살과 냉기의 마법 등이 검치들과 본 드래곤을 가리지 않고 떨어졌다.

+ 화살이 비껴 나갔습니다.

+ 애시드 애로우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민첩의 높은 효과로 인하여 위드는 공격들에 제대로 적중되지 않았다.

검치들은 저항력과 인내력으로 극복했다.

바다를 건너고 검을 계속 휘둘렀던 덕분에 급격히 늘어난 인내력으로 조금은 버틸 수가 있었다.

"이까짓 것쯤은 검을 휘드르는 데 장애가 될 수 없다. 네가 먼저 죽나 내가 먼저 죽나, 어디 해보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검치들!

본 드래곤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거나, 어마어마한 몸부림에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져서 짓밟혔다.

운 좋게 사제들의 치료를 받고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죽어서 언데드로 되살아난 이후에는 동료들을 공격했다.

위드는 목뒤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본 드래곤이 머리를 들고 포효할 때마다 높은 산에 올라간 것처럼 시야가 사방으로 확 트였다.

바르고 성채의 지붕에서, 본 드래곤까지 타고 있으니 모든 전황을 고스란히 살필 수가 있었다.

외성의 전투까지도 원한다면 보일 정도였다.

'사형들의 피해가 크다.'

현재 움직이는 검치들을 보면 적어도 30명 정도는 죽은것 같았다.

부상자들이 많고 성채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더 많이 죽을 수도 있다.

죽은 검치들은 다크 룰 마법에 의해 언데드로 되살아났다.

성채의 지붕과 탑으로 둠 나이트, 벤들러 기사 같은 언데드들도 올라오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바르칸을 지키는 게 그들의 모적이었지만, 라이프 베슬이 있는 중앙 탑과 가까워지면서 이쪽으로도 언데드들이 배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문제구나'

위드가 때리고 있는 본 드래곤은 생명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 조금만 지나면 사냥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더 빨리, 그리고 검치들의 피해가 없어야만 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사형, 이 자리를 부탁합니다."

위드는 본 드래곤을 공격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 목뼈에서 내려왔다.

검사치가 대신 그 자리를 맡았다.

위드는 중앙 탑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며 사자후를 터트렸다.

"나는 중앙 탑으로 가서 바르칸의 라이프 베슬을 파괴하겠다!"

외성의 언데드들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크르르르르."

검치들을 공격하던 본 드래곤이 즉각 반응하며 뒤돌아섰다.

위드부터 해치우기 위함이었다.

본 드래곤은 건물을 부숴 가면서 위드에게로 맹렬히 달려왔다.

다른 스켈레톤 궁수와 메이지, 마녀들의 표적도 일제히 위드로 바뀌었다.

수없이 많이 날아오는 화살과 마법 공격!

위드는 마법과 화살을 하나씩 피했다.

도저히 피할 시간이 없을 때는 비껴서 맞아 줬다.

위드의 생명력은 사제들의 도움으로 인해서 다시 87% 정도나 회복되어 있었다.

+ 화살이 오른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 화염 마법을 회피하셨습니다.

+ 글레셔 스파이크를 완벽하게 피해 냈습니다.

높을 민첩과 회피 스킬 덕분에도 화살이나 마법이 제 위력을 다하지 못했다.

설혹 생명력이 다 떨어지더라도, 서윤으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아 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피한다.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위드는 똑바로 지켜보며 실날같은 공간에 몸을 던졌다.

몸을 날리면서 본 드래곤의 주둥이와 앞발을 피하고, 그를 향해 날아노는 수많은 마법 공격과 화살들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보냈다.

수백 번 연습하며 맞춰 보기라도 한 것처럼 거짓말 같은 움직임.

주변에서 얼음과 불의 마법이 부딪치며 일어나는 폭발을 배경으로 춤을 추듯이 아름답게 움직이는 위드!

"정말 잘 피하는구나."

"사제의 실력이 언제 저저런 경지에까지……."

검치들조차 일순간 경이로워할 정도였다.

감각으로 주변을 인지하고 연쇄적으로 날아오는 화살과 마법을 피해 내기란, 지금 저 상황에서는 거의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물론 상당히 많은 부분이 위드의 실력이었지만, 고급 8레벨의 회피술이 적용된 덕분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 이하의 공격의 경우에는 흐름에 따라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피한것들도 꽤 되었다.

위드가 스스로 한 움직임과 스킬이 뒤섞였다.

수많은 공격들 속에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처럼 유려하게 움직였다.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입만 벌리면 되었지만, 까딱하면 죽느냐 사느냐였다.

"어디,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자."

위드는 남은 마나로 스킬을 시전했다.

"달빛 조각술!"

몸 전체에 은은한 빛을 둘렀다.

빛들이 위협적인 마법들에 반응하며 뻗어 나가서 중간에 요격했다.

이런 식의 이용은 마나가 기하급수적으로 소모되지만, 오늘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카드값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위드는 중앙 탑이 있는 방향으로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덤벼라! 너처럼 비쩍 마르고 뼈밖에 없는 도마뱀 사체에게는 지지 않는다!"

도발!

본 드래곤의 구멍 뚫린 코에서 연기가 나왔다.

"확실히 죽여 주마."

브레스는 아니었다.

본 드래곤은 앞발로 후려치고, 뒷발로 밟으려고 했다.

위드는 잽싸게 몸을 굴리면서 발을 피했다.

본 드래곤의 덩치가 워낙 컸기 때문에 피하는 데에만 집중해야 했다.

언데드들의 공격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같이 피해야한다.

쾨지직.

위드가 막 몸을 날려서 피한 장소에 본 드래곤의 주둥이가 틀어박혔다.

입안에서 부서지는 돌벽의 일부분.

위드가 있던 부근으로 화살이 빼곡하게 박히고, 마법들이 파괴하고 지나갔다.

"크아아아아아!"

돌벽을 후려치고 화살과 마법에 맞은 본 드래곤이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보다 위드를 죽이기 위해서 더욱 거칠게 공격했다.

위드는 오로지 피하는 쪽에만 집중했다.

어설프게 반격하려다가는 당장이라도 죽게 생겼으니 공격을 피하고 살아남는 데만 전념했다.

"성령의 힘이여, 여기 고통 받는 이를 구원해 주소서. 치료의 손길!"

사제들이 써 주는 회복 마법이 위드의 생명력을 보충해 주었다.

전투 계열 직업들은 이래서 사제들에게 고마워하고 쩔쩔맬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위드는 피하고 막으며 물러나면서도, 몸을 단숨에 움직일 준비를 했다.

이것이 진짜 전투다.

몬스터보다 훨씬 높은 레벨과 장비를 갖추고 싸우는 게 아니다.

순간의 판단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릴 수 있는 전장에서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며 싸운다.

본 드래곤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브레스!

얄밉게도 잘 피하는 위드에게 감당할 수 없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온몸의 뼈들이 끊어지고 붕괴되고 있었다.

본 드래곤의 생명력이 드디어 마지막에 달했음이다.

브레스를 쏘고 죽느냐 그 전에 죽느냐의 싸움!

"이렇게 되면 피하지 않겠다."

위드는 본 드래곤의 앞발을 밟으며 얼굴까지 뛰어올랐다.

"헤라임 검술!"

위드가 본 드래곤의 코를 밟고 서서 이마를 겨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의 내구력이야 떨어지거나 말거나, 높은 민첩성을 이용하여 연속으로 타격했다.

본 드래곤의 머리에 실금이 생겼다.

위드의 공격이 적중할 때마다 균열이 커져 갔다.

본 드래곤이 입안에 모으는 브레스도 함께 차올랐다.

"인첸트 홀리 웨폰!"

사제들 중의 누군가가 위드의 검에 신성력이 깃드는 마법을 써 줬다.

신성력까지 깃든 위드의 검이 본 드래곤을 계속 타격했다.

걷잡을 수 없이 머리 전체로 퍼지는 균열!

쩌저저저적!

검치들이 두들겨 댔던 부위의 뼈들도 부서지기 시작했다.

다시 위드의 검이 떨어진 순간, 본 드래곤의 몸을 지탱하던 힘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머리를 비롯하여 온몸의 뼈가 산산조각 나며 땅으로 떨어졌다.

동시의 위드에게 갑자기 메시기 창 이 떠올랐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바르고 성채에 있는 본 드래곤 다이아크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 위대한 업적으로 인하여 명성이 915 올랐습니다.

+ 카리스마가 1 상승하셨습니다.

+ 투지가 4 상승하셨습니다.
+ 불사의 군단 소속의 본 드래곤을 사냥하는 데 중요한 역활을 하여 전 스탯이 2씩 오릅니다.

본 드래곤의 죽음!

+ 레벨 400을 달성하셨습니다.

위드의 레벨도 드디어 400이 되었다.

샤샤샥.

+ 파괴자의 문양을 획득하셨습니다.

+ 네크로맨서의 비전, 본 드래곤 제작법을 획득하셨습니다.

+ 썩은 드래곤 본을 대량 획득하셨습니다.

+ 오래된 책, 베르사 대륙의 고대 역사서 #19를 획득하셨습니다.

+ 고대의 망토를 획득하셨습니다.

대단히 아쉽지만, 일반 언데드도 아니고 본 드래곤에게서 얻은 전리품은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일정한 비율대로 똑같이 나누도록 협의되어 있었다.

본 드래곤의 몸뚱이가 부서지면서 위드와 검치들이 지붕으로 추락했다.

"인간들을 죽여라!"

"인간들로부터 바르칸 님을 지켜야 한다."

언데드들이 본격적으로 지붕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지형적으로는 위드와 검치들이 약간 유리했지만 시방에서 언데드들이 기어 올라왔다.

"이제 전원 중앙 탑으로 진격합니다. 사제분들은 최선을 다해서 따라오시고, 만약에 죽을 것 같으면 마지막에는 중앙 탑의 본 드래곤에게 신성력을 써 주셔야 합니다."

사제들에게는 무리한 요청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서 가요!"

사제들도 위드와 검치들이 어떤 혈전을 벌였는지 봤기 때문에 수긍하며 따라왔다.

"갑시다."

위드와 검치들은 지붕에서 달리며 가로막는 언데드를 처치했다.

뒤에서 사제들이 발휘하는 신성력이 계속 작렬하며 체력과 생명력을 회복시켜 줬다.

"목적지가 바로 이 앞입니다."

지붕으로 달리다 보니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탑이 60미터도 남지 않았다.

2마리의 본 드래곤이 침입자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브레스!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발사된 브레스 두 줄기가 강렬하게 꿰뚫고 지나갔다.

성벽과 건물의 일부를 녹여 버리고, 언데드들도 소멸시켰다.

위드와 검치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성채 안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몇 명이 죽었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다시 모여서 중앙 탑으로 내처 달렸다.

본 드래곤이 발휘하는 여러 마법들이 날아와서 폭발했다.

"건물을 은폐물로 삼고 계속 움직입니다."

위드와 검치들은 오로지 나아갈 뿐이었다.

본 드래곤도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1마리는 마법을 쓰고 다른 1마리는 육체를 이용해서 싸우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인간. 인간들을 죽여라."

"그들이 가서는 안 될 위험한 장소로 향하고 있다."

"바르칸 님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자!"

지붕으로 모이는 언데드까지 감안하면 본 드래곤에게 막혀 지체하는 순간 둘러싸여서 전멸이다.

위드는 품에서 또 하나의 조각품을 꺼냈다.

"결국 이것까지 쓰게 되는군. 정말 쓰고 싶진 않았는데……."

여러모로 아픈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 놓았던 조각품.

------------------------------------------------------+
* 차가운 폭풍 : 내구도 20/20.

+ 베르사 대륙의 북부에 불었던 극단적인 자연현상.
+ 눈과 얼음이 날리는 빙설의 폭풍을 표현해 놓았다.
+ 조각사가 직접 겪은 사건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표현이 일품인 걸작 조각품.
+ 자연의 험난함과 더불어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 현재는 북부에 사람들이 많이 늘어 빙설의 폭풍이 불어올 가능성은 많이 줄어들어서, 역사적인 가치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질 것이다.

예술적 가치: 854.

옵션 :
+ 빙계 마법의 스킬 효과를 3% 향상시킴.
+ 생명력 +200.
+ 매력 +13.
+------------------------------------------------------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
* 대재앙이 자연 조각술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 예술 스탯 20이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 생명력과 마나 20.000씩이 소모됩니다.
+ 모든 스탯이 사흘간 일시적으로 15% 감소합니다.
+ 자연과의 친화력이 떨어집니다.
+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은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 위험한 재앙을 불러오게 되면, 그 피해에 따라서 명성이나 악명이 오를 수 있습니다.
+ 재앙을 겪는 와중에 죽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



8. 바르고 성채의 주인


여러 가지 추억이 간직되어 있는 빙설의 폭풍!

대기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언데드들은 추위를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몰랐지만, 위드와 검치들은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하나 둘 눈송이들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금방 두꺼운 얼음 조각으로 변해 지상으로 묵직하게 내리꽂혔다.

바르소 성채 전역을 뒤덮으며 떨어지는 수천, 수만개의 얼음 조각들!

빙하처럼 커다란 얼음덩어리도 보였다.

그리고 소용돌이와 거센 바람이 성채를 휩쓸면서 위험한 대재앙이 시작되었다.

언데드 중에 저항력이 약한 스켈레톤들이 제일 먼저 결빙 현상을 보이며 몸이 굳었다.

공중에서 날갯짓을 하던 본 드래곤은 제대로 빙설의 폭풍에 휩쓸렸다.

얼음 조각의 폭풍에 휘말리더니 그 거대한 몸집을 가누지 못하고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돌았다.

"캬아오오오!"

본 드래곤의 몸에 얼음이 두껍게 쌓이고, 공중으로 더 높이 치솟아 오르는가 싶더니 성채로 갑자기 추락했다.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굉장한 충격!

