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6권 7~8

나단비 | 2024.04.08 18:08:26 댓글: 0 조회: 47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59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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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이 크고 쾌활한 성격의 파커 의사 부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월터를 바라보았다.
“같이 놀 아이들이 많아서 심심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아이들 넷에다 몬트리올에서 내 조카아이들까지 오잖아요. 혼자서는 생각도 못 할 일을 왜 여럿이 모이면 궁리를 잘도 해내서 놀지 않아요.”
월터는 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파커 부인이 아무리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쾌활하게 말해도 월터는 이 부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딘지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파커 의사는 정말로 좋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 넷’과 몬트리올에서 왔다는 조카아이들도 월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파커 의사네가 사는 로브리지는 글렌에서 거의 1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고 월터는 거기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파커 의사 부부와 블라이드 의사 부부는 서로 자주 방문하는 사이다. 파커 선생님과 아빠는 아주 친한 친구이지만 월터 생각에 엄마는 파커 부인이 없어도 아주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월터는 나이가 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었고 앤도 그런 사실을 알았다.

다른 집에 방문하는 일이 재밌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월터는 로브리지에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에이번리에 가는 거라면 재미있을 텐데! 그리고 ‘꿈의 집’에 가서 케네스 포드와 하룻밤을 보내는 일은 더 재미있을 것이다. ‘잉글사이드’의 아이들에게는 거의 자기 집이나 마찬가지인 ‘꿈의 집’에 가는 건 손님으로 방문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2주 동안이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로브리지에 가서 지내야 한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얘기다. 어찌 된 영문으로 자기가 로브리지에 가야 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은 이미 결정된 것 같고 엄마와 아빠는 이런 결정에 기뻐하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는 우리들을 모두 어디다 떼어내 버리려는 것일까? 월터는 좀 슬프고 불편한 마음이었고,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젬은 이틀 전에 벌써 에이번리로 보내졌고, 수잔은 때가 되면 쌍둥이를 미스 코넬리아 집으로 보내겠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무슨 때를 말하는 거지? 메리 마리아는 무슨 일인가를 두고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고 ‘모든 일이 잘 끝나야 할 텐데’ 하는 말을 되뇌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 끝나야 한다는 말인가? 월터는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지금 ‘잉글사이드’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월터를 내일 데리고 가겠습니다.”
길버트가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월터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몰라요.”
파커 부인도 말했다.
“정말 친절하기도 하시지요, 감사드립니다.”

앤이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겠지. 그럴 거야.”
부엌에서는 수잔이 슈림프를 보고 암울하게 말했다.
“월터를 데리고 있어 준다니 파커 부인은 참 친절하기도 하구나, 애니. 그 부인은 월터가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 가끔 보면 참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 그렇지? 자, 이제 적어도 2주일은 나도 죽은 물고기를 밟지 않고 목욕탕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구나.”
파커 부인이 떠나자, 메리 마리아가 말했다.
“죽은 물고기라니요? 설마…….”
“내가 말한 그대로야, 애니. 난 거짓말은 안 한다. 죽은 물고기라고! 너 맨발로 죽은 물고기 밟아본 적 있니?”
“아니요. 하지만 어떻게…….”
“월터가 지난밤에 송어를 잡아다가 욕조에 넣어놓았어요, 살아 있게 한다고요, 사모님. 그것이 욕조에 그대로 있었다면 살아 있었겠지만 튀어나와서는 간밤에 죽었지요. 물론 맨발로 돌아다니는 사람이야…….”
수잔이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난 어느 누구와도 말다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메리 마리아가 일어나 방을 나가며 말했다.
“내가 저분 때문에 화를 내는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사모님.”

수잔이 말했다.
“오, 수잔, 나도 솔직히 말하면 고모 때문에 약간은 신경이 쓰여요. 물론 이 일이 잘 끝나면 나도 마음 쓰지 않겠지만요. 하지만 죽은 물고기를 밟는다면 정말 기분이 나쁠 것 같아요.”
“살아 있는 것보다는 나아요, 엄마. 죽은 물고기는 꿈틀대지 않잖아요.”
