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9~10

나단비 | 2024.02.11 08:57:06 댓글: 6 조회: 421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6531
9

린드 부인의 충격





린드 부인은 앤이 온 지 2주일이 지나서야 ‘초록 지붕 집’을 찾았다. 하지만 방문이 그렇게 늦어진 이유가 린드 부인이 원해서는 아니었다. 지난번 ‘초록 지붕 집’을 다녀간 이후로 때 아닌 심한 독감에 걸려 집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픈 사람을 경멸하기까지 하는 린드 부인이 이렇게 앓아눕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부인의 주장에 따르면 독감은 다른 병과는 달리 하느님의 특별한 뜻에 의해 걸린다고 한다. 의사가 외출을 해도 된다고 허락을 하자마자 린드 부인은 매슈와 마릴라의 고아를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초록 지붕 집’으로 달려왔다. 이 고아에 관한 온갖 이야기와 소문이 에이번리에 이미 다 퍼진 상태였다.

앤은 그 2주 동안 모든 순간순간을 음미하며 지냈다. 이미 주변의 모든 나무와 숲과도 낯을 익혔고, 오솔길이 사과나무 과수원 아래를 지나 숲으로 난 길까지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 오솔길을 끝까지 따라가 예쁜 개울과 다리를 다 섭렵했다. 전나무 숲, 길 양끝에 고사리가 우거진 산벚나무 아치 길, 단풍나무와 마가목이 가지를 뻗고 있는 샛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앤은 저 아래 분지에 있는 샘과도 친구가 되었다. 반질반질한 사암에 자리를 잡은 이 깊고 맑은 샘에서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나왔으며 그 주변으로는 종려나무 같은 커다란 물고사리가무리 지어자라고, 샘 너머로는 가운데 통나무 다리가 놓인 개울이 있었다.

그 다리는 언덕으로 이어져 앤은 춤을 추듯 깡충거리며 언덕 길 우거진 나무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꼿꼿한 전나무와 가문비나무들이 빼곡하게 해를 가리고 있어 항상해 질무렵 같았다. 주변에는 숲 속에서 피는 꽃 중에서 가장 부끄럼을 많이 타는 예쁘고 섬세한 방울꽃이 가득 피었고 지난해 피었던 꽃의 영혼처럼 창백하고 영묘한 별꽃도 몇 송이 피어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걸쳐 있는 거미줄이 은색으로 빛을 발하고, 전나무 가지와 꽃들이 서로 다정하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앤은 놀다 와도 좋다고 허락을 받은 30여 분 동안 이런 환희에 넘치는 탐험을 즐겼고 숲에서 돌아오면 새로 발견한 것들을 일일이 매슈와 마릴라에게 보고했지만 두 사람은 별 대꾸도 없었다. 매슈는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잠자코 미소 띤 얼굴로 들어주었으나 마릴라는 자신이 앤의 수다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깜짝 놀라 금방 ‘조용히’ 하라고 명령을 내리곤 했다.

앤이정원에서 붉은 저녁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푸르른 풀들에 싸여 기분 좋게 거닐고 있을 때 린드 부인이 찾아왔다. 그래서 린드 부인은 자기가 걸렸던 병을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전부 늘어놓을 수 있었다. 아픈 일이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었던 양 얼마나 심하게 아팠는지, 맥박수가 어땠는지 일일이 상세하게 설명했다. 독감에 대한 보고가 모두 끝나자 린드 부인은 자신이 방문한 진짜 목적을 밝혔다.

“내가 마릴라와 매슈에게 깜짝 놀랄 소식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 뭐예요.”

“아무리 놀랐어도 저보다야 놀랐으려고요. 전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렸어요.”

마릴라가 말했다.

“그런 착오가 일어났다니 정말 안됐지 뭐예요. 왜 아이를 돌려보내지 못했어요?”

린드 부인이 동정이라도 하듯 말했다.

“그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죠. 오라버니가 저 아이를 몹시 좋아했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저 아이가 와서집 안분위기가 벌써 많이 달라졌어요. 저 애는 결점도 있지만 정말 성격이 밝은 아이예요.”

