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나라의 앨리스 제9장

나단비 | 2024.02.27 21:00:01 댓글: 0 조회: 71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0225
제9장 여왕이 된 앨리스


“와, 이거 정말 멋진걸!”

앨리스는 말했다.

“이렇게 빨리 여왕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음, 그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폐하.”

앨리스는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앨리스는 자신을 나무라는 것을 좋아했다.)

“이렇게 풀밭에서 뒹굴거리시다뇨! 여왕은 위엄을 갖추어야만 해요, 잘 아시면서!”

그래서 앨리스는 일어나서 주위를 걸어다녔다. 처음에는 왕관이 떨어질까봐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걸었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깨닫자 긴장이 풀어졌다.

“내가 만일 진짜 여왕이라면.”

앨리스는 다시 풀밭에 앉으며 말했다.

“곧 잘 적응할 수 있게 되겠지.”

모든 일이 너무나 이상하게 벌어졌으므로 앨리스는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이 양쪽 옆에 붙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무척이나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 없는 질문이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게임이 끝났는지 물어보는 것은 실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 죄송하지만…….”

앨리스는 붉은 여왕을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말을 걸 때나 말을 해!”

여왕이 날카롭게 앨리스의 말을 막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규칙에 복종하면.”

앨리스는 언제나 작은 언쟁을 즐겼다.

“그래서 말을 걸 때만 말을 하고, 서로 먼저 말을 하기만 기다린다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어리석기는!”

여왕이 소리쳤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얘야.”

여기에서 여왕은 말을 끊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잠깐 생각을 하더니 갑자기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내가 진짜 여왕이라면’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무슨 권리로 스스로 여왕이라고 부르지? 너는 여왕이 아니야, 적절한 시험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리고 시험은 빨리 시작하는 게 좋겠지.”

“저는 ‘만일’이라고 말했을 뿐이에요!”

가엾은 앨리스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항변했다.

두 여왕은 서로 쳐다보았고, 붉은 여왕이 살짝 몸을 떨며 말했다.

“‘만일’이라고 말했을 뿐이라는데.”

“하지만 얘는 단지 그 말만 한 게 아니라고!”

하얀 여왕이 두 손을 비틀어짜며 투덜거렸다.

“아유,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했다니까!”

“정말 그랬어?”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말했다.

“언제나 진실을 말해야 한단다. 말하기 전에 생각을 하고 말이야. 그후에 기록을 하는 거야.”

“저는 그런 뜻이 아니고…….”

앨리스는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붉은 여왕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바로 그게 내가 설명하려는 거라고! 뜻 있는 말을 했어야지! 아무 뜻 없는 말을 하는 아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니? 심지어 농담 속에도 뜻이 있어. 하물며 아이는 농담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 않겠니? 부정하지는 못할걸. 어떤 수단을 써도 말이야.”
 
“저는 수단을 써서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아무도 네가 그랬다고 말하지 않았어.”

붉은 여왕이 말했다.

“네가 무슨 수를 써도 안 된다는 말을 한 거야.”

“이 애는 무언가를 부정하고 싶은 거야. 부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를 뿐이지!”

하얀 여왕이 말했다.

“못되고 심술궂은 성질이지.”

붉은 여왕이 말했다. 잠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붉은 여왕이 침묵을 깼다. 붉은 여왕은 하얀 여왕에게 말했다.

“오늘 오후 앨리스가 여는 만찬에 당신을 초대하죠.”

하얀 여왕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럼 나는 당신을 초대하죠.”

“제가 여는 만찬이 있다니, 저는 전혀 몰랐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하지만 제가 여는 만찬이 있다면, 당연히 제가 손님들을 초대해야 하잖아요.”

“우리가 너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붉은 여왕이 말했다.

“하지만 너는 아직 예의범절을 많이 배우지 않았잖니?”

“예의는 수업 시간에 가르치지 않아요. 수업 시간에는 계산 같은 것을 배운다고요.”

