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2-1

3학년2반 | 2022.03.12 07:20:05 댓글: 0 조회: 106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file.moyiza.kr/fiction/4355056
소오강호 제 2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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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고봉은 말했다.

[임진남, 자네는 청성파의 고수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벽사검보의 비밀을 토설하지 않았다고 자랑하고 있군! 맞아! 그대의 집에는 벽사검보가 있지만 실토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겠지. 좋아! 매운 맛을 보여 주겠다.]

잠시 후 목고봉은 다시 말했다.

[자네는 이미 초죽음이 되도록 고문을 당했으니 어디 더 손을 쓸 데가 없군! 가만 내버려 두어도 한 시진 이상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자네가 죽은 다음 임평지 그 녀석을...... 험...... 나는 그 녀석을......]

임 부인은 놀라 말했다.

[우리 아들은......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되었죠? 무사한가요?]
목고봉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아직은 무사하다. 검보의 행방을 알려 준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아들을 데려다 주지. 그 녀석은 나에게 사로잡혀 있거든! 나는 그 녀석에게 벽사검법을 가르쳐 뛰어난 고수로 만들어 줄 생각이다.
임진남, 자네가 한평생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그 검법의 오묘한 점을 내가 깨우쳐 줄 수도 닝다는 얘기야. 만약 벽사검보가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나는...... 흥! 그 녀석을 때려 죽이고 말테다.]

곧이어 '쿵' '쾅' '우지직' 하는 음향을 들려왔다. 영호충은 그가 집 안의 물건을 두드려 부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임 부인은 놀라 외쳤다.

[아니...... 그러면 안 돼요! 우리 아들을 때려 죽이지 마세요!]

목고봉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임평지는 나의 제자야. 그가 죽고 사는 문제는 내 손에 달려 있지. 언제든지 내가 일장으로 그를 후려친다면 제 녀석이 죽지 않을 수가 있겠어?]

이어 '우지직' 하는 소리가 몇 번 울렸다. 다시 장력으로 무엇을 후려쳐 부수는 모양이었다.
임진남은 말했다.

[여보, 더 말할 것 없소. 우리 아들은 그의 수중에 있지 않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어찌 평아를 데리고 와서 우리를 위협하지 않고 말로 협박하겠소?]

목고봉은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군. 새북명타가 그대의 아들을 죽이는 것이 뭐가 어렵겠는가? 설사 그가 나의 수중에 없다 해도 내가 정말 그를 죽이려고 결심한다면 언제라도 죽일 수 있단 말이야. 나의 친구는 천하에 널려 있으며 나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무리들이 부지기수란 말이야. 그러니 그대의 귀여운 아들을 찾아 내는 것은 조금도 힘든 일이 아니지.]

임 부인은 나직이 말했다.

[여보 저 사람이 우리 아들을 찾아 분풀이를 하면 어떡하죠?]
임진남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부인, 만약 우리가 벽사검보의 위치를 알려 준다면 이 꼽추는 검보를 손에 넣고 난 후 우리 아들을 죽일 것이오. 우리가 말하지 않는다면 이 꼽추는 검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평아의 목숨을 해치지 않을 것이오.]

임 부인이 말했다.

[그렇군요. 꼽추, 당신은 우리 부부를 죽이세요.]

영호충은 거기까지 듣게 되자 목고봉이 크게 노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방법을 강구해 유인해 내지 않는다면 임진남 부부의 목숨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낭랑하게 외쳤다.

[목 선배님! 화산파 제자 영호충이 사부의 명을 받고 목 선배님을 모시러 왔읍니다. 사부님께선 상의할 일이 있답니다.]
목고봉은 이때 손을 쳐들고 임진남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려고 하다가 영호충이 절간 밖에서 낭랑히 외치는 소리를 듣고 크게 놀랐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남에게 양보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화산파의 장문인 악불군에 대해서만은 무척 꺼렸다. 더구나 군옥원에서 친히 악불군이 펼치는 자하신공의 위력을 목격한 이후 더욱 악불군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는 임진남 부부를 협박하는 광경을 악불군과 영호충이 엿들었다면 결코 자기를 그냥 두지 않을 것 같았다.

(악불군이 나보고 무슨 상의할 일이 있어 나오라는 것일까? 말이나 그렇지 나에게 쓴맛을 보여주지 않겠어? 영웅호걸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일찌감치 이곳을 빠져 나가는게 상수다!)
그는 즉시 말했다.

[이 목모는 달리 중요한 일이 있어 상대해 드릴 여가가 없네.
영사에게 여가가 있으면 새북으로 놀러오시라고 하게나. 이 목고봉이 공손히 맞아 드리겠다고 전해 주게.]

말이 끝나자 그는 두 발로 땅을 차며 대청에서 뜨락으로 몸을 날려 재차 왼발로 땅을 가볍게 찬 이후 쏜살같이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절간 뒤로 재차 몸을 날렸다. 그는 악불군이 앞 길을 막을까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사라져 갔다.
영호충은 그가 멀리 가자 크게 기뻐했다.

(꼽추는 우리 사부님을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군! 그가 도망을 가지 않고 나에게 손을 썼다면 나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는 즉시 지팡이를 짚으며 절간 안으로 들어갔다. 절간 안은 어두컴컴했으며 등불조차 켜 있지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반쯤 누운 자세로 서로 의지하고 있는 광경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소질은 화산파의 문하인 영호충입니다. 임평지 사제와는 동문의 정을 나누게 되었지요. 임 백부님과 백모님에게 인사 올립니다.]

임진남은 기뻐서 말했다.

[소협께서 깎듯이 인사를 차리니 감당할 길이 없구료. 이 늙은 부부는 몸에 중상을 입어 답례하기 어려우니 용서해 주시오. 우리 아이는 정말 화산파 악 대협의 문하로 들어가게 되었소?]
최후의 한 마디를 할 때 그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악불군의 명성은 무림에서 중천에 떠 있는 태양처럼 찬란한 것이었다. 임진남은 여창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매년 예물을 보냈으나 악불군 등 오악검파의 장문인들에겐 뇌물마저 감히 올릴 생각을 못했다. 더구나 목고봉과 같이 무서운 고수도 화산파의 이름을 듣자 즉시 도망을 치지 않았는가? 자기 아들이 화산파의 문하제자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기쁘기 한량없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목고봉은 억지로 자기의 제자로 거둬들이려고 했으나 자제분은 한사코 고집을 피우며 응낙하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그 꼽추가 해치려고 할 때 마침 저의 사부님께서 그곳을 지나치시다가 자제분을 구하게 되었읍니다. 자제분이 한사코 간청을 하며 우리 화산 문하로 들어오겠다기에 사부님께선 그의 성품이 성실하고 대성할 인물임을 알고는 응낙하셨읍니다. 조금 전 저의 사부님은 여창해와 검으로 싸우게 되었는데 여창해를 패배시켜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게 만드셨답니다.]

임진남은 말했다.

[아무쪼록...... 아무쪼록 평아가 즉시 이곳으로 달려왔으며 좋겠소. 늦었다간...... 늦었다간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된다오.]
영호충은 임진남이 말을 할 때 숨을 들이마시는 것보다 내쉬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증거였다.
영호충은 급히 말했다.

[임 백부님,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의 사부님은 곧 이리로 오실 것입니다. 그 어른신께서는 반드시 두 분의 상처를 치료하실 겁니다.]

임진남은 쓰게 웃더니 두 눈을 감고 나직이 말했다.

[영호 현제, 나는...... 나는...... 글렀소. 평아가 화산파의 문하로 들어가니...... 나는 실로 기쁘기 그지 없소. 아무쪼록...... 아무쪼록 그대가 이후...... 그를 많이 지도해 주시고 돌보아 주시구료.]

영호충은 말했다.

[백부님,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동문으로서 한 사부 밑에서 무공을 배우는 처지입니다. 친형제나 다름이 없읍니다. 소질은 오늘 백부님의 부탁을 받은 바, 마땅히 임 사제를 잘 돌볼 것입니다.]
임 부인이 입을 열었다.

[영호 소협의 큰 은혜는 우리 부부가 죽어 구천지하에 가서라도 잊지 않을 거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두 분께선 정신을 가다듬고 정양하십시오. 너무 많은 말을 하시면 안 됩니다.]

임진남의 호흡이 더욱 거칠게 변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무쪼록...... 아무쪼록 나의 아들에게 전해 주시오. 복주향양항(福州向陽巷)의 옛집 지하실에 있는 물건은...... 우리 임씨 집안에서 조상대대로 전해오는 물건이니...... 반드시...... 잘 보관하라고...... 증조부이신 원도공(遠圖公)께서 유훈(遺訓)을 남기셨는데 누구라도 그 물건을 펼쳐 보면 안 된다고 했소이다.
그것을 펼쳐 보면 무궁화 화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소...... 그에게 잘 기억하라고 전해 주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부님의 말씀을 제가 꼭 전해 주겠읍니다.]

임진남은 말했다.

[정말...... 정말...... 정말......]

그는 '고맙다' 는 말을 시종 내뱉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가 억지로 버텨 온 것은 아들을 한번 보겠다는 바램 때문이었다. 그러다 마음속에 접어둔 중요한 말을 하게 되자 아들에게는 이미 빛나는 미래가 약속된 터라 크게 기쁜 나머지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리하여 안심하고 눈을 감은 것이었다.
임 부인이 말했다.

[영호 소협, 아무쪼록 그대는 우리 아들에게 부모님의 원한을 잊지 말아달라고 전해 주시오.]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절간의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을 향해 머리를 부딪쳐갔다. 그녀는 상처가 가볍지 않은 모양이었다.
머리를 부딪치게 되자 대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영호충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여창해와 목고봉이 벽사검보가 있는 곳을 실토하라고 모진 고문을 가했는데도 말을 않더니 이제서야 자기 명이 다했다는 사실을 알고 부득불 나에게 벽사검보의 비밀을 알려 주었구나. 그는 내가 임씨 집안의 검보를 차지할까봐 '펼쳐보면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무궁한 화근을 당한다' 는 말을 덧붙였군! 허허허! 이 영호충이 어떤 사람인데 당신들 임씨 집안의 검보를 엿보겠소? 그야말로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격이지.)
이대 그는 피로할 대로 피곤해져 있었다. 기둥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절간 밖에서 악불군의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 안으로 들어가 보자.]

영호충이 외쳤다.

[사부님! 사부님!]

악불군은 기뻐서 소리쳤다.

[충아냐?]
[녜.]

그는 기둥을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때 동녘 하늘이 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악불군은 절간 안으로 들어와 임씨 부부의 시체를 발견하더니 눈쌀을 찌푸렸다.

[저들은 누구냐?]

영호충은 말했다.

[임진남 부부입니다.]