여기저기 충격을 받아 약해진 상태에서도 지금껏 간신히 버티던 성채의 구조물 일부가 허물어졌다.

"여, 역시 더럽게 춥군."

위드는 바르고 성채를 급속도로 얼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앙의 위력을 보며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전투를 하다가 갑자기 얼어 죽는 느낌이란 정말 대단히 허무할 거야."

위드는 스킬을 시전하자마자 갑옷 위로 겉옷을 입은 상태였다.

검치들도 사제들도, 가지고 있는 옷들을 두껍게 착용하고 건물로 들어가서 얼음 조각을 피했다.

위드가 빙설의 폭풍을 불러올지도 모른다고 말했기 때문에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몸을 피한 채 빠끔히 내다보니 옷이나 장비가 부실한 언데드들이 속절없이 빙설의 폭풍에 휘말려 버리고 얼어 버리는게 적나라하게 보였다.

"모두 숨어요. 지금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생명력이 갑자기 떨어져서 죽을 것 같은 분은 말씀하세요. 모포 남는 게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검치들은 사제들을 챙겨 주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지속 시간이 제법 길었다.

빙설의 폭풍이 아직도 불어오고 있는데 위드는 지붕에 있는 구조물에서 나왔다.

"이, 이놈의 팔자. 여, 역시 난… 따다닥! 이래서 안 돼. 펴펴펴, 평생 고생만 할 거야."

추위 때문에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위드는 거센 얼음 조각의 폭풍을 피하며 중앙 탑으로 달렸다.

+ 얼음 조각이 이마를 비껴 지나갑니다.

+ 원뿔형의 얼음이 어깨에 꽂히려고 했지만 회피 스킬이 적용되어 피했습니다.

+ 얼음 조각이 등에 박혔습니다.

+ 얼음덩어리가 무릎을 스칩니다. 이동속도가 저하됩니다.

높은 민첩과 회피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처럼 쏟아지는 얼음 조각들을 완전히 피하는 건 무리.

위드로서는 바람에 휘말려서 날아가지 않도록 애쓰며 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때 검삼치로부터 귓속말이 전해졌다.

> 본 드래곤을 해치울 방법이 있는 거냐?

위드는 폭풍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우려했던 대로 차가운 바람과 얼음 파편에 맞아 몸이 굳어 가고 있었다.

> 한 가지 있습니다. 그런데 이대로는 실패할 것 같습니다.

빙설의 폭풍이 그치더라도 몸이 얼어붙어 있으면 전투가 어렵다.

이렇게 되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중간에 숨어야 할 것 같았다.

> 저 탑으로 가려는 거지?
> 예.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지금은 힘들 것 같네요.
> 가자.

검치들이 숨어 있던 장소에서 나왔다.

나무 방패를 들어 올리고 중앙 탑으로 달렸다.

있는 힘껏 달리면 자칫 얼음덩어리에 맞을까 봐, 위드는 상황을 살피며 전진하느라 그리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검치들은 방패를 앞세우고 최대한의 속도를 냈다.

얼음 파편, 덩어리에 맞아서 쓰러지고 부상을 입으면서도 달리는 검치들!

그들이 위드를 뒤쫓아 와서 방패로 덮어 주었다.

"더더, 빠, 빨리 가자!"

검치들이 방패를 씌워 주고 사방을 에워싸 얼음 폭풍으로 부터 가려 주는 탓에 위드는 피해를 약간 덜 받았다.

그 상태로 중앙 탑으로 달리면서 검치들은 생명력이 떨어지고 몸이 얼어붙어서 낙오되고 죽어 나갔지만, 감싼 방패는 끝까지 거두지 않았다.

다시 오기 힘든 빙설의 폭풍을 뭉쳐서 뚫는 사형제들!

위드는 그들 덕분에 성벽을 타고 이동해서 중앙 탑에 뛰어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중앙 탑에는 또 1마리의, 마지막 본 드래곤이 있었다.

하지만 빙설의 폭풍에 휘말려 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반대편에 매달려 있느라 위드가 탑으로 들어온 것을 미처 보지도 못했다.

그 순간 위드에게 떠어른 메시지 창!

+ 동결 상타에 빠졌습니다.

검치들이 지켜 주었음에도 위드의 갑옷과 몸에는 얼음덩어리들이 두껍게 쌓였고 지금까지 입은 부상도 심했다.

신성 마법으로 생명력을 보충해 주었다고는 해도, 완전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처가 남아서 오랫동안 영향을 준다.

위드는 인내력과 맷집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밖에서는 점차 바람이 잦아들면서 빙설의 폭풍도 역활을 다하고 소멸되어 갔다.

언데드들이 다시 움직이고, 얼음에 파묻힌 본 드래곤도 일어나리라.

검치들 중에 죽은 이들조차도 언데드가 되어서 동료를 공격할 수 있다.

지금껏 연주를 하며 사제들을 따라온 마레이는 이 모든 걸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전설이 실패로 끝나게 되겠군.'

위드와 검치들이 중앙 탑에 다가서는 장면은 뭉클했다.

바르고 성채로 진입한 이후의 몇 번의 전투 장면도 대단하였다.

위드와 그의 동료들이 아니었더라면 불사의 군단과 바르칸에 맞서서 이렇게 싸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열 로드는 결과가 중요한 세상.

"정말 아쉽게 됐어. 바르칸을 사냥했으면 참 대단했을 텐데……."

#

"아……."

KMC미디어의 생방송을 진행하는 팀에서도 탄식이 흘렀다.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각 방송국에서도, 빙설의 폭풍까지 나타난 이후로는 진행이자들이 말을 못 하였다.

이렇게 처절하게 싸울 거라고는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바르고 성채에 인간들이 들어온 이후로 꽤 시간이 지났지만,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위드의 상황이 생각만큼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 왼손에 들고 있는, 조각사들이 남긴 횃불로부터 따듯한 기운이 전해집니다.
+ 동결 상태를 해소합니다.
+ 마나를 회복합니다.

빙설의 폭풍이 끝나 가면서 위드의 조각품으로부터 힘이 전해졌다.

게다가 검치들이 에워싸면서 지켜 주었던 덕에 조금 지나니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졌다.

"크아아아아아!"

본 드래곤의 포효!

중앙 탑 밖에서 드래곤 피어가 들렸다.

검치들이 목숨을 내던지면서 본 드래곤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페일로부터 바르칸과의 싸움에 대한 전황도 귓속말로 전해졌다.

> 여긴 갈수록 어렵습니다. 바르칸의 마나가 떨이지지가 않는 것 같아요. 생명력을 낮춰 놓아도 적정 수준으로 금세 회복해 버리니…….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는 있습니다.

바르칸 쪽도 좋진 않다.

위드는 빙설의 폭풍을 뚫고 나서 떨어진 생명력을 회복할 틈도 없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며 중앙 탑의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인간이 여기까지 어떻게……."

"죽여 주겠다."

이곳도 언데드 보초병이 지키고 있었다.

원래는 벤들러 기사들이 지켰을 관문이지만 그들이 모조리 전투에 동원되다 보니 지금은 둠 나이트급!

위드는 그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검을 휘둘렀다.

+ 정확한 타격을 가하셨습니다.
+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셨습니다

+ 연속 공격을 성공하셨습니다.

방어가 불가능 할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둠 나이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 탑의 최상층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빙설의 폭풍에 깨진 창 밖에서는 본 드래곤이 검치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보인다.

본 드래곤이 움직일 때마다 탑이 진동했다.

그리고 위드의 눈에 보이는 자줏빛 항아리!

리치 바르칸 데모프의 생명력이 담겨 있는 라이프 베슬이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위드가 중앙 탑으로 들어오고, 둠 나이트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쓰러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밖에서 싸우던 본 드래곤이 앞발을 내밀며 중앙 탑으로 급하게 날아오고 있었다.

"내가 이런 곳에서 죽을 줄 알았나?"

위드는 항아리를 목표로 검을 휘둘렀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길이 남게 될 순간, 엄청난 수의 시청자들이 경악하면서 지켜보는 순간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한마디의 말도 명언이 되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내 밥그릇을 지켜야 하는 한 절대로 쓰러질 수 없다!"

가장으로서의 묵직한 책임감이 담겨 잇는 검이 항아리를 깨뜨렸다.

그러자 시커먼 기운이 넘실거리면서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

언데드들은 갑자기 쇠락하고 힘이 약해졌다.

"이, 이렇게 사라질 수는 없는데……."

"끄으으으!"

유령들은 햇빛에 흩어지고, 스켈레톤이나 구울 같은 언데드들은 땅에 쓰러지더니 회색빛으로 변해서 사라졌다.

바르고 성채의 언데드 절반 이상이 흙으로 돌아가고, 지역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불사의 군단에서는 8할이 넘는 언데드가 사라졌다.

바르칸의 생명력의 원천이 깨진 여파가 전체로 퍼지고 있었다.

"시체들이 언데드가 되어 일어나지 않아!"

"언데드가 약해지기도 한 것 같아. 신성력에 금방 소멸되는데?"

바르칸의 3대 마법인 다크 룰과 데스 오라의 효과도 사라졌다.

대단히 강하던 언데드들이 평범한 수준으로 변했다.

그것만으로도 위협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제들의 신성력에 저항하는 능력까지 떨어졌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저곳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가, 가 보자……."

모라타를 정벌하기 위하여 떠났던 언데드들은 다수가 쓰러지고, 얼마 안 되는 병력마저 흩어져 버렸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라면 바르칸과 본 드래곤들에게 있었다.

바르칸이 발휘했던 저주 마법들이 저절로 해소되었다.

게다가 로뮤나가 살펴보니 생명력도 갑자기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바르칸이 약해졌어!"

"신성력을 집중시켜서 공격하자."

유저들은 다시 희망에 불타올랐다.

바르칸의 넘치던 마력이 뚝 끊겼다.

리치로서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할 수는 있었지만, 무한에 가깝던 마나의 샘이 고갈되면서 바르칸은 괴로워하고 있었다.

본 드래곤도 약하된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날갯짓이나 움직임도 둔해지고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묻어 버리자!"

"뼈를 완전히 발라 주마."

검치들이 본 드래곤에게 덤벼들었다.

중앙 탑에 붙어 있는 본 드래곤을 향하여 검치들이 창을 던졌다.

무기술 스킬을 바탕으로 모든 종류의 무기들을 다룰 수 있는 검치들의 특성은, 이런 경우에 큰 장점이었다.

"크와아아아아……."

본 드래곤이 포효하였지만 공포의 효과는 미약했다.

바르칸에 의해 만들어진 지 이미 시간이 너무나도 오래 지난 본 드래곤이라, 육체를 유지하는 데에도 힘과 마나가 많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죽여!"

"없애 버려!"

생명력도 얼마 남지 않은 검치들이 마지막을 위해 덤벼들었다.

사제들의 신성 마법도 본 드래곤의 몸에 작렬했다.

바르칸의 라이프 베슬이 깨졌다는 것을 아는 이상 마나가 모이는 대로 신성력을 아끼지 않고 쓸 수 있었다.

지붕에도 언데드들이 있었지만 많이 줄어들고 약화되었다.

위드는 중앙 탑을 빠져나오자마자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빙설의 폭풍에 휩쓸려서 얼음덩어리에 파묻혀 있는 본 드래곤이 목표물!

"이놈 끈질기네."

"도대체 생명력이 얼마나 큰 거야."

벌써 그곳에서도 검치들 스물 정도가 붙어서 검으로 때리고 있었다.

본 드래곤에서도 검치들 스물 정도가 붙어서 검으로 때리고 있었다.

본 드래곤이 몸에 두껍게 쌓인 얼음을 깨고 나오려고 했지만, 데스 오라가 사라지고 바르칸으로부터 공급받는 마나도 사라져서 그저 바동거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냥 그대로 죽어!"

위드는 검치들과 본 드래곤을 공격했다.

본 드래곤이 발버둥 칠 때마다 바르고 성채의 건물과 탑이 부서져 갔다.

굉음을 내며 완전히 붕괴되는 건물도 있었다.

힘을 상당히 잃었지만 사라지지 않은 벤들러 기사처럼 몇몇 눈에 띄게 설쳐 대는 언데드들도 있었지만, 위드에게는 오로지 본 드래곤만 보일 뿐이었다.

'제대로 한밑천 챙겨 보자.'

그리고 마침내 본 드래곤이 회색빛으로 변해서 사라졌다.

+ 바르고 생채에 있는 본 드래곤 부토리아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 불사의 군단 소속의 본 드래곤을 사냥하는 데 약간의 역활을 하여 전 스탯이 1씩 오릅니다.

대부분의 피해를 다른 검치들이 주어서 위드는 경험치와 명성을 크게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얻는 스탯은 고마울 뿐.

어렵고 힘든 대형 레이드에서 승리를 거둔 것만으로도 참가자들은 큰 보상을 받은 셈이었다.

"이쪽도 본 드래곤을 사냥했다!"

"이겼다. 본 드래곤을 모두 처치했다."

중앙 탑이 있는 쪽에서도 함성이 나왔다.

그쪽으로 더 많은 검치들이 갔는데 사냥이 약간 늦은 이유는, 본 드래곤이 중앙 탑을 기반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제 이 바르고 성채의 언데드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군."

많은 언데드가 땅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고 본 드래곤들은 사냥되었다.

벤들러 기사들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위드도 알지 못했지만…….

"아무튼 엘프 연합군들과 계속 전투가 벌어진다면 언데드들은 버틸 수가 없을 거야."

바르고 성채에 모여 있던 불사의 군단은 이것으로 대충 정리되었다고 봐도 된다.

위드는 힘이 빠져서 비틀거리는 언데드들은 무시한 채로 지하로 달렸다.

민첩성 때문에 어마어마한 빠르기로 달리는 위드였다.