앨리스가 말했다.

“너 덧셈할 줄 아니?”

하얀 여왕이 물었다.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 더하기 1은 얼마지?”

“모르겠어요. 셈을 잊어버렸어요.”

“그 애는 덧셈을 못 해.”

붉은 여왕이 참견했다.

“빼기는 할 줄 아니? 8에서 9를 빼봐.”

“8에서 9를 어떻게 빼요, 아시잖아요.”

앨리스는 즉시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애는 뺄셈을 못 해.”

하얀 여왕이 말했다.

“나눗셈은 할 줄 아니? 칼로 빵 한 덩이를 나누면, 뭐가 되지?”

“아마…….”

앨리스가 말을 하려는데, 붉은 여왕이 앨리스 대신 대답했다.

“당연히 버터 바른 빵이 되지. 다른 뺄셈을 해보자. 개한테서 뼈다귀를 빼앗으면 무엇이 남아 있을까?”

앨리스는 곰곰이 생각했다.

“당연히 뼈다귀는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제가 뼈다귀를 가지면요. 그리고 개도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저를 물려고 달려올 테니까요. 그러면 당연히 저도 남아 있을 수가 없고요.”

“그러면 너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구나!”

붉은 여왕이 말했다.

“저는 그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틀렸어, 또.”

붉은 여왕이 말했다.

“개의 성질은 남아 있어.”

“하지만 제가 그걸 어떻게 알 수가…….”

“자, 내 말을 잘 들어보라고!”

붉은 여왕이 큰 소리로 말했다.

“개는 화를 낼 거야, 그렇겠지?”

“그렇겠죠.”

앨리스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그럼 만일 개가 가버린다 해도 개의 성질은 남아 있을 거라고!”

붉은 여왕은 의기양양하게 설명을 했다.

앨리스는 되도록 엄숙하게 말했다.

“아마 각각 다른 길로 가겠죠.”

하지만 앨리스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담!’

“이 애는 계산이라고는 아예 하지 못한다니까!”

두 여왕은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다.

“여왕님들은 계산을 할 줄 아세요?”

앨리스가 갑자기 하얀 말의 여왕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결점은 지적당해본 적이 없었다.

여왕은 한숨을 쉬며 두 눈을 감았다.

“난 덧셈은 할 줄 알아.”

여왕은 말을 이었다.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해도 뺄셈은 하지 못하겠어.”

“물론 네 이름의 철자는 알고 있겠지?”

붉은 여왕이 말했다.

“물론이죠.”

앨리스가 말했다.

“나도 내 이름 철자는 알아.”

하얀 여왕이 속삭였다.

“우리는 종종 함께 외우기도 한단다. 그리고 비밀인데, 나는 한 단어를 읽을 수도 있어! 근사하지 않니? 그렇지만 실망하지는 마. 너도 곧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여기에서 붉은 여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생활에 유용한 상식들은 알고 있니?”

여왕은 질문했다.

“빵은 어떻게 만들지?”

“그거야 알고말고요!”

앨리스는 기쁘게 대답했다.

“밀가루flour를 적당량…….”

“어디에서 꽃(flower, 밀가루와 꽃의 발음이 같아서 여왕이 꽃으로 들었다-옮긴이)을 꺾지?”

하얀 여왕이 물었다.

“정원에서 아니면 울타리에서?”

“어머나, 그건 꺾는 게 아니에요.”(앨리스는 또 꽃을 밀가루로 들었다-옮긴이).

앨리스는 설명을 하려고 했다.

“그건 갈아서(ground, grind의 과거형-옮긴이)…….”

“얼마나 넓은 땅ground에서?”

하얀 여왕이 말했다.

“대충 넘어가려고 하면 안 돼.”

“그 애 머리를 식혀줘요!”

붉은 여왕이 초조하게 끼어들었다.

“그렇게 생각을 많이 했으니 열이 날 거야.”

