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7-1

3학년2반 | 2022.03.07 07:24:46 댓글: 0 조회: 397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3357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7 권


제 1 장 영웅대회(英雄大會)


장무기는 양소 등을 이끌고 공문, 공지 등에게 작별을 고하고는
하산했다. 팽화상은 오행기를 철수시켰다. 거목기와 후토기는 소
림사로부터 약 오 리쯤 떨어진 곳에 십여 개의 천막을 치고 중인
이 편히 휴식을 취하게끔 했다.

장무기는 마음이 무거웠다. 명교에는 양소와 외조부보다 무공이
더 고강한 사람이 없으니, 설령 범요와 위일소가 나선다 해도 오
늘과 비슷한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금강복마권을 파괴할 수 있는 고수를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
가능한 일이었다.

팽화상이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넌지시 입을 열었다.

"교주, 장진인을 모셔오면 어떨까요?"

장무기는 망설였다.

"만약 태사부님이 하산하여 나를 도와주신다면 금강복마권을 파
괴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태사부님이 나서게 되면 자연히 무
당과 소림 사이에 금이 갈 테니 태사부님께서 윤허를 하지 않을
것이오. 게다가 태사부님은 비록 무학이 노화순청(爐火純靑)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워낙 고령이신지라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천정이 벌떡 일어나 광소를 터뜨렸
다.

"하하핫.....! 장진인이 하산한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거야! 좋
은 생각이군.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는 입을 크게 벌린 채 갑자기 굳어졌다.

군호들은 그가 갑자기 광소를 날리며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치는
것을 보자 모두들 이상하게 여겼다. 양소가 얼른 입을 열었다.

"은형, 장진인께서 하산하실 것이라 생각하오?"

그는 거듭 물었으나 은천정은 돌처럼 굳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장무기가 흠칫 놀라 그의 맥을 짚어보니 뜻밖에도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알고보니, 그날 광명정에서 육대문파의 고수들과 고군분투하여
이미 원기가 크게 손상된 데다가 조금 전에 도난을 상대하느라
다시 모든 기력을 쏟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그는 진기가 고갈
되는 극한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장무기는 그의 시신을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은야왕도 달려와
하늘이 무너져라 통곡을 했다. 군호들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
가 없었다. 주위는 삽시간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며칠 동안 군호들은 은천정의 장례를 치르느라 분주했다. 각 문
파와 각 방회에서도 소식을 전해 듣고 조문객이 쇄도했다. 공문
과 공지 등도 직접 찾아와 제를 올렸으며, 이어 서른 여섯 명의
승인을 보내 은천정을 위해 초도법사(超渡法事)를 하게끔 했다.
그러나 서른 여섯 명의 승려가 염불의 몇 귀절을 읊기도 전에 은
야왕이 곡상봉(哭喪棒)을 휘둘러 그들을 몰아내 버렸다.

주전도 한쪽에서 욕설을 터뜨렸다.

"소림의 땡중들아, 언젠가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장무기는 마음이 더욱 착잡해졌다. 그는 양소, 팽화상, 조민 등
과 수차에 걸쳐 대책을 모색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
다.

조민은 도액 삼승에게 십향연근산을 전개하자고 제의했으며, 녹
장객과 학필옹을 불러와 장무기를 돕겠다고 자처했지만 장무기와
양소는 그 방법을 채택할 수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흘러 단오절이 되자, 장무기는 교중들
을 이끌고 소림사에 당도했다. 소림사 후전에는 각처의 영웅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각처의 무림 인물 중엔 진짜 사손과 원한이
있어 순전히 사손을 죽이고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자도 있었고,
혹은 오로지 도룡도에 욕심이 있어 보도를 손에 넣고 무림지존이
되고 싶어하는 자들도 많았다. 또한 어떠한 자들은 누구와 원한
이 있어서 이 기회에 결판을 내려고 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구경하러 온 사람이 가장 많았다.

소림사에서는 백여 명이나 되는 사미승으로 하여금 참석하는 무
림 인물들을 접대케 했다.

무당파에서는 단지 유연주와 은이정 두 사람만 보내왔다. 장무
기는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장삼봉의 안부를 물었다.

"송청서와 진우량의 소식은 모르느냐?"

유연주가 낮은 소리로 장무기에게 묻자, 장무기는 그 동안의 사
정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장무기는 이번에 송원교와 장송
계가 오지 않은 것은, 송청서와 진우량이 찾아와 또 무슨 간계를
쓸지 그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연주는 송원교가 직접 자기의 독자 송청서가 역모에 가담한
사실을 듣고 상심을 하며 식음을 전폐하여 몸이 무척 허약해졌
고, 또한 사부님께 심려를 끼칠까 봐 보고도 못 드리고 혼자서
끙끙 앓는다는 얘기까지 해주었다.

장무기는 걱정이 되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송사형께서 참회를 하고, 어서 발리 송사백님의 곁으로 돌아가
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유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놈이 막칠제를 살해했으니 절대로 용서할 수
는 없는 노릇이야."

그는 분에 못 이겨 이를 갈았다.

점점 더 많은 무림 인물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날 금강복마
권을 공격하던 하간쌍살과 청해파 검객들도 모두 참석했다. 화산
파, 공동파, 곤륜파에서도 모든 고수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아미
파에서는 한 사람도 오지를 않았다.

장무기는 내심 주지약을 볼 수 있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면 그날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싶었
다.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자 장무기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무척
후회스러웠다.

명교의 교중들은 서쪽의 한 편전에 안내되어 있었다. 그들은 다
른 무림 인물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것은 명교 교중들이 무림
영웅들과 원한 관계가 많아 대회가 열리기도 전에 싸움이 붙어
대회를 열지 못할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정오 무렵, 소림사의 사미승들은 군웅들을 모두 산 오른쪽에 있
는 광장으로 안내했다. 이 광장은 원래 소림사 승려들이 채소를
심는 밭이었으나 지금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천막이 쳐져 있었
다.

군호들은 사미승을 따라 각자 자기의 자리에 앉았다. 각파의 인
원수에 따라 크고 작은 천막에 안내된 것이다.

팽영옥은 광장에 모인 무림 영웅들 중에서도 걸출한 인물들의
내력을 장무기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대회는 성황을 이루었
다. 평소 강호에 나타나지 않고 은거 생활을 하던 사람들도 한둘
씩 모두 나타났다.

팽영옥이 숫자를 헤아려 보니, 명교의 교중들을 제외하고도 사
천 육백 명이 넘는 것 같았다. 장무기와 양소는 대회에 참석한
자들이 친구보다는 적이 더 많자 매우 걱정이 되었다.

손님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소림승들이 차례로 나와 원(園), 혜
(慧), 상(相), 장(莊) 글자의 서열대로 군웅쪽을 향해 인사를 했
다. 맨 나중에 공지신승이 나타났고, 그의 뒤에 아홉 명의 달마
당의 노승들이 따라나왔다.

공지신승은 광장의 중앙으로 걸어나와 합장을 하고는 염불을 외
우고 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많은 천하 영웅들께서 참석해 주신 것은 소림사의 큰 영
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폐사의 방장사형께서 갑작스럽게
병이 나셔서 여러 영웅호걸들과 만나 뵙지 못하는 것을 대신 정
중히 사과드립니다."

장무기는 내심 무엇인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날 공문대사께서 외할아버지 영전에 조의를 표할 때만 해도
얼굴에 조금도 병색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렇게 내력이 심후한
노승이 갑자기 병을 앓다니 혹시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닌가!'

사방을 살펴봐도 원진과 진우량은 보이지 않았다.

장무기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날 내가 세 노승에게 원진의 간계를 폭로한 것에 대해 소림
사에서 무슨 조치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공문대사가 갑자기 병
이 생겼다는 것이 그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 대회는 남송 말기에 곽정과 황용 부부가 차례로 대승관과 양
양에서 천하 군호들을 초청하여 몽고의 침략에 대해 상의를 하기
위해 대회를 연 이후로, 근 백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처음으
로 이런 영웅대회가 열린 것이다. 사실 강호의 일대 성사라 할
수 있는데 주최자인 주인공이 갑자기 병이 생겼다니, 참석한 무
림 인물들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공지신승이 다시 말했다.

"오늘 여기 모인 것은 금모사왕 사손이 무림에 화를 몰고 와 많
은 죄를 저질렀는데, 다행히 폐파에 붙잡혀 소림사에서는 감히
마음대로 처단하지 못하고 각계의 무림 지사와 의논을 하기 위해
서입니다."

그는 본시 생기기를 우수에 찬 얼굴인데, 지금은 더 맥없이 말
을 하고 나서는 곧바로 합장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동남쪽에서 몸집이 건장하고 수염이 많이 난 한 사람이 일어나
사방을 훑어보았다. 그의 부리부리한 눈매는 매우 위엄이 있어
보였다.

팽영옥은 이 사람이 바로 산동의 노권사(老拳師) 하주(夏胄)라
고 장무기에게 얘기해 주었다.

이윽고 그 자의 우렁찬 음성이 들려왔다.

"사손 같은 나쁜 자를 귀사에서 체포했다니 무림에 큰 복을 내
리셨소. 그런데 공문, 공지신승께서는 너무 겸손한 것이 아니오?
그런 악인을 잡았으면 그 자리에서 단칼에 죽여 없앨 것이지 다
른 사람들과 상의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영웅
호걸들이 모두 모였으니, 이 대회를 도사대회(屠獅大會)라고 칭
하고 사손의 살을 찢어 모두 한 입씩 뜯어 먹읍시다. 그리고 그
의 피를 마시며 무고하게 그에게 당한 친구들의 원수를 갚읍시
다."

하주도 그의 친형이 사손의 손에 죽었다. 그래서 그는 수십 년
동안을 오직 사손을 찾아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사람
이었다.

그의 제의가 나오자 여러 곳에서 수백 명이 그의 뜻에 찬성하며
빨리 죽이라고 아우성을 쳤다.

이 혼란 속에서 어디선가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사손은 명교의 호교법왕인데 소림에서 만약 명교가 두렵지 않
았다면 벌써 그를 죽였을 것이오. 뭣하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겠소? 내가 보니 하형은 정말 멍청한 것 같소. 내가 한 마
디 권하겠는데 일찌감치 몸조심이나 하시게."

컸다 작았다 괴기한 말투였으나 모두의 귀에는 자세히 들렸다.
모두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지만 도대체 누구인지 그림자조
차 보이지 않았다.

하주는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취불사(醉不死) 사도(司徒) 친구요? 사손은 나의 형을 죽인 원
수요. 대장부란 자기가 한 일을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오. 소림
고승들은 어서 사손을 끌어내시오! 노부가 단칼에 그를 죽일 것
이오. 마교 교중들은 얼마든지 나 산동 하씨를 찾아오시오!"

사람들 숲에서 다시 그 자의 음산한 웃음과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형, 무림지존이라는 도룡도가 사손의 손에 들어 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오. 소림파에서 사손을 잡았으니 그 보도
를 뺏지 않을 리가 있었겠소? 소림파에서는 사손을 죽이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보도를 얻고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
겠소? 여보시요, 공지대사! 더 이상 어물쩡하지 말고 시원스럽게
도룡도나 꺼내 놓고 모두 한 번 구경이나 하게 하는 것이 어떻
소? 소림파는 수백 년을 내려오면서 무림의 우두머리였는데, 그
보도가 있고 없고 무슨 상관이오? 무림의 지존은 여전히 소림사
가 아니오!"

팽영옥이 낮은 소리로 장무기에게 설명해 주었다.

"지금 말하는 사람은 취불사 사도 천종(醉不死 司徒 千鍾)이라
는 자입니다. 저 사람은 성격이 괴팍하여 사부도 없고 제자도 두
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방파에도 속하지 않아요. 그리고 평생
누구와도 별로 싸우지 않아 누구도 그의 진짜 무공 실력을 모릅
니다. 항상 비꼬아 가면서 말하지만 그러나 말에는 꽤 일리가 있
습니다."

그러자 몇 명이 따라서 외쳤다.

"일리가 있습니다. 도룡도를 꺼내 오시오! 구경이나 한 번 합시
다."

공지는 느릿느릿하게 해명을 했다.

"소림사에는 도룡도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노승도 평생 한
번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진짜 이 세상에 그런 칼이 있는지도 모
릅니다."

그 말이 나오자 대회장은 갑자기 술렁이며 소란이 일기 시작했
다. 이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이 대회가 도룡도와 관련
있다고 짐작했는데, 공지신승이 없다고 부인하자 모두 천만 뜻밖
이 아닐 수가 없었다.

