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과 웬디 2

나단비 | 2024.02.05 19:43:31 댓글: 0 조회: 101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5729
제2장 그림자

달링 부인은 비명을 질렀고, 그러자 마치 종을 울렸을 때에 응답하는 것처럼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마침 저녁 산책에서 돌아오던 나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개가 으르렁거리며 낯선 남자아이를 향해 달려들자, 남자아이는 가볍게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달링 부인은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는데, 이번에는 그 남자아이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녀는 남자아이가 죽었으리라 생각한 나머지 거리로 뛰어 내려가 그 작은 시신을 찾아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위를 쳐다보았는데, 어두운 밤하늘에는 아마도 별똥별이 아닐까 싶은 것 하나를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육아실로 돌아왔고 나나가 입에 뭔가를 물고 있음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 남자아이의 그림자로 밝혀졌다. 남자아이가 창밖으로 몸을 날린 순간에 나나는 상대를 바짝 쫓고 있어서, 비록 붙잡지는 못했지만 남자아이의 그림자는 미처 빠져나갈 시간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창문이 쾅 하고 닫히자, 그림자가 거기 딱 끼어 버린 것이었다.

여러분도 익히 짐작이 가겠지만 달링 부인은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지극히 일반적인 그림자였다.

나나는 이 그림자를 가지고 뭘 해야 제일 좋은지를 의심의 여지 없이 알고 있었다. 개는 그림자를 창문에 내걸었으니, 결국 이런 의미였다. ‘그 녀석은 당연히 이걸 가지러 올 겁니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 없이 이걸 그냥 가져가게끔 여기 걸어 두자고요.’

하지만 불운하게도 달링 부인은 그걸 차마 창문에 매달아 둘 수가 없었다. 그림자는 빨래와 너무 흡사하게 생겨서,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저하시켜 버렸다. 그녀는 그림자를 달링 씨에게 보여 줄까도 생각했지만, 그는 존과 마이클이 입을 겨울용 방한 외투를 사기 위해 돈 계산을 하고 있었으며, 두뇌가 맑아지라고 머리에 젖은 수건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괴롭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될 것만 같았다. 아울러 그녀는 그가 뭐라고 말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게 다 개를 유모로 삼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니까.”

그녀는 그림자를 둘둘 말아서, 서랍 안에 조심스레 넣어 두는 쪽을 택했다. 남편에게 이야기할 만한 기회가 올 때까지 말이다. 아, 이런!

기회는 일주일 뒤에, 결코 잊지 못할 그 금요일에 찾아왔다. 물론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이니만큼 내가 특히 조심했어야 했는데.” 그녀는 그 일 이후에 자기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반대편에 나나가 있는 경우에는 개의 한쪽 앞발을 붙잡고 말했다.

“아니, 아니야.” 달링 씨는 항상 이렇게 대꾸했다. “그 일은 모두 내 책임이에요. 나, 조지 달링이 그렇게 한 거라고. ‘메아 쿨파, 메아 쿨파.’6)” 그는 고전 교육을 받은 바 있었다.

이들은 이렇게 밤마다 앉아서 그 치명적인 금요일을 회상했고, 급기야 그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이 이들의 두뇌에 각인되어서, 마치 잘못된 경화硬貨에 찍힌 얼굴들처럼 반대편으로 도드라져 나타나게 되었다.

“내가 27번지에서의 저녁 초대를 받아들이지만 않았더라도.” 달링 부인이 말했다.

“내가 나나의 밥그릇에 내 약을 붓지만 않았더라도.” 달링 씨가 말했다.

‘내가 약을 좋아하는 척만 했더라도.’ 나나의 젖은 눈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파티를 좋아한 탓이에요, 조지.”

“내가 치명적인 유머 감각을 지닌 탓이에요, 여보.”

‘하찮은 일에 대한 제 까다로운 성격 때문이에요, 주인님과 주인마님.’

