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绝代双骄 02

3학년2반 | 2022.02.12 08:30:25 댓글: 0 조회: 358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8305
스승을 압도하는 제자
소어아는 파촉동을 한 번 슬쩍 바라보았다.
"별일도 아니구만! 하지만 그런 짓은 노새차나 모는 놈들이 하
는 일이오."
"그렇지, 별일도 아니지. 하지만, 비록 심경홍은 옛날에 호송할
물건들을 잃고 자기도 실종되었지만 강호 사람들은 그의 과부와
동생을 존경했소. 그래서......."
"당신이 어떻게 말을 해도 좋아. 당신이 한 일이 모조리 이런
못난 일들이라면 악인곡에 들어을 자격이 없어. 다만......."
"다만 어떻다는 거요?"
"당신이 뭐 귀한 물건이라도 나에게 준다면 혹시 모르지."
"이토록 급히 왔는데 귀한 물건이 어디 있겠소?"
"줄만한 물건이 없으면 당신이 잘하는 무술이라도 좀 구경시켜
주시오."
파촉동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했지만 억지
로 참으며 말했다.
"좋소!"
그는 허리의 않은 칼을 꺼냈다. 바람을 일으키며 빛을 내더니
몇 가지 조식을 펼쳐보였다.
이 세 가지의 조식은 그의 명성을 강호에 날리게 한 절기(絶技)
였다. 살호삼절수(殺虎三絶手)라 하는 것이었는데 수법이 과연 침
착하고 빠르고 악독했다. 그러나 소어아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
며 웃었다.
"그것도 절기요? 이건 당신이 저지른 일처럼 변변찮소. 내가 보
기엔 당신이 악인곡에 들어오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되겠소."
"또...... 또 무슨 방법이 있는지?"
"땅에 꿇어앉아서 땅에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도록 새 변절
한 후에 날 세 번 소조종이라 부르시오. 그리고 양손으로 그 칼을
나에게 바쳐야 하오."
"그것도 규칙이오?"
"그렇소. 이것도 규칙이오."
"나..... 난 악인곡에 이런 규칙이 있다는 걸 듣지 못 했는데?"
"누가 이것이 악인곡의 규칙이라 했소?"
파촉동이 다시 놀라면서 말했다.
"그...... 그럼?"
"이건 나의 규칙이오."
파촉동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자 받아라!"
그는 들고 있던 칼을 소어아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철컥' 하는 소리가 나면서 사람은 간데없이 나무 의자
만 두 동강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파촉동이 크게 놀라는 순간 뒤에서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
다.
"난 여기 있소. 당신 장님이오?"
파촉동은 돌아서서 맹렬히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순간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다시 뒤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
다.
"너무 성급히 굴지 말고 천천히 해보시오. 나는 여기에 있소."
파촉동은 미치도록 화가 났다.
이때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쪽에 있는 사람은 파이제(巳二第)인가?"
한 사람이 큰걸음으로 걸어왔다. 신법은 파촉동보다 더욱 가벼
운 듯 보였다.
그의 몸은 길고 말랐으며 입이 밑으로 처져 흉악한 인상이었다.
오른쪽의 옷소매가 비어 있었다.
파촉동은 그를 보자 매우 기뻤다.
"민뇌도 송삼(宋三)형, 아! 당신, 당신이 과연 여기에 있었군
요!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이번엔 바로 형님을 찾아 왔소."
"알고보니 당신들 둘이 친구였군요."
파촉동은 소어아를 바라본 후 안색이 즉각 변하면서 말했다.
"형님, 이 자식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삼(宋三)이 그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동생이 왔으니 내가 데리고 가서 그분을......."
소어아가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
"잠깐, 잠깐. 당신이 그를 데리고 가는 것은 좋지만 우선 그에
게 나의 의자를 변상토록 하고 가시오."
파촉동이 얼굴이 빨개지며 입을 열려하였다.
송삼은 그의 팔을 붙들어 말리며 말했다.
"물론 의자는 변상해야겠지. 어떻게 변상해야 할지."
"당신의 체면을 봐서 그의 칼로 해결 합시다."
파촉동은 다시 노했다.
"이 낡은 의자를 나의 보검과 바꾸자고......."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삼은 칼을 빼내어 소어아에
게 넘겨주었다. 파촉동이 무슨 말인가 하려했으나 송삼은 급히 그
를 끌고 자리를 떴다.
소어아로부터 멀리 떨어지자 송삼이 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동생, 어찌 여기 둘어오자마자 그 작은 마성(磨星)과 시비가
붙었지?"
파촉동은 한편 놀라고 한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형님은 왜 그토록 그를 두려워하는 거죠?"
송삼이 쓴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나만 두려워하는 게 아니야. 이 산곡 중에 그를 두려워하지 않
는 사람은 없지. 요 몇 년 사이에 이 소마성(小磨星)은 사람들을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괴롭혔어. 누가 그의 기분을 건드리면 삼일
내로 큰 불행이 닥치지."
"아니 그 자식이 그토록 무섭나요?"
"동생, 내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야. 생각 좀 해보게. 이 악
인곡에 좋은 사람이 있겠나? 그런데도 그 어린 나이로 이 악마곡
에서 왕으로 자처하니 그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알 수 있겠지?"
파촉동은 송삼의 말을 들으며 두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
었다.
"믿지 않을 수 없죠...... 정말 믿지 않을 수 없군요.......그
런데 그 팔은?"
"이건 그가 한 짓은 아니지만 그와 관계는 있지."
그는 길게 탄식을 하면서 옷자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
었다.
"바로 그가 입곡하던 날 팔이 잘렸어. 십사 년, 이미 십사 년이
나 지났지. 연남천(燕南天)에게 그토록 무서운 수법이 있을 줄이
야. 만약 그때 나의 판단력이 부족했다면 오늘날까지 살 수도 없
었을 것이야."
"연남천? 저 자식이 연남천의......."
순간 처참한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파촉동이 땅에 쓰러졌다. 그
의 등에는 사발크기만한 구멍이 뚫렸고 피가 콸콸 솟구쳤다.
송삼이 급히 등을 돌리니 귀신 같이 창백한 사람이 흰옷을 입고
가볍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한쌍의 검은 눈동자는 깊어서 바닥
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송삼은 안색이 창백해져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음(陰)...... 음공(陰功) 당신이......."
음구유는 이를 드러내면서 음산하게 말했다.
"어느 누구도 소어아와 연씨의 일을 말하지 못 하도록 되어있는
것을 잊었느냐?"
"난..... 난 아직 말을 하지 않았는데."
"네가 말을 하기 전에 그를 죽인 것이 분하게 생각되느냐?"
송삼은 몸을 뒤로 물러서면서 어물거렸다.
"나...... 나......."
그의 몸이 돌연 두장(丈) 높이로 치솟았다가 떨어졌다. 그리곤
움직이질 않았다.
방금 그가 서있던 자리에는 늙은 노파가 지팡이를 들고 웃으면
서 서있었다.
"음노구가 어찌 갑자기 자비로워졌지. 이 자식이 첫마디를 뱉을
때 죽여야 했을 텐데. 그런데 왜 아무 손도 쓰지 않은 것이지."
"난 당신에게 넘겨드린 것이오."
"나에게 넘겨 주었다고? 내가 오랫동안 사람을 죽이지 못 해서
손이 가려울까봐?"
"난 당신의 소혼장이 진보되었는지 보고 싶었지?"
그 노파는 껄껄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진보했으면 어떡할래? 한 번 맛보려고?"
그녀의 늙은 목소리는 돌연 애교있는 아가씨의 목소리로 변했
다.
그녀는 바로 도교교였다.
음구유는 음산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나의 혼이 달아나게 하려면 더 이쁘게 변장 해야 돼."
도교교가 대답했다.
"나이가 많아서 이쁜 아가씨로 변장하려면 어려워."
"헌데 소어아는 어디에 있을까? 혹 듣지는 않았을까?"
"네가 모르는데 내가 어찌 알겠어!"
돌연 소어아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는 웃으며 노래
했다.
"식초단지 찌푸리는 코가 마누라를 얻었네. 아기를 낳으니 코가
없어......."
도교교가 웃으며 말했다.
"노서(老西)가 또 불쌍하게 됐네. 그가 찾아갔으니."
"그가 노서있는 쪽에 있었다면 듣지 못 했을 거야."
돌연 한 사람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이 두 분이오? 아니면 네 분이오? 한 사
람은 여자이자 남자이고 한 사람은 사람이자 귀신이니 합해 넷이
되네, 참 이상하지."
도교교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이대취, 여기 두 개의 국거리가 있는데도 너는 입을 막을 수가
없느냐?"
이대취가 그의 말을 받았다.
"너희들 두 사람이 죽인 놈들에겐 흥미가 없어."
음구유는 음산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 두 노대에게로 가던 길인가?"
"응, 바로 거기로 가는 길이지. 핫핫아가 돌연 우리를 만나자고
했는데 또 무슨 일을 하려는지 모르겠네."
도교교가 낄낄거리며 한발 나섰다.
"오래간만에 만나게 되는 셈이니 한바탕 해야겠지."
세 사람은 모두 두살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멀
리 떨어져 일장내로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다.
두살은 여전이 구석에 앉아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의례히 합합
아의 말이 제일 먼저였다.
"하하, 하하, 우리 오래간만에 또 이렇게 떠들게 되는군."
음구유가 나섰다.
"난 떠드는 것을 가장 싫어하지. 날 이렇게 불러놓고 만약 할
말이 없다면 난......."
합합아는 급히 대답했다.
"날 무섭게 하지는 마라. 나의 간은 작아."
도교교가 말한다.
"네가 우리를 찾은 것은 그 소어아 때문인가?"
"하하, 역시 소도(小屠)가 영리하단 말이야."
음구유가 입을 열었다.
"그 자식 때문이라고? 그 자식에 대해서 뭐 얘기 할 게 있어?
너희들 중 하나가 그에게 살인을 가르쳤고, 하나는 사람을 속이는
것을 가르쳤고, 또 하나는 웃는 것을, 하나는 우는 것을 가르쳤으
니 됐지, 지금 그는 모든 것을 배웠잖아!"
합합아의 목소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가 모든 것을 배웠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들을 부른 것이오."
이대취가 말을 받았다.
"왜?"
합합아는 탄식을 한 후 말했다.
"난 견딜 수가 없어."
"합함아도 탄식을 하니 보통일이 아닌데?"
도교교의 말을 듣던 이대취가 얼굴을 찌푸렸다.
"누가 그 아이에게 배겨날 수 있겠어?"
합합아가 다시 말을 받았다.
"지금 이분 도련님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고, 먹
고 싶으면 먹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아무도 그를 건드리
지 못하지. 건드리면 큰일난다고. 이 몇 달 동안 최소한도 삼십
명의 사람이 나에게 좀 살게 해달라고 호소를 했고, 적어도 여덟
번이나 호소를 한 사람도 있어."
천장검(穿腸劍) 사마연이 침묵을 지키다가 드디어 탄식을 하며
말했다.
"그 자식이 점점 무서워져. 그놈과 얘기할 때는 적어도 예닐곱
번을 생각하고 나서야 대답을 해야 되오. 그렇지 않으면 속기 쉬
우니......."
이대취가 쓴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넌 그래도 나은 편이야. 우리는 그를 보면 두려운 생각이 들어
그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 날은 정말 행운의 날이야. 하지만 가끔
은 잠을 자면서도 경계를 해야해."
도교교가 말했다.
"우리의 본래 희망이 그렇지 않았던가?"
"우리는 본래 그에게 남을 괴롭히라 했지. 그런데 이 자식은 아
무나 보기만 하면 괴롭히니...... 그 중에 소도만이 편할 거야."
"내가 편하다고? 내가 왜 편해. 내가 할 줄 아는 건 그놈이 다
배웠어, 게다가 이젠 나보다 잘해."
"두 노대는 어떻지?"
"음."
두살은 구석에 여전히 쭈구리고 앉아 신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도교교가 웃으며 말했다.
"음은 무슨 뜻이지?"
두살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드디어 서서히 입을 열었다.
"만약 그와 나를 같이 가두어 놓고 살아남는 자가 어느쪽인가
보면 필시 그일 거야."
도교교가 탄식을 한 후 말했다.
"좋아. 됐어, 악인곡에서도 그를 견디지 못 하니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말아야지. 지금이 그를 밖으로 보낼 때
요......."
이대취가 급히 잘라서 말했다.
"맞았어, 그는 지금까지 우리를 많이 괴롭혔고 이제는 나가서
세상 사람을 괴롭힐 차례야. 지금은 다행히 우리가 힘을 합해서
그를 제압할 수 있으니 괜찮을 지 모르나 후일 그를 제압하지 못
할 때에는 우리도 끝장이야."
음구유가 말을 받았다.
"보낼려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야."
두살도 결심한 듯 한마디 했다.
"바로 오늘."
"하하, 강호의 여러 친구들, 흑도(白道)의 친구들, 백도(白道)
의 친구들, 산의 친구들, 물 속의 친구들, 너희들이 고생할 날이
멀지 않았군."
합합아의 웃음소리가 끝나자 이대취는 자기의 이마를 만지면서
한마디 했다.
"그 자식이 떠나간다면 난 한 달 동안 사람 고기를 먹지 않겠
어!"
황혼 후 악인곡에는 점차 생기가 감돌았다. 소어아는 산채의 좌
우를 구경하다가 만춘류를 찾아갔다.
만춘류는 일곱 종의 약초를 단지에 넣고 끓이면서 약을 관찰하
고 있었다.
"오늘 무슨 수확이라도 있었니?"
"칼을 하나 얻었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어디 있지?"
"식초단지 노서(老西) 주었어요."
만춘류는 젓가락으로 약을 저었다. 짙은 수증기가 그의 얼굴을
스쳤다.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는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너의 작은 상자는?"
"상자는 벌써 잃어버렸고 그 속의 물건은 남에게 주었지요."
"고생하면서 얻은 걸 왜 남에게 주었지?"
"그 물건들은 가지고 놀 때는 재미가 있었지만 보관하는 데는
신경이 쓰여요. 잃어버릴까 걱정을 하게 되고 떨어뜨릴까 걱정이
고 남에게 도둑맞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지요."
"잘 했다."
"그 물건을 남에게 주면 걱정도 함께 가는 것이지요. 들리는 말
에 의하면 세상엔 전문적으로 보물을 간직하고 버리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던데 그 사람들은 필시 바보들이겠죠?"
만춘류는 잠시 웃음을 짓더니 서서히 일어서며 말했다.
"이 약단지를 들고 날 따라와라."
이 약 향기가 풍기는 집 뒤에는 세 개의 방이 있었다. 세 개의
방은 모두 문도 창문도 없었다.
이곳이 바로 만춘류의 병실이었다. 만춘류는 그 누구도 이 병실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도록 했다. 만약 사람들을 자유로히 왕래하
도록 하면 그들 중 누군가가 그 병실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
문이었다.
불이 없는 병실은 마치 만춘류의 얼굴처럼 신비스럽게 느껴졌
다.
병실 구석의 작은 침대 위엔 한 사람이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돌부처처럼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는 하루 종일 이렇게 앉아 있었
다.
그가 바로 남들이 말하는 '약상자'라는 사람이다.
병실에 들어서자 만춘류는 즉각 문을 굳게 닫고 등잔에 불을 켰
다. 그 병실은 독립된 세계가 되어 마치 악마곡과는 아무런 관계
도 없는 것 같았다.
소어아는 안색을 바꾸고는 만춘류의 손을 잡고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연(燕)백부의 병은 어때요?"
만춘류의 신비스럽고 싸늘한 얼굴은 곧 초조한 기색과 함께 분
위기를 엄숙하게 하였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암담히 입을 열었다.
"이 오 년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 난 별의 볕 약으로 시험
을 해봤지만 이제는...... 피곤해."
그는 무겁게 의자에 앉았다. 그의 얼굴엔 실망의 빛이 역력했
다.
소어아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돌연 안색을 바꾸며 입을 열
었다.
"나 오늘 어떤 사람이 연 백부님에 대해 말하는 걸 들었어요."
"누구였는지 아니?"
"말을 한 사람은 이미 죽었어요."
만춘류는 벌떡 일어나 소어아의 어깨를 움켜 잡으면서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그 말을 들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지는 않을까?"
"어찌 남이 알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는 곧 멀리 떨어진 식
초단지에게 가서 일부러 떠들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얻은
칼을 주었던 것이에요."
만춘류는 소어아의 말을 듣자 안심이 된다는 듯 서서히 손을 놓
고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쉬운 일은 아니야. 쉽지 않아. 네가 비록 영리해도 오 년 동안
이나 이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
그는 고개를 들며 쓴웃음을 한 번 짓더니 말을 계속했다.
"이 일이 만약 누설된다면 우리 세 사람은 한 시간도 못 살아.
넌...... 넌...... 각별히 조심하고 다른 사람들을 바보로 취급해
선 안 돼."
"알아요. 만 숙부님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연 백부님을 구
했다는 것을...... 난 어찌 감격하지 않겠어요. 남이 나의 목을
친다해도 난 말을 하지 않겠어요."
소어아는 말을 하면서 눈이 빨갛게 변해 눈물이 맺혔다.
만춘류의 긴 탄식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제 하는 말이지만 난 원래 너를 믿지 못 했어, 그러나 너는
이런 나쁜 환경 속에서 자라났지만 양심을 잃지 않는 좋은 아이
야."
"이 소어아가 나쁘게 하려면 아주 나쁘지요. 그러나 그건 어떤
사람을 상대하는가에 따라 달라져요. 그리고 나는 연 백부님과 나
의 관계를 안 후로......."
"오 년 전 어느날 밤 네가 돌연 나에게 달려와서 약단지 숙부님
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고 말했지. 네가 그 말을 했을 때 난
정말 놀랐다."
소어아는 그때를 상상이라도 하는지 고개를 숙여 웃었다.
"놀라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만춘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생각해봐. 그 비밀을 말한 사람이 누구인가?"
"정말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그럼 그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말해봐라."
"그것도 알 수 없어요. 정말이에요."
그는 한참 생각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그날 밤 저는 두살의 집 밖에서 자고 있었죠. 한밤중에 돌연
누가 나를 안아들지 않겠어요."
"너는 아무소리도 내지 않았느냐?"
"저는 아무소리도 내지 못 했어요. 더군다나 그때 난 두살이 무
슨 수법으로 나를 상대하는 줄 알았지 남인줄은 꿈에도 몰랐었지
요."
"그래, 그래......."
"저는 다만 그 사람의 몸이 무섭도록 빠른 것을 느끼며 그의 품
속에 마치 구름에 떠있듯 안겨 있었지요, 잠시 후 우리는 악마곡
밖에 도달했어요."
"두렵지 않더냐?"
"호랑이까지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사람을 두려워 하겠어요."
"그러나 사람은 때때로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걸 알아야 돼."
"그 사람은 나를 땅에 내려 놓고 물었어요. '너의 성이 무엇이
지?'하고. 나는 모른다고 말을 했어요. 그러자 그 사람은 내가 짐
승처럼 자기의 성도 모른다고 욕을 했지요."
"그리고는 그가 너에게 네 성이 강(江)씨라고 이야기해 주더
냐?"
"네, 그는 나의 아버지가 강풍이라고 했고, 이화궁(移花宮) 사
람에게 죽었다고 하였지요, 그리고 날더러 절대로 원한을 잊지 말
고 이화궁을 찾아 복수를 하라고 했어요."
"그는 정말 강금이라는 이름은 말하지 않더냐?"
"아니오."
"이상하구나. 너의 연 백부님이 악인곡에 온 것은 강금이라는
사람을 찾아서 너의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었는데."
소어아는 눈을 깜박깜박 하면서 말했다.
"어쩌면 강금도 내 원수 중의 하나겠지요?"
"음......."
"그리고 그는 나에게 연 백부님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요. 난 그
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으나 그는 바람처럼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
요. 그날 밤은 아주 어두웠고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얼굴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두 눈만은 드러나 보였는데 매우
밝고 무서웠어요...... 그 눈은 지금도 잊지 못 하겠어요."
"만약 금후에 다시 그 눈을 본다면 알아보겠느냐?"
"필시 알 거예요."
"분명 이 곡중의 사람은 아니겠지?"
"절대로 아니에요."
"악인곡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또 그렇게 많은 비밀을 알고 있으
니 도대체 그가 누구일까? 정말 알 길이 없군."
"무공이 매우 늦은 사람이겠죠"
"그건 틀림이 없을 거야. 함부로 악인곡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
은 너의 연 백부 외에는 거의 없을 거다."
"한 명도 없을까요?"
"또 있지, 비록 여자의 몸이긴 하지만 바로 이화궁의 대소(大
小)두 궁주(宮主)지. 그러나 너에게 이화궁을 찾아가서 복수를 하
라고 했다면 두 궁주는 아니겠지."
이때 소어아는 손뼉을 치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다.
"맞았어요. 이제 생각이 나요."
만춘류가 급히 물어보았다.
"무엇이 생각난단 말이야?"
"그 사람은 여자였어요."
만춘류의 안색이 변하면서 재차 물었다.
"여자라고?"
"음,...... 비록 얼굴을 가리고 일부러 목소리도 굵게 하였지만
거동으로 보아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무슨 거동으로?"
"예를 들면...... 머리 위를 가리고 있었어도 수시로 만져 본다
든지, 또 나를 품속에 안고도 절대로 가슴에 부딪히지 않게 하려
고 했다든지......."
만춘류는 다급하게 그 말을 가로챘다.
"그런 말을 왜 진작 하지 않았지?"
소어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 나......난 그때엔 남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서지요."
"맞았어. 그 당시 너는 어린아이였었지, 아이들 눈에는 다만 어
른과 어린아이의 구별만 있지 남녀의 구별은 없겠지. 더군다나 곡
중에는 반개의 여자가 있을 뿐이니 여자에 대해 잘 알 기회도 없
고......"
"난 그 사람이 필시 남의 일에 참견을 잘하는 남천대협 노중달
(路仲達)인줄 알았어. 그러나 그가 여자라면 틀리지."
"강호에 있는 여자 중 이화궁의 두 궁주 외에는 누가 가장 고수
지요?"
"여자라면 추측하기가 어려워지지. 요월, 연성 두 사람 외에는
다른 누가 마음대로 악인곡을 다닐 수 있는지......"
"그러나 필시 누군가가 있을 거예요. 제 아버지도 알고 연 백부
님도 알고, 또 아버지의 죽은 원인을 잘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지
요."
"아마 그럴 게야."
곡(谷)을 떠나는 소어아(小魚兒)
방을 나선 두 사람은 곧 안색을 바꾸었다.
만춘류는 다시 차가운 표정의 신의(伸醫)로 돌아갔고, 소어아도
심술궂은 소년의 표정이었다.
도교교가 언제 왔는지 문에 기대서서 웃고 있었다.
"의좋은 숙질간에 뭘 하고 있었어요?"
소어아는 재미있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당신을 어떻게 해치울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야아 너 이자식, 사람을 해칠 상의를 해도 이대취를 골탕먹일
방법을 생각해야지!"
"이 숙부님은 너무 쉽게 속아넘어가요. 속여도 재미가 없어요."
"얘야, 너 이 자식 말투가 심하구나, 조심해라, 이대취가 너를
잡아먹을 지도 모르니."
