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2-2

3학년2반 | 2022.03.12 07:24:08 댓글: 0 조회: 95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file.moyiza.kr/fiction/4355061
이튿날은 눈이 내렸다. 악영산은 정말 오지 않았다. 영호충은 육후아로부터 그녀의 회복이 빠르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진다는 말을 듣고 기쁨을 금치 못했다.
다시 이십여 일이 지났다. 악영산은 한바구니의 종자(?子 : 대나무 잎에 찹쌀을 싸서 찐 것)를 가지고 벼랑 위로 올라왔다. 영호충의 얼굴을 한참 동안 응시하던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를 속이지 않았군요. 정말 얼굴이 좋아졌어요.]

영호충은 그녀의 뺨에 붉은색이 도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대 역시 좋아졌군. 이 같은 얼굴을 보니 정말 기뻐.]
악영산은 말했다.

[나는 매일같이 그대에게 밥을 갖다 주겠다고 했지만 어머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날씨가 춥고 습기가 많다고 하시면서 사과애(思過崖)로 돌아오면 목숨을 잃을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이었어요. 저는 대사형이 밤낮으로 벼랑에서 지내고 있어서 병이 날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러나 어머님은 대사형은 내공이 고강하여 병이 나지 않을거라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등 뒤에서 대사형을 칭찬한 거예요. 대사형은 기쁘죠?]

영호충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종종 사부님과 사모님을 생각하지. 한시 바삐 두 분의 얼굴을 뵙고 싶어.]

악영산은 말했다.

[어제 저녁 어머니를 도와 하루종일 종자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죠. 이 종자를 가져와 대사형에게 많이 먹여 드려야지 하고요. 그런데 오늘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어머님은 말씀하셨어요. '이 바구니의 종자를 충아에게 갖다 주어 먹도록 해라' 정말 뜻밖이었어요.]

영호충은 코가 시큰해져 생각했다.

(사모님께선 내게 정말 잘 대해 주시는구나.)

악영산은 말했다.

[이것은 방금 찐 것이라 아직 따끈따끈 해요. 제가 벗겨 드리죠.]

그리고 그녀는 종자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잎사귀가 풀리지 않으라고 동여맨 끈을 풀고잎을 벗겼다.
영호충은 구수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악영산은 종자를 내밀었다. 그는 받아서 한 잎 깨물었다. 이 종자는 소찬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안에는 초고(草?), 향균(香菌), 부의(腐衣), 연자(蓮子), 두변(豆?) 등을 섞어 넣어 맛이 좋았다. 악영산은 말했다.

[이 초고는 소림(小林)이 나와 함께 캔 거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소림이라니?]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임 사제 말이예요. 그저께 그는 나에게 동쪽산 비탈길 아래 초고가 있다고 하지 않겠어요. 반나절을 캤는데 겨우 조그만 바구니에 반 밖에 차지 않았어요. 많지는 않았지만 맛이 참 좋아요. 그렇죠?]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군. 맛이 참 좋군! 잘못하다간 혓바닥까지 깨물어 삼키겠어. 소사매, 요즘에는 임 사제를 욕하지 않아?]

악영산은 말했다.

[왜 안 해요. 그가 말을 듣지 않으면 용서없어요. 최근에 그는 많이 착해져서 욕을 덜하는 편이죠. 검법도 열심히 연마해요. 진보가 있을 땐 몇 마디 칭찬도 해주죠. '자아, 소림, 그 일초는 그럴싸해. 어제보다 한결 나은걸! 다만 아직 빠르지 못해. 다시 연마해. 다시 연마해 호호호......]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는 그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지?]

악영산은 말했다.

[음, 그가 말하는 것은 복건성의 말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사저들이나 사매들도 잘 알아듣지 못해요. 나는 복주에 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말을 잘 알아듣죠. 아버님께선 저에게 한가로울 때 그에게 가르치라고 했어요. 대사형, 저는 벼랑 위로 올라 오지 못하자 매우 답답하고 할 일이 없고 해서 그에게 몇 수 가르친 거예요. 그런데 소림은 둔하지 않아빨리 배워요.]

영호충은 웃었다.

[사저겸 사부노릇을 하게 되니 그가 감히 그대의 말을 안 들을 수 있겠어?]

악영산은 말했다.

[말을 잘 듣는다고는 볼 수 없어요. 어제와 그저께 나는 그에게 함께 꿩을 잡으러 가자고 했으나 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는 백홍일관(白虹貫日)과 천신도현(天紳倒懸)이라는 두 초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연습을 해야 한다나요.]

영호충은 의아하여 말했다.

[그가 화산에 온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백홍관일과 천신도현을 익히게 되었지? 소사매, 본파의 검법은 차근차근 배워야지 서둘러선 안 돼.]

악영산은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함부로 가르치는 게 아니예요. 소림은 호승심이 강해요. 낮에도 연마하고 밤에도 연마해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면 세 마디도 하기 전에 검법 애기를 들고 나오곤해요. 그랫 다른 사람이 삼 개월간 익혀야 할 검법을 반 개월 만에 다 배워요. 그 까닭에 내가 그를 데리고 놀고 싶어도 그는 시원스럽게 따라오지 않아요.]

영호충은 잠자코 있었다. 마음속으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번뇌를 느꼈다. 하나의 종자를 입에 두입 베어 물었을 뿐 손에 들고 멍하고 앉아 있었다.
악영산은 그의 손가락을 잡아당기며 웃었다.

[대사형, 혓바닥을 삼키게 되었나요? 어째서 말이 없어요?]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졌다가 반쯤 남은 종자를 입으로 가져갔다.
본래 매우 고소한 종자였지만 입 안에 쩍쩍 붙어 제대로 삼킬 수 없었다.
악영산은 그를 가리키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급히 먹으니 이빨에 철썩 달라붙죠?]

영호충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애써 종자를 삼키며 생각했다.

(내가 이처럼바보스러울까? 소사매는 놀기를 좋아하지만 벼랑 위에서 나는 내려갈 수 없다. 그녀가 임 사제와 놀고 싶어하는 건 당연하다. 내가 이처럼 좁게 생각하다니 한심하구나!)

이처럼 생각하자 그의 마음은 가라앉았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 종자는 아무래도 그대가 싼 것 같군. 너무 꼼꼼이 쌌기 때문에 이빨과 잇몸이 붙고 말았어.]

악영산은 소리내어 웃었다.

[불쌍한 대사형. 이 벼랑 위에 갇혀 있다가 음식 맛에 너무 민감해졌군요!]

그녀는 십여 일이 지나서야 벼랑 위로 올라왔다. 이번에 그녀는 조그만 대바구에 잣과 밤을 절반쯤 담아 가지고 왔다.
영호충은 그녀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이 십여 일 동안 밥을 가져다 주는 육후아에게 소사매의 근황에 대해 물어 보았을 때 육후아는 머뭇거리며 난처한 푸정을 짓곤 했었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의심이 일었으나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마음이 초조해져서 다그칠라치면 육후아는 마지 못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소사매의 건강은 좋아요. 매일 검술을 열심히 연마하고 있어요.
아마도 사부께서 그녀에게 벼랑 위로 올라와 대사형의 공부를 방해하지 못하게 한 것 같아요.' 이처럼 마음을 졸이며 며칠을 보내다가 갑자기 올라온 악영산을 대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매우 건강해 보였고 아름다워 보였다. 영호충은 의심이 더럭 치밀어 올랐다.

(그녀의 몸은 건강해졌다. 그런데 어째서 십여 일이 지나서야 겨우
벼랑 위로 올라왔을까? 설마 사부님과 사모님이 허락을 안했던 것일까? 아니면 혹시......)

악영산은 영호충의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대사형, 며칠간 와 보지 못했다고 저를 탓하시는게 아니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왜 그대를 탓하겠어.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벼랑 위로 못오르게 하셨을테지. 그렇지?]

악영산은 말했다.

[맞아요. 어머님은 제게 새로운 검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검법의 변화가 복잡해서 벼랑 위로 올라와 대사형과 농담을 하게 되면 마음이 헷갈리게 되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어떤 검법이지?]

악영산은 말했다.

[짐작해 보세요.]

영호충은 말했다.

[양오검(養吾劍)?]

악영산은 말했다.

[아니예요.]
[희이검(希夷劍)?]

악영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번 더 알아맞춰 보세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럼 숙녀검(淑女劍)?]

악영산은 혀를 내밀었다.

[어머니가 자랑하는 재간이니 저로선 숙녀검을 흉내낼 수 없죠.
대사형께 말해 줄께요. 바로 옥녀검십구식(玉女劍十九式)이예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매우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영호충은 약간 놀랐으나 곧이어 기쁜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가 벌써 옥녀검십구식을 익히게 되었어? 음 그것은 정말 복잡한 검법이지?]

그는 석연치 못했던 감정이 풀어졌다. 이 옥녀검은 십구식에 불과했지만 매 일식마다 복잡한 변화가 있었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일 식도 펼쳐낼 수 없었다. 그는 사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옥녀검십구식의 특징은 변화의 기묘함에 있다. 본파가 중시하는 이기어검(以氣馭劍)이라는 방법과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다.
여제자들은 팔힘이 약하기 때문에 강적을 만났을 때는 이 검법을 펼쳐 상대방을 현혹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배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영호충은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악영산은 공력으로는 아직 그 검법을 연마할 때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 한번 영호충과 악영산 그리고 몇 명의 사남매들은 사부와 사모님이 그 검법을 가지고 대련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사부님은 계속 각문각파의검법을 대결했으나 사모님은 계속 옥녀검십구식으로맞서 싸웠다.
십구식의 옥녀검은 놀랍게도 십여 문파나 되는 고명한 검법을 일일이 상대했던 것이다. 당시 뭇제자들은 옥녀검십구식을 보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때 악영산은 어머님께 가르쳐 달라고 졸랐으나 악 부인은 말했었다.

[너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 첫째로 너의 공력이 약하고, 둘째로 이 검법은 사람의 정신을 혼란시키고 번거롭게 한다. 그러니 스무 살이 된 이후에 배우도록 해라. 더군다나 이 검법은 다른 문파의 검초를 전문적으로 제압하는 효용이 있다. 만약 이 검법으로 화산검법과 자주 대련하게 된다면 화산검법을 파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화산검법은 위태한 지경에 빠지지 않겠느냐? 충아는 여러 문파의 검법을 많이 알고 있으니 이 다음에 네가 이 검법을 배우게 된다면 충아와 겨루어 다른 문파의 검법을 깨뜨리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해라.]
이것은 이 년 전의 일이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사부님께서 매일같이 그대를 상대로 대련을 해주시다니 놀랍군!]

이 검법은 임기웅변을 중시했으니 일정한 형식에 구애받지않았다. 손을 쓰게 되었을 때 상대방의 초식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연마해야 했다. 화산파에선 악불군과 영호충만이 다른 문파의 검법을 잡다하게 알고 있었다. 악영산이 옥녀겁십구식을 연마하려면 반드시 악불군이 친히 나서서 매일같이 상대해 줘야 했다.
악영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버님이야 그럴 시간이 없죠. 소림이 매일 저를 상대해 주고 있어요.]

영호충은 의아해 말했다.

