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2부 3~4

나단비 | 2024.01.27 07:03:10 댓글: 0 조회: 97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3420
제3장
 
 
 
가드너 여사는 엘리자베스와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경고를 해주었다.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얘기해준 다음에 이렇게 말을 이어나갔다.
“리지, 넌 누가 반대한다고 해서 더욱 사랑에 빠질 애가 아니란걸 난 알고 있어. 제발 넌 조심했으면 좋겠구나. 재산이 없다고 해서 사랑에 빠져버리거나 상대방을 끌어들이려고 하면 안 돼. 난 그 사람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나쁜 감정은 없어. 오히려 그는 아주 흥미진진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그리고 그 사람이 재산만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상대도 없을 거야. 그치만 현실을 볼 때 공상에 사로잡혀선 안 돼. 넌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고 우린 네가 잘 처신하리라 보고 있어. 네 아버지도 너의 올바른 성격이나 양심을 믿고 계셔. 아버지를 실망시키면 안 되는 거야.”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로군요.”

“그래, 네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해줬으면 좋겠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 일은 제가 잘 처리할 테고 위컴도 잘해나가도록 할게요. 가능하다면 그 사람이 나하고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어요.”
 
“엘리자베스, 넌 지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구나.”

“죄송해요. 다시 한번 말해볼까요? 지금 현재는 위컴하고 사랑에 빠져 있지 않아요. 절대 그런 게 아니라고요. 그치만 이것저것 따져볼 때 그 사람만큼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찾아볼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나한테 정말 빠지게 된다면…… 근데 그런 일이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만일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신중하지 못한 일이 될 거예요. 아버진 저를 신뢰하고 계세요. 아버지한테 실망감을 안겨드리고 싶진 않아요. 근데 아버지는 위컴을 좋게 보고 계세요. 저는 주위에 있는 사람 누구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치만 요새 젊은이들이 재산이 없다고 해서 결혼을 주저하진 않는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제가 만약 유혹을 받는다면 다른 젊은이들보다 더 현명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어요? 그럴 때 거부하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인지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러니 제가 외숙모한테 약속할 수 있는 건,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점이에요. 그 사람이 바라는 첫 번째 상대가 저 자신이라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하고 함께 있을 때라도 그렇게 바라진 않을 거고요. 간단히 말해서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게요.”

“그 사람이 너희 집에 너무 자주 못 오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어. 넌 어머니한테 그 사람을 초대하자고 보채지는 말아야 해.”

엘리자베스가 그 말의 의미를 아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 제가 그러긴 했죠. 그렇게 하지 않는 게 물론 현명하기는 할 거예요. 그치만 그 사람이 우리 집에 매번 자주 오진 않아요. 이번 주에 자주 온 이유는 외숙모 때문이라고요. 어머니는 집안에 손님이 와있을 땐 다른 사람들도 많이 들끓어야 한다고 생각하시거든요. 그치만 이제 앞으로 제가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행동하도록 약속할 수 있어요. 이제 이만하면 됐죠?”
엘리자베스의 외숙모는 자기가 만족할 수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엘리자베스가 외숙모에게 현명한 충고를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두 사람 다 기분 상하지 않고서 좋은 충고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가드너 부부가 제인과 함께 떠난 후에 콜린스가 하트포드셔로 왔다. 그렇지만 그는 루카스 집에 머물렀기 때문에 베넷 여사에게 짐이 되지는 않았다. 그의 결혼이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므로 이제 베넷 여사는 체념하고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조소 섞인 투로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결혼식은 목요일에 거행될 예정이었고, 그래서 샬럿이 수요일에 작별 인사를 하러 방문했다. 그녀가 나가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엘리자베스는 마지못해 잘살기를 바란다는 어머니의 말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방 밖으로 따라 나가 샬럿을 배웅해주었다. 그들이 2층에서 함께 계단을 내려가면서 샬럿이 말했다.

“앞으로 자주 편지를 주고받자꾸나.”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 내가 사는 곳으로 날 보러 와줄 수 있지?”

“네가 이쪽으로 자주 올 텐데.”

