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庸 - 连城诀 5

3학년2반 | 2022.03.08 07:18:38 댓글: 0 조회: 557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3724

9. 허공에 쌓는 벽돌담

만문의 제자들은 한바탕 소란을 피웠으나 아무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만진산은 척방에게 검보를 얻었다가 분실했다는 사실을
사제와 사형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분부했다. 척방은 흔쾌히 대답
했다.
이 몇년동안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만문의 사부와 제자, 그리
고 제자들간에 이해타산으로 인해 서로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만진산은 놀람과 분노가 교차하여서 자기 방으로
돌아와 온갖 기억을 되살려 호랑나비가 도대체 어떤 사람의 표식
인가를 생각해 내려고 했다. 원=수는 누구일까? 어째서 검보를 가
져왔다가 다시 빼앗아 갔을까? 언달평을 구해준 그자일까? 아니
면 언달평 자신일까?
만규는 적을 ㅉ아 한바탕 뛰었으므로 피가 더욱 빨리 운행되어
손등의 상처가 맹렬히 아파오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척방은 생각했다.
'이 책은 아버님께 매우 필요한 것이다. 핏속에 오래 담가두면
틀림없이 망가질 것이다.'
그녀는 방안에 들아와 몇번이고 남편을 불러 보았다. 그러나
정신없이 자고 있는 것을 보자 밖으로 나와 놋쇠대야= 들어 아
래층의 샘물에 가서 피를 쏟아내자 그 책이 낱났다.
'공심채가 참 잘해주었구나.'
그녀의 얼굴에는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책은 핏물에 담
겨져 있었서 비린대가 물씬 풍겼으므로 척방은 손으로 끄집어 내
고 싶지 않았다.
'이것을 어디에 숨기면 좋을까 ?'
후원의 서쪽 창고에 옛날부터 곡괭이, 절구통, 부채등의 쌓아
두는 곳이 나타났다. 그녀는 서쪽 창고에 들어가서 책을 곡식을
타작할때 쓰이는 풍채속에 집어 넣었다.
'이 풍채는 가을에 곡식을 거둘때 쓰는 물건이니 누구도 찾지
않을 것이=.'
그녀는 대야를 들고 입속으로 노래가락을 흥얼거리면서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복도를 걸어오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구
석에서 누군가 나타나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오늘 저녁 삼경, 나는 그 창고에서 당신을 기다릴테니 당신은
절대로 잊지 마시요."
바로 오감이었다. 척방은 그렇지 않다고 조심하고 있다가 이사
람이 갑자기 뛰어들며 말을 하자 깜작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화
가나서 말했다.
" 곱게 죽지 못할 놈같으니라고! 개자식! 목숨이 아깝지 않느
냐 ?"
오감은 능글거리며 웃었다.
"나는 그대=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거야.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다고 형수씨, 당신은 해독약이 필요하지 않나 ?"
척방은 입술을 깨물며 좌측손을 품속에 넣고 꼭 쥐었다. 그의
빈틈을 노려 비수를 꺼내 찌른후 그 해독약을 가질 셈이었다. 오
감은 킥킥 웃더니 말을 했다.
"그대가 만약 산종인면기(山從人面起)의 일초식을 서서 칼로
나를 찌른다면 나는 운방마두생(雲傍馬頭生)의 초식을 서서 피할
것이고 그리고 난 다음 손을 싹 이렇게 음직이면 해독약은 이 물
통속으로 빠지게 되지."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는데 손바닥=에는 그 해독약 병이 들려 있
었다. 척방은 강제로 빼앗을수 없음을 알고는 몸을 옆으로 돌려
그의 곁을 지나쳤다. 오감은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삼경까지만 기다릴 것입니다. 그대가 삼경까지 오지 않
으면 나는 사경쯤에는 이 약을 가지고 멀리 멀리 사라질거야. 절
대로 형주에는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니 만가의 손에 죽을 까닭도
없게 되지."

척방이 방에 들어오니 만규는 다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틀림없이 전갈의 독이 또 발작을 일으킨 것 같았다. 그녀는 침대
옆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자=는 악랄하고 비국한 수단을 서서 적사형을 모함했다. 그
러나 이미 운명은 그렇게 결정되었는데 이제 와서 어떡하겠다는
건가? 사형의 팔자와 나의 팔자는 이렇듯 기구하구나! 나는 요
몇년동안 남편에게 대접을 받았고 이 집에 시집을 왔으니 한평생
부부가 되어 살수밖에 더 있겠어? 오감 그 개같은 작자는 정말
악랄하기 그지 없구나. 어떻게 해야 그로부터 해독약을 빼앗을수
있을까 ?'
만규의 초췌한 얼굴과 움푹 들어간 눈두덩을 바라보며 다시 생
각했다.
'남편의 상처가 중한 이때 그 말을 들려준다면 틀림없이 = 오감
과 싸우려 들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만 커지는거야.'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척방은 아무렇게나 저녁밥을 먹고난 다
음 딸아이의 잠자리를 봐주고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겼다. 이 일
을 시아버지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았다. 시아버지는 나이가 먹고
생각이 깊은 분이니 틀림없이 좋은 대응책이 있을 것 같았다. 이
일을 남편이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가 깊이 잠들은 다음
시아버지에게 말해야겠다고 작정했다.
척방은 옷을 입은채로 만규의 발아래 누웠다. 며칠동안 남편의
병시중을 드느라 그녀는 옷을 벗지 못=했고 하룻밤도 편안히 잘
수가 없었다. 만규는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아랫층으로 내려가서 만진산이 묵고 있는 방 앞에 이르렀
다. 방안의 등불은 모두 꺼져 있었는데 방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휙! 휙! 휙!'
마치 어떤 사람이 큰 힘을 써서 무슨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심
히 이상했다. 척방은 아버님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부
르지 않고 창문 틈으로 안을 살폈다. 그때 달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가 방안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만진산은 천장을 보고 침대
에 드러누운= 모습이었다. 그의 두손은 계속 음직이고 있었으며
두둔은 꼭 감겨져 있었다. 척방은 생각했다.
'알고보니 시아버님은 새로운 무공을 연마하고 계시는구나. 내
공을 연마할때는 제일 금기로 삼는 것은 옆에서 방해하는 것이니
이럴 때 시아버님을 부를 수는 없다. 시아버님이 무공연마를 끝
낸후 그때가서 다시 말씀 들리다.'
만진산은 두 손을 허공에 대고 마우 허우적거리다가 천천히 몸
을 일으켜 세우고 발을 뻗어 침대에서 내려왔다. 앞으로 몇 발자
국 걸어가더니 몸을 구부리며 허공에다 손을 내밀었다. 마치 어
떤 =같퓽 잡고 있는 자세였다. 척방은 내심 생각했다.
'시아버님께서는 지금 남을 사로 잡는 방법을 연구하고 계시는
구나. '
만진산의 손은 갈수록 이상한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허공에
많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는 듯한 동작을 반복하기 시작했는데 달
빛 아래였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분명히 볼 수가 있었다. 그
는 허공에서 무엇인가를 움켜잡는 시늉을 하더니 두 손으로 크기
를 재보기도 하고 두손으로 땅바닥에서 물건을 집는 시늉도 하면
서 앞으로 나갔다가 뒤로 물러서곤 했다. 척방은 귀신에 홀린듯
이 그를 뚫어=≤ 쳐다보았다. 만진산은 여전히 두눈을 꼭 감고
있었다. 일거일동은 내공을 연마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벙어리가
홀로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척방은 도홍이 사당에
서 '어르신께서는 한밤중에 일어나셔서 벽돌을 쌓고 계십니다.'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만진산의 거동은 절대로 담을 쌓는
것이 아니었다. 담쌓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담구멍을 막는 것
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척방은 매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맞다. 시아버지는 몽유병환자이다. 이 몽유병을 앓는 자는 꿈
속에서 일어나 걸어=“ 일을 한다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옷을
입지 않고 걸어다니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사람을 죽이고 방화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정신이 들면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
다고 하던데...'
만진산은 무거운 물건을 들어 벽의 구멍난 곳을 막는듯한 행동
을 하고는 이어 허공을 힘주어 몇번인가를 밀었다. 그리고 나서
벽돌을 땅바닥에서 집어 차곡차곡 벽을 쌓는 것 같았다. 그렇다.
그는 정말로 담을 쌓고 있었다. 득의양양하게 웃으면서 벽돌로
담을 쌓고 있었다. 척방은 그의 이와 같은 행동을 보자 모골이
송연했=으나 그가 계속하여 벽돌을 쌓는 음직임을 반복하자 점차
무서운 생각이 가셨다.
'도홍의 말대로라면 시아버님의 몽유병은 꽤나 오랜된 것 같구
나. 병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 도홍은
그와 같은 방을 썼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을 알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아버님은 크게 기분이 나빴던 것이겠지.'
이렇게 되자 마음속의 의문이 하나 풀린 것 같았고 도홍이 어
째서 ㅉ겨 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또 생각했다.
'그는 언젠가 돼야 이렇게 담을 쌓는 일을 멈출까? 만약 삼경
이 지나면 =육㉯繭遮 놈이 약을 못쓰게 만들고 도망쳐 버릴텐데
그렇게 되면 큰일이구나.'
만진산은 허물어낸 담을 막은 다음 석회를 그위에다 바르는 시
늉을 했다. 그제서야 비로서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침대에 올라
가서 잠을 청했다. 척방은 생각했다.
'시아버님이 이렇게 한바탕 일을 하셨으니 피곤하실 것이다.
좀 쉬시도록 내버려 둔후 들어가도록하자.'
바로 이때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낮은 목
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아버님, 아버님."
바로 그녀의 남편인 만규였다.
'어째서 남편이 이곳으로 =纛뺑? 그는 이곳에 무엇하러 왔을
까 ?'
만진산은 즉시 일어나며 말했다.
"만규냐 ?"
만규는 말했다.
"예, 접니다."
만진산은 몸을 날려 침대에서 내려와 문의 빗장을 제치며 만규
가 들어오도록 했다. 만진산은 말했다.
"검보를 얻었다는 소식이냐 ?"
만규는 아버지하고 외치더니 손을 내밀어 의자를 꼭 잡았다.
달빛은 창문을 통해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몽롱한 달빛속에서
그는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 척방은 자기의 그림자가 창문으로
비칠까봐 염려되어 창아래 몸을 숙이고는 두사람의 말을 엿들으
려= 했다.
"아버지."
만규가 말했다.
"당신의 며느리... 며느리는... 알고보니 좋은 사람이 아니었
읍니다."
척방은 깜작 놀라 생각했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거지?'
만진산의 음성이 들려왔다.
"왜 그런것이냐? 부부간에 말다툼이라도 했다는 말이냐 ?"
만규는 말했다.
"검보는 찾았읍니다. 그것은 당신의 며느리가 가져간 것입니
다."
만진산은 기쁜 어조로 말했다.
"찾았다면 어디에 있느냐 ?"
척방은 놀라는 한편 의아하기 이를데 없었다.
'어떻게 그는 내가 가져간 것을 알았을까? 음, 아마 공=ㄱ
참지 못하고 말을 한 모양이구나.'
그러나 만규의 계속되는 말소리를 듣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만
규는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딸고 아내가 서로 눈짓을 하고 표정이
이상하여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거짓으로 잠을 자
는 척하고 문틈으로 아내의 동정을 살펴 보았더니 과연 그녀는
놋쇠대야를 들고 후원으로 갔으며 그가 살며시 뒤ㅉ아가보니 그
녀는 검보를 후원 서쪽 창고에 있는 바람을 일으키는 풍채속에
숨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척방은 탄식했다.
'아버지의 팔자도 기구하시구나! 이 책은 결국= 시아버지와 남
편의 손에 들어갔으니 다시 찾는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다. 내가졌다. 남편은 원래 무서운 사람이었지.'
만진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참 잘 되었다.우리 함께 가서 가져오도록 하자. 너는 아
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거라. 그녀가 어떻게 나오는지 가만히
보기로 하자. 그녀가 이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너도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책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
까? 어쩌면... 어쩌면..."
그는 계속해서 어쩌면 이라고 내뱉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
다. 만규는 외=틈.
"아버지!"
몹시 고통스러운 목소리였다. 만진산이 외쳤다.
"왜 그러느냐 ?"
만규는 말했다.
"당신의 며느리가... 우리의 검보를 홈친 것은 알고보니..."
여기까지 말한 만규의 목소리를 떨리고 있었다. 만진산은 말했
다.
"누구를 위해서 그랬다냐 ?"
만규는 말했다.
"알고보니... 알고보니 오감이라는 그 개자식때문이었읍니다."
척방은 망치로 뒷골를 얻어맞은듯 머리속이 띵해지고 자기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서 한 것이다. 어째서 오감이라는 자 때문
에 그런 일을 했다는 말인가= ?'
만진산은 놀라 급히 되 물었다.
"오감을 위해서라고 ?"
만규는 말했다.
"네, 그렇읍니다. 내가 후원에서 그 못된 년이 검보를 숨기는
것을 보고는 바로 그녀를 뒤ㅉ았지요. 그런데... 그녀가... 그녀
가 복도에 오더니 오감 그녀석과 소곤소곤대고 있었읍니다. 이
화냥년 같으니라고....."
만진산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보건데 그녀는 평소 단정하고 예의가 바른 여자가 아니
었느냐? 너는 혹시 무엇인가 잘못보지 않았느냐? 그 두사람은 무
슨 말을 하고 있더냐 ?"
만규는 말했다.
"저는 귿르=이 내가 있다는 것을 알까봐 가까이 다가갈수가 없
었읍니다. 복도에는 숨을 곳도 마땅하지 않고 해서 별수없이 담
귀퉁이에 숨어 있었읍니다. 이 못된 년놈들의 말소리가 너무나
작아 완전히 들을수 없었읍니다만, 그러나... 그러나 거의 다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진산은 음하고 침음성을 흘리더니 말했다.
"얘야, 그렇게 화를 내지 말아라. 사내대장부가 마누라가 없다
고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우리는 이미 검보를 얻었고 또 그
검보의 비밀을 알아냈으니 우리는 이제 천하에서 제일 가는 부자
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너는 계집애를 백명정도 사서 첩
으로 삼아라. 그것은 아주 쉬운일이다. 앉아서 천천히 말하거
라."
"그 화냥년은 책을 숨긴다음 매우 의기양양해서 입속으로는 노
래까지 부르고 있었지요. 그 놈은 그 화냥년을 보자 온통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짓고는 말했어요. '오늘밤 삼경에 내가 창고에서 기
다리고 있으니 절대로 잊지 마시요.' 정말 그말을 나는 두귀로
똑똑히 들었읍니다."
만진산은 화가 나서 말했다.
"그 화냥년은 또 무엇이라고 하더냐 ?"
만규는 말했다.
"그녀... 그녀가 말하기를 '죽어=도 곱게 죽지 못할 놈, 개자식
이 정말 간이 크구나.'"
척방은 창밖에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가... 이 두사람은 말끝마다 나를 화냥년이라고 욕을하고
있구나.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누명을 씌울 수 있을가? 나는
남편을 위해서 그 해독약을 빼앗아 치료를 하려고 했는데 당신은
나를 욕하다니 당신은 정말 양심이 없군요.'
만규는 계속해서 말했다.
"난... 나는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화가 잔뜩 나
서 당장에 검을 뽑아들어 두년놈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때 저에게
는 검이 없었고 =몸에 독이 침투해 있어서 싸울수 없었읍니다.
