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 10 鄕黨

단밤이 | 2024.01.15 14:02:05 댓글: 0 조회: 190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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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 향당(鄕黨) 사는 마을에서는

공 선생은 사는 마을에서는 잠잠하여 말도 잘 못 하는 듯. 그러나 종묘나 조정에서는 똑똑하게 말하되 오직 조심할 따름이었다.
孔子 於鄕黨 1) 恂恂 2) 如也 似不能言者 其在宗廟 3) 朝廷 便便 4) 言 唯謹爾 5)
1) 향당(鄕黨): 왕성(王城)의 좌우(左右) 삼향(三鄕) 중 따로 500가(家)를 당(黨)이라 한다.
2) 순순(恂恂): 온화하며 공손하다.
3) 종묘(宗廟): 조정(朝廷)과 아울러 정치를 논하는 곳.
4) 변변(便便): 말로 따진다.
5) [평설] 마을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평민적(平民的)인 공자도 공석상(公席上)에서는 변론(辯論)이 지공지평(至公至平)하다. 마치 아주 다른 사람 같은 인상(印象)을 풍긴다. 이도 또한 공자 시중(時中)의 일면이기도 한 것이다.


조정에서 하대부와 이야기할 때는 부들부들하게, 상대부와 이야 기할 때는 조리 있게 하였다. 주군의 앞에서는 몸 가꾸기 어려운 양하며, 의젓하기도 하였다.
朝 6) 與下大夫言 侃侃 7) 如也 與上大夫言 誾誾 8) 如也 君在 9) 踧踖 10) 如 也 與與 11) 如也 12)
6) 조(朝): 조정(朝廷)
7) 간간(侃侃): 화락한 모습.
8) 은은(誾誾): 중정(中正)란 모습.
9) 군재(君在): 군왕(君王)이 조회(朝會)를 받고 있다.
10) 축적(踧踖): 공경하는 태도에 편안치 않는 모습이 깃들어 있다.
11) 여여(與與): 근신하면서 여유 있는 태도.
12) [평설] 동급(同級)인 하대부(下大夫)와의 대화(對話)는 화기애애(和氣靄靄)하지만 상위급(上位級)인 상대부(上大夫)와의 대화(對話)는 공정(公正)한 태도로 임하였고 군왕(君王)의 앞에서는 더욱 몸 둘바를 모르면서도 태연하였다. 공자의 대화(對話)는 관위(官位)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어쩌면 공자 개인의 개성(個性)은 완전히 숨겨 버린 셈이 된다. 이러한 등차(等差)의 변화는 아마도 예(禮)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예(禮)는 화위귀(和爲貴)이기 때문이다.


