圆月弯刀 3

3학년2반 | 2022.02.09 08:16:29 댓글: 0 조회: 295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7530
13. 마교의 호법 장로

손복호(孫伏虎)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 일은 이미 40년 전에 일어난 일이고 40년 전의 영웅 호걸들 가운데 오늘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소?”

임상웅(林祥熊)은 그 말을 받았다.

“맹(孟)나으리께서도 지금까지 건재하지 않소?”

맹개산(孟開山)이 아직 살아 있다면 그의 친구를 죽인 사람도 어쩌면 아직 살아 있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모두들 맹개산(孟開山)이 말해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그가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것은 다른 사람의 음성이었다! 그 음성은 카랑카랑하고 맑은 것이 나이 어린 소녀의 음성 같았다.

“맹개산(孟開山), 당신이 나에게 술이나 1잔 따라주게.”

맹개산(孟開山)은 금년에 87살이었다. 17살 때부터 강호에 뛰어들었으며 손에 쥐고 있는 1자루의 63근이나 되는 선화(宣花)대부(大斧)는 좀처럼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

도끼가 너무나 무겁고 둔중해서 초식(招式)의 변화도 민활하지 못한 점이 있었지만 강호에서 도끼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1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왕(斧王)으로 떠받들어진다는 것은 역시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수10년 간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술을 따랐을 뿐이었다. 그에게 술을 따르라고 했던 사람 가운데 살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그런데 그 보고 술을 따르라고 말하는 음성은 놀랍게도 나이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아닌가? 임상웅(林祥熊)은 바로 맹개산(孟開山)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맹개산(孟開山)의 표정을 그는 가장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갑자기 맹개산(孟開山)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본래 붉으레한 얼굴이 갑자기 차가운 얼음처럼 전혀 핏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1쌍의 눈동자는 갑자기 공포로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나이 어린 소녀가 그에게 술을 따르라고 하는데도 그는 노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임상웅(林祥熊)은 참을 수 없어 고개를 돌려 그의 눈길이 머무르고 있는 쪽을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그는 나이 많은 노파를 볼 수 있었다. 수각(水閣) 안에는 숫제 여자 아이라고는 없었다. 1명의 검고 비쩍 말랐으며 왜소한 늙은 노파가 1명의 검고 비쩍 마르고 왜소한 늙은이의 곁에 서 있었다. 2늙은이는 모두 청회색의 거칠은 베로 만들어진 옷을 걸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키보다 별로 더 크지도 않았다.

얼핏 보기에는 1쌍의 막 시골에서 올라온 늙은 부부 같았고 전혀 특별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수각(水閣)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강호에서 대가로 일컬어지건만, 그 누구도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노파가 입을 열자 모두 다시 1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보기에 맹개산(孟開山)보다 더욱 늙었다.

그러나 말하는 음성은 마치 나이 어린 소녀같지 않은가? 조금 전 맹개산(孟開山)에게 술을 따르라고 1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다시 그 말을 되풀이했다. 이번에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맹개산(孟開山)은 이미 술을 따르고 있었다. 먼저 술잔을 깨끗이 훔친 후에 1잔의 술을 따라서 2손으로 받쳐 들고 공손히 그 노파에게 내미는 것이었다. 노파는 실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더니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 오래 만나지 못한 사이에 자네도 많이 늙었군.”

맹개산(孟開山)은 공손히 대답했다.

“네.”

노파는 나직히 말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늙으면 점차 말이 많아진다고 하더군.”

맹개산(孟開山)의 손은 이미 떨리고 있었고 떨리는 바람에 술잔의 술이 모두 흘러 넘쳤다. 노파는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말이 많은 것은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는 뜻이라고 하더군.”

맹개산(孟開山)은 변명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노파는 그 말을 받았다.

“자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쯤 이미 짐작할 것일세. 우리는 바로 자네가 40년 전 보정부(保定府) 성 밖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지…”

그녀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 고장에는 바보가 1사람도 없는 것 같군. 바보가 아닌 한 당연히 저 전(田)가라는 새파란 녀석이 우리의 칼 아래 죽은 것을 짐작할 수 있겠지.”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에 정말 바보는 없었다. 모두들 정확하게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은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토록 비쩍 마르고 왜소한 노인들이 그렇게 빠른 칼을 쓸 수 있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맹개산(孟開山)의 표정은 그들로 하여금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실로 너무나 두려워하고 있었고 두려움에 온 몸뚱이가 축 늘어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은 이미 비어 있었다. 잔 안의 술이 모두 그의 몸에 쏟아진 것이었다. 노파는 불쑥 물었다.

“금년에 자네는 이미 80살이 넘었겠지?”

맹개산(孟開山)은 이빨이 마주치는 소리를 딱딱딱, 내며 간신히 대답했다.

“네.”

노파는 아무렇지 않은듯 말했다.

“자네가 80살 남짓 살았으니 죽는다고 해도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인데, 자네가 굳이 다른 사람까지 모조리 죽일 필요가 어디 있는가?”

맹개산(孟開山)은 말을 더듬으며 변명했다.

“나… 나는 그런 일은 없소.”

노파는 다그치듯 입을 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 가운데 1사람이라도 우리의 내력을 짐작해낸다면 그 어느 누구도 살아서 걸어 나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자네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자네가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주 태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치 이 방안의 사람들을 모두 쓰레기로 아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1마리의 개미를 눌러 죽이는 것보다 더 간단한 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종전(鐘展)은 갑자기 냉소를 날렸다.

“미쳤군.”

그는 좀처럼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1마디로 말할 것을 결코 2마디로 말하지 않았다. 노파는 물었다.

“이곳에 미친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종전(鐘展)은 대답했다.

“그렇고 말고.”

노파는 다시 물었다.

“누가 미친 사람이냐?”

종전(鐘展)은 불쑥 대답했다.

“바로 너다.”

홍매(紅梅)는 갑자기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당신 말이 지극히 옳아. 저 노파가 미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개소리를 할 수 있었겠소?”

손복호(孫伏虎)는 갑자기 힘주어 탁자를 두드렸다.

“옳소.”

임상웅(林祥熊) 역시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녀가 우리들을 모조리 이곳에서 죽게 만든다고? 도대체 그녀는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묵죽(墨竹)은 냉랭히 그 말을 받았다.

“그녀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하군.”

남궁화수(南宮華樹)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들은 그런 말을 하면 안되오.”

묵죽(墨竹)은 물었다.

“어째서?”

남궁화수(南宮華樹)는 점잔게 말했다.

“여러분은 신분과 지위가 있는 몸이 아니겠소? 저 따위 미친 할망구를 상대할 필요가 어디 있소?”

사람들은 너 1마디 내 1마디 주고받았는데 전혀 그 1쌍의 부부를 안중에 두고 있지 않은 눈치였다. 이상하게도 그 노파는 조금도 성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맹개산(孟開山)은 오히려 기쁜 표정을 띠었다.

- 그들 부부를 모르는 사람들만이 감히 그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었다.

-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살길이 열리게 된 것이었다.

노파는 끝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우리 영감님은 종종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오래 산다고 하더니, 그 양반의 말은 언제나 무척 옳은 것 같군.”

그 노인은 숫제 1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다.

얼굴에도 아무런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그의 마누라가 말한 것인지도 몰랐다. 노파는 다시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당신들이 모두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나도 당신들을 상대로 잔소리를 늘어놓기 귀찮군.”

유약송(柳若松)은 빙그레 웃었다.

“2분이 이미 오셨으니 자리에 앉으셔서 1잔의 술이라도 드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노파는 냉소했다.

“이런 곳이 이 어르신이 앉아서 술을 마실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

유약송(柳若松)은 대답했다.

“이 장소가 2분이 앉아서 술을 마시기에 마땅한 곳이 아니라면, 2분은 어째서 이곳에 오셨지요?”

노파는 담담히 말했다.

“우리들은 사람을 찾아온 것일세.”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물었다.

“사람을 찾는다구요? 어떤 사람을 찾는가요?”

노파는 시원시원 대답했다.

“1사람은 상진(商震)이고, 또 1사람은 사(謝)씨 성을 가진 나이 어린 계집애라네. 그렇게 2사람일세…”

그들 2사람을 들먹이는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 다시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자네들이 그들 2사람을 내놓기만 한다면 자네들이 무릎을 꿇고 빌어도 나는 이곳에 잠시도 더 머물지 않을 것일세.”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물었다.

“2분께서는 그들을 찾아서 어쩌겠다는 것인가요?”

노파는 간단히 대답했다.

“나 역시 어떻게 할 생각은 없네. 다만 그들이 몇 년 더 살도록 하려는 것 뿐일세.”

그녀의 눈동자에는 악독한 빛이 가득했다.

“나는 그들이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하도록 만들 참이지.”

유약송(柳若松)은 여유있는 태도를 보였다.

“이곳의 하녀들은 적지 않으며 사(謝)씨 성을 가진 사람도 틀림없이 몇 명은 있을 것이오. 상진(商震)은…”

노파는 물었다.

“그 사람은 이곳에 있는가?”

유약송(柳若松)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잘 모릅니다.”

줄곧 입을 열지 않고 있던 노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나는 알고 있지.”

노파는 물었다.

“당신은 언제 알았나요?”

노인은 간단히 대답했다.

“방금.”

노파는 다시 물었다.

“그는 어디에 있지요?”

노인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바로 이곳에 있지.”

손복호(孫伏虎)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상진(商震)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서 여전히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손복호(孫伏虎)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어째서 그를 볼 수 없지요?”

노인은 입을 다물었다. 1마디의 말도 더 하려고 하지 않았다. 노파가 입을 열었다.

“우리 영감님이 그가 이곳에 있다고 했으니 그는 반드시 이곳에 있을 것이네. 우리 영감님이 하신 말씀은 1번도 틀린 적이 없다네.”

손복호(孫伏虎)는 노파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틀리지 않는단 말이오?”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틀릴 수 없지.”

손복호(孫伏虎)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들이 만약 상진(商震)을 이곳에서 찾아낸다면 나는…”

노파는 얼른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손복호(孫伏虎)는 입을 열었다.

“나는…”

그의 말이 미처 입에서 흘러나오기 전에 임상웅(林祥熊)이 훌쩍 뛰어 일어나더니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노파는 냉소했다.

“상진(商震), 저 사람마저도 네가 온 것을 보았는데 언제까지 숨어 있을 거냐? 너는 빨리 썩 앞으로 기어 나오지 못할까?”

그러자 1사람이 냉소를 띄우고 응수했다.

“그가 나를 알아보았다면 그것이야말로 희한한 일이오.”

