圆月弯刀 2

3학년2반 | 2022.02.09 08:15:15 댓글: 0 조회: 428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7529
7. 살인청부

10월. 이른 아침. 유약송(柳若松)은 창문을 열어젖혔다. 창밖에는 햇살이 찬란하고 바람은 싱그러웠다. 아주 쾌청한 날씨였다. 그는 개띠였다. 금년에 407인데도 얼굴에는 1가닥의 주름도 잡히지 않았다. 체력 역시 절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여인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여인들도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부유하고 건강하고 잘생긴 인물이었다.

요즘은 강호에서 협명(俠名)이 더욱 높아졌다. 사람들은 그를 대협(大俠)이라고 불러주었고 무척 존경해주었다. 그의 친구들은 무척 많았다. 신분과 재물과 명성에 있어서 그보다 못하지만 그와 벗해주었다. 매년 봄과 가을의 명절에는 언제나 그와 함께 한동안 즐거운 시일을 보내곤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만약 무당파(武當派)에서 속가(俗家)제자를 장문인(掌門人)으로 세우게 된다면 반드시 그를 내세우게 될 것이다.

이것은 본래 그의 환상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실현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의 만송산장(萬松山莊)은 무척 넓고 풍경이 훌륭해서 강호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장원이었다. 그의 아내 역시 강호에서 유명한 미녀였으며 총명하고 똑똑했다. 그들 부부의 감정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그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의 아내는 그를 위해서 깔끔하게 처리해주었다.

사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는 가지고 있었고, 그 스스로 무척 만족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1가지 일이 그를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가 거처하고 있는 이 방은 만송산장(萬松山莊)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그가 창문을 열기만 하면 맞은편의 푸르고 싱그러운 산비탈을 바라볼 수 있었다. 산비탈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보기 좋게 늘어서 있고, 파란 잔디들이 비단처럼 깔려 있었다.

그가 맞은편의 숲을 굽어 볼 때면 천상지하(天上地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의 호기로운 감정이 치솟아 올라, 마음속에 껄끄러운 일이 있다고 해도 깨끗하게 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 누군가 그 산비탈에서 토목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매일 산비탈에서는 토목공사를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와 그의 평온을 깨뜨렸고 그 시끌벅적한 소리는 온종일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맞은편의 그 산비탈에 지어지는 저택의 규모는 그의 만송산장(萬松山莊)보다 더욱 큰 것이 틀림없었다. 천하의 유명한 목수와 미장이는 물론이고 꽃을 새기는 조각사들까지도 모두 그 토목공사에 참가하고 있었다. 이 저택을 짓는데 동원된 인력은 옛날 만송산장(萬松山莊)을 지을 때 불렀던 사람들의 20배가 넘었다. 사람이 많으니 저택을 짓는 속도도 아주 빨랐다.

유약송(柳若松)이 매일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바라보면, 맞은편 산장에 1채의 정대(亭台)가 불어나지 않으면 1채의 누각(樓閣)이 불어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연못이나 꽃밭이 생겨나곤 했다. 만약 그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정도로 빨리 지어지고 있었다. 이 저택을 짓는 것을 감독하는 총관(總管)은 성이 뇌(雷)씨라고 하는데, 경성(京城) 양자뇌(樣子雷)의 2째 주인이었다. 양자뇌(樣子雷)는 토목공사나 집짓는 이 업종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유명했다.

경성(京城)의 뇌(雷)씨 집안은 옛날 황궁(皇宮)내원(內院)까지 책임지고 건조했었다. 뇌(雷)총관(總管)의 말에 따르면 이 1채의 장원을 짓는 사람은 정(丁)공자라는 사람이었다. 정(丁)공자는 12월 15일에 새로 지은 이 저택에 손님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장원은 반드시 10월 중순 이전에 완공되어야 한다고 했다. 기한 내에 완공을 시키기만 한다면 정(丁)공자는 어떤 대가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많은 돈을 써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정(丁)공자는 이미 경성(京城)의 4대(四大)전장(錢莊)에 구좌를 트고 있으며 뇌(雷)총관(總管)이 쪽지만 1장 보내면 언제든지 돈으로 바꾸어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뇌(雷)총관(總管)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丁)공자처럼 흥청망청 돈을 쓰는 사람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소.”

이 정(丁)공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어째서 이토록 으리으리한 집을 지으려고 하는 것일까? 어떻게 그토록 많은 돈을 뿌릴 수 있는 것일까? 유약송(柳若松)은 이미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반드시 이 정(丁)공자의 내력을 살펴보아야 했다. 그는 1번 결정한 일은 반드시 실천했다. 그는 며칠 전에 이미 정(丁)공자의 내력을 알아보라고 자기의 부인에게 지시했다. 유(柳)부인은 1번도 그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유(柳)부인이 출가하기 전의 규명(閨名)은 가정(可情)이었다.

- 가소(可笑)가 아니라 가정(可情)이었다.

- 진가정(秦可情).

유(柳)부인 역시 개띠였다. 유약송(柳若松)보다 12살이 젊었으며 금년에 35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도 그녀의 진짜 나이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녀의 허리는 여전히 가냘프고 매끄러웠다. 피부는 여전히 보드랍고 탄력이 있었으며 윤기가 흘렀다. 조그만 얼굴은 여전히 팽팽했으며 얼굴에 1가닥의 주름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유약송(柳若松)에게 시집올 때보다 더욱 사람을 홀렸고 더욱 매력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녀를 시기하는 사람도 그녀가 인간 세상에서 보기 드문 우물(尤物)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와 1침대에 올라가 잠을 자 본 남자들만이 우물(尤物)이라는 2글자의 뜻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육체는 남성이 들어오기만 하면 자유자재로 수축작용을 해서 남자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들었다. 지금도 유약송(柳若松)은 신혼시절의 감미로운 정사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그녀가 그에게 안겨준 쾌락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 지경이었고, 이 세상에서 그녀와 비교할 수 있는 여자는 다시 찾아볼 수 없다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매정하게 흘러 유약송(柳若松)은 이미 점점 늙어가고 점점 힘이 달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이미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대다수 중년 남편들이 마누라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 역시 약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는 점점 아내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들 부부는 이미 방을 따로 쓴지 오래 되었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여전히 지극히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무척 심오하고 무척 미묘한 감정이었다. 유(柳)부인은 혼자서 외출할 때가 잦았으나 그는 1번도 그녀의 행적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는 그의 아내가 우물(尤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내가 결코 그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배반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생리적인 것에 속하는 육체의 즐거움을 즐기지 못하게 막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무척 활달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인해서 그들의 감정은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는지도 몰랐다. 오직 그렇게 활달한 사람만이 우물(尤物)을 아내로 삼을 수 있으리라. 1남자가 우물(尤物)을 아내로 삼게 되면 그 맛은 결코 견디기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정오. 햇살은 창문을 통해 밀려 들어왔고 유(柳)부인은 창틀 아래 배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혀 있는 땀을 훔쳐내고 있었다. 이미 10월 말이지만 날씨는 아직도 무척 더웠다. 유(柳)부인은 추위를 탔을 뿐 아니라 더위도 무척 두려워했다. 그녀는 1번도 고생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여인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고생을 모르는데, 그것은 그녀들은 다른 여인들보다 훨씬 총명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녀는 앞자락을 풀어 헤치고 옥처럼 깨끗하고 하얀 우유 빛깔의 몽실한 젖가슴을 드러내고 나직히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애써서 자기 자신을 억제하고 그녀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다. 약간의 나이 젊은 처녀들 앞에서는 남성의 위대한 힘을 느끼게 해줄 수 있었고, 그녀들로 하여금 감미로운 통증을 느끼게 하거나 애잔하고 간드러진 신음소리를 내도록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와 마주치면 그는 그만 패군지장이 되고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을 억제하여 또 1번 참패의 쓴 맛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유(柳)부인은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호호, 내가 지난번 당신을 위해 관동(關東)에서 가져다 준 호편(虎鞭 호랑이 자지)도 소용이 없었나요?”

유약송(柳若松)은 못 들은 척했다. 호편(虎鞭)이 결코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에게 소용이 없을 뿐이었다. 그는 화제를 돌려 물었다.

“당신은 이미 그 공자의 내력을 알아냈소?”

유(柳)부인은 나직히 코대답했다.

“응.”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물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소?”

유(柳)부인은 말했다.

“그는 우리들이 잘 아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절대로 그가 누구인지 짐작하지 못할 거예요.”

그녀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마치 흥분되는 어떤 일이 떠오른 것 같았다. 유약송(柳若松)은 물었다.

“그는 누구요?”

유(柳)부인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는 정붕(丁鵬)이라고 해요.”

유약송(柳若松)은 버럭 언성을 높였다.

“정붕(丁鵬)? 바로 그 정붕(丁鵬)이란 말이오?”

유(柳)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예요…”

유약송(柳若松)은 안색이 확 변하고 말았다. 그는 물론 정붕(丁鵬)이라는 그 사람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천외유성(天外流星)이라는 1초(一招)는 더욱 잊을 수 없었다. 그 역시 그의 처가 어떤 방법을 써서 그 1수의 천외유성(天外流星)을 사취한 것인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유(柳)부인이 그토록 흥분한 것은 물론 그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천외유성(天外流星)을 얻기 위해 마누라가 정붕(丁鵬)과 살을 섞는 것을 눈 감아주었고 그녀가 치른 대가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마음속에서 질투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감정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가 아직도 죽지 않았다니, 꿈에도 생각 못했구려. 당신은 무척 기쁜가 보구려?”

유(柳)부인은 얼굴을 붉히고 냉소했다.

“내가 무엇을 기뻐해요? 그가 가장 미워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예요.”

유약송(柳若松)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아직도 죽지 않았다면 조만간 우리를 찾아올 것이오. 그러나 나는 실로 그런 가난뱅이가 어떻게 갑자기 그토록 많은 돈을 흥청망청 쓸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유(柳)부인은 냉랭히 말했다.

“큰 어려움을 당해서 죽지 않는다면 반드시 나중에 큰 복을 받게 된다고 했어요. 그때 그가 도망칠 수 있었고 우리들이 아무리 찾아도 찾아내지 못한 것은 바로 그 녀석의 행운이에요.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면 밤중에 길을 가더라도 커다란 원보(元寶)를 주울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은 물론 화가 나서 하는 소리였다.

여자가 화를 내게 되었을 적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법이었다. 총명한 남자들은 모두 이 방법을 알고 있었고 유약송(柳若松)도 총명한 사내였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입을 먼저 연 사람은 물론 여인이었다. 여인은 언제나 참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 유(柳)부인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가 우리를 찾아와 빚을 갚으려고 한다면 어째서 시원시원하게 우리를 곧바로 찾아오지 않고 우리 맞은편에 그토록 커다란 저택을 짓는 거지요? 그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일까요?”

유약송(柳若松)은 덤덤히 말했다.

“10길 물 속은 알아도 사람의 마음속은 알 수 없다고 했소.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영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오.”

유(柳)부인의 눈동자가 밝아졌다.

“만약 살아있는 사람이 갑자기 죽게 된다면?”

유약송(柳若松)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죽게 된다면 어떤 꿍꿍이속도 없어지는 것이오.”

유(柳)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죽지 않아요.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을 보면 그를 죽도록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에요.”

유약송(柳若松)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그렇게 수월한 노릇이 아니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오.”

유(柳)부인은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였다.

“아!”

유약송(柳若松)은 설명하듯 말했다.

“지난번 그 일이 있은지 어언 4년이 흘렀소. 1사람의 운이 유난히 좋았다면 4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에 횡재를 할 수도 있는 노릇이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무공은 그렇지 않소. 무공은 하루하루 고된 수련을 쌓아야 하는 것이며 결코 커다란 원보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오지는 않소.”

유(柳)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감히 우리의 장원으로 찾아오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는 횡재를 했지만 무공은 여전히 옛날과 다름 없는지도 모르지요.”

유약송(柳若松)은 넌지시 말했다.

“그의 무공으로 볼 때, 설사 명사(名師)를 만나서 설사 다시 10년 동안 고된 수련을 쌓는다 해도 소송(小宋)의 적수가 되지는 못할 것이오.”

유(柳)부인은 물었다.

“소송(小宋)이라니요? 당신이 말하는 사람은 송중(宋中)인가요?”

유약송(柳若松)은 빙그레 웃었다.

“성이 송(宋)가이고 이름이 중(中)이며 1검(一劍)으로 어떤 사람이든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람이 그를 제외하고 또 누가 있겠소.”

유(柳)부인은 옆에 놓인 차 탁자 위의 연자탕(蓮子湯)을 들고 천천히 몇 모금 마시고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사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그 말을 받았다.

“당신이 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소.”

유(柳)부인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겠죠.”

유약송(柳若松)은 가볍게 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소용이 없고, 당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소용이 있는 것이오.”

유(柳)부인은 눈을 크게 떴다.

“아!”

유약송(柳若松)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신의 말만 듣기 때문이오. 당신이 그를 동쪽으로 가라면 그는 감히 서쪽으로 가지는 못하오.”

유(柳)부인은 유약송(柳若松)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당신의 말 뜻은, 내가 그보고 사람을 죽여 달라고 하면 그가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유약송(柳若松)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그에게 1사람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면 그는 감히 2사람을 죽이지 못할 것이오. 당신이 그에게 장삼(張三)을 죽이라고 한다면 그는 결코 이사(李四)를 죽이지 못할 것이오.”

유(柳)부인은 나직히 말했다.

“만약 내가 그를 시켜서 정붕(丁鵬)을 죽이게 된다면 정붕(丁鵬)의 그 어떤 꿍꿍이속도 없어지겠군요.”

유약송(柳若松)은 손뼉을 쳤다.

“추호도 틀림없는 말이오.”

유(柳)부인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2년 동안 그는 너무나 유명하게 되었어요. 이미 교만해지고 건방졌는데 어찌 나와 같은 할망구의 말을 듣겠어요.”

유약송(柳若松)은 웃었다.

“2년 동안 나 역시 적지 않게 두각을 나타내었소. 나마저도 당신과 같은 할망구의 말을 듣는데 그가 어찌 감히 듣지 않을 수 있겠소.”

유(柳)부인은 천천히 연자탕(蓮子湯)을 내려놓고 봄철의 파뿌리 같은 손가락으로 1알의 밀전(蜜餞)을 집어들고 앵두보다도 작고 꿀물보다도 더욱 달콤한 조그만 입안에 집어넣고 눈처럼 흰 이빨로 가볍게 물었다.

떡, 하는 소리와 함께 2쪽이 나도록 깨문 것이었다. 그런 후에 그녀는 곁눈질로 유약송(柳若松)을 바라보며 나직히 물었다.

“그는 정말 내 말을 잘 들을까요?”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고 욕정의 불길이 뜨겁게 피어올랐다. 그녀의 이빨은 눈처럼 희었고 입술은 새빨간 빛을 띄우고 있었다. 그녀의 전체 몸뚱이는 잘 익은 앵두 같았으며 사람이 가서 따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욕정이 번들거리는 눈빛을 감추지 않고 유약송(柳若松)에게 바짝 다가왔다.

“지금 어때요?”

유약송(柳若松)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뿔싸!)


유약송(柳若松)은 특별히 만든 연탑(軟榻) 위에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온 몸에서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어서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10월 초부터 양정축예(養精蓄銳)의 방법으로 체력을 기르고 있었다. 때 늦지 않게 보약을 쓰고 2조각의 호편(虎鞭)을 먹었고 몇 첩의 황교(黃教) 대라마(大喇嘛)들의 비방에 의해 배합된 신단(神丹)을 먹었다.

그 목적은 그의 절친한 친구가 일부러 수 천 냥의 은자를 써서 강남의 낙호(樂戶)에서 사다가 그에게 선물한 미녀를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멋지게 그녀와 며칠 동안 즐기려고 준비했고 그녀에게 그가 아직 늙지 않았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게 해줄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두 결딴나고 말았다. 유(柳)부인은 보기에 더욱 간드러지고 화사해진 것 같았다. 마치 1송이의 비와 이슬을 듬뿍 맞은 생화 같았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지난 이틀 동안 그가 정력을 축적한 것을 헤아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기어코 그의 온힘을 빼놓고 땀을 흠뻑 흘리게 만든 것이었다. 그녀의 웃음은 지극히 유쾌하고 지극히 우쭐한 것이었으며, 아주 만족한 웃음이었다. 유약송(柳若松)도 부득이 그녀와 더불어 웃지 않을 수 없었으나 쓰디쓴 웃음이었다.

“이제 당신도 내가 정말로 당신의 말을 잘 듣는지 안 듣는지 알았을 것이오.”

유(柳)부인은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말을 잘 듣는 사람은 언제나 복을 받는 법이에요. 내 속살의 맛이 꿀보다 달콤하다고 언젠가 당신이 말했잖아요. 그 맛을 본 남자는 당연히 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다가 그녀는 불쑥 물었다.

“당신의 생각에 그 정(丁)공자가 지난 이틀 동안 어디에 있었을 것 같아요?”

유약송(柳若松)은 대답했다.

“글쎄…”

유(柳)부인은 그 말을 받았다.

“지난 이틀 동안 그는 항주(杭州) 서호(西湖)를 유람하고 있었으며, 가사도(賈似道, 1213-1275)가 예전에 거처로 삼고 있던 반한당(半閒堂)의 홍매각(紅梅閣)에 머물고 있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부러운듯 음성으로 말했다.

“그 정(丁)공자의 기세가 정말 대단하구려.”

가사도(賈似道, 1213-1275)는 남송(南宋) 시대에 권력을 장악했던 재상이었고 권력을 1번 휘두르면 조야를 발칵 뒤집어 놓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천하에 으뜸가는 부자로 손꼽혔는데 대(大)송(宋)의 강산은 적어도 반은 그의 손에 결단 났다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 반한당(半閒堂)의 호사스러움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1마디를 덧붙였다.

“당신은 물론 소송(小宋)이 지난 이틀간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지 않을 것이오.”

유(柳)부인은 물었다.

“당신은 그를 만나보셨나요?”

유약송(柳若松)은 간단히 대답했다.

“그렇소.”

유(柳)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어째서 진작 말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그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그를 데려왔을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유(柳)부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그를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노릇이 아니에요.”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물었다.

“어째서?”

유(柳)부인은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그를 무척 먼 곳으로 보냈기 때문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무척 먼 곳이 도대체 어떤 곳이오?”

유(柳)부인은 또박또박 대답했다.

“항주(杭州), 서호(西湖), 홍매각(紅梅閣), 반한당(半閒堂).”

유약송(柳若松)은 웃었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내 마음속에 어떤 꿍꿍이속이 있는지 내가 말하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당신은 알아맞추는구려.”

유(柳)부인은 눈처럼 흰 이빨로 가볍게 앵두와 같은 붉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당신은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이에요.”

그녀의 눈동자는 다시 빛을 발했고 불타올랐다.

유약송(柳若松)은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으며 쓰디쓰게 웃었다.

“나는 이미 죽었소.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지만 기껏해야 겨우 반쪽의 목숨밖에 남아 있지 않소.”

유(柳)부인은 눈을 흘기며 요염하게 웃었다.

“그러나 나는 죽은 남성을 살려낼 수 있어요.”

그러더니 와락 달려들어 유약송(柳若松)의 축 늘어져 있는 남성을 덥썩 입에 물었다.


송중(宋中)은 비스듬히 마차 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는 이미 잠이 든 것 같았다. 마차는 무척 평온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수레바퀴, 수레의 축, 수레 자체는 모두 정성껏 설계하고 특별히 만들었으며, 수레를 모는 말 역시 잘 훈련시킨 것들이었다. 수레 안은 넓고 쾌적했다. 송중(宋中)은 매번 사람을 죽이기 전에 반드시 체력을 비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1대의 평온하면서도 쾌적한 마차만이 그의 체력이 쓸데없이 길에서 소모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柳)부인은 그를 위해 이 1대의 마차를 준비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에 대해서 어미가 아들을 보살피듯이 알뜰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송중(宋中)의 어머니는 그가 어릴적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의 부친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1번도 그의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누구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그 누가 그런 일로 그를 비웃고 그를 모욕한다면 1검(一劍)의 매운 맛을 보곤 했다. 성은 송(宋), 이름은 중(中), 그의 별호는 1검(一劍)송종(送終)이었다. 송중(宋中)은 결코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사람을 죽여야 했다. 그가 명성을 바라든 재부를 바라든 여인을 바라든,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그가 갈망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오직 그 방법으로 그가 갈망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켰다. 그가 가장 갈망하는 것은 명성도 아니고 재부도 아니었다. 다만 1여인이었다. 다른 사람의 여인이었다. 그는 분명히 그가 다른 사람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완전히 그녀에게 빠져서는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의 요염한 미소와 그녀의 추파, 그리고 그녀의 육체는 목을 겨누고 있는 칼처럼 그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에게 2사람을 죽이라고 한다면 그는 결코 1사람만 죽이지 못했다. 그녀가 그에게 장삼(張三)을 죽이라고 한다면 그는 결코 이사(李四)를 죽이지 못했다. 그는 이미 욕정이라는 끝이 없는 구덩이 속에 깊히 빠져든 것이었다. 그는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속에 사랑이 없고 오직 증오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아 있으면서도 1번도 사랑이라는 것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었고 정말 고된 수련을 쌓았다.