주군이 불러 사신을 접대하라 하면 얼굴빛을 고쳐 갖고, 발목도 구부린 듯하였다. 나란히 선 이와 읍(揖)을 칠 적에는 손을 좌우로 움직였고, 옷깃은 앞뒤를 가지런히 하고, 잦은 거름을 칠 때는 날개를 편 듯하였다. 손님이 물러간 뒤에는 반드시 복명하기를 “손님들은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잘 가더이다” 하였다.
君召使擯 13) 色勃 14) 如也 足躩 15) 如也 揖所與立 左右手 衣前後 襜 16) 如 也 趨進 17) 翼如也 賓退 必復命曰賓不顧矣 18)
13) 빈(擯): 손님을 접대한다.
14) 발(勃): 얼굴빛을 고쳐 갖다.
15) 확(躩): 어정거리듯 구부리고 걷다.
16) 첨(襜): 가지런하다.
17) 추진(趨進): 총총걸음으로 나아가다.
18) [평설] 앞서는 말씨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는 모두 태도에 관한 것들이다. 얼굴빛, 손가짐, 그 걸음 걸이 등 모든 행동거지가 예(禮)에 알맞아야 한다. 실로 군자의 태도란 조금이라도 허튼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공청의 문으로 들어갈 때는 허리를 굽혀 마치 용납되지 못하는 듯. 문 복판에는 서지도 않고, 문턱은 밟지 않았다. 주군의 앞을 지 날 때는 얼굴빛을 고쳐 갖고, 발목은 구부린 듯, 말씨도 부족한 듯,
옷자락을 걷어잡고 당상에 올라와서는 허리를 굽히고, 숨조차 죽여 소리 없이 내뿜고, 한 계단 내려와서는 얼굴빛도 한결 편 듯. 층계를 내려서서는 잦은걸음에 날개를 편 듯 다시 제자리로 오면 몸 가꾸기 어려운 양하였다.
入公門 鞠 19) 躬如也 如不容 立不中門 20) 行不履閾 21) 過位 色勃如也 足躩如也 其言似不足者 攝齊升堂 鞠躬如也 屛 22) 氣似不息者 出降一等 23)
逞 24) 顔色 怡怡如也 沒 25) 階趨(進) 翼如也 復其位 踧踖如也 26)
19) 국(鞠): 굽혀 오므린다.
20) 중문(中門): 문 중앙.
21) 역(閾): 문지방.
22) 병(屛): 거둔다.
23) 등(等): 층계의 계단.
24) 령(逞): 푼다.
25) 몰(沒): 진(盡).
26) [평설] 앞서는 개개인의 행동을 규제한 것인데 이는 주위환경에 따른 행동을 규정하고 있다. 중문(中
門) 승당(升堂) 몰계(沒階) 등이 그것이다. “설 자리”와 “앉을 자리”를 알아야 함은 이 까닭인 것이다.



왕의 구슬을 쥘 때는 허리를 굽혀 감당을 못 하는 듯, 위로는 읍을 치듯 아래로는 주는 듯, 얼굴빛이 변하되 두려운 듯, 발걸음도 사뿐사뿐 바로 그 뒤를 따르는 듯, 축하의 예식 때는 얼굴빛을 제대로 가누고, 사사로 만나 뵐 때는 유쾌하게 하였다.
執圭 27) 鞠躬如也 如不勝 上如揖 下如授 勃如戰色 28) 足蹜蹜 29) 如有循 享禮 有容色 30) 私覿 愉愉 31) 如也 32)
27) 규(圭): 서옥(瑞玉). 옥(玉)의 신표(信標).
28) 전색(戰色): 전율(戰慄)의 빛.
29) 축축(蹜蹜): 앞발치를 들고 총총걸음으로 간다.
30) 용색(容色): 편 얼굴빛.
31) 유유(愉愉): 유쾌하다.
32) [평설] 외국사신으로 갔을 때의 태도다. 신임장(信任狀)을 받을 때는 감히 감당하기 어려운 양하지만 일단 현지에 부임한 후로는 공사(公私) 간에 화평(和平)하고도 유쾌한 태도를 지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참된 그분은 보라빛과 밤색 깃은 달지 않고 평소에도 울긋불긋하게 입지 않는다. 한더위에 가는 베나 굵은 베의 홑옷을 겉으로 입는다.
君子 33) 不以紺緅飾 紅紫不以爲褻服 34) 當署袗絺綌 必表而出之 35)
33) 군자(君子): 공자를 가리키고 있다.
34) 설복(褻服): 사사로 있을 때 입는 옷.
35) [평설] 공자는 평상시에는 결코 호사스런 옷을 걸치지 않았다. 수수한 옷차림으로 외출(外出)도 하였다. 이는 예복(禮服), 조복(朝服)과는 구별되는 평복(平服)이기 때문이다.



검은 옷에는 휜 염소 가죽이요, 휜 옷에는 새끼사슴 가죽이요, 누런 옷에는 여우 가죽이었고, 평복은 길게 하고, 바른 소매는 짧게 한다.
緇衣羔 36) 裘 素衣麑裘 黃衣狐裘 褻裘長 短右袂 37)
36) 고(羔): 염소 새끼.
37) [평설] 속옷과 겉옷의 색깔을 달리하고 있는 것은 한 빛깔이 지나치게 짙은 것을 막기 위해서인 것이다. 바른 소매가 짧은 것은 일하기에 간편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잠옷을 따로 두되 길이는 키 절반 남짓하게 하고, 여우나 담비의 두꺼운 털옷을 입는다.
必有 38) 寢衣 長一身有半 狐貉之厚以居 39)
38) 유(有): 남이 갖지 않은 것을 갖다.
39) 거(居): 거처하다.
[평설] 키의 절반 남짓한 길이는 접어서 발을 싸고도 남는 길이다. 발목이 차지 않도륵 한 것으로
미루어 생각할 때 이 잠옷은 특히 겨울에 입으셨던 것 같다.


