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2부 11~12

나단비 | 2024.01.28 09:33:02 댓글: 0 조회: 135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3593
제11장
 
 
 
그들이 집을 나간 뒤에 엘리자베스는 마치 다씨에 대해서 한껏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가 켄트 지방에 머문 뒤로 제인이 보내온 편지를 모두 꺼내어 자세히 훑어보았다. 거기에는 어떤 불평의 언사나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어떤 구절도 없었고 현재의 고통을 전해주는 말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편지에서, 그리고 모든 구절에서 언니의 스타일이었던 쾌활함이나,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불평도 늘어놓지 않는 소박한 마음에서 나오는, 그리고 여지껏 그늘진 마음이라고는 갖지 않았던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활달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한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자세히 읽자 모든 글귀에서 근심이 배어나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다씨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 데 아무런 자괴감도 느끼지 않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더욱더 언니의 고통을 절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씨는 이제 모레가 되면 떠날 테고, 더욱이 2주 후면 엘리자베스 자신이 언니를 만나 기운을 북돋워줄 수 있다는 점이 약간의 위안이 되는 것이었다.

다씨가 켄트 지방을 떠날 때 그의 사촌도 함께 떠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엘리자베스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피츠윌리엄은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그녀도 그가 괜찮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그 소리에 갑자기 정신이 든 그녀는 방문한 사람이 피츠윌리엄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했다. 전에도 한 번 그가 저녁때 찾아온 적이 있고 지금도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집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놀랍게도 다씨였고, 그래서 피츠윌리엄을 생각하고 있던 그녀의 기분은 돌변했다. 다씨는 서둘러서 그녀에게 좀 어떠냐고 물어왔고, 그녀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 방문했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냉랭한 태도로 대답해주었다. 다씨는 잠시 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그의 태도에 당황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분 동안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씨가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애를 써봤지만 소용이 없더군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답니다. 내가 얼마나 엘리자베스 양을 흠모하고 사랑하는지를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엘리자베스는 너무 놀라서 아무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얼굴이 붉어졌으며 그 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묵묵히 있기만 했다. 다씨는 그런 그녀의 태도를 고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기가 지금까지 그녀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었는지 즉시 모두 고백했다. 그는 말을 조리 있게 잘했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감정보다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했고 자신의 자존심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더 조리 있게 하지를 못했다. 그녀의 신분이 낮은 점이나 그녀와의 결혼이 자기 집안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이성이 항상 감정을 억눌렀다는 점 등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그런 말이 그의 지위에 어울리기는 했을 테지만 청혼 자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녀가 마음속 깊이 그를 증오하기는 했지만 그런 지위의 사람에게서 애정을 고백받는 것이 그녀에게는 찬사가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받은 고통을 생각해서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말 때문에 그녀는 분노 속에서 그에 대한 동정심을 모두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녀는 그가 말을 마친 다음에 좀 있다가 차분하게 자기 말을 하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애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고 이제 그녀가 자기의 사랑을 받아들임으로써 자기에게 보답해야 한다면서 말을 마쳤다. 엘리자베스에게는 그가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의 청혼이 받아들여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걱정이나 불안감 같은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의 태도는 확신에 차 있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이 엘리자베스에게는 화를 치밀어오르게 할 뿐이었고, 그가 말을 마치자 얼굴이 붉어지면서 그녀가 이렇게 응수했다.

“이런 경우라면 내 생각이 다르더라도 일단은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예의라는 것을 난 알고 있어요. 고마움을 느껴야 당연한 일이겠고, 고마움을 느꼈다면 선생님께 감사를 표시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치만 그렇게 할 수가 없네요. 난 한 번도 선생님의 호감을 얻으려고 한 적이 없고 선생님도 마지못해서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신 걸로 보이는군요. 내가 선생님께 고통을 주었다면 미안합니다. 그치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됐고, 그러니 그 고통이 오래가지 않았으면 해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호감을 갖지 못할 이유가 있고 이제 내 설명을 들었으니 고민을 극복하기가 쉬워질 거예요.”

눈은 그녀에게 고정시키고 벽난로에 기대어 서 있던 다씨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놀랍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듯 보였다. 분노로 안색이 창백해졌고 모든 표정에서 마음의 동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가운데 냉정함을 되찾았다고 확신할 때까지는 입을 열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있는 동안에 엘리자베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가 침착함을 되찾고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내가 바라던 대답인가 보군요! 근데 그렇게 예의도 갖추려고 하지 않은 채로 거절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알고 싶군요. 그게 중요하지는 않겠지만서도요.”

