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 - 어느날 갑자기 2

3학년2반 | 2022.02.08 07:54:37 댓글: 0 조회: 349 추천: 0
분류엽기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7224
톨 게이트 <상>


창밖의 여자

죽은 자여.. 제발 떠나주시오...




"야! 그 책장은 여기야. 여기!"

나와 성준이는 인석이가 가르키는 곳에 간신히 책장을 내려놨다.
고등학교 동창인 인석이가 이삿짐을 날라달라고 전화온 것은 며
칠 전이었다. 군대를 면제받아 동기들 보다 먼저 취직한 인석이는
꽤 괜찮은 대기업에 다니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오피스텔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일 시간이 많아 보이는 나와 성준이에게 이삿짐이나 날
라달라고 부탁했다. 특별한 일이 없던 나는 성준이와 함께 인석이
를 도와주기로 했다.
오피스텔로의 이사라 별 짐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짐이
많아 3시간 정도 땀흘린 끝에 간신히 다 옮겼다.
고생했다며 인석이가 시켜준 짜장면을 기다리며 담배를 하나 빼
물고 오피스텔 안을 둘러보았다. 새로 지은 오피스텔이어서 그런
지 깨끗하고 현대 적이었다.
특히 시원할 정도로 확 트인 유리창은 기분마저 상쾌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9층에서 내다 보이는 뒷산의 모습이 기분나뻐
보였다. 곧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다고 그런지, 산이 깍여지는 모
습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석이 말로는 신도시의 이런 새 오피스텔치고는 참 싼
가격이 얻었다는 것이었다.

"그래 너 한번 애기해봐라..
도대체 어떤 사업을 하겠다는 거야?
이런 어려운 시기에.."

인석이는 그 질문에 픽 웃으며 반 농담조로 얘기했다.

"임마, 난세는 영웅을 만드는 거야.
IMF라고 직장에서 눈치보면서 불안하게 살기 보다는,
과감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진리야.
이럴 때일수록 아이템만 잘 잡으면 성공은 쉬울거야."

성준이 놀려대듯이 그런 인석이에게 말했다.

"너도 벤처 벤처 하니 거기에 눈이 멀었구나.
되지도 않는 거 언론에서 떠드니까 덥석 달려들었군..
배가 불러서 그래.
나나 일한이는 취직 생각에 머리 터질 것 같은데,
그런 자리 차고 나오다니..
그러나 저러나 도대체 뭐해서 돈 벌 생각이야?"
"글쎄... 그건 아직 비밀이야..
나중에 얘기해 줄께... 조금 구체화되고 하면..."

평소같으면 이런 일이 있으면 먼저 떠벌릴 놈인데, 이번만큼은 이
상할 정도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몇 번을 채근했지만, 완전히 소귀에 경 읽기였다.
나와 성준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인석이는 워낙 괴짜라 또 이상한 일 벌린 다음에 우리를 놀래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입이 결코 무겁지 않은 놈이라 며칠
후면 스스로 애기할 것 같기도 했다.
우리의 대화는 마침 배달 온 짜장면 때문에 중단되었다.
남들보다 음식먹는 속도가 빠른 나는 먼저 먹고 일어나서 오피스
텔 안에 어지럽게 쌓인 인석이의 짐들을 대충 ?어봤다. 혹시나
인석이가 그렇게 비밀로 하고 싶은 사업의 단서라도 발견할까 싶
어서였다.
박스를 정리하는 척 하면서, 짐을 뒤적이다가 밑에 깔린 찌그러진
박스에 뭔가 특이해 보이는 책자들이 들어있는 것을 봤다.
어떤 책들인가 집어 들었다.
조잡해 보이는 칼라에 영어로 써있는 잡지 같아 보였다.
처음에는 조잡한 칼라와 이상한 사진들이 엉켜있는 표지 때문에
무슨 그림인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그림이 무엇인가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들고 있던 그
잡지를 놓칠뻔 했다.
사람이 피를 튀기며 토막나는 사진하며, 온갖 잔인한 장면들이 엉
켜있는 사진이었다. 영어로 된 제목은 피빛 글자로 'World Most
Scary Pictures'라고 써 있었다. 그 잡지가 발견된 Box를 보니 비
슷한 잡지들이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 잡지인가 펼쳐보려는 순간, 인석이
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하며 갑자기 내 손에서 그 잡지를 낚
아챘다.

"야, 왜 남에 물건 막 뒤지는 거야?"

의외의 반응에 당황해 있는 사이에, 인석이는 그 잡지들을 챙겨서
박스에 다시 넣었다.

"뭔데, 그러는 거야?
좀 보자."

하지만, 인석이는 이상할 정도로 그 잡지에 대해서는 굳은 얼굴로
보여주길 거부했다. 나와 성준이는 한참을 졸랐지만, 너무 신경질
적인 인석이의 모습에 포기했다.
성준이와 나중에도 얘기했지만, 그날 인석의 모습은 너무 이상했
다. 평소와는 달리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다. 더구나 내가 봤던
그 잡지는 표지만으로 끔찍한 모습들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인석이가 그런 면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고, 그것을 숨긴
다는 것에 대해 더욱 이상함이 느껴졌다.
결국 본인이 싫다는 것을 더 이상 강요하는 것이 무리라고 느낀
나와 성준이는 그 잡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짐 정리를 끝낸 우리는 오피스텔을 떠날 채비
를 했다.
인석이는 자기의 이상한 행동이 미안했던지, 오피스텔을 나서는
우리들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야.. 오늘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 내가 술 한잔 거하게 살게..
오늘 내가 얘기안해 준 것들은, 때가 되면 꼭 애기해줄게..
기분 상했다면 미안하다..
나도 사정이 있어.."

미안해하는 인석이를 두고, 오피스텔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성준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얘기했다.

"잠깐 조용히 해봐!
무슨 소리 들리지 않니?"
"무슨 소리?"
"쉿! 잠깐!"

성준이의 갑작스런 말에 우리는 다들 숨을 죽이며 무슨 소리가
나나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성준은 분명히 무슨 소리를 들은 것처럼 다시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오피스텔 한가운데 서서 성준은 어리둥절해 있
는 우리들에게 손짓을 했다.
따라 들어간 나와 인석은 성준이가 가르키는 쪽에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뭔가 희미한 소리가 들리긴 들렸다.
너무 작아서 잘 들을 수 없었지만, 언뜻 듣기로는 흐느낌 소리같
았다.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치고, 머리털이 곤두서
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이상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작은 소리
도 금새 그쳐 무슨 소리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인석이가 궁금한 듯 물어봤다.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거야?"

성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확신을 못하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잘 모르겠어..
처음에는 분명히 들렸는데, 나중에는 소리가 너무 작아져서..
뭔가가 흐느끼는 것 같은 소리였는데, 그 소리가 동물 소리인지
사람 소리인지 구분이 잘 안가.. 남자 소리 같지는 않고..
여자 아이 소리같기도 하고..
여하튼 기분 나쁜 소리였어.."
"무슨 옆방에서 나는 소리 아냐?
테레비나 라디오 소리겠지 뭐.."

나는 가볍게 생각하고 말했다. 하지만 인석이의 말로는 새 오피스
텔이기 때문에 아직 입주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인석이의 방 근처에는 아직 아무도 이사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좀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인석이는 성준이가 농
담한다고 생각하는 듯이 가볍게 대꾸했다.

"짜식. 내가 좀 안 보여줬다고 장난치는군..
혼자 있을 때 겁 좀 먹으라고 이상한 소리들린다고 뻥치고.."

성준이는 진짜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지만, 나는 거기에 대
해 별 생각 안하고 그만가자고 하며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하
고 있던 성준이를 끌고 나왔다.
인석이 오피스텔을 나와 버스를 기다리면서, 나는 성준이에게 그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진짜냐 농담이냐 물었다. 성준은 사뭇 진지
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너 정말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니?
난 정말 들었어..
뭐랄까..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칠 정도로 기분나쁜 소리였어.
분명히 인석이 방안에서 들렸고...
뭘까? 그 소리..."

나도 짧은 순간이나마 그 소리를 듣고 성준이와 같은 느낌을 받
았던 것이 생각났지만, 그런 하찮은 얘기는 버스를 타면서부터 새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소리가 그런 무시무시한 일의 시작이었다는 것은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인석이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그로부터 2주일 후였다. 이사할 때
도와준 것에 대한 답례로 나와 성준이에게 술을 한잔 사겠다는
것이였다. 전화 건 인석이의 목소리가 좀 어두워보였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고 약속장소에 나갔다.
성준이는 자기 말대로 아무 할 일이 없는지 먼저 약속장소에 나
와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인석이가 나타났다.
그런데 인석이의 얼굴은 한 눈에 봐도, 무슨 심한 일을 겪은 사람
처럼 초?하고 말이 아니었다.
인석이는 자리 앉아 마자 목이 탄지 맥주 한잔을 쉬지않고 들이
켰다.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그래.. 니가 그렇게 비밀로 하던 벤처기업은 잘 되가고 있냐?"

인석이는 내 질문에는 대답도 않하고, 다짜고짜 성준이에게 엉뚱
한 질문을 했다.

"야, 성준아, 니가 지난 번 이사하던 날 내 방에서 들었다는
그 이상한 소리 혹시 여자 목소리 같지 않았니?"

성준이는 처음에는 인석이의 질문을 잘 못알아들은 것처럼 어리
둥절한 표정을 하다가, 잠시 후 대답했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그때 내가 그랬잖아? 소리가 너무 희미해 잘 모르겠다고..
어떻게 들으면 여자의 흐느낌 소리같기도 했지만?
그런데 무슨 일이야?
옆방 여자가 밤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너를 유혹하기나
하니?"

인석이는 아무말 없이 맥주를 다시 한잔 들이키더니, 두려움에 가
득찬 눈빛을 번뜩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들려줬다.

"내 방 주변에는 왠일인지 아직도 아무도 입주 안했어.
혹시 모르지..
그런 일을 나만 모르고 그 오피스텔에 입주 한건지...
나 벌써 사흘째 오피스텔에 못 들어가고 있어.
그 방에 혼자 있기가 너무 무서워..
니네들은 제발 내 얘기 좀 믿어줘...
지금까지 아무도 안 믿고 있지만..
이사온 지 이틀째 되는 밤이었어...
그날 밤 그 일이 시작되었어..
그 무시무시한 일이..."





<계속>

..집에서 나와 혼자 생활하며 내 사업을 한다는데 좀 설레기도 한
밤이었어.
그전까지는 정신없이 이사하고, 짐 정리하느라고 일을 할 수가 없
었거든.. 방 배치는 지난번에 니네들이 짐을 날라준 대로 창옆에
책상과 침대를 놓았어.
책상에 앉아서 왼쪽으로 돌아보면, 그리 좋은 풍경은 아니지만 밖
을 내다볼수 있어 좋았어. 책상에 앉아 창문 열어놓고 담배피기도
좋고..
그래서 그날 밤 처음으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며 일을
하고 있었어. 아직 주변 방에 아무도 입주를 안 해서 그런지 쥐죽
은 듯 고요했어. 밤이라 오피스텔 앞에서 공사하는 것도 멈추었는
지 더욱 조용했어. 사실 낮에는 산을 깎는 그 공사 때문에 좀 시
끄럽거든...
너무 조용해서 라디오라도 켜놓으려고 했지만, 그 놈의 라디오는
이사오다가 떨어뜨린 것 때문인지 켜지지도 않았어.
어쩔 수 없이 쥐 죽은 듯한 적막속에서 일을 했어.
한참을 일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밤 1시가 넘었어..
그 때 갑자기 성준이, 니가 들었다는 이상한 소리가 갑자기 생각
났어. 그 이상한 소리에 대한 생각과 아무도 없는 방안에, 그것도
주위 방에도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다는 것이 머리에 떠오르
자 좀 겁이 났어.
그래서 괜히 귀를 기울여봤지만, 역시 아무런 소리가 안 들렸어.
쓸데 없는 소리한 성준이 너 원망하고, 기지개를 한번 피고 다시
일을 시작했어.
그때였어.
누군가가 오피스텔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거야.
이 늦은 시간에 누군가 하고 나가봤어.
문 열기 전에 보안경으로 내다봤는데, 복도에는 아무도 안 보이는
것이었어.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별 생각없이 문을 열었어.
그런데. 문 앞에는 아무도 없는 거야.
복도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드믄드믄 켜져 있는 실내등과 인적
없는 복도만 덩그러니 보였어.
내가 잘못 들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앉
았어. 너무 조용하다 보니 헛것을 다 듣는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
어. 책상에 다시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어.
다시 똑똑하며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어.
이번에는 노크 소리를 듣자, 괜히 오싹해지며 무섭더라고..
그래도 무슨 일이야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누구세요?'라고 외
치며 문으로 갔어.
하지만 역시 아무런 대답도 없었어.
누가 장난치는 것 같아 뛰어가서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었어.
그런데..
이번에도 아무도 없는 거야.
아무리 복도를 둘러봐도 안 보이는 거야.
신경질도 나고, 좀 겁도 났지만, 혹시 누가 장난치는가 하고 엘리
베이터 있는 곳까지 가봤어.
역시 아무도 없었어. 더구나 엘리베이터는 1층에 서있는 거야.
누군가가 장난을 치고 엘리베이터 타고 도망쳤다 하더라도 그 짧
은 시간동안 엘리베이터가 1층에 가 있는 것은 불가능했거든..
혹시나 하고 비상 계단까지 가 봤어.
역시 아무도 없고, 인기척도 없었어..
누구 없냐고 소리쳐봤지만, 들려오는 것은 으시으시한 내 목소리
의 메아리 뿐이었지.
이번에도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으로 돌아왔어.
방안으로 들어가는데, 등뒤의 느낌이 이상했어.
꼭 누가 내 등뒤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그런 생각이 들자, 머리털이 쭈볏 서고 무서워지더라고.
확 돌아보았어.
아무도 안 보였어.
그런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 복도 끝에 누군가가 서 있던
것이 언뜻 보인것도 같았어. 하지만 다시 정신 차리고 보니 아무
도 없는 거야.
실내등에서 나오는 그림자를 착각했나봐.
괜히 찝찝함을 느끼며, 방에 들어와 문을 꼭 잠그고 책상위에 앉
았어. 똑같은 일이 두 번이나 발생하니 잠도 확 달아나고 일도 손
에 잡히지 않더라고.
잠이나 잘까 했지만, 잠도 안 올 것 같았어..
책상에 앉아 사방에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혹시 누구의 장
난이라면 다가오는 발소리라도 들리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러다 키보드가 눈에 띠었어.
아마 키보드 소리를 내가 노크하는 소리로 잘못 들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그런 생각이 드니 좀 안심이 되는 거야.
별 쓸데없는 착각을 했다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일을 하려고 컴
퓨터 앞에 다가 앉았어.
그런데 바로 그때 다시 '똑똑'하고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었어. 이번에는 키보드에 손도 올려놓지 않았을 때였단 말야.
그 노크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겁이 났
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서웠어.
그것도 많이 무섭더라고..
이번에는 문쪽으로 안 나가고 가만히 책상에 앉아 있었어.
솔직히 문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더라고..
무섭기도 하고..
죽음과 같은 적막이 잠시 흘렀어.
그 적막을 깬 것은 또 한번의 노크 소리였어.
너무 무서워서 나는 큰소리로 '도대체 누구야?'하고 소리쳤어. 하
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어.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기에, 책상밑에 있던 빈 맥주병을 거꾸로
쥐어들고 문으로 다가갔어.
천천히 다가가는데, 별 생각이 머리에 다 들더라고..
보안경에 눈을 갔다대서 복도를 내다봤어.
역시 아무도 없는 거야.
문앞에 서서 한참을 갈등하다가 문을 열어보기로 결심했어.
그런데 얼마나 겁이 났고 긴장했는지, 나도 모르게 병을 쥔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나서 맥주 병을 떨어뜨릴뻔 했어.
심호흡을 하고 문을 와락 열었어.
이번에도 아무도 없는 거야.
나는 겁이 나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문을 재빨리
닫아 버렸어. 그리고 문을 잠그고, 문에 등을 기대고 헉헉댔어.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어.
분명히 노크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내가 헛것을
들은 셈인 것이였어.
무너지듯 의자에 앉아 담배를 물었어.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데, 라이터를 든 손이 덜덜 떨려 불붙이기가
어려울 정도였어.
담배연기를 쭉 들이키며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려고 애썼어.
담배를 피면서 생각해보니 단지 내가 소리를 잘못 들은 것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어.
별것도 아닌 일에 겁내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어.
설사 짓굳은 어떤 사람의 장난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겁낼 이유는
없었어. 괜히 쓸데없는 생각하면서 지레질겁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도 편해지고 겁도 나지 않았어.
그 동안 무서워서 과민반응 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는 웃음까지
나왔어. 일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별 쓸데없는 헛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았어.
시간은 늦었지만, 이미 잠은 다 달아난 상태라 다시 일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다가앉았어.
시계를 보니 그 엉뚱한 해프닝에 어느새 30분을 낭비했었어.
빨리 한가지만 끝내놓고 잘 생각으로 그 일에 집중적으로 매달리
기 시작했어. 자꾸 문소리가 날까는 생각에 집중이 잘 되지는 않
았지만,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래서 일은 금방 진행되었어.
자리에 앉은지 한 20분쯤 되었을까..
이제 그 기괴한 노크소리도 안 들리고, 집중해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거야.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
처음에는 게의치 않고 모니터만 들여다 보았어.
하지만 그 느낌은 점점 강하게 느껴졌어.
정확히 말하면, 내 왼쪽 뒤, 그러니까 창문 쪽에서 누군가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왜 그런 느낌 있잖아?
누군가의 시선이 자기를 향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바로 그런 느낌이었어.
뭐야? 이 느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시선이 느껴지는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그 순간 나는 충격으로 얼어붙었어.
아니 충격이라기보다는 공포라는 편이 낳겠지..
창밖에는 머리를 늘어트린 한 여자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
는 거야!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 방은 9층에 있어.
그리고 발코니도 없는데 말야.
하지만 그 여자는 1미터도 안 되는 앞에 창을 사이에 두고 내 눈
앞에 분명히 있었어.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여자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
도로 섬뜩했어.
파리한 얼굴에 무표정하게 나를 헤집듯이 쳐다보는 그 눈빛..
그 여자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무슨 악령에 잡힌 것처럼 눈을 땔
수가 없었어.
그 여자가 사람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리털이 전부
서버리고, 온 몸이 소름이 끼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손가락 하나도 옴짝달싹할 수 없었어.
다음 순간 숨이 갑갑해지고 눈앞이 어두워졌어.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제일 마지막까지 보인 것은 그 여자의 기분
나쁜 시선이었어...
다음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창밖에서 쏟아져 오는 눈부신 햇빛
을 받으며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거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어루만지며 몸을 일으켰어.
전날 밤에 내가 경험했던 것이 꿈이었는지 진짜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 더구나 내가 하던 일이 좀 이상한 것이어서 더 알수
없는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작업하다가 쓰러져 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 섬뜩한 그 여자를 본 것인지 구분이 안가는 거야..
불편하게 밤을 보내서 그런지 머리가 좀 지끈거렸지만, 나가봐야
될 일이 있어서 오피스텔을 나왔어.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도, 전날 밤 있었던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
특히 그 섬?했던 여자의 시선은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거야.
그 여자의 파리했던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서리칠
정도였어.
그 일이 꿈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확신할 순 없었지만, 그날은 오피
스텔에 제정신으로 들어가기 싫었어.
그래서 선배를 만나 술을 마셨어. 그것도 많이..
늦게까지 마시게 되어, 밤 1시쯤 술이 좀 취한채 오피스텔로 행했
어. 술기운 때문인지 하루종일 나를 괴롭히던 그 여자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은 싹 가시고, 하찮은 꿈 때문에 벌벌떨던 내 모습이
오히려 하찮게 느껴졌어.
당당하게 내방으로 들어왔어.
전날 밤에 그 여자가 서 있던 창밖에는 물론 아무 것도 없었어.
술이 핑 돌아, 옷도 벗지도 않고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어.
술기운에 눕자마자 잠든 것 같아..
잠이 깬 것은 목이 말라서인지, 그 소리인지 기억이 잘 안나..
여하튼 눈을 떴을 때는 아직도 사방이 깜깜했어.
창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 때문에 희미하게 방안의 모습이 보
였지..
과음을 해서 그런지 목도 마르고 머리도 좀 아픈 것 같았어.
물을 마시려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어.
어디선가 아스라하게 흐느낌 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것 같았어.
옆방에서 나는 소리려니 했어. 하지만, 주위 방에 아무도 입주 안
했다는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거야.
처음에는 희미했는데, 점점 또렷히 들리는 거야.
들리면 들릴수록 그 소리는 소름끼칠 정도로 기분나빴어.
여자가 고통스럽게 우는 소리같기도 하고, 비명소리 같기도 하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갑자기 전날 밤 있었던 일도 생각나고
무서워 죽겠는 거야. 그 소리를 안 들으려고 벼개로 귀를 감쌓지
만, 파고들 듯이 소리는 계속되었어.
무서워 눈도 뜰 수 없었어.
눈을 뜨면 또 그 여자가 나를 뚫어지게 내려다 보는 것 같았어.
태어나서 그렇게 무서운 적은 아마 처음이었을 거야.
몇번을 뒤척이며 그 소리를 안 들으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어.
그 괴기한 소리에 무서워서 미칠 것 같더라.
그러더니 갑자기 그 소리가 딱 그치는 거야.
좀 이상했어.
나는 용기를 내어, 누운 채로 눈을 떴어.
불꺼진 방안에는 희미하게 가구와 책상들이 보였어.
다행히 걱정하던 그 여자의 모습은 안 보였어.
안심에 되어 한숨을 내쉬며, 물을 마시려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
어. 술 때문에 좀 비틀거리며 일어났어.
창문 반대쪽에 있는 냉장고로 걸어가, 물을 꺼냈어.
고개를 들어 물을 마시는데, 창문쪽에 뭔가가 보이는 거야.
나는 물을 마시던 채로, 겻눈질로 창문쪽을 바라보았어.
창문 쪽을 바라보는 순간 충격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
창밖에는 전날 밤 그 여자가 똑같은 모습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
다보고 있는 거야....




<계속>

...인석은 그 때 그 장면이 다시 생각이 나는지, 잠시 얘기를 멈추
고 몸서리를 치며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나는 그런 인석의 모
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겁에 질린 표정과, 불안이 가득해 보이는 인석이의 눈빛을 보니,
얘기했던 것이 사실은 아니라도 뭔가 끔찍한 일을 겪은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괄괄한 성격인 성준이는 대뜸 인석이의
얘기를 못 믿겠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야. 임마!
또 무슨 거짓말 하려고 하는 거야?
너, 벤처 기업인가 뭔가 하는 거 우리에게 비밀로 하는 것이 미
안해 이상한 얘기 꾸며 낸거 아냐?
그런 얘기 나도 수백번 들었다. 토요 미스테리나 이야기속으로
같은데서도 수십 번하고..
대충 그런 얘기지?
새로 이사간 집에서 귀신이 보이고,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 집에서 얽힌 얘기가 있더라...
너무 뻔해서 재미도 없다."

성준이의 놀리는 듯한 이런 말에 인석이는 묵묵히 맥주잔을 심상
치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담담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하긴 그래..
내가 생각해도 흔하디 흔한 괴담중에 하나야..
나도 그런 얘기 많이 들어왔고..
그런데, 이번에는 들은 얘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한 거야..
나도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너희들도 잘 생각해봐..
이제까지 들어왔던 그런 일들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에..
떠도는 얘기 중에 진짜였던 일도 있을 수 있잖아?
안 그래?"

인석이의 말에 나와 성준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예전에 접해왔던
그런 얘기들을 떠올렸다. 나도 어릴 적에 있었던 한 얘기가 생각
났다. 한동안 혼자서 잠을 못 이루게 했던...