영호충은 목고봉이 어떻게 핍박을 하고 자기가 어떻게 그를 사부의 이름으로 놀라게 해 도망치도록 만들었으며, 임씨 부부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를 일일이 이야기했다. 임진남이 남긴 최후의 유언마저도 사부에게 말했다.
악불군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여창해는 헛고생을 하느라고 큰 죄를 지었군!]

영호충은 말했다.

[사부님 여관주를 쫓아가 사과를 받아냈읍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여관주의 걸음은 무척 빨랐다. 내가 한동안 뒤쫓았으나 잡을수가 없었다. 청성파의 경신법은 역시 화산파보다 한 수 위더구나.]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청성파의 엉덩이를 뒤로 한 채 도망치는 재간은 원래부터 다른 문파보다 고명한 편이죠.]

악불군은 엄한 표정으로 꾸짖었다.

[충아, 너는 항상 말이 경박스럽다. 말을 할 때 조금도 점잖은 기가없어. 그래 가지고 나중에 어떻게 여러 사제와 사매를 거느리는 장문인이 될 수 있겠느냐?]

영호충은 고개를 돌리고 혀를 한번 쑥 내밀었다.

[알겠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알았으면 안 것이지 혀는 왜 내미느냐? 그것이야말로 성실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니냐?]

영호충은 대답했다.

[녜.]

그는 어려서부터 악불군의 밑에서 자라났다. 그들의 정은 부자와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그는 사부를 두려워하고 우러러보기는 했지만 결코 쩔쩔매지는 않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혀를 내밀 때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사부님께선 어떻게 제가 혀를 내밀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셨나요?]

악불군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흥! 너의 귀 아래의 근육이 움직이는 걸 보았지. 그것은 혀를 내밀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너는 언제나 제멋대로 굴더니 이번에야말로 쓴 맛을 보았겠지? 상처는 좀 나았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녜, 많이 나았읍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했다.

[한번 쓴맛을 보게 되면 좀더 영리해지지 않겠어요?]
악불군은 코웃음치더니 말했다.

[흥! 너는 이미 꼬리가 아홉개나 달린 여우가 되었는데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느냐?]

악불군은 품 속에서 하나의 화전포(火箭?)를 꺼내더니 뜨락으로 나가 화섭자로 불을 당긴 후 하늘 높이 던졌다.
화전포는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펑' 하는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그러자 새벽하늘에 한 자루의 새하얀 장검의 형체를 이루지 않는가? 이것은 화산파의 장문인이 문하의 제자를 부르는 신호였다.
얼마 되지 않아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일제히 절간 쪽으로 달려왔다. 얼마 후 고근명의 음성이 절간 밖에서 들려왔다.

[사부님, 어르신께선 이곳에 계십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나는 안에 있다.]

고근명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사부님!]

그러다가 영호충을 발견하자 기뻐서 말했다.

[대사형, 무사하시군요! 중상을 입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걱정했읍니다.]

영호충은 미소지었다.

[목숨이 끈질겨 아직도 죽지 않았다네.]

발걸음 소리와 함께 노덕약과 육후아가 들어왔다. 육후아는 영호충을 보자 사부에게 예의를 차리지도 않고 달려와 영호충을 끌어안고 큰 소리로 기쁨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세째 제자인 양발과 네째 제자인 시대자가 차례로 들어섰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여덟째 제자인 영백나, 악불군의 딸인 악영산, 그리고 화산파 문하로 갓 들어온 임평지가 달려왔다.
임평지는 부모의 시체를 보더니 시체 위에 몸을 던지며 대성통곡을 했다.
악영산은 영호충이 무사한 것을 보고 놀람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대는...... 아무일 없나요?]

영호충은 말했다.

[아무일 없소.]

이 며칠 동안 악영산은 대사형 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만나게 되자 수일간 쌓인 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악영산은 영호충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왁'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영호충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소사매, 왜 이러지? 어떤 녀석이 그대를 괴롭혔군! 내가 복수를 해줄테니 어서 말을 해봐.]

악영산은 대답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울고 나자 속이 시원한 듯 영호충의 옷자락으로 자기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대사형은 마빠요! 나는 대사형이 죽은 줄만 알았어요.]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이렇게 멀쩡하잖아? 어떤 녀석이 내가 죽었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모양이군.]

악영산은 말했다.

[말을 들으니까 그대는 청성파의 여창해에게 다시 일장을 맞았다고 했어요. 여창해의 추심장(推心掌)은 심장에 충격을 주어 사람을 죽이며 죽은 사람은 겉으로 보면 아무 상처도 없는 것처럼 보여요. 나는 그가 적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광경을 목격했어요.
저는 깜짝 놀라서...... 놀라서.]

영호충은 미소지었다.

[다행히 그의 일장은 나에게 적중되지 않았소. 조금 전 사부님께선 여창해로 하여금 도망치게 하셨다오. 그 광경은 정말 멋있었지. 그대가 보지 못한 것이 매우 애석하구료.]

악불군은 말했다.

[그 일은 더이상 들먹이지 말아라. 누가 듣게 된다면 여관주가 얼마나 창피하겠느냐?]

영호충과 여러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악영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영호충을 바라보았다. 영호충의 모습이 초췌하고 얼굴엔 핏기 한 점 없는 걸 보자 마음이 아팠다.

[대사형, 이번엔...... 정말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으셨군요.
화산에 돌아가면 푹 쉬시며 몸조리를 하셔야겠어요.]

악불군은 임평지가 여전히 부모의 시체 위에서 슬피 통곡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평아, 울지 말아라. 너희 부모님의 후사를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평지는 몸을 일으키고 대답했다.

[녜.]

그러다가 모친의 두개골이 빠개져 온통 선혈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보자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함께 있지 못했으니...... 제게 무슨 유언을 남기셨는지 모르겠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임 사제, 그분들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나는 이곳에 있었다네.
두 분 어르신께서는 나에게 자네를 잘 돌보아 달라고 하셨고, 영존께서는 두 마디 유언을 남기셨네.]

임평지는 허리를 굽혔다.

[대사형, 대사형, 저희 부모님이 세상을 등지게 되었을 때 대사형께서 옆에 계셔 주셨으니 그래도 한 사람도 없는 것보다 훨씬 낫읍니다. 소제는...... 소제는 무엇으로 답례를 해야할지 모르겠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청성파의 악당들이 여존께 모진 고문을 가하면서 벽사검보가 있는 곳을 다그쳐 물었지만 그분께선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네. 그 이후 목고봉이 재차 두 분 어르신을 핍박했다네. 목고봉은 본래 타락한 녀석이니까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여창해는 일파의 종사가 되어 그 같은 비열한 짓을 저질렀으니 실로 천하영웅들의 비 웃음을 받아 마땅하다고 볼 수 있네.]

임평지는 이를 갈며 말했다.

[이 원한을 갚지 않는다면 임평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힘주어 기둥을 후려쳤다. 그의 무공은 평범했으나 마음속에 분노가 끓어올랐던 터라 대들보 위의 흙 먼지가 뿌옇게 떨어져 내렸다.
악영산은 말했다.

[임 사제, 이번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화근이라 할 수 있으니 그대가 장래 복수를 할 때 나도 돕겠어요.]

임평지는 허리를 구부렸다.

[사저, 감사합니다.]

악불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화산파가 언제나 내세우는 것이 상대방이 우리를 침범하지 않는 한 우리도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교라는 원수들을 제외하고 무림의 각 문파와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 그러나 이후 청성파...... 청성파와는...... 아! 강호에 몸을 담고 있는 몸으로 매사에 남의 비위를 거슬리찌 않기란 정말 쉽지 않은 노릇이구나!]

노덕약은 말했다.

[소사매, 그리고 임 사제, 이번 화근은 임 사제가 여창해의 못된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고 순전히 여창해가 밍 사제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벽사검보를 탐한데서 비롯된 것이라네. 과거 청성파의 장문 장청자는 임 사제의 증조부이신 임원도 선배님의 벽사검보 아래 패배했네. 그때부터 이 같은 불상사가 시작된 것이라네.]

악불군은 말했다.

[맞다. 무림의 인물들은 싸우기를 좋아하고 무공의 요결이 적힌 책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진짜이든 가짜이든 상관하지 않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으려고 한단다. 기실 여관주나 새북명타와 같은 신분을 가진 고수라면 너의 임씨 집안의 검보를 욕심낼 필요는 없었는데도 그들은 지나친 욕심을 부렸다.]

임평지는 말했다.

[사부님, 제자의 집안에는 벽사검보라는 게 없읍니다. 칠십이로의 벽사검법은 아버님께서 손과 입으로 전수해 주셨으며, 제자에게 열심히 기억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만약 정말 검보가 있었더라면 저의 아버님께서 옛날에 제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영호충이 말했다.

[임 사제 영존의 유언에서는 보주향양항...... .]

악불군은 손을 내흔들었다.

[이것은 평아에게 남긴 유언이니 평아에게만 이야기하면 된다.
다른 사람은 알필요 없다.]

영호충은 말했다.

[녜.]

악불군은 말했다.

[덕약과 근명, 너희 두 사람은 어서 두 분을 안치할 관을 사오도록 해라.]

임진남 부부를 염하고 나서 관에 안치한 후 일행은 커다란 배를 타고 북쪽을 향했다.
하남성 서쪽에 당도하자 뭍으로 올라왔다. 영호충은 커다란 수레 안에서 상처를 치유하게 되었다.
여칠 후 그들은 화산 옥녀봉(玉女峰)아래 당도했다. 임진남 부부의 관은 잠시 옥녀봉 옆에 있는 조그만 절간에 맡기고 날짜를 택해 다시 안장하기로 했다. 고근명과 육후아는 먼저 산 위로 올라가 전갈을 했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산 아래로 마중을 나와 사부에게 인사를 했다. 임평지는 제자들의 나이가 많은 사람은 이미 삼십을 넘었고 어리다 해도 십 오륙 세가 되며 그 가운데는 여섯 명의 여제자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여제자들은 악영산을 보자 조잘조잘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노덕약은 임평지에게 일일이 소개를 했다. 화산파의 규칙은 입문이 빠른 사람이 형이 되고 뒤에 들어오는 사람이 아우가 되어서 나이가 어린 서기(舒奇)에게도 임평지는 사형이라고 불러야 했다. 다만 악영산만은 예외였다. 그녀는 악불군의 딸이기 때문에 제자들의 입문 서열을 따질 수 없었고 나이에 따라 칭호를 하였는데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녀에게 사매라고 불렀다. 그녀는 임평지보다 몇 살 아래였으나 그녀가 하도 우기는 통에 임평지는 그녀에게 사저라고 부르기로 했다.
봉오리를 오르며 임평지는 여러 사형들의 뒤를 따랐다. 산세는 매우 험준했고 수목이 울창했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렸고 물 흐르는 소리도 들렸다. 너댓 채의 하얀 담장을 두른 커다란 집들이 산허리를 등지고 높고 낮게 펼쳐져 있었다.
한 중년의 아름다운 여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악영산은 나는 듯 달려가더니 그녀의 품 속으로 뛰어들며 부르짖었다.