그녀가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난 왜 선생님이 자신의 의지나 자신의 이성이나 심지어 자신의 인격에도 반해서, 그것이 나한테는 화를 돋우고 모욕감을 준다는 사실을 알면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군요. 내가 무례하게 보였다면 그게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내가 선생님을 나쁘게 생각하는 다른 한 가지 이유도 있어요. 선생님도 알고 계시는 거죠. 내가 선생님한테 반감을 품고 있지 않더라도, 그리고 심지어 호감을 품고 있더라도 내가 아끼는 우리 언니의 행복을 어쩌면 영원히 짓밟아버린 사람의 청혼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녀가 이런 말을 할 때 다씨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지만 그것은 잠깐이었고, 그녀가 얘기하는 동안에 그는 그녀의 말을 중단시키려고 생각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
“난 선생님을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충분하다고요. 어떤 동기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선생님이 한 행동에 대한 구실은 되지 못할 거예요. 선생님은 두 사람을 갈라놓았어요. 그중에서 한 사람은 변덕스럽고 불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만들고, 다른 한 여자는 좌절된 희망으로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만들었죠. 그래서 두 사람을 뼈저린 불행 속으로 몰아넣는 일을, 비록 선생님이 혼자서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주도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으시겠죠?”

그녀가 말을 멈추고서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가 후회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약간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그런 일을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있어요?” 그녀가 물어보았다.

그러자 다씨가 침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 친구를 엘리자베스 양의 언니로부터 떼어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고, 그런 성공을 거두게 된 점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부인하지 않을 겁니다. 난 내 자신보다도 내 친구를 위해서 모든 일을 했어요.”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알아듣는 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싫었지만 그 말의 의미를 놓치지는 않았고 그 말을 들어서 기분이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선생님을 싫어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 일이 있기 훨씬 오래전부터 내 마음은 정해져 있었어요. 위컴한테 말을 듣고 선생님에 대해서 모든 사실을 알 수 있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으시죠? 무슨 우정을 들먹여서 변명하실 생각인가요? 아니면 어떤 거짓말로 사람을 기만할 작정이신가요?”

“그 사람이 한 말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은 걸로 보이는군요.” 다씨가 얼굴이 다소 붉어진 상태에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 사람이 겪은 고통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 사람의 고통! 하긴 그가 고통을 많이 받았을 거예요.” 다씨가 응수했다.

엘리자베스가 소리를 높여 말했다. “선생님이 그를 지금처럼 가난한 사람으로 만들어놓았잖아요. 그 사람이 받게 돼 있는 것을 주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거라고요. 그 사람이 인생의 황금기 때 모든 걸 박탈해버렸어요. 그 사람이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요. 그런 파렴치한 일을 선생님이 한 거잖아요. 그리고 그가 그렇게 별 볼일 없는 상태가 되니까 경멸하고 조롱할 수 있는 사람도 선생님이고요.”

다씨가 빠른 걸음으로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이게 엘리자베스 양이 나한테 내리는 평가로군요! 이게 내가 받아야 하는 대접이에요. 그처럼 자세히 설명해줘서 고맙군요. 엘리자베스 양의 말대로라면 내 잘못은 아주 크군요.” 그리고 그가 걸음을 멈추더니 엘리자베스를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진지하게 청혼을 하지 못한 점을 솔직하게 고백하여 엘리자베스 양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만 않았더라도 그런 잘못은 눈감아주셨을지도 모르지요. 내가 만약에 내 심리적인 갈등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고, 그리고 내가 이성적으로 따져보거나 마음속 깊이 생각해보더라도 아무 하자가 없이 완벽한 애정을 바탕으로 청혼을 하는 거라고 그대가 믿게끔 해드렸다면 그런 비난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난 어떤 종류의 가식도 혐오한답니다. 그리고 난 내가 말한 내 감정에 대해서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요. 그건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이었죠. 엘리자베스 양의 집안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내가 기뻐할 줄 알았나요? 내가 나보다 못한 집안과 결혼하게 됨을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나요?”