"그래.. 나도 비슷한 얘기가 들은 것이 생각난다.
특히 창밖에 보인 여자라는 것에..
나 초등학교 때 얘기였어..
한 4학년때로 생각되는데.
우리동네 아파트에서 어떤 여자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어. 그것 때문에 애들 사이에는 별 얘기가 왔다갔
다하고 한동안 화제였지.
그런데, 우리 반에 어떤 아이가 그 자살 사건이후로 계속 결석하
는 거야. 남자 놈이었는데, 지금 기억에도 그 애는 같은 또래 애
들보다 힘도 쌔도 덩치도 커서 소위 우리반에서 싸움 제일 잘
하는 놈이였거든... 바로 그 놈이 그 자살 사건이 발생한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거야.
담임 선생님에게 물어봐도, 집안일이라고 대답해 줄뿐 더 이상
아무 얘기도 안해주는 거야. 하지만 선생님이 그 대답을 할 때,
뭔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던 것이 기억나.
그 애는 그 이후로 학교에 영영 나오지 않았어.
담임 선생님 말로는 집안 일로 전학 갔다는 거야.
그래도 한번쯤은 학교에 나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인사라도 하
고 가야 하는데, 아무 말 없이 도망가듯 전학 간 것이 어린 생각
에도 좀 이상했지만, 곧 잊혀졌어.
그 자식의 전학에 대한 진상을 들은 것은 한참 뒤, 그러니까 고
등학교 때 일이었을 거야.
기말 고사인가,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어. 영화보고 나오는데, 누가 극장 앞에서 아는 척을 하는
거야.
처음에는 못 알아봤는데, 바로 아무 말 없이 전학 갔던 그 친구
였어. 나는 같이간 친고도 있고 해서 그냥 인사만 하고 헤어지려
고 하는데, 그 자식이 나를 붙잡는 거야.
오랜만에 만났으니, 식사라도 같이 하자는 거야.
좀 황당한 제안이었지만, 그 놈이 그렇게 붙잡는데 거절하기 어
려워 친구들과 헤어져 그 자식을 따라갔어.
그 놈은 고등학생인데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술집으로 향했고,
나는 속으로는 좀 놀랐지만, 주눅이 들지 않으려고 태연하게 맥
주를 시켰어.
그 자식은 식사와 함께 소주를 시키더니 익숙한 듯이 마셔대는
거야. 속으로는 좀 놀랐어.
인석이 너처럼 몇잔을 들이켜더니 내게 자기의 전학에 얽힌 얘
기를 들려 주더라.
그날 그러니까, 그 여자가 자살하던 날 그 애는 정말 못 볼 것을
본 거야.
그 애는 그 여자가 몸을 던진 그 아파트에 살고 있었데..
7층인가 살고 있었는데, 그날도 자기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데. 그런데, 창밖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까,
창밖에는 한 여자가 언뜻 보이더래.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여자의 눈과 마주쳤다는 거야.
그리고는 그 여자는 창밖에서 사라졌대.
순식간의 일 이었지만, 그 여자의 눈빛은 너무 소름이 끼쳤다는
거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창밖에서 '퍽'하는 소리가
들렸대. 용기를 내어 밖을 내다 보았는데...
아파트 아래 화단에는 한 여자가 인형처럼 쳐박혀 있었다는
거야.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데..
하지만, 곧 그 충격적인 모든 사실을 알 수 있었다는 거야.
바로 그 애가 짧은 순간 창밖으로 본 그 여자는, 자살해서 떨
어지는 순간의 바로 그 여자였다는 거야.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너무 무서웠다는 거야.
너희들도 생각해 봐라. 가뜩이나 겁이 많을 때인 초등학교 4학년
이 그런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컷겠니?
그리고 그 사건이 충격적이어서 그랬는지, 그 여자의 기분 나쁜
눈빛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없더래.
마치 다음은 네 차례야 하고 말하는 것 같은 그 소름끼치는 듯
한 눈빛을..
그런데 섬뜩한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대.
그 자식 말로는 아직도 그것이 정말이었는지 자기도 잘 모르겠
지만, 여하튼 그 때 뭔가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났다는 거야
크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날 밤 잠을 자려 하는데 자꾸
그 여자의 눈빛이 떠올라 무섭더라는 거야.
혼자 자기가 너무 무서워, 형방으로 가서 같이 자려고 하는데 침
대에서 일어나기도 무서웠다는 거야. 형방까지 가는 동안 뭔가가
나타나 자기를 낚아챌 것 같이 무서웠다는 거야.
어렸을 때 다들 그런 경험 있잖아.
너무 무서워 화장실도 못 가는 것. 그 애도 그랬었나 봐.
그래서 잠도 못자고,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자꾸
이불 밖에 무언가가 있는 듯한 생각이 들더래.
무서워 죽을 것 같더래.
한참을 이불속에 있는데, 이불 밖에서 무언가가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이 계속 느껴지더래.
그러더니, 급기야는 '나를 봐.. 나를 봐..' 하는 소리마저 들렸다는
거야. 그 애는 결국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마음으로 이불을
들치고 조심스럽게 방안을 둘러 보았대.
아무 것도 안 보여서, 안심을 했데..
그런데, 인석이 너랑 똑같이, 그 애도 창밖에서 자기를 섬뜩한
눈으로 내려다 보는 그 여자를 봤다는 거야.
낮에 목격한 그 자살한 여자가 똑같은 시선으로..
그 애는 너무 무서워 비명을 지르고 기절했다는 거야.
그 후로 자기는 극심한 신경쇠약에 빠져, 어딜 가나 그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는 거야.
학교도 못 나가겠고, 남몰래 정신병원에 입원도 했었다는 거야.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컸었나 봐.
결국 그 집에서는 도저히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이사하기로 결
정하고 전학 갔다는 거야. 전학 가서도 그 후유증으로 공부도 제
대로 못하고 그러다가, 결국 학교 때려치고 극장에서 잡일 아르
바이트 하고 있다는 거야.
마지막에 그 애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그것도 광기어린 눈빛으로..
아직도 가끔 그 여자의 모습이 보인데..
그 기분나쁜 시선으로 자기를 쳐다보며..
그 얘기를 들고 나서, 기분이 묘하더라. 괜히 등골도 오싹해지고.
괜찮은 초등학생 한명이, 사실여부야 어떻든 순간적으로 목격한
괴기한 광경 때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아 그렇게 된 것이
참 찝찝했어.
그런 이상한 경험 때문에, 그 애는 친구가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그래도 자기의 제대로 된 모습을 알고 있었던 초등학교
동창인 나와 집요하게 얘기하고 싶었던 거고..
자주 만나자는 그 애의 말에 솔직히 난 좀 겁이 나고 꺼려졌어.
정말 어떤 애인지도 모르고, 정신병원까지 들락날락 거렸던 놈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그때 나로써는 좀 꺼려 졌거든.
건성으로 다음에 보자라고 대답하고 도망치듯 그 애와 헤어졌어.
그런데 헤어지면서 돌아본 그 애의 뒷모습이 얼마나 마음에 남
는지.. 축 처진 어깨에 고개 숙인 뒷 모습은 그 애가 얼마나 호
된 경험을 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어..
앞으로 안 만나게 될 것을 알았지만, 그 애 뒷모습을 보고 있으
려니 괜히 가슴이 아파오더라.
그 애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후야.
대학교 2학년 땐가, 그 자식이 아르바이트 하던 극장에 다시 가
게 되었어. 솔직히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애를 다시 만나기가
싫어 그 극장을 가는 것을 그 동안 피했거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만은 그 극장을 가고 싶어지더라고.
혹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했지만, 극장에서 그 애를 다시 볼
수는 없었어. 극장을 나서는데 웬지 모르게 그 애가 어떻게 되었
는지 궁금해 지는 거야.
망설이다가 극장으로 다시 들어가 늙으스레 보이는 극장 직원에
게 그 애에 대해 물어보았어. 몇 년전 일이어서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애 이름을 얘기하자 대뜸 아는거야.
그 직원 말에 의하면, 결국 그 애는 자기 운명을 못 벗어난 모양
이야.. 극장에서 숙직을 하다가 뭔가 무서운 것을 봐서 미친 것
처럼 소리를 지르고 발작을 하면서 극장을 태워버리려 했다는
거야. 그러다 경비원에게 잡혀 경찰서에 넘겨졌다가 정신병원에
입원되었다는 것이지.. 그 사고를 목격한 경비원에 말하면 그 애
가 어떤 여자를 본 것처럼 주절거렸다는 거야. 그 여자에 대해
욕도 해가면서..
극장 직원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그 자식이 더 불쌍하
게 느껴지고 가슴이 아련해 지더라.. 미안한 감정까지 느껴지고..
휴...
무슨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맞어!
인석이가 본 창밖의 여자 얘기하다가 왔지..
어때? 비슷한 얘기지? 이런 얘기는 정말 많다니까..
그러니까 인석이 너도, 그 오피스텔에서 자살한 사람있는지 찾아
봐라..."

나도 모르게 길어진 얘기를 끝마치고 살펴본 인석의 표정은 한층
어두워졌다. 자기가 경험한 일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성
준이의 얼굴에도 인석이를 놀려대던 장난기 어린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인석이는 묵묵히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고, 성준이는 뭔가
떠오른 듯이 아까와는 다른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얘기를 했다.

"일한이 얘기들으니, 나도 비슷한 얘기가 생각난다.
예전에 통신하다가 읽은 얘긴데.....
그 일이 사실인지 지어낸 얘긴지 알 수 없어.
하지만 그 얘기를 쓴 사람에 말에 의하면 진짜라는 거야.
나도 비슷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적도 있고..
어떤 사람이 새로 지은 집에 이사를 가게 되었데..
그런데, 밤 3시 정도만 되면 방안에서 희미한 음악소리가 들리더
래. 처음에는 인석이 너처럼 옆집에서 들리는 소리로 생각했지.
하지만 매일 밤마다 그 시간만 되면 그 음악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더욱이 이상한 것은 마루에서는 그 음악소리가 안 들리고,
그 방안에서만 그 음악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그 음악 소리가 더욱 기분나쁜 것은 여자들 요술 상자에서 나는
소리 같었다는 거야. 그런 음악 있잖아. 상자 뚜껑을 열면 은은
히 나는 음악소리..
며칠을 계속해서 그 음악소리가 들리는 잠도 안 오고, 미치겠다
거였어. 그러던 어느날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어떤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망치로 자기를 내려치는 모습이 보였대.
화들짝 놀라 깨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음악소리가 들렸다는
거야.
너무 이상해서, 그 음악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방
안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여서 어디서 나는지 도저히 알 수
가 없었다는 거야.
매일 밤 그 소리는 계속되고, 잘 때마다 그 건장한 남자가 나와
망치를 휘두르는 악몽을 꾸게 되었대. 그렇게 시달리는데, 언제
부터인가 집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대.
하수구가 막힌 냄새 또는 쓰레기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는
거야. 공사를 했던 사람들을 불러, 어떻게 된 거냐고 항의를 해
보았지만, 그 사람들도 그 냄새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대.
냄새는 점점 심해졌는데, 방안에 설치한 붙방이 장에 걸어둔 옷
마저 심하게 냄새가 베기 시작했다는 거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붙박이 장에 있는 옷들을 다 꺼내 다른 방
으로 옮기려고 했대. 그래서 붙방이 장에서 옷들을 꺼내는데, 붙
방이 장 안쪽, 그러니까 벽에 붙어 있는 쪽 벽지가 젖어있는 것
이 발견되었데. 그 젖은 벽에서 바로 심한 악취가 풍기고 있고..
천장에서 빗물이 새서 벽지가 썩어서 나는 냄새인줄 알았지만,
그 정도의 냄새가 아니었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썩는
냄새 였다는 거야.
더 이상 그냥 놨둘 수 없어, 그 젖은 벽을 뜯어냈대.
그런데, 거기서 발견된 것을 보고 모두들 충격을 받았대.
벽안에는 목이 잘려나간 썩은 시체가 있었던 거야.
누군가가 사람을 죽여놓고, 공사하던 그 벽에다 묻어버린 거야.
그 음악소리는 시체의 손목시계에서 울리던 알람이었고..
결국 경찰이 잡은 살인범은 그 집을 같이 공사하던 일꾼 이었대.
술 마시다가 싸움이 나서,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 방 공사
하는데 벽에다 묻어놨다는 거야.
그런데 그 방 주인은 범인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는 거야.
바로 자기 꿈에 나타나 망치를 휘두르던 그 남자가 살인범이였
다는 거였지..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시체가 차고 있던 시계는
이미 부서져 있어, 알람이 울릴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음악소리를 계속 내었다는 거야.
밤마다...
으시시하지..
나도 그 얘기 읽었을 때, 엄청 찝찝하더라...
인석이 너도 그 방에 혹시 그 여자 시체라도 있는지
찾아봐라..."

성준이의 얘기를 들으니, 어릴 때 무섭게 읽었던 에드가 알란 포
우의 검은 고양이가 생각났다. 하지만, 성준의 얘기 역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였다.
나는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가벼운 어조로 얘기를 꺼냈
다.

"야, 잘 찾아봐.
그런 귀신은 항상 이유 있게 나타난다니까..
그 오피스텔이 무슨 공동묘지를 밀고 건설한 것일지 모르잖아.
그래, 인석이 니 오피스텔 건너편에도 뭔가 공사하고 있잖아.
거기 혹시 공동묘지 있던거 아냐?"

성준이도 나를 거드는 듯이, 농담조로 얘기를 이엇다.

"아냐, 내 생각에는 그 방안에 뭔가가 깃들어 있는 것 같애.
원한의 유령 같은거..
좀 으시시한데..
인석아, 할 일 없으면 그 유령의 정체를 파악해 보는 것이
어때?"

인석이는 우리의 장난기 어린 말을 듣고, 맥주를 한잔 단숨에 들
이켰다. 그러더니 피식 웃더니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 주었다. 정
말 믿을 수 없는..

"다들 비슷한 생각하는구나..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어.
어쩌면 내가 시작하려는 사업과 관련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도 들고.. 아니,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여하튼 이 사람 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
던 것을 알아보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놀랄만할 사실을 알게 되었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계속>

..인석이는 믿을 수 없는 얘기를 계속했다.

"다음날 정신을 차려 보니, 침대 위였어.
전날 밤 본 것이 또 꿈인지 진짜였는지 헷갈리는 거야.
그래도 그 찜찜한 느낌은 지울 수 없더라고..
더욱이 그 여자의 그 무표정한 얼굴은 꿈이 아니고 사실처럼 뇌
리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생생하게 떠올랐어.
하지만 내가 귀신을 보았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었는지, 자꾸 악
몽을 꾼 것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켰어.
요즘 일 때문에 피곤하고, 하고 있는 일이 그런 쪽이니 이상한 꿈
을 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무섭긴 했지만, 부모님 반대를 무릎쓰고 간신히 독립한지 며칠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잖
아. 아무 일도 아니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그날도 일이 있어 밖에 나가게 되었어.
생각보다 일이 늦어져 오피스텔로 밤 12시정도에 돌아오게 되었
지. 밤에 돌아오게 되자,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그 여자
의 얼굴이 떠오르는 거야. 더구나 몇 개 불이 안 켜진 오피스텔
빌딩을 바라보니 더욱 으시시해지더라고...
남자가 꿈에서 본 것으로 떨고 있다는 것이 너무 한심하게 생각
되기도 했어.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오피스텔로 걸어 들어갔
어. 현관 앞에 있던 경비 아저씨는 TV를 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
오는 모습을 힐끗 쳐다봤어.
그런데, 갑자기 그 아저씨가 갑자기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 거야.
가뜩이나 긴장상태였던 나는 경비 아저씨의 이상할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 질문에, 경비 아저씨는 당황한 듯이 아무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잘못 봤다고 하는 거야.
더욱 이상해진 나는 도대체 뭐를 잘못 봤냐고 물었지.
그런데 그 아저씨는 어색한 변명을 늘어놓기만 했어.

'예.. 내가 졸다가 잠깐 헛것을 봤나봐요...
신경쓰지들 마시고 들어가세요...'

이상했지만, 별 수 없어 엘리베이터를 향했지.
엘리베이터는 짜증나게도 15층에 서 있었어.
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렸지.
어두침침한 복도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려니 괜히 누가 내
뒤에 서 있는 것 같고, 기분이 이상했어.
이윽고 엘리베이터는 도착했고, 나는 재빨리 올라탔어.
하지만 전기를 절약하려고, 닫힘 버튼을 막아놨기 때문에, 문이
닫힐 때 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어.
문이 닫힐 때까지 몇초동안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더라.
문이 닫히고, 나는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층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었어.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누르지도 않은 4층에서 멈추는 거야.
누가 타려니 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도 아무도 타지 않
는 거야. 문이 닫힐 때까지 몇초동안 어두컴컴한 복도를 보고 있
으려니 괜히 겁이 나는거야. 더구나 누가 타는 듯한 느낌까지 들
고.. 그럴 때 닫힘 버튼이 안 되는 것이 그렇게 답답하더라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실제 불과 몇초간이었
을꺼야..
하지만, 늦은 시간, 그것도 기괴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던 나에게
는 정말 무섭도록 길게 느껴졌어.
이윽고 문이 닫혔지, 좀 마음이 놓이더라..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데, 5층이라는 불빛이
깜빡거리기가 무섭게 '땡'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거야.
엘리베이터가 멈추자마자, 이상할 정도로 두려움이 느껴졌어.
설마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어.
아니나 다를까 역시 문 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어.
또 저절로 열린 것이었지.
열려진 엘리베이터 문을 통해 보여지는 어두운 복도의 모습이
왜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는지...
죽을 것 만 같았어.
필사적으로 닫힘 버튼을 눌렀지만, 문은 한참 있다 천천히 닫히는
거야..
엘리베이터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어.
다음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불길한 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솔직히 무서웠어.
너희들은 웃겠지만, 밤에 혼자 엘리베이터 타고 나같은 경험을 해
보면 그 웃음이 사라질걸...
엘리베이터는 나의 희망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다음 층인 6층에
서도 섰어. 나도 모르게 문 반대편으로 뒷걸음질쳤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는 멈추고, 죽음과 같은 적막이 잠
시 흐른 후, 문이 스스르 하고 열렸어.
숨이 들이켜 지고, 문이 열려지는 것을 노려보고 있었어.
제기랄!
역시 아무도 없는 거야.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어. 물론 그 어둠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박동수가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내 힘으로는 진정시킬 수 없
었어.
그냥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단으로 올라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
지만, 어두운 복도로 선뜻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 좀 망설이게 되
었어. 하지만 3층 정도야 뛰어가면 얼마 안 걸릴거 같아, 계단으
로 올라가가로 마음을 먹었어...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나를 내보내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처럼,
순식간에 문이 닫히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닌 우연이었지만, 그때만은 엄청 섬뜩하더라..
처음에는 엘리베이터 고장이나, 누군가의 장난으로 생각했어. 하
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때 마다 어둠속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은 견디기 어려웠어.
더구나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누군가가 올라타는 느낌도 들
고... 여하튼 무서웠어.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엘리베이터 안에 나말고 누가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 시작한 거야.
자꾸 누군가가 내 바로 뒤에 서 있는 것 같은 서늘함 기운마저
느껴지는 거야. 돌아 봤지만, 아무도 없었어.
벽에 등을 붙힌 채, 엘리베이터 안을 둘러 보았지만, 역시 아무것
도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누군가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었어.
7층에서도 역시 엘리베이터는 멈추었어.
이번에야말로 내려서 계단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이 열리기
가 무섭게 엘리베이터에 내렸어.
그런데 내려서 복도 저쪽 끝에 있는 계단을 보니, 휴...
전등이 나갔는지 완전히 암흑 그 자체였어.
아직 7층에는 입주자가 하나도 없는지, 복도에는 불빛 한 점 없는
거야..
단지 저쪽 끝에 비상구라고 쓰여 있는 파란불만 보일뿐, 바로 앞
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한 거야.
에라 모르겠다하고 가볼까 했지만, 역시 사람이 아무것도 안 보이
는 곳을 간다는 것은 극도의 공포심이 유발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더라...
도저히 그 어둠속으로 발을 때놓을 수가 없더군...
어쩔 수 없이, 그 기분 나쁜 엘리베이터로 다시 올라탔어.
엘리베이터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올라가지 않고 이었어.
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괴물이 자기 입안으로 들어온 먹이
를 삼키듯이 문이 닫혔어.
엘리베이터 안에는 분명히 나 혼자 였지만, 숨이 답답한 것이 마
치 사람들로 꽉찬 엘리베이터를 탄 기분이었어.
엘리베이터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고, 나는 거의 체념한 상태로
벽에 기대고 있었어.
역시 엘리베이터는 8층에도 섰어.
그때는 이미 진이 빠질대로 빠졌고, 두려움에 머리가 멍해져 있을
때였어. 그러니 문이 열리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
어.
문은 열렸다 역시 한참 있다가 닫히는 거야.
이제 다음에 내리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그래도 좀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어.
갑자기 닫히던 문이 다시 열리더니 엘리베이터에서 삐 소리가 나
는 거야.
나는 처음에 이게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어.
영문을 몰라 주위를 둘러보는데, 엘리베이터 계기판에 뭔가 빨간
글짜가 보이는 거야.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갔지만, 자세히 보니
바로 그것 때문에 소리가 나는 것 이였어.
소리나는 원인을 이해했지만, 처음에는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정
말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어.
그 글자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나는 충격으로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 소름이 쫙 끼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
그 게기판에는 바로, '정원초과'라는 글짜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었어.
혼자 탄 엘리베이터에 정원초과라는 거야!!!
너무 무서워서 주위를 둘러보았어. 분명히 아무도 안 보였지만,
내 느낌에는 뭔가가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엘리베이터에서 뛰쳐 나가려는데, 갑자기 문이 닫혔어.
정원초과라는 불빛에 켜진채 문이 닫힌 거야.
열림버튼을 누르고 문을 두들겼지만, 문은 닫힌 채 꼼짝도 안 했
어. 나는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엘리베이터는 아랑곳하지 않
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
아무도 안보였지만, 그때 나는 확신했어.
무언가가 분명히 이 엘리베이터에 있다는 것을...
공포에 짓눌려 그때는 아무 생각도 제대로 할 수 없었어.
단지 이 지옥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빨리 나가야된다는 것밖에.
무서워서 기절할 것 같아 엘리베이터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
도 없었어.
그냥 벽에 붙어, 이 안 어디선가 나를 노려보고 있을 무언가를 필
사적으로 찾아보는 것이 전부였어.
그런데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서는 것이었어.
층수를 보니, 9층이었어.
겨우 한 층을 올라왔는데, 한 십년은 걸린 것 같았어.
제발 문이 열리기를 바랬어.
다행히 엘리베이터 문은 열렸어.
나는 쓰러지듯 엘리베이터에서 튕겨 나가듯이, 뛰쳐 나왔어.
얼마나 급하게 뛰어나왔는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중심을 잃고 쓰
러졌지.
그 무서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니까 좀 살 것 같더라...
쓰러진 채로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돌아봤어.
엘리베이터를 돌아본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어.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맥이 풀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지.
분명히 아무도 없던 그 엘리베이터 안에는 그 여자가 보이는 거
야. 그 여자 뒤로는 형체가 뚜렸하진 않지만, 사람모양의 희미한
것들이 엘리베이터 안에 가득차 보였어.
문이 닫히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은 바로 그 여자였어.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두려
움을 느꼈고, 무서움으로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 같았어.
그리고는 복도에 넘어져 있는 채로 정신을 잃어갔어.
내가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닫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고, 기괴한 웃음을 짓던 그 여자의 얼굴 점점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어.....





<계속>

...성준은 인석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면서 인석
의 말을 막았다.

"너 이 자식,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하니?
그 정원초과 얘기 들어도 수백번 들었던 얘기다...
좀 지어내려면 잘 지어내지..
그걸 우리보고 믿으란 말야? 응?"

인석이는 성준의 추궁에 무슨 생각인지 아무 대답도 안하고 가만
히 있었다. 나도 인석의 말이 너무 뻔해 보여 한마디 거들었다.

"그 얘기 나도 여러번 들은 적 있다.
어떻게 된 것이 이번에 니가 들려주는 얘기는 다 뻔한 얘기냐?
새로 이사간 방에 나타나는 귀신이며, 한 밤중에 혼자탄 엘리베
이터가 정원초과를 울리는 것 하며..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너무 흔한 얘기 아니냐?"

우리의 미심적인 어조에 인석이는 맥주 한잔을 단숨에 들이키더
니, 갑자기 눈에 광기를 띠며 언성을 높였다.

"믿고 안 믿고는 너희들 자유야!
나도 알아!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이 얼마나 흔하고 뻔한 얘기인지!
그런데 어떡하니? 나는 정말 경험한 것인데....
너희들 잘 생각해봐..
그런 떠도는 무서운 얘기들이 다 지어내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누군가가 경험한 얘기가 퍼지고 퍼져 사람들이 흔
히 알게 되는 얘기가 될 수도 있잖아..
나도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
너희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지.
내가 생각해도 정말, 해도 해도 너무 뻔한 귀신 얘기를 경험하고
있는 거야. 마치 무슨 얘기 속의 주인공처럼 관습적인 귀신 얘기
를 경험해 나가고 있던 거야..
그래서 미칠 것 같았어...."

소리를 높이며 얘기를 시작했던 인석의 목소리는 얘기를 마치면
서 힘없이 작아졌다. 마치 뭔가를 체념한 사람의 모습처럼...
그런 인석이를 보고 있으려니, 딱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인석이가 하는 뻔한 얘기를 듣고있으려다 보니 약간 화가
치미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흔하디 흔한 얘기를
마치 자기 얘기처럼 떠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성준이도 같은 생각
이었는지 인석이를 더욱 몰아붙였다.

"야! 더 이상 쓸데없는 뻥치지 말고..
솔직히 얘기해봐! 뭐가 문제인지?
너 우리에게 비밀스런 벤처기업인가 뭐 하다가 사고 낸거
아냐? 그래서 맛이 갔는데, 우리가 자꾸 물어보니까 엉뚱한
귀신 얘기 지어낸 것이고..
그렇지?"
"하긴 그래 너 우리에게 아직 말 안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사
업을 시작한거야?
그것과 관련있는 일 아냐?
얘기 좀 해봐! 응?"

우리가 계속 떠들어대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인석은 담배를 하나
빼물며, 불을 붙였다. 고민 있는 사람처럼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다음 내쉰 인석은 천천히 입을 땠다.

"너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알아..
그래, 난 좀 이상한 일을 시작했어..
이렇게 된 것은 그것 때문일 거야.. 어쩌면...
어짜피 너희들은 믿지 않을테지만, 다 얘기해 줄게..
얘기하다보면 내가 어떤 일로 돈을 벌어볼까 했는지도
알 수 있을테니...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 꿈에도 상상 못했는데...
휴...
그날 그렇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나를 발견
한 것은, 다음날 아침 경비 아저씨에 의해서였어.
누가 나를 흔들어 깨었어.
눈을 떠보니, 이미 아침이 왔는지 환한 엘리베이터 앞 복도가 눈
에 들어오고 경비 아저씨의 걱정스런 얼굴이 보이는 거야.
한 동안 내가 왜 여기 있나 멍해있었지만, 곧 기억이 나는거야.
경비 아저씨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거야.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술을 많이 마셔 그냥 여기서 쓰러져
잤다고 얼버무리며 거짓말로 대답했어. 그런데 왠일이지 나의
대답에 경비아저씨가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
나는 몸에 먼지를 털며 자연스럽게 어젯밤에 혹시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지 않았냐고 물어보았어.
경비 아저씨 말로는 아무런 고장도 없었다는 거야.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어제 경험한 그 기괴한 일이 진짜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갑자기 그 창백한 여자의 얼굴이 떠오
르면서 오싹하고 소름이 쫙 끼치는 거야..
이상할 정도로 나를 유심히 살펴보던 경비 아저씨는 괜찮다며
방으로 향하는 나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했어.

'이봐요,
그런데 어젯밤에 같이 들어가던 그 아가씨는 어디갔소?
오늘 아침까지 나가는 것 본 적이 없는데...'

처음에는 그 아저씨가 무슨 소리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었어.
그런데 나의 멍한 표정을 보고 경비 아저씨가 한마디 덧붙이는
거야.

'왜 어젯밤 늦게 같이 엘리베이터에 올라 탔잖소?
그 얼굴이 기분 나쁠 정도로 창백했던 여자..
당신 뒤에 바로 붙어 있던데, 일행 아니었소?
나도 어젯밤에 그 여자 얼굴 보고, 깜짝 놀랐어요.
산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하얗다니...'

그제서야, 그 경비 아저씨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어. 전날 밤 그 경비 아저씨 눈에는 내가 그 여자와 같이 엘
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보였던 거야!
경비 아저씨 말대로라면 내가 경험한 것이 바로 사실이라는 거
야. 갑자기 몸이 덜덜 떨리며 무서워지는 거야.
나는 경비 아저씨의 걱정 스러운 말에 대답도 않고, 내 방을 뛰
어 들어갔어.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걸어잠그고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사건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
도대체 그 여자가 누구일까, 왜 내 주변에 나타나는 것일까, 그
여자가 귀신이라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이런 저런 생각이 얽힌 실타래처럼 머리속에 엉켜 있었지만, 어
느 하나 답을 찾아낼 수 없었어.
그러다가 그 소름끼치는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어.
역시 무서웠지.. 그런데 이번에는 떠오른 그 여자의 얼굴이 어디
서 본듯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명히 어디선가 본 얼굴로 생각되는 거야.
필시적으로 생각해 봤지.
하지만 어디서 봤으며, 누구였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거야.
왜 있잖아?
입에 맴돌며 나오지 않는 이름처럼, 알것도 같으면서 생각이 나
지 않는거야.. 이번에 무섭기보다는 답답해 죽겠더라.
단지 그 여자가 내게 인상적으로 기억되었다는 것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어.
한참을 고민했지만,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거야..
침대에 누워, 생각을 해봤어.
천장을 보니 그 여자가 나를 내려다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으시시했어. 사실 그 소름끼치는 얼굴을 필사적으로 떠올리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냐. 그리고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애쓰던 그 얼굴을 좀더 선명하게 떠올리려는 내
모습이 갑자기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어.
그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어.
꿈에서도 그 여자의 머리가 수십개나 내 주위를 맴돌다가 다가
가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어.
그러다가 그 여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으니 빠지직 터지더니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튀는 거야.
너무 끔찍한 모습이었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보니, 꿈이었어.
온 몸은 식은땀으로 완전히 젖어 있었어.
몇 시간이나 잤는지 밖은 벌써 깜깜해 졌어.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가 다 된거야.
어떻게 된건지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거의 12시간을 내쳐 잔
셈이야.
침대에 일어나니 주위가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였어.
방의 불을 켜고, 책상을 보니 밀린 일거리들이 보이는 거야.
일 좀 열심히 해보겠다고 집을 나왔지만, 여기 들어온 이후로 일
의 진행이 전혀 안되고 있는 것을 보니 내 자신이 한심해졌어.
하지만 내가 당한 일 때문인지, 그 일거리들을 보기도 싫어졌어.
e-mail에 예상보다 많은 주문이 와 있었지만, 그런 상태로는 아
무 것도 하기 싫었어. 특히 그런 일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먹었기 때문에, 배가 고팠어.
뭐 좀 먹으러 나갈 생각으로, 겉옷을 걸쳤어.
아예 이 길로 나가서 집으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무시무시한 경험을 한 이 방으로 다시 돌아오기가 싫어졌어.
그것도 밤에 그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것도 싫었어.
집으로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복도 저편에서 ?어
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리는 거야.
너무 처절한 비명 소리여서,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 졌어.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어.
하지만, 그 끔찍한 비명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지는 거야.
문을 열고 복도에 나와 봤어.
비명 소리는 복도 반대편 끝에서 들려 오는 거야.
무시무시한 고문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정말 고통스러운 남자의
비명 소리였어.
그 소리는 계속 이어졌어.
어두 침침한 복도 저편에서 울려퍼지는 끔찍한 비명소리는 정말
섬뜩했어.
아직도 우리 층에는 아무도 입주 안했는지, 아니면 그 비명 소리
를 못 들었는지 아무도 복도로 나오지 않았어.
비명 소리는 멈추지 않았어.
나는 어쩔 수 없어, 인터폰으로 경비 아저씨를 불렀어.
졸고 있던 것 같은 경비 아저씨는 내 얘기를 듣고 곧 올라가보
겠다고 했어. 그냥 앉아서 경비 아저씨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릴
까도 했지만, 계속되는 비명소리는 듣기에도 고통스러웠어.
나는 그 비명소리에 홀리듯이 복도로 나와 그 소리가 들리는 쪽
으로 향했어.
천천히 어두운 복도를 지나가는데,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
갈수록, 그 쥐어짜는 듯한 비명 소리는 나를 미치게 하는 것
같았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비명소리는 계속 울려퍼졌어.
복도는 마치 유령의 집의 복도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
었어. 어떻게 보면 비명소리와 그 괴기한 분위기는 그럴듯한 조
화였지. 그만큼 그 복도로 지나고 있던 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왔
고..
발걸음을 옮겨 양옆에 있는 방문들을 지날 때 마다, 누군가가 어
둠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아 무서웠어.
사방에서 무언가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어.
그냥 내 방으로 돌아가 경비 아저씨를 기다릴 까도 했지만, 비명
소리는 더 심해졌어.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그 비명소리가 들리는 방 앞으로 다
가갔어.
왠일 인지 그 방의 문은 잠겨 있지 않았어.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비명소리도 그 문틈을
타고 나와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어.
내가 방앞에 서자, 그 비명소리는 내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렸
다는 듯이 갑자기 뚝 멈추었어.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흘렀어.
문을 열까말까 망설이다가,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어.
그때였어.
적막을 깨고 단말마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방안에서 짧게 울려
퍼졌어. 그 비명 소리는 가뜩이나 겁을 집어먹고 있던 나를 깜짝
놀라게 했어.
그 짧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 후, 복도 전체는 아무일도 없었
다는 듯이 다시 침묵 속으로 잠겼어.
어느새 문고리를 향했던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어.
복도 저편 엘리베이터를 봤지만, 경비 아저씨는 아직 보이지 않
았어.
인간은 정말 호기심의 동물인지, 그렇게 무서운 상황에서 나는
그 문을 열었어. 내가 왜 그랬느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
문을 열자마자 나는 그 끔찍한 광경에 큰 충격을 받고 얼이 빠
졌어.
환한 방안에는 사방이 새빨간 피로 범벅이 되었어.
그리고 침대에 피투성이가 된 남자 한 명이 사지가 묶인 채로
누워 있었어.
나는 너무 충격적인 모습에 멍하니 그 침대로 다가갔어.
발 밑에는 끈적거리는 핏물이 밟혔지..
침대에 다가가서 그 남자의 시체를 내려다 봤을 때, 나는
진정한 공포를 느끼게 되었어.
사지가 묶인 그 시체의 마디란 마디는 다 잘려있던 거야.
누군가가 그 사람을 묶은채, 손가락, 발가락, 손목, 발목, 팔뚝,
어깨, 무릎, 다리 등을 차례로 다 잘라놓고, 그대로 붙여 놨던
거야....



