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3-4

3학년2반 | 2022.03.13 07:03:54 댓글: 0 조회: 533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5532


악불군은 선창에 누워 파도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여러가지 생각이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사라지곤 했다. 한참 후 어둠을 뚫고 언덕 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악불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선창 큼으로 바깥의 동정을 살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신속히 달려오더니 갑자기한 사람의 손이 위로 올라가자 두 사람의 수장 밖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악불군은 이 두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말할 것이라고 짐작을 하고 즉시 자하신공을 끌어올렸다. 귀가 수배로 영민해지더니 멀리있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바로 이 배다. 낮에 화산파의 녀석들이 탔던 배가 뚫려진 다음 이 배로 옮겨왔죠. 나는 배에다 이미 표시를 해두었다. 틀림없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좋아요. 우리 돌아가서 제(諸) 사백(師伯)에게 보고합시다. 사형, 우리 백약문(百藥門)은 언제 이 화산파와 원수를 맺었읍니까? 왜 제 사백께선 모두를 동원하여 화산파를 막고 있읍니까?]
악불군은 '백약문' 이라는 세 글자가 귀에 들어오자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정신이 다른 곳에 쏠리자 자하신공의 위력은 반감되었다. 먼저 말을 했던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 막는 것이 아니다. ...... 제 사백께서는 사람에게 부탁을 받았지. 다른 사람에게 빛을 져서 사람 하나를 알아보려는 거야...... 결코......]

그 사람의 말은 매우 작았다. 끊어질 듯해서 확실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시 신공을 불어 넣으려고 할 때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더니 두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악불군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화산파가 백약문과 언제 원수를 맺었단 말인가? 제 사백 이라는 사람은 백약문의 장문인이다. 이 사람의 별명은 독불사인(毒不死人)인데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가 독을 쓰는 수법은 극히 고명하다고 한다. 독은 누구나 쓸 수 있어 그리 신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 독을 쓰면 독에 당한 사람은 금방 죽지 않고 몸이 수천 개의 칼에 난자당하거나 또 벌레나 개미들에게 물어뜯긴 것 같이 되어 결국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사람이 구해주지 않는 이상 다른 길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강호에선 백약문과 운남오선교(雲南五仙敎)를 무림 중의 양대 독문(毒門)이라고 일컫고 있는데, 비록 백약문은 오선교와 비교할 때 그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고는 하지만 두파가 별로 다른 것은 없지. 이 제씨 성을 가진 사람이 모두를 동원하여 나를 못살게 구는 것이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라는데 도대체 누구의 부탁을 받았을까?)

이리저리 생각해보니 결국 두 가지 워인으로 압축되었다. 하나는 백약문이 검종의 봉불평 등의 부탁을 받고 자기를 괴롭히려는 것이고, 두번재는 영호충이 찌른 열다섯 명이 백약문과 친분관계가 있는 것이었따.
갑자기 언덕에서 여자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너희 집에 정말로 벽사검보가 있니?]

바로 딸인 악영산이었다. 대답을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임평지였다.
언제 두 사람이 배에서 내려 언덕에 올라갔을까? 악불군은 마음속으로 무엇인가 깨달았다. 딸과 임평지가 요사이 정이 가까워져 낮에는 다른 사람이 눈치챌까봐 자신의 행동들을 나타내지 않다가 밤중에 언덕에 올라 밀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언덕에 적이 나타나는 바람에 자하신공을 발하여 그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자하신공은 내력을 많이 소모하는 것이어서 평상시에는 운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적들의 음모도 알아냈고 딸의 비밀도 알아냈던 것이다.
임평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벽사검법은 있읍니다. 내가 일찌기 당신에게 몇번 시범을 보여주지 않겠소? 그러나 검보(劍譜)는 없읍니다.]

악영산은 말했다.

[그렇다면 왜 그대의 외조부님과 두 분의 외삼촌이 우리 대사형이 검보를 삼켰다고 의심하고 있지?]

임평지는 말했다.

[그것은 그들이 의심하고 있는 것이오. 나는 절대로 의심하지 않소.]

악영산은 말했다.

[흥, 그렇다면 그대야말로 좋은 사람이군? 다른 사람은 의심을 하고 자기는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는다니!]

임평지는 탄식하며 말했다.

[만약 우리집에 그 같은 신묘한 검법이 있다면 우리 복위표국은 청성파에게 이처럼 능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집안이 망하지도 않았을 것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그렇다면 그대의 외조부와 삼촌들이 대사형에게 의심을 품고 있을 때 그대는 왜 그를 위해 변명을 하지 않았지?]

임평지는 말했다.

[나의 아버님 어머님이 무슨 유언을 하였는지 나는 친히 듣지 못했고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무엇을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를 몰랐소.]

악영산은 말했다.

[그렇다면 결국 그대도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밖에 더 돼?]
임평지는 말했다.

[절대로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대사형께서 아신다면 동문의 의리가 어찌 되겠소?]

악영산은 냉소했다.

[그대는 왜 그리 꿍꿍이 속이 많지? 의심을 하려면 의심을 하고 의심을 안 하려면 의심을 하지 않는거야. 나 같으면 벌써 대사형에게 가서 물어보았을 거야.]

그녀는 잠시 쉬더니 계속 말했다.

[그대의 성격과 아버님의 성격이 참 비슷해.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대사형을 의심하고 있어. 그가 남 모르게 검보를 가져갔다고 추측하고 있으니......]

임평지는 그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사부님도 의심하고 계신가요?]

악영산은 비웃었다.

[그래 스스로 범행을 의심치 않는다면 어찌 '사부님도' 라는 말을 할 수가 있지? 내가 말했잖아, 당신과 아버님의 성격이 똑같다고. 속으로 호박씨를 까면서도 한 마디도 언급을 안 하니 그러면 못써.]

갑자기 화산파가 타고 있던 배 위에서 징 소리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돼먹지 않은 년놈들이 함부로 말을 하는구나! 영호충은 영웅호걸이다~ 무엇이 아쉬워 너희들의 쓸모없는 검보를 가지겠는가? 너희들이 배후에서 그처럼 나쁜 말을 해대니 이 어르신께서 한놈도 남겨놓지 않겠다!]

이 몇마디의 소리는 너무나 컸다.
배에 탔던 수많은 승객들도 놀라 깨었고 언덕 위에 나뭇가지에서 자고 있던 새들도 놀라 푸드득 날았다.
배 위에 커다란 대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임평지와 악영산에게 덮쳐갔다.
임평지와 악영산은 언덕을 오를 때 검을 지니지 않았다. 즉시 권각법을 펼쳐 방어자세를 취했다.
악불군은 그 사람의 호통소리를 듣고 그 사람의 내력이 심후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덮쳐가는 기세를 보니 그의 외공(外功)은 더욱 심후한 것 같았다. 그가 자기딸에게 공격을 해가자 급한 나머지 악불군은 큰 소리로 외쳤다.

[잠깐 멈추시오!]

그리고 몸을 날려 창을 뚫고 바깥으로 뛰쳐나가 언덕으로 달려갔다. 그의 몸이 허공에 떴을 때 그 사내는 이미 악영산과 임평지를 한 손에 한 사람씩 잡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악불군은 깜짝 놀라 오른발을 땅에 내디디며 장검을 봅아 백홍관일(白虹貫日)을 펼쳐 그 사람의 등을 찔렀다.
그 사람은 체격이 컸고 걸음폭도 넓었다. 한 발짝 내딛자 악불군의 검은 허공을 찌르고 말았다. 즉시 일초의 중평검(中平劍)을 써 앞으로 덮쳤다.
그 거인이 마침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니 이 일검 또한 허공을 찔렀을 뿐이었다.
악불군은 날카롭게 외쳤다.

[조심하시오!]

그리고 일초의 청풍송화(淸風送花)를 써서 날카롭게 찌르며 앞으로 나갔다. 검끝이 그 사내의 등에서 한 자 정도에 이를 때 갑자기 바람이 일며 어떤 사람이 뛰쳐나와 두 손가락을 벌려 악불군의 두 눈을 향해 찔러왔다.
그들이 싸우는 곳은 막다른 길이라 집 그림자가 달빛을 가리우고 있었다. 악불군은 몸을 치켜세우고 피했다. 악불군은 비스듬히 장검을 찔렀으나 적은 머리를 숙여 피하고 앞으로 나서며 손을 들어 그의 배에 있는 중완혈(中脘穴)을 내리찍었다.
악불군은 다리를 날려 걷어찼다. 그 사람은 한바퀴 빙글 돌더니 그의 등을 공격해 왔다. 악불군은 피하지 않고 질풍같이 칼을 내리쳤다. 그 사람은 몸을 돌려 피하더니 그는 가슴을 향해 공격해 왔다.
악불군은 이 사람이 정말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손바다그올 그의 장검을 대항하고 또 초식마다 공격이니 내심 화가 나서 장검을 빙글 돌려 땅바닥을 걷어차고 뛰어 오르면서 그의 이마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 사람은 급히 손가락으로 쨍 하고 검을 튕겼다.
악불군은 장검은 그 때문에 비껴 내려가더니 '싹'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이 쓰고 있던 모자를 떨어뜨렸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중머리가 나타났다.
그 사람은 중이었다. 그의 어리끝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미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그 중은 두 발을 힘껏 놀려 뒤로 향해 질주해 갔다. 악불군은 그가 도망가는 길이 조금 전 악영산을 데리고 간 방향과 정반대가 되므로 쫓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악 부인이 달려오며 급히 물었다.

[산아는 어디 있읍니까?]

악불군은 왼손을 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추격합시다!]

부부는 거인이 도망간 길을 쫓아갔다. 얼마 가지 않아 두 갈래 길이 나왔는데 적이 어디로 갔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악 부인은 급하게 말했다.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하지요?]

악불군은 말했다.

[우리 산아를 납치해간 사람은 충아의 친구일 것이오. 아마 그래서...... 그래서 산아에게는 어떤 행동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오. 우리 돌아가서 충아에게 물어봅시다.]

악 부인은 말했다.

[그렇겠군요. 그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잖아요? 산과 평아가 충아에 대해 나쁜 말을 했다고요.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어요.]
악불군은 말했다.

[아무래도 벽사검보와 관계가 있는 것 같소.]

부부는 배로 돌아왔다. 영호충과 일행들은 언덕에 서 있었으나 표정들이 매우 심각했다.
악불군과 악 부인이 선창에 돌앙와 영호충에게 물어보려고 할 때 언덕의 먼곳에서 어떤 사람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악불군에게 전할 편지가 있다!]

노덕약과 남자제자들은 검을 뽑고 언덕으로 올라갔다가 얼마 후 선창으로 돌아와 말했다.

[사부님, 이 천조각이 돌맹이에 눌려 땅바닥에 있었읍니다. 편지를 전한 사람은 이미 없어졌읍니다.]

노덕약은 말을 하면서 한 조각의 천을 올렸다.
악불군이 받아보니 그 편지는 옷자락을 찢어내고 손가락에 피를 내어 삐뚤삐뚤하게 쓴 혈서였다.

[오패강(五覇剛)에서 너의 더러운 딸을 돌려주겠다.

악불군은 그 천을 부인에게 건네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 중놈이 쓴 것이오.]

악 부인은 급히 물었다.

[그...... 그가 누구의 피로 글씨를 썼을까요?]

악불군은 말했다.

[염려마시오. 내가 아까 그의 머리에 상처를 냈소.]

그러면서 뱃주인에게 물었다.

[여기서 오패강까지는 얼마나 되오?]

뱃주인이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배를 출항하여 동와상(銅瓦廂) 구혁집(九赫集)을 지나면 바로 동명(東明)에 도착합니다. 오패강은 동명의 동쪽에 있고 하택(荷澤)에서 가깝습니다. 하남과 산동성의 교차지점에 있읍니다. 어르신께서 가신다면 내일 저녁때 쯤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악불군은 '음' 하고 내심 생각했다.

(상대방이 오패강에서 만나자고 하는데 약속을 어길 수도 없고 또 나간다 해도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산아 또한 그들의 수중에 있으니 화가 많을 것이고 칼자루는 저쪽에 있다.)
갈까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언덕 위에서 어떤 사람이 불렀다.

[제기랄! 도곡육괴야! 나 종규(鍾?) 어르신께서 너희들 귀신을 잡으려 왔다.]

도곡육선들이 이 말을 듣고 어지 대노하지 않겠는가? 도실선은 아파 누워있으니 입 속으로만 외쳐댔고 나머지 다섯 사람은 일제히 몸을 날려 언덕으로 올라갔다.
말한 사람은 머리에 뾰족한 모자를 쓰고 손에는 하얀깃발을 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몸을 돌려 달아나며 크게 외쳤다.

[도곡육괴 놈들은 담이 작으니 절대로 나를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도근선 등은 짐승처럼 표호하며 빠른 걸음으로 뒤쫓았다.
그 사람의 경신법은 대단해서 순식간에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악불군 등도 이미 언덕에 올라와 있었다.
악불군은 외쳤다.

[이것이 조호이산(調虎離山)의 계략이니 모두들 배에 올라라.]
모든 사람들이 배에 오르려고 할 때 먼 곳에 둥그런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단숨에 영호충의 가슴을 움켜쥐고 말했다.

[나를 따라가자.]

마치 고깃덩어리 캐이 키가 작고 뚱뚱한 사람이었다. 영호충은 그에게 잡혔으나 전신에 힘이 없어 초식을 펼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와 하는 소리가 나며 한 사람이 집모퉁이에서 튀어나오더니 다짜고짜 발을 날려 공처럼 둥근 사람을 걷어찼다. 바로 도지선이었다.
그는 수십장을 뒤쫓다가 자기형제인 도실선이 배에 혼자 남았으니 자칭 종규어르신이라는 사람에게 잡힐까봐 다시 되돌아와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공같이생긴 사람이 영호충을 잡아가려고 하자 몸을 날려 그를 구하려고 한 것이었다.
공 같이 사람은 즉시 영호충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몸을 날리더니 선창 안으로 사라졌다. 도실선이 누워 있는 침대로 가서 왼쪽 발을 내밀어 그의 가슴을 차려고 하자 도지선은 깜짝 놀라 외쳤다.

[절대로 내 형제를 다치게 하지 마시오!]

공 같은 사람이 말했다.

