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1부 9~10

나단비 | 2024.01.24 07:50:34 댓글: 0 조회: 137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2699
제9장
 
 
 
엘리자베스는 그날 밤을 언니 방에서 보냈다. 아침이 되자 빙리가 하녀를 보내서 안부를 물어왔고, 그녀들을 돌보아준 하녀들이 물어보았을 때 조금은 나아졌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약간 차도가 있긴 해도 하인을 롱본으로 보내서 그녀들의 어머니가 제인을 방문해서 판단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 전갈이 즉시 롱본으로 전달되었고, 네더필드의 아침 식사가 끝난 직후에 베넷 여사와 가장 어린 두 딸이 그곳에 도착했다.

만약 제인이 급박한 위험에 처해 있었다면 그 어머니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고약한 상태가 아닌 사실을 알고는 제인이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병이 나아버리면 네더필드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넷 여사는 집으로 데려가달라는 제인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리고 그녀와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한 의사도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제인과 잠시 시간을 보낸 후에 어머니와 세 딸은 캐롤라인의 요청에 따라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빙리는 제인의 병세에 대해서 걱정하는 말을 하면서 베넷 여사를 맞았다.

“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상태가 안 좋군요. 너무 앓고 있어서 집으로 데려가면 안 되겠어요. 의사 선생님도 데려가면 안 되겠다고 하더군요. 좀 더 신세를 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베넷 여사가 말했다.

“집으로 데려가시다뇨, 그런 말씀 절대 하지 마십쇼. 제 동생도 반대할 겁니다.” 빙리가 응수했다.

“저희를 믿으셔도 됩니다. 여기 있는 동안 저희가 최대한 보살펴드릴게요.” 캐롤라인이 냉정하지만 예의바른 태도로 말했다.

베넷 여사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했다. “만약 여기 계신 좋은 분들이 없었다면 걔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상태가 좋지는 않거든요. 많이 참고는 있지만 고생이 심할 거예요. 걔가 성질이 좋아서 그럭저럭 견디고 있는 거예요. 우리집 다른 딸들은 걔한테 비하면 형편없어요. 자갈길이 내다보이는 이 방이 참 아름답군요. 이 근처에서 네더필드만 한 집은 없을 거예요. 잠시 동안만 세를 얻기로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금방 떠나실 건 아니겠죠?”

“전 뭐든지 부리나케 해치우거든요. 만약 제가 네더필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면 5분도 되지 않아서 가버릴 겁니다. 그치만 지금은 거의 여기 정착했다고 봐야겠죠.” 빙리가 말했다.

“제가 생각했던 그대로군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저를 이제 제대로 보기 시작하시는군요.” 빙리가 엘리자베스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그래요. 이제 선생님을 잘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말씀은 좋은 쪽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자기 성격을 쉽게 간파당하는 건 좋지만은 않은 것 같군요.”

“상황에 따라 다르죠. 근데 깊고 복잡한 성격은 선생님 같은 분한테 맞지 않는 것 같군요.”

이때 엘리자베스의 어머니가 나섰다. “리지, 남의 집에 와서 그런 말 하면 못써. 집에서 하는 것처럼 그런 말투를 쓰는 게 아냐.”

“사람들의 성격을 연구하는 분인 줄 몰랐군요. 사실 그게 흥미 있는 연구 대상이긴 한데요.” 빙리가 말했다.

“맞아요. 사람들의 성격을 연구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에요.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죠.”

다씨가 말했다. “시골에는 그런 연구 대상이 별로 없죠. 시골에서는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만 살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시골 사람들도 끊임없이 변해요. 그래서 새로운 사실을 관찰할 기회도 많죠.” 베넷 여사가 다씨가 시골을 무시하는 투로 말한 점에 대해서 항의하는 투로 말했다. “시골에서도 런던만큼 복잡한 일이 많이 생긴다고요.”

모든 사람이 의아해졌다. 다씨는 베넷 여사를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베넷 여사는 그에게 승리를 거둔 것으로 생각하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런던이 가게나 공공기관이 많다는 것 빼곤 시골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시골이 훨씬 더 즐거운 곳이에요. 안 그래요, 빙리 선생님?”

빙리가 대답했다. “전 시골에 있을 때면 시골을 떠나고 싶지 않고 런던에 있을 때도 런던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어요. 전 어느 쪽에 있어도 좋더군요.”

“그건 선생님 성격이 좋아서 그런 거예요. 근데 저 분은 시골을 별 볼일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엘리자베스가 자기 어머니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머니는 다씨 선생님을 잘못 보신 거예요. 저분은 시골에서는 런던만큼 많은 사람을 대할 수가 없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거예요. 그런 건 인정해야 되잖아요.”