[어머님! 저에게 사제가 또 한 명 생겼어요!]

그리고 웃으며 임평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임평지는 사형들로부터 사모님인 악 부인 영중칙(寧中則)은 사부와 동문 사남매이며 검술의 정묘함에 있어 사부 못지 않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제자 임평지가 사모님께 인사 드립니다.]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훌룡하구나! 몸을 일으키도록 해라.]

그녀는 악불군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산을 한번 내려갈 때는 언제나 많은 제자를 거두지 않았나요? 이번에는 적어도 서너 명의 제자를 저두리라 생각했는데 어찌하여 한 명밖에 거두지 않았죠?]

악불군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언제나 양보다는 질이 중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대가 볼 때 이 한 명이 뛰어난 보배라고 생각되지 않소?]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생긴 것이 너무 준수하여 무공을 제대로연마할 것 같지가 않군요. 차라리 당신을 흉내내어 사서오경이나 읽은 후 과거를 보아 장원급제를 하는게 낫겠어요.]

임평지는 얼굴을 붉히며 생각했다.

(사모님은 내가 문약하게 생겨 얕보는구나. 나는 열심히 노력하여 사형들 못지 않은 무공을 닦아 남의 비웃음을 받지 말아야지!)
악불군은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좋지. 화산파에서 한 명의 장원이 나오면 누구나 화산파가 문무를 겸했다고 부러워할 것이오!]

악 부인은 눈을 돌려 영호충을 노려보더니 말했다.

[너는 또 싸우다 상처를 입은 모양이구나. 어찌 얼굴빛니 그토록 창백하냐? 상처는 심하지 않느냐?]

영호충은 미소지었다.

[이미 많이 나았읍니다. 명이 길지 않았다면 이번엔 뵙지 못할 뻔 했읍니다.]

악 부인은 눈을 한번 흘기더니 말했다.

[이번의 일은 너에게 '하늘 밖에 하늘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 는 진리를 가르켜 준 것이다. 패한데 대해선 깨끗이 승복했겠지?]

영호충은 말했다.

[전백광 녀석의 쾌도(快刀)를 이 제자는 감당할 수 없었읍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모님께 가르침을 받고자 생각했었읍니다.]
악 부인은 영호충이 전백광의 손에 상처를 입었다는 말을 듣고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전백광 같은 악적과 싸웠군! 정말 잘 한 일이다. 나는 또 네가 쓸데없는 시비를 불러일으킬 줄 알았다. 그의 쾌도가 어떻더냐? 우리 잘 연구해 보자. 다음엔 그를 상대로 멋지게 싸울 수 있도록 말이다.]

길을 오면서 영호충은 수차례 사부에게 전백광의 쾌도를 깨뜨리는 방법을 물었으나 악불군은 시종 말하지 않았었다. 화산에 돌아가 사모님에게 가르침을 받으라고 했을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악 부인은 그 같은 사연을 듣더니 크게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일행은 악불군이 거처하는 유소불위헌(有所不爲軒)으로 들어가 그 동안의 경과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다. 여섯 명의 여제자들은 악영산이 복주와 형산에서 듣고 본 사실을 이야기해 주자 모두 부러워했다. 육후아는 사제들에게 대사형이 어떻게 해서 전백광을 상대로 싸웠는가를 크게 떠들었으며 나인걸을 죽인데 대해서는 잇는 말 없는 말을 보태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대로라면 전백광이 대사형에게 진 것이지대사형이 그에게 형편없이 진 것이 아니었다. 뭇사람들은 간식을 먹고 차를 마셨다. 그런 후 악부인은 영호충에게 전백광의 도법에 대해 물어보았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전백광 그 녀석의 도법은 정말 훌룡했읍니다. 당시 제자는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으며 막아내려 했지만 전혀 막아낼 수가 없었읍니다.]

악 부인은 말했다.

[네 녀석은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억지를 썼을 것이다.]
영호충은 어려서부터 그녀에 의해 양육되었다. 따라서 악 부인은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영호충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때 동굴 밖에서 싸우게 되었을 때 항산파의 그 사매는 떠나갔지요. 제자는 부담이 적어졌기 때문에 전백광 그 녀석과 전력을 다해 싸웠읍니다. 그런데 싸운 지 얼마되지 않아 그는 쾌도를 펼쳐냈읍니다. 제자는 이초로 막아내고 야단났다고 생각했지요. 이번에야말로 내 목숨이 다했다고 생각했읍니다. 나는 갑자기 껄껄 소리내어 웃었죠. 전백광은 칼을 거두며 물었읍니다. '뭐가 우스운가? 그대가 이 비사주석(飛沙走石)이라는 수법을 막아낼 수 링다는 것인가?'제자는 웃으며 말했읍니다. '명성이 쟁쟁한 전백광이 알고 보니 우리 화산파에서 쫓겨난 제자였군! 천만 뜻밖이야! 천만 뜻밖이야! 그렇지. 틀림없이 그대는 나쁜 일만 일삼았다가 본파에서 쫓겨났을 것이오.' 전배광은 말했읍니다. '누가 화산파에서 쫓겨난 제자란 말이야? 터무니없는 소리! 이 전모의 무고은 독특하여 한 문파를 이루다시피하는데 화산파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제자는 웃으며 말했죠. '그대의 도법은 모두 십삼식이 아니겠소? 비사주석이라는 것은 그대 자신이 아무렇게나 멋진 이름을 만들어 붙인 것이겠지. 나는 사부님과 사모님이 대련을 하시는 광경을 본 적이 있소. 당신이 방금 펼친 일초는 우리 사모님이 꽃을 수놓게 되었을 때 우연히 생각해낸 것이오. 우리 화산에는 옥녀봉이 있는데 그대는 들어본 적이 있소?' 전백광은 말했다.
'화산에 옥녀봉이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느냐? 그게 어쨌다는 거야?' 저는 말했읍니다. '우리 사모님이 창출하신 검법은 옥녀금침십삼검(玉女金針十三劍)이라고 불린다오. 그 가운데는 천침인선(穿針引?) 천의무봉(天衣無鋒) 야수원앙(夜繡鴛鴦) 등의 초식이 있소.' 저는 말을 하면서 손가락을 헤아렸읍니다. '그렇군! 방금 그대가 펼친 검초와 도법은 우리 사모님이 창출하신 제팔 초 직녀천사(織女穿梭)에서 변화된 것이오. 당신 같은 대한이 우리 사모님의 부끄러움을 타는 자세, 즉 꽃과 같은 천상의 직녀가 베틀에 앉아 섬섬옥수로 베틀의 부을 이쪽에서 던졌다가 저쪽으로 던지는 자태를 흉내냈으니 어찌 우습지 않겠소?']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악영산과 뭇 여제자들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악불군은 빙긋 웃고는 꾸짖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구나!]

악 부인은 탓하며 말했다.

[네 멋대로 씨부렁거리는건 상관없다마는 하필이면 이 사모님을 끌어들일 게 뭐냐? 정말 매를 맞아야 하겠군!]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사모님께선 모르십니다. 그 전백광은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의 도법이 사모님께서 창출한 것이라고 말하면 그는 반드시 진상을 밝히려고 제자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거죠. 아니나 다를까? 그는 도법을 일초 일초 펼쳐 보였는데 일초를 펼친 후 한마디씩 물었읍니다.'이것도 그대 사모님이 창출하신 것인가?' 제자는 짐짓 생각에 잠긴 척 말하지 않고 속으로 그의 도법을 외웠읍니다. 그가 십삼식을 펼친 후에야 입을 열었죠. '그대의 도법은 우리 사모님이 창안하신 것과 조금 다르지만 대체로 같소. 그대는 어떻게 화산파로부터 훔쳐 배웠소?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구료' 전백광은 노해 말했어요. '그대는 나의 도법을 당할 수 없으니 궤변을 늘어놓아 시간을 끌면서 이 도법의 초식을 알아보려고 했군! 내가 모를 줄 알아? 화산파에 이 같은 도법이 있다면 그대가 펼쳐서 이 전모에게 구경을 시켜 주시지?' 제자는 말했죠. '귀파에선 검을 사용하지 칼은 사용하지 않는다오. 거기다가 사모님의 옥녀금침검은 여제자에게만 전수하는 것이고 남자에겐 전수하지 않는 것이오. 우리 같은 사내대장부가 그 같은 계집애들의 검법을 배운다는 것은 무림의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행위가 아니겠소?' 전배광은 더욱 화를 냈읍니다. '비웃던 비웃지 않던 오늘 그대로 하여금 화산파엔 내가 펼친 무공이 없다는 것을 승인하도록 만들어 줄테다. 이 전모는 그대가 사내대장부인줄 알았는데 함부로 지껄여 나를 희롱을 하다니 정말 실망이 크군!']

악영산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 같은 몰염치한 악적은 희롱을 할수록 좋지. 대사형이 그를 희롱한 것은 참 잘 한 일이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내가 만약 내멋대로 날조한 옥녀금침검을 한번 펼치지 않는다면 즉시 목숨을 빼앗길 위험이 있었지요. 부득이 그의 도법을 흉내내어 되는 대로 펼쳐 보였는데 그 당시 나는 여자들처럼 엉덩이를 이리 흔들 저리 흔들했죠.]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사형은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면서도 초식을 제대로 펼칠 수 있었나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 그대가 검법을 펼지는 모습을 많이 보았던 터라 별로 어렵지 않더군!]

악영산은 말했다.

[아! 사형은 내가 검법을 펼치는 모습을 흉보는 거군요? 나는 사흘 동안 사형과 놀지 않을 터예요.]

악 부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산아, 너는 장검을 빼어 대사형에게 주어라.]

악영산은 장검을 뽑아 영호충에게 내밀며 웃었다.

[어머니께선 그대가엉덩이를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며 검법을 펼치는 우스운 꼴을 보고 싶으시대요.]

악 부인은 말했다.

[충아 산아의 터무니없는 말을 아랑곳하지 말고 그 당시 네가 어떻게 펼쳤는지 시범을 보여주렴!]

영호충은 즉시 장검을 받은 후 사부와 사모님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사부님, 사모님 제가 전백광의 도법을 펼쳐 보이겠읍니다.]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육후아가 임평지에게 귀엣말로 소근거렸다.

[임 사제, 우리 문중의 규칙에 의하면 나이 어린 사람이 어른 앞에서 검법을 펼칠 때는 반드시 먼저 윗어른에게 알려 허락을 받아야 한다네.]

임평지는 말했다.

[녜, 육 사형의 가르침에 감사 드립니다.]