다이가 말했다.
사실대로 말을 하자면 ‘잉글사이드’의 여주인이나 가정부 둘 다 이 일로 킥킥거렸다.
일은 그렇게 매듭지어졌다. 하지만 그날 밤 앤은 월터가 로브리지에 가서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길버트에게 말했다.
“월터는 너무나 예민하고 상상력이 많은 아이라서.”
앤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그래, 나도 걱정이긴 해. 그래도 앤, 우리 월터는 밤에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무서워하잖아. 며칠 동안 파커네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겁이 싹 없어져 돌아올지도 몰라. 월터는 아마 다른 아이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수잔 말에 따르면 그날 새로 태어나는 아기를 셋이나 받은 길버트가 말했다.
앤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길버트 말이 분명 다 옳았다. 어차피 젬이 집에 없으면 월터는 심심해할 것이다. 셜리가 태어나던 당시를 생각해봐도 그렇다. 집안을 돌보고 메리 마리아를 참아주는 것만으로도 벅찬 수잔의 수고도 덜어주어야 한다. 그나저나 고모님은 2주만 있겠다더니 벌써 4주를 훌쩍 넘겼는데도 아직 갈 생각도 않고 있다.
월터는 내일이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불편한 생각을 털어내려고 침대에 누워 멋진 공상을 펼쳤다. 월터는 상상이지만 모든 걸 아주 생생하게 그려보았다. 월터에게 상상력은 저 벽에 걸린 그림 속의 건장한 백마 같아서 말에 올라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뒤를 향해 달릴 수도, 앞질러 달릴 수도 있었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밤은 꼭 저기 남쪽 언덕 앤드루 테일러 씨네 숲에 살고 있는 커다랗고 새까만 박쥐 날개가 달린 천사 같다. 월터는 이 천사를 환영할 때도 있었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눈앞에 그리다 보면 무서울 때도 있었다. 월터는 자기의 작은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로 만들기도 했으며 인간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바람은 밤마다 다가와 이야기를 들려주고, 서리는 뜰로 내려와 꽃을 깨문다. 이슬은 고요히 은빛으로 내려앉고, 저 멀리 보이는 보랏빛 언덕 꼭대기까지만 가면 달도 꼭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안개는 바다에서 올라오고, 그나저나 저 거대한 바다는 언제나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 절대로 바뀌는 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바다는 어둡고 신비롭다. 이 모든 것이 월터에게는 실제처럼 다가왔다. ‘잉글사이드’와 골짜기에도, 단풍나무 숲과 늪지에도, 항구 해안가에도 요정과 켈피3)와 드리아드와 인어 그리고 도깨비로 가득하다. 서재 벽난로 선반 위에 놓인 검은색 석고로 만든 고양이 인형도 요정 마녀다. 밤이 되면 그 마녀가 살아나 엄청나게 몸을 부풀려서는 온 집 안을 헤집고 다닌다. 월터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온몸을 떨었다. 월터는 언제나 이렇게 자기가 지어낸 공상에 무서워 덜덜 떨고 말았다.
월터는 ‘너무 예민하고 신경이 날카로운 아이’라고 했던 메리 마리아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그녀를 수잔은 결코 용서하려 들지 않았다. 아마 윗마을에 사는 ‘예지력’이 있다고 소문난 키티 맥그리거 아주머니 말이 맞을 것이다. 그 아주머니가 전에 월터의 속눈썹이 길고 안개 어린 것 같은 잿빛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더니 ‘어린아이의 몸에 노인의 영혼이 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월터가 그 어린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알고 있는 이유도 그 노인의 영혼이란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침이 되자 아버지는 월터에게 점심 먹고 나면 곧바로 로브리지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월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심을 먹으면서 월터는 가슴이 메여오고 갑자기 눈이 눈물로 흐려진 것을 감추려고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너 우는 거니, 월터?”
메리 마리아가 물었다. 여섯 살배기 월터가 우는 일이 영원한 불명예를 뒤집어쓸 일이나 된다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울기나 하는 아이는 경멸한다. 그리고 너는 고기도 먹지 않았구나.”
