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4권 13~14 (4권 끝)

나단비 | 2024.04.03 17:23:48 댓글: 0 조회: 74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8481
13





방이 이상스레 빙글빙글 돌았다. 가구가 끄떡거리기도 하고 튀어 오르기도 했다. 침대, 어째서 나는 침대에서 자고 있는 것일까? 하얀 모자를 쓴 사람이 문으로 나가고 있는 참이었다. 무슨 문이지? 머리가 어쩌면 이토록 묘한 느낌일까? 어디에선지 목소리가 들렸다. 낮은 목소리였다.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셜리 선생님과 그 남자가 하는 말소리인지는 알겠다.
둘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엘리자베스에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띄엄띄엄 한 마디씩 들려왔다.
“정말이에요?”
셜리 선생님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네…… 선생님의 편지…… 내가 봤지요……. 캠벨 부인에게 가기 전에……. ‘흘러가는 구름’은 우리 지사장네 여름 별장이에요…….”
이 방이 좀 가만히 있기만 해준다면! 정말로 내일에서는 모든 것이 이상하게 움직이는 모양이야. 머리만 돌려볼 수 있어도 말하는 사람을 볼 수 있을 텐데. 엘리자베스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목소리의 주인공이 침대 머리맡으로 왔다. 셜리선생님과 그 남자. 셜리 선생님은 무슨 끔찍한 일이라도 당했는지 그 큰 키에 백합처럼 하얘 보였다. 하지만 그 얼굴에서는 마음속에서 나온 빛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그 빛은 갑자기 방 안으로 가득 흘러든 황금빛 석양 때문인 듯도 했다. 그 남자는 웃는 얼굴로 엘리자베스를 내려다보았다. 엘리자베스는 그 사람이 자기를 굉장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 두 사람 사이에 따스하고 친밀한 애정이 비밀스럽게 넘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일에서 쓰는 말을 알게 되면 그 비밀을 곧 풀어보리라.
“좀 어떠니, 엘리자베스?”
셜리 선생님이 물었다.
“제가 어디 아픈가요?”
“너는 미친 듯이 달리는 말에 부딪혀 쓰러졌어. 내가, 내가 재빨리 너를 피하게 하지 못했어. 나,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어. 곧 너를 작은 배로 여기로 다시 데려왔고 너의, 이 신사분이 전화로 의사와 간호사를 불렀단다.”
“제가 죽어요?”
꼬마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아니야. 좀 놀랐을 뿐이고 곧 괜찮아질 거야. 그리고 엘리자베스, 이분은 네 아빠란다.”
“우리 아빠는 프랑스에 있어요. 그럼 저도 프랑스에 있나요?”
엘리자베스는 그렇다 해도 놀랄 마음이 없었다. 여기는 내일이 아닌가? 게다가 여러 가지가 아직도 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빠는 여기에 있다, 내 아가야.”

아빠는 아주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목소리만 듣고도 아빠를 사랑할 것 같았다. 아빠가 몸을 구부려 입을 맞추어주었다.
“내가 널 데리러 왔다.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거야.”
하얀 모자를 쓴 여자가 다시 들어왔다.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해야 할 말을 얼른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이제 함께 살아요?”
“그럼, 항상.”
아빠가 말했다.
“그럼 할머니와 그 여자도 우리와 함께 살아요?”
“아니야.”
아빠가 말했다.
황금빛 석양은 이미 졌고, 간호사는 안 된다는 듯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상관하지 않았다.
“전 내일을 찾았어요.”
엘리자베스가 말을 하는 동안 간호사가 밖으로 나가라는 듯 아빠와셜리 선생님에게엄한 눈길을 주었다.
“난 내가 가졌는지도 몰랐던 보물을 찾았어요. 내게 편지를 보내주어 정말 감사해요, 미스 셜리.”
간호사가 아빠와 셜리 선생님을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그렇게 되었어.’
앤은 그날 밤 길버트에게 편지를 썼다. 꼬마 엘리자베스의 길은 행복을 향해 곧게 뻗었고, 어제는 끝이 났다.