이때 영호충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하품을 하며 두 손을 힘없이 들어 올렸다. 마치 기지개라도 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별안간 오른쪽 손목을 들추며 잇달아 삼 검을 쪼개내는데 재빠르기는 번개 같았으며, 찍찍 하는 소리가 일었다. 뭇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몇 명의 여제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영호충은 검법을 펼쳐냈는데 그 모양은 잡다한 게 법칙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악불군과 악 부인은 수십 초를 똑똑히 관찰할 수 있었는데 한번 찌르고 한 번 내리치는 등 그 초식이 악랄하면서도 교묘하기 이를데 없지 않은가? 잠시 후 영호충은 검을 거두고 웃더니 사부와 사모에게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했다.
악영산은 약간 실망하여 말했다.

[너무 빨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없네요!]

악 부인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드시 빨라야 좋단다. 이 십삼식의 쾌도에는 매식에 삼사 초의 변화가 있다. 그리고 삽시간에 사십여 초를 펼치니 세상에 보기드문 쾌도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전백광 녀석이 펼칠 때는 제자보다 더욱 빨랐읍니다.]
악 부인은 악불군을 한번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감탄하는 빛이 어려 있었다.

악영산은 말했다.

[대사형, 어째서 엉덩이를 오리처럼 흔들지 않았죠?]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이 며칠 동안 나는 수시로 그 쾌도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 신속해진거야. 그러나 그날 황산에서 전백광에게 펼쳐 보이게 되었을 때는 이토록 빠르지 않았어. 일부러 그의 도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보이기 위해 교태어린 여인의 모습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인이 교태를 부리는 멋진 자세를 취했는지 빨리 보여 주세요.]

이때 악 부인이 몸을 돌리더니 한 명의 여제자 허리에서 장검을 뽑아들고 영호충에게 말했다.

[쾌도를 펼쳐라!]

영호충은 대답했다.

[녜.]

쑥 하고 장검이 악 부인의 몸 뒤로 돌아갔다. 검날은 대뜸 그녀의 허리를 베어 갔다.
악영산은 놀라 부르짖었다.

[어머니, 조심하세요!]

악 부인은 몸을 튕기듯 앞으로 한덜음 내딛으며 영호충이 등 뒤에서 베어나오는 일검을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들었던 장검을 곧장 뻗쳐내 영호충의 가슴을 찔러갔다. 그녀의 수법은 눈부실 정도러 빨랐다. 악영산은 다시 놀라 부르짖었다.

[대사형, 조심하세요!]

영호충은 역시 다른 생각을 않고 일검을 냅다 찌르며 말했다.

[사모님, 그는 훨씬 더 빨랐읍니다.]

악 부인은 휙휙휙 하며 잇달아 삼 검을 찔러댔다. 영호충은 동시에 삼 검을 반격했다. 두 사람은 속공으로 맞섰고 하나 같이 공격만 하는 형태였으며 자기 몸을 보호하는 초식은 하나도 없었다.
순식간에 사모님과 제자는 이십여 초를 겨루게 되었다.
임평지는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벌어졌다.

(대사형은 언행이 우스꽝스러운 데가 있지만 무공은 정말 뛰어나구나! 이후 나는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무공을 연마해서 남에게 비웃음을 받지 않도록 해야 되겠다!)

바로 이때 악 부인은 번쩍하는 순간 일검의 끝으로 영호충의 목을 겨누었다. 영호충은 피할 수 없어 말했다.

[그였다면 막았을 것입니다.]

악 부인은 말했다.

[좋아!]

그리고 손에 든 장검을 휘두르며수초가 지나서 재차 영호충의 가슴을 겨누었다. 영호충은 여전히 말했다.

[그는 막을 수 있읍니다.]

그 뜻은 자기는 막을 수 없지만 전백광이라면 도법이 훨씬 빠르기 때문에 그 일초일초를 모조리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더욱 빠르게 돌아갔다. 영호충은 '그는 막을 수 있읍니다.' 라고 말할 여유도 없었다. 매번 악 부인의 일검에 제압을 당하게 되었을 때 고개를 가로저어 그 일검으로선 여전히 전백광을 죽일 수 없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악 부인은 장검을 휘두르다 갑자기 흥이솟구치는 듯 별안간 맑은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다.
검날이 끊임없이 번쩍이며 영호충의 몸 주위를 돌아가며 찔러댔다. 은빛 광채가 난무하는 가운데 뭇사람들은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별안간 그녀는 일검을 뻗쳐 영호충의 가슴을 푹 찔렀다.
번개 같은 빠름이었고 우뢰와 같은 기세였다. 영호충은 깜작 놀라 부르짖었다.

[사모님!]

이때 장검은 그의 옷자락을 뚫고 있었다. 악 부인은 오른손을 여전히 앞쪽으로 내밀었다. 장검의 손을 보호하는 방패막이가 영호충의 가슴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 일검은 영호충의 몸을 관통했으며 자루가 있는 곳까지 푹 꽂힌 것 같았다.
악영산은 놀라 부르짖었다.

[어머니!]

이때 '쨍그렁'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일었다. 그리고 한 조각 한 조각 한 치 정도 길이의 토막난 단검이 영호충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악 부인은 깔깔 소리내어 웃으며 손을 멈췄다. 그녀의 손에 들린 장검은 겨우 자루만 남아 있었다.
악불군은 웃으며 말했다.

[사매, 내력이 그토록 진보했구료! 나 역시 모르고 있었소!]
그들 부부는 동문으로서 짝을 맺었다. 젊었을 때 부르던 것이 습관이 되어 결혼을 한 후에도 사남매를 칭호하고 있었다.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과찬이예요. 이까짓 조그만 재간은 말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예요.]

영호충은 땅바닥에 토막난 검 조각을 내려다 보며 아연해졌다.
그는 악 부인이 일검을 찔러댔을 때 전력을 돋우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검이 이토록 신속할 리 없는 것이다.
검의 끝이 그의 살갗에 닿는 순간 그녀는 한 가닥 웅후한 내력을 쏟아내었던 것이다. 격렬한 충격에 한 자루의 장검은 토막나 버렸던 것이다. 악 부인이 내경(內勁)을 운용하는 재간은 출신입화(出神入化)의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영호충은 탄복했다.

[전백광의 도법이 빠르다 해도 사모님의 이 일검은 결코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임평지는 영호충의 옷 여기저기에 구멍이 난 것을 보며 생각했다.

(세상에 이같이 고명한 검술이 있었다니! 내가 조금만 배워도 부모의 원수를 갚을 수 있겠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청성파와 목고봉은 모두 우리 집안의 벽사검보를 욕심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집안의 벽사검법은 사모님의 검법과 비교할 때 천양지차이다!)

악 부인은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충아, 이 일검으로 전백광을 죽일 수 있다고 네가 믿는다면 너는 열심히 무공을 익혀라. 나는 이 검법을 네게 전수해 주겠다.]
영호충은 말했다.

[사모님, 감사합니다.]

악영산은 말했다.

[어머니, 저도 배우겠어요.]

악 부인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너의 내공 조예가 그 지경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이 일검은 배울 수가 없다.]

악영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못마땅한 듯 말했다.

[대사형의 내공은 나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구요! 어째서 그는 배울 수 있고 저는 배울 수 없다는 거예요?]

악 부인은 미소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악영산은 부친의 소매자락을 붙잡고 말했다.

[아버지, 저 일검을 깨뜨릴 수 있는 재간을 저에게 전수해 주세요. 그래야 대사형이 그 일검을 배우게 되었을 때 저를 못살게 굴지 않을 거예요.]

악불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네 어머니가 펼친 일검은 '무쌍무대(無雙無對) 영씨일검(寧氏一劍)'이라는 것으로 천하무적인데 나에게 깨뜨릴 방법이 있겠느냐?]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저를 추켜세우는 것은 상관 없지만 그 같은 말이 소문나면 무림의 동도들이 배꼽을 잡으며 웃을 거예요.]

악 부인의 이 일검은 바로 우연히 떠오른 영감에서 창안한 것이었다. 이 가운데는 화산파의 내공과 검법의 절묘함이 들어 있었다. 거기다 그녀의 총명함과 지혜가 첨가되었기 때문에 정말 무서운 검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금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물론 이름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악불군은 그 일검을 '악부인무적검' 이라고 부르려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때 부인은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다. 혼례를 치른 후에도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영여협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악 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영여협이라 부르는 것은 그 자신의 재간이 뛰어나므로 떠받드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악 부인이라는 한 마디는 대명이 쟁쟁한 남편의 덕을 본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겉으로는 남편이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쌍무대 영씨일검' 이라는 여덟 글자를 듣자 매우 기뻤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은 역시 선비다운데가 있어서 자기의 일검에 듣기좋은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좋아했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간 기쁜 것이 아니었다.
악영산은 말했다.

[아버님도 언제가는 '무비무적, 악가십검(無比無敵, 岳家十劍)' 을 창안해서 딸에게 전수해 주세요. 그러면 저도 대사형과 한번 겨루어 볼 수 있지 않겠어요?]

악불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안 돼. 너의 애비는 너의 어머니처럼 총명하지 못해 새로운 초식을 창안할 수 없단다.]

악영산은 입을 부친의 귀에 갖다대며 나직이 속삭였다.

[아버님은 창안하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누라가 무서워서 감히 창안하시지 못하는 거죠?]

악불군은 껄껄 소리내 웃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가볍게 한번 꼬집어 웃으며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악 부인은 말했다.

[산아, 아버지에게 매달려서 소란을 피우지 말아라. 덕약, 자네는 가서 향촉을 준비하도록 하게. 그리하여 임 사제가 본파의 열대조사들의 신위에 인사를 올리도록 해야지.]

노덕약은 대답했다.

[녜.]

삽시간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악불군은 사람들을 데리고 후당(後堂)으로 들어갔다. 임평지는 대들보에 한 조각의 편액이 걸려있고 그 편액 위에 커다랗게 글자가 씌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기어검(以氣御劍)>이라는 네 글자였다. 단상에는 촛불과 향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양쪽 벽에는 여러 자루의 장검이 걸려 있었는데 빛은 거무스름했고 수실은 색이 바랜 것으로 보아 오랜 된 듯했다. 아마도 화산파의 전대(前代)고수들이 차던 검인 모양이었다.
임평지는 생각했다.

(화산파가 오늘날 무림에서 커다란 명예를 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간악하고 요사한 악적들이 윗대 고수들의 장검 아래 목숨을 잃었는지 모르겠군!)

악불군은 향안(香案) 앞에서 무릎을 꿇고 네 번 큰절을 하더니 두 손을 모았다.