상진(商震)이 왔다면 물론 이 수각(水閣) 안에 자리를 잡았으리라.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아직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말소리는 분명히 상진(商震)의 음성이 아닌가? 모두들 분명히 그가 말하는 음성을 들었지만 여전히 그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이 수각(水閣)은 작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큰 편도 못 되었다. 그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그는 줄곧 이 수각(水閣) 안에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장님이 아닌데도 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강호에 명성을 떨치고 있고 지위가 높은 오행(五行)보주(堡主)가 그런 모양을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각(水閣) 안의 손님들은 9명밖에 없었으나 옆에서 그들을 시중드는 하인들은 12명이나 되었다. 6명의 사내와 6명의 여자들인데, 사내들은 푸른 장삼에 하얀 버선을 신고 있었고, 여자들은 짧은 적삼에 하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막 가마에서 구워낸 흙인형처럼 말이 없고 예의 바르며 깨끗했다. 모든 하인들은 신중하게 고르고 골랐을 뿐 아니라 엄격한 훈련을 거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대갓집에서 노비 노릇을 한다는 것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엄격히 훈련받은 사람이라 해도 갑자기 멀쩡하게 살아있던 사람이 가운데로부터 2쪽으로 갈라지는 것을 본다면 무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12사람 가운데 적어도 반은 놀라서 2다리에 맥이 빠져 땅바닥에 주저앉아 일어서지도 못했다. 그 누구도 그들을 나무라지 못했고 그들을 주의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1번 바라보지도 않았다. 이 수각(水閣) 안에 있는 그들의 지위는 결코 1마리의 홍소어(紅燒魚)보다 중요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줄곧 그 누구도 상진(商震)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상진(商震)은 언제나 자기의 신분을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언제나 기세등등했다. 따라서 그가 존귀하신 몸으로 비천하게 이 노비들 사이에 섞여 땅바닥에 쓰러져 기절한 척하고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제 그는 더 시치미를 뗄 수 없었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가 한평생 입어 본 적이 없는 푸른 옷에 하얀 버선을 신고 일어났다.

그의 얼굴빛은 새파래져 있었다. 그제서야 모두들 그가 얼굴에 지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피면구(人皮面具)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임상웅(林祥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분이 바로 상(商)보주(堡主)라고는 상상도 못했소.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감히 상(商)보주(堡主)께서 나의 잔에 술을 따르도록 할 수 있었겠소.”

남궁화수(南宮華樹)는 그 말을 받았다.

“상(商)보주(堡主)가 얼굴에 쓰고 있는 것은 옛날 칠교(七巧)동자(童子)가 친히 만든 면구(面具)이니, 당신이나 나나 육안(肉眼)을 지닌 범속한 사람은 당연히 알아보지 못할 수밖에 더 있겠소.”

매화(梅花)노인도 1마디 했다.

“소문에 들으니 저런 종류의 면구(面具)는 과거에 무척 진귀했으며 강호에서 떠도는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는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기껏해야 3, 4개 뿐이라고 하더군.”

묵죽(墨竹)은 냉랭히 그 말을 받았다.

“언제나 광명정대하던 상(商)보주(堡主)가 남 몰래 면구(面具)를 가지고 다닐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군.”

매화(梅花)노인은 가볍게 반박했다.

“광명정대한 사람이라고 해서 면구(面具)를 가지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소? 어째서 남 몰래 가지고 있다고 하시오?”

묵죽(墨竹)은 되물었다.

“설마하니 당신은 그 면구(面具)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잊었소?”

임상웅(林祥熊)은 대답했다.

“나도 들은 것 같기는 하오. 죽의 사람의 얼굴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구려.”

매화(梅花)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틀렸소. 보주(堡主)처럼 신분이 높은 사람이 어떻게 죽은 사람의 얼굴 가죽을 얼굴에 쓸 수 있겠소? 당신은 틀림없이 잘못 들었을 것이오.”

그들은 다시 너 1마디 내 1마디 상진(商震)을 조롱하는 말을 주고받았다.

상진(商震)은 끝내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말 다했소?”

임상웅(林祥熊)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소. 나는 또 1가지 사실을 잘 모르겠구려.”

상진(商震)은 물었다.

“무슨 일이오?”

임상웅(林祥熊)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늘 이곳의 주인이 손님들을 크게 청했고 마당에는 술상이 수100탁자나 되오.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몸을 숨기기 좋은데 당신은 어째서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지 않고 유독 이곳으로 왔소?”

상진(商震)은 대답했다.

“당신네들이 내 친구이기 때문에 나의 행적이 탄로난다 해도 당신들과 같은 명문정파의 영웅 호걸들은 내가 사마외도(邪魔外道)의 손에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손복호(孫伏虎)는 훌쩍 뛰어 일어나며 매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마외도(邪魔外道), 누가 사마외도(邪魔外道)란 말이오?”

상진(商震)은 냉소했다.

“설마하니 당신들은 저들 2사람이…”

그는 다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말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순간, 이미 27가닥의 가까운 싸늘한 광채가 그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노리는 부위는 모두 치명적인 요해(要害)였다. 1번째로 공격한 사람은 임상웅(林祥熊)이었다. 손복호(孫伏虎), 종전(鐘展), 매화(梅花), 묵죽(墨竹), 남궁화수(南宮華樹) 등도 그보다 별로 느리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명문 출신이고 강호에서는 그들이 암기를 쓸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소에 암기란 방문좌도(旁門左道)에서나 사용하는 치사한 물건라고 하면서 암기로 명성을 떨친 사람들을 낮게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암기 수법을 펼치자 손 씀씀이가 빠를 뿐 아니라 음독하고 악랄해서 어떤 점으로 보나 평소 그들이 얕잡아보는 사람들에 뒤지지 않았다. 그들은 틀림없이 상진(商震)이 그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결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벌써부터 암기를 손에 쥐고 있다가 갑자기 공격한 것이었다. 상진(商震)이 어찌 그들이 동시에 손을 써올 줄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그는 이제 죽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누가 손을 써서 자기를 구해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별안간 칼빛이 번쩍, 하면서 은백색의 칼빛이 허공을 누볐다. 27개의 가지각색의 다른 암기들이 즉시 땅바닥에 떨어져 54개로 변했는데, 모든 암기들은 그 1칼에 의해 중간이 잘려져 2쪽이 나고 말았다.

이 27개의 암기 가운데는 철련자(鐵蓮子), 매화침(梅花針), 자모금릉(子母金棱), 삼릉투골양(三棱透骨鑲) 등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네모지고 어떤 것은 둥글고 어떤 것은 뾰족하고 또 어떤 것은 납작했다.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었지만, 모든 암기들이 똑같이 중간에서 잘라진 것이었다. 이 1칼은 너무나 정확했고 너무나 빨랐다. 칼빛은 번쩍했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 노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노파의 눈동자에는 광채가 번쩍이고 있었다. 마치 조금 전에 허공을 가로지른 칼빛처럼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러나 2사람의 손에는 칼이 들려져 있지 않았다. 조금 전의 그 칼은 어디에서 뻗쳐나온 것일까? 칼은 어째서 사라지고 보이지 않을까? 어째서 그 누구도 똑똑히 보지 못했을까? 모든 사람은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상진(商震)은 갑자기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을 불어내었다.

“아, 20년간 서로 존중해 왔고 도의적인 교분을 맺은 터에, 손을 쓰자마자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이런 일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는 갑자기 냉소했다.

“흥! 나는 마땅히 생각했어야 했소. 왜냐하면 나는 당신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아 왔으니까 말이오.”

노파는 그 말을 물었다.

“자네가 본 것이 어째서 우리들보다 훨씬 많다는 거지?”

상진(商震)은 담담히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는 조금 전까지 땅바닥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탁자 아래에서 그간 일어난 일들을 모조리 볼 수 있었소.”

노파는 다시 물었다.

“자네는 무엇을 보았는가?”

상진(商震)은 대답했다.

“조금 전에 그들이 입으로 당신을 미쳤다고 욕할 때, 탁자 아래의 손이 슬그머니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어떤 손짓을 하더구려. 어떤 사람의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소.”

그가 말을 멈추자 노파가 재촉했다.

“계속 말하게.”

상진(商震)은 다시 대답했다.

“그것은 물론 그들이 이미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소. 하지만 그들은 당신이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오.”

노파는 물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 가운데 1사람이라도 우리의 내력을 알게 된다면 1사람도 살아서 나갈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말인가?”

상진(商震)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들은 당신 앞에서 그런 연극을 1것이오. 그들은 숫제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는 것처럼 꾸민 것이었소.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감히 당신에게 그토록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었겠소?”

노파는 냉소했다.

“그들이 우리의 내력을 알게 된 이상 당연히 자네를 친구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겠군.”

상진(商震)은 시인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조롱하는 말을 해서 그들이 나를 몹시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누가 나를 죽인다 해도 그들은 결코 쓸데없는 일에 상관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지요.”

노파는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가 급히 손을 써서 자네의 목숨을 살려주었으니 골치 아프게 되었군?”

상진(商震)은 말했다.

“내가 죽지 않고 말할 수 있다면 언제라도 당신들의 내력을 말할 수 있겠지요.”

노파는 넌지시 말했다.

“자네가 말을 하기만 한다면 그들 역시 자네와 함께 목숨을 잃고 말 것이야.”

상진(商震)은 냉담하게 말했다.

“그들이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으니, 나 역시 그들이 잘 살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겠지요.”

노파는 광소하듯 말했다.

“그들은 틀림없이 그 점을 이미 생각했을 것이네. 그들은 결코 바보 멍청이는 아니니까.”

상진(商震)은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누가 나를 구해줄 줄은 상상도 못했겠지요.”

노파는 냉랭히 그 말을 받았다.

“그들은 내가 자네를 구해줄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눈깜짝할 사이에 1칼로 27개나 되는 암기를 2토막 내는 사람은 세상에 정말 몇 사람 되지 않았다.

상진(商震)은 여러 호걸들을 쭉 훑어보고 말했다.

“임상웅(林祥熊)이 조금 전에 손복호(孫伏虎)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결코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냈기 때문은 아니었소.”

노파는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우리 집 영감이 누구인지 짐작했겠지?”

상진(商震)은 힘주어 말했다.

“그는 물론 철(鐵)장로(長老)가 한평생 자신 없는 말씀을 하시지 않고, 1번도 자신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요.”

노파는 그 말에 수긍했다.

“우리 영감의 성질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

상진(商震)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 노인이 바로 마교(魔敎)의 4대(四大)장로(長老) 가운데 하나이며 40년 전에는 천하제일 쾌도(快刀)로 불리던 분이라는 사실을 내가 말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을 것이오.”

그는 모든 것을 털어놓은 셈이었다.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묵죽(墨竹)이 몸을 훌쩍 날려 쏜살같이 도망쳤다.