14



도깨비 길, 윈디 포플러
(마지막 편지)
6월 27일

내 사랑 길버트에게,

난 이제 또 하나의 모퉁이를 돌았어. 지난 3년 동안 이 탑 방에서 네게 상당히 많은 편지를 썼지. 이 편지가 아마 마지막 편지가 될 거야. 이 편지를 받고 나면 앞으로 오랫동안 편지 쓸 일은 없을 테니까. 이제 2~3주만 지나면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것이 되는 거야. 우린 함께 살게 된다고. 생각해봐, 함께 지내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산책하고 식사하고 공상에 잠기고, 함께 계획을 세우고, 감격의 순간도 함께 나누고, 우리 꿈의 집에서 가정을 이루는 거야!
우리 집! 신비스럽고 경이롭게 들리지 않아, 길버트? 나는 지금까지 죽 꿈의 집을 그려왔는데, 이제 그 꿈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거야. 내 꿈의 집을 누구와 나눠가지고 싶은지는, 내년 어느 날 새벽 4시에 가르쳐줄게.
처음에는 3년이 끝없이 길게 느껴졌었어, 길버트. 그런데 꿈처럼 후딱 지나가 버렸어. 프링글 집안과 갈등을 겪은 처음 몇 달만 빼고는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기도 하고. 그 뒤의 생활은 즐거운 황금빛 강물처럼 흘러갔지. 프링글 사람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시간들도 꿈이었던 것처럼 여겨져. 그들은 이제 나를 좋아해. 나를 미워했던 일은 다 잊고 말았지. 프링글 집안 미망인의 아이 가운데 하나인 코러 프링글이 어제 내게 장미꽃다발을 주었어. 장미 줄기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선생님에게’라고 된 카드가 매달려 있었지. 프링글 집안사람이 보낸 거라고!
내가 떠난다고 젠은 슬픔에 젖어 있어. 나는 젠이 어떤 길을 걷는지 관심 있게 지켜볼 거야. 젠은 머리가 아주 좋지만 좀 예측하기가 힘든 아이거든.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젠은 결코 평범하게 살지 않을 거라는 것. 꿈엔들 젠이 베키 샤프를닮았을 리 없을 테니까.
루이스앨런은 맥길 대학에 가게 되었어. 소피 싱클레어는 퀸스 전문학교에 가서 공부한 다음 킹스포트 연극학교에 입학할 만한 돈을 모을 때까지 아이들을 가르칠 거야. 미라 프링글은 가을 시즌에 사교계로 나갈 거야. 그 아이는 너무 아름다워서 과거완료분사 같은 것은 몰라도 괜찮아.
담쟁이덩굴이 얽힌 쪽문 건너편에 살던 꼬마 이웃은 이제 없어. 엘리자베스는 햇빛이 비쳐들지 않는 그 집을 영원히 떠나, 내일로 들어갔거든. 내가 서머사이드에 계속 머물러야 했다면 난 그 아이가 그리워서 가슴이 미어졌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되어 난 너무 기뻐. 피어스 그레이슨이 엘리자베스를 데려갔거든. 파리로 돌아가지 않고 보스턴에서 산대. 헤어질 때 엘리자베스는 몹시 울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있어서 너무 행복해해. 눈물도 곧 마를 거야. 캠벨 부인과 그 여자는 이 문제에 아주 암울해하면서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했어. 난 그렇다고 인정해주었지만 아무런 뉘우침도 없이 기쁘게만 받아들였지.
“엘리자베스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었다고요.”
캠벨 부인이 아주 근엄하게 말했어.
‘애정 어린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는 곳인 데도요?’

나는 반문했지만 그 말을 실제로 입 밖에 내지는 않았어.
“이제는 언제나 베티가 될 것 같아요, 셜리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그리워할 때만 빼고요. 그때는 리지가 되어버리겠죠.”
그것이 엘리자베스의 마지막 말이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리지가 될 생각은 하면 안 돼.”
내가 말했지.
우리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로에게 키스를 보내주었어. 그런 다음 난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내 탑 방으로 돌아왔지. 너무나 어여쁜 아이였는데, 정말 작고 소중한 아이였어. 언제나 내게는 작은 이오리언44)하프 같았어. 내가 아주 조금만 사랑을 불어넣어도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지. 엘리자베스의 친구가 되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어. 피어스 그레이슨이 자기가 어떤 딸을 갖게 되었는지 알아주었으면 해. 아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주 고마워하고 후회하는 듯 말을 했거든.
“나는 이 아이가 더 이상 아기가 아니란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아이가 얼마나 이해를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라는지도 몰랐죠.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베풀어주셨어요. 정말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는 엘리자베스에게 작별 선물로 우리 둘이 만든 요정 나라 지도를 액자에 넣어주었어.
‘윈디 포플러’ 집을 떠나는 일은 너무 슬퍼.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하숙집 생활에 지쳤지만 난 이 집을 사랑했어. 창가에서 맞이하는 서늘한 아침 시간, 밤마다 내가 감사하며 파고들던 침대, 푸른 도넛 모양의 쿠션, 그리고 모든 바람을 다 사랑했지. 여기서처럼 바람과 사이좋게 지낼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다 볼 수 있는 방에 사는 일이 앞으로 또 있을까?