상중만 아니면 안 차는 패물이 없다.
去 40) 喪 無所不佩 41)
40) 거(去): 제(除).
41) [평설] 군자(君子)가 의복(衣服)에 있어서는 호사스러운 것을 피하였지만 노리개의 옥을 차는 것은 오히려 그만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벼슬아치의 표상(表象)이오 사대부(士大夫)의 긍지(矜持)를 돋우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휘장이 아니면 옷은 반드시 접어 줄이도록 한다.
非帷裳 42) 必殺之 43)
42) 유상(帷裳): 수레에 치는 휘장.
43) 살지(殺之): 주린다.
[평설] 휘장 외에는 모든 상의(裳衣)는 모조리 주려버린다. 간편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된다.



염소 가죽옷에 검은 관을 쓰고는 조문하지 않는다.
羔裘玄冠 不以弔 44)
44) 조(弔): 소렴(小殮) 전의 조문이다. 소렴(小殮) 전에는 회생을 기다리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은 흉복(凶服)을 입지 않았다.
[평설] 고구현관(羔裘玄冠)은 길복(吉服)이다. 그러므로 길복(吉服)으로 조곡(弔哭)의 예(禮)를 드릴순 없는 것이다.



매월 초하루에는 반드시 조복을 입고 문안을 드린다.
吉月 45) 必朝服 46) 而朝 47)
45) 길월(吉月): 월삭(月朔).
46) 조복(朝服): 현관(玄冠) 치의(緇衣) 소상(素裳).
47) [평설] 인군(人君)이 태묘(太廟)에 곡삭(告朔)하며 조향(朝享)의 예(禮)를 드리며 피변(皮弁)으로써
행사(行事)하므로 대부(大夫)는 강일등(降一等)하여 조복(朝服)으로 조회에 나갔던 것이다. 군신(君 臣)이 같은 복장(服裝)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욕 재계 때는 반드시 깨끗한 베옷을 입는다. 목욕 재계 때는 반드시 음식도 바꾸고 자리도 바꾸어 앉는다.
齊 必有明衣 48) 布 齊 必變食 49) 居必遷坐 50)
48) 명의(明衣): 명(明)은 신명(神明)과의 교제(交際)를 의미한다. 제사를 위한 목욕 후에 명의(明衣)를 입는 것은 이 까닭이다.
49) 변식(變食): 술과 향기로운 음식을 먹지 않는다.
50) 천좌(遷坐): 항시 거처하던 곳을 바꾼다. 내실(內室)을 피하여 별실(別室)로 옮긴다.
[평설] 재계(齋戒)의 행사(行事)는 이처럼 심신(心身)을 깨끗이 함으로써 신명(神明)과 통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쌀밥은 흴수록 좋고, 생선회는 가늘수록 좋다. 쉰 밥이며 처진 생선과 뭉개진 고기는 먹지 않고, 빛이 나빠도 먹지 않고, 냄새가 언짢 아도 먹지 않고, 설익어도 먹지 않고, 제때가 아니어도 먹지 않고, 잘못 잘렸어도 먹지 않고, 간이 맞지 않아도 먹지 않고, 고기가 많더 라도 반찬으로 먹는 정도를 벗지 않았다.
食不厭精 51) 膾不厭細 食饐 52) 而餲 53) 魚餒而肉敗 不食 色惡 不食 臭惡 不 食 失飪 不食 不時 不食 割不正 不食 不得其醬 不食 肉雖多 不使勝食氣 54)
51) 정(精): 정백미(精白米).
52) 의(饐): 밥이 상하여 뭉개진다.
53) 애(餲): 썩은 냄새가 난다.
[평설] 이러한 변질(變質)된 음식에는 독(毒)이 있기 때문에 먹지 않은 것이다.
54) [평설] 육류가 곡기(穀氣)를 이기지 못하게 한 것은 채식(菜食) 위주(爲主)의 동양인(東洋人)에게는
절대적 섭생법이다. 육승곡(肉勝穀)은 현대병(現代病)의 원인(遠因)이 되기 때문이다.