경신법의 유일한 요결은 바로 가벼움이었다. 반드시 가벼워야 빠를 수 있었다. 묵죽(墨竹)은 대나무처럼 비쩍 말라 있는데다가 무척 왜소했다. 묵죽(墨竹)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체중이 가벼운 편이었다. 묵죽(墨竹)은 당금 강호에서 경신법이 가장 훌륭한 10사람 가운데 1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달려나가자 그 누구도 막지 못했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칼빛이 번쩍였다. 칼빛이 번쩍 빛나고 사라졌을 때, 묵죽(墨竹)은 여전히 앞으로 달려나고 있었고 눈깜짝할 사이에 얼음이 덮인 연못 위를 가로지를 수 있었다. 둥근 달은 하늘에 떠 있었다. 하늘에는 달이 있고 연못 위에도 달그림자가 있었다. 하늘과 연못의 달빛이 서로 얽혀서 밝음을 더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똑똑히 그토록 비쩍 마르고 왜소한 사람의 그림자가 무척 날렵하게 얼음으로 뒤덮인 연못을 가로지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똑똑히 그 사람이 갑자기 1가운데로부터 2쪽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묵죽(墨竹)이 처음 뛰어나갈 때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세를 가다듬고 바깥쪽으로 몸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막 끌어올렸던 1가닥의 진기를 식은땀으로 만들어 밖으로 내쏟아야 했다. 칼빛은 1번 번쩍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칼빛은 바로 노인의 소맷자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소맷자락은 무척 넓고 무척 컸으며 무척 길었다. 그의 소맷자락에서 날아나온 그 은백색 칼빛은 그 노파의 눈동자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노파는 불쑥 입을 열었다.

“영감, 틀렸어요.”

상진(商震)은 그 말을 얼른 받았다.

“맞아요. 묵죽(墨竹)은 마땅히 연자도(燕子刀) 아래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소.”

노파는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도 틀렸어.”

상진(商震)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노파는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자네도 1마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네.”

상진(商震)은 물었다.

“어떤 말 말인가요?”

노파는 대답했다.

“연자쌍비(燕子雙飛) 자웅철연(雌雄鐵燕)은 1칼로 가운데를 쪼개니 좌우가 서로 안녕.”

그는 시를 읊듯이 그렇게 1마디 던지고는 담담히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1칼로 중간을 내려치게 되면 당신들의 왼쪽 반과 오른쪽 반이 안녕하고 작별을 고한다는 것이지.”

상진(商震)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나는 들어본 적이 있소.”

노파는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들어본 말이라면, 자네도 마교(魔教)의 4대(四大)장로(長老) 가운데 철연(鐵燕)이 2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영감의 칼은 빠르긴 하나 역시 내가 손을 써서 도와주어야 그 위력이 드러나는 법이지.”

상진(商震)은 이번에도 그 말을 얼른 받았다.

“그 말도 역시 들어 보았군요.”

노파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나 우리 2사람이 함께 손을 쓴다고 해도 연자쌍비(燕子雙飛)는 천하제일의 쾌도라고 할 수 없네.”

상진(商震)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노파는 대답했다.

“절대 천하제일 쾌도가 될 수 없다는 말이야.”

상진(商震)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당신들의 칼은 너무나 빠르지 않소?”

노파는 남의 이야기하듯 말했다.

“자네가 우리들의 칼이 너무나 빠르다고 느낀 것은 진짜 천하 제일 쾌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네.”

그녀의 얼굴에 갑자기 무척 이상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1자루의 휘어진 칼인데…”

줄곧 입을 열지 않던 노인이 불쑥 그녀의 말을 냉랭하게 가로챘다.

“당신도 늙었구려.”

여인들 가운데 자기가 늙었다는 것을 고분고분 인정하는 여인은 보기 드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놀랍게도 즉시 인정했다.

“나는 늙었지요. 나는 정말 늙었어요. 내가 늙지 않았다면 어찌 이토록 말이 많은 사람으로 변했겠어요?”

그녀의 표정은 보기에 무척 이상했다. 존경인지 아니면 원한인지, 아니면 부러움인지, 그것도 아니면 분노의 빛인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이 동시에 1사람의 얼굴에 떠오른다는 것은 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휘어진 칼에 대해서 이런 몇 가지의 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휘어진 칼은 혹시 청청(青青)의 그 휘어진 칼이 아닐까? 이 문제는 대답해 줄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노파가 이미 화제를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불쑥 상진(商震)에게 물었다.

“내가 1칼로 자네를 죽일 수 없을까?”

상진(商震)은 얼른 대답했다.

“할 수 있지요.”

그는 좀처럼 남에게 자기가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즉시 인정한 것이었다.

노파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결코 귀여운 사람은 아니지. 자네는 스스로 잘난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자네가 잘난 것을 느끼도록 하려는 면이 있지.”

상진(商震)은 이번에도 인정했다.

“네. 그렇습니다.”

노파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자네의 5행(五行)검법(劍法)은 숫제 쓸모없는 것이지. 자네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득이 될 것도 없다네.”

상진(商震)은 반박하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노파는 병주고 약주는 격으로 다시 1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자네에게는 1가지 좋은 점이 있지. 자네는 최소한 스스로 비범하다고 자처하는 위군자(僞君子)보다 조금 나아. 왜냐하면 자네는 진실을 말하고 있으니까.”

이 점에 있어서 상진(商震)은 더욱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노파는 확실히 말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자네를 죽이지 않겠네. 다만 자네가 그 계집아이를 내놓는다면 나는 자네를 놓아주겠네.”

상진(商震)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내가 그들과 몇 마디 말을 할 수 없겠소?”

노파는 물었다.

“그들이란 누구인가?”

상진(商震)은 대답했다.

“그들이란 바로 내가 예전에 친구로 여겼던 저 사람들이지요.”

노파는 짓궂게 물었다.

“지금 자네는 그들이 어떤 친구인지 알았는데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다니?”

상진(商震)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다만 1마디만 하지요.”

노파가 미처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 노인이 앞질러서 입을 열었다.

“그에게 이야기하도록 하시구려.”

말이 적은 사람이 1말은 비교적 무게가 있는 편이었다. 노파는 즉시 그 말을 받아들였다.

“우리 영감이 자네에게 말을 하도록 허락했으니, 그 누가 자네의 입을 틀어막겠나…”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설사 자네 자신이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말해야 할 것이네.”

이윽고 상진(商震)은 손복호(孫伏虎), 임상웅(林祥熊), 매화(梅花), 종전(鐘展), 남궁화수(南宮華樹), 이 5사람의 귓가에 입을 대고 나직히 1마디 했다. 그는 맹개산(孟開山)과 유약송(柳若松)은 내버려두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1마디를 들은 사람들은 안색이 변했다. 조금 전보다 더욱 무섭게 변했다. 노파는 실눈을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노파 역시 상진(商震)이 그들에게 무슨 말을 속삭였는지 알 수 없었다. 철연(鐵燕)부인은 30살이 될 때까지도 강호에서 무척 이름난 미녀였다. 더욱이 그 1쌍의 사람의 혼백을 빼앗는 눈동자는 대단한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40년 전에 그녀가 그런 눈동자로 1남자를 바라보았다면 그 남자는 순순히 그녀의 분부를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그녀는 늙어 있었다.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결코 상진(商震)이 조금 전 그들에게 알려준 그 1마디를 누설할 것 같지 않았다. 상진(商震)은 불쑥 입을 열었다.

“연자쌍비(燕子雙飛)는 사람을 초개처럼 죽이지만 1번 내뱉은 말은 언제나 지켰었소.”

철연(鐵燕)부인은 그 말을 얼른 받았다.

“물론 지키지.”

상진(商震)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당신은 내가 그 사(謝)소저(小姐)를 내준다면 나를 놓아준다고 했지요?”

철연(鐵燕)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네. 내가 그렇게 말했었지.”

상진(商震)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갈 수 있게 되었소…”

그는 손뼉을 탁, 치더니 그 1쌍의 손으로 옷에 묻은 흙을 깨끗이 털었다. 이제는 이번 일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듯이 1마디를 덧붙였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그녀를 내주었기 때문이오.”

철연(鐵燕)부인은 물었다.

“누구에게 넘겼는가?”

상진(商震)은 대답했다.

“그들에게 넘겨주었소.”

그는 임상웅(林祥熊)과 손복호(孫伏虎), 종전(鐘展), 매화(梅花), 그리고 남궁화수(南宮華樹) 등을 가리키며 다시 설명했다.

“나는 정말 그녀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지극히 은밀한 곳에 숨겼소. 조금 전에 나는 그곳을 그들에게 이야기해주었지요.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그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오.”

손복호(孫伏虎)는 별안간 노호를 터뜨렸다.

“우리가 어떻게 당신이 말한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있겠소?”

상진(商震)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당신들 가운데 1사람이 그곳에 가서 찾아보면 내가 거짓말을 1것인지, 참말을 1것인지 알 것이 아니겠소?”

손복호(孫伏虎)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비지와 같은 땀방울이 이마에 맺혀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러나 상진(商震)은 웃고 있었다. 무척 유쾌하게 웃었다. 그 누구도 그가 어째서 갑자기 이토록 유쾌하게 변했는지 알지 못했다.

철연(鐵燕)부인은 입을 열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앞을 다투어 찾아낼 것이네.”

상진(商震)은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음.”

철연(鐵燕)부인은 다시 1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 이미 5명의 죽은 시체와 다를 바가 없게 되었지.”

상진(商震)은 여전히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였다.

“음!”

철연(鐵燕)부인은 한숨 쉬듯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죽고 싶지 않을 것이네.”

상진(商震)은 맞장구를 쳤다.

“이 몇 년 동안 그들은 정말 잘 먹고 잘 살아 왔지요. 그러니 물론 죽고 싶지 않을 것이외다.”

철연(鐵燕)부인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누구든지 죽고 싶지 않다면, 그 사람이 나서서 찾아와야 할 것이네.”

상진(商震)은 물었다.

“그건 어째서 그런가요?”

철연(鐵燕)부인은 설명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 계집애를 찾아내게 된다면 나는 그를 살려주게 될 테니까.”

상진(商震)은 고개를 끄떡이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불쌍하다는듯 말했다.

“나는 당신이 1말을 어기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철연(鐵燕)부인은 상진(商震)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다투어서 갈 것인지의 여부를 자네가 말할 수 있겠나?”

상진(商震)은 간단히 대답했다.

“저는 말할 수 없지요.”

철연(鐵燕)부인은 냉소했다.

“설마하니 자네는 그들이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기는가?”

상진(商震)은 대답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절대 가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철연(鐵燕)부인이 물었다.

“그건 어째서?”

상진(商震)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지 않는다면 어쩌면 몇 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게 된다면 반드시 죽기 때문이지요. 그 점을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소?”

그들 가운데 1사람도 반대를 표시하지 않았다. 철연(鐵燕)부인은 약간 성이 났으며 약간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설마하니 그들은 내가 감히 그들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상진(商震)은 담담히 대답했다.