마릴라는 레이철의 얼굴에 역력한 달갑지 않다는 표정에 처음에 하려고 했던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말았다.

“마릴라가 지금 얼마나 힘든 일을 떠맡았는지 몰라서 그래요. 더군다나 아이를 키워 본 경험도 없잖아요. 저 애가 진짜 어떤 아이인지, 성품이 어떤지도 모르고. 저런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요. 마릴라를 실망시키려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린드 부인이 암울한 말을 했다.

“전 실망스럽지 않아요. 전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에요. 앤을 만나보세요. 앤을 들어오라고 할게요.”

마릴라가 무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즐겁게 과수원을 돌아다니며 놀고 있던 앤이 환한 얼굴로 달려 들어왔다. 하지만 낯선 사람을 보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 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 모습이 이상스러워 보이기는 했다. 고아원에서 입고 왔던 면모 교직천으로 만든 옷은 너무 꼭 끼었고 짧은 옷 아래로 나온 마른 다리는 너무 길어 보였다. 얼굴을 덮고 있는 주근깨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욱 두드러져 보였고 모자를 쓰지 않아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칼은 그 순간 더욱 빨간색으로 보였다.

“아이고, 네 생김새를 보고 너를 기르기로 한 것은 분명 아닌 모양이구나.”

레이철린드 부인이 말했다. 린드 부인은 자기가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이 좋아하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내뱉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아이가 너무 마르고 볼품이 없네요, 마릴라. 얘야, 이리 온, 자세히 좀 보자. 어머나, 이런 주근깨를 본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저 머리 좀 보게, 꼭 홍당무 같구나. 얘야, 이리 좀 가까이 와 보라니까.”

앤이 린드 부인에게 가긴 했지만 린드 부인의 예상대로는 아니었다.한걸음에부엌을 가로질러가 린드 부인 앞에 성큼 섰다. 얼굴은 분노로시뻘게졌고입술도 바르르 떨렸으며 마른 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주머니, 싫어요!”

앤이 발까지 동동 구르며 목이 꽉 멘 소리로고함을질렀다.

“싫어요, 싫어요, 아주머니 싫어요!”

한 마디씩 뱉을 때마다 발을 더 세게 쾅쾅 굴렀다.

“어떻게 저한테 마르고 못생겼다고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어요? 제가 주근깨투성이고 빨간 머리라고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느냐고요? 아주머니는 무례하고 예의도 없고 감정도 없는 사람이에요!”

“앤!”

마릴라가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앤은 계속해서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두 주먹을 쥔 채 린드 부인을 노려보았다. 두 눈은 불타오르는 분노로 더운 공기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었다.

“어떻게 저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아직도 맹렬한 기세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주머니는 그런 말을 듣고도 기분이 좋겠어요? 아주머니한테 누가 뚱뚱보에 뒤뚱거리고, 상상력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다고 하면 좋겠느냐고요? 제가 그런 말로 아주머니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해도 전 상관하지 않겠어요. 아니, 아주머니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어요. 술주정뱅이 토머스 아저씨도 제 기분을 이렇게 상하게 하지는 않았어요. 전 절대로 아주머니를 용서할 수가 없어요. 절대로, 절대로요!”

쾅! 쾅!

“아니, 저렇게 성질이 못된 애가 다 있나!”

겁에 질린 린드 부인이 고함을 질렀다.

“앤, 네 방으로 가서 내가 내려오라고 할 때까지 나오지 마라.”

할 말을 잃고 있던 마릴라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앤이 눈물을 터트리며달려 나갔다. 방문을 어찌나 세게 닫았는지 바깥 베란다를 덮은 양철지붕까지 흔들거렸다. 앤은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복도를 빠져나가 계단을 뛰어올라 갔다. 이어 동쪽 방의 방문도 아까 같은 기세로 닫히는 소리가 났다.

“세상에, 마릴라, 저런 애를 기르겠다고 나서다니 어쩌려고.”

린드 부인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목에 잔뜩 힘을 주며 말했다.

마릴라는 뭐라 사과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자기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자신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 아이 생김새를 가지고 비웃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죠,레이철.”

“마릴라 커스버트, 지금 저렇게 버릇없이 대들면서 성질을 부린 아이를 두둔하는 거예요?”

