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ㅡ 마법

단밤이 | 2024.01.17 00:25:56 댓글: 0 조회: 211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0905
The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마법

아이들이 돌아와 보니, 크레이븐 선생이 집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의사 선생은 사람을 보내서 정원 산책로를 살펴보게 하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지, 슬슬 걱정하던 중이었다. 콜린이 제 방으로 돌아오자 불쌍한 의사 선생은 아이를 꽤 심각하게 살펴보았다.
“그렇게 오래 나가 있으면 안 된다.” 의사 선생이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않아야 해.”
“나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아요.” 콜린이 말했다. “산책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줬어요. 오늘 오후에 나간 것처럼 내일은 아침에도 나갈 거예요.”
“그건 허락할 수 없구나.” 크레이븐 선생님이 대답했다. “현명한 생각이 아닌 것 같아.”
“나를 막으려는 생각이 현명하지 않은 거죠.” 콜린이 꽤 진지하게 대답했다. “난 갈 거예요.”
심지어 메리조차 콜린에게서 가장 이상한 점이 뭔지 알아차렸다. 콜린은 주위 사람들에게 명령을 할 때면 자신이 얼마나 무례한 어린 폭군이 되는지 전혀 몰랐다. 콜린은 평생 무인도에서 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콜린은 그 섬의 왕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태도를 비교해볼 사람도 없이 뭐든 제멋대로 하게 되었다. 사실 메리도 사촌과 많이 비슷했다. 그러나 미슬스웨이트에서 살게 된 후로, 메리는 자기 태도가 평범하지도 않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종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메리는 콜린과 의사소통하는 데 몹시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크레이븐 선생이 가고 난 후 몇 분 동안 메리는 가만히 앉아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사촌을 지켜보았다. 메리는 왜 그러고 있는지 콜린이 물어봐주기를 원했고, 물론 물어보았다.
“왜 나를 그렇게 보는 거야?” 콜린이 물었다.

“크레이븐 선생님이 많이 안됐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어.”
“나도 그래.” 콜린이 차분하지만, 자못 흡족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대답했다. “내가 죽을 리가 없으니, 선생님은 미슬스웨이트를 물려받을 수 없잖아.”
“물론 그것 때문이기도 해.” 메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꼬박 10년 동안 언제나 무례하게 행동하는 남자아이를 친절하게 대해줘야만 했다니, 정말 끔찍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나라면 절대 그렇게 못 할 거야.”
“내가 무례해?” 콜린이 차분하게 물었다.
“네가 선생님의 아들이고 선생님이 아이를 때리는 그런 사람이었다면.” 메리가 말했다. “선생님은 분명 너를 때려줬을 거야.”
“하지만 선생님은 절대 그러지 못해.” 콜린이 말했다.
“그래, 그러지 못해.” 못된 메리가 아무런 편견 없이 그 일을 생각하며 대답했다. “네가 싫어하면, 아무도 감히 하려고 하지 않았어. 네가 아파서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너는 몹시 가여운 아이였어.”
“하지만.” 콜린이 고집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불쌍한 아이가 되지 않을 거야. 내가 그런 아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오늘 오후에 나는 내 발로 섰어.”
“네가 그렇게 괴팍하게 된 건, 매사에 제멋대로 하기 때문이야.” 메리가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며 대화를 계속했다.
콜린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괴팍해?” 콜린이 따지듯 물었다.
“그래.” 메리가 대답했다. “많이 괴팍해. 그렇게 짜증을 낼 필요는 없어.” 그러더니 메리는 공정하게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너처럼 괴팍하거든. 그리고 벤 영감님도 그래.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기 시작하고 정원을 찾아낸 후로, 전처럼 괴팍하게 굴지 않아.”
“나는 괴팍하게 굴고 싶지 않아.” 콜린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굴지 않을 거야.” 그러더니 결심을 하며 다시 인상을 썼다.
콜린은 자부심이 강한 아이였다. 콜린은 한동안 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메리가 보니, 사촌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고, 서서히 얼굴 전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괴팍하게 굴지 않을 거야.” 콜린이 말했다. “매일 정원에 나가게 되면 말이야. 그곳에는 마법이 있어. 좋은 마법이야. 메리,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곳에 마법이 있다고 확신해.”
