绝代双骄 13

3학년2반 | 2022.02.14 07:59:29 댓글: 0 조회: 462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8672
일편단심(一片丹心)
그는 그제서야 철평고가 이화궁의 문하라는 것을 알았다.
한참 후 소어아는 중얼거렸다.
"이제 보니 철평고는 이화궁의 문하였구나. 그래서 그녀는 동굴
에서 화무결을 보자 달아났었구나. 그녀가 만약 이화궁의 문하라
면 '동 선생(銅先生)'과 '목 부인(木夫人)'은 바로 이화궁주가 분
장한 것이겠구나. 그래서 이화궁주는 화무결에게 동 선생과 목 부
인의 말을 들으라고 했구나. 그런데 이화궁주는 왜 다른 사람으로
분장을 했을까."
그러나 그로서도 그 이유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는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알
수가 없었다.
이름이 천하에 떨쳐 있는 이화궁주가 자기가 뒷간에 간 사이 기
다린 것을 생각하니 그는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돌연 도약사가 웃으며 말했다.
"묘해 묘해. 이화궁주가 막 갔는데 십대악인이 또 몇 명 왔군.
내가 보기엔 강옥랑 이 자식도 좋은 나날을 지내지는 못할 것이
야."
소어아는 그의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마 동안 그들
의 말을 듣고는 웃으며 말했다.
"불남불녀 도교교, 불흘인두 이대취, 소리장도 합합아와 손인불
이기 백개심이 왔군."
"그들과 친분이 있소?"
천하에는 나보다 더욱 그들과 가까운 사람은 없을 거요."
"그럼 지금 왜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지?"
"잠깐, 난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야겠소."
위무아의 귀빈이 강별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소어아는 다시
놀랐다.
그제서야 그가 중상을 입었을 때에 무아동(無牙洞)을 찾아온 사
람이 바로 강별학이라는 것을 알았다. 강별학이 오지 않았다면 소
앵이 어찌 그를 구해낼 수 있었을까. 이런 것을 생각하니 소어아
는 다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도약사가 말했다.
"이상한데? 그들은 왜 몇 개의 상자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길
까?"
"사람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보물을 더욱 소중히 여기지. 죽을
때 조금의 돈도 가지고 갈 수가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야."
"그러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몇 개의 상자일 뿐이
오."
소어아는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은 빛을 내고 있었다. 한참 후 도교교가 그에 대해 언급하
는 소리가 들렸다.
그 표시들은 그들이 자신을 유인하기 위해 설치한 함정이라는
것을 듣자 소어아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그
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과연 소앵이 생각한 그대로군. 너희들도 나의 목숨을 앗아가려
하는구나. 그러나 난 너희들의 목숨을 앗아갈 생각이 없다는 걸
아느냐?"
그는 탄식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쁜 듯이 웃으며 말했다.
"다만 내가 죽은 후 도교교의 눈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소어아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악조건 아래에도 자기를 유쾌하
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도약사는 이런 재주가 없었다. 그는 당황했다. 지금 소어아가
그들에게 구원을 청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약 소어아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를 구하
지 않을 뿐 아니라 어쩌면 동굴 속으로 돌을 던질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소어아는 그런 모험을 할 수가 없었다.
도약사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소어아가 그의 어깨를 치며 위로를 했다.
"안심해. 그들이 나를 구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필시 나를 구
할테니까."
도약사는 귀가 번쩍 트였다.
"누군데?"
소어아는 웃으며 말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도약사는 더 묻고 싶었지만 이때 밖에서 소앵의 소리가 들려왔
기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들은 후 도약사는 참을 수가 없어 탄식했
다.
"소 아가씨는 당신에게 일편단심이군요. 당신은 저런 사랑을 받
으니 정말 좋겠소."
"그것이 복이라고 생각된다면 너에게 넘겨주겠어."
"소 아가씨가 정말 올라올 것 같소?"
"그녀는 올라오겠다고 했으니 필시 올라올 것이오."
"하지만 그녀가 무슨 방법으로 올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요."
소어아는 쓴웃음을 보였다.
"그녀가 어떻게 올라올 수 있을지를 알 수 있을 정도의 머리면
우리가 이대로 있지는 않을 거야."
돌연 철평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 아가씨, 이 석벽은 너무 미끄러워서 올라가지를 못하오."
그 외침소리와 동시에 '아야'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필시
소앵이 기어오르다가 떨어졌을 것이다.
잠시 후 철평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소 아가씨, 너무 무모해요. 그 위의 돌은 칼날 같아서 신발을
벗으면 다치기가 쉬워요."
그녀는 소앵을 매우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소앵이 아주 어렵게
기어오르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소어아는 탄식을 하며 말했다.
"그녀의 발은 하얗고 연약한데 만약 찢어진다면 매우 애석한 일
이야."
도약사도 탄식을 했다.
"그녀의 연약한 모습으로는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하지만 그녀 같이 영리한 사람이 그런 바보 같은 방법을 이용
하다니 정말 실망했는데!"
"그녀가 사용하는 방법이 바보 같을수록 당신에게 향하는 마음
이 크다는 증거요. 당신도 여기서 그녀를 불러 용기를 주어야 되
지 않겠소?"
"내가 왜 용기를 주지? 이건 그녀가 스스로 택해서 하는 고생이
야. 저런 계집애는 병신이야. 올라올 수 있다 해도 우리를 구하지
는 못할 걸."
도약사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말했다.
"어형이 이렇게 하는 것은 소 아가씨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오?"
"너는 너무 나의 양심을 좋게 보는 것 같은데?"
"어형은 말은 비록 차갑게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소."
이때 밖에서 철평고의 비명 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것으로 보아
소앵이 매우 위태롭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어아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와 그녀가 무슨 맹세를 했기에 그녀는 목숨을 걸고 나를 찾
으려는 것일까?"
도약사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한 여자가 남자에 대해 정이 생기면 이유가 필요 없소. 더군다
나 여인들의 그러한 마음은 남자들은 영원히 알 수가 없소."
"그렇지, 여자를 만나면 나만 불행해질 뿐이야."
이때 다시 철평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그 뒤를 이어 소
앵이 큰 소리로 말했다.
"소어아, 나는 당신을 찾으러 왔는데 들려요?"
이 말소리는 동굴의 입구에서 부르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메
아리가 되어 그 굴 속을 돌고 돌면서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얼마
나 크게 진동하는지 귀가 다 멍멍할 정도였다.
소앵이 기어코 기어 올라온 것이다.
도약사가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소어아는 그의 입을 막으며 조용
히 말했다.
"절대로 그녀에게 대답을 해서는 안 돼. 그렇게 되면 그녀는 뛰
어내릴 거야!"
그는 이미 소앵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여자는 무슨 일을
하기로 결심을 하면 꼭 하고야 마는 성미였던 것이다.
소앵의 얼굴이 동굴 속으로 드리 밀어졌으나 동굴이 너무 깊고
광선이 어두워 소어아는 그녀를 볼 수 있었지만 그녀는 소어아를
볼 수 없었다.
소어아는 그녀의 얼굴이 찢어진 것까지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
굴은 번들거렸는데 땀인지 눈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소앵이 또 소리쳤다.
"소어아, 왜 나의 말에 대답을 안 하지요? 당신은 죽었나요? 당
신...... 당신 쓸모가 없어요. 심지어 강옥랑 같은 짐승도 당신을
죽일 수 있으니 창피하지도 않아요?"
소어아는 도약사의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그녀는 작전으로 나에게 말하려 하는 것이야. 속지 말아야지."
소앵의 소리는 계속 되었다.
"소어아, 내가 고생하여 당신을 구했는데, 그렇게 쉽게 죽다니
어찌 나에게 면목이 있겠어요. 너무 나를 실망케 만들었어요."
소어아는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소앵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도약사가 평상시 그녀의 행동을 보았을 때는 무슨 일을 당해도
매우 침착했다. 그러한 그녀가 어린애처럼 울다니!
철평고의 목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한번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못해요. 이제 울음을 그쳐
요."
그녀는 자신의 처지도 잊고 위로하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당신이 방금 말했잖아요.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욱 비참한 사람
들이 많다구요. 나도 울지 않는데 당신이 왜 그렇게 슬피 울어서
야 되겠어요?"
소앵은 통곡을 하면서 말했다.
"안심해요. 나는 한번만 울고 다시는 울지 않을 거예요. 통쾌하
게 울고 난 뒤에는 다시 울지 않을테니 말리지 말아요."
소어아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들었지, 그녀는 단 한 번만 운다고...... 흐흐, 단 한
번......."
"만약 누가 나를 위해 단 한 번만이라도 울어준다면 난 만족하
겠소!"
한참의 시간이 흘렀으나 소앵은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고 오
히려 더욱 심하게 오열하고 있었다.
철평고가 울먹이는 소리로 위로했다.
"제발 부탁이야. 울지 말아요. 더 울면 나...... 나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도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앵이 돌연 울음을 그치며 말했다.
"내가 부탁할 일이 있어요."
"무...... 무슨 일이오?"
"돌을 던져 동굴을 가득 메꿔줘요. 우리를 아무도 괴롭히지 못
하게."
"우리라니요? 그럼 당신도 죽겠다는 말이에요?"
"음."
"당...... 당신이 왜 죽어? 당신은 소어아와 아무런 맹세도 하
지 않았는데 왜 그를 위해 죽으려는 것이지요?"
"갑자기 살아갈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도약사는 가만히 소어아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어형, 어째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소."
소어아도 탄식을 했다.
"그녀가 정말 죽을 것 같소? 그녀는 다만 철평고를 놀라게 해
동정을 얻으려는 수작이오."
"그러나 그녀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평고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소앵은 이미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소어아는 정말 놀랐다. 그는 그녀를 공중에서 잡으려고 급히 뛰
어 올랐으나 소앵의 몸이 너무 빠른 속도로 떨어졌기 때문에 받아
내지를 못했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모두 물 속으
로 떨어져버렸다.
그는 곧 소앵을 안고 돌 위로 뛰어 올랐다.
도약사가 빙그레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일부러 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소."
소어아는 탄식을 하며 쓴웃음을 보였다.
"이 계집애는 정말 다른 여자들과는 틀려. 난 그녀가 정말 여자
인지 연구를 해봐야겠소!"
그는 필시 소앵도 졸도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계집애의 몸은 봄날의 복숭아 꽃보다 더욱 부드러웠
지만 신경은 눈보라 속의 늙은 대나무보다도 더욱 강건했다. 그녀
는 까물어 치지 않았고 유쾌한 듯 웃었다. 그녀는 한쌍의 큰 눈으
로 소어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어아는 놀라서 소앵을 돌 위에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물어보겠는데 너는 도대체 무슨 뜻에서 이와 같은 행동을
했느냐? 나는 너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왜 나를 위해 죽으려고
했지? 나에게 감격의 인사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래서 한평생 노
예가 되어 달란 말이냐?"
"나의 노예가 되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남편이 되어달라는
거예요."
소어아는 또 한번 크게 놀랐다. 그는 손가락으로 소앵을 가리키
면서 도약사에게 말했다.
"들었어? 이 계집애가 한 말을 들었냔 말이야."
도약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모두 들었소."
"이런 철면피 같은 여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거야."
"하여튼 간에 난 당신을 다시 보게 되었으니 행복해요."
소앵의 앵두같은 입술이 떨리면서 나온 말이었다.
소어아는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돌연 탄식을 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이상하다! 이상해!"
소앵은 부드러운 손으로 자기의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물었다.
"무엇이 이상해요?"
"왜 나 같은 남자를 위해 목숨을 걸려고 하는 것인지 나는 너를
보면 골치가 아픈데."
"당신은 겉으로는 날보면 골치가 아프다고 하지만 마음 속으로
는 좋아할 거예요.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왜 그렇게 급히
나를 구하려 애썼어요?"
소어아는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개가 한 마리 떨어진다 해도 구하려 했을 거야."
"난 당신이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지 알아요. 일부러 냉정하
고 무시하는 말을 하는 것은 마음이 두려워서예요. 난 절대로 화
를 내지 않을 거예요."
"내가 두려워한다고? 내가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이냐?"
"내가 당신을 쥐고 흔들게 될까봐서 또한 나를 미치도록 사랑하
게 될까 봐, 그런 식으로 자기를 보호할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
부로 무정한 사람 같은 행세를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당신
이 정말 무정한 사람이라면 눈에 드러나게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
을 거예요."
그녀는 미소를 보이며 계속 말했다.
"강옥랑 같은 사람은 이렇게 하지 않을 걸요."
소어아는 고개를 몇 번 갸우뚱 거리며 웃었다.
"그럼 다시 물어 보겠는데 나는 왜 남에게 무정한 사람으로 보
이려 하지? 무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영광된 일도 아닌데."
"그건 당신의 감정이 너무 풍부해서 그런 거예요. 감정이 풍부
한 사람은 괴로움을 당하지요.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거예
요."
"별 되지 못한 소리를 다 들어보는구나."
"자기의 속마음이 탄로나면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인지상정이
지요."
소어아는 펄쩍 날뛰며 말했다.
"개소리, 정말 개소리야."
"자기의 속마음이 탄로나면 화를 내기 마련이니, 나를 욕해도
이해를 하겠어요."
소어아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느님이여! 나에게 어찌 이런 여자를 만나게 하셨습니까?"
그는 자기의 머리를 두드렸다.
"끝났어. 난 정말 끝장이 났어. 한 남자가 만약 이런 여자를 만
나면 중이 될 수밖에 없지!"
"그럼 세상에는 술과 고기를 먹는 중과 여승이 많아지게 되겠지
요."
"술과 고기를 먹는 중과 여승이라고?"
"만약 당신이 중이 된다면 나도 여승이 되지 않겠어요? 세상에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중만 있고 여승은 없으란 법이 있어요?"
소어아는 신음소리를 내며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도약사는 배가 터질 정도로 우스웠지만 입술을 씰룩거리며 참아
야 했다.
(소어아가 평시에도 희안한 말로 남의 속을 뒤집어 놓더니 오늘
에야 제대로 상대를 만났군.)
소어아는 물 속에 들어가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마치 죽는
한이 있어도 소앵을 보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소앵은 그를 상관하지도 않고 도약사에게 말했다.
"당신은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겠지요?"
도약사는 웃음을 참으며 '음' 하며 짧은 신음 같은 대답을 했
다.
소앵이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찌 내가 발을 씻던 물에서도
더럽다고 여기지 않고 가만히 있겠어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어아가 뛰쳐 나왔다.
사람이 올라설만한 곳이라고는 그들이 앉아있는 바위 하나뿐이
었기 때문에 소어아는 그녀의 옆에 앉지 않으면 다시 물 속에 잠
겨 있어야 했다.
다시 소앵이 말했다.
"얌전히 내옆에 앉아요. 물어볼 말이 많으니까요."
소어아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옆에
얌전히 앉았다.
"무슨 물어볼 말이 있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면서 어찌 강옥랑에게
당했지요?"
"내가 속는 것을 좋아하는 데 네가 무슨 참견이냐?"
"난 당신이 절대로 그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
을 알아요. 그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녀는 확실히 영리했다. 이미 소어아의 심사를 많이 긁어놨기
때문에 더 이상 나가다간 오히려 역효과를 얻게 될까봐 그를 추켜
주었던 것이다.
남자들은 너무 부드러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때때로는 못
된 성질을 좋아한다. 다만 세상의 많은 여자들은 언제 남자를 화
나게 해야하고 언제 그만 두어야 할지를 모른다. 만약 세상 여자
들이 모두 소앵과 같다면 남자들은 여자의 포로로 초라한 삶을 살
아야 할 것이다. 소어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어. 이번에 난 확실히 당했지. 때때로
는 남에게 당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야."
소앵은 그의 화가 점점 가라앉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더욱 부
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이상한 것은 강옥랑 같은 자식이 어떻게
소어아 같은 영리한 사람을 속였을까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도약사에게 물었다.
"이 일은 당신이 알고 있을 테니 말해 보세요."
"화무결부터 이야기를 해야되지. 그가........"
그는 '여아홍'까지 이야기를 했다. 소앵은 그 소리를 듣자 놀라
서 소리쳤다.
"정말 그 '여아홍'을 먹었나요?"
도약사는 탄식을 했다.
"물론, 정말로 먹었소. 그 독초를 먹었기 때문에 강옥랑이 그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 했었소. 그러나 결국은 그 자식이
이곳에 빠뜨리고 만 것이오."
그녀는 도약사의 말을 들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화무결은 벌써 가버렸고 강옥랑이 다만 거짓 계략을 쓰고 있다
는 것을 어찌 알 수가 있었겠어요!"
이때 소어아가 돌연 입을 열었다.
"난 알고 있었어."
"당신...... 알고 있었다면서 왜 그 '여아홍'을 먹었지요?"
그녀는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굴렀다.
소어아는 그녀가 애태워하는 것을 보자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 여아홍이 너무 예쁘게 생겨서 그 맛을 보고 싶었어. 그리
손쉽게 구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친
수야 있나!"
소앵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여아홍의 독성이 발작하면 얼마나 괴로운지나 알고
있나요?"
"나는 여태껏 너무 기쁘게만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한번쯤 괴로
운 나날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지."
소앵은 눈을 크게 떴다.
"당신...... 당신은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아요?"
"네가 이미 내 몫까지 애태우고 있는데 굳이 나까지 애태울 필
요가 있겠어?"
"저것은 꼭 속겠지 할때는 속지 않고 엉뚱한 때 속다니, 당신이
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소어아는 그녀의 말을 듣자 다시 크게 웃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렇게 남들이 내 속을 모르게 하는 것
이야. 만약 자기가 하는 일을 남이 다 알고 있다면 어찌 계략을
쓸 수 있겠어."
소앵은 입가에 쓴웃음을 띠웠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독초를 먹을 수가 있어요? 아무리 많은 사
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해도 당신이 죽으면 그 광경을 보지 못해
요."
"그렇게만 생각할 수도 없어. 어쩌면 내가 관 속에서 몰래 엿보
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한편 철평고는 거의 실신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며칠 동안 그녀는 너무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몸이 극히
허약해져서 어떤 자극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산 위의 바람은 갈수록 차가워졌다. 그녀의 아름다운 피부는 이
미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정신이 가물가물한 가운데 어릴 때 들었던 옛 이야기가
생각났다. 옛날 한 정녀(情女)가 자기의 몸이 남에게 더럽혀지는
것을 막기위해 혀를 물고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철평고는 벌써부터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는 자결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쉬운 자살 방법이 생각
나자 온 몸이 떨리기조차 했다.
그러나 생명은 그렇게 버리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막상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그녀는 마음이 동요되었다. 살아온 날들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화궁에서의 나날들이 생각났다. 그 오랜 세월을 그녀
는 허전하고 외롭게 보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오히
려 더 비참한 처지가 되어버렸고 이제는 결코 그런 생활로 되돌아
갈 수도 없게 된 것이다.
그녀는 소어아와 같이 보낸 동굴에서의 이틀을 마음에 떠올렸
다.
그 어두운 산굴에서는 빛도 없었고 먹을 것도 없었고 물도 없었
으며 심지어는 희망도 없었다.
그러나 소어아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기만 하면 어떤 고통도 달
콤한 것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녀는 그때 소어아와 같이 죽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그녀는 강옥랑의 일을 떠올렸다.
강옥랑은 비록 악한이었지만 그러나 귀여울 때도 있었다.
더우기 잊을 수 없는 것은 그가 따뜻한 입김으로 속삭일 때와
애무를 해 줄 때였다.
이런 사랑과 미움의 갈등으로 그녀는 차마 죽을 수가 없었던 것
이다.
철평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눈을 들어 소앵이 뛰어내린 동굴을 바라보았다.
(왜 그녀는 그토록 쉽게 죽을 수 있는데 나는 죽지를 못할까?
나는 왜 그녀와 같은 담력이 없을까? 그녀가 나보다 살아갈 이유
가 더 많을 텐데?)
철평고는 비감한 심정이 교차하는 중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세상은 죽기 싫어하면서도 쉽게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철평고는 차마 죽지 못하고 졸도해 버렸다. 그녀는 차츰 정신이
들자 무서운 가면을 보아야했다.
요월궁주(邀月宮主)는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월궁주는 무섭게 입을 열었다.
"네 남자는 도망 가버렸나?"
철평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네!"
"그는 너를 구하지 않았어!"
이 두마디는 마치 화살처럼 철평고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는 그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억제하며 말했다.
"그...... 그는 나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
"달아날 수는 있으면서 왜 너를 구하지는 못하지."
철평고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릴 필요 없어. 자업자득이니까. 너는 벌써부터 남자
라는 동물은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어. 왜 속았지?"
철평고는 돌연 큰소리로 말했다.
"남자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예요. 어떤 사람은 마음이 착하
죠."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강소어를 말하고 있어요."
요월궁주의 싸늘하던 눈초리는 돌연 불 같이 변했다. 그녀는 무
서운 목소리로 고함치다시피 소리쳤다.
"네가 사랑한 사람이 강옥랑이 아니고 그였단 말이냐?"
"그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어찌 목숨을 걸고 구했겠어요?"
요월궁주는 그녀의 따귀를 후려쳤다.
"강씨 중에는 좋은 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아느냐? 강소어아
는 그의 염치없는 애미 애비와 마찬가지야."
"내가 알기로는 그의 마음은 착해요. 그리고......."
요월궁주는 소리를 쳐 그녀의 말을 막았다.
"한마디만 더 하면 너를 죽이겠다."
"나의 입을 막고 말을 못하게 할 수는 있어도 생각을 못하게는
할 수 없어요. 그가 이미 죽었으니 당신이 나를 죽이면 어쩌면 즉
각 그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은 결코 그것까지 막지는 못할
거예요."
요월궁주는 이 말을 듣자 돌연 격렬하게 떨기 시작했다.
강풍과 화월노가 죽을 때의 상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화월노도 죽을 때 철평고와 같은 말을 했던 것이다.
더우기 요월궁주를 분노하게 한 것은 소어아가 이미 남의 손에
죽었다는 말이었다. 이십여 년 간 공을 들여 준비했던 복수가 허
무하게 끝나버리는 순간이었다.
