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42~52장

단차 | 2023.12.11 22:44:27 댓글: 2 조회: 240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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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장

도道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人之所惡, 唯孤, 寡, 不谷. 而王公以爲稱.

  

  故物, 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人之所敎, 我亦敎之.

 
 强梁者, 不得其死.

  

  吾將以爲敎父.

  

   

  도道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일一, 하나는 음과 양을 낳는다. 음과 양은 서로 작용하고 결합하여 셋이 되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지니고 양을 향하며, 음양이 융합되어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천하가 싫어하는 것은 고孤와 과寡와 불곡不谷인데, 왕이나 제후는 이것들을 자신의 호칭으로 쓴다.

  그러므로 만물 중에서 덜어내지만 도리어 이익이 되기도 하고, 보태지만 도리어 손해가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나를 이끌어주고, 나 역시 이렇게 다른 사람을 이끌어준다.

  강폭한 자는 죽어도 묻힐 곳이 없다.

  나는 이 말을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겠다.

   

   

  ― 한자 풀이

   

  二 이 음기와 양기를 가리킨다. 본래 도란 음과 양의 두 기氣가 결합된 통일체이다.

  三 삼 두 개의 대립된 것이 상호 결합하여 생성된 제3자를 가리킨다.

  沖 충 “서로 융합하다.”의 의미이다.

  父 부 ‘본本’이나 ‘시始’, 혹은 ‘규구規矩(표준)’ 등으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강폭한 자는 죽어도 묻힐 곳이 없다

   

  이 장은 노자의 우주생성론을 밝힌 글이다. 노자에 의하면, 우주만물의 근원은 바로 도道이다. 또 도는 본원本源이자 실질이며 독립적이고 유일무이한 것이다. 일一, 이二, 삼三은 도가 만물을 창조하고 생성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일一’은 곧 ‘도道’이고, 이 ‘도’로부터 음기와 양기로 이뤄진 이二가 형성되며, 다시 그 음기와 양기가 결합되어 제3자의 삼三이 생성되고, 그로부터 만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원론의 우주관은 이제 일원론의 우주관으로 발전되고 있다.

 

 43 장

‘불언不言’의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無有入於無間.

  

  吾是以知無爲之有益.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

  

 천하에서 가장 유약한 것이 천하에서 가장 굳센 것을 뚫을 수 있다.

  형태가 없는 것이 틈이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이로써 ‘무위’의 유익함을 알 수 있다.

  ‘불언不言’의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 적다.

   

   

  ― 한자 풀이

   

  無有 무유 ‘형태가 없는 것’을 말한다.

  希 희 “거의 모든 사람이 알지 못하다.”의 뜻으로 해석한다.

   
  굳센 것을 뚫을 수 있다.

  형태가 없는 것이 틈이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이로써 ‘무위’의 유익함을 알 수 있다.

  ‘불언不言’의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 적다.

   

   

  ― 한자 풀이

   

  無有 무유 ‘형태가 없는 것’을 말한다.

  希 희 “거의 모든 사람이 알지 못하다.”의 뜻으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형태가 없는 것은 틈이 없는 곳도 들어갈 수 있다

   

  사람들은 유약柔弱한 것을 단순히 약하고 볼품없다고만 생각한다. 노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범인凡人들의 평범한 생각들과 상이하다. 노자는 유약이야말로 천지만물이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며, 동시에 진정한 힘의 상징으로 인식한다. 그리하여 유약이란 ‘도道’의 기본적 표현이며 작용이다. 그에 의하면, 가장 유약한 것 자체에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내재해 있으며, 그리하여 가장 강하고 굳센 것도 그 유약한 것에 결코 저항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유약의 대표적 상징으로서의 물은 가장 유약한 것이지만, 그것은 능히 산과 들과 땅을 관통하고 뚫는다. 노자는 ‘유약’이 지니는 그 강력한 힘의 원천이 바로 ‘무위無爲’에 있다고 다시금 천명한다.

 


 44 장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을 면하게 되고, 그칠 줄 알면 위험하지 않게 된다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명예와 신체 중 무엇이 더 소중한가?

  신체와 재물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또 얻음과 잃음 중 어느 것이 더 나쁜가?

  재물을 지나치게 아끼면 반드시 크게 소비하게 되고, 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망한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을 면하게 되고, 그칠 줄 알면 위험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다.