[이 어르신께서는 한번 한다면 하고 말지. 네까짓 녀석이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도지선은 날듯이 선창으로 들어와 침대와 함께 도실선을 껴안았다.
공 같은 사람은 그를 떨쳐버리려고 그랬던 것이다. 몸을 돌려 언덕으로 올라와 영호충을 다시 둘러매더니 다시 날쌔게 달려갔다.
도실선은 평일지가 영호충을 보살피라고 했는데 영호충이 납치당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대할 것인가 하고 걱적했다.
평 대부는 틀림없이 그들에게 도실선을 죽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도실선을 내려놓고 돌보지 않는다면 이 상처로는 적에게 대항하지 못할까봐 염려되었다. 그는 두 손으로 도실선을 안고 공 같이 생긴 사람이 뒤를 쫓았다.
악불군은처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당신은 여기 남아 제자들을 돌보시오. 내가 살펴보겠소.]
악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자기들을 쫓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을 뒤쫓으려고 두 사람이 나선다면 배에 가득한 남녀제자들이 적에게 당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 같은 사람의 경공은 원래 도지선보다 못했으나 그는 영호충을 어깨에 매고 전력질주했고 도지선은 도실선의 상처가 심해 어깨에 매면 상처가 더욱 깊어질까 염려되어 두손으로 껴안고 아주 안전하 걸음으로 달렸으므로 그를 쫓아갈 수가 없었다.
악불군은 경공을 전개하여 상대방을 뒤쫓을 수가 있었다.
도지선은 큰 소리로 외치며 공 같은 사람에게 영호충을 내려놓으라고 욕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연신 외쳐댔다.
도실선은 비록 움직이지는 못햇으나 여전히 주둥이를 놀려대고 쉬지 않고 도지선과 말씨름을 했다.

[큰형님과 둘째형님이 여기 없는데 당신이 공 같은 사람을 따라 가봤자 무슨 수가 있겠어? 이왕 어쩔 수 없는 이상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헛소리고 공갈이 안니가?]

도지선은 말했다.

[헛소리고 공갈이고 겁을 주는데는 효과가 많아. 어쨌든 공갈치지 않는다는 것보다는 낫지.]

도실선은 말했다.

[내가 보니 그 공 같은 사람의 걸음걸이는 무척 빨라. 너의 말을 듣고도 발걸음이 늦춰지지 않으니 공갈쳐서 멈추게 한다는 것은 멍청이나 하는 말버릇이야.]

도지선은 말했다.

[그는 지금은 걸음걸이를 늦추지 않았지만 잠시 후면 늦춰질거야.]

그는 손에 사람을 안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말을 하였으며 발걸음 역시 늦추지 않았다.
세 사람은 일직선을 그으며 동북방을 향해 달렸다.
길은 점점 구불구불해졌고 산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악불군은 갑자기 생각했다.

(그 고깃덩이 같은 사람이 산에다 고수들을 매복해 놓고 우리들을 함정에 끌어들여 포위공격한다면 정말 위험하겠구나!)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고깃덩어리는 영호충을 안고 산 위에 있는 한 칸의 기와집으로 걸어가더니 담을 뛰어 넘었다.
악불군은 사방을 경계하며 또 다시 뒤쫓았다.
도지선은 도실선을 안고 담을 넘어 들어섰다. 갑자기 도지선이 비명자르 질렀다. 아마 어떤 함정에 빠진 것 같았다.
악불군은 살금살금 담가로 다가섰다.

도실선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벌써 너에게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어? 보라구! 지금은 후레자식이 쳐 놓은 어망에 꽁꽁 묶여져 있으니 한 마리의 큰 물고기 같지 않아! 이게 무슨 꼴이야?]

도지선은 말했다.

[틀렸어! 두 마리의 큰 물고기지, 한 마리리 큰 물고기가 아니다. 그리고 네가 언제 나보고 조심하라고 말했니?]

도실선은 말했다.

[우리가 어려서 함께 다른 집 정원에 있는 석류를 따러 들어갔을 때 내가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어? 설마 잊은건 아니겠지?]
도지선은 말했다.

[물론 관계가 있지! 그때 네가 조심하지 않아 나무에서 떨어졌잖아? 그래서 사람에게 잡혀 한바탕 얻어터지지 않았나? 후에 큰형님과 둘째형님이 도착해 비로소 그들 일가를 깨끗하게 처치해 버렸지 않았어? 이번에도 네가 조심하지 않아서 또 사람에게 잡혔단 말야!]

도지선은 말했다.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인가? 큰형님과 둘째형님이 오셔서 여기 있는 사람들을 싹 없애버리면 될 것이 아니냐?]

그 고깃덩이 같은 사람이 냉랭이 말했다.

[너희 두 놈은 금방 죽을텐데 아직도 사람 죽일 생각을 하고 있느냐? 말하지 말아라. 듣기도 싫다!]

도지선과 도실선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 소리가 끊겼다. 틀림없이 고기덩이처럼 생긴 자가 그들의 입 속에 복숭아씨 같은 것들을 쳐넣어 입을 열지 못하게 한 것 같았다.
악불군이 귀를 집중해 들어도 담 안에서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담을 한 바퀴 돌아오니 마침 담 바깥쪽에 큰 대추나무가 있는지라 가볍게 대추나무에 올라가 담 안의 동정을 살폈다. 담 안에는 조그만 기와집 한 채가 있었고 담과 집은 일 장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도지선이 몸을 날려 담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 어망에 걸린 것으로 보아 이 일 장 넓이의 공간에 어떤 장치가 매복되어 있는 모양이구나!)

그는 즉시 몸을 대추나무 잎이 무성한 곳으로 숨기고 자하신공을 끌어올려 정신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였다.

그 공 같은 사람은 영호충을 의자에 내려놓고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도대체 조천추라는 늙은 도둑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조천추라는 사람을 나는 오늘 처음 만나보았소. 그와 내가 무슨 관계라니요?]

고깃덩이는 화가 나서 말했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너는 내 손아귀에 있다. 내가 네놈을 비참하게 죽여주겠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영단묘약을 내가 아무 뜻 없이 먹었으니 당신도 화가 날만 하오. 그런데 당신의약은 아무 영험도 없는 것 같소. 내가 먹고 난 다음에 아무 효과도 보지 못했으니 말이오.]

고깃덩이는 노해 말했다.

[효과가 그렇게 빠를 수 있겠느냐? 속담에 이를길 병이 올 때는 산이 넘어지는 것 같고 병이 나갈 때는 마치 실을 뽑는 것 같다고 하는데, 이 약의 효험은 약을 복용한 후 열흘 후에나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십일이나 반당이 지난 후 그때가서 상의하기로 합시다.]

고깃덩이는 화가 나서 말했다.

[네가 나를 가지고 노는군! 너는 이어르신의 속명팔환을 먹었으니 죽어야 한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이 나를 즉시 죽인다면 그 속명팔환은 목숨을 구하는 효력은 없는 셈이군!]

고깃덩이는 말했다.

[내가 네놈을 죽이는 것과 속명팔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영호충은 탄식했다.

[당신이 나를 죽이려면 어서 손을 쓰시오. 어차피 나는 몸에 기운이 없으니 손을 쓸 수가 없소.]

고깃덩이는 말했다.

[흥! 네놈이 깨끗하게 죽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쉽지는 않을걸? 나는 먼저 확실히 알아겠다. 제기랄! 조천추는 몇십년이나 되는 오랜 친구인데 이번에 친구를 판 것은 그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너의 화산파는 나 황하노조(黃河老祖)의 안중에 없다.
그가 너 같은 화산파 제자를 위해 나의 속명팔환을 훔쳐 먹인 것은 괴이한 일이다. 정말 괴이하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한편으로 중얼중얼거리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매우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각하의 외호는 알고보니 황하노조라고 불리우는군요. 실례했읍니다. 정말 실례합니다.]

고깃덩이는 노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나 혼자 어떻게 황하노조가 될 수 있단 말이냐?]

영호충은 물었다.

[왜 혼자서는 될 수 없다는 말이오?]

고깃덩이는 말했다.

[황하노조의 한 사람은 성이 조씨고 한 사람은 노씨다 물론 두 사람이지. 이런 것조차 모르니 정말 멍청하군! 한 사람은 노야 노두자(老爺老頭子)이고 하나는 조종(祖宗) 조천추이다. 우리 두사람은 황하 강가에 살고 있으므로 합하여 황하노조라고 부른다.]
영호충은 물었다.

[어째서 한 사람을 노야(老爺)라고 부르고 한 사람은 조종(祖宗)이라고 부릅니까?]

고깃덩이 같은 사람은 말했다.

[너는 정말 무식하구나! 이 세상에 조씨성과 노씨성이 있는지 모르다니! 나의 성은 노(老)이고 이름은 외자로 야(爺)라고 한다.
자(字)는 두자(頭子)라고 한다. 사람들은 나를 노야라고 부르기도 하고. 노두자라고 부르기도......]

영호충은 참지 못하고 소리내 웃으며 물었다.

[그럼 그 조천추라는 사람은 성이 조씨고 이름은 종이겠군요?]
고깃덩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다.]

그는 잠깐 말을 쉰 다음 이상한 듯 물었다.

[어? 너는 조천추의 이름도 모른단 말이냐? 그렇게 말하니 그와 아무런 상관도 없을지도 모르겠군! 아니다 아니야! 너는 혹시 조천추의 아들이 아니냐?]

영호충은 웃음이 나왔다.

[내가 어찌 그의 아들이 되겠소? 그는 조씨고 나의 성은 복성인 영호인데 내가 어찌 그의 아들이 된단 말이오?]

노두자는 중얼거렸다.

[정말 해괴망측하다. 내가 무수한 심혈을 들여 훔치고 빌려 이 속명팔환을 배합했는데 원래 나는 이것을 나의 천금같은 딸의 병을 치료해주려고 했지. 네가 조천추의 아들이 아니라면 그가 왜 이 환약을 훔쳐 너에게 먹였을까?]

영호충은 비로소 뭔가 깨달아지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오 선생의 이 환약은 따님의 병을 치료해주려고 만든 것이었군요. 그런데 제가 잘못해서 복용했으니 천번만번 죄송합니다. 따님게선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요? 왜 살인명의 평대부에게 부탁하지 않습니까?]

노두자는 쳇! 쳇! 쳇! 하며 말했다.

[난치의 병이 있으면 평일지를 청하면 되지. 이 누두자는 개봉땅에 살고 있는데 왜 그것을 모르겠나? 그는 규칙이 하나 있지.
하나를 고치면 하나를 죽여 그 숫자를 맞춘다는 것 말이야. 나는 그가 내 딸을 치료해주지 않을까 염려되어 먼저 그의 마누라 집에 가서 일가 다섯사람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네. 그는 그제서야 미안한 듯 내 딸의 병을 진맥하였다네. 내 딸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괴질병을 갖고 와삳고 하더군. 그래서 이 속명팔환의 처방을 알려주덕누. 그렇지 않으면 내 어찌 이 약을 만드는 법을 알았겠는가?]

영호충은 들을수록 이상해 물었다.

[선배님께서 평대부에게 따님을 치료해달라고 부탁하는데 그의 장모님 식구를 살해했읍니까?]

노두자는 말했다.

[너는 왜 이리 멍청하냐? 가르쳐주지 않으면 쥐어줘도 모르니 말이다. 평리지는 원수가 없지. 요 몇년 동안 그가 병을 낫게 해준 많은 사람에게 부탁하여 원수를 모두 죽였기 때문이야. 평일지는 평생 자기 마누라집을 제일 미워했다네. 그러나 마누라를 무서워하는 공처가였기 때문에 친히 장모를 죽일 수도 없고 사람을 시켜 죽일 수도 없었네. 이 노두자는 그와 동향이라서 그의 걱정 근심을 잘 알고 있지. 어찌 그의 내심을 모르겠나? 그래서 내 스스로 그의 처가집 식구를 죽인거야. 내가 그의 처가집 일가를 살해하니 그는 매우 기뻐하며 내 딸아이를 진맥해 주었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 보니 그렇게 되었군요. 기실 선배님의 단약이 영험하다고 하지만 나의 질병은 낫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님의 병세는 지금 어떤지 모르지만 다시 단약을 만든다면 늦지는 않을까요?]
노두자는 화가 나서 말했다.

[내 딸아이의 생명은 길어야 반년이나 일년이고 그때가 지나면 만사가 끝장이네. 어디 그런 영약들을 찾으러 다닐 시간이나 있겠나? 지금은 어절 수 없네. 별 수 없이 죽음을 기다리며 살 뿐이지.]

그는 몇 가닥의 밧줄을 꺼내 영호충의 손과 발을 의자에 묶었다. 그의 옷을 찢어 가슴의 근육이 나오도록 했다.
영호충은 말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노두자는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 초조해 할 필요는 없네. 잠시 후면 알게 될 것이네.]
그는 사람과 의자를 함께 들더니 방 두칸을 지나 휘장이 쳐져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영호충이 방 안에 들어가니 숨이 막힐 듯한 더위가 엄습해 왔다. 그 방의 창과 문틈은 솜종이로 막아 바람이 통하지 못하게 했다. 방 안에는 두 개의 난로를 피우고 있었고 침대의 휘장은 축처져 있었으며 약냄새가 코를 찔렀다.
노두자는 의자를 침대 앞에 놓더니 침대의 휘장을 젖히며 부드럽게 말했다.

[착한 불사(不死)야, 오늘은 좀 어떠냐?]

영호충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뭐라고? 노두자의 딸의 방명(芳名)이 불사라니? 어째서 노불사(老不死)라고 지어주었을까? 아! 맞다! 그래 알았다! 그는 아까 그녀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괴질병을 앓았기 때문에 그녀가 일찍 죽을까봐 불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늙을 때까지 죽지말라고 기원한거야 정말 멋진 생각이군! 그녀는 '불' 자의 항렬이니 우리 사부님과 동년배이군!)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웃음이 나왔다.
벽에는 혈색이 없는 사람이 누워 있었고 약 삼척 정도되는 머리카락이 이불에 흩어져 있었다.
머리카락도 노랗게 변해 있었고 열여덟 사 정도로 보였는데 두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가 낮은 소리로 불렀다.

[아버지.]

그러나 눈을 뜨지는 않았다.
노두자는 말했다.

[불아야, 아버지가 너를 위해서 만든 속명탈환은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 복용을 하면 너의 병이 나을 것이야. 그러면 침대에서 일어나 밖에 나가 뛰어 놀아라.]

그 소녀는 녜 하는 소리를 내었으나 간절히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영호충은 그 소녀의 병세가 무거운 것을 보고 미안함 감을 떨 칠 수 없었다.

(이 노두자는 자기 딸에게 대단히 많은 정을 쏟았구나! 그래서 지금 그녀를 어쩔 수 없이 속이고 있는거야.)

노두자는 딸아이의 웠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자 앉아서 좋은 약을 먹으렴. 이 약은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망치지말도록 해라.]

그 소녀는 천처히 앉았다. 노두자는 두 개의 베개로 그녀의 등뒤를 받쳐주었다.
그 소녀는 눈을 뜨고 영호충을 발견하고 이상한지 눈망울을 연신 굴리며 영호충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버지, 이...... 이분은 누구예요?]

노두자는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 말이냐? 그는 사람이 아니고 약이야.]