또, 그 화냥년이 방으로 들어와 내가 없는 것을 보면 의심을 할
까 염려되어 난 즉시 방으로 돌아갔읍니다. 그 화냥년놈들이 그
후로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 못했읍니다."
만진산은 말했다.
"흥! 그 애비에 그 딸이구만! 정말 쌍것들의 집안이다. 우리들
이 먼저 검보를 가져온 다음 다시 그 창고에서 문을 지키고 있다
가 두 년놈들이 하고 있는 현장을 덮쳐 그 즉시 목을 베어버리
자. 그 년놈들은 죽어도 아무런 원망을 하지 못하겠지."
만규는 말했다.
"그 화냥년은 = 사이를 못참아 삼경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나
갔읍니다. 지금은... 지금은... 아마."
말을 하면서 입술을 꽉 깨물자 우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만진
산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즉시 가보도록 하자. 너는 검을 쥐고
절대로 먼저 손을 쓰지 말거라. 내가 이 년놈들의 손과 발을 자
른후에 네가 두손으로 친히 그 못된 년놈들의 숨통을 끊어 놓아
라."
방문이 열렸다. 이어 만진산이 좌측손으로 만규의 겨드랑이를
부축하며 뒤뜰로 가는 것이 보였다.
척방은 벽에 기대어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남편의= 상
처가 치유되기를 바라고 있었을 뿐인데 이렇듯 의심을 받고 있었
던 것이다. 아버지는 소식이 없었고 적사형은 억울한 누명을 받
고 지금은... 지금은 남편에게 냉대를 받고 있으니 이런 나날을
어떻게 지내야 하겠는가? 그녀는 막막하기만 해서 살고 싶은 생
각이 없어졌다. 남편에게 가서 따질 엄두도 나지 않았고 오감을
데리고 와서 대질시킬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단지 벽을 기대고 서
서 학질 걸린 사람처럼 온몸을 덜덜 떨며 서 있을 뿐이었다.
조금 있자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만씨부자는 대청으로 돌아
와 낮=은 목소리로 상의를 했다.
"아버지, 어째서 그 창고에 가서 오감을 죽이지 않습니까? "
만진산은 말했다.
"그 창고에는 간부한사람 뿐이었다. 그 화냥년은 틀림없이 낌
새를 알아 차리고 사라진 것 같았다. 우리는 형주성에서 알아주
는 집안인데 두 년놈들을 함께 잡을 수 없을 바에야 어찌 경거망
동하여 사람을 죽일수 있겠느냐? 이 검보를 얻은 다음 우리는 이
형주에서 많은 일을 해야만 한다. 작은일 때문에 큰일을 망칠수
는 없다."
만규는 말했다.
"설마 이렇게 일을 끝내려는것은 아니겠지요? 저의 이런 분한 =
마음을 어떻게 가라 앉힐수 있겠읍니까 ?"
만진산은 말했다.
"분풀이를 하기란 쉬운일이 아니야. 우리는 옛날 그 방법을 쓰
자. "
"옛날 방법이요 ?"
"맞다. 척장발을 상대하던 그 방법이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했다.
"너는 먼저 방으로 돌아가 있어라. 내가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명을 내릴터이니 너는 그때 다시 그들과 함께 내 방으로 오도록
해라. 절대로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사서는 안된다."
척방은 마음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아무런 생각도 내지 못했다.
'일이 이지경이 되었으니 살고 싶지도 =珂립. 그리고 공심채
는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누가 그 아이를 보살펴 주겠는가?'
갑자기 만진산이 척장발을 상대한 옛날방법으로 오감을 처치한
다는 말이 생각나자 머리뒤에 마치 한덩어리의 얼음조각을 얹어
놓은 양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처치했을까? 이 일은 확실하게 밝혀
야 한다. 시아버지가 여러 제자에게 방 밖으로 모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를수가 없구나. 어디 가서 몸을 숨기고 엿들
어야 할까 ?'
만규는 돌아갔고 만진산은 큰소리로 하인들을 불러 대청 위에
불을= 밝히라고 했다.
얼마 있지 않아 앞뜰고 뒤뜰에 여러제자와 하인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척방은 잠시 뒤면 하인들이 자기가 있는 곳을 지날
것이니 더 지체하다가는 발견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는 즉
시 몸을 피하여 만진산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침대 휘장을
잦히고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그 휘장은 바닥까지 내려와 있어
서 그녀를 가려줄 수 있었다.
그녀가 침대 바닥에 누어있자니 휘장 밑으로 빛이 스며들었다.
어떤 사람이 등에 불을 들고 들어와서 방에 등을 놓았다. 그녀는
만진산이 신고 있는 신발을 볼 수 있었다. 그 발은 방안으로 들
어오더니 천천히 의자옆으로 갔다. 의자에서 가벼운 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 만진산이 의자에 앉는 것 같았다. 곧이어 하인을 시켜
방문을 닫으라고 시키는 소리가 들렸다.
대사형 노곤이 방문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부님! 우리는 모두 모였읍니다. 어르신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읍니다."
만진산은 말했다.
"잘했눋. 너는 먼저 들어오너라."
척방은 방문이 열리고 노곤의 발이 들어오며 방문이 닫히는 소
리를 들었다. 만진산은 말했다.
" 적이 우리 집안으로 숨어 들어왔다. 너는 아느냐 ? 모르느
냐 ?"
노곤은 말했다.
"누구입니까? 저는 모릅니다."
만진산은 말했다.
"그 사람은 거짓으로 떠돌이 약장수 흉내를 내고 오늘 우리 집
에 왔었다."
척방은 내심 중어거렸다.
'설마 그 떠돌이 약장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것인가? 그
약장수는 도대체 누구일까?'
노곤은 말했다.
"제자는 오사제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읍니다. 사부님, 그는 누
구입니까 ?"
만진산은 말했다.
"이사람은 분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정체는 모르고 있
다. 내일 아침 너는 성의 북쪽 일대를 샅샅히 살펴 보거라. 그럼
먼저 나가 있어라. 조금뒤 나는 네게 다른 일을 시킬 것이다."
노곤은 대답을 하고 나갔다. 만진산은 즉시 네번째 제자인 손
균과 다섯번째 제자 복원만 들어오라고 했다. 분부하는 말은 대
체로 비슷했으며 손균에게는 성의 남쪽일대를, 복원에게는 성의
동쪽일대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복원에게 분부를 하면서 만진산
은 한마디를 덧 붙였다.
"오감으로 하여금 성의 서쪽을 찾아보라고 일렀다. 풍탄과 침
성은 여기서 대기하도록 하라. 너의 만사형은 상처가 낫지 않았
으니 나갈 수가 없다."
복원은 대답했다.
"예, 만사형은 휴양을 취해야 하지요."
그도 나갔다. 척방은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오감이 듣고
도 의심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만진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감은 들어오너라."
그 목소리는 노곤등을 부를때와 똑 같았으며 더 엄격하지도 않
았으며 그렇다고 특별히 더 온화하지도 않았다. 척방은 방문이
또 열리고 오감이 문지방을 넘어설때 약간 멈칫하였으나 결국 들
어오는 것을 볼수 있었다. 오감의 발은 만진산이 앉아 있는 쪽으
로 다가가더니 멈추었다. 척방은 그의 옷자락이 미미하게 떨리는
것을 볼수 있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두려워 하여 떨고 있음이 틀
림없었다. 만진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이 우리 집안으로 들어왔다.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
오감은 말했다.
"저는 문 밖에서 그 떠돌이 의사가 적이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읍니다. 이 사람은 제가 불러다 만사형의 병을 진찰하도록
했는데 그가 적인줄은 뺄珝℉ 하지 못했읍니다. 사부님께서는 용
서해 주십시요."
만진산이 말했다.
"이 사람은 분장을 했기 때문에 너도 알수 없었을 것이다. 너
를 탓할 생각은 없다. 내일 아침 너는 성의 서쪽 일대를 샅샅히
뒤져라. 그를 본다면 그의 동태를 주의깊게 살펴보아라."
오감은 말했다.
"예."
갑자기 만진산의 발이 음직이더니 그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척방은 궁리하여 손을 내밀어 휘장 한귀퉁이를 들어올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순간 그녀는 대경실색했고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뻔
했다.
만진산의 두손은 이미 오감윕 목덜미를 힘껏 조르고 있었고 오
감은 있는 힘을 다해서 손을 내밀어 만진산의 손을 비틀고 있었
다. 오감의 두눈은 잠시후 금붕어처럼 툭 튀어 나왔다. 만진산의
손등은 오감의 손톱에 할퀴어 핏방울이 번져 나왔으며 허연 뼈가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감의 목덜미를 꽉 조르고 있는 손
을 풀지 않았다. 오감은 한마디의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을
비틀거리다가 한참후에야 손이 풀어지고 힘없이 축늘어졌다.
척방은 그의 혓바닥이 나오고 무섭게 이그러진 표정을 보자 두
려움이 엄습했다. 오감은 결국 미동도 푼舊 못하게 되었고 만진
산은 손을 풀고 그를 의자 위에 내려놓고 탁자위에 미리 준비해
놓았던 두장의 물에 적신 솜뭉치를 가지고 그의 입과 코를 틀어
막았다. 이렇게 되면 그가 설사 아직 죽지 않았다 해도 호흡을
할 수 없어서 영원히 정신을 차릴수 없게 되는 것이다. 척방은
심장의 박동이 빨라짐을 느꼈다.
'시아버지는 자기의 가문을 형주에서 알아주는 명문가이기 때
문에 마음대로 살인을 할수가 없다고 했다. 오감의 아버지는 이
지역의 신사(神士)라고 하는데 절대로 이 일을 그냥 놔두지는 않
을 것이다.그러면 일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때 만진산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한일을 빨리 불어라! 설마 내가 손을 써야 되겠느냐 ?"
척방은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시아버지는 나를 보았구나.'
그러나 마음속은 놀라고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편안한 느낌
마저 들었다.
'그의 손에 죽는 것도 괜찮을거야. 어차피 나는 살고 싶은 생
각이 없어.'
막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오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제가 무엇을 자백하라고 하십니까 ?"
척방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오감이 말을 한단 말인가? 설마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러나 분명히
그는 죽었다. 그의 몸은 의자에 쓰러져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
다.
침대밑에서 바라보니 만진산의 입술이 음직이고 있었다. 척방
은 더욱 놀랐다.
'시아버님이 말을 하고 있고 오감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런데 어떻게 오감의 목소리가 나오지 ?'
만진산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무엇을 자백하느냐고? 흥! 오감 네놈은 담도 크구나! 네놈은
안에서 밖의 사람들과 결탁을 하여 형주성에서 큰일을 벌이려고
하지 않았느냐 ?"
"사부님... 제자가 무슨을 일을 벌리고 있읍니까 ?"
이번에야 말로 척방은 분명하게 보았다. 틀림없이 만진산이 오
감의 목소리를 흉내내고 있었다.
'시아버님은 사람의 말소리를 흉내내는 재주가 있구나. 그런데
왜 나는 모르고 있었을까? 그가 이렇게 글소리로 오감의 목소리
를 흉내내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녀는 문득 한가지 일이 생각났다. 그것은 희미할뿐이었고 분
명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심 말할수 없는 공포감을 느껴야
했다.
만진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 낚柳弔 내가 모르는 줄 알고 있겠지? 네놈은 그 떠돌이
약장수를 형주성에 데려왔다. 이는 사실 큰 도적놈이었다. 오감
아, 너는 그자와 결탁하여 그곳에 숨어들어가려고 했지..."
"사부님, 어디를 뛰어 들어간단 말씀이십니까 ?"
"능지부의 공관에 뛰어 들어가 한가지의 기밀문서를 홈쳐내려
고 했지 않느냔 말이다! 그래도 너는 시치미를 떼려고 하느냐?"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그것을 아셨읍니까?
사부어르신께선 이 제자가 평시에 사부님을 잘 따르고 말을 잘
듣던 정분을 생각해서 제자를 용서푼 주십시요. 이 제자는 앞으
로는 그런일을 절대 하지 않겠읍니다."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눈감아 줄수 있겠느냐 ?"
척방은 만진산이 오감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이 흡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 낼 수 있었다. 단지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더듬거리는데 말끝마다 사부님의 호칭을 썼으며 동시에 자칭 제
자라는 말을 계속해 사용하여 옆에 있는 사람이 들으면 자연히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오
감이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그와 만진산이 주고 받는
말을 들었다.
만진산은 오감의 시체를 껴안고 천천히 어깨를 구부리더니 좌
측손으로 침대 휘장을 제쳤다. 척방은 깜작 놀라서 심장이 금방
이라도 멈출것 같았다.
'시아버지는 틀림없이 나를 발견했구나. 이번에야 말로 죽지
않을 도리가 없겠구나.'
희미한 불빛 아래서 한개의 머리통이 침대 밑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두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었는데 마치 죽은 금붕어의 눈같
았다. 척방은 될수 있는대로 한쪽으로 비켰다. 그러나 오감의 시
신은 계속해서 밀려 들어와 그녀의 다리에 부ㄷ혔고 그녀의 허리
를 밀어대고 있었다. 릍망翩遠 의자에 돌아가 앉더니 매서운 목
소리로 꾸짖었다.
"오감아, 너는 그래도 무릎을 끓지 않겠느냐? 내가 너를 묶어
능지부에 넘겨야 하겠느냐? 용서해주고 않고는 전적으로 능지부
의 소관이니 나는 너를 도울 수가 없다."
"사부님, 사부님은 이 제자를 정말 용서해 주시지 않으실 것입
니까 ?"
"이런 제자를 가르치다니, 만가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 내
가... 내가 어떻게 너를 용서할수 있겠느냐 ?"
척방이 침대 휘장 밑으로 바라보니 만진산은 허리춤에서 한자
루의 비수를 저내어 자기의 가슴에 꽂았다. 그의 가슴 옷자락 속
에는 틀림없이 나무나 쇠조각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비수가
가슴에 꽂히자 그는 그는 꼼작도 하지 않았다. 척방은 불길한 예
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만진산의 큰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오감아! 너는 빨리 무릎을 끓지 않겠느냐 ?"
"사부님 이것은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이 제자를
탓하지 마십시요."
만진산은 크게 외쳤다.
"아악!"
발을 날려 창문을 박차며 외쳤다.
"이놈이... 이놈이 감히 나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펑 하는 소리다 나더니 어떤 자가 방문을 열어 젖혔다. 만규가
먼저 뛰어 들어왔고 노곤, 복원, 손균등이 일제히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만진산은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는데 손가락 사이로는
붉은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는 몸을 기우뚱 하더니 창문을
손가락질 하면서 외쳤다.
"오감, 이놈이... 나에게 이렇게 하고 도망쳤다. 빨리... 빨리
뒤ㅉ아라!"
몇마디를 하고는 그만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다. 만규는 놀란듯
이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좀 어떠세요 ?"
노곤, 손균, 풍탄, 침성,복원등 다섯 사람은 창밖으로 뛰ㅕ나
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뒤ㅉ쒀年.
척방은 침대 밑에 있는 오감의 시신이 갈숙록 차자워 지는 것
을 느꼈다. 내심 무섭고 놀라왔으나 꼼잘할 수 없는 처지였다.
시아버지는 침대에 쓰러져 있었고 남편은 침대 앞에 서 있었다.
만진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심을 한 사람은 없느냐 ?"
만규는 말했다.
"없읍니다. 실로 진짜같은 착각이 들었읍니다. 마치 척장발을
죽일때처럼 아무 흔적도 없었읍니다."