“나도 그래.” 메리가 말했다.
“진짜 마법이 아니라고 해도.” 콜린이 말했다. “우리는 진짜 마법인 척하면 돼. 뭔가가 그곳에 있어. 뭔가가!”
“그게 마법이야.” 메리가 말했다. “하지만 검은 마법이 아니야. 눈처럼 새하얀 마법이지.”
두 아이는 항상 그것을 마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어진 몇 달 동안, 정말 마법이 일어난 것 같았다.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찬란한 시간이었고, 멋진 시간이었다. 오! 그 정원에서 얼마나 근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지! 정원을 가져본 적 없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정원을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 기록하면 책 한 권은 거뜬히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처음에는 초록 식물들이 풀밭에서, 화단에서, 심지어 벽의 갈라진 틈에서, 흙을 뚫고 결코 멈추지 않고 솟아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더니 초록 식물들이 꽃봉오리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봉오리가 벌어지며 온갖 색조의 푸른색과 온갖 색조의 보라색과 온갖 색조의 붉은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꽃이 가장 만발한 행복한 시절에는 꽃송이가 모든 구멍과 모퉁이와 땅바닥에서 자랐다. 벤 웨더스태프는 그 광경을 보고는 담벼락 벽돌 사이의 모르타르를 긁어내고 예쁜 덩굴들이 자라도록 흙을 채웠다. 풀밭에는 붓꽃과 흰 백합들이 무리를 지어 자랐고, 녹색으로 물든 벽감들은 푸른색과 흰색 꽃으로 만들어진 창 같은 키 큰 참제비고깔이나 참매발톱꽃, 초롱꽃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꽃의 군대에 완전히 점령되었다.
“그분은 저 꽃들을 젤 좋아하셨다오……. 그분은 그러셨지.” 벤 웨더스태프가 말했다. “마님은 저 꽃들이 푸른 하늘을 향해 솟아 있을 땔 좋아한다구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소. 마님은 땅을 낮춰 보는 분이 아니셨다오……. 마님은 아니었소. 그분은 흙하구 땅을 몹시 사랑하셨소. 허지만 푸른 하늘은 언제 봐두 기쁨에 차 있는 거처럼 보인다구두 하셨소.” 

메리와 디콘이 뿌린 씨앗들은 요정들이 돌봐주기라도 하듯 잘 자랐다. 오래전부터 그 정원에서 살았던 꽃들은 못 보던 꽃들이 그곳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지만, 광택이 감도는 온갖 색깔 양귀비들은 그 꽃들과도 명랑하게 어울리며 미풍에 춤추듯 하늘거렸다. 그리고 장미가 있었다. 그 장미들! 풀밭에서 곧장 자라더니 해시계를 휘감고, 나무줄기를 감고 올라가 가지에서 늘어져 내리고, 담장을 타고 올라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기다란 꽃가지를 담장 위로 뻗어내는 장미들. 그 장미들은 매일 매시간 생기를 얻었다. 생생한 잎사귀들과 꽃봉오리들. 봉오리들은 처음에는 작았지만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마법이 일어났다. 꽃봉오리가 터지고 꽃잎들이 펼쳐져 섬세한 향기를 담은 잔이 되었고, 그 향기가 꽃잔에서 흘러넘쳐 정원 공기를 가득 채웠다.