   

   

  ― 한자 풀이

 
 得與亡孰病 “얻음과 잃음 중 어느 것이 더 나쁜가?”로 해석하고, 그 앞 구절은 “명예와 신체 중 무엇이 더 소중한가? 신체와 재물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많이 쌓아두면 반드시 크게 망한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을 면하게 되고 그칠 줄 알면 위험하지 않게 된다. 노자 처세론의 개괄이자 요체이다. 어떠한 사물이든 그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선을 넘게 되면 곧 쇠락으로 접어들게 되고, 그 정도가 심해지면 곧 멸망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오직 多藏, 많이 얻어 많이 쌓아두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꾸로 크게 망하는 길이다. 이는 비단 물질적
측면만 적용되는 진리가 아니다. 정신적 측면, 이를테면 명예욕이나 욕망 역시 그러하다.



  45 장

가장 뛰어난 웅변은 어눌한 것처럼 보인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靜勝躁, 寒勝熱.

  

  淸靜爲天下正.

  

  가장 완전한 것은 결핍된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쓰임은 끊어짐이 없다.

  가장 충만한 것은 비어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굽은 것처럼 보이고, 가장 교묘한 것은 서투른 것 같으며, 가장 뛰어난 웅변은 어눌한 것처럼 보인다.

  청정함은 소란함을 이겨내며, 한기寒氣는 열熱을 이긴다.17)

  

  17)이 부분을 躁勝寒, 靜勝熱로 표기한 판본도 있다.

   

  청정무위로써 비로소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 한자 풀이

 
 沖 충 ‘공허空虛’의 뜻이다.

  躁 조 ‘소란’으로 해석한다.

  正 정 정政과 통한다.

   

   

  ― 깊이 보기

   

  외형外形과 내재內在 사이에서

   

  이 글은 참다운 인격이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 외견상 나타나는 상황이란 때때로 실제 상황과 완전히 상반된다. 여기에서 ‘대성大成’, ‘대영大盈’은 본질이자 인격을 가리키며, ‘약결若缺’과 ‘약충若沖’, ‘약굴若屈’ 그리고 ‘약눌若訥’은 외부로 표현된 현상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노자는 완전한 인격이란 외형상 표현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재된 본질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힘주어 다시 역설한다.

 

 

 46 장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큰 불행은 없고, 탐욕을 부리는 것보다 큰 과실은 없다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矣.

  

 천하에 도가 있으면, 말을 멈추게 하여 그 말똥으로 밭을 비옥하게 한다.

  그러나 천하에 도가 없으면 전마戰馬가 전쟁터에서 태어나게 된다.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고, 탐욕을 부리는 것보다 큰 과실은 없다.

  그러므로 지족하는 사람은 영원히 만족한다.

   

   

  ― 한자 풀이

   

  却 각 “(말을) 멈추게 하다.”의 뜻이다.

  糞 분 ‘말똥’으로 해석한다.

  郊 교 교외의 ‘전쟁터’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지족知足하는 자는 영원히 만족한다

   

  이 글에서도 노자의 반전사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 노자는 참혹한 전쟁이 발생하는 주요한 요인을 통치자의 지나친 탐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결 방안으로 지족知足을 제시하고 있다. 구막대어욕득, 화막대어부지족咎莫大於欲得, 禍莫大於不知足.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고, 탐욕을 부리는 것보다 큰 과실은 없다.” 탐욕으로 가득 찬 위정자에게 던지는 노자의 경고이자 강렬한 항의이다.

  이제까지 ‘주마走馬’는 전마戰馬로 해석되어왔고 ‘분糞’은 경작耕作으로 해석되어왔다. 즉, “전마를 밭가는 데 썼다.”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전국시대 전답의 경작은 주로 사람이 끄는 쟁기를 이용하는 경작이었고 아직 가축에 의한 경작방식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당시 밭에 비료를 주는 방식으로는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 분변糞便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러므로 말의 배설물 역시 매우 좋은 비료였다. 따라서 주마이분走馬以糞 구절의 분糞은 ‘말똥’으로 보아 “말로 하여금 밭에 비료를 주게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말로 하여금 그 말똥으로 밭에 비료를 주게 한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각주마이분却走馬以糞의 ‘각却’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그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별도로 해석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말은 멈추어야 비로소 배설한다. 이 점을 연결하여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각却을 ‘멈추게 하다’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이렇게 하여 각주마이분却走馬以糞 구절은 “말을 멈추게 하여 그 말똥으로 밭을 비옥하게 한다.”로 해석한다.