[임 사제가? 그가 많은 문파의 검법을 알고 있었던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는 벽사검법밖에 몰라요. 아버님은 벽사검법의 위력이 강하지는 못하지만 초식의 변화가 신비롭기 때문에 제가 옥여검십구식을 연마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어요.]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랬었군!]

악영산은 말했다.

[대사형, 기분이 나쁘세요?]

영호충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왜 기분이 나쁘겠어? 그대가 본문의 수준 높은 검법을 익히는데 그대를 위해 기뻐했으면 기뻐했지 어째서 기분이 나쁘겠어?]

악영산은 말했다.

[제가 볼 때 그대의 표정은...... 분명히 기분이 나쁜 표정이었어요.]

영호충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몇 초식까지 익혔지?]

악영산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본래 어머님은 대사형을 상대로 그 검법을 익히라고 하셨죠.
그런데 이제 소림을 상대로 익히니까 대사형은 기분이 나쁘겠지요. 그렇죠? 그러나 대사형은 벼랑 위에서 내려갈 수가 없잖아요.
전 한시 바삐 그 검법을 연마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사형을 기다릴 수 없었던 거예요.]

영호충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대는 또 어린애 같은 말을 하는군! 동문 사남매인데 누가 그대를 상대해 주든 어때?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
그는 잠시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어. 사매가 임 사제와 놀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보다는 그 녀석을 상대로 검법을 익히고 싶은거지?]
악영산은 얼굴을 붉혔다.

[터무니없는 소리 말아요. 소림의 재간은 대사형과 비교할 때 십만 팔천 리나 차이가 나요. 그를 상대해서 무엇이 좋겠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물론 그를 상대로 연마하면 커다란 잇점이 있지. 초식을 펼칠 때마다 그로 하여금 반격할 겨를도 없이 공격할 수 있으니 즐겁지 않겠어?]

악영산은 깔깔거리고 웃더니 말했다.

[그는 얄팍한 벽사검법으로는 반격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죠?]

영호충은 소사매가 호승심이 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임평지를 상대로 대련을 하게 되면 새로 연마한 검법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고 매초마다 우세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임평지를 좋아해서 그와 연습을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굳어졌던 마음이 풀어졌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대를 상대로 몇 수 펼쳐 그대가 옥여검십구식을 어느 정도까지 연마했는지 볼까?]

악영산은 크게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오늘...... 오늘 벼랑 위로 오르며 나도 그와 같이 생각했죠.]

그녀는 방긋 웃으며 장검을 뽑아들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는 벼랑 위로 오르며 그 검법을 펼쳐 나를 이겨야겠다고 생각했겠지? 좋아! 손을 써봐.]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대사형, 그대의 검법은 언제나 나보다 뛰어난 편이었지요. 그러나 내가 이 옥녀검십구식을 연성하게 된다면 대사형의 업수이 여김을 받지 않을 거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언제 그대를 업수이 여겼어? 정말 좋은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군!]

악영산은 장검을 세우더니 말했다.

[그대는 아직 검을 뽑지 않았어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서두를 것 없어.]

그리고 왼손으로 검결을 짚고 오른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것은 청성파의 송풍검법(松風劍法)인데 이 일초는 송도여뢰(松濤如雷)라고 하지.]

그리고 오른손 식지와 중지를 뻗어 악영산의 어깨를 찔러갔다.
악영산은 비스듬히 뒷걸음질치면서 부르짖었다.

[조심해요!]

영호충은 말했다.

[겸손해 할 것 없어. 내가 막지 못하면 검을 뽑을거야.]
악영산은 뾰로통한 어조로 말했다.

[그대는 감히 맨손으로 나의 옥녀검십구식을 상대하겠다는 거예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아직가지 그대는 연성하지 못했지 않아. 그대가 연성하게 된다면 나는 맨손으로 상대할 수 없겠지?]

악영산은 이 며칠 동안 옥녀검십구식을 고되게 연마했다. 따라서 그녀는 자기의 검술이 크게 향상되어 강호의 일류고수라도 이길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녀가 십여 일 동안이나 오지 않은 이유는 그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가 단번에 놀라게 하여 영호충의 탄복하는 표정을 보려는데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자기를 매우 경시하여 맨손으로 옥녀검십구식을 받아내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앙칼진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검으로 그대에게 상처를 입혀도 그대는 탓하지 말아요!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님께도 말하면 안 돼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물론이지. 그대는 마음껏 펼쳐보도록 해. 검에 사정을 두게 되면 진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걸 명심하라구.]
그리고 왼손을 '휙' 하는 소리가 나도록 뿌리치며 호통을 쳤다.

[조심해!]

악영산은 부르짖었다.

[아...... 아니 그대는 왼손에도 검을 잡고 있나요?]
영호충이 이 일장을 내려쳤다면 악영산의 어깨죽지는 이미 잘려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력을 쏟아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청성파의 사람들은 쌍검을 쓰기도 하지.]

악영산은 말했다.

[맞았어요. 나는 청성파의 사람들이 쌍검을 차고 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그만 깜박 잊었군요.]

그리고 일검을 찔러갔다. 영호충은 그녀의 반격하는 기세가 표홀(飄忽)한 것을 보았다. 선녀가 춤을 추는 듯 날렵하기 이를데 없지 않은가? 그래서 칭찬의 말을 던졌다.

[이 일검은 정말 훌룡하군. 다만 아직 빠르지가 못해.]
악영산은 말했다.

[아직 빠르지 못하다고요? 더 빨랐다면 그대의 어깨를 베어버렸을 텐데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어디 베어 보시지.]

그리고 오른손을 검처럼 휘둘러 그녀의 왼팔을 자르려고 했다.
악영산은 속으로 울화가 치밀어 검을 질풍같이 휘둘렀다. 그리고 이 며칠간 연마한 옥녀검십구식을 일일이 펼쳤다. 이 십구식의 검법 가운데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구 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구 식 가운데 진정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육식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지 육 식이라 해도 상당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영호충은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그녀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가며 공격했지만 매번 앞으로 나가 공격을 하다가는 언제나 그녀의 날카로운 검세에 밀려 물러나곤 했다. 그리고 한번은 급히 물러나다가 불쑥 돋아난 바위에 등을 심하게 부딪치게 되었다.
악영산은 으기양양하여 말했다.

[그래도 검을 뽑지 않을 거예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조금 더 있다가 뽑지.]

그리고 그녀가 옥녀검을 일초 일식씩 펼쳐내도록 유도했다. 그녀가 되풀이해서 펼치는 것은 육 식에 불과했다. 영호충은 그녀의 검술을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갑자기한 걸음 나가 오른손을 내려치며 호통을 내질렀다.

[송풍검의 수법이다! 조심해!]

장세는 날카로웠다. 악영산은 그의 손이 자기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급히 검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 이 일초는 영호충이 이미 내다보고 있던 터였다. 그는 왼손을 질풍같이 앞으로 뻗어내며 중지(中指)를 튕겨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의 칼날이 튕기게 되었다. 악영산은 손아귀가 격렬하게 아파오자 그만 장검을 놓치고 말았다. 장검은 그녀의 손을 떠나 빙글빙글 돌며 산골짜기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악영산은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멍하니 영호충을 노려 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윗 이빨로 아랫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이쿠!]

영호충은 크게 부르짖으며 급히 벼랑가로 몸을 날렸다. 그 검은 이미 천장이나 되는 깊은 골짜기 아래로 떨어졌으며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별안간 벼랑가에 검은 그림자가 번쩍이는 것 같았다. 마치 옷깃이 펄럭이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정신을 가다듬고 바라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낭패한 얼굴이 되어 생각에 잠겼다.

(내가 어떻게 된거지? 내가 어떻게 된거야? 소사매와 검초를 시험한 것은 수백 번 수천 번이 된다. 나는 언제나 그녀에게 양보를 했으며 한번도 오늘처럼 손을 쓴 적이 없다. 내가 일을 처리 하는 것은 갈수록 형편없구나!)

악영산은 고개를 돌리고 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저 검...... 저 검!]

영호충은 다시 놀랐다. 소사매의 장검은 무쇠를 무우 자르듯하는 보검으로서 벽수검(碧水劍)이라고 했다. 삼 년 전 사부가 절강성(浙江省) 용천(龍泉)에서 구해온 거였다. 소사매는 첫눈에 반하여 그 검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했으며 사부에게 몇 번이나 달라고 졸랐으나 사부께선 시종 주지 않다가 금년 그녀 나이 십 팔 세 되는 생일날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이제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영호충은 이번에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다.
악영산은 왼발로 땅을 두번 차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숨을 돌리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영호충은 불렀다.

[소사매!]

악영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벼랑 아래로 달려내려갔다.
영호충은 벼랑 끝까지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손가락이 그녀의 옷소매에 닿으려고 할 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움츠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달려 내려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영호충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과거에는 될 수 있는 한 양보를 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서 사정없이 그녀의 보검을 퉁겨 버렸을까? 사모님이 그녀에게 옥녀검십구식을 전수해 주셔서 질투심이 일어난 것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원래 옥녀검십구식은 화산파의 여제자들이 익히는 검법이다. 소사매가 더욱 많은 무공을 배울수록 나는 기뻐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아...... 어쨌든 혼자 이 벼랑 위에서 지내다 보니 성질이 거칠어진 모양이다. 그녀가 내일 벼랑 위로 올라 오면 나는 정중히 사과를 해야지.)

이날 밤 그는 아무리 짐을 청하려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단정히 바위 위에 앝아서 내공을 연마했다. 그러나 심신을 가다듬을 수 없었다. 달빛이 비스듬히 동굴 안으로 비춰 들어 석벽을 밝게 비춰 주었다. 영호충은 벽에 씌인 풍청양이라는 세 글자를 보고 있다가 손가락을 뻗어 석벽의 움푹 들어간 글자를 더듬어 보았다.
갑자기 석벽이 어두워졌다.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석벽을 막아 선 것이었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대뜸 장검을 집어 들고 미처 검을 뽑지도 못하고 등 뒤로 향해 찔러갔다. 그러나 검이 중도에 이르렀을 때 그는 별안간 기뻐 부르짖었다.

[소사매!]

그리고 가까스로 공격을 거두어들이고 내쏟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리고 동굴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동굴 입구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컸으며 몸에는 청포(靑?)를 입고 있었다.
이 사람은 달빛을 등지고 있었고 얼굴을 한 조각 푸른 베로 가리고 있었다. 다만 한 쌍의 눈만을 내놓고 있었다. 영호충은 호통을 내질렀다.

[귀하는 누구시오?]

그리고 그는 입구를 향해 나가며 장검을 뽑았다.
그 사람은 대답을 하지 않고 오른손을 내밀어 앞쪽을 향해 두번 내리쳤다. 그것은 낮에 악영산이 펼쳤던 옥녀검 구 식 중의 이 초였다. 영호충은 크게 이상한 생각이 드는 한편 경계심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귀하는 본파의 선배님이십니까?]