그가 손을 쓰는 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그의 손 씀씀이가 빠르고 정확하여 옛날 전설적인 살수로 이름을 날렸던 형무명(荊無命)에 못지않다고 인정했다. 종전(鐘展) 역시 그가 손을 쓰는 것을 보았다. 종전(鐘展)도 그가 검을 뽑아드는 동작이 이미 형무명(荊無命)과 비슷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인정했다. 형무명(荊無命)은 옛날 천하에 명성을 떨친 검객이었고 아비(阿飛)와 동시에 명성을 날린 검객이었으며 금전방(金錢幫)에서 상관금홍(上官金紅) 다음가는 고수였다. 형무명(荊無命)은 무정했고 목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가볍고 천한 것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숨마저도 가볍고 천한 것으로 여겼다. 송중(宋中)도 마찬가지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가 매번 손을 쓰게 되었을 때는 목숨을 돌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목숨을 남기도록 하지 않았으며, 자기의 목숨 역시 남겨 두려고 하지 않았다. 강호에서 손이 가장 빠른 사람으로 이름난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목숨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었다.

- 성은 송(宋), 이름은 중(中), 1검(一劍)으로 끝을 보는 1검(一劍)송종(送終).

그가 하서(河西)의 대호(大豪)인 여정강(呂正剛)을 죽인 후에 강호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무척 적어지고 말았다. 여정강(呂正剛)은 하서(河西)에서 20년간 주름잡고 있었으며 금도철장(金刀鐵掌)으로 위세를 천하에 떨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단 1초(一招)에 그 여정강(呂正剛)을 죽여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그가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정붕(丁鵬)이었다. 그는 정붕(丁鵬)을 잘 몰랐다. 1번도 본 적이 없었고 그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정붕(丁鵬)을 죽여야 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에게 정붕(丁鵬)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가 절대로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자신의 검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 1자루의 검은 이미 정붕(丁鵬)보다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 그가 볼 때 정붕(丁鵬)은 이미 죽은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송중(宋中)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아직 죽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유약송(柳若松)은 그를 만나보고 무척 의아함을 느꼈고, 유(柳)부인은 그를 만나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누가 보든지 그는 이미 변해 있었다. 냉혹하고 교만한 송중(宋中)이 갑자기 초췌하고 느릿하게 변해 있었다. 본래 1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던 송중(宋中)은 지금은 술을 찾아 마셨다. 그리고 술잔을 손에 들자마자 단숨에 들이켰다. 그가 3잔의 술을 다 마시고 난 후에야 유약송(柳若松)은 미소를 띄우고 물었다.

“이번에 당신은 무척 고생이 많았겠소. 내 다시 당신에게 1잔의 술로 경의를 표하겠소.”

그는 송중(宋中)에 대해서 무척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틀림없이 임무를 완수했으리라 믿었다.

유(柳)부인 역시 미소를 띄웠다.

“나는 당신에게 3잔의 술로 경의를 표하겠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예전에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까요.”

그녀는 그에 대해서 더욱 믿음이 있었다. 그는 직접 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깨끗하고 날렵했을 뿐만 아니라 1번도 실수를 1적이 없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손 씀씀이가 정확하고 신속할 뿐 아니라 그 동작이 우아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에게 견줄만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송중(宋中)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끊임없이 마시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마시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시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사람의 손은 반드시 힘차야 했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면 손은 틀림없이 힘과 평온을 잃고 말 것이다. 그는 많은 술꾼들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술잔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었다. 그는 그들이 어째서 그래도 술을 마시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는 그들이 불쌍할 뿐 아니라 가소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미 그 술꾼들이 어째서 술꾼으로 변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아직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술을 마셔댄다면 조만간 취하고 말 것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더 참지 못하고 본론을 꺼냈다.

“요즘 서호(西湖)는 무척 아름다울 것이오. 당신은 이미 그곳으로 갔었소?”

송중(宋中)은 고개를 끄덕였다.

“갔었지요.”

유약송(柳若松)은 미소를 지었다.

“가을 하늘은 높고 바람은 시원한데 호반에서 검술을 시험해 보았을 터이니, 당신의 이번 출행길은 아마 무척 즐거웠을 것 같구려?”

송중(宋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소.”

유(柳)부인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당신이 가을 하늘이 높고 바람이 시원해서 사람을 죽이기에 아주 좋은 날씨이며 이름난 호수의 뛰어난 풍경 또한 사람을 죽이기에 좋은 곳이니, 천시지리(天時地利)적으로 통쾌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겠다고 말한 것을 나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거야말로 무척 유쾌한 것이 아니겠어요?”

송중(宋中)은 여전히 부인했다.

“유쾌하지 못하오.”

유(柳)부인은 그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죠?”

송중(宋中)은 맥없이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죽이려고 한 그 사람을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오.”

유(柳)부인은 다시 물었다.

“정붕(丁鵬)이 죽일 수 없는 사람인가요?”

송중(宋中)은 나직히 대답했다.

“절대로 죽일 수 없었소.”


8. 미녀에게 홀린 유약송(柳若松)

유(柳)부인은 다시 다그치듯 물었다.

“어째서지요?”

송중(宋中)은 내뱉듯이 말했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오!”

그는 다시 2잔의 술을 들이켰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으로 탁자를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나에게는 1개의 목숨밖에 없었소. 내가 어째서 죽어야 하오?”

유약송(柳若松)은 눈살을 찌푸렸다. 유(柳)부인은 침중하게 물었다.

“틀림없이 당신은 시험을 해보았군요. 설마 당신이 정붕(丁鵬)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단 말이에요?”

송중(宋中)은 여전히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시험해 볼 필요가 없었으며 시험해 볼 수도 없었소. 내가 손을 썼다면 나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변했을 것이오.”

유(柳)부인은 유약송(柳若松)을 바라보았다. 유약송(柳若松)은 자기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柳)부인은 갑자기 웃었다.

“난 믿을 수 없군요. 당신의 검법과 당신의 성질로, 어찌 다른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말이에요?”

송중(宋中)은 냉소했다.

“내가 언제 다른 사람을 두려워한 적이 있소? 나는 누구도 두렵지 않소.”

그는 다시 몇 잔의 술을 더 들이키더니 새삼 호기가 일어나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그들 4사람이 그곳에 없었다면 정붕(丁鵬)이 아무리 큰 재간이 있었다고 해도 나는 그를 내 검 아래 죽도록 만들었을 것이오.”

유(柳)부인은 물었다.

“어떤 4사람이었나요?”

송중(宋中)은 대답했다.

“손복호(孫伏虎), 임상웅(林祥熊), 남궁화수(南宮華樹), 종전(鐘展).”

유약송(柳若松)의 안색이 변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 4사람의 이름을 듣고 안색이 변하기 마련이었다.

송중(宋中)은 물었다.

“당신도 그들을 아시오?”

유약송(柳若松)은 한숨을 내쉬며 쓰디 쓰게 웃었다.

“그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별로 많지 않을 것이오.”

강호에는 그들을 모르는 사람이 확실히 많지 않았다. 손복호(孫伏虎)는 남송(南宋) 소림(少林)의 속가(俗家)제자들 가운데 가장 큰 제자였다. 타고난 신력으로 소림(少林)의 복호신권(伏虎神拳)을 연성했다. 그는 호랑이를 때려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을 때려죽일 수도 있었다. 그는 은연중 영남(嶺南) 일대의 무림 영도자가 되어 있었다.

임상웅(林祥熊)은 손복호(孫伏虎)의 의형제인데 온몸이 강근철골(鋼筋鐵骨)이었다. 그러나 사람됨이 팔방미인이었다. 5, 6년 전 강남 6성(省)의 8대(八大)표국(鏢局)에서 일제히 그를 1째가는 총표두(總鏢頭)로 추대했다. 강남 무림의 흑백이도의 친구들 가운데 그에 반대하는 사람은 1사람도 없었다.

남궁화수(南宮華樹)의 문벌은 더욱 높았다. 남궁(南宮)세가(世家)는 근년에 이르러 점차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발이 100개 달린 벌레는 죽어도 몸이 굳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무공이나 기세는 여전히 여느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었다.

비운검객(飛雲劍客) 종전(鐘展)은 20년 전부터 강호에 명성이 쟁쟁하던 터였다. 유(柳)부인은 다시 물었다.

“그들은 모두 서호(西湖)에 있나요?”

송중(宋中)은 대답했다.

“그들이 서호(西湖)에 있을 뿐 아니라 모두 반한당(半閒堂)의 홍매각(紅梅閣)에 머물고 있소…”

그는 다시 술을 마셨다.

“나는 그곳에서 닷새 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그들은 언제나 그 공자 곁에 있는 것 같았소.”

유(柳)부인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선비와 헤어진지 3일이 되면 괄목상대[刮目相看]해야 된다고 하더니, 정붕(丁鵬)이 4분의 귀한 손님들을 모시고 있을 줄은 생각 못했군요.”

송중(宋中)은 내뱉듯 말했다.

“그들은 그의 귀한 손님이 아니었소.”

유(柳)부인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아니라니요?”

송중(宋中)은 차갑게 대답했다.

“그들은 기껏해야 그의 보표(保鏢)에 불과했소…”

그는 냉소했다.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무릎을 꿇고 그의 발에 입이라도 맞출 것 같았소.”

유(柳)부인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유약송(柳若松)을 바라보았다. 유약송(柳若松)은 이미 자기의 손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송중(宋中)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송중(宋中)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그 바람에 손톱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마치 손에 1자루의 보이지 않는 검을 꼭 쥐고서 보이지 않는 적을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로서는 결코 상대방을 격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적수 말이다. 유약송(柳若松)은 불쑥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이었고 내가 그들 4분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면 나 역시 감히 손을 쓰지 못했을 것이오.”

송중(宋中)은 그 말에 동의했다.

“당신은 감히 그럴 수 없었을 것이오.”

유약송(柳若松)은 천천히 말했다.

“그것은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니오.”

송중(宋中)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본래 창피한 일은 아니지요.”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무척 창피해하는 것 같고 무척 괴로워하는 것 같구려. 나는 당신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소.”

송중(宋中)은 말하지 않고 술만 마셨다.

죽어라 하고 술만 마셔댔다. 1사람이 자기를 괴롭히겠다고 작정했을 때 이와 같이 술을 마시는 법이다. 오직 자기 자신이 무척 창피하다고 느끼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유약송(柳若松)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당신은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소? 어째서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이오?”

송중(宋中)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맞았소. 나는 무척 괴롭소. 내 자신이 이미 끝장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차가운 술을 모두 뜨거운 눈물로 화하고 말았다. 이 냉혹하고 고집 세며 교만한 사나이는 놀랍게도 눈물을 흘릴 줄 알았으며 울 줄 알았다. 그가 우는 모습은 어린애와 다름이 없었다. 그가 참말을 말하는 모습 역시 어린애와 같았다. 그는 속에 있는 말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기실 나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소. 손복호(孫伏虎)와 임상웅(林祥熊)은 그저 온몸에 비곗살을 지니고 있을 뿐이며 종전(鐘展)도 별게 아니오. 내가 볼 때 그들은 일고의 가치조차 없었소…”

그는 조금 전의 말을 번복했다.

“그러나 나는 정붕(丁鵬)이 두렵소…”

그는 다시 1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내가 한평생을 다시 수련한다 해도 그와 견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소…”

그는 내뱉듯 말했다.

“나는 그를 찾아갔었소. 강호의 규칙에 따라 그와 겨루기를 신청해서 그로 하여금 거절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소.”

이어서 그는 갑자기 앞자락을 찢고 가슴을 드러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를 찾아갔던 결과이오.”

그의 가슴은 넓고 건장했다. 그녀는 그의 가슴을 본 적이 있었으며 한때 그의 가슴에 엎드려 신음소리를 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삭이기도 했었다. 그의 가슴에는 7가닥의 칼자국이 나 있었다. 휘어진 칼자국의 상흔은 마치 초승달을 연상시켰다. 송중(宋中)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것은 칼이오. 1자루의 휘어진 칼이었소. 나는 1번도 그렇게 생긴 칼을 보지 못했으며 1번도 그런 도법을 본 적이 없었소. 나는 그에게 49번을 검으로 찔렀으나 그는 겨우 1번 칼질을 해서 나를 격퇴시켰소.”

그는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이 바로 그 1칼의 결과이오.”

그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나는 한평생 이토록 참담한 패배를 당한 적이 없으며 1번도 내가 이와 같은 참패를 당하리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소.”

그는 맥 빠진 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다시 100년 동안 고된 수련을 쌓는다 해도 그의 1칼을 받아낼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소.”

그는 얼굴을 고통스럽게 찡그렸다.

“나는 그에게 나를 죽여달라고 빌었으며 그가 나를 죽이도록 닥달했소.”

그는 다시 고개를 절래절래 내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빙그레 웃었을 뿐이었소.”

송중(宋中)은 송충이를 씹은 듯한 표정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내가 그의 칼 아래 죽을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소…”

이어 그는 참담한 얼굴하고 1마디를 다시 덧붙였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끝장났다는 것을 알았소.”

유약송(柳若松)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1마디도 묻지 않았고 1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 역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끊임없이 마셔댔다. 그 역시 송중(宋中) 못지않게 술을 마셨다. 그들은 모두 다 취하고 말았으며 곤죽이 되도록 취하고 말았다. 취하게 마신다고 해서 결코 어떤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으로 하여금 잠시 많은 일을 잊도록 해주었다. 이 날은 바로 11월 16일이었다.

이 날부터 유약송(柳若松)은 술을 연거푸 마셔서 취해도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11월 17일. 유약송(柳若松)이 막 잠에서 깨어나니 머리 쪼개지는 듯 아팠고 허열(虛熱)이 치밀어 올랐다. 그가 1번째로 떠올린 사람은 정붕(丁鵬)이 아니라 그의 친구가 낙호(樂戶 베트남)에서 사다가 그에게 선물한 그 젊은 여인이었다. 그 젊은 여인은 겨우 15살에 불과했다.

본래 여자 아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낙호(樂戶)에서 성장한 여자애들은 15살 때 이미 성숙한 여인으로 발육했다. 그는 그녀의 긴 다리와 가느다란 허리를 떠올렸고 그녀가 애잔한 음성으로 간드러지게 신음소리를 내뱉을 때의 그 고통스러워하고 쾌락에 겨워 미치려고 하던 표정을 상기했다. 그는 마치 1필의 종마(種馬)처럼 달려나갔다. 그녀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가 찾아낸 것은 1마리의 암캐였다. 그는 후원의 모퉁이에 조그만 방을 만들어서 예쁜 여인을 숨겨 두는 금옥(金屋)으로 만들었다. 그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은 규방에는 하나의 널따랗고 부드러운 침대를 마련해 두었었다. 그는 그녀가 틀림없이 그 침대 위에서 그를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침대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1마리의 깨끗하게 씻겨진 암캐였다. 그 긴 다리에 가느다란 허리를 가진 처녀는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만송산장(萬松山莊)은 촉중(蜀中)의 당가보(唐家堡)처럼 삼엄한 경계를 펼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엄격한 훈련을 받은 가정(家丁) 수10명은 모두 무척 훌륭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48명은 6반(班)으로 나누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원 안을 지키고 순라를 돌았다. 그들 모두 그녀가 그 뜨락에서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녀가 어떻게 실종되었는지 몰랐고, 그 암캐가 어떻게 그녀의 침대 위에 올라와 있는지도 몰랐다.

이것은 희한한 사건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정붕(丁鵬)을 떠올렸다. 11월 19일. 이틀 동안 조사해 보았으나 그 기이한 사건은 여전히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잠시 그 일을 덮어두기로 결정했다. 그는 다시 술을 마시고 싶었다. 그들 부부는 모두 1, 2잔의 술을 마시는 것을 즐겨했으며 마시는 술은 물론 좋은 술이었다. 이 방면에 있어서 그들 2사람은 전문가였고 만송산장(萬松山莊)에 저장해 둔 술을 무척 품질이 좋았다.

지하 술창고의 관사(管事)가 최근 기록한 바에 의하면 그들의 술창고에 저장된 맛좋은 술은 모두 223항아리나 되었으며 모두 25근짜리의 커다란 항아리였다. 그 술을 모두 쏟아내게 된다면 10여 명을 익사시킬 수 있었다. 오늘 그가 사람을 시켜 술을 가져오려고 했을 때 술창고에는 1방울의 술도 없었다. 그가 지하의 술창고에 다년간 저장해 두었던 223항아리의 맛좋은 술은 놀랍게도 더러운 물로 변해 있었다.

여인은 갑자기 암캐로 변할 수 없고 맛좋은 술 역시 갑자기 더러운 물로 변할 수 없었다. 술은 어디로 간 것일까? 더러운 물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술창고를 지키는 관사(管事 사무장)는 해를 가리키며 맹세했다. 이 이틀 동안 그 누구도 술창고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누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200여 항아리의 술을 모조리 더러운 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이것 또한 희한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정붕(丁鵬)을 떠올렸다. 11월 22일. 만송산장(萬松山莊)의 주방 뒤쪽에는 조그만 마당이 있었다. 옷을 너는 것 외에도 돼지, 소, 닭, 오리를 키우고 있었다. 이날 주방의 관사(管事)가 일어나 보니 모든 돼지와 소, 닭, 오리들이 하룻밤 사이에 깨끗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며칠 전에 잇따라 괴이한 일들이 벌어진 후에 모두들 속으로 꺼림칙하게 생각하던 참이라 더욱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해지고 입으로는 아무 소리도 못했지만 남 모르게 퍼지는 소문은 더욱 무서웠다.

모두들 주인에게 지극히 무서운 원수가 있어서 조만간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모든 가축들이 다 죽어버리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사람의 차례가 아닐까? 유약송(柳若松) 자신도 이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람으로 하여금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11월 23일. 유약송(柳若松)을 따른지 20년이나 되는 문지기가 이른 아침 깨어나 보니 그 자신은 발가벗겨져서 돼지우리 속에서 잠들어 있었고 입안에는 진흙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11월 26일. 이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밤중에 침대 위에서 자던 사람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분명히 깨끗이 씻어 놓은 쌀로 밥을 지었는데 솥뚜껑을 열고 보니 그 안에는 17마리의 죽은 뱀이 들어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이 가장 좋아하는 몇 명의 하녀들이 갑자기 발가벗고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뭇간에서는 갑자기 불이 일어났고 쌀 창고에는 갑자기 물이 넘치게 되었으며 고방(庫房) 안에 쌓아 놓았던 몇 필의 비단은 모두 가위질을 당해서 자투리가 되어 나뭇가지 위에 걸려 있었다. 유(柳)부인이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뜨락에는 붉고 파란 자투리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놀랍게도 그녀의 옷가지도 있었다.

11월 27일. 60여 명이나 되는 가정(可情)들과 40여 명이나 되는 하인들 가운데 이미 반 이상이 살그머니 뺑소니치고 말았다. 그 누구도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가 침대 위에서 자지 않고 돼지 우리에서 자고 있는 일을 그 누가 참고 견딜 수 있겠는가.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활에 놀란 새 꼴이 되었다. 그 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 그만 놀라 반죽음이 되었다. 이와 같은 나날을 그 누가 견뎌낼 수 있겠는가.

11월 28일. 첫눈이 왔다. 눈은 이미 멎었으며 날씨는 맑고 한랭했다. 유약송(柳若松)은 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행동거지에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날 아침 그는 여전히 이불 속에 드러누워 있었다. 어젯밤에 그는 이리 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날이 밝은 후에야 가까스로 잠들 수 있었다. 그는 일어나기가 싫었다. 일어난 후에는 또 나쁜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닌가? 방안은 무척 따뜻했으나 공기는 무척 나빴다. 모든 창문들이 모조리 못질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시는 맞은편 산비탈에 하루하루 화려하게 웅장한 모습을 갖추어 가는 장원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이미 옛날의 그 생기발랄하고 신수가 훤하며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의 그는 쉽게 신경질을 내고 성을 내는가 하면 심신이 불안해져서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정붕(丁鵬)일까봐 두려운 것이었다. 바로 이때 그 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정붕(丁鵬)이 아니라 그의 아내 진가정(秦可情)이었다. 그는 그녀 역시 여위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본래 풍만하고 발그레하던 두 뺨은 이제는 창백하게 움푹 꺼져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으나 그녀의 웃음도 옛날처럼 그토록 달콤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는 못했다. 그녀는 들어와 앉았다. 침대 머리맡에 앉아 그를 바라보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우리 떠나요.”

유약송(柳若松)은 물었다.

“떠나다니?”

유(柳)부인은 침착하게 말했다.

“당신은 마음속으로 틀림없이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러한 짓들은 모두 다 정붕(丁鵬)이 한 짓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냉소했다.

“당신은 정말로 그가 갑자기 그렇게 커다란 재간을 가진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을 믿소?”

유(柳)부인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가 손복호(孫伏虎)와 종전(鐘展) 같은 사람들을 승복시킬 수 있었다면 무슨 일인들 해내지 못하겠어요?”