술만은 한량없으나 비틀거리지는 않고, 파는 술이나 시장의 고기 포는 먹지 않고 생강은 곁에 놓아두되 많이 먹지는 않았다.
唯酒無量 不及亂 沽酒 55) 市脯 不食 不撤薑食 56) 不多食 57)
55) 고주(沽酒): 시판주(市販酒). 유독물(有毒物)이 섞일 가능성이 있는 술.
56) 강식(薑食): 꿀이나 엿을 가미(加味)한 생강식(生薑食).
57) [평설] 시판식품(市販食品)은 예나 시방이나 믿지 못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그의 제조과정이 정결(精潔)하지 못했을 따름이지만 요즈음은 색소(色素) 방부제(防腐劑) 등의 가미 (加味)로 말미암아 유독성(有毒性) 살인(殺人) 상인(傷人) 약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음식물(飮食物) 에 이르기까지 공자의 주의력은 이만저만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평설] 강식(薑食)은 건위제(健胃劑)로서 소식(消食) 을 위한 배려(配慮)인 듯하다.
[참조] 종래 무량(無量)을 무제한(無制限)으로 여겼으나 “양(量)으로 개등(槪等)하지 않고 불급난(不
及亂)을 한절(限節)로 삼다”(다산)로 풀기도 한다.



나라 제사 때 받은 고기는 그 밤을 넘기지 않고, 집안 제사 고기는 사흘을 넘기지 않고 사흘을 넘기면 못 먹도록 하였다.
祭於公 不宿 58) 肉 祭肉 不出三日 出三日 不食之矣 59)
58) 숙(宿): 하룻밤 재운다.
59) [평설] 재우지도 않고 삼 일 이상 넘기지도 않도록 한 것은 제사음식을 나누어주지 않을까 해서인 것이다. 나누어주지 않으면 제례(祭禮)의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신(神)의 은혜는 골고루 나누어 받아야 할 것이다.