린드 부인이 분하다는 듯 따져 물었다.

“아니요, 저 아이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니고, 저 아이가 버릇없이 굴기는 했죠. 저도 저 아이를 잘 타이를 생각이지만, 저 아이 심정도 이해가 가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니까요. 그리고 레이철이 저 아이에게 너무 심한 말을 하긴 했다고요.”

마릴라는 그 마지막 말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더 놀라긴 했지만. 린드 부인은 화가 난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품위를 갖추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요, 나도 다음부터는 말을 조심하죠. 마릴라, 그런데 지금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고아 아이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 뭐, 내가 화가 나서 하는 말은 아니니, 걱정은 말아요. 나는 마릴라가 너무 안쓰러워 내 마음에 화를 담아둘 여유도 없어요. 저 아이때문에 골치 좀 썩히겠어요. 내 말을 듣지도 않겠지만, 아이를 열이나 길렀고 그중 둘을 잃었더라도 그래도 내가 충고를 하자면, 마릴라가 아까 말한 대로 저 아이를 타이르고 싶다면 회초리부터 만들어놓는 게 좋을 거예요. 저런 아이에게는 백 마디 말보다 회초리 한 번이 더 효과적일 테니까. 아주 성질머리가 머리 색깔과 딱 어울리는 애예요. 자, 잘 있어요, 마릴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가끔씩 들르기도 하고 그러세요. 나야 뭐 당분간 여기 올 일이 없을 테지만. 그런 식으로 덤비고 모욕적인 말을 하는데 어디 또 오겠어요. 도대체 이런 일은 처음 당해 봐요.”

그렇게 린드 부인이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뒤뚱거리며 걷는 뚱뚱보 여자가 어기적거리며 나갔다기보다 휙 나갔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일이라면. 마릴라는 매우 근엄한 표정으로 동쪽 방으로 올라갔다.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마릴라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전 일어난 사태에 이만저만 낙심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레이철앞에서 앤이 그렇게 성질을 부렸으니! 마릴라는 앤의 성격에 그런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속이 상하기보다는 린드 부인 앞에서 책을 잡힌 게 더 속이 상했다. 그런 사실을 깨닫고는 또 질책하는 마음으로 불편했다. 이 아이를 어떻게 벌해야 할까? 린드 부인의 아이들에게 효과가 있었다는 회초리는 마릴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에게 회초리를 드는 일에는 찬성할 수도 없었다. 다른 벌을 주어서 앤이 자기 잘못을 깨닫게 해야 했다.

앤은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깨끗한 침대 위에 진흙이 잔뜩 묻어 있는 부츠를 신고 올라갔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앤.”

마릴라가 좀 엄한 목소리로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앤, 당장 침대에서 내려와라. 너한테 할 말이 있으니까.”

좀 더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앤이 엉거주춤 침대에서 내려와 곁에 있는 의자에 굳은 채로 앉았다. 얼굴은 부어올랐고 눈물범벅이었으며 눈은 고집스럽게 바닥만내려다보고있었다.

“잘하는 짓이다, 앤! 너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니?”

“그 아주머니는 무슨 권리로 저를 못생긴 빨간 머리라고 부르는 건가요?”

앤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항적인 태도로 말했다.

“너도 그런 식으로 화를 내고 함부로 말할 권리가 없어, 앤. 나도 네가 부끄러웠다. 정말로 부끄러웠어. 린드 부인 앞에서만큼은 얌전히 행동해주기를 바랐는데, 넌 날 망신시켰어. 린드 부인이 네가 빨간 머리에 볼품없이 생겼다고 했기로서니 그렇게 흥분해서 화를 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너도 늘 네가 그렇다고 얘기를 했잖아.”

“하지만 제가 그 말을 하는 것과 남이 하는 건 다르죠.”

앤이 울부짖었다.

“아무리 사실이 그렇다는 걸 제가 잘 알고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했단 말이에요. 아주머니가 제 성질이 아주 못됐다고 생각하시더라도 할 수 없어요. 그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제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라와 숨이 막힐 것 같았다고요. 따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어쨌거나 너는 오늘 좋은 웃음거리가 된 거야. 린드 부인이 온 동네에 오늘 일을 다 떠벌리고 다닐 거라고. 그렇게 화를 내지 말았어야 했어, 앤.”

