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 26

3학년2반 | 2022.01.24 07:45:33 댓글: 0 조회: 463 추천: 0
분류인터넷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4744
달빛조각사 26권


차례

- 왕성의 지하도 7
- 세라보그 성의 피난민 41
- 위드의 선택 65
- 대홍수와 스핑크스 89
- 루의 교단 119
- 태초의 조각술 155
- 내 종족의 역사 181
- 라체부르그의 위치 209
- 최초의 도시 발견 229
- 오크 종족의 영광 255
- 오크들의 역사 281


[ 왕성의 지하도 ]

아이스 트롤이 된 위드는 던전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몬스터는 몽땅 때려잡으면 됩니다."

던전에 몬스터가 없으면 허전하다.
아이스 트롤로 변신한 이유도,
복잡하게 머리 굴릴 시간에 두들겨 패서 때려잡으려는 생각때문이었다.
엠비뉴 교단이 세라보그 성을 침략했으니 최대한 많은 피난민들을 데리고 안전하게 도망쳐야 하는 퀘스트!
속도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반딧불처럼 빛나는 페어리들이 위드를 따라오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 멋있다. 멋있다.
- 이상형이야. 시집가고 싶어.

위드는 혹시나 몰라서 재봉 스킬로 미리 만들어 둔 커다란 가죽 갑옷을 지금 꺼내 착용하고 있었다.
레벨 제한이나 힘 스탯만 놓고 보자면 철 갑옷이나 미스릴 갑옷을 입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만들어 놓고 보관만 해두기에는 무게도 많이 나가고 재료가 아까워서 만들어 놓지 않은 탓이었다.
옆으로 떡 벌어진 어깨의 위드가 먼저 던전으로 걸어가니, 그 뒤를 따라가는 다른 유저들은 하나같이 든든함을 느꼈다.

"전쟁의 신 위드 님의 뒤를 따라갈 수 있다니, 어떤 모습으로 싸울지 기대가 되네."
"구경 실컷 해놔야지."

유저들 중에서도 스스로 어느 정도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위드의 바로 뒤에 섰다.
행렬의 끝 쪽에는 세라보그 성의 피난민들과 초보자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위드는 던전을 찬찬히 살필 겨를도 없이 계속 앞으로 걸었다.
스르륵.
그때무언가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 나타났다. 나타났다!
- 조심해요. 물리면 많이 아파요.
- 어제 토끼를 잡아먹은 뱀이 숨어 있어요.

주변에서 반짝거리며 날아다니던 페어리들이 시끄럽게 경고했다.
취릭!
위드를 향하여 색깔이 알록달록한 뱀이 튀어 올랐다.
벽의 틈새에 살며 지나가는 동물들을 잡아먹는 엘릭사!

"엇, 위드 님! 조심하셔야 됩니다."
"위드 님!"

유저들이 고함을 질렀다.
엘릭사는 레벨 300대의 뱀류 몬스터로, 레벨이 높은 데다 미끄러지면서 기어 다니는 속도가 가공할 정도로 빨랐다.
엘릭사의 취향에 아이스 트롤은 전혀 먹음직한 먹이가 아니었지만,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 게 거슬렸는지 선제공격을 가해 왔다.
무섭게 생긴 엘릭사의 기습을 보며 위드는 무덤덤하게 한마디를 내던졌다.

"맛있게 생겼군."

그리고, 아이스 트롤의 몸에 비하면 짧은 막대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검이 휘둘렸다.
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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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릭사가 커다란 충격을 받아 혼돈 상태에 빠집니다.
아이스 트롤의 냉기로 인하여 엘릭사의 속도가 14% 느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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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릭사는 검에 적중당하고 벽에 부딪쳐 튕겨 나왔다.
불상하게 잠시 마비 상태에 빠지고 만 엘릭사!
아이스 트롤은 다른 종족에 비하여 남달리 높은 힘과 민첩성에 의해 마법이나 다른 스킬보다는 기본 동작의 전투력이 극대화되었기에 위드가 무심히 내지른 검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리고 만 것이다.
위드는 땅에 떨어진 엘릭사를 향해 계속 검을 휘둘렀다.

"살점은 구워 먹고 가죽도 벗겨야지. 머리는 챙겨 두었다가 술을 만들까?"

엘릭사를 공포에 잠기게 하는 말들!
엘릭사는 레벨이 300대 초반이거나 간신히 중바을 넘는 뱀이라서, 위드의 집중적인 연타에 금세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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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 소드의 내구력이 저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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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시다."

위드는 바로 전리품을 챙긴 다음에 앞으로 나아갔다.
입구 부근부터 엘릭사들이 몇 마리씩 기어 다녔다.
엘릭사는 빠르게 미끄러지다가 위드를 향해 화살처럼 뛰어올랐다.
아차 하는 순간 이빨에 물리면 독이 퍼져서 레벨이 높더라도 금세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위드는 그런 엘릭사를 허공에서 검으로 쳐 낸 후 가차 없이 칼질했다.

"술을 잔뜩 담글 수 있겠구나. 많이 많이 와라!"

싸움을 위하여 탄생한 아이스 트롤이었다.
팔다리가 길면서 상하체 근육의 균형이 확실히 잡혀 있고, 발다닥도 유난히 넓고 크게 만들어 놨다.
뱀들은 근처에 오기만 해도 위드가 뿜어내는 냉기에 의해서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 몬스터예요.
- 꺄아악! 무서워!
- 이겨야 돼요. 이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돼요.

페어리들의 소란을 들으며 위드는 엘릭사를 여유롭게 물리쳤다.
던전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등장하기 시작한, 레벨이 300 중반에 가까운 리글러, 보이취, 굴독!
던전에 사는 대표적인 위험한 몬스터들이었다.
레벨대를 떠나서 공격력이 높기 때문에 까다로웠지만, 위드는 개의치 않았다.

"전부 덤벼라."

위드는 아이스 트롤의 특성을 만끽했다.
인간이었을 때에야 정교한 검술과 스킬 들을 조합해 가며 사냥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킬을 쓸 마나도 없고, 넘쳐흐르는 건 오직 힘뿐!
실컷 때리고 부수면서, 적의 공격은 열심히 피하지도 않았다.

"저 트롤을 죽여라."
"다 같이 공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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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취의 채찍에 적중당하셨습니다.
아이스 트롤의 맷집에 의해 방어력이 26% 추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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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글러가 던진 단검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체력과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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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도 생명력이 쭉쭉 줄어들었다.
그래도 37만에 달하는 무지막지할 정도로 많은 생명력 때문에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스 트롤의 특성상 생명력이 정말 빠르게 회복되었다.
붕대를 감고 휴식을 취할 때보다도 빠른 수준이었다.
피하지도 않고 몬스터를 두들겨 패기만 하니 박력이 넘쳤다.

"캬오오오!"

위드가 포효를 질렀다.
아이스 트롤이 뿜어내는 냉기에 의하여 몬스터들은 걸어오다가 점점 느려지고 마침내 결빙되었다.

"아, 진짜 잘 싸운다."
"완전 거칠어. 무슨, 저렇게 계속 앞으로 나가면서 싸우기만 해?"

유저들이 보기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훌륭한 전투 능력이었다.
한 대를 때리면 너그럽게 맞아 주고 더 세게 일곱 대를 때리며 사냥을 했다.
검을 휘둘러서 패고, 무식한 큰 주먹을 휘둘렀으며, 앞발로 걷어차기까지 하는 난폭한 아이스 트롤!
아이스 트롤의 육체는 무거웠지만 힘과 민첩성이 워낙 높다 보니 위드는 원하는 대로,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였다.

"패! 죽어! 패! 아이템 내놔! 패! 아직 덜 맞았냐!"

마치 무법자처럼 활약했다.
던전에 출연하는 몬스터마다 무자비하게 패 가며 검을 휘두르면서 앞으로 달렸다.
얼떨결에 튀어나와 버리고 만 본래의 성격!
던전 돌파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 왼쪽 녀석이 살아 있어요.
- 더 때려 주세요, 위드 님.
- 아아, 정말 이상형이야.

신 난 페어리들의 수다를 귓등으로 흘리면서 위드는 몬스터들로 들끓는 던전을 뚫고 나갔다.
레벨이 400을 넘어섰고 아이스 트롤로 변신까지 했으니 던전에서 감히 그를 막아설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레벨 300대의, 제법 난이도가 높은 던전에서 호쾌하게 힘자랑을 했다.
그것도 어중간하게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압도적인 무력의 발산.

"아이스 트롤이다!"
"이곳에는 어떻게..."
"협공을 취하자."

몬스터들이 다 같이 달려왔다.
위드에게는 어디까지나 맛난 간식거리에 불과할 뿐!
퍼버버버벅!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변하여 사망했다.
다른 사람이 조각 변신술을 썼다면 이렇게까지 싸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평소의 전투 방식이 몸에 익숙해져서 남아있기 때문이다.
몬스터의 공격에 본능적으로 피하거나 수비를 하고, 힘을 아끼면서 적당히 패려고 들 것이다.
위드의 최대 장점은, 어떤 몸이든 금방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몬스터들이 때리거나 말거나 파죽지세로 던전을 돌파했다.
보통 때의 위드의 던전 사냥보다도 훨씬 속도가 빨라서, 피난민들은 헐레벌떡 그 뒤를 따라가야 되었다.

"위드 님이랑 가니까 정말 든든하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엄청 많이 잘 싸우네. 열 사람 몫을 넘게 하는 것 같은데?"
"열 사람이 뭐야. 스무 명도 더 되겠다."

위드를 따라 선두에 섰던 유저들은 레벨도 더 낮았고 훨씬 신중하게 싸웠다.
서윤은 사람들도 많이 있고, 또 굳이 그녀가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드의 활약만 유난히 돋보였다.
아이스 트롤만 보면, 세라보그 성의 위기 따위는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을 정도로 박력으로 가득했다.

#

던전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KMC미디어를 비롯한 각 방송국에서 중계를 했다.

"저런 식으로 전투를 ... ! 격식도 없는 마구잡이 싸움입니다. 초보 유저 여러분들은 절대 참고하시면 안 되겠습니다.

저런식의 돌파는 죽음으로의 지름길이죠."

"갑자기 늘어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막 싸우고 있네요. 솔직히 위드의 전투라고 하기에는 실망스럽습니다."

방송국의 진행자들은 너도나도 쓴소리를 뱉어 냈다.
하지만 KMC미디어에서는 적극적으로 위드의 편이 되어서 분석했다.

"힘과 맷집을 최대한 활용하며 싸우고 있는 위드! 과연 배포가 두둑하네요."
"예,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전투 영상을 봐 왔습니다만, 언제 이렇게 던전을 빨리 통과하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아이스 트롤의 넘치는 힘과 맷집을 아끼는 거야말로 무식한 일.
맞아 줄 건 맞아 주고, 더 많이 때리면서 위드는 싸웠다.
그 시원함이야말로 엠비뉴 교단의 군대에 대한 두려움이나 일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어떤 좋은 소식이 있죠?"
"놀라지 마십시오. 전쟁의 신 위드! 그들의 최측근이며 같이 사냥을 많이 했던 동료들과 전화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방송에도 나온 적이 있는, 토둠에서도 함께한 동료들입니다. 네분을 모셨는데요.
우선 인사라도 한마디씩 해 주시죠."

- 정말 방송에 나가는 거예요? 와. 신 난다!
- 에헴! 반갑습니다.
- 안녕하세요.
- 크흠, 북부로 오시면 언제든 찾아 주세요. 돈만 주시면 뭐든 구해드립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여자의 목소리, 나머지는 남자들이었다.
특히 세 번째의 목소리는 노래와 음악 방송을 통해서도 많은 들어 본, 친숙하고 매력적인 음성이었다.

"전쟁의 신 위드가 지금 대단한 활약을 펼쳐 보이고 있는데요, 그 장면을 지금 실시간으로 전해 드리다 보니 인터뷰가 간단히 진행될 수빆에 없는 점을 먼저 양해 부탁드립니다."

- 그럼요! 얼마든지 괜찮아요.
- 이해합니다.
- 방송이야 자주 해서 잘 아니까,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
- 출연료는 그대로 지급되는 거죠?

"전쟁의 신 위드와 많은 시간을 같이하셨을 텐데요, 던전사냥에서 위드는 어떤 모습인가요?"

- 딱 지금요. 몬스터가 불쌍해요.
- 먼저 화살 쏘기가 참 쉽지 않죠.
- 항상 부지런해요.
- 전 뒤에서 잡템 계산만 해서 잘...
"위드와 사냥을 자주 하신다니 부러워하는 시청자들이 많습니다. 던전 사냥을 할 때는 어떤 기분이 드나요? 막 성장하는 기분이나, 긴장감이 있겠죠?"

- 위드 님이 워낙 잘 싸워서, 옆에서 따라가기가 쉽진 않아요.
완전히 질릴 정도로 맥이 빠져요. 그만큼 정신없고 빠르고... 그래도 주먹질하는 손맛 때문에 즐거워요.
- 사냥을 마치고 나면 일도 사랑도 잘 해낼거 같은 자신감이 붙지요.
- 싸우는 위드 님의 옆모습이 멋있어요.
- 전 그냥 돈 계산만...
"모라타의 영주로서도 위드는 새롭게 대중의 환호를 받고 있는데요, 위드가 영주로서의 막중한 책무를 이렇게 잘 해낼거라고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 정말 저도 신기한 부분이예요. 주민들부터 다 굶겨 죽일 줄 알았는데.
- 위드 님의 성격이, 보기보다 정말 착하고 순수하신 분이라서 잘하실 거라 생각은 했습니다.
- 못하는 게 뭐가 있겠어요?
- 그게 다 나중에 세금으로... 아닙니다. 모라타로 많이 오셔서 마판 상점 이용해 주세요.

"위드의 활약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인터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세라보그 성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애쓰는 위드에게 응원 한마디씩 하신다면요?"

- 주먹에 정을 남기지 마세요.
- 무사히 살아 돌아오시리라 믿습니다.
- 오실 때 구두 한 켤레만... 재봉사 비토르도 꼭 구해 주세요. 그가 만든 배낭이 요즘 인기래요.
- 좋은 물품과 친절로 모시겠습니다. 마판 상회 체인점 모집중!

#

주민들과 초보자들은 위드가 던전에서 열어 놓은 길로 계속 밀려들었다.
아이스 트롤이라고 해도 전투를 하다 보면 체력과 생명력이 제법 떨어졌지만, 유저들 중에는 사제도 많았다.
치료와 체력 회복 등의 마법이 계속 걸렸기 때문에 위드는 몬스터 사냥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진짜 위드 님 덕분에 살 것 같다."
"우리를 위해서 저렇게까지 해 줄 줄은 정말 몰랐는데 말이야."
"위드 님이 로자임 왕국 출신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

유저들이 위드에 대해 품은 존경심은, 물만 줘도 자라는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위드의 생각은 전혀 달랐으니...

"아직 적당히 할 만하군. 굳이 지나치게 무리해 가면서 남들까지 다 살려 주려고 애쓸 필요는 없으니까."

언제라도 다른 유저들을 버리고, 어쩔 수 없는 듯한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다 해 놓은 위드였다.

#

유병준 박사는 의자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엠비뉴 교단의 병사들이 벌써 세라보그 성의 성벽에 많이 올라왔습니다.

이대로면, 성벽을 빼앗기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습니다."

"동쪽 성문이 드디어 파괴되었습니다. 엠비뉴의 군대가 성내로 진입합니다."
"상점과 가게 들이 불타고 있습니다. 엠비뉴 교단의 군대는 세라보그 성을 완전히 태워 버릴 작정인 것 같습니다."

각 방송국의 진행자들은 호들갑을 떨며 말하고 있었다.
엠비뉴 교단에 의해 점령당하면 원래 있던 성은 보통 초토화되어 버리곤 했다.
유저들은 깡그리 전멸, 성벽은 흔적만 남아 쓸쓸하게 잡초만 무성한 지역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세라보그 성의 운명도 그다지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엠비뉴 교단이 정말 빠르게 퍼져 나가는군."

유병준은 로열 로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인간들의 욕심과 성장, 번영 그리고 몬스터와 음지에서 퍼져 나간 엠비뉴 교단의 득세!
로열 로드는 몬스터나 악신의 추종자들에게도 당연하게 자유도를 높게 부여해 놓았다.
몬스터들도 번식을 하거나 생존경쟁을 통해 계속 강해질수 있다.
정해진 영역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이 먹이를 구하러 밖으로 나올 수도 있었다.
어느 한 종류의 보스급 몬스터가 무리를 끌고 더 나은 장소를 찾아 이동하기도 한다.
인간들의 마을과 성을 점령할 수도 있고, 기술과 지식을 축적하는 것도 가능했다.
유병준 박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통해서 모든 장면을 원하는 대로 찾아볼 수 있었다.

"오주완 씨, 이 속도라면 엠비뉴 교단이 어디까지 퍼져 나가게 될까요?"
"지금 엠비뉴 교단 때문에 중앙 대륙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유니콘 사에서는 아직가지 그 어떤 입장 발표도 없었습니다."

유니콘 사의 직원들조차 현재의 엠비뉴 교단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는 게 사실.
도시를 완전히 없애 버리고 왕국을 멸망시킨다는 건 너무나 지나친 사건이 아닐가 하며 걱정했다.
그러나 최초에 각 왕국들과 도시들의 형태가 갖춰져 있긴 했지만, 나머지는 유저들이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했다.
인간들이 숲을 개간하고 강가에 집을 지어 도시를 만들 수 있지만, 방비가 취약하다면 몬스터에 의해서 쓸려 버릴 수도 있다.
유병준은 텔레비전을 보며 중얼거렸다.

"엠비뉴 교단에 의해 이대로 대륙이 멸망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군."

과정에 따라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베르사 대륙을 위협하는 수많은 몬스터와 암흑의 세력들이 실패만 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
오히려 영악하게 도시에 숨어서 음모를 진행하고 있다.
유저들의 성장이 느려지거나 그들끼리 반복한다면 베르사 대륙의 영구히 악에 의해서 장악당하게 되리라.
유저들은 그 후에도 계속 접속이 가능하겠지만, 그들의 하수인으로 살거나 혹은 그들이 없는 땅에서 마을을 만들면서 다시 밝은 미래를 위해 싸워야 할 것이다.
로열 로드가 단순한 게임이라면 유저들의 인기를 끌기 위해 엠비뉴 교단을 막아야 되겠지만, 이미 유니콘 사는 세상의 돈을 쓸어 모으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유저들은 스스로 결정한 운명에 따라 베르사 대륙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바드레이도 패왕의 후계자로서 성장을 하고 있으니 영토와 세력을 키워 가다가 엠비뉴 교단과 싸우게 되겠지. 그보다도...."

얼마 전부터 유병준은 어떤 이름 하나가 자꾸 거슬렸다.
위드!
전쟁의 신이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는, 평소에 그가 지켜보기에 과장된 면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가 막 로열 로드를 시작했을 때부터의 영상을 되돌려서 구경해 봤더니 기가 막힌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보통 인간이란 어렵거나, 자기 능력으로 안 될 것 같으면 현실과 타협을 하고 좀 시간을 두고 미뤄 두거나 아니면 포기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 아닌가?"

그런데 위드는 생고생을 하면서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며 어려움을 돌파해 버린다.
조각술의 비기도 하나 둘 어떻게 모아 가더니 이젠 자하브까지 만났다.
광활한 베르사 대륙에서도 고생스러운 장소들만 용케 잘만 찾아다니면서 모험을 했다.

"그리고 모라타라...."

위드는 도시까지 소유했다.
갑자기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직접 얻어서 발전시킨 땅이다.
바드레이처럼 휘하에 길드를 거느리고 있지도 않았지만, 위드는 대륙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병준 박사는 이제 위드에 대해서 적지 않은 경계심이 들었다.

"아주 똑똑해. 이번에도 세라보그 성의 유저들을 무사히 탈출시킨다면 특별한 사건이 되겠지."

세라보그 성을 포위하고 있는 엠비뉴 교단의 군대는 보통이 아니다.
초보자들과 피난민들을 이끌고 도망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실패하더라도, 올바른 행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는 있을것이다.

"엠비뉴 교단의 군대가 막고 있을 텐데... 혼자서 도망치는 거라면 몰라도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

#

정득수 회장은 주말에 집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군."

창밖에는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는 로열 로드에나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을것 같은데."

박진석과 이야기를 나눈 이후로 한동안 잊고 지냈던 로열 로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가끔 휴가를 보낼 때, 로열 로드는 마음 편하게 푹 쉴 수 있는 유용한 도구였다.

"떠오른 김에 접속이나 해 봐야 되겠어."

정득수 회장은 캡슐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정득수 회장이 접속한 캐릭터는 바트.
그는 기초적인 장비만 착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등산에 취미가 있어서, 레인저들이 있는 산의 계곡에 올라가서 접속을 종료했었다.

"와, 물이 정말 맑다."
"마셔 봐. 시원해."

계곡은 놀러 온 커플들의 천국!
베르사 대륙에서 이름난 계곡이었기 때문에 커플들이 더욱 많았다.

"다른 곳으로 가 봐야겠군."

바트는 씩씩하게 걸어서 산을 내려갔다.

"로열 로드에 접속하면 육체가 젊어진 것 같아서 참 좋아."

하지만 얼마 내려가지도 않아 불행하게도 붉은 눈의 귀여운 토끼를 만나고 말았다.

"이크, 토끼다."

바트는 얌전히 쪼그려 앉아서 토끼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레벨이 3밖에 안 되는 초보자였기에 토끼조차도 상당히 무서웠다.
전투를 경험해 본 적도 없고, 그나마 레벨을 3까지 올린 것도 간단히 대화로 끝나는 퀘스트를 몇 가지 했기 때문이다.

"일단 마을로 돌아가야 되겠어."

바트는 마음 놓고 멀리 돌아다닐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계곡이 있는 산마저도 대도시의 바로 뒤에 잇어서 위험한 몬스터들은 나오지 않고 사람들이 많아서 안전하게 올 수 있었던 정도다.
라살 왕국의 도시로 가니 유저들이 북적대며 장사를 하고 같이 길을 떠날 사람들을 구하는 중이었다.

"푸른 약초 캐러 같이 가실 분! 레벨 25만 넘으면 됩니다. 1시간 정도 고생하면 짭짤하게 돈 벌 수 있어요."
"이 근처에 생긴 고블린 요새에서 사냥하실 파티원 찾습니다."

초보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외치는 소리들이었지만, 바트에게는 그마저도 까마득히 높은 레벨이었다.

"정말 다들 로열 로드를 좋아하고 있군."

바트는 도시 내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밝고 즐거워하는 표정들을 보았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주변의 건물들도 모두 실제와 차이가 없었으며 걸어 다니는 느낌이 난다.
새로운 세성에서 설레는 걸음을 떼어 놓는 듯한 기분!
바트는 지붕에 앉아 있는 새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기를 끄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기업가로서 로열 로드의 기술력이나 상업성에만 주목을 했다.
유니콘 사는 엄청난 속도로 규모를 키워 가고 있었으며, 현재는 그가 경영하는 회사를 다 합쳐도 매출액이나 순이익에서 비교가 안 되었다.
익숙하게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그룹들조차도, 유니콘 사의 영업이익과는 숫자의 단위부터 다를 정도다.

"시대가 바뀌기는 했군,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로열 로드를 조금 더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단순한 유흥거리로만 여겼는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열광한다면 제대로 경험해 보고 싶어졌다.
다행스럽게도 돈은 좀 넉넉한 편이었다.
휴가를 즐길 때 회사의 비서를 통해 많은 돈을 받아 놓았던 것이다.

"전투를 위해서 장비부터 맞추고..."

바트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었기 때문에 레벨 제한이 없는 초보자용 장비들을 구입했다.
직업은 아직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의류와 가벼운 장검이었다.
주로 상점표 무기들을 구입하는데 사람들이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라보그 성에 엠비뉴 교단이 쳐들어와서 지금 공격을 하고 있다는 소식 들었어?"
"지금 싸우는 거야?"
"공성전 벌어지고 있대, 마물들이 엄청나!"
"아, 보로그 던전 사냥 가려고 햇는데..."
"사냥이 문제야? 선술집 가서 봐야지."
"그건 그래. 이걸 놓치면 후회할 것 같긴 해."
"빨리 가자. 선술집도 늦으면 자리가 없을 거니까."

바트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의 말이었다.
하지만 선술집에 가면 무언가를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 때문인지, 거리에서 갑자기 사람이 사라진 느낌이었고, 북적거리던 상점도 휑해진 듯했다.

"나도 선술집에 가 봐야겠군."

바트는 선술집으로 들어가서 통닭 1마리와 맥주를 시켰다.
그리고 대형 수정에 비치는 영상을 보니 아까 어떤 유저의 말처럼 세라보그 성에서 공성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저들은 술과 음식을 먹으며 대형 수정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캬하, 술맛 좋다. 전쟁의 신 위드가 다르긴 달라."
"엠비뉴 교단이 침공하는 혼자서 저렇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랭커? 레벨만 높다고 다인가. 위드 발끝만큼도 못 따라가잖아."
"지금 사냥 속도를 봐, 우리가 그냥 걸어가는 것보다도 더 빠르다. 몬스터가 나오는데도 걷는 속도가 줄어들지도 않네."
"위드 한테는 엠비뉴 교단도 밥, 아니 죽이지!"

유저들이 떠는 소리를 들으면서 바트는 대형 수정의 영상을 보았다.
방송국에서 중계하는 영상을 대형 수정으로 그대로 가져 올 수 있다.
현실과는 시간 차이가 다소 있지만, 중간에 광고나 다른 채널의 프로그램을 보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주로 세라보그 성을 함락시키려는 엠비뉴 교단을 보여 주었지만, 던전을 돌파하고 있는 위드와 유저들로도 화면이 자주 바뀌었다.

"전쟁의 신 위드라고..."

바트에게는 정말 친숙한 이름이었다.
그의 딸인 서윤과 친하게 지내고 자주 만나는 남자의 케릭터가 아니던가!

"위드는 내가 아는 사람인데."

그가 중얼거리는 말에, 사람들이 돌아봤다.

"아저씨, 저 사람 전쟁의 신 위드예요. 정말 아는 사람이예요?"
"아는 사람 맞다니까."
"이름만 같은 사람도 많은데요."
"저 위드가 맞아."
"아, 네."

바트의 나이가 있다 보니 더 이상 뭐라고 따지고 들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초보자 중에서도 고작 상점표 옷을 입고 있는 유저가 전쟁의 신 위드와 친분이 있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가.

"아저씨가 허풍이 너무 심하시군"
"믿을 만한 말씀을 하셔야지."

졸지에 위드를 안다면서 거짓말로 잘난 척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바트였다.

#

"크햐아아아!"

위드가 지하 공간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괴성을 내질렀다.
몬스터를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유저들에게는 적지 않게 안심이 되었다.

"빨리 가."
"뒤쪽, 늦춰지지 마세요. 우리가 늦게 가면 계속 쭉 밀립니다."

주민들과 초보자들이 비밀 통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따라왔다.
원래는 대형 길드들을 따라서 같이 가기로 했던 중소 길드들도 위드를 믿고 함께했다.
10만이 훨씬 넘는 사람들을 피난시켜야 한다.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아직 지하도로 들어오지도 못한 사람이 더욱 많을 정도였다.
꽃팔찌에 혹해 덜컥 받아들이긴 했지만, 사실 셀리나의 퀘스트트 굉장히 어려운 의뢰였다.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닌 데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주민들이 대량으로 죽어 나갈 수도 있다.

"우리도 같이 싸웁시다."
"다 죽여. 없애 버리자!"

유저들 중에서도 나름 레벨이 되는 사람들이 주민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오면서 사냥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앞으로!"

위험을 무릅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유저들은 두려움보다는 재미를 느꼈다.
위드를 따라가니 절로 흥이 날 정도였다.
아이스 트롤 위드는 건장한 체격과 큰 키로 인해서 한참뒤에서도 잘 보였다.
위드가 힘껏 휘두르는 검! 근육이 잔뜩 팽창한 기다란 팔때문에 마치 창을 휘두르는 것 같은 궤적을 그리면서 몬스터들을 단번에 베어 버린다.

"쾌헤헤헤헤헷!"

괜찮은 아이템을 날름 집어삼켰을 때에는 시원한 웃음도 흘렸다.
아이스 트롤이 저돌적으로 싸우는 광경을 보다 보면 몸이 저릿저릿 울릴 정도로 흥분되었다.
위드는 어느새 세라보그 성을 탈출하기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듯했다.
도대체 왜 피곤하게, 스트레스를 간직한 채 힘겹게 살아가야 되는가!
세상에는 이렇게 신 나는, 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즐거운 일이 가득한데!
몸으로 싸우고 부딪치고 짜릿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크나큰 축복.

- 오른쪽으로 돌아야 돼요.
- 거긴 맑은 물이 흘러요. 목마르면 드시고 가세요. 위드 님.
- 몬스터 3마리 접근 중! 혼내 주세요.
- 앞으로 조금 달려가면 함정이 있어요. 그냥 뚫고 나가 주실 거죠? 함정을 돌파하는 모습에 반할 것 같아!

페어리들은 날아다니면서 길을 안내해 주었다.
유저들 중에서도 궁수들은 거의 선두까지 따라 나와서 몬스터들이 접근하면 위드가 가까이 붙기 전에 먼저 화살을 날렸다.
위급한 상황에서 손발을 맞춰 본 적도 없는데 유저들이 스스로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 덕분에 던전의 몬스터가 많아졌음에도 발걸음이 늦춰지지 않고 계속 이동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회복."

위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제들이 앞으로 나와서 전투를 담당하는 전사들에게 치료를 집중했다.

"수리."

무기들은 즉시 뒤로 넘겨지고, 대장장이들이 즉석에서 수리를 했다.
위드가 있으면 어디서든 조직의 효율성이 자연스럽게 극대화되었다.
왕성의 지하도 에는 왕족들이 놔둔 보물 상자와 잃어버린 물건들이 가끔씩 떨어져 있었다.
위드는 몬스터와 싸우면서 보물 상자를 4개나 열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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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없습니다.
- 아무것도 없습니다.
- 금화 3개를 얻었습니다.
- 왕가의 보검을 발견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앞서서 움직였기에 금과 은,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 화려한 검을 얻었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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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보검 : 내구력 45/45. 공격력 24~39.

한때 로자임 왕성의 벽에 걸려 있던 검이다.
오래전에 잃어버리고 난 이후에 긴 세월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잊혀있었다.
제한: 명성 3,500 이상.
레벨 240 이상.
옵션: 매력 4% 증가.
카리스마 +35.
기품 +40.
예술 +15.
검을 장비한 채로 상점에서 물품을 구입할 시에는 5%의 금액을 더 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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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용이라기보다는 멋을 위해 가지고 다닐 만한 검이었다.
보석들이 박혀 있어서, 상점에 내다 팔거나 귀족들에세 팔아 치운다면 상당히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짐작됐다.

"부수입으로는 나쁘지 않군."

왕성의 지하도에 있는 통로는 이리저리 교차하며 넓게 퍼져 있었다.
추격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함정들도 도처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위드는 몸으로 돌파했다.
일회성으로 터지는 게 아니라 함정의 효과가 계속 유지되는 것들은 모험가와 발굴가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나서서 최단시간에 해제했다.

- 이쪽으로 가세요. 여기가 빨라요.
- 다른 방향은 막혀 있어요.
- 왕이 탈출하고 있어요. 그쪽으로 가면 안 돼요. 지상에서 나쁜 군대가 몰려들고 있어요.

왕성의 지하도에 탈출구는 여러 곳에 뚫려 있었다.
위드는 페어리들의 안내로 막혀 있는 길을 돌아서 동쪽으로 움직였다.
몬스터들을 물리치면서 전진하여, 드디어 지상으로 나가는 비밀 통로 앞에서 멈췄다.

"이제 이곳에서 잠시 쉬며 나갈 준비를 합시다."

위드는 아이스 트롤로 몸이 바뀌어 체력과 생명력이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다른 유저들은 지쳐서 숨을 헉헉대고 있었다.
여기까지 따라오는 것만도 유저들에게는 상당히 힘들었다.
이제 지상으로 올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른다.
특히 같이 싸운 전사들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숨이라도 조금 돌리며 다들 마음의 각오를 다졌다.

"여기서 위드 님과 싸우다가 죽으면 난 영웅이 된다."
"회사 가서 자랑해야지. 최 과장님, 이 부장님, 심 전무님 그리고 백 대리한테도 자랑해야지. 세라보그 성에서 싸우다가 죽다! 캬하하! 모두 나를 부러워하겠지."
"지,지금 내가 방송에 나오고 있을까? 오늘은 세수도 안했는데. 만날 사냥하고 레벨만 올린다고 헤어진 여자 친구도 날 보고 있으려나."
"완전 떨린다. 재미있어서 미쳐 버리겠네."

유저들은 초보자들을 살리기도 하면서 위드의 옆에서 자기 몫을 한다는 점 때문에 정신없이 흥분이 됐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뛰었고, 입안은 바싹바싹 말랐다.
그냥 특정 세력에 속해서 세라보그 성을 탈출했다면 이런 재미를 누리지는 못했으리라.
방송이나, 최후까지 세라보그 성을 지키기 위하여 성벽에 남은 유저들을 통해서 정보가 계속 전달되었다.

- 성에 불이 붙었습니다.
- 서쪽 문 파괴.
- 남쪽 성벽이 무너지고 수비병들이 뒤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대형 길드들과 높은 레벨 유저들로 구성된 세력들도 각 방향으로 탈출을 개시했다고 한다.
성벽과 성문도 모두 파괴되웠고, 엠비뉴 교단의 군대를 넘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생존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해진 방향으로 뭉쳐서 필사적으로 뚫으려고 했다.

"저들이 어느 정도 엠비뉴의 군대를 유인해 주겠지."

위드는 충분히 뜸을 들이면서 기다리다가 유저들에게 말했다.

"이제 밖으로 나가면 우린 엠비뉴의 군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꿀꺽.
유저들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이어질 위드의 말을 기다렸다.
이제 정말 큰 전투.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앞두고 위드의 연설을 듣게 되는 것이다.
초보자들은 자기보다 약한 몬스터를 사냥할 때도 손발이 꼬이거나 당황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런데 무지막지하게 강한 엠비뉴의 군대가 세라보그 성을 침공하고 있고, 그들은 살기 위해서 빠져나가는 중이다.
어떤 말로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

"몬스터한테 맞아 죽고, 아이템 잃어버리고, 스킬 숙련도 떨어지도, 레벨 낮아지고... 살다 보면 자주 일어나는 일 입니다."
위드도 지금가지 꽤 많은 죽음을 경험했다.
"특히 초보 때는 자주 죽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친구나 동료 들이 나보다 더 앞장서 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초보 시절이야말로 간격이 확 벌어질 수 있는 시기니까요. 남이 잘되는걸 보면 속은 쓰리고 기분도 좋지 않죠.
그러다 보면 친구들도 사라져요"
"......"
"마음만 조급해져서 위험한 사냥터만 무리해서 찾아다니다가 또 죽고,
돈도 아이템도 잃어버리고 가난해지고 모험은 원하는 대로 안 되고 퀘스트는 갈수록 꼬이기만 할 수도 있고요."
".........."
"그래도 긍적적인 마음으로 나가 보죠."
"..................."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뒤로 뒤로 전달된 이 말들에, 수만의 주민들과 유저들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 세라보그 성의 피난민 ]

유저들의 눈빛이 비장해졌다.

"정말 죽으면 안 되겠어."
"무조건 위드 님을 따라가야 되겠다.'
'집중하자. 여기서 반드시 살아나야 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평생 초보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여자친구도 못 사귈거야!'

위드가 벽에 걸려 있는 나무 막대를 아래로 내렸다.
그그그긍!
출구의 돌문이 올라가고, 밖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지금입니다. 나갑시다."

잠시의 휴식으로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위드에게는 문이 좁아서, 몸을 비틀면서 밖으로 나가야 했다.
뒤를 이어 유저들이 출구 쪽에 서 있던 순서대로 지상으로 뛰어나왔다.

'인간들을 남김없이 죽여라.'
'엠비뉴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
'세라보그 성을 정화하라!'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광신도와 엠비뉴의 암흑 사제 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탈출로의 출구는 억새풀이 우거진 지역이었지만, 세라보그 성에서 2킬로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말을 타고 달려오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
위드가 성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니 엠비뉴 교단의 병사들이 새까맣게 몰려 있었다.
성안으로 대형 마물들이 진입하고 있었고, 건물들은 화염을 뿜어내며 활활 타올랐다.
로자임 왕국의 병사들은 본성으로 후퇴해서 최후까지 싸우는 모습이었다.
그 틈을 타서 각 세력에 속해 있는 유저들이 도망치고 있는 게 보였다.
아수라장!
진짜 전쟁터가 이곳이었다.