별안간 한가닥 질풍이 얼굴을 향해 덮텨왔다. 영호충은 미처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검을 뽑았다. 이때 왼쪽 어깨가 살짝 아파왔다. 어느새 그 사람에게 얻어 맞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공을 돋우지 않은 것 같았다. 영호충은 급히 몇걸음 옆으로 미끄러져 피했다. 그 사람은 뒤쫓아 오지 않고 손을 검으로 삼아 삽시간에 옥녀검 십구식 가운데 육 식을 단숨에 펼쳐냈다. 그가 펼쳐 낸 수십 초는 마치 일초와 같았으며, 그 수법의 빠르기는 번개 같았다. 매 일초는 모두 악영산이 영호충을 상대로 펼쳤던 것이었다. 영호충은 어떻게 수십 초의 검법을 일 초인 양 펼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입을 딱 벌리고 그 사람의 동작을 지켜 보기만 했다.
그 사람은 기다란 소맷자락을 펄럭이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벼랑 뒤로 돌아갔다.
영호충은 정신을 차리고 부르짖었다.

[선배님, 선배님!]

그리고 벼랑 뒤쪽으로 쫓아갔으나 교교한 달빛만이 온누리에 뿌려지고 있을 뿐 사람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영호충은 찬 기운을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누구일까? 그 같이 옥녀검십구식을 펼친다면 나는 절대로 그의 손에 들린 장검을 튕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매 일초마다 능히 나의 손을 베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찌 손뿐이랴? 나의 어디를 찌르고 싶으면 어디든지 찌를 수 있을 것이고 나의 어디를 베려고 한다면 벨 수 있을 것이다. 그 육 식의 옥녀십구식 아래 이 영호충의 운명은 좌우되고 말 것이다. 원래 이 검법은 이토록 커다란 위력을 지니고 있었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그것은 결코 검법 자체가 위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직 그 사람의 무예가 신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아무리 평범한 초식을 펼쳐도 나는 막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 어찌하여 옥녀봉 위에 있었던 것일까?)
사부나 사모님은 그 사람의 내력을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일 소사매가 벼랑 위로 올라오면 그녀로 하여금 사모님께 물어보도록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튿날 악영산은 벼랑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과 나흘째 되는 날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열여드레가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육후아와 함께 벼랑 위로 올라왔다. 영호충은 열여드레 낮과 밤을 기다린 끝에 그녀를 대하게 되자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육후아가 옆에 있기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밥을 먹고 난 후 육후아는 영호충의 뜻을 알고 말했다.

[대사형, 소사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이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도록 해요. 내가 밥 바구니를 들고 먼저 내려가죠.]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육후아, 왜 도망치려고 그래요? 함께 왔으면 함께 가야죠.]
그러면서 몸을 일으켰다.
영호충은 말했다.

[소사매, 그대에게 할 말이 있소.]

악영산은 말했다.

[좋아요. 대사형이 할 말이 있다니 육후아도 거기 서서 대사형의 가르침을 받도록 해요.]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가르침을 베풀자는게 아니야. 그대의 벽수검......]
악영산은 그 말을 가로챘다.

[저는 어머니께 말씀 드렸죠. 옥녀검십구식을 연마하다가 잘못해서 산골짜기로 떨어뜨렸는데 다시 찾을 수 없다고요. 그리고 한 바탕 울었죠. 어머니는 저를 꾸짖지 않고 오히려 위로해 주었어요. 그리고 다음에 다시 좋은 검을 구해 주겠다고 했어요. 이 일은 이미 지난 일이니 더 들먹일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두 손을 좌우로 펼쳐 보이고 웃었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자 영호충은 더욱 불안했다.

[내가 벌을 다 받고 벼랑 아래로 내려가면 반드시 강호로 나가 훌륭한 검을 구해 소사매에게 주도록 하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같은 사남매끼리 한 자루의 검을 가지고 다툴게 뭐 있어요? 더구나 그 검은 제가 실수해서 산골짜기로 떨어진게 아닌가요? 제가 무공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 죄지 누구를 탓하겠어요? 모두 단기영시(蛋幾寧施) 개필척미(個必?米)라고 해두죠.]

그리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아, 대사형은 모를 거예요. 이것은 소림이 종종 말하는 '단진인사(但盡人事) 각빈천명(各?天命)' 즉 다만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하늘에 맡긴다는 뜻이죠. 그의 말음이 모호하기 때문에 우린 그를 흉내내어서 놀려주곤 하죠. 호호호!]

영호충은 실실 웃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임 사제는 자질이 뛰어나고 또한 애써 검법을 익히는 데다가 이 몇달 동안 소사매의 지도를 받아 아마도 눈부신 진보를 보였을거야. 하지만 나는 벼랑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니애석하군!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은혜를 베푼 그를 위해 내가 검법을 지도해 주었을 텐데......]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그가 군옥원에서 '어른이 아이를 때리다니 염치가 없다' 고 소리쳐서 여창해의 손에서 대사형을 구한 것은 사실이예요. 그는 또한 나를 위해서 여창해의 아들을 죽였어요. 이 두 가지 일만 하더라도 무림에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의 무공은 그의 인품에 못 미치죠.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죠.]
영호충은 말했다.

[무공은 연마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의협심은 타고 나야 하는 것이야. 인품의 고하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거지.]
악영산은 미소지었다.

[아버지와 어머님도 소림을 이야기할 때 그와 같이 말씀하시더군요. 의협심에 대해서 말한다면 대사형과 소림은 비슷한 데가 있어요.]

영호충은 물었다.

[뭐가 비슷하다는 것이야? 어떤 점이 비슷하지?]

악영산은 웃으며 말했다.

[오만한 기질 말이예요. 그대들 두 사람은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죠.]

육후아는 불쑥 입을 열었다.

[대사형은 우리 사남매의 우두머리야. 약간 오만한게 오히려 당연해 하지만 그 임가 녀석은 이 화산에서 오만무례할 자격이 없지.]

육후아는 임평지에 대한 적대감으로 충만해져 있었다.
영호충은 의아해 물었다.

[육후아, 임 사제가 자네에게 잘못한 일이 있는 모양이군!]
육후아는 성이 나는 듯 말했다.

[그는 나에게 잘못한 것이 없죠. 다만 사형제들 모두가 그의 꼬락서니를 달갑게 여기지 않죠.]

악영산은 말했다.

[여섯째 사형, 왜 그래요? 언제나 소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더라. 상대방이 어리니까 사형이 좀 너그럽게 대해야 할 것 아니예요?]

육후아는 코웃음쳤다.

[흥! 그가 제 분수를 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을 때엔 이 육가가 제일 먼저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악영산은 말했다.

[그가 도대체 어떤 점에서 분수를 지키지 않았다는 거예요?]
육후아는 말했다.

[그는...... 그는......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 왜 그리 더듬거리기만 하죠?]
육후아는 말했다.

[아무쪼록 이 육후아가 잘못 본 것이기를 원해.]

악영산은 얼굴을 살짝 붉혔을 뿐 더 묻지 않았다. 육후아가 가겠다고 나서자 악영산도 그와 같이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영호충은 벼랑가에 서서 멍하니 두 사람의 뒷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이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것을 보고서야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산모퉁이 저쪽에서 악영산의 맑고 고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곡조는 매우 경쾌했다. 영호충은 그녀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랐고, 또 그녀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지만 이번 곡은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악영산이 평소 부르는 노래는 길게 꼬리를 끄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부르는 곡은 마치 구슬이 물방울을 튕기는 것처럼 글자 하나하나가 끊어지고 있었다. 영호충은 귀를 기울였다.

[이봐요, 누이...... 찻잎을 딪러 산으로...... 가자.]
그런데 그 몇 자의 발음이 이상야릇해싸. 그리고 십분지 구는 음만 들을 수 있었지 그 뜻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사매가 언제 저와 같은 새로운 노래를 배웠지? 매우 듣기 좋군! 다음에 벼랑 위에 올라왔을 때 그녀 보고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해야지.]

별안간 그는 가슴팍을 쇠망치로 심하게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갑자기 그는 깨달았다.

[저것은 복건성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임 사제가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구나!]

이날 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영호충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귓가에 악영산의 그 경쾌하고 활발하며 음을 분간하기 어려운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는 몇 번이나 자기를 꾸짖었다.

[영호충, 이 멍청아. 너는 과거 얼마나 소탈하고 자유로웠느냐? 그런데 왜 오늘은 한 곡의 노래 때문에 번뇌하느냐? 그야말로 사내 대장부라 하기에 부끄럽지 않느냐?]

그와 같이 생각했으나 악영산이 부르던 복건성의 노랫가락은 시종 귓가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장검을 뽑아들고 미친 듯 석벽을 베기 시작했다. 갑자기 단전에서 한 줄기 내력이 치밀어 올랐다. 검을 고치고 앞으로 힘껏 내지르는 순간 '싹'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은 놀랍게도 자루가 있는데까지 쑥 들어가 박히는 것이 아닌가? 영홑우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이 몇달 동안 공력이 증가했다고 하더라도 일검을 석벽에 찔러 자루까지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부나 사모라도 이와 같은 능력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의아함을 금치 못하고 검자루를 바닥 쪽으로 내리 눌러 보았다. 그 순간 손에 와 닿는 느낌으로 그 석벽이 썩은 나무처럼 부드럽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호기심을 느끼고는 다시 검을 뽑았다가 다시 찔렀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은 두 토막이 나고 말았다. 원래 이번에는 내력을 끌어올리지 않고 찔렀기 때문에 검이 부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느 욕을 한 마디 하고는 동굴 밖으로 가서 머리통 크기의 돌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돌로 석벽을 후려쳤다. 석벽 뒤쪽에서 은은히 메아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뒤쪽은 넓은 공간인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힘을 돋우어서 석벽을 때렸다. '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바위가 세치 두께의 석벽을 뚫고 저쪽으로 떨어지게 되었는데 '텅텅'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면서 바위가 자꾸만 저쪽으로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석벽 뒤쪽에 또다른 동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다시 커다란 돌을 들어 후려쳤다. 몇번 때리지 않아서 구멍이 뻥 뚫리게 되었고, 그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 수 있었다. 그는 석벽의 구멍을 조금 더 크게 뚫었다. 그리고 횃불을 들고 그 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 안쪽에는 좁다란 통로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발밑을 살펴본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발 옆에 한구의 고루(??)가 엎어져 있었다.
이 광경은 너무 뜻밖이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했다.

(설마 이곳이 옛 사람의 무덤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 해골은 어째서 하늘을 향해 눕지 않고 이렇게 엎드려 있는 것일까? 이 모양을 보건데 이 좁은 통로는 무덤으로 통하는 통로가 아닐까?)
그는 몸을 구부려 고루를 살펴보았다. 몸에 걸쳤던 옷은 삭아서 흙먼지로 호해 있었는데 곁에는 커다란 두 자루의 도끼가 놓여 있었다. 불빛 아래 그 도끼는 찬란한 빛을 발했다.
그는 한 자루의 도기를 집어들고 살펴 보았다. 꽤 묵직했으며 적어도 사십여 근은 될 것 같았다. 도끼를 들고 석벽을 후려쳤다.
'쏵'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조각의 돌이 떵져 나갔다. 그는 다시 한번 어리둥절해졌다.

(이 도끼가 이처럼 예리한 것을 보면 보통 물건이 아니다. 틀림없이 한 분의 무림 선배의 무기인 것 같구나!)