그러면 그들 중 하나, 또는 더 여럿이 대성통곡을 했다. 나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맞아, 맞아, 이분들은 애초에 개를 유모로 두지 마셨어야 했어.’ 이럴 때면 대개 달링 씨가 손수건으로 나나의 눈을 닦아 주었다.

“그 못된 놈이!” 달링 씨는 이렇게 소리를 질렀고, 나나도 맞는다는 듯 컹컹 짖었지만, 달링 부인은 결코 피터를 비난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입 오른쪽 한구석에는 피터를 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하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텅 빈 육아실에 앉아서, 그 끔찍한 날 저녁의 모든 사소한 세부 사항까지도 애틋하게 회고하곤 했다. 그 일은 워낙 평범한, 다른 백여 번의 저녁과 완전히 똑같이 시작되었으니, 바로 나나가 마이클을 목욕시킬 물을 준비하고 아이를 자기 등에 태워서 데려간 것이 시작이었다.

“침대에 안 갈 거야!” 아이는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마치 자기가 그 문제에 대해 최종적 권한을 가졌다고 여전히 생각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안 갈 거야, 안 갈 거야. 나나, 아직 6시밖에 안 되었잖아. 아, 정말, 아, 정말, 그럼 나는 널 더 이상은 좋아하지 않을 거야, 나나.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목욕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그러자 하얀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달링 부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일찌감치 옷을 차려입었는데, 왜냐하면 그녀가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조지에게 선물 받은 목걸이를 한 모습을 웬디가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웬디의 팔찌도 한쪽 팔에 차고 있었다. 그녀는 딸에게 팔찌를 빌려 달라고 부탁했고, 웬디는 기꺼이 자기 팔찌를 어머니에게 빌려 주었다.

그녀는 나이 많은 두 아이가 어머니와 아버지 놀이를 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상황은 웬디가 태어날 때였다. 존이 말했다.

“당신이 이제 어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하게 되어 매우 기쁘군요, 달링 부인.” 그야말로 달링 씨가 실제 상황에서 썼을 법한 목소리 그대로였다.

웬디는 기뻐서 춤을 추었는데, 이 역시 달링 부인이 실제로 했을 법한 행동이었다.

곧이어 존이 태어났는데, 아들의 탄생인지라 이때에는 아버지 역할을 하는 아들도 먼저보다 더 우쭐거렸다. 마이클이 목욕을 마치고 돌아와 자기도 좀 태어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존은 자기네 부부가 더 이상은 아이를 원치 않는다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마이클은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아무도 날 원치 않아.” 그가 이렇게 말하자,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부인은 더 이상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원했는걸.” 그녀가 말했다. “나는 셋째 아이를 무척이나 원했어.”

“남자로요, 아니면 여자로요?” 마이클이 물었다. 그리 희망에 부푼 모습은 아니었다.

“남자로.”

그러자 마이클은 어머니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달링 씨와 달링 부인 그리고 나나가 지금 회고하는 것은 이처럼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그때가 육아실에서 보낸 마이클의 마지막 밤인 이상에는 결코 아주 사소하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회고했다.

“바로 그때 내가 어뢰처럼 방으로 뛰어들어 갔지, 안 그래?” 달링 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 실제로 그는 어뢰같이 굴었으니까.

아마도 그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것이었다. 그 역시 파티에 가려고 옷을 입던 중이었는데, 만사가 잘되어 가던 상황에서 넥타이와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무척이나 놀라운 이야기여서 차마 하기도 뭐하지만, 이 남자로 말하자면 주식에 관해서는 잘 알면서도, 정작 자기 넥타이 매는 법만큼은 전혀 숙달하지 못했다. 때로는 그 물건이 그에게 아무런 어려움도 주지 않았지만, 때로는 그가 자존심을 접어 두고 처음부터 매듭이 지어져 있는 보타이를 이용하는 편이 가정에는 더 나은 경우가 있었다.

그때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는 잔뜩 구겨진 그 지긋지긋한 놈의 넥타이를 한 손에 들고 육아실로 달려들어 왔던 것이다.