“당분간 내가 거기서 못 떠날 거 같아. 그러니 네가 그쪽으로 와달라고.”

엘리자베스는 거기 가봐야 별로 즐거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샬럿의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내 동생 마리아하고 3월에 그리 오실 거야. 그러니 그때 같이 오겠다고 약속할 수 있지? 네가 온다면 우리 식구들만큼이나 반가울 거야.”

결국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결혼식이 끝난 뒤 신랑과 신부는 교회 문을 나서서 콜린스가 사는 켄트 주(州)로 출발했다. 사람들은 그 결혼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엘리자베스는 얼마 후에 샬럿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전에 두 사람이 친근하게 지냈기 때문에 서신 왕래도 그런대로 자주 이루어졌다. 그치만 이전처럼 솔직하게 모든 걸 알려줄 수는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샬럿에게 편지를 보낼 때마다 이제 마음 편하게 얘기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편지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는 않으려고 작정했지만, 옛날에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지 현재 그러고 싶기 때문은 아니었다. 샬럿이 맨 처음으로 편지를 보내왔을 때는 상당한 호기심을 갖고서 읽어보았다. 샬럿이 자기 새로운 집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 캐서린 여사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거기 가서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등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편지에는 엘리자베스가 기대하는 것 이상의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샬럿은 좋은 일에 대해서만 썼고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닌 내용은 쓰지 않았던 것이다. 집, 가구, 이웃, 도로 등이 모두 마음에 든다고 했고 캐서린 여사도 아주 친근하게 대해준다고 써놓았다. 헌스포드와 로싱스 저택에 대해서 콜린스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 이상은 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해 알려면 자기가 그곳을 방문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제인은 엘리자베스에게 편지를 보내 무사히 런던에 도착했다고 알려주었다. 엘리자베스는 다음에 제인의 편지를 받을 때는 빙리의 사람들에 대해서 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제인이 두 번째 편지를 보내왔을 때도 실망감은 계속되었다. 제인이 런던에 1주일이나 머물러 있었는데도 캐롤라인을 직접 보거나 소식을 전해 듣지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제인은 자기가 롱본에서 캐롤라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어떤 사고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해하려 했다. 이런 식으로 편지는 이어졌다. “외숙모가 내일 그 여자가 사는 쪽으로 가시니까 내가 그녀를 방문할 수도 있을 거야.”

제인은 그 일이 이루어진 후에 다시 편지를 보내왔는데, 캐롤라인을 만났다고 했다. 편지가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캐롤라인은 활력이 없어 보였어. 그렇지만 나를 보더니 아주 반가워했고, 왜 런던으로 온다고 편지를 하지 않았느냐며 나무라더라고. 그러니 내 추측이 맞았던 거야. 내가 쓴 편지가 전달되지 않은 거지. 난 물론 빙리 씨에 대해서 물어봤어. 빙리는 잘 지낸다고는 하는데, 다씨하고 같이 있기 때문에 볼 기회는 많지 않대. 다씨의 여동생이 그날 저녁에 거기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고 해서. 난 그 여자를 한번 봤으면 했는데, 캐롤라인하고 허스트 여사가 외출을 해야 해서 얼마 머물지 못하고 나왔어. 그 여자 둘이 내가 사는 곳으로 아마도 곧 방문할지 모르겠어.”

엘리자베스는 편지를 읽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빙리에게 우연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는 제인이 런던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제인이 런던에 간 지 4주가 지났지만 빙리에 대한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제인은 그 점에 대해 실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캐롤라인의 무관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눈감아줄 수가 없었다. 2주 동안 아침마다 캐롤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저녁때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 안 오겠지 하는 생각을 하기를 거듭한 끝에 결국 그녀가 나타났다. 그렇지만 잠깐 머물다 가버렸고 태도도 달라져 있었기 때문에 제인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이번에 동생 엘리자베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신의 느낌이 어떠했는지를 잘 말해주었다.
 