만춘류가 그 독특한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각하께서 여기에 오신 것은 소어아와 농담을 하기 위해선가
요?"
"보세요. 만 숙부께서 화를 내시잖아요."
소어아가 나섰다.
"도 고모는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지?"
"내가 좋은 소식을 알려 주지."
"뭔데?"
"너의 소 백부가 너를 위해 술을 마련했어. 이대취는 몇 가지의
안주를 준비했지, 난 고기를 준비했으니 너를 위해 밤새고 먹어야
겠다."
소어아는 알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박깜박 했다.
"왜?"
"가보면 알게 되요."
소어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웃었다.
"도 고모께서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난 가지도 먹지도 않겠어
요. 어쩌면 삼일 동안 줄창 설사를 하게 될 지 모르니."
"자식, 의심병이 커졌구나."
"이건 도 고모한테서 배운 거야."
"좋아, 내가 말해주지. 우리가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송별하기
위해서야."
소어아는 즉각 무엇인지 알았다. 그는 너무나 기뻤다. 당장이라
도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곧 내색을 할 수는 없는 일
이었다. 그는 시치미를 뚝 때고 입을 열었다.
"송별? 나를 송별하는 거요?"
"자식, 미처 생각을 못 했겠지, 네가 오늘밤 여기를 떠나기 때
문이야."
소어아는 입과 눈을 크게 벌리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밤에 간다고요? 어디로 간다는 거죠?"
"밖이지. 밖의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구경하고 싶지 않으냐?"
"나......나......."
도교교는 껄껄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더군다나 넌 나이도 적지 않으니 나가서 마누라를 찾아야지.
너 같은 자식이 나가게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여자를 유혹할지 모
르겠군."
그녀는 소어아의 손을 잡아 끌면서 말했다.
"만 신의, 당신은 소어아를 송별하지 않겠소?"
만춘류는 병실 문앞에 서서 한참 후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이런 일로 해서 시간을 낭비하지 못 하는 것을 용서하시
오. 두 분은 가보시오."
말을 마친 만춘류는 몸을 돌려서 큰걸음으로 걸어나갔다.
도교교가 말했다.
"저 사람의 머리 속에는 나무껍질이나 풀뿌리 같은 것밖에 아무
것도 없어. 자기 아버지가 간다해도 그는 송별하지 않을 거야."
소어아가 대답했다.
"만 숙부야 어떻든 간에 상관없어요. 술을 마시러 가요. 난 오
랫동안 술을 마시지 못 했어요."
"얼마나 오래됐지?"
"오래 되었어요. 한 반 나절쯤 되었을까?"
두 개의 술단지가 비어졌다.
이대취의 얼굴은 갈수록 빨개졌고, 두살은 새파랗게 되고, 합합
아의 웃음소리는 더욱 요란해졌다. 도교교는 마실수록 여자 같아
졌다. 다만 소어아만이 한 잔 한 잔 마시면서도 안색이 변하질 않
았다.
합합아가 입을 열었다.
"하하, 소어아의 주량이 놀라운데, 마치 물마시듯 하잖아?"
"물을 마시라면 난 이렇게 많이 마시지는 못 할 거야."
음구유가 싸늘하게 웃었다.
"술 마시는 게 좋은 일도 아닌데 그렇게 자랑할 필요는 없어."
도교교가 한마디 참견했다.
"귀신은 술을 마시지 않지. 하지만 사람은 마셔야 돼...... 소
어아, 넌 한 가지를 빼놓곤 나쁜 일을 모두 배웠다는 걸 알고있
니?"
이대취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노했다.
"무슨 나쁜 일이야! 그건 모두 좋은 일이야! 사람이 세상을 살
면서 그런 좋은 일을 배우지 않는다면 한평생을 헛되게 사는 거
야."
소어아는 눈을 깜박깜박 하면서 말했다.
"무슨 일을 내가 아직 배우지 못 했다는 것이지요?"
도교교가 껄껄 웃었다.
"이 일은?...... 한 일 년만 지나면 배울 필요없이 자연히 알게
될거야. 너의 모습으로 보아선 남보다 한참 빨리 배우게 될 걸."
"이거...... 그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자식, 너는 정말 모르는 거냐?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냐?"
이대취는 소어아를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얼굴에는 개기름
이 번지르르 흘렀다.
"네가 정말로 모른다면 이 일은 두 사람이 해야 된다는 것을 염
두에 둬라. 그러나 너의 도 고모는 방문을 닫고 혼자 할 수도 있
어."
그는 농담을 하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순간 '딩'
하며 술잔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음구유가 내려친 것이다.
"술을 더 이상 마실 순 없어!"
성질이 괄괄한 이대취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너는 왜 내 술잔을 깨는 거지?"
"더 이상 마셨다간 소어아가 가지를 못 할 거야."
이대취는 속에서 부화가 치밀어올랐다. 무섭게 그를 한참 바라
보더니 돌연 발로 술단지를 차버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난 꼭 술을 네 뱃속에 넣고 너를 술취한 귀신이 돼게 해야겠
어!"
이들 사이에 소어아가 끼어들었다.
"여러 숙부님들이 급하게 저를 읽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죠?"
도교교가 말했다.
"자식, 의심병도 많구나. 누가 너를 읽는다는 거냐?"
"당신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어요."
"네가 안다고? 좋아, 우리에게 말해봐."
"소어아가 이미 여러분들의 골칫거리가 되버린 거죠? 견디다 못
해 빨리 나를 이곳에서 내보내 남들이나 해치게 하자는 것이겠
죠?"
도교교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하여튼 간에 너의 마지막 말은 맞았어."
"당신들이 날더러 나가라는 것도 좋고 날더러 사람을 해치라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이건 모두 당신들 자신을 위해서지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어요. 무슨 대가가 있어야죠."
합합아가 입을 열었다.
"하하, 좋은 말이야.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십
수년간 널 정성껏 가르쳤기 때문이야, 이익이 없으면 부모가 시키
는 일도 마다할 텐데 백부나 숙부의 얘기가 귀에 들어오겠어?"
소어아는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맞았어요. 소 백부의 말이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정말 잘 하셨어요."
이대취가 한마디 거들었다.
"네가 손해볼 건 없어. 우리는 너에게 줄 물건이 있으니까."
"우선 보여줘야 되요. 물건이 좋은가, 내 마음에 드는가, 그렇
지 않으면 난 여기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도교교가 말했다.
"자식...... 두 노대, 그에게 보여줘요."
두살이 가지고 온 보자기에는 청씩 옷이 한 벌 들어 있었다. 또
금어(金魚)를 수놓은 모자와 한쌍의 가날픈 구두가 담겨 있었다.
소어아는 옷을 갈아입고 구리거울에 모습을 비춰 본 후 웃으며
말했다.
"그런대로 괜찮군. 내가 입어서 더욱 보기 좋을 거야."
"자기 자랑을 하다니 창피하지도 않느냐?"
도교교의 말이었다. 소어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만약에 자기가 자기 자랑을 하지 않으면 누가 자랑해 주겠어
요?"
"하하, 그 말이 옳아. 일리가 있어."
합합아의 말을 소어아가 옷매무새를 고치면서 받았다.
"또 뭐가 있죠?"
도교교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봐라."
그녀는 다른 보자기를 열었다. 그 속에는 많은 금잎이 들어있었
다. 엄청난 양이었다.
소어아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이게 무슨 좋은 물건이야? 배가 고플때 먹지도 못 하고, 목마
를 때 마시지도 못 하니...... 몸에 두면 무겁기만 하고...... 필
요 없어!"
도교교는 웃으며 말했다.
"바보, 이것만 있으면 마음대로 다른 물건을 살 수 있어,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위해 골이 터지도록 싸우는 데도 필요없어?"
소어아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난 필요없어. 난 그런 바보가 아니야."
이대취는 두 손가락으로 금잎을 하나 집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하나로 그런 옷을 세 별이나 살 수 있다는 걸 아느냐."
합합아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너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잖아. 이거 하나면 웬만한 말이 한 필
이다. 이 물건이 나쁘다면 세상엔 좋은 물건이 없어."
"당신들이 그렇게 좋게 말하니...... 좋아요. 내가 받아주죠.
이것
외에 또 뭐가 있나요?"
도교교가 말했다.
"야아, 자식, 뭐가 또 필요해? 심보가 시커먼 놈이군. 우리가
가진 걸 다 털어 줬는데 또 무슨 물건이 있겠어!"
소어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돌연
보자기를 들고 걸어 나갔다.
이대취가 급히 불었다.
"어어, 너 뭘 하려는 거냐?"
"뭘 하느냐고?...... 가는 거예요."
"그냥 그렇게 가는 거야?"
"또 용건이 있소? 술도 마실 수 없고 물건도 없는데......."
"넌 어디로 갈 거냐?"
"곡을 나간 후 동남쪽으로 가겠어요. 발 닿는 대로 가는 거지
요."
"뭘 할 생각이지?"
"아무 것도 할 생각이 없어요. 사람을 만나서 기분이 맞으면 그
와 두어 잔을 마시고 기분이 맞지 않으면 그를 해치고, 그를 울지
도 웃지도 못 하게 하고, 뭐 그렇게 되겠지요."
모두 박수를 치면서 기뻐했다.
"하하, 묘해 묘해. 그래 그렇게 해야 재미가 있지."
이대취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물었다.
"너...... 여기에 돌아올 생각이냐?"
"내가 밖의 사람들을 모두 해치면 돌아오겠어요. 돌아와 당신들
을 해치워야 하니까!"
"하하 묘해 묘해. 네가 정말 곡 밖의 사람들을 모두 통곡하게
만들면 우리는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 그때는 네놈 때문에
피해를 입어도 괜찮겠지."
합합아의 말이었다. 소어아는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안녕."
그는 정말 고게도 돌리지 않고 가버렸다.
두살은 그가 걸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무심히 중얼거렸다.
"이 아이의 마음은 과연 우리 같이 지독하군!"
합합아도 말했다.
"우리가 그를 악독하게 만든 것이지. 악독할수록 좋아."
이대취도 한마디 했다.
"십여 년이 넘는 세월이야."
도교교가 말했다.
"강호에는 이제까지 너무 오랫동안 조용했어. 지금은 그가 나가
서 휘저을 때야. 다만 우리가 직접 보지 못 하니 애석한 일이긴
하지만......"
소어아는 새옷을 입고 보자기를 들고는 악인곡의 거리를 천천히
지나갔다. 새구두는 땅을 밟을 때마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둠 속에서 그 소리가 멀리퍼졌다.
그는 길을 걸어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소어아가 갑니다. 금후로 여러분들은 안심하며 잠을
편안히 잘 수 있게 되었소."
사람들이 하나 하나씩 고개를 내밀고는 눈을 크게 뜨고 소어아
를 바라보았다.
소어아는 계속 소리쳤다.
"내가 이토록 큰 결심을 했으니 당신들은 빨리 박수라도 쳐서
나를 환송해야 하지 않겠소? 당신들이 박수를 치지 않으면 난 가
지 않겠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쪽에 늘어선 집속에서 일제히 박수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어아는 크게 웃었다.
그는 만춘류의 집앞을 지날 때 웃음을 멈추고 만준류를 바라보
았다. 다만 잠깐 동안 바라보았을 뿐 말을 하지는 않았다. 만춘류
도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소어아는 드디어 악인곡을 떠났다.
별들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하늘은 매우 높았고 비록
여름날이었지만 음산한 산중의 바람은 여전히 서늘했다. 소어아는
큰모자를 쓴 후 하늘의 많은 별을 바라보며 멍하니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이런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겠지만 여기서와 같지는 않을 것이
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 가야 한다. 두려움은 없었으나 그의
마음 속엔 이상한 느낌이 서렸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
고 걸어 나갔다.
황혼녁, 산은 이미 아련한 색채로 변해갔다. 옅은 산 안개가 점
점 산허리로 쳐지면서 망막하게 대초원에 번져나갔다.
바람이 불어 풀포기들이 살랑살랑 흔들거렸다. 바람을 타고 이
따금 양이나 소의 울음소리, 말의 울음 소리가 평온하게 들려오곤
했다. 멀리 양떼들, 소떼와 말떼들이 마치 들판이 흘러가듯 서서
히 움직였다. 아름답고도 웅장한 대평원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소어아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눈에는 흥분의 빛이 감돌았
다. 얼마나 아름답고도 위대한 세상인가! 황야에는 서서히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고 그는 여전히 넋을 잃고 서있었다. 고적함과 함께
가슴이 망망 대해처럼 넓어져감을 느꼈다.
멀리서 바람을 타고 은은히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참
으로 맑고 투명한 목소리였다.
그는 노래소리가 나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서서히 온 들을 집어삼키자 별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고
달이 저편 초원에서 떠올랐다.
몇 채의 천막집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집앞에는 모닥불이 피워
져 있었으며 장녀들이 모여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그마한 몸집에 진한 색깔의 큰 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는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어깨에 늘어뜨리고 아름답게 수놓은
장신구들로 온 몸을 치장하고 금으로 장식한 술이 달린 작은 모자
를 쓰고 있었다.
장녀들은 그를 보자 모두 노래를 멈추고 달려와 웃으면서 그의
옷을 만지거나 그가 알아듣지 못 하는 말을 지껄였다. 장녀들은
순진하고 상냥해 보였다.
소어아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지?"
머리가 길고 눈이 크며 웃을 때 달콤한 모습을 하는 소녀 하나
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장어를 하고 있지. 너......너는 한인인가?"
소어아는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말했다.
"그런가 보지."
소녀는 가만히 웃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지?"
"소어아!.......아니 나의 성은 강(强)이고 이름은 어(魚)."
눈이 큰 소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소어, 강 속의 고기는 맛있다지만 난 먹어 보지를 못 했어."
그녀는 장어로 다른 소녀들에게 말을 했다. 소녀들은 더욱 아름
답게 웃었다.
소어아도 따라 웃으면서 말했다.
"너 외에 사람들은 말을 못 하는 모양이지?"
큰 눈의 소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말은 하지만 한어를 하지 못 할 뿐이야."
"왜 너만 한어를 할 수 있지?"
"나의 아버님이 한인이기 때문이지."
그녀는 가슴을 펴고 얼굴에는 자랑스런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우리들 중에서 내가 한어를 제일 잘 하지. 그래서 내일 한인들
이 와서 장이 열리게 되면 날더러 대표로 말을 하라는 거야."
"너는 아름답고 게다가 재주도 있구나."
큰 눈의 아가씨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자 홍조띤 얼굴은 더욱 아
름다와 보였다.
"너의 이름은 뭐지?"
큰 눈의 아가씨는 애교있게 대답했다.
"나의 이름은 한어로 말하면 도화야."
"도화...... 난 복숭아 맛을 본 적이 없어. 그러나 복숭아꽃도
너보다 더 아름답지는 못 할 거야."
도화는 수줍은 듯 웃으며 말했다.
"나도 강물 속의 고기를 먹어 보지는 못 했어. 하지만 강물 속
에 있는 고기 맛이 너의 입보다 달콤하지는 못 할 걸."
이 때 장막 속에서 많은 남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모두 눈을 크
게 뜨고 소어아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몸이 크지는 않았지만 모두
튼튼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소어아가 말했다.
"난 가야겠어 !"
"두려워 마. 그들이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야."
"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야. 이제 가야겠어."
도화는 눈알을 굴리면서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가지 말어. 내일...... 내일 아침에 많은 너와 같은 한인이 여
기에 올 거야. 그러면 필시 떠들썩하고 재미있을 건데."
"그럼. 오늘 밤엔......."
도화는 고개를 숙여 웃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오늘 밤에는 내 장막에서 자. 우리 이야기나 하자."
그녀의 눈은 별같이 신선하고 맑았다.
장막 속은 따뜻하고 젖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소어아가 옷을 벗자 도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가여운
듯 소어아의 몸에 생긴 상처를 만져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
다.
"불쌍한 동생, 어쩌다 이렇게 다쳤지. 하지만 이상하게 이 상처
들은 조금도 흉하지 않고 귀엽게만 보이니 웬일일까?"
"비록 나도 다쳤지만 나를 다치게 한 호랑이와 늑대는 모두 죽
었어."
"너...... 네가 호랑이를 죽인 적이 있다는 말이냐?"
"별로 많지는 않아. 너댓 마리쯤."
도화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왜 안 믿어져?"
"믿어. 내가 왜 너의 말을 믿지 않겠니?"
"너는 왜 나의 말을 믿지?"
도화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는 곧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나의 동생이기 때문이야. 한눈에 너를 동생으로 하고 싶
었어......."
"나와 같은 동생이 있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
이날밤 소어아는 매우 편하게 잤다. 그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자 양젖 한 병이 베개 옆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소어아는 양젖을 마신 뒤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두장 밖에
새로운 천막이 하나 쳐져 있었고 외지에서 온 듯한 상인들이 곳으
로 모여들어 마차를 풀고 있었다.
멀리서 도화가 한인과 장인들 틈에서 마치 새처럼 이야기를 하
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몇 마디를 하자 장인과 한인은 서로 악수
를 했다. 일이 잘 풀렸는지 그녀의 웃음은 더욱 달콤해졌다.
그는 그녀를 부르지 않고 새롭게 들어선 간이 천막들이 이어진
장터로 다가갔다. 소어아는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그때 소어아 앞에서 바싹 마른 사람 하나가 건강해보이는 작은
말을 끌고 오고 있었는데 하얀 털이 바람에 날리는 것이 소어아의
눈길을 끌었다.
소어아는 천천히 다가가 그에게 물어보았다.
"이 말 파실 건가요?"
그 사나이는 소어아를 어본 후 말했다.
"사고싶으면 너의 집 어른을 불러 와라."
"어른을 부를 필요가 있겠오? 은이 있으면 어른이지."
"네가 은이 있느냐?"
소어아는 자기의 허리를 툭 치면서 말했다.
"은은 많지 않지만 금이야 많지요."
그 사나이는 더욱 크게 웃으면서 그의 허리를 바라보더니 손으
로 작은 말의 털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 말은 좋은 말이라서 돈이 많이 필요해."
"값이나 말해 보시오."
사나이는 조그마한 눈을 굴려 가면서 말했다.
"이 말은 퍽...... 최소한도 백 구십 냥의 은은 주어야겠어."
소어아는 생각을 거듭한 후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값이 적당치 않군."
"그게 무슨 말이지? 이 말은 종자가 좋은 놈이야. 이건 최소한
도......."
"이 말이 좋은 말이라면 최소한도 삼백 팔십 냥의 은을 주어야
하는데 백 구십 냥이라니 너무 적단 말이오."
그 사나이는 멍하게 입을 벌리고 있다가 돌연 한마디 물었다.
"네가 농담하는 거냐?"
"금은 농담하지 않소...... 금 한 냥이 은 육십 냥이니 은 삼백
육십 냥이면 금 여섯 냥 삼전이 조금 넘는군. 자! 일곱 냥을 드리
겠소."
사나이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는 정신없이 금돈을 받고
는 재빨리 말고삐를 건네었다.
소어아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띠우고 말을 끌고 왔다갔다 하면
서 생각했다.
(이 놈들은 모두 천치인데다가 추악한 놈들이다.)
그때 그는 한 명의 백의 소년이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손
을 등에 대고 하얀 옷을 바람에 날리며 마치 곤륜산의 백설 같이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어젯밤 초원에서의 별빛과 같이 빛나고 있
었다.
소어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가 무심히
고개를 돌리자 서로 시선이 마주쳤다. 소어아는 그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그는 눈 한번 깜박하지 않았다. 소어아가 그를 향
해 눈살를 찌푸리고 혀를 내밀자 그는 고개를 돌렸고 다시는 소어
아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사기꾼 등치기
"허, 얼마나 잘났기에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냐. 좋다. 나도 너
를 상관하지 않겠다."
그는 일부러 그 소년에게 들리도록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소어아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
게로 들어갔다. 그곳은 장식품을 파는 가게였는데 소어아는 진주
를 박은 꽃 모양의 머리장식을 하나 주어들고 물었다.
"이건 얼마나 하는 거죠?"
큰 모자를 쓴 뚱뚱한 가게 주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웃자
수염들이 마치 파도가 밀리는 듯 넘실거렸다.
"도련님은 눈도 좋으십니다. 이런 진주는 시중에서도 드문 물건
이지요."
가게 주인의 눈은 소어아의 허리에 묶여있는 보자기를 유심히
살폈다. 그는 방금 소어아가 말을 사는 상황을 모두 보았었다.
"얼마요?"
"사......오......칠십 냥."
소어아는 소리를 지른다.
"칠십 냥?"
그 뚱뚱이는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칠......칠십 냥이 비싼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진주는 가짜요."
"가짜라고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이거......이건......나
를 모욕하는 것인데."
그는 웃지도 않았고 얼굴은 삶아 놓은 고깃덩어리 같았다.
소어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난 두 살 때부터 진주를 가지고 놀았소. 진주가 진짜인지 가짜
인지는 냄새를 맡아보면 다 알 수가 있는 것이오."
그 뚱뚱이는 화가 치밀어 올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자식이 왜 갑자기 약아졌지?)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매우 억울한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그럼 육십 냥으로 하지......"
"말도 안 돼요. 진짜 진주는 바다에서 건지기 때문에 별로 힘들
인 것도 없으나 가짜 진주는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 만들어야 하
오. 게다가 이토록 비슷하게 갈고 닦았으면 더 비싸야지!"
그 뚱뚱이는 넋을 잃고 말더듬이 모양으로 더듬거렸다.
"이거......저거......음!"
"진짜가 칠십 냥이면 가짜는 아무리 적게 불러도 백 사십 냥은
될 것이니 금 두 냥쯤......."
소어아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그 소년이 자기를 바라보고 웃기
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소년은 무심히 돌아서 가버렸다.
소어아는 급히 금을 땅에 던지고 말했다.
"여기 석 냥이오."
그는 가게에서 나와 즉각 뒤를 쫓았으나 그 소년은 이미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소어아가 약간 실망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손이 그를 잡
아다니는 게 아닌가! 그 부드럽고 따뜻한 손은 바로 도화였다. 소
어아는 그녀에게 끌려 장막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가볍게 발을 구르며 말했다.
"너......너 이 바보, 물건을 사려면 나를 부르지 않고..... 남
에게 속다니. 말은 팔십 냥도 못 되고 그 진주는......."
소어아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진주는 열 냥밖에 안 되지."
도화는 놀라면서 물었다.
"너......너......그럼 알고 있었구나? 알면서도 왜 남들에게
속아 주었지?"
"속는 것도 그것 대로의 가치가 있어."
그녀는 의아한 눈을 하고 소어아를 바라보았다.
소어아는 진주꽃을 그녀의 머리에 꽂고 웃었다.
"누나, 화내지 말아. 봐요, 이 진주꽃은 얼마나 아름다워. 누나
의 머리에 꽂으니 마치 공주 같아. 다만 공주와 어울리는 왕자가
없어 애석한 일이야."
도화는 '푸우'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바로 바보 왕자가 아니냐?"
소어아는 다시 눈을 깜박깜박 하면서 말했다.
"내가 바보라고...... 잠시 후에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게 될 걸. 지금까지 나를 속인 사람들이 더 크게 당하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도화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다시 물었다.
"그들이 어떻게 너에게 당한다는 거야?"
소어아는 입가에 빙긋이 웃음을 띠울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말의 머리를 치면서 비로소 입을 열었다.
