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과 웬디 1

나단비 | 2024.02.05 18:58:08 댓글: 0 조회: 148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5722
제1장 피터가 뚫고 들어오다

아이들은 누구나 자라게 마련이다. 비록 예외도 하나 있긴 하지만. 아이들은 머지않아 자기가 자라게 된다는 것을 아는데, 웬디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두 살일 때에 하루는 정원에서 놀다가, 꽃을 또 한 송이 꺾어서 들고 어머니에게 달려간 적이 있었다. 아마도 웬디는 십중팔구 기뻐하는 모습이었나 보다. 왜냐하면 달링 부인이 한 손을 자기 가슴에 얹으면서 이렇게 탄식했기 때문이다. “아, 너는 왜 이런 상태로 영원히 남아 있을 수는 없는 거니!” 이 주제에 관해서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말은 이게 전부였지만, 그때 이후로 웬디는 자기가 반드시 자라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분도 나이 두 살이 지난 뒤에는 틀림없이 알고 말 것이다. 두 살이야말로 종말의 시작이다.

물론 그들은 14번지에 살았고, 웬디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녀의 어머니가 이 집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달링 부인은 사랑스러운 숙녀였으며, 낭만적인 정신을 가졌고, 매우 귀엽고 조롱하는 듯한 입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낭만적인 정신은 마치 저 수수께끼 같은 동양에서 건너온 작은 상자들처럼, 하나 안에 또 하나가 들어 있는 식이었다. 이럴 경우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상자를 발견하더라도, 거기에는 항상 또 하나의 상자가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녀의 귀엽고 조롱하는 듯한 입에는 키스가 하나 달려 있었는데, 이 키스로 말하자면 웬디조차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비록 분명히 거기, 오른쪽 입가에 완벽하고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데도 말이다.1)
달링 씨가 부인을 얻게 된 경위는 이러했다. 달링 부인이 소녀였을 때에 소년이었던 여러 신사들은 자기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동시에 깨달았고, 급기야 청혼을 하려고 모두 그녀의 집까지 뛰어갔다. 반면 달링 씨 혼자만큼은 마차를 잡아타서 모두를 간발의 차이로 따돌렸으며, 그리하여 부인을 얻게 된 것이었다. 그는 그녀의 다른 모든 것을 얻었지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상자와 키스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상자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키스를 얻으려는 노력은 머지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웬디가 생각하기에는 나폴레옹 정도는 되어야 그걸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나폴레옹조차도 시도했다가 버럭 화를 내면서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달링 씨가 종종 웬디에게 자랑하는 바에 따르면,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존경하기까지 했다. 그는 주식에 대해서도 아는, 깊이 있는 인물이었다. 물론 어느 누구도 주식을 진짜로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는 잘 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그리고 종종 주식이 올랐다느니 내렸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모든 여성이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방식으로 했다.

달링 부인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했으며, 신혼 때만 해도 가계부를 완벽하게, 거의 기뻐하면서까지 기입하는 모습이, 마치 그게 게임이라도 되는 양 콜리플라워 하나 빼먹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콜리플라워가 통째로 빠져 버리는 대신, 얼굴 없는 아이들의 그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금액을 합산해야 할 때에 이런 그림을 그렸다. 이런 그림은 달링 부인의 추측이었다.

웬디가 맨 먼저, 다음으로 존이, 다음으로 마이클이 태어났다.

웬디가 태어나고 한두 주는 과연 두 사람이 이 아기를 키울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는데, 왜냐하면 입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었기 때문이다. 달링 씨는 부인이 대단히 자랑스러웠지만, 한편으로 명예를 무척이나 지키는 인물이었던지라, 부인의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부인의 손을 붙잡고 비용을 계산했으며, 그러면 부인은 남편을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앞으로의 일을 운에 맡기고 싶어 했으나, 그의 방식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의 방식은 연필과 종잇조각을 가지고 하는 것이었으며, 만약 그녀가 뭔가 말을 해서 정신을 헛갈리게 하면, 그는 처음부터 다시 계산을 시작해야 했다.