[제자 악불군은 오늘 복주 임평지를 제자로 거두게 되었읍니다.
원하옵건데 역대 종사(宗師)들께선 하늘에 계신 영이나마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임평지로 하여금 열심히 무공을 연마하도록 하고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돌볼 줄 알며 본파의 규범을 엄히 지켜 화산파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임평지는 사부의 말을 듣자 공손히 엎드렸다.
악불군은 몸을 일으키더니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임평지, 너는 오늘 우리 화산의 문하가 되었으니 반드시 문규를 지켜야 한다. 만약 어길 때는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처벌을 받을 것이다. 죄가 크면 즉시 목을 베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본파가 건럽된 지 이미 수백년, 무공에 있어 다른 문파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시적인 강약성패는 논할가치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파의 제자가 하나같이 사문의 영예를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하도록 해라.]
임평지는 말했다.

[녜, 제자는 삼가 사부님의 교훈을 받들겠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영호충, 본파의 문규를 외워 임평지로 하여금 듣도록 해라.]
영호충은 말했다.

[녜. 임 사제, 잘 듣게. 본파에서 첫번째 계율은 사문의 어른을 기만하거나 윗어른을 존경하지 않는 것, 둘째는 약한 자를 못살게 굴고 함부로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 세번째 계율은 간교하고 음란하여 여자를 희롱하는 것, 네째 동문을 질투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것, 그리고 다섯번째는 이득에 눈이 어두어 의리를 잃는 것과 재물을 훔치는 것, 여섯째는 교만방자하여 동도에게 죄를 짓는 것, 일곱번째는 함부로 도적들을 사귀거나 요사한 무리들과 결탁을 하는 것, 이상이 반드시 금해야만 될 화산의 칠계(七戒)로서 본문의 제자는 삼가 받들어 행하여야 한다.]

임평지는 말했다.

[녜. 소제는 대사형께서 알려주신 화산의 칠계를 삼가 기억해 두겠으며 애써 받들고 감히 어기지 않겠읍니다.]

악불군은 미소지었다.

[좋아, 이 칠계가 전부이다. 본파는 다른 문파처럼 많은 계율이 없다. 너는 이 칠계만을 잘 지키고 정인군자의 행동을 저버리지 않도록 해라.]

임평지는 말했다.

[녜.]

그리고 그는 사부와 사모님에게 절을 하고 뭇사형과 사매들에게 읍을 했다.
악불군은 말했다.

[평아, 우리는 먼저 너의 부모님을 안장하여 너의 자식된 도리를 다하도록 하겠다. 그런 연후에 본문의 기본이 되는 재간을 전수하겠다.]

임평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땅바닥에 엎드려 말했다.

[사부님과 사모님께 감사 드립니다.]

악불군은 손을 뻗어 그를 부축이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본문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모두 한 가족과 다름없다. 어느 누구에게 어떤 사고가 생겼아르 때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돌보아야 한다. 앞으로는 쓸데없는 절은 삼가하도록 해라.]

그리고 고개를 들더니 영호충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충아, 너는 이번에 산을 내려가서 화산칠계 가운데 어떤 계율을 어겼지?]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평소 사부는 뭇제자들에게 매우 인자한 편이었지만 누구나 문규를 어기면 엄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즉시 향안 앞에 무릎을 끓고 말했다.

[제자는 잘못을 알았읍니다. 제자는 사부님과 사모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제 육계인 교만방대하여 동도에게 죄를 짓는 계율을 어겼읍니다. 형산의 회안루에서 청성파의 나인걸을 죽인 것입니다.]

악불군은 코웃음쳤다. 그의 얼굴빛이 더욱 준엄해졌다.
악영산은 말했다.

[그것은 나인걸이 대사형을 핍박했기 때문이예요. 당시 대사형이 전백광과 악전고투한 끝이라 몸에 중상을 입고 있었는데 나인걸은 대사형의 위험한 처지를 노리고 공격했던 거죠. 대사형이 잠자코 죽음을 당해야 하나요?]

악불군은 말했다.

[너는 쓸데없이 나서지 말아라. 이 일은 충아가 두 명의 청성 제자를 걷어 찼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인걸이 충아에게 괜히 화를 입혔겠느냐?]

악영산은 말했다.

[그 일은 이미 아버님께서 서른 대의 곤장을 내렸기 때문에 더 이상 거론하면 안 돼요. 지금 대사형께서는 몸에 중상을 입었으니까 더이상 매를 맞으면 큰일나요.]

악불군은 딸을 한번 노려보더니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지금은 본문의 계율을 논하는 자리다. 너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아라.]

악영산은 부친이 자기에 대해 이처럼 날카롭게 꾸짖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억울한 생각이 들어 눈을 붉히며 울려고 했다. 평소 때 같았으면 악 부인이 무슨 말로라도 위로를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악불군은 장문인의 신분으로 문을 계율을 따지고 있었기 때문에 악 부인으로서도 딸을 위로하기 곤란했다.
악불군은 영호충을 향해 말했다.

[나인걸이 네가 위태한 틈을 노리고 부당히 무력을 행사하자 너는 죽음을 도외시하고 굴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내대장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옥원에서 너는 항산파에 대해서 무례한 말을 했으며 여승을 보기만 하면 놀음에서 반드시 진다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여승을 보면 두려워한다고 했다면서?]

악영산은 호호 웃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제자는 당시 항산파의 그 사매를 한시바삐 보내기 위해서 그런 소리를 했읍니다. 제자는 전백광의 적수가 되지 못해 항산파의 그 사매를 구할 수 없었읍니다. 그러나 그녀는 의를 들먹이며 물러가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제자는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였던 것입니다. 그 같은 말을 항산파의 사매나 사숙들께서 들을 땐 물론 기분이 나빴겠지만 사람을 살려야 했으니 어쩔 수가 없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네가 의림 사질을 떠나도록 하려고 한 것은 좋다. 하지만 좋은 말도 많은데 하필이면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했느냐? 어찌되었든 너는 너무 경박하다. 이런 일을 오악검파에서 모두 알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배후에서 네가 그 같은 망나니가 된 것이 내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욕을 하고 있다.]

영호충은 말했다.

[녜. 제자는잘못을 알았읍니다.]

악불군은 다시 말했다.

[군옥원에서 상처를 치료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두자. 하지만 너는 의림 사질과 마교의 소마녀를 이불 속에 숨기고서 청성파의 여관주에게 형산의 기녀라고 했다. 이 일이 얼마나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 아느냐? 그 일이 발각된다면 화산파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항산파에도 누를 끼쳐 수백년간 쌓은 명예를 하룻밤에 무너뜨리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항산파의 사람들을 대하겠느냐?]

영호충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일은 제자도 염려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사부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군요.]

악불군은 말했다.

[마교의 곡양이 너를 군옥원으로 보내 상처를 치료하게 한 사실을 나는 후에 알았지만 네가 두 소녀에게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라고 말할 때 나는 창문 밖에 있었느니라.]

영호충은 말했다.

[다행히 사부님께서 제자가 결코 기녀를 끼고 잠을 자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셨으니 천만다행입니다.]

악불군은 싸늘히 말했다.

[네가 정말 기녀원에서 기녀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면 나는 이미 너의 목을 잘라내었을 것이다. 어찌 오늘까지 살려 두었겠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녜, 잘 알겠읍니다.]

악불군은 얼굴은 갈수록 엄해졌다.

[너는 곡비연이 마교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어찌하여 일검으로 그녀를 죽이지 않았느냐? 그녀의 조부가 네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베풀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마교의 사람들이 일부러 은혜를 베풀어 우리 오악검파를 이간질하려는 술책이었다. 너는 바보가 아닌데 왜 몰랐느냐? 그 사람들이 네 목숨을 구한 것은 속으로 커다란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정풍은 얼마나 똑똑하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냐? 그런데도 상대방의 술수에 넘어가 나중에는 패가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마교의 그같이 음흉하고 독랄한 수단은 네가 친히 본 바가 아니냐? 우리가 호남에서 화산에 이르는 동안 나는 네가 한 마디라도 마교를 질책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충아, 그 사람들이 네 한 목숨을 구한 이후 너는 정사충간(正邪忠奸)의 차이에 대해 매우 모호해진 것 같았다. 이 일은 금후 네가출세를 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니 이 문제를 애매하게 처리해선 안 될 것이다.]

영호충은 그날 형산에서 유정풍을 만난 밤을 생각했다. 그때 곡양과 유정풍은 칠현금을 튕기고 퉁소를 불며 합주하지 않았던가? 곡양이 엉큼한 마음을 품고 일부러 유정풍을 함정에 빠뜨려 해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악불군은 그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아직도 자기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 일은 우리 화산파의 흥망성쇠에 관련되며 네 일생의 안위와 승패에 관계된다. 그러니 너는 나에게 조금도 감추려고 하지 말아라. 내 너에게 묻겠는데 이후 마교의 사람을 만났을 때 정말 약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사정없이 죽일 수 있겠느냐?]
영호충은 망연한 표정으로 사부님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무수한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내가 이후 마교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불문곡직하고 검을 뽑아 죽일 수 있을까?)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사부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악불군은 그를 한참동안 주시했지만 시종 그가 대답을 하지 않는지라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네가 억지로 대답을 하도록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하지만 네가 산을 내려가서 우리파의 명성을 크게 더럽힌 것은 사실이니 너에게 일 년 동안 면벽(面壁)의 벌을 내리겠다. 이번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곰곰히 생각해 보도록 해라.]

영호충은 허리를 굽혔다.

[녜, 제자는 삼가 벌을 받겠읍니다.]

악영산은 말했다.

[일 년 동안이나 면벽을 하라구요? 그렇다면 이 일 년 동안 매일 몇 시진씩 면벽을 하게 되나요?]

악불군은 말했다.

[뭐가 몇 시진이야?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먹고 잠자는 일이외에는 면벽하고 있어야 한다.]

악영산은 급히 말했다.

[그럴 수 있어요? 답답해 죽고 말거예요. 설사 대소변도 안 된다는 거예요?]

악불군은 호통을 쳤다.

[계집아이가 조금도 얌전한 말을 하지 못하고 무슨 꼴이냐?]
악 부인은 말했다.

[일 년간의 면벽이 뭐가 대단하냐? 과거 너의 조사께서는 잘못을 저질러 옥녀봉 위에서 삼 년하고도 육 개월 동안 면벽하면서 봉우리에서 한 걸음도 내려온 적이 없다.]

악영산은 혀를 쏙 내밀었다.

[그렇다면 일 년간의 면벽은 가벼운 벌인가요? 기실 대사형이 여승을 만나면 놀음에 반드시 진다고 한 것은 완전히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일부러 욕한 것은 아니잖아요?]
악불군은 말했다.

[그는 호의에서 그런 말을 했기에 일 년간만 면벽하도록 한 것이야. 만약 악의에 차서 그런 말을 했더라면 나는 그의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리고 그의 혓바닥마저 잘라내고 말았을 것이다.]
악 부인은 말했다.

[산아, 아버님께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아라. 대사형이 옥녀봉에서 면벽하며 잘못을 뉘우치는 동안 너는 대사형을 찾아가 쓸데없는 농담을 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아버님이 그를 위해 취한 조치가 모조리 틀어지게 된다.]