유약송(柳若松)은 입을 다물었다. 유(柳)부인은 정색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이틀 동안 나는 무척 많은 생각을 해봤어요. 그때 우리들은 실로 너무 지나쳤어요. 그가 1가닥 숨이 붙어있는 한 결코 우리들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지금 그는 우리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하는 거예요. 일부러 먼저 그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괴롭혀서 우리를 미치도록 닥달하고서야 다시 손을 쓰겠지요.”

유약송(柳若松)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유(柳)부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이곳에 남이 있다면 하루도 편안히 지낼 날이 없게 될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나직하게 물었다.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겠소?”

유(柳)부인은 자신있게 말했다.

“우리들에게는 아직 돈이 있고 친구들이 있어요. 아무데를 가도 괜찮을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에게 그토록 커다란 재간이 있다면 우리들이 어디로 간다 해도 그는 여전히 우리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오.”

그는 냉소를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머리를 움츠린 자라새끼처럼 숨어서 한평생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지겠지만…”

유(柳)부인은 담담히 말했다.

“그래도 핍박을 받아 죽는 것보다는 나아요.”

유약송(柳若松)은 입을 다물었다. 유(柳)부인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무당산(武當山)으로 가지 않아요?”

유약송(柳若松)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갈 수 없소…”

유(柳)부인은 다시 자기의 뜻을 밝혔다.

“당신이 무당파(武當派)의 장문인(掌門人)이 되고 싶은데, 이런 일들이 소문나고 무당파(武當派)의 동문들이 알게 되면 장문인(掌門人)이 될 수 없기 때문인가요?”

유약송(柳若松)은 부인하지 않았다.

유(柳)부인은 빤히 그를 내려다 보았다.

“당신은 재산이 아깝고 명성이 아까워서 그러는 거지요? 당신은 그와 1번 싸워 보려고 하는 거지요?”

유약송(柳若松)은 담담히 말했다.

“내 혼자서 그를 이기지 못한다 해도 나는 친구를 찾을 수 있소.”

유(柳)부인은 냉정하게 말했다.

“당신이 누구를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누가 이런 쓸데없는 일에 관계하겠어요. 이제 종전(鐘展)마저도 저쪽에 붙어버리고 말았어요. 더군다나 앞으로 찔러 들어오는 창은 피하기 쉬워도 뒤에서 날아드는 화살은 방비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당신이 이와 같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한평생을 보내고 싶어 해도 다른 사람은 영원히 당신을 벗할 수 없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당신은?”

유(柳)부인은 냉담하게 말했다.

“나는 이미 견딜 수 없어요. 당신이 가지 않겠다면 나 혼자 가겠어요…”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걸어서 나갔다.

“나는 이틀 더 기다릴 수 있어요. 이 달이 다 가기 전에 나는 반드시 가야 하겠어요. 우리들은 부부이긴 하지만 나는 아직 이곳에서 죽고 싶지는 않아요.”

부부는 본래 같은 숲속에 살고 있는 새와 마찬가지이니, 커다란 재앙이 들이닥치면 각각 흩어져서 날아가고 만다. 그녀가 머리도 1번 돌리지 않고 걸어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유약송(柳若松)은 마음속으로 여간 착잡하지 않았다. 별안간 그는 1사람이 웃으면서 하는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부부는 본래 같은 숲속에 사는 새들과 같아서 커다란 재앙이 들이닥치면 각자 흩어져서 날아가는 법이지요. 이제 당신은 그 1마디의 말을 떠올렸나요?”

유(柳)부인이 나갈 때 문을 닫아주었었다. 창문은 닷새 전에 이미 완전히 막아버리고 말았다. 그 누가 이 방안에 숨어 있다면 틀림없이 나가지 못할 터였다. 유약송(柳若松)은 누가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며 말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이 이 방안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말하는 소리 무척 가까워 1자 1자 똑똑히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먼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는 찾기 시작했다. 그는 한평생 흉악하고도 위험한 일들을 적지 않게 겪었다. 그는 자기가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는 일은 없으리라 믿었다. 그는 이미 그 사람이 여자이며 낯선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예전에 절대로 그런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낯선 여인이 어떻게 자기의 방안으로 들어온 것일까? 그런데도 그는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이것 또한 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반드시 진상을 알아내야 했다. 그는 무척 꼼꼼하게 찾았다. 방안의 구석구석을 다 뒤지다시피 했다. 심지어 옷장과 침대 밑까지도 다 찾아보았다. 끝내 자기 자신 외에 방안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전 말하던 그 여인은 어디로 간 것일까?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송이는 1송이 2송이 창호지를 후려치게 되었고 맞은편 산비탈 쪽에서는 아직도 집을 짓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방안 안에는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하여 언제라도 유령이 나타나는 무덤 속 같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 더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약송(柳若松)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드러눕고 말았다. 조금 전 말하던 그 여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미 이곳에 왔다면 결코 그 1마디의 비아냥거리는 말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리라. 반드시 또 다른 할 말이 있으리라. 그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그가 다시 드러눕자마자 그 종잡을 수 없고 우아한 웃음 섞인 음성이 들렸다.

“호호호, 나는 정말 당신을 잘못 보지 않았군요.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녕 여느 사람과 다른 데가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역시 나를 찾지 못할 거예요.”

음성이 들려오는 곳은 그와 무척 가까웠다. 그는 말하는 사람이 그의 침대 휘장 위에 있다는 것을 단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벌떡 일어나서 살펴보니 휘장 위에서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유약송(柳若松)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등 뒤에서 숨쉬는 소리 들려왔고, 사람의 입김이 그의 목덜미를 간지럽혔기 때문이었다.

그는 줄곧 그녀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의 등뒤에는 눈이 달려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장 빠른 속도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의 등뒤에 있었다. 그 여인의 신법은 마치 유령처럼 표홀(飄忽)하고 날렵했다. 유약송(柳若松)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졌다는 것을 시인하겠소.”

그 여인은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스스로 졌다는 것을 시인한 사람은 총명한 사람이에요. 나는 총명한 사람을 좋아해요.”

유약송(柳若松)은 얼른 물어 보았다.

“당신도 이 유(柳)가를 좋아한다는 얘긴가?”

그녀는 그 말을 가로챘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지금쯤 당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

그녀의 음성은 무척 온화하고 우아했다. 하지만 유약송(柳若松)은 그 말에 몰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그녀는 바로 그의 등뒤에 있었다.

그는 심지어 그녀가 말할 때 내쉬는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그녀가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참을 수 없어서 물었다.

“당신은 이미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구려?”

그녀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나는 물론 알고 있어요. 나는 당신을 찾아온 거예요.”

“당신은 누구요?”

“나는 여인이에요.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에요…”

그녀는 은방울을 굴리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빨리 침대에 드러누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도록 해요.”

“이불로 얼굴을 가리면 내가 어떻게 당신을 볼 수 있겠소?”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오늘 밤에는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냉랭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한평생 나를 만날 생각을 하지 말아요.”

유약송(柳若松)은 즉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는 솜이불을 끌어당겨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그녀는 다시 웃었다.

“호호호, 오늘밤 당신이 후원으로 가게 된다면 틀림없이 나를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장담했다.

“내 반드시 가리다.”

유약송(柳若松)은 이미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직 어린애였을 때도 어른처럼 의젓했었다. 그러나 오늘 그는 놀랍게도 어린애로 변하고 말았다. 어린애처럼 말을 잘 듣고 어린애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여자를 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린애였을 때 이미 가지각색의 여인들과 살을 섞었었다. 그는 언제나 여인들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여인들도 그에게 대해서 무척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의 아내는 바로 여인 중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는 아직도 만나보지 못한 여인을 위해서 갑작스럽게 어린애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 여인은 실로 너무나 신비했다. 찾아온 것도 신비했고 떠나간 것도 신비했으며 무공은 더욱 신비했다. 가장 중요한 1점은 그 여인이 자기에게 절대적으로 악의가 없다는 그 말을 그가 믿었다는 점이었다. 그 여인은 누구일까? 어째서 그를 찾아왔을까? 여인들은 모두 남자들을 이용하려고 한다. 이것은 남자가 모두 여자를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어쩌면 그를 이용해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도 몰랐다. 그는 더욱 그녀를 이용하고 싶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피차 서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와 같은 관계가 피차에게 유리하다면 그는 결코 반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시(子時)도 되기 전에 후원으로 가게 되었고, 과연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여인이었다.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11월. 무척 추운 날이었다. 눈이 내릴 때도 춥지만 눈이 멎은 후에는 더욱 추웠다. 그러나 그녀는 겨우 엷은 망사 옷을 걸치고 있었다. 너무나 엷어서 투명한 망사 옷이었다. 조금도 그녀는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일진(一陣)의 바람처럼 또는 1송이의 구름처럼, 또는 1송이의 눈처럼 갑자기 유약송(柳若松)의 면전에 나타난 것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그녀를 바라보자 말은커녕 호흡이 멎을 지경이었다. 그는 많은 여인을 만나보았으나 일찍이 1번도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고귀한 여인을 보지 못했다. 얼굴을 망사로 가리고 있어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풍자(風姿)와 그녀의 의태(儀態)는 인간 세상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넋을 잃었다.

그녀는 그가 멍하니 바라보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갑자기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었다.

“호호, 당신은 충분히 보았나요?”

유약송(柳若松)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다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여인은 나직히 1마디 했다.

“당신이 충분히 보았다면 나는 다시 당신을 데리고 가, 1사람을 만나도록 해주겠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물었다.

“누구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것이오?”

그는 다시 말을 덧붙였다.

“이 세상에 당신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남아 있소?”

그녀는 다소곳이 대답했다.

“그 사람은 결코 예쁘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틀림없이 당신이 그를 만나보고 싶어할 거라고 믿어요.”

그녀는 갑자기 두둥실 날아와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9. 아내의 간통 장면을 목격한 유약송(柳若松)

유약송(柳若松)의 몸뚱이가 허공 위로 들려 올라갔다. 자기의 뜻과는 달리 그녀를 따라 앞으로 두둥실 날아가기 시작했다. 눈이 쌓인 뜨락을 훨훨 지나고 높다란 담장을 훌쩍 뛰어넘고 얼음이 얼어있는 조그만 연못도 두둥실 뛰어 넘었다. 그의 몸뚱이는 무척 가벼워진 듯했으며 1송이의 눈꽃과 1송이의 구름으로 화한 것 같았다. 그는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자기 자신이 날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이와 같은 꿈을 꾸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미망(迷惘)에서 정신을 가다듬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미 맞은편의 산비탈 위에 있는 그 화려하고 웅장한 장원 앞에 와 있었다. 눈덮인 밤에 바라보니 그 장원은 마치 하나의 꿈속에서 보는 궁전 같았다. 이 장원과 비교해 볼 때 자기의 만송산장(萬松山莊)은 그저 파락호(破落戶)의 판잣집에 불과한 것 같았다. 높다란 건물과 정원은 이미 완성되어 있어 더 이상 서둘러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토록 추운 밤에 장인들은 모두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를 데리고 모든 곳을 두루 구경시켜주었다. 그는 자기가 인간 세상에 있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갑자기 그녀는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이 장원이 누구의 것인지 아시나요?”

유약송(柳若松)은 순순히 대답했다.

“알고 있소.”

그녀는 다시 물었다.

“당신은 이곳의 주인을 만나보고 싶나요?”

유약송(柳若松)은 되물었다.

“그는 이곳에 있소?”

그녀는 사실대로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 장원이 이미 예정보다 일찍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는 예정보다 좀 더 일찍 이곳에 와 있어요.”

그녀의 몸뚱이가 갑자기 두둥실 떨어지듯 1나뭇가지 위에 내려서게 되었는데 그곳에 쌓인 눈들은 그녀의 발바닥에 짓밟혔는데도 뭉개지지 않았다. 그 역시 경신법을 익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1번도 인간 세상에 이와 같은 경신법이 있을 줄은 생각 못한 터였다. 그녀는 다만 1손으로 그를 붙잡고 있었지만 그의 몸뚱이는 마치 솜처럼 가벼운 물건으로 변한 것 같았다.

이것이야말로 마법(魔法)이 아닐까? 달도 별도 찾아볼 수 없는 밤이었지만 눈빛의 반사로 그는 여전히 멀리까지 살펴볼 수 있었는데, 저 먼 발치에 매우 커다란 청석(靑石)이 놓여 있었다. 보기에 무척 매끄럽고 윤기가 나면서도 딱딱한 것 같았다. 유약송(柳若松)은 참을 수 없어서 물었다.

“정붕(丁鵬)이 이곳에 온단 말이오?”

그녀는 순순히 대답했다.

“틀림없이 올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물었다.

“이토록 깊은 밤중에 그가 이곳에 와서 무엇한다는 것이오?”

그녀는 그 청석을 가리켰다.

“저 바윗돌을 이용해서 자기의 칼을 시험해 보려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여전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그것 어떻게 알고 있소?”

그녀는 방그레 웃었다.

“나는 물론 알고 있어요. 내가 알고자 하는 일을 나는 무슨 일이든지 모조리 알 수 있어요.”

모든 사람들은 많은 것을 알고자 하지만 애석하게도 진정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녀는 어째서 그녀가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일까? 혹시 그녀에게는 여느 사람들을 초월(超越)한 마력(魔力)이라도 있는 것일까? 유약송(柳若松)은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감히 묻지 못했다. 더군다나 물어볼 기회도 없었다. 그는 이미 정붕(丁鵬)을 보았다. 정붕(丁鵬)은 이미 변해 있었으며 예전처럼 충동적이고 무지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지금 그는 무척 성숙해 있었고 차분해져 있었으며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자신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는 어슬렁 어슬렁 걸어오고 있는데 아마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눈에 덮인 뜨락을 산책하러 나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지나간 눈바닥 위에서 그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비스듬히 1자루의 칼이 허리띠에 푹 찔려져 있었다. 1자루의 형식이 무척 특이한 칼인데 도신(刀身)은 약간 휘어져 있는 것 같았다.

- 그것은 청청(青青)의 만도(彎刀)가 아니었다.

이 칼은 그가 다시 인간 세상에 돌아오게 된 후에 주조한 것으로 흔해빠진 무쇠로 만든 것이었다.

- 그러나 지금 그가 어떤 칼을 사용하든지 이미 천하무적이었다.

그 청석(靑石)을 지나치게 되었을 때 갑자기 그 칼이 칼집에서 뽑혀졌다. 유약송(柳若松)은 숫제 그가 언제 칼을 뽑았는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칼은 이미 칼집에서 빠져나오게 되었고 칼빛이 번쩍했을 때 매우 기이한 호선(狐仙)을 그으며 그 청석을 쪼개듯이 내려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1칼은 그저 아무렇게 휘두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1칼을 내려치게 되었을 때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 1조각의 보기에 강철보다도 더 단단한 청석이 칼빛 아래 그만 2쪽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칼은 이미 칼집에 들어가 있었다. 정붕(丁鵬)은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보기에는 여전히 산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눈깜짝할 사이에 아주 멀어졌다. 눈 위에는 발자국도 찾아볼 수 없어서 마치 숫제 사람이 나타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어느새 유약송(柳若松)을 데리고 나뭇가지 위에서 내려섰다.

“당신이 가서 저 바위덩어리를 1번 살펴보도록 하세요.”

손으로 만져본 후에야 그는 이 돌덩어리가 보기보다 더욱 단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1조각의 사람 키보다도 더욱 높고, 둥근 탁자보다 더욱 큰 바위는 이미 정붕(丁鵬)이 아무렇게 휘두른 1칼에 2쪽이 나고 말았다. 밤은 더욱 깊어졌고 바람은 더욱 차가워졌으나 유약송(柳若松)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눈같이 흰 백사(白紗)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가 사용한 것은 마법이 아니고 칼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가 칼을 썼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소.”

설의녀(雪衣女)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 1칼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었나요?”

유약송(柳若松)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알아볼 수 없었소.”

설의녀(雪衣女)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 당신은 알아볼 수 없었을 거예요. 그 1칼은 숫제 변화라고는 없었으니까요.”

그 1칼은 유약송(柳若松)이 한평생 본 도법 가운데 가장 놀랍고 가장 무서운 1칼이었다. 그러나 그 1칼에는 정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1칼을 내려 쪼개는 그 수법은 간단하면서도 단순하고 또한 직접적인데도 1자루의 칼이 쏟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위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이 몸소 본 것이 아니라면 결코 그 1자루의 흔하디 흔한 무쇠로 만들어진 칼에 그토록 무서운 위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으리라.

설의녀(雪衣女)는 나직하나 힘을 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 1칼에는 변화가 없지만 도법의 모든 변화의 정수를 내포하고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그 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어떻게 하는 말이오?”

설의녀(雪衣女)는 설명했다.

“저 1칼이 펼쳐지게 되었을 때 사용된 도법, 부위, 시간, 힘, 속도 등은 모두 정확하게 계산된 것이며 꼭 알맞게 모든 힘을 극한으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속도와 방법, 시간은 본래 1물체가 지니고 있는 힘을 변경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본래 무공의 진정한 의의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공은 느림으로써 빠름을 공격할 수 있고 약함으로써 강한 것을 능가할 수 있었다. 1물체의 힘을 극한으로 발휘시킬 수 있다면 1가닥의 지푸라기로 튼튼한 갑옷을 꿰뚫을 수 있는 것이었다. 설의녀(雪衣女)는 다시 설명을 계속했다.

“저 전혀 변화가 없는 1칼을 연성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도법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변화에 투철해야 해요. 나는 정붕(丁鵬)이 이미 무척 오랫동안 연마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녀는 방그레 웃었다.

“그러나 그 1칼은 결코 당신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유약송(柳若松)은 솔직히 시인했다.

“알고 있소. 나를 상대하고자 할 때 숫제 그런 도법이 필요없는 것이오.”

설의녀(雪衣女)는 담담히 말했다.

“그가 그 1칼을 연마한 목적은 바로 사(謝)씨 집안의 3(三)소야(少爺)를 상대하기 위한 것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사효봉(謝曉峰) 말이오?”

설의녀(雪衣女)는 담담히 말했다.

“그 외에 또 누가 있겠어요…”

그녀는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의 검법은 이미 검법의 모든 변화를 모조리 꿰뚫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정붕(丁鵬)은 그 1초(一招)의 전혀 변화 없는 도법으로 그를 상대하고자 하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쓰디쓰게 웃었다.

“내가 그의 1칼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반드시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오.”

오직 미치광이만이 사효봉(謝曉峰)을 격퇴시킬 생각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1칼을 보자 그 1칼이 사효봉(謝曉峰)을 격퇴시키든 못 시키든, 자기의 어깨 위에 있는 머리를 자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설의녀(雪衣女)는 담담히 물었다.

“당신은 그가 짧은 4년에 그런 도법을 생각해냈다는 사실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나요?”

유약송(柳若松)은 그 말을 받았다.

“상상도 못할 일이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꿈에도 생각 못했소.”

설의녀(雪衣女)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신은 생각 못했을 것이에요. 이 인간 세상에는 그런 도법이 없기 때문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그 말을 반박했다.

“인간 세상에 그런 도법이 없다면 어떻게 그가 익힐 수 있었소?”

설의녀(雪衣女)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예전에 몇 달만에 이와 같은 장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이나 해봤나요?”

유약송(柳若松)은 대답했다.

“그 역시 생각 못했소.”

설의녀(雪衣女)는 그 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장원은 완성 되었어요…”

그녀는 천천히 다시 말을 이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지만 모조리 해냈어요. 그가 이와 같은 능력으로 당신을 상대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참이지요?”

유약송(柳若松)은 흠칫했다.

“나는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오…”

설의녀(雪衣女)는 물었다.

“당신은 죽고 싶은가요?”

유약송(柳若松)은 솔직히 대답했다.

“죽고 싶지 않소.”

설의녀(雪衣女)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신은 이미 죽게 된 것 같아요.”

유약송(柳若松)은 물었다.

“그는 어째서 아직도 손을 쓰지 않소?”

설의녀(雪衣女)는 담담히 대답했다.

“그는 다음 달 15일까지 기다리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의혹을 느꼈다.

“어째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오?”

설의녀(雪衣女)는 설명했다.

“그 날 그는 이곳에서 귀한 손님들을 대접할 거예요.

그는 천하 영웅호걸들 앞에서 먼저 당신의 음모를 폭로할 거예요. 그는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뿐 아니라 당신의 명성마저도 땅에 떨어지도록 만들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물었다.

“나의 음모라니, 무슨 음모 말이오?”

설의녀(雪衣女)는 그 말을 받았다.

“당신 자신도 그것이 어떤 음모인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당신은 나에게 감출 필요가 없어요…”

그녀는 냉랭히 다시 말을 이었다.

“어쩌면 당신은 그가 증거를 내놓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 그가 하는 일이 그 증거예요. 지금 그는 당신보다도 이미 돈이 많고 더욱 세력이 많아요. 그 1수 천외유성(天外流星)을 그가 창안해낸 것이라고 한다면 그 누가 믿지 않을 수 있겠으며 그 누가 감히 믿지 않으려고 하겠어요.”

천외유성(天外流星)이라는 4글자를 듣자 유약송(柳若松)의 안색이 그만 참혹하게 변했다.

“그 일을 당신은 어떻게 알고 있소?”

설의녀(雪衣女)는 어디까지나 담담했다.