콜린은 이 모든 과정을 다 보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매일 아침, 콜린은 휠체어를 타고 나왔고, 비가 오지 않으면 매일 매시간 정원에 머물렀다. 하늘이 잿빛으로 물든 흐린 날들조차 콜린의 즐거움을 막지 못했다. 콜린은 ‘꽃과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풀밭에 드러누워 있다고 말했다. 누구든 충분히 오래 관찰을 하면 꽃봉오리가 펴지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다고, 콜린이 선언하듯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중요해 보이는 다양한 볼일을 보느라고 주위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이상한 곤충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 곤충들은 때로는 작은 밀짚 조각이나 깃털, 음식 등을 운반했고 때로는 시골의 자연을 탐험하려고, 꼭대기에서 주위를 바라볼 수 있는 나무라도 되듯 풀잎을 타고 올라가기도 했다. 굴이 끝나는 곳에 흙무더기를 만들어놓고는 요정의 손 같은, 기다란 손톱이 달린 앞발로 다시 굴을 파기 시작하는 두더지에게 콜린은 오전 내내 푹 빠져 있기도 했다. 개미가 사는 법, 딱정벌레가, 벌이, 개구리가, 새들이 사는 법, 식물이 사는 방식이 콜린에게 새로 탐험할 세상을 선사해주었다. 디콘이 이 모든 동식물에 더해, 여우, 수달, 페렛, 다람쥐, 송어와 물쥐와 오소리가 사는 법까지 알려주자,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파고들 거리는 끝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마법의 반도 되지 않았다. 콜린이 정말 제 발로 섰다는 사실은, 콜린에게 엄청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메리가 콜린을 향해 걸었던 주문을 알려주자, 콜린은 잔뜩 흥분해서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콜린은 틈만 나면 그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이 세상에는 마법이 아주 많을 거야.” 어느 날 콜린이 의젓하게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마법이 뭔지, 어떻게 일어나는지, 전혀 몰라. 어쩌면 좋은 일들이 정말 일어날 때까지 계속 좋은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말하기만 하면 마법이 시작될지도 몰라. 그래서 한 가지 실험을 해볼까 해.”
다음 날 아침 콜린은 친구들과 비밀 정원에 도착하자 당장 벤 웨더스태프를 불러오라고 했다. 벤 영감은 최대한 빨리 왔다. 와보니 라자가 나무 아래에서 제 발로 서서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벤 웨더스태프.” 콜린이 말했다. “영감님과 디콘과 메리 양이 나란히 서서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면 좋겠어요. 여러분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할 테니까요.”
“예이, 예이, 선장님!” 벤 웨더스태프는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벤 웨더스태프가 오랫동안 숨겨온 마법은 어린 시절 바다로 도망쳐 뱃사람이 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선원처럼 대답할 수 있었다.)
“과학 실험을 하나 해보려고 해요.” 라자가 설명했다. “내가 자라면, 나는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지금 할 실험으로 연구를 시작할 거예요.”
“예이, 예이, 선장님!” 벤 웨더스태프는 위대한 과학적 발견에 대해 난생처음 들었지만, 재빨리 대답했다.
메리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무렵에 메리는 이미 콜린이 성격이 유별나기는 해도, 다양한 주제에 대해 책을 읽었으며 상당히 설득력이 뛰어난 아이라는 사실을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콜린이 고개를 들고 그 기묘한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면, 설령 콜린이 열한 살을 앞둔 열 살 아이라고 해도 어느새 콜린의 말을 믿게 될 것이었다. 어른처럼 연설을 한다는 사실에 콜린 자신부터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이 순간 콜린의 설득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내가 하려는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콜린이 말을 이었다. “마법에 관한 것이에요. 마법은 위대한 것이고, 오래된 책에 나오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거의 드물어요. 메리는 마법에 대해 조금 아는데, 인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인도에는 고행 수도자들이 있거든요. 디콘도 마법을 조금 알 거예요. 하지만 디콘은 자신이 안다는 걸 모르죠. 디콘은 동물들과 사람들을 사로잡아요. 디콘이 동물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절대 나를 만나러 오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게다가 디콘은 남자아이를 부리기도 하죠. 왜냐하면 남자아이는 동물이니까요. 나는 모든 것에 마법이 있다고 확신해요. 다만 우리가 그 마법을 이해하고, 전기나 말이나 증기처럼 쓸모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에요.”
이런 이야기가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벤 웨더스태프는 몹시 흥이 나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예이, 선장님, 예이.” 벤 영감은 이렇게 말하며 다시 똑바로 서려고 했다.