“물론 감히 죽일 수 있겠지요. 만약 그들이 가지 않는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손을 쓸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그들도 알고 있지요…”

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사(謝)소저(小姐)에게 윗어른이 계시오. 만약 그들이 그녀를 찾아내서 당신들에게 넘긴다면, 그 사람은 결코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철연(鐵燕)부인은 다짐을 받듯이 물었다.

“그들은 차라리 나의 비위를 거스를지언정 감히 그 사람의 비위를 거슬릴 수 없다는 말이겠지?”

상진(商震)은 약간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들은 당금 강호에서 으뜸가는 고수들이니 손을 잡고 당신을 상대한다면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소. 하지만 그 사람을 상대한다면 정녕 1푼의 기회도 없게 되지요.”

철연(鐵燕)부인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지?”

상진(商震)은 대답했다.

“사효봉(謝曉峰). 취운산(翠雲山) 녹수호(綠水湖)에 있는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사효봉(謝曉峰)이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찾는 그 사(謝)소저(小姐)는 바로 사효봉(謝曉峰)의 딸이오.”

철연(鐵燕)부인은 안색이 변했다. 눈동자에 놀람과 의아함, 그리고 분노와 표독한 빛이 가득 떠올랐다. 상진(商震)은 모르는 척하고 담담히 말했다.

“연자쌍비(燕子雙飛)의 마도(魔刀)가 무섭기는 하지만, 사(謝)씨 집안 3(三)소야(少爺)의 신검(神劍)도 결코 그보다 못하지 않을 것 같구려.”

철연(鐵燕)부인은 매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말하는 것은 사실이네. 그런데 사효봉(謝曉峰)에게 어떻게 딸이 있다는 말인가?”

상진(商震)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당신들에게도 아들이 있는데 사효봉(謝曉峰)에게 딸이 없으란 법이 있습니까?”

철연(鐵燕)부인의 표정이 무척 끔찍하게 변해서는 1자 1자 뚜렷이 말했다.

“지금 우리들의 아들이 없어졌으니 사효봉(謝曉峰)도 딸을 둘 수 없다…”

그녀의 음성은 매섭고도 처량했다.

가늘게 뜨여진 실눈에서 갑자기 칼날 같은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커다란 눈으로 그녀는 손복호(孫伏虎)의 얼굴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 사(謝)씨 성을 가진 계집애는 어디에 숨어 있소? 당신은 말하지 않을 생각이오?”

손복호(孫伏虎)는 안색이 창백해져서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입을 열지 않았다. 상진(商震)은 강건너 불구경하듯 입을 열었다.

“그는 결코 말하지 않을 것이오. 소림(少林) 제자는 강호에서 언제나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요. 그가 만약 사효봉(謝曉峰)의 딸을 마교(魔教)에 팔아넘긴다면, 사효봉(謝曉峰)이 그를 놓아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동문(同文) 사형(師兄)제들도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그는 미소를 띄우고 다시 입을 열었다.

“똑같이 죽는 것이라면 어찌 좀 더 곱게 죽으려 하지 않겠소?”

손복호(孫伏虎)는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어떤 감정이나 원한이 없는데 당신은 어째서 나를 해치려고 하지?”

상진(商震)은 어디까지나 덤덤했다.

“왜냐하면 나는 뻔뻔스럽기 때문이오. 죽은 사람의 얼굴 가죽도 벗겨서 얼굴에 쓰는데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소?”

손복호(孫伏虎)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강호의 친구들이 오행(五行)보주(堡主)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속으로 어떤 느낌이 들까?”

상진(商震)은 넙죽 그 말을 받았다.

“나는 알고 있소. 그런 느낌은 틀림없이 내가 당신들로부터 받은 느낌과 마찬가지일 것이오.”

종전(鐘展)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가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말하리다.”

철연(鐵燕)부인은 냉소했다.

“나는 어느 누구든 간에 나서서 말할 거라고 생각했었지.”

종전(鐘展)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 역시도 상(商)보주(堡主)와 1마디의 말을 하겠소.”

그는 천천히 상진(商震)의 곁으로 다가갔다. 상진(商震)은 결코 전혀 그를 경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1번도 이 명성을 떨친 검객이 자기를 해치려고 나설 줄을 생각 못했을 뿐이었다. 그는 종전(鐘展)의 손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종전(鐘展)은 2손을 등뒤에 감추고 상진(商震)의 귓가에 입을 대고 나직히 속삭였다.

“1가지 사실을 당신은 틀림없이 생각 못했을 것이오. 그것은 바로 나 역시 당신이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계책을 쓸 줄은 생각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지금 나의 이 1마디를 듣게 된 것이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덥썩 상진(商震)의 귀를 물었다. 상진(商震)은 아파서 펄쩍 뛰어 올랐고 손복호(孫伏虎)는 일갈을 터뜨리면서 1대의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내질렀다.

“받아랏!”

퍽! 그 누구도 그와 같이 정통으로 내지른 1대의 주먹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상진(商震)의 몸뚱이는 허공을 날아가다가 밑으로 뚝 떨어지게 되었는데 갈비뼈는 적어도 8대는 부러져 있었다. 종전(鐘展)은 시뻘건 피가 묻은 귀를 상진(商震)의 몸에 탁 뱉고는 말했다.

“당신은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틀림없이 생각 못했을 것이오.”

철연(鐵燕)부인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아, 비단 그가 생각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나마저도 생각 못했구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표정이 무척 야릇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다시 말이 흘러 나왔다.

“당금 강호의 영웅호걸들이 모두 당신들과 같은 사람들이라면 정말 보기 좋은 일이 될 것이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불쑥 입을 열었다.

“1사람을 죽여 100사람을 경계하라는 말이 있소. 먼저 1사람을 죽이도록 하시구려.”

철연(鐵燕)부인은 대답했다.

“나도 반드시 먼저 1사람을 죽여야 그들이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 때 그녀는 언제나 자기의 남편에게 묻는 것 같았다.

“먼저 누구를 죽여야 하지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천천히 소맷자락 안에서 비쩍 마르고 앙상한 손가락을 뻗쳐내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손가락이 어떤 사람을 가르키든 간에 그 사람이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궁화수(南宮華樹) 외에 모든 사람들은 뒤로 물러섰다. 가장 빨리 물러선 사람은 매화(梅花)였다. 그가 막 남궁화수(南宮華樹)의 등뒤로 몸을 숨기려고 했을 때, 그 비쩍 마른 손가락이 어느덧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철연(鐵燕)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바로 저 자로 하지요.”

그 1마디가 끝나게 되었을 때 그녀의 손에 갑자기 1자루의 칼이 나타났다. 1자루의 4자 9치나 되는 장도(長刀)인데 매미 껍질처럼 얇고 가을의 호숫물처럼 한기를 내뿜었다.

칼날은 투명해 보였다. 이것이 바로 연자쌍비(燕子雙飛)의 마도(魔刀)였다. 옛날 마교(魔教)가 강호를 주름잡고 무림을 굽어보게 되었을 때, 천하 영웅호걸들을 개, 돼지나 물고기쯤으로 여기고 날뛰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교주(敎主) 휘하에 1검(一劍), 1편(一鞭), 1권(一拳), 쌍도(雙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그 누구의 눈에도 그 칼이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칼은 면철지영(緬鐵之英)을 100번 달구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딱딱해질 수도 있었고 부드러워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을 때는 둘둘 말아서 소맷자락 안에 숨길 수 있었다. 이 칼은 나타나기만 하면 반드시 혈광(血光)과 재난을 가져왔다. 철연(鐵燕)부인은 가볍게 칼날을 어루만지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오랫동안 이 칼을 사용하지 않았지. 우리 영감님과는 달리 나는 언제나 마음이 여리단 말씀이야.”

그녀는 매화(梅花)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운수는 정말 좋아.”

매화(梅花)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데 무척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얼굴색이 무척 좋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얼굴에 핏빛이라고는 1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정말이지 자기가 어째서 그토록 운수가 좋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철연(鐵燕)부인의 말은 재차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 내 칼에 의해 마지막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은 바로 팽천수(彭天壽)였네.”

팽천수(彭天壽)는 5호(五虎)단문도(斷門刀)의 으뜸가는 고수였다. 5호(五虎)단문도(斷門刀)는 팽(彭)씨 집안에서 은밀하게 내려오는 도법으로 강열(剛烈), 위맹(威猛), 패도(覇道)적이었다. 1도(一刀)단문(斷門)에 1도(一刀)단혼(斷魂)이라 하여, 강호에서 80년간 주름잡았으며 좀처럼 적수를 만나지 못했었다.

팽천수(彭天壽)는 손에 들고 있는 1자루의 칼로 양하(兩河)의 군호(群豪)들을 휩쓸다가 40여 년 전에 갑자기 사라졌다. 그 누구도 그가 이미 연자도(燕子刀) 아래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팽천수(彭天壽)는 맹개산(孟開山)과 절친한 친구였다. 그 이름을 듣자 맹개산(孟開山)의 안색이 변했다. 40년 전 보정성(保定城) 밖의 장교(長橋)에서 목격했던 그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을 다시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철연(鐵燕)부인은 가만가만 말했다.

“내가 팽천수(彭天壽)를 죽인 칼로 당신을 죽여 당신들의 혼백이 이 칼에 붙어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오. 그러니 당신의 운수가 무척 좋은 것이 아니겠소?”

매화(梅花)는 이미 노인이었다. 최근에 이미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자신도 자기가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내 말하겠소. 당신이 나보고 무슨 말을 하라고 하면 그 말을 하겠소.”

노인의 목숨은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일들을 대체로 누리고 즐겼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그가 즐길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늙은 사람일수록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었다. 철연(鐵燕)부인은 나직히 물었다.

“당신은 정말 말하겠소? 정말 사효봉(謝曉峰)이 당신을 어떻게 할까봐 두렵지 않소?”

매화(梅花)는 물론 두려웠다. 죽을 정도로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 사효봉(謝曉峰)은 멀리 천 리 밖에 있었고, 이 1자루의 마도(魔刀)는 그의 코앞에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잠시라도 더 오래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매화(梅花)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상진(商震)은 나에게 그 사(謝)소저(小姐)가 숨어 있는 곳을 알려주었는데 그곳은 바로 크윽!”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별안간 칼빛이 번쩍하더니 그의 목줄기가 그만 잘려지고 말았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일수록 종종 남보다 빨리 죽었다. 이것은 무척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 무척 이상했다. 철연(鐵燕)부인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매화(梅花)의 목줄기를 딴 그 칼은 그녀의 칼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칼을 보았으나 미처 저지할 수 없었다. 매화(梅花) 역시 그 칼을 보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그 1칼은 너무나 빨리 들이닥쳤던 것이다.