“하지만 누가 아주머니더러 앞에 대놓고 마르고 못생겼다고 한다면 어떻겠어요?”

앤이 눈물을 흘리며 따져 물었다.

갑자기 마릴라에게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어렸을 때 마릴라의 고모들이 서로 주고받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불쌍해라, 저렇게 피부가 까맣고 못생겼으니.”

마릴라는 그 아픈 기억을 나이가 오십이 될 때까지 잊지 못했다.

“린드 부인이 너에게 한 말이 옳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야, 앤.”

마릴라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져 나왔다.
“린드 부인은 원래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거든. 하지만 네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어. 린드 부인은 네가 처음 보는 사람이고, 웃어른에다가 나를 찾아온 손님이었다. 그 세 가지 이유 모두 그 부인에게 네가 공손하게 대해야 할 이유로 충분했다고. 너는 버릇없는 어린애같이 굴었어.”

순간 마릴라에게 적당한 벌이 생각났다.


“네가 린드 부인 집에 가서 버릇없이 군 것을 사과드리고 용서해달라고 빌어라.”

“전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앤이 아주 단호하고 험악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릴라 아주머니가 내리시는 벌은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어요. 저를 어둡고 눅눅한 지하 감옥에 처넣어 버려 뱀이나 두꺼비와 함께 살게 하고 빵과 물만 주시더라도 좋아요. 하지만 린드 아주머니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만큼은 할 수가 없어요.”

“사람을 어둡고 축축한 지하 감옥에 처넣는 일은 안 한다. 그리고 에이번리에는 그런 감옥도 없으니 넌 린드 부인에게 가서 사과를 해야 해. 네가 사과하러 가겠다고 할 때까지 넌 이 방에서 나올 수 없다.”

마릴라가 쌀쌀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전 여기서 영원히 살게 될 거예요. 전 린드 아주머니에게 사과 같은 건 할 수 없으니까요. 어떻게 제가 잘못했다는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제게 조금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걸요. 아주머니를 화나게 만든 건 제 잘못이지만 린드 아주머니에게 그렇게 말한 건 아주 통쾌했다고요. 전 잘못한 일이 없는데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로 못 해요. 어떻게 할 수가 있겠어요? 제가 잘못했다는 말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앤이 말했다.

“내일 아침이면 네 상상력이 제대로 좀 돌아갔으면 좋겠구나. 네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오늘 밤곰곰이 생각해보고 네 마음을 좀 바로잡아 보거라. 우리가 너를‘초록 지붕 집’에 있게 해주면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네 입으로 말했잖니. 아까는 네가 전혀 착한 아이 같지 않았어.”
마릴라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 한마디가 훈족의 화살처럼 요동치는 앤의 가슴에 와 박혔다. 마릴라는 부엌으로 내려왔으나 마음은 무겁고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앤에게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까지 화가 났다. 하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혀 버린 린드 부인의 표정이 생각날 때마다 참을 수 없이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10

앤의 사과






마릴라는 그날 밤 매슈에게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앤이 다음 날 아침까지도 고집을 꺾지 않고 있어 아침 식사에 내려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마릴라는 매슈에게 앤의 잘못된 행동을 특히 강조하면서 어제 벌어진 일을 이야기했다.

“레이철린드에게 할 말을 한 것은 잘한 일이야. 남의 일에 너무 참견을 해대고 다니잖아.”

그것이 매슈의 대꾸였다.

“매슈 오라버니, 정말 못 말리겠군요. 앤이 그런 잘못을 했는데도 앤의 역성을 든단 말이에요! 그러니 지금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이잖아요!”

“아니, 꼭 그런말이 아니라, 조금은 야단을 쳐야겠지만 너무 심하게 야단치지는 마라, 마릴라. 그 아이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잖니. 아이에게 먹을 거나 좀 갖다 주지 그러니?”

“내가 언제 굶겨가며 가르친댔어요? 식사는 제때 다 챙겨 먹일 거예요, 제가 갖다 준다고요. 하지만 앤이 레이철에게 사과하겠다고 할 때까지는 못 내려와요. 정말이에요.”

