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3-5

3학년2반 | 2022.03.13 07:05:08 댓글: 0 조회: 610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5533

악불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술병과 술잔들을 모두 강물에 던져 버려라!]

임평지는 녜 하고 대답하고 탁자 가까이 다가갔다.
손가락이 술병에 닿을 때 이상한 비린내가 코끝에 진동하더니 몸이 기우뚱하며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급히 손을 내밀어 탁자를 잡았다.
악불군은 뭔가를 깨닫고 외쳤다.

[술병에는 독이 있다!]

그리고 옷소매를 휘둘러 탁자 위에 있던 술병과 술잔을 강물 속으로 날려보냈다.
그 순간 가슴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났다. 억지로 몸을 가누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임평지가 토하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왁' 저쪽에서 '왁' 하는 소리를 내더니 모든 사람이 배를 움켜잡고 구토를 했다.
도곡육선과 배의 삿대를 쥐고 있던 뱃사공들까지도 토해냈다.
악불군은 억지로 한참을 참았으나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다 토해내고 말았다.
모두가 한참을 토했다. 비록 뱃속에 들어 있던 음식들을 깨끗이 토해내 더 토해낼 것이 없어도 구토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쓴물이 토해져 나왔다. 나중에 쓴물조차 없어지자 여전히 가렵고 속이 메시꺼웠다. 오히려 뱃속에 무엇인가 있어 토해내는 것이 헛구역질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심한 구토였다.
배 안에는 수십 명이 있었으나 영호충만이 토하지 않았다.
도실선은 말했다.

[영호충, 그 요녀가 당신을 특별히 구해준 것 같군! 당신에겐 해독약을 먹였으니!]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해독약을 먹지 않았소. 그럼 그 독주가 바로 해독약인가요?]

도근선은 말했다.

[누가 아니랬어? 그요녀가 당신이 멋지게 생긴 것을 보더니 당신을 좋아한 모양이야.]

도지선은 말했다.

[내 생각에는 그가 멋지게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가 그 요녀에게 젊고 아름답다고 칭찬을 해줘서 그런 것 같아.]
도화선은 말했다.

[그가 토하지 않은 것은 죽음을 불사하고 독주와 다섯 마리의 독충을 먹었기 때문이오.]

도엽선이 말했다.

[그가 비록 토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뱃속에는 다섯 마리의 독충이 들어갔으니 우리보다 중독이 심할지도 모르지.]

도간선이 말했다.

[아이쿠! 큰일났네! 큰일났어! 영호충이 그 독주를마실 때 우리가 막지 못했으니 만약 그것 때문에 죽는다면 평일지가 우리에게 따지려고들텐데 그럼 어떻게 하면 좋지?]

도근선이 말했다.

[평일지가 말했잖아? 영호충은 금방 죽는다고! 며칠 일찍 죽을 수도 있는 거야.]

도화선은 말햇다.

[영호충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큰일났단 말야!]
도실선이 말했다.

[우리도 괜찮지요. 우리가 멀리 사라지면 키가 작고 다리가 짧은 평일지가 우리를 어떻게 쫓아 오겠읍니까?]

도곡육선은 계속 구토를 하면서도 잠시도 주둥이를 쉬게 하지는 않았다.
악불군은 뱃사공들조차 계속 토해내고 큰 배가 강 한복판에서 서쪽을 기울고 동쪽으로 기우뚱하며 위험한 것을 보자 즉시 몸을 배 뒷편으로 날려 배의 방향키를 잡고 남쪽 언덕에 배를 대었다.
그의 내공은 심후해서 키를 몇번 돌리자 뱃속의 구토기가 점점 가라앉았다.
배가 언덕에 가가워지자 악불군은 몸을 날려 뱃머리로 가서 쇠로 만든 닻을 들어 언덕에 던졌다.
이 쇠로 만든 닻은 이백 근 정도가 나가 두 명의 뱃군들이 들어야만 되었다.
뱃군들은 악불군 같이 연약한 서생의 몸에서큰 쇠닻을 한 손에 들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던지자 수십장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가 배를 움켜잡고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은 다투어 언덕에 올라 물가에 꿇어 앉아 강물을 마셔대고 또 토해내고 이렇게 몇번 반복하니 비로소 구토증이 멈추었다.
이 강 언덕은 외딴 곳이었다. 그러나 멀리 동쪽 수리 밖에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악불군은 말했다.

[배 안의 독기가 아직 깨끗이 씻기지 않았으니 배를 더 이상 탈 수가 없구나. 우리는 먼저 마을에 들어가 논의하기로 하자.]
도간선은 영호충을 메고 도지선은 도실선을 안았다. 여러 사람은 일제히 그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읍에 도착하자 도간선과 도지선은 먼저 식당에 들어서더니 영호충과 도실선을 내려놓고 외쳤다.

[술과 요리를 가져오고 밥을 가져오너라!]

영호충이 곁눈질을 해보니 식당 가운데 한 명의 키 작은 노인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
바로 청성파의 장문인 여창해였다.
그는 깜짝 놀랐다.
이 청성파의 장문인은 포위당해 있었다. 그는 작은 탁자에 앉아 있었는데 탁자에는 술주전자와 젓가락이 놓여져 있도 세 접시의 요리와 한 자루의 장검이 놓여져 있었다.
그 작은 탁자를 포위하고 있는 것은 일곱 개의 큰 의자인데 의자마다 한 사람식 앉아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는데 얼굴은 심히 흉악해 보였고 각기 의자 위에 병기를 올려놓고 있었다.
일곱 사람은 한 마디도 없이 여창해를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여창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술을 마시고 있었다.
도근선은 말했다.

[이 키 작은 도인은 마음속으론 무서워하고 있군!]

도지선은 말했다.

[물론 무서워하고 있겠지. 일곱 명이 포위하고 있는데 쬐끄만 녀석이 이길 엄두가 나겠어?]

도간선은 말했다.

[그가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왼손에만 술잔을 들고 오른손엔 들지 않았을 까닭이 없지. 그것은 오른손으론 검을 쓰려고 하는 속셈이지.]

여창해는 '흥' 하더니 술잔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겼다.
도화선은 말했다.

[그가 둘째형님의 말을 알아들었어! 그러나 그는 둘째형님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걸? 그것이 바로 무서워하고 있다는 증거란 말이야! 그는 절대로 둘째형님을 무서워하고 있는게 아니고 단지 정신이 분산될까봐 그러는거지. 일곱 사람의 적이 동시에 공격해 들어온다면 그는 금방 여덟 조각으로 쪼개지겠구나!]

도엽선은 낄낄 웃더니 말했다.

[이 작은 도인은 요렇게 작은데 여덟 조각이 나면 더 작아질게 아닌가?]

영호충은 여창해에게 큰 원한을 갖고 있지만 강적에게 포위당하고 있는 이 기회를 틈타 그를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여섯분의 도형, 이 도장이 청성파의 장문인이십니다.]
도근선은 말했다.

[청성파의 장문이면 어때? 자네의 친구인가?]

영호충은 말했다.

[제가 어찌 감히...... 절대로 내 친구가 아니오.]

도간선은 말했다.

[자네의 친구가 아니라면 잘 되었군! 우리는 재미있는 구경을 하게 생겼어.]

도화선은 탁자를 툭툭 치며 외쳤다.

[빨리 술을 가져오너라! 술을 마시면서 이 작은 도인이 아홉 조각이 나는 광경을 보며 술맛을 돋우어야겠다.]

도엽선은 말했다.

[어째서 아홉 조각이오?]

도화선은 말했다.

[봐라. 저 두타(頭陀)는 두 자루의 호두만도(虎頭彎刀)를 사용하고 있다. 저 사람 혼자 한 조각을 더 낼 것이야!]

도엽선은 말했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 어떤 사람은 낭아추(狼牙錘)를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금괴장(金拐杖)을 휘두르는데 그들이 어떤 초식을 쓸지 아직 모르거든!]

영호충은 말했다.

[모두들 농담하지 마시오. 우리가 도와주지 못할 바에는 청성 장문인 여관주의 심기를 분산시키지 맙시다.]

도곡육선은 더 말하지 않고 싱글벙글 웃으며 여창해를 보고 있었다. 영호충은 그를 에워싸고 있는 일곱 사람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한 명의 두타는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고 머리에 빛나는 구리띠를 메고 있었고, 몸 옆에는 한 쌍의 낚시바늘처럼 구부러진 호두계도(虎頭戒刀)가 놓여져 있었다.
그 사람 옆에는 오십 세 정도 돼 보이는 부인이 있었는데 머리칼이 하얗고 얼굴에 우울한 빛을 띄우고 있었다. 몸 옆에는 두척 길이의 단도(短刀)가 놓여져 있었다.
그 노파 옆에는 중과 한 명의 도인이 앉아 있었다.
중은 몸에 피빛처럼 붉은 승복을 입고 있었으며 몸 옆에는 한 개의 바릿대와 한 개의 징같이 생긴 물건을 놓고 있었다. 이 두개는 강철로 주조한 것 같았으며 바릿대의 끝은 뾰족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무서운 무기일 것 같았다.
도인의 몸은 거대했고 긴 의자 위에 한 개의 낭아추를 올려 놓고 있었는데 언뜻 봐도 그 무게가 가볍지 않은 것 같았다. 도인 오른쪽의 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사람은 중년의 거지였다. 목과 어깨에는 두 마리의 파란뱀이 감겨져 있었는데 그 뱀 대가리는 삼각형으로 생겼고 계속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인데 남자는 왼쪽눈이 멀었고 여자는 오른눈이 없었다.
두 사람의 옆에는 각기 한 개의 지팡이가 놓여져 있었는데 지팡이는 황금빛이었고 길고 굵었다.
이 한 남자와 한 여자는 모두 사십여 세 정도로 그 사람들의 상황을 보니 강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몰락한 남녀였다. 이런 사람들이 귀중한 지팡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괴이하게 느껴졌다.
그 두타는 흉악한 눈빛을 하더니 두 손을 천천히 움직여 한 쌍의 계도의 손자루를 꽉 쥐었다.
그 거지는 목에서 한 마리의 뱀을 집어 팔뚝에 감아 놓았다. 뱀의 머리는 여창해를 겨누고 있었다.
그 화상은 강철의 바릿대를 집었고 그 도인은 낭아추를 들었으며 그 중년부인 또한 단조를 손에 쥐었다.
모두 동시에 일격을 가하려는 모양이었다.
여창해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많은 수에 의지해 이기는 수법은 원래 사악하고 무도한 자들의 습관이지. 그렇다고 이 여창해가 무서워할까보냐?]

그 한 눈이 없는 남자가 말했다.

[여가놈아! 우리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다!]

한쪽 눈이 없는 여자가 말했다.

[맞아요! 당신은 벽사검보를 점잖게 내놓기만 하면 돼요. 그러면 우리는 아주 공손히 당신을 놓아주겠어요.]

악불군과 영호충, 임평지, 악영산 등은 그녀가 갑작스럽게 벽사검보에 대해 말하자 모두 흠칫 놀랐다.
이 일곱 사람이 여창해를 에워싸고 그에게 벽사검보를 요구할 줄은 생가지도 못했던 것이다.
네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정말 그 벽사검보가 여창해의 수중에 떨어졌는가?)

그 중년부인은 냉랭히 말했다.

[이 땅달보와 더 이야기해 무얼 하겠어요. 먼저 그를 죽인 후 그의 몸을 뒤집시다.]

한쪽 눈이 없는 여자가 말했다.

[어쩌면 그건 은밀한 곳에 숨겼는지도 몰라요.그를 죽인다면 찾을 수 없을 테니 큰일이 아닌가요?]

그 중년부인은 입을 삐죽이더니 말했다.

[찾을 수 없으면 그만이지. 그게 무슨 큰일이요?]

그녀의 말소리는 분명히 전달되지 않았다. 입에서 바람이 새고 있기 때문이었다. 알고보니 이빨이 태반이 빠지고 없었다.
한쪽 눈이 없는 여자가 말했다.

[우리가 점잖게 말할 때 내 놓으시오. 그 검보는 당신 것이 아니지 않소? 그리고 당신이 수중에서 많은 날이 지났으니 아마 다 외우고 있을 것이오. 끝끝내 가지고 있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오!]

여창해는 한 마디도 않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바로 이때, 문 밖에서 껄껄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한 명의 눈웃음을 치는 사람이 들어왔다.
이 사람은 비단장포를 입고 있었으며 머리가 반 정도는 대머리이고 검은 구레나룻이 나 있었으며 약간 뚱뚱하고 얼굴은 빨간 빛이었다.
매우 자애스럽고 온화해 보였다. 왼 손에 한 개의 비취비연호(翡翠鼻烟壺 : 담뱃대)를 들고 있었고 오른 손에는 한 자루의 작은 부채를 쥐고 있었다.
옷모양이 무척 화려하여 마치 돈 많은 부자 같았다.
그는 주점을 들어선 후 여러 사람을 보자 깜짝 놀라며 웃음기를 거두었다.
그러나 즉시 껄껄 웃더니 공수하며 말했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오. 뜻밖에 당세의 영웅호걸들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소이다.]

이 사람은 여창해를 향해 말했다.

[무슨 바람이 청성파의 여관주를 이곳 하남까지 몰고 왔을까? 오랫동안 청성파의 송풍검법(松風劍法)이 무림에서 일절이라 들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안목을 높일 수 있게 됐구료.]

여창해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한쪽 눈이 없는 남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따.

[오랫동안 동백쌍기(桐柏雙奇)가 강호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요 몇년 동안 돈을 많이 벌으셨겠지요?]

한쪽 눈이 없는 남자는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어찌 당신보다 돈을 많이 벌었겠소?]