칼은 정붕(丁鵬)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의 광채를 보기 전에는 그라는 사람을 보지 못했었다. 여러 사람들이 그라는 사람을 보게 되었을 때 매화(梅花)의 목줄기는 이미 그의 칼에 잘려져 있었다. 칼끝에서는 피가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그 칼은 결코 머리카락을 칼날 위에 올려놓고 훅 불면 잘라지거나 사람을 죽이게 되었을 때 피가 묻지 않는 신병이기(神兵利器)가 아니었다. 이 칼은 무척 흔한 칼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칼날이 휘어져 있다는 것 뿐이었다.


14. 3(三)소야(少爺)의 딸

정붕(丁鵬)이 나타난 것을 보자 철연(鐵燕)부인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이미 노파였지만 1번 웃어 보이자 2눈이 살며시 감겨지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마치 40년 전의 매력을 다시 되찾은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을 본 사람은 드물었다. 그녀의 눈웃음을 본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40년 전에 이미 그녀의 칼에 맞아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그녀의 칼에 맞아 죽은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웃음에 홀려서 죽은 것일까? 어쩌면 그들 자신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문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이 1가지 있었다. 그 당시 그녀의 칼은 확실히 빨랐으며 눈웃음도 매혹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본 순간, 사람들은 그녀에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쾌도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었다.

지금 그녀의 칼은 무척 빨랐다. 40년 전보다 더욱 빨랐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은 40년 전에 비해 매력이 없었다. 그녀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몸에 배인 습관은 고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녀는 사람을 죽이려고 할 때는 언제나 웃었다. 그녀는 가장 매혹적으로 보일 때 손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지금 가장 매혹적으로 웃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손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갑자기 그녀가 죽이려고 하는 이 젊은이가 무척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젊은이가 사용하는 것은 칼이었고, 눈깜짝할 사이에 칼로 사람을 죽인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의 손에 들려서 핏방울을 뚝뚝 떨구고 있는 칼이 없었다면 그 누구도 그가 눈깜짝할 사이에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고, 그의 칼이 그토록 빠르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시골에서 올라온 더벅머리 총각 같았다. 가정 교육을 받았고 교양이 있어 보이며 성격이 무척 온화하면서도 아직 촌놈의 티를 벗지 못한 총각 같았다. 그 역시 웃고 있었다. 그의 웃음 역시 무척 매혹적이었고 남의 호감을 사는 웃음이었다. 심지어 그 노파마저도 방금 전에 1칼로 매화(梅花)의 목줄기를 딴 사람이 이 젊은이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나타난 사람은 정붕(丁鵬)이었다. 정붕(丁鵬)의 웃음은 온화하고 태도는 예의 바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손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쾌도가 들려져 있다는 사실을 쉽사리 잊어버렸다. 그는 미소를 띠우고 입을 열었다.

“내 성은 정(丁)이고, 이름은 붕(鵬)이오. 나는 바로 이곳의 주인이오.”

철연(鐵燕)부인은 미소를 띠우고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구려.”

정붕(丁鵬)은 나직히 대답했다.

“나는 진작 왔어야 했지요.”

철연(鐵燕)부인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음?”

정붕(丁鵬)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2분께서 막 이곳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나는 벌써 알고 있었소…”

그의 웃음은 더욱 온화했다.

“나는 그때 이미 마땅히 나타나서 2분을 맞아들여야 했지요.”

철연(鐵燕)부인은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일찍 오지 않았소?”

정붕(丁鵬)은 다소곳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어떤 일에 대해서 나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오.”

철연(鐵燕)부인은 물었다.

“어떤 일 말이오?”

정붕(丁鵬)은 설명하듯 말했다.

“2분의 신분 내력을 모르고 있었고, 2분이 어째서 갑자기 이곳에 왕림했는지, 이곳에 누구를 찾아 왔는지, 나는 그런 점을 모르고 있었소.”

철연(鐵燕)부인은 물었다.

“지금 당신은 모두 알아냈소?”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옛날 강호에서 가장 명성이 높고 세력이 큰 방파는 소림(少林)도 아니고 개방(丐幫)도 아니었소. 바로 동쪽에서 일어난 1신비한 교파였소. 그들은 짧은 10년 동안에 이미 강호를 휩쓸고 천하에 군림했었소.”

철연(鐵燕)부인은 그 말을 바로잡아주었다.

“10년도 채 되지 않았지요. 기껏해야 7, 8년밖에 되지 않았소.”

정붕(丁鵬)은 그 말을 받아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짧은 7, 8년 동안에 그들의 손 아래 죽은 강호의 호걸들은 적어도 800명이나 되었소.”

철연(鐵燕)부인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그러나 진정한 호걸이라 일컬어질만한 사람은 8명도 되지 못했을 것이오.”

정붕(丁鵬)은 말했다.

“그 당시 강호의 사람들은 그들을 증오하고 두려워했소. 그래서 그들을 마교(魔教)라고 일컫게 되었소.”

철연(鐵燕)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름은 기실 나쁜 것은 아니오.”

정붕(丁鵬)은 천천히 자기 말을 이어갔다.

“강호에서는 마교(魔教)의 교주를 대단히 크게 평가했소. 커다란 지혜와 엄청난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무공이 초범입성(超凡入聖)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했소.”

철연(鐵燕)부인은 한술 더 떴다.

“나는 지난 500년 동안, 강호의 그 어떤 사람도 무공에서 그 분을 능가하지 못했다고 장담할 수 있소.”

정붕(丁鵬)의 어조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자신은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았으며 강호의 사람들은 그의 참모습을 볼 수 없었고, 그가 손을 쓰는 것을 본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지요.”

철연(鐵燕)부인은 그 말을 받았다.

“어쩌면 1사람도 없었는지도 모르지.”

정붕(丁鵬)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교주 외에도 사람을 마구 죽이는 4명의 호법(護法) 장로(長老)들이 있었소. 마교(魔教)가 강호를 석권한 것은 그 4분의 호법(護法) 장로(長老)들이 천하 고수들을 죽인 탓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철연(鐵燕)부인은 고개를 끄떡였다.

“틀림 없소.”

정붕(丁鵬)은 그 노인을 바라보았다.

“2분께서는 4대(四大)호법(護法) 가운데 연자쌍비(燕子雙飛)인데, 언제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기 때문에 2사람이 1사람과 마찬가지지요…”

그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요즘 젊은 부부 가운데는 2분처럼 서로 깊이 사랑하는 부부가 그렇게 많지 않지요.”

철연(鐵燕)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많지 않지.”

정붕(丁鵬)은 음성을 높였다.

“내가 방금 말한 일들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철연(鐵燕)부인은 물었다.

“당신은 혹시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오?”

정붕(丁鵬)은 천천히 그 말을 받았다.

“조금 더 알고 있지요.”

철연(鐵燕)부인은 담담히 말했다.

“말씀해 보시오.”

정붕(丁鵬)은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2분은 60년 전에 부부로 맺어졌소. 부인의 성은 연(燕), 규명(閨名)은 영운(靈雲)으로 본래 교주 부인의 여자 친구였지요.”

노파는 이 젊은이가 어떻게 그녀의 처녀 시절의 규명(閨名 처녀 때 이름)까지 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붕(丁鵬)은 다시 말했다.

“2분은 일찍이 강호를 주름잡았으며 마교(魔教)가 강호에서 사라진 후에 1분의 아드님을 두었는데, 뜻밖에도 아드님은 사흘 전 사(謝)씨 성을 가진 아가씨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지요.”

철연(鐵燕)부인은 안색이 변해서 냉랭하게 말했다.

“이야기를 계속하시지.”

정붕(丁鵬)은 여전히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당시 사(謝)소저(小姐)는 결코 그의 내력을 알지 못했고 상(商)보주(堡主)와 전일비(田一飛)도 몰랐소.

그래서 손을 써서 그를 해치게 된 것이지요.”

철연(鐵燕)부인은 냉소했다.

“흥, 내력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죽여도 된다는 말이오?”

정붕(丁鵬)은 조용히 응수했다.

“그것은 다만 댁의 아드님이 사(謝)소저(小姐)의 내력을 몰랐고 사(謝)소저(小姐) 역시 공교롭게도 강호에서 보기 드문 절세의 미녀였기 때문이지요.”

그의 말은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말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서야 모두들 철연(鐵燕) 부부가 어째서 사효봉(謝曉峰)의 딸을 죽이려고 하는지를 알았다. 그녀가 그들의 외아들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옥(小玉)이라고 했다.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부드럽고 단정하며 말을 잘 듣는 착한 여자애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는 착하지 못한 짓을 1것이었다. 이번에 그녀는 몰래 집에서 빠져나왔다. 적어도 그녀 자신은 자기가 몰래 빠져나온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금년에 그녀는 겨우 17살이었다.

17살은 가장 꿈이 많은 나이였다. 17살 먹은 여자애들은 아름다운 환상을 가지게 되는 법이었다. 그녀가 착하든 착하지 않든 마찬가지였다. 원월산장(圓月山莊)이라는 이 이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한 환상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정붕(丁鵬)이 사람을 보내 초청장을 전달하자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다.

- 아름다운 원월산장(圓月山莊)은 사방에서 몰려든 영웅호걸들과 젊은 영협(英俠)들로 가득 차게 되리라.

17살 먹은 여자 아이에게 이 유혹은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그녀는 부친이 결코 그녀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 몰래 도망쳐 나왔다. 그녀는 그녀가 자기의 부친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세상에서 사효봉(謝曉峰)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이 무척 드물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결코 그녀를 저지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젊었을 때는 그런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제약과 간섭은 도리어 자녀들의 반항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17살 먹은 여자 아이가 혼자 강호에 뛰어들자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이 살고 있는 근처에 있는 오행(五行)보주(堡主) 역시 정붕(丁鵬)의 초청에 응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상진(商震)에게 그녀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다. 이런 강호의 대가(大家)가 길에서 그녀를 돌보면 절대 사고가 날 리 없었다.

더군다나 전일비(田一飛)까지 끼어 있었으니 말이다. 전일비(田一飛)는 그녀에게 접근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녀가 조금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래서 사효봉(謝曉峰)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는 마교(魔教) 인물들이 아직도 강호에서 떠돌아다닐 줄은 생각도 못했고 더군다나 철연(鐵燕) 부부에게 바람둥이 아들이 있어서 여자 아이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 날은 12월 13일이었다. 날씨는 무척 추웠다. 그녀는 객잔(客棧)의 점소이(店小二)에게 커다란 가마솥에 뜨거운 물을 데워 달라고 하고 방안의 커다란 화로에 숯불을 피웠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매일과 같이 목욕을 해 왔다. 그녀는 창문을 모두 걸어 잠그고 기분 좋게 뜨거운 물속에 반 시진 동안 몸을 담그었다. 그녀는 문득 누가 밖에서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창문 아래쪽의 조그만 틈 사이로 1개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소리쳤다.

“누구냐?”