석벽에는 도기로 찍은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고 그 자국은 매끄럽기 그지없었다. 칼로 두부를 자른 것 같다고나 할까? 그 옆에는 예리한 도끼로 내려찍은 자리가 있었다. 그는 잠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횃불을 든 채 통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동굴의 통로에는 여기저기 도끼로 찍어낸 흔적이 나 있었다.

(알고 보니 이 통로는 바로 사람이 예리한 도끼로 파낸 것이 로구나. 그렇군! 그는 산 속에 감금되자 예리한 도끼로 산을 파기 시작했고, 산허리 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겨우 몇 치 정도를 남겨 놓고 힘이 빠져 죽고 말았군. 아! 이 사람의 운명이 좋지 못해 이렇게 되었구나!)

그는 십여 장을 나아갔다. 그래도 그 통로가 끝나지 않자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사람이 통로를 뚫은 것을 보건대 의지의 굳셈과 무공의 고강함은 천고에 보기드문 지경이구나!)

다시 몇 걸음을 나가자 땅바닥에 다시 두 구의 고루가 눈에 띄었다. 한 구석 벽에 기댄 채 앉아 있었고 한 구는 그 자리에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원래 산허리 속에 감금되어 있던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곳에 우리 화산파의 근본이 되는 중지(重地)로서 외부의 사람이 쉽게 올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고루는 우리 화산파에서 문규를 범한 선배들로서 따로 이곳에 감금되어 죽었던 것이 아닐까?)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통로를 따라 왼쪽으로 돌게 되자 눈 앞에 커다란 동굴이 나타났다. 족히 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이였다. 동굴 안에는 일곱 구의 해골이 앉거나 누운 채로 널려 있었고 그들 옆에는 한결같이 무기가 놓여 있었다. 한 쌍의 철패(鐵牌), 한 쌍의 판관필(判官筆), 한 자루의 철곤(鐵棍), 한 자루의 동봉(銅棒), 그리고 한 자루의 뇌진당(雷震?)이 있었고, 낭아(狼牙)가 잔뜩 돋아난 삼첨양인도(三尖兩刃刀)도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의 무기가 있었는데 칼 같기도 하나 칼이 아니고 검 같기는 하나 검이 아니었다. 영호충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와 같은 외문(外門)의 병기를 사용하는 사람과 예리한 도끼를 사용하는 사람은 결코 우리 화산파의 제자가 아니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십여 자루의 장검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고 한 자루의 장검을 집어 들었다. 그 검은 보통 검보다 짧았으나 검날의 폭이 두배나 되고 꽤 묵직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화산파에서 사용한 검이군!)

그리고 나머지의 장검 가운데는 가볍고 부드러운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항산파의 무기였다. 그리고 어떤 검은 검신이 구부러져 있었는데 바로 형산파에서 사용하는 세 가지 장검 가운데 한 가지였다. 그리고 어떤 것은 검날이 서지 않고 검의 끝이 지극히 날카롭고 뾰족했다. 이것이 바로 숭산파의 선배들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였다. 그리고 달리 세 자루의 장검이 있었는데 길이나 무게를 볼 때 화산파에서 사용하는 검이었다. 그는 갈수록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오악검파의 무기가 던져져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횃불을 들고 동굴의 사면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오른쪽 벽에는 땅바닥에서 수장쯤 되는 곳에 한 커다란 바위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마치 평대(平?)와 같았다. 그 커다란 바위 아래의 서벽에는 네 줄로 다음과 같은 큰 글자가 씌어 있었다.

<오악검파는 염치 없고 천박하다. 무공으로 이기지 못하자 암수로써 사람을 해쳤다.>

글자는 한결같이 한 자 둘레의 크기였고 석벽에 깊이 패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지극히 예리한 무기로 새긴 것 같았다. 그 깊이는 몇 치나 되었다. 그런가 하면 그 글자들의 모서리가 흐트러져 있어 매우 다급히 새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글귀들 옆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조그만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열하다느니 몰염치하기 이를데 없다느니 비겁하다는 등 욕을 하는 말들이었다. 영호충은 이를 보자 무척 화가 나서 생각했다.

(원래 이 사람들은 우리 오악검파에 사로잡혀 이곳에 감금되었었구나. 가슴 가득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풀 길이 없어 여기다 욕을 썼군. 이 같은 행위야말로 비열하고 몰염치한 것이지!)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오악검파와 싸웠다면 물론 좋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는 횃불을 들고 석벽의 위를 비춰 보았다. 그러자 한 줄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범송(范松), 조학(趙鶴)이 항산파의 검법을 이곳에서 깨뜨리다.>

그리고 그 귀절 옆에는 무수한 사람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는데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고 있었다. 한 사람은 검을 들고 다른 한 사람은 도끼를 들고 있었다. 대략 훑어봐도 오육백 명의 사람이 새겨져 있었는데 도끼를 쓰는 사람이 검을 쓰는 사람의 검법을 깨뜨리는 모양이었다.
그림의 옆에는 한 줄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장승운(張乘雲), 장승풍(張乘風)이 화산검법을 모조리 깨뜨리다.>

영호충은 발끈해져 생각했다.

(몰염치한 자식들 같으니! 정말 대담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군! 화산파의 검법은 정묘하여 천하에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손 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인데 그 누가 깨뜨린다고 떠드는거야! 더구나 모조리 깨뜨렸다고 하다니!)

이 같은 생각을 하며 그는 태산파의 무거운 검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그 글귀를 향해 내리쳤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자 그 글귀 가운데 진(盡)자가 부서졌다. 그는 한번 내리침으로써 석벽이 매우 딱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같은 석벽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 넣는 다는 것은 예리한 무기가 있다 해도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옆의 도형을 바라보았다. 그 도형에는 검을 쓰는 사람의 모습이 간단하게 그려져 있고 선(線)도 심히 간결한 편이었으나 그 자세와 형태는 바로 화산문파의 기본검법 가운데 유봉래의(有鳳來儀)라는 일초를 펼치고 있는 형세였다. 검세는 나는 듯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가볍고도 날카로워 보였다.
그런데 그와 맞서 있는 인형은 손에 한 자루의 무기를 들고 있는데 곤봉인지 아니면 창날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무기의 끝은 곧장 상대방 검끝을 겨누고 있었다. 그 자세는 우스울 정도로 우둔하고 졸렬했다.
영호충은 싸늘히 냉소를 흘리며 생각했다.

(허허! 본문의 유봉래의라는 일초는 안으로 다섯 가지의 후수가 숨겨져 있는데 이같이 우둔한 초식으로 깨뜨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다시 그림 속의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둔하고 졸렬한 가운데 여유가 있었고, 면면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봉래의라는 일초에 다섯 가지의 후수가 있다고 하지만 그 사람의 곤봉에는 은연중 여닐곱 가지의 후수가 숨겨져 있어 유봉래의의 여러 후수를 상대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았다.
영호충은 간단하게 그려진 인형(人形)을 응시하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본문의 이 일초 유봉래의는 본래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하지만 곧 이어질 후수의 위력은 지대하다. 적이 눈치가 빨라 막거나 피한다면 모르되 만약 위험을 무릅쓰고 깨뜨리려 든다면 크게 당하게 된다. 그러나 상대방의 이 일초에는 우리 유봉래의라는 일초를 깨뜨릴 수 있는 위력이 엿보였다. 이건...... 이건...... 이건)

그의 놀라움은 감탄으로 변하게 되었고 마음 깊이 당황함과 공포를 누르기 힘들었다.
그는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오른손이 격렬히 아파왔다. 횃불이 이미 끝까지 타게 되어 손이 있는 곳까지 타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횃불을 던지고생각했다.

(횃불이 없으니 동굴 안은 칠흑처럼 어두워질 것이다.)
그는 급히 면벽을 하던 동굴로 달려가, 추위를 몰아내기 위해 불을 피우려고 모아둔 소나무가지를 십여 개 들고 윗동굴로 달려갔다. 그리고 불이 거의 꺼져가는 횃불에다 불을 붙이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막대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공격이 본문의 검수와 비슷하다면 본문의 검수는 상처를 입을 우려가 있다. 만약 상대방의 공격이 조금이라도 높다면 무기가 맞부딪칠 때 본문의 검수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우리의 이 유봉래의라는 일초는...... 확실히 상대방에 의해 깨뜨려진 것이니 이미 쓸모가 없게 되었구나.)
그는 고개를 돌리고 두번째 조의 도형을 바라보았다. 검을 들고 있는 사람이 펼치는 검법은 화산파의 창송영객(蒼松迎客)이라는 일초였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살폈다. 이 일초는 과거 그가 한달 남짓한 세월을 보내고 익숙하게 연성할 수 있었으며 그가 적을 상대할 때 자주 사용하는 검법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가슴이 크게 설레였다. 이 일초가 다시 상대방에 의해 깨뜨려질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 막대기를 쓰는 사람을 바라보니 그 사람의 손에는 모두 다섯 개의 막대기가 들려 있었으며 검을 사용하는 사람의 아랫도리를 다섯 군데로 나누어 공격하고 있었다.
그는 어리둥절해졌다.

(어째서 다섯 개의 막대기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막대기를 쓰는 사람의 자세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다섯 개의 막대기가 아니다. 그가 삽시간에 잇달아 막대기를 다섯 번이나 찔러내어 상대방의 아랫도리 다섯군데를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빠르다면 나도 빠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잇달아 다섯 번을 찔러낼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창송영객이라는 일초는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의가양양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멍해지게 되었다. 끝내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잇달아 다섯 번을 내지른 것이 아니구나! 이 다섯 개의 막대기가 노리는 방위 가운데 어느 한 곳이라도 나는 피할 수 없구나!)

영호충은 지나간 일을 생각해 보았다. 세번이나 이 창송영객이라는 일초를 펼쳐 이긴 적이 있었다. 만약 상대방이 이 석벽의 그림처럼 반격해 온다면 상대방이 막대기를 쓰든 창을 쓰든 자기는 죽지 않으면 상처를 입을 것이고 그러면 오늘날 이 세상에는 영호충이라는 사람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움을 느꼈다. 이마에서 식은 땀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틀렸다. 틀렸다. 만약 창송영객이 이 같은 방법으로 깨뜨려진다면 사부님께선 어찌 모르고 계실까? 어재서 나에게 경고를 해주시지 않은 것일까?)

그는 이 일초의 정묘한 검법에 익숙할대로 익숙했다. 그러나 막대기를 쓰는 사람이 다섯 방향으로 공격해오는 기세를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다. 석벽에는 단조롭게 다섯 개의 선을 그렸지만 그선 하나하나가 모두 그의 다리나 허벅지의 뼈를 때리는 것 같았다.
다시 아랫쪽을 바라보았다. 석벽에 새겨져 있는 검초는 모두 화산파의 검초였고 상대방은 교묘하고 악랄하기 이를데 없는 초식으로 모두 깨뜨리고 있었다. 영호충은 보면 볼수록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무변낙목(無邊落木)이라는 일초를 보게 되었을 때 상대방의 곤봉이 연약하고 무력하며 순전히 수세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이 일초는 당신네들이 깨뜨릴 수 없었겠지!)

그러나 작년 섣달께에 일어났던 사건이 생각났다. 그때 사부는 커다란 눈송이가 휘날리는 것을 보고 흥이 도도해져 뭇제자들을 모아 놓고 검법을 강론하셨고 최후에는 이 무변낙목이라는 일초를 펼쳤었다. 그때 그의 일검은 번개보다 빠른 것 같았고 매 일검마다 번개같이 허공에서 내리고 있는 눈송이를 적중시켰었다. 그때 사모님마저도 손뼉을 치며 갈채를 보내지않았던가?