"말아! 나가 서있거라!"
작은 말은 가벼운 소리를 내고 장막 밖으로 나갔다. 소어아는
장막 안에서 말꼬랑지를 잡아 멀리 가지를 못 하게 했다.
도화는 가벼운 탄식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너는 정말 이상한 아이로구나. 네가 하는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고 네가 하는 일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장막 앞에서 돌연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말을 산 도련님은 장막 속에 계신지?"
소어아는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서는 가볍게 웃으면서 서서히 입
을 열었다.
너이 멍청한 자식들이 과연 나에게 당하러 왔군."
그는 갑자기 도화를 이불 속에 떠밀어 넣고 말했다.
"얌전히 누워 있어, 말을 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아."
그는 이불을 그녀 위로 덮어버렸다.
"난 여기에 있으니 여러분들은 들어오시오."
들어온 사람은 모두 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손에 모두 크
고 작은 보자기를 들고 있었다.
진주를 팔았던 뚱뚱보의 보자기가 가장 컸다. 그는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느라 숨을 씩씩거리고 있었다.
소어아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무슨 일로 여길 오셨소? 이렇게 많은 물건은......."
말을 팔았던 마른 사나이가 공손히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옛말이 맞아요. 귀한 사람만이 귀한 물건을 볼 줄 아는 법이
죠. 이 사람들은 도련님이 물건을 잘 안다고 해서 희귀하고 좋은
물건들을 가지고 왔지요."
"설마 별것도 아닌 물건으로 나를 속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
죠?"
그 마른 남자는 급히 말했다.
"그럴 리가 있어요? 그럴 리가......여러분들은 빨리 보자기를
열고 도련님에게 보여드려요."
장막 안으로 들어선 십여 명은 제각기 보자기를 폈다. 보자기
속에는 과연 여러 가지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보석류도 있었고 진
귀한 가죽과 모피, 녹용....이 모든 것은 조금 전 그들이 장인들
에게서 사 온 것이었다.
"물건들이 모두 좋으니 전부 사고 싶소."
십여 명의 상인들은 모두 기뻐서 희색이 만면해 수근댔다. 그중
한 사람이 나섰다.
"번거로우니 한꺼번에 사시는 것이 좋겠어요."
"좋아! 모두 싸시오."
십여 명은 급히 보자기를 합해서 하나로 묶었다. 보자기는 소어
아보다도 더 컸고 보통 사람은 움직이지도 못 할 무게였다.
그 뚱뚱이는 조급함을 참는 듯 두 손을 연신 비비다가는 눈을
굴리며 말했다.
"저...... 돈은?"
"금으로 드릴까? 얼마인가 말해봐요."
모두 자기의 물건값을 말했다. 그러나 실제의 가격보다 일곱,
여덟 배가 비쌌다.
도화가 이불 속에서 그 말들을 듣고는 일어나려했다. 그러나 소
어아가 그녀의 고개를 누르고 있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소어아는 계속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전부 합해서 얼마요?"
그 마른 사나이가 가장 빨리 계산을 했다.
"전부 천 육백 냥이오."
소어아가 소리쳤다.
"결코 적당한 가격이 못 되는군."
그 뚱뚱이와 홀쭉이는 아까도 이런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 도련님의 값을 배 이상으로 얹어주는 성질을 알고 있었
다. 다른 사람들도 물론 이런 '좋은 성질'과 '좋은 버릇'을 들었
다.
여러 사람은 급히 한 걸음씩 나서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나으리깨서 값을 말해보시죠."
"하지만 당신들이......."
"소인들은 절대로 딴 의견이 없습니다. 얼마를 주시던 이 물건
은 그 값에 이미 팔린 겁니다."
"확실하오?"
"그럼요. 저희 관내 상인들의 명예를 걸고......."
"정 그렇다면......좋아. 내가 말하지. 이 물건들을 다 합해
서......전부......."
말을 하며 소어아는 허리춤에 찼던 보자기를 열었다. 사람들은
기대에 차서 마른침을 삼키며 소어아의 보자기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양손가락으로 금돈을 하나 집어낸 뒤 웃으며 말했다.
"한 냥을 드리겠오."
그들은 모두 대경실색했다. 말을 판 마른 사람이 억지로 미소를
지어가며 말했다.
"도련님...... 농담을 하시는 것이죠?"
"난 벌써 말했어. 금은 농담을 하지 않소. 당신들은 날더러 가
격을 정하라 했고 또 이견이 없다 했소. 이제와서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은 것이오."
그는 금 한돈을 땅에 던지고는 보자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보자기는 그보다 훨씬 컸으나 그는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를 않았
다.
도화는 그제서야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고개를 내밀며 바라보니
몇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서 쫓아 나가고 있었다.
또 몇 사람은 일제히 욕설을 퍼부었다.
"사기꾼, 우리의 물건을 빨리 돌려다오!"
"누가 사기꾼이냐! 당신들이야 말로 사기꾼이지."
뒤 따라서 '이야, 에...사람살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화는 후다닥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 십여 명의 사람들 중
서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사나이들은 소어아에게 곤죽이
되도록 얻어 맞아 어떤 사람은 얼굴이 부어 올랐으며 다리가 부러
진 사람도 있었다.
도화는 크게 놀랐다. 그녀는 이 관외에 와서 장사를 하는 사람
들이 교활할 뿐더러 무예도 좀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데 이 이상한 소년은 그들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속이고 또 때
려눕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한동안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정신을 가다
듬고 고개를 돌렸다. 그 이상한 소년과 말은 이미 자취도 없이 사
라지고 말았다.
작은 말의 등에다 보자기를 짊어지우고 소어아는 초원을 터벅터
벅 걷고 있었다. 그는 얻어 맞은 사람들의 꼬라지를 생각하며 빙
긋빙긋 웃었다.
이미 정오가 되었다. 햇빛은 갈수록 뜨거워졌으나 소어아는 별
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은 견디지 못 하고 헐떡이기 시
작했다. 초원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나무 그늘
도 찾기 힘들었다.
소어아는 눈을 껌뻑껌뻑하며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돌연
보자기를 열고 염소 뿜을 꺼내 멀리 던져버렸다. 그는 길을 걸어
가면서 물건들을 차례차례 꺼내 던졌다. 시간이 지나 보자기 속의
물건이 거의 줄어들자 그는 보자기체로 멀리 던져 버렸다.
"통쾌하다. 통쾌해......."
이때 멀리서 애교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어아,...... 강어...... 가지 말고 좀 기다려!"
말 한 마리가 초원을 가로지르며 힘차게 달려오고 있었다. 말
위에 앉은 사람은 반짝이는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채가 바람에 휘
날렸는데 그 얼굴은 마치 복숭아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소어아는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말을 아주 잘 타는데, 아주 멋있군."
도화는 그의 앞에 다다르자 말을 멈추지도 않고 훌쩍 뛰어내렸
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고 큰 눈은 마치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너.....너는 아무말도 없이 그냥 가는구나. 너......."
"내가 일을 저질렀으니 빨리 없어지지 않으면 너도 무사하지 못
해."
"왜 그 사람들을 속였지?"
"그들이 나를 속이는데 나는 왜 그들을 못 속여?"
"물건들은?"
"모두 버렸어."
"버렸어? 너......왜?"
"그 물건들 때문에 말은 지쳤고 나는 뜨거운 햇빛 아래서 걸어
야 했잖아. 난 바보가 아니니까 물건들을 모조리 던져버린 거야."
"이 바보야! 그러나 그것들은 값진 물건...... 아깝지 않니?"
"그게 무슨 상관이야. 천하엔 값진 물건이 그것들 뿐만은 아냐.
또 내가 갖고 싶으면 수시로 얻을 수 있지."
"너 정말 미쳤구나!"
"물건들을 버렸으니 줍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들이 만약 좋은
사람이라면 그 물건을 주어서 유용하게 쓰겠지. 난 그들이 물건을
주울 때 지을 기쁜 표정만 생각해도 마음이 흐뭇해. 그건 힘을 들
여서 들고 가는 것보다는 좋은 일이지."
"그들이 만약에 나쁜 사람들이라면?"
"그 물건들을 나쁜 놈들이 줍게 된다면 필시 욕심 때문에 서로
대갈통이 터지도록 싸울 거야. 누가 혼자 물건을 차지하려 한다면
맞아 죽을 지도 모르지."
"그렇게 되어도 넌 좋으니?"
"왜 안 좋아? 난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를 걸."
"너...... 넌 정말 나쁜 놈이야!"
"그리고 그 물건들을 일하기 싫은 사람이 줍는다면 매일 풀숲으
로 가서 이같은 보물을 또 찾으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겠지. 굶어
죽을 때까지......."
그는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봐라, 내가 이 물건들을 던져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달라질 것인가.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냐?"
도화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가벼운 탄식을 하
면서 말했다.
"너는 정말 소마왕이야."
"좋아, 너는 날더러 바보라고 부르더니 미친 놈이라고 하고 또
이제는 마왕이라 부르면서 왜 나를 쫓아오는 거지?"
도화는 고개를 떨어뜨리면서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 했다.
"난......난 다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야. 왜......왜 인사
도 없이 그냥 가버렸어?"
"어쨌든 난 갈 것인데 무슨 인사가 필요 하겠어? 인사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지? 만약에 인사를 한 후 네가 나를 잊을 수 있다
면 인사를 해도 무방하겠지. 그러나 넌 날 잊지 못 할 거야."
도화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쳐들고 큰소리로 말
했다. 그것은 자기말에 대한 긍정에 불과했으나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어찌 너를 잊지 못 할 걸로 알어?"
"나를 본 사람은 모두 나를 잊어버리지 못 할 거야."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엔 웬일인지 눈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
다. 그러나 소어아는 여전히 웃을 뿐이었다.
"왜 울지? 난 나이가 너무 작아서 너의 남편이 못 돼. 더군다나
너는 예뻐서 남편을 못 찾을 염려도 없어."
"너......너는 정말......정말......."
그녀는 무슨 말로 이 괴물을 상대해야 좋을지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손을 비비다가는 말에 올라타더니 멀리 달려가버렸다.
소어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탄식했다.
"여자!......아 알고보니 여자들은 정신병이 있구나!"
그는 작은 백마의 털을 매만지면서 다시 중얼거렸다.
"말아, 너도 바보가 아니라면 여자에게 접근하거나 태우지 마
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불행이 다가올 거야, 여자가 화가 나
면 너에게 화풀이를 하겠지? 아! 네 엉덩이는 맞아서 멍이 들 거
야."
말에 오른 그는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쯤 갔을까, 갑
자기 한 사람이 그의 길을 막았다.
햇빛 아래 이 사람의 하얀 옷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었
다.
그의 맑은 눈은 화가 나 있었으나 조금도 무섭게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귀여운 인상을 풍겼다.
소어아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이었군. 왜 여기서 뜨거운 햇빛을 쪼이고 있지?"
백의 소년은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소."
"나를 기다린다? 얼마 전엔 너를 쳐다보지도 않다가 이제와
서......"
"잔소리 말고 가지고 와!"
"가져오라니? 무엇을?"
"네가 강탈해간 물건들 말이야!"
"아, 알고 보니 그 물건들을 말하고 있군. 네가 필요할 줄 알았
으면 좀 남겨 둘 걸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모두 버리고 없어."
"버렸다고? 흥, 누구를 속일려고?"
"내가 왜 너를 속이겠어? 그 패물들을 내가 가져다 무얼 하게?"
잠시 말을 끓은 소어아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계속이었다.
"넌 화가 나니까 빨갛게 상기되는 것이 마치 여자 같은 표정이
되는구나. 내가 아는 여자가 하나 있는데 그녀도 화률 내면 너처
럼 예뻐졌었지, 너에게 소개해 줄까?"
그 백의 소년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그는 큰 눈으로 소어아
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냉랭한 소리로 말했다.
"만약 물건들을 버렸다면 변상을 해야 돼."
"정말?"
"물론, 그래야지."
"넌 정말 그 물건들 때문에 쫓아온 거냐?"
"물론이지 !"
"그렇지도 않을 걸. 네가 그 병신들의 문제에 그리 관심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더군다나 나를 속였으니 그들은 벌을 받아야
해. 넌 물건 때문에 온 것이 아니고 나를 만나러 왔겠지?"
백의소년이 소리쳤다.
"그렇다. 난 너를 만나러 왔어. 난 네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도
이모양이니 만약에 크면 어떻게 될까 하고....... "
소어아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웃었다.
"나를 죽이겠어?"
"흥, 너는 죽어도 마땅하지. 다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 못
고칠 것도 아니야, 만약 나를 스승으로 삼는다면 내가 잘 가르쳐
서 사람을 만들 수가 있어."
그를 바라보는 소어아의 눈동자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네가 나를 제자로 삼겠다고? 하하하."
"뭐가 우스워?"
"너 같이 예쁜 사람을 스승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하지
만 나에게 네가 뭘 가르쳐 준다는 거지? 뭘 나보다 잘하는 게 있
겠어? 네가 나의 제자가 된다면 몰라도."
"넌 무예를 배우고 싶지 않으냐?"
"너는 너의 무예가 나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내가 제일고수라는 것을 너는 모르는구나."
"네가 정말 고수라면 여기까지 도망오지도 않았을 거야. 그렇
지?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놀러 온 것도 아닌데 관외로 온 것은
필시 남들의 추적을 피하려는 것이 목적일 거야"
백의소년의 안색이 즉각 변했다. 소어아의 말에 놀란 그는 눈에
서 빛을 내며 소리쳤다.
"넌 도대체 어떤 사람이며 너의 내력이 무엇이냐?"
"내가 누군지도 알것 없고 나의 내력도 상관하지 말어. 너의 무
술이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면 시합을 하자. 지는 사람이 제
자를 하기로 하는 것이 어때?"
"좋아, 너의 무예를 누가 가르쳤는지 보고 싶었다."
"지는 사람이 제자가 되기로 약속한 거야......."
그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몸을 돌리며 말잔등에서 나르더니 두
손을 그 소년의 양눈을 향해 쭉 뻗어 나갔다.
백의 소년은 소어아가 이토록 신속하게 손을 쓸 줄은 짐작도 못
했기 때문에 무척 놀랐다.
그러나 이 소년은 무공도 높을 뿐만 아니라 싸움의 경험도 많은
듯 곧 몸을 비틀어 소어아의 뒤로 지쳐들어갔다. 그리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이 신속한 동작은 자세가 아름다왔고 정확히 요혈을 향했다. 그
는 마치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 같았다.
소어아가 먼저 공격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그 백의소년이 우세를
잡게 되었다. 소어아는 겨우 몸을 비틀어 다섯 자 밖으로 나가 떨
어지면서 입을 열었다.
"잠깐 기다려라."
백의 소년이 자세를 늦추어 말했다.
"무엇을 기다리라는 거야?"
"너는 정말 나의 무술이 어디서 흘러 나왔는지 알 수 있겠느
냐?"
"열 번의 공격이 끝나기 전에 알 수 있어."
"난 믿지 못 하겠는데."
말을 하면서 자세를 고쳐 잡은 소어아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
고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그는 얼굴에는 가볍게 웃음을 띠우고
있어도 실은 악독하게 일격을 내갈겼다. 이것이 바로 그가 합합아
에게서 배운 수법이었다.
백의소년은 이 일격에 우세를 놓치고 말았다. 비록 주먹을 적중
시키지는 못 했어도 우세를 보이게 된 소어아는 계속 공격해 들어
갔다. 그러면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넌 역시.....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 소년이 돌연 앞으로 달려들었다. 소년은
두 주먹으로 소어아의 가슴을 노렸다. 둘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
한 권법이었다.
이번에는 소어아가 놀라 잠깐 주춤거렸다. 그는 이 주먹을 막지
않고 급히 뒤로 물러섰다.
소년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마치 소나기가 퍼붓듯 두 주먹으
로 공격을 가해왔는데 완전히 목숨을 내건 일격이었다.
소어아는 손바닥을 폈다가 다시 주먹을 쥐었다를 되풀이했다.
그의 수법은 돌연 악독하고 괴이하게, 그러다가는 강렬하게, 또
험악하게 변화했다. 소어아는 두살 무술의 악독함과 음구유의 괴
이함과 이대취의 강열함과 도교교의 음기함과 함합아의 변화를 모
두 한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소년이 주먹을 마치 소나기가 내리치듯 퍼부어 공격
하자 소어아는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 할 지경이었다.
한편 소년도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는 이 아이의 무술이 이토
록 변화 무쌍한 것이 기이했고 더군다나 그가 어느 문파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돌연 소어아가 큰소리로 말했다.
"어이 멈추어라!"
"좋아. 내가 먼저 멈추지."
이렇게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번개와 같이 여섯 번이나 공격
을 시도했다.
소어아는 좌우로 피하면서 틈을 이용하여 세 번 반격을 한 후
소리를 질렀다.
"이것도 멈추는 거냐?"
백의소년이 싸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번엔 너에게 속지 않으려는 거야."
"이제 열 번도 더 붙었으니 나의 무술 문로를 알았겠지? 네가
만약 모르면 멈추고 내 말을 들어."
백의소년의 주먹이 느려졌고 소어아도 이미 뒤로 서너 자 물러
섰다.
"무엇을 발견했느냐?"
백의소년은 공격 자세를 멈추고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너의 무술은 문로도 없어!"
"문로가 없는 게 아니라 문로가 너무 많아서 너의 눈이 아물거
렸기 때문이야."
"문로가 많다고? 무슨 문로들이지?"
"말해 두지만 나는 무술을 다섯 사람에게 배웠어. 이 사람들의
무술은 모두 복잡하고 이상하지."
"중토무림명가의 무술은 내가 모르는 것이 없어. 그러나 너의
무술 같은 문로는 없어, 그전 약장사나 하는 그건 기술이야."
"약장사라고? 후후! 이 다섯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 너는 놀래
자빠질 거야. 어쩌면 다섯 사람이 은퇴를 했을 때 넌 어린애 였을
테니까 모를 수도 있고."
백의소년이 분노하여 말했다.
"그런 시시한 무술을 어찌 나의 무술과 비교하겠어!"
"너의 무술은......음 괜찮지, 그러나 너의 그 얌전한 풍채에
어째서 그런 미친 놈의 최후 같은 무술을 배웠는지 모르겠구나."
백의 소년이 다시 크게 노했다.
"흥, 네가 무얼 안다는 거야. 나의 '풍광일백영팔타'는 지금 무
림각문 각파의 권법 중에서 첫째는 못 되도 두번째는 돼."
의외(意外)의 풍파(風波)
소어아는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
"풍광일백팔타, 하하 과연 미친 놈의 권법이군. 안타깝게도 너
같이 잘난 사람이 이런 미친 권법을 배웠다니 정말 가슴이 아프
다."
"흥! 가슴 뿐만 아니라 몸까지 아프게 만들어주지."
그는 다시 소아어에게 주먹을 뻗쳤다. 이 '풍광일백팔타'의 위
력은 정말 놀라웠다.
소어아는 다시 수십 수법을 바꾸어 반격하면서 소리쳤다.
"멈추어라. 너의 권법이 과연 괜찮군. 나도 배우고 싶은데."
백의 소년이 손을 늦추자 소아어는 뒤로 몇 장 물러서며 이마의
땀을 닦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멀쩡한 사람은 미친 사람과 싸우지 말라고 했
군. 미친 놈을 이기지는 못 하기 때문이야. 이제야 그말이 틀림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군."
"이제 좀 무서운 맛을 알겠느냐?"
"네가 완전히 미친 사람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사용한 권법이 더욱 무서웠을 거야. 하지만 이런 권법을 너
무 오래 사용하면 머지 않아 너도 미쳐버릴 거야."
"나를 스승으로 모실려면 그렇게 무례해선 안 돼."
"난 다만 그 권법이 쓸만한 점이 있으니까 조금 배우겠다는 거
지 너를 스승으로 모신다고 하지는 않았어. 스승도 제자에게 권법
을 배울 수 있지. 안 그래?"
백의 소년이 노하며 말했다.
"아직도 싸우겠느냐?"
"싸우면 안 돼. 싸울 순 없어. 내가 이미 손을 써놔서 넌 움직
이기만 하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지고 말아. 미리 말해두지만
내말을 듣는 게 좋을 거야."
백의 소년은 극도로 분노해서 얼굴이 붉어지더니 나중에는 웃음
을 터뜨렸다. 그는 입을 열었다.
"너 이 자식아, 순 엉터리야, 날 놀라게 하려고?"
"너를 놀라게 한다고? 그럴 리가 있나. 넌 무림 절전(絶傳)의
비기인 '칠보음풍장'을 아느냐? 어느 사람이든 간에 이런 바람에
적중되면 움직이지 않으면 몰라도 움직이면 일곱 걸음도 가지 못
해서 죽고 마는 것이야."
"개소리, 세상에 그런 장법이 어디 있어?"
그는 입으로는 큰소리를 쳤으나 감히 움직이질 못 했다. 소어아
는 그의 입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이 장법은 절전이 된 지 백 년이 넘었지, 그러나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런 장법을 배우게 됐고 또....."
"그리고 나에게 일장을 가했단 말이지?"
그는 믿지 못 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가
볍게 떨리고 있었다.
"맞았어. 하지만 네가 날 스승으로 모신다면 너를 살려줄 수가
있지."
"네가 만약 그런 몇 마디 수작으로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
면 큰 오산이야."
소어아가 말을 받았다.
"믿지 못 하겠단 말이지. 좋아, 너의 왼쪽 세번째 갈비가 아픈
가 만져봐라. 만약에 아프다면 칠보음풍장을 맞았다는 증거야."
"흥......."
그는 입으로는 '흥'하고 소리를 냈지만 손은 이미 갈비뼈를 더
듬었고 안색이 차츰 변했다.
"어때 아픈가?"
백의 소년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물론 아프지. 거기는 어느 사람이든 아픈 곳이니까."
"하지만 이건 보통 아픈 것이 아니고 매우 아픈 것이지. 마치
침에 찔리거나 불에 데듯 아픈 것이야."
그는 백의소년의 손을 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다시 한 번 만져봐라. 거기가 아니고 왼쪽으로......밑으
로......."
백의 소년의 손가락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의 말대로
움직여갔다.
소어아는 돌연 소리쳤다.
"맞았어, 바로 거기야. 좀 꽉 눌러봐."
백의 소년의 손가락은 자신의 갈비뼈 밑을 지긋이 눌렀다. 그러
자 그 소년은 '푹'하며 그 자리에 쓰러져 움직이질 못 했다.
"네가 귀신같이 약다해도 내가 발씻은 물을 마셔야 돼. 지금 너
는 나에게 당했다."
그를 올려다 보는 백의 소년의 눈에서는 불이 날 것 같았으나
아무말도 하지 못 했다.
소어아는 말했다.
"말해 두지. 세상에 칠보음풍장이란 것은 없어. 그러나 다른 신
비스러운 무술이 있는데 그것을 '점혈절맥'이라고 부르지."
소어아는 말을 이었다.
"'점혈(點血)'과 '점혈(點穴)'은 비록 한글 자 차이이고 발음은
같지만 수법은 완전히 다르지."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백의 소년의 혈도를 하나 점했다.
"그러나 이 점혈점맥은 너무 오래두어선 안 돼. 그냥 놓아두면
죽고 말아. 그래서 방금 난 이미 너의 피를 봉했던 것을 풀어주었
지. 이제는 말을 할 수 있을 거야."