“이제부터 방해하지 말아요.”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지금 가진 건 1파운드 17실링2)이고, 사무실에 2실링 6펜스가 있지. 사무실에서 마시는 커피를 끊으면 그게 10실링쯤 될 거니까, 모두 2파운드 9실링 6펜스가 되고, 거기다가 당신의 18실링 3펜스를 합치면 3파운드 9실링 7펜스고,3) 거기다가 내 수표책에 있는 5파운드 0실링 0페니를 더하면 8파운드 9실링 7펜스가 되는군. 저기 움직이는 게 누구지? 8파운드 9실링 7펜스, 자릿수를 올리고 나면 7펜스. 아무 말 말아요, 여보. 그리고 당신이 그때 문간에 찾아온 남자한테 빌려 준 1파운드가 있었지. 조용히, 아가. 자릿수를 올리고 나면, 아가, 이런, 결국 저질러 버렸군! 내가 방금 9파운드 9실링 7펜스라고 했던가? 그래, 내가 방금 9파운드 9실링 7펜스라고 했었지. 문제는 이거야. 우리가 이 9파운드 9실링 7펜스로 1년 동안 살아갈 수 있을까?”

“당연히 살아갈 수 있죠, 조지!” 달링 부인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에서든 딸을 두둔하는 입장이었고, 부부 두 사람 중에서는 아버지 쪽이 실제로 중요한 인물이었다.

“볼거리도 기억해야지.” 그는 위협하듯이 그녀에게 경고하며 다시 계산을 시작했다. “볼거리라면 1파운드는 들 거야. 내 생각에는 그렇지만, 어쩌면 30실링일 가능성이 더 클 것도 같군. 아무 말 말아요. 홍역은 1파운드 5실링, 독일 홍역은 반 기니, 모두 합쳐 2파운드 15실링 6펜스로군. 손가락 흔들지 말아요. 백일해는 일단 15실링이라고 치지.” 이런 식으로 해서, 매번 계산할 때마다 금액이 다르게 추가되었다. 하지만 마침내 웬디가 이 질병들을 앓을 무렵에는 볼거리는 12실링 6펜스로 금액이 낮아져 있었으며, 두 가지 종류의 홍역은 한 번에 치료가 가능했다.

이와 똑같은 소동은 존이 태어났을 때에도 마찬가지였고, 마이클이 태어났을 때에는 그야말로 위기일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부모는 두 아이 모두를 키우기로 했으며, 머지않아 세 아이가 줄줄이 유모를 따라 풀섬 양의 유치원에 가는 광경을 아마 여러분도 보았을 것이다.
달링 부인은 무엇이든지 깔끔한 것을 좋아했으며, 달링 씨는 이웃과 완전히 똑같이 하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당연히 두 사람은 유모를 하나 두었다. 이들 부부는 가난했으니, 아이들이 마시는 우유의 양 때문에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이 고용한 유모는 뉴펀들랜드종 개였는데, 이름은 나나라고 했고, 달링 부부가 데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딱히 주인이 없었다. 하지만 이 개는 항상 아이들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달링 부부는 켄징턴 가든스4)에서 이 개와 안면을 익혔다. 그곳에서 이 개는 한가한 시간 내내 여기저기의 유모차를 들여다보곤 했는데, 부주의한 유모들에게는 무척이나 미움을 샀으니, 왜냐하면 그런 유모들의 집에까지 굳이 따라가서 안주인에게 항의했기 때문이었다. 이 개는 유모 중에서도 그야말로 최고임이 밝혀졌다. 목욕 시간에는 얼마나 철저한지 몰랐다. 자기가 맡은 아이가 작은 울음소리라도 내면 한밤중의 어느 때라도 벌떡 일어났다. 물론 개집은 육아실 안에 있었다. 이 개는 천재였으니, 기침이라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되는 때가 언제인지, 그리고 민간요법대로 여러분의 목 주위에 양말을 둘러 주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이 개는 죽을 때까지 대황 잎사귀를 이용하는 등의 구식 치료법을 신봉했으며, 세균에 관한 저 모든 최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경멸의 소리를 냈다. 이 개가 아이들을 인솔하여 학교로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예절 훈련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면 조용히 옆에서 걸어갔고, 아이들이 열에서 벗어나면 머리로 툭 받아서 도로 들어가게 했다. 존이 축구를 하는 날에는 단 한 번도 그의 스웨터를 잊어버린 적이 없었고, 비가 내릴 때를 대비해서 평소에도 우산을 하나 입에 물고 다녔다. 풀섬 양의 유치원 지하에는 유모들이 대기하는 방이 하나 있었다. 다른 유모들은 긴 의자에 앉았고 나나는 바닥에 누웠지만, 양쪽의 차이는 이것 하나뿐이었다. 저들은 이 개가 자기네보다 더 낮은 사회적 지위에 있다고 간주하여 무시해 버렸고, 이 개는 저들의 가벼운 대화를 경멸했다. 이 개는 달링 부인의 친구들이 육아실을 찾아오는 것을 무척 싫어했지만, 그래도 손님이 오면 맨 먼저 마이클의 앞치마 유아복을 벗기고 파란 자수가 놓인 옷으로 갈아입혔으며, 웬디의 옷 주름을 펴고 존의 머리를 매만져 주었다.