그녀가 옷을 입고 달려 나갔을 때 전일비(田一飛)와 상진(商震)은 이미 훔쳐보던 사람에게 협공을 퍼붓고 있었다. 그 사람은 사팔뜨기에 절름발이였다. 추악하고도 괴상망측하게 생긴 병신이었다. 이런 사람은 여자를 직접 상대하게 되었을 때는 여자에게 눈길 1번 줄 용기도 없었다.

그러나 훔쳐볼 기회가 있을 때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 사람의 무공은 놀랍게도 약하지 않았다. 상진(商震)과 전일비(田一飛) 2사람이 손을 마주잡고 그를 협공했으나 여전히 그를 제압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가 그에게 1검(一劍)을 가했다. 그녀의 손에는 마침 1자루의 검이 있었다. 그녀는 공교롭게도 천하무쌍의 검객 사효봉(謝曉峰)의 딸이었다. 그 당시 상진(商震)도 그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병신이 바로 마교(魔教) 장로(長老)의 외아들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옥과 같은 순결을 깨끗이 간직하고 몸을 가꾸어 온 여자 아이가 어떻게 그런 수모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 그녀가 사람을 죽인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정붕(丁鵬)은 다시 느릿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본래 일찍 이곳에 와야 했으나 반드시 먼저 진상을 똑똑히 알아보아야 했지요.”

그는 이곳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반드시 공평해야 했다. 정붕(丁鵬)은 다시 넌지시 입을 열었다.

“이 일을 똑똑히 알아보기 위해서 나는 먼저 사(謝)소저(小姐)를 찾지 않을 수 없었지요.”

철연(鐵燕)부인은 물었다.

“당신은 그 애를 찾아냈소?”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상(商)보주(堡主)가 그녀를 어디에 숨겼는지 몰랐소. 이곳에 사람을 숨길만한 곳은 적지 않지요. 그래서 나는 이토록 오랫동안 찾게 되었소…”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다행히 상(商)보주(堡主)는 서둘러서 달려왔고 또 이곳의 환경에 익숙하지 못해서 몸을 숨길만한 곳을 많이 찾을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나는 그녀를 찾을 수 있었소.”

이토록 넓은 장원에서 1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수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쉽게 이야기하고 있었고 조금도 어렵지 않은 듯이 말하고 있었다. 철연(鐵燕)부인은 그를 바라보았다. 이 촌뜨기 같은 젊은이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겉모양보다 훨씬 무서웠다. 정붕(丁鵬)은 차분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상(商)보주(堡主)가 결코 그녀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소. 그는 사(謝)선생의 부탁을 받았으니 죽으면 죽었지 말하지 못할 것이오.”

철연(鐵燕)부인은 냉랭히 말했다.

“당신도 물론 그처럼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녀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겠지?”

정붕(丁鵬)은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말할 필요가 없소.”

그는 빙그레 웃고 담담히 말했다.

“나는 이미 그녀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소.”

그 1마디가 떨어지자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철연(鐵燕)부인도 무척 뜻밖으로 여겼다. 정붕(丁鵬)이 1칼로 매화(梅花)의 목줄기를 딴 것은 매화(梅花)가 사(謝)소저(小姐)의 행방을 말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목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자신이 그녀를 데리고 왔다니? 수각(水閣)에는 문이 있었다.

그가 문을 열자 보기에 측은하면서도 매력적인 여자애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눈물은 그녀가 더욱 연약하고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15. 만도(彎刀)의 위력

그녀를 1번 본 사람이면 그녀가 얼마나 착한 여자애인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이런 여자애가 만약에 사람을 죽였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죽어 마땅한 사람이리라. 정붕(丁鵬)은 불쑥 물었다.

“당신이 사(謝)소저(小姐) 맞지요?”

“그래요.”

“그저께 당신은 1사람을 죽였지요?”

“그래요.”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철연(鐵燕) 부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당신네들이 그의 부모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나는 당신네들이 지금쯤은 무척 마음이 아프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가 아직도 죽지 않았고 나에게 기회가 있다면 나는 여전히 그를 죽일 거예요.”

그 누구도 이렇게 연약한 여자애가 이렇게 독한 말을 할 줄은 생각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몸에는 역시 사(謝)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謝)씨 집안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머리를 숙이는 법이 없었다.

그녀와 정붕(丁鵬)이 나타난 후에 철연(鐵燕)부인은 오히려 침착해졌다. 100번이나 싸움을 치루어 본 무림의 고수는 진정으로 큰 적을 상대하면 오히려 침착해지는 법이었다. 그녀는 줄곧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의 말이 끝나자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가 반드시 그 애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그 애가 잘못했고 따라서 마땅히 죽어야 하기 때문이겠지?”

소옥(小玉)은 나직히 대답했다.

“네.”

철연(鐵燕)부인은 다시 되물었다.

“죄 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잘못 알고 죽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죽어 마땅하겠지?”

소옥(小玉)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네.”

철연(鐵燕)부인은 다시 물었다.

“네가 만약 사람을 잘못 죽였다면?”

소옥(小玉)은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나 역시 죽어 마땅하지요.”

철연(鐵燕)부인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고 가공스러웠다.

그녀는 갑자기 호통소리를 내질렀다.

“으하하, 네가 죽는 것이 마땅하다면 어째서 아직도 죽지 않느냐?”

처절한 웃음과 더불어 칼빛이 번쩍했으며 1칼이 소옥(小玉)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모두들 그녀의 그 1칼을 본 바 있었다. 1칼이 내려쳐지게 되면 이 온순하고 아름다운 여자애는 산 채로 2쪽으로 갈라지고 말리라.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를 돌렸고 어떤 사람들은 눈을 감았다. 뜻밖에도 1칼이 내리쳐진 후에 전혀 반응이 없었으며 아무런 기척도 들을 수 없었다. 모두들 참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사소옥(謝小玉)은 놀랍게도 여전히 멀쩡하게 그곳에 서 있었고 머리카락 1오라기도 잘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철연(鐵燕)부인의 그 매미 껍질처럼 얇고 칼날에 머리카락을 올려놓고 훅 불면 머리카락이 잘려지는 연자도(燕子刀)는 이미 다른 칼에 막혀 있었다.

정붕(丁鵬)의 칼에 막혀 있었다. 2자루의 칼이 서로 부딪치게 되었을 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2자루의 칼이 갑자기 붙어버린 것 같았다. 철연(鐵燕)부인의 손등에는 푸른 힘줄이 불룩 돋아나고 이마의 심줄도 굵어져 있었다. 정붕(丁鵬)은 보기에 여전히 여유가 있었고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것은 내 집이고 그들은 모두 내 손님이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이곳에서 사람을 죽일 수 없소.”

철연(鐵燕)부인은 날카롭게 다그쳤다.

“죽어 마땅한 사람도 죽이지 못한다는 말인가?”

정붕(丁鵬)은 되물었다.

“누가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오?”

철연(鐵燕)부인은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저 계집애는 죽어 마땅하지. 저 애는 무고한 사람을 죽였어. 내 아들은 결코 저 애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지 않았어. 설사 저 계집애가 무릎을 꿇고 내 아들보고 보아달라고 애원했다고 해도 내 아들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다시 처절하고도 가공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1마디 1마디 또박또박 말했다.

“하하하, 왜냐하면 그는 숫제 사물을 볼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 웃음소리는 너무 처절해서 사람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정붕(丁鵬)도 몰골이 송연해져서 물었다.

“그가 어째서 볼 수 없단 말이오?”

철연(鐵燕)부인은 내뱉듯 말했다.

“그는 맹인이다!”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웃음소리에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억울함과 표독함이 가득했다. 그녀는 마치 다 죽어가는 야수가 울부짖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맹인이 어떻게 남이 목욕하는 것을 훔쳐볼 수 있단 말인가?”

소옥(小玉)은 제대로 설 수도 없는 것 같았다. 몸뚱이가 거의 쓰러질 듯이 정붕(丁鵬)의 몸에 닿아 있었다. 정붕(丁鵬)은 소옥(小玉)에게 물었다.

“그가 정말 장님이었소?”

소옥(小玉)은 대답했다.

“나는 몰라요. 나는 정말 몰라요.”

철연(鐵燕)부인은 다그쳤다.

“설사 저 애가 정말 모른다고 해도 틀림없이 다른 사람은 알고 있을 거야…”

그녀의 음성은 더욱 처절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얼굴까지 짓이겨 놓았다.”

소옥(小玉)의 창백한 얼굴은 어느덧 전혀 핏기가 없어지고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몰라요. 나는 정말 몰라요.”

줄곧 석상처럼 그 자리에 서 있던 철연(鐵燕)장로(長老)는 갑자기 냉큼 상진(商震)을 들어 올렸다. 그는 여전히 그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으며 상진(商震)이 쓰러진 곳은 분명히 그와의 간격이 상당히 먼 편이었다.

그러나 그가 손을 1번 뻗치자 상진(商震)은 마대 자루처럼 쳐들려졌다. 상진(商震)은 죽은 것 같았으나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죽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 1대의 주먹에 맞았으나 그 얻어맞은 것을 빌미로 죽은 척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손복호(孫伏虎)의 1대 주먹을 얻어맞아 견디어 낸다고 해도, 연자쌍비(燕子雙飛)의 1칼을 맞고 견뎌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사뭇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죽기를 싫어하고, 살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진(商震)은 부인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 그는 이미 많은 사람이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해내었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마교(魔教)의 천마성혈고(天魔聖血膏)가 천하무쌍의 영약인 것을 알고 있겠지?”

상진(商震)은 물론 알고 있었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다시 말했다.

“너는 무마수혼대법(無魔搜魂大法)이 무슨 맛인지 알고 있겠지?”

상진(商震)은 알고 있었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따라서 나는 네가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겠지만, 살고 싶어도 살 수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도록 고통을 주겠다. 알겠느냐?”

상진(商震)은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목 쉰 소리로 부르짖었다.

“내 사실대로 말하겠소.

내 반드시 사실대로 말하겠소.”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창문 틈으로 사옥(社屋)이 목욕하는 것을 훔쳐본 사람은 누구였느냐?”

상진(商震)은 대답했다.

“전일비(田一飛)였소.”

상진(商震)은 눈물을 흘리면서 사건의 진상을 털어 놓았다.