엘리자베스는 그런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더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그런 기분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노력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오해하고 계십니다. 좀 더 신사적으로 행동했더라면 내가 청혼을 거절할 때 미안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죠. 그치만 선생님이 청혼한 방식 때문에 내가 다르게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그가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가 얘기를 계속했다.

“선생님이 다른 어떤 방식으로 청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나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가 다시 그 말에 놀라는 모습이 역력해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울분이 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얘기를 계속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선생님이 거만하고 자만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다른 감정들이 쌓여가면서 선생님이 별로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만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난 선생님 같은 분하고 결혼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이제 충분히 알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양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제 완벽하게 이해했고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했는지 부끄럽기만 하군요. 너무 많은 시간을 뺏은 점 죄송하고요, 엘리자베스 양의 건강과 행복을 빌겠습니다.”

그는 그 말을 마치고 황급하게 방을 나갔고, 다음 순간 엘리자베스는 그가 현관문을 열고서 그 집을 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느끼는 마음의 동요는 이제 고통스러울 정도로 커졌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아 반시간 동안 흐느꼈다. 앞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리저리 생각해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다씨로부터 청혼을 받은 사실! 그가 여러 달 동안 자기 자신을 그토록 사랑해왔다는 사실! 그러한 사랑이 너무 강렬하여 그는 어떠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 친구를 제인과 결혼하지 못하게 만든 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의 친구만큼 부정적으로 여겨졌을 그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그처럼 애정을 품고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 자신이 그처럼 다씨에게 애정을 불러일으킨 점은 축복할 만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자만심, 그의 혐오스러운 태도, 제인에게 한 짓에 대해서 뉘우치지 않고 말한 점, 마치 정당하다는 투로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자신이 한 일을 밝힌 점, 위컴에게 한 일에 대해서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이 말하는 태도, 그를 잔인하게 다룬 점을 후회하지 않는 점 등은 그녀에 대한 그 남자의 애정을 생각했을 때 밀려왔던 그에 대한 동정심을 이내 압도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런 혼란스러운 생각에 빠져 있는데 캐서린 여사네 마차 소리가 들려왔고, 그녀는 샬럿이 그런 처지에 놓인 자신의 모습을 보면 안 될 것 같아 급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제12장
 
 
 