“메리가 이 정원을 찾아냈을 때만 해도 이곳은 죽은 듯 보였어요.” 콜린이 웅변가처럼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뭔가가 땅을 뚫고 올라오더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뭔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 어제는 그곳에 없었던 생명체들이 다음 날 나타났어요. 나는 이런 광경을 난생처음 봤어요. 그래서 그 과정에 몹시 호기심을 느꼈죠. 과학적인 사람들은 항상 호기심이 충만해요. 그래서 나도 과학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어요. ‘이게 뭘까? 대체 이게 뭐지?’ 이건 대단한 것이 분명해요. 절대 아무것도 아닐 리 없어요.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몰라요. 그래서 마법이라고 부르기로 했죠. 나는 한 번도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못 봤어요. 하지만 메리와 디콘은 봤죠. 두 사람에게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전해 들은 후, 나는 그것도 마법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어요. 어떤 대단한 것이 태양을 밀어올리고 잡아당기는 거예요. 내가 정원에 오게 된 후로, 가끔 고개를 들어 나무들 사이로 하늘을 보면 까닭 없이 행복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어요. 꼭 뭔가가 내 가슴을 밀어내고 잡아당겨서 호흡이 빨라지도록 만드는 것 같죠. 마법은 항상 밀어올리고 끌어당겨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뭔가를 만들어내요. 모든 것이 마법으로 만들어져요. 잎사귀도, 나무도, 꽃도, 새도, 오소리도, 여우도, 다람쥐도, 사람도 말이죠. 그러니까 마법은 우리 주위에 있어요. 이 정원에도, 온갖 곳에 다 있어요. 이 정원에 깃든 마법은 내가 두 다리로 서고 어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다고 확신하게 만들어줬어요. 나는 마법을 찾아내서 내 안에 넣고, 그 마법이 나를 밀어내고 끌어당겨서 더 건강하게 만드는 과학 실험을 해볼 작정이에요.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마법을 자꾸 생각하고 부르면 분명히 찾아올 거예요. 아마 그것이 마법을 손에 넣는 가장 기본적인 첫 번째 방법일 거예요. 내가 처음으로 일어서려고 했을 때, 메리는 최대한 빠르게 중얼거렸어요.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할 수 있어!’ 나는 결국 해냈어요. 물론 나도 노력을 해야 했죠. 하지만 메리의 마법이 나를 도와줬어요. 그리고 디콘의 마법도요. 매일 아침과 저녁은 물론이고, 낮에도 나는 최대한 자주, 잊지 않고 주문을 외우려고 해요. ‘마법은 내 안에 있어! 마법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줄 거야! 나는 디콘처럼 건강해질 거야. 디콘처럼 힘이 세질 거야!’ 그러니 여러분도 모두 이렇게 해주어야 해요. 이것이 내 실험이에요. 나를 도와주겠어요, 벤 웨더스태프?”
“예이, 예이, 선장님!” 벤 웨더스태프가 말했다. “예이, 예이!”
“군인이 훈련을 받는 것처럼 매일 규칙적으로 이 주문을 외운다면,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될 테고, 그러면 실험이 성공했는지도 알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어떤 것을 익힐 때, 그 내용을 몇 번씩 말로 해보고 자꾸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 영원히 새겨질 거예요. 나는 마법도 똑같으리라 생각해요. 여러분이 계속 와서 도와달라고 마법을 부르면, 그 마법은 여러분의 일부가 되어 머무르면서 마법을 일으킬 거예요.”
“예전에 인도에 살 때, 어떤 장교가 어머니에게 같은 말을 몇천 번이나 하는 고행 수도자들이 있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 메리가 말했다.
“나두 젬 페틀워스의 마누라가 같은 말을 몇천 번이나 하는 걸 들었다오. 그 마누라는 젬을 보구 빌어먹을 주정뱅이라구 했지.” 벤 웨더스태프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니나다를까 결국 그 말대루 됐다오. 젬이 ‘푸른 사자’ 술집엘 가서 곤드레만드레 취했다니깐.”
콜린은 양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얼굴이 환해졌다.
“음.” 콜린이 말했다. “알다시피 어떤 힘이 그 일을 일으킨 거예요. 그 여자가 잘못된 마법을 쓰는 바람에 남편이 주정뱅이가 된 거예요. 그 여자가 올바른 마법을 써서 좋은 말을 했다면, 그 사람은 곤드레만드레 취하지 않았을 거예요. 어쩌면요. 어쩌면 남편은 아내에게 새 보닛을 사줬을지도 모르죠.”