백의 소년은 화가 났으나 참을 수 없어 물어보았다.
"네가 비록 그 '점혈' 무술을 안다해도 무슨 소용이 있어. 실력
으로 나를 점하지 못 하니 나를 속여서 스스로 손을 쓰게 한 것이
지?"
"맞았어 맞았어, 틀림없어, 나에게 점혈을 가르친 사람은 의술
은 뛰어났지만 무술은 신통치 않았어. 그는 인체에 대해서 잘 알
고 있었고 인체의 피가 움직이는 계통을 계산할 수는 있으나 무슨
수법으로 점해야 할지 몰랐어. 그러니 나도 물론 배울 수가 없었
지. 그래서 네가 스스로 손을 쓰도록 속임수를 쓴 거야."
"계책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못 돼!"
"계책이라고? 너는 얼마나 지식과 두뇌가 겸비되어 있어야 계책
을 사용할 수 있는가 알아? 첫째, 나는 너를 수시로 경계해서 손
가락에 진기가 모여 있게 해야하고, 둘째 칠보음풍장이란 무서운
이름을 생각해서 너의 정신을 분산시켜야 했어."
백의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그 두 가지로 족하다."
"모잘라. 난 '점혈'도 계산을 해야 돼. 혈맥이 마침 너의 혈도
부근에 유동할 때 정확히 점해야 했다고."
그는 가슴을 펴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이건 무술과 지혜의 결정품이야. 나 같은 사람을 스승으로 모
셔도 결코 억울한 일은 아닐 거야."
"너를 스승으로 모셔? 너......넌 지금 꿈을 꾸는구나."
"싸우기 전에 이미 약속했는데 이제와서 후회할 수 있어?"
"날 죽여라!"
"내가 왜 너를 죽여? 네가 딴 소리를 한다면 나는 먼저 너의 코
를 잘라버리고 너의 눈을 파 버리겠다. 그리고 또 너의 혀를 끊어
버리고 너......"
백의 소년이 큰 소리로 그의 말을 막았다.
"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아. 무엇이 두렵겠어?"
"너 정말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흥!"
"좋아! 네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니 다른 방법으로 바꾸어야겠
군."
"난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너를 나무에 매달아 놓고 바지를 벗기고 엉덩이를 때려도 두렵
지 않겠느냐?"
백의 소년은 갑자기 안색이 새파랗게 되서 부들부들 떨다가 다
시 빨갛게 변해갔다.
소어아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드디어 두려워하는구나. 빨리 스승이라고 불러."
백의 소년은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너......너 이 악마......."
"날더러 스승이라 부르지 않고 악마라고 불러?.....좋다!"
소어아는 말을 마치자 허리를 굽혀서 그 소년의 바지를 벗기려
고 했다. 백의 소년은 다급하게 큰소리로 외쳤다.
"스승! 스승......."
두번 '스승'이라 부르는 동안 소년의 눈엔 눈물이 하나 가득했
다.
소어아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 때문에 우는 거지? 나 같은 스승이 있는 것도 나쁘진 않
을 거야. 더구나 넌 이미 나를 스승이라고 불렀으니 울어도 소용
이 없어.......야, 네가 계속 운다면 너의 엉덩이를 때리겠다."
백의 소년은 '엉덩이'란 말에 입술을 깨물면서 눈물을 참았다.
소어아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말했다.
"그래야지. 너의 이름이 무엇인지 말해봐."
"철......철심남"
소어아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철심남! 좋아 좋아, 좋은 이름이야. 남자의 이룸은 강철 같이
강해야지.너는 여자 같이 생겼는데 이름 하나는 강하게 지었구
나."
철심남이 돌연 고개를 들고 말했다.
"넌?"
"난, 사람은 너보다 강해도 이름은 강하지 못 해, 난 강어라고
해, 알겠어? 강물 속의 고기는 맛있다고 하는데 먹어 봤냐?"
"음. 정말 먹고싶다."
그가 먹고 싶은 것은 강물 속의 고기가 아니라 바로 눈앞의 소
어아였다. 그는 정말 소어아를 씹어 먹고 싶었다.
소어아는 껄껄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다가 손을 그의 입가에 내
밀면서 말했다.
"네가 먹고 싶으면 먹어라."
"너......너......."
철심남은 갑작스런 그의 태도에 갈피를 잡지 못 해 멍하니 쳐다
보았다. 소어아는 여전히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말해 두지만 네가 뭘 생각해도 난 다 알고 있어."
철심남은 탄식했다. 소어아가 말했다.
"넌 금년에 나이가 몇이냐?"
"너 보다 두 살 정도는 많을 거야."
"그래? 나 보다 두 살이 많다해도 배우는 데는 순서가 없어. 잘
하는 사람이 스승이 되는거지...."
돌연 멀리서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소어아, 강어! 가지마! 가선 안 돼!"
도화가 다시 말을 타고 달려왔다. 그러나 이번엔 안색이 복숭아
꽃같지 않고 마치 죽은 시체처럼 창백하였다. 그녀의 눈은 놀란
듯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녀는 소어아를 잡고 거치른 호흡으로 말했다.
"다행이야......아직 여기 있었구나."
"어라, 또 무슨 일이냐?"
"제발 부탁이야. 나를 비웃지 말아줘. 나를 욕해도 좋아. 그러
나 넌......넌......꼭 나를 따라 가야 돼!"
그녀의 두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어아는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아, 또 울고 있는 사람이 늘었군. 정말 야단인 걸."
그는 옷소매로 도화(桃花)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얘기했다.
"네가 계속 울어서 눈이 부어 오르면 도화가 아니고 도와(桃蜂)
가 되고 말어."
도화는 '피식'하며 웃었다.
"울고 웃고, 고양이 용변 같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화는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소어아의 옷
소매에 콧물을 닦은 뒤 말했다.
"난 화가 나서 돌아갔지. 너무 화가 나서 말을 타고 두 바퀴나
돈 뒤 집으로 갔는데 웬지 심상치가 않았어."
소어아는 옷소매에 묻은 도화의 콧물을 보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새옷에 남의 콧물이라도 묻었냐?"
도화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풍'하며 다시 소어아의 옷소
매에 코를 푼 후 말했다.
"난 장막 속에서 남자들의 고함 소리와 여자들의 울음 소리를
들었어. 말까지도 소리를 지르며 난리가 났지. 채찍으로 사람을
때리는 소리가 나면서 무서운 목소리가 들려왔어. '시끄럽게 굴지
말고 한줄로 서 ! 떠들면 죽여버릴 테다.'
"난 달려가고 싶었지만 말에서 내려 풀속에 몸을 숨겼어. 다행
히 잡초들이 많이 자라서 장막 앞까지 기어갈 수 있었지. 장막 주
위는 사람들에게 포위당해 있었고 그들은 모두 큰 칼과 채찍을 들
었는데 그 눈빛은 아!......."
"아, 강도가 왔어? 재미 있구나."
"그 놈들은 사람들을 마치 소떼를 몰듯 한데로 뭉쳐버렸어. 그
리고는 채찍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는 거야."
훌쩍이며 설명하는 도화의 말에 소어아도 이제까지의 표정을 거
두고 진지하게 물었다.
"초원의 강도들인가?"
"강도들은 아니었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조원의 강도들은 비록 한인이지만 편의를 위해서 모두 목인의
옷을 입지. 그러나 그들은 옷차림으로 봐서 관내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어. 그들이 타고 있는 말도 우리의 장마가 아니고 천
마였지. 장마의 다리는 길고 천마의 다리는 짧아서 보면 금방 알
수 있어."
"그 사람들이 온 것은 너희들의 물건. 때문은 아닐 거야. 관내
사람은 돈이 더 많으니......"
"그들이 강탈하려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야."
"사람을 강탈한다고? 누구를? 여자들을."
도화는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아니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한 객(客)이야. 그들은 관
내에서 그를 여기까지 추적해 왔어. 그리고 그들의 첩자가 그 사
람이 우리 장막 속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은 우
리더러 사람을 내놓으라는 거야!"
"너희들이 그 사람을 감춰두었니?"
"우리는 그들이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몰라. 그들은 장막
속에서 그 사람을 찾지 못 하자 그를 감추었다고 생떼를 쓰면서
반시간 내로 사람을 내놓으라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
지 않으면 그들은 여자들을 모욕하고 남자들은 죽여버리겠다는 거
야."
그녀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소어
아의 옷소매를 부여잡고 울었다. 그리고는 또 코를 풀었다.
"그래서 난 너에게 부탁하여 그들을 구출하자는 거야. 네가 재
주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 호랑이를 몇 마리나 죽였으니 강도
들이야 무서워도 사람인데 호랑이 보다는 못 할 거야......."
"틀렸어. 사람은 때때로 호랑이보다 무서워."
"하지만 제발 꼭 돌아가서 그들을 구해줘. 꼭......."
"그들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짐작되는 것이 없어?"
"난......난 본래 그들이 쫓는 사람이 넌 줄 알았는데 그러나
듣고보니 그들이 필요한 건 철씨 성을 가진 사람이야. 넌.....넌
혹시 그가 누구인지 아니?"
소어아는 빙그레 미소를 띠웠다.
"철씨라고?.......난 모르겠는데."
철심남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가 돌연 큰소리로 외쳤
다.
"내가 바로 철씨야. 그들이 필요한 건 바로 나야."
도화는 놀라서 철심남을 바라보았다.
소어아는 고개를 만지면서 쓴웃음을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바보, 왜 나서는 거야!"
철심남은 그를 상관하지 않고 큰소리로 계속 말했다.
"그 사람들 중에 여자는 없던가?"
"없......없어"
"좋아, 그들이 나를 찾고 있다면 내가 가겠다!"
"당신이 간다고? 안 돼! 안 돼요!"
철심남이 말했다.
"내가 가야만 너희 부족을 구하는데 왜 안 된단 말이야?"
"내가 어찌 당신이 죽는 것을 볼수 있겠어? 당신은..... 달아나
고 다만 소어아가......."
"내가 그들을 무서워할 것 같으냐? 홍, 그놈들같은 병신은 백명
이 모여도 나의 손가락 하나를 감당 못 해."
"당신이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왜 관내에서 달아났지."
철심남은 그말에 대답을 잃었다.
"나......나......."
도화는 다시 질문했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방금 말한 그 여자지? 그래서 그들이
전부 남자라는 것을 알고는 두려워하지 않는 거지?"
철심남은 얼굴이 빨개졌으나 호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네가 상관할 필요가 없어."
소어아는 재미있다는 듯 끼어들었다.
"알고보니 너는 남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자를 두려워하는구
나. 하하, 그 병은 나와 비슷해. 나는 여자를 보면 골치가 아프
지."
철심남은 소어아를 쳐다보며 입을 쫑긋했다.
"날 풀어줘. 가야겠어!"
"네가 가서 죽으면 고생해서 얻은 제자가 없어지게 되는데."
"난 꼭 돌아올 수가 있어."
소어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후 웃으며
말했다.
"도화, 네가 보기엔 나의 제자가 영웅 같으냐?"
소어아는 다시 웃은 다음 말을 이었다.
"영웅이 사람을 구한다는 건 좋은 일이니 내가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 자, 가거라."
몇 군데 몸을 집자 철심남은 벌떡 일어섰다. 도화는 소어아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영웅이 하나 있으면 됐지 그것도 부족해?"
"사람을 구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니 장차 너를 구해줄 사람도 없
을 거야."
그녀는 다시는 소어아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위에 올라타며 말했
다.
"자! 철심남 당신도 타요."
철심남은 소어아를 바라보았다.
"너......너......."
결국은 아무말도 하지 못 하고 말에 오르더니 달려가기 시작했
다.
소어아는 먼지 속에서 한마디. 던졌다.
"철심남이 그녀에게 반했으니 그가 언제 탈선할지 모르겠다."
그는 가볍게 자기의 작은 말을 툭툭쳤다.
"이녀석아, 우리도 재미를 보러 갈까? 하하! 예쁜 암말을 봐도
따라가선 안 돼. 우리는 나이가 아직 어려서 만약에 여자에 빠지
면 한평생 끝장을 보고 마는 거야."
도화는 말채찍을 휘두르며 달렸다. 머리가 바람에 날려 철심남
의 얼굴을 덮었다. 그러나 철심남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말했다.
"앉아 있기 불편하지는 않아?"
"음."
"떨어지기 전에 나를 꼭 붙잡아."
"음."
짤막하게 한마디 한 그는 사양하지도 않고 그녀를 안았다. 도화
는 손바닥까지 나른해지며 말했다.
"당신이 우리의 부족을 구하기만 하면...... 난 무슨 말이든지
들어주겠어."
"음."
잠시 후 그들은 그 노랑색의 천막을 볼 수 있었다.
도화가 말했다.
"이대로 달려 들어가도 괜잖을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연 몇 개의 암기가 날아왔다. 말의 뒤쪽
에 앉았던 철심남은 재빨리 그것들을 쳐내며 십여장 밖으로 몸을
날렸다.
도화는 놀라서 급히 말고삐를 잡았다.
철심남은 무서운 소리로 외쳤다.
"철심남이 여기에 왔다. 누가 나를 찾는 거냐?"
천막 속에서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철씨. 우리 이가 형제가 헛되게 기다리지는 않았군."
철심남이 싸늘하게 말을 받았다.
"네놈들인지 알고 있었다. 너희들이 찾는 것은 난데 무엇을 기
다리는 것이냐. 빨리 나와라."
그는 몸을 돌려서 서서히 걸어갔다.
돌연 큰소리가 나더니 이어서 십여 마리의 말이 한꺼번에 달려
왔다.
그러나 철심남은 천천히 걸으면서 눈 한번 깜박하지 않았다.
십여 마리의 말들은 순식간에 철심남을 에워쌌다.
철심남은 조금도 당황하는 빛이 없었다. 철심남은 걸음을 멈추
고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됐어! 너희들이 왜 나를 찾는지 말해봐라."
수염이 덥수룩하고 애꾸눈인 사나이가 말에 앉은 채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 형제가 우선 물어 보겠는데 그 물건은 아직 가지고 있느
냐?"
"그렇다. 나의 몸에 있다. 그러나 너희들 몇몇 소인배가 만질
물건이 아니다. 흥, 만약 내가 너희들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면 오해야."
애꾸의 사나이가 소리쳤다.
"개소리 마라!"
돌연 말고삐를 나꾸어 잡고 달려오면서 채찍을 휘둘렀다.
"내려 와!"
철심남이 한마디 하며 손을 들자 어찌된 일인지 채찍을 휘두르
던 애꾸의 무거운 몸이 두장 밖으로 나둥그라졌다.
그 순간 칼날이 번뜩이며 두 개의 말이 뒤로부터 철심남의 목을
치려고 돌진해 왔다.
철심남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약간 움츠렸다. 두 개의 큰 칼이
그의 머리위를 스쳐가는 순간 그는 빼앗은 채찍으로 두 사람의 겨
드랑이를 쳤다. 그들은 말에서 굴러떨어져 뒹굴었다.
그의 수법은 매우 민첩했고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아 사람들
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철심남이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이가 형제의 무술은 그저 그렇군. 감히 너희들이 나의 물건을
만지려 하다니."
그때 몸 뒤에서 돌연 한 사람이 싸늘하게 말했다.
"이가 형제가 네 품속의 물건을 만지지 못 하면 모가 형제는 어
떨까?"
이 말소리는 힘이 없어서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같이 희미
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마치 무수한 벌레가 귀로 기어들어오는
것 같은 징그럽고도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철심남은 안색이 즉각 변했다.
또다른 한 사람이 이상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사람도 귀신도 우리 손에서 달아나지는 못 하지."
그 목소리는 매우 가늘었고 마치 닭의 목아지를 비틀어 나오는
소리와 흡사했다.
철심남은 몸을 돌렸다. 거대한 말이 한 마리 서 있었고 그 위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제일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하얀 털이 잔뜩 나 있었는데 턱에
만 털이 난 것이 아니고 이마나 손등 심지어는 목까지...... 옷
밖에 드러난 곳은 모두 덥수룩히 털이 덮혀 있었다.
그의 얼굴은 눈의 크기가 다를 뿐 아니라 왼쪽눈이 거의 이마
중간까지 올라가 있었다. 입은 목까지 비틀려 있었으며 코는 구멍
만 두 개 뚫린 채 함몰되어 있었다.
철심남은 대낮인데도 소름이 짝 끼쳤다.
"작심주패 모모충의 이름은 들어 봤겠지? 그것이 바로 나야. 나
를 너무 많이 보지마라. 많이 보면 네가 아플 거야."
철심남은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지만 듣지 않을 수가 없었
다. 토하고 싶은 심정이 일어났다.
두번째의 사람은 그 모모충보다 더 기괴했다. 몸이 모모충보다
두 배는 더 컸는데 징그러울 정도로 긴 목에 조그마한 머리가 달
려 있었다. 눈과 코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이고 입만이 닭 한
마리가 들어갈 정도로 컸다.
철심남은 입술을 깨물었다.
"네가 바로 모공계인가?"
그가 웃자 톱 같은 이빨이 징그럽게 드러났다.
"그렇게까지 이를 갈 필요는 없어. 하긴 나를 보면 이가 갈리게
되지."
철심남은 급히 귀를 막아버렸다. 그 목소리는 쇠를 비비는 소리
같았다.
철심남이 세번째 사람을 보자, 아 하느님! 앞의 두 사람은 약간
의 사람 형태는 있었는데 이 세번째는 사람의 형태도 없지 않은
가!
이 고릴라의 몸은 모모충보다 네 배 이상은 커보였다. 목도 없
이 사각형의 머리가 어깨위에 얹혀 있었는데 살결이 온통 새까맣
고 이목구비의 구분이 없이 깊은 주름만이 얼굴 부분에 겹겹이 쌓
여 있었다.
그는 내뱉는다기 보다 속으로 잠겨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모성성이다!"
근처 풀 숲속에 있던 소어아도 이 세 사람을 보았다. 그는 정말
웃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런 세 사람을 낳은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선녀(仙女)의 채찍
소어아는 벌써 오래 전에 와 있었다.
소어아는 이씨 형제들이 세 괴물을 보고 몸을 떠는 것을 보자
이상하게 여겨서 생각하였다.
(이 괴물들이 찾는 것은 그들이 아닌데 왜 두려워 할까?)
그때 이씨 형제들은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으나 은근히 말을 조
정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모모충이 돌연 웃으면서 말했다.
"이상하다. 이상해. 철씨가 달아나지도 않았는데 이씨가 벌써
달아나려고 하다니."
여러 이씨 중의 한 사람이 급히 억지 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우리 형제는 선배와 다투기 싫습니다. 철씨 몸의 물건도 선배
님들께서 가지셔야죠, 그래서......우리 형제는 먼저 갑니다."
모공계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 형제를 보고 가는 모양인데 우리가 못 생겨서
그러는 거요?"
그 사나이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면서 말을 더듬거렸다.
"아니 ! 아니오......감히."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가려는 거지?"
모공계의 물음에 모모충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가 틀렸어.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어. 움직인 것은 그들이 타
고 있던 말의 다리 뿐이야."
"그렇다면, 그들이 가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말이 가려는 게
지."
"그럼 말들이 죽어야겠군."
죽는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모성성이 말 위에서 몸을 날려 내려
섰다. 그의 두 개의 팔은 굵고 길어서 땅에 끌릴 정도였다. 그의
몸은 비록 육중했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몸을 움직이는 듯하더니 어느새 주먹으로 맨 앞의 말을 내
리쳤다. 그 말은 비명소리도 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소어아는 놀랐다.
(저 자식 기운이 센데.)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다시 서너 마리 말의 모가지가 부러져버
렸다. 모성성은 큰걸음으로 걸으면서 하나하나 말의 머리를 닭모
가지 비틀 듯 비틀어버렸다. 순식간에 십여 마리의 말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씨 형제들은 말에서 뛰어 내렸다. 그들은 완전히 사람의 혈색
이 아니었다. 돌연 그 중 한 사람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마치
미친 개처럼 뒤로 달아났다.
모공계가 눈을 치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말을 듣지 않는 놈도 있구나."
그는 화살처럼 날아가 머리로 그 사나이의 등을 받아버렸다. 처
참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모공계는 어느 사이에 그사나이의 몸을 움켜잡고 소리쳤다.
"노대, 좋은 반찬이오."
모공계가 그 사나이를 던지자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모모충이 웃으면서 말했다.
"방금 만든 만두야!"
그는 사나이가 머리위를 지나가는 순간 돌연 손을 내밀어서 사
나이의 가슴을 찔렀다. 피가 튀었으나 그 사나이의 몸은 석장을
더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금방 솟구치는 피가 땅을 적셨다.
모모충의 손에는 피투성이의 사람 염통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모모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여러분, 이 만두를 잡수십시오. 따끈하고 향기로운 만두를!"
이씨 형제의 얼굴에는 혈색이 없어졌고 철심남의 안색도 창백해
졌다.
모모충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너희들은 만두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으니 나나 먹어야겠다."
입을 벌려서 염통을 씹자 으적거리는 소리가 나며 입가에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가 형제는 몸에 힘이 쭉 빠져 서있지도 못 할 지경이었다.
철심남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막고 구역질을 참았다.
소어아까지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록 이대취도 사람을
먹었으나 주방에서 여러 가지로 요리를 해서 먹었다. 모모충 같은
놈은 소어아도 종래에 보지를 못 했다.
(사람을 먹는다 해도 이 숙부 정도면 깨끗한 편이다.)
그는 곧 침착을 되찾고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보고 있었다.
모모충은 순식간에 사람의 심장을 깨끗이 먹어 치우고 입가에
묻은 피까지도 깨끗이 핥아 버린 후 손을 옷자락에 닦으며 웃었
다.
"가을 바람이 가까우니 보양을 할 때인데 사람의 염통이 최고
지. 보라고! 금방 정신이 맑아지는데."
과연 적었던 말소리도 커졌고 얼굴에 붉은 핏기가 돌았다.
이때 철심남이 돌연 싸늘하게 웃고 난 뒤 말했다.
"당신들이 나에게 시위를 하는 거요?"
모모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너의 가슴에도 이런 만두가 간직 돼 있으니 나에게 먹히고 싶
지않다면 빨리 그 물건을 내놔. 그렇지 않으면 난 다시 만두가 먹
고 싶어질 테니까."
"마음대로 될까?"
철심남은 돌연 몸을 날리면서 달아나려 하였다.
그러나 모성성이 이미 그의 길을 막았다. 그가 두 팔을 펼치자
족히 두 장 길이가 되어서 철심남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모성성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 이쁜 대갈통을 부숴버리면 아까운데."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순간 철심남은 이미 열네 번이나 공격을
했다.
'펑펑! 하는 소리가 나며 모성성은 배와 가슴에 열네 번을 어
김없이 얻어 맞았다.
열네 번을 공격한 철심남의 입술이 하얗게 변했다. 그는 더 이
상공격을 하지 못 하고 멍하니 손을 내렸다.
모성성이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끝났는가?"
"끝났소!"
"좋아, 그럼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됐군."
'흑!'하며 모성성이 공격을 시작했다.
철심남은 그의 일격을 피해 몸을 엎드리고는 그의 겨드랑이 밑
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그 틈을 이용해 모모성의 발을 가볍게 걸
면서 일격을 가했다. 순간 모성성의 육중한 몸이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철심남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계속 앞으로 달렸다. 그러나 이
미 그의 앞에는 모공계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서있었다.