그 어떤 유모의 일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수행된 적은 없었을 것이며, 달링 씨 역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웃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궁금해하면서 불편해했다.

그로선 이 도시에서 신경 써야 할 지위가 있었던 것이다.

달링 씨는 나나로 인해 또 한 가지 점에서 고민이 생겼다. 가끔 이 개가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저 녀석이 당신을 무지막지 존경한다는 걸 나는 알아요, 조지.” 달링 부인은 이렇게 남편을 안심시켰고, 그런 다음에는 아이들을 향해서 아버지에게 특별히 잘해 드리라고 눈치를 주곤 했다. 곧이어 멋진 춤판이 벌어졌고, 이때에는 이 집에서 다른 하인으로는 유일했던 라이자가 가끔 참가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긴 치마에 하녀 모자를 착용하면 그녀는 워낙 땅꼬마로 보였지만, 고용 당시에는 자기가 열 살은 이미 넘었다고 맹세했다. 이 장난꾸러기들의 쾌활함이란! 그중에서도 가장 쾌활한 사람은 단연 달링 부인이었으니, 발끝으로 맴돌기를 그야말로 격렬하게 했기 때문에,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입가에 달린 그 키스뿐일 지경이었고, 만약 여러분이 그녀에게 달려들면 그걸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한 지경이었다. 이보다 더 소박하고 더 행복한 가족은 결코 없었는데,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터 팬이 찾아오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달링 부인이 처음 피터의 이야기를 접한 것은 자기 아이들의 정신을 정리할 때였다. 이는 모든 훌륭한 어머니가 밤마다 되풀이하는 습관인데, 자기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그들의 정신을 뒤져서, 그날 하루 동안에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던 갖가지 항목들을 저마다의 올바른 자리에 도로 넣어 두어, 다음 날 아침을 위해 똑바로 정리해 놓는 일이었다. 만약 여러분이 자지 않고 깨어 있다면(물론 여러분은 그럴 수 없겠지만) 여러분의 어머니가 이 일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을 테고, 어머니가 이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건 마치 서랍 안을 정리하는 일과도 상당히 비슷하다. 내 생각에 여러분의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에서, 여러분 정신에 들어 있는 내용물 가운데 일부를 재미있다는 듯 만지작거리고, 도대체 여러분이 이걸 어디에서 주워 왔는지 궁금해하고, 좋거나 또는 좋지 않은 것들을 발견하고, 어떤 것은 새끼 고양이처럼 귀여워하며 자기 뺨에 갖다 대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곳에다가 황급히 넣어 두는 등의 일을 할 것이다. 여러분이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면, 침대에 들어갈 때 정신에 있었던 장난기와 못된 열정은 조그맣게 착착 개어져서 여러분의 정신 맨 밑바닥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 맨 위에는 그보다 더 예쁜 여러분의 생각들이 잘 말려진 채 고이 펼쳐져서 금방이라도 쓸 수 있게 되어 있을 것이다.