“아니,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애들 아버지?”

“문제!” 그는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 넥타이! 묶이지가 않는다고!” 그는 위험스러울 정도로 신랄해졌다. “내 목에 묶이지가 않는단 말이오! 침대 기둥에도 묶였는데! 그래, 무려 스무 번이나 나는 이걸 침대 기둥에다 묶었다고. 하지만 내 목에는 묶이지가 않는다니까, 안 된다고! 글쎄, 여보, 안 된다니까! 제대로 되라고 간절히 빌었건만!”

그는 달링 부인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나머지, 좀 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분명히 경고하는데, 애들 어머니, 이 넥타이가 내 목에 묶이지 않는 한 우리는 오늘 밤 저녁 외출을 하지 않을 거요. 내가 오늘 밤 저녁 외출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두 번 다시 사무실에 나가지도 않을 거요. 내가 두 번 다시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다면, 당신과 나는 굶게 될 거고, 우리 아이들은 거리로 쫓겨나게 될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달링 부인은 침착하기만 했다. “내가 한번 해 볼게요, 여보.” 그녀는 이렇게 말했고, 사실 그가 여기까지 달려와서 그녀에게 부탁하려고 한 일도 바로 그것이었다. 예쁘고도 침착하게 손을 놀려서 그녀는 남편에게 넥타이를 매 주었고, 아이들은 주위에 둘러서서 자기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자들 중에는 그녀가 넥타이 매기를 그토록 쉽게 해치운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달링 씨는 몹시도 훌륭한 천성을 타고난 사람이어서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솔직히 표현했고, 자신의 분노는 단박에 잊어버렸으며, 곧이어 마이클을 등에 업고 방 안을 이리저리 춤추며 돌아다녔다.

“우리가 얼마나 신 나게 뛰어놀았는지!” 이제 와서 달링 부인은 그때 일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마지막 뛰어놀기였는데!” 달링 씨가 신음하며 말했다.

“아아, 조지, 마이클이 갑자기 나한테 이런 말 했던 것 기억나요? ‘그런데 어떻게 나를 알게 되었어요, 어머니?’”

“기억나지!”

“아이들은 귀여워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조지?”

“그 아이들은 우리의, 우리의 아이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사라져 버렸지.”

그날 이들의 뛰어놀기는 나나가 등장하면서 끝나 버렸고, 불운하게도 달링 씨는 개와 부딪치면서 바지에 개털이 잔뜩 묻어 버렸다. 그 바지는 새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바지 중에서 유일하게 장식용 수술이 달린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어야만 했다. 물론 달링 부인이 바지를 솔질해 주었지만, 그는 또다시 개를 유모로 둔 것은 실수라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조지, 나나는 보물이에요.”

“그야 의심의 여지가 없지. 하지만 나는 이 개가 우리 아이들을 강아지처럼 바라보는 것 같아서 가끔씩 불편한 기분이 든다니까.”

“아, 아니에요, 여보. 나는 확신해요. 우리 아이들이 영혼을 갖고 있다는 걸 개도 알고 있을 거라고요.”

“나는 의심스러워.” 달링 씨는 뭔가를 숙고하는 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의심스럽다고.” 이때가 바로 기회라고 그의 아내는 생각했다. 그 남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 말이다. 처음에는 그도 콧방귀만 뀌고 말았지만, 그녀가 그림자를 보여 주자 점차 숙고하는 태도가 되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전혀 아닌데.” 그는 그림자를 자세히 살피며 말했다. “하지만 악당처럼 보이기는 하는군.”

“우리는 계속 그 이야기를 했죠, 당신도 기억하다시피.” 달링 부인이 말했다. “그때 나나가 마이클의 약을 들고 들어왔죠. 너도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입에 약병을 물고 다닐 일이 없을 거야, 나나. 이게 모두 내 잘못이야.”