<계속>

... 나는 그 끔직한 시체를 보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
사실 끔직한 사진 같은 것은 수 천장이 넘게 봐왔던 나였지만, 실
제로 그런 모습을 보니 너무 무섭더라..
사진들은 이런 실제의 시체 모습에 비하면, 정말 장난같아..
그런데... 그런데 말야..
그 끔찍한 광경이 이상하게 눈에 익더라고...
침대에 묶인채 토막나 있는 시체라...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었어..
그런 생각이 들자 더 겁이 나더구나..
그때 누군가가 방으로 뛰어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헉'하는 소리
가 들렸어. 돌아보니, 경비 아저씨가 흙빛이 된 얼굴로 서 있는
거야.
아저씨 역시 충격을 받은 듯 '이럴수가.. 이럴수가...'라는 말만 중
얼거리고 멍하니 서 있는 거야.
나는 아저씨에게 경찰에게 신고하자고 얘기했는데, 그 아저씨는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듯이 그냥 일그러진 얼굴로 서
있기만 하는거야.
내가 다가가서 팔을 잡고 흔들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는 거야.
생각해 보니, 경비 아저씨는 그 시체를 보고 이상할 정도로 놀랐
던 것 같아. 나중에 알고 보니, 월남전에도 참전한 적이 있던 상
사 출신이었다는 경비 아저씨인데 시체를 보고 그럴 정도로 놀랄
지도 몰랐어.
여하튼 우리는 방에서 나와 경찰에 신고했지.
경찰이 올때까지 우리는 경비실에 있었어.
그런데 그 경비 아저씨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담배를 피는데도
손을 덜덜 떨고 있는거야. 시체를 처음 발견한 나보다도 훨씬 무
서워하는 것 같다라고...
괜찮냐고 내가 물어보니까, 고개는 끄덕였지만 얼굴모습은 완전히
겁에 질린 모습이었어.
시체로 발견된 사람이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보자, 이상할 정도로
화를 버럭 내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거야.
그때는 좀 이상하더라.
화를 낸 것도 이상하고, 몇 안되는 입주자도 모르는 것도 좀 이상
해 보였고.. 너무 끔찍한 시체를 봐서 그러려니 하고 더 이상 경
비 아저씨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경찰 오기만을 기다렸어.
경찰을 기다리면서, 그 방에 참혹했던 장면을 생각해 봤어.
그 여자의 얼굴처럼, 왠지 눈에 익은 것 같은 거야...
이번에 좀더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거야.
내가 어디서 그 여자와 그 살인 장면을 봤는지가 대충 짐작이 가
기 시작했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쫙 끼치고
겁나기 시작하는 거야.
내 생각이 맞나 알아보기 위해, 내 방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경찰
이 들이닥쳤어.
어쩔 수 없이 나는 경찰들을 이끌고 시체가 있던 방으로 갔지.
그리고는 지겨울 정도로 계속 내가 봤던 일들을 말하고 또 말하
고 했어. 나중에는 그 끔직한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짜증이 다 나
더라...
더구나 경찰은 처음 발견한 나를 범인 취급하듯이 심문하는 거야.
나중에 알고보니 하긴 경찰도 나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
아. 나와 경비 아저씨 발자국을 제외하곤, 그 방을 드나든 사람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거야.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는 30대 초반의 컴퓨터 프로그
래머 였대.
경비 아저씨의 말로는 요즘 일거리가 없는지, 오피스텔에서 나가
는 일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거야.
내 진술을 듣던 형사의 말로는 그 남자를 살해한 살인범은 잔인
하게도, 피해자를 산채로 묶어놓고 사지를 잘랐다는 거야.
묶어놓은 줄에 남겨진 핏자국과 살점 등을 보면,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거야.
그 얘기를 들으니, 소름이 끼치더라고...
도대체 어떤 살인자이길래, 그런식으로 사람을 죽이는지...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자꾸만 신경쓰이는 일이 떠올랐어.
그 여자 귀신과 살해 현장이 눈에 익었던 이유가...
경찰의 조사는 대충 밤 2시가 넘어서야 끝났어.
나는 내 연락처를 남겨주고, 내 방으로 돌아왔어.
복도는 사건 관계자로 아직도 북적이고 있었어.
나는 방으로 돌아오자 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어.
그러다가, 내 자료들이 생각났어.
만약 경찰들이 나를 더 의심해, 내 방까지 수색한다면 문제 될 것
같은 자료들이....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불안해 지기 시작했어.
지금이라도 당장 경찰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내 방을 뒤질 것 같
았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 위에 앉았어.
그리고 모아놓은 자료들을 꺼냈어.
컴퓨터도 켰지...
자, 이제 너희들이 궁금해 하던 내가 시작한 사업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었구나...
솔직히 말하기 좀 이상한 일이었어.
쉽게 말하면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 중에 좀 희귀
한 것들을 대리 구매해 주거나, 그런 자료들을 보여주는 거야.
일종에 매니아 층을 겨냥한 것이지...
좀 이상하지?
그런 정도의 매니아들이 자기들이 직접 그런 자료를 구하지, 나
같은 놈을 통해서 구지 돈을 내면서 구입하는지...
답은 간단해..
대 놓고 구하기 좀 이상한 것들인지...
뭔지 알겠어?
너희들은 끽해야 포르노 싸이트나 포르노 테잎 정도를 생각하겠
지.. 그런 것은 절대 아냐...
어쩌면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과 모두들 감추고 싶어하
는 욕망을 자극한다 것에는 공통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얼마전에 통신 게시판에서 시체 사진 사이트니, 뭐 잔혹한 살해
장면의 사진을 볼 수 있다는 사이트들이 난리였어.
많은 사람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가졌어.
그것을 보고 난 이 사업을 생각했어.
바로 그런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시체 사진들이나 잔혹한 사진
들을 구해주는 거야.
보고 싶지만, 구할 수 없는 자료들이지.
사실 요즘 포르노나 야한 사진들은 누구든 쉽게 접할 수 있잖아.
하지만, 이런 잔혹 사진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그래서 그 만큼 그것을 보고 싶어하는 억눌려진 욕구들이 있지.
나는 그것을 충족 시켜주기로 결심한 거야.
별로 떳떳하지 못하지만, 잘만 되면 짧은 기간에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어.
시험삼아, 각 통신망의 공포물 게시판에 짧게 '시체 사진과 잔혹
사진을 봤는데, 너무 끔찍했다..' 정도의 감상을 올려놨지.
결과는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어.
그 사이트를 가르켜 달라기도 하고, 그 사진들을 보내 달라기도
하고 해서 한 200통이 넘는 메일을 받은거야.
그때부터 이 사업에 자신이 생겼어.
이 세상에는 진짜 별놈이 많아. 나야 돈벌려고 이런 짓 하지만,
그런 사진들을 좋아하는 놈들도 있다니..
하긴 그런 잔혹 사진을 찾는 대부분의 애들은 어린애들이야.
순수한 호기심으로 찾곤 하지.
하지만, 정말 매니아처럼 그런 사진 모으고,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
여하튼 공포 관련 IP를 하나 개설하고, 겉으로는 평범하게 이런
저런 공포물 게시판을 만들고, 매니아들만을 위한 회원제 게시판
을 하나 만들었지.
바로 그런 사진들을 구매할 수 있는 게시판이었지..
처음에는 뜸하더니, 입소문이 퍼졌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진
구입을 요청했어.
나는 그 만큼 양질의 사진들을 제공했어.
그런 것을 어디서 구했냐고?
뻔하지.. 인터넷.
한 일주일만 검색하고 다니면, 그런 것을 전문하는 싸이트, 그런
사진의 매니아 개인 홈 페이지, 그런 사람들과 메일 좀 교환하다
보면 무궁무진한 자료들을 구할 수 있어.
솔직히 외국에는 그런 것만 보면 환장하는 변태들이 많거든..
그네들을 좀 치켜세우면서 나도 공감하다는 듯한 메일을 쓰면 금
새 자랑하듯이 자기 수집 사진들을 보내주거든...
그러면 나는 그것을 엄선된 수요자들에게 공급하고..
이런 사업이 다 그렇듯이, 절대적으로 구매자의 신원을 보장해주
었어. 그래서 결재는 온라인 송금 위주로 했고, 그 이외의 개인
신상 정보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어.
물건 배달도, 원하는 방식으로 해 주었지.
파일 전송, 소포, 편지, 배달까지...
꽤 짭짤한 일 거리였어....
주문이 생각보다 많아져, 도저히 집에서는 일할 수 없겠더라고..
피범벅이 된 사진들을 집에 널여놓을 수도 없고..
그래서 집을 나와 오피스텔을 얻은 것이고..."

여기까지 듣던 성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인석의 말을
가로막고 쏘아 붙였다.

"야, 너 임마,
그거 불법 아냐?
내가 듣기에는 포르노 테잎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그러다가 걸리면 어떻하려고?"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니네 방에서 본 잡지들이 그런 자료들이었구나..
어쩐지..
여하튼 내 생각에도 좀 위험한 사업 같은데..
지금이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좀 알려지기 시작하면, 곧장 구속일걸...
안 그래도 요즘 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하는 불법 거래 때문에
난린데.."

인석이는 우리들의 걱정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했다.

"나도 알아..
그래서 이 장사 오래 할 생각은 아니였어.
한 서너달 해서 돈 좀 벌고, 다른 사업할 자금이나 마련할 생각
으로 시작한 거니까.."

나는 인석이 얘기를 듣고 있다가,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인석아...
너 혹시 스너프 같은 것도 취급하니?
그리고 그런게 정말 있기나 해?"

스너프란 말에 인석의 표정은 굳어졌다.
성준은 그 말을 처음 듣는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스너프란 것은 사실 그것을 다룬 영화들 때문에 대중들에게 알
려지기 시작한 거야.
실제로 사람을 폭행하고 죽이는 장면을 찍은 비디오 테잎인데,
비밀리에 고가로 거래가 된다는 거야..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스너프에 대한 영화는 <무언의
목격자>, <떼시스>, 최근의 <8mm>등등 꽤 되는 편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스너프가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실제로 스너프라는 것이 진짜로 있다면, 내 생각에는 인간의 야
만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그 스너프야.
쾌락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그 장면을 보고 즐기는.. 정말 인간
이 아닌 새끼들 얘기지.. 뭐..
여하튼 그래서, 인석이 너도 설마 스너프 필름같은 거 취급한 것
아니겠지? 엉?"

인석이는 나의 추궁하는 질문에 오히려 얼굴이 벌개지며 부인했
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내가 그런 개같은 물건을 취급할 사람같냐?
아무리 돈에 환장했다 하더라도 그런 것은 손도 안돼!"

스너프가 뭔지 감을 잡은 성준이는 인석이를 계속 몰아붙였다.

"야, 임마, 돈을 벌려면 좀 깨끗하게 벌어라.
그게 뭐냐?
이상한 사진이나 자료 팔아서..
내가 보기에는 청량리에서 뽀르노 파는 거랑 똑같이 보인다.
그리고, 니 말대로 니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전부 이상한 똘아이
라며?
그런 애들도 스머프인지 스너프인지 알거 아냐.
너한테 그런 것 부탁한적 없냐고?
있지? 그래서 너도 구해보려고 했고?
솔직히 말해봐!"

몰아부치는 듯한 성준의 얘기에 인석이는 머뭇거리고 대답을 제
대로 못했다. 우리들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인석이는 뭔가 두려운 생각이 떠오르는 듯이 갑자기 손을 덜덜
떨며 담배불을 붙이려고 했다. 내가 손을 뻣어 라이터를 켜주었
다. 라이터 불빛에 반사되는 인석이의 눈동자는 지옥을 들여다 본
사람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인석이는 담배 연기를 한숨을 쉬듯이 뿜어내고, 우리의 의문에 대
답을 해주었다.

"스너프라...
아마 악마가 인간에게 준 파멸의 선물일거야..
내가 경험한 모든 괴기한 일들이 이것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지..
그 참혹한 시체를 발견한 밤으로 돌아가자..
아까 얘기한 것처럼 내가 모아둔 자료나 사진들을 경찰들이 보
면 나를 의심할 것 같아 그것을 빨리 치울 생각을 했지..
그런데, 인터넷에서 캡춰해 프린터해 놓은 사진을 정리하다가
뭔가 불길할 정도로 나의 시선을 끄는 사진을 발견했어.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몇 주전에 내게 이상한 주문을 하던 어떤
미친놈이 생각났어.
정말 생각지도 못한 괴상한 주문이었지...."




<계속>

...인석은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나는 인석의 장황한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하는지 확신을 할 수 없
었지만, 잠자코 그 자식의 얘기를 끝까지 듣기로 생각했다.

"그 사람이 이상한 주문이 떠오른 것은 바로 그날 밤
사진 자료를 챙기던 도중이었어.
그때는 정말 당장이라도 경찰이 들이닥칠 것만 같았어.
생각해 봐라.
그런 끔찍한 살인이 일어났고, 그것을 혼자서 목격한 사람이 있다
면, 첫 번째로 그 목격자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거 아냐.
거기다가 그 목격자의 방에서 잔인한 시체 사진들이 발견된다면..
잘못하면 변명의 여지도 없이 살인범으로 몰릴 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애써 모은 그 사진과 자료들을 그냥 없애버릴 수는 없
었어.
어떻게든 숨겨야 했어.
우선 그것들을 챙기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 많은 사진들 가운데, 갑자기 눈에 띠는 것이 있었어.
이런 말, 너희들에게 하면 나를 더 이상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
지만...
그 사진에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한 시체의 모습이 담겨있었어.
수 많은 사진 중에 그 사진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바로 그 사진
속 모습과 그날 밤 살해당한 채로 발견된 남자의 시체의 모습이
똑같았다는 거야.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똑같았어.
피 범벅이 된 침대에서 묶여진 채로 사지가 절단되어 있는 모습
이란..
사실 처음 그 사진을 봤을 때는, 또 하나의 기막한 분장 기술의
승리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말하면 나를 나쁜 놈으로 생각하겠지
만, 나는 스스로 내가 모으고 취급하는 사진들은 전부 진짜 시체
들의 사진이 아닌 그저 공포영화처럼 분장으로 꾸며낸 조작 사진
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 사진들이 모두 조작이 아닐 수도 있지만, 스스로 편하게 생각
하기 위해 전부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취급한거야.
게중에는 끔찍한 사고로 죽은 시체들의 사진도 있었지만, 그런 것
들은 잔인할 뿐 아무 문제도 없는 사진들이잖아..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살해당한 형태의 사진들이 전부 진짜라면 문
제는 장난이 아니잖아. 그래서 나는 그런 사진들의 사실 여부는
별로 생각도 않고 단지 매니아들의 조작 사진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어. 실제로 대부분이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는 조잡한 조
작 사진들이었고...
그런데, 그 사건을 목격한 후, 그 사진을 보니 조작 같지가 않고
진짜 같은 거야.. 그것을 깨닫는 순간 소름이 머리 끝까지 끼치고
겁이 나기 시작했어.
자세히 그 사진을 살펴봤어.
사지가 잘려나간 부분하며, 묶여있는 형태하며.. 모든 것이 내가
목격한 그 시체와 동일한 거야.
단지 다른 것은 사진 속의 시체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짓이겨져 있다는 거야.
피범벅이 되어 있지만, 시체의 가는 팔목을 보면 여자인 것 같기
도 하고 큰 키로 봐서는 남자처럼 보이기도 했어.
이리 저리 살펴봐도, 우연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똑같았어.
그 사진을 어디서 구했는지 알기 위해, 장부처럼 사진들을 기록해
놓은 엑셀 파일을 뒤졌어.
기록해 놓은 사진 번호로 찾아보니, 거기에는 내가 입력한 기록이
나왔어. 그 기록을 보니 그 이상한 주문이 기억나는 거야..
휴...
그 이상한 주문은 KillYou라는 재수 없는 Mail ID로 온 것이었어.
그런데 그 주문이 이상했던 것은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사진을
무료로 제공할테니, 그 사진들 보다 더 자극적이고 잔인한 사진을
구하면 보내달라는 거야. 소위 말하면 물물 교환 요청이지..
가끔 변태들이 그런 교환 요청을 하기도 하거든..
메일이 영어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니, 우리나라 사람 같았어.
사실 이런 사진들을 모으는 사람들은 전세계에 곳곳에 퍼져 있더
라. 그런 놈들을 인터넷이라는 혁명적인 도구를 통해 묶어놓은 것
이지... 특이한 것은 안 그럴 것 같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사
진들에 은근히 관심이 많더라. 아니,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진
들을 모우고 있는 것 같아..
그건 그렇고.. 그 주문이 좀 괴기했던 것은, 돈을 줄테니 자기가
보낸 사진을 홈 페이지에 공개하고, 모든 회원들에게 보내달라고
하는거야.
좀 황당하더라고..
그런 사진을 모으는 사람들이 좀 특이한 것은 알았지만, 돈까지
주면서 자기가 제공하는 사진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은
마치 노출증 환자의 부탁을 받는 기분이였어.
대개의 고객들은 모든 거래를 비밀리에 하고 싶어했거든...
가끔 자기의 수집물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런 식
으로 노골적으로 자기의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거든..
나는 호기심을 느끼며 KillYou라는 사람이 보내온 사진을 봤어.
그렇게 많이 사진을 봐온 나도, 그 사진을 처음 볼때는 등골이 오
싹할 정도로 끔찍했어.
사람을 처참히 난도질한 사진이었지.
엄청난 사진들이었지만, 그때는 분장술이나 사진의 조작으로 생각
하고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단지 돈을 준다고 했으니, 약속대로 홈페이지에 올리고 회원들에
게 서비스라며 사진을 담아 메일을 보냈어.
그리고 KillYou라는 사람에게는 수수료 입금을 확인한 후, 가지고
있던 사진 중에 세로누 달로치라는 그 업계에서 좀 유명한 놈의
사진 하나를 보내 주었어.
분장술인지 진짜인지 모르지만, 달로치의 사진들은 정말 끝내주게
실감나고 잔인했어. 지금까지도 잔혹사진의 전설로 남아 있는 사
람이지...
90년대 초까지 활약했던 이탈리아의 잔혹 사진사라는데, 그 사람
의 얼굴을 본 사람은 거의 없데. 달로치는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
는 방법에 통달한 사람처럼, 그의 사진에는 매번 새롭고 기상천외
하고 말도 못할 정도로 끔찍한 살인 장면이 담겨 있다는 거야.
아직도 그의 사진이 진짜였는지, 분장술이나 사진 조작이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다는 거야.
인터넷이나 복제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달로치
의 사진이 한 장당 몇 백불까지 하기도 했데.
나도 몇 장 그 사람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이야 컴퓨터
를 이용한 사진 복사야 누워서 떡먹기는 그 중에 쓸만한 것 하나
를 보내 주었지..
그리고는 KillYou의 주문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어.
그런데, 며칠 후 그 KillYou에게 메일이 왔어.
추가 주문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그 메일을 열어봤
어.
정중한 어조였지.. 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어.

<운영자님께,
보내주신 달로치의 사진은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매우 실망을 하게 되는군요.
제 작품을 달로치의 사진정도로 생각하시다니..
아니면 그쪽 수준이 달로치 정도 밖에 안 되는지..
적어도 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피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작품을 한물간 3류 사진사의 조악한 사진과
교환하다니...
이번에 보내드리는 작품은 제발 그런 식으로 처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번에도 지난번 작품처럼 똑같이 처리해 주십시오.
그리고 수준 높은 작품으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보수는 지난번과 같은 금액으로 드리겠습니다.
저를 실망시키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

어떻게 보면 정중한 말투의 메일 같았지만, 은근히 협박하는 것
같은 내용이었어. 달로치의 사진을 알아보고, 무시하는 것을 보니
그쪽으로는 광적으로 관심이 많은 사람같았어.
그리고 재미있던 것은 자기가 보내오는 사진들을 '작품'이라고 부
른다는 것이었어.
한낱 잔혹 사진에 지나지 않는 것들을 작품이라고 부르다니...
그걸 보고 약간 맛이 간 놈이라는 생각이 드니, 약간 무서워지기
까지 하더라.
하지만 별 하는 일없이, 보내온 사진만 회원들에게 발송하고 홈페
이지에 올리는 것으로 짭짤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이니 당연
히 그렇게 했지.
그때 보내온 사진도 만만치 않게 잔인했어.
첫 번째 사진과 비슷한 희생자로 보이는 사람이 역시 얼굴을 가
린채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두 팔과 한다리가 잘려나간 채
로 피를 뿜으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지.
너무 실감나서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구토를 할 것
같았어. 도무지 사진 조작 같지가 않았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잔혹한 사진을 보는 것은 두렵고 고통스
러웠지만, 자꾸 보게 되는 거야. 눈에 아른거리고.. 마치 롤러코스
트가 무섭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타게되는 것처럼...
이렇게 잔인한 사진을 요구대로 공개할까 한참을 고민했어.
하지만, 설마 라는 실제 장면을 찍은 사진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
으로 그 사진을 개재하고 회원들에게 보냈지.
그 사진을 보내고 난 후, KillYou라는 놈에게 마땅히 보내줄 사진
이 없는 거야. 언뜻 보기에도 엄청난 변태같은 놈에게 이번에도
섣불리 사진을 보낼 순 없었어.
고민 끝에 사진 하나를 골랐지.
사실 그 사진을 보낸다는 것은 좀 위험한 일이었어.
그 사진은 정말로 살인장면을 찍은 사진이거든..
내가 취급했던 사진들의 진위여부는 솔직히 상관하지 않았어.
전부 사진조작으로 생각하고 거래를 주선했지.
모르는 것이 면죄부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진들을 전부 조작된 그
림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이 사진만은 내 스스로 실제 살인 장면을 찍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었어. 신문기자가 살해된 시체를 기사용으로
찍은 것이 아니라 살인자가 피해자를 죽이면서 찍은 것이야.
미친놈이 만든 정말 미친 사진이지...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사진 속의 피해자가 바로 달로치야.
그 KillYou에게 보내 주었던 사진을 찍은 그 장본인이 이번에는
시체가 되어 사진에 찍혀있는 것이지.. 더구나 실제로 살해된 상
태로...
달로치의 사진에 감동을 받은 어떤 미친놈에 의해, 자기의 사진처
럼 잔혹하게 ?겨 죽였다는 거야.
그렇게 끔찍한 죽음을 당한 달로치를 간직하고 싶어하던 그 미친
놈에 의해 카메라에 담겨졌다는 거야. 정말 시체 사진이 된 것이
지..
그 사진은 쾌락을 목적으로 살해 장면을 찍은 스너프 종류라 할
수 있는 거야.
나는 그 사진을 보내주기로 했어. 그 정도 사진이면 그 변태놈도
만족하리라 믿었지.
돈은 많은 놈인지, 돈은 즉시 입금했어.
좀 망설였지만, 그 KillYou라는 놈의 비위를 맞추어 주면 돈이 좀
나올 것 같아 그 사진을 보냈어.
그런데 각 회원들에게 두 번째 사진을 보내고 얼마 후에 많은 메
일들이 오기 시작했어.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 메일들을 읽어보
기 시작했어.
수십통의 메일은 하나같이 이번에 보내 준 사진에 대한 극찬을
하고 있어.
정말 훌륭하고, 예술이며, 짜릿하고, 자극적이며, 흥분되는 사진이
라는 거야. 그런 메일들을 받아보니, 어안이 벙벙해 졌어.
아무리 잔인한 사진들을 보내주어도 일찍이 이런 반응은 없었거
든.. 그런데 이번에는 황당할 정도로 열렬한 반응이 나온 거야.
너무 이상한 기분이 들어, 나도 그 사진을 다시 한번 자세히 보게
되었지..
아까 얘기했던 것 처럼, 그 사진을 보자 마자 느끼는 감정은 극도
의 혐오감과 공포심, 그리고 구토였어.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상
할 정도로 그 사진에 끌리는 것이 느껴졌어.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어.
그 끔찍한 사진이 마치 어떤 신비한 마력을 가진 것처럼 보는 이
를 끌어드리는 거야..
참 기괴한 느낌이었어.
한 동안 그 사진에서 눈을 땔 수 없었어. 사진을 꼼꼼히 보는 것
도 아니고 멍하는 바라보는 것 같은 상태에서...
뭔가에 홀린 것 같았지..
그러다가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정신
을 차릴 수 있었어.
새로 도착한 메일은 바로 그 KillYou라는 놈에게서부터 온 것이
었어.
그 메일이 도착한 것을 보자,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어.
두려움과 기대감, 또 호기심이 뒤섞인 듯한 괴상한 느낌이었지.
나도 모르게 그 메일을 열어보려고 움직이는 마우스를 쥔 손이
떨려왔어.
KillYou가 보내온 메일의 제목은 다름아닌 'Not yet....' 이었어.
그 메일을 여는 순간, 나는 이유모를 무서움이 느껴졌어.....




<계속>

..떨리는 손으로 KillYou에게서 온 메일을 열어보았어.
거기에는 사진 파일이 하나 첨부되어 있었고, 예의 그 정중하지만
섬?한 어조의 글이 있었어.