그들은 앉아서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로 앨리스에게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머리카락이 마구 헝클어져서 앨리스가 그만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 정도였다.

“이젠 이 애 머리가 다시 괜찮아졌을 거야.”

붉은 여왕이 말했다.

“다른 나라 말은 할 줄 아니? fiddle-de-de(시시하다)가 프랑스어로 뭐지?”

“fiddle-de-de는 영어가 아니에요.”

앨리스는 엄숙하게 대답했다.

“누가 그런 말을 해?”

붉은 여왕이 말했다.

앨리스는 이번에는 곤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fiddle-de-de’가 어느 나라 말인지 말해주시면, 제가 프랑스어로 말을 해드리죠!”

앨리스는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붉은 여왕은 꼿꼿하게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여왕은 결코 협상을 하지 않아.”

‘여왕이 결코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앨리스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싸우지 마.”

하얀 여왕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번개는 왜 치는 걸까?”

“번개가 치는 이유는……”

앨리스는 이번엔 자신이 있었으므로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천둥 때문이에요. 아니, 아니에요. 그 반대예요.”

앨리스는 급히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바로잡기에는 너무 늦었어.”

붉은 여왕이 말했다.

“일단 말했으면 그걸로 끝이야. 그리고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해.”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하얀 말의 여왕이 말했다.

“지난 화요일에 폭풍이 쳤어. 지난 한 무리의 화요일들 중 한 화요일에 말이야.”

앨리스는 어리둥절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는 한 번밖에 없어요.”

붉은 여왕이 말했다.

“그건 살아가기에 형편없이 불편하겠구나. 여기에서는 한 번에 밤낮이 두세 번씩 있는 게 보통이야. 그리고 겨울 같은 때에는 한꺼번에 밤이 다섯 번 있기도 하지. 따듯하게 하려고 말이야.”

“그럼 다섯 밤이 한 밤보다 더 따듯한가요?”

앨리스는 용기를 내어서 물었다.

“물론 다섯 배가 따듯하지.”

“하지만 그렇다면 춥기도 다섯 배가 추울 텐데요.”

“맞아!”

붉은 여왕이 소리쳤다.

“다섯 배 따듯하고 다섯 배 춥지. 내가 너보다 다섯 배 부자이고 다섯 배 영리한 것처럼 말이야!”

앨리스는 한숨을 쉬고 포기했다.

“꼭 답이 없는 수수께끼 같아!”

앨리스는 생각했다.

“험프티 덤프티도 그걸 보았지.”

하얀 여왕이 혼잣말처럼 나지막히 말했다.

“코르크 마개 뽑이를 들고 문으로 와서…….”

“그가 뭐하러 왔지?”

붉은 여왕이 말했다.

“들어오고 싶다고 말했어.”

하얀 여왕이 말했다.

“하마를 찾고 있었거든. 그런데 우연히, 그날 아침에는 집 안에 하마가 없었어.”

“평소에는 있나요?”

앨리스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목요일에만.”

여왕이 말했다.

“그가 왜 왔는지 알겠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물고기를 벌주고 싶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여기에서 하얀 여왕이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대단한 폭풍우였어. 너는 짐작도 못할 거야!”(“당연하지. 얘가 어떻게 알겠어.” 붉은 말의 여왕이 말했다.)

“지붕 한쪽이 날아가고, 천둥이 얼마나 많았는지 말이야. 천둥들이 데굴데굴 굴러서 방으로 들어왔어. 그리고 탁자니 뭐니 다 쓰러뜨리더라고. 어찌나 겁이 나던지, 내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더라니까!”

앨리스는 생각했다.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결코 이름 따위를 기억하려고 애쓰지는 않을 거야. 도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하지만 앨리스는 가엾은 여왕의 기분이 상할까봐 생각을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폐하가 양해하렴.”

붉은 여왕이 앨리스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붉은 여왕은 하얀 여왕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의도는 선해도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단다. 일반 법규가 그래.”