혹시 여러분은 어떤 사람의 정신을 묘사한 지도를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의사들이 여러분의 다른 부분에 관한 지도를 그리는데, 여러분 자신에 대한 지도는 극도로 흥미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정신은 워낙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통에, 이를 묘사한 지도를 그리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가 없다. 그 지도에는 마치 여러분의 체온 기록표에 나온 것과 같은 지그재그 선이 그어져 있으며, 이는 아마도 섬에 나 있는 길일 것이다. 왜냐하면 네버랜드5)는 십중팔구 섬이기 때문이다. 섬의 여기저기에는 놀라운 색깔들이 흩뿌려져 있고, 앞바다에는 산호초와 경쾌한 모습의 배가 보이고, 야만인들과 고독한 거처와 대개는 재봉사인 땅신령이 있고, 강물이 흐르는 동굴들이 있고, 여섯 명의 형을 둔 왕자들이 있고, 빠른 속도로 썩어 가는 오두막이 있고, 매부리코를 지닌 아주 작고 늙은 할머니가 한 명 있다. 이걸로 끝이기만 했어도 지도는 아주 그리기 쉬운 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한 학교에서의 첫날, 종교, 아버지들, 둥근 연못, 바느질, 살인, 교수형, 여격을 취하는 동사들, 초콜릿 푸딩이 나오는 날, 멜빵을 차는 날, 1부터 99까지 세기, 혼자서 이 뽑고 3펜스 받기 등등이 들어 있으며, 이 역시 섬의 일부거나, 혹은 그런 모습들이 언뜻언뜻 보이는 또 하나의 지도기 때문에 비교적 혼란스러운 편이며 특히나 어느 것 하나 가만히 멈춰 서 있지 않는 것이다.

물론 네버랜드들은 사람마다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존의 섬에는 석호가 하나 펼쳐져 있고 그 위를 날아가는 홍학들도 있어서 존이 종종 그 새 떼를 향해 총을 발사하는 반면, 마이클은 워낙 어린지라 홍학이 하나 있고 그 위를 날아가는 석호들이 펼쳐져 있는 식이었다. 존은 모래밭에 뒤집어 놓은 보트 안에서 살았고, 마이클은 움막에서 살았으며, 웬디는 잎사귀를 솜씨 좋게 꿰매어 만든 집에 살았다. 존에게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지만, 마이클은 밤만 되면 친구들과 어울렸고, 웬디는 어미에게서 버림받은 늑대 한 마리를 애완동물로 길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네버랜드들에는 일종의 가족 유사성이 있었으니, 그 섬들을 나란히 세워 놓고 바라보면 서로 코가 닮았느니 어디가 닮았느니 하는 말을 여러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는 아이들은 영원히 이 마법의 바닷가에 자기네 가죽배를 띄워 놓는다. 우리 역시 그곳에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그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더 이상 그곳에 상륙하지는 않는다.

그 모든 유쾌한 섬 중에서도 네버랜드는 가장 아늑하면서 가장 아담한 곳이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너무 광활한 나머지 한 가지 모험과 또 한 가지 모험의 거리가 지루할 정도로 멀지도 않았으며, 대신 기분 좋게 비좁은 편이었다. 여러분이 대낮에 의자와 식탁보를 가지고 놀 때에도 그곳은 전혀 놀라운 모습이 아니지만, 여러분이 잠들기 직전의 2분 동안, 그곳은 매우 현실에 가까워진다. 야간등이 있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자기 아이들의 정신 속을 여행할 때마다 달링 부인은 때때로 차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하곤 했는데, 이 가운데서도 가장 당혹스러운 것이 바로 ‘피터’라는 단어였다. 그녀가 아는 사람 중에는 피터가 결코 없는데도, 존과 마이클의 정신에는 그가 곳곳에 들어 있었으며, 웬디의 정신에는 그의 이름이 곳곳에 낙서처럼 적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이름은 다른 단어보다도 유독 굵은 글자로 적혀 두드러져 보였고, 달링 부인은 그걸 바라보면서 이 이름이 이상하게도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맞아요, 그 애는 좀 거들먹거리는 편이니까요.” 웬디는 아쉽다는 듯 시인했다. 어머니가 딸에게 그 이름에 관해 물어보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애라니,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거니, 얘야?”
“그 애가 피터 팬이잖아요, 어머니도 아시면서.”