비록 이십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의 원한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러들지 않고 더욱 깊고 강열하게 남아있었다.
그 이십 년 동안, 화월노가 죽기 전에 한 말과 강풍의 죽기 전
의 표정은 여전히 화인처럼 선명하게 그녀의 마음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 고통은 그녀를 미칠 정도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강풍의
두 아들이 언젠가는 그녀가 만든 비참한 운명에 떨어질 것을 생각
하며 위안을 삼았었다.
그녀는 화무결이 소어아를 죽이는 장면을 상상하곤 했다. 그 생
각을 해야만 그녀의 고통은 조금이라도 감소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어아가 남의 손에 죽고 말았다는 것이 아닌가!
이십 년 동안이나 이를 갈며 쌓아온 게획이 한순간에 무산되고
만 것이다. 그녀는 너무나 허망해서 넋을 잃을 정도였고 가슴 속
에서는 격렬한 분노가 불타 올랐다.
철평고는 비록 그녀의 안색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무서운 눈초
리를 볼 수가 있었다. 요월궁주는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고 몸을
나무에 기대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원통함의
눈물이었다. 천하무쌍의 이화궁주가 눈물을 흘리다니. 철평고는
그 이유를 정녕 알 수가 없었다.
얼마가 지났다. 요월궁주는 냉정을 되찾은 듯 했다.
"소어아가 정말 죽었단 말이냐?"
철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난 확실히 슬프다. 천하의 모든 사람이 다 죽어도
이토록 슬프지는 않을 거야. 이젠 어떻든 간에 그를 위해서 복수
를 해야겠어!"
요월궁주는 철평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가 그를 죽인 것은 아니에요."
"그렇겠지. 하지만 네가 그를 데리고 도망치지 않았다면 그가
어찌 남의 손에 죽을 수 있었겠느냐?"
"내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으니 나를 죽이시오!"
"너를 죽여달라고? 내가 이대로 너를 죽일 것 같으냐?"
"당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죠?"
"너에게도 이십 년간의 고통을 주겠다. 오늘부터 매우 조금씩
조금씩 너의 몸에 있는 살점을 베어 내겠다. 지금 우선 너의 한쌍
의 눈을 파내겠어. 그렇게 되면 너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되겠
지. 그 다음에는 너의 혀를 반쯤 잘라 아무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
겠다."
철평고는 물론 그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때, 돌연 산곡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활로(活路)
커다란 웃음소리와 함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어아가 그렇게 뛰어난 인물인 줄 몰랐는데. 그가 죽으면 이
화궁주까지도 슬퍼하다니!"
웃음 소리는 사방에서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요월궁주도 그 목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침착하게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부쳤다.
"어떤 사람이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가?"
그녀는 그저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내뱉았다. 그렇지만 심
오한 공력이 실린 그 말은 매우 맑고 똑똑하게 사방으로 울려퍼졌
다.
그 사람은 여전히 크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당신이 나의 목소리도 모른단 말이오? 내가 뒷간에 갔을 때 문
앞에서 냄새를 맡던 것을 잊었단 말이오?"
요월궁주의 몸이 약간 놀란 듯 움직였다.
"네가 바로 소어아냐? 너는 죽지 않았는가?"
소어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쉽사리 죽을 수 있겠소?"
소어아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듣자 철평고도 물론 놀라움과 기쁨
이 엇갈렸지만 요월궁주는 너무나도 충격을 받아 한동안 말을 하
지 못했다.
그녀는 깊은 숨을 몇 번 들이 마신 뒤에야 입을 뗄 수 있었다.
"너는 어디에 있길래 나오지 않고 숨어서 말을 하는 것이냐?"
"난 여기서 나가지를 못하기 때문에 당신이 구해주기를 바라고
있소. 당신은 필시 나를 구해주겠지?"
요월궁주는 다시 두 번이나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지 않고
서는 도저히 자신의 흥분을 감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난 너를 구하고야 말 거야."
"하지만 당신이 지금 즉시 철평고를 놓아 주지 않는다면 나는
여기서 그냥 죽겠소!"
요월궁주는 약간 놀랐다.
"네가 감히?"
"내가 왜 그렇게 못하겠소? 난 지금 죽고 싶으면 죽고 살고 싶
으면 살 수 있소. 이화궁주가 비록 하늘을 뚫는 솜씨가 있다해도
지금은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오."
그는 한바탕 호탕하게 웃고나서 계속 말을 이었다.
"난 지금에야 음양괴기(陰陽怪氣)한 동 선생이 바로 그 유명한
이화궁주라는 것을 알게 됐소. 내가 대변을 볼 때 이화궁주가 뒷
간 문 앞에서 보초를 섰으니 하늘 아래 나보다 복이 더 많은 사람
은 없을 것이오."
요월궁주는 분해서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소어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제 화무결과의 약속 시간이 다 되었으니 날 이대로 죽게 하
지는 않겠지요?"
요월궁주는 발을 동동 구르며 대답했다.
"좋아! 난 그녀를 조금도 다치지 않고 놓아 주겠다."
"당신은 지금은 그녀를 놓아 준다해도 수시로 그녀를 죽일 수가
있소."
"그럼 어떻게 해야겠는가?"
"내가 죽은 뒤라면 당신이 그녀를 죽여도 어쩔 수 없겠지만 내
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녀가 편안히 살고 있는 것을 보아야 마음이
놓이겠소."
"넌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내가 있는 산굴은 매우 깊지만 밑이 모두 물이니 누가 떨어져
도 절대로 죽진 않을 것이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요월궁주는 굴 입구를 발견하고는
철평고를 옷으로 둘둘 말아 던져버렸다.
그녀는 매우 손쉽게 철평고를 십여장(丈)의 거리에 있는 동굴
속으로 던졌다.
잠시 후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소어아의 크게 웃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묘하구나 묘해. 위대한 이화궁주가 이런 바보짓을 하다니. 이
제는 그녀를 나에게 주었으니 나는 당신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게
됐소."
요월궁주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감쪽 같이 그의 꾀에 속
아 넘어간 것이다.
소어아는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안심 하시오. 난 무척 사태에 재미를 느끼고 있으니 지
금 바로 죽고 싶지는 않소. 난 당신이 나를 구해 주도록 기회를
드리겠소."
그는 자기를 구해달라고 하는 말을 마치 이화궁주의 체면을 세
워주는 양 말했다.
요월궁주는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
"어쨌든 좋다. 이제는 네가 나올 방법을 말해 보아라."
"하지만 지금은 화무결이 여기에 있지도 않으니 내가 나간다 해
도 소용이 없지 않겠소? 당신도 나를 보기만 하면 화를 내게 될
테고, 나도 당신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니 그냥 여기에 남
아 있는 것이 더 좋겠소."
"삼개월의 기약이 다 되었어."
"그렇지요. 약속 시간이 되었으니 빨리 화무결을 찾아 오시오.
난 여기에서 기다릴 테니까."
"이곳에서 기다리겠다고?"
"이 산굴은 큰 술단지 모양이오. 당신이 밖에서 도와주지 않는
다면 결코 나가지 못할 텐데."
그는 크게 웃으며 계속 말했다.
"당신이 마음을 놓지 않는다해도 하는 수가 없소. 지금은 내가
나가고 싶지 않다면 열 명의 이화궁주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오."
깊은 구멍에 빠져 살아나갈 방법이 막연한 지경이라면 그것은
정말 큰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떠한 불행한 일이 닥쳐도 소어아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행운인 양 그는 비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이용하여 이
화궁주를 제압했다.
이화궁주는 어찌할 수가 없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화무결도 이 근처에 와 있는가?"
"그렇소. 그도 이미 여기에 와 있소. 다만 산위에 쥐가 많이 있
으니 짧은 시간 내로 그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오. 그러니 먹을
것을 좀 가져다 주시오. 내 식성은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소?"
"물론 알지."
그녀의 대답 소리와 함께 돌연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드리 나무가 분에 못 이긴 그녀의 손에 의해 꺾여져 버린 것
이다.
산굴 속의 물이 차츰 불어나며 소어아 등이 앉아 있던 돌도 이
미 탁자 크기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소어아, 도약사, 소앵과 철평고 등 네 사람은 모두 몸이 맞닿을
정도로 바싹 붙어 앉을 수밖에 없었다.
철평고는 온 몸이 젖어 계속 떨고 있었다.
그녀는 가냘픈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도약사의 곁에 앉아있고 싶지 않았지만 소앵이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와 소어아를 갈라 놓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
는 다만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도약사 역시 똑바로 앉아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그런 가냘픈 미인을 옆에 앉혀 놓고 마음이 뛰지 않는다면 그것
이 오히려 남자로서 이상할 일인 것이다.
밖에서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자 소어아는 재미있어 죽겠
다는 듯이 깔깔 웃어댔다.
그러나 소어아 이외에는 점점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감히 웃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도약사의 숨소리가 신음에 가까운 소리로 변했다. 철평
고는 입술을 깨물며 어쩔 쭐 몰라하다가 돌연 자기의 다리가 드러
나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피부에 물방울이 서려 더욱 아름다왔다. 도약사는 눈알이 빠질
듯이 자기 다리를 바라보며 신음소리를 냈던 것이다.
철평고는 귀까지 붉어지며 옷을 잡아당겨 다리를 가렸다. 그러
나 여기저기가 찢긴 얇은 옷은 그녀의 몸을 완전히 가려줄 수가
없었다.
소앵은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들은 일어서는 게 어떻겠어요?"
도약사는 아무소리 없이 일어서며 콧잔등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았다.
소앵은 철평고의 손을 가볍게 치며 웃었다.
"남자들은 모두 늑대지. 하지만 개념치 말아요. 만약 허튼 수작
을 하려고 하면 내가 혼내줄 테니까."
철평고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고마워요......."
잠자코 있던 철평고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내가 조금 전에 했던 말은 모두 진정이 아니에요. 당...... 당
신은 그 말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요."
소앵이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철평고는 소어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내가 그이를......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그
건 다만 일부러 이화궁주를 화나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사실
난......."
소앵은 크게 웃었다.
"변명할 필요는 없어요. 난 질투심이 강하지 않으니까요. 더군
다나 소어아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이 당신 뿐만이 아닌데......
설사 당신이 그이를 좋아한다 해도 괜찮아요."
그녀는 비록 '괜찮다'고는 했으나 속으로는 역시 불편하게 생각
하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소어아는 눈을 깜박깜박 하며 웃었다.
"나를 잘 봐주고 있으니 고맙군. 하지만 만약 네가 아니었다면
난 지금쯤 이화궁주의 비밀을 알 수도 있었을 것이야."
철평고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들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소앵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화궁주에게 무슨 비밀이 있다는 것이에요?"
"나는 그녀와 우리집이 무슨 원한 관계에 있는지 알고 싶어. 그
녀는 강씨를 죽도록 미워하지. 그런데도 왜 직접 손을 쓰지 않고
굳이 동 선생으로 변장해서 화무결에게 나를 죽이라고 하는지 이
유를 모르겠어. 그녀는 나를 속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제자까지
속이고 있지. 지금까지도 화무결은 동 선생이 바로 자기의 스승임
을 모르고 있을 거야."
소앵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이상하군요. 하지만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으니......."
"그들 알고 있겠지. 그러나 내가 살아있는 한 그녀들은 절대로
말하지 않을 거야."
"당신이 살아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쩌면 그 비
밀을 말했을지도 몰랐겠군요?"
"그러나 내가 어찌 그녀가 철 소매의 눈알을 파가게 그냥 내버
려 두겠어?"
철평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소앵은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
며 말했다.
"이이에게 너무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요."
그녀는 소어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당신이 강옥랑에게 속은 줄 알았더니, 이제보니 일부러 속아준
것이었군요?"
"내가 일부러 속았다고? 내가 왜?"
그는 큰 눈을 몇 번 깜박거렸다.
소앵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당신은 이화궁주에게 당신이 죽은 것으로 알게 하기 위해 일부
러 강옥랑에게 당신을 밀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 아니예요? 또
이 동굴 속에 물이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겠죠?"
"내가 어찌 이 동굴 밑바닥에 온통 물이 차 있는 줄을 알았겠
어?"
소앵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때는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이었어요. 약간의 광선이라도 동
굴 속으로 비췄으면 밑의 물이 반사되었겠지요."
"그래. 좋아. 그렇다해도 이 깊은 동굴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있
다고 생각 했겠어?"
"당신은 방법이 있겠죠."
소어아는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나를 너무 영리하게 보았어!"
"당신은 본래 영리해요."
여기까지 듣고 있던 도약사는 이미 옆에 있는 철평고를 잊고 물
었다.
"어형, 정말 일부러 강옥랑에게 당신을 밀게 하였소? 나갈 방법
이 있소?"
"그럴지도 모르지. 이분 소 아가씨는 내 뱃속의 회충이니까 그
녀에게 물어 보시오. 내 속의 일을 그녀가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으니까."
소앵은 활짝 웃었다.
"밖에서 하는 말을 이 동굴에서 들을 수 있다면 밖에서 어떤 사
람이 지나가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벙어리도 아닌데 어찌
구원을 청하지 않고 가만히 있겠어요?"
도약사는 놀라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나...... 그러나 아무리 영리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때는
이 동굴이 소리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텐데."
"그는 어릴때 부터 곡(谷)에서 자랐기 때문에 산의 성질을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도약사는 탄식을 하며 말했다.
"난 과연 머리가 모자라는군."
"그러나 그 방법에도 문제는 있죠."
"무슨 문제이오?"
"이 산은 황폐하니 만약 지나가는 사람이 없으면 여기에서 죽고
말거예요. 또 지나가는 사람이 친구가 아니고 적이라면 그가 어찌
구원을 청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는 원수가 친구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도약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체념한 듯 말을 이었다.
"그렇지, 만약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다거나 또 지나는 사람이
모두 그의 원수라면 어떻게 하지?"
"두번째의 방법이 있을 거예요."
"난 첫번째 방법도 미처 생각하지 못해 창피한데 다른 방법이
또 있다니 정말......."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 산굴 속에 어찌 물이 있느냐는 거예
요?"
도약사는 이 질문을 받자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건 어쩌면 빗물이 고인 것인지도 모르오."
"빗물이 들어온다 해도 이렇게 많이 고이지는 않을 거예요."
도약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더군다나 지금 이곳의 물이 계속 불어오르는데 만약 계속 이렇
게 된다면 산굴이 완전히 침수되지 않겠어요?"
"그렇죠. 이대로 물이 불어오른다면 한 달도 못 되어 산들이 완
전히 침수되고 말 것이오. 그러나 지금......."
"그러나 지금의 물은 동굴의 십분의 일도 못되니 무슨 원인일까
요?"
"어쩌면...... 어쩌면 여기에는 본래 물이 없었는데 최근 생겼
을지도 모르겠소."
"이곳에 본래 물이 없었다면 돌 위가 어찌 이토록 깨끗할 수 있
겠어요?"
도약사는 돌 위를 내려다 보면서 대답했다.
"그렇군. 평소 물이 없었다면 필시 먼지가 쌓여 있어야 할 텐
데......."
"그 원인을 말하면 간단해요. 이곳의 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불
어오르지만 다시 빠져나가기도 해요. 물이 차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면서 먼지를 깨끗이 씻어낼 수 있었던 거에요."
"그러나...... 산허리의 물이 어찌 불었다 줄었다 하며 또 그
물은 어디서 나온 것이겠소?"
"잊지 마세요. 이 산은 바로 장강구(長江口)에요. 여기의 물은
바로 강의 물이에요."
도약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지 쓴웃음을 지으며 무안해 했
다.
"그렇지. 그 간단한 도리는 나도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했는데."
"당신이 그것을 알았다면 두번째의 방법도 알 수 있을 거예요."
"그거......."
"강물이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다면 이곳에는 필시 장강(長江)
으로 통하는 수로가 있을 거예요. 물이 빠져나가면 그 출구를 찾
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그녀는 미소를 보이며 다시 말했다.
"이젠 아시겠죠?"
"나도 본래 영리하지 못한 사람은 아니오. 그러나 두 분에 비하
면 정말 바보가 되는군요."
소앵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소어아에게 말머리를 돌렸다.
"내가 말한 것이 맞아요?"
"너는 자신이 매우 영리하다고 생각하겠지? 정말 영리한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보다는 적게 알고 있는 듯 행동하지. 그런데
너는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 그런 여인을 남자들은 상대하기
싫어하지."
"그러나 당신은 그런 부류의 남자에 속하지 않아요. 당신 같은
사람은 천하에 단 하나밖에 없어요. 더군다나 당신은 저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예요."
소어아는 소앵의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자 하는 수 없어 한참
웃고 난 뒤 탄식을 했다.
"그렇다면 난 꼭 너에게 반할 날이 있겠군!"
바로 이때 돌연 하나의 물건이 동굴 입구에서 떨어졌다. 도약사
와 철평고는 모두 놀랐지만 소어아는 웃고 있었다.
"이화궁주는 과연 착해. 밥을 가져 왔군!"
요월궁주가 보내온 것은 굉장한 진수성찬이었다. 네 사람은 식
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어느덧 산굴 속의 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물이 완전히 빠지기도 전에 도약사는 이미 돌 위에서 뛰어 내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어아는 천연덕스럽게 돌 위에 누워 잠을 청할 뿐이었
다.
도약사 수중에서 불씨가 빛을 내며 소어아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는 마치 어린애처럼 잘 자고 있었다.
소앵은 부드럽게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너무 피곤 했어요. 이 며칠 동안 너무 고생을 많이 했어
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철평고에게 웃으며 말했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이 사람 같이 많은 고생을 하고, 그와 같
은 타격을 받았다면 비록 의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해도 다른 사람
을 원망할 거예요. 그러나 그는 조금도 마음에 두지를 않고 있지
요. 이런 남자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철평고는 따라서 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은 눈물을 참고 있
는 웃음이었다.
소앵은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자부심을 갖지 않는가? 그
러나 자기는? 강옥랑이 그녀에게 안겨준 것은 다만 모독과 불행뿐
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잘못일까? 하느님은 왜 이리 공평하지 못할까?
철평고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감추었다.
"그도 좋은 사람이지만 당신도 그에 못지 않으니 당신들 둘은
천생연분이에요."
"고마워요."
소앵은 뒷 끝을 흐리더니 잠시 후 철평고에게 물었다.
"당신은 철심난을 알아요?"
"그녀가 소어아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러나......."
소앵은 그 말을 듣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어아 외에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난 소어아 외에는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절대로 그녀에게 소어아를 맡길 수는 없어요. 무슨 수를 써
서라도 난......."
그녀는 여기에서 말을 멈추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와 경쟁하
지는 말아야지."
철평고는 생각했다.
(나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녀가 날 질투하는 것일
까? 설사 내가 그이를 좋아한다 해도 나는 이미 너무 늦었는
데.......)
이때 도약사의 기쁨에 들뜬 목소리가 그녀의 상념을 깨뜨렸다.
"바로 여기요. 바로 여기요. 찾아냈소."
이 산허리 중에는 과연 출구가 있었다. 비록 좁은 지하도였지만
너무 뚱뚱한 사람만 아니라면 기어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소앵은 소어아를 깨웠다.
"자고 싶다면 나가서 다시 주무세요. 지금은 우리가 나갈 때에
요."
소어아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너희들은 가라. 난 여기서 좀더 자야겠어!"
소앵은 놀랐다.
"당신은 안가요?"
"내가 여기서 화무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걸 모르느냐?"
"당...... 당신은 정말 그를 기다리겠어요?"
"물론 정말이지. 이 약속은 이미 석 달 전에 정해졌어."
"그러나...... 그러나 그가 오면 이화궁주가 필시 당신들 둘을
싸우게 할 거예요."
"싸우는 게 아니지. 우리 같은 고수가 맞서는 것은 무술을 시합
한다고 하는 거야."
그는 이런 순간에도 농담을 하는 여유를 보였다.
소앵이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러나 당신들은 무술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거는 거
예요."
소어아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목숨을 건다고 해도 하는 수가 없지. 더 이상 얘기하지
마. 여자와는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소앵이 그의 몸을 바로 세우면서 말했다.
"그러나 당...... 당신은 그의 상대가 못되요. 나는 그의 이화
접옥이 정말 천하제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소어아는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온 천하에서 오직 나만이 이화궁의 무술을 격파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느냐?"
소앵은 놀라며 물었다.
"당신이 정말...... 당신이 어떻게 알았지요?"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 있지. 이화궁의 무술을 천하
에서 그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 사람이 누구지요?"
"동 선행!"
"동 선생! 동 선생은 이화궁주가 아녜요?"
"음."
"이화궁주가 어찌 자기의 무술을 파할 수 있는 방법을 당신에게
가르쳐 주겠어요? 그녀가 미치기라도 했단 말예요?"
소어아는 길게 하품을 했다.
"미쳤는지도 모르지.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 여인
의 마음을 난 영원히 알지 못하니까.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아."
"당신이 정말로 이화궁의 무술을 파할 수 있다고 해도 절대 화
무결을 죽이지는 못할 거예요."
"누가 그를 죽인다고 했어? 내가 그를 죽이든 말든 너와는 상관
없는 일이야."
"아니 관계가 있어요. 당신이 그를 죽이지 못하면 그가 당신을
죽일 거예요. 그런데도 당신은 여기에 남겠다고 하니......."
소어아는 펄쩍 뛰며 큰소리로 외쳤다.
"가고 싶은 사람은 가란 말이다. 난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도약사는 기쁜 마음으로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여기를 빠져 나가면 해독약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소어아의 말을 듣자 두 다리의 힘이 빠져 제대로 서지도 못
하고 산벽에 기댔다. 그는 소어아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난 정말...... 이상...... 이상해지고 있어!"
소앵이 그를 향해 물었다.
"당신의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도약사가 자신의 목을 잡으며 말했다.
"독...... 독성이 발작을 하고 있는 것 같소."
"중독이 됐단 말이에요? 무슨 독에 중독이 됐지요?"
도약사가 소어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모르오!"
"그가 가한 독이에요?"