그 사람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저는 빈껍데기지요. 오른손에서 왔다가 왼손으로 가니, 이 몸의 별명과 같이 빈겁데기에 불과하다오.]

도지선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의 외호는 무엇이라 부르오?]

그 사람은 도지선을 쳐다보았다.
도곡육선들의 모양은 형용할 수 없이 괴상했다. 그는 여섯 사람의 내력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히히 웃으며 말했다.

[제게는 조금 듣기 거북한 별명이 있는데 그것은 활불유수(滑不留手)라고 부릅니다. 모두 말하기를 이 몸은 친구 사귀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이 몸은 천금도 아깝지 않다하고 절대로 인색하지 않으며 비록 돈은 많이 벌지만 금과 은이 이 손에 남아 있지 못하다오.]

한쪽 눈이 없는 남자가 말했다.

[또 다른 별명이 있지요.]

유신(游迅)은 웃으며 말했다.

[뭐라고 부릅니까?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갑자기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유침니추 활불유수(油浸泥鰍 滑不留手)이지!]

그 말은 이빨이 반이나 빠진 부인의 목소리였다.
도화선은 크게 외쳤다.

[굉장하군! 굉장해! 미꾸라지는 미끄럽기 짝이 없는데, 다시 기름에 담근다면 그 누가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겠나?]

유신은 웃으며 말했다.

[이 몸은 경공에 대해 좀 아는 것이 있지요. 마치 미꾸라지처럼 민첩하다고 해서 강호 친구들이 그렇게 부릅니다만 창피하기 이를데 없소. 이 조그만 무예는 실제로 입에 담기가 부끄러울 지경이오. 장부인(張夫人), 건강도 좋으시군! 그 동안 안녕하셨소!]
그러면서 읍을 했다.
그 늙은 장 부인은 그를 한번 흘낏 쳐다보고 일갈했다.

[주둥이가 번지르르 하구나! 빨리 내 눈 앞에서 꺼져버려라!]
이 유신의 비위는 참 좋았다. 그런 말을 듣고도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다시 그 거지를 향해 말했다.

[쌍룡신개(雙龍神?) 엄(嚴)형, 당신의 두 마리 청룡은 갈수록 민첩하고 활발해지는구료.]

그 거지는 이름이 엄삼성(嚴三星)이었고 별명은 쌍사악걸(雙蛇惡乞)이었다. 유신은 그를 쌍룡신개라고 바꿔부르고 있었다.
엄삼성은 원래 극히 흉악하고 무지했으나 자기를 칭찬해 주자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유신은 장발의 두타인 구송연(仇松年)과 중 서보(西寶) 그리고 도인 옥령(玉靈) 등과도 인사를 한 다음 그들에게도 몇마디 추켜세우는 말을 했다. 그의 싱글싱글거리며 껄껄 웃는 소리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갑자기 도엽선이 외쳤다.

[여보시오! 미꾸라지처럼 미끄러운 친구, 당신은 어째서 우리 여섯 형제의무공이 높고 대단한 것을 칭찬하지 않소!]

유신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다면 칭찬을......]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손과 두 다리는 도간 도근 도엽 도지 등의 손아귀에 곽 잡혔다. 도곡육선은 그를 들어올리려고 했다.
유신은 급히 칭찬했다.

[멋지십니다! 멋진 솜씨이십니다! 이런 무공은 고금에 보기 힘든 일이오.]

도곡사선은 유신의 이런 소리를 듣자 그를 네 조각으로 찢으려고 하지 않았다.
도근선, 도지선은 일제히 물었다.

[어찌 우리들의 무공이 고금에 보기 힘든단 말이오?]
유신은 말했다.

[이 몸의 별명을 모두들 활불유수라고 합니다. 사실은 그 누구도 이 몸을 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 분은 손을 내밀자마자 이 몸을 꽉 잡고서 미끄러뜨리거나 놓치지도 않았읍니다.
네 분의 손놀림은 정말 대단하외다 정말 고금을 통틀어 그런 무예를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읍니다. 이 몸이 앞으로 강호에 나가 여섯 분 어른들의 이름을 널리 선전하여 무림의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대단히 인물이 있다고 알리겠읍니다.]

도근선 등은 크게 기뻐하며 그를 즉시 풀어줬다.
장 부인은 냉랭히 말했다.

[활불유수라고 이름이 헛되지는 않군! 이번에도 잡혔다가 다시 풀려났군!]

유신은 말했다.

[이 여섯 분의 고인들의 무공은 너무나 대단하오. 정말 감탄했소이다. 단지 이 몸이 아는 것은 없고 들은 것이 없어 여섯 선배님의 존함을 모르겠구료.]

도근선은 말했다.

[우리 형제의 이름은 도곡육선이라 하오. 내가 도근선이고 그가 도간선이오.]

그리고 여섯 형제의 이름을 하나씩 말했다.
유신은 손을 잡고 말했다.

[멋지오! 멋지오! 이 선(仙)은 여섯 분의 무공과 정말 어울립니다. 이런 신기한 무공을 가지지 않고는 누구도 이런 선 자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없지요.]

도곡육선은 크게 기뻐하며 일제히 말했다.

[당신은 영리하고 눈빛도 날카롭고 사람을 볼 줄 아는 참 좋은 사람이야!]

장 부인은 눈을 부릅뜨고 여창해에게 일갈했다.

[그 벽사검보를 내놓을 것이오? 내놓지 않을 것이오?]
여창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유신은 말했다.

[아이쿠! 당신들은 지금 벽사검보 때문에 다투고 계시는군요? 내가 알기로는 그 검보는 여관주 수중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

장 부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누구의 손에 있는지 당신은 아시오?]

유신은 말했다.
[이 사람은 유명한 사람이오. 그분의 이름을 말하면 아마 당신은 놀라서 죽을 것이오.]

두타 구송연은 큰 소리로 일갈했다.

[빨리 말하시오! 말하지 않으려면 이 자리에서 떠나시오. 이곳에서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지 말고!]

유신은 웃으며 말했다.

[이 사부께세는 먹을 것을 못 먹었나 왜 이리 화를 내시오. 이 몸의 무공은 비록 평범하나 소식은 정말 영통하오. 강호의 비밀이나 소식은 절대로 이 몸의 천리안 순풍이(順風耳)를 속일 수 없소이다.]

동백쌍기 장 부인 등은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이 유신은 남의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해서 틈만 있으면 끼어들며 무림 중에 일어난 어떤 일이라도 그가 모르고 있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동시에 물었다.

[왜 그리 거드름을 피시오? 벽사검보는 도대체 누구의 수중에 있소?]

유신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모두들 알고 계시듯 이 몸의 외호는 활불유수요. 돈과 재물은 왼손으로 갔다가 오른손으로 나가지요. 며칠간 정말 한푼도 없는 거지꼴이 되었죠. 여러분들은 모두 큰 부자입니다. 이 몸이 가까스로 중요한 소문을 얻어냈는데 이것은 천재일우의 기회요. 속담에 이르기를 보검은 열사(烈士)에게 드리라 했고 연지곤지의 화장품은 가인(佳人)에게, 좋은 소식은 응당 부자에게 팔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이 몸이 파는 것은 거드름이 아니고 소식입죠.]
장 부인은 말했다.

[좋다. 우리가 먼저 이 여창해를 죽이고 난 다음 다시 이 미꾸라지에게 실토를 받읍시다. 공격들 하시오!]

그녀의 이 공격 소리가 입에서 나오자마자 챙그랑 창창 하는 소리가 몇번 나고 병기들이 신속하게 부딛쳤다. 장 부인 등 일곱 사람은 일제히 긴 의자에 올라 각자 병기를 들고 여창해를 공격해 갔다.
일곱 사람은 한번씩 공격한 후 즉시 물러갔다. 그러나 여전히 둥그렇게 여창해를 포위하고 있었다.
서보화상과 구송연의 다리에서 새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고 여창해의 장검은 왼손에 옮겨져 있고 오른쪽의 도포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누구에게 맞았는지 분명치 않았다.
장 부인이 외쳤다.

[다시 공격합시다!]

일곱 사람은 또 다시 일제히 공격했다. 챙그랑! 챙그랑! 창창!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일곱 사람은 또 다시 뒤로 물러가 여전히 여창해를 가운데 두고 에워쌌다.
장 부인의 얼굴에는 검이 적중되어 왼쪽 눈썹에서 아래턱까지 한줄기 검흔(劍痕)이 그어졌다.
여창해는 왼쪽 팔뚝에 한 칼이 찍혀 왼손으론 이미 검을 사용 할 수 없어 장검을 오른손으로 옮겼다.
옥령도인은 낭아추를 세우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관주, 우리 두 사람은 삼청(三淸 : 도사들의 집단) 일파요! 권하건대 투항하시오!]

여창해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낮은 소리로 욕지거리를 해댔다.
장 부인은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단도를 들어 여창해에게 겨누더니 다시 외쳤다.

[다시......]

장 부인이 공격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기 전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외쳤다.

[잠깐!]

한 사람이 둥그런 원 속으로 기어들어가 여창해의 몸 가까이 가며 말했다.

[일곱 사람이 한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오. 이 유 선생께서 벽사검보는 이 여창해에게 없다고 하지 않았소?]
이 사람은 바로 임평지였다.
그는 이곳에서 여창해를 보고난 후 눈빛을 한 순간도 그에게서 떼지 않았다. 여창해는 이미 두 팔에 상처를 입고 있으니 또 다시 장 부인 등 일곱 사람의 공격을 받는다면 틀림없이 난도질을 당할 것이다.
자기와 여창해와는 원한이 바다보다 깊어 자기 손으로 요절을 내고 싶었고 다른 사람에 의해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몸을 내밀어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장 부인이 엄하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너도 그와 함께 저승에 가고 싶은게로구나.]
임평지는 말했다.

[이 사람과 함께 저승에 가고 싶지는 않소. 이 일은 너무 불공평하니 몇 마디할까 하오. 모두 싸우지 마시오.]

구송연은 말했다.

[이놈도 함게 없애버리자!]

옥령도인은 말했다.

[너는 누구냐? 감히 이 자리가 어디라고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거지?]

임평지는 말했다.

[저는 화산파 임평지......]

동백쌍기, 쌍사악걸, 장 부인 등이 일제히 외쳤다.

[당신이 화산파의 사람이오? 그럼 영호공자는 어디 있소?]
영호충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제가 바로 영호충이올시다. 시골뜨기인데 어찌 공자라고 하겠읍니까? 여러분도 나의 그 친구를 아십니까?]

그가 지금까지 여행하는 도중 많은 고수와 괴인들이 그를 동경하고 사귀려했다. 그들은 모두 그의 친구 때문이라고 말들 했는데 영호충 또한 그가 어떤 인물이며 누구고 언제 어느때 이런 신통하고 영향력 있는 친구를 사귀었는지 자기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곱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암중의 인물이 생각나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과연 장 부인 등 일곱 사람은 일제히 몸을돌려 영호충을 향해 공송하게 예를 행했다.
옥령도인은 말했다.

[우리 일곱 사람이 소식을 듣고 쫓아온 것은 바로 귀중한 몸과 한번 사귀고 싶어서지요. 이런 곳에서 뵙게 되니 너무 반갑습니다.]

여창해는 상처가 가볍지 않았다.
바로 이때 그를 위해 포위망을 풀어준 사람이 다름 아닌 임평지라는 것을 알고 자기도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그러나 즉시 임평지가 이런 행동을 왜 취했는가를 깨달았다.
자기를 에워싸고 있던 일곱 사람이 모두 영호충과 말하고 있는 것을 보자 이때 사라지지 않는다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다리에는 상처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몸을 날려 밖으로 나가 주막 뒷문 쪽으로 나는 듯 사라져 버렸다.
엄삼성과 구송연은 일제히 외쳤으나 이미 그를 쫓아가기에는 늦었다.
활불유수 유신은 영호충 앞으로 걸어가더니 웃으며 말했다.

[저는 동방에서 왔읍니다. 강호친구들이 적지 않게 영호 공자의 존함을 주고받는 소리를 들어서 마음속으로 내심 만나뵙고 싶었읍니다. 제가 알기로는 몇십 명의 교주, 방주, 동주(洞主), 도주(島主)들이 오패강에서 공자오 만나뵈려고 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급히 달려오는 중이지요. 뜻밖에도 재수가 좋아 그들보다 먼저 공자를 만나뵙게 되었군요.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괜찮을 것입니다. 이번에 오패강에 가져오는 영단묘약은 백가지는 되지 않을지라도 아마 아흔 아홉 가지는 될 것입니다. 공자가 지금 앓고 있는 작은 질병은 치료될 것입니다. 그게 뭐 대수겠읍니까? 하하하! 참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그는 영호충의 손을 꽉 잡고 연신 흔들어대며 굉장히 친하고 다정하게 굴었다.
영호충은 깜작 놀라 물었다.

[무슨 수십 명의 교주, 방주, 동주, 도주이오? 또 무슨 일백 가지의 영단묘약이란 말이오? 저는 잘 알지 못하겠군요.]
유신은 웃으며 말했다.

[영호 공자께선 지나치게 염려하실 필요가 없읍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이 몸이 비록 하늘과 같은 큰 담력을 지녔다 해도 절대로 말을 함부로 하지는 못한답니다. 공자 어르신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하하하! 이 몸이 만약 함부로 지껄인다면 설령 공자께서 탓하시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면 이 유가는 머리가 몇개 있겠읍니까? 이 유신이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간다고 해도 이 머리통은 삽시간에 떨어질 것입니다.]

장 부인은 음산하게 말했다.

[너는 함부로 말을 지껄이지 않는다고 네 입으로 지껄여 놓고, 어째서 그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느냐? 오패강에서 무슨 움직임이 있든간에 얼마 안 있으며 영호 공자께서 친히 보시고 알 수 있을텐데 네가 주둥이를 놀릴 필요가 있겠느냐? 내가 네게 물어보건대 그 벽사검보는 도대체 누구의 수중에 있느냐?]