다음 날 아침 엘리자베스는 지난 밤에 잠이 들었을 때와 동일한 생각을 하면서 잠이 깨었다. 어제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었고 어떤 일도 못할 것 같아서 아침 식사를 한 다음에 바깥공기를 쐬며 산책을 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매일 즐겨 찾던 산책길로 곧장 갔는데 다씨도 그쪽으로 오곤 한다는 사실이 생각나서 발걸음을 멈추었고, 정원 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선형의 길에서 떨어져 오솔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 길의 한쪽은 아직도 정원의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녀는 문 하나를 가로질러서 뜰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 오솔길을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아침나절의 상쾌한 풍경에 유혹되어 입구에 멈추어 선 채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켄트에서 5주일을 보내는 동안에 자연 경관이 많이 변해 있었고, 철 이른 나무에는 매일 푸르름이 더해가고 있었다. 그녀가 막 산책을 다시 계속하려고 할 때 정원의 가장자리를 둘러싼 키 작은 나무 울타리 사이로 어떤 남자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이었다. 그가 그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 사람이 다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곧 돌아서 나왔다. 그렇지만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남자는 이제 그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면서 그녀를 불러대는 것이었다. 그녀는 벌써 돌아서 있었는데,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그 사람이 다씨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다시 정원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 남자도 그때쯤에는 그 입구에 이르러서 그녀에게 편지 한 통을 내밀어 보였고, 그녀가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들자 담담하고 침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양을 만나려고 한동안 숲속을 헤매고 다녔답니다. 이 편지를 읽어주시는 영광을 베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숲 쪽으로 향했고, 이어서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엘리자베스는 즐거움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강한 호기심 때문에 편지를 열어보았는데, 놀랍게도 빽빽한 글씨로 가득 채워진 두 장의 편지지가 있었고 봉투에도 마찬가지로 많은 글씨가 씌어져 있었다. 그녀는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 편지가 씌어진 시각은 로싱스 저택에서의 8시라고 되어 있었고,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편지를 읽고서 지난 밤에 엘리자베스 양을 그처럼 혐오스럽게 만들었던 그런 불쾌한 감정이 다시 되살아나게 하거나 그런 청혼을 다시 할 것이라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제가 편지를 쓰는 의도는 우리 두 사람이 각자의 행복을 위해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잊었으면 좋을 점에 대해서 길게 얘기함으로써 엘리자베스 양에게 고통을 주려고 한다거나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려는 것과는 다릅니다. 제가 이런 편지를 써서 엘리자베스 양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나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게 아니었더라면 내가 이 편지를 쓰고 엘리자베스 양이 읽어야 하는 수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이 편지에서 나의 마음대로 엘리자베스 양에게 요청하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기분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만 당신께서 읽어주셔야 하는 게 정당하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어젯밤에 엘리자베스 양은 본질적으로 아주 다르고 그 중대성에서도 전혀 다른 두 가지 잘못을 범했다고 저를 나무라셨습니다. 첫 번째로 당신이 언급하신 점은 내가 빙리를 당신의 언니로부터 두 사람의 감정은 무시해버린 상태에서 갈라놓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제가 위컴이 받아야 하는 직책을 앗아버림으로써 인륜에 어긋나는 짓을 했고 그 사람의 행복을 짓이겨놓았으며 그의 장래까지 빼앗아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어린 시절의 친구이자 제 아버님이 그토록 아끼셨고 우리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는 그 젊은이를 고의로, 그리고 내 기분에 따라서 배신했다면 저는 아주 사악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행동과, 겨우 몇 주 동안 애정을 싹틔운 두 사람을 갈라지게 한 일은 비교가 되지도 않을 테지요. 당신이 저의 행동과 동기에 대해서 쓴 이 편지를 읽은 뒤에는 그 두 가지 사실에 대해서 어젯밤과 같은 비난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제 입장에서 얘기하다 보면 당신의 기분이 어쩔 수 없이 나빠질 수도 있을 터인데 거기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그런 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제가 사과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울 수도 있겠지요. 빙리가 그 지역의 여자들 중에서 엘리자베스 양의 언니를 가장 좋아한다는 점은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하트포드셔에 간 지 얼마 안 돼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러한 감정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된 것은 네더필드에서 열린 무도회 날 저녁이었답니다. 저는 빙리가 누구한테 애정을 갖는 모습을 그 전에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무도회가 있던 날 당신과 제가 춤을 출 때 저는 우연히 윌리엄 루카스 경이 하는 말을 듣고서 엘리자베스 양의 언니에 대한 빙리의 관심이 사람들에게 그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윌리엄 루카스 경은 두 사람의 결혼이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고 이제 결혼 일자를 잡는 일만 남았다는 투로 이야기했었지요. 저는 그때부터 빙리의 태도를 관찰해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내가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빙리가 훨씬 더 제인 양을 좋아하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엘리자베스 양의 언니도 지켜보았답니다. 그런데 그분의 겉모습이나 태도를 보면 다른 때나 마찬가지로 개방적이고 쾌활했으며 매력적이기는 했지만, 빙리를 특별히 좋아하고 있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그날 저녁에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양의 언니는 빙리가 보이는 관심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그와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엘리자베스 양이 잘못 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내가 틀리게 보았을 테지요. 