척방은 이 말을 듣는 순간 한자루의 예리한 비수가 자신의 가
슴을 찌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원래 희미하게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 설마하고는 믿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시아버님은 줄곧 부드럽고 따듯한 얼굴로 대해주셨고 남편은
친절하고 부드러웠는데 어찌하여 아버님을 살해할수 있었겠는
가?'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는 두눈으로 이런 교묘한 수법으로 오감
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했며 만규의 입에서 아버지 척장발을 죽
였다는 말을 직접 들은 것이다.
그날 그녀는 서재밖에서 척장발과 만진산이 다투는 소리를 들
었을때 만진산이 아버지에게 일검을 맞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단, 아버지가 창을 넘어 도망치는 것을 보았는데 틀림쒀坪 그것
도 만진산이 꾸민 연극이었던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이미 살해
당한 이후였던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흉내냈었어. 어쩐지 그때의 아버지의
목소리는 쉰듯 했고 평시와는 사뭇 달랐었다.'
만약 일이 공교롭게 꼬이지 않고 그녀가 침대밑에서 직접 이런
참상을 보지 못했더라면 어찌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 만규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화냥년을 어떻게 하시겠읍니까? 우리는 그 화냥년을 가만
히 둘수는 없읍니다."
만진산은 말했다.
"천천히 그년을 잡아다가 죽여버리자. 이 일은 절대 남모르게
해야 한다. 사람들이 알면 이 만씨집안의 명성이 더럽혀 질 것이
다."
"네, 아버님의 말씀이 옳읍니다. 아이쿠..."
만진산은 말했다.
"왜 그러느냐 ?"
"저의 손등의 상처가 또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만진산은 신음 소리를 냈다. 그는 비록 계략에 뛰어난 모사꾼
이었지만 이 일만은 속수무책이었다. 척방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오감의 품을 뒤져 하나의 약병을 찾아 내고는 착착한 심정에 사
라잡혔다.
'너는 몇마디를 듣고 이놈과 내가 불륜의 관계를 맺었다고 생
각했다. 조금 더 들었다면 이 해독약이 그윕 수중에 있었다는 것
을 알수 있었을 것이다. 너의 아버지가 그를 죽였지만 이 약이
어디에 있는지를 너희들은 필경 모를 것이다.'
노곤일행은 오감을 뒤ㅉ지 못하고 하나씩 돌아왔다. 하나씩 만
진산의 침대에 와서 안부를 물었다. 만진산의 가슴은 피로 물들
어 있었고 붕대는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번에 그가 받은 상처는 지난번 처럼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았
다. 오감의 무공은 사숙인 척장발보다 훨씬 못했기 때문이다. 이
일도는 그리 깊지는 않았으므로 큰 위험도 없었다. 여러 제자들
은 모두 마음을 놓고 입윕 모아 오감이 배은망덕했다고 욕을 했
으며 내일 아침 일찌기 그의 아버지를 찾아가 결판을 내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빨리 몸이 완쾌도기를 바란다
며 모두 물러갔다. 만규는 침대앞에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었다.
척방은 오감의 시체옆에 있자니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끼는
한편 만씨 부자가 발견할까봐 두려워 도망칠 기회만을 찾고 있었
다. 만진산은 말했다.
"우린느 먼저 시체를 처리하자. 마각이 노출되어서는 안된다."
만규가 말했다.
"아무래도 척장발을 해치운 것처럼 해야겠지요."
만젯翩遠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그방법을 써야겠다."
척방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들은 나의 아버지를 어떻게 처리 했을까 ?"
만규는 말했다.
"이곳에 쌓을까요 ? 이곳에 쌓는다면 아버님께서 불편하지 않
을까요 ?"
만진산은 말했다.
"내 거처를 잠시 너 있는 곳으로 옮기자. 그런데 아직 번거러
운 일이 하나 남아있구나. 그 검보를 우리 수중에 보낸 사람을
우리는 함십하여 대응하자. 장래 큰부자가 되면 우리가 묵을 곳
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느냐 ?"
척방은 쌓는다는 말을 듣자 순식간에뇌리속으로 무엇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어렴풋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그들은 나의 아버지의 시체를 가둬두고 그 위에 담을 쌓아 흔
적을 감추고 있구나. 어쩐지 나의 아버지가 가고 난 후 아무런
소식도 없어 의아했었다. 어쩐지 시아버지가... 아니다. 시아버
지도 아니다. 만진산, 이 악독한 놈이 한밤중에 일어나 벽을 쌓
는다 했더니 그는 이런 일을 해놓고 마음이 불안하여 몽유병에
걸렸고 꿈속에서조차 일어나 담을 쌓는구나. 이 악독한 놈... 이
악독한 놈이 정말 내심 불안하여 그랬을까? 정말 이상하구나. 이
담쌓는일을 자기도 모르게 하고 또 하고... 조금전 그는 꿈속에
서 담을 쌓고 있을 때 계속해서 웃고 있지 않았던가 ?'

만규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버지, 도대체 이 검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읍니까?
금방 우리가 부자가 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큰부자가 될 수 있
읍니까? 설마... 설마 무공의 비결이 아니고 보물이라는 말씀입
니까 ?"
만진산은 말했다.
"물론 무공의 비결이 아니다. 검보에 쓰여 있는 것은 보물이
묻혀 있는 장소이다. 매념생 이늙은 돼지가 망령이 들어 이 검보
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려 했다. 헤헤! 얘야, 빨리 빨리 그 검
보를 가지고 오너라."
만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품속에서 그 책을 꺼내 놓았다. 만
진산은 책을 받아들고 한장씩 넘겼다. 이때 당시선집은 핏물에
젖어서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여서 중간은 아직 핏물에 젖어 있
었다. 만진산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 검보를 우리 부자가 지킬지 못 지킬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가 먼저 이 책의 비밀을 알면 다른 사람이 와서 빼앗아 간다
고 해도 그리 염려할 것은 못된다. 자, 연필을 가져와 내가 부르
는데로 적어라. 연성검법의 제 일초는 두보의 춘귀라는 시에서
나왔다."
그는 손가락에 침을 묻히더니 두보의 춘귀라는 시 제목다 침을
발랐다.
"맞다! 사(四)자이다. 좋다! '태경임강죽(苔俓臨江竹)' 네번째
글자는 강(江)이다. 자, 너는 적었느냐? 두번째 초식은 똑같은
두보의 시 '중경소능(重經昭陵)'에서 나왔다."
그는 다시 손가락에 침을 묻혀 그 제목에다 대고 문질렀다.
"바로 오십일(五十一)이다.!"
그는 한글자 한글자 헤아려 나갔다.
"하나 둘 셋 넷... 열 다섯.. 스물...'능침반공곡(陵寢盤空曲)
웅동수취미(熊動守翠微)'라. 오십일번째 글자는 바로 능(陵)자이
다. 강릉(江陵), 강릉이야! 알고보니 과연 형주에 있구나."
만규는 말했다.
"아버님, 말씀을 낮추세요."
만진산은 잔잔히 웃으면서 말했다.
"맞다. 떠들어서는 안되지. 너의 아버지가 평생동안 심혈을 기
울인 것이 결국 헛되지 않았구나. 이 비밀을 우리는 끝내 알아낸
거야."
갑자기 그는 책을 덮더니 무릎을 탁 치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
을 했다.
"적들이 이 검보를 왜 내게 가져다 주었는지 나는 알았다."
만규는 말했다.
"무슨 연유입니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 없는데요."
만진산은 말했다.
"적들은 이 검보를 갖은 다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안의
비밀을 풀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이 종이 조작을 어디다 쓰겠느
냐? 우리 연성검법의 초식은 모두 당시로 구성되어 있어 다른 문
파의 사람은 봐도 알수가 없단다. 이 세상에서 나와 언달평만이
첫번째 싯귀는 어떻고 두번째 싯귀는 어떤가를 알 수 있을 뿐이
다. 첫번째 글자는 춘귀에서 찾아야하고 두번째 글자는 중경소능
에서 찾아야 되는 거란다."
만규는 말했다.
"이 연성검법의 명칭은 아버님께서 어째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
시젯 않으셨읍니까?"
만진산은 말했다.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은 차례가 뒤바뀌어지 있지. 하하하!"
만규는 말했다.
"아버님, 아버님은 어째서 저에게도 진짜 검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읍니까?"
만진산은 낭패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나에게는 여덟제자가 있고 밤낯으로 함께 있었는데 만약 너에
게만 가르쳐 주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알 것이고 그러면 일이
묘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만규는 음! 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저들의 생각은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그들은 물론 종이를
적시면 글자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의로 우리들에게 이것을 전해주어 고의로 몇 글자를 나타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비밀을 알아내 보물상자를 찾아내
면 빼앗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만진산은 말했다.
"맞다. 우리는 조심해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우리들은 헛고생
을 하고 목숨까지 잃을 우려가 있지."
그는 또 손가락에 침을 묻혀 세번째 글자를 찾아냈다.
"검법의 세번째 초식은 '처묵(處默)'이 지은 성과사(聖果寺)라
는 시에서 나왔지. 삼십삼이라. 삼십삼번째 글자는 '하방성곽근
(下方城郭近) 종경잡생가(鐘磬雜生歌)'의 성(城)자이다. 강릉성
이다. 맞다! 맞아! 더 이상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이 몹시도 가려우냐."
그는 우측손으로 좌측손등을 몇번 긁었다. 우측손도 간지러운
것 같아 좌측손을 내밀어 긁은 다음ㅇ 다시 그 검보를 바라 보았
다.
"네번째 초식은 이십팔이라. 음, 하나, 둘, 셋, 넷...스물 여
덟번째 글자는 남(南)자이다. 강릉성남(江陵城南)이다. 하하하!
아이쿠! 왜 이리 가려우냐?"
그는 고개를 숙여 우측손을 내려다 보았다. 손등에는 세개의
검정색 반점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의아하여 말했다.
"나는 오늘 글씨도 안 썼는데 나의 손등에 왜 이런 먹물이 묻
어 있을까 ?"
두손의 손등은 갈수록 간지러워졌다. 우측손을 보니 역시 먹물
방울이 보였다. 만규는 악!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아버지! 이게...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마치 언달평의 전갈
의 독과 똑 같은데요."
만진산은 아들의 말을 듣고 손이 더욱 간지러움을 느꼈다. 그
래서 참을수 없어 마구 긁어 댔다. 만규는 말했다.
"긁지 마세요. 그건... 그건...아버지의 손톱에 독이 있읍니
다."
만진산은 외쳤다.
"쒀팀箝! 정말 그렇구나."
그는 이어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그 악독한 년이 이 검보를 핏물에 담그자, 너의 피에는 전갈
의 독이 있는 관계로... 오감 이죽일놈이 죽어도 곱게 죽지 못하
고 나의 손에 상처를 남겨서 독이 그리로 침투했구나. 다행히 상
처가 심하지는 않지만... 어째서 갈수록 간지러우냐!"
고통을 참을수 없는지 만진산은 연속해서 비명을 질러댔다. 만
규는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심하게 중독된것 같읍니다. 내가 가서 물을
떠다 식혀 드리겠읍니다."
만진산은 말했다.
"그게 좋겠다."
이어 큰 소리로 외쳤다.
"도홍, 도홍아! 물을 떠 오너라."
만규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생각했다.
'아버지는 혼이 나간 모양이군. 그녀를 ㅉ아낸지 벌서 오래 되
었는데 지금 또 그녀를 찾으니!'
만규는 놋쇠대야를 들고 문밖의 뜰로가서 항아리에서 한대야의
물을 뜬 다음 방안으로 들어왔다.
만진산은 급히 두 손을 깨긋한 물에 담갔다. 손을 물에 담그자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아픔이 가시는 듯 했다. 그런데 만규의 손
등을 문 전갈은 해독약을 쓰면 그 피는 더욱 독해져서 원래 전갈
의 독보다 몇배나 무섭게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만진산
의 손등은 오감에 할퀴어 상처가 났으므로 이 독물에 담갔을때
한 대야의 물은 이미 검게 변했으며 그물은 점점 짙어져 얼마 있
지 않아 새까만 먹물처럼 변했다. 만규부자는 서로를 쳐다보며
대경실색했다. 만진산은 손바닥을들고 보더니 악! 하는 소리를
질렀다. 두개의 손은 마치 두개의 둥근 공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
다. 만규는 말했다.
"아이쿠! 안되겠읍니다. 물에 담궈도 안되겠읍니다."
만진산은 너무 아파 그의 옆구리를 걷어 차며 외쳤다.
"네놈은 물에 담그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릍庸 왜 물을 떠 왔느
냐? 그것은 나를 해칠려는 것이 아니냐?"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찌 아버님을 해쳤다고 하십니까?"
만진산이 외쳤다.
"어떻게 하지? 이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
만규는 말했다.
"윗층에는 진통제가 있는데 독을 없앨 수는 없어도 아픔은 덜
어 줄지 모릅니다. 그 약을 붙이시겠읍니까 ?"
만진산은 말했다.
"그래, 그래, 좋다. 빨리 가져오너라."
만규는 말했다.
"그러나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그 약을 바
르면 일이 더 커질지도 모르는데 아버지는 나를 또 냅다 발랸 차
시는 것이 아닙니까 ?"
만진산은 욕을 했다.
"이 못된놈의 자식! 때가 여기에 이르렀는데도 잔소리가 많구
나! 이놈아, 나는 너를 낳았는데 한번 걷어 찼기로서니 그게 대
수냐, 빨리 가서 약을 가지고 오너라."
만규는 대답했다.
"예!"
그리고 몸을 돌려 나갔다. 만진산의 두손은 퉁퉁 부어올랐는데
마치 검은 공처럼 한껏 부어올라 건드리면 톡하고 터질 것 같았
다. 그는 외쳤다.
"내가 가겠다! 조금도... 시간을 지체할수 없구나."
검보를 품속에 쑤셔 넣더니 나는듯 만규의 뒤를 따라갔다.
척방은 두 사람이 멀리가자 급히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며 생
각했다.
'어디로 가야 좋을까 ?'
금방 결정을 내릴수가 없었다. 망망한 대지위에 자기 한몸 숨
길 곳이 없었다.
'그들이 나의 아버지를 죽였는데 어찌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있
겠는가? 그런데 이 철천지 원한을 어떻게 보복해야 할까? 무공과
계략으로 따진다면 나는 그들과 상대도 되지 않는다. 하물며 그
들은 내가 오감이라는 자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단정하고
있으니 나를 보면 당장 죽이려고 할텐데 어떻게 막을 수가 있겠
는가? 지금은 오로지... 오로지 적사형을 찾을수 밖에 없구나.
그러나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구나. 공심채를 내버
려두고 돌보지 않으면 그 아이은 어찌 될까 ?'
딸이 생각나자 급히 아랫층으로 달려가 딸아이를 데리고 도망
친 다음 복수의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그녀가 아랫층에 뛰어
들어가니 만진산이 고래고래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계속 외친다면 공심채가 잠에서 깨어나겠구나.'
그녀는 천천히 윗층으로 걸어 올라가며 층계계단이 소리를 내
지 않도록 조심을 했다. 공심채가 잠자는 방은 그들 부부의침실
이었다. 척방이 방으로 들어가보니 희미한 등불아래 딸이 눈을
크게 뜨고 온통 공포에 질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계집아이는 엄
마를 알아보자 입을 삐죽거리면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태
세를 했다. 척방은 급히 달려가 딸아이의 입을 막으면서 절대로
울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
공심채는 총명하고 말을 잘 들었으므로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딸과 엄마는 꼭 껴안고 침대에 쓰러졌다. 만진산이 큰소리로 외
쳤다.