리지, 넌 그동안 내가 캐롤라인에 대해서 잘못 판단한 것 같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네가 옳았다고 우쭐해하지는 않을 테지. 그렇지만 리지, 내가 지금까지 캐롤라인의 행동을 놓고 보았을 땐 네가 의심하는 것만큼 나도 그 여자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 당연하다고 간주하고 있어. 그 여자가 왜 그렇게 나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지만, 동일한 상황이 다시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난 또 속아넘어갈 거야. 캐롤라인은 어저께까지 나의 방문에 답방하지 않았어. 편지 한 장도 없었고. 결국 방문을 하긴 했는데 즐거운 마음은 전혀 없어 보였어. 빨리 방문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짤막하게 했을 뿐 날 다시 보고 싶다는 말 같은 건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이젠 완전히 달라진 사람으로 보여서 그 여자가 가고 나자 이제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됐어. 나로선 그 여자를 비난하지 않을 수가 없어. 나하고 그렇게 친근하게 지낸 게 그 여자 잘못이야. 그 여자가 모든 면에서 적극적으로 나와서 우리가 친해진 거거든. 그렇지만 그 여자가 가엾다는 생각도 들어. 왜냐하면 그 여자도 자기가 행동하는 방식이 옳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 여자는 자기 오빠 때문에 나한테 그렇게 쌀쌀맞게 구는 걸 테니까.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거야. 그 여자가 오빠 때문에 그러는 게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 여자 행동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겠지. 동기간에 그렇게 염려해주는 건 당연해.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왜냐하면 빙리 씨가 나를 배려했다면 우린 이미 오래전에 만났어야 하거든. 캐롤라인의 말을 들어보면 빙리 씨는 내가 런던에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캐롤라인이 다씨의 여동생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어.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좀 심한 말을 한다면 이번 일에는 뭔가 속임수가 개입되어 있는 것 같아. 그렇지만 모든 안 좋은 생각을 몰아내고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 이를테면 너의 애정이라든가 외숙이나 외숙모 같은 사람들만 생각할 거야. 답장을 곧 해주기를 바란다. 캐롤라인은 이제 자기네들이 다시는 네더필드에 돌아가지 않고 그 저택은 포기할 것이라고 하는데, 확신을 갖고 말하는 건 아니었어. 그 점에 대해서는 이런 말 저런 말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헌스포드에 사는 샬럿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고 있다니 기쁘구나. 윌리엄 루카스 경과 마리아하고 그때 방문을 꼭 했으면 좋겠다. 거기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야.

언니가

 
이 편지를 받고서 엘리자베스는 조금 애석해했다. 그렇지만 이제 언니가 빙리의 여동생 때문에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곧 평온한 마음을 되찾았다. 이제 빙리에 대한 모든 기대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앞으로 빙리의 관심이 되살아나기를 바라지도 않게 되었다. 모든 면에서 그 사람의 인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벌을 받고 제인에게 부분적으로 이득이 되는 길은 그가 정말로 다씨의 여동생과 결혼해버리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위컴의 말이 맞는다면 빙리가 그 여자하고 결혼함으로써 그는 제인을 놓친 점을 아주 후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가드너 여사는 엘리자베스에게 위컴에 대한 약속이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전해달라고 했다. 엘리자베스가 전한 소식은 그녀의 외숙모가 만족할 만한 내용이었다. 엘리자베스에 대한 위컴의 애정은 줄어들었고 관심도 없어져갔으며, 그는 이제 다른 여자에게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정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지만 심적인 고통 없이 그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었다. 그녀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고, 자기한테 재산이 많거나 했으면 위컴이 분명히 자기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위로를 할 뿐이었다. 위컴이 지금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여자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최근에 1만 파운드를 갑자기 얻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샬럿의 일을 겪을 때보다는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엘리자베스는 위컴이 돈을 보고서 그런 여자에게 기우는 데 대해서 따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위컴이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한테 가버리는 데 몇 가지 쉽지는 않은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지만, 그것이 두 사람을 위해서 현명하고 바람직한 처사라고 간주했고 그가 진심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러한 모든 사실에 대해서 엘리자베스는 가드너 여사에게 편지로 알려주었다. 모든 상황을 전한 뒤에 다음과 같이 이어나갔다. “존경하는 외숙모님, 제가 사랑에 심각하게 빠졌던 건 아니었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정말 열정적으로 그 남자를 좋아했다면 지금쯤 그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 것조차 싫을 테고 그가 안 되기만을 바랄 테니까요. 그렇지만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별로 나쁘지도 않고 그의 새 애인에 대해서 아무런 편견이 없어요. 그 여자를 미워할 마음도 생기지 않고 그녀가 좋은 여자일 거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제가 그 남자를 진실로 사랑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겠지요. 제가 신중하게 처신한 게 효과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열렬히 사랑에 빠졌다면 지금쯤 모든 사람에게 흥미 있는 얘깃거리가 되겠지만 별로 주목의 대상이 되는 거 같지도 않고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가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을 테지요. 오히려 키티나 리디아가 그 사람의 변심으로 화가 나 있어요. 둘은 아직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잘생긴 남자도 평범한 남자와 마찬가지로 먹고살 만한 재산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모르는 거 같아요.”
 