바르칸에게서 무언가 얻어먹을 게 있을지도 몰라 최대한 빠르게 갔다.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 부근에, 힘을 잃고 무수히 많이 쌓여 있는 언데드들!

일부 언데드들이 위드를 발견했다.

위드는 공격을 그대로 몸으로 맞아 주면서까지 최대한 서둘러 지하로 내려갔다.

"어서 오세요!"

지쳐 있던 화령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바르칸은요?"

"아직. 거의 다 죽어 가요!"

애쓴 보람이 있어서인지, 아직 늦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위드는 바르칸과의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로 들어갔다.

"잡아!"

"조금만 더 몰아붙입시다."

"사제들은 언데드부터 정화를! 바르칸만 남겨 놓아야 사냥이 더 빠를 겁니다."

위드가 왔을 때에도 바르칸 사냥은 진행 중이었다.

바르칸이 검치들과 성기사들의 시체들을 가지고 소환했던 언데드가 꽤 되었기 때문에 그들부터 처리하느라 싸움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안식으로 떠나라, 턴 언데드!"

사제들의 신성 마법이 언데드들의 몸에 작렬했다.

위드가 마판을 통하여 가져왔던 강림하는 일곱 천사상!

조각상 주변에서는 신성력의 효과가 증가되니 때문에 엄청난 광휘가 일어났다.

인간들에게는 힘을 북돋아 주고 체력을 회복시키며 언데드에게는 손상을 입힌다.

"이렇게 끝날 수 없다. 인간들의 땅이 되고 있는 이 대륙을 파멸로 이끌어야 한다."

바르칸의 목소리가 지하를 으스스하게 울렸다.

"블링크!"

단거리 순간 이동을 하면서 성기사와 사제, 검치들을 가리지 않고 마법으로 결박하여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했다.

하지만 바르칸의 몸에는 성검이 꽂혀 있었고, 그곳에서부터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왔다.

+ 지하 공간의 마나의 밀도가 높아집니다.
+ 마나 회복 속도가 증가합니다.

봉인된 생명력이 깨져서 생명력과 마나가 걷잡을 수 없이 새어 나가는 것이다.

바르칸이 마법을 외웠다.

"다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게이트 오픈!"

다른 장소로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 마법.

여기서 바르칸을 도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

위드와는 완벽한 원수 관계가 되었으니 빠져나갈 경우 모라타가 위험했다.

사제들의 신성 마법도 집중되면서, 텔레포트 마법은 성공하지 못했다.

+ 상대방의 이동 마법이 취소되었습니다.

"바람의 질주!"

위드가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바르칸에게 다가섰다.

"소드 카이저!"

아껴 놓았던 스킬.

위드는 바르칸의 몸을 검으로 있는 힘껏 찔렀다.

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파괴력도 함께 커진다.

검치들과 성기사들도 도착해서 바르칸을 같이 검으로 찌르고 베었다.

이미 바르칸이 소환한 다른 언데드들은 모두 힘을 잃고 소멸해 혼자만 남은 것이다.

레이드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무차별 공격.

생명력과 마나의 상실, 마법 주문도 외우지 못하는 바르칸이었기에 그대로 힘을 잃어 갔다.

위드와 검치들, 성기사들, 사제들은 이 순간에는 다른 것은 모두 잊고 오직 공격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 불사의 군단의 지배자, 어둠의 주술사이며 네크로맨서인 리치 바르칸 데모프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

위드와 생존자들은 바르고 성채의 가장 높은 중앙 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꼭대기에서 망토를 휘날리면서 바람을 맞았다.

이 완벽한 고립감과 자유를 나누는 것이다.

성채에 새겨진 격력하기 짝이 없는 전투의 흔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본 드래곤이 몸부림을 치다가 무너지고, 통째로 붕괴된 장소.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아 타오르고 있는 건물과 탑들도 보였다.

외성을 지키던 언데드들은 엘프와 바바리안, 드워프 연합군에 의하여 사라지고 있었다.

"크흠."

"엣헴."

"이것 참… 이런 기분이었군."

지금 이 심정은, 그저 재미있다거나 즐겁다거나 하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떨려 죽겠다.'

'워… 전투가 끝났다니 실감이 안 나네.'

'오늘 같은 전투가 다시 벌어질 수 있을까?'

'로열 로드를 안 했다면 죽을 때까지 평생 후회했을 거야.'

'친구에게 자랑해야지. 부모님에게도 자랑해야지. 직장 동료에게도 자랑해야지.'

'살았다. 살아남았다.'

저마다 최고의 기분을 만끽하면서 중앙 탑에 서 있었다.

거대한 전투를 마무리 지을 때까지 살아남은 기쁨을 나눴다.

검치들과 사제, 성기사들이 서로 친구 등록을 하는 것도 보였다.

위드도 승리로 인하여 흐뭇했다.

'많이 챙겼군.'

원래 대인원이 참여하는 레이드에서는 전투에 참여하여 승리를 거두기만 해도 보상이 크다.

바르칸으로부터 승리를 하고 나서, 사람들은 전투 공적에 따라 전 스탯이 최대 5개에서 2개씩 오르는 경험을 했다.

위드는 3개의 스탯이 올랐다.

처음부터 바르칸과만 싸웠던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사실 바르칸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했던 사람은 검백이십일치였다.

그래서 그의 레벨은 12개나 오를 정도였다.

위드도, 막판 전투에 참여했던 것만으로도 경험치가 24%나 늘었다.

이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직접 모든 일을 준비하고 참여했던 사람으로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는데, 넓은 배포를 보여 주었다.

"이게 다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힘든 전투를 마치고 나서도 다른 사람들부터 먼저 걱정했다.

"사형, 많이 다치셨지요? 붕대를 감아 드리겠습니다."

사형들을 챙기고, 다른 유저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섰다.

"동료분들의 희생이 크셨는데… 다행히 내성에서 보물을 얻은 게 있으니 나중에 다 함께 나누도록 하죠. 이걸로 보상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제 몫에서도 일부를 떼어 놓겠습니다."

유저들은 승리만으로도 좋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이게 다 위드 님 덕분에 이루어진 결과인데요."

"정해진 몫만 주셔도 돼요. 알고보니 위드 님이 바르칸의 라이프 베슬을 파괴하지 못했더라면 이기지도 못했을 거잖아요."

염치를 가진 유저들!

명성과 스탯, 전투 경험.

승리를 거두면서 스킬의 숙련도도 제법 늘어났다.

이제 전리품도 붙배받을 텐데 위드가 자기 몫까지 더 내놓겠다고 하니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난 웬만하면 사람을 안 믿는 편이었는데… 위드 님은 진정 천사구나.'

'도덕책에나 나오는 성인이 따로 없군.'

'대체 누가 위드 님에 대해서 인색하다거나 속이 좁다고 나쁜 소리를 하고 다녔던 거야? 역시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더니, 그런 헛소문이나 퍼트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혼을 내 줘야겠네.'

유저들이 단단히 착각해 버릴 정도의 위선!

위드는 보물에 대해서는, 생색을 내기 위해 아주 조금 양보하더라도 아깝지가 않았다.

바르칸에게서 나온 아이템은 처분하여 골고루 사람들에게 분배를 해 주어야 하며 위드의 몫은 보물과 마찬가지로 3할이다.

루 교단의 성검의 경우에는, 돌려주면 오늘 벌어졌단 전투 공적에 따라서 보상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위드에게는 매우 흡족한 보상 하나가 더 있었다.

+ 언데드가 장악하고 있던 바르고 성채를 점령하셨습니다.
+ 모라타의 영역이 확장됩니다.
+ 바르고 성채가 있는 지역을 영토로 편입합니다.
+ 영주로서의 영향력과 명성이 커집니다.

땅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

척박하고 몬스터들이 들끓는 지역이지만, 유물들이 많이 붇혀 있으리라.

모험가와 사냥을 위한 파티들이 대거 몰려올 수 있었다.

바르고 성채를 보수하여 개방하고, 주민들이 이주해 오면 농사를 짓고 식량도 수확할 수 있다.

차근차근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이곳에서도 초보자들이 시작할 수 있게 되리라.

머지 않은 미래에, 본 드래곤이 날뛰었던 곳의 뒤쪽 언덕에 판자촌이 난립하는 광경이 마치 눈앞에 그려지는 듯 선명했다.

#

방송국과 인터넷 게시판의 폭발적인 반응!

그것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이나 다릅없었다.

언데드와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진행자들도 인간의 입장에서 설명했고 응원도 했다.

무난한 사냥은 아니었다.

바르칸에게 죽고, 본 드래곤에게 죽었으며, 언데드에 의하여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바르고 성채의 내성으로 밀려오는 언데드를 보면서는 설명을 하며 긴장한 나머지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 들어갔다.

그렇게 힘겹게 거둔, 믿기지 않는 승리!

"정말 제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다시 또 이런 전투를 볼 수 있을까요?"

"백마디 말보다는 그저 지금을 만끽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저곳에 있지 않은 게 너무 아쉬울 따름입니다."

"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대격전이 벌어졌던 그 장소에서요. 내일 성탄절 최고의 선물이 되겠습니다."

진행자들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받으면서 방송을 진행했다.

바르고 성채의 전투를 중계하고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현실의 시간으로도 새벽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

그리고 그다음 날은 성탄절로, 창밖에는 어느새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7. 크리스마스의 눈 내리는 밤


밤새 내린 눈이 이현의 집 마당에 수북하게 쌓였다.

이현은 아침 일찍 깨어 창문 밖의 광경을 보고 중얼거렸다.

"도로가 엉망진창이이 되어서 교통사고율이 높아지고, 거리에서는 미끄러져서 넘어지게 되겠지.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벌겠군. 역시 대한민국에서는 의사가 최고인데……."

마당의 눈을 쓸어 내고 닭과 오리, 토끼, 개들이 편안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우리에 담요를 깔아주는 등의 작업을 했다.

잠시 일을 하느라 우리에서 풀어 주었더니 동물들이 신나서 눈밭을 돌아다녔다.

"먹을 게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좋은데… 오늘은 특별히 봐주지."

넓은 아량까지 베풀어 주는 이현!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지금까지는 거의 로열 로드를 하면서 보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할머니와 여동생에게 사줄 옷을 고르러 시내에 나가기로 했다.

"동생도 여자애니까… 겨울 외투가 두 벌밖에 없으면 지내기 어렵겠지."

고등학생도 아니고 멋도 부릴 나이가 되었지만 옷을 사 준 일은 드물었다.

직접 옷을 사 입으라고 돈을 주면 저축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현이 사서 선물할 생각이었다.

"브랜드가 있는 옷으로 사 줘야지."

이현은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바르칸 사냥에도 성공했고, 각 방송국들로부터 받을 돈도 많다.

그렇기에 이혜연에게 멋진 브랜드의 외투를 사 줄 결심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쯤 겨울옷 세일을 시작했는지 모르겠군!"

#

"시장보다는 최근에 유행하는 디자인이 있는 아웃렛 쪽으로……."

이현은 전철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거리는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는 연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범죄자도 아닌데 팔을 끼고 다니는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어. 가만 놔두면 어디 도망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야."

이현은 그러면서 여성들이 입는 옷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여자들은 유행이나 스타일에 굉장히 민감하다.

로열 로드에서도 방어력이나 옵션이 아무리 좋은 옷이라고 해도 디자인이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잘 입지 않았다.

"요즘 잘나가는 옷으로 사 줘야 하는데."

외투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한 벌 맞춰 줄 작정이었다.

생일이나 성탄절에 옷을 선물받고 기뻐하는 여동생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여자들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

한겨울에, 눈까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여자들은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건가?"

대체적으로 여자들은 따뜻한 옷보다도 예쁜 옷들을 많이 입었다.

패션을 위해서는 다소의 불편함이나 추위 정도는 기꺼이 참는 모양이었다.

이현은 한참을 지켜보다가 혼자서는 고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현의 입장에서야, 겨울이라면 등산용 점퍼와 발열 내의 가 최고의 선택이 아니던가!

그런데 여동생이 입을 옷을 고르라니 도무지 난감했다.

'여자 옷은 여자가 잘 알 텐데……."

이현은 여자들과의 인간관계도 넓은 편이 아니라 조언을 구할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일단 연락이나 해 봐야지."

옷을 잘 알 만한 사람으로 제일 먼저 떠오른 정효린에게 일단 문자를 보냈다.

로열 로드에서도 화령으로 갖가지 옷을 입고 현실에서는 패션쇼에도 자주 나갔으니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그녀.

영상통화도 안 되는 구형 기종이지만 문자를 보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여동생 옷을 사 주려고 하는데 시간이 되면 같이 봐 줄수 있어요?'

이현은 기본요금을 제외하면 통화 요금을 1달에 2,000원도 안 냈다.

설혹 어쩔 수 없이 여동생에게 전화를 하더라도 간단한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어디야?"

"늦게 와?"

"집에 같이 가자."

"밥 먹고 와?"

대화는 10초면 충분한 것이다.

무료 300분 요금제, 400분 요금제 등을 쓰는 사람은 전화를 하다가 끊지 않고 잠들었기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통화 패턴!

문자를 보내고 나서 1분도 지나지 않아서 답장이 왔다.

'오늘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요. 공연이라서 빠질 수 없는데 어떻게 하죠?'

이현은 괜찮다는 답장을 보내고 나서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김인영. 이리엔으로 활동하는 그녀라면 비슷한 또래인 여동생의 옷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되리라.

'친구들과 오늘 영화 보러 가기로 해서요. 죄송해요!'

성탄절 하루 전에 약속이 잡히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학교의 친구들은 남자 친구를 만난다며 거절하거나, 아예 답장도 안 왔다.

"그러면 딱히 보낼 사람이 없는데……."

이현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서윤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그녀를 생각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이런 부탁을 하기가 미안했던 것이다.

'시간 되면 여동생이랑 할머니 옷 사러 가는 데 와서 좀 도와줄래?'

