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과 웬디 13

나단비 | 2024.02.07 22:04:29 댓글: 0 조회: 121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6119
제13장 너희는 요정이 있다고 믿니?

이 무시무시한 일은 가급적 빨리 결말을 짓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맨 처음 나무에서 나온 아이는 컬리였다. 그는 구멍에서 나오자마자 체코의 품으로 뛰어들었고, 다시 스미에게 던져졌으며, 다시 스타키에게 던져졌고, 다시 빌 주크스에게 던져졌으며, 다시 누들러에게 던져지고, 이렇게 이 해적에서 저 해적에게로 연이어 던져진 끝에 검은 해적의 발밑에 나동그라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모두가 각자의 나무에서 나오자마자 이런 무자비한 방법으로 낚아채졌다. 몇 명이 한꺼번에 공중에 던져지는 경우도 있어서, 마치 물건 담은 자루를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던지고 받는 모양새와 흡사했다.
 
맨 마지막으로 나온 웬디에게는 대우부터가 달랐다. 아이러니한 정중함을 드러내며 후크는 우선 자기 모자를 들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 뒤, 자기 한쪽 팔을 내밀어 붙잡게 하고는, 다른 아이들이 재갈을 물고 있는 곳으로 안내했던 것이다. 그는 상당히 우아하게 그 일을 해치웠으며, 워낙 섬뜩할 정도로 ‘점잖았기’ 때문에, 그녀는 몹시 매료된 나머지 차마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아직은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했으니까.

잠시나마 후크가 웬디를 매혹시켰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아마 고자질이 되겠지만, 우리가 굳이 이야기하는 까닭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일탈이 어떤 기묘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만약 웬디가 후크의 손을 도도하게 뿌리쳤다고 치면(그랬다면 우리도 더 기꺼운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그녀 역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공중에 내던져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해적 선장도 아이들을 묶는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아이들을 묶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후크는 슬라이틀리의 비밀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만약 이 비밀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후크는 피터의 생명을 위협하려는 야비한 시도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해적들은 아이들이 날아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묶으면서, 양쪽 무릎이 양쪽 귀에 가까이 닿을 정도로 몸을 착 접어 두었다. 아이들을 묶기 위해서 검은 해적은 밧줄을 똑같은 길이로 아홉 개 잘라 놓았다. 그래서 만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다가 슬라이틀리의 순서에서 말썽이 생겼는데, 알고 보니 그는 노끈을 한 바퀴 두르고 나자 매듭을 지을 여분의 길이가 남아 있지 않은 짜증 나는 소포와도 비슷한 형국이었기 때문이었다. 해적들은 화가 나서 그를 발로 걷어찼는데, 그건 여러분이 비슷한 경우에 소포를 걷어차는 것과도 똑같았다(물론 공평하게 말하자면 여러분은 노끈을 걷어차야 하겠지만). 그런데 이상한 이야기지만, 후크는 부하들에게 폭력을 그만두라고 일렀다. 그의 입술은 사악한 승리감으로 뒤틀려 있었다. 그의 개들은 그저 땀만 흘려 댔는데, 이 불운한 꼬마의 어느 한쪽을 단단히 묶으려고 하면 매번 다른 한쪽이 툭 불거져 나왔던 것이다. 후크의 뛰어난 정신은 슬라이틀리의 겉모습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갔으며, 급기야 결과가 아니라 그 원인을 탐지했다. 해적 선장의 기쁨은 그가 원인을 찾아냈음을 보여 주었다. 슬라이틀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결국 자신의 비밀을 후크가 알아냈음을 깨달았는데, 그 비밀이란 다른 게 아니라, 그처럼 살이 찐 남자아이라면 보통 어른의 몸이 꽉 끼어 버릴 만큼 좁은 나무 구멍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불쌍한 슬라이틀리는 이제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심정이 되어 버렸으니, 그는 이제 피터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혔고 자기가 저지른 일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더울 때에는 미친 듯이 물을 마시는 버릇이 있었던 까닭에 그의 몸은 결국 지금과 같은 둘레로 부풀어 올랐으며, 이럴 경우에는 자기가 사용하는 나무에 맞춰 몸을 줄여야 마땅했겠지만, 그는 남들 몰래 자기 구멍을 조금씩 깎아 내서 자기 몸에 맞췄던 것이다.