나는 ‘윈디 포플러’와 이곳 생활을 마감했어. 그리고 약속도 지켰지. 채티 아주머니의 비밀장소를 케이트 아주머니에게 일러바치지도, 서로의 버터밀크 비밀을 어느 쪽에 말하지도 않았으니까.
모두들 내가 떠나는 것을 슬퍼해. 그래서 난 기쁘지. 내가 떠나는 것을 기뻐한다든지 또 내가 간다고 해도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서글픈 일이야.
레베카 듀는 일주일 내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었어. 계란을 열 개나 쓴 엔젤 케이크도 두 번이나 만들어줬고. 그리고 ‘손님용 그릇’을 사용했어. 내가 떠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채티 아주머니의 상냥한 다갈색 눈에 눈물이 어렸고.더스티 밀러조차 조그만 발을 모으고 앉아 나를 나무라듯 가만히 쳐다봤어.
지난주에는 캐서린이 보낸 긴 편지를 받았어. 캐서린은 편지 쓰는 재주가 뛰어나. 세계 일주 여행에 나선 하원의원의 비서 자리를 얻었대. 세계 일주 여행이라니 얼마나 근사해! 그 사람들은 마치 ‘샬럿타운으로 가자고!’ 하듯이 ‘이집트로 가자고!’ 하고 말하겠지. 그래, 가자고! 캐서린에게는 그런 삶이 어울려.
캐서린은 자기 외모나 장래가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내 덕이라고 주장해.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하고 편지에 썼어. 그래, 내가 돕긴 했지. 그게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 캐서린은 하는 말마다 가시가 돋쳤고, 학교 일로 내가 무슨 제안이라도 할라치면 마치 미친 사람 얘기라도 되는 듯 도도하게 무시했으니까. 그러나 이제 그런 일은 모두 잊었어. 아무도 몰랐지만 캐서린은 인생에 증오를 품고 있어 그런 태도를 보였던 것이니까.
모든 사람이 날 초대했어. 폴린 깁슨까지. 깁슨 아주머니는 두세 달 전에 돌아가셔서 폴린이 날 초대할 수 있었지. 톰갤런 저택에서도 다시 초대해주어 지난번처럼 미스 미네르바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으스스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고만 왔어. 하지만 나는 미스 미네르바가 준비해준 맛있는 식사를 즐겼고, 미스 미네르바는 비극이야기를 즐겼지. 미스 미네르바는 누구든 톰갤런 집안사람이 아닌 사람은 안됐다고 여기는 마음을 감추려 들지도 않았지만, 내게 몇 마디 칭찬도 해주었고 녹주석(綠柱石)이 박힌 아름다운 반지도 주었어. 파란색과 녹색이 섞인 달빛 같은 느낌의 보석이야. 미스 미네르바의 열여덟 번째 생일에 아버지가 주신 거래.
“나도 젊고 아름다웠을 때는 상당히 예뻤어요. 지금이야 그렇게 말할 수 있죠.”
그 반지가 알렉산더 숙부 부인의 것이 아니고 미스 미네르바의 것이어서 다행이야. 만일 알렉산더 숙부 부인의 것이었다면 도저히 낄 수 없었을 테니까. 아주 아름다운 반지야. 바다의 보석에는 신비로운 매력이 있는 것 같아.
톰갤런 저택은 정말 훌륭해. 특히 지금은 집 주변이 모두 푸른 잎과 꽃으로 덮여 있거든. 이 저택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유령이 서성대는 톰갤런 저택을 내 꿈의 집과는 바꾸고 싶지 않아. 우리가 아직 우리꿈의집을 찾은 건 아니지만.
그렇긴 하지만 유령이 어슬렁대는 것도 멋지고 귀족적인 일인 것 같아. 내가 ‘도깨비 길’에서 느끼는 유일한 불만은 유령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고.
엊저녁에 마지막으로 옛 묘지로 산책을 나갔어. 묘지를 어슬렁거리며 허버트 프링글이 무덤에 누워 아직도 낄낄거리고 있을까 생각했지. 오늘 밤 난 이마에 석양이 내린 ‘폭풍 왕’에게도 작별인사를 할 거야. 그리고 어둠이 내린 내 구불구불한 골짜기에도.
난 한 달 동안 시험이다 작별인사다 하면서 마지막 일들을 처리하느라 좀 지쳤어. ‘초록 지붕 집’으로 돌아가면 한 주 정도는 게으름을 부릴 생각이야. 여름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푸른 세상을 자유롭게 달리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거야. 석양 무렵에는 ‘드리아드의 샘’가에서 꿈을 꿀 거고, 달빛에서 나온 것 같은 샐럽형의 작은 배로, 아니면 배리 씨의 밑이 편평한 배라도 타고 ‘반짝이는 호수’를 떠돌 거야. ‘유령의 숲’에서 별꽃이랑 은방울꽃도 따겠어. 해리슨 씨네 언덕 목장에서 산딸기가 자라는 곳이 있나 찾아보기도 할 거고. ‘연인의 오솔길’에서는 개똥벌레와 함께 춤을 추고, 헤스터 그레이의 오래된 정원도 찾아가 볼 것이며, ‘초록 지붕 집’ 뒷문 층계에 별을 이고 앉아 잠자는 바다가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거야.
그리고 그 일주일이 지나면 네가 집으로 돌아오겠지. 그럼 난 이 세상에 더 바라는 일이 없어.