공지신승 뒤에 선 아홉 명의 노승들은 모두 빨간색 가사를 걸치
고 있었다.

군웅들이 다시 조용해지자 그 중 한 노승이 앞으로 두 걸음 걸
어나와 큰 소리로 외쳤다.

"도룡도는 원래 사손이 갖고 있었지만, 폐파에서 그를 잡았을
때는 이미 그 칼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았소. 본사 방장께서 그
칼의 행방이 무림의 대사라 생각하시고 알아내려고 무척 애를 썼
으나, 사손은 끝내 고집을 피우며 사실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오
늘 이 대회를 연 것은 첫째, 사손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의논할
목적이었고, 둘째는 바로 여러 영웅호걸들에게 도룡도의 행방을
알아보려고 한 것입니다. 어느 분이든 행방을 알고 계시는 분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군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취불사 사도 천종이 또다시 이상한 말을 꺼냈다.

"무림에 백 년 동안 전해내려 온 말 중에, 무림지존인 도룡도가
천하를 호령하면 어느 누가 감히 거역하겠느냐고 했소. 그러나
의천이 없는데 또 누가 감히 그와 맞서겠느냐고 했소. 도룡도 외
에 의천이 있다는 얘긴데, 이 의천보검은 듣기로는 원래 아미파
에서 갖고 있었다고 했소. 그런데 서역의 광명정에서의 일전을
치른 후 그만 행방이 묘연해졌다는데 오늘 이 영웅대회에 아미파
사람들은 왜 아직까지 참석하지 못했단 말이오?"

그러자 만장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바로 그 때 한 사미승의 외침이 들려왔다.

"개방의 사방주께서 개방의 장로들을 인솔하고 도착했습니다."

장무기는 사방주란 세 글자에 어리둥절해 했다.

'아니 개방의 사방주는 이미 원진의 손에 죽은 지 오래전 일인
데, 또 누가 사방주라는 건가?'

"어서 모셔라."

공지신승은 개방이 강호의 제일 큰 방화라 직접 나가 영접을 했
다.

곧이어 한 패거리가 광장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모두
행색이 남루한 남자들이었다. 근래에 개방의 세력이 전과 같이
그렇게 흥왕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강호에서 거대한 잠
재력을 지니고 있어 군호들은 감히 그들을 경시하지를 못했다.
대부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이했다.

장무기는 맨 앞에서 걸어오는 두 늙은 거지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전공장로와 집법장로였다. 그 뒤에는 뜻밖에도 열
두세 살쯤으로 보이는 못 생긴 여자 아이가 뒤따랐다. 하늘로 치
솟은 콧구멍, 그리고 큰 입에 두 개의 덧니가 튀어나온 바로 사
화룡의 딸 사홍석이었다.

그녀는 손에 개방 방주의 신물인 타구봉을 들고 있었다. 그 뒤
엔 장봉용두, 장발용두가 있었고 그 뒤에는 서열에 따라 팔대장
로, 칠대제자, 육대제자가 줄줄이 걸어들어왔다. 이번에 참석한
개방 제자들 중에서 서열이 제일 낮은 자는 육대제자들이었다.

공지신승은 어린 여자 아이가 타구봉을 들고 있자 도대체 누가
방주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합장을 하며 인사를 올렸다.

"개방 군웅들의 왕림을 소림승 모두를 대표해서 환영하는 바입
니다."

군웅들이 모두 일어나 답례를 하고 나자 이번에는 전공장로가
일어섰다.

"사 전방주께서 불행하게도 그만 돌아가셔서 여러 장로들이 의
논한 바, 사방주님의 딸인 사홍석 소녀를 방주로 추대했습니다.
이분이 바로 개방의 새로운 방주이십니다."

그러면서 그는 손으로 사홍석을 가리켰다. 공지신승과 군웅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호에서 말하기를 명교, 개방, 소림파를 따질 때, 교문으로서
는 명교를 첫째로 꼽고 방회로는 개방이 으뜸이고 무학문파로서
는 소림을 첫째로 꼽았다. 명교에서는 스물 몇 살밖에 안 되는
장무기라는 소년을 교주로 앉혀 모두가 신기해서 혀를 내둘렀는
데, 또다시 개방에서 이런 어린 계집아이를 방주로 추대했다니,
개방장로가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정말 그 누구도 이런 사실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왕년에 황용이 어린 소녀 적에 개방 방주가 된 선례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금 사홍석보다는 나이가 많았었다.

공지신승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그래도 결례를 할 수 없어서 합
장을 하며 인사를 했다.

"소림문하 공지, 사방주께 인사올립니다."

사홍석도 간단하게 읍을 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
라 망설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폐방 방주께서 아직 나이가 어려 모든 방무(幇務)는 잠시 저와
집법장로 두 사람이 대리로 하고 있습니다. 대선배이신 공지신승
께서 이렇게 예를 갖춰 주시니 정말 부끄럽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겸양의 말을 마치자 사미승이 개방 일행들을 한
천막으로 안내하여 자리에 앉혔다. 개방의 인원수가 많아 한참
지나서야 모두 착석을 했다.

장무기가 그들을 보니, 개방 제자들은 모두 검은 리본을 달고
매우 비분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 중 어떤 제자들은 뒤에
매단 포대자루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개방에서는
무슨 큰 결심을 하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장무기는 내심 한결 마음이 놓였다.

양좌사가 장무기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우리의 든든한 호수들이 왔군요."

그러자 전공, 집법 두 장로는 사홍석을 데리고 명교 교주들이
모인 천막으로 걸어왔다.

전공장로는 포권의 예를 갖추고 말했다.

"장교주, 금모사왕이 모함에 빠지게 된 것은 우리 개방과도 많
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린 오늘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의 죄값을 치루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돌아가신 우리 사방주의
원수도 갚을 것입니다. 우리 개방 전체는 모두 장교주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장무기는 황급하게 일어나 답례를 했다.

전공장로의 음성은 매우 우렁찼는데, 대회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들리게 하려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이 끝나자 개방 제자들은 모두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
다.

"명교 장교주의 호령이라면 어떠한 위험이 닥치더라도 감수하겠
습니다."

군웅들은 모두 크게 놀라워했다.

"아니 언제부터 개방이 명교와 한통속이 됐지?"

강호에 별로 나타나지 않던 극소수 외엔 모두 명교와 개방이 지
금까지 서로 대립하며 싸워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
마 전에 개방은 광명정 싸움에도 참여하여 쌍방 모두 큰 피해를
입었었고, 맨 나중에 광명정을 공격한 개방 제자들은 모두 전사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전공장로가 공공연하게 장교주의 호령을 따르겠다
느니, 사방주의 원한을 갚겠다느니 운운하자 군웅들은 모두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전공장로는 다시 뒤로 돌아서서 크게 외쳤다.

"개방은 소림파와 지금까지 아무런 원한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개방은 항상 소림을 존중해 왔습니다. 물론 작은 시비는 있
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개방에서는 언제나 참고 양보를 하며
절대로 소림파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화룡 방주
이하 모두는 소림 사대신승의 높으신 덕망을 존경해 왔고, 사대
신승께서는 무학을 연마하는 모든 무림지사들의 모범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그리고 사방주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휴양을 겸한
은둔생활을 하며 수십 년 동안을 강호에 나타나지 않으셨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소림고승이 그분을 살해했는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회장에서는 어! 하고 놀라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공지신승마저도 금시초문이었다.

전공장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우리가 이 대회에 참석한 것은 여러 영웅호걸들이 지켜보
는 가운데 공지신승에게서 모든 사실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방주께서 도대체 무슨 원한을 사서 소림고승에게 사방주
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부인과 딸까지도 모두 죽이려고 했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소림파는 지금까지 무림의 태산북두로 군림해 왔다고 할 수 있
습니다. 우리가 어찌 감히 어거지를 쓰겠습니까? 그러니 귀사의
고승 한 분과 속가제자 한 명만 대질해 주기를 바랍니다."

"분부대로 따르겠소. 그런데 두 사람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시
오."

"좋소."

순간 전공장로는 입을 딱 벌리고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못했
다.

공지신승은 깜짝 놀라 그의 오른팔을 잡아 보니 이미 맥박이 멈
춰 있는 것이 아닌가!

"장로! 장로!"

공지신승은 당황하여 큰 소리로 외치며 전공장로의 얼굴을 쳐다
보니, 두 눈썹 중간에 극독이 담긴 암기로 보이는 검은 반점이
박혀 있었다.

"여러분 모두는 똑똑히 보셨을 겁니다. 불행하게도 개방장로께
서 극독의 암기에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소림파에서 이런
악랄한 암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알 것이
오."

개방에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수십 명이 전공
장로 쪽으로 달려갔다. 장발용두가 품 속에서 자석을 꺼내 전공
의 눈썹 사이에 갖다 대자 쇠털처럼 가느다란 강침이 딸려 나왔
다.

공지신승의 말대로 소림이 암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
이 아니라는 것을 개방에서도 인정했다. 그러나 이 밝은 대낮에
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감히 누가 이런 암기로 기습
했고, 또한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니,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집법장로를 비롯한 개방 제자들은 모두 이렇게 짐작했다.

'전공장로가 남쪽을 향해 서 있었으니 암기는 분명 남쪽에서 날
아온 것이 틀림없고, 때마침 햇빛에 눈이 부시고 전공장로께서
너무 격분하였었기 때문에 가느다란 암기가 날아오는 것을 발견
하지 못한 것이다.'

장로들의 노기띤 매서운 눈초리가 공지신승의 뒤로 쏠렸다. 그
의 뒤에 있던 아홉 명의 빨간색 가사를 걸친 노승들은 맥이 풀린
채 서 있었고, 그 뒤로는 황의 승려들이 나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회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나열해 있었는데 어느 누가
암기를 발사했는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범인은 분명 소
림승이라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집법장로는 갑자기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눈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래도 공지대사께서는 오해라고 하시겠소? 지금 똑똑히 봤으
니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소?"

성격이 급한 장발용두는 철봉을 쳐들며 외쳤다.

"오늘 이 자리에서 소림파와 끝장을 내고 말 것이다!"

요란한 병기소리와 함께 개방 방중들은 대회장으로 몰려갔다.
그러자 공지신승은 안색이 창백해져서 뒤를 돌아보며 소림승들을
향해 물었다.

"달마 노조께서 서쪽에서 여기에 오셔서 본파를 창업하신 후로
천여 년을 내려오면서 역대의 승려들께서는 모두 계율을 지키고
불도를 닦았소. 물론 호신용으로 무학을 연마했지만 강호의 영웅
호걸들과 내왕을 하면서 절대로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행동을 하
지 않았는데, 방장사형과 나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 돌아가는 것
을 간파하고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소림승들을 일일이
노려보았다.

"이 독침을 누가 발사했는지 어서 자백해라. 대장부는 자기가
저지른 것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느니라."

그러나 수백 명이나 되는 소림 승려들 중에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개중에는 나무아미타불! 하고 염불을 외는 승려도 있었
다.

장무기는 갑자기 한 가지 지나간 일이 떠올랐다. 옛날에 어머니
은소소가 아버지 장취산의 차림새를 하고 독침으로 소림승을 살
해하여 아버님이 누명을 썼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천응교의 은
침은 이 강침과 모양이 완전히 틀리고 독성도 전혀 달랐다.

전공장로의 죽은 모습으로 보아 그 독은 서역에서 나는 심일도
(心一跳)라는 독충인 것 같았다. 심일도란 독충은 독이 사람의
피와 섞일 때 중독자의 심장이 몇 번 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린다.

장무기는 이미 사화룡이 원진의 손에 죽은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소림사에 원진의 패거리가 매복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
는 터라 전공장로를 죽인 것은 원진이라고 밝히지 못하게 막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모두들 전공장로를 쳐다보
느라 암기를 발사한 자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장봉용두가 크게 외쳤다.

"사방주를 죽인 범인이 누구라는 것은 개방의 수만 명 되는 제
자들 중에 모르는 제자가 없는데, 너희들이 수만 명을 모조리 죽
일 수 있겠느냐? 사화룡 방주를 죽인 화상놈은 바로 원진이다...
..."