이것만 가지고도 후크는 피터가 마침내 자기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 그의 정신의 은밀한 동굴에서 형성된 이 시커먼 계획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는 다만 포로들을 자기네 배로 끌고 가라고, 그리고 자기는 여기 혼자 남겠다고 손짓했을 뿐이었다.

아이들을 어떻게 옮겨야 할까? 밧줄에 묶여 착착 접힌 상태다 보니, 말 그대로 통처럼 데굴데굴 언덕에서 굴리며 내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이들이 지나갈 길은 대부분 늪지였다. 여기서 또 한 번 후크의 천재성이 어려움을 극복했다. 그는 작은 집을 들것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아이들은 집 안으로 던져졌고, 네 명의 강인한 해적들이 한 귀퉁이씩을 맡아 집을 어깨에 메었으며, 다른 해적들이 뒤따라오면서 모두가 증오하는 해적 노래를 부르는 방식으로 이 기묘한 대열은 숲을 가로질러 출발했다. 혹시 우는 아이가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노래가 그 소리를 파묻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집이 숲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 마치 후크를 비웃기라도 하듯 작지만 용감한 연기가 그 굴뚝에서 가늘게 피어올랐다.

후크는 그 연기를 보았고, 이는 피터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끼쳤다. 이 해적의 격분한 가슴속에 어쩌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말의 동정심마저도 싹 말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옅어지는 어둠 속에 자기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후크가 맨 먼저 한 일은, 슬라이틀리의 나무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과연 그곳에 자기가 들어갈 만한 통로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 그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그의 모자는 풀밭에 내려놓았는데, 그래야만 아까부터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상쾌하게 지나갈 수 있어서였다. 비록 그의 생각이야 시커맸으나, 그의 푸른 눈은 협죽도만큼이나 새파랬다. 그는 혹시 저 아래 세상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나 유심히 귀를 기울였지만, 밑에서도 위와 마찬가지로 만사가 조용하기만 했다. 땅속에 있는 집도 그저 텅 비어 있는 또 하나의 거주지인 것처럼 보였다. 그 소년은 잠이 든 걸까, 아니면 슬라이틀리의 나무 통로 바닥에서 단검을 꺼내 들고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도무지 알 방법이 없었으니, 결국 직접 내려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후크는 자기 망토를 살며시 땅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새빨간 피가 맺힐 때까지 입술을 꽉 깨물면서 나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용감한 남자였다. 하지만 잠시 동안은 그도 거기 멈춰 선 채로 이마를 훔쳐야 했는데, 왜냐하면 땀이 촛농처럼 줄줄 흘렀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그는 미지의 장소로 조용히 나아갔다.

그는 별 탈 없이 통로의 맨 아래에 도달했고, 다시 거기 가만 선 채로 숨소리조차 죽였던 터에 자칫 숨이 거의 그를 떠날 뻔했다. 어두운 빛에 눈이 익숙해지자, 땅속의 집에 있는 여러 가지 물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탐욕스러운 눈은 오로지 하나에만 멈춰 있었으니, 오랫동안 찾아 헤맸고 마침내 찾아낸 그것은 바로 커다란 침대였다. 그 침대 위에 피터가 곤히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저 위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피터는 아이들이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팬파이프를 경쾌하게 연주했다. 자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였음에는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약을 먹지 않기로 작정했는데, 그래야만 웬디가 슬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이불도 덮지 않고 침대에 누워 버렸는데, 그래야만 그녀가 더욱 괴로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새벽이 될 때에는 혹시나 추워질지도 모르므로 그녀는 항상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곤 했다. 그러다가 피터는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하지만 자기가 오히려 웃어 버리면 그녀가 얼마나 성이 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오만한 웃음을 터뜨렸고, 그는 웃다 말고 잠이 들었다.