악영산은 말했다.

[대사형을 옥녀봉 위에 감금시키는 것이 그를 위해서라구요? 또 저보고 대사형과 농담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대사형이 어렵게 되었을 때 누가 대사형을 위로해 줄 수 있겠어요? 또 일 년 동안 누가 나의 검술연마를 도와줄 수 있나요?]

악 부인은 말했다.

[네가 그와 농담을 하게 된다면 그가 어떻게 면벽을 할 수 있겠으며 과오를 생각할 수 있겠느냐? 이 산 위에는 사형들과 사저들이 얼마든지 있으지 너는 누구와도 검술을 연마할 수 있을 것이다.]

악영산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그럼 대사형은 무엇을 먹나요? 일 년 동안 봉우리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면 굶어 죽지 않겠어요?]

악 부인은 말했다.

[그것은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밥을 갖다 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날 저녁 무렵 영호충은 사부님과 사모님, 그리고 여러 사제들과 사매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한 자루의 장검만을 들고 스스로 옥녀봉의 정상으로 올라갔다. 봉우리의 암벽에 하나의 동굴이 있었다. 화산파 역대 제자들이 규칙을 어겼을 때 감금되어 벌을 받았던 곳이다. 벼랑에는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았으며 나무도 없었다. 동굴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화산은 초목이 무성하고 풍광이 수려했다. 그러나 이 바위벼랑만은 예외였다. 옛부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옥녀(玉女)의 머리에 꽂는 비녀에 한알의 진주가 이 벼랑으로 화한 것이라 했다. 화산파의 선조들이이 벼랑을 제자의 잘못을 벌하는 장소로 택한 이유는 바로 이곳이 풀 한 포기 없고 새들도 없어서 벌을 받는 제자가 다른 사물에 의해 방해를 받지 않고 한 마음으로 뉘우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호충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땅바닥에는 미끈미끈한 바위가 놓여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수백 년간 우리 화산파의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이곳에 앉아 세월을 보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커다란 바위가 이토록 매끄럽게 되었을 것이다. 영호충은 오늘날의 화산파에서 첫번째 가는 망나니다. 그러니 이자리에 내가 앉지 않고 누가 않겠는가? 사부께서 오늘에서야 나를 이 바위에 앉게 한 것은 나에게 너무 관대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는 손을 뻗쳐 바위 위를 툭툭 치며 말했다.

[바위야, 바위야. 너는 몇 년 도안 홀로 지냈겠지? 오늘부터 영호충이 너와 벗해 주마.]

바위에 앉자 두눈과 석벽과의 차이는 한 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벽의 왼쪽에는 풍청양(風淸揚)이라는 세 글자가 씌어 있었다.
예리한 무기로 새긴 듯했으며 필체가 힘차 보였다. 그 깊이는 반 치나 되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풍청양이라는 분은 누구일까? 아마도 본파의 한 분 선배님으로서 이곳에서 면벽을 하신 모양이구나. 아, 그렇지. 우리 조사들 가운데 풍자(風字) 돌림의 배분이 있었다. 그러니 이 풍 선배님은 나의 사백조이거나 사숙조였을 것이다. 이 세 글자는 매우 힘찬 것으로 보아 그의 무공도 대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부님과 사모님께서는 왜 한번도 들먹인 적이 없을까? 아마도 이 선배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모양이다.)

그는 눈을 감고 반 시진 동안 앉아서 내공을 연마하다가 몸을 일으켜 가볍게 운동을 한 후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 면벽하여 생각했다.

(내가 이후 마교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불문곡직하고 그들을 죽일 수 있을까? 마교의 사람들 가운데는 정말 좋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일까? 만약 좋은 사람이라면 어째서 마교에 들어갔을까? 일시 길을 잘못 선택했다 해도 즉시 물러나야 할 것 인데 물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마교의 요사한 무리들과 벗하여 이 세상 사람을 해치려는 속셈이 있지 않겠는가?)

삽시간에 그의 뇌리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평소 사부와 사모님께서 말하던 마교 사람들의 흉악한 행위들이었다. 강서(江西) 우노권사(于老拳師) 일가족 십삼 명은 마교에 잡혀서 산채로 큰 마무에 못박혔고 세 살 먹은 어린애들도 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노권사의 두 아들은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신음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제남부(濟南府) 용봉도(龍鳳刀)의 장문인 조등괴(趙登魁)가 며느리를 맞게 되어 집안에 손님이 가득 찼을 때 마교의 사람들이 끼어들어 신혼부부의 목을 뎅겅뎅겅 잘라서 여러 사람 앞에 던지고 축하의 선물이라고 했다지 않는가? 그리고 한양(漢陽) 학노영웅(?老英雄)의 칠십회 생일에 각처의 영웅호한들이 모여 축하하게 되었는데 축하잔치를 하는 마룻바닥 아래에 마교가 화약을 묻어 놓았다가 폭발을 시켜 영웅호한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죽고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산파의 기(紀) 사숙은 바로 그 사건으로 한 팔이 날라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것은 기 사숙이 친히 말한 것이니 절대 틀림없을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이 뇌리에 오갔고 다시 정주(鄭州) 대로(大路)에서 숭산파의 손(孫) 사숙을 만난 적이 있었다. 손 사숙은 두 손과 두 발이 모조리 잘렸으며 눈알마저 뽑혀져서 연신 부르짖지 않았던가?
[마교가 나를 해쳤다!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 마교가 나를 해쳤다!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

그때 숭산파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손 사숙이 그토록 심한 중상을 입은 끝이라 어떻게 치료를 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그의 얼굴에 난 두 개의 눈구멍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던 광경을 생각하고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며 생각했다.

(마교의수단이 그토록 악랄하니 곡양의 조손이 나를 구했다 해도 결코 좋은 마음을 가지고 구했다고는 볼 수 없다. 사부님께선 이후 마교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당장 죽이겠느냐고 물으셨는데 그야말로 주저할 필요가 있겠는가? 당연히 검을 뽑아 죽여야지!)

이치를 깨닫게 되자 그의 마음은 개운해졌다. 길게 휘파람을 내불며 뒤설음질쳐서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허공에서 날렵하게 몸을 돌려 앞으로 나갔다가 땅 위에 내려섰다. 그리고 자세를 가다듬은 이후 눈을 떴다. 바라보니 벼랑의 가장자리에 와 있었는데 벼랑의 끝과는 불과 두 자 정도의 간격이 있을 뿐이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힘을 더 주었다면 두 자 정도 더 나아갔을 것이고 그의 몸은 벼랑으로 떨어져 박살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가 눈을 감고 몸을 날린 것은 사전에 계산을 하고 행한 것이었다.
이후 마교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즉시 죽인다고 생각하니 번뇌가 없어져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장난을 한 것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나의 담은 크지 않구나! 적어도 한 자 정도 앞으로 더 나갔어야만 했다.)

이때 누군가 그의 뒤에서 손뼉을 치며 웃었다.

[재미있네요!]

악영산의 음성이었다. 영호충은 크게 기뻤다. 악영산은 손에 커다란 대바구니를 들고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다.

[대사형, 밥을 가져 왔어요.]

그리고 바구니를 놓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더니 몸을 돌려 바위 벽을 마주보고 앉으며 말했다.

[눈을 감고 벽을 마주보다가 벼랑으로 날아가는 것이 무척 재미있어 보이네요. 저도 시험해 볼래요.]

영호충은 이 시험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장난을 친 것도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한연후에 시행하지 않았던가? 악영산의 무공은 자기보다 훨씬 뒤떨어지니 힘을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사용치 않는다면 큰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무척 해보고 싶어하자 만류하지 못하고 벼랑가에서 지켜보았다.
악영산은 대사형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뛰어야 할 거리와 힘을 가늠해보고 두 발로 땅을 차며 몸을 솟구쳤다. 그녀 역시 허공에서 가볍게 몸을 돌려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녀는 영호충보다 바위 가장자리에 가깝게 내려서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을 날릴 때 힘을 강하게 주었다. 몸이 내려설 때 그녀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눈을 떴다. 눈 앞은 바로 밑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골짜기가 아닌가? 그녀는 깜짝 놀랐다. 영호충은 손을 뻗어 그녀의 왼팔을 잡았다. 그녀는 땅 위에 내려섰다. 벼랑 끝과는 한 자 정도였다. 확실히 영호충보다는 더 많이 뛴 것이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대사형, 제가 대사형보다 재간이 좋지요?]

영호충은 그녀가 조금 전 두려움에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던 사실을 상기하고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 말했다.

[이 같은 장난은 다시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아신다면 크게 꾸중하실거다. 아마도 나에게 일 년 더 면벽을 하라고 하실거야.]

악영산은 정신을 가다듬고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웃었다.

[그러면 저도 벌을 받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 두 사람이 이곳에서 면벽을 할테니 재미있지 않겠어요? 매일 누가 이기나 시합을 할 수도 있구요.]

영호충은 그녀의 말을 받아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리가 매일같이 함께 면벽을 한다고?]

그는 동굴 안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설레였다.

(내가 만약 사매와 이곳에서 일 년 동안 떨어지지 않고 보낼 수 있다면 신선도 나만큼 즐겁지는 못할거야. 아하! 그럴 수는 없지.)

그는 말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그대에게 정기헌(正氣軒)에서 면벽을 하면서 한 걸음도 떠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들이 일 년간 보지 못할 것이 아니겠어?]

악영산은 말했다.

[그건 불공평해요. 어째서 대사형이 이곳에 있는데 저를 정기헌에 가둔다 말이예요?]

그러나 부모는 결코 자기로 하여금 주야로 대사형과 함께 있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말머리를 돌렸다.

[대사형, 어머님은 매일 육후아를 시켜 밥을 나르도록 했어요.
그런데 제가 육후아에게 말했죠. '육 사형 매일같이 사과애(思過崖)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려면 아무리 좋은 당나귀라 해도 역시 병이 날 거예요. 차라리 내가 대신 수고를 해 줄테니 무엇으로 보답해 주세요.' 그렁 육후아 사형은 말했어요. '사모님께서 내게 시킨 일을 게으름 피울 수 없어. 더군다나 대사형은 나에게 잘 대해 주니 대사형께 일 년간 밥을 갖다주면서 그를 만나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야. 어찌 고생이라 하겠어?' 대사형, 육 사형은 정말 얄밉지요?]

영호충이 말했다.

[그가 한 말은 사실이야.]

악영산은 말했다.