하얀 여왕은 조심스럽게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무언가 친절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은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하얀 여왕은 훌륭한 양육을 받지 못했단다. 하지만 얼마나 성격이 온순한지 놀랍지 뭐니! 머리를 쓰다듬어주렴. 무척 좋아하거든!”

하지만 앨리스는 감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작은 친절…… 종이에 머리카락을 싸…… 아주 놀라운 효과가…….”

하얀 여왕은 깊이 한숨을 쉬고 앨리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너무 졸려!”

하얀 여왕이 웅얼거렸다.

“피곤한 거야, 가엾게도!”

붉은 여왕이 말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줘, 잘 때 쓰는 모자도 빌려주고. 그리고 자장가를 불러줘.”

“잠 잘 때 쓰는 모자가 없는데요.”

첫번째 지시를 따르려다가, 앨리스가 말했다.

“그리고 자장가도 모르고요.”

“그러면 내가 불러주어야 되겠군.”

붉은 여왕이 말했다. 그리고 여왕은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아-장 자아-장 아가씨, 앨리스의 무릎에 기대어서!
만찬이 준비될 때까지, 낮잠을 잘 시간이네.
만찬이 끝나면, 무도장으로 갈 거라네.
붉은 여왕, 하얀 여왕, 앨리스, 그리고 모두들!”
 
“이제 가사를 알겠지?”

붉은 여왕은 앨리스의 다른 쪽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에게도 똑같이 자장가를 불러줘. 나도 졸리거든.”

두 여왕은 금세 깊이 잠이 들어서 코를 크게 골아댔다.

“어떻게 하지?”

앨리스는 무척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첫번째 사람은 고개가 끄덕끄덕 돌아가고, 다른 사람은 어깨에서 굴러떨어져서, 앨리스의 무릎 위에 무거운 덩이처럼 얹혀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명의 잠든 여왕을 한꺼번에 보살펴야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영국 역사를 모두 뒤져봐도 없을 거야. 있을 리가 없지. 한 번에 여왕은 딱 한 명씩이니까 말이야. 일어나세요! 너무 무거워요!”

앨리스는 초조하게 계속 재촉했지만, 가벼운 코 고는 소리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코 고는 소리가 점점 더 멀어지더니, 점점 음악 소리처럼 들렸다. 결국 앨리스는 가사까지는 들을 수가 있었고, 열심히 노래에 귀를 기울이느라고 두 개의 커다란 머리들이 갑자기 무릎에서 사라졌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앨리스는 커다란 아치 모양의 문 앞에 서 있었다. 문 위에는 커다랗게 ‘앨리스 여왕’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문 양옆에는 초인종 손잡이가 달려 있었는데, 한쪽에는 ‘방문자용’,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하인용’이라고 쓰여 있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지.”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런 다음 초인종을 누를 거야. 그런데, 그런데 어느 쪽 초인종을 눌러야 하지?”

앨리스는 무척 당황해서 계속 중얼거렸다.

“나는 방문자도 아니고, 하인도 아니야. ‘여왕용’이라고 쓰여 있는 초인종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때 문이 조금 열렸고, 긴 부리를 가진 생물이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다음 한 주까지 입장 금지입니다!”

그리고 문이 다시 쾅 닫혔다.

앨리스는 오랫동안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지만 마침내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무척 늙은 개구리가 일어나서 절름거리며 천천히 앨리스에게로 걸어왔다. 개구리는 샛노란색 옷을 입고, 엄청나게 큰 장화를 신고 있었다.

“지금 뭐라는 거지?”

개구리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앨리스는 누구든지 혼내줄 작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문에서 응답해야 할 임무가 있는 하인은 어디 있지?”

앨리스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어느 문?”

개구리가 말했다.

앨리스는 느릿느릿한 개구리의 말투가 무척 신경에 거슬렸다.

“물론 이 문이지!”

개구리는 커다랗고 멍해 보이는 두 눈으로 잠깐 동안 문을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개구리는 문 가까이 다가가서 칠이 벗겨지는지 알아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엄지손가락으로 문을 문질렀다.