유신은 그 소리를 듣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려 악불군 부부를 보고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문을 들어서자마자 두 분을 뵙고 게속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상공과 부인의 용모는 청아하시고 위엄이 당당하시므로 틀림없이 두 분은 무림의 고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두 분은 영호 공자와 함께 계시니 틀림없이 화산파 장문이신 그 이름이 천하에 알려진 군자검 악 선생 부부이시지요?]
악불군은 미소지었다.

[과찬이시오.]

유신은 말했다.

[속담에 이르기를 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읍니다. 소인이 바로 오늘 그런 꼴이군요. 지금 악 선생께선 열다섯 명의 강적을 맞이해서 눈을 찔러 눈을 멀게 했다고 들었읍니다.
선생님의 명성은 이 강호에 자자하지요. 소인은 정말 탄복했읍니다. 정말 멋진 검법이십니다.]

그는 말하는게 진지했고 마치 눈으로 친히 본 것 같았다. 악불군은 음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잠시 스쳤다.
유신은 또 말했다.

[악 부인께서는 여걸......]

장 부인은 호통쳤다.

[너는 계속 쫑알대며 언제 말을 끝내려고 하느냐? 빨리 말해라! 누가 벽사검보를 가져갔는지.]

그녀는 악불군 부부의 이름을 들었는데도 마음속에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유신은 싱글싱글 웃으며 손을 내밀고 말했다.

[백 냥의 은자를 주신다면 내 말씀드리리다.]

장 부인은 '흥' 하고 코웃음치며 말했다.

[네 놈은 평생 돈구경을 못한 놈 같구나! 아무때나 돈, 돈, 돈을 요구하니!]

동백쌍기와 한쪽 눈이 없는 남자가 품 속에서 한 꾸러미의 은을 꺼내더니 유신에게 던졌다.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백 냥이다! 빨리 말을 해라!]
유신은 은자를 받아 헤아려보더니 말했다.

[감사하오. 우리는 밖으로 가십시다. 내가 당신께 말씀드리리다.]

그 애꾸눈 남자가 말했다.

[왜 밖으로 가려고 하느냐? 여기서 말을 해라. 모두들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여러 사람은 일제히 말했다.

[맞다, 맞아! 왜 그렇게 쥐새끼처럼 쉬쉬하는거냐?]

유신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안 되오. 큰일나지요. 내가 요구한 백 냥은 한 사람당 백 냥이지요. 이렇게 큰 소식을 백 냥에 팔 내가 아니오. 그렇게 싼 물건은 이 세상엔 없소이다.]

그 애꾸눈의 남자가 오른손으로 신호를 하자 구송연, 장 부인, 엄삼성, 서보 등이 즉시 유신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그를 가운데 두었다. 조금 전 여창해를 다루는 것과 똑같았다.
장 부인은 냉랭히 말했다.

[이 사람의 별명은 활불유수요. 그를 상대할 때는 손을 쓸 수가 없으니 모두들 병기를 사용하시오.]

옥령도인은 팔각의 낭아추를 들고 공중에서 휙휙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 말이 맞소! 이 자의 머리통이 미끄러지나 내 낭하추가 미끄러지나 봅시다.]

여러 사람들은 그가 들고 있는 낭아추가 글자 그대로 늑대이빨처럼 날카롭고 번쩍번쩍 빛나는 것을 보고 다시 유신의 머리통을 살펴보았다. 모두 그의 머리통이 앞으로 얼마 얹혀 있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유신은 말했다.

[영호 공자, 조금 전 당신은 한 소년을 내보내 여관주를 포위에서 구해주었는데 공자께선 이 몸이 이런 재난을 당하고 있는데도 듣지 않고 보지 않은 것처럼 상관도 안 하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이 벽사검보의 소재를 말하지 않는다면 이 몸도 별 수 없이 같이 끼어들어 노형에게 실례를 할 것이오.]

영호충은 이 말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매우 씁쓸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악영산을 흘끗 쳐다보고 생각했다.

(당신조차도 내가 임평지의 검보를 갖고 있는 줄로 알겠지?)
장 부인 등 일곱 사람은 일제히 환호했다.

[말씀 한번 잘 하셨소! 정말 명답이시오! 영호 공자께서도 한수 거드시지요?]

유신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좋소. 내가 말씀드리겠소. 당신들은 모두 자기 위치로 돌아가시오. 나를 에워싸고 무엇을 하려고 그려오?]

장 부인은 말했다.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는 사람을 상대하고 있으니 별 수 없이 더욱 조심하는 수밖에 더 있겠느냐?]

유신은 탄식하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덫에 자기가 걸린 격이구만! 왜 내가 오패강에서 기다리지 않소 이곳까지 목숨을 바치러 왔을까?]

장 부인은 말했다.

[도대체 말을 할거요? 하지 않을 것이오?]

유신은 말했다.

[말하지요! 말하지요! 내가 왜 말을 하지 않겠소? 아이쿠! 동방교주님, 당신이 어찌 여기까지 왕림하셨소이까?]

그의 마지막 두 마디는 소리가 매우 컸다.
동시에 눈빛을 주막 밖의 서쪽을 향하고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여러 사람들도 깜짝 놀라 주막 밖의 서쪽을 쳐다보았다.
길 저쪽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손에는 야채를 담는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이 마을에서 물건을 파는 행상이었다.
어떻게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동방불패(東方不敗) 동방교주란 말인가?
여러 사람이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원위치로 돌렸을 때 유신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을 알았다.
장 부인, 구송연, 옥령도인은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경공이 높고 사람이 그처럼약싹빠를 줄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들은 다시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영호충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알고보니 그 벽사검보는 유신의 손에 넘어갔군! 정말로 그의 수중에 있을지는 생각도 못했다!]

여러 사람은 일제히 물었다.

[정말이오? 그것이 유신의 손에 있소?]

영호충은 말했다.

[물론 그의 수중에 있지요. 그렇지 않다면 왜 이실직고하지 않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겠소?]

그의 소리는 너무 컸다.
너무 힘을 주어 말했기 때문에 숨이 찰 정도였다.
갑자기 문 밖에서 유신의 음성이 크게 들려왔다.

[영호 공자, 당신은 왜 나를 모함하는 것이오?]

말을 하면서 또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장 부인 등은 크게 기뻐하며 그를 다시 에워쌌다.
옥령도인은 웃으며 말했다.

[너는 영호 공자의 계략에 넘어간거야!]

유신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만약 이 말이 밖으로 퍼져나가 유신이 벽사검보를 손아귀에 넣었다고 소문이 퍼진다면 이 몸은 앞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것이오. 이 강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찾아와 못살게 굴겠소? 내가 설령 머리가 셋이고 발이 여섯 개가 될지라도 그건 당해낼 수 없을 것이오. 영호 공자, 당신은 정말 대단하오. 단 한 마디로 이 활불유수를 잡아오다니요.]
영호충은 미소를 띤 채 생각했다.

(내가 뭐가 대단하다고? 나도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을 뿐인데......)

그는 악영산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악영산도 마침 그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 부딪치는 순간 둘 다 얼굴이 빨개져서 서로 고개를 돌렸다.
장 부인이 말했다.

[유노형, 조금 전 당신은 그 벽사검보를어디다 수믹고 왔소? 우리가 찾아낼까봐 그랬지?]

유신은 외쳤다.

[낭패로군, 낭패야! 장 부인,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 유신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고 작정한 것이오? 여러분들, 모두 생각 좀 해보시오. 그 벽사검보가 만약 내 수중에 있다면 이 몸은 검법을 사용할 것이고 또 검법은 상당히 높은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오. 어찌 내 몸에 검을 지니지 않았고 검을 사용치 않겠소이까? 또 어째서 무공이 이렇게 형편없겠소이까?]

모든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도근선은 말했다.

[당신은 그 벽사검보를 얻고도 아직 배울 시간이 없었겠지. 설령 배웠다 해도 다 배우지는 못했을 것이오. 당신 몸에 검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을 혹시 다른 사람이 훔쳐갔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도간선은 말했다.

[당신 손에 들고 있는 부채는 바로 한 자루의 단검이고 조금 전 당신이 그 부채를 휘두르는 초식이 바로 벽사검보에 있는 검초요.]

도지선은 말했다.

[맞아, 맞아! 모두 보시오! 그가 부채를 접어 비스듬히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벽사검보에 있는 제오십구초식인 지타간사(指打奸邪)라고 하는 거야! 그 검끝에 있는 자의 생명은 이미 없어진거나 다름없는 거야!]

이때 유신의 손에 들려 있던 부채는 마침 구봉연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멍청한 두타는 호랑이 같은 소리를 한번 지르더니 두손의 계도를 가지고 유신을 내리쳤다.
유신은 몸을 돌리며 외쳤다.

[그가 장난한 것이오! 보시오! 보시오! 정말 그 말을 진짜로 여기지 마시오!]

창창창!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네 번 들리더니 구송연의 왼쪽과 오른손에 들고 있던 쌍도의 두번 공격을 유신이 다 막아냈다.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니 그 부채는 강철로 만든 것이었다. 그의 부자같이 하얀 얼굴모양과 민첩한 몸놀림은 매우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접은 부채를 가볍게 튕기니 호두환도는 수척 밖으로 날아갔다.
이런 것을 보니 그의 무공은 장발두타의 위인 것 같은데 단지 몸이 포위되었으므로 반격을 하지 않은 듯했다.
도화선은 외쳤다.

[이 검법은 벽사검보 중의 제 삼십이초인 오귀방비(烏龜放?)이다. 즉 거북이가 방귀를 꾸는 모양으로써 이 초식은 제 이십오초인 갑어번신(甲魚?身) 즉 자라가 몸을 뒤집은 초식으로 이어지지!]

영호충은 말했다.

[유 선생, 그 벽사검보는 틀림없이 당신 수중에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누구의 수중에 있단 말이오?]

장 부인, 옥령도인들은 일제히 말했다.

[맞소! 빨리 말을 하시오! 누구의 손에 있소?]

유신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지않는 이유는 단지 돈을 좀 더 받으려고 그랬던 것이오. 당신들의 째째한 모습을 보니 틀림없이 돈을 아끼시려는 것 같은데, 좋소! 내가 말하리다. 그러나 내가 그 검보의 출처를 댄다 해도 당신들은 듣고 마음속으로 끙끙거릴 뿐이고 감히 손을 쓸 수는 없을 것이오. 그 벽사검보가 만약 다른 사람의 손에 있다면 얼마 정도의 희망이 있으나 지금 그 검보는 당신들이 쳐다볼 수 없는 그런 사람 손에 있소. 그건...... 그 사람은...... 음음 이건......]

여러 사람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정신을 집중하여 그의 말을 들으려고 했다.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급히 들려왔다.
말발굽 소리와 수레의 소리가 겹쳐져 길거리를 질주해오고 있었다.
유신은 그 틈을 타 입을 다물었다. 귀로 유심히 듣더니 말했다.

[어, 누가 왔읍니다.]

옥령도인은 말했다.

[빨리 말하시오. 누가 그 검보를 손에 넣었소?]

유신은 말했다.

[물론 말할 것이오. 왜 그리 성질들이 급하시오?]

수레와 마차 소리가 주점 밖에까지 이르더니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영호 공자, 당신께서는 이곳에 꼐신가요? 우리 방에서 특별히 수레를 보내어 영호 공자를 모실까 합니다.]

영호충은 빨리 벽사검보의 소재를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사부님, 사모님, 여러 사제, 사매들에게 자기에게 대한 의심을 풀어 주고 싶었다.
그는 그 노인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계속해 말했다.

[누가 밖에 와 있으니 빨리 빨리 말하시오!]

유신은 말했다.

[공자께선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오니 말하기가 좋지 않군요.]

갑자기 길에서 말발굽 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 예닐곱 필의 말이 질주해 오더니 주점 앞에서 멈추었다.
잠시 후 우렁찬 말소리가 들렸다.

[황(黃)노방주, 당신도 영호 공자를 마중하러 오셨구료!]
그 노인은 말했다.

[그렇소. 사마도주(司馬島主)는 어떻게 왕림하셨소이까?]
그 웅장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흥' 하고 냉소했다. 이어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우람한 사람이 주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어느분이 영호 공자이십니까? 소인 사마대(司馬大)가 이곳의 영호 공자를 모시고 오패강의 여러 군웅들에게 데려갈까 합니다!]
영호충은 공수를 하며 말했다.

[제가 영호충입니다. 사마도주께서 친히 오셨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읍니다.]

사마도주는 말했다.

[소인의 이름은 사마대라 부르지요. 어려서부터 몸이 거대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이런 이름을 지어주셨답니다. 영호 공자께선 저를 사마대라 불러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아대(阿大)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 무슨 도주라고 하십니까? 정말 송구스럽기 짝이 없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아니 될 말씀이오.]

그리고 손을 들어 악불군 부부를 향해 말했다.

[이 두 분이 바로 저의 사부님과 사모님이십니다.]

사마대는 포권을 하며 말했다.

[두 분의 명성을 익히 듣고 사모하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몸을 돌리고 말했다.

[소인이 좀 늦게 나타난 것 같습니다. 공자께선 질책하지 마십시오.]