물론 자주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피터도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은 다른 아이들의 꿈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웠다. 깨어나서도 몇 시간 동안이나 헤어 나오지 못했고, 꿈속에서 슬프게 울부짖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일은 그라는 존재의 수수께끼와 관련이 있었다. 그럴 때면 웬디는 버릇처럼 피터를 침대에서 안아 올린 다음, 의자에 앉은 자기 무릎 위에 눕혀 놓고 직접 고안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를 달랬으며, 그가 점차 조용해지면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도로 침대에 넣어 주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피터는 자기가 웬디로 인해 졸지에 남부끄러운 일을 당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때만큼은 그 역시 꿈도 없는 잠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한 팔을 침대 가장자리로 늘어뜨리고 한 다리는 굽힌 상태인 데다 웃음에서 차마 마무리되지 못한 부분이 감돌고 있는 입은 헤벌려서, 그 안의 작은 진주들이 엿보였다.

이처럼 무방비 상태의 피터를 후크는 찾아냈던 것이다. 해적은 방 건너편에 누워 있는 적을 바라보며 조용히 서 있었다. 혹시 일말의 동정심이 그의 어두컴컴한 가슴을 교란시키지는 않았을까? 이 남자는 전적으로 사악하지는 않았다. 그는 꽃을 좋아했으며 (내가 듣기로는) 아름다운 음악도 좋아했다(그 자신만 해도 하프시코드 연주 실력이 보통 이상이었다). 게다가 솔직히 시인하자면, 이 장면의 목가적인 성격 때문에 그조차도 심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자신의 더 나은 부분에 지배받음으로써 마지못해 나무 통로를 따라 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겠지만, 후크에게는 그러지 못했던 이유가 한 가지 있었다.

그를 거기 계속 머무르게 했던 요인은 바로 피터가 잠잘 때의 건방진 모습이었다. 입을 벌리고, 한 팔을 늘어뜨리고, 무릎을 구부린 모습. 이 모두를 합치면, 모욕에 민감한 사람의 눈앞에는 절대 다시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바랄 만큼 강력한 거들먹거림의 화신이나 다름없었다. 그 모습에 후크의 가슴은 냉혹해졌다. 분노가 그를 1백 개의 조각으로 깨뜨릴 수 있었다면, 그렇게 깨진 조각들 하나하나가 이 상황을 무시하고 곧장 잠든 사람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침대 위에 흐릿하게 밝혀진 램프 하나에서 빛이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후크는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은밀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장애물을 하나 발견했으니, 바로 슬라이틀리의 나무에 달린 문이었다. 문이 구멍을 완전히 가로막지는 않았기 때문에, 후크는 지금껏 그 문 너머로 방 안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걸쇠를 더듬어 보았지만 너무 아래에 있어서 손이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는 분통이 터졌다. 가뜩이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던 후크가 느끼기에 피터의 얼굴과 몸에 나타난 짜증이 갑자기 눈에 띄게 증가해서, 그는 급기야 문을 흔들고 몸으로 부딪치기에 이르렀다. 그의 적은 결국 그의 손길을 벗어나고 마는 것일까?

그런데 저게 뭐지? 그의 눈 속에 나타난 붉은빛은 그의 손 닿는 범위 안에 있었던 선반에 놓인 피터의 약병을 찾아냈다. 그는 이게 뭔지 곧바로 간파했으며, 즉시로 저 잠자는 아이가 자기 손아귀에 들어왔음을 확신했다.

혹시나 산 채로 붙잡힐 경우에 대비해서 후크는 항상 끔찍한 독약을 품에 넣고 다녔는데, 자기 손에 들어온 독약 반지26)들의 내용물을 직접 섞어 만든 것이었다. 이 모두를 끓여서 그는 학계에조차 알려진 바 없는 노란 액체를 얻었으며, 이것이야말로 현존하는 가장 지독한 독약일 것이었다.

지금 이런 독을 그는 무려 다섯 방울이나, 피터의 약에 떨어뜨렸다. 후크의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부끄러움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환희 때문이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그는 잠자는 아이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는데, 동정심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어서는 전혀 아니었고, 다만 약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한 번의 길고 흡족한 시선을 그는 희생자에게 던졌으며, 몸을 돌려 어렵사리 꿈틀거리면서 나무 속의 통로를 도로 올라갔다. 땅 위로 나오는 그의 모습은 악 그 자체가 구멍을 뚫고 나오는 것과도 흡사했다. 자기 모자를 가장 뾰족한 각도로 쓴 다음, 그는 망토를 몸에 두르고 그 한쪽 끄트머리를 앞에다 붙잡았다. 마치 자기 모습을 밤으로부터 감추려는 것 같았는데, 밤은 이미 가장 어두울 때에 이르러 있었고, 그는 혼자 이상하게 뭔가를 중얼거리며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피터는 계속 잠을 잤다. 램프 빛이 펄럭이더니 꺼져 버렸고, 집 안은 어둠에 잠겼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잠을 잤다. 악어에 따르면 10시가 채 되지 않았을 때 그는 벌떡 침대에 일어나 앉았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잠에서 깨었다. 그때 그의 나무의 문을 조용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두들기는 누군가가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러나 그런 적막 속에서는 어쩐지 불길했다. 피터는 손으로 단검을 더듬어서 꽉 움켜쥐었다.