벤 웨더스태프가 빙긋이 웃었고, 늙고 작은 눈에 감탄하는 빛이 어렸다.
“도련님은 다리만 똑바른 게 아니구 영리하시기두 하구려.” 벤 노인이 말했다. “다음에 베스 페틀워스를 보면, 마법이 무슨 일을 해줄 수 있는지 슬쩍 귀띔을 해줘야겠소. 과학 실험이 잘 들어먹으면 베스두 좋아할 거요. 젬두 마찬가지구.”
디콘은 가만히 서서 콜린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는데, 디콘의 동그란 눈이 호기심 어린 즐거움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디콘의 양 어깨에는 밤과 껍질이 올라와 있었고, 품에는 귀가 기다란 하얀 토끼가 안겨 있었다. 디콘이 살며시 쓰다듬어주자, 어느새 토끼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귀를 뒤로 젖혔다.
“이 실험이 성공할 것 같아?” 디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며 콜린이 물었다. 종종 디콘이 행복에 겨워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콜린이나 ‘동물 친구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콜린은 제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디콘은 지금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평소보다 더 크고 환했다.
“그럼요.” 디콘이 대답했다. “난 그렇다구 생각해요. 햇빛 받으면 씨앗이 싹을 틔우는 거하구 똑같을 거여요. 마법은 분명히 일어날 거여요. 우리, 마법을 시작해볼까요?”
콜린은 그 말에 몹시 기뻤고, 메리도 즐거웠다. 고행 수도자들에 대해 들은 기억과 그림책에서 본 열성 신자들에 영감을 받은 콜린은 가지가 덮개처럼 무성한 나무 아래 모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보자고 했다.
“사원 같은 곳에서는, 이런 식으로 앉을 거야.” 콜린이 말했다. “어차피 피곤하기도 해서, 앉고 싶어.”
“아이쿠!” 디콘이 말했다. “피곤허단 말부터 해버리면 안 돼요. 그 말이 마법을 망칠지 모르잖어요.”
콜린이 고개를 돌려 디콘을, 그 티 한 점 없이 맑은 동그란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말이 맞아.” 콜린이 천천히 말했다. “나는 마법만 생각해야 해.”
모두 둥글게 둘러앉으니, 그 무엇보다 위풍당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풍겼다. 벤 웨더스태프는 어쩐지 기도회에 끌려온 것 같았다. 평소에 자신이 ‘노인네들 기도회’라고 부르는 모임에만 가면 성가셔서 짜증이 났지만, 이 모임은 라자의 부름으로 왔으니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도움을 요청받았다는 사실에 우쭐하기까지 했다. 메리 아가씨는 경건함을 느낄 정도로 이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디콘은 여전히 품에 토끼를 안고 있었는데, 동물을 부르는 신호를 아무도 못 듣게 동물들에게 보내기라도 한 것 같았다. 디콘이 다른 사람들처럼 책상다리를 하고 앉자마자, 까마귀와 여우, 다람쥐들, 양 한 마리가 느릿느릿 곁으로 다가오더니 자신들도 끼고 싶은 듯 빈자리에 앉아 원의 일부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동물 친구들’이 왔어요.” 콜린이 엄숙하게 말했다. “녀석들도 우리를 돕고 싶은 거예요.”
메리는 콜린이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콜린은 성직자라도 된 듯 고개를 높이 들었고, 콜린의 기묘한 두 눈은 몹시 근사하게 빛났다. 무성한 나뭇가지를 뚫고 쏟아진 햇살이 콜린을 비추었다.
“자, 이제 시작할 거예요.” 콜린이 말했다. “데르비시 수도승(이슬람교 금욕파 수도승-옮긴이)처럼 몸을 앞뒤로 흔들어야 할까, 메리?”
“앞뒤루 몸을 흔들 수 없소.” 벤 웨더스태프가 말했다. “류머티즘이 있으니깐.”
“마법이 그 류머티즘도 다 없애주리라.” 콜린이 대사제 같은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몸을 흔들지 말기로 해요. 대신 성가를 읊기로 해요.”