“기름 덩이만 남긴 거예요. 난 기름은 싫다구요.”
월터는 남자답게 눈을 껌벅이며 눈물을 거두었으나 아직 고개를 들 용기는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싫으니 좋으니 말대꾸하는 건 용납되지 않았다. 파커 부인이 네 생각을 좀 바로잡아주겠지. 그 부인은 윈터 집안사람이지 아마? 아니, 클러크 집안이었던가? 아니, 캠벨 집안사람일 거다. 뭐 어쨌거나 윈터 집안이나 캠벨 집안이나 모두 같은 성미를 갖고 있어서 바보스러운 짓은 결코 용서치 않아.”

메리 마리아가 말했다.
“어머나, 메리 마리아 고모님, 월터에게 겁주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는 앤의 눈이 이글거렸다.
“미안하구나, 애니. 물론 내가 네 아이에게 뭘 가르칠 권리가 없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메리 마리아가 감정이 상해 말했다.
“저 여자에게 저주나 내려 사라져버리게 하지 않고.”
수잔이 월터가 제일 좋아하는 퀸 푸딩을 가지러 가며 중얼거렸다.
앤은 심한 죄의식을 느꼈다. 길버트는 앤에게 저 가엽고 외로운 늙은 여자에게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듯 책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길버트 자신도 좀 기분이 언짢기는 했다. 길버트는 여름 내내 정말이지 지치도록 일을 많이 했다. 그 점은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길버트가 힘들었던 원인에는 메리 마리아도 한몫 했을 것이다. 아니 길버트가 인정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앤은 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고 나면 이번 가을에는 길버트를 노바스코샤로 한 달 정도 휴가를 보내 도요새 사냥이나 하면서 지내게 해주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차 맛이 어때요?”
뉘우치는 마음으로 앤이 메리 마리아에게 물었다.
메리 마리아가 입을 쩝쩝거렸다.

“차가 너무 엷다. 하지만 상관없어. 이 가여운 늙은이가 맛 좋은 차를 마시든 말든 누가 상관이나 하려고. 그렇지만 나를 아직도 기분 좋은 동무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는 걸 잊지는 말아라.”
메리 마리아의 그 두 마디가 서로 연관이 되는 말이든 아니든 앤은 지금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앤의 얼굴이 심하게 창백해졌다.
“저는 2층으로 올라가서 좀 누워야겠어요, 고모님. 길버트, 로브리지에 가더라도 오래 있지 않는 게 좋겠어. 미스 카슨에게 전화 좀 해주고.”
앤이 일어서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앤은 월터에게도 별일 아니라는 듯 서둘러서 잘 다녀오라는 입맞춤을 해주었다. 월터가 떠나는 일에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몸짓이었다. 하지만 월터는 울지 않을 작정이다. 메리 마리아도 월터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월터는 이렇게 이마에 축축하게 입을 맞추어주는 것이 싫었다.
“로브리지에 가서도 식사 예절을 잘 지키도록 해라, 월터. 너무 욕심 사납게 굴지도 말고. 그런 짓을 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커다란 검은 자루를 가진 악마가 와서 그 나쁜 아이들을 집어넣어 가버린단다.”
메리 마리아가 말했다.
길버트가 이름이 그레이 톰인 말에 마차를 매려고 밖으로 나가 있어서 그 말을 듣지 못한 게 다행이었다. 앤과 길버트는 아이들에게 그런 겁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해두었고, 다른 사람도 그 규칙을 꼭 지키도록 했다.수잔이 식탁을 치우다 그 말을 들었고 메리 마리아는 하마터면 배 모양의 그릇과 그 속에 든 것이 자기 머리로 날아들 뻔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3. 스코틀랜드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말의 모습을 띤 물귀신. 사람을 익사시키거나 익사를 예고함.