다음 날 앤이 ‘윈디 포플러’ 집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때가 되자, 레베카 듀는 보이지 않았고 케이트 아주머니가 심각한 얼굴로 앤에게 편지 한 통만 전해주었다.
레베카 듀의 편지였다.

사랑하는 미스 셜리, 작별인사를 하려고 이 편지를 써요. 말로는 도저히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죠. 내가 같은 지붕 아래 살며 지난 3년 동안 지켜보니 미스 셜리는 참 밝은 성격에 젊음이 주는 기쁨의 맛을 천성적으로 누릴 줄 아는 행운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경박한 사람들이 그렇듯 하릴없는 쾌락에 뛰어드는 일도 없고, 언제나 경우 바르게 모든 사람을, 특히 지금 이렇게 펜을 들고 있는 이 사람을 더없이 세심하게 배려해주었지요. 미스 셜리는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감싸주었는데 떠난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에 무겁게 비애가 덮쳐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정해주신 일에 불평해서는 안 되지요(사무엘 전서 제18장과 제29장에 나와 있어요.).
미스 셜리를 알게 된 은혜를 입은 모든 서머사이드 사람들이 다 같이 이 이별을 슬퍼할 거예요. 그리고 비천한 몸이지만 미스 셜리에게 진심으로 충실한 나는 당신을 영원히 존경해 마지않겠습니다. 나는 언제나 미스 셜리의 행복과 발전을 빌어줄 것이며, 다음 세상에서도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늘 기도드리지요.
미스 셜리는 곧 더 이상 미스 셜리로 불리지 않겠지요. 영혼으로 맺어진 분과 결실을 본다는 말을 들었어요. 들리는 바로는 무척이나 훌륭한 젊은이라고 하더군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육체적으로도 보잘것없고, 또 늙어간다고 느끼기 시작한 나이지만(그렇지만 아직 몇 년은 더 건강하게 지낼 것입니다.), 결혼에 포부를 품은 적이 없었어요. 그러나 내 벗의 결혼에는 관심을 갖고 있으며, 미스 셜리의 결혼 생활이 끊임없는 기쁨이기를, 또한 그 기쁨이 그 무엇으로도 방해받지 않기를 뜨겁게 소망하는 마음입니다(다만 어떤 남자든 너무 기대를 걸어서는 안 돼요.).
미스 셜리를 존경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이 마음은 절대로 줄어드는 일이 없을 겁니다. 혹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면 간혹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습니다.

당신의 충실한 종복,
레베카 듀

추신: 신의 가호가 있기를.

편지를 접는 앤의 눈가가촉촉해졌다. 레베카 듀가 이 편지에 쓴 구절구절이 모두 레베카가 좋아하는《품행과 에티켓 백서》에서 옮겨 적었다는 의심이 짙게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추신은 분명 레베카 듀의 애정 어린 마음에서 나온 것이리라.

“레베카 듀에게 내가 절대로 잊지 않을 거라고, 여름마다 만나러 여기 올 거라고 전해주세요.”
“우리는 앤과의 추억을 간직할 거예요. 그 무엇도 그건 빼앗아가지 못해요.”
채티 아주머니가 훌쩍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케이트 아주머니도 힘주어 말했다.
잠시 후 앤이 ‘윈디 포플러’에서 나오자마자 그 집에서의 마지막 메시지인 커다란 하얀 목욕 타월이 탑 방 창문에서 미친 듯 휘날렸다. 레베카 듀가 흔드는 것이었다.

44. 바람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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