#

서윤은 병원을 나와 주택으로 이사한 후 첫 번째 겨울을 맞고 있었다.

저절로 가동되는 벽난로 근처에는 몸보신이 드러누워 따뜻한 불을 쬐었다.

"위드의 모험이 다시 성공을 거두었는데요, 사람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혼자만이 아니라 다수의 동료들을 데리고 수행한 전투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거둠으로써 위드에 대한 칭송이 대단합니다."

"전투에 참여했던 사제들과 전사들 중에서도 함께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는데요. 어떤 사람들이죠?"

"댄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 유저와 근육질의 전사들인데, 이들은……."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이현의 영상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을 졸이고 걱정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에 이현의 문자가 도착했다.

'시간 되면 여동생이랑 할머니 옷 사러 가는 데 와서 좀 도와줄래?'

원래는 오늘 그냥 집에서 쉬려고 했지만 바로 외출 준비를 했다.

서윤이 집 밖으로 나가는데 옆집의 젊은 대학생이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있었다.

박진석.

서윤보다 일주일 늦게 이사를 와서 떡을 가져오면서 얼굴을 처음 봤다.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게 된 H그룹의 장남!

아침 일찍 조깅을 하면서 서윤의 집 근처를 지나다니고, 친구들과 함께 테니스나 농구를 하는 모습을 가끔씩 보여 주기도 했다.

아직까지 말도 나눠 보지 않았지만, 그녀가 밖으로 나올 때마다 자주 마주치곤 했다.

#

이현은 백화점 입구에 서 있었다.

백화점의 정문은 커플들이 모이는 옥상으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화점도 나쁘지 않지."

크리스마스이기도 했으니 아웃렛보다는 백화점으로 왔다.

브랜드 제품을 살 때에는 가격적인 측면에서 크게 차이가 없기도 하고, 김인영이 문자로 백화점에서 특별 세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역시 쇼핑에도 정보가 필요해."

이현이 서서 기다리고 있자니 서윤이 종종걸음으로 걸어와서 앞에 섰다.

눈이 내리고 바람도 부는 날씨 때문에 긴 외투를 걸치고 목도리까지 두른 차림이었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니. 추우니까 들어가자."

이현은 서윤과 함께 백화점 1층으로 들어갔다.

"참, 근데 그 옷들은 어디서 산 거야? 제법 예뻐 보이는데."

서윤이 입은 옷은 특별하게 시선을 잡아끌거나 하진 않아도 색상이 참 예쁘고 질감이 우수해 보였다.

보통 때라면 묻지 않았을 테지만 여동생의 옷을 사야 하니 질문을 한 것이다.

"다른 백화점에서 샀던 것 같아요."

"그래? 가격은 얼마나 하는데?"

"기억이 잘 안 나요. 한 400만 원 정도 했을 거예요,"

"……."

이현에게 백화점에 대한 진한 공포를 심어 주는 말이었다.

본 드래곤보다도 백화점이 더 무시무시했다.


백화점은 1층은 여러 잡화 브랜드와 가방, 명품, 귀금속, 화장품 코너가 있었다.

이현의 걱정과는 달리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면 심하게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다.

"그냥 평생 잊지 못할 금액 정도……. 쌀을 80킬로 사고도 남고, 꿈에 나올까 두려운 액수 정도군."

작은 머리띠 하나에 몇만 원씩이나 나가는 세상!

"노란 고무줄을 발명한 사람에게 노벨상을 줘야 했어."

여성용 액세서리의 가격이 대단하다는 것도 새삼 실감했다.

2층과 3층으로 올라가서 여성 의류들도 훑어보았다.

"여동생의 체형과 대충 비슷할 것 같으니까… 네가 대신 입어 봐 주면서 골라도 될까?"

"저는 좋아요."

이현은 예쁘다 싶은 옷들, 주로 마네킹에 걸려 있는 옷을 서윤에게 입혀 봤다.

일단은 점퍼나 외투를 사려고 했기에 간단히 걸쳐 보는 정도로도 알 수 있었다.

"손님, 두꺼운 점퍼가 정말 잘 어울리세요. 매장에 딱 한벌 남았는데요. 제가 지금까지 장사하면서 본 손님 중에 가장 예쁘세요."

"요즘에는 조금 슬림한 라인이 들어간 제품들이 잘 팔리는데요, 겨울이라도 몸매를 은근히 드러내는……. 그런데 너무 예쁘시다."

"편하고 질리지 않는 기본 스타일인데 소재가 고급이라서 촉감이 자주 좋죠. 그런데 연예인 아니세요?"

서윤은 뭘 입어도 예뻤다.

블라우스, 치마, 티셔츠, 모자, 하다못해 등산용 점퍼를 대충 걸치기만 해도 아름다웠다.

설혹 옷을 디자인한 사람이 와서 보더라도 자신의 옷이 이토록 예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감탄하리라.

"가격이 얼마죠?"

"얼마 안 해요. 54만 원 정도인데요, 지금 20% 세일하는 제품이거든요."

이현은 대충 시장에서 구입한 두꺼운 점퍼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팔목에 착용하고 있는 시계도 2만 원짜리 전자시계!

'웬만한 부자들은 많이 봤지만, 진짜 부자들은 티가 안 난다더니…….'

'외국 물이야. 다른 나라에서 유학을 하면서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었을 거야.'

'정말, 돈이 얼마나 많으면 이런 여자 친구와 다닐 수 있을까?'

본인이 입을 옷이라면 엄두도 못 내겠지만 동생에게 주는 선물이니만큼 이현은 과감하게 결심을 하고 구입을 했다.

외투 한 벌, 상의 세 벌, 치마와 바지, 구두 그리고 머리띠까지!

스무 살, 그 발랄한 나이에 어울릴 만한 옷들로 고른 것이었다.

"가, 가방도 하나 필요할까? 필요하겠지?"

고민 끝에 가방도 중저가 브랜드에서 할인하는 걸 샀다.

할머니가 입으실 옷들도 구입을 하느라 결국 이현은 백화점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게 되었다.

'그래도 필요한 것들이니까.'

로열 로드를 통해서 상당한 거금을 벌어들이고 있으니 이 정도는 큰맘 먹고 지출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이러다가 악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는 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주는 선물."

이현은 서윤에게도 선물을 줬다.

그녀에게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 주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주었다.

이현은 현실에서도 조각하는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꽤 많은 나뭇조각들을 깎았다.

조각과 관련된 책이나 동영상 강의를 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정성껏 조각품을 만들었다.

서윤과 처음 만난 날, 그녀와 함께 모험을 떠났던 때, 와이번을 타고 지나가면서 봤던 그녀의 눈물, 북부를 탐험하며 고생했던 시간, 대학에서 만난 그녀, 최근에 남해로 여행을 가서 봤던 모습.

그녀에 대한 조각품이 15개나 되었다.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도 그때마다 다 달랐다.

만들어서 지금까지 다른 물건들과 같이 창고에 보관해 놓았던 물건을 종이 박스에 담아 그녀에게 준 것이다.

"비싼 게 아니라서 미안. 심심할 때 만들어 본 거야."

"…잘 간직할게요."

서윤은 조각품을 받았다.

그녀에게는 가장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둘은 백화점을 나와서 거리를 걸었다.

따로 갈 곳은 정해놓지 않았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커플들이 활개 치며 돌아다니는 시간!

조금이라도 싸고 예쁜 옷을 사기 위해 매장을 뱅뱅 도는 바람에 슬슬 배가 고파 왔다.

'밤이 되었군.'

헤어지기 전에 저녁밥이라도 사 줘야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식당도 바가지인데…….'

오늘 같은 날은 갈 곳도 마땅치가 않다.

어디를 가도 비싸고 사람들이 복작복작할 테니 꺼림칙한 것이다.

이현은 차라리 집으로 데려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리 집에 갈래? 동생은 친구들끼리 영화 본다고 해서 밤늦게 돌아올 건데."

"……."

어떻게 생각하면 오해의 소지가 깊은 말.

하지만 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따라나섰다.

이현을 단단히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현은 밥부터 차렸다.

"동생은 밥 먹고 나중에 올 테니 둘이 먹을 것만 장만하면 되겠군."

밖에는 여전히 눈이 조금씩 내린다.

돼지갈비나 감자탕이 먹고 싶은 날씨였다.

"재료는 없는데."

오늘 밤에는 간단히 된장찌개나 해 먹으려고 했으니 집에 미리 사 둔 고기가 없었다.

"그러면 다른 할 만한 요리로……."

이현은 냉장고를 뒤적였다.

그러다가 방송국에서 보내온 음식 재료를 발견했다.

연어와 철갑상어의 알 그리고 샴페인!

"KMC미디어에서 보낸 게 있었구나."

연말 선물이라면서 방송국에서 보내 준 음식 재료들이었다.

솔직히 한우 갈비 세트에 사이다 한 상자나 보내 주면 맛있게 먹을 텐데, 무슨 이딴 걸 보내는지 모를 일이었다.

"잘됐어. 알탕에 넣었다가는 맛 이상해질지도 모르니 이참에 먹어 치워 버려야지!"

이현은 연어와 캐비어를 손질해서 샴페인과 함께 꺼내 왔다.

오전에 여동생에게 만들어 주고 남은 쿠키도 조금 가져왔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

연어 샐러드와 캐비어, 쿠키, 샴페인의 성대한 만찬을 만들어 놓고 텔레비전을 켰다.

막 나오는 프로그램은 크리스마스에는 반드시 봐야 한다는 '나 홀로 무인도에' 였다.

크리스마스에 무인도에 갇힌 초등학생 둘이 겪는 모험 영화!

공룡에 쫓겨 다니고 악당까지 퇴치한 후에 보물을 발견하고 나서, 초등학생들은 서로 욕심을 부리다가 싸우게 된다.

둘이 최후의 승부를 겨루려고 할 때 연락을 받고 무인도에 엄마가 왔다.

말썽 그만 피우라고 엄청 야단맞고 집에 가서 공부를 하는 스토리!

1편이 워낙에 대대적인 인기를 끌어서 후속작으로 '나 홀로 던전에' 도 촬영 중이라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서윤과 단둘이 밥을 먹으며 텔레비전에서 틀어 주는 영화를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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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정득수 회장과 만났다.

이현과 서윤이 데이트를 하고, 밥도 먹으면서 함께 저녁 시간은 보내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정득수 회장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기회가 될 때마다 마주치게 했는데 진전이 없다고 하는구려."

H그룹의 장남.

남자답고 씩씩하고, 연애 경험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해서 끌리게 만들려고 했는데 서윤의 반응이 없었다.

"도무지 알 수가 없군. 그러면 그 이현이라는 청년을 떼어내기 위해서 도대체 어떤 남자를 소개시켜 줘야 하겠소?"

차은희는 정득수 회장의 궁금중을 풀어 줄 때라고 여겼다.

"따듯한 사람이어야 하죠."

"따듯하다?"

"서윤의 얼어 있던 마음을 풀어 주었던 건 따뜻함이거든요. 이현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 소개를 해 주려면 그런 사람을 해 줘야 될 거예요. 찾으려고 해도 쉽지는 않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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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과 서윤 그리고 저녁에 집에 들어온 이혜연은 거실에서 판을 벌였다.

밥도 먹고, 영화도 보았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사람 3명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고스톱!

'지금 광이 두 장이 내 손에 들어 있고, 벌써 두 장을 먹었으니까……. 1명은 광박을 씌울 수 있겠군. 그러면 무조건 쓰리 고!'

이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여러 가지 경우의수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놓았고, 패를 먹을 때의 우선순위도 완벽하게 챙겨 놨다.

'쓰리 고다!'

이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 외쳤다.

"뭐, 못 먹어도 이럴 때는 고를 해줘야 재미가 있겠지? 고!"

결국 이현이 판을 쓸어버렸다.

현찰이 오가고 있었기에 집중력은 로열 로드에서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돈을 딸 때마다 굉장히 행복해하는 이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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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레이와 헤르메스 길드의 전력은 하벤 왕국 장악 이후로 급상승했다.

다른 길드를 흡수하고, 하벤 왕국의 유저들을 받아들이면서 외형적인 성장을 크게 이루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소속이 아니면 이 사냥터에서 떠나라!"

"길드원 소속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는 교역 세금을 35% 추가한다."

"던전에서 5인 이상의 파티 사냥 금지."

각종 규제 조치들을 만들어 내며 일반 유저들의 고혈을 쥐어짰다.

위드가 보았다면 겸손하게 한 수 배움을 청할 정도의 착취!

헤르메스 길드에 대한 지탄의 소리가 드높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주요 영주들과 귀족들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일부 유저들이 소란을 일으키더라도 무력으로 금방 진압이 가능했다.

하벤 왕국 전체에 헤르메스 길드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억울하면 하벤 왕국을 떠나라. 하지만 뜨내기들은 어떤 왕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베르사 대륙 최대의 길드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이권은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벤 왕국을 경영하면서 무료로 봉사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하벤 왕국의 주민들에게도 높은 세율을 적용했다.

헤르메스 길드에 쌓여 가는 막대한 부!

대장간에서는 병장기를 만들고, 징병으로 군대를 몇 배나 양성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현재 전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중앙 대륙이 엠비뉴 교단으로 혼란스러울 때, 헤르메스 길드는 대제국을 이루기 윈한 전쟁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폴론과 기사단, 마법병단, 레인저들이 모조리 패배!

수뇌부끼리의 회의가 열렸다.

"위드에 대하여 본격적인 반격에 나서야 됩니다. 모라타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립시다."

"개미 새끼 1마리 남겨 놓지 않도록, 그곳의 주민이라면 몰살시켜야죠. 조각품? 박삭을 내서 가루로 만들면 됩니다. 쓸 만한 게 있다면 여기로 가져와도 좋고요."

"척살령을 내려서 모두 죽입시다."

