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과 웬디 11

나단비 | 2024.02.07 21:52:20 댓글: 0 조회: 97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6115
제11장 웬디의 이야기

“그러면 들어 봐.” 웬디가 이렇게 말하며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을 즈음, 마이클은 그녀의 발치에 있었고, 일곱 명의 아이들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떤 신사가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이 차라리 숙녀라면 좋겠는데.” 컬리가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흰 쥐였으면 좋겠어.” 닙스가 말했다.

“조용히.” 어머니가 아이들을 꾸짖었다. “물론 숙녀도 한 명 있었지. 그래서─”

“아, 엄마!” 쌍둥이 가운데 첫 번째가 외쳤다. “숙녀도 한 명 있다는 뜻이죠, 안 그래요? 혹시 그녀가 죽은 건 아니죠, 혹시 죽었어요?”

“아니, 아니야.”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게 나는 무척이나 기뻐.” 투틀스가 말했다. “너도 기뻐, 존?”

“물론 나도 기쁘지.”

“너도 기뻐, 닙스?”

“그런 편이야.”

“너도 기뻐, 쌍둥이?”

“우리도 물론 기뻐.”

“아니, 얘.” 웬디가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 좀 조용히 해라!” 피터가 소리를 질렀는데, 왜냐하면 설령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끔찍스러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녀가 공평한 경기를 치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그 신사의 이름은” 웬디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달링 씨였고, 그 숙녀의 이름은 달링 부인이었어.”

“나는 그 사람들을 알아.” 존이 이렇게 말하자, 다른 아이들은 짜증을 냈다.

“나도 그 사람들을 아는 것 같은데.” 마이클은 뭔가 좀 불확실하다는 듯 말했다.

“두 사람은 결혼한 거였어, 너희도 알겠지만.” 웬디가 설명했다. “그러면 너희가 생각하기에 두 사람은 뭘 갖게 되었을 것 같니?”

“흰 쥐요!” 곧바로 닙스가 외쳤다.

“아니야.”

“어마어마하게 헛갈릴걸.” 투틀스의 말이었는데, 사실 그는 이 이야기를 외우다시피 했다.

“조용히 하렴, 투틀스. 두 사람은 자녀를 셋 두고 있었어.”

“자녀가 뭐예요?”

“음, 너도 자녀야, 쌍둥이.”

“방금 들었어, 존? 나도 자녀래.”

“자녀는 그저 아이들이라는 뜻이야.” 존이 대꾸했다.

“이런, 얘들아, 이런, 얘들아.” 웬디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리고 이 세 명의 아이들에게는 나나라는 이름의 충실한 유모가 있었어. 하지만 달링 씨는 나나 때문에 화가 난 나머지, 마당에 쇠사슬로 묶어 놓았지.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날아가 버린 거야.”
 
“어마어마하게 좋은 이야기야.” 닙스가 말했다.

“아이들은 날아가 버린 거야.” 웬디가 말을 이었다. “바로 네버랜드라는 곳으로. 거기엔 잃어버린 아이들이 살고 있었지.”

“나도 방금 그들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어.” 컬리가 흥분하며 끼어들었다. “어떻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방금 그들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아, 웬디.” 투틀스가 말했다. “혹시 그 잃어버린 아이 하나의 이름이 투틀스였어요?”

“그래, 맞아.”

“내가 이야기 속에 나오네. 만세! 내가 이야기 속에 나와, 닙스.”

“조용히. 지금부터는 아이들이 날아가 버린 이후의 그 불행한 부모님의 기분을 너희도 생각해 보도록 해.”

“아아.” 아이들은 모두 신음을 내뱉었지만, 그 불행한 부모의 기분이 어떤지는 사실상 조금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텅 빈 침대를 생각해 봐!”

“아아!”

“어마어마하게 슬프다.” 쌍둥이 중 첫 번째가 쾌활하게 말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행복하게 끝날지 모르겠어.” 쌍둥이 중 두 번째가 말했다. “안 그래, 닙스?”

“나도 어마어마하게 걱정스러워.”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너희가 안다면” 웬디는 의기양양하게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아무런 두려움도 갖지 않을 거야.” 이제 그녀는 피터가 유독 싫어하는 대목에 도달한 셈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정말로 좋아해.” 투틀스가 베개로 닙스를 때리며 말했다. “너는 어머니의 사랑을 좋아하니, 닙스?”

“나야 당연하지.” 닙스가 이렇게 맞받아쳤다.

“너희도 알다시피” 웬디는 흐뭇해하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우리의 여자 주인공은 아이들이 도로 날아서 들어올 수 있도록 어머니가 항상 창문을 활짝 열어 놓으리란 걸 알았어. 그래서 아이들은 몇 년이나 집을 떠나서 재미있는 시간을 즐겼지.”