갑자기 장발용두가 철봉을 쳐들고 뛰어나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
다. 순간 탱! 탱!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두 개의 강침을 막아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디서 강침이 날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장발용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터라 햇빛에 파란
빛이 번쩍이자 재빨리 그것을 막아냈던 것이다. 한 발만 늦었어
도 장봉용두는 필경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어느새 공지신승은 달마당 노승들의 뒤로 달려갔다. 팍! 하는
소리가 나더니 공지신승은 왼쪽에서 네 번째에 서 있는 노승을
걷어차며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공여(空如), 너였구나! 너도 원진과 한통속이 되어 버렸느냐?"

공지신승이 오른손으로 공여의 승의를 찢자 옷이 찢겨지면서 그
속에 강철로 만든 작은 원통이 숨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원통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탄력 장
치가 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모두는 깜짝 놀라며 그 자의 짓이었
다는 것을 알았다.

강철로 만든 통에는 탄력 장치가 되어 있으니 발사하는 자는 손
도 들 필요없이 품 속에서 기관만 누르면 독이 묻은 강침을 발사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서로 가까이 서 있었다 하더라도 상대가
암기를 발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없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교
했다. 장봉용두는 비분이 치솟아 철봉으로 공여의 머리통을 마구
후려쳐서 즉사시켜 버렸다.

공여의 신분은 사대신승과 동배인 터라 배분이나 무공이 모두
높은 노승이지만, 공지대사에게 뒷덜미를 잡혀 움쭉달쭉 못하는
상태에서 철봉이 덮쳐오는 것을 두 눈뜨고 보면서도 피하지 못하
고 작살당한 것이다. 또 한번 군웅들의 놀라움이 터져 나왔다.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지도 않고 죽이다니, 정말 성미도 급한
사람이군!'

공지대사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 보았
다.

바로 이 혼란한 때에 갑자기 장외에서 네 명의 여승이 손에 불
진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들어왔다.

"아미파 주지약 장문인께서 문하제자들을 이끌고 소림 방장 공
문대사를 참견하러 왔소"

공지대사는 공여의 시신을 내려놓고 아무 소리도 않고 그를 마
중 나갔다. 남은 달마당의 여덟 명의 노승들도 그의 뒤를 따라
걸어나갔다. 그들은 마치 조금 전의 참극을 본 적이 없다는 듯
침착한 표정들이었다.

네 명의 여승은 먼저 인사를 하고 난 후 다시 뒤로 돌아갔다.
표연히 들어왔다가는 어느새 물러나 버렸다. 네 여승의 동작은
하나로 묶은 듯이 통일되어 있었다. 더구나 그들의 발걸음은 흐
르는 물과도 같았고 하늘의 구름과 같이 경쾌했다.

장무기는 주지약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슬쩍 조민을 쳐다보니 마침 조민도 자기를 보고 있었
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자 그녀는 입을 삐쭉거리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이 꼭 자기를 경멸하는 인상처럼 느껴졌다. 장무
기를 조소하는 것인지 주지약의 허세를 경멸하는 것인지 도무지
그 진의를 알 수 없었다.

아미파 여협들은 개방과 같이 무질서하게 대회장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공지대사가 군승들을 이끌고 마중나오자 그제서야 대열
을 지키고 들어왔다. 팔구십 명이나 되는 여승들은 모두 일률적
으로 노란색 승복을 입고 있었고, 그 중 태반은 머리를 완전 삭
발한 여승들이었다. 일부분의 소수만 노년에 중년 그리고 묘령의
여자들이었다.

여제자들이 모두 걸어들어오자 일장여 거리나 되는 뒤에 청색
장삼을 입은 절세 미인이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바
로 다름아닌 아미파 장문 주지약이었다.

장무기는 핼쓱해진 그녀의 초췌한 모습을 보자 안타까우면서도
부끄러웠다. 장무기의 뒤에는 이십여 장이나 뒤떨어져 이십여 명
의 남제자들이 노란색 장포를 입고 매우 점잖게 걸어들어왔다.
어느 문파 어느 무림 인물도 이렇게 질서 있고 웅장하지는 못했
다.

남제자들의 손엔 모두 크고 작은 나무상자들이 들려 있었다. 백
여 명의 아미파 제자들 중에 병기를 든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무기를 모두 이 나무상자에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군웅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미파에게 내심 칭찬을 아끼지 않
았다.

"아미파는 소림파에 대한 예절이 상당하군."

무기를 보이지 않는 것은 소림파를 그만큼 존중한다는 표현이었
다.

아미파 제자들이 모두 천막에 들어가 자리에 앉고 나자, 장무기
는 그들 앞으로 걸어가 주지약을 향해 길게 읍을 하며 수줍은 듯
이 말했다.

"주사매에게 사과하러 왔습니다."

그러자 십여 명의 아미 제자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노기 찬 얼굴로 장무기를 노려보았다.

잠시 후, 주지약은 장무기에게 가볍게 답례를 하며 말했다.

"천만의 말씀, 그 동안 별일 없으셨는지요?"

아무런 표정도 없는 그녀의 얼굴로 보아 기뻐하는지 노기를 띠
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무기는 도무지 그녀의 심중을
헤아릴 수 없어 몹시 난처해 했다.

"지약, 그날은 의부님을 구출하려는 마음이 조급해 그만 대례를
치루지 못했소. 정말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 어쩔 줄 몰랐
소."

"듣자 하니 사대협께서는 소림사에 감금당하셨다는데, 훌륭하신
무공을 지닌 장교주께서 이미 구출해 내셨겠지요?"

그 말에 장무기는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소림사 고승들의 무공이 심후해 그들과 겨뤘지만 명교에서 벌
써 일장을 졌습니다. 그 싸움에서 불행하게도 나의 외조부님을
잃었습니다."

"일세의 영웅이신 은노인 어른을 잃으셨다니 안타깝군요."

그녀는 조금도 희노의 빛을 내색하지 않았다. 장무기는 그녀가
말할 때마다 웬지 무안을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녀의 의
중을 알 수가 없어서 이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결혼식 날에 자기가 많은 하객들이 보는 앞
에서 조민을 따라가 버렸으니, 그 때의 주지약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오늘 자기가 당하는 무안은 그날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
었다.

"잠시 후에 의부님을 구출할 때, 왕년의 정을 생각해서 도와주
셨으면 합니다."

그녀는 반 년 동안 무공에 있어서 큰 진보가 있었다. 그날 결혼
식장에서 훌륭한 무공을 지닌 범우사마저도 주지약의 단 일 초식
에 뒤로 밀려났고, 하마터면 각파의 장기를 고루 익힌 주지약에
게 목숨마저 잃을 뻔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두백당, 역삼랑 부부
를 살해한 날도 그랬었고..... 아무튼 아미파 장문직에 오르는
인물에게는 어느 누구도 모르게 내려온 무공비급이 있는 모양이
었다.

'주지약은 총명해서 멸절사태보다도 더 무공이 훌륭해. 만약 주
지약이 나와 합심을 한다면 금강복마권을 무너뜨릴 수 있을 거
다.'

그런 생각을 한 장무기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지약,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소."

주지약이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장교주, 말씀 삼가세요. 앞으로는 절대로 부르지 마세요."

그러면서 뒤로 손짓을 하면서 다시 말했다.

"당신 이리로 와서 우리 사이를 장교주에게 설명해 줘요."

그러자 뒤에서 한 털보가 걸어와 포권의 예를 올리며 인사를 하
는 것이었다.

"장교주, 그 동안 안녕하셨소?"

목소리를 들으니 송청서인 것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송청서
가 틀림없었다. 늙고 추한 모습으로 자기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변장한 사나이는 송청서가 틀림없었다.

"송사형님이셨군요. 그 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송청서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 보면 모두 장교주의 덕입니다. 결혼식 날 장교주께서
갑자기 후회하고 파혼하지만 않았다면....."

"파혼이라구요?"

장무기는 깜짝 놀라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이 아름다운 인연은 모두 장교주의 덕택이었
소."

순간 장무기는 벼락을 맞은 듯이 멍청히 서 있기만 했다. 그는
앞이 캄캄해지며 시끄러운 소리가 귓전을 마구 울리고 있었다.
그는 무슨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 자기의 팔을 잡으며
말하는 것이 들려오고 있었다.

"교주님, 어서 돌아가시지요."

장무기가 정신을 차리고 옆을 보니, 한림아가 자기의 팔을 잡고
있었다. 한림아는 비분에 찬 얼굴로 주지약에게 말했다.

"주낭자, 우리 교주께서는 대인대의한 영웅입니다. 그날의 조그
마한 오해로 이런 놈에게 시집을 가다니 흥.....!"

한림아는 송청서에게 마음껏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지만, 주지약
의 체면을 봐서 꾹 참고 말았다.

장무기는 물론 조민에게 깊은 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주지약
과 혼인을 약속한 사이라 그날 의부님을 구출하기 위해 부득이하
게 조민을 따라나서긴 했지만, 그래도 주지약의 성격이 온순하므
로 솔직하게 그녀에게 사실대로 사정을 고백하면 그녀가 용서해
줄 것으로 믿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지약이 홧김에 송청서와
결혼을 하리라곤 정말 몰랐다. 지금 장무기의 신정은 광명정에서
그녀에게 일검을 찔린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장무기가 뒤돌아보니 주지약이 손을 흔들자 송청서가 득의양양
해 하며 그녀의 옆에 걸어와 앉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웃는
듯 말 듯하면서 장무기에게 말했다.

"결혼식 때 모두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청첩장을 많이 돌리지
못했는데, 언제고 찾아오셔서 술이나 한 잔씩 나눕시다."

"고맙소."

그러나 장무기는 목이 메여 이 세 마디도 제대로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림아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교주님, 이런 사람과는 말대꾸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 하! 하!"

"한형, 그날 같이 오십시오."

한림아는 퉤! 하고 침을 뱉었다.

"말 오줌을 마시면 마셨지 너 같이 재수 없는 놈의 술은 안 마
신다!"

장무기는 탄식을 하며 한림아의 팔에 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바로 그 때 장봉용두는 한 소림승과 격렬한 입씨름을 벌이고 있
었다. 장무기와 주지약, 그리고 송청서, 한림아는 서북쪽 한 귀
퉁이에서 말을 나누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주의하지
못하고, 모두 개방과 소림파의 논쟁만 듣고 있었다.

명교의 천막에 돌아와 자리에 앉은 장무기는 마음이 산란하여
정신이 집중되지 않았다. 희미하게 빨간색 가사를 걸친 소림승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원진사형과 진우량이 본사에 없다는 말을 귀방에서는 믿지 않
을 것이고, 귀방의 전공장로께서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었지만 대
신 폐파의 공여사숙이 죽지 않았소? 그런데 또 무슨 할 말이 있
으시오?"

"원진과 진우량이 여기에 없다니 우리가 수색해 보기 전엔 절대
믿지 못하겠소!"

장봉용두가 절대 믿으려고 하지 않자, 소림승은 냉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각하께서 본사를 수색하겠다니 너무 자신을 모르고 하는 얘기
가 아니오? 아마도 개방에는 그런 실력이 없을 줄 아오."

"흥, 개방을 우습게 보는군. 그럼 내가 먼저 한 수 가르쳐 줄
까?"

"천여 년 동안 수많은 영웅 호걸들이 소림사엘 찾아왔었지만,
조상들의 자비심 덕택인지는 몰라도 소림사는 여전히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았소."

두 사람의 입씨름이 점점 격렬해지면서 곧 싸움이 벌어질 것 같
았으나, 옆에 앉은 공지대사는 조금도 그들을 말리거나 간섭하지
않았다.

갑자기 사도 천종의 음양괴기한 음성이 들려왔다.

"오늘 이렇게 많은 영웅들께서 소림에 모였지만, 어떤 분들은
멀리 천리 밖에서까지 오셨는데 개방의 복수극을 구경하러 온 것
이 되어 버렸군."

그러자 하주가 또 말했다.

"맞어, 개방과 소림의 원한은 잠시 제쳐놓고 먼저 사손 그놈을
처단하는 일을 결론내야지."

장봉용두의 노기띤 음성이 튀어나왔다.

"말조심 하시오! 금모사왕 사대협은 명교의 사대법왕 중의 한
분인데 함부로 부르다니!"

"흥! 명교를 두려워하는 모양인데 난 두려워하지 않아. 사손같
이 개 돼지만도 못한 놈들을 무슨 영웅 협사라고 부르는가....."

양소가 대회장으로 들어와 포권의 예를 취하고 나서 입을 열었
다.

"소인은 명교의 광명좌사올시다. 이 자리에서 천하영웅들께 한
말씀 드릴까 합니다. 폐파의 사사왕께서 왕년에 많은 무고한 사
람을 죽인 것에 많은 잘못이....."