  천하에 도道가 있다면 전쟁도 없고 그리하여 말도 농사에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어 태평세대를 구가할 수 있다. 그러나 도가 없다면 전쟁이 초래되어 말도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게 되어 결국 새끼도 죽고 필연적으로 사람도 죽어가고 결국 나라도 망해간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삶과 가장 구체적이고 가까운, 그리하여 가장 소박한 사례를 들어 비유하는 방식은 『도덕경』이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47 장

집 밖을 나가지 않고도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

   

   

   

  不出戶, 知天下.

  

  不窺牖,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집 밖을 나가지 않고도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

  창밖을 내다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를 본다.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알게 되는 것은 더욱 적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가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이름 지으며, 가만히 있어도 모든 일을 안다.

   

   

  ― 한자 풀이

   

  窺牖 규유 규窺는 “조그만 틈으로 보다.”의 의미이고, 유牖는 ‘창문’을 뜻한다.

  彌 미 ‘더욱’, ‘~할수록’으로 해석한다.

  不爲而成 불위이성 “가만히 있어도 모든 일을 안다.”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멀리 나갈수록 도리어 더욱 알지 못한다

   

  노자의 인식론을 밝힌 글이다. 노자는 단순히 외부적인 감각 경험에 의존해서는 사물의 본질을 충분히 인식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사물의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천명한다. 그것은 도리어 사람들을 혼란시킬 뿐이다.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알게 되는 것은 더욱 적어진다.” 역설이고, 역시 함축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사물에 대한 인식은 오직 내재하는 자성自省과 자기 수양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천하 만물의 변화와 발전 그리고 규율, 즉 천도天道를 깨닫게 될 수 있다.



 
 48 장

학문을 하는 자는 갈수록 꾸미려는 욕심이 늘어난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학문을 하는 자는 갈수록 욕심과 꾸밈이 늘어난다.

  도를 구하는 자는 갈수록 욕심과 꾸밈이 줄어든다.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마침내 무위의 경지에 이른다.

  이렇게 자연의 규율에 맡기는데, 이루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일을 만들어 백성을 괴롭히는 일을 하지 않음을 그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일을 벌여 백성을 번거롭게 괴롭힌다면, 그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데 부합하지 못한다.

 
 ― 한자 풀이

   

  日益 일익 “욕심과 꾸밈, 수식修飾이 갈수록 증가하다.”의 뜻이다.

  及其有事 급기유사 “만약 일을 벌여 백성을 수고스럽게 만든다면”으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도를 구하는 자는 갈수록 욕심과 꾸밈이 줄어든다

   

  거짓 학문, ‘위학僞學’과 거짓의 도, ‘위도僞道’를 논하는 글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학문이란 바로 정교예악政敎禮樂이다. 노자는 그러한 학문이 결국 사욕을 초래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학문 대신 도를 추구하여 사욕과 겉치레를 없앰으로써 청정무위의 경지에 이를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그러한 무위의 정치에 의하여 비로소 세상이 태평해질 것이라고 천명한다.

  인위人爲와 자기과시 그리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꾸밈에 바탕을 둔 지식의 폐단을 일관되게 지적하는 이러한 노자의 관점에서는 일견 유심주의의 경향도 보인다. 다만 여기에서 ‘무위’란 소극적인 부작위不作爲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일을 벌여 백성을 수고스럽게 만들고 괴롭히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그리고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49 장

성인은 영원히 사심이 없고,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聖人無常心18), 以百姓心爲心.

  

  

  18)마왕퇴馬王堆에서 출토된 백서帛書 노자老子에는 이 부분이 성인항무심聖人恒無心으로 되어있다.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歙歙焉, 爲天下渾其心.

  

  百姓皆注其耳目.

  

  聖人皆孩之.

  
   

  성인은 영원히 사심이 없고, 다만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선한 사람은 나도 선하게 대한다. 선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나는 선하게 대한다. 이렇게 하여 천하의 모든 것이 선해진다.

  신의가 있는 사람에게 나도 신의로 대한다. 신의가 없는 사람에게도 나는 신의로 대한다. 이렇게 하여 천하의 모든 것이 신의가 있게 된다.

  성인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함에 욕심을 버리고 신중하게 행하니, 천하의 모든 만물이 소박함으로 돌아온다.

  백성들도 모두 자신의 눈과 귀에만 충실해진다.

  성인은 백성들을 모두 어린아이와 같이 순박하게 한다.

   

   

  ― 한자 풀이

   

  無常心 무상심 “영원히 사심이 없다.”로 해석한다.

  歙 흡 “신중하다.”의 뜻이다.