마릴라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앤이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고 있어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 모두쥐 죽은듯 조용했다. 식사 시간이 끝나면 마릴라는 정성껏 준비한 식사 쟁반을 동쪽 방으로 가져갔고 얼마 후에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접시를 다시 갖고 내려왔다. 매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앤이 조금이라도 먹었는지 어떤지 살펴보았다.

그날 저녁 마릴라가 소를 몰아오려고 집 뒤편에 있는 목장으로 나가자 헛간에서 어슬렁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매슈가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가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살그머니 동쪽 방으로 올라갔다. 매슈는 목사님이 차를 마시러 들르면 아주불편스러워하며 거실로 나오는 일이 있을 뿐 보통 때라면 부엌과 복도 끝에 있는 작은 침실 사이만 오갔다. 아무리 자기 집이라도 봄철이 되어 마릴라가 손님방에 벽지를 바르는 일을 도와주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매슈가 위층에 올라가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것도 벌써 4년 전의 일이었다.

매슈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살 복도를 따라 걸어가 동쪽 방문 앞에서 몇 분 동안 주저주저하다 드디어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리고는 문을 열고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앤은 창가에 놓인 노란 의자에 앉아 슬픈 듯 정원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작고 의기소침해 보여서 매슈의 마음이 몹시 아팠다. 살며시 문을 닫고 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앤, 기분이 어떠니?”

누가 듣기라도 할까 봐 두려운 듯 매슈가 속삭였다.

앤이 힘없이 미소만 지었다.

“괜찮아요. 공상을 많이 하고 있으니까 시간을 보내는 데는 도움이 돼요.물론 좀 외롭기는 하지만 외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편이 나을 거예요.”

앤이 기나긴 감옥 생활에 용감히 맞서겠다는 듯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매슈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해야 할 말을 얼른 해야 했다. 마릴라가 일찍 돌아와 버릴지도 모르니까.

“있잖니, 앤, 차라리 사과하고 얼른 끝내버리는 게 낫지 않겠니? 언젠가는 해야 될 일이야. 마릴라는 아주 고집이 세거든. 한번마음먹은 일은 절대로 바꾸는 법이 없단다. 그러니 앤, 얼른 해치워버리는 게 좋지 않겠니?”

“린드 아주머니에게 사과를 하라는 말인가요?”

“그래, 사과, 바로 그거야. 말하자면 비위를 맞춰주라는 거야. 그게 내가 말하려는 거였어.”

매슈가 진지하게 말했다.

“아저씨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사과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잘못했다는 말을 하더라도 진심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지금은 죄송하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어젯밤에는 조금도 미안한 기분이 아니었거든요. 밤새 미친 듯이 화가 나 있었나 봐요. 세 번이나 깨어서 제가 그랬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그렇지 않아요. 이제 더 이상은 화가 끓어오르지도 않고요. 맥이 다 빠져버린 기분이에요.저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린드 아주머니 댁에 가서 사과하기는 여전히 힘들 것 같아요. 정말이에요. 차라리 여기 이렇게 갇혀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아저씨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어요. 진심으로 제가 가서 사과하기를 원하신다면…….”

앤이 사려 깊게 말했다.

“물론, 난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아래층에 네가 내려오지 않으니까 쓸쓸해 견딜 수가 없어. 그냥 가서 일을 무마하자는 거지. 넌 착한 아이가 아니냐.”

“좋아요. 마릴라 아주머니가 돌아오시자마자 제가 잘못했다고 말씀을 드릴래요.”

앤이 포기한 듯 말했다.

“그래, 그래야지, 앤. 하지만 마릴라한테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말하면 안 된다. 내가 참견을 했다고 여길 거야. 내가 네 일에는 참견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거든.”

“야생마라도 제 입을 열게 하지는 못할 거예요.”

앤이 엄숙하게 약속을 했다.

“그런데 야생마는 어떻게 비밀을 실토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나 매슈는 자기의 성공에 스스로도 놀라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릴라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목초지 저 끝으로 급히 도망쳐 버렸다.

