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5권 31~32

나단비 | 2024.04.07 17:45:33 댓글: 0 조회: 47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9297
31
진실이 자유롭게 하리니






일단 어떻게 할지 결정하고 나자 레슬리는 특유의 결단력과 속도로 일을 처리해 나갔다. 먼저 집 청소를 끝냈다. 죽는 일이든 사는 일이든 모든 일을 하기 전에는 우선 집 청소를 해야 한다.
그렇게 개울 위쪽에 자리 잡은 회색 집은 자청하고 나선 미스 코넬리아의 도움까지 받아 흠 하나 없이 말끔히 정리되었다.
미스 코넬리아는 앤에게 한바탕 쏟아놓은 다음, 나중에는 짐 선장과 길버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퍼부었다. 둘 중 누구에게서도 마음에 드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하지만 레슬리에게만큼은 절대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딕이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결정한 레슬리는 꼭 필요한 일이 있는 경우 아주 사무적으로 조언을 구하는 일 외에 그 문제를 입 밖에 내는 일이 없었다. 그 아름다운 봄날은 아주 냉정하고 조용히 지나갔다. 레슬리가 앤을 방문하는 일도 없었다. 변함없이 예의 바르고 상냥하게 굴었지만 그 예의 바른 태도야말로 레슬리와 작은 집 사람들을 갈라놓는 차디찬 벽이었다. 예전처럼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고, 같이 허물없이 지내 봐도 그 벽을 허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앤은 그런 일로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레슬리가 끔찍한 불안에 붙들려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 불안은 레슬리에게서 작은 행복과 기쁨마저 모두 앗아가 버렸다. 엄청난 일이 한 영혼을 송두리째 덮쳐버릴 땐 다른 감정은 모두 한쪽으로 밀려나 버린다.
레슬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심한 고통을 느끼며 미래에 생각을 밀어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옛 순교자들 모두가 자신이 선택한 길이 엄청난 고통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갔듯 레슬리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돈 문제는 앤이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해결되었다. 레슬리는 수술에 필요한 돈을 짐 선장에게서 빌렸고 레슬리가 끝까지 고집을 피워서 짐 선장은 레슬리네 작은 농장을 저당 잡았다.

“그나마 그거 하나는 불쌍한 레슬리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거네요. 내 마음도 부담이 덜해요. 만약에 딕이 건강해져서 일을 다시 할 수 있게 되면 빌린 돈의 이자를 갚을 수 있겠죠. 그렇지 않을 경우엔 짐 선장이 어떻게든 레슬리가 부담스럽지 않게 일을 해결할 거예요. 짐 선장님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거든요. ‘난 늙었어, 코넬리아.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지. 레슬리가 살아 있는 사람이 주는 선물은 안 받겠지만 죽은 사람이 주는 건 받을 거야.’ 그러니 괜찮을 거예요. 이 이외의 다른 문제들도 만족스럽게 해결이 되길 바라죠.
그 불쌍한 인간 딕은 요 며칠 끔찍할 정도로 못되게 굴었어요. 그 속에 악마가 들어간 거예요. 아, 정말이에요! 그 인간이 계속 장난을 치는 바람에 레슬리랑 내가 일을 못 해요. 저번 날에는 마당에서 오리를 어찌나 쫓아다녔는지 오리가 거의 다 죽어버렸어요. 도움이 되는 게 정말 한 가지도 없다니깐.

앤도 알죠. 아주 가끔은 물을 길어오거나 장작을 가져오기도 하고 도움이 될 때도 있는데 이번 주에는 영 아니에요. 딕을 우물에 보냈다간 아마 우물 속으로 기어 내려갔을 거예요. 한번은 ‘머리부터 거꾸로 처박아만 준다면 모든 문제가 깨끗이 해결될 텐데.’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니까요.”
미스 코넬리아가 앤에게 말했다.
“세상에, 미스 코넬리아!”
“아니, 이름까지 부르고 그렇게 놀랄 필요가 뭐 있어요, 앤. 다른 사람도 그런 똑같은 생각을 했을 텐데. 몬트리올에 있는 의사들이 딕 무어에게서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기적이라구요.”
5월 초 레슬리는 딕을 데리고 몬트리올로 갔다. 길버트가 동행해 레슬리를 도와주었다. 딕의 수술 상담을 한 몬트리올의 의사도 길버트의 의견대로 딕이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길버트는 그 소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 고무적이군요.”
미스 코넬리아는 비꼬는 소리를 했다.
앤은 그저 한숨만 쉬었다. 레슬리는 내내 아주 소원하게 굴었다. 하지만 편지를 쓰겠다고 약속했다. 길버트가 돌아오고 나서 열흘 후 편지가 왔다.