수뇌부 회의에서는 랭커들의 격앙된 의견들이 봇물을 이뤘다.

위드가 개인으로서 명성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결코 바드레이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지 않았다.

강한 자들끼리의 경쟁이 치열한 중앙 대륙에서도 무신으로 불리는 바드레이가 그런 자와 비교되는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겼다.

게다가 헤르메스 길드의 패배는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

결국 바드레이가 직접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상, 길드장인 라페이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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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길드의 홈페이지.

하루 방문자 숫자만 엄청난 그곳에 새로운 공지 사항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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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척살령 296호
+ 조각사 위드를 헤르메스 길드의 최우선 척살 대상으로 정함.
+ 위드에게 협력하는 자들 모두가 헤르메스 길드의 목표가 됨.
+ 위드가 하벤 왕국이나 중앙 대륙의 가까운 곳에 있을 때 제보한 사람에게는 13만 골드를 수여함.
+ 또한 어느 곳에서든 위드를 죽인 사람에게는 40만 골드를 현상금으로 지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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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길드의 특별 공지가 가져온 위력이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위드의 모험을 조금씩 방해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선전포고를 했다.

이 척살령이 취소되는 경우는 대상자가 더 이상 죽일 가치도 없어졌을 때와 헤르메스 길드에 굴복하는 때 뿐이었다.

+ 앞으로 헤르메스 길드와 위드의 전면전이 벌어지는 건가요?
+ 세력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데 전면전이 벌어질 수나 있을까요? 북부의 도시 하나와 하벤 왕국의 싸움이라니.
+ 위드는 어떤 불리한 상황도 극복해 내는 마법을 가지고 있죠.
+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군대를 움직이려고 했으면 척살령을 내리지도 않았겠죠. 위드가 인정할 만한 상대라는 증거나 다름없네요.
+ 그보다는, 위드가 암살단에도 무사할 수 있을까요?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척살령에 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암살단을 운영했다.

척살령을 받은 사람이 나타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암살단이 움직여서 목숨을 빼앗는 방식!

헤르메스 길드의 척살령에 오르면 중앙 대륙 어느 곳에서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할 정도였다.

어쌔신들은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적에게 가깝게 다가갈수 있다.

어지간한 적 길드의 인물조차도 어쌔신 3~4명이 함정을 파고 습격하면 살아남이 못했다.



10. 늙은 시녀의 의뢰


유니콘 사의 시스템부에 있는 과학자들은 로열 로드의 상황을 확인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세력이 참 거대하군."

모니터에 보이는 헤르메스 길드의 숨겨진 군대는 칼라모르 왕국의 전력보다도 훨씬 위였다.

"인간들의 성장이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어."

과학자들은 중앙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보았다.

베르사 대륙의 지도가 영상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각 성들과 마을들이 표시되어 있었으며, 확대하면 몬스터 무리의 이동 현황까지 보인다.

대륙 전체를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인공지능 시스템을 통하면 퀘스트의 발생이나 유저들 중에서 업적이 가장 높은 사람도 찾아낼 수가 있다.

물론 과학자들은 간섭은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다.

로열 로드의 세계를 통일한 로열 로드의 황제!

가상현실에서 모든 종족을 지배하는 절대자가 되기 위한 싸움이 은연중에 벌어지고 있다.

지금도 성과 도시를 차지하고 있으면 엄청난 부를 벌어들일 수 있지만, 황제가 되고 나면 권력과 수입이 천문학적인 수준이 된다.

이를 위하여 많은 유저들이 레벨을 올리고, 세력을 형성했다.

뛰어난 자들이 있었고, 또한 좌절도 무수히 겪게 된다.

로열 로드라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대형 스크린에 검붉게 반짝이는 점들이 지난달에 비해서 훨씬 많이 증가했다.

"엠비뉴 교단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니야?"

중앙 대륙, 남부, 동부, 서부를 가리지 않고 엠비뉴 교단을 상징하는 검붉은 점들이 확산되고 있다.

유저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주민들이나 귀족, 왕 등을 포섭하면서 힘을 키워 나갔다.

특히 각 길드들이 차지한 중앙 대륙이 전쟁으로 혼란에 휩싸이면서 엠비뉴 교단은 더 빠르게 퍼졌다.

"사람들이 엠비뉴 교단과 싸우기 보다는 공성전을 통한 땅따먹기나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지금 멈추게 하지 않으면 정말 곤란할 텐데……."

엠비뉴 교단은 역사적으로 대륙을 위험에 빠뜨리는 악의 무리다.

길드를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는 엠비뉴 교단과 싸우기보다는 근처의 만만한 성과 도시를 노리는 편을 택했다.

패권 동맹이라는 연합체의 경우에는 더욱 경쟁하듯 세력 확장을 하면서 무관심했다.

덕분에 엠비뉴 교단은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었으며, 비밀리에 마물들을 양성하였다.

과학자들이 보기에는 이대로라면 전 대륙이 엠비뉴 교단에 뒤덮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이것도 인간들의 선택이니까."

"만의 하나 대륙이 엠비뉴 교단에 장악된다 해도 인간들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로열 로드의 운영 방침이긴 하지."

암흑의 대륙!

다른 게임이었다면 적극적으로 엠비뉴 교단을 말리고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거나 했겠지만, 유니콘 사에서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

인간들이 스스로 알아낸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암흑의 대륙이 되면 살아가기는 훨씬 힘들어지겠지만, 엠비뉴 교단의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싸우는 것도 로열 로드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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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 대륙을 만들어 낸 유병준도 인공지능 시스템을 통해 로열 로드를 살펴보고 있었다.

"결국 엠비뉴 교단 아래 모든 것들이 종식되겠군."

인간들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외면하는 동안 엠비뉴 교단은 성장했다.

그리고 점점 커져 가고 있으며, 더 크게 세상에 나타나서 혼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끝나더라도 어쩔 수 없겠지."

유병준이 특별히 지켜보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모험가, 발굴가, 전사, 기사, 마법사, 성기사, 사제 그리고 조각사!

각자 따로따로 활동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권력이나 돈에 대한 욕심을 갖는 것은 모두가 다 똑같았다.

솔직히 유병준은 위드라는 캐릭터가 활동하는 것을 자주 지켜보았다.

"이놈을 달라."

처음부터 끝까지 돈이다.

인새의 제1의 가치관에 돈을 놓고, 절대 변하지 않을 인간!

남부럽지 않은 떠들썩한 모험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고 또한 칭송을 받고 있기도 했다.

"차라리 다행이겠지."

유병준은 이현을 만났을 때 그가 200원을 주었던 사실에 대해 약간은 기분 나쁜 감정을 간직했다.

결국 100원이 모자라서 코코아를 마시지 못했다.

"계속 퀘스트를 하고, 시기하는 사람들도 인하여 방해를 받고… 그러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테니."

위드의 능력에 대해서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시스템을 통해 초보 시절부터 쭉 살펴봤는데, 언제나 조각품을 만들거나 사냥을 하고 있다.

그런 끈기로 많은 걸작, 명작, 대작의 조각품을 만들었다.

대륙을 떠돌며 조각술의 비기 5개를 다 모은 것도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

"조각술 최후의 비기 그리고 조각술 마스터 자하브를 만나지 않으니……. 크크크. 사람들이 띄워 주는 칭찬에 빠져서 살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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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로열 로드에 다시 접속했다.

어둠이 깊이 내린 바르고 성채!

그는 기울어진 중앙 탑에 앉아서 고독을 되새겼다.

"헤르메스 길드의 척살령이라……. 이제 나를 완전히 죽이기로 작정한 것인가?"

정보에 민감한 위드가 모를 수가 없었다.

척살령은 헤르메스 길드의 자존심이라서, 그 명단에 오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인다.

상인들과 정기적인 무역과 관련된 거래를 하거나 다른 유저들에게 퀘스트 공유를 받을 수도 없다.

하벤 왕국은 물론이고 중앙 대륙에서는 활동하기가 어렵다.

헤르메스 길드에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사방에 널려 있고, 현상금까지 걸려 있는 마당이다.

지금까지는 위드를 보고도 특별히 알은척하지 않고 지나갔지만, 앞으로는 모든 소식들이 헤르메스 길드와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이제부터 퀘스트를 하기는 어려워지겠군."

위드가 어느 곳에서 퀘스트를 한다는 소문이 돌기만 하면 암살자와 현상금 사냥꾼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것이다.

"원래 의뢰는 장단점이 있긴 했지."

어려운 의뢰를 받아들여서 고생도 많이 했다.

고레벨로 갈수록 더 빨리 레벨을 올리기 위해 거의 사냥에만 전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위드는 의뢰를 해결하면서 남들이 갖지 못한 아이템과 보물들을 획득하고, 방송국을 통해서 돈도 벌었다.

명성과, 영지인 모라타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천공의 도시에 갔던 사건, 프레야 교단의 성물을 찾아 주던 의뢰, 오데인 오새 공성전 참여, 피라미드 제작, 절망의 평원에서 오크 카리취로 활약했던일.

여러 모험에 대한 기억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위드가 그 혼자만 들을 수 있는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사람들의 습격을 받다 보면 퀘스트와 사냥을 제대로 못하고… 남들보다 뒤처지게 되겠지. 다크 게이머로서 돈을 못 벌게 되면 결국 다른 직업을 구해 봐야 될 테고."

현재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터무니없는 금액을 받으면서 공장에 취직하는 거야. 하루 17시간씩 일하면서 몸이 축나고… 공장에서 유해한 가스등에 비밀리에 노출되어 병에 걸리게 되겠지. 치료를 받으면서도 퇴사당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일을 하고, 아침에는 우유와 신문도 배달을 해야지. 그런다 어느 순간 땅에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벌써 우울한 회색빛 미래를 그리고 있는 위드!

"그래도 아직은 건강한 편이니까 아파도 다시 일어나서 활동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병 때문에 모을 돈을 계속 까먹을 거야. 회사를 15년 정도 다니다가 쥐꼬리만큼 적은 퇴직금을 받고 갑자기 쫓겨나겠지. 일용직이나 공공 근로 일자리라도 찾아다니다 보면 나중에는 결혼도 못 하고 노인이 되어 있을 거야. 우리나라의 연금 재정은 그때쯤 파탄이 났을 텐데, 온몸이 아프고 병들어서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라면에 계란이라도 넣어 차린 제사라도 지내 줄 사람이 있을까?"

헤르메스 길드의 척살령으로 이끌어 낸 완벽하게 절망적인 미래!

위드는 그래도 혼자 희망을 찾아보려고 했다.

"정말 안 좋은 경우에는 폐지도 수집할 수 있고, 고철도 괜찮지. 부양해 줄 가족이 없으면 최저생계비라도 지원받을 수 있을 테고, 위기의 순간에는 신장이라도 하나 떼어 팔면……."

아무튼 앞으로는 정상적인 퀘스트나, 북부에서 그것도 모라타나 바르고 성채 주변을 벗어나서 사냥을 하는 건 굉장히 위험했다.

바다를 건너가야 하는 지골라스에서도 만만치 않은 방해를 받았고, 불사의 군단 퀘스트를 하면서도 죽음을 겪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영향권이 그토록 넓다는 증거였다.

갑자기 대규모 군대가 나타나거나 한다면 항상 검치들과 동료들과 다닌다고 하더라도 감당하기가 어렵다.

"이제부터는 정말 조심해야겠군. 앞으로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퀘스트들은 모두 진행할 수 없겠지."

알려진 퀘스트, 혹은 지난번이나 이번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의뢰들은 위험해서 할 수가 없다.

'사냥이나 커다란 퀘스트에만 의존하는 건 조각사로서 제대로 된 성장법이 아니기는 한데…….'

잡캐라고 해도 주업은 조각사.

위드에게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정말 오래전부터 묵혀 왔던 기억이었다.

"퀘스트 정보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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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하브의 유지를 이어라

+ 자하브는 그날 죽지 않았다.
+ 자신의 조각술을 시험하기 위해 멀고 먼 대륙으로 떠났다.
+ 조각술을 완성한 다음 자하브를 찾아, 그에게 노래를 배워 와서 늙은 시녀에게 들려주도록 하라.
+ 자하브는 마지막으로 그라페스 지역으로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따.

난이도 : A
퀘스트 제한: 늙은 시녀가 사망하기 전까지 완수해야 함. 취소 불가능.
+------------------------------------------------------

자하브를 찾아가는 퀘스트!

로자임 왕국의 시녀와 관련된 퀘스트였는데, 그때는 레벨도 낮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진행하지 않았다.

조각술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던 시기라는 점도 큰 이유였다

나중에는 가끔씩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그 성에 대한 정보 게시판을 통해 늙은 시녀가 죽지 않았는지만 확인하면서 미루어 두었다.

'오래전에 받았던 시녀의 퀘스트. 자하브를 만나서 노래를 배워 오고 조각술 최후의 비기와 관련된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조각술은 고급 8레벨에 머물러 있다.

마스터까지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조각술 마스터 그리고 조각술 최후의 스킬!"

헤르메스 길드가 건재한 이상 어쩌면 평생 쫓겨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꼭 해야 하는 의뢰인데…….'

조각술을 완성하기 위한 길!

사실 불사의 군단과 싸웠떤 것도 모라타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컸다.

위드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정말 끝까지 나를 공격하고 방해한다면. 그리고 정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엎드려서 빌어야 할지 무릎부터 꿇어야 할지,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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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바르고 성채의 언데드와의 싸움을 재개했다.

바르칸이 소멸되고 난 이후 불사의 군단 언데드는 더욱 약화되었다.

엘프, 바바리안, 드워프 연합군과 인간들이 협력해서 모두 몰아낼 수 있었다.

최후의 언데드까지 바르고 성채에서 사라졌을 때, 위드와 유저들의 눈앞에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개구리처럼 녹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는 하실리스가 언데드를 이끌고 유령선의 전함으로 이동했다.