마릴라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반갑게도 2층 계단 난간 쪽에서 ‘마릴라 아주머니.’ 하는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응, 그래.”

놀란 마릴라가 복도 쪽으로 가면서 대답했다.

“제가 화내고 버릇없는 말을 한 거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린드 아주머니에게 가서 그렇게 말할게요.”
“잘 생각했다.”

마릴라의 이 간단한 대답에서 안도의 기색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앤이 고집을 꺾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내심 걱정이었다.

“젖을 다 짜고 나면 내가 데리고 가마.”

이렇게 해서 우유를 다 짠 후 마릴라와 앤은 오솔길을 걸어 내려갔다. 마릴라는 의기양양하게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걸어갔고, 앤은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하지만 절반쯤 길을 가다 보니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 앤의 절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앤도 머리를 쳐들고 발걸음도 경쾌하게 마릴라를 쫓아, 시선은 해가 저무는 하늘에 고정시키고 들뜬 마음을 억지로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릴라는 앤의 이런 변화를 못마땅한 듯 바라보았다. 화가 나 있는 린드 부인 앞에서 용서를 빌어야 할 태도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마릴라가 날카롭게 물었다.

“린드 아주머니께 무슨 말로 사과를 드릴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앤이 아련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이것이 만족스러운 결과이기는 한데, 그래야 하는데, 마릴라는 벌을 주려던 자기 계획이 빗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앤의 모습이 지금처럼 이렇게 들뜨고 즐거움으로 넘칠 이유는 없는데.

들뜨고 즐거운 모습의 앤은 부엌 창가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는 린드 부인 앞에 당도할 때까지 그대로였다. 린드 부인 앞에 서자 드디어 앤의 달뜬 모습이 사라지고 침통한 참회의 표정으로 바뀌었다.깜짝 놀라는 린드 부인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은 앤은 애원하듯 양손을 내밀었다.

“오, 린드 아주머니, 전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앤의 목소리가 떨리기조차 했다.

“제가 지금 얼마나 후회하는 마음인지 사전에 있는 말을 다 동원한다 해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답니다. 제 마음이 얼마나 슬픈지는 아주머니께서 상상으로밖에는 알 수 없을 거예요. 제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고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의친구분께 큰 실례를 범했어요. 제가 사내애가 아닌데도‘초록 지붕 집’에 살게 해주신 분들에게요. 전 아주 나쁘고 은혜도 모르는 아이예요. 전 벌을 받아 마땅하고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버림을 받아야 할 아이예요. 아주머니께서는 단지 진실을 말한 것뿐인데 그렇게 대들다니 정말 나쁜 행동이었어요. 맞아요, 아주머니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다 진실이었어요. 제 머리는 빨갛고, 주근깨투성이에 마르고 못생겼어요. 그리고 제가 아주머니께 한 말도 역시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 말을 해서는 안 되었어요. 오, 린드 아주머니 제발,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 만일 아주머니께서 저를 용서해주시지 않으신다면 전 평생 슬픔 속에서 살아야 할 거예요. 제가 아무리 성질이 못된 아이라 해도 가엾은 고아 아이에게 평생의 슬픔을 안겨주고 싶진 않으시겠죠? 아닐 거라고 믿어요. 제발 절 용서하신다고 말씀해주세요, 린드 아주머니.”

앤은 두 손을 마주 잡고 머리를 조아린 채 판결을 기다렸다.

앤이 진지한 것은 분명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지함이 넘치고 있었다. 마릴라나 린드 부인 모두 그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앤이 사실은 이 굴욕적인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마릴라는 알고 낙담했다. 철저하게 자기를 낮추는 자세에 고스란히 앤의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마릴라가 우쭐해하며 앤에게 제대로 벌을 주려던 계획은 어긋나고 말았다. 앤이 벌을 아주 즐거운 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앤을 잘 알지 못하고, 사실 인정도 많은 린드 부인은 이런 사실을 전혀눈치채지 못했다. 앤의 사과가 매우 극진한 것을 보고 남의 일에 참견이 심해서 그렇지 사람은 좋기만 한 린드 부인은 순식간에 화난 마음을 풀어버렸다.

“자아, 자아, 일어나거라, 얘야.”