[사형 이 일초에 저는 승복했어요! 당신은 역시 화산파의 장문인이 되어야 마땅해요!]

사부는 웃으며 말했다.

[화산파를 거느리는 것은 덕에 의한 것이지 힘에 의한 것이 아니오. 일초의 검법을 익숙하게 잘 쓴다고 해서 장문인이 되는 것이 아니지.]

이에 사모님은 웃으며 반박했다.

[흥! 부끄럽지도 않은가봐? 사형의 언어덕행이 나보다 더 나은가요?]

사부는 빙그레 웃고 더 말하지 않앗다. 그만큼 사모는 상대방에게 승복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데 그녀마저 승복한 이 무변낙목이라는 검초의 위력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그후 사부는 이 일초의 이름을 한 구절의 당시(唐詩)에서 취하였다고 했다. 사부는 당시 그 귀절을 읽어 주었지만 지금 영호충은 기억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백 수천 그루의 나무 잎들이 분분히 떨어지듯 이 일초의 검법은 사면팔방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반격까지 할 수 있다는 말은 기억이 났다.
그는 재차 막대기를 쓰는 사람의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 덩어리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 자세는 실로 꼴불견이었다. 도저히 받아낼 수 없어 얻어 맞는 듯한 자세였다. 영호충은 우스웠다. 그런데 별안간 그의 웃음이 사라졌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솜털이 올올이 곤두섰다. 그는 눈 한번 돌리지 않고 그 사람의 손에 들린 곤봉을 응시했다. 그 곤봉이 처한 방위는 보면 볼수록 교묘하기 이를데 없었다. 무변낙목이라는 일초를 펼쳐 찔러내는 구검, 십검, 십일검, 십이검...... 매 일검이 그 곤봉의 끝을 찌르게 되는 형세였다.
그리고 이 곤봉을 얼핏 보면 졸렬한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지극히 교묘했다. 약해 보였으나 실제로는 지극히 강맹했다. 그야말로 정(靜)으로서 동(動)을 제압하고 졸렬함으로써 교묘함을 제거한다는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삽시간에 그는 화산파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설사 사부와 같이 노화순청에 도달하는 검술을 익혔다 해도 이같이 곤봉을 쓰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곳 저곳에서 제한을 받아 도저히 항거할 여지가 없을 것이니 화산파의 검법을 배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산파의 검술은 진정 이 같은 일격에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일까?
이 같은 생각을 하며 그는 동굴 안의 해골을 바라보았다. 해골들은 이미 죽은 지 삼사십 년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 오악검파는 지금까지 강호에서 모두다 뽐내고 있고 그 누구에 의해 깨뜨려졌다는 소문이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숭산파 등의 검법도 어떤 사람들에 의해 깨뜨려졌는지 그는 알지 못했지만 화산검법이 깨뜨려진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만약에 상대방 같이 고명하기 이를데 없는 초식에 부딪치게 된다면 화산검법은 일패도지하고 만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고 있었다.
그는 혈도를 집힌 듯 움직이지 못했다. 뇌리에 무수한 상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대사형, 대사형, 어디 있읍니까?]

영호충은 깜짝 놀라 급히 동굴 밖으로 달려나갔다. 급히 통로를 지나 자기가 깨뜨려 만든 동굴입구를 기어나와 거처하는 동굴로 되돌아 왔다. 육후아는 벼랑 바깥 쪽을 향해 부르짖고 있었다. 영호충은 동굴 안에서 달려나가 살그머니 벼랑 뒤에 커다란 바위 뒤로 돌아가 단정히 앉아 소리쳤다.

[나는 이곳에서 타좌(打坐)를 하고 있다네. 육 사제, 무슨 일인가?]

육후아는 소리나는 쪽을 향해 다가오며 기쁜 듯 말했다.

[대사형은 이곳에 계셨군요. 밥을 가져 왔읍니다.]

영호충은 새벽 무렵부터 석벽의 초식을 응시하느라고 온 정신을 쏟아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때는 이미 오후가 되어 있었다. 그가 거처하는 동굴은 과거의 과오를 조용히 뉘우치는 곳이어서 육후아는 함부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동굴이 얕아 영호충이 없는 것을 보고는 벼랑가로 찾아나선 것이었다.
영호충은 육후아가 오른족 뺨에 풀을 짓이겨 발라놓은 것을 발견했다. 핏물이 푸른 약초덩이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볍지 않은 상처라 생각한 영호충은 급히 물었다.

[어? 자네 얼굴은 어떻게 된 것인가?]

육후아는 말했다.

[오늘 아침 검술을 연마하다 조심하지 않아 검을 돌릴 때 그만 상처를 입게 되었지요. 정말 바보 짓을 했읍니다.]

영호충은 그의 얼굴의 표정이 부끄러움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달리 사정이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말했다.

[육 사제, 어떻게 입은 상처인가? 설마 나까지 속일 생각은 아니겠지?]

육후아는 울화가 치민다는 듯 말했다.

[대사형을 감히 속이자는게 아니고 대사형이 화를 낼까봐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영호충은 물었다.

[누구에게 찔린 것이지?]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본문의 사형제는 평소 화목한 편이었고 한번도 싸운 일이 없는데 설마 산 위로 외부의 적이 들어온 것일까?
육후아가 이때 말했다.

[나는 임 사제와 검술을 연마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그가 배운 지 얼마 되지 않는 유봉래의를 펼치는 바람에 나는 조심하지 못해 그만 얼굴에상처를 입었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사형제끼리 손을 쓰다 보면 실수도 있는 법, 평범한 일이니 화를 낼 필요도 없군. 거기다 임 사제는 처음 배워서 연마하는 것이니 제대로 검을 거두고 휘두르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를 너무 탓하지 말게. 그런데 자네가 너무 소홀했군. 유봉래의의 위력은 적지 않으니 마땅히 조심해서 상대했어야 옳았네.]

육후아는 말했다.

[하지만 내가 어찌 임가가 입문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유봉래의라는 일초를 연성했으리라고 생각했겠읍니까? 내가 사문에 들어온 지 온 년째 되는 해에 이르러서야 사부님께서는 대사형으로 하여금 그 일초를 나에게 전수한 것이 아니겠읍니까?]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졌다. 임 사제가 화산문하로 들어온 것은 몇 개월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유봉래의를 배우다니 너무 신속한 진도가 아닌가? 하늘이 내린 총명을 타고난 사람이거나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공을 서둘러 배웠다가는 기초를 튼튼히 할 수 없게 되고 오히려 훗날 무공을 연마함에 있어 크게 방해가 되는데 사부는 어째서 그톡록 빨리 유봉래의를 전수 해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육후아는 다시 말했다.

[그가 그 검초를 펼치자, 나는 깜짝 놀라서 상처를 입게 되었죠. 그런데 소사매는 옆에서 좋다고 웃으며 손뼉을 치지 않겠어요? '육후아, 나의 제자조차도 이기지 못하면서 이후 어떻게 영웅호걸이라고 뽐낼 수 있겠어요?' 그 임가 녀석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고 다가와 나의 상처를 싸매주려고 했지만 나는 그를 발길로 차 곤두박질치게 만들었죠. 그랬더니 소사매는 노해 부르짖었어요. '육후아, 상대방이 호의로 상처를 싸매주려는데 왜 때리는 거예요? 수치가 분노로 변한 건가요?' 대사형, 소사매가 몰래 그에게 전수한 것이 틀림없읍니다.]

영호충은 가슴이 크게 진팡되었다. 이 유봉래의라는 일초는 심히 연마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섯 개의 후수는 변화가 무쌍했고 또 여러 가지 오결이 있었다. 소사매가 임 사제에게 그 검법을 펼칠 수 있도록 가르치려면 반드시 무수한 심혈을 기울여야 했을 것이고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했을 것이다. 그녀가 이 며칠간 벼랑 위로 올라오지 않은 것은 임 사제와 온종일 함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악영산은 성격이 쾌활하였고 자질구레하게 시간을 들여 익히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그리고 호승심이 강해 남을 가르치려고 한다면 세심히 지도하기를 바랄 수가 없는 터였다. 그런데 지금 변화가 무쌍한 일초의 유봉래의를 임평지에게 익숙할 정도로 가르친 것이니 이로 미루어 임 사제에 대한 관심과 애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호충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대는 어쩌다가 임 사제와 검술을 연마하게 됐지?]
육후아는 말했다.

[어제 내가 대사형과 그 몇 마디를 나눈 이후 소사매는 매우 불쾌한 듯 봉우리 아래로 내려갈 때 줄곧 나에게 핀잔을 주었죠.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나를 끌고 임사제와 대련을 하라는 것이었어요. 나는 아무 경계심도 품지 않고 대련을 하게 되었는데 소사매가 몰래 임가 녀석에게 몇 수의 검초를 가르쳤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리하여 그만 의표를 찔리게 되고 그의 암수에 넘어가게 되었죠.]

영호충은 모든 일을 환히 내다볼 수 있었다. 틀림없이 악영산과 임평지는 이 며칠간 매우 다정하게 지낸 것이었다. 육후아로 말하면 영호충과 각별한 사이였으니, 그녀는 육후아가 눈에 거슬려 끊임없이 차가운 말과 비웃음을 던졌을 것이고 심지어 임평지에게 욕을 보도록 했을 것이다.

[자네가 먼저 임 사제를 욕했겠지? 그렇지?]

육후아는 울화가 치민다는 듯 말했다.

[그 비열하고 몰염치한 바보 녀석을 욕하지 않고 누구를 욕하겠읍니까? 그는 나를 매우 두려워해요. 내가 욕을 해도 그는 한번도 반박한 적이 없으며 나를 보기만 하면 슬슬 피했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뜻밖에도 그 녀석이 그처럼 음흉하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읍니까? 흥! 그에게 재간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어요? 만약 사매가 뒤에서 받들어 주지 않았다면 어찌 그 녀석이 나에게 상처를 입힐 수가 있었겠어요?]

영호충은 가슴이 쓰렸다. 뒷동굴 석벽에 있던 유봉래의라는 일초를 전문적으로 깨뜨리는 검초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땅바닥에서 한 개의 나뭇가지를 집어들고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일초를 육후아에게 전수해 주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았다.

(여섯째 사제는 그 임가 녀석을 매우 증오하고 있다. 이 일초가 펼쳐지면 반드시 그에게 중상을 입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부와 사모님은 이 일을 따지게 될 것이고 우리 두 사람은 반드시 큰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절대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한 영호충은 말했다.

[한번 손해를 보게 되면 그만큼 영악해지는 게 아닌가? 이후 다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면 될걸세. 같은 사형제끼리이니 조그만 승패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게나.]

육후아는 말했다.

[그러나 대사형, 나는 관계럿읍니다만 대사형...... 대사형이 개의치 않을 수 있겠어요?]

영호충은 그가 말하는 것이 악영산과 자기 자신과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가슴속 깊이 아픔을 느꼈다. 얼굴의 근육마저도 일그러졌다.
육후아는 자기가 한 말이 대사형의 자존심을 크게 해쳤다고 생각하자 빨리 말했다.