"흥! 사람은 이미 죽었는데 말 몇 마디에 다시 살아날 건가!"

"강호를 돌아다니는 우리는 항상 칼에 피를 묻히는 나날을 보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살아오면서 어느 누구든 몇 사람의
인명은 살해했을 것이오. 무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많은 살상
을 했을 것이고, 무공이 보잘것없는 사람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
오. 그런데 사람을 죽였다고 꼭 자기의 목숨으로 속죄해야 한다
면 아마 이 대회장에 모인 수천 명의 영웅 호걸들은 몇 사람 남
지 않고 다 죽었을 겁니다. 하주 영웅께 묻겠는데, 당신은 평생
한 사람이라도 죽인 적이 없소?"

사실 이때는 천하가 대란하여 사방이 소란해 죽이지 않으면 죽
음을 당하는 세상이었다. 손에 조금도 피를 묻히지 않은 사람은
소림파나 아미파의 극소수의 승려들 외엔 몇몇 사람들만 손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산동의 호걸 하주도 성격이 포악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
을 살해했다. 양소의 말에 그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물론 좋은 사람은 죽여선 안 되고 나쁜 자들은 마땅히 죽여야
지. 그러나 사손은 명교의 다른 마두들과 똑같이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그놈의 살을 씹어 먹고
싶은 심정이다. 흥! 양가야, 보아하니 너도 별로 좋은 놈이 아닌
것 같구나."

하주는 명교에 무공이 높은 인물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만, 오늘 이 자리에서 형의 원수를 갚으려면 명교와 일전을 치루
지 않을 수가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말로서도 조금도 양보
를 하지 않았다.

"하주 네놈이 보기에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으냐?"

갑자기 명교의 천막에서 째지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하주가
그곳을 쳐다보니 깡마른 얼굴에 입이 뾰쪽하게 생기고 얼굴이 얼
마나 하얀지 핏기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인물이었다. 하주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몰라 큰 소리로 외쳤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마교의 마두라면 나쁜 놈이라는 것은 분명
하지 않느냐?"

옆에 있던 사도 천종이 다시 끼어들었다.

"하형, 어찌 저분도 못 알아보시오! 저분은 명교의 사대법왕 중
의 한 분인 청익복왕올시다."

"픽! 흡혈 마귀이군."

순간 눈앞에 무엇이 번쩍이더니 어느새 위일소는 하주의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십여 장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어느새 위일소가 눈깜짝할 사이에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위일소는 이미 하주의 뺨을
네, 다섯 차례나 후려치고 다시 팔꿈치로 하주의 아랫배를 내리
찍은 것이다.

하주의 무공도 실은 보통이 아니었다. 위일소가 만약 그와 실력
대로 싸운다면 그와 오십여 초식이 지나야 이길 수 있을 정도였
다. 그러나 위일소의 경공은 실로 귀신과 같아 상대가 정신을 차
리기도 전에 이미 그를 제압한 것이다.

군웅들이 모두 놀라 외치는 사이에 명교의 천막 속에서 또 한
명의 흰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그의 신법은 번개와 같은 위일소
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날아가는 화살처럼 빨랐다.

그는 하주의 앞에 오자 재빨리 포대를 풀어 그 속에 하주를 쳐
넣고 어깨에 메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군웅들은 그가 바로 포대
화상(布袋和尙) 설불득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 하! 그래 너는 좋은 놈이냐? 집에 돌아가서 이 화상이나
삶아 먹어 버려야지!"

그는 하주를 어깨에 메고 가볍게 천막으로 걸어갔다.

하주에게도 십여 명의 친구와 제자가 있었지만, 너무나 갑작스
럽게 일어난 사건이었고 두 사람의 몸놀림이 너무나 번개 같아
그를 도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명교의 천막으로 돌
아가 자리에 앉은 후에야, 그들은 무기를 뽑아 들고 천막 앞으로
모여 가 사람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쳤다.

설불득은 포대자루의 끈을 조금 풀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어서들 자리에 돌아가 앉지 못하겠는가! 대회가 끝나면 풀어
주겠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포대자루에다 오줌을 싸 버릴
것이야. 내가 그렇게 못할 것 같으냐?"

그는 그러면서 허리띠를 푸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십여 명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면서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
었다. 그러나 그들은 명교 인물들이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지르고
다닌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설불득이 실지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자기들의 무력으로는 절대로 그를 빼앗아
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만약 설불득이 진짜로 오줌을
싸댄다면 하주는 모욕을 못 참고 자살해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
들은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밖
에 없었다.

군웅들은 놀라면서도 한편 우습기도 했다. 그들은 사손을 어떻
게 처단할 것인지 구경하러 모인 것인데, 지금 명교의 두 호걸의
실력을 보자 오늘 이 대회에는 흉조가 차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손을 죽인다 해도 필시 이 대회장은 피로 사방을 물들일 것이
라고 생각하며 모두 겁을 먹고 두려움에 싸였다.

그러자 사도 천종이 한 손에 술잔을 들고 한 손엔 주호로를 들
고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며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오늘 좋은 구경거리가 생기겠군. 한쪽에선 사손을 죽이자 하고
한쪽에선 살리자 아우성들이지만, 사손이 진짜로 소림사에 있는
지 그것도 사실 모르는 일이야."

"내 생각엔 공문대사께서 금모사왕 사손을 모시고 나와 모두에
게 구경이나 시켜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소? 그리고 나서
양쪽이 자기의 실력대로 한번 겨루게 하는 것이 어떻소?"

그의 제의에 반 이상이 좋다고 외쳐댔다.

'사사왕의 원수들이 워낙 많아 명교와 개방이 힘을 합친다해도
천하 영웅들과 싸울 처지가 못 된다. 그러니 도룡도로 주의를 돌
리게 해서 서로 다투게 만들어야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한 양소는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들이 여기 참석한 것은 첫째 금모사왕과 각기 은원이 있
어서 오신 것이고, 둘째는 아마 도룡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
하고 싶어서일 것이오. 만약 사도 선생의 말대로라면 대회장은
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될 것이고, 그럼 도룡도는 누가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오?"

그 말에 모두는 수긍이 갔다. 이 수천 명 중에서 진짜 사손과
원한이 있는 사람은 불과 백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
두 무림지존이라는 네 자를 듣자 마음이 술렁거렸다.

이때 검은 수염의 노인 하나가 일어나 물었다.

"양좌사께서 도룡도가 지금 누구의 손에 들어 있는지 말씀해 주
십시오."

"저도 그것을 몰라 지금 공지선사에게 물어볼까 합니다."

공지대사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군웅들은 모두 속으로 불만을 품었다. 대회의 주최자인 공문방
장은 아프다는 핑계로 나오지 않고, 공지신승은 흐리멍텅한 태도
이니 도대체 무슨 꿍꿍이 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 갈색 장포를 입은 중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지신승이야 모른다고 하지만 사사왕은 알고 있을 것이 아니
오? 어서 그를 불러내 그에게 물어봅시다. 그리고 나서 모두 자
기 실력으로 겨루고 나서 누구의 무공이 진짜 천하제일인지 가려
내서 무림지존이 되는 겁니다. 그리하여 그 칼이 누구의 손에 있
든 그 무림지존에게 바치는 겁니다. 그것을 먼저 결정하는 것이
어떻소? 나중에 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게 하자는 겁니다. 만약
뒤에 가서 불복하는 자가 생기면 모두 힘을 합쳐 공격합시다.
자, 내 의견이 어떻소?"

이 자는 바로 그날 밤 금강복마권을 공격하던 청해파 세 고수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을 장무기는 알고 있었다.

사도 천종이 반대하며 나섰다.

"내가 생각하기엔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소."

"아니, 무엇이 좋지 않다는 거요? 그래 각하께서는 무술을 겨루
지 말고 주량을 겨루자는 거요? 누구든 술에 쓰러지지 않는 자가
무림지존이 되자는 거요?"

장내엔 폭소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괴상한 소리로 비꼬았다.

"그거야 물론 겨룰 필요도 없이, 무림지존은 취불사 사도 선생
의 것이 되는 게 뻔한 일이지."

사도 천종은 표주박에서 술 한잔을 따뤄 마신 후 정색을 하며
말했다.

"천만에 말씀. 주림지존이라면 나 취불사가 어느 정도 희망이
있지만, 무림지존이라면 내가 어찌 감당하겠소?"

그리고는 청포 대한에게 물었다.

"각하께서 정 그런 의견이시라면, 무학에 있어서는 물론 입성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일 겁니다. 그런데 소생은 눈이 어두워 아직
까지 각하의 존함을 모르겠습니다."

"소생은 청해파의 엽장청(葉長靑)이라 하오. 주량이나 광대노릇
이라면 가히 각하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 말은 무공이라면 당신보다 훨씬 높다는 뜻이었다. 사도 천종
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청해파? 들어본 적이 없는데, 엽장청? 그 이름도 금시초문이
군."

모두는 취불사 노인이 보통 담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엽장청 한 사람만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청해파까지 모욕을 하
다니, 저 노인 뒤에는 무슨 든든한 후원이라도 있는가 보군. 아
니면 청해파와 무슨 철천지 원한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조금
전에 그가 한 그 두 마디만으로도 청해파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사도 천종이라는 위인을 아는 사람은 그의 뒤에 아
무도 없고 또한 청해파와도 아무런 원한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
었다. 다만 그는 평소에도 성격이 오만하여 큰소리치기를 좋아하
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물론 그로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여전
히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였다.

엽장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이미 살기가 차 있었다.

"청해파와 본인은 본시 이름이 없어서 각하께서 물론 못들으셨
을 겁니다. 그런데 무예를 겨루는 것도 불만이고 술내기도 불만
이니, 도대체 각하의 뜻은 뭣이오?"

"하! 하! 술이라면 내가 천하무적이라 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할 수도 없지. 왕년에 내가 제남부(濟南府)에서....."

그가 계속해서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려고 하자 사람들속에
서 누군가가 외쳤다.

"취불사, 여기서 술주정하지 마시지! 당신의 엉터리 같은 말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네."

또 누군가가 뒤따라 외쳤다.

"도대체 사손과 도룡도의 얘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자 또 누군가가 외쳤다.

"공지선사, 당신은 오늘 이 대회의 주최자인데 우리에게 쓸데없
이 여기서 시간을 소비하게 하다니, 어떻게 된 거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한 마디씩 터뜨렸다.

사방에서 이렇게 불만이 터져 나오자 사도 천종은 엄숙하게 입
을 열었다.

"강릉부 흑풍채(江陵府 黑風菜) 사두목, 너무 성미가 급하군.
아무리 당신의 흑사장(黑沙掌)이 무섭다 해도 천하의 영웅들을
모조리 눕히진 못할 거야. 그리고 파양호 수저 금오후(水低 金熬
候) 형제, 사사왕께서는 수륙 양쪽 무공이 모두 능하시고 더구나
명교 그쪽엔 자삼용왕까지 계셔, 아직 나타나진 않았지만 악어가
감히 용왕의 상대가 되겠는가? 또 청양산 오삼랑(靑陽山 吳三郞)
당신은 검을 쓰고 있는데, 당신이 도룡도를 얻게 된다 해도 사용
할 줄 모를 텐데 무슨 성미가 그렇게 급한가?"

사도 천종은 항상 술에 취해 있는 듯하지만 남보다 특출한 데가
있었다. 그는 견문이 넓고 또한 귀도 밝아 그 많은 사람들 숲에
서 한 말을, 그는 일일이 누가 말했고 또 그 자의 이름까지 일일
이 말할 수 있었다.

그의 이런 재주에 군웅들은 모두 속으로 갈채를 보냈다.

공지대사 뒤에 앉아 있던 한 노승이 일어나 말했다.

"소림파에서 이 대회를 주최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공교
롭게도 방장께서 병환이 있어서 참석 못한 것을 여러분께서 용서
하십시오. 사실 사손과 도룡도에 관한 두 사건을 하나로 생각하
고 한꺼번에 처리해도 된다고 봅니다. 노승의 의견은 조금 전에
청해파 엽시주께서 하신 말씀이 옳다고 봅니다. 도룡도를 그분의
처리에 맡기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장무기는 팽영옥에게 지금 말한 자의 이름을 물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저 노승은 광명정 싸움에 참여하지도 않았
고 만안사에 붙잡혀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지대사의 말을
항상 가로막는 것을 보니 소림사에서 지위가 매우 높은가 봅니
다."