도약사는 말을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소앵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그 독약이 무슨 맛이었지요?"
도약사는 얼굴에 쓴웃음을 지었다.
"짜고 그리고...... 약간 냄새가 나는 것이었소."
소앵은 그 이야기를 듣자 한바탕 웃어제꼈다.
"가고 싶다면 마음 놓고 가세요."
"그러나 해독약은......."
"그는 다만 당신을 놀려준 것에 불과해요. 그건 필시 독약이 아
니에요. 그리고 당신이 방금 이상히 느낀 것은 다만 놀랐기 때문
이에요."
도약사가 소리쳤다.
"독약이 아니면 무엇이오?"
"나도 무엇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의 발가락 사이
에 있던 때인지도 모르지요."
순간 도약사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소어아를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 그녀가 한 말이...... 틀림이 없나요?"
소어아는 탄식을 했다.
"내가 벌써 말했잖아. 이 계집애는 내 뱃속의 회충이라고. 당신
은 듣지도 못했는가?"
도약사는 얼굴을 더욱 붉히더니 돌연 몸을 돌려 마치 미친 개에
게 물리기라도 한 듯 달아나버렸다.
그는 남은 평생 동안 다시는 소어아를 보지 않게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소앵은 철평고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도 가고 싶지 않아요."
철평고는 고개를 숙이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여기에 남게 되면 소어아를 잊지 못해서 그러는
것으로 소앵이 의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만약 나
간다해도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천지는 넓고 컸지만 그녀를 용납할 곳은 없었다.
소앵이 말했다.
"다시 강옥랑을 보고 싶지 않아요?"
"나......."
그녀는 사실 강옥랑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말은 혀 끝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막상 강옥랑을 다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를 꼭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다. 다시 만나 그의 마음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소앵은 마치 그녀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당신은 필시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을 거예요. 만나서 복수
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어떻게 보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말은 본래 그녀의 본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말을 하고 말았다.
"나에겐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무슨 방법이지요?"
"지금 당신이 왜 괴로워하고 있는지 알아요. 그는 당신을 버렸
고 당신을 무시했어요. 그래서 당신의 마음은 걸레처럼 너덜너덜
찢어지고 말았죠."
철평고는 할 말이 없었다.
소앵의 말이 진정 사실이었던 것이다.
소앵은 다시 말했다.
"복수를 하고 싶다면 물론 그 사람을 괴롭혀야 돼죠. 마치 당신
이 그를 버린 것처럼 느끼게 하고, 그를 마음에 두지 않는 것처럼
하면 그때에는 그가 전처럼 당신에게 매달릴 거예요."
철평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 같았
다.
소앵은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내가 한 말의 뜻을 알겠어요?"
젊은이들
철평고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좋아. 내 말대로만 한다면 그는 필시 당신을 찾아올 거예요."
철평고는 한 번 웃고 나서 돌연 탄식을 했다.
"그러나 난...... 난 지금......."
"혼자 몸으로 의지할 곳도 없으니 두렵다는 말이지요?"
철평고는 암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매우 아름답고 나이도 젊은 여자라는 것을 잊지 마세
요. 그것은 여인 최대의 재산이에요.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세상의
모든 남자를 당신 손에 쥘 수가 있어요."
철평고는 그녀의 말에 순종이라도 하듯 고개를 들며 웃음을 보
였다.
"고마워요."
철평고는 소어아를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고개
도 들지 않고 말이다. 이때 돌연 소어아가 손벽을 치며 큰소리로
말했다.
"재미있어. 소 아가씨가 남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확실히 재미가
있어. 장소를 찾아 제자를 받는다면 돈을 크게 벌 수 있을 거야."
소앵은 웃었다.
"안심해요. 절대로 그런 방법으로 당신을 상대하지는 않을 테니
까요."
"그런 방법으로 나를 상대한다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네가 백
명의 남자와 함께 놀아난다 해도 절대로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니
까!"
"그럼 지금 내가 아직 다른 남자와 껴안지도 않았는데 왜 화를
내지요?"
소어아는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은 보내면서 왜 너는 가지 않지?"
"내가 왜 가지요? 난 여기가 좋은데."
"제발 부탁이니 빨리 가거라. 난 지금 머리가 너무 복잡해. 네
가 가지 않는다면 난 어쩌면 미칠지도 몰라."
"당신이 화가 치민다면 더더욱 나는 갈 수가 없어요."
소어아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
지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계집애야. 난 너에게 탄복을 했어. 난 태어날 때부터 나
를 이토록 화나게 만든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내가 정말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난 것 같은데?"
소앵은 그의 말엔 상관하지 않고 먹다 남은 음식들을 잘 꾸리더
니 혼자 중얼거렸다.
"여기는 너무 습기가 많아서 며칠만 놓아두면 곰팡이가 생길 거
예요."
"생겨도 괜찮아. 그것들을 가지고 갈 생각이야?"
소앵은 여전히 그의 말은 듣지 못한 것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며칠 동안 더 먹을 수 있는데 어찌 그냥 놓아둘 수가 있겠어
요?"
"며칠을 먹는다고? 이곳에 며칠이나 있을 생각이야?"
소앵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이화궁주가 곧 화무결을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애요?"
소어아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갑자기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
다.
"네가 화무결을 감추었느냐?"
"그가 나의 아들도 아닌데 내가 어찌 마음대로 감추겠어요?"
"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겠지?"
"그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너는 필시 화무결을 보았을 것이다."
소앵은 돌 위에 서서 소어아를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소앵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난 확실히 그를 보았고 그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아요.
그러나 지금은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소어아는 펄쩍 뛰었다.
"왜 나에게 말을 못하지?"
"당신이 화를 낼 것이 두려워서 그래요."
"내가 화를 낸다고? 내가 왜 화를 내지?"
"내가 말을 해도 정말 화내지 않겠어요?"
"물론이지."
"그러나 만약 화를 낸다면?"
소어아는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만약에 화를 낸다면 난 개의 아들이야."
소앵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래도 안 돼요."
소어아가 발을 구르며 말했다.
"왜 안 돼?"
"당신은 절대로, 개의 아들이 될 수가 없어요. 내 애인이 개의
아들이 될 수는 없어요."
"좋아. 내가 만약 화를 내면 뭐든 네가 시키는대로 하겠다."
"만약 신용을 지키지 않는다면?"
"사내 대장부가 너 같은 계집애 앞에서 배신을 하겠느냐?"
"좋아요. 말씀해 드리지요. 화무결은 지금 철심난을 찾으러 갔
어요."
"철심난을 찾으러 갔다고? 그가 철심난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
"내가 말해 주었지요."
소어아는 그제서야 놀랐다.
"네가 말해 주었다고? 네가 어찌 철심난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 어떻게 그녀를 알지?"
"나는 이미 그녀와 이성(異性) 간의 자매를 맺었어요."
소어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소앵이 말했다.
"당신은 오랫동안 철심난을 보지 못했지요?"
"음!"
"이 두 달 동안 철심난과 화무결이 함께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
지요?"
소어아는 다시 소리쳤다.
"그들이 같이 있었다고? 난 믿지 못하겠어."
그녀는 소어아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러자 소어아는 급히 그녀
의 앞으로 와서 웃음을 보였다.
"좋아, 믿겠어. 이런 일로 나를 속이지는 않겠지. 다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천하에는 이상한 일들이 많아요."
"그들이 같이 있는 것도 좋지. 난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어. 그
런데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되겠군. 화무결은 항상 그녀에게 친절하
니까."
소앵이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말했다.
"화나지 않아요?"
"하하, 화를 낸다고? 내가 왜 화를 내야 하나?"
"당신은 왜 철심난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묻지 않지요?"
"절대로 그녀를 쥐구멍으로 보내지는 않았겠지?"
"그녀는 바로 거기에 있어요."
소어아는 얼굴의 근육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더니 그는 석장(三丈)의 높이나 펄쩍 뛰면서 소앵에게 소리
쳤다.
"너 이 계집애야. 왜 그녀를 그곳으로 보냈지?"
"그녀는 나의 자매니까요. 그곳이 매우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에요."
소어아는 노기띤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화무결이 그녀를 찾아 가면 큰 쥐가 화무결을 놓아 주
지않을 거야. 너...... 너는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냐?
나...... 난......."
그는 너무 화가 치밀어 말을 하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오늘 내가 너를 때리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미안한 것이야."
"화를 내지 않겠다고 했잖아요. 사내 대장부가 어찌 나와 같은
계집애 앞에서 배신을 한단 말예요?"
소어아는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소앵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애태워 할 필요는 없어요. 화무결은 죽지 않을 거예요.
더군다나 그가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 그는 당신의 친구도 아니에
요. 그가 오지 않으면 당신을 괴롭히지도 않을 텐데요?"
소어아는 자기의 머리를 때리면서 말했다.
"네가 나를 돕고 있는 것 같으냐? 그가 죽으면 내가 살 것 같은
가? 다시 말하지만 그가 정말 위무아에게 죽는다면 난......."
이때 돌연 밖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어아, 어디에 있지? 나의 목소리가 들리오?"
화무결의 목소리였다.
소어아와 소앵은 동시에 놀랐다.
화무결이 정말 이토록 빨리 왔단 말인가!
소앵은 급히 소어아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부탁이니 그에게 대답을 하지 말고 없는 것처럼 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소어아는 이미 그녀의 손을 떨쳐내며
큰소리로 말했다.
"화무결, 난 여기에 있소!"
화무결이 말했다.
"무사하오?"
"난 무사하오. 줄만 내려준다면 올라갈 수가 있소!"
잠시 후 화무결의 얼굴이 동굴 입구에 내밀려졌다. 그의 표정은
기쁨에 가득차 있었다.
소어아는 기쁘게 웃으며 만했다.
"두 달 동안 보지 못했는데 우리는 모두 변하지 않았군!"
화무결이 긴 줄을 내렸다.
"밑에 있어 보지를 못하니 빨리 올라오시오."
소앵은 그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사람은 어떻게 보아도 목숨을 걸고 싸울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소어아는 줄을 잡으며 말했다.
"소씨 계집애야, 지금도 가지 않겠느냐?"
"당신 혼자 가요. 난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죽는 것을 보고 싶
지 않으니까요."
"네가 보기 싫어도 난 꼭 보여 주겠다. 가기 싫다고 하면 더욱
가자고 하겠다. 네가 무슨 수로 반항할 수 있느냐?"
소앵은 뒤로 물러서며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그녀는 겉으로는 노기띤 기색을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매우 기
뻤다.
그녀의 가느다란 두 팔이 차츰 소어아의 가슴을 껴앉았다.
그녀는 꼭 소어아의 마음을 훔치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소앵은 소어아의 한쪽 손을 잡고 줄을 따라 올라갔다.
잠시 후 그들은 산 위로 올라 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화무결은
동굴 입구에 서있지 않았다. 그는 요월궁주의 옆에 있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화무결에게는 요월궁주가 비단 그의 스승일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종래에도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볼 수가 없
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녀 앞에서 어리광을 부려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매우 존경했고 무서워하기도 했다.
소어아는 요월궁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그 무서운 청동가면을 벗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청동가면 보다 더욱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큰 산이 그녀의 앞에서 무너진다 해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을
기세였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아름다왔다. 불가사의 할 만큼 아름다왔으
며 감히 누구도 쳐다보지 못 할 정도로 아름다왔다. 그녀는 어찌
보면 사람이 아니고 혹시 그림이 아닐까? 라고 착각할 만큼 아름
다왔다.
소어아는 이 삼십여 년 동안 천하를 진동시킨 사람이 이토록 아
름다운 여자인줄은 몰랐다.
또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을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소어아는 그녀를 보자 얼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추운 날씨에 돌연 하나의 아름다운 유령을 본 것 같았다.
그는 심지어 철심난이 옆에 있다는 것도 몰랐다.
철심난은 몹시 흥분되어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소어아가 산굴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자 소어아 쪽으로
달려가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두 발을 떼어 놓다가 문득 걸음은 멈추고 말았
다.
그것은 그녀가 소어아의 품속에 있는 소앵을 발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순간 화무결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소어아를 보았다고 어찌 화무결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녀는 소어아와 화무결의 중간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녀의 심정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었으면 하는 안타까움 뿐이
었다.
소어아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웃음을 띠웠다.
"오래간만이군. 잘 있었어?"
철심난은 소어아의 다정한 목소리에 가슴이 뛰었으며 그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돌연 고개를 돌려 한쪽의 큰 나무쪽으로 달려갔다. 그
나무는 소어아와 화무결의 중간에 있었다.
소앵의 눈은 시종 소어아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어아가
비록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억지로 웃는 웃음임을 발견
했다.
소앵은 고개를 돌려 화무결을 바라보았으나 화무결 역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딴청만 부리는 것 같았다.
소앵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 사람의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를 알아차린 그녀는 탄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자신도 그 속으로 휘말려들고 있는 것처림 자신을 끌어 당
기는 힘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느끼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마
치 하나의 신비스러운 손이 조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 네 사람은 어쩌면 큰 화를 당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요월궁주는 얼음보다도 차가운 눈으로 소어아를 바라보았다.
소어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미소를 보냈다.
"당신이 보내온 음식은 모두 괜찮았소. 그런데 고추가 없었소.
다음에 밥을 줄 땐 내가 매운 것을 좋아한다는 점을 잊지 마시
오."
요월궁주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나타내지 않았으나 화무결
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요월궁주에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
이 없었다.
요월궁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이번에는 너희들이 모두 약속을 지키는구나!"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해도 화무결에
게 만은 예외요."
"지금부터 너에게 세 시간의 여유를 주겠다. 이 세 시간 내에
너는 운공조식을 하되 여기를 떠나선 안 돼!"
"이화궁주는 과연 요월궁주요. 조금도 남의 편의를 봐주지 않으
려고 하다니. 내가 피곤하다는 것을 알고 나더러 먼저 휴식을 취
하라고 하는 구려."
요월궁주는 대답을 하지 않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
"무결아, 나를 따라 와라!"
소어아는 급히 말했다.
"화무결과 말을 좀 해도 되겠소?"
요월궁주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안 돼!"
"왜 안 되오? 내가 그에게 당신이 바로 동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릴 것이 두려워서요?"
이때 화무결은 이미 요월궁주를 따라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몸을 떨기 시작했다. 소어아는
웃어버렸다.
그의 목적이 달성됐기 때문이다.
요월궁주는 얼마를 걸어가 몸을 돌렸다. 화무결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고 화무결은 시종 그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소어아는 그의 얼굴 표정을 볼 수가 없었고 또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더욱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탄식을 하며 중얼
거렸다.
"사오십이 되어서도 출가를 하지 못하는 여인은 병이 있기 마련
이지. 그녀가 만약에 다른 사람과 똑같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
한 일이었을 거야."
소앵은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세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니 편히 쉬세요."
이때는 새벽이었기 때문에 해가 막 뜨려고 하고 있었다.
소앵은 사방의 나뭇잎을 모아서 깔았다. 소어아에게 앉으라고
하며 마치 마누라가 남편의 시중을 들 듯 하였다.
철심난은 여전히 한쪽 나무 아래서 눈물을 글썽이며 서있었다.
그녀는 돌연 자기가 이 세상을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소앵이 소어아에게 하는 행동을 보자 더더욱 그에게 다
가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화무결을 따라갈 수도 없었다.
더우기 이화궁주가 이 두 사람의 우정을 찢어 놓아 두 사람 사
이에 아무런 우정의 관계도 없어진다면 철심난은 더욱 비참하고
난감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가 멀리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는 가장 친한 두 사람이 당장 결투를 해야
하는데, 그녀가 어찌 갈 수 있겠는가!
그녀는 강한 여자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상 이런 상황이
되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바람이 불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녀는 다만 무의식적으로 자기의 눈물을 닦으며 낙엽을 바라보
았다.
소어아는 낙엽에 앉아 눈을 감았다.
다른 사람들은 긴장을 하면서 고통스럽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
만 그는 유유자적하게 눈을 감으며 입 속으로는 노래를 부르고 있
었다.
마치 이 일들이 전혀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이 행
동했다.
소앵은 그의 옆에서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가볍게 탄식을
했다.
"철심난을 보았어요?"
"방금 그녀와 인사를 하는 것을 못보았나."
"그렇게 한마디의 인사말로......."
"그럼 그녀에게 절이라도 해야 돼나?"
"그러나 그녀는...... 그녀는 매우 불쌍해요. 그녀를 위로해주
어야 해요."
소어아가 돌연 눈을 떴다.
"내가 왜 그녀를 위로해야 되지? 왜 그녀가 오지를 않고?"
"그녀는 지금 매우 난처할 거예요......."
"그녀가 난처하다고? 난 난처하지 않고? 더군다나 그녀의 난처
함은 혼자 저지른 것이야. 그녀는 왜 저기서 나에게 오지를 않지?
그녀의 발에 못이라도 박혔나?"
소앵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말했다.
"질투하는 거예요?"
소어아는 크게 웃었다.
"너는 왜 내가 질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내가 너희들처럼 질
투를 잘 한다면 나는 벌써 서호(西湖)의 고기가 되었을 거야."
소앵이 다시 탄식을 하며 말했다.
"당신이 가지 않겠다면 내가 가보겠어요."
"잠깐만!"
"무슨 일이에요?"
"어떤 사람은 사람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그가 무슨 말
을 하는지 알 수가 있지?"
"그렇지요. 그것을 바로 '독진어(讀辰語)'라고 하지요. 그것의
오묘함을 모르는 사람은 '전음입밀(傳音入密)'의 공부(攻夫)인줄
알겠지요."
"너는 독진어(讀辰語)를 할 줄 알아?"
"몰라요."
소어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화궁주가 화무결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으면 좋았
는데."
"듣지는 못해도 상상할 수는 있어요. 그녀는 필시 화무결에게
어떤 방법으로 당신을 죽여야 하는가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을
거예요."
소어아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동굴에 있을 때는 화무결이 나를 반가와 하더니 내가 나
온 뒤에는 나를 보지도 않더군."
"그건 이화궁주가 당신과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
에요. 그것은 당신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서로를 해칠
마음이 사그라들까봐 그러는 것이지요."
"그럼 화무결 자신은 아무런 생각도 없단 말인가?"
"당신 역시 만약 이화궁에서 컸다면 역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
었을 거예요."
소어아는 입가에 쓴웃음을 보였다.
"그렇다면 '악인곡(惡人谷)'이 오히려 '이화궁(移花宮)'보다 좋
았군. 악인곡의 사람들은 사람이고 이화궁에는 모두 귀신들만 있
어."
그 말을 들은 소앵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좀 쉬어요. 내가 가서 몇 마디만 하고 올 테니까요."
소어아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너는 왜 꼭 저쪽으로 가려고만 하지? 나는 지금 온전한 몸도
아닌데 여기에서 나와 같이 있을 수는 없느냐?"
"그녀와 화무결이 어떻게 쥐구멍에서 나왔는지 알고 싶지도 않
아요?"
철심난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소앵이 한 발 한 발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소앵은 조용히 그녀 앞에 다가와 섰다. 그러나 철심난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바람이 불자 낙엽이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앉았다.
소앵이 가볍게 그 낙엽을 집어내며 조용히 말했다.
"언니, 나 때문에 화를 내고 있죠?"
햇빛은 그녀들의 그림자를 길게 땅에 늘어뜨렸다. 그녀들의 그
림자가 겹쳤다.
그러나 그녀들의 마음은 서로가 먼 거리에 있었다.
잠시 후 철심난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너는 소어아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알리지 않았어. 다른 곳에 가서 기다
리게 한 것을 내가 섭섭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알겠지?"
소앵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럼 나를 원망하지 않나요?"
철심난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입가에 처절한 웃음을 잠시 보
였다.
"이삼 년 전이었다면 너를 미워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지
금...... 지금은 알겠어. 어떤 사람이 일을 행할 때는 꼭 그의 마
음 속에 생각하는 것 만을 하는 것은 아니야. 사람마다 자기를 억
제할 수 없을 때가 있어. 더우기 남녀간의 '정(情)'은 이성을 잃
게 할 수가 있지."
소앵의 눈에 눈물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
"너무 괴로와 할 필요는 없어. 너를 나의 연적이라고 생각한다
면 너에게 진심을 말하지는 않았을 거야."
소앵은 길게 탄식을 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 끌었다.
"언니가 그런 여자인줄 몰랐어요. 지금 나의 심정은 언니가 차
라리 흉악하고 교활한 여인이었으면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오히
려 나의 마음이 편안했을 거야."
철심난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불쑥 말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너는 나를 위해 소어아를 포기하지는 못하
겠지?"
철심난은 그녀 자신도 왜 그런 말을 물어보았는지 알 수가 없었
다.
소앵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나는 언니를 위해서 그이를 포기할 수는 없어요. 어쩌
면 그이를 포기하게 되면 언니를 괴롭히게 될지도 몰라요."
철심난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하나의 침(針)처럼 그녀의 가슴 속 깊은 곳을 찔러왔
다.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너에게 그런 말을 물어보지 말았어야 했어. 소어아는 나를 마
음에 두지도 않으니 너야말로 그이와 어울려!"
"틀렸어요."
"틀렸다고......."
"소어아는 언니를 잊지 않았어요. 그가 만약 정말 언니를 마음
에 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벌써 여기로 달려왔을 거예요."
철심난은 놀랐다.
"너...... 너는 왜 그런 말을 나에게 해주지?"
소앵의 표정은 차츰 쓸쓸하게 변했다.
"이건 어쩌면 내가 너무 소어아를 얻고 싶어서 그이가 후일에
나를 미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이에게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
하라는 것인지도 몰라요. 만약 그이가 당신을 좋아한다면 내가 당
신을 죽인다 해도 소용이 없을 거예요."
철심난은 고개를 숙였다. 소앵의 이 몇 마디 말을 되풀이 생각
하자 더욱 가슴이 아프고 복잡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소어아가 나를 택한다면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누구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며 자신도 몰랐다.
소앵이 갑작스레 웃으며 말했다.
"나의 의부(義父)를 보았어요? 무섭게 생겼죠?"
"난 보지 못했는데!"