“거기 누구야?”

한동안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문을 두들겼다.

“거기 누구냐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피터는 오싹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는 원래 이렇게 오싹한 느낌을 좋아했다. 단 두 걸음 만에 그는 문에 도달했다. 슬라이틀리의 문과 달리 이 문은 통로로 들어가는 구멍을 다 막고 있었으므로 그는 문 뒤를 내다볼 수도 없었고, 문을 두들기는 누군가가 그를 볼 수도 없었다.

“그쪽이 대답하기 전에는 문을 열지 않을 거야!” 피터가 외쳤다.

그러자 마침내 방문객이 입을 열었다. 아름다운 종 같은 목소리였다.

“문 열어 줘, 피터.”

그건 바로 팅크였기에, 그는 재빨리 문을 열었다. 그녀는 잔뜩 흥분해서 날아들어 왔는데,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옷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너는 상상도 못 할 거야!” 그녀가 외치며 그에게 맞힐 기회를 세 번 제안했다. “당장 말해!” 그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문법에도 맞지 않는 한 문장으로, 마치 마술사들이 입에서 꺼내는 리본만큼이나 긴 문장으로, 그녀는 웬디와 아이들이 포로가 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피터의 가슴은 쿵쿵 뛰었다. 웬디가 붙잡혀서 지금 해적선에 있다니, 모든 것을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가!

“내가 그녀를 구출하겠어!” 그가 외치며 무기들이 있는 곳으로 펄쩍 뛰었다. 그렇게 뛰는 동안, 그는 웬디를 기쁘게 할 일을 하나 생각해 냈다. 바로 자기 약을 먹는 것이었다.

피터의 한 손이 치명적인 물약으로 향했다.

“안 돼!” 팅커 벨이 비명을 질렀는데, 후크가 숲을 지나가면서 무슨 짓을 했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그녀가 들은 까닭이었다.

“왜?”

“거기 독이 들었어.”

“독이 들었다고? 누가 독을 넣었는데?”

“후크.”

“어리석은 소리. 후크가 무슨 수로 여기까지 내려왔겠어?”

아아, 팅커 벨도 이 부분까지는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 슬라이틀리의 나무에 얽힌 어두운 비밀은 그녀 역시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크의 말에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이 약에는 독이 들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피터는 자기의 판단을 매우 신뢰하며 말했다. “나는 결코 잠들지 않았었단 말이야.”

그는 컵을 치켜들었다. 지금은 떠들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행동에 나설 때였다. 재빠른 움직임으로 팅크는 그의 입술과 물약 사이에 끼어들었고, 그 물약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셔 버렸다.

“어째서, 팅크, 감히 네가 내 약을 마신 거지?”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공중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피터는 불현듯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독을 마셨어, 피터.”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니 이제 죽을 거야.”

“아아, 팅크, 날 구하려고 네가 그걸 마신 거야?”

“그래.”

“하지만 어째서, 팅크?”

그녀의 날개는 이제 스스로를 들지도 못할 지경이었지만, 그녀는 대답 삼아 피터의 어깨 위에 내려앉더니, 그의 코를 살며시 깨물었다. 그녀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 멍청한 바보야!” 그러고는 자기 방으로 비틀거리며 날아가서 침대에 누웠다.