“내가 말한 바 있지만 내가 알고자 하는 일을 나는 바로 알 수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설의녀(雪衣女)는 맑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나는 당신의 구세주예요. 유일한 구세주라고 할 수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그 말을 되씹었다.

“구세주라고?”

설의녀(雪衣女)는 아무렇지 않은듯 대답했다.

“당신은 이미 죽을 몸이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을 구할 수 있어요…”

그녀는 담담히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오직 나만이 당신을 구할 수 있어요. 이 세상에는 나를 제외하고 청청(青青)을 상대할 사람을 다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에요.”

청청(青青). 이것은 유약송(柳若松)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따라서 그는 물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청청(青青)? 청청(青青)이 누구요?”

“청청(青青)은 바로 정붕(丁鵬)의 아내예요. 정붕(丁鵬)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에게 청청(青青)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녀의 음성은 갑자기 무척 기이하게 변했다.

“진정으로 두려운 사람은 정붕(丁鵬)이 아니라 청청(青青)이에요. 당신은 절대로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생각 못할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맥없이 말했다.

“그러나 나는 1번도 강호에서 그녀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보지 못했소.”

설의녀(雪衣女)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당신은 들어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녀는 숫제 사람이 아니니까요.”

유약송(柳若松)은 되물었다.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고요?”

설의녀(雪衣女)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보장하지요. 그녀는 결코 사람이 아니에요.”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설마하니 그녀가 귀신이라도 된다는 말이오?”

설의녀(雪衣女)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귀신도 아니에요. 귀신이라 해도 그처럼 커다란 재간이 없어요…”

그녀는 생각해 보더니 다시 설명했다.

“나는 소흥(紹興)에 도깨비가 있어서 사람들이 땅밑에 묻은 12항아리의 여아홍(女兒紅)을 모조리 훔쳐 마시고 다시 맹물을 집어 넣은 적이 있고, 장가구(張家口)에도 도깨비가 있어서 관외(關外)에서 몰고 들어온 통통한 양떼를 모조리 죽여버렸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러나 하늘과 땅의 그 어떤 도깨비라 해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커다란 아가씨를 암캐로 변하도록 만들 수는 없어요.”

유약송(柳若松)은 그 말을 듣고는 얼떨떨해지고 말았다. 그는 그 가느다란 허리에 다리가 긴 여자 아이를 떠올렸고, 그녀가 성교 도중에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기는 듯한 표정을 짓고 신음소리를 내던 광경을 상상했다. 그는 다시 그 암캐를 떠올렸고 그가 개고기를 먹은 사실을 생각해 내었다.

그 역시 자기가 울고 싶은지 아니면 웃고 싶은지, 아니면 토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설의녀(雪衣女)는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당신은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거예요. 사람들이 그녀를 두려워할 뿐 아니라 도깨비들도 그녀를 두려워해요.”

유약송(柳若松)은 두려움과 호기심을 함께 느꼈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이오?”

설의녀(雪衣女)는 간단히 대답했다.

“여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그 말을 되씹었다.

“여우?”

설의녀(雪衣女)는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설마하니 이 세상에 꼬리가 9개 달린 여우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구미호라는 말도 몰라요?”

유약송(柳若松)은 여우에 관한 황당하고도 야릇한 전설들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어릴적부터 무척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설은 오직 시골 할머니들만이 믿었다. 그러나 이제 그 자신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몸소 본 일들이 그 전설보다도 더욱 황당하고 야릇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의 곁에 서 있는 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여인도 혹시 여우가 아닐까? 그는 감히 묻지 못했다. 이 여인이 사람이든 여우이든 자기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구세주인 것 같았다. 그녀를 제외하고 자기를 구해줄 사람은 다시 없었다. 그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어째서 나를 구하려는 것이오?”

설의녀(雪衣女)는 웃음띤 어조로 대답했다.

“그 점은 무척 중요한 거예요.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지요.”

유약송(柳若松)은 불안스러운 표정이었다.

“당신은 물론 공짜로 나를 도와주려고 하지는 않겠지?”

설의녀(雪衣女)는 대답했다.

“물론 그럴 리 없지요…”

그녀는 방긋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에게 눈독을 들였기 때문에 당신을 구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에요. 나는 당신이 결코 자아도취에 빠진 사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빙그레 웃었다.

“나는 젊었을 때 한때 내 자신에게 도취한 적이 있었지요. 다행히도 그때는 이제 이미 지나가 버렸소.”

설의녀(雪衣女)는 얼굴을 약간 돌리고 말했다.

“저쪽에 1그루 커다란 나무가 있어요. 당신이 그 나무 뒤에 서서 기다리게 된다면 당신은 내가 어째서 당신을 구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다시 당부하듯 말했다.

“그러나 당신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일을 보든지 아무 소리도 내지 말아야 하며, 더욱 움직여서는 아니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을 때 나 역시 당신을 구할 수 없게 될 거예요.”

이윽고 유약송(柳若松)은 나무 둥지에서 기다렸다.

한참 동안 기다리자 1사람이 어둠속에서 걸어왔다. 몸매가 무척 날씬한 여인이었다. 담청색의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것이 마치 그림속의 선녀 같았다. 청청(青青). 나타난 사람은 틀림없이 청청(青青)이었다. 그녀는 눈처럼 하얀 망사를 입은 여인을 보자 멀리서부터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 역시 은방울 소리처럼 맑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설의녀(雪衣女)는 멀리서부터 그녀를 향해 마주나갔다.

“청청(青青), 청청(青青), 너는 내가 얼마나 너를 그리워했는지 모르겠지?”

“남남(藍藍), 나 역시도 너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이제서야 유약송(柳若松)은 자기의 그 구세주의 이름이 남남(藍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들 가운데 1사람은 청청(青青)이라고 했고 1사람은 남남(藍藍)이라 불렀다. 그녀들은 보기에 다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청청(青青)은 바로 그의 원수의 아내였고 청청(青青)은 그의 목숨을 빼앗을 차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남(藍藍)은 어째서 그를 구해주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은 그들이 설계해 놓은 함정이 아닐까? 유약송(柳若松)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창망 중에 도망을 칠 뻔했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남남(藍藍)의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였기보다도 그 자신이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에 남남(藍藍)이 펼친 것은 경신법이든 마법이든 간에, 그를 잡는 것은 독수리가 병아리를 낚아채는 것보다 더욱 수월한 노릇이었다..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청청(青青)과 남남(藍藍)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그 웃음소리는 매우 달콤하고 다정했다. 남남(藍藍)은 물었다.

“너는 정말 나를 그렇게 그리워했느냐?”

청청(青青)은 대답했다.

“나는 물론 너를 그리워했지. 나는 죽고 싶도록 그리워했단다.”

남남(藍藍) 역시 맞장구치듯 말했다.

“나 역시 너를 죽고 싶도록 그리워했다.”

청청(青青)은 다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죽이고 싶도록 생각이 났단다.”

남남(藍藍) 역시 맞장구를 쳤다.

“나 역시도 죽이고 싶도록 생각이 났단다.”

2사람이 서로 이토록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했었다면 당연히 많은 말들을 주고받게 될 터였다. 2여인이 얼굴을 맞대게 된다면 언제나 끝날 줄 모르는 할 말이 있는 법이다. 뜻밖에도 그녀들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고 말았다. 갑자기 대화가 끊어진 것이었다. 청청(青青)은 갑자기 몸을 돌려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남남(藍藍)은 갑자기 쓰러졌다. 유약송(柳若松)은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청청(青青)은 너무나 뜻밖에 모습을 드러냈고 너무 갑자기 그 자리를 떴다. 그 결과는 더욱 뜻밖이었다. 그는 달려가서 살펴보려고 했다. 남남(藍藍)이 어째서 갑자기 쓰러졌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행히 남남(藍藍)은 갑자기 다시 제비처럼 몸을 돌리더니 두둥실 달려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우리 가요. 빨리 가요.”

그녀는 정말 빨리 달렸다. 올 때보다 더욱 빨랐다. 그녀는 다시 그를 데리고 만송산장(萬松山莊)의 후원으로 가서야 가까스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 됐어요.”

그 1마디를 끝내자 그녀는 다시 쓰러졌다. 그제서야 유약송(柳若松)은 남남(藍藍)이 청청(青青)의 암산에 걸려든 것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는 남남(藍藍)이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지 않았기를 바랬다. 오로지 그녀만이 자기를 구할 수 있고 오로지 그녀만이 자기의 구세주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남남(藍藍)은 일어나 앉았다. 가장 표준적인 도가(道家)의 타좌(打坐) 자세를 취하고 가부좌를 틀고 눈바닥에 앉았다. 잠시 후에 그녀의 머리 위로 갑자기 뭉실뭉실 더운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아래쪽에 쌓인 눈도 갑자기 녹기 시작했다. 녹아나는 물은 하얀색이 아니라 짙은 파란색이었다. 눈은 재빨리 녹아들었다. 마치 1장의 하얀 종이를 가운데서부터 태우듯 눈깜짝할 사이에 뻥하니 커다란 구멍이 났다.

눈바닥 위에 갑자기 1새파란 원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원은 둥근 탁자보다도 넓었다. 남남(藍藍)은 갑자기 손을 내밀어 소맷자락을 걷어 올리고 눈처럼 희고 부드러운 팔을 드러내었다. 그녀가 뻗쳐낸 것은 왼팔이었다. 조금 전 청청(青青)이 그녀에게 다정스레 굴 때 그녀의 그 팔을 가볍게 1번 툭 친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다시 오른손을 내밀었다. 2개의 파뿌리처럼 희고 섬세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왼팔에 있는 곡지혈(曲池穴)로 가져가더니 쑥 뽑았는데 뽑혀진 것은 3치 길이의 은침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줄곧 그녀의 손을 노려보고 있었으나 그녀가 어떻게 그 침을 뽑아 들었는지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이미 위험한 처지에서 벗어난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미 몸을 일으켰고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아슬아슬했어요. 나 역시 방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오늘쯤 아마 그녀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을 거예요.”

유약송(柳若松)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쓰디쓰게 웃었다.

“이제 나는 어찌되었든 간에 이해할 수 있군요. 그녀가 죽고 싶도록 보고 싶었다고 말했을 때 원래는 당신을 죽이려고 했고, 그녀가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원래 당신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었군요.”

남남(藍藍)은 곱게 웃는 것 같았다.

“당신은 정말로 총명하네요.”

유약송(柳若松)은 그 말을 얼른 받아서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암산에 성공했으면서 어째서 갑자기 떠나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구려?”

남남(藍藍)은 잔잔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그녀를 죽이고 싶도록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저 역시 그녀를 죽이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녀의 웃음소리는 다시 아름다움을 되찾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나에게 이 침을 던졌을 때 나도 그녀에게 손을 썼지요. 나는 그녀가 당하게 될 고통이 결코 나보다 가볍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빨리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보다 빨리 죽게 될 거예요.”

유약송(柳若松) 역시 웃었다.

그런 암수를 그도 써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에 비하면 기껏해야 제자뻘밖에 되지 않았다. 남남(藍藍)은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당신은 내가 어째서 당신을 구하고자 하는지 알겠지요?”

유약송(柳若松)은 알면서도 물었다.

“청청(青青) 때문이오?”

남남(藍藍)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도 틀림이 없어요.”

그녀는 1맺힌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나에게는 단 1명의 적이 있었어요. 나의 적은 바로 그녀예요. 그녀가 바로 당신을 해치려고 하기 때문에 나는 바로 당신을 구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녀가 정붕(丁鵬)을 도와주고 있다면 나는 바로 당신을 돕겠다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나는 틀림없이 당신을 위해 정성을 다하겠소.”

남남(藍藍)은 넌지시 말했다.

“나는 당신이 어떤 점에 있어서도 정붕(丁鵬)에 비해서 뒤떨어지지 않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신을 고른 거예요. 그야말로 청청(青青)이 정붕(丁鵬)을 고른 것과 마찬가지지요.”

유약송(柳若松)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청청(青青)이 정붕(丁鵬)을 골랐기 때문에 정붕(丁鵬)에게 시집을 간 것이었다. 그녀가 그를 고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혹시 그에게 시집을 오려는 것이 아닐까? 남남(藍藍)은 다시 넌지시 말했다.

“나는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당신이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어요…”

그녀는 갑자기 가볍게 그의 손을 잡고 나직히 말을 이었다.

“나는 심지어 당신에게 시집을 갈 수도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의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놀았다. 남남(藍藍)은 다소곳이 말했다.

“이미 당신에게 처가 없었다면 나는 당신에게 반드시 시집을 갔을 거예요…”

그녀는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정붕(丁鵬)에게는 처가 없었어요. 당신은 단지 그 점에 있어서 그와 비교할 수 없어요. 물론…”

유약송(柳若松)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물론 어떻다는 것이오?”

남남(藍藍)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당신의 처가 갑자기 죽게 된다면 문제는 달라지지요…”

그녀는 담담히 다시 말을 이었다.

“모든 사람은 죽기 마련이에요. 일찍 죽거나 늦게 죽거나 기실 커다란 차이가 없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남(藍藍)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어찌되었든간에 그녀보고 떠나리라고 말했어요. 그녀가 죽었든 살아있든 별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유약송(柳若松)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떠나게 된다면 그녀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정말 별 차이가 없는 것이오.”

남남(藍藍)은 그의 의중을 떠보려는듯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어요. 그녀는 여전히 유(柳)부인이니, 그녀가 돌아오고자 할 때는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물었다.

“그녀가 이미 유(柳)부인이 아니라면?”

남남(藍藍)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아주 크게 되지요…”

그녀는 가만히 그의 손을 놓았다.

“나는 단지 당신이 어떤 수확을 거두고자 할 때, 어떤 대가를 먼저 치루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주기를 바래요.”

11월 스무 아흐렛날. 유약송(柳若松)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새도록 그는 생각했다. 정붕(丁鵬)을 생각하고 청청(青青)을 생각했다.

그는 여우를 생각하고 그의 아내를 생각했으며, 정붕(丁鵬)의 그 번개와 같이 내려쪼개는 1칼을 생각했다. 그가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물론 역시 남남(藍藍)이었다. 남남(藍藍)의 신비, 남남(藍藍)의 아름다움, 남남(藍藍)이 몸에 지니고 있는 신비한 마력, 남남(藍藍)이 그의 팔을 붙잡거나 끼게 되었을 때의 달콤하고 부드러웠던 감촉, 남남(藍藍)이 그 눈처럼 희고 윤기가 나는 팔을 드러내게 되었을 때… 그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그 팔을 드러내게 되었을 때의 광경을 떠올리자 그녀의 몸에 있는 다른 부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몸에 있는 다른 부분을 떠올리게 되었을 때 그는 다시 성적인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가 정말로 자기에게 시집온다면 정말이지 밤낮없이 그녀와 1침대에서 1베개를 베고 뒹굴고 말리라. 그에게 그녀와 같은 아내가 있다면 세상에 또 무슨 일이 있어 그가 걱정하랴? 그는 물론 그녀가 1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남남(藍藍)은 그가 무엇이든지 얻고자 했을 때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오랫동안 그와 합방하지 않았던 아내를 찾았다. 그는 불현듯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 그녀 역시 갑자기 암캐로 변한다면?

그는 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결코 그렇게 유쾌한 일이 못 되었다. 그의 아내는 암캐로 변하지 않았으나 어머니로 변해 있는 것 같았다.

결코 어린 아이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그녀는 마치 송중(宋中)의 어머니로 변한 것 같았다. 송중(宋中)은 마치 어린애처럼 그녀의 품속에서 젖을 빨고 있었다. 그가 온 것을 보자 송중(宋中)은 화살에 맞은 토끼처럼 도망쳐버렸다. 그는 숫제 그런 광경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들 부부 사이에는 이미 묵계가 있었다. 그는 이토록 예고없이 그녀의 방안으로 뛰어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조금도 성을 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숫제 성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 역시 성을 내지 않았다. 결코 성을 낼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녀 역시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1사내가 자기의 아내가 그토록 지쳐 있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속으로 무슨 생각이 들게 될까? 유약송(柳若松)은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어떤 느낌이 있다 해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유(柳)부인은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더니 억지로 웃었다.

“당신은 오늘 일찍 일어나셨군요.”

유약송(柳若松)은 코대답을 했다.

“응.”

유(柳)부인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이곳에서 한숨 잘 생각이 있나요?”

그녀의 질문은 정말 묘했다. 유약송(柳若松)의 대답은 더욱 절묘했다. 그는 불쑥 말했다.

“당신은 떠나시오.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당장 떠나도록 하시오.”

대다수의 여인들은 자기 남편이 자기에게 그런 소리를 들려주면 틀림없이 질문하는 법이었다.

- 당신은 어째서 나보고 지금 가라는 거지요? 당신은 나와 함께 가지 않을 건가요?

그러나 그녀는 대다수의 여인들과 달랐다. 그녀는 1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덧붙여 말했다.

“당신이 어디로 가든, 당신이 무엇하러 가든, 마음대로 하구려. 예전에 내가 당신을 상관하지 못했고 이후에는 더욱 당신을 상관할 수 없소. 이제부터 당신은 당신의 진(秦)씨 성을 따르고 나는 내 성씨를 그대로 지키겠소. 우리 서로 상관없는 사람이 됩시다. 당신은 다시 돌아올 필요도 없소.”

그의 말은 무척 무자비했다. 대다수의 여인들은 자기의 남편이 그렇게 정을 끊고 의를 끊는 말을 하면 펄쩍 뛰며 대성통곡하거나 욕하며 별 소란을 피우고, 너무 상심해서 반죽음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1점의 표정도 떠올리지 않았다.

표정이 없다는 것은 때로는 강한 표정이 되기도 한다. 1사람의 슬픔이 극한에 달하고 극도로 실망하게 되었을 때는 종종 이런 모습이 되는 것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다시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 역시 마음속으로는 약간 괴로웠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부부로 살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남남(藍藍)을 생각하니 그의 마음은 다시 차가워져서 냉랭히 1마디를 내뱉었다.

“칠거지악을 당신은 모조리 범했소. 유부녀가 남편을 놔두고 감히 간통을 했으니, 내가 당신을 죽이지 않는 것만 해도 당신은 운수대통이라는 것을 알아야지. 당신은 역시…”

그가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허리가 시큰해졌고 허리 언저리의 4곳 혈도가 순간적으로 봉쇄되었다. 상대방이 사용한 수법은 바로 무당파(武當派)의 점혈 수법이었다. 그의 아내가 30살을 맞는 생일 날, 그는 그 수법을 차례로 가르쳐 주었던 것이었다.

그때 그는 무척 우쭐해 있었다. 그녀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원래 1꾸러미의 진주 목걸이였다. 그 목걸이의 진주들은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호도알만 했고 그 값은 최소한 5만 냥 이상이 되었는데 그녀는 그런 목걸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이 1수의 점혈 수법을 전수하는데 그는 1푼의 돈도 들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아내는 남편에게 온순하고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아내의 손에 많은 재물을 쥐어주면 아니 되며, 그렇지 않을 때 아내의 못된 수작이 더욱 많아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여자에게 돈이 많은 것은 무척 위험하고 마치 무기를 넘겨주는 것과 똑같이 위험하다고 인정해 왔었다. 총명한 남자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총명한 사람이었다. 절대로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쓰러진 것이었다. 진가정(秦可情)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표정이 없던 얼굴에 다시 그 달콤하고 매력적이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서야 나는 당신이 나에게 준 무공이라는 선물이 그 1꾸러미의 진주 목걸이보다 훨씬 진귀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는 실로 당신에게 고마워해야 되겠네요.”


10. 죽음보다 강한 사랑

그녀는 미소를 띠우고 걸어 나가더니 1사람을 끌고 들어왔다. 송중(宋中)은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 가정(可情)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저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닌데, 당신이 난처하게 생각할 것이 뭐가 있어요.”

송중(宋中)은 물었다.

“그는 당신을 버렸소?”

가정(可情)은 대답했다.

“그는 나를 버렸을 뿐 아니라 나를 이 집에서 내쫓으려 하고 있어요.”

그녀는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나는 저 사람에게 시집온지 10여 년이나 되었는데 남의 집에서 10여년 동안 키워진 개보다도 못해요. 그는 나를 내쫓으려고 하니 나는 순순히 쫓겨나는 수밖에 없겠지요.”

송중(宋中)은 각오한듯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떠납시다.”

가정(可情)은 물었다.

“당신은 나를 데리고 가겠어요?”

송중(宋中)은 큰소리로 말했다.

“그가 당신을 마다한다면 내가 당신을 받아들이겠소.”

가정(可情)은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나같은 할망구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거예요?”

송중(宋中)은 진심에 찬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정말로 할망구가 된다 해도 나는 결코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오.”

가정(可情)은 다시 웃었다. 그 웃음은 매우 달콤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정말 좋아요. 나는 결국 당신을 잘못 보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송중(宋中)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무엇이 애석하다는 것이오?”

가정(可情)은 설명했다.

“나는 아직 할망구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매일과 같이 1통에 20냥의 은자가 나가는 진주가루를 먹어야만 해요. 그래야 내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지 않아요.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모두 천축과 페르시아에서 가져온 것이에요. 그래야만 남들이 나를 볼 때 젊다고 느낄 것이 아니겠어요. 나는 매일과 같이 우유로 목욕해야 하며 또 몇 명의 하녀들이 나를 시중들어야 해요…”

이어 그녀는 송중(宋中)의 손을 쓰다듬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호의호식에다가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게 습관이 되어 있는 여인이에요.”

