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의형제편 황천왕동이 1

3학년2반 | 2022.01.06 08:00:48 댓글: 0 조회: 383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0062
제 4장 황천왕동이
늦은 봄이다. 꽃 찾는 나비들은 멀리멀리 날아다니고 벗 부르는 꾀꼬리들은
여기저기서 노래하는 때다. 임꺽정이의 집 앞뒤 마당에 풀이 많이 나서 어느 날
꺽정이가 처남 황천왕동이와 아들 백손이에게 풀을 뽑으라고 말을 일렀다. 천왕
동이가 매형의 말에 상을 찡그리면서도 마지 못하여 생질을 데리고 풀을 뽑으러
나서는데 앞뒤 마당을 둘이 갈라 맡아 뽑기로 하다가 풀 적은 앞마당은 생질에
게 빼앗기고 풀 많은 뒷마당을 차지하게 되었다. 좁지 않은 마당에 풀이 무더기
로 나서 낱낱이 뽑지 않고 북북 쥐어뜯어도 한 나절이 좋이 걸릴 모양이라 천왕
동이가 얼마 뽑다가 성가신 생각이 나서 삽을 갖다가 쓱쓱 밀어나갔다. 이때 울
뒤에 섰는 느티나무에서 꾀꼬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천왕꽁이가 꾀꼬리 노래
를 듣느라고 삽을 짚고 서서 우두커니 느티나무를 바라보고 섰는데 꺽정이의 병
신 아우가 뒤껼으로 오다가 천왕동이의 섰는 모양을 보고 큰 이야깃거리나 얻은
듯이 부지런히 도로 나가서 앞마당에 나섰는 애기 어머니를 보고 "누님, 백손이
아저씨가 느티나무를 이렇게 쳐다보구 있습디다. " 하고 고개를 쳐들어 보이니
애기 어머니는 혀를 차고 '징겁기도 짝이 없다. " 하고 병신 아우를 핀잔 주었
다. 병신이 열쩍어하며 섰다가 조카 풀 뽑는 옆으로 간 뒤에 애기 어머니가 뒤
껼에 와서 "황도령이 무얼 정신없이 봅시나? " 하고 소리치며 천왕동이에게로
가까이 왔다. "저 노래 좀 들어보우. " "꾀꼬리 소리를 듣고 깁시군. " "구르기두
잘 구르구 꺾기두 잘 꺾소. 더 말할 것 없이 명창이오. “ "노총각이 딴 생각이
나서 꾀꼬리를 듣고 섰구려. " "딴 생각이라니? " "꾀꼬리가 색시 죽은 넋이라니
까 색시 생각이 나는 게지. " "꾀꼬리가 참말 색시 죽은 넋이오? " "예전부터 내
려오는 말이니까 참말인지 누가 아오. 말인즉 이쁜 색시 하나가 시집을 못 가고
죽어서 꾀꼬리가 되었대. 그래서 꾀꼬리 소리가 머리 곱게곱게 빗고 시집가고지
고 한다는구먼. " "객객하는 것은 무슨 말이오? " "그건 나도 몰라. " "시집 못
간데 한이 맺혀서 피 토하는 시늉으루 객객하나? ” "그런지도 모르지. 장가 못
간 총각이 다르구려. " "에, 속상해. 얼른 어디 가서 흔기집이라두 하나 얻어야겠
어. " 하고 천왕동이가 삽을 들고 다시 풀을 밀기 시작하는데 애기 어머니는 "꾀
꼬리 소리 좀더 들어보오. " 하고 곧 목소리를 변하여 "머리 곱게곱게 빗고 황도
령께 시집가고지고. " 하고 꾀꼬리 소리를 흉내내고 깔깔 웃었다. "예, 여보. " "
귓구녕을 씻고 잘 들어봐요. " "날 조롱할라구 처음부터 거짓말을 지어냈구려.
" "내가 거짓말 지어내는 재주나 있으면 좋게. 그런데 참말 서울 사람들은 꾀꼬
리를 내인의 영신이래, 예전에 젊은 내인 하나가 백가 성 가진 별감을 몰래 상
관하다가 나중에 들켜나서 잡하 죽었는데 그 영신이 꾀꼬리가 되어서 머리 곱게
곱게 빗고 백별감 보고지고 보고지고 소리한다나. 아마 서울 사람의 귀에는 그
렇게 들리는게지. “ 천왕동이가 말대답이 없어서 애기 어머니는 한동안 있다가
"여보, 여보! " 하고 불렀다. "왜 불르우? " "내 이야기 좀 듣구려. ” "또 무슨
이야기가 있소? " "저 나무 좀 보오. " 하고 애기 어머니가 울 안에 선 대추나
무를 가리켰다. "대추나무두 또 무엇이 죽은 넋이나 영신이오? " "아니 다른 나
무들은 잎이 피어 한참인데 잎 하나 없이 말라 죽은 것같이 섰는 것이 무엇하고
비슷한가 생각해 보오. " "비슷하긴 무엇하구 비슷해, 대추나무지. " "장가 못 든
노총각하고 비슷하지. " "그렇지, 또 노총각. " 천왕동이가 애기 어머니와 같이
서로 웃음의 소리 하고 있을 때 꺽정이의 기침소리가 뒤에서 났다. 꺽정이가 풀
쁩는 것을 보러 오든지 또는 다른 일이 있어 오든지 뒤껼으로 돌아오다가 천왕
동이가 삽으로 미는 것을 보고 "풀을 손으루 뽑아야지 삽으루 밀면 곧 도루 나
지 않느냐. " 하고 잔소리를 하였다. 천왕동이가 밀던 것을 그치고 꺽정이를 돌
아보며 "형님, 내 말 좀 들으시우. 내가 얼른 흔기집이라두 하나 얻어야겠소. “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천왕동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누가 말려. " 하고
가볍게 대답하였다. "형님이 힘을 써줘야지요. " "내가 힘을 안 써서 장가를 못
드느냐? " "그럼 내가 병신이라 장갈 못 가우? " "마땅한 데가 없는 걸 난들 어
떻게 하느냐. " "마땅한 데가 있는지 없는지 조선 팔도를 다 찾아봤소? ” "나더
러 조선 팔도루 돌아다니며 네 혼처를 구하란 말이냐? 그건 못하겠다. " "인제는
형님을 믿구 있지 않을 테니 고만두시우. " 처남 매부간에 이런 수작이 오고가는
중에 백손이가 들어와서 "사기장수가 밖에 와서 아버질 보자우. " 하고 연통하여
꺽정이는 백손이를 데리고 보로 나가고 애기 어머니만 뒤에 남아서 상글상글 웃
으며 "노총각이 장가들구 싶어
서 몸이 바짝 달았구려. " 하고 천왕동이를 씨까슬렀다. "그놈의 노총각 소리 듣
기 싫어서 과부라두 하나 얻어야겠소. " "어디 가서 과부를 동여을 테요? " "한
집에 있는 과부두 있는데 딴 데 가서 동여을 거 있소? " "무엇이 어째, 별 망측
스러운 소리를 다 하네. " 하고 애기 어머니는 눈이 샐쭉하여지는데 "그런 소리
안 들을라거든 나를 놀리질 마우. " 하고 천왕동이는 깔깔 웃었다.
사기장수가 누구인지 궁금하여 천왕동이가 삽을 내던지고 바깥 방에를 나와
보니 뜰 구석에는 과연 사기짐이 버티어 있고 방안에는 전에 보지 못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천왕동이는 방에를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지싯거리는데 꺽정이가
내다보고 들어와서 인사하라고 불러들이었다. 탑고개 사는 손가가 청석골 오가
의 집 심부름으로 분원사기를 사러 오는데 박유복이가 애기 어머니에게 보내는
물건을 맡아가지고 와서 사기를 사가지고 가는 길에 길을 돌아 꺽정이 집을 찾
아온 것이었다. 박유복이가 전번에 왔을 때 애기가 노랑 명주 저고리 하나 해달
라고 저의 어머니 조르는 것을 보고 자기에게 무색 명주가 생긴 것이 있다고 이
다음에 가지고 오거나 인편 있을 때 보내거나 한다고 말하더니 그 명주를 잊지
않고 보냈었다. 손가는 길이 바쁘다고 물건만 전하고 곧 가려고 하는 것을 꺽정
이가 점심 먹고 가라고 붙들어놓았으나 청석골 안부 외의 별로 할 이야기가 없
어서 주객이 짬짬이 서로 보고만 앉았는 중에 꺽정이는 천왕동이 나온 것을 보
고 불러들여서 인사를 붙이고 앉아 이야기하라고 이르고 명주를 가지고 위채로
올라갔다. 손가가 소금장수 길막봉이 관계로 탑고개 가서 살게 된 사람인 것은
천왕동이도 들어서 아는 까닭에 과천서 장기 두다가 우연히 길막봉이와 서로 알
게 된 것을 이야기하고 그 끝에 "장기 둘 줄 아우? " 하고 물으니 "겨우 멱 아
네. " 하고 손가가 대답하였다. "길막봉이하구 두어 보셨겠지. " "더러 두어 봤지.
" "어떻게 두시우? " "차포잡이여. " "누가 차포잡이란 말이오? " "내가 차포잡이
여. " 길막봉이 장기가 천왕동이에게 차포잡인데 길막봉이에게 또 차포잡이면 그
장기는 더 물을 것도 없었다. 손가가 "총각은 장기를 잘 두나? " 하고 묻고 또 "
탑고개 동네에 장기 잘 두는 노인이 있는데 전에 같이 두어봤나? " 하고 물었다.
"촌장기 잘 둔다니 오죽할라구. " "그 노인이 원근은 서울 사람인데 서울서 장기
국수 노릇했다든걸. “ "그럼 한번 가서 두어 봐야겠군. " "나하구 동성동본 일
가간이라 내가 탑고개루 이사간 뒤 그 노인 집하구 한집안같이 지내네. " "내가
손서방을 찾아갈 테니 그 노인하구 장기 한번 두게 해주우. " "어렵지 않은 일이
니 언제든지 오게. " 천왕동이가 손가를 데리고 이런 수작을 하는 중에 꺽정이가
백손이에게 점심상을 들려가지고 내려왔다.