“누가 런던보다 사람들이 많다고 얘기했니? 그런데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에 관한 거라면 여기만큼 나은 곳도 없을 거야. 우리가 식사를 같이할 수 있는 가족들도 스물네 곳은 되잖아?”

엘리자베스에 대한 배려만 아니었다면 빙리는 웃었을 것이다. 빙리의 여동생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면서 눈길을 다씨에게 돌렸다.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자신이 집을 떠난 후로 샬럿 루카스가 롱본에 방문하지 않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래, 어제 자기 아버지하고 왔었지. 빙리 선생님, 윌리엄 경은 정말 신사다운 분이죠? 멋도 알고 예절도 바르고 성격도 좋고. 항상 누구하고나 대화할 줄 알고. 그런 사람이 진짜 교양 있는 사람이지.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남에게 말도 걸 줄 모르는 사람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야.”

“샬럿하고 같이 식사했어요?”

“아냐. 집에 가야겠다고 하더구나. 집에서 요리를 해야 할 일이 있나 봐. 빙리 선생님, 우리는 요리하는 사람들은 잘 두고 있어요. 우리 딸들한테는 요리를 시키지 않아요. 그치만 그런 것도 사람들 나름이죠. 루카스 집안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다만 얼굴이 별로여서 그렇죠. 샬럿이 특별히 못생긴 건 아니지만, 우린 아주 친하게 지내니까요.”

“성격이 아주 쾌활한 여자로 보이더군요.” 빙리가 말했다.

“그렇죠! 그치만 얼굴은 그럭저럭 생겼다는 걸 인정해야 할 거예요. 걔 어머니도 그건 인정하고, 그래서 얼굴이 아름다운 제인을 부러워하고 있어요. 나도 우리 애들 자랑은 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제인보다 아름다운 애는 별로 없을 거예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해요. 내가 어머니라고 걔를 잘봐주는 건 아니죠. 걔가 열다섯 살 때 일이에요. 가드너란 내 남동생이 런던에 사는데, 그 집에 사는 어떤 젊은이가 걔하고 열렬하게 사랑에 빠져서 내 올케는 우리가 거기서 떠나기 전에 그 사람이 청혼을 할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실지로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마 내 딸이 너무 어리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근데 그 사람은 내 딸을 위해서 아주 아름다운 시를 지어놓기도 했어요.”

“근데 그 시와 함께 그 사람의 애정도 식어버렸죠. 그런 방식으로 사랑이 끝나버린 경우가 많아요. 시가 사랑을 몰아내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누가 맨 먼저 발견했는지 모르겠어요.” 엘리자베스가 한마디 거들었다.

“전 시가 사랑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다씨가 한마디했다.

“사랑이 튼튼하고 안정돼 있다면 그렇겠죠. 이미 사랑이 굳어져 있다면 한 편의 시로써 더욱 다질 수 있겠죠. 그치만 그 사랑이 얄팍한 것에 불과하다면 좋은 시 한 편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더 많은 거죠.”

다씨는 단지 웃기만 했다. 이어서 침묵이 흐르는 동안에 엘리자베스는 어머니가 다시 아무 말이나 막 해버리지 않을까 하고 조마조마해졌다. 어머니 대신에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특별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조금 후에 베넷 여사는 제인이 신세를 지고 있고 거기다가 엘리자베스까지 머물게 되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빙리에게 했다. 빙리는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공손하게 말했으며 자기 여동생에게도 그런 식으로 말하라고 했다. 캐롤라인은 별로 달갑지 않은 태도로 그렇게 했지만 베넷 여사는 그런대로 만족해 했고 조금 있다가 자기네들 마차를 준비시키라고 했다. 그래서 가장 어린 두 딸이 채비를 했다. 그녀들은 방문하는 시간 내내 둘이서 잡담을 해댔으며, 결국에는 빙리에게 그가 시골로 올 때 네더필드에서 무도회를 열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리디아는 튼튼하고 잘 자란 열다섯의 처녀였으며 피부도 곱고 활달한 성격이었다. 베넷 여사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그녀는 어머니의 배려로 일찍부터 사람들을 널리 사귀게 되었다. 성격이 활달한 관계로 이모부가 장교들을 불러서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를 통해 그들과 사귀게 되면서 그녀도 남자들에게 점점 더 자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무도회를 열라는 얘기를 스스럼 없이 꺼냄으로써 빙리로 하여금 자신이 한 약속을 갑작스럽게 생각해내게 만든 것이다. 빙리는 자기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자기 생전에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리디아의 요구에 대한 빙리의 대답은 베넷 여사의 마음에도 들었다.