악불군은 화산파 장문으로서 이십여 년을 보내는 동안 지금껏 강호사람에게 존경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사마대와 장 부인, 구송연, 옥령도인 일행은 모두 영호충에게는 대단히 공손했으나 반대로 화산파 장문인인 그에게는 별볼일 없이 대했다. 약간의 경의를 표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완전히 영호충을 봐서였다.
그러나 감정은 여러 곳에서 충분히 나타났으므로 이런 행위는 안면에 대고 심한 욕을 하는 것보다 심한 모욕을 악불군에게 주고 있었다.
그러나 악불군은 수양이 깊었으므로 그런 표정을 전혀 나타내지 않았다.
이대 그 황씨성의 방주도 안으로 들어왔다.
이 사람은 이미 팔십여 세 가량으로 하얀 수염은 가슴까지 내려오고 눈빛은 소년처럼 맑았다.
그는 영호충을 향해 고개를 조금 숙이더니 말했다.

[영호 공자, 이 소인의 제자들은 모두 이 일대에서 밥을 얻어먹고 살아가지요. 이번에 공자를 잘 모시지 못했으므로 정말 백번, 천번, 만번 죽어도 할 말이 없읍니다.]

악불군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바로?)

그는 오래 전부터 홍하하류에 천하방(天河幇)이라는 방파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주인 황백류(黃伯流)는 중원무림에서 나이 많은 선배인데 방의 규칙이 비교적 느슨하기 때문에 그 방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못된 짓을 도맡아했으며 천하방의 명성은 무림에서 평판이 좋지가 않았다.
그러나 천하방은 사람들이 많고 방에 고수들이 적지 않게 있었으므로 이 제노예약(齊魯豫?)의 지방에서 제일 큰 방회였다.
정말로 눈 앞의 이 노인이 바로 만여 명을 호령하는 은염교(銀髥蛟) 황백류란 말인가?
만약에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면 어째서 영호충과 같은 소년에게 이렇듯 예를 다하는가?
악불군은 마음속에 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나 쌍사악걸, 엄삼성의 말소리에 그는 생각을 중단했다.

[은염노교(銀髥老蛟), 당신은 이곳의 토박이이니 우리처럼 외지에서 온 친구들을 잘 접대해 줘야 할 것이오.]

이 하얀 수염의 늙은사람은 틀림없이 은염교 황백류였다. 그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만약 영호 공자의 덕택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 많은 영웅호걸들을 만나뵐 수 있었겠소이까? 여러분들이 저의 지역에 오셨으니 모두가 이 천하방의 귀한 손님들이오. 물론 접대를 잘 해야겠지요.
저희 아랫것들이 오패강에다 이미 술좌석을 마련했으니 영호 공자와 여러 손님들께서는 빨리 그곳으로 가시지요?]

영호충은 이 작은 주점에 사람이 꽉 차고 이렇게 웅성거리고 시끄러운 곳에서 절대로 유신이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조금 전 소란 속에서 사부와 사매들은 자기에게 품던 의심이 어느 정도 풀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자기의 깨끗함을 풀 수 있을 것이니 급하게 굴 것까지는 없었다.
그는 악불군을 향해 말했다.

[사부님, 우리가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하교해 주십시오.]
악불군은 생각했다.

(오패강에 모인 사람들은 틀림없이 하나도 정파의 인사는 없을 것이다. 어찌 우리가 그들과 함게 섰일 수 있겠는가? 이 사람은 겉으로 퍽 공경스럽고 예를 갖추는 척하면서 충아를 자기들 무리 속에 끼워 넣으려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형산파의 유정풍도 그랬지 않은가? 일단 그들 사악한 무리와 접근하게 되면 평생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몸과 명성을 마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 봐서 어찌 안 간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유신은 말했다.

[악 선생, 아마 지금쯤 오패강에서는 한참 떠들썩할 것입니다.
꽤 많은 동주(洞主)와 도주들은 모두 십여 년 이십여 년 삼십여 년 동안 강호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읍니다. 모두들 영호 공자 때문에 오신 것이지요. 당신이 정말로 이런 문무를 겸비하고 준걸한 소협을 가르치시고 길러내셨으니 악 선생님의이름도 덩달아 빛날 것입니다. 오패강엔 당연히 가셔야지요. 악 선생님의 가마가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러 사람의 흥을 깨게 될 것입니다. 가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악불군이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사마대와 황백류 두 사람은 이미 영호충을 부축하고 데리고 나가 큰 수레에 앉혔다. 구송연, 엄삼성, 동백쌍기, 도곡육선 등도 모두 밖으로 나왔다.
악불군 부부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눈쌀을 찌푸렸다.

[이 사람들은 단지 충아만을 데리고 갈 것이다. 우리가 가든 않든 그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을 것이다.)

악영산은 호기심이 일었다.

[아버지, 우리도 가서 구경 좀 해요. 가서 그들 괴물들이 대사형과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한번 봐요.]

그녀는 사람고기를 먹는 흑백쌍웅을 생각해내더니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그러나 그들이 대사형의 체면을 봐서 자기를 풀어주었기 때문에 절대로 자기의 손가락을 깨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패강에 가면 아버지 몸에 딱 붙어 있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걸어나왔다.
조금 전 한바탕 토해낸 후 아직 음식을 들지 않았으므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이 허공에 뜬 것 같고 정신도 흐릿했다.
그는 생각했다.

(그 오독교의 남봉황의 독약은 정말 대단하구나.)

황백류와 사마대 등 여러 사람은 올 때 말들을 타고 왔기 때문에 즉시 악불군, 악 부인, 장 부인, 구송연, 도곡육선 등 일행에게 말을 타도록 했다.
화산파의 몇명의 남제자들은 말이 없어 타지 못하고 천하방의 졸개들과 장경도(長鯨島)의 사마대 도주의 부하들과 함께 걸어서 오패강을 향해 출발했다.


오패강은 노(魯), 예(豫) 두 지역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산동하택정도(山東荷澤定陶)와, 서쪽으로는 하남동명(河南東明)과 접하고 있었다.
이 일대의 지세는 평탄하고 호수와 연못이 많았으며 멀리 바라보니 오패강은 그리 높지 않은 듯했고 겨우 작은 산등성이 높이였다.
일행은 수레와 말을 달려 동쪽으로 질주해 갔다.
얼마가지 않아 수십기의 말이 마중을 나와 수레 앞에 이르더니 몸을 날려 말에서 내려 큰 소리로 영호충에게 자기들의 뜻을 표현했다. 그들은 예절이 깎듯 했으며 심히 공경스러웠다.
오패강이 가까워졌을 무렵, 마중을 나온 사람은 더욱 많아졌다.
이 사람들은 자기의 소속과 성명 등을 밝혔는데 영호충은 맣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소개하자 모두 기억할 수가 없었다.
큰 수레는 산등성이 아래 당도했다. 그 오패강의 산을 바라보니 소나무가 뒤덮혀 있고 한 개의 산길이 구불구불 위로 뻗어 있었다.
황백류는 영호충을 큰 수레에서 부축해 내렸다. 벌써 두 명의 장정이 작은 가마 하나를 가지고와 길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영호충은 자기가 가마에 탄다면 사부와 사모님, 사매들은 걸어서 가야 하므로 실례가 될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했다.

[사모님, 사모님께서 수레에 타시죠? 제자는 혼자서 걸어갈수가 있읍니다.]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영호 공자를 마중나왔지, 나를 마중하러 나온 것은 아니잖니?]

그리고 경공을 펼쳐 앞질러 산을 올랐다. 악불군과 악영산 부녀도 빠른 걸음으로 산 위를 올랐다.
영호충은 별 수 없이 가마에 몸을 실었다.
가마는 어느새 소나무 사이의 넓은 공지에 이르렀다. 영호충이 가마에서 내려 살펴보니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형색과 표정을 살펴보니 모두 삼산오악(三山五嶽)에서 모여든 오합지졸처럼 보였다.
여러 사람들은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이 분이 바로 영호 공자이십니까?]

어떤 사람은 말했다.

[이것은 소인의 집에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영약이올시다! 상당히 약효가 있읍지요.]
[이것은 제가 이십년 전 장백산(長白山)에서 캐낸 오래 된 산삼입니다. 그러하오니 영호 공자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또 한 사람은 말했다.

[이 일곱 사람은 노동육부(魯東六府)에서 제일 명성이 자자한 명의들이지요. 제가 모두들 모셔왔읍니다. 그들에게 공자의 맥을 보게 해주십시오.]

이 일곱 명의 명의라는 사람은 모두 굵은 밧줄에 손이 꽁꽁 묶여 굴비처럼 줄에 묶여져 있었으며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표정이었다.
명의 같은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틀림없이 이 사람에게 잡혀온 것이었다. 청했다는 말은 듣기 좋게 꾸며낸 말이었다.
또 한 사람은 두 개의 큰 대바구니를 가지고 와 말했다.

[제남부(濟南府)성에서 채집한 약재들입니다. 소인이 모두 한 가지씩 가져왔지요. 공자께서 어떤 약재가 필요하시다면 이 소인이 모두 준비해 왔으니 두고두고 필요할 때마다 쓰십시오.]
영호충이 그 사람들의 형색을 살피니 모두 차림새가 기괴하고 악독하게 보였다. 그러나 자기들 딴에는 진지했으므로 어떤 의심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크게 감동하였다.
그는 요즘 실의와 좌절에 빠져 죽을지 살지도 모르다가 이런 환영을 받게 되니 쉽게 감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뭉틀해지더니 눈물이 글썽해져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여러 친구들이여, 이 영호충은 일개 무명소졸인데 여러분들의 따스한...... 여러분들이 이렇게 고맙게 대해주시니 정말로......
정말로...... 어떻게 보답을 해야할지......]

그는 흐느끼면서 말을 다 할 수가 없어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거기 모인 수많은 사람은 너도나도 다투어 말했다.

[아, 그건 절대로 안 됩니다.]
[빨리 일어나시오.]
[우리를 죽이는게 낫겠읍니다.]

모두 일제히 무릎을 꿇고 환례를 했다.
삽시간에 오패강에 모여 있던 천여 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단지 화산파의 악불군 사제와 도곡육선만이 멀거니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악불군과 제자들은 그들 앞에 서 있기가 쑥스러워 몸을 돌려 피했다. 도곡육선은 여러 사람 앞이지만 싱글거리며 아무 말이고 해댔다.
영호충은 여러 사람에게 절을 하고 또 하고 일어났을 때 얼굴에 눈물이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 친구들이 무슨 뜻을 품고 왔든지 영호충은 앞으로 이들을 위해 분신쇄골할 것이다. 이들의 부탁이라면 백번 죽어도 불사하리라!)

천하방의 방주 황백류는 말했다.

[영호 공자, 앞에 있는 초막으로 들어가시어 좀 쉬시지요?]
그는 말하면서 그와 악불군 부부를 데리고 초막으로 들어갔다.
그 초막은 새로 지은 것이었으며 초막 안에는 탁자와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탁자 위에는 찻잔과 주전자들이 놓여 있었다.
황백류가 손짓하자 그의 부하들이 수릉마 가져오고 어떤 부하는 말린 고기를 가져와 반주로 올렸다.
영호충은 술잔을 들고 초막 밖으로 가더니 낭랑히 말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영호충은 초면이니 응당 같이 술잔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나누고 머려움이 부딪치면 같이 해결해 나갑시다. 이 술은 우리가 서로 마셨다고 치지요.]

말하면서 술을 하늘로 뿌려 천만개의 물방울을 하늘로 날렸다.
모인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천둥처럼 온 산을 뒤덮었다.

[영호 공자의 말씀이 맞습니다. 모두들 앞으로는 좋은 것이 있으면 같이 나누고 어려움이 있으면 같이 해결합시다.]

악불군은 눈쌀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충아는 정말 경거망동을 하는구나. 앞뒤로 가리지 않고 눈 앞의 이 사람들이 자기에게 잘 해주자, 그들에게 무슨 좋은 것이 있으면 같이 나누고 어려움이 부딪치면 같이 해결해 나가자고 하는구나. 이 사람중에 아마 한 사람도 정당한 사람이 없고 모두들 전백광 같은 류의 놈들인 것이다. 그들이 간음과 약탈, 선량한 사람들을 죽인다면 너는 그들과 같이 행동할 것이냐? 나 악불군은 이 못된 놈들을 없애야 할 판인데 너는 반대로 그들과 어려움이 있으면 같이 해결해 나간다고?)

영호충은 또 말했다.

[여러분들이 이 영호충을 이렇듯 가족처럼 대해주는지 저는 영문을 알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운 일이 있다면 말씀을 해주십시오. 대장부들의 행동이란 광명정대하니 무슨 말인들 못하겠읍니까? 이 영호충이 필요하면 그 일이 아무리 어렵고 험난해도 전 절대로 물리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 사람들과는 평소 알지 못했는데 자기에게 이렇게 대해주니 틀림없이 어떤 큰일을 가지고 자기의 도움을 요구하고 있나보다고 풀이했다. 어차피 결국은 그들에게 대답을 해주었으니 그일을 달성하지 못할지라도 결국은 한번 죽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황백류는 말했다.

[영호 공자께선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여러 사람들은 공자가 이곳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들 내심 앙모하여 영호 공자의 풍채를 좀 볼까하고 약속이나 한듯 여기에 모였읍니다. 듣건대 공자는 몸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명의를 데려오거나 약재를 구해 온 것이지 공자에게 절대 무슨 요구가 잇어서 온 게 아닙니다. 우리는 같은 패는 아이고 단지 서로 소문을 듣고 모였을 뿐이고, 어떤 일들은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지도 않소이다. 단지 공자께서 오늘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나누고 어려움을 같이 극복하자고 하셨으니 모두들, 설령 사이가 나쁜 친구라 해도 좋은 친구가 돼야 하겠지요.]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말했다.

[바로 그렇소이다. 황 방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일곱 명의 명의를 묶고 온 그 사람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공자께서는 초막으로 드시지요? 이 일곱 명의 명의에게 진백을 보라고 하는게 어떻겠읍니까?]

영호충은 생각했다.