천왕동이가 손가에게 들은 장기 국수를 하루바삐 만나보려고 손가가 양주를
왔다 가던 이튿날 꺽정이더러는 청석골 가서 바루 놀다 온다고 말하고 늦은 아
침때 양주서 떠나서 승석때 탑고개를 왔는데 오는 길로 바로 손가를 찾으니 손
가의 형수 된다는 여편네가 나와서 하는 말이 시동생은 광주땅에 갔는데 오늘쯤
올 듯하다고 하여 손가가 아직 안 온 줄을 알고 장기 잘 두는 손노인을 그대로
찾아갈까, 산에 들어가서 자고 밝는 날 다시 나올까 망설이는 중에 손가가 사기
짐을 지고 들어오다가 천왕동이를 보고 깜짝 놀라며 "어떻게 된 일인가? “ 하
고 물었다. "무에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이오? ” "대체 양주서 언제 떠났어? “ "
오늘 아침 먹구 떠났소. " "걸음 잘 걷는단 말은 많이 들었지만, 아이구. " 하고
손가는 말끝도 못 맺고 혀를 내둘렀다. 사기를 오가의 집에서 이날 해안으로 갖
다 달라고 한 것이라 손가는 곧 사기짐을 갖다 두러 갈 것인데 천왕동이 대접으
로 집에 저녁밥을 준비시키고 또 손노인을 청하여다가 장기 대국까지 시킨 뒤에
산으로 들어갔
다. 손노인은 장기 수가 천왕동이만 못하였다, 그러나 승벽이 많아서 윷진애비같
이 지면서도 자꾸 덤비었다. 저녁 전 저녁 후에 대여섯 판을 한번 비기지도 못
하고 내리 지고 나서야 "내가 맞은 안될 모양일세. 나버덤 말 하나는 더한 것 같
은걸. " 하고 항복은 하되 천왕동이의 장기수를 왕청뜨게 높은 줄로는 생각지 않
는 모양이었다.
밤이 든 뒤에 손가가 산에서 나오는데 곽오주와 같이 나왔다. 오주가 천왕동
이를 보고 "내일은 마누라쟁이 생일이라구 아침 먹으러 들어오라데. " 하고 말하
니 "들떼어놓구 마누라쟁이라니 뉘 마누라 말이야? “ 하고 천왕동이가 말의 책
을 잡았다. "뉘 마누라여? 우리게 마누라쟁이 하나밖에 더 있나. " "박서방의 마
누라는 마누라 값에 못 가나. " "새파랗게 젊은 여편네더러 누가 마누라쟁이라구
말할라구. " "지금버덤 한 나이라두 더 젊을 때 덕물산 장군당에서 마누라 노릇
한 건 어떻게 하구. " "그건 그때 이야기지. " "그래 내일이 오첨지 마누라의 생
일이란 말인가? " "똑똑하구먼. " "너는 형 대접을 할 줄 모르는 위인이야. " 하
고 천왕동이는 오주를 꾸짖고 "형 노릇 경치게 하구 싶은가베. " 하고 오주는 천
왕동이를 놀리었다. 오주가 꺽정이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까닭에 천왕동이도 연
치를 따져서 오주에게 형 대접을 받으려고 하나 오주가 고분고분 아우 노릇을
하지 아니하여 둘이 서로 만나면 하나는 형 대접하라거니 또 하나는 아우 노릇
않는다거니 장난으로 다툴 때가 많았다.
그날 밤에 천왕동이가 오주와 같이 손가의 집에서 자고 이튿날 식전 일찍들
일어나서 방문을 열어놓을 때 "인제들 일어나? " 하고 손노인이 방으로 들어
왔다. 손가가 "꼭두식전 웬일이시오? " 하고 물으니 손노인은 "정신날 때 장기
한번 둘라구 왔네. " 하고 대답하며 곧 천왕동이를 보고 "한번 안 두려나? " 하
고 물었다. 천왕동이가 싫단 말을 하지 않고 곧 장기판을 벌이니 오주가 "장기
두구 언제 갈 테야, 아침들 안 먹구 기달리구 있을 텐데. " 하고 천왕동이를 나
무랐다. 손노인과 천왕동이는 다같이 말대꾸도 아니하고 장기를 두기 시작하여
만참 동안 서로 장군 멍군 하더니 손노인에게는 민궁에 마포가 남고 천왕동이에
게는 양상과 사졸이 남게 되었는데 손노인이 이길 포서는 없어졌지만 비길 수가
있을까 하고 한번 두고 열나절씩 들여다보았다. 손가가 "얼른얼른 두시우. " 하
고 손노인을 재촉할 때 혼자 따로 앉았던 오주가 장기 두는 옆에 와서 판을 번
쩍 들어냈다. "이게 무슨 짓이오? " 하고 손노인이 증을 낼 뿐 아니라 천왕동이
까지 "이럴 거 없이 먼저 들어가게. 나는 나중 가겠네. " 하고 좋지 않은 내색을
보이었다. "나중은 무슨 나중이여 같이 가지. " “자네가 내게다 우격다짐을 할
텐가? ” "우격다짐이구 무어구 장기는 더 못 두네. " "나는 더 두겠네. 장기판
이리 주게. " "안 줄 테여. " "왜 안 주어? " 천왕동이가 벌떡 일어나서 눈을 둥
그렇게 뜨고 오주의 손에 들고 있는 장기판을 빼앗으려고 하니 오주는 장기판을
마당에 획 내던졌다. 천왕동이와 오주 사이에 곧 주먹다짐이 나게 되는 것을 손
가가 중간을 가로막고 말려놓은 뒤 먼저 천왕동이를 보고 노인을 데리고 가서
아침 먹고 장기 두라고 좋은 말로 달래니 천왕동이가 싫다고 아니하고 그 다음
에 오주를 보고 의향을 물으니 오주도 그것은 좋다고 말하여 손노인까지 네 사
람이 같이 산에 들어와서 오가 마누라의 생일 아침을 먹게 되었다.
오가의 집에 전에 없던 사랑채를 새로 세웠는데 사랑방은 간 반통 이 간이요,
방 앞에 반 간 너비 퇴가 있고 방머리에 아늑한 구들까지 있었다. 오가가 천왕
동이를 보고 "이 사랑 지은 뒤 자네 처음 오지 않았나? " 하고 물으니 이 사랑
에 들어앉기는 처음이오. " 하고 천왕동이는 엇조로 대답하였다. "짓는 건 언제
와서 봤던가? " "상량하는 것까지 봤소. " "옳지, 이런 정신 봐. 요전에 오주 위
문 왔다가 보구 갔네그려. " "낙성연에 우리를 청해서 술 한잔 먹일 게지 소리
소문 없이 해먹어 버린단 말이오? 그런 인심이 어디 있소. " "자네가 인심 노래
할 것 같아서 초벌만 해먹구 정작은 안 해먹었네. " "정작은 언제 할라우? " "자
네가 왔으니 오늘 할까? " "생일밥으루 때우잔 말이구려. " "그럼 내일 함세. " "
생일 후물리기루. " "그럼 언제 할까? 모레 할까, 글피 할까? " "공연히 그러지
말구 한번 큰잔치를 차리구 우리를 청하우. " "아따, 자네 분부대로 함세. " 오가
와 천왕동이가 이런 실없은 수작을 하는 중에 아침상이 나와서 박유복이 하나만
밥을 데시기고 그외의 여러 사람은 모두 고기 반찬으로 밥을 포식들 하였다. 먹
은 밥이 채 자위도 돌기 전에 천왕동이가 아랫간에서 윗간으로 내려와서 손노인
을 보고 "한번 접전을 해보실라우? " 하고 도전을 하니 "그래 보세. " 하고 손노
인이 천왕동이에게로 가까이 갔다. 손가가 차지고 온 장기판과 장기 망태를 갖
다주어서 천왕동이와 손노인은 마주 앉아서 장기판을 벌이었다. 오가는 얼마 동
안 들여다보다가 안으로 들어 가고, 손가는 심부름하는 틈에 가끔 와서 들여다
보고, 유복이는 속이 거북하다고 구들에 가서 누워 있고, 오주는 앞 툇마루 양지
짝에 너부죽이 엎드려 있었다. 장기 두어 판 끝난 뒤에 천왕동이 가 오줌 누러
나왔다가 오주의 엎드린 것을 보고 "볼기 한번 때려줄까. " 하고 웃으니 오주는
말대꾸도 아니하고 눈만 감았다 떴다 하였다. "눈병이 났나, 왜 눈을 끔벅거리
나? "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 "보라는 게. 무어야? " 천왕동이가 오주 앞에 와
서 들여다보니 오주는 눈을 감고 "오색 잔구슬이 줄줄 흘러내려오네. " "어디? "
"흐릿한 하늘 촉판에 함박꽃 같은 자지구름장이 둥둥 떴네. " "이 사람이 갑자기
미쳤나. 웬 헛소리야. " 오주가 눈을 번쩍 뜨고 "누가 헛소리를 해. 나처럼 여기
엎드려서 눈을 슬쩍두 감아보구 꽉두 감아보지, 갖은 것이 다 보일 테니. " 하고
눈감는 시능을 하여 보이었다. "에 이 사람 나는 싫어. 자네나 혼자 실컷 보게. "
오가가 마침 안에서 나오다가 말끝만 듣고 "무얼 혼자 보란 말인가? " 하고 물
으니 천왕동이가 "오주 눈 속에는 색색이 구슬이 줄줄 흐른다우. " 하고 대답하
였다. "눈 속에 구슬이 흐르다니? " “눈을 감구 있으면 별것이 다 보인다우. "
"그 구슬은 잘 두었다가 그림 속의 색시를 오가의 말을 듣고 천왕동이가 깔깔
웃으니 "무엇이 그렇게 우습담. " 하고 핀둥이를 주었다. "노총각은 색시란 말만
들어도 웃음이 절루 나오는 게지. " "색시 생각 말게, 노총각이 좋으니. " 천왕동
이가 오가와 오주의 말은 대척 않고 "장기판이 식어 못 쓰겠다. " 하고 딴전하며
곧 방으로 들어왔다. 손노인이 장기를 지면서도 자꾸 맞두다가 나중에는 떼기내
기를 두게 되었는데 천왕동이의 수가 왕청뜨게 높아서 상을 떼어 주초도 이기고
말을 떼어주고도 이기고 포까지 떼어주고도 역시 이겼다. "차 하나는 떼어야 두
겠소. " 하고 천왕동이가 말하니 손노인은 쓴입맛을 다시면서 "차는 고만두구 차
포 오졸구상마라두 떼게 되면 떼는 게지. 그러나 나버덤 별루 나은 수가 없는
것 같은데 괴상스러운 일일세. 포 떼구 어디 한번 다시 두어보겠네. " 하고 말을
새로 절이려고 할 때 안에 다녀나온 손가가 "점심이 곧 나오게 될 터이니 아주
점심 먹구 두시우. " 하고 말하여 ”녜. “ 하고 손노인도 장기판에서 물러앉았
다. "내 장기수가 전에 대면 많이 줄었네. 낫살을 먹으니까 아무래두 선망후실해
서 할 수 없어. 전에 조선국수가 서울 구리개란 데 살았는데 내가 국수하구 포
떼면 상승부하였었네. 지금 같아서는 차 메구두 어려웠을 걸세. " 손노인 말끝에
"그 조선 국수가 지금두 그저 서울 사우? " 천왕동이가 물었다. "그는 벌써 죽었
어. 내가 서울서 송도루 이사온 뒤에 바루 죽었단 소식을 들었으니까 지금 이십
년이 가까웠네. " "그럼 그 뒤에는 국수가 없소? " "왜 없기야 하겠나. 내가 탑
고개 같은 촌구석에 와서 파묻힌 지가 십여 년이니까 있어두 도르지. " "어디 가
서 물으면 알겠소? " "지금 말한 국수가 살았을 때 장래 국수가 될 만하다구 치
던 사람이 셋이었는데 첫째는 과천 사람 오씨구, 둘째는 봉산 사람 백씨구, 나두
셋째루 한몫 끼였었네, 모르긴 몰라두 과천 오씨가 아마 국수 되었을 것일세. "
"과천 사람 말을 들으니까
참말 오장기라구 장기 국수가 있었답디다. 그런데 그두 죽는 지가 오래랍디다.