그 소녀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그가 약이라고요?]

노두자는 말했다.

[그래, 약이란다. 그 약은 너무 강해서 네가 먹기에는 조금 적합하지 못하여 먼저 이 사람에게 복용시킨 후 그의 피를 받아 네가 복용하는 것이 제일 적합할 것 같았단다.]

그 소녀는 말했다.

[그의 피를 받는다고요? 그럼 아플텐데요. 그럼...... 그럼 좋지 않은 것이예요.]

노두자는 말했다.

[이 사람은 멍텅구리야. 그래서 아픈 것을 모를꺼야.]
그 소녀는 음 하고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영호충은 놀라고 화가 났다. 막 입을 열어 욕을 하려다 말고 생각했다.

(내가 이 소녀의 생명을 구하는 영약을 먹었으니 비록 내 의사는 아니지만 내가 그 일을망친 것이니 그녀의 생명을 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하물며 나는 본래 살 생각도 없었다. 그녀의 생명을 구할 수만 있다면 내 죄를 사할 수도 있으니 안 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는 처량하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두자는 그의 몸 옆에 서서 그가 욕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욕을 한다면 바로 아혈을 찍으려고 했는데 그는 무슨 영문인지 얼굴색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정말로 뜻밖이었다. 그가 어찌 영호충의 마음을 알겠는가? 영호충은 악영산에게 버림을 받은 후 살 의욕이 없어졌고, 또 오늘 저녁에 그 괴한이 큰 소리로 악영산과 임평지에게 그 두 사람이 영호충에게 나쁜 말을 한다고 질책하는 소리도 들었고 또 친히 악과 임 두 사람이 언덕 위에서 밀회를 즐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살 의욕이 상실되고, 삶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노두자가 알 수가 없었다.
노두자는 물었다.

[나는 너의 가슴을 파헤쳐 뜨거운 피를 받아내 내 딸의 병을 고치겠다. 무서운가? 무섭지 않은가?]

영호충은 담담이 말했다.

[그까짓거 뭐 무서울게 있겠읍니까?]

노두자는 의아한 눈빛으로 영호충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약간의 동요도 없이 태연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너의 가슴의 피를 거내면 너의 생명을 보전할 수가 없다. 나는 먼저 알려주었으니 알려주지 않았다고 탓하지는 말게.]
영호충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한번은 죽는 것이오. 일찍 죽으나 몇년 늦게 죽으나 무슨 큰 차이가 있겠소? 내 피로 아가씨의 생명을 구한다는데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내가 아무렇게나 죽을 바에야 누굴 위해 죽는다면 더 좋은 것이 아닙니까?]

그는 말을 마치고 생각해 보았다.

(만약 악영산이 나의 죽음을 안다면 혹시 아무런 슬픔빛도 나타내지 않고 '잘 죽었다' 고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자 자기 자신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노두자는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칭찬했다.

[이렇게 죽으미마 두려워하지 않는 호한을 이 누도자는 평생 본 적이 없다. 단지 애석한 것은 내 딸이 너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건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를 살려주었을 것이다.]

그는 부뚜막에 가서 한 대접의 물을 가져오고 오른손에 한 자루의 날카로운 칼을 잡고 왼쪽손으로 뜨거운 물을 적셔서 영호충의 가슴을 문질렀다.
이때 밖에서 조천추의 음성이 들려왔다.

[노두자! 노두자! 빨리 문을 열게나. 여기 몇가지의 귀중한 물건을 불사 아가씨에게 주려고 가져왔네!]

노두자는 눈쌀을 찌푸리며 오른손에 들고있던 칼을 휘젖더니 뜨거운 물에 담갔던 수건을 두 조각으로 내어 한 조각으로 영호충의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무슨 좋은 물건인가?]

그는 칼과 뜨거운 물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문을 열었다.
조천추가 방안에 들어오며 말했다.

[노두자,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되겠소? 이 일을 당신께 알릴 수가 없어 나는 하는 수 없이 속명팔환을 가져다 그에게 먹었소. 만약 당신이 알았다면 그 영단묘약을 그에게 주었을 것이오. 그러나 그는 틀림없이 먹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오.]

노두자는 화가 나서 말했다.

[무슨 말을 지껄이는 것이오?......]

조천추는 자기의 입을 그의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몇마디 했다. 노두자는 갑자기 몸을 껑충 뛰더니 말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소? 당신은 당신은 정말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니겠지?]

조천추는 말했다.

[당신을 왜 속이겠소?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정말이오. 노두자, 우리는 몇십 년 동안 우정을 맺어 왔소.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소! 내가 이번 일을 한 것은 당신 맘에도 쏙 들 것이오.]

노두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틀림없소! 틀림없소! 마땅히 죽어야 하오! 마땅히 죽어야 하오!]

조천추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어재서 틀림이 없고 누가 죽어야 한단 말이오?]

노두자는 말했다.

[당신은 틀리지 않았소! 내가 죽어야 하오!]

조천추는 더욱 이상해 말했다.

[당신이 왜 죽어야 한단 말이오?]

노두자는 단숨에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영호충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올리며 외치듯 말했다.

[영호 공자! 영호 어르신! 소인은 돼지기름이 가슴을 꽉 메워서 당신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읍니다. 다행히 하늘이 나를 불쌍히 보우하시오 조천추가 제때에 도착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내가 당신을 단숨에 찔러죽였다면 이 노두자의 전신의 고깃덩이가 보약으로 삶아진다 해도 내 죄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말을 하면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영호충의 입에는 반조각의 수건이 틀어막혀 욱욱하는 소리만 낼 분 말을 할 수 없었다.
조천추는 급히 그의 입 속의 수건을 꺼내며 말했다.

[영호 공자, 당신는 어째서 이곳에 와 있는 것입니까?]
영호충은 급히 말했다.

[노 선배님, 빨리 일어나시오. 이런 예는 올리 필요가 없읍니다.]

노두자는 말했다.

[이 늙은이는 영호 공자께서 나의 은인과 이런 관계를 맺고 있는 줄은 몰랐읍니다. 너무 실례를 했소이다. 정말 죽어야 됩니다.
정말 죽어야 되지요.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다니, 나의 딸 백 명이 모두 죽는다 해도 절대로 영호 공자의 피를 한방울이라도 흘려서 그녀들의 개 같은 생명을 구하지는 않겠읍니다.]

조천추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노두자, 당신은 영호 공자를 이곳에 묶어놓고 무엇을 하려고 했소?]

노두자는 말했다.

[아이쿠! 어쨌든 내가 일을 거꾸로 행했고 되지 못한 짓을 했으니 한 마디라도 변명할 수가 없군!]

조천추는 물었다.

[이 뜨거운 물하며 이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당신은 무슨 짓을 하고 있었소?]

곧이어 퍽퍽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두자가 힘껏 자기의 부 볼을 때리고 있었다. 그의 뺨은 본래 살쪄서 마치 한 개의 호박 같았는데 몇번을 힘껏 때리자 금방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 올랐다.
영호충은 말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저는 지금 뭐가 뭔지 통 보르겠읍니다. 두 분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노두자와 조천추는 급히 몸에 감겨 있는 끈을 풀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술을 한 잔씩 마시며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영호충은 침대에 누워 있는 소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따님의 병세에 어떤 변화라도 있는지요?]

노두자는 말했다.

[없읍니다.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그건......]

그는 말을 더듬거리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러더니 영호충과 조천추를 대청에 오르도록 하고 세 그릇의 술을 따르고 또 한 접시의 돼지고기를 가져와 안주로 삼았다. 그리고 아주 공경스럽게 술잔을 들어 영호충에게 한 잔을 권했다.
영호충은 단숨에 마셨다. 그 술맛은 담담했으며 좋은 술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천추의 술잔에 담아 먹던 그 술맛보다 자려 배 이상은 좋은 것 같았다.
노두자는 말했다.

[영호 공자 이 늙은이가 망령이 들었소. 공자께 실수를 했으니 정말로...... 정말로......]

얼굴에는 미안한 감이 가득 찼으며 무슨 말을 해야 그 송구한 마음을 전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조천추는 말했다.

[영호 공자는 대인이고 마음이 넓으십니다. 절대로 당신을 탓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당신이 만든 속명팔환이 효험이 있다면 영호 공자의 몸에 좋은 것이니 당신은 오히려 공을 쌓은 것이오.]
노두자는 말했다.

[그건...... 그 공로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오. 조형의 공이지요.]

조천추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당신의 여덟 알의 환약을 가져갔기 때문에 불사의 몸에 이상이 생길까봐 염려되었소. 이 인삼들을 그녀에게 달여주십시오.]

말을 하면서 몸을 숙이고 대나무 바구니를 끄집어내어 뚜껑을 열고 한 웅큼의 인삼으 꺼냈다. 굵은 것과 가는 것을 합쳐 최소한 여덟 근은 될 것 같았다.
노두자는 웃으며 말했다.

[어디서 이 많은 인삼을 가져오시었소?]

조천추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약방에서 빌려온 것이지요.]

노두자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유비(劉備)가 형주(荊州)를 비리듯이 언제나 되돌려줄지 모르는 격이군요.]

영호충은 노두자가 억지로 웃음을 짓고 껄껄 거렸지만 양미간에 근심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노 선생, 조 선생, 당신들 두 분의 나의 병을 고치시려고 하셨읍니다. 비록 그것은 좋은 일이나 처음에는 저를 속여 술을 마시게 했고 다음에는 저를 납치했읍니다. 이런 행동은 저를 너무 얕보신 것 같습니다.]

노, 조, 두 사람은 그 말을 듣자 다급히 일어나 연시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영호 공자, 늙은이들의 죄는 천번만번 죽어 마땅하오. 공자께서 어떤 처벌을 내리셔도 우리 두 늙은이는 달게 받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좋소. 나는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 속이지 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도대체 당신 두 분은 누구의 부탁을 받으시고 나를 이렇게 대하시는 것입니까?]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았다. 노두자가 말했다.

[이건...... 이건...... 이것은......]

조천추가 말했다.

[공자 어르신께서는 아실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우리는 감히 언급할 수가 없군요.]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정말, 정말 모르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풍 태사숙인가? 아니면 불계대사인가? 그렇지 않으면 전배광인가? 녹죽옹인가? 그러나 다 아닌 것 같다. 풍 태사숙께선 힘을 가지고 계시나 그 어르신은 은거하시며 나오지 않으시고 또 나에게 자기 행적을 절대로 누설치 말라고 하셨는데 그가 어지 사능마 내려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조천추는 말했다.

[공자, 이 일을 물어보셔도 나와 노형은 절대 말씀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를 죽이다 해도 말하지 않을것이오. 공자께서는 자연히 아시게 될터인데 우리가 꼬 말할 필요가 있겠읍니까?]

영호충은 그의 말투가 매우 강경해 어떤 협박을 해도 말할 것 같지 않자 말문을 돌렸다.

[좋습니다. 당신들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으니 내 마음속의 노기가 사라지지 않는군요. 노선생, 당신은 조금 전 나를 의자에 묶어둘 때 나는 겁이 나서 혼배백산했읍니다. 나도 당신따마 두 분을 묶어놓고 마음이 풀어지지 않으면 나는 뾰족한 칼로 당신들의 심장을 도려내야겠읍니다.]

노, 조,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일제히 말했다.

[공자께서 묶으신다면 우리는 반항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두자는 두 개의 의자와 여덟 개의 끈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먼저 자기들의 두 다리를 의자에 꽁꽁 묶었다. 그리고 나서 두손을 몸 뒤로 돌리며 말했다.

[공자, 묶으시지요.]

그리고 모두 생각했다.

(이 소년이 우리를 꽁꽁 묶어 화풀이를 할 것이가? 아마 장난이고 농담이겠지.)

그러나 영호충은 끈을 가져다 두 사람을 꽁꽁 묶었다. 그리고 노두자의 뾰족한 칼을 집어들며 말했다.

[나의 내력이 이미 소실되어 손으로 혈을 지를 수 없습니다. 또 당신들이 기운을 써 반항할까 염려되어 하는 수없이 칼자루로 당신 두 사람의 혈도를 봉하겠읍니다.]

그는 즉시 뾰족한 칼자루를 잡고 두 사람의 환도(環跳), 천주(天柱), 소해(少海) 등의 혈로를 힘껏 내리쳐 두 사람의 혈로를 봉쇄해 버렸다.
노두자와 조천추는 서로 쳐다보며 크게 의아하게 생각했으며 자기도 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영호충은 무슨 생각을 품고 있을까?
영호충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당신들은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시오.]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려 대청을 나갔다.

영호추은 뾰족한 칼을 잡고 소녀의 방으로 들어가 기침을 한번 한 후 말했다.

[노...... 소저, 몸은 어떠하시오.]

그가 본래 그녀를 '노소저' 라고 부르려했으나 이 소녀의 나이가 어리고 성은 비록 노씨이지만 노소저라고 부르기가 마땅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를 '노불쏘저' 라고 부른다면 더 이상할 것 같았다.
그 소녀는 '응' 하는 신음소리를 냈으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침대의 휘장을 걷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베개에 등을 받치고 앉아 있었는데 반은 잠든 것 같고 반은 깨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두 눈은 반쯤 뜨고 있었다.
영호충이 두 걸음 앞으로 나서서 보니 그녀의 얼굴은 투명하리 만치 희었으며 이마에 한 줄기 파가 힘줄이 튀어나와 마치 혈관의 피가 흐르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방안에는 정적만 흘렀고 바람소리조차 없었다. 마치 그녀의 체내의 신선한 피가 한방울 한방울 굳어져가는 듯했다. 그녀가 내쉬는 숨소리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미약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이 아가씨는 본래 살 수가 있었는데 내가 그 환약을 복용하여 죽게 되었다. 나는 어차피 죽어야 될 몸이다. 며칠 더 살고 덜 산다고 무슨 다른 점이 있겠는가?)

그는 옆에 있던 자기그릇을 탁자에 올려놓고 왼쪽 팔뚝을 들고 오른손으로 칼을 들어 혈맥을 한번 그었다.새빨간 피가 분수 처럼 흘러나와 그릇에 고였다.
그는 노두자가 조금 전 가져온 그 대야의 물에서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보고 즉시 뾰족한 칼을 내려놓고 오른손으로 그물을 떠서 상처 부위에 끼얹었다. 그것은 뜨끈한 피가 응고되지 않고 계속 많이 나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순식간에 새빨간 피가 그릇에 가득 찼다.
그 소녀는 혼미한 상태여서 피비린내를 맡고 눈을 떴다. 바라보니 영호충이 그릇에다 피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영호충은 그릇에 피가 가득 차자, 그녀의 침대 앞으로 가져가 그녀의 입가에 대주며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빨리마시십시오. 이 피에는 영약이 들어있으니 당신 몸이 나을 것이오.]