'어서 나와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출입구를 통해서 유저들이 계속 밖으로 나왔다.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한 곳의 출입구에서도 유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위드를 따르는 초보자와 주민 들이 수만 명 이상이었으니 그들이 모두 대피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먼저 나오는 유저들은 그나마 레벨이 높은 편에 속해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200명이 넘는 전사들이 모두 나오고, 마침내 초보자들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최대한 은밀하게 행동한다고 했지만, 사람이 워낙 많았기에 공중에서 돌아다니는 와이번 나이트 부대에 발각당하고 말았다.

'인간들이다!'
'죽여! 엠비뉴 신을 위한 제물로 쓰자!'

유저들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엠비뉴 교단의 와이번 나이트들이다!'
'들켰어요!'

궁수와 레인저 그리고 활을 가지고 있는 누구나 와이번 나이트들을 향하여 화살을 쏘았다.
초보자들의 화살과, 레벨이 높은 궁수들의 화살이 마구 뒤섞여 날아갔다.

'인간들은 제물로!'
'엠비뉴 신을 찬양하라!'

와이번들은 현란한 움직임으로 화살을 피하며 지상으로 낮게 날아왔다.
마법은 준비 시간도 길었고, 기동력이 좋은 와이번들을 적중시키기가 어려웠다.

'이블 스피어!'

와이번 나이트들이 창을 사용하는 스킬까지 쓰면서 다가오는 위기의 순간!
위드가 맹렬하게 마주 달려가다가 공중으로 뛰었다.

'가능할까? 지금은 힘과 민첩이 많이 늘어서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콰광!
땅을 부술 듯이 박차고 거짓말처럼 뛰어오른 커다란 아이스 트롤!
위드가 허공에서 검을 휘둘렀다.
와이번은 낮게 날아오던 도중에 정면에서 튀어 오른 아이스 트롤을 보고 급히 피하려고 했지만, 검의 범위에 들고 말았다.

'크아악!'

----------------------------------------------
- 와이번 나이트가 큰 공격을 당했습니다.
전투 불능에 빠집니다.
----------------------------------------------

아이스 트롤의 넘치는 힘!
와이번을 노렸던 게 아니라, 등에 타고 있는 와이번 나이트를 공격한 것이다.
와이번 나이트는 위드의 공격에 얻어맞고 나서 땅으로 추락했다.
위드는 바로 와이번의 고삐를 낚아채 위로 올라탔다.
아이스 트롤의 육중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연결 동작처럼 준비된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캐애액.
건장한 와이번이 휘청거리면서 추락하려고 했다.
아이스 트롤의 몸무게 공격!
와이번은 배가 땅에 닿을 정도로 지면과 가까워졌다가 죽을힘을 다해 다시 날아올랐다.
위드가 땅을 보니, 레벨이 높은 유저들이 군데군데 서서 저항하고 있었지만 와이번 나이트들이 초보자와 주민 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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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의 뒤쪽 거리에 사는 주민 다리뭄이 죽었습니다. 명성이 2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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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보르테가 사망했습니다. 명성이 6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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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들이 죽는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주민들이 죽음은 하나하나 위드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혔다.
피난민들을 통솔하는 퀘스트는 특성상 엄청난 명성을 얻을 수 있고, 반면 잃어버릴 수도 있다.
셀리나의 퀘스트를 받아들였을 때만 하더라도 퀘스트의 규모가 이 정도로 크리라고는 짐작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세라보그 성의 버러진 주민들이 위드를 의지하게 되었고 엄청난 퀘스트로 거대해져 버렸다.
그나마 다행히 서윤이 드디어 그냐의 진짜 능력을 발휘하면서 와이번 나이트를 회색으로 만들고 있었다.

'가자. 다른 놈들을 사냥하라!'

위드는 와이번의 고삐를 왼손으로 힘껏 움켜쥐었다.
와이번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힘과 투지가 남다르게 높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위드는 합격이었다.
와이번을 다루는 방법도, 와삼이를 통해서 많이 경험 했다.
하지만 몬스터를 조련하기 위해서는 친민도를 필요했고 서로를 조금씩 알아 가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위드를 태운 와이번은 명령대로 다른 와이번 나이트들에게 날아갔다.

'더 빨리!'

파닥파닥파닥!
와이번은 정말 최고의 속력으로 날았다.
위드의 말에 복종하는 게 아니라, 다른 와이번 나이트들에게 이 무거운 아이스 트롤을 해치워 달라고 바치러 가는 것이었다.
아이스 트롤에게서 뿜어지는 냉기는 날갯짓마저 느리게 해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칠까 두렵게 만들었다.
무거운 데다 차갑기까지 하다니, 진정 최악이었다.

'잘했다.'

와이번의 필사적인 수고가 헛되게, 위드는 와이번 나이트들과 몇 번씩의 집격을 교환하고 나서 승리를 거뒀다.
전광석화처럼 공격이 오가는 공중전이야말로 익숙했다.
와이번은 마치 다른 동족들에게 구해 달라고 날아갔지만, 그럴 때마다 위드는 승리했다.
케에에에엑!
위드가 타고 있던 와이번은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날갯짓을 하느라 금세 지쳤고, 냉기에 의해 몸통부터 얼음 조각으로 덮혔다.
위드는 와이번이 완전히 얼어붙자 공중에서 다른 와이번을 낚아채서 바꾸어 탔다.
육중한 거구가 하늘에서 뛰어다니니, 기가 막힐 정도로 묘기였다.
지상에서 보는 유저들조차도 가슴을 졸일 정도로 아찔했다.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반 호크과 토리도의 소환!

'주인, 싸움을 하고 싶다.'
'이곳에는 피 냄새가 아주 많이 난다. 이 상쾌한 피바람이야말로 최고급 향소보다도 훨씬 좋은 것이지.'

꽤애애애액!
위드를 태우고 있던 와이번은 늘어난 무게에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위드는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알아서 싸워라.'

유로키나 산맥에서 싸우던 때에야 일일이 간섭하며 지시를 내렸지만 이제는 둘도 위드와 같이 온갖 전투를 다 경험해 봤다.
너무 무거워서 와이번이 추락사하기 전에, 반 호크와 토리도가 빠져나갔다.
반 호크는 유령마를 소환하여 타고 날아다니면서 전투를 했고, 토리도의 경우에는 망토를 펼치고 어둠에 동화되었다.
와이번 나이트들의 등 뒤에서 나타나서 목덜미에 송곳니를
쑤욱!
토리도를 따르는 진혈의 뱀파이어족도 박쥐 떼로 소환되어 와이번 나이트들을 습격했다.
와이번들은 박쥐를 무서워하지는 않았지만, 온몸에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 마시니 원활히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아이스 트롤이 있다. 본진으로 돌아가자!'
'더 많은 군대를 몰고 돌아오자.'

결국 와이번 나이트들은 퇴각했다.
반 호크와 토리도는 그들을 쫓아가며 상당한 소득을 거두고 돌아왔다.
위드는 힘이 빠진 와이번과 함께 땅에 추락했다.
콰아앙!
덩치도 큰 아이스 트롤과 와이번이라 땅이 움푹 파였다.
와이번은 전투 시에 입은 부상과 충격이 누적되어 회색빛으로 변해 버렸다.
위드의 생명력도 상당히 떨어졌지만, 사제들이 치료의 손길을 해 주어 금세 회복됐다.
치료 마법만 할 수 있는 자라면 초보 사제라도 너나없이 달려와 위드에게 치료의 손길을 퍼부었던 것이다.
두 곳의 탈출구를 통해서 유저들이 계속 나와서 억새풀을 헤치며 세라보그 성과 반대편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벌써 몇천 명이 넘는 인원이 빠져나갔을 정도다.
와이번 나이트들은 퇴각했다지만, 어느새 엠비뉴를 따르는 광신도의 무리가 새로 다가오고 있었다.

'토리도, 반 호크. 너희는 충분히 싸웠나?'
'피 냄새가 좋다. 아직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계속 싸우고 싶다.'

위드는 데몬 소드를 무장 해제하고 와이번 나이트로부터 빼앗은 긴 창을 들었다.
팔이 길고 몸집이 커지다 보니 검보다는 창을 휘두를 때 제중이 더 많이 실려 막강한 위력을 발취할 수 있었다.
검치 들처럼 무기술 스킬을 가진 게 아니라서, 창술을 발휘할 때는 스킬 레벨에 따른 공격 데미지가 낮았다.
그래도 창이 검보다는 중병기로서 기본 공격력이 강하고 힘이 받쳐주었으니.
레벨 200대 초중반 정도의 광신도 병사를 상대할때는 훨씬 나을 것이라 생각됐다.
위드는 창을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엠비뉴 광신도의 무리가 대략 500명 정도!
긴 곡괭이나 조약한 활, 칼, 도끼 등으로 무장하였고, 갑옷도 없이 빈약한 차림이었다.

"반 호크, 토리도. 앞장서라."
"원하던 바다."
"흠뻑 취하고 싶은 새벽이군,"

반 호크는 유령마를 몰고 광신도들 사이로 돌격했다.
푸히히히히힝!
유령마와 데스 나이트가 내달리며 광신도들을 베어 넘겼다.
토리도는 진혈의 뱀파이어족과 같이 광신도들의 등에 달라붙어 목덜미를 물었다.
진혈의 뱀파이어족은 인간의 피를 마셔야 빨리 성장한다.
위드를 따라다니면서 그럴 일이 드물었는데, 이번이야말로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기회였다.

"광신도가 500명 정도라면 쉽지."

반 호크와 토리도만 하더라도 지치지 않는 언데드의 특성상,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너무나도 다급한 순간!
엠비뉴의 더 강한 군대가 몰려오기 전에 광신도들을 제압하고 피난민들이 많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 된다.

"최대한 안 쓰려고 했는데...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이 힘이 되어라!"

위드는 배낭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걸작 조각품.
'몽둥이를 들고 있는 악덕 상인'을 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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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파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걸작 조각상이 파괴된 고통! 슬픔!
예술 스탯이 5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명성이 100 줄어듭니다.
예술 스탯이 일 대 사의 비율로 하루 동안 힘으로 전환됩니다.
조각 변신술로 인해 완전히 적응되지 않은 몸으로 힘으로의 전환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30%의 패널티가 부여됩니다.
예술 스탯이 너무 높습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힘 스탯이 낮기 때문에 한꺼번에 전환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힘 870이 고급 스킬 7레벨의 '통렬한 일격'으로 바뀝니다.
힘을 잔뜩 실은 공격이 정확히 적중하면 적들을 멀리까지 날려 버릴 것입니다.
마비와 혼돈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비율을 늘립니다.
힘 950이 고급 스킬 6레벨의 '꿰뚫는 창'으로 바뀝니다.
강력한 공격력으로 상대방의 갑옷과 방패를 통째로 부숴 버릴 것입니다.
힘 1,430이 고급 스킬 9레벨의 '순간의 괴력'으로 바뀝니다.
짧은 시간 동안 낼 수 있는 최대 힘의 3배까지 쓸 수 있습니다.
막대한 체력을 필요로 합니다.
힘 690이 아이스 트롤의 종족 특성을 높입니다.
냉기의 전달 범위가 15미터로 넓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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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술의 숙련도가 증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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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트롤에, 조각 파괴술로 힘까지 크게 늘렸으니 그야말로 믿을 건 힘밖에 없었다.
있는 대로 힘을 쓰면서 제대로 날뛰어 볼 수 있는 상황!

"어디 한번 놀아 볼까."

위드는 창을 붕붕 돌렸다.
몸의 비율상 창이 작게 느껴졌고 솜털처럼 가볍기까지 해서, 뭐든지 생각한 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야합!"

위드가 창을 휘두르면서 광신도 사이로 뛰어들었다.
퍼퍼퍼펑!
창을 휘두를 때마다 수십 미터씩 나가떨어지는 적들!
광신도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무기들도 아이스 트롤의 큰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온통 적이라서, 방어를 하려고 한다면 곤혹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이스 트롤이 된 이상 수비는 모른다. 오로지 공격뿐이었다.
위드는 창을 휘두르며 적들을 쓸어버렸다.
창의 반경에 든 광신도들이 마구 회색빛으로 변했다.
무식함과 과감함 그리고 투지가 넘치는 전투 방식!
위드의 레벨과 힘은, 약한 광신도들로서는 상대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제대로 강자의 횡포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
레벨이 낮은 초보자들로서는 눈을 반짝이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아이스 트롤! 너무 멋지다.'
'레벨이 어느 정도나 되면 저렇게 싸울 수 있을까?"

위드를 보고 있으면 속이 다 시원해서. 피난을 가는 것도 잠시 잊어버리고 언덕에서 땅콩을 먹으면서 구경하는 이들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서윤도 점차 광전사로서의 무시무시한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변에서는 광신도들이 마나에 의한 폭발에 휘말려서 쓰러졌다.

"가자!"
"어서 레벨을 올려서 맛있는 것도 먹고, 남자 친구도 구할거야!"

대탈출!
위드와 서윤 그리고 다른 유저들이 엠비뉴의 광신도들을 막아 주는 동안 멀리까지 달아나야 된다.
왕성의 지하도에서 부터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유저와 주민 들은 언덕을 넘어서 계속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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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라보그 성을 빠져나온 주민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들었습니다.
명성이 34 증가합니다.

- 은혜를 입은 주민들 사이에서의 평판이 좋아집니다.

- 로자임 왕국 주민들과의 친밀도가 향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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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의 메시지 창에 계속 글귀가 떴다.
몰려 있는 피난민들이 워낙 많기에, 아직은 겨우 몇천 명 정도가 지하도를 나와 언덕을 넘가는 수준이었다.
남은 자들이 모두 안전한 지역까지 도망치려면 상당히 긴 시간을 벌어 주어야 했다.

'얼마나 오래 버텨 줄지 모르겠군.'

세라보그 성을 쳐다보니 불길로 완전히 뒤덮여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엠비뉴의 군대는 왕과 기사들을 뒤쫓고, 또한 도망치는 사람들을 추격하게 될 것이다.
위드가 이끌고 있는 피난민들에게 엠비뉴의 대규모 군대가 따라붙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누나!"

혼란 때문에 어느 초보 유저가 손을 놓치고 발이 돌부리에 걸려 때굴때굴 굴렀다.
그 자리에는 부상이 심한 광신도가 곡괭이를 들고 서 있었다.

"엠비뉴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마땅하다!"

초보에게 광신도라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보스급 몬스터가 따로 없었다.

"차드야!"

뒤돌아본 누나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막 곡괭이를 내려찍으려던 광신도가 회색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광신도가 있던 자리에는 창을 든 아이스 트롤리 있었더.
앞에서 싸우던 위드가, 차드라는 소년이 위험에 처한 걸 보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온 것이다.

"어서 가세요."

위드는 직접 차드의 손을 잡고 일으켜 줬다.
허겁지겁 도망치던 유저들도 이 장면을 보았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했는데요."

아이스 트롤의 흉악한 얼굴에는 위선과 가식이 하나도 없었더.

'후, 큰일 날 뻔했네!'

어따한 잡템도 놓치지지 않는 위드!
차드라는 초보 유저가 넘어진 장소 주변에 사파이어가 떨어져 있는 걸 빨리 발견해서 정말이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피난민들의 도주는 위드의 마음에 들 정도로 재빠르지 못했다.
초보자들은 세라보그 성에서 멀리 떨어져서 전투 지역을 이탈하면 로그아웃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라보그 성의 주민들 중에는 노인과 어린아이가 매우 많았다.
체력만이 아니라 사기도 낮아서, 행군이 느린편이었다.
서윤과 반 호크, 토리도, 다른 유저들과 같이 광신도들을 물리쳤지만 위드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세라보그 성의 최후가 가까워졌군."

세라보그 성은 이제 아주 멀리서도 불길과 연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방어 병력은 거의 전멸하기 일보 직전이었고, 성의 일부는 굉음을 내며 무너져 갔다.
그리고 위드와 피난민들이 있는 언덕으로는 엠비뉴 교단의 다른 군대가 다가왔다.

"이번엔 칼라크롭스다."

매머드처럼 생긴 거대 코뿔소!
높이가 6미터에, 레벨은 360대나 되었다.
칼라크롭스의 등에는 엠비뉴의 병사들이 망루 같은 것을 설치해 놓고 타고 있었다.
와이번 나이트들의 보고를 받고, 피난민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온 칼라크롭스 군단이었다.

"엠비뉴를 믿지 않고 도망치는 자들을 죽여라!"

칼라크롭스에 타고 있는 엠비뉴의 궁수들이 활을 들어 올렸다.
위드는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하여 앞으로 나섰다.

'나를 넘지 않으면 단 1명도 이곳을 통고하지 못한다!"

넘치는 힘과 맷집이 있었기에 부려 본 호기였다.
푸슈슈슝!
이에 응답하듯이, 전방의 하늘이 온통 새까매 보일 정도로 무수하게 날아온 화살이 위드에게로 쏟아졌다.
위드는 양손으로 창을 최대한 빠르게 회전시켰다.
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창에 부딪친 화살들이 튕겨져 나갔다.
차라라라랑!
하지만 그 사이를 통과한 화살들은 아이스 트롤의 거대한 몸에 사정없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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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 공격을 당했습니다.
생명력이 275 감소합니다.

- 화살 공격을 당했습니다.
갑옷의 영향으로 피해를 줄입니다.
생명력이 89 감소합니다.

- 화살 공격을 당했습니다.
생명력이 327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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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드의 몸은 고슴도치를 방불케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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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령의 화살을 몸으로 받아 내어 맷집이 2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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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의 시선을 잡아 두는 데에는 성공했다.
아이스 트롤의 생명력이 높았기 때문에 살았지 잘못하면 아주 위험할 수 있었다.
검을 휘둘러서 화살을 자르거나 벽을 만들어서 차단하는 스킬도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위드는 그런 스킬을 배운적이 없었기에 다만 아쉬울 뿐이었다.
사실 스킬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마나가 너무 없어서 사용하지도 못했으리라.

"쳐라!"

칼라크롭스 전단이 땅을 쿵쿵거리면서 질주해 왔다.
유저들과 주민들은 기가 질렸다.

"아, 진짜 저런 놈들이랑 싸워야 되는 거야?"
"진짜 무섭다."

전쟁터가 아니고서야 저런 공격을 받을 일은 드문 법.
일반적인 몬스터만 사냥해 보던 유저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치료의 손길!"

사제들이 긴급히 위드를 치료해 줬다.
위드는 반 호크, 토리도, 서윤과 같이 언덕에 나란히 섰다.

"정말 전투가 즐거운 날이군. 이런 날은 신 나게 싸워 봐야지."

그러면서 슬그머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내가 살아서 칼라모르 제국군에 있을 때는 매일 이렇게 싸웠다."

반 호크도 한 걸음 뒤로.

서윤은 혼자서 나서며 시선을 끌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뒤로 물러났다.

"캬르르르."

토리도는 돌진하는 적들을 향해 송곳니를 보이며 위협하고 있다가 나중에야 다른 사람들이 모조리 물러선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마저 물러서기에는, 뱀파이어 로드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진혈의 뱀파이어족이 박쥐 떼로 공중에서 날아다니고 있었기에 더더욱 안 될 일.

"피! 피가 그립다."

토리도는 앞으로 뛰쳐나가더니 망토를 펼치며 높이 뛰어 올라 칼라크롭스 위로 올라섰다.

"뱀파이어다!"
"뱀파이어도 엠비뉴를 위한 제물로 바치자.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그분을 위해, 이 대륙을 파괴하자!"

엠비뉴의 궁수들이 토디도를 향해 화살을 쏘고, 주술사들은 저주와 속박의 주문의 외웠다.

"블레이드 토네이도!"

토리도도 스킬을 사용했다.
피의 칼날에 의해 주변이 황폐화되며, 공격 범위 안에 있던 칼라크롭스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사이 위드는 생명력이 다소 회복되었고, 아이스 트롤이라서 체력도 왕성했다.

"반 호크, 가자."

위드가 창을 들고 앞으로 달렸다.
칼라크롭스들이 그를 밟으려고 하고, 엠비뉴 병사들은 마법과 화살로 공격했다.
위드는 큰 덩치 탓에 공격들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스치기만 해도 생명력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무지막지한 힘으로 칼라크롭스의 앞발을 후려쳐서 쓰러뜨렸다.
콰아아아앙!
굉음을 내면서 육중하게 쓰러지는 칼라크롭스들!
서윤도 광전사의 스킬들을 본격적으로 발취하면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번 진지하게 싸우기 시작하면 직업 특성상 멈추기가 어렵다.
지금까지는 몸풀기 정도에 불과하였지만, 이제야말로 광전사의 능력을 발동했다.
칼라크롭스와 엠비뉴 병사들을 통째로 회색빛으로 만들어 버리는 엄청난 위력을 과시하며 전장을 누비고 다녔다.
반 호크는 유령마를 타고 다니며 기동력 있게 병사들 위주로 제압하고, 토리도는 진혈의 뱀파이어족과 함께 칼라크롭스 위로 날아다녔다.
아직 아침이 오지 않은 시간, 인간들을 상대하는 뱀파이어의 위력은 가히 어마어마할 정도였다.
토리도의 매혹의 힘에 휘말린 칼라크롭스들이 자기들끼리 싸웠다.
엠비뉴의 궁수들도 서로를 공격했다.

"엠비뉴를 거짓으로 따르는 놈부터 죽여라."
"뱀파이어야말로 엠비뉴께서 우리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기 위하여 보낸 이들이다!"

로그아웃을 하지 않은 유저들도 화살과 마법 공격으로 지원하고, 전사들은 위험을 무릅써 가며 같이 싸웠다.
갈라크롭스의 발에 밟히고 궁수들의 화살에 맞아 희생이 속출하였지만, 그들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 나 방송 나왔어!"
"위드랑 같이 싸우다가 죽는다고 친구들한테 알려야지."
"아,아이템... 먹을 수 있었는데!"

마법이 작렬하고, 화살이 비처럼 떨어졌다.
위드는 궁수들을 해치우지 않고 칼라크롭스만 노렸다.
쿵! 쿵! 쿵!
칼라크롭스가 달려오며 앞발로 위드를 밟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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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의 괴력을 사용합니다.
힘이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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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압!"

위드는 그 발을 잡아서 옆으로 넘겨 버렸다.
육중한 칼라크롭스들이 쓰러질 때마다 엠비뉴의 궁수와 주술사 들은 덤으로 우수수 죽어 나갔다.
전쟁이나 공성전에서 칼라크롭스들은 병사들을 상대로 대단한 활약을 했다.
군대의 사기를 낮춰 버리는 효과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력 외의 면에서도 쓸모가 많았다.
유저들 중에서도 투지가 낮은데 무리해서 나선 사람들은 칼라크롭스의 질주가 시작되면 몸이 얼어붙어서 피하지도 못하고 사망!
하지만 위드와 서윤, 반 호크, 토리도는 본 드래곤과도 싸워 봤다.
칼라크롭스 정도에 주눅이 들 정도로 투지가 낮지도 않았다.


[ 위드의 선택 ]

왕성의 지하도에서 빠져나오던 유저들 중에는 할마와 마르고, 그랜, 레위스도 있었다.
바르크 산맥을 넘어갈 때에 위드와 마판을 따라가서 함정에 빠뜨리려다가 역으로 죽은 뒤치기 4인조!
로자임 왕국으로 넘어가서 활약하면서는 용감하게 검치들을 털기도 했던 그들이다.
이카 길드에 속해서 나쁜 짓들을 창의적으로 저지르면서 살던 그들!
길드 마스터 다리우스가 지휘하는 이카 길드는 그들의 적성에 딱 맞았다.

"이런 길드가 다 있네. 명분 따위 신경 안 쓰니까 길드전도 마구 벌이고."

이카 길드는, 좋은 사냥터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길드원들을 소집해서 강제로 빼앗았다.
다른 사람들이 발견해 낸 던전을 장악한 채 사람들에게 이용 요금으로 높으 ㄴ세율을 물리는 건 다반사였고, 어렵게 획득한 아이템을 강제로 빼앗기도 했다.

"완전 우리가 원하던 길드야."

그들은 이카 길드의 잘나가는 행동대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이카 길드의 전력은 시간이 지나도 그리 크게 늘어나지 못했다.
길드의 규모에 비하여 중랑 대륙의 명문 길드를 넘볼 정도로 악행을 저지르다 보니 사람들이 기피하게 된것이다.
나쁜 짓도 힘이 없으면 적당히 해야 하는데 도에 지나칠 정도라서,
이카 길드원이라면 어디서든 손가락질부터 하고 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드에 가입하는 사람도 없어졌고, 강대한 세력도 이루지 못하고 금방 와해되고 말았다.
길드 마스터 다리우스는 특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로자임 왕국에서 버티지 못하고 중앙 대륙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뒤치기 4인조도 중앙 대륙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곳에는 또 원한을 맺은 사람들이 많아서 브렌트 왕국으로 떠났다.

- 넓은 베르사 대륙에서 나쁜 딧은 어디서든 할 수 있다!

브렌트 왕국에서도 악명을 떨치다가 곤란해져서, 이제 잠잠해졌을 로자임 왕국으로 되돌아온 뒤치기 4인조.
그들은 세라보그 성에서 왕국의 분위기를 살피면서 상인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을 털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엠비뉴 교단이 침공을 해 온 것이다.

"우리는 어쩌지?"
"어디든 끼어서 같이 도망치자. 그러면 살 수 있을 거야."

세라보그 성을 탈출하는 세력들에 속하고 싶었지만 뒤치기 4인조를 기억하고 있어서 끼워 주지 않았다.

"세상 진짜 야박하네."
"잘 먹고 잘 살아라!"

뒤치기 4인조는 성이 엠비뉴 교단에 점령당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던 차에 전쟁의 신 위드가 나타나서 세라보그 성의 피난민들을 데리고 탈출한다고 한다.
중소 길드들까지 위드를 따라간다고 하고, 세라보그 성의 유저들 사이에는 기쁨과 안도가 스쳐 지나갔다.
단 한 사람이 나선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이렇게 크게 달라 질 수 있다니.

"야, 우리 진짜 망했다."
"전쟁의 신 위드잖아!"

할마, 레위스, 그랜, 마르고는 위드의 등장에도 기뻐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몰랐다. 하지만 로자임 왕국에서 지내면서 조각사 위드가 상당히 대단한 인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조각사라고 무시했는데, 우리가 당할 만한 사람한테 당한 거 같아."
"괜찮네, 뭐. 즐거운 추억이었으니까."

뒤치기 4인조는 그렇게 그 일을 넘겼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위드가 벌이는 여러 가지 대형 퀘스트들!
명예의 전당에도, 게시판을 봐도, 게임 방송을 봐도 어디서나 위드의 이야기가 나왔다.
4인조도 위드처럼 모험을 하고 싶었다.

"진짜 부럽다."
"혼자서 못하는 게 없잖아. 전쟁의 신 위드라면 클라우드 길드도 껌뻑 죽을 텐데...."
"위드가 지나가면 웬만큼 큰 길드 마스터라고 해도 감히 뭐라고 못 할걸. 던전에 들어가더라도 감히 통행료나 받을수 있을까?"
"위드한테 무슨 통행료를 받아. 사람이 이 정도쯤 되면 다들 알아서 슬슬 기어야지."

뒤치기 4인조는 전쟁의 신 위드를 치켜세워 주며 그의 모험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제 조각사 위드가 전쟁의 신 위드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후였다.

"설마 아직까지도 우리를 기억하진 못하겠지?"
"몰래 빠져나가자. 사람들 사이에 묻히면 괜찮을 거야."

뒤치기 4인조는 주민들 사이에 끼어서 왕성의 지하도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엄청난 소란과 함께 칼라크롭스와 싸우고 있는 아이스 트롤이 보였다.
데스 나이트와 뱀파이어로드를 지휘하며 전투를 벌이는 위드의 모습은 너무나도 멋졌다.

"전쟁의 신 위드 만세!"
"우리를 구해 줘서 고맙습니다."

#

위드는 칼라크롭스들 사이로 무섭게 뛰어들었다.
겁을 제대로 상실한 모습!

"꺄아악!"
"위드 님, 안돼요!"

유저들이 걱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덩치가 큰 칼라크롭스들이 쿵쾅거리면서 달려 다니는데,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뿔에 치이거나 넓적한 다리에 밟힌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무섭고 끔찍했다.
이리저리 치여서 금방이라도 목숨을 잃을 것 같았지만, 위드는 칼라크롭스 군단의 틈바구니에서도 멀쩡했다.

"비켜라!"
"아이스 트롤이 저쪽으로 갔다!"

엠비뉴의 궁수와 주술사 들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칼라크롭스들이 방해물이 되어서 위드를 정확히 노리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방법이 있었군!"

잔머리로 지금까지 세상을 따뜻하게 살아온 사람이 위드였다.
검치 들도 인정하는 부분이, 위드는 그 어떤 전장에서도 금방 적응하면서 뛰어난 전투 방법을 개발하여 기상천외하게 싸운다는 점이었다.

"어디 날 잡아 봐라!"

위드는 그 큰 덩치를 하고서도 영악하게 칼라크롭스들 사이를 헤치고 다녔다.
칼라크롭스들이 질주해 와서 뿔로 들이받으려고 할 때에는 이미 다른 동족의 배 아래로 빠져나가 버리고 난 후였다.
쿠에에에!
칼라크롭스들은 한데 뭉쳐서 오히려 서로에게 심하게 방해만 되느라 제대로 전투를 치르지도 못했다.
게다가 위드가 지나다닐 때마다 차가운 기운이 점차 퍼져서 다리부터 얼어붙어 움직이는 게 점점 더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위드가 피해 다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때야말로 제대로 사냥을 하고 경험치를 올릴 수 있는 좋은기회!
'몬스터는 널려 있고, 힘과 체력도 충분하군. 뒤에서 날 치료해 줄 사제도 많이 있고.'

파티 사냥은 아니지만, 위드가 위기에 빠지면 100명이 넘는 사제들이 치료의 손길을 집중시켜 줄 수 있다.

"어디 놀아 보자!"

위드의 손에서 창이 부러질 듯이 꿈틀거렸다.
아이스 트롤과 조각 파괴술의 영향으로, 강철 창은 막강한 힘으로 휘둘리며 조금씩 휘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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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통렬한 일격!
칼라크롭스를 쓰러뜨립니다.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꿰뚫는 창!
칼라크롭스의 방어력을 무시하고 다리를 관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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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하압!"

위드는 아이스 트롤의 힘을 사용하며 커다란 칼라크롭스들 사이에서 실컷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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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순간의 괴력이 발동되었습니다.
통렬한 일격!
칼라크롭스를 전투 불능으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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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크롭스들이 위드에게 무참히 당하는 것을 보며, 보스급이 달려왔다.
덩치도 9미터 정도로 훨씬 크고, 뿔과 눈빛에는 위엄이 넘쳤다.
레벨이 420에 달하는 칼라크롭스 대장 수컷!
땅이 울리는 진동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봐야 덩치가 클 뿐이지. 몸이 큰 만큼 움직임은 더 둔할 거야."

위드도 아이스 트롤이니 다소 염치는 없는 말이였지만,
어쨌거나 보스급 몬스터와의 승부였다.
오래 끌면 끌수록 유리할 게 없는 전투에서는 위험하더라도 빨리 승부를 내야한다.
언덕 위에서 기다리면서 칼라크롭스의 대장 수컷의 질주가 느려지기를 기다렸다.

'가장 위험한 한 번만 피하면 된다.'

대장 수컷이 가까워졌을 때, 다른 칼라크롭스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대장 수컷은 차마 동족들을 짓밟지 못하고 급히 멈추며 상체를 높이 들었다.
위드가 기다려 온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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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순간의 괴력이 발동되었습니다.
꿰뚫는 창!
칼라크롭스 대장 수컷에게 부상을 입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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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보스급 몬스터라서 한 방으로는 어림도 없다.
위드는 대장 수컷을 따라 돌면서 연속으로 공격했다.
푸욱!
퍼퍼퍼퍼퍼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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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29%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58%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93%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127%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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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치명타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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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번 나이트의 갈철 창이 내구도가 다하여 산산조각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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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버텨 주던 창이 부러지고 깨져서 더 이상 무기로 사용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위드는 그 파편을 재빨리 수거해서 배낭에 넣고, 다른 창을 2개 더 꺼냈다.
와이번 나이트들과 싸우면서 획득한 창이 한 자루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자루는, 과거 드워프의 도시 토르의 환송식에서 장인 엑버린에게 선물받은 불렌서의 창!

"어디 신 나게 맞아 봐라!"

역시 보스급의 방어력은 막강해서,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와이번 나이트의 창은 금방 끝이 뭉개져서 공격력이 떨어져 버렸다.
위드는 도약해서 칼라크롭스 대장 수컷의 몸에 불렌서의 창을 꽂았다.
그러고 난 이후 창을 밟고 뛰어올라 대장 수컷의 몸에 탔다.

"마지막이다!"

쓰러지지 않고 버티던 대장 수컷!

생명력과 방어력, 체력과 속도마저 보통 빠른 것이 아니었지만 등에서 공격하는 위드에 의해서 최후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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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엠비뉴 교단의 칼라크롭스의 대장 수컷이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 훌륭한 업적으로 인하여 명성이 285 올랐습니다.
- 카리스마가 1 상승하셨습니다.
- 힘이 2 상승하셨습니다.
- 신앙이 2 상승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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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의 메시지 창이 한꺼번에 올렸을 뿐만 아니라 전리품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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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리크롭스의 거대한 뿔을 획득하셨습니다.
- 엠비뉴의 증표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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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은 활로 만들 수도 있고, 조각품으로 만들기에도 좋았다.
꾸우우우!
대장 수컷이 사망하자 칼라크롭스 군단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엠비뉴의 궁수와 주술사 들은 계속 싸우도록 지시를 내렸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도주했다.

"겨우 한고비를 넘겼군."

위드가 뒤를 돌아보니 피난민들은 사분의 일 정도밖에는 빠져나가지 못했다.
언덕을 넘어서 이동하는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

"저들이 로자임 왕국군이 지키는 성으로 가려면 하루나 이틀은 걸릴 텐데."

게다가 세라보그 성이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곧 엠비뉴의 군대가 대대적으로 따라붙는다면 피난민들을 데리고 대피하는 일에는 지대한 어려움이 따르리라.
셀리나의 퀘스트가 몇 명의 난민을 살려야 성공인지는 모르겠지만, 추격자들에 의해 쫓기면서 일부만을 살려 가는 건 위드의 성격에 안 맞았다.
빚쟁이, 사채업자에게 시달려 본 경험으로 충분한 것!
위드의 주변으로 반 호크, 토리도, 서윤 그리고 유저들이 모여들었다.
세라보그 성의 주민들 중에서도 예전에 병사나 사냥꾼이었던 자들이 왔다.

"위드 님. 명예로운 위드 님에게 저희의 운명을 맡깁니다.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였으니, 가족들만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기사 오드가! 검을 놓은 지는 오래되었으나 모라타의 백작 위드 님에게 새로 충성을 바칩니다. 위드님과 같이, 엠비뉴 교단과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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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꾼 젠킨스와 430명이 전투에 참여합니다.
이들을 이끌고 엠비뉴 교단과의 싸움을 하실 수 있습니다.

- 퇴직 기사 오드가 외에 늙은 기사 7인, 젊을 때 병사였던 894인이 전투에 참여합니다.
높은 충성도를 가진 병사들을 통솔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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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별로 좋은 인상이 아니던 위드의 표정이 더욱 나빠졌다.
사냥꾼들은 아무 방어구도 없이 고작 사냥용 활이나 하나씩 들고 있었을뿐더러, 그마저도 없는 자들이 더 많다!
늙은기사와 병사 들도, 방패와 갑옷은 당연히 없고 검도 없이 농기구나 주방용 식칼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에 무슨....."
"예?"
"아니다"

세라보그 성의 정예 병력도 휘하로 거두는 일을 마다할 판에 이런 오합지졸이라니.

'엠비뉴와의 싸움에 큰 도움은 안 되겠군,'

위드는 상황을 냉정히 분석해 봤다.

"이런 식으로라면 많은 사람들이 살진 못할 거야. 체력이 떨어지는 노인과 어린아이가 먼저 목숨을 잃겠지."

위드나 서윤이 지켜 주는 데에도 한계는 있었다.
엠비뉴의 기병이나 마물 들이 대살육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엠비뉴 교단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만한 획기적인 뭔가가 필요해."