"안된다! 안돼! 이 진통제는 쓰면 쓸수록 아프구나. 어서 그
떠돌이 약장수를 찾아내어 그해독약을 구해야겠다."
만규는 말했다.
"그렇읍니다. 그 약만이 이 독을 해독시킬수 있읍니다. 날이
밝으면 사형등을 불러서 그 약장수를 찾아야겠읍니다. 제손의 상
처도 매우 아픕니다."
만진산은 화가나서 말했다.
"어떻게 날이 밝을때까지 참는단 말이냐? 아이쿠, 아이쿠! 더
이상 참을수 없구나! 더 이상 참을수가 없구나!"
갑자기 다리의 힘이 빠져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외쳤다.
"빨리, 빨리! 검을 가져오너라! 이 두손을 잘라버려야겠다. 너
의 두손도 잘라버려라!"
방에서 가구들이 부ㄷ치고 깨지고벽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
려왔다. 공심채는 무서워서 어머니를 꼭 껴안으며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지만 척방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울지는 않았다. 만
규역시 당황하며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좀 참으세요. 어떻게 손을 자를수 있단 말
입니까? 우리는 하루 빨리 그 해독약을 찾아야만 합니다."
만진산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참지 못하고 꾸짖었다.
"너는 어째서 나의 두손을 잘라 나를 이와같은 고통에서 벗어
나게 만들어주지 않느냐? 아, 알았다! 네놈... 네놈은 내가 죽고
나면 그 보물을 혼자 먹을려는 모쒼瑛琯. 혼자 그보물을 찾아
서..."
만규는 화가 나서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너무 아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
읍니다. 침대에 누워 잠시 쉬십시요. 나는 검초의 순서도 모르는
데 어떻게 보물을 찾는단 말입니까 ?"
만진산은 계속해서 땅을 구르며 말했다.
"네놈은 내가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개방귀같
은 소리다. 아, 난... 아파서 죽을 지경이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애. 그럴바에야 나는 이 검보를 아무도 가질수 없도
록 해야겠어."
만진산은 눈이 빨개져서는 당시선집을한장씩 갈기갈기 찢는
것이었다. 그의 열손가락은 마치 빨간 홍당무처럼 부어올라 음직
임이 둔했다. 그러나 단숨에 몇장을 찢어냈다. 만규는 외쳤다.
"찢지 마세요! 찢지 마세요!"
손을 내밀어 그 검보를 빼앗었다. 그는 그 검보를 반쯤정도 잡
았고 만진산은 다른 한쪽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검보는 아직 핏
물에 젖어서 아직 마르지 않아 흐느적거렸다. 두사람이 이렇게
잡아당기자 금방 두쪽으로 찢어졌다. 만규는 멍청하게 서 있었으
며 만진산은 나머지 반쪽을 다시 갈기갈기 찢으려고 했다.
만규는 이미 손에 넣육 것과 다름없던 보물이 휴지조각으로 변
하려고 하자 급히 손을 내밀어 아버지를 밀쳤다. 땅바닥에서 두
사람은 밀고 당기며 서로 검보를 빼앗으려고 다투고 있었다. 그
책은 이런 복새통에 더욱 엉망이 되고 말았다. 갑자기 만규가 외
쳤다.
"아이쿠! 아이쿠! 큰일 났읍니다. 내 상처에 또 독이 들어 갔
읍니다. 아이쿠!"
두사람은 이렇게 잡아 당기고 찢고 하는 사이에 검보의 독물은
만규의 손등에 들어갔고 순식간에 만규의 손등은 크게 부어 올랐
으며 그 아픔은 쇠꼬챙이로 몸을 찌르는 것 같았다. 한동안 병을
얻은뒤라 체력이 약해져서 독이 상처에 들어가자 피가 다시 꺼
구로 돌며 심한 발작을 일으켰다. 두사람은 비명을 질러대며 땅
바닥을 굴러 다녔다.
척방은 그 소리를 듣자 부부의 정이 있어 그대로 보고 있을수
만은 없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냉랭히 말했다.
"왜 그러시나요? 두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만씨부자는 척방을 보았건만 화를 낼 여유조차 없었다. 만규가
외쳤다.
"여보, 빨리 그 떠돌이 의사를 불러오시오! 어서 약을 조제해
달라고 하시오! 아이쿠! 아이쿠! 정말로... 정말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구려. 제발 당신에게 빌겠소."
척방은 그가 아픈 나머지 온통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돼 있는
것을 보자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품속에서 약을 꺼내며 말했다.
"이것이 해독약이예요."
만진산과 만규는 그 약병을 보자 일어나려고 발버둥치며 말했
다.
"잘됐다. 잘됐다. 그 약을 이위에다 뿌려다오."
척방은 내심 이때를 이용하지 못하면 진상을 규명할 수 없을
것 같아 말했다.
"잠깐만 음직이지 마세요. 조금만 음직여도 나는 이 약을 창밖
의 물항아리에 던져 버리겠읍니다. 그러면 모두 죽을 것입니다."
말하면서 창문을 밀치고 약병을 뚜겅을 뽑아 금방이라도 약병
을 떨어뜨리는 시늉을 하였다. 만씨부자는 음직이지 못하고 서로
를 쳐다보고 있었다. 만진산이 갑자기 말했다.
"얘야, 며느라야, 빨리 그 해독약을 나에게 다오. 그 해독약을
주기만 한다면 나는 네가 오감과 멀리 가서 살게 해주마. 절대로
막지 않겠다. 그리고 천냥의 은을 주고 너희 둘이 앞으로 편안한
날을... 아이쿠! 아퍼... 네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있으니 이놈
도 너를 잡아두지는 못할 것이다. 너는... 너는 마음을 놓아라!"
만규도 역시 말했다.
"여보, 나는 당신을 놓치기는 아깝지만 어찌할 수가 없소. 이
제부터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겠소."
척방은 생각했다.
'이 부자는 정말 염치없고 비굴하구나. 오감을 분명히 자기들
의 손으로 죽여놓고는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려 하다니.'
척방은 냉랭히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들 두 사람은 미쳐도 아주 미쳤군요. 아직도 눈감고 아웅
하고 있군요. 당신들은 똑바르게 한마디만 한다면 나는 이 해독
약을 주겠어요."
만진산은 말했다.
"그래, 그래. 빨리 물어보거라. 아이쿠! 아이쿠!"
한줄기 바람이 챨▷횬막 들어와 땅바닥에 나뒹굴던 종이조각들
을 휘날렸다. 종이조각은 검보가 찢어진 것으로 한조각씩 창밖으
로 날아갔다. 한쌍의 호항나비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날았다. 그
것은 그녀가 만든 것으로 시집에 넣어 두었던 것이었다.
두마리의 종이나비는 방에서 춤을 추더니 바로 창밖으로 날아
갔다. 척방은 마음이 시큰해졌다. 그 옛날 동굴속에서 적운과 재
미있데 놀던 정경이 떠올랐다. 그때 둘만의 세계는 얼마나 행복
했던가? 만규는 재촉했다.
"빨리 물어보시요. 어떤 일이오? 사실대로 말하겠소."
척방은 멈칫하며 물었다.
"나의 아버님은 어디 계시죠? 당신들은 그분을 어떻게 하셨
죠?"
만진산은 억지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너는 아버지에게 대해 물어보는데 나는... 나도 모른다. 아이
쿠... 나도 내 사제에 대해서 항상 걱정하고 있지. 아이쿠! 우리
는 사돈간이 아니냐? 아이크..."
척방은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지금에서 와서 당신들이 거짓말을 하면 무슨 필요가 있나요?
나 아버지는 당신들이 죽였지요? 그렇지요? 나의 아버님을 죽인
방법은 오감을 죽인 방법과 똑 같지요. 그렇지요? 당신들은 이미
그의 시체를 벽속에 집어 넣었지요 ? 그렇지요 ?"
척방은 연신 그렇지요 하고 물었다. 만씨부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자기의 아버지가 피살되고 오감이 살해된일까
지 알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만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
다.
"당신은 그것을 어찌 알았소 ?"
그가 당신을 어떻게 알았소 하고 되묻는 말은 그 일을 자백하
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척방은 마음이 시큰해지고 화가 치밀어
그 해독약을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만규는 상황이 급하게
변하는 것을 보자 덮쳐가려 했다. 만진산이 일갈했다.
"이놈! 절대로 경거망동해서는 안된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빼앗으면 일을 오히려 망친다는 것
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톡톡 소리가 나며 공심채가 작은 방에서
뛰쳐 나오며 외쳤다.
"엄마, 엄마!"
그러면서 척방의 품에 안기려 했다. 만규는 이순간을 놓칠세라
딸을 중간에서 나꿔채고 딸의 우측손을 잡고 일갈했다.
"좋다, 우리가족은 함께 죽어버리자. 나는 먼저 공심채를 죽이
고 말겠다."
척방은 놀라서 크게 외쳤다.
"빨리 긍아이를 놓아조세요. 딸아이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
"어차피 살아날수 없으눗 나는 먼저 공심채를 죽여야겠다."
그는 비수를 꺼내어 몇번인가 공심채를 찌르는 시늉을 했다.
척방은 말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그녀는 아이를 구하려고 손을 내밀어 만규의 손을 잡았다. 만
진산은 뼈가 애이는듯이 아파왔지만 교활하고 경험이 풍부하여
척방이 다가오자 즉시 손등으로 그녀의 허리를 내리쳐 그녀의 손
에서 약ㅂ을 빼앗더니 급히 손등에 뿌렸다. 만규도 급히 손등에
뿌렸다. 척방은 딸아이를 품속에 꼭 안았다. 만진산은 발을 날려
그녀를 쓰러뜨린후 두손을 등뒤로 결박하고 이어 그녀의 두다리
마저 묶었다. 공심채는 큰소리로 외쳤다.
"엄마! 엄마!"
만규는 손바닥으로 그 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딸아이는 정신을
잃고 다뒹굴었다. 그순간 만규의 두 손은 부풀어 올라 있어서 아
픔이 밀려왔다.
"아이쿠!"
그 해독약은 효험이 매우 좋았다. 두 사람이 상처에 바른 직후
조금 있자 상처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아픈기가 점점 사
라졌으며 조금 간지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가려움도 점점
약해졌다.
부자 두사람은 생명에 지장이 없어지자 마음이 놓였다. 방의
종이조각이 창밖으로 날아같〈 것을 보자 두사람은 똑같이 외쳤
다.
"아이쿠! 큰일 났구나!"
몸을 날려 날아가는 종이조각을 막았다. 그러나 땅바닥의 종이
조작은 사방으로 흩어져 한무더기는 물항아리에 떨어져 있었고
어떤 것은 땅바닥을 데굴거리며 구르고 있었다. 만진산은 말했
다.
"빨리, 빨리 주워라!"
두사람은 나는듯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있는 힘을 다해 창밖
으로 흩어진 종이조각을 주웠다. 그러나 수백개의 조각은 훨훨
날아 담을 타고 떨어졌고 어떤 것은 공중을 날아다녔다. 두사람
은 이리 뛰고 저리 뛰었으나 그 많은 종이조각을 주워 원상태의
검보로 만들수는 없었다.
만진산은 비록 통증은 사라졌으나 조금전의 통증이 생각나자
화가나서 큰소리로 아들을 욕했다.
"이 모두가 네놈 때문이다. 어째서 달려들어 빼앗으려고 했느
냐? 만약 네가 잡아당기지만 않았어도 검보는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만규는 숨을 한번 내쉬더니 종이조각을 줍던 행동을 멈추며 말
했다.
"제가 막지 않았더라면 아버님은 이 검보를 더욱 갈기갈기 찢
었을 것입니다."
만진산은 말했다.
"개수작 하지 말아라!"
그는 아들의 말육 사실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러나 계속해서 호
통을 쳤다.
"개수작하지 말아라! 개수작 하지 말아라!"
만규는 말했다.
"다행이 우리는 그곳이 강릉성남이라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다시 조각을 주워 검보를 살펴본다면 약간의 단서가 잡힐 것이고
그곳을 찾지 못하라는 법도 없지요."
만진산은 정신이 번쩍 나는지 말했다.
"맞다, 그곳은 강릉성남이다."
갑자기 창밖에서 한사람의 음성이 들렸다.
"강릉성남!"
만씨부자는 깜짝 놀라서 일제히 담 위로 올라섰다. 밖을 살펴
보니 사람의 뒷모습이 작은 골목으로 뺐泳竄測 것이 보였다. 만
규는 일갈했다.
"복원, 침성, 그 자리에 서서 음직이지 말아라!"
그러나 두 사람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서지도 않았으며 잽싸게
달리기만 했다. 만진산은 담을 내려오더니 ㅉ아가려고 했다. 만
규는 말했다.
"아버님, 아직 이층에는 그 화냥년이 있읍니다."
만진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부자 두사람이 이층으로 와보니 작은 계집애는 이미 정신이 들
어 껴안고 울고 있었다. 척방의 손과 다리는 묶여 있었으나 계속
딸을 안심시켜 주고 있었다. 공심채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돌아
오자 놀라서 왁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만진산은 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계속 운다면, 이놈의 계집애, 배때기에 구멍을 내놓겠다."
공심채는 무서워 얼굴이 하얗게 질러 울지도 못했다. 만규는
말했다.
"아버지, 이 화냥년이 우리의 비밀을 알았으니 살려둘수 없읍
니다. 이떻게 처리할까요 ?"
만진산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조금전 두 놈은 복원과 침성이 틀림없더냐?"
만규는 말했다.
"바로 그 두사람이었읍니다. 이미 비밀은 누설되었고 그들은
이미 강릉성남이라는 것을 알았읍니다."
만진산은 말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큰일나겠다. 우리는 이 화냥년
을 지 애비처럼 처치해 버리자."
척방은 이미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단지 딸이 걱정이 되
어 이렇게 말했다.
"여보, 당신은 부부의 입장에서 나를 죽이는 것은 괜찮으나 내
가 죽은후 당신은 이 아이를 잘 키워주세요."
만규는 말했다.
"그=린 하지."
만진산은 말했다.
"어찌 화근을 남겨둘 수 있겠느냐? 이 계집애는 영리해서 오늘
일어난 일을 다 보았다. 어찌 다음에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겠느
냐?"
만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딸을 매우 사랑하고 있
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대로 화근을 남겨두었다가는 장래에 큰
후환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척방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었다.
"당신들은... 당신들은 정말로 지독하군요. 딸과 손녀조차도
살려 두지 않으려 하는군요."
만진산은 말했다.
"주둥이 닥쳐! 이 년이 계속 떠들면 =온 천하가 다 알게 생겼
다."
척방은 딸의 목숨이 촌각에 달려 있자 목소리를 가다듬고 큰소
로리 외쳤다.
"사람 살려요! 살람 살려요!"
조용한 밤공기를 타고 사람 살리라는 말소리가 허공에 퍼져 나
갔다. 만규는 그녀의 몸으로 달려들더니 손바닥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척방은 여전히 크게 외쳤다.
"사람 살려! 살람 살려!"
하지만 입이 막혀 있어 아무리 소리쳐도 음성은 밖으로 세어
나가지 않았다. 만진산은 옷에서 한조각을 찢어내더니 그에게 던
져주었다. 만규는 즉시 척방의 입을 천조각으로 틀어막았다.= 만
진산은 말했다.