송중(宋中)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고 있소.”

가정(可情)은 물었다.

“내가 당신에게 시집을 간다면 당신은 나를 먹여 살릴 수 있겠어요?”

송중(宋中)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곧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강도짓을 해서라도 당신을 먹여 살리겠소.”

가정(可情)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당신이 어째서 강도짓을 해요? 그것은 당신의 장점이 아니잖아요?”

그녀는 담담히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장점이에요. 당신이 1사람만 죽인다면 우리들은 한평생 편안한 날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송중(宋中)은 물었다.

“당신은 나보고 누구를 죽이라는 것이오?”

가정(可情)은 웃기만 할 뿐 말하지 않았다. 송중(宋中)은 우둔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누구를 죽여 달라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결코 사람을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을 죽이든 모두 마찬가지였다. 가정(可情)은 벽에서 1자루의 검을 내리더니 그에게 건네주었다.

“당신이 손을 휘두르기만 한다면 나는 불쌍한 과부가 되는 거예요. 정붕(丁鵬)이 아무리 흉악하다 해도 결코 가련한 과부를 상대하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방긋이 웃었다.

“다행히 이 가련한 과부는 돈이 많은 과부예요. 그 누구든 그녀를 맞아들이게 된다면 한평생 먹고 살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유약송(柳若松)은 자기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여인을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누구든 이런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죽어 마땅했다. 쩡,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이미 검집에서 뽑혀졌다.

송중(宋中)은 끝내 몸을 돌리고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나를 탓하지 못할 것이오. 당신 자신을 탓해야 할 것이오.”

유약송(柳若松)은 그 말을 수긍했다. 검의 광채가 번쩍하며 어느덧 그의 목줄기를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성은 송(宋), 이름은 중(中), 1검(一劍)으로 끝장을 내는 1검(一劍)송종(送終).

그의 손씀씀이는 정확하고 매서울 뿐 아니라 아무런 저항력이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니 물론 절대로 실수가 없었다.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 한 유약송(柳若松)은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뜻밖에도 기적같은 일이 정말 일어나고 말았다. 별안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세찬 바람이 허공을 가로지르고 곧이어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송중(宋中)의 손에 들려져 있던 검이 그만 2토막이 나고 말았다. 1물건이 반 토막이 난 단검(斷劍)과 함께 땅바닥에 떨어져서 멀리까지 굴러갔는데 놀랍게도 하나의 솔방울이었다.

이 검으로 말하면 유약송(柳若松)의 검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이 1800냥이라는 거액을 들여서 관외(關外)의 이름난 장인 오도고(吳道古)를 시켜 주조한 것이었다. 오도고(吳道古)는 검을 주조한지 30년이나 되었으며 주조한 검 가운데 어느 하나 정품(精品)이 아닌 것이 없었다. 쇠망치로 두드려도 부러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1자루의 검이 하나의 작은 솔방울에 맞아 부러지고 만 것이었다.

송중(宋中)의 손 역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얼얼해졌으며 그는 경악한 표정으로 뒤로 5걸음이나 물러섰다. 진가정(秦可情)의 손에서 7줄기의 싸늘한 별빛이 유약송(柳若松)을 향해 던져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물론 그녀가 던져낸 것이 어떤 암기인지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암기를 만들기 위해서 그는 비싼 값에 사람을 청해서 그녀에게 만들어준 것이었다. 더군다나 특별히 사람을 시켜 그 암기에 독을 묻히도록 했다.

그녀는 암기를 화십고(花十姑)와 천수관음(千手觀音)과 같은 일류의 암기 명가에게는 던질 수 없었다. 그러나 2장(丈) 안에 있는 물체라면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의 간격은 1장(丈)도 채 되지 않았다.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 한 유약송(柳若松)은 반드시 죽어야 할 형편이었다. 뜻밖에도 기적은 다시 일어났다. 7점의 차가운 별빛과 같은 물체들은 본래 유약송(柳若松)의 목줄기와 가슴팍을 노리고 날아들었으나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창문 쪽으로 날아갔다.

창문 쪽에 갑자기 1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눈송이처럼 희고 부드러우며 깨끗한 순백의 옷을 걸친 사람이었다. 그녀의 기다란 소매가 휘둘러지는 찰나, 7점의 차가운 별빛과 같은 물체들은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곧이어 칙, 하는 소리와 함께 1줄기의 세찬 바람이 그녀의 소맷자락에서 날아 나와 진가정(秦可情)의 무릎에 푹 꽂혔다.

진가정(秦可情)의 몸뚱이는 앞으로 덮쳐드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나 갑자기 뻣뻣하게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꼼짝도 못했다. 유약송(柳若松)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원래 바람소리는 1번밖에 울려퍼지지 않았지만 던져진 솔방울은 2개나 되었다. 1알은 진가정(秦可情)의 환도혈(環跳穴)을 때렸고 다른 1알은 유약송(柳若松)의 혈도를 풀어준 것이었다. 깃털과 같은 가벼운 망사를 걸치고 눈처럼 흰 옷을 입은 여인은 동시에 2개의 솔방울을 내던졌는데 그 힘이 놀라울 뿐 아니라 사용된 수법과 그 힘이 결코 같지 않았다.

송중(宋中)은 그런 광경을 보고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그는 일찍이 이와 같은 신기한 암기 수법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심지어 들어본 적도 없었다. 화십고(花十姑)와 천수관음(千手觀音) 등, 천하에 명성을 떨친 암기 고수들을 이 여인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격이고 공자님 앞에서 문자를 쓰는 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의 눈을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유약송(柳若松)은 믿었다. 그는 더욱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신기한 일들을 본 바 있었다. 남남(藍藍)은 유약송(柳若松)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어째서 그녀를 죽이지 않지요?”

유약송(柳若松)은 머뭇거렸다.

“나는…”

남남(藍藍)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그녀는 당신을 죽이려고 했으니 당신도 그녀를 죽일 수 있는 거예요. 당신이 그녀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녀는 또 다시 당신을 죽이려고 할 거예요.”

그녀가 손짓을 1번 하자 땅바닥의 반 토막 검날이 갑자기 날아서 그녀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 반 토막 검날을 유약송(柳若松)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오도고(吳道古)가 만든 것이겠지요. 3치 길이의 토막만 남았지만 충분히 사람을 찔러 죽일 수 있어요.”

그 1토막의 검날은 1자 남짓한 길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3개의 손가락으로 그 검날을 쥐었는데 검날은 곧바로 진가정(秦可情)의 목줄기를 겨누었다. 진가정(秦可情)은 갑자기 방그레 웃었다.

“당신의 모습은 흉악하긴 하지만 나는 당신이 결코 나를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음!”

가정(可情)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당신을 잘 이해하지요. 당신은 80냥의 가격이 나가는 비싼 옷만 입고 1항아리에 90냥이나 나가는 술만 마시며 아름다운 여인만 안을 뿐 아니라 편안하고 쾌적하게 당신의 그 방안에 앉아서 다른 사람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지요. 그래서 당신은 그 사람이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인다 해도 결코 괴로워하지 않지요…”

그녀는 냉소했다.

“그러나 당신 스스로 손에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면 당신은 감히 손을 쓰지 못할 거예요.”

송중(宋中)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는 감히 그럴 수 없지만 나는 감히 그럴 수 있소.”

가정(可情)은 놀랍다는듯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차마 손을 쓸 수 있어요?”

송중(宋中)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달려들어 손에 들고 있던 반 토막 검으로 진가정(秦可情)의 앞가슴을 푹 찔렀다. 그녀의 눈동자는 놀랍다는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죽어도 그가 정말로 무자비하게 손을 쓰리라고는 생각 못했던 터였다. 송중(宋中)은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당신은 틀림없이 내가 당신을 죽이지 못할 줄 알았겠지?”

가정(可情)은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당신은… 당신은 어째서?”

송중(宋中)은 대답했다.

“나는 벌써부터 죽고 싶었소. 그러나 당신이 죽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죽을 수 있겠소.”

그는 검을 뽑았다.

선혈이 마구 튀는 가운데 그 1토막의 장검은 이미 그 자신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녀가 죽었으니 그도 이제 죽을 수 있게 되었다. 송중(宋中)은 갑자기 몸을 뒤로 젖히면서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내가 한평생 사람들을 무수히 죽였지만 이번만큼 통쾌한 적은 없었다.”

진가정(秦可情)의 눈이 천천히 감겨지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자기가 줄곧 송중(宋中)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를 잘못 봤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는 송중(宋中)이 겉으로는 매서운 척하나 안으로는 겁을 집어먹는 사람이라고 여겼고, 겉으로 볼 때는 뻣뻣하지만 기실에 있어서는 무척 유약한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유약할 뿐 아니라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강아지를 다루듯 마음대로 데리고 놀았던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오로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며, 한마음 한뜻으로 그녀를 사랑하며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 쏟아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1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를 위해서 그는 죽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서 그는 욕됨을 참고 구차한 삶을 사는 것도 사양하지 않았다. 그녀는 1번도 그런 점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녀는 숫제 이 세상에 그런 감정이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믿게 되었다. 그녀는 속으로 갑자기 죽음보다도 강렬한 어떤 감격을 느끼게 되었고 죽음의 공포를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죽는 것이 그렇게 두렵지 않다고 느꼈다. 1사람이 죽을 때까지 사랑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진정 무서운 것이었다.

“당신은 이미 대가를 치렀으니 나는 당신이 틀림없이 큰 수확을 거둘 것이라도 장담할 수 있어요.”

이것은 남남(藍藍)이 떠날 때 한 말이었다. 매번 그녀는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떠나곤 했다. 유약송(柳若松)은 어떤 방법을 써야 그녀를 오게 하고 어떤 방법을 써야 그녀를 붙잡을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남남(藍藍)의 분부대로 그 암캐를 호로(葫蘆)에게 넘겨주었었다. 호로(葫蘆)는 만송산장(萬松山莊)의 술창고를 지키는 관사(管事)의 별호였다. 그야말로 주둥이가 없는 호로(葫蘆)였다. 그는 충성스럽고 믿음직할 뿐 아니라 병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었고 1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래서 유약송(柳若松)은 그를 술창고의 관사(管事)로 삼은 것이었다. 호로(葫蘆)는 그 암캐를 술창고에 가두었다.

1방울의 술도 남아 있지 않는 술창고였다. 나중에 유약송(柳若松)이 그 암캐를 내보려고 했을 때 그 암캐는 이미 암캐가 아니었다. 그는 호로(葫蘆)를 앞세워 술창고로 들어가 그 암캐를 찾았는데 찾아낸 것은 바로 여인이었다. 1명의 가느다란 허리에 긴 다리를 지닌 여인이었다. 그 여자는 그를 발견하자 얼굴에 다시 그 두렵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역시 자기가 어떻게 이 술창고에 와 있는지 몰랐다.

그녀가 잠이 들었을 때는 여전히 그 넓적하고 부드러운 침대 위였다. 그런데 그녀가 깨어나게 되었을 때 이곳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기적은 잇따라 나타나고 있었다. 더러운 물이 다시 맛좋은 술로 변했고 죽었던 소와 양들은 이미 뒤에 있는 황량한 산속으로 데려가 불태우도록 했는데 이제는 다시 1마리 1마리 살아서 돌아왔다. 남남(藍藍)은 다시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이와 같은 기적들은 물론 그녀가 만든 것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이미 그만한 대가를 치르었고 그녀 역시 자기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기 위해서 그는 그 가느다란 허리에 긴 다리를 가진 여자애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는 남남(藍藍)을 손에 넣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사람이든 짐승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녀가 정말 여우라 해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와 같은 아내를 맞아들이게 된다면 그는 어떤 사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고 그 어떤 일도 겁낼 필요가 없었다. 하루 하루 세월은 흘러갔다. 맞은편 산비탈의 장원은 모든 공사가 끝나게 되었다. 저녁에 등불이 켜지게 되었을 때 멀리서 보면 마치 하늘에 있는 궁궐 같았다. 원월산장(圓月山莊)의 주인이 손님들을 청하는 청첩장을 사람을 시켜 보내왔다. 이 원월산장(圓月山莊)의 주인은 물론 정붕(丁鵬)이었고 손님을 청하는 날은 달 밝은 밤이었다.

오늘은 열 나흩이었으나 남남(藍藍)은 아직도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었다.

- 그녀는 틀림없이 올 것이다. 그녀는 결코 나를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유약송(柳若松)은 줄곧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으나 매우 초조했다. 그녀가 오지 않는다면 내일 그는 어쩌면 그 하늘의 궁궐같은 원월산장(圓月山莊) 안에서 죽게 될지도 몰랐다. 그는 자기를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늦어도 오늘 밤에 그녀는 틀림없이 올 것이다.”

황혼 무렵에 그는 1탁자의 정교하고 운치 있는 술과 음식을 장만해 놓고 혼자 방안에서 기다렸다. 남남(藍藍)은 과연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방안이 갑자기 향기로 가득 찼다. 꽃향기 같기도 했으나 꽃향기보다 더욱 분방(芬芳)하고 달콤했다. 못질을 해서 봉해졌던 창문이 갑자기 바람이 없는데도 저절로 열렸고 창밖에는 붉은 노을빛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남남(藍藍)은 마치 1송이의 아름다운 오색 구름처럼 두둥실 하니 흘러 들어왔다. 그녀가 며칠 동안 오지 못한 것은 많은 일을 안배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청(青青)을 상대한다는 것은 그렇게 수월한 노릇이 아니고 청청(青青)의 법력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 무척 드물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일은 안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그녀를 제압할 방법을 강구해 놓았어요. 청청(青青)을 제압하기만 한다면 정붕(丁鵬)은 숫제 걱정할만한 상대가 못 되어요. 당신이 내 말을 듣고 제대로만 해준다면, 나는 당신을 도와 그들을 격퇴시킬 뿐 아니라 당신이 마음속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든지 나는 당신을 도와주겠어요.”

유약송(柳若松)의 평생소원은 바로 무당파(武當派)의 장문인(掌門人)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참을 수 없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무당파(武當派)에서는 1번도 속가(俗家)제자가 장문인(掌門人)이 된 적이 없소. 그러나 나는…”

남남(藍藍)은 그 말을 얼른 받았다.

“당신은 무당파(武當派)의 장문인(掌門人)이 되고 싶은가요?”

유약송(柳若松)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지금 가장 가능성이 큰 사람은 결코 내가 아니라 능허(凌虛)요.”

남남(藍藍)은 냉소했다.

“그까짓 무당(武當) 장문인(掌門人)이 뭐가 대수로운 일이에요? 당신의 포부가 너무 적네요.”

그녀는 불쑥 입을 열었다.

“당신은 상관금홍(上官金虹)을 알고 있나요?”

유약송(柳若松)은 물론 알고 있었다. 상관금홍(上官金虹)은 일대 효웅(梟雄)으로 천하를 종횡하고 무림에 군림했었다. 강호에서는 그 당시 그 누구도 감히 그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지 못했고 그가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바로 명령이었으며 그 누구도 감히 어기지 못했다. 그는 강호의 으뜸가는 명협(名俠) 소리(小李)의 비도(飛刀)에 죽임을 당했지만, 그가 살아 있을 때의 위풍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견줄 수 없을 정도였다.

남남(藍藍)은 차분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언제라도 당신의 성취가 상관금홍(上官金虹)을 능가하고 소리(小李)비도(飛刀)를 따라잡을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당금 강호에서 명성이 가장 큰 사효봉(謝曉峰)도 초월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의 심장은 이미 뛰고 있었다. 무척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남남(藍藍)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조금 전 당신은 능허(凌虛)를 말했는데, 그는 천일(天一)도인(道人)의 그 큰제자가 아니에요?”

유약송(柳若松)은 대답했다.

“그렇소.”

남남(藍藍)은 말했다.

“내일 그 역시 원월산장(圓月山莊)에 나타날 것이에요. 어쩌면 지금쯤 이미 도달해 있는지도 모르지요.”

유약송(柳若松)은 물었다.

“그가 어떻게 그 산장에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오?”

남남(藍藍)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물론 정붕(丁鵬)이 그를 초청해 온 것이지요…”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당신도 그가 어째서 특별히 능허(凌虛)를 초청하는지 알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정붕(丁鵬)은 능허(凌虛)의 앞에서 그를 처치하고, 능허(凌虛)로 하여금 유약송(柳若松)이 정말 죽어야 할 이유를 알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본문(本門)의 사형(師兄)이 있어 증인이 되는 마당에 정붕(丁鵬)이 그를 어떻게 대하든 다른 사람들은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무당파(武當派)에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원수를 갚으려고 나설 수도 없게 되는 것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붕(丁鵬)이 그토록 꼼꼼할 줄은 생각도 못했구려.”

남남(藍藍)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1번 당한 사람은 일을 할 때 언제나 꼼꼼해지는 법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웃고 있었다. 쓰디 쓰게 웃었다. 남남(藍藍)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정붕(丁鵬)이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면 능허(凌虛)가 당신을 도와주지 않을까요?”

유약송(柳若松)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 없을 것이오.”

남남(藍藍)은 다시 물었다.

“그는 당신을 위해 변호하지 않을까요?”

유약송(柳若松)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 없을 것이오.”

그런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유약송(柳若松)을 편들지 않으리라. 남남(藍藍)은 물었다.

“당신이 죽게 된다면 그는 무척 괴로워할까요?”

유약송(柳若松)은 여전히 부인했다.

“그럴 리 없소.”

남남(藍藍)은 그 말을 받아 말했다.

“그가 죽는다면 당신이 결코 그를 위해서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인가요?”

유약송(柳若松)은 부인하지 않았다.

능허(凌虛)는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으며 도박은커녕 창녀집에 출입하지도 않았다. 그가 살아있는 유일한 목적은 바로 언젠가 자기가 천일(天一)진인(眞人)의 도통(道統)을 이어받아 무당파(武當派)의 장문인(掌門人)이 되는 것이었다. 그 역시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고 야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그 일에 대해 염원하는 마음은 결코 유약송(柳若松)에 못지않았다. 그들은 피차 속으로 상대방이 자기의 유일한 경쟁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의 몸이 건강해서 3, 40년이나 4, 50년 더 사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오.”

남남(藍藍)은 자신있게 말했다.

“나는 그가 절대로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 없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아!”

남남(藍藍)은 단정하듯 말했다.

“그는 내일 밤에 죽게 되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믿기 어려웠다.

“그는 언제나 건강했고 아픈 곳도 없는데 어떻게 죽는단 말이오?”

남남(藍藍)은 대답했다.

“그 누가 1검(一劍)으로 그의 목줄기를 따버리기 때문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궁금하여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요?”

남남(藍藍)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바로 당신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어리둥절해졌다. 사실 그는 1검(一劍)으로 능허(凌虛)의 목줄기를 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마음속으로 그런 일을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감히 입밖에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생각하는 것조차도 감히 오래 하지 못했다. 능허(凌虛)는 그의 대사형(大師兄)이었다. 능허(凌虛)를 죽이는 것은 바로 사문(師門)을 배반하는 것이었다. 사문(師門)을 배반하는 것은 대역무도한 일이었다. 남남(藍藍)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당신이 감히 그럴 수 없다면 나도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다시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나는 아직 당신에게 시집가지 않았어요. 당신이 죽는다 해도 나는 그렇게 괴롭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는 벌써 떠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이 어찌 그녀를 놓아보내겠는가?

“나는 감히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남남(藍藍)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다만 어떻다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천천히 설명하듯 말했다.

“능허(凌虛)는 어릴적부터 무공을 연마했소. 밥 먹고 염불하며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언제나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소. 그러나 나는 많은 다른 할 일들이 있었소.”

그는 정말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세상에는 무공을 연마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재미있는 일일수록 오랫동안 그 일에 매달릴 수 없었다. 재미없게 변하고 말기 때문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내가 다른 일을 너무나 많이 했는지도 모르겠소. 그래서 지금 나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이오.”

남남(藍藍)은 그 말에 토를 달았다.

“당신은 본래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해요. 그는 10초(招) 안으로 당신을 죽일 수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부인하지 않았다. 근년에 능허(凌虛)는 더욱 부지런하게 무공을 연마했고 내공은 더욱 심오해졌으며 검술 또한 더욱 정묘해졌다. 강호에서는 이미 무당(武當)의 1배분 낮은 제자들 가운데서 그가 으뜸가는 고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남남(藍藍)은 다시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나 내가 있는 이상 당신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당신 곁에 있으면 1당신은 10초(招) 안으로 그를 죽일 수 있을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의 눈이 빛났다. 남남(藍藍)은 말을 계속했다.

“내일 정오 무렵에 나는 성안의 회선루(會仙樓)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당신과 함께 가겠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물었다.

“당신이 어째서 나를 기다린다는 것이오?”

남남(藍藍)은 담담히 말했다.

“나는 당신이 교자(轎子)로 나를 맞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교자(轎子)로 맞아들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이와 같은 요구는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시집가지 않은 여인들은 언제나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가 교자(轎子)를 떠매고 와서 데려가기를 바랬다. 유약송(柳若松)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더욱 빨리 뛰었다.