“문에서 응답을 한다고?”

개구리가 말했다.

“뭘 물어보았는데?”

개구리의 목소리가 너무나 탁해서 앨리스는 개구리의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앨리스가 말했다.

“나는 영어로 말하고 있어. 안 그래?”

개구리는 말을 이었다.

“아니면 네가 귀머거리인가? 문에 뭐라고 물어봤냐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앨리스는 초조하게 말했다.

“그냥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어.”

“그렇게 해서는 안 돼, 그렇게 해서는…….”

개구리는 중얼거렸다.

“성가시게 만들어야 하지.”

그런 다음 개구리는 커다란 발로 문을 걷어찼다.

“그냥 내버려둬. 그럼 문도 너를 내버려둘 테니까.”

개구리는 숨을 헐떡거리며 나무로 절름절름 걸어갔다.

그 순간 문이 활짝 열리고,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거울 나라에 전하는 앨리스의 말이라네.

“내 손에는 왕홀이 있고 내 머리에는 왕관이 있다네.
거울 나라의 생물들이여, 그대들이 누구든지 와서 붉은 여왕, 하얀 여왕, 그리고 나와 함께 만찬을 듭시다!”
 
이어서 수백 명의 목소리가 함께 합창을 했다.
 
“재빨리 잔들을 가득 채워라.
단추들과 겨를 탁자에 뿌려라.
커피에는 고양이들을, 차에는 쥐를 넣어라.
그리고 30 곱하기 3으로 앨리스 여왕을 환영하라.”
 
그런 다음 왁자지껄하는 환호성이 들렸다. 앨리스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30 곱하기 3이면 90이네. 그런데 그걸 누가 세기는 할까?’

잠깐 동안 다시 침묵이 흘렀고, 처음의 그 떨리는 목소리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 거울 나라의 생물들이여’, 앨리스가 말했다네.
‘가까이들 와요!
나를 보는 것은 영광, 내 목소리를 듣는 것은 즐거움.
식사하고 차를 마시는 것은 은총이에요. 붉은 여왕, 하얀 여왕, 그리고 나와 함께!’”
 
다시 합창이 이어졌다.
 
“꿀과 잉크로 잔들을 가득 채워라.
즐겁게 마실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죠.
재와 모래, 양털과 포도주를 섞어라.
그리고 90 곱하기 9로 앨리스 여왕을 환영하라.”
 
“90 곱하기 9!” 앨리스는 절망적으로 반복했다.

“아, 저건 절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 지금 그냥 들어가는 게 좋겠어.”

앨리스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앨리스가 나타나는 순간 그곳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앨리스는 널따란 방을 걸어가며, 초조하게 탁자를 살펴보았다. 오십 명쯤 되는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앉아 있었다. 들짐승, 날짐승, 심지어 꽃들까지 섞여 있었다.

‘초대받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알아서 와주어서 다행이야.’

앨리스는 생각했다.

‘나는 초대할 손님들을 전혀 모르니 말이야!’

탁자의 상석에 의자 세 개가 비어 있었다.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이 이미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가운데 의자는 비어 있었다. 앨리스는 그 자리에 앉았다. 침묵이 상당히 신경 쓰였으므로, 앨리스는 누군가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마침내 붉은 여왕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수프하고 생선 요리는 지나갔어.”

여왕은 말을 이었다.

“고기를 가져와!”

양고기 다리를 앨리스 앞에 놓았다. 앨리스는 큰 고깃덩이를 잘라본 적이 없었으므로, 심각하게 고깃덩이를 내려다보았다.

“수줍은가보구나. 내가 양고기 다리에게 너를 소개해줄게.”

붉은 여왕이 말했다.

“앨리스, 양고기야. 그리고 양고기, 앨리스야.”

양고기 다리가 접시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앨리스에게 살짝 절을 했다. 앨리스는 무서워해야 하는지 웃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한 상태로, 자신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잘라드릴까요?”