“아이들이 결국 돌아가기는 해?”

“이제 우리는” 웬디는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미래를 한번 들여다보도록 하자.” 그러면서 이들 모두는 미래를 더 쉽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가지 변화를 가했다. “여러 해가 흘렀어. 그런데 런던 역에 내린 이 우아하면서도 나이를 알 수 없는 숙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아니, 웬디, 그게 누구예요?” 닙스가 외쳤는데, 그는 자기가 이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매 순간 흥분했다.
“설마 그럴 리가─그래─아니야─그건─바로─예쁜 웬디였어!”

“우와!”

“그러면 그녀와 동행한 위엄 있고 풍채 좋은 두 사람, 이제는 자라서 어른이 된 두 사람은 누구지? 그들이 존과 마이클일 수 있을까? 바로 그들이었어!”

“우와!”

“‘저기, 얘들아.’ 웬디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어. ‘창문이 여전히 열려 있어. 아, 이제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숭고한 믿음에 보상을 받는 거야.’ 그리하여 이들은 공중을 날아 자기네 엄마와 아빠에게 갔고, 그 행복한 광경은 차마 말과 글로 표현이 안 될 정도였으니, 이제 우리는 그 위에 베일을 늘어뜨리도록 하자.”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 했을 뿐만 아니라 예쁜 이야기꾼 역시도 마음에 들어 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모든 것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대로 되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무정하게 뛰어 달아나며,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매력적이긴 하다. 우리는 전적으로 이기적인 시간을 갖는데, 그러다가 특별한 관심의 필요성을 느끼면 도망쳐 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매를 맞는 대신에 포옹을 받으리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그토록 확고했으므로, 그들은 좀 더 오랫동안 무정하게 굴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이 문제를 좀 더 잘 아는 사람이 하나 있었고, 웬디가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그는 공허한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무슨 일이야, 피터?” 그녀가 외치며 그에게 달려갔는데, 혹시 그가 아픈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는 걱정스레 그를 만져 보았고, 그의 가슴 아랫부분으로 손을 내렸다. “어디가 아픈 거야, 피터?”

“그런 고통은 아니야.” 피터가 음울하게 대답했다.

“그럼 어떤 고통인데?”

“웬디, 너는 어머니에 관해 잘못 알고 있어.”

아이들은 겁에 질린 채 피터의 주위에 모여 있었는데, 그의 동요가 워낙 놀라웠던 탓이었다. 무척이나 솔직하게 그는 이제껏 자기가 감춰 왔던 사실을 아이들에게 털어놓았다.

“오래전에 나도 너희처럼, 우리 어머니는 나를 위해 항상 창문을 열어 놓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여러 달과 여러 달과 여러 달 동안 여기 머물러 있다가, 다시 날아서 돌아갔지. 하지만 창문은 닫혀 있었는데, 왜냐하면 어머니가 나에 관해서는 모두 잊어버렸기 때문이었고, 내 침대에는 또 다른 꼬마 남자아이가 잠들어 있었어.”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의 여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피터는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모든 어머니가 그럴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그래.”

결국 이것이야말로 어머니에 관한 진실이었다. 징그러운 두꺼비들 같으니!

하지만 신중한 게 최선이었다. 아이들은 언제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지를 세상 누구보다도 더 금세 알아차린다. “웬디, 우리 집에 가자!” 존과 마이클이 나란히 외쳤다.
“그래.”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동생들을 끌어안았다.

“오늘 밤에는 아니지?” 잃어버린 아이들이 당황하며 물었다. 이 아이들은 어머니 없이도 제법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자기네 말마따나 ‘가슴’으로 알았으며, 자신들이 그렇게 살아가지 못할 거라고 여기는 사람은 오로지 그 어머니들뿐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웬디는 결연하게 대답했는데, 왜냐하면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지금쯤 어머니는 반상半喪22) 기간에 계신지도 몰라.”

이런 두려움으로 인해 그녀는 피터의 감정이 어떨 것인지는 잊어버리고 말았으며, 오히려 날카로운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피터, 필요한 준비를 해 주겠어?”

“네가 원한다면야.” 그는 마치 그녀가 땅콩 좀 달라고 물어본 것인 양 냉정하게 대답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너를 잃게 되어서 아쉬워” 같은 대화조차 없었다! 만약 그녀가 이별에 그리 개의치 않는다면, 자기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게 피터다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물론 그는 매우 크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망쳐 놓기만 하는 어른들을 향한 분노가 어찌나 가득했던지, 자기 나무 안에 들어가자마자 일부러 1초에 다섯 번가량의 속도로 연이어 짧은 숨을 쉬었다. 그가 이렇게 한 까닭은, 네버랜드의 속담에 따르면 아이가 숨을 한 번 쉴 때마다 어른 한 명이 죽는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피터는 보복 삼아 어른들을 최대한 빨리 죽여 버리고자 했다.