조민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십중팔구 원진과 그 일당일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공문대사가
이미 원진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공지대사께서는 반도
(叛徒)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어서 저렇게 맥이 없는 것 같습니
다. 팽대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군주의 추측이 매우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소림
사의 고수들은 구름떼와 같이 많은데 원진이 공공연하게 반란을
일으키다니, 너무 방약무인인 것 같습니다."

"원진은 이미 오래전부터 음모를 꾸며 왔습니다. 처음엔 명교를
와해시키려고 했고, 다음엔 개방을 손에 넣으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번엔 아마 소림방장의 자리를 노리는 것 같습니
다."

조민이 다시 말을 받았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장무기가 다시 말했다.

"소림파 하면 무림에서 제일가는 문파인데 장문 방장에서 더 이
상 또 뭐가 있소?"

조민이 다시 받았다.

"무림지존이 있잖아요? 소림파의 장문 방장보다 더 높지 않아
요?"

"아니, 그럼 무림지존이 되려고 한다는 거요?"

"장공자, 주낭자가 다른 사람한테 시집을 가더니 그만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요. 머리가 둔해진 것을 보니....."

그 말에 장무기는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그는 속으로 다짐을 했다.

'장무기, 절대로 남녀의 사사로운 정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오
늘은 의부님을 구출하러 온 것을 잊어서는 안돼.'

그는 정신을 바짝 치리고 내심 생각을 굴렸다.

'오늘 이 대회도 원진이 뒤에서 주최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필
시 여기에 무슨 음모가 있을 것이다.'

"민매(敏妹), 원진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소?"

"원진은 어떤 간계도 짜낼 수 있는....."

주전은 지금까지 두 사람이 낮은 소리로 주고 받는 대화만 듣고
있다 드디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군주 아씨의 지모도 원진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군."

조민은 가볍게 웃었다.

"과찬의 말씀을....."

"과찬이 아니라....."

팽영옥이 주전을 나무랐다.

"군주 아씨의 말씀을 들어보게 말 좀 막지 마시오."

주전은 화를 버럭 냈다.

"팽형이나 먼저 내 말을 막지 마시오."

팽영옥은 웃으며 더 이상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주전과 입씨름
을 해봤자 하루 온종일 해도 끝이 안 날 것은 뻔한 일이다.

"왜 또 말하지 않으시오?"

"나보고 주형의 말을 막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그렇지만 이미 내 말을 막지 않았소?"

"그럼 다시 말씀하시오."

"뭐라고 말했는지 잊어 먹었는데....."

조민이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엔 원진이 오로지 소림방장이 되려고 했다면 천하 영웅
들을 여기까지 초청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대협께서 이미 그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데 뭣하러 무술을 겨루게 하고 내놓겠습니까?
무공이라면 아마 지금 이 세상에 장공자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
을 거예요. 원진도 그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절대로 무예를
겨뤄 당신이 무림지존이 되게끔 선심을 쓸 리가 없을 거예요. 그
리고 사대협과 도룡도를 당신에게 바치겠습니까?"

장무기, 팽영옥, 주전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소?"

이때 마침 양소가 장무기 옆으로 걸어왔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마 원진 그놈이 철저하게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니....."

주전은 참지 못하고 또 말을 가로막았다.

"원진은 본교의 앙숙이고 군주 아씨도 우리의 앙숙이었소. 두
사람 모두 계략이 뛰어났는데 서로 비슷한 점이 많군요."

양소가 크게 나무랐다.

"또 쓸데없는 소리를!"

"아니에요....."

조민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주선생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원진이라면 어떤
음모를 꾸몄을까요? 첫째는 공문방장으로 하여금 청첩장을 돌려
군웅들을 소림사로 오게끔 하는 겁니다. 공문방장께서는 불법을
심해한 분이라 본시 자비로운 성품이고 거기다 귀찮은 일이 생기
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게다가 공견, 공성 두 신승의 핑계를 대
면 사형제의 의리로서도 당연히 승낙을 할 것이고, 또한 소림사
에서 사대협을 죽이게 되면 명교의 철천지 원한을 맺게 됩니다.
소림파의 힘으로는 전력을 다해 공격하는 명교를 막아내기 힘드
니 책임을 천하 영웅들에게 전가하여 명교가 천하 영웅들을 일일
이 상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일 겁니다."

모두 그녀의 말에 수긍이 갔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대회에는 자신이 나타나지 않고, 사대협과 도룡도를 미
끼로 하여 군웅들이 서로 싸움에 말려들게 부추기는 겁니다. 명
교는 필시 군웅들과 적이 되어 결국은 모두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장무기도 그 말에는 수긍이 갔다.

"바로 그거야. 그 점은 나도 생각했었소. 그렇지만 의부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깊은 은혜, 그리고 여러 형제들과의 깊은 우
정, 어찌 우리가 모른 척하고 그를 구출하지 않고 앉아만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여기에 온 지 며칠도 안 됐는데 벌써 외조
부님을 잃었으니, 원진이 어디엔가 숨어서 기뻐 박수를 치고 있
을 겁니다."

조민이 다시 말을 이었다.

"끝까지 싸우다 보면 무공 제일이라는 칭호는 장교주께서 얻게
될 것이고, 그러면 소림파에서는 장교주에게 축하를 보내고 장교
주에게 사대협을 넘겨 주겠다고 하면서 직접 뒷산에 올라가 사대
협을 모셔가라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는 모두 뒷산으로
가서 장교주 혼자서 금강복마권과 맞서게 할 것이고, 만약 우리
가 장교주를 도우려고 하면 원진의 패거리들은 무공 제일의 칭호
를 얻은 것은 장교주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돕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장교주께서는 무공 제일이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
진력을 다 했으므로 상처를 입지 않았다 해도 이미 많은 내력과
신공을 소비하고 난 뒤인데, 어떻게 다시 세 노승의 상대가 되겠
습니까? 결국은 사대협을 구출하기는커녕 소나무 사이에서 그만
목숨을 잃게 될 것이 뻔한 일이죠. 그런 뒤에야 무공 제일이라는
칭호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여기까지 들은 군웅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조민의 말은 틀림없는 말이었다.

장무기는 성격이 고집스러워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사손을
구출해 내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자기의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
도 덤벼들 것이 분명하므로 원진은 바로 그런 그의 성격을 간파
하고 장무기를 죽음 속으로 몰아 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조민은 긴 탄식을 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명교는 망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원진은
다시 간계를 부려 공문대사를 혹사시키고 그 누명을 공지대사에
게 덮어씌울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는 그로서는 아주 쉬운 일입
니다. 다만 증거만 꾸며 대면 소림파에서도 그를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후에는 그의 패거리들이 일어나 그를 추대하면
그는 순조롭게 소림방장이 되는 겁니다. 그리하여 그의 호령에
따라 군웅들은 모두 명교를 협공하여 일거에 명교를 섬멸해 버릴
것이고, 그럼 천하제일의 무공이라는 칭호는 자연히 원진에게 돌
아가고 도룡도가 나타나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또한 나타난다 해
도 천하에 그 사실이 다 알려질 것이고 그 주인은 당연히 소림방
장인 원진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갖고 싶어도 누가 감히
그에게 갖다 바치지 않겠습니까?"

조민의 음성이 매우 낮아 천막 한쪽에 앉은 사람만들을 수 있었
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주전은 옳거니! 하면서 자기의 넓적다리를
쳤다.

"옳거니! 바로 그런 큰 음모가 숨어 있었다."

그의 음성이 너무 커 대회장의 반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듣게
되었다. 그들의 눈초리는 모두 명교의 천막 쪽으로 쏠렸다.

사도 천종이 물었다.

"무슨 음모라는 거요? 노부가 들어서는 안 되오?"

주전이 그의 말을 받았다.

"얘기해 줄 수 없네. 노부가 지금 이간질을 해서 천하 영웅들끼
리 서로 싸움이 붙게 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어찌 폭로하겠는가?"

사도 천종은 가볍게 웃었다.

"훌륭한 생각이군. 그런데 어떤 이간질을 꾸미려고 하는지 얘기
해 줄 수 없소?"

주전은 큰 소리로 외쳤다.

"어떤 음모인가 하면, 도룡도가 지금 노부의 손아귀에 들어왔는
데 누구든 무공이 제일 높은 자에게 도룡도를 드리겠소!"

"좋은 계책이군. 그런 뒤에 또 어떻게 할 거요?"

조민은 장무기와 서로 마주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하고 아무런 친교도 없는 이 술주정꾼이 우리에게 큰 도움
을 주는군.'

주전은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도룡도는 무림지존이라는 도호를 갖고 있는데, 누군들 그것
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겠소? 그리하여 이 대회장엔 붉은 피로 물
들 것이 아니오? 그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오."

이 말을 들은 군웅들은 모두 간담이 써늘했다. 장난기 섞인 말
인 것 같지만 매우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공동파 이로
(二老)인 종유협이 일어나 입을 열었다.

"주선생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할 말이 있으면 떳떳
하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도룡도에 욕심이 있는 것은 분
명합니다. 그러나 칼 하나로 인해 목숨을 잃고 심지어는 전 파문
이 섬멸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제 생각엔 무예로 친구를 사귀
고 절대로 살상을 하지 않고 승패를 가리는 것이 서로 원한을 사
지도 않을 테니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소?"

광명정 싸움에서 장무기는 원한 대신 덕을 베풀어 칠상권으로
당한 종유협의 내상을 치료해 주고 또다시 만안사에 잡혀간 그를
구출해 주었다. 그래서 공동파에서 이번에 소림사에 온 목적은
명교를 돕기 위해서였다.

사도 천종은 또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키도 큰 사람이 겁은 무척 많군. 그래 그런 무예
를 겨루는 방법이 무슨 재미가 있겠소?"

공동파의 사로 상경지가 노기띤 음성으로 말하였다.

"너 같은 술주정꾼을 죽일 필요가 있겠느냐?"

"이 주정꾼이 주정 좀 한 것뿐인데 무슨 화를 그렇게 내시오?
공동파의 칠상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 알고 있소. 소림 공
견신승이 바로 그 칠상권을 맞고 죽지 않았소? 나 같은 이 늙은
주정꾼은 공견신승의 상대도 안 되는데."

군웅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주정꾼이 너무 겁없이 좌충우돌이군. 공동파에 시비를 걸더
니 다시 소림파까지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군. 저런 식으로 살면
서 이 나이까지 목숨이 붙어 있었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종유협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큰 소리로 외쳤다.

"소생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각 문파에서 두 명의 고수를
대표로 뽑아서 무예를 겨루는 겁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어느 파
든 제일 무공이 높은 문파에게 사대협과 도룡도를 맡기는 겁니
다."

군웅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대찬성을 했다.

장무기는 유심히 공지대사 뒤에 서 있는 소림 승려들을 살폈다.
그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리며 몹시 불만스러운 표정들이었다. 그
들은 조민이 원진의 간계를 간파하고 군웅들이 자기네들끼리 서
로 살상을 하게끔 하는 계책이 쓸모없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이다.

얼굴이 하얗고 수염이 조금 난 한 중년 남자가 일어나 금접선
(金摺扇)을 부채질하며 매우 의젓하게 말하였다."

"그렇소. 그렇게 합시다."

군웅들이 그의 말에 찬성을 보냈다.

다시 사도 천종의 날카로운 음성이 튀어나왔다.

"노형의 인물은 정말 영준하시군요. 말소리를 들으니 상남 형양
부(湘南 衡陽府)의 구양형(歐陽兄)인 것 같군요."

그는 부채를 접으며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바로 소생올시다."

"구양형께서도 나와 같이 어느 방회에도 속하지 않은 외로운 사
람이지요. 난 호주가이지만 당신은 호색가이니 우리 두 사람이
주색파(酒色派)를 만들어 천하 영웅들과 한번 겨뤄 보는 게 어떻
겠소?"

"하! 하! 하.....!"

군웅들은 모두 크게 웃고 말았다.

사도 천종의 순간적인 농담은 대회장을 한결 부드럽게 만들었
다. 그는 대회장의 살벌한 분위기를 많이 해소시켜 주었다.

팽영옥은 이 백면의 중년 남자를 장무기에게 소개했다.

"저자는 이름이 구양목지(歐陽牧之)라고 합니다. 첩을 열 두 명
이나 거느리고 있습니다. 무공은 매우 높지만 강호엔 별로 나타
나지 않고 종일 여자들 숲에서 지냅니다."

구양목지는 웃으며 말했다.