“난 성가를 못 부른다오.” 벤 웨더스태프가 살짝 성마르게 대답했다. “성가를 읊으려구 하면 성가대에서 나가라구 하더구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정도로 진지했다. 콜린의 얼굴에는 그림자 한 줄기조차 드리워지지 않았다. 콜린은 오로지 마법 생각뿐이었다.
“그러면 내가 할게요.” 콜린이 말했다. 그리고 성가를 읊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은 신기한 남자아이의 정령처럼 보였다. “태양이 빛나요. 태양이 빛나고 있어요. 그것이 마법이죠. 꽃이 자라고 있어요. 뿌리가 꿈틀거려요. 그것이 마법이죠. 살아 있는 것이 마법이에요. 튼튼한 것이 마법이에요. 마법은 내 안에 있어요. 마법은 내 안에 있어요. 내 안에 있어요. 내 안에 있어요. 마법은 우리 모두의 안에 있어요. 마법은 벤 웨더스태프의 등에도 있어요. 마법이여! 마법이여! 어서 와서 도와줘요!”

콜린은 성가를 수도 없이 암송했다. 천 번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횟수였다. 메리는 뭐에 홀린 듯 들었다. 기묘하면서 동시에 아름답게 느껴져, 콜린이 이 기도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벤 웨더스태프는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게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만발한 꽃들 사이로 벌들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읊조리는 소리와 어우러지면서 몽롱해져 스르르 잠으로 빠져들었다. 디콘은 한 팔로 잠이 든 토끼를 안고 다른 손은 양의 등에 내려놓은 채, 책상다리로 앉아 있었다. 검댕이는 다람쥐 한 마리를 몰아내고 디콘의 어깨 위에 웅크리듯 앉았고, 눈 위로 회색 눈꺼풀이 쑥 내려왔다. 마침내 콜린이 성가를 끝냈다.
“이제 정원을 한 바퀴 돌 거예요.” 콜린이 말했다.
벤 웨더스태프는 머리가 앞으로 툭 떨어지나 싶더니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영감님은 졸았군요.” 콜린이 말했다.
“어이쿠, 그럴 리 있겠소.” 벤이 꿍얼거렸다. “설교가 정말 좋더구만. 그렇지만 난 헌금 걷기 전에 가봐야 하오.”
벤 영감은 아직도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영감님, 이곳은 교회가 아니에요.” 콜린이 말했다.
“그럼요, 아니구말구.” 벤 영감이 몸을 똑바로 세우며 말했다. “내가 교회에 있다구 누가 그러던가요? 성가를 빠짐없이 다 들었다오. 도련님이 제 등에 마법이 있다구 하셨잖소. 의사 선생은 그걸 류머티즘이라구 하더만.”
라자가 손을 흔들었다.
“그건 잘못된 마법이에요.” 콜린이 말했다. “영감은 좋아질 거예요. 이제 그만 일터로 돌아가요. 하지만 내일 다시 와야 해요.”
“나두 도련님이 정원을 빙 돌며 산책허는 모습을 보고 싶구만.” 벤이 툴툴거렸다.
꽁한 마음으로 투덜거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투덜거린 것은 분명했다. 사실 벤은 고집스러운 노인인 데다가 마법을 아직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자신을 정원에서 내보내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담장 너머로 지켜보고 있다가, 도련님이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절룩거리는 한이 있어도 냉큼 정원으로 돌아올 작정이었다.
라자는 벤이 남아 있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행진 대열이 만들어졌다. 그들의 산책은 행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대열 선두에 콜린이 섰다. 그리고 양옆에 디콘과 메리가 섰다. 벤 웨더스태프가 그 뒤를 따랐고, ‘동물 친구들’도 그들 뒤를 줄지어 따랐다. 새끼 양과 새끼 여우가 디콘에게 바짝 붙어 걸었고, 흰 토끼는 깡충깡충 뛰어오거나 잠시 멈춰서 입을 오물거렸다. 검댕이는 자신을 책임자라고 여기는 듯한 근엄한 분위기로 따라왔다.