강옥랑을 찾아서
소앵은 철심난이 위무아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상한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거기에 가지 않았어요?"
"가봤지. 그러나 아무도 만나보지를 못했어."
소앵은 더욱 놀라서 물었다.
"그쪽 나무숲에 갔을 때 마중나온 사람이 없었어요? 그곳을 잘
못 찾은 것은 아니에요?"
철심난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니 잘못 찾지 않았어. 거기에 도착하자 많은 쥐들이 뛰쳐나
오는 것을 볼 수 있었지. 난 놀라서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는데
그 나무에는 시체들이 걸려 있었어. 내가 그 시체들을 보고 겁에
질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화...... 화 공자가 왔어!"
소앵은 너무 긴장한 탓인지 손바닥에 땀이 축축히 배어올랐다.
철심난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엔 그쪽에 필시 큰 변고가 생긴 것 같아. 너......
네가 가보는 것이 좋겠어."
소앵도 같은 생각이었다. 철심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앵
은 이미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몇 걸음을 가다가 다시
멈추어 버렸다.
위무아는 분명히 소앵의 은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무아에게
만약 무슨 변고가 있으면 그녀는 반드시 그에게 가보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지금 소어아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찌
그녀가 그대로 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녀는 그 자리에 선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의 마음 속은 갈등으로 가득찼다.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갔다. 시간은 사람을 가여워 하지 않는다.
시간을 아쉬워 할 때 시간은 오히려 더 빨리 간다. 무릎을 꿇고
애걸을 해도 시간은 귀가 달리지 않는 것이다.
서풍(西風)은 더욱 세차게 몰아쳤다.
먹구름이 몰려왔고 대지는 처절한 슬픔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소앵은 결국 소어아에게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위무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건 간에 그녀는 지금 소어아를 여기
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소어아는 웃으며 말했다.
"이화궁주가 이미 위무아를 죽였단 말이냐?"
소앵은 그의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때 바람을 타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녀는 요월궁주와 마찬가지로 싸늘하고도 아름다왔다.
다만 그녀의 한쌍의 눈만이 요월궁주보다 조금 부드러웠다.
그녀의 몸은 낙엽보다 더욱 가볍게 화무결의 몸 옆에 다가가 섰
다.
화무결은 즉각 땅에 엎드려 인사를 했다.
소어아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필시 연성궁주(憐星宮主)일 거야. 언니와 똑같이 생겼으며 그
녀들이 시체와 다른 것은 숨을 쉰다는 것 뿐이지."
소앵은 쓴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이 자매는 강호의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이름조차도 부
르지 못하게 하지요. 그들이 죽은 사람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면
이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시체겠군요?"
"틀렸어.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때로는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고, 기쁠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으며 무엇을 두려워할
줄도 알지. 그러나 그들 같은 사람들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재미 없는 사람들이야."
그는 일부러 이화궁주에게 들으라고 크게 떠들며 웃었다.
그러나 이화궁주 자매 두 사람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소어아는 그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남들은 그들 자매를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난 그들을 매우 가엾
게 생각하지. 사람이 우스운 것을 보고도 웃을 수 없다면 죽은 사
람과 별 차이가 있겠어."
이화궁주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만 화무결에게 무
슨 이야긴가를 계속 할 뿐이었다.
"난 그들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오히려 나
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할 거야.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녀
들은 화를 내지 않는 것이지."
그는 비록 웃으면서 말했지만 소앵은 그가 죽는다는 생각이 들
자 눈물을 흘렸다.
소어아는 계속 말을 이었다.
"너는 내가 살아 나갈 방법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지? 그러나
난 최소한 한 시간은 살 수가 있어. 내가 죽은 뒤에 눈물을 흘려
도 늦지는 않아!"
그녀는 소어아가 살아 나갈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마 화무결을 이기고 화무결을 죽인다 해도 이화궁주의
손에 죽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이화궁주의 손에서 그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소어아는 아랑곳 없이 지껄였다.
"좀 웃어봐? 네가 웃는다면 난 죽어도 기쁠 거야."
소앵은 과연 웃었다.
그러나 오히려 웃지 않았다면 눈물을 참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뺨을 타고 주루루 흘러내렸다.
바람이 불자 연성궁주가 돌연 소어아의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어. 알고 있느냐?"
"나에게 희망의 시간이 다가 오는군. 그렇지 않으면 나는 눈물
속에 빠져 죽을 거야?
연성궁주의 눈에는 기쁜 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
"유언이라도 남기겠는가?"
"없소. 살아있을 때도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죽을 때까지
남을 괴롭힐 필요는 없을 것 같소."
"그렇다면 할 말이 없단 말이지?"
"딱 한 가지 당신에게 물어볼 말이 있소!"
"무슨 말이냐?"
"당신 같이 아름다운 사람이 어찌 시집을 가지 않았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소?"
순간 연성궁주는 온 몸의 균형이 깨지는 것 같았다.
소어아는 그녀의 목에서 힘줄이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한 자 한 자 또렷이 말했다.
"일 어 서 라!"
소어아는 이번에는 매우 말을 잘 들었다. 그는 일어서며 말했
다.
"지금 손을 쓰려는 거요?"
"너는 반 시간을 더 살고 싶으냐?"
"그럴 필요는 없소. 나는 남과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소.
그러나 남과 싸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매우 괴로운 시간이오.
금방 생사를 가려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소."
화무결이 서서히 몸을 돌렸다.
소앵은 돌연 소어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당...... 당신은 나에게 할 말이 없단 말이에요?"
"없어."
소앵은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놓으며 뒤로 두 발을 물러섰다. 그
녀의 커다란 눈에서는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때 연성궁주가 말했다.
"화무결, 강소어, 너희들 두 사람은 모두 들어라. 지금부터 너
희 두 사람은 앞을 향하여 열다섯 걸음을 걷는다. 반드시 열다섯
걸음을 걸은 뒤 손을 쓸 수가 있다. 이 싸움에 누가 이기든 간에
제 삼자는 협조할 수가 없다. 누구든 참견을 한다면 용서하지 않
고 즉각 죽여버릴 것이다."
소앵이 재빠르게 그녀의 뒤를 이어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참견을 않겠어요?"
요월궁주가 싸늘한 목소리로 내뱉았다.
"만약 그녀가 참견을 한다면 내가 그녀를 죽여 버리겠다."
소앵이 말했다.
"그럼 당신 자신이 참견을 한다면?"
요월궁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내가 내 자신의 목숨을 끊어 버리겠다!"
소앵은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소어아, 들었어요? 이화궁주의 말은 절대로 변함이 없을 거예
요. 제발 부탁이니 지지나 말아줘요?"
그러나 그녀는 오늘 싸움에서 모두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소어아가 만약 화무결 손에 죽는다면 화무결보다 더욱 행복했을
것이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갈수록 먹구름이 많아졌다.
나무 가지에 남은 몇 개의 고엽이 바람과 대항을 했다. 그것은
죽음과의 대항이었다. 소어아는 꿋꿋이 앞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
했다.
화무결도 서서히 발길을 옮겼다.
날씨가 우중충했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바람이 부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요월, 연성, 소앵, 철심난, 네 쌍의 눈은 모두 소어아와 화무결
의 발로 집중됐다.
이 네 사람의 마음은 모두 달랐지만 그러나 똑같이 긴장하고 숨
을 죽이고 있었다.
철심난은 이 두 사람 중 어느 누가 쓰러져도 자신이 감당해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천지가 순간에 무너져 차라리 모든 사람들이 멸망하기를
바랐다.
소앵의 마음은 다만 소어아에 대한 연정(戀情)으로 고충이 있을
뿐 복잡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만약 소어아가 죽는다면 그녀도 소어아를 따라 죽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사실 소어아가 이길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녀는 기적을 믿으며 소어아가 화무결을 이기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연성과 요월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지금 그녀들이 계획하던 것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들의 길고 지루한 인내에 이제는 수확이 생기는 것이다.
그녀들이 마음 속에 품었던 원한은 이제야 비로소 보복의 순간
을 맞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렇게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이십 년 동안 가슴에 품었던 원한이 이 순간에 오히려 더욱 타
오르는 듯했다.
마치 강풍이 죽기 전에 화월노를 바라보던 눈초리가 이 순간에
다시 그녀들의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소어아와 화무결은 강풍의
화신이 아닌가?
그녀들은 이 두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아야만 자신들의
고통이 감소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그들은 이 놀라운 비밀을 폭로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비밀은 마치 무거운 쇠사슬처럼 그녀들의 마음을 이십 년 동
안 묶어놓고 있었다.
그녀들은 이 비밀을 말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유로운 마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들은 영원히 이 비밀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
이다.
그녀들은 마음을 졸이며 이 순간을 기다렸다.
그녀들은 속으로 소어아의 발걸음을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소어아는 세 발걸음을 걸은 뒤 돌연 고개를 소앵쪽으로 돌리고
웃으며 말했다.
"맞았어. 지금에야 너에게 할 말이 생각나는군."
소앵은 매우 격동하여서 눈물이 왈칵 솟았다. 어떻든 간에 소어
아가 지금 그녀에게 대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는 달랐다.
그녀는 나오려는 눈물을 이를 악물며 참았다.
"당신...... 말해 봐요. 난 듣고 있으니까요."
소어아가 말했다.
"내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것은 젊었을 때 빨리 시
집을 가라는 것이다. 늙은 다음에는 시집을 못가요. 오륙십 살이
되면 너도 그녀들과 똑같이 늙은 요괴(妖怪)가 되어 버릴 거야."
이것이 소어아가 죽기 전에 소앵에게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이었
다.
그였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소앵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한참 후 그녀는 이를 악물
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심해요. 절대로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소어아는 마치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네번째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한마디로 소앵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연성과 요월 두 사람
은 더욱 분해서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 자신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소어아야 소어아, 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너의 마음 속에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지?
가장 기이한 것은 소어아가 화무결을 이기길 바라는 두 여인의
마음이다.
소앵도 물론 그렇지만 철심난도 그가 다른 누구에게도 맞는 것
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화무결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어아에게 동정
이 갔다.
화무결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소어아는 자주 남을 상심케 하는 일을 하고 남을 아프게
하는 말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요월과 연성 두 사람도 소어아가 이기길 바란
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들이 인정을 하지 않으려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
었다.
만약 화무결이 소어아를 이긴다면 그녀들은 필시 화무결에게 비
밀을 말해야만 했다.
그들이 화무결을 키운 것은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지만 그러나
그들은 자라나는 아기에게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떻든 간에 그들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소어아가 화무결을 이기길 빌었다. 그래야만
화무결이 형제를 죽였다는 자책으로 고통당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
문이다.
그녀들은 여전히 속으로 소어아의 발걸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열하나, 열 둘, 열 셋......."
눈앞에 죽음이 닥쳐오는 이 순간.
이 두 형제는 서로를 죽여야만 했다. 천하에 어느 누구도 그들
의 비참한 운명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요월궁주의 입가에 만족스럽고도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소어아와 화무결은 열 네 발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소어아는 화무결을 바라보았다.
화무결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화무결아, 화무결. 너는 무엇을 생각하느냐?
그들은 서서히 열다섯번 째 발자국을 옮겼다.
연성과 요월궁주는 모두 손을 쳤다.
그러나 철심난과 소앵은 손이 떨려서 떨고 있었다.
바로 이때 돌연 소어아가 쓰러지고 말았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긴장이 되는 순간에 소어아가 아
무 이유없이 쓰러져버린 것이다.
화무결과 철심난, 소앵은 크게 놀랐다.
요월과 연성궁주도 놀라 안색이 크게 변했다.
소어아는 땅에 쓰러진 후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경련
을 일으키며 뻣뻣해졌다.
연성궁주는 발을 구르며 말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요월궁주는 노하여 말했다.
"죽은 척 하는 거야."
이때 화무결이 나섰다.
"그러나 그는...... 그는......."
요월궁주가 무서운 소리로 말했다.
"그를 죽여 버려라. 빨리 죽여라."
그러나 화무결은 양손을 늘어뜨린 채 말했다.
"이미 반격할 힘이 없는데 제가 어찌 손을 쓰겠습니까?"
요월궁주가 말했다.
"그가 너에게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은 진 것을 인정하는 것이야.
왜 손을 쓰지 않는 것이냐?"
화무결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
요월궁주의 노기는 더해갔다.
"내가 한 말들을 너는 다 잊었느냐?"
소앵이 소리쳤다.
"당신들은 어째서 반항할 힘도 없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오?"
그녀는 미친 듯이 소어아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돌연 한
강대한 힘이 그녀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요월궁주가 손을 거두며 화무결을 향해 다시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손을 쓰지 않느냐? 그가 죽는 척한다고 해서 그냥 놓아 주
자는 것이냐? 너는 본문의 규칙을 잊었느냐? 나의 말까지 듣지 않
을테냐?"
이때 소어아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빨리 나를 죽이시오. 절대로 원망은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사실 당신이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강옥랑이 나를 죽이는 것
이오."
소어아는 탄식하며 화무결에게 말했다.
"내가 만약 중독이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힘이 없을 리가 없소.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거요. 그러니 나에게 미안해 할 필요는 없
소. 당신의 손에 죽는 것은 아니니까."
그의 눈이 돌연 요월공주를 향했다.
"강옥랑이 정말 나를 죽인 사람이오."
요월궁주와 연성궁주는 서로 바라보며 놀라고 말았다.
잠시 후 연성궁주가 침통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어찌 강옥랑에게 중독이 되었지?"
소어아가 쓴웃음을 보였다.
"영리한 사람도 속을 때가 있소."
연성궁주가 물었다.
"어떤 독에 중독 되었느냐?"
"여아홍(女兒紅)!"
연성궁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요월궁주를 바라보며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모양으로 보아선 확실히 여아홍에 중독이 된 것 같아요."
요월궁주의 얼굴에는 핏기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 그녀는 돌
연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놈은 계책이 많은데 어떻게 그의 말을 믿어?"
소어아가 말했다.
"믿고 안 믿고는 당신 자유요. 그러나 내가 중독될 때 많은 사
람들이 옆에서 지켜 보았소."
요월궁주가 무섭게 물었다.
"누구지?"
"철평고도 있었고, 또 도약사라는 사람도 있었소. 그리고 또 물
에 독을 가한 강옥랑이 있었지."
연성과 요월은 서로 바로보면서 동시에 십여 장(丈)의 거리 밖
에 있는 나무쪽으로 날아갔다.
독에 중독이 된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소앵과 철심난, 화무결은 속으로 모두 기뻐하고 있었다.
소어아가 중독이 된 것은 정녕 행운이었고 기쁜 일이었다.
연성궁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의 뜻은 어때요?"
요월궁주는 입술이 하얗게 되어 말을 하지 못했다.
연성궁주가 다시 말했다.
"강소어가 정말 강옥랑의 독에 중독이 되었다면 확실히 화무결
의 손에 죽었다고는 할 수가 없지요. 이렇게 되면 우리의 계획은
무의미하게 되는 거예요."
요월궁주는 돌연 무섭게 그의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모두 너의 계책이야. 너의 계책이 날 이십 년 동안이나
기다리게 했어. 더군다나 너는 그들이 자라면 필시 서로 미워하게
될거라고 했는데, 그러나 지금...... 지금 압력을 가해야 화무결
이 손을 쓰게 됐으니......."
연성 궁주가 말을 받았다.
"하지만 이십 년 전에 내가 어찌 소어아가 크면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요? 그가 만약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무결이 필시 벌써
그를 죽였을 거예요."
그녀는 탄식을 하며 다시 말했다.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어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는
데 어찌 나를 원망하지요?"
요월궁주는 크게 노했다.
"너를 원망하지 않으면 누구를 원망한단 말이야? 자신이 없으면
이렇게...... 이렇게 하지 말아야 했어!"
연성궁주는 싸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비록 나의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언니도 반대하지는 않았어요.
더군다나 언니가 후회한다면 지금 저들 두 사람을 모두 죽여도 늦
진 않잖아요?"
요월궁주는 손을 들어 연성궁주의 뺨을 후려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연성궁주의 눈초리는 무섭게 그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
을 하는 것 같았다.
(난 이미 어린애가 아니니 날 마음대로 때릴 수는 없어요.)
마침내 요월궁주의 손은 서서히 내려졌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
리로 입을 열었다.
"나...... 난 이미 이십 년 동안이나 참았는데 지금에 와서 그
들을 죽이란 말이야?"
연성궁주의 눈동자도 그녀의 손을 따라 떨어졌다.
"언니, 이십 년 동안 난 좋았는 줄 알아요?"
한참 후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의 이십 년 동안의 고생을 헛되게 만들어선 안 돼요. 아직
온 천하에 우리 두 사람만이 이 비밀을 알고 있을 뿐이에요. 우리
가 만일 비밀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죽을 때까지도 모를 거예
요."
요월궁주의 안색이 점차 완화되었다.
"그렇지. 그들은 영원히 모를 거야."
"그들은 반드시 서로 죽고 죽이고 하는 날이 올 거예요. 그들의
운명은 우리 외에는 그 누구도 변경시키지 못해요."
잠시 호흡을 조절한 그녀는 계속하여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절대로 그것을 변경시키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
"우리가 기다리는 것도 고통이지만 그러나 그들도 고통일 거예
요. 그들이 자기의 운명 때문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니 마치 쥐가
고양이의 발 아래에서 몸부림치는 것 같아요. 더군다나 우리는 이
십 년 동안을 기다렸으니 이삼개월 더 기다려도 무방하지 않겠어
요."
"그럼 너의 뜻은......."
그녀는 그 말을 반쯤 하다가 돌연 멈추었다.
그녀의 동생은 웃고 있었다.
그녀는 평생 처음으로 동생에게 의견을 물어본 것이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위엄을 손상한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연성궁주가
입을 열기 전에 싸늘하게 말했다.
"너의 뜻을 알겠다. 우선 강소어의 독을 해결하고 나서 화무결
을 시켜 죽이라 하면 그가 결국 화무결의 손에 죽게 된다는 것이
지?"
"그렇지요. 그렇게 해야 화무결에게 오랫동안 고통을 느끼며 살
게 할 수가 있어요.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하게 만드는 거지요. 만
약 지금 강소어를 죽인다면 그는 심지어 강옥랑을 죽여 소어아를
위해 복수할지도 몰라요. 그러면 우리에게는 이 긴 세월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요월궁주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강소어가 중독되었는지 확실히 아느냐?"
"곧 알게 되요."
소어아는 여전히 땅에 누워 떨고 있었다.
철심난, 소앵, 화무결은 모두 이화궁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소어아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소
어아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어아의 생사가 두 이화궁주의 태도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그
들 세 사람 여섯 개의 눈은 모두 이화궁주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다만 요월궁주의 싸늘한 얼굴에 살기가 감도는 것을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땀으로 온 몸이 축축히 젖었다.
이화궁주들이 주고 받는 대화가 그들에게는 몇 시간씩이나 게속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어아는 몸을 떨고 있었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고, 마치 이
화궁주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이화궁주 자매가 서서히 걸어왔다. 화무
결은 앞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다시 멈추어 버렸다.
요월궁주는 소어아의 앞에 와서 무거운 소리로 말했다.
"네가 중독이 될 때 철평고도 보았겠지?"
"그렇소."
"좋아, 그럼 그녀를 불러라. 내가 물어보겠다."
"어디서 그녀를 찾아 오겠소? 지금은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요월궁주가 노하여 말했다.
"그녀는 분명히 저 산굴 속에 들어있지 않았는가?"
소어아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그 산굴 속에서 밖으로 나가는 다른 길이 없는 줄로 아
시오?"
"만약 다른 길이 있었다면 너는 왜 도망가지를 않았지?"
"화무결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오. 그러나 철평고는 벌써 갔
소. 믿지 못하겠다면 당신이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월궁주가 이미 산굴 쪽으로 달려가
고 있었다.
화무결이 내렸던 밧줄이 그대로 있었다. 요월궁주는 동굴 속으
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는 가벼운 바람처럼 다시 날아왔다.
소어아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지금은 믿겠소?"
"흥."
"내가 화무결과 싸우기가 싫었다면 벌써 달아났을 거요. 이렇게
독에 중독 된 척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겠죠?"
요월궁주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그럼 너는 강옥랑이 어디에 있는 줄은 아느냐?"
"물론 알지요. 다만 내가 그곳을 말해도 당신은 찾지를 못할 것
이오."
요월궁주는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담담히 말했다.
"천하에 내가 못가는 곳도 있단 말이냐?"
소어아는 그녀를 자극하기 위해 심정을 긁기 시작했다.
"그곳은 당신도 가지를 못할 거요. 난 쥐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
자를 보지 못했으니까요."
요월궁주의 눈에서 빛이 났다.
"네가 말하는 곳은 위무아가 있는 곳이 아니냐? 그도 이 산에
있느냐?"
"물론 이 산에 있지요. 당신은 정말 모른다는 거요? 아니면 모
르는 척 하는 거요?"
소어아는 지금 위무아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소앵은 소어아에게 위무아의 동굴에 이미 놀라운 변화가 생겼으
며, 강옥랑이 거기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무아 자신도 없다
는 것을 아직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화무결 역시 아직
두 궁주에게 그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여전히 그 말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소어아는 요월궁주를 약올리며 빈정거렸지만 그녀는 아무런 표
정의 변화가 없었다.
소앵은 이상히 여겼다.
(어떻든 간에 위무아는 강호에 유명한 사람이고, 이십 년 동안
은거 생활을 하면서 이화궁을 상대하기 위해 무술을 연마한 것으
로 보아 그와 이화궁 간에는 필시 큰 원한이 없을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화궁주는 그 사람을 염두에 두지도 않는 것 같았다. 또
이화궁주는 소어아와 별 원한도 없는 듯한데 꼭 화무결에게 직접
그를 죽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녀는 이 일이 정말 신비스럽고 복잡한 것이라고 느꼈다.
이때 이화궁주가 두마디를 했다. 그러나 소앵은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어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다.
소어아가 말했다.
"좋아, 내가 안내 하겠소. 그러나 나는 걷지를 못하니 좀 부축
해 주시오."