  渾 혼 ‘질박質朴’의 뜻으로서 곧 ‘도道’를 의미한다.

   

   

  ― 깊이 보기

 
 모든 만물이 소박함으로 돌아온다

   

  이 장에서는 노자의 정치사상이 기술되고 있다. 노자는 “도의 원칙에 의하여 무위의 정치가 행해지는” 그의 이상적 정치사상 실천의 희망을 ‘성인’에게 위탁하여 기대한다. 성인은 사사로운 개인적 욕심이 없고, 백성들의 마음으로써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를 갖도록 하고 선하게 한다. 그러한 정치를 행하게 되면, “백성들도 모두 자신의 눈과 귀에만 충실해지기 때문에” 인위와 작위의 정치가 아닌 자연과 무위의 정치가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정치는 모두 자연에 부합되며 어린아이처럼 순박해진다.

 

 
  50 장

사람들은 스스로 사지死地에 뛰어든다

   

   

   

  出生入死.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 動之死地, 亦十有三.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蓋聞善攝生者, 陸行不遇兕虎, 入軍不被甲兵.

  

  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夫何故?

  

  以其無死地.

  

   

  사람은 모두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생존의 요소는 3분의 1이고, 죽음의 요소도 3분의 1이다.

  살아감에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사지死地에 뛰어든다. 이 역시 3분의 1을 점한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섭생19)을 잘하는 사람은 육지에서 들소나 호랑이를 만나지 않게 되고 군대에 들어가서도 적과 싸우지 않는 장소에서 일을 하게 된다.

  

  19섭생)攝生: 양생養生.

   

  그러한 사람은 들소가 뿔로 받을 곳이 없고 범이 발톱으로 할퀼 곳이 없고 무기가 파고 들 틈새가 없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에게는 죽을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 한자 풀이

 

 兕虎 시호 ‘들소나 호랑이’로서 맹수를 뜻한다.

  甲兵 갑병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병사를 의미한다.

   

   

  ― 깊이 보기

   

  그에게는 죽을 장소가 없다

   

  이 장은 양생지도養生之道를 논하는 글이다. 여기에서 ‘도徒’는 “소속所屬의 요소”라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생지도生之徒’는 ‘생존의 요소’, ‘사지도死之徒’는 ‘죽음의 요소’로 해석된다. 또 ‘十有三십유삼’은 “열에 셋”으로 3분의 1을 의미한다. 노자는 생명이란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생존의 요소와 죽음의 요소는 균형의 상태이며 각각 3분의 1의 비중을 점한다고 말한다. 나머지 3분의 1은 인간 자신의 요소가 된다. 후반 “인지생, 동지사지, 역십유삼人之生, 動之死地, 亦十有三”의 뜻은 “살아감에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사지에 뛰어든다. 이 역시 3분의 1을 점한다.”이다. 이 3분의 1은 바로 섭생攝生의 좋고 나쁨에 의하여 결정된다. 섭생을 잘하는 자는 무사지無死地, ‘죽음의 위험이 없으나’, 섭생을 잘하지 못한 자는 動皆之死地, ‘모두 사지에 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노자는 객관적인 생사의 요소와 그 역할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주관적 요소와 그 역할에 충분히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유가의 ‘死生有命’, “생사는 운명이다”(『논어』·「안연」)라는 시각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흔히 도교사상이라 하면 곧 ‘양생養生’을 연상시키게 된다. 그러나 사실 노자 자신은 양생과 그다지 큰 관련이 없었다. 노자의 사상을 양생법으로 연결시킨 데에는 양주楊朱라는 도교 사상가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양주는 노자보다 100여 년 후 전국시대 위나라에서 태어난 인물로서 노자의 사상을 연구, 계승하였으며, 특히 자기 자신을 중시하는 ‘귀기貴己’와 생명을 중시하는 ‘중생重生’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이는 권력 쟁투의 극심한 정치혼란과 빈번한 전란으로 권귀權貴들은 사치와 호화를 누리는 반면, 백성들의 목숨은 경시되는 당시의 사회 풍조를 비판하면서 그러한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자신과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사상이다. 즉, 명예나 지위, 부를 부러워하지 말고, 권위나 이익 그리고 귀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이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향략주의나 이기주의의 차원이 아닌 욕망에 대한 절제와 이성적 사고를 지향하였다.



 
 51 장

만물을 이끌지만 군림하지 않는다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存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도는 만사만물萬事萬物을 만들고, 덕은 만사만물을 양육한다.