"바르칸 데모프 님이 사라지셨으니 이제 나는 바다로 돌아가겠다."

안개를 헤치면서 위풍당당하게 사라지는 유령선들.

바르칸의 부하 하실리스는 휘하의 언데드들과 함께 바다의 유령 제독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불운한 사람들은 하실리스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고, 바다의 전설과 관련된 어떤 모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동영상에서는 하실리스가 바다가 집어삼킨 왕국을 찾으러 떠난다며 단서도 주었지만, 위드는 어제 먹은 보리 빵만캄의 관심도 없었다.

"이젠 대충 보기만 해도 느낌이 오는군."

퀘스트에 휩쓸렸다가는 죽을 고생을 하며 바다를 헤매고, 폭풍과 암초를 맞이해야 될 것 같은 느낌!

"정말 재수 없는 누군가가 저 퀘스트를 하게 되겠지."

위드는 그것으로 하실리스에 대해서는 관심을 버렸다.

당장 바르고 성채에는 엘프와 드워프, 바바리안 연합군이 방문해 있는 상태였다.

성기사와 사제, 네크로맨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유저들은 벌써 발 빠르게 그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척살령을 받게 된 위드는 걱정하는 동료들과, 사실은 엘프들에게 말을 걸기가 민망한 검치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썩 꺼져라. 추잡한 언데드나 소환하는 네크로맨서 주제에 어디서 말을 거느냐!"

"흙냄새와 자연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군요. 저는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가지고 있는 갑옷만도 못한 인간이군."

어떤 사람이 말을 거느냐에 따라서 바바리안이나 엘프, 드워프의 대응도 달라졌다.

언데드와 싸울 때에는 연합을 이루었지만, 다른 종족끼리는 여러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친해지기 어렵다.

명성, 직업, 레벨, 스킬, 스탯, 장비, 과거 진행했던 퀘스트까지, 많은 변수들에 좌우되는 것이다.

인간들은 항상 사제들에게 호의적이었지만 다른 신을 믿는 드워프와 바바리안, 엘프들은 귀찮아하는 편이었다.

"크흠, 엘프들이 참 예쁘구나."

검백구십구치가 와서 위드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키도 작고 어두운 피부를 가진 다크 엘프와는 다르게 금빛 머릿결을 가진 늘씬한 몸매의 우드 엘프들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활을 하나씩 어깨에 메고 있었으며, 갑옷을 입지 않은 가벼운 복장이었다.

누구와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 대응도 달라지지만, 동료에게는 퀘스트 공유나 비슷한 호감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위드가 먼저 말을 걸어 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위드는 바로 가까이 있는 엘프에게 다가갔다.

"자연의 축복이 그대에게 함께하기를. 당신이 북부의 자연을 되돌려 놓은 인간이군요."

+ 명성이 34 늘었습니다.

+ 자연과의 친화력이 25 증가합니다.

+ 큰숲 엘프족과의 우호도가 17이 되었습니다.

위드의 명성은 숲에 사는 엘프도 알아볼 정도였다.

바르칸을 사냥하면서 엘프나 드워프, 바바리안 같은 NPC만이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각 방송국들이 전쟁의 신이라면서 경쟁적으로 영웅만들기에 나선 영향이 컸으리라.

"저는 인간이지만, 자연의 풍요로움과 생명력을 존경하는 모험가이기도 합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망설이지 않고 작은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대의 도움에 북부에 있는 많은 엘프들이 고마워하고 있답니다. 인간들의 협력으로, 언데드도 땅으로 되돌릴 수 있었어요."

+ 큰숲 엘프족과의 우호도가 21이 되었습니다.

위드는 입술에 침을 잘 발랐다.

엘프들은 사람을 잘 믿는 순진한 종족이지 않은가!

"모험을 하는 와중에 정말 우현히 페어리들의 여왕이 바르칸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입니다. 베르사 대륙의 정의를 지키려는 책임있는 모험가로서, 어찌 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훌륭한 인간 모험가이시군요. 모든 인간들이 위드 님만 같다면 평화로워질 것 같아요."

바바리안, 드워프 들과도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듣고 정보도 얻었다.

"사냥터? 이미 전사로서도 상당히 유명한 것 같은데 더 강해지고 싶은가? 이 근처에는 강한 전사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곳들이 많지. 그래도 오고트 언덕 뒤쪽으로는 가지 말게. 거기에는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던전이 있어."

"더 싸우고 싶어지는 군요. 몬스터들이 강하다면 없애 버리면 됩니다."

"과연 좋은 마음가짐이군. 그러나 몬스터들을 경계하는 마음을 허술히 하면 안 될 거야. 몬스터들이 이곳으로 자주 쳐들어올 테니 성벽부터 쌓아야겠지."

+ 명성이 21 올랐습니다.

+ 황무지 바바리안들과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숲에서 열리는 과일들요? 무척 달콤하고 맛이 있죠. 엘프들은 많이 먹지 않으니까 과일을 원한다면 필요한 물건과 교한하면 좋겠어요."

"엘프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에 대해 알려 주면 구해 보겠습니다. 엘프들의 숲에서 나오는 과일로 술을… 아니, 어린 아이들이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싶거든요."

교역에 대한 정보도 얻어 냈다.

위드가 상인이 아닌 이상 전문적으로 교역을 하고 돌아다니지는 않지만, 알아 두면 언제고 써먹을 수도 있기에 확실히 기억해 두었다.

"이 성채는 드워프들이 아주 좋아하던 곳이었는데 인간들이 차지하게 되었군. 드워프가 왜 언데드가 살던 장소를 탐내냐고? 자네만 알고 있게. 어디가서 내가 말을 해 주었다고 하면 안 돼. 여기는 오래전부터 굉장히 질 좋은 철광산과 은 광산이 있던 장소였어."

"철광산이나 은 광산이라면 땅을 파서 돈이 나온다는 자원! 바르고 성채의 땅값이 제법 오를… 아니, 드워프들이 필요로 하는 광석이 있으면 캐야겠지요."

+ 굳은땅 드워프 부족과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위드가 대장장이 스킬을 중급 이상으로 익히고 있다고 하니 드워프들을 호갑을 표시하면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제안을 받아들이면 드워프들과 협력해서 검과 갑옷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대장장이 스킬 숙련도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

가식과 선량한 척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위드!

초등학교, 중학교 도덕 시간에 이런 걸 가르쳐 준다면 국가 경쟁력이 선진국을 압도할 것이라 믿었다.

위드가 대화를 나눈 엘프와 드워프, 바바리안들에게는 검치들과 다른 동료들이 다가가 쉽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위드와 같이 온 사람이라는 호의적인 시선 덕분에 훨씬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모험가가 전투력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우대받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엘프들의 대장, 론세르크도 만났다.

다른 유저들에게는 그저 가벼운 인사만 할 뿐 지금까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위드에게는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바르칸을 물리치는 데 중요한 도움을 주신 인간이군요."

"제가 해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그로 인하여 베르사 대륙이 평화로워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요."

"페어리의 여왕 테네이돈 님께서 그분을 도와주신 인간을 만나 보고자 합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론세르크가 제안을 했다.

페어리의 여왕이라면 일족을 거느리는 대단한 신분이다.

위드가 슬쩍 주위를 돌아보니 검치들과 페일, 이리엔 같은 오래된 동료들 그리고 사제와 성기사들도 옆에서 듣고는 흥분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한 종족의, 그것도 쉽게 만나 볼 수 없는 종족의 여왕을 만나게 되니 위드도 기대가 되었다.

사실 바르칸을 사냥했으니 페어리의 여왕도 한번쯤 만나 봐야 할 입장이었다.

"저만 가는 것입니까?"

"페어리 여왕 테네이돈 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초대하셨습니다."

유저들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함성!

"와!"

"정말 페어리의 여왕을 볼 수 있게 된 거야? 믿기지가 않아."

"바르칸과 싸우기를 잘했다."

"위드 님이 우리도 같이 갈 수 있는지 물어봐 주셨어."

바르칸을 사냥하고 나온 보물들만이 아니라 페어리의 여왕에게도 따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위드도 페어리의 여왕의 초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제 가면 됩니까?"

"지금 바로 출발하셔도 됩니다."

"선물은 일단 챙기고 보랬다고…… 아니, 페어리의 여왕님께서 무사하신 것을 눈으로 보고 싶으니 지금 가죠."

#

위드와 검치들, 다른 유저들은 엘프와 드워프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이동했다.

"잘 따라오세요."

숲길을 지나는 내내 나뭇가지와 수풀 뒤에서 구경을 하듯이 쳐다보는 엘프 여성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곳이 다 있었구나."

"엘프들을 진작 만나러 올걸."

검치들은 작게 속삭이면서도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엘프들의 뾰족한 귀는 작은 바람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저 인간들이 우리에게 관심이 있나 봐."

"우리 취향은 아니야."

"무식해 보여."

엘프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건, 전사보다는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레인저나 마법사였다.

종족상으로도 인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에 쌓을 수 있는 친밀도에 한계가 있다.

엘프의 마을이 가까운 곳에 있지만, 허가받은 상인이 아니라면 들어가지 못한다.

숲을 지나서 이제는 산으로 올라갔다.

이곳부터는 드워프들의 영토.

작게 지어진 집들과 화로들이 보이고 망치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는 장소였다.

드워프 마을마다 기술력이나 특기가 다르기에 위드는 그들의 솜씨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일단은 가까운 곳에 있는 던전으로 들어갔다.

------------------------------------------------------+
* 던전, 테네이돈의 휴식처의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혜택 :
+ 명성 890 증가.
+ 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랍률 2배.
+ 첫 번째 사냥에서 해당 몬스터에게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물건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

던전이라고는 해도 작은 페어리들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다닐 뿐이었다.

페어리들을 사냥할 수는 없으니 경험치등의 효과는 무용지물이었다.

"조심해서 따라오세요. 이곳에는 함정이 많아요. 엉뚱한 길고 가게 되면 끝없이 헤매거나 대륙의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도 있어요."

엘프들의 경고에 유저들은 호기심을 누르고 뒤만 졸졸 따라갔다.

페어리들은 지형을 무시하고 공간을 넘나드는 능력을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사막의 한복판이나 몬스터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마굴로 들어가 버리게 될 수도 있다.

묵묵히 엘프들을 따라가서 마침내 도착한 여왕의 쉼터.

커다란 나무의 뿌리였다.

매우 작은 몸집을 가진 페어리의 여왕 테네이돈은 그 뿌리에 걸터앉아서 쉬고 있었다.
─ 어서 오세요, 인간 여러분.
페어리의 여왕 테네이돈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귀를 기울여야 간신히 들렸다.

여왕은 날개 한쪽이 찢겨 있을 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나무의 생명력을 받아서 조금씩 회복하는 모양인데, 겨우 상처의 악화를 막아 주는 정도에 그치는 것 같았다.

"위드라고 합니다."

위드는 정중하게 여왕에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의를 차렸다.

모라타의 영주이며, 귀족인 백작으로서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위드의 지금 명성이라면 못 만날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 저를 도와주신 인간이시군요. 그대의 활약은 페어리들이 전해 주어서 듣고 있었답니다.

+ 페어리의 여왕 테네이돈과 대화를 합니다.
+ 경건한 기품으로 인해서 일부 스탯이 오릅니다.
+ 우아함, 기품, 명예, 예술.

테네이돈은 말을 하면서도 찢어진 날개를 가늘게 떨었다.

많이 아파하는 모습이었다.

위드의 머릿속에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부상이 심한데 사제들이 치료해 줄 수 있을까?'

언데드가 아니라면 믿는 신이 다르거나 종족이 다르다고해도 치유의 힘은 비슷하게 적용된다.

페어리들은 상당히 선한 종족이기 때문에 신성력에 대해서 부작용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에도 영웅이나 용자들과 함께했다는 페어리들의 이야기가 간간이 나왔다.

"부상이 심하신 것 같은데……. 제 동료가 사제이니 치료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테네이돈 님께서는 어떠신지요."

위드가 정중하게 묻자, 테네이돈과 어느새 나타난 페어리들은 무척 반가워했다.

─ 고마워요. 고마워요.
─ 인간의 도움이 있으면 여왕님께서 빨리 나을 수 있을 거예요.
─ 인간의 치료 마법. 금방 나을 뿐만 아니라 따뜻해요.

반딧불처럼 장난스럽게 빛을 내며 다니는 페어리들이 위드를 온통 감쌌다.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가고 어깨에 올라가서 앉았으며, 심지어는 코에 매달리기도 했다.

페어리들은 친한 사람에게 장난을 많이 친다.

불사의 군단과 바르칸을 물리친 데다 치료를 해 주겠다는 말까지 꺼낸 덕에 최고의 친밀도를 얻은 것이다.

─ 저를 도와주실 수 있다면 고맙겠어요.

테네이돈의 허락마저 떨어졌다.

"이리엔 님, 이쪽으로 오세요."

유저들의 뒤쪽,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이리엔은 장난치며 날아다니는 페어리들과 부디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여왕을 치료해 보세요."

"네? 그래도 될까요. 위험하진 않아요?"

"페어리들도 허락한 일이니 별일은 없을 겁니다. 간단한 치료 마법부터 써 보세요."

이리엔은 잠시 심호흡을 하다가 성호를 긋고 나서 신성 마법을 외웠다.

"성령의 힘이여, 여기 고통 받는 이를 구원해 주세요. 치료의 손길!"

단순하지만 빠르게 생명력을 채워 줄 수 있는 신성 마법이었다.

+ 페어리 여왕 테네이돈의 생명력이 735만큼 회복됩니다.
+ 상처 부위가 조금 진정됩니다.

이리엔의 신성 마법이 성공했다.

페어리의 여왕을 치료함으로써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도 올랐다.