달링 씨는 확실히 강한 남자였지만, 약에 관해서라면 오히려 어리석게 행동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에게 어떤 약점이 있다면 바로 자기가 평생 동안 약을 대범하게 먹어 왔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제 나나가 자기 입에 문 숟가락으로 떠먹이려는 약을 회피하는 마이클의 모습을 보자, 그는 이렇게 꾸짖었다. “남자답게 굴어야지, 마이클.”

“안 할 거야, 안 할 거야!” 마이클은 막무가내로 외쳤다. 달링 부인은 아이를 달랠 초콜릿을 가지러 방에서 나갔는데, 달링 씨는 그렇게 하면 엄격함이 결여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들 어머니, 이 녀석을 응석받이로 키우지는 말아야지.” 그는 그녀의 뒤에 대고 말했다. “내가 네 나이 때에는 아무런 군소리 없이 약을 먹었어. 오히려 이랬지. ‘감사합니다, 자애로우신 부모님, 저를 낫게 해 줄 약을 주셔서요.’”

그는 이게 사실이라고 정말로 생각했고, 이때 잠옷 차림이던 웬디도 그게 사실이라고 믿은 나머지, 마이클을 격려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다. “가끔 드시는 약 있잖아요, 아버지. 그건 훨씬 더 맛이 없을 거예요, 안 그래요?”

“그야 훨씬 더 맛이 없지.” 달링 씨는 용감한 척 대꾸했다. “내가 너한테 본보기로 그걸 한 숟가락 먹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마이클. 그 약병을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말이야.”

하지만 그는 약병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그는 한밤중에 옷장 위로 올라가서, 거기다 약병을 숨겨 두었다. 그가 미처 몰랐던 사실은, 성실한 라이자가 약병을 이미 찾아다가 세면대에 도로 가져다 두었다는 것이었다.

“약병이 어디 있는지 제가 알아요, 아버지.” 웬디가 큰 소리로 외쳤는데, 그녀는 항상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기뻐했던 까닭이었다. “제가 가져올게요.” 그러면서 그녀는 달링 씨가 차마 멈춰 세우기도 전에 방을 나섰다. 곧바로 그의 사기는 가장 기묘한 방식으로 가라앉았다.

“존.” 그가 몸을 떨면서 말했다. “그건 가장 끔찍한 물건이란다. 정말이지 끔찍하고, 끈적끈적하고, 달아 빠진 종류지.”

“금방 끝날 거예요, 아버지.” 존이 쾌활한 어조로 대꾸했다. 곧이어 웬디가 유리잔에 약을 담아서 부리나케 들어왔다.

“최대한 빨리 다녀온 거예요.” 그녀가 숨을 헐떡였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빠르구나.” 그녀의 아버지가 대꾸했는데, 그 말투에는 딸에게 던지는 원망 섞인 인사치레가 담겨 있었다. “마이클이 먼저 마셔야지.” 그는 끈덕지게 말했다.

“아버지가 먼저 마셔야죠.” 마이클이 대답했다. 이 아이는 원래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내가 아파야 마시지, 너도 알다시피.” 달링 씨가 위협하듯 말했다.

“얼른요, 아버지.” 존이 말했다.

“너는 입 다물어, 존.” 그의 아버지가 야단쳤다.

웬디는 무척이나 어리둥절했다. “저는 무척 쉽게 드실 줄 알았는데요, 아버지.”

“여기서 핵심은 그게 아니야.” 아버지가 꾸짖었다. “핵심은 뭔가 하면, 내 유리잔에 든 약은 마이클의 숟가락에 들어 있는 약보다 더 많다는 거지.” 그의 자부심 많던 가슴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게다가 이건 공평하지가 않아. 나는 죽을 때까지 말할 거야, 이건 공평하지가 않다고.”

“아버지, 저 기다리고 있잖아요.” 마이클이 냉정하게 대꾸했다.

“네가 기다리고 있다니 잘됐구나. 그럼 나도 기다려야지.”

“아버지는 겁쟁이 약골이에요.”