8






보통 때라면 월터는 아빠와 함께 마차를 타고 외출하는 것이 무척 신났을 것이다. 월터는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했고, 글렌 세인트 메리 주변의 길은 모두 아름다웠다. 로브리지로 가는 길에는 미나리아재비 꽃이 두 줄로 나란히 서서 춤을 추었다. 여기저기 푸른색 고사리들이 가장자리를 장식한 숲도 아주 보기 좋았다. 하지만 오늘 아빠는 별로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닌 모양이었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그레이 톰을 모는 태도도 왠지 좀 거칠어 보였다.
로브리지에 도착하자 아빠는 바쁘게 파커 부인에게 몇 마디 하고는 월터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급히 가버렸다. 월터는 또다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것을 참으려고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아무도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더욱 명백해졌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엄마도 아빠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다.
커다랗지만 너저분한 파커 씨네 집은 전혀 다정해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그때 월터의 기분으로는 그 어떤 집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파커 부인은 월터를 뒤뜰로 데려가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그런 다음 부인은 얼른 돌아가서 하던 바느질을 계속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저절로 친해지게 내버려두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일은 열이면 아홉은 부인 생각대로 될 일이었다.
그러나 월터 블라이드가 그 열 번째에 해당하는 아이인 것을 몰랐다고 파커 부인을 비난해야 할 일도 아니다. 파커 부인은 월터를 좋아했고 자기 아이들도 모두가 쾌활하고 귀여운 아이들이니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 여겼다.
프레드와 오펄은 몬트리올 아이 티를 내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누구에게 불친절하게 대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겼다.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다. 부인은 그 ‘가여운 앤 블라이드 부인’을 도와주게 되어 진심으로 기뻤다. 비록 아이 하나를 거두어주는 일일지라도. 파커 부인은 모든 일이 다 잘되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앤의 친구들은 셜리가 태어나던 때를 생각하면서 이번에도 상당히 걱정들을 했다.
뒤뜰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뜰은 커다랗고 무성한 사과 과수원으로 이어져 있었다. 월터는 얌전하고 수줍은 태도로 파커네 아이들과 몬트리올에서 온 사촌 존슨네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열 살짜리 빌 파커는 어머니를 닮아 혈색 좋은 둥그런 얼굴을 한 개구쟁이로, 월터의 눈에는 굉장히 커 보이고 나이도 많아 보였다. ‘파커네 심술보’라 불리는 앤디 파커는 아홉 살이었고 ‘돼지’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는데, 그렇게 불리고도 남을 만큼 심술쟁이였다.
월터는 앤디의 생김새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리를 너무 짧게 깎아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선 금발에다 장난꾸러기 같은 주근깨투성이 얼굴에 툭 튀어나온 파란 눈은 보자마자 거부감이 일었다. 프레드 존슨은 빌과 나이가 같았고, 월터는 이 아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아이는 황갈색 고수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게 잘생겼다. 프레드의 아홉 살짜리 여동생 오펄도 곱슬머리에 검은 눈을 가졌다. 그런데 검은 눈이 아주 심술궂어 보였다. 오펄은 금발 머리에 나이는 여덟 살인 코러 파커의 팔짱을 끼고 둘 다 거만하게 월터를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앨리스 파커가 없었으면 월터는 얼른 뒤돌아서 달아나 버렸을지도 모른다.
앨리스는 일곱 살이었다. 무척이나 귀여운 고불고불한 금발머리가 머리를 온통 뒤덮은 모습에 눈은 골짜기에 피어 있는 제비꽃처럼 파랗고 다정했다. 거기다 앨리스의 볼에는 분홍색 보조개도 패여 있었다. 작은 주름 장식이 달린 노랑 옷을 입은 앨리스는 춤추는 미나리아재비를 생각나게 했다. 앨리스는 태어날 때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월터에게 방긋 웃어 보였다. 앨리스는 정말로 친구였다.
프레드가 먼저 아주 건방진 태도로 말문을 열었다.
“아가야, 만나서 반갑다.”
월터는 그 건방진 태도에 금방 몸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내 이름은 월터야.”
월터가 또렷이 말을 했다.