"이 여자는 척장발의 무덤에 같이 묻어줘라. 부녀가 함께 묻히
는 것도 재미 있겠구나."
만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를 업고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만
진산은 공심채를 안았다. 네사람은 서재로 내려갔다. 척방은 서
재의 한쪽벽에 흰색이 칠해져 있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나의 아버님은 이 못된 놈들에게 의해 이 벽속에 매장되어 있
구나.'
만진산은 말했다.
"나는 담을 허물고 있을테니 너는 오감의 시체를 가져오너라!
조심해라, 누가 보면 안된다."
만규는 말했다.
"녜."
그는 급히 만=진산의 침실로 달려갔다. 만진산이 탁자의 설합을
여니 거기에는 끌, 망치, 칼등의 모든 도구가 들어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꺼내어 벽옆에 갖다 두고 하얗게 칠해진 벽을 두손으로
몇번 만져보더니 몸을 돌려 척방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매우
의기양양해 있었다. 척방은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만진산
은 쇠망치와 끌을 집어들더니 벽의 위치를 잘 봐두고 두개의 벽
돌사이에 끈을 집어 넣었다. 망치로 끈을 몇번치고 흔들자 벽돌
이 하나 빠져 나왔다. 그 수법은 매우 숙련되어 있었다. 그는
한개의 벽돌을 끄집=어 낸후 콧가 에 갖다대고 몇번 냄새를 맡았
다. 척방은 그가 벽을 뚫는 수법을 보자 조금전 그가 몽유병을
발작했을때 벽을 허물고 시체를 밀어낳고 벽돌을 쌓던 상황을 생
각해내고 모골이 송연해졌고 그가 아버지의 시체냄새를 맡아보고
있는 것을 보자 무섭고도 상심되었으며 한편 화가 머리끝까지 치
밀어 올랐다. 그래서 욕을 해댔다.
"이 악독한 늙은이. 천하에서 가작 악독한 늙으니!"
그녀는 입이 막혀 있었기 때문에 입에서는 우우하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만진산은 손을 내밀어 두번째 벽돌을 파냈다. 갑자기 =
발걸음 소리가 급하게 들려 오더니 만규가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
다.
"아버지, 아버지. 큰일 났읍니다. 오감이... 오감이.."
몸을 떨며 나뒹굴자 등불이 옆으로 엎어져 삽시간에 사방은 칠
흙같이 어두워졌다. 단지 담담한 달빛이 창을 통해 비쳐들고 있
었다. 만진산은 말했다.
"오감이 어찌 되었다는 말이냐? 왜 그렇게 놀라느냐 ?"
만규는 말했다.
"오감의 시체가 보이지 않읍니다."
만진산은 욕을 했다.
"무엇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어째서 보이지 않는단 말이
냐?"
그러나 그 목소리를 떨렸고 공포에 젖=어 있는 것 같았다. 딱하
는 소리와 함께 손에 들었던 벽돌을 떨어뜨렸다. 만규는 말했다.
"나는 아버님의 침대밑에서 시체를 꺼내려고 했으나 잡히지 않
아 등불을 갖자 비추어 보았으나 시체는 없었읍니다. 아버님의
방 여기저기를 뒤지고 상자속까지 뒤적였지만 없었읍니다. 아무
것도 볼수가 없었어요."
만진산은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이건... 이건... 정말 이상하구나. 내 생각에는 침성과 복원
의 장난 같다."
"아버지, 혹시 오감녀석이 죽지 않고 숨이 잠깐 막혔다가 살아
난 것이 아닐까요 ?"
만진산은 화가=나서 말했다.
"개소리 말아라. 사람들은 나를 오운수(五雲手)라고 부른다.
내손의 공력의 무서움은 이 세상 사람들이 다알고 있다. 설마 제
자놈 하나 목졸라 죽이지 못하겠느냐 ?"
만규는 말했다.
"네, 그렇읍니다. 이치로 따지면 오감은 아버님의 손에 죽음을
면치 못해야지요.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시체가 보이지 않읍니
다. 어쩌면... 어쩌면..."
만진산은 말했다.
"무엇이 어쨋단 말이냐 ?"
"어쩌면 죽은 시체가 원한을 품고..."
만진산은 큰소리로 꾸짖었다.
"바보같은 소리 닥치지 못해. 빨리 화냥년과 =계집년을 처치한
후 오감의 시체를 찾으러가자. 일이 벌어졌으니 우리 부자는 형
주성에서는 행세를 할 수가 없다. "
그러면서 벽에서 벽돌을 하나하나 파냈다. 그는 꿈속에서도 벽
을 쌓고 헐었기 때문에 그 수법은 이미 숙련되어 이때 비록 빛은
없었지만 여전히 그 행동은 신속했다. 만규는 대답했다.
"예."
그릭 팔을 앞으로 내밀며 척방의 앞으로 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이일은 미안하게 되었소. 죽은 다음 나를 원망하지 마
시오!"
척방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어깨를 비스듬히 하여 그의 가슴
= 세게 밀었다. 만씨부자가 자기를 죽인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
딸조차 살려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악에 바쳤던 것이다. 만
규는 그에게 몸을 받치자 몸을 뒤로 두발자욱 내딛었다. 급히 검
을 뽑으며 욕을 했다.
"이 화냥년이 죽음이 임박해지니 발버둥을 치는구나!"
바로 이때 툭툭하는 소리가 나면서 서재의 문이 천천히 열렸
다. 만규가 깜짝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휘황한 달빛이 열린 방문
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건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만진
산은 일갈했다.
"누구냐 ?"
방문은 다시 뚝뚝하고 몇번인=가 소리가 났으나 여전히 사람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달빛 아래 한사람이 튀어 나왔다. 그 사람은 똑바로 선채로 다
가왔는데 무릎은 굽히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만진산과 만규는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 사람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며 혓바닥을 내밀고 있었는데 입과 코에서는 유
혈이 낭자했다. 바로 만진산이 죽인 오감이었다.
만진산과 만규는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악!"
척방은 이런 무서운 광경을 보자 역시 무서워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오감은 두 손을 들어 만진산을 =가르켰다. 만진산은 일갈
했다.
"오감! 이 녀석아! 내가 너의... 너의... 시체를 두려워 할줄
아느냐 ?"
검을 뽑아 오감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갑자기 손목이 마비
되더니 검을 거머쥘수가 없어서 쨍그랑 소리가 나면서 검이 땅바
닥에 떨어졌다. 이어 허리가 마비되어 왔고 전신을 음직일수 없
게 되었다.
만규는 극도로 놀라고 있었다. 오감의 시체가 아버지를 쓰러뜨
리고 또 손을 똑바로 향하고 자기에게 다가오자 '오사제, 오사
제, 한번만 살려주게.' 하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목
구멍까지 나오더니 =꽉 막혀버려 아무리 외치려고 해도 소리가 나
오지 않았고 뒬로 물러났으나 발에 힘이 빠져 땅바닥에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오감의 우측손이 천천히 내려와 그의 얼굴을
만졌다. 손가락은 차가웠고 온기는 하나도 없었다. 만규는 혼비
백산하여 하마터면 혼절을 할 뻔 했다.갑자기 오감의 몸이 만규
의 몸위에 쓰러져 꼼작도 하지 않았다.
오감의 몸뒤에는 한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척방의 곁으
로 가더니 입속에 막혀있던 천을 꺼내고 몇번 손을 음직여 손과
발에 묶여 있던 끈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만규의 허리
를 매섭게 발로 찼다. 만규는 삽시간에 전신이 시큰거려왔다. 척
방은 공심채를 끌어 안으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은인은 누구십니까? 저의 생명을 구해주셨군요."
그 사람은 두 손을 내밀었다. 달빛 아래 바라보니 그의 손에는
한마리의 종이나비가 들려 있었다. 바로 그 당시선집에 끼워져
있던 호랑나비였다. 조금전 그 나비가 날아갔을 때 그 사람이 집
었던 것이다. 척방이 눈길을 들어 쳐다보니 그의 우측손 다섯손
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적사형!"
그 사람은 바로 적운이였다. 갑자기 적사형이=라는 말을 듣자
적운은 가슴이 크게 뜨거워졌고 참을 수 없어 눈물을 흘리고 말
았다. 그 사람은 외쳤다.
"방누이, 하늘이 보살펴... 당신과 나는 오늘 또 만나게 되었
군요."
척방의 지금의 심정은 마치 작은 배가 망망대해에서 폭풍을 만
나 표류하다가 갑자기 한개의 평화롭고 작은 항구에 들어선것 같
았다. 그녀는 적운의 품속으로 뛰어 들며 외쳤다.
"사형, 이것은 꿈이 아니겠지요 ?"
적운은 말했다.
"꿈은 아닙니다. 나는 이틀밤 동안 이곳에서 분명히 보았읍니
다. 부자 두놈은 하늘이 진노할 짓을 저지르는 =것을 나는 모두
보았지요. 오감의 시체나 흥! 내가 이놈들을 좀 겁내주려고 가져
온 것이다."
척방은 울먹였다.
"아버지, 아버지!"
공심채를 내려놓고 뚫린 담으로 가더니 손을 내밀어 구멍속을
더듬었다. 그러나 아묵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악! 하
고 소리를 지르더니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없읍니다. 없어!"
적운은 횃불을 가져다가 비쳐보니 그 안에는 모두 돌맹이 뿐이
었고 척장발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적운은 말했다.
"이곳에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군요."
척방도 만진산의 침대에 가서 =璣냅 촛대를 가져다가 적운의
횃불에 대고 촐에 불을 붙힌 후 촛대를 높이 들고 구석구석을 살
펴 보았다. 아버지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고 다른 시체도 없었다.
그녀는 기뻤다. 그녀는 한가닥의 희망을 품으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들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
다"
그리고 몸을 돌려 만규를 향해 물었다.
"나의 아버지는 도대체 어떻게 되었지요 ?"
만규와 만진산은 그녀가 그안에서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모르고 그녀가 아버지의 시체를 보고 복수를 하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했=. 만진산은 소리높여 외쳤다.
"사내대장부는 자기가 한일을 책임져야 한다. 척장발은 내가
죽인 것 같았다. 너는 나를 죽여 복수를 해라."
척방은 말했다.
"아버지는 정말 너가 죽였느냐?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의 시
체는 어디에 있느냐 ?"
만진산은 말했다.
"뭐라고? 벽안에 죽어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냐 ?"
만진산과 만규는 서로 쳐다보며 창백한 얼굴에는 믿지 못하겠
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적운은 만진산을 끌고 그의 머리를 그
속에 들이밀어 안을 살펴보게 했다. 만진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정말로... 정말로 시체가 걸어갈수 있을까? 나는...
나는 분명히..."
갑자기 말투를 바꾸어 말을 했다.
"얘야, 며느리야, 내가... 내가 속인 것이다. 우리 사형제는
비록 화목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악랄한 수법을 쓰
지는 않았단다. 너는 어째서 그말을 진짜 믿었느냐? 하하!!"
그는 평상시에 아주 거짓말을 잘했다. 그러나 이때에는 놀래고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거렸으며 누가 들어도 거짓이 확실했다.
만약 그가 계속 밀어 붙였다면 척방과 적운은 한가닥 희망이라도
가질수 있었을= 것이나 그가 이런 말을 하자 두 사람은 만진산이
척장발을 죽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적운은 손을 내밀어
만진산의 턱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만가야. 네놈이 나에게 고통을 준일에 대해서는 나는 따지지
않겠다. 나는 단지 나의 사부가 어찌 되었는가만을 알고 싶다."
말을 하면서 신조공을 사용했다. 삽시간에 만진산은 온 몸이
화로불에 떨어진 양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
다. 견딜수가 없었고 척장발의 시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당
황하고 무서워 더듬거리며 말했다.
"맞다... 맞=아! 척장발은 내가 죽인 것이지!"
적운은 다시 물었다.
"사부님의 시체는 어디에 있느냐? 네놈은 도대체 어디에 감추
어 두었느냐 ?"
만진산은 말했다.
"틀림없이 그를 이 안에 집어 넣은 후 벽돌로 쌓았소. 그런데
시체가 변해서... 시체가 변해서..."
적운은 무서운 얼굴로 그를 쳐다 보았다. 이 몇년동안 자기가
맛본 무궁무진한 고초가 모두 이들 부자의 악랄한 수단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은 또 만진산의 입으로 자기의 사부
를 죽였다고 자백을 하자 더 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척방을 만났
지만 =마음속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앞섰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
더니 만진산을 들어 그 담구멍을 향해 던졌다. 만진산은 몸이 컸
고 구멍이 작아 몇개의 벽돌이 더 떨어져 나가면서 그의 몸은 속
에 꼬꾸라졌다. 척방은 악! 하는 소리를 질렀다. 적운은 만규를
들어 또 그 구멍으로 던진 다음 말했다.
"이것이 바로 인과 응보이다. 너희들 부자가 나의 사부님을 이
렇게 죽였으니 너희들도 똑같이 당해야 한다."
그러더니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벽돌을 쌓아 올렸다. 순식간에
벽돌은 다 쌓아 올려졌다. 척방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 했다.
"사형, 결국 당신은 아버지의 한맺힌 원한을 풀어들여군요. 만
약 당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사형, 이 사람의 시체는 어떻게
하지요? "
그러면서 오감의 시체를 가리켰다. 적운은 말했다.
"우리 갑시다. 이곳의 일은 더 이상 관여하지 맙시다."
척방은 말했다.
"그러나 그들 두사람은 아직 죽지 않았어요. 만약 사람이 와서
구해준다면..."
적운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알겠소? 우
리가 오감의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곳까
지 와서 살피지는 않=을 것이오. 이안의 두사람은 오래 살수 없을
것이오."
즉시 오감의 시체를 들고 서재 밖으로 나가며 척방에게 손짓을
했다.
"갑시다!"
두 사람은 만씨집의 담을 넘었다. 적운은 오감의 시체를 던져
버리며 말했다.
"사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척방은 말했다.
"아버지는 정말로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을까요 ?"
적운은 말했다.
"사부님이 건재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단지 만진산의 말을
보면 아마... 아마 사부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응당히 일을 분명히 밝혀야 되겠지요."
=뉩堧 말했다.
"나는 돌아가서 물건을 좀 가져와야겠어요. 당신은 저쪽 낡은
사당에서 기다리세요."
적운은 말했다.
"나도 함께 가겠소."
척방은 말했다.
"아니예요. 다른 사람이 보면 우리는 오해를 받을 거예요."
적운은 말했다.
"내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좋겠소. 만씨집엔 아직도 제자들
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 좋은 놈은 하나도 없소."
척방은 말했다.
"괜찮아요. 당신은 공심채를 안고 저쪽에서 기다려주세요."
공심채는 이 난리를 겪자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 품속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적운은 지금=까지 척방의 말을 잘 들어왔다. 그녀가
간절하게 요청하자 더 이상 나서려 들지 않았다. 딸아이를 건네
받자 척방은 만씨집으로 들어갔다.
적운은 사당에 당도하여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척방이 나오지를 않았다. 적운은 걱정이 되어 만씨집
에 들어가 그녀를 찾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불쾌하게 여길까봐 공심채를 안고 사당 안을 서성이기만 했다.
끝내 사매와 이렇게 만나게 되니 말할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걱정이 되었다. 사매는 내가 = 영원
히 그녀와 있는 것을 허락할까, 하지 않을까? 그는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천지신명께서 보호해 주십시요. 나는 이미 수많은 고통을 당
했읍니다. 나로 하여금 그녀의 옆에 있게 하고 그녀를 보호하고
그녀를 보살필수 있게 해주십시요. 나는 그의 남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날마다 그녀를 볼수 있고 그녀가 날마다 나를
사형이라고 불러준다면 나는 평생토록 당신에게 다른 것을 바라
지 않겠읍니다.'