지금은 날지도 못하는 신세이지만 테네이돈은 역사서에도 나올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했던 페어리라서, 도움을 주면 명성도 같이 늘었다.

"와, 치료 마법이 돼요. 그리고 경험치도 얻었어요!"

이리엔은 테네이돈을 치료할 수 있어서 많이 감격스러워 했다.

"계속 치료해 주세요."

위드의 말에 이리엔은 가지고 있는 모든 마나를 사용하여 테네이돈을 치료했다.

그녀는 순수하게 회복 계열 마법을 익힌 사제였다.

+ 성스러운 행동을 함으로 인해 신상심이 커집니다. 정의로워집니다.
+ 페어리의 여왕을 치료하면서 성직과 관련된 특별한 경험을 얻습니다.

+ 페어리와의 관계가 친근해집니다.
+ 그들이 크게 도움을 준 인간으로 기억합니다.

테네이돈을 치료하며 사제로서는 더없이 소중한 순간을 누리게 되었다.

"위드 님, 제 마나가 다 바닥났어요."

얼마나 심하게 다친 것인지, 이리엔이 마나를 다 쓸 때까지 회복 마법을 퍼부었는데도 테네이돈은 여전히 아파했다.

처음부터 부상이 커 보였는데, 몸집은 작아도 생명력이 엄청나리라.

"다른 사제분들도 치료를 해 주시죠."

위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제들이 치료를 위한 신성 마법을 외웠다.

안 그래도 이리엔이 테네이돈을 치료하는 광경을 보면서 잔뜩 부러워하고 있던 참이었다.

"치료의 손길."

"힐!"

"리커버리."

"라운드 힐!"

"완전한 회복."

치료의 대제전이라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하급 신성 마법에서부터 하루에 세 번밖에 쓸 수 없는 상급 치료 마법들까지 테네이돈을 대상으로 사용되었다.

성기사들도 회복 마법을 외울 수 있었기에 따라서 시전 했다.

+ 테네이돈의 생명력이 43%가 되었습니다.
+ 집중적인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장엄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치료의 빛이 테네이돈에게 집중되었다.

사제들은 마나가 채워지는 대로 쉬지도 않고 신성 마법을 시전하며 좋아했다.

특수한 경험과 신앙심, 스킬 숙련도와, 페어리들에게 공헌도를 얻었다.

"경험치가 전투하던 때보다 훨씬 많이 쌓여요."

"쌓이는 공헌도랑 스킬 숙련도 좀 봐요."

"신앙심도 차곡차곡 오르는데요. 지금까지만 해도 한 단계 높은 계열의 사제로 승급하던 때보다 더 올랐어요."

위드는 배가 아파 왔다.

불사의 군단이나 사제들 그리고 테네이돈의 관계를 보면서 퀘스트에 대하여 떠오르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사의 군단이 다시 활약하는 것을 베르사 대륙의 교단들은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겠지.'

위드도 마찬가지이기는 했다.

바르칸이 힘을 되찾고 모라타를 침공할 낌새가 보이니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가 싸우지 않았다면, 바르칸이 테네이돈의 생명을 흡수하기 전에 전투를 펼치던 엘프와 드워프, 바바리안 연합군의 의해 아마도 불사의 군단에 대한 소식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리라.

그랬더라면 바르칸을 물리치기 위한 퀘스트가 만들어졌을 건 확실했다.

각 교단이나 왕국을 중심으로 하여, 위드처럼 그냥 사냥하는 게 아니라 막대한 보상을 걸고 바르칸과 전투를 했으리라.

그때가 되면 바르칸을 사냥하기란 훨씬 더 어려웠겠지만, 각 왕실을 대표하는 기사들까지 나서서 같이 싸웠을 수도 있다.

바르칸과 불사의 군단을 이기고 나서 엄청난 보상을 받으며 테네이돈을 만난다.

사제들이 그녀를 회복시키면서 다시 큰 역활을 하고 이득을 거둔다는 이야기!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실제로는 위드가 주로 싸웠지만, 바르칸 사냥의 퀘스트에서는 사제와 성기사들이 핵심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도 테네이돈을 치료하면서 그들이 많은 보상을 받고있는 광경을 보며 위드의 배는 쓰라리고 아팠다.

급성 맹장보다 참기 어렵다는, 염장에서 우러나오는 고통!

위드는 붕대를 꺼냈다.

붕대 감기 스킬을 쓰고 싶었지만 참아야 되었다.

페어리의 여왕을 질식시킬 수도 있는 크기였기 때문이다.

사제들이 신성마법을 집중시켰음에도 테네이돈은 완벽하게 정상을 되찾지는 못했다.

몸의 상처들은 많이 나았지만 찢어진 날개만큼은 복구되지 않았다.

─ 고맙습니다, 인간 여러분.

테네이돈의 말이 이제 모두에게 선명하게 전달되었다.

페어리들은 사제들의 몸에도 매달리고, 코를 간질였다.

그들의 여왕이 회복된 것을 보며 장난을 치며 기뻐하고 있었다.

치료에 참여한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앞으로 페어리들의 친구가 되어 많은 혜택을 누릴 수가 있을리라.

위드는 테네이돈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인간들로 인하여 치료가 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여왕 폐하."

사제와 성기사들의 공에 은근히 숟가락을 올리려는 위드였다.

─ 인간들이 보여 준 회의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 테네이돈과 페어리 일족에 대한 공적치가 164 상승하셨습니다.

위드의 입가에 살짝 썪은 미소가 맺히려고 하는데 다른 사제들이 하는 대화가 들렸다.

"공적치가 600이 넘게 올랐네."

"난 800도 넘었어."

위드의 표정은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배 속이 뒤틀리면서 끓어오르려는 고통!

차라리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공적치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까?"

"페어리들은 정령 무기 같은 것도 전해 줄 수 있지 않아?"

"마침 목걸이가 필요한데……."

"이 공적치라면 페어리 친구도 1명 둘 수 있겠다. 페어리와 사냥을 다니면 도움이 많이 된다고 들었어."

위드의 아픈 가슴을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만 같은 소리들!

전투를 하며 생명력을 100 이하까지 낮추며 맷집을 증가 시킬 때가 훨씬 덜 아팠던 것만 같다.

위드느 어쨌든 인간들을 대표해서 테네이돈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왕님의 날개는 낫지 않으시는군요."

─ 제게 걸려 있는 저주 때문이에요. 날개를 고치기 위해서는 붉은 갈대의 숲으로 가서 어떤 물건을 구해 와야 한답니다.

테네이돈의 말을 들으니 퀘스트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위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만큼은 죽어도 하면 안 될 퀘스트 같다.'

바르칸에서 이어져 온 배경이나 테네이돈의 지위, 레벨을 고려한다면 명성이 높은 위드가 퀘스트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불가능할 퀘스트일 가능성이 높았다.

죽을 고생을 해서 성공시킨다면 아무튼 보람이 있겠지만, 그냥 노력만 하다가 죽어 버린다면 그거야말로 헛수고!

─ 인간들이여, 이미 큰 신세를 진 저로서는 감히 하지 어려운 부탁입니다만 여러분이 저를 조금 더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 페어리의 여왕 테네이돈은 호기심에 드래곤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 그리고 드래곤 라투아스의 영역에서 마음껏 놀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쪽 날개에 저주를 받았다.


드래곤의 저주.

라투아스는 감히 그의 위엄을 거스른 페어리의 여왕에게 나타나서 말했다.

"장난을 좋아하는 여왕이여… 나는 침입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내 저주를 풀고 싶다면 가장 슬프게 사라진 드래곤의 유품을 가져오라."


위드의 짐작대로 드래곤과도 연결된 죽음의 퀘스트였다.

띠링!

------------------------------------------------------+
* 드래곤의 저주
+ 페어리의 여왕 테네이돈의 날개를 치료해 주기 위해서는 라투아스의 분노를 해결해야 한다.
+ 페어리들은 그 일을 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붉은 갈대의 숲에 단서가 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난이도 : C
퀘스트 제한 :
+ 믿을 수 있는 자.
+ 페어리를 도운 사람만이 가능.
+------------------------------------------------------

'난이도 C. 하지만 이건 엄청난 연계 퀘스트로 이어질 테고, 나중이 되면 절대 감당을 못할 거야. 이 장면도 인터넷이나 방송국을 통해서 알려지겠지.'

위드는 속으로 계산을 마쳤다.

보통 감당 못할 퀘스트라면 애초에 받지 않는 편이 낫다.

퀘스트를 포기할 때 페어리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바르칸과의 전투에는 언데드 소환 때문에 조각 생명체들도 데려오지 않았다.

애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조각 생명체들이 언데드로 되살아나서 활동하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칫 이 퀘스트를 받아들였다가는 조각 생명체들까지 몰살을 할 판이다.

상식적으로는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될 퀘스트였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퀘스트를 받아들일까?"

"전쟁의 신 위드 님이잖아."

"위드 님의 기록에 또다시 엄청난 퀘스트가 남겠구나."

유저들이 부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내가 이 퀘스트를 받아들이는 것을 나를 노리는 수많은 사람들도 알게 되겠지. 일단 이 퀘스트를 받아 놓는 다면, 방해 안 받고 다른 일을 해치울 수 있을 거야.'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페어리의 여왕님의 날개를 제가 반드시 치유해 드리겠습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우와, 진짜 의뢰를 받아들였어!"

"페어리 여왕의 의뢰를 위드 님이 수행하기로 해다!"

"세상에! 또 게시판에 난리가 나겠는데?"

유저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위드의 속마음은 까맣게 모르는 채였다.

'어차피 시간제한이 없는 의뢰니까 내년 이맘때에나 시도를 해 볼까? 아니야, 그땐 아직 위험할 거야. 돌다리도 미끄러져 굴러떨어질 수 있으니까. 내후년, 아니면 여동생 대학 졸업부터 시킨 다음에…….'



11. 위드의 부름


위드와 유저들은 페어리들의 만찬을 대접받았다.

베르사 대륙과 정령계, 요정계를 넘나드는 페어리들이 그릇에 담아 온 각지의 독특한 음식들이었다.

─ 어서 먹어요.
─ 여왕님을 치료해 줘서 고마워요

검치들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먼저 던전을 떠났다.

맛은 있지만 양이 워낙 적다 보니 입맛만 버릴 것 같아 속 편하게 고기나 구워 먹으려고 나가는 것이다.

위드는 끈질기게 버티며 페어리들의 요리를 먹었다.

+ 미각에 새로운 자극을 받습니다.
+ 요리 스킬이 중급 이상이기 때문에 숙련도를 획득합니다.

쉽게 맛보기 어려운 정령계의 음식, 요정계의 음식은 요리 스킬을 올려 주었다.

"음, 먹을 만하군."

많이 써 본 재료들을 바탕으로 했을 때는 요리법을 스스로 터득하기도 했다.

독특한 향신료와 인간들이 쓰지 않는 풀을 이용해서 만든 요리들은 직접 개발하려면 정말 어렵다.

흔하지 않은 기회였기에 잘 활용하고 있었다.

페어리들의 음식을 먹고 배를 채우려면 최소한 이백쉰 종류의 그릇은 비워야 했다.

'정령들의 음식이라고 내놓으면 바가지를 듬뿍 씌울 수 있겠지.'

화령과 벨로트는 품위를 지키면서 음식들을 골고루 맛봤다.

식사를 위한 드레스로 갈아입고, 먹기에 까다로운 음식을 흘리지도 않으며 우아하게 먹고 마셨다.

+ 페어리의 식사를 통해 기품과 예의가 향상됩니다.

그렇게 식사까지 마치고 나서는 바르고 성채로 돌아왔다.

#

위드는 음산하게 웃었다.

"크흐흐흐흐."

바르칸을 사냥하고 나온 아이템 그리고 보물들을 계산하니 그의 몫으로 무려 68만 골드가 책정되었던 것이다.

물론 보물들을 처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상인들이 바르고 성채로 와서 필요한 만큼 사 가고 현금으로 내놓으면 나누기로 했다.

"부수입도 짭짤하군."

바르고 성채도 그의 영토가 됐다.

현재로써는 부서진 탑과 건물, 돌무더기만 남아 있다.

엄청난 전투가 벌어졌던 만큼, 심각할 정도로 파괴된 상태였다.

"과연 이곳은 어떤 곳일까. 지역 정보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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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고 성채

+ 언데드가 차지했던 성.
+ 인간들이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 과거에는 니플하임 제국의 요새였으며 중요한 관문이었다.
+ 광할한 숲과 험준한 산을 영토로 보유하고 있다.

+ 주민이 존재하지 않음.
+ 전쟁으로 성이 심하게 파손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필요로 함.
+ 강이 오염되어 식수를 구하기 어려움.
+ 몬스터로 인하여 안전하지 못함.

특산품 : 만들어지지 않음.
+------------------------------------------------------

초창기에 다 쓰러지려고 하는 집들만 있던 모라타보다도 훨씬 심각했다.

몬스터 때문에 치안도 문제라니, 차라리 한적한 강의 하류나 언덕이 사정이 나을지도 몰랐다.

보통은 위드처럼 모험으로 국왕이나 귀족, 마을 주민들의 믿음을 얻어서 영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스로 일으켜 세운 마을의 영주가 되는 경우도 간혹 잇었다.

워낙에 넓은 베르사 대륙이다 보니 산이나 강가에 직접 집을 짓고 가축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다가 유랑민을 받아들이면서 마을의 규모를 키우다 보면 영주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큰 요새가 있다는 건, 과거에는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는 뜻. 중요한 거점이라고 볼 수 있지."

바르고 성채는 불사의 군단이 머물렀을 정도로 매우 큰 요새였다.

본 드래곤이 지붕에서 설칠 수 있을 정도의 규모.

덕분에 파괴가 심각하기는 해싿.