왕과 왕족들은 지하도를 통해서 지상으로 빠져나갔다.
기사와 마법사 들의 호위까지 받는 그들은 엠비뉴 교단의 추격을 뿌리치고 벌써 멀리까지 떨어져 있었다.
엠비뉴 교단의 선택은 아마도 이 피난민을 향하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그들이 피난민들을 공격하는 걸 포기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란.....

"대단한 미끼가 필요하겠지. 엠비뉴 교단이 모든 일에 우선해서 쫓아올 만한 미끼.
그러면서도 상당한 전투력을 갖추고 있어야 돼. 안 그러면 오랫동안 시간을 벌지 못하고 금세 죽어 버릴 테니까. 흠, 그렇게 쓸 만한 미끼는 별로 없을텐데."

위드는 자신과 엠비뉴 교단과의 악연을 돌이켜 봤다.
북부에서 엠비뉴 교단의 음모를 분쇄했을 뿐만 아니라, 11지파의 수장이던 페이로드까지 없앴다.
엠비뉴 교단은 위드를 향해 저주의 칼날을 가는 입장이었다.

"만약 내가 엠비뉴의 군대 앞에서 그들을 유인한다면 놈들은 이게 웬 떡이냐 하겠지?"

엠비뉴 교단은 분명히 피난민을 쫓지 않고 위드를 향해 올것이다.
세라보그 성을 초토화시킨 그 군대가, 광신도와 마물 들.
엠비뉴의 암흑 사제와 저주술사 등으로 편성된 강대한 군대가 위드를 쫓아오게 되리라.

"어떻게 그런 생각을......"
"과연 위드 님이야."
"위드 님이 스스로 미끼가 되어서 우리를 살려 준대."
"우와아아아!"

그저 무심결에 혼자 중얼거린 것뿐이건만, 위드의 이 말은 유저들의 입을 통해 퍼져서 피난민 전체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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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라보그 성의 피난민들이 희망을 갖습니다.
사기가 89%까지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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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들은 힘을 얻어서 더 빨리 언덕을 넘으며 도망쳤다.

"어서가요, 할아버지."
"그래, 위드 님이 살려 주시는 이 목숨, 소중히 써야지. 빨리 가자꾸나!"

졸지에 위드가 엠비뉴 교단을 유인하는 미끼가 되는 것으로 확정!

"....."

만약에 거부한다면 사기가 더 떨어지게 될 테고, 도주는 더 많이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위드는 그를 쳐다보는 초롱초롱한 눈길들을 느꼈다.
어린 유저들. 초보자들은 어차피 죽더라도 잃을 게 많진않다.
그러다 보니 위드가 팔았던 땅콩과 오징어를 먹으면서 싸울 구경을 하려는 듯이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진짜 재밌겠다."
"위드 님이 얼마나 잘 싸울지 궁금하긴 했어."
"그러게, 광신도나 칼라크롭스 같은 건 위드 님에게는 잠깐 몸 푸는 정도잖아."

마구 확대된 뜬소문들이 만들어 내는 부작용!
하지만 유저들이 그만큼 기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퀘스트를 성공시키려면 미끼가 필요하긴 하겠어.'

위드가 생각하기에도 자신보다 훌륭한 미끼는 없었다.
웬만해서는 안 죽을 정도의 무력도 있고, 전장에서 이리저리 뒹굴 눈치도 있다.
단, 자기를 희생하는 살신성인의 자세 따위는 지금까지 인생에서 추구해 온 방향과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안 돼. 이런 식으로 흔들려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어. 성공해서 정치라도 하려면 이런 마음부터 버려야 돼@"

위드는 불타고 있는 세라보그 성을 쳐다봤다.

"저 차가운 눈으로 엠비뉴의 군대를 노려보고 있어. 정말 싸울 생각인가 봐!"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목을 풀고 있네. 이제 싸우러 가는 건가?"

위드는 들고 있던 불렌서의 창을 만지작거렸다.
칼라크롭스 대장 수컷과 싸우면서 내구도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창을 수리하고 가려나 봐!"

이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야 무시하고 살 수도 있다.
물론 실망하고 욕할지도 모른다.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도 있는데, 욕이야 실컷 먹으면 어때.'

무시하면 그뿐!
하지만 피난민들을 살려서 퀘스트를 성공하려면 위드가 나서는 게 필요했다.
어차피 엠비뉴의 군대가 피난민들을 쫓아오게 될 것이고, 위드와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게 되어 있었다.
위드의 정체가 발각되는 순간 엠비뉴의 주력은 그를 집중적으로 노리게 될 테니 결과적으로 보면 별로 달라질 것도 없다.

"저희가 먼저 죽겠습니다."
"더 늙기 전에 명예로운 전투를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사냥꾼과 기사 들이 말했다.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나와 같이 싸우지 않아도 된다. 안전한 곳으로 도망쳐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약하다고 내치시는 게 아니라면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게 해 주십시오!"
"너희가 지켜야 할 것은 가족이다. 가족들에게 돌아가서 그들의 웃음을 보며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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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꾼과 병사 들의 지휘를 포기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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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나 혼자서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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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꾼과 병사 들이 다시 피난민으로 합류합니다.

- 명예 스탯이 생성됩니다.
명예 : 귀족으로서 의로운 일을 실천하였을 때 오릅니다.
주민들의 충성도, 외교에 큰 영향을 주며,
자유 기사들을 포섭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명예 스탯이 2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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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혼자 싸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언덕을 내려오는 그의 곁에는 서윤과 반 호크, 토리도가 함께했다.

"왕국민들을 보살피는 건 기사로서의 당연한 의무다."
"피 맛을 실컷 볼 수 있겠군."
"......"

#

엠비뉴 교단의 군대는 세라보그 성을 약탈하며 불을 질렀다.

"모두 빼앗아라. 엠비뉴 신을 위하여 바쳐질 보석들이다."
"엠비뉴 신을 따르지 않는 로자임 왕국은 멸망하고 말리라."

엠비뉴의 암흑 사제들은 성이 다 타 버리기 전에 마물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재물을 챙겼다.
유서깊은 로자임 왕국의 왕성이 마물들에 의하여 사라지고 있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엠비뉴의 군대는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친 각 세력들과 피난민들을 쫓게 되리라.
그때 들리는 커다란 목소리!

"나 위드가 왔다. 엠비뉴 교단이여, 얼마든지 덤벼라!"

왕의 집무실을 약탈하던 아홉 번째 교주 벨로니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불길에 뒤덮인 성의 상층부에서 밖을 내려다보는 벨로니!
무너진 성벽 너머에 위드와 서윤, 반 호크, 토리도가 있었다.
위드는 용감무쌍하게도 세라보그 성의 경계 부근까지 돌아왔던 것!
그래 봐야 크게 멀지도 않은 거리이기는 해도, 엠비뉴 군대들이 몰려 있는 한복판에 나타난 것이다.

"위드라면 우리 엠비뉴 교단에서 최우선으로 죽여야 할 대상! 엠비뉴의 종들이여, 저 인간을 죽여라!"


#
모라타의 예술가들은 눈을 반짝이면서 수정 구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 정말 대박이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이 다 나네."
"난 술 마시는 것도 잊고 있었어."

위드가 피난민들을 이끌고 도망칠 때부터 재미가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위드의 모험은 사람들을 빨려들게 만든다.
그렇기에, 위드 자신이 조각사였지만 예술가들에게는 매우 훌륭한 대상이 되었다.

'조각품으로 만들면......"
'그림으로 그리면 죽여줄 텐데. 지금 이 구도가 정말 최고야.'

조각사와 화가 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벌써 모라타 조각사 조합에서는 위드의 대형 동상을 세우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참이다.
만들어 놓기만 하면 인기는 따 놓은 거나 다름없고, 도시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단 한 번의 전투에서도, 화가들이 그릴 만한 명장면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던전에서 전투를 하는 장면이 멋졌던 거 같아."
"피난민들에게 연설하는 아이스 트롤도 나쁘지 않았잖아."
"얼어붙은 와이번을 타고 공중에서 뛰어다니던 건 어떻고?"
"그야 당연히 최고지. 하지만 이제 부터 더 대단한 장면들이 나올걸."
"캬하! 엠비뉴 군대에 저들끼리 선전포고라니. 내가 저 자리에만 있었더라도...."

화가들은 그려야 될 장면들을 재빨리 구상해 놓았다.
위드에 대한 그림들이무수히 많이 나올 것이기에 단체 전시회를 개최하는 일도 벌써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조금 아쉬워했다.
자신이 위드의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뛰고 흥분될까!
예술가들 외에 다른 직업의 유저들도 수정 구슬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바드와 댄서 들!

"잘 지켜보세요. 다음에 할 공연입니다."
"제목은 뭘로 지을까요?"
"위드가 엠비뉴 교단에 맞서다?"
"아니에요. 대륙의 성자 위드가 낫지 않겠어요?"

모라타의 바드와 댄서 들은 위드의 모험을 대규모 합동 공연으로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위드를 주제로 잡으면 소재거리가 끈이지 않아서 좋았다.
어디로 가든 흥미진진한 사고가 벌어졌으니까.
모라타의 주민들도 수정 구슬을 보았다.

"영주님이 다르긴 달라."
"무사히 돌아오셔야 될 탠데. 엠비뉴 교단에 죽으시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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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라타 주민들의 사기가 오릅니다.

- 모라타 주민들의 영주에 대한 충성심이 최고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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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홍수와 스핑크스 ]

위드는 사자후를 터트리고 서 있었다.
땅에 꽂혀 있는 창을 오른손으로 잡고, 가슴까지 내밀었다.
위엄으로 가득 찬, 당당하기 짝이 없는 모습!

"위드를 죽여라!"
"저놈부터 죽여야 한다. 벨로니 교주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불타는 세라보그 성에서 마물들이 튀어나와서 위드를 향하여 달려왔다.
성을 포위하고 있던 대규모의 엠비뉴 군대도 자리를 이탈해서 이동했다.
그들의 목표는 전부 위드를 죽이는 것이었다.
엠비뉴 교단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사자후를 터트린 효과는 너무나도 충분했다.

"으음."

위드도 이 정도의 여파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 인기가 대한하군."

지금에서야 인기를 실감!

"......."

서윤이 물끄러미 위드를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계획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에 엠비뉴 교단을 이런 식으로 도발할까에 대한 인간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 없이 싸울 수 있겠군."
"피의 축제를 열어 봐야겠다."

반 호크와 토리도가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위드는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달려!"

위드의 선택은 도주였다.
당연하게도 엠비뉴 교단의 군대와 최후까지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계획일 리가 없었다.
그런 무모한 계획이란, 위드에게 있어서는 꼬박꼬박 적금을 부어서 복권이나 딱지치기에 쏟아붓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서윤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위드를 따라나섰다.
그녀가 보기에도 엠비뉴 교단의 시선을 끌었으면 다음 선택은 당연히 도망치는 게 옳았다.
그래도 그럴 거라면 구태여 사자후를 터트리고 창을 땅에 꽂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위드의 생각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몇 초는 멋있었을 거야.'

남자로서, 누구나 괜히 잡아 보고 싶어 한다는 폼이었다.
엠비뉴의 군대가 총동원되어 쫓아오고 있으니 이제부턴 신 나게 도망치는 일만 남았다.
암흑 성기사들이, 위드의 도주를 막으려고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어디 실컷 달려 볼까? 반 호크, 길을 열어라."
"알겠다, 주인."

유령마를 탄 채 마주 달려 나가며 반 호크는 검을 뽑아 세차게 휘둘렀다.
푸히히힝!
암흑 성기사들이 말과 함께 쓰러졌다.
위드가 그렇게 괴롭히고 경험치만 축내며 쓸모없다고 괄시했던 반 호크다.
하지만 사냥터를 같이 다니며 성장시킨 보람이 있어, 어둠의 기사로서 멋진 활약을 보였다.
위드가 있는 장소라면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그와 같이 다니는 데스 나이트를 떠올릴 정도로 인기도 끌었다.

"가자. 계속 돌파하자!"

엠비뉴의 군대가 집단별로 이동하면서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었다.
언덕에서 보고 있는 초보자들은 광신도의 부대와 마물들의 부대가 제법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거리를 좁혀 위드를 포위해 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아 ... 혼자 싸운다고 하니 저런 식으로 되는구나."
"정말 살 떨리겠다. 수만 이상의 병력이 자기만 죽이러 온다고 생각해 봐."
"우왓! 정말 최고의 기분이겠다."

마물들이 모이는 걸 보면 웅장한 느낌까지 받았다.

"그대로 멈추면 안 돼!"

위드는 불렌서의 창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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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렬한 일격!
적을 멀리 날려 버립니다.

- 통렬한 일격!
암흑 성기사가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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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트롤의 힘으로 암흑 성기사의 마물 들로 구성된 방어선을 날렸다.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 적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따라가서 죽일 시간 여유가 없었다.

"사냥감을 남기면 안 되는데.... 안타깝군."

몬스터들이 쌓여 있는데도 해치우지 못하고 도망쳐야 하니 너무나 괴로웠다.
하지만 주변의 전황은 그야말로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공성전에 투입되었던 최정예 마물 군단이 뒤쫓아 오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광신도와 암흑 성기사, 저주술사가 널려 있다.

"엠비뉴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는 겁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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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움을 자극하는 저주로 인해 투지가 56 감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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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자는 깊은 고통에 잠겨 영원히 회개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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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자극으로 인해 상처를 입엇을때 생명력이 17% 더 많이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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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술사들이 퍼붓는 여러 저주의 효과들이 위드와 서윤, 반 호크, 토리도에게 부여됐다.
위드의 몸 근처에는 작은 해골이 빙글빙글 돌아다녔으며, 뒤에서는 불타는 거대한 손이 다가오기도 했다.
주변에는 새벽의 강가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서 시야를 좁혔다.
엠비뉴의 저주술사는 과연 상대하기 어렵다는 소문 그대로였다.
순식간에 최소한 일곱 가지 이상씩의 저주가 넷에게 걸려든 것이다.

"역시 여럿이서 남 욕할 때가 좋다니까."

특히 뒤에서 몰래 이야기 할 때의 재미란, 3~4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릴 정도!
위드와 서윤은 전투에 나서기 전에 사제들로부터 가능한 모든 종류의 축복을 받았다.
하지만 저주로 인하여 축복의 효과가 빨리 떨어지고 전투력이 감소하는 등 여러 불편함이 생겼다.

"계속 달려서 암흑 성기사부터 넘어서야 해."

저주는 다시 축복을 받거나 축복받은 성물을 가지고 있으면 빨리 해소된다.
흑마법에 대한 저항력, 정신력 스탯에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지기도 했다.
집요하게 덤벼드는 암흑 성기사들을 해치우는 게 우선 과제였다.

"어둠의 기사 반 호크가 승부를 청한다."
"엠비뉴를 따르는 자랑스러운 종, 델리크다. 승부를 받아주겠다."

반 호크는 암흑 성기사의 고위층을 연달아 격파!
역시 지금까지 데스 나이트를 성장시켜 놓은 보람이 있었다.
위드와 서윤, 토리도도 다가오는 대로 암흑 성기사들을 해치웠다.
서윤은 완전히 광전사로서의 눈을 뜬 상태로, 그녀의 공격력은 평소 때보다 늘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체력도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서윤이 먼저 위드에게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처리해 버릴 정도였다.
암흑 성기사들을 돌파하였지만 앞에는 광신도 부대가 무기를 쥐고 도열해 있었다.
조금 전에도 상대해 본 적이 있지만 광신도들은 별로 위협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암흑 성기사들 때문에 지체되는 동안 세라보그 성을 초토화시켰던 엠비뉴의 주력군이 가까워졌다.
광신도들에 의해 조금이라도 더 발목이 잡힐 테고 사방에서는 엠비뉴의 군대가 조여들고 있으니 완전히 포위되기라도 하면 그것이야말로 큰일!

"이런 게 카드 6개를 한도까지 돌려 막기 할 때의 기분인것 같군."

숨이 탁탁 막혀 오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안 보이는 상태!
위드는 반 호크와 토리도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간 험한 지역들을 많이 돌아다녀 본 경험 덕분인지 잘 싸웠다.
둘 다 언데드 계열인 만큼 저주나 독에도 내성이 굉장히 뛰어났다.
다만 암흑 성기사들과 싸우고 난 후라서 반 호크의 부상이 심한 편이었지만, 아직까지는 버틸 만한 정도였다.
서윤은 제대로 힘을 발취하면서, 몇 안 남은 암흑 성기사와 마물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처리했다.
광전사의 능력에 의해서 강한 적들을 해치울수록 잠재되어 있는 공격 본성이 깨어났다.
위드는 아이스 트롤의 종족 특성에 따라서 냉기를 발산하며 다가오는 적들을 느리게 만들고 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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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이 냉기에 대한 낮은 저항력으로, 다가오던 도중에 결빙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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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가 창을 휘두르면 얼음이 된 광신도들은 몇 배나 되는 타격을 입으면서 한꺼번에 회색빛으로 변했다.
저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약화되어 갔으니 지금까지의 상황이 그리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가 정말 큰 문제였다.

'최선을 다해서 도망치더라도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해. 하지만 또 너무 일찍 빠져나가 버리면 독이 오른 엠비뉴의 군대가 피난민들을 노리게 되겠지.'

시간을 벌어야 했고, 엠비뉴 군대의 시선도 계속 끌어 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살아야 했으니 정말 까다롭기 짝이 없었다.

"평일에도 늦잠을 자고, 자장면은 간자장에 곱빼기로 시켜서 남기고, 주말에는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빈둥거리고 싶은데 이놈의 팔자는..."


#

"오오오!"
"캬하하하하하."
"이런 게 위드라니까. 위드만 할 수 있는 모험이라고!"

바트가 있는 선술집은 사람들로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술집은 손님으로 가득 찼지만 다들 정작 맥주와 안주는 뒷전이고 대형 수정 구슬을 통해 위드의 모험을 지켜보느라 바빴다.
바트도 물론 보고 있었다.

'이런 게 뭐가 재미있나. 몬스터들에게 겁먹어서 던전을 나와 단체로 도망치기나 하는구만.'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신 나긴 신 나네. 묘하게 눈길을 끌긴 해. 피난민들이 죽어 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함도 있고.'

잠시 후, 위드가 1명의 동료와 부하 둘을 데리고 미끼가 되는 역할을 자처해서 맡았다.

'오, 저런 결정을.......'

선술집도 어느새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대형 수정 구슬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 맥주가 떨어져도 주문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위드와 서윤, 부하들이 도망치면서 만들어 내는 긴장감, 엠비뉴의 군대가 위협스럽게 몰려드는 걸 보면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트는 전투 시스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었기에 위드가 얼마나 잘 싸우는지를 몰랐다.
늑대, 여우, 토끼를 빼면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
전장을 헤치고 다니는 위드를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정말 움직임이 흉내 내지도 못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위드가 계속 무언가를 벌일 듯한 느낌은 확연히 받았다.
직접 만나 본 시간이 길진 않았어도 아무 대책 없이 엠비뉴 군대의 앞에 뛰어들 정도로 무모한 성격은 아니었다.

"근데 저 옆에 있는 가면을 쓰고 있는 여자애는...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설마 내 딸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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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도,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라."
"알겠다. 주인!"

토리도는 진혈의 뱀파이어족을 불러들였다.
뱀파이어들은 광신도를 습격하면서 레벨을 올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순수한 피를 가지고 있는 광신도들이었기에 진혈의 뱀파이어족이 상대하기에는 최적의 부대였다.
광신도와 뱀파이어의 대결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엠비뉴의 사제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뱀파이어들을 상대하려고 하지 않고 위드만 쫓아왔다.
다른 일에 우선하여 반드시 죽여야 하는 목표가 위드였다.
토리도가 방향을 튼 왼쪽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예전에 만들어 놓은 피라미드와 사자 괴물상이 우뚝 서 있는 장소였다.

"엠비뉴를 모독한 자는 도망치지 못한다!"

와이번 나이트들도 지상까지 내려와 창을 찌르면서 공격을 해 왔다.
그리고 멀리에서부터 화살과 마법이 계속 날아오고 있다.
엠비뉴의 군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으며, 피라미드와 사자 괴물상 너머에서도 광신도와 마물 들로 이루어진 병력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는 마음껏 활개치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포위되어 완전히 고립되어 가는 상황!
전 방향에서 엠비뉴의 군대가 옥죄어 왔다.
마물들의 이동속도가 빨라, 마물과 광신도를 해치우다 보니 미처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번에도 지켜 주지 못하겠구나.'

서윤은 최후까지 싸우기 위한 각오를 다졌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녀는 마지막까지 위드를 위해 싸우다가 먼저 죽을 작정이었다.

"여기 있지 말고 올라가자."

위드는 피라미드의 외벽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네모난 돌을 쌓아서 만든 피라미드였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지형상 크게 유리한 점도 없이 오갈 데가 없는 막다른 곳으로 간다는 게 조금 의문!

"아!"

서윤은 묘한 깨달음의 탄성과 함께 뒤를 따랐다.

"여기는 적들의 마법이나 화살에 취약하다."
"도주를 포기하고 최후까지 싸우겠다면 나쁘지 않다, 주인."

토리도와 반 호크도 피라미드의 돌을 밟고 올라왔다.
엠비뉴의 광신도와 병사, 마물 들도 계속 따라왔다.
한 층씩 오르면서, 와이번 나이트들과의 싸움도 계속 벌어졌다.
와이번 나이트 자체는 위드는 물론이고, 서윤이 광전사의 능력을 발휘하는 이상 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그 탓인지 이제는 삼분의 일도 남지 않았지만 끈질기게 공격해 왔다.
위드가 피라미드의 정상에 있는 돌에 올라섰다.
예전에 큰 애착을 갖고 직접 만들었던 왕의 무덤!
지금은 선정을 펼치는 모라타의 영주이지만, 깊이 잠재되어 있는 악덕 기업주로서의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대공사의 결과물!
서윤과 반 호크, 토리도도 바로 밑에 있는 돌까지 도착했다.

"장관이군."

산 정상에 오른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엠비뉴의 군대가 몰려들어 있었다.
쌔까맣게 몰려 있는 마물들과 암흑 성기사, 저주술사, 사제, 광신도의 무리!
교주 벨로니도 불타는 세라보그 성을 뒤로하고 친위 부대를 이끈 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 이 정도면 목표로 했던 시간에서 절반 이상은 끌어 준 셈인가."

피난민들에게 별문제가 없는 이상 삼분의 이 정도는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후로도 노략자들이 장거리 행군을 해야 하니 이동 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게 되리라.
그러자면 더욱 여기서 엠비뉴의 군대를 붙잡아 놓을 필요가 있다.

"조각 변신술 해제."

위드는 아이스 트롤로 바뀌었던 몸을 버리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임시로 착용했던 가죽 갑옷들을 벗어 버리고, 창도 다시 배낭에 넣었다.
한창 실컷 싸워야 될 때에 육체적으로 유리한 아이스 트롤의 몸을 버리다니!
방송을 보고 있는 모든 유저들이 그 까닭을 궁금해했다.
혹시나 급하게 피라미드를 올라간 게 도망치다 벌인 실수이고,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깊어 갈 무렵.

"산동네에 살 때에도 장점은 하나 있었지. 비가 많이 와도 비교적 안전하다는 점!"

위드는 배낭에서 조각품을 꺼냈다.
걸작. '폭우와 범람하는 강'.
돌로 정교하게 지어진 조각품.
자연 조각술로 사용하여 빗물과 강물을 만들어서 완성시킨 걸작이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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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술 스탯 20이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생명력과 마나 20,000씩이 소모됩니다.
모든 스탯이 사흘간 일시적으로 15% 감소합니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떨어집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은 하루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위험한 재앙을 불러오게 되면, 그 피해에 따라서 명성이나 악명이 오를 수 있습니다.
재앙을 겪는 와중에 죽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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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부지런히 올려 둔 자연과의 친화력 1,005로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사용하였다.

"일단 대피는 확실히 했으니까."

그간 이 스킬을 두 번 사용해 보고 확실히 몸으로 깨달은바가 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잘못 쓰면 본인이 죽기에 딱 좋다는 점.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힘들게 기어올라 왔으니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스킬을 사용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다.
마치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내리는 폭우였다.
위드와 서윤, 반 호크, 토리도와 엠비뉴의 군대를 적시는 빗물.

"슬슬 시작하는구나."

비는 계속 내렸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이 발동될 때까지, 악천후 속에서 피라미드를 기어올라 오는 광신도와 마물 들과 싸워야 했다.

"엠비뉴 신께서 재물을 기다리고 계신다."
"올라가라. 엠비뉴를 향한 용기를 보여라!"

광신도와 마물 들이 몰려들 뿐만 아니라, 저주술사와 마법사, 엠비뉴의 사제 들이 마법 공격을 했다.
위드는 헬리움으로 조각했던 횃불을 꺼냈다.
원거리 공격을 막는 마나 배리어, 흑마법과 저주 마법에 대한 강한 내성을 걸어 주고 그리고 마나 회복 능력까지 올려 준다.

"광휘의 검술!"
위드의 검에서 빛의 새들이 생성되어, 마물들을 정화시키고 마법 공격에 부딪쳐서 폭발했다.
서윤은 광전사답게 마물들을 위주로 상대해 가며 싸웠다.
빛과 마법이 작렬하면서 피라미드의 정상 부근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버티는 입장에서는 생지옥과도 같은 상황이지만!
불과 3~4분이 지났을 무렵, 반 호크가 주저앉았다.

"주인,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끝까지 같이 싸우지 못해서 미안하다."

생명력이 한계에 달한 반 호크의 역소환!
위드가 조금의 여유라도 있었다면 붕대를 감아 주고 후방으로 돌렸겠지만 한눈을 팔며 챙겨 줄 틈이 없었다.
엠비뉴 마법사들의 공격이 무시무시했기에 피하거나 광휘의 검술로 막아 내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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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 공격, 누른의 창에 적중당하셨습니다.
생명력이 869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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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의 생명력이 34,000 이하로 떨어졌고, 서윤은 광전사의 지구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녀도 위드에게로 달려가는 마물들을 막아 주고 저주와 마법의 표적이 되면서 상당히 많은 부상을 입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우면서 위드보다도 더 많은 공격을 허용했다.
말 그대로 퍼붓는 비 덕분에 마법과 화살의 위력이 약화되어 버티는 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 효과가 큰 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모두 죽겠는데......"

위드의 얼굴을 타고 빗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교주 벨로니와 그의 친위대가 피라미드를 공격할 수 있는 범위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피라미드 아래쪽에서는, 위로 올라오려는 마물과 광신도들이 아우성치고 빗물에 미끄러져 떨어진 동료에게 깔려 연속적으로 피해를 입는 아비규환!
그때,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대재앙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피라미드와 사자 괴물상이 만들어진 장소는 로자임 왕국의 아루드 강가 근처였다.
빗물로 어느새 물이 많이 불어나 있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강물이 넘치기 시작한 것이다.

"케에엑!"
"물이다. 물이 밀려온다."

범람한 물은 빠르게 퍼져 갔다.
광신도와 마물, 사제 들의 발목을 적시면서 번져 나가더니 수위가 급속도로 차올랐다.
아루드 강의 상류에서는 해일처럼 어마어마한 물리 밀려왔고, 산과 언덕, 평원에서도 저지대인 피라미드 주변으로 물이 차올랐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대홍수!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와 엠비뉴의 군대를 덮쳤다.
꾸위이익!
거친 물의 힘에 의해 칼라크롭스조차도 쓰러졌다.
결집해 있던 엠비뉴의 군대는 이리저리 흩어지며 저마다 살길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사방이 온통 물바다였다.
무릎을 넘어선 물이 금방 머리 위까지 차올랐다.
건물이 무너지고, 공성 병기, 바위, 나무 가릴 것 없이 부서져서 떠다녔다.
엠비뉴만을 외치던 광신도와 마물 들이 물에 잠겨수 수장되고 휩쓸렸다.
위드는 보기만 해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가장 마음에 드는 조각술이야."

하지만 홍수가 끝나고 나면 엠비뉴의 군대의 피해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였다.
비교적 약한 광신도들이야 절망적인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
홍수의 급류에 휩쓸리거나 했다면 그대로 단체도 사망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강한 마물들이나 암흑 성기사, 암흑 사제를 비롯한이들은 생명력이나 저항력이 높아서 홍수가 지나가고 나도 죽지 않을 가능성이 많았다.
엠비뉴의 군대가 엉망진창으로 홍수에 휩쓸리며 피해를 보고 있는 지금이 기회!
위드는 사자 괴물상을 향해 스킬을 시전했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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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족가품의 능력은 현재 설정된 예술 스탯 2,281에 따라 469로 변환됩니다.
뛰어난 명작 조각품의 효과로 인해서 10%의 레벨이 추가됩니다.
생명체에 네 가지의 속성이 부여됩니다.
조각품의 모양과 수준에 따라 부여되는 속성의 수준과 능력치가 다릅니다.
돌의 속성(100%), 불의 속성(80%), 예술의 속성(100%), 영광의 속성(100%)
돌의 속성은 생명체에 특별한 방어력을 부여합니다.
불의 힘을 이용해 적을 태울 수 있습니다.
모든 저주 마법에 대해 면역을 갖습니다.
흑마법에 대해 강한 저항력이 생깁니다.
예술의 속성으로 인하여 조각품과 미술품을 좋아하고, 작품들의 효과를 150%로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 전체에 해당됩니다.
영광의 속성은 생명체에 기품과 카리스마를 부여합니다.
대규모 군대와 같이 싸울 때에 그들의 충성심과 사기를 끌어 올리고 기사들의 통솔력이 주는 효과를 늘릴 수 있습니다.
마나가 5,000 사용되었습니다.
스킬의 효율이 증가해서 생명을 부여할 때 소모되는 레벨과 스탯의 양이 20% 감소합니다.
예술 스탯이 6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은 조각품이나 다른 예술과 관련된 활동을 통해 보충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2 하락합니다. 레벨 하락에 따라서 보유하고 있는 스탯이 10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은 레벨을 올리게 되면 다시 부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부여된 조각품을 소중히 다루어 주십시오.
목숨을 잃으면 다시 생명을 부여해야 합니다.
완전히 파괴되었을 경우에는 되살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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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의 레벨이 다시 405가 되었고, 예술 스탯의 소모가 있었다.
하지만 로자임 왕국의 괴물 사자상이 살아나게 되었다.

"크허허헝!"

포효하면서 깨어난 대형 사자 괴물상!

"꼬로로록!"

앞발을 내딛다가 미끄러져서 자신의 몸의 절반까지 차오른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첫인상치고는 상당히 모자라 보였지만, 위드가 만들었던 조각 생명체들이 한두 번 보여 준 모습도 아니었다.

" 내 이름이 무엇인가."

생명이 부여된 사자 괴물이 위드에게 머리를 바싹 들이밀면서 물었다.
사자 괴물상의 높이는 피라미드와 대충 비슷했다.
현왕 시오데른과 흡사한 얼굴에, 몸은 완전한 사자였다.

"네 이름은 스핑크스다."
"스핑크스가 내 이름이라면 상관없다. 어차피 명예에 대해서 잘 모르는 주인이 부른다고 해도 충실하게 따를 생각 따위는 없으니까."

스핑크스는 성향상 자의식과 독립심이 강해서 위드를 주인으로 많이 존중해 주는 편이 아니었다.
위드도 굳이 걸고넘어질 생각은 없었다.

"이 문제는 한가할 때 먼지 나도록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고, 일단은 싸움부터 하자."
"원하던 바다."

스핑크스가 포효하면서 물로 뛰어들었다.
급류에 휩쓸려 가는 암흑 성기사들을 입으로 물고 앞발로 때렸다.

"저 사자 괴물을 해치워라!"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위드가 저기에 있다. 위드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헤엄을 치는 마물들의 등에는 엠비뉴의 사제들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급류에 휩쓸리거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사라지기도 했다.
강에서 범람해 흐르는 물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향했기에 엠비뉴의 사제들은 원하는 대로 싸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건축물과도 같이 무거운 스핑크스는 강물에서 첨벙거리면서 엠비뉴의 군대를 사냥했다.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위드는 하이 엘프 예리카의 활로 무장한 채로 물에 떠 있는 마물들을 위주로 화살을 쏘았다.
서윤과 토리도 역시 피라미드를 붙잡고 올라오는 마물들을 척살했다.
대홍수가 엠비뉴 교단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콰르르릉!
가끔씩 벼락이 떨어지면서 피라미드에 서 있는 위드의 모습을 잠깐씩 비춰 줬다.
비바람을 맞으며 활시위를 겨누는 모습!
어둠과 빛이 적당하게 뒤섞여 상당히 멋진 자세였다.
위드는 실컷 화살을 쏘며 대상을 바꿔서 엠비뉴의 사제들위주로 사냥을 했다.
잘 죽지 않는 마물보다는 경험치를 많이 주는 사제를 노리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하지만 좋은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의 효과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비가 그쳐 가고 있었다.
하지만 피라미드 주변으로는 물이 더욱 많이 불어나서, 급류가 더 거세졌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할 만큼은 한 거 같군."

만족스러울 만큼 엠비뉴 교단의 사제를 많이 사냥한 건 아니지만 슬슬 떠나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물의 수위가 낮아지고 나면 이리저리 쓸려 다니던 엠비뉴의 군대가 전열을 정비하게 된다.
물론 세라보그 성에서의 전투와 홍수로 지쳐서 군대의 전력이 많이 줄어들어 있겠지만, 더 이상 머무르다가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게 되면 위험하다.
서윤도 마물들을 도맡아서 사냥하며 꽤나 힘들어하고 있었다.

"대충 피난민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은 벌었군."

엠비뉴의 군대가 다시 추격을 해 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리라.
상당히 많은 광신도와 마물이 아루드 강의 하류로 떠내려 갔지 때문에 엠비뉴의 군대가 얼마 죽지 않았더라도 그 여파는 굉장했다.
왕국 간의 전쟁 등에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사용한다면 정말 끔찍한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작은 부작용일 뿐!

"스핑크스, 이제 가자."
"난 계속 싸우고 싶다."
"놈들이 몸을 추스르는 대로 쫓아올 거야. 지금 빠져나가야 덜 위험해."

교주 벨로니와 친위대, 그리고 물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대형 마물들은 대재앙이 끝나기마 하면 원래 전투력을 발휘하게 되리라.
그들이 추격해 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서둘러 빠져나가는 게 현명했다.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왜?"
"여기에는 내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 현왕 시오데른의 무덤을 끝까지 지킬 것이다."
"......."

스핑크스는 자유롭게 떠나는 대신 피라미드를 선택했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의 부작용!
조각품이였을 때 피라미드를 지키는 역할을 부여받아, 왕의 위엄을 상징하던 사자였다.
생명이 부여된 이후로도 그역할을 잊지 않고 엠비뉴의 군대와 끝까지 싸우려는 것이다.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어. 기껏 얻게 된 생명인데 아깝지도 않아?"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와 같이 가자. 앞으로 매일 고기반찬도 해 주고 1년에 이틀씩 휴가도 줄게."

물론 정말 지켜질지는 전혀 장담하지 못할 약속!

"내 뜻은 이미 정해졌다. 가라. 이곳은 내가 맡겠다."

스핑크스의 충직함을 보며 위드의 눈가가 아릿하게 흐려졌다.

'비가 아직 몇 방울씩 떨어져서 다행이군. 내 눈물을 감출수 있으니.'

스핑크스의 말에 감동을 받아서는 당연히 아니었다.
아까운 예술 스탯과 레벨!
소중한 경험치를 투자해서 생명을 부여해 준 스핑크스가 고집불통으로 이곳에서 싸우다가 죽겠다고 하다니.

"너무 급하게 생명을 부여했어. 시간이 충분히 있을 때 생명을 부여한 다움에 몸으로 교육을 시켜 놨어야 하는데."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스핑크스를 설득하며 더 이상 머무르다가는 위드와 서윤도 위태로울 수가 있었다.

"와삼아!"

위드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그러자 잠시 후에 하늘 저 멀리에서부터 와이번이 날아왔다.
새벽잠도 제대로 못 자고 눈곱도 떼지 않고 날아오는 와삼이.
와이번 나이트들이 견제했지만 와삼이는 유유히 방향을 바꾸어 가며 피라미드에 도착했다.
위드와 서윤이 와이번의 등에 탔을 때에는 홍수의 물살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물에 잠겨 있던 엠비뉴의 군대가 다시 땅을 밟게 되었다.
물을 많이 먹고 쓰러져 있던 마물과 광신도 들로 지상은 온통 난리였다.
엠비뉴의 마법사와 사제 들이 공격을 가하려고 했지만 스핑크스가 그들을 몸으로 막아 주었다.