처음에는 달링 부인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고 난 뒤에, 그녀는 요정과 함께 산다던 피터 팬을 간신히 기억해 냈다. 그에 관해서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죽으면, 그가 길의 일부분을 동행함으로써 죽은 아이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만 해도 그녀는 피터 팬이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결혼해서 상식을 갖춘 사람이 되었으므로 그런 자가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의구심을 품었다.

“게다가” 그녀는 딸 웬디에게 말했다. “그 아이도 지금은 이미 다 자랐을 거야.”

“어, 아니에요. 피터는 자라지 않아요.” 웬디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크기도 딱 저랑 같다고요.” 그녀의 말은 피터가 정신과 육체 모두에서 자기 크기와 같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해서 그런 사실을 알았는지는 웬디도 몰랐으며, 단지 그렇다는 걸 알 뿐이었다.

달링 부인은 달링 씨와 이 문제를 의논했지만, 남편은 미소와 함께 그저 흘려 넘겼다. “내 말이 맞는다니까.” 그가 말했다. “분명히 나나가 아이들의 머릿속에 집어넣은 황당무계한 생각에 불과해. 그야말로 개나 머릿속에 품음 직한 생각 말이지. 내버려 두면 결국 사라져 버리겠지.”

하지만 그 생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말썽꾸러기 소년은 달링 부인에게 상당한 충격을 가할 예정이었다.

아이들은 무척이나 기묘한 모험을 하면서도 정작 그 사실로 고민하지는 않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무려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기억하고 무심코 언급한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우연히 숲에서 만나서 같이 놀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어느 날 아침에 웬디가 한 가지 심란한 사실을 폭로할 때에도 이처럼 무심코 언급하는 방식을 취했다. 육아실 바닥에서 웬 나뭇잎이 발견되었는데, 아이들이 침대에 들어갈 때에는 분명히 없었던 것이어서, 달링 부인이 이 문제를 놓고 어리둥절하던 차에 웬디가 인내심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피터가 다시 왔다 간 거라고 난 믿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웬디?”

“그나저나 치우지도 않고 가다니, 참 못됐네요.” 웬디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워낙 깔끔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상당히 사무적인 어조로 태연하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자기 생각에는 피터가 밤에 가끔씩 육아실로 찾아와서 자기 침대 발치에 앉고는, 팬파이프를 연주해 준다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녀는 한 번도 깬 적이 없었고 그래서 자기가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아는지조차 몰랐지만, 그래도 그냥 안다고 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 웬디. 현관문을 두들기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이 집에 들어올 수가 없는데.”

“내 생각에 그 애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웬디의 대답이었다.

“얘, 여기는 무려 3층이거든.”

“혹시 창턱에도 나뭇잎이 떨어져 있지 않았어요, 어머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창문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도 잎사귀가 발견되었으니까.

달링 부인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으니, 왜냐하면 웬디에게는 이 모두가 워낙 자연스러운 일 같아서, 차마 너는 그저 꿈을 꾸었을 뿐이라며 일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얘!” 어머니가 소리쳤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그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니?”

“잊어버렸어요.” 웬디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아침을 먹으러 서둘러 달려가 버렸다.

아, 분명히 저 애는 꿈을 꾸었을 뿐일 거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잎사귀가 분명히 있기는 했다. 달링 부인은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잎맥만 남은 나뭇잎들이었지만, 영국에서 자라는 나무의 잎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녀도 확신했다. 그녀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고 촛불을 비춰 가면서 혹시 낯선 발자국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부지깽이로 굴뚝을 쑤시고, 벽을 두들겨 보기도 했다. 줄자를 가지고 창문에서 보도까지의 길이를 쟀더니 무려 9미터가 넘는 높이였으며, 기어오르는 데에 사용할 만한 관管도 없었다.

웬디는 꿈을 꾸었을 뿐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웬디는 꿈을 꾼 것이 아니었으며, 이 사실은 바로 다음 날 밤에 증명되었다. 어쩌면 이 집 아이들의 경이로운 모험은 바로 이날 밤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바로 그날 밤, 아이들은 모두 다시 침대에 들어가 있었다. 마침 나나가 쉬는 날이어서 달링 부인이 직접 아이들을 씻기고 노래를 불러 주었으며, 아이들은 하나하나 어머니의 손에서 벗어나 잠의 나라로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갔다.