“나는 틀림없이 1채의 가장 큰 교자(轎子)를 마련해서 당신을 맞이하겠소. 그러나 당신은…”

그는 남남(藍藍)의 얼굴에 가려진 면사(面紗)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어째서 지금까지 나에게 당신의 얼굴 모습을 보여주지 않소?”

남남(藍藍)은 간단히 대답했다.

“내일 당신은 볼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녀는 다시 덧붙이듯 말했다.

“내일 당신이 회선루(會仙樓)로 가게 되었을 때 몸에 호숫빛의 남색 치마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백조조봉(百鳥朝鳳 새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봉황)의 주화(珠花)를 꽂고 발에 1쌍의 붉은 바탕에 꽃을 수놓은 신을 신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물었다.

“그 여인이 바로 당신이오?”

남남(藍藍)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12월 15일.

날씨는 맑았다.

정오의 햇살은 봄날처럼 따뜻했다.

유약송(柳若松)은 햇살 아래서 그의 가정(家丁)들이 1꾸러미의 금빛 구슬들을 교자(轎子) 위에 장식하는 것을 바라보며 속으로 무척 만족스럽게 여겼다. 이 교자(轎子)는 그가 18년 전 진가정(秦可情)을 맞아드리게 되었을 때 특별히 경성(京城)의 이름난 장인에게 부탁해서 1품(一品)부인(夫人)의 의제(儀制)에 따라 만들도록 1것이었다.

하룻밤 동안 보수를 하자 다시 새것처럼 그 모양이 일신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 교자(轎子)를 타고온 사람은 이제 영원히 볼 수 없었다. 이 점을 생각하자 유약송(柳若松)은 속으로 괴로웠다. 다행히 그는 재빨리 그 불유쾌한 일들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오늘은 그에게 있어서 좋은 날이었고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그는 결코 어떤 일이 자기의 유쾌한 심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지 않았다.

그의 가정(家丁)들도 모두 새로 맞춘 여우 가죽의 짧은 상의를 걸치고 있었고 허리에는 눈부시게 붉은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하나같이 희색이 만면하고 정신이 또렷한 것 같았다. 남남(藍藍)은 이 무렵 회선루(會仙樓)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남남(藍藍)이 그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마굿간을 지키는 노곽(老郭)은 이미 그의 애마, 키가 크고 건장한 천리설(千里雪)을 끌어냈다. 새로 맞춘 안장과 고삐는 새빨간 비단으로 치장했다.

그는 훌쩍 몸을 날려 말에 오르게 되었다. 그 솜씨는 여전히 젊었을 때처럼 날렵하고 민첩했다. 그는 정말 유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회선루(會仙樓)에 도착하자 그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남남(藍藍)은 과연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누상으로 오르자마자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과연 호숫빛의 남색 치마 저고리를 입고 조용히 1모퉁이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상 밖에서 비스듬히 비쳐들어 오는 햇살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의 그 주화(珠花)를 비춰주어 더욱 아름다운 빛이 사방으로 뻗쳐나고 있었다. 그녀는 유약송(柳若松)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화사했고 화사할 뿐 아니라 요염했다. 진가정(秦可情)이 우물(尤物)이라면 그녀는 우물(尤物) 중의 우물(尤物)이었다. 이 세상에 남자가 한눈에 반해서 견뎌내지 못할 여인이 있다면 그녀는 바로 그런 여인이었다.

견뎌낼 수 없다는 뜻은, 숨이 급해지고 심장이 빨리 뛰는 등의 생리적인 요건들이 그녀로 인해서 모조리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녀가 옷을 입고 있을 때도 사내들로 하여금 충동적인 정욕을 느끼도록 만들고 참을 수 없어 남 모르는 곳으로 몰래 빠져나가 방법을 강구해서 배설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누상에는 사내들이 무척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유약송(柳若松)이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강호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온 영웅호걸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소에 그는 그 사람들을 만나면 다가가서 손을 잡거나 인사치레의 말을 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그가 겸허하고 예의에 밝을 뿐 아니라 친구 사귀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오늘 그는 평소처럼 그렇게 깍듯하지 못했다. 그 사람들이 모두 정붕(丁鵬)이 청해온 사람들이었고, 남남(藍藍)을 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들의 눈동자에 정욕과 갈망이 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신체의 어느 부분이 딱딱하게 발기되어 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있었다. 모두들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유명한 사람은 본래 다른 사람의 눈길을 끄는 법이었다. 하지만 오늘 여러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서려 있는 빛은 약간 이상했다.

- 그녀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부러워하고 질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유약송(柳若松)은 미소를 띠우고 남남(藍藍)의 면전으로 걸어갔다. 남남(藍藍) 역시 미소를 띠우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웃음은 무척 달콤했다. 그녀가 웃게 되었을 때 머리 위의 주화(珠花)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고 발에 신은 붉은 바탕에 수를 놓은 신발도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물속에서 떠오른 1쌍의 붉은 연꽃같다고나 할까. 유약송(柳若松)은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시오!”

남남(藍藍) 역시 인사했다.

“안녕하셨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겠구려?”

남남(藍藍)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상관없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나직히 물었다.

“이제 우리들은 떠날 수 있겠소?”

남남(藍藍)은 쉽게 대답했다.

“당신이 가자고 한다면 언제라도 우리들은 떠날 수 있을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예의바른 태도로 손을 내밀었다. 남남(藍藍) 역시 손을 내밀어 그의 손 위에 놓았다.

그녀의 손은 더욱 아름다웠다. 이윽고 유약송(柳若松)은 가장 우아하고 침착한 태도로 그녀의 손을 붙잡고서 회선루(會仙樓)를 나섰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며 이상야릇한 눈빛을 띠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 그를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정말 유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유일하게 유약송(柳若松)으로 하여금 별로 즐겁지 못한 마음이 들게 한 것은 바로 능허(凌虛)였다.

그는 남남(藍藍)이 틀림없이 그가 능허(凌虛)를 죽이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일을 떠올리기만 하면 마음속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이었다. 능허(凌虛)는 금년에 52살이었다. 겉으로 볼 때 그의 실제 나이보다 더욱 늙은 것 같았다. 오랜 세월에 걸친 고된 수련과 담백한 음식을 먹고 정욕을 억제한 것이 그를 늙게 만든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20살밖에 되지 않는 젊은이처럼 날렵하고 민활했다. 그의 어깨는 떡 벌어졌으며 허리는 무척 가늘었다. 복부와 엉덩이 쪽에도 필요없는 지방과 비곗살은 1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옷을 벗고 여인의 면전에 서게 된다면 틀림없이 그 여인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 있으리라. 다행히 그런 일은 일찍이 1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는 1번도 여인을 가까이한 적이 없었다. 오랜 세월에 걸친 금욕생활은 이미 그로 하여금 그 일을 잊어버리게 했다. 정상적인 사람이 삶을 누리면서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은 그에게 있어서는 모두 죄악이었다. 그는 차가운 찬물과 담백한 밥을 먹었으며 입는 것은 거칠은 베로 만들어진 옷이었다. 그의 온몸 아래위를 포함해서 유일하게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검이었다.

1자루의 모양이 오래 되어 보이면서 졸렬해 보이는 송문(松紋)고검(古劍)은 선명한 행황색(杏黃色)의 수를 매달고 있었다. 이 검은 그의 신분을 표시했을 뿐 아니라 그의 지위가 존귀하다는 것도 상징하고 있었다. 이 때 그는 그 칼을 메고 원월산장(圓月山莊)의 꿈결같은 정원 안의 어느 정교한 수각(水閣) 안에 앉아 있었다. 그는 지금 원월산장(圓月山莊)의 주인 정붕(丁鵬)을 바라보고 있었다.


11. 얼굴에 그려진 열10(十)자

원월산장(圓月山莊)의 화려함과 호사스러움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오늘 이곳에 온 손님들은 아주 많았다. 손님들 가운데 대다수는 강호에 이름이 알려진 인사들이었고 각 지방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을 뿐 아니라 강호를 누비며 큰 거리에서 검을 뽑아 은원을 시원스럽게 해결짓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수각(水閣) 안에는 손복호(孫伏虎), 임상웅(林祥熊), 남궁화수(南宮華樹), 종전(鐘展), 매화(梅花), 묵죽(墨竹) 등이 있었다.

능허(凌虛)는 이 6사람을 알고 있었다. 손복호(孫伏虎)와 임상웅(林祥熊)의 손에는 푸른 힘줄이 울퉁불퉁 돋아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얼굴에 언제나 웃음을 띠우고 있었다. 그들은 외가공력(外家功力)과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수양, 2가지 방면에 똑같이 정통했던 것이다. 남궁화수(南宮華樹)는 여전히 옛모습 그대로였다. 소탈하면서도 시원시원했고 복장은 격식에 맞았다.

언제 어떤 곳에서 그를 만나든지 그의 손에는 언제나 1잔의 술이 들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마치 술잔 속에서만 남궁(南宮)세가(世家)의 휘황한 과거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종전(鐘展)은 더욱 엄숙했고 더욱 교만했으나 더욱 야윈 모습이었다. 오직 능허(凌虛)만이 그가 어째서 야위게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똑같은 시련을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다. 능허(凌虛)만이 고된 수련과 소식(素食 거친 밥), 금욕이라는 3가지 일을 실천하기 위해서 지불하는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었다.

어쩌면 묵죽(墨竹)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인지도 몰랐다. 강호에는 그들과 같은 류의 사람이 적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고 목표로 삼았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태부터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매화(梅花)는 물론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먹을 수 있을 때는 될 수 있는 1많이 먹었고 잠잘 수 있을 때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잠을 잤다.

그가 유일하게 절제하는 일은 결코 자기 자신을 지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능허(凌虛)는 매화(梅花)와 같은 몸매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무림의 일류 고수 되었으며 그렇게 아름답고도 우아하며 운치있는 별호를 취했는지 줄곧 의문을 품고 있었다. 매화(梅花)와 묵죽(墨竹)이 이곳에 있는 이상 청송(青松)도 물론 이곳에 왔을 것이다. 능허(凌虛)는 이미 어렴풋이 이곳의 주인이 그들을 초청한 것이 결코 호의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에 그는 1번도 정붕(丁鵬)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을 만나보기 전에 그는 1번도 그 사람을 중시한 적이 없었다. 이제서야 그는 자기가 잘못 생각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젊은이는 다른 사람의 몸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는 특이한 기질을 함축하고 있었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마치 이 세상에는 그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고 행할 수 없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능허(凌虛)는 그의 신분과 내력을 몰랐고 그의 무공 문파(門派)도 몰랐다. 그러나 결코 수월하게 상대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이때 그는 누군가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만송산장(萬松山莊)의 유약송(柳若松) 장주(莊主)께서 그의 부인을 모시고 도달했소.”

유약송(柳若松)이라는 이름을 들은 정붕(丁鵬)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

“모시게.”

능허(凌虛)는 갑자기 알아차렸다.

정붕(丁鵬)이 그들을 이곳까지 청한 것은 바로 유약송(柳若松)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이야말로 정붕(丁鵬)의 참된 목표였다. 표정이 없다는 것은 때로는 가장 무서운 표정이 되는 것이다. 오늘의 일을 위해서 정붕(丁鵬)은 오래 전부터 계획을 짠 것 같았다. 오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능허(凌虛)는 자기도 모르게 가볍게 검자루를 어루만졌다. 유약송(柳若松)은 그의 동문(同門)사제(師弟)였다.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에게 이 1자루의 검이 있는 이상 결코 어떤 사람도 무당파(武當派)의 명성과 영광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할 작정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정붕(丁鵬)을 응시했다.

“당신은 유약송(柳若松)이 빈도(貧道)의 동문(同文)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정붕(丁鵬)은 미소를 띠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능허(凌虛)는 물었다.

“당신들은 옛친구이오?”

정붕(丁鵬)은 미소를 띠우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1쌍의 맑고 냉정한 눈동자에 갑자기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특이한 웃음이 떠올랐다.

능허(凌虛)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던지는 순간, 1채의 교자(轎子)를 볼 수 있었다. 1채의 이 으리으리하기 이를 데 없으며 8사람이 떠메어야 하는 커다란 교자(轎子)였다. 1품(一品)부인(夫人)이 입궐하거나 혹은 큰 부잣집이나 귀한 사람들이 시집가거나 장가들 때만 사용하는 그런 교자(轎子)였다. 유약송(柳若松)은 바로 그 교자(轎子) 앞에 서서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나 태도는 정붕(丁鵬)처럼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언제나 사리를 잘 이해하는 사람인데 오늘은 어떻게 해서 자기의 아내를 교자(轎子)에 태우고 나타난 것일까? 더군다나 교자(轎子)를 떠메고 남의 집 정원에 들어서다니 말이다. 능허(凌虛)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교자(轎子)가 뜨락을 가로질러 수각(水閣) 밖의 구곡교(九曲橋) 앞에 멈추는 것이 보였다. 교자(轎子)의 휘장이 젖혀지고 교자(轎子) 안에서 뼈가 없는 것처럼 부드러운 섬섬옥수가 뻗어 나왔다.

유약송(柳若松)은 즉시 그 손을 잡았다. 능허(凌虛)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유약송(柳若松)이 교자(轎子) 안에서 부축해서 나오는 그 여인은 놀랍게도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여인에 대한 그의 태도는 그의 아내를 대할 때보다 더욱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무당파(武當派)는 강호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는 명문 정파였다. 그런데 무당(武當) 문하의 제자가 어째서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일까? 능허(凌虛)는 얼굴을 굳히고 수각(水閣) 밖으로 걸어나가며 냉랭히 입을 열었다.

“그녀를 돌려보내게.”

유약송(柳若松)은 물었다.

“누구를 돌려보내라는 것이오?”

능허(凌虛)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 여자.”

유약송(柳若松)은 되물었다.

“당신은 이 여인이 누구인지 모르오?”

능허(凌虛)는 차갑게 내뱉았다.

“그녀가 누구든지 돌려보내게.”

그는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여인을 바라볼 때 얼굴에 이상야릇한 표정을 떠올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이곳에 남겨 무당파(武當派) 인물이 창피를 당하도록 방치할 수 없었다.

유약송(柳若松)은 갑자기 픽 웃었다.

“확실히 돌아가 야할 사람이 있소만, 결코 그녀가 아니오.”

능허(凌虛)는 물었다.

“그녀가 아니면 누구인가?”

유약송(柳若松)은 능허(凌虛)를 똑바로 보았다.

“당신이오.”

그는 담담히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엎드려서 그녀에게 3번 절을 올리고 빨리 꺼진다면 나는 어쩌면 당신을 용서할지도 모르오.”

능허(凌虛)의 안색이 변했다.

“자네는 뭐라고 했지?”

유약송(柳若松)은 느릿하게 말했다.

“나는 무척 분명하게 이야기했소. 당신도 똑똑히 들었을 것이오.”

능허(凌虛)는 확실히 똑똑히 들을 수 있었고 1자 1자 뚜렷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꿈에도 그런 말이 유약송(柳若松)의 입에서 흘러나올 줄은 몰랐다. 그는 애써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본문(本門) 계율 제1조가 무엇인지 아는가?”

유약송(柳若松)은 되물었다.

“본문(本門)이라니 어느 문파(門派)를 가리키는 것이오?”

능허(凌虛)는 매서운 어조로 다그쳤다.

“자네는 설마하니 자기 자신이 어느 문파(門派)의 제자인지 잊었는가?”

유약송(柳若松)은 냉소했다.

“예전에 나는 확실히 무당(武當) 문하에서 무공을 배운 적이 있소. 그러나 이미 무당파(武當派)와는 반 푼의 관계도 없소.”

능허(凌虛)는 끓어오르는 노기를 억눌러야 했다.

“자네는 이미 무당(武當) 문하가 아니라는 말인가?”

유약송(柳若松)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니오.”

능허(凌虛)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누가 자네를 무당파(武當派)에서 축출했지?”

유약송(柳若松)은 솔직히 대답했다.

“내 스스로 떠난 것이오.”

능허(凌虛)는 그를 노려보았다.

“자네 스스로 사문(師門)을 배반하고 떠나겠다는 것인가?”

유약송(柳若松)은 냉랭히 대답했다.

“오고 싶으면 오는 것이고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인데, 사문(師門)을 배반한다고 말할 수는 없소.”

무당(武當)은 내가(內家) 4대(四大)검파(劍派)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었고 내가(內家)정종(正宗)임을 천하가 공인하는 터였다.

강호의 사람들은 무당파(武當派)의 제자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는데 유약송(柳若松)이 이런 태도를 취하자 모두들 아연실색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속으로 유약송(柳若松)이 틀림없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능허(凌虛)는 안색이 변해서 끊임없이 냉소를 흘렸다.

“흥! 좋다. 잘 되었구나 잘 되었어. 정말 잘 되었어.”

유약송(柳若松)은 물었다.

“당신은 더 할 말이 있소?”

능허(凌虛)는 간단히 대답했다.

“없네.”

유약송(柳若松)은 재촉하듯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찌하여 검을 뽑지 않소?”

그는 입으로는 능허(凌虛)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남남(藍藍)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남(藍藍) 역시 그를 바라보며 웃었는데 그 웃음은 무척 달콤했다. 그 웃음은 마치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무척 잘하고 있어요. 내가 곁에 있는 이상 10초(招)를 넘기기 전에 당신은 그를 죽일 수 있을 거예요.”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리라.

그 누구도 유약송(柳若松)이 10초(招) 안으로 무당(武當) 후배 제자들 가운데 으뜸가는 고수 능허(凌虛)를 격퇴시킬 수 있다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약송(柳若松)은 믿었다. 능허(凌虛)가 손을 써서 5초(招)를 펼쳐내게 되었을 때, 기선을 제압하여 유약송(柳若松)이 숨 돌릴 기회도 주지 않고 몰아붙이고 있는데도 그는 믿었다. 그는 여전히 남남(藍藍)이 결코 그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었다.

제9초(招)가 펼쳐지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핍박을 당해 사각(死角)으로 몰리게 되었고 그가 어떤 1초(一招)를 펼치든 간에 능허(凌虛)의 공세를 깨뜨릴 수는 전혀 없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것은 똑같이 무당(武當)의 검법이었으나 능허(凌虛)는 훨씬 익숙하고 정심(精深)한 편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갑자기 천외유성(天外流星)이라는 그 1초(一招)를 머리속에 떠올렸다. 천외유성(天外流星)은 무당(武當)의 검법이 아니었다.

그는 검세를 일변시켰고 검풍은 쒹, 하니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내었으며 검날은 어느덧 능허(凌虛)의 왼쪽 가슴을 파고들어 뒷등으로 삐져나왔다. 이 1검(一劍)은 놀랍게도 능허(凌虛)의 가슴팍을 꿰뚫은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경악했다. 유약송(柳若松) 자신도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그 자신도 이 1검(一劍)이 기껏해야 능허(凌虛)의 공세를 막을 수 있을 뿐, 능허(凌虛)를 죽음으로 몰아넣지 못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능허(凌虛)는 이미 그의 검 아래 죽었다. 능허(凌虛)의 동공은 어느덧 풀려 있었으며 눈동자에는 공포와 의혹이 가득차 있었다. 그는 분명히 그 1검(一劍)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피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 능허(凌虛)가 쓰러지는 모습을 유약송(柳若松)은 결코 보지 못했다. 그는 남남(藍藍)을 보고 있었다. 남남(藍藍) 역시 그를 바라보며 웃었는데 그 웃음은 더욱 달콤했다.

마치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곁에 있는 한 당신은 나를 믿어야 해요. 당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면 모두 할 수 있어요.”

이제 유약송(柳若松)이 가장 하고 싶은 1가지 일은 물론 정붕(丁鵬)을 죽여서 영원히 후환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정붕(丁鵬)이 이미 그의 코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약송(柳若松)은 빙그레 웃었다.

“안녕하시오.”

정붕(丁鵬) 역시 빙그레 웃었다.

“안녕하시오.”

유약송(柳若松)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나는 무척 잘 있지만 당신은 틀림없이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오.”

“음!”

유약송(柳若松)은 정붕(丁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당신이 새로 완성된 장원 안에서 당신이 청해온 손님을 죽였는데, 당신이 어떻게 편안할 수 있었겠소?”

그는 미소를 띠우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심기가 불편하고 운수도 좋지 않은 것 같구려.”

정붕(丁鵬)은 물었다.

“그것은 어째서?”

유약송(柳若松)은 태연히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나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오.”

정붕(丁鵬)은 한숨을 내쉬었다.

“맞았소. 매번 당신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언제나 운이 더럽게 되는 것 같더군.”

이미 4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유약송(柳若松)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인상은 아직도 무척 선명했다. 그는 정붕(丁鵬)이 가소(可笑)가 바로 유(柳)부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얼굴에 떠올렸던 그 경악, 의혹, 고통, 비참… 그런 표정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에게 있어서 그것은 정말 위대한 계획이었다. 단순하면서도 교묘하여 모든 세부 사항까지도 천의무봉(天衣無縫)하게 계획을 짰던 것이다. 그는 1번도 정붕(丁鵬)의 처지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정붕(丁鵬)은 당시에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 누구든 그런 기만을 당하고 그런 모욕을 당하고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면 오랜 시일이 흐른다 해도 결코 잊지 못하리라.