<운영자님께..
이번에 보내 주신 사진은 지난번 것보다는 좀 나아졌네요.
사진에 생명감이 있고, 약간 실감도 나는 것 같고..
하지만 아직 제 사진보다는 한참 떨어지네요...
이번에 보내는 사진을 참고하시고, 더 괜찮은 사진이 있으면
보내 주세요.
그런 작품이 없다면... 실망이 크겠네요..
하나 정도 직접 제작해서 보내 주시는 것도 괜찮겠네요.
감상의 즐거움보다는 한번 창작의 쾌감을 직접 느껴보시죠.
어렵게 탄생한 예술은 그 만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기대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똑같은 조건으로 대금은 지불하겠습니다.
저를 감탄시키는 작품을 보내주신다면, 돈은 10배를 지불하겠습
니다.
잊지 마세요.
항상 제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KillYou >

언뜻 읽어보면 예술을 사랑하는 무슨 화가나 사진 작가의 편지
같았지만, 그 내용을 한번 생각해보면 섬뜩했어.
더군다나 항상 지켜보고 있다니...
마치 나보고 잔혹한 사진을 만들어 자기의 천박한 욕구를 충족시
켜 달라는 것 같았어. 아무리 이런 사진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실
제 사람을 죽이고 찍은 사진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다니....
점점 내가 상대하고 있는 놈이 정말 미친 놈 같다는 생각이 들었
어..
하지만 그 놈이 보내온 사진이 궁금한 것은 참을 수 없었어.
그 놈의 메일을 통제로 지우려고 했지만, 악마의 속삭임같이 달콤
이 나를 유혹하는 호기심에 넘어갔어.
그 사진 파일을 열어보았어.
그 사진이 바로 그 남자의 살해장면과 똑같은 사진이었던 거야.
그 때는 또 하나의 잔인한 사진이라고 생각했어.
처음 봤을때는 너무 잔인한 시체의 장면이라, 이번에는 조작이 확
실하다고 생각했어.
생각해봐라. 사람을 침대에 묶어놓고, 마디마디를 잘라놓은 모습
이... 피 범벅이 되 상태로..
여하튼 그 사진은 그 참혹성 때문에 조작으로 치부하고 싶었어.
그리고 더 이상 그 놈이 바라는 대로 해주지 않기로 했어.
원래 조건은 그 사진 역시 회원들에게도 보내고, 홈페이지에 등록
해야 돈을 받기로 했지만.. 휴.. 사람들의 광적인 반응이 두려워져
서 공개하지는 않았어.
그렇다고 그 사진을 지우지는 않았어.
몇번을 그 KillYou가 보내온 사진들을 지우려 했지만, 그 때마다
이상하게 지우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리고 자꾸 보게
되더라고..
그거 있잖아?
밤에 혼자서 공포영화 볼 때, 무서워서 눈을 가리면서도 자꾸 무
서운 화면으로 시선이 가는 것처럼...
하지만 이미 올려놓은 사진들도 삭제해 버렸어.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의 메일은 정말 빗발치듯 왔어.
다시 보여달라, 다음 사진을 보여달라, 그 사진 사겠다, 어떤 천재
의 작품이냐.... 등등..
사람들의 반응이 더 크면 커질수록 그 사진과 KillYou에 대한 두
려움이 커졌지. 자꾸 잊으려고 했어.
내가 약속을 이행 안 해서 그런지, KillYou로 부터는 대금 지불도
안되었지..
그러던 어느날, 그 KillYou로부터 메일이 왔어.
그 메일을 읽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어.
경고성 메일이었지. 솔직히 겁이 나더라...

<운영자 님께...
고객을 그런 식으로 무시하시다니.....
같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대해선 안 되죠..
제가 부탁한 것을 안 하시겠다면,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무지와 소심함에 대한 경멸뿐입니다.
한번의 기회를 더 드리죠.
내일까지 제 부탁을 무시한다면, 그 대가를 치뤄야 할
것입니다.
제 ID를 잊지 마세요..
KillYou>

그 메일을 받아보니, 그 KillYou라는 놈은 완전히 또라이 같더라.
그 정도로 그런 사진에 집착하고, 자기 사진을 과시하고 싶어하다
니... 글짜 그대로 무시무시한 싸이코가 연상되는 거야..
하지만, 설마 그 놈이 직접 나를 찾아와 해꼬지 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그 협박 메일을 무시하기로 했어.
솔직히 그 놈에 대해 잊어버리고 싶었지..
그러던 중에, 그 날 밤 놈이 보낸 사진이 눈이 띤 것이야.
나는 파일로 보내온 사진들을 다시 고해상도의 프린트로 인쇄해
서 보관하고 있거든..
그 인쇄된 사진을 보면 볼수록, 내가 목격했던 살해 장면과 너무
똑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어.
시체의 잘려진 부위, 묶여진 매듭 형태, 시체의 눕혀진 자세.. 마
치 그 시체를 찍은 사진 같았어. 아니, 오히려 어떤 미친놈이 그
사진을 보고 똑같이 살인을 저지른 것 같았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끔찍하고 괴기한 일이잖아.
그래서 나는 경찰의 있을지도 모르는 수색을 피해 그 사진을 없
애버리던 중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뚫어지게 그 사진을 살펴보
았어.
사진과 내가 발견했던 시체와 다른 점이 보였어.
바로 시체의 크기였지.
내가 저쪽 방에서 발견한 남자의 시체는 침대를 가득 채울만한
거구였거든. 그런데 사진 속의 시체는 침대의 반도 차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그마한 체구였어.
사진속의 침대가 작을 수도 있었지만, 확실히 사진 속의 시체가
더 작았어.
그리고 또 다른 점은....
둘 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어 분명치는 않았지만, 사진안의
시체는 여자 같았어.
몸의 굴곡이라든지, 길어보이는 머리카락등을 보았을 때...
하지만 얼굴은 이런 사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사진으로는 보이
지 않았어. 스너프라고 알려진 그 처참한 사진들은 피해자의 공포
에 질린 표정들이 적나라하게 나온다고 하지만, 이 사진에는 우연
인지, 사진을 찍은 미친놈의 연출 때문인지, 시체의 얼굴이 카메
라 반대쪽으로 돌아가 있었어.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사진속의 시체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
어. 하지만, 뭔가 의문을 풀어줄 단서가 이 사진 안에 들어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어. 전혀 근거는 없는 예감이었지만, 웬일인
지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어.
컴퓨터에 들어있는 그 사진 파일을 찾아내서, 확대해 봐야 좀 뭔
가가 발견될 것 같았어.
모니터에 나타난 사진을 우선 10배로 확대해서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어. 확대해 보니 그 시뻘건 시체의 피로 21인치 모니터 가
득히 보이는 거야.
처음에는 그 화면을 보고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끔찍하고 잔인했
어. 사진을 찍은 놈이 보통 카메라로 찍어 스케닝한 것인지 확대
를 하니 사진의 선명도가 현격히 떨어졌어.
하지만, 뭔가를 알아냐야 겠다는 생각에 모니터에 보이는 사진을
?듯이 살펴갔어.
얼마나 피 범벅이 되었는지, 그렇게 확대를 해 놨는데도 맨 살이
그대로 보이는 부위는 하나도 눈에 띠지 않았어. 그래도 혹시 이
사진을 찍은 놈이나, 사진 속의 시체의 신원이라도 알아낼 수 있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역겨움을 참으며 확대된 사진을 살펴봤
어. 피 때문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그 시체가 여
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어.
피 범벅이 되었지만, 가느다란 목덜미며 긴 머리칼이며 남자보다
는 여자인 것이 확실했어. 보다 확신할 수 있었던 근거는 그 시체
의 잘려나간 손가락들에 여러 개의 반지가 껴 있는 것이었어.
하지만, 잘려나간 머리가 카메라 반대쪽으로 돌아간 상태로 찍혔
기 때문에 사진 상으로 시체의 얼굴을 알아볼 방법은 없었어.
한참을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뭔가 이 모든 괴상한 일들의 답이
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낼 방법을 생각했어.
내 주변에 나타나던 그 무표정한 여자의 유령, 가끔식 들려오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음, 끔찍한 사진을 보내오던 KillYou, 그 놈
이 보내온 사진과 똑같은 모습으로 잔인하게 잘려진 채로 발견된
저쪽 방의 시체....
이 모든 사실이 뭔가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전혀
그 고리를 찾을 수 없는 거야.
경찰의 의심을 피해, 이런 사진들을 없애야 한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그 괴기한 일에 대해 생각했어.
그런데, 그 때 등뒤로 싸늘하게 쏟아지는 듯한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졌어. 갑자기 온 몸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치더니, 뒤를
돌아보기가 두려워졌어.
시뻘건 피 색으로 가득 찬 모니터에 내 등뒤로 뭔가가 희끗하고
비치는 것이 보였어, 등뒤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끝
이 쭈뼛하게 뻗치는 것이 느껴졌어.
하지만, 아무리 두려워도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어.
그 기분 나쁜 시선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서,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어.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어.
뒤를 돌아보자마자, 무서움으로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
등 뒤에는 그 여자가 쾡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서있는 거야.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를 뒤집어 쓴 모습이었어.
그 얼굴은...
휴... 너무 무서웠어...
공포에 질려 솔직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
다음 순간 그 여자가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거야.
정말 귀신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스스륵 내게 오는 거야. 아주
천천히...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어.
그런데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어.
정말 미치겠더라...
점점 더 가까이 왔지만, 나는 그 끔찍한 얼굴에서 시선을 땔 수가
없었어.
본능적으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어.

'안돼!!! 제발!!! 아아악!!!'

하지만, 그 여자는 더욱더 가까이 다가왔어.
피비린내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이 내 눈앞으로 바짝 다가오는 순
간, 갑자기 사방이 깜깜해졌어.
그리고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어.
갑자기 암흑 속에서 '쾅쾅' 소리가 들렸어.
눈을 간신히 뜨니, 스크린 세이버가 작동 되 있는 모니터 앞에서
엎드려 있었어.
몸을 일으켜 주변을 확 돌아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
분명히 두 눈 똑똑히 본 그 여자 귀신의 모습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어. 시계를 보니, 한 5분 정도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어.
그 여자의 끔찍한 모습이 생각나자,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
리고 소름이 쫙 끼쳤어. 생각하기도 싫고 무서워서 진저리가 쳐졌
어.
나를 깨웠던 '쾅쾅'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어. 누군가가 다급하게
오피스텔 문을 두들기는 소리였어.
이 깊은 밤에 누군가 하는 생각에 문을 향했어.
비틀거리며 문을 향해 걸어갔어.
보안경으로 문밖을 내다보자, 내 심장 박동 소리가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어.
문밖에는 형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험악한 표정을 한 채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거야. 고개를 책상쪽으로 돌리자. 모니터와 책상에
그 살인현장과 똑같은 모습의 사진들이 널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띠었어.
문밖에 있던 남자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표정과 함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문 열쇠구멍에 집어넣는 거야.
그 순간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계속>

..생각해봐라.
만약 그 사람이 경찰이었다면, 짤 없이 나는 살인 용의자로 몰릴
편이었어. 시체를 제일 먼저 발견한 것도 나였고, 수 많은 잔혹사
진들을 가지고 있고, 더구나 살인 현장과 똑같은 모습의 사진을
가지고 있으니.. 정확한 물증은 없어도, 이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
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을 거 아니냐.
생각할 것도 없이, 책상으로 달려가 펼쳐져 있던 사진들을 대충
서랍에 집어넣고 컴퓨터를 꺼버렸어.
문쪽에서는 열쇠를 집어넣는 소리가 계속 들리더라.
나는 그때서야, 대충 정리된 것을 확인하고 '누구세요?'하며 방문
을 열었어.
갑자기 문을 열자, 당황한 듯한 표정의 남자가 열쇠비슷한 것을
들고 문앞에 서 있었어.
나는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
그 사람은 옷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며, 이번 살인 사건
을 담당한 형사라는 거야.
몇가지 더 질문할 것이 있어, 찾아왔다는 거야.
문을 강제로 열려고 했었던 것이 좀 이상했지만, 그 사람 말로는
내가 분명히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어
이상해서 열려고 했다는 거야.
잠깐 들어와서 얘기해도 되냐고 하더라.
안된다고 했지만, 그러면 더욱 의심을 받을 것 같아 들어오라고
했어.
형사는 내 방을 의미 심장한 눈초리로 둘러보며, 다짜고짜 질문들
을 해댔어.
엘리베이터에서 수상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그 방에 들어가
본적이 있느냐, 그 방에 드나드는 사람을 본 적이 있냐 등등 아까
몇 번을 대답했던 질문을 또 해대는 거야. 처음에는 좀 성의껏 대
답을 해줬지만 나중에는 짜증도 나더라..
그런데 갑자기 좀 이상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거야.
그 시체로 발견된 사람 잘 알지도 못한다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뭐 주고 받은 것 없느냐, 시체를 발견했을
때 기분이 어땠냐... 급기야는 사람을 죽여 봤느냐라는 무례한 질
문을 하는 거야.
화가 나더라, 그래서 당신 형사 맞냐고 소리를 질렀어.
그 형사는 내가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도, 침착하게 그런 질문을
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다시 형식적인 질문을 하는 거야.
나는 기분도 잡치고, 그 사람이 형사인지 확신도 안 가서 그만 얘
기하자고 했어.
그 형사는 알았다고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문 쪽으로 가는 것 대신에 내 책상쪽으로 향하는 거야.
당황해서, 나는 그 형사 앞을 가로막으면서, 이제 나가달라고 했
어, 그 형사는 가만히 서서 내 책상 주변을 살펴봤어.
나는 그 형사가 뭔가를 찾아내도록 가만 둘수 없어, 거의 밀듯이
그를 막았어.
그는 알았다고 하면서도, 책상 귀퉁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자리
를 뜰 생각을 안했다. 나는 그의 시선이 가는 곳을 돌아보았다.
제기랄!
거기에는 내가 미처 감추지 못한 사진 한 쪽이 책상서랍에 사이
에 삐죽이 튀어나와 있는 거야.
나는 그 형사를 가만둘 수 없었다. 강제로 그 형사를 문쪽으로 밀
었어. 지금 생각해봐도, 거의 미친 짓이었지.
나를 의심해줘요 하는 식의 행동이었잖아.
하지만,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어.
그런데, 형사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저항도 안하고, 더 이상 질문
도 안하고 가만히 문쪽으로 돌아갔어.
나는 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문을 연 형사는 방문을 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더니,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기분나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섬
듯한 얘기를 하는 거야.

'인석씨, 협조 감사합니다.
제가 협조에 보답하는 셈치고,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
죠. 이 동네는 전국 평균 범죄율보다 휠씬 낮은 범죄율을 자랑하
고 있습니다.
살인 사건도 아마 한 1년만에 처음 일어난 일일거예요.
그만큼 안전한 동네죠. 전국에서 몇번째 안가는 안전한 곳일 거
예요.
그런데, 이렇게 안전한 동네에 좀 이상한 일이 있어요.
한 1 년전부터 괴기한 사건이 발생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이죠.
처음에는 종합 병원들의 시체가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1달을 간격으로 없어지는 것 같더니, 그 다음부터는 점
점 그 간격이 작아졌어요. 어쩔 때는 1주일 간격으로 시체가 없
어질 때도 있었어요.
수법은 다양했지만, 주로 영안실에서 안치되어 있는 시체가 없어
졌어요. 경찰도 처음에는 병원 측 착오로 생각했지만, 자꾸 비슷
한 사건이 일어나고, 시체가 없어진 유족들의 항의도 점점 거세
져 수사를 시작할 수 밖에 없게 되었죠.
병원에서 없어지는 것은 끽해야 약품 몇 종류, 기기 정도였지
시체가 없어지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수사를 해도 사건을 해결 될 기미가 안 보였어요.
단서도 없었고, 동기도 전혀 알 수가 없었었요.
시체가 없어진 유족들을 협박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발
생하지도 않고 설상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 하더라도 별로 많은
돈을 받을 수 없는 범죄였어요. 위험 확률도 높고요.
결국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처리도 쉽게 할 수 없는 것인데,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어요.
없어진 시체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없어졌어요. 알 수 없는 일
이었어요.
좀 으시시한 얘기죠...
그러다 갑자기 그 시체의 실종 사건이 뚝 그쳤어요.
무슨 이유였는지, 한 6개월 좀 계속 되 오던 시체 실종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6개월 동안 없어진 시체는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 구
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물론 그 범인도 잡지 못했고요.
경찰으로는 부끄러운 일이지요.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그 사건들이 미궁에 빠진 채, 세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질 쯤 한
젊은 형사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 사건이 멈춘 후, 이 근방 30Km 반경에서 실종사건이 급증한
거예요. 예년의 같은 기간 동안보다 두 배의 사람이 실종되었어
요. 시체가 없어지던 기간동안 보다도 역시 두 배 정도의 사람이
더 실종된 거예요.
이번에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라졌어요.
그 사실을 발견한 그 형사는 시체 분실 사건과 눈에 뛸 정도로
증가한 실종 사건과 뭔가 연관이 있다고 확신을 하고, 시체들과
실종자들의 사진과 자료들을 쌓아놓고 며칠밤을 세며, 연관성을
찾아내려고 했어요.
출신지, 식구, 나이, 성별, 가정 환경, 성장 환경 등등... 모든 하
나의 연관성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워낙 무차별적으로 없어진 것
같아서 그런지 어떤 연관성을 찾아낼 수 없었어요.
거의 포기 상태였던 그 형사는 한가지 말도 안되는 연관성을 찾
아냈어요. 없어진 시체나 실종자들 모두 각자 연령의 사람들의
평균 체중보다 약간 무겁다는 것이지요.
모두들 자기들의 평균 체중보다, 한 5kg에서 10Kg 더 무게가 나
가는 사람들이었요.
하지만, 그게 다였어요.
2달동안 밤새고 발견해낸 단서란 고작 그것 뿐이었죠...
그리고는 그 형사는 그 사건을 포기하기로 했어요.
주위에서도 말렸고, 이 사건들이 범죄라는 뚜렷한 증거도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수사할 수 있는 명분도 없었어요.
결국, 그 사건에 열정을 가지던 그 형사도 수사를 포기했어요.
없어진 시체 11구와 실종자 12명을 남기고....
그러던 중, 그 형사는 새로운 사건을 맡았어요.
이 구역에서 1년만에 처음 발생한 아주 끔찍한 살인사건을요.
그런데 그 형사는 그 살인현장을 보자마자, 이유도 없이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살인 사건과 그 실종사건과 무슨 연관성이 있다는..
그래서 그 형사는 결심했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결심했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 얘기는 여기가 끝입니다.
그럼 푹 쉬세요...
만약 살인 사건에 대해 작은 기억이라도 다시 떠오른다면, 제게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그럼....'

그러더니 문을 닫고 나섰어.
황당하더라고...
그러면서도 웬일이지 소름이 끼치고 무서워지더라.
그 형사는 분명히 나를 의심하는 것 같았어. 나를 범인으로...
그리고 그 시체 실종 얘긴 이유도 모르게 너무 무서웠어.
나는 그 형사가 나간 문을 멍하는 쳐다볼 수 밖에 없었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그러다, 책상쪽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큰 충격을 받았어.
아까 그 형사가 유심히 보던, 그 사진이 없어진 거야.
나는 미친 듯이 책상을 뒤졌지만, 그 사진을 발견할 수 없었어.
없어진 사진은 바로 살인 현장과 똑같은 그 문제의 사진이었어.
그 형사 놈이 그 사진을 가져간 것이 분명했어.
이제 경찰이 곧 나를 잡으러 올 것 같았어.
정신이 멍해졌어.
그런데 이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만약 그 형사가 그 사진을 몰래 가져가서 그 사진을 봤다면, 이제
까지 안올 리가 없었어. 그 사진을 보자마자 다시 내게 왔을거야.
그렇지 않고는 나중에 그 사진을 내방에서 발견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어. 몰래 훔쳐간 것도 문제고, 아무런 증인도 없었고
내가 나중에 모른다고 시침을 땐다면 그 사진은 아무런 효과도
없을텐데..
그럼 그 형사놈이 안 가져갔나? 어떻게 없어진 걸까?
만약 그 형사놈이 가져갔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아무 것도 알수가 없었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
여하튼 그 상황에서 내가 해야할 일은 분명했어.
더 이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모든 사진들을 없애야 하는 것이
었어.
컴퓨터를 다시 켜고, 저장되 있던 사진들을 지우려고 했어.
그러다가 그 문제의 사진파일이 생각났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단서를 위해
서라도 한번 더 살펴봐여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진을 확대해서 다시 살펴봤어.
역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어.
너무 많은 일을 겪었고, 긴장해서 였는지 피곤함이 느껴졌어.
포기하고 그 파일을 지울 결심을 했어.
그런데 뭔가가 눈에 띠었어.
정신을 바짝차리고 그 부분을 더 확대해서 봤어.
그 부분이 뭔가를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뒤통수에 둔기를 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을 느꼈어....


<계속>

..그건 사진의 오른쪽 귀퉁이에서 발견한 거야.
아까도 말했듯이, 그 사진 속 시체의 고개는 사진기 반대쪽으로
돌아가 있어서 시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거든.
그런데, 사진을 확대하다 자세히 보니, 시체의 고개가 돌아간 쪽
에 희미하게나마 작은 거울이 일부 보이는 거야.
혹시나 하고, 그 부분을 확대해 봤어.
원래 10배 정도로 확대되어있던 사진을 더 확대하니, 아무리 화질
을 보정하더라도, 흐릿하고 거칠게 보이는 거야.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거울에 뭔가 비치는 것이 있다는
거야. 언뜻 보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세히 보니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어.
전혀 그 형체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사람의 얼굴인 것이 확실해
보였어.
시체의 얼굴일 수도 있는 거야.
어쩌면 이 사진을 찍은 미친 놈의 얼굴이나, 살인자의 얼굴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쳤어.
사진만 취급하던 내가 진짜 살인에 관련되기 시작하는 것이 실감
났어. 사람이 죽고, 사람일 죽이는 그 끔찍한 일에..
몇번을 확대하고, 보정작업을 했지만, 내가 가진 컴퓨터와 소프트
웨어로써는 더 이상 선명해지지 않았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지.
한승이 형이 떠오르더라..
일한이 너도 알지, 우리 영화제 했을 때 도와줬던 그 사진광 형..
한승이 형이라면, 그 사진을 좀더 정확히 확대해서 보여줄 수 있
을 것 같았거든..."

인석이가 한승이 형 얘기를 꺼내니까, 갑자기 그 끔찍했던 스티커
사진이 생각났다. 은미와 여러명의 생명을 앗아갔던 그 원혼의 스
티커 사진이....
한승이 형과는 그 사건 이유로 가끔 연락을 했다. 그 사건으로 한
승이 형도 그런 사진에 대해 좀더 공부를 했다는 얘기만 들었는
데..
한승이 형은 우리 영화제 준비하다가 만난 사람인데, 사진 공부
하기 위해 유학까지 갔다온 사람으로 사진 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한승이 형은 예술적인 사진을 잘 찍을 뿐만 아니라, 사진에 대한
기술적 지식이 전문가 이상이어서 그 스티커 사진건 때 많은 나도
그 스티커 사진때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그런데 인석이도 한승이 형에게 도움을 청한 것 같았다.
인석이는 목이 마른지 나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얘기를 계속했
다. 인석이는 뭔가 불안한지,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것이 마음에 좀
걸렸지만, 얘기는 계속되었다.

"한승이 형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고, 그 사진들을 지우지 않기
로 결심했어. 좀 위험한 일이지만, 여기서 모든 것을 없앤다면 이 모
든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
거든...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하고 창밖을 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있
었어. 벌써 새벽 5시가 넘어있었어.
거의 밤을 꼬박 샌 격이었어.
시간이 그렇게 지나간 것을 보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더라.
태어나서 그렇게 피곤하고, 긴 밤은 처음이었어.
혹시 누군가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문을 꼭꼭 잠가놓
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어.
얼마나 피곤했는지, 정말 눕자마자 잠이 든 것 같아..
한 5시간 정도 잤을 거야, 아니, 악몽에 시달렸다는 것이 맞지..
내가 이제까지 봐왔던 온갓 잔혹사진들이 꿈속에서 나를 괴롭혔
고, 내 주변에 나타나던 그 여자는 계속해서 나를 쫓아왔어.
결국은 내가 침대에 묶여 그 여자에게 온 몸이 잘려나가는 장면
에서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난 거야.
너무 끔찍했던 악몽이어서, 머리만 아프고 잠을 제대로 잔 것 같
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앉아만 있을 수 없었어.
몸을 일으켜, 한승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어.
다행히 한승이 형은 어디 나가지 않고 스튜디오에 있더라.
급한 일이라고 좀 도와달라고 하니, 선선하게 그 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하더라. 한승이 형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니 좀
마음이 놓이더라.
사진과 사진 파일을 담은 zip Drvie를 챙겨 나갔어.
저쪽 복도 끝에는 아직도 조사할 것이 남았는지, 경찰들이 왔다갔
다 하더라고.. 그 방쪽을 보니, 어젯밤 그 끔찍했던 살인 현장이
떠 올랐어.
나도 모르게 두려움으로 몸이 부르르 떨리더라..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니, 갑자기 어디선가 그 여자가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마저 들더라. 대낮에 그런 생각을 하고 무서워하는 내
모습을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들더라.
복도를 나서다 보니, 경비실 쪽에서 뭔가 다투는 듯한 소리가 들
렸어. 걸음을 멈추고 무슨 소린가 하고 경비실을 들여다 보니, 어
젯밤 나를 찾아온 그 형사가, 나와 같이 시체를 발견한 경비 아저
씨를 조사하고 있는 것 같았어.
그 경비 아저씨는 심하게 기분이 상했는지, 언성을 높이고 말다툼
하듯이 형사에게 대들었어.

'나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니까요!
아무도 왔다갔다한 사람이 없고, 받은 것도 준 것도 없어요!
당신도 알잖아! 왜 나를 그렇게 안 믿는 거야!
그런 식으로 나를 의심한다면, 나도 당신을 의심할거야!
어떻게 보면, 당신이나 나나 똑같은 입장이잖아!
안그래?'

형사는 어제 나를 대할때와 전혀 딴판인 흥분된 모습으로 그 경
비 어저씨에게 소리를 치더라.

'그런식으로 무성의하게 대답하지 말라니까요!
여기서 진상을 밝혀내지 않으면, 다음 희생자는 당신이 될 수도
있소, 그러니 아는 것 있으면, 모두 얘기하라니까요!'

경비 아저씨의 얼굴에는 좀 겁이 난 것 같은 표정이 스쳤지만, 지
지않으려는 기색으로 더욱 소리를 쳤어.

'뭐라고? 다음이 내 차례라고?
지금 협박하는 거요!
만약 내가 그렇게 된 다면, 당신도 온전할 수 없을꺼야!
형사면 다야!'

둘이 싸우는 얘기를 들어봤자, 아무런 소용없을 것 같아 현관을
나섰어. 두 사람은 서로 소리를 치는 통에, 내가 지나가는 것을
못 봤어. 그 형사의 그런 태도를 보니, 좀 안심이 되었어.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만 의심받는 것 같지 않았어.
한승이 형을 향해 가는데, 갑자기 그 형사의 행동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떠올랐어.
어젯밤 만약 내방에서 그 사진을 그 형사가 가져갔다면, 나에 대
해 왜 아무런 조치를 안 하는 것이 좀 이상하게 생각되었어.
그 형사에게는 그 사진이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지, 아니면 그 사
진을 가져간 사람이 그 형사가 아니었는지..
아무 것도 답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어.
단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가진 이 사진이 이 모든 의
문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
한승이 형은 오랜만에 찾아간 나를 반갑게 맞아줬어.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을 알아챈 한승이 형은 내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내 주변에 일어난 일에 대해 물어 보았어.
나는 그 여자를 보게된 일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얘기해 주었
어. 나를 정신병자로 취급할 지도 모른다는 애초의 걱정과는 달리
한승이 형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었어.
내 얘기가 끝나자, 한승이 형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일한이 니
얘기를 꺼내더라..