"언데드가 묻힌 땅에는… 사제들이 정화를 하고 나면 얼마간의 곡물 정도는 심을 수 있긴 할 거야. 그래도 오염되어 있던 탓에 수확량도 변변치 못할 테고, 최소한 2년 정도는 쓸모가 적겠지."

강물도 폭이 넓고 웅장하게 흘러갔다.

가뭄과는 거리가 멀고, 어류 자원은 괜찮게 있다는 증거였다.

산과 강이 있는 자연 풍경만큼은 모라타 못지않았다.

위드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땅이 생긴 것이니 어지 됐든 이곳도 발전을 시켜야 했다.

모라타를 이미 한번 키워 봤으니 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모라타 지역 정보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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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라타 지역

+ 니플하임 제국에 소속되어 있던 지방.
+ 현재는 모라타 백작 위드의 훌륭한 선정에 힘입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 북부를 대표하는 최고의 도시이며 무역과 예술, 모험의 중심지.
+ 위대한 건축물, 프레야 교단의 북부 대성당과 대도서관이 완성되었다.

군사력 : 259 경제력 : 2,969
문화 : 3,129 기술력 : 843
종교 영향력 : 87
지역 정치 : 69 인근 지역에 대한 영향력 : 74%
구舊니플하임 제국의 영향력 : 16.5%
(영향력은 군사, 경제, 문화, 기술, 종교, 인구, 의뢰 등의 분야와 관련이 깊음)

도시 발전도 : 269
위생 : 39 치안 : 88%

+ 최근 불사의 군단 언데드의 침입을 큰 피해 없이 격퇴하였다.
+ 인구 유입이 계속되고 있지만 미리 정비되어 있는 도로와 충분한 주택 덕에 주민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함.
+ 무역과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부유층이 생성되고 있다.
+ 모라타의 지역 명성이 늘어나서 세 가지의 특산품이 추가됨. 은세공품, 야자 술, 고급 직물.
+ 대성당과 대도서관은 주민들의 자랑거리.
+ 근처 지역들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 올해의 농사는 대풍년으로 예상됨.
+ 불온한 움직임은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
+ 몬스터와 싸울 수 있을 정도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 군사비 지출이 조금 많아지면서 병사들과 기사들이 높은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 훌륭한 조각품들이 주민의 삶에 행복을 주고 있음.
+ 그림 작품들도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 예술가들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풍부한 지원은 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 모라타 예술 회관은 북부 전체를 통틀어서, 신규 예술가들이 주력이 되어 만든 작품들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 대도서관으로 인해 학문과 마법, 모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짐.
+ 교육과 높은 문화 수준 덕에 현명하고 똑똑한 아이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다. 10개를 가르치면 그달 5개는 잊어버릴 정도!
+ 재봉 산업의 기술이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재봉사들은 가죽과 천, 풍부한 산물을 이용하여 옷을 만들고 있다.
+ 대장장이들이 철을 다루는 기술은 뜨겁게 가열하여 망치로 때리는 수준. 솜씨가 뛰어난 장인들이 나타나서 기술 발전을 이끌고 있다.
+ 지역 신앙으로는 대부분 프레야를 믿음.
+ 황무지를 개간해서 만든 비옥한 곡창지대를 보유하고 있다.
+ 농산물의 작황이 대풍년임.
+ 투철한 신앙심과 확고한 치안으로 범죄가 많이 감소했다.

특산품 : 예술품, 가죽과 천, 토마토, 포도, 쌀, 소, 우유, 치즈, 와인, 은세공품, 야자 술, 고급 직물.
영토전체인구 : 1,175,704.
매달 세금 수입 : 953,290골드.
마을 운영비 지출내역 :
+ 군사력 5%
+ 경제 발전 36%
+ 문화 투자 비용 14%
+ 의뢰 및 몬스터 토벌 16%
+ 마을 보수 25%
+ 프레야 교단에 헌금 4%
+------------------------------------------------------

+ 모라타 주민들에 의하여 '북부 최고의 통치자' 의 호칭을 얻으셨습니다.
+ 주민들의 충성도 하락을 감소시켜 줍니다.
+ 인구 유입을 증가시킵니다.

모라타는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거대도시였다.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해도 날이 갈수록 확장되고 발전하고 있다.

북부의 모험가들은 발굴한 물품이 예술품일 경우에는 일단 예술 회관에 전시를 한다.

종교적인 물품은 대성당에 바치고, 그 외의 다른 물건들은 대도서관에 진열했다.

모험가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통해서 북부에는 탐험 열풍이 불었다.

위대한 건축물의 효과도 컸고, 모라타에서 시작한 유저들의 입소문을 타고 매일 사람들이 늘어난다.

주민들과 유저들의 유입으로 인해서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상업적인 경쟁력도 올라가서 재정도 부강해졌다.

하늘에서 보면 넓게 펼쳐진 건물들과 여신상, 빛의 탑, 위대한 건축물들로 인하여 실로 장관이었다.

빛의 탑과 흑색 거성 그리고 허름한 마을 건물들만 서 있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할 변화였다.

#

모라타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바르고 성채로 몰려왔다.

"여긴 내 자리야."

"무슨 소리. 내가 먼저 금 그어 놓고 앉았어!"

위드와 유저들은 불사의 군단과 전투를 펼침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금액의 전리품과 잡템을 얻었다.

본 드래곤이나 벤들러 기사단에서 나온 물품들은 쉽게 구하지도 못하는 것들.

그 물건들을 거래하기 위해서 모라타에서 상인들이 몰려 온 것이다.

"잡화 전문 취급 다팔아입니다. 언제라도 다팔아를 친구등록해 주시고 편하게 이용해 주세요."

"무기점 코멧이 왔어요. 간단한 수리에서부터 감정, 매입이나 매각합니다. 오세요. 가격 잘 쳐 드릴게요."

"식재료 전문 하프트. 옆집 논밭에서 막 캐 온 신선하 식재료를 중간 마진을 최소화하여 넘겨 드립니다. 맛있는 밥과 반찬을 해 드세요!"

바르고 성채에 온 상인들 100여 명은 자리를 펴고 장사를 했다.

"수레를 끌고 이곳까지 온 거야?"

"여긴 사람이 기껏해야 1,000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상인들만 너무 많네."

여러모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은 상인들이 안쓰러웠다.

고객이 몇 안 되는 장소에서 장사를 하려니 경쟁이 얼마나 치열하겠는가.

모라타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던 상인들까지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딱 그날 오후.

바르고 성채로 유저들이 밀려들었다!

"도착했다!"

"길이 뚫려 있지 않으니 완전 오기 힘드네. 그래도 여기가 사냥터가 그렇게 많다던데."

"엘프들도 만날 수 있다면서. 빨리빨리 얘기부터 해 보자."

"와, 완전 폐허구나! 멋지게 집 짓고 살아야지."

모라타에서 성장한 유저들이 위드가 새로운 땅을 얻었다는 정보를 접하자마자 바르고 성채로 몰려든 것이다.

위드가 영주이기 때문에 바르고 성채는 향후 엄청나게 발전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미리 와서 선점을 한다면 그 혜택은 엄청날 것이다.

바르고 성채와 가까운 위치에 벽돌집이라도 짓고 살면 그게 친구들이나 다른 동료들에게는 굉장한 자랑거리가 된다.

개척해야 할 땅도 많고, 미지의 사냥터라면 널려 있진 않은가.

"땅부터 보러 가야지."

농부들은 강 근처의 기름진 범람원이나 평원을 뒤적였다.

모험가들은 엘프와 바바리안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근처에 가 볼 만한 던전을 찾았다.

사냥터에 갈 성기사와 사제들은 많았고, 검치들은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싸움 잘하고 믿음직하며 사제들을 철저히 보호해 주는 검치들은, 누구나가 파티에 꼭 끼워서 사냥을 가고 싶어 했다.

지금은 잔해만 널려 있는 돌로 쌓은 성채에 금세 사람들이 북적였다.

상인들은 이런 낌새를 눈치채고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다.

이윽고 밤이 늦기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이주민들이 도착했다.

바르고 성채에는 모라타처럼 마법 등불 등이 없었기에 모닥불과 횃불을 밝혔다.

여관이나 식당도 없으니 불과 가까운 돌판에 누워서 잠시 잠을 청하기도 했다.

별빛을 보며 고기를 구워 먹는 낭만!

"크흠, 좋은 냄새를 풍기는 맥주로군!"

드워프들이 맥주 냄새에 끌려서 다가왔다.

"앉으세요. 한잔 드릴까요?"

"좋지."

드워프들과 술자리를 하면서 친해졌다.

여왕 테네이돈이 회복되면서, 페어리드의 활동도 잦아졌다.

모라타나 다른 장소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볼 수 있었지만 이곳 바르고 성채에는 신비한 은빛 날개를 펼치고 날아다니는 페어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장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떠드는 소리를 잠시 멈추면 페어리들의 말이 들렸다.

─ 고기다, 고기.
─ 냄새가 황홀해.
─ 먹어. 먹어. 와구와구.

사람들이 들고 있는 갈비의 살점을 발라 먹는 페어리들이었다.

검이십칠치는 여사제와 친해져서 돌담 길을 걸으며 데이트를 했다.

"여기 분위기가 참 좋죠?"

"무서워요. 무너진 벽돌하며……. 금방이라도 몬스터가 나올 것 같아요."

"그러면 제가 꼭 지켜 드리겠습니다."

검이십칠치는 믿음직스러운 남자의 매력을 뽐내었다.

그들을 따라다니는 페어리들도 있었다.

마치 바닷가에서 갈매기들이 따라다니는 것처럼 졸졸 따라왔다.

여사제가 배낭에서 먹을 것을 꺼내 주면 공중에서 낚아채서 먹는 묘기까지!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나자 바르고 성채에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가끔 페어리들이 은혜를 갚는다면서, 대륙의 다른 지역에 있는 과수원이나 논밭을 통째로 옮겨 오기도 했다.

"성기사 2명, 사제 3명이 파티원 구합니다. 목적지는 던전으로 잡고 있습니다."

"가까운 던전 사냥 가실 분! 레벨은 310대 이상인 분들로, 아직 위험하니 가능한 많이 모아서 갈게요."

"혹시 낚시꾼 계신가요? 낚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제대로 낚아 봅시다."

+ 바르고 성채의 주민이 2,000명이 넘었습니다.

하룻밤 사이 모라타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로 인하여 늘어난 인구였다.

+ 상업 활동에 따라 세금이 발생합니다.
+ 세금은 성채의 보수에 전부 투입됩니다.
+ 영주의 집무실이 마련되면 세금의 분배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주한 주민들을 바탕으로 성채의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워낙에 방대한 성채라서 수리해야 할 부분도 많았다.

무너진 탑이나 건축물 들은 처음부터 다시 지어야 할 판이다.

그렇지만 계속 이주해 오는 주민들과 새로운 모험을 위해 찾아오는 유저들로 인해, 성채에는 생기가 돌았다.

바르고 성채에서는 인간 상인들만이 물품을 사고팔지 않았다.

"나무 열매와 약초, 씨앗 팔아요."

여성 엘프들이 와서 장사를 했다.

그들은 숲에서 가져온 물품들을 팔고 필요한 것들을 구입해 갔다.

드워프들도 와서 질 좋은 병장기를 판매하고, 맥주를 수레에 가득 실어 갔다.

바바리안들은 필요로 하는 물품들이 많았다.

그들은 잡템이나 가죽들을 가져왔다.

북부 대륙의 중요한 관문이었던 바르고 성채가 조금씩이나마 예전 모습을 되찾고 있다는 증거였다.

위드는 바라고 있었다.

"엘프의 과일로 술을 만들고, 바바리안에게는 사냥용품을 바가지 씌우고, 드워프는 인부로 부려 먹으면서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고 집을 짓는다면……."

이거야말로 언제나 꿈꾸던 최고의 도시!

#

"크롸롸롸롸롸."

모라타 근처 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던 빙룡!

그가 포효할 때마다 몬스터들이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거대한 몹집으로 산 주위를 날아다닐 때마다 몬스터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이놈들은 내 먹이다!"

와이번들도 숲을 자기 영역으로 하며 사냥에 힘썼다.

와이번들은 단체 사냥을 통해서 그들보다 훨씬 강한 몬스터와 싸우는 법도 익혔다.

만약 몬스터가 완강하게 저항하면 다음 날, 혹은 그 다음날에도 습격을 해서 결국에는 사냥에 성공하고 마는 집요함!

"더 먼 곳으로 가자."

"여기보다 더?"

"큰 놈을 잡고 싶다."

불의 거인과 피닉스는 바다위를 날아다니면서 대형 몬스터들을 위주로 사냥했다.

그에 비하면 황금새와 은새, 금인이, 누렁이는 조용히 움직였다.

"이쪽이다. 새들이 말해 줬다."

새들이 알려 준 사냥터, 던전으로 들어가서 함께 사냥을 했다.

화기애애하고 친근한 시간!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받은 조각 생명체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사냥을 했다.

불행히 몬스터들의 습격에 의해 죽은 생명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훌륭하게 잘 적응하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그때 그들에게 한꺼번에 귓속말이 들려왔다

> 잘 지내고 있지?

그들에게 생명을 준 존재!

빙룡은 급하게 대꾸했다.

> 너무 행복… 아니, 잘 지내고 있다.

와이번들도 반가운 주인에게 말했다.

> 등 따듯하고 배부르다.
> 오늘 맛있는 짐승 먹었다.
> 와삼이가 더 많이 먹었다.

고자질이라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와이번들이었다.

은새와 황금새, 금인이는 도도하게 잘 지낸다는 대꾸만했다.

누렁이는 친근하게 대답했다.

> 주인, 너무 보고 싶다.

위드도 순하고 늠름한 누렁이에 대한 감정이 남다른 편이었다.

> 나도 그래.
>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음머어어어.
> 이제 같이할 수 있어. 너희 모두 이리 와.
조각 생명체들이 함께 활약할 시간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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