모성성은 벌써 땅에서 일어서서 웃으면서 팔을 내밀었다.
"그 만두를 이리 가져와."
소어아는 철심남이 달아나지도 싸우지도 못 할 것을 알았다.
그는 탄식을 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손을 써야겠군. 스승이 제자를 도와서 싸울 필요는 없지
만 제자의 몸에 좋은 물건이 있다니 남에게 빼앗기도록 보고만 있
어선 안 되지.)
철심남은 완전히 세 사람 가운데 포위되었다.
소어아가 주먹을 만지면서 뛰어들려고 할 때 돌연 멀리서 방울
소리가 들려 오며 마치 불덩어리 같은 빨간 그림자가 다가왔다.
붉은 색의 말에 붉은 옷을 입은 여자였다.
낭랑하지만 차가운 목소리가 소리쳤다.
"내가 이미 수를 세었으니 누구도 도망갈 생각을 마라!"
인마는 순식간에 다가와 채찍을 휘둘렀다. 독사의 혓바닥 같은
채찍이 휘돌며 빛을 냈다.
순간 이가 형제는 피할 사이도 없이 처참한 비명소리를 내지르
며 그대로 쓰러졌다. 불 같은 인마가 한바퀴를 돌자 이가 형제는
모두 땅에 뒹굴었다.
소어아는 자세를 고쳐잡아 앉았다.
(철심남이 이런 좋은 친구가 있으니 내가 도와 줄 필요는 없겠
군.)
그러나 그는 그들 중에서 가장 안색이 파리하게 변한 사람이 철
심남임을 미처 몰랐다.
모가 형제는 너무 추악하게 생겼다. 그래서 이 여자가 더욱 아
름답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비록 지옥의 독사 같은 채찍을 휘두르
고 있었지만 그 자태는 오히려 고혹적이었다. 두 눈은 움직이는
붉은 옷자락 속에서 그 맑은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어아는 멀리서 탄식을 했다.
(그녀의 두 눈을 쳐다보고 있을 수만 있다면 채찍을 몇 대 맞아
도 좋겠다. 하지만 그녀의 채찍이 너무 독하구나. 여인은 아름다
울수록 마음이 악독하다던데 그 말이 틀림 없군!)
이 홍의 소녀의 채찍은 쉬지 않고 쓰러진 이가 형제들 위로 쏟
아졌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있었다. 붉
은 색이 감도는 얼굴에는 조금의 웃음기도 없었고 무섭도록 싸늘
하기만 했다.
이가 형제들이 몸에 채찍을 맞고 움직이지 못 할 정도가 되자
그녀는 돌연 손을 멈추고 말을 돌려 모가 형제를 향하고는 눈에서
빛을 뿜어냈다.
"좋아, 너희들이 가지 않은 것은 매우 영리한 짓이다. 어차피
내손에서 벗어나지 못 할 테니까."
모모충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께서 우리더러 남으라 했으니 물론 남아야지."
"너는 내가 왜 채찍으로 너희들을 상대하지 않았는지 아느냐?"
모모충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모르오."
"채찍을 맞은 사람은 살 수도 있지만 맞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해!"
"그래요? 그럼 아가씨는 왜 우리가 가질 않았는지 아시오?"
"흥, 네가 감히 갈 수가 있겠느냐?"
"우리가 가지 않은 것은 너를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이지."
이때에 그들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모공계는 그녀의 허리를 향
하고 모모충은 번개 같은 양손으로 그녀의 눈을 향했으며, 모성성
은 말의 머리통을 향하고 있었다. 모가 형제 세 사람은 비단 빠르
게 손을 썼을 뿐만 아니라 공격의 조화도 절묘했다.
소어아는 그녀가 무슨 수로 이 세사람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
하고 숨을 죽이며 지켜봤다. 그녀는 목을 막을 수 있어도 허리가
문제이고 허리를 보존할 수 있다 해도 말을 보호할 수가 없었다.
이때 그녀가 싸늘하게 소리쳤다.
"빨리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뒤따라서 가볍게 휘파람 소리를 내자 그녀가 타고 있던 말이 돌
연 뒷발로 일어 서서는 앞다리로 모성성의 고개를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모성성은 이 예상치 못 한 사태에 급히 몸을 피하려 했으나 말
발굽에 머리를 맞고 땅으로 뒹굴었다.
소어아는 박수라도 치고 싶을 만큼 기뻤다. 그는 이 소녀의 무
술이 무서울 거라곤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탄 말조차 그토록
무서울 줄은 몰랐다.
다시 모모충과 모공계를 바라보니 두 사람도 어느 틈엔가 쓰러
져 있었다. 모모충은 양팔이 모두 끊어진 채 널부러졌고 모공계는
고개가 꺾여버렸다.
소어아는 이 소녀가 어떻게 손을 썼는지조차 볼 수 없었다. 홍
의소녀는 말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미 괴물을 셋씩이
나 처치해 버렸으니 이런 재주에 탄복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
는가!
그러나 철심남만은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조금
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흥의 소녀는 말 고삐를 잡고 사방을 돌았다. 혹시 움직이는 사
람이 있는가 한번씩 쳐다보는 것이었다.
어느덧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석양은 그녀의 붉은 얼굴을 비
추었다. 한 필의 붉은말을 탄 아름다운 아가씨가 천천히 시체 옆
을 돌았고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철심남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고 조금도 달아날 생각이 없
는 듯했다. 다만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는데 안색은 땅에 딩
구는 시체와 다름이 없었다.
붉은 옷을 입은 아가씨는 말을 몰아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소
어아는 비록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으나 그녀가 웃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웃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참으로 예쁜 아가씨인데. 아마도 철심남을 좋아해서 그를 구했
는가 보다.)
그러나 잠시 후 그의 생각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너는 재주가 좋아서 여기까지 달아났구나. 내 손에서 이렇게
멀리 달아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다시 없을 것이다."
철심남은 사색이 되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홍의 아가씨가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달아나지 못 해!"
"그래서 난 돌아다니지는 않았어."
"너는 영리해. 너는 이 사람들보다 더욱 영리해. 그러니 네가
정말 영리하다면 나를 더 피곤하게 하지 말고 빨리 그 물건을 주
는게 좋지 않겠어?"
소어아는 아까부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철심남이
무엇을 가지고 있기에 저토록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탐낸단 말인
가?
또한 그는 이 아가씨가 비록 철심남을 구하긴 했어도 좋은 마음
이 없음을 확실히 알았다.
소어아는 눈알을 몇 번 굴리더니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낸 뒤 조
용히 기어 나갔다.
홍의 소녀는 말했다.
"자! 이젠 나에게 그 물건을 줘야겠어."
"무슨 물건인지 난 모르겠군."
홍의 소녀는 금방 노했다.
"난 남에게 이토록 친절해본 적이 없어. 시치미를 뗄 테야?"
그녀는 채찍을 한 바퀴 크게 휘둘렀다.
날카로운 소리가 나면서 채찍은 철심남의 몸을 때렸다. 철심남
은 움직이지도 않고 얻어맞았다. 그는 안색도 변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나를 죽여도 난 무슨 물건인지 모른다."
"좋아. 네가 결국 네 명을 재촉하는구나. 넌 내가 손을 쓰기 시
작하면 멈추지 않는 성질인 줄을 모르느냐? 넌 그렇다면....."
소어아는 이미 그녀의 말 뒤까지 다가갔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수중의 물건을 던지자 즉각 화염이 일어나서 말 엉덩이와 꼬랑지
에 불이 붙었다.
말은 비명소리를 지르며 홍의 소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
미 십여장 밖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녀가 말에서 뛰어 내리기만
한다면 소어아와 철심남은 여전히 그녀가 손을 쓸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을 목숨 같이 여기고 있는데 어찌 버릴
수 있으랴! 이것은 소어아가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말은 미치도록 울부짖으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홍의 소녀는 소리쳤다.
"앵도, 두려워 마. 얏도야......멈추어라!"
말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쉬웠다. 그러나 말을 멈추려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 '앵도는 삽시간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달려가버렸다.
소어아는 재빨리 철심남의 손을 끌고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얼마를 뛰었을까. 하늘은 어두웠고 몇 리를 달렸는지 몰랐다.
두사람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으며 계속 땀이 흘렀다. 소어아 뿐
만 아니라 철심남도 이토록 달려본 적이 없었다.
숨이 목에 찬 그들은 웬 낡은 나무집을 하나 발견하고는 급히
달려들어가 동시에 쓰러져버렸다. 그들은 소보다 더 거친 숨을 내
쉬고 있었다.
집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거미줄이 여기저기 쳐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듯했다.
잠시 후, 숨을 가다듬으며 몸을 뒤집던 소어아의 얼굴이 철심남
의 가슴에 닿으려 했다. 철심남은 황급히 그의 머리를 밀어 부쳤
다.
소어아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내가 너의 목숨을 구했는데, 이것이 감사하다는 표시냐?"
철심남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미......미안하다. 정말 고맙다."
"미안하다면서, 인사를 하고 방귀를 뀌고...... . "
철심남은 정말 방귀를 뀌었다. 철심남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마치 계집아이가 부끄럼을 탈 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소어아는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섰다.
"방귀 좀 뀌는 게 뭐 그리 창피하다고 그래. 사람이 다급하면
변도 보는 판인데 여자처럼 얼굴을 붉히기는 참!"
"나......나..... . "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아가씨 정말 굉장하던데! 그렇게 아름다운 아가씨가 손맛은
그토록 악독하니 생각지도 못 할 일이야."
"강호에서 그녀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그 말이 맞을런지도 몰라. 나 같이 하늘도 땅도 무서워 하지
않는 사람까지 그녀가 무서우니 누가 그녀를 두려워 하지 않겠
어.....어이! 그녀의 이름이 뭔지 알어!"
"성은 장이고 남들은 그녀를 소선녀 장청이라고 부르지."
소어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아! 그 이름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는 돌연 악인곡으로 도망 온 병호 상풍으로부터 이 이름을 들
은 기억이 났다. 그 상풍도 그녀를 죽도록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러나 소어아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이런 예쁜 아가씨인 줄은 몰
랐다.
한참 후 그는 철심남의 목소리에 정신이 되돌아 왔다.
"네가 나를 그녀의 손에서 구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
데...... 그러나 넌 그녀의 일을 방해했으니 앞으로는 조심해야
돼."
"별로 두렵지 않아. 그녀는 나를 보지도 못 했어. 그러니 나를
알리가 없지. 더군다나...... 막상 맞붙게 되어도 그녀에게 꼭 진
다고 볼 수는 없어."
"넌 그녀를 이기지 못 할 거야. 누구한테 무술을 배웠는지 모르
지만 강호에 나온 지 일 년 밖에 안 되는데도 이미 오륙십 명의
무림 고수들이 그녀의 손에 죽고 말았어. 그중에는......."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우선 물건을 좀 보자."
"무......무슨 물건?"
"바로 그들이 목숨을 걸고 강탈하려던 물건 말이야. 바로 네가
죽어도 못 주겠다던 그 물건."
"나......난 몰라!"
소어아는 그의 옷깃을 양손으로 움켜잡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너의 목숨을 구해 주었어. 그런데 그 물건을 보여주지도
않으려 하다니 양심이 있는 사람이냐? 잠시 보자는 것 뿐이지 필
요로 하는 것도 아닌데."
"너......이 손을 놔라, 말 할 테니."
"좋아. 손을 놔 주지. 너를 믿을 테니까."
철심남은 움켜 잡혔던 부분을 매만지며 장탄식을 한 후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비밀이니 절대로 남에게 말해서는 안 돼?"
"내가 누구에게 말하겠어! 바보, 너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
이야. 그러니까 네가 위험할 때 나는 목숨을 다하여 구한 것 아니
겠어?"
철심남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들고는 가벼운 소리로 말했
다.
"그 물건은 나에게 없어!"
소어아는 그를 한참 바라본 후 돌연 크게 웃어 버렸다. 철심남
이 말했다.
"무엇이 우습지?"
"너는 날 바보로 취급할 작정이냐?"
"난 결코 속이지 않아!"
"그 물건이 너의 몸에 없다면 그들이 왜 너를 쫓고 있지? 또 너
는 무엇 때문에 달아났어?"
"처음엔 내가 가지고 있었지만 나중엔 믿을 만한 사람에게 줘서
가지고 가게 했지. 난 남들이 그를 해칠까봐 내 몸에 있는 것처럼
남의 눈을 속였어. 그를 보호하려고."
"음, 알고 보니 하나의 계략이었군."
"그렇지."
"네가 목숨을 내걸고 남을 구하는 군자인지는 정말 몰랐는데."
"난 종은 사람이 아닐지 몰라도 그 사람은 나의 형이야."
"그래? 알고 보니 그렇군. 하지만 그것이 무슨 물건인지는 말해
도 상관 없지 않겠어?"
철심남이 약간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그것은 보물을 감춘 한 장의 비밀 지도야."
"그런 물건이었군. 진작 알았다면 난 물어보지도 않았을 거야.
내가 만약에 보물이 필요하다면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 굳이 그
렇게 힘들여 찾을 일도 지킬 일도 없어."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집안을 살펴보았다.
"이런 곳에 이와 같은 집이 있다니."
"여기는 전에 병사들이 있던 곳이야. 지금은 평화로와져서 쓸모
를 잃은 셈이지. 그래서 이같이 폐허가 되고 말았어."
소어아는 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며 입을 열었다.
"우물이 있는데."
"그릇이 몇 개 있으니 가서 물을 떠다주지. 급히 달려 오느라고
목이 탈 걸."
소어아가 눈을 깜박깜박 하면서 말했다.
"너 달아나지는 않겠지?"
"내가 왜 달아나야 하지?"
소어아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달아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
철심남은 과연 달아나지 않고 나무 물통을 하나 들고 들어왔다.
그는 항상 얼굴에 떠올라있던 오만한 기세가 사라지고 매우 유
순하게 보였다. 물을 길어오고 그릇을 씻고 남자들이 하기 싫어
하는 일을 아주 섬세하게 하지 않는가! 소어아는 그를 바라보면서
재미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때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모두 놀라서
얼굴에 생기가 싹 가셨다. 둘은 몸을 벽에 바짝 붙이고 가만히 밖
을 내다보았다. 작은 백마가 달려와 우물가에서 멈추었다.
소어아는 한편 놀라고 한편 기뻤다. 급히 달려 나가서 말의 머
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이 녀석, 너 참 기특하구나. 내일은 좋은 것을 먹여주마......
맞았어, 너에게 이름을 지어 주어야지. 누구는 붉은 말을 앵도라
고 부르니까 넌 백채로 하자."
이때 철심남이 두 개의 그릇을 들고 나왔다.
"물맛이 달구나."
"말은 어떻게 하지? 이 녀석도 매우 피곤 할 텐데 우선 이놈에
게 먹이지."
"안 돼 안 돼, 말은 통으로 마시게 해."
말을 마친 철심남은 한 그릇을 소어아에게 건네 주고 나머지 한
그릇은 우물가에 놓더니 집안으로 들어가 물통을 들고 나왔다.
철심남이 눈을 깜박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셔. 아주 시원하던데"
"이 우물 속엔 독이 풀려져 있는 지도 몰라!"
철심남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물 속에 독이 있다면 난 벌써 죽었을 거야. 방금 한 그릇을 마
셨어. 염려할 게 없다구."
그는 우물가에 놓아 두었던 그릇을 집어들고는 훌쩍 마셨다.
"네가 먼저 마시니 안심이 되는군."
그는 갈증을 느끼던 참이라 연거퍼 몇 그릇을 마셨다.
밤하늘은 남빛으로 짙어갔고 조원 저쪽에서는 별들과 달이 떠올
랐다.
소어아는 차츰 안색이 변하면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내 머리가 돌기 시작하는데."
"괜찮아, 앉아 있으면 좋아질 거야."
"아니야,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간신히 한마디를 마친 그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독, 물 속에 필시 독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가 쓰러지자 철심남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면서 싸늘하게
웃었다.
"안심하라고, 물 속에는 독이 없어. 미약이 있을 뿐이야. 하룻
밤 푹 자고 나면 내일 아침엔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
소어아는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넌 왜 약을 탔지?"
"난 갈 곳이 있는 몸이야, 너에게 시달릴 시간이 없어."
"너......너"
그는 차츰 힘이 빠져갔다.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 했다.
"너는 영리한 척 하기는 해도 그러나......."
철심남은 말을 하면서 걸음을 옮기다가 돌연 다리에 경련이 일
어나 넘어질 뻔했다. 그는 안색이 변하더니 두 걸음도 더 내딛기
전에 물통 옆에 쓰러졌다.
그도 힘이 없어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이거......이게 어찌된 일이지?"
"그 약이 네 그릇에도 들어간 게 아닐까?"
"아니......그럴 리가 난......분명히......"
소어아는 그제서야 힘없는 표정을 바꾸고 크게 웃으면서 벌떡
일어섰다. 철심남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너.......너 혹시....... "
"넌 나에게 비하면 아직도 멀었다. 네가 물 속에 약을 탄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흐흐, 말해 두지만 나는 약물에 온몸을 담
그어 가며 자랐기 때문에 내눈은 밤중에 바늘까지 찾을 수가 있을
정도로 밝단 말이야!"
"이제보니 네가 그릇을 바꾸었구나?"
"그렇지. 난 그릇을 바꾸어 놓았지. 새삼스런 얘기 같지만 난
이런 장난을 두 살 때부터 해왔어. 날 키운 사람들은 모두 이런
수법의 선배들이야."
"너.....나.....날 어쩔 셈이냐?"
"너를 어쩔 생각은 없어. 다만 네 말을 믿을 수가 없으니 몸을
샅샅히 뒤져봐야 겠어. 무슨 물건이라도 숨겨두었을 지 모르니까.
안 그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심남은 창백했던 얼굴이 다시 불같
이 붉어지면서 떨기 시작했다.
"제발 부탁이니......부탁이야......정말......"
그는 목소리만 떨리는 게 아니었다. 온 몸을 떨며 손으로 옷깃
을 꽉 여미고 신음하듯이 말했다.
"제발......그러지 말고 부탁이야......"
그러나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옷깃을 잡고 있던 손도 스르르
풀려버렸다.
소어아는 선채로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철심남은 깊은 잠
에 빠져버려 움직이지 않았다. 소어아는 곁에 앉아서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는 철심남이 애원을 할수록 더욱 뒤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 사람은 아무 소리도 내지않
고 유령처럼 소어아의 몸 뒤에 섰다. 희미한 달빛 아래 비친 모습
은 하나의 여자였다. 붉은 색의 옷이 밤 하늘의 빛을 받아 핏빛으
로 보였다. 그러나 소어아는 그녀가 나타난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돼지 잡는 선녀(仙女)
그녀는 서서히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은 부드러워 보였고 아름
다왔다. 별빛 아래서 세상사람에게 포근한 기쁨을 뿌리는 그런 선
녀의 손 같았다. 그러나 이 손은 죽음을 부르는 손이었다.
소어아는 여전히 모르는지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 정말 이상한데. 어째 이런 곳에서 잠을 자나. 깨워도
일어 나지를 않으니...... 어이, 여보시오! 좀 일어나시오. 여기
서 자면 춥소!"
뒤에서 내려치려던 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거두어졌다.
소어아는 여전히 혼자서 중얼거렸다.
"어떻게 하지?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
뒤에 셨던 홍의 그림자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을 아느냐?"
소어아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
고 그녀를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귀신이라도 보았을 때의 표정 같
았다.
사실 그는 물통에 남은 물이 사람을 비춰주고 있어서 소선녀가
다가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어아는 여전히 시치미를 떼고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
본후 서서히 말했다.
"아.......작은 아가씨, 대체 누구.....?"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선녀의 손바닥이 그의 따귀를 후려
쳤다. 그는 바닥에 털퍼덕 모로 쓰러지고 말았다.
소선녀 장청은 싸늘한 눈매로 소어아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너 이 자식아, 나를 작은 아가씨라고 불러?"
소어아는 바닥을 집고 기어 일어났다.
"네? 큰아가씨, 나......"
이번에는 다른 한쪽 뺨에 불이 번쩍 일어났다. 또 그녀의 따귀
를 맞은 것이다.
소선녀는 무서운 소리로 말했다.
"큰아가씨도 네가 부를 이름이 아냐!"
"네......고모.......이모.....다시는 안 그러겠소."
"흥, 그럼 그렇지."
이 말도 매우 싸늘하게 들렸으나 처음보다는 많이 누그러져 있
었다.
"이모, 화를 내지 말아요. 저에게 숙부님이 한 분 계신데 그는
사람은 화를 내면 고기가 빨리 쉰다고 했어요. 아니......아
니......사람이 만약에 화를 내면 늙고 추악하게 변한데요. 이모
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늙고 추악하게 변하면 되겠어요?"
그가 눈을 깜박거리면서 이런 말을 하자 소선녀는 조용히 듣기
만 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물어보았다.
"내가 정말 아름다우냐?"
이 말을 하고는 계면쩍었던지 갑자기 따귀를 올려 부치며 한쌍
의 큰눈을 무섭게 바꿨다.
"아름답다 해도 네가 할 말이 아니야!"
소어아는 속으로 웃음이 나와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이번의 따
귀는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끼며 말했다.
"네, 이모는 비록 아름답지만 그러나 난 말을 않겠어요."
"이 녀석아, 넌 어떻게 왔지?"
"저는 몇 분의 숙부님을 따라 여기에 장사하러 왔어요. 오늘 큰
숙부가 작은 말을 한 마리 사서 날더러 타고 놀라고 했는데, 그
말이 미친 듯이 달리는 바람에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이곳까지 왔
어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가 눈을 깜박거릴 뿐 별 생각도 하지 않고 이렇게 거침없이
말하자 소선녀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선녀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그렇지. 평상시에 순하던 말도 한 번 날뛰게 되면 누구도 잡
지 못하지. 너 같은 아이가 아니라도."
그녀 자신도 조금 전에 말 때문에 혼이났기 때문에 자연히 동정
이 갔다. 그러나 그녀를 그토록 놀라게 한 것이 바로 눈앞의 이
자식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소어아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겨우 참으며 계속 말했다.
"그 말 때문에 하루 종일 고생을 했는데 겨우 여기에서야 멈췄
지요. 우물이 보여서 물을 마시러 왔다가 이 사람을 봤어요."
소선녀는 철심남을 바라본 후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흥, 너는 그가 정말 잠든 것 같으냐?"
"자지 않으면 그럼 죽었나요?"
"녀석, 말해 주지. 그는 미혼약에 의해서 이렇게 됐어......이
상하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했을까? 물건은?......."
그녀는 소어아에 대해서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중얼거리며 철심
남의 몸을 뒤졌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것도 찾지 못 하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식, 빨리 물을 한 통 떠서 그를 깨워라. 내가 물어 볼 말이
있으니까."
"네, 한 통의 물이 아니라 열 통이라도 떠야지요."
그러나 그는 채 한 통도 들지 못 하는 것처럼 낑낑거리며 물을
퍼 올렸다.
"이놈의 물통이 어찌 이렇게 무겁지?......."
그가 발을 헛딛으며 물통을 떨어뜨리자 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소선녀를 흠뻑 적셨다.