(평일지 선생처럼 재주가 좋은 사람도 내 상처에는 치료할 약이 없다고 했는데 저까짓 일곱 명의 의사들이 뭘 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들의 뜻을 거절할 수 없어 초막으로 들어갔다.
일곱 명의 명의들은 비맞은 장닭처럼 초막 안으로 끌려갔다.
영호충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형씨께선 그들을 풀어주시지요? 그들은 도망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공자께서 풀어주시라니 풀어줘야죠.]

팍팍팍 하고 소리가 여섯번 들리더니 그 두꺼운 끈이 절단되었다. 그는 소리쳤다.

[만약 너희들이 영호 공자의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너희들의 목을 뎅강뎅강 자르고 말겠다!]

한 명의 의원이 말했다.

[소...... 소인은 있는 힘을 다해 해보겠읍니다.그러나 천하에는...... 천하에는 치료할 수 없는 병도 있지요.]

또 다른 한 의원이 말했다.

[공자를 살펴보니 마음이 어지러운 듯하지만 기(氣)가 성하니 틀림없이 약으로 그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몇명의 의원들이 달려들어 그의 맥을 짚었다.
갑자기 초막 입구에서 그 누구가 일갈했다.

[모두 싹 꺼져버려라! 어설픈 재주로 무엇을 고치겠느냐?]
영호충은 몸을 돌려보니 살인명의 평일지였다.
그는 기뻐서 말했다.

[평 선생님! 당신도 오셨군요? 나도 이 의사들이 아무 쓸모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평일지는 초막으로 들어오더니 왼발을 휘둘러 퍽 하고 소리를 내며 의사 하나를 초막 밖으로 날려버리고 오른쪽 다리를 날려 퍽하니 다른 한 명의 의사를 초막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그 의사를 잡아온 사람은 평소 평일지를 흠모했던 모양이었다.

[천하의 제일명의 평 대부께서 이곳에 오셨는데 너희놈들이 어찌 감히 이소에서 뽐낼려고 하느냐?]

팍팍팍 소리가 나며 그 두 명의 의사도 초막 밖으로 아뒹굴었다. 나머지 세 명의 의사는 넘어지고 곤두박히면서 초막 밖으로 기어 나갔다.
그 사내는 허리를 굽히고 웃으며 말했다.

[영호 공자, 평대부, 제가 너무 경솔했읍니다. 어르신......]
평일지는 왼발을 들어 하늘을 향해 날리니 그 사내가 초막 밖으로 나뒹굴었다.
평일지의 이런 행동은 영호충으로선 너무 뜻밖이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평일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털썩 앉더니 손을 내밀어 영호충의 오른쪽 맥박을 재보고 다시 한참 후에는 왼손의 맥박을 재어보았다. 이렇듯 이쪽 손과 저쪽 손을 바꾸어 맥을 짚더니 눈쌀을 찌푸리며 눈을 감고 무엇인가 열심히 생각을 했다.
영호충은 말했다.

[평 선생님, 평범한 사람의 생사는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오늘날 영호충의 병은 치료하기 어렵고 또 선생께선 이미 두번이나 저를 돌봐주셔서 저는 그 은혜에 감격하고 있읍니다. 선생님께선 저를 위해 더 이상 노심초사하지 마십시오.]

초막 밖에선 흥얼거리는 소리와 노래 부르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아마 천하방에서 이미 술과 요리를 가져다가 모인 삶에게 대접하는 것 같았다.
영호충의 마음은 밖에 있었다. 밖에 나가 사람들과 한바탕떠들고 싶었다.
그러나 평일지는 연신 손을 바꿔가며 그의 맥박을 짚고 영원히 끝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생각했다.

(이 평 대부의 이름이 바로 평일지인데 자칭 한 손가락으로 맥을 짚어 병을 치료하며, 사람을 죽일 때도 단지 한 손가락으로 혈을 찔러 죽인다고 하더니만 지금은 내 맥을 짚을 때는 한 손가락이 아니라 열 손가락을 거의 다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삐꺽하는 문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의 머리가 들어왔다.
바로 도간선이었다.

[영호충, 자네는 어째서 술을 마시러 나오지 않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녜, 금방 나갈 것입니다. 날 기다려 주시오. 밖에 있는 술을 다 마시지 말고 말이오.]

도간선은 말했다.

[좋아! 평 어르신, 빨리 치료를 해주시오!]

그는 말하면서 고개를 다시 문 밖으로 빼어냈다.
평일지는 천천히 손을 거두며 눈을 꼭 감고 오른손 식지로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것은 곤혹스럽고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는 것 같은 태도였다. 한참 지나서 눈을 뜨더니 말했다.

[영호 공자, 당신의 체내에는 일곱 줄기의 진기가 서로 충돌하고 있는데 없어지지도 않고 제압시킬 수도 없읍니다. 이것은 독에 중독되어 받은 상처도 아니고 더우기 풍이나 열기 때문에 생긴 증세도 아닙니다. 그래서 침이나 약재를 써서는 치료할 수가 없소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녜.]

평일지는 말했다.

[그날 주선지에서 공자의 맥을 짚은 다음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 해결 방법을 생각해 놓았소. 그 방법은 비록 위험하지만 요행을 바래야겠지요. 일곱 명의 내공이 정순한 인사를 불러다가 동시에내공을 주입시키면 공자의 체내에 있는 서로 다른 진기를 일거에 없앨 수가 있읍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세 명을 불러서 같이 왔고 나머지 사람은 밖에 있는 사람 가운데서 두 분을 선출하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 공자의 스승인 악 선생과 저까지 합치면 치료할 수가 있읍니다. 그러나 조금 전 공자의 맥을 보았더니 공자의 몸엔 또 다른 변화가 생겼고 더욱 복잡하게 되었더군요.]
영호충은 신음소리를 '음' 하고 냈다.
평일지는 말했다.

[지난 며칠 동안 네 가지의 큰 일이 발생했지요. 첫째로 공자께선 수십종의 몸에 보신이 되는 희귀한 약을 드셨읍니다. 그 중에는 인삼, 수오, 직초, 복명 등등의 진귀한 약물도 있지요. 하지만 보약은 여자에게나 소용이 있는 것입니다.]]

영호충은 아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선배님의 신기는 고금을 털어도 없을 것입니다.]

평일지는 말했다.

[공자께선 왜 그 보약을 복용하셨읍니까? 틀림없이 돌파리 의사들이 잘못 썼을 것이오. 한심하군요.]

영호충은 생각했다.

(조천추가 노두자의 속명팔환을 훔쳐다 나에게 먹인 것은 좋은 뜻에서 그랬으니 그가 어찌 남자 여자를 구분해야 할 약인 줄 알았겠는가? 만약에 사실대로 말한다면 평 대부는 틀림없이 그를 책망할 것이니 아무래도 숨기는 것이 낫겠다.)

그리고 말했다.

[그것은 제가 잘못 복용한 탓이지요. 절대로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마십시오.]

평일지는 말했다.

[당신의 몸은 본래부터 기(氣)가 고르지 못했으비낟. 갑자기 또 이렇게 많은 보약을 드셨으니 그 어찌 감당하실 수 있겠읍니까? 마치 장강(長江)의 물이 불어서 홍수가 났는데 물을 다스리는 사람은 물을 빼려고는 생각지 않고 반대로 동정(洞庭), 번양(?陽) 호수의 물을 끌어다대는 꼴이 되었읍니다. 어찌 재앙이 덮치지 않겠읍니까? 그 약은 오로지 선천적으로 허약하고 무력한 여자들만이 복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몸에 이롭지요. 어째서 공자께서 드셨읍니까? 정말 큰일입니다. 큰일입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나는 노두자의 딸 노불사 아가씨가 내 피를 먹고 병이 치료되길 바랄 뿐이다.)

평일지는 또 말했다.

[두번째 큰 변괴는 공자게선 갑자기 대량의 피를 흘리셨읍니다.
당신의 지금 병세로는 어떻게 다시 사람들과 무예를 겨루겠읍니까? 그렇게 싸움을 좋아하시니 어찌 오래 살기를 바랄 수 있겠소?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이렇게 중히 여기는데 당신은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군요. 군자가 복수를 하는데는 십년이라도 늦지 않는다고 했소. 어찌 그렇게 급하십니까?]

그는 말을 하면서 연신 고개를 흔들어댔다. 안색은 몹시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만약 그가 치료하는 사람이 영호충이 아니라면 그는 단번에 손찌검을 했던지 그렇지 않으면 호되게 욕을 해댔을 것이다.

영호충이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이 백번천번 옳습니다.]

평일지는 말했다.

[단지 피를 많이 흘렸다면 그것은 치료하는데 그리 어려움이 없겠으나 어쩌자고 당신은 또 운남오독교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그들의 오선대보약주를 마셨읍니까?]

영호충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오선대보약주라니요?]

평일지는 말했다.

[이 오선대보약주는 오독교에서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비방으로 술을 빚었다고 합니다. 술을 빚을 때 사용하는 독충들은 진귀하기 짝이 없고 소문에 의하면 그 독충 한 마리를 기르는데 십여 년을 소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술 속에는 또 다른 수십 종류의 귀중한 약재를 사용해 서로의 독을 독으로 중화시키는 이치를 썼다고 합니다. 이 약을 복용한 사람은 병에 길리지 아니하고 독에 중독되지도 않는다고 하며 갑자기 수십 년 동안 쌓은 공력이 생긴다고 합니다. 원래는 이 세상에는 제일 신기한 보약이지요. 이 늙은이가 오랫동안 그 약을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읍니다. 듣자니 남봉황이라는 여자는 보배처럼 그 술을 몸에 지니고 지금까지 어떤 남자에게도 말을 걸지도 않고 술을 대접하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어쩌자고 그녀가 이렇게 진귀한 약주를 당신에게 먹였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요. 당신은 풍류 남아로서 곳곳에 정(情)을 뿌리고 다니는데 어찌 자기 몸을 자기가 망치는 줄도 모르고 계시오?]

영호충은 씁쓸하게 웃었다.

[남교주와 저는 단지 황하의 배에서 한번 만나보았을 뿐이며 그녀는 오선주를 나에게 주었을 뿐입니다. 그 밖에는 그녀와 아무런 관계가 없소이다.]

평일지는 그를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남봉황은 남의 부탁을 받고 당신께 오선대보약주를 마시게 했을 것이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말았소. 그 술은 비록 몸을 보호해주지만 독이 들어 있소. 흥! 제기랄! 엉망진창이군! 그 오독교는 단지 몇잔의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괴상한 약방문에 의지했을 뿐이고, 남봉황 이 계집은 의학의 이치와 약의 이치를 조금도 모르면서 제기랄 것! 정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군!]

영호충은 그가 이렇게 욕을 해대는 소리를 듣고 이 사람의 성격이 급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색이 참담하고 가슴이 쉬지 않고 벌떡거리며 표정이 엄숙해 자기를 아주 극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속으로 미안한 감이 들었다.

[평 어르신, 남교주도 좋은 뜻에서 그랬던 것이지요......]
평일지는 화가 나서 말했다.

[좋은 뜻? 호의? 정말 가관이군! 천하의 돌파리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호의라고 돌파리들이 생명을 죽이는 숫자가 강호에서 칼에 죽는 숫자보다 더 많다는 것을 모르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그것도 그런것 같습니다.]

평일지는 말했다.

[뭐가 그런 것도 같습니까?정말 실제사 그러하오. 나 평일지가 치료한 사람을 남봉황이 무슨 주제에 손을 쓴다는 말이오? 당신 피 속엔 극약이 들어 있소. 만약 그 독이 온몸에 퍼지면 그 일곱 줄기의 진기와 크게 충돌되어 아마 세 시간 안으로 당신 생명은 없어질 것이오.]

영호충은 생각했다.

(내 속에 독이 있는 것은 그 오선주를 마셨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남교주와 네 명의 요녀들이 나에게 피를 헌혈해 줄 때는 그녀의 몸에 있는 대로 사용했다. 이 사람들은 날마다 독물들과 함게 사니 음식중에도 독이 있을 것이고 핏속에도 들어 있을 것이다. 단지 그녀들은 장시간 습관이 되어서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이다. 이 일은 절대로 평일지에게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괴퍅한 성격이 더욱 폭발할 것이니까.)
그는 말했다.

[의학의 이치나 약재의 이치는 깊고도 오묘해서 절대로 우리 같은 일반 사람이 알 수 없지요?]

평일지는 한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만약에 보약을 잘못 복용하고 대량의 피를 흘리고 약주를 잘못 마셨다 하면 나는 그래도 치료할 방법이 있는데 이 네번째의 큰변이 정말 나를 속수무책으로 만드는구료.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잘못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모두가 나의 불찰입니다.]

평일지는 말했다.

[이 며칠 동안 당신은 왜 실의에 차 있으며 더 살아가려고 하지 않소? 도대체 어떤 충격을 받았소? 지난번 내가 주선진에서 맥을 짚을 때는 당신의 상처는 비록 중했지만 그러나 당신 심장의 맥박은 왕성하고 한줄기 생기가 돌고 있었소. 그래서 나는 먼저 당신 생명을 백일 동안 연장시키고 난 후 이 백일 동안 어떤 방법을 강구하든 당신의 괴병을 치료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소. 그 당시에 나느 그리 자신이 없어 당신에게 명확한 언질을 주지 못했지만 지금 당신에게서는 그 한 줄기의 생기마저 사라져버렸는데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오?]

그 말을 듣자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슬픔이 가슴 한쪽에서 쳐 올라왔다.

(맨처음 사부게서 임평지의 벽사검보를 가졌다고 의심할 때도 내 마음은 깨끗해서 결국 분명히 밝혀질 때가 오리라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여겼지만 그러나 소사매마저도 나에게 의심을 품고 그 임평지를 위해 마음속으로 나를 짓밝고 한 푼의 가치도 없는 놈으로 여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세상에 살아있다 한들 아무런 낙이 없을거라고 생각했었지.)