레슬리는 수술이 성공적이고 딕도 잘 회복되고 있다고 했다.

“‘성공적’이라는 게 무슨 뜻이야? 딕의 기억이 정말로 회복되었다는 소리야?”

앤이 물었다.

“그에 관해서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레슬리는 의사들이 하는 말로 수술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는 것 같아. 수술이 잘되었다는 얘기지. 딕의 기능이 완전히, 아니 부분적으로나마 회복될지 알기엔 아직 일러. 기억이 갑자기 돌아오지는 않을 거야. 돌아온다 해도 아주 서서히 돌아올 거라고. 다른 말은 없어?”

길버트가 대답했다.

“응, 그게 다야. 아주 짧아. 가엾은 레슬리는 아마 엄청나게 큰 부담을 받고 있을 거야. 길버트 블라이드,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다 심술궂고 안 좋은 말이야.”

“미스 코넬리아가 대신 다 해주고 있어. 만날 때마다 날 몰아세운다고. 내가 살인자보다 나을 것도 별로 없고 데이비드 의사가 나를 데려온 게 너무나도 유감스러운 일이래. 게다가 항구 너머 감리교도 의사가 나보다 더 낫다는 말까지 했어. 미스 코넬리아가 내뿜는 비난의 위력은 정말 대단해.”

길버트가 애처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코넬리아 브라이언트가 아프면 데이비드 선생님이나 그 감리교인 의사를 부를까요? 아마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든 선생님을 한밤중에 불러낼걸요. 그리고 선생님이 청구한 치료비가 터무니없다고 불평까지 할 거예요. 하지만 신경 쓰지 마세요. 세상엔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거니까요.”

수잔이 콧방귀를 뀌었다.

한동안 레슬리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화창한 오월이 흘러갔고, 포 윈즈 항구는 나날이 푸르고 아름답게 변해갔다. 꽃들은 만발해 아름다운 자줏빛을 이뤘다. 오월이 다 끝나갈 무렵 길버트가 집에 돌아오다 마구간 앞마당에서 수잔과 마주쳤다.
“사모님이 뭔가로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선생님. 오늘 오후에 편지를 한 통 받고 나서 지금까지 정원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혼잣말을 하고 다녀요. 저렇게 오래 나와 있는 게 좋지 않죠? 저한테 전하기엔 적당한 소식 같지도 않고, 또 나도 남의 일이나 캐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에요, 선생님.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당황한 건 확실해요. 그런 건 사모님한테 좋지 않아요.”

수잔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길버트는 걱정되어 서둘러 정원으로 갔다. ‘초록 지붕 집’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걸까? 하지만 개울 옆에 놓인 통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앤의 얼굴은 전혀 근심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흥분으로 달뜬 모습이었다. 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진한 잿빛이고 볼에는 홍조가 서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앤?”

앤은 약간 묘하게 웃었다.

“내 말을 믿지 못할 거야, 길버트. 난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 수잔이 요전에 ‘햇빛에 놀라 살아난 파리처럼 멍해요.’ 하고 말을 하던데, 내가 지금 딱 그래. 편지를 몇 번씩이나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똑같아.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어. 아, 길버트, 당신 말이 맞았어. 이젠 확실하게 알겠어. 난 정말 너무 부끄러워. 당신 날 정말 용서해줄 거지?”

“앤, 조리 있게 말하지 않으면 정신 차리게 한번 흔들어줄 거야. 레드먼드 대학 출신이 말을 그렇게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마 못 믿을 거야. 절대 못 믿을 거야.”

“아무래도 데이비드 큰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려야겠군.”

집 안으로 들어가는 시늉을 하며 길버트가 말했다.

“앉아, 길버트. 말해줄게. 편지가 왔어. 아, 길버트, 정말 놀라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워.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거야. 꿈에라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야.”

“어이구, 이런 경우엔 그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군. 자, 누구에게서 온 편지야?”

체념한 듯 앉으면서 길버트가 말했다.

“레슬리야. 오, 길버트.”

“레슬리! 휴우! 그래, 뭐라고 해? 딕은 어떻대?”

앤이 조용히 그리고 극적으로 편지를 내밀었다.