화무결과 철심난이 모두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화무결은 이화
궁주가 자기를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끼자 고개를 돌리
고 철심난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소어아를 부축해 달라는 뜻이
었다.
소앵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걷는 게 느리다고 마다하지 않으면 내가 부축해 드리지
요."
소앵이 소어아를 부축하며 걸음을 떼어 놓은 후에도 화무결은
여전히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철심난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
을 흘렸다.
연성궁주는 화무결을 바라보다가 다시 철심난을 바라보았다. 그
러더니 그녀는 철심난의 손을 이끌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날 따라 가자!"
철심난은 꿈에도 이화궁주가 이토록 친절하게 자신을 대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다만 한가닥의 힘이 손을 이끄는 것을 느끼며 연성궁주
를 따라 나섰다.
화무결은 연성궁주가 철심난의 손을 잡는 것을 보자 놀랍고도
기뻤다. 요월궁주가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네가 가도 되겠지. 이만 가자."
순간 화무결은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다.
이화궁주가 철심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동굴 속에서
소앵은 소어아를 부축하며 한참을 걷다가, 엿듣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입을 열었다.
"반나절 동안 이토록 많은 일들이 발생하다니...... 일마다 의
외이고 놀라운 것 뿐이에요. 사실 모든 일을 당신은 다 알고 있었
지요?"
소어아는 눈을 몇 번 깜박거리더니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난 전혀 모르겠는데."
"시치미 떼지 말아요. 난 이미 알고 있었어요. 일부러 강옥랑에
게 당해 산굴로 들어간 것이고, 또 중독이 된 것도 일부러 한 것
이에요. 당신은 누구의 속임수에도 넘어가지는 않았어요."
그녀는 소어아가 진짜로 여아홍을 먹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
직 모르고 있었다. 소어아는 그러나 이런 저런 설명없이 투덜거리
며 말했다.
"내가 왜 일부러 중독이 됐겠어? 내가 일부러 죽고 싶어 한단
말이냐?"
"당신은 이미 하무결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철평고
때문에 강옥랑을 어찌할 수 없자 당해준 것 뿐이지요. 당신은 이
화궁주가 필시 당신의 독을 해독해 줄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몹
쓸 사람.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위해 걱정하고 있는데 당신은 조
금도 걱정이 안 된단 말인가요?"
"천생에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습관이야. 하늘이 무너진
다 해도 마찬가지지."
"당신이 인정하지 않을수록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예
요."
소어아는 크게 웃었다.
"이건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리야. 내가 만약 개똥을 먹지 않겠다
고 버티면 실제로는 개똥을 먹고 싶다는 말과 같다는 거야?"
소앵은 그를 상관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은 이화궁주가 독약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것을 미
리 예상하고 먼저 철평고와 도약사를 보낸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화궁주는 강옥랑을 찾아갈 것이고 결코 가만 놔두지를 않겠죠.
일이 되느라고 강옥랑이 위무아와 함께 있게 됐으니, 이화궁주는
강옥랑을 찾으려면 위무아를 만나야 되게 되어 버렸어요. 그들이
만나면 필시 싸움이 벌어질 테고, 위무아가 이화궁주를 죽이든 이
화궁주가 위무아를 죽이든 당신에게는 유리하게 됐죠."
여기까지 말을 하던 그녀는 잠시 쉬었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
"누가 이기든 간에 모두 당신에게 유리하단 말이에요. 그들이
모두 서로 싸우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면 더욱 일이 잘 되는
것이겠죠."
소어아는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복잡한 계책을 내가 어떻게 생각할 수 있단 말이냐. 듣
는 것만도 정신이 없군."
소앵은 미소를 띠우며 계속 말했다.
"당신이 인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여튼 난 알고 있으니까
요. 다른 건 모르지만 당신은 너무 많이 계책을 써서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대머리가 되버리고 말 거예요."
"대머리면 어때. 어떤 여자들은 대머리만 좋아한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소어아가 소앵에게 물었다.
"네가 할 말을 다 했으면 이제는 내가 물어볼 차례다."
"무엇을 물어보겠다는 거예요?"
"어째튼 간에 위무아는 너에게 아버지라고 할 수가 있어. 지금
이화궁주가 그에게 가고 있는데 네가 오히려 길을 안내하다니 대
체 무슨 이유지?"
소앵은 잠시 침울해 있다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
다.
소어아가 다시 물었다.
"필시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로구나. 혹시 철심난이 방
금......."
그는 돌연 말소리를 그쳤다.
연성궁주가 철심난을 데리고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어아는 눈알을 돌리면서 철심난에게 웃음을 보였다.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했었지? 두 달 정도 되었던가?"
철심난은 소어아가 자기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올 줄은 미처 생
각지 못했다. 그녀는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며 말을 하지 못했다.
소어아는 소앵에게 웃으며 말했다.
"봐라! 이개월 동안 보지 못했더니 그녀는 이미 나와 생소하게
되어 버렸어. 말 한마디 했다고 얼굴까지 붉히잖아?"
소앵은 탄식을 하며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벌써 괴로워하고 있는데 왜 또 괴롭히지요?"
소어아는 다시 철심난에게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들었어? 내가 너를 괴롭히고 있데. 난 다만 안부를 묻고 있는
데 그것도 괴롭히는 것이냐?"
철심난은 고개를 저으며 눈을 붉혔다.
소어아가 말했다.
"우리는 이미 두 달 동안 만나지 못했지?"
"네......."
"내 생각엔 이 두 달 동안 필시 무슨 일들이 생겼을 거야. 두
달 동안 너는 많이 변했어!"
철심난은 가슴이 아픈 것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자기가 정말 변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에는 소어아를 만나게 되면 어떤 상황 아래서도 또 어떤 사람
이 옆에 있든 간에 모든 것을 다 잊고 그에게 달려갈 수가 있었
다.
그러나 지금은?
왜 전처럼 소어아를 대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녀의 마음 속에 화무결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일까?
그렇다. 그녀의 마음에는 화무결에 대한 비중이 날이 갈수록 더
욱 더 넓게 차지하고 있었다. 이 두 달 동안 확실히 많은 일들이
변한 것 같았다.
화무결이 세 번이나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둘째 치고라도
그녀가 몸져누웠을 때의 화무결의 보살핌을 어찌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화무결은 정말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그녀를 돌보아 주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잊는다 해도 그 긴 여행 중의 일
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화무결과 같이 술을 마시던 생각을 했다.
그녀는 또 화무결이 통곡을 하듯 웃던 것이 생각났다.
그는 곧 자기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직 철심난의 마음을 편히
해주려고 애썼다.
그런 감정은 얼마나 진실하고도 고귀한 것인가!
그런 감정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연성궁주는 시종 그녀를 주시하다가 돌연 싸늘하게 말했다.
"너는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하는가?"
철심난이 말했다.
"나...... 난......."
그녀는 말을 하지 못하고 울어 버렸다.
연성궁주는 소어아에게 싸늘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더 물어볼 필요는 없다! 너는 그녀의 대답을 짐작할
텐데?"
그녀는 소어아의 의견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너는 듣지 않는 게 더욱 좋을 거야."
소어아는 그녀를 향해 웃었다.
"당신이 만약 내가 지금 가슴이 아플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
은 오해요."
연성궁주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네가 가슴 아프지 않기를 바라겠다!"
소어아는 정말로 괴롭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 자신밖에 모르는
일이다.
반 시간 정도를 걷자 멀리 위무아가 있는 숲이 보였다. 소어아
가 말했다.
"앞에 있는 저곳의 나무숲이 바로 위무아의 쥐구멍이 있는 곳이
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 쥐 한 마리가 풀숲에서 뛰어나와
달아났다.
풀숲에서는 부산스럽게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쥐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소어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위무아는 쥐들을 보물처럼 취급하는데 어찌 그들을 멋대로 돌
아다니게 놔 두었을까?"
소앵은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위무아의 동굴에 필시 변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렇
지 않다면 쥐들이 어찌 도처에서 뛰어다닐 수 있단 말인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녀의 발걸음도 더욱 빨라졌다.
어두운 하늘에 한 사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소어아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상하다. 위무아의 동굴 앞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
까?"
그 사람은 나무에 매달려 죽어 있었다.
그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다만 왼쪽 얼굴이 부어오른
것으로 보아 죽기 전에 필시 누군가에게 따귀를 맞은 것 같았다.
연성궁주도 역시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사람은 위무아의 부하인가?"
소어아는 탄식을 하며 쓴웃음을 띠웠다.
"위무아의 부하 말고 또 누가 따귀를 맞았다고 목을 매어 죽을
수 있겠소?"
"그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단 말이냐?"
소어아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옷을 헤쳐 보였다.
그의 가슴에는 두 줄의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무아문하사(無牙門下士), 가살불가욕(可殺不可辱)."
소어아가 말했다.
"지금은 알겠죠? 필시 누군가가 위무아의 동굴로 들어갔고 이들
은 그것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따귀를 맞게 되자 벌을 받을까봐
목을 매어 죽은 것이오. 죽은 사람이 그 혼자만인 것 같지는 않은
데."
죽은 사람은 정말 하나가 아니었다.
나무 숲에는 열 몇 구의 시체들이 매달려 있었다. 사람마다 왼
쪽 얼굴이 모두 부어 올라 있었고 얼굴 뼈가 부수어진 사람도 있
었다.
소어아가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힘도 세군. 따귀로 사람의 얼굴을 이 정도로 만들
수 있다니....... 도대체 누굴까? 위무아의 집으로 찾아오다니 간
도 크구나!"
그는 고개를 숙이고 피가 질펀하게 고인 땅에 몇 개의 이빨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빨이 부러지도록 따귀를 맞으면서 반격조차 하지 못하다
니......."
소어아는 놀랐다. 위무아의 부하들은 결코 무술이 약한 편은 아
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생각에 감기는 듯하더니 다시 중얼거렸다.
"이들을 때린 사람의 무술은 나보다 십 배나 더 무섭겠군!"
소앵이 물었다.
"어떻게 알아요?"
그녀의 마음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무거워졌다. 위무아의 무
술도 소어아보다 그렇게 많이 뛰어나지는 못하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의 무술이 소어아보다 몇 배 디 뛰어나다면 위무아는 필
시 당했을 것이다.
소어아는 말했다.
"나 역시 이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는 있었어.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다 따귀를 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왜요? 그렇다면 살인이 따귀를 때리는 것보다 쉽단 말이에요?"
"내가 만약에 그들을 죽인다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거야."
"음!"
"그러나 이 사람은 진짜 무술은 쓰지 않고 다만 손을 휘둘렀을
뿐이야. 그들은 막지도 못하고 심지어 피하지도 못했어. 이것으로
그가 얼마나 빨리 손을 썼는지 알 수가 있어. 그저 손을 휘둘러
사람의 뼈를 부셔버릴 수 있으니 그의 내력(內力)이 얼마나 무서
운가를 짐작할 수 있지."
소앵이 고개를 돌려보니 이화궁주가 무거운 안색을 하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도 소어아의 평이 정확하다고 느끼고 있는 듯했다.
한참 후 요월궁주가 돌연 말했다.
"그들이 죽은 지 얼마나 된 것 같은가?"
그녀가 소어아에게 물은 것으로 보아서는 그 무서운 이화궁주까
지도 소어아의 견해를 중시한다는 뜻이었다.
소어아가 말했다.
"죽은 지 반 나절이 지나야 시체가 완전히 굳게 되는 것이지
요."
"그렇다면 이 일이 반 나절 전에 발생했단 말인가?"
"최소한도 반 나절은 되어야 시체가 굳는다는 뜻이오. 꼭 이 일
이 반나절 전에 일어났다고 하지는 않았소."
연성궁주가 말했다.
"그럼 너는 이 일이 발생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생각하느냐?"
"어제 황혼 이전이오!"
"네가 어떻게 알지?"
"내가 알기로는 철심난이 두 시간 전에 여기에 왔었소. 이 사람
들이 만약 죽지 않았다면 필시 그녀를 쥐동굴로 안내했을 것이오.
게다가 화무결이 그녀를 뒤쫓아 왔으니 필시 위무아와 충돌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연히 당신들도 그 싸움에 끼어들지 않을 수
가 없었을 것이오."
연성궁주는 화무결을 한 번 쳐다본 후 말했다.
"그렇지!"
"그러나 당신들은 여기서 화무결을 찾은 것이 아니오. 그러니
이곳의 일을 모르고 있지 않겠소? 이런 것으로 보아 그땐 화무결
과 철심난이 이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여기를 떠난 것이오. 그렇
죠?"
연성궁주가 짧게 대답했다.
"그렇지!"
"그렇다면 그땐 이미 이곳의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었을 것이
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해서 그것이 어제 황혼 이전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지?"
그는 돌연 연성궁주에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만약 위무아를 잡으러 왔다면 한밤중에 오시겠소?"
연성궁주는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
"아니지!"
"그렇소. 당신이 만약 한밤중에 적을 찾아온다면 당신의 명예를
잃게 되는 셈이오. 더군다나 날이 어두우면 위무아에게 유리하오.
위무아가 사는 곳에서 그와 싸운다면 이미 불리한 조건인데, 밤중
에 오면 더욱 불리하게 되는 것이오."
그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은 영리한 사람인데 그런 못난 짓을 하겠소?"
연성궁주는 요월궁주를 한 번 바라보았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
지만 그녀의 눈길에는 칭찬의 빛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소어아가 말했다.
"이 사람이 손을 쓴 것으로 보아 공명정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소. 더군다나 이런 무술까지 연마할 수 있는 사람이니 그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절대로 바보가 아닐 것이오. 그는 절대로
밤에 오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소. 시체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으로 보아 그가 밤에 오지 않았다면 필시 황혼에 왔을 것이오."
그는 손뼉을 친 후 웃으며 물었다.
"나의 의견이 어떤 것 같소?"
요월궁주가 나서며 말했다.
"매우 간단한 것이지. 그 누구도 알 수 있는 것이야."
소어아는 크게 웃었다.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왜 나에게 말해보라고 했소?"
순간 요월궁주는 안색이 변했으나 더 이상 그를 상관하지 않고
나무 숲으로 달려갔다. 소어아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
다.
"화낼 필요는 없소. 당신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순복한 것
이오."
나무 숲을 지나자 앞에는 줄지어진 절벽이 나왔다. 마치 병풍을
둘러친 것 같았다.
절벽은 많은 나무와 풀이 둘러싸고 있었다.
요월궁주는 어떤 입구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
리며 소리쳤다.
"위무아가 어디에 있지?"
그녀는 눈은 연성궁주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사실 그 말은 소어
아를 향한 것이었다.
소어아는 일부러 모르는 척 하면서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
"비가 올줄 알았는데 날이 좋아졌구나!"
요월궁주는 그를 힐끗 바라본 후 차갑게 내뱉았다.
"위무아의 동굴은 어디에 있지?"
소어아는 마치 놀라는 듯 말했다.
"나에게 묻고 있소?"
요월궁주는 약간 노기를 띠웠다.
"나는 너에게 묻고 있다."
"그렇게 간단한 것을 어찌 나에게 물어 보죠?"
요월궁주는 그 말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소어아는 소앵에게 몸을 의지하고 앞의 나무들을 치우며 나아갔
다.
하나의 검은 동굴이 그 속에서 드러났다. 속에는 아무 것도 보
이지 않았다.
소어아가 말했다.
"여기가 바로 그곳이니 여러분들께서는 들어 가시지요."
그 동굴은 어두웠을 뿐더러 매우 좁은 곳이었기 때문에 난장이
라도 고개를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위무아 같이 유명한 인물이 그런 개구멍 같은 곳에 살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이상히 여겼다.
더우기 화무결은 소앵의 집이 그토록 우아하니 위무아의 집은
더욱 장관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기가 바로 위무아가 살고있는 곳인가?"
소어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왜 이상한가?"
화무결은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요월궁주를 보고는 다시 고개
를 숙여버렸다.
소어아는 몰래 탄식을 했으나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위무아 같은 큰 쥐가 살기엔 알맞지.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이
냐?"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며 그 구멍을 들어섰다.
그는 몸을 비틀거렸으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이 조금도 힘이
없어 보였다.
요월궁주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멈추어라!"
"왜 날더러 멈추라는 것이오? 이 쥐구멍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
날지 모르는데. 어쩌면 들어가자마자 죽을지도 모르지. 당신들을
위해 길을 찾아주는데도 안 된다는 것이오?"
연성궁주가 말을 받았다.
"먼저 간 사람에게 위험성이 가장 많기 때문에 멈추라고 한 것
이다."
소어아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이 그토록 나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줄은 몰랐군요. 감사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무서운 독에 중독되었으니 살아도
별 재미가 없소!"
이번에는 요월궁주가 나섰다.
"너는 죽어선 안 돼!"
소어아는 다만 가벼운 바람을 느꼈을 뿐이다. 요월궁주가 그의
몸에서 한 자(尺)도 안 되는 거리를 지나갔다. 발이 땅에 닿는 것
같지도 않았고 진정 우아했고 진정 신속했다.
이런 경공(輕攻)을 보자 소어아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혼
자 중얼거렸다.
"위무아가 이미 죽었다면 행운이지. 그렇지 않고서 만약 이 두
분 궁주의 손에 걸리면 나처럼 함부로 죽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요월궁주를 따라 걸음을 옮겨놓았다. 길은 왼쪽으로
꺾여 있었다.
곧 하나의 넓은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의 양쪽은 하얀 옥석으로 만들어져 있어 위에는 은은히 빛
이 드러났으나 등불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철심난과 화무결, 이화궁주 등 사람들은 이 동굴 속에 이같은
별천지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자 모두 놀라운 빛을 감추지 못했다.
소어아가 웃으며 말했다.
"이상히 생각하오?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이상히 여길 것이오.
난 비록 황궁(皇宮)을 가보진 못했지만 황궁도 위무아의 동굴보다
화려하지는 못할 것이오."
사람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소어아만이 계속하여 입을 놀
리며 주절거렸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소. 한 마리의 개라도 자기의 집은 편안하
게 꾸밀 것이오. 다만 위무아는 은거하며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여기에 피해 왔으니 자연히 식당처럼 문까지 장식할 필요는 없었
던 것이오."
그가 웃으며 말을 하는 것이 마치 남에게 들으라고 일부러 소리
라도 치는 것 같았다. 통로에는 그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퍼졌다.
연성궁주는 참을 수가 없었던지 입을 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너를 벙어리 취급은 하지 않을테니 입 좀 다
물어라."
"위무아가 들을까봐 걱정하는 것이오?"
그는 연성궁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말했다.
"만약 사람을 찾아왔다면 광명정대(光明正大)하게 들어갈 일이
지 몰래 들어갈 필요가 있겠소?"
연성궁주는 대답을 하지 않다가 잠시 후에 서서히 말했다.
"위무아는 들어라, 이화궁에서 사람이 찾아왔으니 어서 나오너
라."
그녀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소어
아의 웃음소리를 누르고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그러나 동굴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소앵은 안색이 우울해졌다.
위무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 없었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다면 소어아가 크게 웃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
화궁주가 부르기 전에 벌써 기관들을 작동했을 것이다.
돌연 요월궁주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이게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통로의 바닥에 한
줄로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석자(尺)를 간격으로 하나씩 하나씩 새겨져 있었는데 끌로 새긴
다해도 그처럼 또렷하게 그리지 못할 정도로 확연하게 발자국이
드러나 있었다.
통로의 바닥에 깔린 돌은 양쪽의 벽과 같이 매끈하고 칼로 조각
을 하려해도 쉽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돌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발자국은 칼로 조각한 것보다도 더욱 깨끗했
다.
연성궁주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공력이 약하지는 않으나 너무 영리하지가 못하군."
소어아가 말했다.
"그건 무슨 이유요?"
"왜 쓸데없이 돌 위에다 소비하고 다닌 것이지?"
소어아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내가 보기엔 당신의 말이야말로 그리 영리한 말이 아니오."
"뭐라고?"
"무술은 제쳐놓고 기관을 만들어서 살인 매복하는 것은 이 큰
쥐가 천하 제일일 것이오."
"그렇지. 위무아는 복잡한 것을 확실히 많이 알고 있어!"
"내가 알기로는 이 하나의 통로에만도 수십 개의 기관이 장치되
어 있소."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지?"
"나는 적어도 열 세 종류의 맛을 봤기 때문이오."
소어아는 연성궁주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은 필시 위무아를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이 통로를 걸
어갈 때는 수시로 경계를 해야 하오. 모든 공력을 집중해야 하니
자연히 발걸음에 공력이 실린 것이오."
"그렇지. 무술이 절정에 달하면 일거 일동에도 필시 심후한 공
력이 담기게 되지."
"그는 기관이 언제 발동할 지 몰라서 모든 공력을 집중하여 수
시로 경계한 것이오. 그래서 자연히 이 발자국이 남게 된 것이
오."
그는 연성궁주를 잠시 바라본 후 웃으며 말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사람이 결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소. 그는 공력이 너무 강했을 뿐이오."
연성궁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요월궁주가 앞으로 나서며 대신 입을 열었다.
"이 통로의 기관이 발동되지는 않았던 모양이지?"
"그렇죠. 기관이 발동했다면 어떤 흔적이 남았을 것이오."
"이 사람이 들어올 때에는 필시 동굴에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관이 왜 움직이지 않았을까?"
"나는 비록 이 사람이 걸어들어오는 상황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도 필시 우리와 같이 들어오면서 '위무아 듣거라. 내가 찾아왔다'
고 말했을 것이오!"
그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기관을 발동하지 못한 것은 필시 위무아가 이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크게 놀랐기 때문에 감히 손을 쓰지 못한 것일 것이오."
요월궁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해석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
다.
연성궁주가 다시 물었다.
"과연 어떤 사람의 이름이 위무아를 놀라게 할 수가 있었을까?"
그녀 자매는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누군가를 생각해낸 것 같았
다.
이때 소앵이 불쑥 나서며 말했다.
"이 사람의 발자국을 보니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크군요. 이것
으로 보아 그의 몸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한
걸음에 석자(尺)의 거리니 그는 다리가 매우 길 거예요."