그녀의 작은 방의 네 번째 벽을 거의 채우다시피 얼굴을 들이밀고, 피터는 슬픔에 잠겨 무릎을 꿇었다. 시시각각으로 팅커 벨의 불빛은 점점 더 희미해졌다. 그 불빛이 꺼져 버리면 그녀도 끝장임을 그는 알았다. 그녀는 그의 눈물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예쁜 자기 손가락을 뻗어서 눈물이 손가락을 타고 흐르게 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워낙 힘이 없어서, 처음에는 그녀가 하는 말을 그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알아들었다. 만약 아이들이 요정을 믿는다고 하면, 자기 몸이 나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피터는 양팔을 뻗었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고, 지금은 한밤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네버랜드에 관한 꿈을 꾸는, 그래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와 가까이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잠옷을 입은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 그리고 나무에 걸린 바구니 안에 있는 발가벗은 아기들에게도.

“너희는 믿니?” 그가 외쳤다.

팅크는 자기 운명을 듣자마자 팔팔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자기가 긍정하는 답변을 들은 것 같다고 상상했지만, 곧이어 확신까지는 못 하겠다고 생각했다.

“네 생각은 어때?” 그녀가 피터에게 물었다.

“너희가 믿는다면” 그는 아이들에게 외쳤다. “손뼉을 쳐 봐! 팅크를 죽게 놔두지 마!”

많은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어떤 아이들은 치지 않았다.

몇몇 고집쟁이는 오히려 야유를 보냈다.

박수 소리는 갑작스레 멈추었다. 수많은 어머니들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육아실로 달려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팅크는 이미 목숨을 건졌다. 처음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또렷해지고, 다음에는 그녀가 침대에서 폴짝 뛰어나왔다. 그다음에는 그녀가 어느 때보다도 더 쾌활하고 활기차게 방 안을 이리저리 번쩍이며 날아다녔다. 그녀는 자기를 믿어 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대신 야유를 보낸 아이들은 혼내 주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럼 이제 웬디를 구하러 가자.”

달이 구름 낀 하늘을 달려가고 있을 무렵, 나무에서 튀어나온 피터는 무기를 허리띠에 찬 것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자신의 위험천만한 임무에 착수했다. 이날은 그가 선뜻 택했을 법한 밤은 아니었다. 그는 하늘을 날고 싶었지만, 그러면서도 땅에서 멀지 않은 높이를 유지해야 했는데, 그래야만 뭔가 특이한 게 있을 경우에 그의 눈을 피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일정하지 않은 달빛 속에서 그토록 낮게 날다 보면 나무 사이로 그의 그림자가 길게 질 것이고, 그러면 새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계심 많은 적들까지도 그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었다.

이제야 그는 이 섬에 살고 있는 새들에게 그토록 기묘한 이름을 지어 준 것을, 그리하여 그 새들이 매우 야생적이고 다가가기 힘들어지게 된 것을 후회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인디언의 방식대로 앞으로 달려가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다행히도 그는 여기에 능숙했다. 하지만 과연 어느 방향일지는 아리송했던 것이, 아이들이 과연 배로 끌려갔는지 확신하지 못한 탓이었다. 가볍게 눈이 내리면서 발자국을 모두 덮어 버렸다. 쥐 죽은 듯한 침묵이 섬에 만연했으며, 마치 잠시 동안 자연 자체도 조금 전의 살육에 경악한 나머지 멈춰 선 것 같았다. 그는 타이거릴리와 팅커 벨에게 배운 숲의 생활 방식 일부를 아이들에게도 전수했으므로, 위기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그걸 잊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기회만 있었다면 슬라이틀리는 나무에 칼자국을 새겼을 것이고, 컬리는 씨앗을 떨어뜨렸을 것이며, 웬디는 자기 손수건을 중요한 장소에 놓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표식을 찾아내려면 아침이 필요했고, 그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위쪽 세상은 그를 불러는 냈지만, 정작 도움은 주지 않았다.

악어가 피터의 곁을 지나갔지만 다른 생물은 없었으며, 소리 하나, 움직임 하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러운 죽음이 곧이어 마주칠 나무에 잠복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또는 뒤에서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았다.
피터는 이렇게 섬뜩한 맹세를 했다. “후크냐 나냐, 둘 중 하나다.”

이제 그는 뱀처럼 앞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똑바로 일어나서, 달빛이 춤추고 있는 공간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한 손가락은 자기 입술에 대고, 단검은 금방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한 채로. 피터는 무서울 정도로 행복했다.




26) 비밀 용기에 독약을 담은 반지. 16세기 유럽에서 암살이나 자살에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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