“난 약속을 꼭 지킬 거예요. 언니가 회복되면 리디아 양이 좋은 날짜를 지정해주세요. 근데 언니가 아픈 동안에는 무도회를 열면 곤란하겠죠?”

리디아는 흡족해졌다. “물론이죠. 언니가 나을 때까진 기다려야죠. 그때쯤이면 카터 대위님도 다시 메리튼으로 올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이 무도회를 연 뒤에는 그분들에게도 무도회를 열라고 요구할 거예요. 꼭 그렇게 하라고 포스터 대령님한테도 얘기할 거예요.”

베넷 여사와 두 딸들은 이윽고 돌아갔고, 엘리자베스는 자기와 자기 가족들에 대해서 네더필드 집안의 두 숙녀와 다씨가 험담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제인에게로 돌아갔다. 캐롤라인이 엘리자베스가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는 데 대해서 험담을 했지만 거기에 다씨는 끼어들지 않았다.
 



제10장
 
 
 
이날은 그 전날과 다름없이 지나갔다. 루이사와 캐롤라인은 오전에 환자와 몇 시간을 함께 보냈다. 환자는 서서히 나아지고 있었다. 저녁때 엘리자베스는 응접실에서 그 집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다씨는 카드놀이 대신 편지를 쓰고 있었으며, 캐롤라인은 그 옆에서 지켜보면서 누이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쓰도록 하여 그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고 있었다. 허스트와 빙리는 카드놀이를 했고, 루이사는 그들의 옆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뜨개질을 했는데, 다씨와 캐롤라인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캐롤라인은 다씨에게 글씨를 잘 쓴다느니 문장의 길이가 어떻다느니 하면서 칭찬해주고 있었지만 다씨는 그런 말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평소 간주해오던 두 사람의 성격이 이번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멋진 편지를 받아서 동생이 기뻐하겠네.”

다씨는 묵묵부답이었다.

“편지를 아주 빨리 쓰네.”

“아냐, 난 비교적 느리게 쓰는 편이야.”

“편지 쓸 일이 아주 많겠어. 사무적으로 쓰는 때도 있을 거고. 나라면 편지 쓰기가 아주 싫을 텐데.”

“그렇다면 이런 귀찮은 일이 캐롤라인한테가 아니고 나한테 걸려든 게 다행이라고 봐야지?”

“동생한테 내가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줘.”

“이미 앞에서 써놓았다고.”

“펜이 잘 나가지 않는 거 같아. 내가 손 좀 봐줄게. 펜 다루는 덴 소질 있거든.”

“난 펜을 스스로 고쳐가면서 쓰는 버릇이 있다고.”

“글씨가 아주 고르게 써지는군.”

다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생이 하프 연주하는 솜씨가 늘었다고 하는데, 내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는 말도 해줘. 그리고 저번에 테이블 디자인했던 거 굉장했다고 전해주고. 내가 그랜틀리의 디자인보다 더 낫다고 그러더라는 말을 써주라고.”

“그런 얘기는 다음에 쓰면 안 되겠니? 지금은 그런 말을 쓸 공간이 안 남았거든.”

“별로 대수롭지 않은 걸 갖고 그래? 그리고 우리는 1월에 다시 만날 거야. 근데 동생한테 언제나 그렇게 멋있고 길게 편지 쓰는 거야?”

“내가 편지를 길게 쓰기는 해도 멋지게 쓰지는 않지.”

“긴 편지를 쉽게 쓰는 사람은 편지를 못 쓸 수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녀의 오빠가 한마디했다. “그건 다씨한테는 칭찬하는 말이 아냐. 다씨가 편지를 쉽게 쓰진 않아. 아주 격식 있는 문구를 쓰려고 하지. 그렇지 않아, 다씨?”

“내가 쓰는 방식하고 자네가 쓰는 방식은 좀 다르지.”

“아이고, 오빠는 편지를 아주 제멋대로 쓰잖아? 할 말을 반은 빼버리고 편지지는 잉크 자국으로 얼룩져 있고 그러잖아?”

“난 생각이 너무 빨리 흘러버려서 그걸 다 표현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혀 전달 못하는 거지.”

“그렇게 겸손하시니 비난한 분이 무안해질 수밖에 없겠네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겸손하게 보이는 것보다 더 기만적인 건 없지. 그건 자기의 생각에 대한 부정이거나, 아니면 간접적인 자기자랑이야.” 다씨가 말했다.

“그럼 자넨 내가 금방 보인 게 뭐라고 생각하나?”