" "지금 살았어두 나이 환갑이 못 되었을 텐데. " "죽은 제가 십 년이 넘었답디
다. " "그럼 오십두 못 살구 죽었네그려. " "봉산 백씨는 나이 얼마나 되었겠소?
" "오씨버덤 한두 살 아래였을걸. " "봉산이나 한번 가보까. " "십여 년 전에 내
가 봉산물 먹으러 갔다가 서루 만나서 하룻동안 장기를 같이 둔 일이 있는데 그
때 그 사람의 아버지가 봉산 이방이라더군. " "백씨 장기가 노인과 어떻소? " "
그때에두 나버덤 셌으니까 지금 나루는 어림없을 테지. " 오가는 천왕동이의 어
깨를 치면서 "봉산 갈 일이 났구먼. " 하고 웃고 손가는 천왕동이를 바라보면서
"봉산이 여기서 이백삼십 리 가량이니까 점심 먹구 가두 넉넉히 가겠소. "하고
웃었다. 점심 국수상이 나와서 여러 사람이 먹기 시작할 때 유복이가 저를 들지
아니하여 겸상한 오가가 "자네 조금두 안 먹을라나? "하고 물으니 "아침에 가리
를 많이 먹었더니 속이 징건해서 점심을 먹구 싶은생각이 없소. "하고 유복이가
대답하였다, 오주가 유복이의 안 먹는단 말을 듣고 "형님 국수 내나 주우. " 하
고 손을 내미니 유복이는 "그래라. "하고 곧 국수 그룻을 집어주었다. 천왕동이
가 "체증이 생겼소? " 하고 유복이더러 묻는데 오가가 유복이 대신 "속병으루
봄내 음식을 못 먹어서 봄타는 사람같이 저렇게 말랐다네. " 하고 대답하였다. "
속병에는 봉산 영천물이 좋습디다. 내가 구체루 고생하다가 영천물 먹구서 났소.
한번 가서 자셔보시우. " 하고 손노인이 유복이를 권하고 "속병에는 약물이 좋
지. 자네 장모두 가끔 속앓이루 고생하는 사람이니 한번 같이 가보게. " 하고 오
가 역시 권하는데 유복이는 들을 만하고 있다가 "아이 귀찮아. " 하고선 "여편네
동행이 귀찮긴 하지. " "누가 그 말이오? " "그럼 무슨 말인가? " "속병이 귀찮
난 말이지. " "그럴기에 약물 먹으러 가란 말 아닌가. " "맘 내키면 한번 가보지
요. " "약물은 백중때가 좋다네. 칠윌에 가서 먹구 오게. " 천왕동이가 손노인을
바라보며 "약물은 칠월에 먹어야 하우? 요새 먹어선 못쓰우? " 하고 물으니 손
노인은 음식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느라구 고개만 가로 흔들었다. "요새 먹어두
좋단 말이오, 어떻단 말이오? " "나는 사월인가 오월에 가 먹구두 효험을 보았으
니까 요새두 좋겠지. " 천왕동이가 손노인의 말을 듣고는 곧 유복이를 향하여 "
갈라거든 속히 한번 나하구 같이 갑시다. " 하고 말하였다. 점심 뒤에 오가가 안
에 들어가서 마누라를 보고 봉산 약물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마누라가 들었다
보았다 하고 곧 내일이라도 떠나가자고 유복이를 졸랐다. 봉산을 속히 가기로
작정되어서 천왕동이는 양주서 기다리지 않도록 한번 가서 다녀오기로 하였다.
청석골서 봉산 가는 일행이 떠나는데 오가의 마누라는 말을 타고 손가가 견마
를 잡고 유복이와 천왕동이는 말 뒤를 따라서 다른 사람 보기에는 양반의 부인
이 하인들 데린 것과 같았다. 첫날은 팔십여 리를 와서 평산읍내서 자고 다음날
은 새벽길까지 걸어서 일백이십 리를 와서 검수역말서 자고 삼십 리 남은 봉산
읍내는 사흘 되는 날 아침참을 대고 일찍이 들어왔다. 천왕동이는 떠나던 날 하
루에 올 길을 사흘 걸려서 오느라고 애를 썩이었는데 게다가 또 장기 잘 두는
백씨를 찾아볼 겨를도 없이 동행이 아침 먹고 바로 영천 약물터로 나간다고 하
여 심사가 적지 않게 틀리었다. 천왕동이가 유복이를 보고 "나는 읍내 구경하구
갈 테니 먼저들 가우. " 하고 뒤에 펄어질 작정을 하니 유복이가 천왕동이의 속
을 알고 "우리 물 먹구 가는 길에 읍내 와서 묵어가며 구경할 테니 장기둘 틈이
없을까 봐 걱정 말게. 그때 나두 따라가서 두는 구경 하겠네. 그러구 또 이백여
리 동행해 와서 서루 떨어지면 재미가 있나. 두말 말구 같이 가세. " 하고 끌고
가려고 달래었다. "장기 두는 백씨가 죽지 않았는지, 살아 있으면 어디서 사는지
그거나 알아봐야 하지 않소. " "그게야 이 집에서 물어봐두 알 수 있겠지. " 유
복이가 아침 먹던 객주집 주인을 불러서 "백가 성 가진 사람에 장기 잘 두는 이
가 있소? " 하고 물으니 주인이 선뜻 "있지요. " 하고 대답하였다. "그 백씨가
어디서 사우? " "쇠전거리 위에서 살지요. " "그 사람이 이방의 아들이오? " "돌
아간 그의 아버지두 이방을 지냈지만 지금은 자기가 이방이오. " 주인이 유복이
의 묻는 말을 대답하면서도 천왕동이를 가끔 바라보더니 나중에는 싱글싱글 웃
으면서 "총각이 취재 보이러 왔나? " 하고 물었다. 천왕동이 장기 두러 온 것을
알 까닭이 없는 주인의 말 묻는 것이 수상한데다가 취재 보인단 말이 귀에 거슬
려서 천왕동이는 "취재가 무슨 취재요? " 하고 말이 곱지 않게 대답하였다. "취
재 보이러 온 것이 아닌 걸 내가 말 잘못했으면 용서하게. " 하고 곧 유복이를
향하여 "더 물을 말씀이 없으면 나 볼일 보러 가겠소. " 하고 밖으로 나갔다.
천왕동이가 동행을 따라 영천 가까이 와서 유숙하며 약물도 같이 먹고 구경도
같이 다니었다. 봉황대 밑에서는 붕어 낚는 늙은이를 만나너 유복이가 반나절
한담하고 미아산 기슭에서는 나물 뜯는 큰애기들을 보고 손가가 공연히 지싯거
리었다. 천왕동이는 늙은이 이야기에 재미를 못 붙일 뿐 아니라 큰애기들 노래
에도 그다지 흥심이 나지 아니하고 오직 백씨를 찾아가서 장기수를 겨루어 보고
싶은 생각만이 마음에 가득하였다. 천왕동이가 참다 못하여 유복이를 보고 "내가
장기를 한번 두어 보구 와야 직성이 풀려서 물두 맛있게
먹구 구경두 재미있게 하겠으니 내일쯤 읍내 한번 갔다옵시다. " 하고 사정하듯
말하니 유복이는 "그럼 나하구 같이 가세. " 하고 말하는데 옆에 있던 오가의 마
누라가 "한 사흘만 물을 더 먹으면 다같이 읍내로 갈 텐데 그 동안을 못 참을
것이 무어 있어? " 하고 핀잔 주듯 말하였다. "나는 물을 고만 먹을 테요. " "박
서방은 일부러 물 먹으러 온 사람이니까 말이지. " "그렇기에 나 혼자 가겠소. "
"혼자 가는 게야 누가 말리나. 그렇지만 하루라도 같이 다니지 못하게 되면 우리
들이 섭섭하지. " 천왕동이가 오가 마누라와 더 말하지 아니하고 쓴입맛만 다시
었다. 천왕동이는 심정이 상한 끝에 즉시 혼자 읍쌔로 들어가려고 말 없이 나오
는데 유복이가 눈치를 채고 따라나와서 "자네 어디 갈라나? " 하고 물었다. "읍
내 갈라우. " "읍내는 내일 나하구 같이 가세. " "약물을 더 먹어야 할 사람이 읍
내를 같이 갈 수 있소. " "약물을 하루 두서너 차례씩 먹어야 맛인가. 식전에 한
차례 먹구 같이 가세. " "그래서 속병이 아주 낫지 못하면 내가 원망 듣게. " "누
가 원망한단 말인가? " "방금 마누라쟁이 말을 들어보지. 나중에 원망 아니할까.
" "그럴 리두 없지만 설혹 내가 내일 하루 약물을 안 먹어서 속병이 낫지 못한
다손 잡드래두 내가 원망 안 하면 고만이지 다른 사람의 말까지 족가할 것 무어
있나. " "장기 두는 구경을 별루 즐기지두 안 하며 구태어 같이 갈 건 무어 있
소. 약물을 한 차례라두 더 먹는 것이 워낙 좋으니 고만두우. " "긴말할 것 없이
내일 같이 가기루 하구 오늘은 우리 술이나 먹으러 가세. " 유복이가 천왕동이를
끌고 미역주막으로 술 먹으러 나오는데 손가까지 데리고 나왔다. 주막방에서 술
을 먹는 중에 천왕동이가 벽에 걸린 장기 망태를 보고 주막 주인 여편네더러 "
여기 장기 두는 사람이 있소? " 하고 물으니 여편네가 "우리 영감이 잘 둔다오.