'휴... 전에 일한이도 그런 사진을 들고와 내게 부탁을 하더니...
그때도 결국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는데...
정말 세상에는 그런 불가사이한 일들이 많나봐..
그런데, 인석이 네가 그런 일을 할줄은 몰랐다.
내가 네게 이런 충고를 할 입장이 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런 사진들을 팔고 사고 하는 것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사진은 신문이나 자료를 위해서 있는 그대로를 찍어내는 기능도
있지만, 사물을 좀더 아름답고, 의미를 부여해서 찍는 예술적 기
능도 있는 거야. 그런데 네가 취급했던 사진들은 사진이 가진 기
능을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악용하는 일
이다.
휴... 내가 찍는 사진이 항상 아름답고 훌륭한 사진이라고 자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인간의 아름다운 점을 부곽시키려 노력
한다. 대부분의 사진이 다 그렇지..
여하튼 일이 거기까지 갔다고 하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도와줄게..
대신 나와 약속은 하자..
앞으로는 더 이상 그런 사진을 취급하는 일들은 절대로 안
한다고. 인간의 말초적 감각을 자극해서 잔혹성을 일깨우는 그런
사진들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돼..
그런 사진들은 흔한 뽀르노 사진들 보다 훨씬 악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진들이거든...
휴...
여하튼 그 문제의 사진 좀 보자..'

한승이 형의 말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려지는 것이 느껴
졌어. 나는 가져온 그 문제의 사진들과 파일을 한승이 형에게 내
밀었어.
한승이 형은 아무런 말을 안하고, 사진을 살펴봤어.
그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어.

'이 사진들은 정밀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그냥 보기에는 조
작된 사진 같지는 않아.
무슨 얘기인지 알아?
어떤 미친 놈이 진짜 이런 끔찍한 장면을 그대로 사진으로 찍었
다는 거야..
어떤 악마 같은 놈이...'

나는 한승이 형에게 내가 발견했던 부위를 확대해서 좀더 깨끗하
게 보여달라고 했어.
작업실로 나를 데려간 한승이 형은, 그 사진을 모니터로 보고 확
대해 봤어. 내 컴퓨터로 본 것 보다는 휠씬 선명하고 또렷하게 볼
수는 있었어.
거울에 비친 것은 사람의 얼굴이 확실해 졌어.
하지만, 어떤 얼굴이 비춰졌는지는 여전히 잘 알수가 없었어.
한승이 형은 한참을 컴퓨터를 조작하며, 몇 시간 동안 이리저리
검사해 보더니 얘기해 주더라.

'이 사진은 네 말대로 일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 그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하루 정도가 걸릴 것 같
아.. 그리고 내 나름대로 좀 조사해 볼 것도 있고 해서..
내가 최선을 다해 빨리 알아볼 테니, 내일 다시 올래.
그때까지는 내가 확실한 사실을 밝혀줄테니...'

한승이 형은 마치 자기일인 것처럼 그 사진을 분석해주기로 했어.
한번에 사실을 알 수없어 좀 아쉬었지만, 너무 고맙더라.
사진의 분석이 끝나는 대로 연락해 주기로 하고, 한승이 형 스튜
디오를 나섰어.
한승이 형은 작업실을 나서는 고뇌에 찬 모습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어.

'나도 처음에는 이런 사진들을 취급하기 싫었어.
그리고 믿지도 않았지.
하지만, 일한이가 예전에 가져다 준 스티커 사진이 내 사진에 대
한 믿음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어.
사진은 결코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냐.
때로는 저 건너편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그것이 암흑의 것인지, 광명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승이 형의 그 말은 내게 뭔가 찜찜함을 남겨 줬어. 하지만, 한
승이 형이 뭔가 진실을 밝혀 주리라 믿고 거기를 나섰어.
거리는 어느새 어둠에 쌓여 있었어.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다 되었어.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어.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일이 마무리 된 후에는 절대로 그런 사진
을 취급하지 않기로 결심한 거야..
니네들에게도 얘기하는데, 그 동안 나는 돈에 눈이 어두워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헷갈렸던 것이었어.
그 놈의 돈이 뭔지...
휴....
오피스텔에 혼자 일찍 들어가기 실어, 근처 포장마차에서 저녁겸
술을 한잔 걸치고 오피스텔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었더라.
피곤한 몸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소주 한병도 안 마셨는지 몸이
알딸딸하고 좀 취기가 돌더라.
경비실 안은 불이 켜져 있었지만, 경비 아저씨는 잠시 자리를 비
웠는지 아무도 없었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퍽!퍽!' 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리는 거야.
지하실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엘리 베이터 안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잘 감을 잡을 수 없었어.
사실 어떤 소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가 내려쳐지는 소리였
어. 괜히 겁이 나더라.
엘리베이터가 오자 얼른 올라탔어.
문이 닫히니 그 소리는 들리지 않더라.
하지만, 혼자 엘리베이터 오르니 또 그 여자 얼굴이 떠 오르더라.
엘리베이터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무서웠어.
너희들이 보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겁이 난 나는 엘리베이터 벽
에 등을 붙이고 빨리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만을 빌었어.
한층, 한층 올라갈때마다, 지난번처럼 문이 열리고 그 여자가 그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을 것 같아 겁이 났어.
하지만, 그 날은 다행히 아무 일도 없더라..
아무일없이 올라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는 잽싸게 엘리베
이터를 나섰어.
복도에서 서서, 저쪽 살인이 났던 방을 보니 이제 더 이상 조사할
것은 없는지 아무도 없고 불도 꺼진채 였어.
보이는 것은 출입금지를 나타내는 테잎뿐이었어.
그것을 보니 등골이 오싹해지더라.
도망치듯이 복도 반대편에 있는 내 방쪽으로 뛰어갔어.
어두운 복도 구석에서 누군가가 내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았어.
복도 주위를 돌아보며, 떨리는 손으로 방 열쇠를 들었어.
그런데, 이게 왠일이니..
분명히 낮에 잠그고 나간 방문이 스르르 열리는 거야.
그 순간 얼마나 겁이 나던지...
움직일 수가 없더라..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어. 쉼 호흡을 하고 문
을 열었어.
방안은 칠흙같은 어둠에 쌓여 있었어.
혹시 뭔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먹에 힘이 가더라.
식은 땀이 흘렀어.
벽을 더듬어, 방안 전등을 켰어.
방안이 밝아지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랐어.
누군가가 방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놓 것이야. 도둑이 들어왔는지
책상이며, 옷장이며 할 것없이 다 꺼내져 있고, 온 방안이 뒤집어
져 있는 거야.
불길한 예감이 들어, 책상을 보니 컴퓨터가 통채로 없어졌어.
그리고 그 문제의 사진들이 한 장도 남지 않고 없어진 거야.
내가 이제까지 모아왔던 잔혹 사진과 자료들이 모두 없어졌어. 더
욱 이상한 것은 그 이외에 없어진 것은 없는 것이었어.
없어진 것들이 그런 사진들이었으니, 경찰에도 신고할 수 없었어.
혹시 경비 아저씨가 누가 왔다갔다 한 것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
각에 인터폰으로 경비실에 연락했어.
그런데 자리에 없는지 한참을 신호가 갔는데도 대답이 없는 거야.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인터폰을 들고 있었어.
갑자기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인터폰을 받는 거야.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경비 아저씨에게 내 방에 누가 들어왔었다
고 얘기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터폰 저편에서는 아무런 대답
이 없는 거야.
단지 '시..식 시..식..'하는 귀에 거슬리는 낮은 신음소리만 들리는
거야. 나는 계속해서 경비 아저씨를 불렀어.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어.
그때였어.
인터폰을 통해 ?어질듯한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거야. 얼마나 끔찍한 소리였는지, 소리만으로 그 비명의 주인공이
당하는 참혹한 고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움직일 수가 없었
어. 그리고는 저편의 인터폰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끊어졌어.
나는 본능적으로 복도로 뛰어갔어. 공포와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
은 내 이성을 거의 마비시켜 버렸어.
단숨에 엘리베이터 앞까지 뛰어갔어.
숨을 몰아쉬며 엘리베이터 버튼를 눌렀어.
1층에 있던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났는지, 버튼을 눌렀는데 움직일
생각을 안 했어.
잠시 망설이다가, 계단으로 뛰어 내어가려고 하는 순간이었어.
기다렸다는 듯이, 한참을 1층에 서 있던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런데 말야..
지금 그때를 생각해 봐도 참 이상해...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보니, 그 엘리베이터를 꼭 기다려야 한다
는 생각이 들었어.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 다급한 상황에 멍하는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층수만 보고 서 있던 거야.
발이 바닥에 박힌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더라...
엘리베이터는 5층, 6층, 7층.. 천천히 올라왔어.
이윽고 '땡'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9층에 올라왔어.
그리고... 문이 스르륵 열렸어.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나는 내 앞에 벌려진 모습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어.
내 앞에 열린 엘리베이터에는 경비 아저씨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
린 채로, 두 팔과 한다리가 잘려나간 채로 피를 뿜으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거야.
경비아저씨는 바로 내가 이전에 KillYou에게 받은 사진과 똑같은
모습으로 처참히 ?겨나간 것이였어....




<계속>

...그 경비 아저씨의 시체는 그 사진속에서 걸어나온 것처럼 너무
똑같았어. 단지 다른 것은 엘리베이터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처음 봤을때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느꼈지만, 금새 침착해지더라.
물론 두려움도 느껴졌지만, 뭔가 이상야릇한 감정이 느껴졌어.
뭐랄까... 항상 사진으로 보던 것은 실제로 보니 더 좋은 느낌 있
잖아?
비유가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 때는 생각한 것보다 여
유있게 대처한 것 같아.
하지만, 다음 순간 두려움보다 불안함이 느껴졌어.
이번에도 내가 시체를 발견했으니, 까닥하면 가장 유력한 살인범
으로 몰릴 것 같았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다급해지기 시작
했어.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났는지, 문이 닫히지도 않고 움직일
생각도 않했어.
우선 난장판이 되어 있는 내 방으로 돌아와, 경찰에 신고했어.
방안에 발디딜 틈도 없었지만, 뭐 하나 잘못 만졌다간 나중에 더
의심을 받을 것 같아 가만히 앉아서 담배를 꺼냈어.
나도 모르게 담배를 든 손이 떨리더라..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어.
내게 돌아올 의심이 두려웠던 것이었지...
그때였어.
나 혼자 있는 방안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느
껴졌어. 서늘하고 기분 나쁜... 어떻게 생각하면 그 느낌에는 익숙
함도 포함되어 있어.
지난번에도 느꼈던...
바로 그 여자가 내 주변에 나타났을 때, 느껴왔던 그 등골이 오싹
한 느낌이었지..
자동적으로 시선은 방안을 돌아, 창밖을 향했어.
머리끝이 쭈볏거리고, 손에 든 담배를 놓쳤어.
창밖에는 그 여자가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
어. 내가 더욱 무서웠던 것은, 그 여자가 머리 머리위부터 발끝까
지 새빨간 피를 뒤집어 쓰고 있는 모습이었어.
소름이 끼치는 그 여자의 모습에 나는 움직일 수도, 시선을 땔 수
도 없었어. 그 증오와 살기에 가득찬 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
았어.
어떻게 해서라도, 이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 정말 미칠 것 같더라...
얼마동안 그 여자를 보고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복도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어느새 그 여자의 모습은 창 밖에서 사라졌고, 나 역시 몸을 움직
일 수 있게 된 것이지..
복도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들이 들려오자, 나는 몸을
일으켜 복도쪽으로 나섰어. 뭔가에 홀린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
지만, 내게 급한 것은 나를 위협하는 귀신보다는 살인 누명을 벗
어야 하는 것이었어.
복도로 나가보니, 경찰들이 모여서 엘리베이터에 매달려 있는 시
체의 사진을 찍고 부산을 떨면서 조사하고 있었어.
천천히 다가가면서, 내가 신고한 사람이라고 밝히자 경찰들이 다
가와 쉴새없이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어.
나는 내가 보고 들었던 것을 그대로 얘기했어. 물론 창밖에서 그
여자를 본 얘기는 빼고...
그런데, 경찰의 질문에 답하면 답할수록, 나를 보는 경찰들의 눈
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 느껴졌어. 내 말을 믿지 못한다는 눈치
였어. 나도 모르게 필사적으로 되어, 내가 목격한 상황을 설명했
지만, 경찰들은 노골적으로 나에 대한 의심을 드러냈어.
나중에는 화가 나더라...
결국에는 그렇게 나를 의심한다면 증거를 가지고 와서 나를 잡아
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내방으로 돌아왔어.
내가 그렇게 흥분한 모습을 보이자, 나를 심문하는 경찰들은 어안
이 벙벙한 표정이었어.
방엔 들어와, 불안함을 억누르고 잠시 생각해봤어.
최대한 내 편한 쪽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경찰 입장에서는 당연
히 내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거야.
한가지 물증만 발견된다면, 나는 꼼짝없이 잔인한 이 연쇄살인의
범인으로 몰리게 될 판이었어. 그러다 보니, 어질러진 방안이 눈
에 띠었어.
그 사진이 없어진 것이 생각나자, 그 불안감은 두려움으로 변했
어. 누군가가 가져간 거라면, 내가 살인 사건과 똑같은 사진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거였어.
그런데, 도대체 누가 방문까지 뜯고 그것을 가져갔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 분명히 보통 도둑이 든 것은 아니었어.
하지만, 그때 나로써는 도무지 풀 수 없는 문제였어. 생각하면 생
각할수록 모든 일이 의문 투성이였어.
그때 내게 남은 희망은 한승이 형이 그 사진을 통해 뭔가를 밝혀
주는 것 하나뿐이었어.
저절로 한숨이 다 나오더라..
그때였어.
누군가가 문을 세차게 두둘기며, 소리치는 것이 들렸어.
왠만하면 모른척하고, 혼자 있고 싶었어.
하지만, 정말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는 거야.
그리고는 '안 나와! 이 살인마 새끼야!!!' 하는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어.
무슨 일인가 하고, 문을 내다보니 어제 왔던 그 형사가 엄청 흥분
한 모습으로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고 있는 거야.
나는 단지 목격자라는 얘기를 해주기 위해, 문을 열었지.
문을 열자마자, 그 형사는 성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왔어.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고 소리를 치는 거야.

'이 개새끼야!
니가 사람을 그렇게 죽인다고 우리가 겁 먹을줄 알아!
우린 니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허튼 수작 부리면, 다음 차례는 니가 될꺼야!'

그 형사는 어제의 침착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 살기 띤 표정을
한채로 씩씩거렸다.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흥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얘기하는 거예요?
나는 아무짓도 안 했다니까요!
단지 무능력한 당신들이 못 잡은 그 범인이 갈기갈기 ?어놓은
시체만 발견한 것이라니까요!'

나도 화가 나서 한미디 쏘아 붙었어.
그랬더니 그 형사의 얼굴이 분노로 새하얗게 변하더니 온 몸을
부르르 떠는 거야. 다음 순간 그 형사가 휘두른 주먹에 나는 뒤로
나동그러졌어.

'니가 무슨 일을 해도 내 손아귀를 벋어날 수 없을 거야!
여기서 죽어라!
살인마야!'

그리고는 그 형사가 권총을 꺼내, 쓰러진 나를 향해 겨누는 거야.
얼마나 황당하고 놀랐던지...
다행히 달려온 동료 경찰들이 그 형사를 덮쳐, 총알이 내 머리르
뚫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어.
그 형사는 동료들에 의해 억지로 끌려나가면서도, 계속해서 나를
향해 소리치는 거야.

'다음번에 니가 먼저 사람을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너를 죽여
줄 거야!
반드시!!!'

그 형사가 끌려나가고, 다른 경찰들은 당황한 표정을 한 채 내게
미안하다고 그랬어. 다들 정의감 넘치는 그 형사가 살인마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를 엉뚱한 데 표출한 것일 뿐이라며, 내게 용서를
구했어.
내가 그 형사의 행패를 확대시킬 것이 걱정되는지, 모두들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어. 하지만, 나는 끌려나가면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
한 그 형사의 얼굴이 생각났어.
정말 나를 죽일 기세였거든..
그런데 그 형사는 살기와 더불어 뭔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어. 마치 겁에 질린 자기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더욱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 같은....
괜찮다며, 경찰들을 내 방에서 내보냈어.
방을 나서던 경찰들은 어지러진 내 방안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한
번씩 쳐다보며 나갔어. 그런데 방을 나서던 경찰들이 나누던 얘기
가 내 귓가에 비수같이 ?혔어

'박형사 지난번에도 이러지 않았어?'
'그러게 말야.. 한 2년 됐지.. 그때도 용의자를 거의 반죽음
만들었지. 그 용의자가 범인으로 판명되었으니 다행이지...
휴... 정의감도 지나치면 문제야...'

그 얘기를 듣고나니, 그 형사의 이상한 행동이 약간은 이해가 갔
다. 잔혹한 살인을 하는 살인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와 적개심
을 가진 형사라....
하지만, 그 형사의 두려운 표정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어
어쩌면, 그 잔혹한 살인을 무서워하는 것일지도 몰랐어.
여하튼 모두가 빠져나가고, 다시 어질러진 방안에 혼자 남게되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
모든 것이 뒤죽박죽 했지만, 뭔가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
어. 하지만, 그 실마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확신이 가지
않았어.
이 방 주변, 아니 내 주변을 맴도는 그 끔찍한 여인의 혼령,
KillYou라는 미친놈으로부터 온 기괴한 의뢰와 잔혹한 사진들, 그
리고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사진 속의 처참한 살인들...
이 모든 것은 분명히 서로 연관성을 갖고있는 것 같았어.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의문을 풀기는커녕 더욱 복잡해
지는 거 같았어.
도저히 답을 찾아낼 수 없었어.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한승이 형이 줄 사진 분석 자료
에서 찾아내길 바라며,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어.
침대에 누워서도 그 생각만 하다가 잠이 들었어.
다음날,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어.
간만에 그 여자의 방해 없이 푹 잠을 잔 기분이었어.
하지만,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어지러진 짐 속에서 간신히 전화를
찾아내 수화기를 들었어.
한승이 형이었어.
한승이 형의 심각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충격과 함께 잠이
확 깼어.

'인석아,
네가 준 사진을 분석해 봤는데...
이게 네가 원하던 답이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내 눈을 믿을 수 없다.
여하튼 만나서 얘기하자...'



<계속>

..문을 나서는데, 아직도 복도는 경찰들이 왔다갔다 했어.
내가 나타나자, 경찰들은 못 본척 했지만 그들 사이에 풍기는 의
심의 분위기는 알아차릴 수 있었어.
나 역시 경찰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애써 못 본척하고 걸어
나갔어. 계단으로 나가다 보니,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튄 채로 말
라붙은 엘리베이터 안이 보였어.
어제의 그 참혹했던 경비 아저씨의 시체가 연상되니, 나도 모르게
온 몸이 부르르 떨렸어.
오피스텔을 나서는데 기분이 묘하더라.
한편으로는 한승이 형이 내게 모든 의문을 풀 정답을 줄 것에 기
대가 되기도 했지만, 그 답을 아는 것이 두럽기도 했어.
어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될지...
지하철을 타고, 한승이 형의 스튜디오로 가는데 자꾸 이상한 느낌
이 드는거야.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따라오는 듯한 기분나쁜 느낌이 계속 느
껴졌어. 주위를 자꾸 둘러봐도, 수상한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어.
괜히 내가 과민 반응하는 것으로 생각했어.
하지만, 그 기분은 한승이 형 스튜디오로 가는 동안 계속 느껴졌
어. 그러다가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에 들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뒤
를 돌아봤어.
그때 나를 지켜보던 수상한 두 사람이 눈에 띠었어. 그들은 갑작
스러게 내가 자기들을 보자, 당황함을 감추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어.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어.
그들이 어디서부터 나를 따라왔고, 대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어. 하지만, 그 사실 자체가 내게는 너무 두려웠
어. 한승이 형 스튜디오로 올라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
고... 그들이 경찰일까, 아니면 누굴까?
경찰이라면, 나는 심각하게 살인범으로 의심받고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경찰이 아니라면, 더욱 일이 심각해지는 것 같았어,
복도에 난 창문으로 밖을 내봤는데, 역시 그 사람들은 건물 입구
에 있었어.
속이 답답해지며, 미칠 것 같더라.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그래도 내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승이형의 밝혀줄 수도 있
는 진실이었어.
스튜디오 문앞에 서서 쉼호흡을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어.
한승이 형은 밤새 작업했는지, 피곤한 모습으로 20인치 모니터 앞
에서 뭔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어.
한승이 형은 나를 보자 지친 표정으로 한마디 했어.

'너 이 기괴한 사진 정말 어디서 구한거야?'
'전에 말한대로 어떤 사람이 보내준거예요..
그런데, 형, 제가 어제 드린 사진 다 가지고 있조?
어젯밤에 정말 골 때리는 일이 있었어요.
아니, 정말 끔찍한 일이었어요...'

나는 한승이 형에게 전날밤에 있었던 것을 모두 말해주었어.
사진들이 모두 없어진 거 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된 경비 아저
씨의 끔찍한 시체며, 그 시체가 두 번째 사진과 똑같은 사실이라
는 것 모두 얘기해 주었어.
한승이 형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

'휴....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났니?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어...
하긴 이 사진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한승이 형은 나를 옆자리에 앉히고 그 문제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정말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을 얘기해 주었어.

'지난 번에 일한이가 이상한 사진 갖다주어서 찝찝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인석이 너도 그러는 구나..
이런 사진을 조사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 사진이 조작된
것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는 거야.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여러 가지 있어.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하
고 조작기술이 발달해도, 가짜 사진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항
상 있어. 딴 것은 몰라도 그것은 이제 내 전문분야가 되었지..
여하튼 이 사진은 진짜였어.
몇 가지 방법으로 테스트 해봐도 이 사진은 가짜가 아니었어.
그리고 나서, 이 사진의 시체 부분을 선명하게 확대해서 법의학
전공하는 친구에게 이 메일로 보냈지.
시체가 진짜인지를 알아봐달라고 했어.
다행히 그 자식이 별로 안 바쁜지, 오늘 아침에 답신이 왔어.
사진만으로 사실 유무를 알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진에
찍힌 시체는 마네킹이 아니라 진짜 사람일 확율이 높다는 거야.
결론적으로 이 사진은 진짜고, 진짜 시체를 찍은 것 같다는
것이지.
그리고 내 나름대로, 네가 부탁한 분석을 시작했어.
자 이 부분 잘 봐..
네가 발견한 그 거울 부분이야.
거울에 비친 것을 확대하고 선명하게 하는 것은 별로 힘든 일이
아니었어. 좀 시간만 걸리지 그리 힘든 작업은 아니었어.
잘 봐.. 이것이 네가 보고 싶은 것이었니?'

한승이 형이 확대시켜준 것을 처음 봤을때는 무엇인지 잘 알수가
없었어. 그런데 한승이 형의 설명을 듣고 보니 뭔지 알 수 있었
어.

'여기를 잘 봐..
이 부분이 사람의 코야..
나도 처음에는 분간이 잘 안거더라...
피 범벅이 되 있는 바람에..'

한승이 형 말대로 그것은 사람 얼굴의 일부분이었어.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피 범벅이 되 있고, 얼굴의 코와 입부분만
이어서 신분을 알아볼 수 없었어.
갑자기 온 몸의 힘이 쫙 빠지고, 실망감이 몰려오더라.
여기서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니...
하지만, 이상한 것은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이유도 알 수
없게 눈에 익었어. 또 괜히 소름이 끼치더라.
한승이 형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다시 한번 모니터를 보
라며 얘기를 계속하더라.

'인석아, 나도 이 부분을 보고 좀 실망했어.
이 사진에 뭔가 있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사진의 다른 부분도 내 나름대로 꼼꼼히 살폈어.
한 두 시간 정도 살폈지..
특별히 이상한 것이 하나도 눈에 띠지 않아, 포기하려 했어.
그러다 이 부분을 발견했지.
자 봐..'

한승이 형이 확대해준 부분은 사진의 윗부분이었어. 그러니까 시
체의 천장부분이었어. 하지만 내 눈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도 안
보였어.

'별로 이상한 것이 눈에 띠지 않지.
하지만, 이렇게 사진에서 색깔을 빼고 명암을 좀 넣어봤어.
그러니까 좀 선명하게 보이더라.
자, 보이지...'

한승이 형이 조작을 하자, 그 천장 부분에 뭔가 시커먼 것이 희미
하게 나마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흔히 이런 부위는 사진 찍을 때 후레쉬가 터지면 나오는 그림자
일 경우가 많거든..
그런데 이번 경우는 사진을 찍은 방향과 천장의 전등의 방향을
보면, 그림자일 리가 없어. 그림자가 생길 방향이 아니거든..
그래서 뭔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어.
다음에는 사진의 선명도를 극도로 높이고, 부분부분 확대해 봤
어. 그러니 이런 모습이 나왔어.
휴....'

한승이 형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나는 충격으로 움직일 수 없었
어. 그 검은 부위가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는 거야.
피 투성이가 되 있는 시체 위로, 사람 모양의 검은 형체가 떠 있
는 거야. 얼마나 무섭던지...
그런데 한승이 형은 작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

'이렇게 반 투명으로 찍힌 피사체는 선명하게 그 모양을 알아보
기 힘들어. 그래서 좀 편법을 썼어.
그 반투명 피사체를 불투명 피사체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했지.
쉽게 얘기하면, 빛이 투과되어 선명하지 못한 피사체를 불투명하
게 만들어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 더 뚜렷이 보이게
만드는 것이지.
쉽지는 않은 노가다였지.
그리고 나온 것이 바로 이 모습이었어.
나도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어.
그것의 모습을 알아보는 순간, 온갖 사진을 봐왔다고 자부하던
나 역시 소름이 쫙 끼쳤어.
그 섬뜩한 모습에....'



<계속>



..나도 한승이 형이 보여준 그 사진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어. 그 시체 위에 천장에 어떤 여자가 떠 있는 거
야. 한승이 형은 집어넣은 색깔이 붉은 색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색깔이 빨간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빛 색깔인 여자가 머리
를 길게 늘어뜨리고 천장에 둥둥 떠있는 거야.
얼마나 소름끼치는 사진이던지 숨쉬기가 힘들었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승이 형에게 물어보았어.

'한승이 형, 도대체... 이게 뭐죠?
이것이....'
'휴...
나도 잘 모르겠어.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고 심령사진이라고 하겠지..
나는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령이나 귀신이 찍힌 것일지도
몰라.. 지난번 일한이가 가져온 스티커 사진에도 이런 불가사이
한 것이 찍힌 적이 있거든..
그때도 그 정체를 밝혀내지 못 하고, 사진만 저절로 사라졌어.
일한이 그 자식 말로는 원한을 품은 원귀의 모습이 찍혔다고 하
긴 했지만...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경우
에 그 원혼이 자기 몸에서 빠져나와, 시체인 자기 모습을 보고
악귀고 변한데...
네 얘기를 들어보고 이 사진을 보니, 이 사진 속의 시체도 꽤나
고통스럽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 같아.
그렇다면, 이 허공에 떠있는 것은 시체의 원귀라 할 수 있지.
나도 원래 이런 얘기 믿는 사람이 아닌데, 내 눈으로, 그것도 사
진으로 보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너도 이런 것이 찍혔는 줄 알았니? '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모니터에 보이는 그 오싹한 모습을 뚫어지게
보았어. 자세히 보니,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어.

'형, 이것의 얼굴 좀 확대해 주시겠어요.'

한승이 형은 내 말대로 그것의 얼굴부위를 확대해 줬어.
점점 확대되는 사진을 보니, 그 소름끼치는 얼굴이 또렷해질 수록
등골이 오싹해졌어.
이윽고 얼굴을 알아볼 크기로 확대되자, 나는 그 피빛 얼굴이 왜
그리 익숙해 보였던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어.
그 사진 속 얼굴은, 내 주변을 맴돌던 그 여자 귀신의 얼굴이었
어. 충격으로 숨을 쉴수가 없더라.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더라.
한승이 형이 어깨를 잡아 흔들 때까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멍하니 있었어.
나는 목쉰 목소리 한승이 형에게 물어봤어.