  만사만물은 비록 갖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환경이 그것들을 성장시킨다.

  그러한 까닭에 만사만물은 도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없고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없다.

  도가 존중받는 이유와 덕이 진귀한 이유는 간섭이 없이 자연에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에 의하여 창조되고, 덕으로 성장·발육시키고, 숙성하여 과실을 맺으며 보살펴 유지한다.

 
 만물을 낳았지만 소유하지 않고, 만물을 키웠지만 이를 드러내 자랑하지 않으며, 만물을 이끌지만 군림하지 않는다.

  이것이 곧 현덕이다.

   

   

  ― 한자 풀이

   

  勢 세 만사만물이 생장하는 ‘자연환경’을 말한다.

  亭之毒之 정지독지 정亭은 ‘성成’으로 읽고, 독毒은 ‘숙熟’으로 읽는다(『老子正詁』). 성지숙지成之熟之로 표기된 판본도 있다.

  覆 복 “보호하다.”의 의미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덕이 진귀한 이유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바는 덕德의 역할이다. 덕이란 곧 도의 화신化身이며, 인간세상에서의 도의 구체적 작용이다.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키우지만 단지 자연에 맡기고 간섭하지 않는다. 또한 만물을 주재하거나 점유 혹은 군림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만물의 생장, 발육, 번성은 모두 철저하게 자연의 규율에 의거하여 운행된다. 이는 인류사회에 도가 작용할 때 체현되는 덕德 특유의 정신이다. 한편 노자가 만물을 주재하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는 점에서 무신론의 입장이라는 사실을 바로 이 글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52 장

미세한 것으로부터 사물의 도리를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以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천하에 시초가 있다.

  시초는 천하 만물의 어머니, 근원이다.

  그 어머니를 알면 그 자식을 알 수 있다.

  자식으로서 그 어머니로 돌아가 지키면 종신토록 위태롭지 않다.

  욕심의 이목구비를 막고 욕망의 이목구비를 닫으면 종신토록 번거롭지 않다.

 
 이목구비를 열고 번거로움을 더하면 종신토록 구제되지 못한다.

  미세한 것으로부터 사물의 도리를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하고, 유약한 것을 지키는 것을 강强이라 한다.

  그 빛을 운용하여 내재하는 밝음으로 돌아간다면 재앙이 따르지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만세불절萬世不絶의 상도常道라 한다.

   

   

  ― 한자 풀이

   

  始 시 ‘도道’를 뜻한다.

  母 모 ‘근원’의 뜻으로서 역시 ‘도’를 의미한다.

  子 자 ‘파생물’의 의미로서 어머니로부터 파생된 ‘천하 만물’을 뜻한다.

 
 習常 습상 “만세불절萬世不絶의 상도常道”로 해석한다.

   

   

  ― 깊이 보기

   

  ‘지모知母, 지자知子’, 그 어머니를 알면 그 자식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철학적인 차원의 인식론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천하 만사만물의 생장과 발육은 하나의 근원을 지닌다. 그러므로 마땅히 만물 중 그 근원을 찾아냄으로써 원칙을 구명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만물에 대한 인식은 결코 그 근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 인식 활동 중 욕심의 장벽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사물의 본질과 규율을 구명할 수 있다. 이 글을 출전出典으로 하는 ‘지모知母, 지자知子’의 관점은 노자 철학사상의 정화精華 중 하나로 손꼽힌다. 즉, ‘지모知母, 지자知子’의 논리는 도와 만물의 추상적 개념의 관계를 모母와 자子라는 구체적 사실의 관계에 의하여 입증하려는 인식방법론이다. 모母는 근원으로서 도道를 의미하고, 자子는 파생물로서 천하 만물을 뜻한다. 그리고 모母와 자子는 이론과 실제, 추상적 사유와 감성적 인식, 본本과 말末 등의 관계를 칭하는 대명사이다.

 

 


추천 (1) 선물 (0명)
IP: ♡.234.♡.24
뉘썬2뉘썬2 (♡.203.♡.82) - 2023/12/12 21:25:04

물은 유약하지만 산과들과 땅을 관통하므로 가장 유약한것이 가장 굳센것을
뚫을수잇다.

만족할줄 알게되면 욕됨을 면하게되고 그칠줄 알게되면 위험하지 않게된다.

단차를 통해서 도덕공부 잘햇어요.

단차 (♡.234.♡.196) - 2023/12/13 13:51:08

저도 올리면서 다시 한번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도덕경은 고전 철학의 정수같아요.
요즘 철학서 저리가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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