" 하고 대답하는데 마루에 앉았던 주막 주인이 "내가 무슨 장기를 잘 둔다구
알지두 못하구 지껄이나! " 하고 여편네를 책망하였다. "잘 두니까 잘 둔다지 내
가 거짓말했나. " "잘 두구 못 두는 걸 자네가 어떻게 아나? “ "자기 입으로 횐
소리를 하니까 내가 알지. " "내가 언제 자네보구 짱기 잘 둔다구 횐소리했
나? " ”나더러 했다고 푸가 그래.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장기 둘 때 흰소리
만 잘하데. " "저런 사람 보아. 참말 종작이 없네. “ "왜 종작이 없어. " 방안에
있는 여편네가 방 밖에 있는 사내와 입심을 겨를 때에 손가가 사내를 내다보고
웃으며 ”잘 둔다구 칭찬하구 못 둔다구 겸사하다가 내외간에 말다툼 나겠소.
칭찬이 진정인지 겸사가 진정인지 우리가 두어 보면 살 테니까 이리 들어와서
한번 두어봅시다. 잘 두면 내가 같이 두고 못 두면 저 총각이 같이 둘 테요. "
하고 실없이 말하니 주인은 웃지도 않고 "내 장기는 겨우 멱 아는 장기요. " 하
고 겸사하였다. "그럼 총각하구나 같이 두어보우. " 주인이 말대답 없이 마루구
석에 세워 있던 장기판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니 주인 여편네가 얼른 일어나서
앙기 망태를 벽에서 떼어내려 주었다. 주인이 손가 앞에 장기판을 놓고 마주앉
으며 "어디 한번 두어봅시다. " 하고 장기를 판 위에 쏟아놓으니 손가는 "저 총
각하구 두시우. " 하고 판을 밀어놓았다. "잘 두시는 분에게 한두 수 배워봅시다.
" "총각하구 두어서 이기기만 하시우. 그러면 내가 한번 두어주리다. " 손가가
시침메고 장기 잘 두는 체하는 것을 보고 천왕동이는 말할 것 없고 유복이까지
빙글빙글 웃는데 속 모르는 주인은 "그럼 총각하구 한번 두까. " 하고 천왕동이
앞으로 장기판을 돌려놓았다. 주인이 장기를 제법
두나 천왕동이의 적수가 아니라 장군 한 번을 못 불러보고 져도 참혹하게 졌다.
"이 장기두 예사 장기가 아니로군. " 주인의 말끝에 손가가 "총각에게 차조 떼일
장기요. 나하구는 두어볼 것두 없소. " 하고 깔깔 웃어서 주인이 무색하여 하며
"우리 골에 서울까지 이름난 장기가 있는데 그 잘기두 내게 차포밖에 더할 것
없소. " 하고 말하였다. 천왕동이가 "백씨 말이모? 나두 차포 떼어주께 술 한턱
내기 둡시다. “ 하고 말하여 주인은 설마 차포를 더 가지고 못 이기랴 생각하
고 "아무리나 내기하마면 하지. " 하고 대어들었다.
주막 주인이 차포가 더한 것을 믿고 조심을 덜하다가 차 하나는 차상대하고
말 하나는 공먹히었다. .그러고 보니 포 하나 뗀 셈도 채 못 되어서 한번 기를
펴보지 못하고 몰리고 쪼들리기만 하다가 마침내 판세가 더 두어볼 것도 없이
되었다. "고만두구 진작 내기 시행이나 해야겠군. " 주인이 장기를 쓸고 나앉아
서 안해를 보고 "맑은술 한 양푼만 잘 데워오게. " 하고 말을 일렀다. "공연히
임자를 칭찬했다가 나까지 낯 깎였소. " "누가 칭찬해 달라든가. " "임자가 그렇
게 잘못 두면서 까치 뱃바닥같이 횐소리하는 줄이야 누가 알았소. " "나는 그
저 잘 두구 총각은 썩 잘 두니 내가 지지 이기겠나. 그쯤 알구 어서 가서 술이
나 데워오게. " 여편네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주인이 손가를 향하여 "당신 장기
는 총각버덤 얼마나 더 세시오? " 하고 물으니 손가는 천연덕스럽게 "포 하나쯤
세지요. "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우리 따위는 양차 떼두 안되겠소. " "어려을
게요. " 손가는 고개를 젖혀들고 코웃음을 치고 주인은 입을 벌리고 머리를 흔들
었다. "우리는 읍내 백이방의 장기를 조선 제일루 알았더니 윗수에 윗수가 있소
그려. " "백이방의 장기수는 대강 들어 알지만 우리만 좀 못한갑디다. " "서루 두
어 보진 못하셨소? " "우리가 영천 약물 먹으러 온 길인데 갈 때 한번 찾아가서
두어볼 작정이오. " "총각이 사위 취재 보이러 가오? " "취재가 무슨 취재요? "
"사위 취재 보는 이야기두 못 들었소? 백이방이 이쁜 딸을 두구 사위 취재를 보
이지요. " 이때 마침 주인 여편네가 양푼 하나와 뚝배기 하나를 두 손에 들고 들
어오며 "이것 좀 받으우. " 하고 말하여 주인이 일어섰다, 양푼에는 맑은 술이요
뚝배기에는 생선조림이다. 주인이 천왕동이를 돌아보며 "자, 총각부터 이리 오게.
" 하고 말하였다. 여럿이 다같이 둘러앉아서 여편네의 돌리는 술을 받아먹을 때
천왕동이가 주인을 보고 "사위 취재 이야기를 좀 자세히 들읍시다. " 하고 말하
니 주인 여편네가 사내보다 먼저 "총각이 이쁜 색시에게 장가들구 싶소? " 하고
싱글싱글 웃었다. "들 수 있으면 들지요. " "장기만 잘 둔다구 취재에 뽑히기는
어려운갑디다. " "장기 외에 또 무슨 취재를 본답디까? " "여러 가지로 취재를
본답디다. 벙어리 놀음도 시켜보고 점쟁이 노룻도 시켜본답디다. " "벙어리 놀음
은 무어구 점쟁이 노릇은 무어요? “ "그건 우리도 잘 모르우. " "무슨 놈의 사
위를 그 따위루 야단스럽게 고른담. " 손가의 말을 주인은 "야단스럽다구두 하겠
지요. 그렇지만 딸은 참말 일색이라우. " 하고 대답하였다. "색시가 몇 살이나 되
었소? ” "올에 아마 스물서넛 되었을 것이오. " "과년한 색시구려. " "취재가 까
다로워서 사윗감이 없으니까 절루 과년될 수밖에 더 있소. 색시 열댓 살 적부터
사위 취재 보인단 소문이 났었는데 이 삼 년 동안은 그 집의 문이 메이두룩 취
재 보이러 오는 사람이 들여밀리더니 요지막 몇 해째는 일 년에 몇 사람밖에 아
니 온답디다. 색시 아버지란 사람이 고집퉁이를 고치지 아니하면 아까운 색시를
겉늙히기가 첩경 쉬울 겁니다. " 그 동안에 한 양푼 술이 다 끝나서 둘러앉았던
사람들이 따로 따로 물러들 앉은 뒤에 주인이 천왕동이를 향하여 "우리 한판 더
두어 보까. " 하고 장기판을 끌어다가 앞에 놓으니 천왕동이가 손가를 가리키며
"저이하구 한번 두어 보우. " 하고 장기판을 손가의 앞쓰로 밀어놓았다. "한번
두어 주시겠소? " "총각하구 다시 두시우. " "재미는 없으실 테지만 한판 가르쳐
주시우. " 손가는 웃는 천왕동이에게 눈을 흘기는데 유복이가 손가 장기는 실상
하잘것없다고 토파하여 주인이 두잔 말을 더 하지 않고 뒤로 물러앉은 뒤 유복
이가 백씨 집 이야기를 차근차근 물어보았다. "백씨의 집안 형편은 어떻소? " "
어떻다니 잘 지내지요. 조업이 없더래두 질청의 엄지가락이 우리네같이 모양없
이 지내겠소. " "백이방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소? " "오십이 넘었겠지요. 그 나
이는 나두 잘 모르겠소. " "자녀가 몇 남맨가요? “ "무남독녀 외딸이라우. 그래
서 사윗감을 취재까지 보게 된 모양이지요. " "사위 취재를 본다는 것이 나는 모
를 소리요. 사윗감의 가문이라든지 인물이라든지 볼 것은 다 안 보구 장기 잘
두고 또 무슨 다른 장난 잘하는 걸 구한다니 그게 어디 성한 사람의 일이라구
할 수 있소. " "하두 딸을 잘 두어서 아무놈이나 내주기 싫으니까 그렇게 취재
볼 생각이 났나 봅디다. " "취재를 보더래도 취재볼 걸 봐야 하지 않소. " 유복
이는 속으로 꺽정이를 생각하며 "힘센 장사를 구한다든지 토는 칼 잘 쓰는 검객
을 구한다든지. " 유복이는 다시 봉학이를 생각하며 "활 잘 쏘는 한량을 구한다
든지 그래야 취재 본다는 말이 되지 않소. " 주막 주인이 취재 볼 것을 정한 것
처럼 시비조로 말하다가 유복이가 스
스로 깨닫고 "우리에게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두 우습지 않소? " 하고 웃으니 주
인은 고개를 흔들면서 "그건 속모르는 말씀니오. 그가 어디 장사나 한량을 구할
세 말
이지요. 이인 사위를 구한다우. " 백씨 위해 발명하듯 말하고 이인 말에 유복이
가 칠장사의 선생과 병 고쳐준 노인을 생각하며 "이인이면 노인에게라두 딸을
내줄 텐가요? " 하고 물으니 주인은 "취재 보인 담에 노인이라구 딸을 안 준단
말은 못하겠지요. " 어리뻥뻥하게 대답하였다. "이인을 사위푸 구한다고 칩시다.