그 소녀는 말했다.

[전...... 저는 무서워요. 저는 마시지 않겠어요.]

영호충은 피를 한 그릇이나 흘리게 되자 머리가 텅 빈 것 같았고 사지에 힘이 쑥 빠져 달아났다.

(소녀가 이 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나는 피를 괜히 흘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왼손으로 뾰족한 칼을 쥐며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단칼에 당신을 죽여버리겠소.]
그리고 뾰족한 칼끝을 그녀의 목에 갖다댔다.
그 소녀는 무서워 피를 한모금 한모금씩 마셨다. 몇번이고 역겨워 토해내고 싶었으나 영호충의 칼끝이 번쩍이자 무서워 감히 토하지도 못했다.
영호충은 그녀가 한 그릇의 피를 깨끗이 비울 때쯤 자기 팔뚝의 피가 응고되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내가 노두자의 속명팔환을 먹어 핏속에 그 약이 섰이긴 했으나 이 아가씨의 체내에 들어간 양은 영약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잠시 후에 내가 정신을 잃게 디면 더 많은 피를 흘릴 것이다. 그럴 바에는 내가 정신이 맑을 때 몇 그릇의 피를 더 마시게 하자. 내가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그는 오른팔의 혈맥을 끊어 피를 한그릇 가득 담고 그 소녀에게 다시 마시게 했다.
그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애걸했다.

[그만...... 그만 하세요. 나는 정말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먹을 수 없어도 마셔야 되오. 빨리 마시십시오. 빨리 마셔요! 빨리!]

그 소녀는 억지로 몇 모금을 마신 후 숨을 한참 내쉬었다.

[당신은...... 당신은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당신이 이러시면 죽을텐데요.]

영호충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몸을 버린다 해도 그게 무슨 대수요? 나는 단지 당신의 몸을 낫게 하고 싶소.]


도지선과 도실선은 노두자가 쳐놓은 그물에 걸리자 있는 힘을 다해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럴수록 그물은 더욱 조여져 나중에는 두 사람의 손과 발을 단 몇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으나 귀와 눈은 여전히 민감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다. 영호충이 노 조 두 사람을 꽁꽁 묶는 것을 본 도지선은 말하기를 그가 반드시 두 사람을 죽일 것이라고 했다. 도실선은 영호충이 먼저 자기형제를 풀어주기 위해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말은 모두 맞지 않았다. 영호충은 두 사람의 상상을 깨뜨리고 그 소녀의 방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 소저의 규방은 밀폐되어 바람이 통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의 대화는 들리듯 말듯 밖으로 새어나왔다.
도지선과 도실선, 악불군, 노두자, 조천추 등의 내공은 상당했지만 영호충이 방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여자의 비명소리가 나자 다섯 사람의 얼굴색은 모두 변했다.
도지선은 말했다.

[영호충은 남자인데 규수의 방에 들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을까?]

도실선은 말했다.

[들어보라구. 그 아가씨가 무서워서 '전전...... 무섭습니다.' 그런까 영호충이 '당신이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단칼에 당신을 죽여버리겠소' 하지 않았나? 그가 말을 듣지 않으며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영호충은 그녀에게 무슨 말을 들으라고 하는걸까?]
도지선은 말했다.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그것은 강제로 협박해 그녀를 마누라로 삼으려는 수작이지.]

도실선은 말했다.

[하하하! 재미있는 일이군!그 호박처럼 둥그렇게 생긴 사람의 딸이라면 틀림없이 호박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겼을텐데 영호충은 왜 그렇게 생긴 여자를 마누라로 삼으려고 하는지 모르겠군!]
도지선은 말했다.

[호박꽃도 꽃이지. 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야! 어쩌면 영호충은 아주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뚱뚱한 여자를 보기만 하면 사죽을 못쓰는지도 모르지.]

도실선은 말했다.

[아이쿠! 저 소리 좀 들어보세요. 그 뚱뚱한 여자가 애원을 하는군요. '강제로 이러시면 안 돼요! 나는 정말로 못 합니다!']
도지선은 말했다.

[맞다! 그래 맞아! 영호충, 이놈이 정말 강제로 활을 끼워 맞추려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안 돼도 되게 해야 된다' 고 하지!]
도실선은 말했다.

[영호충은 빨리빨리 하라고 하는데 무엇을 빨리 하라고 그럴까?]

도지선이 말했다.

[너는 마누라를 얻어본 적이 없는 숫총각이니 물론 이해를 못할거야.]

도실선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마누라를 얻어본 적이 있소? 피장파장이지 뭐.]

도지선은 말했다.

[네놈도 내가 마누라가 없는걸 알고 있으면서 왜 그런 말을 무어보냐?]

도실선은 크게 외쳤다.

[이봐요! 이봐! 노두자! 지금 영호충이 당신 딸을 마누라로 삼으려고 하는데 당신은 보고도 왜 구하지 않는 것이오?]
도지선은 말했다.

[네가 무슨 상관이냐? 네가 어떻게 뚱뚱한 여자가 마누라가 되려고 그러는 줄 알지? 마누라가 되는걸 왜 말려야 하지? 정말 소란을 일으키고 있군! 그녀의 딸 이름이 '노불사' 라고 부르는 데 설마 죽기라도 할까봐?]

노두자와 조천추는 의자에 묶이고 혈도가 봉쇄되었으니 방에서 노소저가애걸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자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두 사람은 내심 의심을 품고 있었으나 도곡이선이 큰 소리로 말다툼하는 소리를 듣자 더욱 확신을 했다.
조천추는 말했다.

[노형, 이 일은 꼭 막아야 합니다. 영호 공자가 이렇게 색을 좋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읍니다. 아마 큰 화가 일어날 것 같지요?]

노두자는 말했다.

[아! 정말 내 딸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군! 그건 그렇다치고 정말로...... 정말로 그 사람에게 미안할 뿐이야!]

조천추는 말했다.

[들어보시게! 들어보시게! 당신의 불사 소저가 영호충에게 정이 생긴 모양이오. 그녀가 말하기를 '당신이 이렇게 하면 자기 몸을 다치게 할뿐이예요?' 영호충이 뭐라고 했는지 당신은 들었소?]
노두자는 말했다.

[그가 하는 말은 '내 몸이 무슨 대수겠소. 나는 당신이 좋기만 하면 되오' 제미랄놈! 이 두 년놈들이 벌써......]

조천추는 깔깔 웃어댔다.

[노형, 축하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노두자는 화가 나서 말했다.

[축하는 무슨 얼어죽을 축하요?]

조천추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까지화낼 필요는 없지 않소? 축하드리오. 좋은 사위를 얻었으니!]

노두자는 크게 소리질렀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이 일이 밖으로 새나가면...... 나는 당신의 목숨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오!]

그의 말투에는 놀람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조천추는 말했다.

[그렇게 하지. 그렇게 하지.]

그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악불군은 담 밖 나무 위에 있었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 자하신공을 발하고 있었지만 몇마디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맨처음 영호충이 그녀에게 강제로 일을 벌이려고 했으나 이 사람들과 영호충까지도 모두 신비하고 괴이하여 어떤 또 다른 계획이 있는지 몰라 섣불리 들어갈 수가 없어 조용히 일이 돌아가는 추세를 살피고 있었다.
더욱 자하신공을 끌어올려 동태를 살폈다.
도곡이선 노, 조, 네 사람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귓속으로 들려 왔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영호충이 그녀가 몸을 움직이 수 없는 기회를 틈타 그녀에게 큰 실례를 범했고 나중에 노조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니 영호충은 체격이 당당하고 멋진 남아인데 그여자는 저의 아비와 같이 호박처럼 못생긴 추녀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몸을 뺏긴 후 오히려 영호충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
갑자기 그 소저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러지 마세요...... 이러지 마세요! 이렇게 많은 피를, 당신에게 애원합니다......]

갑자기 담 밖에서 어떤 사람이 외쳤다.

[노두자, 도곡사괴를 멀리 뿌리쳤소!]

탁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나며 어떤 사람이 담 밖에서 몸을 날려 문을 밀치고 집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바로 하얀기를 들고 도곡사선에게 약을 올렸던 사내였다.
그는 노두자와 조천추가 의자에 묶여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왜 그러시오?]

오른손을 돌리니 손에는 비수가 들려 있었다. 손을 춤추듯 놀리며 두 사람의 밧줄을 끊었다.
옆방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에게...... 당신에게 애원합니다. 절대로 이럴 순 없어요!]

그 사내는 여자의 외침소리가 들려오자 급히 말했다.

[노불사 소저가 아닙니까?]

그는 그 방을 향해 달려갔다.
노주자는 그 사람의 손목을 잡으며 소리쳤다.

[들어가지 마라!]

그 사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뜰에 있던 도지선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내 생각에 저 키작고 호박덩이는 영호충 같은 사위를 얻었으니 틀림없이 기쁠거야.]

도실선은 말했다.

[영호충은 곧 죽을텐데. 반송장 같은 사위를 얻고 뭐가 그리 기쁘겠소?]

도지선은 말했다.

[그 사람의 딸도 곧 죽을텐데 뭐. 두 부부는 반은 살고 반은 죽었어!]

도실선은 물었다.

[누가 죽고 누가 산단 말이오?]

도지선은 말했다.

[그걸 물어볼 필요가 있냐? 물론 영호충이 죽겠지. 노불사 소저는 이름이 불사인데 어찌 죽겠는가?]

도실선은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오. 이름이 그렇다고 이름대로 된답니까? 만약에 천하의 모든 사람이 노불사라고 이름 짓는다면 모두 죽지 않는단 말이오? 그렇다면 우리는 무공을 배워 어디다 쓰오?]
두 형제가 서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중에 방문이 '펑'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떤 물건이 땅바닥에 쓰러지는 것 같았다.
노소저는 다시 부르짖었다. 소리는 비록 약했지만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버지, 빨리 오세요!]

노두자는 딸이부르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영호충은 땅바닥에 쓰러져 있고 자기 그릇을 가슴에 안고 있었으며 상반신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노소저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는데 입주위가 온통 새빨갛게 물들여져 있었다.
조천추와 그 사내는 노두자 옆에 서서 영호충을 쳐다보고 노소저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노소저는 말했다.

[아버지 그가...... 많은 피를 짜서 강제로 나에게 두 그릇을...... 그는...... 한 그릇을 다시 받으려고 하다가......]
노두자는 깜짝 놀라 급히 영호충을 안아 일으켰다. 그의 두 팔목의 혈맥은 칼로 그어지고 새빨간 피가 물처럼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두자는 급히 방문을 나가 금창약(金瘡藥)을 꺼내오려고 했다.
마음이 조급해지자 비록 자기 집이지만 허둥지둥하다가 문설주를 들이받고 머리에 혹이 나고 문은 쓰러져 비스듬해졌다.
도지선은 '우지끈 뚝' 하는 소리가 드릴자 그가 영호충을 구타하고 있는 줄 알고 외쳤다.

[이봐요! 노두자, 영호충은 도곡육선의 친구요! 절대로 그를 때려서는 안되오! 만약 그를 때려 죽인다면 도곡육선은 당신의 고깃덩이를 한 조각 한 조각 찢어버리겠소!]

도실선은 말했다.

[틀렸읍니다! 틀렸읍니다!]

도지선은 말했다.

[뭐가 틀려?]

도실선은 말했다.

[그의 몸이 비쩍 말랐다면 한조각 한조각 찢는게 말이 되지. 하지만 그의 몸은 모두 비곗덩어리이니 찢는다면 한 덩어리 한 덩어리로 찢어야 되지 어떻게 조각조각 찢겠소?]

노두자는 금창약을 꺼내 영호충의 상처를 싸맸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있는 혈도를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영호충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노두자는감격스러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호 공자, 당신은...... 당신은 정말로...... 이 은혜 우리는 분골쇄신하여 갚겠읍니다! 또...... 또......]

조천추는 말했다.

[영호 공자, 노두자가 아까 당신을 묶은 것은 모두 오해였소.
당신은 그것을 진심으로 아셨군요? 정말로 내가 면목이 없읍니다.]

영호충은 미소지며 말했다.

[제 몸의 내상은 영단묘약으로 치료할 수가 없읍니다. 조 선배님께선 저 때문에 노 선배님의 속명팔환을 훔쳐 나에게 복용케 하셨읍니다. 정말로...... 정말로 단지 이 소저의 병이 완쾌되길 빌뿐입니다.]

그는 여기까지 말한 후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 다시 기절하고 말았다.
노두자는 그를 안고 딸의 방에서 걸어나와 자기방 침대로 옮겼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리고 볼품사나운 표정을 하며 말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조천추는 말했다.

[영호 공자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소. 어쩌면 생명이 경각에 달렸는지도 모르오. 우리 세 사람이 필생의 힘을 써서 내공을 영호 공자 체내에 불어넣어 주는 것이 어떻겠소?]

노두자는 말했다.

[그렇게라도 해야겠군!]

그리고 영호충을 가볍게 안고 오른쪽 장심(掌心)을 영호충의 대추혈(大椎穴)에 가볍게 대고 크게 기운을 썼다. 전신이 떨리며 와자작하는 소리와 함께 앉았던 나무의자가 부서졌다.
도지선은 깔깔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영호충의 내상은 우리가 그의 상처를 치료하느라고 생겼는데 이 호박덩이가 우리의 전철을 밟는군! 영호충은 그렇게 되면 상처받은 몸에 또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받고 계속 상처만 받을 것이 아닌가?]

도지선은 말했다.

[들어보시오. 저 뭔가 부서지는 소리는 틀림없이 호박덩이가 영호충의 체내에 있던 내력(內力)에 튕겨나와 나가 떨어져 무엇엔가 부딪쳐 망가지는 소리요. 영호충의 내력은 곧 우리들의 내력이니 저 호박덩이는 우리 도곡육선에게 당하게 되어군! 정말 멋져요! 정말 멋진 장면이오!]

노두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영호 공자께서 상처도 낫지 않고 정신도 들지 않는다면 나 노두자는 별 수 없이 자살을 할 수밖에 없소.]

그 사내는 갑자기 목소리를 돋우어 큰 소리로 말했다.

[담 밖의 대추나무에 있는 분은호산파의 악 선생이 아니오!]
악불군은 깜짝 놀람 생각했다.

(알고보니 나의 행동을 그들이 벌써부터 알고 있었군!)
다시 그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악 선생, 멀리서 온 손님이니 좀 들어시지 않겠소?]
악불군은 난감했다. 들어가자니 더욱 일이 꼬일 것 같았으나 지금으로선 계속 나무 위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 사내는 말했다.

[당신 제자인 영호 공자께서 기절을 했읍니다. 빨리오셔서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악불군은 기치미마 한번 한 후 몸을 날려 일장 넓이의 들을 지나 물이 떨어지는 처마 밑에 몸을 댔다.
노두자는 방에서 걸어나오며 읍을 하고 말했다.