“딕은 없어! 우리가 딕 무어라고 생각했던 남자, 그리고 포 윈즈 사람들 모두가 12년 동안 딕 무어라고 믿었던 남자는 딕을 쏙 빼닮은 사촌 조지 무어래. 노바스코샤에 살던 사촌 조지 무어. 딕 무어는 13년 전 쿠바에서 황열병(黃熱病)으로 죽었대!”




32

미스 코넬리아의 해결책






미스 코넬리아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딕 무어가 딕 무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거예요, 앤? 전화 통화할 때 한 말이 그거예요?”

“네, 미스 코넬리아, 믿어지나요?”

“정말, 정말 남자들이란…….”

모자를 벗는 손이 덜덜 떨리기조차 했다. 미스 코넬리아는 여직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심하게 마음이 떨려보기는 처음이었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요. 앤이 하는 말을 들었고, 물론 앤이 하는 말을 난 믿어요. 하지만 받아들이기가 힘드네요. 딕 무어는 죽었고, 아니, 죽은 지가 이미 오래고, 그래서 이제 레슬리는 자유라고요?”

미스 코넬리아가 다시 물었다.

“그래요. 진실이 레슬리를 자유롭게 해준 거예요. 그 구절이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말씀이라는 길버트의 말이 맞았어요.”

“자초지종을 이야기해봐요, 앤. 전화를 받고 난 정신이 다 빠져버렸어요. 아, 정말이에요! 이 코넬리아 브라이언트가 이렇게 당황하기는 정말 처음이에요.”

“말할 것도 별로 없어요. 레슬리가 보낸 편지는 아주 짧았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전혀 쓰지 않았거든요. 이 사람, 조지 무어가 기억을 되찾았고 자기가 누군지 말을 했대요. 그 사람 말이 딕은 쿠바에서 황열병에 걸려 네 자매 호에 승선하지 못했대요. 조지도 배를 타지 않고 딕을 보살폈지만 얼마 못 가 세상을 떴대요. 조지는 집으로 돌아와서 직접 레슬리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려고 편지를 쓰지 않았대요.”

“그런데 왜 그렇게 안 했대요?”

“아마 그 사람이 사고를 당했나 봐요. 길버트가 그러는데 조지 무어는 자기가 당한 사고랑 그 원인이 뭔지는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딕이 죽고 나서 바로 사고를 당한 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은 레슬리가 편지를 다시 보내오면 알 수 있겠죠.”

“레슬리는 어떻게 할지 이야기했어요? 언제 집으로 돌아온대요?”

“조지 무어가 병원에서 퇴원할 때까지 그 사람 곁에 있어줄 거래요. 레슬리가 노바스코샤 조지의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대요. 조지의 유일한 친척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결혼한 누님뿐인 것 같아요. 조지가 네 자매 호를 타고 항해를 나갔을 때는 살아 있었지만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죠. 조지 무어를 본 적이 있어요, 미스 코넬리아?”

“있어요. 이제 다 생각이 나네요. 18년 전에 여기 사는 삼촌 애브너를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때 조지랑 딕의 나이가 아마 열일곱 살이었을 거예요. 사촌이지만 둘은 쌍둥이 같았어요. 아버지끼리 형제였고 또 엄마끼리도 쌍둥이 자매여서 정말 비슷하게 생겼지요.”

힐난조로 미스 코넬리아가 덧붙였다.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에서처럼 아주 꼭 닮아서 두 사람이 서로 바꾸어 살아도 집 식구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 당시엔 같이 있어도 누가 조지고 누가 딕인지 금방 알아봤으니까요. 하지만 멀리서 보면 구분하기 쉽지 않았죠.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게 재미있어서 그 두 악동이 장난도 많이 쳤고요.

조지 무어가 키가 약간 더 크고 딕보다 살도 더 붙었었어요. 물론 둘 다 뚱뚱한 건 아니었고 둘 모두 호리호리한 편이었죠. 딕이 조지보다 혈색이 밝고 머리카락은 더 옅었어요.

하지만 생김생김은 아주 비슷했고 둘 다 눈이 괴상했어요. 하나는 푸른색이고 다른 하나는 옅은 갈색이죠. 하지만 그 이외엔 그다지 비슷한 점이 없었어요. 조지는 장난을 잘 치고 그때부터 술을 좋아하기는 했어도 착한 청년이었어요. 모두가 딕보다 조지를 좋아했죠. 여기서 한 달 정도 지냈어요.