그녀는 사람들의 눈이 자기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하기를 원하
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계속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내가 알기로 천하에 단 한 사람의 무술만이 이토록 용맹하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화궁주 자매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성궁주가 긍금하다는 듯
물었다.
"누구지?"
소앵이 대답했다.
"대협 연남천(大俠 燕南天)이오!"
이화궁주 자매도 물론 그 사람이 연남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
다.
그러나 막상 '연남천'이라는 이 세 글자를 듣자 매우 냉정했던
두 자매의 안색도 변하고 말았다.
소어아의 눈은 그녀들의 변화를 살폈다.
그러나 그는 눈동자를 돌리며 기쁜 듯 말했다.
"그렇지. 그 사람은 필시 연남천일 것이오. 연 대협 외에는 또
누가 이런 재주가 있겠소!"
요월궁주가 갑자기 말했다.
"절대로 연남천은 아닐 것이야!"
연성궁주도 즉각 따라서 외쳤다.
"그렇지. 내가 알기로 연남천은 벌써 죽었다!"
그녀들이 소어아를 바로 보는 것은 소어아를 통해 연남천에 관
한 소식을 알려고 하는 듯했다.
소어아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은 그렇게 말을 해도 마음 속으로는 연 대협이 절대로
죽지 않았다고 믿고 있소. 그렇지 않소?"
요월궁주가 대꾸했다.
"죽지 않았어도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야."
연성궁주도 한마디 첨가했다.
"그렇지. 그 사람은 명예를 중요시하여 전에는 한 달 간격으로
어떤 일을 해서 남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는 했지. 만약에
그가 죽지 않았다면 이 이십 년 동안 왜 그의 소식이 없었지?"
"당신들은 그에 관한 소식을 알고 싶은 것 같은데, 나는 말을
하지 않겠소! 당신들은 왜 떠들기만 할 뿐 들어가보지를 않죠?"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자매는 통로로 들어섰다.
위무아의 동굴
철심난은 화무결과 소어아의 가운데에 서서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매우 비참하고 가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하늘로 솟든지 땅으로 꺼지든지 둘 중 하나라도 하고 싶
었다. 그러나 그녀는 진퇴양난이었다.
화무결의 눈초리에도 고통스러움과 복잡함이 서려 있었고 그 역
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차마 하지
못하고 급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소어아는 돌연 그의 앞에 달려와 웃으며 말했다.
"고맙소."
화무결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소!"
"석 달이 지났으니 이제는 친구로 생각하지 않을 줄로 알았소.
그러나 당신은 나를 위해 이미 위무아가 동굴에 없다는 것을 말하
지 않았지. 정말 고맙소."
화무결은 다시 입을 굳게 다물고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는 매우 곤란했다. 한참 후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소. 난 다만 말이 적었을 뿐이오."
"그러나 당신이 아무말도 하지 않은 것은 나를 위해서이오. 친
구만이 서로의 비밀을 지켜줄 수가 있소. 원수는......."
화무결이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렇지. 친구만이 상대방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소. 서로 안면
을 바꾸면 상대방의 비밀을 드러낼 수도 있지."
"바로 그렇소!"
화무결은 안색이 변하면서 무서운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난 그런 사람이 아니오!"
그는 말을 끝낸 후 소어아를 피해서 달려갔다.
소어아는 탄식을 하며 중얼거렸다.
"당신은 너무 군자이기 때문에 반항할 용기가 없어. 나처럼 반
역자가 되어 보란 말이야......."
철심난이 돌연 얼굴을 가리며 걸어갔다.
소앵은 즉각 큰소리로 그녀를 불렀으나 그녀는 상관하지 않고
앞으로만 내달렸다.
그녀는 다만 멀리 이 사람들을 떠나갈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몸은 달아날 수가 있어도 그녀의 마음만은 영원
히 달아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디로 가든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소어아와 화무결에게
속해 있으며 두 개의 피투성이로 갈라져 있는 것이다.
소앵이 발을 구르며 말했다.
"당...... 당신은 왜 그녀를 잡지 않지요?"
소어아는 웃으며 말했다.
"가기로 결심을 했다면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잡을 수는 없
지!"
그는 웃고 있었으나 웃음 속의 아픔을 그 누구도 알 수는 없었
다.
소앵이 말했다.
"당신은 필시 그녀를 잡을 수도 있을 거예요."
소어아는 소앵의 말을 듣자 돌연 날뛰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날더러 어쩌라는 거냐? 날더러 그녀를 쇠사슬로 묶어두라는 말
이냐? 아니면 날더러 꿇어앉아 울면서 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
지란 말이냐?"
소앵은 멍하니 화난 그를 바라보았다. 눈물방울이 그녀의 창백
한 얼굴로 흘러내렸다.
소어아는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그녀가 갔으면 너는 기뻐야 하는데 왜 울지?"
"이것은 모두가 당신 탓이에요. 지금은......."
"지금 네가 어떻다는 말이냐?"
소앵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은 나도 그녀처럼 멀리 가버렸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그녀
때문에 상심하는 것은 보기가 싫어요."
소어아가 크게 웃었다.
"내가 상심해? 내가 왜 속상해 하지?"
"그녀의 마음이 당신을 떠났기 때문에 당신이 그토록 그녀를 멀
리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 짧은 두마디는 소어아의 가슴을 마치 칼로 도려내는 듯했다.
남자는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그녀가 배반을 하
면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소어아는 또 날뛰면서 말했다.
"정 그렇다면 너는 왜 가지를 않느냐?"
소앵은 눈물로 대답을 대신했다.
소어아가 말했다.
"나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인가? 그런가?"
소앵은 입술을 깨물었다.
"당......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거예요? 당신은
왜......."
소어아는 갑자기 그녀를 안고 싶었다. 그는 돌연히 몸을 돌려
그녀를 껴안으며 입술로 무겁게 그녀의 입술을 눌렀다. 그는 그녀
를 부서져라하고 안아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소어아의 가슴을 헤치며 소리쳤다.
"나를 놓아요. 나를 놔!"
"너...... 네가 그렇다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냐?"
소앵은 손을 놓고 입을 가렸다.
그녀는 벽까지 물러나 거친 호흡을 몰아 쉬었다.
소어아는 길게 탄식하며 쓴웃음을 보였다.
"내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어."
소앵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떨
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어요. 나도 당신이 나를 안는 것
이...... 싫은 것은 아니에요. 내가 당신에 대한 감정이 이렇게
깊지 않았다면 나를 안아 주어도 난 만족하겠어요. 그러나 지금
당신이 안아 주는 것이 싫은 것은 다른 사람을 생각했기 때문이에
요."
소어아는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연성궁주가 이미 싸늘한 표정으
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말로도 위무아의 동굴을 표현 하기에는 어려웠다.
그것은 대단히 미친 놈이 돈과 권세로 만든 환상의 세계였다.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중간에 있는 방 한가운데에는 하나의 큰 돌의자가 있었다. 거대
한 돌 하나로 만든 것이었다.
그것은 옥석보다도 더욱 빛났고 조금의 잡색깔도 보이지 않았
다.
천하에 이와 같은 돌을 찾을 수 없는 진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의자는 칼에 의해 두 덩이로 갈라져 있었다.
요월궁주와 화무결은 그 돌의자 앞에서 칼로 잘린 곳을 바라보
며 안색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화무결이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이 사용한 것은 필시 하나의 절금단옥(切金斷玉)의 보
검일 것입니다."
요월궁주는 한참 후 넓은 옷소매에서 하나의 녹색 단검을 꺼냈
다.
검의 길이는 한 자 칠 촌(寸) 정도였으며 몇 번 바라보면 검기
가 사람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요월궁주는 그 단검을 화무결에게 주며 말했다.
"너는 십 중의 구의 힘으로 이 의자를 나눠 보아라."
"네."
그는 양손으로 검을 받아들자 그제서야 이 짧은 검의 무게가 그
의 상상밖으로 무거운 것임을 알았다.
검을 만지자 차가운 검기가 오싹하게 느껴졌다.
화무결은 칭찬을 하고 싶었지만 요월궁주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요월궁주가 다시 말했다.
"너는 나의 문하에서 오래 있었지만 이것을 본 적은 없었을 것
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왜 이것을 너에게 견식해주지 않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수백 년 이래 이 검을 본 사람은 모두 이 검에 죽었다. 나 외
에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어."
비록 담담한 말이었지만 그 말은 사람들을 소름끼치게 했다.
화무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오른손으로 검을 들고 왼발
을 앞으로 뻗치면서 '유봉래의(有鳳來義)'의 수법으로 그 돌의자
를 내려쳤다.
그는 모든 공력을 팔에다 모았으므로 손에 아무 것도 들지 않았
다해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일 초였다.
그러자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기더니 검은 돌의자를
한 자쯤 자르고 그 속에 박혀 버렸다.
화무결은 검을 잡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 의자를 자른 사람은 그와 같은 검을 사용했다해도 공력이 그
의 수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고수가 있다니 정말 상
상도 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요월궁주는 탄식을 하며 담담히 말했다.
"옛날부터 '청옥석(靑玉石)'이 단단하다고는 들었지만 오늘 보
니 과연 틀림이 없구나.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청옥석을 이렇게 두 부분으로 가를 수가 있었을까. 그의 검법은
정말 대단한데."
"검법도 뛰어나지만 그의 공력은 더욱......."
요월궁주는 그의 말을 막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 의자는 등이 다섯 자의 높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검
으로 잘라 버릴 수 있었다. 너는 한 자밖에 자를 수가 없었으니
그의 공력이 너보다 몇 배나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렇지?"
"부끄럽습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자는 검이 의자에 파고드는 순간 남은 힘이 많아서 석 자 정
도는 자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곧 남은 힘
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자는 도저히 그의 공력애 상대
가......."
요월궁주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너무 겸손할 필요는 없다. 천하에 너보다 공력이 세 배나 뛰어
난 사람은 없어. 다만 너는 요령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
한 것이다."
화무결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제자가 부족해서......."
"너는 돼지 죽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그들은 한 칼로 짐
승의 목숨을 해결한다. 그러나 널더리 돼지를 죽이라고 하면 그토
록 쉽게 하지는 못할 거야. 그렇다면 너의 힘이 그들보다 못하단
말이냐?"
화무결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요월궁주가 말했다.
"관건은 그들의 수법이 너보다 숙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든 익히게 되면 잘 되는 거다. 온 천하의 모든 일이 그런 것이지.
천하의 모든 일이 다 같은 도리야. 검법도 그렇고 말이야. 그는
한 검으로 의자를 갈라놓을 수 있었지만 너는 하지를 못했어. 그
건 그의 공력이 너보다 수 배나 높은 것이 아니고 다만 그가 너보
다 검을 잘 쓰기 때문이다."
이 말은 비록 간단한 것 같았으나 사실은 무술의 가장 오묘함이
간직되어 있는 말이었다.
요월궁주는 다시 담담히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사람은 수법이 너보다 교묘하고 또한 빠르다. 빠른 것이 바
로 '힘'이야. 그래서 그는 네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네가 만약 그와 싸운다면 오십 수법 이내에 그가 너의 검세를 봉
할 수가 있고, 백여 수법 이내에 너의 목을 칠 수가 있다."
화무결의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요월궁주의 말은 계속 되었다.
"그가 이 돌을 쳤을 때에는 필시 매우 분노해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는 마음 속에 잡념이 없었기 때문에
손을 쓸 때의 힘이 자연히 집중 되었던 것이지. 네가 손을 쓸 때
는 돌의자를 얼마나 자를 수 있을까 계산했기 때문에 정신이 분산
되고 만 것이야. 만약 그런 심정으로 놈과 싸우면 매우 위험해."
요월궁주의 말을 들은 화무결은 더욱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을 하
지 못했다.
이때 한 사람이 손뼉을 치며 그들의 대화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화궁주의 무술 묘론은 과연 정밀하오. 나는 당신에게 탄복하
게 되는군요."
소어아가 웃으며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소어아는 그 녹색의 단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바로 옛날의 전설적인 '벽혈 조단청(碧血照丹靑)'인가
요?"
요월궁주가 싸늘하게 말했다.
"너는 눈도 밝구나!"
"전설에 옛날부터 명검을 제조할 때에는 꼭 산 사람의 피에 씻
어 제사를 지낸 후 완성했다고 들었소."
"지금은 옛날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야."
소어아는 그녀를 상관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다만 이 '벽혈 조단청'만은 한 사람의 뜨거운 피로도 완성되지
못했고, 검사(劍士)의 처와 자녀까지 모두 희생됐지만 소용이 없
었소. 검사는 비통한 나머지 자기도 검에 뛰어들었소. 이틀 후 길
을 지나던 도인(道人)이 검을 완성했지요. 들리는 말에 검이 완성
되자 천지가 모두 색이 변하고 벼락이 쳐 그 도인이 놀라 검에 넘
어졌다고 하오. 이 검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후 불행하게도 그 첫
번째의 희생자는 그 도인이 되었다는 것이오."
여기까지 말을 하고 소어아는 한바탕 웃었다.
"이번 말들은 모두 후일의 사람들의 말이라 믿을 수는 없소. 그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면 누가 이런 말을 전할 수 있었겠소?"
요월궁주는 말했다.
"그렇지. 그 일들을 믿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 일만은 네가
필히 믿을 거야."
"무슨 일이오?"
"그 검을 만든 사람 자신은 검에 뛰어들면서 울분 끝에 이 검이
완성되기만 한다면 이것을 보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고 이야기를
했어."
그녀는 싸늘하게 소어아를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이 일만은 믿지 않으면 안 돼."
소앵은 온 몸에 소름이이 끼쳐 고개를 돌렸다. 그 불길한 물건
을 보지 않으려는 듯했다. 소어아는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 것이오. 이런 무기에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영광이오. 하지만 이것을 본 사람이 나 하나 뿐만
은 아닌데."
화무결은 '창' 하는 소리를 내며 돌에서 검을 뽑아냈다. 그는
양 손으로 그것을 요월궁주에게 건네주었다.
요월궁주는 눈에서 빛을 내며 담담히 말했다.
"네가 가져라!"
화무결은 즉시 안색이 변하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제자는......."
그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소어아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에게 보물을 넘겨주는 뜻은 그것으로 나를 죽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그 검을 만든 사람의 말이 맞다면 당신도 그 검
에서 살아날 생각을 마시오!"
요월궁주는 즉각 안색이 창백해져 화무결을 바라보았다.
이때 연성궁주가 말했다.
"무결아, 너는 철심난을 찾아오너라!"
화무결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그는 소어아를 힐끗 바라본 뒤 눈을 감아버렸다.
요월궁주가 말했다.
"그녀의 걸음으로는 필시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쫓아갈
수 있을 거야."
화무결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그러나 제자는...... 제자는......."
연성궁주는 무서운 소리로 그의 말을 막았다.
"나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것이냐?"
화무결은 다시 소어아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난처한
기색이 감돌았다. 그러나 그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철심난을
찾아나섰다.
이때 소어아를 향해 소앵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나와 같이 여기를 더 살펴보지 않겠어요?"
"좋아."
소어아는 소앵의 뒤를 따라 동굴을 살폈다.
한동안 여기 저기를 둘러보던 소어아가 돌연 입을 열었다.
"위무아는 벌써부터 물러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값 나가는 물건은 모두 가지고 가버렸어."
"쥐들이 집을 옮겼으니 자연히 깨끗해졌겠죠."
"쥐들이 왜 집을 옮길까? 고양이가 올 줄을 알고 있었단 말인
가? 위무아가 어찌 그런 것까지 예측할 수 있었을까?"
소앵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그래요. 그 사람이 갑자기 여기를 침입했을 때는 위무아는 이
미 여기에 없었어요. 그가 만약 당황하여 달아났다면 이처럼 깨끗
하게 치워놓고 달아나지는 못했을 거예요."
"더군다나 그가 여기서 이십 년 동안 무술을 연마하고 많은 기
관들을 건립한 것도 연남천과 이화궁주를 상대하기 위해서였는
데......."
소앵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그는 확실히 그런 뜻을 갖고 있었어요."
"설사 그가 연 대협이나 이화궁주가 오는 것을 알았다해도 달아
나지는 않았을 거야. 오히려 기회를 이십 년 동안이나 기다려왔는
데......."
소앵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그는 꼭 그들과 승부를 가리고 싶어했어요. 자주 나에게 이화
궁주가 오지 않으면 몰라도 오기만 하면 필시 자기의 손에 죽을
것이라고 했지요."
"그가 왜 여기를 떠나야만 했을까?"
"나도 모르는데요!"
"이것 외에도 모르는 일이 하나 더 있어."
"그래요?"
"그날 내가 중상을 입었을 때 위무아가 돌연 손님을 마중나갔다
고 했지? 그 손님은 강별학이었어."
"그래요."
"강별학은 비록 '강남대협'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지만 위무아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을 거야."
"강남대협은 그에게는 과분한 명칭이지요."
"위무아가 그가 왔다는 말을 듣고 급히 마중나간 것은 무엇 때
문이었을까? 그와 강별학이 서로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알고 있는 사이 같았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강별학이 여기를
찾아 올 수도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나는 모르겠단 말이야. 강별학은 강호에서 일어선 지
몇 년 되지도 않았고, 위무아는 이미 여기서 이십 여 년이나 은거
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어떻게 알게 됐을까 하는 점이야."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뚱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 두 사람이 서로 내통을 했으니 위무아는 더욱 강해진 셈이
야. 그런데도 가버렸으니...... 내 생각에는 필시 어떤 음모가 있
을 것같아. 어쩌면 그들이 무슨 조치를 해놓았을지도 몰라. 들어
올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했었지."
이때 돌연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이 이상하지?"
그 말소리는 그들의 몸 뒤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소앵과 소어아는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필시 이화궁주가 그들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이화궁주의 경공은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소어아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이곳은 비록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지만 모종의 살기로 가
득차 있소. 마치 무덤 같고 다시는 나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오."
연성궁주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다만 네가 너무 의심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
"어쩌면 나의 의심병인지도 모르오. 그러나 어떻든 간에 나는
여기에 있고 싶지가 않으니까 당신들이 나가고 싶지 않다면 내가
먼저 나가겠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한 사람의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가려 한다면 너무 늦었어!"
이화궁주와 소앵은 놀라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소어아도 깜짝 놀라 고개를 들며 소리쳤다. 그 웃음소리는 그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위무아가 여기에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난 아직 여기에 있으며, 여러분들을 오랫동안 기다리
고 있었지."
이화궁주는 번개처럼 웃음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그 웃음 소리는 옆에 있는 석실에서 들려왔다.
그 실내에는 좋은 침대와 일상용품들이 놓여 있었으나 다른 방
들과 큰 차이는 없었다. 위무아의 문하가 자는 침실이었다.
그러나 그 스산한 웃음소리가 나며 그 실내의 벽이 열렸다.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차가 석벽에서 굴러나왔다.
그 차는 빛이 나는 금속으로 만든 것이었으며 그 위에는 어린애
같은 사람이 하나 앉아 있었다.
첫눈에도 그 위에 앉은 사람은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마치 출가할 때의 소녀의 옷
같았다.
그러나 그의 눈은 교활하고도 악독했다. 마치 비가 오려고 할
때의 암울한 하늘과 같았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 순진한 빛을 내
며 재롱부리는 어린애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화궁주는 그를 발견하자 발을 멈추고 멍하니 서있었다. 마치
독사를 만났을 때의 표정이었다.
위무아는 그녀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지만 두 분은 여전히 아름답군요. 여자가
얼굴을 그토록 잘 보존할 수 있다면 재물보다 더욱 좋은 것입니
다."
요월궁주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네가 감히 나를 보려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왜 못하겠소. 두 분께서 소인을 죽이지는 않을 텐데요?"
소어아가 큰소리로 말했다.
"어찌 그녀들이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것인지 아시오?"
"내가 이화궁의 규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이미 그들의 손
에서 벗어났으니 다시 그녀들을 괴롭히지 않는 이상 나를 죽이지
는 않아."
소어아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요월궁주에게 물어보았다.
"이화궁에 정말 그런 규칙이 있단 말이오?"
"그래!"
소어아는 탄식을 한 후 돌연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그녀들을 찾아 복수를 하려고 하지 않았소? 그
녀들이 당신에게 손을 쓰지 않는다해도 당신이 그녀들에게 손을
쓸 것이 아니오?"
"그렇지도 않아."
"복수할 생각이 없어졌단 말이오?"
"복수는 해야지. 그러나 그녀들을 괴롭히지 않고도 복수는 할
수 있지."
소어아는 그제야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또 무슨 말이오? 대체 무슨 개소리란 말이오?"
위무아는 화를 내지 않았다.
"아까의 너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여기는 이제 하나의 무덤
이니 나갈 생각을 버려야지."
요월궁주가 안색을 바꿨다.
"뭐라고?"
"나는 나가는 곳을 모두 봉쇄했소. 사람 뿐만 아니라 파리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 할 걸."
소어아는 크게 놀란 나머지 나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는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위무아가 한 말이 절대로 허튼 소리가 아님을 알고 있었
다.
그는 눈알을 굴리며 웃음을 보였다.
"모든 출구를 봉쇄했나요?"
"그렇지."
"그럼 당신 자신도 나갈 생각이 없겠군요?"
위무아가 그 말을 받았다.
"나는 결코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
옛이야기
소어아는 한바탕 크게 웃어 제꼈다.
"당신의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소. 그녀들은 생으로 여기에 매
장된다해도 당신은 사람을 시켜 기관을 열 수가 있는데 왜 자신도
같이 매장당하겠다는 것이오?"
위무아는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였다.
"내 눈으로 직접 그녀들이 고통을 겪는 것과 굶주림으로 괴로와
하는 것을 보고 싶어. 그녀들이 끝까지 성녀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지."
소어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할 말을 못찾다가 간신히
한마디를 했다.
"당신은 미친 사람이군. 틀림없이 미친 사람이야."
위무아는 껄껄 웃었다.
"안타깝게도 너희들은 모두 이 미친 사람의 손에 죽고 말 거
야."
소어아는 이화궁주를 바라보았다.