“그 날 날씨가 무척 추워서 나는 점소이(店小二)에게 1주전자의 술을 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시키기 위해서 막 문을 나섰는데, 전일비(田一飛)가 사(謝)소저(小姐)의 창문 밑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소. 그런데 그때 사(謝)소저(小姐)가 마침 바깥에서 그 누가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방 안에서 소리를 질렀지요. 나는 전일비(田一飛)를 힐책하려고 했으나 그는 털썩 무릎을 꿇고 나에게 애걸복걸하며 그의 인생을 망치지 말아달라고 비는 것이었소. 그는 자기가 줄곧 사(謝)소저(小姐)를 사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시적인 충동으로 일을 저질렀다고 했소. 나는 그의 부모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소. 나 역시 그가 일부러 그런 짓을 했다고 믿을 수 없었소. 그래서 나는 그를 용서하기로 작정했는데, 우리들이 하는 말을 다른 1사람이 엿들었지 뭡니까. 그 사람은 병신인데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알 수 없었소. 전일비(田一飛)는 그를 보자마자 그를 죽여 입을 봉하려고 했지요. 뜻밖에도 그의 무공은 지극히 고강해서 전일비(田一飛)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지요. 나는 전일비(田一飛)가 남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별 수 없이 그를 도왔지만, 나는 맹세코 사람을 죽일 뜻은 없었고 결코 독수를 쓴 적도 없었소. 그때 사(謝)소저(小姐)가 옷을 입고 달려 나왔지요. 전일비(田一飛)는 혹시 그가 사(謝)소저(小姐) 앞에서 비밀을 들추어낼까 봐 일부러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고 그래서 그는 사(謝)소저(小姐)가 갑자기 찔러간 1검(一劍)의 기척을 듣지 못했소. 그때까지도 나는 그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그가 철연(鐵燕)공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소…”

그는 마지막으로 1마디를 덧붙였다.

“맹세하는데 난 정말 몰랐었소.”

이야기가 끝나자 상진(商震)은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도록 철연(鐵燕)장로(長老)는 그에게 1알의 속명구상(續命救傷)영약(靈藥)인 천마성혈고(天魔聖血膏)를 먹였다. 하지만 그는 다시 토해내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고 왕후(王侯)처럼 부귀를 누리고 있는 오행(五行)보주(堡主). 지금 다른 사람의 눈에 비쳐진 그의 모습은 1푼의 가치도 없었다. 상진(商震)은 갑자기 다시 목쉰 소리로 부르짖었다.

“만약 당신들이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나처럼 하지 않았겠소?”

그 누구도 그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속으로 몰래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 나는 친구의 아들을 위해서 내력이 분명하지 않는 불구자를 희생시키지 않을 수 있었을까?

- 나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수치스러운 비밀을 여러 사람 앞에서 털어놓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자기가 그런 처지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그를 아랑곳하지 않았고 다시는 그에게 눈길 1번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상진(商震)의 말은 멈추어져 있었다. 죽고 싶지 않은 사람도 죽게 되고, 죽기 싫어하면 죽기 싫어할수록 어떤 때는 도리어 더욱 빨리 죽었다. 창밖에는 칼날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고 모든 사람의 손발은 얼음같이 차가워졌으며 마음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냉랭히 정붕(丁鵬)에게 말했다.

“나는 마교(魔教)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며, 내 아들도 물론 그러했소.”

정붕(丁鵬)은 조용히 대답했다.

“알고 있소.”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내뱉듯 말했다.

“강호에 몸 담고 있는 영웅호걸들은 누구나 마교(魔教)의 사람이라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소.”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철연(鐵燕)장로(長老)는 힘주어 물었다.

“내 아들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시오?”

정붕(丁鵬)은 부인했다.

“아닙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신도 억울한 일을 당해 보았기 때문에 깊이 그런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다그치듯 다시 물었다.

“당신은 이곳의 주인이고, 근 50년 동안에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젊은 고수였소. 내 당신에게 묻겠는데 이번 일에 있어서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정붕(丁鵬)은 조용히 대답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은 모두 죽었소.”

철연(鐵燕)장로(長老)는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아직 다 죽지 않았네…”

그의 음성은 얼음같이 차가웠다.

“마땅히 죽어야 할 또 1사람이 아직까지 죽지 않았네.”

사소옥(謝小玉)은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어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또 다시 눈물 자국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보기에 그토록 측은하고 연약해 보여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제 나는 내가 사람을 잘못 죽였다는 것을 알았어요. 사람을 잘못 죽인 사람은 죽어야 마땅해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할 셈이냐?”

사소옥(謝小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마디도 더 내뱉지 않았다. 그녀는 갑자기 소맷자락 속에서 1자루의 광채가 눈부신 단검을 뽑아내더니 자기의 심장을 겨누고 푹, 찔렀다. 사소옥(謝小玉)은 금년에 겨우 17살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였다. 17살 먹은 여자애가 자살하고 싶을 리가 있겠는가? 사소옥(謝小玉) 역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반드시 죽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자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과연 그녀는 사효봉(謝曉峰)의 딸이었다. 그녀의 핏줄 속에 흐르는 것은 사효봉(謝曉峰)의 핏줄 속에 흐르는 피였고, 그녀가 뽑아든 것은 사(謝)씨 집안의 신검(神劍)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검은 다른 사람을 죽이든 자기 자신을 죽이든 아주 빠른 법이었다. 그러나 그 1검(一劍)은 결코 그녀의 심장을 찌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정붕(丁鵬)의 칼이 더욱 빨랐기 때문이었다. 칼빛이 번쩍했을 때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검은 이미 날아서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수각(水閣)의 대들보에 박혔다. 마치 1대의 못이 1조각의 두부 속에 박히듯이 1자 3치의 검날은 유주(柳州)에서 옮겨온 튼튼한 화강석(花崗石) 대들보에 푹 박히고 말았다.

사소옥(謝小玉) 역시 그 1칼의 위력에 깜짝 놀라 한참 후에야 마음을 진정하고 침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 스스로 죽으려 하는 것인데 당신은 어째서 죽지 못하도록 막는가요?”

정붕(丁鵬)은 담담히 말했다.

“당신은 죽지 말아야 하오. 죽을 수도 없소.”

사소옥(謝小玉)은 그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의 행동을 나무라는 것일까? 아니면 고마워하는 것일까? 이 1칼은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검을 쳐서 날려 보냈으나 그녀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말았다.

17살 먹은 소녀 가운데 영웅호걸을 우러러보지 않는 소녀가 어디 있겠는가? 철연(鐵燕)부인은 그녀를 바라보고 다시 정붕(丁鵬)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냉소를 날렸다.

“이제 알겠군.”

정붕(丁鵬)은 담담히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알았다는 것이오?”

철연(鐵燕)부인은 차갑게 대답했다.

“사소옥(謝小玉)을 죽이려면 먼저 당신을 죽여야겠군?”

정붕(丁鵬)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렇소.”

철연(鐵燕)부인은 다시 실눈을 뜨고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을 바라보았다.

“당신을 죽이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군.”

정붕(丁鵬)은 그 말을 받았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오!”

철연(鐵燕)부인은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의 그 칼은 보기에 휘어진 것 같은데?”

정붕(丁鵬)은 시인했다.

“약간 휘어져 있지요.”

철연(鐵燕)부인은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근 30동안에 강호에 휘어진 칼을 쓰는 사람이 나타난 적은 없었지.”

정붕(丁鵬)은 덤덤히 대꾸했다.

“다행히 나의 목은 휘어지지 않았으니 내 목을 1칼로 잘라낼 수도 있을 것이오. 내 칼이 휘어져 있든 말든 당신은 걱정할 필요 없소.”

철연(鐵燕)부인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말했다.

“근 30년 동안 강호에서 우리 연자쌍비(燕子雙飛)의 쌍도(雙刀)합벽(合壁)을 본 사람도 아마 없을 게야.”

정붕(丁鵬)은 되물었다.

“오늘 내가 볼 수도 있지 않겠소?”

철연(鐵燕)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정붕(丁鵬)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당신네 연자쌍비(燕子雙飛)의 쌍도(雙刀)합벽(合壁)을 본 사람들 가운데 목숨을 부지한 사람은 틀림없이 많지 않았겠지요?”

철연(鐵燕)부인은 여전히 냉담하게 말했다.

“1사람도 없을 게야.”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오늘 내가 어쩌면 당신들의 그 선례를 깨뜨릴지도 모르겠구려.”

철연(鐵燕)부인 역시 여유있게 웃어 보였다.

“나 역시 자네가 나의 선례를 1번쯤 깨뜨려주기를 바라네.”

그녀의 몸뚱이가 빙글 돌더니 어느덧 그녀의 남편 곁에 가서 서 있었다. 그녀의 허리는 여전히 소녀의 그것처럼 민활하고 부드러웠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그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의 칼 역시 매미 날개처럼 얇았고 투명했다. 그의 칼은 더욱 길었다. 모든 사람들은 뒤로 물러섰다. 멀찌감치 물러섰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그 칼에서 뻗치는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철연(鐵燕)부인은 나직히 1마디 했다.

“저 사람의 칼은 휘어진 것이에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덤덤히 대답했다.

“우리들은 예전에도 휘어진 칼을 쓰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지.”

철연(鐵燕)부인은 속삭이듯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휘어진 칼은 뻗쳐나는 순간 곧장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다만 1사람만은 예외였지.”

철연(鐵燕)부인은 약간 마음이 놓이는듯 말했다.

“다행히도 그는 그 사람이 아니에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맞장구를 쳤다.

“다행히 그는 아니오.”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다른 사람이 들을 때는 아무런 뜻도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다른 사람들은 숫제 알아들 수 없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알아들었다. 만도(彎刀)의 무서움은 결코 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도(彎刀)가 휘둘러지게 되었을 때는 역시 곧장 내려쳐야 하는데, 아무리 많이 휘어진 칼이라고 해도 내려칠 때는 수직으로 똑바로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이것은 물체의 정리라 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었다.

그러나 정붕(丁鵬)의 도법은 그런 정리를 바꾸어 놓았다. 왜냐하면 그의 도법은 숫제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의 도법은 여우[狐]의 도법이었다. 철연(鐵燕) 부부는 어째서 이 세상에 오직 1사람만은 예외라고 말했을까? 설마하니 그 사람 역시 여우[狐]와 같은 신통력이 있어서 일종의 교묘한 힘을 이용하여 물체의 정리를 바꾸어 놓은 것일까?

그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정붕(丁鵬)은 더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눈앞에 이미 칼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번갯불보다 더욱 눈부신 칼빛이었다. 연자쌍비(燕子雙飛)의 쌍도가 어울려 핍박해 들어온 것이었다. 그들은 본래 2사람이고 2자루의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찰나에 2사람은 갑자기 하나로 합쳐진 듯 했고 2자루의 칼은 마치 갑자기 1자루의 칼로 변한 것 같았다.

만약 철연(鐵燕)부인의 1칼이 지닌 힘이 500근이라면 철연(鐵燕)장로(長老)의 1칼이 지니고 있는 힘 역시 500근이었다. 그렇다면 그들 2자루가 힘을 합해서 후려쳐내는 힘은 본래 1천 근의 힘을 싣고 있어야 했다. 이것 또한 물체의 정리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교묘한 방법으로 그런 정리를 바꾸고 변화시켰다. 그들이 쌍도를 합하자 힘은 2배가 증가되었다. 1천 근의 힘이 2천 근으로 증가한 것이었다.