[악선생, 들어오시지요.]

악불군은 말했다.

[저는 제자의 안위가 걱정되어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소.]
노두자는 말했다.

[제가 죽일 놈이지요. 아! 만약...... 만약......]

도지선은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염려할 필요 없소. 영호충은 죽지 않을 가이오!]
노두자는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가 안 죽는지 아시오?]

도지선은 말했다.

[그의 나이는 당신보다도 적고 또 나보다도 적소. 그렇지 않소이까?]

노두자는 말했다.

[그렇소, 그것이 어쨌단 말이오?]

도지선은 말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먼저 죽소? 그렇지 않으면 나이가 어린 사람이 먼저 죽소? 자연히 나이 많은 사람이 먼저 죽지요? 당신과 내가 아직 죽지 않았는데 영호충이 어찌 죽는단 말이오?]
노두자는 이런 이치는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이 또 주둥이를 놀리자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도실선은 말했다.

[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소. 우리 모두 합심하여 영호충의 이름을 고쳐 부르도록 합시다. 이름을 '영호불사' 라고......]
악불군이 방으로 들어가니 영호충은 정신을 잃고 침대에 쓰러져 있었다.

(내가 만약 자하신공을 쓰지 않는다면 여기 있는 몇 사람이 우리 화산파를 멸시할 것이다.)

그는 즉시 암암리에 자하신공을 발했다. 얼굴을 침대 쪽으로 향하고 자기(紫氣)가 나타날 때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했다.
손바닥을 영호충의 등에 있는 대추혈에 갖다댔다. 그는 벌써 영호충의 몸 속에서 진기가 운행하는 상태를 알 수 있었으므로 큰힘을 쓰지 않고 단지 적절한 내력을 천천히 불어넣었다. 영호충은 몸 속 진기가 반격을 가해오자 그는 손바닥을 영호충의 피부에서 반촌(半寸) 정도 떼었다가 다시 손바닥을 대추혈에 대었다.
과연 얼마 있지 않아 영호충은 천천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사부님, 사부님께서 오셨군요.]

노두자 등 세 사람은 악불군이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영호충의 정신을 돌리자 모두 탄복했다.
악불군이 깊이 생각했다.

(이곳은 더 머물 곳이 안 된다. 배 안에 있는 부인과 제잗르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군!)

악불군은 공수하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우리를 이렇게 대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만 물러가겠읍니다.]

노두자는 말했다.

[녜, 녜, 영호 공자는 몸이 안 좋으니 여기서 응당 치료를 해야겠지만 누추해서......]

악불군은 말했다.

[너무 예가 지나치십니다.]

별로 밝지 않은 불빛 아래 그 사내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악불군은 언뜻 생각이 떠올라 공수를 하며 말했다.

[이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조천추는 웃으며 말했다.

[악 선샌께선 우리들이 밤고양이라고 부르는 무계가시(無計可施) 계무시(計無施)를 모르시는군요?]

악불군은 깜짝 놀라며 생각했다.

(반고양이 계무시?듣건대 이 사람은 천부적으로 좋은 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행동에 있어선 갑자기 악해졌다 갑자기 선해지고 때로는 바르고 때로는 사악하여 비록 이름은 계무시라고 부르지만 간계가 무궁한 사람으로 상당히 무서운 인물인데 그런 그가 노두자 등과 함께 있다니!)

급히 공수하며 말했다.

[계사부(計師傅)의 존함을 일찍 들었소. 그 명성은 천둥과 우뢰 같았읍니다. 오늘 이렇게 만나뵙게 되니 정말 반갑습니다.]
계무시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오늘도 만나보고 내일은 오패강에서 만나야되지않습니까?]

악불군은 깜짝 놀랐다. 비록 초면이라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이 실례가 되는 줄은 알지만 딸의 행방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이곳에서 무슨 잘못을 했는지요. 제 생각에는 이곳을 지나면서 여러분에게 인사를 못 한 것이 그 원인인 것 같습니다. 정말 미안하지만 제 딸과 임씨성을 가진 제자를 어떤 친지가 데려갔는지 모르겠으니 계 선생께서 한두 마디만 해주실 수 없을까요?]
계무시는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그 일에 대해선 잘 모르겠는데요.]
악불군이 딸의 행방을 물어본 것만으로도 장문인의 신분을 위축시켰는데 그가 거절하는 하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고 마음이 초조해졌다. 더 물어볼 수 없어 담담히 말했다.

[밤도 깊었는데 폐가 많았읍니다. 이만 물러가지요.]
그리고 영호충을 안으려고 했다.
노두자는 영호충을 급히 낚아채며 말했다.

[영호 공자는 제가 모셔왔으니 응당 제가 모셔다 드려야죠.]
그리고 엷은 이불을 꺼내 영호충을 감사더니 큰 걸음으로 문밖을 나섰다.
도지선이 외쳤다.

[이봐요! 우리 두 마리 물고기를 여기다 두면 어떤 꼴이 되겠소?]

노두자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마음속으로 호랑이를 잡기는 쉬우나 놓아주기는 어려운 법이다.
이 두 형제를 놔주면 도곡육선이 다시 와서 이릉마 저지를 것이고 그러면 이들을 막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이 둘을 인질로 삼아도 또 다른 네 사람이 골치인 것 같았다.
영호충은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말했다.

[노 선배님, 그 둘을 놓아주십시오. 도곡이선, 당신들은 앞으로 노 조 두 분을 찾아와서 복수를 한다 어쩐다 하지 마시오. 모두들 적개심을 버리고 친구가 되면 어떻겠소?]

도지선은 말했다.

[우리 두 사람으론 복수를 할 수 없지 않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면 도곡육선이 함께 오겠단 말이오?]

도실선은 말했다.

[그들에게 복수를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있지. 그러나 적개심을 품고 친구로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네 머리가 떨어져나가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일이오.]

노두자와 조천추는 '흥' 하고 코웃음쳤다.

(우리는 영호 공자의 체면을 봐서 너희들과 한바탕하지 않는 것이지 우리가 너희 도곡육선이 무서워 그러는 줄 아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그건 왜요?]

도실선은 말했다.

[도곡육선과 그들 황하노조와는 본래 원한이나 복수 같은 관계가 없어. 원래 적이 아니니까 적개심을 품은 적이 없단 말이야.
친구로 사귄다는 것은 괜찮을지언정 적개심을 풀고 친구가 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이지.]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었다.
조천추는 고개를 숙여 어망의 매듭을 풀었다. 이 어망은 인발(人髮)과 야잠사와 순금사(純金絲)로 짜여져 있어 견고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칼이나 어떠한 무기로도 자를 수가 없고 그 속에 갇히면 사람이 풀어주지 않는 이상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조여드는 것이었다.
도지선은 몸을 일으키더니 어망에다 오줌을 갈겼다.
조천추는 놀라 물었다.

[당신......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소?]

도지선은 말했다.

[이 더러운 어망에 오줌을 갈기지 않는다면 이 늙은이의 화풀이는 어디다 한단 말이오?]


일곱 사람은 다시 부둣가로 돌아왔다.
악불군은 노덕약과 고근명 두 제자가 뱃머리에 서서 망을 보는 것을 보자 아무 일도 없었음을 알고 마음을 놓았다.
노두자는 영호충을 선창에 데려간 후 아주 예의바르게 읍을 하며 말했다.

[공자의 의리와 정성에 이 늙은이는 감격하였소이다.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지만 머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영호충은 돌아오느라고 충격을 받아 가물가물 정신을 잃어 단지 '음' 하는 신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악 부인과 여러 사람은 호박덩이 같은 사람이 조금 전엔 무례하게 굴다가 공손해졌으며 지금 영호충에 대해 예의 바르게 나오자 속으로 깜짝 놀랐다.
노두자와 조천추는 도근선 등이 돌아올까 염려되어 더 이상 머물려고 하지 않고 악불군에게 공수를 한 다음 간다는 인사를 했다.
도지선은 조천추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조형, 잠깐만.]

조천추는 말했다.

[왜 그러시오?]

도지선은 말했다.

[이 짓을 하려고 그러오.]

무릎을 꿇어 귀를 낮추며 그를 향해 맹렬히 달려갔다. 이 행동은 뜻밖이고 빨라 조천추는 피하지 못하고 급히 내공을 발하여 기를 단전으로 순식간에 불어넣었다. 배는 이미 단단하기 강철 같으나 '챙그랑' '챙강' 하는 소리가 열 몇번울렸다.
도지선은 이미 수십 장 밖으로 나가면서 깔깔 웃어댔다.
조천추는 크게 외쳤다.

[아이쿠! 아이쿠!]

그는 손을 급히 품 속에 넣어 수십 개의 파편을 끄집어 냈다.
그 파편은 도자기 파편, 옥, 대나무 또는 나무 등 조천추의 품 속에 있던 이십몇 개의 진귀한 술잔들이 한번의 박치기에 다 박살이 나고 금배나 은배 청동작 같은 물건들은 쭈그러졌다.
그는 아깝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수십 개의 조각들을 주워 도지선을 향해 마구 던졌다.
도지선은 벌써 방어가 되었으므로 몸을 피하며 외쳤다.

[영호충이 우리 보고 적개심을 풀고 친구가 되라고 했는데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잖아? 우리는 이제 적이 되었다고! 다음 차례는 친구가 되는 것이오.]

조천추는 수십 년 동안 각고의 노력끝에 이 술잔들을 장만했는데 도지선이 달려들어 술잔들을 다 망가뜨리자 너무너무 화가 났다. 본래 반격을 하려고 했으나 그의 말을 듣자 즉시 걸음을 멈추고 껄끄럽게 웃으며 말했다.

[흠 맞는 말이군. 적개심을 풀고 친구가 되고 적이 친구가 된다.]

그리고 노두자와 계무시와 함께 몸을 돌려가버렸다. 영호충은 가물거리는 상태에서 그래도 악영산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도지선, 당신이 그들에게 말씀 좀 해주십시오...... 절대 소사매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요.]

도지선은 말했다.

[알았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요, 이봐! 노두자, 밤고양이, 조천추는 들으시오! 영호충이 말하기를 당신들은 그의 보배인 사매를 해치지 말라고 합니다.]

계무시 등은 이미 멀리 갔으나 이 말을 듣고 잠시 멈춘 후 노두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영호 공자의 명이니 반드시 따르겠소!]

세 사람은 한참 무엇을 상의하더니 비로소 멀어져 갔다.
악불군은 부인에게 조금 전 노두자의 집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그때 갑자기 언덕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근선 등 네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도곡사선은 허풍을 떨었다. 백기를 들고 있던 사람은 그들에게 잡혀 이미 네 조각이 났다고......
도실선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군요! 대단해요! 네분 형님은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죠!]

도지선은 말했다.

[당신들은 그 사람을 네 조각으로 찢었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이름을 아시오?]

도간선은 말했다.

[죽었는데 그의 이름을 알아 무엇해? 물어보는 너는 아느냐?]
도지선은 말했다.

[물론 나는 알고 있지. 그 사람의 성은 계씨고 이름은 무시라고 하지요. 그에겐 별명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를 밤고양이라고 부릅니다.]

도엽선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 사람은 성도 좋지만 이름 또한 절묘하군! 원래 그는 선견지명이 있었군! 우리 도곡육선에게 잡힌 다음 아무 계책이 없어 도망가지 못하고 몸이 네 조각으로 찢어지는 운명을 맞이할 것을 예상하고 그 이름을 지은거야!]

도실선은 말했다.

[그 밤고양이 계무시의 공력은 출중하여 이 세상에서 보기 힘들 것이오.]

도근선은 말했다.

[맞다. 그의 공력은 대단했다. 우리 도곡육선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공력이 이 무림에서 첫째나 둘째는 가겠지.]

도실선은 말했다.

[경신공부(輕身功夫)는 그렇다치고 그는 몸이 네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다음 그는 또 자기 스스로 맞추어 다시 혼이 돌아와 행동이 전과 같이 되어 조금 전만 해도 이곳에서 얘기를 하다 갔지요.]

도근선 등은 비로소 자기들의 거짓말이 탄로난 줄 알았다. 그들은 얼굴에 경이스러운 빛을 띄었다.
도화선이 말했다.

[알고보니 계무시는 이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군! 사람이란 겉만보고 판단할 수 없고 바닷물은 되로 잴수가 없는 법이야! 정말 탄복했어! 정마로 탄복했어!]

도간선은 말했다.

[몸이 네 조각으로 찢어진 다음 스스로 몸을 맞추어 순식간에 행동이 전과 같아지는 것을 가리켜 '화령위정대법(化零爲整大法)' 이라고 부르지. 이 재주는 실전된 지 오래인데 뜻밖에 그 계무시가 그 무예를 배웠으니 정말 무림의 괴인이야! 다음에 만나면 그 삶과 친구를 맺어야겠군!]

악불군과 악 부인은 머리를 맞대고 근심에 쌓여 있었다. 사랑하는 딸이 업혀갔는데도 납치범의 정체조차 모르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했다. 화산파의 명예가 한때는 무림을 진동시켰었는데 뜻밖에도 이 황하에는 이런 일들을 치루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여러 제자들이 놀라고 무서워할까봐 악불군 부부는 조금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 부부는 여러가지 의문이 있었으나 마음속으로만 고민을 할 뿐 서로 상의를 하지도 않았다. 큰 배에서는 도곡육선들의 말씨름만 들려오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하늘이 점점 밝아오고 언덕 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있지 않아 두 대의 가마가 언덕에 도착했다.
한 명의 가마군이 낭랑히 말했다.

[영호 공자께서 분부하시길 절대로 악 사매를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읍니다. 그래서 저희 어르신께서 이렇게 보내셨으니 영호공자께선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명의 가마군은 가마를 내려놓고 배를 향해 절을 꾸벅하더니 몸을 돌려 멀리 사라졌다.
가마에서 악영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어머니!]

악불군 부부는 놀라고 기뻐서 언덕으로 올라가 가마의 휘장을 젖혔다. 과연 사랑하는 딸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단지 다리에 혈도가 찍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을 뿐이었다. 다른 가마에는 바로 임평지가 앉아 있었다.
악불군은 손으로 딸의 환도(環跳) 척중(脊中) 등의 혈도를 몇번 툭툭 치니 막혔던 혈도가 뚫렸다.
악불군은 물었다.

[그 키가 큰 사람은 누구냐?]

악영산은 말했다.

[그 키가 크 꺽다리는 그는...... 그는...... 그는......]
그녀는 작은 입을 삐죽이더니 참을 수 없다는 듯 울어버렸다.
악 부인은 가볍게 안아 선창에 데려다놓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어떤 일을 당하지 않았느냐?]