갑자기 사당안에서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사람이 있는
듯 했다. 적운은 창문아래로 몸을 피=하고 꼼작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한참이 지나자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다. 머리를 산
발한 거지 차림의 여자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적운은 곧
아무 이상이 없음을 깨닫고 생각했다.
'어째서 사매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을까?'
공심채는 꿈속에서 왁!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울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거지 여인은 그 소리에 깜짝 놀란듯 복도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자신이 머리를 감쌌다. 적운은 공심채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한
음성으로 아이를 달랬다.
"울지 말아라. 울지 마. 곧 엄마가 올게다. =곧 네 엄마가 올거
야."
거지 차림의 여인은 여자 아이가 우는 소리가 나고 적운이 아
이를 달래는 것을 보자 자신에게 아무런 해도 미치지 못할것으로
생각했는지 몸을 숨겼던 장소에서 나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왔
다. 적운은 계속 공심채를 달래고 있었다. 그 여인은 적운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이 잠을 자면서 귀신을 보고, 또 한 사람은 잠을 자며
너 벽돌을 쌓고... 아닙니다. 아니예요... 저에게 묻지 마세
요."
적운은 의아하여 물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인은 다시= 애매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아니예요. 어르신네께서는 저를 ㅉ아 냈어요. 저
를 ㅉ아냈지요.... 제가 ㅈ었을때에는 저를 좋다고 하더니... 사
람들이 말하기를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고 부부간의 애정
은 끝이 없다고 하던데... 어르신네께서는 언젠가 저를 부르러
오실 것입니다. 네, 분명 그러실거예요.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
을 쌓는다고 했는데..."
적운은 내심 짚히는 바가 있어서 생각에 잠겼다.
'사매 역시 옛날 남편에 대해서 옛정이 살아 있는 것은 아닐
까?'
이런 생각을 하자 적=운은 갑자기 가슴이 꽉 막혀오며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공심채를 안고 사당 밖으로 뛰쳐 나왔다. 적운은
그 더러운 여자차림의 거지가 당시 자기를 곤경에 빠뜨렸던 도홍
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10. 사랑 하는 사람아! (戀人)

적운은 담을 넘어 만씨 집의 서재로 다시 들어갔다. 날은 곧
밝아오려 하고 있엇다. 희미한 어둠속에서 적운은 한 사람이 땅
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언뜻 보니 척방인듯했
다. 적운은 깜짝 놀라 부싯돌을 부딪쳐 탁자위의 촛불에 불을 켰
다. 척방의 온몸은 붉은 피가 낭자했고 그의 배에는 단검이 하나
가 꽂혀 있었다.
그녀의 몸 옆에는 벽돌이 가득 쌓여 있었고 벽에는 구멍이 뚫
려 있었다. 만씨부자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적운은 고개를 숙여
척방의 몸 옆에 끓어 앉아 외쳤다.
"사매! 사매!"
적운은 목쉰 소리를 내지르며 온몸을 부르를 떨었다. 적운은
소늘 뻗어 척방의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아직도 따듯한 기운이
남아 있었고 코에서는 아주 약한 숨결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적
운은 다시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사매!"
척방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얼굴에 한줄기의 쓸쓸한 웃
음을 띄우며 말했다.
"사형, 정말 미안합니다."
적운은 말했다.
"말하지마오. 내가 당신을 구해주겠소."
적운은 공심채를 옆에대 내려놓고 두 손으로 척방의 몸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그녀의 몸에 꽂혀 있는 단도를 뽑으려
했으나 자세히 보니 단도는 그녀의 아랫배 깊숙이 박혀 있어서
그 단도를 뽑았다가는 그녀는 곧 절명하고 말 것만 같았다. 적운
은 어찌할바를 몰라서 잠시 망연해 하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지? 누가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소 ?"
척방은 씁슬히 웃으면서 대꾸했다.
"사형,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아
니, 말해서 무엇하겠어요. 나를... 나를 탓하지는 말아주세요.
나는 남편을 구출해 냈어요. 그런데... 그가... 그가..."
적운은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만규 그자가... 오히려 당신을 해친 것이구료. 그렇
지 않소 ?"
척방은 처연히 웃으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적운은
가슴을 컬로 에이는 듯한 아픔을 느끼었다. 척방의 목숨이 워낙
경각에 달려 있었기때문에 아무리 손을 쓴다해도 그녀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한편 적운의 마음속에는 한 줄
기의 질투심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당신은... 결구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군요. 자신이 죽는 줄
알면서도 그의 목숨을 살리려고 했다니..."
척방이 그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사형, 한가지만 약속해줘요. 공심채를 잘 보살펴 주겠다고 말
이예요. 마치... 당신의 딸처럼 보살펴 주세요."
적운은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적운은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이 못된놈은 어디로 갔을까 ?"
척방의 눈은 점차 빛을 잃고 있었고 목소리도 점차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그 동굴에 두마리의 호랑나비가 숨어 들어갔읍니다. 양삭백
축영대.... 사형, 보세요. 그 한 마리는 당신이가 한마리는 저예
요. 우리들은... 비록 이렇게 날아들어왔다가 날아가지만 영원히
헤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말씀 좀 해 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른 차츰차츰 작아졌고 몸에서도 서서히 따뜻한
기운이 사라지고 있었다. 적운은 한손으로 공심채를 껴안고 한손
으로는 척방의 시신을 안은채 만씨 집의 담을 뛰어 넘었다. 적운
은 본래 만씨 집의 저택을 불태우고 싶었으나 이내 생각을 바꾸
었다.
'이 집을 태워버린다면 만씨부자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
다. 사매의 복수를 하기위해서라도 이 집은 그대로 남겨 두어야
한다.'
적운은 폐허가 된 화원에 이르자 매화나무 밑에 구멍을 파고
척방의 시신을 묻었다. 척방을 묻기 전에 적운은 그녀의 몸에서
단도를 뽑아 자신의 품속에다 지녔다. 적운은 그 단도로 만씨부
자의 목숨을 끊어 놓으리라 생각했다.
적운은 너무 상심한 나머지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단지
계속해서 자기 자신만을 책망했다.
'어째서 그 두 악당의 숨통을 그 자리에서 끊어 놓지 않았던
가? 순간적인 실수로 사매의 목숨을 잃게 하고 말았구나.'
공심채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엄마! 엄마!"
공심채의 울음 소리는 적운의 마음을 더욱 산란하게 만들었다.
적운은 강릉성 밖의 한농가를 찾아 농부 내외에게 은자를 쥐어주
고는 공심채를 당분간 맡겼다. 그리고서 적운은 밤낯을 가리지
않고 만씨 집 주위에서 그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반달이 지나도록 그들의 그림자조차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상
한 것은 노곤, 복원, 침성, 손균, 풍탄등의 몇사람들이 실종된
후 다시는 만씨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였다. 만씨집의 노비들
도 사방으로 흩어져서는 어떤 자는 도적질을 하고 어떤자는 싸움
질을 일삼고 있었다.

강릉성 안에는 수많은 무림의 인물들이 사방팔방에서 모여들었
다. 어느 날 저녁, 적운은 몇 명의 강호의 호객들이 말하는 소리
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연성검결(連城劍訣)은 알고보니 당시선집에 숨겨져 있다고
하던데, 맨처음 네 글자로 '강릉성남' 이라고 합디다."
"그렇읍니다. 요사이 떠돌고 있는 소문들도 결코 적지 않습니
다. 그런데 아무도 그 네글자 다음의 글자들이 무슨 글자인지는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글자이든 말든 무슨 상관이요? 우리는 이곳 강릉성
만 지키고 있다가 사람들이 보물을 찾아내면 그때 끼어들면 되지
않겠읍니까?"
"맞습니다. 설사, 전부를 찾치할수는 없다고 해도 조금은 나누
어 가질수 있을 것입니다. 기다려보면 국물이 있긴 있을 것입니
다."
"하하! 요즘 서점에서 당시선집을 사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오늘 내가 책방에 들러 보았더니 미처 말도 꺼내기 전에
그곳에서 일하는 아이가 말하기를 '당신도 당시선집을 사려고 왔
지요? 이 책은 우리들이 지금 방금 가져온 것으로 사시려면 빨리
사세요. 꾸물대다가는 한권도 사지 못 할 것입니다. ' 그래, 하
도 이상해서 그 아이에게 물어 보았지요. '너는 내가 어찌 당시
선집을 사려 한다는 것을 알았느냐?' 그랬더니 그 책파는 아이가
무어라 한줄 아십니까? 그 아이가 말하기를 ' 어르신네께는 사실
대로 말씀드리지요. 요 며칠동안 몸에 도나 검을 찬 무술깨나 할
만한 사람들은 우리 책방에만 오면 열이면 열 다 그 책을 찾았읍
니다. 책 한권에 은자가 다섯 냥입니다. 어르신네도 한권 사시겠
읍니까 ?' 하더군요."
"제기랄 뭔놈의 책값이 그렇게 비싸 ?"
"당신은 책값을 잘 아십니까? 책을 사본적이 있나요 ?"
"하하! 나는 평생 책방이라고는 문턱도 넘지 않았소이다. 도박
이라면좋아하지만 책하고는 아예 담을 쌓았읍니다."
적운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내심 생각했다.
'연성검결의 비밀이 새어 나왔구나. 누가 그 말을 퍼뜨렸을까?
분명 만씨 부자의 말을 노곤등이 듣고서는 퍼뜨렸을 것이다. 그
래서 아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 지는 것이다.'
적운은 그 옛날 정전과 함께 감옥에 있을 때 많은 강호의 친구
들이 풍문을 듣고 찾아온 후 정전에게 당했던 일이 떠 올랐다.
'정전형의 큰일을 아직 처리하지 못했구나. 정전형의 일은 내
복수보다 훨씬 중요하다.'
능소저의 아버지는 강릉부의 지부였다. 적운은 강릉성에서 가
장 큰 장의사와 비석을 만드는 곳에서 능소저의 묘가 강릉성의
동문(東門)밖 12리정도 되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적운은 곧 한자루의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동문 밖을 나섰다.
그는 곧 그 무덤을 찾을 수가 있었다. 묘비에는 '애녀능상화지묘
(愛女凌f
f
霜花之墓)'라는 일곱 자가 쓰여져 있었다. 묘지 앞에는
꽃도 나무도 없었다. 능소저는 생전에 꽃과 나무를 무척 사랑하
였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묘지 앞에 한그루의 나무도 꽃도 심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딸? 사랑하는 딸? 하하하... 당신은 정말로 딸을 사
랑했단 말이요?"
적운은 냉소를 터뜨렸다. 정전과 척방을 생각하자 지신도 모르
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눈물이 다 마른 줄 알고 있었는데 능상
화의 묘지 앞에 이르니 다시 눈물이 펑펑 흘러 내렸다. 그묘지는
인가와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었으나 낯에는 사람들의 이목이
있어서 그 무덤을 파헤칠수가 없었다.
날이 저물자 적운은 삽을 들었다. 삼합토가 봉해진 큰돌을 젖
히자 비로서 관이 드러났다. 몇년동안 계속된 고초로 인하여 적
운은 쉽게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교교
한 달빛아래에서 관을 보게 되자 정대형이 바로 이 관때문에 참
담한 죽음을 당했다는 생각이 떠올라 비통한 나머지 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었다.
능퇴사는 이 관의 겉에 금파순화(金波旬花)라는 독을 묻혀 놓
았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고, 관을 이곳까지 옮겨와 묻었기
때문에 독은 다 제거되었으리라 생각했지만 적운은 감히 손으로
관을 잡지를 못했다. 적운은 혈도를 뽑아 관뚜겅의 틈새에 천천
히 밀어 넣었다. 그 혈도는 쇠를 자르고 돌을 자를수 있는 칼이
었기 때문에 목재로 된 관은 마치두부를 자르는 듯이 맥을 못
추었다. 적운은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관뚜껑의 못을 모두 제거
할수 있었다. 적운이 손에 힘을 불끈 주자 관뚜껑은 날아가고 말
았다.
순간 관속에서 뼈만 남은채 두손을 위로 향하고 있는 시체를
볼수가 있었다. 관뚜껑이 떨어져 나가면서 두 손이 움직이는 모
양이 마치 해골이 살아서 음직이는 것만 같았다. 적운은 깜짝 놀
라 생각했다.
'능소저가 입관할때 어떻게 두 손을 위로 쳐들 수가 있었을까?
정말 이상한 일이로군!'
관 안에는 수의나 수장품들이 전혀 없었다. 능소저는 단지 하
나의 얇은 옷을 입고 묻혔던 것이다. 적운은 묵묵히 합장했다.
'정전형, 능소저, 당신 두분은 살아서 부부가 되지 못하고, 죽
어서야 같이 묻히는 소원을 이루게 되었군요. 두 사람의 혼백이
있다면 지금은 응당 구천에서나마 기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적운은 등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끌러 정전의 화장한 뼈를 능
소저의 시신위에 뿌렸다. 이후 적운은 땅바닥에 무릎을 대고 공
손히 절을 네번한 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정전형의 뼈를 쌌
던 보자기를 손에 들고 열려진 관뚜겅을 덮고자 하였다.
뿌연 달빛 아래에 가서 관뚜껑 안쪽에 쓰여진 희미한 글자를
우연히 볼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적운은 관뚜껑의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정랑, 정랑. 내세에 다시 부부가 되기를...'
적운은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땅바닥에 털석 주저 앉았다.
그 글자는 분명 손톱으로 새겨쓴 것이다. 한참을 생각해 보던 적
운은 그 이유를 알수가 있었다.
'능소저는 산채로 묻혔던 것이구나. 관에 집어넣어 졌을때 그
녀는 아직 죽지 않은 몸이었다. 이 글자는 그녀가 죽기전에 손톱
으로 새겼던 것이리라. 그래서 죽은 후에도 그녀의 두손은 위로
치켜져 있었던 것이로군. 천하에 이렇게 악독한 애비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정대형과 능소저는 결국 그에 굴하지 않았던 것이
다. 이것은 그녀의 한이 맺힌 글자이다.'
적운은 또 생각했다.
'능지부는 정대형이 탈옥한 것을 알고 틀림없이 그가 복수를
할 것이 두려워 급히 관뚜껑에다가 금파순화를 묻혔던 것이구나.
놈의 마음은 실로 금파순화보다 백배, 천배 더 독하구나.'
적운은 다시 관뚜껑 안쪽에 눈을 가까이 해서 다시 그곳에 새
겨진 글자를 보았다. 그 글자 아래에는 또 세줄의 글자가 새겨
져 있었다. 그것은 '51, 33, 28'등과 같은 숫자로 되어 있었다.
적운은 큰 숨을 한번 들이쉬고 생각했다.
'맞다. 능소저는 죽기 전까지 정대형과 합장되기를 원하고 있
었군. 그녀는 정대형에게 말하기를 누구든 둘을 합장시켜 준다면
연성결(連城訣)을 그 사람에게 알려 준다고 했지. 정대형은 그
폐허가 된 장원에서 나에게 이야기해 주셨지만 미처 말을 다 하
기도 전에 독이 몸에 퍼져 죽고 말았지, 사부의 그 검보위의 비
밀은 사매가 눈물로 발견한 것인데 만씨부자가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지. 나는 이로부터 그 비밀이 사라진줄 알았는데 능소저
가 이곳에 써 놓았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적운은 묵묵히 축원을 하였다.