[육후아는 또 말햇어요. '평소 내가 대사형께 몇 수의 재간을 받으려고 할 때마다 그대가 와서 나를 쫓아버리고 대사형께 한 마디도 못하게 하지 않았어?' 대사형, 언제 내가 그랬어요. 육후아는 정말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인 거예요. 그는 또 말했어요. '금후 일 년 동안 나는 사과애로 올라가 대사형을 만날 수 있지만 소사매는 대사형을 만나 볼 수 없게 되었어.' 그래서 저는 성질을 막 부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겠어요. 나중에...... 나중에......]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는 나중에 검을 뽑아 검을 주었지?]

악영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나중에 화가 나서 울었어요. 육후아는 그제서야 밥을 대사형께 갖다 주라고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었어요.]
영호충은 그녀의 조그맣고 귀여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두 눈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울었던 흔적이었다.

(그녀가 나를 이같이 대해 주는 이상 나는 그녀를 위해 천번만번 죽으래도 죽겠다.)

악영산은 바구니에 덮힌 보자기를 벗기고 두 접시의 찬과 젓가락, 그리고 밥그릇을 꺼내 바위 위에 내놓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어째서 밥그릇과 젓가락이 두 몫이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대사형과 함께 먹으려고요. 이것이 무엇이죠?]
그러면서 그녀는 마구니 아랫쪽에서 조그만 술호로를 꺼내들었다. 영호충은 술을 목숨처럼 좋아하는지라 술을 보자 몸을 일으켜 악영산을 향해 급히 읍을 하며 말했다.

[정말 고맙군. 그렇지 않아도 이 일 년 도앙나 술을 못 먹게 되었군 하고 근심을 하고 있던 참이야!]

악영산은 호로의 마개를 뽑고 호로를 영호충에게 건네주며 웃었다.

[하지만 많이 마실 술은 없어요. 저는 매일 이 조그만 호로에 술을 훔칠 수 있을 거예요. 너무 많으면 어머님께 발각이 될 거예요.]

영호충이 천천히 그 조그만 호로의 술을 다 마신 후에야 식사를 했다. 화산파에선 문하제자가 사과애 위에서 면벽을 할 때 비린 것을 먹지 못하게 했다. 부엌에서 영호충에게 만들어 준 반찬은 한대접의 푸른 야채와 두부였다. 악영산은 대사형과 함께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하니 밥맛이 좋았다. 두 사람이 밥을 먹은 후 악영산은 다시 영호충과 쓸데없는 농담을 반 시진이나 주고받았다.
그녀는 날이 어두워지자 그릇을 챙겨 산 아래로 내려갔다. 이후 매일 저녁 무렵이 되면 악영산은 밥을 가지고 벼랑 위로 올라왔으며 함께 먹었다. 영호충은 벼랑 위에서 홀로 지내게 되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내공을 연마하고 사부님이 전수해준 기공(氣功)과 검법을 연마하는가 하면 전백광의 쾌도를 흉내내 보기도 했고, 사모님이 창안하신 무쌍무대 영씨일검을 연구해 보기도 했다. 이 영씨일검은 일검에 지나지 않았으나 화산파의 기공과 검법을 내포하고 있었다. 영호충은 자기의 조예가 아직도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일을 그르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고 매일같이 내공에 힘썼다.
그는 벌을 받고 면벽을 하면서 죄를 뉘우쳐야 했지만 면벽은 고사하고 잘못을 뉘우칠 기회조차 없었다. 매일 저녘 무렵 악영산과 한담을 나누는 시간 외에는 모든 시간을 무공을 연마하는데 보냈다.
어느 덧 두 달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옥녀봉은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고 있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악 부인은 영호충을 위해 솜옷 한벌을 지었고, 육후아를 시켜 봉우리 위로 올려보내 그에게 전해주었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폭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점심 때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영호충은 하늘에 닭털 같은 구름이 덮힌 것을 보고 이 눈이 좀처럼 그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산길이 험준한데 이 눈이 저녘까지 내리면 땅이 매우 미끄러울 것이다. 소사매가 밥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는 아랫쪽으로 전갈을 보낼 수 없어 초조했다. 다만 사부와 사모님이 나서서 만류했으면 하고 바랐을 뿐이었다.

(소사매가 육 사제 대신 나에게 밥을 갖다 주는 것을 사부님과 사모님이 어찌 모르시겠는가? 다만 모르는 척하실 뿐이겠지. 그런데 오늘 벼랑 위로 오르다가 잘못해 실족하면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 사모님께선 틀림없이 그녀를 벼랑 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시겠지.)

그는 걱정이 되어 황혼이 질 때까지 일각이 멀다하고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날은 점점 어두어졌다.그녀가 정말 오지 않아 영호충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날이 밝으면 육 사제가 반드시 밥을 가져오겠지. 그때 소사매가 모험을 하면 안 된다고 전갈을 해야지.)

그리고 그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자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벼랑 위로 오르는 산길 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고 곧이어 악영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사형...... .]

영호충은 놀랐다. 기쁨에 얽혀 벼랑가로 달려갔다. 목화송이 같은 눈송이가 퍼붓고 있는 벼랑 위를 악영산이 한걸음 올라왔다가 한걸음 미끄러지는 듯하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영호충은 사명을 받고 있는 몸이기 때문에 감히 벼랑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다. 그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붙잡아 주려고 해따. 그러다가 악영산의 오른손이 그의 손에 닿는 순간 영호충은 그녀의 손을 잡고 힘껏 벼랑 위로 끌어 올렸다.
달빛은 몽롱했다. 그녀의 전신은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머리 카락에도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으며, 왼쪽 이마에는 붉은 혹이 볼록 튀어 나와 있었고, 아직 피가 맺혀 있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

악영산은 입을 비쭉하더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

[넘어졌어요. 법그릇도 산골짜기로 떨어뜨렸지 뭐예요. 그대는...... 그대는 오늘밤 굶어야 될 거예요.]

영호충은 고맙기도 했고 측은하기도 했다. 옷 소매자락으로 그녀의 상처를 눌러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소사매, 산길이 이처럼 미끄러운데 왜 올라왔지?]

악영산은 말했다.

[밥이 없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리고...... 저는 대사형이 보고 싶었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만약 그대가 산골짜기로 떨여졌다면 내가 무슨 낯으로 사부님과 사모님을 대할 수 있겠어?]

악영산은 미소지었다.

[울상을 짓지 마세요. 저는 지금 무사하잖아요. 애석하게도 저는 쓸모가 없어 벼랑가에 다와서 밥바구니와 호로를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가 무사하다면 나는 열흘간 밥을 안 먹어도 괜찮아.]
악영산은 말했다.

[반쯤 올라오니 땅바닥이 미끄러웠어요. 저는 진기를 돋우어 몇번 뛰어오른 후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가파른 언덕 위로 올라올 수 있었어요. 그때 저는 정말 골짜기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웠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소사매, 약속해. 이후는 정말 이 같은 모험은 않겠다고. 그대가 떨어지게 된다면 나도 함께 뛰어내릴 수밖에 없어.]
악영산은 두 눈에 희열의 빛이 가득 차 올랐다.

[대사형, 초조해할 것 없어요. 그대의 밥을 가져오다가 실족하게 된다면 그것은 내 잘못이지 대사형의 잘못이 아니예요.]
영호충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마. 만약 육 사제가 골짜기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된다면 나는 결코 골짜기 아래로 떨어져 죽지는 않을거야.]

악영산은 나직이 말했다.

[그럼, 내가 죽으면 그대도 따라 죽겠다는 거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고 말고! 소사매, 그것은 그대가 나에게 밥을 갖다 주기 때문이 아니야. 만약 그대가 다른 사람의 밥을 갖다 주다가 그 같은 사고를 당하더라도 나는 홀로 살아남지 않을거야.]

악영산은 힘주어 그의 손을 잡았다. 마음속으로 끓어오르는 애정을 느끼며 부드럽게 불렀다.

[대사형.]

영호충은 그녀를 품 속에 안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본 채 꼼작도 하지 않았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차츰차츰 두 사람의 눈에 덮여가고 잇엇다.
한참 후에 영호충은 입을 열었다.

[오늘밤 그대는 혼자 내려갈 수 없어. 사부님께선 그대가 올라 온 것을 알고 계시오? 그 누구를 보내와서 그대를 데려갔으면 가장 좋겠군!]

악영산은 말했다.

[아버님은 오늘 아침 일찍 숭산파의 죄 맹주가 보내온 편지를 받고 상의할 일이 있다고 어머님과 함께 산을 내려가셨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면 그대가 벼랑 위로 올라온 것을 아는 사람은 없소?]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믄요. 둘째 사형, 세째 사형, 네째 사형과 육후아는 아버님을 따라갔으니 제가 벼랑 위로 올라와 대사형을 만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지 않다면 육후아가 밥을 갖다 주겠다고 나와 다투게 되었을 거예요. 아! 그렇군요! 임평지라는 녀석이 제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어요. 하지만 내가 그에게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말라고 당부해 놓았어요. 그렇지 않을 때는 내가 때려 주겠다고 했어요.]

영호충이 말했다.

[아이쿠! 사매의 위풍이 대단한걸!]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야 물론이죠. 간신히 나를 사저라고 부르는 사람이 생겼는데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다면 억울해서 죽고 말 거예요. 그대와는 좀 다르죠. 모두가 그대를 대사형이라고 부르니 그거야 별로 이상할 것도 없죠.]

두 사람은 한동안 웃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면 오늘밤 그대는 돌아갈 수 없겠군! 이 동굴에서 하룻밤 지내고 날이 밝으면 내려가도록 해.]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이 협소해 두 사람은 겨우 몸을 눕힐 수 있었으나 몸을 이리저리 뒤척일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은 채 깊은 밤까지 한담을 주고받았다.
악영산은 끝내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영호충은 그녀가 감기에 들까봐 솜옷을 벗어서 그녀를 감싸 주었다. 동굴 밖에서 하얀 달빛이 스며 들어왔다. 희미한 빛이나마 악영산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소사매가 나에게 이토록 깊은 정을 느끼니 나는 그대를 위해서라면 몸이 박살이 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

그는 턱을 고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안 계셨다. 사부님과 사모님이 그를 키워주었으며 또 그를 친 아들처럼 대해 주었다. 그는 화산파의 대제자였다. 가장 일찍 문하 제자가 되었으며 무공에 있어서도 같은 배분의 사제들보다 뛰어났다. 훗날 반드시 사부의 의발(衣鉢)을 이어받아 화산일파를 거느리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소사매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 그에게 베푼 은혜는 끝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신도 천성이 구속받기를 싫어해서 때때로 사부와 사모님의 화를 돋우어 그들 두 분의 기대를 저버리는 때가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가 악영산의 미미하게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 임가 녀석, 말을 듣지 않겠어? 이리와! 때려 줄테니까!]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런데 그녀는 여전히 두 눈을 꼭감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숨 소리도 고르게 잠을 자는 것이 아닌가?
영호충은 조금 전 그녀가 한 말이잠꼬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습기 짝이 없었다.