악영산은 어머니가 묻자 와와 하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악 부인은 깜짝 놀라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정체가 불명하고 달이 그들 손에 떨어져 몇 시간을 보냈는데 어떤 능욕이라도 당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급히 물었다.

[왜 그러니? 엄마에게 말을 하려므나. 괜찮단다.]

악영산은 계속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악 부인은 더욱 놀라고 당황하였다.
배에는 사람이 많으므로 더 물어보지 못하고 딸아이를 눕히고 이불을 꺼내 그녀의 몸을 덮어주었다.
악영산은 큰 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어머니! 그 꺽다리가 나에게 욕을 했어요! 흑흑흑! 흑흑흑!]
악 부인은 그 말을 듣자 무거운 짐을 벗은 듯했다. 그래서 웃으며 말했다.

[몇 마디 욕을 얻어 먹었다고 이리 슬피 우느거냐?]

악영산은 울면서 말했다.

[그는 손바닥을 들어 나를 때리려고 했고 겁을 주었어요.]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 다음번에 만나면 우리도 욕을 해주고 겁을 주자꾸나.]

악영산은 말했다.

[나는 대사형에게 나쁜 말을 하지도 않았고 임평지도 아무 말 하지 않았어요. 그 걱다리는 너무나 흉악했어요. 그는 말했어요.
'내가 평생 제일 싫어하는 일은 영호충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년놈들이다.' 그래서 나도 말했지요. '나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어요. '나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삶아먹는다!' 어머니, 그는 하얗고 음산한 이빨을 드러내며 나에게 겁을 주었어요.흑흑!]

악 부인은 말했다.

[그 사람은 정말 나쁘구나! 충아, 그 키가 큰 꺽다리는 누구냐?]

영호충은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은 상태에서 말했다.

[꺽다리라고? 난...... 난......]

이때 임평지도 사부에게 혈도가 풀리자 선창 안으로 걸어들어 오며 말했다.

[사모님, 그 꺽다리와 그 중놈은 정말로 사람고기를 먹는 사람입니다.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

악 부인은 깜짝 놀라 말했다.

[그 두 사람이 사람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너는 어떻게 아느냐?]

임평지는 말했다.

[그 중은 나에게 벽사검보에 대해 한참 물어보았읍니다. 그러더니 품 속에서 이상한 물건을 꺼내어 씹고 있는데 참 맛있게 씹는 것 같았읍니다. 또 그것을 내 입에 갖다대며 한입 물어뜯어 맛 좀 보지 않겠냐고 했읍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알고보니 사람의 손목이었읍니다.]

악영산은 놀래서 소리쳤다.

[그럼 왜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임평지는 말했다.

[나는 당신이 놀랠까봐 말하지 않았던 것이오.]

악불군은 말했다.

[아 생각났다. 이 사람들은 바로 막북쌍웅(漠北雙熊)이다. 그 꺽다리는 피부가 하얗고 그 중은 피부가 검지 않든? 그렇지?]
악영산은 말했다.

[맞아요! 아버지, 그들을 아시나요?]

악불군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모른다. 단지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새외막북(塞外漠北)에는 두 명의 악랄한 도둑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백웅(白熊)이라고 하고 한느 흑웅(黑熊)이라고 부르지. 만약 어떤 사람이 물건을 가지고 그곳을 지난다면 막북쌍웅은 그의 재물을 빼앗는다고 한다. 만약 반항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쌍웅들은 때때로 그런 사람들을 잡아서 끓여 먹는단다. 듣기에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은 근육이 단단해 먹을 때는 일반 사람의 고기보다 더욱 많이 씹어야 한다는 군.]

악영산은 와 하고 소리를 내며 울었다.
악 부인은 말했다.

[사형께선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일반 사람의 살보다 다욱 단단하다는 말을 하시면 비위가 약한 사람은 구역질이 나온답니다.]

악불군은 웃으며 잠시 말을 멈춘 후 다시 말했다.

[난 지금껏 막북쌍웅이 만리장성 안쪽으로 들어왔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황하변에 나타났는지 모르겠군. 충아, 너는 어떻게 막북쌍웅을 알고 있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막북쌍웅이라니요?]

그는 사부의 말을 확실히 알아듣지 못하여서 쌍웅이란 두 글자를 영웅(英雄)의 웅(雄)이라고 말했고, 곰웅의 웅(熊)자인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한참 멍청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는 알지 못합니다.]

악영산이 갑자기 말했다.

[소림, 그 화상이 그대에게 그 손목을 먹으라고 했을 때 그대는 먹었나요?]

임평지는 말했다.

[물론 먹지 않았지요.]

악영산은 말했다.

[안 먹었으니 다행이지. 흥!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예요.]

도간선은 선창 밖에 있다가 말했다.

[천하에서 첫째로 맛있는 것은 사람고기다. 소림은 반드시 먹었을거야. 단지 자기가 인정을 하지 않자르 뿐이지.]

도엽선이 말했다.

[그가 먹지 않았다면 거기서 말했을테지. 지금와서 변명을 하고 있다니, 상종 못할 녀석이로군!]

임평지는 큰 변을 당하고부터 일할 때나 말할 때 매우 침착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런 말을 듣자 멍청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화선은 말했다.

[됐다, 됐어!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것을 무언으로써 대답한거야. 악 소저, 사람의 고기를 먹어놓고도 먹지 않았다고 하니 이 사람은 정말로 성실치 못해. 절대로 그에게 시집을 가지마!]

도근선은 말했다.

[너와 그가 결혼한 후 그는 틀림없이 두번째 여자를 얻어 어쩌구 저쩌구 해놓고 집에 와서 네가 물어보면 그는 죽어도 실토하지 않을거야.]

도엽선은 말했다.

[더욱 위험한 일이 있지. 그가 사람고기 맛을 본 이후 앞으로 너와 그가 같은 이불에서 잔다면 한밤중에 갑자기 손가락이 아파오고 또 쩝쩝 우드득 씹는 소리가 들려올 때 자기 손을 살펴보면 이 소림이 너의 손을 먹고 있을 거야.]

도실선은 말했다.

[악 소저, 한 사람당 발가락까지 합쳐 모두 이십 개인데 이 소림이 오늘 몇가락 내일 몇가락, 아주 쉽게 너의 열손가락과 열개의 발가락을 금방 싹 먹어치울거야.]

도곡육선은 화산에서 영호충과 교분으 맺은 다음 그를 이미 좋은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여섯 형제는 비록 입을 가만히 놀려두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그들도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호충과 악영산의 깊은 관계를 그들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 임평지의 시비거리를 찾아 임평지와 악영산의 관계를 이간질하고 있었다.
악영산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외쳤다.

[무슨 엉터리 소리예요! 나는 듣고 싶지 않아요! 나는 듣고 싶지 않단 말이예요!]

도근선은 말했다.

[악 소저, 네가 만약 이 소림에게 시집을 가면 그것도 괜찮지만 그러나 이것만은 배워두라고. 이 공부는 당신 인생과 관계가 깊으니 이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론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을 것이오.]
악영산은 그가 침착하게 말하자 물었다.

[무슨 공부요? 그것이 그렇게 나와 관계가 있나요?]

도근선은 말했다.

[그 밤고양이 계무시는 '화영위정대법' 이라는 공부를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 너의 큰 소가락 발가락을 다 이 소림에게 먹힌다고해도 당신이 이 공부를 익힌다면 무서울 것이 없어. 그때는 그의 배를 뚫고 나오면 되고 원래되로 붙이면 원상복귀가 가능해.]
도곡육선들이 함부로 지껄이고 있는 동안 배는 닻을 올리고 황하 하류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는 서광이 막 비칠 때여서 아침안개가 흩어지지 않았고 강수면은 하얀 서리에 덮혀 끝없이 이어져 있어서 봐도 끝이 없었다. 그 강은 사람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곳이었다.
약 반시진 정도 지나니 태양은 점점 떠올랐으며 강물은 태양빛에 물들어 금빛 찬란했다. 갑자기 저 멀리서 한 척의 작은 배가 닻을 올리고 앞으로 달려왔다.
그때는 마침 동풍이 불고 있었는데 작은 배의 범포가 바람을 맞아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파란 범포에는 하나의 하얀 무뉘가 그려져 있었다.
배가 더욱 가까이 다가오자 범포에 그려진 무늬가 하나의 아름다운 다리임을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여자의 다리였다.
화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어째서 닻에 다리 한 쪽이 그려져 있지 정말 이상하다.]
도지선이 말했다.

[이건 아마 막북쌍웅의 배인 것 같은데? 아이쿠! 악 부인, 악 소저, 당신 여자들은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아마 저 배의 사람들은 여자다리만 먹는가 봐요!]

악영산은 무서워졌다.
작은 배는 순식간에 앞으로 다가왔다.
배 안에서는 은은한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래소리는 경쾌하고 부드러웠으나 가사는 이상해서 한 마디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음조가 끈쩍끈쩍한 것이 노래 같지는 않았고 어떻게 들으면 탄식 같았고 또 귀신을 쫓는 소리 같기도 했다.
노래소리가 또 바뀌자 남녀가 성교할 때 내는 희열이 넘치는 극히 음탕하고 요염하기 이를데 없는 음향이 들려왔다.
화산파의 여러 남녀제자들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악 부인은 욕을 하며 말했다.

[그건 무슨 요망하고 희한한 소린가!]

작은 배에서 갑자기 여자의 가는 음성이 들렸다.

[화산파 영호 공자께서 그 배에 계신지요?]

악 부인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충아, 대꾸하지 말아라.]

그 여자는 말했다.

[우리는 영호 공자의 모습을 좀 보고 싶어요. 그것도 안 되나요?]

그 소리는 아름답고 부드러웠으며 요염해 듣는 순간 넋을 잃을 정도였다.

작은 배의 선창에는 한 여인이 나오더니 뱃머리에 섰다. 몸에는 파란천에 백화가 수놓인 옷을 입었고 가슴에서 무릎가지 늘어진 꽃을 수놓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옷은 색채가 찬란하고 금빛이 영롱했다.
귀에는 커다란 황금 귀걸이를 했는데 크기가 술잔만 했다.
그 여인의 나이는 스물예닐곱 살 가량이었고 피부는 약간 놓고 두 눈은 컸으며 눈동자는 검었고 허리띠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발에는 아무 것도 신고 있지 않았다. 그 여자의 목소리는 비록 아리따웠지만 얼굴은 목소리에 비하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 여자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으며 그녀의 모양과 차림새를 보니 절대로 한족의 여자인 것 같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화산파 일행이 타고 있던 배는 물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데 금방이라도 그 작은 배와 부딪칠 것 같았다.
그 작은 배는 한번 빙돌아 뱃머리를 돌리더니 닻을 내리고 화산파가 타고 있던 큰 배와 나란히 물길을 따라 내려갔다.
악불군은 갑자기 어떤 일을 생각하고 물었다.

[아가씨, 아가씨는 운남오선교남교주(雲南五仙敎藍敎主)의 수하 입니까?]

그 여자는 킥 하고 웃더니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눈이 퍽 좋으시군요. 그러나 반밖에 맞추지 못했어요. 나는 운남오선교(雲南五仙敎)의 사람이예요. 하지만 남교주의 부하는 아니예요.]

악불군은 뱃머리에 서서 읍을 하며 말했다.

[저는 악불군이라고 합니다. 청컨대 아가씨의존함을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친히 배를 타고 오셨는데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으신지요?]

그 여자는 웃었다.

[묘가(苗家)의 여자는 당신들 같은 글쟁이의 말을 몰라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없는지요?]

악불군은 말했다.

[아가씨께 여쭙겠는데 당신의 성씨는 무엇입니까?]

그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벌써 나의 성을 모르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지 않소이까?]

그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나이도 많은 수염도 많이 자랐으니 자연히 나의 성을 알고 계실텐데 어찌 이렇게 능청을 떠시는 거지요?]

이 몇마디는 퍽 무례했다. 그러나 말을 하면서 시종 웃고 있었으며 얼굴 표정이 몹시 귀여워 아무런 적의를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악불군은 말했다.

[아가씨께선 농담을 퍽 잘 하시는군요.]

그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악 장문인, 당신의 성은 무엇인가요?]

악불군은 말했다.

[아가씨께선 저의 성을 알고 계시면서 왜 물으시오?]
악 부인은 그 여자의 말투가 경박하고 놀리고 있음을 알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상대하지 마세요.]

악불군은 왼손을 내밀어 자기 등 뒤로 갖다대며 흔들었다. 그것은 악 부인에게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도근선이 말했다.

[악 선생이 등 뒤에다 손짓을 하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음, 알았다. 악 부인이 상대하지 말라고 하자 악 선생은 그 여자가 아름답고 또 교태가 넘쳐흐르니까, 마누라 말을 안 듣고 그녀와 놀고 싶어 하는구나!]

그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감사하군요. 당신들은 나보고 아름답다고 하고 또 교태가 넘쳐 흐른다고 하시는데 우리 묘족(苗族)의 여자들이 한족(漢族)의 여자들보다 예쁘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는 교태가 넘친다는 말에 경박하고 쌍스럽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자 갑자기 얼굴빛이 호나하게 되며 기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악불군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의 성을 알고 있으면서 왜 또 물으시나요?]
도화선은 말했다.

[아마도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할거야.]

도간선은 말했다.

[사람들은 악 선생 보고 군자검이라고 칭하는데 알고보니 군자 아니군. 이미 그녀의 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보지? 말을 걸고 싶으니까 괜히 물어보고 싶었겠지?]

악불군은 도곡육선들의 말소리를 듣고 무척 남감했다. 이 여섯 사람의입을 막지 못하면 계속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그 입들을 통해 나올지 모른다. 여러 제자들이 듣는다면 악불군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고 그들과 맞설 수도 없고 해서 하는 수 없이 그 여자에게 공수를 하며 말했다.

[남교주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가셔서 화산파 악불군이 그 노인네에게 안부를 여쭙는다고 전해주시오.]

그 여자는 한 쌍의 둥그런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 눈동자를 굴리며 얼굴에 의아한 빛을 띄우며 말했다.

[당신은 왜 나를 노인네라고 부르시나요? 내가 벌써 그렇게 늙었나요?]

악불군은 깜짝 놀랐다.

[아가씨가...... 아가씨가...... 바로 오선교의...... 남교주......]