평일지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당신의 맥을 짚어보니 여자 생각으로 꽉 차 있었소. 사실은 천하의 모든 여자들의 말투는 아무런 재미가 없고 얼굴도 추악하기 그지없소. 제일 좋은 것은 멀리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오. 피하거나 멀리할 수 없다면 별 수 없이 자기 자신을 억제해야 할 것이 아니겠소? 당신은 어째서 그런 생각을 모르셨소? 오히려 여자일을 온종일 생각하니 이건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된 것이오. 비록 그...... 정말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소.]

그는 말하면서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당신 부인은 말투가 재미없고 얼굴이 추하기 이를데 없지. 그러나 천하의 여자들은 모두 당신 부인 같지는 않소이다. 당신이 당신 부인을 보고 천하의 여자를 한데 묶어 논한다는 것은 정말로 웃기는 일이오. 만약 소사매가 당신말대로 말투가 재미없고 추악하다면......)

도실선이 두 그릇의 술을 받쳐들고 초막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어이쿠! 평 대부, 어째서 아직가지 치료를 마치지 않았소?]
평일지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치료할 수가 없게 되었소.]

도실선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나을 수 없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소?]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영호충을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나와서 술이나 마시게.]

영호충은 말했다.

[좋아요.]

평일지는 화가 나서 일문했다.

[절대로 갈 수 없소이다!]

도실선은 깜짝 놀라 몸을 돌려 급히 도망쳤다. 두 그릇의 술은 엎질러져 그의 가슴에 쏟아졌다.
평일지는 말했다.

[영호 공자, 당신은 이 병을 철저하게 다스려야 하오. 설령 대라금선(大羅金仙)일지라도 아마 치료할 수 없을 것이오. 그러나 수개월 수년 동안 생명을 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오. 그러나반드시 나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수을 끊어야 하고 둘째로는 반드시 마음을 수습하고 여자는 절대로 가까이 할 수 없으며 가까이 하는 것은 고사하고 생각조차 함녀 안 되오. 세번째는 절대로 무예를 겨루지 마시오. 색을 멀리하고, 싸움을 안 하고, 술을 끊을 수 있다면 일이 년 동안 생명을 연장 시킬 수 있소.]

영호충은 껄껄 웃었다.
평일지는 화가 나서 말했다.

[뭐가 그리 우습소?]

영호충은 말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 때 슬픈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는데 술조차 마실 수 없고 여자도 생각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못살게 굴어도 손을 쓸 수가 없다면 그게 무슨 사람이오? 그럴 바에는 일찍 죽는게 낫고 그것이 대장부의 떳떳한 행동입니다.]

평일지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반드시 당신이 그 세 가지를 끊도록 만들고 말겠소. 만약 내가 당신의 병을 치료할 수 없다면 내 명성이 끝장나는 것이 아니오?]

영호충은 손을 내밀어 그의 오른쪽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평 선생님, 당신의 호의에 이 후배는 감격하고 또 감격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정해져 있는 법, 선배님의 의술이 비록 정통하고 정묘하다곤 하나 죽어야 할 사람을 살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설령 내 병을 치료할 수 없다 해도 선생님의 명성은 추호도 손실을 입지 않을 것이오?]

덜커덕 문 여는 소리가 나며 또 한 사람이 머리를 내밀고 들어왔다.
그 사람은 도근선이었다.

[영호충, 자네는 병을 치료했나?]

영호충은 말했다.

[평 대부께선 의술이 정묘하셔서 내 병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소.]

도근선은 말했다.

[잘 됐어! 정말 잘 됐어!]

그리고 들어와 그의소매를 잡고 말했다.

[술 마시러 나가세! 나가서 술을 마시세!]

영호충은 평일지에게 깊게 읍을 하며 말했다.

[선배님의 성의에 감사드립니다.]

평리지는 인사도 받지 않고 입 속으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도근선은 말했다.

[내가 애당초 말하지 않았나? 틀림없이 치료할 수 있다고. 그는 살인명의니까 그가 한 사람을 치료해 낫게 하면 반드시 한 사람을 죽이는데 만약 그가 한 사람을 치료해도 낫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그 경우는 정말 알쏭달쏭해.]

영호충은 말했다.

[함부로 말씀하지 마시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초막을 걸어나왔다.
사방에서는 호걸들이 모여 술을 통쾌하게 마시고 있었다. 영호충은 가면서 사람들의 술잔을 받고 건배를 했다.
여러 군웅들은 그의 성격이 호탕하고 주량이 많음을 알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속으로 더욱 그를 좋아했다.
모두들 말했다.

[영호 공자는 과연 호기가 하늘을 찌르고 우리들로 하여금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영호충은 연속 십여 그릇의 술을 마셨다. 갑자기 평일지가 듣도록 한 그릇의 술을 들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오늘 술이 있으면 취해 버려라! 있는 족족 마셔버려라!]
그리고 초막으로 걸어들어오며 말했다.

[평 선배님, 저는 당신과 한 잔하고 싶습니다.]

등불 아래 평일지의 모습은 크게 변해 있었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술기운이 싹 가셨다.
자세히 그를 보니 원래 새까맣던 그의 머리가 백발처럼 하얗게 되었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깊게 패어져 있었다. 이 몇 시간 동안 몇십 년이나 늙어 보였다.
그가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람을 낫게 하면 한 사람을 죽여 왔는데 사람을 치료해주지 못했으니 나는 어찌해야 할까? 나는 사람 하나를 치료하지 못했으니 어찌 할건가?]

영호충은 뜨거운 피가 올라와 큰 소리로 외쳤다.

[영호충은 목숨이 무슨 가치가 있읍니까? 선배님은 마음속에 두지 마십시오!]

평일지는 말했다.

[사람을 낫게 하지 못했으니 내 목숨을 끊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살인명의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는 몸을 갑자기 일으키더니 몸을 몇번 비틀거렸다. 새빨간 피를 토해대더니 땅바닥에 쓰러졌다.
영호충은 크게 놀라 급히 가서 그를 부축하니 그의 호흡은 이미 멈추었고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영호충은 그를 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토막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게 괴었고 마음속에 처량한 생각이 가득 찼다. 잠시 서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었다. 평일지의 시신을 손에 들고 있으니 갈수록 무거워져 그르 안을 힘이 없어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갑자기 초막 안으로 누가 들어오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영호 공자.]

영호충이 보니 조천추였다. 영호충은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 선배님, 평 대부께서 죽었읍니다.]

조천추는 이 일에 대해 마음에 두고 있지 않은 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

[영호 공자, 제가 부탁할 일이 한 가지 있읍니다. 누가 물어보면 영호 공자께선 이 조천추를 본 적이 없다고 해주십시오. 부탁이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물었다.

[그건 왜요?]

조천추는 말했다.

[뭐 별것이 아닙니다. 단지...... 단지...... 음,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그가 막 초막 밖으로 나가자 또 한 사람이 들어왔는데 바로 사마대였다.
사마대는 말했다.

[영호 공자 전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아...... 만약 어떤 사람이 오패강에 모인 사람이 누구누구였느냐고 물어본다면 공자께서는 제 이름을 절대로 대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 죽어도 잊지 않겠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건 또 왜 그러시오?]

사마대는 안색이 나처해지며 어린애가 죄를 저질러 사람에게 목덜미를 잡힌 것처럼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이건...... 이건......]

영호충은 말했다.

[이 영호충은 각하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감히 친할 엄두도 내지 않겠읍니다.]

사마대는 얼굴색이 변하더니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말했다.

[공자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려면 저를 죽여주십시오. '절대로 오패강에서 있었던 일들을 없는걸로 해주십사' 부탁한 것은 그분이 알면 화를 내실까봐 그랬던 것인데 공자께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아까 제가 말씀 드린 말은 제가 헛소리를 한 것으로 여겨 주십시오.]

영호충은 급히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사마도주께선 어찌 이런 행동을 하십니까? 도주님, 말씀 좀 해주십시오. 당신이 오패강에 와서 저를 환대해준 것을 보고 어찌 도주께서 조금 전 말씀하신 그분이 화를 내신다는 말이오?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영호충을 미워한다면 이 영호충이......]
사마대는 연신 손을 흔들며 말했다.

[공자의 말씀은 갈수록 말이 되지 않는군요. 그분은 공자를 너무나 좋아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어째서 미워한다고 하십니까? 정말 이 소인이 저속한 사람이라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어지되었든 사마대는 당신과 같은 친구를 사귀었으니 앞으로 당신이 무슨 부탁이라도 하시고 싶으시면 소식이나 전해주십시오. 그러면 불 속에 들어가라면 들어갈 것이고, 물 속에 들어가라면 물 속에 들어갈 것입니다. 만약 사마대가 눈쌀을 찌푸린다면 내 조상들이 모두 후레자식입니다.]

그리고 가슴을 툭치더니 큰걸음으로 나갔다.

영호충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열성으로 나를 대해 주는데 어째서 그가 오패강에 와서 나를 대하는 것 때문에 그 사람이 화를 낸다는 것일까? 또 화를 내는 사람이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나를 좋아한다니 천하에 이와 같은 이상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만약 정말로 나를 좋아 한다면 이 많은 사람과 사귀는 것을 그는 응당히 기뻐해야 할 터인데......)

그는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맞다! 그 사람은 틀림없이 정파의 선배일 것이다. 나를 심히 사랑하고 좋아하므로 내가 엉뚱한 짓을 하고 사악한 행동을 하는 이자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은 풍 태사숙이 아닐까? 하지만 사마도주와 같은 사람들과 뒤끝이 개끗한 사람들인데 어떤 점이 안 좋을까?)

그때 초막 밖에서 가벼운 기침소리가 들리더니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영호 공자.]

영호충은 황백류의 목소리임을 알고 말했다.

[황 방주, 들어오시지요.]

황백류는 초막 안으로 들어오더니 말했다.

[영호 공자, 밖에 몇 분의 친구들이 영호 공자께 말씀을 전해달라고 합니다. 그들은 급한 일이 있어 반드시 즉시 돌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영호 공자께 친히 인사 말씀을 못 드리니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용서라니요?]

이때 밖에서 떠들썩하는 소리가 나더니 금새 조용해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떠난 것 같았다.
황백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일은 정말 내가 너무 경솔했읍니다. 모두들 이렇게 모인 것은 호기심 때문에고 두번째는 정중하게 모시려고 했는데 그분이 그렇게 싫어하는 줄은 몰랐읍니다. 우리들은 모두 경거망동하는 사람이라 아무 것도 모릅니다. 남교주, 묘족의 아가씨들은......]
영호충은 그의 말이 앞뒤가 안 맞자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황 방주께선 지금 나보고 그 사람에게 오패강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말라고 하시고 싶으시지요?]

황백류는 멋적게 웃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시치미를 뗄 수 있어도 황백류는 시치미를 뗄 수 없으비낟. 천하방이 오패강에서 공자를 접대했다는 말은 누가 뭐래도 승인을 하겠읍니다.]

영호충은 '흥' 하고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술 한 잔을 대접했는데 그것이 무슨 용서받지 못할 큰일입니까? 남아대장부가 무슨 시치미를 떼고 시치미를 떼지 않는단 말이오?]

황백류는 급히 웃음을 띄고 말했다.

[고앝께선 절대 그런 마음을 품고 계시면 안 됩니다. 아! 이 늙은이는 날 때부터 이런 괴퍅한 성격을 타고 태어났지요. 만약에 저의 마누라나 그렇지 않으면 내 손녀에게 물어보십시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사지 않습니다. 아마 가족들도 모를 것입니다. 아! 그리고 이 못난 사람이 열일곱 살 때 마누라를 얻었는데 단지 마누라의 명이 짧아 너무 일찍 죽었지요. 그래서 여인네들이 무슨 마음을 갖고 있는지 조금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들은 정파 인물이 아니고 사악한 무리라고 했는데 어쩐지 이 사람은 횡설수설하여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구나. 그가 나에게 술대접 한 것을 마누라, 손녀에게 물어보라는 것인가? 그런데 자기 마누라가 일찍 죽엇다고 하고 있다니!)

황백류는 또 말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별 수 없지요. 공자, 당신은 벌써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고 말씀 좀 해주십시오. 나하고는 오십 년 동안 사귄 오랜 친구 사이라고 하면 어떨가요? 아, 아닙니다. 저와는 십년 정도의 교분을 갖고 있다고 말씀 좀 해주십시오. 당신이 열다섯 살 때 이 늙은이와 도박도 하고 술도 마셨다고요.]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여섯 살 되던 해에 당신과 도박도 하고 술도 먹었다고요? 저는 스무 살이지 스물다섯 살이 아닙니다.]

황백류는 영호충이 말투가 자기를 힐난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공자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다만...... 다만 이 황모라는 사람은 이십년 전부터 못된 짓을 골라가며 했고 하는 행동은 차마 사람으로선 하지 못할 짓들만 했읍니다. 공자께서 어찌 이런 저와 친구로 사귀셨겠읍니까? 아, 이건...... 이건......]

영호충은 말했다.

[황 방주께서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말씀하시니 정말 광명정대 하시군요. 제가 오십년 전에 당신과 같은 친구를 사귀어야 했는데.]