음식을 다루면서는 탓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이야기는 않는다.
食不語 60) 寢 61) 不言 62)
60) 어(語): 논란(論難)한다.
[참조] 불어(不語)는 침묵과는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문제를 따지면서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불어(不語)요 다른 사람이 흔한 이야기를 물어올 때라면 어찌 식불어(食不語)라 해서 대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다산).
61) 침(寢): 눕는다.
62) 언(言): 직언(直言)한다.
[평설] 침(寢)은 잠자는 상태가 아니라 잠은 이루지 않고 거저 누워 있는 모습이다. 잠이 깊이 들어 있다면 침불언(寢不言)이라 하지 않더라도 어찌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변변찮은 음식이나 나물국이나 오이 같은 것이라도 제사를 모시 되 극진히 하였다.
雖疏食 菜羹 瓜 63) 祭必齊 64) 如也 65)
63) 과(瓜): ≷노론(魯論)≸에서는 필(必)로 되어 있다.
64) 제(齊): 엄숙하고도 공손한 모습.
65) [평설] 제물(祭物)이 비록 박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엄숙하게 제사를 모시는 것은 성인(聖人)의 정성인 것이다. 제사는 마음의 정성에 있지 제물(祭物)의 정추(精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리가 비뚤어졌어도 앉지 않는다.
席 66) 不正 不坐 67)
66) 석(席): 돗자리 같은, 앉는 자리.
67) [평설] 비록 소절(小節)인 듯이 보이나 성인(聖人)은 그런 것까지도 바르지 않은 것은 싫어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 늙은이가 나가면 따라나섰다.
鄕人飮酒 杖者 68) 出 斯出矣 69)
68) 장자(杖者): 노인(老人). 60세 이상이다.
69) [평설] 늙은이가 나간 후에 나가는 것은 감히 먼저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굿을 할 때는 예복을 입고 묘의 층계 위에 서 있었다.
鄕人儺 70) 朝服 71) 而立於阼階 72)
70) 나(儺): 굿. 푸닥거리.
71) 조복(朝服): 제복(祭服)으로 입는다.
72) 조계(阼階): 가묘(家廟)의 계단.
[평설] 여기서 잡신과 조상신이 엄격하게 구별이 된다. 마을사람들은 아직도 잡신(雜神)을 섬기는 무속(巫俗)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공자(孔子)는 가묘(家廟)의 층계에서 제복(祭服)을
입고 조상신(祖上神)에 대한 경건(敬虔)한 자세를 가누었던 것이다. 이는 공자(孔子)의 미신사상(迷
信思想)에서 경조(敬祖) 또는 경천사상(敬天思想)에로의 발돋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을 외국으로 보낼 때는 두 번 예를 드리고 보냈다. 강자가 약을 보내 준즉 예를 드리고 받으면서 말하기를 “약성을 잘 모르므로 입에 대기는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問人 73) 於他邦 再拜 74) 而送之 康子 75) 饋藥 拜而受之 曰丘未達 76) 不敢嘗 77)
73) 문인(問人): 대리인을 보내어 안부를 묻는다.
74) 재배(再拜): 외국으로 보낼 때는 경의(敬意)도 배가(倍加)되므로 재배(再拜)한다.
75) 강자(康子): 계강자(季康子)
76) 미달(未達): 약성에 통달하지 못하다.
77) 상(嘗): 맛본다.
[평설] 대리인에 대하여도 그를 보낸 사람에게와 같은 예(禮)를 드린다.
[평설] 약(藥)에 독(毒)이 있을까 봐 먹지 않았다는 해석은 지나치다. 약(藥)이란 아무리 좋은 약이 라도 병(病)에 적중(的中)하지 않으면 무효(無效)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해(害)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약성(藥性)을 모르는 약은 먹지 않아야 한다. 공자의 이러한 약성(藥性)에 대한 배려(配慮)에도 경탄(驚歎)하지 않을 수 없다.



마굿간이 탔다. 선생은 조정에서 물러나와 말하기를 “사람이 상했느냐?” 묻고 망아지는 묻지 않았다.
廐 78) 焚 子 退朝 曰傷人乎 不問馬 79)
78) 구(廐): 공자의 마구간.
79) [참조] 종래에는 “傷人呼不問馬”라 하여 “사람이 상(傷)하지나 않았나 먼저 묻고 다음에 말을 물었 다” 했는데 “사람이 상(傷)하지나 않았나 묻고 말은 묻지 않았다”로도 풀이된다. 전설(前說)은 인마 (人馬)의 선후(先後)만이 있을 따름이지만 후설(後說)은 중인경마(重人輕馬)의 태도라 하겠다. 다산은 후설(後說)을 따르고 있다. 불(不)은 부(否)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군이 음식을 보내 주면 똑바로 앉아서 먼저 맛을 보고, 주군이날 것을 보내 주면 익혀서 조상께 바치고, 주군이 산 짐승을 보내 주면 반드시 그것을 키우도록 하고 주군을 모시고 식사할 때는 주군의 제사가 끝나는 대로 먼저 맛을 보았다.
君賜食 80) 必正席先嘗 81) 之 君賜腥 必熟而薦之 82) 君賜生 必畜之 83) 侍 食於君 君祭 先飯 84)
80) 사식(賜食): 익힌 음식을 보내 주다.
81) 선상(先嘗): 군왕의 은혜에 경의를 표한 후 나누어준다.
82) [평설] 보내 준 음식 중에서 날것은 익혀서 조상(祖上)에게 바치지만 익힌 것은 바치지 않는 것이
예(禮)다.
83) [평설] 산 짐승을 받으면 잘 기르는 것이 예(禮)다.
84) [평설] 윗사람에게서 받는 선물은 물질을 셈하지 말고 거기에 깃들인 정의(情誼)에 감사해야 한다.
군신(君臣) 간의 하사(下賜)는 더욱 그러함을 여기서 본다.