제4장
 
 
 
롱본의 가족에게 그 이상의 큰 사건은 벌어지지도 않았다. 메리튼까지 때로는 더러운 길거리를 오가며 나들이를 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 없이 1월과 2월이 지나갔다. 3월이 되면 엘리자베스가 헌스포드로 가는데, 처음에 그녀는 그곳에 가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샬럿은 큰 기대를 하면서 일을 추진했고, 그래서 엘리자베스도 점점 더 흥미를 갖고서 고려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샬럿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보고 싶어졌고 이제 콜린스에 대한 역겨움도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어머니나 동생들하고 말이 잘 통하지도 않아서 집에 있기가 편치만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변화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쪽으로 가는 길에 제인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여행 날짜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서 이제 그 여행이 연기된다면 오히려 짜증이 날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순조로웠고 샬럿이 처음에 계획한 대로 일이 잘 진행되었다. 엘리자베스는 윌리엄 루카스 경, 그리고 그의 둘째 딸과 함께 떠나게 되어 있었다. 런던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계획이 변경되었고, 그것은 정말로 나무랄 데 없는 일이다.
단 한 가지 곤란한 점은 그녀가 없으면 아쉬워할 아버지를 놔두고 떠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엘리자베스가 떠나는 것을 정말 섭섭해했으며, 그래서 그녀가 자주 편지를 하고 자기도 답장을 꼭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엘리자베스와 위컴 사이의 이별은 아주 친근하게 이루어졌다. 위컴이 지금 다른 여자하고 연애를 하고 있다고 해도, 엘리자베스는 그가 진지하게 생각했던 첫 번째 여자로서 말을 잘 들어주고 동정심을 보여주었으며 그가 흠모하던 첫 번째 여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위컴은 헤어지면서 엘리자베스가 잘 지내기를 바랐고 캐서린 드 버그 여사를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캐서린 여사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두 사람의 평가가 같을 것이라면서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관심 덕분에 엘리자베스는 위컴이 앞으로 결혼을 하든 독신으로 지내든 간에 자기에게 항상 상냥하게 굴고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간주하게 되었다.

다음 날에 그녀와 함께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위컴에 대한 그녀의 호감을 잊게 할 만큼 좋은 사람들이 못 되었다. 윌리엄 루카스 경, 그리고 마음씨는 선량하지만 머릿속은 텅 빈 그의 둘째 딸은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얘기는 하지 않았고 덜커덩거리는 마차 소리 이상의 기쁨을 주지 못했다. 엘리자베스가 터무니없는 얘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윌리엄 루카스는 그녀가 너무 오래 알아왔다. 윌리엄 경은 자기가 국왕을 알현한 사실이나 기사 작위 수여식 등에 대해서 매번 한 말을 또 해댔으며, 그런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정말 지루한 일이었다.

그날 움직인 거리는 24마일에 불과했고, 아침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그레이스처치 가(街)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이 가드너의 집에 다가갔을 때, 응접실의 유리 창문으로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제인이 마중을 나와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고서 예전처럼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흡족해했다. 집의 계단에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사촌이 오기를 고대했기때문에 집 안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열두 달 동안 보지 않았기 때문에 수줍어서 더 이상 앞으로 나오지는 못하고 머뭇거렸다. 모두가 기쁨에 겨웠고 반가움이 넘쳐났다. 쇼핑을 하러 다니고 저녁에는 극장에 갔다.
 