'형... 이 사진에 찍힌 것은 정말 뭐죠?'
'그걸 나에게 물어보면 어떻하냐?
한가지 확실한 것이 이 사진에는 분명히 그 무엇인가가 찍혀 있
다는 거야.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한승이 형에게
한가지 더 부탁했어. 어떻게 보면, 좀 무례한 부탁일 수도 있었지
만, 그 때 나로써는 한승이 형의 도움이 단 하나의 희망이었어.
그리고, 한승이 형에게 KillYou가 보내왔던 나머지 사진들을 인쇄
를 부탁했어. 내가 가지고 있던 사진들은 다 없어졌지만, KillYou
가 보내왔던 사진들은 다행히 한승이 형이 가지고 있었거든.
나머지 사진은 두장이었어.
하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발견된 시체와 똑같은 사진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KillYou라는 미친 놈이 제일 먼저 보내온 사진 이었어.
이미 두 장의 사진은 실제의 살인 사건으로 나타났고, 남은 것은
한 장의 사진 뿐이었어.
한승이 형이 내가 부탁한 작업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 나는 그 사
진들을 들고 스튜디오를 나섰어.
스튜디오를 나서는 순간, 이제까지 잊어버리고 있던 나를 미행하
던 수상한 사람들이 생각났어.
하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 아니, 솔직히 신경 쓸 여유가 없었
어. 그 때 내 머리속은 그 여자 악귀의 모습과 모든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냐는 해답을 찾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어.
지하철 안에서 오직 그 생각만 했어.
쉽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였어.
그 여자가 진짜로 그런 식으로 끔찍하게 살해되고, 원한을 품은
악귀가 되서 자기가 죽은 방식으로 잔인하게 사람을 죽여가는 거
야. 그런데 희생자들이 내 오피스텔에 있는 사람들에서 나오는 것
인거야. 그리고 그 여자는 내 주변에 나타나는 것이라는 말이냐
이거야. 또 KillYou라는 놈의 정체는?
한승이 형은 조심스럽게 내 의문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해 주었어.

'어쩌면, 어쩌면 말야...
내가 본 그 여자 원귀는 네 환각 속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몰라.
너는 이 사진을 이미 여러번 봤어.
하지만, 이렇게 감춰진 여자의 모습은 못 봤겠지.
그런데, 내가 의식은 못했지만, 잠재 의식 중에 그 여자의 모습
을 인식해을 수도 있어, 그런 와중에 그 희미한 의식 속에서 그
여자의 모습을 계속 봐온 것이야.
실제로 그런 일은 발생하거든.
볼때는 인식하지 못한 모습이, 데자부처럼 의식이 희미해질 때
보이는 경우가..
흔희들 꿈이나 잠들기 직전에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대..
너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지도 몰라...'

물론 한승이 형의 말은 일리가 있을지 몰랐어.
그 여자의 모습은 항상 내가 피곤할 때 나타났고, 그 모습을 보고
정신을 잃은 적도 있는 것 같았어.
그렇지만, 내가 환각을 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지하철 안에서도 그 수상한 사람들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지만,
별로 게의치 않았어.
나를 의심하는 경찰이나 형사라고 생각했어.
난장판이 되고, 살인이 계속 일어나는 오피스텔로 들어가기 싫었
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시 돌아가
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한승이 형의 전화를 기다려
야 하는 입장이라 들어가야 했어.
주인 잃은 경비실은 덩그러니 비어있었고, 엘리베이터는 작동도
안하고 있어, 걸어서 올라가야만 했어.
뒤를 돌아보니, 나를 따라오던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그 사람들도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고, 근처에서 지켜보기만
할 생각인지 나타나지 않았어.
수사가 대충 진행되었는지, 전날 까지만 해도 북적거리던 경찰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출입금지를 표시하는 테잎만 붙여져 있었어.
어두컴컴하고, 아무도 인적 없는 곳에 테잎만 덩그러니 붙여져 있
는 것은 글자 그대로 음산함이었어.
당장이라도 어둠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불길함이 느껴졌어.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어.
불꺼진 내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켰어. 방안은 난장판 그대로였어.
대충 자리를 잡고, 스텐드를 키고 떨리는 손으로 가져온 사진을
꺼냈어.
처음 봤을때도 그 끔찍함에 전율을 느꼈지만, 그때는 또 느낌이
달랐어. 어쩌면 이 사진 그대로의 살인이 또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더 무서워지는 거야.
그 사진의 모습은 다시 보기가 꺼려졌어.
사진에는 얼굴은 나오지 않고, 대상의 상체와 하체만 찍혔어.
벽에 세워놓고 찍은 사진 같았어.
얼마나 많은 곳을 찔렸는지, 온 몸에 수십 곳에 구멍이 나 있었고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장면이었어.
찌르고 나자마자 찍은 사진인지, 피가 쏟아지는 것이 적나라하게
사진에 찍혔어. 얼마나 잔인한 미친 놈이 저지른 일인지 몰라도
사람을 난도질 해놓은 거야.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을 찍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온 몸이 부르르 떨리더
라. 광기어린 얼굴로 희생자를 사정없이 찔러 놓고, 자신의 범죄
를 음미하듯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그 놈
의 광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그 희생자가 그 여자라는 생각이 들자 불쌍하다는 생각
도 들었어. 어디서 뭐하다 희생된 여자인 줄은 모르지만, 난데없
이 이런 처참한 일을 당한 것이...
나는 그 끔찍함에 구토를 느꼈지만, 꾹 참고 사진을 보면서 생각
을 했어.
뭔가가 떠오를 듯 했어.
모든 퍼즐을 맞출 수 있는 단서를....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어.
깜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더니 한승이 형의 흥분된 목소리 였어.

'인석이니?
네가 부탁한 것 해봤더니...
휴....
세 사진 모두의 그 여자의 모습을 발견했어.
하나같이 증오와 분노로 가득찬 무시무시한 모습이었어.
어쩌면 세 사진의 희생자는 그 여자 하나일지도 몰라.
잔인한 놈...
한 희생자를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런 식으로 훼손하고 사진
까지 찍어내더니...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사진에서 알아냈어.
이 사진을 찍은 범인의 모습인데......'

한승이 형이 결정적인 얘기를 하려는 그 때, 나는 등뒤에서 싸늘
한 살기와 불길한 시선을 느꼈어.
한승이 형의 얘기를 들으며, 내 등뒤에 있을 것 같은 그 무엇의
정체를 보기 위해 몸을 돌렸어......




<계속>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전날 나를 폭행하려 했
던 형사였어. 그는 미친 사람 같은 광기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거야.
귀에 대고 있던 수화기 너머로 한승이 형의 얘기가 계속 들렸어

"사진들을 정밀하게 조사하다 보니,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른 놈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어...
그 놈은....."

중요한 얘기를 하는 때였지만, 형사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어.
다짜고짜 내게로 달려와, 나를 쓰러트렸어.
들고 있던 수화기는 저쪽으로 내던져지고, 한승이 형의 '여보세요!
여보세요!' 라고 외치는 소리만 들렸어.
그 형사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품에서 권총을 꺼내 내가 겨
누는 거야.
그리고는 한승이 형이 뭐라고 소리치는 전화기 선을 뽑아 버렸어.
나는 갑작스런 그 형사의 발작에 화가 났어.

'뭐하는 거예요? 당신!'

하고 소리치며 몸을 일으키며 화를 냈어.
하지만, 돌아선 그 형사의 눈을 보고, 나는 그에게서 풍기는 살기
가 느껴지면서 등골이 오싹해졌어.
그의 그 광기 어린 차가운 눈빛은 어디선가 자주 접했던 익숙한
두려움이었어.
그 형사에게 대해 화를 내려고 했던 나는, 그 형사의 그 무시무시
한 모습에 주춤할 수 밖에 없었어.
그 형사는 다시 한번 권총을 든 채, 나를 무지막지하게 때렸어.
나는 저항을 하려 했지만, 권총을 들고 있어서 그냥 맞을 수 밖에
없었어.
간신히 그 형사를 밀쳐 내고 정신을 차렸지만, 그 형사는 씩씩거
리며 총울 겨눈채 아직도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형사의 눈빛에 뭔가를 두려워 하는 것 같
은 표정이 들었어.
그러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치는 거야.

'이 개새끼야!
오늘은 니가 죽을 차례야!
내가 그렇게 앉아서 당할 줄 알았어!
이 살인마 새끼!!'

나는 그 형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단지 짐작할 수 있는 거라곤, 그 형사가 나를 살인범으로 알고 죽
이려고 한다는 거야. 전날 들은 것처럼 용의자만 보면, 이성을 잃
고 폭력을 행사하는 열혈 형사라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에는 황당한 생각마저 들더라.
나는 거의 미친 것 같은 그 형사에게 간신히 말했어.

'무슨 얘기예요?
난 죽이지 않았다니까요!!
도대체 무얼 가지고 이런 불법 행위를 하는 거예요!!'

내가 절규하듯이 소리쳤지만, 그 형사는 그 말을 무시하고 다시
나를 덮치듯이 다가왔어. 나는 다시 한번 나는 이번 살인과 아무
관계도 없다고 소리쳤어.
그 형사는 나를 다시 한번 공격하려다가, 발악하는 듯한 내 목소
리를 듣더니 자리에서 멈춰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어.
그러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내서 바닥에 던지면서 나를 보고 광기
어린 얼굴로 소리쳤어.

'이걸 보고도 그래! 이 새끼야!!
니가 두 명을 죽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나는 그 형사가 던진 것이 뭔가 봤어.
그것은 바로 전날 내 방에서 없어진, 그 잔혹 사진 자료들이었어.
그 중에 KillYou가 보낸 사진들이었어. 나는 더욱 혼란스러웠어.
도대체 이 사람이 왜 그렇게 흥분하는 것인지.. 이 사람이 어떻게
이 사진들을 가지고 있는지... 진짜 형사인지...
상황파악을 할 수가 없었어.
그 형사는 총을 들어 정말 나를 쏠 기세였어. 그리고는 내게 떨리
는 목소리로 물어봤어.

'죽기전에 솔직히 털어놔!
어떻게 우린지 알았어?
엉?'

더 황당해 지더라.
그 형사는 흥분해서 얼굴이 거의 시뻘개졌고, 권총을 든 손을 바
들바들 떨리기까지 했어. 언제라도 총알이 튀어나갈 것 같아, 나
도 모르게 온 몸이 덜덜 떨렸어.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얘기 하는.. 거예요...
나는.. 안..죽였...다니까요!'

그 형사는 권총을 내 목에 들어대고 다시 한번 물어봤어.
권총의 차가운 감촉은 정말 소름끼치더라..
그리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어.

'그러면 이 사진들은 어디서 구한거야!!
엉!!!'
'그것들..은.. 메일로...받은.,..거예요...'
'메일?
누구한테서?'
'KillYou라는 사라..람..으로부터요...'

KillYou라는 대답을 듣자, 갑자기 그 형사는 내 목에 들이댔던 권
총을 빼더니 놀란 표정을 짓더라.
그리고는 확인하듯이 묻더라.

'KillYou라고 했나?'
'그렇다니까요! KillYou라는 미친 놈이 보낸 거예요!!
이번 사건의 범인은 아마 KillYou라는 놈일 꺼예요!!!
그 놈이 보낸 사진대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그 형사의 분위기가 좀 바뀐 것을 알아채고 필사적으로 얘
기했어.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그 형사의 표정이 좀 묘하게 바뀌
었어. 그러더니 정말 의외의 질문을 하는 거야.

'그러면.. 혹시 너 Enjoy Killing과 관계 있어?'

이번에는 내가 황당해 지더라. Enjoy Killing이라는 것은 내가 운
영하던 그 잔혹 사진 site이름이었거든..
그 형사가 그걸 아는 것이 이상했어.
내가 그 site를 운영한다는 대답을 듣자, 갑자기 그 형사의 표정은
이상하게 일그러졌어, 나는 긴장된 상태에서 그 형사가 갑자기 그
렇게 이상해지는지 살펴봤어.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어.
그러더니, 그 형사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차가운
미소를 짓는거야!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어.
그 형사는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물어봤어.

'야! 너 정말 안 죽였어?'
'그렇다니까요!!
나는 단지 그 사진을 받았을뿐이라니까요!!'

내 대답을 듣자, 그 형사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는 거야.
그 웃음을 듣자, 나도 안심이 되더라. 그 형사가 오해를 푸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일 뿐이었어.
다음 순간 그 형사는 권총을 겨누며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내게
다가 왔어.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나는 겁이 와락 들더라.
그 형사의 미소 띤 얼굴을 보니, 이상할 정도로 소름이 끼치더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정말 무서웠어.
그가 권총을 겨눈채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
어.

'권총...내려...놓고...
뭐..를 원...하는..거예요?
말...좀 해봐요.....'

내가 겁에 떠는 것을 보자, 그 형사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어. 얼
마나 섬뜩한 미소인지, 그 웃음을 보니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더
라. 그러더니 나지막히 한마디 내뱉더라..

'그랬구나..
재미있는 우연이야..
니가 Enjoy Killing의 운영자라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어. 하지만, 그 사람의
모습에서 나를 어떻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어떻해든 해보려 했지만, 내 가슴을 겨누고 있는 권총 때문에 어
떻게 할 수 없었어.
그 사람은 다시 한번 권총을 내 머리에 겨누고, 기분나쁜 미소를
지은 채 얘기하는 것이었어. 난 그 얘기를 듣고 충격으로 몸을 가
눌 수 없었어.

'우리가 그 KillYou였거든..
니가 우리가 보낸 사진을 받은 놈이었구나..
하하!!!'

그러더니, 갑자기 권총으로 내 뒷통수를 내리쳤어.
머리가 충격으로 멍해지더니, 다리의 힘이 풀리며 자리에 쓰러졌
어.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 그 형사의 소름끼치는 웃는 모습이 보
였어. 그 순간 그 형사를 보고 내가 느꼈던 두려움의 익숙함의 이
유를 깨달았어.
그 형사의 얼굴에서 풍기는 음산함은 바로 내가 수많이 봐 왔던
싸이코 연쇄 살인자들의 미소에서 느꼈던 거야...
그 형사의 기분나쁜 미소가 시선에서 흐릿해지며, 주위는 어두워
졌어.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 형사의 입가에 흐
르는 이유모를 탐욕스런 미소였어....

갑자기 코에 역한 냄새가 나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어.
눈을 떠보니, 내 방이었어.
몸을 움직이려 하다가, 내 몸이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내 몸이 결박당한채 의자에 앉
아 있는 거야.
그 사실을 깨닫자 마자, 두려움이 몰려왔어.
그때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정신 차렸나...'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니, 그 형사가 기분 나쁜 미소를 띠고
나를 쏘아보고 있었어. 나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
했어. 몸을 뒤틀며 움직이려 했지만, 결박을 묶여 고개만 흔들 수
있었어.

'무슨 짓이예요!'

내 소리에 형사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어. 그 웃음은 지옥에서
나온 악마의 웃음처럼 음산했어.
그리고 말없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들어올렸어. 그 형사에 손에
는 날카로운 사냥칼이 들려있었어.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어.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어.
짧은 순간, 내가 이제까지 생각없이 봐오고 취급했던 잔혹사진들
이 떠올랐어. 산채로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사
방으로 피가 튀는 시체들....
그런 사진들이 실제의 공포로 느껴졌어.
움직일 수 없으니, 도와달라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어.
하지만, 덩그러니 메아리만 울릴 뿐이었어.
내가 비명 지르는 모습을 기분 나쁜 비웃음을 머금은 채로 바라
보던 그 형사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어.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을걸...
알다시피 입주자도 없잖아?
그리고 보면 세상에는 참 이상한 우연도 많아.
니놈이 Enjoy Killing의 운영자였다니..
언제가 그 운영자 놈을 잡아 손볼까 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네...
미안하네.
내가 결정적으로 착각을 한 것에 대해..
우리는 니 놈이 우리를 노리고 있는 줄 알았어,
그 싸이코 컴퓨터 프로그래머하고 그 멍청한 경비 놈도 니가
손 봤는줄 알았는데...
엉뚱한 놈 붙잡고 지랄한 셈이네...'
'도대체 무슨 얘기하는 거예요?
이거나 풀어줘요!
경찰이 무슨 짓 하는 거죠!!'
'이 아저씨 아직 아무 것도 눈치 못하고 있는 거 아냐?
나 네 말대로 경찰 맞지.
하지만, 지금은 퇴근하고 취미 생할을 즐기는 중이지..'

그 말과 함께 그 형사는 징그럽게 웃는 거야.
그 웃음을 보니, 소름이 쫙 끼치더라.
결국 그 처참한 시체를 발견된 그 두 사람은 이 형사 놈과 같이
그 여자를 난도질한 사진을 찍었다는 거야.
그럼 이 연쇄 살인은 정말 악귀의 복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형사가 그 끔찍한 사진들을 보낸
KillYou라는 생각을 하니, 그 놈이 나를 묶어놓고 어떤 짓을 할까
무서웠어.

'당신이 KillYou라면 그 사진들은?'

나는 조금이라도 말을 시켜, 시간을 끌 생각으로 그 놈에게 물어
보았어. 그 놈은 금방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 아닌지, 담배를 하
나 빼어 물더니 자랑스럽다는 듯이 얘기를 했어.

'어땠어? 그 사진들?
죽여줬지?
내가 생각해도 그 사진들은 작품이었어.
걸작! 마스터 피스!
우리도 그 작품을 만들어 놓고 감동했어.
벤허가 뭔가 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놈이 그런 말을 했다며..
신이여 우리가 진정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까?
바로 그런 기분이었어!'

그 형사 놈은 미친 놈처럼 지껼여댔어.
그 광기어린 눈빛을 보니 미친 놈 그 자체였어.
나는 계속해서 그 놈을 치켜세우면서 시간을 끌 생각을 했어.
의문도 풀고..

'그래요.
그 사진을 게시판에 올리니 사람들이 난리가 났어요.
다들 다음 사진을 기대하고, 어떤 천재가 그걸 만들었냐고 물어
보고 그랬어요,
정말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
니네 싸이트에 보내자고 한 것은 그 프로그래머 아이디어였지만,
그 사진을 만든 것은 거의 내가 한 일이었지.
그 여자를 우리 것으로 만든 것도 나였고, 그런 식으로 난도질하
자고 한 것도 내 아이디어였어.
경비 놈은 그냥 보고 즐기기만 했어.
소심한 놈.. 그렇게 될 줄 알았지..'

그 형사 놈은 좀만 구슬리면 자기 자랑하는데 정신이 팔릴 것 같
았어.

'내가 그런 사진을 많이 봤지만, 당신내들이 만든 작품이 최고
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들게 되었어요?'

질문을 던지면서, 나는 내 상황이 정말 황당하게 느껴졌어.
그런 미친놈 앞에 묶인채로, 기자가 무슨 예술가를 인터뷰하는 것
같았거든..
하지만 그 놈은 자기가 정말 어떤 위대한 예술가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나서 떠들어댔어.

'나도 내가 그런 재능이 있는지 몰랐어.
2년 ?나.. 그때 어떤 용의자 놈을 심문하다가 화가 나서 족쳤지.
처음에는 그저 위협하는 정도로 몇 대 때렸는데, 그 놈의 얼굴에
서 피가 튀자 흥분되기 시작하는 거야.
피와 함께 살점이 튀기고, 그 놈의 얼굴이 뭉게지는 것을 보니
쾌감도 느껴지는 거야.
그때까지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지..
정말 짜릿했어. 휴...'

거기까지 얘기하고 그 형사 놈은 그때의 느낌이 다시 떠오르는지
몸도 부르르 떨면서 얼굴도 상기대는 거야. 그리고 묻지도 않은
얘기도 시작하는 거야.

'그 쾌감을 찾기위해 나는 뭔가 대상을 찾아야 했어.
그래서 찾아간 것이 병원 시체실이었어.
거기는 생각보다 시체들고 나오기가 쉽거든.
몇번 시체를 가지고 나와 마음대로 난도질하고, 때리고,
잘라봤어. 재미있더구만...
그러다보니,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더라고.
사진을 찍었지.
찍어놓은 사진들을 들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봤어.
그 사진을 볼 때 마다, 온 몸이 쾌감이 휩쌓이는 것 같았어.
내가 만든 그 훌륭한 사진들을 혼자만 즐기기에는 아까웠어.
그래서 남몰래 인터넷에 올리고..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지. 그러다 같이 한번 해보자고 모인 것이 우리들이
었어. 마음에 드는 놈은 한 놈도 없었지만, 그래도 같이 하는 것
이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길래 같이 작업했지.
시체보다는 진짜 살아있는 사람을 가지고 즐기는 것이 더 좋다
는 것은 그 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어.
역시 죽은 것 보다는 팔팔한 놈들이 최고였어.
꿈틀거리며 싱싱한 피를 쏟아내고, 겁에 가득찬 그 얼굴들..
정말 한단계 높은 쾌감이었어.
한명씩 돌아가며 작품이 소재가 될 사람을 구해오기로 했어.
프로그래머 놈은 그래도 순서에 맞게 지켰는데, 그 경비 놈은 한
번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었어.
그래서 거의 내가 구했지.
그 여자는 경비 놈이 찍어놨지만, 아무 짓도 못하고 있던 년이
었어. 그걸 내가 착 채왔지.
그런데 그 년은 그때부터 좀 싹수가 이상했어.
처음에는 보통 놈들처럼 겁에 질려 정신을 못 차리더구만.
헌데, 칼로 몸을 그어대기 시작하자, 고개를 숙이고 모든 것을
체념하는 것 같더라. 우리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기절한 줄 알고
실망했어. 좀 비명을 지르고 무서워하는 모습을 봐야 더 흥분이
되거든..
그런데 갑자기 고개를 든 그년의 얼굴은 예상밖이었어.
무서워하기는커녕, 우리 모두를 싸늘하게 노려보는 거야.
눈빛으로는 우리를 죽일 듯 했어.
그 살기 도는 눈빛에 우리는 잠시 멈칫했어.
그것도 잠시뿐이었고, 우리는 쾌감을 쫓아 그년을 난도질했어.
그년은 끝까지 저주하듯이 우리를 노려봤어. 하지만 그럴수록 좀
색다른 쾌감이 느껴졌어. 아마 그년이 보통 년이 아니어서 그런
훌륭한 작품이 나온 걸 꺼야.
앞으로도 그런 년 구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너 이거 알아? 그년을 죽을 때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누군가가 천장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었어.
좀 으시시하기는 했지만, 우리를 작품을 보여준다는 기분도 들어
서 흐믓하기도 했지..'

그 얘기를 듣자, 나는 한승이 형과 같이 본 사진이 떠올라 머리끝
이 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피를 뒤집어 쓴 것 같은 그 여자
의 끔찍한 모습이 생각나자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어.
하지만 더하게 느껴진 것은 그런 기분나쁜 시선을 느꼈지만, 더
쾌감을 느꼈다는 그 형사놈 패거리였어.
나는 그 형사놈의 눈치를 살피면서 몇가지 더 물어보았어.

'그러면 그 시체들은 다 어떻게 처리했어요.
한 두구도 아니고, 수십 구의 시체인데 어떻게 감췄어요?
한강에 버렸어요?'

형사는 나를 가소롭다는 보면서 얘기했어.

'이봐 이봐..
그래도 내가 명색이 경찰인데, 그런 식으로 멍청하게 처리
하겠어?
이 동네가 좋은 게 뭔줄 알아?
개발이 한참 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공사로 붐비지.
사방에 공사장도 널려있고..
그냥 콘크리트에 집어넣어버리면 끝이야.
몇 십년 후에 그 아파트나 건물들을 허물기 전에는 아무도 못
찾지. 이름하여 완전 범죄지.. 안 그래?'

그 놈이 그 모든 것을 그렇게 자세히 얘기해 주자, 나는 겁이 나
기 시작했어. 자기 범죄 사실을 그렇게 다 털어 놨다는 것은 나를
살려둘 생각이 없다는 것같이 느껴졌어.
점점 절박해졌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떻해든 시간을 끌어야만 했어.

'그럼 그 동료분들을 죽인 살인범은 누구예요?'

그 질문을 하는 순간, 나는 내 실수를 깨달았다.
그 놈은 내 질문을 듣더니, 자만심 가득 찼던 얼굴이 순식간에 어
두워지더니 뭔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이었어.
흥분되었는지 말을 더듬기까지 했어.

'그건... 나도...모르겠어...
난... 넌..줄..알았는데..
그 사진과 똑같이 살인을 저지른 것을 보니, 범인은 그 사진을
본 놈이 확실해.. 너를 통해 그 사진을 본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도 우리들 관계를 아는 놈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거든...
그런데 너는 살인 현장마다 나타났고, 거기다 우리의 작품을 가
지고 있었으니.. 아무리 뭐라고 하더라도 내 생각에는 너야!'
'몇번을 말해야 나를 믿어주겠어요?
나는 아니라니까요!
설사 내가 사진을 봤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당신들의 관계들을
알 수 있는냐 말이예요!
난 아니예요!'

내 항변에 그 놈은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어. 자기도 생각해보
니, 범인이 나라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나 봐.
갑자기, 그 형사 놈은 고개를 들더니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어.
그리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중엉거렸어.

'사진을 알고있고, 우리 관계를 아는 놈이 범인이라면...
설마 그 분이....'

거기까지 중얼거리던 형사는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려해졌어.
그런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던 그 형사 놈도 범인에 대해서는 무
서워하는 것 같았어. 뭔가 범인에 대해 의심이 가는 것이 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어.
나는 눈치를 보면서, 온 힘을 다해 결박을 풀고 있었어. 다행히
오른 손을 묶은 결박이 좀 헐렁해 지기 시작했어.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그 형사 놈이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한
채 갑자기 고개를 들었어.
나는 그 놈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어.
그 놈의 눈에는 다시 끔찍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고,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어.

'이제 남은 일을 할 시간이야.
Party Time이지...
어서 끝내고, 진짜 살인범을 찾아가야 겠어.
내가 당하기 전에..
너도 자랑스러울 거야.. 내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이..'

그러더니 탐욕스런 표정을 하고, 날카롭게 빛나는 사냥칼을 드는
거야.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고 결박을 풀려고 했지만, 줄만
헐거워질 뿐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어.
그 형사놈은 나의 필사적인 움직임을 즐기듯이 바라보면서 소름
끼치는 말을 했어.

'어떻게 잘라 줄까?
이번 작품의 주제를 피로 할까 내장으로 할까 고민이야..
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지..
각오는 되었겠지.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건이 걸리거든..
그 동안 숨이 끊어지면 재미가 없거든...
아무리 괴로워도 자살 같은 것은 안 해주었으면 해..'

그 말과 함께, 그 형사 놈은 광기어린 눈을 빛내며 칼을 번쩍 들
었어. 나는 이제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였어.
나는 그 형사놈 뒷 편에서 뭔가가 언뜻 보였어.
그 무엇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내 눈을 믿을 수 없었어.
그것이 뭔가를 깨닫는 순간 죽음의 공포보다, 그것의 모습이 더
무서웠어.
형사 뒤에 서 있는 것은 나를 그렇게 따라다니며 이 악몽으로 몰
아넣은 사진 속의 그 여자였어.
온 몸이 시뻘건 피를 뒤집어 쓴 채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어.
더 무서웠던 것은 그 여자의 섬뜩한 눈빛이었어.
그 눈빛으로 우리쪽을 무시무시하게 노려보고 있는 거야.
형사 놈은 나의 공포에 질린 눈이, 자기 때문인줄 아는지 더욱 황
홀해하는 표정을 하고 손에 든 칼을 높이 치켜드는 거야.
나는 공포로 떨어지지 입을 간신히 땠어

'저 뒤에... 그 여자가.....'