"어서 가라!"

위드와 서윤은 와삼이의 등에 탔고, 토리도는 직접 날아서 전장을 벗어났다.
멀리서 보니 스핑크스가 용맹하게 싸우고 있었지만, 결국은 엠비뉴의 군대에 포위되어서 어려운 전투를 해야 될 것이다.

'살아남기는 힘들겠군.'

날지 못하는 스핑크스를 이끌고 도망치가란 처음부터 상당히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스핑크스 덕분에 위드는 편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와삼아, 바로 피난민들이 있는 방향으로 가지 말고 다른쪽으로 멀리 돌아가자."
"알겠다. 주인."

위드는 혹시나 모를 추격을 방지하기 위해 와이번으로 한바퀴를 돌고 피난민들을 향해서 갔다.
언덕과 야산을 넘어서 끝없이 이어진 것 같은 피난민들의 행렬!
위드와 와삼이를 보면서 유저들과 주민들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엠비뉴의 군대가 아직 크게 쫓아온 건 아닌 거 같군.'

돌아다니던 몬스터들이 일부 습격을 가했지만 그쯤은 유저들과 병사들로도 막을 수 있었다.
위드가 떠나고 난 이후 이미 로그아웃을 한 유저도 많았지만, 상당수가 세라보그 성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 접속을 종료하려고 걷고 있었다.
위드는 와이번에 탄 채로 피난민들을 계속 따라갔다.

"여기 붕대 있어. 팔 좀 내밀어 봐."

그러면서 광전사의 후유증 때문에 전투가 끝난 후에도 계속 괴로워하는 서윤에게 붕대를 감아 주기도 했다.
아침이 된 이후에도 한참을 뒤따라가니 피난민의 선두가 로자임 왕국의 군대를 만났다.
세라보그 성에서 피운 봉화를 보고 로자임 왕국의 군대가 진군해 왔던 것이다.

'이제 마음을 좀 놔도 되겠군.'

위드는 약간의 피로를 느끼며 로그아웃했다.



[ 루의 교단 ]

베르사 대륙에 다시 한 번 커다란 충격이 몰아쳤다.
세라보그 성의 초토화!
주민들과 유저들이 절반 이상 죽음을 당한 사건이었다.
유저들은 물론 페널티를 당하고 나서 되살아나지만, 성의 함락과 함께 주민들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세라보그 공성전
위드와 그를 따르는 주민들의 대탈출
왕실 기사들의 전투 영상
세라보그 성의 대화재
홍수를 부르는 조각술, 그 정체는?


전쟁과 관련된 여러 동영상이 그날 크게 인기를 끌었다.
엠비뉴 교단은 세라보그 성을 완전히 태워 버리고 나서 왕국군과 싸우지 않고 흩어졌다.
때를 맞춰 로자임 왕국의 각 지역에서는 엠비뉴를 믿는 반란군들이 일어났다.

"로자임 왕국도 불안하군."

이현은 해물 칼국수를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이곳은 세라보그 성이 있던 자리입니다. 건물들은 모두 불에 타 버리고 지금은 돌의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오주완 씨, 정말 그 번성하던 로자임 왕국의 수도라고는 믿을 수가 없네요."
"저도 처음에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링 씨는 로자임 왕국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
"아직 없어요. 하지만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제는 예전의 모습을 보기는 어려워졌네요."

하늘 끝까지 치솟을 듯 타오르던 불길이 결국은 저런 결과를 빚어냈다.
홍수를 불러일으키면서 태워 버린 후였다.
무너지고 탄 건물들, 세라보그 성은 폐허의 잔재만이 남았다.
KMC미디어의 전속 진행자의 신혜민은 지금 휴가를 받고 쉬고 있는 중이라서 최근 떠오르는 진행자계의 샛별 아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일주일 만에 접속한 유저들은 광장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입니다."

세라보그 성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접속을 종료했던 유저들은 엠비뉴 교단이 빠져나가고 나서야 다시 접속했다.

"여기 한 상인분을 인터뷰 해보겠습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모르겠어요. 그냥 막막하네요."
"엠비뉴 교단으로 인해 피해가 무척 큰데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다른 곳으로 가서 계속 장사를 해야죠, 뭐, 약탈 한두 번 당해 본 것도 아니고."

상인은 마차를 끌고 떠나갔다.
그 후에도 세라보그 성의 유저들 여러 명을 만나면서 인터뷰를 해 봤지만 대부분은 다른 성이나 혹은 다른 왕국으로 떠나겠다는 말을 했다.

"오주완 씨, 그래도 세라보그 성에서 희망의 등불을 봤다는 분들이 많아요"
"예, 생중계로 보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맞아요, 제가 제일 만나 보고 싶고, 사귀고 싶어 하는 그분! 그분이 있어서 많은 분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요?"
"전쟁의 신 위드가 우연치 않게 세라보그 성에 있었습니다. 붉은 갈대의 숲으로 떠난 줄 알았는데 오래 안 나타나기에 무슨 다른 볼일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세라보그 성에서 대활약을 펼쳤죠."
"이번 일로 전쟁의 신 위드를 칭송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들었어요."
"매번 그랬지만 다른 랭커들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는 위드에 대해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다고 봐야겠죠. 위드는 그만의 독특한 매력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꺄악! 그럼요, 특히 취익, 취익 할 때의 매력적인 콧소리에 저는 푹 빠져들었는걸요."
"위드는 세라보그 성에서의 피난 행렬을 진두지휘하고, 사실상 동료 1명만 데리고 엠비뉴 교단을 가로막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로자임 왕국에서는 위드에 대한 칭송이 자자합니다. 덕분에 살아남은 유저들 중에는 , 이번 기회에 모라타로 옮기겠다고 떠나는 분들도 많이 있고요."

방송에서 자기 칭찬이 쏟아져 나오자 이현은 괜히 낯간지러운 느낌도 났다.

"초등학교 시절에 받아쓰기를 65점 맞고 선생님한테 그래도 노력하면 글씨체는 고칠 수 있을 거라며 받아 본 칭찬 이후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군.'

유아링의 공개 고백도 받았다.
그녀는 아이돌 출신의 가수이면서도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는 여자였다.
로열 로드에서 어여쁜 사제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그녀가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물론 이현은 정말 순진하게 연락을 할 생각은 없었다.
현실과 상상에는 큰 차이가 있는 법이고, 방송용이 아니라 그녀가 정말 관심이 있었다면 방송국 내에 있는 연락처를 이용해서 먼저 전화를 했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빨리 로자임 왕국을 떠나야 되겠군. 헤르메스 길드에서 쫓아올 수도 있으니 말이야."

방송국에서 전해 주는 소식들을 들어 보니, 국왕은 왕실기사들과 함께 무사히 빠져나갔다고 한다.
바로 군대를 모아서 엠비뉴 교단에 반격을 하기 시작했고, 지방 귀족들에게는 엠비뉴에 대한 토벌령을 내렸다.
왕국이 내전에 휩싸이면서 유저들은 대부분 국왕의 편을 택했다.
왕국을 구하는 이벤트에서 공적치를 많이 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교주 벨로니와 대판 싸우게 되겠군. 아직 벨로니의 능력을 보진 못했지만 만만한 적이 아닐 거야."

이현이 해물 칼국수를 거의 다 먹어 갈 때였다.

"그러면 중앙 대륙의 상황을 계속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오주완 씨, 하벤 왕국, 헤르메스 길드가 이번에도 크게 이겼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로자임 왕국에서의 엠비뉴 교단의 등장만 아니었으면 첫 번째로 알려 드렸어야 할 소식인데요, 베르사 대륙 최강의 헤르메스 길드! 그들이 칼라모르 왕국의 군대를 다시 한 번 격파했습니다."
"칼라모르 왕국의 총사령관 콜드림은 어떻게 되었나요?"
"기사 중의 기사, 콜드림의 참전이 오늘도 있었습니다. 이미 지난번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간신히 빠져나왔었는데요........"

지난번 전투에서 콜드림은 기사들과 사투를 벌인 끝에 하벤 왕국의 포위망을 돌파하여 퇴각할 수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그의 발길을 막기 위하여 애썼지만 겨우 살아서 돌아갔다.
하지만 칼라모르 왕국은 예정된 패배를 피하지 못했고, 거듭된 패전으로 인해서 군대의 규모조차도 의미 없을 정도로 줄어 버렸다.

"아쉽게도 콜드림의 모습을 다시 볼 수는 없게 될 것 같습니다. 콜드림과 일대일 기사의 결투를 해서 바드레이가 이겨버렸기 때문이죠."

하벤 왕국과 칼라모르 왕국의 전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계속되었다.
칼라모르 왕국와 콜드림은 영토를 점령하면서 쳐 들어오는 하벤 왕국에 맞서지 않을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콜드림은 부족한 전력으로도 왕과 국가를 위해서 싸우러 나왔고, 그때마다 간신히 살아 돌아갔다.
이번의 전투에서는 콜드림이 많이 지쳐 있었고, 부상도 심하게 당했다.
그런 상태에서 바드레이의 결투 신청을 받아들였고, 결국 전사하고 만 것이다.

"그럼 바드레이와 콜드림의 전투 영상을 시청자 여러분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현이 유심히 살펴보니 콜드림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에 심각한 수준의 부상을 많이 달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저주 마법에 주술까지 걸려 있었던 반면, 바드레이는 축복에 등 따뜻한 곳에서 잘 자고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다.

"밥도 북엇국에 잘 먹었을 거야."

그렇게 불공평한 상황에서 벌어진 결투이니 바드레이는 당연히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그럼에도 바드레이라서 이길 수 있던 면이 없지는 않았다.
콜드림은 모든 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대단한 무력을 발휘하며 전투를 펼쳤던 것이다.
승패가 완전히 갈린 순간, 바드레이는 콜드림의 목에 검을 겨누고 한 번의 자비를 베풀려고 했다.

"하벤 왕국으로 와라. 나에게 충성을 바치겠다면 살려 주겠다."

바드레이는 콜드림 같은 부하를 거두고 싶어 했다. 하지만 콜드림은 거절했다.

"기사를 모욕하지 말고 죽여라. 죽음으로부터 돌아왔으니 죽음이 두렵지 않다. 다만 내능력이 일천하여 칼라모르 왕국을 지키지 못한 게 아쉬울 뿐."

콜드림은 그렇게 생명을 잃었다.
방송의 진행자들도 상당히 안타까워했다.

"정말 아쉬운 죽음이네요, 콜드림을 좋아하는 기사 팬분들고 많았는데요."
"예. 아무튼 그동안 하벤 왕국도 콜드림으로 인하여 피해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다시 살려 주기란 힘들었을 겁니다."
"콜드림만 참전하면 병사들과 기사들의 사기가 최고로 오를뿐더러 칼라모르 왕국군이 능력을 최고로 발취하며 악착같이 싸웠으니까요."
"앞으로 콜드림의 모습을 전장에서 다시 볼 수는 없게 되었고, 하벤 왕국은 더 많은 지역을 훨씬 순조롭게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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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교의 봄에 그냥 지나가면 섭섭한 행사, MT!
이현이 작년 봄에는 가장 유명 인사였다면서 선후배 할 것 없이 모두 같이 가기를 원했다.
이번에 가기로 한 장소는 작년의 인기를 능가하는 곳으로 섭외를 했다고 한다.

"선배, 같이 가줘요. 네?"
"우리 조는 여자들이 많아서, 언니들이 선배가 없으면 안된다고 했단 말이에요."

조들 사이에서 이현을 데려가기 위한 쟁탈전까지 벌어졌다.
그를 데리고 가면 먹는 일, 자는 일이 다 해결되고 체육대회에서도 매우 유리하니 당연하다.
이현은 귀찮을 뿐이었다.
MT 장소가 비밀이라지만, 섬이나 산이나 결국 마찬가지다.
건축자재 적당히 가져가서 금방 천장 만들고 자리 깔고 누우면 끝.
어느 장소나 동물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 아니던가.

"정말 힘들게 MT를 하고 싶으면 차라리 고층 빌딩에서 벽돌 나르기를 하거나 한 3박 4일로 인형 눈을 붙이면 될 텐데!"

이현은 조금 고생은 하지만 결국은 놀고먹는 MT를 매년가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고 안 가기로 결정했다.
신입생 환영회도 당연히 불참!

"로또를 맞은 것도 아닌데, 앞으로 비싼 등록금 내고 학교를 다녀야 되는데 왜 환영을 하지?"

체육대회에도 나서지 않기로 했다.

"요즘에 심장이 좀 안 좋아서, 무리해서 뛰거나 하면 현기증이 심해서요."

그러면서 검도를 할 때에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현은 강의실에서도 누가 일부러 찾지 않으면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학생들이 항상 그를 쉽게 발견하게 되는 건, 서윤이 언제나 붙어 다녔기 때문이다.
후배들 사이에서 그 점은 상당한 의문이었다.

"대체 어디가 매력일까. 난 정말 모르겠어."
"우리가 남자 보는 눈이 없는가 봐."

여학생들은 그렇게 낙담하고만 있을 뿐!
이현은 이번에는 전공 외에 교양과목도 많이 신청했다.
대학이라고 해서 전공 분야에만 파고들 필요는 없다.
커피 만들기, 국제정치, 영화 감상, 지구의 나이.
연관이 잘 안 되는 과목들이었지만 , 배우고 나면 무언가 뿌듯한 기분은 느낄 수 있었다.

"출석 체크를 잘 안 하는군. 나중에 몇 번 빠져도 되겠어. 그리고 학점도 잘 준다고 했으니까."

이현은 학과목들을 보며 연구를 많이 했다. 대학교 수업에 어려워서 배울 수 없는 과목은 없는 것 같았다.

"학교를 의미 없이 다닐 게 아니라, 나중에는 교직 이수를 해 놓는 것도 괜찮을 거 같군."

이현이 미래에 학생들을 가르치면 학부모들과는 자연스럽게 뇌물이 오갈 것이다.

"선물은 정이니까, 정."

학생들에게는 수업 틈틈이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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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가 다시 접속을 한 장소는 하이랜드 요새였다.
세라보그 성을 빠져나온 유저들, 주민들과 같이 도착한 안전한 지역.

"어서 오세요."
"위드 님이 오셨다!"

위드 덕분에 살아난 유저들은 반가워했다.
괜히 한번 만나 보고 싶어서 하이랜드 요새에 머무르고 있는 유저들도 상당히 많았다.
위드는 로자임 왕국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인기인!
보통 평범한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기 위해 모여들면 불편해하거나 어색해하기도 한다.
위드는 전혀 그러지않고 덤덤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제가 왔습니다. 모두 편히 쉬셨습니니까?"
"네에!"

훗날 언제 대규모 퀘스트에 동원하거나 조각품을 비싸게 팔아먹거나 사기를 치거나 할지 모르니 인기 관리를 해야했다.
사이비 교주의 훌륭한 자질!
정치에 입문하더라도 제대로 한탕 해 먹을 위드였다.
베르사 대륙에서도 모라타와 바르고 성채가 날로 커지고 있으니 때가 무르익고 있을 뿐.
위드는 우선 꽃집의 주인 셀리나를 만나서 퀘스트를 보고 했다.

"최선을 다하였지만 모든 사람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세라보그 성 주민들의 피해가 컸다.
모든 주민들이 위드를 따라온 것도 아니었다.
일부 주민들은 왕국군을 믿고 고향에 그냥 남기를 택하기도 했고, 또 따라오다가 엠비뉴 교단의 병사들에게도 조금은 희생당하였다.
몇 명은 포로로 잡혀서 개종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위드를 따라 하이랜드 요새까지 온 세라보그 성의 주민은 98,000여 명이었다.

"많은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진심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아니에요. 무리한 부탁이었는데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드 님의 용기로 살아난 사람들도 모두 감사할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위드 님께서는 세라보그 성의 피난민들을 이끌며 믿기지 않는 용기와 결단력, 희생정신 그리고 의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아났다고 생각해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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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대피 완료
세라보그 성에서 엠비뉴 교단에 의해 포위되어 있던 주민들을 안전한 장소로 이끌었다.
그들은 평생 고마움을 잊지 않을 것이다.

- 퀘스트의 완료와 의뢰에서 보여 준 행동을 통해 명성이 10,236 올랐습니다.

- 용기가 9증가합니다.

- 명예가 21 증가합니다.

- 카리스마가 8 증가합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구출한 주민들과의 친밀도가 최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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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나는 그녀가 차고 있던 꽃팔찌를 풀어서 위드에게 건네었다.

"조심스럽게 다루어 주세요. 그리고 식물의 힘이 항상 모험가님과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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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리나의 꽃팔찌를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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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 "

드디어 보게 된 아이템이라서 위드는 바로 감정부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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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나의 꽃팔찌 : 내구력 18/20. 방어력 19.
하이 엘프로 부터 선물받은 꽃팔찌.
로지움과 엑시리움이 살아 있다.
적당한 물과 양지바른 장소를 좋아한다.
상처를 입어도 저절로 회복되며, 착용한 사람의 힘과 생명력을 북돋아 준다.
두 식물 중에 하나라도 시들어서 죽으면 나머지 한쪽도 죽게 됨.

제한 : 레벨 450 이상.
옵션 : 정령의 힘이 깃들어 있다.
마나 +2,500.
정령술의 스킬 +1.
마법 스킬 +1.
궁술 스킬 +2.
내구력 회복이 하루에 3씩 저절로 됨. 대장장이 스킬의 영향을 받지 않음.
식물들과의 관계가 좋다면 숲이나 들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자연과의 친화력 +7%.
성장 아이템. 식물이 자람에 따라서 효과가 상승함.
엘프와 요정족에게는 아이템의 효과가 3배로 부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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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이구나."

위드는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고 싶어질 정도로 좋았다.
정령술사에게 팔아먹어도 되고, 마법사나 궁수에게 판다면 가진 건 다 내놓으라고 할 만큼의 가격을 받을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자연과의 친화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은 특히 구하기가 어려웠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의 위력도 훨씬 더 커지겠군!"

지나치게 스킬을 사용하다가는 자기 자신부터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었지만, 그런 건 일단 강해지고 나서 생각 할 일!

"물 많이 먹이고 햇빛 비춰 줄 테니 쑥쑥 자라라."

왼쪽 팔에는 이미 보석으로 세공된 바하란의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니플하임 제국의 보물로, 마법적인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팔찌.
이제 오른손에 꽃팔찌까지 착용하고 하이랜드 요새의 성문 밖으로 나왔다.
헤르메스 길드의 사주를 받은 현상금 사냥꾼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빨리 다시 피해야 되었다.

"저 사람이 위드야?"
"착용하고 있는 장비 좀 봐. 완전 대단하다. 느낌이 달라. 우리가 갖지 못할 그런 유니크급 장비들로 다 입고 다니는거 같아."
"게시판에서도 본 적이 없는 장비들만 구해 놓았네. 전쟁의 신이니까 장비야 당연히 좋겠지."

유저들이 구경을 하면서 그를 따라왔다.
주민들이 일제히 위드의 공적을 치하했기 때문에 로자임 왕국뿐만 아니라 동부 전체에서 칭송의 소리가 자자했다.
성문으로 들어오는 유저들이 이야기했다.

"저 남자가 진짜 위드가 맞아? 어쩌면 좋아, 너무 멋있게 생기셨다. 거봐, 오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잖아."
"다은아, 그냥 평범한데 뭘 그렇게....."
"........"

남자와 여자 들이 도처에서 싸우기도 했다.
로열 로드에서는 장비가 날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위드는 탈로크의 믿음 갑옷에 데몬 소드, 직접 만든 수제 헬멧과 부츠를 착용하고, 망토까지 멋지게 둘렀다.
트레세크의 뿔피리까지 끈에 묶어서 가볍게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서 있어도 너무나 멋있을 수밖에 없었다.

' 역시 나 정도의 외모면 세상 살기가 아주 편하지는 않다니까.'

보통 마을에서는 무기와 갑옷을 착용하지 않았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김에 아예 대놓고 입은 것이다.

"와삼아!"

위드가 부르자 저 멀리에서부터 석양을 배경으로 날개를 펼친 채 날아오는 와이번, 와삼이!

"우와, 진짜 와이번이 온다."
"위드가 타고 활약하던 바로 그 와이번이야!"

유저들의 탄성이 더욱 커져 가고, 와삼이는 의기양양해져서 땅에 내려앉았다.
위드는 와이번에 올라서 이제 떠날 채비를 했다.

"와삼아, 모라타까지 가자."
"끼에에엑!"

와삼이는 힘차게 장거리 이동을 시작하려 했다.
이제 익숙해지기도 한 일이라서 그리 꺼려지지도 않았다.
주인과 함께 바람을 가르고 고속으로 비행하며 멋진 풍경들을 보면 되는 게 아니던가.
모라타에 도착하면 다른 와이번 형제들과 회포도 풀 수 있으리라.

"참, 서윤이는 내일 올 거야."
"꾸엑?"
"내일 여기 와서 다시 데려와."
"끄윽끄윽끄윽."

와삼이는 눈물을 흘리며 하이랜드 요새의 성문 앞에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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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갈대의 숲에서는 위드를 죽이러 모인 현상금 사냥꾼들이 그들끼리 모여서 사냥을 했다.

"젠장, 위드는 언제 오는 거야."
"기다리고 있었는데 로자임 왕국에 있었다니, 완전히 허탕만 친 셈이 되어 버렸잖아."

여기저기에서 모여든 현상금 사냥꾼들은 직업이 대부분 전사나 마법사 부류였다.
사제가 없어 붉은 갈대의 숲에서는 고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헤르메스 길드의 암살자들도 몬스터들과 툭탁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길드에서 추가로 보내온 지원군조차도 붉은 갈대의 숲에 있는 몬스터 떼에 의해 고생!

"조금만 참읍시다. 이제 로자임 왕국에도 다녀왔으니 곧 이곳으로 옵니다."
"위드가 올 곳은 여기밖에 없죠.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잡으면 됩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 위드가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포위망을 구축하기 위해 각 지점별로 흩어져서 매복을 했다.
완벽한 덫을 펼쳐 놓고 위드를 죽이기 위하여 기다렸다.
붉은 갈대의 숲은 지금도 계속해서 모여드는 용병과 현상금 사냥꾼, 살인자 들로 인해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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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성채의 명물로 자리 잡은 몬스터들의 질주!

"온다."
"궁병들 전진 배치!"

저 멀리서부터 굶주린 몬스터 떼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면서 달려왔다.
바르고 성채의 병사들도 훈련과 실전을 경험하며 많은 발전이 있었다.
1,500명의 궁병들이 성벽에 배치되어 몬스터들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푸슈슈슈슈슉!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간 화살들이 약간의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레벨에 비하여 바르고 성채의 병사들이 허약해서, 큰 피해는 줄 수 없었다.
위드가 이곳에 있었더라면 소모되는 화살값에 피눈물을 흘를 상황이었다.

"공성전을 준비하라."

바르고 성채의 기사들은 궁병들로 하여금 계속 화살을 쏘게 하고, 검사들을 성벽 위로 배치시켰다.
검사들이 성벽을 타고 오르는 각양각색의 몬스터들과 싸우는 사이, 혹여 성벽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언제라도 투입될 수 있도록 한쪽에서는 기병들이 대기하였다.
유저들도 바르고 성채의 군대와 같이 싸웠다.
마법사들은 몬스터들의 먼지구름이 보일 때부터 공격 마법을 작렬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전한 장소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완성시키는 마법이라 성공 확률이 높고, 위력이 강하다.
마법사들의 마법 공격력이 극대화되는 넓은 전장.

'이럴 때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를 듬뿍 올려 줘야지, 언제 또 하겠어?'

매일 바르고 성채로 몰려오는 몬스터에 대해서는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서, 마법사들이 이곳으로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다.
몬스터들을 집단 학살할 뿐만 아니라 바르고 성채에서 명성과 공적치도 쌓을 수 있다.
캬아오오!
몬스터 떼가 성벽으로 접근하기 전에, 유별나게 속도가 빠른 몇 마리가 먼저 왔다.
하지만 그 몬스터들은 갑자기 성벽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접근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바바리안들이 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성벽에 그려져 있었다.
그 실감 나는 그림 때문에, 몬스터들은 성벽을 보면서 심하게 경계를 했다.
그런 장면은 다른 장소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황무지의 한복판에 세워진 벽에, 몬스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비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몬스터들은 그림이 그려진 벽을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이것들은 모두 페트가 그린 그림이었다.
바르고 성채에서 페트는 이미 몬스터들을 착각에 빠뜨릴 정도의 명화를 그리는 화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공격하자!"

마법사들의 마법이 멍하니 서 있는 몬스터들을 휩쓸고, 화살이 계속 쏘아졌다.
성벽을 방패막이로 삼아 분투한 병사들과 유저들의 승리!
몬스터들이 많이 몰려와서 아차 하면 위험에 빠지기도 하였지만, 병사들과 유저들이 서로를 지켜 주었다.
경험치도 많이 얻고 흔치 않은 경험을 얻을 수가 있어서, 바르고 성채로 온 유저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공성전에 참여했다.

"오늘도 내 그림 덕분에 쉽게 이겼어."

바르고 성채에서 페트는 공적치를 정말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그가 이루어 낸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시골뱀, 켈베로스 , 지렁이 등을 비롯한,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받아 바르고 성채로 온 조각 생명체들!
위드가 바르고 성채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려서, 그들은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몬스터의 소굴을 하나씩 토벌하는 중이었다.
데스 웜이 활약을 하고, 기사는 검을 휘두르면서 몬스터들을 물리쳤다.
페트는 이 어마어마한 조각 생명체 군단과도 친분을 쌓았다.
어느 날 성벽에 작품을 그리고 있는데 땅에 구멍이 뚫리더니 데스 웜, 위드는 지렁이라고 이름을 붙인 생명체가 나타나서 구경하고 돌아갔다.
그날 이후 조각 생명체들이 하나둘 찾아와서 인사를 했다.

"참 착하구나. 내가 그림을 그려 줄게."

지금까지 그렸던 작품도 보여 주고 그림을 그려 주기도 하면서 페트는 그들과의 친밀도를 높였다.
예술을 기반으로 탄생한 조각 생명체들이라서 아주 좋아했다.

"정말 훌륭한 솜씨다."
"우리의 주인보다 훨씬 낫다."
"맞아. 주인인 우리에게 이상한 이름이나 붙이고 구박이나 했지. 이 화가는 마음에 든다."

47마리나 되는 조각 생명체들과 우정을 다졌다.
페트는 가끔 음식을 사서 먹이기도 했다.

"많이들 먹어. 부족하면 더 가져올게."
"우걱우걱. 정말 맛있다. 꿀맛이다."
"내일은 고기를 조금 더 가져와 다오. 하지만 포도 주스도 마시고 싶다."
"난 뼈다귀를 깨물고 싶은데."

페트는 그런 부탁을 얼마든지 들어주었다.

'이대로라면 이놈들은 위드가 아닌 나를 더 따르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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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모라타로 가면서 킹 히드라와 블랙 이무기가 사냥하는 장소를 불시에 방문했다.

"이놈들!"

킹 히드라는 9개의 머리가 번갈아서 쇄도하며 숲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주인이다."
"오랜만이다."

9개나 되는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다가왔다.
위드를 한입에 꿀꺽 집어삼킬 듯한 주둥이였지만, 바로 앞에서 멈췄다.

"비켜. 내가 먼저 왔어."
"네 번째 머리. 넌 어제 더 많이 먹었잖아."
"나야! 주인은 나를 가장 좋아해."

킹 히드라는 흉포한 몬스터라서 사납고 어지간히 말을 안듣는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드도 여간해서는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거대한 몸체에, 때려도 웬만해선 아파하지도 않을 정도였고, 머리 하나를 기껏 설득해 놓는다고 쳐도 금방 다른 머리들이 간교하게 혀를 놀려서 같이 나쁜길로 빠져들어 버린다.
친구 잘못 만나면 안 된다는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어 삐뚤어진 킹 히드라지만, 애초에 한 몸에 붙어 있는 머리들이니 어쩔 수도 없었다.
위드는 따로 여러 말 할 것도 없이 킹 히드라의 툭 튀어나온 배를 보았다.

'많이 먹었군.'

킹 히드라는 성격이 매우 악랄하고 의심이 많은 편이라서 칭찬을 하더라도 말을 안 들었다.
위드가 인상을 썼다.

"누가 그렇게 많이 먹으래."
".........."
"너희,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 사냥을 매일 했구나."
"4번 머리, 너한테 야단치는 거야. 똑바로 들어."
"7번 머리 너잖아."
"앞으로도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몬스터 적당히 먹어. 걔들도 소중한 생명이니까."
"알겠다."
"앞으로는 덜 먹겠다."

킹 히드라는 금방 순순히 대답했다.
하지만 위드는 알고 있었다.

'이제 내가 자리를 비우면 사냥을 더 부지런히 하겠군.'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은 법!

"너희, 다음에 볼 때까지 날씬하게 살 빼 놔."
"노력해 보겠다. 하지만 숨만 쉬어도 살이 찐다."
"머리가 9개나 되니 각자 조금씩만 먹어도 살이 찌는데..... 너무 억울하다."
"무조건 살 빼. 특히, 위험하니까 보라색 나무들 있는 곳 근처는 가지 마. 거긴 킹 히드라 네 능력으로 사냥은 못할 거야. 근데 걔네들 참 맛있다던데...."
"정말?"
"그렇게 맛이 있나?"
"무지무지 맛있다더라. 머리 9개가 먹다가 8개가 사라져도 모를 맛이라던데. 몬스터 1마리에 여섯 가지의 맛이 복합적으로 나는데, 달고 짜고 매콤하고 얼큰하고.... 또 두 가지는 뭐더라? 하여튼 너무 맛있어서, 말로만 들을 게 아니라 직접 먹어 봐야 될 거라고 했지 아마?"

꿀꺽, 꼴깍, 캬하!
킹 히드라의 머리 9개가 저마다 침을 삼키기 바빴다.
이렇게 킹 히드라에게 최적의 사냥 장소를 알려 주고 나서, 위드는 떠나는 척을 하며 지켜봤다.
9개의 머리들은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대화를 나누더니 급히 보라색 나무가 많은 숲의 지역으로 달려갔다.
블랙 이무기는 산 정상에 있는 호수에서 목욕을 즐기던 중에 적발됐다.

"그동안 잘 지냈지?"
"물론입니다. 주인님이 생명을 부여해 주셔서 이렇게 편안하게 자유를 누리고 있던 중입니다."
"새로 레어도 만들었다던데...."
"그냥 작은 구덩이죠."
"오늘 빙룡이랑 와이번, 불사조 다 불러서 집들이나 한번 할까?"
"주인님!"

레어를 끔찍하게 아끼는 블랙 이무기였기에 그것을 빌미 삼아서 보석을 조금 얻어 냈다.
생명을 부여한 조각 생명체의 쌈짓돈까지 뜯어내는 위드!
간단한 방문을 마치고, 구름 위로 날아서 모라타로 향했다.
딱히 모라타로 들어가면서 숨을 필요는 없으니 와이번을 타고 그대로 날아 들어갈 작정이었다.

"이번에 모라타에 가면 루의 교단에 들러야 되겠군."

루의 검!
검을 반환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바르고 성채에서 그라페스로 떠날 때에도 길을 조금 우회하면 충분히 들를 수 있었지만, 괜히 아까워서 미루어 둔 일이었다.


#

루의 교단.
모라타에 신전이 만들어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성기사와 사제 들을 꽤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프레야의 교단의 성세에는 미치지 못해도 차차 발전하고 있다.
루의 교단은 베르사 대륙 5대 교단 중의 하나로서, 빛과 관련된 신성 마법 사용이 가능해서 인기가 높았다.
프레야의 교단은 작물에 대한 축복이나 출생률 증가, 매력 향상 등의, 전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신성 마법들이 조금 더 많은 편이다.
대신 성기사나 사제나, 신앙심이 오를수록 점점 잘생겨지고 예뻐지기 때문에 선택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위드는 모라타에서 노은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광장들 주변으로 우뚝 솟아 있는 건물들이 참으로 장관이군."

임대료, 세금이 듬뿍듬뿍 나올것만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건물들.
와이번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면서 보이는 모라타의 전경은, 그야말로 엄청난 대도시였다.
언덕 전체를 뒤덮고 있는 판자촌, 장엄함을 풍기며 높이 솟아 있는 프레야 여신상, 우아한 건축 형식으로 지어져 방대한 정원을 가지고 있는 예술 회관.
영주의 성인 흑색 거성과, 멀리 바위산에 있는 빛의 탑.
그리고 거리에는 유저들이 있었다.
운송 수단으로 소화 말 등이 끌고 다니는 우마차가 흔히보였다.

"와이번의 습격이다!"

누군가가 외치자,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위드가 와이번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봤다.

"영주 위드가 왔다."

뎅뎅뎅뎅!
소식이 알려지면서 흑색 거성에서는 큰 종소리가 울렸다.
위드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역시 평소에 덕을 쌓아 놓고 볼 일이로군. 이렇게 반가워들 해 주니......."

유저들이 하는 말은 그가 있는 장소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정말 모라타처럼 좋은 도시를 본 적이 없어. 하지만 설마 세금을 올리려고 온 건 아니겠지?"
"난 바르고 성채에서 불사의 군단과 싸우는 모험도 했잔아. 한동안 소식이 뚝 끊어졌기에 루의 검을 갖고 도망친 줄 알았는데.. 이제 왔네."
"바보, 영주 위드가 검을 들고 도망칠 사람이 아니잖아."

위드가 들었다면 아마도 가슴 한구석이 찔끔할 만한 이야기였음에는 틀림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정말 검을 들고 튀거나 팔아 버릴 생각도 했으니까!
단, 루의 검을 쓸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유저가 없기 때문에 몰래 팔 수는 없었다.
거리에 있는 유저들은 대부분 두 손을 번쩍 들고 위드를 환호했다.

"영주가 왔다!"
"모라타 영주 위드 만세!"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보이는 유저들!
위드가 판자촌 주변을 날아다니니 유저들이 고래고래 고함도 질렀다.

"풀죽! 풀죽!"

주민들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서 인사도 올렸다.

"와삼아, 바로 루의 교단으로 가자."
"꽤애애액!"

장거리 비행에 지친 와이번이 억지로 날갯짓을 하며 루의 교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

"대신관님을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루의 교단의 지붕에서 위드는 성기사들에게 말했다.
와삼이가 루의 교단의 넓은 지붕에 바로 내려앉았던 것이다.

"모라타의 존경하는 영주님이시군요. 대신관님에게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성기사들은 위드를 정중하게 대하였다.
명성에 따른 효과가 상당히 강하게 작용했다.
모라타는 위드의 영역이고 이곳을 기반으로 여러 모험을 했기 때문에,
대륙의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장소보다는 효과가 훨씬 월등했다.
위드는 성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신전의 대신관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영주님의 높은 지도력 덕분에 모라타가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대신관과의 첫 만남이었다.

"아닙니다. 근면한 주민들이 있고 정의로운 병사들이 애써 준 덕분이지요. 저는 작은 도움을 드린 것에 그저 만족합니다."

입에 발린 겸손의 말이었다.
위드는 입가에 침을 가득 묻힌 후에 말을 이었다.

"대륙의 미지를 파헤치는 모험가로서 여러 장소를 다녔습니다. 이에 대해 루의 교단에 보고를 할가 합니다."
"발견물에 대해 말씀하러 오셨습니까? 그렇다면 환영이지요. 모라타의 영주께서는 어떤 곳을 다녀오셨습니까?"

모라타의 영주성에서도 발견물을 보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위드의 돈을 기반으로 보상을 해 줘야 했다.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격이라서, 루의 교단에서 발견물 보고를 하려는 것이다.

"지골라스라는 땅, 인간의 발길이 미친 지 오래된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대지의 여신 미네의 교단에 보고한다면 공적치와 명성을 조금 더 많이 얻을 수 있겠지만,
모라타에 있는 루의 교단이 발전할수록 도시의 이득이 더 크다.

"지골라스? 전설 속에만 남아 있는 그 땅을 다녀오셨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군요."
"여기, 지골라스에서 가져온 돌입니다."

위드는 용암이 굳어서 만들어진 돌 조각을 대신관에게 건네주었다.
대신관은 신성 마법을 펼쳐서 돌 조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루의 빛은 인간들이 닿지 못하는 대륙의 수많은 장소들에까지 미치고 있지요. 이 돌 조각은 틀림없이 지골라스에서 온 것이 맞습니다. 미지의 여행을 성공리에 마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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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지골라스의 발견을 루의 교단에 보고하셨습니다.