병중에 주군이 문병을 오면 동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예복을 갖추되 띠를 걸쳤다.
疾 君視之 東首 85) 加朝服 86) 拖 87) 紳 88)
86) 조복(朝服): 치의(緇衣) 소상(素裳).
87) 타(拖): 끈다. 속대(束帶)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띠가 땅에서 끌린다.
88) [평설] 병자는 아무리 군왕이 문병 온다 하더라도 착의(着衣) 속대(束帶)할 수 없으므로 이를 약식 (略式)으로 걸칠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평복(平服)차림으로 만나는 것도 예(禮)가 아니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예용(禮容)을 갖추기에 힘쓸 따름이다.



주군이 부르면 멍에 맬 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君命召 不俟駕 89) 行矣 90)

대묘에 들어가서는 매사를 물었다.
入太廟 每事問 91)
89) 가(駕): 말에게 멍에를 걸친다.
90) [평설] 나라 일이 위급할 때 소명(召命)을 받으면 멍에 맬 틈뿐만이 아니라 신발 신을 겨를도 없이
달려가야 하겠지만 제대로 예절(禮節)을 갖추지 않고 부를 적에는 멍에를 걸친 후 가도록 해야 할것이다. 사군자(士君子)는 언제나 소명(召命)에 즉각(卽刻) 응하는 자세가 요청되는 것이다.
91) [참조] 「팔일(八佾)」편 (3)(15)를 보라. 거듭 나와 있다.




친구가 죽은 후 갈 곳이 없을 때는 말하기를 “내게서 치르도록 하오” 하였다.
朋友死 無所歸 92) 曰於我殯 93)
92) 무소귀(無所歸): 친척이 없어서 주상(主喪)을 세울 수가 없다.
93) 빈(殯): 하관할 굴을 파고 하관한다.
[평설] 주상(主喪)이 없는 고독한 벗의 죽음에는 자신이 상주(喪主)가 되겠다는 것이다. 친구 간의 지극한 친애의 정이 엿보인다.



벗이 보내 주는 것이 수레나 망아지라 하더라도 제육이 아니면 예를 드리지 않았다.
朋友之饋 雖車馬 非祭肉 不拜 94)

눌 때는 시체처럼 눕지 않고, 집에서는 체모를 차리지 않았다.
寢 不尸 95) 居 96) 不容 97)
[평설] 친구 간에는 재물도 서로 주고받으며 나누어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친구가 주는 재물에는
배례(拜禮)의 예(禮)를 생략(省略)한다. 그러나 그것이 제육(祭肉)일 경우에는 신(神)-조상신(祖上 神)-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배례(拜禮)하는 것이 예(禮)인 것이다. 예(禮)란 그 형식보다도 본질을 더욱 중요시하는 것은 이 까닭인 것이다.
95) 시(尸): 죽은 사람.
96) 거(居): 집에서 쉴 때.
97) 용(容): ≷주례(周禮)≸의 육용(六容). 제사(祭祀), 빈객(賓客), 조정(朝廷), 상기(喪紀), 군려(軍旅), 거마지용(車馬之容)과 같은 것.
[평설] 죽은 사람처럼 네 활개를 펴고 눕는 것은 절제(節制) 없는 태도인 것이다. 그러나 평상시(平常 時)에는 지나치게 예용(禮容)을 따질 필요는 없다. 여기에 연거시(燕居時) 예용(禮容)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상제와 만나면 친숙한 사이라도 반드시 얼굴빛을 고치고, 높은 벼슬아치나 눈먼 이를 만나면 자주 만나는 처지라도 반드시 체모를 갖추었다. 상복을 입은 이에게는 수레에서라도 예를 드리고 나라의 귀중한 서류를 가진 이에게도 경의를 표했다.
見齊衰者 雖狎 98) 必變 99) 見冕 100) 者 與瞽者 雖褻 101) 必以貌 102) 凶服 103) 者 式 104) 之 式負版 105) 者 106)
98) 압(狎): 무람없다.
99) 변(變): 용모를 고친다.
100) 면(冕): 대부(大夫)의 관(冠).
101) 설(褻): 자주 만난다.
102) 모(貌): 예의(禮儀)를 갖춘다.
103) 흉복(凶服): 상례(喪禮)의 오복(五服).
104) 식(式): 수레 위의 횡목(橫木). 예(禮) 드릴 때 의지한다. 절한다.
105) 부판(負版): 호적(戶籍)과 지도(地圖)-국가(國家)의 중요한 문서(文書)-를 등에 진 자.
106) [평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불행(不幸)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국가의 중요한 정책 또는 중요한 임무를 받은 자에 대하여 언제나 경외(敬畏)의 정을 갖도록 타이르고 있다. 이러한 마음가짐의 예
절(禮節)은 사회질서의 저변구조(底邊構造)를 위하여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참조] 「자한(子罕)」편 (9)(10)을 보라.