그 행렬은 느릿느릿 앞으로 나아갔지만, 위엄이 있었다. 몇 미터를 갈 때마다 발을 멈추고 잠시 쉬었다. 콜린은 디콘의 팔에 기댔다. 벤 웨더스태프는 남몰래 콜린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때때로 콜린은 디콘에게서 몸을 떼고, 손을 잡은 채 스스로 몇 걸음을 걸었다. 콜린은 시종일관 머리를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당당해 보였다.
“마법은 내 안에 있어요!” 콜린은 계속 되뇌었다. “마법은 나를 튼튼하게 만들어요! 마법을 느낄 수 있어요! 나는 마법을 느낄 수 있어요!”
뭔가가 콜린을 격려하고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했다. 콜린은 벽감 의자에 앉았다. 한두 번은 풀밭에 앉았고, 오솔길에서 여러 차례 멈춰 서서 디콘에게 기댔지만, 정원을 다 돌 때까지 절대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행진을 시작했던 그 무성한 나무로 되돌아왔을 즈음에는 콜린의 두 볼은 붉게 물들었고 승리감으로 의기양양해 보였다.
“해냈어! 마법이 일어났어!” 콜린이 소리쳤다. “이것이 내 첫 번째 과학적 발견이야.”
“크레이븐 선생님이 뭐라고 하실까?” 메리가 기뻐 소리쳤다.
“아무 말도 안 하실 거야.” 콜린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이 일을 듣지 못할 테니까. 이건 우리 모두의 가장 큰 비밀이 될 거야. 내가 튼튼해져서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걷고 달릴 수 있을 때까지, 이 일에 대해서 누구도 알면 안 돼. 나는 매일 휠체어로 이곳에 와서 돌아갈 때도 휠체어로 갈 거야. 사람들이 수군덕대고 질문을 하도록 두지 않을 거야. 실험이 완전히 성공할 때까지는 아버지에게도 알리지 않을 거야. 언젠가 아버지가 미슬스웨이트로 돌아오셨을 때, 아버지의 서재에 걸어 들어가서 이렇게 말할 거야. ‘제가 왔어요. 저는 다른 남자아이들과 똑같아요. 저는 무척 건강하고, 어른이 될 때까지 살 거예요. 이건 다 과학적 실험의 결과예요.’”
“고모부는 꿈을 꾸고 계신다고 생각할 거야.” 메리가 소리쳤다. “자기 눈을 믿지 못하시겠지.”
콜린은 의기양양해져 볼을 붉혔다. 콜린은 자신이 곧 건강해질 것이라고 스스로 믿게 만들었다. 몰랐겠지만, 그 믿음만으로도 싸움에서 반 이상은 이긴 셈이었다. 아버지가 다른 아버지들의 아들들처럼 똑바로 서 있고 튼튼한 아들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할 때면, 콜린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올랐다. 지난날 병약한 몸으로 유폐된 것이나 다름없이 지낼 때, 가장 음울하고 비참했던 일은 아버지조차 똑바로 보기를 두려워하는, 병약하고 등이 굽은 자신에 대한 증오심이었다.
“아버지는 눈을 믿으셔야 할 거야.” 콜린이 말했다. “마법이 일어나면, 과학적 발견을 하기 전에 먼저 운동 선수가 될 거야.”
“한 일주일쯤 있다가 도련님을 권투장에 모시구 가야겠소.” 벤 웨더스태프가 말했다. “언젠가는 도련님이 벨트를 차지하구 전 영국의 프로 권투 챔피언이 되겠구려.”
콜린이 험한 눈빛으로 벤을 쏘아보았다.
“웨더스태프.” 콜린이 말했다. “그건 우리 약속을 무시하는 거잖아요. 영감님도 비밀을 알고 있으니 함부로 말하고 다니면 안 돼요. 아무리 마법이 잘 통한다고 해도, 나는 프로 권투 선수는 되지 않을 거예요. 과학적 발견을 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
“아하, 죄송허구만요. 죄송해요, 도련님.” 벤이 경례를 하듯 이마를 만지며 대답했다. “이게 농담헐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벤의 두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속으로 벤은 몹시 즐거웠다. 핀잔을 들어도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핀잔을 준다는 것은 도련님이 힘과 기개를 키워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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