엘리자베스 양이 언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터이니, 그렇다면 후자가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고 제 잘못된 판단으로 언니가 고통을 받았다면 엘리자베스 양이 노여워하는 게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엘리자베스 양의 언니가 보이는 태도가 아주 담담했기 때문에 가장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그분이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리라는 점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제 친구의 감정에 무심하다고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바람이나 저의 근심이 제가 무슨 결정을 할 때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믿었던 건 객관적인 자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러한 결혼에 반대했던 건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요. 제 친구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집안이 별로라는 점이 저만큼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결혼에 반대할 강력한 이유가 있는데, 그런 이유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밝혀드리겠습니다. 엘리자베스 양 어머님의 동기간의 신분이나 지위가 문제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은 엘리자베스 양의 어머님이랑 세 여동생이 자주 드러내 보인, 그리고 이따금은 엘리자베스 양의 아버님도 드러내 보였던 그러한 교양 없음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습니다. 저를 나무라십시오. 엘리자베스 양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건 저한테도 고통입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양 가족들의 허물로 인해서 이런 얘기를 듣는 점이 불쾌하시겠지만, 당신이나 당신의 언니만큼은 교양 있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그 때문에 두 분의 품위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위로가 되실지도 모르겠군요. 저는 그날 저녁에 본 모습을 기준으로 할 때 엘리자베스 양의 가족들에 대한 제 생각이 옳다고 느꼈고, 따라서 저는 제가 보기에 불행으로 이어질 것 같은 결혼으로부터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가만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양도 기억하시겠지만 빙리는 그 이튿날 곧 돌아올 계획을 갖고서 런던으로 떠났습니다. 이제는 제가 한 일에 대해서 설명드려야겠군요. 빙리의 누이들도 불안한 마음을 갖기는 저와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서로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두 사람을 갈라놓아야 한다는 데 합의했고, 그래서 빙리를 쫓아 런던으로 갔던 것입니다. 런던에서 나는 두 사람의 결혼에 따르는 좋지 않은 점을 친구에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한 나쁜 점을 열심히 말해주었지요. 그런데 내 설득으로 빙리를 머뭇거리게 하고 그의 결심을 연기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만약에 엘리자베스 양의 언니가 그 사람을 아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더라면 결국 나의 설득이 성공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빙리는 그때까지 엘리자베스 양의 언니가 자신과 동일한 애정을 품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진실한 애정을 갖고 있다고 믿었지요. 그런데 빙리는 온화함을 타고났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보다는 내가 해주는 판단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내가 빙리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고 설득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그렇게 확신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그를 하트포드셔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일은 쉬워졌습니다. 전 거기까지 잘못한 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에서 제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엘리자베스 양의 언니가 런던에 있다는 점을 빙리에게 감추는 일이었습니다. 캐롤라인이 그 사실을 알았고 저도 알고 있었지만 빙리는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둘이 서로 만났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제가 빙리를 보기에 엘리자베스 양의 언니를 만나도 아무런 이상이 없을 정도로 그의 애정이 식은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빙리를 속이는 일이 저의 본심하고는 맞지 않는 비겁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간에 저는 그렇게 하기를 마음먹었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그렇게 일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드릴 말씀도 없고, 더 이상 사과드릴 일도 없습니다. 제가 만약에 엘리자베스 양의 언니를 비통하게 만들어놓았다면 그건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행동이 엘리자베스 양이 보기에는 당연히 이해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위컴한테 해를 끼쳤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그 사람과 내 가족의 내면 관계를 밝혀야만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서 저를 비난했는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이야기가 진실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증인을 한 사람 이상 드러낼 수 있습니다. 위컴의 아버님은 아주 훌륭한 분이셨지요. 그분이 펨벌리에 있는 우리의 재산을 오랫동안 관리해왔었는데 일을 아주 잘 처리하셨기 때문에 저의 아버님께서는 그분에게 보답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님은 조지 위컴을 자식같이 여기며 많이 돌보아주셨던 것입니다. 위컴의 고등교육과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업까지도 지원해주셨습니다. 그런 교육이 그에게는 아주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가난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던 그의 부친은 자식한테 고등교육을 시켜줄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아버님은 마음에 드는 위컴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그를 아주 소중히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성직에 있기를 기대했고, 그렇게 되면 자리를 제공해줄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그 사람을 다른 각도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이 제 부친의 눈에는 띄지 않도록 애썼던 자기 자신의 나쁜 성질이 있었는데, 그와 비슷한 연배로서 저희 아버님이 지켜보지 못하는 시간에 그를 지켜볼 수 있던 나는 그의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엘리자베스 양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일지 엘리자베스 양 당신만이 알 수 있겠지만요. 위컴이 엘리자베스 양의 마음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사람의 본성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나쁜 점이 또 하나 추가될 것입니다. 덕망 높으신 제 부친께서는 5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의 위컴에 대한 애정은 마지막 시간까지 변함이 없었고, 그의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해주라고 제게 지시하시면서 만약 위컴이 성직을 택한다면 좋은 자리가 났을 때 바로 임명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 파운드의 유산도 남겨놓았지요. 