"능소저, 당신은 정말로 신의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호의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낙심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정
대형과 당신 곁에 같히 묻히고 싶읍니다. 그러나 아직 만씨주ㅂ
와 당신의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지 못했읍니다. 금은보화는 내게
마치 먼지와도 같은 뿐입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읍니다."
적운은 말을 하면서 관뚜껑을 닫으려고 하는 찰나 머릿속에서
한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옳다! 만씨부자가 지금어디에 숨어 있는지 나는 모르고 있다.
아마 살아 생전 그들을 찾을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물이
숨겨져 있는 비밀을 세상에 드러낸다면 그들 만씨 부자는 틀림없
이 소문을 듣고 그곳에 나타날 것이다. 이 비밀은 정말로 크나
큰 미끼이다. 만씨부자는 의심이 많은 자들이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이 비밀의 소문을 듣고는 오지 않고는 못 배길것이다.'
적운은 관뚜껑을 내려놓고 숫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
고는 한 글자, 한 글자 혈도의 검끝으로 숫자를 삽에다가 새겼
다. 그 이후 다시 자신이 새긴 글자가 틀림이 없는 가를 확인한
후 관뚜껑을 닫고 석판을 덮고 흙을 덮어 원상태로 만들어 놓았
다.
"정대형의 마지막 유언을 이제야 지켜드리게 되었군요. 복수를
한 이후 이곳에 와서 주위에다가 수백 그루의 국화를 심어 주어
야겠다. 정대형과 능소저는 국화를 제일 좋아하셨지. 될 수 있는
대로 춘수벽파라는 국화를 찾아서 이곳에 심어주어야겠다."

다음날 아침 강릉성 남문 옆의 성벽에는 세줄의 석회수(石灰
水)로 쓰여진 글자가 출현했다. 글자의 크기는 사방 한자정도였
기 때문에 멀리에서도 '4,51,33,28...'등의 글자를 볼수가 있었
다. 이상한 것은 그 글자가 땅과 두장 정도 위치에 쓰여져 있었
다는 점이었는데 강릉성 안에는 그렇게 긴 사다리가 없었다. 사
람이 그 글자를 쓰기 위해서는 성 위로부터 밧줄로 몸을 묶고 내
려와서 쓸수밖에 없었다.
이 몇 행의 글자가 쓰여진 곳에서 십여장 떨어진 성 한쪽 귀투
이에서는 거지로 분장한 적운이 옷을 벗어들고 따뜻한 햇볕 아래
에서 이를 잡고 있었다.
남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
는 사이에 강릉성의거리나 시장, 혹은 찻집에서 사람들의 의견
이 분분해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남문으로 와서 그 숫자들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그 숫자들은 써 있는 장소가 특출할뿐 그
리 잘 쓴 글씨도 아니어서 일반 사람들은 한참 쳐다보다가 서로
이런저런 억측들만 하면서 돌아가곤 했다. 그 자리에는 몇명의
강호 협객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손에 '당시선집'이라는 책을 들고 있었는데, 모
두들 벽에 쓰여진 숫자를 베껴쓴후 한참이나 눈쌀을 찌푸리며 생
각에 잠기기도 했다.
적운은 손균이 온 것을 보았으며, 침성이 온것도 보았다. 한참
이 지나자 노곤도 왔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손에 각자 한권씩의
책을 지니고 있었고, 만씨부자의 대화를 들어 숫자와 비밀간의
관계가 깊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연성검법의 초식의 차례를
알수가 없어서 숫자의 한자 한자를 어떻게 시에 응용해야 하는지
를 모르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오로지 만진산, 언달평, 척장발
만이 알 뿐이었다.
노곤등 세사람은 몰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리가 멀었기 때문
에 적운은 그들의 말을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세 사람이 한참동
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후
세사람은 분장을 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명은 과일장사였고,
다른 한사람은 나무를 파는 사람이었고, 한명은 곡괭이를 맨 농
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사람은 성의 한 귀퉁이에 앉아서 지
나가는 사람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적운은 그들의 마음을 추측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만진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 비밀을 알아내지 않
고도 만진산을 따라가면 보물을 찾아낼수 있고, 그 보물을 다 빼
앗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조금은 나눠가질수 있을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다시 사부와 만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나 부자
가 될 판에 어찌 위험하다 해서 물러 날수가 있겠는가!
'연성검보'중의 맨 앞 숫자는 이미 이 바닥에 널리 퍼져 있었
다. 곧 '4, 51, 33, 28'의 네 숫자는 바로 강릉성남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아무리 멍청한 사람일지라도 그 후의 많은 숫자들이
바로 검보중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성 한쪽 구석에는 시간이 갈수록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 지고 있었다. 어떤 자는 분장을 한 모습으로, 어떤 자는 본
래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적운이 세어보니 모두 78명이었다.
다시 시간이 지나자 복원과 풍탄도 나타났다. 그들 사형제 두사
람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다투고 있
었다. 자칫 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였으나 결국 조용해지
더니 강가 옆에 앉고 말았다.
오후가 되어도 만씨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벌써 어둑어둑해
졌으나 그들은 여전히 출현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욕
지거리를 하고 있었고, 심지어 만씨집안의 조상까지 욕을 했으
며, 그 집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늘어 놓았다.
날씨가 어두워지려 하자 서당 선생인 듯한 자가 종이 한장과
필묵을 들고서 눈치를 힐끗힐끗 보면서 성벽에 적혀져 있는 숫자
를 적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심심했는지 아니면 화를 낼만한 대
상이 없어서였는지 그 사람을 잡고 물어보았다.
"당신은 이 숫자들을 적어서 무엇하려고 하는거요?"
그 선생은 대답했다.
"이 늙은이가 나름대로 쓸 데가 있읍니다. 다른 사람은 굳이
알 필요가 없지요."
그러자 다시 그 사내가 말했다.
"말할 거요? 안할 거요?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뭉개 놓
겠소."
그러면서 사내는 무쇠같은 주먹을 그 선생의 코끝에다가 들이
대었다. 선생은 두려운 듯이 벌벌 떨며 말했다.
"네... 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것을 적어 오라고 시켰읍니
다."
다시 사내가 말했다.
"그게 누구요 ?"
"한분의 노인장입니다. 아니... 분명히 말씀드리겠읍니다. 그
분은 이 성안에서 명성이 자자한 만진산 어른이시요. 당신은 절
대로 그분의 노여움을 피할수는 없을 것이오."
만진산이라는 이름이 입에서 튀어 나오자 여러 사람들은 동시
에 웅성대기 시작했다. 적운은 내심 기뻐했다. 그 기쁜 마음속에
는 많은 원한과 복수심, 그리고 괴로움이 섞여 있었다.

그 늙은 서당선생은 전전긍긍하며 앞에 서서 절뚝절뚝 똑바로
동쪽을 향해서 걷고 있었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 시
작했다. 만진산이 오지 않자 그를 직접 찾아 나섰던 것이다. 오
로지 만진산이만이 그 비밀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
들은 그 사내를 칭찬하였다.
"노형의 선견에는 정말 감탄하였읍니다. 우리는 만진산이 설마
사람을 보내어 숫자를 적어오도록 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
소. 만일 노형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꼼짝없이 사흘 낯, 사흘
밤을 앉아서 세면서도 만진산의 교활한 수뭏萱 새까맣게 모를뻔
했소."
그 사내는 의기양양해서는 말했다.
"나는 첫눈에 보자마자 그자가 만진산이 보낸 사람인줄 알았소
이다."
그 사내는 마치 자기가 좋은 일이라도 한듯 의기양양해 했다.
적운은 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 있으면서 생각했다.
'만진산은 교활하고 무술에 능한 사람이니 절대로 그렇게 쉽게
이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다른 흉계
가 있을 것이다.'
이때 이들 일행은 남문에서 꽤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그는 고
개를 돌려 성벽을 바라보았다. 언뜻 보나 한 사람의 그림으微 성
벽을 스쳐서 서쪽으로 급히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적운은 생각
했다.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은 저 사람을 ㅉ으면서 그가 달아나지 못
하도록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만약 만진산을 찾는다 하
더라도 역시 만진산의 곁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넓은 강릉
성에서 만진산을 찾는 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 한 무
리의 사람들을 찾는 다는 것은 쉽기가 여반장이니 이 사람들의
뒤를 굳이 따를 필요가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그는 얼른 나무뒤로 몸을 숨겼다가 경공을 사용
하여 남문으로 되돌아갭【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자가 사
라진쪽을 향해 급히 달려가보니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나 그 자
를 찾을 수가 있었다. 그의 경공 역시 대단한 것이었으나 적운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뒤에서 사람이 ㅉ아오는
것도 모르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적운은 그가 한 작은 집 앞에 이르러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
어가는 것을 보았다. 적운은 문밖에 서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
다. 한참후에 작은 집의 창문을 통해서 불빛이 비쳐 나왔다. 적
운은 잽싸게 창가로 달려가 문틈을 통해 안을 뻗離罹맘年. 방안
에는 한 늙은이가 등을 적운쪽으로 하고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
은 알아 볼수가 없었다. 그 늙은이는 책상위에 한권을 책을 펼쳐
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당시선집'임을 알아 볼수가 있었다.
그는 한하자루의 붓을 쥐고 한 장의 노란 종이 위에다가 강릉성
남 이라는 네 글자를 쓰고 있었으며, 그의 입에선 가볍게 '15,1
6,15,16... 열여섯번째 글자.'등의 말이 세어 나오고 있었다. 이
후 그는 바로 종이위에다가 편(扁)자를 썼다. 적운은 깜짝 놀랐
다.
'저 사람이 당시(唐詩)에서 글자를 찾아내다니,설마하니 그
역시 연성검법을 알고 있단 말인가 ?'
그의 뒷모습을 보아 틀림없이 만진산은 아니었다. 그 늙은이는
낡은 회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책을 살펴보면서 손가락을 꼽아 숫자를 계산
하기도 하고, 또 글자를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모두 스물
여섯자를 썼다. 그 글자의 뜻은 대충 이러했다.
"강릉성남의 서천영사(西天寧寺)의 대전불상을 향해 경건하게
절을 하고 기도를 하면 석가여래는 왕생극락의 복을 내릴 것이
다."
그 늙은이는 화가 난 듯 붓으 책상위에 던지면서 말했다.
"무슨 불상을 향해서 경건하게 절을 하고 기도를 하면 석가여
래가 왕생극락의 복을 내린단 말인가! 왕생극락을 하라니, 제기
랄. 나더러 염라대왕 앞에나 가란 소리가 아닌가 ?"
적운은 이자의 음성이 매우 귀에 익다는 것을 느꼈다. 적운이
생각애 잠겨. 그의 얼굴이 이쪽을 향했다.
"둘째 사백이다!"
그는 이어 언달평이 왕생극락이니 염라대왕이니 하던 말이 생
각나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들 세 사형제는 연성검보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서로
죽이고 사부까지 죽였는돋... 헤헤... 왕생극락을 하려고 고생을
한 꼴이 됐군!'
그는 밖으로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지만 방에서는 언달평이 크
게 웃고 있었다.
"하하하! 나보고 석가여래를 향해서 경건하게 절을 하면서 빌
라고? 그러면 나무조각이나 흙으로 빛어 만든 빌어먹을 보살이
나에게 복을 내리신단 말이지? 하하하! 제기랄... 정말 이럴수가
있을까? 이럴수도 있느냔 말이다. 강릉성내에서 수백명이나 되는
영웅호걸들이나 후레자식 또는 강도녀석들이 다투는 것도 모두
다 이 한가지 목적인 왕생극락을 위해서렸단 말이렸다? 퓔逑
하..."
웃음소리는 처량한 기색을 띄고 있었다. 언달평은 웃음을 그치
지 않으면서 당시선집을 박박 찢어대고 있었다. 적운은 자기 자
신이 몇년이나 고난을 겪어야 했으며 척방을 참혹히 죽도록 한
연성검결이 결국이 희롱하는 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자 미친
듯한 분노가 가슴 속을 채우는 걸 느끼고 앙천대소를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때 언달평은 웃음을 뚝 그치고는 창 밖을 내
다보며 중얼거렸다.
"에라!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이왕 속는셈 치고 천영사에 가
볼까 말까? 밑져야 본전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제기랄! 강릉성
남쪽이라... 맞다! 거기에 절이 하나 있었던 걸 본 기억이 난
다."
그는 소매자락을 휘둘러 기름등잔의 불을 끄고는 문을 열고 나
와서 경신술을 전개하여 서쪽을 향해 몸을 날려 달려가기 시작했
다. 적운은 잠시 망설였다.
'내가 만진산을 찾아가야 할까? 아니면 언사백을 따라가야 하
나? 으음, 아무래도 한무리의 사람들을 찾기가 쉬우니 아무래도
먼저 언사백을 따라가야겠다.'
그는 생각을 마치자 언달평의 뒷모습을 ㅉ아 따라가기 시작했
다. 반시진도 되지 않아 언달평은 어느 한채의 낡은 절에 도착했
다. 그는 먼저 절밖에서 안의 동태를 살핀 다음에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절 안팎이 조용하고 사람이 기척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서야 비로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천영사가 있는 곳은
황폐하였고 몇년동안 수리를 하지 않았으며 스님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언달평은 대전 앞에 이르러 부싯돌로 신단 위의 초에 불
을 붙이려고 했다. 이때 바라보니 그 촛대의 촛농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의아하여 촛대를 만져보니 아직 따듯한 온기가 남
아 있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얼마전에 어떤 사람이촛불에 불을
당긴 흔적이 아닌가?
언달평은 경계심이 생겨서 불을 끄고 사방을 살펴보려고 하는
데 갑자기 등짝에 화끈한 감각이 느껴졌으며 어느센가 한자루의
예리한 검이 그의 가슴까지 꿰뚫고 삐져 나왔다. 그는 짤막한 비
명을 지르고는 즉시 절명하고 말았다.
적운은 문뒤에 숨어 있다가 불빛이 꺼지면서 동시에 언달평의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를 듣고 즉시 언달평이 흉계에 걸
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와같은 현상은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
난 일이었으므로 적운으로서도 언달평을 구출할 겨를이 없었다.
적운은 언달평을 죽인 흉수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려고 했다. 어
둠속에서 '흐흐흐' 하고 냉소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가
들리는 순간 적운은 자기도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껴
야 했다. 그 음성은 음산하기 그지 없었으며 매우 귀에 익었다.
갑자기 촛불에 불이 당겨지면서 한사람의 그림자가 생겨났다. 그
사람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적운은 하마트면 '사부님!' 하고
소리 지를뻔 했다. 그 사람은 바로 척장발이었다.
그는 언달평의 등뒤에 꽂혀 있는 장검을 뽑아내고 언달평의 시
체에 발길질을 퓔構炙ぜ 다시 그의 등을 연신 칼로 내리찍었다.
적운은 사부가 동문사형을 살해하고 그의 시체를 난자하는 것을
보고 사부라는 소리를 다시 삼키고 말았다. 척장발은 킥킥 괴이
한 웃음을 내며 말했다.
"둘째사형, 그대도 연성결의 비밀을 찾아 냈었군! 히히히...