레슬리는 조지를 본 적이 없어요. 그때 레슬리는 아마 여덟 살이나 아홉 살 정도였는데, 그해 겨울은 할머니 집인 웨스트 부인 댁에서 보냈거든요. 짐 선장도 멀리 가고 없었어요. 그해 겨울 짐 선장은 난파를 당해 막달레나회 갱생 시설에 묶여 있었거든요. 짐 선장이나 레슬리는 딕과 꼭 닮은 사촌이 노바스코샤에 산다는 소릴 못 들었을 거예요.

짐 선장이 딕, 아니 조지라고 해야죠. 아무튼 그 사람을 데리고 돌아왔을 때 아무도 그 생각은 못 했어요. 물론 모두 딕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은 했어요. 너무 아둔해지고 살이 쪄서 돌아왔거든요. 하지만 우린 그걸 그 사람이 당한 사고 탓으로 돌렸죠. 그리고 뭐 그 이유가 맞잖아요.

아까 말했지만 조지도 처음에는 뚱뚱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우리로서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지요. 그 사람 정신이 완전히 나갔잖아요. 다들 그렇게 깜빡 속은 게 놀랄 일도 아니에요. 하지만 기가 막힌 일이죠. 레슬리는 인생에서 가장 한창때를 희생했어요. 자기랑 상관도 없는 사람을 돌보는 데 인생을 허비했잖아요! 빌어먹을 남자들! 그 인간들이 하는 짓은 뭐든지 다 글러먹었어요. 또 그 인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못된 짓만 해요. 정말 참을 수가 없다니까요.”

“길버트랑 짐 선장님도 남자예요. 그리고 그들 덕분에 진실이 드러났고요.”

앤이 말했다.

“음, 그건 나도 인정해요. 그렇게 의사 선생님을 쪼아댄 건 미안하게 생각해요. 내가 남자한테 한 말로 부끄럽다고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의사 선생님에게도 그렇게 말을 해야 하나 어쩌나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야 할 거예요. 그나저나, 하느님이 내 모든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수술을 받아도 딕이 낫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거든요. 물론 그렇게 노골적으로 기도한 건 아니지만 속마음은 그랬어요. 당연히 그런 마음도 주님은 아시잖아요.”

미스 코넬리아가 주저하며 시인했다.

“음, 하느님은 미스 코넬리아가 하는 기도의 진의에 응답하신 걸 거예요. 레슬리가 너무 힘들어지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잖아요. 나도 마음속으로는 수술이 성공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런 마음을 갖다니 참 부끄러워요.”

“레슬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편지를 보니 우리처럼 레슬리도 놀란 것 같았어요. 아직까지도 실감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모든 게 그저 이상한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앤.’ 하고 썼더라고요. 그게 유일하게 레슬리의 마음을 쓴 거였어요.”

“가엾기도 하지! 죄수가 쇠사슬에서 풀려나면 한동안은 길을 잃은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는데 아마 그런 거겠죠. 앤, 갑자기 오언 포드 생각이 나요. 레슬리가 그 사람을 좋아했잖아요. 앤도 그 사람이 레슬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죠?”

“그랬어요, 한때.”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고 느끼며 앤이 대답했다.
“음, 그 사람도 레슬리를 좋아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었지만 왠지 꼭 그럴 것만 같았어요. 자, 앤, 내가 중매쟁이로는 영 아니라는 건 하느님도 아세요. 그리고 난 그런 짓을 경멸해요. 하지만 내가 앤이라면 포드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간의 일을 슬쩍 언급하겠어요, 나 같으면 그렇게 할 거예요.”

“물론 포드 씨에게 편지를 쓸 때 이 일을 언급할 거예요.”

앤은 약간 거리를 두며 말했다. 그건 미스 코넬리아와 의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 레슬리가 자유의 몸이 됐다는 소식을 들은 후 앤도 마음속으로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에 내어 욕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 물론 서두를 건 없어요. 하지만 딕 무어가 죽은 지 13년이나 됐고 레슬리는 그 사람 때문에 인생을 너무 많이 허비했어요.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되어갈지 두고 보자고요. 조지 무어도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을 텐데 살아 돌아오다니, 사내들 하는 짓이 다 그렇지. 그렇지만 이제 와서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을 테니 그 사람도 참 안됐어요.”

“그 사람은 아직 젊어요. 완전히 회복하면 아마 자기가 살아갈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 사람도 어리둥절하겠죠. 가엾은 사람. 사고를 당한 후의 세월은 조지 무어에게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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