만사가 워낙 안전하고 아늑해 보였으므로, 그녀는 이전의 두려움을 떠올리며 이제는 미소를 지었고, 바느질을 하려고 평온한 마음으로 난롯가에 앉았다.

바느질감은 마이클의 것이었으니, 이번에 생일을 맞으면서부터 셔츠를 입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이 따뜻한 데다 육아실에는 야간등이 세 개뿐이라서 침침했던 터에, 이내 바느질감은 달링 부인의 무릎에 놓이게 되었다. 곧이어 그녀는 고개를, 아, 무척이나 우아하게 끄덕였다. 그녀는 잠든 것이었다. 이 네 사람을 보라. 웬디와 마이클은 저쪽에, 존은 이쪽에, 그리고 달링 부인은 난롯가에. 이곳에는 야간등이 하나 더 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잠자는 동안 그녀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네버랜드가 지척으로 다가오고, 낯선 소년이 그곳에서 이곳으로 뚫고 들어왔다. 그녀는 그의 모습에도 놀라지 않았으니, 자녀를 두지 않은 여러 여성의 얼굴에서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녀를 둔 일부 어머니의 얼굴에서도 그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꿈속에서 그는 네버랜드를 가려서 흐릿하게 만드는 일종의 막을 찢어 버렸고, 이제 그녀는 웬디와 존과 마이클이 틈새 너머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 꿈 자체는 하찮은 것이었을지 몰라도, 그녀가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육아실의 창문이 활짝 열리면서 한 소년이 실제로 바닥에 내려섰다. 그의 곁에는 기묘한 불빛이 동행하고 있었는데, 겨우 여러분의 주먹 크기밖에는 안 되어 보이는 그 불빛은 생물처럼 방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내 생각에는 바로 이 불빛 때문에 달링 부인이 잠에서 깨어났던 것 같다.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고, 소년을 보자마자 어째서인지 즉시로 그가 바로 피터 팬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러분이나, 또는 나나, 또는 웬디가 거기 있었다고 치면, 우리는 그가 달링 부인의 키스와 매우 닮은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는 사랑스러운 소년이었으며, 온몸이 잎맥만 남은 나뭇잎으로 그리고 나무에서 흘러나온 진액으로 뒤덮여 있었다. 무엇보다 그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그가 젖니를 모조리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달링 부인이 어른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저 작은 진주 같은 이를 꾹 악물었다.




1) 여기서 ‘키스’는 단순히 입을 맞추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달링 부인이 딸에게도, 심지어 남편에게도 주지 않은 그 ‘키스’는 굳이 표현하자면 ‘한 여성에게 일생일대의 낭만적 사랑인 한 남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2) 1975년 이전의 영국에는 바이킹의 영향을 받은 12진법과 로마의 영향을 받은 10진법 모두에 기초한 복잡한 화폐단위가 존재했는데, 파운드, 크라운, 기니, 플로린, 실링, 페니 등이 그것이다. 1파운드=4크라운=20실링=240펜스, 1플로린=2실링, 1기니=21실링이며, 펜스는 페니의 복수형을 가리킨다.
3) 여기까지의 합계는 3파운드 7실링 9펜스가 되어야 맞는다. 그런데도 굳이 3파운드 9실링 7펜스라 쓴 것은, 달링 씨가 뭐든지 계산하기는 좋아하지만 정작 셈에는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하다.
4) 런던의 공원으로 하이드 파크와 나란히 위치해 있으며, 원래는 왕궁의 정원으로 만들어졌지만 훗날 대중에 개방되었다. 제임스 매슈 배리는 이곳을 즐겨 산책했으며, 『켄징턴 가든스의 피터 팬』(1906)의 무대로 삼기도 했다.
5) 영어에서 ‘네버네버Never-Never’는 19세기 이후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를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다. 피터 팬을 소재로 한 희곡에서는 처음에 ‘네버네버네버랜드’였다가 나중에 ‘네버네버랜드’로 이름이 짧아졌으며, 소설에서는 ‘네버랜드’로 더욱 짧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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