그는 오선교가 극히 음험하고 악독하기 이를데 없는 교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선(五仙)이라고 운운하는 것은 단지 아름답게 미화했을 뿐이고 강호의 사람들은 모두 등 뒤에서 오독교(五毒敎)라고 칭하고 있었다.
백여 년 전 이 파의 진정한 명칭은 바로 오독교였다. 교파를 창건한 교조(敎祖)와 그의 중요한 인물들은 전부 운귀천상(雲貴川湘) 일대의 묘인(苗人)들이었다. 나중에 몇명의 한족 사람들이 그 교파에 들어가 오독이라는 두 글자가 품위가 없는 것 같다고 하여 비로소 오선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던 것이다. 이 오선교는 장(?), 고(蠱), 독(毒)에 능하여 백약문(白藥門)과 함께 남쪽지방과 부쪽지방에 그 이름이 자자했다. 오선교의 사람 중에는 여인들이 많기 때문에 독의 사용과 용도는 백약문보다 못했지만 괴상하고 악독한 것은 일반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강호에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백약문 사람들이 독을 쓰면 비록 방비할 수 없고 손을 쓸 수는 없지만 중독이 된 다음 그 이치를 자세히 따져 보면 결국은 독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다 하지만, 오독교의 독에 중독되면 설상 오독교 사람들이 그 독을 해독하려고 해도 때때로 독을 쓴 사람 자신도 해독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그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바로 남봉황(藍鳳凰)이예요. 당신은 벌써 알고 있지 않았나요? 내가당신에게 말하건대 나는 오선교의 사람이예요. 하지만 남교주 수하에 있는 사람은 아니예요. 오선교 사람 가운데 이 남봉황을 제외하면 모두 남봉황의 부하들이예요.]

그리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도곡육선은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일제히 말했다.

[악 선생은 정말 멍청하군! 그녀가 그렇게 가르켜줬는데도 아직 무슨 뜻인지 풀이하지 못하나봐!]

악불군은 오선교의 교주가 성이 남씨라는 것만 알았을 뿐이고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에야 남봉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그녀가 몸을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것을 보니 정말 한 마리의 봉황새 같았다.
당시 한족의 여자들은 이름을 깊이 숨기고 있다가 사주단자가 오고 신랑집에서 문명(問名)의 예를 행하여야 비로소 이름을 알려주었었다. 무예를 하는 사람들은 비록 이런 예의범절에 구속되지 않았지만 절대로 여자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이 묘족의 여자는 이 강에서 자기이름을 거리낌 없이 말하면서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의 행동과 표정은 대범했으나 말투는 여전히 곱고 아리따웠다.
악불군은 공수하며 말했다.

[알고보니 남교주께서 몸소 왕림하셨군요. 이 악모가 실례를 범했읍니다. 남교주께서 친히 왕림하신데는 어떤 가르침이 있는지요?]

남봉황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데 당신께 무엇을 가르쳐 주겠어요? 당신이 나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거죠. 당신의 차림새를 보니 정말 글쟁이 같군요. 당신은 나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싶지요? 그렇지요? 당신네 한족의 남자들은 늘대이고 꿍꿍이 속이 많으니 나는 절대로 배우지 않을 것이예요.]

악불군은 생각했다.

(정말로 그녀가 멍청한 척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녀가 정말 가르침이라는 뜻을 모르고 있는지, 그녀의 표정을 보니 거짓으로 꾸미는 표정 같지는 않구나!)

그는 가르침이라는 말을 풀이하여 이렇게 물었다.

[남교주, 무슨 일로 오셨읍니까?]

남봉황은 웃으며 말했다.

[영호충은 당신의 사제인가요? 그렇지 않으면 제자인가요?]
악불군은 말했다.

[제가 길러낸 제자올시다.]

남봉황은 말했다.

[음, 나는 그를 좀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악불군은 말했다.

[우리애는 지금 병이 났소. 아직 정신이 들지 못했소이다. 이 강바닥에서 교주(敎主)를 배알하기가 불편하외다.]

남봉황은 둥드런 눈을 크게 뜨며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배알이라니요? 나는 그 사람보고 나를 배알하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그는 나의 수하도 아닌데 왜 그가 나를 배알하나요? 더우기 그 사람은 히히히......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좋은 친군데 그가 설령 나를 배알한대도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듣건대 그는 자기의 팔을 잘라 피를 뽑아 노두자의 딸에게 먹여 그 아가씨의 생명을 구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정이 깊고 의리가 돈독한 사람을 우리 묘족의 여자들은 제일 좋아한따빠니다. 그래서 나도 그를 한번 보고 싶어요.]

악불군은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건...... 이건......]

남봉황은 말했다.

[그의 상처가 깊은 것은 나도 알고 있어요. 또 팔을 그어 많은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에게 나오라고 하지 않고 내가 건너가 보겠어요.]

악불군은 급히 말했다.

[교주의 상처가 깊은 것은 나도 알고 있어요. 또 팔을 그어 많은 피를 흘렸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요. 그에게 나오라고 하지 않고 내가 건너가 보겠어요.]

악불군은 급히 말했다.

[교주의 큰 거동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남봉황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무엇이 큰 거동이고, 작은 거동이예요?]

그리고 가볍게 몸을 날려 화산파 사람들이 타고 있는 뱃머리로 올라왔다.
악불군은 그녀의 몸놀림이 가벼운 것을 보고 무공은 대단치 않다고 느꼈다. 그는 두 걸음 물러나서 허리를 굽혀 예를 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걱정이 앞섰다. 그는 일찌기 오선교의 사람들은 다루기가 어렵고 이런 사교(邪敎)의 사람들과 싸운다며 진정한 무공을 겨룰 기회가 없다느 사실을 상기하고 그녀가 배에 오르자 예의를 갖추고 맞이했던 것이다. 또 어제 저녁 백약문에 속한 두 사람의 말이 생각났다. 그들의 말로는 화산파를 뒤쫓는 것이 사람의 부탁을 받아서라고 했었다. 모든 상황으로 짐작할 때 오독교의 부탁을 받은 것 같았다. 오독교는 어떤 이유로 화산파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가? 오독교는 강호에서 커다란 방회(幇會)인데 교주가 침히 왕림했으니 이치로 따질 때 저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온몸에 천기백괴(千奇百怪)의 독물을 지닌 사람을 선창으로 들여 보낸다는 것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악불군은 말했다.

[충아, 남교주께서 너를 모고자 하신다. 빨리 나와서 뵙거라.]
그는 영호충을 뱃머리로 불러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호충은 피를 대량으로 흘렸기 때문에 힘을 회복하지 못했으므로 사부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단지 가볍게 녜 녜라고 대답했을 뿐 몸을 몇번 움직이다가는 일어날 수 없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남봉황이 말했다.

[듣기에 그는 상처가 크다고 했어요. 어찌 나올 수가 있단 말이예요? 강에는 바람도 세어 다시 감기에 걸린다면 안 되니 내가 들여가 봐야겠어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 큰 걸음으로 선창 입구로 향했다. 그녀가 몇걸음 나가니 악불군과의 거리가 사 척 정도 되었다. 악불군은 한줄기 짙은 꽃냄새르 맡았고 그 순간 몸이 기우뚱해진다고 느꼈다. 남봉황은 이미 선창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선창안에는 도곡육선들이 정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도실선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남봉황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이 바로 도곡육선인가요? 나는 오선교 교주이고 당신들은 도곡육선이니 모두들 선(仙)이군요. 모두 다 한 가족이지요.]
도근선은 말했다.

[그렇지 않소. 우리는 진짜 선이고 당신들은 가짜 선이요.]
도간선은 말했다.

[당신이 진짜 선이라 해도 당신은 오선이고 우리들은 육선이니 당신들보다 선이 하나 더 맣소.]

남봉황은 웃으며 말했다.

[선을 하나 많게 만드는 일은 아주 쉬운 노릇이예요.]
도엽선은 말했다.

[어떻게 선을 하나 추가시킬 수가 있단 말이오? 당신네 교를 칠선교라고 고치려고?]

남봉황은 말했다.

[우리들은 오로지 오선이예요. 절대 칠선이 될 수 없어요. 그러나 당신들의 도곡육선을 사선을 만든다면 우리가 당신들보다 선이 하나 더 많아지지 않겠어요?]

도화선은 화가 나서 말했다.

[도곡육선을 도곡사선으로 만든다고? 그러면 당신은 우리 두 사람을 죽이려고 그러시오?]

남봉황은 웃으며 말했다.

[죽여도 좋고 죽이지 않아도 돼요. 당신들은 영호충의 친구라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죽이지 않는게 좋겠어요. 그러나 당신들은 절대로 허풍을 떨지 마세요. 절대로 나의 오선교보다 선이 하나 더 많다는 소리는 마세요.]

도간선은 외쳤다.

[하지말래도 꼭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소?]

이 순간 도근 도간 도엽 도화 네 사람은 동시에 그녀의 손과 발을 잡았다. 막 공중으로 쳐들 때 갑자기 네 사람의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놓았다. 네 사람은 손바닥을 펴고 손바닥에 쥐어져 있는 물건을 보자 얼굴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악불군은 그런 광경을 보자 모골이 송연해졌고 등 뒤에 식은 땀이 흘렀다. 도근선 도간선의 손바닥에는 각기 한 마리의 녹색 지네가 쥐어져 있었고 도엽선 도화선의 손바닥에는 울긋불긋한 무늬가 수놓아진 큰 거미가 쥐어져 있었다. 네 마리의 독충의 몸에는 모두 긴 털이 나 있었고 사람이 그것을 보면 금방이라도 구토를 일으킬 것 같았다.
이 네 마리의 독충은 꿈틀꿈틀 움직일 뿐 아직 도곡사선을 물지는 않았다. 이미 물었다면 일은 거기서 끝났을 것이고 오히려 사람들이 공포에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곡사선들은 한치도 움직이지 못했다.
남봉황은 손을 한번 휘젓더니 네 마리의 독충을 수거해갔는데 독충들은순식간에 보이지 않았으며 그녀가 벌레들을 몸 어디에 놓았는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도곡육선을 쳐다보지도 않고 앞으로 나갔다. 도곡육선들은 겁에 질려 혼비백산하게 되고 다시는 감히 입을 놀리려 하지 않았다.
악 부인과 여러 제자들은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남봉황은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한번씩 둘러본 다음 영호충이 누워 있는 침대로 걸어가서 낮은 소리로 불렀다.

[영호 공자, 영호 공자!]

그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은 귀에 그 말소리가 들리자 온몸이 야들야들해지고 마치 그녀가 자기들을 부르는 것 같아 금방이라도 대답을 하고 싶어졌다. 그녀가 이 두 마디를 부르자 모든 남자들은 얼굴에 빨갛게 홍조를 띠면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영호충은 천천히 눈을 뜨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누구십니까?]

남봉황은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신의 좋은 친구예요. 그러니 당신은 친구이지요.]
영호충은 음 하는 소리를 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남봉황은 말했다.

[영호 공자, 당신은 피를 많이 흘렸지만 염려하지 마세요. 절대로 죽지 않을 거예요.]

영호충은 정신이 혼미해져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남봉황은 손을 내밀어 영호충의 이부자락 속에 넣어, 영호충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을 끄집어 내더니 그의 맥박을 짚어 보았다. 그녀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선창 밖을 향해 휙 하고 휘파람을 불더니 큰 소리로 몇마디 외쳤다.
선창에 있던 사람들은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얼마 있지 않아 네 명의 묘녀(苗女)가 걸어 들어왔다.
모두 열여덟이나 열아홉 정도 되었으며 남색바탕에 꽃이 수놓아진 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꽃을 수놓은 긴 허리띠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모두들 사방 팔촌정도의 대나무로 짠 상자를 들고 있었다.
악불군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오선교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절대로 좋은 물건이 아닐 것이다. 남봉황의 경우를 봐도 몸에는 이미 지네나 독거미 같은 것을 적지 않게 숨기고 있는데 이 네 명의 묘족의 소녀가 상자를 가지고 배 안으로 들어왔으니 어쩌면 이 배가 뒤집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방이 적대감을 나타내지 않았으므로 손을 써서 막을 수도 없었다.
네 명의 묘녀들은 남봉황 가까이 가더니 낮은 소리로 몇마디 했다.
남봉황은 고개를 끄덕이자 네 명의 묘녀들은 상자를 열었다.
여러 사람은 호기심이 생겼다. 상자 안에 무슨 이상한 물건이 담겨져 있는지 보고 싶었다.
오로지 악불군만이 조금 전 도곡사선 손바닥에 털이 난 독충들을 봤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이 상자의 물건들을 앞으로 영원히 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네 명의 소녀들이 각자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하얀 팔을 드러냈다. 또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더니 무릎 위가지 걷어올렸다.
화산파의 여러 남제자들은 그 광경을 보자 눈이 휘둥그래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악불군은 아뿔싸 하고 속으로 외쳤다.

(아이쿠, 큰일났구나! 이 사악한 여자들이 사술(邪術)을 펼쳐 색으로 우리 문하의 제자들을 꼬이는구나! 이 남봉황의 목소리도 이렇게 음탕한데 다시 요사스런 수법을 펼친다면 여러 제자들은 틀림없이 사절이 부족해 항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검자루에 손을 갖다 댔다. 그는 오선교의 교도들이 만약 옷을 벗고 알몸을 드러내어 사악한 술법을 쓴다면 별 수 없이 검으로 상대하리라 생각했다.
네 명의 묘녀들은 옷소매를 걷어올린 다음에 남봉황도 천천히 바지가랭이를 걷어 올렸다.

악불군은 연신 여러 제자들에게 눈총을 주어 선창 밖으로 나갈 것을 명했다. 그렇게 하여 그 사술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오로지 노덕약과 시대자 두 명만이 물러나고 나머지 사람은 혹은 멍청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혹은 몇발자욱 물러서다가 다시 돌아오곤했다.
악불군은 단전에 기를 모아 자하신공을 발했다. 얼굴에 금새 자색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생각했다.

(오독교가 이 남쪽에서 이백 년 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의 악명은 하루 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닐 것이고 틀림없이 악독한 사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 지금은 교주가 친히 사악한 사법을 펼치려고 하니 더욱 조심해야겠다. 만약 신공으로 심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약간의 소홀함 때문에 그녀의 술수에 말려들 것이다.)
눈 앞의 묘녀들이 알몸을 드러내는데에 홀려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고그가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지만, 염려되는 것은 심신이 거기에 홀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추태를 부린다면 화산파와 군자검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고 수만 년이 지나도 다시는 명예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 명의 묘녀들은 각자 자기가 가지고 온 상자에서 어떤 물건을 꺼냈다.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독충이었다.
네 명의 묘녀들은 독충을 자기의 팔뚝과 다리에 올려 놓았다.
독충은 팔뚝과 다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악불군은 눈을부라리고 쳐다보니 그것은 독충이 아니라 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였다. 단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거머리보다 두배 가량이 컸다.
네 명의 묘녀들은 한 마리의 거머리를 꺼내고 또 한 마리를 꺼냈다. 남봉황도 묘녀들의 상자에서 한 마리씩 거머리를 꺼내더니 자기의 팔과 다리에 올려놓았다. 얼마 후 다섯 사람의 팔과 다리에는 거머리들이 가득찼다. 그 거머리의 숫자는 적게 잡아도 이백여 마리는 될 것 같았다.
여러 사람은 그 광경을 보자 멍청해지고 말았다.
다섯 사람이 무엇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악 부인은 본래 후창에 있었으나 중창의 여러 사람들이 아! 어! 아이쿠! 하는 괴이한 소리를 지르자 자기도 참지 못하고 가볍게 칸막이를 밀치고 다섯 사람의 이런 상황을 보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악 하는 비명소리를 냈다.
남봉황은 악 부인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절대로 당신을 물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이...... 당신이 악 선생의 마누라예요? 듣건대 당신의 검법이 뛰어나다고 들었지요. 그런가요?]