이제 정붕(丁鵬)은 그때 그 일을 떠올린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것은 성공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미소였고 다른 사람에 대한 비웃음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는 미소였다. 그는 확실히 자신이 있었다. 그토록 심지가 깊고 무섭게 변해서 유약송(柳若松)마저도 그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 남남(藍藍)은 바로 그의 등뒤에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이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달콤하면서도 매력적인 미소를 볼 수 있었고 그 미소는 바로 다음과 같이 그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곳에 있는 1당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마음 놓고 하세요.]

유약송(柳若松)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 미소를 지었다.

“당신 말이 맞소. 매번 당신은 나를 만나기만 하면 재수 옴 붙게 되지.”

정붕(丁鵬)은 나직히 물었다.

“이번에는?”

유약송(柳若松)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지.”

정붕(丁鵬)은 담담히 그 말을 받았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 것 같군.”

유약송(柳若松)은 냉랭히 말했다.

“이번에는 당신의 장원이고 당신에게는 방수(幫手)가 있기 때문이겠지?”

정붕(丁鵬)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은 우리 2사람 사이의 일이니, 나는 결코 제3자가 나서서 손을 쓰도록 하지는 않겠소.”

유약송(柳若松)은 흔쾌히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잘 되었군.”

정붕(丁鵬)은 그를 직접 상대하기 싫은 듯했다.

“당신이 능허(凌虛) 도장을 죽였으니 자연히 무당(武當) 문하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오.”

유약송(柳若松)은 대담하게 물었다.

“내가 당신을 죽이게 된다면?”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당신이 나를 이기면 내 머리통을 잘라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장원도 당신의 소유가 될 것이오. 죽은 사람은 이와 같이 큰 곳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말이오.”

유약송(柳若松)은 눈을 빛냈다.

“그건 확실하지.”

정붕(丁鵬)은 덧붙여 말했다.

“그 누가 죽든지 7자의 땅만 있으면 충분한 것이오. 그러니…”

유약송(柳若松)의 반응은 느리지 않았다. 그는 즉시 그 말을 받았다.

“내가 지게 된다면 나의 만송산장(萬松山莊)을 당신에게 선물하겠소.”

정붕(丁鵬)은 미소를 지었다.

“그거야말로 엄청난 거래군.”

유약송(柳若松)은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1마디로 약속했소.”

정붕(丁鵬)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 넘겼다.

“천하 영웅호걸들이 이곳에서 증인이 되고 있으니 나중에 식언하지 마시오.”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물론이오.”

그의 손은 검자루를 잔뜩 쥐고 있었다. 검날에 묻어 있는 능허(凌虛)의 피는 이미 말라 있었고 또 다시 다른 사람의 선혈을 빨아 먹으려 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남남(藍藍)은 여전히 그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10초(招) 안에 정붕(丁鵬)은 틀림없이 당신의 검 아래 죽을 것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기운이 솟아올랐다.

“검을 뽑으시오.”

정붕(丁鵬)은 싸늘히 말했다.

“나는 살아 생전에 검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소.”

유약송(柳若松)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사용하겠소?”

정붕(丁鵬)은 간단히 대답했다.

“칼(刀)을 사용하겠소.”

유약송(柳若松)은 소리내어 웃었다.

“당신이 칼을 사용한다면 내가 3초(招)를 양보해주지.”

도(刀) 역시 살인하는 이기(利器)였다.

그러나 도법은 연마하기 쉬운 반면에 좀처럼 정통할 수 없었다. 무공을 익힌 사람은 10년 동안 검을 배워야 하고 도는 1년만 배워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검법은 도법에 비해서 훨씬 정묘하고 신묘했다. 검 자체만 해도 고귀함과 표일(飄逸)함의 상징이었다. 강호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도법의 명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검을 배우던 사람이 갑자기 도를 사용하게 된다면 도법이 아무리 좋다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외치듯 말했다.

“당신은 칼을 뽑으시오.”

정붕(丁鵬)은 이미 도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것은 1자루의 무척 흔히 보는 칼(刀)이었다. 머리털을 칼날 위에 얹고서 훅 불면 머리카락이 잘라지는 그런 예리한 날도 아니었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할 만한 칼도 못 되었다. 이 칼은 휘어져 있었다. 칼날이 휘어져 있었고 칼자루도 휘어져 있었다.

정붕(丁鵬)은 가볍게 칼날을 어루만졌다.

“이것은 내 칼이오.”

유약송(柳若松)은 가볍게 응 수했다.

“그렇겠지.”

정붕(丁鵬)은 나직히 말했다.

“이 1자루의 칼은 아직까지 사람의 피를 마신 적이 없소. 오늘 나는 처음 이 칼을 시험해 보기 때문이오.”

유약송(柳若松)은 냉소를 지었다.

“당신은 나를 상대로 그 칼을 처음 시험하겠다는 것이오?”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내가 바로 당신을 상대로 칼을 시험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좀더 득을 볼 수 있도록 해주겠소…”

그는 담담히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나의 3칼을, 3도(三刀)를 받아내기만 한다면 당신이 이긴 것으로 해주겠소.”

유약송(柳若松)은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금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이오?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은 그 말을 1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오.”

남남(藍藍)은 또 웃고 있었다. 무척 달콤한 웃음이었고 더욱 유쾌한 웃음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기꺼이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소. 그렇다면 내가 당신의 3번의 칼질을 두고 보도록 하지.”

정붕(丁鵬)은 말했다.

“당신은 볼 수 없을 것이오.”

그의 손이 1번 휘둘러지자 칼빛이 어느덧 솟아올랐다. 둥근 달은 떨어지고 칼빛은 솟아올랐다. 칼빛은 대지 위의 10만 리를 종횡하는 것 같았다. 칼빛은 차가워서 천지가 온통 얼음으로 변한 것 같았다. 휘어진 칼. 휘어진 칼집. 처음에는 마치 1조각의 초승달 같더니 갑자기 1줄기의 허공을 누비는 무지개로 화했다.

그 누구도 그 1칼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고 그 누구도 그 1자루의 칼을 볼 수 없었다. 칼빛이 번쩍 솟아오르게 되었을 때 칼은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강호에는 이미 오랫동안 도법의 명가(名家)가 나타난 것을 볼 수 없었고 강호에는 이미 오랫동안 그토록 휘황한 칼빛을 볼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그가 2번째 휘두른 칼이 얼마나 무서운 변화를 일으킬지 알 수 없었다.

숫제 2번째 칼질은 없었다. 칼빛이 번쩍하고 빛났을 뿐이고 정붕(丁鵬) 역시 1칼을 쪼개내었을 뿐이었다! 칼빛은 번쩍하니 사라졌다. 유약송(柳若松)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의 검은 여전히 손에 들려 있었고 그의 몸뚱이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만 얼굴에서는 이미 핏기가 싹 가시고 없었다. 제2도(第二刀)는 없었다. 승부가 아직 판가름나지 않았는데 어째서 제2도(第二刀)가 없는 것일까? 정붕(丁鵬)은 칼날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담담히 말했다.

“나는 당신이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소.”

유약송(柳若松)은 움직이지 않았고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다.

별안간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정붕(丁鵬)은 타이르듯 말했다.

“당신은 적어도 다시 10년은 더 연마를 해야 나의 칼을 볼 수 있을 것이오.”

유약송(柳若松)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다. 별안간 1줄기의 선혈이 그의 손목에서 쏟아 올랐다. 정붕(丁鵬)은 여전히 담담한 어조였다.

“1칼에 끝났군.”

유약송(柳若松)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다.

별안간 그의 창백한 얼굴에 새빨간 열10(十)자가 나타났다. 새빨간 것은 피였다. 박수 갈채는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손발이 얼음과 같이 차가워지고 모든 사람들의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그제서야 모두들 조금 전의 그 1칼이 유약송(柳若松)의 손목을 찔러 상처를 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얼굴에 열10(十)자를 그려 놓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런데 상처의 피는 이제서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1칼이 실로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갈채를 보내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런 도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칼은 이미 칼집으로 들어가 있었다. 정붕(丁鵬)은 간단히 1마디를 했다.

“당신이 졌소.”

유약송(柳若松)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몸을 돌려 느릿느릿 남남(藍藍)에게로 다가갔다.

남남(藍藍)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는 얼굴은 조금 전처럼 달콤하고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녀의 웃음은 어느 정도 억지 같았다. 유약송(柳若松)은 그녀의 면전에서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얼굴의 열10(十)자를 그린 피는 이미 응결되고 있었다. 선혈이 막 솟아나자마자 즉시 응결된 것이었다. 살갗만 살짝 베어냈기 때문에 과도한 출혈은 없었고, 흘러나온 피는 곧 응결된 것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의 얼굴 표정도 이미 얼어붙은 것 같았다. 그는 1자 1자 뚜렷이 말했다.

“내가 졌소.”

남남(藍藍)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기에 당신이 진 것 같군요.”

유약송(柳若松)은 담담히 말했다.

“당신은 내가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남남(藍藍)은 되물었다.

“내가 그랬다고요?”

유약송(柳若松)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의 곁에 있기만 하면 내가 절대 패하지 않는다고 말했었소.”

남남(藍藍)은 부인했다.

“당신은 틀림없이 잘못 들었을 거예요.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유약송(柳若松)은 약간 언성을 높였다.

“나는 잘못 듣지 않았소. 당신은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어째서 손을 쓰지 않는 것이오?”

남남(藍藍)은 약간 의아한 표정이었다.

“내가 어떻게 손을 쓰며 내가 당신을 도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에요?”

멀리서 갑자기 그 누가 비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녀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당신의 바지를 벗기는 것이지.”

남남(藍藍) 역시 웃고 있었다.

“조금도 틀림 없어요. 내가 유일하게 당신을 도와서 할 일은 그 짓밖에 없어요. 그런 일에 나는 가장 능통하지요.”

유약송(柳若松)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갑자기 공포스럽기 이를 데 없는 빛을 드러내었다.

“당신은…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남남(藍藍)은 대수롭지 않은듯 대답했다.

“당신이 6만 냥의 은자를 써서 나를 만취원(滿翠院)에서 꺼내주지 않았나요? 나보고 회선루(會仙樓)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가 당신과 더불어 이곳에 와서 손님 노릇을 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거기다가 그토록 커다란 교자(轎子)로 나를 정(丁)부인으로 맞이하지 않았나요…”

그녀는 살짝 웃었다.

“호호호, 당신은 어째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지요?”

만취원(滿翠院)은 기녀원(妓女院)이었으며 매우 유명한 기녀원(妓女院)이었다.

만취원(滿翠院)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기녀는 취선(翠仙)이었다. 그녀는 봄날의 파뿌리와 같은 손가락으로 자기의 섬세하고 정교하게 생긴 코를 가리켰다.

“내가 바로 취선(翠仙)이에요. 유명한 창녀 취선(翠仙)이 바로 나예요. 적어도 이곳에 있는 사람 가운데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의 안색은 변하고 있었다. 얼굴의 근육이 갑자기 일그러지면서 새빨간 열10(十)자의 피딱지가 다시 터지게 되었고 선혈은 송글송글 흘러나와 온 얼굴이 피범벅이 되었다.

그는 결코 우둔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제서야 그는 끝내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모든 것이 명백해진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결코 부러움도 아니고 질투하는 빛도 아니었다. 이곳에 적어도 100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만취원(滿翠院)의 취선(翠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곳의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바지를 어쩌면 그녀는 모두 다 벗겨 보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여러 사람이 떠메는 커다란 교자(轎子)를 가지고 와서 그녀를 정(丁)부인으로 모신 것이고 그녀를 선녀처럼 이곳으로 모셔왔을 뿐 아니라 그녀가 자기에게 영광과 재부를 안겨주기를 바랬던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야말로 쓸개의 쓴물마저도 웃는 바람에 모두 쏟아낼 지경이었다. 이 일은 그야말로 4년 전 그가 정붕(丁鵬)을 위해서 만들어낸 그 장면만큼이나 가소로웠다.

그제서야 그는 정붕(丁鵬)이 그 당시 어떤 느낌이었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보복(報復)이었다. 정붕(丁鵬)의 보복은 교묘하고 잔혹하며 철저했다. 마치 유약송(柳若松)이 그를 상대하던 계획처럼 이 계획도 똑같이 정성들여 설계한 것이고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완전무결하도록 각본을 짠 것이었다. 이 계획의 가장 중요한 점은 먼저 유약송(柳若松)으로 하여금 압박감을 느끼게 1것이었다.

맞은편 산비탈의 웅장한 장원에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집을 짓는 소리는 이미 유약송(柳若松)의 신경이 곤두서도록 만들었다. 신경이 바짝 긴장된 사람은 분별력이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그 후에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허리가 가늘고 다리가 긴 여자를 가로채 가고 그 대신 1마리의 암캐를 갔다 놓았다. 술창고의 관사(管事)를 매수해서 밤중에 술을 모두 더러운 물로 바꾸었다.

닭과 오리, 소, 염소의 사료 속에 치명적인 독약을 섞었다. 이런 일들은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경이 잔뜩 긴장된 사람에게 이러한 일들은 모두 귀신의 장난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일들은 모두 일종의 압박감으로 변했고 유약송(柳若松)을 눌러대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후에 남남(藍藍)이 나타난 것이었다. 마치 1조각의 부목(浮木)이 갑자기 거의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의 코 앞에 불쑥 쏫아 오르듯 나타난 것이었다.

숫제 남남(藍藍)이라는 여인은 없었다. 남남(藍藍)이 바로 청청(青青)이었다. 청청(青青)이 호숫빛의 남색 경포(輕袍)를 입고 망사로 얼굴을 가리고 유약송(柳若松)에게 말했던 것이다.

“나는 남남(藍藍)이에요. 내가 바로 유일하게 당신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오직 나만이 청청(青青)에게 대항할 수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물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유약송(柳若松)에게 가짜 청청(青青)을 보여주었다.

그때 유약송(柳若松)이 본 청청(青青)은 물론 다른 여인에 불과했다. 그는 청청(青青)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고 남남(藍藍)이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후에 잇따라 나타난 그 기적들은 그로 하여금 더욱 남남(藍藍)에 대한 자신감을 굳건하게 했다. 그래서 그는 남남(藍藍)이 그에게 8명이 떠메는 커다란 교자(轎子)로 맞아들이도록 1그 여인이 바로 만취원(滿翠院)의 일개 기녀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제 그는 알게 되었고, 이 계획의 모든 정묘한 관건을 알아차리게 되었지만 전혀 남에게 하소연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일을 털어놓는다 해도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처는 이미 죽었다.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겨 죽어간 것이었다. 그의 집안 재산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그는 직접 자기의 동문(同門) 사형(師兄)을 죽여 사문(師門)을 배반하였으며 강호의 대기(大忌)를 범하고 말았다.

그가 저지른 이러한 일들을 다른 사람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자신마저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으리라. 정붕(丁鵬)이 그를 죽이지 않는다 해도 그는 강호에서 이미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이미 철저하게 파멸된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나갈 길이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 유약송(柳若松)은 갑자기 그 어떤 사람도 짐작하지 못할 일을 해냈다.


12. 무서운 죽음

12월 15일.

둥근 달은 아직 솟아오르지 않고 있었으나 햇살은 이미 사그러지고 집안은 점점 침침해지고 있었다. 이제 등불을 켜야 할 무렵이었다. 그러나 청청(青青)은 등불을 켜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서 조용히 어둠속에 앉아 이 겨울철 황혼 무렵에만 가질 수 있는 아늑함을 즐겼다. 그녀는 어릴적부터 이미 고독에 습관이 들어 있었다. 그녀가 자란 곳에서는 숫제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상(樓上)은 아늑하고도 고귀했으며 방안의 모든 물건들은 알뜰하게 고르고 고른 것이었다. 그녀는 깨끗하지 못한 사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릴적부터 그 같은 환경 속에서 자랐고 숫제 이 인간 세상의 번뇌와 불행과는 접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문득 자기에게 번뇌가 깃들기 시작한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인간의 번뇌 말이다. 한참 무르익은 젊은 아낙들은 번뇌를 면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갑자기 자기가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 소루(小樓)는 정붕(丁鵬)이 귀한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는 정원과 상당한 간격을 두고 있었으나 그쪽의 소리를 이곳에서는 여전히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오늘 찾아온 손님들이 적지 않고,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강호에서 명성을 떨친 영웅 호걸들이라는 것과 그들의 호방한 성격과 기개를 알고 있었으며 동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과 더불어 이 인간 세상의 환락을 누리고 싶었으며 그들과 함께 커다란 대접으로 술을 마시면서 그들이 말하는 강호의 세계,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시원한 무용담을 듣고 싶었다. 그런 일들을 겪지 못한 여자애에게 있어서 이것은 실로 항거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갈 수 없었다. 그녀는 여우[狐]이며 이질적인 동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한평생 인간의 환락을 누릴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녀가 정붕(丁鵬)과 결합한지 이미 4년이 되었다. 이 4년 동안 그들은 거의 밤마다 함께 의지하고 살았다. 정붕(丁鵬)이 옆에 없으면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정붕(丁鵬)은 출신이 가난했다. 그래서 그런 풍류를 즐기지도 못하고 부드러우면서 감미로운 사내가 되지도 못했다. 그는 어릴적부터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고 분투해 왔다.

따라서 생활의 어떤 정취(情趣)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는 아직 나이가 젊고 건강하지만, 요즘 들어 그녀에 대한 열정이 점차 사그러들었다. 그들 부부간에 사랑을 나누는 횟수도 예전처럼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생애에서 유일한 남자였다. 그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그녀는 기꺼이 하려고 했다.

그녀는 그의 처가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으며, 그가 자기의 손을 잡고 그녀를 자기의 친구들과 자기의 손님들에게 소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가 바로 자기의 아내이며 정(丁)부인이라고 소개해주기를 바랬다. 정(丁)부인이라는 이 1마디는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영광스러운 칭호인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는 다른 사람이 이와 같은 명칭으로 그녀를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여우였다. 결코 정붕(丁鵬)을 따라가 사람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없었다.

- 나는 정말 여우일까?

- 나는 어째서 반드시 여우라야 할까?

청청(青青)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였다. 가슴이 찌르는 듯이 아파왔다. 그녀의 마음속에 비밀이 있기 때문이었다. 절대 어떤 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고 정붕(丁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 비밀은 마치 1개의 바늘처럼 밤낮 없이 시시각각 그녀의 심장을 찔러대고 있었다.

그 1가지 일을 제외하면 그녀는 즐거웠다. 특별히 중요한 일이 아니면 정붕(丁鵬)은 언제나 방법을 다해서 그녀와 함께 있으려고 했다. 지금 그가 그녀를 찾아온 것 같았다. 계단 쪽에서 그의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청청(青青)은 눈가의 눈물 자국을 훔치고 몸을 일으켰다. 정붕(丁鵬)은 어느덧 가볍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당신은 어째서 등불을 켜지 않았소?”

청청(青青)은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녀는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그를 꼭 얼싸안았다. 마치 그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것처럼… 떨어져 있은지 겨우 2시진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그를 잃게 될까봐 너무나 두려웠다. 매번 그들이 서로 떨어져 있을 때 그녀는 그저 두렵기만 했고 그가 떠나고 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녀는 호녀(狐女)에 불과했고 이곳은 바로 인간 세상이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열등감을 느꼈다. 정붕(丁鵬)은 그녀의 그런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모두들 술을 마시기 시작했소. 그래서 나는 여가를 틈타서 빠져나와 당신을 보려고 돌아온 것이오.”

청청(青青)은 목구멍에 마치 물건이 틀어박힌 것처럼 꽉 메었다. 가슴속은 따뜻하고 고마운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그가 다시 말해주기를 바랬다. 그가 어디에 있든지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정붕(丁鵬)이 하는 말은 그녀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나는 우리들의 계획이 성공했고 이미 철저하게 유약송(柳若松)을 망쳐 놓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왔소.”

그가 돌아온 것은 단지 그 일을 그녀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녀는 그 일을 잊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그 계획에 참가했고 또한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그를 도와 그 계획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를 위해서 했을 뿐이었다. 그를 위해서 그는 사람을 속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거짓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그녀가 일찍이 해보지 못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내었다. 그러나 인간 세상의 은구원한(恩仇怨恨)에 대해서 그녀는 그렇게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붕(丁鵬)은 무척 흥분해서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모조리 들려주었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쏟아 놓는 것은 무척 사람을 흥분시키는 일이었다. 그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녀는 짐짓 매우 흥미롭게 귀를 기울이는 척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저 조용히 그와 함께 포옹하고 있으면서 조용히 하루 동안의 잠시밖에 되지 않는 평온을 즐기고 싶었다. 정붕(丁鵬)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이 자기를 구제해줄 선녀가 바로 창녀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떠올린 그 얼굴 표정을 당신이 보게 되었다면 당신도 틀림없이 흐뭇하게 느꼈을 것이오.”

청청(青青)은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똑같은 고통과 타격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붕(丁鵬)은 물었다.

“당신이 그였다면 그때 어떻게 하겠소?”

청청(青青)은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나는 모르겠어요.”

그녀는 정말 몰랐다. 인간 세상의 그렇게 악독하고 교활한 일들을 그녀는 숫제 꼼꼼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한번 짐작해 보구려…”

정붕(丁鵬)의 흥취는 무척 높은 것 같았다.