소선녀의 추상 같은 욕설이 퍼부어졌다.
"이 병신 같은 자식아, 죽고 싶으냐?"
소어아는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기어 일어나, 옷을 벗어 소선녀
의 몸에 묻은 물을 닦으며 어물거렸다.
"이모, 고모.....난 고의가 아니었어요."
"너는 생긴 것은 사람 같은데 돼지처럼 일도 못 하는구나. 깨끗
하게 닦아내지 못 하면 난 너를 죽여버릴 테다."
그녀는 옷을 털고 소어아는 꿇어 앉아서 그녀의 옷을 닦았다.
그녀는 생각할수록 분해서 이 자식을 한 발에 차 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발이 들리기도 전에 무릎의 음봉천이 갑자기 아
파지면서 반쪽의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소선녀는 깜짝 놀
랐다.
"이 자식 너......."
"미안해요. 일부러 한 짓이 아니에요. 미안해요......."
입에서는 이렇게 말 하면서 손은 쉬지 않고 계속 그녀의 종비,
양구, 복면, 비영 등의 혈을 전부 점했다. 그녀의 족양명경의 혈
도는 완전히 점해진 셈이다.
소선녀라고 어찌 넘어지지 않을 수 있으랴!
소어아는 그제서야 웃으면서 일어서서 손을 툭툭 털었다.
"야아! 갑자기 병이라도 났냐? 어찌 넘어졌지?...... 하긴 너
같이 가날픈 사람은 이슬비만 맞아도 병이 나기가 십중 팔구지."
소선녀는 눈에서 불이 날 것 같았으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네가...... 네가...... 날......."
"미안해. 일부러 한 짓이 아니니까. 이 물은 네 말에게 주려고
했는데...... 난 그 엉덩이를 태워서 마음이 아파. 하지만 이렇게
라도 돼서 다행이야. 너희들 두 자매 중에 누가 받아도 마찬가지
니까."
소선녀는 소리쳤다.
"알고보니 얏도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너...... 네가 태웠구
나."
"흥, 불로 앵도를 태우고 물로 소선녀를 잡았으니 나 돼지가 그
렇게 병신은 아니지? 말해 두지만 남을 병신으로 취급해선 안 돼.
그리고 언제나 남의 덕만 볼 생각은 말아. 나 같은 아이를 부려먹
으려 드니까 불행한 일이 생기는 거야."
그는 철심남을 번쩍들어 말 위에 올려놓고는 고개를 돌려 소선
녀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아참 그렇지! 그리고 방금 넌 내 따귀를 세 번이나 때렸으니
난 그것을 갚아야겠어. 너는 여자이니 이자를 붙이지는 않고."
소선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네......네가 감히."
"내가 못 한다고......내가 못 한다. 하하하."
첫번째 따귀를 때리자 소선녀의 얼굴이 금방 붉어졌다. 그녀는
한평생에 이런 변을 당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를 가는 소리에
기둥이 흔들릴 정도였다.
"너......너 좋아! 기억해 두겠다."
"다른 일은 몰라도 첫번째 따귀는 아주 심하게 맞았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어, 그래서 나도 심하게 때린 거야. 하지만 안심해
두번째는 좀 가벼웠어."
두번째의 따귀를 때리자 소선녀는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눈물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그녀가 태어나서부터 오늘날까지 어느 누구도
감히 그녀를 이렇게 건드려본 자가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홀리면서 원망의 눈초리로 소어아를 노려보았다.
"좋아, 난 영원히 너를 기억하겠어. 영원히! 영원히!"
"네가 영원히 나를 잊지 못 할 것은 물론 알고 있지. 여인은 첫
번째 자기를 때린 남자를 잊을 수가 없는 법이야. 너같이 아름다
운 여자에게 기억될 수 있으니 정말 기쁜 일이야!"
그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세번 따귀를 그냥 남겨둘 순 없지. 그런데 다만 너의
세번째 따귀는 그리 아프지는 않았어. 나도 심하게 때릴 순 없으
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소선녀는 크게 소리쳤다.
"너.....가서 죽어라!"
"좋아, 이렇게 하지."
그는 눈을 소선녀와 마주보면서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소선녀는 가슴까지 떨리면서 말했다.
"너......너 어쩔 셈인가?"
"너는 손으로 나를 때렸지만 나는 입으로 너를 때릴 테다. 너의
손보다는 가벼울 거야."
"너......."
소어아는 이미 그녀의 턱을 잡고 부드럽고 달콤한 그녀의 작은
입에다 입맞춤을 하였다.
소선녀는 소리도 지르지 못 하고 넋을 잃고 말았다.
소어아는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너도 나이가 많아야 열 대여섯 정도인데 어찌 나의 이모가 되
겠어? 나의 마누라가 되면 몰라도..이. 너의 이 향기로운 입술은
하루에 열 번씩 입을 맞춰도 싫증나지 않을 거야."
"네가 감히 나를 건드린다면 난 너를 죽이고 말 것이야, 꼭 너
를 죽이고 말 거야......."
"안심하시라고. 이젠 네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을 테니까.
너같이 무서운 여자는 그냥 줘도 받기가 싫어. 만일 정말로 너 같
은 마누라를 얻게 되면 큰 불행이야."
"나를 죽여라...... 나를 죽여! 그렇지 않으면 언제고 너는 나
의 손에 죽고 말 것이야. 천천히 죽게 할 테다."
소어아는 호탕한 웃음을 뒤에 남기고 말고삐를 끌어 당겼다.
소선녀의 악쓰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너는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지 않지? 왜 죽이지 않아? 언젠가
네가 반드시 후회할 날이 있을 거야. 난 맹세코 너를 후회하게 할
테니까."
소어아는 잠시 멈추었다가 그녀의 말이 끝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걸어갔다.
소선녀는 멀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멀리서 소어아의 노래소리가 들려 왔다.
"소선녀, 가련하다. 눈물을 홀리며 콧물을 닦으니, 소어아는 듣
고 박수를 친다......"
소어아는 걸어가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자기의 목소리가 괜찮다
고 느꼈다. 소선녀의 울음소리보다는 좋다고 느꼈다.
소선녀의 울음소리가 멀어지더니 잠시 후엔 들리지 않았다. 맥
이 잠시 빠지면서 얼굴을 만지자 탄식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는
입을 매만지면서 씽긋 웃었다.
그 계집애는 과연 무서웠다. 그러나 그 입술은 향기로왔고 그
부드러운 감촉이 여전히 입가에 남아돌았다.
그는 돌연 웃으면서 앞으로 내달렸다. 얼마를 가다가 작은 말이
거치른 호흡을 내뿜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별빛을 지붕 삼아 누워
버렸다.
초원의 하늘은 넓고 찬란하였다. 바람이 그의 얼굴에 살랑거리
자 그는 행복한 생각을 하면서 잠 속으로 빠져버렸다.
소선녀가 그의 품속에 누워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매일 나에게 백 번의 입맞춤을 하되 많을 수는 있어도 적어선
안 돼."
그러나 그가 고개를 돌려 입맞춤을 하려 할 때 소선녀가 갑자기
그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아니 정말 사람이 그의 따귀를 때렸다.
소선녀가 쫓아 온 것이 아닐까?
그가 놀래 깨어 보니 철심남이 눈앞에 있었다.
그를 때린 것은 바로 철심남이었다. 우물물이 튀는 바람에 예정
보다 일찍 깨어난 것이었다.
철심남의 창백한 얼굴은 매우 노기에 차 있었다. 한쌍의 아름다
운 큰 눈을 소어아를 향한 채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자식, 너도 잘 때가 있고, 내 손에 빠질 때가 있구나!"
소어아는 일어서려고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혈도
가 점해진 것이었다. 그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 했었다. 너무 깊
이 꿈 속을 헤맸던 것이다. 그러나 급하게 굴지 않고 오히려 웃으
면서 말했다.
"마침 좋은 꿈을 꾸고 있었는데 네가 나를 깨웠어. 내가 방금
예쁜 여자에게 백 번이나 입맞춤을 하려고 했었으니 대신 너에게
라도 해야겠다."
그는 말을 끓고 이마를 찌푸렸다가는 다시 싱글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꼼짝 못 하게 되버렸으니...... 네가 입맞춤을
해줘야겠다. 난 그럴 자격이 있지. 난 너의 몸을 발에서 머리 끝
까지 조금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뒤져보았으니까."
철심남은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노해서 그런 것이 아니
고 부끄러워서 그런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입
을 다 풀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고 서있었다.
소어아는 그녀의 안색을 힐끔힐끔 살펴가며 탄식을 했다.
"그런데 너는 왜 진작 여자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지? 그랬으면
난 몸수색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아! 내가 비록 나이가 작아도 남
자라는 것을 알아야 돼. 내가 어찌 참을 수 있어......."
"닥쳐! 입닥쳐! 더 떠들면 너의 입을 찢어 죽여 버리겠어!"
"난 이미 했으니 더하나 덜하나 마찬가지야."
철심남은 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그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
다.
소어아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이제 넌 나에게 시집올 수밖에 없어. 나도 나이가 많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수밖에 없지...... 제길! 조금 있으면 넌 할머니가
되버릴 거야. 아! 불쌍한 강어야."
철심남은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돌연 바지 대님 속에서 단도를
하나 꺼내더니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너......너 마지막으로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말해라!"
"나를 죽이려고? 아서! 남에게 시집가도 괜찮아. 난 절대로 반
대하지 않을 텐데 왜 나를 죽일려고 하는 거지?"
"네가 만약에 할 말이 없으면 내가 손을 쓰겠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보이지 않기 위해 갑자기 고개
를 돌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그...... 그...... 그러나 안심을 해도 좋아. 난 절대로 남에
게 시집을 가지는 않을 테니!"
소어아는 들으면서 웃고 싶었다. 그러나 오히려 울어버리고 싶
은 생각도 떠올랐다. 그녀가 정말 소어아의 말을 믿는 것이다.
(아! 여인, 여인의 속은 도대체 모르겠구나.)
소어아는 쓴웃음을 띠우면서 말했다.
"제발 부탁이오. 남에게 시집을 가요. 누구에게든 시집을 가고
싶거든 가요. 난 상관 않겠으니. 그러나 나에게 시집오는 것만은
견딜수가 없어!"
"그것이 바로 네가 하고 싶은 말이야? 좋아......"
그녀는 손에 단도를 굳게 쥐고 소어아의 가슴을 향했다.
소어아가 소리쳤다.
"잠깐, 잠깐, 내 말을 들어?"
철심남이 한 발을 딛으면서 말했다.
"빨리 말해!"
"나도 할 말이 있어. 천하의 남자들에게 알려줘. 그들더러 절대
로 남의 목숨을 구하지 말라고 해. 더우기 여자의 목숨을 구하면
못써. 만약 여자를 죽이는 것을 보더라도 말 엉덩이를 태우지도
말고, 태워도 자기 엉덩이를 태우고 멀리 갈수록 좋다고 전해줘."
"네가 비록 나의 목숨을 구했지만 그러나...... 그러나
난......"
그녀는 땅바닥에 주저 앉아서 통곡을 했다.
"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좋지?"
소어아는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어서 나를 죽여라. 너에게 고민을 주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좋겠어. 너의 손에 죽을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할 테니까."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몰래 철심납을 바라보고 있었다. 철심
남이 그의 생각대로 상심하여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소어아는 만족
스럽게 느꼈다.
(여인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겠다. 여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
다면 여자는 마치 말처럼 얌전히 너를 태우고 네가 동쪽을 원한다
면 동쪽으로 서쪽을 원한다면 그는 서쪽으로 달려가는 것이지.)
그러나 그가 이렇게 득의만만하고 있을 때 철심남은 통곡을 하
다가 벌떡 일어나서 앞으로 뛰쳐 달려갔다.
"야, 나를 두고 가지 마, 만약 늑대나 호랑이가 나오면 난 어떻
게 하지? 거기다 소선녀라도 온다면 어떻게 해7 내가 너를 구했는
데......"
바람은 계속해서 산들거리고, 별빛은 찬란했다. 그러나 누워있
는 소어아만은 시원치가 않았다.
그는 화가 나서 탄식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강어야, 누구에게 원망을 하겠는가. 이건 모두 여자를 건드렸
기 때문이야. 늑대가 너를 먹어도 소선녀가 와서 너를 죽여도 할
수없는 일이야!"
그의 곁에는 작은 말이 언제 왔는지, 우뚝 서서 가볍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어아는 누워서 말을 보며 중얼거렸다.
"소백채야, 내 말이 맞지. 다음에 만일 누가 밧줄로 여자를 목
메어 죽이는 것을 보면 꼭 도와 주고, 칼로 여자를 베는 것을 발
견하면 칼을 잘 갈아주어야 돼 !"
그 작은 말은 가벼운 소리를 몇 번 내더니 달려가버렸다.
소어아는 쓴 웃음을 띠우면서 말했다.
"소백채야, 너도 믿지를 못 하겠구나. 너까지 나를 버리다니.
아! 너도 암놈인가 보구나......"
그러나 그는 돌연 소백채가 달려 간 곳에 사람이 하나 움직이지
않고 서있음을 발견했다.
이번에 소어아는 정말로 놀랐다.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백마
는 그 사람 옆에서 낮은 소리를 냈고 그 사람은 말과 함께 한 걸
음한 걸음 걸어 오고 있었다.
소어아는 탄식을 했다.
"난 정말 장님이야. 지금에야 알아봤으니...... 난 첫 눈에 알
아야 했어."
철심남이 그의 몸 가까이 까지 다가왔다.
소어아는 눈을 감고 그녀를 보지 않았다.
철심남은 유유히 입을 열었다.
"넌 날 모욕하지는 않았어."
소어아는 참을 수 없어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에야 알았어?"
"그러나......그러나 넌 나를 괴롭혔어. 넌......넌......."
철심남은 고개를 떨구면서 무거운 소리로 말했다.
"나와 같이 가겠어?"
"난 그럴 줄 알고 있었지. 그러나 우선 나의 혈도를 풀어야 갈
수가 있지! 날 안고 갈 수야 없잖아?"
철심남은 얼굴을 더욱 붉히더니 '푸우'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몸을 굽히면서 소어아를 가볍게 치자 막혔던 혈도가 풀렸다.
소어아는 쓴 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너는 금방이라도 나를 죽일 듯하더니 지금은 손을 이토록 부드
럽게 쓰는구나, 아이고 하느님, 아 여인......."
그는 일어선 후 가래침을 뱉았다.
철심남은 얼굴을 돌리고 가볍게 말했다.
"난 네가 나를 찾아오지 못 하게 했었지. 지금 마음이 변한 건
생각을 해보니까...... 네가 나에게 좋게 대한다는 것을 알았어."
"전에는 몰랐어?"
"널 못 따라오게 한 것은 그곳이 너무 비밀스러운 곳이기 때문
에......"
"네가 가야 할 곳이 어디지?"
"그곳은 곤륜산 안에 있지......."
"악인곡?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악인곡이냐?"
철심남은 돌렸던 고개를 바로하며 말했다.
"너...... 넌 어떻게 알지?"
소어아는 자기의 머리를 때리면서 중얼거렸다.
"하느님! 이분 아가씨는 내가 어찌 악인곡을 알고 있느냐고 묻
고 있소. 내가 악인곡을 모른다면 세상에 어느 누구가 알겠습니
까?"
철심남은 눈을 더욱 크게 떴다.
"왜?"
"나에게 왜냐고 묻지 말고 왜 악인곡에 가는지를 말해봐. 넌 악
인곡에 갈 사람이 아닌데."
"난 다만 사람을 찾으러 가는 거야."
"누군데?"
"말해 주어도 모를 걸."
"내가 모른다고? 악인곡의 상상 하하 크고 작은 일을 내가 모두
알고 있어."
철심남이 놀라면서 말했다.
"너......."
"나? 나는 바로 악인곡에서 자랐어 !"
"뭐? 난 믿지를 못 해..... 난 정말 믿지 못 해."
"믿지를 못 해? 내가 물어 보겠는데 악인곡 외에 어떤 곳에서
나 같은 사람이 자라날 수 있겠어?"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확실히 다른 곳이 없어!"
"이제는 네가 찾는 사람을 나에게 말해 줄 수 있겠지?"
철심남은 다시 고개를 떨구고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며 생각하
다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 찾는 사람도 철씨야, 매우 유명한 사람이지."
"혹시 심대 악인 중에 광사 철전이 아니냐?"
"그가 정말 거기에 있어?"
"나를 만났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쓸데없이 그 험한 곳
에 들어갈 뻔 했어. 누가 광사 철전이 악인곡에 있다고 했지?"
그의 말이 골나자 철심남은 허망한 듯 시선을 돌렸다.
철심남과 소어아는 함께 말에 올랐다. 소어아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밤은 조용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여전히 천리무변의 조원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조원은 넓고 넓었다. 조용한 달빛 아래 풀포기들
이 가만히 흔들렸다.
그들은 천천히 조원을 지났다.
이 평온하지만 장려하고, 단순하면서도 변화있는 대조원은 이미
소어아의 마음 속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겨 놓았다. 그
러나 소어아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고 다시 보지도 않았다. 과거
는 흘러갔다. 미련은 남는 것이지 남기는 것이 아니다.
철심남의 얼굴은 달빛 아래 창백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소어
아는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안 후 그녀가 다른 여자보다 더욱 아
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욱 약
하게 생각되자 웬지 마음이 멍했다. 그녀는 철전이 악인곡에 없다
는 말을 듣고는 말도 하지 못 하고 심지어 움직이지도 못 했다.
만약에 이 작은 말이 없었으면 그녀는 걸어 가지도 못 했을 것이
다.
소어아는 몰래 고개를 저으면서 탄식했다.
(여인...... 여인은 과연 연약하구나. 아름다운 여인이나 추악
한 여인이나 다 한가지다.)
그는 혼자 쓸쓸히 고개를 저으면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한참 후 철심남이 입을 열었다.
"너는 벌써 오랫동안 말을 안 했어."
"네가 말을 하지 않는데 내가 왜 말을 해야 되지?"
"그러나......나에게 물어 볼 말이 없어?"
"무슨 이유로 내가 물어 보지?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
아?"
"네가 무얼 안다고."
"남들 때문에 갈길이 없어진 너는 아버지를 찾아 가려고 했지?
하지만 너는 그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야. 심지어
어릴 때 그의 곁을 떠났지. 그도 너를 버렸지, 그는 필경 너의 부
친이야!"
"아버지? 누가 나의 아버지라는 거야?"
"광사 철전!"
"누가......누가 그런 소릴?"
소어아는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내가 말했어. 아 여인아! 난 여인들이 자기 속마음이 탄로나도
절대로 인정을 하지 않음을 알지. 그래서 네가 인정하든 말든 별
관계가 없어."
철심남이 소어아를 바라보는 얼굴은 마치 처음으로 만난 사람을
보는 표정 같았다.
(이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 요괴야. 사람이 아니라 정령이야.)
그녀는 한동안 놀라운 빛을 띠우다가 드디어 다시 입을 열었다.
"너....... 너 또 무엇을 알지?"
"그리고 네 이름의 끝 글자가 남자의 '남'이 아니고 난초의 '난
'이라는 것도 알지. 철심난....... 그개 너의 진짜 이름이지?"
선녀(仙女)잡는 돼지
철심난이 말을 받았다.
"아니......아니.....음 맞았어, 난초의 난이지."
"난 지금 네 마음이 방황하는 것을 알고 있어. 어디로 가야할지
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지. 그러니 너는 조용히 생각
을 해 봐."
"넌 도대체 몇 살이지? 난 때때로 두렵기도 해. 넌 정말 아이인
지 아니면...... 아니면......"
"요괴!"
소어아가 빙그레 웃으며 한 말이다. 철심난이 가볍게 탄식을 내
뿜었다.
"난 때때로 네가 혹 정령이 변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돼.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남의 속 마음을 알겠어?"
"그것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영리하기 때문이야."
"어쩌면 너는 정말......"
"그건 어쨌든 좋아, 이젠 얘기할 때가 됐어."
"무슨 얘길?"
"넌 네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어?"
철심난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힘없이 말했다.
"나......나....."
"빨리 생각을 해야 돼. 난 너와 같이 오래 있을 수는 없어."
철심난은 돌연 고개를 들고 안색이 더욱 창백해지면서 말했다.
"너.....나와 같이 있을 수 없다고?"
"물론 함께 있을 수 없지."
"그러나......그러나 본래......."
"그렇군. 처음에는 너와 함께 돌아다니고 싶었지. 그러나 네가
여자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난 생각을 바꿨어. 너를 제자로 맞이
할 수도 없게 되었어."
"그러나 너.....너......너......."
그녀는 너무나 복받쳐 말을 잇지 못 했다. 소어아는 그녀의 마
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냉정했다.
"나는 너와 친구도 아닌데 왜 같이 다녀야 하지? 더군다나 나는
할 일이 많아서 여자에게 신경을 쓸 시간이 없어!"
철심난은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뒤통수라도 맞은 듯 넋을 잃었
다.
온 몸이 떨려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우리는 친구도 아니지, 너......어서 가라!"
"그럼 넌?"
"난 물론 갈 곳이 있고 네가 상관할 일도 아니야."
"좋아. 그러나 지금 너는 길을 걸어 가지도 못 할 테니 내 말을
너에게 주겠어."
철심난은 이슬맺힌 눈으로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고마워, 그러나......난 너의 말이 필요 없어. 너의 모든 것이
필요 없어. 너......너......."
말위에서 뛰어내린 그녀는 곧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녀는 죽어
도 소어아에게 자기의 눈물을 보이기가 싫었던 것이다.
소어아는 말고삐를 잡아끌며 말했다.
"그럼 좋아. 나도 이 말과 이별하기가 섭섭했어."
"나......나......."
사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 속에서만 뱅뱅
맴돌 뿐 차마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 말보다 못 하단 말인가? 너는 나와 헤어지는 게 섭섭
하지도 않단 말이야?)
그러나 그녀는 끝내 말을 못 했다. 비록 그녀의 마음이 무참히
도 무너지고 말았지만.
"좋아. 난 가야겠어. 그러나 몸조심 해요."
철심난은 돌아선 채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다만 말발굽소
리가 나자 그가 이대로 가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심난
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난 물론 조심을 할 거야, 너까지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다시
는 죽어도 만나지 않을 테니까."
목이 터지라고 외친 그녀는 땅에 쓰러져서 크게 통곡을 하기 시
작했다.
소어아의 귀에는 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떻든 간에 그
는 못 들은 척 해야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오직 말 머
리를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소백채, 내가 영리한 사람이지. 이토록 쉽게 여인을 보내 버렸
으니. 여인은 보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돼."
그는 말을 타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다시 중얼거
렸다.
"소백채,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 모르겠지? 나도 몰라.
우리 여기서 몰래 구경이나 할까?"
소어아는 말에서 내린 뒤에 다시 중얼거렸다.
"우리는 급히 해야할 일도 없으니까 좀 기다려도 괜찮아."
별들이 하나 둘 많아져서 하늘을 쳐다보면 어지러울 정도였다.
밤이 점점 깊어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철심난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근처에 길이라곤 이것 뿐인
데. 혹시 길을 잃은 게 아닐까? 그녀가 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돌연 말에 올라타 큰소리로 말했
다.
"가라.......소백채, 우리 다시 가보자. 그녀가 무얼 하는지?