프레드가 놀란 시늉을 하며 다른 아이들 쪽을 보았다. 이 시골뜨기 녀석에게 호된 꼴을 보여주어야 했다.
“지 이름이 월터래.”
프레드가 익살스럽게 입을 실룩거리며 빌에게 말했다.
“지 이름이 월터래.”
이번에는 빌이 오펄에게 말했다.
“지 이름이 월터래.”
오펄이 아주 재미있다는 듯 앤디에게 말했다.

“지 이름이 월터래.”
앤디는 코러에게 말했다.
“지 이름이 월터래.”
코러는 낄낄대며 앨리스에게 말했다.
앨리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그저 월터를 감탄하는 눈빛으로 바라만 보았다. 그런 앨리스의 눈빛이 월터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아이들이 일제히 모두 입을 모아 “지 이름이 월터래.” 하고 합창하면서 조롱하는 것도 참을 수 있게 해주었다.
“저 아이들은 뭐가 저렇게 재미있을까?”
파커 부인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넌 정말로 요정이 있다고 믿는다면서?”
앤디가 아주 조롱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월터가 앤디를 빤히 바라보았다. 앨리스가 보는 앞에서 질 수는 없었다.
“요정은 있어.”
월터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건 없어.”
앤디가 반대했다.
“있어.” 
월터는 우겼다.

“요정이 있대.”
앤디가 프레드에게 말했다.
“요정이 있대.”
프레드는 빌에게 말했다.
“요정이 있대.”
아까처럼 아이들이 모두 그 말을 되풀이했다.
월터는 고문당하는 기분이었다. 월터는 전에 이런 조롱이나 놀림을 당해본 적이 없었고 그것을 견디기도 힘들었다. 월터는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앨리스 앞에서 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멍이 들도록 꼬집어줄까?”
월터는 계집애 같은 아이라서 놀려주면 아주 재미있겠다고 마음을 먹은 앤디가 말했다.
“야, 돼지야, 입 다물어!”
앨리스가 엄히, 아주 엄하게 명령했다. 아주 조용하면서도 부드럽고 상냥한 말씨였지만 매우 엄했다. 그 말투에는 앤디도 비웃을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장난으로 그래 본 거야.”
앤디가 부끄러운 듯 중얼거렸다.
이제 형세는 월터에게 좀 유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모두들 과수원으로 가서 상당히 친하게 술래잡기 놀이를 했다. 하지만 모두들 시끌벅적하게 저녁을 먹으러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월터는 다시 집이 그리워졌다. 모두 앞에서, 앨리스 앞에서 울어버릴 뻔했던 끔찍한 순간마저 있었다. 자리에 앉을 때 앨리스가 정답게 팔꿈치로 톡 건드려주어 월터는 좀 위로를 받았지만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파커 부인의 아이 양육 방식은 분명 눈여겨볼 만한 점이 있었다. 월터가 먹지를 못해도 내일 아침이면 식욕이 좀 생기겠지 할 뿐 걱정도 하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은 먹고 떠드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 월터가 먹는지 마는지 관심도 없었다.
월터는 왜 모든 식구들이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는지 의아했다. 이 집에 몹시 예민하고 나이가 많은 데다 귀까지 먹은 할머니가 있어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르니 그럴 만도 했다. 그 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들 대니 월터는 머리가 아팠다.
우리 집에서도 지금쯤 저녁을 먹고 있겠지. 엄마는 식탁 맨 윗자리에 앉아 미소를 짓고 계실 텐데. 아빠는 쌍둥이를 얼러 주고 수잔 아줌마는 셜리의 우유 잔에 우유를 부어주겠지. 낸은 슈림프에게 몰래 맛있는 것을 한 입씩 주고 있을 거야. 메리 마리아도 갑자기 가족의 한 사람으로 부드럽고 상냥한 할머니로 다가왔다. 이번 주에는 월터가 저녁 식사를 알리는 중국 종을 울리는 당번인데, 누가 종을 울렸을까? 그리고 젬도 없다. 울 곳이라도 있었으면! 로브리지에는 마음 놓고 울 곳마저 없었다. 게다가 앨리스가 지켜보고 있었다. 월터는 차가운 물을 한 컵 꿀꺽꿀꺽 마시면서 슬픔을 달랬다.