[제가...... 제가 말을 잘못했읍니다.]

영호충은 그의 손을 잡고 나직이 말했다.

[자네는 말을 잘못하지 않았네. 내 어찌 개의치 않아르 수 있겠나. 하지만...... 하지만......]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말했다.

[육 사제, 이번 일에 대해 우리 다시는 들먹이지 말도록 하세.]
육후아는 말했다.

[그러죠, 대사형. 그 유봉래의는 대사형이 나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나는 손을 쓰기도 전에 그의 수작에 넘어간 것입니다.
후에 반드시 열심히 연마하여 그 녀석에게 대사형이 가르친 것이 강한지 소사매가 가르친 것이 강한지 보여 주겠읍니다.]
영호충은 쓴 웃음을 지며 말했다.

[그 유봉래의라는 일초는 허허허. 기실 별 것도 아닐세.]
육후아는 그의 표정이 씁쓸해 하는 것을 보고 소사매가 그를 냉대했기 때문에 그가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더 말하지 않고 그가 밥먹기를 기다렸다가 그릇을 챙겨 산 아래로 내려갔다.
영호충은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소나무 가지로 만든 횃불에 불을 붙이고 다시 뒷동굴로 가서 석벽의 검초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악영산이 어떻게 임평지에게 검술을 가르쳤을까 하는 생각에 아무리 해도 정신을 가다듬고 석벽의 그림을 바라볼 수 없었다. 벽 위에 새겨진 사람들이 하나하나 악영산과 임평지의 모습으로 변해 하나가 가르치면 하나가 배우곤 했으며, 그 표정이나 태도가 친밀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곤 했다. 그의 눈 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임평지의 준수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생각했다.

(임 사제의 모습은 나와 거의 맞먹을 정도로 준수하다. 나이는 나보다 적고 소사매보다는 한두살 위이니 쉽게 친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별안간 그는 석벽의 도형 중에 사람이 찔러낸 일검의 내공이 운용하는 방법이나 검초의 방향이 악 부인의 '무쌍무대 영씨일검' 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호충은 깜작 놀라 생각했다.

(사모님의 그 검법은 분명리 그분 스스로 창안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석벽에 그려져 있는 것일까? 참 이상한 노릇이구나!)

그는 다시 그 도형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석벽의 그 일검이 악 부인이 창안해낸 검초와 비슷한 것 같으나 실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석벽에 그려진 검초는 웅후하고 힘찼으며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면이 있었다. 이로 미루어 남자의 손에 의해 펼쳐진 것이고 펼쳐진 일검은 악 부인의 그 일검처럼 무수한 후수가 숨겨져 있지 않았다. 따라서 더욱 단순한 반면에 훨씬 위맹스런 면이 있었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이 창안하신 그 검법은 원래 이곳의 검법과 우연히 부합한 것이로구나. 기실 이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두 사람 모두 화산검법의 원리를 보고 새로운 검법을 창안했기 때문에 비슷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다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석벽의 여러 검법 가운데 많은 검초를 사부와 사모님은 모르고 계신 것이다. 그러면 사부님도 본문의 고심한 검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인가?)

그런데 상대방의 그 막대기는 일직선으로 내밀어져 있었다. 막대기 끝이 검의 끝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 자루의 검과 한 자루의 막대기를 하나의 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영호충은 그 하나의 직선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크게 부르짖었다.

[야단났다!]

그리고 손에 든 횃불을 그만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동굴 안은 금새 캄캄해졌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어떻게 하지?]

그는 똑똑히 본 것이다. 한 자루의 막대기와 한 자루의 검이 부딪치고 있었는데 막대기는 견고하고 검은 부드러웠다. 쌍방은 똑같이 전력을 다해 찔러내고 있었다. 장검은 반드시 가운데서부터 부러질 것이었다. 이 일초에 쌍방은 온 힘을 쏟아넣고 있었다. 곤봉은 그 기세를 빌어 곧장 찔러가게 될 것이지만 검을 쓰던 사람은 이미 피할래야 피할 겨를도 없이 곤봉에 찔려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영호충의 뇌리에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정말 해소시킬 수 없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무기가 부러지고 상대방의 곤봉이 질풍처럼 찔러오게 될 때 부러진 검을 내던지고 무릎을 끓든가 아니면 몸을 앞으로 재빨리 엎드린다면 곤봉의 기세를 해소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사부와 사모님 같은 검술의 대가가 어찌 그 같은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겠는가? 죽으면 죽었지 욕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 그야말로 일패도지다. 일패도지야!)

그는 한참 동안 서 있다가 화로와 화석을 꺼내 불을 당겨 횃불에 붙였다. 그리고 석벽을 다시 바라보았다. 검초는 갈수록 기이해졌고 또 정묘해졌다. 최후의 수십 초는 변화무쌍하고 오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검초가 아무리 무서워도 상대방의 곤봉은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화산파의 검법의 그림이 끝난 곳에는 검을 펼치던 자가 장검을던지고 고개를 숙인 채 무릎을 끓고서 막대기를 쓰는 사람 앞에 수그리고 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영호충은 가슴에 끓어오르던 분노는 이미 사라지고만 후였다.
의기소침한 감정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곤봉을 쓰는 자의 그림이 교만하고 각박한 데가 없지 않았지만 화산파의 검법이 모조리 상대방에 의해 깨뜨려지고 다시 상대방과 자웅을 겨룰 수 없게 된 사실만은 절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날 밤 그는 뒷동굴에서 몇백 몇천 번의 원을 그리면서 서성거렸는지 모른다. 그는 한 평생 지금같이 커다란 충격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화산파는 오악검파의 하나이며 무림에서 명성을 누린 지 이미 오래되는 명문파이다. 그런데 본파의 무공이 이토록 패배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석벽의 검초를 사부님과 사모님은 모르고 께시다. 본문의 최고 검법을 연성하게 될지라도 사부님께서는 석벽의 무공에 패배하고 말 것이다. 상대방에서 깨뜨리는 방법을 알기만 하면 본문의 최강고수라 해도 검을 던지고 투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졌음을 시인하고 싶지 않으면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는 동굴 안을 서성거렸다. 이때 불은 이미 꺼지고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횃불을 붙이고 땅바닥에 끓어 앉아 항복하고 있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었다. 검을 쳐들고 벽을 뭉개려고 했다. 그러나 검의 끝이 벽에 닿는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대장부는 공명정대해야 한다. 지면 지는 것이고 이기면 이기는 것이다. 우리 화산파의 재간이 남만 못한데 무슨 할 말이 있는가?)

그는 장검을 내던지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시 석벽의 나머지 도형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숭산, 항산, 태산, 사파(四派)의 검법이 새겨져 있었고, 그 검법 역시 모조리 상대방에 의해 산산이 깨뜨려지고 있었으며 그 형세는 만회할 수 없었다. 거기에도 역시 최후에는 땅에 엎드려 투항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영호충은 화산에 입문한 지 오래 되었고 견문 또한 넓었다. 숭산파 등의 검초에 대해서 심후하고 정묘한 점을 명백히 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대체적인 뜻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석벽에 그련진 사파의 검초가 매우 고명하고 날카롭고 오묘했음에도 불구하고 매 일초가 끝내는 상대방에 의해 깨뜨려지고 말았다.
그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범송, 조학, 장승풍, 장승운, 그 사람들은 대체 어떤 내력을 지닌 사람들일까? 무슨 심사로 우리 오악검파의 검법을 깨뜨리는 방법을 새겨놓고 그들 자신은 무림에서 종적을 감추고만 것일까? 우리 오악검파는 어떻게 지금까지 커다란 명성을 떨치고 있을까?)
오악검파가 강호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 실로 불가사의 하게 느껴졌다. 아니, 요행스럽다고 생각했다. 오악검파 가운데 수천이나 되는 사장(師長)이나 제자들이 아직도 무림에서 떵떵거리는 것은 이 석벽의 도형이 외부로 누설되지 않은 덕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내가 도끼를 들고 이 석벽의 도형을 깨끗이 문질러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오악검파의 명성을 보전할 것이고 나 자신이 이 뒷동굴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해두면 되는 것이다.)

그는 몸을 돌려 커다란 도끼를 집어들고 다시 석벽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벽의 여러가지 초식을 대하자 차마 도끼로 내려 찍을 수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몰염치하고 비열한 짓을 이 영호충이 어찌 행할 수 있겠는가?]
별안간 그의 뇌리에 다시 그 청포복면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사람의 검술이 고명한 것을 보면 이 동굴의 그림과 크게 관계가 있을 것이다. 누구일까? 그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앞동굴로 와 반나절을 생각해 보고 다시 뒷동굴로 가서 벽면의 도형을 살펴보았다. 이같이 갑자기 앞동굴로 나왔다가 갑자기 뒷동굴로 가곤 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날이 어두어지자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악영산이 밥그릇을 들고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영호충은 크게 기뻐 급히 벼랑가로 달려가며 외쳤다.

[소사매!]

그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악영산은 대답하지 않고 벼랑가로 올라오더니 밥그릇을 아무렇게나 내려 놓고 그를 한번 쳐다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영호충은 크게 다급해져 부르짖었다.

[소사매, 소사매, 어떻게 된거야?]

악영산은 살며시 코웃음치더니 오른발로 땅을 차며 몸을 날려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영호충은 두번 세번 불렀으나 그녀는 시종 대답하지 않았으며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영호충은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혀 일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바구니의 보자기를 열어 젖혔다. 하얀 쌀밥에 두 그릇의 소찬만 있을 뿐 조그만 호로의 술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멍하니 내려다볼 뿐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애써 밥을 먹으려고 했다. 그러나 한 수저를 입에 넣으면 입에 가시가 돋힌 듯 넘길 수 없었다. 그는 수저를 놓고 생각했다.

(소사매가 나에게 화를 내고 있다면 어째서 친히 밥을 나에게 가져다 주었을까? 나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라면 어째서 한번 바라보지도 않고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사라졌던 말인가? 설마 여섯째 사제가 병이 들어 그녀가 대신 밥을 가져온 것일까? 하지만 육 사제가 밥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오 사제, 칠 사제 여덟째 사제가 밥을 가져오면 되는데 하필 소사매 자신이 가져왔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악영산의 심정을 추측해 보느라고 뒷동굴의 석벽에 새겨진 무공을 깡그리 잊고 말았다.
다음날 저녁 악영산은 다시 밥을 가져왔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한 마디도 그에게 건네지 않았다. 벼랑 아래로 내려갈 때는 큰 소리로 복건성의 민요를 부르기도 했다.
영호충은 창자를 칼로 휘저어버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원래 그녀는 나를 화나게 만들려고 하는구나!)

삼 일째 저녁 무렵 악영산은 다시 밥을 가져와 바위 위에 털썩 내려놓고는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영호충은 더 참을 수 없어 불렀다.

[소사매, 내 그대에게 할 말이 있어!]

악영산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세요.]

영호충은 그녀의 얼굴이 찬서리가 내린 듯 싸늘한 모습을 보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대는...... 그대는...... 그대는......]

악영산은 말했다.

[내가 어떻다는 거예요?]

영호충은 더듬거렸다.

[나는...... 나는......]