앨리스는 칼과 포크를 들고, 두 여왕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말도 안 돼.”

붉은 여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인사를 나눈 상대를 자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야. 고기를 치워라!”

하인들이 고기를 가져가고, 그 자리에 커다란 건포도 푸딩을 내려놓았다.

“제발, 푸딩과는 인사하지 않게 해주세요.”

앨리스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면 저녁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조금 드릴까요?”

그러나 붉은 여왕은 심술궂은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푸딩아, 앨리스야. 그리고 앨리스, 푸딩이야. 푸딩을 치워라!”

하인들이 재빨리 푸딩을 치웠다. 어찌나 빨리 치우는지 앨리스가 미처 푸딩의 인사에 답례할 틈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앨리스는 도대체 왜 붉은 여왕만 명령을 내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험삼아 크게 명령했다.

“하인! 푸딩을 도로 가져와!”

그러자 마치 요술처럼, 순식간에 푸딩이 다시 나타났다. 푸딩이 너무나 커서 앨리스는 양고기를 보았을 때처럼 수줍음을 느꼈다. 그렇지만 애써 수줍음을 억누르고, 한 조각 잘라서 붉은 여왕에게 건넸다.

“어쩌면 이렇게 무례할 수가!”

푸딩이 말했다.

“내가 너의 한 부분을 잘라내면 기분이 어떻겠어, 이 녀석아!”

푸딩의 목소리는 탁하고 지방이 많은 것처럼 들렸다. 앨리스는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푸딩을 쳐다보기만 했다.

“말을 해야지.”

붉은 여왕이 말했다.

“푸딩만 말을 하게 하다니, 너무하잖아!”

“나는 오늘 무척 많은 시를 들었어요.”

앨리스는 입을 열었다. 자신이 말을 하기 시작한 순간, 침묵 속에서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끼자 조금 겁이 났다.

“그런데 매우 이상하게도, 모든 시가 생선과 관련이 있었어요. 여기 분들이 왜 그렇게 생선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앨리스는 붉은 여왕에게 물었는데, 붉은 여왕의 대답은 질문의 핵심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었다.

“생선이라면…….”

여왕은 앨리스의 귀에 입을 바짝 갖다 대고 느릿느릿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하얀 여왕이 재미있는 수수께끼를 안단다. 모두 시로 되어 있어. 모두 생선에 대한 것이고 말이야. 외워보라고 부탁할까?”

“붉은 여왕이 그렇게 말하다니 정말 친절하구나.”

하얀 여왕이 앨리스의 다른 쪽 귀에 대고 비둘기가 구구하고 우는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꽤 재미있을 거야! 내가 외워볼까?”

“부탁드려요.”

앨리스는 매우 공손하게 대답했다.

하얀 여왕은 환히 웃으며 앨리스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런 다음 시를 외우기 시작했다.
 
“‘첫째, 물고기를 잡아야만 해.’
그건 쉽지. 아기라도 잡을 수가 있을 거야.
‘다음엔, 물고기를 사야만 해.’
그건 쉽지. 1페니면 살 수가 있을 거야.
 
‘이제 물고기를 요리할게!’
그건 쉽지, 1분도 걸리지 않을 거야.
‘접시를 놓아줘!’
그건 쉽지, 이미 놓여 있거든.
 
‘이리 가져와! 먹게!’
탁자에 접시를 놓는 건 쉽지.
‘접시 뚜껑을 열어!’
아, 그건 너무 어려워서 할 수 없겠어!
 
아교처럼 꽉 붙어 있어.
접시 뚜껑을 꽉 붙들고 있어. 접시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더 쉬울까?
물고기의 접시 뚜껑을 여는 걸까,
수수께끼의 접시 뚜껑을 여는 걸까?”
 
“잠시 생각해보고 나서 대답하도록 해.”