그래 장기 잘 두는 것이 이인이란 말이오? " "장기는 자기가 잘 두니까 한몫 넣
었겠지만 그 외에 취재 보는 것이 이인의 재주가 아니면 할 수 없답디다. 고대
장난이라구 말씀합디다만 예사 장난 같으면 근 십 년 동안에 팔도 사람이 몇백
명이 와서, 몇백 명이 다 무어야 몇천 명이 와서 모조리 다 뒤통수를 치구 갔겠
소. " "우슨 취재가 그렇게 어렵단 말이오. 아까 나는 무슨 장난을 시켜본다는
줄루 들었소. " 천왕동이가 유복이의 말 뒤를 이어서 "벙어리 놀음을 시켜보구
또 점쟁이 노릇을 시켜본다니 그것이 다 어떻게 하는 것이오? " 하고 물으니 주
인이 잠깐 천왕동이를 돌아보며 "총각이 유심히 묻는 것이 의사가 있구먼. " 하
고 웃고 다시 유복이를 향하고 말하였다. "무슨 취재를 어떻게 보는지 그건 우리
두 잘 모르우. 말들이 벙어리 놀음을 시켜본다는 등 점쟁이 노릇을 시켜본다는
등 합디다. 하여튼지 사흘 동안 취재를 보이는데 거의 다 첫날에 낙제랍디다. 이
틀 간사람두 몇 못 된다니까 사흘까지 다간 사람은 더 말할 것두 없지요. 작년
까지 하난가 둘이 있었답디다. " "사위 취재가 그렇게 어려워서야 그 딸이 어디
시집가 보겠소. " "그래서 이방의 마누라는 취재구 무어구 다 고만두라구 남편에
게 성화를 바친답디다. " "안해가 성화를 바쳐두 듣지 않나요? " "그러먼요, 그
마누라가 딸을 데리구 부엉바위 용추에 가서 빠져 죽는다구까지 야단을 쳐두 듣
지 않는다우. " "그 사람이 옹고집인가 보구려. " "그가 고집두 센 바람이지만 당
초에 사위 취재를 정할 때 부엉바위 용추 위에 있는 당집에 가서 백일간 치성드
리구 정했답디다. 그래서 천이 천 소리 하고 만이 만 소리 해두 소용없는 갑디
다. "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아니하고 해는 이미 저물어서 동편 하늘에 석양이
비치고 길 옆 나무에 잘 새가 날아들었다. 주막 앞으로 오고가는 사람들은 방안
을 삐름삐끔 들여다보고 그대로들 지나갔다. "이야기에 재미를 들여서 너무 오래
앉았었소. " 유복이가 가지고 온 두 자 상목으로 먼저 먹은 술값을 셈한 뒤에 천
왕동이와 손가를 데리고 미역주막에서 나왔다. 유숙하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복이가 천왕동이에게 "백가의 집 사위 취재를 더 좀 알아보구 읍내를 가는 게
좋으니 내일은 고만두세. " 하고 말하니 천왕동이는 말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가 나중에 "그걸 알아보더래두 읍내 가서 알아보는 게 좋지 않겠소. " 하고 대답
하였다. "글쎄 그것두 그래. 그럼 내일 같이 갈까? " "나 혼자 가서 알아보구 나
오리다. " "자네가 묻구 다니면 남들이 웃지 않겠나. " "누가 취재 보이러 간다구
하구 묻소? " "하여튼지 자네가 물어보긴 좀 계면쩍을 겔세, 나하구 같이 가서
알아보세. " "아무리나 합시다. " 유숙하는 집에 와서 저녁밥들을 먹을 때 유복
이가 백가의 집 사
위 고르는 이야기를 오가 마누라에게 들려주니 오가 마누라는 대번에 "딸을 얼
마나 잘 두었기에 사위를 그렇게 굉장하게 고른담. 내가 읍내 가거든 한번 가보
아야지. " 하고 말하였다. "색시야 출중하겠지만 선 한번 보는 것도 좋지요. " "
선이라니 누가 그 색시에게. " 오가의 마누라가 말을 하다가 중동을 무이고 갑자
기 말끝을 바꾸어서 "옳지, 황도령이 생각이 있군. " 하고 상글상글 웃으면서 천
왕동이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장기를 두어보러 간다구는 했지만 취재 보이러
간다구는 한 일이 없소. " 천왕동이가 발명하는 것을 듣고 유복이가 "발명할 게
무엇 있나. 이쁜 색시에게 장가들면 좋지. " 하고 말하였다. "그걸 누가 싫다우.
공연한 창피를 사서 당하기가 싫으니까 말이지. “ "창피를 당하거나 수가 터지
거나 한번 장난삼아서래두 가보는게지. ” "장기만 가지구 취재를 보인다면 창피
를 당할 제 당하더래두 한 번 가보겠소. 그렇지만 내가 벙어리두 아니구 점쟁이
두 아닌데 꼬락서니 흉한 일이나 당하구 보면 웃음거리가 될 것 아니오. 더구나
애기 어머니가 알기나 하면 생전 두구두구 놀릴 것이오. " "자네가 무슨 일에든
지 우리버덤 냅뜰 힘이 많은 줄 알았더니 뒤를 여간 사리는 사람이 아닐세그려.
" "냅뜰 힘이 많은 사람이면 벌써 장가두 들구 누님 집에서두 나
왔을 게요. “ "자네 남매가 백두산에서 나올 때는 길 안 든 생마들 같았더라는
데 그 동안 결을 삭이느라구 고생들 많이 했을 테지. " "우리 남매가 백두산 속
에서 자랄 때는 둘이 다 생기 덩어리루 자랐는데 그 생기가 연년이 줄어서 지금
은 시르죽은 이같이 되었소. 누님은 나버덤두 더하니까 띨에서 보기 참혹할 때
두 많소. " 이야기가 달리 나가게 된 것을 유복이가 도로 거둬들이려고 "자네 내
일 읍내를 안 갈 텐가? " 하고 물으니 "같이 가자구 하더니 그 동안에 갈 생각
이 없어졌소? " 하고 천왕동이가 되물었다. "아닐세. 자네가 잘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 말일세. " "같이 가자구 하구 안갈 리 있소. " 유복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즈음에 오가 마누라가 먼저 "나더러 선을 보라더니 선도 보기 전에 벌써 사
위 취재에 갈 테야? " 하고 물어서 유복이가 "아니요, 사위 취재를 어떻게 하나
좀더 자세히 알아보러 가잔 말이오. " 하고 대답하였다. "내가 색시 선보러 가서
그 집 사람에게 물어보면 다 알구 올 텐데 먼저 가서 물어볼 거 무어 있어? "
오가 마누라 말에 "그렇지, 따루 갈 것 없소. 사흘 뒤에 같이들 갑시다. " 손가가
붙좇아 말하는 것을 듣고 유복이가 "그래두 좋겠네. " 하고 천왕동이를 똘아보니
천왕동이는 ”장기를 두러 가지 않을 바엔 내일 안 가두 좋으니 생각대루 하우.
" 하고 먼저와 같이 혼자 간다고 고집세우지 아니하였다.
백씨 집 사위 취재 이야기는 영천 근방 촌구석에도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
나 미역 주막쟁이만큼 자세히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천왕동이가 사위 취재
에 갈까말까 속으로 무한 주저하다가 읍 내 가서 더 좀 자세히 안 뒤에 작정하
리라 마음을 먹고 사흘 동안 해를 지리하게 보내었다. 영천서 읍내로 들어오던
날 객주 잡고 들어앉으며 곧 천왕동이가 오가 마누라를 보고 "오늘 가보실라우?
" 하고 물으니 오가 마누라가 "퍽도 급한가베. " 하고 웃고 나서 "점심 먹고 가
보까. " 하고 의논성 있는 말로 대답하였다. "오늘은 읍내 돌아다니며 구경이나
합시다. " 손가가 말하고 "구경은 나중 하구 색시 먼저 가보구 오시구려. " 유복
이가 말하는데 오가의 마누라는 "색시 보러 가란 사람이 많으니까 많은 데로 좇
을밖에. " 하고 천왕동이를 바라보며 상글상글 웃었다.
점심때 지난 뒤에 오가 마누라가 쇠전거리 위에 있는 백이방의 집을 찾아왔
다. 바깥 삽작을 들어서치 바깥방이요, 옆을 지나 들어가니 안마당이다. 아랫도
리 일하는 여편네들이 중긋중긋 서서 바라보는 중에 오가의 마누라가 치맛자락
을 휩싸잡고 마루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열어놓은 안방 머리맡 되창 안에 늙수
그레한 여편네가 하나 앉아 있는데 묻지 않아도 주인마누라인 것을 알 수 있었
다. 오가 마누라가 "아이구 다리야. " 하고 마루 끝에 걸터앉으며 "댁이 퍽 크고
좋구먼요. " 하고 집 칭찬으로 말을 붙이니 주인마누라가 내다보며 "어디서 왔
소? " 하고 상가럽게 물었다. "송도서 왔어요. " "성포서 왔어요? " "아니요, 경
기도 송도서 왔어요. " "녜, 송도요. 송도가 여기서 퍽 멀지요. " "이백 삼십 리랍
디다. " "먼길에 어째 왔소? " "약물 먹으러 왔어요. " "영천 약물 말이겠지요.