그 형사놈은 내가 무슨 얘기 하는지 처음에는 잘 못 알아 듣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자기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뒤로
획돌아보았어.
그리고는 그 여자의 섬뜩한 모습을 보고, '악!' 하는 비명을 질렀
어.
그 여자는 순간적으로 그 형사놈 앞으로 다가와 뭔가로 목을 갈
랐어. 순식간에 형사의 목이 갈라지고 피가 분수처럼 튀기 시작했
어. 형사는 피가 나오는 자기 목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그 여자로
부터 필사적으로 멀어지려고 비틀거리며 움직였어.
그 순간 나는 그 형사의 눈과 마주쳤어.
나는 아직도 극도의 공포에 질린 형사 놈의 눈빛을 평생 잊을 수
없을거야.
그 형사의 비틀거림도 잠시뿐, 그 여자가 앞에 서자 뭔가에 홀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어.
그 여자는 형사의 손에서 그 사냥칼을 ?더니 저쪽 어두운 구속
쪽으로 형사를 이끌고 사라졌어.
잠시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흘렀어.
나는 너무 충격적인 모습의 연속으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
어. 다음 순간, '푹! 푹!'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계속해서 수십번
들리는 거야.
그 소리는 무슨 고깃덩이를 칼질하는 듯 한 소리였어.
나는 그 소리만 들고 있어도,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며 움직일
수 없었어. 하지만, 그때는 정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다음 차례는 나일지도 몰랐기 때문이야.
온 몸을 비틀며 결박을 풀려고 했어. 느슨해진 결박사이로 오른
손이 자유스러워 졌어.
오른 손으로 나머지 결박을 풀고 있는데, 그 '퍽퍽'하는 소리가 멈
추었어.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시선을 그 벽쪽으로 향했어.
이상할 정도로 어두워졌던 그 구석자리는 다시 밝아져 있더라고..
그런데, 거기에 있는 것을 보고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어.
거기에는 그 형사놈이 몸에 수십개의 칼자국이 난 채 피투성이가
된채 혀를 빼물고 죽어 있는 거야.
쾡한 눈에는 지옥을 본 것처럼 두려움이 느껴졌어.
세 번째 사진과 똑같은 모습이었어.
결박을 풀다 만 나는, 갑자기 사라진 그 여자의 악귀가 어디있는
지 주위를 둘러봤어.
그 여자는 형사의 참혹한 시체를 남겨두고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었어. 정말 감쪽같이 없어졌어.
나는 딴 생각 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결박을 풀었어.
그러다, 나를 향해 뚫어지게 쏟아지는 섬뜩한 시선이 느껴졌어.
그 느낌만으로 나는 뼈 속 깊은 곳까지 두려움이 느껴졌어.
나는 다리쪽 결박을 풀고 있는 것을 멈추고, 그 시선이 느껴지는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어.
거기에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공포로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
천장에는 한승이 형과 봤던 사진 속과 똑같은 끔직한 모습으로
그 여자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거야...






<계속>

..너무나 무서웠어.
그 여자는 움직임도 없이 원한 서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
어. 하지만 그 시선으로도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공포를 느꼈어.
그 섬뜩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어. 단지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어.
천장에 떠 있는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 여자는 천천히 내
쪽으로 내려오는 거야.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지만, 몸
이 말을 안 들었어. 아직도 내가 결박에서 묶여있는 것처럼 느껴
졌어.
그 여자의 끔찍한 얼굴은 점점 내게로 다가왔고, 나는 정말 미칠
것 같았어. 거의 내 얼굴에 닿을 것만큼 다가왔을 때, 간신히 의
자에서 일어날 수 있었어.
나는 미친 듯이 문쪽으로 달려갔어.
하지만 문은 왠일인지 꿈쩍도 안하는 거야. 잠겨있지도 않은데 열
리지 않는 거야!
뒤를 돌아보니, 그 여자가 그 형사놈을 갈기갈기 ?을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거야.
그 눈은 다음 차례는 바로 너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
그 여자 옆에는 온 몸에 난 수십개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형사
의 시체가 정말 글자 그대로 참혹하게 서 있었어.
나는 그 여자를 보고 미친 듯이 소리쳤어.

'나는 아니야! 나는 당신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단 말야!!
나를 가만놔줘!!!'

정말 나도 미치는 줄 알았어.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그 여자는 미동도 안하고 나에게 똑같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어.
그 순간 갑자기, 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일이 있었어.
그 여자가 처음부터 내 주변을 맴돈 이유가 뭘까...
그리고는 한승이 형에 그 여자가 나온 사진들을 보면서 내게 해
주었던 얘기가 생각났어.

'너 왜 심령사진들이라는 것이 생기는 줄 알아?
영혼이나 귀신같은 것은 무슨 매개체에 달라붙는다고 하더라.
사진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
쉽게 말하면, 사진에 찍힌 그 귀신은 그 사진 주변에서 맴도는
거야. 그래서 귀신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항상 그런 귀신들을 목
격하거나, 악마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해를 입기도 한다고 하잖
아. 마치 무서운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공포 소설을 쓰는
사람 주변에 귀신이 모여든다는 얘기처럼..
예전에 내 가르치던 교수님 동생이 신부였는데, 그 신부님을 찍
은 사진에 악마의 눈동자들이 보였대. 그리고 다음날 이유도 없
이 죽었고.. 그런 불가사이한 일들은 정말 알게 모르게 발생하고
있거든...
그런 귀신이나 악귀가 찍힌 사진을 보면, 수집하거나 보관하기
보다는 그냥 태워버리는 것이 최고야.
이런 얘기하는 것은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도 직업 상 그런사
진을 보게 되면 일만 마치고 없애버려. 무섭잖아?
하긴, 일한이가 가져온 그 섬뜩했던 스티커 사진들은 자기 스스
로 불타서 없어졌지만...
아마 네가 가져온 그 사진들도 그 여자의 원혼을 끌어들이는
작용을 하는지도 몰라..'

한승이 형의 얘기가 생각남에 동시에, 그 형사놈이 바닥에 내던진
그 여자에 관한 엽기적인 사진들이 눈에 띠었어.
어떻해서던지, 내가 여기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그 사진을 없애
야 할 것 같았어. 말도 안되는 생각같지만, 그 때는 정말 절박했
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무시무시한 곳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
거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꺼냈어.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그 사진들을 들어 불을 붙이려 했어.
그 여자 원혼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채 천천히 내게 다
가왔어. 피 투성이가 되어있는 한 손에는 그 형사를 난도질 한 날
카로운 사냥칼이 그 형사의 피를 뚝뚝 떨어트리고 있는 거야.
그 모습을 보니 무서워서 사진들과 라이터를 든 손이 덜덜 떨리
는 거야. t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 라이터를 킬 수도 없었어.
몇번을 시도했지만, 라이터는 불꽃만 튈 뿐 불은 켜지지 않았어.
그 악귀는 점점 내게 다가왔고, 당장이라도 나의 목을 딸 기세였
어. 나는 그 여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불을 붙이려니 더 안
되는 거야.
그 여자는 손 뻗으면 닿을 정도로 다가 왔어.
그 끔찍한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보니, 차마 무서워서 제대로 볼
수 가 없을 정도였어.
우선 머리에서 발끝까지 새빨간 피가 흐리고 있고, 빨간 피를 뒤
집어쓴 그 얼굴에 그 원망이 서린 섬뜩한 눈빛은 정말 똑바로 쳐
다보면 안될 것 같이 무시무시했어.
너무 무서워지니까, 그냥 눈을 감게 되더라.
더 이상 그 섬뜩한 모습을 보다간 무서워서 라이터를 못 켤 것
같았어, 눈을 감으니까 내 심장 고동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거
야.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하고 라이터를 켜봤어.
눈을 떠보니 이번에는 불꽃이 솟아올랐어.
불꽃너머로 그 여자 원귀의 모습이 보였어.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라이터에 갖다댔어.
그 사진들은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했어. 나는 손이 뜨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활활 타오르는 사진을 들고 있었어.
그리고는 그 불타는 사진을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 악귀에게 던
졌어.
그런데 이게 왠 일이니.
사진과 함께 그 여자에게 불이 옮겨 붙어 삽시간에 활활타는 거
야. 그 여자 원혼의 몸에 기름이라도 발라져 있는 것처럼 불 붙는
거야. 나는 그 광경에 충격을 받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어.
그런데 그 때 내 눈은 불속에서 사그러지는 사진과 함께 서 있는
그 여자의 눈과 마주쳤어.
아마 평생 그 모습은 잊을 수 없을 거야.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도 아무런 동요 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기만
하는 거야. 그 눈에 한없는 분노와 증오를 담고서...
그리고는 불꽃과 함께 그 여자 모습은 사라졌어.
그렇게 활활 타던 불은 언제 그랬다는 듯이 말끔히 사라졌어.
그 여자도 없어졌고..
나는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어.
내 건너편에는 자기 죄값을 받은 듯이 참혹하게 죽어있는 그 형
사의 시체만 덩그러니 서 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더라.. 그 때는...
내 발치에는 그 여자가 들고 있든 피묻은 사냥칼이 놓여있었어.
나도 모르게 그 칼을 들었어.
한참을 멍하게 그 피묻은 칼을 보고 있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나는 그 칼을 보면서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던 같아. 그 칼로 내 목을 그어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고..
그 경험이 내게는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나 봐...
하긴 너희들도 만약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었을 거
야.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내가 목격한 이 사건들을 과연 사람들이나 경찰이 믿어줄까 의문
이었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거든.. 사실 나라도 믿지 않
을테니...
얼마를 우두커니 앉아 있었는지 기억이 안나..
단지 기억나는 것은 창밖으로 해가 뜨는 것이 보였다는 거야.
밤을 샌 것이지.
햇살이 얼굴에 비치자,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는 아무 생각없이 방을 나섰어.
그리고 하루종일 길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녔어. 그런데 돌
아다니던 모든 사람들이 무섭게 보이는 거야.
다들 가슴 속 깊은 곳에 그 형사 놈 같은 잔혹하고 악마적인 본
성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 나 역시 그들과 똑같아 보였
고... 모든 걸 잊고 싶었어. 정말...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너희들이 떠올랐어.
너희들이라면 내 얘기를 믿어주진 않아도 들어줄 것 같았어.
그래서 너희들에게 만나자고 한거야.
그게 어제 일이야..."

인석이는 얘기를 마치고 목이 마르다는 듯이 맥주를 들이켰다. 나
와 성준이는 충격에 멍해있었다.
나는 목쉰 목소리로 인석이에게 물어봤어.

"그럼 넌 어제 이후로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거야"

인석이는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을 하며 힘없이 대답했어.

"그래... 어제 아침에 뛰쳐나온 후 뭐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아무
것도 몰라. 한승이 형에게는 한번 전화를 해봤지만, 밖에 나갔는
지 전화를 안 받더라..."

성준이는 못 믿겠다는 어조로 인석이에게 얘기했다.

"그런데.. 난 좀 못믿겠어.
왜냐하면 그 정도 엽기적인 연쇄 살인사건이 정말 일어났다면,
신문이나 방송에 난리가 났을텐데, 거기에 대해선 한 줄도 안 났
거든..
그거 좀 이상하지 않니?"

성준의 말을 들으니, 나도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 인석이
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사건도 보통 큰 사건이 아닌데, 그렇게
잠잠한 것이었다.
인석이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그것은 나도 이상했어.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방송이나
신문에 아무 얘기도 없는 거야.
안 그래도 한승이 형도 그 얘기를 하는 거야.
그런데 솔직히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본 것은 정말 사실이라는 거야.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어."

인석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심정적으로 인석이를
믿고 싶었다.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도 있고, 인석이가
이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할 놈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황당해서 믿기가 힘들었다.
실제로 그런 참혹한 사진들을 올려놓은 사이트들이 있다는 것을
들었고, 일부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이 그런 사이트를 찾아 다닌다
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진들과 얘기들은 전부 먼나라 얘
기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정말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얘기처럼 들렸다.
성준이는 표정으로 봐서 인석이 말을 안 믿는 것 처럼 보였다.
인석이는 그런 우리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체념 조로 얘기했다.

"휴... 너희들도 잘 믿지 않는 구나..
하긴 나라도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잘 믿지 않았을 거야.
그래도 고맙다.
너희들에게 다 얘기하고 나니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인석이의 초?한 얼굴을 보니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걱정도 되었다.

"그러면 이제 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니?
그래도 경찰에 찾아가 니가 목격한 얘기를 해 줘야 할거 아냐.
안 그러다간 정말 살인범으로 몰리겠다.
지금 당장이라도 경찰에 가서 믿든 안 믿든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인석이는 내 말을 듣고 땅이 꺼질듯한 한 숨을 내쉬었다.

"네가 경찰이면 이 말을 믿어 주겠니?
사진 속의 귀신이 나와 사람을 죽이고, 형사까지 죽였다는..
휴...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내가 경찰을 찾아갈 필요가 없겠다.
저기 나를 데리러 온 것 같네.."

인석이는 문가쪽을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문쪽에는 인석이가 말한 것처럼 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우리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인석이는 도망칠 생각도 없는지, 그냥 앉아서 맥주를 들이켰다.
그 사람들은 우리 테이블을 둘러쌓더니, 인석이를 보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무슨 이유인지, 인석이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조인석씨죠?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같이 가시죠.
이유는 아시죠?"

인석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혈질인 성준은 그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항의조로 경찰
에 얘기했다.

"아니 무슨 이유로 이 친구를 연행하는 거죠?
체포영장이라도 가져온 거예요?"

형사중에 한 사람이 성준의 질문에 품에서 뭔가를 꺼내며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여기 체포영장입니다.
조인석 씨는 김철수, 장석원, 박지석의 살인 용의자로 검거되는
것입니다. 자, 수갑을 차시죠."

인석이는 정말 범인인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 없이 수갑을
찼다. 그리고는 우리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형사들에게 끌려갔다.
나와 성준이는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그 일에 대해 멍하니 보
고만 있었다.
술집을 나가기 직전, 인석이는 우리를 돌아다봤다.
인석이의 눈은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눈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왠일인지 인석의 무죄를 확신했다.
성준은 성이 안 차는지, 아까 체포영장을 들이대던 그 형사를 잡
고 따져 물었다.

"도대체 무슨 증거가 있는 거예요?
저 친구가 살인을 했다는!"

그 형사는 기가 차다는 듯이 우리를 돌아보더니, 싸늘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증거가 있냐고요?
이봐요.
당신 친구는 살인현장에 온갖 증거를 남겼소.
마치 내가 범인이니 잡아가시오 하는 것 같았소.
자세한 것은 나중에 법정에서 들어보세요.
아마 사형선고 받을거요.
세상에 사람을 그렇게 죽이다니...
그것도 경찰까지..."

그렇게 말해놓고는 그 형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이 휙 돌아서 멍하니 있는 우리를 남겨두고 술집을 나갔다.
나와 성준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
다. 성준이는 내게 물어봤다.

"그 자식, 정말이었을까?"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인석이 그 자식이 살인을 저질렀을 리가 있냐?"

"그래도....
그 자식 좀 이상해 보였잖아?
그런 사진들 취급하는 것 봐도..."

성준이는 인석이가 무죄라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나도 겉으로는 인석이가 무죄라도 얘기했지만, 상식적으로 귀신이
그 사람들을 다 죽였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내가 이 정도니, 경찰이 믿어줄리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한승이 형에게 전화를 했다.
인석이 얘기를 꺼내자, 한승이 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충격적
인 얘기를 해주었다.

"인석이랑 전화하다가 갑자기 끊긴 이후로 연락이 안되더라.
걱정했는데... 결국은 그렇게 되었구나..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인석이가 맡긴 사진들은 진짜였어.
그 여자 모양의 괴기한 현상도 정말로 나타났어.
그리고 인석이에게 얘기해 줄 것이 있었는데...
인석이 부탁대로, 거울에 비친 그 얼굴 주변을 더욱 확대해 봤
어. 인석이 추측이 들어맞었어.
수십배 확대하고 선명하게 하니, 거울에 비친 것이 그 시체의 얼
굴 뿐만 아니라, 다른 것이 나타났어.
바로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얼굴이지.
카메라에 가려져 전체 얼굴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얼굴의 부분만
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있겠더라...."

한승이가 얘기해준 범인의 정체는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정말 믿기지 않았다.
나는 멍한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한승이 형은 필요하다면 법정에 출두해 증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승이 형의 증언이 인석이에게 얼마나 도움일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인석이가 그런 참혹한 사진에 광
적인 흥미를 가진 사람으로 비칠 위험도 있는데다가, 아무리 귀신
같은 것이 보인다하더라도 판사가 그것을 조작되지 않는 실제 사
진으로 받아들이지도 의문이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보였다. 더구나 인석이가 잡혀가는 모습을 보
니, 스스로가 무죄를 항변하는 것을 포기한 사람으로 보여 가망은
더욱 없어보였다.
자리에 돌아와 보니, 성준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연신 담배를 태워
댔다. 그 자식 표정도 밝지 않았다.

"야, 일한아, 난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자식 좀 이상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겠어?
귀신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고...
너 전화하는 동안, 인석이가 했던 얘기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대충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었어.
우선 범인이 인석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인석이는 그런 사진을 취급하다, 그런 사진에 대해 병적으로 집
착하게 되었어. 그러다가 살인을 하게 되었어.
그 대상이 KillYou가 보내왔다고 얘기한 사진 속의 여자야.
그러니깐 애초부터 KillYou라는 놈은 없었던 거야.
인석이 혼자 살인하고 사진을 찍은 것이지. 공범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어떤 이유에선가 그 같은 층에 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를 죽였어. 자기가 만든 두 번째 작품이지.
그렇다면 왜 이미 자기가 만든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찍냐고?
그렇게 이해해보면 돼. 원래 예술가나 뭔가 만드는 사람들은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똑같이 생긴 것을 여러번에 걸쳐 만들
잖아.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이 만들어질 때까지..
인석이 그 놈도 그런 심리상태였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다가 경비 아저씨가 인석이에게 뭔가 석연치 않는 점을 발
견했을 거야. 인석이 얘기를 들어봐도, 그 경비 아저씨와 같이
시체를 목격했다고 했잖아. 그 ? 뭔가 의심받을 짓이나 물건이
경비 눈에 띠었을거야.
그러다가 그 경비가 경찰에 심문받는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껴
살해한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형사야.
인석이 말에 의하면 그 형사는 글자 그대로 살인범을 극도로 싫
어하는 사람이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형사는 유력한 살인 용
자로 생각되는 인석이를 가만 놨두었겠니.
몇대 때리고 윽발질렀겠지.
그러니 그 형사가 자기를 의심한다고 생각한 인석이가 4번째 살
인을 저지른 거고...
어때? 이정도면 그럴듯한 추리아니냐?"

나는 성준의 말을 듣고 내심 놀랐다. 솔직히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설마하며 부정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면, 인석이가 봤다던 그 여자 원귀는 어떻게 된거야?"

"그건... 사람을 그렇게 죽였으니 일말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거 아니니? 그 가책에 시달리다 환각증세를 본 것일 수
도 있잖아.
아니면, 그 귀신을 목격한 얘기는 진짜일 수도 있고..
그리고 한승이 형의 사진 역시 이렇게 생각하면 답을 찾을 수 있어.
인석이가 그 여자를 죽여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거기서 이상한
것을 발견한 거야. 그래서 한승이 형에게 분석을 의뢰한 것일 거야.
생각해봐.
자기가 죽인 사람의 사진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면 얼마나 겁이
나겠냐? 그걸 알아보려고 맡긴 거 아닐까?"

성준이의 논리는 한편으로는 황당한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타당해 보였다.
나는 성준이와 헤어지면서 한마디 했다.

"나도 솔직히 인석이가 그런 짓을 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어.
그래도 친구인데, 한번 알아볼 생각이다.
우리가 모르는 진실에 대해.
만약 인석이가 정말 무죄라면, 내가 진실을 밝히면 자연히
인석이는 풀려날 것 아니니..."

며칠 동안 잡혀가는 인석이 얼굴이 계속 머리속에 감돌아, 아무일
도 할 수가 없었다.
인석이는 정식으로 살인범으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나는 혹시나 하고 인석이 변호를 맡은 변호사를 찾아갔다.
유능해 보이는 변호사였지만, 인석이에 대해서는 별로 자신이 없
어 보였다.

"저도 간신히 인석씨에게 모든 얘기를 들었습니다.
솔직히 믿을 수 없더군요.
하지만, 변호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봤습니다.
우선 한승씨라는 사진 작가에게서 받은 그 사진 속 여자의 신원
을 파악해 봤습니다.
간신히 찾아내긴 했지만, 그리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종 신고가 되있는 여자 였습니다.
인석씨가 살던 오피스텔 3층에 입주해 있던 김주영이라는 여자
였습니다. 소설가라고 하더군요. 2개월전에 실종 신고를 받았지
만, 아직 못 찾고 있답니다.
그렇지만, 시체라도 발견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에
서는 법정에서 아무 것도 증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여자의 종적을 찾고 있지만, 가망 없습니다.
아, 그 여자 쌍둥이 동생이 있던데, 그 동생 말로는 김주영이라
는 여자는 소설 쓴다고 가끔씩 연락도 없고 사라진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실종신고는 해 놨지만, 곧 돌아올 것이라며 걱정도
않하고 있더라고요..
인석씨 말대로 그 지역에는 병원에서 시체가 없어지고, 실종자들
이 급증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 사건들이 이 살인사건과 연관있
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증명할 수 있더라도,
잘못하면 인석씨가 그 죄까지 뒤집어 쓸 수도 있을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인석씨 말만 듣고, 그 지역에 세워진 수십개의 빌딩들
을 모조리 부셔서 그 시체들을 찾을 수도 없는거고...
또 아무리 찾아봐도, 그 살해당한 세 명이 서로 모여서 그런 끔
찍한 일을 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도 없고요..
힘든 사건이네요...
사진 작가가 보내준 그 사진들을 봤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네
요. 그냥 사진이면 모를까,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한승씨
가 컴퓨터로 통해 걸러낸 것이라 법정에서 증거로 체택될지 의
문이고요... 체택된다 하더라도, 판사가 그 황당한 얘기를 믿어줄
리 없습니다. 그러니 한승씨가 밝혀냈다는 범인의 모습 역시 공
개했다가는 사건을 악화시키고 무고죄까지 뒤집어 쓸 수
있습니다.
거기다 검찰이 제시할 증거들이 너무 맹백합니다.
살해 현장마다 인석씨의 지문이 발견?고, 가지고 있던 사진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시체들이 발견되었으니까요...
더욱 결정적인 것은 죽은 박형사의 증언과 박형사를 살해될 때
쓰인 것으로 보이는 훙기인 칼에서 인석씨의 지문이 발견되었습
니다.
솔직히 말해 이 사건은 가망이 없습니다.
인석씨가 사형을 면하기 위해서는 살인을 인정하고, 정신감정을
받고 금치산자 판정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인석씨 본인이 강력하게 거절하고 있어서요.
친구 분이 한번 설득해 보세요.
사실 제 정신으로 그런 살인은 못하거든요.
잘만하면 정신질환자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네요...
죄송합니다.."

변호사의 얘기를 듣고 돌아서는 발걸음을 무거웠다.
나 역시 이제는 인석이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고 있었다.
면회로 만난 인석이는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였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여자의 저주를 받은 것 같아.
내가 그런 끔찍한 사진들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한 것에 대한 천
벌이지. 아냐, 어떻게 보면, 나도 그런 사진들을 보고 쾌감을 느
꼈는지도 몰라..
이제 다 정리했어.
어떻게 보면, 별거 안되는 것 같은 잘못이었지만, 그 사진 속의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 역시 천벌받아 마땅할 놈이지.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공포속에 죽어간 사람들의 사진들을 보
고 즐거워했으니...
죄값을 받아야지..
하지만, 일한아 나는 안 죽였어...."

인석이를 면회하고 돌아오던 길 내내 인석이를 구할 수 있는 방
법을 생각해보았다. 변호사 말대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인석이는
영락없는 잔인한 살인자였다.
힘없이 집에 들어오다가, 길거리에 날라 다니는 신문지들이 눈에
띠었다. 그때 갑자기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이 생각났다.
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 인석이 말에 의하면 그 형
사에 의해 '그 분'이라고 불리던 인물, 그리고 한승이 형이 사진을
통해 범인이라고 한 사람...
그 사람이 진짜 범인이라면, 그 사람만이 인석이를 구해낼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을 밝해낼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쉽게 다가갈 수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사람을 통해 인석이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을
생각해 봤다.
밤늦게까지 한참을 생각해 보는데, 생각없이 틀어본 TV에서 정말
충격적인 뉴스가 들렸다.

"....오늘 오후 서울시 **동에 신축건물이 집중호우로 붕괴되면서
수십 구의 시체가 발견되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경찰에 의하면 발견된 시체들이 모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홰손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살해된 후 유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체들과 함께 잔혹한 살인 장면을
찍은 사진들을 모아둔 World Most Scary Pictures이라는 잡지
가 발견되어 더욱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 시체들이 바로 인석이가 얘기했던 그 놈들이 유기했다던 희생
자들 같았다. 하지만 나는 TV에서 보여준 그 잡지에서 눈일 땔
수가 없었다. 그 잡지는 내가 인석이 이사를 도와줄 때 그 집에서
우연히 본 그 잡지였던 것이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럼 진짜 인석이가....
하지만 곧이어 나온 긴급하게 방송된 뉴스 속보는 나에게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오늘 밤 현직 경찰청장이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최두석 경찰청장은 오늘 밤 자택에서 상체와 하체가 잘려나간
채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경찰청장의 시체는 손에 잔혹한 살해 장면을
찍은 사진을 든 채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경찰청장이 인석이의 결백을 밝혀줄지도 모르는 제 4의
범인이었다. 한승이 형이 발견한 것도 경찰청장의 얼굴이었고, 그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도 그 ?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경찰청장이 살해당한 것이다.
이제 인석이를 사형에서 구해줄 방법은 이 세상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내게는 풀 수 없는 또 하나의 의문이 남게 되었다.
경찰청장을 또 그런 식으로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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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여행

믿을 수 없다면, 믿지마.
하지만, 이건 정말 있었던 일이야....