그 두 자매 모두 석상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도 않았다.
소어아는 눈알을 굴리며 돌연 크게 웃었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가 죽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오. 당신이 우
리보다 먼저 죽을테니까."
"난 너희들보다 먼저 죽지는 않을 거야. 나는 몸이 너희들보다
작아서 식량의 소요량도 너희들보다 적어. 너희들이 굶어죽을 때
도 난 여전히 살아있을 거야."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당신이 그녀들의 상대가 못되
기 때문이 아니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힘으로 그녀들을 죽일
것이오."
위무아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렇지. 난 이 이십 년 동안 무술이 많이 진보되었어. 나는 필
시 내가 그들을 죽일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지. 그러나 강별학
을 본 후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어."
"어찌 그를 만난 후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오?"
"이십 년 전 강별학은 이름도 없는 사람이었어. 지금 그는 강호
의 일류 고수가 되었지. 그러니 이화궁주의 무술은 더 말할 나위
가 있겠어? 나 혼자만 무공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었어. 더군다나
그녀들 자매는 두 사람이고 난 혼자야."
그는 징그럽게 웃고나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거듭한 후 이런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
지."
"그녀들이 당신을 죽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일텐데 당신
은......."
위무아는 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말했다.
"벌써 말했잖아? 그녀들은 절대로 나를 죽이지 못해. 나는 그녀
들을 괴롭히지는 않았으니까."
소어아는 또 크게 웃었다.
"그녀들을 산 채로 여기에 가두어 죽이려고 하는데도 괴롭히는
것이 아니오?"
"여기는 본래 나의 집이 아닌가."
"음."
"난 그녀들을 강제로 오라고 하지 않았어. 난 그냥 내 집의 문
을 닫았을 뿐이야. 그런데 그것이 그녀들을 괴롭혔다고 할 수 있
겠나?"
"그러나 그녀들이 당신에게 문을 열라고 해도 당신이 열지 않는
다면 그것이 바로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오."
위무아는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문은 만근 이상의 무게인데 지금은 밀폐되어 버렸어. 나 자신
도 열지 못해."
순간 소어아는 돌처럼 서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위무아가 계속해서 말했다.
"더군다나 여기의 문은 모두 밀폐된 이상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
는 희망조차 품을 수가 없어. 난 너희들의 유일한 희망이야. 너희
들은 절대로 나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야."
그는 돌연 또 다시 징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앵아야, 너는 왜 밖에서 들어오지를 않니?"
소앵은 그 말을 듣자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그녀의 안색은
무섭도록 창백했다.
위무아는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본 후 다시 이화궁주를 바라보
며 말했다.
"내가 항상 너에게 친절했던 것이 무엇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느
냐?"
소앵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난...... 몰라요."
"네가 두분 궁주를 바라본 후 다시 거울을 보면 알게 될 거야."
소어아는 그제서야 소앵과 이화궁주의 용모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모두 절색의 미녀였고 안색도 모두 창백했다.
표정도 싸늘한 것이 정말 모녀나 친 자매인 것 같았다.
소앵은 놀라서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친절했던 것은 내가 그녀들을 닮았기 때문인가
요?"
"그렇지, 그렇지 않았다면 천하에 고아들도 많은데 내가 왜 굳
이 너를 데려왔겠니? 내가 항상 너의 말을 모두 들어 주었던 것은
너를 오만한 성격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어. 너를 혼자 살게 한 것
도 고독한 성격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지......."
소앵이 말했다.
"나를 그들과 같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단 말예요?"
"물론이지."
소앵은 위무아를 한동안 바라본 후 다시 이화궁주를 바라보았
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이때 연성궁주가 소리쳤다.
"닥쳐라!"
소앵은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태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소어아는 손뼉을 치며 그의 독특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에야 알겠군. 당신의 마음 속에 있던 사람이 바로 이화궁
주였군요. 그녀들을 얻지 못해 사랑이 미움이 되어 그들을 미워하
는 것이군요?"
그 교활한 십이성상의 위무아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
운 이화궁의 여인에게 연정을 느꼈다니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
다.
소어아는 생각할수록 재미있다고 느껴져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
였다.
위무아의 말이 계속 되었다.
"이십여 년 전에 난 이화궁에 가서 그들에게 구혼을 했었
지......."
소어아는 그 말이 나오자 숨을 거칠게 쉬며 웃음을 참아야 했
다.
"당신...... 당신이 그들에게 구혼을?"
"그건 바로 지혜와 아름다움의 결합이야. 세상에서 가장 잘 어
울리는 일인데 무엇이 우습지!"
"네, 네, 네, 확실히 가장 잘 어울리는 낭군이었지만 안타깝게
도 그녀들은 응답을 않고 당신을 죽이려고 했겠지요. 그때부터 당
신의 원한이 시작된 것이지요?"
위무아는 그때를 생각하는 듯 긴 한숨을 불어냈다.
이화궁주 두 사람은 온 몸을 떨었다.
소어아는 눈알을 굴리며 웃었다.
"이같은 대영웅 대호걸이 당신들에게 구혼하는 것은 당신들에게
더없는 영광이었을 것이오. 그런데 왜 당신들은 응답을 하지 않았
는지 안타까운 일이군요."
위무아가 크게 웃었다.
"그녀들을 격노케 할 필요는 없어. 그녀들이 먼저 나에게 손을
쓰도록 하려고 하나? 그녀들은 나를 죽인다 해도 아무런 이익이
없어. 네가 정말 영리한 사람이라면 그녀들에게 나를 죽이지 못하
도록 설득해야 해. 내 자신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굶으면 필시 방
법을 생각해 이 문을 열지도 모르니까."
소어아는 그를 뚫어져라고 바라보다가 서서히 말했다.
"그렇죠. 당신은 지금 죽어선 안 되오. 물어볼 것이 많으니까."
"한 번에 돌의자를 두 동강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
알고 싶단 말이냐?"
"그렇지는 않소. 그 일은 당신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
소."
위무아는 뜻밖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여 보였다.
"이미 알고 있다고? 그럼 그 사람이 누구냐?"
"어느 누구도 오지 않았소! 여기 있는 이화궁주 두 분은 연남천
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나는 확실히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가 있
소."
위무아는 크게 웃었다.
"누구도 오지 않았다고? 그럼 복도에 남겨진 발자국은 무엇이
냐?"
"복도의 그 발자국은 당신이 새겼기 때문에 그토록 뚜렷한 것이
오."
위무아의 눈에서 빛이 났다.
"나무 숲의 사람들은 누가 죽였지?"
"물론 당신이 죽인 것이오. 당신이 그들의 따귀를 때리니 그들
은 당연히 반격도 하지 못하고 피하지도 못했을 것이오."
"그 사람들이 모두 나의 제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당신의 제자라면 어떻단 말이오? 당신이 제자들을 사람으로 취
급해 본 적이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그 청옥석의 의자를 내가 잘랐단 말이냐?"
"물론 그렇소."
"내가 그런 재주가 있을까?"
"그 청옥석은 금철보다도 더 단단하오."
"그렇지."
"청옥석으로 의자를 만들수가 있었다면 필시 그만한 위력을 가
진 기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오."
"음."
"청옥석을 의자로 만들 수가 있다면 필시 그것으로 의자를 두
동강으로 만들수도 있지요. 아주 간단한 도리가 아니오?"
위무아의 입에서 다시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렇지. 그럴듯한 얘기야."
"당신이 숲의 제자들을 죽이고 복도에 발자국을 남긴 것은 우리
를 들어오게 유인하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이오."
"그것도 일리가 있지."
"당신은 우리가 들어왔다가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다시 나갈까
봐 의자를 두 동강으로 잘라 우리의 의심을 부추겼소. 그리
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문을 밀폐하는 것은 단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내가 너희들의 주의력을 그 의자에 집중시킨 후 문을 닫을 시
간을 얻었다는 말인가?"
"그렇소."
위무아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어제꼈다. 그는 너무 웃은 나머
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소어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웃소? 내 말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오?"
"맞았어. 정말 맞았어. 너는 정말 천하에서 가장 영리한 녀석이
야."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과히 겸손해하지 않겠소."
"이제는 나도 너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어, 그래요?"
"네가 여기를 살펴보았으면 알아챘겠지만 여기에는 도처에 보물
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어.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이지?"
소어아는 놀랐다.
"그건...... 그건 당신이 제자들을 시켜 운반해 나갔겠지요."
"내가 왜 그들을 시켜 보물들을 가져가라고 했을까? 이미 여기
서 죽기로 결심을 했다면 왜 그 보물들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려
했겠어. 내가 종래에도 나의 제자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면 그들에게 그것을 선물할 리도 없을 테고......."
"당신은 우리가 죽은 것을 보고는 나갈 생각이었소."
"내가 만약 정말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더욱 보물을 가지고 가
게 하지는 말아야 했지. 나는 너희들이 모두 죽어야만 나갈 수가
있어. 역시 너희들처럼 죽어버릴 수도 있어. 아니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지. 그렇다면 보물을 여기에 그냥 두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았을까? 너희들이 내 보물을 노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이 말에는 소어아도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위무아는 웃음을 만
면에 띠었다.
"천하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 그 이유를 모르겠나?"
"그건 당신이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오. 미친 사람의 생각과 보
통 사람의 생각은 틀리는 법이오."
위무아는 탄식했다.
"내가 정말 미친 놈이라면 나의 못난 제자들에게 모두 나와 함
께 죽어달라고 했을 텐데. 이 점을 너는 생각해보지 못했느냐?"
소어아는 다시 놀랐으나 곧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곳에 정말 무림 고수가 왔었단 말이오?"
위무아는 웃으며 말했다.
"네가 믿지를 않는다니 말할 필요도 없지."
소어아는 눈을 몇 번 깜박 거리다가 말했다.
"내가 만약에 믿는다면?"
"그렇다면 내가 말해주지. 여기에는 확실히 황혼무렵에 사람이
왔었어."
"그 사람이 누구요?"
"너는 그 사람을 알 텐데?"
"내가 어찌 그 사람을 알겠소."
"그는 너에 관해 물어보았어."
소어아는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럼 당신은 그 사람이 바로 연남천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오?"
위무아는 그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또렷하게 말했다.
"그렇지. 그 사람은 바로 연남천이었어!"
소어아는 정말 놀랐다. 그러나 그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다면 내가 믿을지도 모르지만 그러
나 연 대협이라면......."
위무아가 그의 말을 막았다.
"연남천이라고 하면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지?"
"정말로 연남천이 왔었다면 당신이 아직도 세상에 남아 사람을
해칠 수 있었을 것 같소?"
위무아는 싸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무술이 나보다 뛰어난줄 아느냐?"
"그의 무술이 당신보다 뛰어나지 않았다면 이미 당신에게 죽었
을 것이오."
"내가 그를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 네가 어떻게 알지?"
소어아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순간 웃음으로 그것을 감추면서
말했다.
"그가 정말 왔었다면 복도의 발자국도 그가 남겨 놓은 것일 게
요. 돌의자도 그의 신검이 갈라놓았을 것이고. 그 검은 하늘을 뒤
흔들었을 것이니 당신의 재주로는 그를 조금도 다치게 하지 못했
을 것이오. 당신의 재주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위무아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그렇지. 나는 확실히 그의 상대가 못되지."
"그가 정말 여기에 왔었다면 왜 당신을 죽이지 않았소?"
"교환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야."
"무슨 조건이오?"
"내가 그에게 사람을 하나 주면 그는 나의 목숨을 다치지 않겠
다고 했지."
소어아는 이 말에 정말 놀랐다. 그는 급히 물었다.
"당신이 그에게 누구를 준다고 했소?"
위무아는 의미심장한 태도로 간단히 대답했다.
"강별학이야! 그는 사실 그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나를 찾아
온 것이었어."
소어아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별학이라고, 연 대협이 강별학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살려주
었단 말이오?"
"그렇지."
"그가 왜 강별학을 구해 주려는 것일까요?"
"강별학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죽이려고 한 것이야."
소어아는 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강별학과 무슨 원한이라도 있단 말이오?"
위무아는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서서히 말했다.
"너는 강별학이 원래 누구였는지 아느냐?"
"누구죠?"
"그는 본래 너의 아버지의 서동(書童), 강금(江琴)이었어. 어릴
때부터 너희 집에서 자라났고, 너의 부친과 그는 비록 주인과 하
인의 사이였지만 사실은 친형제나 다름이 없었지."
소어아는 놀란 나머지 입까지 벌린 채 다물줄을 몰랐다.
위무아의 이야기가 게속 되었다.
"강풍은 당시에 호칭이 '천하제일 미남자(天下第一 美男子)'였
지. '천하제일 검객(天下第一 劍客)'의 연남천과는 생사를 같이하
는 결의형제 사이였어!"
소어아는 그의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먼저 물어봤다.
"강금이 선부(先父)님과 형제와 같았다면 연 대협께서 왜 그를
죽이려고 한단 말이오?"
"그 사람은 너의 아버지를 배반했지!"
"그...... 그가 어떻게 배반을 했소?"
"강풍은 천하에 보기 드문 미남자였으며 제일가는 부자였지. 강
호의 사나이들은 모두 그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어. 그러나 연남천
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손을 쓸 수가 없었지. 언젠가 강풍은 한
싸움에서 부상을 입고 이화궁주에게 구출을 받았지. 그는 이화궁
에서 요양을 하다가 이화궁의 종년과 눈이 맞아 같이 달아났어.
그 여인이 바로 너의 어머니야."
소어아는 크게 분노했다.
"말을 할 때 좀 듣기 좋게 이야기 하시오."
위무아는 웃으며 유유히 말을 계속 이었다.
"두 사람은 미친 듯이 사랑을 했고 서로가 같이 있게 되기를 원
했지만 이화궁주는 절대로 그들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지! 그래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온 후 재산을 모두 정리해 식솔들에게 나눠
주고 자신들도 길을 떠났어. 은거 생활을 하려고 한 것이었지."
"아버님이 어머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다니 정
말......."
위무아는 비웃듯이 말했다.
"그가 만약 모든 것을 희생할 수만 있었다면 괜찮았지. 그러나
그는 너무 유복하게만 지냈기 때문에 가난한 생활을 견뎌내지 못
할까봐 몸에 많은 물건들을 지니고 있었어."
소어아는 다시 노하고 말았다.
"그래서 당신들 강도들의 눈이 빨개졌단 말이오?"
"그는 그 일을 비밀스럽게 했기 때문에 강호에 아는 사람이 없
었어. 다만 그는 절대로 그 비밀을 강금에게 말하지 말아야 했
어."
소어아는 소리쳤다.
"그럼 그 도적놈이 돈 때문에 나의 아버님을 배반했단 말이오?"
"그렇지. 강풍은 강금을 보고 연남천에게 통지를 하라고 하고
너의 어머니를 데리고 폐허의 길을 떠났지. 연남천과 만나는 계획
까지는 좋았어. 그의 길도 매우 비밀스러웠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금은 연남천을 찾기 전에 먼저 우리 십이성상을 찾아왔던 것이
야."
"그래서 당신이 강별학을 아는군. 알고 보니 당신들은 벌써부터
내통하여 장사를 했었군."
"난 비록 그 일을 알고는 있었지만 손을 쓰지는 않았어. 마침
그때 나는 다른 할 일이 있었어."
"손을 쓴 사람은 누구요?"
"그건 네가 자세히 물어볼 필요가 없어. 손을 쓴 사람은 하나도
살아있지 않으니까."
"연 대협이 그들을 모조리 죽였단 말이오?"
"아니, 연남천이 도착했을 땐 그들 역시 이미 모두 죽어 있었다
고 해."
소어아는 싸늘하게 말했다.
"알 수 없군. 도대체 그러면 누가 십이성상과 나의 부모님께 손
을 썼단 말이오."
"그 비밀스러운 행로에서 빌어진 일을 누가 알 수 있었겠어?"
소어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건 그렇고 강금은 그 물건들이 모두 십이성상에게 넘어가면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었단 말이오?"
"그의 욕심은 크지 않았어. 그 일을 알려준 댓가로 은 삼천 냥
을 요구했고 일이 성사되면 다시 물건의 십분의 일을 받기로 했
지. 그도 우리 십이성상의 장사가 공평한 것을 알고 있었어."
소어아는 분노에 온 몸을 떨었다.
"짐승 같은 놈! 나의 부친이 그렇게 신뢰했는데도 몇 푼 돈에
팔아넘기다니......."
위무아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 사람은 욕심은 비록 크지 않았어도 야심은 작지 않았어. 강
호에서 이름을 날리기 위해 너의 아버지부터 먼저 죽여야 했지.
지금도 그는 그 야심을 이루려 하고 있어."
소어아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나의 아버님은 십이성상의 손에 죽은 것이오?"
"그것은 나도 자세히 몰라. 다만 연남천은 자신이 달려갔을 때
너의 부모가 모두 죽고 너만 살아있었다고 하더군."
"난......."
"그때 너는 막 태어난 갓난아기였지. 너 역시 상처가 심했어.
너의 얼굴의 칼자국은 바로 그때에 남겨진 것이야."
소어아는 끓어오르는 비통함을 참아야 했다.
"우리의 부모가 누구의 손에 죽었든 그 모든 일은 강금 때문에
일어났소. 그가 만약 우리 아버지를 배반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
은 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오."
"그랬지."
"그렇다면 연 대협은 왜 그때 그를 죽이지 않았소?"
"연남천은 그때 아직도 강금이 강풍을 배반했는지는 모르고 있
었어. 나중에 그가 알았을 때는 강금은 이미 달아나버리고 없었
지. 그후에야 나는 연남천이 악인곡에서 죽었단 소식을 들었어."
그는 다시 탄식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소식은 개소리였어. 연남천은 죽지 않았고, 무술이
매우 진보되어 있었지. 또 그 강금은 강남대협이 되어 있었어."
소어아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서서히 말했다
"연 대협도 강금을 찾으려고 악인곡에 갔었을 것이오!"
"그 말도 가능하지. 그는 강금이 악인곡으로 간 것으로 알 수도
있었겠지."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다시 말했다.
"연남천이 악인곡에 간 후 무슨 일이 발생했었지? 또 왜 이십
년 동안 그의 소식이 없었는가?"
소어아는 눈알을 굴리며 큰소리로 말했다.
"이 이십 년 동안 연 대협은 천하무적의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세상의 일을 접어두고 있었소. 무술이 완성되기 전에는 곡을 한
발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이오."
"그렇다면 그가 이미 나타났으니 그의 무술이 완성되었단 말인
가?"
"물론 성공했죠. 내가 알기로는 당신 한 사람 위무아의 무술 뿐
만 아니라 이화접옥조차도 그의 무술과 비교하다면 마치 어린애의
장난과 같을 것이오."
소어아는 마치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는 것처럼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그 자신도 연남천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몰랐다.
그의 병세가 다 쾌유되었단 말인가?
아니면 다른 '남천대협' 노중달 같은 사람이 다시 연남천의 이
름을 빌렸단 말인가?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동굴 속의 혈투
소어아는 마음 속으로 탄식을 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위무아가 돌연 괴상하게 웃기 시작했다.
소어아가 말했다.
"왜 웃는 것이오?"
"연남천 때문이야. 삼십 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해서 연마한 무술
이 아무 소용도 없게 됐지."
"왜 소용이 없지요?"
"상대가 없어지게 된 거야. 이화궁주는 나와 여기서 죽게 되니
그의 무술이 더욱 강하다 해도 쓸모가 없어졌어."
소어아는 그의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듯 싸늘하게 웃으며 말
했다.
"당신은? 당신도 삼십 년 동안 고생하여 연마한 무술이 쓸모없
게 되었소.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하지도 않소?"
"그렇지. 확실히 창피스러워. 하지만 하여튼 난 다 죽게 되었으
나 연남천은 앞으로도 살아가야 돼. 고생하여 연마한 절세의 무술
이 상대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니 얼마나 불쌍해!"
이때 소앵이 돌연 말했다.
"연 대협께서는 강별학을 죽였나요?"
"아직은 죽이지 않았어."
"연 대협께서는 왜 그를 죽이지 않은 거예요?"
"그는 강별학을 소어아에게 넘겨 소어아에게 직접 복수하게 하
려고 하지."
"그가 만약 소어아를 찾지 못한다면?"
위무아는 그녀의 물음에 웃음을 보였다.
"그가 소어아를 찾지 못한다면 강별학은 죽지 않겠지. 그가 십
년이 지나도록 소어아를 찾지 못한다면 강별학은 십 년이 지나도
록 죽을 염려가 없어."
소앵이 말했다.
"그렇다면......."
"강별학은 절대로 소어아의 손에 죽지 않아. 연남천은 소어아를
찾지 못하게 될 테니까. 그의 무술은 강별학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지략은 강별학보다 못해. 강별학 같은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마치 호랑이를 데리고 길거리를 다니는 것과 같지. 그도 언젠가는
강별학의 손에 죽을 날이 있을 거야."
소어아는 크게 노했다.
"그가 당신을 살려 주었는데도 당신은 그를 이렇게 상대하다니
당신도 사람이오?"
위무아는 고개를 들고 웃었다.
"그는 비록 나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내 부하들을 모조리 쫓아
버렸고, 그들에게 나의 보물을 모두 가지고 가게 했으니 나를 죽
인 것이나 다름이 없지!"
소어아는 그말을 듣자 모든 일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당신의 제자를 쫓아냈을 뿐 아니라 당신의 보물을 다 그
들에게 줘 버렸군요."
위무아는 이를 물었다.
"흥."
"알고보니 당신은 이제는 더 살아도 재미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이런 방법을 생각했군요. 그러나 당신이 평소 제자들에게 잘 대했
더라면 그들이 어찌 당신이 곤란에 처해있을 때 달아났겠소?"
위무아는 다시 음침하게 웃었다.
"어쨌든 너희들이 나와 함께 죽게 되었으니 나는 이미 만족을
느낄 수가 있어!"
돌연 이화궁주가 그들의 대화 속으로 끼어들었다.
"강소어, 이쪽으로 와라!"
소어아는 그녀를 따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
한 후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고개를 돌려 소앵을 바라보았다.