타관 사람들은 영천으로 많이 오지만 여기 사람은 약물을 먹으려면 흔히 약수산
으로 갑니다. " "약수산 약물이 영천 약물보담 더 좋은가요? " "나는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말들이 좋다고 합디다. 그런데 우리 집은 어째 찾았소? " "따님
이 있다지요? " “있어요. " "따님을 하도 잘 두셨다기에 한번 보러 왔소. " "그
렇소? 그럼 잠깐 올라앉구려. " 오가 아누라가 마루에 올라앉으며 곧 주인마누라
도 방에서 나왔다. 오가 마누라가 처음부터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색시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여 색시를 숨겨 두고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가까지 의심하였더니
주인마누라가 마루에 나와 앉은 뒤에 닫힌 건넌방 지
겟문을 바라보며 "옥련아! " 하고 불렀다. 건넌방 지겟문이 열리며 색시가 나왔
다. 그 어머니가 "이리 좀 와 앉아라. " 하고 말하니 색시는 말없이 어머니 옆에
가까이 와서 앉았다. 오가 마누라는 눈앞이 별안간 환하여지는 것 같았다. 잠깐
동안 정신 놓고 앉았다가 눈 어둔 사람같이 눈을 씻으며 색시를 바라보았다. 얼
굴 바탕이 등근가 하고 보니 갸름한 듯도 싶고 갸름한가 하고 보니 둥근 듯도
싶어서 어떻다고 말하기가 어려운데 맑은 눈은 수정 같고 오똑한 코는 그림 같
고 나브족한 입에 입술은 앵두빛 같고 도톰한 귀에 귓속은 호두껍데기 같다. 살
빛은 눈이요, 살결 은 비단이다. 잇다홍 무명적삼에 갈매 무명치마를 입었는데
매무새까지도 얌전하다. 오가 마누라가 염치없이 파고 보는데 색시는 면괴한 듯
고개를 다소곳하였다. "내 딸이 어떻소? " "내가 사내 못 된 게 한이오. " "사내
면 저 나이에 장가들겠소? “ "따님이 올에 몇 살이오? " "스물두 살이오. " "사
위 취재를 보신다지요? " "그렇다오. " "취재는 무엇을 보시나요? " 오가 마누라
의 묻는 말을 주인마누라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백이방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
방은 관가에서 늦게 나와 점심 먹으러
들어온 것이었다. 주인마누라가 점심상을 차리는 것을 보고 오가 마누라는 더
앉았기 거북하여 간다고 일어섰다. 오가 마누라가 객주에 와서 보니 천왕동이와
유복이는 바깥 큰방에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앉았고 손가는 눈에 보
이지 아니하였다. 오가 마누라가 바로 안으로 들어가며 "나 다녀왔어. " 하고 소
리치니 천왕동이가 먼저 방에서 뛰어따와 따라오며 "색시가 어떻습디까? " 하고
물었다. 오가 마누라가 실없이 천왕동이를 속이려고 "색시가 그저 그래. " 하고
눈에 차지 않던 것같이 말하니 천왕동이는 곧 "이쁘다는 게 거짓말입디까? " 하
고 다그쳐 물었다. "그저 그렇다니까. " "그저 그렇다구만 해서야 어디 알 수 있
소. “ 유복이가 그 동안에 쫓아왔다. "나는 한참 될 줄 알았는데 어째 그리 속
히 오셨소. 색시를 안보입디까? ” "아니 일부러 불러 보여주던데. " "그럼 색시
만 보구 곧 오셨구려. " "그랬어. " "색시가 참말 이쁩디까? " 유복이 묻는 말에
는 오가 마누라가 실없이 대답하기 어려워서 고개를 끄덕이고 "지금 황도령이
몸이 달아서 묻는 중이야. “ 하고 천왕동이를 보며 웃었다. "나두 궁금하우. 좀
자세히 이야기하시우. ”"우리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세. " 하고 오가 마누라가
사처 잡은 방으로 들어오는데 유복이와 천왕동이가 그 뒤를 따라들어왔다. 오가
마누라가 먼저 "손서방은 어디 갔나? “ 하고 유복이더러 물었다. "읍내 구경 나
갔소. " "혼자 갔어? " "같이 가자구 조르는 걸 우리는 오시면 이야기 들으려구
같이 가지 않았소. 어서 이야기 좀 하시우. " 유복이의 재촉을 받고 오가 마누
라는 색시 보고 온 이야기를 자세히 하고 "내 평생에 이쁜 사람도 더러 보았지
만 정말 이쁜 사람은 이번에 처음 보았어. 아무리 유명한 환쟁이를 불러대도 이
색시의 이쁜 모양은 그려내기 어려울걸. 이쁘면 요변스럽기 쉽지만 어찌 그리
천연한지 누구든지 이런 딸을 둔 사람은 아무 놈이나 내주고 싶지 않을 것이야.
" 하고 입에 침이 없이 .색시를 창찬하였다. 유복이가 천왕동이를 돌아보며 "아
까 주인의 말대루 하면 사위 취재의 끝날이 좀 어려을 것 같으나 자네가 이쁜
안해를 얻을 복이 있으면 맞혀내지 못하더래두 사위로 뽑힐는지 누가 아나, 불
계하구 내일부터 가보게. " 하고 권하니 천왕동이는 "어디 끝날뿐입디까. 첫날두
어렵지. " 하고 대답하였다. "사위 취재의 첫날은 무어고 끝날은 무어야? 뉘게
물어봤어? ” 하고 오가 마누라가 유복이에게 물었다. "이 집 주인에게 물어봤
소. 대개가 듣던 말과 같습디다. " "참말 벙어리 놀음이니 무어니를 시켜 본다던
가? " "그렇답디다. 사위 취재를 사흘 동안 보는데 첫날은 이방과 마주 앉아서
손으루 갖은 시늉을 내서 서루 의사를 통카는 것인데 말을 해선 못 쓰구, 다음
날은 장기를 두는 것인데 이방을 이겨야 쓰구, 끝날은 이방이 남몰래 궤짝 속에
넣어둔 물건을 알아내는 것이 랍디다. " "취재가 가지가지 괴상야릇하긴 하구
먼. 그렇지만 색시 이쁜 걸 생각하면 취재가 더 어려워도 좋을 것이야. " 오가
마누라의 말을 유복이가 대답하기 전에 천왕동이가 "그럼 저의 집에서 늙혀 죽
이는 게 수지요. " 말하고 곧 유복이더러 "내가 취재 보러 가서 요행으루 사흘까
지 다 가게 된다면 그 동안 어떻게 할라우. 먼저들 갈라우? " 하고 물어서 유복
이가 "그건 걱정 말게. 그 동안 우리는 구경 다니겠네. " 하고 대답하니 "우세밖
에 더하겠소. 한번 가볼라우. " 하고 천왕동이가 사위 취재에 갈 뜻을 말하였다.
오가 마누라다 갔다온 뒤 백이방의 집에서는 북새가 한바탕 크게 났다. 처음에
는 "지금 왔다간 여편네가 누구야? “ "송도서 온 사람이라오. " "송도 여편네가
우리 집에를 왜 왔어? ” “옥련이 보러 왔다오. " 이방 내외가 예사로 묻고 예
사로 대답하다가 "옥련이는 아무가 와 보자든지 보여주나? " "보여주면 어떻소?
" "보여주면 어떻다니, 과년한 기집애를 아무나 보여주어? ” "과년한 기집애라
고 못 보여줄 것 무어 있소. " "중놈이 와보구 업어가두 좋구 도둑놈이 와보구
뺏어가두 좋단말이야. " "집에서 늙혀 죽일 기집애를 업어가면 어떻고 뺏어가면
어떻소? 아무래도 좋지. " 내외간에 오고가는 말이 차차로 거칠어져서 나중에는
"저거 미치지 않았나. " "누가 미쳐? " "말대답 마라! " "입 두구 왜 말두 못해!
" "주책머리 없이. " "내가 주책이 없어서 딸을 색시로 늙히나베. " 이방이 언성
을 높이고 이방의 안해도 지지 아니하였다. 아비의 점심 먹는 것을 보려고 마루
에 나왔던 옥련이는 부모의 말다툼이 저 까닭에 나는 것을 보고 돌아앉아서 눈
물을 똑똑 떨어뜨리었다. 이방이 받았던 점심상을 밀어 내치고 벌떡 일어서서
사랑으로 나가는 길에 그 단해를 한번 발길로 걷어찼다. 이방의 안해가 대번에
남편의 옷을 움켜잡고 "속시원하게 아주 죽여
! 나 죽으면 젊은 술장사년 데려다가 살림을 맡길 테지. 어서 죽여! " 하고 대들
었다. 이방이 안해의 손을 뿌리치다 못하여 안해의 팔을 후려쳤다. 그 안해가 "
잘친다 잘쳐! 뉘 망신인가 어디 보까. " 하고 이방에게 매어달리는 중에 얹은머
리가 풀어졌다. 화가 꼭뒤까지 난 이방이 체면도 생각지 못하고 안해의 머리채
를 잡고 내둘렀다. 이방의 안해는 독이 나서 "죽여 죽여! " 하며 바락바락 대어
들고 이방은 눈이 뒤집혀서 "이년, 이년! " 하며 사정없이 두들겼다. 옥련이가 울
면서 "아버지, 이게 무슨 망령이세요. " "어머니, 고만두셔요. " 하고 중간에 들어
가 끼어서 싸우는 부모를 간인히 떼어놓았다. 이방은 바깥방에 나오며 곧 옷을
갈아입고 다시 질청으로 들어갔다. 질청에 있던 다른 아전들이 이방의 기색이
좋지 못한 것을 보고 서로 눈짓하며 조심들 하는 중에 사령 하나와 관노 하나가
일수가 사납든지 질청 앞 회화나무 밑에서 고누를 두다가 사령이 실수하고 물러
달라는 것을 관노가 물러주지 아씨하여 물러달
라거니 물러주지 않는다거니 다투다가 종내 시비가 되어서 서로 욕질을 하는데
떠드는 소리가 질청 안에까지 들리었다. 이방이 방에 누웠다가 대청에 나와 앉
으며 다른 사령을 불러서 밖에서 떠드는 놈들을 잡아들이라고 일렀다. 나간 사
령이 둘을 데리고 들어와서 발명하여 주려고 "장난들 하는데 목소리가 좀 커졌
답니다. " 하고 말하니 이방이 전 같으면 "함부루 떠드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
냐. 이담에는 조심들 해라. " 하고 약간 꾸짖고 말 것인데 "이놈들아, 아무데서나
함부루 떠드니 너놈들의 세상이란 말이냐! " 하고 호령을 내놓았다. 사령과 관노
가 벌갈아 가며 "잘못했습니다. " 하고 비는 것을 이방은 “너놈들을 말루만 일
러서 못쓰겠다. 좀 맞아봐라. " 하고 곧 다른 사령을 시켜서 둘을 끌어 엎어놓고
매를 십여 개씩 때려 내쳤다. 이방이 종일 질청에서 큰소리 잔소리 하다가 문루
위에서 폐문하는 삼현육각 소리가 날 때 집에를 나와 보니 안해가 방문을 첩첩
이 닫고 드러누워서 내다보지도 아니하여 이방은 저녁 밥을 바깥방으로 내다 먹
고 다시 안에 들어가지 아니하였다. 아튿날 식전에 이방이 일찍 일어나서 소세
하고 안에는 들어가보지도 않고 바로 관가에 들어가서 조사를 보고 늦은 아침때
집으로 나왔다. 이방은 안해에게 너무 과히 한 것을 뉘우치는 마음이 없지 않고
또 아침밥을 사랑에서 쓸쓸하게 먹기 싫은 생각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오는데 이
방의 안해가 마루에 있다가 방으로 들어가며 방문을 메어꽂듯이 닫으니 이방이
”음. “ 하고 체증기 있게 입맛을 다시고 나서 "옥련아, 내 아침 내보내라. " 하
고 곧 도로 바깥방으로 나왔다. 옥련이가 심부름하는 여편네에게 밥상을 들려가
지고 나와서 받아놓은 뒤에 바로 들어가려고 하니 이방이 "게 좀 있거라. " 하고
붙들었다. "너 밥 먹었느냐? " "아직 안 먹었세요. " "너의 어머니두 안 먹었니?