“그럼 너도 겁쟁이 약골이야.”

“나는 겁 안 나요.”

“나도 겁 안 난다.”

“그럼 어디, 마셔 보세요.”

“그럼 어디, 너부터 마셔 보든가.”

웬디가 묘책을 떠올렸다. “그럼 두 사람이 동시에 마시면 되잖아요?”

“그래, 그러면 되겠네.” 달링 씨가 말했다. “준비됐니, 마이클?”

웬디가 신호를 보냈다. 하나, 둘, 셋. 그러자 마이클은 자기 약을 먹었지만, 달링 씨는 자기 약을 등 뒤로 감춰 버렸다.

마이클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웬디도 “아, 아버지!”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 아버지’라니?” 달링 씨가 다그쳤다. “소란 피우지 마라, 마이클. 나도 원래는 약을 먹을 생각이었어. 그런데 그만─ 그만 깜박한 거야.”

세 아이가 그를 바라보는 모습은 정말이지 섬뜩해서, 마치 결코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듯했다. “이것 좀 봐라, 너희 전부.” 그는 애원하듯이 이렇게 말을 이었다. 마침 나나가 화장실로 들어간 직후의 일이었다. “방금 끝내주는 장난이 하나 생각났거든. 내 약을 나나의 밥그릇에 붓는 거야. 그러면 저 녀석은 그걸 마시겠지. 약이 우유인 줄로 알고 말이야!”

약은 우유와 같은 색깔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버지와 같은 유머 감각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가 나나의 밥그릇에 약을 붓는 동안 나무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는 뭔가 자신 없는 투로 이렇게 말했으며, 곧이어 달링 부인과 나나가 돌아왔지만 아이들은 차마 이 사실을 폭로하지 못했다.

“나나, 착하지.” 그는 개를 토닥이며 말했다. “네 밥그릇에 우유를 조금 따라 놨단다.”

나나는 꼬리를 흔들더니 약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핥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달링 씨를 바라보았는데, 화난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대신 훌륭한 개가 우리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커다랗고 붉은 눈물을 그에게 보이고는, 곧이어 개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달링 씨는 자기 행동이 무척이나 부끄러웠지만 그렇다고 굴복할 생각은 없었다. 섬뜩한 침묵 속에서 달링 부인은 밥그릇에 들어 있는 액체의 냄새를 맡았다. “아니, 조지, 이건 당신 약이잖아요!”

“그냥 장난이었어!”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달링 부인은 아들들을 달래고, 웬디는 나나를 끌어안았다. “잘한다.” 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내가 이 집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 주려고 애를 썼는데도 말이야.”

그런데도 웬디는 여전히 나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좋아!” 그가 소리를 질렀다. “개를 소중히 여기다니! 아무도 나를 소중히 여기지는 않으면서. 아, 이런, 아니야! 나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밥벌이를 하는 사람인데, 왜 나는 소중히 여겨지면 안 되는 거지, 왜, 왜, 왜!”

“조지.” 달링 부인이 남편에게 애원했다. “너무 크게 말하지 말아요. 하인들이 듣겠어요.” 이들은 당황한 나머지 하인 라이자를 얼떨결에 ‘하인들’이라고 부르는 지경에 있었다.

“들으려면 들으라지!” 그는 되는 대로 대답했다. “세상 누가 달려와도 소용없어. 누가 뭐래도 나는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저 개가 내 집 육아실에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하지는 못하게 금지할 거니까.”

아이들은 울었고, 나나는 애원하듯 그에게 달려갔지만, 그는 손을 저어서 개를 물리쳤다. 그는 다시 한 번 강한 남자가 된 기분이었다. “소용없어, 소용없다고!” 그가 소리를 질렀다. “너에게 어울리는 장소는 마당이야. 그리고 넌 이 시간부로 거기 묶여 있게 될 거야.”

“조지, 조지.” 달링 부인이 속삭였다. “내가 그 남자아이에 관해서 했던 이야기를 생각해 봐요.”