"만약 당신과 문파를 창립한다면 난 당신에게 그렇게 많은 술을
댈 수 없소. 여러분께서 무예를 겨루시려면 나이가 지긋하고 덕
도 많은 뿐 아니라 모두가 존경하는 한 분을 공증인으로 추대해
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아무런 말썽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천종이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졌는지 이겼는지는 자신이 알 텐데, 어찌 그런 어거지를 쓸 사
람이 있겠소?"

종유협이 다시 일어섰다.

"그래도 공증인을 추대하는 것이 좋겠소. 소림에서 주최하셨으
니 공지대사는 자연적으로 공증인의 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사도 천종이 설불득의 포대자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산동의 대협 하주 노영웅을 천거하겠소."

설불득은 그 말에 포대자루를 사도 천종을 향해 던졌다.

"자, 공증인 받아라!"

사도 천종은 표주박을 떨어뜨리고 포대자루를 받아 안고 끈을
풀었다. 그러나 설불득의 결박은 독특했고, 그리고 그 끈은 금사
와 고래 심줄을 섞어 만든 것이라 사도 천종이 아무리 힘을 써도
풀리지 않았다.

설불득은 크게 웃으며 앞으로 달려나가 왼손으로 자루를 들어
어깨에 메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꾸물꾸물 하고 나더니 다시
앞으로 돌려 포대자루를 몇 번 돌리자 끈이 풀렸다. 그가 푼 포
대를 거꾸로 들자 하주가 굴러 떨어졌다. 사도 천종이 얼른 그의
혈도를 풀었다.

하주는 한참을 어둠 속에서 갇혔다 갑자기 밖으로 나오자 눈이
부셨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자 창피해서 죽
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단검을 뽑아 들고 자기의 목을 찌르려
했다.

순간 사도 천종이 재빨리 그의 단검을 빼앗아 버렸다.

"승패는 병가지상사가 아니오? 이러실 필요가 없어요."

그 때 사람들 숲에서 키가 작고 뚱뚱한 남자가 크게 외쳤다.

"포대자루에서 나온 저 사람은 공증인의 자격이 없는 것 같소.
나는 장백산의 손 영감을 천거하겠소!"

그러자 다시 어느 중년 부인이 말했다.

"절동쌍의(浙東雙義)의 명성이 강남에 떠들썩한데, 그 두 형제
야 말로 정직하고 사심이 없어서 공증인으로서는 안성마춤이요."

모두 한 마디씩 하자 순식간에 십여 명의 이름이 나왔다. 모두
강호에서 덕망이 높은 호걸들임엔 틀림없었다.

갑자기 아미파에서 한 늙은 여승이 한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슨 공증인이오! 그런 것은 하나도 필요없소!"

그의 음성은 우렁차지는 않았지만 모두는 그의 내력이 상당하다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도 천종이 또 말을 받았다.

"어째서 필요없는지 사태(師太)께서 말해 보시오!"

"두 사람 중에 살아남는 자가 승자고 죽는 자는 패자가 되는 거
요. 공증인은 바로 염라대왕이요."

그녀의 이 몇 마디 냉랭한 말투에 모두는 간담이 써늘했다.

"무예로 친구를 사귀는데 서로 무슨 큰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
고, 그런 생사를 걸고 할 필요가 있겠소? 출가인들은 자비심이
바탕이라고 하는데 사태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부처님께서 노
하시지 않을지 모르겠소."

"다른 사람과 말을 함부로 하는것은 상관없지만 아미파 제자들
앞에서는 좀 예절을 지켜 줘야겠네."

사도 천종은 다시 술 한 잔을 따뤄 마시면서 말했다.

"무서운 아미파군.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대장부는 여자와 싸
우지 않고 훌륭한 술꾼은 여승과 싸우지 않는다."

말을 마친 그는 여전히 술잔을 입가에 갖다 댔다.

그러자 갑자기 휙! 휙! 하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두
개의 작은 염주알이 날아와 하나는 술잔을 명중시켰고, 한 알은
표주박을 명중시켰다. 다시 한 알이 날아오더니 그의 가슴을 명
중시켰다. 염주알마다 꽁하는 소리를 내면서 술잔과 표주박은 가
루가 되고, 사도 천종의 가슴에도 큰 구멍을 냈다.

그는 그 터지는 힘에 뒤로 밀려 넘어졌으며 옷에 불이 붙고 있
었다. 하주가 재빨리 달려가 불을 껏지만 그러나 사도 천종은 이
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얼굴엔 아직 웃음을 짓고 있었다. 세 알
의 염주가 얼마나 빨리 날아와 터졌는지 사도 천종은 죽기 직전
까지도 자기에게 화가 미칠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청천 벽력과 같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군웅들 중엔 견문이나 경험이 많은 사람들도 많지만 아무도 이
렇게 빠르고 무서운 암기를 본 적이 없었다.

주전이 외쳤다.

"아니, 이게 무슨 암기지?"

양소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듣자 하니, 서역의 대식국(大食國)의 어떤 사람이 중국에서 화
약 만드는 방법을 배워가서 이런 암기를 만들어 냈다는군. 이것
을 벽력뢰화탄(霹靂雷火彈)이라고 하는데, 속에 강력한 화약을
넣고 거기다 강력한 탄력의 장치로 발사하는 것인데, 아마 저것
이 바로 그 벽력뢰화탄일 거야."

하주는 불에 탄 사도 천종을 안고 크게 외쳤다.

"이 사도형께서 말은 좀 함부로 해도 마음은 아주 착해 평생 나
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기에 많은 영웅들이 모였으나
누구든 사도형께서 악행을 저지른 일이 있는지 말씀해 보시오!"

군중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하주는 다시 노여승을 향해 비분강개하며 외쳤다.

"아미파라면 의협이 있는 명문정파인데 이런 잔인한 암기를 사
용하다니, 무림에서 아무리 강자가 승자라 하지만 이런 경우도
있는 거요? 사태의 이름을 알고 싶소."

"내 이름은 정가(靜迦)요. 자루에서 나온 대협께서는 삿대질하
면서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나 하가의 무예가 정순하지 못해 명교의 모욕을 당했지만 그것
은 나의 재주가 부족한 탓이오. 그러나 평생의 의협심은 누구에
게도 뒤지지 않소. 정가사태, 당신의 이런 잔인한 행동은 귀파의
조사 곽양 곽여협에게 먹칠을 하는 것이 아니오?"

곽양의 이름이 나오자 아미파 제자들은 일제히 일어섰다.

정가사태는 두 눈을 치켜뜨며 외쳤다.

"본파 조사의 이름을 감히 네가 함부로 부르는 것이냐?"

"아미파 제자들이 이런 불의한 행동으로 조사의 이름을 더럽히
다니! 곽여협이 아니라 당년에 그렇게 잔인한 멸절사태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소. 이렇게 무고한 생명을 함부로 죽였는데
너희 장문은 아무 간섭도 하지 않다니, 이후 아미파가 여전히 강
호에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또 다시 헛소리하면 저 술주정뱅이와 같이 만들어 주겠다."

하주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세 발짝 나서며 다시 말했
다.

"아미파에서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천하 영웅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군웅들과 아미파 제자들을 비롯한 수천 명의 눈초리가 주지약에
게 쏠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
덕이고 있었다.

순간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정가의 손에서 벽력뢰화탄이 날
아가 하주의 가슴과 아랫배에 각기 구멍을 내고 그의 옷에 불이
붙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굴하지 않고 숨이 이미 끊어졌
어도 쓰러지지 않고 사도 천종의 시신을 안고 뻣뻣이 서 있었다.
군웅들은 모두 멍청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잠시 후, 소란이 일기 시작하더니 모두들 아미파의 만행을 나무
랐다.

위일소와 설불득이 서로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사람
은 하주의 시신 앞으로 달려나가 무릎을 꿇었다. 이윽고 설불득
이 말하였다.

"이런 의협심이 강한 하 노영웅을 못 알아보고 조금 전에 큰 죄
를 저질렀습니다. 우리 둘은 정말 후회가 막심합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두 사람이 서로의 뺨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뺨이 부어올랐다. 그들은 두 구의 시체에 붙은 불을 끄고
명교의 천막으로 안고 들어갔다.

장무기는 주지약이 갑자기 이렇게 잔인한 사람으로 변한것이 마
음 아팠다. 군웅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 사이에 주지약이 송청
서의 귀에 대고 뭐라고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자, 송청서는 고개
를 끄덕거리고 나서 천천히 대회장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는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여기에 모인 것은 풍류대회를 열자는 목적이 아닙니다.
악기를 두드리고 시를 짓자는 대회가 아니고 무예를 겨루는 대회
인 이상 살상자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조금 전에 하 노영웅께서
사도선생이 평생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본파의 정가
사태에게 훈시를 했고, 그리하여 여러분은 본파에게 불만을 터뜨
렸는데 제가 한 가지 묻겠습니다. 오늘 무예를 겨루기 전에 먼저
상대의 덕행이나 품행을 미리 알아야 합니까? 그리고 나서 착한
사람은 죽이지 않고 나쁜 사람은 아무렇게나 죽여도 된다 그겁니
까?"

군웅들은 모두 말문이 막혔다. 그의 말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
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도룡도를 덕이 높은 사람만이 차지할 권리가 있다면 우리
는 더 이상 무예를 겨루자는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차라리
산동에 있는 공자를 모신 분묘에 가서 도룡도를 그분의 후손에게
바쳐 버립시다. 그러나 지금 무예를 겨루자는 말이 나온 이상 죽
느냐 사느냐 그것뿐이지, 무고한 사람인지 아닌지 그것을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옳소, 창칼에는 눈이 달리지 않았소. 그리고 이미 보복하지 말
자고 하지 않았소?"

유연주와 은이정은 송청서의 말소리를 들을수록 송청서와 똑같
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얼굴에 짧은 수염에다 말끝마다 본
파 본파, 하고 아미파 남제자로 자처하자 두 사람은 의혹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연주가 일어나 그에게 물었다.

"각하의 성함을 알고 싶소."

송청서는 이사숙(二師叔)의 위풍에 눌려 그만 겁을 먹고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유이협께서 이 무명 후배의 이름을 알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
니까?"

유연주는 날카롭게 외쳤다.

"각하께서 말끝마다 무예라고 하는데, 아마 무학에 조예가 깊은
모양이군요. 나의 사부께서 소시적에 귀파의 곽여협의 은혜를 입
은 적이 있어서 무당 제자들은 절대로 아미파 제자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훈시가 있으셨소. 그래서 소생이 다시 한 번 묻겠는
데, 각하께선 진짜 아미파 제자요? 도대체 이름이 뭐요? 사내 대
장부가 감출 필요가 뭐가 있소?"

주지약이 가볍게 불진을 흔들며 말했다.

"유이협, 당신을 속이지는 않겠소. 이 사람은 바로 본좌의 부군
이고 이름은 송청서라 하오. 원래는 무당파 출신이지만 지금은
이미 아미파로 전입했소. 유이협께서 무슨 할 말이 있으면 직접
본좌에게 하시오."

그녀의 음성은 청랑(淸朗)하면서도 얼음과 같이 차가웠다. 거기
다 선녀와 같은 청려한 용모에 대회장의 수천 호걸들은 누구도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하고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송청서가 자기 얼굴에 묻힌 가짜 수염을 떼어 버리자 순간 그는
영준한 청년으로 변했다. 그것을 본 군웅들은 모두 마음 속으로
갈채를 보냈다.

"정말 어울리는 한 쌍이군."

유연주는 송청서가 막칠제 성곡을 죽인 죄행이 생각나자 비분하
여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는 근래에 와서 나이가 들어 수양
도 그만큼 깊어져, 마음속으로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얼굴은 여전
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의 눈초리 만큼은 번개와 같았고 날카
로운 눈으로 송청서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송청서는 마음 속으로 큰 죄를 저지른 것에 가책을 느끼고 있었
으므로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주지약이 말했다.

"송청서께서 무당에서 탈퇴하고 아미에 투신한것을 오늘 천하의
영웅들 앞에서 정식으로 선포하겠습니다. 유이협님, 장진인께서
옛정을 생각하여 무당의 제자가 본파의 적으로 맞서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은 그 어르신네의 의기(義氣)라 할 수 있겠지만, 무당파
의 위명을 보전하기 위한 총명한 처사이기도 합니다."