” “녜. ” "먼저들 먹지 왜 안 먹어. " 하고 이방이 수저를 들면서 딸을 보고
"여기 와앉아서 내 말좀들어라. " 하고 말하여 옥련이는 상 옆에 와서 살며시 쪼
그리고 앉았다. "어제 내가 한 일이 아무리 홧김이라구 하더래두 잘한 일이 아닌
건 다시 말할 것두 없지만 너의 어머니가 화를 돋아주지 않으면 그런 일이 날
까닭이 있느냐. 대체 너를 날 때는 너의 어머니가 먼저 발동을 해서 내가 같이
부엉바위 용왕당에 가서 발원을 했구, 사위 취재 보일 것을 정할 때는 말은 내
가 먼저 냈지만 너의 어머니가 좋다구 하구 나와 같이 용왕당에 가서 또 발원을
했다. 안방 다락에 있는 궤짝들 속에 든 것두 발원한 끝에 너의 어머니 손으루
넣은 것이다, 그래 지금 와서 모두 내가 잘못해서 사위를 못 보는 것처럼 말하
니 사람이 기막히지 않느냐. 너의 어머니 말은 사위 취재를 고만두자구 하니 이
거 봐라. 사위를 극택합네 조선 팔도에 소문을 떠들어 내놓고 슬그머니 고만두
면 사람의 이목에두 창피하거니와 그버덤두 용왕에게 발원한 것은 어떻게 하니.
용왕을 속이면 뒤에 무슨 재앙이 있을는지 누가 아니. 내가 어젯 밤에 잠 한숨
못 자구 이리저리 생각한 끝에 사위 취재 고만두구 안 두는 것을 네 말을 한번
들어보구 작정하려구 맘먹었다. 그래 네 생각엔 어떠냐? 너의 어머니 말대루 고
만두는 게 좋겠니? 우리 집안의 큰일이니까 부끄러워 말구 말해라. " 이방이 혼
자 여러 말을 한 뒤에 그 딸은 겨우 "저는 몰라요. " 하고 한마디 대답하였다. "
모르다니 네 생각을 말하란 말이야. " "제가 무슨 생각이 있세요. " "너두 지금
나이 이십이 넘은 것이 어째 생각이 없단 말이냐? " "아버지 생각대로 하시지요.
그걸 저더러 물으실 것 무어 있세요. “ "아비 생각대루 하다가 편발 처녀루 일
평생을 보내게 되면 어떻게 할 테냐. 아비를 원망 않느냐? ” "원망이라니요? 아
버지 망령의 말씀이세요. " "그러면 앞으루 삼 년만 떠 기다라 보자. 그래도 사
윗감이 나서
지 않으면 그때 가서는 사람의 창피구 용왕의 재앙이구 다 돌볼 것 없이 사위
취재를 고만두겠다. 너두 그렇게 알구 있거라. " 이방이 말하느라고 밥을 몇 술
뜨지 못하였는데 숙랭을 가져오라고 하여 물을 말면서 "인제 고만 들어가서 너
의 어머니하구 밥 먹어라. " 하고 이르니 옥련이는 “녜. ” 하고 대답따면서도
상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심부름꾼 하나가 방문 밖에 와서 기침을 하여
이방이 "누구냐? " 하고 방문을 열고 내다보니 그 심부름꾼이 "밖에 총각 하나
가 와서 취재를 보아지라고 합니다. " 하고 연통하여 이방은 "내가 지금 밥을 먹
으니 잠깐만 기다리라구 해라! " 하고 일러서 심부름꾼을 내보낸 뒤에 물 만 밥
을 건정건정 언져 먹고 상을 치우게 하였다.
이방이 혼자 앉아서 총각을 불러들였다. 총각의 얼굴이 해사하고 이목구비 단
정한데 그중에 눈의 열기가 심상치 않아 보이었다. 전에 사람이 많이 올 때는
이방이 손가락으로 자리를 가리켜서 온 사람을 앉힌 뒤에 곧 취재를 보이고 취
재를 보이다가 의사에 틀리기만 하면 곧 손을 내저어서 그 사람츨 내보내고 시
종 입 한번 뻥끗 아니할 때가 많았는데 이 날은 이방이 한가도 하려니와 마음에
사위 취재를 새로 정한 것 같아서 첫고등에 온 사람을 대할 때와 같이 취재 보
기 전에 여러 말을 물었다. "취재를 보러 왔다지? “ ”녜. “ "성명이 무어야?
" "황천왕동입니다. " "어디 사나? " "양주 삽니다. " "경기도 양주? " ”녜. “ "
양주가 고향인가? " "고향은 함경도 갑산입니다. " "먼 데루 이사 와서 사네그
려. " ”녜.“ "부모가 다 기신가? " "다 돌아갔습니다. " "집에는 누가 있나? " "
누님집에 얹혀 있습니다. " "자네는 집이 없나? " ”녜. “ "부모의 산소는 양주
기신가? ” "아니요, 백두산 허항령 밑에 있습니다. " "백두산이라니? " "우리 남
매가 다 백두산 속에서 자랐습니다. " "자네 부모가 백두산 속에서 사시다가 돌
아가셨단 말인가? " “녜. ” "무슨 도들을 닦으시려구 백두산에를 들어가셨던
가? " "인간처에서 살기 싫으니까 산속으로 들어가셨던갑디다. " "자네 나기는
어디서 났나? 갑산서 났나? " "아니요, 허항령서 났습니다. " "자네 누님이 어떻
게 양주 사람에게루 시집을 오게 되었나? " "매형이 백두산에를 들어왔다가 만
나서 서루 혼인하게 되었습니다. " "자네 부모는 다 돌아가신 뒨가? " "아니요,
어머니는 살았을 땝니다. " "자네 지금 몇 살인가? " "서른세 살입니다. " "삼십
안일 줄 알았더니 세른셋이나 되었어. 그래 이때 장가를 못 들었단 말인가? " "
그렇습니다. " "자네가 지금 만일 장가를 들면 처가살이두 할 수 있겠네그려. " "
처가에 달렸지요. " "우리 집에서 사위 취재 본다는 소문을 듣구 전위해서 왔나?
“ "아니요, 장기 잘 두신단 소문은 먼저 들었지만 사위 취재 이야기는 여기 와
서 들었습니다. " 이방이 또 무슨 말을 물으려고 할 때 천왕동이를 인도하던 심
부름꾼이 방문 밖에 와서 기웃기웃 들여다보다가 이방을 보고 "취재 볼 사람이
또 하나 왔습니다. " 하고 연통하니 이방이 미간을 찌푸리며 "먼저 온 분이 아직
끝안난 줄 알면 밖에서 기다리게 할 것이지 연통할 게 무에란 말이냐! " 하고
호령기 있이 말하였다. "하두 오래 되어서 끝난 줄 알았습니다. " 하고 심부름꾼
이 발명하여 이방이 "잔말 마라! "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천왕동이가 "나중 온
사람을 먼저 보이실 수 없습니까? " 하고 물어서 이방이 "그건 왜? "
하고 천왕동이를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 취재 볼 때 옆에서 구경하면 못씁니까?
" "구경해두 상관없지. " "그럼 지금 온 사람부터 먼저 보이시지요. " "글쎄, 왜
그렇게 하란 말인가? " "남 보는 것 구경 좀 할라구요. " "남 보는 것 구경해야
신통할 게 없네. " "그래 두요. " 이방은 천왕동이 말하는 것이 밉지 않아서 한
번 빙그레 웃고 심부름꾼을 내다보며 나중 온 사람을 불러들이라고 일렀다.
심부름꾼이 인도하여 들어온 사람은 얼굴이 가무잡잡한 사람인데 떨음걸이며
몸가지는 품이 보기에 벌써 촐랑이다. 이방이 말 한마디 않고 손가락으로 윗목
자리를 가리키니 그 사내가 이방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다가 윗목 자리에 책상다
리하고 앉았다. 이방이 한 손의 엄지 식지 두 가락을 동그랗게 맞붙이어 내들었
다. 그 사내가 얼굴을 되들고 눈을 까막까막하다가 한 손의 엄지와 식지로는 치
방과 같이 동그란 구멍을 만들고 다른 손의 식지 하나를 꼿꼿이 하여 그 구멍을
꿰어질렀다. 이방은 하늘이 등글다고 하늘이란 뜻을 보인 것인데 그 사내는 과
녁 복판을 생각하고 화살로 맞히는 시능을 낸 셈인지 또는 아이들의 손가락 가
지고 욕질하는 것을 생각하고 당치 않은 시늉을 낸 셈인지 그 뜻은 알 수 없으
나 이방의 눈스로 보면 하늘을 꿰어지른다는 것이 엄청나게 틀리는 대답이다,
이방이 대번에 상을 찡그리며 나가라고 손을 홰홰 내저었다. "틀렸단 말이오? "
그 사내가 말로 물으니 이방은 말없이 고개만 한두 번 끄덕이었다. 그 사내가
빨딱 일어서서 어깨를 초싹거리고 나가면서 "제기 망신만 했네. " 하고 군소리하
는데 그것이 천왕동이에게는 남의 일같이 생각되지 아니하였다. 이방이 한구석
에 앉은 천왕동이를 중간으로 나앉으라고 손가락으로 자리를 가리켜서 천왕동이
가 이방과 마주 대면하고 앉았다. 이방이 한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다른 손
의 엄지손가락을 치어들어 보이니 천왕동이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한 손의 새끼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고 다른 손의 손가락 하나로 자기의 볼을 똑똑 두드리었
다. 이방의 의사는 "사내가 엄지손가락과 같지. " 하고 물은 것인데 천왕동이의
한 시늉은 "여편네는 새끼손가락이오. " 하고 여편네가 분 바르는 흉내로 볼을
두드린 모양이라 대답이 되었다. 이방은 한번 빙그레 웃고 나서 손가락으로 다
섯을 꼽아서 내보이니 천왕동이는 별로 지체도 않고 셋을 꼽아서 마주 보였다.
이방의 의사는 "오륜을 아느냐? “ 하고 물은 것인데 천왕동이의 한 시늉은 정
녕코 "삼강까지 아오. " 하고 대답한 것이라 이방은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이방
이 도리어 잠깐 주저하다가 혼인이란 것은 각성바지 두 사람이 서로 합하는 것
이라는 의사를 보이려고 두 손바닥을 딱 쳐서 마주 붙이니 천왕동이는 선뜻 두
손을 앞으로 내들고 어린애들이 쥐암이 하듯이 손을 여러 번 폈다 쥐었다 하였
다. 혼인은 백 가지 천 가지 복의 근본이라는 의사를 보이려고 하는 시늉인 것
이 분명하였다. 대답이 빈틈도 없거니와 수월하고 능란하였다. 이방은 놀랍고도
기뻐서 "잘 되었네. "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인제는 말해두 좋습니까? " "오늘 취
재는 그만 해두 넉넉하니까 말하세. " "사흘 볼 취재를 오늘 하루에 다 끝낼 수
없습니까? ” "왜 그러나? " "동행들이 나 땜에 공연히 객주에서 묵으니까 말
씀입니다. " "객비 땜에 말인가? " "아니요, 객비는 염려 없습니다. " "객비가 어
렵다면 내가 객비는 물어줄 수 있지만 날짜는 줄일 수가 없네. 자네두 소문을
들어 알는지 모르지만 사위 취재를 내가 신룡담 부엉바위란 곳에 있는 용추 말
일세, 용왕에게 발원하구 정한 것인데 날짜까지두 그때 정한 것이라 지금 줄이
구 늘리구 할 수 없네. " 이때 사령 하나가 방문 밖에 와서 꾸뻑 하고 "안전께서
지금 상주를 찾으십니다. " 하고 말하였다. "왜 무슨 일이 났느냐? " "소인은 자
세히 몰라두 서울 갈 봉물 까닭에 찾으시는가 봐요. " "오냐, 곧 들어갈 테니 먼
저 가거라. " 이방이 사령을 보낸 뒤에 천왕동이를 보고 "내가 관가에를 들어가
야겠네. 내일두 늦은 아침때쯤 오게. " 하고 말하여 천왕동이는 "그럼 내일 오겠
습니다. " 하고 곧 일어서 나왔다.