그러나 넌 내가 그녀나 다른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은 이미 달리고 있었다. 올때보다는
휠씬 빨랐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철심난과 헤어진 자리까지 왔다.
소어아는 멀리서 철심난을 발견하였다.
철심난은 아직까지도 그곳에 누워 있었다. 울지도 않고 움직이
지도 않았다.
소어아는 말에서 뛰어 내리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어이, 여긴 잠을 자는 곳이 아니야!"
철심난은 냉랭하게 소리쳤다.
"가라! 누가 너더러 오라고 했어. 무엇 때문에 왔지?"
밤 기운 때문인지 그녀의 창백하던 얼굴이 자주색으로 변해 있
었다. 게다가 입술은 계속 떨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때기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소어아는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혹시 병이라도?......"
"내가 아파도 너는 상관말어. 너......너는 나와 친구도 아닌데
왜 나의 일에 상관하는 거지?"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기웃뚱 했다.
소어아가 말했다.
"지금은 너를 상관해야겠어!"
말을 마치자 급히 손을 내밀어서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 열이
있었다.
철심난은 그의 손을 뿌리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건드리지 말어!"
"난 꼭 만져야겠다."
소어아는 삽시간에 그녀를 번쩍 안았다.
"네가 나를 건드려...... 손을 놓고 꺼져 버려!"
그녀는 뿌리치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굳게 붙잡은 그
의 손을 뿌리치지는 못 했다. 오직 그녀의 주먹만이 마치 비가 오
듯이 약하게 소어아의 가슴을 때릴 뿐이었다.
"병이 너무 심해. 않아서 죽어 가고 있어. 더 이상 얌전히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난...... 난 너의 바지를 벗기고 너의 엉덩이
를 때리겠어. 알겠지?"
철심난은 있는 힘을 다해서 소리쳤다.
"너......네가......."
큰 눈동자가 스르르 감기며 소어아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 통곡
을 하기 시작했다.
철심난은 정말 심하게 병을 앓고 있었다.
해안에 도착하자 소어아는 제일 좋은 여관을 찾았다. 그리고 제
일 좋은 방을 찾았다. 그 방은 먼저 들었던 투숙객이 있었다. 그
러나 그는 금돈을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당신이 다른 방으로 옮긴다면 이 금을 당신에게 드리겠오."
그는 이 한마디의 말로 그 사람을 바람처럼 쫓아내버렸다. 금이
란 말을 하지 못 했어도 말 백마디 보다 쓸모가 많았다.
초조, 실망, 험난, 타격, 상심과 초원에의 차가운 바람이 철심
난을 높은 열로 정신을 잃게 하고 말았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에 소어아는 그녀의 약을 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기어서라도 일어나고 싶었지만 소어아가 그대로 둘 리
만무했다. 일어나지 못 하게 끌어 안아 다시 자리에 뉘였다.
그녀는 조용히 신음을 했다.
"너......너......."
"말을 하지 마!"
그녀는 소어아의 눈이 헬쓱하게 들어간 것을 보자 곧 자기를 보
살피기 위해서 며칠 동안 자지 못 한 것을 알고 눈물이 두 뺨을
적셨다.
소어아는 약사발을 들고 와서 말했다.
"울지 말고 약이나 먹어. 이건 최고의 약이야. 먹으면 곧 좋아
질거야. 만약에 계속 어린애 같이 울기만 한다면 너를 때리겠어."
"이거......이건 누가 말해 준 약방문이지?"
"나."
"너는 병도 볼 줄 알았군. 무엇이든지 한단 말이야."
"입을 그만 열고 약이나 먹어."
철심난은 며칠을 않아 누워 있었지만 웃음띤 얼굴은 여전히 매
력있고 아름다왔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입을 벌리지 않으면 어찌 약을 먹지?"
소어아가 따라서 웃었다. 오랜만의 웃음소리였다. 그는 여자가
때때로 귀엽다고 느꼈고 더우기 웃을 때가 그러하였다.
황혼이 되었고 철심난은 다시 잠이 들었다.
소어아는 방 밖으로 걸어나오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강어야, 강어. 여자가 이렇게 너에게 웃는 것은 너를 해칠려고
너를 속이는 것임을 잊지 마라. 그녀가 너에게 다정할수록 너는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너의 한평생이 끝나 버리
는거야."
백마는 마구간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소어아는 천천히 걸
어 가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백채, 안심해라. 남들은 속아도 난 절대로 속지 않아. 그녀의
병이 나으면 난 즉각 떠날 테니까......."
이때 급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여관 밖에서 우뚝
멈췄다. 이 여관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어도 설비가 잘 되어 있었
고 밖으로 딸린 술집도 있었다. 소어아는 다급한 듯한 말발굽 소
리를 듣자 그들이 누군인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조용
히 발걸음을 옮겨 정원 한켠에 서서 주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너댓 사나이가 주점으로 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아무소
리도 하지 않고 탁자를 하나 차지하고 앉았다
주인 역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즉각 술
을 올렸는데 이 사람들은 멍하니 앉아서 움직일 줄 몰랐다.
그들 하나 하나의 얼굴은 모두 붉그레하게 부어 있어 남에게 몇
십장의 따귀를 맞은 것 같았다.
한참 후 다시 두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이 두 사람은 더욱 비
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 부어 오른 것은 물론 머리 뒷쪽
이 피투성이가 된채 천으로 동여 매어 있었다. 크게 당한 모양이
었다.
먼저 온 다섯 사람은 이 두 사람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러나 이 두 파의 사람은 서로 손을 쓸 기세는 아니었다. 다만 서
로 쳐다보며 마치 닭싸움 하듯 하였다.
먼저 온 다섯 사람 중의 하나는 곰보였으나 얼굴이 부어 올라
곰보까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한동안 뒤에 온 사람들
을 노려보다가는 돌연 크게 웃었다.
"표은이 안서에 들어 서니 태평은 끝이 없다. 안서표국의 대표
사는 여간해선 물건을 잃지 않는데 어찌 자기의 귀까지 잃었소?
재미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얼굴이 몹시 당긴 듯 눈살을 찌푸
렸다. 그래서 얼굴을 찡그리다 보니 웃는지 우는지조차 분간할 수
가 없었다.
나중에 들어선 두 사람의 눈이 노기로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왼쪽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사나이가 오싹한 감정이 드는 목소
리로 말했다.
"만약에 얼굴이 남에게 맞아 부어 올랐으면 웃지 않는 게 좋아.
웃으면 몹시 아플 테니까."
곰보 사나이는 상을 치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칼자국의 사나이는 계속 벙글빙글 비웃으면서 말했다.
"큰형이나 둘째나 말할 필요도 없이 똑 같은 꼬라지군."
곰보 사나이는 노기가 탱중해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그러나 칼자국의 사나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나
섰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소어아는 생각했다.
(이제부터 한바탕 싸우게 되겠지.)
그러나 두 사람은 손을 쓰려는 순간 곧 남들에게 제지 당했다.
곰보 사나이의 손을 잡은 사람은 흰 수염을 기른 노인으로 나이
가 가장 많은 것 같았고 가장 가볍게 맞았는지 상처가 적었다. 그
는 손을 저으면서 억지 웃음을 보였다.
"안서표국과 정원표국은 비록 장사를 위해서 싸우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장사일 뿐이오. 그러나 사실상 우리는 모두 중원
에서 온 강호 형제가 아니오? 절대로 형제간의 우의를 생각해서라
도 함부로 싸워서는 안 되오."
칼자국의 사나이의 팔을 잡은 것은 몸이 호리호리한 사나이였
다.
그는 말했다.
"구양형의 말이 맞소. 우리는 총국에 의해 이런 가난한 곳에 온
것이오. 그것 자체가 이미 불행이고 게다가 지금은 모두 변을 당
한 사람이니 화를 내지 맙시다."
구양이라는 노인은 탄식을 하면서 말을 받았다.
"더군다나 오늘은 우리가 다 같은 사람에게 당했으니.......아
아! 이렇게 서로 내란을 일으켜서 남에게 웃음거리가 된다면 되겠
오?"
그 호리호리하게 마른 사나이가 다시 말을 받았다.
"그럼 여러분도 혹시 그녀에게......"
구양노인이 쓴 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그녀가 아니면 누구겠소? 그녀 외에 누가 이토록 악독하게 독
수를 가하겠오? 아! 우리 형제들은 오늘 정말로 창피를 당했소."
그가 이런 말을 하니 모두들 탄식을 하면서 주저 앉았다.
이 일곱 사람의 얼굴은 모두 퉁퉁 부어 올라서 무슨 표정을 짓
고들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쌍 한쌍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차 있었다.
그 곰보 사나이가 다시 상을 쳤다.
"만약에 무슨 원한이 있다면 우리가 그 계집애에게 맞아도 좋
지. 그러나 영문도 없이 그 계집애가 손을 쓰다니!"
구양노인이 길게 탄식을 했다.
"강호에서는 본래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에게 당하는 거지. 사
실 말이지만 우리의 무술은 그녀의 상대가 못 되니 하는 수 없
지."
그 호리호리한 사나이가 갑자기 미친 듯 웃어 제쳤다.
"그러나 그 계집애의 행색으로 미루어 보아 어디 다른 곳에서
된통 당했던 것 같아. 눈알이 빨갛게 된 것이 한참 울고난 후 같
았어. 그리고 말도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없더군. 우리는 불행하
게도 그녀의 화풀이감이 된 셈이야."
곰보 사나이가 손뼉을 쳤다.
"서노대의 말이 맞아요. 그 계집애는 자기보다 더 무서운 사람
을 만났던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이 남자를 만났는데 그자에게
희롱이나 당했는지도 모르지."
몇 사람은 일제히 웃어버렸다. 비록 아픈 표정이었으나 통쾌하
게 웃고 있었다.
여기까지의 광경을 보고 들은 소어아는 이 사람들이 필시 소선
녀를 만났었음을 알았다. 소선녀가 따귀를 때리는 수단은 자기도
맛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소선녀는 확실히 소어아를 때릴 때보다
는 심하게 손을 쓴 것 같았다. 그녀는 우물가에서 하루 종일 고생
을 한 뒤 이 모든 화풀이를 이 자들에게 가한 것이었다.
소어아는 생각할수록 재미 있다고 느꼈다.
그때 돌연 일곱 사람이 모두 웃음을 그쳤다. 입을 벌린 사람은
입을 벌린 채로 코가 비틀어진 사람은 코가 비틀린 채 굳어져버렸
다.
소선녀 장청이 어느새 문 앞에 서서 한 자 한 자 내뱉고 있었
다.
"내가 너희들에게 사람을 찾으라고 했지, 누가 너희들에게 여기
서 술이나 마시라고 했어!"
소어아는 가슴이 요동쳤다. 그러나 침착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물론 소선녀가 찾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
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 날이 이미 저물어 불이 켜져있는
곳에선 정원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소어아는 담을 따라서 마굿간까지 물러섰다. 비단 사람이 소선
녀에게 보이면 안 될 뿐 아니라 말까지도 그녀에게 보여선 안 되
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말은 하얀 색이라서 남의 눈에 잘 띨 수밖
에 없었다.
마굿간의 바닥은 젖어 있었다. 소어아는 곧 젖은 흙을 한움큼
집어 들어 말의 몸에다 칠했다. 말이 소리를 내려하자 소어아는
급하게 풀을 말의 입 속에 넣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소백채, 백채형! 지금 절대로 소리를 내선 안 돼. 너는 왜 이
토록 하얗지. 철심난 보다 더욱 하얗구나."
얼마가 지나자 하얗던 말은 이미 흙색의 말로 변했다. 소어아는
자기가 보기에도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다. 손에 묻었던 흙을 닦으
며 조용히 방으로 물러갔다.
방 안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철심난은 소어아가 들어 오
는 것을 보고는 돌연 그를 잡고 소리쳤다.
"나의 신발은?"
"신발? 그 낡은 신발?"
철심난은 거치른 숨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바로 그 신발!"
"그 신발은 너무 낡아서 내가 도랑에다 던져 버렸어."
"뭐? 네가 버렸어!"
"그까짓 신발은 거지에게 주어도 안 받을 탠데 뭐가 아까워서
그래? 난 이미 그것보다 열 배나 좋은 것을 사왔어."
철심난은 그의 손을 뿌리치더니 침대에서 뛰어내려 떨리는 소리
로 말했다.
"어디에 버렸는지 찾으러 가!"
"찾을 필요는 없어!"
"너......너 이 병신, 내 신발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어?"
소어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을 깜박이면서 말했다.
"무엇이 있지?"
"바로 그 물건이야....... 바로 그 물건이란 말야...... 난 그
것 때문에 목숨까지 잃을 뻔 했어. 그턴데 네가 그 신발을 도랑에
던지다니."
"그 물건? 넌 그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잖아?"
철심난은 얼굴에 눈물과 콧물이 온통 범벅이 되어 말했다.
"그건 내가 거짓말을 한 거야!"
"참! 누가 날 속이라고 했어? 네 꾀에 네가 속은 거지. 내 잘못
이 아냐. 나도 그 신발을 도대체 어디에 버렸는지 생각이 안 나는
데."
철심난은 곧 침대에 쓰러져서 움직이지도 못 했다. 입으로만 중
얼거릴 뿐이었다.
"좋아......좋아. 모든 것이 끝났어!"
소어아는 그녀의 들썩이는 양어깨를 바라보며 약간의 미소를 띠
었다.
"그 물건은 다만 낡은 종이조각일 뿐이야. 왜 그렇게 애가 타
하지? 너무 애가 타서 병이 도지면 곤란하단 말이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심난은 다시 벌떡 일어서서 그를 노
려보았다.
"너......네가 어찌 그게......종이인줄 알지?"
"네가 말한 것이 바로 그 종이라면 난 이미 신발 속에서 종이를
꺼냈지. 찢겨 졌을 뿐 아니라 냄새가 나던데. 꼬랑내지."
철심난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온통 그의 가슴으로 안
기면서 두들기며 웃음을 터뜨렸다.
"너! 바보....... 일부러 나를 미치게 만드는구나."
"왜 나를 속였어.....난 벌써 그것이 네 신발 속에 있는 줄을
알고 있었지. 중요한 물건을 신발 속에 감추다니 정말 약았어."
"너야말로 훌륭해. 어떤 일도 너에게는 속이지 못 하겠어.
너......정말이지 놀랬어."
"그러나 이젠 그 물건이 나의 손에 있으니 애태울 필요는 없
어."
"너의 손에 있는데 내가 왜 애를 태우겠어?"
"내가 안 돌려 줄 것이라고 염려 되지는 않아?"
"난 두렵지 않아."
"좋아, 난 돌려주지 않겠어."
이 말을 듣고도 철심난은 화를 내기는 커녕 부드러운 소리로 말
했다.
"그럼 당신께 드리겠어요."
"그러나.....넌 목숨이 끊어지더라도 남에게 주지는 않을 거라
고 했잖아?"
"그건......네가 남과는 다르기 때문이야."
어찌된 영문인지 소어아는 돌연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
다.
그리고는 온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즉각 자기에
게 말했다.
(강어! 조심해. 이건 계책이다.)
철심난이 유유히 말했다.
"그건 그렇고, 어딜 갔다 왔어?"
"밖에......거기서 한 사람을 보았지."
"누구?"
"그 사람은 네가 알고.......불행히도 나도 알어!"
"소......소선녀 !"
소어아는 웃으며 말했다.
"맞았어, 바로 그녀야."
"그녀가 어디에 있지?"
"네가 문만 열면 볼 수가 있을 거야."
철심난의 손발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녀.......그녀가 바로 밖에 있어? 그런데 어찌 나와 농담을
하고 있을 수가 있지?"
"그녀가 내 앞에 있어도 난 계속 농담을 할 거야."
"우리 어떻게 해야 되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라고 하면 문을 열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뒤따라서 '펑' 하고 소리가 나면서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소어아는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좋아, 이잰 나가지도 못 하게 되는구나."
철심난은 안색이 변하고 몸이 점점 떨렸다.
"소선녀가 이미 방마다 조사 하는가봐. 그녀는 필시 우리가 이
부근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창문으로 나가야겠
어."
그녀는 즉각 소어아의 손을 잡고 창밖으로 뛰려고 했다. 그러나
소어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안 돼, 그들이 그 정도 방비는 안 해놨겠어? 창문으로 나갔다
가는 당장 들키고 말 거야."
소어아의 손을 잡은 철심난의 손바닥은 땀이 배어 축축했다.
"그......그럼 어떻게 하지?"
소어아는 가만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두렵지는 않아. 나에게도 방법이 있으니."
이때 멀리서 여자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가...... 빨리 나가! 너희들은 어찌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들어 오는 거지."
소어아는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저 여자는 목욕을 하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조조하지도 않은 듯 품속에서 낡아서 색이 바랜 주머니 하
나를 꺼냈다.
"그건 뭐지?"
"이건 보배야...... 내가 도씨라는 사람에게서 훔쳐 왔지."
말을 하면서 그는 그 속에서 않고 부드러운 것을 꺼냈는데 그것
은 마치 두부 껍질 같기도 하고 사람의 껍질 같기도 했다.
철심난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이건 사람 껍질의 가면 아냐?"
"아는군!"
그는 그 많은 것 중에서 두 개를 고른 뒤 말했다.
"좋아, 얼굴을 이쪽으로 내밀어."
철심난은 얼굴에 차가운 것이 닿자 온몸에 소름이 짝 끼쳐왔다.
그녀가 눈을 떠보니 소어아의 얼굴도 완전히 변해 있었다. 그는
수염만 없을 뿐이지 이미 이마에 주름살이 잡힌 노인이 되어 있었
다.
철심난이 이 경황에도 가볍게 웃었다.
"정말 귀신이야, 너.....너는 벌써 늙은이가 되었군."
"늙은이와 노파야말로 어울리지."
이때 발걸음 소리와 사람의 말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소어아는 주머니 속에서 수염을 꺼내 입가에다 붙였다. 또 은분
을 꺼내서 철심난과 자기의 머리에다 발랐다. 두 사람의 머리는
하얗게 변했다. 소어아는 다시 몇 개의 굵기가 틀린 붓을 꺼내 무
엇을 묻히더니 철심난의 얼굴에 발랐다.
사람의 목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철심난은 손발이 차가워지면
서 사지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어아는 여전히 침착하게 작은소리로 말했다.
"두려워 마.......두려워 마라........나의 변장술은 아주 완벽
한 것은 아니지만 족히 그들을 상대할 수는 있어."
발걸음 소리가 그들의 방 앞에 다가와 섰다.
소어아는 번개 같이 모든 것을 처리한 후 철심난을 부축하듯 안
고 말했다.
"자, 가자. 우리는 대문으로 나가자."
"대......대문?"
그녀는 목소리까지 매어 말을 제대로 하지를 못 했다. 그러나
소어아는 침착하게 문을 열었다.
방금 그 얼굴이 부어 올랐던 사나이들이 문밖에 와 있었다. 소
선녀는 예의 그 빨간 옷을 걸치고 바로 그 사람들의 뒤에 서 있었
다.
소어아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
"나으리는 어서 길을 비켜요. 내 마누라가 무엇을 잘못 먹었는
지 앓고 있으니 빨리 의사를 찾아가지 않으면 죽을 염려가 있소!"
그의 말소리는 돌연 늙은이의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철심난의
몸은 계속 떨려서 마치 중병을 앓고있는 늙은이 같았다.
그 사나이들은 즉각 길을 열어주는 것이 혹 전염병이 옮길까 염
려하고 있는 듯 했다.
그 곰보 사나이는 코를 가리고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유월에 돌연 병이 났으니 필시 중병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
찌 저렇게 떨 수가 있을까?"
소어아는 탄식을 하면서 서서히 그들의 가운데를 지나 걸어갔
다.
어렵게 소선녀의 몸을 지난 뒤 정원에까지 나왔다. 소선녀는 그
들을 바라보면서도 조금도 의심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몇 걸음을 떼어 놓기도 전에 '착' 하는 소리가
났다. 소선녀가 돌연 한 사나이의 허리에서 칼을 꺼내더니 소어아
를 향해 지쳐들어왔다.
"나를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철심난은 놀란 나머지 혼이 날아갈 것 같았으나 소어아는 느끼
지도 못 했다는 듯 무감각했다. 칼은 그의 머리에서 일촌이 되는
곳에 멈추었다.
그 사나이들은 모두 탄식을 하면서 생각했다.
(이 계집애는 의심도 많구나. 저런 늙은이도 놔주질 않으니.)
소어아는 아무일도 모르는 듯 마굿간에 가서 그 변장한 말을 끌
고 나오더니 중얼거렸다.
"말아! 마누라가 병에 걸렸으니 서둘러 가줘야겠다."
철심난의 눈은 빛을 잃었다. 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소어아가
말에게까지도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다니, 그녀는 그를 꼬집어 뜯
고 싶었다.
잠시 후 소어아와 철심난은 한길을 걷고 있었다. 철심난은 자기
가 어떻게 걸어 나왔는지도 몰랐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정신없이 소어아에 의해 말을 타게 되었고 소어아는 말
을 끌며 천천히 걸어 나왔던 것이다.
"하느님 ! 제발 부탁이니 빨리 가주시오!"
철심난이 속삭였다. 소어아가 그녀를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말
고삐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절대로 빨리 가선 안 돼. 그놈들이 뒤에서 보고 있을지도 몰
라. 빨리 가면 들통이 나버려...... 이 밤하늘의 별들을 봐, 얼마
나 아름다운가! 이렇게 천천히 걸어가며 별들을 감상하는 것도 낭
만적인일이야."
그는 정말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철심난은 길게 탄
식을 하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
눈앞에 황야가 나타났다. 불빛은 그들과 점점 멀어졌다.
철심난이 그제서야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쓴 웃음을 띠었다.
"너의 마음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어."
"마음? 난 모든 것이 있지만 마음만은 없어!"
"만약 소선녀가 그 칼을 내려쳤다면 네 목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같아?"
"그러나 난 이미 그녀가 단지 나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녀가 만약 정말 눈치챘다면 어찌 남의 칼을 빌리겠어?"
"그렇지......그토록 위험한 순간에도 그런 것까지 생각할 수
있다니 정말 괴인이군. 넌 이제까지 두려움을 모르고 자랐니?"
"내가 두려움을 모르는줄 알아? 사실 나도 무척이나 두려웠지.
오직 미친 사람이나 백치만이 두려워 하지를 않아."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어디로 가도 상관은 없어. 다만 너의 병이......."
"난 식은 땀을 홀린 뒤 몸이 많이 좋아졌어. 손발에도 기운이
생기니 이상하지?"
"걸을 수도 있단 말이지?"
"그럼! 믿지 못 하겠다면 말에서 내릴까?"
"좋아, 말에서 내려라. 이제 나도 가야겠어."
"너......너......무슨 말이지?"
"우리는 벌써 헤어졌잖아? 다만 네가 병이 났기 때문에 너를 돌
보았던 것이야. 이젠 병이 나았으니 우리는 물론 각자의 길을 가
야지."
철심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조금 전 소선녀를 만났을 때보다
도 더욱 창백했다. 그녀의 몸이 떨리면서 눈물이 떨어졌다.
"너......넌 정말......정말이야?"
"물론 정말이지. 너는 나에게 물건을 주고, 나도 너의 목숨을
구했으니 우리는 서로 빛이 없게 되었어."