“우리 고양이는 발작을 일으킨다.”
앤디가 별안간 테이블 밑에서 월터를 걷어차며 말했다.
“우리 고양이도 발작을 일으켜.”
슈림프도 발작을 일으킨 일이 두 번 있었다. 월터는 ‘잉글사이드’ 고양이를 로브리지 고양이 아래에 둘 수 없었다.
“우리 고양이가 너희 고양이보다 발작을 더 잘 일으켜.”
앤디가 뻐겼다.
“안 그래.”
월터도 지지 않고 말했다.
“자, 자, 얘들아! 고양이 갖고 싸우지들 말거라. 곧 자야 할 테니 자기 전까지 좀 나가서 놀아라.”
파커 부인은 지금 ‘이해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관한 논문을 써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오늘 밤엔 좀 조용히 해주길 원했다.
잘 시간이라고! 월터에게 퍼뜩 자기가 여기 밤새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만이 아니라 많은 날 밤을, 2주 동안이나. 이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월터는 주먹을 불끈 쥐고 과수원으로 나갔다. 빌과 앤디는 풀밭에서 서로 차고 뒹굴고 소리를 지르며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네가 나한테 벌레 먹은 사과를 줬잖아, 빌 파커. 나한테 벌레 먹은 사과를 주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주겠어. 귀를 물어뜯어 주겠어.”
앤디가 고함을 질렀다.
파커 씨 집에서는 이런 종류의 싸움이야 늘 있는 일이었다. 파커 부인은 남자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 여겼다. 서로 싸우는 것이 아이들에게 해롭기는커녕 악한 기운을 쫓아내고, 나중에는 서로 친해지게 되는 길이라고까지 여겼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람들이 이렇게 맞붙어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월터로서는 놀라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프레드는 둘을 응원하며 부추기고 오펄과 코러는 재미있다고 깔깔대고 있었지만 앨리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월터는 도무지 이 아이들을 참을 수 없었다. 다시 싸움에 돌입하기 전에 잠시 숨을 돌리려고 떨어진 두 전사 사이로 월터가 뛰어들었다.
“그만둬. 앨리스가 무서워하고 있잖아.”
빌과 앤디는 한순간 깜짝 놀라 물끄러미 월터를 바라보다 자기네 싸움을 말리려 드는 이 어린아이가 너무 우스워 둘 다 배꼽을 잡고 뒹굴었다.
빌이 월터의 등을 찰싹 치며 말했다.
“야, 너 배짱 좋은데. 너 이대로 크면 진짜 사나이가 되겠어. 여기 사과 있다. 벌레도 먹지 않은 사과야.”
프레드는 앨리스가 그 어여쁜 장밋빛 볼에서 눈물을 닦고 월터를 감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주 못마땅했다. 물론 앨리스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무리 어리다 해도 몬트리올의 프레드 존슨이 옆에 있는데 다른 남자아이에게 감탄의 눈길을 보내서는 안 되었다. 이 사태는 반드시 손을 보아주어야 할 일이었다. 아까 프레드가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젠 고모가 딕 고모부에게 전화로 하고 있던 이야기를 들은 게 있었다.
“너희 엄마가 엄청 아프대.”
프레드가 월터에게 소리를 쳤다.
“그, 그럴 리가 없어.”
월터가 울다시피 하며 말했다.

“틀림없어. 젠 고모가 딕 고모부에게 그렇게 말하는 걸 내가 들었다고.”
프레드는 고모가 ‘앤 블라이드는 아프다구요.’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고 거기에 ‘엄청’이란 말을 더 집어넣어 주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이렇게 덧붙여주었다.
“니가 집에 가면 네 엄마는 아마 죽어 있을걸.”
월터는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앨리스는 다시 월터의 편이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프레드의 깃발 아래로 모였다. 아이들은 자기들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가무잡잡하고 잘생긴 아이를 놀려주는 게 재밌어 죽을 지경이었다.