평소 그느 소탈하고 언변도 뛰어난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악영산은 말했다.

[빨리 말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가보겠어요.]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영호충은 크게 초조했다. 그녀의 표정으로 볼 때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다급한 김에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악영산은 부르짖었다.

[손을 놔요!]

그리고 힘주어 뿌리치는 바람에 찍 하는 소리와 함께 소맷자락이 찢어지면서 하얀 팔이 드러났다.
악영산은 부그럽기도 했고 다급하기도 했다. 드러난 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무공을 익히는 사람이라 조그만 예절에 대해서는 일반 규수들처럼 구속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팔이 드러나자 매우 화가 나서 부르짖었다.

[그대는...... 당돌하군요!]

영호충은 재빨리 말했다.

[소사매 미...... 미안해. 나...... 나는 고의가 아니었어.]
악영산은 오른쪽 소매를 들어서 왼팔을 덮으며 날카롭게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자는 거예요?]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왜 그대가 나에게 이같이 대하는지 알 수가 없어. 정말 내가 잘못했다면 소사매 그대는...... 그대는 검을 들어 나의 몸을 이리저리 찌르도록 해. 나는...... 나는 죽어도 원망하지 않겠어.]

악영산은 냉소했다.

[당신은 대사형인데 감히 어떻게 대사형의 비위를 건드리겠어요? 그대의 몸에 검을 들이대다?? 우리는 그대의 사제이고 사매예요. 그대가 때리지 않고 욕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천지신명께 감사할 노릇이죠.]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점을 사매에게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어.]

악영산은 성이 나서 말했다.

[모른다고요? 육후아를 시켜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고자질을 하지 않았어요?]

영호충은 크게 의아하며 말했다.

[내가 육 사제에게 사부님과 사모님에게 고자질을 하도록 했다고? 그...... 그대를 고자질했단 말이야?]

악영산은 말했다.

[대1사형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귀여워해 고자질을 해도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자기가 총명한 척 고자질을...... 고자질을 했어요. 흥흥...... 그러고도 정말 모르세요?]

영호충은 짐작되는 일이 있어 대강의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더욱 쓰라리고 아팠다.

[육 사제와 임 사제가 검술을 연마하다가 상처를 입은 사실을 사부님과 사모님이 아시고 임 사제에게 벌을 내리셨나 보군!]
그리고 생각했다.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임 사제를 벌하셨다고 해서 이토록 나에게 화를 내1다니.)

악영산은 말했다.

[사형제끼리 검술 시합을 하다가 한쪽이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일부러 해치려고 한 것은 아니잖아요? 아버지는 육후아를 편들어 소림을 크게 꾸짖었으며 소림은 공력이 모자라므로 유봉래의라는 초식을 배우지 말았어야 했으며 다시는 저에게 검술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어요. 자 되었죠? 이제는 그대가 이겼죠? 그러나...... 그러나...... 나는...... 나는 그대를 다시는 아랑곳하지 않겠어요. 영원히 영원히 상대하지 않겠어요.]

이 영원히 영원히라는 1말은 평소 그녀가 영호충과 놀 때 즐겨 사용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예전엔 눈을 깜박이고 입가에 웃음을 띠고 있어 상대하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안색이 준엄했고 음성은 싸늘하여 의를 끊겠다는 결심으로 가득차 있는 듯했다.
영호충은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소사매...... 나는......]

그는 본래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했다.

[나는 육 사제에게 사부님과 사모님께 고자질을 하라고 시키지 않았어.]

그는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나 자신에 대해 가책을 느끼1지 않고 그 같은 일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왜 그런 일로 너에게 애걸하며 동정을 빌어야 하느냐?)
그래서 그는 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
악영산은 말했다.

[그대가 어떻게 되었다는 거예요?]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어떻게 되었다는 게 아니다. 다만 사부님과 사모님이 그대가 임 사제와 검술연마를 시키는 것을 만류했다고 하더라도 대단한 일이 아닌데 어째서 나에게 이토록 화를 내는가 하는 거야.]
악영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화를 내고 ?槁楮? 당신의 마음속으로 나쁜 것만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임 사제에게 검술을 가르치지 않으면 매일 같이 와서 놀아줄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흥! 나는 영원히 그대를 상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오른발을 힘차게 딛으며 몸을 날려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영호충은 손을 뻗쳐 그녀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귓전에 그녀의 맑고 고운 복건성의 민요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벼랑가로 다가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산모퉁이 저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렴풋이 그녀1의 왼팔이 그녀의 오른쪽 소맷자락에 가려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걱정이 되었다.

(내가 그녀의 옷자락을 찢어 놓았다. 그녀가 사부와 사모님 두분에게 알린다면 두 분은 내가 그녀에게 무례하고 경박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하지? 이 일이 소문나면 사제들과 사매들도 나를 업수이 여길 것이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경박한 짓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상관할 필요는 없지.)

그러나 그녀가 임평지1에게 검술을 가르칠 수 없다고 해서 그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그는 자신을 위로했다.

(소사매는 나이가 어리고 활동적이다. 벼랑 위에서 과오를 뉘우치고 있을 동안 그녀를 상대하여 답답함을 풀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녀는 나이가 비슷한 임 사제를 짝으로 삼은 것이다. 무슨 뜻이야 있으려고?)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자랐다. 정이 얼마나 깊은가 말이다. 임 사제는 화산에 온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임 사제에 대해서 그토록 1다정하게 굴면서 나에게 이토록 야박하게 굴다니 그럴 수가 있을까?)

이 같은 생각이 들자 다시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이날밤 그는 동굴 안에서 벼랑가로 다가갔다가 다시 동굴 안으로 걸어오곤 했다. 왔다갔다 하기를 수천 수백 번은 반복해야 했다.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속으로 악영산만 생각했다. 석벽의 도형과 밤에 갑자기 모습을 나타냈던 청포의 복면인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날 저녁무렵 육후아가 밥을 가지고 올라왔다. 그는 밥과 찬을 바위 위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대?聆?식사하세요.]

영호충은 '음' 하고 그릇과 젓가락을 들고 두 번 떠 먹었으나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벼랑 아래로 한번 내려다 보고는 천천히 밥그릇을 놓았다.
육후아는 말했다.

[대사형 안색이 좋지 못하군요. 몸이 불편하십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괜찮아.]

육후아는 말했다.

[이 동고(冬?)는 내가 어제 사형을 위해 캐온 것이라오. 한번 맛이나 보십시오.]

영호충은 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두어 번 동고를 집어먹고 말했다.

[맛이 좋군!]

동고의 맛은1 구수했으나 그는 그 구수한 맛을 반푼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육후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대사형,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죠. 어제부터 사부님과 사모님께서는 소사매가 소림을 가르치지 못하게 했읍니다.]

영호충은 냉랭히 말했다.

[자네는 검법으로 임 사제를 이길 수 없으니 사부님과 사모님께 울면서 하소연을 했겠지? 그렇지?]

육후아는 펄쩍 뛰었다.

[내가 그를 이기지 ?幣磯鳴? 누가 그럽디까? 나는...... 나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그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영호충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임평지가 유봉래의라는 일초로 육후아의 의표를 찔렀지만 역시 육후아가 사문에 들어온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임평지가 그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육후아가 사부와 사모님께 고자질을 한 것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영호충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원래 사제와 사매들은 나의 마음이 괴로운 것을 알고 있었구나! 육 사제는 나를 도와 사태를 수5습하려고 했을테지. 허허...... 사내 대장부가 어찌 남의 동정을 살 수 있단 말이냐?)
그는 미친 듯이 화를 내며 밥그릇과 찬그릇을 하나하나 집어 산골짜기 아래로 던지며 부르짖었다.

[누가 자네보고 쓸데없는 일에 관계하라고 그랬어? 누가 자네 보고 쓸데없이 일에 관계하라고 했어? 엉?]

육후아는 깜짝 놀랐다. 그는 연신 뒷걸음질치며 말했다.

[대사형, 대...... 사형.]

영호충은 밥그릇과 찬그릇을 산골짜기로 다 내던지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서 숨을 거칠게 몰아 쉬었다.
육후아5는 말했다.

[대사형, 내가 잘못했어요. 대사형, 나를 때려 주세요.]
영호충은 손에 들린 돌을 산골짜기로 던지다가 그 같은 말을 듣자 몸을 돌리고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가?]

육후아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서며 더듬거렸다.

[나는...... 나는...... 나도 모르겠읍니다.]

영호충은 손에 들렸던 돌을 산골짜기를 향해 멀리 던진 후 육후아의 손을 잡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육 사제, 미안해. 내 스스로 가슴이 답답해서 그랬어. 자네와는 상?驩愎?일이야.]

육후아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시 밥을 갖다 드릴께요.]

영호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필요없어 나는 먹고 싶지 않아.]

육후아는 바위 위에 어제 갖다 놓은 밥과 찬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우려의 빛을 띄우며 말했다.

[대사형, 어제도 밥을 드시지 않으셨군요.]

영호충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상관하지 말게. 이 며칠간 나는 밥맛이 없어.]
육후아는 더 말하지 못했다.
이튿날 그는 미시 때도 되지 않아 밥을 들고 산5 위로 올라왔다.

(오늘은 주전자에 좋은 술을 마련했고 또 두가지 맛있는 반찬을 준비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대사형에게 몇 그릇의 밥을 먹이도록 해야지.)

벼랑 위에 와보니 영호충은 동굴 안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안색은 매우 초췌했다.
육후아는 큰 소리로 말했다.

[대사형, 이것이 무엇인지 보세요!]

그는 술호로를 들어 흔들흔들해 보이고는 병마개를 뽑았다. 동굴 안은 술 향기가 가득 찼다.
영호충은 호로를 받아 단숨에 반을 마시더니 칭찬을 했다.

[이 술맛이 괜찮군!]
5
육후아는 기뻐서 말했다.

[내가 밥을 떠 드리겠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아니, 난 밥을 먹고 싶지 않아.]

육후아는 말했다.

[한 그릇만 잡수세요.]

그러면서 한 그릇의 밥을 내밀었다. 영호충은 그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좋아! 술을 다 마신 후에 밥을 먹기로 하지.]

그러나 영호충은 끝내 먹지 않았다. 육후아가 다시 밥을 가져 왔을 때 영호충은 땅바닥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육후아는 그의 두 볼이 새빨개져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짚어 보5았다. 후끈 달아오른 것이 높은 열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육후아는 걱정이 되어 나직이 말했다.

[대사형 병이 났어요?]

영호충은 말했다.

[술, 술...... 술을 주게나.]

육후아는 술을 가져왔으나 감히 그에게 줄 수가 없었다. 그릇에 맑은 물을 부어 그의 입에 댔다. 영호충은 일어나 한 그릇의 물을 다 마시고 말했다.

[술맛이 좋군! 술맛이 좋아!]

그리고 벌렁 뒤로 눕더니 여전히 중얼거리듯 말했다.

[좋은 술이야! 좋은 술!]