악 부인은 억지로 웃으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자기에게 악 선생의 마누라이냐고 묻는 것은 그 말투가 너무 저속했고 자기에게 검법이 뛰어나냐고 물어보지 말투는, 만약 다른 사람이 물어보았다면 설령 상대방이 악의에 차 있다고 해도 응당 몇마디 정도는 겸손했을 것이다.
이 남봉황은 틀림없이 한인의 습성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만약 자기가 검법이 뛰어나다고 한다면 자기를 너무 추켜세우는 것 같고 만약에 검법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하면 어쩌면 그녀가 자기를 얕보는 것이니 대답을 하지 않는게 제일 상책이라고 여겼다. 남봉황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용히 서 있었다.
악불군은 단단히 방비를 하고 이 다섯 명의 묘녀가 소능마 스기 만을 기다렸다. 만약에 손을 쓴다면 먼저 남봉황을 제압하리라 생각했다.
선창 안에는 그 누구도 입을 열려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화산파의 여러 남제자들은 무거운 숨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한참 후 다섯 명의 묘녀의 팔과 다리에 붙어 있던 거머리의 몸이 점점 부풀더니 은은하게 붉은 빛을 띄우게 되었다.
악불군은 이 거머리들이 일단 사람이나 짐승의 피부에 달라붙기만 하면 주둥이가 몸에 딱 다라붙어 피를 빨아 난 후에 배가 부르지 않으면 절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머리들이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빨면 그 감각이 크지 않고 느낀다 해도 약간 가려울 뿐이어서 농부들이 밭갈이를 할 때 때때로 거머리들에게 다리를 물려 적지 않은 피를 빼앗겨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는 암암리에 생각했다.

(이 요녀들이 거머리로 하여금 피를 빨게 하는것은 그 용의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군. 대개의 오선교들은 어떤 사법을 행할 때 틀림없이 자기의 선혈을 쓰고 있을 것이다. 보아하니 이 거머리들이 피를 배불리 빨아먹은 다음에야 이 요녀들은 술법을 행하려고 하는 모양이구나!)

남봉황은 가볍게 영호충의 몸에 덮혀 있던 이불을 제끼고는 자기 팔뚝에서 한마리의 피를 빨아 통통해진 거머리를 떼어 영호충의 혈도에 갖다 놓았다.
악 부인은 그녀가 영호충을 어떻게 할까봐 염려되어 급히 말했다.

[보세요, 무엇을 하는거요!]

그리고 검을 빼들고 몸을 날렸다.
악불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잠깐만 기다리시오.]

악 부인은 우뚝 제자리에 멈추었다. 눈은남봉황과 영호충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영호충의 목에 달라붙어 있던 거머리들은 그의 혈관을 물고 또 다시 피를 빨고 있었다.
남봉황은 품 속에서 자기병을 꺼내더니 병뚜껑을 열고 오른쪽 손가락의 뾰족한 손톱으로 병에 있던 백색분말가루를 꺼내어 물 거머리 몸에 뿌렸다. 네 명의 묘녀들은 영호충의 몸을 풀어헤치고 그의 옷소매와 바지가랭이를 걷어 올리더니 자기 몸에 붙어 있던 거머리들을 한 마리 한 마리 떼어내더니 그의 가슴, 배, 팔, 다리 등의 여러 곳의 혈관에 올려 놓았다.
순식간에 이백여 마리의 거머리들이 영호충의 몸에 달라붙었다.
남봉황은 끊임없이 약가루를 꺼내어 거머리 잔등에 적당량의 흰 가루를 뿌렸다. 이상하게도 이 거머리들은 다섯 명의 묘녀 몸에 붙어 있을 때는 피를 발아 점점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때는 반대로 점점 몸이 작아졌다.
악불군은 그때서야 뭔가 깨닫고 길게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알고보니 그녀들이 행하는 행동은 전혈지법(轉血之法)이구나! 거머리들을 매개체로 삼아 그녀들 몸에 있던 깨끗한 피를 충아의 혈관에 수혈을 하는구나! 이 하얀 가루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어떻게 해서 거머리들이 자기의 피를 토해내는가? 정말 신기하다.)

그는 이런 점을 깨닫고 칼자루를 쥐었던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
악 부인도 칼을 칼집에 집어넣고 본래 바짝 긴장되어 있던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선창에는 여전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조금전의 일촉즉발의 상황과도 너무도 달랐다. 더욱 이상한 것은 도곡육선조차도 놀라고 경악한 듯 쳐다보며 입을 벌린 채 다물고 못하는 것이었다. 여섯개의 주둥이를 딱 벌리고 있었으므로 자연히 말장난을 할수 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 툭 하는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한 마리의 피를 다 토한 거머리가 뱃바닥에 떨어지더니 꿈특꿈틀 몇번 움직이고는 죽어버렸다.
한 명의 묘녀가 그것을 집어 강물에 던졌다. 거머리들은 한마리씩 물 속으로 내동댕이쳐져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흐르자 거머리들은 영호추의 몸에서 다 떨어졌다.
노랗던 영호충의 얼굴에 점점 혈색이 나타났다. 그 이백여 마리의 거머리가 내뱉어 영호충의 몸 속으로 드러간 혈액은 합치면 한 그릇은 넘을 것 같았다.
비록 그가 소실한 피를 충당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위험에서 벗어난 듯했다.
악불군과 부인은 서로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 묘가의 여자는 한 교파의 지존(至尊)으로서 정말 자기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기의 피로 충아의 피를 보충시켰구나! 그녀와 충아와는 일찌기 아는 사이가 아닐 것이고 또 절대로 그에게 정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그는 자칭 그녀의 좋은 친구라고 했는데 충아는 언제 또 그와 같은 거물급 친구를 두었을까?)
남봉황은 영호충의 얼굴색이 호전되는 것을 보자 다시 그의 맥박을 재 보았다. 맥박이 강하게 뛰는 것을 보자 심히 기쁜듯 부드럽게 물었다.

[영호 공자, 좀 어떠신가요?]

영호충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으나 이 여자가 자기를 치료해 준 것은 알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전...... 저는 많이 나아졌읍니다.]
남봉황은 말했다.

[저 좀 보세요. 제가 늙었는지, 제가 많이 늙었나요?]
영호충은 말했다.

[누가 당신보고 늙었다고 했읍니까? 당신은 늙지 않았읍니다.
만약 당신이 싫어하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동생이라 부르고 깊군요.]

남봉황은 크게 기뻐했다. 얼굴에 꽃봉우리가 금방 피어난듯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참 좋아요! 어쩐지...... 어쩐지...... 천하의 모든 남자를 눈에 두고 있지 않는 여자조차도 당신을 보면 미치지 않고는 배갤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그렇기 때문에......]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만약 나를 좋게 본다면 왜 빨리 영호 오빠라 부르지 않습니까?]

남봉황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더니 외쳤다.

[영호 오빠!]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이쁜 동생, 착한 누이지?]

그의 성격은 호탕하고 작은 예절에 구속받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군자라고 자칭하는 악불군과는 크게 달랐다.
그는 정신이 약간 들자 남봉황이라는 사람은 그녀보고 젊다는 말을 하면 좋아함을 알고는 그녀가 그에게 단도 직입적으로 자기가 늙었냐고 묻자 비록 그녀의 나이가 그보다 많았으나 아무 거리낌 없이 동생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는 그녀가 있는 힘을 다하여 자기를 구해 주었으니 응당 몇마디 칭찬을 해주어 보답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과연 남봉황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악불군과악 부인은 그 광경을 보자 참지 못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충아 이 놈은 허황하고 싱겁기 짝이 없구나! 정말 구제불능이다. 평일지의 말에 의하면 그는 백일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으니 직바은 백일도 남지 않았으니 한쪽 발은 이미 관에 들어가 있는거나 마찬가진데도 정신이 들자마자 이런 사악하고 음탕한 여자와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구나!)

남봉황은 웃으며 말했다.

[오빠, 무엇을 잡수시고 싶으세요? 내가 무엇을 갖다드릴까?]
영호충은 말했다.

[먹을 것은 별로 생각이 없고 술을 좀 마시고 싶을 뿐이오.]
남봉황은 말했다.

[아, 그건 쉬운 일이예요. 배에는 우리가 빚은 오보화밀주(五寶花密酒)가 있는데 한번 마셔보세요.]

그녀는 알 수 없는 묘어(苗語)로 뭐라고 지껄였다.
두 명의 여자가 명을 받들고 나갔다.
그리고 여덟 개의 작은 병의 술을 가져오더니 그 중 한 병의 술을 그릇에 따라 부었다. 술이 그릇에 따라지자 그 향기가 배 안에 진동했다.
영호충은 말했다.

[동생, 당신의 이 술은 꽃향기가 너무 진하오. 그 향기가 술냄새를 다 막으니 그것은 여자들만 마시는 술인 것 같습니다.]
남봉황은 웃으며 말했다.

[꽃냄새가 독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독사의 비린내가 나니까요.]

영호충은 이상해서 말했다.

[술 속에서 독사의 비린내가 난다고?]

남봉황은 말했다.

[녜, 나의 이 술은 오보화밀주라 부르는데 그 속에는 오보(五寶)가 들어 있지요.]

영호충은 물었다.

[무엇을 오보라 부릅니까?]

남봉황은 말했다.

[오보란 우리 교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보배예요. 한 번 들어 보세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 두 개의 빈 그릇을 가져다가 술병을 거꾸로 들었다.
병에서 술이 나오면서 툭툭 몇번 가벼운 소리가 나더니 몇개의 작은 물체가 술그릇에서 떨어졌다.
여러 화산파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술그릇을 영호충 앞에 놓았다.
영호충이 술을 들여다 보니 술색이 아주 맑아 마치 하얀 샘물과 같은데 술 속에는 다섯 마리의 독충들이 가라 앉아 있었다.
하나의 청사(靑蛇)이고 하나는 지네, 또 하나는 거미, 또 하나는 전갈, 또 한 마리는 작은 두꺼비였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물었다.

[술 속에 왜...... 왜 이런 독충을 집어넣는 거요?]

남봉황은 '흥' 하더니 말했다.

[이것이 바로 오보예요. 절대로 독충...... 독충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영호 오빠, 마실 수 있겠어요?]

영호충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이...... 오보는 겁이 좀 나는데......]

남봉황은 술그릇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요족의 규칙에는 만약 친구에게 술과 고기를 청해서 친구가 마시지 않고 먹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친구가 아니예요.]
영호충은 술그릇을 받아들고 한 그릇의 수릉 싹 비웠다.
그 다섯 마리의 독충까지 단숨에 삼킨 것이다. 그의 담이 비록 컸지만 그 맛을 음미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남봉황은 크게 기뻐하며 손을 내밀어 그의 이마를 갑싸안더니 그의 이마에 몇번의 입맞춤 세례를 퍼부었다.
그녀의 입술에 발라져 있던 연지는 영호충의 이마에 두 개의 빨간 입술자국을 내었다.

[이제야 비로소 제 오바가 된 것이예요!]

영호충은 웃었다.
옆눈으로 사부님의 엄숙한 표정이 들어왔다. 그는 깜짝 놀라 생각했다.

(큰일났구나! 아차! 큰일났어! 내가 감히 사부님과 사모님 면전에서 이런 짓을 했구나! 정말로 사부님께 욕을 한번 먹겠구나! 소사매는 나를 더욱 업신여기지는 않을까?)

남봉황은 또 한 병의 술병에 있던 술을 그릇에 따랐다. 술 속에 다섯 마리의 독충이 담겨져 있는 그릇을 가지고 악불군 면전에 갖다대고 웃으며 말했다.

[악 선생님, 제가 당신께 술 한 잔을 권하지요.]

악빠루군은 술에 담겨져 있는 독충들을 보자 구토가 일었다.
또 강렬한 꽃향기 중에 말로써 형용하기 지독한 비린내가 섞여 코 속으로 들어오자 참을 수 없어 금방이라도 코할 것 같았다.
그는 왼손을 내밀어 남봉황이 들고 있는 술그릇을 가만히 내밀었다.
뜻밖에도 남봉황은 손을 거두지 않고 자기의 손에 그녀의 손잔등을 갖다대고는 손을 다시 악불군을 향해 밀었다.
남봉황은 웃으며 말했다.

[어째서 사부가 제자들보다 담이 적나요? 화산파 여러 형제들이여, 어떤 사람이 이 술을 마시겠어요? 마시면 몸에 좋은 거예요.]
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봉황이 한 손으로 술잔을 들고 휘둘러 봤으나 아무도 술을 입에 대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남봉황은 한숨을쉬며 말했다.

[화산파는 영호충을 제외하고는 사내대장부가 한 명도 없군요!]
갑자기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마시겠소.]

그는 임평지였다. 그느 몇발작 아피로 나오더니 소능 내밀어 그 술잔을 받으려고 했다.
남봉황은 양쪽 미간을 풀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악영산은 외쳤다.

[소림, 당신이 그 더러운 물건을 먹는다면 독에 중독되어 죽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는 절대로 나를 쳐다볼 생각은 마세요.]
남봉황은 술그릇을 임평지 앞에 갖다대고 웃으며 말했다.

[자, 싹 마셔버리세요.]

임평지는 더듬거렸다.

[난...... 난 마시지 않겠소?]

이 말이 끝나자 남봉황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임평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내가 이 술을 안 마시는 것은 그건...... 그건 죽음이 무서워서가 아니오.]

남봉황은 웃으며 말했다.

[나도 물론 알고 있어요. 당신은 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당신을 상대하지 않을까봐 그게 염려가 되는 것이지요? 당신은 졸장부가 아니예요. 당신은 정이 많은 사내일 뿐이예요. 호호호...... 호호호......]

그리고 영호충 앞에 가서 말했다.

[오빠, 다음에 만나요.]

그리고 술그릇을 탁자에 놓더니 손짓을 하자 네 명의 묘녀들은 나머지 여섯 병의 술을 들고 그녀를 따라 선창을 나가 작은 배로 돌아갔다.
달콤한 노랫소리가 수면에 깔리며 그 배는 동쪽을 향해 나갔다.
그 배는 이윽고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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