천왕동이가 객주로 돌아와서 문간에 들어서며 곧 "박서방, 박서방! " 하고 부
르니 사처방에서 오가 마누라와 이야기하고 앉았던 유복이가 내다보며 "인제 오
나, 어떻게 되었나? " 하고 물었다. "벙어리 놀음은 썩 잘했소. " "어서 이리 오
게. 자세한 이야기 좀 듣세. " 천왕동이가 바로 사처방으로 오는 중에 봉놋방 봉
당에 나란히 걸터앉았던 손가와 객주 주인이 다같이 뒤를 따라왔다. 천왕동이는
방안에 들어와서 유복이 옆에 가까이 앉고 손가는 주인과 같이 방문 밖에 와서
섰자, "어서 이야기 좀 자세히 하게. " 유복이의 재촉을 받고 천왕동이가 처음
가서 이방과 수작하던 말과 나중 온 사람을 먼저 취재 보이게 하고 구경한 사연
을 대강 대강 이야기하니 오가 마누라가 듣고 "나중 온 사람에겐 말 한마디 않
고 황도령에겐 여러 말을 물었다니 그것만 보더래도 황도령이 백이방 맘에 든
것을 알 수 있지. " 하고 웃었다. 유복이가 엄지가락과 식지가락을 등그렇게 맞
붙여 들고 "그래 이게 무에란 말인가? “ 하고 물으니 천왕동이가 "그게 내 생
각엔 둥근 장기쪽인 상싶습니다. 그 자식이 장기 두는 시능이나 냈더면 어떨는
지 모를걸 손구락으로 폭 질르니 송곳으로 장기쪽을 뚫른단 말이요 무어요. 고
만 틀려서 쫓겨났지. " 하고 싱글벙글하였다. "그개 자네는 장기 두는 시늉을 내
서 맞았나? " "내가 옆에서 구경하구 미리 생각해 두었을까 봐 그랬는지 내겐
그걸 안 합디다. " "그럼 자네겐 어떻게 하든가? " "처음에 수염을 쓰다듬으며
엄지손구락을 치어듭디다. " "그건 무슨 뜻일까? " "자기가 엄지가락이라구 거만
부릴 것이 무어 있소. 생각해 보시우. 장기밖에 더 있겠소? " "그렇지, 각골 이방
쯤은 엄지가락이라구 거만 부릴 턱이 못 되니까. " "그래 내가 이렇게 했소. "
하고 천왕동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면서 볼을 똑똑 두드렸다. "그건 무슨 뜻인
가? " "엄지가락 장기라구 흰 체하다가 새끼가락 장기가 되면 부끄럽지 않으냔
말이지. 이방이 보더니 빙그레 웃습디다. " "대답이 용하게 되었네. 그러구 고만
끝이 났나? ” "아니 또 있소. 그 담겐 이방이 손구락으루 다섯을 꼽아 보이는데
그게 장기를 한번에 다섯 수씩 본다는 자랑인 듯합디다. 국수 장기라니까 수를
볼라면 십여 수라두 한꺼번에 볼 테지만 예사루두 다섯 수씩은 본다구 자랑하는
모양이기에 나는 일곱 수를 예사루 본다구 다섯 꼽은 손구락에서 두 손구락을
펴서 보였소. 그랬더니 이방이 놀라는 기색이 있습디다. " "의사가 참말 잘 돌았
네. " "끝에는 아주 알기 쉽게 이방이 두 손바닥을 마주 부딪칩디다. " "알기 쉽
대두 나는 모르겠네. " "장기를 한번 두잔 뜻 아니겠소. 그래 내가 백 번이라두
두자구 두 손을 폈다 쥐었다 했소. 그제는 이방이 말루 잘 됐다구 창찬합디다. "
"그러구 끝이 났네그려. 잘되었네. 아주 잘되었네. " 이때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
던 손가가 “첫날 잘 치른 사람은 전에두 더러 있었답디다. 장기를 잘 두니까
내일은 걱정없지만 끝날이 아무래두 탈이오. 남의 집 다락 세간 그중에 집안 사
람두 못 보게 잠가놓은 궤짝 속에 든 물건을 무슨 수루 알아낸담. " 하고 말하니
객주 주인은 ”내일두 쉽지 않소. 장기란 게 비기기가 쉽다는데 꼭 이겨야지 비
겨두 못쓴다우. 총각치 아무리 장기를 잘 두더래두 국수장기를 이기기가 어디
쉽소. " 하고 손가 말에 운을 달고 오가 마누라가 "하늘이 정해 놓은 연분이면
절로 다 되겠지. “ 하고 말하니 유복이는 "암 그렇지요. " 하고 오가 마누라 말
에 운을 달았다. 유복이가 천왕동이를 보고 "우리가 내일 약수산 약물을 먹으러
갈 텐데 장기 취재가 일찍 끝나거든 자네두 같이 가세. " 하고 말하니 천왕동이
가 "나는 약물 고만 먹을라우. 될 수 있으면 내일 종일 이방하구 장기를 두어볼
생각이오. " 하고 대답하였다.
이방의 안해가 골이 좀 풀려서 이방과 말을 하게까지 되었다. 이방이 조사 보
러 들어가기 전에 조반 요기를 하면서 "오늘 조사가 좀 늦을는지 모르니 나 오
기 전에 사위 취재 보러 오는 총각이 오거쓴 내 방에 들여앉혀 두게. " 하고 말
을 이르니 그 안해가 "그러리다. " 하고 대답하였다. 그날 조사가 과연 늦었다.
늦은 아침때가 다 되도록 이방이 나오지 아니하였다. 이방의 안해가 모녀 겸상
하여 아침밥을 먼저 먹는 중에 바깥 심부름꾼이 안에 들어와서 이방의 안해를
보고 "취재 보러 온 총각이 밖에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갔다 다시 오랄까요? "
하고 물었다. "그 총각이 어제 왔던 총각이던가? " “어제 와서 오래 있다 간 총
각이에요. " "바깥방에 들여앉혀 두게. " "안 기신 방에 들여앉혔다가 걱정이나
안 날까요? " "걱정 말고 들여앉히게. " 심부름꾼이 나간 뒤에 이방의 안해는 아
침밥을 얼른 먹어치우고 바깥방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되창문에 가서 문을 빠끔
히 열고 총각의 외도를 한동안 들여다본 뒤에 바깥 심부름꾼을 불러들였다. "총
각이 혼자 앉아 심심치 않겠나, 자네 윗목에 가서 좀 같이 앉았게그려. " "녜, 그
리하겠습니다. " "그 총각이 어디 있다던가? ” "타관에서 온 사람이에요. " "글
쎄 여기 와서 어디 있는가 말이야? " "객주에서 묵겠지요. " "어느 객주? “ "몰
라요. " "물어보게. " ”녜. “ 심부름꾼이 바깥방으로 나간 뒤에 얼마 동난 안
지나서 이방이 관가에서 나왔다, 이방이 바깥방을 들여다보며 "총각 벌써 왔던
가? 내가 아침밥을 먹구 나을 테니 미안하지만 조금 더 기다리게. " 하고 바로
안으로 들어와서 아침밥을 부지런히 먹었다. 이방이 사랑으로 나오며 곧 심부름
꾼은 밖으로 나갔다. 이방이 윗목에 앉았는 천왕동이를 바라보며 "장기를 두어
보까. 이리 올라오게. " 하고 말하니 쳔왕동이는 윗목에 있는 장기판과 장기를
들고 가려고 하였다. "그건 거기 놔두구 이리 오게. " 하고 말한 뒤에 이방이 벽
장을 열고 다른 장기판과 장기를 내어 놓는데 판은 가래나무요 장기는 화양목이
었다. 이방과 천왕동이가 마주앉아서 장기를 벌여놓았다. 면 수습이 끝난 뒤에
이방은 자기 둘 수를 보느니보다 천왕동이 두는 수를 보느라고 한참씩 들여다
보았다. 장기가 반 판쯤 되었을 때 이방이 장기판에서 물러나 앉으며 "장기 고만
두세. " 하고 말하였다. "왜요? " "다 둘 것 없이 내가 졌네. 내일 오게. " "될 수
있으면 오늘 종일 장기를 두려구 생각하구 왔는데요. ” "오늘 관가에 일이 있어
서 점심 전에 또 들어갈 테니까 장기 두구 있을 수 없네. " 천왕동이가 하릴없이
겨우 장기 반판 두어보고 객주로 돌아왔다. 동행들은 모두 약수산에 가고 객주
에 없었다. 천왕동이가 동행들 뒤를 따라서 약수산을 가려다가 약물 먹으러 가
느니 낮잠이
나 잔다고 사처방에 혼자 드러누워서 낮잠 한숨을 실컷 자고 일어 났다. 마당에
나와서 해를 치어다보니 점심때가 훨씬 기울었다. 점심 달라기도 겸연쩍으려니
와 배도 고프지 아니하여 밖에 나가 바람을 쏘이려고 나가는 중에 객주 주인이
늙수그레한 여편네 하나와 같이 마주 들어오며 "총각 어디 가우? 이 안손님이
총각을 찾아오셨다우. " 하고 말하였다. "누구신데 날 찾아오셨소? " "잠깐 말씀
할 일인 있어 왔소. 사처방이 있으면 방으로 들어갑시다. " 천왕동이가 낯모르는
여젼네를 데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 여편네가 객주 주인이 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천왕동이는 향하여 "나는 백이방의 안해 되는 사람이오. " 하고 말하여
천왕동이는 깜짝 놀랐다. "요새 우리 집에 취재 보러 오지 않소? " “녜. ” "내
가 일러줄 말이 있소. " "무슨 말씀입니까? " 그 여편네가 천왕동이에게로 가까
이 다가앉아서 입을 거의 귀에 대다시피 하고 한참 소곤소곤 말한 뒤에 총총히
일어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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