루의 교단은 대륙의 정의를 실현하는 신성한 임무에 대해 관심이 많다.
지골라스는 그들에게도 그다지 큰 흥밋거리가 아니지만, 모험에 대한 열성을 높이 사 적극적인 보상을 해 줄 것이다.

- 명성 850을 얻었습니다.

- 루의 교단의 공적치가 192 상승했습니다.
교단의 공적치는 종교 상태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루의 교단의 공적치 :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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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의 교단이 모라타에 있기 때문에 영주인 위드는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공적치가 조금씩은 올랐다.
인구가 늘어나고, 훈련된 병사들이 많아지고, 주변의 몬스터들을 토벌하고, 의뢰가 완수될수록 조금씩 공적치가 쌓였다.
영주로서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루의 교단은 땅값도 내지 않고 다른 세금도 일절 납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치안과 성기사들의 지원, 전직, 퀘스트 때문에 장점이 있기에 각 영주들은 교단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몇 가지 발견물이 더 있습니다."

위드는 지골라스까지 가는 항로와 조각사의 탑, 던전에서 본 발견물도 모두 보고했다.
인어, 몬스터, 특이한 지형에 대해서도 보고하면서 명성을 올리고 공적치를 받아 냈다.
신앙 스탯이 9, 용기가 6, 힘과 민첩이 2씩 늘어나기도 했다.
그라페스와 뱀파이어 왕국 토둠, 통곡의 강 등 그가 다녀온 장소는 많았지만 발견물 보고는 지골라스에 대한 것만 했다.
발견물을 보고하게 되면 루의 교단에서 성기사대를 파견하고 다른 유저들에게도 의뢰 등을 주어 그 땅이 개척되기 때문이다.

"모라타 주변에 새로 생긴 던전에 몬스터들이 모여들고 있어서 루의 교단에서는 이를 제법 위험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성기사단을 파견하여 몬스터들을 대규모로 토벌하려고 합니다. 모라타의 병사들도 협조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흑 ㅠ_ ㅠ여기 진짜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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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의 권한으로 병사들에게 루의 교단과 함께 던전을 토벌할 것을 명령하시겠습니까?
기사들과 병사들이 던전에 투입되며, 퀘스트가 발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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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물론이지요."

위드는 민원도 받아들여 주었다.
모라타의 병사들은 아직 실력이 제대로 쓸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제야 군사력에도 지출이 이루어지면서, 병장기도 새로 맞추고 인근 몬스터들도 토벌하고 있었다.

"사실 제가 루의 교단에 온 이유는 특별한 일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위드가 루의 교단에 오게 된 가장 중요한 목적을 꺼낼 시간이 왔다.
위드는 긴장으로 입술이 떨렸다.
일단 루의 검을 돌려주고 나면, 아마 이보다 더 좋은 검을 구하기란 지극히 어려울 것을 알기에.

"여기, 루의 교단에서 행한 정의의 흔적을 가져왔습니다."

위드는 배낭에서 루의 검을 꺼내 대신관에게 주었다.


[ 태초의 조각술 ]

" 검을 돌려 드립니다. 그리고 바르칸을 없애기 위해서 피를 흘리며 같이 싸운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오, 신검이 교단의 품에 돌아오게 될 줄이야!"

대신관은 루의 검을 받았다.

"바르칸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전사여, 대륙의 평화를 위해 정말 대단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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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의 검을 반환하였습니다.

언데드의 왕 바르칸 데모프를 막기 위해 루의 교단에서는 많은 희생을 치렀다.
결국 바르칸의 몸에 신검을 찌름으로써, 리치의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봉인하는 데 성공했다.
바르칸은 이제 전사들에 의해 소멸되고, 검은 다시 교단으로 돌아왔다.

- 명성이 1,700 올랐습니다.

- 루의 교단과의 우호도가 32가 되었습니다.
- 루의 교단의 공적치가 1,950 상승했습니다.
교단의 공적치는 종교 상태 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루의 교단의 공적치 : 2,573

- 신성을 받드는 행동으로 인해 신앙심이 13 증가합니다.

이 순간, 불사의 군단과 같이 싸웠던 사제들과 성기사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신앙심이 크게 오르고, 루의 교단의 공적치가 크게 증가했다.
모라타에는 프레야 교단의 신도들이 월등히 많았지만, 불사의 군단과 싸우러 갔던 사제들은 여러 교단에 걸쳐 분포하여 있었다.
루의 교단의 사제와 성기사 들은 특히 높은 신앙심을 받았고, 다른 교단이라고 해도 신앙심이 적지 않게 올랐다.
고위 사제들 중에는 신앙심이 30이상 오른 이도 있었고, 성기사들은 힘과 신앙을 바탕으로 펼치는 공격 스킬의 위력까지 조금씩 강화되었다.
그리고 불사의 군단과의 전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해낸 검치 들도 공적치와 신앙심이 올랐다.

"어라, 공적치가 오르네."
"공적치가 뭐야?"
"사형, 이거 나쁜 거 아닐까요?"

바르고 성채에 모여서 고기를 먹고 있던 검치 들은 갑자기 뜬 메시지에 당황했다.
그들에게, 나름 컴퓨터 자격증도 있다면서 유식한 척을 하던 검백이십칠치가 설명을 늘어놓았다.

"공적치를 많이 쌓으면 거기 가서 공짜 밥도 먹을 수 있답니다."
"오, 그래?"
"예. 예전에 어디서 봤는데, 공적치가 높으면 그걸 써서 아이템도 받고 밥도 공짜로 얻어먹고 그런다더군요,"
"근데 교단에서 고기도 사 주나?"
"술도 없을 거 같은데요?"
"그럼 아무 쓸모 없잖아?"

공적치가 올라도 쓸모를 찾지 못하는 검치 들이었다.
사실 그들 또한 퀘스트를 하면서 어려운 부탁을 들어줘서 NPC와의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고, 많지 않지만 공헌도 공적치를 올려놓은 경우도 이미 있었다.

"검삼치 사형, 신앙심은 어떻게 하죠?"
"팔치야, 그게 전투에 도움 되냐?"
"아니요."
"그럼 그것도 별 볼일 없는 거야."

전사 계열인 검치 들에게 실제로 신앙심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는 했다.
워리어들은 신전의 호위병으로 등록할 수 있다.
신전의 토벌대에 소속되어 몬스터와 싸우건, 의뢰를 받을 수 있었다.
신앙심이 있다면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아주 드물게 특별한 축복이나 작은 기적이 내리기도 했지만, 중요한 수준은 아니었다.
저주 마법에 저항하는 능력도 향상시켜 주지만 마찬가지로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다.
위드조차도 신앙심은 일부 장비들을 착용하거나 교단의 퀘스트를 받는 데 약간 도움이 되는 정도였다.
결국 성기사와 사제가 아닌 한 신앙심은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괜히 놀랐네. 야, 고기나 먹자."
"예, 사형."

모라타의 주민들로부터 시작해서, 북부의 주민들이 일제히 떠들었다.

"바르칸을 해치운 영웅이 오늘 루의 검을 교단에 가져다 주었다는군."
"모라타의 영주만큼 신비로운 모험을 많이 하는 사람은 대륙 전체를 뒤져 봐도 없는 것 같아."
"그에게 맡긴 임무는 거의 다 해결된다고 하지."


#

대신관이 계속 말을 이었다.

"영주님은 루의 교단의 은인으로, 이 훌륭한 업적은 영원히 간직될 것입니다."
"저는 제 양심이 시키는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정의로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스스로의 강함만을 믿고 날뛰는 바르칸을 용서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결코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실로 뻔뻔하고 가식적인 말들이었지만, 대신관에게는 잘먹혀들었다.

"정말 큰일을 해 주셨습니다."

어떤 또 다른 보상이라도 나올 것을 기대했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위드가 많은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공적이 분배되어서, 혼자만 무엇을 받을 수는 없었다.

'공적치로 만족해야 되겠군.'

하지만 루의 교단과의 우호도가 높아진 것만으로도 나름 긍정적인 일이다.
위드가 모라타의 영주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곳에 더 많은 성기사와 사제 들을 배치하고 투자를 하게 될 것이다.
대신관은 군데군데 새까맣게 변색된 검을 어루만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루의 검이 바르칸의 마력에 의해서 많이 오염되고 말았군요."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희망을 버리기에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 검의 신성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재앙의 힘이 머무르는 땅, 아룸디아로 가면 됩니다."
아룸디아는 대륙 10대 금역의 땅,
루의 교단의 성소가 있는 장소였지만 다크 *** 마법사들이 키메라와 몬스터 들을 풀어 놓아서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만들었다."
"용감한 모험가여, 우리 교단에서는 최고의 성기사와 사제들로 하여금 성소에 다녀오도록 할 예정입니다. 그들과 합류하여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겠습니까?
<이 부분이 진짜 안 보입니다... -_-;>
*단의 인솔자
루의 교단이 예언했던 *의 권능을 **** *****, **를 보내는 일을 계속했다.
** 지금 ** ** **** *** ** **** ****
신의 검을 *** 성기사와 사제들을 *** 수 ** *** **하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리라.
난이도 : S
퀘스트 제한 : 살인자, 악인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받을수 없음
신앙심이 필요함.
퀘스트 실패 시 신앙심 감소, 루의 교단의 친밀도 하락.
지골라스, 그라페스에 이어서 대륙 10대 금역과는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거기다가 지나치게 높은 난이도!
"고생문이 진정으로 활짝 열렸군."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저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없습니다.
"모험가여, 신의 검을 복원해야 하는 큰 문제입니다."
"루의 교단의 성기사들이 나섰다면 몬스터들을 굴복시키는 일이 어렵진 않을 것입니다."
아룸디아는 그라페스와도 조금 많이 달랐다.
분명 대륙의 깊은 산악 지대 안쪽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에 빛나는 비행 몬스터들의 대규모 집단이 있었다.
그라페스는 간간히 사냥도 이루어질 정도였지만 아룸디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교단에서 보유한 최고의 성기사와 사제들이 나선다면 아룸디아 원정이라고 해도 충분히 해 봄직했다.
단지 위드는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나 조각술 최후의 비기를 찾아내는 쪽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모험가여, 그대의 평판에 대해서 많이 들어 왔습니다. 당신만큼 믿을을 주는 사람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역할을 정말 거부하실 생각입니까?"
"루의 교단을 위하는 일만이 아니라, 베르사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도 성공해야 하는 일임을 압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군요.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마음이 바뀌면 다시 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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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를 포기하셨습니다.

- 루의 교단과의 우호도가 7 떨어졌습니다.

- 루의 교단의 공적치가 149 줄어듭니다.

- 신앙심이 2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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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가 대신관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서, 루의 교단의 이름으로 퀘스트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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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골디아 원정단

바르칸이 소며되고 난 이후, 그의 가슴에 가슴에 박혀 있던 루의 검이 교단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검의 힘은 리치의 흑마법에 의하여 잠겨져 있다.
루의 교단에서는 엘리드 성기사 80만, 엘리트 사제 40만
직접 이끄는 아골디아로 떠날 원정대에 참여할 사람을 찾는다.
믿을 만한 자라면 루의 교단에서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할 것이다.

난이도 : A
퀘스트 제한 : 살인자, 악인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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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가 한 단계 낮아지면서 모라타의 유저들에게 아골디아 원정대에 합류하라는 의뢰가 발생했다.

"우와...이거 대박인데?"
"성공만 하면 끝내주겠다."
"진짜 모험을 하는 거잖아. 그것도 10대 금역의 아골디아에서 말이야."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하겠는데?"

모라타에서 시작한 유저들은 하나같이 부러워 했지만 원정대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초보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중앙 대륙에서 건너온 유저들만 참여할 수 있었다.

"이번 퀘스트는 누가 받아들인대?"
"몰라, 하지만 사냥터나 던전에 나가 있던 고레벨이 대거 귀환하고 있대."
"난 스펜슨 님이 원정대에 참여한다고 루의 교단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

로열 로드에서 상당히 뛰어난 모험가 중의 한 사람인 스펜슨!
그는 일찍부터 북부로 와서 모라타를 거점으로 삼으며 발굴품을 진열하기도 했다.
그가 이번 퀘스트를 받아들였다는 소문이 유저들 사이에서 넓게 퍼졌다.
그러자 전사와 기사 들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사제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설혹 퀘스트가 실패하더라도 루의 교단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일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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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루의 교단을 나와서 모라타에 있는 조각사 길드로 들어갔다.
황소 광장 거리에는 다수의 길드들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져 있었다.

"오늘 위드 님이 돌아왔다던데 구경이나 하러 갈까요?"
"안 돼요. 이번 축제에 출품할 진흙 작품의 일정이 늦어지고 있잖아요."

모라타에는 도시 전체가 흥청망청 즐기는 정식 축제 외에도 유저들끼리 만든 축제가 많았다.
중앙 광장과 와이번 광장, 빙룡 광장, 빛의 광장, 황소 광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 연합회에서 각자 정해진 날짜에 축제를 개최했다.
그럴 때면 바드들은 원형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예술 계열의 직업들은 작품 전시를 했다.
요리사들은 거리에 나와서 음식을 싸게 판매하는데,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소고기를 넣고 끓인 풀죽이었다.
기쁜 일이 셀 수도 없이 많은 도시!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지 않고, 적절한 발전 계획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는 모라타에 있다 보니 도시 안에만 머물러도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페어리들이 가끔 놀러 와서 주목을 끌기도 했다.
막 로열 로드를 시작해서 아직 도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완전 초보자들은 그런 재미를 많이 경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직업을 정할 때 밖으로 나도는 일이 많은 전투나 모험 계열보다는 상인이나 예술 계열을 택하기도 했다.

"에휴, 오늘은 밤늦게까지 해야 되겠네."
"일 많이 해 놓고 맥주라도 한 잔씩 마셔요."
"그러죠. 안주는 사슴 통구이로 하고요."

조각사들은 여신상 건립을 기념하는 축제에 보여 줄, 진흙으로 만든 위드의 조각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위드의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오크 카리취, 언데드, 이번에 로자임 왕국에서 대형 사고를 친 트롤상!
빙룡이나 와이번들도 굉장히 인기 있는 조각품이라서 제작에 들어가 있었다.
조각사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근데 위드 님은 참 신기해요."
"조각사이면서도 모험을 잘하는 게?"
"아뇨. 여럿이서 해도 일이 많은데 어떻게 대부분의 작품을 혼자서 만들 수가 있었을까요?"
"예술이잖아. 예술혼에 불타오르니까 만들 수 있는 거겠지."

위드는 그저 효율적인 노가다의 달인이었을 뿐!
현실에서 노가다와 단추 꿰기로 단련이 되지 않았다면 로열 로드에서 만든 상당수의 조각품은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위드의 인간형 조각품도 있었는데, 주로 착용하는 장비들까지도 실제와 많이 흡사했다.
세세한 얼굴이야 잘 모르더라도 위드의 차림새는 이미 유저들 사이에서 최고의 열풍을 일으킬 정도였다.

"잘못 만들었군. 나보다 키가 좀 작은 거 같아."
위드는 구시렁대면서 조각품 사이를 지나갔다.
하지만 조각품들이 더 높아서 머리 윗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
"설마........"

위드가 자신과 꼭 빼닮은 조각품 사이를 걸어서 교관에게 다가갔다.

"위드 님 아닌가?"
"위드 님이다! 용무가 있어서 조각사 길드에 왔나 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조각사 유저들이 위에게 알아서 길을 열어 주었다.
마치 기적의 바닷길처럼 앞이 확 트였다.

'소문에 의하면 상당히 괴팍하다던데....'
'마법의 대륙 때의 성질이 언제 나올지 몰라.'

영주로서의 권력!
위드가 정말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었다면 차례를 지켰을테지만, 그냥 편한 게 좋은 거라는 주의였기 때문에 교관에게 걸어갔다.

"조각사들의 길을 앞서서 개척하는 위드 님께 인사드립니다."

교관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이것도 모라타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모습이었다.
위드는 약속된 문구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조각사들을 위한 입문서에 적혀 있는 내용.
최고의 경지를 개척하려는 조각사만이 할 수 있는 대사를 했다.

"빛나는 조각품을 만들고 이제 전설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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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로드에 대한 정보가 올라오는 게시판들이 금세 들끓었다.

제목 : 위드가 지금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에 도전합니다.
모라타 조각사 길드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자 댓글들이 주르륵 달렸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조회 수가 몇만 건씩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말도 안 돼! 누가 벌써 직업 마스터를 해요. 그것도 조각술을.

-위드라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올리기 쉬운 말타기 스킬도 마스터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스킬 레벨이 극악으로 안 오른다는 조각술을 마스터해요? 로열 로드 처음 해 보시나?

-말타기 스킬이 올리기 쉽다고요? 고급 이상 올려 보고 하는 말씀이신가. 그때부턴 강도 건너뛰고, 말 타고 날아다닙니다.

-위드가 또다시 기적을 만들어 내는군요.

-정말이에요? 거짓말 아닌가. 농담이죠?

-이제 겨우 조각술 초급 5레벨까지 올렸는데..... 난 뭐야!

로열 로드에 대한 정보를 방송하는 '베르사 대륙 이야기'에서 직업의 마스터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대륙을 위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고 각 종족의 퀘스트와도 관련이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로열 로드에 대한 정보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유니콘 사에서는 딱 한 가지만을 더 밝혔다.

- 어떤 직업이든 최초의 마스터 퀘스트는 조금 더 특별 할 것입니다.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고, 조금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직업을 가진 유저들은 그 마스터 퀘스트를 하기 위하여 스킬 레벨 경쟁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순수하게 성장만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고 나면 길드를 만들거나 가입하고 세력 다툼을 벌였다.
전장을 헤매고 싸움이 벌어져서 죽기도 하였으며, 갈수록 스킬 숙련도가 오르지 않아 힘들고 괴로워서 포기하기도 했다.
어느 한 직업을 대표하여 마스터 퀘스트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고,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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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갈대의 숲!
현상금 사냥꾼과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매복을 하고 있던 장소에서는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위드가 언제 오나 하며 기다리고만 있던 그들이다.

'여기와는 완전히 먼 로자임 왕국에 가다니.......'
'그래도 올 곳은 이곳밖에 없어. 다시 돌아올 거야.'
'모라타에 왔다고? 다음에는 여기로 오겠지.'

애인도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진 않았으리라.
붉은 갈대의 숲은 사냥하기에도 위험하고 안 좋은 장소였다.
그런 곳에서 긴 시간 동안 위드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라니!
이거야말로 언제 이곳으로 올지 기약도 할 수 없다는 게 아닌가.

"나 안 해!"
"야, 그냥 중앙 대륙으로 돌아가자."
"고향 떠나서 괜히 고생하고 시간 낭비만 했네."

현상금 사냥꾼들은 좌절하여 대부분이 흩어지기로 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임무를 받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빨리 좀 와라."
"오는 거야 마는 거야! 안 오면 안 온다고 말이라도 좀 해주지."

위드가 반드시 붉은 갈대의 숲으로 오기로 약속을 했던 것도 아니니 그렇다고 따질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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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에 대해 약간은 자신 있었다.

'어떤 종류의 퀘스트든 문제 될 건 없겠지.'

한 우물만 묵묵히 파 오지는 않은 잡캐였으므로, 전투나 모험이나 뭐든 자신이 있다는 장점!
조각술의 비기도 5개나 모은 처지였으므로, 마스터 퀘스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심각하게 힘들진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아직 조각술이 고급 8레벨에 머무르고 있어서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췄을 뿐이다.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숙련도를 집중해서 올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조각사들 사이에 내려오는 오래된 옛 전설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교관이 말을 시작했다.
위드는 자신의 의뢰가 될 것이니 당연히 집중해서 들었고, 길드에 있는 다른 조각사들도 호기심에 귀를 기울였다.

"조각술이 지금처럼 예술로서, 문화로서 발전되기 전 몬스터들이 대륙을 뒤덮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에는 인간도, 엘프도, 오크도, 드워프와 바바리안이라고 할지라도 몬스터들에게 힘없이 잡아먹혔을 뿐이라고 합니다."

위드는 눈앞에 그만 볼 수 있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게이하르 폰 아르펜이 대륙을 하나로 통일하기보다도 훨씬 더 예전이었다.
신에 의해 베르사 대륙이 창조되고 나서 여러 종족들이 나타났다.
아직 미개하던 시절, 인간과 엘프, 드워프, 오크 들은 힘을 합쳐야 됐다.
인간들은 몬스터들로부터 경비를 서고, 엘프들은 작물을 가꾸어서 식량을 만들었다.
드워프들은 동굴을 파고 돌을 다듬어서 오크들이 사용할 무기를 완성했다.
오크의 번식력, 인간의 지도력, 엘프의 식물을 돌보는 능력, 드워프의 물건 만드는 재능으로 네 종족은 살아갈 수 있었다.
동굴 안에서 인간과 엘프, 드워프, 오크들은 사이좋게 지내면서 그들끼리의 법과 문화를 만들었다.

영상이 끝나고 교관의 말이 이어졌다.

"이때 조각술이 최초로 탄생했다고 합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수명이 길고 기억력이 좋은 엘프들 사이에서 내내 전설로 내려왔습니다. 그때 만들어졌다는 가장 오래된 조각품에 대해서는 아마 엘프 장로 란델리아가 알고 있지 않을까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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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조각술

흙과 돌을 다루기 시작했을 때부터 만들어진 조각술.
네 종족의 역사를 거슬러서, 태초의 조각술이 사실인지 정보를 모아라.

난이도 :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퀘스트 제한 : 고급 8레벨 이상의 조각술.
엘프들과의 관계가 친밀한 상태여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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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조각사가 먼저 마스터 퀘스트를 해 봤더라면 참고가 되었으리라.
위드는 전혀 아무 정보 없이 도전해야 했지만, 남들이 알려 주는 걸 따라 하기보다는 고생을 하는 편이 나았다.

"제가 그녀를 만나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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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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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위드가 엘프 장로 란델리아를 만나러 간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마스터 퀘스트를 한다고?"

벌써 칼라모르 왕국의 영토를 삼분의 이나 점령하였다.
다른 명문 길드들이 견제할 틈도 없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진격이었다.
명실상부한 대륙 최고의 왕국.
모든 면에서 제국이 되려고 하는 헤르메스 길드였지만 위드의 마스터 퀘스트를 방치해 놓기에는 많이 거슬렸다.

"막아야 됩니다. 바로 병력을 보냅시다."
"엘프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더라도 방해를 해 버리죠."

라페이는 측근들과의 회의를 통해서 공격대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엘프 장로 란델리아는 생명의 숲에 있는 작은 마을에 산다.
그곳을 공격해서라도 위드의 퀘스트를 방해하기로 했다.

"엘프들은 모두 죽여도 된다."

과거였다면 조금 참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위드를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대단할 것임을 알지만,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그런 것쯤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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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조각사 길드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유린과 만났다.
그림 이동술로 엘프 마을이나 가까운 장소까지 이동할 작정이었다.
로열 로드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유린은 레벨은 아직 80대에 머물렀지만, 유명한 휴양지나 관광 명소 들은 모두 돌아다녔다.

"나 그 마을 가 본 적 있어. 과일이 맛있다고 해서 가 봤어. 마을 입구로 가면 되지?"
"그래."

유린은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스케치용 목탄을 손에 쥐고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옆모습은 남 주기 아까울 정도로 참 예뻤다.
보통 예쁘다는 연예인들도 얼굴에 아쉬운 부위들은 있었다.
키가 작다거나, 가슴이 납작하다거나, 손가락이 두껍거나, 다리가 굵다거나 하는 정도의 결점은 1~2개 이상 갖고 있다.
하지만 서윤은 어느 각도에서, 어딜 보더라도 부족한 점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의 미모!
그녀를 1시간 정도 가만히 관찰하고 있다 보면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아름다움이 계속 발견된다.
위드가 서윤의 조각품을 그렇게 많이 만들었지만 항상 새롭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게 그런 점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서윤의 목소리와 분위기마저도 아름다움 그 자체였으니!
하지만 위드가 보기에는 유린도, 어디에 내놔도 부족한 점이 없었다.

'내 여동생이지만 참 아깝다.'

열악하던 가정 형편을 제외하면 여동생도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위드가 진지하게 말했다.

"너 요즘 늦게 들어오더라."
"도서관에서 공부하잖아."
"지난달에 전화 요금도 좀 나왔던데."
"친구 잠깐 빌려 줬더니 그래."

샤샥.
유린은 스케치를 하면서 대꾸했다.

"엊그제는 나가면서 화장도 했더라."
"그냥 화장하면 어떨까 궁금해서."
"어제는 치마도 입었던데...."
"있는 거 안 입으면 아깝잖아."

샤샤샤샤샤샤샥.
유린이 스케치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그동안 그림을 꽤 많이 그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린것은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시작되면 1~2시간은 기본으로 잡아먹는다는 위드의 잔소리!
그걸 피할 방법이라곤 오직 빨리 그려서 빨리 도망치는 것뿐이었으니........
엘프 마을의 그림은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럼 갈게. 그림 이동술!"

유린이 스킬을 시전하자 그림이 물결치듯이 일렁였다.
거리가 멀수록 그림이 더 많이 흔들린다.
유린은 엘프 마을에 위드와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 네 종족의 역사 ]

파브로아 마을은 생명의 숲 외곽에 있었다.
특산품으로 맛좋은 과일들이 있기에 여행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산림욕하러 온 기분이네."
"신혼여행지보다도 더 좋은 거 같아요."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커플들!
높이가 수십 미터씩 되는 나무들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이며 숲에서 뛰어다니는 작은 동물들로 인해서 인기 있는 휴양지였다.
토끼와 사슴, 여우도 마을 근처의 계곡에 내려와서 물을 마시고,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해도 피하지 않았다.
사자나 곰 같은 맹수들도 인간들에서 친근한 척을 하며 먹을 것을 얻어먹었다.
엘프들이 있는 마을로, 여기서는 동물들을 사냥하면 안 된다.
그렇게 지나다 보니 동물들도 인간들을 편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 파브로아 마을의 입구에 위드와 유린이 갑자기 일렁이며 나타났다.

"흠, 여긴 먹을 것들이 아주 많군."

위드가 동물들을 보며 간단히 내린 평가였다.
유린도 옆에도 거들었다.

"오빠. 배고플 땐 뭐든 먹어도 되겠어."
"아까 밥을 먹었는데 다시 배가 고프군."

동물든은 그저 음식으로 보일 뿐이었다.
위드와 유린은 허기를 참으며 마을로 들어갔다.
숲 안의 나무들 아래에 있는 마을로, 엘프 경비병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엘프들의 무기와 방어구를 판매하는 상점, 과일을 바탕으로 요리를 하는 식당, 나무 위에 지어진 여관도 있었다.
초보 시절이었더라면 무기와 방어구 상점에 관심을 가졌을 테지만 위드는 바로 란델리아부터 만나러 갔다.
대장장이 스킬 때문에 엘프들의 무기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사실 상점에서 좋은 무기를 구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상점용 무기에도 소위 명품은 있다.
하지만 지금 위드의 수준에 쓸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런 휴양지의 마을이라면 더더욱 바가지가 극심할 터!

"가장 오래된 조각품에 대해 알아보러 왔습니다."

엘프 장로 란델리아는 마을 중앙에 있는 연못 근처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엘프답게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외모에 긴 머리카락을 가졌다.

"인간 조각사의 방문이로군요. 그대 모라타의 영주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습니다. 엘프들에게도 공평하게 대하며 예술을 사랑하고, 모험을 통해 대륙의 평화를 지킨다지요."

위드가 했던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엘프 장로 란델리아는 그를 정중하게 대했다.

"예. 예술의 길이 엘프들의 지식을 구하라며 이곳으로 저를 안내하였습니다."
"가장 오래된 조각품, 최초의 조각품에 대한 이야기는 엘프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것이죠. 기록에 익숙한 인간들이 남기지 못한 과거, 삶의 주기가 짧은 오크들이 전하지 못한 이야기, 열정을 부태우며 사는 드워프들이 잊어버린 기억. 하지만 그만큼 신빙성도 없답니다. 그래도 듣고 싶나요?"
"예."
"네 종족이 동굴에서 살아갈 때예요. 그때는 많은 조각품이 만들어졌답니다."

위드의 눈앞에 다시 영상이 흘러나왔다.

대륙의 초창기, 몬스터들이 활개를 치며 돌아다닐 때였다.
인간과 엘프, 드워프, 오크 들은 곡물을 길러도 금세 빼앗기기 일쑤였다.
마을을 세우지도 못하고 깊은 동굴 안으로 숨어들어 가서 지냈다.
드워프들은 땅을 파는 재주가 무척 뛰어나서, 여러 개의 동굴을 연결시켜 놓아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대처했다.
세상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난폭한 몬스터들이 가득할 때, 오크들이 유능한 전사로서 버텨 주는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캬하아아."

인간들이 완전한 언어를 이루기도 훨씬 전이었다.
하지만 네 종족은 힘을 합쳐서 숫자를 조금씩 늘려 나갔고, 몬스터들과 투쟁하는 법을 익혔다.
오크들은 훌륭한 싸움꾼이었고, 어떤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물러서지 않았다.
엘프와 드워프,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 대신 희생하는 의리까지 있었다.
결국 그들은 동굴 밖으로 나와서 강가 근처에 정착하였다.
베르사 대륙 최초의 도시, '라체부르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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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베르사 대륙 문명의 기원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셨습니다.
지식이 15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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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체부르그라.....'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였다.
왕국들이 세워진 이후의 역사부터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위드의 눈앞에 라체부르그의 모습이 비춰졌다.
드워프들이 나무를 세워서 만든 단단한 방책이 있었다.
도시에는 흙과 돌을 쌓아서 만든 집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엘프들은 나무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였다.
오크들과 드워프들의 집은 입구의 크기부터 차이가 많이났다.
곡물과 과일나무를 키우는 넓은 평원 그리고 도시 근처로 유유히 흐르는 반짝이는 강물.
새들이 무리를 지어서 날아다녔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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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조각술 완료

엘프들은 대대로 내려오며 네 종족의 협력과 오래된 조각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왔다.
아마도 태초의 조각술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고 짐작된다.

- 퀘스트 보상 : 엘프 장로 란델리아에게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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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를 마쳤지만, 위드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도 이대로 끝나지 않고 당연하게 연계 퀘스트로 이어졌던 것이다.
엘프 란델리아가 이어서 말했다.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엘프들이라고 하더라도 말로만 전해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답니다. 지금은 그때 만들었다던 조각품에 대한 이야기도, 네 종족이 모여 살았다던 도시 라체부르그의 위체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겠군요."

대륙에는 인간의 왕국이 세워지고 멸망하기를 반복했다.
몬스터 무리의 이동에 따라서 각 종족의 거주지도 바뀌었고, 무성한 숲이 있던 장소가 평야로 변하기도 했다.
로열 로드에서 베르사 대륙이 창조된 건 무려 10억 년 전!
각 종족과 몬스터가 탄생한 것은 자연이 제자리를 잡은 그때보다는 훨씬 이후였지만, 그럼에도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었다.
몬스터에 의하여 멸망한 마을이 수만 곳을 넘어섰고, 인간과 엘프, 드워프, 오크 글이 각자의 안정적인 영역을 가진 현재의 구도가 완성된 것은 불과 수천 년 전이라고 한다.

"라체부르그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건 불가능한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조각사뿐이리라고 생각됩니다. 인간 조각사여, 찬란한 예술의 길을 걷는 사람이여.
라체부르그에 대해서 우리 엘프들이 잘못된 말을 전해 온 게 아닌지 사실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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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라체부르그

네 종족이 살았다는 신화의 도시
현제는 어디에서도 그 도시를 찾을 수가 없다.
라체부르그를 발견하라!

난이도 :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퀘스트 제한 : 고급 8레벨 이상의 조각술.
조각술의 추억 스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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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술 마스터 연계 퀘스트!
위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저도 라체부르그가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네 종족이 화목하게 살았다는 그 도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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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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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은근히 눈치를 보았다.
어떤 보상을 줄지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엘프의 활이면 대박인데. 꼭 활이 아니더라도, 정령술을 높여 주는 엘프의 아이템이라도 괜찮아. 자연과의 친화력과 연관이 있는 장비도 나쁘지 않고.'

엘프의 아이템은 뭐든 귀한 편이었다.
인간이 아닌 엘프 종족을 택한 유저들은 그런 면에서 불이익을 상당히 받았다.
각 마을마다 엘프 대장장이가 몇 명 없고, 사냥에서도 엘프 전용 장비는 많이 안 나온다.
가끔 나오더라도 주로 초보엘프들이나 착용하는 물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비를 구하는 데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다만 엘프들은 기초적인 육체 능력이 좋은 편이고 마법과 정령술, 궁술의 달인들이라서 가벼운 가죽옷으로도 활동을 잘했다.
마침내 엘프 란델리아가 다시 입을 열어 말한 첫 번째 퀘스트에 대한 보상은.......!

"제가 사는 집의 뒤쪽에 가 보면 과일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혼자서는 다 먹지 못할 테니 마음껏 따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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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델리아의 집 뒤쪽에 있는 과일나무에서 과일을 수확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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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위드의 얼굴이 처참할 정도로 구겨졌다.
기대하고 부자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계란도 넣지 않은 라면을 끓여 주는 격!

"알겠습니다. 마침 과일을 먹고 싶었는데 잘되었군요."
"그럼 훌륭한 조각사가 되시기를. 그리고 라체부르그에 대해서는 엘프들도 더 이상 아는 것이 없으니 이 무리한 부탁은 언제든 거절하여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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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를 포기하실 수 있습니다.
퀘스트를 포기하면 엘프 란델리아의 친밀도가 감소하며 나중에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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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를 받고 나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게 될 바에야 아예 여기서 끝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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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유린과 함께 란델리아의 집 뒤롣 들어갔다.
사과나무, 배나무, 귤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밤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 그리고 엘프목들.
많은 종류의 나무들의 가지에 열매가 가득 열려 있었다.

"맛있겠군."
"오빠, 과일값이 비싸잖아."
"그러니까 남김없이 따 가자."

보통 나무에서 열매의 맛이나 조금 보면서 다음 퀘스트를 하러 가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힘껏 흔들어!"

나무를 흔들어서 떨어진 열매들을 주워 담았다.
재봉용 천을 바닥에 깔아 놓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떨어지는 과일들을 배낭에 쓸어 넣기!
여분으로 가지고 다니는 배낭들까지 가득 채우고 났더니 란델리아가 키우던 나무들은 열매를 남김없이 잃어버리고 말았다.
위드는 잘 익은 사과를 베어 물면서 말했다.

"그럼 이제 라체부르그로 가야 되겠군."

아무 단서도 주어지지 않았으니 상당히 막막할 수밖에 없으리라.
엘프들이나 드워프들에게 물어보더라도 뭔가를 얻어듣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위드는 라체부르그의 영상을 보았다. 그것을 단서로 해서 추적하면 된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는 게 강의 위치와 돌의 종류라고 할 수 있지."

영상에서 집을 쌓는 재료인 돌을 세밀히 봐 두었다.
위드는 조각술로 대륙에 있는 웬만한 종류의 돌은 다 깍아 본 경험을 가졌다.

"대충 범위를 정할 수는 있겠어."

돌과 강, 새와 넓은 평원까지도 고려한다면 범위가 더 좁혀질 것이다.

"좀 더 뚜렷한 장소는 조금 계산을 해 봐야 되겠는데......"

정보들을 모아서 가공할 필요가 있었다.
위드가 아직 다음 행선지를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유린이 말했다.

"그럼 모라타로 돌아갈까?"
"아니. 모라타에서 왔으니까... 이번에는 바르고 성채로 가자. 그곳에 페일 님과 스승님과 사형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다고 했으니까 들러 봐야지."
"응. 그림을 그릴게."

샤샥.
예쁘고 정밀하게 그려지는 바르고 성채.
모습이 빨리 바뀌기 때문에 지금에 맞게 정확하게 그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유린은 다수의 그림을 그린 실력을 뽐내기라도 하듯이 멋진 그림을 그려 내고 있었다.

"근데 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어? 저녁에 도시락이라도 전해 주려고 갔는데 안 보이더라."

샤샤샤샤샤샥.
유린의 스케치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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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성채에 있는 페트는 주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실제에 버금가는 그림을 그려서 몬스터를 현혹시키는 화가!
아직 많이 알려지진 않았어도, 대륙 최고의 화가로 이름을 날릴 시간이 머지않았다.
방송사들도 그의 그림을 취재해 갈 정도였으며, 여기저기의 벽과 건물에 여러 명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이곳에 세울 건물에 그림을 그려 넣으려는데, 시간이 좀 되는가?"
"흠, 이런 구조라면 제 그림이 돋보이지가 않는데요."
"그렇다면 의견을 말해 보게. 적극 반영하겠네."