곧이어 그는 인디언들에게 필요한 지시를 내린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곳에서는 그가 없는 사이에 보기 싫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웬디를 잃어버린다는 생각으로 공황 상태가 된 잃어버린 아이들이 위협하듯 그녀에게 달려갔던 것이다.

“그녀가 오기 전보다 더 상황이 나빠질 거야!” 아이들이 외쳤다.

“그녀를 보내서는 안 돼.”

“그녀를 포로로 잡아 두자.”

“그래, 쇠사슬로 묶어 두자.”

긴박한 상황에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누구를 쳐다보아야 할지를 깨달았다.

“투틀스!” 그녀가 외쳤다. “내가 너한테 애원하잖아.”

이것 참 이상하지 않은가? 그녀가 애원한 투틀스야말로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축이었으니까.

그러나 투틀스는 멋지게 대답했다. 바로 그 순간만큼은 어리석음을 버리고 품위 있게 이런 말을 내놓았던 것이다.

“나는 투틀스다.” 그가 말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는 않지. 하지만 영국 신사답게 웬디를 대하지 않는 녀석이 있다면, 내가 흥건히 피 보게 만들어 주겠어.”

그는 자기 단검을 뽑아 들었다. 이 순간 그의 태양은 정오에 이르렀다. 다른 아이들은 안절부절못하며 뒤로 물러났다. 바로 그때 피터가 돌아왔고, 아이들은 그에게서 아무런 지원도 기대할 수 없음을 곧바로 깨달았다. 여자아이 본인이 싫다는데도 피터가 억지로 네버랜드에 붙잡아 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웬디.” 그가 이리저리 거닐며 말했다. “네가 숲을 지나갈 수 있게 길잡이를 해 달라고 인디언들에게 부탁했어. 하늘을 나는 일이 너한테는 피곤할 테니까.”

“고마워, 피터.”

“그다음부터는” 아이들이 순종하기에 익숙해져 있던 짧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팅커 벨이 너를 데리고 바다를 건널 거야. 그녀를 깨워, 닙스.”

닙스가 두 번이나 노크를 한 뒤에야 안에서 대답이 나왔지만, 사실 팅크는 지금까지 한동안 침대에 앉아서 바깥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야? 어떻게 감히! 꺼져 버려!” 그녀가 외쳤다.

“일어나야 돼, 팅크.” 닙스가 불렀다. “그리고 웬디를 데리고 어디 좀 다녀와야 해.”

물론 팅크는 웬디가 떠난다는 이야기에 기뻐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웬디의 길잡이가 되지는 않겠다고 무척이나 단단히 결심했기 때문에, 앞서보다 더 무례한 어조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후에 그녀는 다시 잠든 척했다.

“자기는 하기 싫다는데!” 닙스는 이처럼 대단한 불복종에 깜짝 놀라 소리쳤고, 이에 피터는 굳은 표정을 짓고 이 젊은 처녀의 방 쪽으로 다가갔다.

“팅크!” 그가 고함을 질렀다. “당장 일어나서 옷 입지 않으면, 내가 이 커튼을 젖혀 버릴 거고, 그럼 우리 모두 네가 ‘네글리제’ 차림인 걸 보게 될 거야!”

이 말에 그녀는 방바닥으로 얼른 뛰어내렸다. “누가 언제 안 일어난다고 했어?”

그 와중에 아이들은 매우 외로운 표정으로 웬디를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존과 마이클에게 여행에 필요한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이때가 되자 아이들은 낙담해 마지않았는데, 단순히 그녀를 잃어버린다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들은 초대받은 적이 없었던 어떤 좋은 곳으로 그녀가 떠나 버린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은 무척이나 유혹적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단순한 부러움이 아니라 그보다는 좀 더 고상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착각한 나머지, 웬디의 마음은 녹고 말았다.

“얘들아.” 그녀가 말했다. “너희만 괜찮다면 모두 나랑 같이 가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부탁해서 너희를 모두 입양할 수 있을 거야. 틀림없어.”

이 초대는 특히 피터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저마다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 즉시로 기쁨에 겨워 펄쩍펄쩍 뛰었다.

“하지만 그분들은 우리 수가 좀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실까?” 펄쩍펄쩍 뛰다 말고 닙스가 물었다.

“아니, 아니야.” 웬디는 이렇게 대꾸하면서 재빨리 생각해 보았다. “그래 봤자 겨우 거실에 침대 몇 개만 놓으면 되는 건데 뭘. 첫 번째 목요일23)에는 칸막이 커튼 뒤에다가 침대를 감춰 놓으면 되니까.”