아아,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이 집에서 누가 가장인지를 보여 주기로 작정한 상태였다. 나나가 명령에도 불구하고 개집에서 나오지 않자, 그는 달콤한 말로 일단 개를 꼬여 낸 다음, 거칠게 부여잡고 육아실에서 끌어냈다. 스스로도 자기 행동이 부끄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을 했다. 이 모두가 그의 지나치게 다정한 성격 때문이었으니, 그런 성격 때문에 그는 존경을 열망했던 것이다. 뒷마당에 개를 묶어 놓은 다음, 이 비참한 아버지는 복도로 가서 주저앉은 채, 양손 관절 마디를 자기 눈에 갖다 댔다.

그사이에 달링 부인은 이례적인 침묵 속에서 아이들을 침대에 눕히고 야간등을 켜 두었다. 나나가 짖는 소리가 들리자, 존이 칭얼거렸다. “아버지가 나나를 마당에 사슬로 묶어 놓는 바람에 저러는 거야.” 하지만 웬디는 더 똑똑했다.

“슬퍼서 짖는 소리는 아니야.” 그녀의 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전혀 예상을 못 하고 있었다. “저건 나나가 위험의 냄새를 맡았을 때에 내는 소리야.”

위험!

“그게 정말이니, 웬디?”

“아, 그럼요.”

달링 부인은 몸을 떨면서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았더니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별들이 집 주위에 잔뜩 몰려 있는 모습이 마치 거기서 앞으로 벌어질 일을 구경하고 싶어 호기심이 인 것 같았지만, 그녀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고, 그 별들 중에서 더 작은 별들 한두 개가 그녀를 향해 눈을 깜박이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가슴을 엄습하는 바람에, 그녀는 급기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아, 차라리 오늘 밤만큼은 파티에 가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심지어 마이클조차도 이미 반쯤 잠든 상태에서 그녀가 불안해한다는 것을 느끼고 이렇게 물었다. “뭔가가 우리를 해칠 수도 있을까요, 어머니? 야간등을 켜 두어도요?”

“그런 건 전혀 없어, 내 아가.” 그녀가 말했다. “야간등이야말로 자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어머니가 뒤에 두고 가는 눈이니까.”

그녀는 침대마다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잘 자라고 마법의 주문을 외워 주었다. 막내인 마이클은 양팔로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어머니!” 그가 외쳤다. “어머니가 계셔서 기뻐요.” 이것이야말로 이후 한동안, 그녀가 막내아들로부터 들은 마지막 한 마디였다.

27번지는 그곳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밖에는 눈이 약간 내린 상태여서 달링 집안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발을 버리지 않으려고 눈 위를 재치 있게 골라 걸었다. 거리에는 사실상 두 사람뿐이었고, 하늘의 모든 별이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들은 아름다웠다. 별들은 그 어떤 일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맡지는 않았는데, 대신 영원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들이 행한 어떤 일로 인해 그들에게 부과된 형벌이었으며, 그 일은 워낙 오래되어서 별들 중 누구도 그게 뭐였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더 나이 많은 별들은 눈이 흐릿해지고 말수도 적어졌지만(눈을 깜박이는 것이야말로 별들의 언어였다) 아직 어린 별들은 여전히 그게 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별들은 피터와 아주 친하지는 않았으니, 그가 별들의 뒤로 몰래 돌아가서 별들을 날려 보내는 장난을 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별들은 재미있는 일을 무척 좋아했으므로 오늘 밤만큼은 그의 편이었고, 어른들이 얼른 비켜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달링 씨와 부인의 등 뒤로 27번지의 문이 닫히자마자, 하늘에는 동요가 일어났으며, 은하수에 있는 모든 별 중에서도 가장 작은 별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이야, 피터!”




6) 가톨릭교회의 미사에서 참회 예식 때 하는, 죄를 고백하는 기도의 한 구절. ‘메아 쿨파’는 ‘내 탓이오’를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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