은이정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뛰쳐나가더니 손으로 주지약
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낭자, 당신이 어렸을 때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을 우리 사부님
이 구해서 아미의 문하로 천거하였소. 우리 사부님은 은혜를 베
푸셔도 보답하는 걸 바라지 않고 계시지만, 오늘 당신이 말한 건
마치 우리 무당파는 낭득허명(浪得虛名)하여 아미파의 여러 여협
들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 같소. 당신은..... 그렇게 해도 우리
사부님께 미안한 감이 들지 않소?"

그러자 주지약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당칠협이 위진강호한 건 제각기 진재실학(眞才實學)이 갖추
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송대협께선 제 시아버님이신데 본
좌가 어찌 여러분들에게 감히 낭득허명(浪得虛名)이라 하겠습니
까? 하지만 무당과 아미 양파는 각기 다른 무예를 전수받았기에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하다는 건 분간하기 어려운 일이죠. 옛날에
장진인은 본파의 곽조사님에게 은혜를 입었고, 나중에 본좌가 장
진인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걸 서로 비겨 버리면 우린 누구
에게도 빚진 게 없습니다. 유이협님, 은육협님, 무당 제자와 아
미파가 서로 싸우면 안 된다는 규칙은 지금부터 없었던 일로 합
시다."

광장 주위에 있는 목붕(木棚)에서 군웅들이 서로 수군거리고 있
었다.

"저 젊은 장문인의 말투는 마치 아미파가 무당파를 꼭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인 것 같군. 유이협의 내공과 외공은 이미 등봉조극
(登峯造極)에 도달해서 당세에 그의 적수가 될 만한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아미파는 그 무서운 암기를 믿고 강호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생각이란 말인가!"

은이정의 감정은 몹시 흥분되어 있었다. 막상 일곱째 아우인 막
성곡의 참사가 떠오르자 그만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
리며 소리쳤다.

"청서.....청서 넌.....넌 뭣 때문에 너의.....너의 칠숙(七叔)
을 살해....."

칠숙(七叔)이란 말을 하더니 그는 갑자기 목을 놓아 울고 말았
다. 그러자 군웅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몹시 이상하게 여겼
다.

'무당육협의 명성으로 어찌 사람들 앞에서 대성통곡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유연주가 다가가서 은이정의 오른팔을 움켜잡고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천하의 영웅 여러분, 불행하게도 송청서란 반역 제자가 생겼습
니다. 본인의 일곱째 아우인 막성곡은 바로 이 반역....."

순간 갑자기 휙휙! 하며 두 번 소리가 나면서 벽력뢰화탄 두 알
이 매우 무섭게 허공을 가르며 유연주의 흉구로 발사해 갔다.

장무기는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덮쳐가서 구출하려 했지만,
그 뢰화탄은 너무나 빠르게 날아갔다. 더구나 그는 사전에 아미
파가 갑자기 도습하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해서 그의 신법이 아무
리 빨라도 이미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이 갑작스러운 공격은 유연주도 몹시 뜻밖이었다. 만약 몸을 기
울여서 피한다면, 그 뢰화탄이 날아와서 많은 개방의 제자들을
다칠 것 같았다. 그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뢰화탄 두 알은 이
미 차례로 발사해 왔다.

그러자 유연주는 쌍장을 돌리며 태극권 중의 일초인 운수(雲手)
를 전개했다. 쌍장으로 발사해온 벽력뢰화탄 두 알의 급경(急勁)
을 모두 와해시켜서 살며시 손바닥에 받쳐올렸다. 이때 그의 쌍
장은 위를 향해서 반듯이 가슴 앞에 받쳐져 있었고, 뢰화탄 두
알은 그의 장심에서 매우 빠르게 회전하였다.

그러자 군웅은 일제히 일어나면서 수천 개의 눈빛을 일제히 그
의 두 손바닥에 집중시켰다. 사람들의 심장은 마치 전부 멈춰지
면서 이 살아 있는 듯한 뢰화탄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걱정
에 휩싸였다.

이 태극권 중의 유경(柔勁)은 천하 무학 중에서 제일 부드러운
무공이다. 유연주는 수년 동안 이 무공을 부지런히 연마하였으므
로 이미 장삼봉의 진전(眞傳)을 깊이 터득하였다. 방금 사도 천
종과 하주가 차례로 이 뢰화탄에 맞아서 죽은 것을 보았기에 이
탄은 물건에 닿으면 즉시 폭발하면서 위력 또한 굉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에 하는 수 없이 평생의
절학으로 막아보자는 모험을 한 것이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 유능극강(柔能克剛)했다. 뢰화탄 두 알은
그의 장심에 있는 유경에 제압되어 마치 한 조각 끈끈한 물건 사
이에 빠진 것처럼단지 급회전만 할 뿐 폭발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휙! 휙! 하며 두 번의 소리가 들리더니 아미파에서 다시
두 알의 뢰화탄을 그에게 발사했다.

은이정은 사형의 곁에 서 있다가 얼른 쌍장을 휘둘러서 뢰화탄
을 받으려 했다. 막상 손과 뢰화탄이 맞닿으려는 순간 태극권 중
의 람작미식(欖雀尾式)을 전개하면서 뢰화탄을 살며시 휘어잡았
다. 발은 금계(金鷄)가 땅에 서 있는 것처럼 왼발은 땅에 딛고
오른발은 들어올렸다. 그리고 전신을 마치 팽이처럼 급회전시켰
다.

유연주는 장심으로 경력을 분산했고 은이정은 공중에서 경력을
분산시켰다. 물론 무공에선 은이정이 뒤졌으나 보기엔 그가 급회
전하는 심법이 훨씬 더 멋지게 보였다. 그가 삼십 여 바퀴를 돌
았을 때 사면팔방에서 우뢰같은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뢰화탄의
경력도 몹시 약해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휙휙!.....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뢰화탄 여
덟 알이 그들에게 날아갔다. 그러자 유연주와 은이정은 일제히
소리를 외치며 각자 수중에 있던 뢰화탄을 밖으로 던졌다.

무당의 제자들은 접기타기(接器打器)란 절기를 지니고 있어서
적의 암기를 받아낸 후 다시 되돌려 발사할 땐 하나로 둘을 맞출
수 있고 또 둘로 셋을 칠 수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이 던진 뢰화
탄 네 알이 서로 부딪치면서 상대편의 여덟 알의 뢰화탄을 한꺼
번에 적중시켰다. 그러자 광장에서 펑펑!..... 하는 요란한 소리
와 함께 검은 연기가 자욱하더니 초황화약(硝黃火藥) 냄새가 코
를 진동했다.

유, 은 두 사람은 뢰화탄을 던지고 나서 재빨리 몸을 솟구치더
니 십여 장 뒤로 물러났다. 행여나 아미파에서 다시 공격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자 화산파의 목붕에서 체격이 우람한 자가 일어서면서 낭랑
한 소리로 말했다.

"아미파는 남과 무공을 겨룰 때 항상 이처럼 의다위승(倚多爲
勝)합니까?"

이 자는 바로 화산이로의 하나인 고노자(高老者)였다. 왕년에
광명정에서 하태충 부부와 연수하여 장무기하고 싸웠던 사람이
다.

아미파의 정가가 말했다.

"무공지도(武功之道)는 천태만상하기에 강한 자는 승리하게 되
고 약한 자는 패배하게 됩니다. 우리는 책을 읽는 선비도 아닌
데, 매사에 규칙과 도리를 따진다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도리
와 규칙이 있겠습니까?"

장무기는 마음이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그래서 목붕에
서 나오더니 아미파의 앞으로 다가가서 주지약에게 말했다.

"지약, 여러 가지로 당신에게 미안하오, 송사형이 막칠숙님을
해친 일은 아무래도 끝을 맺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엔 차라리 송
사형이 유이숙과 은육숙을 따라 무당으로 돌아가서 송대백님에게
사죄하는 게 옳은 것 같소."

그러자 주지약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교주, 예전에 난 당신이 호한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비겁
한 소인이구료. 대장부는 자신이 한 일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오.
당신이 막칠협을 해쳤으면서 뭣 때문에 죄를 송청서에게 덮어씌
우려 합니까?"

장무기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당신..... 당신은 내가 막칠숙님을 해쳤다고 했소? 다.....당
치도 않소."

"무당 막칠협을 해친 일은 모두 조정의 여양군주가 중간에서 농
간을 부린 것이오. 당신은 왜 그녀를 불러내서 천하의 영웅들하
고 대질하지 않는 것이오?"

장무기는 내심 생각을 굴렸다.

'민매는 육대문파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 장안에 그녀의 원
수가 어쩌면 우리 의부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어찌
그녀를 나타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아, 그날 혼례 중에 내가
그녀를 버리고 떠난 것이 그렇게 잘못한 일인 줄은 정말 생각지
못했다.'

장무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돌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아미파
중에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게 들렸다.

"명교의 장교주가 이렇게 비겁하고 나약한 소인인 줄은 정말 몰
랐다. 우리의 벽력뢰화탄의 무서움을 보더니 꽁무니를 빼려 하는
구나."

장무기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았다.

'나도 구태여 이 말을 누가 했는지 돌아볼 것 없다. 아미파에서
어떠한 모욕을 하더라도 난 달게 받아야 하다.'

그러자 등 뒤에서 비웃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장무기
는 더이상 신경쓰지 않고 명교의 목붕으로 돌아갔다.

양소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벽력뢰화탄은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데 뭐 그리 대단하다는 것
이냐? 무당이협을 어찌하지 못했으면 자연히 장교주님도 어찌하
지 못하는 것이다. 너희 아미파에게 우리 명교의 기계(器戒)를
한 번 구경시켜 주겠다!"

이윽고 왼손을 흔들자 한 백의 동자가 두 손으로 작은 목가(木
架) 한 개를 바쳤다. 목가 위에는 오색 깃발이 십여 개가 꽂혀
있었다. 양소는 백기 하나를 뽑아서 밖으로 던지자, 광장 한가운
데로 날아가더니 땅에 꽂혔다.

바로 이때, 양소의 뒤에 있는 한 사람이 화전(火箭) 한 자루를
얼른 공중으로 던졌다. 그러자 공중에서 한 줄기 흰 연기가 발산
되었다. 순간 발걸음소리가 들리면서 머리에 흰 띠를 두른 명교
의 교도들이 급히 광장 안으로 달려왔다. 모두 오백명이고 사람
마다 활에 화살을 장진했다.

휙휙.....! 하며 소리가 나더니 오백자루의 화살은 질서정연하
게 백기의 주위에 꽂히면서 원을 하나 형성했다. 바로 오경초가
통솔하는 예금기의 사람들이었다.

군웅들이 미처 갈채를 보내기도 전에 예금기 교도들은 등에 있
는 표창을 뽑아서 앞으로 열 걸음쯤 달려가더니 일제히 표창을
던졌다. 그러자 오백자루의 표창은 일제히 화살의 원안으로 꽂혔
다. 그들은 바로 또 열 몇 걸음을 달려가더니 허리춤에 있는 짧
은 도끼를 뽑아 들었다. 순간 군웅들의 눈앞에 빛이 번뜩거리면
서 오백자루의 짧은 도끼는 일제히 땅에 찍히며 한 개의 원을 형
성했다. 도끼, 표창, 화살 세 가지 병기는 세 개의 원을 형성하
였고 전혀 뒤섞이지 않았다. 제아무리 무공이 하늘에 달한다 해
도 이 천 오백 개의 길고 짧은 병기가 협공하게 되면 순식간에
뼈도 못 추릴 것이다.

양소가 흰 깃발을 들어올리며 뒤로 몇 번 흔들었다. 그러자 예
금기의 오백명 교도는 화살과 표창, 도끼를 뽑아들고 명교의 목
붕 앞으로 달려와서 장무기에게 인사를 하고는 즉시 광장 밖으로
달려갔다.

양소가 파란 깃발을 던지니 흰 깃발 옆에 꽂혔다. 그러자 광장
옆에는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들리면서 오백명 거목기 교도들이
머리에 파란 띠를 두르고 열 사람마다 거대한 나무토막을 하나씩
들고 재빨리 달려왔다. 나무 토막의 무게는 하나가 천 근 이상은
되었고 나무에는 철구(鐵鉤)가 장치되어 있어서 각자 철구 한 짝
을 움켜잡고 매우 질서있는 걸음으로 달려왔다. 갑자기 고함을
지르더니 오십 개의 거목들은 동시에 손에서 벗어났다. 높은 것
도 있었고 낮은 것도 있고 왼쪽으로 던진 것도 있었고 오른쪽으
로 던진 것도 있었다. 그러나 거목이 날아간 것마다 상대편의 거
목 한 개씩에 정확하게 맞부딪쳤다.