“간접적인 자기자랑이지. 사실 자넨 편지 쓰기의 결함에 대해서 속으론 자부심을 갖고 있거든. 생각은 빠르게 흘러나오는데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으니까 그런 결함이 나온다고 보고 있지. 그런 걸 자넨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떤 일을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자체는 바람직한 것이고, 그걸 제대로 실행하지 않는 결함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보는 거지. 자넨 오늘 아침에 만약 네더필드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걸 실행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 분명 자부심을 갖고 한 말일 거야. 근데 그렇게 하면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자네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 되는 일이 없을 텐데, 그렇게 하는 게 뭐가 좋겠나?”

“아, 오늘 아침에 내가 저질렀던 어리석은 일을 저녁에 와서까지 얘기하는 건 좀 너무하다 싶군. 그런데 내 명예를 걸고 말하지만, 그때 한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하네. 그러니까 내가 조급함을 보인 건 적어도 숙녀들 앞에서 나를 과시하기 위함은 아닌 거지.”

“나도 자네가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자넨 그처럼 성급하게 떠날 사람이 아냐. 자네 행동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될 거야. 만약 자네가 말 안장 위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다음 주까지만 더 있다 가라고 한다면, 자네는 아마도 그렇게 할 거야. 자넨 가지 않을 거야. 아니 한 달은 더 머물지 모르지.”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다씨 선생님은 빙리 선생님이 자기 성격대로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셨군요. 선생님은 빙리 선생님 자신보다 더 빙리 선생님 성격을 드러내 보였어요.”

빙리가 말했다. “제 친구가 저에 대해 한 말을 칭찬으로 바꾸어서 말해주시니 감사하군요. 그치만 제 친구의 말을 오해하신 거 같군요. 왜냐면 저 친구는 그런 경우에 제가 단호히 거절하고 신속히 떠나버린다면 저를 더 높게 평가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다씨 선생님은 빙리 선생님이 원래 내렸던 성급한 결정을 끝까지 그대로 밀고 나가야만 선생님의 결점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신다는 건가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히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다씨 스스로가 말해야 되겠죠.”

“자네가 마음대로 내 성격을 규정해놓고 나한테 그걸 인정하라는 건가? 근데 엘리자베스 양의 말씀이 맞는다고 치더라도, 빙리가 안 떠나기를 바라는 그 사람은 단지 그걸 바라기만 했을 뿐이고, 자기 의견이 옳다는 걸 주장하지 않고 그렇게 했다는 점을 알아주셔야 할 거 같군요.”

“다른 사람의 설득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이거군요.”

“어떤 확신 없이 무조건 굴복하는 건 좋은 게 아니죠.”

“다씨 선생님은 우정이라든가 그런 점은 별로 고려하시지 않는 거 같군요. 어떤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도, 요청한 사람에 대한 우정만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요청에 응해줄 수 있을 거예요. 그건 선생님이 빙리 선생님에 대해서 얘기한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봐요. 빙리 선생님이 신중했는지 여부는 실지로 그런 상황이 벌어져봐야 알 수 있을 거예요. 근데 친구와 친구 사이의 일반적인 문제에서, 어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별로 중대치 않은 사건에 대해 마음을 바꿔먹기를 요청했는데 그 다른 친구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들어주었다면, 그 사람이 나쁜 건가요?”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좀 더 들어가기 전에, 그런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지, 그리고 그런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빙리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세부 항목을 조목조목 따져보기로 하죠. 그 두 사람의 키와 몸집도 고려해야 될 거예요. 그런 점들이 엘리자베스 양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에 다씨의 키가 저렇게 크지 않다면 다씨에 대한 제 존경심은 지금의 반도 되지 않을 거예요. 솔직히 어떤 상황에서는 다씨만큼 경외심을 주는 사람도 없지요. 특히 다씨가 자기 집에서 어느 일요일 저녁에 아무 할 일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을 때 말이에요.”

다씨는 그냥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는 다씨의 기분이 상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웃음이 나왔지만 참고 있었다. 캐롤라인은 오빠가 그런 생각 없는 말을 한 사실이 다씨를 화나게 했을 거라고 오빠를 나무랐다.

“난 자네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알고 있지. 자넨 논쟁을 싫어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 얘기를 끝내려고 하는 거지.” 다씨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논쟁은 다툼하고 너무 비슷하거든. 내가 이 방에서 나갈 때까지 자네하고 엘리자베스 양이 논쟁을 미뤄준다면 고맙겠어. 내가 나간 후엔 나에 대해서 뭐라 해도 괜찮네.”

“그걸 들어드리는 건 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다씨 선생님도 편지를 마저 쓰셔야 할 거고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다씨는 그녀의 말에 따라서 편지 쓰기를 마쳤다.