바르고 성채의 복구공사를 진행하던 건축가들도 페트의 그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떠오르는 샛별과도 같은 화가 페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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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성채의 영향력
영주 위드 : 43.198.
물빛의 화가 페트 : 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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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로 했던 바르고 성채의 영향력에서 위드를 능가하기는 한참이나 멀기는 했다.
위드는 격렬한 전쟁을 치른 끝에 불사의 군단에게서 이 지역을 되찾았고, 충성심 강한 주민들과 병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림만으로 영주를 능가하여 지위를 빼앗기란,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쉬운 목표는 아니었다.
예술가와 문화를 즐기는 주민들이 아직 젊어서 영향력이 더욱 느리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너무 쉬워도 재미없지. 하지만 결국에는 내 뜻대로 이루어질 거야."

페트의 그림이 바르고 성채의 중요한 요소들을 뒤덮고 있으니 그날도 언젠가는 찾아오게 되리라.
바르고 성채의 유저들이 예술을 말할 때 조각사 위드가 아닌, 화가 페트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야말로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많이 먹어라."
"멍멍!"

조각 생명체들에게 밥을 주고, 옷과 집도 사 주었다.
페트의 앞에만 서면 지옥의 파수꾼이라는 켈베로스도 온순한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었다.
바르고 성채에서 뛰어노는 페어리들도 그에게 와서 칭찬을 했다.

- 그림 정말 잘 그려요.
- 내 모습이 보여요? 꺄르륵.
- 나도 좀 그려 봐요. 어서어서!

페어리들은 그의 어깨에 앉거나 모자를 잡아당기면서 장난을 쳤다.

"역시 내 실력은 어디서든 통하는군. 당연한 일이니 특별히 기쁠 것도 없긴 하지."

페트는 바르고 성채에서 거칠 것이 없었다.
페어리들을 그려 주었더니 당연히 반응이 좋았다.
공간을 넘나드는 능력이 있는 페어리들은 놀랍게도 그가 그린 그림에 들어가서 술래잡기를 하며 놀기도 했다.
고레벨 유저들도 그에게서 그림 한 점 얻기 위하여 줄을 설 정도였다.
그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밝히면 수천 명이 몰려들어서 구경을 했다.
군중을 몰고 다니는 화가로 군림하고 있었다.
페트의 콧대가 한없이 높아지고 있을 무렵, 그림을 그려 달라는 사람들이 왔다.
아주 건장한 체격의 남자 셋이었다.

"그림을 잘 그린다던데, 20골드 줄 테니 우리를 좀 그려주겠나?"

페트는 코웃음을 치려고 했다.

'어디서 나에게 초상화 따위나 그려 달라고 온 거야.'

금액도 고작 20골드였으니 소문을 잘못 들은 게 틀림없다.
다른 초보 화가들에게는 많은 액수라고 할 수 있지만, 페트에게는 수백 골드고 모자랐다.
페트가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말고 썩 꺼지라는 말을 하기 직전이었다.

"검삼치 형님, 이번에 우리 애가 사람 하나 잡은 거 들으셨습니까?"
"들었지. 새로 들어온 애가 싸우다가 갈비뼈 세 대, 이빨 2개를 날려 버렸다면서?"

페트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잠깐 눈치를 살폈다.
이건 무슨 조직폭력배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이 화를 잘 못 참아서요."
"나도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도 남자가 한번 손을 쓰기 시작한 이상 겨우 그걸로 끝내면 어쩌자는 거냐? 확실하게 보내 버렸어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애들 교육 잘못 시켜서 죄송합니다. 아예 엉금엉금 기어 다니게 두 다리부터 작살을 내 버렸어야 하는데."

검치 들이 하는 이야기는 새로 들어온 도장의 수련생에 대한 것이었다.
아주 질이 안 좋은 강간법이 사고를 치려는 장면을 목격하고, 흉기를 든 상대와 싸워서 저지한 사건이었다.

"팔다리 정도는 부러뜨렸어야지, 왜 그걸 멀쩡하게 남겨 놔!"
"죽도 못 삼키게 턱을 부숴 버렸어야 됐는데요."
"애들 교육 제대로 시켜라. 대충 쓰면 안 쓰느니만 못해."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손을 써야 될 때는 상대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냥 말하는 짐승이라고 생각하면 되잖냐.
무슨 말을 지껄이든 상관하지 말고, 죽여 달라고 싹싹 빌면서 엎드려서 못 움직일 때까지 때려야지."
"다음부터는 그런 실수 없게 하겠습니다."

별로 좋은 내용의 이야기는 아니라서, 검삼치와 검사치, 검오치는 그들끼리 소곤거리면서 대화를 했다.
하지만 무슨 대화를 나누나 귀를 기울이고 있던 페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똑하게 들었다.

"아, 화가분! 혹시 지금 바쁘십니까?"
"아니요. 바쁘지 않은데요."
"20골드가 부족하다면 더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요, 충분한 금액인데요. 지금 바로 그려 드리겠습니다."

칠하던 벽화도 잠시 중단하고, 검칯 들의 그림을 그려 주었다.


#

위드가 유린과 같이 중앙 탑 정상에 나타났다.
바르고 성채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전투 이후 부서졌던 건물들은 복구공사가 한창이었고, 성벽까지 더 높고 두껍게 세우는 중이었다.
성채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까운 내 돈....."

바르고 성채가 주변 산자락과 어울리는 장대한 모습을 갖추어 가는 걸 보자니 불현듯 세금이 아까웠다.
영화나 소설, 시, 드라마에도 비극은 참 많지만, 생돈이 나갈 때 느끼는 감정이야말로 슬픔의 절정이었다.
지금까지 투입된 바르고 성채의 복구공사 비용만 생각하면 눈물은 물론 콧물까지 흘러내릴 지경!
그래도 모라타처럼 발전하는 모습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현재는 낭만적인 성채 도시의 모습까지도 갖춰 가고 있었으며, 일찍 완공될 지역을 바탕으로 유저들이 활동하고 있다.
성문에는 동료들을 모아서 모험을 떠다는 유저들이 미지의 개척지를 향하여 두근거리는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 영주가 왔다, 꺄르르르.
- 뭐 하다 왔어요?
- 트롤, 트롤! 난 로자임 왕국에 따라갔다 왔어.

위드의 옷깃에 들어 있던 페어리들이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페어리들은 그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장난을 쳤다.
유린이 손가락을 올리면 페어리가 서너 명씩 앉거나 매달리면서 놀았다.

"우선 사형들부터 봐야겠군."

위드는 유린과 같이 검치 들이 식사를 하는 장소부터 방문했다.
검치 들은 아직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건물 아래의 그늘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간들 덕분에 제대로 먹어 보겠군."
"고맙게 잘 먹겠네. 그런데 입가심을 할 맥주도 있으면 좋겠는데."

드워프와 바바리안 들도 검치 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바르고 성채에서 검치 들은 드워프와 바바리안과 완전히 의기투합했다.
바바리안들과는 덩치와 힘을 겨루다가 사냥을 같이 나가면서 동료가 됐다.

"정말 죽이기 힘든 몬스터가 있는데...."
"당장 토막 내러 가지."
"던전을 돌파한 용사는 우리 마을의 전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인간에게는 놀라운 명예가 될 거야."
"던전 따위야 어서 가자!"

검치 들과 바바리안은 죽이 아주 잘 맞았다.
드워프들과는 맥주를 마시면서 친해지고 무기와 방어구도 구입하면서 친밀도를 높여 놓고 같이 밥도 머근 사이가 되었다.
바르고 성채로 진출한 드워프와 바바리안은 이전보다도 훨씬 많아진 상태였다.
수르카와 이리엔, 로뮤나, 메이런, 화령을 빼면 남자들만 8백 명 가까운 무리가 우중충한 식사 준비를 했다.
그때에 위드가 유린과 같이 찾아왔다.

"아니, 사형들! 어떻게 이렇게 비곤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위드야!"
"제가 성대한 만찬을 차려 드리겠습니다."

스승인 검치도 있었고, 불사의 군단과의 전투에서 고생한 보답도 하기 위해서 위드가 식사 준비를 총책임지기로 했다.

"사형들이 먹을 음식인데 아까워하면 안 되지."

바르고 성채의 식량 사정은, 곡물류는 모라타에서 일체 수입하는 상황이어서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일행의 앞에는 바바리안들이 사냥한 다양한 고기들이 4천 킬로 정도 준비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1인당 고작 5킬로씩밖에 먹을 수가 없겠군. 한참 먹다가 고기가 딱 끊기는 건 안 될 일이지."

보통 사람들은 푸짐하게 먹어도 1킬로면 되겠지만 검치들은 포식으로 죽기 직전까지는 먹는다.
먹을 때 무식하고, 싸울 때에도 무식한 게 사형들이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야외에서 시원한 바람까지 맞으면서 고기를 먹으면 평소보다도 더 잘 들어갔다.

"영주의 권한을 사용해야 되겠군,"

바르고 성채에는 복구공사에 투입된 주민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들에게야 어차피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통 크게 한번 쓰기로 했다.

"지역 정보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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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성채

니플하임 제국에 소속되어 있던 지방.
최근까지 언데드들의 왕 바르칸 데모프와 불사의 군단이 주둔하였다.
몬스터들의 끈임없는 공격으로 인하여 파괴될 가능성이 높은 요새다.
영주 위드의 기적 같은 통치에 의해서 절망적이던 상황에서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군사력 : 432 경제력 : 268
문화 : 192 기술력 :71
종교 영향력 : 67
지역 정치 : 7
인근 지역에 대한 영향력 : 11%
구 니플하임 제국의 영향력 : 2.9% (영향력은 군사, 경제, 문화, 기술, 종교, 인구,
의뢰 등의 분야와 관련이 깊음)
도시 발전도 : 33
위생 : 24 치안 : 41%

모라타와, 북부의 다른 지방에서 많은 주민들이 영주를 믿고 이주해왔다.
성실하고 뛰어난 건축가들에 의해서 성과 주택, 도로, 성벽 등이 복구되고 있음.
대대적인 보수가 이루어지면서 성채의 허물어진 부분들이 대체로 복원되었다.
아직 많은 위험을 간직하고 있는 지역.
거듭된 몬스터의 침공에 의하여 병사들의 실전 경험이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활쏘기에 뛰어남.
성채 밖의 치안 상태가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생산 황동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농업과 광산 개발, 가축 사육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성채의 시설들이 복구되면서 생활이 급속하게 개선되는 부분에는 만족하고 있다.
몬스터들이 설치는 외부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지만, 튼튼한 성채 안에서는 안전에 대한 믿음이 조금 있다.
페어리들이 있으며, 엘프, 드워프, 바바리안 들과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짐.
바르고 성채의 세금 수입은 대부분 교역에 의존하고 있다.
건축물과 문화 예술품이 척박한 땅에 위안이 되고 있음.
지역 신앙으로는 프레야를 믿는다.
주민들의 믿음은 확고하여, 종교 활동을 위하려 신전의 건립을 원한다.

특산품 : 없음.
영토 전체 인구 : 6,892
1달 세금 수입 : 24,978골도.
마을 운영비 지출 내역 : 군사력 47%, 복구 작업 34%, 의뢰 및 몬스터 토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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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모라타와는 감히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모라타의 지금의 성장 속도라면, 단 며칠이면 바르고 성채규모 정도의 경제력이 더 커진다.
그러나 다른 종족들과 교역이 활발하고 높은 난이도의 사냥터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바르고 성채의 잠재력은 매우 높았다.
치안만 바로잡힌다면 모라타의 넘쳐 나는 주민들이 옮겨와서 급속하게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위드는 다스리는 지역이 1개보다는 2개인 쪽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세금도 더 많아지지.'

바르고 성채가 아직 준비 기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복구 속도는 믿기지가 않는 수준이었다.
불사의 군단과의 전투가 끝났을 때만 해도 멀쩡한 건물이 드물 정도였다.
무엇보다 성벽은 굶주린 늑대 떼도 막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철옹성에 가까워졌다.

"영주의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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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의 권한으로 주민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강제성이 있는 명령은 주민들의 충성도를 저하시키거나 치안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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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성의 창고에 있는 고기를 풀어서 마음껏 나눠 먹어라."

바르고 성채에는 모라타의 곡물 창고처럼 관련 건물들이 일찍부터 만들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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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에 비축되어 있는 고기를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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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먹기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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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의 명령에 따라 고기를 분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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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저장소의 문이 열리고, 주민들이 마음껏 고기를 가져 갔다.
이 주변에는 사냥감이 많아서 비축되어 있는 고기도 많았다.
위드는 고기를 쌓아서 20미터짜리 탑을 만들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질려 버릴 양이었지만, 검치 들에게는 입맛을 돋우는 효과를 불러왔다.

"몽땅 구워 먹읍시다."
"우오오오!"
"과연 위드다."
"바르고 성채의 인간 영주는 통이 크군."

베풀 때는 티를 내며 베풀어야 얻어먹는 사람들이 고마워한다.
이리엔이 와서 물었다.

"저기, 근데...식량 저장소에 있는 고기를 다 먹으면 내일부터는 어쩌시려고요?"
"그야,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 안 된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는 교훈이 담긴 명언이죠."
"......"

위드의 제멋대로의 해석이었다.
어쨋든, 덕분에 바르고 성채 전역에서는 고기 파티가 벌어졌다.
장사를 하던 상인들도 일단 고기를 굽고, 모험을 떠나려던 유저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불을 피웠다.
성채에서 만 명이 넘는 유저들이 한꺼번에 고기를 구워 먹는 이 광경이야말로 바르고 성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일.
위드는 고기가 궁합이 좋은 찌개와 요리들도 재빠르게 만들어 냈다.
10명씩 앉을 수 있는 넓은 상에 차려지는 요리들!
상을 뒤덮은 요리들의 가짓수가 많아지면서, 유저들은 저마다 생각했다.

'요리 스킬이 높으니 향기만으로도 죽여주는구나.'
'요리 잘하는 남자한테 시집을 가야 돼. 아침밥은 꼭 챙겨주는 위드 님이면 되는데.'
'순식간에 요리들을 만들어 버리네.'

메인 요리인 고기는 아직 익히고 있었으므로 다들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사범들과 수련생들은 조바심을 냈지만, 검치가 아직 음식을 먹지 않고 지긋하게 앉아 있었으므로 얌전히 기다렸다.
위드는 한꺼번에 방대한 양의 요리를 해서 각 상에 나누어 담는 방식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차려지는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과일이나 잡채, 제피가 강가에서 낚은 생선도 구워서 상에 올렸다.
푸짐하게 차려진 상을 보면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을것 같았다.
위드를 보기 위해 구경 온 유저들도 군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그리고 상에 음식들이 그득하니 차게 되었을 때, 고기 구운 것들을 추가로 올렸다.
콰자자작!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상다리의 네 부위가 큰 소리를 내면서 부러지고 말았다.
위드가 사전에 칼질을 해 놨기 때문이다.
식사 전에 상다리가 부러지는 이 효과야말로 요리의 맛을 돋우는 최고의 잔머리!
검치가 포크를 들었다.

"이제 먹자!"
"먹읍시다!"

바르고 성채의 고기 파티가 시작됐다.


[ 라체부르그의 위치 ]

페트는 그림을 그리던 도중에 위드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나의 숙명적인 적이 왔군."

바르고 성채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이곳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다른 지역보다는 레벨이 높은 유저들이 많았고, 성문만 넘어도 거침없는 대자연의 장관이 펼쳐진다.
유저들도 주민들도 빨리 늘어나고 있었으며, 갈수록 점점 고풍스러운 맛을 더해 가는 바르고 성채.
이곳에서 화가로서 영주가 되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영주님이 고기 파티를 열어 준대."
"진짜?"
"창고를 열어서 모두 공짜야. 마음껏 먹어도 돼. 그리고 영주님이 있는 장소에서는 고기를 직접 구워도 준대."
"빨리 가자!"

위드가 욌을 뿐인데, 바르고 성채는 몬스터 대군이 밀려왔을 때보다도 더욱 소란스러웠다.
유저들이 야단법석을 떨면서 창고에서 고기를 받아 왔다.
고기를 사 먹더라도 부담이 될 정도의 금액은 아닐 테지만, 영주 위드가 무료로 나누어 준다니 받아 와야 되지 않겠는가.

"캬하! 기름진 멧돼지 고기는 언제 먹어도 일품이야."
"응. 여기에는 건강하게 산에서 뛰어다니는 사냥감이 많아서 고기의 질이 더 훌륭한 것 같아."

꿀꺽.
천장화를 그리던 페트조차 무의식적으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안 되겠다. 나도 그냥 먹고 할까?'

위드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승부를 벌이려면 상대방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도 가서 먹어 보자.'

페트는 위드가 고기를 구워 준다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벌써 고기 한 점 얻어먹어 보겠다고 유저들과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오늘 내로는 먹을까?"
"줄이 빨리 줄어드니까. 1시간 내로는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페트는 한숨을 쉬면서 맨 뒤쪽에 섰다.
오랫동안 기다려야 될 테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 과연 그 고기 맛이 어떨지 궁금하여 빠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어느새 조각 생명체들도 도착하여 있었다.
덩치가 너무 큰 녀석들은 성채 바깥에서 따로 수레에 실어서 내온 먹이를 먹었고, 이곳에서는 켈베로스를 비롯하여 기사 세빌 프렉스턴이 벌써 위드에게 고기를 받아먹고 있었다.

"왈왈!"

고기 맛이 어찌나 좋았는지, 켈베로스가 꼬리를 흔들다가 땅바닥에 발라당 누워서 애교를 부렸다.
페트에게는 보여 준 적이 없는 친근한 모습이었다.

"고기 맛이 정말 뛰어납니다. 위드 님이 요리 솜씨는 제 검술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기사 세빌 프렉스턴까지도 위드에게 존경심을 보였다.
불 조절이 워낙 탁월해서, 위드가 구운 고기는 육즙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적당하게 뿌려지는 마늘 소금.
페트가 그동안 조각 생명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이 물거품처럼 사그라지는 순간이었다.

'아니야. 그래도 나와도 친해졌어. 나중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투자한다면 기회는 올 거야.'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영주 위드는 여자들에게 인기도 참 많아."
"그러게, 정말 예쁘네."

그사이 줄이 많이 줄어들어서, 페트가 있는 장소에서도 이제 위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위드는 불의 정령인 화돌이를 소환하여 단체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고기에 후추와 소금을 뿌리고 칼질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크흠! 정말 예,예쁜데?"

페트의 눈에 화령이 들어왔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환성적인 미모의 아가씨가 위드의 옆에 딱 달라붙어서 음식을 하는 걸 돕고 있었다.
뜨거운 불 때문에 발그스름하게 물든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예븐 아가씨가 곁에 있을 수가 있지?"

페트는 괜히 위드가 더 미워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 위드가 고기 한 점을 집어서 어떤 여자에게 먹여 주는 모습이 보였다.
페트가 잊지 못하던 사람, 조르디보오스 성에서 만났던 유린이 위드에게서 고기를 받아먹고 있었다.
둘이서 보낸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그의 가슴에 불꽃처럼 남았던 소녀.

'유린이다.'

페트는 유린이 위드를 향해 다정하게 웃어 보이는 걸 보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녀를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고기나 얻어먹으려고 줄을 서서는 아니었다.

'차라리 남자답게 이대로 뒤돌아서서 바르고 성채를 떠나자.'

모든 걸 묻어 버리고 떠나려고 했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건, 유린이 위드롸 계속 붙어 있는 광경이 앞으로도 쭉 상상에 남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심란함에 빠져 있는 페트의 귀로 쏙쏙 들어오는 이야기.

"저 여자애는 누구야?"
"화가라던데......."
"몰랐어? 위드의 여동생이잖아. 예전에 뱀파이어 왕국에서 모험도 같이했었는데."
"정말 귀엽다. 내 여자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위드가 처남이 되면 앞으로 인생도 활짝 펴지는 걸 텐데."

페트는 반쯤 뒤돌아섰던 몸을 돌려 다시 똑바로 줄을 섰다.

'여동생이었구나.'

조르디보오스 성에 유린이 남겨 놓은 글귀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

검치 들이 먹고 마시는 비용은 전부 위드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으으윽."
"배, 배가 터져서 죽을 것 같다"

폭식으로 인해서 벌써 생명력이 많이 깍여 있었다. 그런데도 새로 고기가 오면 환호했다.

"고기다!"
"갈비찜이네."
"허브로 풍미를 돋운 갈비찜입니다."

위드는 계속 음식을 제공했고, 이건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504명이 먹다가 전부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요리사가 무서운 직업이구나.'
'본 드래곤과도 지칠 줄 모르고 싸우던 분들이 저렇게 나가떨어지다니....'

정성인 페일과 제피는 이제 고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질리는데 그걸 계속 꾸역꾸역 먹어치우다니, 정말 대단했다.
탑을 세울 정도로 엄창나게 많던 고기가 드디어 다 사라졌구나 할 무렵, 바바리안들이 사냥을 나갔다 오더니 다시 신선한 고기를 더 높이 쌓았다.

"고기다."
"와!"

일반 유저들도 검치 들 부근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먹었다.

"먹자, 먹어."
"아우... 김 부장 진짜!"
"적당히 좀 하고 살자. 칼퇴근 좀 시켜 줘!"
"주말에는 좀 쉬어야지. 사람이냐 기계냐. 기계도 고장 나겠다!"
"시험, 취업, 자격증. 시험, 취업, 자격증. 으아아아악!"

유저들은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 많이 먹자.
- 위드 님이 구운 고기는 정말 맛이 최고야.

페어리들도 공중에서 날아다니며 고기를 뜯어 먹었다.
나중에는 체중이 무거워져서 날갯짓을 해도 날지 못하는 페어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그날 밤이 되었을 무렵에는,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지고 검치 들이 두런두런 앉았다.
마지막 후식으로 곱창을 구워 먹는 사람들!
검치가 말했다.

"요즘 위드에게 적이 많은가 보더구나."

검삼치가 말을 받았다.

"방송을 보니 헬멧인가 뭔가가 자꾸 죽이려고 한답니다."

검사치, 검오치도 들은 바가 있었다.

"그놈들, 평이 아주 안 좋던데요. 악랄하고 욕심이 많답니다."
"이 베르사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놈들이라는데. 놈들을 상대할 수 있는 단체는 거의 없답니다.'

수련생들은 조용히 경청하기만 했다.
검치가 분위기를 잡고 말하고 있었고, 사범들도 진지하게 대화를 한다.
수련생들이 끼어들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검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의 싸움에 우리가 꼭 나서야 될 필요는 없다. 막대노 다 생각은 있을 것이다."

위드는 물론 헤르메스 길드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을 가졌다.
아직 그들이 대륙을 제패한 것도 아니니 버틸 수 있는 데 까지는 버틴다.
당장은 조각 변신술로 피해 다닐 수 있으니 일단 조각술 최후의 비기나 퀘스트로 끝까지 가 본다.
그러고 나서도 헤르메스 길드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는 친한 척하기....를 할 계획이었다.
검삼치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막내도 생각이 있을 테니 알아서 하도록 그냥 놔두는 게....."
"하지만 나는 스승 된 입장에서 막내가 혼자서 외롭게 싸우는 걸 지켜보기에는 다소 언짢구나."

검삼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알아서 하도록 그냥 놔두어도 물론 잘하겠지만, 사형인 저희가 도와주어야죠. 좋은 말씀이십니다, 스승님."

검치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봤다.

"여기 이 베르사 대륙은 참으로 신비하다. 그리고 자유롭다. 평생 검을 익혔지만, 나조차도 이렇게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하였다."
"........"

검치의 말은 사범들이나 수련생들이나 모두 공감하던 바였다.
육체와 정신을 극한까지 단련하여도 현실에서는 쓸 수 있는 환경이 없다.
스탯이나 레벨이나 스킬 숙련도 같은 여러 가지 변수가 복잡하게 적용되긴 하지만, 그래도 베르사 대륙은 자유롭게 검을 들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다.
강한 적과 싸우고, 모험을 하고, 동료들을 맞이한다.
남자들이 꿈꿀 수 있는 바로 그런 세상이었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면 이 대륙을 차지하는 것도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야비한 자들이 힘을 모아서 횡포나 부리고 다니는 건 참지 못하겠다."
"저희 생각도 그렇습니다."

검치가 빙그레 웃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그동안 많이 놀지 않았느냐?"
"예."
"재밌게 놀았습니다."

검치 들이 몬스터를 때려잡고 검술을 수련했던 행위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원해서 즉흥적으로 했던 것이다.
때로는 미친 짓도 해 보면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제는 좀 강해지자꾸나. 어떤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도록. 집단이 아닌 개인의 순수한 힘이 무엇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지 시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태풍이 오더라도 쓰러지지 않는 굳건함은 강함에서 나온다.
검치는 수련생들과 같이 로열 로드의 체계에 맞춰서 레벨을 올리고 강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

라체부르그.
이현이 컴퓨터로 정보 검색을 해 봤지만 로열 로드와 관련된 어떤 게시판에도 나온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게시판은 헤르메스 길드에 가입하려는 유저들과, 엠비뉴 교단에 대항하자는 글들이 봇물 터지듯 하고 있었다.

"내가 발견하면 최초일 가능성이 높겠군."

막무가내로 돌아다녀 본다면 넓은 대륙에서 언제 찾을 수 있을지 모를 일.
추리를 바탕으로 영역을 좁혀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극지방은 아니야."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본다면 열대우림이나 사막, 빙하 지대는 아니었다.

"네 종족이 살다가 대륙 전체로 퍼져 나갔다. 섬일 가능성도 적겠지."

웬만큼 큰 섬이라면 뒤져 봐야 할지 모르지만, 그건 대륙에서 찾을 수 없게 된 이후로 우선순위를 미루어 두었다.

"넓은 강과 평원이 있는 장소로."

이현은 베르사 대륙의 지도들을 구해서 살펴봤다.
탐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장소는 완전히 밝여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맹신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네 종족이 같이 살 정도로 큰 도시가 세워질 만큼 평탄한 지형이어야 해."

그것만으로도 찾아봐야 할 장소가 많이 줄어들었다.
숲은 나무가 잘면 이루어질 수 있어도, 높은 산이 쌓일수는 없으니까.

"돌로 집을 지었다. 모래를 쌓거나 나무로 집을 짓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아니. 엘프들이 반대했을까? 어쨌든 집을 지을 만큼 주변에 돌이 많이 있었다는 뜻이겠지.
집을 짓는데 사용한 마룬석을 근처에서 많이 캘 수 있어야 한다....."

이현이 분석해 보니 자유도시들이 있는 부근이나 브리튼연합, 리튼 왕국 쪽에 그런 지형이 많은 편이었다.

"새들의 이동이나 꽃과 나무가 자라는 모습까지 감안한다면... 이 주변 왕국들 중에 있을 확률이 높겠지."

대륙의 정중앙에서 약간 남쪽에 가까웠지만, 크게 치우친 위치는 아니다.
땅도 비교적 비옥하고, 떠돌아다니는 몬스터도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었다.
왕국과 자유도시를 끼고 있는 광범위한 그 지역에 흐르는 큰 강은 24개!
이현은 돌의 재질과 지형을 바탕으로, 강유역에서 가능성이 높은 장소를 대략 백삼십여 군데로 추려 냈다.

"베르사 대륙에서 수천 년 전에 존재했을 도시를 찾는 일이다 보니 과연 쉽지가 않군."

지도를 보면서 세부적으로 분석하는 데에만 사흘이 걸렸다.
그러고도 계속 수작업을 해야 되었다.

"여행객들의 사진을 찾아봐얒."

유저들은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나 유명한 장소에 방문하면 그 장면을 갈무리해서 인터넷에 올려놓는다.
이현이 우너하는 장소들은 검색만으로 대부분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는 비슷하지 않아. 풀과 나무가 그동안 많이 자랐다고 해도... 강이 흐르는 방향도 해가 저무는 쪽이 아니고, 곡물을 길렀다고 보기에는 평원에도 암석이 너무 많아.
바람이 불면 곡식으로 황금빛 물결을 이룰 수 있는 장소야야 해."

농사를 지은 흔적이 없는 땅이었다.
이현은 사진들을 보기 위해 로열 로드의 동호회 모임에도 가입했다.

로열 로드에서 귀농의 꿈을. 로열귀농

씨앗 재배에서 수확까지. 농부 길드

잘 자란 꽃을 보면 마음까지 행복해져요. 꿀과 나비

땅투기 실전 투자. 이렇게 하면 앉아서 부자 된다, 부동산 상인 길드.

땅을 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단체들.
그곳에 올라온 사진들도 이용하면서, 확실히 라체부르그가 아닐 것 같은 장소들은 가차 없이 뺐다.

"크흠, 역시 추리란 어렵군. 쉬운 작업이 아니야."

일일이 확인하기가 어렵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직접 가 보고 아니라서 돌아서는 쪽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이틀을 추리고 나니 남는 장소는 예순여덟 곳이었다.

"이 중 어딘가에 있을 텐데. 수수께끼와의 싸움이 되겠군. 그것도 상당한 두뇌 싸움이 되겠어."

지금 인간들의 마을이나 도시가 있는 장소들이 그중에서 마흔두 곳이나 되었다.
이현은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봤다.
라체부르그와 비교적 지형이 비슷한 장소는 어떤 종족이든 살기가 좋은 위치다.
강물이 뱀처럼 굽이치는 장소로, 몬스터들로부터의 방어도 용이한 지형이다.

"내가 만약에 살 집을 짓는다면......"

실거주 측면에서의 분석!
당시의 땅값을 생각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좋은 입지를 골라잡을 수 있었다.

"최대한 좋은 장소로 골라 봐야지."

이현은 자유도시들이 있는 알바스 지역이 마음에 들었다.
비옥하고 넓은 평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큰 강이 마을을 지을 수 있는 장소를 둘러싸 몬스터들을 삼면에서 막아 주고 있었다.
그리고 평원을 넘어서는 적당히 험한 산들이 솟아 있다.

"여기에 오크 부대들을 주둔시킨다면 상당히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겠지. 곡창지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빼앗겨서는 안 되니까."

몬스터들이 식량을 빼앗으러 왔을 때의 방비도 상당히 수월했고, 주변에 마룬석도 풍부한 편이었다.
다른 다섯 지점들의 위치도 그럭저럭 나쁜 편은 아니라서, 어디든 살 만했다.

"이곳들 중에 있을 가능성이 상당할 것도 같은데....."

이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여섯 지점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모두 직접가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리튼 왕국와 브리튼 연합의 가능성이 높은 장소들에는 현재 도시가 지어져 있었다.

"알바스 지역부터 가 보는 거야. 돌아올 때 조금 많이 헤매야 되겠지만, 첫 번째로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까."

장고 끝에 겨우 결정을 내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학교는 다니고 있었고, 로열 로드에서는 바르고 성채에서 묵묵히 조각품을 깎으며 스킬 숙련도를 높이려고 애썼다.

"오빠, 안 자고 있었네?"

한밤중에 여동생의 방문이 열리더니 잠옷 차림의 이혜연이 거실로 나왔다.

"응. 요즘 생각할 게 있어서."

이혜은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서 마시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베르사 대륙 최초의 도시를 찾는 퀘스트를 받아서 그래."

이현은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컴퓨터로 출력한 각종 자료들이 두꺼운 책 세 권 분량이었고, 어디선가 가져온 유리 칠판에는 가득 낙서가 되어 있고 군데군데 쪽지를 붙여 놓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던 그런 명장면을 재현하며 라체부르그를 찾으려 했던 이현이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봤던 그 도시의 영상. 이 영상을 바탕으로 해서 이 자료들을 가지고 추적을 한 거지."

이현의 목소리는 나직하게 깔려 있었다. 내가 이렇게 똑똑하다는 사실을 여동생이 새삼스럽게 깨달아 주기를 바라는 오빠의 마음으로 분위기를 잔뜩 잡은 것이다.

"아, 이 그림이 찾으려는 그 도시의 모습이야?"
"그렇지."

이현의 그림 실력은 개구리를 공룡으로 만들고, 지렁이를 강으로, 개미를 삼단 변신 로봇으로 표현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 봤던 영상을 바탕으로 로열 로드의 사진들을 이용하여 최대한 비슷한 지형도를 만들어 놓았다.

"아이데른 왕국의 보르니스네?"
"응? 여긴 자유도시들이 있는 알바스 지역인데?"
"아냐. 나 여기, 나비 축제 한다고 해서 구경 가 봤단 말이야."

유린은 컴퓨터의 마우스를 조작하더니 보르니스의 영상을 화면에 띄웠다.

"이거 봐. 여기 맞잖아."

이현이 봤던 뱀처럼 꿈틀거리는 강, 넓은 평원과 새들, 꽃과 나무 들이 화면에 고스란히 있었다.
강줄기의 흐름이 조금 바뀌었다고는 해도, 저 멀리 보이는 산줄기들이 영락없이 똑같았다.

"올고르 고원도 있잖아. 일스 대평원도 있는데, 오빠?"
"......"

모니터를 째려보면서 아무리 흠을 잡으려 해도 라체부르그의 지형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크흠! 그러면 뭐, 알바스 지역에 가기 전에 한번쯤 들러 보도록 하면 되겠군."


[ 최초의 도시 발견 ]

네 종족이 정착하여 평화롭게 살았다는 태초의 도시, 라체부르그를 찾기 위하여 위드는 보르니스에 왔다.
유린이 축제 때문에 와 본 적이 있는 장소였기에 간단히 그림 이동술로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사람이 상당히 많군.'

위드는 올고르 고원에 올라서 주변을 훑어보았다.
새들이 무리를 지어서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여행자들과 관광객들이 쉽게 보였다.
광대한 티너스 강에서는, 낚싯대만 던지면 바로 물고기들이 덥석 물었다.

"월척이다!"
"오빠, 지금 몇 마리째야?"
"20마리 조금 넘은 거 같은데."

낚시꾼들이 정신없이 몰려오는, 물 반 고기 반의 풍요로는 강!
비옥한 일스 대평원에서는 아이데른 왕국을 먹여 살리는 각종 곡물들이 재배되었다.
일찍이 경제와 산업이 발달하게 된 아이데른 왕국에서는 이곳에 보르니스 성을 세웠다.
하지만 그 후로 200년 정도가 지나자 올고르 고원의 뒤쪽으로 더 크고 화려한 새로운 성을 지어서 이주했다.
지금의 보르니스 성은 여행자들이 머무르는 고성으로 변해 있었다.

"라체부르그가 있던 장소가 여기 어디쯤이었을 텐데."

위드는 강가를 따라서 걸었다.
몬스터의 습격을 염두에 두고 지었던 건지, 도시는 강에 상당히 밀착되어 있었다.

"기억에 의하면 이 근처 어디여댜 할 텐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지금은 모래가 듬뿍 쌓여 있는 장소!
위드는 낮에는 강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웠다.

"이번 기회에 낚시 스킬이나 올려야겠어."

조각품을 만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자칫 헤르메스 길드의 추격자들이 쫓아올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낮에는 평범하게 낚시를 했다.

"아저씨, 거긴 고기가 잘 안 잡히는 장소예요."

친절하게 조언해 준 여성 유저들이 무안해지게도, 위드는 강물에서 연방 낚싯대를 끌어 올렸다.

"이 녀석은 너무 커서 냄비에 안 들어가겠군."

두 팔로 가득 안아야 할 정도로 큰 물고기들이 마구 잡혔다.

"회를 떠서 먹어야 되겠어. 살점들을 튀겨 먹으면 그럭저럭 먹을 만은 하겠군."

티너스 강에 물고기가 많다고는 해도, 위드가 잡는 놈들처럼 크기가 다 큰 것은 아니었다.
중급 낚시 5레벨이 되다 보니 미끼가 물속에서 특별한 움직임을 보인다.
물살의 흐름에 따라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마치 잡아먹어 보라는 듯이 유인!
큰 물고기들마저 그에 속아 덥석 미끼를 물기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잘 잡았다.
티너스 강에는 낚시 스킬을 부지런히 올린 사람들이 많았다.
중급의 낚시술을 가진 사람도 3명이나 되었지만, 위드처럼 한번 물린 고기를 남김없이 낚아채는 사람은 드물었다.
고급 8레벨의 손재주로 인해서 물고기와 힘을 겨룰 때 줄을 끊어 버릴 정도로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체력을 금세 빼놓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도 숙련도를 올렸었기 때문에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낚시 스킬은 6레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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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스킬의 레벨이 중급 6으로 상승했습니다.
희귀한 물고기들을 발견하는 행운이 크게 증가합니다.
생명력이 최대치가 1,800만큼 늘어납니다.
생선 요리에 깊은 맛이 더해집니다.