순간 펑펑.....! 하는 거대한 소리가 끊임없이 나더니 오십 개
의 거목은 스물 두쌍으로 나눠져서 서로 맞부딪쳤다. 거목기의
이러한 진법은 공성전법(攻城戰法)에서 연화(演化)한 것이다. 성
을 공격하는 자가 거목을 들고 성문을 부딪쳐서 세게 치게 되면
아무리 견고한 성문이라도 거목에 의해서 부서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살붙이로 된 몸이 이 많은 거목의 충격을 받으면 어찌 살
아 남을 수가 있겠는가!

양소는 파란 깃발을 흔들어서 거목기에게 물러나라는 명령을 하
달하면서 오른손을 휘두르더니 빨간색 작은 깃발 하나를 광장 안
으로 던졌다.

그러자 파란 띠를 두른 명교의 교도들은 일제히 물러나더니 머
리에 빨간 띠를 두른 열화기 오백명 교도들이 재빨리 장안으로
들어갔다. 각자의 손에 있는 분통(噴筒)을 한 차례 분사(噴射)하
자 광장의 중심에는 온통 새까만 주유(綢油)가 살포되었다. 열화
기 장기사가 손을 휘둘러서 유황화탄을 한개 던지자 즉시 불꽃이
일면서 활활 타올랐다.

명교총단이 있는 광명정 부근에는 석유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바위 사이에서 밤낮으로 기름이 뿜어 나왔다. 열화기 사람들은
등에 쇠상자를 짊어지고 있었으며 상자 안에는 석유가 가득 담겨
있었다. 기름을 뿜어 내서 연소를 시키니 사람의 힘으론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것이다.

열화기가 물러가고 나서 양소가 검은 깃발을 다시 던지자 머리
에 검을 띠를 두른 홍수기 휘하에 있는 오백명 교도들이 급히 광
장으로 들어갔다. 이 홍수기가 지닌 물건들은 모두 이십부(部)의
수룡(水龍)과 분통, 제통(提桶) 같은 물건도 있었다. 앞에 있는
열 사람은 목차(木車) 열대를 끌고 있었다. 장기사 당양이 명령
을 내리자 목차를 열고 이십마리의 굶주린 늑대를 꺼내었다. 늑
대들은 온갖 사나운 짓을 하며 광장에서 포효하더니 사방으로 흩
어져서 사람을 물으려 했다.

군웅들은 몹시 의아했다. 도대체 이 사나운 늑대들과 홍수라는
두 글자가 무슨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그러자 당양이 외치는 소
리가 들렸다.

"물을 뿌려라!"

순간 도질분통(陶質噴筒)을 들고 있던 백명의 교도가 백줄기의
수전(水箭)이 사나운 늑대의 몸으로 일제히 발사했다. 그러자 군
웅들은 한 차례 신 냄새를 맡게 되었다. 이십마리 사나운 늑대는
수전을 맞고 즉시 쓰러지면서 울부짖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가죽
이 파열되며 살이 썩으면서 한 덩어리의 숯탄처럼 변해 버렸다.

홍수기가 발사한 수전은 몹시 독한 부식 약수였다. 이 약수는
유황과 초석(硝石) 등 약물에서 뽑아내어 만든 것이다.

군웅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게 되자 모두 기절초풍했다.

'저 약수를 만약에 늑대들에게 발사하지 않고 내 몸으로 발사했
다면, 지금쯤 아마.....'

양소는 검은 깃발을 흔들어서 병사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다
시 노랑색 작은 깃발을 하나 던졌다. 그러자 머리에 노랑색 띠를
두른 명교교도들 한 패가 광장안으로 걸어왔다. 각자는 손에 쇠
삽을 들고 있었고 모래와 석회를 한 수레씩 밀고 있었다.

사람 수는 금, 목, 수, 화 사기보다 훨씬 작은 백 명뿐이었다.
이 백명은 큰 원을 하나 형성하면서 동시에 삽을 들고 땅으로 힘
껏 후려쳤다. 그러자 갑자기 꽁! 하며 거대한 소리가 나면서 광
장중심이 밑으로 푹 꺼지면서 직경 삼, 사장이나 되는 큰 구멍이
하나 생겼다. 곧이어 큰 구멍의 주위에 있는 흙이 들썩거리더니
머리에 철모를 쓰고 손엔 쇠삽을 들고 있는 장정들이 하나하나
뛰쳐나왔다. 사백명 장정이 갑자기 지하에서 불쑥 나오자 군웅들
은 모두 깜짝 놀라며 일제히 소리를 외쳤다.

이 사백명 교도들은 벌써 먼 곳으로부터 땅굴을 파서 광장중심
으로 와 있었다. 그들은 큰 굴을 파서 판자와 나무로 지탱하며
그 안에 숨어 있었다. 후토기 장기사 안원이 호령을 하자 사백
명 교도들이 동시에 나뭇 가지를 끌어내는 바람에 지면 전체가
밑으로 꺼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지하에 있던 교도들이 바로 흙
을 헤치며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자 늑대 시체, 석유, 초토 등이 일제히 지하로 떨어졌다.
백명 교도는 쇠삽을 휘둘러서 큰 구멍의 위를 세 번 후려쳤다.
만약 사람이 구멍 안으로 바진 후 다시 밖으로 뛰쳐 나오려 하면
이 백자루의 쇠삽을 맞고 다시 빠져 버릴 것이다.

그들은 수레에 실었던 석회, 모래, 자갈을 구멍으로 쏟았다. 순
식간에 큰 구멍과 수백 개 작은 구멍을 전부 메꾸어 버렸다. 오
백 자루의 쇠삽이 여기저기서 재빨리 움직이는 모양은 실로 장관
이었다. 장기사가 명령을 하달하자 오백명 교도들은 일제히 장무
기에게 인사를 했다.

양소는 병사들을 거두어 들이고 나서 작은 깃발이 꽂혀 있는 목
가를 뒤에 있는 동자에게 넘겨 주더니 냉랭하게 주지약을 바라보
면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무언의 뜻은 몹시 명
백했다.

"너희 아미파에 있는 백여 명쯤 되는 남녀 제자가 어찌 수천이
나 되는 우리 명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느냐?"

광장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공지의 뒤에 있던 노
승 한 명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방금 명교에서 보였던 진법(陣法)이 도대체 쓸모가 있는지는
우리가 원수장군이 아니고 또 배운 게 손오병법(孫吳兵法)이 아
니기 때문에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주전이 소리쳤다.

"쓸모가 있고 없고를 알아보는 건 매우 간단한 일이오, 소림사
에서 승려들을 파견하여 실험해 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오."

그 노승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오늘 개최한 것은 천하의 영웅대회라서 각문 각파의 깊
은 무학의 수위(修爲)를 관람하는 겁니다. 그러니 사전에 몇 분
시주님의 말대로 각자 무공을 겨뤄서 무예가 제일 높은 자가 승
리하는 겁니다. 우리가 강조한 것은 단타독투(單打獨鬪)입니다.
의다위승(倚多爲勝)이란 규칙이 있다는 말은 무림에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구양목지가 말했다.

"무림에는 의다위승(倚多爲勝)이란 규칙이 확실히 없습니다. 그
렇다면 벽력뢰화탄, 독화, 독수 같은 물건은 사용해도 괜찮습니
까?"

그 노승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출장하여 무예를 겨루는 사람은 암기를 사용해도 상관없습니
다. 어떤 친구들은 암기에다 독약, 독물을 첨부하는 사람도 있는
데, 그것도 금지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다른 사람에게
도습을 가하면 그건 대회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라 여러분들은 필
히 한꺼번에 일어나서 그 자를 공격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의
사는 어떻습니까?"

그러자 군웅 중 반수 이상은 좋다고 외치면서 모두가 당연히 그
래야 한다고 말을 했다.

공동파의 당문량이 말했다.

"어떤 사람이든 연거푸 두 번 승리하면 필히 퇴장하여 휴식을
취해서 내력 원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만약에 계속 싸우게 되면
아무리 통천의 재주가 있다 해도 단숨에 처음부터 끝까지 이길
수 없을 것이오. 그리고 각문, 각파, 각방, 각회에서 만약에 이
미 두 사람이 패했으면 다시 사람을 파견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기에 있는 수천 명 영웅이 전부 한 번씩 출전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 삼개월이 지나도 끝이 나지 않을 것이
오. 소림사에 양식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모자랄 것이오. 그러
면 소림사는 백 년이 지나도 원기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오."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호응
했다. 그러자 팽영옥이 웃으며 말했다.

"당노삼(唐老三)의 말투는 오늘 공동파가 우리를 꼭 돕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주님 말고 또 어느 분이 출전하겠습니까?"

그러자 주전이 말했다.

"교주님, 주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공이 뛰
어나지 못해서 나가봐야 창피만 당할 겁니다."

장무기는 한 사람 한 사람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양좌사, 범우사, 위복왕, 포대대사, 철관도장 여러분은 각기
절예(絶藝)를 지니고 있어서 모두 출전할 수 있다. 그 중에서 범
우사의 무학이 제일 박대해서 상대의 어떤 가수(家授)든 그는 모
두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범우사를 출전시키는 게 옳은
것 같다.'

"여러 형제분들은 어느 누가 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양
좌사는 절 따라서 금강복마권을 공격하였고, 위복왕과 포대대사
는 하주를 생포하였기에 모두 힘을 허비했습니다. 이번에 본좌는
범우사를 출전시키겠습니다."

범요는 몹시 기뻤다. 이윽고 몸을 굽히며 말했다.

"명령을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명교의 군웅은 범요의 무공이 뛰어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모
두 동의했다. 그러자 조민이 말했다.

"범대사님, 제가 한 가지만 당신에게 부탁하겠는데 들어 주시겠
습니까?"

"군주님의 명인데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소림의 공지대사와 당신의 감정은 아직 풀지 못했습니다. 만약
에 당신이 먼저 그 사람하고 싸우게 되면 승패는 실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설령 그를 이긴다 해도 당신은 지칠대로 지치게 될 겁
니다."

그러자 범요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공지
신승은 이름을 떨친 지 수십 년이 되었다. 비록 보기에는 항상
이마를 찌푸리고 얼굴은 울상이라 단명요절할 상(相)이지만 사실
은 내공과 외공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는 것을 범요도 잘 알고 있
었다.

조민이 말했다.

"당신은 될 수 있으면 그와 약속을 미리 하세요. 훗날 다시 대
도의 만안사에 가서 단둘이 승부를 가리기로 말입니다."

그러자 양소와 범요는 일제히 말했다.

"묘책입니다. 묘책입니다."

이때 각처에 있는 목붕에선 각 문파 방회의 군웅들이 서로 수군
거리며 자기 파에서 출전할 사람을 선택하고 있었다. 몇 군데에
서는 큰 소리로 언쟁을 벌이며 의견 일치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았
다.

범요는 주붕(主棚)으로 다가가서 공지에게 포권의 예로 인사하
며 말했다.

"공지대사, 당신은 만안사에 다시 한 번 갈 담력이 있습니까?"

공지는 <만안사>란 말을 듣자 얼굴에 있는 주름살이 더욱 깊어
지면서 몹시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뭣 때문이오?"

"우리 두 사람은 만안사에서 원한을 맺었으니 당연히 만안사에
서 해결해야 할 게 아닙니까? 만약에 대사께서 특별한 일이 없으
시다면 금년 팔월 중추절에 소인이 만안사에서 대사의 절예를 몇
수 가르침 받을까 합니다."

공지도 범요의 무공을 몹시 꺼렸다. 더구나 사(寺) 중에 마침
큰 변고가 있기 때문에 실로 범요와 싸울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자 즉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좋소. 금년 팔월 중추절에 만안사에서 만납시다."

범요는 포권의 예로 인사하고 나서 즉시 물러갔다. 그가 칠, 팔
보(步)쯤 걸어가자 공지가 천천히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범시주, 오늘 당신은 금모사왕을 구출하려는 일념으로 나와 싸
우는 것을 꺼리는 것이죠?"

범요는 멈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속으론 이 화상이 결국은 자
기 마음을 간파했음을 알았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서 껄껄 웃으
며 말했다.

"난 당신을 이길 자신이 없소이다."

공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납(老衲)도 시주를 이길 자신이 없소이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갑자기 그들의 마음에
는 모두 영웅중영웅(英雄中英雄) 호한석호한(好漢惜好漢)의 감정
이 생겨났다.


----- 제 7 권 1 장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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