편지를 다 쓴 다씨는 캐롤라인과 엘리자베스에게 음악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캐롤라인은 신속하게 피아노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고는 먼저 엘리자베스에게 권했지만 엘리자베스는 공손하게 사양했고, 그래서 캐롤라인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루이사가 자기 동생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동안에 엘리자베스는 피아노 위에 있는 악보집을 넘겨보고 있었는데, 다씨의 눈이 자기를 계속 주시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자기가 그런 위대한 사람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사실에 대해서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그녀를 싫어하기 때문에 바라본다면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녀 자신에게 뭔가 잘못된 점이 있기 때문에 그런 호기심을 끄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그녀가 그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의 호감을 얻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캐롤라인은 이탈리아 곡을 몇 번 연주한 다음에 경쾌한 스코틀랜드 음악으로 바꾸었다. 그러자 다씨가 엘리자베스 옆으로 다가가서 말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양, 춤 한번 춰볼 의향이 없으신가요?”

그녀는 웃기만 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씨는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다소 놀라면서 그 말을 다시 반복했다.

“아, 선생님이 먼저 하신 말씀 들었어요. 그치만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얼른 생각해낼 수 없네요. 선생님은 내가 즉시 응해서 날 경멸할 즐거움을 가졌으면 하셨을 거예요. 그치만 난 그런 의도를 꺾어버려서 상대방이 날 경멸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만드는 취미가 있어요. 그래서 난 지금 춤출 마음이 없다고 결심해버렸으니 날 경멸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아니, 감히 그럴 마음이 없군요.”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다씨에게 모욕감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므로 그가 쾌활하게 나오는 점에 다소 놀랐다. 그런데 사실 그녀의 태도에는 상냥함과 경멸감이 뒤섞여 있어서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씨는 지금까지의 다른 어떤 여성보다도 그녀에게 매혹되어 있었다. 만약 그녀의 환경이 열악하지만 않다면 지금 자기가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캐롤라인은 자기가 질투를 느낄 만한 낌새를 눈치 챘다. 그래서 제인이 회복되어서 엘리자베스가 빨리 그 집에서 떠나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캐롤라인은 다씨가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면 어떤 상황을 맞게 될까에 대해서 언급함으로써 그가 엘리자베스를 싫어하게 만들려고 노력해보기도 했다.

“다씨 오빠가 만약에 엘리자베스하고 결혼하게 된다면 오빠 장모님이 그 주절대는 소리를 좀 안 하게 입을 막아두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나이 어린 동생들이 장교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짓도 그만하게 만들고. 또 오빠 부인이 될 사람의 건방이나 뻔뻔함도 교정하도록 노력해야 할 거야.” 다음 날 두 사람이 숲속을 거닐고 있을 때 캐롤라인이 다씨에게 말했다.

“그 밖에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한 또 다른 제안거리는 없는 거야?”

“아, 있어. 펨벌리에 있는 저택에서 지낼 때 필립스 이모하고 이모부 초상화를 전시실에 걸어두면 좋겠네. 그건 증조부님 옆에 걸어둬야 될 거야. 같은 직업이잖아? 다만 계통이 다를 뿐이지. 엘리자베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녀의 초상화는 그릴 생각도 말아야 될걸. 그런 아름다운 눈을 누가 그려낼 수 있겠어?”

“그 표정을 정확히 그려내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치만 눈동자 색깔, 모양, 속눈썹이야 제대로 그릴 수 있겠지.”

이때 그들은 다른 쪽에서 다가오던 루이사하고 엘리자베스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렇게 산책 나올 줄은 몰랐네.” 캐롤라인은 자기들이 한 말을 상대방이 듣지 않았을까 의심하며 말했다.

“우리만 쏙 빼놓고 나가버리다니, 정말 너무했어.” 루이사가 말했다.
 
다음에 루이사는 다씨의 다른 한쪽으로 붙어서 두 여자가 다씨의 팔짱을 끼고 걸어갔고 엘리자베스는 외톨이로 남게 되었다. 다씨는 두 여자가 교양 없이 엘리자베스만 남겨둔 사실을 알고는 얼른 말했다.

“우리가 함께 걷기에 이 길은 너무 좁군. 큰길로 나가자고.”

그런데 그네들과 함께 있고 싶지 않던 엘리자베스가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아녜요. 그냥 그대로 걸어가세요. 그렇게 걷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네요. 내가 끼어들면 그림만 망가지겠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이제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혼자서 산책을 즐겼다. 제인은 상당히 회복되어 있어서 그날 저녁에는 두 시간 정도 자기가 있는 방에서 나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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