(한번 사저가 되더니 우쭐해서 어쩔줄 모르는구나! 이 며칠 동안 임 사제는 그녀의 호령을 들어야 했고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속으로 꽤 화가 났을거야. 하하하...... 그녀는 꿈 속에서도 그에게 욕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구나.)

영호충은 그녀를 지켜보며 날이 밝을 때까지 시종 눈을 붙이지 않았다. 악영산은 전날밤 매우 피곤한 듯 진시 때쯤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영호충이 니소를 띄운 채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하품을 하더니 웃어 보였다.

[일찍 일어 나셨네요?]

영호충은 한숨도 자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무슨 꿈을 꾸었지? 임 사제를 때려 주었겠지?]
악영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저의 잠꼬대를 들은 모양이군요. 그렇죠? 임평지 그 녀석이 매우 뻣뻣하게 나오며 저의 말을 안 듣잖아요. 호호호...... 그래서 대낮에 욕을 했는데 밤에도 잊지 못하고 잠꼬대로 나오는군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꿈 속에서 그에게 폭포로 가서 검술을 연마하자고 했어요. 그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나는 그를 꼬드겨서 폭포로 데리고가 단번에 그를 폭포 아래로 떨어뜨렸어요.]

영호충이 웃었다.

[아이쿠! 그럴 수가 있나. 그것은 살인이 아니야?]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건 꿈에서 한 일인데 웬 걱정이세요? 내가 정말 그 녀석을 죽일까봐 두려우세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낮에 무슨 생각을 하던 밤엔 낮의 생각을 꿈꾸는거야. 그대가대낮에 정말 임 사제를 죽였으면 했고, 그 생각을 자꾸 하다보니 밤에 그 같은 꿈을 꾸게 된 거야.]

악영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녀석은 정말 쓸모가 없어요. 기초적인 검법을 삼 개월 동안 연마했는데도 조금도 진보가 없어요. 그래도 매우 열심히 노력을 해요. 밤낮 연마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그만 울화가 치밀더군요.
내가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그는 피하지 못해요. 검을 들고 단번에 죽일 수 있어요.]

그러면서 오른손을 옆으로 휘둘렀다. 일초의 화산검법을 펼치는 시늉을 해보인 것이었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백운출수(白雲出岫)라는 수법에 임가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겠군!]

악영산은 간드러지게 웃었다.

[호호호...... 내가 정말 백운출수를 쓴다면 그의 목이 땅에 떨어지겠군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사저니까 사제의 검법이 틀렸으면 마땅히 검법을 가르쳐 주는게 옳아. 어째서 걸핏하면 검을 들어 죽이려고만 하지? 이후 사부님께서 다시 백 명의 제자를 거두어들이셨을 때 그대가 어느날 갑자기 구십 구 명을 죽인다면 어떻게 되겠어?]

악영산은 벽을 붙잡고 깔깔 웃었다.

[그대의 말이 정말 올하아요. 나는 아흔 아홉 명은 죽여도 반드시 한 사람은 남겨 놓을 거예요. 모조리 죽인다면 그 누가 나를 사저라고 부르겠어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아흔 아홉 명을 죽인다면 백 번째는 도망을 치고 말걸? 그러면 역시 사저 노릇을 할 수 없게 돼.]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그때는, 그대를 다그쳐 저에게 사저라고 부르게 만들죠 뭐.]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사저라고 부르는 것은 상관없어. 그렇지만 그대는 정말 나를 죽일거야?]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말을 들으면 죽이지 않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일래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사저, 제발 사정을 봐 주시구료!]

눈은 이미 멎었다. 사저와 사매들이 악영산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어떤 말이라도 하게 되면 소사매는 무척 무안할 것이라고 영호충은 생각했다. 그는 농담을 주고 받은 후 그녀에게 벼랑 아래로 내려가도록 재촉했다. 악영산은 미련이 남은 듯 말했다.

[나는 여기서 조금 더 놀다 갈래요. 아버지와 어머님이 안 계시니 답답해 죽겠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사매, 이 며칠간 나는 충영검법을 연마하고 있는 중이야. 내가 벼랑 아래로 내려간다면 그대를 데리고 폭포로 가서 충영검법을 가르쳐 줄께.]

그는 한참동안 권해서야 악영산은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이날 황혼 무렵, 고근명이 밥을 가져왔다. 악영산이 감기가 든 듯 열이 나서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사형이 걱정되어 고근명에게 밥을 갖다 주라고 부탁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술을 가져가라고 당부하더라는 것이었다.
영호충은 악영산이 걱정되었다.

(어젯밤 넘어지는 바람에 놀라서 병이 났군!)

당장 벼랑 아래로 내려가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는 이틀낮 하룻밤을 굶었지만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고근명은 대사형과 소사매가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영호충이 매우 초조해 하자 말했다.

[대사형, 너무 근심하실 것 없읍니다. 어제 눈이 너무 내렸고 날씨가 차서 감기에 걸렸을 것이오. 모두 무공을 익힌 사람들인데 그까짓 감기쯤이 뭐가 대단하겠읍니까. 한두 첩의 약을 먹으면 금방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영산은 십여 일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악불군 부부가 돌아와 내공으로 그녀의 몸에 스며든 한기를 몰아내고서야 점차 쾌유되었으며, 그녀가 재차 벼랑 위로 오른 것은 이십여 일이나 지난 후였다.
두 사람은 오랫만에 만나게 되자 크게 반가워했다. 악영산은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놀라 말했다.

[대사형, 그대도 병이 난 것이 아니예요? 왜 이토록 수척해지 셨어요?]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병이 나지 않았어. 나는...... 나는......]

악영산은 갑자기 깨닫고 왁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대는...... 그대는 나는 걱정하다가 이처럼 야위게 되었군요! 대사형 저는...... 이제 완전히 나았어요!]
영호충은 그녀의 손을 잡고 나직이 말했다.

[이 며칠 동안 나는 밤낮으로 저 길을 바라보고 있었지. 그저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이야. 그런데 고맙게도 그대는 끝내 와 주었어.]

악영산은 말했다.

[그러나 저는 종종 그대를 보았어요.]

영호충은 의아해 말했다.

[그대가 종종 나를 보다니?]

악영산은 말했다.

[내가 병이 났을 때 눈만 감으면 그대가 보였어요. 열이 매우 심하게 날 때 어머님은 제가 잠꼬대를 하는 소리를 들었대요. 모두 그대에 관해서 잠꼬대를 했다고 했어요. 대사형, 어머니는 그날 밤 제가 여기 왔다가 이튿날에야 내려간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영호충은 얼굴을 붉히며 놀람과 당황함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

[사모님께서 화를 내시지 않았어?]

악영산은 말했다.

[화내시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다음말을 잇지 못했다.
영호충은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다는 거지?]

악영산은 말했다.

[말하지 않겠어요.]

영호충은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설레였다. 그는 마음을 진정하고 말했다.

[큰병을 앓고 난 후인데 이토록 빨리 벼랑 위에 오를 필요는 없었어. 나는 그대가 차츰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다섯째 사제와 여섯째 사제가 나에게 밥을 가져다 줄 때 매일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는 걸.]

악영산은 말했다.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이토록 야위었나요?]

영호충은 씩 웃고 말했다.

[그대의 병이 나았으니 나는 금방 살이 오르게 될꺼야.]
악영산은 말했다.

[솔직이 말하세요. 이 며칠 동안 도대체 몇그릇의 밥을 먹었죠? 육후아는 그대가 숱만 마셨지 아무리 달래도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어요. 대사형, 그대는...... 어째서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해요?]

그렇게 말한 그녀의 눈 주위가 다시 붉어졌다.
영호충은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그의 말은 믿을 필요가 없어. 무슨 말이든 육후아는 과장하는 버릇이 있잖아. 내가 언제 술만 마시고 밥을 먹지 않았다고 그래.]

이때 찬바람이 불어오자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직도 엄동설한이고 우뚝 솟은 벼랑 위는 나무가 없어 바람을 막아 주지 않기 때문에 무척 추웠다.
영호충은 재빨리 말했다.

[소사매, 아직 쾌차하지 않았으니 다시 감기에 들지 않도록 해야 돼. 빨리 벼랑 아래로 내려가봐. 언제든지 해가 솟아오르고 그대가 매우 건강할 때 다시 나를 찾아오라고.]

악영산은 말했다.

[춥지 않아요. 이 며칠 동안 바람이 불지 않으면 눈이 왔어요.
해가 떠오르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걸요.]
영호충은 급히 말했다.

[그대가 다시 병이 난다면 어떻게 하겠어? 나는...... 나는......]

악영산은 그의 이 초췌한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만약 정말 병이 덧나게 된다면 그 역시 병으로 쓰러질 것이다.
이 벼랑 위에는 돌볼 사람도 없으니 그의 목숨을 빼앗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좋아요. 나는 가겠어요. 아무쪼록 몸조심 하시고 술을 적게 마시도록 하세요. 그리고 한끼니에 세 그릇의 밥을 먹도록 해요. 저는 가서 아버님께 말하겠어요. 그대의 몸이 좋지 않으니 몸을 보양해야 하며, 채소만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겠어요.]

영호충은 미소지었다.

[나는 계율을 어기면서까지 비린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아. 그대를 보았으니 기뻐서 사흘도 되지 않아 살이 오르게 될거야. 착한 누이지? 빨리 벼랑 아래로 내려가요.]

악영산은 두눈에 정을 담뿍 담고 두 뺨을 붉힌 채 나직이 말했다.

[나를 뭐라고 불렀죠?]

영호충은 겸연쩍었다.

[불쑥 말한다는게 그렇게 되었어. 소사매는 너무 탓하지 말아.]
악영산은 말했다.

[제가 왜 탓하겠어요. 나는 그렇게 부르는게 좋아요.]
영호충은 가슴이 화끈거렸다. 팔을 벌려 그녀를 품 속에 안고 싶었으나 겨우 참았다.

(그녀가 나에게 이처럼 대할 때 더욱 멀리해야 한다. 어지 그녀를 모독할 수 있겠는가?)

그는 고개를 돌리고 낮은 어조로 말했다.

[산을 내려갈 때는 천천히 가고 평소처럼 달려가지 말도록 해.
피곤하면 쉬어가면서 천천히 가요.]

악영산은 말했다.

[녜.]

그리고 그녀는 몸을 돌리더니 벼랑가로 다가갔다.
악영산은 벼랑 아래 사 장쯤 되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자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쳐 움직이지 않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천천히 내려가도록 해. 이제 내려가야지.]

악영산은 말했다.

[녜.]

그제서야 그녀는 몸을 돌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날 영호충은 일찌기 겪어보지 못한 기쁨을 맛보았다. 바위 위에 앉아 희열을 참을 수 없어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별안간 소리내어 길게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산골짜기로 휘파람소리가 메아리쳤으며 그 메아리 소리는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정말 기쁘다! 나는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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