소앵은 마치 위무아의 반응을 보려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서있
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어아를 향해 웃고는 그를 따라 나섰다.
위무아는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원한이 서려 있었다.
그는 갑자기 차를 밀었다. 차는 즉각 석벽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리고는 석벽이 곧 닫혔다. 그 뒤 벽은 마치 하나의 거울처럼
평온해졌다.
이화궁주의 두 자매는 대청(大廳) 한 가운데에 서있었다.
얼굴 표정은 여전히 싸늘하고 오만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고독하고 가련하게도 보였다.
그녀들의 이름만 들어도 떨던 사람들조차 만약 지금 이 시각 그
녀들을 본다면 동정심을 느끼게 될 듯도 싶었다.
그녀들은 그저 서있을 뿐 앉지 않았다.
소어아는 들어오면서 그녀들을 주시했다.
"난 어느 때는 정말 당신들의 다리가 보고 싶을 때가 있소."
이화궁주는 깜짝 놀라며 분노했다. 그녀들의 창백한 얼굴이 붉
어졌다.
소어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난 당신들도 다리를 굽힐 수 있는지를 보고 싶으며, 또 다리에
무릎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싶소."
요월궁주는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지며 돌연 몸을 돌려버렸다.
마치 소어아가 한번만 더 본다면 그를 죽일 것만 같았다.
연성궁주도 눈을 감았다가 한참 후에야 눈을 뜨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방금 이 동굴의 사방을 모두 조사했다!"
"음."
"이 사방의 문은 확실히 굳게 닫혀 버렸어."
소어아가 말했다.
"볼 필요도 없었소. 위무아의 말에 절대로 거짓이 없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지."
"우리가 하루 안으로 방법을 생각하여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비
록 굶어죽지는 않는다 해도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이다."
"당신들이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소?"
연성궁주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입
을 열었다.
"여기의 문들은 모두 천근 만근의 무게이니 사람이 열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러나 내 생각엔 위무아가 절대로 여기서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야."
"당신은 그가 필시 최후의 통로를 남겨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단 말이죠. 그렇죠?"
"그렇지."
"그럼 날더러 그 통로를 찾으란 말이오?"
연성궁주는 다시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서서히 말했다.
"내 생각엔 네가 위무아의 입에서 알아낼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정말 그런 재주가 있을 것 같소?"
"그가 만약 말을 하지 않는다면 우선 그를 죽여야지!"
"당신들은 왜 직접 손을 쓰지 않소?"
"그 원인은 위무아가 이미 말했어!"
"이런 때에도 당신들은 그 놈의 개똥 같은 규칙을 따진단 말이
오?"
"죽어도 규칙은 변경할 수가 없지."
소어아는 탄식을 한 후 말했다.
"당신들 같이 고집이 센 사람들은 한평생 보기가 드물거요. 사
실 당신들은 이제 그를 죽이려 해도 결코 죽일 수 없을 것이오.
그가 지금은 피해버렸을 테니까!"
"그러나 내가 손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네가 그를 찾아 도전한
다면 그는 필시 나올 것이다."
그녀는 소앵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말했다.
"그가 너를 죽도록 미워하니 기회가 있으면 그는 필시 직접 너
를 죽여버릴 것이야."
"그 말은 맞소. 다만 안타깝지만 나와 그가 싸우게 되면, 죽는
사람이 그가 아니라는 사실이오."
연성궁주가 대답했다.
"너의 무술이 그보다 못한 것도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너에게
세 시간 동안만 무술을 전수해 주면 그는 너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야."
"뭐? 정말 그렇게 할 자신이 있소? 난 믿지 못하겠소."
연성궁주가 담담히 말했다.
"본문의 무술은 오묘하여 너희들은 상상할 수도 없어!"
소어아는 돌연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깊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웃어버렸
다.
그러다가 소어아는 갑자기 노하여 소리쳤다.
"난 물론 그것이 농담이 아닌줄 알고 있소. 그러나 당신들은 중
요한 일을 잊었소."
"무슨 일을 잊었다는 말이냐?"
"내가 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힘들여 위무아와 싸운다는 것이
죠?"
연성궁주는 놀랐다.
"그를 죽일 생각이 없나?"
"그렇소."
"그래? 그러나 네가 만약 그를 쓰러뜨리고 죽음으로 협박을 하
면 그는 필시 최후의 길을 말해 줄 것이다."
소어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나 내가 왜 그런 것을 알아야 하오?"
"넌...... 넌 달아날 생각이 없느냐?"
"내가 왜 달아나야 하오? 이곳이 좋지 않소?"
연성궁주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그녀는 안색이 창백해
져서 말을 하지 못했다.
소어아는 유유히 말했다.
"난 하여튼 중독이 되었으니 꼭 죽고 말 것이오. 당신들이 나의
독을 해소시킨다해도 나는 화무결의 손에 죽을 것이오. 내가 어떻
게 하든 죽어야 한다면 난 여기서 죽는 것이 좋겠소. 내가 보기엔
이 무덤이 상당히 화려하니까."
그는 한바탕 웃고 나서 다시 말했다.
"내가 만약 여기서 죽지 않고 나중에 당신들이 나에게 무덤을
만들어 준다 해도 이처럼 화려하지는 못할 것이오."
연성궁주는 그의 말이 끝난 뒤에도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네가 절대로 화무결의 손에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증하겠
다."
소어아는 기쁜 빛을 보이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당신이 어떻게 말을 하는가에 달려 있소. 당신이 만약에
금후에 나와 화무결이 싸우도록 압력을 가하지만 않는다면,
난......."
이때 요월공주가 돌연 무섭게 소리쳤다.
"네가 화무결과 꼭 싸워야 하는 것은 변경할 수가 없어!"
"정 그렇다면 하는 수 없소. 우리 모두 여기서 죽음을 기다립시
다."
연성궁주가 말했다.
"내가 만약 너에게 위무아를 이기게 하면 화무결도 이길 수가
있다. 네가 만약에 위무아를 죽일 수 있다면 화무결도 죽일 수 있
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소어아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말했다.
"그 말도 괜찮지만 난 믿을 수가 없소."
"왜 믿지를 못하지?"
"화무결은 당신들이 어릴 때부터 키워 왔으니 당신들의 제자일
뿐만 아니라 아들과도 같은 것이오. 그런데 나는 당신들의 원수의
아들이오. 내가 만약 무술이 뛰어났다면 벌써 당신들을 죽였을 것
이오. 지금 당신들은 나에게 무술을 전수해 당신들을 죽이라고 하
니 이런 말을 누가 믿겠소?"
연성궁주는 그녀의 언니를 바라보았다. 요월궁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중에는 마땅히......."
소어아는 눈에서 빛을 내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하다가 돌연 멈추어 버렸다.
"그 중에는 마땅히 다른 원인이 있단 말이죠?"
"흥."
"당신들이 나를 믿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오. 당신
들이 그 이유를 이야기해 준다면 나는 무슨 일을 시켜도 듣겠소!"
요월궁주의 싸늘한 얼굴에 돌연 격심한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소어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유유히 말했다.
"당신들은 위무아에게 죽기 전에 추태를 보여 주면서까지도 비
밀을 말해주지 않겠다는 것이오? 내가 말해 두지만 사람이 굶어
죽는 꼴은 정말 볼 수가 없소."
요월궁주는 입술을 깨물며 돌연 몸을 돌려 버렸다.
연성궁주도 그녀를 따라서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은 다시 소어아를 보지 않았다. 그의 말도 듣기 싫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소어아는 그녀들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떠들
었다.
"지금 우리 눈앞에는 다만 죽는 일 하나 밖에 없소. 지금 말을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기다릴 생각이오?"
그의 말이 동굴 속에 메아리 치는 가운데 이화궁주 두 자매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소어아는 나무로 만든 인형처럼 한동안 서 있다가 갑작스럽게
소앵에게 말을 건넸다.
"나의 부모들은 모두 그녀들의 손에 죽었어. 당시에 뿌리까지
뽑지 못했으니 지금 날 죽여서 후환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야."
소앵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요."
"하지만 그녀들은 왜 꼭 화무결에게 나를 죽이게 하려는 것일
까. 그녀들이 직접 손을 썼다면 벌써 몇 번이나 죽였을 텐데."
"그녀들은 당신이 필시 화무결을 미워할 줄 알고 있어요. 당신
이 그녀들을 찾아 복수를 하지 못하면 필시 화무결을 찾을 것이라
고 믿었지요. 그런데 당신의 생각이 너무 진보적이었어요. 상일대
(上一代)의 원한과 하일대(下一代)는 관계가 없다고 하니......."
"그녀들은 왜 나와 화무결을 서로 미워하게 하려는 것일까? 가
장 묘한 것은 그녀들은 반드시 화무결이 나를 죽이는 것을 원하는
것만은 아니오. 내가 화무결을 죽여도 그들은 똑같이 만족할 수
있거든. 그 원인을 알 수 있겠어?"
소앵이 한동안 생각을 한 후 서서히 말했다.
"당신과 화무결 간에는 필시 복잡한 관계가 있을 거예요."
소어아는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곧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나 나와 화무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나는 태어나자마
자 악인곡에서 자랐고 세상에는 친척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
어."
그는 소앵의 손을 끌면서 말했다.
"나는 네가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 나와 화무결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겠어?"
소앵은 탄식을 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든 간에 반드시 드러날 때가 있으니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아요."
"내가 애태우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냐?"
그는 그녀의 손을 놓고 땅에 누워서 멍하니 넋을 잃었다.
동굴은 무덤처럼 조용했다.
석벽에서 흘러 나오는 부드러운 빛이 소어아의 얼굴을 비추었
다.
그는 본래 매우 오만하고 강하고 매력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의 얼굴은 매우 피곤에 젖어 있었다.
소앵은 멍하니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얼마가 지난 뒤 소어아가 중얼거렸다.
"소앵, 이것을 알아야 돼. 난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아. 그러
나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면서 죽는 것은 견딜 수가 없어......
견딜 수가 없단 말이야."
소앵은 눈을 비비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죽지 않을 거예요. 다만 당신이......."
소어아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너는 밖으로 통하는 길을 알고 있지?"
"난 다만 위무아가 여기를 무덤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아요. 그
가 발동한 기관은 그 누구도 열지를 못해요. 건조할 때의 방법은
고대 제왕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그러
나......."
소어아는 재빨리 소앵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어떻다는 것이냐?"
"문이 완전히 닫혀 버렸다는 동굴은 마치 무덤처럼 바람이 통하
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나...... 지금까지도 숨이 막히지 않는 것
을 보니 내 생각엔......."
소어아는 그녀의 말을 막았다.
"네 생각에는 위무아가 필시 하나의 길을 남겨 놓았을 거란 말
이지?"
"그래요. 만약 모든 통로를 막아 버렸다면 이 등불도 꺼져야 했
을 거예요. 내가 알기로는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곳에는 불도 피지
못 한다던데......."
소어아는 기뻐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좋아. 그가 길을 남겨 놓고 있다면 난 말을 하라고 할 수가 있
지!"
소앵도 따라서 웃었다.
"당신은 나가려는 생각이 없었잖아요?"
소어아는 그녀에게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다만 내가 일부러 그녀들을 놀린 것에 지나지 않아. 그
비밀을 알기 전에는 나도 죽을 수 없지만 그녀들도 죽어서는 안
돼!"
절망 중에 돌연 생기가 돌자 두 사람은 정신을 차렸다.
소어아는 소앵의 손을 당기며 말했다.
"우리가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은 우선 위무아를 찾는 것이다."
"그건 간단해요. 이 동굴 속의 기관을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요."
두 사람이 막 앞으로 걸아가려고 할 때 돌연 그들의 몸 뒤에서
탄식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를 찾을 필요가 없다. 난 여기에 있으니까!"
청옥석(靑玉石)의자가 놓여있던 곳이 서서히 움직였다. 위무아
는 차를 밀며 밑에서 위로 솟아 올라왔다.
그는 탄식소리 중에 혼자 중얼거렸다.
"십여 년 동안 너를 키웠지만 마지막에는 하나의 젊은이만도 못
하군. 그래서 남들은 개를 키운다 해도 딸을 키우지는 말라고 했
지."
소앵은 고개를 숙였다.
"난......."
위무아는 돌연 껄껄 웃었다.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네가 그를 도와 날 죽인다 해도 너를
원망하지는 않을 거야. 이런 젊은이라면 난 내가 여자라도 따라나
섰을 거야."
소어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비록 악당이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구별할 줄 아는
군요."
위무아는 껄껄 웃어댔다.
"나에게 좋은 말로 아부할 필요는 없어. 네가 무슨 말을 하든간
에 나는 너를 내보낼 수가 없어졌어. 여기는 세 개의 돌문이 있지
만 모두 기관으로 통제되어 있지. 그리고 그것의 가치는 단 한 번
밖에 사용할 수가 없다는 거야. 문이 닫힐 때 난 이미 여기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어."
그는 소앵을 바라보며 웃었다.
"너는 어째서 다른 통로가 있다고 생각했지?"
소앵은 안색이 무거워졌다.
이때 소어아가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이곳에는 공기가 통하고 있지 않소?"
"그렇지, 하지만 너는 문을 통해 공기가 들어오는 것으로 아느
냐?"
그는 손을 저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이토록 큰 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 개의 문에 의지하여
환풍을 했다면 벌써 질식하여 죽었을 것이다. 흐흐, 너는 비록 영
리하긴 해도 알고 있는 것이 많지는 않군."
"난 쥐가 아니라서 쥐구멍에서 살아보진 않았소. 그래서 쥐가
무엇으로 바람을 통하게 하는지는 모르오."
사실 그는 정말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위무아로 하여금
계속 얘기를 이끌어서 조그만 실마리라도 찾아내려 한 것이다.
"네가 계책을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 나로부터 이 바
람이 통하는 곳을 알아내려고 하는데 말해 두겠지만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왜?"
"난 공기통을 만들 때 쥐가 구멍으로 달아날까봐 걱정을 했었
지!"
그는 크게 웃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쥐새끼도 나가지를 못하는데 네가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소어아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돌연 물었다.
"왜 공기통을 봉쇄하지 않았소?"
"내가 왜 공기통을 봉쇄해야만 하지?"
"우리가 너무 빨리 죽을까봐 적정해서요?"
위무아는 다시 껄껄 웃어댔다.
"바로 그것이다. 많은 힘은 들여서 너희들을 이쪽으로 모셨는데
어찌 그냥 너희들을 죽이겠나? 천천히 죽음을 즐길 수 있도록 해
야지. 그래야 너희들이 죽기 전에 추태를 부리는 것을 볼 수 있지
않겠어. 세상에 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없을 거야."
그는 생각할수록 재미있다는 듯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웃어
댔다.
그러나 소어아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추태를 보인다는 것이오?"
위무아는 눈에서 빛을 내며 대답했다.
"이화궁주의 두 자매는 절대로 함부로 앉지 않을 것이다. 어떤
곳도 그들은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삼 일 안에 그
들은 남자들이 잔 침대에서 자게 되겠지. 그녀들은 당장은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해도 며칠이 지나면 쥐들을 먹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너희들을 삶아 먹을지도 몰라!"
소어아는 그 말에 크게 웃었다.
"그녀들이 우리를 삼켜 버렸으면 좋겠소. 우리는 그녀들의 뱃속
에서 죽고 싶소."
그는 겉으로는 비록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점점 소름이 끼쳐
오고 있었다.
그는 위무아의 말이 전혀 근거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
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미치도록 배가 고프면 잔인해지고 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때엔 사람과 맹수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위무아는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그리고 너희 네 사람은 모두 처녀 총각이니 인생의 맛을 보지
못했을 거야. 죽어갈 때에는 돌연 그대로 죽어가는 것이 억울해서
그 일의 맛이 어떤지 시험해 보게 될 것이다."
그의 눈은 음탕한 빛으로 가득 찼다. 머리 속은 이미 그 때의
광경을 생각하는지 미친 듯이 웃었다.
"그 때가 되면 너는 보배가 될 것이야!"
소앵은 얼굴을 붉히며 땀을 계속 흘렸다.
소어아가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은 왜 그런 것을 시험해 보지 않소?"
위무아는 돌연 웃음 소리를 멈추고 온 몸을 떨었다.
소어아는 그의 굶은 양다리를 보며 다시 물었다.
"알고 보니 당신은 애시당초 틀렸군요. 그래서 이런 미친 사람
이 되어 버렸군요. 난 처음에는 당신이 매우 미웠소. 그러나 지금
은 불쌍하다고 동정하고 싶소!"
위무아는 괴상한 고함을 지르며 소어아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온 몸을 산덩어리처럼 공중으로 튕기면서 소어아에게 부딪
쳐 왔다.
소어아가 슬쩍 피해 버리는 순간 그의 양손이 돌연 번개 같이
소어아의 목과 양눈을 향했다.
또한 위무아의 손에서 갑작스럽게 열 개의 갈퀴가 솟아나와 소
어의 팔을 향했다.
그의 손가락에는 삼사촌(寸) 정도나 되는 길이의 손톱이 길러져
있었다.
불빛 아래서 열 몇 개의 손톱이 빛을 냈다.
독이 있는 손톱이었다.
조금이라도 긁히면 목숨을 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달려오는 자세에는 세 가지의 변화가 숨겨져 있었다. 매
변화마다 뜻밖이었고 수법의 기이함도 천하무쌍이라 할 수 있었
다.
소앵은 비명을 질렀다.
소어아는 땅을 구르며 삼장 밖으로 나아갔다.
비록 전통의 수법은 아니었지만 소어아가 급하게 창안한 것이었
다.
소어아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임기응변에 능통한 것이다.
위무아는 진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무술이 아무리 고강하다 해도 나르는 새처럼 공중에서 몸
을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가 땅에 떨어지자 소어아가 기선을 잡았다.
소어아는 그의 양다리가 폐인과 다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위무아는 땅에 닿자마자 몸을 솟구치며 다시 의자에 앉
았다.
소어아가 달려 가려고 했을 때는 이미 의자는 그를 중심으로 하
여 주위를 돌고 있었다.
순간 소어아는 전후 좌우가 모두 위무아의 그림자 같이 느껴졌
다.
그 수법은 천하에 이름을 떨쳤던 팔괘유신장(八卦遊身掌)보다
더욱 무섭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차는 매우 교묘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위무아는 그 위에 앉아
마치 그 차의 일부분인 양 되어 버렸다.
그는 그 차를 자유로이 조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팔괘유신장'의 가장 묘한 것은 발걸음의 이동에 있었다.
그 걸음 걸이에서 많은 화신이 나타나 상대방을 포위하는 수법
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발걸음이 아무리 교묘하다 해도 바퀴보다
더 빨리 돌 수는 없는 일이다.
소어아는 눈알이 도는 것을 느끼며 위무아가 손을 쓰지 않아도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위무아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 웃음 소리는 사람을 소름끼치게 했고, 그가 어느 방향에서
손을 쓰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소어아는 길게 소리를 지르면서 하늘로 치솟았다.
그 수법은 바로 곤륜파(崑崙派)의 진산절기(鎭山絶技)의 '비룡
대팔식(飛龍大八式)'이었다.
소어아는 그 무술의 절정 고수보다는 못할지 몰랐다.
그러나 그는 그 수법에 기묘한 변화를 가했기 때문에 오히려 정
석보다도 더욱 두려운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천하에 '비룡대팔식(飛龍大八式)'만이 위무아의 수법을 파할 수
가 있었다.
그것 외에는 무당 소림(武當 少林)의 장문 대사(掌門大師)도 위
무아에게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몸이 궁중을 나를 때 위무아가 앞으로 달려오더니
열 개의 빛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목은 향해 뻗어왔다.
그 사람은 마치 소어아의 그림자가 된 것만 같았다.
소어아는 즉시 소림의 천근추를 사용했다.
몸을 위로 치솟았다가 다시 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
다.
그러나 소어아는 순식간에 다시 아래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때 '수수슥' 하는 소리가 나며 세 개의 빛이 세 방향에서 빠
른 속도로 다가왔던 것이다.
위무아는 분명히 위에 있는 데 암기를 누가 사용했을까?
알고 보니 위무아의 몸은 비록 차를 떠나 있었지만 그 차는 여
전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 개의 암기는 차에서 발사된 것이다.
만약 다른 중원무림(中原武林) 어느 파의 고수였다라도 필시 이
세 개의 암기에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어아는 묘한 사람이었다.
그는 몸을 돌연 비틀면서 그것을 피해냈다. 세 개의 빛이 모두
그의 옷을 스쳐 지나갔다.
소어아는 지하동굴에서 얻은 무림비급에서 각파 고수들의 심혈
을 기울인 무공을 습득했다. 그 책에는 모든 무술이 포함되어 있
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위무아의 수법이 더욱 기이하여 상상하기도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가 앉았던 의자도 아주 무서운 상대로 변하고 말지 않았는가!
위무아의 괴이한 수법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그 차에서 발사되
는 암기도 막기가 어려웠다.
위무아가 차와 합해졌다 갈라졌다 하며 거세게 공격을 하자 소
어아는 점차 견디기가 어려움을 느꼈다.
소앵은 보다 못해 큰소리로 외쳤다.
"어차피 여기서 죽을 사람을 왜 그렇게 대하는 것이죠?"
위무아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의 목숨을 앗아가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의 혀를 잘라 놓고
싶다. 그에게 영원히 말을 하지 못하게 한 후 다시 그의 양다리를
부러뜨려서 그를 기어 다니게 해야 해."
이 이야기를 들은 소어아는 크게 대소했다.
"내가 기어서 다닌다 해도 당신보다는 강할 것이오!"
위무아는 크게 노했다.
"잡종 같은 놈 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어아가 가볍게 두장(掌)을 가했다.
이 두 장은 보기에는 아무런 기묘한 것이 없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위무아는 피하지를 못했다. 그는 소어아의 수법이 어느 문파의 것
인지 간파할 수가 없었다.
소어아의 수법은 위무아의 결점을 향해 날카롭게 지쳐 들어갔
다.
그 수법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했어도 실제로는 변화무궁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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