“피터, 우리가 같이 가도 돼?” 아이들 모두가 애원조로 외쳤다. 만약 자기들이 가면, 피터 역시 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기는 했지만, 사실 별로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이란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기만 하면, 자기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버릴 채비가 항상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 피터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곧바로 아이들은 각자의 물건을 챙기러 달려갔다.

“그러면, 피터.” 모든 물건을 제대로 챙겼다고 생각한 웬디가 말했다. “떠나기 전에 네가 먹을 약을 줄게.” 그녀는 아이들에게 약 먹이기를 좋아했으며, 의심의 여지 없이 너무 많이 주었다. 물론 이 약이라는 것은 물에 불과한 데다 다만 호리병박에 담았을 뿐이었지만, 그녀는 항상 그 병을 흔들어 몇 방울인지 세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일종의 약효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때 그녀는 피터에게 마실 약을 차마 건네주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약을 준비하던 중에 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너도 짐을 챙겨, 피터!” 그녀는 몸을 떨면서 외쳤다.

“싫어.” 그는 무관심한 척하며 대답했다. “나는 너희랑 가지 않을 거야, 웬디.”

“가자, 피터.”

“싫어.”

그녀가 떠나도 자기는 태연할 것임을 보이기 위해 그는 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무정하게도 팬파이프를 흥겹게 연주했다. 품위가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서 그녀는 그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어머니를 찾아야지.” 그녀가 달랬다.

설령 피터가 한때 어머니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제 그는 더 이상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어머니 없이도 그는 매우 잘 살 수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 관해 많이 생각해 왔지만, 오로지 나쁜 대목에서만 떠올리곤 했다.
“싫어, 싫어.” 그는 단호하게 웬디에게 말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내가 나이 들었다고 말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항상 꼬마로 있으면서 재미있게 지내고 싶단 말이야.”

“하지만, 피터─”

“싫어.”

그리하여 다른 아이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 주어야만 했다.

“피터가 가지 않겠대.”

피터가 가지 않겠다니!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등 뒤로는 막대기가 하나 걸쳐져 있었고, 그 막대기에는 보따리가 하나씩 꿰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맨 처음 떠올린 생각은, 만약 피터가 가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가 마음을 바꾸어서 아이들도 모두 못 가게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몹시도 자존심이 강했던지라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너희들이 어머니를 찾는다면” 그가 음험하게 말했다. “부디 그 어머니를 좋아하게 되기 바랄게.”
이 끔찍한 냉소주의는 불편한 인상을 각인시켰고, 아이들 대부분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가고 싶어 했던 우리가 바보 아니었을까?

“그러면 이제” 피터가 외쳤다. “소란 피우지도 말고, 울고불고하지도 말자! 안녕, 웬디.” 그러면서 쾌활하게 자기 한쪽 손을 내밀었는데, 마치 그들이 이제는 정말 가야 한다는 듯한, 왜냐하면 자기는 이제 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야만 했으며, 그가 ‘골무’를 하고 싶어 한다는 암시는 전혀 없었다.

“속옷 갈아입는 건 기억할 수 있겠지, 피터?” 웬디는 이렇게 말하면서 우물쭈물했다. 항상 그녀는 아이들의 속옷에 관해서 특히나 까다롭게 굴었다.

“그래.”

“그리고 약도 먹을 거지?”

“그래.”

이쯤 되자 정말로 다 된 것 같았다. 어색한 침묵이 뒤따랐다. 하지만 피터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부류는 아니었다. “준비됐어, 팅커 벨?” 그가 외쳤다.

“그래, 그래.”

“그러면 앞장서.”

팅크는 제일 가까운 나무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따라가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바로 이 순간에 해적들이 인디언들을 향해 무시무시한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조용하기만 했던 땅 위에서는 갑자기 비명과 쇠 부딪치는 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땅 아래에서는 쥐 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다들 입을 벌리고, 그렇게 벌린 채 남아 있었다. 웬디는 무릎을 꿇었지만, 두 팔은 피터를 향해 뻗어 있었다. 아이들의 모든 팔이 그를 향해 뻗어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서 있는 쪽으로 불어가는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자기들을 버리지 말라고 침묵 속에서 그에게 애원했다. 피터는 자기 검을 손에 쥐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바비큐를 쓰러뜨렸던 바로 그 검이었다. 그리고 전투를 향한 열망이 그의 눈에 나타나 있었다.




22) 빅토리아 시대의 거상居喪기간의 하나. 여성의 경우, 1년하고도 1일간 완상完喪, 이후 9개월간 재상再喪, 이후 3개월 내지 6개월간 반상半喪을 거친다.
23) 매달 첫 번째 목요일마다 이웃과 지인을 초대하는 ‘초대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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