황백류는 크게 기뻐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녜 녜.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십년 전의 친구이지요!]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공자께선 몸을 중히 여기십시오. 당신의 마음씨가 좋으시니 지금은 병이 있으나 결국은 나을 것입니다. 하물며 거룩하시고...... 성(聖)...... 신통광대(神通廣大)...... 아이쿠!]
큰 소리를 한번 지르더니 고개를 돌리고 나갔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무엇이 성...... 성...... 신통광대인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이때 말발굽 소리가 멀어져 가고 떠들썩하던 소리가 뚝 끊겼다.
그는 평일지의 시체를 멍청하게 한참 쳐다보고 초막에서 나왔다.
사방은 조용하고 한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여기 모인 호인들이 술을 마시고 떠들썩하게 굴다가 삽시간에 깨끗이 사라질 줄은 몰랐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사부님! 사모님!]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는 다시 외쳤다.

[둘째 사제! 세째 사제! 소사매!]

여전히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반달은 비스듬히 하늘에 걸려 있고 바람 한 점 없었다. 이 큰 산에는 오로지 그 한 사람뿐이었다. 눈 앞에는 온통 술주전자와 그릇과 접시, 그밖에 모자, 외투, 허리띠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많은 호걸들은 급히 사라지느라고 자기 물건조차도 정돈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더욱 이상했다.

(그들은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사라졌을까? 무슨 홍수나 맹수가 엄습해 와 빨리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인가? 이 사람들은 하늘도 땅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던데 어째서 갑자기 담들이 콩알만하게 변했을까? 정말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구나! 사부님, 사모님, 소사매, 그들은 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이냐? 만약 이곳에서 무슨 위험이 부딪쳤다면 어째서 나에게 한 마디도 가뜸해 주지 않았을까?)

마음속엔 한줄기 처량한 기운이 맴돌았다. 이 천지는 크지만 한 사람도 자기의 안위에 관심을 두거나 자기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어째서 쥐새끼조차 보이지 않는 걸까? 또 사부님 사모님처럼 친한 사람들조차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자 외로움이 사무쳤다.
가슴이 쓸쓸해지자 체내에 있던 몇가닥의 진기가 복받쳐 올라왔다. 몸이 기우뚱하더니 벌렁 쓰러졌다. 일어나려고 발버둥쳐봐도 조금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서 잠깐 쉰 다음 두번때 다시 몸을 지탱해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힘을 너무 써서 귓속에서 웅 하는 소리가 나더니 눈앞이 캄캄해지며 기절해 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가물가물한 속에서 귓가에 비파(琶)를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귀를 기울이자 그 소리는 더욱 우아하게 들려왔다.
흩어졌던 마음이 다시 평정이 되었다. 바로 낙양성 할머니댁에서 연주하던 청심보선주라는 곡(曲)이었다. 영호충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가 한 개의 작은 섬을 발견한 것처럼 정신이 번쩍들어 벌떡 일어설 수가 있었다. 금소리는 초막 안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소리나는 곳으로 향했다. 초막의 문은 꼭 잠겨져 있었다.
그는 초막에서 예닐곱 보의 거리까지 다가가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이 금소리를 들으면 낙양성 녹죽골목에 계시던 그 할머니가 오신 것 같은데 낙양에 있을 때 그녀는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려했는데 이번에 내가 그분의 허락을 받지 않고 함부로 문을 밀치고 들어갈 수는 없지?)

그는 즉시 몸을 숙이고 말했다.

[영호충이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금소리는 몇번 울리더니 소리가 멈췄다. 영호충은 그 금소리에서 마치 위안의 뜻이 충만된 것 같고 그 곡을 듣자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고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자기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고 느끼고 감격한 나머지 가슴 속에는 뜨거운 격정이 솟아올랐다.
갑자기 멀리서 어떤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금을 타는 사람이 있구나! 어떤 사악한 무리가 없어지지 않았는가?]

또 한 명의 매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악하고 요망하고 간악한 것들이 감히 하남(河南) 땅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구나! 그런 행위는 우리를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음이다.]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더욱 소리를 높여 일갈했다.

[어떤 요망하고 쥐새끼 같은 자들이 이 오패강에서 떠드는지 모두 이름을 밝혀라!]

그의 기는 충만하고목소리는 사방을 뒤흔들었다.
위세가 당당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그래서 사마대, 황백류, 조천추 등이 무서워 도망을 친 것이구나! 정말로 정파의 고수들이 이곳으로 도전하러 온 것이야!]
사마대, 황백류 등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남아대장부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모두를 벌벌 떨게 했으니 틀립없이 무공이 높은 선배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나에게 묻는다면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먼저 몸을 피하는게 좋겠다.)

그는 즉시 초막 뒤로 몸을 숨겼다.

(초막 안에는 할머니 혼자 계시니 그들은 절대로 그분을 괴롭히지 않을 거야.)

이때 초막 안의 금소리는 이미 멈추었다.
발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며 세 사람이 산 위로 올라왔다.
세 사람은 산 위에 올라 모두 어! 어! 하고 탄성을 질러댔다.
틀림없이 산이 적막하고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 듯했다.
목소리가 우렁찬 사람이 말했다.

[쥐새끼 같은 놈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목소리가 가냘프고 약한 사람이 말했다.

[그들은 소림파(少林派)의 두분 고수께서 그들을 싹 쓸어버리려고 한다는 소리를 듣고 꼬리를 감춘 것이겠지요.]

또 다른 한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과찬이시오! 과찬이시오! 그들은 곤류파의 담형(譚兄)의 명성을 듣고 도망쳤을거요.]

세 사람은 일제히 크게 웃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원래 두 사람은 소림파의 사람이고 한 사람은 곤륜파의 사람이구나! 소림파는 당나라 초기부터 무림을 이끌어왔고 소림일파만 해도 그 명성은 우리 오악검파 연맹보다 더욱 높고 실력은 가공하여 비교할 수도 없다. 소림파 장문인인 방증대사(方證大師)는 이 무림에서 모두 어러러보는 인물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시길 곤륜파의 검법은 독특하여 천하를 위진시킨다고 했는데 이 두 파의 사람들이 연합했으니 정말 위세가 대단할 것이다. 아마 이들 세 사람은 먼저 앞장서서 당도한 것이고 뒤에는 많은 응원부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부님과 사모님은 어디로 몸을 피하셨을까?)
잠시 골똘이 생각하자 금방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맞다! 내 사부님은 명문정파의 장문인으로서 그 황백류 등과 함께 어울리는 꼴을 소림이나 곤륜파의 고수들에게보이기가 창피했겠지. 그것은 난처한 일이었을 것이다.)

곤륜파의 담가가 말했다.

[조금 전 이 산에서 금소리를 들었는데 그 사람은 또 어디로 숨었을까? 신(辛)형, 역(易)형, 여기엔 다른 곡절이 있지 않을까요?]

목소리가 우렁찬 사람이 말했다.

[맞습니다. 담형은 세심하군요. 우리 한번 찾아보고 목을 잡아 끌어냅시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신 사형, 우리 초막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영호충은 이 말을 듣고 그 사람의 성이 역씨라는 것을 알았다.
목소리가 우렁찬 신씨 성을 가진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의 사형인 모양이었다.
역씨 성을 가진 사람이 초막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초막 안에서 청아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자 혼자 있는 방이니 야밤에 남녀가 함께 있는 것은 온다치 못해요.]

그 신씨성을 가진 사람이 말했다.

[여자이구먼!]

역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말했다.

[조금 전 당신이 금을 탔소?]

그 할머니는 말했다.

[그렇소.]

역씨 성을 가진 자가 말했다.

[한번 더 타보시지 않겠소?]

그 노파는 말했다.

[평소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인데 어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금을 탈 수 있겠소?]

신씨 성을 가진 자가 말했다.

[흥! 그게 뭐가 대수요? 여러 상황을 살펴보니 틀림없이 토막 안에서 튼 일이 벌어진 것 같으니 우리 들어가 봅시다.]
역씨 성을 가진 자가 말했다.

[당신이 금방 홀몸의 여자라고 했는데 늦은 시간에 이곳 오패강에 올라와 무엇을 하고 있소? 십중팔구는 그 요귀들과 동행인 것 같은데 우리가 들어가 수색을 해야겠소.]

말하면서 큰 걸음으로 초막을 향해 들어갔다.
영호충은 몸을 드러내 천막문을 막고 일갈했다.

[잠깐!]

그 세 사람은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모두 놀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년 하나가 앞을 막아서자 별로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
신씨 성을 가진 자는 큰 소리로 일갈했다.

[소년은 누군가? 이 컴컴한 곳에 쥐새끼처럼 숨어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화산파의 영호충이올시다. 소림파 곤륜의 선배님들께 인사 드립니다.]

그리고 세 사람을 향해 읍을 했다.
역씨 성을 가진 자가 콧방귀를 흥! 뀌더니 말했다.

[흥! 화산파의 사람이구만! 자네는 이곳에 무엇하러 왔는가?]
영호충은 신씨 성을 가진 사람을 바라보았다. 몸은 비록 크지 않지만 가슴이 앞으로 튀어나와 북 같아 보였다. 그래서 목소리가 그렇게 우렁찼던 것이다.
또 다른 중년 남자와 함께 몸에는 붉은 색의 장포를 입고 있었다. 그자는 역씨 성을 가진 자와 동문인 모양이라고 생각되었다.
곤륜파의 담씨 성을 가진 자는 어깨에 검을 차고 헐렁한 옷과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대담해 보였고 호탕하게 생겼다.
역씨 성을 가진 자는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또 물었다.

[너는 정파의 제자인데 어찌하여 이 오패강에 와 있는가?]
영호충은 그들이 쥐새끼라는 욕을 마구해대 마음이 캥겼는데 그의 말을 듣자 약이 올라 말했다.

[세 분 선배님도 정파의 사람인데 역시 이 오패강에 와 있지 않습니까?]

담씨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말 한 번 잘 했네! 자네는 초막 안에서 금을 타는 여인을 알고 있는가? 그 여자는 누군가?]

영호충은 말했다.

[그분의 나이가 많고 이 세상 일에 개의하지 않는 노파이십니다.]

역씨가 질문했다.
[무슨 말을 하는거냐? 이 여자의 음성을 들어보건대 나이가 젊은데 무엇이 노파고 할머니란 말인가?]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이 노파께선 목소리가 좋을 뿐인데 그것이 뭐 그리 신기하다는 것이오. 그녀의 조카는 당신보다도 이삼십 세는 더 먹었을 것이오. 그러니 이 할머니의 나이는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겠소?]
역씨 성을 가진 자가 말했다.

[비켜라! 우리가 들어가 살펴보겠다.]

영호충은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할머니께서 말씀하시지 않던가요? 밤늦은 시간에 남녀가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녀는 당신들과 평소 알지 못하는데 아무 이유없이 들어간다고 하십니까?]

역씨 성을 가진 자는 영호충이 아무 힘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고 뜻밖이라 몸을 움찔하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너는 화산파의 제자라고 하는데 그 말은 허풍인 것 같구나.]
그리고 초막으로 향했다.
영호충은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돌에 부딪쳐 한 줄기의 피가 줄줄 흘렸다.

[할머니는 당신들과 만나기를 원하시지 않는데 당신들은 어찌 그리 무례하오? 낙양성에 있을 때 나는 할머니와 며칠 동안 말을 했는데도 얼굴을 한번도 뵙지 못했오.]

역씨 성을 가진 자가 말했다.

[이놈아! 너는 위도 없고 아래도 없구나! 한번만 더 입을 놀리면 다시 또 내동댕이 칠 것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소림파는 무림의 정파인데 틀림없이 두 분은 소림파에서 환속한 고수들이라고 사료됩니다. 또 이 분은 틀림없이 곤륜파에서 이름이 혁혁한 사람인 것 같은데 이 야밤중에 일개 노파를 우롱하려고 하니 이 어찌 강호의 영웅호걸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소?]
역씨 성을 가진 자는 말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이 정말 말이 많구나!]

왼손을 내밀어 영호충의 왼쪽뺨을 세게 후려쳤다.
영호충은 비록 내력은 없어졌지만 그의 왼쪽 어깨가 움직이는 것을 보자 그의 왼손이 공격하리라 생각하고 급히 몸을 피했다.
그러나 허리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피할 수 없었고 금방 눈앞이 캄캄해지며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신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말했다.

[역 사제, 이 녀석은 무공을 모르는데 이 사람과 똑같이 될 필요가 있겠소? 사악한 무리가 이미 가고 없으니 우리도 갑시다.]
역씨 성을 가진 자가 말했다.

[노, 예, 지방에 사악하고 요망한 무리들이 갑자기 이 오패강에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으니 모이는 것도 이상하고 흩어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소? 이 일을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 없소. 방안에서 어떤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소.]

그리고 초막의 문을 열려고 했다.
영호충은 몸을 일으켰다. 손에는 장검이 들려져 있었다.

[역 선배님, 이 안에 계신 어르신은 제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읍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 이상 당신들이 그녀를 우롱하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오.]

역씨 성을 가진 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무엇을 가지고? 그 손에 들린 장검을 가지고 하겠냐?]
영호충은 말했다.

[저의 무예는 미밈하기 짝이 없읍니다. 어찌 소림파의 고수와 대적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나 세상만사는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요. 당신들이 이 초막 안에 들어가기 전에 나를 먼저 죽이시오.]

신씨 성을 가진 자가 말했다.

[역 사제, 이 놈은 퍽 뚝심도 있고 배짱이 있는 사내대장부 같소이다.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시오.]

역씨 성을 가진 자가 웃으며 말했다.

[듣건대 너희 화산파의 검법은 독특하고 오묘하다고 들었다. 검종과 기종이 있다던데 너는 기종에 속하는 사람이냐. 검종에 속하는 사람이냐? 그렇지 않으면 똥종의 사람인가? 하하하! 하하하!]
를 따라 신씨 성을 가진 자와 담씨 성을 가진 자도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
영호충은 낭랑히 외쳤다.