붉은 여왕이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너의 건강을 위해서 건배를 하지. 앨리스 여왕의 건강을 위해서!”

붉은 여왕은 목청껏 외쳤고, 손님들은 즉시 잔을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매우 이상하게 마셨다. 어떤 손님들은 소등기처럼 잔을 머리에 쓰고, 얼굴로 흘러내리는 것을 빨아먹었다. 다른 손님들은 유리병을 엎고, 탁자 가장자리로 흘러내리는 포도주를 마셨다. 손님들 중 세 명(그들은 꼭 캥거루같이 생겼다)은 구운 양고기 접시로 기어들어가서 열심히 육수를 핥아먹기 시작했다.

‘여물통 속에 들어간 돼지 같아!’

앨리스는 생각했다.

“짧게라도 고맙다는 연설을 해야 되는 거 아니니?”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우리가 너를 도와줄 거야.”

조금 겁을 먹었지만 순순히 일어나는 앨리스에게 하얀 여왕이 속삭였다.

앨리스도 속삭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매우 고맙지만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요.”

“전혀 그렇지 못할걸.”

붉은 여왕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서 앨리스는 공손하게 그 말을 따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여왕들은 그렇게 밀어붙였어!” 나중에 언니에게 그 만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면서 앨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날 납작하게 눌러버리고 싶어했어!”)

실제로 연설을 하는 동안 앨리스는 자리에 서 있기가 매우 힘들었다. 두 여왕이 양쪽에서 심하게 앨리스를 밀어붙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앨리스를 공중으로 올려버릴 기세였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일어났습니다.”

앨리스는 연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앨리스는 말을 하면서 진짜로 몇 센티미터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탁자 가장자리를 붙들고 있었으므로 다시 아래로 내려올 수가 있었다.

“조심해!”

하얀 여왕이 두 손으로 앨리스의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해!”

뒤이어 (앨리스가 나중에 묘사한 바에 따르면) 순식간에 갖가지 일들이 벌어졌다. 촛불들은 모두 천장까지 자라서 꼭대기에서 불꽃놀이를 벌이는 골풀밭처럼 보였다. 포도주병들은 접시 한 쌍을 급히 날개처럼 달고, 다리처럼 포크를 매달고 푸득푸득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정말 새처럼 보이네.’

혼란스러운 변화를 지켜보면서 앨리스는 생각했다.

바로 그때 앨리스는 옆에서 나는 거친 웃음소리를 듣고, 하얀 여왕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하얀 여왕 대신 양고기 다리가 있었다.

“나 여기 있어!”

수프 그릇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앨리스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왕의 넓적하고 온순한 얼굴이 수프 그릇 가장자리에서 미소를 짓는다 싶은 순간, 여왕은 수프 그릇 속으로 사라졌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미 여러 명의 손님들이 접시 속에 누워 있었고, 수프 국자는 탁자 위에서 앨리스를 향해서 걸어오며, 길을 비키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더 이상 못 참겠어!”

앨리스는 벌떡 일어나서 탁자보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힘껏 탁자보를 잡아당겼다. 접시들, 식기들, 손님들, 그리고 양초들이 마룻바닥 위로 와장창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너!”

앨리스는 이 모든 혼란을 주도한 장본인으로 의심되는 붉은 여왕을 화난 얼굴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붉은 여왕은 이미 옆에 있지 않았다. 여왕은 갑자기 작은 인형만 한 크기로 작아졌고, 이제는 탁자 위에서 자기 어깨에 걸쳐져 있는 망토 끝을 즐거운 얼굴로 빙글빙글 쫓아다니고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런 광경을 보고 무척 놀랐을 테지만, 지금 앨리스는 너무나 흥분해서 아무것에도 놀라지 않았다.

“너!”

앨리스는 막 탁자 위에 쓰러진 포도주병을 폴짝 뛰어넘으려는 조그만 여왕을 움켜잡고 소리쳤다.

“널 흔들어서 고양이로 만들어버릴 거야, 두고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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