- 명성이 35 올랐습니다.

- 인내력이 4 상승하셨습니다.

- 지구력이 3 상승하셨습니다.


끈질긴 낚시꾼의 호칭을 얻었습니다.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고 있을 때 낚시 스킬의 효과가 4% 늘어납니다.
체력 소모를 감소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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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너스 강은 밤에도 낚시꾼들로 북적였다.
그래서 위드는 몰래 숨어서 땅을 파야 되었다.

"아무 유적이나 좀 나와 봐라. 기왕이면 아주 비싼 것들로 나와 주면 좋겠고."

라체부르그 시절의 유물이라면 골동품 중에서도 특상품!
꼭 퀘스트 때문이 아니고, 돈에도 혈안이 되어 있는 위드였다.
위드가 밤에 몰래 숨어서 파는 구덩이는 정말 깊었다.
지골라스에서 땅만 팠던 시간이 상당했기 때문에 도움이 되었다.

"낚시나 채광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더 많이 심심했을거야."

고생문을 자주 열다 보니 이제 이 정도쯤이야 가뿐한 수준!
지골라스에서 했던 일이 벽돌 나르기였다면 지금은 형광등 교환 정도밖에는 안 되었다.
수풀 사이에서 삽으로 모래를 파헤쳐서 강물로 흘려 보냈다.
그나마 라체부르그가 있던 장소는 낚시를 하기에 좋은 위치는 아니었고, 티너스 강이 워낙에 광대하기에 사람들이 흩어져 있는 게 도움이 됐다.
이렇게 해서 나날이 늘어 가는 것은 낚시 스킬과 땅을 파는 데 쓰이는 채광 스킬이었다.

"역시 조각사는 다재다능해야 하는 게 정말이었군."

그러던 중, 우연히 대낮에 위드에 낚싯대에 무언가가 걸려 들었다.

"물고기인가?"

딱딱하게 잡아당겨지는 것이, 살아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보통 숙련된 낚시꾼이라면 낚싯줄을 잘라 버리겠지만, 위드는 10여 분의 고생 끝에 끌어 올렸다.
재봉 스킬을 이용하여 직접 만든, 시중에 파는 다른 물건보다 내구성이 훨씬 좋은 낚싯줄을 썼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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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물, 돌망치를 티너스 강에서 건져 올리셨습니다.

- 행운이 1 증가합니다.

- 낚시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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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돌망치인데 숙련도가 늘어나다니 흔치 않은 일이군.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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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돌망치 : 내구력 7/19. 공격력 2~9.
돌을 깨뜨려서 만든 망치이다.
사냥에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제한 : 없음.
옵션 : 오크가 사용하면 공격력 20%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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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로구나!"

기다렸던 유물이라고 하기에는 변변치 않지만, 위드는 이곳에 라체부르그가 있었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보통 때라면 잡템으로도 팔 수 없어서 버렸을 돌망치이지만 소중하게 간직했다.

"유물로 팔아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제는 낮에 낚시를 하면서도 유물을 건져 올릴 수 있을지 몰라 잔뜩 기대를 했다.
티너스 강의 다른 위치도 아니고, 과거 존재했을 라체부르그 한복판에서 하는 낚시!
구리 방패, 뭉개진 화살촉, 도자기 그릇 등을 발견해 냈다.
대부분 현재는 쓸모없는 물건이었지만, 가끔 드워프가 만든 물건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이곳만 확실히 파헤치면 돼!"

위드는 낮에 낚시를 하면서 눈까지 가늘게 뜨고 웃었다.
그리고 밤에는 콧노래를 부르며 땅을 파헤쳤다.

"이 땅을 파면 돈이 나오지. 쌀이 나오지. 어서어서 부자가 되어 보자꾸나!"

음치답게 박자가 길게 늘어졌다. 흡사 무덤가에서나 들릴 법한, 띄엄띄엄 이어지는 콧노래였다.

'최초의 도시였으니까 값이 제법 나가는 물건들이 잔뜩 묻혀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 당시에 만들어졌던 엄청난 무덤이라도 하나 발견하고 안에는 금은보화들이 아주......."

희망찬 도굴꾼의 꿈!
그러나 현실은 역시 만만한 게 아니었다.
며칠을 땅을 파도 흙과 돌만 나올 뿐, 바라는 금은보화는 없었다.

"룰루루!"

그럼에도 도굴로 한밑천 잡아 보려는 위드에게는 계속 힘이 솟아났다.
그리고 발견한, 돌을 깍아서 만든 조각품!
팔과 다리가 한쪽씩 떨어져 나갔지만 분명히 오크를 표현한 작품이었다.

"감정!"

위드는 조각품의 추억 스킬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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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몬스터들을 잘 물리쳤더군. 자네 덕분에 안전 할 수 있었어."
"취익! 해야 할 일을 했다. 전사 울취, 칭찬 안 받아도 된다. 취칫."
"참, 자식을 낳았다면서?"
"날 닮아서 머리가 아주 크다. 기쁘다. 취취칫!"
"울취, 자네의 일곱 번째 아이의 조각품을 만들어 봤네. 집에 가지고 가게나."

몸에 상처와 문신이 많은 오크 울취는 조각품을 내려다보았다.
큰 오크와 어린 오크의 조각품이 있었다.
금방 성년이 되어 버리고 전장으로 나가서 쉽게 사라지기도 하는 게 오크의 운명.
가족들이 기억할 수 있게 해 주는 조각품은 그들에게 매우 소중했다.

"자, 잘 가져간다. 취이익!"

울취는 털이 많은 손으로 조각품을 들고 허리를 숙이며 드워프의 작업실을 나왔다.
라체부르그의 거리에서는 오크에 비해 성장이 느린 인간의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울취 아저씨!"
"이번에도 몬스터를 많이 잡으셨다면서요? 아버지가 꼭 고맙다고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울취, 자네가 있어서 정말 자랑스럽군."

인간들이 친근하게 오크를 대했다.
울취는 그때마다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오크들은 전투에 동원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에 도시의 외곽 쪽에 살고 있었다.

"어, 어서 오세요. 취취췻!"

암컷 오크 제이취가 나와서 그를 반겼다.
울취는 힘껏 그녀를 안아 준 다음 집으로 들어갔다.
울취네는 자식만 벌써 열셋이나 되는 대가족이었다.
집에는 변변한 가구조차 없이 그저 문가에 줄로 묶어 매달아 놓은 조각품 정도가 보일 뿐이었다.
인간과 엘프는 곡물을 심어서 가꾸고, 도시에 건물을 짓는다.
드워프들은 오크들이 사용할 무기와 방어구를 만든다.
오크들은 어떤 몬스터가 침입을 하든 목숨을 바쳐서 그들을 막는다.
오크들이 뚫리면 인간, 엘프, 드워프 들이 함께 희생당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리 큰 피해가 있더라도 전투 중에 도망치지 않았다.
조각품이 달려 있는 문이 급하게 열릴 때마다 울취의 자식들이 성장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하나 둘 돌아오지 않았다.
조각품이 있는 자리에는, 더욱 많은 조각품들이 쌓였다.
오크들은 어려움을 이겨 내면서 대를 이어 계속 번식하였고 그동안에 인간과 엘프, 드워프 들도 발전이 있었다.
인간들은 농사를 지을 뿐만 아니라 무기를 다루는 데에도 많이 익숙해졌다.
어릴 때부터 큰 힘을 가지는 오크들 보다야 전투 능력이 떨어졌지만, 마나를 다루는 힘을 터득하여 극복해 냈다.
엘프들은 활이 만들어지고 정령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오크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드워프들은 자신들의 무기와 방어구를 발전시켰다.
무기의 예리함과 방어구의 단단함으로 몬스터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네 종족은 서로를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조각품은 밖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인간들이 우리를 존경하지 않는다. 취취췻!"
"오크들은 너무 많이 먹어. 곡물들을 길러 봐야 모두 오크들의 입으로 들어가기만 해. 우리가 나누어 먹을 곡물이 부족할 지경이야."
"자연의 위대한 힘에 대해서 모르는 다른 종족들을 우리 엘프들은 언제까지 인내하며 지켜봐야 되는 것일까?"
"우리가 만든 장비들을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군.
드워프에게 금속을 다루는 능력이 없었다면 전투도 농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야. 젠장.
애써 만든 장비들을 함부로 다루는 모습을 보면 정말 화가 나는군!"

네 종족은 반목하기 시작했다.
오크들이 먼저 도시를 떠났다.
그들의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한 장소에 정착하여 계속 살기란 무리였던 것이다.
라체부르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에는 몬스터들이 가득하였지만, 용감한 오크 로드들은 부족을 이끌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서 이동했다.
오크들이 떠나고 얼마 뒤에는 엘프들이 자신들이 살기 원하는 숲으로 향했다.
인간과 드워프는 그 후에도 한동안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서 어느 정도 붙어 있었다.
하지만 드워프들의 대장장이 기술이 더 발전하면서, 그들은 기술을 갈고닦기 위하여 광물이 많은 산으로 향했다.
인간들은 엘프들이 떠나고 난 이후에 곡물의 수확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서 한동안 고생을 했다.
하지만 이미 엘프들로부터 곡물을 키우는 법을 배워 익혔기 때문에 다시금 수확량을 늘릴 수 있었다.
몬스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드워프의 기술을 참고하여 요새를 짓고 성벽을 만들었다.
그렇게 가장 마지막까지 라체부르그에서 살던 종족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드워프와 엘프, 오크가 공존한 라체부르그는 인간과는 맞지 않는 주택이나 시설이 많아 그들이 계속 거주하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했다.
그리하여 결국 인간도 라체부르그를 떠나서 왕국을 만들었다.
네 종족의 외면 속에 버림 받은 최초의 도시!
티너스 강은 수십 년을 주기로 범람하여 라체부르그를 휩쓸었다. 일스 대평원이 비옥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범람의 피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더 이상 누구도 지키지 않는 도시의 건물들이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물길에 돌과 나무가 쓸려 나가고, 흙은 그대로 가라앉았다.
비와 강물 그리고 시간의 힘에 의하여 건물의 형체까지도 사라져 가, 마침내 라체부르그는 모래 속에 묻혔다.
울취의 일곱 번째 아이를 표현한 조각품도 큰 돌 아래에 묻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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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라체부르그 완료

라체부르그의 위대한 역사적인 발견!
인간과 드워프, 엘프, 오크 들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는 발견이 이루어졌다.
발견물을 보아서 각 왕국이나 종족의 대표들에게 보고한다면 모험에 대해 인정받고 업적으로 등록 될 수 있을것이다.

퀘스트 보상 : 각 왕국의 국왕, 종족의 대표에게 알리면 모험의 공적에 대한 포상을 받을 수 있음.
엘프 란델리아에게 돌아가면 다음 단계의 퀘스트와 함께 약간의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명성이 4,300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모든 스탯들이 4씩 증가합니다.
- 역사적인 지식을 얻었습니다. 특별한 경험으로 인하여 지혜와 지식이 5씩 추가로 늘어납니다.
- 발굴로 인하여 채광 스킬이 1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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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라 그런지 보상이 상당하군."

위드의 레벨이 이제 400이 넘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경험치를 얻어서 두 단계나 올랐다.
지금보다 레벨이 낮았더라면 리치 샤이어의 불사의 군단을 물리쳤을 때처럼 10개 이상이 한꺼번에 올랐을 것이다.

"이것으로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닌걸 텐데. 중간 단계에서 벌써 이런 보상이라면, 끝날 때는 도대체 얼마나 좋을까?"

위드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라체부르그를 발견하게 될, 모든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에 도전할 사람이 자신처럼 큰 보상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최초이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보상이 따르는 것이리라.

"역시 남들보다 한 발자국 앞서 가야 돼. 눈이 많이 내렸을 때 앞사람의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들을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

말은 상당히 긍정적이었지만 위드의 속마음은 완전히 새까맣기 짝이 없었다.

'앞에서 먼저 가면서 좋은 게 있으면 홀랑 다 챙겨야지. 뒤따라가면서 언제 크게 해 먹을수 있겠어.'

일찍 앞서 나가는 모험가가 퀘스트와 보물을 독차지할 수 있는 것!
라체부르그를 발견하고 나서 위드는 일단 유린을 통해 엘프 마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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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숲에 있는 파브로아 마을에서는,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대를 맞이하여 싸움이 벌어졌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상당한 전력을 투입하여 작은 마을을 대번에 쓸어버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엘프 마을을 지키는 마법 결계가 발동하면서 시간을 끌었고, 숲의 정령들과 나무들이 공격대에 저항하며 싸웠다.
몬스터들과 동물들까지 달려 나와서 공격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사이에 생명의 숲에 있는 엘프 전사들이 침입자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도착했다.
나무에서 엘프 궁수들이 화살을 쏘고 정령술과 마법으로 공격을 하니,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대라고 하더라도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막상 파브로아 마을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엘프들과만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저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 이놈의 헤르메스 길드는 안 끼는 곳이 없네."
"칼라모르 왕국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걸로 모자라서 엘프들까지 건드리나?"
"내가 진짜 헤르메스 놈들만 봐도 며칠씩 재수가 없다니까, 당분간은 마을 밖으로 나가지고 말아야겠네."

위드는 엘프들이 지키고 있는 마을의 입구를 통과했다.
엘프 전사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으며,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대는 일단 마을에서 멀리 퇴각하였다고 한다.

"라체부르그를 발견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조각품이, 그리고 이 발견물들이 증거입니다."

위드는 란델리아에게 퀘스트의 달성을 보고하였다.

"신기하군요, 이렇게나 오랜 역사를 가진 물건들이라니...."

란델리아가 들고 있는 물품들은 돌망치, 이빨 장신구, 항아리 조각이었다.
어디 내놔도 아무도 안 가져갈 물건이었지만 아주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정말 저의 말대로 라체부르그를 발견하고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보상으로 드릴 것은 많지 않지만..."

위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무에 열린 열매들도 다 먹어 버렸으니 란델리아로부터 크게 받을 만한 건 없었다.
하지만 대륙의 각 왕국이나 종족의 대표들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었기에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지도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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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숲의 지도를 획득하였습니다.
엘프의 마을, 몬스터들의 서식지, 나무들의 군락지, 약초들이 많이 자라는 장소 등이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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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소중하게 잘 쓰겠습니다."

위드는 괜찮은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생명의 숲은 아주 넓고, 엘프 유저라고 하더라도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잘 정리된 지도가 있다면, 언젠가 모험을 하게 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조각품이 깨져 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군요."

란델리아는 길고 긴 시간이 지나 깨진 채로 발견된 조각품을 보면서 아쉬워했다.

"라체부르그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조각품을 다시 예전처럼 돌릴 수 있다면 오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텐데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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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의 일곱 번째 아이의 조각품

라체부르그에서 오크들은 많이 피를 흘렸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인간과 드워프, 엘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크들에게 라체부르그에 대해 알려라!
조각품을 새것처럼 복원한다면 오크들에게는 고마운 선물이 될 것이다.

난이도 :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퀘스트 제한 : 고급 8레벨 이상의 조각술.
조각 복원의 스킬 필요.
오크들과의 관계가 친밀한 상태여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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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들에게 라체부르그에 대해서 알리겠습니다."

위드는 엘프 마을을 나왔다.


#

"믿기지 않아.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어!"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이 입을 모아 떠들기 시작했다.

"들은 적이 있나? 인간과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미개한 오크가 과거에는 함께 살았다는 거야."
"역사서를 완전히 다시 써야 될 만한 그런 대발견이 최근에 이루어졌다는데, 햇병아리인 자네도 들어서 알고 있겠지?
조각사이면서 모험가인 위드가 찾아냈단 말이네!"
"이런 대발견을 할 수 있는 건 위드밖에 없지! 그에게라면 이젠 어려운 문제라도 맡길 수가 있겠어.
아마 보수도 많이 주어야 하겠지만, 아깝진 않을 거 같아."

또다시 위드가 초대형 퀘스트를 성공시키자 유저들은 부럽기 짝이 없었다.

'아, 나는 언제나 한번 이런 거 해 보나?"
'이번 퀘스트는 진짜 큰 사건 같아. 인간들 외에도 오크, 엘프, 드워프 들도 떠들고 있다는데."
'그러면 네 종족 전부에 위드의 명성이 대단하게 퍼지게 되겠군.'

네 종족에 대한 발견이 이루어짐으로써 그들끼리의 관계가 개선되었다.

"드워프들에게 맡길 물건이 있어. 그들이 거절할지도 모르겠지만, 드워프들이 만든 검 일곱 자루를 구해다 주겠나?"
"최근 숲에 몬스터들이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어. 인간들이 해결해 준다면 도움이 될 텐데... 인간들을 만나서 요청을 해 주면 보답은 섭섭하지 않게 해 주지."

종족끼리의 우호도가 높아지면서 퀘스트가 발생하였다.
엘프들은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들끼리 해결하려 했었고, 오크나 자존심 강한 드워프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종족들에게도 퀘스트의 문이 더 넓게 열렸다.
위드의 경우에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명성과 성공을 자랑했기 때문에 원래부터 어느 종족에서든 퀘스트를 받을수 있었다.
그에게는 상관없는 사건이었지만 유저들에게는 상당한 변화였다.
주민들은 계속 이야기했다.

"위드는 놀랍게도 네 종족이 모여서 살던 도시를 발견하고 아이데른 왕국의 국왕 폐하께 보고를 했다더군.
포상으로 아이데른 왕국에서도 모라타의 백작 지위를 인정해 주고 왕의 보검을 하사했다고 해.
경비병에게 들은 사실이니 틀립없을 것이네."
"위드는 왕성에서 국왕의 배웅까지 받으며 와이번을 타고 멋지게 날아갔다더군. 그 멋진 장면이란.....가슴이 들끓는군!
빵 굽는 일만 아니었으면 나도 당장 따라나설 수 있었을텐데."
"바쿠마 왕국, 하르관 왕국, 브리튼 연합에도 방문해서 국왕에게 새로운 발견을 알리고 적지 않은 포상을 받아 간 모양이야."
"위드가 리튼 왕국에도 방문했다는데, 들었나? 예전에 조각품을 만들면서 국왕 폐하와 친분이 있었다고 해.
국왕께서 직접 그의 방문을 반기시더니 왕비와 왕자, 일가족의 조각품을 모두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던데."
"모험으로 대륙을 놀라게 만드는 대조각사 위드의 조각품이라면 리튼 왕국의 국왕뿐 아니라 그 어떤 나라의 왕이라도 꼭 소장하고 싶겠지."


#

"음머어어어어!"

누렁이는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하여 모라타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위엄 있게 우뚝 솟은 뿔과, 감각적으로 만들어진 근육들.
힘과 외모, 양쪽 모두에서 어떤 수소도 따라오지 못할 늠름한 자태였다.

"음머어!"

누렁이를 보면서 혀를 챱챱 날름거리며 눈을 꿈뻑이는 암소들이 많았다.
누렁이가 위드에게 생명을 부여받아 탄생한 이후로, 모라타에서는 소의 번식률이 급증했다.
갓 송아지티도 벗지 않은 어린 암소들까지도 누렁이를 보며 좋아했다.

'가끔 주민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하던 이유를 이제 알겠군.'

누렁이는 자신 있게 네발로 모라타의 거리를 활보하였다.
소들의 제왕과도 같은 근엄함이었다.
가끔 누렁이에게 덤벼 오는 수컷 황소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누렁이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도전을 받아 주었다.
소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하는 소싸움!
머리를 붙이고 뿔을 교차하며 상대 소를 밀어낸다.
왕성한 체력과 힘이 있어야 이기는 소싸움에서 누렁이는 한 번의 패배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이건 주인 덕분이야.'

주인이 왜 소는 힘이 좋아야 한다면서 등에 무거운 짐을 잔뜩 올렸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다 나 잘되라고 하던 일이었구나.'

차거나 뜨거운 곳에서 재우고, 이슬을 맞아 가면서까지 사냥을 시켰던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모라타에 소들이 많아지고 난 이후에 위드가 도시에 돌아올 때마다 뒷골목으로 끌고 갔던 과거도 새삼 기억이 났다.
건장한 수소와 소싸움을 시킨 뒤에 위드는 뒤로 물러나서 구경을 했다.

'싸움에서 이겨야 암소들에게 인기가 많아진다는 깊은 뜻이 있었던 거야!"

소싸움이 벌어지면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마음대로 돌리지는 못했지만, 항상 위드의 응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렁아, 이겨야 돼. 밀어내 버려! 난 너를 강하게 키웠다. 넌 할 수 있어. 네게 필요한 게 있다면, 밀어낼 수 있다는 믿음뿐이야!"

진심이 가득 담겨 있는 응원을 들으면서 누렁이는 매번 승리를 거두었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간혹 관계자나 다른 사람들과 돈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기도 했던 것 같지만....

'주인이 그립구나.'

누렁이는 위드를 만나고 싶었다.


[ 오크 종족의 영광 ]

위드는 리튼 왕국에 머무르면서 국왕이 원하는 대로 조각품을 만들어 주었다.
현재 고급 8레벨의 조각술 숙련도는 32.7%!
자하브와 있을 때 조각품을 만들었고, 그 이후로도 틈틈이 제작을 하여서 숙련도를 올린 덕분이었다.

"어쩌면 조각품에서 이렇게 광채가 날 수 있죠?"
"공주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니 저절로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런데... 조각품을 만드는 데 황금이 조금 부족한데요."
"당장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위드는 왕의 일가족의 조각품을 통째로 황금으로 만들었다.
어차피 그의 돈이 들어가는 작품도 아닐 뿐만 아니라, 조각을 하다 보면 이래저래 부수입이 생기는 법.
대장장이 스킬도 높아서 장애가 되지도 않았다.
마음의 창이라는 눈에는 보석을 박아서, 작업도 훨씬 간편하고 쉬웠다.
왕비가 위드의 재주를 보더니 칭찬했다.

"보석 세공의 재주도 뛰어나시군요."

위드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조각품과 관계된 일에는 진지해지고 싶었고, 타협이나 양보를 하기 싫었을 뿐입니다.
원하신다면 왕비님의 다른 보석들도 좀 봐 드리겠습니다."

가히 리튼 왕국을 말아먹을 기세!
하지만 드워프들로 이루어진 전문 보석 세공사들이 있어서 위드의 바람은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의뢰를 받아서 만드는 조각품은 국왕과 왕비, 왕자, 공주 들이 손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다.
각 귀족들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왕의 자세를 칭찬하는 장면은 은으로 해치웠다.
작업의 분량이 늘어나기는 하였지만 그만큼 위드의 배낭도 묵직해질 일이었으니 먼저 원했다.
조각품을 만들고 나니 말 그대로 번쩍번쩍 빛이 났다.
금의 순수한 광채에 빛의 조각술이 결합되어서 그 밝음의 효과를 더욱 키웠다.
최대한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만든 작품이었지만, 섬세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는 위드의 꼼꼼함으로 인하여 흠잡을 곳이 없었다.
위드가 조각을 완성하는 순간에는 국왕과 왕비, 왕자, 공주 들이 다 함께 와서 보았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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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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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했다.

"존경하는 리튼 왕국 국왕 폐하의 영광됨이 천년을 이어가기를 바라면서 만들었으니,
이 조각품의 이름은 불멸의 국왕 폐하와 그분의 가족들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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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국왕 폐하와 그분의 가족들이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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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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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불멸의 국왕 폐하와 그분의 가족들상을 완성하셨습니다.

리튼 왕국의 국왕, 만인이 우러러보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뒤따른다.
보물들로 즐비한 왕궁에, 황금과 보석으로 어우러진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왕국민들에게 특별 세금을 거든 사실은 역사적인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황금과 보석의 조각상은 작품의 가치면으로 값비싼 조각품의 훌륭한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예술적 가치: 923.
특수 옵션 : 불멸의 국왕 폐하와 그분의 가족들상을 본 귀족들의 왕실에 대한 충성심 증가.
라튼 왕국의 명성 증가.
왕국민들의 불만이 늘어남.
왕국의 산과 들에서 도적 떼의 출현을 증가시킴.
지금까지 완성한 걸작의 숫자 : 106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대장장이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왕가의 조각품을 만들어서 명성이 514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9 상승하셨습니다.
-행운이 3 상승하셨습니다.
-매력이 5 상승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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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튼 왕국의 국왕은 크게 만족했다.

"과연 좋은 작품이군."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를 표현할 수 있어서 조각사로서 다시없는 영광이었습니다."
"그대를 위하여 만찬을 준비하셨소."
"아닙니다. 폐하의 은덕을 입었으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릅니다."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위드는 공짜 밥을 거절했다.
조각품을 만드는 내내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어서 배낭에 듬뿍 챙겨 놓았다.
게다가 작업을 하면서 이래저래 빼돌린 황금과 보석들을 감안한다면 서둘러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

"와삼아!"

하늘에서 와이번이 왕성으로 내려왔다.
리튼 왕국까지 장거리 출장을 나온 와삼이였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세."
"폐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달려올 것입니다."

위드는 와이번을 타고 리튼 왕국의 왕성 위로 날아올랐다.
지상에서는 병사들과 귀족들 그리고 왕성 부근을 지나던 유저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위드가 있다면서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위드는 절로 뿌듯하여 썩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제대로 한밑천 잡아서 가는 길이니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꾸에에엑!"

와삼이가 무겁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게 다 돈이야. 나중에 말고기 실컷 먹여 줄게."

그동안 속은 게 너무 많아서, 와삼이는 이런 말에도 무덤덤했다. 하지만......

"다른 애들은 안 주고 너만 줄게."
"꾸에에에에에에엑!"

기쁨으로 날뛰는 와삼이였다.

"가자! 이제 오크 랜드로!"


#

오크 랜드.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 정식 지명은 아니었다.
그저 유로키나 산맥에서 부터 더욱 동쪽의 부르시리아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땅을 통칭하여 일컫는 이름이었다.
그곳에는 오크들이 아주 많았다.

"취췻!"
"취이이이익!"

산속 깊은 곳에서 맑은 새소리 대신에 콧소리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위드가 유로키나 산맥에서 불사의 군단을 물리쳐서 오크들의 긍지를 세움으로써 그 후로 유저들이 오크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로 오크 유저들은 유로키나 산맥에서 대활약을 했다.
초보 오크들은 당연히 고생이 많았다.
중앙 대륙이나 다른 왕국들은 성과 성벽을 지어 놓고, 몬스터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오크들은 강한 몬스터가 많은 유로키나 산맥에서 알아서 생존해야 했다.
무기와 방어구도 부실하고, 식량도 넉넉하지 못했다.
다른 종족보다 시작이 훨씬 어려웠다.

"우, 우리 마을 사라졌다. 취취췩!"

몬스터들이 많은 산맥이니만큼 오크 마을들이 휩쓸려서 없어지기도 했다.
그러면 몇천, 혹은 몇만의 오크가 모였다.

"취익, 복수다!"
"췌에에에엣!"

오크들은 용맹하게 유로키나 산맥의 패권을 장악해 나갔다.

"이번에는 식량을 듬뿍 약탈했다, 취취칫!"

이러면 오크들은 순식간에 몇 배씩이나 번식을 했다.
오크들의 번식력과 어린 오크들의 전투 능력이야말로 그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특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크 유저들 또한 죽음에 대한 낮은 패널티 덕분에 몸을 사리지 않으면서 싸웠다.
복수, 식량, 영역 확보, 던전 탐험, 광산 개발 등의 퀘스트가 계속 발생하였으며, 현재 오크 종족은 유로키나 산맥을 타고 동부와 남부로 무한정 뻗어 나가고 있었다.
대규모 전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오크들의 규모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도모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택할 만한 종족.
다만 복잡한 전략이나 전술을 이야기하면 오크들은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뭐라고? 취이이잇, 처음부터 다시 말해 봐라."
"그러니까 산맥의 이동 통로인 계곡을 장악해 놓으면 상인들의 무역로를... 취칫."

단순한 말이 효과적이었다.

"저놈들이 우리 부족 욕했다, 취익!"
"죽여, 취취취!"

스트레스 따위는 쌓일 수가 없는 종족.
먹고, 놀고, 다 같이 몰려가서 신 나게 싸움을 즐기는 종족이 바로 오크였다.


#

위드는 유로키나 산맥에서 동쪽 부르시리아에 지어진 투사의 불꽃이라는 이름의 오크 성채에 방문했다.
오크들이 평원에 만든 대도시였다.
인간이나 드워프 같은 건축 문화는 기대할 수 없었지만 오크들의 미래인 새끼 오크들은 매우 많았다.
위드는 오크들과는 남다른 친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크 카리취!
유로키나 산맥에 있던 그 어떤 오크보다도 흉악하고 단순 무식했던 전력이 있는 그다.
울취의 일곱 번째 아이에 대한 조각품도 완벽하게 복원을 해서 가져왔다.
오크들의 외모에 대해서는 익숙했고, 멀쩡했던 조각품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다시 복원을 해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카리취의 모습이 더 편하겠군."

카리취로 변신을 하고 나서, 라체부르그에 대한 보고를 하기 위해 오크 로드 불취를 만났다.

'너의 멋진 외모는 여전하구나, 취췻. 못 본 사이에 피부도 더 안 좋아진 것 같다."

오크 로드 불취는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카리취가 오크들 사이에서 유난히 두각을 드러냈던 건 외모의 효과도 없진 않았다.
뻐드렁니가 심하게 튀어나오고, 이기적이고 더럽게 생긴 얼굴!
성격으로도 어떤 오크보다도 더 오크다웠으며, 불사의 군단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카리취의 인기는 오크들 사이에서는 최고였다.

"그사이 턱에 살도 많아졌구나, 취취췻. 정말 오크다운 외모다, 취치치치치칫. 암컷 오크들이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불취, 취익. 인기를 끌고 싶으면, 췩! 밤에 자기 전에는 꼭 기름기 많은 걸 잔뜩 먹어라."
"말해 줘서 고맙다, 취잇!"
"그럼 라체부르그에 대해서 알려 주겠다, 취치치. 귓구멍을 파고 잘 들어라."

라체부르그에 대한 이야기!
위드는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하지는 않았다.
인간들의 왕국에서 국왕들을 만났을 때처럼,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찾아다녔는지 또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 발견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없던 이야기까지 지어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오크들이 다른 종족 지켜 줬다, 췩!"
"과연 우리 오크 선조들이다, 취잇."
"울취도 대단했다, 취치취."
"그런 오크 로드가 있었다니,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취이이잇."
"라체부르그에서는 다 같이 사이좋게 지냈다, 취취췻."
"취이익, 음식도 나눠 먹었나?"

오크들 사이에서 밥을 나눠 먹는다는 건 동료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먹었다, 취치치치치이잇! 고기는 오크들이 더 많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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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체부르그의 발견을 오크 로드 불취에게 보고하셨습니다.
고대 도시의 발견 업적을 보고함으로 인해 명성이 690 증가합니다.
오크들은 용기를 발휘하는 법과, 부족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보상으로 친밀한 이에게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용기가 13 증가합니다.
통솔력이 9 증가합니다.
카리스마가 7 증가합니다.
투지가 6 증가합니다.

- 오크들의 인간과 엘프에 대한 우호도가 친근한 상태로 변합니다.
- 오크들의 드워프에 대한 우호다가 사나운 상태로, 지금보다는 다소 개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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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로드에게 보고를 하니 엄청난 보상을 받았다.
왕들에게 보고를 할 때도 명성과 기품, 매력, 카리스마 등이 대폭 늘어났었다.
모험가들이 발견물 보고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위드는 퀘스트도 마치기 위하여 조각품을 꺼내서 주었다.

"이건 그때의, 췻. 조각품이다."
"취이이익. 용맹한 오크의 자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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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취의 일곱 번째 아이의 조각품 완료
오크의 조각품은 오랜 시간을 지나 다시 오크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오크들은 조각품을 보며 다른 종족들과의 우정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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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이이이익."

위드는 눈치를 보면서 기다렸다.
과연 이다음의 보상으로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 정도면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로서 할 만큼은 했다.
연계 퀘스트가 계속 이어지게 될지에 대해서도 매우 궁금했다.

"이 조각품, 취칫, 공짜로 받을 수 없다."
"췩. 올바른 오크의 자세다."

오크는 솔직함이 미덕이었으니 위드도 뭔가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취이취익. 나를 따라와라."

위드로서는 바라 마지않던 일이다.
오크 로드 불취를 따라서 그의 막사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살집이 토실토실한 암컷 오크가 새끼 오크들과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취췻, 같이 밥 먹자. 수고 많았다."
"......"

이것이 보상인 모양!
오크 로드 불취와 밥 한 끼를 하는 건 수천만 오크들에게는 대단한 영광이었다.

'그럼 그렇지, 내 팔자에 오크들에게 무슨 보상을 받겠어.'

위드는 입가를 실룩거렸지만 자리에 앉았다.
어쨌든 주는 밥은 먹고 볼 일이다.
오크 불취는 대단한 대식가였고, 다른 새끼 오크들과 암컷오크도 마찬가지였다.
위드도 카리취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사슴 통구이를 여러 마리 먹어 치웠다.
식사를 마쳐 갈 때쯤에 불취가 진지하게 말했다.

"오크 10만을 떼어 주겠다. 취치치칫."
"취익?"

위드는 갑자기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카리취를 따라간다면 그들도 좋아할 거다. 취취취이잇!"
"췩!"

위드는 이제 이해를 했다.
퀘스트에 대한 보상의 일부로 오크 무리를 안겨 주겠다는 것!

"아니다, 괜찮다. 취이익!"

절대 사절!
모타라가 굶주린 오크 떼로 뒤엎이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10만도 많은 숫자였지만 오크들의 번신력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오크 일가족이 정착해서 잘 먹고 밤에 오붓한 시간을 보내면, 몇 달만 지나도 그곳에 마을이 생긴다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카리취에게 꼭 보여 줘야 할 물건이 있다. 취취췻!"
"뭔데 그러나, 췩!"

불취는 막사 뒤에 있는 공간으로 가서 바닥의 지푸라기를 들췄다.
그러자 아래로 내려가는 지하실이 나왔다.

"절대 비밀로 해야 된다, 취칫. 오크 로드들만이 아는 장소다."
"알았다. 내 입은 무겁다, 취치익!"

불취는 지하실로 내려가서 머리에 쓰는 투구를 꺼내서 보여 주었다.

"이 투구는 가장 오래 전의 오크 로드가 썼다고 한다. 취이익. 취익. 혹시 이 물건이 어떤 건지 알아보겠는가?"

위드는 투구에 내려앉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털어 냈다.
완성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일 정도로, 철을 제대로 제련하여 만든 투구가 아니었다.
반쯤 녹다 만 철. 울퉁불퉁 제멋대로 만든 것 같은 투구로, 흉하고 짧은 뿔이 3개나 달려 있었다.

"알아보겠다, 취칫!"

위드는 감정 스킬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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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로드의 강철 투구 : 내구력 24/60. 방어력 129.

전설의 오크 로드 파라취가 드워프로부터 선물받아 착용하던 투구.
네 종족이 모여 살던 최초의 도시 라체부르그에서 제작되었다.
드워프 장인들은 무겁더라도 가장 단단한 투구를 만들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오크들은 이 강철 투구를 생명처럼 보존해 왔다.

제한 : 오크 로드 전용.
레벨 570 이상.
힘 2,300 이상.
옵션: 모든 오크들의 복종.
오크의 출생률을 50% 높인다.
자연적인 힘과 마법에 대한 절대적인 저항력.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 원래 힘의 40%를 더 낼수 있음.
정신계 마법에 완전한 면역.
전투와 관련된 모든 스탯 + 25.
전투와 관련된 모든 스킬의 공격력을 35% 강화함.
수리 불가능.

- 역사적인 물품의 감정으로 인하여 대장장이 스킬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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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이이이익!"

위드는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이렇게 훌륭한 아이템이 있다니! 이거야말로 정말 장비 중의 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파라취의 물건이다, 취취취췩!"
"취, 취익. 파라취라니! 들어 본 적이 있다, 취이취잇. 가장 훌륭한 오크 로드였다고, 췻췻췻! 항상 본받으라고 했다."

오크들은 커서 파라취처럼 되라는 말을 항상 듣고 자랐다.
부모의 부모, 그보다도 훨씬 오래 전으로 거슬러 갔을 때부터 파라취처럼 좋은 오크가 되라고 하였다.
위드에게는 정말 오래된 이 투구가 보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수리 불가능이라는 제한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착용하고 전투를 한다면 깨질 때까지 엄청난 레벨을 올릴 수가 있으리라.
오크 로드 전용에 힘의 제한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았지만, 여차하면 조각 파괴술을 써서 힘에 몰아줄 수도 있었다.
그때 대충 만든 것 같은 뿔이 위드의 눈에 띄었다.
그 부분은 철을 녹이도 울퉁불퉁하게 두들겨서 만든 게 아니라 동물의 뼈를 깎아서 만든 것 같았다.