큰 잔칫상을 받으면 반드시 얼굴빛을 고치면서 일어서고, 번개 치고 바람이 거셀 때도 반드시 얼굴빛을 고쳤다.
有盛饌 107) 必變色而作 108) 迅雷風烈 必變 109)
107) 찬(饌): 음식을 늘어놓다.
108) 작(作): 일어선다.
[평설] 성찬(盛饌) 앞에서의 변색(變色) 변용(變容)은 천사(天賜)의 풍성(豊盛)에 대한 경외(敬畏) 의 정 때문일 것이다.
109) [평설] 신뢰(迅雷) 풍열(風烈) 앞에서의 변용(變容)은 이재민(罹災民)에 대한 연민(憐憫)의 정 때문인 것이다.
[평설] 감사와 연민의 정은 인간의 기본 감정이 아닐 수 없다. 더욱 군자(君子) 성인(聖人)에게서는 보다 더 절실할 따름인 것이다.



차에 오르면 반드시 똑바로 서서 줄을 잡고, 차 속에서는 안쪽을 돌아다보지도 않고, 떠들지도 않으며 손가락질도 하지 않았다.
升車 必正立 執綏 110) 車中 不內顧 不疾言 不親指 111)
110) 수(綏): 붙잡고 거(車)에 오르는 줄.
111) [평설] 줄을 잡는 것은 안정을 취하기 위한 것이요, 돌아다보지 않는 것은 사사(私私)로운 행동으
로 보이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말이 빠르거나 손가락질하는 따위의 태도도 동승자(同乘者)를 어리 둥절하게 만들기 쉬우므로 이를 삼가야 할 것이다.



그림자만 보고는 날아가더니, 맴돌다가 다시 모여들도다. 선생
“산에 놓인 다리 위의 암꿩은 때로구나! 때로구나!” 자로가 이를 잡아서 바치려고 한즉, 세 번 냄새 맡더니 날아가 버렸다.
色 112) 斯擧 113) 矣 翔 而後集 114) 曰山梁 115) 雌雉 時哉 時哉 子路共之 三嗅而作 116)
112) 색(色): 놀란 모습.
113) 거(擧): 새들이 떠오르다.
114) 집(集): 모여 앉다.
115) 산양(山梁): 골짜기에 있는 작은 다리.
116) [평설] 새들이 화를 피하여 멀리 날아가는 것을 군자(君子)의 이퇴난진(易退難進)의 상황에 비유한
듯하다.
[평설] 뜻이 불분명한 구절이다. 잡히기 전에 때를 잘 보아야 한다는 암시 구절인 듯.
[참조] 자로(子路)가 산꿩을 잡아서 이를 익혀 공자에게 드린즉 내키지 않은 음식이라 세 번 냄새만 맡고 일어서 버렸다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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