린드 부인이 진심으로 말했다.

“너를 용서하고말고. 내가 너에게 좀 심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난 아주 솔직한 사람이란다. 내 말에 너무 마음 쓰지 마라. 별 뜻은 아니었어, 그럼. 네 머리가 빨간 색깔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어릴 때는 너처럼 빨간 머리였다가 어른이 된 다음에 예쁜 적갈색 머리로 바뀐 아이를 내가 안다. 그러니 빨간 머리라고 해서 그렇게 상심할 필요는 없어, 조금도.”

“어머나, 린드 아주머니!”

앤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벌떡 일어났다.

“아주머니는 제게 희망을 주셨어요. 전 앞으로 아주머니를 제 은인으로 생각할 거예요. 오, 제가 어른이 되었을 때 아름다운 적갈색 머리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전 어떤 어려움이라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름다운 갈색 머리를 가진 사람은 착해지기도 훨씬 더 쉽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저는 이제 정원에 나가보아도 될까요? 린드 아주머니와 마릴라 아주머니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사과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고 싶어요. 거긴 상상할 거리가 더 많을 것 같거든요.”

“그래, 어서 나가 놀아라. 그리고 원하면 정원 한쪽 구석에 핀 백합꽃을 꺾어 가져도 된다.”

앤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 린드 부인이 일어나 램프에 불을 밝혔다.

“저 애는 정말로 별난 아이로군요. 여기 이 의자에 앉아요, 마릴라. 그 의자보다 편할 거예요. 그 의자는 우리 집에서 일하는남자아이가 앉는 의자거든요. 그래요, 저 애는 정말 엉뚱한 데가 있는 아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어요. 마릴라와 매슈가 저 애를 두기로 한 것이 이제 보니 놀랄 일도 아니네요. 마릴라가 안됐다는 생각도 이젠 없어졌어요. 저 아이는 잘 자랄 거예요. 물론 말하는 방식이 좀 독특하기는 하지만요. 음, 조금요. 아니, 상당히 좀 그렇긴 해요. 하지만 이제 교양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 지내게 됐으니 곧 고쳐지겠죠. 그리고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지만 또 풀어지기도 잘하는 사람은 교활하거나 사람을 속이는 일은 없죠. 난 교활한 아이는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 저 애는 괜찮은 아이 같아요, 마릴라.”

마릴라가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자앤도 하얀 백합꽃 한 다발을 안고 황혼에 물든 향기로운 과수원에서 나왔다.

“제가 사과를 꽤 잘했죠, 네?”

오솔길로 접어들었을 때 앤이 물었다.

“전 기왕에 사과를 할 바에는 완벽하게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 아주 완벽하게 잘했다.”

마릴라가 대꾸했다. 마릴라는 이번 일을 생각할 때마다 자꾸 웃음이 나오려는 자기 자신에게 당황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앤이 사과를 너무 잘한 것도 야단을 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좀 말이 안 되는 일인 듯도 했다. 마릴라는 이런 불편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매섭게 훈계하는 말을 했다.

“그런 사과할 일을더는 하지 않도록 해라. 화가 나더라도 자제할 줄도 알아야지. 알았니, 앤?”

“사람들이 제 모습을 비웃는 일만 없으면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앤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다른 일에는 그렇게 화가 나지 않지만 제 머리 색깔로 저를 흉보는 것은 참을 수가 없어요. 아주머니도 제 머리가 예쁜 갈색으로 변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생긴 것에 너무 신경 쓰지도 말고, 앤. 나는 네가 허영심이 너무 많은 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구나.”

“제가 못생겼다는 걸 아는데 어떻게 허영이 심한 아이일 수가 있겠어요? 전 아름다운 것이 좋아요. 그래서 거울에 아름답지 않은 제 모습이 비치면 싫어요. 너무 슬퍼져요. 못생긴 걸 보면 언제나 그래요. 전 아름답지 않은 건 모두 불쌍하다고 생각해요.”

앤이 말했다.

“행동이 아름다운 사람이 얼굴도 예뻐 보인다는 말이 있다.”

마릴라가 속담을 들어주었다.