"너는 어떻게...... 그렇게...... 너......너의 심장은 개라도
먹었단말이야?"
"이번에는 네가 제대로 알아 맞추었구나."
그녀는 돌연 손을 들어 소어아의 따귀를 올려부쳤다.
소어아는 움직이지도 않고 그녀의 일격을 받았다.
"다행히 나의 심장은 개가 먹어 버렸어. 정말 그 개에게 감사를
드려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남자의 마음은 여자에게 잡히게 되지.
차라리 개에게 먹힌 게 좋아."
철심난은 그의 뺨을 올려부치고 나서 땅에 쓰러져 통곡을 하듯
소리쳤다.
"너는 사람이 아냐, 사람이 아냐.....넌 사람이 아냐!"
소어아는 그녀를 끌어 안아 일으켰다.
"안녕......나는 네 말대로 사람이 아니다. 여인의 눈물에 녹을
사람이 아냐. 나......."
이때 한 사람의 싸늘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과연 너는 사람이 아니야. 귀신같이 영리해!"
얻어맞은 재주도 재주
이 말소리는 싸늘하고 아름다웠다. 분명히 소선녀의 목소리였
다.
철심난의 울음소리는 즉각 끊어졌다. 소어아도 비록 놀라긴 했
으나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딴전을 피우기 시작했다.
"여보, 무엇 때문에 우는 거야, 죽지는 않을 데니 빨리 가서 의
사를 찾아야지. 더 늦으면 문을 닫겠어!"
소선녀의 싸늘한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젠 할 말을 다 했는가? 그렇지! 확실히 넌 지금 당장에 의사
를 찾아가야겠지만 세상의 어떤 의사도 너를 구하지는 못 해!"
소어아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일줄 몰랐다. 철심난은 그대로 땅
에 누워버렸고 고개도 들지를 못 했다.
소선녀가 다시 말했다.
"또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소어아는 고개를 돌리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드디어 탄로가 났구나! 그러나 네가 어떻게 알아챘는지
말해 줄 수는 있겠지?"
"내가 그 칼을 휘두를 때 지른 소리는 귀머거리라도 들을 수 있
었다. 늙은이라면 벌써 놀라 땅에 쓰러졌어야 했지 어찌 태연히
계속 걸을 수가 있었겠어?"
소어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군, 너는 과연 영리한 여자야."
"넌 그걸 너무 늦게 알았어."
"그러나 너무 으시대지 마라. 너도 한참 동안 속았어. 늦게야
그 사실을 알아챘지."
소선녀는 화를 내지도 않고 그저 웃으며 얘기했다.
"정말로 네가 영리하다면 지금도 달아날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탠데, 만약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그 머리는 쓸데가 없는 것
이니 일찌감치 잘라 버리는 게 좋지."
"무엇 때문에 방법을 생각하지? 넌 정말 내가 이대로 너에게 패
할 것 같아? 난 다만 싸우고 싶지가 않아. 옛 말에도 남자는 여자
와 싸우지 말라고 했어......."
그가 말을 하는 동안에 소선녀는 손을 뻗으며 그의 앞까지 다가
왔다. 이 수법은 보기엔 평범해도 매우 빨라서 불가사의 했다.
소어아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그녀를 쳐다보며 경계를 하고 있
었다. 그러나 그녀가 너무나도 빠르게 일장을 가하자 미처 피할
사이가 없었다.
그는 몸에다 힘을 주었다. 얼굴에 세 개의 그림자가 번쩍했는데
불같이 뜨겁고 아팠다.
소선녀의 손이 두번째 공격을 했다. 이때 소어아가 외쳤다.
"멈추어라. 남자는 여자와 싸우지를 않으니 멈추어라!"
그가 큰소리를 쳤는데도 소선녀는 무시하고 공격을 계속했다.
그녀는 확실히 이 나쁜 자식을 죽도록 미워하기 때문에 무서운 안
색을 하고 순식간에 이삼십장을 계속 쳤다.
소어아는 맞으면서도 유심히 살폈지만 그녀의 수법에 무슨 기묘
한 점이 있는 것은 발견하지 못 했다. 분명 피할 수 있을 것 같았
다.
그러나 그는 몇십 가지의 신법을 펼쳐 보았으나 한 번도 반격을
할 기회를 얻지 못 했다. 그는 계속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철심난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고개를 들어 이들의 격
투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소선녀의 신법과 수법을 알 수가 없었
다.
그녀는 다만 하나의 빨간 그림자처럼 움직였고 그 두 개의 하얀
손은 하나의 백선으로 변해서 눈에 보였다. 이 하얀 선은 빨간 그
림자 속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하나의 채찍으로 변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평생 이토록 빠른 장법을 보지 못 했다.
소어아는 그녀가 몇십 개의 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한손을 피하면 곧 다른 손이 다가오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얼마 지나자 소어아의 눈앞은 모두가 흰색으로만 보였다. 그는
돌연 큰소리로 외쳤다.
"멈추어라, 멈추어라! 너는 이미 내게 중독이 돼 있어.
너......."
그는 다시 계책을 사용하려 했으나 소선녀는 그의 말을 들은 척
도 하지 않았다.
소어아는 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넌 나의 독약이 얼마나 무서운지나 알고 있냐?"
"나의 손에는 천하의 어느 누구도 독수를 가할 수가 없어. 더군
다나 너 같은 자식이 나를 속이려고 하는 것은 꿈이야!"
"거짓말이 아냐. 나......."
돌연 '팍' 하는 소리가 나면서 얼굴에 따귀를 맞은 그는 한장
밖으로 날아가서 뒹굴었다.
철심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아! 강어, 소어야........"
그러나 소어아는 다시 벌떡 일어나 입가에 번진 피를 닦으면서
빙그레 웃었다.
"안심해, 그녀는 나를 죽이지 못 할 거야. 나를 죽이지 못 하면
난 꼭 그녀를 쓰러뜨릴 수 있어!"
"좋아, 너의 뼈가 얼마나 튼튼한가 좀 봐야겠다"
그녀는 말을 마치자 몸을 다시 날려 일곱장을 가했다.
그렇다. 그녀의 장법은 이상하지도 않고 악독하지도 않았다. 오
직 너무 빨라서 상대방을 숨도 쉬지 못 하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반격을 하지 못 하는데 어찌 그녀를 이길 수 있으랴!
소어아는 이를 악물며 어떻든 간에 그녀에게 반격을 해야 한다
고 다짐했다. 곰곰이 살피던 그는 소선녀의 장법에 결점이 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는 급히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의 일격이 도달하기도 전에 소선녀는 이미 그 결점을 보완했다.
그때 소어아는 이미 배에 일장을 얻어 맞은 뒤였다.
소어아는 일격을 맞자 뒤로 일곱 여덟 걸음이나 물러 선 뒤 땅
에 쓰러졌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 할 것 같다.
철심난은 애걸을 했다.
"그만. 그만. 물건을 그녀에게 주어요."
그러나 소어아는 즉각 땅에서 다시 튀어 일어섰다. 비록 얼굴은
새파랗지만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죽이면 몰라도 그렇기 전에는 절대로 안 돼!"
소어아는 비록 악인곡에서 잔뼈가 굵었으나 그의 정신적인 지주
는 연남천과 만춘류였다. 그래서 그의 본심은 행동처럼 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단 유사시에는 그의 말과 행동이 더없이 끈질기
고 거칠어지는 것이다.
소선녀는 노했다.
"내가 너를 못 죽일 것 같으냐?"
이 말을 내뱉듯 하더니 그녀는 다시 대여섯장을 가하였다. 그녀
의 공격은 마치 도끼로 나무를 내려치듯 하였다. 소어아는 피를
토하며 바닥을 굴렀다.
철심난은 놀란 토끼 눈으로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만 둬 부탁이니...... 너는 그녀를 이기지 못 해. 그녀는 너
무빨라!"
그러나 소어아는 여전히 다시 일어섰다. 그는 비록 고통스러웠
으나 입가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나를 죽이지 못 하는 거야......
손을 너무 빨리 쓰면 위력이 없다는 것도 모르냐?"
소선녀의 안색이 변하였다. 이 자식이 이토록 고집이 강한줄은
미처 몰랐다. 사실 그녀는 결코 가볍게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그
런데 위력이 없다니 어이가 없었다. 소선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말
했다.
"좋아, 네 몸이 단단한 것은 인정하나 어느 정도인지 보자!"
그녀는 싸울수록 신법이 빨라졌다. 그와 비례해서 소어아는 점
점 느려졌다.
그는 다시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고, 다시 쓰러졌다. 다시 일어
나면서........
철심난의 얼굴은 온통 눈물 투성이었다. 그녀는 애걸했다.
"소선녀, 그를 놔 줘요. 그는 지쳤어요."
소어아가 다시 일어서며 소리쳤다.
"개소리! 누가 지쳤다는 거야! 그녀가 한 만큼 나도 돌려줘야
해!"
"넌 지금 꿈을 꾸고 있구나!"
소어아는 간신히 기어 일어났다가 일장을 맞고 다시 털퍼덕 쓰
러졌다.
그는 땅바닥을 집고는 여전히 또 일어서려 안간힘을 썼다.
그녀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네가 순순히 항복을 한다면 너를 용서해 주겠다."
"개소리! 누가 너의 용서를 바란다고 했나. 너의 용서를 바란다
고? 흥, 나는 너의 옷을 벗기고 너를 나무에 매달아 놓은 다음 맞
은 만큼 때리겠다."
말을 하면서 비틀비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소선녀는 이번에는 달려가며 몸을 날려 발로 그를 차버렸다.
철심난은 이미 눈을 감고 더 이상 보지를 않았다. 그녀는 창자
가 끊어질 것 같았고 가슴은 갈갈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소어아는 땅에 엎드려서 거치른 숨을 내쉬다가 드디어는 움직이
지를 못 했다.
소선녀의 입에서도 거치른 호흡이 흘러 나왔다.
"자식! 나쁜 놈! 깡패! 넌 설 수 있느냐? 다시 싸울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러자 소어아의 죽은 듯 꼽짝않던 양 손이 땅의 풀포기를 잡았
다. 서서히 기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야말로 나별 년이고 깡패야. 너.....넌 강도이기도 하
고......."
"네가 감히 나를 모욕해!"
그녀는 다시 달려가서 그의 몸을 차버렸다. 동시에 철심난의 악
쓰는 소리가 들렸다.
"너......너......악독하구나. 사람이 땅에 누워 있는데도 손을
쓰다니 !"
"이 자식이 감히 나를 욕해!"
"그래! 나는 너를 욕한다. 너는 재물을 보면 눈이 멀고 나쁜 일
만 하고 너는 사람을 풀처럼 베고 너......너 이 되먹지 못 한 계
집애야!"
소어아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욕설을 그치지
않았다.
소선녀는 분해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그의 가슴을
밟으면서 말했다.
"좋아, 욕해라 욕해...... 너에게 영원히 욕을 못 하게 해주지.
난 너를 죽일 생각은 없었으나 이건 네가 원하는 것이니
난......."
그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일격을 가하려고 했다. 그러자 철심난
은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눈을 감아버렸다.
바로 이때 소어아가 돌연 소선녀의 발을 안아버렸다. 어디서 나
온 힘인지 모르지만 그는 소선녀의 몸을 던지면서 한 발로 소선녀
의 허리를 걷어찼다.
소선녀는 죽어가던 사람이 이처럼 무서운 반격을 할 줄은 꿈에
도 생각지 못 했기 때문에 당황해 하는 순간 허리의 급소를 맞고
쓰러졌다.
소어아는 달려가서 그녀의 몸을 누르자 두 손으로 쉬지 않고 스
물한 개의 혈도를 모조리 점해 버렸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철심난은 놀라고도 기뻐서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소어아! 너.....넌 어찌된 일이야?"
"벌써 말했지만 그녀는 나를 죽이지 못 해...... 나의 몸은 약
물에서 컸지. 남들이 젖을 먹을 때부터 난 약을 먹기 시작했
어.......그녀 생만 아니라 그녀보다 열 배나 더 무서운 사람이라
도 나를 일어나지 못 하게 할 수는 없어!"
"그러나 너......방금 넌......."
소어아는 크게 웃으면서 그녀의 말을 받았다.
"내가 쓰러지며 괴로워했던 것은 그녀를 속이려는 계략이었어.
그래야 그녀가 경계를 하지 않지. 고의로 욕해서 그녀의 화를 돋
구고 머리를 어지럽게 해서 내 손아귀에 넣은 거야."
"정말 무사해?"
"나의 뼈는 강철과 같아. 그녀의 연한 손이 나를 다치게 할 수
있을 것 같애? 그녀의 주먹도 내 몸에는 마치 솜과 같지."
그러나 이 솜의 탄력은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입으로는 이
렇게 호탕하게 말을 하고 있었으나 몸을 움직이면 도처가 아픈 것
을 느꼈고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그는 소선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제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소선녀는 눈을 감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소어아는 크게 웃으면
서 말했다.
"울어야 할 필요는 없어. 내가 말했잖아. 네가 나를 때리면 나
도 그만큼 반격한다고, 조금도 틀림이 없이......"
말을 하면서 그는 이미 공격을 시도했다. 그는 계속 네 번을 후
려쳤다.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소선녀는 눈을 감으면서 이를 악물었다. 소어아의 이야기가 계
속 되었다.
"네가 용서를 빈다면 몇 대 맞을 것을 줄여주지!"
소선녀는 돌연 소리를 쳤다.
"너 이 악적 ! 나를 죽여라!"
소어아의 손이 그녀의 따귀를 후려쳐서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때 철심난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녀를 용서해 줘요."
"그녀를 용서해? 왜 내가 그녀를 용서하지? 내가 말을 했잖아.
그녀의 옷을 벗기고 그녀를 나무에 매달겠다고......."
소선녀의 목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네가 감히! 네가 정말이라면 난......난 죽어도 너를 용서 못
할거야!"
"네가 살아있을 때에도 두렵지 않았는데 더군다나 죽는다면?"
그는 소선녀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를 앞으로 당겼다. 우선 넉
대의 따귀를 때린 후에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본전도 안 된다. 이번엔 이자도 붙여주마."
"너......넌 악독하구나......."
"내가 악독하다고? 네 자신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 넌 남이 악
독한 것만 알고 네가 얼마나 악독한 지는 모르는 모양이지?"
그는 말을 하면서도 분해서 소선녀의 옷을 찢어버렸다.
소선녀는 어깨가 드러났다. 그녀는 소리쳤다.
"이 개 같은 악마......."
그녀는 생각나는 데로 아무 말이나 욕설을 퍼부었다. 소어아가
듣고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네가 욕을 잘 한다면 좀 들어줄 수도 있지. 재미도 있을 테고.
하지만 너는 너무 욕하는 기술이 없으니 너의 입을 막을 수밖에
없다."
그는 땅에서 흙을 한 움큼 집어들어 정말 소선녀의 입을 틀어막
으려고 했다.
소선녀는 두려웠던지 통곡을 했다. 아무리 소선녀라도 스물한
개의 혈도가 점해진 지금, 뾰족한 도리가 있을 수 없었다.
"제발 부탁이오...... 나를 용서하시오......나를 용서하시
오......."
"좋아, 드디어 나에게 용서를 비는구나. 그걸 잊지 마라."
소선녀도 필경은 여자였다. 그녀는 크게 울어버렸다. 그녀는 나
이도 어렸고 처음으로 이런 고통을 당했다. 그녀는 비로소 두려움
을 배운 것이다.
소어아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용서를 해주지."
그는 소선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불렀다.
"소백채...... 소백채....."
소어아는 웃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채형, 이번엔 수고가 많았어. 우리 두 사람을 또 좀 태워다
줘. 얼마 가면 좋은 음식도 사주고 차도 대접하겠으니."
그는 철심난을 말에 태우고 자기도 올라탔다. 말은 비록 작아도
기운이 있었다.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달려갔다.
"소선녀! 안녕..... 음,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지!"
그는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통곡을 하고 있는 소선녀를 뒤로 두
고 떠났다.
소선녀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멀리 떠나왔다. 그리고
나서도 얼마가 지났을까? 철심난의 가벼운 탄식 소리가 새어 나왔
다.
"너야말로 정말 장청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이야."
"그녀가 나를 만나게 된 것은 그녀의 불행이지."
철심난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조용히 입을 땠다.
"네가 그토록 악착 같고 죽음 같은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줄은
정말 몰랐어."
"아! 그래, 난 나쁜 놈인지도 몰라. 그러나 못난 놈은 아니야!
남들이 날더러 다른 것을 요구한다면 쉬울지 몰라도 그러나 나에
게 용서를 빌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은 같은 달빛이 그들의 그림자를 땅에 비추고 있다. 그들의 그
림자는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다시 한참 후 철심난이 생각난 듯 말했다.
"너는 소선녀 장청이 왜 나의 보물지도를 빼앗으려고 했는지 알
고 있어?"
"욕심 때문이겠지?"
"그건 틀린 생각이야. 그녀는 수단이 악독해도 나쁜 사람은 결
코 아니야."
그녀가 좋은 사람이란 말이야? 좋은 사람은 너를 죽일려고 하고
나쁜 사람은 너를 구할려고 하니 이거 재미있는 일인데!"
"사실 얘기지만, 그녀가 보물지도를 얻고자 하는 것은 자기 어
머니 때문이야. 그녀의 어머니는 보물을 감춘 사람과 밀접한 관계
가 있어."
"그래, 그녀의 손이 그토록 매서우니 그 어머니는 알만하겠군!"
철심난은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웃었다.
"그의 어머님은 무섭지 않아. 옛날엔 강호에서 유명한 미인이었
어. 그녀를 본 남자들은 모두 그녀에게 유혹되어 죽고 말았지."
"그런 사람이라면 만나 보고 싶은 걸."
"애석하게도 네가 몇 년을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녀는 이미
늙었어. 그러나 아직도 강호의 늙은 사람들은 옥랑자 장삼랑의 이
름 석 자만 들으면 가슴이 뛰지."
"너는 왜 그녀가 몇 년 일찍 태어났기 때문에 나를 만나지 못
한것이 안타까운 일이라고는 말하지 않지? 그럼 소선녀의 아버지
는 또 어떤 인물이야?"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그렇지, 미인들의 자녀는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찾지 못 하
지. 아버지 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그런 소리 말아요. 그 장옥랑은 비록 예쁘게 생겼어도 얼음처
럼 차가워요. 강호에서 그녀를 쫓는 남자는 수없이 많았지만 그녀
가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어요."
"누가 그런 복이 있었지?"
철심난의 목소리에는 어느덧 경어가 섞여 있었다.
"바로 보물을 감춘 분인 연남천이셔."
소어아는 자신의 목소리가 약간 떨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남천!"
"이 이름을 들어 봤어?"
"글쎄........ 들어본 것 같기도 해."
"앞으론 잘 기억해 둬. 그는 과거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검객이
었고 그의 검법을 따를 사람은 없었어."
"음."
"그는 비록 얼굴이 잘 생기지는 않았어도 강호에서는 가장 사나
이다운 사나이였대. 다만 내가 몇 년을 늦게 태어나서 그를 보지
못 한 거지."
소어아는 섭섭해하는 철심난을 보며 이런 말을 던졌다.
"내가 그 사람을 찾게끔 도와줄까?"
철심난은 너무나 거리가 먼 말로 들렸던지 탄식을 했다.
"넌 그 사람을 찾지 못 해. 어느 누구도 그를 찾지는 못 하지.
강호에 전하는 말로는 십수년 전에 웬일인지 악인곡으로 들어간
후 다시는 볼 수 없었데. 비록 그의 검법이 천하무적이라도 많은
악인을 만났기 때문에 아마...... 속임수에 빠져 죽었을 거야."
철심난의 말이 계속되었다.
"이 보물지도는 고가 곡에 들어가기 전에 남겨 놓았다고 하는
데, 그가 평시에 아끼던 보물과 그의 절세의 검보를 모두 은밀한
곳에 감추어 두었대. 이 지도만 있으면 그 보물과 검보를 찾을 수
있는 거지."
소어아는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물보다 그 검보는 무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군침을 삼키게 하겠는 걸. 검보를 얻은 사람은 천하무적이 될 테
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빼앗으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구
나!"
"그러나 소선녀는 그 검보 때문이 아니고 어머님을 위로하기 위
해서......."
그녀는 말을 하다가 돌연 놀라 몸을 떨며 어쩔 줄을 몰랐다.
"봐! 이거......이거......."
"난 벌써 봤어. 우리 두 사람 외에 그림자 하나가 많아졌어."
땅 위에는 과연 하나의 그림자가 더 있었다. 소어아의 몸 뒤로
마치 말 엉덩이에 붙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말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 했는지 계속 달리기만 했다.
소어아는 냉정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철심난은 당황하면서 소
어아의 손을 잡고 급히 말고삐를 당겼다. 말은 놀라 앞발을 들고
일어 섰고 철심난은 그 바람에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한 사람이 싸늘하게 말했다.
"무엇이 두려우냐! 내가 너희들을 죽이려고 했다면 벌써 손을
썼을 거야."
소어아도 업을 열었다.
"내가 무서워 한다면 벌써 말에서 뛰어내렸을 거다"
그 소리는 껄껄 웃더니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너는 재미있어, 벌써부터 네가 재미있는 줄 알고 친구
가 되고 싶어서 따라온 거야."
철심난이 황급히 일어서서 보니 몸이 작은 흑의인 하나가 종이
로 만든 인형처럼 가볍게 말의 엉덩이에 앉아 있었다. 그는 얼굴
역시 까만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고, 오직 두 개의 눈동자만이 빛
을 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밝게 깜박이는 그의 눈초리는 매
우 기이했고 공포의 분위기까지 자아냈다.
철심난이 물었다.
"당신은 혹 흑지주가.......?"
그 흑의인은 이상하게 웃으면서 그녀의 말을 받았다.
"맞아! 너는 날 아는군!"
"당신...... 무슨 일로 여기에 왔죠?"
"난 본래 너를 쫓아 왔었어. 그런데 이 친구를 보니 매우 재미
가 있더군. 그 보물지도보다 더욱 홍미를 느껴, 친구가 되기 위해
지도를 포기할 생각이야!"
소어아는 그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나를 보물지도보다 더 소중히 하는 사람이 있으니 마땅히 친구
로 사귀어야지...... 흑지주. 이름이 흑지주라고 했지?"
"너는 흑지주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 한 모양이지? 무식하군. 나
의 이름도 모르면서 강호를 나다녀?"
"너는 언제부터 나를 따라왔지?"
"네가 백마를 얼룩말로 바꿀 때부터 너를 쫓았지."
"이상하다. 난 모르고 있었으니."
"내가 어떤 사람의 뒤를 몰래 읽겠다고 마음 먹으면 그 사람은
내가 한 평생을 따라 다녀도 모를 것이야. 또 내가 만약 남의 눈
에 띄지 않으려 한다면 천하에 누가 나의 그림자를 볼 수 있겠
어?"
소어아는 말에서 내린 후 그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나이는 작지만 큰소리는 잘 치는구나!"
흑지주가 갑자기 노하여 소리쳤다.
"나이가 작다니?"
"너의 목소리로 알 수 있어."
흑지주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나이가 작다 해도 너에 비하면 삼촌은 될 수 있다. 그러
나 너와는 친구가 되고 싶으니 형님이라고 불러라."
- 제2권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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