그의 부친도 저희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조금 후에 돌아가셨는데, 그런 일이 있고 반년도 되지 않아서 위컴이 제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자기가 성직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을 굳혔으며, 그러니 그 성직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는 대신에 돈으로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요구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리고 추가하기를, 자기가 법률 공부를 하고 싶은데 천 파운드의 유산에 대한 이자로는 그런 학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저도 잘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사람 말을 믿었다기보다는 그가 바라는 대로 되기를 한편으로 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든 간에 그 사람의 제안에 동의해줄 용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위컴 같은 사람이 성직자가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사람한테 성직의 기회가 오더라도 그것을 받지 않는 대가로 제가 그에게 3천 파운드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사람을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펨벌리나 런던에 있는 제 집으로 그 사람이 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그가 런던에서 지내기는 했지만 법학 공부를 한다는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그저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년가량 저는 그 사람 소식을 전혀 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목사직을 계승하기로 되어 있던 교회의 목사가 사망하자 위컴 그 사람이 다시 편지를 보내어 자기가 그 자리를 맡도록 해달라고 간청해왔습니다. 자신이 아주 곤궁한 처지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한테 법학 공부가 맞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고 이제 성직자가 되기로 확고하게 결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제가 그 사람을 목사직에 임명해야 하는데, 그 사람은 제가 그렇게 해줄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임명할 의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제가 부친의 유언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고, 그 사람이 여러 번 간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제가 나쁜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 처지가 궁핍해지면서 점점 더 저를 원망하게 되었고, 저를 비난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저를 나쁘게 평가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 사람과 저의 관계는 완전히 끊기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생활해왔는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난 여름에 나를 다시 괴롭히면서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점은 제가 될 수 있으면 잊고 싶은 일입니다. 다른 상황이라면 이런 얘기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엘리자베스 양이 이 일에 대해서 비밀을 지켜주실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저한테는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제 어머님의 조카인 피츠윌리엄 대령과 제가 그 아이의 후견인 역할을 맡고 있답니다. 1년쯤 전에 동생이 학업을 마치자 우리는 런던에 집을 하나 구해서 동생이 살도록 만들어놓았습니다. 지난 여름에 제 동생이 가정교사를 맡고 있던 어떤 여자와 함께 램스게이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위컴도 가게 되었는데 의심의 여지없이 의도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가정교사인 욘지라는 여자와 위컴이 알던 사이라는 점이 나중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욘지라는 여자한테 우리가 속아버린 셈입니다. 그 여자의 협조로 위컴은 제 여동생의 호감을 얻게 되었고, 제 여동생이 애정에 눈이 멀어버려서 위컴과 도피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제 동생 조지아나는 겨우 열다섯 살이었고, 그래서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처럼 경솔한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도피 사실을 알려준 것도 제 동생이었답니다. 도피하기 하루 전에 제가 갑자기 동생이 있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제 동생은 아버지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던 저를 분노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견디지 못하고 저한테 모든 사실을 고백해주었습니다. 제가 어떤 기분이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서 엘리자베스 양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 동생의 처지를 생각해서 추가적인 말은 하지 않겠지만, 저는 위컴에게 편지를 써서 그가 즉시 그곳을 떠나도록 만들었고 욘지라는 여자는 제 동생의 가정교사 자리를 박탈당했지요. 위컴의 의도가 3만 파운드에 이르는 동생의 재산에 있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에 대한 복수심이 강한 동기가 되었을 거라는 점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복수는 완벽해질 뻔했던 거지요. 이것이 모든 사건에 대한 진솔한 기술입니다. 만약 제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가 위컴한테 못되게 행동했다는 비난은 하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위컴이 어떤 식으로 엘리자베스 양을 속였는지는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그 사람의 의도가 성공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지요. 엘리자베스 양이 내막을 몰랐기 때문에 그 사람의 거짓을 알 수 없었던 것이고 그 사람을 의심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점에 대해서 왜 어젯밤에 엘리자베스 양한테 말씀드리지 않았는지 의심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제가 너무나 흥분돼 있었기 때문에 어디까지 진실을 말해주고 또 밝혀도 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모든 점에 대해서 피츠윌리엄 대령한테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그는 저와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에 계속 친하게 지내왔고 그 사람이 제 아버님의 유언 집행인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동안에 벌어진 일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저에 대한 나쁜 감정 때문에 제 말을 의심하신다고 하더라도 제 사촌과는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실 수 있도록 이 편지가 오늘 오전 중으로는 엘리자베스 양의 손에 넘겨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양에게 신의 은총이 있기를 빕니다.

피츠윌리엄 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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