강릉성 남서쪽 천영사의 대전에 있는 불상을 향해 경건하게 절을
하고 간절하게 빈다? ... 둘째 사형, 과연 석가모니는 그대에게
복을 내려 왕생극락을 시켜드린 셈이 아니겠소? 이야말로 석가모
니 불상의 크나크신 자비가 아니겠읍니까? "
그는 다시 고갭낯 돌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래불상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음흉한 빛이 가득했고 매서운
눈초리로 여래불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제미랄놈의 불상아, 네놈이 나의 평생을 망쳐놓았고 나를
평생동안 희롱했구나! 이 벌어먹을 게 나를 이꼴로 만들다니, 정
말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는 몸을 날려 신단위로 올라서며 단검을 빼어들고 불상의 배
를 세번이나 검으로 힘주어 내리 찍었다. 일반적으로 불상은 흙
이나 나무로 만들기 일수인데 이 불상은 쇠로 만든듯 검과 부ㄷ
히자 챙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다시 튕겨져 나왔다. 그는
촛불을 들고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 보았다. 검의 흔적이 깊게 패
인 곳에서는 찬란한 금빛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척장발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급히 손가락으로 자국이 난 자리의 흙을 파
헤쳐 냈다. 그러자 번쩍이는 황금빛이 눈을 부시게 하지 않는가?
겉은 진흙을 발랐지만 그 불상은 사실 순수한 황금으로 만든 것
이었다. 그는 참을수 없어 부르짖었다.
"이 커다란 불상은 모두 금으로 만들어졌구나."
이 불상의 크기는 높이만 삼장정도로 컸다. 적게 잡아도 오륙
만릴牡犬 되는 황금덩어리였다. 그것이야말로 큰 보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척장발은 미친듯 기뻐하다가 문득 정신을 가다듬
고 이곳 저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불상의 허리부근에는 하나의
작은 문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는 그곳에다 대고 힘차게 칼질을
했다. 흙이 사방으로 튀고 단검이 닿는 곳에 수십개나 되는 틈바
구니가 드러났다. 그는 검을 틈속에 쑤셔 넣고 마구 휘젓었다.
갑자기 검이 뚝 하고 부러졌다. 그는 부러진 검을 문틈 사이에
밀어 넣고 이리저리 흔들고 비틀어댔다. 몇번 그렇게 하자 그 문
은 많이 헐거워졌다. 척장발은 장검을 버리고 손에 힘을 주어
문을 뜯어냈다. 촛불을 비쳐보니 불상의 뱃속에는 온갖 보석들이
영롱하고 찬란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이 불상의 뱃속에는 얼
마나 많은 보물들이 담겨져 있는지는 얼핏 보아서는 알 수도 없
을 지경이었다. 척장발은 침을 꿀걱 삼키고는 손을 내밀어 그
안에 들어있는 보석을 꺼내려고 했다. 문득 신단이 흔들리는 듯
했다. 그는 내심 의아하고 경계심이 생겨서 몸을 날려 아래로 떨
어졌다. 좌측발이 막 땅에 닿으려고 하는 순간 아랫배가 시큰해
져 왔다. 이미 혈도를 짚히고 만것이다. 그는 꽈당하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는데 바로 이때 신단 아래에서 한사람이 나오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척사제, 자네가 이곳을 찾았고 둘째도 이곳을 찾았는데, 어째
서 대사형인 내가 이곳을 찾아오리라고 예측하지 못했는가?"
바로 만진산이었다. 척장발은 원래 매우 침착한 사람이었으나
보물에 현혹된 나머지 일시 평상시의 기민함을 가질 수 없게 되
었고 만진산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척장발은 한 맺힌 음성으
로 부르짖었다.
"처음에 당신이 나를 죽이렇졀 했을때도 나는 죽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지금에 와서 당신의 손에 죽게 되었구료."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지. 분명히 자네를 죽여서 벽속
에 밀어넣고 밀봉하였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났나?"
척장발은 눈을 감고 대답하지 않았다. 만진산은 말했다.
"네가 대답하지 않는다고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때 너는 나
를 죽이지 못하자 숨을 멈추고 죽은채 하여 벽속에 갇힌 다음에
방법을 강구했을테지. 멋진 솜씨야, 멋진 솜씨! 당시 나는 막힌
벽에서 벽돌이 삐죽 튀어 나온 것을 보고 속으로 조금 이상하다
고뉨 생각했었지만 네가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리라곤 생각도 하
지 못하였다. "
만진산은 그날 척장발을 벽 속에 쑤셔 넣고 다음날 벽의 벽돌
이 한개 툭 튀아 나온 것을 보고 불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몽유
병을 얻은 것이고 척장발이 나올까봐 꿈속에서까지 벽을 쌓고 쌓
고 쌓았던 것이다. 만진산은 냉소하며 말했다.
"너는 참으로 무섭더군. 네놈의 딸이 나의 며느리가 된 것을
알면서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지. 네게 묻겠는데 왜 그랬느냐? 그
이유는 무엇이냐 ?"
척장발은 그에게 가래침을 뱉었다. 만진산은 몸을 날려피하고
는 웃으면서 말했다.
"세째야, 너는 깨끗이 죽겠느냐? 아니면 가루가 되어 고통을
받다가 죽겠느냐 ?"
척장발의 얼굴에는 공포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좋다, 내가 말해주지. 내 딸이 그 검보를 홈쳐다가 그 산동굴
에 갖다 놓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나는 그년을 내딸로 여기지 않
게 되었다. 이제야 알겠느냐? 이 만가놈아, 빨리 나를 처치해 버
려라."
만진산은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다. 내가 통쾌하게 죽여주지. 이치대로라면 나는 너를 이렇
게 쉽게 죽여서는 안되지만 나는 시간이 너무 없거든. 빨리 불상
을 원상태로 회복시켜 놓아야 하니까. 아우야, 너는 머나먼 저승
길로 안녕히 가려므나."
말을 하면서 그는 검을 척장발의 가슴을 향해 내리 찍었다. 붉
은 빛이 번쩍이면서 만진산의 팔과 검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또
한 그의 다리 한 쪽도 잘라져 있었다. 바로 적운이 혈도로 척장
발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그는 고개를 숙여 척장발의 혈도를 풀
어주면서 말했다.
"사부님, 놀래셨지요 ?"
이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척장발은 멍청해져 한참을 뚫어져
라 쳐다보더니 그제서야 적운을 알아보고 말했다.
"운... 운아... 너였구나."
적운은 사부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는데 지금 운아라는 소리
를 듣자 자기도 모르게 슬픔이 밀려왔다. 적운은 말했다.
"네, 사부님. 적운입니다."
척장발은 말했다.
"이 모든 것을 너는 보았느냐 ?"
적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사매는... 사매는... 그녀는... 그녀는..."
만진산은 한쪽 발이 잘려 나가자 바닥을 기어서 절 밖으로 나
갔다. 척장발이 재빨리 달려가 검으로 찌르자 검 끝이 가슴 앞까
지 튀어 나오며 절명하고 말았다. 척장발은 두사형의 시체를 쳐
다보며 말했다.
"운아, 네가 때를 맞추어 와줘서 나의 생명을 구했구나. 그런
데 저기 오는 사람은 너의 사매 방아가 아니냐 ?"
말을 하면서 한쪽을 가리켰다. 적운은 척방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몸을 돌려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그순간 등뒤가
아파왔다. 그는 잽싸게 손으로 기습해온 적의 손목을 잡았다. 머
리를 돌려보니 그 사람의 손에는 번쩍 번쩍 빛나는 비수를 들고
있었다. 바로 사부인 척장발이었다. 적운은 믿을 수가 없어서 말
했다.
"사부... 사부님,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읍니까? 왜 저를 죽
이려고 하십니까?"
구榴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조금전 사부가 자기의 등을 찔렀
을때 자기는 오잠의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수 있었다
는 것을...
척장발은 그에게 손목이 잡히자 반신이 마비되고 손을 쓸 수가
없자 놀람과 분노가 교차되어 무섭게 말했다.
"좋다. 너는 매우 높은 무공을 배웠구나. 그래서 사부는 안중
에도 두고 있지 않는 것이냐! 자, 너는 빨리 나를 죽여라. 죽여!
왜 죽이지 않느냐!"
적운은 손을 조금 풀며 말했다.
"제가 어찌 사부님을 죽일 수 있겠읍니까?"
척장발은 외쳤다.
"너는 성인군자처럼 가장퓔構 있구나! 황금으로 만들어진 큰
불상을 보고도 너는 혼자 독차지 하고 싶지 않느냐? 내가 먼저
너를 죽이지 못했으니 내가 네 손에 죽는 것은 당연하다. 이 금
불상의 뱃속에는 가치를 알수 없는 많은 보물이 있다. 너는 왜
나를 죽이지 않느냐? 왜 나를 죽이지 않느냐?"
그는 큰 목소리로 외쳐댔다. 그의 외침속에는 탐욕과 애석함과
아까움과 울화가 충만되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
라 상처 입은 야수가 황야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같았다. 적운은
고개를 흔들며 뒤로 몇 발자욱 물러나더니 말했다.
"사부가 나를 죽이려고 한것은 다 이 황금불상때문이었군요?"
척장발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사부를 죽였고, 사형도 죽였고,
친딸의 생사안위도 걱정하지 않는데 어찌 제자 하나쯤 죽이지 못
하겠는가? 그는 마음속에 정전의 말이 떠 올랐다.
'사람들은 그를 철소횡강이라고 부른다. 못할 일이 없지.'
그는 뒤로 물러서면서 말했다.
"사부님, 나는 이 황금불상에 미련이 없읍니다. 당신 혼자서
가져다가 부자가 되십시요."
그는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한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
부도 필요없고, 사형과 사제돋 필요없으며, 친자식까지 버리면서
재물의 성(城)을 쌓아봐야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척장발은 자기의 귀를 믿을수가 없어 생각했다.
'세상 사람가운데 이렇게 많은 황금과 보물을 보고 그 누가 마
음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적운 이놈에겐 다른 어떤 계략이 있는
지도 모르지.'
그는 이미 울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었던 차라 큰소리로 말했
다.
"너는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느냐? 이것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불상이고 뱃속에는 보물이 그득한데 너는 왜 안가지겠단 말이냐?
나는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이냐?"
적운은 고개를 흔들며 절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대 갑자기
발걸음 소리다 들리더니 많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밀려왔다. 그는
몸을 날려 지붕위로 올라가 밖을 살펴 보았다. 백여명의 사람들
이 횃불을 손에 들고 서둘러 달려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한무리의 강호협객이었다. 한사람이 욕을 했다.
"만규, 이 빌어먹을 놈아! 빨리 가자, 빨리 가!"
적운은 그곳을 떠나려 했으나 만규라는 소리를 듣자 즉시 발걸
음을 멈추었다. 아직 척방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한무리의 사람들은 서로 다투며 으暄횬막 들어왔다. 적운은
분명하게 볼 수가 있었다. 만규는 몇명의 대한에게 끌려 오고 있
었는데 몸에는 학자가 입고 있는 옷을 입고 있었고 몸에 상처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벌써 늘씬 두들겨 맞은 모양이었
다.. 알고보니 그는 서당선생으로 자기를 꾸미고 고의로 성문 밖
에 나타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려고 했던 것이
다. 그래서 만진산이 천영사에 당도하여 보물을 찾도록 했던 것
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그를 심문해 결국은 마각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각자가 목숨을 위협하자 그는 보갸 없이 그들을 이끌
고 천영사에 도달한 것이다.
척장발은 사람 소리가 나자 급히 몸을 날려 신상위로 올라가
불상에 난 칼자욱을 숨기려고 했지만 때는 늦어 모든 사람들은
그가 신상위에 서서 불상의 배를 끌어안고 옮기려는 것을 발견하
고 말았다. 수십개의 횃불이 절안을 비추자 절안은 마치 대낯처
럼 밝아졌다. 각자는 황금불상을 보자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갔
다. 서로 다투어 불상에 붙어 있는 흙은 털어내고 있었다. 각자
의 도검이 불상에 부딪치자 얼마 안있어 불상이 찬란하게 금빛으
로 빛나게 되었다. 돋愍潔 불상 뒤의 문을 찾아내 너도 나도 그
속의 보물을 끄집어 냈고 그중 힘센 자들은 너도 나도 품속에 간
직하고 있었다. 갑자기 문밖에서 호각소리가 들리더니 절문이 열
리며 수십명의 병정이 들어왔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모두 멈춰라! 지부대인이 도착하셨다! 모두 멈춰라!"
이때 한 사람이 관복을 입고 들어왔다. 바로 강릉부지부인 능
퇴사였다. 그는 성내와 성밖에서도 이름이 나 있었으므로 이 강
호의 협객등중에는 그의 부하가 섞여 있어서 소식을 듣자 마자
즉시 병사를 이끌고 당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강호의 협객들은
이 많은 보화를 보자 관리를 눈에 두지도 않았다. 각자 목숨을
다해 보석을 빼앗기에 정신이 없었다. 땅바닥에는 진주, 보석,
금그릇, 백옥비취 산호등의 온작 보물이 널려 있었다.
능퇴사의 부하들도 어찌 참을수 있겠는가? 병정들은 몸을 숙여
보물들을 주웠고 우두머리들 조차도 보물줍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어느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척장발도 주웠고, 능퇴사도 주웠으며, 만규도 상처뿐인 몸을
이끌고 보물을 줍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싸움이 안 일어 날수가 없었다. 이기는 자는 이겼
고 피를 흘리는 자는 피를 흘렸고, 죽는 자는 죽었다. 싸움은 점
점 치열해졌으며 어떤 자는 불상의 머리에 올라가 아래를 향해서
무작정 검을 내리 찍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슴팍을 머리로
들이받기도 했다. 아수라장이었다.
적운은 생각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싸워야 할까? 아무리 재물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 미치고
말았어. 미쳤단 말이야!"
지금 서로 물고, 뜯고, 찌르고, 베어대며 싸우는 사람들 틈엔
낙화유수 강남사협중의 한명인 화철간도 있었뉨. 그들은 서로 죽
이는 한편 보물들을 주워서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으며 호주머니
가 다 차자 입속에다가 물기도 했다.
적운은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이 보물에는 극독이 묻어 있다고 정형이 말하지 않았던가? 옛
날 보물을 감추었던 양원제는 위병이 빼앗아 갈 것을 염려하여
보물에다가 독약을 묻혔다 그러지 않았던가?'
그는 사부를 구해야 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
다.

그로부터 얼마후 적운은 정전과 능상화의 묘 앞에 몇백 그루의
국화를 심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손수 국화
를 심었다. 그는 원래 농부였으므로 밭을 갈고 곡식을 심는데 익
숙해져 있어서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옛날에는 꽃이 아닌 고추
와 호박, 배추, 가지, 공심채등을 심었던 것이다.
그는 척방의 딸 공심채를 품에 안고 말을 달려 형주성을 떠났
다. 그는 강호의 사람들이 싫어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에 가서
공심채와 함께 공심채를 심으며 살려고 떠나는 것이다.
몇달후 그는 서장땅에 있는 옛날의 눈덮힌 계곡으로 돌아왔다.
거위의 깃털같은 눈송이가 펄펄 내리고 있었다. 그는 공심채를
안고 옛날의 그 동굴의 앞에 이르렀다.
문득 동굴에서 멀지 않은 산벽에 한 소녀가 서 있는 모습이 보
였다. 그녀는 바로 수생이었다. 그녀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힘껏 달려왔다. 그녀의 검고 긴 머리칼이 몸 뒤로 흩날렸
다. 그녀는 적운을 향해 달려오면서 외쳤다.
"나는 당신을 이곳에서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요! 나는 벌써 당
신이 이곳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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