“당신은 그가 어떤 짓을 했다고 짐작되오?”

청청(青青)은 물었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나요?”

“그 자신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

정붕(丁鵬)은 여전히 흥분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도망친다 해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

청청(青青)은 다시 물었다.

“그는 기절했나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능허(凌虛)의 친구가 그를 죽였나요?”

“그것도 아니오.”

“그는 그 여인을 죽이고 스스로 자결한 것이 아니에요?”

이와 같은 짐작은 무척 합리적이었다.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살아 있는 것이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었다. 정붕(丁鵬)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죽지 않았소. 그는 아쉬워서 죽지 못하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가 한 짓은 그 누구도 생각 못했을 것이오.”

청청(青青)은 조금은 호기심을 느꼈다.

“그가 어떻게 했는데요?”

정붕(丁鵬)은 나직히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나에게 목숨을 걸고 달려들 것이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그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나에게 자기를 제자로 거두어달라고 비는 것이었소.”

유약송(柳若松)의 나이는 정붕(丁鵬)의 아버지와 비슷했다. 강호에서 무명소졸이 아닌데 놀랍게도 천하 영웅들 앞에서 그와 같은 짓을 한 것이었다.

그를 제외하고 누가 있어 그런 일을 하겠는가? 청청(青青)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 사람의 얼굴 가죽은 무척 두껍군요. 정말 기가 막히네요.”

정붕(丁鵬) 역시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가 나에게 어떤 부탁을 해도 나는 허락하지 않을 참이었소.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나보고 자기를 제자로 거두어 달라고 간청하였으니…”

청청(青青)은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허락했나요?”

정붕(丁鵬)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제자가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소.”

청청(青青)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이 일이 아무래도 약간 잘못 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정붕(丁鵬)이 하고자 하는 일을 그녀는 1번도 반대한 적이 없었다. 모든 일들은 그녀가 바라던 것과 달라졌다. 그녀는 정붕(丁鵬)이 그녀와 함께 평안하고 조용한 곳에서 한평생을 보내기를 바랬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야심이 있었다. 모든 남자들은 다 야심이 있었으며 마땅히 야심이 필요했다.

다시 바꾸어 말한다면 야심이라는 것은 바로 웅심(雄心)이었다. 웅심장지(雄心壯志)가 없는 남자는 숫제 남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정붕(丁鵬)을 탓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붕(丁鵬)의 야심은 너무나 컸다.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야심은 마치 까마득한 옛날 홍황시대(洪荒時代)의 괴수처럼, 존재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놈은 하루하루 커지고 엄청나게 커져서 그 자신마저도 그를 장악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야심이 있는 남자에게 있어서 유약송(柳若松)이라는 사람은 무척 쓸모 있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청청(青青)은 다만 1가지를 걱정했다. 그녀는 정붕(丁鵬)의 야심이 너무나 커서 그 자신마저도 조종할 수 없게 되어 불행하게 될까 염려했다. 이 점을 생각하자 그녀는 즉시 무서운 일을 상기했다. 그녀는 불쑥 물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사람은 오늘 오지 않았나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청청(青青)은 넌지시 말했다.

“나는 당신이 사람을 보내 초청장을 전달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초청장은 1통만 보낸 것이 아니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주인이며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당대의 제일 검객 사효봉(謝曉峰) 외에도 또 다른 1분의 사(謝)선생에게도 1통을 보낸 것이었다. 이 사(謝)선생은 둥근 얼굴에 똥똥한 몸매로 온 얼굴 가득히 언제나 웃음을 띠우고 있는 온화한 사람이었다. 4년 전의 7월 15일 정붕(丁鵬)이 만송산장(萬松山莊)에서 창피를 당하게 되었을 때 그 사(謝)선생도 그 자리에 있었다. 정붕(丁鵬)은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오늘 그들은 모두 오지 않았소.”

이 일을 생각하자 정붕(丁鵬)은 조금 전처럼 그렇게 유쾌해질 수 없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사람들이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일대의 사람들은 모두 오지 않았소.”

청청(青青)은 물었다.

“그 일대의 사람들 가운데 당신은 어떤 사람들을 초청했나요?”

정붕(丁鵬)은 대답했다.

“전일비(田一飛)와 상진(商震)을 초청했소.”

청청(青青)은 아는 체를 했다.

“나는 상진(商震)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어요. 그는 상가보(商家堡)의 보주(堡主)이자 5행(五行)검법(劍法)에 능통한 사람이에요…”

그녀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5행(五行)검법(劍法)은 난잡하고 괴퍅해요. 내가 당금 천하의 검법에서 가장 고명한 10사람을 열거하라면 상진(商震)은 결코 그 안에 들지 못할 거예요.”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당신은 그런 1사람 때문에 화를 내지 말라고 나를 위로하는 것이오?”

청청(青青)은 웃었다. 정붕(丁鵬)은 나직히 말했다.

“나는 결코 그 사람을 얕잡아 보지는 않소.”

청청(青青)은 적당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네!”

정붕(丁鵬)은 1마디를 덧붙였다.

“5행(五行)검법(劍法)이 난잡하고 괴팍하지만 펼쳐지면 그 위력은 무척 엄청나오.”

청청(青青)은 이번에도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네!”

정붕(丁鵬)은 5행(五行)검법(劍法)에 대해서 연구한 바가 있는 것 같았다.

“오행(五行)은 상생상극(相生相剋)하는데 그 가운데의 어떤 변화는 다른 사람들이 숫제 상상할 수 없으니 대항하기 어려운 것이오.”

청청(青青)은 미소를 지었다.

“옳은 말씀이에요.”

정붕(丁鵬)은 말했다.

“상진(商震)은 당금 10대 검객 가운데 끼어들 수는 없겠지만 강호의 일류 고수임에 틀림없소. 더군다나 그의 무공은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것이라서 기틀이 무척 튼튼하게 짜여졌을 뿐 아니라 내공이 무척 심후해서 검법의 부족함을 메꿀 수 있다오.”

청청(青青)은 되물었다.

“당신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무척 많은 것 같네요?”

정붕(丁鵬)은 자신있게 말했다.

“강호 일류 고수에 대해서 나는 알고 있는 것이 무척 많소…”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1마디를 덧붙였다.

“그 모든 사람이 어쩌면 나의 적수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오.”

청청(青青)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약간 부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정붕(丁鵬)의 사려가 더욱 치밀할 뿐 아니라 견해가 더욱 정확해졌으며 정서적으로도 더욱 성숙하고 차분해져서 옛날처럼 조그만 일 때문에 화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야심이 점차 갈수록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붕(丁鵬)은 나직히 말을 이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해야 백전백승할 수 있는 것이오…”

그의 눈동자가 흥분되어 빛을 발했다.

“나는 다시는 내가 다른 사람의 손에 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소.”

청청(青青)은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으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띠우고 물었다.

“다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지요?”

정붕(丁鵬)은 담담히 말했다.

“어떤 사람이든 모두 마찬가지요.”

청청(青青)은 재차 질문을 던졌다.

“사(謝)씨 집안의 3(三)소야(少爺) 사효봉(謝曉峰)도 그 가운데 드나요?”

정붕(丁鵬)의 반응은 침착했다.

“사효봉(謝曉峰)도 마찬가지요. 그 역시 사람이오…”

그의 눈동자는 더욱 불타오르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와 높낮음을 1번 겨루게 될 것이오.”

청청(青青)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눈동자에는 우려의 빛이 서려 있었다. 매번 정붕(丁鵬)이 사효봉(謝曉峰)을 들먹이기만 한다면 그녀의 눈동자에는 그런 표정이 떠올랐다. 사효봉(謝曉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여우였다.

여우는 못하는 것이 없었다. 사효봉(謝曉峰)이 검 가운데 신검(神劍)이며 사람들 중의 검신(劍神)이라 해도 궁극적으로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어째서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이것은 그녀의 비밀이었다. 마음속의 비밀을 절대적으로 남에게 말하지 못할 때, 일종의 고통으로 변하게 되고 압력으로 화하게 되는 것이다. 정붕(丁鵬)은 그녀의 표정을 주의하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상가보(商家堡)는 바로 신검산장(神劍山莊) 부근에 있소. 상진(商震)이 오지 않은 것은 어쩌면 사효봉(謝曉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구려…”

그는 담담히 다시 말을 이었다.

“천하무쌍의 사효봉(謝曉峰) 3(三)소야(少爺)는 물론 나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후배를 중시하지 않을 것이오.”

청청(青青)은 사효봉(謝曉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논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즉시 화제를 바꾸어 물었다.

“전일비(田一飛)는요? 그는 어떤 사람인가요?”

정붕(丁鵬)은 되물었다.

“당신은 강호에 무영무쌍(無影無雙) 비(飛)낭자(娘子)라는 여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청청(青青)은 물었다.

“당신이 말하는 사람은 전평(田萍)인가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그녀이오.”

청청(青青)은 대답했다.

“나는 물론 그녀를 알고 있어요. 그녀에 관한 소문을 나는 이미 무척 많이 듣고 있어요.”

강호에서 전평(田萍)에 관한 소문은 확실히 적지 않았다.

그녀는 강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3여인 가운데 하나였으며, 가장 무서운 3여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녀의 경신법은 아주 탁월해서 그 어떤 여인도 견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남자들 가운데서도 그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무척 적었다. 그녀는 명성을 떨친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지금의 나이는 53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그녀를 본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보기에 기껏해야 20대 후반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정붕(丁鵬)은 생각을 가다듬더니 다시 말했다.

“전일비(田一飛)는 바로 전평(田萍)의 유일한 제자이오. 어떤 사람들은 그녀의 생질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녀의 6촌 동생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녀의 사생아라고 하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 사이가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그 누구도 모르오. 다만 모든 사람들은 전일비(田一飛)의 경신법이 그녀의 진전을 이어받아 이미 일류 고수로 꼽을 수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오.”

청청(青青)은 다시 물었다.

“전일비(田一飛)가 거처하고 있는 곳은 신검산장(神劍山莊)과 가까운가요?”

정붕(丁鵬)은 설명했다.

“전평(田萍)의 행적이 신비하여 그 누구도 그녀에게 집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오. 더군다나 그녀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형편이오. 전일비(田一飛)도 마찬가지요. 다만 최근에 그는 신검산장(神劍山莊)에서 멀지 않은 1객잔(客棧)에 머물고 있으며 이미 그곳에서 반 년을 보냈다고 하오.”

청청(青青)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어째서 그곳에 머물고 있지요?”

정붕(丁鵬)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사위가 되고 싶기 때문이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사효봉(謝曉峰)이 오지 않는 한 그도 오지 않을 것이오.”

청청(青青)은 다른 질문을 했다.

“사효봉(謝曉峰)은 장가를 들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딸이 있지요?”

정붕(丁鵬)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사사로운 일이오. 당신도 내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일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소?”

이것은 그의 원칙이었으며 그의 미덕이기도 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시종 변하지 않았다. 창문은 열려 있었다. 청청(青青)은 언제나 추위를 타지 않았다. 창문 앞에 서니 하늘에 막 떠오른 둥근 달과 수각(水閣) 저쪽의 연못을 볼 수 있었다. 연못물은 이미 얼어 있었다. 연못의 차가운 얼음은 하늘의 둥근 달과 사면에서 비쳐오는 등불빛을 받아 빛을 반사하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는 눈부신 광채를 발하는 커다란 거울 같았다. 정붕(丁鵬)이 창문 입구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 거울 속에 갑자기 1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사람은 너무나 빨랐다. 정붕(丁鵬)의 시선으로도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짙은 회색의 사람 그림자가 번쩍하더니 어느덧 2, 30장(丈) 폭의 얼음으로 덮인 연못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오늘밤 원월산장(圓月山莊)에는 고수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검술과 도법, 장력, 암기, 경신법 등 모든 무공에 있어서의 일류 고수들은 거의 다 온 셈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이와 같은 경신법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붕(丁鵬)은 청청(青青)에게 와서 보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미처 고개도 돌리기도 전에 그는 영원히 잊지 못할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사람의 그림자는 갑자기 중간에서부터 2쪽으로 갈라졌다. 마치 종이조각이 사람의 손에 의해 중간에서부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수각(水閣)에는 겨우 1탁자의 술상만 차려져 있었고 손님들은 겨우 9사람밖에 없었다. 옆에서 시중들고 있는 사람은 10여 명이나 되었다. 이 탁자 주위에 앉아 있는 손님들은 물론 모두 강호에서 으뜸가는 명가들이었다. 상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체구가 우람하고 음성이 우렁찬 종소리 같으며 붉으레한 얼굴에 머리카락이 허연 노인인데 술을 마실 때는 마치 고래가 물을 들이키듯 했고 고기를 먹을 때는 1입에 주먹만한 고깃덩어리를 넣고 씹고 있어, 그 누구도 그가 금년에 이미 8, 90세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가장 상석에 앉힌 것은 결코 그의 나이 때문이 아니었다. 대력부왕(大力斧王) 맹개산(孟開山)은 젊었을 적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아 왔었다. 20여 년 전 그는 손을 씻고 은퇴했으며 강호에서 떠돌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 정붕(丁鵬)이 그를 모셔 와서 주인의 체면이 크게 살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은 그를 위해 술을 따르고 있었다. 지금 유약송(柳若松)은 주인의 제자 신분으로 나타난 것인데도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웃고 떠들었다. 마치 조금 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맹개산(孟開山)은 갑자기 힘껏 그의 어깻죽지를 두드리며 웃었다.

“하하하, 노제(老弟), 나는 자네에게 탄복했네. 나는 정말 자네에게 탄복했어. 움츠리고 뻗칠 수 있어야 사내 대장부일세.”

유약송(柳若松)은 그런데도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 모두 여러 선배님들께서 이끌어주신 덕분이지요.”

홍매(紅梅)가 냉랭히 말했다.

“언제 우리가 자네의 선배가 되었는가?”

유약송(柳若松)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 나는 거듭 태어난 신분입니다. 사부님의 친구들은 모두 저의 선배님입니다.”

맹개산(孟開山)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좋아. 말 1번 잘했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훗날 틀림없이 크게 출세할 거네.”

홍매(紅梅)는 한숨을 내쉬었다.

“맹(孟)나으리의 말씀이 옳소. 나 역시도 그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군요.”

묵죽(墨竹)은 냉소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 유약송(柳若松)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1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의 그림자는 너무나 빨랐다. 수각(水閣)의 사면에 나 있는 창문들은 모조리 높다란 버팀목에 의해 열려져 있었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내공이 정심한 영웅호걸들이라 추위를 타지 않았다.

더군다나 모두 적지 않은 술을 마셨던 것이었다. 창밖의 연못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고 얼음 위에는 쟁반 같은 둥근 달이 떠 있었다. 그 사람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어느덧 수각(水閣)의 창문 밖에 이르러 있었다. 그의 신법은 빠를 뿐 아니라 자세가 아름다웠으며 생김새도 무척 준수했다. 몸매는 헌칠하고 이목구비가 청수했으나 달빛 아래서 볼 때 안색이 약간 창백한 것이 흠이었다.

임상웅(林祥熊)은 교분이 넓은 편이라 강호의 일류 고수들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전일비(田一飛)는 강호의 일류 고수라고 할 수 있었고 경신법의 교묘함은 고수 가운데 뛰어난 고수였다.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나자 임상웅(林祥熊)은 잔을 옆으로 밀면서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늦게 온 사람은 벌주가 3잔일세. 자네는…”

그의 웃음소리는 갑자기 멈추어지고 말았다.

마치 갑자기 남에게 목줄기를 잘린 사람 같았다. 둥근 달은 하늘에 떠 있었고 달빛은 바로 전일비(田一飛)의 얼굴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의 이마 한복판에 갑자기 1점의 새빨간 핏방울이 맺혔다. 핏방울이 막 맺히는 그 순간 갑자기 일직선이 되었다. 새빨간 핏줄은 그의 이마에서 미간, 콧대, 인중, 입술, 아래턱, 목줄기, 줄곧 아래쪽으로 뻗쳐서 옷자락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본래는 매우 가느다란 선이었으나 갑자기 굵어졌다.

갈수록 굵어지고 더욱 더 굵어져 갔다… 전일비(田一飛)의 머리통이 갑자기 그 1점의 핏방울이 나타난 곳에서부터 쩍 벌어졌다. 곧이어 그의 몸뚱이 역시 천천히 한복판에서부터 갈라졌다. 왼쪽의 반은 왼쪽으로 쓰러지고 오른쪽의 반은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선혈이 갑자기 중간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산 채로 2쪽이 나고만 것이었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고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심지어 호흡마저 멈춘 것 같았고 눈깜짝할 사이에 식은땀이 옷자락을 흠뻑 적시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강호에서 크게 유명한 사람이고 모두들 대가들이지만 그 누구도 이런 일을 본 적이 없었다. 옆에서 그들을 시중들고 있던 하녀와 가정(家丁)들은 반이 이미 기절했고 다른 반은 바짓가랑이를 똥과 오줌으로 흠뻑 적시게 되었다. 수각(水閣) 안에는 갑자기 악취가 충만해졌으나 그 어느 1사람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게 되었을까? 맹개산(孟開山)은 갑자기 덥석 술주전자를 집어 들더니 1주전자에 가득 들어있는 해묵은 맛좋은 술을 모조리 뱃속으로 쏟아 부은 후에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 빠른 칼이군!”

임상웅(林祥熊)은 물었다.

“칼이라니요? 어디에 칼이 있다는 겁니까?”

맹개산(孟開山)은 숫제 그가 무슨 말하고 있는지 알아 듣지 못하고 여전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40년 동안 저렇게 빠른 칼을 보지 못했군…”

남궁화수(南宮華樹)는 불쑥 입을 열었다.

“저와 같이 빠른 칼에 대해 다만 선친으로부터 과거에 들은 적은 있었으나 나는 1번도 본 적은 없었소.”

맹개산(孟開山)은 그 말을 받아 중얼거렸다.

“나는 87살까지 살아 왔지만 겨우 1번 봤을 뿐이네.”

그의 새빨갛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고 얼굴의 주름살도 깊어진 것 같았으며 눈동자에는 공포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는 다시 40년 전 자기가 직접 본 사실을 떠올렸다. 대력부왕(大力斧王)은 하늘이 두려운 줄 모르고 땅이 무서운 줄 모르는 호걸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떠올리기만 하면 그만 가슴속이 서늘해지고 간이 후들거리면서 몰골이 송연해지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나이가 많지 않았고 종종 강호에서 떠돌아 다녔는데 어느 날 보정부(保定府)의 장교(長橋)를 지나게 되었을 때…”

그때 역시 이와 같은 엄동설한으로 다리 위는 얼음과 서리로 가득차 있어 행인들은 무척 적었다. 그는 갑자기 앞쪽에서 1사람이 미친듯이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뒤에서 악귀라도 쫓아오는 것 같은 꼴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알 수 있었네…”

그는 설명하고 있었다.

“그 사람 역시 강호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호걸로 무공이 지극히 고명했네. 그래서 나는 실로 그가 어째서 그토록 겁에 질려 있는지, 뒤에서 그 누가 뒤쫓아 오고 있는지 짐작할 길이 없었네…”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그의 말은 계속되었다.

“내가 물어보려고 했을 때 뒤에서 쫓아오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칼빛이 번쩍하니 그 친구의 머리 위로 떨어졌네…”

지금 생각해도 두려움을 느끼는지 그는 부르르 진저리를 치더니 잠시 입을 다물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나의 그 친구는 칼에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죽어라 앞으로 도망치고 있었다네.”

문득 그는 떠오른 생각이 있는지 그 다리의 길이를 말했다.

“그 장교(長橋)는 길이가 수100장(丈)이나 되었지…”

그는 마무리를 짓듯이 설명했다.

“나의 그 친구는 다리목까지 달려오더니 갑자기 몸뚱이가 가운데서부터 갈라져 2쪽이 되는 것이었네.”

이와 같이 간담이 서늘해지고 혼백을 빼앗을만한 과거사를 듣자 모든 사람들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다시 솟아났다.

임상웅(林祥熊) 역시 잇따라 몇 잔의 술을 들이키고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세상에 정말 그토록 빠른 칼이 있는가요?”

맹개산(孟開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은 내가 친히 목격한 것일세. 비록 이미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친구가 생생히 내 눈 앞에 나타나 산 채로 2쪽이 나는 것을 보는 듯하다네…”

그는 다시 침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일이 있은지 이미 40여 년이나 흘렀는데 그날의 상황이 놀랍게도 다시 펼쳐질 줄이야!”

임상웅(林祥熊)은 근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당신의 친구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요?”

맹개산(孟開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보지 못했네. 다만 칼빛이 번쩍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더구만.”

모든 사람은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손복호(孫伏虎)가 물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살해된 당신의 친구는 누구요?”

맹개산(孟開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말할 수 없소.”

40년 전에 일어난 일을 그는 어째서 지금도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어째서 그토록 겁을 먹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들을 그에게 다시 묻는 사람은 없었다. 1사람이 방식을 바꾸어서 물었다.

“전일비(田一飛)와 그 친구분은 혹시 같은 사람의 칼 아래 죽은 것이 아닌가요?”

맹개산(孟開山)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다시는 입을 열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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