“저도 전에는 그 말로 저를 위로하곤 했어요. 하지만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일까요?”
앤이 들고 있는 백합꽃 향기를 맡으며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이 꽃은 정말 향기로워요! 이 꽃을 제게 주시다니 린드 아주머니는 너무 멋진 분이에요. 이제 린드 아주머니에게 원한 같은 건 없어요.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는 건 정말 편안하고 기분 좋은 일이에요, 그렇지 않나요?오늘 밤은 별들이 너무 예쁜 것 같아요. 별에서 살 수 있다면 아주머니는 어떤 별을 고르시겠어요? 저라면 저 어두운 언덕 위에 혼자 아름답게 빛나는 맑고 큰 별을 택하겠어요.”

“앤, 입 좀 다물고 있지 그러니.”

이리저리로 옮겨 다니는 앤의 생각을 따라다니느라 완전히 지쳐버린 마릴라가 말했다.

두 사람이 집으로 통하는 오솔길에 이를 때까지 앤은 잠자코 걷기만 했다.

여기저기헤매다니던 산들바람이 이슬에 젖은 어린 풀고사리의 싱그러운 향기를 싣고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땅거미로 덮인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초록 지붕 집’부엌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즐거운 듯 반짝이고 있었다. 갑자기 앤이 마릴라에게 살며시 다가가 그 작은 손으로 늙어가는 여인의 딱딱한 손을 꼭 잡았다.

“돌아갈 집이 있어 너무 기뻐요. 저기가 내 집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라요. 저는‘초록 지붕 집’이 너무 좋아요. 집만큼 좋은 곳은 그 어디에도 없어요. 아, 마릴라 아주머니, 전 너무나 행복해요. 지금 당장에라도 기도할 수 있어요. 조금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이 작은 아이의 손을 잡으니 마릴라의 가슴에도 뭔가 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차올랐다. 아마 마릴라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모성애로 인한 떨림이랄까. 처음 느껴보는 이 달콤한 느낌이 마릴라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그래서 평상시의 고요한 마음을 되찾으려고 얼른 교훈 하나를 일러주었다.

“네가 착한 아이가 되면 넌 언제까지나 행복할 거야, 앤. 그렇게 되면 기도를 올리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되지도 않을 거다.”

“다른 사람이 쓴 기도문을 외우는 것과 기도를 하는 것은 다른 것 같아요.”

앤이 생각에 잠기면서 말했다.

“이제 저는 저 나무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되었다고 상상할래요. 나무가 재미없어지면 여기 고사리로 살랑살랑 내려온다고 상상을 하고요, 그런 다음에는 린드 아주머니네 정원까지 날아가서 꽃들이 춤을 추도록 하고, 다음에는 저기 클로버 들판으로 휘익 날아가는 거예요. 그리고‘반짝이는 호수’로 가서 작은 물결을 일으킬 거예요. 바람이 되어보는 일에도 공상거리가 무척 많네요! 이제는 입을 꼭 다물게요, 마릴라 아주머니.”

“그것참다행이로구나.”

마릴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4/02/29 05:06:08

싫으면 싫다고 고함을 지르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고 사과도 완벽하게 하고.앤은정말
매력넘치는 아이예요.

나도 아름다운것을 좋아해요.아름답지 않은것은 불쌍하다고 생각해요.

행동이 아름다운 사람이 얼굴도 예뻐보인다.이속담도 맘에들어요.

나단비 (♡.252.♡.103) - 2024/02/29 15:48:26

저도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요. 아름다운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은 외형과 상관없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뉘썬2뉘썬2 (♡.169.♡.51) - 2024/03/01 07:10:57

특히 모이자에서는요.얼굴이 안보이고 글만보이니 말을예쁘게 하는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라 생각해요.

나단비 (♡.252.♡.103) - 2024/03/01 07:17:05

외적인 것이 가려지니 다른 아름다움이 되레 더 잘보이는 것 같아요.

뉘썬2뉘썬2 (♡.169.♡.51) - 2024/03/01 08:19:18

사람의 심리나 성격을 파고드는 곳이니 단비처럼 글쓰는 사람한테는 도움되는것
같아요.

나단비 (♡.252.♡.103) - 2024/03/01 08:23:05

많이 도움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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