“엄마가 아프다면 아빠가 치료해줄 거야.”
월터는 말했다.
아빠는 그럴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참 안됐지만 그건 불가능할 것 같던데.”
프레드가 앤디에게 눈을 찡긋하고는 낯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 아빠가 못 고치는 병은 하나도 없어.”
월터가 자랑스럽게 주장했다.
“작년에 루스 카터가 단 하루 샬럿타운에 갔다 와 보니까 자기 엄마가 완전히 죽어 있더래.”
빌이 말했다.

“그래서 땅에 묻혔지.”
앤디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더욱 극적으로 말을 꾸미기로 작정했다.
“루스는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어. 장례식이 엄청 재미있는 건데도.”
“난 한 번도 장례식에 가보지 못했어.”
오펄이 슬프게 말했다.
“하지만 넌 장례식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앤디가 위로하는 말을 했다.
“우리 아빠도 그 카터 아주머니를 살리지 못했어. 우리 아빠는 니네 아빠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의사인데도 말이야.”
“아니야, 우리 아빠가 더 훌륭해.”
“우리 아빠가 더 훌륭한 의사야. 훨씬 더 잘생겼고.”
“아니야.”
“집을 떠나면 언제나 집에 무슨 일이 생기는 법이거든. 니가 집에 돌아갔을 때 ‘잉글사이드’가 불에 타버렸다면 어쩔 거야?”
오펄이 말했다.
“엄마가 죽어버렸다면? 아이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야 할걸. 넌 아마 우리 집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지도 몰라.”
코러가 아주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그럼 우리 집에서 살아줘.”
앨리스 상냥하게 부탁했다.
“아닐걸, 쟤네 아빠는 아이들을 자기가 데리고 있고 싶어 할 거야. 하지만 곧 또 결혼을 하겠지. 하지만 쟤네 아빠도 곧 죽어버릴지 몰라. 우리 아빠가 블라이드 의사는 죽도록 일만 한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거든. 쟤 눈 좀 봐. 쟤 눈은 여자아이 눈 같아. 여자 눈이래요. 여자 눈이래요.”
빌이 놀렸다.
“아, 그만 입들 닥쳐!”
월터를 놀리는 일에 갑자기 싫증이 난 오펄이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그만 놀려. 쟤도 자기가 놀림당하고 있는 거 다 알아. 니들 말은 믿지도 않는다고. 공원으로 가서 야구 구경이나 하자. 월터와 앨리스는 여기 있어. 어딜 가나 아이들이 따라오면 귀찮기만 하니까.”
큰 아이들이 모두 가버렸지만 월터는 슬프지 않았다. 앨리스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둘은 사과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수줍은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내가 공기놀이 하는 법을 알려줄게. 그리고 내 캥거루 인형도 빌려줄게.”
앨리스가 말했다.
잘 시간이 되자 월터는 작은 복도 옆에 붙은 침실에서 혼자 자게 되었다. 파커 부인은 사려 깊게 촛불과 따뜻한 깃털 이불을 놓아주고 갔다. 여름이고, 7월이라 해도 해안가의 밤은 몹시 추웠다. 그날 밤은 특히나 더 서리라도 내릴 듯 추웠다.
하지만 월터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앨리스의 캥거루 인형을 볼에 꼭 대고 안고 있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월터는 지금 집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커다란 창문으로는 글렌 마을이 내다보이고 지붕이 달린 작은 창문으로는 소나무 숲이 내다보일 텐데! 엄마가 들어와서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시를 읽어주겠지…….
‘난 다 큰 아이야. 난 울지 않을 거라고. 난 울지 않아.’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기어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앨리스의 캥거루 인형 따위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월터는 자기가 집을 떠나온 지 몇 년이 지난 것만 같았다.
방금 공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방으로 몰려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아 사과를 먹었다.
“너 울고 있었구나, 아가야. 넌 참 귀여운 여자아이지. 엄마의 귀염둥이.”
앤디가 놀리는 소리를 했다.