휴...
아직도 가끔씩 그 무시무시했던 모습이 떠올라 잠을 못 이루곤 한다.
그래도 너희들도 자세한 얘기는 잘 모를거야.
대학생 때 전국 무전 여행때 겪은 일..
1학년 겨울 방학때였으니, 벌써 10년이 된 이야기 구나..
하지만, 아직도 가끔 그때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어.
너도 나도 유럽배낭 여행이라고 떠날 때, 나는 우선 우리나라 전국을 돌아다
니고 싶었어. 그것도 구시대의 낭만이라는 무전 여행으로..
우리나라를 먼저 속속들이 알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서...
그래서 마음 맞는 과 친구 두 놈과 무작정 여행을 떠났어.
우리는 한 사람당 비상금 5만원씩만 들고 무모한 겨울 여행을 떠났어. 모자라
는 돈은 막일이라도 해서 벌어채우자면서.
시작은 즐거웠고, 자신에 찼지..
그때는 몰랐어, 얼마나 어리석고 악몽같은 여행이 될지는...
유럽 배낭 여행에는 기차를 이용한다면, 우리 나라 전역을 돌아다니는데는 시
외버스라는 훌륭한 교통수단이 있어.
니네들이 유레일 패스로 유럽을 횡단할 때, 나는 시외버스 시간표 책을 가지
고 계획을 짜서 전국을 돌아다녔어. 왠만한 동네도 시외버스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거든.. 어쩔 때는 지나가는 차 얻어 타기도 했어.
며칠을 그런 식으로 다니니 완전히 거지꼴 다되었더라.
아무 재주도 없는 우리들이 완전 타향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어. 그것도 하루, 이틀 일하고 떠난다고 하니 누가 우리에게 일을 맡기
겠니? 더구나 겨울이어서 농촌에 일도 없더라.
그때는 무슨 깡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여하튼 돈 벌려고 했지만, 일이 없는거야.
간신히 얻은 하루벌이가 바로 시체 염하는 일이었어. 벌이는 짭짤했지만 할
일은 안돼더라. 무섭기도 하고.. 하루일치고는 생각보다 많은 돈을 받았지만,
그 찝찝한 기분을 잊으려고 술마시다가 하루밤에 그 돈을 다썼지.
그런 식으로 여행을 했어.
서해부터 돌다가 한 열흘쯤 지났을까..
어느새 돈은 다 떨어지고, 글자 그대로 빌어먹는 여행을 시작했어.
처음에는 흥미 있는 고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힘든 고행이 되었어.
춥고, 배고프고, 잘때도 없고...
며칠이 지나자, 우리는 지칠대로 지쳤고 겨울이라 잠자리도 마땅치 않아 결국
지리산까지 도착했다가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그때 우리는 지리산 구석의 어느 작은 산마을에 있었어.
우선 서울로 가는 버스가 있는 곳으로 나와야 했지. 우리는 그 마을에서 일
도와주고 받은 몇 푼으로 겨우 버스비를 마련했어..
우리는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싣고, 이 고생에서 벗어나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도
착하길 바랬어. 추위에 떨다 따뜻한 버스에 타니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는 흔
들림에도 노곤함을 느끼고, 잠이 들었어.
얼만큼 잤는지,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서 버스 밖을 내다보니, 읍내가 아
닌 더 깊은 산속이었어.
주위는 어두컴컴해지려고 했고, 우리를 제외하고 두세명 밖에 되지 않던 승객
들도 다 내리는 거야.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난생처음 들어본 전라북도 산골 마을이래.
우리가 자던 사이에 읍내를 거쳐 엉뚱한 곳으로 와버린 거야.
이 버스는 막차이며, 더 깊은 마을에 들어가 하룻밤을 지내고 나온다는 거야.
황당하더라고.. 우리는 거기서 내리기로 했어.
밤이 되기 전에 일 도와줄 곳을 구해, 하룻밤 지낼 곳과 나오는 버스비를 구
하기로 했지.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우리는 생각을 잘못했다는 것을
느꼈어.
살을 에는 듯한 산바람이 불어오고, 온톤 사방은 산밖에 보이지 않는 거야.
시간은 5시도 안되었는데, 벌써 해는 지고 있었고.
먼저 내린 사람들을 따라갈 생각을 했지만, 어느새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
가 사라진 거야. 버스는 우리를 내려놓자마자 도망치듯 떠났어.
우리는 떠나간 버스 뒤에 대고, 우리를 태우고 가라고 소리쳤지만 버스는 먼
지를 풍기며 언덕너머로 사라졌어.
정말 막막하더라.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사는 집이 보이질 않는 거야.
여기서 내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근처에 분명히 사람 사는 곳이 있다는 얘
기인데, 눈에 띠는 것은 정말 음침한 산 뿐이었어.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
어. 길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산쪽으로 난 오솔길이 보이더라고.
방법이 없잖아?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그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어. 길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다닌다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오솔길을 따라 올
라갔지.
앙상한 나뭇가지이며, 길 주변의 괴기하게 생긴 나무들과 바위들을 보니 괜히
으시시해 지더라. 한참을 걸어도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어. 오히려
산 속 깊이 들어와 가딱하면 길을 잊어버릴 것 같더라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은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
이게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아니라,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면 어떡하냐 라는
생각이 들었어. 해는 어느새 산너머로 사라졌고, 추위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
어. 배도 고프고.. 정말 답답하더라.
손과 발, 얼굴 할 것 없이 얼어서 감각이 없어진 것 같았어.
그렇다고 쉴 형편도 되지 않아, 마냥 걸었어. 이제와서 돌아올 형편도 되지
않았거든. 우리 모두 겁이 나는지 말도 않고 묵묵히 그냥 걸어갔어. 사실 말
할 힘도 없을정도로 지쳤거든..
그러다 길 저쪽 편이 불빛이 보이는 거야.
얼마나 반갑던지..
우리는 지친 것도 잊고, 그 집을 향해 앞다투어 뛰어 올라갔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직도 이런 집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초
가집이었어. 그래도 우리는 개의치 않고, 뻔뻔스럽게 그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 마당까지 들어가 주인을 찾았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그 집에서
뭔가 불길한 느낌과 냄새를 느꼈지만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아.
단지 배고프고 춥다는 일차원적인 생각뿐이었으니까..
몇번을 불러도 방안에서는 대답이 없었어. 분명히 불은 켜져 있는데. 좀 이상
했어.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어.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을 보고, 우리는 순간적으로 움칫했어.
우리나이 또래의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나타난 거야.
그런데 그 얼굴을 보니, 무슨 정신 장애자처럼 초점없는 눈에 멍한 모습을 하
고 있었어. 정말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 우리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어. 몇번을
얘기를 건네봐도 그 쾡한 눈으로 우리를 보고만 있는 거야. 괜히 으시시해지
더라. 난감해 하는데, 그 사람 뒤로 '손님 오셨네'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마흔정도 되 보이는 아줌마였어.
첫인상이 아주 친절해 보여, 마음이 놓이더라.
우리는 우리 사정을 얘기해주고, 지금 배고프고 잘 곳도 없으니 그것만 해결
해주면 어떤 일이라도 도와드리겠다고 했어. 그 아줌마는 좀 생각하는 것 같
더라. 하긴 그 외진 곳에 여자 혼자서 난생 처음 본 남자 3사람을 재워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집에는 할 일이 없는데...'라며 한참을 뜸을 들이던 그 아줌마는 우리들
거지꼴이 불쌍해 보였는지 허락했어.
대신 한가지 일만 도와달라고 하더라고..
우리는 저녁을 주고, 재워준다는 말에 정말 모든 일이 해결된 기분이었어. 추
운데 방에 들어와 몸 좀 녹이라는 아줌마의 얘기에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어.
방에 들어가다가, 우리는 한번 더 흠짓 놀랐어.
거기에는 아까 문앞에서 본 남자와 비슷한 증상으로 보이는 10살 또래의 남
자애가 벽에 기댄체 멍하니 앉아있었어. 그 애 역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
었고,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있었어. 아줌마는 우리가 놀라는 것을 눈치챘는
지, 한숨을 내쉬면서 푸념조로 얘기하더라.

"우리 큰 애와 둘째 애에요.
내가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저질렀는지 다들 태어날 때부터이래요..
휴..."

그 얘기를 들으니, 우리는 그 아줌마가 불쌍해 보였어.
아줌마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밥을 차리러 부엌에 갔어.
따뜻한 방에 들어와 앉아있으려니, 몸이 노곤해지면서 졸음이 쏟아지더라고..
구수한 밥짓는 냄새까지 나니, 배는 고팠지만 피곤해서였는지 우리모두는 꾸
벅꾸벅 졸았어.
그러다가 귀청이 찢어지는 것 같은 괴성에 졸음이 확 깼어.
아줌마의 둘째라는 애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는 거야.
우리는 놀라서 그 애를 봤어.
좀전까지도 멍하니 있던 그 애는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공포에 질린 눈
을 하며 발광을 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거야.

"가.....가............가!!가.........가..........가!!!"

밥짓던 아줌마가 부엌에서 뛰어나와 애를 붙잡았어.
그런데 원래 그렇게 다루는지, 그 발작하는 애를 사정없이 때리는 거야.
보기에 섬뜩할 정도로 개패듯이 그 애를 때리는 거야.
그 때 아줌마의 얼굴은 조금전의 친절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무시무시하고
끔찍해 보였어. 그 발작하는 애는 계속 소리를 지르다가, 아줌마에게 뭇매를
맏더니 금새 조용해지는 거야.
아줌마는 그제서야 우리가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겸연
쩍은 목소리로 변명하듯이 얘기했어.

"얘가 손님만 오면, 이렇게 생난리를 쳐요.
가만 두었다간 도저히 안되서, 이런 식으로 버릇을 가르키고 있지요.
휴..."

그 말과 함께,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눈으로 둘째를 쏘아보고는 다시 부엌
으로 들어갔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우리는 그 일로 잠이 확달아 났어.
부엌에 들어간 아줌마는 우리가 도망갔을까봐 걱정했던 것처럼 금새 상을 차
려왔어. 다 쓰러져가는 산속 초갓집의 밥상치고는 푸짐했어.
특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운 고기는 한상 가득히 나왔어. 아줌마 말로는 동
네 주민이 가져다준 맷돼지 고기라는 거야. 더구나,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인지
곡주라며 술까지 내왔어. 배고팠던 우리는 정말 허겁지겁 밥과 고기를 먹어치
웠어. 고기는 시커먼 색깔과는 달리 연하고 맛있었어.
우리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배터지게 먹었어. 아줌마는 그렇게 밥을 먹는 우
리를 보고 안쓰럽다는 듯이 얘기했어.

"아이고... 젊은 장정들이 얼마나 배고팠으면..
많이들 먹어요.
실컷 먹고, 한 가지 일만 해주면 되요."

우리는 아줌마가 무슨 말을 해도 신경도 안쓰고 밥먹는데만 집중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걸신들린 사람들처럼 먹어 치운거야.
피곤하고, 빈속에 술까지 마셨더니 금방 알딸딸하고 취기도 느껴졌어.
그 술은 입에서는 달았지만, 생각보다는 독하더라고.
술이 들어가니, 우리는 그 동안 고생한 것을 잊은 듯이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
어. 아줌마도 맛있게 식사하는 우리들도 기분좋게 보고 있었지.
그런데, 나는 밥을 먹다가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어.
돌아보니, 역시 정박아라는 첫째가 우리를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
는 거야. 아까 볼때는 아무 감정 없는 멍한 눈빛이었는데, 지금은 우리를 왠
지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거야.
괜히 기분이 찝찝해지더라..
모자란 애니 그러려니 하고, 남은 밥을 다 먹어치웠어. 배에 뭔가가 들어가니,
좀 정신이 들더라. 그리고 나서, 방을 살펴보니 정말 사람 사는 곳 같지도 않
았어. 무슨 버려진 집 같더라고..
아줌마는 우리가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밥상을 치웠어.
우리가 식구들은 식사를 안 하느냐고 묻자, 벌써 먹었다고 했어.
밥도 얻어먹었으니, 빨리 일을 돕자며 아줌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어.
솔직히 그때는 빨리 일하고 들어와 그 맛있는 술을 더 마실 생각도 했어.
미친놈..
아줌마는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했어.

"별일 아니라우...
여자 혼자 살림을 꾸리려니, 힘쓰는 일을 못해서.
사실 안 해줘도 되는데...
정 도와주고 싶다면 일로 따라와요."

아줌마를 따라 우리는 창고로 갔어.
거기에서 아줌마는 우리에게 곡갱이와 삽을 하나씩 주고는, 검은 비닐에 쌓인
무언가를 보여주며 얘기했어.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한 마리가 죽었거든..
묻어줘야 하는데, 땅도 얼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서
여기 창고에 그냥 놨두었어.
그러니 장정들이 이것 좀 묻어주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어. 그런데 어디다 묻냐는 질문에 아줌마는 미안한 듯이
대답하더라고..

"그런데.. 아무리 같이 지내던 짐승이라도 집 근처에 묻긴 좀 그렇다우..
그러니, 수고스럽더래도, 산 위로 좀 올라가 묻어줘요..
자, 여기 후레쉬들고 가고.."

밖에 날씨를 생각하니, 좀 고생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적당히 취기도 돌고 해
서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또, 우리가 대접받은 것을 생각해보니 그 정도는
도와줘야 할 것 같았어. 곡갱이와 삽들은 두 친구들이 들고, 나는 고양이 시
체가 들었다는 검은 비닐 봉지를 들었어.
좀 큰 고양이 였는지, 묵직하더라고..
아줌마는 마당까지 쫓아나와 산쪽으로 난 길을 가르쳐 주었어.

"추우니 한 10분만 올라가서, 금방 묻고 오세요.
술상봐 놓고 기다릴테니...
수고해요..."

우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길을 나섰어.
적당히 취기도 올라서인지, 짐을 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산에 올라가는 것
이 수월했어. 술기운 때문인지, 사방이 깜깜하고 별빛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
는 밤이었는데도 그렇게 무섭지 않더라고..
한 5분 쯤 올라갔나..
하지만, 같이 간 친구 중에 몸이 좀 약한 원종이가 힘들다면 그만가자고 하는
거야. 이쯤에 대충 묻고 돌아가도 아줌마는 모를 거 아나냐는 것이었어. 우리
는 서로를 돌아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그러기로 했어.
그렇게 우리에게 잘 대해준 아줌마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10분이나 5분 별 차
이 없을 것 같았어. 우리는 길옆에 약간의 평지를 찾아 곡갱이 질을 시작했
어. 나는 속으로 겨울이라 땅이 얼어 파지지 않으면, 그 고양이 시체를 대충
어디다 버릴 생각도 했지만, 땅은 겨울 땅같지 않고 신기할 정도로
잘 파졌어. 세 명이서 삽질과 곡갱이 질을 5분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깊숙한
구덩이를 팠어. 일이 일찍 끝나 기분이 좋더라고.
잠시 주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가져온 고양이 시체를 싼 비닐 봉지가 눈
에 띠더라고. 그런데 좀 모양이 이상했어.
후레쉬를 비춰서 자세히 보니, 그 봉지 모양이 안에 고양이가 들어있는 것 같
지 않아 보였어. 다들 좀 이상하게 생각했어.
나는 그 봉지를 들어올렸어.
비닐 봉지에 쌓여있다고 하더라도, 시체를 만지기 싫어서 우리는 그냥 모양만
살펴봤어. 그래도 담력이 좋다는 의중이가 나뭇가지로 그 비닐 봉지를 눌러봤
어. 눌러봐서는 모르겠는지 의중이도 고개를 갸웃거리더라고.
원종이는 무섭다며 그냥 묻고 내려가자는 거야.
하지만, 나는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었어. 그 봉지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꼭
알고 내려가야 할 것 같았어.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어.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뭐에 홀린건지 모르겠어...
여하튼 나와 원종이는 줄다리기하듯이 내려가자말자 하면서 다투었어.
그러다 나는 그 봉지를 만져봤어.
촉감이 뭉뚝한게 기분이 좋지 않았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에 든 것이 고
양인지 아닌지 알 수 없더라고.
내가 망설이고 있는 것이 바보같이 보였는지, 의중이가 나서서 봉지 위아래를
만져가며 안에 있는 것이 뭔가 알아봤어.
그런데 갑자기 의중이의 얼굴이 이상해진는 거야.
잘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확실히 아니라는 거야.
꼬리가 않 잡힌다는 거야.
그 얘기를 듣자 우리는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어.
그 아줌마가 우리를 속이고 고양이가 아닌 뭔가를 묻게 한 거야.
갑자기 무서워지고, 더욱 추위가 느껴졌어.
그리고 그 때까지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주위의 암흑이 무서워졌어.
어둠 저편에서 뭔가 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원종이는 거의 울 듯이 내려가자는 거야. 그때쯤 나도 내려가고 싶었어. 그런
데 이번에는 의중이가 말을 안 듣는 거야.
무언지 비닐 봉지를 열어보자는 거야.
원종이는 흥분해서 말렸지만, 의중이는 알지도 못하는 것을 그냥 묻고 갈 수
는 없다는 거야.
그러더니 말릴 틈도 없이, 그 검은 비닐 봉지를 확 뜯는 거야.
비닐 봉지가 ?겨지는 순간, 확하고 역한 악취가 풍겼어.
후레쉬를 비춰봤지만, 무슨 지저분한 천에 쌓여있어서 뭔지 알 수 없었어. 좀
망설이던 의중이는 장갑낀 손으로 그 천을 벗기기 시작했어.
나도 모르게 덜덜 떨리더라. 계속 내려가자고 칭얼대던 원종이도 그때는 아무
말 않고 있었어.
정말 죽음같은 침묵속에, 천을 벗기는 소리만 났어.
의중이가 천을 벋기자, 우리는 '억!'하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뒷걸음질 쳤
어.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온 몸이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 느껴졌어.
천에 쌓여있던 것은 다름아닌 반쯤 썩은 갓난 아기의 시체였어.
누가 그랬는지, 가슴에는 깊고 날카로운 칼자국이 있었고, 얼굴과 못 알아볼
정도로 썩어 문드리져 있고, 몇군데는 살점을 도려냈는지, 살이 없었어.
얼마나 끔찍하던지..
우리 모두는 충격과 두려움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어.
정신이 들자, 나는 본능적으로 거기서 도망치고 싶어졌어.
원종이도 그런 눈치인지 슬금슬금 뒤로 물러가더라.
그 아기 시체를 그대로 놓고,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도망치기 시작
했어. 그냥 있다간 무슨 일을 당할 것 같았어. 정신없이 내려가는데, 의중이가
맨 앞에 달려가던 나의 뒷덜미를 낚아채는 거야.
그러더니 숨차 헉헉대는 원종이와 나에게 황당한 얘기를 하는 거야.

"야! 다시 올라가자"

우리는 그 한마디를 듣고 의중이가 미친 줄 알았어.
아무리 담력이 좋다하더라도 거기에 다시 가자니...
그런데 의중이는 우리의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어.

"생각해 봐라.
그 상태로 아기 시체를 거기다 버려놨다가, 나중에 발견되면
우리는 살인죄 및 시체 유기죄야.
거기에는 도구에 우리 지문이 다 묻어있잖아.
그러니 정신차리고 다시 올라가서 뒷정리 해야되.
알았어!"

듣고보니, 그 말이 맞았어. 하지만 다시 올라가기는 죽기보다 싫었어.
원종이는 거의 사색이 되었어. 그렇지만, 그 놈도 의중이 말이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들바들 떨면서 의중이 뒤를 따라갔어.
의중이는 겁도 안 나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앞장섰어.
그 자리에 돌아와 손전등을 비춰보니, 그 아기 시체는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어. 우리가 버려둔 그 상태로...
그 모습을 다시 보니, 정말 무섭더라..
식은땀이 흐르고, 잘 움직일 수도 없는 거야.
의중이의 보챔에 떨리는 손으로 삽을 들었어.
빨리 묻지 않으면, 그 아이가 살아날 것 같은 생각도 들더라.
하지만, 손이 너무 떨려 흙을 제대로 풀 수가 없더라.
그런데, 의중이가 "잠깐!" 하더니, 그 아기 시체에 손전등을 가까이 비춰되는
거야. 그러더니, 탐욕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돌아보더니 말하는 거야.

"야, 여기에 두꺼운 금반지 있다.
돌반지인가 봐..
돈 좀 되겠는걸..."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미치는 것 같았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시체에 있
는 금반지를 탐내다니..
손전등에 비친 의중이는 제정신인 것 같지 않았어.
내가 미쳤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의중이는 오히려 나를 핀잔했어.

"야 임마, 생각해봐!
너 무슨 돈으로 집에 갈래?
이거라도 있어야 차 타고 집에 갈거 아냐!"

그러면서 광기어린 얼굴로 반쯤 썩은 아기 손에 있는 반지를 빼려하는거야.
나와 원종이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할말을 잃었어.
썩어서 손가락이 커졌는지, 반지가 잘 빠지지 않는거야.
우리는 의중이에게 그만 포기하고 가자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의중이는 광기
어린 눈빛을 빛내며 반지 낀 손가락에 힘을 더 주는거야.
얼마나 힘을 주는지, 얼굴이 일그러지더라.
그런 의중이의 얼굴은 내가 알고 있던 친구가 아닌 악귀처럼 보이더라.
그때였어.
'퍽'하는 소리와 함께, 반지 ?려고 힘을 주던 의중이가 뒤로 벌러덩 자빠지는
거야. 뒤로 자빠진 의중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자기가 손에 들
고 있는 것을 봤어.
그 순간 의중이도, 그걸 본 우리도, 큰 충격을 받았어.
의중이 손에는 그 아기의 손가락이 들려있는 거야.
반지를 뺀다고 힘을 주다가, 썩은 손가락을 반지껴져 있는 채로 뽑은 것이지.
의중이도 자기 손에 들려 있는 썩은 손가락을 보고 놀랐는지, 땅바닥에 내뎐
졌어. 우리는 너무 큰 충격에 잠시 멍하니 있었어.
그때 원종이가 '어억!'하고 비명을 질러대는 거야.
원종이 쪽을 돌아다보니, 뭔가 무서운 것을 봤는지 온통 겁에 질린 얼굴이었
어. 원종이는 말은 못하고 떨리는 손가락만 저쪽을 향하는 거야.
우리는 원종이가 가르키는 쪽을 후레쉬와 함께 돌아봤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거기에는 그 아줌마가 소름끼치는 표정을 하고 우리는 노려보고 있는 거야.
손전등에 비친 그 아줌마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닌 귀신의 얼굴 같았어.
그 아줌마는 기분나쁜 목소리로 우리를 보고 얘기했어.

"그걸 그냥 두고 가려고?
그렇게는 못 보내....."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무섭던지.
나는 속으로 여기서 빨리 도망가야돼라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이 안듣더라고..
원종이는 말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고, 의중이는 넘어진 채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어.
그 아줌마는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어.

"밥만 먹고 그냥 가려고?
그럼 안되지..."

음산하게 얘기하는 아줌마는 정말 이 세상 사람같지 않았어.
그런데 내 발은 땅에 박힌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어.
그러다 갑자기 옆에 있던 원종이가 미친 듯이 도망가기 시작했어. 나도 그와
동시에 최면에 풀린 것처럼 원종이를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어.
뒤를 돌아봤다간 그 아줌마가 잡을 것 같아, 정말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쳤어.
그런데 바로 등뒤에서 그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어딜 가!
그냥 못 보내줘!!!"

소름이 쫙 끼치며,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어.
앞이 안 보이고, 온 몸이 나뭇가지에 ?히는 것도 게의치 않았어.
단지 그때 생각으로는 거기서 벗어나는 것밖에 없었어.
넘어지고, 숨이 차서 허파가 터질 것 같아도 멈출 수 없었어.
멈추면, 그 아줌마에게 잡힐 것 같았어.
올라왔던 길로 한참을 뛰다보니, 어느새 버스가 다니던 길까지 나오게 되었
어. 앞에 뛰어가던 원종이는 이제 더 이상 뛸 수 없는지, 앞에 서더라. 나도
원종이 옆에 서서 가쁜 숨을 몰아셨어.
너무 힘들어 토할 것 같더라고.
뒤를 돌아보니, 그 아줌마가 쫓아오는 것 같지는 않았어.
그런데. 의중이가 없는 거야.
같이 도망쳐 왔는데, 의중이가 없어진 거야.
나와 원종이는 사색이 되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어.
솔직히 그때는 억만금을 준다해도 산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
비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우리는 도저히 못 올라가겠더라. 처
음에는 곧 의중이도 내려오겠지라고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의중이는 내려
올 생각도 하지 않았어.
결국 우리는 의중이가 그 아줌마에게 잡힌 걸로 생각했어.
하지만 그래도 의중이를 찾으러 갈 수는 없었어.
찾으러 간다 하더라도, 우리가 의중을 찾을 자신도 없었고..
그래서 겁쟁이 우리들은 어떡해서든지 경찰이라고 불러 가자고 했어.
그렇게 합리화를 시키고 나서, 버스가 왔던 길을 따라 밤새 걸었지.
그때는 생각도 하기 싫다.
얼마나 춥고, 힘들고, 무서웠는지...
한 3시간을 걸었을거야.
그러다 보니, 전화 있는 작은 가게가 나오더라.
곤히 자고 있는 주인을 간신히 급한 일이라며 간신히 깨워 인근 지서에 신고
했어. 경찰은 처음에는 우리가 술먹고 거짓말 하는 것으로 듣는거야, 그래도
우리가 하도 난리치나까, 귀찮아 하던 경찰도 만약 허위신고라면 처벌 받을
각오하라며 우리에게 오겠다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 경찰이 도착한 것은 거의 2시간이 지난 뒤였어.
경찰차에 탄 우리는 의중이를 찾아 그 초가집으로 향했어.
밤이어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우리가 올라갔던 그 오솔길을 찾을 수 없는 거
야. 몇번을 그 길을 왔다갔다 해도 발견할 수 없었어.
급기야는 경찰들도 험학한 표정을 짓고 우리가 허위신고한 것 아닌가 하며
의심하는 거야. 얼마나 헤맸는지, 동이 트더라.
좀 밝아지니까, 그 오솔길을 찾아냈어.
우리는 귀찮아하는 경찰들을 간신히 데리고 그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어. 한참
을 걷다보니, 그 아줌마의 집이 보였어.
그 집이 보이자, 전날 밤의 참혹했던 악몽이 떠올라 몸이 저절로 부르르 떨리
더라..
그래도 경찰이 같이 있으니깐 좀 안심이 되었어.
경찰은 집 주인을 찾았어. 나는 그 아줌마가 도망갔으리라 생각했어.
그래서, 사라진 의중이라도 찾기릴 바랬지.
그런데, 경찰이 몇번 부르니, 그 아줌마가 어제의 그 친절한 얼굴을 하고 나
타나는 거야.
원종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어.

"저.... 여자예요... 저 여자...
어제 아기 시체를 파묻으라고 한게...."

그 아줌마는 경찰의 질문에 천역스럽게 얘기했어.
황당한 것은 우리를 처음 본 것이며, 어제 밤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거야. 우
리는 그 얘기에 충격을 받았어. 경찰은 우리를 한번 노려보고는, 정중하게 그
아줌마에게 집안 좀 돌아봐도 되겠냐는 허락을 받고는 집을 돌아봤어.
그런데, 보이는 것은 어제밤에 본 그 정박아 형제뿐이었어.
의중이는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우리는 경찰을 이끌고, 아기를 파묻으려 했던 곳으로 데려갔어.
마지 못해 하는 경찰과 그곳에 올라간 우리는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어.
거기는 깨끗이 치워져있는 거야.
경찰은 의심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노려봤어.
우리는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아줌마는 천연덕스럽게 우리를 보고 무슨 얘기
라며 웃는 거야. 그걸 보니 더 무섭더라고....
화가 난 경찰이 우리를 보며,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할 때였어.
그 초가집 앞에 의중이가 얼빠진 모습으로 서 있는 거야.
우리는 놀라 달려갔지.
그런데....
의중이는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거야.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눈은 무서운 것을 목격한 것처럼 겁에 질려
있었어. 외모도 완전히 10년을 늙어 보였어.
그 모습을 보니, 어젯밤에 의중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을 한 것
같았어.
그냥 멍하니 서 있는 거야. 아줌마 두 정박아처럼 되어버린 거야.
경찰의 질문에 아줌마는 태연하게 대답했어.

"글쎄요.. 저 청년 어젯밤에 산속을 배회하고 있더라고요.
저렇게 얼이 빠져서...
가만 두면 얼어죽을 것 같아, 데리고 들어와 재웠는데, 아침에는
사라졌다 지금 나타났네요..
뉘 집 자식인지 불쌍하네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었어.
경찰도 이번에는 못 믿는 눈치였지만, 의중이도 찾았고 더 이상 수사할 명분
이 없어 그냥 내려가자고 했다.
우리는 그 아줌마가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어.
정신이 나간 의중이를 데리고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
죄책감, 부끄러움, 두려움....
휴.... 그 길로 의중이는 서울로 가서, 병원에 입원했어.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 줄 알아?
나중에 의심을 한 경찰이 다시 한번 그 초가집에 가서 철저히
조사했대. 아니나 다를까 그 집 주변에서 갓난 아기 시체로 추정되는 유골을
10구나 발견했대.
그 아줌마는 정신 이상자였어. 미친 살인마였다는 거야..
그래서, 아기들을 납치해 죽였던 거야. 그리고 아들이라고 얘기했던 두 사람
도 사실은 그 여자 자식들이 아니었대. 근처에 놀러왔던 실종된 사람들인데,
무슨 끔찍한 경험을 했는지 다들 정신이 나간거야.
우리가 먹은 고기가 어쩌면 그 갓난아기들의 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세상에...
의중이는....
얼마전에도 면회갔다 왔는데, 의사 말로는 변화가 없대.
정서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끔찍하고 무서운 경험을 했는지, 두려움을 참지
못해 의식을 닫아버린 것이래..
이제 의중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숨쉬는 것과 멍하는 앉아 있는 것밖에
없는 거야.. 하지만 도대체 그날 밤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의중이가 그렇게 되
었는지 영원히 밝혀지지 못하게 되었어.
그 여자가 경찰 심문 중에 자살했거든...
그런데 그 여자가 자살하던 날 밤, 경찰서 청소부는 그 여자같이 생긴 사람이
걸어나가는 것을 봤다는 얘기를 해서 난리가 났지. 결국 청소부가 헛것을 본
것으로 판명 났지만, 나는 믿을 수 없어.
어쩌면 그 여자는 지금도 어디선가, 아이들을 납치해 그 끔찍한 행위를 자행
하고 있을지 몰라.
지금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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