육후아는 그의 병세가 가볍지 않음을 보고 매우 5걱정이 되었다.
이날은 마침 사부님과 사모님은 볼 일이 있어 일찍 산을 내려가고 없었다. 그는 즉시 나는 듯 벼랑 아래로 달려내려가 노덕약 등 사형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악불군은 매일같이 밥을 갖다 주는 일 외에 문하제자들이 벼랑 위로 올라가 영호충과 환담하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었다. 지금 영호충은 병을 앓고 있으니 위로 올라가 위문하는 것은 문규를 어기는게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뭇제자들은 함께 벼랑 위로 오르지 못하고 상의한 후에 나누어 벼랑 위로 문병을 오기로 했5다.
첫날은 노덕약과 양발 두 사람이 벼랑 위로 올라갔다.
육후아는 다시 악영산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나 그녀는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 냉랭히 말했다.

[대사형은 내공이 정순한데 어떻게 병에 걸려요? 나는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아요.]

영호충의 병의 정말 무겁고 위험했다. 사흘 밤낮을 혼수상태에 빠져 일어나지 못했다. 육후아는 애걸애걸하며 그녀가 벼랑 위로 올라가 문병을 해야한다고 타일렀다. 무릎을 끓고 그녀의 면전에서 빌 것 같자 악영산은 그제서야 마지 못해 육후아와 ?途?벼랑 위로 올라갔다. 영호충은 두 뺨이 움푹 패여 있었고 텁수룩한 수염이 얼굴 가득히 자라 있어서 소탈하고 뛰어난 풍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악영산은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의 곁으로 다가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대사형, 제가 돌아왔어요. 다시 화를 내지 마세요. 네?]
영호충은 무표정했다.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는데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악영산은 말했다.

[대사형, 저예요. 왜 모른 척하세요?]

영호충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더??한참 후에 잠이 들었다. 육후아와 악영산이 떠날 때까지 그는 시종 눈을 뜨지 않았다.
이번에 병을 그는 한달 남짓 앓았다. 그제서야 그는 전차 회복 되었다.
이 한달 남짓한 동안에 악영산은 세 번이나 그에게 문병을 왔었다. 두번째 벼랑 위로 올라왔을 때 영호충은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고 매우 기뻐했다. 세 번째 문병을 왔을 때 그는 이미 일어나 앉을 수 있었고 그녀가 가져온 몇 조각의 간식도 먹었다.
그러나 그 문병 이후 그녀는 전혀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영호충??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자 하루종일 벼랑가에 서서 소사매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매번 보이는 것은 텅빈 듯한 산길이 아니면 육후아가 구부정한 몸으로 재빨리 올라오는 모습뿐이었다.
어느날 영호충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이 신속하게 벼랑 위로 올라왔다. 앞에 있는 사람은 치마가 펄럭이는 것으로 보아 여자였다. 그들은 신법이 뛰어났고 가파른 언덕을 마치 평지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영호충은 자세히 바라보았다. 바로 사부와 사모님이 아닌가? 그는 기5뻐한 나머지 소리높여 외쳤다.

[사부님! 사모님!]

악불군과 악 부인이 쌍쌍히 벼랑 위로 올라왔다. 악 부인의 손에는 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화산파에서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문규에 의하면 제자가 벌을 받아 사과애에서 면벽하며 과오를 뉘우칠 때 동문의 사형제들이 밥을 갖다 주는 외에는 올라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즉 벌을 받는 사람의 제자라도 올라와 사부에게 인사를 드릴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부님께서 친히 올라온 것이다. 영호충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달려들었다.5
악불군은 두팔을 부여잡고 기뻐서 부르짖었다.

[사부님! 정말 보고 싶었읍니다!]

악불군은 눈쌀을 살짝 찌푸렸다. 평소 대제자가 성질이 제멋대로이고 자기 자신을 잘 가눌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같은 결점은 화산파의 상승기공을 연마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이었다.
그들 부부는 벼랑 위로 오르기 전에 이미 병의 원인을 물어본 바 있었다. 제자들은 분명히 말해 주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영호충의 병이 악영산 때문에 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딸을 불러 물었다. ?柳? 역시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고 확신이 섰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영호충이 산벼랑 위에서 반년동안 면벽했지만 오히려 나쁜 영향만 끼쳐준 결과가 되었다. 악불군은 매우 못마땅히 여겼다. 하지만 제자가 염려되어 문병을 가야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악 부인은 손을 뻗어 영호충을 부축했다. 그의 안색이 초췌했다. 과거 훤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지라 측은한 마음이 들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충아, 너의 사부와 나는 지금 관외에서 돌아왔다. 큰병을 앓았다는데 지금은 좀 나았느냐?]
5
영호충은 가슴이 화끈거리고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려고 했지만 억지로 참고 말했다.

[다 나았읍니다.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먼길을 오시느라 피곤하실텐데 돌아오시자마자 즉시 벼랑 위로...... 저를 보러 오셨군요.]

거기까지 말한 그는 감정이 복받쳐 목이 메었고 눈물이 흘렀다.
악 부인은 밥바구니에서 한 그릇의 인삼탕을 꺼내며 말했다.

[이것은 관외의 산삼으로 달인 인삼탕이다. 그것은 보(補)가 되니 빨리 마시도록 해라.]

영호충은 사부와 사모님이 만리길이나 되는 관이에??가지고 온 인삼을 가장 먼저 자기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 그래서 그릇을 받아든 오른손이 떨려 인삼탕이 조금 흘러내렸다. 악 부인은 그릇을 받아 영호충에게 먹여 주었다. 그는 단번에 인삼탕을 마시고 난 후 말했다.

[사부님과 사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악불군은 손가락을 뻗치더니 그의 맥박을 짚었다. 맥박이 잦고 힘이 없었다. 내공조예로 말할 때 옛날보다 크게 퇴보를 한 것이었다. 더욱 불쾌해진 악불군은 담담히 말했다.

[병이 나았군.]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다시 말했다.

[충아, 너는 이 사과애에서 몇달 동안 무엇을 했느냐! 내공이 진보하기는 커녕 퇴보를 했구나!]

영호충은 고개를 숙였다.

[녜. 사부님, 사모님, 용서해 주십시오.]

악 부인은 미소지었다.

[충아가 큰 병을 앓았고 아직 완쾌하지 못했으니 내력이 전만 못함은 당연한 일이 아니예요? 설마 그대는 그가 병이 나면 날수록 무공이 뛰어난다고 하는건 아니겠죠?]

악불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내가 살핀 것은 몸이 강하고 약한 것이 아니라 내력의 조예였소. 5이것은 병이 나고 안 나고와 상관이 없는 것이오. 본문의 기공(氣功)은 다른 문파의 내공과는 달라 열심히 연마하게 되면 잠을 자면서도 진보하게 되는 것이오. 더군다나 충아는 본문의 기공을 연마한 자가 십 년이 넘었소. 몸 밖으로부터 오는 외상으로는 병이 생길 이유가 없는 것이오. 어찌 되었든...... 어찌 되었든 칠정육욕(七情六慾)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기 때문에 생겼던 거라오.]

악 부인은 남편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고 영호충에게 말했다.

[충아, 너의 사부는 언제나 너에??기공을 익히고 무공을 연마하라고 타일렀다. 네가 사과애 위에서 홀로 지내도록 벌한 것은 기실 정말 벌을 준 것이 아니라, 네가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 일년 안으로 기공이나 검술에 있어 대단한 진보가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

영호충은 잘못을 알고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제자 잘못을 알았읍니다. 오늘부터 열심히 연마하겠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무림에서는 나날이 변고가 많아지고 있다. 우리 부부는 근년5에 사방으로 뛰어다녀 보았다. 잉태된 화근은 이제는 뿌리뽑기 힘들 정도로 성장했다. 커다란 어려움이 닥칠 것 같더구나. 나는 무척 불안하다.]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너는 본문의 대제자이다. 나는 너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네가 훗날 우리와 어렵고도 큰 책임을 맡아 화산일파를 빛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너는 남녀의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서 열심히 정진하기는 커녕 오히려 무공이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에게 커다란 실망을 준 것이다.]

영호충은 ?瀛括?얼굴에 근심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땅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제자...... 제자는 죽을 죄를 지었읍니다. 사부님과 사모님의 기대를 저버렸읍니다.]

악불군은 손을 뻗어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잘못을 알았으면 됐다. 반개월 후에 다시 와서 너으 검법을 시험하겠다.]

그리고 몸을 돌려 떠나가려고 했다. 영호충은 불렀다.

[사부님 한가지 일이......]

그는 석벽의 도형과 청포인에 대해 알리려고 했다. 악불군은 손을 흔들더니 벼랑 아래로 5내려갔다.
악 부인은 나직이 말했다.

[반드시 반개월 동안 무공이 증진되고 검법에 익숙해지도록 열심히해야 한다. 너의 한평생이 관련되는 일이니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라.]

영호충은 말했다.

[녜, 사모님.]

악 부인은 몸을 돌려 벼랑 아래로 달려내려가 남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떠나갔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어째서 사모님께서는 검술연마가 나의 장래에 관련이 있으니 절대 가볍게 생각지 말라고 하셨을까? 또 사모니께서는 사부님이 먼저 가신 후에야 당부하신 것일까? ?ㅍ?..... 혹시......)
그의 뇌리에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따라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 올라 감히 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마음 깊숙히 하나의 희망이 떠올랐다.

(혹시 사부와 사모님은 내가 소사매 때문에 병이 났다는 것을 알고 소사매와 짝지워 주시려는 게 아닐까? 다만 내가 열심히 연마하여 기공이나 검술에서 반드시 뛰어났을 때 혼인을...... 사부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가 거북하셨겠지만 사모님은 나를 친아들처럼 대하시니까 몰래 나에게 당부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5또 무슨 일이 나의 장래와 크게 관련이 되겠는가?)

이 같은 생각이 들자 그는 힘이 솟았다. 그는 사부가 전수해준 가장 어려운 검법을 펼쳐 보였다. 뒷동굴 석벽의 도형이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초식을 쓰든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화산 검법의 검초를 깨뜨리는 방법이 떠올랐다. 그는 검초를 중간 정도 펼치다가 중지하고 생각이 잠겼다.

(뒷동굴 석벽의 도형에 관해 사부님과 사모님에 대해 말할 겨를이 없었다. 다음에 두 분이 벼랑 위로 올라오시면 자세히 관찰한 바를 말씀드5리고 내가 느끼고 있는 의문을 풀어야 되겠다.)
악 부인은 당부는 그로 하여금 새 힘이 솟구치도록 만들었으나 그 후에는 검법과 기공의 수련에 있어 진전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온종일 쓸데없이 생각으로 소일하다시피 했다.

(사부님과 사모님이 나와 영산을 짝지워 주신다면 소사매가 달가워할까? 정말로 그녀와 부부가 된다면 소사매의 임 사제에 대한 정이 사라질런지 알 수 없구나. 임 사제는 가까스로 사문에 들어왔다. 그가 소사매에게 검법을 배우게 되자 그녀를 상대로 말을 주고받아 무?簫纛?달랬을 뿐이지 두 사람 사이에 반드시 애정이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와 소사매는 함께 자라고 십여 년간 조석으로 정을 쌓아오지 않았는가? 그날 나는 하만터면 여창해의 일장에 격살될 뻔했는데 임 사제가 말을 해주어서 구원을 받았으니 그 일을 한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이후 마땅히 그에게 잘 대해 주어야 한다. 그에게 여려움이 있다면 나는 생명을 걸고서라도 구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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