"혹시 이 부분은 ... 취익.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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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투구의 뿔 : 내구도 14/25.

맨티코어의 뼈로 만든 뿔.
오크 로드의 위엄을 상징한다.
오크들이 사냥에 성공한 몬스터로 드워프 장인들이 뿔을 만들어 주었다.
예술적 가치 : 59.
특수 옵션 : 투구의 공격력을 7% 증가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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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각품에 담긴 추억을 읽으며 위드의 눈에 파라취와 관련된 영상이 흘러나왔다.


#

오크 로드 파라취!
키도 아주 크고, 눈빛이 맑은 오크가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종족이 사는 라체부르그에 건물들이 지어지는 것이 보였다.

"가자, 취이익!"

파라취는 부하 오크들과 함께 도시 부근의 몬스터들과 전쟁을 벌였다.
라체부르그가 도시의 규모로 성장하고 곡식을 가꾸게 되면서,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침략을 해 왔다.
파라취는 오크들을 데리고 그들을 막아 내고, 오히려 역습을 가하여 몬스터들의 근거지를 없앴다.
라체부르그의 영역이 매일 넓어지고, 더 안전해졌다.

"취이잇, 곡식을 더 심어라, 취치익! 모두가 나누어 먹을수 있도록 하자."

오크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엘프도, 드워프도 파라취를 존경했다.
파라취가 거느리는 오크의 규모는 갈수록 커졌고, 이윽고 강 유역을 완전히 평정할 수 있었다.
라체부르그를 지킨 오크 로드. 네 종족의 현재가 있게 만든 파라취였다.


#

"취이익!"

위드는 길게 콧김을 뿜어냈다.
영상에서는 그 뒤로 오크 로드 파라취가 이끌었던 전투를이 보였다.
번식력이 뛰어나지만 단순한 오크들을 데리고, 그 당시 강하기 짝이 없던 맨티코어를 사냥한 사건.
그때의 오크들은 지금과는 달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용맹했다.
이기적인 오크들이 동족을 위하여 기꺼이 먼저 죽을정도로 헌신적이었다.
파라취의 지휘를 받으면서 몬스터와 대규모 전쟁을 벌이기도 하고, 여러 전투 방법을 익히기도 하였다.
파라취는 진정한 오크 로드!
그의 아래에서 성장한 오크들이 기반을 잡으면서, 나중에 그가 죽을 때에는 오크의 숫자가 40배가 넘게 늘어났다.
6만에 달하는 오크의 최전성기를 이끌던 파라취였다.

'정말 재미있었겠군.'

모든 것이 자리를 잡지 못했을 때 오크 무리를 이끌고 사냥을 다녔다면, 그것도 매우 신 나는 일이 아니었을까.
위드는 자신이 오크였다면 지금의 대륙의 구도는 많이 답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륙에서 인간들이 다스리는 기억에는 성과 성벽이 지어지면서 오크들이 시원하게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한다.
오크들은 동부에서, 그리고 멀리 남쪽으로 돌아서 번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 아무것도 없던 시절, 그때에는 거친 자유가 있었으리라.
불취가 투구를 다시 가져갔다.

"파라취의 모습을 다시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취익. 쓸모는 없지만 화가나 조각사라면 그런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취치치칫!"
"내가 파라취를 조각할 수 있다. 췻."
"그럼 해다오, 취치치칙!"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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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로드 파라취의 조각

오크들은 알려 준 사실도 금방 잊어버리곤 한다.
그들은 몇 년만 지나면 라체부르그는 물론이고 오크 로드 파라취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파라취의 조각품을 만들어 오크들에게 그 용맹함을 보여 주어라.
조각품을 통하여 오크들은 잊고 지냈던 본능과 강인한 힘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조각품의 성공적인 완성 시에는 오크의 출생률이 오르고 힘이 강해짐.

난이도 :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퀘스트 제한 : 고급 8레벨 이상의 조각술.
대작의 완성도.
오크들과의 관계가 친밀한 상태여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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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 대륙의 역사를 보면 오크는 유저들이 늦게 선택한 종족이지만, 조각술 퀘스트를 통해서 종족의 과거의 영광을 찾을 수 있었다.

"만들어 보겠다, 취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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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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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준은 하루가 다르게 몸이 늙어 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가슴이 설레였다.

"과연 오늘은 무슨 모험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군."

그는 로열 로드가 열리고 나서 많은 사람들을 지켜봤다.
초기에 잠깐 두각을 드러내다가 도태된 사람들, 세력 다툼의 희생양, 야심은 많지만 그에 따른 재능은 가지지 못한이들.
유병준이 보는 사람들은 로열 로드에서도 주로 상위권의 랭케에 한정되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초보자들이나, 가볍게 즐기는 사람들은 사실 제대로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그러던 차에 위드에게 관심을 두고, 그의 모험을 처음부터 보게 했다.
위드는 베르사 대륙이 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지역을 돌아디며 퀘스트를 하고 던전을 탐험했다.
이제는 유병준도 어느새 위드의 모험을 매일 지켜보게 될 정도였다.
물론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오늘도 생고생을 하려나?"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즐거울 뿐!

#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대는 어이가 없었다.

"뭐 하자는 거야, 진짜."

엘프 마을까지 와서 공격했지만, 위드는 퀘스트를 성공시키고 싹 빠져나간 것이 확실했다.
엘프들과의 적대도가 엄청나게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유저들과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에 반해 소득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위드는 신출귀몰하게 여러 왕국들을 돌아다녔다.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이 위드를 찬양하면서, 공격대는 그들을 통해서 소식을 얻었지만 좇아가면 항상 허탕만 치기를 반복했다.
리튼 왕국에서는 위드가 소문이 퍼지고 난 이후에도 조금 오래 머물러서 비슷한 시기에 도착하기는 했다.
하지만 왕성에 있는 위드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를 공격하다가는 자칫 리튼 왕국의 기사나 마법사 들에 의해서 전멸당하게 생겼다.
멍하니 왕성 주변을 맴돌고 있는 사이, 위드는 일을 마치고 나서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날아서 떠나 버렸다.
떠나면서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손까지 흔들어 줄 때는 다리의 힘이 쭉 빠질 정도였다.

"와아! 위드 만세!"
"헤르메스 길드를 무찔러 주세요."
"엠비뉴 교단도 몰아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유저들과 주민들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를 했다.
위드에게는 지긋지긋한 이놈의 인기!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정체를 숨긴 채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또 어디 가서 잡아야 되는 거야?"
"그래도 길드에서는 계속 추적하라고 하잖아, 쫓아가다 보면 기회가 있겠지."

와이번의 이동속도가 빨랐지만, 노력한다면 기회는 올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보통 웬만한 유저들은 자기가 시작한 왕국을 떠나지도 않고, 사냥터도 꾸준하게 유지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왕국마다 일정한 레벨대에서는 추천할 만한 사냥터가 있고, 대부분 그곳을 따라갔다.
처리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런 장소들에서 기다리면 효과가 높았다.
하지만 위드의 영역은 어느 한 왕국도 아니고, 대륙 전체를 바쁘게 돌아다녔으니.....

"동쪽에서 들려온 소식을 들었나? 오크들이 아주 기뻐하고 있다는군. 어떤 오크가 대단단 발견을 알려 준 모양이야.
아마 그는 조각사 위드가 아닐까?"
"오크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높은 자긍심을 갖게 되었지.
여태까지는 나도 오크들을 멍청하다고 무시했지만 조금은 인정해야 될 거 같기도 해.
이게 다 조각사 위드의 발견 덕분이 아니겠는가?"

헤르메스 길드의 공격대는 망연자실했다.

"망했다. 이번에는 오크 랜드야."
"언제 그곳까지 가냐."


[ 오크들의 역사 ]

사각사각.
위드는 자신 있게 조각칼을 움직였다.

'오크들이야 익숙하니까.'

생소한 조각품일수록 표현하기가 까다롭다.
종족 특유의 균형미나 감성을 드러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드는 카리취로 모험을 하면서 오크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살았으니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파라취는 카리스마가 있는 오크였어.'

조금 심술궂고 이기심 넘치게 생긴 눈매는 외모의 일부일뿐이었다.
베르사 대륙에서 문화가 꽃피기 전, 네 종족의 운명을 등에 지고 살아가던 오크.
거칠 것도 없고, 발길을 내딛는 곳은 모두 미개척지다.
절벽을 지나고 산에 올라 고개를 들면 대자연과 몬스터들이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자유로움을 안고 살던 오크.
파라취가 양손에 글레이브를 하나씩 들고 포효하는 장면을 조각했다.
위드가 조각품을 만드는 장소는 오크 성채 부르시리아의 높은 관문 위였다.

"취익!"
"카리취가 무언가를 만든다, 취췻!"
"재주가 좋은 것 같다. 카리취. 취취취!"
"취치이익. 우리 사냥 갈 건데 같이 가자, 카리취."

오크들이 지나갈 때마다 보면서 한마디씩 던지기에, 인간조각사라면 부담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미개하고 흉악한 오크라는 인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면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위드의 경우에는 전혀 달랐다.

"취이잇, 귀찮게 하지 마라. 몽땅 솥에 넣어서 삶아 버리기 전에, 취췩!"
"취, 취이익. 카리취는 한다면 하는 오크다."
"무섭다, 취췻!"
"사냥 나갔다가 돌아올 때 나 먹을 거 가져와, 취익!"
"아, 알았다. 취취칙!"

오크들을 등쳐 먹는 위드였다.
카리취의 얼굴은 오히려 다른 오크들이 무서워할 정도였고, 암컷 오크들은 몰래 구경하면서 얼굴을 붉힐 정도였다.
암컷 오크들이 돌멩이에 말린 말고기를 달아서 던지고 수줍음에 후다닥 도망가기도 했다.
오크 세계에서는 아이돌을 능가하는 인기!


#

파라취의 조각품은 4미터 정도의 중대형으로 만들어졌다.
위엄이나 강인함을 표한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오크들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부르시리아에 서 있는 오크의 영웅!
위드의 조각품은 멀리서 보더라도 사납고 거친 힘이 느껴졌지만, 가까이서 보면 굉장히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되어 있었다.
오크들이 운반해 온 갈색 돌로 만든 조각품에 눈매와 턱, 목의 주름까지도 재현했다.
당시의 착용했던 구멍 뚫린 가죽 갑옷. 드워프 대장장이들이 만들어 준 투박한 철 부츠까지도 똑같이 만들었다.
글레이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길고 두꺼운 칼도 예리함이 느껴질 수 있도록 잘 갈아 놓았다.
오크 파라취가 사용하기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을 정도로 잘 어울리는 칼이었다.

"이 정도라면...취익!"

더 이상 추가할 부분이 없기에 위드는 조각품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오크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만큼, 그리고 파라취를 통해 엿본 묵직한 책임감과 자유를 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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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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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취익.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지. 오크 로드 파라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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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로드 파라취가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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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때문에 조각을 한 것이기는 했지만, 파라취에 대해 알게 되자 언젠가는 꼭 조각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대상이다.
부족한 실력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도, 마음은 후련했다.

"카리취의 작품이다, 취췻!"
"크아오! 나중에 커서 훌륭한 오크 전사가 되고 싶어진다, 취치취익!"
"잘생긴 오크다, 췩. 믿음직스럽다."

오크들이 관문 아래에 모여서 파라취의 조각품을 보면서 환호하고 있으니 위드의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조각품이 적어도 오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오크 로드 파라취가 맞다. 취칙!"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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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오크 로드 파라취를 완성하셨습니다!
베르사 대륙의 오랜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숨겨진 영웅, 오크로드 파라취의 조각품이 세상에 만들어졌다.
이 조각품은 충만한 재능을 갖추고 대륙의 역사를 거슬러 찾아가는 조각사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오크 로드 파라취의 모습을 정확히 재현해 낸 조각품으로, 오크들에게는 무한한 긍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예술적 가치 : 오크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품.
21,328.
특수 옵션 : 오크 종족 전체에 생명력과 힘을 4% 늘려 줌.
오크 로드의 카리스마와 통솔력의 효과가 14% 증가하게 됨.
번식 능력 향상
오크들이 낮은 투지 스탯에도 강한 몬스터들에게 위축되는 현상을 감소시킴.
새끼 오크들이 파라취의 조각품을 보면 전사로서 성장하는 속도를 20%
빠르게 만듬.
오크 로드나 오크 대전사의 탄생률이 높아짐.
조각상이 있는 지역 주변에서 오크들의 회복 능력을 65% 증가시킴.

지금까지 완성한 대작의 숫자 : 11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조각품에 대한 이해의 스킬 레벨이 1 상승하였습니다.

- 명성이 2,178 올랐습니다.

- 예술 스탯이 49 상승하셨습니다.

- 카리스마가 22 상승하셨습니다.

- 통솔력이 22 상승하셨습니다.

- 체력이 25 상승하셨습니다.

- 대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3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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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이익!"

위드는 기분 좋은 코웃음을 흘렸다.
오크 로드 파라취라는 의미 깉은 작품을 대작으로 성공시켰다.
조각술 숙련도도 이번에는 6.2%나 늘어 있었다.

'파라취를 조각한 이유가 크긴 크겠군. 그래도 내가 잘 조각한 덕분이지.'

잘되면 모두 내 덕!
불취가 위드에게 다가왔다.

"수고 많았다. 취칙. 위대한 오크가 가죽이나 벗기는 작은칼을 들고, 취치이익.
뭘 하나 궁금했는데 아주 훌륭했다, 췩! 이 오크가 파라취의 모습인가? 취취췻."
"그렇다. 취익!"
"매도 한입에 먹을 수 있겠다. 취이이익!"
"췻, 그 정도야 쉬운 일이다."
"이 돌덩어리가 마음에 든다. 취이췻. 정말 잘했다. 과연 카리취다. 취치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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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로드 파라취의 조각 완료

오크 로드 파라취의 모습을 통해서, 오크글은 자신들의 역사적인 정통성과 힘, 용기를 깨달았다.
오크들은 조각품을 보면서 예술에 대한 눈을 뜨고, 문화의 불가사의한 힘에 대해서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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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로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중에 오크 로드 파라취의 조각품을 완성시켰습니다.
작품이 오크의 보물로 등록됩니다.
오크의 도시와 마을에 문화가 생성됩니다.
오크도 문화에 따른 헤택을 누릴 수 있게 되고, 예술 작품을 보는 안목이 생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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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들과의 우호도가 "형제" 상태가 됩니다.
오크들은 형제에게 위기가 닥쳤을 경우에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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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들이 조각품의 완성을 기념하며 종족 전체의 죽제를 개최합니다.
축제는 25일간 개최되며, 기간 동안 출생률을 300% 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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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유저들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소식!
안 그래도 오크들의 번식 속도는 무시무시할 정도였는데, 축제가 지나면 새끼 오크들이 바굴바굴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오크 유저들은 전사의 직업을 택하든 로드의 직업을 택하든, 다른 오크들과 파티 사냥을 많이 한다.
유저들끼리의 사냥도 있었지만, 마을의 청년 오크들이나 부하들을 끌고 다니면서 사냥하는 일에 흔하게 일어났다.
새끼 오크들이 대거 늘어나고, 조각품으로 인해 그들이 빨라 강해진다면 오크 유저들은 정말 기쁠 수밖에 없으리라.
베르사 대륙에는 아직 미개척지가 너무나도 많다.
모라타가 있는 북부에도 몇몇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냥터들에는 몬스터가 많다.
그리고 동부와 남부, 오크들의 영역을 넘어선 장소는 험준한 산맥과 동물, 몬스터로 인하여 인간의 마을이 거의 없었다.
보다 강해진 오크들이 동부와 남부로 뻗어 나가고 문화끼지 이륙한다면, 언젠가는 오크의 왕국이 세워지지 말란 법도 없다!

'오크들의 번식력을 본다면 그 일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지금까지만 본다면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로 얻는 이득이 쏠쏠했다.
위드는 불취의 말을 기다렸다.

"카리취, 넌 보통의 오크 취치칫. 아닌 것 같다. 취치익."
"내가 좀 뛰어난 편이다. 취취취. 그래도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
"고맙다. 너어게 오크 무리 25만을 주겠다. 취칙!"

위드에게 이런 보상은 전혀 바라지 않던 것이었다.

"취치이익, 필요 없다. 안 받는다."
"꼭 데려가라, 취취취익! 그리고 파라취의 조각품을 보니 새끼 오크 때 부르던 노래가 진짜일지도 모르겠다. 취취췻."
"무슨 노래인가, 췩!"
"그건 얼마 전까지 나도 잘 몰랐다, 취익."

불취는 글레이브를 양손에 하나씩 들더니 서로 부딪쳐서 불꽃을 일으키며 노래를 불렀다.


아늑한 동굴을 나와서, 깡!
높고 침입하기 어려운 우리의 안식처, 깡!
바위 틈새를 막아 두고, 깡!
바람을 등지고 걸었지, 깡!
그 겨울이 지나고, 깡!
꽃잎을 밟으며 이동했네, 깡!

우리가 살아갈 곳, 깡!

귀중한 물을 구하고, 깡!
씨앗을 뿌릴 수 있고, 깡!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장소로, 깡!

몬스터들이 무섭지만, 깡!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깡!
오크들을 위하여, 깡!
오크들은 적을 향해 걷는 법을 모른다, 깡!
무조건 달려간다, 깡!

불취의 발음은 부정확했을 뿐만 아니라, 노래의 중간이나 중요한 단어를 발음할때에도 깡 소리를 냈다.
글레이브끼리 부딪치게 하다가 흥이 넘쳐서 주변의 돌들까지도 마구 내려치는, 드러머를 방불케 하는 모습!
그 때문에 알아듣기가 정말 어려운 노래였는데도 불구하고 위드에게는 통하는 면이 있었다.
오크 수준의 음치, 박치 였기 때문에 다 듣고 나서 박수를 쳤다.

"훌륭한 노래다, 취익!"
"오크들은 누구나 할 줄 안다, 취취칙. 그래도 내가 노래는 잘 부른다. 취이익.
물론 카리취 너만큼은 못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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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종족이 모여 살던 동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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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취가 계속 이어서 말했다.

"카리취, 네가 무엇을 하든, 취이익! 오크들은 너를 응원 할 것이다.
새끼일 때 부르는 이 노래도, 취익. 알아봐 줄 수 있는가?"

오크라면 누구든 알고 있는 노래!
오크 종족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유저들은 오크들이 부르는 몇 가지 노래에 대해서
퀘스트나 보물을 가리키는건 아닌지 의문을 풀기도 했다.
하지만 라체루브그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면 전혀 쓸모가 없는 노래였다.
오크들은 글로 써서 후대에 남기지도 않고, 잦은 전투를 하다가 숱하게 죽는다.
그들이 종족 전체를 좌우하는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은 오직 노래뿐이었던 것이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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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종족의 은신처

인간, 드워프, 엘프, 오크가 모여 살던 동굴!
네 종족은 서로 힘을 합쳤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이 같이 살아가던 동굴을 찾아와서 보고하라.

난이도 :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퀘스트 제한 : 고급 8레벨 이상의 조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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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익, 당연히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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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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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현은 머리도 어지럽고 몸이 심하게 쑤셨다.
강철처럼 튼튼하던 그였지만 최근에 학교를 다니고 로열로드를 하면서 피로가 누적되었던 탓이다.

"아무래도 하루 정도는 쉬어 줘야겠군."

로자임 왕국에서 최근에 큰 사건도 겪었고, 그 이루호도 쭉 퀘스트를 해 왔다.
머리가 특히 아픈 것이, 라체부르그에 대한 정보 조사를 며칠간 이어서 하며 심력을 너무 쏟아부은 것 같았다.
몸이란 보배처럼 아껴야 된다.
어릴 때는 몸의 귀중함을 전혀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 한 부위씩 아프고 탈이나면서 갈수록 힘들어진다.

"젊어서 건강하게 지내야 나중에 병원비가 적게 들지."

드래곤보다도 무섭다는 병원비!
토요일, 이현은 아침을 먹고 이불을 깔고 누웠다.

"드르렁!"

그리고 곧바로 잠!
완전한 숙면을 이루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방에는 빨래도 널어놓다서 습도도 적당히 맞춰졌으며, 허브를 심은 화분도 가져다 놓아서 휴식의 느낌을 주었다.

"으하함! 잘 잤다. 벌써 점심이군."

점심 때 일어난 이현은 밥을 먹고 나서 다시 이불로 기어 들어 갔다.

"드르렁, 푸휴휴."

저녁까지 잠을 자고, 다시 밥을 먹고 누웠다.

"밤에는 푹 자야 되는데, 낮잠을 많이 자서 잠이 올까 걱정이군. 드르르르르르렁!"

그리고 불을 끄고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우 종일 잠을 자고 나서, 그다음 날 이른 새벽에 새들이 우는 소리에 깨어났다.
이현은 이불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찌뿌듯하던 몸은 새것처럼 가벼웠고, 머릿속도 찬물로 목욕을 한 것처럼 맑았다.

"역시 잠이 보약이야."

돈도 들지 않는 최고의 약이었다.
집에서 마음 편히 먹고 자고 했으니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려고 했다.
컴퓨터를 켜고 가계부부터 작성하려고 했는데 날짜를 보니 약속이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더올랐다.

"아, 오늘이 등산을 하러 가기로 한 날이었나?"

정효린과의 등산 계획이 오늘로 잡혀 있었다.
이현은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가계부의 날짜를 보고 그제야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새벽 일찍 산에 오르기로 했었다.

"에휴. 준비를 해야겠군."

이현은 씻고 여동생이 먹을 밥을 차려 놓고 나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다.
음악을 위해 태어난 요정. 정효린에게는 굴욕적인 일이었지만 이현은 정말 등산이 하기 싫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운동도 한다.
그럴 거면 산동네로 신문 배달, 우유 배달을 하면 되지 않는가.
규칙적으로 일어나야 하니 가끔 하는 등산보다 건강에도 참 좋을 것이다.
한겨울에 눈이 내리는 날 가파른 산동네를 뛰어다니며 신문을 500부, 우유도 같이 돌렸던 이현이라서 정말 내키기 않았다.

"어지간한 산동네는 죄다 알고 있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겠군."

이현은 컴퓨터를 하면서 기다렸다.
그가 가지고 있으면서 팔지 않은 장비들의 시세도 확인했다.

"역시 검의 거래 가격은 정말 꾸준하고 마법 스태프들은 가격 하락이 일어나고 있군.
하기야 마법사들의 장비값이 워낙 비쌌으니까 떨어질 때도 되기야 했지."

최근 명예의 전당에는 개인 모험가보다는 특정 길드 소속 유저들이 전투 동영상이 주를 이뤘다.
자유 게시판에도 가 봤는데, 여전히 이야기는 많지만 크게 세가지 정도로 간추릴 수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 욕, 엠비뉴 교단 욕, 다른 길드 욕, 자기자랑!
위드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는, 모험과 의뢰 게시판을 장악 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오크 종족의 게시판에는 위드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암컷 오크 유저들의 이상형은 카리취처럼 듬직해야 한다면서,
오크들의 오모가 날이 갈수록 흉악해졌다.

'오크 유저도 정말 많아지고 있군.'

유로키나 산맥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불편함이 많았다.
도시가 아니라서 발전도 역시 떨어져서 오크는 쉽게 택할 수 있는 종족은 아니었다.
하지만 종족 자체에 매력이 있기에 새끼 오크들을 키우는 재미 등으로 오크들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었다.
부족의 자신을 닮은 새끼 오크들이 무럭무럭 수배그 수천 마리가 자라나는 것이다.
종족의 특성상 영역도 빠르게 넓어지고, 몇몇 유저들 중에서 오크들을 데리고 제법 큰 세력을 이룬 사람들이 나타나서 인기를 끌었다.
꼬끼오! 꼬꼬댁!
인터넷을 하는 사이 백숙과 양념이가 시원하게 울었다.
등산을 약속했던 6시가 거의 다가오고 있었다.
이현은 파전을 하고, 간단하게 김밥과 막걸리를 준비했다.

'이 정도만 먹으면 되겠지.'

도시락을 싸고 점퍼를 걸친 채로 밖에 나가 보니 정효링늬 차가 짚 앞에 주차되어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새벽까지 공연을 하고 곧바로 와서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채로 운전석에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현이 창문을 가볍게 두들기자, 정효린이 깨어나서 상큼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좋은 아침이예요."
"입가에 침 자국이......"
"앗!"

아침에 해가 뜨기 전에 산으로 바로 출발했다.


#

산의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이현은 도시락을 손에 들었다.

"갈까요?"
"네. 오랜만의 산행이라서 정말 즐거울 거 같아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산이었다.
하지만 이른 시간이라서 주차장에 차도 별로 없고 한적했다.
정효린은 등산화는 물론이고 등산복과 배낭까지, 준비가 완벽했다

"학교 생활은 어때요?"
"그냥 자퇴를 못 해서 다니는 거죠."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오해하시면 안돼요 나중에 아이는 몇 명 정도 낳고 싶으세요?"
"요즘 애들은 키워 봐야 돈만 드는데. 그래도 생기는 대로 낳아야죠."
"대가족이면 정말 화목하고 좋을 거 같지 않아요?
전 돈이많은 것보다 서로 아껴 주면서, 밥이랑 국도 먹여 줄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랑 살고 싶은 거 있죠?"
"그래도 인생에는 돈이 있어야......"

그렇게 20분 정도 대화를 하면서 등산로를 올라갔다.
정효린은 이현과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은 욕심에 등산하는 데 최소 4~5시간은 걸리는 코스를 잡았다.

"근데 생각보다 험하네"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 단련된 체력이었는데, 그래도 새벽 일찍 갑자기 산을 오르려니 벌써부터 힘이 들었다.

"이러면 화장 다 지워지는데......"

정효린은 점점 숨을 가쁘게 쉬었다.
등산을 하면서 심장이 빨리 뛰고 몸에서 열이 난다는 것은 무리를 하고 있다는 증거!
휴식을 취했다가 올라가야 하지만. 벌써부터 그랬다가는 중간에 다시 내려가자는 말을 들을까 봐서 억지로 올라갔다.

"자, 잠깐만 쉬어요"

30분 정도가 되니 정효린은 산을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근처에 있는 돌에 앉아서 쉬면서 체력이 보충되기를 기다리는데 이현이 말했다.

"힘들면 내려갈래요?"
"아니예요! 꼭 정상까지 가고 말겠어요. 해가 떠 있을 때 정상에서 안개 걷히는 것도 보고, 답답하던 기분도 날려 버리고 싶어요."

이현은 옆에 앉은 채로 정효린이 다시 일어나서 출발하자고 하기를 기다려 주었다.
어느 순간, 그의 어깨에 슬그머니 정효린의 머리가 닿았다.
가뜩이나 공연 준비로 잠이 부족했는데 새벽부터 무리했더니 그냥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이현은 산들바람을 맞으면서 새소리를 들었다.
그의 어깨에 기댄 정효린은 계속 잠든 채로 깨어나지를 못했다.

"흠, 이런 곳에서 잠들면 추울 텐데. 감기에 걸리면 약도 먹어야 될 ㅌㄴ데."

이현은 조심스럽게 점퍼를 벗어서 정효린의 등에 감아 주었다.
그러는데도 깨지 않는 게 아주 깊이 잠든 모앙이였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업고 가는 게 낫겠군."

이현은 정효린의 팔을 끌어당겨서 들쳐 업었다.

"자, 어디 가 볼까?"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산을 오르니 산동네에 쌀 배달하던 기억이 떠오르는군."

그때는 20킬로짜리 세 포대였는데, 정효린은 그보다 가벼웠다.
여자를 업은 산행이 쉬울 리는 없었지만, 이래저래 육체 단련을 많이 해 왔다.
무거우면 쉬다가 갈 수도 있으니 마음은 편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티셔츠도 안개와 땀 때문에 묵직해졌다.
몸이 힘들수록 운동이 되고 있다는 충족감이 들었다.

"오늘은 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겠어. 하루 종일 로열 로드만 해야지."

정효린을 업고서도 하체 단련을 위한 쌀 포대 정도로 생각하는 이현이었다.
정효린은 꿈을 꾸었다.
그녀가 아주 힘이 들 때, 든든하게 지켜 주는 남자가 있었다.
표현은 서툴지만 자상하고 따뜻한, 가정적인 남자!
가금 기괴한 행동을 벌이기는 해도, 웃음을 주는, 믿을 수 있는 남자.
그 나자와 결혼을 하는 꿈이었다.

"빨래도 남자가 해 주고, 요리도 남자가 해 주고, 청소도 남자가 하고, 돈도 벌어 오고, 애를 낳으면 애도 키워 주고...."

정효린의 배우자는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텔레비전의 아파트 광고, 냉장고 광고, 세탁기 광고 등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분위기의 달콤한 꿈이었다.
정효린이 꿈에서 깨어나서 살짝 눈을 떴다.
현실로 돌아오니 이현이 그녀를 업고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아....나를 업고 올라가는구나.'

정효린은 이현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깜짝 놀라 내려 달라고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은근히 이현으로부터 느껴지는 포근함
땀에 흠뻑 젖어 있는 남자의 체취가 역겹거나 더럽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내가 정상에 올라가고 싶다고 하니까 그 부탁을 들어주려고 하는구나."

정효린은 이렇게 가슴까지 따뜻한 남자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기였다.
자기를 업고 가느라 호흡도 거칠어지고 온몸에서 땀을 흘리면서도 묵묵히 산을 오르는 그 믿음직함이란!

"뭣하러 볼 것도 없는 정상에 가 보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군. 빨리 정상에 가서 김밥이나 먹고 내려가야지."

그의 생각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정효린은 이현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산에 오길 잘했다. 오늘은 정말 행복한 기억이 될 것 같아.'

그리고 이현..

"무겁다, 무거워......"


#

위드는 다시 접속해서 라체부르그가 있던 장소로 돌아갔다.
오크의 노래를 바탕으로 네 종족의 은신처가 되어 주었던 동굴을 찾아야 된다.

"높고 침입하기 어려운 장소라고 했지. 일단은 주변의 산이나 산맥부터 봐야 되겠군."

일스 대평원을 넘어가면 지형이 가파른 산이 많았다.

"바람을 등지고 이동했다니 바람이 부는 쪽으로. 꽃들이 피어 있는 시기에 걸었다고 했는데, 봄이었지.
이 지역에 많이 피는 꽃은...."

위드는 라체부르그의 모습을 유추하여 가야 할 방향을 동쪽으로 정했다.
와이번을 타고 단숨에 날아서 어파치 도착해야 되는 산이 있는 장소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지나치고 넘어 갈 수도 있었기에 직접 걷는 쪽을 택했다.
걷다 보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다.

바네사의 꽃길

나비 축제가 벌어질 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꽃길이었다.
그곳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과 풀 들을 위드는 밟지 않게 조심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니까."

흙을 밟으며 걸어가면서 바람에 꽃들이 흔들리는 걸 보았다.

"좋구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위태롭게 피어 있는 꽃.
냇물이 넘쳐서 죽어 가고 있는 꽃 들은 수고를 무릅쓰고 옮겨 심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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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토양 환경을 조성해 줘서 꽃꽃이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1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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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뭐, 꼭 바랃ㄴ 건 아니었는데...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자연과의 친화력이 아니었으면 몽땅 뽑아서 꽃집에 팔아 치웠을지도 모를 노릇.
꽃길을 계속 걸어가다 보니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장소가 나왔다.
예전 같으면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지나쳤을 정도에 불과했다.
위드는 혹시나 싶어서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장소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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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장소, 페드라 성벽을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230 증가합니다.
지식이 3 높아집니다.
다스리는 도시에 페드라 성벽을 건설하실 수 있습니다.
페드라 성벽은 낮은 건축 비용으로 몬스터들의 사기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

위드의 눈앞에 영상이 나왔다.
드워프들이 큰 바위들을 쪼갰다.
적당한 크기로 잘린 바위를 쌓는 건 오크들의 몫이었다.
그 바위들은 일스 대평원에 침략하는 몬스터들을 막는 방벽이 되었다.

"이곳에 온 게 내가 처음은 아닐 텐데."

위드가 돌무더기 근처에 서 있는 동안에도 다른 유저들이 자주 지나다니곤 했다.
사냥터로 빨리 가기 위해서 돌무더기를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위드처럼 무언가를 발견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얻진 못하는 모습이었다.
보르니스에서 축제가 벌어질 때는 여기에 사람들이 정말 많이 몰리기도 할 테지만,
라체부르그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건 위드뿐이었다.

'사전에 알고 있는 지식이 지형이나 아이템에 영향을 주는군.'

위드는 일스 대평원 근처를 돌면서 옛 유적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크게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오크들의 무기를 보관해 놓던 창고와 엘프들이 씨앗을 넣어 두던 돌로 만든 바가지도 찾아냈다.
라체부르그가 존재했을 때 이후로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다 보니 이제는 산산이 부서져 버린 토기 조각, 금속의 파편등도 찾아냈다.
티너스 강에는 그 당시의 낚시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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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체부르그의 낚시터

인간들이 물고기를 잡던 장소다.
드워프들도 안줏거리가 필요할 때 자주 찾아왔다.
낚시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이 장소에서 낚시를 하면 물고기를 낚을 확률이 37% 높아집니다.
----------------------------------------------

자잘한 발견들을 이루고 나서, 위드는 다시 동쪽으로 걸었다.
한참을 지나고 나니 토론 산 지역으로 들어왔다.
위드의 레벨로는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짐승들이 사는 장소였다.
보르니스에서 시작한 초보자들이 가끔 오기는 했지만,
멀고 지형이 험해서 거의 텅 비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부근에 있을 것 같군,"

라체부르그에서 꽃들이 피어 있는 길을 걸어와서 도착한 산이었다.

"높고 침입하기 어렵다고 했지. 그렇다면 산의 아랫부분은 수색할 필요가 없겠어."

토론 산에는 봉우리가 여러개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수색해야 하는 지역이 훨씬 줄었다.

"와삼아!"

위드는 와이번을 타고 봉우리들을 차례로 올라가 봤다.

"이곳은 너무 심하게 노출되어 있군. 가장 높은 봉우리라서 몬스터들이 금세 발견하고 말 거야.
위험을 피해야 하는 네 종족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지."

다음 봉우리로 가서도 살펴봤다.

"지형이 심하게 험해. 이런 절벽에서는 굴러떨어지면 그대로 사망이지."

나무가 적당히 많고 계곡도 가까운 장소가 좋을 것 같았다.
이번 퀘스트를 하면서 위드는 전원주택의 입지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쌓았다.

"여긴 너무 좁아. 안에 동굴이 있더라도 커다랗기는 힘들겠어. 통과!"

아늑하면서도 은밀한 안식처!
울창하게 자란 나무가 많고, 아래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수북했다.
짐승들이 많이 오지 않는 장소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몬스터들도 근처에서 어슬렁거리지 않았으리라.
위드는 바위들을 확인하며 걸어 다녔다.
큰 바위들은 밀어보기도 하고, 한쪽에 다른 공간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살폈다.
이 봉우리에는 유별나게 바위가 많은 편이였다.
그래도 조각사에게 바위란 반가운 재료일 뿐이었다.
조각사의 힘이 부족하더라도 요령 좋게 바위의 결을 따라서 깨뜨리거나 깍아 낼 수 있다.
많이 다루어 본 재료이고 가져다가 쓴 적도 많기에, 눈으로 대충 보기만 하더라도 이상한 정도를 알아냈다.

"여기 무언가 부딪친 것 같은 흔적이 있는데..."

생채기가 그득한 바위 발견!

"감정!"

----------------------------------------------
- 오크의 투기가 부딪친 자국을 살펴보셨습니다.
----------------------------------------------

"이 근처로구나."

위드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큰 나무들이 자라 있는 장소가 수상쩍었다.
나무들이 매우 컸는데, 그 아래에 돌과 바위가 많았다.

'처음부터 있었던 것 같진 않은데...."

위드는 돌을 위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치웠다.
투다다닥!
숨어 있던 다람쥐가 튀어나와서 다른 장소로 뛰어갔다.
위드가 돌을 빼낼수록, 안쪽으로는 일부러 쌓아 놓은 것처럼 인위적인 형태에 적당한 크키의 돌들이 나왔다.

"이건 가공한 게 틀림없어."

돌을 다 치우고 나니 사람 2~ 3명쯤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구덩이의 입구가 나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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