[강함에 의지해 난폭하게 구는 것을 어찌 명문정파라고 하겠소? 당신들이 소림파 제자입니까? 아마 허풍인 것 같습니다.]
역씨 성을 가진 자가 노해 우측 손바닥을세우더니 영호충의 가슴을 치려고 했다. 이 일 장이 영호충의 가슴에 닿기만 하면 영호충은 즉시 죽어야 했다.
신씨 성을 가진 자가 말했다.

[잠깐! 영호충! 명문정파의 제자는 다른 사람들과 무예를 겨루지 못한단 말인가?]

영호충은 말했다.

[정파의 사람들은 손을 쓸 때 어떤 명분이 있어야 하오.]
역씨 성을 가진 자가 천천히 손바닥을 거두며 말했다.

[셋을 셀 동안 피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의 갈비뼈를 세 대 부러뜨리겠다. 하나!]

영호충은 웃었다.

[갈비뼈 세 개가 부러진데도 그것이 무슨 대수이겠읍니까?]
역씨 성을 가진 자가 큰 소리로 수를 셌다.

[둘!]

신씨 성을 가진 자가 말했다.

[나의 사제는 한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네. 빨리 옆으로 비켜서게나.]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나의 주둥이도 한번 한다면 하는 물건이오. 영호충은 아직 죽지 않았는데 어찌 비켜서서 당신들이 무례하게 구는 것을 보고 있겠소?]

이 말이 끝날 때 쯤이면 역가가 공격해오리라 생각하고 기를 오른 팔목에 모아 놓았다. 그러나 가슴에 혹독하게 아픔을 느꼈고 눈 앞에는 수천 수만 개의 불빛이 너울너울 춤추는 것 같았다.
역씨 성을 가진 자가 일갈했다.

[셋!]

그리고 왼발을 한 걸음 내디뎠다. 영호충이 초막문을 막고서 잔잔한 미소를 띄우는 것을 보자, 비켜서지 않을 것임을 알고 오른손 장력을 내뻗었다.
영호충은 상대방의 장력이 엄습해오자 호흡을 멈추었다. 손에는 장검을 빼어들고 그의 장심을 겨누었다. 이 일검의 방향과 시간은 딱 들어맞아 역씨 성을 가진 자는 오른손 장력을 내뻗은 후 금방 거둘 수가 없어 싹 하는 소리와 함께 아 하는 신음소리를 질렀다.
장검의 끝은 그의 장심을 직통한 것이었다. 또 싹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나며 손바닥에서 검날이 빠져나갔다. 순간 역가는 상처를 깊이 받고 수장 밖으로 물러섰다. 그는 왼손으로 장검을 뽑아들며 노해 부르짖었다.

[이놈이 멍청한 척 가장을 했구나! 알고보니 무공이 상당히 높은 놈이야! 내...... 내가 네놈하고 사생결판을 하겠다.]
신, 역, 담 세 사람은 모두 검을 잘 쓰는 고수였다. 눈 앞의 영호충이 장검을 쳐올리자 별다른 초식도 쓰지 않고 오로지 방향과 시간을 잡아 상대방의 장력이 그의 검끝에 오도록 유도하는 것을 보자 검법의 조예가 최고의 경지를 이룬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씨 성을 가진 자는 비록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경망하게 적을 대할 수 없어 왼손에 검을 들고 싹싹싹 연속 삼검을 찔러냈다.
그러나 모두 적을 시험삼아 찔러보는 헛초였다. 일초의 검이 중도에서 다시 들어갔다.
그날 영호충이 약왕묘에서 열다섯 명의 고수들의 두 눈을 찔렀을 당시에는 내력은 비록 없었지만 오늘처럼 연속 몇차례 탈진한 상태가 아니었다. 지금은 거의 팔과 검을 들 수가 없어 마음대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역씨 성을 가진 자가 연속 세차례 허초를 쓰는 것을 살펴보니 검끝을 부단히 움직였다. 틀림없이 소림파에서도 몇번째 가는 검법의 소유자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대적하고 싶지 않아 말했다.

[저는 절대로 세분 선배님께 도전할 생각은 없읍니다. 단지 세 분께선 이곳을 떠나주십시오. 그럼...... 그럼 저는 진심으로 사죄를 하겠읍니다.]

역씨 성을 가진 자가 코방귀를 '흥' 하고 뀌더니 말했다.

[살려달라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그리고 장검을 질풍처럼 뻗어 영호충의 목을향했다. 영호충은 행동이 불편해 이 일검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즉시 검을 들어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가 나며 상대의 왼손에 있는 혈도를 적중시켰다.
그 역씨 성을 가지 자는 손가락을 펴며 장검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이때 동쪽에선 아침햇살이 서서히 비추고 있었다. 그는 자기 팔뚝에서 새빨간 피가 한방울 풀잎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 세상에 이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믿어지지 않았다. 한참 멍청히 있더니 한숨을 쉬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 그 신씨 성을 가진 사람은 원래부터 화산파 사람과 원한을 사고 싶지 않았고 또 영호충의 이 일검이 정묘하고 절륜했기 때문에 자기가 절대로 적수가 아님을 알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제의 안위가 걱정되어 말했다.

[역 사제.]

그 사람도 자기 사제를 따라가 버렸다.
담씨 성을 가진 사람은 옆눈으로 영호충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말했다.

[각하께선 정말로 화산파의 제자입니까?]

영호충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네, 바로 그렇습니다.]

그 담씨 성을 가진 자는 그가 몸에 깊은 상처가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비록 검은 절묘하나 잠시만 기다리면 공격할 필요도 없이 그는 자기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며 그러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는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자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 이 화산파의 제자 때문에 소림파의 고수가 하나는 상처를 입고 하나는 의기소침해 떠나갔다. 내가 만약 이 자를 사로잡아 소림사로 데려가 장문인인 방증대사에게 보인다면 소림파에서 큰 인정을 얻고 곤륜파는 무리에서 크게 이름을 떨칠 것이다.)
그는 한 걸음 내디디며 웃었다.

[소년,당신의 검법은 괜찮은 것 같소이다. 그렇다면 나하고 권법과 장력으로 대결해 봅시다. 어떻소?]

영호충이 그의 표정을 살펴보니 이미 자기의 처지를 눈치챈 것 같았다.
이 사람은 간교하기 작이 없었지만 조금 전 역씨 성을 가진 자가 더욱 얄밉게 생각되었다.
영호충은 검을 들어 그의 어깨를 향해 찔러갔다. 검이 중도에 갔으나 팔에는 힘이 없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장검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담씨 성을 가진 자는 크게 좋아하며 퍽 하니 일장으로 영호충의 가슴을 쳤다.
영호충은 으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새빨간 피를 입에서 토해냈다.
두 사람의 거리는 상당히 가까워 입 속에서 나온 선혈은 담씨 성을 가진 자의 얼굴에 뿌려졌다.
그 피는 얼굴에 뿌려졌고 몇방울은 그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담씨 성을 가진 자는 입 속에 비린내를 맡았으나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영호충이 검을 들어 반격할까봐 오른손을 들어 또 일장을 치려고 할 때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져 오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영호충은 그가 위급할 때 쓰러지는 것을 보자,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그의 얼굴에 한 줄기 검은 빛이 나타나더니 살과 근육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떨고 있었다.
그 모양은 괴이하고 무서웠다. 영호충은 중얼거렸다.

[당신은 내공을 잘못 쓴 모양이군. 당신은 스스로를 책망하시오.]

사방을 둘러봐도 오패강에는 한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나뭇가지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으며 땅바닥에는 술그릇들과 병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런 상황은 차마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이 고적했다.
그는 옷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할머니, 그 동안 존체만안하옵시고 별고 없으신지요?]
그 할머니는 말했다.

[공자,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니 앉아 몸이나 쉬시게.]
영호충은 정말로 온몸에 힘이 숙 빠져 움직일 수 없어 그녀의 말에 따라 앉았다.
초막 안에서 금소리가 가볍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 음률은 마치 한 줄기 깨끗한 샘물이 자기 몸을 천천히 씻기고 천천히 사지와 뼈 마디마디를 씻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온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겼다. 몸이 둥실둥실 떠서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 같고 솜처럼 푹신푹신한 흰 구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자 금소리는 갈수록 낮아져 결국은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더니 이윽고 소리가 멈추었다.
영호충은 정신이 맑아지자 몸을 일으키고 깊이 읍을 하며 말했다.

[할머니의 연주가 많은 도움을 주었읍니다. 오늘 저녁 저의 몸은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그 노파는 말했다.

[자네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적을 막아주고 나를 못된 놈의 손아귀에서 능욕을 당하지 않게 했으니 오히려 내가 자네에게 감사를 해야지.]

영호충은 말했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것은 응당 제가 할 일이었읍니다.]

그 노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가벼운 금소리가 딩동딩동 들려왔다. 마치 손으로 금을 타면서 내심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듯했고 무슨 일인가 말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물었다.

[자넨...... 자네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영호충은 갑자기 가슴 한복판에서 뜨거운 피가 올라왔다. 천지가 비록 넓다고 하나 결국 자기는 갈 곳이 없지 않은가? 그는 연속 기침을 해대더니 가까스로 기침을 멈춘 다음 비로소 말했다.

[전...... 전 갈곳이 없습니다.]

그 노파는 말했다.

[자네는 자네 사부와 사모님을 찾아가지 않겠나? 자네의 사제를 찾아가지 않고 사...... 사매...... 그들을......]

영호충은 말했다.

[그들은...... 그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읍니다. 저의 상처가 깊으니 그들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찾는다 해도......
움!]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 생각했다.

(찾았다 해도 어찌할텐가? 그들은 내가 필요치도 않을텐데......)

그 노파는 말했다.

[자네는 상처가 가볍지 않으니 어디 경치가 좋은 곳에 가서 산과 물을 벗삼아 마음속의 회포나 풀지 않겠는가? 왜 억지로 고생을 사서 한단 말인가?]

영호충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의 말씀이 옳습니다. 영호충은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는 여기서 헤어져서 하산하여 세상구경이나 하러 다니겠읍니다.]

그리고 초막을 향해 읍을 하더니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가 세 발자국을 옮길 때 그 노파가 말했다.

[자네...... 자네는 지금 가겠는가?]

영호충은 우뚝 서서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 노파는 말했다.

[자네의 상처는 가볍지가 않네. 홀몸으로 갈 수가 없네. 여행도중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영호충은 그 노파의 말 속에 자기를 생각하는 지극한 정이 담겨져 있는 것을 알고는 또 다시 마음이 뭉클해졌다.

[정말로 할머니의 성의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상처는 다스릴 수 없읍니다. 일찍 죽든 늦게 죽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읍니까?]
그 노파는 말했다.

[음! 공자의 뜻은 그렇군! 그러나...... 그러나......]
그녀는 한참동안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자네가 가 버리면 그 두 명의 소림파 악당들이 또 와서 떠들어댈텐데 그때는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이 곤륜파의 담씨 성을 가진 자가 일시적으로 혼절했지만 정시닝 든 다음 또 나를 귀찮게 굴면 어떡하지?]

영호충은 말했다.

[할머니, 어디로 가시겠읍니까? 어디로 가실지 제가 어느 정도 호위를 해드리겠읍니다.]

그 할머니는 말했다.

[그것은 좋으나 이 사건에는 극히 해결하기 어려운 내막이 하나 있는데 자네까지 연루될까봐 걱정이 되는구만.]

영호충은 말했다.

[영호충의 생명은 할머니가 구해주셨는데 그 무엇이 연루되고 안 되고가 있겠읍니까?]

그 노파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나에겐 무서운 맞수가 하나 있었는데 낙양의 녹죽골목으로 찾아와 나를 못살게 굴었기에 이곳으로 피해 왔다네. 아마 얼마 있지 않아 또 뒤쫓아 올 걸세. 자네의 상처가 아직 치료되지 않았는데 그와 손을 쓸 수가 없으니 나는 단지 은밀한 곳을 찾아 잠시 난을 피하고 여러 고수들을 모은 다음 그와 빛을 청상하는 것이 좋겠네. 만약에 자네가 나를 호위한다면 첫째로 자네는 상처가 깊고 두번째로는 한 마리의 용처럼 펄펄한 소년이 나와 같은 늙은이와 함께 지내게 되는 격이지. 어쩌면 자네는 더욱 심심할꺼야.]
영호충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할머니께서 말못할 고민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런 작은 일이군요? 할머니가 가시는데까지 저는 할머니를 호송하겠읍니다. 하늘 끝인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이상 할머니를 모시고 갈 것입니다.]

그 노파는 말했다.

[이렇게 폐를 끼쳐도 될까? 정말 하늘끝 어디라도 나를 호송하고 가겠단 말인가?]

그말 속에는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늘 끝이고 지옥이라도 영호충은 할머니를 모시고 갈 것입니다.]

그 노파는 말했다.

[또 한 가지 어려운 것이 있는데......]

영호충은 말했다.

[또 무슨 어려움이 있읍니까?]

그 노파는 말했다.

[내 모습은 상당히 추하지. 누가 나를 보든지간에 한번 보기만 하면 모두 달아나 버린다네. 그래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그렇지 않았다면 그 세 사람이 초막에 들어오려고 할 때 그들을한번 만나본들 무슨 상관이 있었겠나? 자네는 나에게 약속을 하나 해야하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나를 쳐다보지 않겠다고. 나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으며 나의 몸 어디라도 볼 수가 없네. 더욱 나의 옷과 신발조차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네.]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할머님을 존경하고 있고 할머님이 제게 보여주신 관심에 감격하고 있읍니다. 할머님의 용모가 어떠한들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읍니까?]

그 노파는 말했다.

[자네가 이 일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자네 혼자 가보게나.]

영호충은 급히 말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대답을 하지요. 어떤 상황이든지 절대로 할머니를 쳐다보지 않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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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 제 3 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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