극장에서 엘리자베스는 외숙모 옆에 자리를 잡았다. 대화의 첫 번째 주제는 언니에 관한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제인이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썼다는 얘기를 듣고 슬픔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그런 기간이 줄어들었으면 하고 바라는 수밖엔 없었다. 가드너 여사는 캐롤라인의 방문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었는데, 제인과 캐롤라인 사이에 벌어진 일과 제인이 더 이상 캐롤라인과 만나지 않겠다고 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다음에 가드너 여사는 엘리자베스가 위컴에게 차였다고 놀려댔고, 그러면서 그 일을 잘 견디어주었다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

“근데 엘리자베스, 킹이라는 여자는 어떤 여자야? 돈만 밝히는 여자는 아니겠지?” 가드너 여사가 물어보았다.
“그런데 돈만 아는 거하고 신중함의 차이는 뭐죠? 신중함은 어디서 끝나고 탐욕은 어디서 시작되는 거예요? 지난 크리스마스 때 외숙모는 내가 그 사람하고 결혼하는 게 경솔한 일이라면서 반대했잖아요? 근데 지금은 겨우 만 파운드를 가진 여자하고 결혼하려 한다고 해서 그를 돈만 아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네가 그 킹이라는 여자에 대해 말해주기만 한다면 내가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지.”

“아마 아주 좋은 여자일 거예요. 나쁜 여자라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까요.”

“그치만 할아버지의 사망으로 그 여자가 재산을 상속받기 전에는 위컴이 관심도 안 보였잖아?”

“왜 그 사람이 관심을 보여야 하죠? 그 사람이 돈 없는 나한테 관심을 보여선 안 되는 거였다면, 좋아하지도 않고 돈도 나처럼 없는 그런 여자한테 관심 보일 필요는 없는 거 아니에요?”

“그치만 재산을 상속받은 직후에 갑자기 그 여자한테 관심을 갖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위컴처럼 궁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처럼 예의범절을 다 갖출 여력이 없을 거예요. 그 여자만 반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반대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 여자가 반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야. 그건 그 여자의 판단력이나 감정에 어떤 결핍이 있다는 증거밖에 안 돼.”

“그렇담 위컴은 돈만 밝히는 사람이고 그 여자는 바보 같은 사람으로 알면 되겠군요.” 엘리자베스가 대꾸해주었다.

“나야 그렇게까진 생각지 않지. 더비셔에서 오래 산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되겠지.”

“저는 더비셔에 살던 사람들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줄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하트포드셔에 살고 있는 그의 친한 친구들 중에도 좋은 사람은 별로 없고요. 모두 역겨운 사람들이에요. 제가 내일 가는 곳에서도 좋은 점이라고는 갖추지 않은, 매너도 별로고 분별력도 없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고요. 결국 우리는 우둔한 사람들만 알아야 하는 처지로군요.”

“그런 식으로 세상을 자포자기하면 안 되는 거야.”

연극이 끝나기 전에 외숙모는 그들 부부가 계획하고 있는 여름 여행에 동행해달라며 엘리자베스가 예기치도 못한 말을 꺼내었다.

“아직 얼마나 멀리 갈지는 정하지 않았어. 그치만 관광지가 많은 호수 지방까지는 갈 거야.”

엘리자베스에게는 그보다 더 반가운 일이 있을 수 없었고, 따라서 고마운 마음으로 기꺼이 그 초대를 받아들였다.

“외숙모,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기쁜 적은 없어요. 외숙모 덕분에 생기가 넘치게 생겼어요. 이제 짜증 나는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어요. 남자들이 좋은 여행지만 하겠어요? 아주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여행을 해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요. 하나도 놓치지 말고 죄다 기억하자고요. 호수, 산, 강, 그런 거 모두 소중히 간직할 거예요. 오래오래 기억하면서 얘기하자고요. 한 가지라도 그럭저럭 지나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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