힘이 1배 증가하면 속도도 물론 1배 더 증가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연자쌍비(燕子雙飛)의 가장 무서운 점이 아니었다. 그들의 쌍도(雙刀)합벽(合壁)은 2자루의 칼이 1자루로 변한 것 같았다. 그러나 1자루가 2자루로 변하고, 2자루가 갑자기 1자루로 변하는 등 변화무쌍했다. 그들은 분명히 당신의 오른쪽을 내려치고 있었으나 당신이 왼쪽으로 몸을 피한다고 해도 피할 수 없었다.

당신이 오른쪽으로 피한다면 더욱 피할 수 없었다. 연자쌍비(燕子雙飛)가 쌍도(雙刀)합벽(合壁)으로 손을 쓰게 된다면 당신은 숫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쌍도(雙刀)합벽(合壁)은 힘이 배가되어 마치 4명의 고수들의 힘을 합친 일격과 같았다. 이렇게 된다면 당신은 더욱 더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쌍도(雙刀)합벽(合壁)은 마치 혼연일체가 된 듯이 숫제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신은 쌍도(雙刀)합벽(合壁)을 깨뜨릴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쌍도(雙刀)합벽(合壁)은 1번도 실수를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이번에도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들의 칼이 번쩍하고 빛나는 그 순간 정붕(丁鵬)의 칼 역시 움직였다. 만도(彎刀)가 뻗쳐나게 되었을 때 역시 똑바로 쪼개내는 형세였다. 정붕(丁鵬) 역시 예외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1칼을 쪼개내는 수법 역시 똑바로 내려찍는 것 같았다. 그러나 똑바로 내려찍듯 쪼개내는 찰나 갑자기 1가닥 휘어진 칼빛이 번쩍였다.

연자(燕子)쌍도(雙刀)는 모두 정강(精鋼)을 100번 달구어 만든 것이었다. 머리털을 칼날 위에 올려 놓고 입김을 불어내면 머리털이 잘라질 정도로 예리했다. 반면에 정붕(丁鵬)의 칼은 흔히 보이는 무쇠 칼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1줄기의 휘어진 칼빛이 번쩍 빛나게 되었을 때, 연자(燕子)쌍도(雙刀)의 번개와 같은 칼빛이 갑자기 빛을 잃고 말았다. 쌍도(雙刀)합벽(合壁)에 의해 2자루의 칼은 하나로 합쳐져 있었고 혼연일체가 되어 있어서 1점의 빈틈도 없었다.

그러나 그 1가닥 휘어진 칼빛은 놀랍게도 쌍도(雙刀)합벽(合壁)의 빈틈을 뚫고 들어갔다. 그 누구도 그 1칼이 어떻게 빈틈을 찾아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쨍!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1줄기 휘어진 칼빛은 무지개처럼 반원을 그리면서 휘어지듯 빙글 돌았다. 그 순간 칼빛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쥐죽은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온누리에 갑자기 죽음과 같은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정붕(丁鵬)은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숫제 움직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손에 들린 칼날에서는 피가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철연(鐵燕) 부부도 꼼짝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에 칼을 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과 손목에는 1줄기 신날같은 칼자국이 나 있었다. 초승달처럼 생긴 칼자국이었다. 선혈은 천천히 그들의 손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 흘러나올 때는 실낱과 같았다. 그들의 안색도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다만 미망(迷惘)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마주쳤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모든 것은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얼굴의 그 초승달 같은 상흔이 갑자기 쩍 벌어졌다. 얼굴의 살은 흡사 1알의 강냉이가 뜨거운 솥 안에서 갑자기 갈라지듯이 속을 드러내고 허연 뼈를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 들린 칼이 갑자기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칼을 쥐고 있던 그들의 한쪽 손도 함께 떨어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고통의 빛이 없었다. 다만 공포에 질린 표정만 떠올라 있었다. 공포감이 그들로 하여금 팔이 떨어지는 고통을 잊게 1것이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말로 형언하기 힘든 극도의 공포감이 떠올라 있었다. 여러 사람들도 공포에 젖었다. 조금 전 갑자기 1사람이 1칼에 2쪽으로 갈라지는 것을 보았을 때 드러내었던 공포감도 지금의 공포스런 광경에 비교할 수 없었다.

그들의 공포는 이미 공포의 극한을 초월한 것 같았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1칼에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 사람의 손에 들려져 있는 그 칼이었다. 1자루의 휘어진 칼. 칼은 결코 두렵지 않았다. 1사람이 1자루의 칼을 두려워하는 것은 칼을 쓰는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그 사람의 도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그 사람이 칼로 그를 죽일까봐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1자루의 칼이었다. 이 1자루 칼 자체가 그들의 영혼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공포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런 공포는 그들로 하여금 고통을 잊게 했을 뿐 아니라 그들 생명에 깃들어 있는 일종의 기이한 잠재력까지 격발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얼굴의 피와 살이 쩍 벌어지고 한쪽 손이 뎅강 잘라져 떨어졌으나 쓰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숫제 자기들이 상처를 입은 것을 모르는 것 같았고 자기들의 손이 잘라진 것을 모르는 듯했다.

이런 공포는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의 목줄기를 콱 틀어 잡고 있는 듯했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숨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평소에 말이 없는 철연(鐵燕)장로(長老)였다. 그는 정붕(丁鵬)의 손에 들린 칼을 주시하고 있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1자루의 만도(彎刀)로군.”

정붕(丁鵬)은 시인했다.

“칼이 조금 휘었을 뿐이지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다시 말했다.

“조금 휜 것이 아니고, 당신이 사용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만도(彎刀)이오.”

정붕(丁鵬)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런가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하늘과 땅은 말할 것도 없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오직 1사람만이 그 칼을 썼을 뿐이오.”

정붕(丁鵬)은 여전히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런가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그 사람이 아니오.”

정붕(丁鵬)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오. 나는 나일 뿐이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사용한 그 칼 역시 그의 칼은 아니지.”

정붕(丁鵬)은 선뜻 대답했다.

“이 칼은 원래부터 나의 것이었소.”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당신의 그 칼에는 글자가 없소.”

그는 이미 그 칼을 노려본지 오래 되었다. 그리고 그의 눈초리는 매의 눈초리보다 날카로웠다. 정붕(丁鵬)은 되물었다.

“이 칼에 본래는 글자가 있어야 했다는 것이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대답했다.

“마땅히 7글자가 있어야지.”

정붕(丁鵬)은 다시 물었다.

“7글자라니?”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또렷하게 말했다.

“小樓一夜聽春雨 (소루일야청춘우) 작은 누각의 밤, 봄비 소리 듣다!”

청청(青青)의 그 만도(彎刀) 위에는 확실히 그 7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7글자는 본래 1구절의 시에 지나지 않았다. 1구절의 의경(意境)이 무척 아름다운 시였다. 가벼운 시름을 간직하고 있고, 너무나 아름다워 사람의 마음을 산산조각나게 하는 감정이 서려 있는 싯귀였다. 그러나 철연(鐵燕)장로(長老)가 그 7글자를 말하는 목소리에는 오직 공포감이 가득했다.

그 공포는 사람이 귀신과 마주쳤을 때 느끼는 경외심(敬畏心)과 비슷했다. 이 싯귀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낄만한 부분이 조금도 없었다. 정붕(丁鵬)은 청청(青青)을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만났던, 금포를 입고 긴 수염을 길렀던 그 노인을 떠올렸다. 그가 그 싯귀를 읊게 되었을 때도 철연(鐵燕)장로(長老)와 똑같은 감정을 가진 듯 했었다. 그들은 어째서 이 1구의, 무척 흔한 싯귀에 그토록 유별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들 2사람은 어떤 신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어떻게 청청(青青)의 만도(彎刀)에 그런 싯귀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다시 질문을 던져왔다.

“당신은 예전에 그 7글자에 대해 듣지 못했소?”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들어본 적이 있소. 그 싯귀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지 이미 오래 된 유명한 싯귀이기 때문이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 7글자의 뜻을 아시오?”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눈을 빛냈다.

“당신은 정말 알고 있소?”

정붕(丁鵬)은 천천히 설명했다.

“어느 봄날, 밤중에 1외로운 사람이 홀로 소루(小樓)에 앉아 밤새도록 봄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뜻이지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끊임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틀렸소. 틀렸어. 전혀 틀렸어.”

정붕(丁鵬)은 나직히 물었다.

“설마하니 그 싯귀 안에는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말인가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시인했다.

“그 7자가 뜻하는 것은 1사람이오.”

정붕(丁鵬)은 물었다.

“어떤 사람인가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눈을 빛냈다.

“천하무쌍의 신인(神人) 1사람과 천하무쌍의 신도(神刀) 1자루…”

그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당신은 결코 그 사람을 알지 못할 것이오.”

정붕(丁鵬)은 다시 질문했다.

“내가 절대 그를 알지 못한다고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시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순순히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는 오래 전에 이 세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지. 당신이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그는 이미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말았단 말이오…”

그는 갑자기 매서운 어조로 물었다.

“그러나 당신이 조금 전에 펼친 그 칼질은 틀림없는 그의 도법이었소.”

정붕(丁鵬)은 약간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아! 그래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힘주어 말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오직 그 1사람만이 그런 도법을 사용했소.”

정붕(丁鵬)은 그 말에 대꾸했다.

“그 사람 외에도 또 1사람이 있는 것 같군요.”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불쑥 물었다.

“그게 누구요?”

정붕(丁鵬)은 간단히 대답했다.

“나.”

철연(鐵燕)장로(長老)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맞았소. 그 외에 당신이 있지.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오? 어떻게 그 도법을 펼칠 수 있었소?”

정붕(丁鵬)은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어째서 당신에게 말해주어야 하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대답했다.

“반드시 알려주셔야 하오. 알려주기만 한다면 나는 기꺼이 죽을 수 있소.”

정붕(丁鵬)은 냉담했다.

“나는 말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당신을 죽일 수 있소.”

철연(鐵燕)장로(長老)는 그 말을 부인했다.

“당신은 나를 죽일 수 없지.”

정붕(丁鵬)은 다그치듯 물었다.

“어째서?”

철연(鐵燕)장로(長老)는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나를 죽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지!”

그에게는 아직 1손이 남아 있었다. 그는 갑자기 품속에서 검은색 철패를 꺼내더니 높다랗게 쳐들고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보시오?”

그것은 1조각의 철패(鐵牌)에 불과했다. 정붕(丁鵬)은 그 철패에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남궁화수(南宮華樹)의 안색이 변했다.

눈동자에 즉시 의혹과 두려움이 가득 떠올랐다. 마치 신을 받드는 사람이 갑자기 자기의 신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천천히 물었다.

“당신은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남궁화수(南宮華樹)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물론 알고 있소.”

철연(鐵燕)장로(長老)는 큰소리로 외쳤다.

“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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