“한 입 먹어봐. 그리고 기운을 내. 네 엄마는 곧 나을 거야. 원래 튼튼한 체질이면. 우리 아빠가 그랬는데, 스티븐 플래그 아주머니도 원래 튼튼한 체질이 아니었으면 몇 년 전에 죽었을 거래. 네 엄마도 튼튼한 체질이냐?”
빌이 반쯤 갉아먹은 사과를 내밀며 말했다.
“물론이지.” 
‘체질’이 무얼 말하는지 월터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스티븐 플래그 아주머니가 그렇다면 엄마도 그럴 게 틀림없었다.

“애브 소여 부인은 지난주에 죽었고, 샘 클라크의 어머니는 지지난 주에 죽었어.”
앤디가 말했다.
“둘 다 밤에 죽었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사람은 대개 밤에 죽는대. 난 안 그랬으면 좋겠어. 잠옷 차림으로 천국에 간다고 생각해봐!”
코러가 말했다.
“자, 얘들아! 그만 자야지.”
파커 부인이 소리쳤다.
소년들은 수건으로 월터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해보인 다음 나갔다. 그래도 아이들은 모두 월터를 좋아했다. 오펄이 돌아서려는데 월터가 오펄의 손을 잡고 매달리듯 속삭였다.
“오펄, 우리 엄마가 병들었다는 건 거짓말이지. 그렇지?”
월터는 이런 두려움을 안고 혼자 남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오펄은 파커 부인의 말대로 ‘악의가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쁜 소식을 전할 때의 그 짜릿함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아니, 네 엄마는 아프셔. 젠 고모가 그렇게 말했어. 너한테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까지 했다고. 하지만 내 생각엔 너도 알아야만 할 것 같아 말해주는 거야. 네 엄마는 아마 암에 걸린 건지도 몰라.”
“모든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걸까, 오펄?”

월터는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런 죽음에 관한 생각이 끔찍하기만 했다.
“물론이지, 바보 같긴. 하지만 정말로 죽어버리는 건 아니야. 모두들 천국으로 가는 거지.”
오펄은 아주 유쾌하게 말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야.”
문밖에서 듣고 있던 앤디가 돼지가 속삭이듯 말했다.
“천국은 샬럿타운보다 먼 데 있어?”
월터가 물었다.
오펄은 온몸이 흔들리게 깔깔 웃어댔다.
“너, 넌 정말 이상한 아이구나! 천국은 여기서 아주아주 먼 데 있는 거야. 그렇지만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기도를 해. 기도를 아주 열심히 하면 네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져. 내가 전에 10센트짜리 은화를 잃어버렸을 때도 열심히 기도를 했거든. 그랬더니 25센트짜리 동전을 주웠어. 그래서 알게 됐지.”
“오펄 존슨, 내 말 못 들었니? 월터 방 촛불은 끄고 나와라. 불이 나면 안 되잖니. 월터는 벌써 오래전에 잠이 들었을 거야.”
파커 부인이 방에서 소리쳤다.
오펄은 촛불을 불어 끄고 얼른 방에서 나갔다. 젠 고모는 성격이 참 편한 사람이지만 한번 화를 냈다 하면! 앤디가 문에서 다시 고개를 들이밀고 잘 자란 인사를 던졌다.
“아마 벽지 그림의 새들이 살아나서 네 눈을 파먹어버릴지도 몰라.”
앤디가 은근히 말했다.
모두들 월터 블라이드가 정말 나쁜 꼬마는 아니며, 내일은 저 아이를 놀려먹으면서 더 재미있게 놀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 완벽한 하루는 드디어 끝이 났다.
“귀여운 것들.”
파커 부인은 감상에 젖어 생각했다.
파커 씨 집에 전에 없던 고요함이 감돌았고, 1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잉글사이드’에서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 베르타 마릴라 블라이드가 동그란 갈색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행복한 얼굴들이 아기를 빙 둘러싸고 바라보았다. 이 아기가 세상에 나온 7월의 밤은 이 해안가 마을에 87년 만에 강추위가 몰아친 가장 추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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